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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김제에 쓰레기 대란 오나

  • 기획
  • 전북일보
  • 2019.07.18 14:39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전통예술, 그 전승에 대하여

얼마 전 남원농악이 우리 지역에서 또 하나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었다. 지정 대상이 되는 기예능은 악기연주, 판굿, 개인놀이, 부들상모 제작이다. 특이한 점은 부들상모 제작이었다. 악기연주나 판굿, 개인놀이 등은 일반적이나 농악소품을 만드는 기술까지 포함한 경우는 쉽게 접할 수 없었다. 부들상모란 구슬 속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끈을 넣고 끝에 날짐승의 깃털로 만든 부포를 달아 만든 상모를 말한다. 남원농악 수장고 염창수 씨가 상쇠 류명철 명인과 소고잽이 고 홍유봉 선생에게 제작 기술을 배워 전승하고 있다. 고창농악의 경우도 수소고 임성준 씨가 고 유만종 선생에게 고깔소고춤에 쓰이는 소고 제작기술을 배워서 계승하고 있다. 각자의 전통과 색깔을 간직한 농악소품은 농악구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상모, 소고 등의 제작 기술은 일종의 도구제작 지식으로서 유네스코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주목하는 부분 중 하나다. 21세기 들어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국내외적으로 관심 받고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200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에 의거하여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표목록 또는 긴급목록에 각국의 무형유산을 등재하는 제도로서 지금은 세계유산과 마찬가지로 정부간 협약으로 발전 되었다. 우리나라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판소리(2003), 강강술래(2009),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씨름(2018) 등 총 20개다. 특히 씨름은 한국 전통 레슬링, 씨름이라는 명칭으로 2018년에 사상처음으로 남북공동 등재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무형문화유산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보호되었다. 그러나 한계를 보여 2015년에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무형문화재법)이 따로 제정되어 2016년 이후 시행되었다. 한 인터넷 포털에 소개된 국민신문고의 관련 글에서는, 기존의 문화재보호법이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원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원칙 등이 무형문화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데는 오히려 저해되었다고 했다. 건물, 그림 등과 같이 일정한 형태를 지닌 유형문화유산은 원형의 모습을 얼마나 그대로 유지, 보존하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위나 문화로 이루어지는 무형문화유산은 한 시점에 머무르도록 잡아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 타당성도 모호하다. 무형문화재법은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하 유네스코 협약)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 유네스코 협약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 집단 및 개인들이 그들의 문화유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는 실행, 표출, 표현, 지식 및 기술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전달 도구, 사물, 유물 및 문화 공간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범위는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체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 예술, 사회적 실행, 의식, 그리고 축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적 공예 기술이다. 무형문화유산을 전승하고 향유하는 사람들로서 공동체와 그들의 문화에 주목하고, 이들이 가진 광범위한 지식의 영역까지 관심의 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남원농악에서 부들상모제작 기술까지 지정대상이 된 것도 이 흐름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무형문화유산 논의를 국내외에서 선도해 온 전북대학교 함한희 명예교수를 7월 어느 날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함 교수는 부들상모 제작을 지정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형문화재를 총체적, 통합적으로 보는 시각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협약의 방향성을 고려하는 추세의 영향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협약에서 주목하는 것은 원형보다는 살아있는 문화이고, 무형문화유산을 간직하고 향유하는 공동체라고 했다. 사람들이 간직한 다양한 지식, 기술 등을 문화의 관점에서 폭넓고 생동감 있게 보려는 것으로 필자는 이해했다. 누가, 왜 하는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바쁜 21세기에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주목 받는 이유를 물었다. 함 교수는 무형문화유산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줍니다. 농악이나 줄다리기 등에 사람들이 왜 참여하겠어요? 이걸 통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현대인들이 공동체를 더욱 만들고 싶어 해요. 라며, 무형문화유산은 옛날 거, 원형적인 것 이런 것만이 아니에요.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살면서 미래로 가져가는 것, 미래 삶의 방향성을 찾는 것입니다. 고 했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정책이 유네스코 협약 취지에 발맞추려 하곤 있지만 공동체에 주목하지 않는 점, 살아있는 문화 중심이라기보다는 원형, 전형 중심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 가면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ICHCAP)를 볼 수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48개 유네스코 회원국들 간의 무형문화유산 교류의 중심이 되는 국제기구다. 그것이 전주에 설립된 것은 한국의 문화적 위상과 전라북도의 풍부한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다. 2019년 7월의 오늘, 전통예술의 전승도 소수의 예능자 중심에서 다수가 공유하는 현재형의 문화가 되는길로, 원형의 경계에서 생동하는 창조적 계승으로 행보를 넓힐 때다. /조세훈 문화인류학 연구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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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6 17:41

[참여&소통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사회적기업 등록제 전환에 대해

지난 7월 5일 대한민국사회적경제박람회장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그동안 장벽이었던 사회적기업 인증제가 등록제로 개편된다. 이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가치를 평가해 사회적가치가 높은 기업에게 지원을 더 많이 해주는 형태로 지원체계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경제기업에서 가장 문제로 여겼던 판로와 금융 확대를 위한 정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장관은 지금 공공기관에서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을 구매하고 있는데, 수의 계약 금액 한도를 상향할 예정이라며 또한 사회적경제기업에서 물품을 구매한 공공기관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등록제법인격 신설 논의 확산 최근 사회적기업 정책이해관계자들의 논의를 들여다보면, 사회적기업 등록제나 법인격 신설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사회적기업 등록제는 현재의 사회적기업 인증제를 등록제로 변화시키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회적기업 등록제 도입과 법인격 신설 논의가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적어도 사회적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개편의 핵심적 당사자 중 하나인 인증 사회적기업들은 이러한 등록제 개편 논의를 충분히 인지하거나 동의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고용노동연구원(2018)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기업 인증제를 등록제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응답한 사회적기업가가 가장 많았으며(46%), 심지어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가 동의하는 응답자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에 더해, 법인격 신설과 관련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 사회적기업가가 과반을 나타냈으며(62%), 동의한다고 응답한 응답자가 전체 약 25% 정도에 불과했다.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는, 사회적기업 체제나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는지도 모르는 등록제와 법인격 논의가 주요 당사자인 사회적기업 주체에게도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 판단된다. 물론 등록제 및 법인격의 논의가 사회적기업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장되는 것이라면, 이와 관련해 일정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예를 들어, 예비사회적기업 지정만료 설문에서 확인한 바 있듯이, 등록제가 도입될 경우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종료 후 운영되는 기업 중 사회적경제조직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조직의 2/3 이상(64.4%)이 사회적기업으로 등록 의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변경으로 인해 어떤 부작용이나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지, 그리고 이 결과 현재의 사회적기업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등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은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등록제와 법인격 도입은 제도 관련주체와의 논의를 통한 공론화와 반드시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 판단된다. △등록제 전환진입 문턱 낮아져 사회적기업 등록제의 필요성이 대두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기업 인증제도의 엄격한 운영이 오히려 사회적기업의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비판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적경제기업에 대한 정부사업 참여가 확대되고 있으며 진입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등록제 전환이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의 계약 한도 조정,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활성화, 도시 재생 등 정보, 지자체 사업 참여 시 가점 부여 등 사회적경제를 둘러싼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시기이다. 사회적기업법 제정 10년이 된 현재 등록제 전환으로 진입장벽을 낮춰 다양한 사회문제가 사회적기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최현석,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과장) 등록제 전환을 통해 사회적기업 진입 문턱은 낮아진다. 등록제를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첫째, 기존에 1명 이상 유급근로자 고용 및 1개월 이상 영업활동 수행 조항과 영업활동을 통한 수익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 폐지된다. 단 일자리제공형은 기존에 5명 이상 유급근로자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서 3명이상 유급근로자를 두는 조항이 축소 유지된다. 그만큼 등록제를 통해 사회적기업 진입 문턱을 낮추겠다는 의도이다. 둘째, 등록에 관한 권한을 지자체로 이관한다. 현재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시도지사에게 등록 권한을 위임해 등록증을 교부하는 방식을 취한다. 재정지원 사업의 주체, 지역중심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 등을 고려한 조치이다. 셋째, 사회적기업 정의 규정이 현실화된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개정안 내 사회적기업의 정의,목적(법2조,8조)에 창의,혁신적인 방식을 통한 사회 문제의 해결이라는 문구를 추가하여 기존의 인증제에서 취약계층 지원 부분을 강조해왔는데 공동기업, 1인기업 등 유급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는 기업은 인증을 받지 못했다. 등록제로 개편되면 국제공헌(공정무역), 공유경제, 기술 기반 벤처 등의 기업도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할 수 있다. 넷째, 정부지원사업은 2단계에 걸쳐 대상을 선정하여 엄격성이 강화되고. 일정 기준 이상일 때 재정, 판로, 금융, 구매 지원 신청이 가능하도록 한다. 사회적목적 실현에 대한 판단 지표를 강화해 사회적기업 판별에 주로 활용한다. 또한 등록 기업에 대한 사업보고서 제출 의무는 연 1회로 축소하고 기재항목도 간소화한다. 기업평가 결과에 따라 차별화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지원-민간 네트워크, 중앙 -지자체 간 협력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등록제 전환은 무늬만 사회적기업을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될 수 있다. 등록제 전환에 대한 가장 큰 이슈는 무늬만 사회적기업인 위장 사회적기업의 등장 등 사회적기업 변별력 약화 문제이다. 인증요건을 갖추어야만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는 현재 조건에서 벗어나 시도에서 등록증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은 양적으로 크게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목적 실현과 기본적인 영업을 통한 수익이 있어야 인증이 가능했던 까다로운 인증조건에서 벗어나 사회적가치 실현과 유급근로자 채용 등의 조건이 완화되거나 폐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나도 사회적기업에 등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정부지원만을 쫓는 사회적기업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사회적기업 전체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기에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등록은 자유롭게 열어놓을 수 있으나 정부 지원사업과 공공구매 등에 대해서는 엄격한 평가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예산이 책정되어야 한다. 등록제로 문턱이 낮아지면 변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부지원을 위한 평가 시스템은 더 강화도리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등록기업 평가를 통해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지원내용도 차별화하겠다과 밝혔다. 사회적기업평가보고서에 따라 일정 기준 이상의 기업에만 재정, 판로, 금융, 구매지원 신청 자격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퇴출제 등을 도입해서 사회적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기업들에 대해 퇴출제를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또한 퇴출 평가 지표와 실행을 위한 인력과 예산이 또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을 더 많이 양산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문제는 더 빠르게 더 많이 해결될까.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등록제 그 자체가 중심인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윤영 천년누리 전주빵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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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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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5 11:49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민주주의·법치주의 바로 알고 토론문화 정착해 나갔으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법전(法典) 보다는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송강호의 극중 대사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더 잘 알려진 헌법 조문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근본이념이 민주주의이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 원리로서의 국민주권주의 등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원리 및 이념이 담겨 있다. 이는 국정농단 사태 때 국민들이 촛불을 들면서 지켜내고자 했던 가치이기도 하다. 제헌절(17일)을 앞두고 헌법 가치와 질서를 수호하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수장을 역임한 이강국(75사진) 전 헌법재판소장을 만나 헌법의 가치와 의미 등을 들어봤다. 이달 4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헌법소원 건수가 늘고, 내용도 다양화되는 등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억울함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한결같이 헌법소원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헌재가 처음 생길 때는 헌법소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헌재의 재판권이 확대되고 국민들의 실생활을 좌우하게 되면서 헌법재판과 헌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즈음해서는 헌재가 대통령, 살아있는 권력조차 끌어내릴 수 있는 힘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헌재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런면에서 향후 헌재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헌재의 재판권은 정치적 자유, 정치적인 권리뿐 아니라 국민의 경제사회적 기본권 보호를 위해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들의 실생활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헌법 보장 방법 유형에 따라 우리처럼 헌재가 설치된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와 미국영국일본 등 대법원이 헌재 역할을 하는 국가로 양분된다.) -최근 들어 헌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높아졌습니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이 지난 2005년부터 격년제로 국가기관 신뢰도를 조사하는데, 헌재는 10년 이상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국가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국민들의 믿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죠. 그 배경은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헌법에 대한 헌재의 충성스러운 정신이 쌓여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 헌재는 1988년 창립 이후 30여 년 동안 국민의 자유와 인권, 기본권 보호를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헌재의 결정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에 따른 부담도 컸을 텐데요. 헌법은 우리나라 최고의 법입니다. 그 최고의 법을 다루는데 있어 해석과 적용은 정확해야 합니다. 헌법은 민법과 상법 등 하위 법에 영향을 미치기에 해석은 정확해야 하고, 적용은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헌법 해석은 비교적 그 목표에 가깝게 접근했다고들 합니다. -헌법 조문이 추상적이어서 해석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헌법은 따지고 보면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법질서입니다. 국민의 행복이 가장 큰 목표이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도 필요하고, 법치주의도 필요하고, 재산권 보장신체의 자유 등이 다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헌법은 충돌되는 가치와 이념을 다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자유만 보더라도 언론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하면서도 국민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하며, 명예훼손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법익이 충돌하는 경계선이 어디인지, 그리고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느 쪽에 더 많은 가치와 무게를 둬야 하는 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요. 법익이 충돌하거나 상충되는 경우 어떤 절충점을 선택하고, 그 절충점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가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헌법 해석에 있어 당시의 시대정신도 반영됩니까. 물론입니다. 저의 재임기간(6년) 중에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해서 폐지했는데, 이전까지는 혼인빙자 간음은 당연 처벌됐습니다.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 보호 등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과정에서 과연 법률이 이불 속 문제까지 들춰보고 이게 죄가 되나, 안되나를 따지는 게 시대정신에 맞는 것이냐는 등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재판관들은 시대흐름을 따라잡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법관들은 끊임없이 자기 수련을 해야 합니다. 틈틈이 영화도 보는 등 수시로 접촉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독서입니다. 그 다음에 신문, 특히 종이신문을 읽는 것이죠. 그 중에서도 신문 사설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사안에 대한 가치나 체계를 잡을 수 있죠. 이를 통해 사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헌재에서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시 하셨습니까. 국민과 역사에 의해서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항상 그 부분을 반문했죠. 후세의 역사가나 헌법학자,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잘못된 판결을 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너무 시대에 앞선 판결로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판결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등등. 그래서 최종 결정을 앞두고는 몇 번씩 다시 검토하고 검토합니다. -재임기간 동안 헌재의 기틀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원 다닐 때부터 헌법을 전공했습니다. 당시 주위에서는 돈벌이도 되지 않는 헌법을 전공하느냐고 말렸는데,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기본권 보장 등 거대 담론이 좋았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에 가서도 헌법을 연구했고, 그 때 연구한 자료를 모아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헌법 전문가라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제가 4대 소장인데, 전임 소장 가운데는 헌법을 전공하신 분은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재임기간 그에 상응하는 실적도 냈다고 생각합니다. -상응하는 실적이란 무엇입니까. 헌법 수호라는 제1의 책무를 가장 잘 수행한 것이죠. 헌법을 헌법답게, 최고의 법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조금은 자랑할 만하다. (헌재 소장 퇴임 무렵 대한민국 헌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소장이라는 평가를 담은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는 그런 논문을 접할 때마다 뿌듯하다고 했다.) -헌재 소장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역할은 큽니다. 재판관 9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재판부 심리 때는 쟁점사안에 대한 법리적 공방이 치열합니다. 자칫 한 쪽에 몰입되면 논의가 엉뚱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잘못하면 뜬구름 잡기식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사건이 가장 잘 해결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헌재 소장은 그럴 정도로 사건을 조망할 수 있는 식견과 학식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이야기 많았는데, 각론에서 의견이 갈리다 보니까 더 이상 진전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입법 의원들은 개헌 보다 선거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제 국회 공청회 때 보면 개헌 공청회는 별 관심이 없고, 옆방의 선거제도 공청회에 몰려 난상토론이 벌어지곤 합니다. -현재의 개헌 논의를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의 경우, 20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으로 지금도 구체적인 사건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정확한 해석과 적용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가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시대정신에 맞고, 역사적으로도 높이 평가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운영한다면 꼭 헌법을 바꿔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헌법을 개정하자고 하는 이유는 권력구조 때문인데, 권력구조도 따지고 보면 어느 방식이 좋은 지는 검증된 바가 없습니다. 이 또한 정답은 없습니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이제는 국민들도 민주와 법치에 대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단계 더 높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각인해야 합니다. 필요할 때만 자유민주주의이고,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더불어 토론문화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논쟁하는 방법, 경청하는 방법 등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합리적이고 정확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토론문화가 정착이 돼 있지 않다 보니, 말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멱살잡이가 나오곤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상하관계, 즉 수직적 관계는 확립돼 있는 반면 수평적 관계에 대해서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1945년 임실에 태어나 북중-전주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 사법대학원과 독일 괴팅겐게오르크아우구스트대에서 헌법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해인 1967년 제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1972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된 후 서울민사지법 판사, 대전지법 법원장 등 법원의 요직을 거쳐 2000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법원행정처장(2001년)을 거쳐 2007년 제4대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된 그는 임기 6년의 헌재 소장을 마친 2013년 1월부터 사회기여 차원에서 법률구조공단에서 무료 법률 상담활동을 벌였다. 이후 서울대 로스쿨에서 2년간 석좌교수를 역임한 후 올 1월부터는 서울 강남의 법무법인 클라스 상임고문 및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올 6월에는 수차례 고사했던 전주고북중총동창회장직을 수락하고 동창회장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지난달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치른 그는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위해 첫 출발을 잘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앞선다며 앞으로 전주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 기획
  • 김준호
  • 2019.07.14 19:15

[전북 천리길] 진전한 휴식의 의미를 일깨워준 섬진강길

좀 쉬고 싶었습니다. 사람 많은 것이 좀 싫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휴양지에는 사람이 많아 쉴 수 없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찾은 회문산 자연휴양림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휴가철 휴양림에는 사람이 많아 시끄럽습니다. 자동차 소리도 쉴 새 없이 들려옵니다. 나 좀 걷고 올게 조용한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휴가철 산과 계곡은 어디 가나 차와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왠지 회문산 근처에 있는 섬진강길은 조용할 것 같았습니다. 물병 하나 달랑 들고 걸으러 갔습니다. 이른 새벽 물 우리 당산나무 아래 정자는 시원했습니다. 사람도 없고 조용합니다. 평화롭습니다. 거대한 느티나무는 수백 년 이렇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졸(古拙)합니다. 나무 옆에 걸터앉아 당산나무와 그 옆에 자리한 당산 할머니 무덤의 사연을 읽어 봅니다. 물우리 는 말 그대로 물 걱정 많은 마을이랍니다. 마을 앞 섬진강에서 사고가 잦았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와 당산 할머니 무덤이 더 숙연하게 느껴집니다. 온 세상이 적막합니다. 서걱서걱 내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어디서 한숨 소리가 들려옵니다. 고추밭 옆 양파밭에서 들리는 할머니 한숨입니다. 양팟값이 폭락하여 그 한숨 소리가 더 슬피 들려 옵니다. 하지만 할머닌 말없이 밭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값이 오르건 내리건 항상 그 자리에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하고 계십니다.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일이 힘들거나 어려울 때 술 먹고 방황한 자신 말이죠. 양파밭 할머닌 아무 말 없이 새벽부터 일하고 계십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할머니가 저에게 무언의 조언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한 해 농사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 전체의 농사인 것 같습니다. 할머닌 아마도 실패한 양파보다 다음 작물에 더 큰 기대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양파밭 할머니에게 무언의 교훈을 얻고 발걸음은 월파정으로 향합니다. 섬진강 강물에 비치는 달빛 파도. 월파정입니다. 사진으로 보지 않아도 그 이름만 들어도 느낌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달밤이 아닌 것이 아쉽습니다. 갑자기 솔바람이 나그네를 휩싸고 돕니다. 잔잔하고 시원한. 머리와 가슴을 충분히 식혀 주고도 남을 그런 솔바람입니다. 월파정의 주인은 누구인지 참 복 받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에 정자를 짓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 사람 생각이 궁금합니다. 휴가철 계곡 주변 수많은 차와 사람들을 피해 이곳에 온 것이 참 올바른 선택인 것 같습니다. 월파정에도 혼자. 저 혼자밖에 없습니다. 귀 아래를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솔바람만이 함께 할 뿐입니다. 월파정을 등지고 갈 무렵 월파정 바로 옆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 손님을 만나기 위해 찾았던 남산의 한 호텔 화장실. 그것과 닮았습니다. 이런 시골 마을에 이렇게 멋진 화장실이 있다니요. 마을 사람들이 관리를 참 잘하는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아늑한 화장실에서 몸과 마음의 근심을 기분 좋게 덜었습니다. 말 그대로 해우(解憂) 했습니다. 가장 큰 근심을 던 것 같이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가벼워진 몸과 마음. 발걸음이 달라집니다. 본격적인 강변길이 시작됩니다. 강 길이 아주 예쁩니다. 시인이 학교로 매일 출퇴근했던 길입니다. 이렇게 예쁜 길로 매일 다녔으니 그가 지은 시도 예쁘지 않았나 합니다. 길옆에 꽃들이 지천인데 그 이름을 모르는 게 답답할 뿐입니다. 뭔가 사연이 있고 의미 있는 꽃말 이거나 아니면 전혀 생소한 꽃말이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길가에 옥수수는 아직 일러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갑니다. 이 나무는 이름은 무엇인가요? 자두 인디요. 툭, 도르르... 땅에 떨어진 열매 하나를 집어 듭니다. 옷자락에 석석 닦아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아직 맛이 들지 않았지만, 도시의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입니다. 섬진강 흙 맛일까요. 바람맛일까요. 큰 느티나무 옆에 있는 시인의 집이 조용합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입니다. 자는 시인이 깰 새라 멀리서 사진만 찍고 조용히 돌아섭니다. 이 동네. 거대한 느티나무 그리고 평상이 마을마다 기본 세팅입니다. 매우 멋집니다. 시인의 집 입구의 느티나무 그늘에 않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좀 쉬어 갑니다. 산과 산 사이에 아침 햇살이 파고듭니다. 오늘도 참 더울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오늘도 폭염주의보가 내린다던데, 강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까요. 한여름 강둑길을 따라 걸으라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일 것 같은데, 섬진강길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산 그림자가 서늘합니다. 아직 아침이 일러 그런 것일까요. 걷는 내내 서늘합니다. 한 시간 더 걸은 것 같은데 땀이 나지 않습니다. 길이 매우 예뻐 그럴까요. 섬진강 물이 온도를 낮춰 주는 것일까요. 산 그림자가 도와준 것일까요. 한 모퉁이를 돌면 정자가 나와서 쉬고, 다음 모퉁이를 도니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석간수가 나와 나그네의 마음을 적셔 줍니다. 한 두 시간 걸었나요. 좀 출출해집니다. 아침 일찍 나온 터라 끼니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한 모퉁이를 도니 예쁜 캠핑장이 나옵니다. 캠핑장 옆에 작은 매점이 있습니다. 출출한 나그네는 컵라면 하나를 시켜 먹었습니다. 그런데 매점 아주머니가 작은 종지에 김치를 담아 줍니다. 천원 남짓 되는 라면에 폭 삭은 맛있는 김장김치라니요. 꿀맛보다 더 꿀 같은 브런치입니다. 아삭아삭 새콤한 작년에 담근 김장김치. 유대인들이 사막에서 먹었다는 만나도 이것보다 맛이 있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 인심이 가득 담긴 작은 종지의 곰삭은 김치 하나가 기분을 확 바꾸어 놓습니다. 김치 하나 때문에 힐링이 되다니요. 역시 섬진강 인심은 강물보다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작은 매점의 김치 한 종지 때문에 목적지인 구담마을까지 힘들지 않게 걸었습니다. 구담마을. 작고 예쁜 시골 마을입니다. 봄에는 매화 때문에 유명한 마을이기도 합니다. 마을에 오자마자 유명하다는 느티나무 아래 정자를 찾았습니다. 과연. 이름 그대로 이름값을 하는 곳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고졸한 시간의 작품입니다. 거대한 느티나무가 만들어 낸 아늑한 그늘 공간입니다. 그늘 밖과는 기온 차가 10도 이상 나는 것 같습니다. 서늘합니다. 정자 옆에는 작은 수도가 있습니다. 그래도 더우면 등목이나 하세요 하는 것 같습니다.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경치가 그림 같습니다.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공간입니다. 이곳이 왜 봄에만 유명할까요. 마을이 조용합니다. 느티나무 그늘에 큰 대자로 드러눕습니다. 잠시 후 드르렁 하는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습니다. 내가 내 코 고는 소리에 놀랐습니다. 마을은 아직도 조용합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한여름 주말인데도 차소리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섬진강 물소리만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들립니다. 전화합니다. 회문산 휴양림에 남아 있는 집사람한테요. 여보, 삶은 옥수수 한 바구니 사서 구담마을로 와라. 여기 매우 좋네. 수건도 가지고 와 등목 좀 해줘. 차와 사람으로 넘쳐나는 여름철 휴가지에서 못 찾은 휴(休)의 의미를 이곳에 와서 찾았습니다. 나무 옆에 사람이 있는 글자. 쉼. 휴가지에서 못 찾은 휴식을 섬진강길과 구담마을에서 찾았습니다. 올여름 반백 년 동안 모르고 있던 고졸(古拙)한 휴식 방법을 찾았습니다. /글사진 = 한형석(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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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2 14:28

[전북의 재발견] 군산 오성산 "오성산 둘레길 따라 걸어본 날"

요즘 에어컨 바람을 계속 쐬고 있자니 몸이 찌뿌둥합니다. 인공적인 바람은 인제 그만! 가끔은 자연 바람도 필요한 법입니다. 산에서 솔솔 부는 바람도 느끼고 운동도 할 겸 오성산으로 향해봤습니다. 군산을 대표하는 명산, 오성산으로 출발해볼까요? 오성산은 성산리 여방리와 둔덕리에 걸쳐져 있는 산으로, 군산 하굿둑 인근에 있어요. 군산 시내에서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지만, 차로 이동하면 그리 멀진 않습니다. 인접성이 비교적 좋은 편이라 군산-서천 시민들의 안락한 휴식처 같은 산이에요.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참 멋져요. 오성산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산인만큼 재미있는 설화도 있습니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를 치기 위해 군대를 거느리고 오성산에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욱한 안개 탓에 길을 잃었고 마침 나타난 다섯 노인이 "적군이 우리나라를 정벌하려는데 어찌 길을 가르쳐주겠느냐"라며 소정방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이후 소정방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다섯 노인을 장사 지내 주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오성산이라는 지명은 다섯 노인의 무덤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또 일각에서는 오성산이 다섯 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로 되어있어서 오성산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지금도 오성산 정산엔 다섯 노인을 추모하고 기리는 오성인의 묘가 있습니다. 오성산의 해발고도는 227m로 군산 내에선 제법 높은 해발고도에요. 오성인묘 바로 아래에선 패러글라이딩 이륙(착륙) 장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짜릿한 스포츠도 즐길 수 있답니다. 비록 무더운 날씨지만 이열치열이라 했던가요? 오성산은 트레킹을 하기 좋습니다. 트레킹 하면 40~50분 정도 소요돼요. 하지만 무더위에 트레킹이 살짝 부담이 간다면 드라이브 코스로도 추천해 드려요. 여러분~ 오성산은 산 정상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해요. 차로 이동하면 순식간에 산마루까지 정복할 수 있어요. 기상관측대가 보이면 산 정상에 이르렀다는 증거랍니다. 정상에 이르면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시설과 지하수를 이용한 수도가 마련돼 있어요. 시원한 물로 땀방울을 지우거나 자연 바람으로 여름 더위를 이겨내도 좋겠죠? 때론 정상에서 커피 한 잔 즐겨도 좋고요. 소소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아울러 오성산은 2011년 <1박 2일>의 이승기 씨가 들린 곳이에요. 이승기 씨가 걸었던 길은 노란 리본으로 표시돼 있어서 노란 리본 따라 걸어봤어요. 양옆으로 배롱나무가 우뚝 서 있는데요. 아직은 개화 시기가 아니라 앙상합니다. 8월 중순 무렵에 개화하면 멋진 장관을 이룰 것 같습니다. 걷다가 힘들면 쉬어가기도 했어요. 이곳에서만큼은 오롯하게 혼자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또 일출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해 질 녘 풍경이 장관이라는데, 다음에는 일출 시간에 맞춰서 방문해보려고요. 여러분도 시간이 허락된다면 오성산에 들리셔서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하시고 정상을 오르는 뿌듯함을 느껴보세요. 위치 : 전북 군산시 성산면 /글사진 = 김선화(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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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2 13:40

[전북의 재발견] 원광대학교 자연식물원 "숲 속 힐링의 장소로 가족 나들이 가요~"

무더위가 성큼 다가왔어요. 더운 여름날 울창한 숲 속을 거닐며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코스로 좋은 곳을 소개해봅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가까운 곳에 힐링의 장소가 있는데요. 바로 원광대학교 자연식물원입니다. 익산 원광대학교 옆에 있는 자연식물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장이 가능합니다. 자연식물원은 수목원과 유용식물원, 교육휴게시설, 둘레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식물원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게 반겨주며 연못에는 연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어요. 걷다가 보면 곳곳에 의자가 놓여있어 여유롭게 쉴 수도 있습니다. 숲 속에서 살랑살랑 불어보는 바람이 시원하기만 합니다. 시원한 숲 속에서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도시락과 간식을 싸서 와서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곳곳에 아름다운 나무들과 식물들이 무성해서 포토존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나무를 보호해야죠? 자연식물원 내에서 식물 채취는 하지 말아주세요~ 원광대학교 자연식물원에는 여러 나무와 함께 거니는 둘레길이 있습니다, 버드나무길, 느티나무길, 벚나무길, 이팝나무길, 백합졸참나무길, 메타세콰이어길, 은행장미길, 곰솔길, 무궁화길, 소나무길, 꽃사과길, 단풍나무길 등 울창한 나무 그늘 밑에서 걸어봅니다. 걷다 보니 덥기도 하고 땀도 나지만 숲 속 피톤치드의 향기와 함께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걷다 보면 여러 종류의 아기자기하게 피어난 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소중함과 함께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걷다 보면 숲 속 작은 도서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책도 기부하고 자연 속에서 독서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가까운 도심 속 자연식물원에서 바쁜 삶 속에서 여유롭게 자연이 주는 소중함을 느껴보고, 숲 속에서 일상의 힐링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글사진=이선정(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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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2 13:28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9. 망각의 화가 진환의 무장풍경

제가 쏜 총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진환(1913-1951년)의 죽음을 알리는 절규가 무장에 있던 그의 집을 뒤흔들었다. 6.25 전쟁 중 학도병으로 나가 스승을 적으로 오인하여 죽인 후 통곡하며 알린 제자와 집에서 불과 20여 리 떨어진 산비탈에서 죽임을 당한 그의 사연이 기막히다. 고향의 정취를 주로 그리며 이름을 알리던 화가 진환은 그렇게 사랑하던 고향에서 서른여덟 살의 젊디젊은 나이에 애통하게 생을 마감했다. 진환(본명 진기용)은 1913년 6월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무장에서 보낸 그는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부친의 뜻에 따라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전신) 상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학교를 중퇴한 뒤 서울에서 내려와 고향인 무장과 광주를 오가며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당시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며 환쟁이라 불렀던 시대였다. 더욱이 전형적인 유교 가문의 외아들인 그가 그림을 그린다 하니 집안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그럼에도 그는 반대하는 부친과 가족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진환은 동경에서 이중섭(1916-1956), 이쾌대(1913-1965) 등과 함께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해 활동하면서 많은 대회에서 입선하여 주목을 받았고 아이들에게 그림을 지도하는 일도 했다. 그러던 중 외조모 사망 급 귀향이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지만 그를 돌아오게 하려는 집안의 허위전보였다.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서른 살의 나이에 전주 출신의 강전창(1922년생)과 결혼해 고향인 무장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해방 후에는 부친이 설립한 무장중학교에서 교장을 지내다가 1948년 홍익대학교의 미술과 초대교수가 되어 전쟁 전까지 서울에서 교육과 창작 활동에 몰두한다. 진환은 한국 근대미술의 여명기를 열었지만, 아쉽게도 잘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세간에서는 그를 두고 망각의 화가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활동할 때 세상을 등졌고 대부분의 작품이 유실되어 유화 8점과 수채화 및 드로잉 30여 점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소의 모습이 유달리 많다. 그가 황토화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고향의 농촌풍경과 그 속에서 우직한 삶을 이어가는 소를 작품의 중심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진환이 그린 소는 당시 농촌의 동네 어귀에서 늘 마주치던 누런 소로 그 모습은 당시 식민지하에 있던 자신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초상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소의 일기>의 서문에는 쭉나무 저쪽, 묵은 土城(토성), 내가 보는 하늘을 뒤로하고 소는 우두커니 서 있다. 힘차고도 온순한 맵시다. 몸뚱아리는 비바람에 씻기어 나무와 같이 소의 생명은 지구와 함께 있을 듯이 강하구나...라는 대목이 있다. 등장하는 묵은 토성은 무장읍성으로 허물어져 무너진 모습으로도 켜켜이 쌓인 역사를 증언하고, 깊은 눈을 가진 소는 담담한 모습으로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 낸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다. 진환의 소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중섭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고 이쾌대와 나눈 편지에도 등장한다. 긴박한 시국에 반영된 무장의 소를 금년에는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경성의 우공들은 부리기 위한 것이고, 무장의 것은 그곳을 떠나기 싫어하고 부자의 모자의 사랑도 가지고, 그 논두렁의 이모저모가 추억의 장소일 겁니다. 형의 우공(우리 집에 있는 <심우도> 소품)은 무장의 소산이므로 나는 사랑합니다 안부 속에 등장하는 진환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심우도>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아쉽지만, 무장의 소는 진환을 연상하는 대상으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이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문학적 소양을 갖춘 화가로 언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었는데 이는 자상한 아버지의 마음뿐 아니라 당시 놀이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기도 하다. 6.25 직전 동화책을 내기 위해 50여 편의 동시를 출판사에 넘겼지만 전쟁 통에 아쉽게 분실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향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자작 그림책(1949년 작)에 몇 편의 동시와 그림이 남아있다. 섬마섬마 하여도 딸랑달랑 / 궁둥방아 찧여도 딸랑딸랑 / 우리 아기 잠잘 땐 같이 잠자고 / 방글방글 잠깨면 같이 깹니다라는 동시 <쌍방울>과 항아리 옆에 종장종장 / 요리조리 숨바꼭질 소곤소곤이라는 <병아리> 등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의성어와 의태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리듬을 주었다. 또한 옆면을 빈 페이지로 남겨두어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했다. 아들이 소장한 유작을 살펴보면 아버지의 그림 이야기 옆에 아들의 낙서가 이어져 부자간 주고받은 대화 같다. 그의 작품 중 날개 달린 소를 대하면 날개를 활짝 펼치지 못하고 어이없게 떠난 사연이 더욱 애달프다. 우리 민족은 전쟁을 겪으며 망실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제는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의 지도자가 만나 함께 평화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시기에 전쟁으로 잊힌 사람들과 잃어버린 흔적들을 찾아 억울함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재조명해야 한다. 바라건대, 뛰어난 실력으로 한국 근대미술의 길을 연 진환을 망각의 화가로 두지 말고 다시 날개를 활짝 펴게 하고 올곧게 평가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잃어버린 작품들의 행방도 찾아 그가 죽어서도 잊지 못했을 아름다운 고장 무장에서 그의 예술 혼이 다시 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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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1 15:06

[문화&공감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용머리여의주마을 주민이 만드는 도시재생의 현장

날씨가 점차 더워지는 요즘 지난 4월 개소식을 치루고 마을공동체를 통한 도시재생을 위해 애쓰고 있는 용머리여의주마을 현장지원센터 이경진 센터장을 만났다. 전주시 용머리여의주마을은 도시재생뉴딜사업 공모에 선정돼 2021년까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된다. 이경진 센터장은 90년대 중반 용머리고개에서 2년 정도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 이 마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3월 13일부터 주민설명회를 시작으로 주민협의회를 통해 환경, 복지, 홍보, 교육, 사업 등의 분과를 나누어 현재 이경진 센터장과 허나겸, 이현재, 조남이 씨가 주민들과 함께 마을 재생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도시재생뉴딜 도시재생뉴딜은 문재인정부의 국책사업으로 동네를 완전히 철거하는 재건축재개발의 도시 정비사업과 달리 기존 모습을 유지하며 도심 환경을 개선하려는 사업을 말한다. 2013년부터 도시재생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낙후된 기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해 쇠퇴한 도시를 새롭게 부흥시킨다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되어 왔다. 도시재생 사업은 눈에 띄게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정부의 지원도 넉넉지 못했고, 단순히 새로운 건물이 올라서는 것 에 머물렸다는 것과 지역주민과의 소통의 부족 등이 문제점으로 인식됐다. 2016년 전남 목포시가 원도심 활성화 명분으로 설치 개장한 남행열차포차의 경우 시장활성화를 위해 목포중앙식료시장 도로변에서 진행을 했으나, 사업시행 전 주민설명회 등의 논의 구조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돼 상인회와 지역민에게 외면 받았다. △용머리여의주마을 마을공동체 논의를 통해 사업 진행 문재인 정부는 매년 100여개의 노후화된 마을을 지정해 정비하고 낡은 주택을 리모델링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재활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 기존 도시재생의 1,500억원이었던 한 해 예산을 10조 원으로 확대하고 기존 도시재생의 문제로 지적되었던 거주민과의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전논의 구조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용머리여의주마을은 3월 13일 주민설명회를 열고, 3월 22일 주민협의체 첫 준비회의를 시작으로 도시재생뉴딜 사업 첫발을 띄었다. 이후 4월 11일 용머리여의주마을 현장지원센터 개소식을 열고 주민협의회 위원과 주민, 전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와 현장지원센터 일꾼 등 50여명이 함께했다. 이후 매주 정기회의 및 사업구상 워크숍을 진행해 공가 및 텃밭 확인, 쓰레기 배출 문제 논의, 골목길 겨울철 눈길 위험 지대 등 마을 곳곳을 돌며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함께 나누는 음식이 복지의 시작 마을공동체가 주민복지를 위해 처음 실천한 것은 마을 주민들의 먹거리에 신경 쓴 것이다. 40~60대가 거주민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65세 이상이 28%를 차지해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시다 보니 먹거리에 신경을 써 4월에는 열무물김치를 담아 지역 주민과 나눔 행사를 펼쳤다. 이후 5, 6월에 짜장나눔 행사를 진행했다. 마을공동체는 환경개선을 위한 EM 교육, 마을 쓰레기 한 트럭 정리, 쓰레기 불법 투기를 막기 위한 활동, 상추 나눔, 마을소식지 지속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도시재생, 공폐가 매입이 시급 이경진 센터장은 현장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주민협의회가 소통하며 주거지재생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큰 성과라며, 용머리여의주마을의 최종 목표는 공동이용시설과 LH임대주택 건립이라고 말했다. 공동이용시설은 동네 빈집을 매입해 주민을 위한 주차장, 작은도서관, 다목적실, 카페 등을 마련해 더 살기 좋은 주거복지환경을 위한 공간 마련이다. 이경진 센터장은 용머리여의동마을의 경우 빈집 즉 공폐가가 동네에 20%를 차지한다. 방치된 빈집들은 동네의 미관을 훼손하고 관리부실로 악취, 쓰레기 처리 등 문제가 심각하다. 이를 매입을 위해 집주인과 연락을 시도해도 거주지도 알 수 없어 사업진행의 어려움이 많다며 거주하는 주민의 주거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공폐가 철거가 가장 큰 문제이고, 공폐가 강제수용이 되지 않는 한 도시재생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용머리여의주마을 도시재생뉴딜 사업은 주민이 함께하는 마을로 첫발을 내딛었다. 마을개선사업을 통해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되는 최종의 목표는 주민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마을환경 개선 및 주민 주거 복지실현을 위한 공폐가 철거 및 정리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고형숙 전주 부채문화관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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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9 17:20

[참여&소통 2019 시민기자가 뛴다]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 온 전주 지속가능 지표+10

2010년 전주 지속가능 지표가 3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처음 발표되었다. 그 후 10년간 700명의 시민과 180여 개의 단체와 기관이 참여하여 시민과 민관이 함께 만드는 전국 최초의 지속가능 지표 운동을 진행해 왔다. 체온과 혈압이 우리 개개인의 건강상태를 알려주듯이, 비행기 계기판의 숫자가 비행기의 상태와 가고 있는 방향을 알려주듯이 지표는 우리 지역사회를 보여주는 수단이다. 전주 지속가능 지표는 전주의 지속가능성이 개선되는 점과 퇴보되는 점을 지역주민들이 알 수 있게 해 주며 지역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수단이다. 통계청의 조사나 용역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다양한 지표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지속가능 지표는 수많은 통계 숫자들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지표조사 사업이 아니라 지표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전주 지속가능 지표는 UN이 제시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측면에서 전주시를 조명한다는 기본적인 차이 외에도 조사방식과 지표 평가 이후의 과정을 더욱 중시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볼 수 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 참여 2007년 지표 운동을 설계할 당시 지표 운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인 시애틀의 사례가 모델이 되었다. 지속 가능한 시애틀(Sustainable Seattle) 지표 계획이라 불리는 이 사례에서는 시애틀의 지속 가능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40개의 경제, 환경, 사회적 지표를 제시하였다. 특히 콜롬비아강에 회귀하는 연어의 수라는 지표는 멸종해가는 야생 연어의 보존과 지역 환경개선에 성공적으로 기여했으며 물소비량의 12%를 감소시키고 청소년 범죄수를 감소시켰으며 지역주민의 삶의 쾌적성을 향상해 지표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사례였다. 「시애틀의 연어를 보호하기 위한 지표가 시애틀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이끌었듯이 우리도 지속가능 지표를 통해 전주 공동체의 경제, 사회, 환경의 장기적인 건강도와 성장능력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고, 지역사회를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지름길로 인도한다. 지표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로 똑바로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 것이다. 지표는 우리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인식시키며 지역사회를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고무시킬 뿐 아니라 정책입안자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높여줄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과정을 뒤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꿈을 꾸며 지속가능 지표 운동이 시작되었다. 전주 지속가능 지표는 사회와 복지, 교육, 경제, 생태환경, 생활환경, 문화 6개 분야의 50개 지표를 통해 전주시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한다. 6개 분야의 지표 평가위원들이 1월~6월까지 해당 지표를 평가하고 7월 ~12월은 평가한 지표를 향상하기 위한 전략을 행정, 의회,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하는 과정을 매년 거치고 있다. NGO 활동가, 전문가, 관련된 지역기관, 언론, 시의원, 전주시 공무원으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이 평가작업을 진행하는데 이것은 전주시의 행정수행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주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진단하는 작업으로 이를 향상하기 위한 노력 역시 전주시는 물론 민간영역과 다양한 행정기관들의 참여가 요구되는 사업이다. 1992년 세계정상회의에서 전 지구적인 지속 가능한 발전을 결의한 이후 많은 도시들이 지속가능 지표를 시도하고 있지만 전문가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지표를 만들고 평가하는 지표로는 국내에서 첫 번째 사례이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환경교육분야 성과 뚜렷 지속가능성을 진단해온 지난 10년 전주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지표로 선정되고 지역사회가 주목하고 노력을 이끌어 내고자 하기 때문에 지표의 결과는 모든 분야에서 희망과 우려가 동시에 보인다. 환경적으로 지난 10년간 도심공원 훼손을 막고 자연형 하천을 복원한 결과 단절되었던 도심생태축이 연결되어 생물종 다양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천과 도심 곳곳에서 천연기념물인 원앙, 황조롱이, 수달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멸종위기종인 흰 목물 떼 새, 담비도 발견되고 있다. 하천과 도심공원에서 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를 모두 관찰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반면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되는 환경오염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의 증가로 인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이 크게 증가하였고 가정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사용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지난 10년 사이 온실가스 배출량은 12%가 증가, 미세먼지는 새로운 위협요소로 떠올랐다. 생활이 편리해졌으나 생활환경 악화로 삶의 질이 나빠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으로 지난 10년 사이 교육분야가 가장 큰 향상을 이루었다. 중학교 학급당 학생수가 줄어들고, 교육복지예산도 증가하였고, 친환경학교급식도 증가하였으며, 원도심 초등학생수가 10년 만에 증가 추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10개가 넘는 마을교육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등 지역사회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다. 사회복지분야에서 자원봉사 참여 시민이 크게 증가하며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와 협력이 늘어나는 것은 전주시의 잠재력이 성장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헌혈인구의 감소, 119 출동시간이 개선되지 않는 것 노인교통사고 특히 노인운전자 사고의 증가 등 안전한 도시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더욱 요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동네 마트 판매금액과 영화영상물 촬영 소비금액이 향상되었고, 한옥마을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체험객 숫자가 늘어났으며, 2018년 고용률이 1.6%p 향상되었다. 그러나 한옥마을 경기전 입장객 수가 큰 폭으로 줄고, 청년층 유출도 지속되고 있어 한옥마을 관광에 대한 진단과 일자리 정책에 대한 제고도 필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었다. △시민 삶의 질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가능 지표를 통해 볼 때 전주시는 기존 도시들이 지향해 왔던 도시성장 패러다임에서 더욱 과감히 돌아서 새로운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장과 개발 중심, 소유와 소비활동의 증가가 삶의 질을 향상하던 임계점을 넘어 이제는 건강과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도시개발 정책은 성장의 환상에서 깨어나 시민의 진정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핵심 정책으로 대중교통의 혁신, 지속가능 발전교육 확대, 지역문제 해결과 연결된 산업생태계의 구축을 제안했다. 시민사회와 전문가 등 지역사회가 인내심을 가지고 지표의 평가과정을 진행해온 결과 전주시는 민관협력과 다양한 시민참여 수단을 활용하여 시민 지성으로 도시를 바꾸는 실험이 다수 진행되었다. 전주 지속가능 지표 10년, 우리 스스로가 제안한 지속가능도시로 가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 지성의 활동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강소영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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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8 17:20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국가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즉 국가의 명칭을 100년이나 사용하고도 새삼스럽게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매우 복잡한 일이다. 아니 내게만 갑자기 복잡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성계나 정치계를 둘러볼 때, 나만 혼자서 심사가 복잡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미쳤는지 스스로 의심이 된다. 그렇더라도 나를 복잡하게 하는 이 질문을 그냥 넘기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우리는 지금 국가를 국가의 단계에서 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일단 미쳤을지도 모를 사람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해본다. 개인의 세계가 가장 넓게 확장된 공적 영역은 국가이다. 한 개인은 자신의 사고나 가치 혹은 생활의 영역을 자신의 주관적인 뜻대로 5대양6대주나 우주까지 확장할 수도 있겠지만, 법적인 제약을 공유하면서 보호를 받고 권리를 주장하는 공적인 영역으로는 국가가 가장 크다. 자기가 속한 국가를 벗어나서도 최소한의 보호나 권리를 향유하려면 여권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마저도 국가 간의 협의를 거쳐 허락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니 개인의 삶이 보호되고 또 허용되는 일이 일어나는 가장 큰 단위는 국가이다. 보호와 허용은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른다. 이 규칙은 누구나 한 국가 안에서 다 지켜야 하기 때문에 공적 영역이다. 다시 말해, 공적인 체계를 구성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북돋우고 견제하는 삶의 장치로는 아직까지 국가보다 더 큰 것이 개발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앞으로도 상당 기간) 개인에게 가장 큰 공적 공간으로 국가를 넘어선 것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가는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이다. 국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배타성이다. 배타성은 배타적 동일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서 동일성은 대내적으로 적용되고, 배타성은 대외적으로 적용된다. 배타성을 발휘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힘이 폭력이다. 그래서 국가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 집단이라고 해도 된다. 국가 안에서 폭력은 관리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을 임의대로 사용하면 국가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가진 모든 폭력성을 다 거두어서 국가가 총체적으로 관리한다. 국민은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되고, 국가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 국가가 대외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때는 군대가 나서고, 대내적으로는 경찰이 나선다. 군대와 경찰로 한 국가의 폭력은 관리되고, 내외적으로 생명과 재산이 보호되는 것이다. 국가가 안전과 이익을 공유하는 배타적 집단임을 감안할 때, 결국 최종적인 일은 전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국가는 전쟁을 하는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 국가의 자부심과 역량은 최종적으로 군대로 표현된다. 그래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가 된다. 대통령을 규정하는 어휘 가운데 대통령과 가장 일치하는 것이 바로 군통수권자이다. 헌법 제66조에서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규정할 때, 그 핵심적인 내용은 군통수권자라는 뜻이다. 제74조에서는 따로 대통령을 군통수권자로 명문화해놓고 있다. 군 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고 또 강화도 할 수 있다.(헌법 제73조) 따라서 국가의 목표는 단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부국강병을 이루는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국가 단위에서는 배제되어야 한다. 문중이나 시민단체나 동아리나 정치집단 등에서는 부국강병과 다른 길을 가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에게는 부국강병만이 유일한 길이다. 사실 부국강병에서도 부국이 강병을 위하는 것인 만큼, 국가에게는 강병이 최종 목적지다. 그래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병(强兵)이 빠진 부국(富國)은 체력은 없이 체격만 커진 꼴과 같이 허망(虛妄)하다. 이 허망함을 감추려다보면, 정신승리법으로 겨우 버티는 아큐(阿Q)가 된다. 우리는 이미 아큐(阿Q)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하여 많은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도 말했듯이 현충원은 살아있는 애국의 현장인데, 애국(愛國)이라고 할 때의 국(國)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다.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고도 했는데, 애국으로 통합되어야 할 보수와 진보는 중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미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보수와 진보도 아니다. 배타적으로 대한민국의 보수와 진보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말을 할 때, 말로는 애국이라고 하면서 느낌은 민족을 가졌을지 모른다. 민족적 의미에서 기려야 한다면, 민족적으로 기리면 된다. 애국의 현장은 대한민국만을 중심에 놓고 배타적으로 적용해야만 한다. 국가는 원래 이런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에 기여하고, 6.25 전쟁 중에 대한민국의 파괴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한 사람을 애국의 한 전형으로 제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직 논리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민족과 국가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논리를 좌충우돌 끼워 맞추려 할 것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권력을 배타적으로 응집하여 완전한 독립의 상태에서 자력으로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해방 자체를 우리 힘으로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라도 근본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도와서 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누가 더 자주적이었는가 하는 논쟁은 정치적인 우격다짐일 뿐이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근대 국가를 세워본 경험도 없이 독립을 상실한 우리는 일본에 저항하고 독립의지를 키우기 위해서 민족이라는 개념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민족은 근대국가 안에서 국가를 이루는 구성 중심이 되지만, 굳이 구분해서 말한다면 국가가 민족을 리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국가가 민족 개념을 리드해서 국민 국가를 이룬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여러 요인 때문에 민족 개념으로 국가를 리드하려다가 나치즘에 빠지는 우를 범하였다. 우리의 민족관은 아직 과거의 독일 쪽에 더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우리는 국가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삶의 뿌리에서 인식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를 가졌기 때문에 국가를 국가의 높이에서 다룰 실력이 아직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가보다 민족이 더 생생한 상태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언어나 문화나 풍습을 공유한다는 믿음으로 구성되는 정서적 공동체이다. 법률로 관리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민족에 빠지면 감정적이고 정서적이 된다. 국가는 감성과 정서를 배제한 법률과 이성으로 관리된다. 민족은 따뜻하지만, 국가는 차가울 수도 있다. 민족은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기대가 허용될 수도 있지만, 국가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사실적 효과에만 기댄다. 민족에 빠지면 호소하려들고, 국가관이 투철하면 힘을 길러 판을 조정하려 한다. 힘을 믿지 않고 설득과 호소와 간절한 눈빛과 따뜻한 태도를 앞세워서 일을 이루려고 한다면, 이는 아직 국가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을 앞세우면 이런 태도들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일은 국가적 단계에 맞는 태도로만 성사된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원수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나라의 모든 일이 복잡해지고 해결이 난망해진다. 모든 것이 꼬일 수 있다. 외국의 귀빈이 방문하면 군인들로 이뤄진 의장대를 사열하곤 한다. 의장대의 사열을 베푸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따뜻하고 친근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국의 군대가 얼마나 군기가 잡혀 있으며, 얼마나 강한지를 과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국의 폭력성이 얼마나 잘 정련되어 있는지를 알게 해주려는 것이다. 국군의 날도 마찬가지이다. 대내적으로는 자국의 국민들에게 국가의 폭력성이 얼마나 잘 훈련되어 있고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서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이 잘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려는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강하니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것을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군의 날은 무력 과시의 날이지, 흥을 돋우고 위로를 나누는 날이 아니다. 그런 일은 따로 하면 된다. 유엔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하는 날이 아니다. 국군의 날은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날이 아니다. 그런 날은 따로 있다. 군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날이 아니다. 그런 일은 날을 따로 잡아 해야 한다. 군사퍼레이드도 없이 야밤에 가수들 불러 쇼로 국군의 날을 보내는 일이 처음으로 벌어졌다는 것은 이제 국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단계를 벗어나 국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방치의 단계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가가 아무래도 상관없다면, 과연 상관있는 것은 무엇인가. 군대와 대통령의 마음속에 국가보다 더 상관있는 것이 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아덴만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항한 해군 청해부대의 최영함 입항 환영 행사 도중 사고로 군인 한 명이 사망하고 네 명이 부상을 당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국방장관을 대동하고 바로 달려와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빈소에라도 와야 한다. 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해 조화를 보내고 직접 조문하지 않은 것은 군통수권자로서의 사명감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해 수호의 날에 대통령이 연속 참석하지 않은 것은 국가가 무엇이고, 대통령은 어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 사고의 희생자보다 군 사망자들이 대접을 덜 받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들이 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일어났어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누군가를 배려하고 눈치를 보느라 그리되었다면,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골목에서야 배려하고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면, 무엇인가 얻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절대 그렇지 않다. 국가가 이렇게 하면 아무것도 못 얻고 치욕만 남긴다. 골목과 국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골목길의 평화는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고, 비굴한 태도를 보이고, 망신을 당하고도 그냥 모른 체하고 넘어가면 얻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라의 평화는 싸울 의지를 더 분명히 하고, 당당한 호전성을 거침없이 과시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북한 비핵화는 한 걸음도 진척이 없는데, 군 대비태세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것도 국가를 국가의 높이로 경영하고자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군대에는 언제나 목적한 일이 다 풀리고 난 후, 마지막 단계에서나 겨우 조금 손을 댈 수 있다. 우리는 비핵화 진행과정에서 가장 나중에 손을 대야 할 군대에 가장 먼저 손을 댔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문제는 국가를 국가의 높이에서 경영하지 않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대통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민족의 시각으로는 국가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시각으로는 민족의 문제를 풀 수 있다. 국가가 민족을 살리지, 민족이 국가를 살리는 일은 없다. 게다가 우리는 민족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 국가들과는 다 등을 돌리고, 민족이라고 상상하는 북한에만 목을 매고, 그 북한과 가까운 중국에만 굽실거리는 것으로는 국가의 높이에 있는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阿Q가 되어 풀리지 않은 현실을 풀린 것으로 정신승리하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심지어 북한과 중국도 민족적 처신을 하고 있지 않다. 철저히 국가적 처신을 하고 있다. 우리만 그것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만 환상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제부터라도 다시 공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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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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