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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과 아파트 주민회장 활동으로 지역공동체 의미 되살리고 있는 김성남 씨

삶의 현장 곳곳에 조그마한 이익이라도 생기는 자리에는 항상 이권다툼이 생기는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다들 공동체를 위한다는 빌미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숱한 오해를 받아왔습니다. 제가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는 것도 자그마한 이익보다 공동체의 행복을 찾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됐으면 하는 희망 때문입니다. 한국바른자세연구원을 운영하는 김성남씨(57)가 총 310시간에 달하는 봉사 기록을 세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전주 평화동의 한 아파트 주민회장을 4년 이상 맡아오며, 각종이권 개입을 원천차단하고 오로지 봉사에만 전념하는 등 아파트 주민자치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7일 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비슷한 공로로 전북도지사 표창도 받았다. 김씨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아파트 주민회장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는 데 있다. 전국 곳곳 아파트 주민회 갑질 논란 등의 논란이 끊임없이 지속돼 왔고, 이런 가운데 투명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김씨는 관리비 절약, 주민불편 최소화, 투명한 운영이라는 가치를 실천함으로써 아파트 주민회의 가치를 드높였다. 김씨는서로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회적 병폐가 사라지게 하려면 작은 단체에서부터 공정하게 운영돼야한다며작은 이익을 챙기려다보면 그 피해는 일반 주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임을 항상 경계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전주해병대전우회와 (사)그린나래봉사단 활동을 통한 봉사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전우회에서는 주기적인 교통정리와 방범순찰, 전주천 청소, 아중저수지 정비 활동 등을 하고 있으며, 봉사단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식사 제공 등을 하고 있다. 또 재활 및 체육전문가로 재능기부 활동에도 앞장서 2013년에는 한국나눔재능대상을 수상했고, 사회체육지도자 상(1991, 1992)과 신지식인 상(2011)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김성남씨는 한국전쟁 당시 임실군 신덕면 월성리에서 공산당원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아버지의 진실 규명을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송사를 벌여왔고 지난 2012년 2월 아버지의 무죄를 최종적으로 이끌어 냈다.

  • 사람들
  • 김윤정
  • 2019.12.15 17:34

쌍용자동차 전주중앙영업소 박동렬 대표 “자신의 힘 아닌 직원들이 있어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있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고 건강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끌어 나가고 싶습니다. 지난 1989년 10월 쌍용차 판매 사업으로 입사해 31년 동안 한 길만 걸어온 박동렬(57) 쌍용차 전주중앙영업소 대표. 그는 모범적 고객관리와 진취적 영업 활동으로 이달 전국 210개 대리점 중에서 판매 누계 전국 4위라는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박 대표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연간 목표달성상 연속수상과 함께 올해 11월 판매실적 전국 9위, 10월에는 1위, 전국대리점 종합평가 최우수 대리점 수상, 고객만족(SSI) TOP 10 선정 등의 결과물을 직원들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동렬 대표는 혼자만의 힘으로 성과를 이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함께하고 있는 15명의 직원들과 함께 부단한 노력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이 아침 일찍부터 전단지와 플랜카드 등을 통한 홍보와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손님으로 역할 바꾸기를 하면서 실력배양과 대처능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성공이 있기까지 수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는데 그 중 2009년 쌍용 옥쇄 파업을 꼬집었다. 당시 300여개 영업소가 존재했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전체 영업소에서 10대 미만의 판매실적과 함께 다음해에는 100여개의 영업소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영업사원들의 퇴직과 쌍용차에 대한 고객들의 불신이 가장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쌍용차를 찾아주시는 고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박 대표는 고객관리에도 더 힘을 쏟고 정성 어린 마음으로 고객에게 다가가겠다면서 한번 구매한 손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책임지고 같이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사람들
  • 김선찬
  • 2019.12.10 19:05

50년간 주경야독 학생들 놓지 않은 김형중 원광보건대학교 교수

5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배움의 뜻을 잃지 않은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은 한 교육자가 있다. 주인공은 김형중(72) 원광보건대학교 교수다. 김 교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홀로 모셔왔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홀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했다. 하지만 배움의 갈증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취업을 준비하는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여전히 배움의 갈증을 풀진 못했다. 그렇게 대학 진학을 결정했고 원광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생 3학년 시절 학교 인근에 있는 원광고등공민학교(원불교에서 설립 운영한 비정규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어린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은 학생들이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이때 김 교수는 이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김 교수는 원광고등공민학교에서 국어와 사회과목으로 학생들에게 야학을 가르쳤고 익산(당시 이리) 이일여고 교사 재직시설 동료교사 6명과 함께 야학교인 익산 무궁화 야학을 설립운영했다. 김 교수는 당시 학생들의 삶은 개개인의 집에서 모두 가장 아닌 가장노릇을 하기 위해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펼쳐왔다며 나 역시도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학창시절이 생각나고 이들에게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가 가르친 학생들은 현재 고위직 공무원을 하고 있거나, 스승의 길을 따라 초중등교사, 수십명의 직원들을 먹여살리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제자들이 사회에 나와 제 몫을 단단히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면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위한 야학을 유지하는 이유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봉사는 재능봉사로 끝나지 않았다. 결식우려 학생들을 위해 기부금을 선뜻 내놨으며 아름다운 자원 봉사단에서도 매월 장애인시설을 비롯한 양로원이나 노인회관등에서 자장면 봉사 등을 펼쳐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일 2019 대한민국자원봉사대상에서 교육부문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김 교수는 봉사는 시간과 물건, 지식을 나누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많은 지역의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주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람들
  • 최정규
  • 2019.12.09 18:12

고성식 대한전문건설협회 군산협회장 “수익구조 개선·수주물량 확대, 업계 위기 돌파구 찾을 것”

군산의 양대 산맥인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무너지면서 이 여파로 지역 전문건설업계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지만, 반드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성식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라북도 군산협회장의 남다른 각오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지난 1985년 설립 이래 전문건설업자의 권익보호, 전문시공 기술개발 등을 통해 업계의 발전을 선도하고 있으며 군산에만 230여개의 업체가 등록돼 있다. 그러나 경기 불황에 이어 지역을 지탱하던 대기업마저 붕괴되면서 지역 전문건설업계가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한 해에도 수 많은 업체들이 불황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는가 하면 정상 영업 중이라도 구조조정 문턱에 걸쳐 있는 업체도 적지 않은 게 오늘날 전문건설업계의 냉혹한 실상이다. 이런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고 회장은 침체된 지역 경기 및 전문건설업계가 회복하는데 앞장서달라는 회원들의 뜻을 받아들여 지난해 취임한 후 현재까지 동분서주하며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전문건설업체 발전 및 활성화를 위해 군산시건설사 등과 협약을 체결하는 한편 지역 건설 산업 활성화 촉진 및 육성,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활성화 방안 찾기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고 회장은 취임 때부터 지금까지 군산 전문건설업체가 살길이 무엇인지 또 어떤 방안들이 있는지 되짚어보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건설의 수주 및 일감부족으로 인한 경영난은 물론이고 힘겹게 일감을 확보한다 해도 저가 하도급은 물론 공사대금의 결제지연 등 어려움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 회장은 소규모 참여 영역 범위를 확대정착시키고 지역업체 하도급 의무화를 추진해 수주물량을 높여야 한다며 이와 더불어 저가하도급 및 무자격업체 하도급을 근절해 수주질서를 확립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건설업은 수주산업이라며 지역 각 기관에서 발주하는 물량만이라도 지역 업체가 적극 참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지역 경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결코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전문건설인과 공무원, 각계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소통을 통한 협업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고 회장은 전문 업체의 수익구조 개선과 수주물량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역량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며 30년 가까이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항상 긍지와 보람을 느껴온 만큼 협회의 위상과 회원사들의 고충 해결을 위해 남은 임기도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혔다.

  • 사람들
  • 이환규
  • 2019.12.05 17:22

사랑의 라면음악회 여는 한병성 전주남성합창단 단장 “왜 우리는 같아 가야 하는가 생각했죠”

왜 우리는 같이 가야 하는가에 대해 오래 생각했어요. 사랑 속에는 늘 우리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대와 관객이 함께 사랑이여를 부르며 사랑과 온기를 나누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전주남성합창단을 이끄는 한병성(68) 단장은 합창단 창단 25주년을 맞아 전주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훈훈한 연말을 만들고자 특별한 재능기부 잔치를 마련했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앞세운 이번 공연은 전주시 35개 동에 거주하는 장애인, 청소년, 어르신을 중심으로 초청했다. 평상시 사회적으로 조명 받지 못하고 소외되기 일쑤였던 이들을 위한 소통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한 단장은 이번 음악회를 열게 된 것은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재능기부의 기회를 마련하자는 단원들의 뜻이 모아진 덕분이라며 전주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동 지역사회보장연합회가 함께 후원해 의미를 더했다고 강조했다. 전주여성합창단, UPdream 앙상블, 테너 김재영 씨도 찬조출연을 통해 좋은 뜻에 동참했다. 음악회의 입장료는 없다. 대신 라면 5봉지를 가져오면 된다. 이렇게 모은 라면은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주도해 지역사회 통합돌봄 대상인 아동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한 단장은 합창단이 20주년을 훌쩍 넘기며 활동할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준 시민들을 위해 특별한 공연을 해보자는 단원들의 뜻이 있었다며 무엇보다 우리 주위의 어려운 분들과 함께 하자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한 단장은 라면음악회는 4~5년간 참여했지만, 주로 전주가 아닌 타지역에서 열리는 다른 단체의 공연을 돕는 방식이었다며 올해부터는 전주남성합창단이 주최가 돼서 그간 받은 사랑을 우리 지역인 전주에 돌려드리자고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한 단장이 합창단에서 활동한 기간은 회장임기 2년을 포함해 10년이 넘었다. 다른 단원들과 함께 합창 연습에 참여하며 그간 쌓였던 피로감을 해소해왔다고. 일주일에 한번씩 2시간 연습을 하는데 공연을 앞두고는 연습량을 두 배로 늘린다. 평균 연령 50~60대의 남성들이 모여서 그런지 공감대가 비슷하다는 것도 합창단의 결속을 다지는 데 한몫했다. 공학도로서 공부하고 일만 하다 처음엔 막연히 음악이 좋아서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어요. 오랜 세월 하다보니까 기술도 늘어나고 음악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공연은 사랑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성가곡을 비롯해 정다운 우리 가곡, 오페라합창곡, 외국노래, 가요 등을 다채롭게 준비했다. 한 단장은 추억을 떠올리고 고향과 향수를 불러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며 오페라곡인 대장간의 합창은 노동의 어려움과 신성함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관객들에게 진한 감동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사람들
  • 김태경
  • 2019.12.03 19:18

최용대 전북도 특사경 "도민의 안전한 식탁을 지키겠습니다"

도민의 식탁을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용대(48) 전북도 도민안전실 사회재난과 민생사법특별경찰팀 수사관의 말이다. 최 수사관은 최근 김장철을 앞두고 중국산 냉동 젓새우를 국산으로 속여 대량으로 유통한 일당을 일망타진한 장본인이다. 그는 지난 9월 23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해당 신고가 접수되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 약 2주간 잠복에 들어갔다. 하지만 불법 현장을 적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동시간이 많은 시간대를 피하고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최 수사관은 불법유통업자들이 새벽 3시에서 오전 6시까지 중국산 냉동 젓새우를 불법으로 거래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며칠간의 잠복을 거쳐 10월 5일 이들의 불법유통현장을 급습해 일망타진했다. 최 수사관은 원산지를 속여 파는 것은 국민의 식탁을 위협해 빠른 검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팀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앞서 5월에는 외국인 여성을 접대부 등으로 고용해 영업한 유흥주점을 대거 적발하기도 했다. 한 달 전 길을 걷던 최 수사관은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전단지를 발견한다. 해당 전단지에는 선정적인 그림과 죽기 전에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는 문구를 보고 단속의 필요성을 인지했다고 한다. 최 수사관은 길거리에 뿌려진 유흥주점 전단지는 미성년자 등도 볼 수 있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면서 단속을 통해 위반 8개 업소를 적발하고, 외국인 접대부 31명을 강제출국 조치하는 등 나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민의 식탁을 책임지는 최 수사관이 특사경에 합류한지는 3년이 채 안 된다. 최 수사관은 1991년 11월 전북도 식품직 8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건강안전과에서 근무하며 위생업무 단속과 행정처분 등의 업무를 특사경에 합류할 때까지 해왔다. 식품위생업무 단속 전문가인 셈이다. 최 수사관은 특사경은 식품위생, 축산물, 환경, 원산지, 의약품, 청소년 보호, 공중위생 등 총 7대 분야에 대해 집중단속을 한다면서 이 가운데 60~70%가량이 식품단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부정불량식품, 수입, 저가 식품 등 부정한 방법으로 도민 식탁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 사람들
  • 최정규
  • 2019.12.02 17:47

취임 후 고향 전북서 전국대회 잇달아 여는 최권열 한국초등학교태권도 연맹 회장

전북에서 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지난 4월 한국초등학교태권도 연맹(KETF) 회장으로 취임한 김제 출신의 최권열 회장(72). 최 회장 취임 후 태권도 초등부 대회가 잇따라 전북에서 열려 고향 사랑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읽힌다. 최 회장은 올 8월과 10월, 고창과 정읍에서 초등학교 태권도 전국대회를 열었다. 28일부터 열리고 있는 2019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우수선수선발전 및 최강전의 대회 장소 또한 군산이다. 오는 1일까지 열리는 군산 대회에는 전국에서 880여 명의 선수들이 참여한다. 최 회장은 이번 군산 대회를 앞두고 사재 2000만을 선뜻 내놓았다. 연맹 운영비를 합쳐 우수 선수 18명과 지도자 10명에게 장학금과 격려금으로 활용하게 하기 위해서다. 김제 만경중학교 출신인 최 회장은 전주공고와 경희대학교를 나와 줄곧 태권도인의 인생을 걸었다. 1965~1969년까지 전북대표로 뛰며, 5년 연속 입상하기도 했다. 체육교사로 서울 문영여중 교장까지 지냈다. 최 회장이 연맹 회장을 맡기까지 곡절도 많았다. 2007년 대한민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은 내부 문제로 대한태권도협회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다. 5년 동안 연맹의 부재가 지속되다 2011년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KTA가 2010년 초등연맹관리위원회를 먼저 구성했고 이듬해 연맹이 재창설되는 과정을 거쳤다. 최 회장은 대한태권도협회 상근임원으로 활동하다가 제3대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태권도 꿈나무 양성을 위한 각종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최 회장은 타지역에서 줄곧 살았지만, 군복무할때나 항상 출전 지역 선택은 고향 전북이었다면서 이제는 연맹 회장이 된 만큼 지역 태권도 후배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태권도는 지금 위기의 상황이라고 할수 있는데, 무도인 태권도는 호신무술로, 인성을 중시해야한다며 최근 태권도가 경기와 성적, 입상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태권도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저와 연맹이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 사람들
  • 백세종
  • 2019.11.28 17:25

제32대 적십자사 전북지사 회장에 취임한 이선홍 회장 “인도주의 실천하는 적십자 이념 달성에 노력”

대한적십자사가 제1의 재난구호책임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위기가정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및 고민을 통해 도민과 함께하는 적십자사를 만들겠습니다. 27일 제32대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회장에 취임한 이선홍 신임 회장은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적십자의 이념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전북 적십자사 임직원과 봉사원 그리고 RCY지도교사 및 단원과 함께 소통하고 노력하는 회장이 되겠다고 취임 포부를 밝혔다. 이날 오후 2시 적십자사 전북지사 3층 강당에서 가진 제3031대 김광호 회장 이임식 겸 제32대 이선홍 회장 취임식 자리를 통해서다. 이날 이취임식에는 우범기 전북도 정무부지사,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윤희수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임병찬김영구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전임회장 등 내외빈 25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선홍 신임 회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인류가 있는 곳에 고통이 있고 고통이 있는 곳에 적십자가 있다는 슬로건에 따라 그동안 적십자사는 크고 작은 재난과 사고 현장에서 고통받는 이재민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줬다며, 역대 회장과 임직원, 봉사원들의 그간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향후 사업과 관련, 이 회장은 다문화가정의 안정된 한국정착을 위해 유관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안전교육을 바탕으로 안전문화 확산 및 전문가 육성, 안전한 전북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또적십자의 각종 활동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기업 및 개인 등을 대상으로 회비 모금 활성화에 노력하고, 특히 전북에 현재 2호 뿐인 1억원 기부자 아너스클럽 활성화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이러한 사업과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내부 직원들의 화합이 우선되어야 하는 만큼 내부 소통을 원활히 하여 재미있는 봉사, 신바람 나는 봉사활동이 될 수 있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선홍 회장은 지난 13일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상임위원회의 만장일치로 추대돼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인준을 받아 이날 취임했다. 현재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전북애향운동본부 부총재직을 맡고 있으며, 2013년 1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 상임위원으로 활동해왔다.

  • 사람들
  • 엄승현
  • 2019.11.27 17:11

범죄예방 활동·법무보호사업 발전 노력 대통령상 수상한 이덕현 전주김제완주축협 상무

처음에는 왜 아까운 시간과 금전을 소비하면서 남을 위해 애쓰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봉사라도 이것이 계속된다면 참다운 봉사라는 생각으로 18년을 이어오다 보니 주변에 같이 응원해주고 힘을 보태어주시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전북 지역 내에서 범죄예방 활동과 법무보호사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전주김제완주축협 이덕현 상무(현 법무부 법무보호위원 전북지부협의회 회장)는 부족한 저를 함께 응원해준 여러분 덕분에 대통령표창이라는 분에 넘치는 큰 상을 받게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겸손한 자세로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며, 사회에서는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지는 작은 봉사를 꾸준히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덕현 상무는 지난 달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에서 주최한 2019법무보호복지의 날 행사에서 그 동안 전북 지역 내에서 법무보호사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2002년부터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전북지부(지부장 강대천) 보호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현재까지 17년 8개월 동안 법무보호사업과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그러면서 법무보호사업의 일환인 숙식제공대상자 위문 및 생활관 부식지원, 긴급원호비 지원, 주거지원 대상자 멘토링 및 결연, 격려금 지원, 기관 시설 환경개선, 허그나눔축제 지원, 아름다운 동행 합동결혼식 및 법무보호전진대회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자녀 또한 주거지원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대를 이어 자원봉사 활동을 한결같이 이어가고 있다. 이덕현 상무는 우리 지역사회에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법무보호대상자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수상하게 되어 부끄럽다며 사랑은 그 자체로 머무르면 의미가 없고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행동이 바로 봉사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 사람들
  • 이종호
  • 2019.11.26 18:46

전주장학숙 김귀자 원장 “지역 주민들과도 하나되야 진정한 지역 인재”

대학생이라면 사명감을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 나이죠. 하지만 자신만 보는 게 아니라, 주변도 같이 돌아보는 시각도 갖춰야죠. 최근 장학숙 입사생들과 활발한 사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전주장학숙 김귀자 원장(67)의 말이다. 1999년 9월 최초 신입생들의 입사와 함께 개관한 전주장학숙. 전북 도민의 자녀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적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설립한 기숙사다. 20년이 된 지금까지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운영되며, 현재도 300여 명의 학생이 거주하고 있다. 전주장학숙은 최근 입사생들과 매년 돌봄교실과 방과 후 서예 교실, 연탄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자연정화 활동과 헌혈 봉사, 사회복지단체 방문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서 이웃과 함께하는 참된 봉사의 마음을 키우고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전주장학숙 김귀자 원장(67)은 장학숙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학생들이 좋은 환경 속에서 잘 먹고 자고, 안전하게 생활하는 게 기본이라면서도 이 뿐만 아니라 대학생이라면 중고등학생과는 다르게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공부해야 할 나이다. 학업은 기본이고, 지역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길러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전주장학숙 직원과 입사생 등 20여 명이 솔선수범으로 참여해 전주시 완산구 일대 독거노인 및 소외계층 등 3세대에 1500장의 연탄과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인재육성을 위한 도민의 깊은 관심과 수혜에 보답한다는 마음도 있지만, 참여 학생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만큼 의미가 크다. 김 원장은 한 번 참여해본 학생들은 느끼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며 오히려 본인에게 자극제가 돼서 자주 참여하는 학생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인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서예 교실과 방학 중 돌봄교실은 대표적으로 인근 주민과 함께하는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호응이 높다. 여기서 학습한 학생들이 전국 학생 붓글씨 대회에 참가해 대상 및 은상, 동상, 특선, 입선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귀자 원장은 학생들이 학업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쌓여서 희망찬 미래가 열릴 수 있다.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면서 학생들이 아무 불편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학업에 전념하여 푸른 꿈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 원장은 진안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지냈으며, 지난 2016년 2월 정년퇴직했다. 지난 9월부터 전주장학숙 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사람들
  • 천경석
  • 2019.11.25 18:12

무주 아이돌보미 늦깎이 시인 이현정 씨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자연과 세상이 시가 되죠”

지나간 10년이 그랬던 것처럼 더디고 느릴망정 꾸준히 시를 쓰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다시 또 10년 뒤엔 두 번째 시집이 나오지 않을까요?62세의 늦깎이 시인, 이현정 씨(무주군 설천면)의 바람은 한 없이 여유롭고 소박했다. 정식 등단하기 전 그는 무주의 산글이라는 여성작가 동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즈음에 다니던 주부대학의 글쓰기 수업이 인연이 됐다. 전선자 선생님께서 저를 눈여겨 봐주셔서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그때 선물로 받은 선생님의 수필집은 깊은 감명을 주었고 다 읽고 났을 때 나도 내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곤 선생님께서 권하신 동인과 문단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2005년 등단을 했고 이후로 20년 가까이 한국문인협회와 전북문인협회 등 여러 문인협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이현정 시인은 동생들에게 엄마노릇을 하느라 초등학교조차 다 마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위로했던 건 무주의 자연이었다. 당시 저희 집 소여물 줄 풀을 베러 나갈 때마다 주변경치에 반하곤 했지요. 어릴 때였지만 자연을 보고 느끼거나 떠오른 생각들을 집에 와서 메모해두곤 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시였던 것 같아요 가난과 가족들 틈에서 시인의 소양을 키웠던 그는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며 세월을 따라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시인이면서 아이돌보미다.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을 돌봐왔지만 한 번도 싫은 적이 없었다던 그에게 이 직업은 천직과도 같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던 게 계기가 됐고 그렇게 무주지역 아이돌보미 1호가 된 그는 2009년부터 지금껏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틈틈이 시를 쓰고 있다. 10년이 넘는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인 시를 모아 지난해 여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때로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보다 더 밝을 때가 있다는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더 많은 시상이 떠오른다고 했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8시쯤에 출근해요.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하는 게 즐겁고 행복하긴 하지만 퇴근해서 집에 가면 초주검이 되곤 하지요. 그래도 아이와 함께하면서 떠오른 시상은 꼭 메모해두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시로 옮긴답니다 62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소녀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현정 씨. 아이들과 함께 무주의 자연은 그를 시인으로 키워 낸 원천이 됐다.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얻는다는 이현정 시인의 또 한 가지 바람은 늙지 않는 시를 쓰는 것이라고 한다. 비록 조금은 더디지만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는 우직함을 보며 언젠가 세상에 내어질 그의 두 번째 시집을 기다려본다.

  • 사람들
  • 김효종
  • 2019.11.21 19:23

‘달리는 특전사’ 익산 제7공수여단 강동식 원사

처음에는 달리는 것이 정말 싫었는데,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휴대전화를 걸자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컬러링이 들렸다. 반갑습니다. 강동식 원사입니다 지난 17일 고창에서 열린 고인돌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52분15초로 1위를 차지한 제7공수여단 강동식 원사(45)다. 강 원사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sub-3(3시간 안에 마라톤 풀코스 통과) 100번째를 기록했다. 엘리트 선수자격이 아닌 동호인 수준에서 이 같은 기록을 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강 원사가 처음부터 달리기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달리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고 한다. 19년 전 부대 훈련 중 낙상으로 허리부상 치료를 위해 수술대신 달리기를 택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그는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생계를 위해 특전사를 택한 그에게 부상은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허리에 꽂은 치료용 나사못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달리기 시작했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1km도 달리지 못한 그는 점차 거리를 늘려나갔고 점차 마라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국내에 열리는 모든 마라톤 대회출전하고 좋은 성적을 내면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강 원사의 기록은 하프 마라톤 우승 50~60회에 달하고, 각종 풀코스 대회 우승도 수두룩하다. 그의 국내 최고기록은 2010년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세운 2시간37분 17초의 기록이다. 그는 전북일보 역전마라톤 대회에 18년째 출전해 올해에도 익산시 대표로 뛰었다. 군 생활에서 그는 배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후 군에 입대한 그는 전문대학교, 4년제 대학 편입 후 졸업까지 했다. 강 원사는 공인육상심판자격 2급, 대한육상경기연맹 마스터즈 대회 선수 및 심판원 자격을 갖고 있으며,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 국방홍보원장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만 55세가 되는 정년 이후 국방관련 후학 양성을 꿈꾸며 현재 우석대학교 국방대학원 석사과정도 밟고 있다. 강 원사는 이제는 달리는 것이 행복합니다. 힘이 주어지는 한 계속 달리고 싶습니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 사람들
  • 백세종
  • 2019.11.19 17:59

도시농업관리사·시인으로서 감성 두드리는 윤현순 씨 “쌓아온 지식,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꽃과 문학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순수한 감성으로 접하게 되거든요. 내 삶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글은 양분을 먹고 자라는 식물처럼 관심과 사랑으로 향기를 만들죠. 주변 사람들과 이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더한 행복이 있을까요. 꽃집 사장 윤현순(63) 씨는 1996년 <시대문학> 3월호로 등단해 시집 3권을 펴낸 시인이자 시낭송가로서 문학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제17회 전북여류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안았다. 요즘 윤 씨는 화훼장식과 원예치료 강사로서 수강생을 육성하는 데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전주에서 화원을 운영하며 매주 지역 초등학교와 평생교육원, 시민대학 등에서 도시농업과 텃밭 가꾸기, 원예 치료 등을 강의하고 있다. 자격 이력도 화려하다. 화훼장식 기사, 도시농업관리사, 푸드심리 상담사 등 좋아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는 꽃꽂이 기술을 배우고 나누는 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 온누리꽃예술회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삶 속에서 누구나 자연의 흥취를 즐길 수 있도록 집과 학교, 직장에 실내정원을 조성하고 가꾸는 방법을 사람들과 나누는 데 가장 큰 열정을 쏟고 있다. 제가 쌓아온 지식을 가능한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저 혼자 가지고 있지 않고 여러 곳에 돌려주면 제 내면이 더 한가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1996년 꽃집을 개원한 윤 씨는 교육, 전시, 창작활동을 통해 화훼장식과 원예치료를 배우고 전하는 데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만난 한 수강생이 시낭송회에 나간다는 말을 듣고 그도 솔깃해졌다. 학창시절 꿈꾸던 시인이라는 오랜 로망을 이룰 참이었다. 그렇게 문학 동료들과 선생님을 만났고, 꽃을 만지며 느낀 감성은 시어를 타고 그대로 글이 됐다. 시 앞에서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특히 시낭송을 하고 나면 내 감정이 저들의 마음을 두드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손을 떠난 글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라 읽는 이들의 몫이니까요. 윤 씨는 꽃과 시가 가공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식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푸른 옷을 입은 순수함 그대로를 지켜주고 싶다는 것. 60여 년 전 고향 남원에서 맨발로 땅을 밟고 벌레를 만지며 놀았던 유년시절 추억이 인생의 자산으로 자리잡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텃밭 가꾸기 교실의 아이들은 손수 식물을 돌보며 자연과 가까이서 교감하는 과정에서 새싹과 같이 쑥쑥 자라난다. 자연의 부지런함을 닮은 건강한 정신에는 집중력, 관찰력, 책임감 등 긍정적인 정서가 깃든다. 직장인들도 이 시간을 통해 업무 스트레스 등 긴장했던 마음의 매듭을 풀어놓고 있다. 이 하나로서 예술, 심리치료, 힐링까지 완성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예술가이고 모든 예술은 종합적인 게 아닐까 생각해요. 분야만 다를 뿐이지 힐링을 넘어 회복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같으니까요. 제가 사랑하는 꽃과 시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 사람들
  • 김태경
  • 2019.11.18 18:15

전주 한옥마을 명물, 제기 차는 채규칠 씨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전통놀이인 제기차기를 알리는 명물 할아버지가 있다. 하루 수천 개씩 제기를 찬다는 채규칠 씨(71)다. 제기를 차기도 하지만 제기차기 기술을 알려주고 손수 만든 제기를 나눠주기도 한다. 길을 묻거나 음식점을 찾는 등 관광객의 부탁을 들어주는 서비스는 덤이다. 지자체 요청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한옥마을 홍보대사를 자처하는 것이다. 채씨는 한옥마을에서 제기차기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전주 한옥마을 태조로와 은행로가 만나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서 제기를 알린다. 그가 제기를 차고 있으면 많은 관광객이 관심을 보인다. 제기 차기를 권하면 많은 이들이 제기차기를 시작한다. 어른은 옛 추억을 떠올리고,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에 즐겁다. 어느새 많은 이들이 제기차기 현장에 몰리며 구름인파를 이룬다. 관광객이 자연스레 전통놀이를 접하는 것이다. 전통놀이인 제기차기는 한옥마을 정체성과도 꼭 맞다. 채씨는 22년 전 제기차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재미삼아 차본 적이 있지만 취미로 제기차기를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당시 왼쪽 다리가 불편해 지인에게 물으니 제기차기를 권했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때부터 아픈 다리가 나았다. 제기차기는 소도구를 이용한 협응성 운동으로 분류된다. 협응성은 신체를 능률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수년 전 운영하던 헬스장을 접고 현직에서 은퇴한 뒤 우연히 한옥마을을 거닐다 제기차기를 하던 이와 경쟁이 붙었고 이겼다. 당시 재미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렇게 한옥마을로 나와 가끔 제기를 차던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다. 그는 제기차기를 홍보하는 이유에 대해 재미있다고 답했다. 제기를 홍보하며 가장 즐거웠을 때는 한 관광객 가족이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은 어디로 갈까 물으니, 제기차기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다시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다. 한옥마을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손수 만든 제기를 관광객에게 1달 평균 100여 개 가량 나눠주고 있다. 더 많이 나눠줄 수 있지만 잘 차는 사람이나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만 준다. 재능이 없는 이에게 주면 결국 서랍에 들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고 혼자 생활하는 그는 기초연금 25만 원과 한 종교단체가 후원하는 20여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연신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하던 그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말하지 않다가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채씨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지만 제기를 만드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사실 전주시가 조금만 도움을 주면 더 신나게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옥마을 관광객이 좀 줄었다. 상인과 전주시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관광객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면 좋겠다고 마지막까지 한옥마을을 챙겼다.

  • 사람들
  • 강인
  • 2019.11.14 18:25

고2 무역회사 창업 시작으로 소형드론 국산화 성공한 백종신 로수아핸드메이드 대표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아 출시하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 10배, 100배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소형드론을 제작해 오는 2020년 출시를 앞둔 백종신 로수아핸드메이드 대표(35군산)의 다짐이다. 그는 지난 2003년 고등학교 2학년인 18살에 온라인 마켓을 제작해 판매하는 신상인을 창업해 중국에서 디지털가전을 수입해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백 대표는 기존 완구제품의 일반적인 생산과 공급 방식은 중국 내에서 저렴하게 생산된 뒤 한국에서 수입해 공급되는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문제점을 파악해 새로운 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중국 내에서 인기몰이를 하면서 제대로 검증된 제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통해 급변하는 유행에 따른 재고부담을 덜고 중국산 제품의 높은 불량률 위험을 해결할 수 있었다. 조금씩 사업을 확장해가던 중 그는 지난 2015년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던 완구용 소형드론을 수입하게 됐는데 마침내 소형드론 개발 분야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백 대표는 로수아핸드메이드를 창업하고 수입한 소형드론을 한해 40만대나 판매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소형드론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감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해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몰두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선 소형드론 제품에 대한 완전한 국산화를 이룬 기업이 없었고, 중국 제조사는 해달 설계 자료와 관련 정보 등을 일체 공유하지 않고 있어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드론의 핵심 구성품인 무선회로와 배터리 등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백종신 대표가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에 8기로 입교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됐다. 창업한 청년에게 기술개발부터 시제품 완성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시제품 완성을 이뤄낼 수 있게 된 때문이다. 중진공의 도움을 받아 소형드론 개발에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무선송수신 핵심회로와 리튬이온 배터리, 프로펠러 설계 기술에 대한 전문 기관들의 기술적 자문과 전물설계업체를 통해 높은 수준의 설계 기술 자문을 통해 기술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 백 대표는 현재 국산화된 교육용 소형드론의 모든 개발이 마무리 된 단계로, 내년부터 자체 생산과 마케팅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북청년창업사관학교 8기에 참여해 부회장까지 맡으면서 다양한 지원을 받고 많은 인맥까지 쌓게됐다고 했다. 앞으로 그는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소형드론을 선보이는 당찬 포부를 펼치고 싶단다.

  • 사람들
  • 박태랑
  • 2019.11.13 18:42

‘미래형자동차 규제자유특구’ 지정 발로 뛴 김성봉 주력산업과 주무관

이번 규제자유특구 지정을 위해 뛰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일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과 소통해야하는 주력산업과는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움직였다고 자부합니다. 여기에 때와 장소를 가리기 않고 필요한 곳을 직접 찾아 소통했던 점이 규제자유특구가 출범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전북이 친환경 자동차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되면서 실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 김성봉(43) 주력산업과 자동차산업팀 주무관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특구계획 수립부터 지정까지 자동차융합기술원, 전북테크노파크, 건설기계부품연구원, 군산대학교 기술혁신센터 등 유관기관과의 소통에 주력했다. 김 주무관은 규제특례에 대한 기업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도내 모든 자동차 관련 기업을 전수 조사했다. 이를 통해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도출한 이후에는 담당 과장 등과 함께 국토교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 핵심 인사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주로 도 지휘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빠르게 도내 기업들에게 알려 규제자유특구 지정 논리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또 새로운 분야의 규제를 발굴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특히 김 주무관은 업무에 있어 자신을 드러내기보단 상대방의 입장에서 경청하는 자세로 임했다. 규제자유특구 선점을 위해 조직 구성원은 물론 유관기관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는 평가다. 주력산업과 내에서는 겸손한 성품으로 신뢰를 받고 있다. 실제 그는 이번 성과를 자신의 공이 아닌 특구지정을 위해 애쓴 모든 사람들이 이룬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주무관은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규제자유특구 지정이 반드시 필요했다며최종지정이 완료될 때까지 셀 수없이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고, 이제는 그 토대를 만들어나갈 차례다고 말했다. 김성봉 주무관은 지난 2005년 10월 부안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9월 전북도로 자리를 옮겼다.

  • 사람들
  • 김윤정
  • 2019.11.12 19:32

부안 동진면에서 수제 현악기 제작하는 박경호 씨 “악기를 만들때 항상 연주자와 청중을 생각합니다”

추수가 끝 난 한적한 시골길 끝자락 황토 흙집에서 아름다운 모양과 화려한 색을 가진 깊은 소리의 바이올린이 걸려있는 작업실. 자신을 제작자라 소개하는 박경호(50) 씨를 만났다. 이탈리아 여행 중 우연히 현악기 제작학교에 들어선 순간 나무 향에 이끌렸고 소리를 창작해 내는 모습에 반해 1999년 이탈리아 굽비오 악기제작학교(Maestri Liutai Scuola di Gubbio ltalia, Maestri Archetai Scuola di Gubbio ltalia)에 입학했다. 한국인 유학생 1호, 실기는 꼴찌로 입학해 만점으로 졸업했다. 그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아마티 등 바이올린 3대 명장을 얘기하며 이들과 닮은 소리를 찾고 모방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또 다른 소리도 존재한다는 생각에 나무도 모양도 바꿔가며 소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바이올린은 5도 음계로 완벽하리 만큼 물리적 음법칙 정수의 영역에 도달해 있다고 말했다. 3대 명장의 소리를 복원해 내는 사람이 명장으로 추대 받는 현실에서 그는 왜 만들어진 소리를 똑같이 만들려 할까? 창작활동을 하는 제작자로서 왜 그 소리만 담으려 할까? 그리고 만족해하면서 모방해야 할까? 이런 의심이 생겨 또 다른 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이 20여년이다. 바이올린을 만들 때 항상 연주자와 청중을 생각하며 만듭니다. 내 악기를 누군가 연주할 때 그 악기의 생명의 소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악기는 돈이 드는 올드악기여야 한다는 인식을 깨고 연주자가 찾아와 항상 연주하고 싶은 악기여야 합니다. 그는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지금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가는 시대에 장인이 만든 악기들은 300400년을 흘러도 더 좋은 소리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박경호 씨의 작품은 2014년 10월 서울시 초청 서울숲 커뮤니센터 개인 작품전 개최, 2016년 5월 오스트리아 카린시안 국립음악원 바이올린 전시회 등을 통해 많은 관람객과 연주자들의 직접 연주를 통해 좋은 소리로 퍼져 나갔다. 또한, 박 씨가 발간한 작품 도록에 현악기는 만든 사람의 철학을 담는 그릇이며 집입니다 라는 시작 글과 함께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찾아가며 작품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는 지면 속의 또 다른 현악기장 박경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 농사꾼인 아버지는 갖가지 신기한 물건들을 직접 만드셨고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손재주를 지켜보며 자랐고 그 재주를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뿌리가 있던 곳, 부안군 동진면 봉황마을에 스스로 황토 흙집을 짓고 깃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 집을 거대한 악기라 불렀다. 나무 향 속 아름다운 선율을 찾아가고 있는 박경호 씨는 앞으로도 꾸준히 힘이 되는 순간까지 좋은 소리를 찾아가면서 창작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고향 황토 흙집에서나무 향 속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현악 공방을 운영 중이다.

  • 사람들
  • 홍석현
  • 2019.11.11 14:52

농촌혁신사업 하는 김태준 농업회사법인 (유)케어팜 대표

2013년 12명의 농부들과 시작한 작은 회사는 7년간 사람과 기술,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하는 실험을 했다. 바이오 기술부터 국내 농산물 활용스마트 팜 등 매년 분야 확장에 나서니 이제는 지역을 대표하는 삼농(편농(便農), 후농(厚農), 상농(上農)) 기업이 됐다. 바로 올해 사명(社名)을 바꾼 농업회사법인 (유)케어팜의 역사다. 이제는 또 한 단계 도약할 차례다. 회사 케어팜이 주목한 다음 키워드는 농장형 요양 즉, 케어팜이다. 대표의 케어팜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회사 이름마저 케어팜이 됐다. 농업회사법인 (유)케어팜의 김태준(47) 대표는 태생이 농부는 아니다. 전남대 지리정보 공학박사를 졸업한 그는 농촌진흥청, 수자원연구원, 전북연구원 등에서 연구 박사로 근무했었고 지난 2013년까지는 익산시청 정책개발팀장으로 오래 근무했다. 그가 농업의 길로 입문한 것은 감초 덕분이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감초 연구를 맡았는데, 감초가 설탕의 50배로 당도가 높은 반면 흡수는 안 된다며 대안적 식품 개발 재료로서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감초가 약용뿐만 아니라 생활 속 대체 식품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 김 대표는 2013년 농업회사법인 감초유통사업단을 시작했다. 그는 농업의 1차 기반은 튼튼하고 안정적인 생산이라며 전국을 돌며 재배법 등을 배우고 기술과 융합해 현재의 안정적인 재배 농장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농업은 생산적 복지라고 말한 그는 자신의 사업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고령화된 농촌 어르신과 장애인, 청년들이다. 그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농업 기술이 없는 청년들도 편하게 작물을 기르고 수익내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며 용기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개발해 허리를 숙이지 않는 적은 노동력으로 단위면적당 수확량을 최대 10배 이상 높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원료보급화가 안정되자 가공 분야의 질적 향상에 힘썼다. 국가식품클러스터 등과 연계해 식품 개발은 물론 화장품 산업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김 대표는 다시 목표를 세웠다. 농업 생산과 기술, 활용 체계를 구축했다면, 이제는 교육과 복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미래 청소년과 청년, 주민들이 현장에서 수업과 실습을 받고 창업 밑그림까지 그릴 수 있는 실제 농장의 직업학교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한국형 월드호티센터(네덜란드 원예산업의 실리콘밸리)를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사람들
  • 김보현
  • 2019.11.07 19:06

지역 아동 대상으로 무료클래스 운영하는 김태희 예인아카데미발레단 단장

발레를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클래스가 열립니다. 꿈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요. 재롱잔치든 마을잔치든 예술활동으로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전주에서 예인아카데미발레단과 가온누리예술단을 이끄는 김태희(55) 단장은 지역 소외계층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발레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배움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이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부모들도 아이의 꿈을 이끌어줄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 그래서 이 클래스의 으뜸 가치는 아이들의 정서 안정이다. 나이가 어린 유아들이 수업을 들을 때면 부모도 함께 자리한다. 부모와 자녀의 교감으로 채워지는 연습 시간은 또 다른 보람이라고. 김 단장은 발레는 특정 계층만이 누릴 수 있다는 편견 때문에 많은 분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해 안타까웠다면서 그래서 제 학생들과 만날 때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생활예술을 교육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값진 성과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환경문화예술단 주최로 전주고속버스터미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제13회 대한민국환경예능 경연대회에 출전해 교육감상을 받은 것. 원광대 예술학부에서 무용학을 전공한 김 단장은 한국다문화가정연구원 부원장으로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문화혜택을 전하는 활동에도 앞장서왔다. 김 단장은 한국스카우트연맹 전북연맹 소속 지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5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장미원 일원에서 열린 2019 잼버리 코리아 페스티벌에 참여한 김태희 단장은 네 꿈을 펼쳐라 K-pop 공연 등을 보며 발레단도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성공개최와 함께 한 발 더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발레단은 오는 9일 낮 1시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리는 2019 한국스카우트연맹 전국 상급지도자회의의 축하무대에 오른다. 20분 남짓한 짧은 공연이지만 4~7세 아이들이 그동안 꾸준히 연습해온 결과를 선보이는 자리어서 무척 소중한 기회라고. 아이들은 이날 무대에서 만화영화 백설공주, 피터팬, 인어공주, 겨울왕국의 음악을 배경으로 발레 동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이 주최하는 이날 행사에서는 예인아카데미발레단과 가온누리예술단대의 발대식도 진행된다. 이를 계기로 지난 2015년 발레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예인아카데미와 2017년 창단한 발레단과 가온누리예술단의 결속을 다진다는 계획이다. 김 단장은 질 높은 유아발레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 발레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더욱 힘쓰겠다며 발레단과 예술단원들의 활동이 아이들의 정서와 예술적 소양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 사람들
  • 김태경
  • 2019.11.06 18:09

서울 경찰 배지 떼고 전북 경찰 배지 단 황희상 순경

범인에게는 엄하게, 시민들에게는 따뜻하게 다가가는 경찰이 되겠습니다. 올해 치러진 경찰관 채용시험에 다시 합격해 전주시 덕진구 모래내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황희상 순경(26)의 각오는 남다르다. 지난 2017년부터 서울에서 경찰로 근무하던 황 순경은 고향에서 경찰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둔 뒤 2년 만에 본인이 원하던 전북경찰 배지를 달았다. 경찰과 그의 인연은 지난 2013년도 의무경찰 때부터 시작됐다. 전주 덕진방범순찰대 복무시절 순찰 활동과 교통근무, 집회 시위관리 등의 업무를 하다 2013년 10월 전북지방경찰청 홍보실 대원으로 근무하게 됐고 당시 홍보실에서 경찰 관련 기사 스크랩 업무를 통해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경찰이라는 직업은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고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황 순경은 의경 전역 후 곧바로 경찰 시험 준비에 들어가 2017년 서울 경찰 시험에 합격, 그해 8월 서울 구로경찰서 고척지구대에서 경찰 업무를 시작했다. 지구대 근무에 이어 이듬 해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에서 근무를 하던 황 순경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전북 경찰 시험을 다시 볼 것을 결심했다. 서울에서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마음에 죄송하고 항상 마음에 걸렸습니다. 또 낯선 서울보다 제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이 그리웠습니다. 그는 꼭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하루 평균 4시간 이내로 잠도 줄이면서 필기시험과 체력시험을 준비했단다. 황 순경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었지만 고향 전북에 대한 그리움과 응원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버텨낸 것 같다며 부모님께 감사하고 또 경찰 시험에 응원해준 전북경찰청 홍보실 직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북경찰청에서 새로 시작하는 만큼 항상 새로운 마음과 열심히 배우는 자세로 전북의 치안에 보탬이 되는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 사람들
  • 엄승현
  • 2019.11.0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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