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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전북지역 평화통일 운동…"남북한 더불어 잘 사는 세상 고민하자"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9월로 확정됐다. 지난 4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발표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1차 회담과 깜짝 2차 회담에 이어 세 번째 일정이다. 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6.15 공동선언, 2007년 10.4 공동선언 이후 굳게 닫혀 있던 대화의 문이 열린 것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평창동계올림픽,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 등 남북 간의 관계가 조금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남북협력과 남북경제협력의 대표적 사례인 개성공단을 폐쇄시킨 지난 정부 때문에 잠시나마 한반도의 정세를 악화시킬 우려와 그 동안의 통일 노력이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들이 계속됐던 국민 정서를 생각해보면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있어서 정부차원의 교류는 정권의 변화와 정세에 따라 변동의 폭이 컸고, 이에 따라 문화교류 측면에서도 영향력이 행사됐다. 이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기간이 정해져있는 행사로 비춰지기도 했고, 그 효과를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보다 확대된 민간교류의 창구를 통해 다양한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일상생활에서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정부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교류와는 별개로 개별 민간차원에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이 있으며, 전북지역 또한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지속적인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들이 있다. △전주 YMCA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 전주 YMCA는 민족의 통일과 지구촌의 평화로 운동과제를 채택하고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 한반도 해방의 의미를 아시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아시아의 평화와 남북한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주 YMCA는 분기별 대중적인 평화통일 포럼을 진행하고 있으며, 미래의 지도자 청소년대학생 평화통일 운동지원, 평화통일 지도자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또한 YMCA 100인회를 설립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전주 YMCA의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평화통일 활동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평화운동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세부적으로 적용하며 활동하고 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을 스스로 겪어보는 과정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평화공동체를 향한 평화운동을 중심으로 평일통일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전주 YMCA의 조정현 사무총장은 현 학교교육 자체가 경쟁교육이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라든지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삶과는 동떨어진 교육이다 보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공동체 안에서 평화를 이루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부모들의 권유와 강요로 활동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대다수지만, 이후에는 본인 의지로 다양한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질문하며 의미까지 부여하는 사례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화통일 교육에 대한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청소년의 활동 모습을 보면서 학교나 다른 단체의 그 방법이 또 다른 주입식 교육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주 YMCA가 미래의 지도자인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평화 감수성 훈련이나 민주시민교육 등의 교육적 활동은 한국사회의 남과 북을 바라보는 관점이 대립과 갈등이 아닌 공동체적이고, 민족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조중러 접경지역이나 백두산 기행, DMZ 평화통일 순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관련 토론회, 청와대 앞 전쟁반대평화운동 및 캠페인 등의 활동들은 직접 삶에서 평화 통일 교육을 좀 더 구체화시키고자 노력하는 활동이다. 특별히 이번 여름방학에는 교사들을 대상으로하는 교육을 통해 그 생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있다. △전주 YMCA 100인회 활동 전주 YMCA는 평화통일운동을 함께하는 여러 단체들과의 연대활동도 진행해오고 있다. 이 또한 나름의 의미와 중요성이 존재하지만, 각 단체들의 대표성을 띠는 사람들만 참여하다보니 그 인원이 한정돼 있어, 실제 자발적이고 자치적인 개별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참여하고, 행동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활동을 해보자라는 취지로 100인회가 조직됐다. 조정현 사무총장은 백 명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로 100인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으며, 지난해 창립해서 활동하고 있다며 이 활동에도 청소년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어지고 있어서 만인회로 이름을 수정해야 하는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100인회는 남과 북에 따뜻한 평화의 바람으로 이어지는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한반도에 평화협정체결과 동북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을 감돌게 하는 어떠한 행위도 반대하며, 평화의 땅이 되도록 모든 평화세력과 함께 연대할 것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개인과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며, 평화교육과 평화운동을 비폭력 평화행동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교육의 3주체가 참여하는 통일에 대한 관심 교사, 학부모, 일반시민을 회원으로 하는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이하 문화원)은 1999년부터 청소년 교육 문화의 대안세력으로 활동해온 전북청소년교육연구소가 더욱 폭넓고 다양한 청소년 사업을 하기 위해 2005년 창립한 단체다. 문화원은 청소년 문화사업과 청소년 인권과 복지향상을 위한 사업 및 교육권력 감시 및 대안 제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1년부터 20년 가까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북청소년통일한마당을 진행해왔다.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 온 지난 정부에서도 숭고한 6.15정신을 누군가는 이어가야 한다고 여겼기에 꿋꿋이 지켜왔고, 청소년과 선생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전국 유일의 자생적 통일 행사로 변함없이 명맥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특히 전북청소년통일한마당의 메인 행사인 통일노래가사바꿔부르기(노가바)는 교사와 학생들이 바라보는 통일에 대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익숙한 대중가요 가사를 통일노래로 바꿔 부르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문화원 정우식 이사장은 노가바를 위해 학생들과 교사는 준비기간 동안 상호작용과 역할분담을 하게 되는데, 표면상으로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지만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문화원의 통일한마당은 매해 300여명의 초중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초창기 스포츠 교류의 상징성을 띤 3대3 길거리 농구대회와 통일 사진전시회 등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노가바에 조금 더 중점을 두어 10월에 어김없이 진행할 예정이다. △평화통일 운동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전북지역에서는 여러 단체나 기관들이 크고 작은 평화통일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유일의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들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보다 많은 참여가 이뤄지고, 더 나아가 그 관심이 남북 간의 다양한 민간교류의 창구로 연결되길 바란다. 거기에 더해 미래의 주인공인 학생들이 기존의 일회성 교육이나 행사로 인식되고 있는 학교교육을 넘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평화와 통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지속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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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8 19:46

정동영 민주평화당 당대표 “서민 눈물 닦아주면 지지 받을 수 있을 것”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630만 자영업자, 중소기업, 농민 등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 인터뷰에서 평화당은 당이 아니었다. 당을 세우기 전에 천막 하나 치고 지방선거를 치렀고, 주춧돌 몇 개만 남았다며 누구를 대변하는지 존재감을 드러내야 지지율이 오른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개헌은 이미 대통령이 발의해서 국회에서 시간이 경과해 현실적으로 동력을 상실했다며 20대 국회에서는 우선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거제도 개혁의 동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 정부의 경제정책으로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 일 수 없다면서 변화를 촉구했다. 다음은 정 대표와의 일문일답. - 당대표 취임 3주 지났다. 계획한 대로 잘 가고 있는가. 평화당이 역동적으로 변했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 있다. 평화당이 선도적으로 나가는 개혁적 정책 사안에 정부여당이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평화당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여당이 주저하는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선거제도 개혁 등 국민이 염원하는 국가대개혁에 평화당이 앞장서야 한다. 우리가 개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이 염원하는 개혁을 견인해나갈 때 평화당에 살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 - 군산조선소에 이어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전북 경제가 상당히 어렵다. 군산 많이 찾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평화당은 군산공장 철수 발표 때 군산을 산업위기 대응지역,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가장 먼저 주장했다. GM은 이전부터 한국지엠 철수는 물론 군산공장 폐쇄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았다. 군산추경이라고 했지만 전북에는 고작 1000억 원만 배정됐다. 문제는 그마저도 제대로 집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군산에 와야 한다. 직접 군산에 와서 얼마나 심각한지 봐야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대통령이 나서야 산자부가 움직이고, 기재부가 움직인다. - 군산공장 대체 산업으로 자율주행 상용차 전진기지 구축을 추진 중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군산공장을 전기자동차 혹은 자율주행차 생산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평화당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부와 대기업의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전북 투자 가능하다고 보나. 삼성의 전장사업을 유치하는 것이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이 있어야 이뤄질 수 있다. 이와 함께 규제프리존법의 특혜를 군산처럼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한 지역에 집중해야 한다. 전기자동차나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필요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 평화당은 전북에서 여당이다. 하지만 지지율은 꼴찌 수준이다. 결국 지방선거에서 지지 받지 못했는데 무엇이 문제였다고 보나. 이대로 21대 총선을 치를수 있다고 보는가. 평화당은 당이 아니었다. 당을 세우기 전에 천막 하나 치고 지방선거를 치렀고, 평화의 쓰나미를 만나 쓸려갔고, 주춧돌 몇 개만 남았다. 평화당은 그간 존재감이 없었다. 무엇을 하는 정당이고, 누구를 대변하는지 존재감을 드러내야 지지율이 오른다. 자영업자를 대변하고, 중소기업과 농민 등의 눈물을 닦아주는 등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 지방선거 실패로 평화당의 지역 정치 역할론에 부정적 시각이 많다. 평화당이 살아나는 것이 전북의 이익이다. 평화당의 존재 이유는 작년 예산국회에서 전북 정치에 왜 경쟁이 필요한가로 충분히 증명했다. 전북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감시자 역할을 자처한 결과 전북이 역대 최고 수준의 예산을 확보했다. 모든 권력은 견제와 균형이 중요하다. 일당 독재체제로는 전라북도도,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창당한 평화당이 그 역할의 적임자라 생각한다. - 어렵사리 교섭단체를 구성했는데, 지위를 잃었다. 예산정국인데 예결위원이 없어 현안 해결과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전라북도는 예산 비상이다. 챙길 사람이 없다. 교섭단체 아니면 요구권과 협상권이 거의 없다. 계수조정을 할 때 보면 교섭단체 대표자들이 모여서 정리를 한다. 우리가 자유한국당에 부탁하겠는가, 더불어민주당에 부탁하겠는가. 손금주 의원과 이용호 의원에게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에 들어와서 예결위 간사를 맡아 직접 예산을 챙기라고 제안했다. 고문들도 나서 설득하고 있다. - 중앙과 지방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지금의 지방자치제는 중앙이 8할을 차지하고 지방은 2할 남짓한 불완전한 자치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 헌법 제1조 제3항을 신설해서 대한민국은 지방 분권 국가다라고 명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 생각한다.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5당 원내대표가 규제프리존법 처리에 관한 합의를 했다. 청와대가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고 하면 협조할 의향이 있다. - 개헌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개헌은 이미 대통령이 발의해서 국회에서 시간이 경과했다. 현실적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개헌을 이야기하기 전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거제도 개혁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복잡다단하고 시간이 걸리고 이견이 돌출하는 개헌을 지금 특히 20대 국회 하반기 정기국회의 의제화하기가 쉽지 않다고 본다. 선거제도 개혁에 동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거제도 개혁 왜 필요한가. 올해 안에 가능하다고 보는가. 촛불의 대표적인 요구는 두 가지였다. 나의 삶을 개선하라는 것과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대표한다, 그것은 국민 주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지금 국회는 국민 주권이 굉장히 축소돼 있다. 국회의원 300명 중 253명 평균 득표율이 48%인데 투표한 유권자의 48%는 자신들이 뽑은 입법자를 갖고 있지만 52%의 표는 사표가 됐다. 그래서 국민주권을 확대하자는 거다. 과거에는 한국당이 결사반대 입장이었기 때문에 바꿀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당이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이 초심을 잃지 않으면 선거제도 개혁할 수 있다. -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 전반에 대해 평가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남북 외교 정책에 대한 생각은 제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경제와 민생문제에 관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같은 경제노선으로 가서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일 수 없다. 그래서 촛불시민들이 외쳤던 나의 삶을 개선하라는 준엄한 명령, 초심으로 돌아가서 청와대와 정부가 개혁의 진지가 돼야 한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취재단=박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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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민
  • 2018.08.26 18:12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진포대첩으로 나라 구한 ‘군산’-왜구 물리치고 일제 쌀 수탈에 항거한 역사현장·의미 살려야

△고려조선의 대혈맥, 군산 군산은 우리 역사 전개과정에서 해상교류의 중심 거점으로 자리한 곳이다. 이미 백제, 후백제 및 고려이래 서해안 항로는 대중국 교류의 중심이었다. 특히, 옛 군산진이 있던 선유도일대가 그 중심이었다. 한편, 고려가 건국된 이후 서해안 항로는 나라의 생명줄과 같은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즉, 고려와 조선왕조의 수도인 개경과 한양으로 국가의 세금과 주요물자수송을 위해 연안항로를 이용하면서 서해안 항로는 이후 1000여년이상 우리 역사에서 국가운영을 위한 생명줄이 되었다. 이때 쌀 생산의 중심지역인 호남평야의 출구로서 부각된 곳이 금강어귀인 군산지역이었다. 군산지역은 고려시대에는 진포(鎭浦)로 불렸는데 고려초 성종이 호족들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남방에 12조창을 두었다. 이때 전라북도권의 중심 거점으로 임피지역의 진성창을 관할한 진포를 조종포(朝宗浦)라 이름하고 1천석을 실을 수 있는 대형선인 초마선(哨馬船) 6척을 배정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성종이 이름을 조종포(朝宗浦)라 한 것이다. 이는 조정의 으뜸이란 뜻으로 그 중요성을 반영한 명칭으로 생각된다. 이후 군산은 조선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조운의 중심으로 진성창이 2번째로 규모가 큰 23척의 조운선이 유지되었을 정도로 확대 발전되었다. 그런데 이곳이 고려 후기 국력이 쇠해 방비가 약해지자 왜구들이 남해를 거쳐 군산지역까지 진출하여 집중적인 약탈을 자행하는 지역이 되었다. △고려를 구한 최무선의 진포대첩 조선을 건국한 태조이성계의 역사가 기록된 태조실록4년조의 기록에는 한 신하에 대한 특이한 기록이 남아있다. 즉, 고려말 현재의 군산지역인 진포에서 화포를 이용해 왜구를 대파한 최무선의 졸기(죽은 신하의 기록)가 그것이다. 이 기록이 주목되는 것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변방인 함경도지역의 일개 장수에서 고려를 구한 최고의 명장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준 최무선에 대한 평가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즉 고려 우왕6년(1380) 9월 남원 운봉지역까지 들어와 고려의 큰 근심이 된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의 위업은 실상 한달 앞선 8월 현재의 군산지역인 진포에 침입한 왜선 500여척을 모두 불살라 없앤 최무선의 진포대첩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뚜렷이 밝혀 화약발명가 최무선의 역사적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최무선이일찍이 말하기를 왜구를 제어함에는 화약만한 것이 없으나 국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다. 최무선은마침내 화약을 만들어 내었다. 또 화포를 만들고전함의 제도를 연구하여모두 만들어 내었다. 고려 우왕 6년(1380)인 경신년 가을에 왜선 5백여 척이 전라도 군산인 진포(鎭浦)에 침입했을 때최무선이 화포를 발사하여 그 배를 다 태워버렸다. 배를 잃은 왜구는 육지에 올라와서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노략질하고 도로 운봉(雲峯)에 모였는데, 이 때 태조가 병마 도원수로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왜구를 한 놈도 빠짐없이 섬멸하였다이것은 태조(太祖)의 덕이 하늘에 응한 까닭이나 최무선의 공이 역시 작지 않았던 것이다. 위 기록은 고려의 생명선인 조운항로의 물자를 약탈해 고려의 근간을 위협하던 왜구를 가장 효과적으로 격파한 최무선의 공에 대한 평가이다. 특히, 진포대첩으로 배를 잃은 왜구가 잔악하게 저항할 때 이를 토벌한 태조 이성계의 위업과 대등하게 최무선의 공을 조선 사관들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은 신왕조 조선에 협조치 않고 고려에 충성한 최무선에 대한 당시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깊다. △조선에서 꽃 핀 최무선의 화약신병기 우리나라에서 화약과 화기를 독자적으로 제조하기 시작한 시기는 최무선의 건의에 따라 화통도감이 설치된 1377년(우왕 3년) 이후이다. 화약 제조에 성공함으로써 화통도감을 맡게 된 최무선은 곧 화약을 넣어서 발사할 수 있는 화포 제작에 착수하여 다양한 화포를 개발하였다. 이렇게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과 무기는 고려 후기 왜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최선책의 하나였다. 고려군은 최무선의 화약과 화포로 1380년(우왕 6년)의 진포 싸움과 1383년(우왕 9년)의 진도 싸움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칠 수 있었다. 이는 세계 최초로 함선에서 화포를 활용한 전투로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 또한 이성계장군이 왕조 교체의 틀을 마련한 운봉지역 황산(荒山)대첩도 화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왕조 교체후 화기를 이용해 반대 세력이 봉기할까 두려워 집권 직후 화통도감을 폐지해 화약 제조기술은 잠시 침체되었다. 그러나 태종의 장려책과 최무선의 아들인 최해산의 노력으로 재개되고 세종대에는 사정 거리 증가, 연발기능 개발, 화기성능 개선, 사격술 개량 등 화기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 같은 화약무기의 발달은 왜구의 억제뿐 아니라 여진 정벌과 서북 변경을 개척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계 최초 화포 함선전투가 진행된 군산에서 그 의미와 역사성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고 그저 형식적으로 전시된 구식 대포만이 그 흔적으로 남아있어 안타깝다. △식민지 근대로 덮인 진포대첩 역사현장 군산지역은 고려, 조선을 거치며 국가의 생명선 역할을 하였다. 특히, 임진왜란시기 이순신 장군이 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없어졌을 것이다)라 하여 호남이 국가 식량의 중요 생산지임을 강조하였는데 그 운송 거점이 군산이었다. 그런데 조선이 식민지화된 후 호남은 일본인들을 먹여 살리는 쌀 생산기지로 전락되고 일본으로 쌀을 실어간 군산은 가장 번화한 식민지 근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최근 군산은 근대도시 군산이란 콘셉트로 식민지 도시의 성격을 활용한 문화관광 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고려, 조선의 대혈맥이자 생명줄이었던 군산의 의미와 진포대첩을 통해 극일(克日)한 역사, 쌀 수탈에 항거한 군산지역의 항일(抗日)의 역사 현장과 의미는 보이지 않고 식민지 근대화론적 이미지만이 부각되고 있다. 이제 새롭게 출범하는 민선 7기에는 이 같은 군산의 역사정체성 내용을 새롭게 검토하여 진정한 고려, 조선의 대혈맥 군산의 위상과 역사성이 회복되길 기대한다. 그 첫 사업으로 개통을 앞두고 있는 군산과 장항을 잇는 동백대교 명칭을 고려를 구하고 조선개국을 마련한 진포대첩을 기리는 진포대첩교로 명칭 변경하는 것을 적극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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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3 20:02

[문화&공감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삼례문화예술촌 ‘맛있는 클래食’…소시지를 곁들인 헨델? 엄숙함 벗고 식탁에 오른 클래식

여러분, 집중하지 마세요~! 몰입해 있는 관객들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집중하지 말라는 그녀의 행동에 관객들의 웃음보가 터졌다. 클래식은 일상의 공기, 바람, 때론 먼지와도 같이 특별할 것 없는 말 그대로 일상이어야 한다는 그녀. 엄숙함과 경직된 태도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클래식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바순 연주자이자 클래식 음악강사, 요리하는 오너 쉐프로 활동하고 있는 임지윤 씨(37, 요다지 대표) 이야기다. 지난 20일 아침 10시. 삼례문화예술촌에서는 특별한 음악강좌가 진행됐다. 이름하여 맛있는 클래食. 그 밑에 붙은 부제는 더 흥미롭다. 파스타보다 유명한 음악가: 이탈리아 로시니. 통상 클래식 앞에 붙는 많은 형용사 중 맛있는은 참 낯선 조합인지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그래서일까. 정원 20명 모집에 40여 명이 넘게 신청해 순식간에 마감이 됐다고 하니, 클래식이 이렇게 인기 있는 강좌였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의 불모지라 해도 과하지 않을 완주에서 색다른 컨셉과 커리큘럼으로 사랑받고 있는 맛있는 클래食의 강사 임지윤 씨를 만났다. 맛있는 클래食 주관한 임지윤 강사 - 맛있는 클래食의 인기가 상당합니다. 예상했는지. 어느 정도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로 호응해주실 줄은 몰랐어요. 바순 연주자로서 내 바순을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알리고 클래식을 즐겁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하는데요. 중요한 건 연주자와 관객이 서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인데, 음식이 그 연결고리가 될 수는 있겠구나 싶었죠. - 그 생각이 적중한 거네요. 연주자 입장이 아닌 향유자 입장에서 좋아할 만한 요소를 고민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왜 사람들이 가요나 팝처럼 클래식을 즐기지 않을까, 왜 어려워할까, 이해를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클래식을 너무 경직되게, 엄숙하게만 받아들이는 풍토, 태도가 대중과 클래식의 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지 않나. 마음을 열어야 감동이 생기는 건데. 그런 면에서 음식은 마음을 열어주는 아주 좋은 열쇠였던 거죠. - 커리큘럼 제목만 봐도 위트가 느껴져요. 보통 바흐와 헨델은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로 불리는데 여기선 소시지보다 유명한 독일 음악가로 소개하고 있네요. 맛있는 클래食의 컨셉은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음악과 그 나라 대표 음식을 함께 맛보며, 즐기는 클래식 감상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음식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 하듯이 클래식도 균형 있게 듣는 게 좋은데, 의외로 한쪽으로 치우쳐 듣는 경우가 많아요. 소개하고 싶은 음악가들이 많지만 제 생각에 클래식 음악의 베이스라고 생각되는 5개국 9명의 음악가를 선정해 국가별 대표 음식도 맛볼 수 있게 커리큘럼을 구성해 봤습니다. - 전체 5강으로 되어 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시죠. 1강은 독일 편으로 소시지보다 유명한 음악가 바흐와 헨델을 준비했는데요. 그들의 음악과 생애사를 감상하고 마지막 순서로 소시지와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잘게 썬 양배추를 발효시켜 시큼한 맛이 나는 독일식 양배추 절임)를 맛볼 수 있도록 준비했고요. 2강은 오스트리아 편인데 비엔나커피보다 유명한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주제로 역시 아인슈페너(Einspanner, 커피)와 자허토르테(Sacher torte, 케이크)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3강과 4강은 러시아의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프랑스의 드뷔시와 에릭 사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었는데, 각각 보르쉬(Borsch, 스프)와 블리니(Blini, 팬케이크), 라따뚜이(Latatui, 스튜)와 프로마쥬(Fromage, 치즈)를 준비해 참가자분들 모두 즐거워하셨어요. 오늘이 마지막 5강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 중 한 분인 로시니를 소개하면서 이탈리아 대표 음식인 브루스케타(Bruschetta, 에피타이저)를 곁들여 즐기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참가자분들에게 색다른 경험이었을 같아요. 반응은 어땠나요. 지금까지 음악회를 하면서 받았던 그 어떤 반응보다도 따뜻하고 열렬했다고 할까요. 심지어 강좌가 끝난 후 직접 기른 거라고 하면서 호박을 선물한 관객분도 계세요. 연주회가 끝나면 꽃다발만 받아봤는데(웃음), 이런 게 완주다운 멋스러움이겠구나 싶었어요. - 바순 연주자이면서 오너 쉐프로도 일하고 있는 데, 이런 이력이 커리큘럼을 기획하는데 영향을 끼쳤겠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바순을 시작했는데,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졸업 때까진 바순밖에 모르고 살았어요. 대학 졸업 후 뉴욕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는데 우연찮게 메네스 음대 석사과정 시험을 치르게 됐고 덜컥 합격을 하는 바람에 여러 의미로 제 삶의 터닝 포인트를 겪게 됐어요. 남편을 만나 100일 만에 결혼도 하고(웃음). 당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편은 3Job을 가졌고, 저도 레슨, 베이비시터, 식당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러면서도 요리 전문 채널은 꼭 챙겨서 볼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에 들어와 음악활동하면서 마스터 쉐프 코리아 시즌1이라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지원해 마스터 쉐프 합격 앞치마를 받기도 했고요. 돌아보면 그런 경험들이 쌓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과 요리, 두 개를 다하게 된 것 같아요. -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한데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조만간 지금 운영하는 요다지 안에 음악 전문 독립서점을 열 계획이에요. 제 취향대로 선택한 음악 관련 전문서적을 갖다 놓을 거고요. 무엇보다도 바순을 사랑하고 평생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고 있지만 요리, 그림, 렉쳐,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한 방식이 될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맛있는 클래食은 저만의 방식으로 준비한 독주회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친하지 않은 클래식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클래식은 엄숙하고 격식을 지켜서 관람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시고요. 클래식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 공기, 바람, 때론 먼지와도 같은 특별할 것 없는 말 그대로 일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송은정(문화기획가완주문화재단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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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2 21:10

[참여&소통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제17회 한국 강의 날 대회-서로 다른 생각 하나로 모아야 강·하천 살린다

제17회 한국 강의 날 대회가 열렸다.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목포에서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2박3일 일정이었다. 전국에서 91개 단체가 참가했고, 약 2000여 명의 강과 하천지킴이들이 모여 대회는 성황을 이뤘다. 이번 전남 목포대회는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과 영산강살리기네트워크가 주최하고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 그리고 전라남도와 목포시가 후원했다. △한국 강의 날 대회 첫 날 열린 한국강포럼에서는 이번 대회 슬로건인 물 민주주의 원년, 강강 수월하게에 맞춰 통합 물관리 이후 4대강의 재자연화와 물 민주주의, 그리고 영산강 하굿둑 개방이 주제로 논의됐다. 하지만 대회의 꽃은 사례 콘테스트였다. 접수된 53개의 사례들은 제 각각 청소년, 대학생, 수생태보전이나 환경교육, 그리고 민관협력사례로 분류되어 예선를 거쳤고, 최종적으로 14개의 사례가 본선에 올랐다. 심사위원들의 역할이 좀 독특했다. 대학교수와 공무원도 있고,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활동가들도 섞여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평가자라기보다는 참여자 모두가 해당 사례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소중한 가치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놓쳐 발표가 미흡한 부분을 추가로 질의하기도 하고, 모두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며 무대 위에 마련된 패널에 투표지를 붙였다. 뿐만 아니라 왜 그 사례에 투표했는지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후, 청중들의 의견을 경청해 민심이 최대한 반영되는 결과를 내오도록 노력했다. 심사위원들로서는 이런 대회방식이 불편할 수밖에 없겠지만, 강과 하천을 사랑하는 서로 다른 생각들을 공론화하고 모아가자는 대회의 목적에 맞게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덕분에 대회는 각자의 애환과 고충들이 담긴 사연들로 형형색색의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저마다의 현장에서 부딪혔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의 지혜를 모으고, 관계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었던 사례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이들에게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특별히 주목받았던 사례들 강과 하천 수질오염에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버려진 농약병과 폐비닐, 소각하고 남겨진 쓰레기 잿더미다. 비가 내리면 그대로 흘러들어 부영양화로 녹조를 일으키기도 하고 심한 경우 물고기 집단 폐사를 불러오기도 한다. 오염이 발생하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비점오염원(nonpoint-pollutant)이라 불리는데, 체계적인 관리가 가장 큰 맹점이다. 그래서 비점오염원에 의한 오염부하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해결에는 왕도가 따로 있지 않고 첨단 기술적용도 어렵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유역의 소하천들을 살리기 위한 도랑살리기 사업을 추진해 왔는데, 지속적인 성패를 가르는 변수는 결국 마을주민들의 참여와 변화였다. 당연하게 들릴지 몰라도, 고령층의 노인들만 남아 있는 농촌마을의 현실을 감안할 때, 현장의 활동가들이나 일선 공무원들의 고충은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강살리기 김제네트워크의 사례 비점오염원 줄이기로 새만금 행복강물 만들기와 임실군 조월마을 자원순환! 더불어 하나 되는 환경지킴이의 드라마틱한 성공담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농약병을 한군데로 모으고, EM(유용 미생물) 사용을 일상화하고, 쓰레기가 쌓이던 곳에 꽃밭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기법들이 동원되었지만, 승패의 핵심은 많게는 일주일에 두어 번도 하고, 1년 내내 하고 작년에 이어 내년에도 또 하는 반복적인 과정에 있었다. 헌신적인 현장 활동의 중심에는 반드시 밑불을 지펴온 숨은 부지깽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또 하나의 사례들은 대학생 실천 분야였다. 이 분야는 올해 대회부터 신설되었다. 청소년들의 자원봉사활동 사례가 많은데 비해 대학에 진학한 이후 활동이 지속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또한 대학생과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겠다는 장기적인 전략이 담겼다. 심사위원들과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은 것은 영산강 러브리버 대학생들의 강 따라 전설 따라, 영산강 유역순례였다. 벌써 13년의 전통을 갖고 있고, 올해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목포에서 영산강 발원지인 용소까지 4박 5일의 순례를 강행했다. 단순한 강길 걷기가 아니다. 유역의 마을 곳곳을 거쳐 가며 마을주민들을 만나고, 겨울방학에는 별도의 마을지원활동을 하기도 했다. 강을 끼고 살아가는 유역의 삶을 돌아보는데 이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이 있을 수 없다. 관심을 모은 또 하나는 전북대학교 하천생물연구회의 전주시 관내 하천 생태 전문모니터링 사례였다. 이 연구회는 김익수 명예교수가 지난 1975년 전북대학교에 처음 부임하면서 만든 모임이다. 지금까지 38년 동안 전주천을 모니터링해 온 기록도 놀랍거니와 자신들의 전공을 살리면서, 전주의 하천들이 건강한 생태하천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명견만리, 생각을 모으면 길이 보인다 한국 강의 날 대회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공유의 플랫폼이다. 플랫폼이란 개념이 최근 4차 산업혁명이 공론화되면서 함께 회자되는 신조어 같지만, 그 가치와 정신이 벌써 17년이나 오래도록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도랑살리기에서 마을만들기로, 대학생 강 순례, 민관협치, 거버넌스, 유역공동체 비록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은 결과는 아니지만, 통합 물관리나 물 민주주의, 하굿둑 개방 못지않게 대회 기간 내내 자주 거론되었던 키워드들이었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부터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교수와 전문가, 물 관련 정책을 다루는 유역과 중앙부처의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들의 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쏟아져 나온 말들이었다. 우리의 강과 하천이 맞닥뜨려 있는 현재와 미래는 분명 이 단어들 속에 있다. 폭염이 지나자 녹조가 급격히 번성하고 물고기들의 폐사로 강이 또 다시 몸살을 앓고 있다. 생각을 모으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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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21 19:32

정읍농협 유남영 조합장 “함께 성장, 지역농협이 추구해야 할 가치”

정읍농협(조합장 유남영)이상생경영을 기업경영 가치로 올해 상호금융여수신 1조원을 달성, 농촌지역 농협의 한계를 극복한 쾌거로 지역사회 주목을 받고있다. 지난1995년 부도위기에 취임한 유남영 조합장은 위기를 극복하고 당시 1200억원 불과했던 상호금융을 23년여만에 1조원시대로 도약을 이끌었다. NH농협금융지주이사인 유남영 조합장을 비롯한 임직원및 조직장, 자원봉사자, 7000여명의 조합원, 3만여명의 준조합원들이 함께 지역경제 지킴이로써 역할에 앞장서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사회적기업의 책임을 다한 결과로 평가받는다. 농업인, 고객,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것은 지역농협이 추구해야 할 미래지향적인 가치이다고 강조하는 유남영 조합장을 만났다. -정읍농협이 추구하는상생경영은 무었인가. 정읍농협의 주인인 조합원을 위한교육지원사업으로 자녀장학금과 공동육묘장, 무인헬기 방제, 작목반 등 영농지원을 위해 매년 17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다음으로준조합원 배당인데, 무한경쟁시대의 금융환경에서 정읍농협 수익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우수한 고객을 계속 붙잡기 위한 방편으로, 2년에 걸쳐 8억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또 농가소득증대를 위한로컬푸드운영에 현재 약 15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는데, 년 26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사랑나눔봉사단은 9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무의탁노인 밑반찬 공급, 소외된 이웃에게 쌀자장면 대접, 재활용품 수거및 판매등 봉사활동에 헌신하며 대표적 사회적기업으로 불리운다. -여성자원봉사자가 중심인사랑나눔봉사단을 만들게 된 계기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무의탁 어르신들이 늘어나고 자연히 고독사도 증가하는등 복지 사각지대가 많다. 지역농협의 한계도 있지만 어르신과 장애인, 차상위계층등에 무료지원을 위해 2000년도에 봉사단을 만들었다. 봉사단 운영에는 매년 1억이상이 소요되는데 정읍농협 수익의 일부를 환원사업 차원에서 50%이상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임직원들의 후원금과 행복한가게를 통한 수익금 전액을 봉사단에 쓰고 있다.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을 위해 농협이 계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무엇인가.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취임당시 농협의 존재이유는 농업인의 소득증대에 있다면서 2020년까지 농가소득 5000만원 달성을 이루자고 했다. 이를위해 농가 수취값 제고, 농업경영비 절감, 농식품 고부가가치 창출, 농가소득 간접지원, 농외 소득원 발굴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읍관내는 벼농사중심의 농업이라 벼직파재배는 생산비 절감의 중요한 요소다. 봄철 영농작업의 40%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3년 전부터 작목반을 구성해 벼직파 보급 및 재배면적 확대에 노력하고 있으며, 고가라 구입이 어려운 농기계를 임대해주고, 직파재배 등 농작업을 대행해 주고 있다. 또한 로컬푸드는 소득대체작물 확대와 농가소득증대를 위한 발판으로 제공하고 이외에 복숭아, 고추, 태추단감 작목반에서 직거래 장터를 통해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정읍농협 고추 직거래장터를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만 참여하는데 누구나 볼 수 있게 진열된 장터에서 눈에 띄는 상품은 인기가 좋으니 가격이 올라간다. 생산농가들은 상품이 서로 비교되기 때문에 되도록 좋은 상품의 건고추를 장터에 내게 되며, 가격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첫 호남출신 농협중앙회장이 전북에 미치는 영향과, 조합장으로서는 유일하게 NH농협금융지주 이사를 맡고 있는데 중점을 두는 부분은. 현 김병원 농협회장은 전북의 농업과 농협발전 및 지역인재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갖고있다. 농협상호금융 대표이사 등 농협중앙회 요직에 전북인재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고 있어, 전북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긍정적이다. 농협금융지주 이사회는 은행, 증권 등 8개 계열사를 지도 감독할 뿐만 아니라 농협은행장을 포함한 계열사의 대표를 선출하기도 한다. 지난 2004년 농협중앙회 이사를 역임할때나 현재 이사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눈 여겨 보는 것은 도시농협과 농촌농협의 상생발전이다. 경영환경이 열악한 농촌농협의 조합원이나 직원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지난 5월 농협중앙회에서 101개 농촌농협을 대상으로 도농 농축협 상생기금 및 농기계 구입자금 전달식을 가진 바 있다. 정읍농협에서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정읍관내 농촌농협에 무이자자금 20억원과 농기계 구입자금 2000만원을 지원했다. △ 정읍농협 상호금융여수신 1조원 달성 기념아름다운 나눔동행 상생국악공연 개최 정읍농협(조합장 유남영)은 상호금융여수신 1조원 달성을 기념해 지난 18일 정읍사예술회관에서 장애인단체,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정등을 초청해아름다운 나눔동행 상생국악공연을 개최했다. 기념식에는 유성엽 국회의원, 유진섭 정읍시장, 김광수 NH금융지주회장, 소성모 농협중앙회 상호금융대표이사, 강태호 농협생명 부사장, 허충회 리스크관리 부행장, 유재도 전북지역본부장, 김장근 전북영업본부장, 남병기 감사위 사무처장, 임종철 농업보험본부장, 박종국 금융지주이사회 사무국장, 조천형 정읍시지부장, 허수종 정읍샘골농협장, 윤여웅 제일건설 대표이사, 내장사 도완 주지스님,진공스님, 유남영 조합장과 임직원,조직장, 자원봉사자등 600여명이 참석해 축하하고 정읍농협 발전과 정읍사회 화합을 다짐했다. 특히 정읍농협 행복한가게 재활용품 판매금과 정읍농협 직원 적립금으로 마련한 3000여만원을 정읍애육원및 장애인단체, 현정어린이집, 나눔빌등 10개단체에 100만원씩 전달하고 정읍농협 관내 주민센터에서 추천받은 차상위계층 100명에게 각 20만원씩농협이용권증서를 전달하고 격려했다. 이어진 국악공연은 국악인 박애리씨, 젊은 춤꾼들의 기량을 선보인청무용단, 시각장애인 궁중악사제도를 재현한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신명나고 감동적인 무대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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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장훈
  • 2018.08.19 21:42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9. 가을보양식, 남원의 추(鰍) - 흔하지만 영양 만점…서민들 원기 북돋운 '효자 음식'

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보양식을 찾는다. 보양식의 보양은 잘 보호하고 기른다는 뜻의 보양(保養)과 양기를 북돋워 준다는 보양(補陽)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보양식으로는 민어, 장어, 닭, 미꾸라지, 보신탕 등이 있다. 여름철 귀한 보양식으로 알려진 민어는 7, 8월에 많이 잡히는 어류로 허균의 『도문대작』에 민어 등은 서해안 전역에서 두루 많이 잡히기 때문에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여름철 반가의 특별한 보양식으로 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보양식인 삼계탕은 1960년대 무렵 대중화된 음식이다. 조선시대의 삼은 원래 자연산 산삼이었는데 영정조 시대에 가삼(家蔘)의 양식 재배가 시작된다. 덕분에 인삼이 비교적 흔해졌지만, 나라에서 인삼을 엄격히 관리했기 때문에 인삼이 들어간 삼계탕을 보양식으로 널리 먹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논두렁이나 냇가에서 잠깐의 수고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해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보양식도 있었다. 여름을 지나며 가을에 먹는 보양식으로 알려진 남원의 대표 음식 추어탕이다. 미꾸라지를 한문으로 추(鰍)라 하는데, 이는 물고기 어(魚)와 미꾸라지가 우는 소리인 추(秋)를 합성한 의성어라는 설과 가을(秋)에 먹는 미꾸라지가 통통하고 맛이 좋아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미꾸라지를 칭하는 다른 한자 이추(泥鰌, 泥鰍)에서는 진흙 니(泥)를 쓰는데 이는 진흙 속에 사는 물고기라는 의미이다. 추어탕은 영양학적으로 장어에 버금가는 보양식이지만 원래는 양반들이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이 때문에 궁중음식을 소개하는 조리서에는 추어탕의 제조법은 물론 명칭을 찾아볼 수 없다. 미꾸라지가 선조들의 식재료로 쓰였다는 흔적은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확인할 수 있다. 1123년 작성된 기록에는 당대 고려의 생활 풍속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고려에는 양과 돼지가 있지만 왕공이나 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鰌), 전복, 조개, 진주조개, 왕새우, 무명조개, 대게, 굴, 거북손이 있고 해조인 다시마도 귀천 없이 좋아하는데라며 모두 11종류의 해산물을 기록했고 그 첫머리에 미꾸라지(鰌)가 등장한다. 10종류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이고 미꾸라지만 민물에서 잡는 것이었다. 미꾸라지가 하천이나 논에 흔하므로 서민들이 오래전부터 먹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다른 문헌 기록으로는 중국 명나라 때에 이시진(1518~1593)이 쓴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그 특성이 등장한다. 미꾸라지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술을 빨리 깨게 하고 정력을 보하여 발기 불능에 효과가 있다 양기(陽氣)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며 그 효능을 기록하고, 미꾸라지는 무리의 으뜸이 되려는 습성이 있고 움직이고 요동치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므로 두목처럼(酋:두목 추) 튼튼하고 잘 움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성(性)이 온(溫)하고 미(味)가 감(甘)하며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멎게 한다고 미꾸라지가 가진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가 널리 알려져서인지 추어탕은 가을뿐 아니라 사계절 원기회복의 음식으로 인기가 많다. 추어탕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밋구리탕과 추두부탕(鰍豆腐湯)이다. 밋구리탕은 서유구(1764~1845)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나온다. 미꾸라지를 이추(泥鰍)라고 하고 한글로 밋구리라고 쓰며, 살은 기름이 많고 살찌고 맛이 있으며 시골 사람들이 이를 잡아 맑은 물에 넣어두고 진흙을 다 토하기를 기다려 국을 끓여 먹는데 특이한 맛이라고 했다. 밋구리탕은 미꾸라지 살을 곱게 만든 다음 된장 푼 물에 넣고 끓여 오늘날 추어탕의 원형으로 추정된다. 추두부탕은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등장한다. 진흙과 모래가 섞인 계류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물 담은 항아리에 넣어두면 머금었던 진흙을 토해낸다. 하루 세 번 물을 갈아주며 5~6일 계속한다. 이 미꾸라지 50~60마리와 두부 몇 모를 물과 함께 솥에 넣고 불을 때면 물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미꾸라지들이 열을 피해 두부 속으로 촘촘히 박혀 들어간다. 불을 계속 때면 물이 끓어 미꾸라지가 익는다. 미꾸라지가 사이사이 박힌 두부를 썰어 참기름으로 지져서 먼저 끓이고, 메밀가루와 계란을 풀어 넣고 저어가며 섞어준다. 재료가 어울리게 탕을 끓이면 맛이 아주 좋다. 이 탕이 요즘 서울의 반인들 사이에 성행한다. 이렇듯 19세기 중엽 추어탕은 상류 계층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의 음식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추어탕은 끓이는 방식에 따라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으로 넣는 서울식과 미꾸라지를 삶아서 얼망에 걸러내거나 갈아 끓이는 남도식으로 나뉜다. 미꾸라지를 갈아 넣은 남도식 남원 추어탕은 남원 운봉 지역의 무시래기를 주재료로 넣어서 된장을 풀어 들깨와 초피(젠피, 산초)를 넣어 구수한 탕으로 끓여 만든 남원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남원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어 청정한 물이 흐르는 지역이다. 계곡을 따라 남원 곳곳으로 흐르는 하천에는 풍부한 퇴적층이 형성되어 있어 미꾸라지를 비롯한 민물고기가 많다. 남원 지역 주민들은 가을 추수가 끝나면 겨울을 대비해서 보양 음식으로 살이 통통히 오른 미꾸리나 미꾸라지를 논두렁이나 수로에서 잡아 시래기와 함께 끓여 먹었다. 같은 추어탕의 재료로 쓰이나 원통형의 몸으로 동글이로 불리는 미꾸리가 몸이 옆으로 납작하여 납작이로 불리는 미꾸라지보다 맛이 좋다. 가을철에 서민들이 주로 먹던 추어탕이 사계절의 보양 음식으로 이해되면서 남원 향토음식이 되었다. 또한 지리산에서 나는 산채와 토란대, 고랭지 푸성귀를 말린 시래기와 각종 나물, 남원 추어탕에 들어가는 향신료 초피를 쉽게 구할 수가 있어 남원은 추어탕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남원에서 추어탕이 상업화된 것은 1950년대로 섬진강 하류 하동 출신의 서삼례가 1959년 요천가 광한루원 주변에 억새풀집 지붕을 얹고 새집이란 추어탕집을 내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인근에 추어탕집들이 생겨나며 남원 추어탕은 음식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추어탕 거리는 전국적인 향토 음식의 거점 지역으로 인정받으며 2012년 음식테마거리로 지정이 되었다. 현재 남원에는 약 50여 개의 추어탕 음식점이 분포해 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자연산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귀하고 남원산 미꾸라지 양식도 부족한 실정이다. 옛 문헌에 나온 미꾸라지 조리법을 계승하면서 젊은 층도 선호할만한 음식으로 발전시키는 연구가 필요하며 남원 문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생명력이 강한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에는 동면하고 온갖 험난한 자연환경에도 잘 자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미꾸라지 천년에 용 된다란 속담이 있다. 오랫동안 노력하면 훌륭하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서민의 음식으로 논두렁에서 잡아 끓여 먹던 남원의 추어탕이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향토음식의 대명사가 되며 지역의 자산이 되었다. 여름 더위에 지친 몸을 위해 가을철 최고의 보양식인 추어탕을 찾아 남원으로 원기회복을 하러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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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6 19:06

[문화&공감 2018 시민기자가 뛴다] 부안 유천리 고려시대 대형건물지 - 발굴 기와에 새겨진 '官'…최상품 청자 생산지 방증

고려시대 요업(窯業)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가 확인됐다. 고려시대 왕실에 진상한 최상급 도자기를 만들던 사적 제69호로 등록된 전북 부안 12호 유천리 요지. 과거 유천리 토성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둘러앉아 있던 곳이다. 옛날에는 낮은 야산구릉의 요지 앞으로 현재의 논 대신 탁 트인 바다가 들어왔었다고 한다. 어느 면으로 보나 기골이 살아 있고, 잘 발달한 광대뼈처럼 적절한 위엄과 고졸함도 있다. 유천리 요지는 무려 150년 동안 흑백의 안료로 무늬를 새겨 넣은 상감청자가 나오는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고려 도공들이 처음 창안한 아름다운 비색 상감청자는 유일하게 부안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구름이나 학, 꽃과 같은 무늬를 그려 조각칼로 파내고, 그 파낸 곳에 백토(白土)와 자토(紫土) 안료를 넣어 긁어낸 뒤 유약을 발라 구워낸다. 그러면 백토는 하얗게, 자토는 검은색으로 무늬가 나타난다.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도자기 장식기법의 상감(象嵌). 그러기에 더욱 희소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독창적이며 고귀한 자산이 되어 왔다. 그러나 지나치게 뛰어나도 삶이 거칠어지는 건 사람처럼 터나 도자기나 매한가지일 게다. 1929년 조선총독부 노모리켄(野촌健)에 의해 최초로 보고되었던 부안 유천리 요지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에 의해 도굴과 훼손이 지속되다가, 해방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으로 사지가 갈가리 찢기듯 나누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으로 치면 거혈형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까. 그러던 것이, 소달구지로 실려 나가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부안 유천리 12호 청자유적에서, 이번에는 거대 건물지가 발굴된 것이다. 청자를 구웠던 가마 1기와 함께 발견된 건물지 2동. 그리고 건물지 기와에는 특이하게도 관청을 뜻하는 官자와 客舍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동안 그릇을 만들던 초가 형태의 공방지가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가마터 주변에서 일부 조사된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고려시대 기와 건물터가 발견된 예는 드물어요. 기와에 새겨진 글자로 보아 부안 유천리 고려청자가 관의 주도 하에 제작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지요. 이곳에서 출토된 고려청자는 고려 13세기 경 고려왕실 혹은 최고위층에게 공급되었던 곳으로, 이번 학술조사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사이를 두고 뒤늦게 발견된 大寺자로 보아 어쩌면 큰 사찰일 가능성도 있다고, 부안청자박물관 한정화 학예사는 말한다. 조사 지역인 유천리 요지 3구역은 요장(窯場) 전체를 몇 개의 구획으로 분할하고 있다. 조사지역 중앙에 위치한 석축은 동서로 길이가 약 38m, 잔존 높이는 최대 42㎝, 현재 약 4단 정도 잔존해 있다. 석축의 내측으로 정면 5칸, 측면 1칸의 대형 건물지를 시설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용무늬가 새겨진 1m 가까운 상감용무늬매병과 벽에 부착하는 5mm 두께의 청자 타일, 원통형 의자, 구름 학무늬 화분, 생활용구와 건축용구까지 600상자 분량의 파편들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기존에도 발굴된 바 있는 청자상감물가풍경무늬찻잔은 절반으로 쪼개져 위아래로 겹쳐진 채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사적 발굴로 유출이 많아 더 나올 게 없다는 입장이 있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발굴을 해야 한다는 한정화 학예사의 주장으로 작년 12월 3차 발굴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물감 대신 붉은색으로 발색되는 구리 성분 안료를 가지고 동화청자를 만든 곳도, 왕이나 왕비를 상징하는 봉황무늬가 새겨진 상감백자가 나온 곳도 바로 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더욱 가깝게 다가들어 자꾸 되새김을 가져야만 하는 중요한 요지라고 여겼던 것이다. 특히 동화청자는 연꽃잎이나 모란꽃잎 끝에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장식한, 우리나라 도자사는 물론 고려청자 중에서도 손으로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더욱 다행인 것은 이번 부안 유천리 요지 발굴조사를 통해 그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자기 제작공정과 운영실태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기 요지의 경관을 복원하고, 부안지역 청자 유적지의 성격과 위상을 높이는 데 있어서도 보다 구체적인 교두보가 되지 않을까 한다. 보안면 유천리도요지 터에 위치한 부안 청자박물관에는 유천리와 우동리, 진서리에서 출토된 청자 및 청자 편들이 전시되어 있다. 2011년 에 개관한 부안청자박물관은 개관하여 얼마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참 부지런히 부안 고려청자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 청자 도요지 가운데 전남 강진이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전북 부안은 그에 버금가는 최상품의 상감청자를 생산했던 곳이며, 고려청자가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곳이라는 것이 이로써 더욱 분명해진 셈이다. 고려시대 부안은 최상품의 청자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요건을 갖춘 곳이었다. 질 좋은 흙과 적송과 같은 나무가 풍부한데다, 청자를 운송할 수 있는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즉 평야와 산간, 해안 지대를 두루 섭렵하여 만들어진 것이 부안 고려청자이다. 77곳이나 되는 청자 가마터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리적, 환경적 여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터. 고려청자는 주로 왕실과 중앙의 귀족이 사용했기 때문에 바다를 통해 홍성, 태안, 강화를 거쳐 개성까지 실어 날랐다. 그 출발점이 고려시대 조창이 있던 안흥창 인근이다. 부안 유천리 12호 청자가마터는 그 동안 위치를 몰랐던 안흥창 터로서도 유력하다. 전국의 세곡과 함께 고려청자를 왕실에 진상하기 위해 가마터 옆에 자리 잡은 것이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지 등 당시 문헌에 기록된 부안 유천리 안흥창 위치와 거의 일치한다. 천하사는 살고 죽는 두 길에 그치는 법이다. 대형 건물지가 어깨가 높고 이마가 밝은 기골로 우뚝, 우리의 발 앞에 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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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15 20:02

[문화&공감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장애인 연극 교육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 문화예술로 이루어져야

2017년 장애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인구가 251만 1051명으로 총인구 대비 약 4.9%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의 90% 이상이 여가 활동으로 TV 시청 정도만 하고 있다. 연극영화 등의 감상은 약 7%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은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지만 이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누리기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전북지역 역시 다르지 않다. 현재 전북에는 올해 4월 기준으로 13만 1218명의 등록 장애인이 존재하고 176개의 장애인복지시설이 있다.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활동이 가능한 장애인의 경우 난타, 그림, 음악, 체육 활동 등 예체능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장애인 연극교실을 운영하는 익산시 장애인가족지원 인권센터와 군산 장애인 복지회관 연극교실 등 현장에서 도내 장애인 문화예술 향유 현황을 들어봤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얻는 기회 문화소외자 또는 문화소수자에 대한 참여 예술 형태의 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또 다른 문화소외자가 생기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로 장애인에 대한 예술 활동이다. 장애인에게 예술 참여형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교육과 마찬가지 이유인 자신감의 상승과 자존감의 회복일 것이다. 2년째 장애인 연극 교실을 운영하는 익산시 장애인가족지원 인권센터의 김명남 과장은 참여하는 분들이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 같다며 게다가 연극을 배우고 공연을 하기 위해 역할을 맡으면서 책임감도 기르고 서로 협동하는 법, 기다리는 법도 배운다고 말했다. 이미진 연극 교실 강사는 처음엔 과연 이 친구들이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연극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가능할까 하는 고민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배역에 욕심을 내고, 무대에서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에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장애 수준에 맞는 예술교육 강사 부족 확실히 일반적인 연극예술 활동보다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예술 활동이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부족이 꼽힌다. 처음 대상자들을 만났을 때 비장애인들과 똑같다는 생각에 많이 놀랐어요. 아마도 그건 제가 생각하고 있던 일반적인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가 잘못된 편견을 만들어 냈던 것 같아요.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춰서 공연을 준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는지 알게 되었죠.(이미진 강사) 두 번째는 장애 수준을 고려한 교육방법과 강사의 부족을 들었다. 군산 장애인 복지회관에서 수업을 했던 김복임 연극교실 강사는 학교예술교육도 학년에 맞는 적절한 교육의 단계가 필요하듯이 장애인 연극 교육도 장애 수준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이에 맞게 교육이 가능한 강사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연극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장애인 대상 연극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육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교육적 방법의 다양성이 좀더 연구 되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직접 참여하는 예술 안에서 피어나는 꿈 도내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연극 수업이 진행되는 단체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또한 대부분의 단체들이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지속성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와 교육 대상자와 교육 강사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수화 강사인 김순지 씨는 말했다.농인들에게는 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문화가 있어요. 그것은 아마 청인들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관계 안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연극인 것 같아요. 바로 연극을 통해서 농인과 청인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거죠. 좀더 다양한 직접적인 예술 참여의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2년간 연극 교실 수업을 들은 진승찬 씨는 너무 좋아요. 자신감도 생기고요. 그리고 매일 센터하고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다 였는데, 색다른 경험을 하니깐 삶의 활력도 되고 기분이 좋더라고요.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강명득 씨는 제가 글씨를 못 읽거든요. 그런데 대본을 읽으려면 글을 좀 배워야 겠어요.라고 말했다. 김복임 강사는 한번은 수업이 다 마무리 되고 나서 자폐증에 걸린 아이가 저한테 다가와서 말하더라고요. 자기도 선생님처럼 연극 강사가 되고 싶다고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장애인,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따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세상에서 같이 호흡하며, 같이 느끼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택은 그들의 몫이지만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사회에서 노력해야 한다. 그들도 또 다른 꿈을 꾸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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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8 19:34

[참여&소통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코레일 '내일로' 전국여행 - 낭만 가득한 열차 타고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 (사진 위에서부터) 경남 하동 화개장터,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경남 진주의 진주성 야경. 대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방학을 맞으면서 저마다 고민에 빠진다. 과거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은 후회감이 든다 그런 후회감속 자신을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할수 있도록 백팩과 카메라, 수첩을 들고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준다.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코레일의 내일로 티켓을 끊고, 직접 여행에 나섰다. △화개장터에서 영호남은 가까웠다. 전주에서 출발해 전라선 철길을 따라 순천까지 가면 하루에 딱 무궁화호 4대만 운행하는 경전선 철도를 탈 수 있다. 그 경전선 철도를 타고 하동역에 도착했다. 처음 가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그 유명한 화개장터. 관광지이자 오래된 상권인 만큼 역이나 시가지가 가까우리라 생각했지만, 화개장터는 하동 시내에서 섬진강을 따라 1시간가량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섬진강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보이는 바깥 풍경. 강가에서 재첩을 잡는 사람들, 조그만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는 아이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 도착한 화개장터. 구례, 광양, 하동, 산청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산나물과 약초 종류를 들고나와서 흥정하는 모습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이곳은 경상도와 전라도가 어우러지는 교차로 같았다. 40년째 직접 농사를 지어 화개장터에서 장사를 하는 이관엽 할머니(74)는 화개에서는 모두가 이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구례사람 하동사람 그런 거 크게 상관 안 해 그냥 강 건너에 사는 사람이지. 화개(花開)는 말 그대로 꽃이 핀다는 의미. 꽃은 계절을 따라갈 뿐 섬진강의 동쪽과 서쪽을 가리지는 않는다. 여기는 사람들이 꽃을 닮아가는 듯했다. △호사스러운 음식과 오랜 역사, 진주 하동에서 열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진주. 오랜 역사(歷史)와 한옥으로 지어놓은 역사(驛舍), 그리고 호사스러운 음식에 이르기까지 진주는 전주와 닮은 점이 많은 도시였다. 금강산도 식후경, 무더운 날씨에 맞춰 진주냉면으로 늦은 점심부터 해결한다. 이북에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있다면 이남에는 진주냉면이 있다고 그랬던가, 독특한 육수의 향과 육전을 올려 풍부한 고명이 입맛을 돋운다. 일반적으로 냉면 한 그릇으로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진주냉면은 아니었다. 냉면치고는 조금 비싼 가격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한 끼 식사로는 부족함이 없다. 에어컨 바람과 시원한 육수, 두툼한 육전까지 있는 잠깐의 피서가 영원하길 바랐지만 결국 다시 땡볕으로 나왔다. 그리고 향한 곳은 진주성. 진주성 내에는 서원과 박물관 등의 볼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논개와 관련된 곳이었다. 촉석루와 논개 사당을 둘러보고 성벽에 붙은 작은 문을 통하면 강가로 나가는 길이 있고 강가에는 넓적한 바위 하나가 떠 있다. 이 바위가 바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그 바위다. 혹여 관람객이 남강에 빠질까 싶어 지금은 바위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지만 그래도 바위에 새겨진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진주성을 나와서는 근처 시장에 있는 한 식당에 들렀다. 진주비빔밥으로 유명한 이 식당은 겉보기에는 허름하지만 3대를 이어가고 있는 곳으로 진주를 찾는 사람들은 빼먹지 않고 들리는 곳이다. 이윤자(66) 사장은 4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꽤 늦은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향이 진한 선짓국과 싱싱한 육회가 올라간 비빔밥을 내어주는 이 사장의 친절에 비빔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육회와 참기름 향이 진하게 느껴지면서 담백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전주비빔밥과 달리 고추장 맛은 거의 나지 않아 고추장 맛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밋밋할 수도 있는 맛이었다. △변해가는 부산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 부산에는 옛 모습이 많이 남지 않았다. 자갈치 시장은 신식 어시장으로 바뀌었고 국제시장은 리모델링이 거의 다 끝났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은 곳은 책방골목과 차이나타운 정도였다. 부산역에 도착해 차이나타운부터 들렸다. 차이나타운을 개척한 화교들이 한국문화에 동화되면서 예전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직 화교학교와 음식점이 그대로 남았다. 러시아인을 비롯해 다른 외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언제까지 차이나타운이라는 명칭이 유지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쪽에 걸려있는 청천백일기가 아직은 이곳이 차이나타운임을 알리는 듯했다. 휴가 기간에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향했다. 책방골목은 큰 변화가 없었다. 헌책을 취급하지 않는 곳도 늘었고 카페식으로 바뀐 서점도 생겼지만, 책 사러 온 사람들과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로 부대끼는 거리는 예와 같았다. 부대끼는 사람이 많음에도 골목 구석까지 흘러넘치는 헌책 냄새도 여전했다.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이광수의 단편집에서부터 고작 몇 개월 전에 발간된 소설책에 이르기까지 책은 여전히 각자의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역시 헌책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새 책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 그리고 다른 이의 흔적이 헌책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책방골목에서 20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양수성 사장(46)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그 편안함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기를 바랄 뿐이다. △가을을 기대하며 행복한 대전 대전에 거주 중인 지인의 반응은 대전여행을 만류하는 쪽에 가까웠다. 볼만한 게 없는데 왜 오냐는 반응. 그러다가 최근에 한화 이글스의 성적이 좋다는 말과 함께 이글스파크 야구장을 추천받았다. 막상 대전역에 도착하니 이글스파크는 꽤 멀었다. 다행히도 대중교통이 잘 짜인 편이어서 찾아가기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글스파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반. 경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았지만, 한화 팬들은 벌써 몰려들고 있었다. 캐치볼을 하는 초등학생 아이들부터 유니폼을 구매해 한쪽에서 표시하는 대학생까지 모두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표정에는 생기가 있었다. 가을야구가 가시권에 다가오면서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현재 한화이글스의 순위는 3위. 수년간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부처라는 별명까지 가지게 된 한화 팬들에게 올해의 가을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다. 20년 이상 한화 팬이었어요. 올해는 정규리그를 2위로 마치고 한국시리즈까지 간다고 생각합니다. 호잉 선수가 잘해줄 거라고 믿어요 여름휴가를 이글스파크로 왔다는 한화 팬 주윤 씨(42)의 말이 대다수 한화 팬의 희망을 대변하는 듯했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서 대전은 벌써 가을을 꿈꾸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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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7 18:49

[최진석의 노장적 생각] 쓸모있음과 쓸모없음 - '쓸모있음' 넘어 '쓸모없음' 향하는 도전의 길 개척해야

자리에 관해서 하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구직자와 기업 간에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점도 있어 보인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기업들은 뽑을 인재가 없다고 한다. 기업들이 뽑을 인재가 없다고 할 때, 그 내용은 대개 대학에서 가르친 것들이 현장에서 바로 적용하는 데에 별로 쓸모가 없어서 기업에서는 새로 다 가르쳐야 한다는 하소연이다. 기업은 항상 쓸모 있는 것들을 요구해왔다. 특히 요즘처럼 모든 면에서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때라면, 쓸모 있는 것에 관한 내용 자체가 달라져서 그 요구는 더 급할 수 있다. 세상의 변화는 쓸모 있는 것이라는 말을 채워주는 내용의 변화다. 세상이 달라지면 쓸모 있는 것도 달라진다. 이런 쓸모 있는 것에서 저런 쓸모 있는 것으로의 이동이 변화의 실제 모습이다. 여기서는 쓸모 있던 것이 저기서는 쓸모가 없거나 줄어든다. 똑같이 저기서 쓸모 있던 것들이 여기서는 쓸모가 확 줄거나 아예 없다. 쓸모없던 것이 쓸모 있어지거나 쓸모 있던 것이 쓸모없어지는 것을 먼저 알아차려 대응하는 것도 선경지명(先見之明)이다. 이런 선견지명을 효율적으로 잘 발휘한 사람들이 항상 부나 권력을 차지했다. 학술이나 예술이나 문화적인 성공도 이런 선견지명과 매우 가깝다. 모 있는 것이 쓸모 있는 것으로 자리 잡기 전에는 쓸모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어쩔 때는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의 조상이 되기도 한다. 『장자』라는 책의 「소요유」편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한다. ‘나한테 큰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죽나무라 합니다. 줄기는 하도 울퉁불퉁해서 먹줄을 치지 못하고, 가지는 하도 꼬여서 자를 대지 못합니다.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선생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다 크지만 쓸모가 없어 사람들이 외면하니 처지가 이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선생은 너구리나 살쾡이를 아시죠. 몸을 낮게 웅크려 닭이나 쥐를 노리면서 높고 낮은 데를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뛰다가 덫이나 그물에 걸려 죽지요. 그런데, 큰 검은 소는 하늘에 드리워진 구름처럼 커서 큰일은 해도 쥐는 잡지 못합니다. 선생은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모가 없는 것을 걱정하시는데,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심어 놓고 그 곁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한가롭게 쉬면서, 그 그늘 아래에 누워 유유자적 해보지 않소. 도끼에 찍히는 일도 누가 해를 끼칠 일도 없을 것이오. 쓸모없다고 해서 어찌 괴로워한단 말이오.’” 얼핏 읽으면 쓸모없게 사는 것이 차라리 해를 입지도 않고 오래 갈 뿐만 아니라 여유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로 보이기도 하다. 그냥 편하게 오래 사는 것이 최고라는 낭만적 태도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실제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장자가 말할 때, 유유자적하고 장수를 누린다고 하는 것은 최고 단계의 성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쓸모없음을 비판할 때 ‘먹줄을 치지 못하고’ ‘자를 갖다 대지 못한다.’고 표현한다. 먹줄은 나무를 재단하기 위해 선을 긋는 데 사용하고, 자는 길이를 정확하게 재는 데에 사용한다. 재단하고 길이를 재기 위해서는 이 먹줄과 자를 피할 수 없다.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기준이다. 만들어지는 어떤 것도 이 먹줄과 자의 지배력 아래서 생산된다. 먹줄과 자는 지배적인 능력을 가지고 군림한다. 제는 세상이 먹줄과 자처럼 정해진 기준을 따르는 것만으로는 과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현재를 만들고 또 거기서 미래를 지향하는 영속적인 발전을 하지 못할 수 있다. 기준은 그대로지만 세상은 변한다. 변화는 항상 먹줄과 자의 범위를 벗어난다. 먹줄이나 자가 변화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변화에 따라 오히려 먹줄과 자의 쓰임새가 달라져야 한다. 변화에 맞춰 먹줄이나 자의 쓰임새가 습관적 사용법을 벗어나야 한다면, 아직 먹줄이나 자의 접근로가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히 쓸모없는 것이라는 평가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적으로 아직 펼쳐지지 않은 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시선의 높이나 역할의 대소에 따라 수준이 아직 안 되는 것이 자신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또 필요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음의 얘기가 바로 그러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장자』의 「인간세」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장석이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이라는 곳에 당도하여 토지신을 모시는 상수리나무의 사당을 보았다. 얼마나 큰지 수천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이며, 굵기는 백 아름이나 되고,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이며, 여든 자쯤 되는 데서 가지가 나와 있었다. 그 가지도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것이 수십 개나 되었다. 그 나무 둘레에 구경꾼이 장터처럼 모여 있으나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제자가 나무를 지켜보다가 장석에게 달려와 물었다. ‘저는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니게 된 뒤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버리시니 어찌 된 일입니까?’ 장석이 대답했다. ‘그런 소리 말게. 그것은 쓸모없는 나무야.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금방 썩으며, 기물을 만들면 곧 망가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기지. 그러니 저건 재목이 못되는 나무야. 아무 쓸모없으니까. 저처럼 오래 살 수 있었지.’ 장석이 집에 돌아왔는데, 상수리나무 사당의 나무가 꿈에 나타났다. ‘너는 나를 무엇에다 비교하려느냐. 너는 나를 쓸모 있는 나무에 비교하려는 거냐. 대체 아가위, 배, 귤, 유자 따위 열매들은 익으면 잡아 뜯기고, 뜯기면 가지가 부러진다.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잡아당겨 찢긴다. 이는 그 초목이 맛있는 열매를 맺기 때문에 제 삶이 괴롭혀 지는 것이다. 그래서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죽게 된다. 즉 스스로 세속의 타격을 받은 자이다. 세상의 사물이란 다 이와 같다. 또한 나는 쓸모 있는 데가 없기를 오랫동안 바라왔다. 그동안 여러 차례 죽을 뻔 했으나 오늘 자네가 쓸모없다고 했기 때문에 비로소 뜻을 이룬 셈이다. 쓸모없음이 내 큰 쓸모가 되었다. 가령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토록 커질 수 있었겠는가.’ 모없음으로 큰 쓸모를 완성하는 기묘한 방식을 말해준다. 배, 귤, 유자 등은 특정한 맛을 잘 내서 매우 쓸모 있는 것으로 환영받는 과일들이다. 이런 특정한 능력, 즉 기능에 갇힌 단계에서 보면 상수리나무는 그야말로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상수리나무는 천명(天命)을 실현한다. 즉 우주의 질서를 구현하거나, 시대의 소명을 구현하는 정도다. 너구리나 살쾡이는 닭이나 쥐를 잡는 기능으로 매우 의기양양 하지만, 소는 하늘을 드리우는 구름같이 거대한 일을 한다. 너구리나 살쾡이의 시각에서 보면, 큰 소는 그저 덩치만 클 뿐 아무 쓸모가 없다. 닭이나 쥐를 잡아서 배불리 먹기만 하면 충분한데, 하늘에 구름을 드리우는 큰 일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보는 것이다. 기능에 빠져 사는 것에 익숙해지면, 기능을 넘어서 있으면서 기능을 지배하는 더 높은 단계의 비전이나 꿈을 그냥 장식처럼 다루거나 심지어는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성적을 특히 중시하는 교육에서는 성적만 좋으면 된다. 운동을 안 해도 되고, 심부름을 안 해도 되고,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 해줘도 되고, 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학업 내용과 관련 없는 독서는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성적이라는 기능적 성취만 중요하지 상위의 지배력 있는 가치는 쓸모없을 뿐이다. 성적을 높여서 대학에 가기만 하면 되지, 꿈같은 것을 꿔서는 오히려 안 된다. 그러나 꿈이 없이 닦은 기능적 학업은 한계가 분명하다. 쓸모 있음에 갇혀서 쓸모없음을 지향하는 동력을 상실하면 새로운 도전이나 높은 상승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꿈을 가진 사람이 꿈 없이 기능만 행사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성취를 이루는 것을 많이 봐왔다. 사실 지적 성장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아직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향한 부단한 도전에 다름 아니다. 쓸모 있음에 갇혀 있으니 이미 있는 것을 다루는 ‘대답’만 할 줄 알고, 쓸모없는 것으로 넘어가려는 ‘질문’이 없는 것이다. 한민국은 따라 하기라는 기능적 활동을 잘해서 발전하였다. 쓸모 있는 것을 잘 수행해 온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목표를 세워 추구할 줄은 잘 알지만, 목적을 추구하는 훈련은 되어 있지 않다. 방송국은 시청률만 추구하다가 방송의 본질을 세우지 못하고, 고등학교는 대입 진학률만을 따지다가 교육의 본질을 놓치며, 대학은 취업률에 갇혀서 대학으로서의 본질을 포기한다. 방송국에는 시청률 너머에 방송국으로서의 목적이 있을 것이고, 고등학교에는 진학률 너머에 고등학교로서의 목적이 있으며, 대학에는 취업률 이상의 목적이 있을 것임에도 지금은 모두 시청률이나 진학률이나 취업률과 같은 기능적인 목표에만 빠져있다. 작은 쓸모에 빠져 쓸모없게 보이는 큰 쓸모를 놓친 형국이다. 우리 모두가 지금 이렇지 않은가? 우리는 쓸모 있는 것을 이루는 것으로는 가장 잘한 민족이다. 이제 쓸모없음을 향하는 도전의 길이 남았다. 목표 수행 능력은 아주 높다. 이제 목적을 세워보는 것이다. 쓸모없음으로 쓸모 있음에게 길을 내줘야 한다. 기업도 쓸모 있는 인재만을 구하는 일을 넘어서서 쓸모없음을 향할 줄 알아야 한다. 깨달은 자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사이에서 왕복 운동 한다. 건명원 원장·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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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6 20:07

[카드뉴스] 한바탕 전주, 보기보다 더 더운데?

#표지. 한바탕 전주, 보기보다 더 더운데? #1. 여름철 폭염이 일상이 돼버린 도시, 전주. #2. 올여름, 전주는 그야말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을 기세로 활활 타올랐습니다. #3. 폭염,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바로 열섬 때문!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건물들이 늘어선 도심은 녹지보다 더울 수밖에 없죠. #4. 그래서 시민들이 직접 열섬 실태 조사에 나섰습니다. 7월 28일과 8월 4일,전주 곳곳의 기온을 재고 기록했죠. #5. 기상청의 공식 최고기온이 34.7℃였던 지난 7월 28일, 시민들의 측정 결과에 따르면 전주 도심 곳곳이 37℃가 넘는 기온을 보였습니다. - 전주월드컵경기장 주차장: 37.7℃ - 송천동 주공아파트 에어컨 실외기 옆: 45.8℃ - 인후3동 평생학습센터: 39.2℃ - 중화산1동 주민센터: 37.6℃ - 옥토주차장: 37.7℃ #6. 반대로 숲이 우거진 곳은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 건지산 편백숲: 33.6℃ - 완산공원 삼나무숲: 31℃ - 평화도서관: 34.4℃ #7. 공원이긴 해도 숲 정도 규모가 아니면 그다지 기온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드러났네요. - 서신동 도내기샘공원: 35.3℃ - 삼천동 거마공원: 36.5℃ - 건지산 편백숲: 33.6℃ - 완산공원 삼나무숲: 31℃ - 평화도서관: 34.4℃ #8. 단순히 나무를 심는 수준의 접근이 아니라 울창한 숲을 조성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정책위원장) #9. 빌딩숲 대신 나무숲을! 그러면 폭염 도시 전주의 악명도 곧 다시 옛말이 되지 않을까요? #10. (숲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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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6 14:39

취임 한달 제11대 전북도의회 전반기 송성환 의장 "도민 삶 살피는 현장 의정으로 신뢰 회복하겠다"

▲ 송성환 전북도의회 의장이 의장 집무실에서 11대 도의회 의정활동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형민기자 지난달 출범한 제11대 전북도의회는 도민을 위해 일하는 역동적인 의회를 표방하고 있다. 39명의 의원 가운데 초선이 28명에 달하는 만큼 분위기도 새롭다. 논란이 많았던 10대 의회 과오를 씻어내고 도민에게 신뢰받는 의회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이다. 도의회는 개원과 함께 추가경정예산안을 심사한 보름간의 임시회 일정을 마치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11대 도의회 전반기를 이끌어갈 송성환 의장에게 의정활동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도의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크고 작은 행사장에서 도민을 만나고 의원들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 전북경제나 도의회 위상 문제 등 어려운 시기에 의장을 맡아 부담이 큽니다. 그만큼 도민들이 도정과 교육행정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의회 방향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열심히 의견을 듣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도민들과 의원들은 의장님께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합니까. 도민들은 실생황에 도움이 되는 의정활동을 해달라고 합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관계자들도 많이 뵀는데, 최저임금 인상 여파를 완화할 수 있는 정책마련을 당부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정책자금 지원 등을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제약에 걸려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효성을 높여달라는 것이지요. 이번 도의회는 초선의원들이 많은데요, 의정활동 지원에 대한 요구가 높습니다. 의정연구회도 꾸렸는데요, 도움이 될 자료와 강사 등을 적극 지원하려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11대 도의회는 초선의원이 많습니다. 또, 사실상 민주당 의원 일색이어서 우려의 시각이 있습니다. 집행부와의 관계 어떻게 설정하실 계획입니까. 39명 가운데 28명이 초선입니다. 하지만 기초의회 경험이 있는 초선의원이 상당수여서 초선과 재선의원들이 조화롭고 효율있게 의정활동을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일당독주에 대한 우려의 시각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회의 역할과 기능은 집행부 견제와 감시입니다. 정당이 같다거나 이념이 같다고 도의원 책무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도의회가 제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단체장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원들께서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도의회 원구성을 마치자마자 추가경정예산을 다루셨습니다. 군산 사태로 예년보다 빨라진 추경이었는데요. 어떻게 심사하셨습니까. 이번 추경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위기 극복과 청년 일자리 창출사업을 중심으로 편성됐습니다. 따라서 도의회에서도 관련 예산이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쓰일 수 있도록 원안대로 의결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시급성이 떨어지는 에산은 삭감했고, 대신 군산지역 노인일자리창출 사업비는 추가 편성토록 하는 등 전북경제와 도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역현안이 많습니다. 특히 현대중공업에 이어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지역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의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한데요.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면서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할 수 있는 신산업 발굴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바이오라든지 스마트팜, 농생명산업과 전기상용차 자율주행 산업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도의회에서도 시대에 맞는 미래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방안을 위해 의회차원의 정책연구와 입법과제를 마련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위기에 빠진 전북경제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할 수 있도록 집행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물론 지원할 일이 있으면 적극 돕겠습니다. -11대 도의회가 내건 슬로건이 도민을 위해 일하는 역동적인 의회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정활동 계획하십니까. 전북도정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도민이 지지한 문재인 정부를 뒀지만 경제상황은 위기입니다. 도민들의 고민이 어느 때보다 깊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의회가 앞장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도의회를 향한 도민들의 기대는 적지 않습니다. 민선 7기 도정 현안에 대한 감시견제는 물론 산적한 현안들에 보다 실질적이고 혁신적인 대안제시와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젊은 의장으로서 전북의 변화,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도의회가 오류는 과감히 청산하고 정책제안과 현장 의정 활동을 통해서 도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의정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봅니다. -취임하시면서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의회를 운영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도의회는 5개 상임위원회가 구성돼 있습니다. 특히 각 상임위원회별로 석박사급 정책연구원이 의원들의 정책보좌를 맡고 있고, 조례 등 입법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상임위원회별 전담 고문변호사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들 정책팀과 법률고문을 적극 활용해서 집행부에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의정활동이 펼쳐질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민생관련 조례 제개정시 법률고문의 자문을 얻어 도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지는 입법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의장 취임시 의회 인사권 확보와 정책보좌관제 도입 등을 언급하셨습니다. 왜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현재 의회사무처에 근무하는 직원은 평균 2~3년 일하다 집행부로 복귀합니다. 때문에 직원들이 집행부를 의식하지 않고 의정활동을 보좌하기란 어렵습니다. 이처럼 불합리한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회사무처 인사권 독립이 필요합니다. 물론 인사권 독립시 승진이나 전보 등 여러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회사무처 모든 직원이 아닌 정책보좌 인력만이라도 확대, 채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집행부 견제감시가 더욱 충실해 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책보좌관제는 의정활동의 효율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갈수록 행정업무는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예산 역시 도와 도교육청을 합하면 10조원 대에 달합니다. 도의원 혼자서 입법과 예산 심의, 행정사무 감사 등을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서라도 지방의회에 정책지원 전문 인력을 둘 수 있어야 합니다. -10대 도의회에서는 문제가 된 소규모 주민숙원사업비(재량사업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이 예산은 도와 시군 등 자치단체의 관심권밖에 있는 소규모 지역의 숙원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역주민과의 접촉이 많고 다양한 민원을 받고 있는 의원들이 편성권을 가진 집행부에 건의해서 편성한 예산인 만큼 취지는 옳다고 봅니다. 다만 집행과정입니다. 과거 문제가 됐던 것은 일부 의원들이 집행에 관여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주민들은 의원을 상대로 건의하고, 의원은 집행부에 건의해서 예산에 반영토록 하는 것입니다. 대신 집행은 행정이 원칙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집행과정에서의 시스템이나 제도를 개선해서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송성환 의장은 - 시의원으로 지방정치 입문 의정 마무리할때마다 책 내 송성환 의장은 재선의 40대 젊은 의장이 가능했던 데는 운이 따랐다고 했다. 상임위원장을 경험한 재선의원이 드물었던 덕이다. 지방선거를 마치자마자 의회 운영 청사진을 마련해 의원들을 찾았다. 열정과 추진력을 앞세워 내실있는 의회 운영과 개선을 내세웠는데, 마음을 얻었다. 도민에게 신뢰받는 의회, 일하는 의회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0년 제9대 전주시의원이 되면서 지방정치에 입문했다. 시의원 선거를 힘들게 치렀는데, 당시 순수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잡았던 주민들의 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의정을 마무리할때마다 책을 내겠다는 다짐도 지키고 있다. 시의회활동을 정리해 『달팽이가 사랑한 온고을』을, 지난해에는 『송성환이 꿈꾸는 상생』을 펴냈다. 중학생 때부터 키워온 정치인의 꿈은 앞으로도 다듬어갈 계획이다. 전주신흥고등학교와 우석대 법학과, 전북대행정대학원 지방자치학과를 졸업했다. 9대 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장, 10대 전북도의회 행정자치위원장 등을 지냈다. 전주7선거구(삼천123동)를 지역구로 두고 활동하고 있다.

  • 기획
  • 은수정
  • 2018.08.05 19:43

북한 위안부 할머니 증언 영화 ‘분노’ 제작하는 감독 안해룡 "할머니들 고통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치유됐을 것"

지난해 우연히 표지 디자인이 특별한 책 한권을 만났다. 책 제목은 <기억하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이란 부제가 붙었다. 그리고 함께 새겨진 20명의 이름. 노청자 이귀분 김영실 리상옥 심미자 김대일 강순애 황금주 곽금녀 문옥주 리계월 강덕경 리복녀 김학순 심달연 리경생 유선옥 정옥순 김영숙 박영심. 자세히 보니 그 이름 밑에 작게 생몰연대가 쓰여 있었다. 모두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저자는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 1991년 10월, 지금은 고인이 된 김학순 할머니와 처음 만난 이후 남북한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취재해왔던 그는 2014년 20명 남북한 위안부 할머니 20명의 생생한 증언을 정리한 사진기록집을 펴냈다. 그리고 3년 후 이 책은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 앞에 놓였다.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록해온 안해룡 감독(57)과 번역자인 이은씨의 공동 작업 결실이었다. 한국어판을 기획하고 번역한 안해룡 감독을 만났다. 책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거니와 이즈음 제작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분노>의 진행도 궁금했다. 지난 7월 중순. 서울 도심 거리의 아스팔트가 끓어오르는 한낮, 흑석골 중앙대 앞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하얀색 종이에 검정 글자가 새겨진 표지의 이 책을 먼저 꺼내놓았다. 4년 전 이토 다카시가 선물이라며 건네준 사진기록집을 받았을 때 반가움과 부끄러움이 교차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전쟁 책임을 호도하고 있는 일본 정치가들에 대한 분노이자 저항의 기록이었어요. 우리가 하지 못했다면 소개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는 명제는 항상 분명하지만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식민지 피해의 역사를 우리가 과연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그는 기록자로서 저널리스트로서 식민지 피해의 체험을 얼마나 성실하고 진지하게 귀담아 듣고 기록해왔는가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이 이 책이라고 말했다. 20여 년 동안 일본군 피해자의 증언은 물론, 식민지 지배하에서 권력을 갖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던 가난한 민중들의 피해의 역사를 추적해온 그의 역사인식은 남달랐다. 부끄러움과 반성으로 늘 자신의 작업을 뒤돌아보는 것. 쉬이 지치지 않고 늘 치열한 정신으로 기록해나가는 작업의 힘이 거기 있었다. -예년에 없던 폭염입니다. 작업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즈음 작업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병간호로 작업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에요. 내년 발표할 다큐멘터리 영화 <분노> 작업이 밀려 마음이 바쁩니다. -<분노>의 펀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실적은 어떻습니까. 이 영화의 경우는 단순히 펀딩에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일종의 조합 같은 형태로 공동제작자를 찾고 있습니다. 영화제작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지요. -내용은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록이겠지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다큐나 사진으로 기록해온 대부분이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인데 <분노>는 그중에서도 북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에요. 작년 말에 내놓은 책 <기억하겠습니다>가 바탕입니다.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일본인 포토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의 기록이 영화의 축을 이룹니다. -작년 가을쯤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7에서도 소개되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과거 일본의 만행을 보여주는 작품인데도 일본 내 배급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고 하던데 진전되고 있습니까. 잘 진행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영화를 제대로 잘 만드는 것이 제게는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제작 중인 <분노>의 바탕이 된 사진기록집 <기억하겠습니다>는 모두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은 책이던데요. 대부분이 1920년대에 태어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온 분들이지요. 그동안 남한의 할머니들은 여러 민간단체가 주도해 상당부분 알려지고 증언도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쪽은 전혀 다릅니다. 북한 자체가 폐쇄된 사회여서 개인적인 증언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인데다 민간단체의 활동도 활발하지 않으니 그분들의 소리는 묻혀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아온 이토 다카시의 작업은 정말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가해자 나라의 사진가가 해냈으니 부끄럽기도 하고요.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인터뷰 대상인 된 14명 북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 중심입니다. 모두가 이토 다카시의 취재로 얻은 기록입니다. 아마도 할머니들은 이 작업으로 큰 위안을 받았을 겁니다. 그동안 그들의 소리에 누가 귀기울여주었겠어요. 할머니들의 고통을 누군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치유가 어느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북한 할머니들의 증언이 새로운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죠. 50-60년 동안 말 못했던 내용들이지만 새로운 사실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들의 소리를 드러내고 들어준다는 것, 고통을 이제라도 함께 나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북한의 할머니들을 이제라도 우리 속으로 들여온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분노> 작업을 서두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고 북미회담이 진행되고.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 여러 가지 과제가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식민지 역사의 피해에 대한 공동 인식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국사회도 그렇지만 같은 피해를 안고 있는 공간으로서 북한을 알릴 필요가 있어요. 사실 프로젝트는 2년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자료도 어느 정도 가져온 터여서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이 고민이지요. 25년 동안 취재해온 덕분에 자료는 충분합니다. 귀한 자료들이 많아요. -언제까지 예정되어 있나요. 올해 9월까지는 제작을 마치려고 합니다. 완성이 되어도 마무리해야 하는 과정이 또 있으니까요. 내년 전주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웃음) -<분노>가 지금까지의 작업 연상에서 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분노>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가 집합된 이슈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식민지 경험에 있어서의 피해, 한국 분단 상황에 대한 관련된 부분들, 또 한편으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남북 교류 문제까지. 그 모든 것들이 영화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그런 점에서 지금껏 해온 그 어느 작품보다도 한반도 문제가 확장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 위안부 피해자들의 교류라는 표현이 특별히 다가옵니다. 피해자들의 교류는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것 뿐 아니라 연대하고 공유하는 힘이야말로 가치 있는 일이거든요. -그런 힘을 직접 경험해보셨습니까. 94년에 일본에서 전후 보상에 대한 국제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북한에서 위안부 피해자 두 명이 참석하고 남쪽에서도 참석했습니다. 북한의 김영실 할머니가 피해를 증언한 뒤 남한의 김학순 할머니가 단상에 올라가셨어요. 그때 나도 같은 위안소에 있었다고 증언하시거든요. 그 순간, 우리가 마주하게 된 역사적 진실의 증언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 현장을 기록한 사진이 있습니다. 남북의 피해자가 가해자인 일본이라는 가해국에서 남북분단의 일종의 상징들이 만나는 사진. 두 분 할머니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만나는 그 순간의 장면은 식민지의 피해, 남북분단의 상처를 모두 다 드러내는 과정이죠. -북한 할머니들의 증언은 지금껏 공개된 적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위안부 운동이 남한의 할머니 중심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도 결과적으로는 우리 할머니들에서 북한의 할머니들은 빠져 있었던거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아 우리가 중요한 부분을 잊고 있었구나하는 자각과 그런 자각들이 모여 분단체제를 극복하거나 편협된 인식을 부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북한 위안부 피해자를 이야기 하면서 식민지와 분단을 이야기 하고, 한반도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그런 과정이 이어지게 되는 그런 그림을 상상합니다. -<분노>에 이어지는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분노>는 영화 작업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영화에 담아지는 부분은 90분 분량 밖에 안 되거든요. 북한 할머니 열 네 분의 인터뷰와 증언은 매우 소중한 자료예요. 그래서 자료집으로 내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확장한다면 아시아의 사진가들이 찍은 아시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증언집도 만들고 싶고요. -위안부 피해자 작업 말고도 일본의 전쟁과 관련된 흔적을 지속적으로 추적해오셨는데 한국현대사를 기록하는 일의 고단함(?)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강제동원이나 일본에 있는 조선인과 관련된 유적과 유골을 계속 찍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지속적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귀한 정보나 네트워크가 있어서 누구보다도 내게 주어진 과제라는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고단함보다는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큽니다. -다큐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머무를 수 있는 영역이지 않습니까. 혹시 주제면에서 가벼워지고 싶을 때는 없습니까. 가벼운 것을 다루고 싶었다면 진즉 전환했을 겁니다.(웃음) 그런 갈등은 없고요. 오히려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을 진중하게 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진중함과 깊이가 없는 형태의 생산은 정말 피하고 싶거든요. 안 감독은 20여 년 전, 도쿄의 한 사진갤러리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강제 동원되어야 했던 조선인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만났다. 일본어를 못해 전시장 안에 있던 일본인 작가와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나온 그는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이후 만난 이토 다카시의 작업은 그를 더 새롭게 일으켜 세웠다. 왜 일본인이 조선인 문제에 천착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한국현대사에서 잊혀지거나 소외되었던 역사의 현장을 추적해온 그의 오랜 작업은 고단해보이지만 그 결실은 스스로 빛나는 보물과 같은 기록으로 이어져있다. 그 노정에서 그가 놓지 않는 화두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고단한 작업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안해룡 감독은 - 강제동원 등 식민지 시대의 흔적 기록세월호 '다이빙 벨' 연출 안해룡 감독은 정읍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은 전주에서 보냈지만 서울로 이사와 성장했다. 서강대 사학과에 입학했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학생운동으로 대부분 대학시절을 보냈다. 졸업한 직후 출판사를 거쳐 무역회사와 광고기획사에서 일했지만 취미로 시작한 사진이 그를 자유인(?)으로 만들었다. 민주화운동의 바람에 거셌던 80년대부터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시위현장에 나갔던 그는 90년대, 본격적으로 독재의 억압에 대항하며 분노를 분출하던 시위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록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다. 좀 더 본격적으로 일하고 싶어 외신기자직을 몇 번 두드렸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다 일본의 프리랜서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조선인의 강제동원, 조선인 원폭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으로부터 프로그램 제작 의뢰를 받아 기획과 취재 촬영 편집까지 혼자 해내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낯설었던 VJ는 이후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제작이 활발해지면서 독자적인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조선인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 조선족, 입양아 등 식민지시대 역사와 소외된 계층의 삶을 주목해온 그의 작업은 시간을 더하면서 더욱 확장되고 깊어졌다. 미디어 매체에 대한 새로운 형식을 탐색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져온 그는 2002년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육성 증언과 영상을 새롭게 구성한 침묵의 외침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영상과 소리를 분리해 다시 평면으로 구성해낸 이 작업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매체에 대한 고정된 관념과 관습에 도전한 실험적인 기법으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일본에 생존해있는 유일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의 10년 동안의 법적투쟁기를 다큐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비롯 <우리 함께-나고야조선초급학교 60주년 기념 기록> <자이니치의 달은 어디에 뜨는가> <빼앗긴 날들의 기억> 등 일본 속 조선인들의 삶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눈 밖에 나다> <북녘 일상의 풍경>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분단의 경계를 허무는 두 자이니치의 망향가> <공습> <가부기초> <기억하겠습니다> 등의 사진집과 책을 짓거나 번역해 출간했다.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을 둘러싸고 정치적 파장을 불러온 세월호 구조 현장의 기록 <다이빙 벨>을 공동으로 연출하기도 한 그는 2001년에는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로, 2002년에는 콘텐츠 디렉터 겸 홍보팀장을 맡아 전주국제영화제와도 인연을 맺었다. 아시아 프레스 인터내셔널 서울 사무소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일본의 전쟁이 남긴 상흔의 역사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분노>를 올해 안에 제작해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8.08.02 20:08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38. 남원빙고와 진안풍혈 - 자연이 내린 선물…선조들도 한여름에 겨울 즐겼다

덥다. 폭염이 극성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가 이어지자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무더위를 식혀주는 얼음덩어리와 얼음물을 제공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더위 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아 선조들도 찬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장소를 찾았고, 나아가 겨울철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얼음 창고인 빙고(氷庫)를 만들었다. 지금이야 얼음을 언제든지 얻을 수 있고 에어컨과 선풍기로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천혜의 자연조건이 아니라면 많은 공이 필요한 게 얼음이었다. 이와 관련 있는 남다른 장소로 우리 지역에는 남원의 빙고와 진안의 풍혈이 있다. 여름에 얼음을 얻는 것에 대한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전의 일로 중국에는 진시황이 빙고를 사용했다는 기록과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관련 기록과 유적이 남아 있다. 신라 지증왕 6년(505년), 겨울 11월 처음으로 담당관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게 하였다(冬十一月 始命所司藏氷).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도 유리왕이 장빙고(藏氷庫)를 지었다.고 하고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는 얼음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관아인 빙고전(氷庫典)을 두었다고 했다. 또한 백제는 세종의 나성리, 화성의 상남, 공주의 정지산, 부여의 구드래, 익산의 금마 등의 유적에서 빙고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는 장빙(藏氷, 얼음을 떠서 빙고에 넣는)하고 개빙(開氷)할 때 사한제(司寒祭) 혹은 기한제라는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으며 얼음을 나누어주는 반빙(頒氷)제도가 있었다. 또한 충렬왕(1297년) 때는 모든 백성도 얼음을 저장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장빙법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1396년(태조 5년)에 이르러서는 한강변에 동빙고(東氷庫, 현 서울 옥수동과 동빙고동)와 서빙고(西氷庫, 현 서울 서빙고동)를 두어 예조에서 직접 관장하였고 궁궐 내에는 내빙고(內氷庫)를 두어 얼음을 저장했다. 4치 이상(약 12~14㎝)의 두께로 채빙한 동빙고의 얼음으로 종묘에 제향을 올렸고, 동빙고보다 규모가 큰 서빙고의 얼음은 왕실에서 쓰고 차등배급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는 얼음을 깔아놓은 쟁반에 포도를 담아 시원하게 먹으며 연산군이 남긴 시구 얼음 채운 파랑 알이 달고 시원해/옛 그대로인 성심에 절로 기쁘네/몹시 취한 주독만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병든 위 상한 간도 고쳐 주겠네가 기록되어 있다. <효종실록>에는 더운철에는 얼음과 제철 과일을 때때로 들여보내 주어 병나는 것을 면하게 하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어 왕이 무더위 병나는 것을 염려해 얼음을 하사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왕의 종친, 문무 당상관, 70세 이상의 퇴직 관료에게 얼음을 나눠 주고, 빈민 구제치료를 맡던 관청인 활인서(活人署)에 있는 환자들, 의금부전옥서의 죄수들에게도 얼음을 내준다라는 규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름철 얼음은 왕실과 상류층의 사치품으로도 사용되었지만 애민과 구제에 적극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의 빙고도 채빙이 수월한 하천변에 만들어 운영했는데, 남원의 요천변 남원빙고에는 특별한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왜적들의 악랄한 만행에 관해 요천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노스님이 혼잣말하며 사람들 곁을 지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사람이 노스님에게 달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묻자, 스님은 요천변 바위에 굴을 파고 겨울철 꽁꽁 언 요천의 얼음과 남쪽 지방에서 나는 백급(白芨)이라는 약초를 구해다 가루를 내어 굴속에 넣어두면, 내년 여름에 요긴하게 쓰일 데가 있을 것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스님의 말에 따라 요천변 산기슭에 동굴을 파서 겨울철 요천에서 채취한 얼음을 가져다 동굴에 채우고 백급가루를 함께 넣어 두었다. 이듬해 8월, 정유재란(1597년) 때 왜적들이 쳐들어와 남원성이 함락되며 많은 이들이 죽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부상자들을 치료할 약이 없어 애가 타던 때에 동굴에 넣어둔 얼음과 백급가루로 피 흘리는 부상자들을 치료했다는 이야기이다. 동굴에 얼음을 보관하였던 일대를 빙고치라 불렀으며 지금도 요천 인근 산책로에는 빙고로 쓰였던 동굴 입구를 살펴볼 수 있다. 빙고뿐 아니라 얼음골로 유명한 곳은 밀양의 얼음골, 의성의 빙혈, 울릉도의 나리분지 내 에어컨굴과 진안군의 풍혈냉천 등이 있다. 그중 진안 양화마을(전북 진안군 성수면)에는 한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동굴인 풍혈(風穴)과 차가운 석간수(石澗水)가 나오는 냉천(冷泉)이 있다. 풍혈냉천이 소재한 마을 이름이 양화(陽化)인 것은 겨울에 눈이 내렸을 때 이 마을에 내린 눈이 가장 일찍 녹아 생긴 이름이고 이는 인근에 온천이 나오는 것과 관련 있는 듯하다. 대두산 기슭에 있는 풍혈은 여름엔 냉풍이, 겨울에는 온풍이 바위틈 구멍에서 나오며 바람의 길인 굴을 통해 구멍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니 지질학적으로 가치 있는 곳이다. 냉천은 섭씨 4도의 찬물이 솟아나 얼음물처럼 차고, 이 물은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약을 달이던 물이라 전해지며 피부병과 위장병 등에 특효가 있는 약수로 알려져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냉장고 없던 시절부터 음식을 저장하고 더위 나기 장소로 사용하며 천연냉장고, 천연에어컨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의 차가운 성질을 이용해 잠종(蠶種, 누에씨) 보관소로도 이용했다. 1911년 8월 23일 자 신민일보에는 진안에서 풍혈이 발견되어 잠종을 저장하기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안군에 새 풍혈 : 원래 누에씨는 시원한 곳에 두어야 명년까지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누구든지 아는 바이나, 근일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재화잠, 삼화잠등은 온도 4도 이하가 아니면 2~3개월도 보존하기 어려우므로 잠종저장소를 장려하는 나라들은 재산을 들여서 인공으로 제작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 잠종저장소를 대구에서 한 곳 찾고 최근 진안군에서 한 곳을 발견하였다 하니, 우리나라는 여러 방면으로 보배스러운 근원이 많이 있는 것을 가히 알겠다. 현재 진안은 풍혈에 보관된 잠종을 받아 잠업을 이어가는 농가도 사라졌고, 풍혈은 원불교 종단 소유의 사유지로 여름철 한시적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된 상태이다. 또한 남원의 빙고는 승월대와 연결하여 달빙고라는 이름으로 칠월칠석에 보관된 요천의 얼음을 나눠 먹고 더위를 식혔다라는 이야기의 안내판이 걸려있고 노승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설로만 남아 있다. 1896년에 폐지된 동빙고와 서빙고는 본모습이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팥빙수 가게의 상호로도 남아있고, 18세기 초 만들어진 빙고 중 경주, 안동, 창녕, 영산, 청도, 달성 그리고 북한의 해주 등 7곳에 설치한 석빙고가 남아 있는데 남한 내의 6곳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연이 내린 선물인 진안의 풍혈은 지질학적 연구와 더불어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여 지역의 귀한 자산이 되도록 함께 힘을 모으고, 남원의 빙고 또한 지역민의 구제와 더위 나기에 지혜를 모은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그리고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 한여름에 얼음을 나누던 선조의 마음과 애민의 지혜를 따라 더불어 건강하게 지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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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2 20:07

재생공간의 가치 - 세월 간직한 낡은 공간 '문화 옷' 입고 관광이 되다

20여년을 유럽 배낭여행 전문 인솔자로 활동하다 보니 꽤 많은 시간을 유럽여행으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의 패턴이나 유행도 시간에 따라 변해 가는데 초창기에는 대표 관광지 위주로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섭렵해 가는 도장 깨기 스타일의 여행을 주로 했다. 경험이 반복되고 시야가 넓어질수록 더 많은 곳을 두루두루 보길 원한다. 사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유럽 배낭여행객들은 이런 스타일의 여행에 익숙해 있었다. 그 후 여러 매체와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가 온 이후에는 맛집 투어나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작은 것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는 여행자들이 증가했다. 필자도 투어마다 관심사를 정해 그곳만 둘러보는 투어의 형태로 변하게 되었는데, 가령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는 클림트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랄지 커피 소비가 많은 북유럽에서는 유명 커피숍 투어를 하고 영국에서는 축구장 탐방 등 모든 것을 다 보는 것보다는 한두 곳에 집중하는 투어가 만족도가 훨씬 높다. 최근의 관심사는 공간의 본 모습을 살려 새롭게 재구성해서 멋진 공간으로 변신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인데 최근 인상 깊었던 곳은 조지아 트빌리시의 파브리카 트빌리시(Fabrika Tbilisi)라는 장소다. 원래 재봉공장이던 건물 두 동을 게스트하우스와 공방, 패션숍, 식당가와 펍 및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는데 트빌리시 최고의 힙스터들이 모여드는 젊은 공간이자 꾸준하고 다양한 문화 공연으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이색적인 게스트하우스로 관광객까지 흡수한 그야말로 조지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의 조지아라는 나라에서 여기만 컬러가 입혀진 듯 반짝반짝 빛나던 이곳이 많이도 부러웠다. 하지만 한국도 다양한 형태로 재생 건축물들이 늘어나면서 관련된 프로젝트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적산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는 목포는 귀촌한 청년들이 괜찮아 마을이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삶에 지친 청년들을 목포로 불러 모은 뒤 6주 간의 합숙과 교육,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실패해도 괜찮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버려진 유휴시설들에 새 숨을 불어넣어주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의 사업으로 처음 시작하는 이 프로젝트는 2회에 걸쳐 30명씩 총 60명을 입주시킬 예정이다.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앞으로 변신할 목포의 모습이 기대된다. 서울 문래동에는 유명한 철공소 거리가 있다. 1970년대 활발하던 철강산업을 뒤로하고 쇠퇴기에 접어들자 슬럼화되었던 이곳은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예술거리를 형성하였다. 이색카페와 레스토랑들도 하나씩 늘어 지금은 문래동 예술 창작촌으로 불리고 있다. 음침하던 동네는 이제 주말이면 관광객을 모으는 재미난 동네가 되었다. 전주 팔복동에도 카세트테이프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팔복예술공장이 있다. 한때 아시아 전역으로 수출까지 하던 카세트테이프 공장은 CD와 MP3의 개발로 인하여 수요가 줄자 사업을 정리한 후 버려졌다. 25년동안 고요하던 공장은 2016년 예술로 채워지며 전국의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는 명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각지에 산재해 있는 농협창고의 공간 재구성이 눈에 띈다. 1961년부터 종합농협은 농업창고업법에 의해 창고사업을 시작했다. 영농자재 등을 성수기이전에 미리 비축하였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기도 하고 생산한 농산물을 비수기에 저장하였다가 적기에 배출하는 등의 역할을 했던 창고는 1970년대 통일벼의 보급으로 정부양곡보관량이 늘자 덩달아 늘어나서 전국에 1만개 이상이 건설되었다. 2000년대 들어 여러 이유로 감소하던 창고들은 이후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을 시작했다. 순천의 양곡창고는 2017년 청년창업 공간 및 복합문화공간인 청춘창고로 재탄생 되었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3차에 걸친 심층 면접 후 입점자를 선정하였고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스스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2~3년의 사업 후 독립해 나갈 수 있도록 꾸준한 관리와 교육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유독 카페가 많은 담양은 서플라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인테리어를 하던 사장이 자재보관용으로 찾은 공간을 카페로 리모델링한 특이한 경우다. 농협창고는 아니지만 개인양곡창고를 개조한 담빛 예술창고도 미술관과 카페로 운영되며 담양의 커피로드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꽤 많은 양곡창고가 남아 있는 순창은 그 중 하나를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군민의 미술문화 향유와 관광객들을 위하여 1978년에 건립됐던 양곡저장창고는 옥천골미술관이 됐다. 지역작가와 일반인들의 작품을 순환 전시함으로써 예술의 벽을 낮추고 친근하게 대중에 다가서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보다 먼저 동김제에는 창고 두 동을 로컬푸드 종합시설로 개업했다. 하나는 직매장과 카페가 들어서고 다른 하나는 레스토랑과 제빵공간으로 재생되었다. 주민 스스로 자신의 삶터를 가꾼다는 개념으로 시작한 이곳은 시간이 갈수록 필요한 시설들을 늘려 점차 발전하고 있다. 가장 최근 개조된 창고를 찾다 군산의 미곡창고를 알게됐다. 한걸음에 달려간 카페는 평일임에도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바빴다. 한쪽은 갤러리로 입구에는 커피로스팅실과 베이커리로 꾸며놓은 공간은 양곡창고 특유의 개방감을 십분 활용하여 100평 공간을 세분화시켰다. 커피로서도 최정상에 오른 장동헌 대표는 문화와 함께 가는 공간을 꿈꾼다. 다양한 문화공연과 강연 등을 소개하고 지역민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개업 초기부터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여 이젠 군산 여행의 한 꼭지를 카페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렇듯 다양하게 변신한 공간들은 새 생명을 얻었다. 지자체에서 개발한 창고는 문화예술과 지역민을 위한 시설로, 민간이 개발한 곳은 관광객에게도 사랑 받는 공간으로 지역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도시재생과 재개발 붐을 타고 오래 된 것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이러한 재생건축은 스토리텔링을 만든다. 여행객들이 감탄해 마지않는 유럽의 많은 건물들은 재생되고 있다. 500년된 맥주집이 흔한 체코는 오래 됨이 곧 관광명소다. 절과 궁궐 이외에 오래 됨이 남아 있지 않은 대한민국에 지금부터 만들어 가는 공간들이 오래 됨을 넘어 관광명소가 되길 빌어본다. ▲ 장재영 세계여행가순창 방랑싸롱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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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1 19:57

[참여&소통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지역사회 하나 된 통합교육 - 아이들 문제, 학교 틀 벗어나 사회 전체 문제로 인식해야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것은 지역사회의 관심과 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인적자원은 물론 물적 자원의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아이들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인 만큼 어느 한 분야, 한 기관에서만 다뤄져야 할 사안은 아니다. 이는 더 이상 교육기관만이 교육을 전담할 수는 없다는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 놓여있다. △지자체 교육분야 직접 투자 증가 전북교육자치시민연대가 도내 지방자치단체 교육예산지원현황을 분석한 결과, 자치단체 전체예산 대비 교육예산 비율은 2014년 1.24%에서 해마다 줄어들어 2017년에는 1.05%로 나타났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자치단체별 학생 1인당 교육예산 집행액을 비교해 본 결과, 지역별로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집행액뿐만 아니라 집행방법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학교에 직접 지원하는 금액과 교육지원청에 보내는 비법정지원금, 지자체가 교육에 직접 지원하는 금액의 차이가 그것이다. 학교에 직접 지원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자치단체가 있는가 하면, 80% 이상을 교육지원청에 비법정지원금으로 보내는 곳도 있었고, 자치단체가 직접 교육 지원 방식으로 집중하는 곳도 있었다. 물론 어느 지역은 교육지원청에 주는 비법정지원금 외에 학교 직접 지원이나 자치단체가 직접 교육에 투자하는 금액이 제로인 곳도 있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전북의 자치단체 전체예산 대비 교육예산 비율이 매해 감소추세임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의 4년 동안, 지자체가 교육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의 지원금은 매해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완주군의 경우 학교에 직접 지원하는 금액과 해당 지원청으로 주는 비법정지원금에 비해 자치단체가 교육에 직접 투자하는 비율이 2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완주군 교육통합지원센터 2014년부터 전국 유일의 중간전담 조직인 교육통합지원센터(이하 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는 완주군은 인적물적 자원 발굴과 교육네트워크사업, 교육연구사업 등으로 교육에 투자하면서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통합모델은 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양성된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이 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학교의 정규교과 또는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 다양한 프로젝트 학습을 적용함으로써 학교와 학생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매개자는 사전에 학생들과 면담을 통해 학생들의 특성을 파악한 후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한다.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육적 틀 안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며 논의를 발전시켜 가고, 학생들의 성장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한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충돌이나 갈등 역시 반복심화되는 논의 속에서 함께 해결한다. 매개자로 활동하는 학부모 한은주 씨는 아이 셋을 둔 엄마로 원래 학교 교육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 돌봄 강사 활동도 해봤지만, 매개자 활동은 정말 많이 달랐다며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에서 오는 만족감은 물론이고 교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로 나와서도 아이들과 가깝게 연결돼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삶에 대한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교육통합모델 프로그램을 경험한 한 교사는 교사로서 수업개선을 비롯한 학급운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센터 전문가들과 매개자 분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매개자 교육이 나를 포함한 교사들이 함께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교육통합으로 긍정적 변화 이끌어 교육통합지원센터 관계자는 교육통합 모델 실천사례를 분석한 연구 보고서에서 무기력한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뚜렷해졌고, 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실행까지의 전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의사소통이 반복되다 보니 서로 차이를 좁혀가며 듣게 되었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서로의 관계 속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매개자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아이들에 대한 문제를 공동으로 소통하면서 대처하고 해결하여 결국 아이들의 변화까지 이끌어내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센터 소속 양윤신 팀장은 초기에는 학교에 프로그램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현재는 지역사회 안에서 입소문이 나 다양한 학교들이 참여하고 있다며 다섯 명의 직원이 밤낮 없이 일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뿐 아니라 학교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실천사례를 통해 학교가 당면한 제반 교육문제를 우리 교육통합모델과 함께 공동 대응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교육통합지원센터 역할과 과제 과거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지원방식은 정책의 연속성이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어 지원이 불투명했으며, 단순 지원방식만으로는 학교가 당면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웠다. 현재 전국에서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교육공동체 활동이 진행되거나 논의되고 있고, 자치단체들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완주군의 교육통합지원센터와 같이 자치단체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과 함께 지역사회의 교육자원 활용은 지역 특성을 반영한 전국 자치단체들의 다양한 교육공동체의 활발한 논의 과정 속에 참조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우리사회는 학교교육의 문제를 학교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학교에 많은 역할을 요구했으며 그 모습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는 사실에 학교만이 아이들의 교육기관이라는 사고의 고착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문제를 학교 안에서만 해결하려는 틀에서 이제는 벗어나자.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자. 지역연계를 통한 다양한 교육지원으로 지역 네크워크를 형성해 학교의 어려움을 학교와 지역이 공동으로 대처하고, 지역민 모두가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 참여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내자. 공교육 내의 문제를 지역사회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더 많이 진행되고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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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1 19:58

취임 한달 맞은 최용석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장 "콘텐츠 산업 발전 위해 '전북 어벤져스' 구성 계획"

▲ 취임 한달을 맞은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최용석 원장이 구상 중인 사업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조현욱 기자 지난달 28일 취임한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최용석 원장은 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기업가로, 정책가로 20년간 활동한 실무형 정책전문가이다. 취임식 없이 조용히 업무를 시작한 그는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부지런히 전북을 알아가는 중이다. 최용석 원장으로부터 취임 이후 소회와 향후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운영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지역적 연고는 없지만, 전북과는 인연을 느낍니다. 2000년대 초부터 중앙 정책전문가로 활동할 때 경상권보다 전라권 정책 자문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역 콘텐츠산업과 콘텐츠산업진흥원의 애로사항,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소망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앙 정책이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정책자문가로서 사명감을 갖고 실무 단위인 지역에서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 경영인으로 직접 회사도 운영하고, 교수로 학문도 교육하셨습니다. 공직자로 전향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은 글로벌 선진국보다 시장, 자본, 기술, 인력 등에 있어 종합적인 열세에 있습니다. 이러한 열세를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 진출해 산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인, 교수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10%는 정부의 몫입니다. 공직자로 예측책임 경영을 통한 콘텐츠산업의 성공신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 현장에서 느낀 아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장이 된 지금 바꾸고 싶은 정책이 있습니까? 콘텐츠산업은 연속성이 필요하나 우리나라는 정부별 단위 사업화로 연속성이 부재합니다. 특히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실행 주체들로 인해 정책이 왜곡변형되면서 실질적인 성과가 도출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순간에도 세계 시장은 빠르게 발전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파괴적인 혁신과 빠른 실행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전북 콘텐츠산업 발전이란 공동의 목표를 가진 전북 어벤져스를 구성할 계획입니다. 정관학산연글로벌 단체죠. - 전북 콘텐츠산업의 현주소를 짚어주신다면. 전북은 산업전시장이나 교육시설, 체험시설 등 콘텐츠산업 발전을 위한 기반시설과 환경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문화원형에 기반한 지속적인 활동이 있었으나 미래 시장에 맞는 콘텐츠산업으로 발전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또 전문인력과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미비합니다. 이와 관련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은 전북대, 원광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현장 중심형 전문인력을 양성할 계획입니다. - 그동안 여러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콘텐츠산업의 부진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제대로 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0억(1개)으로 3년 할 사업을, 1억(10개)으로 1년 안에 끝냅니다. 재원 분배의 문제로 모래알 사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런데도 전북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천년 문화 유산유물이란 원석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이젠 이 원석을 가공할 단계별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콘텐츠 기업들이 절대 못 만들어 망하지 않습니다. 팔릴 수 없는 걸 만들어서, 팔지 못해서 망하는 거죠. - 그렇다면 기존 사업 외, 구상 중인 사업이 있으신가요? 전북의 전통 문양, 시서화를 소재로 디지털 아트 신사업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를 고려한 스마트 관광플랫폼을 비롯해 문화상품 글로벌 유통플랫폼, 문화 융복합 테마파크 구축도 구상 단계입니다. - 1990년대부터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에 매진하셨죠. 20년 전과 후 가상현실 콘텐츠는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1990년대 후반 가상현실은 이론과 개념만 있었습니다. SF영화로만 설명이 가능했죠. 지금은 기술 구현 단계입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돈을 받을 만큼 기술이나 서비스가 완벽하진 않습니다. 이 부분이 과제죠. -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백번 이상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이 보이던가요? 미국 LA 디즈니랜드, 플로리다 올랜도 월트 디즈니랜드 등 전 세계 디즈니랜드는 다 가봤습니다. 처음에는 영상만 보였습니다. 3~5년에는 기술이, 5~7년에는 운영 방법이, 7~8년에는 디자인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10년째 마음을 두드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날 벤치에 누워있는데 백인 아이가 머리를 툭 치고 가면서 환하게 웃더군요. 그걸 보고 이 모든 게 사람을 위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와 와서 행복한 아이의 마음, 아이에게 좋은 걸 보여주고픈 부모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 끝으로 재임 기간 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전북의 문화 유산유물을 디지털 상품화, 서비스화해 세계 시장 진출을 통한 성공신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김연아라는 슈퍼스타가 나오기까지 코치진 등 종합적인 지원, 트리플악셀이라는 기술, 박쥐라는 콘텐츠가 필요했습니다. 일명 김연아 프로젝트를 통해 전북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키워낼 계획입니다. ●최용석 원장은 형식보다 실리 추구하는 콘텐츠산업 분야 전문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용석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장은 강남대 경영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광운대 정보통신대학원 디지털멀티미디어 석사, 광운대 정보디스플레이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주)빅아이 대표로 1990년대부터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에 매진했다. 미래창조과학부 디지털콘텐츠 CP, 미래성장동력 실감형 콘텐츠 추진단장 등 중앙 정책전문가로 활동했다. 서경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전북지역에 연고가 없는 최 원장은 민선 7기 송하진 도정이 밝힌 학연지연혈연 없는 인사의 대표적 예이다. 그 역시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최 원장은 자신을 형식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실사구시파라고 소개한다. 지난달 28일 임명받았지만, 사흘 전인 24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식도 없이 업무에 들어갔다. 업무를 보기 시작하면서 오전 6시 출근해 오후 11시 퇴근한다.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이 2년 6개월 된 신생 조직인만큼 세심하고 주도면밀하게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20대 후반부터 첨단기술로 전 세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면서 꿈을 키웠다. 몰래 사진 찍다가 걸리기도 수차례. 2013년 직원에게 적발돼 험한 욕을 들은 뒤, 유니버셜 스튜디오 슈렉 4D관 벤치에서 울던 날을 잊지 못한다. 후배들은 같은 설움을 겪지 않게 만들겠다는 게 그의 최종 목표다.

  • 기획
  • 문민주
  • 2018.07.29 19:02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흙으로 만든 최고 명품, 고려 상감청자 만들어낸 전북 - 왕·귀족들 사용한 명품…자기 본고장 송나라에 역수출

△인간이 만든 최초 발명품, 토기 인간이 만든 첫 발명품 토기는 1만3000여년 전 기온이 따뜻해져 현재와 같은 해안선과 육지의 모습이 만들어졌을 때 새롭게 발명된 도구이다. 인간이 진흙을 불로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이를 활용해 토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토기는 왜 만들었을까? 교과서적인 답은 저장이다. 안타깝게도 이 답은 중근동 토기의 유래이지 동북아 토기의 유래는 아니다. 최근 고고학적 성과에 따르면 동북아지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토기를 만든 지역으로, 불로 음식을 끓이고 삶아 먹을 수 있는 새로운 도구인 토기가 탄생한 곳이다. 즉, 동아시아 지역의 토기는 도토리를 물에 담가 떫은 맛이나 독성을 없애거나 조개류 익혀먹기, 물고기 익히기와 국물, 기름추출 등을 위한 조리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또 음식 저장도구로도 사용되었다. 이 같이 토기는 인간에게 불을 가열해 음식을 조리하거나 곡식이나 가루 등의 식재료 저장 도구로 사용되었다. △토기, 도기, 자기는 어떻게 다를까 토기를 처음 만들 때는 야외에서 장작불에 구웠다. 이같이 노천에서 토기를 구우면 붉은 색이나 갈색계통의 토기가 만들어진다. 이는 흙속의 철분이 산소와 결합에 나타난 현상이다. 굽는 온도는 600~800℃로 토기는 성긴 조직을 갖게 되어 깨지기 쉽고 물을 담으면 물이 배어나오게 된다. 이 같은 토기는 이후 청동기시대까지 큰 변화 없이 제작되게 된다. 이후 철기가 만들어지면서 1000℃ 이상의 온도를 올릴 수 있게 되었고 폐쇄된 가마에서 토기를 굽게 되면서 토기와는 다른 회색빛을 띠고 표면이 훨씬 치밀해져 물이 새나가지 않는 도기가 나타나게 되었다. 도기의 색이 황갈색, 회흑색이 되는 것은 밀폐된 가마에서 고온으로 장시간 굽는 과정에서 산소를 모두 태우고 환원화된 상태에서 재가 섞이고 흙속의 광물인 장석 등이 녹아 조직이 치밀해져 나타난 현상이다. 삼국시대인 백제의 토기들이 사실은 이 같은 고온에서 구원낸 도기류들로 회색의 치밀한 도기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삼국시기에 중국으로부터 전혀 새로운 자기가 수입되었다. 자기란 1300~1500℃ 온도에서 구운 것으로 순도 높은 백색 고령토로 모양을 만들어 가마에서 초벌구이를 한 다음 거기에 장석이 섞인 식물성 잿물 등의 유약을 입혀 다시 가마에서 1250℃ 이상으로 두 번째로 구우면 유리질 표면을 갖는 새로운 자기가 탄생한다. 이 기술은 중국만이 보유한 기술로 수백년 동안 다른 나라에는 전해지지 않은 특급 비밀이었다. 이 자기 기술은 중국에서 개발된 이후 세계에서 두번째로 10세기경 전라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푸른 하늘색(비색)의 청자, 전라도에서 만들어지다 고려 청자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자기문화의 시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즉, 시작시기와 기술개발의 주체 등에 대해 장보고세력에 의한 월주요기술이전, 후백제 견훤에 의한 기술수용설 또는 고려초기 중국의 오월국 붕괴 이후 기술자 이주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중국 자기 기술이 현재의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수용되어 그 거점이 대표적으로 초기 순청자의 경우 전남 강진과 후기 상감청자의 경우 전북 부안으로 나뉘어 발전하였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최근 전북의 진안 도통리에서 초기 청자가마가 호남 최대규모로 확인되어 주목된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초기 벽돌가마는 호남 최초의 벽돌가마이자 초기 청자가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한 기의 가마가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 변화된 사례는 우리나라 청자가마에서 확인된 최초로 청자가마의 변천과정과 구조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가마 주변에 있는 폐기장에서는 한국식 해무리굽완, 잔, 잔받침, 주전자 등 다양한 초기 청자와 다량의 벽돌 등 요도구들이 출토되었다. 이는 후백제 시기와도 연결되어 초기 청자수용에 대한 후백제 기원설로 파악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최고의 고려 상감청자, 부안에서 제작 우리나라 도자기 제작기술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 뛰어난 것은 청자의 마지막 단계인 고려 상감청자이다. 상감청자는 바탕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을 메워 넣는 방법으로 나전칠기나 금속공예의 입사기법에서 이전부터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이를 고려시대에 도자기에 적용한 것이다. 특히, 고려 상감청자가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전라북도 부안의 유천리, 진서리이다. 이곳의 도요지는 1963년에 사적 69호, 70호로 지정되었다. 유천리 일대가 고려청자의 대표적 산지였던 것은 좋은 흙과 완성품을 운반하기 좋은 바다길, 그리고 풍부한 연료인 소나무가 많은 천혜의 지역이었다. 부안은 고려청자의 2대 생산지로서 12세기 중엽에서 말엽까지의 최전성기에는 80여개의 가마가 있었을 만큼 대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되기 시작한 이 곳 가마터는 우수한 파편을 지닌 요지의 퇴적층은 거의 파괴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나온 수백 점의 고려자기는 대부분 일본으로 빼돌려졌다. 유천 가마터에 대한 발굴 조사는 1967년 국립박물관 조사반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때 보물 제346호로 지정받은 청자상감진사모란문매병 등 국보, 보물급 문화재 가치를 지닌 청자가 수십 점 발굴되었다. 부안의 가마터에 대한 연구는 지난 이화여대 및 원광대 박물관에 의해 조사 및 가마 유구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부안 유천 도요지에서 생산된 고려 상감청자들은 여타의 도요지에서 생산된 것들 보다 명품들로서 왕이나 귀족들이 사용하거나 대외 선물용으로 사용됐던 최상품이었고 특히, 자기의 본고장 송나라 등 중국에 역수출된 최상품이었다. 이같이 전라북도는 우리나라의 흙그릇이 토기에서 도기로 그리고 자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최정점인 청자와 상감청자를 만들어낸 지역이다. 이 같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가장 앞서고 또 이를 발전시켜 종주국을 능가하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낸 역량을 새로운 지역의 미래세대에게 전해 혁신과 창조역량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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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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