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10 06:19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취임 100일 맞은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지엠 폐쇄 정부지원 아쉬워, 국책사업 배정 등 필요”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7일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대책과 관련, 업종과 무관하게 현재의 군산공장을 확실하게 살릴 수 있는 기업 유치를 꼽았다. 그러면서 정부지원은 아쉬움이 남는다며 과감한 국책사업 배정 등 획기적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원내대표는 아울러 새만금의 속도감 있는 개발을 위해서는 기업들이 둥지를 틀어야 한다면서 해외는 물론 국내기업들의 새만금지역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로 원내대표 취임 100일을 맞은 김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소회, 지역 현안에 대한 생각 등을 들어봤다. -원내대표 취임 100일 됐다. 지방선거 직후 원내대표가 됐다. 선거 패배의 후유증과 적잖은 우려를 딛고, 제 3당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당내 화합을 이뤄가고 있다고 본다. 지난 100일을 돌아보면 바른미래당이 주도해 국회 특활비 폐지를 이뤄낸 것이 큰 성과다. 거대양당이 차마 내려놓지 못했던 특활비를 과감하게 폐지시키고, 이를 시작으로 정부부처와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특활비 축소폐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더욱 심기일전해 오직 국민, 오직 민생의 원칙만 갖고, 제 3당으로서 굳건하게 자강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전북 경제가 어렵다. 지역특구법 개정에 공을 들였는데, 전북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나. 우리나라는 규제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규제라는 것이 국민 생활의 안전 측면에서 모두 배제할 순 없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일종의 테스트베드를 만들어서 신산업의 성장가능성을 실증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특구법은 이런 측면에서 전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행령 등을 만들고 있는데, 규제완화와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취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문 닫은 군산공장이 한시적으로 일부 재가동 되면서 후속 대책 마련에 혼선이 오고 있다. 현재 지엠 공장에서는 일부 차종의 부품 생산이 이뤄지고 있지만 일시적인 공장가동으로 알고 있다. 지엠이 군산공장을 과거처럼 운영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지엠 공장 활용방안 마련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엠 후속 대책으로 다양한 대안들이 쏟아진다. 이상적인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또 정부지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이미 완성차 생산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부분이 감안된 재활용 방안이 만들어지고, 고용이 이어진다면 가장 좋은 대책이 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도 많다. 어떤 업종을 특정하기보다는 군산공장을 확실하게 살릴 수 건실한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 아울러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고용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기업이 돼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아쉽다.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과감한 국책사업의 배정 등 획기적인 정책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도 문제다. 재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가능하다면 언제쯤으로 전망하나. 세계적으로 조선 산업 회복속도가 더디다. 조선3사는 전년대비 수주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기저효과가 큰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울산 조선소 가동도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라, 군산조선소 재가동은 현재로선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 글로벌 조선 산업의 경기 회복과 별개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박 건조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현대중공업에도 긍정적인 방향이 될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군산 경제 회생을 위해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기적으로는 군산이 산업고용 위기지역으로 지정돼 정부의 각종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사업 집행체계를 꼼꼼하게 점검해 지금의 위기를 넘기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현대중공업 재가동과 군산공장 재활용 방안 마련이 되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새로운 전략산업 육성도 필요하다. 새만금 내부 개발과정에서 군산이 살아나고 전북 경제에 도움이 될 산업들을 유치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속도감 있는 새만금 개발을 천명했지만, 현장에서의 체감은 떨어진다. 기업 유치를 위한 새만금 특별법 개정안을 냈고, 새만금 복합리조트 건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결국 기업이 들어와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만금 입주기업들이 좀 더 저렴하게 용지를 분양받고, 해외투자를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새만금특별법개정안을 발의 했다. 또 국내 투자기업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관련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새만금 복합리조트는 20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주장해왔다. 새만금복합리조트는 분명 속도감 있는 새만금 개발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다시 한 번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제3 교섭단체 원내대표로 활약 중이다. 우리 정치의 다당 체제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그동안 한국정치는 적대적 공생관계의 두 거대정당이 이끌어왔다. 반목과 갈등이 시작되면 중재할 이가 없어 식물국회가 되기 일쑤였다. 이런 거대양당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제 3당인 바른미래당이 있기 때문이다. 현안마다 오직 민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중재하고 협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거대 양당이 야합해 국민 뜻과 다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다당제가 필요하다. -다당 체제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생각은.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을 합치면 65%인데 80%가 넘는 의석을 가져갔다.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 지지율에도 15%를 밑도는 의석만 확보했다. 승자독식 구조의 현행 선거제도는 민심을 크게 왜곡시킨다. 특히 양당제는 더 잘하는 정치가 아닌 덜 못하면 되는 정치로 전락시킨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상대 정당보다 덜 못하기만 해도 표를 받아 의석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개혁특위에서 신속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민심을 의회에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모든 정당은 이해득실을 떠나 국민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한다. -차기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얘기가 많다. 우리당이 제3당으로 협치를 주도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정치구도로는 우리 정치와 국회 발전에 한계가 있다. 새로운 정치지형에 대한 기대, 이념과 지역을 뛰어넘은 민생정당에 대한 국민적 희망이 우회적으로 드러난 것이 이런 정계개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자강이 우선이다. 우리당이 갖가지 정략적 판단에 휘둘리지 않도록, 창당 이념대로 건강하고 정직하게 성장해야 한다. -남북관계 전망과 판문점 선언 비준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반면 김 원내대표는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데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 말씀드렸다. 같은 맥락에서 평양회담 직후, 비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비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지, 당장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논의 시작에 앞서 3가지 조건이 있다. 정확한 비용추계, 국회 비준과 동일한 효력의 북한의 국내법적 절차 진행, 북핵 불능화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등이다. 3가지 전제에 대한 가시적 진전이 이루어졌을 때, 국회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원내대표로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 과제가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바른미래당이 더욱 자강하는 것이고, 올해 안에 선거구제 개편을 이뤄내는 것이다. 협치를 통해 일하는 국회, 기득권을 내던진 민생국회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설 것이다.

  • 기획
  • 은수정
  • 2018.10.07 19:17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전라북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역사와 신화의 땅

△시골출신 이성계, 명궁수로 고려 영웅이 되다. 태조는 어릴때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어느 날엔 화살 한발로 까마귀 5마리를 한 번에 잡은 적이 있었다. - 용비어천가- 동녕부의 추장 고안위가 산성에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이용하여?성의 병사들 얼굴에 70발을 쏴 모두 맞췄다. -태조실록- 고려 말 수도 개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동북면(현재의 함경도) 시골출신 이성계는 스스로 왕이 되어 새로운 왕조 조선을 세웠다. 그는 뛰어난 체력과 무예, 그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과 전술로 왕이 될 수 있었다. 이성계는 1335년 화령부(현 영흥)에서 태어나 무예, 특히 궁술에 뛰어나 태조실록과 용비어천가에서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명궁 소리를 들었다. 특히, 고구려 시조 주몽이 도읍한 천혜의 요새터에 자리한 여진족을 공격할 때 편전으로 이들을 제압한 사건은 당시 여진인에게 경외심을 갖게 한 대표 사례였다. 이 같은 고구려의 명궁 전통을 계승한 이성계는 이후 홍건적의 고려침입시 선봉에서 맞서고 여진추장 나하추, 고려반군의 침입때도 궁술로 적장을 쓰러뜨려 고려의 맹장으로 부상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역사창출의 계기는 전라북도권에서 이뤄졌다. 당시 일본은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로 일부 영주들이 군사를 이끌고 고려나 중국 해안을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특히, 1380년(우왕 6)에는 아지발도(阿只拔都)등이 이끄는 왜구가 함양과 경산, 상주까지 올라와 노략질을 했는데, 이성계가 이들을 운봉에서 맞아 섬멸해 고려의 영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荒山大捷), 신화를 만들다. 1380년 8월 최무선의 화포로 왜구 선박 500여척을 대파한 진포대첩은 역설적으로 왜구를 더욱 잔혹하게 만들었다. 앞서 먼저 육지에 상륙한 왜구의 본진은 배를 잃자 독안에 든 쥐가 발악하듯 더욱 기세를 높여 함양, 남원을 거쳐 운봉 인월역에 주둔하며 장차 고려 수도로 북상하겠다며 기세를 높였다. 고려조정은 이때 여진토벌에서 위용을 떨친 이성계장군을 삼도순찰사로 임명해 운봉을 넘어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대적케 하였다. 이때의 전투에서 이성계의 신화가 창출되기 시작한다. 태조가 남원(南原)에 이르니해가 이미 기울었다적장 가운데 나이가 15, 6세 되는 자가 있었는데,흰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말달려 돌진하면 향하는 곳은 모두 쓰러져 감히 당해낼 자가 없었다. 아군에서 아지발도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했다.아지발도는 갑주, 목가리개, 면갑을 썼으므로 활을 쏠 틈이 없었다. -태조실록- 내가 투구의 꼭지를 쏘아 투구를 벗길 테니 너(이두란)는 바로 쏴라하고는 말을 달려 활을 쏘아 투구를 정통으로 맞히니 투구의 끈이 끊어져 투구가 비스듬히 벗겨졌다. 아기발도는 급히 투구를 바로했다. 태조가 다시 쏘니 또 꼭지에 맞아 드디어 투구가 떨어졌다. 이두란이 쏘아 죽였다. 이에 적의 기세가 꺾였다.드디어 사면이 무너져서 적을 대파하였다.적들이 통곡하는 소리가 1만 마리의 소가 우는 것 같았다.냇물이 다 붉게 물들어 6, 7일 동안 색깔이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마시지 못하고노획한 말은 1천 6백여 필이며, 병장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적이 고려의 군사보다 10배나 많았는데 오직 70여인만이 지리산(智異山)으로 달아났다. -태조실록- 태조실록에 나타난 전황은 구체적 군사수가 명기되지 않았지만 1만에 달하는 왜구를 10분의1에 달하는 이성계군대 1000여명이 물리친 기적적인 대승으로 전해졌다. 이는 사료에 적이 10배나 많았다는 표현과 1만마리 소의 울음 소리같았다는 것이 연결되어 자연 1만여 왜구를 1000명의 이성계군대가 물리친 것으로 확정된 것이다. 10배의 적을 물리친 것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구국의 영웅의 역할에 부응한 표현이었다. 이에 더해 이성계의 신적 능력이 추가되어 신화가 더욱 다채로와 졌다. 앞서 신궁의 역량에 더해 하늘의 신도 감복하여 함께하는 존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즉, 해가 이미 기울은 상황에서 아지발도의 투구를 벗겨 사살한 사건은 신의 도움으로 어두운 밤 달을 끌어올려 아지발도를 활로 맞춰 물리쳤다는 신화로 구성되어 태조의 신격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확정하기 위한 기억장치로 관련지명을 바꿔 역사로 정착시켰다. 즉, 왜구를 물리친 인월의 고려시대 표현은 인월(印月)이었다. 이는 부처의 교화가 세상 곳곳에 비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에서 따온 불교적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후 조선의 기록에서는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 올렸다는 의미인 인월(끌인引+달월月)로 바꾸어 태조의 신화를 역사로 정착시켰다. 또한 불을 이용해 화공으로 은신한 왜구를 물리쳤다고 하여 바람시기(혹은 바람세기)라 불렀던 곳을 인풍(引風)이라 하여 신의 도움으로 달을 띄우고 바람을 일으키는 하늘과 소통하는 능력자 즉, 왕과 같은 존재로 이성계장군이 부각되었다. 이를 보다 입증하기 위한 기억장치로 냇물이 (왜구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기록은 냇가의 너럭바위에 피가 스며 붉게 되었다는 피바위 즉, 혈암(血岩)으로 명명되었다. 후일 이곳을 지나던 다산 정약용은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본래부터 붉은 돌이지 피로 물들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라고 간파하고 있었지만 태조신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한편, 아지발도라는 표현은 우리말 아기를 뜻하는 아지와 몽골어로 영웅을 뜻하는 바투가 합쳐진 말로 아기장수라는 고려인의 표현이었다. 즉, 일본이름이 아니라 몽골어 영향을 받은 고려말의 뛰어난 어린 장수라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아지발도를 처음엔 포용하려한 태조의 마음과 어쩔 수 없이 물리친 사실을 강조하여 태조의 포용력과 부하를 아끼는 모습이 극대화되기도 하였고 이후 선조 때, 고종때 태조고사로서 언급되며 일본에 대한 극일적 상징어로 사용되었다. △전라북도권에 퍼진 태조의 신화, 조선의 발상지로 자리잡다. 한편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은 태조가 천명을 받은 공간으로 확정된다. 태조 이성계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으로 된 자(금척金尺)을 건네 주면서 이 금척으로 장차 삼한 강토를 헤아려 보라.고 한다. 이후 황산의 왜구를 격퇴하고서 개선 도중 이성계는 진안 마이산을 들르게 되는데, 이 산을 본 이성계는 깜짝 놀란다. 산의 풍광이 어릴 적 꿈속의 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았던 바로 그 곳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연유로 마이산은 조선조 창업 때 영산으로 대접받아 태종이 제사지내기도 하였으며 조선창업의 경사와 마이산의 풍광을 노래한 내용이 태조 2년에 제작한 몽금척(夢金尺)악장과 춤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운봉의 황산대첩은 전승이후 하늘의 계시를 들었다는 임실의 상이암(上耳庵) 전설과 장수에서는 기도를 드리다가 하늘을 보니 큰 봉황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는 뜬봉샘 설화 등으로 연결되어 전라북도는 태조신화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전주 오목대에서 승전연에서 태조가 불렀다는 대풍가와 이에 대비되는 고려 충신 정몽주의 충절의 시는 그 실체와 역사인식의 특성을 함께 거토해야할 역사자원이다. 이같이 전라북도 전역에 전하는 태조의 역사와 신화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민중의 역사인식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체계적인 조사와 이를 계승 발전시킬 방안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백제-후백제의 터전에서 고려를 이어 새왕조를 창출한 조선의 발상지 공간으로서 전라북도의 위상과 역사적 의미를 체계화하고 미래 역사의 터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이 도민과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조법종(우석대 역사교육과)

  • 기획
  • 기고
  • 2018.10.04 19:27

[문화 & 공감 2018 시민기자가 뛴다] 시민이 생각하는 연극 “일상 속 문화를 위한 다양한 공간의 필요성 절실”

요즘 현대인은 너무도 쉽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다. 1년 365일 다양한 문화행사, 축제, 전시, 공연 등 그냥 앉아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면 바로 그 곳이 문화예술의 현장이며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화예술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연극인이나 연극을 접하는 관객은 항상 공연에 목말라 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접근 어렵고 시대 뒤처지는 장르라는 인식 시민 주예성 씨는 특정 행사나 특별공연, 동아리 공연 등을 본 경험은 몇 번 있지만 사비를 들여 개인적으로 연극을 찾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을 본 경험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시민 허가람 씨는 저는 연극을 두 번인가 세 번 정도 밖에 보지 않았어요. 영화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연극은 영화보다 좀 덜 친근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바로 눈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영화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실감나서 공감이 되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시민들은 여전히 연극에 대해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장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다양한 장르가 접목되고 첨단기술이 도입되면서 화려하고 신선한 볼거리가 많아지는 요즘, 연극은 시대에 뒤떨어진 장르로 인식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연극은 디지털 미디어가 문화 주도권을 잡는 현 시점에 점점 마이너화가 되고 있는 장르가 아닌가 싶어요. 특히 뮤지컬, 오페라 등 대형 공연매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아 대중 인지도가 더욱 낮다고 생각합니다.(시민 주예성 씨) 허가람 씨는 친근하지 않아서요. 한번 보면 연극의 매력에 빠져서 자주 볼 것 같은데 처음 시작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한번은 유명한 개그맨이 나온다고 해서 골라 봤었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도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 않는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듯이 연극도 그런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특정 공간, 특정 시간에만 볼 수 있어 접근하기 어려운 것도 연극을 관람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꼽혔다. 어쩌다가 좀 흥미가 생기는 광고를 봐도, 특정 지역, 특정 시간대에만 관람이 가능하니 그 작품에 완전 꽂히지 않고서야 선뜻 시간과 돈을 투자하기 망설여진다는 것. 시민 전제홍 씨 역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미디어 매체와는 다르게 정해진 공연장을 일부러 찾아야 공연을 볼 수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현 씨는 매체에 비해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스토리가 한정적인 것 같다며 거기다 홍보의 부족으로 어느 공간에서 어떤 작품이 올려 지는지 알 수 없으니깐 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유동범 씨도 실제 공연장을 찾으면 일반 매체보다 제약이 많은 것 같고 거기다가 주변에서 많이 안 보니깐 선택에 있어서 신뢰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도 부족한 일상 속 문화예술 공간 2018년 4월 기준 전라북도 인구는 184만 명이다. 그리고 민간인이 운영하는 소극장은 약 7개다. 인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그래서 소극장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2018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발표한 전략계획에서 강조된 것이 일상 속 문화다. 특정 공간을 찾아가지 않아도 우리의 주변에서 평범하게 보던 공간이 바로 문화예술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를 반영하듯이 사용하지 않는 목욕탕을 개조해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폐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져 정말 우리의 일상 속 공간에 문화가 같이 존재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가온 클래식 스토리 강은경 대표는 다양한 공연을 만들어도 공간이 부족하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그래서 공간이 중요하다며 지역별로 골고루 복합 문화예술공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무대 시설을 잘 갖춘 전문적인 공간 생성이 아니라 유휴공간을 활용하거나 다양한 용도로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는 것. 또 전주에 편중되지 않고 현재 민간 공연장이 전무하거나 적은 정읍, 고창, 익산 등에 골고루 생기는 것이 핵심이다. 각 지역에 문예회관은 하나씩 있지만 대관료가 비싸고 조명 하나 쓰는 것도 돈이 붙는다. 공연인들, 또 공연을 하고 싶은 시민들이 오르기엔 부담이 큰 장소다. 따라서 공연자도, 지역민도 더 가깝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 생기길 바란다. 동시에 연극인들은 시민이 흥미를 끌 수 있는 공연 형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관객이 친숙하고 재밌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장르 또는 기법을 접목하는 다원 예술, 통합 예술 형식도 수용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18.10.03 19:04

[참여&소통 2018 시민기자가 뛴다] 민주적인 학교문화 정착을 위한 학교자치

지난 8월 전라북도 교육청(이하 교육청)이 학교자치조례안을 입법예고 했다. 교육청의 학교자치조례 제정 추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6년 공포했으나 교육부가 제기한 조례안 무효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에서 대법원은 전북학교자치조례에 대해 상위법령 위반이라며 무효판결을 내렸다. 이에 교육청이 일부 수정하여 다시 학교자치조례안을 마련한 것이다. 학교자치조례안의 1조를 보면 전라북도 학교 교육의 주체들에게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권한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적인 학교 공동체 실현과 건강한 배움과 성장의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과거에 비해 학교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구조적으로 학교장의 권한은 여전히 막강하며, 교장의 성향에 따라 학교의 운영방식은 많이 달라지는 모습 역시 일반적이다. 이런 점에서 학교자치를 법률로 규정해 교육 주체들이 학교 운영을 위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 교육 주체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소통, 배려로 만들어가는 학교자치 임실에 있는 대리초등학교(이하 대리초)는 교육 주체들이 각각의 활동을 통해서 자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리초는 학생 수 급감으로 폐교위기를 맞았었다. 하지만 학생을 중심에 둔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그를 극복하고, 슬로우 스쿨(천천히 기다려주기)이라는 운영방식으로 학교자치를 실현하고 있다.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다모임)는 상호협력과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학교 철학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다모임은 다른 학교의 일반적인 학생회와는 다른 운영방식으로 올해 9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보통 다른 학교의 경우 학생회의 자치활동은 학교나 학부모의 영향력이 미치고 학생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은 것이 현실이지만 대리초의 경우는 순수하게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으로 이뤄진다. 학교는 다모임의 역할에 대해 철저하게 존중하고 학생들의 요구와 필요에 지원과 지지를 하고 있다. 대리초 교사와 학부모는 매년 12월에 1박 2일 교육과정 워크숍을 진행한다. 가족 캠프처럼 진행되는 워크숍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하고 다음 연도를 준비하는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이때 교사와 학부모들은 상호 간 대화의 시간을 가지며, 학부모회에서는 자체 설문 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학교 교육과정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교사회는 학교 행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위해 사안이 생기면 모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조정을 통해 사안을 해결하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러한 학교의 자치활동 활성화를 위해 관리자들은 보다 적극 지원하고 있고, 교육 주체들은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리초 한 교사는 학교자치의 핵심은 학생들이 자발성과 협력을 통해 민주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교사회학부모회학생회가 따로 자치가 아닌 학생을 중심에 둔 협력 가능한 자치활동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교사회와 학부모회는 학생자치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전한다. 결국 학교 자치를 제대로 살리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교육 주체들의 의지와 상호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교육 주체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과 지지 또한 필요하다. △ 교육 주체 간 갈등 상황도 간과해선 안 돼 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도래하면 불협화음으로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종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원 세 명이 올해 9월 1일 자로 전보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은 세종시교육청 유초등 교육공무원 인사 관리원칙 제34조(비정기 전보)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기타 물의 야기 또는 사고로 전보를 필요로하는 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 언론에 의하면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마련한 해당 학교 교직원 회의 규약을 두고 관리자와 교사와의 갈등을 그 사유로 들고 있다. 그 교직원 회의 규약에서는 학교의 모든 의사결정은 교직원 회의에서 결정하며, 그 결과도 역시 지키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규약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가 이 학교에서 교감과 일부 부장교사들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부장교사 직을 맡고 있던 해당 교사들은 부장교사 직무거부를 했으며 여름방학 일주일여를 앞두고 병가를 냈다. 이에 시 교육청은 해당 교사들과 교감에게 전보 발령을 냈다. 교사들은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어려움을 일으키고, 공무원 복무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이며, 교감은 교장 대행 관리자로서 복무지도 감독에 그 소홀함을 적용한 것이다. 위 사례는 하나의 학교 규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교 공동체가 흔들린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부장교사와 교감, 교육청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생각은 어떨지 자못 궁금해진다. 가장 중요한 학생의 입장은 그 누구도 대변한다고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임교사가 많았던 신설학교이고 교장의 공석이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견을 모아가는 민주적인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있어서 합의를 이뤄가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 충분한 논의와 협의 과정 필요 현재 학교현장의 운영과정에서 이전보다 민주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는 하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쉽게 이야기하기는 것 또한 아직은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그러하기에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충분한 논의와 협의 과정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모두가 이해할 만한 근거와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언제나 학생들을 중심에 둔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교 구성원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와 소통,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룰 때 학교자치의 실현은 가까워지며, 또한 이는 학생을 모든 사고의 중심에 두었는지를 검증하는 것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학교자치는 교육자치의 꽃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파종부터 물과 햇빛 등 그 관리에서도 많은 조건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우리는 학교자치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학교자치조례라는 소중한 씨앗이 충분히 그 싹부터 틔우기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전라북도교육청 역시 학교자치조례가 만들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세밀하고 면밀한 접근을 통해 학교자치가 학교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자치가 진심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면, 학교자치조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학교자치가 이뤄지기 위한 선행과정을 전라북도교육청이 먼저 보여줘야 한다.

  • 기획
  • 기고
  • 2018.10.02 19:38

취임 세달 맞은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 "박물관은 미래 상상하는 곳, 권위 벗고 열린 공간 만들겠다"

지난 7월 취임한 천진기(56) 국립전주박물관장은 3개월간 전주에 흠뻑 빠져 지냈다. 천 관장은 전주의 자연경관과 문화역사 현장을 보면서 왜 전통문화도시인가를 제대로 느꼈다며 최근의 3개월이 지난 30년 박물관 생활에서 가장 체험적인 생활을 한 기간이었다고 밝혔다. 체득한 전주의 이미지를 어떻게 국립전주박물관 운영과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천 관장. 취임 3개월을 맞아 그간의 소회와 국립전주박물관 운영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 박물관에 와보니 정원 곳곳에 설치된 해먹이 눈에 띕니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취임한 후 가장 먼저 기획한 사업인데요. 박물관의 운영계획은 보통 한 해 전에 세워집니다. 이미 올해 예산프로그램 등이 짜인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바꾸기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인력예산을 적게 들이면서 변화 효과가 큰 아이디어를 고민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해먹 설치입니다. 박물관이 30년 가까이 가꿔온 정원을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내어 준 이유는 수동적이고 고전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관람객은 이제 보는 것에서 나아가 체험하는 것이 더 와 닿는 시대죠. 고고학역사학 중심 전시의 큰 틀을 변화시키기 어렵지만 박물관 교육문화 행사를 통해 시민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엿보입니다. 관장님이 생각하시는 오늘날 박물관이 지녀야 할 역할과 기능은 무엇입니까.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물관은 미래를 상상하는 곳입니다. 역사적인 관심과 미래의 나침반이 되는 곳이죠. 시민들에게 항상 과거와 현재를 상기하게 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동시에 박물관은 생동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죽은 물건이 들어와서 역사문화의 새로운 생명력으로 탄생하는 문화의 자궁이라고 말하죠. 단순히 유물의 소장전시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체험교육공간 활용을 통해 이웃에 마실가듯이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해요. 근엄하고 폐쇄적인 권위를 벗어 던지고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해먹을 설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죠. - 시민친화적인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계신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으신지요. 내년에는 전북도민과 전주시민에게 박물관을 통째로 드릴 예정입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지역민의 삶과 문화여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자 합니다. 박물관에서 동창회나 친목회, 생일잔치를 한다면 어떨까요. 누구나 무료로 경치가 아름다운 박물관 공간을 독점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있죠. 양반의 도시에서는 여고 동창회도 박물관에서 한다면, 멋지지 않겠습니까. 단, 조건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나 프로그램을 무조건 하나 듣는 겁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모임에 온 김에 전시 설명 30분 듣는 것이 점차 익숙해지고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소나무와 경관이 무척 아름다운 정원도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해먹 설치처럼 사람들이 정원에서 머물 수 있는 생태 어린이 놀이터 조성, 야외 전시 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 올해부터 국립지방박물관 특성화 사업으로 전주는 조선 선비문화를 특성화하게 됐죠.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실 계획입니까. 선비의 개념을 명확히 구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선비는 양반과는 또 다른 존재죠. 인격적학문적도덕적 완성체이자 사회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선비는 어떤 도덕적인 생각을 하고, 어떻게 자신의 철학을 실천으로 옮기는가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도덕과 도리가 있습니다. 선비가 추구했던 정신과 실천세계는 물질 만능주의가 돼버린 현대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특히 전주는 양반풍류의 도시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선비문화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도시의 정체성 측면에서 굉장히 적절합니다. - 이와 관련해 생각하고 계신 프로젝트가 있으십니까. 호영남을 대표하는 두 선비, 월봉서원의 고봉 기대승과 도산서원의 퇴계 이황을 함께 조명해보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원로 대학자였던 퇴계 이황과 26세 아래였던 고봉 기대승은 13년간 1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칠정 논쟁을 펼쳤습니다.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어 학문적인 교류를 맺고 함께 시대를 고민한 것이죠. 많은 유학자와 선비가 있지만 이황과 기대승을 통해 지역세대별 화합을 보여주고, 현시대의 이슈로까지 끌어오고 싶습니다. 오래된 역사주제를 꺼낸다고 해서 과거에서 머무르면 안 되죠. 박물관 역시 현재에 메시지를 던지는 이슈 파이팅이 있어야 합니다. - 박물관의 어린이청소년 교육 기능도 강조하셨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박물관은 상상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행동과 산업으로 성장해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태조 어진 밑에서 뛰놀고 잠을 자고 그림도 그리면서 미래의 지도자는 어떠해야 할까 생각하는 아이가 막연히 대통령이 장래 희망인 아이와 비교할 때 분명히 미래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내년부터 어린이박물관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예정입니다. 체험전시공간에서 일상생활 공간처럼 꾸미고자 합니다. 외국 어린이 박물관을 가보니 식탁과 싱크대가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그 공간에서 온종일 놀고, 먹고, 낮잠도 자고, 배우며 꿈을 꿉니다. 전시장도 2층에서 1층으로 내리고 선비 문화와 밥상머리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새롭게 꾸릴 예정입니다.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말고 박물관으로 오십시오. 생일잔치도 하고 뛰놀며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자주 오십시오. 한 번에 모든 전시를 보려고 욕심내면 유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의 유물을 봐도 그 안에 숨겨진 일화와 의미, 가치를 끌어낼 때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 임기 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연평균 100만 명의 관람객을 모으는 것입니다. 현재 전주박물관의 연평균 방문객 수는 43만 명입니다. 전국에서 비슷한 도시의 국립박물관 규모와 비교하면 관람객이 적은 편인데요. 전통문화도시의 수준과 규모에 걸맞은 박물관 관람률이 있어야 문화적 자부심과 격을 논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그 날 전주시민, 전북도민과 함께 축하하고 즐기는 축제를 만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박물관이 먼저 변하겠습니다. 시민들이 재밌는 공간, 쉬는 공간, 상상하는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문턱을 낮추고 시민과 동행하겠습니다. 많이들 오셔서 100만 번째 관람객이 돼주십시오. ------------------------------------------- ◇ [천진기 관장은] 국내 동물민속학 권위자, 8년간 민속박물관장 맡아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30년 넘게 민속학을 연구해 온 국내 동물민속학의 권위자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까지 지냈다. 안동대 민속학과와 영남대 대학원 문화인류학 석사중앙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민속학 전공)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1991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 문화재관리국 예능민속연구실 등에서 근무했고, 2005년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을 거쳐 2011년에 제13대 국립민속박물관장에 올랐다.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오기 전까지 8년 연속 국립민속박물관 수장 자리에 있었다. 논문으로 한국 띠동물 상징체계 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는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한국동물민속론>, <중요무형문화재-(2)연극과 놀이>(공저) 등을 냈다. 김보현 기자

  • 기획
  • 김보현
  • 2018.10.01 19:35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2. 미완의 교각과 폐철교의 기억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철길을 잇는 이야기가 화제다. 단절되었던 남북철교가 이어지는 꿈은 그 바람을 타고 시베리아와 중국을 횡단해 유럽까지 내달리고 있다. 이러한 소망은 비단 우리만의 바람만은 아니었다.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맺고 미국의 보스턴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다녀온 조선의 사신들은 기차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했고, 1885년 일본군이 진남포와 평양을 잇는 80㎞의 군용철도인 진평선을 놓은 것이 우리나라의 첫 철도였다. 우리나라의 철도는 일본의 대륙진출 토대를 다지는 군사적 목적과 수탈을 위한 경제적 목적으로 부설되기 시작했다.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경인선이 개통되고 1900년 한강철교의 준공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X자형의 노선망을 구축하면서 일본인들은 조선 땅을 관통하는 철도건설에 힘을 쏟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본격적으로 내정 간섭을 시작한 일본은 조선인들이 1904년 설립한 호남철도주식회사의 부설허가를 취소시키고 1909년 부설권을 탈취한다. 당시 조선이 직접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자금조달 운동이 벌어졌다. 전주에서는 호남철도연구회가 조직되어 관찰사를 위시한 백성들이 중앙의 유지와 뜻을 모아 주식 공모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호남선은 철도 자국 건설 운동에 가장 많은 국민들이 참가한 철도였지만, 일본은 목포, 군산 지방의 일본 거류민들을 동원해 호남철도기성회를 조직하고 전국의 일본거류민단과 합세하여 자국 건설 운동을 좌절시켰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마자 식민지배의 기반을 갖추고 수탈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철도건설을 서두른다. 그 일제의 야욕으로 민족 애환이 된 흔적은 우리 지역 만경강과 섬진강 강물 위에 역사의 증거물로 남아있다. 만경강에 남은 폐철교인 구 만경강철교(萬頃江鐵橋)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화전동과 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를 잇는 교량이다. 그 전신은 1911년 착공하여 1914년에 준공된 것으로 미츠비시(三菱)사가 만경 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경편철도(주로 농업철도로 사용되는 궤도의 간격이 좁은 철도)를 개통하면서 만든 목교(木橋)다. 교량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만경강을 통해 배로 수탈 물자를 운송하였으나, 교량이 완공되면서 삼례역을 통해 철도를 주로 이용하였다. 곡물 수탈의 통로로 경편철도의 활용도가 높아지자 일제는 1927년에 사설철도인 해당 노선을 국유화하고 궤도의 간격을 넓히며 경전북부선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27년 8월 29일 자 『중외일보』에서는 조선에서 한강철교 다음으로 긴 만경강철교의 착공을 소개하고 있다. 철제 빔을 대들보 삼아 건설한 스틸거더(Steelgirder) 형식으로 만경강철교(교폭 1,985m, 길이 475.76m)가 1928년 준공되었다. 이후 경전북부선의 교통량이 늘면서 1978년 서대전과 익산 사이의 구간을 복선으로 재공사했고, 1985년에는 제2의 만경강 철교를 설치하면서 철교가 2개가 되었다. 1999년부터 추진한 호남선 고속철도 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에는 철로가 4개로 늘어났고 고속철도가 도입되었다. 2011년 전라선 복선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근처에 콘크리트 소재의 교량을 새로 건설하여 최초의 만경강 철교는 폐쇄되었다. 관리기관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11년부터 철도 기능이 중단된 만경강 폐철교를 철거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과 완주군이 오랜 세월 동안 일본강점기 수탈의 아픔과 지역의 애환이 담겨 있어 한국 근현대사의 숱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폐철교를 보존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 결과 2013년 12월 20일 전라북도 등록문화재 제579호로 지정받았다. 현재 이곳에는 4량의 퇴역 열차가 놓여있다. 카페 겸 복합문화쉼터로 구성된 열차는 비비정 예술열차라는 이름으로 만경강 8경 중 5경인 비비낙안의 주요 자산인 비비정과 함께 만경강 자전거길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만경강에 문화유산이 된 폐철교가 있다면 섬진강에는 일제가 마저 잇지 못한 미완성 교각이 있다. 순창 풍산과 남원의 대강을 잇고 담양방면으로 곡물을 수송하기 위해 철도 공사를 하다가 일제가 패망하면서 상판을 올리지도 못한 채 남겨진 교각이다. 교각과 이어지는 곳에는 일제강점기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마을 뒷산을 뚫어 만든 철도용 터널인 향가터널(384m)도 있다. 전북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의 향가는 섬진강이 유려하게 굽이쳐 흘러들어와 산자락을 휘감고 나가며 강변에 모래밭이 자연적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곳이다. 향가를 동네에서는 행가 또는 행가리라고 부른다. 향가(香佳)라는 명칭은 섬진강의 물을 향기로운 물(香水)이라 하고, 강 옆의 산인 옥출산(玉出山)을 아름다운 산이라는 의미의 가산(佳山)이라고도 불렀는데 각각 한 글자씩 따다가 향가(香佳)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강 건너 남원 대강(帶江)은 섬진강이 마치 띠처럼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있어, 띠 대(帶)와 물 강(江)자를 써 대강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선조들이 뱃놀이를 즐기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휘돌아 나는 맑은 섬진강변에는 너른 백사장이 있고 기암과 노송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이다. 순창 향가터널을 지나 섬진강에 교각을 놓고 철길을 잇는 철로 공사는 섬진강을 따라 금지 방면으로 조성되다가 일본의 패망 후 교각과 함께 운명을 같이하며 중단되었고 이제는 그 흔적을 짐작할 뿐이다. 해방 이후 그대로 방치되었던 교각은 2013년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주관한 섬진강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교각 위에 233m의 데크를 설치해 향가목교란 이름을 얻고 자전거길로 변신했다. 강 위에 오랜 세월의 더께가 두텁게 낀 교각의 모습도 특별했지만 온전한 다리로 재생된 후 강을 쉽게 건널 수 있고 주변 풍광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섬진강 자전거길 인증소가 다리 옆에 설치되어 있고 다리 중간에 있는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인상적이다. 전망대에 서면 섬진강이 돌아 나는 순창의 향가유원지와 남원의 대강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강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인다. 만경강과 섬진강에 일제의 야욕과 민족의 애환이 담긴 두 곳은 철길 고유의 운명을 다했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강과 어우러져 새로운 명소가 되었다. 미완과 아픔의 기억으로 남아있던 그곳은 당시의 기억에 더해 우리가 만들어가는 추억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을바람이 나들이를 부르는 계절, 비비낙안이 자리한 곳에서 풍요로운 만경강의 정취를 느껴보고, 감성의 강인 섬진강 본류의 중간지점인 향가에서 옛 선조들의 풍류와 그곳에 남겨진 민족의 애환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남북철도의 단절된 구간을 이어갈 바람도 싣고 가을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 기획
  • 기고
  • 2018.09.27 19:14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