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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3개월 김은영 전북도립미술관장 "누구나 쉽게 찾고 즐길 수 있게 미술관 명소화 계획"

지난 9월 전북도립미술관이 제4대 관장을 맞았다. 현장 경험은 물론 미술관 정책행정 등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김은영 관장이다. 부임하자마자 계획돼 있던 미술관 대형 전시 개막과 소장품 구입 등 업무를 정신없이 보는 와중에도 전북 미술 현장을 다니며 지역과 전북도립미술관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그의 주요 비전인 미술관 명소화 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김 관장으로부터 그동안의 소회와 미술관 주요 운영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하신 지 만 3개월이 지났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바쁘게 지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석 달 동안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지역 문화의 일원이 돼 전북도립미술관을 둘러싼 현장과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미술관의 개념과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 데, 이는 지역민들의 요구와 사회적인 효용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확정된 개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 지역 공립미술관과 함께 일반화하기보다는 지역 미술인과 도민들이 원하는 의견들을 많이 듣고 적극적으로 수용해 미술관을 가꿔 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술관의 역할도 매우 달라졌습니다. 관장님이 생각하시는 미술관의 역할도 궁금합니다.미술관은 개개인의 정신을 고양하고 미술을 통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미술인만을 위한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민과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예술을 통해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현재의 전북도립미술관은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건립된 13년 전과 달리 오늘날은 지역에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요즘 취향에 맞춘 공간들이 잇따라 나타난 상황에서 전북도립미술관이 유일한 공립 미술관으로서 조건없는 관심과 충성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죠. 따라서 지역민 누구나 미술관을 쉽게 방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명소화하는 것이 저의 주요 비전입니다. 현재의 문화소비시대에 맞춰 도민에게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미술관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미술관 명소화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기본적으로 총 네 가지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미술관의 기존 건축물을 재단장하고 건물을 예술 활동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건물은 방문객들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외관으로, 첫 이미지를 심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현재 미술관 건물은 세 개의 넓은 면이 있는데 이를 배경으로 활용해 예술 영상을 상영하는 뮤지엄 파사드를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야외 정원과 미술관 앞 놀이터공터를 시대적인 미감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것입니다. 옥외 문화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도록 다변화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계획입니다. 경관 조경까지 더하면 미술관의 경관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모악산 숲에 가려져 있는 미술관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죠. 마지막으로 제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던 당시 국내 최초로 진행했던 아트팹랩을 전북에 맞게 도입하고자 합니다. 아트팸랩은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최신 디지털 장비 산업과 예술을 융합한 일종의 미술 창작교육소통 공간입니다. 미술관을 오지 않는 계층도 유입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작유통까지 아우르는 21세기형 미술관 모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임기 내 중기 사업으로 내년에는 예산 확보를 위한 기본 구상 용역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미술관 소장품 활용의 중요성도 강조하셨습니다.그렇습니다. 소장품은 미술관 프로그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미술관은 작품 수집을 기반으로 외연을 확장해왔습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이펙티브 콜렉션(effective collection) 정책 즉, 소장품을 보존연구하면서 파생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권의 미술관은 건물전시관 위주로 운영이 이뤄져 왔습니다. 소장품 구매도 부족하고 이를 활용한 콘텐츠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죠. 콘텐츠가 빈곤한 미술관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게 되죠. 전북도립미술관 역시 현재 가진 소장품 1600여 점도 기본적인 정보만 기록돼 있을 뿐 충분한 도큐멘테이션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소장품 구입 예산이 제일 작은 것도 어려움을 증가시키는 요인입니다.- 전북도립미술관만 실정에 맞는 소장품 활용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요.현재 보유한 소장품을 살펴보면 전북지역 원로작고 작가들의 작품을 꽤 많이 수집했습니다. 이를 꿰어내 전북도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소장품에 깃든 전북 작가들의 문화특성을 뽑아낸 전북 미술사 연구특징 정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지역 미술인들이 그렸던 양식, 소재, 이야기성을 충분히 발굴해 하나의 특징으로 만들어내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발굴하는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프로그램 면에서도 소장품을 활용한 교육, 전시, 출판, 직접 대여 등 사회적인 효용성을 만들어내도록 할겁니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소장품 기본 기록은 물론 소장품으로 진행했던 교육전시출판 자료 등 종합적인 정보 관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 안에 들어와 살펴보니 운영의 어려움이나 보완해야 할 점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미술계 생태계 전반적으로 비평연구 등 이론을 하는 사람이 매우 부족합니다. 지역 미술인들이 가장 크게 요구하는 미술사 연구도 사실상 현재 미술관 학예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실정이고, 외부의 전북미술사 전문가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빠른 시대변화 속에서 13년째 변하지 않는 예산도 보완돼야 합니다. 시각 예술은 현대 문화의 본질적 요소이자 사회 발전의 큰 동력입니다. 한데 미술관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니 도 문화체육관광국 예산 안에서 시각예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습니다. 현재의 예산은 아주 기본적인 전시, 소장품 구입, 부대행사를 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13년간 운영은 이어져 왔기 때문에 형식적인 요구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정말 심각하게 미술계 현황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역 안팎으로 변화의 요구는 큰데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 될 때 변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지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국내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고 저 자신도 제가 추진했던 프로젝트들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제가 제시한 비전들이 전북지역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용기를 내서 꾸준히 추진하겠습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도민들의 문화 향유와 여가, 휴식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은영 관장은- 미술정책행정기획 아우르는 전문가김은영(56) 전북도립미술관장은 서울대 서양학과 학사 및 서울대 대학원 석사를 거쳐 미국 존에프케네디대학원에서 미술관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경기대 문화관광정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업무적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교육정보서비스팀장(서울관), 경기도립미술관 학예팀장, 한미사진 미술관 기획실장, 홍익대 미술대학원 겸임교수, 한국큐레이터협회 정책이사 및 부설연구소 부소장 등을 지냈다.재직 이력과 미술미술관문화관광을 아우르는 전공 배경에서 볼 때 그는 미술계 전반의 경험이 풍부한 최적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지난 20년간 미술관의 전 분야, 소장품과 전시행정아카이브교육마케팅 등에서 실무와 연구를 수행했고, 특히 미술관의 중심 기능인 소장품 관리와 정보화 분야에서 일찍이 독보적인 전문가로서 이름을 알렸다.특히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금 5억 원을 유치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무한상상실 아트팹랩을 개소해 국내외적으로 선두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다. 지난 2015년에는 김 관장이 미국 달라스미술관으로부터 유치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맞게 개발한 MMCA프렌즈 프로그램이 1만 5000여 명의 회원 가입을 달성, 대표 교육문화마케팅 모델로 만들기도 했다.또 미술관 내의 다양한 직무 분야를 두루 경험이해하고 각각 전공이 다른 직원들과 행정공무원, 학예전문직의 능력과 창의적인 협력을 조율해냈다.

  • 기획
  • 김보현
  • 2017.12.18 23:02

취임 1주년 맞은 정동철 한국탄소융합기술원장 "전주, 준비된 탄소산업 메카…국가산단 등 배후기반 강화해야"

올해는 탄소산업을 둘러싼 환경변화가 컸다. 특히 탄소산업이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탄소산업 육성의 길이 열렸다. 전주시와 전북도가 수년간 공을 들였던 탄소국가산업단지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내년부터 착공에 들어간다. 탄소관련 국제전시회인 JEC ASIA가 올해 처음 한국에서 열리며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전주에서 시작된 탄소산업이 국가차원의 육성산업으로 도약하면서 경북 등 다른 지자체의 추격도 빨라졌다.탄소산업 핵심기관이 한국탄소융합기술원 정동철 원장에게 이처럼 탄소산업을 둘러싼 변화의 의미와 전망을 들어봤다. 지난해 11월 25일 취임한 정 원장은 1년여 동안 이러한 일들의 중심에 있었다.- 취임하신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가장 의미있는 일을 꼽으신다면 무엇입니까.탄소산업이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된 것입니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전북을 대한민국 탄소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국정과제에 포함시켰습니다. 전주탄소국가산업단지 예타 통과와 산업통상자원부내에 탄소산업 전담부서 설치 등은 이에따른 조치로 보여집니다. 그동안 탄소산업을 지역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시간과 열정예산을 투자해온 정치인과 도민들의 노력이 결실로 나타난 것으로 봅니다.- 지역에서는 국정과제 포함에 따른 후속조치에 관심이 큽니다. 특히 탄소산업 컨트롤타워로서의 한국탄소산업진흥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한국탄소산업진흥원은 대한민국 탄소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과 예산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현재 진흥원 설립을 위한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합의를 얻어 통과하기는 순탄치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진흥원은 전주에 설립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술원에서는 진흥원 설립에 대비한 조직개편 등 사전준비와 함께 현행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에 대비해 모두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탄소소재 융복합기술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하는데, 특히 탄소소재 융복합기술전문연구소와 정보관리전문기관, 전문인력양성기관, 국제교류기관 등의 사업을 추진할 거점 기관을 지정해야 합니다. 기술원은 연구기관, 국제협력, 인력양성, 정보관리, 종합대책수립 기능을 모두 보유한 거점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이미 조직을 정비했습니다.-한국탄소산업진흥원이 전주에 설립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근거는 무엇입니까.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주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탄소산업의 필요성과 성장가능성을 내다보고 지난 2007년부터 탄소섬유 생산장비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효성과 함께 국내 최초,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체 기술로 고강도(T-700급) 탄소섬유 탄섬(TANSOME)을 개발했습니다. 이후로도 기술개발과 투자, 생산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전국의 광역기초지자체 가운데 탄소산업 전담부서가 있는 곳이 전북과 전주가 유일합니다. 지난해 5월 탄소소재 융복합 기술개발 및 기반조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도 전북과 전주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 탄소산업 시장을 열어온 곳이 전주입니다.- 하지만 최근 탄소산업에 관심을 갖는 지자체가 많습니다. 특히 경북은 메가탄소밸리 구축사업에서 전북과 경쟁을 하기도 했는데요.탄소소재는 기존 부품소재를 대체할 신소재산업으로서 다른 산업과의 전후방 연관효과와 기술적 파급효과가 크고, 성장잠재력이 매우 높은 산업분야입니다. 중앙정부 뿐 아니라 지역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도 미래 부가가치가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인데요. 현재 경북 구미와 경산, 충남 당진, 강원도 등지에서 탄소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사실상 전주가 독주하는 상태였지만 후발주자들이 생긴 상황이어서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전주가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배후 기반산업을 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동안은 기술원이 탄소산업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탄소섬유 생산기술을 개발했고, 생산단가를 낮추는 기술도 개발한 상태입니다. 이를 실제 산업현장에 적용하고, 대량 생산으로 이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기술원을 중심으로 탄소관련 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창업도 이뤄지고 있지만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기업들이 보다 늘어나야 합니다. 특히 자동차와 기계성형, 항공관련 업종이 필요합니다.- 원장님은 취임이후 기술원 역량강화를 강조하셨습니다.한국탄소산업진흥원 설립에 대비해 조직을 개편했습니다. 연구개발, 인력양성, 정보관리, 국제교류 등은 이미 기술원에서 해왔던 일들인데, 전문성을 강화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정비를 한 것입니다. 시험인증과 상용화센터 등도 단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효율적인 업무시스템을 갖추는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연구자들이 역량을 제대로 펼칠수 있게 환경을 보완하고, 성과 평가 시스템도 도입했습니다. 의사결정구조도 단순화해 조직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으로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조직을 꾸준히 정비해갈 계획입니다.- 국내외 관련기관과의 교류 활동도 활발해진 것 같습니다.기술원과 효성이 보유한 탄소섬유 생산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이를 성형하는 기술은 유럽이 앞섭니다. 따라서 기술을 보완할 수 있는 협력 방안이 절실합니다. 현재 기술원은 11개 국가 23개 기관과 MOU(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 이들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교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임기내에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탄소산업은 전북 전주라는 등식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이 전주에 설립되든지 기술원이 지정을 받든지 해야 합니다. 탄소복합재 관련 기업 창업지원 시스템도 보강하고 싶습니다. 창업 아이디어 발굴에서, 시제품 제작, 생산, 시장개척 등 기업을 지원하는 원 스톱 솔루션을 완성할 계획입니다. 또 탄소섬유 성능은 높이면서 가격은 낮추고, 종류를 다변화하는 것도 기술원의 연구과제입니다.● 정동철 원장은- 靑 국정과제 비서관 경력 시인 등단에 판소리 취미한국탄소융합기술원 정동철 원장은 연구자(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서의 장점을 살리고 싶어 기술원 수장에 도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 와보니 연구개발은 기본이고, 기업지원교류정보관리인력양성에 정책 기획과 정무 기능까지, 사실상 종합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것. 업무파악에 조직정비, 갑자기 치러진 대통령선거과정에서 대선공약 제안과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기까지 지난 1년을 눈코뜰새 없이 지내며 기술원 청사진을 구체화했다.정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잠시 강단을 떠나 청와대 비서실 국정과제 비서관으로 일했다. 당시의 경험이 현재 기술원을 이끄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북에 대한 애정도 그 때 깊어졌다. 대학을 벗어나 활동 영역을 넓힌 것도 그 영향이 크다. 그는 탄소산업 대표 기관 중심에 선 만큼 임기내에 전북 전주의 탄소산업 인프라를 강화하고 도약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겠다는 각오다.전주 토박이로, 전북대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석대 교수이며, 대한전기학회한국탄소학회한국복합재료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정 원장은 지난 2006년 광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지난해 시집(「나타났다」(모악))을 엮은 시인이자 실력이 빼어난 아마추어 소리꾼이기도 하다.

  • 기획
  • 은수정
  • 2017.12.13 23:02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23. 미륵사지·광한루원 다리가 남긴 흔적 - 돌다리, 상상과 전설로 지역-역사를 잇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취객이 다리를 더 잘 건넌다, 다리 아래서 원을 꾸짖는다, 십 리에 다리 놓았다, 언다리에 빠진다 등 예로부터 다리에 대한 속담은 많은 의미를 지닌 채 전해지고 있다.그 중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란 말은 매사에 신중하고 안전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 돌다리(石橋)가 그만큼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이면의 의미를 품고 있기도 하다. 다리는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다양한 재질과 형태로 발전해왔지만, 우리 선조들은 단단한 돌다리를 가장 바람직한 다리의 재질로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반영구적으로 오랫동안 남아있기를 원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동네 냇가를 건너기 위해 디딤돌을 듬성듬성 놓았던 징검다리에서부터 석재를 길게 걸쳐 놓은 듯한 널다리나 교각이 반원형을 이루게 하여 구름다리처럼 만드는 등 돌다리는 석재의 특성과 축재기술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모양이 어떻든지 간에 대부분 돌다리를 만들기 위한 석재는 주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돌이 재료가 되기 마련인데, 익산의 황등을 비롯하여 석재가 풍부했던 우리 지역은 돌다리의 가설 여건이 좋아 돌다리의 옛 흔적은 물론이고 관련된 이야기가 진하게 남겨져 있는 곳이다.삼국시대 뛰어난 석공 기술을 지녀 신라로 뽑혀가 불국사 석가탑을 건설했다던 백제인 아사달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추고천황 20년(612년)에 백제의 토목기술자인 노자공이 일본에 건너가 현재 일본의 3대 기물의 하나인 오교(吳橋)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어 백제인의 석공기술과 다리 축조기술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현존하는 백제 다리가 없는 것으로 오랫동안 알려져 왔으나 발굴 진행 중인 익산 미륵사지에서 다리 유구가 조사되면서 백제시대에 남겨진 다리에 대한 귀한 흔적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다리 유구는 익산 미륵사지의 강당터(講堂址) 중심축 사상에서 북측 승방터(僧房址)와 금당 사이를 잇던 것으로, 석조 다리 위는 목로 회랑으로 추정되며 교각은 4개소인 누교(樓橋)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누교는 옛날에 존재했던 다리 형식으로 다리 위에 누각이 있거나 다리 전체가 회랑식 건물로 되어 있어 다리를 덮고 있는 형태를 띠었다고 한다. 미륵사 누교는 백제시대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할 때 함께 가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리의 연결과 정자 역할을 함께 하며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월랑의 누교로 보인다. 아직은 그 모습을 추측만 할 뿐이지만, 백제의 우월한 아름다움과 기막힌 기술을 미륵사지의 바른 복원과 함께 재현되기를 바랄 뿐이다.이렇듯 백제인의 돌 가공에 대한 우월한 기술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익산의 백제 다리가 있는가 하면, 남원에는 조선시대 세조 때 가설된 오작교(烏鵲橋)가 이야기를 품고 지역과 역사를 이어주고 있다. 오작교라고 하면 음력 7월 7일 칠석날에 견우와 직녀의 상봉을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모여 만들어준다는 은하수 다리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작교는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인용한 다리가 전라북도 남원에 석재 다리로 실존하고 있다. 남원 광한루원에 있는 오작교가 주인공으로 춘향전(春香傳)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사랑을 속삭인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오작교가 놓인 남원 광한루원의 역사는 조선시대 황희(黃喜)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원에 온 황희는 주변을 거닐다가 풍광이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고 조그마한 누각을 지어 이름을 광통루(廣通樓)라고 하였고, 이후 1444년(세종 26)에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곳 누각에 올라 호남의 승경이로다.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가 바로 이곳이 아닌가?라며 감탄한 데서 그 이름을 광한루(廣寒樓)라고 바꿔 부르며 오늘에 이르렀다. 광한루 탄생 이후 오작교는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주변에 물을 끌어다가 누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큰 연못을 만들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석교를 가설하면서 생겨났다. 오작교는 화강암을 가공하여 4개의 홍예(무지개 모양의 아치)를 석축으로 길게 쌓아 연결하였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1872년(고종 9)에 전라도 남원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지도 《남원부지도》에는 화려한 색상과 정교한 표현으로 당시 남원 주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데 지도 정중앙 읍성의 남문(우측 방향) 밖에 광한루와 오작교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아름다운 모습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남원부(南原府)에 광한루(廣寒樓)가 있고, 그 밑에 오작교(烏鵲橋)가 있는데, 그 고을의 뛰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다. - 강희맹, 『해동잡록』(1670년)교룡성 북쪽 산은 창 모양 같고 / 蛟龍城北山如戟오작교 남쪽 강은 비단 같구나 / 烏鵲橋南水似羅- 이덕무, 『청장관전서(1795년)』광한루와 오작교는 이곳을 거쳐 간 선조들이 그 풍광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옛글로 앞다투듯 남겨 놓았다. 광한루는 정유재란 때 불타 1626년에 복원되었지만, 돌을 주재료로 쓴 오작교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에 더해 오작교가 더 귀한 것은 사랑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덕분일 것이다. 은하수를 건널 수 없어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연인들이 일 년에 오직 하루, 까마귀와 까치가 만들어주는 다리를 건너 만나게 되는 재회의 희망과 기쁨, 그리고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슬픔. 하늘길을 이어주는 견우와 직녀 사이의 다리는 신분의 도랑을 뛰어넘어 두 사람을 이어주는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과 흡사하기도 하다. 오작교는 이제 견우와 직녀, 춘향과 이도령의 사연이 덧대어져 부부가 같이 건너면 금슬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이처럼 다리는 필요에 의해 공간을 잇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져 사람과 사람을, 시간과 시간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옛날 선조들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고군산의 바다에도 섬과 섬 그리고 지역과 사람을 잇는 해상교량들이 세워지고 있다. 그 일대를 누비었던 최치원 선생과 이순신 장군과 석재 기술자인 아사달도 지금의 고군산도를 이어주는 다리를 보면 세상이 개벽한 일이라 여겼을 것이다. 시간을 내어 다리로 건널 수 있는 고군산도도 찾아가 보고, 덜 복원되어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익산 백제 다리와 현존하는 남원 조선 다리가 남긴 흔적을 찾아보면 어떨까.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 아름다움을 이어주는 오작교에 대한 문헌 속 이야기를 찾아 선비들의 마음과 사랑 이야기도 살펴보고, 옳게 복원되기 위해 천천히 시간을 되돌리는 과정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상상 속에서만 맴도는 미륵사지의 아름다운 다리에 대한 이미지를 지금의 정보통신기술을 빌어 재현하여 백제시대의 선조들이 전하는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빨리 체험할 수 있으면 한다. 그리고, 돌다리에 대한 속담을 되새기며 여유가 있는 이들에게는 조심조심 돌다리를 두드려 가며 행보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살이 처신이겠지만 두드려볼 틈도 없이 급히 다리를 건너야 하는 이들에게 튼튼한 다리가 되어주는 것 또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나오는 징검다리처럼 디딤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를 소중한 마음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머무는 곳을 소중하게 알아야 한다. 고을이건 사람이건 바로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내가 만난 이 순간의 사람이 내 생애의 징검다리가 되는 것인즉.- 최명희 『혼불』 중에서

  • 기획
  • 기고
  • 2017.12.08 23:02

[침묵을 영접하라] 침묵, 스스로를 성스럽게 하고 외부 성스러움을 영접하는 장치

유전자로만 본다면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는 약 2%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100분의 2만 다르다. 인간과 동물로 구별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가깝다. 심지어는 아메바와도 차이가 14%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숫자로 본다면 인간과 아메바 사이도 뭐 그리 멀겠는가. 하지만 14%라는 차이만으로도 아메바는 맘먹고 관심을 표하기 전에는 인간에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인간과 원숭이 사이는 더 하다. 겨우 2%다. 그것도 커봐야 그렇다. 사실은 2%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숭이는 동물원에 갇히고 인간은 유유자적 구경한다. 신분이나 계급적으로는 98%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다. 미미한 유전자적 차이를 거대한 신분의 차이로 바꿔버리는 요인은 무엇인가. 문화다.동물이나 식물은 자신의 진보를 전적으로 진화에 의존하지만 인간은 문화에 더 의존한다. 이것이 결정적이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문화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은 문화적 활동에 철저한 사람이다. 문화(文化)는 글자 그대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혹은 그려서(文) 변화를 야기(化)하는 일이다. 변화를 야기하는 인간이 더 인간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간으로는 상급이라는 말이다. 변화를 야기하는 동력을 흔히 창의력이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창의력은 가장 문화적이며 인간적인 활동력이다. 창의력을 통해 인간은 변화를 야기한다. 변화를 야기하려고 시도하는 인간에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이라고 말해준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 야기해놓은 변화를 수용하거나 답습하기만 하면 종속적이다.그렇다면, 변화를 야기하고 수용하는 일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어디서 출발하는가. 과거 아프리카의 타조 사냥은 이렇게도 했다고 한다. 타조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쫓는다. 타조와 쫓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일정한 간격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하게 되는데, 쫓고 쫓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쫓기는 쪽의 긴장감은 커지기만 한다. 타조가 쫓기고 쫓기다가 긴장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 도망가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대가리를 뜨거운 모래땅에 처박는다. 사람들은 그냥 가서 꼼짝 않고 머리를 박고 있는 타조를 잡아오면 되었다. 타조들은 다 그래왔다. 그리고 또 다른 타조들도 그렇게 잡혀죽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그런 집단적으로 속성화 된 습관에 갇혀서 함께 어울리던 타조 가운데 어느 한 타조가 자폐증을 앓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다른 타조들을 따라서 머리를 처박지 않고 무리에서 이탈하여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쫓아오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일을 저질렀다. DNA에 박혀 있는 일정한 방향을 지키다가 돌발적으로 선회(旋回)하여 습관적이고 집단적으로 공유하던 방향을 혼자서 바꾼 것이다. 모든 타조들과 공유하던 언어와 문법들에서 이탈하여 친구 하나 없는 곳으로 스스로 던져진다. 세계는 인간에게 항상 무엇인가 반응을 강요한다. 우리 삶은 모두 그 강요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응일 뿐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타조고, 타조를 쫓아가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반응을 강요하는 세계 전체로 비유된다. 내내 쫓기기만 해왔던 무리에서 이탈한 어떤 한 타조가 뒤를 돌아보고 갑자기 이전에는 있어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반응을 시도했다면, 이것이 바로 새로운 도전이다. 일단 뒤돌아보면 그 이전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시도될 것이고 그것은 세계에다가 이전에 있어본 적이 없는 어떤 무늬를 그리게 될 것이다. 문화적 활동의 결과를 수용하던 타조가 주도적으로 문화적 활동을 하는 타조로 변했다. 창의적인 타조다.타조가 한 미증유의 창의적 도전은 어디서 출발하는가? 집단적으로 함께 내달리던 정해진 방향에서 급선회하던 바로 그 지점이다. 대가리를 처박도록 길이 잡힌 방향을 향해 앞으로만 달리던 타조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뒤로 돌았다. 전진(前進)하다 역진(逆進)하는 타조는 두 방향을 다 경험하지만, 이 경험의 여정에는 전진과 역진이 교차하는 신비한 지점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여기가 바로 문화적이고 창의적이며 인간적인 활동의 자궁이다. 이 신비한 지점에서는 세계에 내몰리느라 떼를 지어 달리면서 나누던 수없이 많고 부산스러운 말들이 갑자기 끊긴다. 익숙한 모든 행위와 언어가 갑자기 사라지며 정적에 휩싸이는 순간이 있다. 언어의 길이 끊기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경이며 어떤 문자나 표지판도 더 이상의 쓸모가 사라져버리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상태다. 언어의 길이 끊기는 바로 거기서 새로운 언어가 태어나서 새 길이 난다. 그러니 새 길은 당연히 언어가 끊기던 바로 그 찰나에 뿌리를 둔다. 무너진 표지판 곁에 새 표지판은 아직 서지 않고, 어떤 말도 의미를 담지 못한 미숙의 상태, 어떤 숫자도 얹혀있지 않은 좌표답지 못한 좌표, 방향을 잃은 아둔한 의식, 이것을 우리는 침묵(沈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진의 문법과 역진의 언어가 사멸과 탄생으로 운명을 달리 하며 서로 등을 대는 바로 그 교차점이다. 여기는 새 언어가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철지난 언어가 사라지는 곳이 아니던가. 언어가 끊긴 곳에서는 유령처럼 침묵만이 태어난다. 모든 방향의 선회는 침묵을 지나간다.건명원(建明苑)을 열어 새 시대를 여는 창의 전사를 양성하고 있다. 역진(逆進)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강한 기운을 갖게 해주고 싶다. 반역의 기운이다. 그런 충동적 기운을 배양할 목적으로 구성된 프로그램 가운데 ‘걷기명상’이 있다. 모든 원생(苑生)들이 함께 5시간 정도를 걷는다. 핵심은 1시간 정도를 빼서 ‘묵언)’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걷는다. ‘침묵’을 지나가보라는 것이다. 뜨거운 모래 바닥에 머리를 처박도록만 훈련된 사람들에게는 함께 어울려 부산스러운 잡담을 나누는 일이 더 익숙하고, ‘침묵’은 큰 곰을 어깨에 앉혀놓고 걷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한 번 ‘침묵’을 내면 깊숙한 곳까지 끌고 가 본 사람은 - 전진과 역진 사이의 교차점에 서 본 사람은 - 그 ‘신비한 유령’을 피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법의 양탄자’ 같아서 ‘침묵’을 경험한 그 사람을 새로운 어딘가로 반드시 데려간다. 그 사람은 가는 내내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하며 새 길을 낸다. 이것이 침묵의 힘이다. 원래 있었던 것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 원래의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재탄생하여 현현한다. 잡담과 부산스러움을 극복하고 원래 있었던 것의 감춰진 진실을 등장시킨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저 멀리 산이 있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 산을 고압선을 놓을 자리로도 보고, 돌을 캘 곳으로도 보고, 산삼을 감추고 있는 곳으로도 보고, 전원주택을 지을 곳으로도 본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산의 진실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그 사람의 진실일 뿐이다. 조작된 것이다. 잡다하고 폭력적인 ‘소유’적 발상일 뿐이다. 산의 진실은 고압선이나 돌이나 산삼이나 전원주택으로 보는 시각이 끊긴 곳에서 드러나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런 잡다한 시각이 끊긴 곳에서 ‘침묵’이 유령처럼 등장한다. 그 침묵의 유령만이 감춰진 산의 진실을 영접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산을 어떤 특정한 소유적 시각으로 제한하지 않고 그저 한마디 할 뿐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의 진실은 우리가 정하지 않고 산이 스스로 드러낸다. 드러나는 그것은 산을 산이게 하는 것으로서 산에만 있는 성스러움이다. 이 성스러움은 침묵의 간이역에만 등장한다. 당연히 침묵은 또 외부의 성스러움을 영접할 수 있는 준비다. 그런데 침묵으로 외부의 성스러움을 받아들여본 사람은 또 자신의 성스러움을 깨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태리 가서 메디치 가문을 보고 온 부자들이 많다.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는 이태리 사람보다도 더 많이 알기도 한다. 세 번을 보고 왔다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메디치 가문을 보고 이해하는 대열 속에서 계속 경쟁적으로 ‘전진’한다. 그런데 메디치 가문을 세 번이나 보고 와서 그 사람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메디치 가문에 대한 지식이 증가한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메디치 가문을 구경하는 ‘전진’만 있었지 ‘역진’으로 선회할 ‘침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침묵’을 경험하면 ‘역진’으로 선회하여 내가 내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메디치 가문 같은 역할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이 반성만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 그가 다시 태어나면서 그가 속한 사회도 비로소 달라진다. ‘전진’하던 사람끼리 공유하는 문법과 언어의 잡다한 수다를 끊고, 스스로 무리에서 이탈하여 고독 속으로 자폐하는 것이다. 그 자폐의 통증을 동력삼아 ‘역진’하여 그는 아직 열리지 않은 새 세상의 문고리를 잡는다. ‘역진’의 기운이 꿈틀대는 ‘침묵’ 속에서 삶이 확장성을 회복한다. 자신의 감춰진 성스러움이 서서히 현현한다. 이제 무엇인가를 그려서 변화를 야기하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힘은 인간에게는 성스러움 그 자체다. 그러니, 인간은 ‘침묵’의 간이역에서만 성스러워질 수 있다. ‘침묵’은 스스로를 성스럽게 하는 힘이자 외부의 성스러움을 영접하는 장치다.장자는 말한다. “참된 인간(眞人), 즉 무엇인가 그려서 변화를 야기하는 인간, 창의적 인간, 모험하고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은 고요하다. 외부 세계를 소유적 시각으로 제한하지 않으니 어디에 갇혀있는지 알 수가 없다.”(是之謂眞人. 其容寂....與物有宜, 而莫知其極. 『莊子·大宗師』) 참된 인간은 고요하게 침묵을 지나간다. 침묵은 자신의 성스러움을 드러내며, 외부의 성스러움을 영접한다. 여기서 위대함이 자란다. 새 세상을 꿈꾸는 자, 우선 침묵하라.·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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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05 23:02

김윤덕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장 "세계 청소년들 새만금서 꿈과 희망 키울 수 있게 준비할 것"

지난 2010년 어느 날 당시 전북도의원이던 김윤덕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장과 조경식 전북연맹사무처장이 바닷물이 채 마르지 않은 부안군 변산면 새만금 대지를 보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여기서 큰 캠핑대회를 열면 좋을 것 같은데….” “김 의원과 제가 노력해 여기서 세계 잼버리 대회를 열어 봅시다.”꿈이 7년 만에 현실이 됐다. 2023년 세계 잼버리 대회 새만금 유치가 이뤄진 가운데, 김윤덕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장을 만나 유치 의미와 향후 잼버리 대회 운영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2023 세계 잼버리 대회 새만금 유치,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17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강원도 고성에서 열렸고, 2023년 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새만금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2023년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는 전 세계 각국에서 참가하는 약 5만여명에 달하는 스카우트대원과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일시적 ‘지구촌 천막(텐트)도시’를 세우게 됩니다. 세계잼버리 유치로 가져다주는 가치는 국가적인 이미지와 위상제고는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지역과 지역민, 지역 생산품, 고용효과, 관광시설, 주변지역에의 파급효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치를 높여 줍니다. 그리고 모두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몫을 하리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지구촌의 평화 공존을 위해 우리 지역 부안, 새만금 그리고 전라북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터전을 마련 해주고 그 실천 방안을 찾아준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스카우트 연맹 차원의 잼버리대회 준비는 시작하셨습니까.“지난 8월 16일 유치 전까지는 스카우트 연맹과 정부, 전북도 등 각 부처의 컨트롤 타워역할을 했습니다. 스카우트연맹과 전북도청, 여성가족부, 새만금개발청과 외교부 등 실무전략회의를 주관하여 운영한 것이 그것입니다. 유치 이후가 더 중요한데요. 부처별, 기관별, 지자체별로 추진일정을 명확히 정리하고 스카우트연맹과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또한 단계별, 연도별 예산 수립과 확보를 통해 차질 없이 대회가 준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세계잼버리 유치 결정이 된 만큼 정부와 전라북도는 아동 청소년의 육성과 복지 분야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북아 중심지로 새만금지역이 미래의 성장 동력의 중요한 요소인 청소년들의 변화와 혁신에 부응하는 요구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청소년 관련 활동과 복지, 문화, 교육, 보건 등을 포함한 ‘국제청소년과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특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 유스 센터, 세계스카우트센터, 국제청소년리더쉽센터 등의 명칭이겠죠. 이를 토대로 향후 새만금이 지구촌 청소년운동과 활동의 중심지로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크게 3가지를 꼽는 다면 △잼버리 및 스카우트에 대한 이미지 정립 △스카우트 운동(청소년 단체활동) 활성화 △중장기적 계획 수립과 추진(인프라 및 홍보) 이겠습니다.”-잼버리 조직위원회 밑그림이 그려졌는지요. 관련 기관 간 이견이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관련된 기관이라 하면 정부(여성가족부), 전북도가 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잼버리를 주관하는 것은 바로 우리 스카우트 연맹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잼버리는 우리 스카우트 고유의 행사입니다. 물론 전북도는 잼버리를 통한 사회적 인프라와 국제적, 경제적 이점을 생각하고 여러 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스카우트 고유의 행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가부 역시 이 잼버리를 청소년 국제활동 개최를 통한 부서의 역량 강화 차원으로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물론 그 넒은 땅에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만 우리 스카우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잼버리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그렇다면 특별법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한다고 보십니까.“새로운 인식과 접근으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많은 물적 인적 자원 및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스카우트 이념과 스카우트 방식을 통한 잼버리 운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한 법률적, 제도적 지원방안이 특별법에 들어 가야합니다. 예를 들면 2023년도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운영할 스카우트 방법으로 교육된 지도자 양성 또한 절실히 필요합니다. 스카우트운동의 대상은 청소년이고 우리나라의 청소년 대부분이 학생들입니다. 그 대원들을 육성하고 훈육 하는 스카우트 지도자들 또한 교직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죠. 일선 교육 현장에 계신 교사들의 참여와 그 참여 교사에 대한 사기 진작을 위한 대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새만금 잼버리대회, 여느 대회와의 차별은 어떻게 두실 생각이신지요.“잼버리에 참여하는 청소년에게 교육적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활동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25회 세계잼버리 주제인 ‘Draw your dream’에 맞게 전 세계스카우트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또 기존 세계잼버리 프로그램 중 참가자들의 호응이 좋았던 프로그램을 개선해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재탄생돼 차별을 둘 것입니다. 자연과 환경, 평화와 공존, 가족 회복운동, 전통과 역사의 인식을 통한 미래의 준비 등의 내용이 들어가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습니다. 나아가 기존의 잼버리 운영방식에서 벗어난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스템의 도입, 이를테면 4차산업 혁명과 맞물린 융복합 차원의 시스템변화 등을 준비 하고 있습니다. 새만금 잼버리가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북도민의 성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유치 과정에서 지지해 주신 것처럼 도민 모두가 청소년들의 드림 디자이너가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잼버리 대회, 현재 어떤 준비가 이뤄져야 할까요.“막대한 예산을 쓰지 않고도 세계적인 행사를 치를 수 있는 투자 대비 효율성이 높은 행사입니다. 야영할 수 있는 기반 시설 즉 야영장과 과정활동장, 적정양의 음용수, 안전을 위한 제반 시설만 필요합니다. 잼버리 이후 ‘Thanking or nothing’, 즉 아름다운 추억만을 남기고 간다는 잼버리의 전통이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약 5만여명의 참가자가 모이는 행사인 만큼 교통, 관광, 문화 등을 위한 여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특히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는 한국스카우트 창립 100년의 역사적 의미도 담겨있는 대회입니다. 스카우트 정신을 통해 글로벌 리더들로 성장할 전 세계 청소년들이 대한민국 새만금에서 꿈과 희망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이 지구촌 청소년 운동의 중심지로, 지구촌 평화 운동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한국스카우트 연맹과 전북 연맹 스카우트 가족은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김윤덕 전북연맹장은- 의원 시절 스카우트 예산 챙기며 인프라 힘써1966년 부안에서 태어난 김 연맹장은 동암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2001년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 전주지구 연합회 온라다지역대 대위원을 맡으면서 스카우트활동을 시작했다.이후 스카우트 전북연맹 직선이사와 한국스카우트연맹 중앙이사, 19대 국회의원 재직 당시 국회스카우트의원 연맹 이사를 지냈다. 현재 노무현재단 기획위원과 전라북도자원봉사센터 이사,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민들레학교 교장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도의원과 국회의원 시절에는 스카우트 관련 예산을 직접 챙기는 등 관련 인프라 활성화에 힘써왔다. 전북연맹 조경식 사무처장과 함께 새만금 세계 잼버리 유치의 숨은 공신이다.그는 인터뷰 내내 조 사무처장 이야기를 했다.“조 처장님이 없었으면, 제가 이만큼 스카우트에 열정을 쏟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번 새만금잼버리 유치를 위해 조 처장님이 얼마나 애썼는지 이가 다 빠질 정도 였다”고 했다.그는 잼버리와 연계한 새만금 개발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김 연맹장은 “행정 등 다른 분야에서 새만금 개발에 대한 의견과 정책을 세워놓고 있겠지만 잼버리 대회와 연계해 스카우트연맹 차원에서 본다면, 대형 캠핑장이 마련되고 캠핑장 주변, 산과 바다, 전주까지 이어져 한옥마을 관광과 연계한 측면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또 잼버리 대회장 주변 전북 지역 다른 관광지와도 연계가 가능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관할하는 청소년 리더십 센터가 우선적으로 지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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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세종
  • 2017.12.04 23:02

[철의 궤도: 전라선 철길 답사기 ⑫ 주생역·옹정역] 자물쇠 채운 간이역, 가을도 떠나가네

△ 녹슨 레버와 풀벌레의 시간, 주생역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둘러보니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남원시 주생면 제천리 주생역. 언덕 위에 앉은, 붉은 벽돌을 둘러 입은 밋밋한 한 일(一)자 건물이, 앞서 찾았던 서도역과 매우 닮은꼴이었다. 비어있는 역사를 철도 궤도 공사 관련 업체가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닮았다. 역 건물에서 굳이 다른 점을 찾아본다면, 건물 정면에 붙어 있는 역명판의 모양이 다르다는 정도일까? 서도역은 반달 모양, 주생역은 직사각형. 외부인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은 없었다. 맞이방과 매표소 입구는 퍼즐 맞추듯 여러 판을 이어 붙여 못질해둔 탓에 깔끔하게 막혀 있었다. 주생역은 1933년 10월, 남원~곡성 구간이 개통될 때 배치간이역으로 문을 열었다. 금지역과 전남의 곡성역이 동기다. 개업 7년 뒤인 1940년에는 보통역으로 승격됐는데, 개업 동기들과 비교하면 곡성역은 처음부터 보통역이었고 금지역은 1980년에야 보통역이 되므로 딱 중간 정도 갔다고 보면 되겠다. 수송 실적도 특출난 편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건물조차 없던 옹정역에도 한때 밀릴 때가 있었고, 화물 취급 실적도 남원역이나 곡성역과 비교하면 대단치는 않았다. 그 사이 남원역과의 사이에 상동역이라는 간이역이 하나 잠깐 생겼다 사라졌다.(1966년~1977년) 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는 농어촌 역들이 다들 그렇듯이, 주생역 또한 산업화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결국 2004년 7월 15일, 여객 취급 중단의 칼을 맞았다. 전라선 복선화에 따라 선로가 이설되면서 역사가 다시 지어진 것이 2004년 8월 5일인데, 그러니까 역사의 맞이방과 매표소는 열리기도 전에 그 용도를 잃은 셈이다. 봉천역이나 산성역과 비슷한 운명이다. 여객 취급 중단 직전인 2003년 한 해 이용객은 모두 487명. 하루 평균 두 명도 되지 않는 실적이었다. 주생역은 이후 2007년 1월 1일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돼 현재에 이른다. 승강장에서 북동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과거 철도 차량들이 밟았을 측선들이 몇 가닥 얽혀 있는 모습이 보인다. 동행한 코레일 관계자는 통운 적하장선이라고 불렀다.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며 관계자가 취재팀을 이끌었다. 바로 사람 손으로 직접 움직이는 수동식 선로전환기(전철기)였다. 사람이 레버를 조작하면 그 힘으로 선로가 움직여 열차의 진로를 바꾸게 되는데, 주생역의 수동식 선로전환기는 레버 하나에 분기기 두 개가 맞물려 움직이게 돼 있었다. 그 사이를 기다란 금속 축이 잇는다. 이제는 다 기계식을 쓰지, 수동식은 안 쓰죠. 수동식은 저기 경기도 의왕 철도박물관에나 있을랑가. 그가 체중을 실어 레버를 잡아당기자 레일이 들썩거렸다. 선로 끝 편에 앉아 멀뚱거리고 있던 초록색 풀벌레 하나가 이에 박자를 맞추듯 수풀 쪽으로 풀썩 뛰어 사라졌다. 녹슬어서 잘 움직이지도 않네. 허허. 그래도 옛날엔 다 이렇게 인력으로 했다고. 그러는 동안, 저쪽 본선으로 KTX 한 편성이 쌩하고 지나갔다. △ 뼛속까지 간이역, 옹정역 역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건물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나 간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주생역에서 남서쪽으로 3km, 그냥 봐선 단순한 철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옹정역이 있었다. 굳게 잠긴 문을 열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밟아 올라가면 곧바로 승강장이 나온다. 건물이 없으니 매표소도 맞이방도 없고, 역무원실도 없다. 정말로 간이역, 그 자체다. 시꺼멓게 때가 탄 보도블록은 군데군데 이가 나가 있다. 역명판이나 벤치는 물론 찾아볼 수 없고, 다만 과거에 어떤 구조물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옛날에는 이 자리에 시내버스 정류장을 닮은 승객 대기 공간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있는 흔적을 보고 그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승강장은 측선 하나 없이 상하행 본선에 직접 닿아 있다. 본선 가운데에는 기둥의 밑동 비슷한 것이 보인다. 선로를 넘어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한, 중앙분리대 비슷한 것이 있던 흔적이다. 승강장의 바깥쪽에도 울타리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 출입을 막기 위해 쳐놓았던 것일 터다. 사람뿐 아니라 고라니와 같은 동물들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로드 킬은, 물론 인간 때문에 제 터전을 잃고 배회하다가 치여 목숨을 잃는 동물들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들에게도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란다. 동행한 철도 관계자는 열차가 지나갈 때 풍압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구조물들을 모두 철거했다고 말했다. KTX가 시속 170km로 통과하는 구간이어서 승강장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위로 주생역, 아래로 금지역을 끼고 있는 옹정역은 지난 1959년에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문을 열었다. 남쪽에 금지역이 따로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오히려 금지면사무소와 파출소, 보건지소를 모두 끼고 있는 옹정역 인근이 금지면의 중심지에 더 가깝다. 옹정역 이용객이 금지역 이용객보다 많은 시절도 있었다.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1978년 한 해 옹정역을 이용한 승객이 15만3109명이었는데, 그해 금지역 이용객 수는 10만819명이었다. 그러나 이 황금기는 얼마 못 가 끝난다. 불과 5년 뒤인 1983년, 옹정역 이용객 수는 3분의 1도 안 되는 4만4001명으로 주저앉는다. 같은 해 금지역은 5만4954명이 이용했다. 1975년 8956명이었던 금지면의 인구는 1980년 7344명, 1985년 6087명으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버스가 편리해졌으며 빨라진 열차는 사이사이 작은 역들을 건너뛰었다. 이 모든 현상이 합쳐져, 앞서 주생역이 그랬던 것처럼 옹정역 또한 2004년 7월 15일에 여객업무를 손에서 놓는다. 복선화로 훨씬 빨라진 전라선 선로 곁에, 아무도 이용하지 못할 승강장만 8월 5일에 새로 깔렸다. /권혁일김태경 기자 ● 419 혁명의 불꽃은 여기에김주열 열사의 고향 옹정리 옹정역 플랫폼에 올라서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가을걷이가 끝나 한적한 들녘과 비닐하우스 무리 너머로 금지동초등학교가 한눈에 오롯이 담긴다. 옹정역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이 학교는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숨진, 그리하여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의 모교이기도 하다. 김주열 열사는 남원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나 금지동초를 졸업(6회)하고 1956년 금지중학교에 진학한다. 3년 뒤 중학교를 졸업, 1년 재수 끝에 경남 마산상업고등학교의 합격 소식을 안고 정든 고향집을 떠났다. 그렇게 뜨거운 꿈을 찾아 나선 열일곱 고등학생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나갔다가 이승만 정권이 쏜 최루탄에 맞아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 되어 고향 땅에 돌아왔다. 금지동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는 학교명과 함께 김주열 열사 모교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비석이 서 있다. 어른 키만 한 비석 양 옆면에는 열사의 생애와 업적이 기록돼있다. 운동장 한편에서는 모교 후배들이 우리 선배 김주열을 그리며 하늘에 올리는 절절한 추모곡도 볼 수 있다. 옹정삼거리로 나와서 김주열로로 명명된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잠깐 달리면, 열사가 잠들어 있는 묘와 그 묘 아래에 조성된 추모공원이 나온다. 추모공원은 남원시가 2006년부터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것으로, 지난해 12월 완공됐다. 추모각과 기념관 문은 평소에는 잠겨 있다. 들어가 보려면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남원시청 주민복지과나 금지면사무소에 연락하면 된다.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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