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10 12:14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고창군립도서관 '길위의 인문학'-자서전 쓰기] 함께 읽고 쓰며 되살려내는 황금빛 인생 이야기

들녘 풍경이 삽시간에 달라지고 있다. 초록이 물러가는 듯싶더니, 어느새 연한 노랑으로 채워진다. 진노랑으로, 황금의 빛깔로 절정인 듯하더니, 며칠 반짝거리는 순간을 놓치면 눈을 채우던 황금빛은 풀 죽은 흙빛으로 사위어간다. 농부들 일손이 바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금빛을 놓칠 수 없다. 부뚜막 부지깽이라도 일으켜 손을 빌어야 하는 추수 시기, 한해 활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시절이다.색으로 치자면 우리 삶의 순간도 마찬가지련다. 연한 녹색 빛깔로 시작해, 초록으로, 어쩌다 비틀거리는 노랑으로, 자칫 먹빛으로 스러지다가도 다시 초록을 되찾기도 하고, 차차 의지와 세월이 빚은 황금 빛깔로 치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두어들이는 시기, 모든 빛깔을 제 몸에 새기어 색과 빛이 어떠하든 다 품을 수 있는 넉넉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고창군립도서관 문화강좌실, 열다섯 남짓한 목소리들이 수런수런거린다. 길위의인문학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자서전 쓰기>에 참가해, 삶을 추수하는 사람들이다.△함께읽기, 함께쓰기로 되살려내는 읽기 쓰기 감각<길위의인문학> 프로그램은 도서관을 통해 지역민에게 인문학을 향유하게 하고 자신과 역사를 성찰하고 삶의 행복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고창군립도서관은 올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삶의 자취를 돌아보고 오늘을 사는 힘을, 다시 새 걸음으로 나아가도록 자서전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 지난 7월 6일 첫걸음을 뗀 자서전 프로그램 기나긴 걸음이 이제 막바지 깊은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봄빛은 이미 사위어 하늘과 땅을 불볕으로 덥히던 7월, 기나긴 장마를 거치고 찾아온 8월 휴가철의 유혹도 버티면서, 늦도록 염천(炎天) 9월을 무사히 지나쳐 이어온 오랜 길이었다. 어느덧 글쓰기 동무가 된 참가자들의 옷도 한층 두께를 더해가고 있다.이번 자서전쓰기는 오로지 쓰기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읽기를 겸해서 그동안 잠시 잊었던 읽기감각을 되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읽기도 함께읽기 방식이다. 돌아가면서 소리 내 읽는 방식, 오래전 음독(音讀)이라는 유일한 방식으로 읽던 우리 문화유전자 속 읽기를 되살려내는 것이다. 처마 밑에는 낙타털로 만든 갈색 빨랫줄이 하늘을 향해 걸쳐져 있습니다. 하늘 향해 걸쳐진 낙타줄은 사막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들을 하늘로 인도하는 길처럼 보입니다(엄마와 딸, 바람의 길을 걷다, 강영란). 차례에 맞춰 자기 목소리로 읽어가는 고비사막여행기는 어느새 우리 삶의 순간순간으로 바뀐다. 우리 엄마, 우리 딸, 고비의 풍습과 닮은 우리 옛 풍습으로 이어져 책 속 작가의 목소리는 어느새 우리 목소리로 바뀌어 있다.△묵독을 거슬러 다시 음독으로, 소리를 통해 읽는 삶과 삶의 이야기두 시간 프로그램 가운데, 한 시간 읽기, 한 시간 쓰기연습으로 진행하는 동안, 그림책의 장면과 글로부터 시작해, 짧은 문장 읽기, 여행기, 재치가 넘치는 어린이동화, 동시 읽기로 이어졌다. 마음읽기를 잘 정리한 책의 서문을 읽으며 우리 마음의 단면을 슬쩍 엿보기도 했다.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양귀자 소설가의 『모순』에 등장하는 선운사와 도솔암 풍경을 읽어가며, 소설 속의 것과 실재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 어떻게 소설 속에 글 속에 나타나는가, 살피는 일도 흥미진진이었다. 묵독이라는 진화한 방식으로 읽기가 바뀌기 전까지 읽는 행위는 소리와 동행하는 행위였다. 소리는 공간과 사람의 전제에서 가능하다. 우리는 묵독을 발견하고 난 뒤, 시공을 압축하는 효율을 얻는 대신 읽는 행위에서 사람과 함께하는 공간을 잃고 말았다. 소리 내 읽는 동안 묵독으로 사라졌던 공간과 사람을 호명하게 되었다. 함께읽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같이 읽은 이야기 안에서 자신의 삶과 닿은 것들을 서로 이야기 나눈다.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의 삶이 만나는 순간이다.△말을 배우면서 시작한 쓰기 감각을 오늘에 되살려훨씬 더 오래 전에 멈추고 만, 쓰기감각을 되살리는 일도 함께한다. 먼저 말과 글은 서로 다른 존재라는 오해의 빗장을 벗기는 일부터다. 저 갑오년 언문일치를 주창한 선조들의 일로부터다. 언(言)과 문(文)은 둘이 아니다, 라는 선언으로부터다. 갑오년은 동학혁명의 해다. 그러니 무려 123년 전의 일이다. 그러므로 글(문, 文) 공부하러 모인 우리들은 말(언, 言)을 배우고, 그 말을 통해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기 위해 애를 쓰던 지난 수십 년의 일이 모두 글 쓰는 공부의 바탕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그러는 동안, 베껴 써보기, 단문으로 글써보기, 이미지 보고 묘사하는 글써보기, 편지글 써보기, 인생곡선 그리기 등 다양한 쓰기연습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제 출판을 위한 글쓰기,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사이 두 차례 특강강사와 만났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니, 삶의 굽이굽이를 나눠 접는 책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문장의 짜임을 익히기도 했다. 고창의 작은 문화예술공간 책마을해리를 찾아 책의 바탕을 탐색하기도 했고, 모처럼 서해 짭쪼롬한 바다 향에 취하기도 했다. 날마다 이런 공부만 하면 좋겠네△쉬지 않고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네버엔딩 이야기꾼의 탄생출판을 전제로 글쓰기, 이렇게 긴 여정을 통해 마지막 쓰기단계에 다다르자, 모두는 고민이 깊다. 단순히 쓰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판이 되어, 알든 모르든 누군가와 내가 쓴 글이 마주하게 된다는 부담 때문이다. 고창군립도서관 문화강좌실은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그동안 준비한 글을 내어놓고 서로 돌아가며 읽는다. 글쓴이는 빨간색 펜을 가지고 읽기동무, 쓰기동무들이 자신을 위해 돌아가며 소리 내 읽어주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어색한 부분, 맥락이 끊기는 부분을 표시한다. 다 읽고서는 서로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아니, 그렇게 시누이 시집살이가 심했는데, 병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아들 못 낳은 시누이보다 시집와 먼저 아들을 낳고 모진 시누이시집살이를 견디고 견디었는데, 그 시누이가 암에 걸리자, 정성껏 그 수발을 다 한 이야기 끝에 오가는 말이다. 글 이야기보다 앞서는 것이 말이고, 삶의 이야기다. 삶이 말이 되고 글이 되었으니, 말이다. 늦은 공부 이야기로,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결혼초기 이야기로, 직장생활분투기로, 아내 이야기로, 청소년기 이야기로, 방황과 좌절을 시의 형식으로, 세상과 만나려는 예비작가 들에게 마지막 분투를 당부한다. 내가 살아온 세상의 이야기는 아직 내 인생사의 일부분일 뿐이다 가장 선배 참가자가 쓴 글 맺음이다. 이번 <삶글, 자서전쓰기>에 담기는 이야기는 아이가 첫걸음을 떼듯, 첫 글 떼기다. 앞으로 결코 멈추지 않는 네버엔딩 이야기꾼으로 세상에 삶을 통한 선배들의 메시지를 건네시길 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17.10.19 23:02

[마을학개론 ③ 마을기업] 마을만들기 사업, 시·군 단위로 넓혀 공익경제 구현해야

한국의 마을만들기 또는 마을공동체사업은 새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마을기업에서부터. 또는 마을기업으로부터. 행정, 전문가, 주민 등 이른바 마을만들기 사업의 3주체 가운데, 행정과 전문가 등 상부와 외부의 간섭과 통제는 불가피하지 않다. 오히려 불요불급한 경우와 상황이 적지 않다. 어쩌면 마을공동체의 자조자율자치자생을 위한 유일한 사업주체로서 역할과 책무는 행정이나 전문가의 지원과 조력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이때 주민이 행정과 전문가의 몫까지 온전히 감당해 내부화하려면 주민들 스스로 함께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리는 게 상책이다. 여기서 마을기업이란 행안부의 그 좁은 의미의 마을기업만 의미하지 않는다. 마을공동체사업의 역량있는 책임주체라는 넓고 근본적인 개념과 목적을 실천하는 마을기업 또는 일반적인 사회적경제조직을 뜻한다.△ 의사결정구조책임소재 명확해야지난 십수년 동안 전국 수천 곳의 농촌마을에, 천문적인 농촌지역개발 사업비가 투입되었다. 하지만 성과는 애초의 정책목적과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으나 마을기업의 부재는 명백한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즉, 애초 마을공동체사업의 의사결정구조와 책임소재 자체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사업에 뛰어드는 게 문제의 발단인 것이다. 현재의 마을만들기 사업판은 사업의 결정권과 예산권을 틀어쥔 행정의 지침대로, 전문가의 역할과 책임을 떠맡은 용역업자의 훈수대로, 위원장 등 일부 소수의 리더가 사업의 책임과 권한을 도맡는 형식이다. 그러나 위원장이 주도하는 사업추진(운영)위원회는 사업을 책임지고 싶어도 책임질 수 없는 처지다. 사업실무 집행조직이 아니라 사실상 요식적 회의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마을공동체사업을 벌이기 전에 법적, 도의적 책임소재부터 명확히 설정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아니라 마을기업이 사업의 실행조직, 책임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을기업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마을, 준비할 생각이나 의지가 부족한 마을에는 사업을 지원하면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책임을 질 준비도, 책임을 질 의사도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 합리적인 원칙부터 세워두면, 이제는 아무 마을이나 마을공동체사업에 함부로 뛰어드는 만용과 욕심을 결코 부리지 못할 것이다.잘 학습되고 훈련된 마을시민들이 모여 잘 조직된 책임주체로서 마을기업을 만들고 마을공동체사업에 뛰어든다면 당장 사업의 책임주체부터 분명해진다. 이장, 개발위원장, 부녀회장, 노인회장, 새마을지도자 등을 비롯한 마을주민, 그리고 마을시민들은 마을기업에 출자와 참여를 결심하는 순간, 마을공동체사업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사업이 표류하거나 실패할 불안요소와 위험요인이 원천적으로 제거되는 셈이다.△마을공동체사회적경제 융합 고리마을기업의 효용은 단지 마을공동체사업의 책임주체로만 그치지 않는다. 마을기업이 사업의 중심을 잡으면 마을공동체사업과 사회적 경제사업이 서로 연계하고 융합되는 효과도 덩달아 발생한다. 무엇보다 일반적 경제가 부실하거나 부재한 농촌지역에서 사회적 경제는 마을지역공동체 재생과 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나 방법론으로 기능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를 기반이자 가치로 삼아야 마을공동체사업의 명분도 강화되고 실질적인 시너지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최소한 일자리 창출이나 소득 제고라는 정책적 당면 목표의 근거없는 강박과 착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가령 마을지역사회 공동체사업의 사전 준비와 입문단계에서 마을기업으로서 사회적경제조직(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횔기업 등)은 마을공동체사업의 학습과 훈련을 위한 학교로서, 실습장으로서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후 마을공동체사업이 본격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사업의 관리경영 책임 주체로서 핵심적 기능과 책무를 감당할 수 있다.최근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인들은 새로 제정될 사회적경제기본법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각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양산, 도처에 산재한 이른바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한곳으로 통합해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취지의 법률이다. 차제에 마을기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관련 정책과 제도의 외형과 내실을 정확하게 재정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단지 일자리 창출과 소득 제고라는 단기적, 행정적 외형목표 추구에서 벗어나, 오히려 마을공동체 사업의 책임경영주체라는 지원 역할을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치로 삼을 필요가 있다. 마을공동체사업을 잘 관리하고 경영하는 도구이자 수단의 소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아예 이름도 마을기업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기업 또는 마을공동체형 사회적기업이라고 부르면 의미와 목표지점이 더 명확해지지 않겠는가.어차피 마을기업 등의 사회적 경제란 그 자체가 목적이나 완성이 될 수 없다. 차라리 지속발전가능한 마을지역공동체 생태계의 건설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유력한 수단이나 도구에 가깝다고 해야한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라는 수단과 마을지역공동체의 목적이 서로 돌고 돌아, 결국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선순환의 생태계구조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결국, 마을기업이라는 이름, 사회적경제라는 법안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다.△마을기업 중심 지자체 협동경영체모델로그런데 기존에 마을이나 권역단위의 범위와 규모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사업이나 농촌지역개발사업은 근본적 한계와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바로 주민 역량의 한계, 적정 사업조직 구성 역부족, 규모의 경제 부적합 등의 실패 요인이 내재, 상존하는 것이다. 일단 마을, 권역 단위로는 적재적소에 배치할만한 기본적인 업무인력이나 역량 있는 경영자, 기획자, 관리자 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을 준비할 수 없는데 마을만들기 사업을 제대로 할 수는 없다.따라서 사업의 범위와 규모를 최소한 지자체 단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지자체 협동경영체라는 적정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마을기업을 마을공동체사업의 센터와 허브 역할로서 중심에 놓으면 어떤가. 이는 기초지자체 단위로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서로를 위해, 그리고 마을과 지역공동체를 위해 설립한 공동사업체의 모습이다. 일종의 지역단위 네트워크형, 사회적 경제조직 방식의 공동사업체를 뜻한다.전북 진안군의 진안마을주식회사는 이른바 지자체형 협동경영체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로컬푸드 사업을 목적으로 진안군 21개 마을과 11개 단체, 농업인 등이 공동출자, 2011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설립한 진안군민이 주인인 주식회사다. 기존 마을공동체사업의 성과를 종횡으로 묶고 엮은 네트워크로 진화한 셈이다. 마을단위 사업의 선도 사례지인 임실 치즈마을도 자연마을과 행정리를 넘어 지역으로 사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2015년 치즈마을의 마을운영위원회가 대주주로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 임실치즈레인보우 주식회사라는 출자 회사를 새로 설립한 것이다.진안마을주식회사나 임실치즈레인보우주식회사나 모두 일개 마을이나 기업이 목표로 하는 사익이나 욕심을 내려놓은듯 하다. 대신 앞으로는 지자체와 군민들과 더불어 공존하고 공생하겠다는 공익의 가치를 확고히 다졌다. 기존의 마을단위 사업이 안고 있던 사업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규모와 범위의 공익경제를 구현하려는 현실인식과 목표의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가령 마을공동체 단위에서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식품을 기획하는 고민까지만 하면된다. 부가가치를 높여 가공하고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나머지 어려운 일은 지자체 협동경영체에 떠맡기면 된다. 그렇게 믿을만한 마케팅 에이젼시가 지자체마다 버티고 있다면 사람도, 조직도 부족한 마을에서도 안심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을 벌일 의욕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마을공동체끼리 서로 묶이고 엮이는, 서로 채워주고 나누는 이상적인 네트워크형 지역사회 발전 모델로 진화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17.10.18 23:02

전주 출신 황수경 통계청장 "전북 고용률 높이기 위한 지역특화 일자리 통계 만들기 최선"

지난 7월 문재인 정부의 첫 통계청장으로 부임한 전주출신 황수경 통계청장(54)은 응용계량 분야에 정통한 개혁성향의 노동경제학자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태어난 고향인 전주에서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많은 인연으로 얽혀 있다고 말했다. 비록 학창시절을 전주에서 보내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북출신으로 알고 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새 정부의 중요한 가치인 국민 행복, 사회적 가치, 공공 이익, 4차 산업혁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기존 통계 개선 및 정책 맞춤형 통계를 완성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0일 대전 정부청사 통계청장실에서 만난 황 청장은 지방언론과의 첫 대면 인터뷰에 설레는 감정을 드러냈다. -통계청장으로 부임하신지 2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간 소회와 느끼신 점이 있다면. “2달 동안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갔습니다. 나름대로 몰입의 시간이었죠. 취임 후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새로운 시대에 통계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들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특히 국회, 정책부서, 연구기관 등 통계이용자와 전임 청장들을 비롯한 청 내외 주요 관계자들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 분주히 다녔죠. 저는 통계청장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신뢰성과 중립성 확보라고 봅니다. 또한 통계청 직원들의 경험과 전문성를 존중하며 경청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바람막이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고향 전주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사실 많은 분들이 저를 전북 출신으로 알고 있고, 저 또한 전주에 남 다른 애정이 있지만, 성장기와 학창시절을 전주에서 보내지 않아 많은 추억을 못 남긴 것이 아쉽습니다. 당시 경찰관이셨던 아버지의 발령 근무지가 전주였기 때문에 전주에서 태어난 것이거든요. 물론 집안 뿌리는 전북이 맞습니다만, 아버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로 발령을 받아 고향에서 지낸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공식 프로필에 출신지가 전주로 기재돼 있는 것은 그만큼 고향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에 전북일보에서 인터뷰 제의가 왔을 때 긴장을 많이 했어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도 고민이었죠. 그러나 많은 전북도민 분들이 저를 동향 출신으로 알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땐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따뜻한 정을 함께하고, 지역정서를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고향의 의미가 아닐까요.”-취임사에서 국가통계는 4차 산업혁명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4차 산업혁명은 사회 각 분야에서 쌓여진 다양한 데이터의 융복합을 기반으로 추진되는 것 입니다. 그 핵심데이터는 신뢰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있는 국가통계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지요.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과 기계의 지능화는 물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핵심기술이 전 산업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시대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기반은 데이터입니다. 공공 및 민간의 각 분야에서 데이터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죠. 데이터의 실질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통계청은 4차 산업혁명시대 공공-민간의 다양한 통계데이터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국가통계데이터 허브 구축 등을 추진 중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4차 산업혁명의 마중물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포부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데이터의 처리 속도, 활용범위 및 수요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통계데이터의 더욱 쉽게 만들려는 것도 데이터 기반 사회를 위한 선결 조건이라고 봅니다.”-전북지역은 지역경제가 취약하고 일자리가 부족한 편인데도 그 간 지역통계는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관련 대책이나 계획이 있으신지.“가장 최근 통계를 기준(2015년)으로 보면 전북의 명목 GRDP는 45.6조원으로 전국의 2.9% 규모이며, 16개 시도 중 12위에 불과했습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과 개인소득도 각각 2487만원, 1585만원으로 전국 평균을 훨씬 밑돌았죠. 그러나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농림어업이 지역경제의 8.5%로 전국평균 2.3%를 크게 상회하고 있습니다. 반면 광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전국평균 수준에 못 미치고 있어요. 저는 지역특화 통계는 그 지역의 강점과 약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전북지역은 고용률은 낮고 실업률은 타 지역에 비해 높아 경제 활동 참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편입니다. 저는 청년층의 수요에 맞는 일자리 창출이 전북지역 고용률 제고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지역특화 일자리 통계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지역특화 일자리 통계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 “지역통계를 생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자체와의 협업체계 구축입니다. 또한 행정안전부와 고용노동부 등과도 소통하고, 지역 통계 활성화를 위해 노력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통계청은 행안부와 지역통계 개발 TF를 발족시켰으며, 지자체와 함께하는 지역사회지표협의회 등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북도 통계팀장이 참석한 가운데, 통계청-행안부-지자체-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지역통계자문위도 가졌습니다.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통계청이 얼마나 잘 소화하느냐에 따라 지역통계의 질이 결정됩니다. 통계청이 지자체 지원을 늘리려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인데요, 우리 청은 지자체의 통계 작성을 지원하기 위해 통계생산대행, 기술지원, 통계컨설팅뿐만 아니라 지역통계 표준매뉴얼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북지역 지역통계를 관할하는 호남지방통계청은 제가 오기 전부터 지역통계 생산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전주시 청년통계, 올해는 완주군 청년통계를 지자체와 함께 개발하고, 군산시도 지역통계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아울러 내년에는 국내 ‘노인등록통계에 대한 표준매뉴얼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전북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할 예정입니다.”-앞으로의 중점 추진할 계획이나 포부는.“한국사회에서 ‘통계’는 그 중요성이나 활용도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각 부처가 정책 수립을 위해 관련 통계를 항상 필요로 하면서도 정작 통계 담당부서는 늘 한직(閑職)으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죠. 저는 이 같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몸에 와 닿는 통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적극적인 정책 수립 지원을 추진하겠습니다.”·● 황수경 청장은- 응용계량 분야 정통 노동·일자리 전문가황수경 통계청장은 국내 노동문제와 일자리 창출 문제에 대한 연구를 이어온 노동경제학자다. 그는 특히 응용계량 분야에 정통해 통계청 수장으로서 전문성도 인정받았다.1963년 전주에서 태어난 황 청장은 서울 서문여고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1988년 숭실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2001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노동연구원과 KDI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실업률 측정의 문제점과 보완적 실업지표 연구, 경제위기와 고용, 고용구조 선진화를 위한 서비스산업의 일자리 창출 역량제고 방안 등 굵직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일자리위원회 전문위원과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자문역할을 맡았다.황 청장은 현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모든 역량을 집결하는 가운데, 노동과 취약계층 고용상황을 통계로 나타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다.

  • 기획
  • 김윤정
  • 2017.10.16 23:02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9. 봉동씨름과 남원 만복사지 저포 이야기 - 봉동서 천하장사 기운 받고 만복사지서 저포 던져볼까

천~하 장사 만~만~세~ 빛 고운 한복을 입은 이들이 나와 구성진 소리로 흥겨운 노랫가락을 이어간다. 씨름판에 천하장사가 탄생함을 알리는 소리이다. 요즘에야 익숙지 않지만 얼마 전만 해도 명절 즈음이면 온 가족이 한데 둘러앉아 TV에 나오는 씨름대회를 지켜보곤 하였다.한 해의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풍요의 계절이자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맘때쯤 우리는 예로부터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이 여럿 모여 이야기꽃도 피우고 놀이를 즐기며 흥을 보탰다. 사실 노는 데 엄청난 의미나 목적이 있으랴마는, 풍년을 비는 놀이, 마을의 화합과 평안을 비는 놀이, 내기를 위한 놀이, 겨루기 놀이 등 다양한 형태의 놀이가 뒤섞여 긴 세월을 이어오며 우리의 역사와 생활 속 민속놀이로 내려오고 있다. 이 같은 오래된 전통과 함께 내려온 지역의 민속놀이로는 봉동의 씨름을 들 수 있다.완주군 봉동에 전해지는 봉동씨름은 단순한 겨루기 놀이가 아니라 마을의 당산제와 함께 지켜온 지역의 자산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본래 씨름은 동서고금 가리지 않고 성행했던 인류 공통의 풍속이지만 우리만의 전통 역시 긴 시간 이어지고 있는 특별한 민속놀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래로 조선시대의 씨름은 유희 종목이자 왕의 놀이로서, 또는 사신 대접을 위한 기예이자 양반과 평민을 가리지 않는 민간놀이가 되어 왔다.봉동만의 특별한 씨름이 전해지는 봉동읍은 과거 봉상면과 우동면의 여러 마을이 합쳐진 곳으로, 이곳에는 봉황이 날아갔다는 뜻의 봉상(鳳翔)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봉산리의 봉실(鳳實) 등 봉황과 관련된 지명이 여럿 남겨져 있는 곳이다.이러한 상서로운 땅의 기운을 지닌 봉동에는 강둑을 따라 커다란 노거수가 8그루나 있는데, 이중 봉동 당산제단이라 써진 제단이 있는 느티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이곳에서 300여 년 역사의 봉동당산제를 올려 왔고 올해도 봉동읍민의 날인 10월 10일에 당산제가 열렸다. 오래전부터 해거름 무렵 평안을 기원하고 주민들의 화합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강가에 횃불을 두르고 씨름을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예로부터 봉동에서는 힘자랑을 하지 말라.는 말이 내려올 만큼 봉동의 씨름은 유명하다. 이는, 전국씨름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황소를 탄 사람들 중에 봉동출신이 유독 많아서 전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봉동 씨름은 본디 선 자세에서 샅바를 잡는 오른씨름이었다가 전국대회에서 왼씨름 한가지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선 자세로 샅바를 잡는 왼씨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봉동씨름 대회는 애기씨름, 중씨름, 상씨름으로 치러지고 있는데, 애기씨름은 말 그대로 아이들의 씨름이고 중씨름은 청소년의 씨름, 상씨름은 성년남자들의 씨름이다. 한사람이 이기면 다른 사람이 도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밤이 깊은 시간까지도 횃불을 환하게 밝히고 진행되기도 하였다.이렇듯 오랜 시간 주민의 화합과 지역의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가 함께 있어 봉동씨름의 특별함을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씨름이 겨루기 놀이로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관과 내기의 형태로 남아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나가 즐겼던 민속놀이로는 윷놀이를 들 수 있다. 이 윷놀이는 여러 형식의 놀이가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특별한 이야기와 더불어 전해지고 있는 남원 만복사지의 저포를 들 수 있다.조선시대 김시습(金時習)이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는 남원에 살았던 주인공 양생(梁生)이 부처님과 저포(樗蒲)놀이를 하여 이겨 인연을 얻었다.는 내용의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가 실려 있다.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보다도 더 기막힌 저승과 이승의 사랑 이야기를 남원에 남겨 놓은 김시습의 상상을 따라가 보면 그 사연의 매개가 되는 저포놀이가 있다.젊은 청춘 남녀가 만복사를 찾아가 향불을 피우고는 각기 제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양생은 저녁 기도가 끝나자 법당에 들어가서 소매 깊이 간직하고 갔던 저포를 꺼내 불전에 던지기 전 소원을 빌었다. 자비로운 부처님 오늘 저녁 부처님과 함께 저포놀이를 하려 합니다. 제가 지면 법연을 차려 부처님께 갚아드리고, 부처님께서 지시면 아름다운 아가씨를 얻게 해주시옵소서. 축원을 마치고 저포를 던지자 양생이 이겼다. 기뻐하며 다시금 불전에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꽃다운 인연을 바라옵니다. 그 뒤로 불좌 뒤에 깊숙이 앉아있으니 얼마 안 되어 아가씨가 들어오는데김시습의 상상에서 나온 소설 속 소재이지만 도대체 저포놀이가 무엇이길래 주인공이 부처님과 겨루며 인연을 걸었을까 호기심을 갖게 된다. 당시 저포놀이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긴 놀이로 《조선왕조실록》과 다른 문헌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대중적인 놀이였다. 정약용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6권엔 맏형수 이씨(李氏)의 묘지명이 나오는데, 용이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연천현(漣川縣)으로 갔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선비(先妣) 숙인(淑人)이 술 담그고 장 달이는 여가에 형수와 저포놀이를 하여 3이야 6이야 하며 그 즐거움이 융융하였다라는 문구가 전해지는 등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즐긴 놀이의 일종으로 그 방법이 윷놀이와 비슷하다.저포(樗蒲)는, 저(樗: 가죽나무)와 포(蒲: 부들)의 열매가 모양은 같으나 색이 달라서 이 열매로 주사위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저포는 원래 중국의 놀이로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시기에 이미 있었다고 하고, 『태평어람(太平御覽)』에는 노자(老子)가 서융(西戎)에서 배워온 것으로 호족들은 이것으로 점을 친다라고 적혀 그것이 아주 오래된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정확히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 문헌을 참고하면 최소한 백제시대부터 저포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저포의 놀이방식은 사실 오늘날 윷놀이와 매우 비슷하여 윷놀이와 같은 놀이 혹은 그 기원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에 따라 저포를 뜻하는 탄희(攤戱)와 윷놀이를 뜻하는 사희(柶戱)가 같다고 주장하는 견해와 두 가지를 다른 놀이로 분명히 구분하는 견해가 문헌으로 모두 존재한다. 『동국세시기』에도 사희는 저포이자 탄희라고 일컫고 있고, 『목은집시고(牧隱集詩藁)』에 나온 「저포시」는 그 내용이 윷놀이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저포와 윷놀이가 다르다는 주장에 의하면 두 놀이가 엄밀하게는 놀이 방식과 명칭들이 엄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그 둘을 구별한다.신원봉이 쓴 『태평어람』과 이고(李翶)의 『오목경(五木經)』이 윷놀이와 다른 저포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헌이며,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사희변증설」 역시 저포가 윷놀이와 가까운 다른 놀이라고 하였다.백세 뒤 나의 무덤에 표할 적에마땅히 꿈속에서 죽은 늙은이라 써 준다면거의 내 마음을 안 것이라천 년 뒤에는 나의 회포를 알아줄까.김시습은 59세로 죽기 직전에 「아생(我生)」이라는 시를 써 현실과 꿈속을 넘나들며 살았던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엄청난 상상으로 이야기를 쏟아낸 김시습도 당시 저포놀이를 매개로 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의 이야기를 남원에 남기고 백세도 못 살고 떠났다.이 가을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풍경을 놀듯이 찾아보며, 봉동에서 기운을 받고 만복사지에서 영화 속 대사와 함께 마음으로나마 힘껏 저포를 던져보고 싶다. 《왕의 남자》 속 명대사처럼 징한 놈의 이 세상 한판 신나게 놀다 가면 그뿐!

  • 기획
  • 기고
  • 2017.10.13 23:02

[노인 1인가구와 고독사] 홀로 남은 찬 방에서 견디기 버거운 삶…

독거노인은 혼자 사는 65세 이상의 노인을 뜻한다. 한때 '홀몸 어르신'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보편화되지는 못했다. 독거노인이라는 말에는 외로움, 가난, 질병이런 아픔이 묻어난다. 홀로 살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사는 노인도 없지 않다. 하지만 1인 가구 노인들은 가족이나 이웃과 사회적 교류가 단절되고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대개 그 끝이 가난과 맞닿아 있다.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돌봄이 필요한 이유다.△홀로 사는 노인들의 열악한 삶두 가지 사례를 보자.(사례1) 2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한 김모씨(73)는 일반주택 곁에 딸린 쪽방에 거주한다. 월세 10만원에 살고 있는 김씨는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다. 전기장판 하나와 얇은 이불로 1년을 버틴다. 냉장고도 가동하지 않고 취사도구는 먼지가 쌓인 채 방치돼 있다. 한 달 수입은 기초연금 20만원과 국민연금 20여만원이다. 가끔 인근 농촌으로 일을 나가 5~6만원의 일당을 받지만, 수술한 허리 통증과 건강악화로 일을 할 수가 없다. 또 치매로 의심될 정도의 심각한 건망증이 보인다.(전주 금암노인복지관 홀로노인친구만들기사업2014)(사례2) 나는(이모씨86서울시 마포구) 결혼 전이나 후나 평생 내 손으로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는 팔자였어. 지금이 외려 젤 편해. 허리 아프네 무릎 아프네 해도 지금이 젤 행복해. 옛날에는 새끼들 안 굶기려고, 저녁 때우면 아침 걱정 아침 때우면 저녁 걱정, 그걸루 세월을 다 보낸 거야. 근데 지금은 쌀 떨어질만 하면 어디서든 줘. 굶게 생겼는데도 안 주면, 달라고 하면 되지 뭘, 하하하.아무리 늙구 없이 살아도 무릎하고 틀니만 있으면 살 만해.(최현숙. 가톨릭평론 제5호2016)전주와 서울의 두 사례는 독거노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례1)이 처연하다면 (사례2)는 자기 방어적이며 해학적이다. 하지만 가난이 웬수인 건 마찬가지다.△독거노인 81%가 여성, 73%는 가족 왕래 無통계청이 발표한 2017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65세 이상 노인 1인 가구는 129만4000 가구로 집계됐다. 전체 노인가구 386만7000 가구의 33.5%에 이른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 산하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가 발표한 2015년 독거노인 현황조사 결과분석보고서에 의하면 전국에 거주하는 기초연금 수급대상자로서 실제 홀로 살고 있는 독거노인을 포함한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32만4000여명(전북 8만4905명)이며, 이 중 동거나 주소지 미거주를 제외한 실제 독거노인은 전체의 59.7%인 79만 명(전북 5만6462명)이다. 이 조사는 생활관리사 8400여명이 직접 방문해 면접조사한 수치다. 연령별로는 7175세가 27.4%로 가장 많고, 7680세 26.8%, 6570세 20.2% 순이었다.또 실제 독거노인 중 여성이 63만9000명(80.9%)으로 남성 15만명(19.1%)보다 월등히 많았다. 사회단체 참여도는 경로당이 30.5%, 종교시설 14.5%, 복지관 6.5% 순이다. 이웃과는 57.3%, 가족과는 73.3%가 왕래(연락)가 거의 없다고 답해 사회적 단절이 심각함을 보여준다.△독거노인 27%만 노인돌봄기본서비스 혜택그러면 독거노인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살펴보자. 정부는 노인 1인 가구가 급격히 늘면서 고독사나 자살 등이 문제가 되자 2007년부터 노인돌봄기본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생활관리사가 독거노인의 집을 주 1회 방문하고, 주 23회 전화를 통해 안부를 확인하는 게 주요 업무다. 대상은 기초연금을 수급하는 65세 이상 독거노인이며 이용자는 22만명으로 실제 독거노인의 27.8%에 불과하다.노인돌봄기본서비스는 안부 확인과 함께 월 1회 생활교육과 대상자의 욕구를 파악해 기증물품 등을 전달하는 서비스 연계도 한다.전북의 경우 생활관리사 565명이 독거노인 1만5000여 명에게 기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인 생활관리사는 월금요일 1일 5시간 근무하며 월 84만8000원(전주시의 경우 활동비로 20만원 보조)을 받는다. 하지만 이 제도는 저소득층에 한정돼 있고 기초연금 미수급자나 65세 미만, 노인부부 가구 등이 제외돼 한계로 꼽힌다.전주시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임은미 팀장(45)은 1명의 생활관리사가 27명의 독거노인을 돌보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방문할 때마다 손을 꼭 잡고 딸보다 낫다고 하신다며 흐뭇해했다.노인돌봄기본서비스가 독거노인 대상 무료사업인 반면 노인돌봄종합서비스는 65세 이상 일반노인(절반이 독거노인)이 대상으로, 유료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외 AB가 해당한다. 요양보호사가 집을 방문해 주로 빨래나 청소, 반찬만들기 등 가사지원을 하며 바우처 방식이다. 한번 방문시 3시간 머물며 한 달 9회(27시간)와 12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개인부담은 8280원에서 6만4000원까지 다양하다.△선진국은 노인의 사회참여 보장정부에서는 2012년에 독거노인 종합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주요 내용은 △독거노인 안전체계 구축 △가족친화 문화 조성사회적 가족(농촌의 독거노인 생활공동체, 도시의 친목모임인 두레) △일자리 제공과 노노케어 등 소득 및 일상생활 지원 강화 △자살치매 및 만성질환 관리 등이다.최근에는 민간과 연결해 야쿠르트 아줌마 1만3000명이 독거노인 집을 찾아 안부를 확인한다든지, 사물인터넷(IoT)시스템을 이용해 응급안전 알림서비스를 시행하는 등 다양한 방안이 나오고 있다.우리와 달리 선진국의 독거노인 지원정책은 노인의 독거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거노인돌봄기본서비스사업 개선방안 연구(2016)에 따르면 일본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활동 참여 촉진, 말벗 서비스, 신변 안전보장서비스, 장보기 지원 등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 도쿄, 뉴욕, 베를린은 노인의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한다. 특히 독일 베를린은 노인참여법을 제정해 단순한 지역사회 프로그램이 아닌 제도로 보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급증하는'고독사' 사회적 관심 절실한해 전국서 1000건 이상 / 무연고 사망자 5년새 2배독거노인의 증가와 더불어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현상이 고독사다. 고독사는 아무도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숨진 뒤 상당기간 방치되는 것(일본 2014년 고령사회백서)을 이른다.그 동안 저소득 독거노인에게 집중됐으나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늘면서 청년과 중장년층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혼자 외롭게 살다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혼살 혼죽인 셈이다.이 같은 고독사는 전국적으로 1년에 1000건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 들어 67월 두 달간 부산에서만 13건의 고독사가 발생했다. 고독사는 더 이상 가족과 지역공동체가 개인의 생존을 보호하는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함을 보여준다.더욱이 고독사는 정부의 통계마저 없다. 유사한 분류인 무연사(無緣死)로 추정할 뿐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1년 693명에서 2016년 1232명으로 5년 사이에 77.8%가 늘었다.고독사에 대한 관심은 우리보다 고령화가 앞선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전국사회복지협의회와 전국민생위원아동위원협의회가 고독사 관련 첫 전국 조사를 실시해 1974년 고독사노인추적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후 가설진료소 의사 출신인 누카다이사오(額田勳)는 1999년 고독사라는 책을 남겼다. 2010년에는 공영방송 NHK가 특집 다큐멘터리 무연사회를 방영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고독사라는 용어보다 입회자 없는 사망(立會者のいない死亡)이라는 통계자료를 구축하고 있으며, 2015년에 2500명이 발생했다.최근 일본에서는 고독사에 대한 대비로 임종을 준비하는 활동, 즉 슈카쓰(終活)나 무덤친구인 하카토모(墓友)가 활발하다. 고독사 보험이라는 금융상품도 나왔다. 문제는 일본보다 우리의 고독사 속도가 더 빠르고 심각하다는 점이다. <조상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17.10.12 23:02

[문화재로 하나 되는 새만금] '군산·김제·부안' 전북 서해안 다질 새 문화코드는?

조선 중기 민간에게 널리 퍼진 비결서인 〈정감록〉에 퇴조 삼백리면 범씨 천년 왕국이라는 설이 있다. 혹자는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퇴조 삼백리가 되었다고도 한다.그렇다. 단군 이래 우리 기술로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만들어 간척사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새만금은 새로 만들어진 만금(萬金) 평야라는 말이다. 1991년 첫 삽을 뜨고 난 후 방조제가 연결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그 오랜 기다림만큼 전북도민들은 그 땅에서 만금(萬金)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지난 8월 17일 세계스카우트연맹은 대한민국 새만금을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지로 확정했다. 새만금이 만들어지고, 이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대회라서 더욱 의미가 크다.2023년에 개최될 세계잼버리 대회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예술, 공연, 체육 등 다양한 문화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이며 공항, 철도, 도로 등 새만금 개발 속도를 배가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 같다.세계잼버리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전라북도는 치밀한 계획과 함께 인프라 구성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새만금(아리울: 새만금의 또 다른 이름)은 알다시피 군산, 김제, 부안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따로이지만 하나인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세 지역민들이 새롭게 도출해야 할 문화코드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여겨진다.필자는 그 해결점을 전북 서부 해안지대라는 공동의 지정학적 위치가 갖고 있는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군산대 철학과 교수인 김성환은 그 해결점을 새만금 하면 떠오를 수 있는 고유하고 일관된 문화적 컨셉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안동하면 연상되는 유교문화(퇴계, 도산서원, 하회마을 등)라든가. 부여 하면 떠오르는 백제문화, 보성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녹차문화와 같은 독특하고도 차별화된 문화코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그는 새만금의 성격을 서민문화권으로 보았다. 탁 트인 들판이 펼쳐 있음으로 도성이 들어서지 못하는 지역, 그로 인해 권력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지배, 권력, 집중 등의 가치와 차원을 달리하는 자유, 상생, 개방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 문화, 정신적 열망이 성장한 곳으로 한다.그것이 때로는 미륵불교와 선도적 이상향의 갈망으로 때로는 세상의 병폐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상, 학문, 종교적 개혁의 추구로 혹은 세상을 뒤집어엎으려는 혁명의 불길로 타올랐다. 필자 또한 이 의견에 동감한다.필자는 지역역사문화콘텐츠전문가로서 새만금 지역이 하나 되기 위한 코드와 콘텐츠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과정으로 추석 연휴 동안 자천대가 있는 군산의 옥구향교와 김제의 금산사 그리고 부안의 반계서당을 다녀왔다.문화재 안에는 그 주인공이 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영향을 받아 정신세계가 형성된다. 새만금 지역 안에는 그 시대의 문화영웅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는 주인공들이 있다.신라말 사상가 최치원과 미륵신앙의 조승(組僧) 진표율사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의 비조(鼻組)인 유형원이다. 각각 다른 시대를 살다간 분들이지만 그들에게서는 사상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민초 즉 약한 자들을 위해 삶의 에너지를 집중한 자들이다. 또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강력한 꿈을 꾼 자들이다. 이들의 삶을 찾아서 답사하는 중에 새만금의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다.가을이다. 파란 하늘에 새털구름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옥구 들은 황금빛 나락으로 익어간다. 그 길을 지나 옥구향교에 이르면, 빨강 홍살문이 버티고 서 있다. 외삼문을 지나 명륜당 오른쪽 옆에 자천대가 있다. 자천대는 신라말 최치원이 어릴 적 글을 읽었다는 곳에 세워진 누각이다. 선연리 하제 바닷가에 있었다. 그 자리에 미군비행장이 들어오게 되면서 헐리게 될 위기에 처하자 옥구향교 경내로 옮겨놓았다.군산에는 최치원을 추억할 수 있는 전설과 설화가 깃든 장소가 많다. 최치원이 출생하고 12살까지 성장한 곳이 군산이라는 설이 있다. 최치원이 누구인가? 6두품 출신이면서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빈공 자격으로 세계인과 겨루어 30인을 뽑는 진사과에 합격한 재원이었다. 그는 우리 고유사상인 풍류도 속에서 유.불.선의 원리가 들어있음을 주체적으로 찾아내고 통섭적인 생각으로 백성을 위한 일관 된 삶을 살았던 분이었다. 최치원과 관련된 문화재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백성 사랑과 폭넓은 미래 비전이다.김제 금산사로 향했다. 최치원보다 100여 년 먼저 살다간 스님인 진표율사가 출가해서 수행했던 곳이다. 10세 무렵 들에서 놀다 개구리를 잡아 나뭇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놓고 잊어버린 뒤, 이듬해 봄에 다시 가보았더니 그 개구리들이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사무치게 참회한 진표는 12세에 금산사로 출가를 한다.부안 부사의 방에서 망신참법으로 수행을 하다가 깨달음이 없자 산 아래로 투신을 했는데 청색 옷을 입은 동자가 구해준다. 미륵보살로부터 교법을 받은 후 금산사로 내려와 미륵신앙을 민중의 신앙으로 정착시키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미륵신앙은 이 지역사람들의 삶의 힘이 됐다.금산사 입구는 다른 절과는 다른 성문이 있었다. 후백제 말 견훤이 큰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 미륵전에 감금을 당했고 이때 싸움이 있었던 곳이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금산사를 뒤로하고 부안으로 향했다.부안으로 건너가 우반동 계곡에 이르렀다. 반계서당은 외 딴 곳에 있다. 그곳에서 칩거하며 연구와 후진 양성에 몰입을 했을 유형원을 생각해 보았다. 그가 앉아 있었을 마루에 앉아보기도 하고, 뒤 곁을 둘러보기도 하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아담한 들판을 쳐다보며 건너편 〈홍길동 전〉을 집필했다는 허균의 집터가 있는 곳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무심한 세월을 말하는 듯했다.유형원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조선 백성들을 생각했다. 권고받은 관직도 마다하고 우반동 계곡으로 들어왔다. 그는 매일 말을 타고 달리며 자신의 몸을 단련했고, 지역민들과 함께 부대끼는 가운데 조선의 백성들이 실질적으로 잘 살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하여, 그 생각을 〈반계수록〉에 고스란히 담아 놓는다. 그는 호남실학의 비조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여러 실학자가 그의 후학으로 자처했고, 정약용에 이르러 호남실학 즉 중농학파의 실학이 집대성된다.답사하면서 새만금 지역에 관통하는 서민 중심의 생각과 미래를 위한 상생의 사상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았다.군산의 자천대, 김제의 금산사, 부안의 반계서당 그 문화재에 담긴 주인공들인 진표율사, 최치원, 유형원으로 이어지며 추구했던 그들의 사상이 새만금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끈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문정현 ㈔아리울역사문화연구소 대표/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17.10.11 23:02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