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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소감] “내 운의 유통기한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

멈춰 선다. 뒤돌아서서 그림자를 쳐다본다. 내 곁을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불안하다. 하지만 마음 한쪽은 설렌다. 그림자를 바라본다. 나는 예전처럼 평범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지만, 아주 조금 다르다. 그림자를 좇아 발길을 떼어본다.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 앉아 끄적이기 시작했다. 창가의 화분처럼 늘 자리에 앉아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을, 이해하지도 견디지도 못했다. 소극적인 반항이었다. 참신한 뻥을 치고 싶었다. 밤에 친구의 어깨를 밟고 컴퓨터실의 쪽 창으로 넘어들어가 타이핑하고 출력했다. 도트프린터가 한 줄씩 활자를 인쇄하는 것을 가슴 졸이며 바라봤다. 다행히 몇몇 친구들이 읽어 주었다.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재미있다고까지 말해 주었다. 참 착하고 어른스러운 친구들이었다. 녀석들의 칭찬이 없었다면 글쓰기를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도 청소년기는 버거웠다. 해외입양인의 청소년기는 말 그대로 태풍일 것이다. 이제는 그만 보냈으면 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 우리 사회의 수준이고 업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폭력적이다. 누구에게나 상처가 된다. 해외입양인 친구인 일리(소설 속 윌리)와 그의 가족에게 안부 인사와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충북대학교에 입학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창문학동인회 써클룸의 문을 연 것이었다. 바닥과 천장, 사방 벽에는 막걸리 냄새가 배어 있었고 늘 담배 연기로 매캐했다. 선배들의 언어는 전투적이었고 술 마시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내 시를 읽어주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십수 년이 흘렀고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소설가 김현영 선생의 강좌를 들었다. 글 쓰는 즐거움과 재회했고, 함께 글을 쓰고 읽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행운이었다. 과학 웹진 크로스로드와 포스텍 박상준 교수께도 감사한다. 내겐 매우 소중한 게재 기회였다.부모님과 가족에게 고맙다. 수필 작가이신 장모님께서는 가문의 영광이라며 가장 기뻐해 주셨다. 아내는 철없는 나를 잘 보듬어주고 아들은 더 나은 사회를 생각하게 한다. 수상쩍었을 나를 이해해준 학과 친구들과 전 직장 동료들도 고맙다. 무엇보다도 전북일보와 송하춘, 백시종 심사위원께 감사한다. 부족한 글을 너그러이 봐 주셨다. 나처럼 글쓰기로 위안과 몰입의 기쁨을 느낀 다른 응모작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은 내 차례였다. 나는 내 운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음은 당신 차례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이중주 - 손훈영

눈부시게 환한 햇살이 초록 숲 위로 투망처럼 드리워져 있다. 베란다 창 앞으로 바투 다가와 있는 산은 이제 마악 여름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창을 열어두고 다가오는 여름을 바라본다.팡, 팡. 열어 둔 창으로 테니스공이 라켓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공 부딪히는 소리 사이사이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섞여든다. 힘껏 내리친 공이 빗나갔는지 안타까운 탄식이 터지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게 공을 받아쳤을 때의 환호성이 높다랗게 들려오기도 한다.베란다로 나가 테니스장을 내려다본다. 높푸른 히말라야시다의 호위를 받고 있는 테니스장은 치외법권 지역인양 아늑하다. 알맞게 다져진 맨 흙바닥이 정갈하고 높다란 심판석 의자의 진초록 덮개가 새뜻하다.연두색 공들이 네트 위를 빠르게 오간다. 황토빛 흙을 박차고 하얀 운동복이 튀어 오른다. 튕겨 오르는 공을 따라 공기를 가르는 사람들의 그을린 허벅지 위로 햇살이 작열한다. 약동하는 생명력이 라켓 한복판에서 전율하고 터질 것 같은 율동성이 코트를 가득 메우고 있다.운동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소리로 흥건한 테니스장을 벗어나 시선을 조금 오른편으로 옮긴다. 봉긋한 봉분 세 개를 감싸 안고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 보인다. 조밀한 숲을 병풍처럼 두른, 나무 없는 낮은 구릉은 푸른 풀들이 융단을 깐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공기 중에 보랏빛 풀꽃들이 고요하다. 이따금 비롱비롱 산새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날아든다.투명한 햇살 아래 둥그렇게 누워있는 봉분은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생로병사의 긴 여로를 마감한 삶은 이제 비로소 진정한 안식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훼손시킬 수 없는 견고한 평화다. 살면서 늘 갈구하던 그것을 이윽고 품안에 안고 흔들림 없는 침묵으로 고요하다.봉분은 하나의 메시지다. 비등점에 이를 때까지 열렬히 살라고, 그리하면 마침내 이런 확실한 것 하나 안겨 주겠다는 신의 약속이다. 약속은 적요한 햇살 아래 명확하게 빛나고 있다. 저 약속들은 이미 도처에 새겨져 있었다. 다만 두려워 우리들이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네 삶의 공간으로부터 멀리 추방시켜 놓았었다. 죽음에 등을 기대고 살아가지만 삶이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어야만 우리들은 살아갈 수 있었다.얼마 전 중병을 선고받음으로써 죽음과 좀 더 밀접한 관계가 되었다. 투병의 시간이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이다. 나와는 별 상관이 없던 그것이 이제 불가분의 관계로 가까워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어둠이 더 무서워지듯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죽음을 바로 볼 수밖에 없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바로 죽음이다. 죽어있는 상태로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수는 없다.그런 마음이어선지 요즘 들어 잔치에는 잘 가지 않아도 죽음의 장소는 열심히 찾아다닌다. 가까운 친인척 장례식에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먼 친척까지 문안을 간다. 정기 진료일이면 병원 장례식장을 서성대다 오기도 한다. 쇠락의 냄새와 죽음의 기미에 점점 익숙해지고 마침내 그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무엇으로 내 일상에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며칠 전 시백부 상을 치렀다. 입관을 지켜보았다. 입관실은 삶과 죽음이 아무런 갈등 없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주검 옆에 싱크대와 세제가 천연덕스럽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에 익숙한 세제와 핸드크림이 삶과 죽음과의 거리를 빠르게 단축시켜주었다.전통적 예법에 준한 절차로 구순을 넘긴 백부는 봉인되었다. 딸들의 흐느낌이 백부의 감긴 눈 위로 흩어졌다. 차가운 테이블 위에 일자로 누운 백부의 한 줌 몸뚱아리를 겹겹이 싸매고 묶는 절차가 당연한 수순을 밟는 듯 자연스러웠다.장례관리사들의 일상적인 표정과 직업적 몸짓이 한 사람의 죽음에 압도당해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럴 거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살아있음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죽음이 저 먼 곳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누수로 얼룩진 천장이나 수도꼭지만큼이나 우리들 삶 속에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과실 속에 씨가 들어있듯 삶이 시작될 때 이미 죽음도 함께 잉태되었다는 릴케의 말이 생각났다. 삶 속에 죽음이 있다는 말이 하나의 관용어구가 아니라 생생한 느낌으로 피부에 와 닿았다.삶과 죽음은 서로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표면과 이면이었다. 삶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죽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시작되면서 죽음도 함께 시작되었다. 삶이 무르익으면 죽음도 함께 무르익었다. 사람은 삶만 사는 게 아니라 죽음도 함께 살아야 했다. 결국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이었다. 잘 죽을 수 있으려면 잘 살아야 함이 전제되었다.죽음의 절차를 지켜보며 살아갈 일을 생각하는 나를 보았다. 죽은 자를 보내는 시간 속에서 산 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했다. 그것은 어떤 진실한 약속 하나를 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떠나는 자에게 남아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약속은 무엇일까. 당신 곁으로 갈 때까지 더 멋지게 살아가겠다는 새김질이 아닐까.막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는 약속은 신에게 하는 약속이나 진배없었다. 혹 이것이 죽은 자에 대해 산 자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조문행위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염을 하고 입관을 하고 성복제를 지내는 의식들이 이어지는 그 시간만큼 나 자신이 삶에 대해 열렬해지던 때가 또 있었을까. 명확한 죽음 앞에서 삶도 명확해졌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자의 육신을 눈앞에 두고 삶에 대해 열심을 다짐하는 오롯한 시간이었다. 내 다짐이 더 뜨겁고 간절할수록 장례의 의미는 깊어지고 죽은 자와의 관계는 더 두터워졌다.우리 집 베란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전망을 안고 있다. 왼편 테니스장은 살아있음을 음미하기에 좋고 오른편 봉분은 죽음을 명상하기에 더 할 나위 없는 풍경이다. 생사가 원래 같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곳이다.삶의 충동인 테니스장과 죽음의 집인 봉분이 환한 햇살 아래 거리낄 것 없이 어우러지고 있다. 귀를 열면 약동하는 생명의 환호성을 들을 수 있고 눈을 돌리면 언제나 고즈넉한 봉분을 마주 볼 수가 있다. 삶과 죽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전망이 이 공간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 십년 넘게 이 집을 지키고 있다.산책길일까, 테니스장과 야산 사이의 작은 오솔길로 초로의 할아버지와 예닐곱 손자가 손을 맞잡고 올라간다. 호기심 많은 손자의 해찰에 할아버지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호흡을 고른다. 그들 속에 삶이, 또한 죽음이 있다. 삶과 죽음의 두 얼굴이 사이좋게 그들의 등 뒤를 따르고 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 "유려한 문장, 숙련된 내공 느껴져"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7사람의 14편이었다. 각기 주제가 다른 작품들로 특정한 공간, 사물, 상념의 세계를 사유의 깊이로 짚어내어 준 보편성을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삶의 체험을 중심축으로 확고한 주제와 다양한 소재를 결합하여 의미를 형상화시켜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당선작 한 편을 선하여야하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보다 세심한 심의가 필요했다. 무엇을 말하려하고 그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에 관점을 두었다.본심 2차 심사에서 김응숙의 <마당>, 양태순의 <두레>, 조현미의 <민달팽이의 노래>, 손훈영의 <이중주> 수필작품을 선정하여 놓고 이들 작품들이 지닌 단점을 골라내는데 시선을 모았다. 수필문학이 문학작품으로 승화되는 데는 일상적 사실체험에 대한 심도 깊은 사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어떤 사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실에 대한 필자의 사고를 천착하는데 있다. 최종심에는 <이중주><민달팽이의 노래>를 두고 당선작을 선별하다가 수필 <이중주>를 당선작으로 정했다.수필 <이중주>는 아파트 베란다를 열면 테니스장이 보이고 테니스장을 조금 벗어나면 봉긋한 봉분 세 개를 감싸 안고 있는 야트막한 동산이 보인다. 활기찬 호흡으로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죽은 이들의 안식처가 생멸의 크기로 공존하는 이중주의 연주가 이 수필의 주제이다. 유려한 문장으로 펼쳐내는 이 수필은 필자의 숙련된 내공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문장은 의미를 담는 그늘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문장들의 조합은 감동의 크기로 독자의 감성을 흔들게 한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소감] "나날의 기록, 끊임없이 쓰고 싶어"

의식의 진공상태는 언제 오나? 신춘문예 당선통지를 받았을 때 온다!소식을 받고 극장으로 간다. 극장 안 어둠만큼 혼자 울고 웃기에 적당한 장소가 있을까. 나에게 극장 안 어둠은 언제나 진통제였다. 부드러운 벨벳 같은 어둠에 오두마니 안겨 당선의 희열을 온전하게 궁굴린다. 감당할 수 없는 황홀감이 새나가지 않도록 어금니를 꽉 깨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홀림의 순간.그 순간을 사무치게 각인하기 위해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는다.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회의와 열정의 길항작용이었다. 재능에 대한 회의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이 하루하루를 이어 나갔다. 문학이 아니라 단지 발설에 가까웠던 내 글쓰기였다. 기적과도 같은 일은 지치지도 않고 이어지던 그 발설로 인해 내 존재가 새로워졌다는 것이다. 증오와 고통의 거친 누더기를 벗어던지고 평온이라는 깨끗한 순면 옷으로 갈아입게 되었다.물은 99도씨에서는 끓지 않는다. 반드시 100도씨에서만 끓는다. 그러니 100도씨까지 가려면 끊임없이 쓰는 수밖에 없다. 그저 하루에 정해진 양을 묵묵히 쓰는 수밖에 없다. 기쁨도 슬픔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쓰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는 신이 내려 준 글쓰기 재능은 없는 것 같다. 허나 재능이란 열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나는 분명 재능이 있다. 나날이 저물어가는 눈동자이지만 시력이 작동되는 한 쉬지 않고 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숨을 쉬고 밥을 먹듯 그냥 나날들을 기록하고 싶다. 이 사실이 내가 가진 유일한 진실이다.글 판 주변에서 쭈빗거리고 있던 나를 발견해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다. 밀실에서 홀로 시들어버리지 않게 해준 나의 광장, 수필사랑 문우들과 두 분 선생님,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삶에서 희망 발견하는 시각 뛰어나"

신춘문예라는 제도는 한 편의 작품을 뽑는 일이지만 한 사람의 시인을 문단으로 불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한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응모자가 습작에 쏟아 부은 훈련의 흔적까지 읽으려고 한다. 시와 그 시를 쓴 사람을 같이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그런 기준으로 작품을 판별할 때, 구태의연한 서정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시를 꿈꾸고 있는지, 시에 끌어들인 특수한 성격의 언어들이 이 세계의 보편적이고 균형적인 감각을 확보하고 있는지, 그리고 발설하고 싶은 개인의 일과 발언해야 하는 집단의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살펴보게 된다.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것은 모두 9명의 작품이다. 말을 다루는 솜씨들이 뛰어나 다들 오랜 습작을 거쳤으리라 짐작되는 작품들이었다. 그렇지만 내면의 울림이 느껴지는 중량감은 대체로 부족해 보였다.우리는 그 중 5명의 작품에 주목하였다. 정재돈의 <산낙지>, 이시윤의 <4분의 3박자로 반달이 지나간다>는 낯선 이미지를 충돌시켜 새로움을 구하고자 하는 작품들이지만 아직은 덜 익어 어색한 느낌이 강했다. 서귀옥의 <망중한>은 안정된 호흡으로 주제를 의도대로 차분하게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찌 생의 잔해들과 같은 낡은 표현을 하루바삐 걷어낼 줄 알아야 새로운 시의 나라에 당도하리라 생각한다.이동한의 <사과>는 깜찍하고 활달한 상상력, 군더더기 없는 언어 운용 기법이 매혹적이어서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어깨를 겨루었다. 그런데 시의 뒷부분이 공허한 말장난으로 마무리되는 점이 결정적인 흠이었다.그리하여 결국 당선작은 김상현의 <두더지 반지하 신혼방>으로 결정되었다. 죽은 두더지의 몸에 깃들어 사는 벌레를 통해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을 길어 올리는 시인의 시각은 예사롭지 않다. 오밀조밀한 감각의 배치도 뛰어났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우리는 만만찮은 필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죽음에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당선작의 온기가 이 냉랭하고 삭막한 세계의 불꽃이 되기를 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글쓰기로 혼 뺏겼던 한 해 소망 이뤄"

내가 글을 쓰면 잘 될 것 같으냐, 점집에 가 물을 때마다 그쪽 사람들은 말한다. 글 쪽과는 잘 맞습니다만, 그냥 취미로만 쓰라고, 쓰면서 행복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그런데 지난해 참 이상하다. 9월에 3일 간격으로 문학상을 받았다. 김유정 신인문학상 시 부문 당선과 근로자 문화예술제에서 최고상인 대통령 대상을 역시 시를 통해 받은 것이다. 정부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그저 생계의 길 위에서 줍는 법만 익힌 개미, 그런 개미 한 마리가 구름 위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그 옛날 우체국 계단에서 글 봉투를 품고 있던 한 아이의 눈망울을 생각하였다. 개미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은 그 아이의 반짝이는 까만 눈망울을 닮았을 거라고 상상해보았다. 콧날이 시큰해졌다.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서, 신문에서 오려 벽에 붙여놓은 201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사진을 바라보았다. 2년이 흘렀고, 사진 속에 한 자리에 내가 앉아야 할 일이 생긴 것.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였다. 고백하건대, 사진 속의 저 현장 속으로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었다. 올 여름방학 기간에만 시 50편, 동시 35편, 단편소설 1편을 쓴 게 사실이었다. 혼을 빼앗겼다는 표현이 맞다. 혹시 내가 이렇게 창작에 홀려 내 정해진 팔자를 바꿔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기호지세, 호랑이를 탄 기세로 끝까지 몰아가야 한다는 생각. 도중 내려오면 호랑이에게 먹힌다는 생각을 하였다.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북일보 사에 감사의 말씀 올린다. 글눈을 뜨게 해주신 우석대 문창과 교수님들과 제 옆을 지켜준 문우들께 우체국 계단에서 망설이던, 낯 잘 가리는 그 아이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고 거듭 감사의 말씀 올린다. 글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점괘는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나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겠다. 끝으로 (달려라 검정분필) 제자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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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아기들쥐와 허수아비 - 이명준

텅 빈 들판에 늙은 허수아비가 혼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북풍이 불어와 빈 들판을 한 바퀴 휘돌고 지나간 뒤였습니다.벌써 이렇게 추운걸 보니 올 겨울 동장군도 꽤나 극성이겠군.허수아비가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립니다.할아버지! 윗도리 잘 여미세요.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참새들이 허수아비에게 소리쳤습니다.그때, 논두렁 돌 틈 사이에서 들쥐 두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한 마리는 아직 어린 아기 쥐였고 또 한 마리는 제법 쥐 꼴을 갖춘 큰 들쥐였습니다.빨리 따라 와!먼저 돌 틈을 빠져나온 큰 놈이 뒤따라 나온 작은 쥐를 돌아보며 소리쳤습니다.오빠! 무서워!작은 들쥐가 허수아비를 가리키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습니다.야! 저건 허수아비야! 사람이 아니라고!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다시 몸을 돌린 아기들쥐가 할아버지 차림의 허수아비를 뚫어지게 쳐다봅니다.오빠! 저 할아버지 눈 좀 봐. 나를 노려보고 있어.괜찮아! 이 바보야. 할아버지 얼굴은 그림이야!오빠의 큰소리에 안심이 되는지, 동생들쥐가 오빠 뒤를 살금살금 따라 걷습니다.며칠 전, 들쥐남매는 황조롱이에게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엄마를 잃은 들쥐남매는 무섭고 슬퍼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울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었습니다.다음 날, 보다 못한 옆집 왕쥐 아주머니가 찾아 왔습니다.얘들아! 그렇게 운다고 엄마가 돌아오니? 쯧쯧!왕쥐 아주머니는 어린 남매가 불쌍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습니다. 들쥐남매는 왕쥐 아주머니를 보자 엄마가 생각나 더욱 슬펐습니다.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이제 돌아오지 않아! 너희들도 엄마 따라 가고 싶니?왕쥐 아주머니의 말에 아기들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엄마 따라 가고 싶다고?왕쥐 아주머니가 눈을 더 크게 뜨고 묻자 아기들쥐는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엄마는 갔지만 어린 너희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될 거 아니야!살아야 한다는 왕쥐 아주머니의 말에 아기들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하늘나라에서 엄마가 너희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실거야.왕쥐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오빠들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어떻게든 많이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해. 이렇게 울고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뭣이든 찾아 먹어.왕쥐 아주머니가 가고 난 뒤, 들쥐남매는 다시 기운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들쥐들의 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배고픈 들쥐남매는 어떻게든 벼 낟알을 주워 먹어야 했습니다. 논둑 아래 골을 따라 조심스럽게 오빠를 따라 가던 동생이 걸음을 멈췄습니다.오빠! 이제 그만 가! 여기서 찾아도 되잖아!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나온 아기들쥐는 허수아비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무서워 오빠를 다시 불러 세웠습니다.너, 배 안 고파?배고파.그러니까 허수아비 밑에 가야 먹을 게 많단 말이야.왜?참새들은 허수아비 가까이 안 가거든. 그러니까 허수아비 밑에는 벼 낟알이 많이 남아 있다고.오빠의 말을 들으니 그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기들쥐는 무섭게 생긴 허수아비 가까이 가는 게 못내 찜찜했습니다. 허수아비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기들쥐는 오빠 뒤에 바짝 다가붙었습니다.오빠! 이젠 됐어! 그만 가!오빠들쥐는 하는 수 없이 허수아비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벼 낟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이런 곳을 잘 살펴보라고.오빠들쥐는 지푸라기를 들춰 보이며 동생에게 벼 낟알 찾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추수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논바닥에는 제법 많은 낟알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배가 고팠던 들쥐남매는 열심히 낟알을 주워 먹었습니다.맛있지?응, 맛있어.오빠의 말에 어린 동생이 벼 낟알을 오독오독 씹으며 대답했습니다.들쥐남매가 한창 벼 낟알을 까먹고 있을 때였습니다.얘들아! 얘들아! 어서 숨어!논 가장자리에 서 있던 허수아비가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오빠들쥐가 고개를 돌리자 논두렁 아래에서 들고양이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야! 뛰어! 빨리 뛰어!놀란 들쥐남매는 무작정 앞으로 뛰었습니다.얘들아! 이리 들어와!허수아비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들쥐남매는 허둥지둥 허수아비의 바짓가랑이로 들어가 기둥을 타고 올라갔습니다.됐어. 이젠 안심해도 돼.허수아비는 가슴까지 올라 온 들쥐남매를 가만히 끌어안았습니다.할아버지, 고마워요.무작정 오빠를 따라 올라온 아기들쥐는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오빠! 여기가 어디야?허수아비 할아버지의 품속이야.할아버지 품속이라고?아기들쥐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괜찮아. 할아버지는 너희들을 미워하지 않아.허수아비가 조용히 말하자 그때서야 아기들쥐가 마음을 놓았습니다.할아버지, 춥지 않으세요?할아버지, 여기 언제까지 서 있을 거예요?들쥐남매는 앞 다투어 허수아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얘들아, 조용히 해라. 들고양이가 듣고 있어.오빠들쥐가 허수아비의 허리춤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들고양이가 허수아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아무래도 너희들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들쥐남매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들고양이가 할아버지 몸속으로 올라오면 어떻게 해요?오빠, 우린 집에 어떻게 가?아기들쥐가 겁을 잔뜩 먹고 울먹였습니다.걱정마라. 그럴 일은 없을게다.허수아비가 들쥐남매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바짓가랑이를 단단히 여몄습니다. 하지만 들고양이는 쉽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허수아비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불쌍한 들쥐남매들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걱정 할 것 없다. 내 품속에 있는 동안은 걱정할 것 없어.허수아비는 어린들쥐들을 꼭 보듬어 안았습니다.차가운 소슬바람이 마른 지푸라기를 한 차례 쓸고 간 뒤였습니다. 허수아비 주위를 맴돌던 들고양이가 천천히 논둑길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얘들아! 이젠 들고양이가 돌아갔어. 마음 놓고 내려가서 놀아도 돼.허수아비는 자신의 발밑에 수북이 떨어져 있는 벼 낟알을 보았습니다.멀리 나갈 필요 없어. 내 발 밑에도 낟알은 많이 있으니까.들쥐남매는 기둥을 타고 내려와 허수아비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나왔습니다. 허수아비의 말대로 발밑에는 벼 낟알이 소복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들쥐남매는 허수아비 발밑에 있는 벼 낟알을 열심히 주워 먹었습니다.오빠! 이제 배불러.벼 낟알을 실컷 먹은 아기들쥐가 꼭 작은 밤송이 같았습니다.아이! 추워!해가 서산에 걸릴 때 쯤 허수아비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할아버지! 추우세요?그래, 이제 추워지기 시작하는구나.여름 내 입고 있던 허수아비의 낡은 저고리가 겨울바람에 떨고 있었습니다.할아버지! 걱정 마세요. 우리가 도와 드릴게요.들쥐남매는 마른 지푸라기를 허수아비의 몸속으로 물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어깨, 가슴, 팔, 허수아비의 몸속 구석구석 마른 지푸라기를 채워 넣었습니다.아이구! 얘들아 급하게 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해. 천천히.허수아비의 몸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허수아비 몸속에 지푸라기가 채워질수록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너희들 덕분에 올 겨울은 춥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구나.낮게 깔린 구름이 금방이라도 굵은 눈송이를 뿌릴 것만 같았습니다.얘들아, 올 겨울은 내 품속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니?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들쥐남매가 허수아비의 허리춤을 비집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들판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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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심사평] "짧고 간결한 문장·구성력 뛰어나"

예선을 거쳐 본선에 넘어온 작품이 7편이었다. 일곱 편 중에 4편을 내려놓자 최후까지 남아 경합을 벌인 작품이 김은경의 <말주머니 학교>, 최영숙의 <겨울 손님>, 이명준의 <아기들쥐와 허수아비>였다.그 중 <말주머니 학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뛰어나 호감이 갔으나 한편으론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겨울 손님>은 첫 도입부부터 읽는 이로 하여금 시종 긴장을 하게 했다. 그 점 새로운 시도라 여겨져 칭찬을 하고 싶다. 문장 또한 흠 잡을 데 없이 탄탄하고 논리적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동화보다는 성인 소설 쪽에 가까운 작품이다. 동화 문장은 시적이어야 한다는 말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아기들쥐와 허수아비>는 세 편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 잘 짜여진 구성력은 웬만한 기성 작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잃은 아기들쥐 남매가 종결부에서 허수아비의 몸통 구석구석에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못해 가슴 뭉클한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난 들쥐남매의 눈앞에 흰 눈으로 덮인 들판의 장면을 설정해서 끝을 맺은 것은 아무나 그려낼 수 없는 참으로 멋들어진 기교가 아닌 가 싶다. 따라서 <아기들쥐와 허수아비>를 당선작으로 올리는데 추호의 망설임이 없었음을 밝혀둔다.끝으로 작가를 지망하는 젊은 문학도들은 한두 번의 신춘문예 도전으로 선 외로 밀려났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기를 바란다. 수십 편, 때로는 수백 편의 응모작 중에 당선작은 오직 한 편. 그 한 편을 위해 시지프스의 바윗돌을 굴리고 또 굴리는 각고의 노력을 쏟다보면. 부디 정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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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소감] "꿈·사랑 품을 수 있는 동화 쓸 터"

겨울비가 촉촉이 내려앉아 눈부시게 맑은 날.전북일보입니다. 이명준선생님 되시죠?한참동안 전화기를 들고 있어도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는지 실감나지 않았습니다.전화를 끊고 나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세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자장가 삼아 들려주었던 동화.잠이 와 보채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잠자리에서 지어낸 즉석동화를 들려주었던 일들이 어제 같은데 벌써 두 딸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어린 아이들을 품안 가득 안고 있습니다.살아오면서 알게 된 것은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예쁜 옷이나 맛있는 음식보다 더 소중한 것이 꿈과 사랑을 품을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동화는 쓰면 쓸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어린아이들이 꿈과 사랑을 품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예쁜 동화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무딘 연필을 보고도 늘 멋진 만년필이라 칭찬하시며 기꺼이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신 장호병 선생님, 아동문학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며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권영세 선생님, 심후섭 선생님, 박방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지금도 타는 열정으로 문예아카데미 강의실에 모여 있을 문우님들과 당선의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제 동화를 어여삐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전북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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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⑩ 전문가 좌담회] "역사적 가치 철저히 고증…관광콘텐츠 개발 서둘러야"

백제고도 잠에서 깨다기획취재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유적의 보존관리 부실과 가시적으로 보여줄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익산의 왕궁리와 미륵사지는 역사적인 연결고리 없이 따로 떨어져 있어 고도의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심심하다는 평가를 하는 이유다. 백제고도 잠에서 깨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역사적 가치를 철저히 고증하고,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가시적 관광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또 역사학계와 행정이 꾸준히 연계해서 유적관련 정책방향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일시장소 = 12월 18일 전북일보사 편집국장실△사 회 = 김세희 기자△토론자 = 김미란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상임이사, 김주성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박광수 익산시청 역사문화재과 과장, 홍경술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사회= 지난 7월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으로 내세우기엔 아직도 많은 과제가 쌓여있다.△김주성= 우리가 두 개의 세계유산을 갖고 있다는 건 자랑스럽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두 유적지에 각각 탑 하나씩만 있고, 고고학적인 주춧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두 번, 세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다른 지역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비교해봤을 때, 평가에서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홍경술= 세계유산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세계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했을 때 보편적이고 후대까지 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장들은 세계유산의 보존과 관리보다는, 그 유산을 활용한 관광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관리부분에 투자를 많이 해 유적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김미란= 등재유산으로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서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장기프로젝트를 가지고 유산자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연구는 유산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다. 유적은 역사성을 담보할 때, 보는 사람들에게 더 큰 파급효과를 낸다.△박광수=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련 행정을 담당하다 보니 할 말이 많다. 김 이사님께서는 등재 유산에 대해 학술적 규명을 바탕으로 그 가치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때문에 익산시에서 매년 2번 정도 전국적인 학술대회를 열었다. 앞으로도 백제학회, 한국 고대사학회 등 전국에서 열리는 역사 관련학회에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 관련 예산을 4000~5000만 원 정도 편성했다. 마한, 백제라는 틀 속에서 익산에 있는 세계유산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규명해 내기 위한 학술대회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김주성 교수님께서는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이 세계유산 평가를 할 때 다른 지역에게 밀리는 게 아니냐고 하셨다. 우리 역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실사를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미국의 전문가를 2번 초청해 예비실사를 진행했다. 당시 전문가들이 익산의 문화유산을 실사할 때, 공주나 부여의 유산을 실사할 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다. 미륵사지 유적과 왕궁리 유적이 공주 부여의 그것보다 더 역사적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익산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통해 어떻게 지역경제를 되살리며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 전문가분들께서 큰 관심을 가지고 조언과 질책을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김주성= 탑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땅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줬다는 사실, 브랜드로서 최고의 가치가 있어서다. 하지만 익산 세계유산은 브라질의 이구아수폭포나 미국의 그랜드캐년처럼 수려한 경관을 가진 건 아니다. 따라서 그 가치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우리의 과제다. 관광객들에겐 익산과 관련된 백제의 역사보다 관광요소들이 매력을 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김 기자가 로마의 뜨레비 분수를 소개했었는데 사람들에겐 뜨레비 분수가 언제 어떻게 조성됐는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근처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을 소개하는 게 그 곳을 갔다왔다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즉 우리가 역사성을 부각시킨다고는 하지만 관광객들은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지는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샘솟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박광수= 익산 세계유산은 매장문화라 시각적인 감흥을 찾기 힘들다. 따라서 익산시에서는 차세대실감형 콘텐츠사업에 5억 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했다. 3D기술을 통해 홀로그램을 만든다든지, 가상현실시스템을 구현하는 콘텐츠다. 현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옛 토목건축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구(遺構)나 매장문화재 건물에 탑재하면 해당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걸로 생각한다.△김미란= 두 분 말씀에 공감한다. 그래도 유산의 활용을 위해선 학문적 연구와 실용적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 현재 익산시가 세계유산과 관련해 진행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민들과 공유할 필요도 있다 시민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어서다. 연구단계에서부터 시민들과 공유를 해서 함께 가자는 의미다. 물론 그렇게 되면 힘들고 더딜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우리 대에 사업을 마무리하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밑바탕을 제대로 깔아놓는 것이 우리 세대에서 해야 하는 과제다.-사회=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갔더니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문화재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관광객들 역시 이런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경우 고대 유적들이 역사적 연결고리 없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고도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박광수= 문화재와 사람이 어우러진 경우가 외국에는 많다. 그 자리에서 발굴이 이뤄지고, 이를 볼 수 있도록 해서 관광자원화한다. 반면 한국은 유적이 발굴되면, 주변을 철거해버리고 해당 유적만 보존한다.특히 익산의 경우는 세계유산들 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고 각 유적간 거리도 멀다. 심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주나 부여, 공주는 문화재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다. 익산과 다른 지역의 세계유산을 비교할 때 이런 차이점을 고려하면서 대안을 내주셨으면 좋겠다.△김주성= 익산 유적지는 앞으로 우리가 그림을 채워나갈 흰 도화지와 같다.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간의 거리는 멀다. 하지만 왕궁리 옆에는 제석사가 있다. 이 두 유적을 하나로 묶고, 앞에 있는 도로를 오밀조밀한 골목길로 꾸며보는 건 어떨지 싶다. 이후 그 골목에 상권을 들어서게 하는 방법을 제안해본다. 그리고 보석가공단지와 코스를 연결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보석가공단지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산업이다. 미륵사 같은 경우는 그 위의 산에 사자사가 있고, 미륵산성이 있다. 다소 거리가 있지만 옆에 쌍릉이 있다. 이 부분도 연결해볼 만하다.유럽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유명한 관광지 빼고는 많은 부분들이 골목관광이다. 골목길을 따라가며 느끼는 정취를 많이 강조한다. 익산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김미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연구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익산시에서 홀로그램을 활용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복원이 잘못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 연구를 바탕으로 수정 보완한 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복원해야 한다.△홍경술= 아직 IT기술이 유물을 완전히 복원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홀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주에서 사용하는 경우를 봤는데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매장문화와 유구를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전문해설사가 사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효과가 있다.스토리텔링도 다양화해야 한다. 백제 이외 다른 시대와 연관 지은 역사 이야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등을 소재로 쓸 수 있다.△김미란= 행정에서 정책을 입안할 때, 학계와 연계해 꾸준히 갈 필요가 있다. 유적 관련 행정에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하면서, 앞서 나온 대부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박광수= 동감한다. 김이사님 말대로라면 가장 바람직한 유적 관련 행정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익산시가 큰 틀에서는 역사와 행정이 연계해서 가고자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현재 5년에서 10년까지의 큰 플랜을 가지고 있다. 익산이 지향하는 방향은 역사문화도시다. 2차년도 사업으로 역사문화도시를 위한 기본 연구 용역을 국토학회하고 같이 하고 있다. 도시계획측면에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사이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 것이냐, 도시 전반차원에서는 어떻게 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관련 용역 등을 추진하고 있다.△김주성= 익산은 천도설이 있을 정도로 백제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왕궁리와 미륵사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무왕이 사비와 익산을 왕래한 통로, 즉 어도(御道)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계획 속에 이런 역사적 가치가 묻히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박광수= 공감한다. 기존의 도시계획은 역사성에 대한 고려 없이 구획을 바둑판처럼 나누고 도시를 만들어나갔다. 적어도 익산이 그러면 안 된다. 도시 계획을 입안할 때, 어도를 찾는 건 우리의 숙명이다.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려면 이런 부분을 장기 계획 속에 넣어놔야 한다. 유적과 유적이 연계돼 역사성과 고도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길을 만들 계획이고, 이런 관점에서 용역을 진행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사회= 한국도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을 만든 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하지만, 다소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홍경술= 본래 취지는 백제역사지구가 있는 지역을 한데 묶어 관리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각 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유적 보존관리와 관광마케팅의 성격이 달라 통합하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통합관리사업단에서 전담하다보면 자치단체의 실정을 모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힘들다.△박광수= 통합관리사업단의 업무를 정확히 알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사업단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통합 홍보나 모니터링만을 담당한다. 문화재 현장에서 이뤄지는 사업은 안 한다. 즉 전체 사업을 담당하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체적인 고도 보존과 세계유산 통합 검사는 문화재청에 담당하고 있고, 유적관리와 관광마케팅은 자치단체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큰 기관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사회= 전북과 충남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 몸으로 가야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빛낼 수 있다는 게 태생적 기반이자 특징인 것 같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각자만의 가치를 구현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빛낼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김주성= 7세기 백제문화의 예술적 완숙미가 왕궁리와 미륵사지에 집약돼 있다. 그 가치를 차별성 있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당대 신라와 고구려의 불상과 대비시키면 백제불교미술의 우수성을 확연히 볼 수 있다. 또 동아시아에서 미륵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계속 탐구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조명될 수 있다고 본다.△홍경술= 흔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공주나 부여는 패망 역사라고, 부정적인 기억만 있는데 익산의 미륵사지나 왕궁은 무왕이라는 절대적인 부흥기를 가지고 있었을 때이다. 최전성기의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한에서 백제로 가는 연결고리가 남아있기도 하다. 또 공주나 부여보다도 익산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익산에 대해 그런 긍정적인 평가와 관심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김미란= 유럽의 문화유산은 시민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문화유산들이다. 우리는 사이트만 있는 문화유산이라 강점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미륵사지는 백제 고도의 정신문화가 담겨있다. 미륵신앙 관련 종파인 요식종인데, 관련 사찰들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김제 금산사다.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정신문화를 조명해서 부각시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박광수= 우리 익산시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제시됐다고 본다. 현재 익산시가 하고 있는 역사문화콘텐츠 사업에 관해서는 문화재청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기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북도의 지원이 미흡한 것 같다. 가령 미륵사지와 금마 사이에 존재하는 석상들이 풍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치가 있는데 정작 탐방로가 없다. 이를 연계하는 도로가 지방도다. 세계유산도 됐고 전북을 대표하는 관광지라면 전북도에서 탐방로 조성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끝)

  • 기획
  • 김세희
  • 2015.12.25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⑨ 백제역사유적지구 실태] 훼손·균열·파손…세계유산 등재 문화재 곳곳 부실 관리

세계유산 등재의 근본 목적은 보존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잘 활용해서 관광수입을 올릴 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을지를 우선순위로 정해야 합니다.한국 백제사 1호 박사인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의 말이다.역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문화재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백제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에도 문화재 보존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세계유산의 관광자원화를 위해서는 유산의 정확한 고증,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이 전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한국의 세계유산은 깨지고 뒤틀리고 있다는 지적이 매년 제기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백제 역사지구에 앞서 등재된 여러 유적들이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안전도 검사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받는 등의 문제를 보이고 있다. 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실태를 파악해 본다.△유네스코 등재만으로 끝? 치료가 시급한 문화재들= 지난해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 문화재청이 실시한 안전도 특별점검에서 천장균열, 기둥 옹이 탈락, 여담 균열 및 파손 등으로 보수정비가 필요한 E등급 판정을 받았다. 앞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의 첨성대, 수원화성도 상태가 심각했다. 첨성대는 표면에 지의류(地衣類)에 따른 오염과 변색, 균열현상이 조사됐고, 수원화성은 화홍문 누각 바닥 일부가 습기와 관리부실로 부식이 심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첨성대는 자동계측 모니터링이 필요한 D등급을, 수원화성은 남한산성과 마찬가지로 E등급을 받았다.그렇다면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어떨까. 역시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백제역사지구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는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이다. 이들 8개의 유적가운데 5개가 E등급이 나왔다.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나성,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5층 석탑 등이 그것이다.공산성은 기초 불안정, 부분 침하, 이격(벌어짐), 돌출 등이 문제였고, 송산리 고분군은 무덤 내부의 전돌과 석회에서 열화 및 훼손이 발생한다고 지적받았다. 특히 공산성 내부 11개 구간은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위험구간으로 판정받았다. 현재 공산성은 공주대학교 주관으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있고, 송산리 고분군은 내부 보존관리상태를 조사하고 있다.부여의 나성 같은 경우 문화재 관리부실로 E등급을 받은 건 아니다. 문화재청은 보존관리를 위한 지표발굴조사, 정밀실측, 종합정비계획 수립 등이 필요한 문화재도 E등급으로 판정한다. 실제, 나성은 발굴정비가 진행되고 있다.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은 종합정비계획이 시행중이기 때문에 E등급을 받았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한 차례 무너졌다. 이 때 일제는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보수했다. 결국 일제가 바른 콘크리트 185톤을 치과 치석용 드릴로 떼어 낸 끝에, 지난 2010년 해체를 완료했다. 이달부터 본격적인 재조립에 들어갔다. 지난 16일 현장설명회가 열렸고, 기단부 가운데 세 번째 심주석을 올리는 작업이 진행됐다. 문화재청은 석탑에 대해 보수정비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익산 왕궁리 5층 석탑은 관리보존에 문제가 있었다. 표면이 이끼류, 지의류 등에 의해 오염돼 흑화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또 석탑 부재들이 일부 빠지고, 옥개성 등에 일부 균열 현상이 일어났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보존처리를 추진하고 있다.당장 보수정비가 필요하지 않지만, 문화재의 변형, 균열 때문에 정밀조사가 필요한 유적도 두 개나 있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익산 미륵사지 동탑으로 D등급을 받았다.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남측면 1층 옥개부가 일부 파손됐고, 석탑의 뼈대를 이루는 부재(部材)간 이완현상이 나타났다. 지난달 20일 들렀던 현장에서는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는 전기장치가 설치돼 있었다.익산 미륵사지 동탑은 1층 탑신 기둥, 면석, 옥개석 받침 등에 일부 균열이 관찰됐다. 특히 이 탑은 지난 1993년 복원 후 고증 논란에도 휩싸였기 때문에 문화재청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립문화재 연구소는 고증연구를 통한 재정비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연구소에서는 이 탑에 대해 구조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문화재 관리계획 유럽과 대조=우리보다 훨씬 앞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주목해 보존과 관리에 힘써온 유럽에서는 문화유산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 도시가 적지 않다. 이들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정책은 치밀하고 지혜롭다. 자치단체마다 세부적인 문화재 관리계획을 갖고 있으며, 중앙의 문화유산 관련 행정체계가 국가의 핵심부서로서 기능한다. 수십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행정체계를 마련해온 결과다. 문화유산 관리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탄력적이다. 예산이 부족할 경우 포럼을 개최해 대기업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한다.한국도 유럽과 같이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앙과 자치단체, 전문가들이 공감하고 있다.복수의 관계자는 백제역사유적지구 평가결과를 토대로 오랜 시간 유지되어온 문화재 중 보존 과학의 미비로 구조적 결함이 발견된 문화재들은 긴급 보수가 요구된다며 체계적인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문화재청 관계자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내년 신규예산으로 89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확보 예산은 주로 공주 공산성 주변 불량경관 지역 토지매입, 부여 관북리 유적 주변 토지매입 및 나성 성곽 정비, 익산 왕궁리 유적 정비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그러나 현재 문화재청은 아직 세부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상태다. 지난 4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현재 문화재청과 자치단체가 합동으로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준비단이 백제왕도 핵심유적 복원정비 기본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내년에 이르러서야 지역별단계별 세부 추진계획을 마련해 복원 정비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전문가들은 인증마크를 단 세계유산의 관리와 운영이 부실한 상황에서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김미란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유산 등재에만 무게를 실을게 아니라 평소때부터 문화유산 자체에 먼저 관심을 갖고 고증과 정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아비뇽 시청의 미쉘갈반 문화관광디렉터도 문화재 관리계획은 단기, 중기, 장기간으로 나뉘어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세우는 것이라며 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미쉘갈반 디렉터는 이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 문화재 상태 점검표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과 자치단체, 문화재 전문가와 연관시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세부계획을 세워놔야 한다고 지적했다.△예산문제 핑계되며 보수정비 미뤄= 지난해 6월 남한산성이 문화재청의 문화재특별종합점검에서 사적 57호가 E등급을, 행궁이 D등급을 받은 뒤, 경기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이효경 의원(새정치연합성남1)과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 간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다.당시 이 의원은 매년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도 이런 등급을 받은 것은 문화재 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이라며 관리부실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예산부족 때문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본지가 지난 4일 공주, 부여, 익산 등 자치단체의 해당부서에 전화를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예산부족이라는 앵무새 답변만 되돌아왔다.이들 각 자치단체들은 문화재 관리담당부서를 세분화시켜 업무를 나누고 관리대상 문화재에 대해서 정비 계획을 세워놓고는 있다. 그러나 복수의 관계자들은 관리가 부실한 문화재가 수시로 점검을 해서 전문가의 고증과 전통공법에 맞춰 정비에 들어간다면서도 긴급보수 사업비로 문화재청에 예산신청을 했을 때, 청으로부터 예산이 들어와 부족한 예산이 메꿔져야 본격적인 정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전문가들 역시 자치단체의 예산 문제 호소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장기적인 계획으로 방향성을 잡고 가야 부족한 예산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남해경 전북대 교수는 지난 3일 열린 전북역사 재조명 백제문화융성프로젝트 학술포럼에서 전북도의 백제관련유산 정비는 방치된 부분도 있고, 정비를 하더라도 기초적인 수준의 안내판, 탐방로, 잔디식재, 부분정비 등이 이뤄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관광자원화를 위해 적극적인 정비를 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남 교수는 이어 문화재 지킴이 등을 세워 문화재 정화활동 등을 할 수 있는 자생적인 보호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2.24 23:02

익산 출신 최정호 국토교통부 제2차관 "전북권 신공항, 항공수요 파악 뒤 향후 추진방향 마련"

청와대가 지난달 말 단행한 차관급 인사에서 국토교통부 제2차관에 익산 출신 최정호(57) 전 기획조정실장이 발탁됐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업무가 많은 국토교통부의 제2차관으로 부임한 그는 전북 출신으로는 오랫만에 국토교통부에서 중책을 맡으면서 전북지역 SOC 확충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정호 2차관으로부터 부임 소감과 함께 향후 활동 계획, 도내 SOC 확충을 위한 방안 등을 들어봤다.-먼저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어떤 자리인지 설명해 주시고, 부임 소감도 밝혀 주십시오.부족한 사람이 중책을 맡을 수 있도록 성원해 주신 고향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직원들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재임 기간중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국토교통부 2차관은 교통분야 업무를 총괄 관리하는 직위로서, 도로, 철도, 공항 등 국가의 주요 SOC 및 기간교통망을 건설관리해서 인적물적 이동성을 향상시키고, 경제활동 기반을 조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버스택시항공철도 등 운수분야와 더불어 물류업계 관리 및 발전, 교통안전, 교통신기술 및 R&D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최근들어 교통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진만큼, 시민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교통물류산업의 경쟁력 강화, 자율주행자동차 등 신기술 개발 및 제도적 기반 마련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앞으로 업무추진 과정에서 중점을 두는 분야는 무엇입니까.국토부의 행정은 다른 부처에 비해 현장 연관성이 크기 때문에 정책수립 단계부터 사후 관리까지 현장을 계속적으로 방문해서 문제점을 개선하는 게 중요합니다. SOC 사업 현장 뿐 아니라, 민간경제활동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가 없는지 현장 방문을 통해 점검하겠습니다. 각종 정책을 추진할 경우, 전문가, 이해관계자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는데도 주력할 방침입니다.업계학계연구기관 간담회, 주민설명회, 산하 공공기관 간담회 등을 통해 현장의 의견을 듣고, 정책방향을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 신기술 개발 등으로 인한 교통물류 산업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행정도 미래환경 변화의 모습을 미리 고려해서 제도기술 기반을 마련할 계획입니다.-전북권 주민들은 공항이 없어 불편이 큰데, 지금까지 전북권 공항개발 추진 과정과 향후 방향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우선 큰 원칙은 항공수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북지역의 국제공항 건설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 검토 과정에서 수요 등을 파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1999년 김제공항 건설이 결정돼서 사업에 착수했으나, 항공수요와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2004년 추진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현재 추진 중인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 수립 과정에서 항공수요 등을 재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만금공항 등 전북권 신공항 필요성에 대한 향후 추진 방향을 마련해 나갈 계획입니다. 검토 과정에서 현 김제공항 개발부지의 활용 방안 등에 대해서도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분석하고 검토할 계획입니다.-새만금과 관련한 SOC 확충은 완급의 문제나 투자의 효율성 등으로 인해 예산심의 때 논란이 되곤 하는데, 장단기적인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한다고 보십니까.용지개발을 촉진할 핵심기반시설은 우선 건설하되, 그 외 시설은 내부개발 수요 추이에 따라 확충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기적으로 새만금 개발 및 민간투자 유치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긴요한 핵심 기반시설은 우선 확충해야 하는데, 새만금의 각 권역을 연결하는 동서2축남북2축 도로와 항만의 조기 조성을 통해 내부용지 개발을 촉진시켜야 합니다.또한, 새만금과 수도권, 전주 등을 연결하는 광역도로인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도 차질없는 건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외 기반시설은 내부개발 수요와 투자여건에 따라 중장기적 안목에서 단계적으로 조성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도내 일각에서는 KTX 익산역을 이전하거나, 혁신도시 부근에 별도의 역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긴 안목에서 볼 때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익산역은 장항선과 호남선, 전라선이 만나는 중요한 곳으로 이전계획은 없습니다. 또한 역 신설은 열차운행 효율성 등 다양한 사항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산, 정읍, 광주송정역은 열차운행 효율성, 이용자 수, 이용객의 편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KTX 정차역으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KTX 익산역의 경우 호남고속철도,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이 통과하거나 시작되는 철도교통의 중심입니다. 하루 평균 5500여명이 이용하는 등 기존 이용객들의 불편과 고속철도 운영 효율성, 역 이전 및 신설에 따른 지자체 사업비 부담 등을 고려할 때, 현재 시점에서 이전하는 것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철도건설법(제21조)에 따르면, 원인자의 요구에 의해 운영중인 철도노선을 이전 및 신설시 원인자인 자치단체가 전액 부담하게 돼 있습니다.-호남과 영남, 그중에서도 특히 전북과 경북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나 철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도로의 경우, 지역균형 발전과 동서화합을 위해 도로망을 지속 확충하고 있으며, 철도는 현재 진행중인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 수립 과정에서 동서철도망 구축을 검토 중 입니다. 지역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동서화합을 위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을 지속 확충하고 있으며, 88올림픽 고속도로(광주-남원-고령-대구)가 최근 확장 개통됐고, 새만금-포항 고속도로는 설계 중입니다. 물론, 무주-대구도 계획을 검토 중인 상태입니다. 동서간 인적물적교류를 통한 화합과 내륙지역 발전을 위해 전주~김천, 광주~대구 등 동서철도망 구축을 검토 중 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6~2025)의 수립과정에서 사업의 경제성, 정책적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최정호 2차관은] 금오공고 1기 출신교통분야 전문가최정호(57익산 망성)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교통분야 전문가로 통한다.국토교통부 제2차관 자리가 공석 상태였을때 청와대나 정부 부처 안팎에서 교통분야 전문가인 그가 발탁될 것이란 관측이 나돌았는데 역시 예상한대로 그가 발탁됐다.튼튼한 배경이 있는것도 아니고, 청와대에 근무 한번도 한적 없는 그였지만, 교통에 관한 한 최정호를 당할 사람이 없었던 점이 발탁의 배경이었다는 후문이다.익산 망성에서 태어나 익산 성북초를 졸업한 그는 이후 강경중을 거쳐 경북 구미에 있는 금오공고(1회)에 진학했다.금오공고는 신설 당시 정부에서 전액장학금 지급, 기숙사 생활, 취업 보장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는데 전국에서 360명이 선발됐다.하지만 그는 금오공고 설립 취지와 달리 엔지니어의 길을 걷지 않았다.부산 차량재량창에서 육군 장기하사로 5년간 복무한 그는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다.금오공고 졸업생은 군에서 5년간 장기하사로 의무 복무를 해야했는데 그는 그 과정에서 대학시험을 준비, 25살때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재학시절 행정고시를 준비해 4학년때 제28회 행시에 합격한 그는 교통부에서 첫 공직을 시작했다.아무런 재주도 없는데 성실하게 묵묵히 일하다고 보니 차관까지 오게됐다고 말한 그는 지금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종종 찾아뵙는 효자라고 한다.

  • 기획
  • 위병기
  • 2015.12.21 23:02

이연택 前 새만금공동위원장 "재정 일원화 이뤄져야 새만금 탄력…특별회계 설치를"

새만금공동위원장을 2년간 맡아오면서 새만금사업의 큰 틀을 잡아왔던 이연택 전 위원장이 바통을 후임자에게 넘기고, 지난 8일 전북대학교 석좌교수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장관, 청와대 수석, 대한체육회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아온 그는 최근 2년간 새만금사업의 조타수 역할을 해온데 이어 이제 고향인 전북에서 강연을 통해 지역사랑과 국가발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연택 전 새만금위원장을 만나 그간의 소회와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먼저 새만금공동위원장 임기 2년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개인적으로 저는 새만금사업이 기획되는 순간 정책실무자로 참여했고, 대통령을 모시고 기공식에도 참석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저는 정책개발팀의 고문으로 참여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새만금 위원장도 맡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새만금위원장이란 직책을 맡는 것 여부에 관계없이 항상 관심을 가지고 발전방향에 대한 고민을 해온 게 사실입니다. 농업용지로 시작했던 사업을 복합단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저는 범도민새만금추진협의회 회장으로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새만금사업 전체를 100%로 봤을때 저는 지금 절반쯤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면서 아쉬움이나 보람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중국 푸동 지구의 경우, 새만금지구에 비해 단 1년 먼저 시작했는데 지금 새만금과 비교해 보십시오. 푸동지구는 규제가 거의 없는 제2의 단계를 향해서 뛰는 데 반해 새만금지구는 기반시설을 이제야 닦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왜 아직 이 단계에 머물러 있나 라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습니다. 중국은 토끼처럼 뛰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천천히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국비로 추진하는 국책사업인데도 이렇게 지지부진한 것은 중앙정부의 추진의지 미흡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권이 여러번 교체되는 동안 새만금사업은 심하게 표류했다는 얘기지요. 정권이 들어설때마다 새만금사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면서 많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위원장으로서 재임하는 동안 보람 또한 컸습니다. 시기상조론, 경제적 타당성 여부등 각종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켰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새만금개발청의 신설은 가장 상징적인 일 입니다. 무려 6개 정부 부처가 분할 관리하던 새만금사업의 추진체계를 일원화 함으로써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첫 내부개발 사업인 새만금 동서2축도로(새만금에서 전주-대구-포항 간의 동서횡단 고속도로)의 착공이나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때 한중 경협단지 추진을 포함한 투자유치의 큰틀을 정립한 것도 보람있는 일입니다. 앞으로 새만금 개발청의 권한이 보완돼야 하는데 특히 회계체계, 인사권 등의 실질적 통합체제가 보완돼야 합니다."-그러면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입니까.새만금 특별회계의 설치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조직의 일원화가 이뤄진 현 상황에서 재정의 일원화가 이뤄져야만 새만금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새만금 관련 예산이 각 부처에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 신속한 업무처리는 불가능합니다. 원스톱 처리를 이루려면 명실상부한 통합청 기능을 할 수 있게 해야하는데 조직의 일원화가 이뤄진 만큼 재정 일원화가 시급하며 그 골자는 바로 특별회계의 설치입니다. 공동위원장인 황교안 총리가 새만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지역에서 열린 새만금 관련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열정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잘 될 것으로 봅니다.-최근 전북대 석좌교수를 맡았는데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행정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저는 그동안 경희대, 중앙대, 동국대 등에서 꾸준히 강의를 해 왔습니다. 전북대에서도 여러번 석좌교수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시간이 여의치않아 고사하다, 최근 이남호 전북대 총장께서 간곡히 요청해서 맡기로 했습니다. 한달에 한두번씩 전북대에 가서 지역발전의 해법은 무엇이고, 한국사회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후배들과 함께 고민해볼 생각입니다.고향에서 석좌교수를 맡은 것은 후배들에게 전북의 도전정신과 진취적 기상을 일깨우기 위해서 입니다. 평소 제가 느낀 점에 대해서도 사례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대화하고 싶습니다.-최근 전주에 소석 이철승 기념관을 설립하기 위해 한창 노력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우리 지역은 인물을 알아주고 키우는데 대단히 인색합니다. 정치적 평가는 놔두더라도, 솔직히 우리 지역사회에 소석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장서서 소석 기념관을 만들려고 합니다. 전주시장에게 협조를 이미 요청했고, 김선홍 전 기아회장, 박재윤 전 대법관, 박실 전 국회사무총장, 김광호 전주고 총동창회장, 유균 전 언론인 등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금운동을 해서 내년에는 착수할 예정입니다. 전주 서신동에 있는 소석 생가를 기념도서관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대한체육회장을 두차례나 역임한 인연 때문인지 아직도 체육계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고향이 잘되는 일이라면 당연히 제가 힘을 보태야지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도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분할된 곳은 없기 때문에 우리도 통합으로 가야 합니다. 브라질 리우올림픽이 끝난뒤 내년 10월에 통합하는 쪽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더 빨리해도 된다고 봅니다. 전북의 경우에도 조속히 통합을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무주 태권도대회가 성공하는데 힘을 다하겠습니다.무주가 중국 소림사처럼 태권도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상징성을 가져야 합니다. 명인전, 태극권같은 것도 필요하고, 무주가 성지화돼야 전북이 살아납니다. 국기원을 무주로 이전하고 태권도 관련 시설이나 단체도 무주에서 하나로 통합해야 합니다. 또한 U-20 축구대회 유치가 이뤄진만큼 이를 계기로 전북이 도약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연택 위원장은- 올림픽월드컵 등 굵직한 대회 유치 '일등공신'이연택(79) 전 새만금위원장은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출향인사중 가장 애향심이 투철하고, 활동성 또한 왕성하다는 평을 듣는다. 조상대대로 고창 성내에서 터전을 잡고 생활해 왔기에 사람들은 그의 고향을 고창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이연택 전 위원장이 실제 태어나고 10년 넘게 자란곳은 김제다.부친 직장으로 인해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4학년까지 김제 중앙초를 다니다, 정읍 동초를 졸업했다. 이후 전주북중, 전주고, 동국대 법대를 졸업했다. 7남매중 6번째인 그는 큰형(이길연 전 전북부지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큰형은 고창군수, 김제군수, 전주시장을 지냈으며 공직자의 표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이 전 위원장은 졸업후 공채를 통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행정요원으로 공직을 시작, 30년 넘게 행정가로 활동했다.우연인지 몰라도 그는 또한 오랫동안 체육분야에서 일하기도 했다.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총회에서 88올림픽이 결정되던 역사적인 순간, 유치 실무책임자가 바로 그다.그로부터 20년이 지난후 2002 월드컵 유치때도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비서관, 총무처 장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노동부 장관, 2002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제34대제36대 대한체육회 회장, 재경전북도민회 회장,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장, 새만금위원장을 지냈다.공직에 있을때는 물론, 퇴임후에도 풍부한 인맥을 기반으로 고향 후배를 챙기고, 고향을 위한 일에 발벗고 나서는 그는 출향인사중 최고 원로격으로 꼽힌다.

  • 기획
  • 위병기
  • 2015.12.16 23:02

취임 1주년 맞은 이남호 전북대 총장 "지역사회와 소통…명품 브랜드 만들겠다"

이남호 전북대 총장은 취임 1주년을 앞둔 13일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서한문을 건네받았다. 이 총장이 지난해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대학 구성원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출력해서 발신자에게 전달한 것이다. 당시 이 총장이 쓴 편지에는 공약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구성원들과 폭넓게 소통화합하는 총장이 되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이 총장은 가슴이 뜨끔했다. 그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각오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14일 취임한 지 꼭 1년을 맞은 이남호 총장으로부터 그 동안의 소회와 함께 대학운영 방향을 들어봤다.- 취임 당시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라는 대학의 비전과 함께 전북대의 브랜드 가치를 강조하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소회를 간략히 말씀해 주신다면.혹자는 성숙이 성장과는 전혀 별개의 개념인 것으로 곡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숙도 결국은 또다른 형태의 성장입니다. 다만, 성장이 단기적인 성과에 목표를 둔다면 성숙은 지속가능한 성장, 중단 없는 성장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전북대의 중단 없는 성장을 위해서는 우리가 앞서갈 수 있는 것,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대학이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바로 문화예술과 생태경관자원을 활용해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이같은 점에 역점을 뒀고 실질적으로 기틀을 다졌기 때문에 다가오는 새해에는 상당 부분 구체화 될 것입니다.- 전통문화의 도시에 걸맞는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는데요. 그동안 성과가 있었다면 소개해 주시죠.2016년 정부 예산에 신규 사업으로 국제컨벤션센터와 정문 겸 학생시민교류센터 신축 사업이 반영됐습니다. 이들 건축물은 모두 한옥형으로 지어서 캠퍼스의 랜드마크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우선 198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국제컨벤션센터는 덕진공원 옆 학군단 부지에 오는 2019년까지 건립할 예정입니다. 또 48억원이 투입되는 정문 겸 학생시민교류센터는 출입문 개념의 정문을 지역사회 소통공간으로 확장해서, 시민과 대학 구성원들이 서로 교류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서문(옛 정문) 부근에 30억원을 들여 지역농업산업화연구센터와 진안고원 로컬푸드마켓, 채식 레스토랑, 전북대햄 델리샵 등을 포함한 한옥타운을 조성할 방침입니다. 그렇게 되면 현 정문에서 덕진공원, 건지산으로 이어지는 캠퍼스 둘레길에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의 랜드마크가 들어서게 되고 지역사회와의 소통공간도 확대될 것입니다.- 지역 거점대학으로서 지역사회와의 원활한 소통도 중요한데요.지역사회와 대학의 소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시를 학교 안으로 가져오려는 노력을 통해 지역과 대학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허물어 어디가 지역이고 어느 곳이 대학인지를 구분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한옥형으로 신축되는 정문에 학생시민교류센터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대학 구성원 중 교수는 여러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지만, 학생은 시민과의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역과 대학의 경계인 정문에 부속 건물로 학생시민교류센터를 만들어 지역사회 소통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또 지역민에게 분양한 캠퍼스 텃밭도 시민들의 호응 속에 지역과의 소통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전북대가 국내외 기관의 각종 평가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요. 올해 대학의 주요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해 주신다면.올해 교육부가 추진한 주요 재정지원사업은 대학특성화사업과 학교교육선진화 선도대학 육성사업 등 모두 8가지입니다. 전국 대학 중 우리 대학이 유일하게 이들 사업에 모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이를 통해 막대한 사업비를 확보하여 학생 교육 분야와 경쟁력 향상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또 국내외 기관의 대학평가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QS사가 실시한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국내 종합대학 11위에 올랐습니다.- 오는 2017년 개교 70주년을 맞는데요.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나 프로젝트는.우선 현재 추진 중인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조성사업의 실질적 성과를 보여줄 생각입니다. 정문에서부터 확 달라진 캠퍼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70주년 기념광장도 전통정원 형식으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그 대상지는 분수대 광장, 또는 도서관 앞 광장 중 한 곳을 놓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역사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할 계획입니다. 개교 70주년을 맞는 2017년을 성숙의 대학 원년으로 삼아 지역과 소통하는 기념사업을 통해 대학과 지역의 자긍심을 고취할 생각입니다.- 재임 중 꼭 이루고 싶은 과제로 약학대학 유치를 꼽으셨는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약학대학 유치는 우리 대학 경쟁력 향상과 지역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입니다. 그래서 취임 직후 약학대학유치추진단을 구성해 대학 실정에 맞는 약학대학의 뼈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약학대학은 약사를 양성하는 1차적 소임을 넘어 의약품 산업과 연계한 신약 개발의 핵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연구임상 약사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시점입니다. 특히 지난달 연구임상약사 양성 중심의 약대 유치에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제주대동아대와 협력하기로 함에 따라 약대 유치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학 구성원과 전북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전북대가 최근 가장 주목받는 대학으로 발전한 것은 대학 구성원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지역주민의 성원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대학과 지역발전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대학과 지역사회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던 게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벽을 허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통이 필요합니다. 서로 허물없이 소통하면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대학과 지역은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대학, 그리고 지역발전을 위해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가 손을 맞잡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이남호 총장이 밝힌 '성숙의 대학'] 수치지표보다 가치브랜드, 일사불란 아닌 다양성 중시이남호 전북대 총장은 개교 70주년이 되는 오는 2017년을 성숙의 대학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라는 대학의 슬로건과 맞물리는 청사진이다. 이 총장이 밝힌 성숙의 개념은 지속가능한 성장, 중단 없는 성장이다. 단기적인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대학의 진정한 성장을 이끌겠다는 취지다.그는 이를 위해 빠른 변화보다는 바른 변화를 지향하겠다고 밝혔다. 또 수치와 지표보다는 가치 및 브랜드에 역점을 두고, 지름길보다 바른길을 택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사불란보다는 다양성에 대학의 생명력이 있다는 소신도 같은 맥락이다.이 총장은 또 모범생을 넘어 모험생을 키우는 대학이라는 기치를 내걸어 모험생의 의미에도 관심이 쏠렸다. 그는 이에 대해 시키는 일을 잘해내는 인재보다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해결하는 인재가 바로 모험생이다고 정의했다. 단순한 지식 전달과 스펙 쌓기에 치중된 그간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물과 현상을 보다 깊고 넓게 보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이다.이와 함께 이 총장은 대학운영의 기본 방향으로 소통을 강조했다. 총장 직속으로 소통복지팀을 신설한 그는 총장과 구성원, 그리고 구성원간의 소통,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토요일에 누구라도 총장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는 토요데이트를 비롯, 매주 수요일 오후 구성원들이 캠퍼스 둘레길을 거닐며 대화하는 워크토크데이, 그리고 총장이 치킨과 피자를 들고 불시에 각 부서를 찾아가는 치킨피자데이 등이 전북대의 새로운 소통 프로그램이다.

  • 기획
  • 김종표
  • 2015.12.15 23:02

법의학자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이호 교수 "법의학은 사회 건강성 평가 지표…죽은 자 통해 교훈 얻기도"

어느 매체의 인터뷰였을 것이다.사람에게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생명과 권리가 그것이다. 임상의학이 생명존중의 의학이라면 법의학은 권리존중의 의학이다. 한국 법의학의 살아있는 역사 문국진 박사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소개한 대목이다. 법의학의 개념을 그때 이해하게 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법의학의 영역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법의학자는 죽은 자들의 사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찾아내고 분석해 객관적 근거로 규명하는 일을 한다. 단순한 기준으로 보자면 사인을 밝혀내는 역할이지만, 법의학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왜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의 과정을 규명하는데 더 큰 무게를 둔다. 대개의 경우, 법의학자들이 분석한 죽음의 과정은 우리가 약속해놓은 사회적 질서로부터 이탈한 국면들이다.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이호 교수(47)를 만났다. 이 교수는 전북에서 유일한 법의학자다. 그가 매체를 통해 우리와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대형 참사나 충격적인 사건사고로 죽은 자들의 사인을 규명하는 검안의이자 법의학자로서 그의 활동이 그만큼 두드러져있다는 증거다.이 교수를 만나러가는 날은 햇빛이 좋았다. 다행이었다. 어둠을 끌어들이는 죽음을 품어 다시 세상에 내놓는 법의학자의 이야기를 밝은 기운으로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많은 시간을 죽은 자와의 만남으로 이어가는 이교수의 공간(연구실)은 의외로 소박(?)했다.20년 가깝게 부검의 현장을 지켜온 이 교수가 들려주는 법의학 이야기는 날생선의 비늘처럼 조밀했다.법의학의 수준은 한 사회의 건강성을 평가합니다. 죽은 자를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게 되지요. 죽은 자의 사인을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죽음을 맞았다면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예방을 할 수는 없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법의학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사회가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인데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법의학자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고민해온 그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러 번 반복만 말이 있다. 모투이 비보스 도슨트(Mortui vivos docent), 망자가 산자를 가르친다.숱한 부검의 현장으로부터 그가 낚아 올린 이야기는 선명하면서도 무거웠다. 그만큼 사회를 향한 메시지의 울림이 컸다.-주로 연구실에 계십니까.그렇죠. 대부분의 일상이 연구실과 법의학교실에서 이뤄지니까요. 오늘 오전에도 부검이 있었어요.-부검이 이곳에서 직접 이뤄진다니 놀랍습니다.부검은 통상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해야 하는데 국과수의 인력이 부족한데다 우리 지역에서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광주까지 가야하거든요. 관계되는 인력까지 함께 가야하니 시간적 물리적 소모가 크죠. 그래서 국과수와 전북대가 MOU를 했습니다. 웬만한 사건은 전북대에서 할 수 있게 되었죠.-그 과정이 꽤 복잡하겠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오늘 같은 경우는 오전 9시에 부검이 끝나고 나면 의뢰해온 검사를 거쳐 감정서를 씁니다. 밀린 감정서도 서야 하고, 제가 부검한 사건이 법정에서 다툼이 있는 경우는 사실관계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쓰거나 제가 하지 않은 경우에 대한 법의학 자문도 해야 해서 물리적인 일이 많은 편입니다.-대중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나게 되는 법의학자를 상상하게 되는데, 상당히 차이가 있겠는데요.현실은 드라마와 많이 다르죠.(웃음)-최근 대형 참사나 충격적인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법의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낯선 영역입니다. 우리 일상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도 인식이 부족한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법의학은 한 사회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됩니다. 단순히 죽은 사람의 사인을 규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죽음을 사회적으로 예방할 수는 없었는지를 분석합니다. 만약 사회적 시스템이 잘못되어 한 사람이 죽음을 맞았다면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책무를 안게 되겠지요. 법의학이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법의학의 기능을 통해 발견된 잘못된 시스템을 바로 잡을 자세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인데, 한국사회는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했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죠.-법의학은 권리존중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권리를 지키는 일의 가치를 추구하는 법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요.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기보존에 있습니다. 사회 안에서 내가 죽음을 원치 않았는데도 죽음이 발생했다면 그 사회는 법에 의해 철저한 규명과 그 원인행위를 한 범법행위자를 처벌해야 하죠. 그것이 개인이 사회와 맺은 약속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신체에 대한 질병을 진단하고 병의 경과를 막아주거나 지연시키거나 치료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생물학적 죽음의 생사에 관한 것이죠. 그러나 법의학을 하는 의사는 죽은 자들의 사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찾아내고 분석해 객관적 근거로 규명하는 일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이 권리침해를 당했는지의 여부, 사회적으로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놓쳤다면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규명해내는 역할을 하지요.-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건이 반복되는 사회에서 법의학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사회에서는 왜 그런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일까요.세월호를 비롯해 우리가 경험한 대형 참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그 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월호의 경우만 봐도 한사람의 문제로만 부각시키지 않습니까. 유병언이란 개인만 없었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건강한 사회라면 유병언 같은 사람이 100명쯤 있다해도 이런 사고는 나지 않아야 합니다.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죠. 그만큼 사회적 안전망이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또한 외국의 법의학과 한국의 법의학 차이이기도 합니다.-외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법의학이 안착된 나라에서는 사망에 접근할 때 누가 죽였는가를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예방이 가능했는가를 먼저 찾습니다. 이 죽음을 우리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호주 멜버른 사건의 예가 있습니다. 클럽에서 시비가 붙어 사망한 사건인데 우리나라 같으면 신고한 사람과 목격자가 있고, 증거도 있으니 부검에서 장기파열의 소견이 나오면 끝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거기서 끝나지 않거든요. 이 사람의 사인이 복부파열인데, 왜 6시간 만에 사망했는가. 그것을 추적합니다. 이 사람이 병원에 실려 왔을 때 머리 쪽 CT를 찍었어요. 넘어뜨렸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이 사람의 복부를 먼저 점검 했으면 살릴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죠. 사람을 사망하게 한 개체의 폭력과는 별개로 응급시스템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겁니다. 이 사건으로 멜버른에 있는 구급대원과 상황실 직원들은 모두 보수교육을 받았고, 의회를 움직여 상황실에 간호사 출신을 배치하게 만들었습니다. 법의학이 사회에 기여하는 기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세월호 사고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아쉬움이 큰데요.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 아니겠습니까.물론이죠. 왜 배가 침몰했는지를 주목하고 추적하는 대신, 처벌할 사람 처벌했고 보상했으니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세월호를 끄집어내면 뭐하냐는 식으로 덮어버리면 언젠가 배는 또 뒤집어지는 상황을 맞게 될 수밖에 없겠죠. 대구 지하철 참사도 보세요. 기관사가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와 혼자만 나가면서 승객들에게는 기다리라고 했거든요.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법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거든요.-화제를 좀 돌려보죠. 우리나라의 경우 법의학연구소는 얼마나 있습니까.국과수 말고는 없죠. 대학에는 물론 없고요.-법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법의학연구소 같은 기구의 확산이 매우 중요할 것 같은데요.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예요. 제가 저희대학 산학협력단에 기구를 설치하려고 시도했었는데, 여러 가지 행정적 절차에 의해 포기하고 말았어요.-국내의 법의학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50명도 채 안됩니다. 법의학자의 수가 적은 것은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결국은 권리에 대한 시민의식이 변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사회의 1프로 미만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엘리트 집단이 선봉에 서줘야 법의학이 사회적으로 안착할 수 있습니다. 법의학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시민정신과 시민의식, 제도가 탄탄한 인프라로 구축되었을 때 제 길을 갈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우리 법의학의 발전 가능성은 없습니까.방법이 없진 않겠지요. 그러나 민주국가라고 하는 기본 전제는 입법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 손으로 뽑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입법자로 뽑힌 사람들은 입법 활동을 제대로 해줘야하고요. 그런데 우리 정치판은 그런 건강성을 찾기 어렵거든요.-죽음 앞에서는 누구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한 사회의 시스템은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죽음 앞에서 얻어내는 교훈을 잘 구현해내야 하지요.-법의학자의 길은 어떻게 들어서게 되셨습니까.운명 같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학생운동을 하게 됐죠. 1989년에 충남대에서 전대협 집회가 있었는데, 그때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조선대 이철규씨의 시신이 발견되었어요. 충남대 집회에 그의 시신이 도착했는데, 온몸은 파랗고 눈은 뜨고 있고, 코에서는 피가 나오고, 정말 처참했습니다. 실종 된 후 보름이 지나 발견되었죠. 고문치사. 그런데 부검의는 사인을 익사라고 발표했습니다. 법의학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은 그때 결심했습니다.-당시 국과수의 결과 발표는 공분을 일으켰었죠.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어요. 그때 이런 학문이 있다면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법의학만을 생각하고 왔지요.-법의학 분야에서도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영역이 궁금합니다.제가 생각하고 있는 분야는 예방법의학입니다. 임상법의학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호주 멜버른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하고 왔어요. 이후 임상법의학을 포함해 예방법의학을 주목하기 시작했지요. 개인적으로는 일련의 과정이 사회학 관점으로 바라보는 학문으로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의 안전망 구축에 관한 부분도 제가 추구하는 모토가 되었어요.-예방법의학이란 사회적 안정망 구축과 직접 적인 관계가 있겠습니다. 이런 일은 입법기관에서 치열하게 고민해 입법 활동으로 이어낸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는데요.다시 강조하지만 입법 활동은 우리가 투표를 통해서 선택한 사람들이 활동의 중심에 섭니다. 그러니 그들은 시민의 안녕을 위해서 기본적으로 이런 부문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야할 의무를 갖고 시작해야 합니다. 시의원이나 도의원이라면 조례를, 국회의원이라면 법률에 문제 해결을 위한 내용을 담아내줘야 할 시대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곧 후손들을 위한 의무이기도 하고요.-혹시 지역 단위에서도 이런 시스템 구축이 가능할까요.행정적 절차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지역의회 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재정자립도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도시가 된다는 것,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죠.이 교수에게는 얼마 전에 법의학자로 들어선 제자이자 후배가 생겼다. 덕분에 전북에서 유일한 법의학자란 별칭 대신 전북 1호 법의학자가 되었다. 법의학자로서 가는 길에 더 큰 희망이 생겼다는 그는 인터뷰 말미, 이제 동료교수가 되는 후배가 본질적인 법의학, 우리가 이야기 하는 범죄와 연관된 사법부검을 중심으로 연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길을 가려고 하는가.사회적 안전을 중심으로 한 예방법의학을 연구하고 싶어요. 임상법의학도 그렇고요. 제가 강조하는 사회적 안전 시스템 구축은 뛰어난 한사람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시작해서도 안 되고.법의학자로서 사회적 기여를 삶의 목표로 삼은 이 교수의 존재가 미덥다.● [이호 교수는] 전북 1호 법의학자대검찰청 자문위원 활동이호 교수는 1968년 임실에서 났다. 네 살 때 전주로 이사를 왔지만 교육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도시로 전학을 다녔다. 이과를 선택했던 고등학교 때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성실하게 공부했고 덕분에 성적이 좋았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전북대 의대에 입학했으나 사회적 현실에 눈을 뜬 그는 곧바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읽기를 즐겼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우연히 찾게 된 사회과학서점에서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책들을 만나면서 사회의식을 다졌다. 대선을 앞두고는 공정선거감시단에서 활동하면서 현장을 지켰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은 전남대 이철규 열사의 시신을 접하고 나서였다.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 그것도 법의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그때 다졌다. 예비의료인으로서 의료인운동도 열심히 했다. 건강한 의료운동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의료인 내부로부터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련과정을 마치고 병리전문의 과정을 거쳐 국과수로 들어갔다. 98년이었다. 1년에 400건이 넘는 시신을 부검하는 생활이었다. 2004년 모교인 전북대 의대 법의학교실에서 그를 교수로 불렀다.그는 당시 호남에서 유일한 법의 학자였다. 전남대와 조선대에 법의학교수가 자리 잡으면서 전북 유일의 법의학자가 되었지만 최근, 제자이자 후배인 노상재 박사가 교수로 임용되면서 도내 1호 법의학자로 자리를 바꾸었다.2007년에는 예방법의학 공부를 위해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법의학연구소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돌아왔다. 이후 예방법의학과 임상법의학은 그가 앞으로 해나갈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돌아보면 법의학을 공부하고 연구해온 길은 외로웠다. 전국 12만 명 의사 중 법의학자는 여전히 50명도 채 안 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 모르고 법의학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법의학이란 분야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바닥을 칠만큼 척박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죽음으로 부터 배우는 학문인 법의학의 길에 들어선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사회적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시스템 구축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은 그는 시민정신과 시민의식이 사회의 건강한 시스템을 이끌어낸다고 믿는다. 병원의 고객지원실장을 맡아 의료사고나 민원 해결에 앞장서는 일을 미루지 않는 것도 같은 연상에 있다.방송대학에 들어가 법학석사를 마칠 만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는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법의학교실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대한법의학회 학술이사이면서 대검찰청 법의학자문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5.12.11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⑧ 백제역사유적지구 다시 보기] 세계유산 도시, 찬란한 백제문화 다시 꽃 피운다

공주부여익산의 백제 유산을 묶은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재조명 받고 있다.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의 유산으로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거의 700년을 존속한 백제. 장구한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백제의 역사를 만났다. 미완의 유적지구라 갈 길은 멀지만 곳곳에서 백제문화의 우수성이 돋보인다.△떠오르는 백제고도(古都) 익산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부여의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비해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가 담긴 삼국유사의 기록이 유일하다 할 정도로, 공주나 부여에 비해 관련 기록이 부족해서다.그러다가 1971년 무왕의 지모밀지(枳慕蜜地-익산으로 추정) 천도 사실이 담긴 사료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가 일본에서 발굴되면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1989년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의해 발굴조사가 시작된 이래 26년간 진행 중이다.발굴과정에서 성벽과 관련된 문지의 흔적, 명문이 새겨진 기와, 제사 관련 유적. 왕실기원사찰로 알려진 제석사터, 무왕과 그의 왕비릉으로 전해오는 쌍릉 등이 발견됐다. 고대 궁성 관련시설의 대지조성과 축조, 공간구획에 대한 새로운 자료도 확보되고 궁성의 계획적인 설계에 의한 축조양상도 확인됐다. 지난 8월21일에는 왕궁리 유적 서남편 일대(8300㎡)에서 철제솥과 토기 등의 유물 10여점과 함께 왕궁부엌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견됐다.최근 들어서는 왕궁리 유적 주변이 시가지로 기능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왕궁리 유적에서 동남쪽 1.3㎞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물터가 발견됐다. 왕궁리와 제석사지 사이, 궁 남쪽의 탐리마을에서는 기와편, 건물터 등 생활유적도 발견됐다.이신효 왕궁리 유적전시관 학예연구사는 고대도시는 일반적으로 왕궁 주변에 사찰, 주택, 공방, 시장 등이 형성된다며 생활유적과 더불어 왕궁리 유적 인근에 도로 흔적과 조경지 흔적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제대로 도시의 형태를 갖췄던 것 같다고 말했다.현재 역사학자들은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유적발굴 성과를 토대로 고대 익산의 위상에 대해 여러 해석을 한다. 우선 일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 근거해 무왕이 부여에서 익산으로 천도했다는 설이 있다. 또 무왕의 출생지이자 성장지인 익산이 수도였다기보다는 수도와 동일한 행정구역인 별부(別部)로 편성돼 수도의 일부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와 함께 별궁설(別宮說), 행궁설(行宮說) 등이 있다.전주교대 김주성 교수는 학자들마다 이견은 있지만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은 공통적으로 인정한다며 익산은 백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밖에 익산에는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외에도 서동생가터, 용샘, 익산토성(오금산성), 사자사지(師子寺地), 미륵산성 등 백제 관련 유적이 많다.△스토리텔링의 선두주자 공주백제 678년의 역사 중 64년 동안 수도로 기능했던 공주. 백제의 두 번째 수도이자, 동성왕과 무령왕 때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던 곳이다.세계유산으로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이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 공주지역 백제유적 분포의 특징은 왕성과 직접 관련된 유적인 송산리 고분군, 공산성 등이 공주시가지 북쪽으로 금강에 인접해 일정한 권역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시의 북쪽 외곽에서 확인된 수촌리 유적 같은 경우 공산성 등 왕성관련 유적과 더불어 공주지역의 백제문화를 이해하는 데 주목되는 문화재다.공산성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 성곽의 전체 길이는 2660m이며 석성이 1770m, 토성이 나머지다. 현재 남겨진 성곽은 석성이든 토성이든 조선시대에 수축된 것으로, 반복적으로 개보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다만 토성구역에서 외성부분에 백제시대의 석축 흔적이 남아있어 이 성이 본래 토성으로 조성됐고, 당시 부분적으로 석축으로 개축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성은 1980년대 이후 10여 차례 이상 발굴조사가 이뤄졌다.특히 1986년도 조사에서는 왕궁지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돼, 왕성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학설도 제기됐다. 현재도 성 내부 곳곳에서 공주대학교 주관 하에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며, 마면주(말의 얼굴에 씌우던 투구), 옻칠마갑(말에 씌우는 방어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성을 돌 때는, 서쪽에 있는 금서루를 출발해 연지와 만하루, 진남루를 거쳐 다시 금서루로 돌아오는 데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다. 특히 밤에는 조명이 켜지면서 백제의 역사만큼이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또 성 내부에 활쏘기 체험, 백제 탈 만들기 등 여러 체험 행사장이 있어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공산성에서 금강을 끼고 서쪽방향으로 가다보면 송산리 고분군이 있다. 이 고분은 백제 웅진시대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본래 17기의 무덤이 있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해 7기만 복원돼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고분은 도굴을 당해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번호로만 불린다.그러나 무령왕릉이 있어 백제문화의 진수를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이 무덤은 지난 1971년 내부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배수로를 정비하다가 우연히 발견됐다. 왕와 왕비의 금제관장식을 비롯해 왕릉을 수호하기 위한 석수(石獸), 중국과의 교류를 증명하는 화폐 오수전,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 등 108종 2906점에 이른다. 특히 묘지석 앞면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斯麻王)은 계묘년(523) 5월7일 62세로 돌아가셨고 을사년(525년) 8월12일에 안장됐다고 기록돼 있다. 일본 서기에도 무령왕의 이름이 사마(斯麻)로 쓰여 있어 기록은 일치한다.아쉽게도 현재는 무령왕릉 내부를 구경할 수 없다. 문화재보존을 위해 지난 1997년 7월부터 영구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해서다. 단지 실물과 같은 모형을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 56호분을 정밀하게 재현해 고분과 동일하게 만들어 무령왕릉 재현, 송산리고분군 발굴과정 등을 볼 수 있다. 인근에는 역사문화 콘텐츠와 IT기술을 접목해 백제문화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웅진백제역사관이 있다. 또 무령왕릉 내부에 있는 유물 중 국보 12점 등은 국립 공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해 백제, 세계인을 맞이하다란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12월말까지 연다. 각종 백제 유물 100여점을 구경할 수 있다.△백제 마지막 역사 고스란히 부여부여(사비)는 백제의 마지막 왕도다. 서기 538년 성왕은 538년 웅진(공주)시대를 마치고 사비로 천도했다. 이후 123년간 백제의 수도로 자리한 사비도성의 중심지에는 정림사지가 있었다. 현재는 절터만 남아있지만 내부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예전 모습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단 한 번도 해체작업을 하지 않은 유일한 석탑이다. 고고학자들이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탑 하나에 금당 하나가 일직선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 가람이다.이 탑에는 백제 패망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있다. 일제시기까지 평제탑(平濟塔)이라 불렸는데, 1층 탑신에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 평정의 전공을 새겼음에 연유한다. 소정방은 탑에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碑銘)이란 문구를 새겼다. 왕도의 중심에 있던 탑에 개인의 전공을 새긴 사례는 매우 드물다. 패망한 나라의 왕족들이 가졌을 좌절을 짐작해볼 만한 흔적이다.부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 관북리 유적지, 나성 등 네 곳이다. 네 곳의 세계유산은 백제의 사비천도가 치밀한 계획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체가 긴밀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배치돼 있다.관북리 유적은 백제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익산 왕궁리 유적과 동일한 대형 건물지와 정연한 도로망 흔적, 하수도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재도 조사 중이다. 능산리 고분군에는 왕과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7기의 고분이 있다. 나성 밖에 위치하고 있으며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도시 한복판에 조성했던 이전 시기의 왕릉군들과는 다른 입지 여건을 보여준다. 발굴조사 이전에 대부분 도굴되었지만, 고분군 서쪽 절터에서 567년에 제작된 석제 사리감과 함께 금동대향로가 출토돼 이 고분이 왕실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나성은 사비의 동쪽 부분을 방어하던 성곽시설이다. 북, 서, 남쪽은 금강이 천연방어막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동쪽 부분만 인공적인 방어시설(나성)을 설치했다. 나성은 동아시아에서 새롭게 출현한 도시 외곽성의 가장 이른 예 중의 하나로 도시 방어의 기능을 가질 뿐만 아니라 도시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상징적 경계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왕궁을 비롯해 관아, 민가, 상가, 방위시설 등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소산성은 동성의 방어거점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다. 백제의 패망 직전 삼천궁녀가 투신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낙화암은 백마강을 다니는 황포돛대를 타고 운치있게 바라볼 수 있다. 현재 정림사지에서 2㎞거리의 구드래나루터에서 백마강을 일주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2.10 23:02

[이색&공감] 익산이 운명이 된 두 남자

걸출한 예술가 두 사람이 익산으로 돌아왔다. 익산문화재단 E-127 창작스튜디오 공공예술프로젝트 입주작가로 신귀백 감독(55)과 정도상 작가(54)가 활동하게 되었다. 소설가 정도상 작가는 2003년 장편소설 누망으로 제17회 단재상을 받고, 2008년 연작소설 찔레꽃으로 제25회 요산문학상 수상, 제8회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 2005년 제3회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수상 등 화려한 수상이력을 자랑하는 한국문단의 중견 작가다. 영화평론가이자 다큐멘터리감독인 신귀백 감독은 2000년 문화저널 영화평론가로 데뷔해 2013년 장편다큐멘터리 미안해 전해줘로 감독으로 데뷔해 현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익산이 고향인 신귀백 감독과 청년 시절 익산과의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져 익산으로 돌아온 정도상 작가, 두 남자를 만나봤다.△가족과의 귀향포근한 정착두 남자에게 익산은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다.신감독의 고향은 익산이다. 익산에서 태어나고 학창시절을 부모님 곁에서 보냈다. 그러다 2013년 고향집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터를 잡았다. 그리고 익산에서 인문학을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무엇보다 익산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시민들을 모아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의 장소는 신감독의 집이 아지스트가 되어 버렸다.내가 살 집으로 리모델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변인들과 모일 장소가 필요했다. 작가들이 몇 시간씩 찌댈 수 있는 공간, 밤샘 토론 후에 아침 해장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신 감독은 익산 영화 인문 모임을 결성하였고, 부대사업으로 봄 느린 기차 월요 무비 소설 읽기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정작가의 고향은 경상남도 함양이다. 그에게 익산은 운명이다. 익산 여인과 7년을 연애했고 그 여인과 가정을 이뤘다. 익산에서 첫 아들을 얻는 기쁨도 있었다. 그후 익산을 떠나 서울 생활 수십년. 익산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익산과의 운명이 다시 이어졌다. 둘째 아들이 익산으로 대학을 온 것이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익산으로 돌아왔다.처음에는 전주나 근처 도시에 집을 구하러 다녔다. 그런데 희한하게 일이 자꾸 어그러지고 계약도 엎어지고, 그러다 익산에서 우연찮게 햇살이 좋은 집을 발견하고 바로 이사를 했다. 운명의 처음으로 돌아온 느낌이랄까.익산에 정착한지 2~3년. 정 작가는 평생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불면증이 익산에 정착하면서 사라졌고, 신감독은 다이나믹 그 자체였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하고, 시간을 만들었다.이들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시민들을 만나면서 문화예술적 꿍꿍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공공예술프로젝트 계획평생 노동자, 민초의 고단한 삶을 소설로 써온 정작가는 익산을 주제로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익산 삶의 본질과 관련된 소설을 쓰고 싶다. 나는 과거에 익산과 인연이 있었고, 오랫동안 익산을 떠나 있었던 이방인의 시선으로 익산을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싶다. 타인이지만 완전한 타인이 아닌 내가 이제는 주민이 되어 또 다른 시선으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익산의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문화에 주목,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문화를 발굴할 계획이다. 숨겨져 있는 문화를 찾아서 세상 밖으로 보여주고, 발굴하는데 그치지 않고 SNS언론 등에 글을 쓰는 등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란다.익산을 주제로 근대현사를 다큐멘터리로 남기겠다는 신감독은 익산은 예전의 풍경이 다 녹아 있다. 시민과 문화단체와 연계해서 소중한 풍경을 지켜내고 싶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친숙하게 남아 있는 도시의 모습. 삭막한 도시가 아닌 친숙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것이다. 오래된 것들, 익숙한 골목을 카메라에 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아카이브를 구축할 계획이다. 얼마 전 철도 기관사 박흥수씨를 초청해서 철도 문화와 익산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철도 문화에 대해 흥미로운 사연들이 많아 유익한 시간이었다.두 남자는 공통적으로 익산의 원도심 재생에 관심이 많다. 전주는 전근대문화유산,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을 중점으로 확실한 색깔이 있지만, 익산은 문화재는 시외곽에 있고, 도시 전체가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 원도심 문화를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기억과 풍경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익산에 대한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두 남자.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두 남자의 행보가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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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09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⑦ 옛 것이 예술이 된 '시칠리아'] 재건 작업만 100년…웅장한 '바로크 도시'로 부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시칠리아는 그 만큼 매력적인 섬이다. 영화 대부와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이 섬은 경관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유서 깊고 다채로운 유적으로도 유명하다.지중해 최대의 섬이면서 지리적으로는 로마, 그리스, 아프리카 본토와 가까웠던 시칠리아는 다양한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와는 구분되는 독특한 문화를 갖게 됐다. 이 섬 안에서는 그리스식 사원, 바로크 양식의 성당, 로마의 원형경기장, 아랍 양식의 건축물 등 갖가지 문명의 유적을 볼 수 있다.대체로 보존도 잘 돼 있어 많은 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리스 건축양식인 도리아 양식이 도드라지는 아그리젠토 고고지구, 로마인들의 저택인 카살레의 빌라로마나, 유럽 바로크 양식의 절정기를 보여주는 시칠리아 남동부 발 디 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 등 6개다. 이들은 당대의 역사상을 온전히 전해준다.이 중 카타니아, 라구사, 시라쿠사 주 등 8개 도시가 포함된 시칠리아 남동부 발 디 노토의 후기 바로크 도시는 문화재 재건의 바람직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들은 17세기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됐었다.또 작은 천국이라 불리는 타오르미나는 고대의 유적지가 널리 분포돼 있다. 이곳에 있는 타오르미나 원형극장은 보존 상태가 우수하며, 오늘날에도 오페라와 연극공연 등을 연다. 인근에 있는 움베르토 거리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붐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풍의 건물과 이오니아해의 전경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시칠리아 역시 유럽의 많은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유산과의 공존이 생활화된 곳이다. 빛바랜 문화재들과 낡고 스산한 골목이 주를 이루지만 주민들은 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다.시칠리아는 제주도의 14배 크기다. 본지에서는 카타니아와 타오르미나를 중심으로 소개한다.△7전 8기의 역사도시 카타니아=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인 카타니아는 자연재해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근처에 있는 해발 3350m의 활화산, 에트나 화산 때문이다. 이 화산은 기원전 264~241년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 기간 중에 폭발했으며, 그 뒤로도 200여 차례나 더 폭발했다.특히 17세기에 일어난 화산폭발과 지진이 큰 피해를 입혔다. 1669년의 에트나 화산폭발과 24년 후인 1693년에 일어난 지진은 9만3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7세기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했다고 일컬어질 정도였다.자연재해에 의한 비극 때문에 많은 고대 유적이 소실됐으며, 17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도시 재건작업이 이뤄졌다.100년 동안의 재건작업이 끝난 후 카타니아는 지진에 강한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넓은 거리와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섰다. 17세기의 대표 건축양식인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됐다. 이 양식은 기본적으로 성과 수도원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재건된 유적들은 주로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11세기 노르만 시대 양식을 간직한 성 아카다 대성당, 현재 시립박물관으로 사용되는 13세기의 우르시노 성,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등 22개가 그것이다. 이 중 10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 있다.이들 중 가장 주의 깊게 볼 유적은 스테시코로 광장의 지하에 있는 로마 원형 야외극장이다. 중세 유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카타니아에서 보기 드문 고대 유적이다. 〈카타니아 유적 자료집〉에 따르면 2~3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약 16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화산폭발로 오랜 세월 지하에 묻혀 있다가 18세기 초에 발견됐으며, 1906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 현재 극히 일부 벽면만 발견됐고, 많은 부분이 아직도 지하에 묻혀있다. 발굴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현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스테파노 씨는 야외극장이 묻혀있는 지하 위에도 17~18세기에 재건된 성녀 아가타가 투옥됐던 감옥, 성 아가타 성당 등 문화재가 있어 발굴에 어려움이 있다며 자칫 지상에 있는 유물까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두오모 부근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에트네아 거리가 있다. 카타니아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중세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줄지어 있다. 건물은 레스토랑과 각종 상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민들의 생활공간 자체가 유적지인 셈이다. 마치 중세의 어느 거리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시칠리아에서 역사교사를 하고 있는 알렉산드로 씨는 본래는 고딕양식,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돼 있었지만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붕괴됐고, 바로크 양식으로 통일됐다며 이 구간은 중세도시 복원을 위한 집단적인 노력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었던 현장이다고 말했다.△역사유적과 자연경관과의 조화, 타오르미나= 시칠리아섬 동쪽 기슭 해발 200m의 고지대에 있는 타오르미나는 오래된 역사를 일깨워 주는 유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13세기의 산 니콜로 대성당, 로마의 나우마치아(고대 로마인들이 해상 전투를 재현하기 위해 물을 채웠던 건물), 오래된 성벽의 잔해, 타오르미나 원형 극장 등이 바로 그것이다.이들 중 백미는 타오르미나 원형 극장이다. 기원전 3세기에 지어졌던 이 극장은 뛰어난 보존력을 자랑한다. 당대의 설계대로 지어진 벽돌이나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원형극장 가이드인 로베르토 씨는 파손된 벽돌을 복원할 때도 기존에 존재했던 모양 그대로 한다고 말했다. 이 극장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오페라와 그리스 고전극, 콘서트, 영화 축제 등이 열린다. 상당히 오래된 유적인데도 음향효과가 뛰어나다. 로베르토 씨는 청중들의 소음과 같은 저주파 소리는 흡수하고, 공연자의 고주파 소리는 증폭시켜주는 구조다며 석회암 계단구조가 이 같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유럽에서 가장 눈부시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기도 한다. 극장의 관람석에서는 무대 뒤편으로 에트나 산의 정상과 이오니아해, 이탈리아 반도와 유럽대륙까지 보인다.자연경관과 역사유적과의 조화는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타오르미나 원형극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이 시칠리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장소다.△시칠리아 문화유산의 이면= 고대, 중세의 다양한 유적들을 자랑하는 시칠리아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문화재 역시 눈에 들어온다. 수백 년은 됨 직한 유적에는 잡초가 자라고 낙서로 더럽혀진 곳도 상당수였다. 17~18세기에 지어진 성 아가타 성당, 비스카리 궁전 등이 그런 경우였다. 유적들을 까맣게 덮은 때자국은 매연과 공기 중 화학작용 등으로 생기는 것인데, 제 때에 제거하지 않을 경우 대리석을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이탈리아에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청용 씨는 이탈리아 본토 역시도 경제위기 때문에 문화재 정비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본토에서도 경제상황이 열악한 시칠리아도 같은 원인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시민으로부터 선호받지 못하는 유적지도 있다. 바로 아그리젠토 고고지구다. 이 유적은 화려한 그리스 신전과 로마의 저택, 고대 묘지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유적지 주변에 자연경관이 좋지 않고, 다른 유적지와의 거리도 멀다. 한국 대다수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산지에 문화재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경우다. 시칠리아의 한 식당 종업원은 정말 심심한 유적지다고 말했다.■ 활력 넘치는 카타니아 명물 어시장두오모 광장을 둘러싼 유적지 사이에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카타니아의 명물, 어시장이다. 시원하게 물을 내뿜는 아메나노 분수의 뒤에 있는 공터에 펼쳐진다.이른 아침부터 열리는 어시장은 진풍경을 연출한다. 한국의 수산시장처럼 구획을 정리해놓고 판매하는 게 아니다. 공터에 먼저 도착한 상인이 이리저리 난잡하게 판을 펼쳐놓고 어류를 판매한다. 먼저 자리 잡는 사람이 임자다.참치와 조개, 새우 등 갖가지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시장에서는 바다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시칠리아 바다에서 이제 막 잡은 해산물을 팔기 때문이다.시장은 왁자지껄하고 활력이 넘친다. 생선 값을 흥정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따라서 어시장 근처에는 지나가던 발길이 멈추고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가이드인 박청용 씨는 해외 관광객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어시장은 흥밋거리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2.03 23:02

[이색&공감] 정가 1번지 부안, 맥 잇는 '부풍율회'

반가움 보다는 당황스럽게 다가온 첫 눈이 내렸던 11월 마지막주, 눈길을 달려 부안의 부풍율회(扶風律會)를 찾았다. 부풍율회는 1947년 10월 부안군 보안면에서 주민 10명이 계(契) 형식으로 창립해 사단법인으로 바뀌어 이어오는 단체다. 부풍율계라는 이름으로 부풍율회 사람들이 모이는 집인 부풍율각 마당의 기념비를 통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모임은 가사와 가곡, 시조 등의 고유하고 유일한 민족 음악의 맥을 계승발전시켜온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체로, 율객(律客)들의 모임으로는 전국에서 최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1947년 결성매주 모여 정가 익혀김용구(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가사 이수자) 사무국장은 부풍율회는 400~500년 전에 뿌리가 있다고 말했다.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는 말처럼 풍요로왔던 부안은 풍류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부안의 선비들이 부풍율회 전신에 해당하는 유사한 모임을 이끌어오다 일제강점기 이후 1947년 다시 결성해 부흥기와 쇠퇴기를 겪었다.부풍율회에 대해서는 고증자료는 없다.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어르신들의 증언으로 역사가 전한다. 현재는 김봉기(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4호 가사 보유자)선생을 모시고, 김기성(78)회장과 김용구(61)사무국장, 회원 18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례회 겸 시조, 가사 등의 수업은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지만, 거의 매일 모여 연습하고 가르친다.회원들이 연로해지는데다 숫자까지 줄었지만 부풍율회 명성은 여전하다. 올해 전국규모 가곡가사시조대회에서 장원을 14개나 차지했다.△예술성악의 진수인류무형문화유산한 때 부안은 가곡가사시조의 고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국악의 인기가 시들해진 만큼이나 가곡 등에 대한 관심도 감소했다. 가곡은 풍류를 아는 선비들의 노래였지만 지금은 어렵고 듣기 불편한 음악으로 치부된다.가곡가사시조는 정가로 분류 되는데, 판소리 범패와 함께 예술성악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2010년에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유네스코)에 등재되기도 했다. 당시 가곡은 다음과 같이 소개됐다. 소규모 국악 관현 반주에 맞춰 남성과 여성들이 부르던 한국 전통 성악(聲樂) 장르이다. 가곡은 시조 및 가사와 함께 정가(正歌)에 속한다. 예전에 가곡은 상류 계층이 즐기던 음악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악곡이 되었다. 가곡은 남성이 부르는 노래인 남창(男唱) 26곡과 여성이 부르는 노래인 여창(女唱) 15곡으로 구성되어 있다.△석암 정경태 시조 발전 이끌어부안이 정가와 인연이 깊은 여러 이유 중에 부안출신의 석암 정경태(石菴 鄭坰兌,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19162003년)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은 시서화 삼절의 대가로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했으며, 시조를 접하게 되면서 정가에 입문했다. 선생은 전국 각지를 돌며 다양한 시조를 접했다. 시조 또한 지방마다 부르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만의 소리제를 만들었는데 바로 석암제다. 또한 선생은 부르는 사람마다 제 각각인 시조창의 보표를 처음 만들어 시조보를 완성했다. 호남지역 시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완제시조는 허창 - 전계문 - 정경태로 내려왔는데, 정경태의 시조는 김월하의 시조와 함께 현대 시조창의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석암제시조는 현대에 와서 정경태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창법을 지니고 있다.△부풍율회, 시조 전승에 힘써1935년 부안에서 태어난 김봉기 선생은 어린 시절 석암 정경태 선생과 한마을에 살면서 가사를 배웠으며, 이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고민순을 사사받아 현재까지 부풍율회를 지키고 있다. 김봉기 선생의 목은 청이 맑고 고요할 뿐 아니라 고음 처리에도 끊길 듯하면서도 끊기지 않고 구슬이 굴러가듯 유연하게 소리를 이어가는 느낌이 특징있다 라고 문화재청의 안내 글에 나와 있다.부안에서는 매년 석암문화대상과 함께 전국 시조가사가곡경창대회를 개최한다. 정가부흥을 위한 것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부풍율회 회원들은 부안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시조 한 자락 할 수 있는 자리를 달라고 하지만 성사되는 일은 드물다.부풍율회 회원들의 새해 소망은 석암 정경태 선생의 독창적인 석암제가 한때 서울 중심의 경제와 우위를 다퉜던 영광을 다시 한 번 누리는 것이다. 2016년 석암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가사를 알릴 수 있는 작은 행사라도 개최하는 것과 부안을 400~500년을 이어온 율객들의 정신과 가곡가사시조의 1번지요, 진정한 예향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기를 바란다.평생 가곡을 익히고 전승하는데 힘쓰면서 살아온 김봉기 선생과 김용구 사무국장은 힘이 닿는 한 전북, 그 중에 부안사람이라면 매창의 평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 정도는 즐길 수 있을 때 까지 전승과 보급을 할 계획이다. 또한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시조 한수 들려주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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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2.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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