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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남원출신 원로 극작가 노경식 씨 "진정한 영웅은 나라 살리고 시대 살려…위안부 협상 씁쓸"

2월 초입, 햇빛은 눈부셨으나 바람은 찼다. 겨울 한기가 바람에 얹혀 거리를 부유하고 있는 탓인지 한낮인데도 서울 혜화동 대학로 거리는 스산해보였다.80년대, 연극으로 기반을 닦아 성장한 대학로 풍경은 2000년대를 지나면서 예전만 못하다. 연극과 음악과 춤과 온갖 예술장르가 맞서거나 함께 호흡하고 환호하며 관객을 만났던 공간들이 힘을 잃은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학로는 여전히 예술인들에게 고향과도 같은 공간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 2000년에 이르는 질풍노도의 시절을 몸으로 체험한 연극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원로극작가 노경식씨(78)를 이 거리에서 만났다. 등단 50년, 한국연극의 한 축을 이어온 그의 희곡들은 시대와 시대를 건너는 주제와 사실주의 양식을 기반으로 우리 연극을 일으켜 세우고 힘을 갖게 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철새로 당선한 이후 발표한 작품은 40편. 그의 작품은 서너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대를 만나 생명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공연되지 못한 채 작품집에 갇힌 서너 편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더 컸다. 2007년 국립극장이 의뢰해 썼던 두 영웅도 그중 하나였다.두 영웅은 같은 시대를 살다간 조선의 사명대사와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퇴고한 그 해에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묻혀있던 작품을 깨운 것은 지난해다. 문화관광부의 연극인 지원 프로젝트로 만나게 된 무대는 그에게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더구나 이 무대는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원로와 중견배우들이 한자리에 서는 의미 있는 자리다.초연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동료 배우들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이 참으로 반갑고 가슴 설레게 합니다. 어른스러운 무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크죠. 열연하는 원로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극단 스튜디오 반, 극단 동양레퍼토리가 공동제작하고, 문화관광부와 동양대학교가 후원하는 창작 초연작 두 영웅 은 서울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월19일부터 2월29일까지 11회 공연된다. 그의 말마따나 모처럼 진중한 연극 한편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인터뷰는 공연장인 아르코 대극장과 연습장으로 쓰이는 대학로예술극장을 오가며 이어졌다.등단 50년, 시대와 시대를 넘나들고 굽이치면서 관객들을 깨우고 감동시켰던 그의 작품들이 그의 삶이 되어 움직였다. 한 길로만 걸어온 삶이 빛났다.-건강해보이십니다. 작품 집필도 여전하신지 궁금합니다.그렇진 않아요. 집필에 대한 의욕도 좀 떨어지고 해서 오랫동안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마음에 두고 있던 작품 하나를 탈고 했어요. 요즈음은 두 영웅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마음이 괜히 들떠 있습니다.- 두 영웅은 오랫동안 묻혀있던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이 초연이죠.2007년에 쓴 작품이니까요. 국립극장에서 위촉한 작품인데, 그해에 올리지 못했어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여서 그냥 묻히겠구나 싶었는데 기회가 오네요. 사실은 작년이 한일수교 50주년이어서 내심으로는 이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좋은 때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지나고 말아 아쉬웠거든요.-위안부 문제로 한일외교 협상 결과가 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두 영웅도 들여다보면 한일외교의 면면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겠던데요.시대만 다를 뿐 상황은 거의 비슷하죠.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협상을 다룬 작품이니까요. 무대는 일본인데, 1604년 조선에서 탐적사로 파견된 사명당이 그곳에서 활약하는 작품을 담았어요. 사명대사의 역할은 말 그대로 적국 일본을 정탐하는 역할과 두 차례의 왜란으로 잡혀간 선량한 조선인들을 귀국시키기 위한 협상의 사명을 띤, 길고도 긴 여정이었죠.-이 두 사람을 영웅으로 내세운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이 이야기는 40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오늘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지요. 8년 전에 써놓은 이 작품을 꺼내들면서 어떻게 이렇게 변한 것이 없을까 놀라웠습니다. 최근 위안부에 대한 합의 내용을 보면서는 더더욱 그랬지요. 그러나 400여 년 전, 이 두 사람의 외교를 보세요. 화해를 성공시켰잖아요. 양국의 전쟁을 마무리하며 강화를 했습니다. 수교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지요. 결국은 두 사람 사이에 구축된 신뢰로 이어낸 결과예요. 저는 서로에게 신뢰를 갖게 한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했습니다.-진정한 영웅은 나라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죠.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는 그런 영웅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불행한 일이죠.-이번 작품은 제작 배경도 그렇고 의미가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문화관광부에서 원로 연극인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무대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영수 남일우 권성덕 이인철 이호성씨 등 원로 중견배우들이 모두 출연해요. 우리들끼리 만나면 오랜만에 어른스러운 연극한번 하자고 말합니다. 가볍지 않은 무대를 보여주고 싶어요.-70대 이상 원로배우들이 한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뜻이 있겠습니다.사실 국립극단이 해체되고 재단법인이 된 이후 이런 무대 제작은 어렵게 되었죠. 말이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국립극단 단원으로 수십 년 지내왔던 배우들은 지금 모두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요. 소속이 거의 없죠. 원로나 중견들은 그래도 이쪽 연극판에서 활동하다가 국립극단 소속이 되었으니 돌아갈 곳이라도 있지만 젊은 단원들은 갈 곳이 없어요. 오도 가도 못하는 낙백이죠. 제 아들도 그들 중 하나예요.(웃음) 보기 안타까워서 극단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조언도 하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죠.-국립극단 뿐 아니라 무용단도 그렇고 합창단도 그렇고 모두 재단법인화되면서 소속 상근단원제가 아니라 시즌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더군요. 장단점이 있을 텐데요.저는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립극단도 기존 단원을 해체하고 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시즌단원제라 해서 오디션으로 작품별 출연진을 모집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장점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배우를 성장시키는 틀을 갖고 있는 국립극단의 해체는 아쉽습니다. 연극은 극적인 앙상블이 중요하거든요. 오랫동안 서로 다지고 호흡해야만 이뤄지는 가치예요. 국립단체 해체는 나라의 문화정책이 그만큼 뿌리 없이 흔들린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두 영웅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작품의 소재는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것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서 담판하고 협상하는 과정을 보면 정말 대단했던 분 같아요.물론입니다. 사명대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을 그만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진짜인지 화해할 뜻이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러 간 비공식 사절입니다. 탐적사라고 했지요. 그가 그 역할을 위해 일본에 들어간 것이 1604년이거든요. 1607년 5월에 돌아왔죠. 그 긴 여정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자기 목적을 이뤄낸 겁니다.-그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한 일입니다.그들의 외교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죠. 1607년에 조선에서 일본에 정식 사절을 보냈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통신사 제도 아닙니까. 그 기초를 이 두 사람이 만든 셈이죠. 두 영웅이란 제목을 붙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사명대사를 다시 보게 되는군요.우리에게는 고난의 위기마다 나라를 구하고 시대를 구한 영웅들이 많습니다. 사명도 그중의 한 사람이죠. 그가 비공식 사절로 가게 된 것도 사실은 조정의 내로라하는 관료들 중에서는 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사료를 보면 사명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임진록에는 그와 관련된 믿기 어려운 전설이 많아요. 그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선생님 작품을 보면 시대의 폭이나 다루는 소재의 폭이 넓습니다. 주로 국난을 겪는 시대상이나 위기가 고조되었던 시대가 배경이죠. 특별히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습니까.연극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그릇과 같습니다. 나는 어려운 시대에서도 고난을 극복하고 나라와 자신들의 삶을 지켜온 민초들의 힘을 높이 평가합니다. 역사와 인물을 다루거나 분단문제를 다루거나, 대도시 사람들의 이야기거나 농촌의 토속성을 다루거나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똑같습니다. 제 작품을 통해 불행한 역사를 온전히 드러내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게 할 수 있기를 바라지요.-작가로서 현실참여도 앞장서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도 참여하셨었죠. 예술인들의 사회적 발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사회적 발언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작품은 작가의 철학과 사상을 반영하는 그릇이에요. 사회적 발언이 필요한 국면이라면 당연히 나서야지요.-화제를 좀 돌려보죠. 연극의 길로 들어선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전혀 없었어요. 다만 어린 시절 남원에서 하나밖에 없는 극장 뒤에 살았어요. 악극단 공연이 가끔 있었는데, 그때 공연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극작가가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특별한 계기를 굳이 꼽으라면 대학 1학년 때 황순원 선생님을 만난 것일 겁니다. 선생님이 글쓰기를 독려하셨으니까요.-지난해에 탈고했다는 작품이 궁금합니다.이제 집필에 대한 의욕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래도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두 작품이 있습니다. 하나는 4.19를 다룬 것이고 하나는 고향이야기를 쓰는 거예요. 작년에 쓴 신작이 4.19를 다룬 것입니다. 봄 꿈(春夢)이라고 이름 붙였죠.-왜 굳이 419를 다룬 것이어야 했습니까.내가 419세대예요. 대학 3학년 때 419가 나고, 4학년 때 516 쿠데타가 있었죠. 나는 앞장서 치열하게 나서지는 못했지만 참여는 했습니다. 419세대 작가로서 늘 마음 빚이 있었어요. 우리 문학예술사를 둘러보면 6.25나 다른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작품은 많은데, 419 민주 혁명을 다룬 작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저는 그 이유가 419가 난 1년 후에 516쿠데타가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419는 묻혔죠. 작품을 쓸 사람이 없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내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었어요. 작년 겨울에 장막극 봄꿈을 탈고했죠.-어떤 내용입니까.419는 혁명의 주도세력이 따로 없습니다. 국민이 주체였지요. 학생들부터 구두 닦는 거리의 아이들까지. 특정한 영웅이 아닌 레미제라블처럼 민초들이 주인공이었습니다. 그 의미를 다루었어요. 민초들이 엮어내는 큰 흐름, 그 의지로 역사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름 없는 사람들의 혁명사라고 할 수 있어요.등단 50년의 시간위에 올려진 그의 40편 장막극은 과하지도 빈약하지도 않는 적당한 양이다. 게다가 그 대부분의 작품이 공연되었고, 일본과 프랑스로 원정을 나가기도 했다. 작가로서는 행복한 일이다.누구보다도 연극 보는 일을 치열하게 해온 그에게 오늘의 연극 지형을 물었다.연극 무대가 왜소하고 가벼워졌다고 할까. 연극 뿐 아니라 모든 장르가 다 그렇게 되었죠. 사적이고 표피적이고 규모로는 왜소하고 소극장으로만 몰려들고 소재도 그렇고. 인생의 깊이라든지 사회에 관한 깊은 천착이나 성찰을 담은 작품은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요. 안타깝지요. 그래서 요즈음은 연극 보러가기도 겁이나요. 연극이 보기 싫어질까봐.그래도 그는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고 말한다. 그 희망을 모처럼 올리는 두 영웅 객석을 꽉채울 관객들로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경식 극작가는] 역사적 상황인물 주로 그려낸 '정통 리얼리즘 극작가'극작가 노경식씨는 1938년 남원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남원에서 마쳤다. 대학을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났으니 60년 가깝게 타지에서 살았으나 남원 억양을 아는 사람들은 대화만으로도 그가 남원 사람인 것을 금세 알 수 있다.2대 독자였던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머니와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공부 잘했던 그는 서울대 경제과를 지망했으나 첫해 낙방하고 후기였던 경희대 경제학과를 들어갔다. 대학 1학년 때 교양국어를 가르쳤던 황순원 교수가 학보에 기고한 그의 글을 보고 글쓰기를 권했다. 학교의 문화상 공모에 처음으로 희곡을 써서 당선됐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문학은 그가 걷고자하는 길이 아니었다. 그를 키운 할머니는 손자가 은행원이 되는 것을 유일한 소원으로 삼았으나 직장생활에 별로 뜻이 없었던 그는 군대문제까지 여의치 않게 되자 고향에 내려와 있다가 드라마센터에 연극아카데미가 개설되자 망설이지 않고 서울로 올라가 극작반에 들어갔다. 연극과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됐다.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철새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는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81년 전업 작가가 되었다. 71년 발표한 달집은 그의 이름을 알린 대표작. 달집은 국내는 물론 일어로 번역되어 일본 공연이 이루어질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은 40편.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운이 좋았던 덕분에 3~4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대 위에서 생명을 얻었다. 무대를 만나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희곡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그는 그만큼 스스로를 행복한 극작가라고 생각한다.한일관계의 얼크러진 역사를 주목해 역사적 상황과 인물을 그려내는데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그는 달집이나 소작지 징게맹개 너른 들을 비롯,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담아내거나 천년의 바람 서울 가는 길 하늘만큼 먼 나라등 시대상황을 담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을 연극무대로 끌어들였다. 한국 현대 연극사를 관통하는 등단 40여년 궤적으로 그는 유치진, 차범석으로 이어지는 정통 리얼리즘 극작가로 꼽힌다.65년 등단한 이후 출판사에 몸담았던 시절을 거쳐 전업 작가로 살아오는 동안 온전히 극작에만 매달려온 그는 백상예술대상 희곡 부문을 세 차례나 수상했으며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대산문학상, 동랑 유치진 연극상,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이 그 앞에 놓였다.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극작으로 건재한 그의 작품 하나가 올해 초 무대에 올려진다. 2007년 국립극장이 위촉해 쓴 두 영웅. 작품은 완성했으나 공연되지 못해 텍스트로만 남아있던 작품이다. 두 영웅은 초연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수십 년 같은 길을 걸어온 원로배우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에게 각별한 의미다. 19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대극장에서 올리는 두 영웅은 사명대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조선과 일본의 두 영웅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영웅이 사라진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서울연극협회 원로회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차범석연극재단 이사, 사명당기념사업회 이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을 맡고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6.02.12 23:02

취임 한달 김양호 전북선관위 사무처장 "선거구 획정 혼란 최소화, 4·13 총선준비 최선"

413 총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구 획정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아 정치신인 등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국민의당이 새롭게 탄생함으로써, 그동안 양당 대결 위주로 전개됐던 선거운동의 양상도 다소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지난 1월 부임해 취임 한달을 맞은 김양호 전북도선관위 사무처장으로부터 413 총선에 대한 선거관리 준비와 중점 업무처리 등에 대해 들어봤다.-취임 이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지난 83년 경원동에 있던 도선관위에서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초임부터 8년여간을 몸 담았던 곳에 다시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부터는 사전투표와 재외선거, 선상투표가 처음으로 동시에 실시되기 때문에 선거환경의 변화와 준비상황을 챙기고 제반 사항을 검토하는 등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총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선거구가 획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선거관리에 혼란도 있을 것이고, 정치신인 등의 불만도 많을 것 같은데요.네, 지난해 말까지 획정되었어야 할 선거구가 현재까지 늦어지고 있는데요, 우리 선관위에서도 지난 1월 11일 성명서를 통해 국회에 조속한 선거구 확정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선거관리 주무 헌법기관으로서 선거구 소멸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새로운 선거구가 획정될 때까지 종전 선거구를 적용하여 예비후보자 등록신청을 접수처리하고,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도와 구시군 선관위는 유권자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큰 동요없이 절차에 따른 선거관리 준비를 차분히 하고 있습니다.-이번 총선을 맞아 선거관리 측면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첫째는, 국민의 신뢰 확보 및 투명성 강화입니다. 투표소 결정, 투표함 운송 및 보관접수, 투개표 참관 등 주요 선거과정에 후보자 등 이해당사자가 참관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투명성을 강화할 방침입니다. 둘째는, 자유와 공정이 조화되는 준법선거 실현입니다. 국민이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예방단속활동을 전개하고 5대 중대 선거범죄는 반드시 처벌받을 수 있도록 과학적 조사기법과 단속역량을 집중하여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유권자 중심의 선거구현도 중요합니다.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 및 후보자 등의 자유로운 선거운동이 적법하게 이루어지는 선거를 구현하기 위해 지원을 강화하겠습니다. 투표권 행사, 정당후보자의 선거사무 준비에 필요한 사전안내를 강화하고 편의서비스를 적극 전개하고 인터넷모바일앱QR코드 등을 통해 후보자 정보, 투개표 상황 등 선거정보 서비스의 신속정확하게 제공해 유권자의 알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려고 합니다.-벌써부터 일부에서는 여론조사 등을 놓고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지요?이번 제20대 총선은 2017년 대선에 앞서 실시되는 선거로서 정당 및 후보자간 과열경쟁이 예상됩니다. 선거구 혼란 등으로 선거운동이 다소 주춤하여 현재까지는 위반행위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기부행위 3건, 불법인쇄물 3건, 현수막 등 불법시설물 관련 2건, 허위사실공표 1건 등 10건이 적발됐으며 모두 경고조치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특히 △매수 및 기부행위 △허위사실공표비방특정지역 비하 등 흑색선전행위 △후보자추천 관련 금품수수행위 △언론의 허위왜곡보도 등 불법행위 △불법선거여론조사 등을 5대 중점선거범죄로 정하고 특별단속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디지털 포렌식 기법과 데이터 분석기법 등을 활용해 정확하고 심도있는 조사를 통해 5대 선거범죄에는 더욱더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입니다. 특히, 흑색선전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었는데요, 선거운동을 위해 정당,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와 관련하여 특정 지역지역인 또는 성별을 공연히 비하모욕하는 행위에 대해 1년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우리도 별도의 흑색선전 전담반을 편성운영하여 대응을 강화할 예정입니다.-선거 여론조사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여론조사를 둘러싼 시비도 늘고 있습니다.네,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여론조사 관련 공직선거법 및 선거여론조사기준을 몰라서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입후보예정자 등을 대상으로 개정사항을 적극 안내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거여론조사가 상시 실시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선거여론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중 공표보도를 목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모두 심의할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하고 사전신고와 등록의무를 상시화 했습니다. 또 공표보도된 선거여론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www.nesdc.go.kr)에 등록된 내용과 비교 확인이 가능합니다. 왜곡 또는 조작이 의심되는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신속한 심의와 엄정한 조치로 불법선거여론조사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유권자들의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이 높은 여론조사결과의 허위왜곡 공표 및 언론의 허위보도 등에 대한 처벌기준을 강화하여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이번 총선에서 또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유권자의 입장에서보자면 먼저 선거권자의 무소속후보자 추천때 날인과 함께 서명이 허용됐습니다. 또 선상투표자에게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중앙선관위가 후보자 정보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칙을 신설했습니다. 이와 함께 투표용지도 개선됐습니다. 지난 재보궐선거때 도입되었는데, 전북지역에서는 이번 총선에 처음 적용됩니다. 정당칸 또는 후보자칸 사이에 여백을 두도록 했는데, 무효표를 줄이고 유권자의 의사를 정확히 반영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봅니다. 일반국민은 물론 후보자와 그 배우자에게도 개표참관인 참여를 허용했습니다.-유권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해주시죠.유권자들이 선거에 대한 참여자 및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고 선거에 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권자는 선거에서 선수도 심판도 될 수 있습니다. 관중의 자세가 아닌 적극적인 주인의식을 통해 공정한 선거분위기를 해치는 금품과 비방흑색선전에 대해서는 단호히 배격하고, 혈연학연 등 연고주의나 지역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며, 누가 실현 가능한 정책과 공약을 갖고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꾼인지 꼼꼼히 살펴 자질있는 후보자가 당선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드립니다.● 김양호 사무처장은광주 출신으로 전남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을 졸업했다. 83년 전북도선관위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89년 정읍선관위 사무과장을 거쳐 전남 신안군과 광양시 선관위 사무국장, 광주광역시선관위 홍보과장, 전남도선관위 관리과장 등을 거쳐 올 1월에 전북도선관위 사무처장에 발령받았다.

  • 기획
  • 이성원
  • 2016.02.01 23:02

취임 한달 강병재 K-water 전북지역본부장 “건강한 수돗물 안정적 공급 최선 다하겠다”

병신년(丙申年), 시무식에 K-water 전북지역본부 전 직원이 신년 산행에 나섰다. 이날 K-water 전북지역본부 직원들은 붉은 원숭이가 상징하는 열정과 지혜로 모두가 하나 되어‘전북지역내 안정적 물 관리와 건강한 물 공급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다졌다. 그 선봉에는 강병재 본부장이 있었다. 이제 취임한지 갓 한 달. 지역 내 유관기관과의 교류와 더불어 현장시찰 및 현안업무를 챙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강 본부장을 만나 올 한해 K-water 전북본부의 중점업무 추진계획과 전북도 물 사정에 대해 들어봤다.-전북지역 근무는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달간 지내 본 전북에 대한 인상은 어떠신지요.“전북지역에서의 근무는 처음이지만, 2004년 전주시 지방상수도 유수율 제고를 위한 현장진단시 전주시내를 직접조사 한 경험이 있어 낯설지가 않습니다. 또한, 전북에는 1급수 수질을 유지하는 국내 다섯 번째 규모의 용담댐과 호남평야의 젖줄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 등이 위치하고 있어 지역 내 현황을 살펴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업무 파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K-water 전북본부의 주요 업무와 조직체계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저희 전북지역본부는 1처·7관리단으로서 약 27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또한 용담, 섬진강, 부안 등 3개 다목적댐 및 광역·지방 등 6개 수도시설과 군산시 옥도면 5개소에서 해수담수화 시설을 운영 중에 있으며 특히, 용담댐을 수원으로 하는 전주권 광역상수도는 전주, 군산, 익산, 김제, 완주, 서천 등 120만 명의 시민에게 하루 약 46만㎥의 건강한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2016년 경영방향과 임기동안 역점사업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K-water 전북본부는 올해 ‘우리는 물로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기업의 미션을 이룩하기 위하여 ‘가치창조·고객신뢰·미래성장’이라는 경영방향을 토대로 본부 내 중점사항을 설정해 추진할 계획입니다. 먼저 물재해 대응 및 물복지 실현을 위한 역할 확대의 일환으로 영산강·섬진강수계 운영합리화를 위해 지난해에 이어 후속업무를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지속되는 가뭄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 물 전문기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2015년 환경부 주관 수도사업운영관리실태 평가 1위와 먹는 물 수질 1등급 달성 경험을 기반으로 무엇보다도 도민을 위한 건강한 물 공급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섬진강댐 보조여수로 준공에 따른 기대 효과는 무엇인가요.“섬진강댐 재개발사업 내 보조여수로는 2007년 착공해 7년만인 지난해 11월 준공했습니다. 신설된 보조여수로(직경 15.5m×2련×0.6㎞)는 심화되고 있는 기상이변에 대비해 발생 가능한 최대 홍수(PMF : Probable Maximum Flood)에도 댐시설의 안정성 확보와 댐 상·하류 지역주민의 홍수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아울러 연간 6500만톤의 용수를 추가 확보해 섬진강 하류로 흘러보내 주게 됨에 따라 순창, 남원지역 등으로 통과하는 수량이 전보다 풍부해져 주변 하천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하류지역의 물 부족 해소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다원화됐던 섬진강댐 물관리를 올해부터 통합관리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나요.“그 간 섬진강댐은 한국수력원자력(수력발전), 한국농어촌공사(농업용수 공급) 그리고 K-water(홍수조절과 생활용수 공급) 이렇게 3사가 목적별로 분산·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뭄과 홍수 등 재해에 취약하고, 효율적인 물관리가 어려웠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지난해 11월 댐 운영기관 3사와 전북도 등 유관기관이 상호협력을 위한 ‘물상생 기본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년에는 3사가 보다 효율적인 물관리를 위한 ‘댐 통합관리규정’을 제정해 섬진강댐 통합물관리를 실현시키고자 합니다”-지난해 유례없는 가뭄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올해 물 확보를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요.“우선 우리 본부에서 관리중인 용담, 부안, 섬진강 3개 다목적댐은 올해 우기 전까지 용수공급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앞으로도 체계적인 운영관리를 통해 저수량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익산시를 포함한 일부 광역 미공급 지역에 가뭄으로 인한 수돗물 공급 차질이 예상됨에 따라 광역상수도 추가 공급시설 확충 및 적기 공급을 통하여 도내 물 부족 문제를 선제적으로 지원 해결함으로써 지역주민에게 신뢰받는 공기업이 되도록 하겠습니다”-업무 추진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앞서 말씀드린 역점사업들을 잘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주민에게 신뢰받는 청렴한 조직문화 구현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부 고유의 안전·청렴주의보인 ‘워치콜(2015년 국민권익위 수범사례 K-water 대표과제 선정)’ 등을 통해 4년 연속 청렴도 최우수 본부 달성에 힘쓰겠습니다. 청렴한 조직 문화를 토대로 물 전문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면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기업’으로 지역사회와 융화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전북도민이 만족하고 신뢰하는 K-water 전북지역본부가 되도록 저를 비롯한 직원들이 올 한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병재 본부장은] 쌍방향 소통중시·상하수도 전문가지난달 15일 취임한 강병재 K-water 전북지역본부장은 전남 영암출신으로 전남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7년 K-water와 인연을 맺은 후 기술감사팀장을 거쳐 대산산업용수건설단장, 임진강건설단장, 구미권관리단장 및 K-water 연구기획처장 등을 역임했다. 재직기간 중 약 25년을 상하수도 분야 업무를 수행하였고 상하수도기술사와 충북대 도시환경공학 석사학위 취득 등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지방상수도 운영관리 모델이 되고 있는 K-water 최초의 논산시 지방상수도 운영효율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등 상하수도분야 전문가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강 본부장은 평소 소통을 바탕으로 한 강한 추진력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실제 강 본부장은 직원들과의 내부 교류뿐만 아니라, 세종연구소 국정과제 연수과정, 대진대 CEO과정과 영남대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하는 등 K-water와 외부를 넘나들며 다양한 네트워킹을 고루 펼치며 사람중심의 경영철학을 중시하고 있다.

  • 기획
  • 강현규
  • 2016.01.25 23:02

문화콘텐츠기술학회장 한동숭 전주대 교수 "문화와 기술 융합은 가까운 미래…전북이 새 물결 주도하자"

문화와 기술의 융합이 화두다. 기술이 재발견되는 영역에서 문화는 재구성되고 창조된다. 상품의 경쟁력 또한 기술력과 문화적 가치의 융합이 좌우하는 시대. 문화콘텐츠의 힘은 그만큼 더 강해진 셈이다. 기술과 문화가 각각 따로 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갈 길은 더 분명해졌다. 국가가, 각 도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화와 기술과의 융합을 기반으로 한 창조산업에 나서는 이유다.올해부터 문화콘텐츠기술학회 회장을 맡게 된 한동숭교수(55, 전주대)를 만났다. 한 교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와 기술의 융합을 주목해 그것을 학문적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다시 산업화의 길로 물꼬를 트는 일을 주도해온 연구자다. 2010년 호남권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를 개설하고 운영하면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공간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그는 전북, 전주야말로 문화융합 기술을 리드하고 풍요롭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환경이라고 단언한다.한교수가 들려준 문화콘텐츠와 기술의 융합 환경을 보니 이미 우리 일상은 지배당하고 있다. 그 속도가 만만치 않다. 낯설지만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 필연적 환경이라면 기술력에의 도전과 경험의 축적이 우선 필요하다.문화와 기술의 융합이 가져올 우리의 미래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예견되지 않는 환경에서 인간과 과학 기술의 바람직한 관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해졌다.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해졌다. 문화와 기술의 융합이란 이 도도한 흐름에서 더 인간적이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한 교수는 그 답 또한 인간이 주도하는 과학기술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지금까지의 기술은 어떻게 보면 기술자체적으로 발전해왔다고 봐야한다. 인간과 상호작용하기 보다는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일방적으로 제공해주는 시스템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대량생산 시대의 한계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수요자를 생각하면서 만들어내는 콘텐츠여야 성공한다. 당연히 인간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과 감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호남권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의 사업이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짧지 않은 동안 성과도 많았겠습니다.5년 사업이었습니다. 중간에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성과가 있었죠.-국가사업 아니었습니까.물론 국가지원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담당부처가 바뀌면서 사업의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렸어요. 애초는 문체부에서 시작했는데, 정부부처가 개편되면서 미래부로 사업이 이관되었거든요. 사업이 힘을 금방 잃게 되더군요.-다른 권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겠는데요.네 권역별로 전국에 3개의 센터가 있었는데, 대구는 문체부에 그대로 남고, 부산과 전주는 미래부로 갔거든요. 그나마 저희는 센터를 스마트공간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로도 역할을 할 수 있게 운영하고 있어서 연구 주제별로 사업을 유치해서 진행하면서 센터의 인력이나 시설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센터는 R&D기능이 중심이었겠죠.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희는 학교 안에 센터를 두어서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능을 강화할 수 있었지만 부산이나 대구는 기업과 친화적인 부분은 잘 이끌어갈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R&D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으니 기자재라든가 시설 인력 부분에서 일정하게 연속성을 가져갈 수 있었지요.-문체부에서 처음 이 사업을 수행할 때 목표를 어디 두었었습니까.목표는 지역의 문화기술을 극대화시켜보자는 것이었어요. R&D 네트워크와 산업화에 중점을 두었죠. 사실 이전까지는 문광부 사업이라해도 R&D를 중심으로 한 사업은 대학이 중심이었죠. 그런데 그 사업이라는 것이 작은 랩에서 1년에 2억 원 정도 지원하는 수준이었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이 사업이 개인 연구의 연속선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상 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이제 그 부분을 통합해 권역별 정책 사업으로 바꾸어 목표를 확장시킨 것이죠. 연구사업과 함께 지역 산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문화기술쪽에 새로운 산업군을 형성하게 하는 그런 역할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센터가 개설된 2010년이면 지금과는 환경이 많이 달랐지요.IT와 문화기술 분야의 혁신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어요. 2009년 11월에 한국에 아이폰이 처음 들어왔거든요.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한 셈인데, 저희는 그때 논란이 있었긴 했지만 센터의 별칭을 스마트공간으로 붙였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혁명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 기술을 지역의 기존 전통산업과 연계시켜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누구나 앱을 쉽게 개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는 도내는 물론, 서울에서도 프로그래머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그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죠. 전라북도가 갖고 있는 문화적 특성을 살려 문화관광과 스마트폰을 연결시키는 스마트 혁명을 이뤄내고 싶었거든요. 관련된 기술 업체들을 이전 시켜 그 기업들이 센터를 기반으로 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문화 관광 전시 분야에서 기술 개발이 이뤄졌습니다.-실제 현장에서 적용한 예가 있습니까.여수 엑스포 참여를 들 수 있겠습니다. 2013년 여수 엑스포를 위해 2년 정도 준비했었죠. 스마트폰과 연결해 인터랙션을 전시기법에 들여놓았는데, 전시 개념을 확장시키는 성과를 가져왔어요. 호응이 높았죠. 또 한편으로는 도내 업체와 함께 관광 앱과 게임을 만드는 일을 진행했고요.-개발된 앱의 활용도는 어떻습니까.자치단체와 함께 이끌었던 사업인데, 앱개발은 성과가 좋았어요. 경기도의 문화관광앱을 제작하는 업체도 있었으니까요. 증강현실기술을 관광앱에 적용한 예가 그리 많지 않았었거든요.-우리 지역의 IT업체 규모나 수준은 어떻습니까.대략 아이티 업체들을 40개정도로 보는데, 규모로 보면 크진 않지만 서울이나 대전 같은 광역에는 못 미치지만 게임분야는 우리지역이 뒤처지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부산이 게임 산업이 부상하고 있지만 전북이 수준도 만만치 않거든요.-그렇다면 우리지역의 IT업체는 게임분야가 대부분인가요.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게임업체보다 SI(system integration, 시스템 통합) 업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의 업체들이 경쟁하면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일반인들도 쉽게 다룰 수 있게 되었잖아요. 그러다보니 SI업체들이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되었죠. 사실 IT산업이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고민해보면 앞으로는 당연히 콘텐츠 쪽으로 가는 것이 맞거든요. 콘텐츠분야의 강화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한데, 문화콘텐츠의 60%정도가 게임산업입니다. 그렇다보니 게임업체가 늘어나게 된 것이죠.-전라북도의 게임 관련 업체는 어떻습니까.수준이 높은 편이지요. 사실 독자적으로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업체가 지역에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전주와 대구 부산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지역은 전주정보영상진흥원이 2000년대 초반부터 모바일과 핸드폰 게임을 만들어내는데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가 유치되면서 전라북도에서도 게임에 관심을 갖고 지원정책을 폈죠. 작년에는 글로벌 게임센터가 생기면서 서울의 업체들까지 내려오는 환경이 된 겁니다.-기반 선점이 주효했던 것 같군요.물론이죠. 지속성이 중요하니까요. 현실적으로도 우리 지역이 모바일이나 스마트폰 게임 분야를 주목했던 것은 잘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가령 영화 같은 분야는 어차피 대자본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만큼 큰 규모의 인프라가 필요한 부분이죠. 그러나 모바일이나 스마트폰 게임은 작은 규모여서 지역에서도 잘 할 수 있는 분야니까요.-문화기술의 확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만 해도 불과 4-5년 만에 우리 일상 속에 완전히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이런 환경의 변화를 보면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은데. 지금은 빅데이터와 IOT(Internet of Things)가 화두예요. 거기에 3D까지. 모두 아직은 낯선 분야지만 스마트폰이 그랬던 것처럼 곧 우리 일상에 들어오게 되겠죠.- IOT의 경우는 우리 일상을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 같은데요.물론입니다. 이미 시작되었죠. 사물인터넷(IOT)은 모든 것에 컴퓨터 인터넷을 집어넣는 방식인데 지금까지는 인간과 컴퓨터가 연결되어 통신 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컴퓨터끼리, 다시 말하자면 사물끼리 연결해 통신하게 하는 것이죠. 인간이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한 가지만 작동해놓으면 사물끼리 통신을 해서 작업을 진행하는.-갈수록 인간이 할 일은 더 없어지겠군요. 아직은 좀 먼 이야기 아닐까요.그렇지 않습니다. 빅데이터도 그렇지만 IOT는 다양한 분야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어서 이미 많은 산업제품들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그렇고, 가전제품도 다 적용되는 분야지요. 전라북도 경우는 농생명에 IOT를 접목시키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농장에 스마트 팜을 조성하고 스마트 팜을 통해 습도 조절이나 모든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미 기반은 다 개발되어 있는 상태고 다만 얼마나 정확하게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검증이 남아 있습니다. IOT가 콘텐츠 뿐 아니라 생산현장을 바꾸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3D가 가져올 변화도 주목됩니다. 예전에 3D를 이용한 맹아인 앨범을 만든 것을 보았어요.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을 손으로 만져서 느끼게 하는 기술이 놀라웠습니다.3D 프린터는 가격도 아주 저렴합니다. 컴퓨터 쪽에서 연결해서 프린팅하는 방식이어서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지요. 앱이 개발되어 있어서 스마트폰에서도 가능하고요. 모델 데이터가 필요한데, 데이터만 있으면 일반 프린터의 기능과 똑같습니다.-3D의 확산 역시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 올 것 같아요.어떻게 보면 이제는 물체의 이동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3D 역시 콘텐츠의 측면 뿐 아니라 생산현장을 완전히 바꾸는 기반이 됩니다. 20세기가 대량생산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수용자 한명 한명에 대한 맞춤형 생산을 하는 질적 생산의 시대가 된 겁니다. 모델링 데이터만 있으면 소재 뿐 아니라 색상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요. 3D프린터로 다리도 만들고 건축도 하고 있어요.-전주가 3D산업에 주목하고 있지 않습니까.3D 프린팅 센터가 유치되었죠. 미래부에서 전국에 4개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전주에 와있고, 또 하나가 익산니트산업연구원에 있습니다. 3D산업은 전라북도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전망이 밝죠. 특히 전주의 센터는 주로 탄소 소재를 활용한 것인데 새로운 소재개발 뿐 아니라 공예를 비롯한 전통문화와 관련된 부분을 3D프린터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우리의 가까운 미래에 만나게 될 동력들이 흥미롭습니다.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분야도 있는데, 흐름으로 보면 가상현실도 주목해야 할 분야입니다. 정부도 VR을 올해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가상현실도 아직은 확장성이 크지 않은 것 같긴 한데 우리 일상과 직접 연결되는 기술이 아니겠습니까.가상현실은 그동안 주로 교육용으로 접할 수 있었죠. 그러나 그 확장성이 커서 문화콘텐츠와 접목시키는 작업이 보다 활발해질 겁니다. 가상현실보다 더 나아간 것이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인데 이제는 개인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거든요.-기술력의 발전을 듣다보니 가까운 미래의 삶이 두려워지기도 합니다.(웃음)그러나 사회는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겁니다. 그러니 그러한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지요.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보면 이러한 변화를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이끌고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나라들이 어떻게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IT 쪽만 해도 유명한 게임 회사들은 거의가 북유럽에 속해있거든요. 자본 중심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산업들에 강한 북유럽을 우리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과제와 한계가 크지 않습니까. IT강국이라고는 해도 콘텐츠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는 것 아닌가요.그렇죠. 기술력은 있으나 콘텐츠 측면에서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문제는 창조경제를 이끌어 갈만한 기반이나 체제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지금 필요한 것은 철학부터 사회적인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육체제부터 바꾸어야 해요. 고등학교 과정만 해도 여전히 문과와 이과를 나눈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융복합을 내세우면서 교육단계에서부터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가져가는 현장은 모순이죠.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한 교수는 전북이 문화기술융합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확신한다. 풍부한 문화자원이 그렇고, 문화적 감성을 지닌 인성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 말미 조심스럽게 내비친 아쉬움이 있다.우리 지역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인 것 같아요. 서로를 격려하는 문화도 아쉽고요. 귀 기울일 대목이다.● [한동숭 회장은]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 유치 이끈 'IT 과학기술 전문가'한동숭 교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전주사람이 된 것은 1993년 전주대 교수로 임용되면서부터다. 전공은 수학. 서울대 자연대에 들어갔을때 부모님은 다른 과 선택을 기대하셨으나 실험을 해야 하는 과는 적성에 맞지 않아 자연스럽게 어릴적부터 좋아하고 잘했던 수학을 택했다. 내친김에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서울대에서 마쳤다.전주와의 인연은 대학시절에 이뤄졌다.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그는 농활을 위해 전주 인근으로 내려와 고된 경험을 했다. 오가는 길에 들렀던 전주는 걸판졌던(?) 막걸리와 안주상으로 기억하게 됐다.전주대 교수가 된 이후로는 전주를 떠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전주사람이라고 생각한다.IT와 스마트 등의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은 순전히 관심과 시대의 환경을 빨리 읽어내는 개인적 특성 덕분이다. 그가 교수로 처음 몸담았던 수학과는 전산수학과를 거쳐 게임콘텐츠학과가 되었다.학교 안을 넘어서 지역의 문화콘텐츠기술 역량을 키워 보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이 분야를 주목해온 그는 2010년 문체부의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를 호남권에 유치하는데 성공한 이후 5년 동안 운영해오면서 문화콘텐츠를 기술과 접목시키는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이끌었다. 센터를 중심으로 미디어아트캠프를 만들어 지역 예술인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함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싶었으나 예술인들의 참여가 미미해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지역 예술 창작 환경의 변화를 아쉬워 한다.어릴 적부터 노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영화와 드라마 보는 것을 즐긴다. 중고등학교시절까지는 입시공부에 매달려 책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소설읽기를 좋아했다. 대학에 들어가 인문과학 서적을 만나면서부터는 수학보다 이 분야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됐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과 관점을 이때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문화기술공동연구센터 사업은 끝났지만, 문화기술 융합에 더 큰 관심이 생겨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창조산업 창조경제의 기반을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 지역의 콘텐츠 산업 발전과 인력 양성 기반 조성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문광부의 콘텐츠랩 사업을 전라북도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연말, 문화콘텐츠기술학회 회장을 맡게 된 이후 문화콘텐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정부에 제안하고 정책화시키는 활동을 활성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6.01.22 23:02

신임 김일재 전북도 행정부지사 "전통·현대 어우러진 전북, 무한 성장 가능한 황금어장"

김일재 전북도 행정부지사(56)는 조직내부의 원활한 소통과 협업을 위해 “실·국간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의 많은 핵심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국간의 정보 공개와 공유와 협업 등이 중요한데, 보이지 않는 실·국간의 칸막이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중앙부처에서 추진하고 있는‘정부 3.0’전략인‘개방-공유-소통-협업’을 전북도에 접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취임 한달째를 맞은 김 부지사를 만나 도정의 현안과 과제, 행정부지사로서의 포부 등을 들어봤다.- 5년여 만에 다시 전북도청으로 오게 됐는데, 소감은.“지난 2009년 봄부터 2010년 여름까지 전북도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직했다가 중앙부처로 복귀하여 여러 부서에서 경험을 넓힌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할 수 있게 되어 무한한 기쁨이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기쁨과 영광스런 마음에 앞서, 새롭게 비상하고 있는 전북도의 도정에 일조하여 도민들께서 소망하시는 결실을 이루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전라북도의 발전이 나라발전의 튼튼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민선6기 전북도정의 순항에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지난 2009년 근무했을 당시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도정도 하나의 역사입니다. 역사는 과정이 쌓여 이루어지는 만큼 어느 한 부분을 떼어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분명한 것은 전북발전을 향한 동료 공무원들의 열정과 의지가 그때나 지금이나 뜨겁다는 것입니다. 다만, 2009년 당시에는 새만금 사업 등 하드웨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하드웨어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 지금은 전북이 갖고 있는 장점인 생태환경과 전통문화 등의 소프트웨어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더불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01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유치, 익산 미륵사지 등 백제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전북연구개발특구 지정,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유치, 새만금 공항관련 사전타당성 용역비 확보, 금속금형철강과 식료품 등 135개 기업과 8000여억 원의 투자 유치 등 최근 뚜렷한 가시적 성과가 많았다고 생각됩니다.”-중앙 부처에서 봤을 때 타 시·도와 비교해 전북이 갖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전체적인 여건으로 볼 때 전북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황금어장’입니다. 수도권에 있는 많은 분들과 평소 대화하다보면 ‘전북’에 대해 떠올리는 보편적인 이미지로 ‘전통 한옥마을이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판소리가 유명하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며, ‘새만금’으로 대표되는 대형 사업들을 떠올립니다. 전북은 도시화, 산업화 기반은 약하지만 전통 문화관광자산과 청정자연환경을 보유하고 농생명과 식품 등 산업기반을 선점하고 있으며, 탄소산업을 비롯한 연구개발 특구와 연계된 첨단 산업들이 병행 추진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새만금지역 개발 등 무한한 미래의 발전 가능성과 기회를 갖고 있어 마치 난류와 한류가 합쳐지는 지역처럼 ‘황금어장’과 같은 장점을 가진 지역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사님께서도 연초에 전북일보 기고에서 밝힌 것처럼, 과거 산업화시대에는 취약점으로 생각됐던 깨끗한 생태환경과 농경문화, 역사와 전통문화 등은 신문명의 시대에 내발적(內發的) 발전전략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 반면, 아쉽거나 취약한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농생명, 관광, 탄소 그리고 새만금이라는 성장기반이 착실히 마련되고 있지만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될 공항, MICE 등 필수 SOC는 매우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국제행사나 국제대회 등의 유치가 쉽지 않고, 대규모 투자유치도 협의 과정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시급한 현안과제는 도로, 항만, 철도, 공항과 대규모 공공시설인 호텔, 컨벤션, 위락단지 등 부족한 필수 SOC 확충입니다. 전북발전은 물론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수 SOC 확충은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라고 봅니다.”- 중앙부처와 전북도간 인사교류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는 활발치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지난해 파견까지 포함하여 실질적인 인사교류라 할 수 있는 계획교류는 총 69명으로, 최근 3년간 1대1 인사교류는 2명에서 13명으로 6배, 파견자는 33명에서 56명으로 2배 정도 증가하였습니다. 시·도별 평균 파견자 108명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지만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동안 인사교류자 수가 적었던 것은 도청의 인사상황 내지 중앙부처와 도간의 적절한 교류대상자 선정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앞으로 업무역량을 강화하고 인적네트워크 확대 및 중앙과의 연계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적정선의 인적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더불어 전북도와 도내 14개 시·군간의 인사교류도 최근들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도와 시·군간 인사교류는 ‘전라북도 자치단체간 인사교류 협약’에 따라 도에서 조정하되 당해 자치단체장의 동의를 얻어 연고지 희망자 우선에 따라 각 직렬을 대상으로 6급이상 1:1 동수 교류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교류 협약이 지난 2014년 6월 30일 만료됨에 따라 인사교류 기준에 의거 동일 직렬·직급으로 1대1교류, 시군 도청전입시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치단체 사정에 따라 규모가 일정치 않으나 전체적으로 도 전입은 늘고 전출은 줄어드는 추세인 것은 사실입니다. 도와 시군간의 인사교류도 중앙과 도의 교류 못지않게 업무역량 강화 등에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시군과 긴밀히 협의하여 보다 활발한 인적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행정부지사로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현재 전 중앙부처가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개방-공유-소통-협업’ 등으로 요약되는 ‘정부 3.0’의 전략을 전북도정에 창조적으로 접목시켜 전북행정을 한단계 업(up) 시키고자 합니다. 미래의 먹거리,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개발과 예산확보, 도정현안 해결 등도 중요하겠으나, 이를 추진하는 행정절차 측면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많은 핵심 과제들이 도청내 여러 부서간, 도-시군간, 도-유관기관 및 전문가, 정치권 등과의 협업과 참여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점을 고려할 때, 개방-공유-소통-협업을 강조하는 ‘정부 3.0’ 내지 ‘지방정부 3.0’의 혁신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집사광익(集思廣益)의 정신으로, 향후 신규 정책 개발은 물론, 기존 정책을 개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 분야의 참여와 의견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창의적 도정과 소프트웨어적 혁신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김일재 행정부지사는] 정부 정책기획 부서 두루, 유엔·미의회 파견근무도1960년 순창에서 태어나 서울 숭실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 행정환경대학원에서 석사, 가천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1987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이후 대통령 정책기획비서관실·사회정책비서관실 행정관, UN사무국(경제사회처, 파견),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조직위원회(파견), 행정자치부 조직기획팀장 등을 거쳤다. 지난 2009년에는 고향인 전북도에서 기획관리실장을 맡았다. 이어 2010년 고향을 떠나 행정안전부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 및 행정선진화 기획관, 안전행정부 인사실 인력개발관, 행정자치부 인사기획관 등 요직을 거쳐 민선6기 2번째 행정부지사로 부임했다.중앙과 지방, 국제기구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김 부지사는 온화한 성격에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으며, 정책기획 부서를 두루 거친 경력에서 보듯이 정책기획력이 탁월하고, 중앙부처와 다른 16개 시·도와의 인적네트워크가 매우 넓고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엔본부, 미국 의회 등의 파견근무, 88올림픽 및 2002년 월드컵대회조직위 근무 등의 경험으로 국제적 감각도 갖추고 있다.그는 지난해 12월 16일 취임사에서 “2010년 고향 근무를 마치고 떠난지 5년여 만에 돌아온 만큼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발전에 일조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중앙정치권의 창구역할을 하며 예산확보 등 주요 현안에 역량이 집중될 수 있도록 폭넓은 소통의 지렛대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 기획
  • 김준호
  • 2016.01.18 23:02

신임 강태호 농협중앙회 전북본부장 "전북 농업 발전·농업인 소득 향상 모든 노력 다할 것"

최근 한중 FTA 발효와 가뭄 등 지속적인 기상이변의 영향으로 미래 우리 농업이 어려운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 부처와 유관기관 등은 이런 악조건을 딛고 농가 소득 향상을 꾀하기 위해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농도인 전북지역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농협중앙회 전북지역본부는 신임 본부장 취임에 맞춰 올해 다양한 정책 및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에 지난달 29일 취임한 강태호(55) 농협중앙회 전북본부장으로부터 전북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향후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본부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전북농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십니까.“최근 우리 농업·농촌은 강대국인 미국과 EU, 중국 등과 잇따라 FTA를 체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농업인의 경영부담이 가중되는 등 농업은 더욱 어려운 환경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농촌 고령화로 농업인들이 후계인력을 양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후계인력 육성을 위한 관련 사업을 중점 추진하고, 지난해부터 지속되고 있는 가뭄과 고온다습 등 기상이변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 이러한 때 전북농업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선도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돼 부담도 크지만, 전북 농업발전과 농업인의 소득향상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을 신념으로 삼고 병신년 새해를 희망차게 맞이하겠습니다.”-올해 주요 사업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농협의 궁극적인 목표는 농업인들이 땀 흘려 생산한 농축산물을 제값에 잘 팔아주는 것입니다. 다행히 전북농협은 산지유통종합대상을 전국 최초로 4년 연속 수상할 정도로 산지생산조직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또한 엔화 약세와 주요 수출국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전북농협의 농산물 수출은 약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 농산물 수출 목표액을 지난해보다 500만 달러 증가한 3000만 달러로 정하는 등 농가소득 증대에 힘쓰겠습니다. 특히 수출자금 지원과 전문교육, 공동마케팅을 확대하고 배와 파프리카·포도·복숭아 등 수출품목을 확대해 수출판로 활성화를 이끌어 내겠습니다. 또한 조합공동사업법인 관리체계 개선을 통해 연합판매사업을 확대하겠습니다. 조합공동사업법인의 경영안정을 위해 지속적인 현장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출하농산물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등 농업인과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받는 농협이 되겠습니다.” -전북지역 쌀의 경쟁력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쌀 판매 확대를 위한 계획이 있으신지요.“전북은 쌀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전국에서 상위권에 속합니다. 하지만 지역 여건상 지역에서 생산된 쌀의 60% 이상을 다른 지역에 팔아야 하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주요 판매처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저가 출혈경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쌀 판로를 다변화해 제값을 받고 쌀을 판매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이를 위해 쌀 고품질화, 수매자금 지원, 엄격한 품질관리 등 지역 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각적인 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특히 쌀 판매망 확대에 도움이 된 부산, 제주시장 공략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겠습니다.” -다른 농산물의 판매 및 판로확대를 위한 구상도 있으신지요.“소비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농산물이 유통될 수 있도록 신뢰를 쌓아가겠습니다. 필요하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전북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힘쓸 것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고 맛도 좋은 농산물을 제공할 수 있도록 품질 제고와 내수시장 개척에 지속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또한 소비자들이 우려하는 가축질병 예방활동을 강화해 청정축산을 구현하겠습니다. 이에 올해도 공동방제단을 운영하고 구제역 백신 공급을 철저히 하는 등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받는 축산 환경을 구축하겠습니다. 또한 지속적인 컨설팅과 생산농가 교육으로 가축 방역의식 및 경쟁력을 높이고, 자치단체 및 소비자 단체와 연계한 다양한 소비촉진 및 나눔축산 운동을 펼쳐 축산물 판매를 확대하겠습니다.” -우리 농업이 6차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농촌에 산재한 모든 유·무형 자원을 활용해 농촌의 부가가치를 높여 농업인의 소득 및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촌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효율적인 마케팅을 통해 도시민들이 농촌에 애정을 갖고, 이 과정에서 지역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이에 전북도도 6차산업화 사업에 대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북농협도 자체 컨설팅을 통해 6차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도민과 농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최근 우리 농업·농촌은 대내외의 급격한 변화로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기회 삼아 농업을 토대로 미래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합니다. 농산물 시장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또, 도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유통해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전북농협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강태호 본부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사람 잘 챙기는 '농협 신사'“변화와 혁신으로 외부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나가겠습니다.”지난달 29일 취임한 강태호 농협중앙회 전북본부장은 부안군 동진면 출신으로 부안농업고와 농협대학교를 졸업한 뒤 지난 1982년 단위농협인 부안 동진농협에 입사해 농협과 인연을 맺었다.이후 1988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전북본부 금융지원팀장·보험센터장·호성파크 지점장·전북검사국 국장, 농협중앙회 상호금융여신부 채권관리단 단장 등을 역임했다.지역 농업·농촌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 농협에 투신했다는 강 본부장은 10일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말단 직원 때 농촌현장에서 농업인들과 땀흘려 일하던 시절을 회상한다”며 “농업인과의 끈끈한 협력관계를 통해 희망찬 농촌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그는 농협 내에서 ‘신사’로 통한다. 이런 면모에는 그의 깔끔한 외모와 부드러운 어투도 한몫한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특히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챙긴다고 한다. 자기계발에도 힘써 2010년에는 전북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그의 이런 활동 저변에는 지역 농업·농촌에 대한 짙은 애정이 깔려 있다. 인격과 지성을 갈고 닦아 지역 농업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은 열망이 큰 것이다.강 본부장은“농협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해 농업인으로부터 신뢰받는 본부장이 되겠다”며 “앞으로 지역 농·축협과 영농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고,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쏟겠다”고 말했다. 강 본부장은 이어 “신념과 열정을 바탕으로 전북농협의 혁신을 이끌어 내겠다”면서 “믿음과 애정으로 성원해 달라”고 말했다.

  • 기획
  • 최명국
  • 2016.01.11 23:02

이웃과 나누는 삶 실천하는 박남준 시인 "나에게 아직 나눌 것이 있다는 것…생각만해도 큰 행복이죠"

어쩌면 치미는 슬픔 같은 먼 봄날의 아지랑이/이렇게나마 겨우 늙었다 /강을 건너온 시간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두 귀가 순해질 차례다( 마음의 북극성 중)나이 한살 더해서일까. 새해 아침 시를 읽다가 유독 마음 둥글게 만드는 문장을 얻었다. 시인을 떠올렸다. 이 시가 실린 그의 일곱 번째 시집 이름은 〈중독자〉. 늘 따뜻함으로 풍요로운 그의 시와 산문을 생각했다. 거친 말도 온 힘을 다해 다독여 순한 말로 되살려내는 시인의 치열함을 품은 시집의 이름은 그래서 왠지 낯설었다.모악산을 떠난 지 13년째.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는 박남준 시인을 만나러 갔다.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해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시인을 만나 나이를 더하고 이제 두 귀가 순해질 차례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겨울의 고비에서도 햇살은 마치 봄날 마냥 넓게 퍼진 날이었다.동매마을 맨 윗자락에 자리 잡은 시인의 작은 집, 지붕 아래 곱게 깎아 말린 곶감이 예뻤다.시인은 어느새 우리 나이로 예순이 되었다.나이 한살 더하는 일이 나는 참 기분 좋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이 먹는 것이 유난히 즐겁고 호기심이 생기거든요.들을 이야기가 참 많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예정시간을 넘기고도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그의 시력 30년을 돌아오는 동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지도 다시 알게 됐다. 가슴 따뜻해지는 시인의 이야기를 덜어낼 것도 더할 것도 없이 그대로 전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이유를 독자들도 알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올해 쉰아홉, 벌써 예순이 바로 앞이더군요.우리나이로 예순, 내년이 환갑이죠. 나는 60이 되는 나이를 정말 기다려왔어요. 내가 그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궁금했죠.-늙는다는 것을 기다렸다는 말씀인가요.그렇죠. 설레기도 하고. 아름다운 관계란 시에 그 마음을 담기도 했어요. 돌도 늙어야 품안이 너른 법 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 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 라고.-나이 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이 어떨까 싶었는데, 이렇게 반색을 하시니.내가 마흔 살이 될 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서른아홉이 끝나는 12월 31일 잠들기 전에 삽십대의 마지막 내 얼굴을 기억하려고 거울을 오랫동안 들여다봤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얼른 거울을 보았어요. 그랬더니 똑같더라고요.(웃음)-나이 이야기는 끝이 없겠군요. 주제를 바꾸어야겠습니다. 들어올 때보니 예고 없이 불쑥 불쑥 찾아오는 독자들을 향한 경고문이 없어졌던데요. 지금은 그런 무례한 손님들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그러워지신 것인지.여전하죠. 그리 너그러워진 것은 아닌데 나이 들어가니 나이 값을 좀 하고 살아야겠다 싶더라고요.-건강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심근경색이었다고 했던가요.3년 전에 불안정성 급성 심근경색으로 고생을 했지요. 지금도 자유롭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절박한 상황은 아니어서 치료중입니다.-수술을 받지 않는다고 하셔서 지인들이 걱정이 많았다고 하던데요.당초 한 번의 수술이 더 남아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수술을 않겠다고 작정했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하도 성화를 하니 정말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수경스님과 연관스님이 오셔서 수술비를 놓고 가셨어요. 적은 돈도 아니고. 그런데 수술을 안 할 생각이었으니 그 돈을 빨리 해체해야겠더라고요. 네팔에도 보내고 시민단체도 보내고 다 나누어 없애버렸죠.-괜찮으셨습니까. 수술비까지 그렇게 없애셨다면.그런데 작년에 일이 났어요. 시집이 나오고 여기저기 강연까지 다니면서 몸이 좀 안 좋아진 것이죠. 스님들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기껏 수술비 마련해주었더니 다 퍼주었다고요. 그래서 넉달동안 수술비를 채워 병원에 갔어요.-작년에 등단 30년을 맞아 펴낸 시집 〈중독자〉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지역 출판사에서 펴낸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던데요.나는 보통 원고를 다 쓰고 퇴고도 다해놓고 출판사를 알아봅니다. 지금껏 그래왔죠. 이 시집도 출판을 앞두고 원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수정하고 퇴고하고 있던 때인데 시낭송 행사가 있어서 함양에 갔다가 진주 수목원의 납매(臘梅)가 피었다는 기사를 보고 지인들과 함께 진주를 가게 되었어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진주문고 사장을 만났지요. 진주문고는 오래전부터 좋은 일을 많이 해온 곳인데, 들어보니 출판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겁니다.-지역 출판사는 더러 있지 않습니까.출판사를 만들려는 뜻이 특별했어요. 진주문고가 30년 되어 가는데 지역의 문화환경을 돌아보니 인문학 전문 출판사가 없더랍니다. 이런 환경을 가진 도시를 문화도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싶었대요. 30년 동안 진주 시민들의 힘으로 서점을 키웠으니 이제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요.-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도둑 제 발 저린다고 그동안 지역문화가 꽃피우려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그 결과물들이 그 지역에서 무대에 올려지거나 출판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다니면서도 정작 시집 출판은 이름 알려진 서울의 출판사에서 해야 한다고 여겨왔었거든요. 위선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얼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결정했어요. 출판사의 첫 작품이 됐죠.-이 시집에 실린 마음의 북극성이 유독 마음에 와 닿던데요.재작년 세월호 사고가 4월 16일에 났는데 20일이 곡우여서 찻잎을 땄어요. 차를 비벼 항아리에 넣고 그날 저녁 발효되는 향기를 맡으며 차가 되어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데, 문득 차를 마셔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세상은 말도 안 되는 작태로 돌아가는데 나 혼자 향기로운 차를 만들고 마시는 일이 갑자기 의미 없어지는 거죠. 자괴감으로 가슴이 미어져왔어요. 지금 나이를 어떻게 먹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바꾸었어요. 향기로운 차를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고 이 향기로운 차가 향기로운 말이 되고 향기로운 소문이 되어 세상을 떠돌고 그래서 세상의 귀가 순해지는 이야기가 들려지고 떠돌게 되면 좋겠다는. 아 그래! 그럼 이 차 이름을 이순(耳順)이라 짓자 생각했어요. 그날 쓴 시가 마음의 북극성 입니다. 그래서 이순이란 부제가 달렸죠.-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군요. 강을 건너온 시간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는 부분이 있는데, 내가 예순 살 쯤 되면 누군가의 등을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자락이 되어서 살아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쓴 시죠. 사실은 시집 이름을 마음의 북극성으로 할까 고민했는데, 중독자에 밀렸어요. 그래서 시낭송을 가면 제목이 되지 못한 이 시를 낭송합니다.-최근 강연을 자주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좀 뜻밖이었습니다.강연은 제게 새로운 환경이죠. 지난 대선 끝나고 사실 패닉 상태에 빠져 지냈어요.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어서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를 이틀 만에 도끼질을 해서 다 팼어요. 눈뜨면 나가서 허기질 때까지 도끼질을 했죠. 그 즈음 한 고등학교 아이들이 집으로 찾아와 이야기를 듣는 일정이 있었어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해줘야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찾아 왔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어요. 주체 할 수 없이 터져 나온 울음에 아이들이 조용하더라고요. 그 적막감에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숙연했어요. 그런데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선생님 저희들이 2년 후면 투표권이 생깁니다. 저희들 위해서 강의를 계속해주세요. 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또 울어버렸어요. 희망이 없던 나라의 희망을 본 것이죠. 그래서 힘들어도 열심히 강연을 다니게 됐어요.-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인가. 행복이란 뭘까. 다양한 곳 다양한 직업을 이야기합니다.- 동네밴드는 잘되고 있나요. 밴드를 만든 배경도 궁금합니다.2008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을 공약으로 내세웠죠. 그때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인으로서 자괴감이 생기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폭력 앞에 방패가 되어주거나 창이 되어주지 못하는 시인. 이렇게 나약한 것이 시고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죠. 다시 걷기 시작해 104일 동안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만든 것이 동네 밴드예요. 그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했을 때인데, 몇사람이 찾아와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만드는데 가수를 초청하고 싶다는 거예요. 예산을 물었더니 200만원, 조금 무리하면 300만원까지 마련할 수 있다는 거예요. 황당한 상황이었죠.-우선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겠군요.물론이죠. 그래서 왜 가수를 굳이 초청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재미있게 놀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이 밴드를 만들어보라고 권했죠. 사실 그냥 별 기대 없이 한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며칠 후에 전화가 온 겁니다. 밴드 연습하는데 놀러 안 오냐고.-시작이 흥미롭군요.집에 있던 기타를 둘러매고 갔는데 연습실 앞에서 들어보니 실력이 예사롭지 않은 거예요. 기타를 숨겨놓고 맨몸으로 들어갔죠. 밴드에 참여하고 싶어서 보컬은 안뽑냐고 했더니 오디션을 보래요. 3곡을 불렀는데 안 되겠다고 해서 돌아왔지요.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자꾸 섭섭해지더라고요. 갑자기 제가 갖고 있던 하모니카가 생각났어요. 앞에서 연습을 좀하다가 전화를 했죠. 마침 두 곡 정도에 하모니카가 간주로 들어간다고 해서 다시 갔어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하모니카 신동이라며 동네밴드에 겨우 끼었죠. 첫해 무대에서는 겨우 두곡하고 내려와야 했어요. 안내려오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온갖 잡다한 악기를 스스로 구해 어떻게든 끼어들었죠.(웃음)- 동네밴드하시면서 무엇을 얻습니까.첫째는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이죠. 농촌은 어떻든 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이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문화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리고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스스로 연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힐링도 되고 자긍심이 생기는 것 그것이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경제적인 삶이 우선되는 시대에 돈을 쓰지 않고 벌지 않는 삶을 택하셨는데 지금도 전 재산은 통장에 들어있는 관 값 200만원이 전부인가요.물가가 올라서 통장 잔고도 300만원으로 올렸어요. 지금도 그 이상으로 돈이 생기면 빨리 나누어 없애야 마음이 편안합니다.-그렇게 나누는 삶을 지켜가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어렵지도 않은 일입니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 가치가 서로 다를 뿐이죠.-그런 나눔이 행복하십니까.물론이죠. 저는 가끔 스스로에게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묻습니다. 명색이 시인이니 한편의 시, 마음에 어느 정도 흡족한 시를 썼을 때가 세상 어느 기쁨보다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고 답하죠. 또 한 가지는 내가 가진 삶,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그것을 세상에 내놓고 나누었을 때 그때 가장 행복하다고 답합니다. 내가 아직 나눌 것이 있다는 것, 나누는 삶을 아직 살아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의 이야기는 내내 즐거웠고 감동스러웠고, 가슴 먹먹해지게 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시인의 존재는 어떤 것이어야 하냐고 물었다.혁명가가 되어야 해요. 시대를 제대로 읽어 내는 올곧은 시정신을 가진 혁명가를 늘 꿈꿉니다.이런 막막한 시대에서도 혁명을 꿈꾸는 시인, 우리 옆에 그런 시인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박남준 시인은] 마을공동체 운동대운하 반대욕심 없는'지리산 시인'박남준 시인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일찍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큰누나가 살던 전주로 대학을 오면서 전주 사람이 됐다. 전주대 영문과에 입학했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기억은 별반 없다. 우리 역사와 현실에 눈뜨게 된 청년 시절의 일상이 온전히 민주화 현장과 길 위에 가있었기 때문이다.1984년 〈시인〉지를 통해 등단하면서 시인이 됐다. 20대에서 30대로 건너는 길, 그는 가난했으나, 가난할수록 세상을 보는 눈은 뜨거워졌다. 아무리 사소한 것에도 부정 부당한 것을 용납지 않는 성정은 단호한 결기를 더 단단하게 다졌다.80년대 말, 아주 짧게 방송작가 생활을 했다. 궁핍한 삶(?)의 끝에서 선택한 길이었으나 시가 아닌 방송 원고를 쓰는 일은 궁핍함 보다 더 큰 고뇌를 안겼다. 다시 전주로 돌아와 문화공간 운영을 맡았으나 1년 만에 전업시인으로 돌아갔다. 모악산 기슭에 거처를 마련한 즈음이었다. 산중에서 살면 돈을 쓰지 않는 삶이 가능하겠구나. 그렇다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되겠다.는 깨달음을 그때 얻었다. 최소한의 양식과 음악과 책과 자연으로 온전히 가벼워진 삶을 얻은 모악산 생활은 시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언제부터인가 원고청탁이 밀려들어 정신 차릴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경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통장에 내 몸을 누일 관하나 값만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은 그래서 얻은 답이다. 얼마 전 물가 인상을 고려해 300만원으로 올리기까지 오랫동안 그의 전 재산은 통장에 든 200만원이 전부였다.모악산 시인이 된지 12년 만에 지인들의 권유로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로 이사하면서 지리산 시인이 됐지만 정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가벼워진 삶에 마을공동체 운동이 더해져 뜻 맞는 친구들과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함께 나누며 살 수 있게 됐다.2004년 도법 수경스님과 생명탁발순례를 떠나 제주도까지 꼬박 1년을 걸었다.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살면서 걸어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물었다. 2008년 대운하 정책이 발표되자 잠 못 들던 시인은 다시 길 위에 섰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그리고 다시 거슬러 한강까지 104일을 걸었다.그해 겨울, 마을 늙은 청년들과 작당해 동네밴드를 만들었다. 지금은 꽤나 이름을 얻어 여기저기서 부름을 받는 동네밴드에서 그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무대를 지킬 수 있는 하모니카나 잡다한(?) 악기를 도맡고 있다.1990년 첫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를 낸 이후 5년을 주기로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그 아저씨네 간이휴게실 아래〉, 〈중독자〉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냈으며 산문집 역시 〈쓸쓸한 날의 여행〉를 시작으로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별의 안부를 묻는다〉 등을 5년 주기로 펴냈다.이제는 악양에 뼈를 묻어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전주를 오간다. 시도 때도 없이 그를 불러들이는 친구들의 성화도 있지만, 시인에게는 전주가 늘 그리움의 대상인 탓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6.01.08 23:02

오종남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 "새만금에 음악당·미술관 지어 문화 숨쉬는 도시로"

국무총리실 산하 새만금위원회는 새만금사업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2009년 설치된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위원장은 대통령이 위촉한 민간위원장과 국무총리가 공동으로 맡는다. 임기 2년의 오종남(64고창) 제4대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큰 이유다. 2016년 새해를 맞아 오종남 새만금위원장으로부터 향후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새만금위원장에 부임하신지 한달남짓 지났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새만금 산업연구단지에 기업을 유치하는 일과 새만금 마스터플랜을 기본계획 수준으로 구체화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봅니다. 기본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는 새만금개발청, 전라북도, 농어촌공사 등 이해당사자는 물론 각계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야 합니다. 새만금 사업 기본계획은 새만금만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 즉 새만금 차별화 전략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새만금에 음악당과 미술관을 건립해서 문화가 숨쉬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새만금위원회가 지난 6년 동안 15번밖에 열리지 않을 만큼 유명무실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묘안은 무엇입니까.저는 새만금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으로 처음 참석한 회의에서 위원회 활성화 방안을 건의한 바 있습니다.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들은 국정에 매우 바쁜 만큼 민간공동위원장인 민간위원들을 모시고 매달 회의를 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새만금 사업의 현안 과제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 후 국무총리 주재 전체회의에서 심의 의결하는 방식으로 위원회를 운영할 것입니다. 지난달 12월 22일 첫 회의를 해본 결과 참석하신 민간위원들께서 모두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이셨습니다. 매달 만나서 새만금 사업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대안을 마련해서 정책에 반영할뿐 아니라 민간위원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한다면, 국회나 행정부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도 탄력을 받게될 것입니다.-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중국 푸동 지구에 비해 새만금사업이 더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중국 푸동지구는 중국의 대외 개방 결정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금융,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으나 새만금은 방조제가 완공되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습니다. 매립사업으로 인한 높은 투자리스크, 불리한 입지와 기반시설 부족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 상대적으로 사업진척 속도가 느렸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한중 정상회담에서 새만금이 한-중 경협단지로 선정됐는데, 향후 개발방향의 큰 틀을 어떻게 보십니까.새만금 한중 경협단지를 통해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생의 길임을 양국이 공감했다는 게 큰 의미가 있고, 국가주도 사업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국내외에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한중 FTA 체결을 계기로 새만금에 한중 FTA 산업협력단지를 조성해서 교역과 투자를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새만금 지역에서 양국 공동개발 형태의 한중 경협단지 조성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국무조정실에 새만금사업추진지원단을 설치하기로 한 일은 참 다행스러운 결정입니다. 국무조정실의 새만금사업추진지원단은 정책 조정을 맡고, 새만금개발청은 정책 집행 및 사업 시행을 추진하게 되면 상호 보완 및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 간담회에 청와대 비서관을 항상 배석시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국책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새만금의 성패는 청와대의 관심도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1998년 제가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으로 일하던 시절 인천국제공항이 건설 중이었는데 당시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 강동석 이사장께서 제게 매주 진척상황을 보고하겠다고 간청한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 한것이죠. 만일,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이 민간위원 간담회에 참석하게 되면 청와대의 새만금사업에 대한 관심도가 그만큼 높아질 것이므로 배석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유수의 해외 기업을 새만금에 끌어오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한마디로 새만금을 기업이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홍콩싱가포르 등 해외경제특구와 경쟁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규제완화와 인센티브 부여방안이 필요하고, 도로,항만 등 필수 기반시설이 조기 조성돼야합니다. 이중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토지 가격입니다. 조성 원가가 얼마가 됐든 국가 차원에서 가격을 적정하게 책정해서 투자한 기업이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방안을 강구해야만 해외기업이 몰려올 것입니다.-새만금위원장으로서 수당은 커녕, 업무 추진에 필요한 신용카드 조차 받지 않는 걸로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고창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사회로부터 참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기에 이제 남은 인생은 가급적 사회에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마침 고향과 나라에 동시에 봉사할 수 있는 새만금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이라는 일이 주어진 만큼 진실된 마음가짐으로 봉사하고 싶습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재직시에도 경험했듯이 무보수로 일함으로써 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를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저는 성공을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 정의하게 됐는데, 제가 생각하는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비결은 적자생존입니다. 적자생존이란 단기적으로 손해 보는 삶이 결국 성공하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이제까지 쌓은 모든 경험과 인맥을 활용해서 향후 전라북도를 넘어 대한민국의 젖줄이 될 새만금의 성공을 위해 벽돌 하나를 쌓는 심정으로 겸허하게 임하고자 합니다. ● [오종남 위원장은] 깔끔한 처신 수려한 언변DJ정부 靑 비서관만 4번오종남(64) 새만금위원장은 고창에서 태어났다.고창 석곡초, 고창중, 광주고를 거쳐 서울법대를 졸업하던 1975년 행정고시(17회)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그는 1980년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텍사스 주 SMU 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와 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정읍군에서 수습사무관을 거친 그는 이후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등 경제분야에서 주로 근무했다.1998년 2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된 그는 정책3비서관, 건설교통비서관, 산업통신과학비서관, 재정경제비서관 등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서관을 4번이나 한 유일한 기록을 세웠다.2002년초 2년반가량 통계청장을 지낸뒤 그는 2004년말 한국인으로는 첫 IMF 상임이사로 취임했다.2006년 말 퇴임 후 10년째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세계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를 상대로 경영 자문역할을 하고있다.외환위기 당시 캉드쉬 IMF 총재,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 등의 통역을 도맡아 한 그는 한일 재무장관회담 통역을 맡을 정도로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다.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새만금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 낙점 사실을 통보 받았을 때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오래전 공직을 떠났고, 스스로 어떤 자리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 위원장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근무할때 이원재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과 같은 과에 근무한 인연이 있었는데 이 비서관을 비롯해서 공직에 있는 후배들이 적극 추천해서 새만금위원장을 맡게됐다는 후문이다.깔끔한 처신과 수려한 언변으로 누구를 만나든 짧은 시간에 자기편을 만드는 수완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각종 강연을 위해 국내는 물론, 국제무대를 넘나드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 기획
  • 위병기
  • 2016.01.06 23:02

[전북을 바꿀 키워드] '명품도시' 골격 갖춘 전주시…이제는 '본격 성장'이다

2016년 전주시정의 핵심사업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2017 FIFA U-20 월드컵 개최 준비, 2025 전주푸드플랜사업 활성화, 도시재생사업이 그 것들이다. 이 사업들은 전주시가 장기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도시를 성장시킨다는 의도를 담고있다.■ U-20 월드컵- 경기장 시설보수교통대책 / 문화월드컵 목표 준비 만전전주시가 오는 2016년에 가장 먼저 시작하는 사업은 2017 대한민국 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비다. 대회는 2017년 5월20일부터 시작된다. 국내 6개 도시에서 23일간 치러지는 U-20 월드컵의 개막전은 전주에서 열린다. 또 조별예선과 결선 토너먼트 전체 52경기 중 A조 조별 1~2라운드 전체경기와 16강전, 8강전, 4강전을 포함한 총 9경기가 전주에서 열린다.김승수 전주시장은 지난해 전주시가 U-20 월드컵 개막도시로 확정된 직후 가장 한국적인 개막전을 열어 세계 축구팬들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전주시는 이번 대회의 개막전을 전주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알릴 수 있는 문화월드컵으로 치르겠다는 구상이다. 시는 U-20 월드컵이 전주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현재 전주시는 U-20 월드컵 TF팀을 구성했다. TF팀은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지역문화와 지역축제를 연계시킨 월드컵을 이끌어나갈 구상이다.이를 위해 시는 전주국제영화제와 한지문화축제, 무형유산포럼 등 전주를 대표하는 각종 문화행사와 축제를 U-20 월드컵 기간에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전주의 문화축제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관광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목적도 담고 있다.전주시는 월드컵 경기장 시설 보수 예산으로 30억원을 국비로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장 시설보수 계획을 수립한 뒤 전광판과 조명, 음향설비를 교체할 계획이다. 또 송천동에 조성중인 U-20 월드컵 훈련장 공사를 모두 완료하고, 숙박시설과 교통대책 마련 등 대회 준비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이외에도 시는 전북현대프로축구단 클럽하우스 방문과 축구경기 관람, 한옥마을 관광, 숙박, 소리문화의전당 기획공연 등을 연계한 U-20 월드컵 관련 패키지 관광 상품 개발에도 나설 예정이다.■ 전주푸드- 시민들 밥상에 지역먹거리 / 매장 추가개설 등 본격 추진올해 시민들의 건강한 밥상을 위해 첫 선을 보인 전주푸드 2025플랜. 사업 시행 2년차를 맞는 올해는 운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전주시는 지난해 11월 전국 최초의 대도시 먹거리 전략인 전주푸드플랜 10년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24년에는 현재 시민들의 밥상에 올라가는 식품 중 5%에 불과한 지역먹거리 공급비중을 25%까지 끌어올려 연 2000억원 규모의 먹거리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어 전주 독립경제 실현을 앞당긴다는 구상이다.전주시는 올해 전주푸드플랜의 최우선 과제로 지속가능한 생산체계를 확립해나갈 계획이다. 농업의 생산구조를 다품목 소량생산 연중 공급체계로 개편하고, 다수의 가족소농을 직매장과 연결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첫 선을 보인 전주푸드 직매장을 2개소 추가 개설한다. 전주푸드 직매장에는 전주의 전체 7000여 농가 중 1000여 농가를 참여시킬 계획이고, 향후 10년 내에는 5000여 농가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이와 함께 생활권 거점매장 3곳 개설과 전주푸드센터 4곳 개설, 슬로푸드 레스토랑 2곳 개설, 학교급식 연계 강화, 영유아어린이노인 급식, 엄마의 밥상 등 시민먹거리 접근성 보장을 위한 계획도 수립해 나간다.제휴푸드 연결망을 구축한 도내 다른 시군과의 공조체계도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전주시는 전주에서 생산이 어려운 품목들을 인근 지역에서 제공받아 시민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30일 완주진안을 비롯한 도내 7개 군과 지역자립선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휴푸드 협약을 맺은 바 있다.■ 도시재생- 원도심 전주마을 프로젝트 시행 / 북부권 팔복동 철길 명소화 사업구도심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도시재생사업도 본격화된다. 올해에 추진되는 도시재생 분야의 신규사업은 주민과 함께하는 원도심 전주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와 전주시 도시계획활성화계획 수립 등이다. 전주시는 성장위주와 개발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도시 재생에 나설 계획이다.우선, 시는 중앙동과 풍남동노송동완산동진북동 등 원도심의 주거지는 전주마을이라는 고유한 느낌이 있는 장소로 정비할 계획이다. 특히, 지역 또는 마을이 지니고 있는 자원과 가치를 재생한다. 기존의 전면 철거식 재개발에 대응하는 새로운 주거지 재생 모델을 제시한다는게 전주시의 설명이다.이를 위해 오는 2021년까지 원도심 3~4개 마을을 선정해 정비기반시설 및 공동이용시설을 설치하고, 주택 재개발보다는 보전정비개량을 유도할 계획이다.또 문화, 예술, 축제 등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시킬 계획이다.북부권에서는 팔복동 철길 명소화 사업 등의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주민 주거환경을 개선한다. 팔복동 철길 명소화 사업은 전주시가 지난해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폐 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에 선정돼 국비 25억원이 확보된 데 따른 것이다.올해 연말까지 팔복동 옛 쏘렉스 건물 등 폐 산업시설이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된다. 이곳은 오는 2017년 1월 문화예술 창작 공간과 체험 공간, 전시 공간, 교육 및 회의 공간 등의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가칭 팔복예술공장)으로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또 옛 동산동 주민센터에는 공연연습실 4곳과 소품뱅크, 예술가 휴게 공간 등을 갖춘 공연연습장이 조성된다. 시범운영을 거친 뒤 올해 3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이외에 동산동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2016년도 도시활력증진사업 공모에 선정됨에 따라 올해부터 4년간 마을 주민들이 주도해 지역공동체 회복과 지역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마을을 변화시키는 마을가꾸기 사업이 추진된다.

  • 기획
  • 김세희
  • 2016.01.04 23:02

[원로와의 대담] 서울대 한상진 명예교수 "잘못된 정치문화 바꾸는게 우선, 변화는 유권자 몫"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 새로운 정당의 창당을 선언하면서 지역의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과 시기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전북에서도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이 무시할 수 없는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도민들은 현재의 상황을 몹시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따라 전북일보는 2013년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장을 지냈고 안철수 의원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대 한상진 명예교수를 찾아 현재의 정치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16일, 안철수 의원이 새정연(현 더불어민주당)을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에 서울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사무실에서 실시됐다. 한 교수가 다음날 중국 북경 출장이 예정돼 있어서 인터뷰를 서둘렀다. 그 뒤 이메일을 통해 매우 제한적으로 일부 내용을 보완 수정했음을 일러둔다.-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으로 도민들이 상당히 혼란스럽다고 할까. 우왕좌왕 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탈당 과정은 매스컴을 통해 지켜봤지만, 탈당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저는 현재 국면을 새로운 전환기라고 봅니다. 우리는 긴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산업성장에 성공했고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외환위기가 닥쳤고 여러 위험들이 폭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엄청난 위험사회가 도래했어요. 청년실업, 노인자살 심각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박탈감 하늘을 찌릅니다. 가계는 부채에 시달리고 국민 다수의 삶은 갈수록 불안에 휩싸입니다. 그러면 응당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국민들에게 삶의 안정을 보장해 줄 것인가 즉, 민생문제가 정치의 최대 관심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불행하게도 여야 거대 정당이 이끄는 정치는 민생에서 완전히 멀어졌습니다. 정치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양극화로 분해되어 적대적 공존의 양당체제가 됐습니다.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지만 서로 돕고 민생을 외면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는 갈망이 밑에서 분출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 새정연에서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서 새로운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안철수 의원의 결단과 역할이 중요하지만, 원래 국민의 갈망이 안철수 현상을 만든 겁니다. 안철수 개인의 능력은 미지수였죠. 그렇지만 안철수라는 인물이 갑자기 등장해서 도덕성을 실천하고 양보할 줄 알고 화합하려는 신선한 모습을 보이니까 이것이 사람들에게 팍 하고 다가온 것입니다. 이 신드롬은 현재도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지난 3년간 그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안철수 의원은 아직 초선 의원이고 권모술수로 이권을 챙기는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품성이 있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도 있어요. 극도로 위험한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큰 틀의 시각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총선이 얼마 안 남은 상태서 야권 분열했을 때 총선 결과가 비관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유권자들이 불안하고 괴롭기도 할 것 같은데요.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위태로운 면이 확실히 있어요. 총선에서 참패하면 대선도 어렵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최종 결정할 때, 그 딜레마가 상당히 컷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이젠 선택이 불가피합니다. 이걸 잘 응시해야 할 것 같아요.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서 펑하고 터지는 탈바꿈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겨냥했건 안 했건 간에 그 소용돌이 안으로 팍 들어가는 결과가 됐습니다. 새정연이 현재의 리더십으로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당의 패권정치가 너무 심해요. 호남 대중은 이미 당을 떠났다고 봅니다. 그래도 눈 딱 감고 다시 한 번 당을 밀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유권자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유권자들로서도 어려운 선택이고,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유권자의 최우선적 판단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기존의 양당 체제로 가면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는 50% 이상의 대중은 끊임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상식을 갖춘 침묵 하는 대중이 설 공간이 없어요. 이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중도 개혁의 정당이 나와야 합니다. 야권 단합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정치구조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아요. 저는 이런 유권자의 가치판단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시나리오로 해석합니다. 제1야당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뻔히 보이는 총선패배의 길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죠. 이 때 단기적 손실이 불가피합니다.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서 변화의 물꼬를 트기는 어렵죠. 2보 전진을 위해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생각 안에 새로운 윤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야권분열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어떤 분은 제가 총선포기를 주장했다고 하는 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적대적 공존의 양당체제를 불변의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변화될 것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불변의 것으로 단정하고 신당을 야권분열의 눈으로만 보는 것은 좁은 시각입니다. 눈을 뜨고 보면, 국민 분열에 앞장 서는 양당 체제의 한계가 이미 분명해졌어요. 정치적 전환기가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주된 힘은 유권자에서 나옵니다. 저는 우리 정치도 이제 유권자 중심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침묵하는 대중을 잘 보아야 해요. 새정연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고 정부여당을 지지했지만 실망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습니다. 유권자의 50% 이상이 여기에 속한다고 봅니다. 이 지형을 응시하고 대변하는 것은 통상적인 야권분열과는 다른 차원의 정치발전을 추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직 의원이 얼마나 가세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힘이고 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서 그것이 현실입니다.맞습니다. 우선 원내 교섭단체 구성 문제가 있죠. 그래서 탈당을 머뭇거리는 제1야당 국회의원의 합류가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권 출신이 더 그렇지요. 우선 당장은 제1야당이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심거리 입니다. 문대표가 마이웨이를 고수한다면 추가 탈당이 불가피하겠죠. 저는 결국 유권자의 지형변화가 정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신당이 뚜렷한 정체성으로 정계개편의 선두주자로 부상한다면 여기에 몸담는 것이 국회의원에게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적대적 공생의 양당체제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새로운 가치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려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안철수 신당이 이번 총선에서 얼마나 당선자를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실패한 후 열린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놀랍게도 제1당이 됐습니다. 진보가 다수당이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때 정치적 지명도가 높은 사람이 당선 됐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민심의 폭풍이 일어난 거예요. 현재도 비슷한 기류가 있습니다. 금수저 출신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커요. 사람들은 진보가 좋으냐 보수가 좋으냐에 관심 없습니다. 삶이 고달프고 불안하니까 삶의 현장을 잘 알고 문제를 고칠 수 있는 유능한 정치인을 요구합니다. 이런 인재를 발굴하여 새정치의 이름으로 총선에 내보내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아까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그 쪽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셨는데, 한때 새누리당에 몸담았던 사람들과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여당에는 이른바 오너가 있고 오너가 철저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사정은 다릅니다. 그러나 빅뱅의 소지는 있습니다. 만일 신당이 야권의 일부라고 인식되면 오기 어렵죠. 반면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제3당으로 인식되면 오기가 다소 쉬워집니다. 어느 경우이건 저는 뺄샘 정치는 반대합니다. 과거의 경력을 문제 삼아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를 도식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누구건 과거를 진솔히 소명하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하면 이것이 불러오는 대중의 공감에 따라 동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철수 의원에 대한 기대, 지지가 수도권과 호남에서 높습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저는 호남의 대중심리를 특이하고 흥미로운 탈바꿈 양상으로 이해합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국민경선 때 노무현 후보가 광주에서 1등을 했습니다. 당시 노무현의 정치 경력은 별 것 없었습니다. 이인제 후보가 훨씬 막강했죠. 그는 1997년 대선 때 결과적으로 김대중 후보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에서 사변이 난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호남 유권자의 전략적 판단이라고 하는 데 저는 약간 의문입니다. 뛰어난 판단력이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요? 사람들의 집합심리에는 무의식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일종의 꿈이죠. 노무현의 선택에는 광주 시민의 꿈이 작용했어요.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한 변화를 이어가는 아이콘을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부산의 노무현을 향해 날아가는 의식의 탈바꿈이 생겼습니다. 현재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이번의 탈바꿈은 전통적인 지지정당, 새정연에 대해서 날카롭게 주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묻지마 투표로 대변되는 심리, 유권자가 당에 예속돼 있는, 그리고 당이 무조건 자기편이라고 간주하고 자기편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는 예속,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특별한 자각의 산물은 아닙니다. 이른바 친노 집단에 대한 분노, 배신감이 깔려 있죠. 여기에 안철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 얽혀서 펑하고 터지는 탈바꿈이 전통적인 지지정당을 버리는 돌연변이로 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신당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호남과 수도권에만 머문다면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총선을 넘어서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를 생각한다면 전국 정당이 되어야 하는데요, 전국적인 성공 가능성은 있습니까?그건 100번 옳은 이야깁니다. 여론조사를 보면 신당에 대한 지지가 전국적이고 확장되는 추세를 보입니다. 천정배 의원, 박주선 의원도 호남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데 앞으로의 협력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 현실을 보면 정치 지망생은 많은데 입구가 제한되어 있어서 많은 인재들이 모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특히 호남유권자의 변화를 중시합니다. 누구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풍토에서 좋다 손해 보자 그렇지만 대의를 향해 가자 이런 윤리가 표현되고 있으니까요. 더 이상 정당에 예속되지 말자. 자유의 깃발을 올리자, 이런 돌연변이가 호남에서 나오고 있지만, 그 안에 윤리의식이 있기에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는 것이 저의 명제입니다. 양당 제도가 있고, 유권자는 거기에 오랫동안 매어 있었습니다. 이걸 끊어야 합니다. 호남과 영남에서 끊어야 하는데, 똑 같이 끊을 수는 없습니다. 한쪽이 끊으면 나중에 다른 쪽도 끊어집니다. 그런데 먼저 끊는 쪽은 손해를 봐야 합니다. 손해를 감수한다는 생각 안에 사회 미래를 끌고 가는 귀중한 윤리 의식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안철수 의원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까?저는 안 의원을 돕는 자문단의 한 명입니다. 오늘의 새정연은 민주당 전통으로부터 너무 멀어졌다고 느끼고 있어요. 안철수 의원을 돕는 것이 민주당 전통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도권 규제는 완화되고, 수도권만 비대해지는 것에 대해 도민들은 힘들어 합니다. 이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모든 자원들이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외연을 넓혀서 수도권을 말하면 이런 자원집중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습니다. 참담한 현실이죠. 수도권 집중을 막는 지방연대의 큰 틀을 짜야 합니다. 아울러 경제가 중요한 데, 요즘 농업은 첨단기술에 연관된 건강산업 입니다. 제가 베이징대에서 강의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것은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건강식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요. 전북이 농업 관련 첨단산업 벤치마킹을 잘하면 국내만 아니라 중국에도 진출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경험을 보면, 청정산업, 녹색경제, 이런 것들이 중요한 성장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상진 교수는] DJ정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15년 이상 오랜 신뢰 관계 '安의 멘토'1954년 임실군 삼계면 어은리에서 태어나 전주 풍남초와 전주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南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와 독일 빌레펠트대, 베를린과학원 초빙교수, 미국 콜럼비아대와 프랑스 파리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그리고 아태평화재단 감사와 한국방송공사 이사를 거쳤다. 2010년에 서울대 명예교수가 됐다.한 교수가 안철수 의원을 만난 것은 DJ정부 때인 2000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을 때이다.한 교수는 (안철수 의원이) 과학기술분야 전문가로 참여했는데, 가장 젊고 적극적이었다고 말했다.그는 또 지난번 대선 때 안철수 의원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서도 떠난 사람도 있고 남은 사람도 있지만 저는 15년 이상 오랜 신뢰관계를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 난 떠날 사람이 아니다고 들고 안철수를 떠난 사람들도 그의 정치적 품성만은 높게 평가 한다고 덧붙였다.

  • 기획
  • 이성원
  • 2016.01.04 23:02

[4·13 총선 관전포인트] 신당 '용틀임' 속 '野 對 野' 치열한 혈투 예고

중앙무대에서 지역 발전을 위해 땀 흘릴 일꾼을 뽑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해가 밝았다. 이번 선거는 지역을 대표할 일꾼을 뽑는 동시에 집권 4년차를 맞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 성격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다.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도민들은 이번 선거는 그 어느 선거와 달리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30여 년 동안 더불어민주당 이외의 정당 후보자가 전북에서 금배지를 달기란 쉽지 않았지만 올 해 만큼은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야권을 개편할 새로운 전국정당 창당을 위해 자신을 정계로 이끈 ‘신드롬’의 진원지인 전북과 광주·전남 등 호남은 물론 수도권과 영남 등지에서 새로운 정치세력 구축을 위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다.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의 관전 포인트를 살펴본다.△야권 신당 ‘돌풍’ 될까? 대안 야당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세력은 4곳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과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 박주선 의원의 신당,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당 등이다.최근의 여론동향을 살펴보면 이들 신당 세력 중 안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이 제1야당을 대체할 세력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서로 출발은 다르지만 야권의 신당 추진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안 의원의 신당과 힘을 모으지 않겠냐는 관측을 내놓는다.그러나 일각에서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천정배·박주선·박준영 신당이 전국 정당을 표방하는 안 의원의 신당과 과연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한 상황이다.그러나 일단은 결합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전북 지역 민심이 사납기는 하지만 야권 신당이 세를 합하지 못해 각자의 정당을 대표할 후보를 내게 되면 탄탄한 조직력을 앞세운 제1야당의 아성을 넘어서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세력을 합한다고 해서 돌풍이 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좋은 후보를 내느냐가 관건이다. 야권의 후보가 난립될 것으로 보이면서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보다는 인물본위의 투표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서다.때문에 신당 세력들이 얼마나 참신하고, 실력을 갖춘 인물을 내놓을지가 ‘돌풍’을 일으킬지, 아니면 ‘미풍’에 그칠 지를 결정할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4개 세력이 힘을 합치면 전북지역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하지만 일부 신당 세력에 합류의사를 나타낸 인사들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거나 종전의 선거에서 낙마한 경험을 갖고 있어 참신성 면에서는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안 의원도 이를 의식한 듯 3-40대의 정치참여 필요성을 호소한 바 있다.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올 총선은 종전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로 치러질 것이다. 하지만 전북의 경우 광주와 전남에 비해 신당의 세가 무섭게 상승세를 탄다고는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시간을 갖고 도민들의 여론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더불어민주당 텃밭 사수 가능하나? 그동안 전북지역에서 치러진 총선에서는 지방선거 등과 달리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은 곧 당선으로 이어졌다. 15대부터 19대까지 20여 년 동안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당·열린우리당 등이 아닌 정당의 당선자는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와 유성엽 의원이 유일하다. 강 전 지사는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유 의원은 무소속으로 18대와 19대 금배지를 달았다.이를 제외하면 제1야당은 단 한자리도 타당 후보에게 금배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의견이다. 야권 신당들이 무서운 기세로 용틀임을 하고 있어 공천장을 받더라도 본선에서 치열한 혈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제1야당의 필패를 예견하긴 이르다. 전북에서 야대야 구도가 형성된 만큼 이번 선거는 인물 본위의 평가에 의해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당이 내놓을 후보들의 면면이 향후 결전의 승패를 좌우할 전망이다.특히 총선의 경우 지방선거와 달리 유권자들의 관심이 크지 않아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특정정당의 기호에 대한 쏠림 투표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을 고려하면 실제 투표를 앞두고 제1야당과 신당 중 어느 쪽에 바람이 불지가 초미의 관심이다.△현역 물갈이 얼마나?매회 총선 때마다 ‘물갈이’ 바람이 불어 닥쳤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혁신을 위해 인위적으로 현역의원 20%에 대한 물갈이를 예고하고, 이를 위한 의원평가를 진행 중이다. 오는 15일께 나올 평가결과에 따라 1차로 현역 의원 물갈이 폭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현역 의원들은 당의 1차 관문(20% 물갈이)을 넘어섰다고 해서 공천 탈락의 공포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다. 향후 진행될 선거구 획정을 통해 당내 경선 과정에서 최소 1곳 이상에서 같은 당 소속 현역 의원들과 맞대결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이런 두 차례의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도 현역 의원들에게는 험로가 예상된다.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겠다며 곳곳에서 발현하고 있는 신당의 후보들과 본선에서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현역 의원이 얼마나 물갈이 될지 예측이 불허하다.그러나 종전 전북지역의 물갈이에 대한 도민들의 표심과 신당의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어 닥친다면 사상 초유의 물갈이 사태도 가능할 것으로 정치권은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새누리당 이번에는 성공할까? 새누리당 도당은 중앙정부 출신의 고위직을 잇따라 영입하면서 전북지역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역대 최강의 라인업을 구성해 전북에서도 금배지를 배출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이 때문에 제1야당이 분열하기 이전에는 전북지역의 이번 총선에서 만큼은 여당의 후보가 금배지를 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야권의 분열로 전북에서 야대 야의 선거구도가 형성되면서 새누리당의 위세는 줄어드는 모양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단행된 장관급 인사에서 전북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 여론이 팽배해져 가면서 도민들의 여론도 악화하고 있어 새누리당 도당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진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있다. 그동안 반 여당 정서에 따라 무조건 야당에 투표를 했던 도민들이 제1야당, 신당, 새누리당 등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또 제1야당과 야권 신당의 경쟁구도에서 이들이 참신성과 개혁성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반대급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기획
  • 박영민
  • 2016.01.04 23:02

[4·13 총선 예상 선거구와 구도] 지역구 253석 '최상'…246석땐 '최악'

헌정사상 초유의 선거구 무산사태가 현실화 됐다. 헌법재판소의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편차 2대1 결정(2014년 10월)이 내려진 이후 1년 2개월여의 시간 동안 여야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렸기 때문이다. 여야의 끝 모를 힘겨루기는 선거구 획정에서 정치권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출범시킨 선거구획정위원회 활동을 무력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예비후보자들은 시험과목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깜깜히 선거운동을 이어가야만 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관위가 1월 1일부터 잠시나마 예비후보자에 대한 선거운동 단속을 유보키로 한 점이다. 연 초부터 초래될 수 있었던 극도의 혼란 상태는 피했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현역 의원들은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아도 종전처럼 선거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단속 유예라는 한시적 조치가 끝나면 예비후보자들은 손발이 묶인다. 현역과 예비후보들의 공정한 게임을 위해 선거구 획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향후 진행이 가능한 전북의 선거구 예상 시나리오와 이에 따른 구도를 살펴본다.△지역구 246석 - 전북 9석 ‘최악’ = 헌재의 2대1 결정으로 전북의 의석수 감소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1석이 줄어드느냐 2석이 줄어드느냐다. 1석이 줄어들게 되면 그나마 선방을 하게 되는 것이고, 2석이 줄어들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현재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선거구 무산사태를 ‘비상사태’로 규정한 정의화 국회의장이 1일 0시를 기해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에 현행 의석비율(지역구 246석·비례 54석)을 기준으로 획정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 의장은 획정위가 현재를 기준으로 만든 획정안을 1월 8일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예정이다.이렇게 되면 전북지역 선거구의 급변이 예상된다. 전주와 익산, 군산 등은 종전의 선거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제와 완주 선거구에 임실과 순창이 합구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또 정읍과 고창·부안, 무주·진안·장수·남원이 하나로 묶일 가능성이 있다. 또는 김제·완주·임실, 정읍·고창·부안·순창, 무주·진안·장수·남원 등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러면 2곳의 선거구에서 현역 의원 간 대결구도가 형성된다. 3선의 더불어민주당 김춘진 의원(고창·부안)과 무소속 유성엽 의원(정읍)이 본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동원 의원(남원·순창)·박민수 의원(진무장임실)은 당내 경선에서 격돌한다. 이 같은 안은 현역의원은 물론 예비후보자 모두 피하고 싶은 안이다. 예비후보자들의 경우 전북이 10석이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선거를 준비해왔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어서다.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46석 안의 경우 농어촌 의석이 급감할 수 있어 본회의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며 “이 안이 8일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정 의장이 여야가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룬 253석 안을 다시 상정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통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렵다. 현역 의원 다수가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출신인데 이들이 농어촌 의석수 감소를 고려하지 않고 지역구 246안에 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전북지역의 경우만도 보면 도시 지역 의원들이 농촌 의석 감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지 않냐”며 “농촌의석 감소 문제는 해당지역 의원들만의 문제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정 의장이 246안을 직권 상정하면 통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지역구 253석 - 전북 10석 ‘최상’ = 국회의원 정수가 현재와 같은 300석인 상황에서 전북이 의석을 1석만 잃는 것으로 획정이 마무리된다면 이는 최상의 카드다. 전북은 현재 전주(3석)와 익산(2석), 군산(1석), 김제·완주(1석)를 제외한 4개 지역이 8월말 기준 인구 하한선(13만 9473)에 미달한다. 전북이 10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1차적으로 제시할 246석 안이 1월 8일 본회의에서 부결되고, 2번째 직권상정에서 여야가 어느 정도 의견을 모은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 안을 직권 상정카드로 사용해야 한다. 정 의장이 이 카드를 직권 상정한다는 가정 하에 선거구를 나누면 전주와 익산, 군산을 제외한 지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하한에 미달하지 않은 김제·완주 선거구 분리를 통해 5개 선거구에서 4개 의석을 지켜낼 수 있다. 김제와 부안, 완주·무주·진안·장수, 정읍·고창, 임실·순창·남원이 묶이는 방안이다.이렇게 되면 전북지역 2명의 3선 의원인 최규성(김제·완주)·김춘진(고창·부안) 의원이 4선 고지를 놓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부터 치열한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나머지 지역들은 신인들과 경쟁을 통해 재선 또는 3선을 내다볼 수 있다. 그러나 신당의 출현으로 본선전이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 기획
  • 박영민
  • 2016.01.04 23:02

[연변을 가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보루서, 남북통일로 가는 교두보로

연변은 두 얼굴이었다. 외국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과 똑같은 모습도 아니었다. 굳이 정리한다면, 한국의 어느 한 외딴 도시 같았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연길공항부터 그랬다. 공항 이름이 한글 연길 로 쓰여 있고 한국어가 통하는 곳이지만 외국인 입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길거리의 모든 간판이 한글을 중심으로 한자와 병기돼 있지만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은 한글과, 중국말을 한글로 옮기면서 도시 전체가 친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섦이 공존했다. 조선족자치주로서 연변이 갖고 있는 특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연길시 전국 100강현 뜀박질전북일보 경영진과 취재팀이 지난달 7일 찾은 연변 조선족자치주 주도(州都)인 연길시는 활기에 차 있었다. 도로마다 자가용이 넘쳐나고, 상가들의 불빛이 도심의 밤을 환하게 밝혔다. 인구 60만 도시의 연길시는 외형상 전주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1992년 한국과 국교를 튼 후 중국경제가 급성장했습니다. 그 상징이 자가용의 급속한 보급입니다. 2008년 북경올림픽 이후 거의 모든 가정에서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으며, 2대 이상 가진 중산층도 많습니다.한국에서도 10년가량 생활했던 서일범 연변대학교 인문대 학장은 최근 5~6년 사이 자가용이 크게 늘면서 교통체증을 빚는 곳이 많다고 했다.연길시의 급속한 성장은 올 발표된 몇몇 지표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지난 7일 전북일보와 자매결연한 연변일보에 따르면 연변시는 올 전국100강현 중국10대생태강현(시) 중국생태매력현(시) 2015중국녹색경쟁력10강현에 뽑혔다. 연길시가 길림성에서 유일하게 7년 연속 계속해서 순위가 올라 전국 100강현 중등수준에 진입했다는 것이다.연변조선족자치주의에 속한, 북한 나선직할시와 맞대고 있는 훈춘시는 포스코현대물류단지 등 한국을 비롯해 각국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면서 에너지광산가공, 목제품가공, 해산물가공, 방직의류가공, 상업무역물류 등을 아우르며 연변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도시경쟁력연구회가 발표한 2015년 중국현역성장경쟁력순위에서 훈춘시는 47위의 자리에 올랐다.△민족 자긍심 기념관 곳곳에 새겨연변이 우리에게 더 특별한 데는 일제강점의 민족 수난기에 모국의 최후의 보루였다는 점이다. 일제의 압박을 피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우리 땅으로 삼아 재충전을 했다. 청산리항일전승지봉오동 항일전승지일송정 등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많은 유적을 보유한 곳이 바로 연변이다. 연길시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용정시가 그 중심에 있다. 일본 유학 중 항일운동 혐의로 투옥돼 옥사한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기념관이 그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용정 명동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는 1900년대 조부가 지은 집으로, 1981년에 허물어진 집을 용정시정부가 1994년 복원했다. 재봉틀과 솥, 맷돌 등 몇몇 생활도구들만 덩그러니 놓인 생가에서 윤 시인의 채취를 찾기는 어려웠다. 생가 정문에 조형적으로 설치된 대표작 서시를 비롯해 생가 곳곳에 새긴 100여편의 시가 방문객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생가와 한 울타리에 있는 명동역사전시관에서 윤동주를 비롯해 명동학교 출신의 문익환나운규 등 낯익은 초상화와 용정에서 훈련으로 거사를 준비했던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을 만날 수 있었다. 윤동주 생가는 현재 명동 마을에서 주민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입장료 수입(2000원)에 의존하고 있다. 명동촌은 한 때 100호에 이르는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 20호 남짓으로 줄었다. 민족교육의 산실로 일제에 의해 소실됐던 명동학교도 2010년 복원됐으나 학생이 없어 기념물로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 생가 관리자는 윤동주 시인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등의 행사를 가졌다며, 2017년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려는 노력은 용정중학교 역사전시관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용정의 이주초기 모습들의 사진과 민족교육의 뿌리인 서전학숙 학생들의 모습, 용정을 중심으로 연변의 민족 학교들의 모습, 3.13만세 운동 등 항일투쟁사를 소개하고 있다.△한국과 일체감 날로 높아져우리에게 연변의 중요성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연변 교포들이 노무송출대로 모국으로 오고, 한국인들이 투자이민 등을 통해 새로운 조선족으로 편입되면서 연변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실제 연변 사회에서 한국의 드라마와 한국 연예인 이야기가 주 화젯거리다. 연변일보 문화부 기자는 우리도 잘 모르는 신인 가수의 새로운 곡을 평가할 정도였다. 연변일보 김천 부사장은 전북에서 새마금사업이 진행되는 상황도 알고 있었다. 그는 중국이었다면 포동지구 개발처럼 빠르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로, 더딘 새만금개발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북한을 고향으로 둔 교포가 많고 북한과의 밀접성, 중국의 특수성 때문에 어느 정도 문화적 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의 성장과 발전에 교포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이 2002년 월드컵축구 4강에 올랐을 때 한국 국민들과 똑같이 일체감을 갖고 응원했으며, 많은 교포들이 그 감동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단다.한국에서나 연변현지에서 한국인들이 연변조선족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족은 대 중국인민이라는 자긍심이 있고, 일제 항일 투쟁과 중국 공산당혁명에 크게 공헌한 소수민족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전주 신흥고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20년간 중국 연변에 살았던 정옥동 전 연변대복지병원 이사장은 수많은 소수민족이 한화되고 말았지만 동북동토에 살고 있는 우리조선족은 인동초 처럼 정체성을 갖고 살아남아 있다며, 우리가 한국에서나 중국 현지에서 조선족을 새로운 시각에서 이해하고 수용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예외 없이 조선족이 가이드 역을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 남북통일에 있어서도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정 이사장은 기대했다.

  • 기획
  • 김원용
  • 2016.01.04 23:02

[연변은 어떤 곳] 80만 조선족, 전통 풍습 지키며 살아가

연변은 중국 길림성 산하 조선족자치주다. 연길용정도문혼춘화룡돈화 등 6개 시와 왕청안도 등 2개 현으로 구성됐다. 자치주의 주도(州都)는 연길시로, 전주와 비슷한 60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연변 전체 인구는 227만명이며, 조선족 인구는 80만명으로 대략 35%를 차지한다. 이전에는 북간도로 불렀으며,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우리 민족이 대거 이주하면서 중국 교포들이 집단으로 거주해온 곳이다.1952년 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년 자치주로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치주 주장은 간접선거로 선출하고 있으며, 당위원회와 행정의 투톱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그동안 한국에서 힘들었던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 중국 연변에 진출했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건산업, 쌍방울, 인삼공사, 백산생수 등 규모 있는 기업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목포 출신의 정영채 성보그룹 회장은 호텔과 백화점에서 큰 성공을 거둔 연변의 신화다.올 한 해 연변의 화제는 단연 연변을 연고로 한 축구팀의 1부 리그 진출이다. 박태하 전 국가대표 감독이 이끄는 연변팀이 갑급리그에서 우승하며 연변 교포사회를 축구로 똘똘 뭉치게 했다.전북일보와 교류 협약을 한 연변일보가 중국 교포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1948년 창간된 연변일보는 중국내 최초의 조선족 종합일간지며,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원회 기관지다. 60여년에 걸쳐 우리겨레의 역사를 기록했으며, 중국 전역에서 민족의 활강을 집중조명해왔다. 중국어판과 별도로 한글판을 내고 있는 이 신문사 현관에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조형으로 새긴 것이 인상적이었다.연길시에 있는 연변박물관도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중국의 100대 중점 박물관이기도 한 이곳은 중국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 풍속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3000여점의 민속문물이 보여준다.연변을 찾는 한국인들에게 도문시는 민족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눈물 젖은 두만강 의 배경지인 도문공원에서 두만강을 사이에 둔 북한 땅이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이번 방문에서 영하 10도 안팎의 추위 속에서 지게를 진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 중에는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통곡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 기획
  • 김원용
  • 2016.01.04 23:02

[정옥동 대륙복지회 사무총장이 돌아본 '연변생활 20년'] 황량하던 곳에 번듯한 아파트

내 삶의 제2고향인 연변에 가게 된 것은 1955년 전주신흥고 2학년 당시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 거부를 당하고 학교에서 강제 휴학을 하면서다. 625와 토벌작전으로 피어린 전적지인 고향에 들어가 절망 가운데 투병하게 된다.이웃들에게 혐오감을 주며 집안에 머물기가 염치없어 빨치산이 출몰하는 산속에 들어가 야생하며 깊은 명상에 빠졌다. 왜 이러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왔는가?깨닫기는 가치관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툼과 싸움, 전쟁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은 참사랑이 없기 때문임을 절감하고 건강이 회복되는 기회가 주어지면 오직 물질이라는 생각에 처한 곳에 가서 참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 세월 기다리는 중 가까운 북한은 문이 닫혀 있지만, 이웃나라 중국이 문이 열려 북한과 가까이 이웃하고 있는 우리 동족이 살고 있는 연변에 가서 함께 살고 싶었다.△의료사역1990년 현지답사를 가보니 가장 절실한 문제가 의료였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는 풀려가고 있었지만 인민의 건강을 돕는 의료문제는 너무 낙후되어 있었다. 낮선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정감을 주고 사랑할 수 있는 통로가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의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10여년 병원업무에 종사했기에 쉽게 의료봉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중국 대외무역법에 따라 최상한인 20년을 약속하고 중한합작연변대학 복지병원을 책임지고 설립 운영하게 되었다. 병원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700여명의 심장수술을 했던 병원으로 중국 21개 성 중에서 18개 성 환자가 내원하는 한때 소문난 병원이기도 했다. 접경 지역이었기에 강 건너 우리 동족들이 우리 병원을 찾아와 치료도움을 받곤 했다.함께 간 30여명의 의료일꾼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꽤 많이 드는 치료비를 도와주고 치료받은 어린이들을 방문하여 장학금을 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의료사역을 하다 보니 1차 의료인 예방적 차원의 지역보건사업이 부실한 점이 문제였다. 공산주의혁명기간보다 개방되면서 보건의식이 더 많이 해이해졌다. 그래서 농촌지역보건사업, 도시지역보건사업에 참여하여 보건개발을 중심으로 노인복지와 소외된 어린이 복지사업을 연관시켜 지역사회개발을 돕게 되었다.당시 의료실정의 단면을 몇 가지 예로 들어보면 언청이 수술을 하려고 지역보건사업지역을 조사해보니 환자가 없다. 그 원인을 물어보니 출산시 이런 불구애기가 나오면 부모가 산파(접생원)에게 물속에 잠겨 넣어 질식시켜주기를 요청하면 보건소(위생원)장 재가를 얻어 절명시켰기 때문에 언청이 같은 장애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또한 예로 우리 병원에 등록되어 투약 치료하는 500여명의 간질환자의 경우를 보면 간질에 걸리면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퇴학되고, 직장인이면 직장에서 퇴직되고 가정을 이룬 어른들이면 이혼당하는 처지이기에 가정에 갇혀 살고 있는 딱한 실정이었다, 지금은 전 인민의 의료보험이 실시되어 발병되면 병원에 가서 치료 받을 수 있었지만 1990년대만해도 지역주민들 말에 의하면 심장병 같은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없어 집에서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한글 독서사역특히 연변은 전 세계에서 한반도와 같이 한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유일한 외국이다. 1994년 병원을 개원할 당시 한국에서 그곳에 간 우리 자녀들 대부분이 한글로 교육하는 조선족학교에 들어갔지만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사상교육이었다. 그래서 급히 한국 어린이들을 위한 무궁화초등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4년이 지나 중국내에서 최초로 한국국제학교가 허가되어 연이어 교장을 역임하였다. 우리학교에서 전교적인 독서교육을 하다 보니 같은 한글 문화권에 있는 조선족어린이들에게 한글 독서를 시켜주어야겠다는 의무감을 갖게 되어 친구 두 명과 함께 연변조선문독서사를 열고 독서교사 양성 반을 지도해서 많은 독서지도자를 배출했다.그 가운데 연변조선족 학교 언문교사(국어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족학교마다 전교아침독서운동이 확산되면서 소수민족인 조선족학교의 위상이 향상되어 가고 있었다.마무리하고 되돌아 올 때는 병원은 연변대학에 기증하고 복지관은 복지단체인 애심어머니협회에 시설을 기증하고 빈 마음으로 못다 한 일에 아쉬움을 가지고 돌아왔다.△20년간 변화상1990년 처음 방문했을 때 연길시를 비롯한 자치주 도시들의 중심가 외에는 거의 도로포장이 되어있지 않았고 거주하는 가옥들이 평방집(땅집)이어서 집집마다 생석탄을 연료로 썼으며 중소공장들 역시 석탄연료를 사용하고 있어서 도로의 먼지와 함께 매연이 도시를 휘덮어 세탁물을 밖에서 건조시킬 수 없을 정도였다.과거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채소밭 밑거름이 인분을 주어서 기생충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서 구충제를 공급하는 일이 우리들 몫이기도 했다. 그곳 화장실 문화가 옥외 공중화장실이어서 집안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화장실 구조는 남녀 구분만 되어있고 출입문이나 칸막이가 전혀 없는 개방식이어서 처음엔 참 어색했다. 우리가 병원을 지으며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지을 때 환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답답해서 볼일을 보지 못하겠다고 호소해 와서 할 수 없이 개별 칸 문짝을 50cm정도로 맞추는 해프닝도 있었다.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타면 해바라기 씨, 호박 씨 등 온갖 쓰레기가 밑바닥에 쌓여있고, 차내 흡연으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거리, 야외 어디고 비닐봉지 등 휴지와 쓰레기들이 버려져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나 놀이동산에는 방변을 하여 악취가 나고 발 디디기가 조심스러웠다. 정화시설이 없어 생활오물이 그대로 하천으로 방류되는 시냇물에서 여름이 되면 남녀가 겨울 동안 씻지 못한 때를 벗기려 완전 나체로 남녀 구별 없이 마치 해수욕장처럼 목욕을 하고 있는 낯 뜨거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그런 연변지역은 2000년 중반부터 눈부시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거리게 완전 포장이 되고 주택개량이 되어 아파트가 들어서고 거점 적으로 집중보일러가 생겨 어느 도시 보다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 되었다. 생활 오수를 정화시켜 하천마다 맑아지고 식수원이 개발되어 마음 놓고 맑은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국가가 농가 지원을 하여 유기비료, 무기비료를 싼값에 지원하여 매년 풍작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에서 중국 농산물하면 공해식물로 우려하지만 연변지역 농산물은 한국농산물 못지않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연변에 더 많은 관심을내 고향 전북이 연변과 어떤 모양의 인연을 갖는다면 한국에 진출해있는 연변 동포들의 일자리를 타 지역에 비해 더 많이 주선해주고 법적인 보살핌에 신경도 써주고 지역병원과 연계하여 치료혜택도 알선해주고 접근하기 쉬운 곳에 고충상담소도 마련해주며 가능하면 명절을 기해 나그네의 설움을 달래주는 위로회도 열어주면 좋겠다.또 우리 전북에서 연변에 진출한 기업을 챙겨주고 자치주관련 정부기관과 연계하여 전북 기업인들을 도와주면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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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서일범 연변대 인문대 학장 "조선족 아닌 중국 교포로 불러주세요"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연변의 교포들이 많다. 서일범 연변대 인문대 학장(54)도 그렇다. 이민 4세대인 서 학장은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변대 서울사무소장 등으로 활동하며 10년간 한국생활을 했다. 중국에서 한국고대사 박사학위 1호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고구려성곽 조사를 위해 북한을 드나들어 남북한 모두에 대한 이해도 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스스로 홍어 마니아라고 했다. 연길에서 만난 서 학장으로부터 연변 교포들의 삶을 들어보았다.-한국과 북한, 연변을 오가면서 느끼는 소회가 많을 것 같다. “남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북한에서 민족적 전통이 대부분 없어졌다. 한국에 우리 뿌리인 전통들이 많이 남아있어 고마운 마음이었다. 연변에 전통 민속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통명절 보다 크리스마스 등 서구의 기념일을 선호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다.중국 내 50여개 민족이 사는 다민족사회에서 어떤 문화로 대응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요즘은 한족과의 결혼을 더 이상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족 공동체가 바뀌고 있는 현실과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의 언어를 잊더라도 조선족임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런 민족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한국과 교류 과정에서 갈등도 겪었을 텐데.“교류 초기 갈등이 많이 있었다. 한국인에 대한 경계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노무진출이 많아지고 드라마 등을 통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거의 없어졌다.”-모국에 대한 서운한 점이 있다면.“한국매체에서 연변 조선족이라고 할 때 서글프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한국에서 조선족이라고 하면 다른 민족처럼 느껴진다. 조선인이라고 할 때와 또 다른 어감이다. 연변의 중국동포라고 불렀으면 좋겠다.또 하나가 정부나 대기업에서 연변의 역사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다. 투자 이익만을 따져 연변을 외면하는 상황이다.”-연변대학이 지역의 씽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을 텐데.“연변대는 중국 최초의 소수민족 대학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연변대가 없으면 2만명의 젊은이들이 상해나 북경으로 갔을 것이다. 대학이 있어 연길의 중요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전체 학생의 38%가 교포다. 92년 중외합작대학으로 설립된 연변과학기술대에도 유학생이 많다.”-중국 전체적으로 한국드라마가 인기라고 알고 있다. “중국문화가 한류의 본류인데, 지금은 한국의 문화가 대세다. 2000년부터 위성 TV를 통해 한국의 문화침투가 이뤄졌다. 중국의 드라마를 싱겁고 어색하게 여긴다. 2000년대 초 한국의 인기드라마에 빠져 밥을 차려주지 않아 부부싸움까지 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같은 역사에 대한 회상, 미련,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동질성을 한국 드라마에서 찾는 것 같다. `대장금`드라마에서 나오는 한약 관련 대사를 보며 중국 한의들도 깜짝 놀라 어떤 감독이냐고 물었다. 주 배경지가 이곳 용정이었던 `토지`도 인기 드라마였다. 한국인들이 뛰어난 문화적 감성을 가진 것 같다.”-한국과 한국 국민들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연변 교포들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 높아진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일체감을 갖는다. 교류 초기 갈등이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면서 갈등을 좁혔다. 이 문제는 남북통일로 하나가 될 때도 똑같이 나타날 것이다. 그 점에서 북한과 같은 체제에 산 연변 교포들이 화해와 중재의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통일된 조국의 문화적 완충지대로 연변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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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16.01.04 23:02

[전북을 바꿀 키워드] 전북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 '발판'

2016년 전북도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2015년이 예행연습이었다면, 2016년은 실전이다. 올해 하반기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전북혁신도시 이전으로 전북 금융타운 조성 등이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사전 타당성 용역과 새만금 특별법 개정안으로 새만금 내부 개발이 본격화되고, 올해 3월 메가 탄소밸리 구축사업 예비타당성 결과에 따라 탄소산업이 제2 도약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가식품클러스터 기업지원시설이 완공되고, 산업단지 조성이 상당 부분 진행되면서 국내외 식품기업 투자 활성화가 기대된다. 올해 8월까지 김제 민간육종연구단지를 조성해 종자산업 메카로 발돋움하고, 전북도 토탈 관광의 시발점인 전북관광자유이용권을 14개 시군으로 확대해 관광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다.■ 전북 금융타운- 기금운용본부 신축 사옥 9월 완공 계기 / 여의도부산 이어 '제3 금융 허브' 육성서울 여의도, 부산에 이어 전북 금융타운을 국내 제3의 금융 허브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 500조원대의 세계 3대 연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올해 하반기 전북혁신도시 이전을 앞두고 있다. 이전이 완료될 경우 기금운용본부 관련 금융기업의 전북 이전 또는 지점 개설이 예측된다.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신축 사옥 공사는 지난해 4월 착공해 올해 9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1만 8700㎡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8층, 기숙사 5층 규모로 들어서고, 총 공사비 492억원이 투입된다.이와 관련 전북도는 지난해 9월 전북 금융산업 발전 로드맵을 발표하고, 전북도의회 최진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북 금융산업 육성에 관한 조례를 10월 제정해 전북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제도 기반을 마련했다. 12월에는 2016년도 본예산에 부지 매입비 157억원을 확보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지역본부와 전북혁신도시 내 전북금융타운 조성을 위한 부지(3만 6453㎡) 매입 가계약을 체결했다.올해 초에는 전북 금융타운 기본 구상 및 타당성 용역을 발주해 세부 계획을 마련하고, 서울 여의도 금융기관 대상 기업설명회(IR) 및 팸투어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한편 한국금융연구원은 2024년까지 단계별 과제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이전으로 전북지역 지역내총생산(GRDP)은 317~3522억원, 소비는 242~2590억원, 투자는 1846~5534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상하는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사전 타당성 용역비 확보 / 동서 2축 도로 착공SOC 확충 착착새만금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새만금 동서 2축 및 남북 2축 공사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사업이 윤곽을 드러냈고, 새만금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로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이 가능해졌다.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이 사전 타당성 용역비를 확보하면서 최대 현안 사업인 공항 건설의 토대를 마련했다. 올해 국가 예산에 새만금 국제공항 사전 타당성 용역비 8억원이 반영되면서 새만금 국제공항 입지 선정을 포함한 사전 타당성 용역이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항공대에 의뢰한 전북권 항공수요조사 용역 결과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북권 항공 수요는 402만 명으로 판단됐다.지난해 3월에는 새만금 남북 2축 기본 설계가 완료되고, 7월에는 새만금 동서 2축 공사가 착공됐다.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는 총 3.1㎞ 중 1.5㎞가 완료됐고, 나머지 1.6㎞는 공정이 90%에 이르는 등 새만금 개발을 위한 SOC 확충 사업이 차례로 진행되고 있다.또 지난해 7월 24일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되면서 민간 투자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개정안에는 국무총리실 내 새만금사업 컨트롤 타워인 새만금사업추진지원단을 설치하고, 투자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앞서 지난해 6월 말 새만금 산단이 한중 FTA 산업협력단지로 공식 지정되면서 새만금은 대중국 진출 전초기지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정부는 전체 7개 공구 가운데 2개 공구 1.9㎢ 면적을 산업협력단지로 조성했고, 2018년까지 5공구 지역 1.8㎢ 면적을 산업협력단지로 추가 조성할 방침이다.전북도는 올해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해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종합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2017년에는 새만금 국제공항 유치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해 사업을 추진하고, 새만금~대아 등 4개 철도 건설 사업을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다.■ 미래 먹거리 탄소산업- 자치단체 지원 조례 전국 첫 제정 / '탄소융합산업 연구조합' 공식 출범전북지역 전략산업인 탄소산업은 제2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탄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1단계 탄소밸리 구축사업(2011~2015년)은 마무리되고, 2단계 메가(MEGA) 탄소밸리 구축사업(2016~2020년)은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메가 탄소밸리 구축사업은 국비 2177억원, 지방비 175억원, 민자 2733억원 등 총 5085억원 규모다. 전북도와 경북도는 시도 공동 사업으로 1조원 규모의 탄소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으로 신청했고, 현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올해 3월께 최종 결과가 도출되면 메가 탄소밸리를 통해 소재부터 성형, 부품,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Value Chain)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1단계 탄소밸리 구축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동차, 농건설기계, 조선해양, 신재생에너지 등 전북도 핵심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해 신산업이 창출되고, 사업화가 촉진될 전망이다.지난해 12월 전북 탄소산업 협력 네트워크 탄소융합산업 연구조합이 공식 출범하면서 전북 주도의 탄소산업 육성 조직이 형성됐다. 탄소융합산업 연구조합은 전북권 90개, 서울경기권 38개, 경남경북권 13개, 충청권 9개 등 전국 150개 탄소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한다.또 전주시, 완주군, 정읍시 등 3개 시군 일대에 16.3㎢ 규모의 전북연구개발특구가 지정되면서 탄소 융복합산업 발전의 토대가 마련됐다. 전북연구개발특구는 탄소, 농생명 융복합산업의 기술 사업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지난해 전북도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제정한 탄소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는 전북도 차원의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탄소소재 융복합기술 개발 및 기반 조성 지원에 관한 법률이 통과될 경우 국가 차원에서 탄소산업을 육성하는 제도적인 근간이 마련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가식품클러스터- 임대형공장 등 기업지원시설 올해 완공 / 한중 교류 활성화로 긍정적 경제효과 기대올해 익산에 소재한 국가식품클러스터는 부지 조성 등 기반시설이 구축으로 민간투자가 더욱 활발해 질 전망이다.현재는 하림식품, 조은건강, 원광제약, 에이젯시스템, BTC, 네오크레마 등 6개 업체가 국가식품클러스터 분양 계약을 맺었다. 국가식품클러스터 외국인투자지역에는 체코 프라하의 골드, 미국 햄튼 그레인즈웰스프링, 케냐 골드락인터내셔널, 중국 차오마마위해자광생물과기개발 등 6개 해외 식품기업이 입주를 추진하고 있다.국가식품클러스터의 산업단지, 식품기능성평가지원센터품질안전센터임대형공장 등 기업지원시설은 2014년 11월 기공식 이후 올해 완공을 목표로 조성하고 있다. 산업단지는 지장물 이전과 문화재 조사 완료 지역을 중심으로 부지 조성이 진행 중이고, 30%의 공정률을 보인다. 올해 6월 완공 예정인 기업지원시설은 바닥공사, 구조물 철골 공사가 진행되고 80%의 공정률을 나타내고 있다.지난해에는 국가식품클러스터 산업단지 제2공구 부지 11만 6000㎡가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외국 기업 유치에 탄력을 받게 됐다.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내 식품 산업 문제점 및 육성 방안을 통해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중국 칭다오 지역과 연계한 한중 식품클러스터 조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해 8월 칭다오에 한국농수산식품 물류센터가 개소했고, 칭다오조리엔 그룹 등 중국 선도식품 기업이 국가식품클러스터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등 지역 간 활발한 교류에 따른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한중 식품클러스터가 조성되면 각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통관절차 간소화 및 비관세 장벽 완화로 양국에 긍정적 경제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종자산업 메카- 민간육종연구단지 20개 기업 입주 예정 / 골든시드프로젝트 2020년 2억달러 수출전북도가 종자산업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정부와 전북도는 올해 8월까지 김제시 백산면 옛 축산시험장 일대 54.2㏊에 733억원을 투입해 민간육종연구단지 조성을 추진한다. 종자산업진흥센터, 첨단육종연구시설, 시험온실 등 최첨단 육종 시설과 장비를 갖추게 된다. 민간육종연구단지가 완공되면 20개 관련 기업이 입주해 본격적인 신품종 개발에 나서게 된다.더불어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농촌진흥청산림청이 공동 기획해 추진하는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도 민간육종연구단지 완공으로 한층 더 힘을 받을 전망이다. 이 프로젝트는 금보다 비싼 종자를 개발해 2020년까지 수출 2억 달러, 2030년 3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고부가가치 종자 개발 사업이다.특히 농촌진흥청이 2014년 본청과 국립농업과학원을 전북혁신도시로 옮기고, 지난해 국립식량과학원국립원예특작과학원국립축산과학원 등 나머지 산하기관의 전북혁신도시 이전을 마무리하면서 종자산업 메카 조성 작업이 본격화됐다. 농식품부는 민간육종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농진청, 정읍 방사선육종연구센터 등 종자산업 관련 산학연관을 연계하는 삼각 벨트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또 2014년 12월 도내 26개 농생명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전북 농생명 연구 협의체가 출범하면서 공동 연구과제 개발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생태 토탈관광 본격- 1시군 1대표 관광지 패스라인 확대 / 2024년까지 1008억 들여 생태관광도전북도의 1시군 1대표관광지, 1시군 1생태관광지를 중심으로 한 토탈 관광이 본격화된다.전북도는 토탈 관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1시군 1대표관광지와 1시군 1생태관광지를 선정하고, 전북관광자유이용권(관광 패스) 구축 용역 결과에 따라 전주시완주군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올해는 14개 시군으로 전북 관광 패스라인을 확대해 추진할 방침이다. 올해 1~2월께 14개 시군과 전북 관광 패스 발매 업무협약을 맺고, 1~6월께 시군 주차장 및 관광시설 관련 조례 할인 조항 개정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맛집숙박카페공연 등의 특별 가맹점 모집도 병행한다.7월부터는 14개 시군 전북 관광 패스라인을 전면적으로 구축한다. 대표관광지를 연계한 콘텐츠 개발, 버스주차장관광시설 정산 프로그램 개발, 단말기 설치, 홈페이지 및 모바일 앱 제작, 온오프라인 방식 관광 패스 제작 등을 진행해 도내 관광지를 관광 패스로 묶겠다는 구상이다.1시군 1대표관광지는 2024년까지 1시군당 140억원씩 총 1400억원을 투입해 전북만의 차별화된 관광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전주시 덕진공원, 군산시 근대문화도시, 익산시 보석테마관광지, 정읍시 내장산 국립공원, 남원시 광한루원 등을 거점 관광지로 선정했다.또 1시군 1생태관광지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총 1008억원(지특 504억원, 도비 252억원, 시군비 252억원)을 투입해 도내 각 시군마다 1개의 생태관광지를 육성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생태관광지는 지질공원형 1개, 생물군락지형 3개, 경관자원형 5개, 생태관광기반형 5개로 이뤄져 있다.

  • 기획
  • 문민주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서랍 속 블랙홀 - 이덕래

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내 첫 인사를 듣고, 넌 내가 실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넌 그만큼 민감한 녀석이었으니까. 넌 잠깐 내 눈을 바라보았지만, 곧 시선을 아래로 거두었다. 난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못 알아들었나? 혹시 일본인인가? 너는 왜소한 체구에 좁은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딱 군대를 안 갔다 온 꾸부정한 스무 살처럼 보였다. 너의 모습은 알파벳 c 같았다. 대문자 C도 아닌 소문자 c. 삐쩍 마른 체격에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굽히지 않고 뻗어 꼽은 너의 모습은, 정녕 c였다. 나는 너보다 컸고, 말년 병장의 군복이라도 되는 양, 키부츠(이스라엘 집단 농장)에서 제공한 낡고 색 바랜 군청색 작업 잠바와 통 넓은 회색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난 당당한 한국 예비역 남자답게 홀로 각종 종교 성지인 예루살렘의 구석구석을 일주일간 순례하다 막 돌아온 길이었다. 도보 행군하듯 예루살렘 인근 지역을 열심히 내 두 발로 누비고 다니다 이제 막 돌아온 참이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길거리에서 딱딱한 빵으로 세 끼를 해결했고, 각종 성지 입구에서는 여행 책자를 보면서 갈등하곤 했다 - 입장료를 지불할 만큼 합당한지 판단해야 했다. 그렇게 여행자용 싸구려 팔 인실 숙소를 전전했다. 일부 숙소에서는 그 와중에 디시워싱(설거지) 아르바이트까지 뛰다 왔다. 숙소 로비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로비의 전화벨이 울리면, 다른 녀석들보다 더 빨리 전화를 낚아채서는 간단히 페이만 확인하고는 빵값을 벌러 나갔다. 물론 실망한 다른 녀석들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날리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알파벳으로 치면 대문자 I와 같이 당당한 남자였다.이제 막 피곤함에 찌든 몸을 끌고 돌아와 숙소 현관을 연 것이다. 그리고 널 발견했다. 난 새 룸메이트가 누린내 나는 양놈일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키부츠 발런티어(키부츠 자원노동자 프로그램) 인사 담당인 조엘에게 분명하게 얘기했기 때문이다.아이 원트 룸메이트 위드 옐로우 헤어.그런데 새 룸메이트임이 분명한 너는 검은 머리였다. 게다가 양놈도 아니었다. 난 양놈을 원했다. 왜냐하면, 양놈 친구를 사귀고 싶었으니까. 양놈 친구를 사귄다면, 다음번엔 그 녀석 나라로 배낭여행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지난번 룸메이트는 여기서 영어 배우기는 글렀다고 늘 불평만 해대던 흔하디흔한 한국 녀석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놈은 결국 갓 한 달이 되자마자 짐 싸서 비행기 타고 집으로 돌아간 참이었다. 아마 한국에서 빡세기로 소문난 어학원에 등록할 것이다. 난 널 보자마자 조엘에게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실망한 내색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난 예의 바르고 매너 좋은 대한민국의 예비역 병장이었으니까. 생긴 것으로 보면 넌 일본인은 아니었다. 일본인은 일본인처럼 생겼다, 일본인은 그들만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조엘도 한국과 일본이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정도의 상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조엘의 세상에선 마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을 룸메이트로 짠 것과 같은 맥락일 수도 있으니까. 키부츠 발런티어 프로그램이란 국제 평화와 관계 회복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조용히 일 잘하다 가게 만들면 되고, 덤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홍보하면 되는 것이니까. 나처럼 사정이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는 숙박이 제공되고,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저렴한 프로그램이자, 덤으로 영어도 좀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졌었다.그나저나 생긴 건 분명 한국인인데, 혹시 나처럼 똑같이 내가 한국 놈이라서 이놈이 실망한 게 아닐까? 내가 복잡한 셈을 하며 내 야전 침대에 배낭을 내려놓자, 넌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엄... 쑤어리, 엄 넛 커리언.이 세련된 발음은 뭐지. 넌 한국인이고 따라서 발음이 제법 후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너의 발음은 어리즈널 냄새를 풍겼다.암 드에늬시 메딘 크어리아.뭐라는 거지? 난 탁자 위에 있던 메모지를 내밀었다. 너는 이렇게 휘갈겨 썼다.Danish, made in Korea.너는 윌리 팍 소푸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한국에서 박수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만, 덴마크로 가서 윌리 팍 소푸스라는 사람이 되었다.너는 어려서부터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특히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알쏭달쏭했다. 너는 다른 친구들과 너무나 생긴 것이 달랐다. 코펜하겐 같은 큰 도시도 아니었다. 덴마크 한쪽의 쏜더라는 도시 외곽에서 자라게 되었다. 젖소 목장이 많은 그런 도시였다. 그리고 넌 태생적으로 별로 활기찬 성격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너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그들은 왜소한 검은 머리 아이에게 그러나, 별로 호의를 보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넌 일찍이 무존재를 지향하게 되었다. 호기심은 무반응이 이어지면 잊히기 마련이다. 또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동화되면 휘발된다. 너는 그들과 일체가 되기에는 너무 내성적인 성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집에서도 조용했다. 어디에서나 공기와 같은 그런 아이가 되었다. 아니, 그런 아이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넌 아무리 조용히 있어도 잘 숨어지지 않았다. 너처럼 새까맣고 빳빳한 머리털을 가진 남자애는 학교에 없었고, 그 지역 사회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너는 점점 c처럼 꾸부정하게 변해 갔다. 고개를 숙이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조그만 체구를 가진 검은 머리 덴마크인으로 알고 지나쳐 가길 바랐다. 얼굴을 들키지 않으면 너의 우울하고 심란한 표정을 읽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너는 점차 무표정한 얼굴을 만들어 갔다.너에겐 누나가 있었다. 누나의 이름은 제니 송 소푸스였다. 누나는 너와 달리 사교성이 좋고 활발한 아이였다. 넌 너의 누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다. 전교생 중에서 동양인 외모를 가진 학생은 너희 둘뿐이었다. 너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조용히 있고 볼품없고 또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녀도 늘 사람들의 눈에 너무 잘 띄었다. 그들의 호기심이 빨리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제드 소푸스 씨의 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너는 말을 거의 안 했지만, 그래도 말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가끔 그들 중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너는 어쩜 그렇게 덴마크 말을 잘하니?너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어떤 아이들은 너에게 이런 말도 했다.넌 어쩜 누나랑 성격이 그렇게 다를 수 있니?너는 가끔 주먹을 쥐기도 했고 더러는 엉켜 싸워보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또래 아이들은 늘 너를 내려다보았고 덴마크에서 나는 세계 최고의 우유와 치즈, 그리고 빵을 먹고 좋은 체격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넌 그들의 아래에서 코피 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었다. 쿵후 영화 같은 걸 보면서 심취해서 한동안 열심히 따라 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번 실전 경험을 쌓아 보고는 포기했겠지. 절도 있고 근사한 타격과 방어 동작, 적들의 쓰러짐과 줄행랑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넌 우리가 생각하는 북유럽의 아름다운 어떤 선진국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꼬마가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운 질문이 예닐곱 살 때부터 늘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너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골몰하지 않을 때마다 컴퓨터의 배경화면처럼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나는 왜 여기 있을까?이 질문은 그런대로 봐 줄 만했지. 그런데 그 질문은 금세 확대되었다.나는 누구일까?이런 질문은 사람을 돌아버리게 한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후천적으로 병상에 오래 눕게 되는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리나, 아파트 난간에 서서 잠깐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 종교인과 철학자들의 평생 질문이라고 볼 수 있지. 보통 사람이라면 사십 줄에나 들어서야, 점점 무용한 삶에 접어들면서 때때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지. 어쨌거나 이런 질문은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심각하게 갈구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질문이었다. 너는 머리털을 양손으로 쥐어뜯으며 어떻게 이 질문을 떨칠 수 있을까 번민하곤 했지. 그러나 이 질문은 네 어깨 위에 틀어 앉아 이미 머리털을 그러쥐고 있었지. 넌 자살을 생각했을 거야. 손목을 긋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거 말이야. 그러면 너의 육신과 함께 그놈도 영원히 사라져 버릴 테니까.제드 소푸스 씨와 마리아 소푸스 씨는 다행히 좋은 부모였지. 그들은 널 안아 주고 다독여 주고 남들처럼 좋은 유제품을 주었지만, 너의 근본적인 질문을 해결해 줄 순 없었지. 물론 그들도 너나 누나의 성장기에 일어나는 흔한 사고들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식이 없었고, 초보 부모였으므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들은 다른 부모보다 한 단계 더 생각해야 했다. 이게 동양인과 서양인의 근본적인 차이일까? 아니면 그 나이 때 아이들이 흔히 치는 사고일까? 다행히 그들은 덩치만큼이나 느긋하고 약간은 둔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네가 잠든 사이에 서로 이렇게 질문했을지도 몰라.왜 우리 윌리는 남들처럼 잘 먹여도, 이렇게 작고 꾸부정한 걸까?그리고 넌 그들에게 점점 본질적인 질문을 할 용기를 잃어 갔다. 너와 누나와 함께 가족이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하는 부모에게 왜 내가 여기에서 자라고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물론 너는 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그들에게 자신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부지불식간에 하곤 했다. 그건 혼잣말이었을 지도 모른다. 너는 탁자에서 밥을 먹고 있었고, 신문을 읽고 있던 소푸스 씨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학교 가기 전 아침 식사를 하는 평화로운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게다가 윌리가 세수를 하고 식탁에서 잼 빵을 먹다가 처음으로 입을 떼어 하는 말이 그런 것이라니일상적인 풍경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소푸스 씨는 입양 서류와 당시 네가 입고 있던 배냇저고리와 손에 쥐고 있었다는 빨간색 딸랑이를 옷장 깊은 곳에서 꺼내 보여 주었다. 넌 입양 서류에 적힌 너의 한국 이름과 출생지를 보았다. 너의 성별과 너의 생일도 보았고, 어렸을 때 성격과 특성이 간략하게 기록된 것을 보았다. 잘 웃는 아이였고, 몸무게가 또래보다 좀 적은 아이였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친부모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너는 입양기관의 이름을 외웠고, 그게 모든 비밀의 열쇠임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양부모는 한국의 고아나 다름없는 불쌍한 두 아이를 입양해서 잘 키워주고 있었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넌 큰 기와집 대문 앞에 너를 두고 흐느끼며 멀어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너는 어머니가 쪽 찐 머리에 한복을 입고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녀는 보육원에 너를 맡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아이였으므로, 너는 늘 그렇게 상상했다. 부잣집 대문 앞에 버려진 너는 경찰서로 넘겨지고, 그곳에서 입양기관으로 인도되었다고 상상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여전히 왜 한국이 아닌 해외로 보내져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제가 한국에서 태어난 건 알겠는데요, 그런데 왜 지금은 한국에 없나요?너의 누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했지. 넌 누나에게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 책에서 본 얘기를 했지만, 누나는 너와는 달리 너무나도 밝은 아이였지. 누나는 모든 상황을 이미 잘 정리해서 서랍 속에 넣어 두었어. 덴마크인의 외모 다양성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너의 누나는 너를 바라보며 얘기했지.덴마크는 한국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야. 난 이곳에 있는 게 행복해.너는 누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 어떻게 이런 중요한 질문을 어떻게 그리 쉽게 접어둘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너는 누나를 여러 번 괴롭혔고 결국, 그녀는 폭발했지.난 덴마크인이야! 쓸데없는 질문은 그만!너는 누나가 서랍 속에 깊이 넣어둔 질문을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 이후로 그녀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넌 네가 누나와 다르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것을 축복으로 여겼을 거야. 멀지만 같은 한국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난 사람도 성격이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은 거지.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피부색처럼 성격도 여러 가지이고, 어떤 사람은 너처럼 까다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조용한 무존재 아이에게도 시간은 평등하게 주어졌다. 넌 점점 책과 친해졌다. 책은 돈이 들지도 않았다. 넌 복지국가 덴마크의 어느 소도시, 그곳의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많은 책을 읽었고, 배경화면이 떠오르지 않도록, 열심히 그 안에 침잠했다. 책이 눈앞에 없을 때도 문장들을 떠올리고 복기하는 것으로 머릿속을 늘 복잡하게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소푸스 씨의 아들이 방과 후에 항상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넌 그 안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약간의 어렴풋한 답변을 얻기 시작했지. 소도시의 도서관에서 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발견한 셈이야. 좋은 책도 있고 독약 같은 책도 있었지만, 넌 그 안에서 시간과 버무려 지면서 자연스럽게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거를 줄 알게 되었지.나는 왜 여기 있을까? 나는 누구일까?그리고 넌 너의 누나보다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려, 힘들게 그 질문을 서랍 속에 넣어둘 수 있었지. 하지만 너의 서랍은 누나의 서랍보다 덜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 분명해. 넌 그 서랍을 가까이 두고 점점 더 덜 두려운 마음으로 열어볼 수 있게 되었지. 자주 쓰는 서랍은 미끈하게 열리곤 하지. 그러다가 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거야. 이제 대학생이 되어 코펜하겐으로 떠날 때가 되었지. 너의 누나는 이미 간호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결혼할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인사시키고 있을 무렵이었어. 넌 대학교 입학 전에 이스라엘 키부츠 발런티어로 올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대학교 가기 전에 외국에 가 보고 싶었던 거야. 거기서 넌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인 나를 만나게 된 거고. 넌 너처럼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남자 녀석을 실제로는 거의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거지. 그놈은 배낭을 메고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지.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어.Uh, Annyeonghaseyo! Bangaweryo.넌 그 말이 한국의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도서관에서 한국어에 대해 공부했었거든. 하지만 넌 연습했던 한국말을 차마 써먹을 수 없었어. 물론 조엘이 너의 룸메이트가 한국인이라고 미리 말해 줬고, 한국말로 인사할까 하고 발음 연습도 해봤지만, 막상 닥치니 말할 수 없었지. 넌 Um이라고 말했지만, 생각했던 인사말을 마저 발음하지는 못했다. 외계의 말과 다름이 없는 낯선 언어, 모국어가 아닌 말을 띄엄띄엄 발음하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너는 그날 나의 존재에 대해 일기에 이렇게 썼지.I met a Korean, made in Korea.한낮의 사막 열기를 피하고자 새벽부터 닭장에서 닭 예방 접종 일을 하고 피로와 불평으로 버무려진 닭털들을 마음속 여기저기 얹어둔 채, 터벅터벅 식당으로 향하다가 조엘을 만났지. 조엘이 룸메이트가 맘에 드느냐고 물어봐서, 난 OK, 라고 말해 줬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양놈은 아니지만, 덴마크로 놀러 갈 수는 있겠다 싶었다고나 할까? 네가 양놈인지 동양놈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려 깊고 노련한 조엘은 혹시 맘에 안 들면 바꿔주겠다며 재차 나의 의중을 떠봤다. 나는 OK라는 말을 조엘의 입술 주위로 네 번 정도 떨어뜨린 것 같다, 높게 낮게 무겁게 약하게. 복잡한 표현을 조엘에게 할 자신도 없었고, 윌리를 바꾸고 새 룸메이트를 받을 정도로 깐깐한 성격도 못되었다. 시시각각 상황은 변하고, 당당한 예비역은 불평보다는 적응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난 네 속도 모르고 어쩌면 널 신기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초등학교 때 너의 학급 친구들보다 훨씬 더 희한해 했을 수도 있어. 한국말을 하나도 못하는 신기한 한국인 같았거든. 어쨌든 넌 만만했다. 마치 말년 병장이 신입 이병을 맡은 격이랄까? 난 너에게 날 이렇게 부르라고 했지.Hyeong나는 내 멋대로 너를 bro라고 불렀지. 난 그때처럼 영어를 잘하고 싶은 때가 없었다. 너의 얘기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 내 토익 점수가 900점이었어도, 너와 제대로 얘기하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넌 그만큼 저 너머 세상에서 사고하고 있었지. 넌 책에서 읽어온 어려운 문어체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너도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았던 거지. 난 네가 늘 얘기하고 인용했던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와 일리아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지. 그리고 네가 존경한다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같은 작품을 이해할 턱이 없었지. 차마 포도가 왜 화가 났느냐고 네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얘기 정도에는 그럭저럭 맞장구를 쳐줄 만했지. 난 네가 말하는 걸 단어로 뜨문뜨문 유추하면서, 너와 나 사이에 놓인 이 부조리한 언어의 장벽과 너에게 내려진 운명의 장난이 혼란스러웠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놈이 한국말을 못한다는 게 짜증스러웠다. 넌 유럽의 철학과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런 얘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근원적인 결핍에 관해 얘기했지. 난 동양인 아이가 양놈들의 철학과 역사와 문학에 관해 얘기하는 걸 늘 신기해했다. 넌 네 서랍 속 질문을 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닌 전 인류의 문제로 확장했던 거야. 넌 범지구적 인간으로 진화한 것이었어. 한 세대 안에서의 놀라운 진화! 운명이 만들어낸 초인류, 또는 특이 괴물로의 변태, 혹은 그 징조. 어쩌면 넌 말이야, 그래서 수줍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었던 거야.Danish, made in Korea그곳 키부츠에도 멍청이는 있었지. 영국인 발런티어 앤디는 알파벳으로 치면 A와 같은 녀석이었지. 덩치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했고, 항상 양다리를 쩍 벌리고 서 있었지.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를 공식 후원하는 움브로(Umbro) 티셔츠를 늘 입고 다니고, 손엔 캔맥주나 싸구려 보드카 온더록스 글라스를 들고 있었지. 녀석은 늘 취해 있거나 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 녀석이었지. 휴게소에 설치된 TV 앞 소파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채널을 고정해 두고는 누가 리모컨 주위를 어슬렁거릴라치면 큰 눈을 부라리고는 했지. 녀석의 룸메이트인 불가리아인 조이는 졸린 눈을 가졌지만, 머리는 생쥐처럼 기민한 녀석이었지. 그 녀석은 알파벳으로 치면 소문자 z 같은 녀석이었지. 그 녀석들은 늘 쉬운 일을 했어. 영어가 되니까 대화가 필요한 일을 했던 거지. 아,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여기에 쓸 말은 아닌 것 같아. 내가 닭 솜털이 뿌옇게 섞인 먼지를 마시면서 닭장 안에서 반나절 씨름한 얘기는 자랑거리도 아니고 너저분하게 늘어놓을 만한 것도 아니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닭장에서 닭똥 냄새를 맡으면서 장닭들의 따뜻한 허벅지 안쪽으로 잽싸게 손을 뻗어 잡아채는 거야. 이 종자닭들은 무게가 4kg이 기본이고 부리와 발톱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지. 그놈들을 반나절 동안 3만 마리씩 잡아채서는 고리에 양다리를 걸쳐 놓는 거야. 그러면 놈들은 거꾸로 매달린 채 주사를 맞지. 그리곤 다시 풀어 놓는 거야. 그래, 말이 필요 없는 작업이지. 그냥 코안에 털이 많은 사람이 유리한 작업이야. 입을 벌리면 바로 입속에 닭털들이 꼬이거든.난 대한민국의 예비역 복학생답게 독해는 좀 됐지만, 생활 회화는 젬병이었어. 그래서 늘 몸으로 때우는 일을 배정받았으니까. 앤디나 조이 같은 녀석들은 유창한 영어로 불만 사항을 조리 있게 설명했고 결국, 대화가 필요한 식당 같은 데서 일했지. 난 묵묵히 일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예비역이 말이지, 여자애들처럼 닭털 핑계나 대면서 징징대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런 것보다도 더 날 괴롭힌 것은 앤디나 조이가 스웨덴이나 스페인, 일본, 그리고 한국 여자 발런티어들을 유창한 영어를 미끼로 자기들 방으로 끌어들여 파티를 열었다는 거야. 놈들은 때로는 그 애들 방을 급습하고 싶어 했지. 그래, 그냥 그저 그런 멍청이들이었는데, 부러웠다고.너는 키부츠에서도 일할 때 외에는 대개 조용히 방 안에 붙어 있었지. 그냥 처음으로 덴마크 외의 나라에 가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해 봐, 네 녀석은 옆 방의 한국 여자애들에게 관심이 있었을 거야. 넌 아무리 범지구적으로 인식의 영역을 확장했어도 연애만은 어머니의 정서가 묻어나는, 혹은 묻어날지도 모르는 한국 여자에게 본능적으로 끌렸을 거야. 특히 원산지뿐만이 아닌, 자국에서 자라난 한국 여자를 원한 거지. 내 장담하건대, 넌 한국 여자와 결혼할 거야.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어쩌면 이미 한국 여자와 결혼했을 수도 있어. 내가 프로이트도 모르고 칼 융도 모르지만, 그 정도는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거야.넌 어느 일요일 아침 숙소 현관문을 열고 나가다가 죽은 고양이를 밟게 되지. 고양이의 옆구리가 움푹 패었어. 네가 나에게 그 얘기를 해 줬을 때, 난 화가 났지. 그리고 누가 그런 고약한 장난을 했을지 금방 떠올릴 수 있었지. 그건 스웨덴의 여자애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지. 그 애들은 아바(ABBA)의 나라에서 온 천사들이었고, 지난밤에 밤새도록 춤을 추고 놀았을 테니까. 한국에서 온 여자애들은 지난밤에도 카세트를 들으며 밤새도록 영어 공부를 했을 거야. 일본에서 온 마나부가 할 만한 일도 아니었지. 그는 내 면상에서 고양이를 던질 수는 있어도, 슬며시 문 앞에 놓을 만한 녀석은 아니었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얀 일당이 할 만한 일도 아니지. 그러기엔 그 녀석들은 너무 새파랗고 약해 빠진 백인 아이들이었지. 멕시코에서 온 유대인인 키브릴 일파가 할 만한 일도 아니지. 그 녀석들은 귀족 교육을 받는 최상위 계층이니까. 결국, 할 만한 녀석들은 앤디와 조이 뿐이었지. 내 소중한 형제를 건드린 녀석들을 응징하기로 맘을 먹었지.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인 나는 야전 침대에서 작업화 끈을 단단히 조이면서 너에게 말했어.아 윌 힛 뎃 바스타즈.이 비장하고 의미심장한 영어가 난 정말 맘에 들었지. 너에게 예비역 병장의 실전 태권도 실력을 뽐낼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 사실 난 앤디 앞에 서면 대문자 I가 아닌 소문자 i가 될지도 몰라. 영국의 지붕 수리공인 앤디는 대문자 A이면서도 정말 빅 A였거든. 난 무조건 선빵을 날릴 참이었어. 그러면 승률은 반반일 거야. 녀석은 아직 술과 잠에 떡이 되어 있을 테니까. 조이 녀석이 문제긴 한데, 조이는 아마 끼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어. 그 녀석은 교활한 놈이니까 정면 승부에 나서진 않을 거야. 하지만 어찌 될지 몰라. 내 머릿속이 이런 생각들로 복잡할 때 너는 웃으면서 말했지. 그럴 필요 없다고,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라고. 난 아니,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말했지. 그걸 영어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저 주먹을 쥐고 양쪽을 맞대면서 씩씩댔겠지. 여하튼 너는 나를 말렸고, 난 분을 식혔겠지. 어쩌면 식히는 척을 했다는 것이 더 맞겠지. 어쨌든 대한민국 예비역 병장 정도 되면 그 정도 액션은 취해 줘야 하는 거거든. 넌 성경의 한 구절을 읊었고, 아마 그건 예수가 다른 쪽 뺨도 내미는 장면이었을 거야. 그리고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영문 버전도 펼쳐 보여 주고, 읽어 줬지. 넌 정말 신기한 녀석이었어.우리는 고양이 사체를 숙소 옆 황무지 한쪽에 묻어 주었지. 돌이켜 보면, 그 장례식은 내가 여태껏 본 장례식 중 가장 성대하고 근사한 장례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구덩이에 죽은 고양이를 내려놓자, 너는 영혼을 달래는 시를 읽어 주었지. 그 시는 로버트 브리지스의 On a dead child라는 시였다.Perfect little body, without fault or stain on thee, / With promise of strength and manhood full and fair! / Though cold and stark and bare, / The bloom and the charm of life doth awhile remain on thee네가 시를 다 읽자 나도 한 마디 덧붙였지.윌리가 옆구리 밟은 거 미안해하니까 이해하고.나중에 이별 파티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앤디에게 그 얘기를 꺼냈지. 술을 마시면 영어가 좀 더 잘 되거든, 혀가 잘 굴러.유, 유 데드 캣 쉐~ㅅ앤디와 조이가 노린 것은 윌리, 너만이 아니었다. 앤디는 동양인인 너와 나를 동일하게 소문자 i와 c라고 인식한 것이었다. 예비역 병장인 늠름한 I인 나를 그렇게 깔보았다니 열불이 날 일이었지만, 내일이면 떠날 것이었기 때문에 얼굴을 붉히지는 않았다. 그 자식은 발견한 고양이 사체에 대한 실용적인 활용에 대해 고민하다가 우리 숙소 앞에 두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술김에 재미로 그런 거였다고,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다고. 그 날 나는 앤디와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런던에 놀러 가면 연락하겠다고.넌 한국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말했었고, 분명히 그간 한국에 한 번은 왔었을 거야. 그들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지. 그것은 꽤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너의 시작은 지구 상에 흔하디흔한 불행한 아이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이 너를 머나먼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게 했는지에 대해 궁금했을 것이다. 넌 여전히 한국이 해외로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에 놀랐을 거야. 그 시스템은 지구 위 한반도에 꽂힌 슈퍼 Y 새총이 되어 너와 같은 아이들을 쟁여서 지구 반대편으로 쏘았고, 지금도 쏘고 있다. 물론 예전보다는 덜 열심히 쏘고 있고. 그 아이들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는 어느 순간, 입양증서를 보면서 자신의 블랙홀을 깨닫게 되지. 거기엔 낯선 문자로 너의 또 다른 이름이 쓰여 있을 거야.그 블랙홀은 모든 현재를, 너를 송두리째 빨아들일 만큼의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어. 그걸 일단 가둘 수는 있어도 완전히 떼어낼 수는 없어. 어떤 아이들은 이 성가신 블랙홀을, 너무나도 성급히 다른 우주로 가는 웜홀로 사용하기도 하지. 그냥 빠져 버리는 거야. 운 좋은 아이들이 마음속 서랍 한쪽에 그걸 넣어 두고 자물쇠로 채운 후, 유년기를 보내기도 해. 일단 현재를 살기 위해서지. 천성적으로 명랑한 소수의 아이는 열쇠를 아예 잃어버리기도 할 거야. 하지만 어느 순간 때때로 자기만 가지고 있는 블랙홀을 떠올리게 되지. 궁금해서 살짝 서랍을 열어보면 어느새 블랙홀은 더 커져 있고, 그 검은 구멍은 나선형으로 배배 꼬며 더 깊어져 있어. 누가 이 블랙홀을 너에게 주었을까? 너는 이 진드기처럼 떼어낼 수 없는 블랙홀을 증오하게 된다. 이 블랙홀에 먹히고 말 거야. 넌 두려워.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짐이자 굴레임이 분명해.어쩌면 시스템 Y가 더 좋은 출발점을 줬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래서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살찐 아이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출발점으로 돌아온단다.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Y를 좇아 떠날 것이고 Y에서 블랙홀 탐사를 시작할 거야. 그들은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아닌 마천루가 즐비한 서울에서 길을 잃지. 자기를 닮은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충만한 자유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반쪽임을 곧 깨닫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걸 깨달아. 하지만 용기 내어 덴마크어로, 영어로, 프랑스어로, 독일어로, 벨기에어로 묻게 될 거야.제 블랙홀은 어디서 왔나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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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20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입양아 자존 독특한 개성미로 표출”

예선에서 올라온 6편 중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이덕래의 <서랍 속 블랙홀>과 김바울의 <지구인>, 김지원의 <붉은 토트백을 미자에게>였다. 3편을 놓고 숙의 끝에 큰 이견 없이 고른 작품이 <서랍 속 블랙홀>이었다.일반적인 신춘문예 수준으로 보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이 작품은 그동안 외면당한 소수자로서만 여겨지던 해외 입양아의 정체성 혼돈을 주제로 특유의 개성있는 문체와 구성으로 집대성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여기서 개성있는 문체와 구성이라 함은 신춘문예 양성소로 지칭되는 소설교실의 천편일률적인 세련미가 아닌 독특한 개성미를 의미한다.입양 당사자를 너라고 호칭한다. 너는 덴마크 입양아다. 따라서 그 사회에서는 무존재를 지향하지만 거꾸로 잘 숨어지지 않는 희귀한 존재이다. 어느날 나는 이스라엘 키부츠 발런티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룸메이트로서 너를 만난다. 이와같이 정체가 궁금한 인물이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을 지칭하는 방법으로 너를 택한 것은 이채롭다.너를 왜소한 체구를 가진 검은 머리 덴마크인이라 하고, 나를 대한민국의 예비역 병장으로 설정하여, 정체성이 확실한 인물과 불확실한 인물로 대조시킨 점도 특별했다.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나는 마치 너의 머릿속을 들어간 본 사람처럼 해외입양아의 정체성 혼돈을 실감한다. 너의 서랍 속에는 언제나 나는 왜 여기 와있는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이 들어있다.작중인물의 캐릭터를 영어의 알파벳 기호로 표기한 점도 이 작가의 탁월한 고안이다. 너는 소문자 c. 나는 대문자 T. 영국인 앤디는 대문자 A. 불가리안 조이는 소문자 z. 이런 방법으로 위축된 민족과 당당한 민족, 또는 굴곡진 캐릭터와 겁 없는 캐릭터를 표현함은 흥미롭다.대조적인 두 한국인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담당하는 언어의 역할이 중차대하다. 한국인이면서 한국말을 모르는 덴마크인에게 모국어는 외계의 말과 다름없는 낯선 언어이다. 이때 처음 부딪치는 안녕하세요의 동질감과 이질감. 그날 밤 일기장에 쓴 I met a Korea의 친근함과 생경함. 이러한 미묘한 감정을 이 소설은 흥미롭게 포착하고 있다.죽은 고양이 사건을 설정하여 소설의 반전을 꾀하는 수법도 우수하다. 어느 날 백인 청년 앤디와 조이가 너의 현관문 앞에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던져 놓아 밟게 만든다. 나는 내 소중한 형제를 건드린 녀석들을 응징하기로 맘먹는다. 그러나 너가 나에게 성경과 코란을 읽어주며 복수하지 못하도록 말리고 나의 분을 삭여준다. 한국말은 하나도 못하는 신기한 한국인이고, 그래서 어쨌든 만만해 보였던 너가, 나를 달래다니, 위대한 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항해를 시작한 이 작가의 미래가 매우 궁금한 것은 이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특수분야, 예컨대 탁월한 언어장치로 씌워지는 다음 작품이 그만큼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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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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