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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 정대영 신임 회장 "새만금 사업 지역업체 우대기준 마련 최선 다할 것"

지난 9일 취임식을 갖고 대한건설협회 신임 전북도회장으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정대영 회장은 지난 9년간 전북도회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전북도회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또한 대학 졸업후 수십년동안 외길로 건설업에 종사해오며 전북건설의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다. 정 회장이 내세운 첫번째 공약이 회장 임기 단임제인 것만 봐도 개인의 욕심보다는 전북도회의 선순환이 중요하다는 그의 올곧은 성품을 엿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전북건설산업이 정 회장의 취임과 함께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전북지역 건설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요.“현재 건설산업 환경은 국제적인 경기침체와 국내 민간건설경기 위축, 그리고 정부의 SOC예산 감축에 따른 공공공사 물량 감소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도내 종합건설업체가 도내 발주기관에서 수주한 건설공사액이 2012년 1조2433억 원에서 2013년 1조188억으로 18.1%가 감소했고 2014년에도 8985억 원으로 전년대비 27.7%가 감소하는 등 지난 3년동안 지속적으로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사당 평균 수주액도 2012년 18억4000만원에서 2014년 13억6000만원으로 26%가 감소해 대부분의 종합건설업체가 물량 부족에 따른 수익성 악화, 인건비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 3중고의 악재로 사면초가에 빠져있는 실정입니다.”-임기중 주요 공약은 무엇인지요.“첫째, 3년 단임의 전통을 만들겠습니다. 협회 발전을 위해 봉사할 마음과 뜻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회장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나겠습니다. 둘째, 협회의 운영을 활성화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부회장이 결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고문변호사를 선정해 건설 분쟁 등에 관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셋째, 2달에 한 번 첫 번째 수요일에 모임을 정례화해서 다양한 회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등 운영위원회 중심으로 협회를 운영하겠습니다. 넷째, 회원사를 위한 각종 연수 및 세미나를 개최하겠습니다. 다섯째, 권역별, 지역협의회를 4개로 나누어 구성하겠습니다. 1권역은 전주와 완주 2권역은 군산과 익산 3권역은 정읍·김제·고창·부안 그리고 4권역은 남원·임실·순창 진안·무주·장수로 나누어 운영하고 정기적으로 업계 현황을 보고 하겠습니다. 여섯째, 원룸과 다세대주택 등 소규모 건축공사를 건설업 면허업자만 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본회에서 추진하도록 적극 건의하겠습니다. 일곱째, 협회 위상을 높이고 회원의 권익보호를 위해 명예만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일정 금액을 발전기금으로 기탁해 불우 이웃돕기와 기존 협회가 지원하는 동호회 그리고 각종 위원회 행사에 투명하게 사용하고 보고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협회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오던 새만금사업의 지역업체 우대기준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새만금사업에 도내 업체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 온 것으로 압니다. 그동안의 진행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새만금사업은 창건 이후 국내 최대 국책사업으로서 미래 세대들이 새로운 시대의 희망과 꿈을 열고 나갈 수 있는 대한민국의 신 성장 동력으로서 반드시 이룩해야 할 사업으로 2012년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돼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그러나 새만금 사업에 전북의 기업과 장비 및 인력, 자재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지역기업 우대기준 조항(제53조)은 있으나 임의적 조항이어서 그 실효성이 극히 미약해 아쉬움이 많습니다. 따라서 건설협회 전북도회는 법률적 미비한 사항을 개선하고자 그동안 새만금개발청에 새만금사업 특별법에 의한 지역기업 우대기준을 조속히 마련해 줄 것을 정치권과 지자체 등과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해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새만금개발청은 지역기업의 우대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갈 계획인가요.“전북도회는 새만금사업 특별법 제53조 규정의 ‘전라북도에 주된 영업소를 두고 있는 자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우대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을 ‘전라북도에 주된 영업소를 두고 있는 자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에 따라 공동 계약해야 한다’로 개정해 줄 것을 청와대와 입법기관 그리고 정부 주요기관에 지속적으로 건의하는 등 법률이 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건설경기 부진에 따른 도내 건설업체들의 자구책 마련이 요구되는데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건설산업은 연관 효과가 큰 산업입니다. 건설 자재를 비롯해 많은 제조업이 건설산업과 함께하기 때문에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건설환경은 IMF 때보다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국내 건설시장 위축에 따라 새로운 시장 개척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또한 재무구조 악화에 따라 기업 내의 자본확충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경영개선을 통한 자구노력 역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효율적인 현장관리를 비롯해 적정한 인력 배치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조직을 재정비해 불필요한 공사비를 절감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기술이나 품질 경쟁에 역량을 집중하고 공정한 경쟁과 다른 산업과 상생 발전을 모도함으로써 건설산업을 미래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전북건설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요.“품질확보와 안전을 위한 적정 공사비 확보입니다. 현재의 건설공사 발주는 설계(원가계산)→원가산정의 적정성 심사→입찰→계약의 단계로 결국 계약단가는 설계단가의 약 80%에 형성되기 때문에 적정 공사비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 공사는 기업의 부실이 가중되는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건설공사 물량 확보입니다. 주택부문의 수주 감소가 불가피하고 그 가운데 공공공사 물량마저 감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에서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대책 실현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대영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 CEO, 남다른 이웃사랑정대영 회장은 1955년 전주 출생으로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 CEO로서 1992년 삼흥종합건설(주)을 창업해 안정과 내실경영을 기반으로 회사를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중견회사로 성장 발전시켜 왔다.또한 정 회장은 그동안 국가 기간산업 발전과 도민의 생활환경 개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불우한 이웃을 위한 ‘나눔으로 행복건설, 사랑으로 미래건설’을 솔선수범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건설의 날 기념식’에서 산업포장을 수상했다.한편 정 회장은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전주지역협의회 운영위원, 전주지방법원 민사·가사 조정위원, 국세청 세정자문위원, 대한토목학회 전북지회 부회장과 대한건설협회 18·19·20대 대의원, 2006년부터 9년간 대한건설협회 전라북도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지난 2003년부터 대한건설협회 중소건설업육성 위원회 부위원장과 대한건설협회, 건설공제조합의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기획
  • 강현규
  • 2015.07.13 23:02

[변화&소통] 전주시 지속가능 지표

대중교통 활성화 노력으로 시민들의 버스 이용률은 늘었을까?지역주민 가운데 자전거 이용자는 얼마나 될까?21세기 문화의 시대, 지역사회 문화시설은 잘 갖춰져 있을까?물 부족 국가라는데 가구 당 하루 물 소비량은 적절할까?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 보았을 질문들이다.이같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궁금한 사람이 직접 조사를 해보아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지표에서 찾을 수 있다.지표란 그 지역의 현황을 알려주고, 국가나 지역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통계와 같은 수치다.전주에서도 지역 실정에 맞는 지속가능 지표를 개발하여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민관 협치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전주의제21추진협의회는 지난 7일 2015년도 전주시 지속가능 지표 평가보고서를 내놓았다. 또 전주의제21과 전주시는 이날 지표 결과를 토대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전주 지속가능성 향상을 위한 공동워크숍을 열었다.전주시 지속가능 지표는 사람 중심의 생태문화도시를 꿈꾸는 전주의 현주소를 담아냈다. 또 한옥마을과 비빔밥판소리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문화 도시 전주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 살고 싶은 행복공간이 되기 위한 방향성도 제시하고 있다.전주시 지속가능 지표는 지난 2010년 발표되기 시작하여 올해로 6년째다. 하지만 발표하기까지의 준비과정이 호락호락했던 것만은 아니다. 단기간에 분야별 현황을 파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는데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했다.전문가, NGO활동가, 행정에서 총 12명이 참여하는 지표개발 TF팀 구성을 시작으로 전주의 지속가능 발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표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2년여의 연구 끝에 전주시의 정책 결정에 활용하고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 지속가능성 향상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전주시 지속가능 지표가 발표됐다. 현재 전주의제21추진협의회의 지표위원회는 6개 분과 76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NGO 단체 및 시민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전주의 지속가능성 향상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전주시 지속가능지표는 △사회와 복지 △교육 △경제 △생태와 환경 △자원과 에너지 △문화 등 6개 분과로 구성되어 있고 총 44개 지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표위원회에서는 매년 44개의 지표 중 고무적인 변화를 가져왔거나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되는 지표를 올해의 지표로 선정한다.2015년 올해의 지표는 1인당 연간 시내버스 이용 횟수와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이다. 장기간 지속되었던 전주시 버스회사 파업으로 인한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 불만과 녹색 교통의 표본인 자전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전주의 녹색교통 이용 실태는 어떨까? 전주시민의 시내버스 이용 횟수(2014년 기준)는 전년보다 상당히 늘어 1인당 연간 79회에서 88회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의 파업과 기사들의 불친절한 태도, 그리고 버스회사와 전주시 행정의 모습들은 그동안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멀리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표에 나타난 이같은 변화는 최근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전주시 행정의 노력과 버스기사들의 서비스 향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2014년 기준)은 전년 1.95%에서 소폭 증가한 2.37%로 조사됐다. 수치상으로는 소폭 증가한 것이지만 긍정적인 방향을 보인다. 자전거 분담률 조사는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자전거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레저용 이용자가 아닌 생활형 이용자가 조사 대상이 되는 셈이다.또한 현재 자전거를 이용하기 불편한 전주시의 도로 여건을 고려할 때 앞으로 자전거 이용 환경이 좋아지면 자전거 이용 시민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두 지표의 결과는 시민들의 녹색교통에 대한 요구와 참여 증대를 보여주고 있고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도 보여 올해의 지표로 선정하게 되었다.● [지표 조사작성 어떻게] 통계현장설문조사 통해 현황 진단전주의 현황과 지속가능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지표는 어떻게 조사되고 작성되는 것일까?전주시 지속가능 지표는 통계조사, 현장조사, 설문조사의 3가지 방법으로 조사가 이루어진다.통계조사는 통계청자치단체교육청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표하고 있는 통계를 바탕으로 특정 지표를 조사하는 방법으로 다른 조사에 비해 방법이 비교적 간단하다. 대표적인 통계조사로는 전주시 청년층(20~34세) 타도 전출입 인구나 원도심 지역 초등학생 수 변화가 있다.현장조사는 직접 개체 수나 대상지역 현황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조사원이 여러 곳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감이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현장조사로는 전주 삼천에 서식하고 있는 조류의 종류 및 개체 수, 전주천 서식 쉬리와 배스의 개체 수,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이 있다.설문조사는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대표적으로는 전주비빔밥 판매 그릇 수와 지역문화자원에 대한 시민인지도 조사 등이 있다.이러한 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지표위원회 위원들의 면밀한 검토와 수정 및 평가를 통해 전주시 지속가능 지표가 작성된다.지난 5년간 전주의제21추진협의회 지표위원회는 전주시 지속가능 지표 발표를 통해 전주가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도록 노력했으며, 여러 NGO 단체 및 시민들이 전주의 지속가능성 향상에 관심을 갖도록 하였다.

  • 기획
  • 기고
  • 2015.07.09 23:02

[이색&공감] 이웃과 동행하는 군산 '착한동네'

얼핏 봐서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노란색 예쁜 건물. 좀 더 들여다보니 cafe(카페), library(라이브러리, 도서관), gallery(갤러리) 등의 글자도 보인다. 가장 크게 적힌 글자가 착한 동네인 것을 보니 가격도 맛도 착한 카페인 것 같아서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테이블은 몇 개 안되는데, 여기저기 붙어 있는 글들이 어찌나 많은지.대체 여기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이 곳은 이웃들의 착한 마음과 행동을 연결하는 곳입니다.앞치마를 매고 정성스레 커피를 내리는 박훈서(44) 대표의 대답을 들으니 또 다른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착한 몸매, 착한 가격, 착한 식당 등 너도나도 앞 다투어 착한이란 형용사를 붙이는 요즘이지만 착한 마음과 행동이라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이지 않은가.△ 많은 돈 보다 착한 일비영리단체 착한 동네의 나눔 활동은 2013년 12월부터 시작되었다. 미리내 가게 군산 1호점이기도 한 이 가게의 입구에는 이런저런 메시지들이 적힌 기부 카드들이 게시되어 있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이 기부금이 좋은 곳에 쓰였으면 하는 착한 마음들이 가득하다. 한 번만 크게 결심하면 매달 어디론가 자동이체되는 기부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한번 카드를 쓸 때마다 이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 후 내는 기부이기에 그 만큼 진심을 담게 되는 것.미리내 운동은 10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의 국내버전이다. 커피나 음식 등 주로 미리내 가게의 물품들을 미리 지불된 기부금으로 결재하여 필요한 이웃들에게 제공하는 형태인데, 착한 동네에서는 다소 특별한 기부를 받는다. 이름하여 착한일 미리내.착한일 미리내는 자신의 생업과 재능, 기술 등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서 나누는 생활 기부입니다. 어차피 하는 일, 한 번 더 착한 일한다고 마음먹으면 우리 동네가 좀 더 착한동네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착한 동네 만들기최근엔 나눔이라는 단어가 주로 기부나 복지의 차원에서 행해질 때가 많지만, 원래 우리의 옛 동네에는 품앗이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나눔들이 언제나 함께 했었다. 우리 동네라는 단어가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그 지역에 함께 모여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우리의 삶 자체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는 동네를 찾기 어려운 요즘, 착한 동네가 자리 잡은 군산시 지곡동 역시 이웃 간의 왕래가 드문 원룸촌이다.제가 지칭하는 동네는 행정구역상의 공간을 넘어서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가치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정서적 공간과 환경을 뜻합니다. 실제 착한 동네와 함께 하는 이웃은 지곡동이 아닌 군산 전 지역에 흩어져 있죠. 하지만 이 곳이 저희 가족이 살고 있는 터전이기에 이 동네의 착한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착한 동네를 만들기 위해 착한 동네가 하는 일은 참으로 다양하다.천연화장품 만들기, 우쿠렐레, 역사날밤새기, 청소년 자아인식토크, 패션쥬얼리 디자인 등 배워서 남주자는 취지로 이어지는 재능기부 나눔강좌들, 한부모 가정, 독거노인에게 제공되는 효도 세탁, 병원 동행, 방문 인사, 반찬나눔 봉사 등의 봉사활동,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는 작아(작고 아름다운)음악회 및 마을 문화공연 등이 이 곳의 이웃에 인해 행해지고 있다.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사람은 주로 사회 취약계층이거나 어른의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이지만 기부에 참여한 많은 사람은 착할 일을 적절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으니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수혜자인 셈이다.△힘들 때마다 더욱 소중한 사람들착한 동네의 박 대표는 가게 뒤편에 있는 행복한 교회의 담임목사기도 하다. 목사 이전에 바른 삶을 살아야한다는 박 대표는 착한 동네와 교회, 그리고 가정을 구분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구분되어진 일에 공통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은 그의 가족이다.박 대표와 정영미 씨(43) 사이에는 2명의 자녀가 있다. 박 대표는 건축 사기에 도난 사건까지 겹쳤을 때는 가족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 곳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을 생각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저야 대표이니 눈에 띄지만, 사실 아내가 없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눔을 위한 반찬을 정성껏 준비하고 우리 가족의 생계 중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지요. 이러한 부모의 모습을 이해해 주는 아이들에게도 항상 고맙습니다.△미래 세대에 대한 응원박 대표는 꿈을 직업명으로만 인식하는 어른으로 인해 많은 청소년들이 삶에 대해 꿈을 꿀 기회를 잃고 있다고 이야기한다.자라나는 아이에게 부모를 비롯한 동네 어른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해요. 가정환경이 열악하다고 이러한 응원을 받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를 다른 이웃이 채워줘야 하지요. 도움의 손길은 작을 수 있지만,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었던 이웃을 기억한다면, 그 긍정적인 영향은 지속될 것입니다.나아가 청소년들이 직접 운영하며 나눔을 기획하고 경험할 수 있는 청소년을 위한 카페도 열 계획이다.인터뷰 중에 7살 아이와 아빠가 3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1만 원을 내며, 거스름돈은 미리내 해 주세요하고 밝은 미소로 인사하고 나간다.이것이 기적이죠. 착한 동네 만들기는 저 혼자의 꿈이 아닌 이웃이 공유하는 꿈입니다. 이 꿈은 실천이 있을 때만 이뤄질 수 있지요. 이 꿈이 꿈꾸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기획
  • 기고
  • 2015.07.08 23:02

[고창 '자연생태환경도시'] 사람·자연 공존하는 '명품 생태도시' 구축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자연생태환경도시를 표방하는 고창군이 지역발전의 성장동력산업으로 중점 추진하는 생물권보전사업이 2주년을 맞았다.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고창군은 생물권보전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추진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올 한해 건강한 생태환경을 갖춘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과 환경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등 지속가능한 환경도시 구축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박우정 군수는 생물권보전지역의 지속적인 사업추진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명품 생태도시를 조성, 명실상부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한다. 세계 속에 빛나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거듭나기 위해 비상을 준비하는 고창군과 박우정 군수의 야심찬 포부를 들어본다.△국내 최초 행정구역 전체 생물권보전지역 등재고창군은 지난 2013년 5월 28일 행정구역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s)으로 등재되었다.생물권보전지역은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보호지역(생물권보전지역, 세계유산) 중 하나로,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주민소득 증진 등 지속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키기 위해 등재하는 제도다.국내에는 설악산국립공원, 제주도, 신안다도해(다도해상국립공원 일부포함), 광릉숲에 이어 다섯 번째로 등재됐으며, 타 지역과 달리 국내 최초로 행정구역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생물권보전지역은 핵심지역, 완충지역, 전이지역으로 구분한다. 고창생물권보전지역은 고창부안갯벌람사르습지, 선운산도립공원, 운곡람사르습지, 고인돌 세계문화유산, 동림저수지 야생동식물보호구역 등이 핵심지역이며, 이 지역 주변의 산림지, 하천 수생태계와 산악산림지대, 해안사구염습지를 완충지대, 기타 농경지와 14개 읍면 주민 거주지역을 전이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특히 핵심지역 중 고창부안갯벌람사르습지는 펄갯벌, 혼합갯벌, 모래갯벌이 조화롭게 분포하고, 안정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어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지속가능한 생물권보전 사업 추진고창군은 2014년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위한 총 9개분야 180개의 과제를 발굴하고 관리위원회와 실무추진단을 구성했다.생물권보전지역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관리하기 위해 고창읍 도산리 일원에 총사업비 39억원을 투자해 2017년까지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센터를 건립한다.5개 핵심지역에 대한 연구 및 모니터링과 멸종 위기종 복원, 외래종 제거사업 등 보전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생물권보전지역의 브랜드를 활용하여 주민소득 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아산면 용계마을과 마을앞 원평천을 2016년까지 7억 원을 투자하여 생태관광지로 조성한다. 용계마을은 생태관광 성공모델 지역으로 인근에 운곡습지, 고인돌 공원 등이 있다.2016년까지 총 192억 원을 투자하여 운곡지구 생태습지복원사업과 인공습지 등을 조성하는 운곡습지 개선지역 복원사업, 생채숲길 등을 선보이는 생태체험지구 조성사업 등 세계적인 명품 생태관광지를 조성한다.관내 13개 학교를 대상으로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민간협의체인 (사)고창군생태환경보전협의회를 구성해 생물권보전지역에 대한 환경 보전활동을 전개하며, 생물권보전지역에 대한 다큐제작, 홍보물 설치, 국내외 네트워크 회의 참석 등 다양한 홍보활동을 추진한다.이와 함께 해리면과 심원면 일원에 추진 중인 고창 세계프리미엄 갯벌생태지구 조성 사업이 오는 2016년 완료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고창읍성 주변 대표 관광지 육성 사업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이를 연계하는 자연생태 관광산업 활성화에 순풍이 불고 있다.△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생물권보전지역군은 생물권보전지역의 우수한 자연생태 환경과 문화다양성을 군민들에게 교육, 홍보를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대한 이해도 및 자긍심을 높이고 나아가 환경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학생 교육 사업을 추진하며, 민간주도 협의체인 (사)고창군생태환경보전협의회를 구성, 환경보전활동에 앞장서고 있다.이밖에도 다큐제작, 홍보물 설치, 국내외 네트워크 회의 참석 등 폭넓은 사업을 추진한다.△자연과 인간이 가장 조화롭게 살아가는 고창고창군은 지난 5월 28일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주년을 맞아 운곡습지 생태탐방 걷기행사를 진행했다.고인돌공원과 운곡습지 일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관내 학생들과 (사)생태환경보전협의회,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여해 생물권보전지역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가졌다.이와 함께 5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 간 2015 고창 예향천리마실길 생태문화체험 걷기 행사를 마련, 한국생태관광협회 회원과 여행작가들이 관내 주요 생태관광자원을 둘러보고 견학하는 기회를 가졌다.또한 고창군의 우수한 자연환경에서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알릴 수 있도록 2015 고창생물권보전지역 전국 사진공모전도 개최 할 예정으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생물권보전지역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박우정 군수 "주민 주도 친환경사업 발굴 추진"고창군의 생물권보전지역 등재는 행정구역 전체가 지정된 국내 최초의 사례로써 그 의미가 매우 큽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명품 생태도시 건설은 사업 구상단계에서부터 그랬듯 지역에서 생활하는 주민에게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박 군수는 앞으로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생물권보전지역 사업 추진을 통해 세계에서 인간과 자연이 가장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모범사례가 되도록 체계적으로 지원 관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고창군은 생물권보전지역이 핵심지역과 완충지역, 전이지역으로 용도 구획화 되어 있는 만큼, 지역별로 보전과 발전 전략을 적절하게 적용해 생태계 보전, 생태 탐방 및 환경 교육 수행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주민이 주도하여 실질적 혜택이 주민에게 돌아갈 수 있는 친환경적 사업 발굴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박 군수는 우리 지역은 이미 지역 특산품 등에 BR로고를 개발 라벨링해 청정유기농산물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경쟁력 강화를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며 앞으로 1차 산업뿐만 아니라 단계적으로 236차 산업으로 연계 확대해 생태계보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하면서 군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일관성 있는 꾸준한 노력을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박 군수는 이어 행정뿐만 아니라, 주민과 전문가가 협력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며, 고창군민 모두가 생물권보전지역 전문가로써 고창을 찾는 관광객에게 탐방을 안내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지역 공동체 단위 활동을 넓혀 가겠다고 피력했다.

  • 기획
  • 김성규
  • 2015.07.07 23:02

2016 IMPA 총회 준비하는 김제출신 나종팔 한국도선사協 회장 "국제도선사협회 행사 성공 개최, 대한민국 위상 높일 것"

전북은 부산, 경남이나 전남 등과 비교할때 해양의 비중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양 분야에서 두드러진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에 마산 출신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당선된 것도 결국 해양분야에서 부산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전북 출신 나종팔 한국도선사협회 회장(김제· 62)은 전국 도선사를 대표하는 사람이어서 눈길을 끈다. (사)한국도선사협회는 전국 11개 도선구에서 활동하는 250여명의 도선사가 회원이다. 이 단체는 국내 도선제도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각 지방에서 활약 중인 도선사들을 하나로 묶고, 대정부 및 유관기관 업무 외에 도선사 권익보호, 사회환원 활동 등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 도선사협회 사무실에 나종팔 회장을 만나봤다.-일반인들은 도선사란 직업에 대해 제대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도선사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면허를 가지고 전국 주요 항만에서 선박을 원활하게 조종(操縱)하여 항행 또는 접·이안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쉽게 말해 지역 항만 사정에 밝아 복잡한 항만을 입출항하는 선박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며, 선박에 승선하여 선장 및 본선 선원들과 협력해 입출항을 안전하게 수행하는 직업이죠.해양계열의 가장 큰 국제조직은 UN산하 기관인 국제해사기구(IMO)인데 한국도선사협회는 IMO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서 국제적 현안 관련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습니다.특히 지난해 파나마에서 개최된 제22차 IMPA 총회에서 제가 국제도선사협회 부회장으로 당선되어 현재 집행부로 활동 중인데, 확실히 보다 심도 있게 도선업무의 국제적인 흐름을 지켜볼 수 있게됐습니다.내년 IMPA 총회 개최지가 한국의 서울로 선정된 만큼 수백 명의 해외 도선사와 관련 종사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대한민국 도선사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2016 국제도선사협회 총회가 개최 예정인데 총회의 성격과 총회 개최가 갖는 의미, 이에 대한 준비 상황은 어떻습니까“우선 국제도선사협회(IMPA)는 1971년 암스테르담에서 창립됐으며, 전 세계 50개국 이상의 도선사단체에 소속된 약 8000여명의 도선사의 이익을 국제무대에서 대변하는 강력한 NGO단체 입니다.이번 제23차 IMPA 서울총회는 2년 마다 개최되는 IMPA의 최대 행사로 전 세계 수백명의 도선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선박의 안전과 항만효율제고를 위해 토론하고 국경을 넘어 서로 우애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내년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공식일정을 소화하며 한국 도선사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질 예정이므로 한국 도선사회의 발전을 보여줄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현재 IMPA 총회 홈페이지 개설 등을 마치고 본격적인 준비를 위해 해운 관련 업·단체 및 정부 지원 요청과 홍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돌입할 예정입니다.” -부임이후 활동하면서 느낀 소감과 그 동안의 성과에 대한 평가를 부탁합니다.“지난 2012년 16대 회장으로 당선돼 3년 임기를 마치는 동안 제도 개선에 의한 도선사 이익실현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가장 큰 보람입니다.최근 한국도선안전교육연구센터를 여의도 해운빌딩으로 이전하여 도선전문특화 기구가 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는데, 앞으로 시뮬레이터 활용 및 교육 품질의 향상 등 산재한 과제들을 잘 해결해나간다면 그 무엇보다 훌륭한 성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초 제17대 회장에 당선돼 다시 3년 임기를 시작한 만큼 협회의 큰 과제인 도선사민사책임제한과 도선사정년연장 문제 해결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해상 사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세월호 사고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안타깝고 어이없는 사고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도선사들은 늘 ‘사고는 일어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0 ‘에 수렴하도록 최선의 준비를 다해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선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평소 도선매뉴얼을 숙지하여 도선시에는 플랜을 미리 알리고 도선을 시작하며, 이외에 도선법 개정 등을 통한 제도적 장치 역시 뒷받침 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겪은 많은 경험들과 도선수습생의 실무교육을 위해 업데이트 해왔던 ‘도선업무 매뉴얼’을 바탕으로 ‘도선업무 안전매뉴얼’을 완성하여 도선기술의 정형화, 현대화를 통해 도선업무 수행능력 및 방법에 일관성을 높여 대외 신뢰도를 더욱 향상시켜 나갈 것입니다.”-전북도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전북일보를 애독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 제가 약 25년간의 긴 해상생활 동안 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떠올릴 수 있는 고향과 그곳에서의 추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지금과 같은 소중한 고향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지역을 아껴주시고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메르스로 전국이 뒤숭숭한 가운데 전북도 무사평안 하시기를 바라며 저를 비롯한 전국 각 항만을 지키는 도선사들은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종팔 회장은] 1항사·선장·영업 등 40여년간 해양 외길, '바다 전문가'로 정평나종팔(62) (사)한국도선사협회 회장은 김제 죽산이 고향이며, 죽산초, 전주북중, 전주고, 한국해양대를 졸업했다.그의 학창시절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시기는 시골학교인 죽산초를 졸업한뒤 전주북중에 입학한 때였다고 한다.전주북중 입학은 곧 명문고인 전주고 입학을 담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고교 졸업후 서울대에 떨어지면서 한국해양대로 향했는데 그게 생각지도 않게 인생을 바꿨다고 한다.바다에서 평생을 지내고, 특히 한국도선사협회 회장에 당선돼 뜻을 펼칠 수 있게된 때문이다.도선사는 전국적으로 250여명인데 나 회장은 인천지부(회원수 41명) 소속이다.전북의 경우 군산지부 회원은 7명에 불과한 실정이다.그는 지난 1976년부터 2000년 까지 범양상선, 현대상선, 동진상선, 세진선박 등에서 1항사, 해무부, 영업부,선장 등을 지냈다.2001년초 인천항도선사회 도선사가 됐으며, 2003년엔 인천도선(주) 대표이사도 역임했다.이후 인천항도선사회 회장, 중앙도선운영협의회 위원에 이어 지난 2012년 2월 제16대 한국도선사협회 회장에 당선됐다.3년 임기를 마친 그는 올초 회장에 연임돼 제17대 회장으로 활동중이다.한국항해항만학회 부회장, 한국해양대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전주고 48회 동기 회장, 국제도선사협회(IMPA) 부회장, 나주 나씨 종친회 부회장,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총동창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중이다.

  • 기획
  • 위병기
  • 2015.07.06 23:02

농민화가 박홍규 씨 "문화·예술은 그 시대의 반영…진실과 아픔 외면해선 안돼"

4년 전 여름. 전시실 벽면 한쪽을 채운 수묵 채색화 집으로 가는 길이 거기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지고 걸어가는 거리의 풍경. 몇몇은 깃발을 들고, 몇몇은 바랑을 지고, 또 몇몇은 맨손으로 뒷짐 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서러웠다. 그들 뒤로 놓인 그림자가 키보다 몇 배나 더 길게 드리워진 시간, 떠있는 섬처럼 보였던 군중의 거리풍경 앞에 여러 명 관객들이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서있었다.그 해, 화가 박홍규씨(57)의 그림은 그렇게 세상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언어였던 판화와 만화 대신 한국화로 관객들을 불렀다. 형식은 변했으나 농민들의 삶과 농촌 현장에 더 굳건히 발을 딛고 선 그의 그림은 강하고 깊었다.엄혹했던 80년대, 그는 민중의 현장성과 대중성을 미술의 지향이라고 굳게 믿었던 골수(?) 운동권이었다. 그가 택한 현장은 농촌. 농민이 되고 싶었던 그는 80년대 중반, 세상과 결별하고 농사꾼이 되었지만 붓을 꺾진 못했다. 그는 예술적 그림을 그리는 대신 농민운동을 위한 포스터를 그리고 유인물을 제작했으며 구호를 쓰고 만화로 농민들의 우울한 삶을 형상화해냈다.1999년 들에서 여의도까지로 개인전을 가진 이후 11년 만에 가진 전시회가 주목을 끌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80년대 농촌으로 들어간 진짜 농민운동가 박홍규는 진짜 화가로 돌아왔을까. 화답이라도 하듯 해마다 개인전을 이어오고 있는 그의 삶이 궁금했다.그는 지난해 늦가을부터 다시 판화로 돌아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순회전시를 가졌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아 가진 그의 판화전은 잠시 비켜나있는 듯 한 예술의 사회적 복무(?)를 다시 상기시켰다.지난 5월 중순 장흥 전시를 마무리 한 그를 완주군 이서면 허름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 화가로 돌아와 있다. 목판위에 그림을 새기고 만화를 그리는 일로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보면 그렇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어디에 서있어도 농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동안 함께 일 해온 농민들과 땅이 그의 가슴과 머리에 그대로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문화와 예술은 그 시대의 반영입니다. 그러니 시대의 진실과 아픔을 외면하면 안 되죠. 제가 다시 붓을 든 이유이기도 합니다.분출한다는 그의 열정 덕분에 우리는 한 시대를 건너는 농촌과 농민들의 자화상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장흥 전시가 동학 순회전 마지막이었던가요.올해도 계속 작업을 하고 있으니 연작은 더 이어지겠지만 120주년 기념 전시로는 그렇습니다.-전시회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기록화란 의미도 그렇지만, 역사적 사료와 작가적 상상력이 만나 역사를 읽게 하는 힘이 더 컸던 것 같아요.그랬다면 다행입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저는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과 맞닥뜨리는 120년 전 사람들의 운명을 생각했어요. 피노리 가는 길을 그리면서는 혁명의 패배에 따른 도피길이 아니라 새로운 결전 새로운 준비를 위한, 어쩌면 필연적으로 가야할 숙명의 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의 우리 삶과 운동을 돌아보니 갑오년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가 더 무거웠습니다.-여의도 국회에서 전시를 했던 것이 재작년이던가요. 빈집의 꿈이란 주제가 뭉클했습니다. 그만큼 메시지도 강했을 것 같습니다.어찌하다보니 국회에서까지 전시회를 하게 되었어요. 그즈음 농촌의 현실 중에서도 빈집을 두고 떠난 사람들과 아직도 빈집을 이웃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었는데, 주제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정해졌죠.-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셨는데,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예술의 역할도 바뀌었다고 생각하십니까.지금은 그림으로 세상을 바꾼다거나 하는 거창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리는 그림에 대해 아직도 이런 그림을 그리냐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내 그림은 나만의 그림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부대껴온 농민들의 애환과 절망 희망이 다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예술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의 반영이어야 합니다.-20대에 작가의 길을 버리고 농촌으로 갔지만 다시 화가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박홍규란 이름은 그냥 화가가 아니라 농민화가로 훨씬 익숙합니다. 농사를 짓는 일은 이제 끝났습니까.사실 젊었을 때는 농사도 짓고 운동도 하면서 그림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오만했죠. 저는 온전히 농민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농민운동의 현장에서 저를 다시 화가로 불렀어요. 걸개그림을 그리고 구호를 쓰고 깃발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농사일을 손에서 놓고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4년 전인데, 지금은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그림에 대한 열정이 솟구칩니다.-그림에 대한 열정이 그렇게 큰데 어떻게 묻어두고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물론 농민운동 현장에서 그리는 일은 계속해오셨으니 붓을 놓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무래도 형식과 내용이 달라졌으니 삶에 큰 변화가 왔을 것 같습니다.농사일을 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는 있죠. 그러나 제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농민운동의 연상에 있거든요. 저는 저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농민들을 이 땅의 주인으로, 주체로 그림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들이 있어야 박홍규도 그림도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한때 만화를 많이 그렸죠. 만화를 계속 그렸으면 지금쯤 잘나가는 만화가로 이름을 알렸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웃음)맞아요. 만화란 매체가 개인적 취향으로도 잘 맞았어요. 메시지를 바로 바로 전할 수 있는 형식이었으니까요. 농민운동의 연상에 있어서도 잘 맞는 틀이었죠. 되돌아보면 만화란 매체가 제가 목표했던 농민운동에 많은 기여를 했어요. 저 스스로도 만화 작업을 하면서 성격도 변하고 사회성도 넓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리긴 합니다. 삽화도 그리고.-농사 빚이 쌓여 야반도주까지 생각하셨을 때 만화나 삽화를 그렸으면 해결되지 않았을까요.물론 생각했어요.(웃음) 출판사 섭외까지 했죠. 전북대와 전주대 앞에 있는 만화방을 뒤지고 다니며 잘나가는 만화를 다 분석했어요. 그때는 만화주간이 있을 정도로 만화가 잘나갔던 때거든요. 궁핍과 이 절망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이 있었으니까요. 필명으로 연재할 만화를 기획 했는데 실행은 못했어요.-농민운동 안에서도 선생님 만화가 기여했던 부분이 상당히 크지 않습니까.그렇죠. 전농의 역사가 박홍규 그림의 역사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전농을 만들기 전부터 지금까지 판화, 만화, 포스터, 걸개그림, 유인물 등 거의 모든 농민운동의 매체가 제 손을 거쳤거든요. 그때 제 별명이 야 뺑끼였어요. 뺑끼통을 들고 다니니 붙여진 것이지요.-함께 하는 동료들이 없었습니까.농민운동 바닥에서는 없었어요. 80년대만 해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잖아요. 이후 현장으로부터 민중문화를 일구어야 한다는 의식을 공유하면서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으로 많이 들어갔죠. 외곽지원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현장에서 함께 노동자들과 호흡하면서 그 사람들의 감성 심성 현장성 투쟁성을 배우고 익혀서 그것을 표현하는 작업이어야만 진정한 민중문화운동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농민운동 안에서는 그런 경우가 드물었어요. 우선 수적 적었으니까요.-의지와는 관계없이 농민운동 현장에서 붓을 놓지 못했던 이유겠군요.되돌아보면 그림 그리는 일은 제 선택이 아니라 떠밀려서 하게 된 일이라고 하는 것이 맞아요. 농사를 지려고 내려갔지만 그림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만화와 판화로 농민들의 생활, 투쟁, 설움, 절망을 담아내기 시작했고, 결국은 여러 매체들에 그 그림을 담기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거든요.-그래서인지 모든 작품이 농촌의 풍경과 농민들의 삶을 딛고 서있는데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주제가 너무 한정적이지 않은가요.한정적이라해도 제가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들이 아직도 많아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제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 자체가 농민들의 삶을 담아내고, 그들의 언어를 대신 표현해주는데 있다는 것이에요. 저는 제 그림이 농민들의 언어가 되기를 바랍니다. 치열하게 현장성을 담아야하는 이유가 거기 있지요.-농촌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왜 그리 빚더미에 앉았는지도 궁금하고요.가장 큰 원인은 제가 지켜온 방식에 문제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농촌의 현실은 저 개인 뿐 아니라도 여전히 궁핍하고 어렵습니다. 농사를 짓는 대부분이 빚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요. 농민회 안에서도 현상 유지라도 하면서 농사를 짓는 분들은 몇 명 되지 않아요. 성공한 예도 있겠지만, 농촌의 현실은 투자를 많이 할수록 빚이 늘어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도 전업농이었지만 규모를 늘릴수록 빚을 많이 지게 되더라고요. 구조가 그렇습니다. 규모화된 농사를 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는데 결과를 보면 빚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농민회 활동은 어떻습니까.지금은 힘을 많이 잃었죠. 우리나라는 FTA를 많이 한 나라잖아요. 그 때문에 농민들이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았지만, 농민 내부를 보면 계층이 엄청나게 분화되었거든요. 예전에는 대농 중농 소농 정도로 구분하면 됐지만, 지금은 계층이 분화되면서 매우 복잡하게 되었어요. 전업농 정책이 20년 동안 실시되면서 돈을 번 귀족농민층도 생겨났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 특히 땅을 지키고 살아온 노인들은 소농과 빈농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이런 환경 속에서 농민운동은 자연히 힘을 잃을 수밖에요. 농민운동의 대중적 역량이 힘을 잃은 가장 큰 원인은 농업의 규모화와 인구의 노령화에 있습니다.-농민운동 30년 동안 현장을 지켜왔는데 현실이 그처럼 암울하다면 회의는 없습니까.농민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더 힘들어진 것이 맞습니다. 당연히 회의가 들죠. 그러나 현장을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주변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죠. 농민들 처지를 들여다보면 현재의 궁핍하고 고된 생활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구조나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절망적이죠.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땅과 농민들의 삶으로부터 배우는 진리와 정직함을 알기 때문이에요.-이런 농촌의 현실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지금으로서는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개방농정이 더 심화되고 있고 농민들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잘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없고.-암울하군요.그래서 저희가 주장하는 것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인데 이를테면 쌀이나 보리, 밀 같은 작목을 국가에서 최저가제를 보장해주고 수매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래야만 기본적으로 식량자급도 되고 식량안보적 기능도 하고 최소한 농민들이 기초농산물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죠. 도시 소비자들도 일정 가격에 그것을 살 수 있으니 좋고요.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기초농산물 수매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요.-요즈음 로컬푸드가 대세이다 보니 농촌의 현실이 좀 나아졌을 것이란 생각을 했는데.그런 경우는 아주 일부입니다. 지금은 친환경 농산물도 힘들어요. 친환경농산물은 기본적으로 보장을 해줘야 농사를 지을 수 있거든요. 계약제 형태로 가거나. 그런 환경이 안 갖추어지는데다 오히려 환경이 열악해지니 친환경 농산물도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로컬푸드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전체 농가 중에 불과 몇 프로에 불과할겁니다.-친환경 농산물이 쇠퇴하고 있다는 현실은 의외군요.친환경 쌀을 비롯해서 작목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판로가 보장되지 못하니까 농민들이 농사짓는 일을 꺼리거든요.-소비자들은 친환경 농산물을 원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수요가 많아졌을 것 같은데요.사실은 수요도 그렇게 많아지지 않았습니다. 일부계층의 이야기죠. 친환경 농산물은 학교급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맞아요. 급식비가 지원되었을 때는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지원까지 더해져서 어느 정도 보장이 되었는데 지금은 지원을 끊은 자치단체가 많잖아요. 중앙정부도 마찬가지고. 친환경 농사가 쇠퇴하는 이유는 학교급식 문제가 영향이 제일 큽니다.-말씀을 듣다보니 농민운동의 현장을 못 떠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 현장을 지켜오면서 가장 큰 안타까움은 어떤 것인가요.고생만하시다가 돌아가시는 농민들을 보는 것이 가장 서럽습니다. 농번기 때는 논밭에 나가서 일하시느라 새까맣게 타면서도 막걸리 한잔에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서 서럽고, 농민회라도 나오면 뒷방 늙은이 되지 않아도 된다며 고마워하시던 모습이 생각나면 농민회 하나도 예전처럼 꾸리지 못하는 것이 죄스럽기도 하지요. 그런 기억을 되살리면 제가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하는 이유와 힘을 얻게 됩니다.● [부안출신 박홍규 화가는] 농민운동 '반평생'민중미술 대표 화가화가 박홍규씨는 1959년생이다. 부안 주산면에서 태어났지만 전주로 고등학교를 오면서 고향을 떠났다. 고창고보를 나와 교사와 공무원을 지냈던 그의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컸다. 중학교 시절 공부 잘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전주로 유학 보내고 학기마다 시외버스에 쌀을 싣고 와 학비와 하숙비를 댔다. 그는 대학만은 꼭 서울로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예비고사 성적이 꿈을 꺾어 놓았다. 대학 입시를 두 달 남겨두고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서울의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이었다. 코피 쏟으며 노력한 덕분에 후기였던 홍익대 조소과에 합격했다. 국문과나 문창과에 들어가 글을 쓰고 싶었던 꿈은 그때 버렸다.대학에 들어가서는 학과 공부보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눈을 돌렸다. 1980년, 대학 3학년 때 광주항쟁이 났다.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다. 운동권 학생들의 언더서클과 탈춤반에서 활동했던 그는 군대 시절에도 농민들의 눈물겨운 소작쟁의를 다룬 송기숙의 소설 암태도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했다. 군대를 제대한 후 그의 활동은 더 치열해졌다. 농민운동을 삶의 목표로 세웠다. 농사꾼이 되고자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85년 즈음, 가족과도 인연을 끊고 연고도 없는 부여로 갔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성실하게 농사일을 배웠다. 노지딸기 농사를 하는 주인집에서 1년 일하고 나니 땅을 얻을 수 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첫해 결혼을 했다. 그의 아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서천으로 내려와 역시 농민운동을 위해 남의집살이를 하던 활동가였다.87년 충남권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비 피해로 논밭과 가축을 잃은 농민들이 속출했다. 생계가 막막해진 농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그 중심에서 농민들의 조직적인 활동을 이끌다 89년 부여군 농민회를 만들었다. 작가로서의 꿈을 버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그는 다시 작가가 됐다. 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발족되면서 1기 문화국장을 맡게 된 그는 1년 동안 서울 생활을 했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돼 이듬해 전주로 내려왔다. 몸을 추스릴만 하자 완주군 고산면에 터를 잡았다. 농사꾼의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5-6년 하우스 농사를 짓다가 화산으로 이사해 1200평 정도의 땅을 얻어 규모를 늘렸다. 열심히 일했지만 5년이 지나고나니 그 앞에는 빚 2억이 놓여있었다.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빚에 시달리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야반도주까지 계획했지만 이서농민회 회원들이 집과 농사지을 땅까지 빌려두고 그를 붙잡았다. 4년 전부터 농사짓던 생활을 벗어나 그림 그리는 일을 전업으로 삼고 있다. 1999년 첫 전시회 이후 2011년에 두 번째 전시를 가졌으며 이후 해마다 전시를 열고 있다. 농민운동 현장에서 깃발로, 구호로, 걸개그림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이제 화가로만 대중들을 만나고 있다.두렁창립전, 힘전을 비롯해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해온 그는 판화와 만화 한국화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농민들의 삶과 농촌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동학농민혁명을 형상화한 판화로 순회전시회를 가져 주목을 받았다.

  • 기획
  • 김은정
  • 2015.07.03 23:02

[변화&소통] '새만금 송전선로' 갈등

농번기 일주일 동안의 휴전. 송전탑 공사장 대치 35일, 시청 앞 노숙 9일 만에 얻어낸 평화는 짧았다.지난 5월 12일 새벽, 한전은 군산시 산북동을 비롯한 옥구읍 일대 5개 현장에서 3년간 중단됐던 새만금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다. 새만금송전철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공사를 시작하면 통보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농번기, 그것도 주민들의 눈을 피해 새벽 2~3시부터 공사를 강행한 한전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수확을 앞둔 보리밭이 망가지는 모습에 항의하던 농민의 트랙터가 뒤집히는 사고가 났다. 5명의 할머니들이 병원에 입원했다.이를 지켜본 지역 목회자들은 항의 릴레이 단식을 시작했고 79차 송전탑 반대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소를 당한 것은 주민이었다. 한전은 주민 25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한전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안노선은 불가능이라는 국민권익위의 결정이 있고 난 후에도, 김관영 국회의원의 중재에 따라 전문가협의체 구성을 논의 중이었으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공사를 재개했다고 밝혔다. 또한 공동대책위가 왜곡된 정보로 지역사회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난하면서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옥구 들녘에서 밀양 송전탑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새만금 송전선로는 군산과 새만금 산업단지의 전력공급을 위해 군산변전소새만금변전소 구간(30.6㎞)에 송전탑 88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2008년 12월 군산시와 한전이 전력공급 MOU를 체결하고, 2011년 2월 군산시가 도시계획시설사업 인가를 받아 공사를 착공했다. 2012년 6월까지 철탑 42기 시공을 마쳤다.△ 산업단지 전력 추가공급 시급한가전력수요 논란은 군산 송전탑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군산지역은 154KV 송전선로 2개 루트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최대 공급용량은 1398MW인데 산단 내 고객 계약전력은 1472MW이다. 한전은 산단 전력공급이 부족한 상태이고 송전 계통이 취약해 선로 관리도 어렵다는 입장이다.평소 송전선로 이용률이 81.6%입니다. 154KV 한 회선이 고장나면 과부하로 전력공급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유선로가 없으니 선로정비도 쉽지 않고요. 단전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얘깁니다. 한전 전북건설지사 김태용 차장은 전기 용광로를 쓰는 OCI와 세아베스틸 등 두 회사에 전력공급을 일부 제한하고 있어 송전선로 건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반면 주민대책위는 새만금 산단 OCI공장 증설이 수년째 연기되고 있어 송전탑 건설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OCI 4,5 공장 증설이 4년째 연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사업 포기 아닌가요? 송전탑 건설은 OCI가 새만금 산단에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말만 믿고, 군산시가 전원(電源)개발특별법이 아닌 도시계획시설결정으로 밀어붙인 거잖아요. 주민 대책위 강경식 법무간사는 공장은 오간데 없는데 송전탑만 남게 되었다고 하소연했다.이에 대해 김 차장은 향후 전력수요 전망에 OCI 4,5 공장 증설분은 반영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새만금송전탑 환경영향평가서상에 동양제철화학(OCI의 옛이름) 증설에 따른 전력수요가 언급되어 있다. 출처는 한전 자료다.한전은 군산산단의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주민대책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3년 동안 전기수요가 166MW 증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대책위는 계약 전력은 기업의 여유 전력 확보용이기 때문에 수요관리 차원에서 일부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공급제한이나 거절한 전력을 수요 증가량에 포함시키는 것은 부풀리기 셈법이라고 꼬집었다.주민들이 송전선로 증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가 주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전력 수요 예측이 맞는지, 대안노선과 지가 하락 등을 검증하고 추진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입니다. 79차 새만금철탑반대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는 이태영 목사는 밀양과 달리 군산은 합리적인 대안이 있고, 도시계획시설로 건설되는 사업이니만큼 시가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한전 김 차장은 기존 노선 철탑을 일단 건설해 놓고 대안노선이 합당하다면 다시 뽑아내 그쪽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가 하락, 1조5000억 피해 공방주민대책위는 자체 기금으로 (사)한국지역개발학회에 맡긴 용역 결과를 근거로 지가 하락 피해액이 1조5000억원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셈법은 간단하다. 송전탑 계획 발표 전후 송전선로가 지나는 주변 땅값의 실제 매매 가격의 차이를 계산해 대입한 것이다.실제 거래가격이 뚝 떨어졌어요. 사려는 사람도 없고요. 대책위는 군산시가 송전탑 주변 매매 자료를 검토해서 주민들이 제시한 기준액이 타당한지 판단해 달라며 집단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토지는 주변 개발이나 규제 요인에 따라 가격 형성폭이 크기 때문에 송전탑에 대한 사회적인 영향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한전은 주민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법적 근거도 없고 신뢰성도 의문스럽다는 입장이다. 한국공법학회가 산정한 송전선로 주변토지 감가율을 적용하여 보상금액을 산출했고, 외국 송전선로 인근 보상범위만 들어 토지주에게 지급하는 재산적 보상범위는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송변전선설비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에 위헌청구를 할 정도로 재산권 침해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보상체계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지중화 및 대안노선으로 경과지 변경에 대한 한전과 주민대책위의 입장차도 여전하다. 새만금지방환경청은 2010년 345kV 군산-새만금 송전선로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에서 명품 새만금개발 예상지역, 송전선로 통과 인근 주거지역 및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은 경관전자파철새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지중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낸 바 있다.● [농성장 주민들] "어떻게 장만한 땅인데그 위에 철탑이라니"하루 내내 논일 해서 손에 쥔 돈이 쌀 한 되 값인데, 그 돈 모아서 장만한 땅이여. 근데 그 땅에 철탑을 박겠다니. 농삿길 막는 철탑 공사를 하려거든 밟고 지나가라며 공사 트럭 아래 드러누웠던 김종기(80) 할아버지의 말이다. 한전의 새벽 공사로 피가 마른다는 하소연이다.남의 집 머슴살이를 몇 년 살았는디, 일 년 새경이 쌀 두 짝이여. 지금 같으면 사나흘 일당인디. 수몰민 보상비에 그 돈을 보태 늘리고 키워온 땅. 여든 아홉, 농성장의 최고령 조영식 할아버지는 지금도 당당한 농사꾼이다. 모판 떼고 심고, 거두는 것이야 젊은 손 빌어서 하지만 물 대고 약 치고 하는 일은 아직도 직접 한단다. 그래선지 아직도 몸이 단단하다.억울하기가 한도 끝도 없어라.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2년 가까이는 시래기국에 무밥을 먹었어. 그렇게 장만한 땅인데. 평생을 군산 옥구에서 살았고, 그 땅에 묻히는 게 소원이라는 토박이 송금순(82) 할머니. 55세에 남편을 보내고 논은 친구 삼고 밭을 남편 삼아 눈물의 세월을 버텨왔다. 마을 이웃들이 가족이었다. 그런데 이 살기 좋고 정 많은 동네가 망하게 생겼다고 억울해 한다.굳이 장유유서 따지지 않고도 형님 동생 하면서 살아 온 할매, 할아버지들이 건장한 용역들에게 당한 수모는 큰 상처다. 그리고 날아온 것은 25명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고발에 따른 소환장이다.그들은 이 땅을 건강하게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한다.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은 땅과 한 몸 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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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3 23:02

민선 6기 취임 1년 송하진 전북도지사 "농생명·관광·탄소산업…미래 지향형 사업에 집중할 것"

7월 1일로 민선 6기 취임 1주년을 맞는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취임 1년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세월유수(歲月流水)가 실감납니다. 지난 1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보냈습니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는 1년 전 전북에 사람과 돈이 모이게 하고, 도민 모두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농생명, 관광, 탄소산업의 초석을 다져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면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그 결과 어느 정도의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송 지사는 그간 도정을 수행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염원이 컸다고 소개하면서 이 같은 도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으로도 더욱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취임 1년을 맞는 송 지사로부터 지난 1년의 소회와 성과, 향후 도정운영 방향 등을 들어봤다.- 취임 1년간 전북도정의 성과를 평가하시다면.취임이후 조직 정비와 공약사항 점검 등 민선 6기 전북도정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도정 3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5대 핵심과제의 추진 기반을 구축한 시기였습니다. 올 초에는 삼락농정과 토탈관광, 탄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청사진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변화의 선봉에 선 도청 공무원들이 뭔가 해보겠다,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5월초 러시아 첼라빈스크에서 거둔 태권도선수권대회 유치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의 결실이라고 봅니다.- 많은 성과중에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유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의미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세계의 열기에 대단히 놀랐습니다. 우리는 태권도에 대해 식상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세계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회식이 끝나자마자 걱정의 소리가 나올 정도로 러시아 대회는 관중수도 많고 유료관객도 대단히 많았습니다. 8500석의 경기장이 가득차고 밖에서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태권도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6번이나 개최했는데, 그간 종주국이라고 해서 신경 쓰지 않았던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유치에 성공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서는 아직 완공이 안된 태권도원내 태권전명인전과 같은 상징 지구가 조성돼야 하며 연습장 시설확충 등이 필요합니다.- 올 3월 유럽도 다녀오셨는데, 탄소산업 육성에 탄력이 예상되고 있습니다.탄소 소비 강국인 유럽을 방문하면서 탄소산업이 기업유치 등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융복합소재산업으로서 특성을 잘 살려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즉, 미래의 쌀인 탄소섬유 생산도 중요하지만 이를 활용한 융복합산업이 발전돼야 일자리와 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전라북도는 2020년까지 4대 탄소산업벨트 조성을 통해 매출 8조 원, 기업유치 190개, 고용 2만 6000명, 생산관리 전문인력 6300명 양성을 목표로 탄소산업 선도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탄소섬유 및 탄소복합소재부품과 제품 기술개발, 연구 장비 구축 등 MEGA-탄소밸리 조성사업을 추진중입니다.협업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경북의 융복합 탄소성형 첨단부품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과 광역협력사업으로 추진하도록 기재부에서 예타조사대상사업에 선정돼 추진 중으로 탄소산업 육성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북권 국제공항,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며 진행상황은.전북권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은 정부도 새만금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새만금종합개발계획(MP) 수립당시 반영했습니다. 이제 새만금 국제공항문제는 건설의 가능성 문제가 아니라 언제냐 하는 시기의 문제라고 봅니다.공항의 조기건설을 위해서는 우선 올 하반기 정부의 제5차공항건설종합계획에 반영되는 게 급선무입니다. 우리 도에서는 국가계획에 맞춰 지난해 11월부터 전북권 항공수요조사 연구용역을 시행 중입니다. 올 4월 용역중간보고에서 미래항공예측 수요 590만명이 될 것으로 나타나 밝은 전망을 던져주었습니다. 용역결과를 토대로 종합계획에 반영, 조기건설을 이끌어내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북 연구개발특구 추진은 현안중 하나입니다. 정부부처와의 진행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특구지정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미래부의 타당성 검토 결과 지난해 11월 전문가 TFT최종회의에서 적정하다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지정의 필요성 및 당위성을 입증 받았습니다. 지난해 11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전북 방문시 전라북도는 농생명과 탄소소재 산업분야와 R&D 기관과 기업들이 집적되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이에 올 2월 전북연구개발특구 육성종합계획을 미래부에 제출했고, 3월부터 전북 연구개발특구 지정을 위한 관련부처 협의를 진행해 11개 부처 중 10개 부처는 완료된 상태입니다. 현재 기재부에서는 기존 연구개발특구의 성과가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 후 추가지정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어서 미래부와 제도개선 방안을 협의 중입니다. 특구에 대한 여러 가지 보완사항이 필요해 심층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단계입니다. 기재부의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전북특구 지정(안)에 대해 중앙도시계획위원회 및 연구개발특구심의회 심의를 거쳐 전북연구개발특구가 지정됩니다.주관부처인 미래부의 의지가 강하고, 지역 정치권에서도 적극 지원해 주고 있어 국가예산 순기에 맞춰 지정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무총리실내 새만금사업추진지원단설치를 위해 동분서주하셨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앞으로 새만금사업의 성패는 민간투자유치에 달려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인식하고 새만금 한중경협단지 조성을 국가차원에서 실행중입니다. 하지만 현재 8개 용도지구의 신축성이 담보돼 있으나, 국토해양부 산하 외청인 새만금개발청이 전담부서가 되다보니 부처간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총리실에 제주도 개발추진단과 같은 조직이 설치돼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행히 올 4월 총리 면담에서 새만금 관련 인력충원 배치와 국가사업 차원에서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는데 최근 서기관급을 팀장(직원4명)으로 한 팀이 꾸려졌습니다. 특히 현재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의 심의를 앞두고 있는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이 최종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확실한 설치 근거가 마련되게 됩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긴축적으로 편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내년도 국가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현재 국가예산은 기재부의 1차 심의가 진행 중인데 쉽지만은 않습니다. 총액이 큰 의미는 없지만 3년 연속 6조 원 달성을 위해서는 내년도 국가예산에 6000억 원 이상의 추가 반영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 반응이 부정적이거나 미반영이 예상되는 사업들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꼭 필요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재부 등 부처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사업은 메가-탄소밸리 기반 구축을 비롯해 새만금 수목원 조성등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시 대응사업이 5건, 지덕권 산림치유원 조성사업과 새만금 내부간선 남북2축, 새만금 신항만 건설 등 현재형사업 9건, 새만금 방수제 및 농업용지 조성 사업과 새만금 2단계 수질개선 사업,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익산~대야 및 군장산업단지 인입철도 등 총 31건입니다. 이들 현안 사업들의 국가예산 상정을 위해 현재 기재부 상주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군은 물론 지역구 국회의원들과도 공조체제를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전주 종합경기장개발에 대해 최근 전북도가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혔는데, 종합경기장 개발, 어떻게 진행돼야 한다고 보는지.행정의 연속선상에서 약속사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주 종합경기장개발사업은 전시컨벤션 시설을 하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도와 전주시가 체육시설 대체시설 확보 등의 조건을 담은 양여각서를 토대로 이뤄진 것으로, 민선 3기부터 현 전주시장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추진해 온 사업입니다.저는 전주시장 8년 동안에도 전임시장이 물려준 양여각서를 어떻게든 이행해야겠다는 각오로 전시컨벤션센터 건립과 대체 체육시설 건립이라는 두 가지 사업을 조화롭게 풀어나고자 고민했습니다. 그리하여 민간투자와 재정투자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종합경기장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했고, 의회 의결 등 법적 절차를 밟아 유효한 행정행위로 진행 중입니다.종합경기장 개발사업은 전주시 차원을 넘어 전북 전체를 견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전시컨벤션 건립을 전제로 한 양여당시의 조건과 대체시설 이행각서에 따라 약속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사업이 이뤄지리라 믿습니다.- 새만금 이후 전북의 성장동력에 대해 어떤 구상이 있는지.사실 그동안 개발방향이 하드웨어에 치중되다보니 성장동력이 거의 대형SOC와 연관돼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용담댐에 이어 새만금사업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 같은 대형토목사업 위주의 사업에 치중하다보니 매년 국가예산확보 평가에서도 실질적인 신규사업 위주의 질적인 부분보다는 이른바 큰 거 한방이라는 양적인 문제에 치중됐습니다.특히 새만금사업의 경우 국가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전북지역에서 추진된다는 이유로 주요 현안의 블랙홀로 작용,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나 국가예산 확보에 있어서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새만금사업은 당대 발복이 가능한 사업이 아니라 100년 이상을 내다봐야 하는 미래 지향형 사업입니다. 이제 우리는 토목사업 위주의 하드웨어를 지양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을 이끌 소프트웨어, 즉 농생명과 관광, 탄소산업 등에 집중해야 합니다.- 끝으로 도민들께 한 말씀.올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함께 손잡고 가자는 의미의 휴수동행(携手同行)을 말씀드렸습니다. 덕분에 세계유소년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이어 201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라는 굵직한 국제대회를 유치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하고 국가식품클러스터가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무주 태권도원과 국립무형유산원이 개원하고 전북혁신도시에 공공기관 이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종자산업 메카로서의 기반도 마련됐습니다.모두가 도민 여러분의 아낌없는 성원과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전북도정이 새로운 변화를 이뤄낼 수 있도록 변함없는 협조를 당부 드립니다.●도정 3대 키워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추진 전략세부실천 과제 마련 등 준비 착착삼락농정은 올초 농정 거버넌스인 삼락농정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농민 중심의 정책 발굴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삼락농정 실현을 위해 전국 최초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 기준을 마련하고 제값 받는 농식품 유통체계 구축, 농가경영안정 등 12대 추진전략과 30대 세부실천 과제가 마련됐다.토탈관광은 도내 관광지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한 1시군 1대표 관광지선정작업이 완료돼 후속 일정이 진행중이다. 이어 1시군 1생태관광지조성을 비롯해 생생마을 만들기등 농촌관광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해 삼락농정과 연계해 사람과 돈이 모이는 전북도의 근간으로 삼아나가겠다는 계획도 구체화되고 있다.탄소산업은 MEGA-탄소밸리 조성사업이 예비 타탕성심사 대상사업으로 선정되는 등 4대 전략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해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추동력이 확보됐다. 특히 초고강도 탄소섬유 개발사업이 민관협력사업으로 선정돼 부가가치가 높은 항공우주산업 등 미래 성장동력 산업 육성이 탄력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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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
  • 2015.06.29 23:02

[이색&공감] 임실 관촌면 신전리 '도화지'

지난 토요일 오전. 조용한 도화지(陶花地)에 버스한대가 들어온다. 30여명 아이들과 4명의 문화예술강사가 버스에서 차례로 내려 익숙하게 텃밭으로, 강아지 집으로, 화단으로,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매주 토요일, 도화지에서 4시간 가량 머물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들은 전북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동동동 아트팜 참여자와 강사들이다. 이들은 도화지를 제 집 마당처럼 누비고 다닌다. 동동동 아트팜은 도화지에서 텃밭을 매개로 공동체 문화 형성을 위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2013년부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폐교에서 문화예술교육공간으로 거듭나기까지= 임실군 관촌면 신전리에 위치한 도자기 꽃이 피는 땅, 도화지(陶花地)는 지난 2002년에 세라믹 아트 센터(Ceramics Art Center)인 원장 이병로 씨가 폐교(구, 상월초등학교)를 도예작업공간 활용하며 출발했다. 이병로 원장은 이후 오늘까지 도화지에서 도예작품제작활동 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과 연수를 비롯한 체험활동 등 교육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도화지 전통가마축제의 경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해마다 열렸다. 전통도예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사업을 통해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민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도예 및 공예 관련 작품 전시, 문화예술체험, 공연, 작가 워크숍 등 지역민이 직접 참여하는 축제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의 축제였다.전통 도예문화의 보급과 저변확대를 목적으로 전국 임실 도화지 도예실기대회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해 열렸다. 예술가로서의 소양과 인성을 개발하고, 학생들의 창작예술 활동의 범위를 확대할 뿐만 아니라 도예문화의 우수성과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인식시키고자 했다.그 외에도, 각종 교육공무원 연수, 가족단위 캠프, 임실 드림스타트 사업들에 참여했다. 2013년부터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가 운영하는 단체에 교실과 텃밭을 내어줘 도예외에도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이 실행될 수 있는 지역 내 문화예술교육 거점공간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이병로 원장은 매주 도화지에 찾아와 생기를 불어넣어 감사하고, 텃밭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현장을 함께 보면서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장르를 뛰어 넘어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며 세라믹 아트 센터를 아트 플레이 스쿨(Art Play School)로 발돋움하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는 포부를 밝혔다.△개구리, 도롱뇽, 지렁이와 친구가 되는 곳= 도화지에서 3년째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문화예술 강사들은 도화지라는 물리적 공간이 주는 힘에 대해 입을 모았다.동동동 아트팜주강사 여미순 씨는 도시를 떠나 도화지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편안함과 함께 개구리, 도롱뇽, 지렁이 등을 자주 만날 수 있고, 연잎을 따서 접시로 사용할 수 있는 자연환경은 왕복 2시간의 이동시간을 기꺼이 감수하게 한다며 지난 3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이곳에만 들어오면 다툼도 없고, 스마트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신나게 이 공간을 즐긴다고 말했다.김숙현 예술강사도 도화지는 자연 속에 위치해 계절과 환경의 변화를 느끼고, 곳곳에 놓여 진 도예작품과 전통 가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장소다고 보탰다.심경미 예술강사는 자연친화적인 곳으로 감성적 교육이 가능한 곳이며, 오래된 시골학교의 모습이지만 아이들이 날마다 생활하는 학교와 유사한 공간이라 친숙함이 있어 문화예술교육을 하기에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프로그램 참여자 최지훈(전주 용와초4)의 어머니는 우리 지훈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 벤치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고, 상쾌한 공기만 들이쉬고 와도 충분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선진국 모델 예술교육 공간 마련= 아트플레이(ArtPlay)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아동예술센터인 더 아크(The ark)로부터 영감을 얻어 설립된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동을 위한 독창적인 예술교육공간이다. 아동예술 및 놀이를 위한 공간이며 아동 친화적 도시인 멜버른의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학교 밖 프로젝트이다.아트플레이는 언제든지 변형이 가능하여 대상과 프로그램에 따라 공간을 맞춤 설계할 수 있어 참가자들의 집중과 즉각적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도내에도 이런 공간이 있다면 전통문화예술교육에 다소 치우친 듯한 도내 문화예술교육의 현실 속에서 도민이 현실감각에 맞고 각자의 삶에 밀접하게 닿아있는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이병로 원장은 도화지가 도예공간의 틀을 벗어나 호주 멜버른의 아트플레이 같은 공간으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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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24 23:02

익산 함열 출신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올 여름 안정적 전력 공급…'원전 안전' 최선 다할 것"

전북출신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오는 10월 WANO(세계원전사업자협회) 협회장을 맡아 앞으로 2년간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원전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주요 정책 결정과정을 주도하게 됐다. 조 사장은 특히 오는 2017년 1000여명의 세계원자력산업계 리더들이 참석하는 최고의결기구인 WANO 격년총회를 유치하는 등 한껏 성가를 구가하고 있다. 이에따라 전북일보는 지난 17일 서울 강남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서 조석 회장을 만나 향후 국내 원전 활용에 대한 구상 및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들어봤다.-지난 2013년 9월부터 한수원 사장을 맡아 이끌고 계신데 느낀 소감을 부탁합니다.“올해는 건설원전과 관련한 굵직한 이슈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장 7월에 상업운전을 목표로 현재 신월성2호기가 시운전중인데 이는 설비용량 100만kW급 원전으로, 올 여름 전력수급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고리 3,4호기의 운영허가 취득과 신한울 1,2호기 건설을 추진중입니다. 앞으로 운영하게 될 원전이 늘어나는만큼 발전소의 안전운전, 엔지니어링 역량강화, 새로운 구매제도(SCM)를 통한 지속가능 성장을 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더불어 직원들의 인적 역량을 강화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할 것입니다. 취임 당시 시험성적서 위조 문제로 원전 3기가 중단된 상태였고, 잇따른 악재들로 임직원들의 사기는 땅으로 추락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취임이 결정된 순간부터는 오로지 ‘한수원 정상화’에 대한 생각으로 일해왔습니다.그 결과 2013년 75.47%였던 원전 이용률은 84.99%로 높아졌고, 한수원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1조 5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국내 원자력발전량은 어느 정도 성장했고,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1978년 고리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37년여 만에 국내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 누적량이 지난 4월 3조kWh를 달성했습니다. 3조kWh는 우리나라 전체가 6년 이상, 서울시는 무려 65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며, KTX로 서울과 부산을 약 1억1500만번 왕복할 수 있는 양입니다. 국내 전력사용량 1위인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545년 동안이나 가동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는 23기에 설비용량은 2,100만kW입니다. 2024년까지 원전의 설비용량을 3600만kW(36GW)까지 늘릴 계획입니다.2035년까지 원전비중을 29% 수준으로 결정했고 그에 따라 총 4300만kW(43GW)의 설비를 확보해야 합니다.”-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 특히 사이버보안 대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원전은 기본적으로 안전과 보안에 대한 의식이 다른 산업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원전 제어시스템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업무망과 완벽히 분리된 독립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사이버공격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원전기술 보호를 위해 기술자료 및 도면, 절차서 등 중요자산에 대한 전체 라이프사이클별 관리 및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고 출력물 생성 사용자 인증, 기록 저장 및 모니터링을 통해 모든 기술정보에 대한 관리지침을 제정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 또한 국민들을 제대로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한다고 봅니다.”-최근들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지 않습니까.“전 세계적 에너지 수요 증가와 기존 원전의 노후화로 세계의 신규원전 건설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전망입니다. 이에 한수원은 정부 및 한전과 보조를 맞춰 베트남, 이집트 등 원전 최초 도입국 뿐 아니라, 체코 등 유럽국 대상으로도 원전수주를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 신규 원전 발주국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높은 수준의 원전 안전성을 요구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한수원은 이중격납건물, 다중안전설비 등을 적용한 유럽 원전 설계요건을 충족하는 원전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후쿠시마 후속대책을 가장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만큼 안전성 차원에서 세계 어느나라의 원전보다도 우수하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해외 원전수출은 결국 국내 원전의 안정적 운영이 밑받침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되는바, 안전 최우선 원전 운영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일부에서 원자력 마피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특수 분야인 원자력의 특성상 ‘원자력 순혈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취임 이후부터 외부인사를 대규모로 영입했으며, 특히 한수원 사상 최초의 여성 고위간부를 영입하는 등 대대적인 인사혁신을 추진했습니다.”-도민들에게 있어 ‘한수원’하면 부안 폐기장 문제가 먼저 떠오릅니다.“정부나 한수원에 있어 원전 기본 방침은 주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한 정보나 근거없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주민들이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이 또한 저희들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곧 한수원 본사가 경주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는데, 도민들께서도 저희들을 믿어주시고, 밤낮없이 해외 진출을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조석 사장은] 방폐장 부지 선정 주민투표 첫 도입·원칙 중시 관료인조석((58)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2013년 9월, 제 7대 사장으로 부임한 이래 새로운 조직 및 문화 혁신을 통한 재도약을 이끌고 있다.익산 함열에서 태어난 그는 함열초를 다니다 전주동초로 전학, 이후 전주동중과 전주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행정 고시 25회로 공직에 입문, 산업자원부 원전 기획 단장과 에너지 정책기획관, 지식 경제부 산업 경제 정책관, 성장 동력 실장, 제2 차관을 역임한 에너지 분야 전문가이다.미주리 주립대 경제학 석사, 경희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냈으며, 산업자원부 원전사업기획단장을 재임중 홍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19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대형 국책사업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을 위해 최초로 주민투표 방식을 도입하는 제안을 도입,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군산이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으나 결국 더 많은 주민들이 찬성한 경주에 방폐장 부지가 이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지식경제부 에너지정책기획관 재직시에는 에너지 기본법 제정 및 국가 에너지위원회 발족 등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한국형 산업단지 모델을 개발도상국으로 전파하기 위해 해외 부문을 강화하는 조직개편을 한 것도 당시로서는 참신한 시도였다.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지낸뒤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으로 발탁됐다. ‘전형적인 행정관료’라는 말을 들을만큼 원칙주의자이나, 선후배와의 두터운 인간관계도 중시한다는 평이다.

  • 기획
  • 위병기
  • 2015.06.22 23:02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 입법활동 펼치는 진선미 국회의원 "호주제 연구는 제 삶에 상징적인 사건, 새로운 길 열어줘"

호흡기감염증인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었다. 이름도 낯설기 만한 이 감염병의 존재가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큰 폭으로 변화시켜놓을지 앞날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고, 현실은 그만큼 불안해졌다. 사람들의 일상이 낯설어지면 도시는 질서를 잃는다. 한적해지거나 번잡해지거나 일상의 불편한 변화를 마주하는 일은 마뜩치 않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이 불안한 현실은 거의 생중계하다시피하는 언론매체와 SNS의 전파력으로 피해갈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대한민국의 질서를 이끌어야 하는 이곳에 들어서면서 한숨이 나왔다. 이 공간에서 행해져야 할 질서는 잘 행해지고 있는가, 그 가치는 존중받고 있는가. 심하게 굴곡진 시대, 그래도 희망을 보고 싶었다.새정치민주연합의 진선미 의원(48)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진의원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이다. 민변에서 활동한 변호사 경력을 가진 그는 14년 동안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우리 현대사의 현장을 지켰다. 호주제 위헌소송, 양심적 병역 거부자, 성소수자, 여성 인권까지. 우연히 마주친 그 길에서 그의 30대와 40대의 삶은 치열하고 격렬했으며 의미 있고 아름다웠다.사실 그는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던 민변의 변호사 중 한사람이지만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더 넓게 알려진 것은 정치인이 되고나서다.그가 막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지난 대선에 나섰던 문재인 후보는 개인적인 친분도 정치적 경험도 없는 그를 대변인으로 불러들였다. 노심초사, 모든 열정을 바쳐 뛰었지만 그의 앞에 놓였던 절체절명의 꿈 정권교체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더 단단해지고 치열해져야 했다. 변호사 진선미는 그 과정에서 그렇게 정치인이 되었다.그의 입법 활동은 유난히 주목을 끈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맞닿아 있는 입법의 취지나 목표도 그렇지만 법안 발의에 이르기까지 그가 행하는 과정은 치열하고 엄정하다. 그를 만난 이유다.인터뷰를 하면서 그로부터 유난히 많이 듣게 된 단어가 있다. 왜냐면. 그런데 이 단어가 주는 감흥이 특별했다. 남다른 신뢰와 희망을 그에게서 보게 되었다. -국회 들어와 보시니 어떻습니까.죽을 것 같죠 뭐. 짐작은 했었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죠.(웃음)-초선의원 답지않게 사회적 이슈를 몰고 다닌 탓 아닐까요.그래서 직접 경험이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걸 절감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많은 분들이 같은 길을 앞서 가셨는데도 나 스스로 경험해보니 괴리가 참 크더라고요. 공부를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지요.-오랫동안 국회 입성을 준비하고도 실패하는 많은 입지자들에 비해 진의원님은 수월하게 입성하신 셈이죠.사법연수원 다닐 때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10년 후 쯤에는 정치 분야도 여성들의 진출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요. 돌아보니 그 시점이에요. 여성에 대한 역차별로 얻은 결실이랄까요.-그런 차별이라면 많아질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웃음) 입법 활동을 활발히 해오셨는데, 국회의원의 중요한 역할이 입법 활동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발의한 법안 대부분이 인권을 비롯한 우리 삶의 기본적인 문제를 담은 것들이어서 특히 활동이 주목을 모으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주민등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셨더군요.국회에 들어오고부터 지금까지 개인정보 유출 관련 사건이 지속되고 있어서 줄곧 그 해법을 고민해왔습니다. 전문가 시민단체들과 머리를 맞대어 왔지만 근원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내기 쉽지 않았죠. 이 법안은 지난 3년 동안 고민하며 연구해온 결과물입니다.-의안 발의까지 준비기간이 꽤 오래 걸리는군요.제가 법조인이어서인지 법이 가지는 엄중함이나 의미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제가 정해지면 전문가들과 지속적으로 소규모 간담회를 갖고 같은 문제를 고민해온 단체들과 행정 부서 담당자가 함께 만나 문제를 제기하거나 토론을 통해서 검증하고 또 검증하면서 집적된 결과를 법안으로 마련하죠. 그래서 많은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발의한 법안이 많은데, 성과는 어떻습니까. 실제로 성과를 얻은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작할 때는 그렇게 까다로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늘 그런 기대를 무너뜨리거든요.-진행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절실한 법안은 어떤 것인가요.여러 가지가 있지만 형제복지원 진상조사 관련법이 현재로서는 가장 절실한 법안입니다.-그 법은 지난 4월에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불발되었더군요. 국민들의 공분이 그렇게 큰데도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전 정부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이어서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황이죠.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도 12년 전부터 관여를 했고, 법안은 햇수로 3-4년 되는데 결과는 늘 답답합니다. 동료 의원들의 합리적인 판단에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국회의원 첫해부터 준비하신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은 어떻습니까.그 법은 국회 들어 올 때부터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국회에 들어오게 된 배경일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를 하면서 여성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접한 것이 가사사건인데 그 사건들이 이 법안을 마련하는 바탕이 되었어요. 3년째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을 수렴하며 법안을 다듬고 있습니다.- 그만큼 법안 통과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겠군요. 호주제의 경우, 제도적 변화까지 끌어내는 데는 실질적인 작업만도 10년 이상 걸렸습니다. 그 과정을 이어오면서 우리사회가 가족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이법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를 부여하는 법률입니다. 삶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가 그것을 선택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하죠. 두 사람이 삶을 공유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지원해주는 일련의 제도에 접근할 권리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권리의 문제거든요.-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들이 있습니까. 국민건강보험국민연금보험수혜, 임대주택에 입주할 권리, 위급할 때 의료적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 가정폭력으로부터 공적인 보호를 받을 권리, 정책적 대상으로 고려되고 연구될 권리 등 무수한 제도들이 있죠.-이 법안에 대해 적지 않은 반발과 비판이 있던데요. 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맞습니다. 사실 이 법은 가족을 해체하거나 혼인을 대체하는 제도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혼인, 혈연 외 관계에 법적인 보호를 제공해 사람들이 함께 잘살아가도록 장려하고, 이를 통해서 사회적 안정을 이루도록 하는 법률이죠. 친족 중심의 가족제도로는 포함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의 지체는 정상가족 밖의 사람들을 사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형국입니다. 누군가가 겪게 되는 고독감을 극복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도록 믿고 의지하는 사람과 생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법이라고 저는 확신하는데, 사회적으로 고독과 우울의 증가를 막는다면 사회복지비용을 줄이면서도 사회적 통합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이 법의 실제 내용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반대의견을 갖고 있었던 분들도 막상 이 문제로 토론을 하면 굉장히 좋은 법이라고 생각이 바뀝니다.-화제를 좀 돌려보겠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검사나 판사가 되는 과정을 생략하셨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고민은 했었죠. 그 당시만 해도 곧바로 여성이 변호사를 하는 경우는 특히 드물었어요. 소위 영업을 해야 하니까. 환경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었죠. 사건을 수임해야 하는데 사법연수원 경력만으로는 차별성을 갖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주위에서는 반대가 많았어요. 그런데 어느 한쪽에 서서 싸워주는 일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제가 좀 더 잘할 수 있고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혼자 개업 하는 상황이었으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좋은 선배들이 있는 법무법인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법무법인 덕수가 첫 직장이었군요.사법연수원을 마치고 99년 덕수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그 곳이 인권과 사회변화를 고민하는 젊은 법조인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덕수에서 일하시던 이석태변호사님을 알게 되었는데 마침 여성 변호사를 찾고 있었던 차에 저와 인연이 닿았던 것이거든요. 저로서는 행운이었어요.-운동권 출신 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법무법인에 합류하게 된 이후 더 새로운 길이 열린 셈이겠군요.그렇죠. 선배들 덕분에 사회적 이슈를 공부하며 공론의 중심에 서기도 했고,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면면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변호사가 되면서 바로 시작한 호주제 연구는 제 삶에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고요. 덕수에서 일했던 10년이 제 삶을 바꾸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열어주었습니다.-많은 사건을 접하셨을 텐데, 그 사건들을 변론하면서 개인의 삶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 보람도 크겠습니다.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일이죠. 그런 중요한 현장에 함께 있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의미니까요. 생각해보면 송두율 교수님 사건과 같은 이념의 문제부터 하리수씨 사건 같은 소수자의 인권, 고 최진실씨 친권문제 같은 가사분쟁 등의 사회적 이슈를 경험하면서 정치적 실험에 도전할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된 것 같아요.-시위현장에 직접 나가게 되는 일도 많았겠군요.잘 단련이 되었죠.(웃음) 특히 변호사 초기에는 재건축 재개발과 관련해 철거민들을 오랫동안 도와주신 김형태 변호사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어요. 그때 많이 경험했죠.-그러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더 긴밀하게 이해하게 되었겠습니다.그때 그분들이 당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는 지금도 집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로 살고 있는데, 그 때 철거민을 보면서 결심했거든요. 왜 재개발로 인한 이익을 소유주만 향유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더라고요. 정의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싸웠죠.-소수자의 입장에 서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사회적인 환경도 그렇지만 저는 특히 정서적으로도 힘든 일들이 많았어요. 눈물이 많은데다 다른 선배들처럼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거든요. 지금도 돌아보면 부끄러운 일이 많은데, 그래도 치열한 현장에 함께 있었던 10년이 오늘을 있게 해준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정치에 입문하게 된 배경이 짐작이 갑니다. 최근에 지역구를 맡으셨더군요.강동구를 맡게 되었는데 사실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확신과 해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져있으니 용기를 냈어요.-좀 더 강한 정치적 실험이 시작되는 셈인데요. 지역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생긴 건가요.지역위원장인 이부영의장님이 손을 내밀어주셨을 때 많이 망설였어요.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쉬운 지역이 아니거든요. 이부영의장님께서 3선을 한 곳이긴 하지만 우리 당 소속이 아니셨잖아요. 그러나 아직 저의 정치적 실험이 마무리 되지 않았고, 더구나 정권교체라는 꿈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어떤 역할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용기를 갖게 했어요.-대학을 가면서 고향을 떠나셨고 이제 강동에서 두 번째 정치인생을 시작하시는데 밖에서 보는 전북은 어떻습니까.전북은 갖고 있는 장점, 자산이 참 많죠. 한편으로는 소외되고 배척당한 역사가 있지만 그런 문화적 가치가 보호되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에 이르러 그런 장점을 진정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문제가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획일화된 관점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으니까요.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방향을 조금만 달리 보면 전북만큼 소중한 동력을 가진 곳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동력의 가치를 재대로 보려하지 않거든요. 제가 만약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런 의식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의 실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인터뷰는 당초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는 자신이 왜 정치인의 길을 가는가를 묻고 또 묻는 정치인이었다. 현실에 대한 명쾌한 분석과 풍부한 현장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논리는 눈물과 감정을 앞세우던 새내기 변호사의 진정성을 뛰어넘는 설득력으로 답과 질문을 넘나들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정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2012년 정치에 뛰어들 때 지금까지 살아온 방향을 바꾸는 것에 대한 전면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죠.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지점.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가치, 지켜야할 가치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 크고 작은 답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찾아내는 일, 그것이 제가 정치적 실험을 이어가는 이유입니다.가뜩이나 웃음 많은 그의 얼굴이 더 환해졌다.● [진선미 의원은] 순창출신 법조인새정연 비례대표로 정치 입문진선미의원은 순창에서 나고 자랐다. 위로 아들 넷을 얻은 후 막내로 얻은 딸을 어머니는 여자는 조신하게 커야 한다는 엄격한 교육관으로 키웠다. 이산가족인 아버지는 초대 순창문화원장을 지낼 정도로 문화적 감성이 특별한 분이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계는 고스란히 어머니 몫으로 안겨졌다. 어머니는 순창읍내에서 탁구장을 운영하며 아들 넷과 딸을 교육시켰다.중고등학교 시절은 수업료를 독촉받을 만큼 가난했으나 지금 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큰 오빠는 공부 잘하는 동생에게 법대 진학을 권유했다. 성균관대 법학과에 들어갔으나 법조인이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대학 1학년 때 과 선배를 만나 큰 굴곡 없이 대학생활을 했다. 그는 사회적 문제나 현실인식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학생운동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시를 두 번 합격고서야 법조인이 된 큰오빠(진봉헌변호사)와 역시 운동권이었던 넷째 오빠로부터 얻은 일종의 자기 검열(?)이었다.대학 4학년 때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공부하는 동안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그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던 사람은 10대에 만나 14년 연애하고 결혼한 남편이다. 이들 부부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부부다. 호주제가 철폐되면 그때 혼인신고를 하자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던 남편은 정작 호주제가 해결되자 제도에 얽매여 인생의 틀을 결정하는 것에 마음 내켜하지 않는 아내의 변심을 기꺼이 받아들였다.8전 9기로 사시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생태와 마음공부 등에 관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책 <조화로운 삶>(스콧 니어링 부부 지음)을 만난 것도 이때다.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이끌어준 사람이 그 책을 번역한 이석태 변호사였다. 그 인연으로 검사나 판사 생활을 거치지 않고 덕수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10년,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갈등의 현장을 선배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지키며 건강한 나라를 꿈꾸었다. 덕분에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지점에서 호흡할 수 있었던 그는 수많은 변론으로 사회적 이슈를 선점하며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중에서도 호주제 폐지는 그의 열정이 온전히 배인 결실이다.19대 총선에 새정연 비례대표로 신청해 당선,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후보 대변인을 맡아 활약했으며 지난 지방선거 때는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 캠프 수석대변인을 맡았다. 2월부터 서울시 강동구에서 지역민들과 소통을 시작한 그는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지난 5월 말 사무실을 열었다. 강동구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그의 정치적 실험을 더 강한 의지로 실현해갈 지역이 됐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쌓은 인맥이 워낙 두터워 곳곳에 지원군이 많다. 이들은 그의 정신을 늘 다잡게 하는 인생의 스승이자 버팀목이기도 하다.

  • 기획
  • 김은정
  • 2015.06.19 23:02

[변화&소통] '유쾌한 인문학' 좌담회

진지하고 열정에 가득찬 눈빛, 배움에 대한 갈증, 무언가를 받아 적는 소리, 커피나 녹차향 보다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인문의 향기가 가득한 곳. 고등학생부터 퇴직 교수까지 100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전주시 평생학습관의 화요일 저녁 풍경이다.전주시 평생학습관이 매주 화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유쾌한 인문학강좌가 어느덧 7년이 됐다. 7년을 한결같이 참여해준 시민 4명과 함께 강의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인문학이 삶에 준 영향, 그리고 앞으로 바라는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사회 - 구성은(전주시 평생학습관장)△대담 - 성기수(전주영생고 교사) / 이명희(전통교육 맥 대표) / 유정애(문화해설사) / 김상희(직장인)- 사회(구성은): 어떻게 이 강좌(유쾌한 인문학)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명희: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보고, 나도 누군가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지고 있는 자원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가까운 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강좌를 시작한 덕에 7년 동안 빠짐없이 듣게 되었습니다.- 사회: 인문학 강좌를 오후 7시에 시작하다보니 직장인은 저녁밥을 거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회생활도 하실텐데, 7년을 개근하실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요?- 김상희 : 그냥 매주 화요일 저녁은 늘 비워놓아요. 늘 듣다보면 이 시간이 제게 주는 여행같은 느낌도 들고,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들어요. 무언가 채워지는 시간이고, 제 인생에 활력소가 되고 있죠.- 사회: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잖아요. 유쾌한 인문학은 매년 한 주제를 가지고 공부하는데(2015년은 동아시아사) 딱딱하거나 머리 아프진 않은가요?- 성기수: 매주 수업에 몰입해서 듣는 편은 아니예요. 그냥 딴 생각도 하고, 편안하게 듣죠. 그런데, 계속 듣다보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뭔가 막혔던 생각이 탁 풀리는 때가 있어요. 그래서 유쾌한 인문학은 내 삶의 아이디어 공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데, 듣다보면 관련있는 내용이 나올 때도 많아요. 그러면 굉장히 반갑고, 내가 알았던 지식을 포함해서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기도 하죠.- 사회: 인문학 강좌를 들어서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이명희: 제 경우에는 인생이 달라졌죠. 처음 인문학 답사 때 선생님 한 분이 문화유산 공부를 권유하셨어요. 그래서 시민단체에서 문화재 공부를 하다가 전통놀이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배우고 공부해서 지금은 전통교육, 전통놀이 전문가가 되었죠. 저는 남편이 직장 때문에 서울로 가고, 딸도 서울로 대학을 갔어도 이 인문학 때문에 이사도 안 가고 전주시 평생학습관 옆에 딱 붙어 있어요.- 김상희: 저는 한 주제가 끝날 때마다 가는 답사가 참 좋아요. 강좌만 같이 들을 뿐, 잘 몰랐던 수강생들이 친해지는 계기도 되고, 강의에서 듣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을 보고 느낄 수가 있어요.- 유정애: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강의를 들으며 채워지는 것이 많아요. 2010년에 전북대 쌀삶문명 연구원과 전주시 평생학습관이 공동으로 농경문명사, 조선시대 회화사, 도가철학, 동양철학 등을 함께 했는데, 그 때 그 강의들은 다시 듣고 싶어요. 정말 좋은 내용이었고, 이런 강의는 전국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선생님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강의에서 듣는 내용이 자양분이 되고, 스스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지금까지 7년동안 유쾌한 인문학강좌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러분의 열의와 참여 때문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주시 평생학습관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성기수: 사실, 우리보다 더 훌륭한 수강생들이 많아요. 전북대 역사교육과 퇴직 교수님 부부나 전주대 퇴직 교수님 부부가 나란히 인문학 강좌를 듣고 계시는데 참 멋져 보여요. 저희도 좋은 강좌를 들으며 배움으로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유쾌한 인문학프로그램 담당자 김지영 선생님은 신영복 선생님이 쓴 〈담론〉의 강의의 최상은 공감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어떠한 형식의 인문학이든 전주시민이 공감하는 강의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7월에는 실크로드, 그리고 돈황학을 주제로 유쾌한 인문학 동아시아사 3탄이 열릴 계획이다. 실크로드 강좌를 듣고, 진짜 실크로드 여행을 꿈꿔 보면 어떨까?● ['인문 공간 파사주'는] 시민이 만드는 인문학 열린 공간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건물 3층으로 올라가면 130㎡ 남짓, 인문과 자유가 그득한 공간이 펼쳐진다. 2015년 1월 문을 연 인문 공간 파사주다.이 공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어느날 우연히 15년 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난 청년도 중년도 아닌 사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습세미나를 계획하게 된다. 2년간 커피숍과 학교 연구실 등을 전전하며 발터 벤야민, 칸트, 푸코의 책을 읽던 그들은 안정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영화의 거리, 한 건물 3층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한 달 동안 회원들의 막노동으로 인테리어를 마치고 문을 연 공간이 인문 공간 파사주다.성기석 대표는 파사주라는 이름에 대해 이행, 통과, 통로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발터 벤야민의 책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따온 이름인데, 이 공간을 통해 회원들이 더 나은 삶으로 통과, 이행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문을 연 후에는 먼저 회원들이 가진 특기를 살리는 강좌를 시작했다. 미디어 아트, 음악감상실, 조각, 페미니즘 특강 등. 물론 2년 전부터 진행해온 철학 세미나는 여전히 2주에 한 번 열고 있다.안정적인 공간이 생긴 만큼 파사주는 새로운 꿈을 꾼다. 공부를 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인문공간이 그것이다. 그래서 1년 계획으로 준비한 철학 고전 읽기는 모두에게 열려진 공간이다. 6월 23일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하는 플라톤의 향연부터 5강에 걸친 플라톤 읽기가 준비되어 있고, 8월 중순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진다.회원들이 기증한 책과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공간이 자율로 운영되고, 모두에게 열려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본 공간이 아닐까? 게다가 위치는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바로 옆이다. 전주시에서, 전라북도에서 주최하는 인문학보다 시민들이 만드는 인문학이 풍성해질 때, 그것이 바로 전주의 자랑이고 힘이지 않을까?파사주에 참여하고 싶은 시민은 010-8649-1968이나 gmail.com으로 문의하면 된다.

  • 기획
  • 기고
  • 2015.06.19 23:02

[이색&공감] 형제가 전하는 현의 노래

첼로연주자 박귀순씨, 비올라 연주자 박병선씨. 형제지간임에도 불구하고 성격, 외모, 취향까지,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두 사람. 그런 그들이 문화적 경험이 적은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고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소외된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 동행하고 있다. 형제이기에 앞서 문화예술교육분야의 동료이자 동반자인 박귀순병선 형제를 만났다.△보이지 않는 무게중심, 첼로와 닮은 형= 우연일지 필연일지 몰라도 음악가들은 꼭 자기 같은 악기를 연주하게 되요.첼로를 전공한 박귀순 음악예술단체 이음 대표(54)는 그의 말처럼 첼로를 닮았다. 바이올린처럼 튀지는 않지만 멋진 합주가 되도록 뒤에서 잔잔한 중저음을 힘 있게 깔아주는 첼로처럼, 보이지 않는 무게중심을 가지고 있어 그가 있는 곳은 안정적이고 편안하다.전주시립교향악단의 첼로연주자로 활동했던 박 대표는 열정 하나만으로 29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지만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는 연주활동과 배움에 있어 많은 걸림돌이 되는 나이였단다. 약 30년간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박 대표에게 서양 사람의 삶의 태도와 소통 방식, 그 중에서도 특히 교육방식은 너무나 낯설고 새로운, 그래서 넘기 힘든 벽이었다.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자체가 어색했어요. 음악가로서 많이 훈련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음악은 결코 훈련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30세가 넘어서야 깨달은 거죠.음악의 기능을 중요시했던 한국교육과는 달리, 감정과 영감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음악을 마주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자 한계였다.△무심한 듯 자기존재감을 드러내는 비올라 같은 동생= 비올라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보다는 자기 색이 없는 악기죠. 하지만 화음을 풍성하게 해줘요.무심한 듯 하지만 잔잔하고 한결같은 박병선 씨(41)는 비올라를 닮았다.2남3녀 중 막내인 박병선 씨는 맏형인 박귀순 대표와는 열 세살 차이다. 박귀순 대표가 전주시립교향악단의 단원으로 활동할 시기에 막내 박병선 씨는 고작 초등학생이었으니 그에게 큰형은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연주가인 맏형 덕분에 첼로, 바이올린 등 고가의 악기를 쉽게 만지고 놀았던 그는 16세에 형이 있는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영어권도 아닌 독일어를 쓰고 있는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혀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행하게도 음악은 결코 즐거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그러던 중 그가 새로운 음악을 찾도록 안내해준 스승 헬프리드 피스터 씨를 만나게 된다. 잘하는 연주보다 개개인의 장점을 발견해주고 지지했던 피스터 씨는 슬럼프에 빠진 박병선 씨에게 예술가를 넘어 인생의 조언자로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지속됐다. 부안과 전주에서 개최하는 마스터클래스와 음악캠프에 해마다 스승이 방문하고 있다.△문화예술교육으로 소외된 이웃을 만나다= 박귀순 대표는 2011년 부안 꿈의 오케스트라 기획과 참여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청소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소년원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보육원과 같이 위탁시설에서 소외된 아이들과 제가 가진 재능을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이 어렸을 때부터 늘 있었다며 악기 8대를 기증하면서까지 소년원에서 음악교육을 진행했다.아이들에게는 좋은 기회였지만 관리차원에서는 이동할 때마다 직원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소년원에서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저 역시도 그런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진행하기가 힘들었죠. 그러다 소년원 출소 청소년의 쉼터인 천사의집을 알았고 이러저러한 악기를 매개로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부족하고 표현이 어색한 아이들이라 자기감정을 다소 거칠게 보여주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그렇지는 않아요.동생 박병선 씨는 오스트리아 유학을 마치고 2006년 한국에 돌아와 찾은 곳이 부안이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부안 줄포초등학교와 남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만나게 해준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첫 경험이었다.많은 시골아이들이 학원, 특히나 예체능 학원은 더더욱 다닐 수 없는 환경이고 게다가 방과 후 프로그램까지 많이 활성화되지 않아서 학교 끝나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교 관사에 머물면서 아이들과 함께 악기로 놀았습니다.△서로에게 배우다= 동생한테 배울 점이 많아요.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따라갈 수 없는 태도를 가지고 있죠. 큰 장점이에요. 저는 대학까지 한국에서 마쳐 경직된 많이 적응된 사람이라면 청소년기를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동생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교육하는 관점이 저와는 완전히 다르죠.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아이들이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박병선 씨가 형이 보기엔 너무 관대한 것 같아 잔소리도 많이 한다는 박귀순 대표.박병선 씨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아닌 같은 인격체로서 눈높이를 맞추는 게 교육의 시작이다고 말한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음악과 춤을 응용해 아동음악교육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칼 워프의 영향을 받아 음악교육학을 전공했다. 한국에 돌아와보니 클래식 음악이 너무 권위적, 보수적이어서 일반 대중과는 거리가 먼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이들이 체감하는 클래식은 더욱 그랬다. 이런 풍토가 그의 눈높이 교육에 대한 신념을 강하게 했다.그럼에도 박병선 씨는 형이 없었더라면 오타쿠 기질이 있는 자신이 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형은 정말 엄격하게 악기를 가르쳐줬어요. 어렸을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형이 없었더라면 아마 제가 음악을 만날 수도, 아이들을 만날 수도 없었겠죠.박귀순병선 형제에게 음악이라는 재능이 신이 내려준 우연이었다면, 지역의 소외된 아이들을 만나고, 문화예술교육으로 재능을 공유하며, 전북이라는 지역에서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기까지의 인연은 필연이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연(然)이 두 형제의 우애처럼 끈끈하게 지속돼 첼로같은 든든함으로, 비올라같은 어울림으로 지역에서 함께하는 음악인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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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7 23:02

[완주 삼봉신도시] 정주여건 확보·기반시설 조성…인구 10만 넘어 15만 도시로

완주군이 민선 6기 미래비전인 10만 자족도시, 완주미래 발전기반 구축을 위한 완주삼봉지구 주택단지 조성사업을 본격 추진한다.지난 2007년 1월 국민임대 주택단지 예정지구 지구지정 고시이후 보상까지 완료됐지만 10년 가까이 장기간 중단됐던 완주삼봉지구 사업을 빠르면 올해 10월에 착공할 계획이다.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사업지구 면적 91만 4978㎡에 주택 5759호, 1만 4428명을 수용하는 삼봉신도시 조성과 관련, 1882억의 사업비를 투자해 2019년 12월까지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공주택사업지구계획 변경승인을 지난해 6월 국토교통부에 신청했다.사업계획은 현재 관련 기관의 협의를 마치고 국토교통부의 공공주택 통합 심의를 준비하고 있다.완주군은 오랫동안 답보상태를 보였던 삼봉신도시가 조성될 경우 공단 인근에 쾌적한 정주여건이 마련됨으로써 인구 유입 가속과 더불어 완주산업단지 근로자의 직주 근접지 개선 효과를 창출하는 등 완주미래 발전기반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삼봉신도시 조성 개요완주 삼봉신도시는 호남고속도로와 지방도 799호선, 간선도로 등과 연접해 접근성이 우수한데다 완주산업단지 및 과학산업단지, 완주테크노밸리 12단계 등 산업 집적지와 인접해 배후 주거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삼봉신도시는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와 봉동읍 고천리 일원 91만 4978㎡에 공동주택 8개 단지 5525세대와 단독주택 234세대, 유치원 및 초등학교, 중학교 각각 1개소, 공원과 녹지 18만 3040㎡, 상업 및 근린생활시설 5만 2219㎡, 도시지원시설 5만 5102㎡, 도로 등을 조성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을 시행하는데 1만4428명의 수용인구를 계획으로 오는 2019년 12월까지 사업을 추진한다. 총 사업비는 1882억원이다. 완주군은 삼봉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적극 유치해 거주 주민의 편익시설을 증진시키고 기반시설 설치에 따른 행정 협의 및 지원을 신속하게 처리함으로써 사업기간을 단축하고 경제적 부담이 감소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삼봉신도시 추진과 계획당초 삼봉신도시는 국토교통부에서 지난 2007년 1월 4일 국민임대주택단지 지구지정 고시를 받았고 2008년 1월 3일 예정지구 지정변경 및 실시계획 승인이 났다. 이어 2008년 1월 3일까지 895억원을 들여 토지 91만 4987㎡와 지장물 보상을 완료했었다.하지만 사업시행자였던 한국주택공사가 토지공사와의 통폐합됐고 원래 신도시 조성시 입주하기로 했던 완주군 신청사가 완주군 용진면 운곡리로 이전함에 따라 삼봉신도시 조성사업이 장기간 표류했다.때문에 사업 재개를 요구하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민선6기 완주군수로 취임한 박성일 군수는 삼봉신도시의 추진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왔고 지난해 11월 5일 이재영 LH공사 사장을 만나 사업추진을 건의했다.그리고 LH는 올 4월 6일 사업계획변경에 따른 지구계획변경 승인 신청을 국토교통부에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삼봉신도시는 현재 관련부서 협의를 완료한 상태다.완주군에 따르면 6월중 국토교통부 공공주택 통합 심의를 거쳐 2015년 8월에는 지구계획 변경이 승인될 예정이다. 이럴 경우 빠르면 올 10월중에 공사를 착공해 2019년 12월까지 사업 완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입지여건과 기대효과완주 삼봉신도시는 호남고속도로 삼례IC 3㎞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지방도 799호선과 과학로 등 간선도로와 연접해 접근성이 우수하다.또한 북측 1㎞ 거리에 완주산업단지 및 과학산업단지에 현대자동차, KCC, LS엠트론 등 200여개 업체, 1만3000여명의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다. 여기에 현재 86%의 분양률을 보이고 있는 완주테크노밸리 1단계사업과 착공을 목전에 둔 2단계 사업 등을 고려할 때 배후 주거수요를 충족할 것으로 예상된다.특히 5759세대의 대규모 택지개발로 정주여건이 개선됨으로써 인구의 대거 유입이 예상된다. 또 장기임대와 공공임대, 공공분양, 민간분양, 행복주택, 단독주택 등 수요에 대응한 다양한 주택이 공급될 예정이서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무엇보다 인구 10만명 시대를 앞둔 완주군이 10만 도농복합 자족도시를 넘어 15만 시대를 열어가는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완주군은 이에 쾌적하고 독창적인 명품 신도시 건설을 위해 설계단계부터 공원 및 녹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도로상수도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완벽하게 갖춤으로써 자연재해와 사고 및 각종 범죄에서 안전한 명품 도시를 건설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완주소방서와 도서관, 보건소, 노인보훈회관, 로컬푸드 직매장, 공용주차장 등 공공기관과 시설을 적극 유치해 주민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등 삼봉신도시가 다함께 열어가는 으뜸 도시를 건설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박성일 군수 '삼봉 신도시' 구상] "삶의 질 높이는 명품도시"완주 삼봉신도시를 3000세대 규모의 미니복합타운 및 완주 테크노밸리 조성, 복합행정타운, 용진면 읍 승격 등과 함께 10만 도농복합 자족도시를 넘어 15만 완주시대를 개막하는 핵심지역으로 만들겠습니다.장기간 표류해왔던 삼봉신도시 사업 재개를 이끌어낸 박성일 완주군수는 삼봉신도시는 완주군의 외형과 위상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현안이라며 그동안 군민의 협조와 성원에 힘입어 사업재개란 결과를 얻은 만큼 LH와 긴밀히 협조해 삼봉지구가 완주군의 발전과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중심지가 되도록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 군수는 이어 삼봉신도시가 인근의 전주 에코시티 등 대규모 주택단지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시계획과 정주여건 마련, 공동체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면서 편의시설과 공공기관도 삼봉신도시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해 인근 산업단지 근로자는 물론 외부에서도 완주군으로 들어와서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박 군수는 맹자는 견고한 요새도 사람의 화합과 상생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고 들고 삼봉신도시가 명품 도시로 조성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성원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기획
  • 권순택
  • 2015.06.16 23:02

취임 100일 맞은 이재완 LH 전북지역본부장 "기존사업 원활한 추진…지역발전 동반자 관계 강화"

이재완 LH전북지역본부장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이 본부장은 전북이 고향은 아니지만 10여년전 도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 전북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LH전북본부의 수장으로 다시 전북에 내려와 근무하게 된 이 본부장은 LH의 전북지역에서의 역할을 보다 확대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이 본부장은 기존 사업의 원활한 추진은 물론, 신규사업 확대와 지역 발전을 위한 동반자 관계 강화 등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 올 하반기내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할 계획이다.-전북본부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이미 전북과 인연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요.“IMF 당시 군장국가산업단지를 입안하고 설계한 실무책임자로서 가족과 함께 군산에 내려와 2년 동안 근무했었는데, 그 후로 10여년이 흘러 다시 전북과 인연을 맺게 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 당시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군장국가산업단지에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입주해 군산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사명감과 보람을 느꼈습니다.”-전북본부장으로 취임하면서 포부가 있었을텐데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성과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LH공사는 지역사회 동반자로서 전라북도 경제발전과 도민 주거안정에 중책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사회와 함께 LH공사의 기능과 역할을 다해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것이 나름 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가식품클러스터나 전북혁신도시 조성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지역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행복주택을 포함한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새만금사업 등 전북지역의 미래 주요 관심사업에서 LH공사가 기능과 역할을 다함으로써 지역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취임 이후 LH전북본부가 지역특화산단(전주탄소) 등 신규사업에 대한 장기 추진계획을 담아 지자체와 포괄적 수준의 사업협약 체결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자체와 협약을 통해 지역개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추진 중인 LH 전북본부의 주요 개발사업은 무엇인지요. “LH공사는 국가식품클러스터와 전주만성지구 등 6개 진행사업에서 494만평 규모의 산업단지조성사업과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가식품클러스터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합동으로 기업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지속적인 투자분위기를 조성해 산업용지 분양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또한 인구 3만명 수용을 목표로 한 전북혁신도시가 지난 3월말 2단계 사업준공이 이뤄졌습니다. 이전 공공기관 직원과 전주시, 완주군의 적정인구 수용을 통한 자족성을 갖춘 쾌적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명품도시로 건설할 수 있도록 LH공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편 법조타운으로 형성될 전주만성지구는 법원 및 검찰청의 사법행정기능과 그와 연계된 상업·업무기능, 생활편익시설과 연계된 쾌적한 주거기능이 조화된 복합도시로 조성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 또한 환지방식으로 추진 중인 전주효천지구는 하반기 공동주택용지와 상업용지를 공급해 전주시내 택지수요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올해 분양아파트 및 임대아파트 건설현황 및 공급계획은 어떤지.“올 초에 부안봉덕3지구 공공분양아파트 554세대와 전북혁신도시 A10블록 국민임대아파트 690세대가 입주했습니다. 또한 현재 건설 중인 혁신도시 A9블록 국민임대아파트 552세대도 2015년 8월에 입주할 예정입니다. 신규 주택건설사업으로는 익산인화지구에 국공유지를 활용해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에게 임대료가 저렴한 행복주택 612호를 건설할 계획이며, 노후한 건축물이 밀집한 익산평화지구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연내 보상계획공고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한 전주반월2지구에 무주택서민을 위한 공공주택 842호 건설을 위해 상반기 보상착수를 통해 내년 착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편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전주만성지구 A1블록 공공분양아파트 711호는 2016년 초 공급을 목표로 올해 10월 착공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북혁신도시 2단계 사업을 준공 했는데 향후 전망은 어떤가요.“인구 3만명 수용을 목표로 한 전북혁신도시를 지난 3월말에 2단계 사업준공을 했습니다. 전북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촉매로 혁신성과 역동성을 갖춘 특성화된 도시를 건설해 지역 발전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되었고 농촌진흥청 등 농업생명 공공기관과 국민연금공단 등 지식서비스 공공기관이 이전하고 있습니다. 2단계 사업준공이 이루어짐에 따라 이전 공공기관 직원과 전주시, 완주군의 적정인구 수용을 통한 자족성을 갖춘 쾌적한 도시로 거듭날 것입니다. LH공사가 전북을 대표하는 혁신도시를 성공적으로 건설함으로써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완주삼봉지구 사업계획을 변경 중이라고 들었는데,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완주삼봉지구는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 일원(91만5000㎡ 규모)에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인데, 현재 보상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경기침체와 수요부족으로 착공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애초 완주군청 이전을 전제로 사업계획이 수립되었기 때문에 당장 대체수요를 발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LH공사는 작년 하반기에 완주삼봉지구를 공공주택지구로 전환 추진하는 등 수요 발굴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으며 올해에는 개발계획 및 실시계획 변경을 통해 공사착공 일정이 가시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군산신역세권지구 진행상황과 향후 택지 공급계획은 어떤가요. “군산신역세권지구는 군산시 내흥동 일원(107만9000㎡ 규모)에 군산역 주변 역세권 형성과 상업·업무·행정 등 복합기능을 부여한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수요부족으로 착공이 지연되다가 작년에 1단계 구간(34만㎡)을 우선 착공했습니다. 올해에는 1단계 구간내 공동주택용지를 7월 공급할 예정이며 2단계 구간은 올 하반기 발주해 내년 상반기 착공할 계획입니다.”-끝으로 도민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LH공사는 작년과 올해 출범 후 최초로 금융부채의 절대규모를 감축하는 등 재무안정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도 부채감축과 내실경영을 추진해 지속가능한 LH로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LH 전북본부도 이런 재무안정 기반 하에 임대주택건설과 산업단지를 비롯한 지역개발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지역경제 발전과 도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LH공사에게 주어진 과제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겠습니다.”●이재완 본부장은- 리더십·소탈한 성품 '국토개발 전문가'이재완 LH전북지역본부장은 서울 출신으로 동성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지난 1985년 LH에 입사해 30년간 근무하면서 심사평가처와 경제자유구역사업처 등 주요 부처를 거친 국토개발전문가로서 최근에는 청라영종사업본부장과 산업경제처장을 역임하고 지난 3월초 전북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직원들과 족구나 탁구를 즐겨하는 만능 스포츠맨으로서 평소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한 성품을 지녀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그러나 각종 사업을 추진할 때는 카리스마와 더불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본부장은 취임 이후 LH 전북본부가 지역특화산단(전주탄소) 등 신규사업에 대한 장기 추진계획을 담아 지자체와 포괄적 수준의 사업협약 체결을 준비해 왔고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LH가 지자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과 도민 주거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 기획
  • 강현규
  • 2015.06.15 23:02

[변화&소통] 송파 세모녀 죽음 내몬 '추정소득'

지난해 2월 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61세 여성과 그녀의 3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송파 세모녀는 집세와 공과금 70만원을 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이후 한 언론의 취재를 통해 송파 세모녀가 실제 관할 동 주민센터에 찾아가 수급신청 상담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동 주민센터는 세모녀가 근로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구원당 일급 4만1680원씩 15일을 적용해 62만5200원씩 3명의 가구원에게 부과한 추정소득 187만5600원이 수급자 선정기준인 3인가구 최저생계비 132만9118원보다 많은 것으로 판단했다.그러나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말하는 추정소득 부과는 보건복지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일명 지침)에 명시된 행정행위에 불과한 것으로 상위법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위반한 것이다.그래서 송파 세모녀 사건은 보건복지부의 위법한 행정행위로 인한 타살로 볼 수 있다.그 근거로 이에 앞서 지난해 2월 20일에 서울행정법원에서 정부의 추정소득의 부과처분에 따른 최저생계비 감액처분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송파 세모녀는 이보다 나흘 후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기 때문이다.해당 판결문을 인용하면 소득인정액에 포함되는 개별가구의 소득평가액에서의 소득은 그 개별가구의 구성원이 실제로 벌어들이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기타소득이라는 각 소득을 의미할 뿐이므로,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일정한 소득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여 추정소득 부과처분을 할 수 있는 아무런 법령상의 근거가 없다고 명시했다.지난 2013년부터 평화주민사랑방에 상담접수된 수급자들을 통해 추정소득이 일괄 부과되고 있다는 의혹을 갖게 됐다.실제 지난해 2월에 군산시에 사는 이모 씨(64)씨에게 부과한 추정소득 피해 사례를 통해 정부가 추정소득을 과거와 달리 일괄 부과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이 씨는 2010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뒤 직업을 잃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아무런 소득 없이 혼자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지내던 이씨에게는 매달 48만여원씩 나오던 현금급여(생계급여 및 주거급여)가 생활비의 전부였다.그런데 갑자기 지난해 1월부터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추정소득이 부과돼,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면서 정부의 모든 지원이 끊겼다. 이후부터 추정소득 부과로 인한 현금급여 삭감 및 수급자 보장중지에 대한 상담이 크게 늘고 있다.특히 송파 세모녀 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에 추정소득 부과의 위법성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추정소득 부과의 위법성을 밝혀 내라는 등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심지어 보건복지부는 수급자가 근로능력이 있음에도 일을 하지 않고, 사회보장제도에만 의존해 생활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그러나 이 같은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이미 법원에서 추정소득 부과처분에 따른 최저생계비 감액처분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보건복지부의 위법행위는 이 뿐만이 아니다.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15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해당 법안을 보면 추정소득이란 기존 용어가 보장기관 확인소득으로 변경됐다.주요 내용은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기준을 초과하면 생계주거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추정소득 부과는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보장기관 확인소득으로 명칭만 바꿔 추정소득을 산정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다.지난 4월 24일 국회입법조사처도 이 같은 추정소득 부과가 상위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내렸다.법원과 국회입법조사처 모두 확인되지 않은 소득을 추정소득 또는 보장기관 확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실제소득인 것처럼 반영하는 것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상위법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0(급여의 중지 등) 제2항에도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 본인의 생계급여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즉, 수급자 본인이라고 특정 지은 것은 수급자 가구의 노인과 장애인 등 가구원 중 근로능력이 없을 경우 급여를 중지하지 못하도록 한 인권적 의미가 포함됐기 때문이다.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보장기관 확인소득이란 용어로 추정소득을 부과하려 한다.정부의 행정행위에 불과한 추정소득을 부과하는 것은 헌법과 현행법을 위반하는 동시에 국민의 기본권인 사회권, 즉 국민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기본적인 인권의식을 짓밟는 행위다.● '송파 세모녀' 비극, 현재진행형법령 개정과정, 독소조항 그대로생활고에 시달리던 서울 송파 세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년이 지났다.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등을 통해 비수급 빈곤층 끌어안기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송파 세 모녀 사태의 재발을 막겠다며 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이 정작 송파 세모녀와 같은 처지의 이들을 돕는 데 한계가 명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논란은 정부가 최근 기초법 시행령을 바꾸며 독소조항을 그대로 살려둬 더욱 커지고 있다. 바뀐 법률과 시행령에 따르더라도 송파 세모녀는 여전히 기초생활 수급 자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해당 조항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실제 지난 2월 송파 세모녀 사건 1주기를 맞아 시민단체들이 정부가 입법예고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안의 수정을 촉구했다.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정부가 부양의무제와 추정소득 등 세모녀 비극을 초래했던 독소조항을 그대로 남겨둔 채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안을 고시했다고 비판했다.또, 부양의무제를 일부 완화했지만 부양의무제 때문에 수급에서 배제된 117만 명 중 12만 명만 포함됐다고 지적했다.참여연대는 정부가 시행령에 이른바 추정소득 규정을 만든 것은 제도개선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추정소득은 정부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자에 대해 실제 소득 여부와 관계 없이 주거나 생활수준을 근거로 추정한 소득으로, 수급자 확대를 가로막는 조항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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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1 23:02

[이색&공감] 풍류 부흥 이끄는 '고창농악보존회'

기세등등한 햇살이 꼬리를 감추는 6월 해거름, 고창읍성 곁 한옥마을 마당에 도리화(桃李花) 소리, 소리 꽃이 피었다. 판소리 여섯마당을 글로 가다듬은 동리 신재효 선생과 우리나라 첫 여류명창 진채선의 만남과 이별을 그리는 무대다. 신재효 선생의 도리화가(桃李花歌)를 모티브로, 도리화 귀경가세 연희마당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창이라는 문화 토양에서 자란 농악(풍물)을 바탕에 두고, 탈춤, 소리, 기악, 인형극 등 우리 전통 연희의 거의 모든 장르가 흥겨운 협주를 빚어냈다. 다채롭게 피어나는 소리를 푸지게 품는 것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농악, 고창농악이다. 그 한가운데 고창농악보존회가 있다.△먹고 놀고 자게 하는 고창농악의 힘먹놀자프로젝트라고 해요. 지역의 것을 먹고, 지역에서 놀고, 잠자게 하자는 프로젝트죠.고창농악보존회 이명훈(48세) 회장이 4년만에 확연히 달라진 무대 밖을 이야기한다. 한옥자원활용사업을 통해 고창 바깥 사람들에게 지역의 다양한 먹을거리, 놀거리, 체험거리, 잠잘거리를 연계하고 그 정점에 고창의 문화와 예술, 고창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공연무대를 놓는 시도다. 그러다 자칫 농악의 농익은 맛과 흥이 깨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일었다.고창농악 하나만 가지고 25년 넘게 살아온 사람들이에요.고창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4반세기를 붙들어온 고창농악 힘은 다른 장르의 다양한 힘을 품을 만큼 무르익었단다.고창농악보존회가 국악예술단 고창과 함께 고대하며 기다려온 무대, 3개월 준비 끝에 지난 5월30일 첫 무대를 열었다. 농악의 진일보한 형태다!, 일단 재밌다! 등으로 반응은 생각했던 것 이상 컸다. 지역마다 수천 년 쌓아온 이야기가 가진 근본적인 힘이 어떤 새로운 힘과 만나느냐였다. 이제 두 번째 공연, 앞으로 9월까지 갈 길이 멀다. 9월 넘어 앞으로 10년 100년, 갈 길의 추이는 매우 맑음이다. 그동안 고창농악이 걸어온 옛길을 더듬는 것으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고창에서 찾은 굿의 신천지고창농악보존회의 자취는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훈 회장의 귀향으로부터다. 그가 대학풍물패에서 굿을 배우러 전국을 떠돌면서 부터다. 그리고 그가 돌아본 그의 고향 고창의 굿(농악), 이기화 전 문화원장과 만남, 황규언 선생과 만남으로부터다.아, 대한민국 어디서도 아닌, 내 고향에서 굿의 신천지를 만났어요.겨우 한 두 명이 명맥을 이어가는 줄 알았던 고창 굿이 아니었다. 벌써 1980년대 중반부터 농악대를 만들어 40명이 악기마다 빼어난 실력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 회장은 고향의 소리를 몸으로 몸으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몸이 늦을새라 고창농악의 연행과정을 녹음하고 녹취하는 자료정리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창농악의 거대한 아카이브. 이 일에 함께한 고창농악 이수자들이 지금은 고창농악의 든든한 바탕이다. 이들이 30~40대가 되는 동안, 황규언 선생을 비롯한 60~70대 고창농악 연행자들은 이제는 거의 고인이 되었다.△15년만에 짓는 새집그동안 정말 갑갑했어요. 이제 15년만에 집이 지어지는 거예요.지난 2000년 옛 폐교에 남루하나마 전수관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15년, 전수관 10여명 식구들과 고창의 수백 고창굿 연희자들, 나아가 전국의 수만 고창굿 전수생에게 번듯한 공간이 조성되는 것이다. 25년 동안 고창 선배 연행자들에게 시시콜콜 배운 몸짓 소리짓이, 고창굿을 엮은 여러 권의 책과 수백의 자료가, 이들의 몸에서 언젠가 솟구칠 공간을 기다리며 그 갑갑한 시간을 잘도 버티었다. 전수와 공연의 장으로 쓰일 공간이 마련된다. 이제 지어지는 새집과 고창굿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숙제다.이 과제는 비단 고창농악보존회만의 것은 아니다. 고창 사람 모두의 몫이다.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공간에 걸맞는 인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고창에서 대한민국으로 세계로 굿의 향방을 어떻게 건강하게 구현할 것인가, 고민하는 단위가 달라졌을 뿐,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굿치는 마을, 굿마을의 새로운 꿈집이 지어지는 마당에, 이명훈 회장에게는 숙제같은 꿈이 하나 더 있다. 굿치는 마을, 굿마을이다. 굿이야말로 마을에서 사람들로부터 피어나던 것이다. 누구네 정지(부엌)에서 누구네 시암(샘)에서 누구네 장꽝(장독대)은 물론이고 당산마당에서, 논과 밭(풍장굿)에서 신명나게 피어나던 것이었으니.이제 굿 공부하는 알맹이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 가까이 보존회 젊은 가족들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고, 차차 예술가, 문인, 연희전문가가 모일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같이 모여 소리공부하는 마을이 될 것이다. 그러다 굿과소리작은도서관도 생 다양한 문화인프라들이 모여들면 된다. 이 때쯤이면 지금 고창읍성 한옥마당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먹놀자프로젝트로 확장하는 시도가 굿마을에서 고스란히 구현되는 것이다.△세기를 넘어 일어나는 풍류의 부흥신재효 선생의 동리정사에는 시시때때로 전국에서 연희자들이 모여 가객으로 살았답니다. 고창의 품이 그만치 넓고 깊었기 때문이죠.이명훈 회장은 신재효 선생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고창의 풍류는 고창의 여러 중부자들이 자신들의 후원으로 소리를 품어 고창의 흥으로 키워낸 것이라 한다. 고창사람들의 넉넉한 품에서 연희자들을 먹이고 재워 세상으로 펼쳐놓은 것이다.지금 그 부흥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다. 고창풍류의 부흥, 이제 시작이다. 그 옛날 조선을 풍미하던 힘이, 100년도 훨씬 지나 이 땅에서 다시 길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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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6.10 23:02

세계태권도대회 무주 유치 '일등공신' 이연택 새만금위원장 "전북 도약 계기…도민 도전의식·응집력 꼭 필요"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지난달 무주로 결정되면서 대회 유치위원장을 맡았던 이연택 새만금위원장이 관심을 끌고있다.중앙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작은 국제대회 한 종목에 불과하지만 지역의 입장에서 보면 모처럼 국제대회를 유치했는데, 그 과정에서 국내 체육계의 원로가 직접 유치위원장을 맡아 나섰다는게 화제였다. 굵직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체육계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통하는 이연택 위원장을 지난 3일 종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저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2017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유치위원장을 맡아 유치에 성공하면서 도민들의 관심이 커졌습니다.“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월드컵 유치나 대회 진행을 주도적으로 했던 사람으로서 특정 종목 유치위원장을 맡는것에 대해 사실 부담이 컸습니다. 체육계 인사들은 대부분 ‘무주 유치는 결코 쉽지않은 싸움이고, 잘해야 본전이다’며 유치위원장을 맡지 않았으면 하는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향인 전북이 어렵다는 말을 들으니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침체돼 있던 전북이 뭔가 한번 해보려는 것에 고무된 것도 사실입니다. 프레젠테이션때 대회 보완 방향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면서 사람들 표정을 보니까 성공했구나 하는 감이 팍 왔습니다. 문제는 유치가 중요한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존경받는 태권도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춰야 합니다.”-현재 새만금위원장도 맡고 계신데 사실 무주태권도원과 새만금은 물리적인 거리도 그렇고, 성격도 전혀 달라 보입니다.“사실 크게보면 전북의 동쪽에는 태권도원이 있고 서쪽으로는 새만금이 있어요. 우리가 잘하면 전북의 양대 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동쪽은 태권도원을 중심으로 세계태권도 성지로 만들어가고, 서쪽은 새만금 사업을 통해 대중국 전진기지의 위상을 굳힐 수 있는 것입니다. 전혀 별개처럼 보이지만, 태권도 성지의 육성과 새만금 사업은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보완 기능도 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대한민국이 도약한 것처럼, 전북이 이번 대회를 통해 한번 점프해야 합니다.”-지역이 어려울때마다 유치위원장을 맡아 주시고 계십니다.“프로야구 10구단 유치에 나선 사람으로서 실패의 경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전북 출신 30대 기업 하나도 없고, 컨소시엄조차 안된다고 해서 고민끝에 어렵게 찾아낸 것이 바로 전남광주와 연고가 있는 부영이었습니다. KT가 수원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공기업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해서는 안된다’며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넣었습니다. 야당 의원 10명 남짓한 전북과 달리, 수원은 여야 의원이 무려 50여명에 달했고, 3선은 기본이었습니다. 이런 여건이었지만, 막판에 전북이 단합하고, 가열찬 투쟁력을 보였더라면 명분에서 앞섰기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배팅에 약한 부영의 소극적인 태도가 실패의 한 원인이었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지도자나 도민들의 단합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였습니다.”-전북은 무주 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개최했고, 그 여세를 몰아 동계올림픽까지 도전했던 일도 있습니다.“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통해 무주-전주 도로가 뚫리고, 전주에 빙상경기장이 생긴것은 하나의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하지만, 여건이 안되는 상태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욕심이었습니다. 제가 대한체육회장으로 있을때 일부 정치인들은 무조건 전북으로 동계올림픽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경우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지만 동계올림픽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북의 경우 각종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데 당신이 대한체육회장이니 무조건 해내라고 닥달하는데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무조건 정치논리로 해서는 안됩니다. 철저하게 논리에 근거해서 설득하고, 열정을 보여야만 대회 유치도 가능한 것입니다. 앞으로 전북은 대구나 광주처럼 계속 도전해서 장기적으로 굵직한 대회를 유치해야 합니다. 동계올림픽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무주에 태권도원이 오게 된 계기가 됐어요. 동계올림픽은 잠시지만, 태권도원을 유치해 무주를 태권도의 성전으로 만들면 영원히 전북이 세계 태권도인의 고향이 될 수 있고, 결국 지역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봤습니다. 태권도원 후보지 몇곳이 검토될때 저는 무주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고, 결국 성공했습니다.”-끝으로 도민들께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대학때 가인 김병로와 인연이 돼서 뵌적이 있는데 고향의 선배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영감을 얻은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엔 하숙집 하나 구하는데도 전라도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가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를 보면서 역사의식, 애향의식이 커졌습니다. 앞으로 도민들이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강한 응집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단합하고 서로 돕고해서 잘 사는 전북, 밖에서 인정받는 전북을 만드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연택 위원장은] 올림픽·월드컵 유치 '주역' 고향 위한 일 언제나 '앞장'‘010-XXXX-2002’이연택(79) 위원장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다.전화 번호 끝자리 ‘2002’는 한일공동월드컵때 월드컵 조직위 공동위원장을 지냈던 그에게 2002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총회에서 88올림픽이 결정되던 역사적인 순간, 유치 실무책임자로서 진한 눈물을 흘렸던 그가 20년후 다시 거둔 결실이 바로 2002 월드컵이기 때문이다.조상대대로 고창 성내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생활해 왔기에 사람들은 그의 고향을 고창으로 알고있다.하지만, 이연택 위원장이 실제 태어나고 10년 넘게 자란곳은 김제다.부친 직장으로 인해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4학년까지 김제중앙초를 다니다, 정읍 동초를 졸업했다.이후 전주북중, 전주고, 동국대 법대를 졸업했다.7남매중 6번째인 그는 큰형(이길연 전 전북부지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그의 큰형은 고창군수, 김제군수, 전주시장을 지냈으며 공직자의 표상이었다고 한다.이 위원장은 공채를 통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행정요원으로 공직을 시작, 30년 넘게 행정가로 활동했다.또 한편으론 30년 넘게 체육인으로 활동했다.대통령비서실 행정수석비서관, 총무처 장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노동부 장관, 2002 한일월드컵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제34대·제36대 대한체육회 회장, 재경전북도민회 회장,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새만금위원장을 맡고있다.이 위원장은 장·차관으로 있을때부터 고향 후배를 잘 챙기고,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좌고우면 하지않고 발벗고 나선 것으로 유명하다.상대를 배려하는 소탈한 성품에, 풍부한 인맥을 바탕으로 현재 출향인의 원로격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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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5.06.08 23:02

[지평선산단, 분양률 70% 도전] 산업인프라 확충·정주여건 개선…최고의 투자환경 시급

김제지평선산업단지(이하 지평선산단)가 지난 2009년 지정 승인된 후 2010년에 착공, 5년여만인 올해 준공해 산업도시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등 본격적인 지역발전을 견인해 나가고 있다.김제시와 전북개발공사, (주)한양컨소시엄이 공동 출자하여 설립한 지앤아이 (주)가 시공시행한 지평선산단는 총사업비 2994억원을 투자, 2986㎡(90만평) 규모로 조성됐으며, 주로 식료품제조업을 비롯 트레일러, 첨단부품소재, 자동차 기계산업 등이 입주하고 있다.산업용지 분양가의 경우 3.3㎡당 40만원선으로 타 지역에 비해 저렴하고 인근 호남고속도로 및 국도 등에 인접하여 교통이 편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지난 2009년 1월 지식경제부로 부터 일반산업단지 내 99만㎡의 자유무역지역을 지정받아 첨단기계, 고도기술 부품소재, 발광다이오드, IT업종의 외국인투자기업 및 수출중심기업을 유치할 교두보 마련으로 특화된 산업단지의 기반을 갖추고 있다.또한 첨단농기계클러스터 구축사업이 지평선산단 내 35만㎡ 규모로 확정 조성 돼 국내 유일의 IT융합 농기계종합기술 지원센터를 비롯 친환경 차세대 고성능 농기계개발 산업의 거점 확보와 농기계 관련 기업유치가 기대된다.지평선산단 준공으로 전주익산군산김제를 잇는 T자형 산업벨트 전략의 중심이 구축됐고, 기업유치가 활성화 되면 2만5000여명의 고용유발 효과 및 4조7000여억원의 생산소득창출로 김제시는 산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될 전망이다.지평선산단에는 현재 (주)일강을 비롯 10개 기업 및 5개 연구센터, 국가기관이 입주했거나 분양계약이 완료된 상태로, 현재 60%대의 분양률을 보이고 있다.김제시와 지앤아이 (주)는 올해 10만평을 분양, 분양률을 70%대로 끌어올린 후 오는 2018년까지 100% 분양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그러나 산업인프라 및 정주여건이 부족하여 조기 분양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 돼 김제시 및 지앤아이 (주)의 적극적인 분양책 마련이 촉구된다.△지평선산업단지김제시는 새만금 개발이라는 시대적 호기를 맞아 김제지역 경제 생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산업인프라를 성공적으로 조성했다.국토의 중심이며 새만금개발의 최연접 지역에 위치한 지평선산단은 빠른 시일내에 분양을 완료하여 경제규모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전북도의 신흥 산업도시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자유무역지역지평선산단 내 국내 7번째로 조성된 김제자유무역지역은 저렴한 임대료(무상 제공)와 관세특례 및 각종 세제혜택을 무기로 글로벌 외투기업과 수출전문기업을 김제로 유치 하게 된다.중국 및 동북아 수출전진기지를 목표로 30만평 규모로 조성된 자유무역지역은 동북아 수출 전진기지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고, 부지 내에 건축중인 표준공장은 국내외 첨단벤처 기업들의 최적 투자처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예상된다.△뛰어난 투자유치 인프라 구축지평선산단이 기업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성장잠재력을 통해 김제의 미래가치가 인정 받고 있는 것으로, 우선 국가적 프로젝트인 새만금개발의 최고 수혜지역이며, 새만금을 뒷받침할 전북권 유일의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드 넓은 평지는 언제든 대규모 산업인프라를 조성할 준비가 돼 있고 서해안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산업도로를 통해 전북권 산업벨트의 한 중심에 자리 잡아 전북권 최적의 물류망을 구축 하고 있다.이밖에도 동북아시아 최대 수심지역에 건설중인 새만금신항과 지평선산단을 포항까지 연결하는 새만금포항고속도로는 소외된 전북의 산업경제 수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제공 하고 있다.△분양가 지원세금감면지평선산단에 입주 하는 기업은 저렴한 분양가 뿐만 아니라 최대 20%의 분양가를 지원받을 수 있고, 전주익산군산완주에 비해 시설투자 보조금을 최대 10% 더 지원받을 수 있는 뛰어난 인센티브 강점을 지니고 있다.또한 지난 3월 중기청으로 부터 지방중소기업특별지원 지역으로 재지정을 받아 지평선산단에 투자 하는 중소기업은 법인세 및 소득세를 4년간 50% 감면받는 세제혜택이 전국 어디와 비교해도 앞서는 투자인센티브를 제공 하고 있다.△투자유치 행정력 집중김제시는 지난 2월 조직개편을 단행하여 투자유치 전담부서를 신설한 후 투자유치 부터 인허가, 사후 관리까지 원스톱 투자유치 협력 시스템을 구축 하고 있다.△분양을 어렵게 하는 문제점여러가지 호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평선산단의 원만한 분양을 저해 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타 지역 산단에 비해 산업인프라가 부족 하고 정주여건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김제시와 지앤아이 (주)는 이를 해결 하기 위해 산업인프라 구축을 갖추고 정주여건을 개선 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발굴 중에 있고, 입주 하는 기업의 편익을 도모 하기 위해 타 지역이 제시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방안을 마련중에 있다.● 이건식 김제시장 "성공적인 투자유치 지역경제 살리겠다"이건식 김제시장은 지평선산단의 성공적인 투자 유치를 통해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이 시장은 지난 2008년 지평선산단을 본격적으로 추진할때 까지 겪었던 어려움을 생각하니 참으로 눈물겹다면서 비록 국내외 경기침체와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로 어려움이 따르겠으나 최선을 다한다면 지평선산단의 조기 분양을 통한 김제 산업구조의 업그레이드는 결코 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그는 김제시가 올해 11개 기업을 유치한 성과는 지평선산단의 투자가치를 인정 받은 것으로 인접에 조성중인 민간육종연구단지와의 시너지는 새로운 대규모 권역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고, 다양한 간접투자 효과와 어우러져 낙후된 김제시의 서비스산업과 소비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이 시장은 지평선산단이 (주)한국투자증권으로 부터 대출받은 1600억원 중 300억원을 지난 4월 갚았고 금년말에 300억원을 또 갚을 예정이다면서 또한 2016년에 600억원, 나머지 400억원은 2017년까지 전부 상환할 계획으로, 지평선산단의 분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조기 분양을 완료하여 지평선산단이 김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효자 산단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 기획
  • 최대우
  • 2015.06.03 23:02

전북일보 창간 65주년 축하 메시지

● 송하진 도지사 "전북발전 힘찬 항해, 든든한 길잡이 역할 기대"전북일보 창간 65주년을 축하합니다.전북일보는 1950년 창간된 이래 지역사회와 언론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습니다.최근에는 급변하는 매체환경에 신속히 대응하면서도 정확한 의제설정, 깊이 있는 보도, 지역문화 창달을 통해 언론 본연의 역할과 책임에도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지난 시간 도민과 함께 호흡하며 걸어 온 서창훈 회장님을 비롯한 전북일보 가족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지금 전라북도는 생동하는 기운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상대적 낙후를 딛고 자랑스러운 역사와 빛나는 창의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식문명사회의 새 장을 열고 있습니다.삼락농정, 토탈관광, 탄소산업으로 전라북도만의 혁신과 비전을 창조하고 있습니다.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이후 20년 만에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유치해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거센 바람 물결 가르는 그때 오면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 건너리라(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 장풍파랑회유시 직괘운범제창해)는 이백의 시처럼, 전북발전의 돛 높게 달고 우리 모두가 어려움 함께 헤쳐나간다면 생동하는 전라북도의 미래도 멀지 않을 것입니다. 전북일보가 지난 65년간 전라북도와 도민과 함께 해왔듯이 앞으로도 이 힘찬 항해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믿습니다. 거듭 창간 65주년을 축하하며 전북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김광수 도의장 "도민 자긍심애향심 높이고 미래의 희망확신 심어주길"전북일보 창간 65주년을 200만 전북도민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 동안 지역사회발전을 위하여 건전한 여론형성과 언론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해 오신 서창훈 회장님, 윤석정 사장님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전북일보는 다양한 계층과 지역을 아우르며 우리사회 공기로서의 역할에 노력해 왔습니다. 그늘진 곳과 소외된 이웃들을 어루만지는데 앞장서며 언론의 사명인 정론직필로 도민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또한 전북 현안들을 날카롭게 제기함은 물론 건강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며 대중커뮤니케이션의 풀뿌리로서 전북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앞으로도 우리지역의 객관적이고 충실한 시대의 증인으로서 도민들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잘 조화시켜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고 미래발전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심어주기를 기대합니다.아울러 건전한 비판은 물론 균형 잡힌 보도와 적극적인 대안 제시로 우리 지역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주역이 되어주길 바랍니다.무엇보다 전북을 대표하는 여론의 대변자로서 지방자치시대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 도민의 화합과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저를 비롯한 도의회 의원들도 도민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왕성한 의정활동으로 전북일보의 지면을 채워나가는데 크게 기여하겠다는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 번 창간 65주년을 축하드리며, 전북도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정론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승환 교육감 "도내 대표 정론지 위상 확고 전북 교육의 조력자 역할을"전북일보 창간 6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전북일보는 현대사의 비극인 625가 발발한 해에 창간된 이후 우리 사회의 공론을 이끌면서 지역의 발전을 앞장서 이끌어 왔습니다. 특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는 변화와 개혁을 통해 전북의 대표 정론지이자 대변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였습니다.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사회의 여론을 이끌어 언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 온 서창훈 회장님과 모든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교육정책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합니다. 교육은 미래 우리 사회를 이끌 인재를 기르는 일이기 때문에 눈앞의 성과만을 살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심지어 정치적경제적 논리가 개입할 경우에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 10명 중 6명이 교육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정권에 따라 교육정책이 바뀌고 졸속으로 이뤄진 탓입니다.이제라도 교육이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교직원 뿐 아니라 국민의 행복을 지향하는 정책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전북 교육이 아무리 수치상 성과가 있어도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교육의 영속성과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라북도교육청이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전북일보가 그동안 전북교육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줬듯 앞으로도 늘 전북교육가족들과 함께하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길 당부드립니다. 또한 전북도민들의 더 큰 사랑과 신뢰 속에 65년을 넘어 희망찬 100년의 역사를 써나가길 바랍니다.● 김항술 새누리 도당 위원장 "도민 화합단결 통로 역할 지역의 올곧은 이정표 기대"생동하는 신록과 같은 전북일보 창간 6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라북도 대표 언론으로, 항상 변함없이 지역을 위한 올곧은 이정표가 되어주길 기원합니다.전북은 갈 길이 바쁩니다. 새만금도 잘 해야 하고, 국가식품클러스터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또 무주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전북의 대표적 미래 성장동력인 탄소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육성도 필요합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도민의 역량을 한 데 모으는 일입니다.전북이 가진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합니다.사사로움 없이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고, 지역 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는 발전적 에너지를 모아야 합니다.균형을 잃은 식단이 건강을 해치듯, 균형을 잃은 정치판도, 언론도 전북을 위해서는 존재의 이유가 없습니다.새누리당 전북도당은 포스트 새만금을 준비하며, 전북을 더욱 성장시킬 새로운 동력원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역이 고루 발전하고, 도민의 삶이 윤택해지는, 그런 희망의 길에서 전북일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싶습니다.정론직필의 바른 자세로, 시대의 진솔한 가치를 담아내는, 맑은 거울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아울러 전북도민의 화합과 단결의 통로로, 전북이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공정한 사회, 경쟁이 함께하는 건강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전북일보가 도민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받는 언론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유성엽 새정연 도당 위원장 "지역발전 견인하는데 앞장 차별화된 의제 설정에 박수"전북의 46만 새정치민주연합 당원과 함께 전북일보 창간 6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1950년 625 포연 속에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민들을 위한 파수꾼 역할을 위해 헌신해온 서창훈 회장님을 비롯한 전북일보 가족, 그리고 애독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전북일보는 65년간 전북언론의 맏형으로서 도민들을 대변해 지역의제를 설정하고 지역발전을 견인하는데 앞장 서 왔습니다. 밖으로는 대한민국 격량의 현대사를 헤쳐 오면서 산업화민주화를 생생히 기록보도하고 도민들의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차별화된 의제 설정, 현장중심의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하려 노력해온 전북일보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언론이 바로서야 대한민국이 바로 섭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세운 이 땅의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민생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진실을 정직하게 말하는 언론의 역할, 거짓을 용기 있게 파헤치는 언론의 역할, 민심을 소신 있게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내년 4월엔 총선이 치러질 예정입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정치권과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발전과 지역개발을 위한 도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시고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여론형성의 장을 제공해주시리라 믿습니다.앞으로도 전북일보가 전라북도 대표 신문으로서 더욱 더 발전하여 지방자치시대의 선도적 역할을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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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5.06.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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