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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공감] 연극으로 군산 지키는 최균·추미경 부부

8월의 한복판. 선풍기 두 대로 더위를 달래가며 제57회 정기공연준비를 하고 있는 부부연극인 최균(52), 추미경(48) 씨. 이 부부는 20년 넘게 군산에서 연극과 연극 교육에 힘쓰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작지만 사람 냄새나는 작품들을 올리고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연극을 펼치고 있다.다음 달 4일~13일 군산시 나운1동에 있는 사람세상 소극장에서 제57회 정기공연 지금, 이별할 때의 공연을 앞두고 있는 이들을 통해 군산 연극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열여덟 살 극단 사람세상=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에 지난 1997년 7월10일 극단 사람세상(대표 최균)이 창단됐다. 1998년 첫 창단공연 늙은 도둑 이야기을 시작으로 지난 4월 제56회 공연 다녀왔습니다(김민정 작) 등 연간 2-3편을 꾸준히 작업해왔다. 연출을 맡은 최균 씨는 초창기에는 작품이 완성이 되면 작은 봉고차에 세트를 싣고 배우들과 함께 순회공연도 했어요. 물론 요즘에는 작고 누추하지만 저희 소극장에서 하고 있지요. 관객수가 배우 수보다 적은 때도 있었고, 심지어 관객이 한 명도 없어서 분장 하자마자 지우고 무대에 올라가지도 못한 날도 많았구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관객과 만나고 싶어서라고 한다. 배우의 모공까지 보이는 작은 소극장에서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을 군산시민과 나누고 싶다는 최 대표의 바람이다.△열세 살 교육극 연구소 마중= 연극은 참 배고픈 예술이다. 극단 사람세상도 그러했다. 어려웠고, 배고팠다. 그래서 고민 끝에 당시 작은 수익이나마 창출했던 아동극 부문을 분리해 교육극단 놀이터를 창단했다.2009년 교육극 연구소 마중(대표 추미경)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본격적으로 교육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한 연극 피노키오와 같은 작품에서 현재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교육청 연계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초중등 교사 대상 맞춤형연수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매우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다. 추미경 씨는 문화예술이 관람 형태에서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요즘 교육연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믿음을 주는 연기자 아내, 배우를 성장시키는 연출가 남편= 최균추미경 씨 부부는 1990년대 초반 익산에 있는 극단 토지에서 선후배로 활동하다 1993년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무대와 학교와 집, 일상을 함께 하는 이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연극배우 추미경 씨는 그 누구보다 신뢰를 주는 배우죠. 아내로서는 전업 주부 만큼은 아니겠지만 바쁜 와중에 매우 잘 하고 있지요. 무엇보다 두 딸이 큰 문제없이 잘 자라주고 있어서 매우 감사해요.연출가로서 최균 씨는 굉장히 섬세해요. 그의 작품에서는 한결같이 사람 냄새가 나요. 배우이자 연출가라서 그런지 연출가의 큰 그림보다 배우의 입장을 생각해줘요. 배우를 성장시켜주는 힘이 있어요. 그런데 연출가의 아내로 살기는 참 어려워요. 연출이 안풀릴 경우 본인도 어렵겠지만 집안까지 문제가 연결되서 차라리 배우만 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남편으로서는 매우 자상해요. 가정을 꾸리며 극단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적극적인 도움을 줘요. 도움이라기보다 서로의 역할 구분이 잘 되어 있어요.△문화예술 대도시 집중 해소 첨병= 이 부부는 한때 소극장 운영이 너무 힘들어 잠시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군산 내 유일한 민간 소극장으로 문화예술인에 대한 자부심으로 다시 열였다. 또한 자신들의, 연극의 고향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군산대 연극부에서 연극을 시작한 최균 대표는 왜 문화는 대도시에만 집중돼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지역에서 연극한 후배들이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전주 만해도 할 사람이 많다며 내가 없으면 소극장 연극을 보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이들의 꿈은 소극장과 극단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부안지역에서 새로운 추억을 심는 일이다.최 대표는 후배 가운데 단체를 이끌어줄 친구가 있으면 넘겨주고 보이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로 남고 싶다며 이후 고향인 부안에 가서 한 여름밤의 호러연극제와 같은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 지역민관광객과 추억을 만들며 남은 인생을 보내는 게 소망이다고 밝혔다.

  • 기획
  • 기고
  • 2015.08.26 23:02

김학원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장 "현장 목소리 귀 기울여 농어업인 삶의 질 높일 것"

8월 1일자로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장으로 부임한 김학원 본부장(56)은 농어업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여 농사 짓는데 불편이 없도록 서비스 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직원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어야 농어업인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도 높아질 수 있다면서 신명나는 조직 분위기를 만드는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이제는 농업기반시설이 많이 갖춰져 공사의 업무 영역도 줄어들고 있는 만큼 새로운 업무 발굴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을 만나 올해 업무 추진 계획을 들어봤다.-시간이 다소 지났지만 부임을 축하드립니다.“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올 한 해 가뭄과 국지성 집중호우로 수확을 앞둔 농작물에 피해가 있었지만 슬기롭게 대처해 주신 농업인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의 720여 임직원들과 소통과 화합을 통해 농어업인 서비스 개선을 위해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한국농어촌공사는 1908년 설립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농어촌을 지켜왔습니다. 환경친화적인 농어촌정비사업과 농지은행사업 시행, 농업기반시설 종합관리, 농업인의 영농규모 적정화를 촉진함으로써 농업생산성 증대 및 농어촌의 경제·사회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공기업입니다. 좀 쉽게 설명드리면 농어업인들이 가뭄과 홍수 등 풍수해 걱정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안전영농을 실현하고, 영농규모 확대와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돕고 있습니다.”-올해 전북지역본부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계획이신지요.“비정상적인 관행이나 관습은 버리고 정상적인 것만을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문화를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흔히 일을 하다보면 잘잘못을 구분하지 못하고 범죄행위를 무심코 행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인간은 본디 선한 마음을 갖고 태어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못된 관행과 관습을 보고, 느끼고, 행동하면서 서서히 자신도 모르게 부패를 습득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과거의 행위를 그대로 학습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조직의 리더부터 모범이 되어 관행과 관습의 잘잘못을 따지고 개혁하려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조직 문화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구상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신지.“우리 본부에서는 모바일 청렴 카탈로그 발송 시스템을 구축해 계약 및 공사에 투명한 업무처리를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여러 제도적 장치와 노력을 통해 전북본부 직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섬기며 봉사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비정상적인 관행과 관습을 버리는 습관을 길러 청렴한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공사의 올해 사업추진 방향은 어떤지요.“전북본부는 유능한 공사, 농업인에게 꼭 필요한 공사로 탈바꿈하고자 합니다. 농업인에게 혜택이 되는 농지은행사업, 농어촌지역개발사업 등을 직원들이 숙지해 농업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급변하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농업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농업생산기반정비사업이 더 많이 필요한데 예산이 갈수록 줄고 있어 걱정입니다. 농촌용수개발, 배수개선, 수리시설개보수사업, 농촌지역개발사업 등 농업인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기본계획 수립에 총력을 다해 전북 농업발전의 근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세부적인 사업계획을 설명해 주신다면.“전북본부는 올해 총 4341억원의 예산으로 농업생산기반정비 사업에 1620억원, 농지은행사업 716억원, 농업기반시설 종합관리 사업을 위한 9만7623㏊ 관리면적에 767억원, 농촌지역 종합개발사업 811억원, 기타 유지관리 부대 및 지하수 수탁사업에 427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합니다.”-전북지역본부가 관리하고 있는 농업기반시설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전북본부는 도내 전체 농경지 14만2132㏊의 68.8%인 9만7623㏊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대규모 농지의 철저한 유지관리를 위해 저수지 412개소, 양·배수장 561개소, 취입보 623개소, 관정 등 269개소 등 총 1895개소의 농업기반시설물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용수로는 1만70㎞, 배수로는 5715㎞로 현대화율은 48%입니다. 농업기반시설의 과학적·합리적인 관리로 농업인에게 영농편의를 제공하고 영농기철 자연재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구체적으로 시설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계신가요.“농업기반시설물 1895개소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수리시설 관리원 961명을 4월1일부터 6개월간 위촉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농업용수의 원활한 공급에 지장이 없도록 각 담당시설별로 토사제거 및 수초제거, 시설물 점검정비 및 관리를 담당합니다. 또한, 저수지·배수장을 대상으로 비상대처훈련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 위기대응 능력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습니다.”-가뭄과 홍수 등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재난·재해관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재난·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은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전북본부는 농업기반시설물 1895개소의 각종 재난상황에 대비해 ‘저수지 등 농업생산기반시설 위기대응 매뉴얼’을 정비해 재난·재해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매년 시기별·분기별로 정기적인 농업기반시설물 안전점검을 통해 시설물 유지·보수와 수리시설 개보수사업으로 농업기반시설의 기능개선과 재해대비능력 향상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정적인 농업용수공급을 위해 지역별 수자원(물)관리계획을 수립해 본격 영농철인 4~9월까지 가뭄 및 수해 등 재난·재해상황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도 본부 등 10개 지사에서 재해대책(물관리)상황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끝으로 농업인과 도민들께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현장의 목소리를 즉시 반영해 농업인들의 어려움을 최소화하기 위해 ‘찾아가는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영농지원단 활동, 기전시설물 안전점검 운영, 가뭄대책 콜센터, 재해대책 상황실 운영 등 고객서비스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농업인과 도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김학원 본부장은] 새만금 근무만 18년·끝물막이 가장 기억·격의 없어 직원 신망순창 동계 출신인 김학원 한국농어촌공사 전북지역본부장(56)은 어린 시절 전주로 이사와 풍남초등학교와 전주동중, 전주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농공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 2월 한국농어촌공사에 입사했다. 농업토목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인 그의 첫 근무지는 정읍시 칠보면 구룡지구 저수지 공사 현장이었다. 이 곳에서 3년 일한 뒤 임실군 지사면 지사지구 공사현장으로 자리를 옮겨 5년간 근무했다.김 본부장의 별명은 ‘새만금의 레전드(전설)’다. 지난 1991년 11월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당시는 새만금 조사사무소)에 발령받아 새만금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잠깐씩 자리를 옮기긴 했지만 농어촌공사 재임기간 34년의 절반을 넘는 18년 동안 새만금사업단에서 일했다.그 스스로 “새만금에 청춘을 바쳤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새만금 끝물막이가 완성된 지난 2006년 4월21일을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있는 순간으로 회고했다.당시 새만금사업단 공무부장으로 공사를 총괄했던 그는 “10년 동안 물막이를 준비해 마지막 36일 만에 끝물막이를 완료했다”며 “수 많은 우여곡절과 난관 속에 이뤄진 공사여서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김 본부장은 농어촌공사 금강사업단장, 새만금사업단 환경관리실장, 본사 새만금개발처장, 새만금사업단장, 기술안전품질원장 등을 거쳤다. 업무는 꼼꼼히 챙기는 편이지만 활달한 성격에 격의없는 대화를 즐겨 직원들의 신망이 높다.바쁜 업무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 지난 2013년 전북대 대학원에서 농업토목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올해 2월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 기획
  • 강인석
  • 2015.08.24 23:02

오페라 작곡가 지성호 씨 "한국적 오페라, 판소리 고장 전주의 정체성 담아낼 것"

공연 무대에 뮤지컬 바람이 거세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뮤지컬은 다소 부침이 있긴 했으나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뮤지컬의 성장은 반갑지만 워낙 편식이 심한 우리의 문화 환경에서는 자칫 다른 장르의 침체를 불러오는 후유증을 예고하기도 한다.비슷한 시기, 우리 공연무대에서 시도되기 시작한 또 하나의 양식이 있다. 창작 오페라다. 한국적 오페라를 내세운 창작 작업은 그리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지속되어왔지만 여전히 관객들에게는 낯설고 실험적인 양식이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오페라단이 창작오페라를 제작하고 올려왔으니 양적 성장으로 본다면 그 성과가 크지만 오늘의 무대에서 관객들과 잘 호흡하고 있는 창작오페라의 면면은 그리 탄탄하지 않다.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창작오페라의 부질없는 명멸은 안타깝다.그럼에도 지난해 우리지역에서 만들어진 창작오페라가 2014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선정됐다. 〈논개〉에 이어진 두 번째 결실이다. 게다가 이 두 작품 모두 지역적 소재를 끌어들인 토종 오페라다. 이 두 작품을 써낸 작곡가 지성호씨(62)를 만났다. 그는 한국적 오페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스스로는 한국적 오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한 그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의 이야기에 판소리를 끌어들인 새로운 오페라 양식을 입혀내는 작곡가다. 판소리와 오페라가 만나는 무대. 그의 작업은 도창이 관현악단의 연주에 맞춰 판소리를 하고, 벨칸토 창법의 성악가들의 우리언어의 특징을 살려 노래 부르는, 이 순탄치 않은 노정으로 이루어진다. 대작만 5개 작품을 얻어낸 과정에서 그는 한국적 오페라 양식의 답을 얻었을까.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태리에서 만들어진 오페라의 역사를 보면 그 답은 더 확연해집니다. 나라마다 가진 언어의 독창성이 이태리 오페라를 프랑스 오페라로, 독일 오페라로 분화시킨 것이거든요. 한국적 오페라에 판소리를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언어에 의해 결정되는 음악적 양식에서 그 답을 찾고 싶습니다.완주군 구이면, 아름다운 그의 작업실 겸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는 즐거웠다. 작곡의 길에 들어선지 30여년, 창작오페라 작업만으로는 10여년. 한국적 창작오페라의 길을 내고 있는 그의 작업은 아직 외롭지만 의연했다.-정원이 참 아름답군요. 마음이 편해집니다.이곳에 들어온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설펐는데 꽃도 나무도 제자리를 찾은 것이죠. 돌봐야하는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번거롭지 않습니다.-모든 작업을 이곳에서 다 하십니까.요즈음에는 컴퓨터로 모든 과정을 다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작업실은 서재 안에 아주 작은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제가 곡감옥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문만 닫으면 바깥과는 단절되는, 그래서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곡감옥이란 이름이 재미있군요. 그만큼 고통의 시간을 거친다는 말씀이군요.오페라 작업이 시작되면 거의 1년 정도 다른 작업은 병행할 수 없게 됩니다. 감옥 생활과 다를 바 없죠. 저는 오페라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의도적으로 어떤 모임도 갖지 않거든요. 스스로 묶이는 것이죠.-이곳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습니까.시내 아파트에 살 때도 사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었어요. 하루는 잠을 자고 있는데 아파트가 들썩거리는 거예요. 2002년 월드컵 축구경기 때문이었는데, 밖을 보니 아파트 전체가 온통 불을 켜놓고 축제분위기더라고요. 그때 나만 외로운 섬에 고립된 존재처럼 여겨졌어요. 아파트에 살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그즈음 모악산을 다니다 이 마을을 만나게 되었어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집을 지어 이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낯설어서 또 마음고생을 했어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죠.-이런 공간을 마련하니 곡이 절로 써지던가요.(웃음)천만에요. 이곳으로 들어온 뒤 5년 동안은 오히려 한곡도 못썼어요. 집짓느라 안게 된 경제적 부담이 컸거든요. 집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에 회의도 컸죠. 얼마 전에야 자유로워졌는데,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의지를 세우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중요한 것은 어떤 의지를 세우느냐겠죠.-서양음악의 교육을 받고 작곡을 전공했는데, 판소리를 접목한 한국적 오페라 양식을 시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사실 이전에는 실적위주에 급급했어요. 계기가 있었죠. 우석대 심인택 교수님이 여러 번 국악 곡을 의뢰했어요. 국악은 공부하지 않은 분야여서 처음엔 거절했는데 지속적으로 권하시는 거예요. 함께 작업하면서 맞춰 가면 된다고 하시니 그 꾐에 넘어갔죠.(웃음) 한곡이 두곡이 되고, 소품이 대작이 되고.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를 만나게 됐죠.-결정적인 계기라는 것이 대서사음악극 혼불인가요.맞습니다. 월드컵이 있던 2002년 1월이었는데, 그해 월드컵 문화공연을 전주시립예술단체가 연대해서 혼불을 공연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작품 전체 중 한 부분인줄 알았는데 전체를 다 써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단호하게 거절했죠. 결국은 다 맡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책임감과 긴장감이 더해지면서 포기의 유혹이 커지고 내가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하루 3시간씩 쪽잠 자면서 겨우 완성을 했죠.-그 무대가 200명이 함께 섰던 공연이었잖아요. 성공적인 공연이었고 평가도 좋았죠.감사한 일이죠. 관객이 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공연장 계단까지 관객들이 찼을 정도로 관심이 컸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내 작품을 200여명의 전문가들이 땀흘려가면서 현실화시켜가는 과정도 그렇지만 무대에서 내 생각이 구체화 될 때의 그 희열은 정말 벅찬 감동이었어요. 곡을 통해 내 존재감이 무대 위에 구현될 때 의지가 더 단단해지더군요. 이를테면 강한 중독성 같은 것인데, 그것이 결국 다음 작품을 다시 쓰게 되는 바탕이 되게 했어요.-그 작품은 음악극이긴 하지만 오페라 양식은 아니었죠. 한국적 오페라로 판소리를 도입해 만든 첫 작품은 어땠습니까.정읍사를 주제로 한 달하 노피곰 도다샤였어요. 첫 작품이어서 대단한 열정을 쏟았는데 잘 살아나지 못했어요.-판소리를 끌어들인 오페라 양식으로서는 처음이었는데 그런 형식의 시도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행 방식이 전무하기도 했지만 판소리를 하는 분들은 구전심수로 악보 없이 소리를 익혀왔잖아요. 게다가 국악에서 기보법은 최소한의 기호일 뿐 전부는 아니거든요. 양악에서는 전부지만 시김새나 농현 등으로 구현해내는 국악은 연주자의 몫으로 이뤄지는 것들이 많죠.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속성은 그런 여지를 두지 않고 기계처럼 일정한 시간 속에서 정확하게 약속을 한 내용으로만 가능한 것이니까요.-형식도 그렇지만 국악과 양악은 기본적으로 철학이 다르지 않습니까.기본적으로 이념이 다르죠. 그래서 접목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저도 의심했어요. 그러나 기왕에 의뢰를 받은 마당이고 저는 작곡가니까 위촉자의 의도를 또 존중하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모험을 한 겁니다.-그 작품으로 가능성을 얻었습니까.그 곡을 통해서 무엇을 실험하고, 찾아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판소리 연행방식이 오페라와 연행 방식과 공통분모가 있다 해도 각자의 소리가 추구하는 본질자체가 달라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는데 그 작품을 통해서 많은 방식을 깨우쳤죠.-며칠 전에 지인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선생님의 댓글을 읽었습니다. 짧지만 명료한 분석이 국악과 양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더군요.늘 갖고 있던 생각이었어요. 전주에서 활동하는 덕분에 국악 양악을 넘나들게 되었고 그렇다보니 제 나름의 견해가 생겼거든요. 국악의 기보는 최소한의 영역이지 모두는 아니라는 것, 시김새나 농현과 같이 연주자의 해석의 몫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작곡자는 언제나 이 여지의 공간을 비어둘 줄 알아야 합니다. 서양악기는 발현되는 소리가 한번 울려 퍼지면 큰 변화가 없지만 국악기는 그 소리를 생성과 소멸까지 내면화해서 끌어올리고 끌어내리고 흔들고 꺾으면서 아주 변화무쌍한 세계를 만들어내거든요.-그런데 그 특성 때문에 판소리와 접목한 창작오페라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판소리를 끌어들인 한국적오페라가 갈 길이 멀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게 됩니다.오페라사를 보면 이태리에서 만들어진 오페라가 자연스럽게 분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오페라와 독일 오페라인데 그것의 중심축이 언어거든요. 언어의 독창적인 구조 속에서 오페라 분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저는 주목합니다.-문화 예술에 있어서 언어는 중요한 영역이죠.노암 촘스키도 모든 문화는 언어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잖아요. 우리나라에 오페라가 들어온 지 70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한국적 오페라를 정립하지 못한 바탕에는 바로 언어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들의 화두는 아마도 정체성일 텐데, 오늘의 문화환경에서 보면 모순된 점이 많거든요. 우리문화 저변에 여전히 식민의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다움, 독창성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지 않겠어요. 한국적 오페라를 구현하는 일도 마찬가지죠. 저는 그 답을 우리 모국어에 충실하자는데서 찾겠다는 겁니다. 거기에 내가 살고 있는 전주라는 지역성과 판소리의 고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싶습니다.-이 작업에 대한 음악전문가들의 관점이 궁금하군요.인색하죠. 처음에는 판소리 형식을 도창이라는 역할로 끌어들였는데, 아니리만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평론가들은 무반주로 그 부분을 처리하는 것에 대해서 작품성 운운하면서 지나치게 가볍게 처리한다고 의심했죠. 저는 판소리의 본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는데, 그래서 할 수 없이 오케스트라 반주로 도창이 소리하는 형식으로 바꾸었습니다.-무대에 서는 성악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요.어렵죠. 소리꾼 한명이 들어옴으로써 오페라의 전체 색깔이 달라지는데, 서양의 벨칸토 창법을 훈련받은 성악가들이 판소리적 언어를 습득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제 작품을 할 때는 노력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소리의 공명에 매달리지 말라고요. 그것은 본질이 아니라 일종의 테크닉이거든요. 우리 언어는 첫음절에 악센트가 있잖아요. 게다가 모음과 자음을 잘살려야 가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 자음을 소홀히 취급하면 안 되죠.-선생님 오페라에서 실상 판소리가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던데요.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입니까.판소리의 분량이 적긴 하지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죠. 제 오페라의 판소리들은 정통적인 판소리가 아니라 우리 언어를 노래화하는 것과 판소리가 갖고 있는 목소리의 색깔을 끌어들이는 것에 무게를 둡니다. 우리 독자성을 갖는 오페라를 만들어내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지역성을 갖고 있는 작곡가로서 판소리를 오페라로 끌고 오되 오페라의 전부가 아니라 부분적인 도입을 통해 한국적 오페라의 색깔을 내는데 중요한 모멘텀으로 만들고 싶어요.인터뷰는 애초의 약속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오페라를 창작해내는 과정의 지난함만큼이나 쌓아온 시간 속 이야기가 많았다. 지역에서 작곡가로 사는 이면을 듣고 싶었지만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학연과 지연이 우선되는 서열 중심의 풍토에서 회의를 단 한 번도 갖지 않았다면 거짓이지만 되돌아보면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깨달음이 삶의 큰 힘이에요.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작곡가로서 누구 못지않게 행복한 여건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성호씨는] 지역 이야기에 판소리 접목불편한 옷 입고 쪽잠 자며 곡 써지성호씨는 부여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전주로 온 이후 줄곧 전주에서 살았다. 그의 유년시절은 음악으로 차고 넘쳤다. 교회 풍금 반주자였던 고모는 늘 어린 조카를 옆에 끼고 노래 부르며 음악을 들려주었다. 돌아보면 그의 음악적 자질은 그때부터 싹을 틔운 셈이다. 공무원에서 사업가가 된 아버지는 음악에 특별한 애정과 관심이 있었다. 덕분에 형제들은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거나 피아노를 쳤다. 그가 인문계 고등학교(전주고)를 다니면서도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나섰을 때 아버지는 기꺼이 응원군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버지의 사업이 주저앉으면서 그가 그렸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동가숙 서가숙하던 시절, 울산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던 친구 누나를 찾아가 일을 도왔다. 누나의 권유로 계명대 음대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지만 적응하기 어려웠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하지 않고 때마침 신설된 전북대 사대 음악과를 다시 들어갔다.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과 작곡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진안의 고등학교 교사가 됐다. 교육자로서의 길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교사생활 6개월 만에 대책 없이 사표를 냈다. 대학 2학년 때 초등학교 동기와 결혼했던 그는 가장이었다. 1990년대 후반, 우석대 국악과 심인택 교수와 인연이 되어 국악관현악단의 연주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양식과 철학이 서로 다른 우리음악과 서양음악을 악보로 만나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우리음악의 아름다움에 그때 눈을 떴다.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전주 시립예술단체가 함께 서는 무대의 작품을 의뢰받았다. 대서사음악극-혼불이었다. 대본이 완성된 것이 2월, 그에게는 고작 3개월 남짓한 시간이 주어졌다.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을 맡은 대가는 컸다. 혼불 작가 최명희 선생 유족은 원작에 누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경고성(?) 요청을 두 번씩이나 그에게 안겼다. 부담은 배가 됐다. 깊은 잠에 들까봐 일부러 불편한 옷을 입고 하루 세 시간 쪽잠을 자면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 면도할 시간도 아까워 방치했던 수염은 그때 얻은 격전의 전리품이다.산고 끝에 만들어진 혼불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창작오페라 작곡 의뢰를 받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판소리를 접목한 한국적 오페라 작곡이 시작됐다. 첫 작품은 달하 노피곰 도다샤. 이후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논개〉 〈흥부와 놀부〉 〈루갈다〉 등 10여 년 동안 대작만도 5개가 창작되어 관객들을 만났다. 오페라에 판소리를 접합시킨 독특한 양식은 한국적오페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난해 전주의 호남오페라단 공연으로 전주와 서울에서 발표된 루갈다는 지성호식 창작오페라의 정점으로 평가 받았다. 창작 기간만 2년이 넘게 걸린 〈루갈다〉는 〈논개〉에 이어 2014년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선정되는 기쁨을 안기도 했다.음악미학을 담은 책을 내고, 오페라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보다 더 아름다운 한국적 창작오페라를 만들어내는 일이 남은 과제. 22년 전, 작곡에만 온전히 몰두하기 위해 직접 짓고 이사한 완주군 구이면 작업실을 겸한 자택에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행복한 작곡가로 살고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5.08.21 23:02

[변화&소통] 성인 문해교육

〈꽃을 보면〉꽃을 보면 마음이 좋아요.언제나 꽃을 보면 즐거워요.꽃을 보면 내 마음도 향기로워져요.꽃이 피고 지는 모습도 신기해요.방긋 방긋벙긋 벙긋꽃이 피면내 마음도 꽃같이 피어요.지난해 전주시평생학습관에서 펴낸 성인 문해교육 자료집 인생톡톡 어르신 위대한 스토리텔러에 수록된 강○○ 어르신의 글이다. 이 자료집에는 15개 기관에서 한글을 배우신 어르신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다. 감동과 웃음도 가득차 있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인생이 들어있다.새마을부녀회에 가서 봉사도 하고,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도 글을 몰라서 글씨를 쓸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는 어르신은 봉사하다가 알게 된 노인복지관에 61세가 되어 등록해서 글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쓰셨다.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서 배움의 행복이 느껴진다.재미있는 글 중 하나가 전주 서원노인복지관 박○○ 어르신의 글인데, 제목이 바락공부 -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나 남동생에게 공부를 양보해야 했고, 서러워서 가출도 생각했지만 지금 복지관에 다니면서 한글 공부에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늙은 친구들이 이제 배워서 뭐하려고 하냐고 하지만 죽는 날까지 공부하겠다며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딱자를 어찌나 크게 강조해서 쓰셨던지 글자에 마음이 묻어나왔다.글을 읽으면서 성인 문해교육은 시인을 만드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세상을 읽게 만드는 교육인 것이다.문해는 문자해득을 뜻하지만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어르신(77세)은 글자를 배우고 나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셨다. 그동안 출석부 체크에 이름 쓰는 것이 무서워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글을 익히신 후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뿐 아니라 처음엔 단순 일자리에서 일하시다 나중에는 어린이집 아이를 돌봐주는 돌보미로 활동하셨다.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전주시 평생학습관에서 성인 문해교육을 담당하는 최윤옥 강사(58시인성인 문해교육사)는 얼마 전 인천에서 배달 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한글을 배우고 있는 최○○ 어르신의 큰 딸이 보낸 편지에는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어머님을 향한 애틋한 심정과 글을 배우면서 변화되어 가시는 어머님을 향한 기쁨을 담고 있었다. 이제는 어머님께서 손주들에게 스마트폰으로 문자도 보내고 사진도 전송하며 행복해하신다고 편지로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14년째 어르신들에게 문해교육을 해 온 최윤옥 강사는 어르신들과 함께 변화를 체험하며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한다. 자녀들은 의사, 박사, 교수로 키워내고도 정작 자신은 글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글을 배우러 오실 때는 조심스럽고 위축되어 있던 어르신들이 글을 배우시면서 나 공부하러 다녀!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존감을 회복하신다는 것이다. 집안에, 내안에 갇혀있던 울타리를 벗어나 공부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또한 문해교육은 메마른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세우고 봉오리를 맺어가는 과정과 같아서 굳어진 손과 약한 시력, 부실한 허리와 무릎을 가지고도 학습의 열매를 위해 정진하며 성장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자신이 더 배우고 있다고 한다.한 어르신은 큰 딸이어서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에 학교를 못 다녔는데, 이제 한글을 배운다고 하니 동생들이 학용품을 사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 어르신은 글을 몰라서 자식들이 숙제를 가르쳐달라고 해도 바쁘다고 핑계대며 못 가르쳐줘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다시 손자들을 돌보게 되었다고 한다. 글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옆집 언니의 소개로 전주시평생학습관 문해교실을 알게 되어 2시간만 남편에게 손주들을 부탁하고 글을 배우고 있다. 자신 있게 이름과 주소와 주민번호를 쓰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며 기회만 되면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다.하루도 결석하지 않는 김○○ 어르신(87세), 날마다 일기를 쓰시는 김○○ 어르신(76세), 자녀들을 모두 유학까지 보내시고 지금 공부하니 숙제도 즐겁다는 이○○ 어르신(70세) 등 모두 학구열이 대단하시다. 나중에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분도 계신다.현재 전주시에는 21개 기관이 성인 문해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전주시와 전주시 평생학습관은 지난 4월부터 찾아가는 성인 문해교육을 5개 경로당에서 시범 운영했다. 생각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좋아하셨고, 이 사업이 계속되기를 원하셨다.흔히 우리 주변에 글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주에서도 인구의 10% 정도의 비문해자가 존재한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문자를 해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문서화된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전주시는 올해 성인 문해교육 조례를 제정해 문해교육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제 문해교육에 대한 예산확보를 통해 체계적인 문해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문해교육사를 양성하고 재교육해야 하고, 찾아가는 문해교육을 확대해야 한다.30년 동안 문해교육에 앞장서온 전주주부평생학교 박영수 교장(55)은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돼 배움에 한이 맺힌 사람들에게 자기계발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갈수록 후원자가 줄고 정부와 자치단체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이 걱정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조성해 학생들이 배움의 길에 정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전주시평생학습관 성인 문해교육을 맡고 있는 오충렬 담당은 문해교육은 인간이 자유를 찾아가는 지적모험이다면서 지금도 여전히 가난과 불평등 때문에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 함께 지적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성인 문해교육이 필요한 분은 전주시 평생학습관(241-1123)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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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0 23:02

[이색&공감] 최진성·달문 작가의 '릴라학교'

2000년대 초반 도내에서는 다소 생소했던 공공미술을 시작해 15년 남짓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우직한 사람들이 있다. 문화기획자 최진성 씨(44)와 달문 씨(46). 이들이 공동기획하고 있는 모리에서다는 주5일제 수업에 따라 매주 토요일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에서 아동, 청소년 및 가족의 건강한 여가활동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운영되는 토요일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이다. 춘포는 역사다라는 주제로 벌써 3년째다.춘포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많이 와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 널찍한 마당이 없는 고만고만한 집들, 차 한 대가 빠듯이 지나갈 수 있는 좁다란 길. 여느 시골동네와 별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마을 초입에서 목적지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고개 내밀어 보는 이 없이 한적하기 그지없다.△터에 사람의 무늬를 새기다이들이 춘포지역을 활동지역으로 고집스레 고수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驛舍)인 춘포역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14년 세워져 대장촌으로 불릴만큼 익산 최대 곡창지대였던 춘포의 수탈 역사를 대표하는 건물로 최초의 간이역이다. 지금은 폐역이 돼 소외된 공간으로 을씨년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이밖에도 에토주택, 김성철 가옥 등 일제 식민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현재는 한 가구 구성원수가 평균 2.19명이고 대부분이 노부부, 독거노인이다. 인근에 위치한 춘포초등학교도 전교생 57명, 천서초등학교는 50명으로 가까스로 폐교 위기는 넘겨 운영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을은 조용하기 짝이 없다. 아들딸에게 보낼 정도 소량의 텃밭을 가꿀 뿐 농사가 주요 생계수단이 아니다보니 마을 사람끼리 노작으로 만날 기회도 줄은 지 오래다.달문, 최진성 씨는 이곳에 예술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역사적 공간을 바탕으로 재발견되는 삶의 경험이 주는 풍요로운 추억과 기억이 세대를 넘어 소통하고 지역 사람의 발걸음과 오고가는 이야기로 새로운 무늬를 만들고 싶어서다.춘포마을 안쪽에 66㎡가 채 안되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슬라브집, 660㎡ 남짓 마당에는 마늘이 빼곡히 심어 있었다. 사람이 한참을 살지 않아 성한 문짝 하나 없었고 어디가 방이고 어디가 부엌인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온갖 쓰레기와 폐자재가 뒤덮였던 공간이었다.△예술가와 협업으로 꾸민 주민커뮤니티 공간마을로 한참을 들어가니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8월 한낮 땡볕, 모자하나 쓰지 않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곧 쓰러질 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그곳은 몇 개월 전 심란했던 공간과는 달리 몰라보게 바뀌어 있었다. 마늘로 무성했던 땅은 이제야 흙색을 보였고 바로 옆 폐가였던 집은 전시장을 방불케하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달문, 최진성 작가가 얼마나 이 공간에 애착을 가지고 에너지를 많이 쏟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산스크리트어로 논다는 의미의 릴라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간은 그들다웠다. 무심하게 놓인 것 같지만 시선을 멈추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모리에서다는 전국 단위의 작가공동체다. 태도가 교육을 만든다를 모토로 지역 문화 읽기, 지역 문화예술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역민 커뮤니티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모임이다. 작가간, 지역간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협업이 광범위하게 이뤄진다는 점이 이 단체의 특징이다. 이번 작업에도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 아티스트 곽동열 작가가 참여했다. 주민이 다양한 영역의 외부 작가를 만나고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문화, 예술의 다양성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취지다.달문, 최진성 작가는 현재 작업하고 있는 춘포를 단순히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공간으로만 해석하지는 않는다.춘포는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입니다.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새로운 무늬로 입혀지도록 하고 싶습니다.그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작업의 연속이다. 그동안의 교육방식이 그러했듯이 작가의 시선과 작업의 태도로 공간을 재구성하는 커뮤니티 아트의 원형을 교육으로 활용한다.△삶의 태도를 나누는 학교릴라학교는 마을학교다. 지역민의 일상적 삶의 태도를 서로 배우는 것이 목표이다. 여기서는 학생, 교사가 따로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 친구에게서 배우고 마을 주민인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고 배운다. 기획자 최진성, 달문 작가도 마찬가지다.그러기 위해 커뮤니티 공간은 가장 나다운 내가 있어야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마을 사랑방처럼 편안하게 들어와 쉬기도 하고 일상을 얘기하고 놀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상상력을 주는 곳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현재 660㎡ 남짓 마당에는 놀이를 위한 조형공간이 폐목재로 뚝딱뚝딱 만들어지고 있다. 최진성, 달문, 곽동열 작가가 마을주민과 함께한 작업물이다. 마을 주민을 움직이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젊은 친구들이 매일 와서 뭔가는 하는 거 같은데,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셨죠. 그런데 수 개월간 한결같은 작업에 더운데 애쓴다며 물도 건네고 과일도 가지고 오시고 도대체 뭐 하냐며 말도 거시기 시작했죠. 이것이 커뮤니티의 시작입니다.이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예술이나 교육은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로 사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의도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태도를 통해 서로 배우고 성장해가죠. 저마다 지닌 무늬로 또 다른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최진성 작가는 몇 개월 후 릴라학교에 오면 아마 또 많이 변해있을 거라 했다. 서로의 상호작용으로 어떤 조형물이 만들어 있을지 자신도 가늠할 수 없단다. 소통과정이 고스란히 춘포마을 한 켠의 터무늬로 남게 돼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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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9 23:02

부임 1년 맞은 김제 출신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 "전북, 다양한 문화자원 잘 가꾸면 경제적으로 생동할 것"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이 각종 문화행사로 떠들썩하다. 문화재는 최고의 교육, 관광자원이자 힐링자원이라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요즘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창경궁 야간 개방, 경주 안압지, 고창 고인돌 등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들은 규모와 내용이 각기 다르지만, 국가나 지역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백제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를 계기로 문화재청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부임 1년을 맞은 전북 출신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591급)을 만나봤다.-광복 70주년을 맞아 815를 전후해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시행중인데, 그 취지나 배경은 무엇입니까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에 단절, 훼손된 문화재를 찾고, 복구하기 위한 사업으로 일제 강점기 단절된 무형유산 사례와 가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 개최, 일제 강점기 훼손된 남원읍성 북문, 안동 임청각, 강릉 대호부 관아를 2025년까지 복원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수립 지원할 계획입니다오는 20일까지 경회루 성하에 물들어 덕수궁 ,석조전 빛의 옷을 입다 등 고궁 활용 축제를 개최하고, 전주의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다시 찾은 빛이라는 공연을 통해 힘찬 미래를 도약하는 염원을 전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특히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던 장소인 중명전에서 고난을 넘어 미래로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30년 넘게 문화재 관련 업무를 추진하면서 안타까운 순간과 또 보람을 느낀 경우도 있을셨을 것 같습니다.2001년 서울 풍납토성 안 재건축부지와 경주 손곡동 일대 경마장부지 보존 결정 때 담당 계장이었는데, 당시 아파트 재건축 부지에서 백제 초기 왕성으로 보이는 유물과 유구가 확인돼서 그 지역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했습니다.이로 인해 재건축 사업이 중단되고, 서울시와 협의를 통해 부지 매입을 통한 주민보상을 해야 했습니다.재건축 무산에 따른 민원에 대해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보상 예산을 원만히 확보해서 결과적으로 문화재도 보존하고 주민보상도 할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하지만, 보존과정에서 뜻밖에 주민에게 어려움을 주게될 때 안타깝죠.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은 양면성이 있다고 봅니다.보존 정비에 따른 갈등이 있었지만 문화재청과 자치단체와 협조를 통해 우리나라 핵심 문화재로 가꿔진 문화재로 고창 고인돌군과 남한산성을 들 수 있습니다.둘 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2000년 초중반에는 고인돌 분포지역을 국가 사적으로 확대 지정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산성을 유원지화 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습니다.하지만 자치단체와 협조를 통해 장기적 계획에 의거 정비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관리 이용되고 있는 것이 문화재 업무에 오래 몸 담은 사람으로서 보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최근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등재를 계기로 지역사회에서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지난 7월 4일 독일 본(Bonn)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됨으로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장경판전, 종묘가 처음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12번째로 등재가 됐습니다. 이번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는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충청남도 그리고 익산시 및 부여군, 공주시 등 중앙정부, 광역단체, 기초단체가 긴밀히 준비한 협력사업의 결과로 향후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에 모범사례로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전북은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고인돌유적에 이어 2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돼, 서울, 경북에 이어 세계유산을 많이 보유한 지역이 됐습니다.전북에는 인류무형유산인 판소리와 농악(임실필봉농악, 이리농악)과 공예, 한지 등이 잘 전승되고 있어 역사와 문화를 지역 발전의 큰 자산으로 활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전통공예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앞서가고 있는 것은 익산미륵사지 출토유믈에 나타난 정교한 예술성이 현재에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도내에서는 백제지구의 유네스코 등재에도 불구하고 충남권의 들러리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사실 기우입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는 두 지역이 문화를 통해 서로 협력하고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계기를 준 것이라고 봅니다. 지역별로는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을 통해 그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고, 이를 위한 경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북의 경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 유물에서 나타난 섬세한 공예적 특성, 국보인 미륵사지 석탑의 건축적인 미와 해체 복원 과정의 스토리텔링화, 왕궁리 유적의 조경적인 구성미, 농경유적의 정수인 김제벽골제, 그리고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고인돌군, 전주 한옥마을과 한지, 판소리, 공예,음식 등 무형문화유산적 요소를 잘 연계한 프로그램, 스토리 등을 만들어 확산해 나가면 될 것입니다.전북은 이미 한옥마을 이라는 성공사례가 있고,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지평선과 농경 유적의 골간인 벽골제 등 다양한 문화자원과 스토리가 있는만큼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잘 가꾸면 문화가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 생동하는 지역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김종진 차장은] 문화재 보존관리 경험 풍부한 관료, 온화함강단 겸비김종진 차장(591급)은 김제 진봉이 고향이며, 진봉초, 전주서중, 전주고,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1년 남짓 김제군청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 그는 7급 공채로 문화재관리국에서 재출발, 문화재의 보존, 관리에 가장 경험이 풍부한 관료로 꼽힌다.인상은 온화하지만 일처리가 깔끔하고 강직해 뚝심있게 원칙을 고수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1981년대 7급으로 공직을 출발, 국장(2급)으로 퇴직한 그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으로 10개월 가량 활동하다가 지난해 친정인 문화재청 차장(1급)으로 재임용됐다.공직 대부분을 문화재 관련 행정에 몸담은 그는 2000년대 초, 보존과 개발이 첨예하게 대립된 서울 풍압토성 안 재건축 부지를 사적으로 지정해 문화재 보존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특히 문화재등록제를 도입해, 근대문화유산이 보호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등 고비고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최근들어 문화재가 지역 주민들과 공감되게 보존, 활용될 수 있도록 헌신했다.고향인 전북과 관련한 업무도 수두룩하다.국립무형유산원 설립 초기, 사업 타당성을 인정받는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고, 이후 행정자치부 및 전주시와 협의를 통해 국가 조직이 구성될 수 있도록 했고, 김제 벽골제, 경기전, 미륵사지 등 도내 주요 문화재가 보존, 복원될 수 있도록 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 기획
  • 위병기
  • 2015.08.17 23:02

[변화&소통] 전주시 '희망복지 SOS센터' 설립 과제는

지난해 평화주민사랑방에서 상담한 전주시의 기초생활수급권 침해 사례를 소개한다.전주시는 근로능력이 없는 1인 가구 수급자 이모 씨가 사적이전소득(후원자나 부양의무자가 정기적으로 주는 금품)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년간 생계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이씨는 평화주민사랑방을 통해 전주시에 이의를 신청, 그동안 지급받지 못한 현금 급여 700만원을 소급해 받았다.또한 시는 희귀난치성질환으로 근로능력이 없는 1인가구 수급자인 김모 씨에게 자녀가 있고, 자녀 소득으로 생활한다는 이유로 생계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 결과, 김씨 자녀는 소득이 없었다. 이에 대해서도 전주시에 이의를 신청, 김씨는 전주시로부터 600만원을 소급해 지급 받았다.이처럼 수급권 침해를 받은 일부 주민들의 경우 동 주민센터와 구청을 여러 차례 방문해 이의신청을 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무조건 돌려보낸 사례도 있었다.전주시의 수급권 침해는 가난한 시민을 더 큰 고통으로 빠뜨리고 있다. 하지만 시는 아직까지 이런 점에 대해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전북도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4.6%의 수급률로 전국 평균 2.6%보다 훨씬 높다.빈곤한 주민이 많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8년 6만1896가구(11만5093명)이던 수급자를 매년 탈락시키더니, 지난해에는 1만1381가구(2만8085명)를 수급자에서 탈락시켰다. 전북도는 전국에서 3번째로 수급자를 많이 탈락시킨 것으로 확인됐다.전주시 역시, 2008년 1만2986가구(2만5001명)이던 수급자가 지난해에는 352가구(3335명)를 수급자에서 탈락시켜, 현재는 1만2634가구(2만1666명)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이러한 전주시의 수급권 침해 사례 등이 언론에 보도되자, 지난해 3월 19일(제307회 임시회) 당시 이옥주 전주시의원이 시정질문에서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주민권익옹호센터 설치를 제안했다. 이에 따라 전주시는 전주시의회에 주민권익옹호센터를 설치, 2015년 1월부터 운영하기로 약속했다.그러나 전주시는 민선 6기 김승수 시장이 취임하자, 선거공약인 희망복지 SOS센터 설치(이하 SOS센터)를 통해 기존 주민권익옹호센터 기능과 역할을 담아내겠다며 애초 약속한 주민권익옹호센터 설치를 유보했다.하지만 김 시장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SOS센터의 추진방향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이에 앞서 평화주민사랑방은 지난해 11월 말 당시 임경진 전주시 시정인수단 총괄간사에게 민선 5기 당시 전주시의 주민권익옹호센터 설립 계획을 알리는 한편 향후 사회적 약자인 지역주민들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함께 고민하기로 했다.또한 전주시는 지난 5월 6일 사회복지시설 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대표들과 전주시장 면담자리를 통해 모여진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 SOS센터 설립을 위한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력과 약속은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최근 전주시 담당부서 관계자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SOS센터 설치와 관련해 아직까지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시는 SOS센터 추진위원회를 구성, 민관협력을 통해 SOS센터 설치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그러나 이러한 전주시의 추진 과정은 객관성, 합리성, 정통성을 상실한 것으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전주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주시 홈페이지에 전혀 공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복지현장 활동가와 시민단체 및 학계의 전문가들도 이 같은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주시 담당부서 공무원은 SOS센터 추진위원의 세부 활동경력과 선임 경로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투명성을 상실한 위원 구성과 논의 과정 자체의 정통성 부재라는 측면에서 볼 때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애초 전주시의 의지가 퇴색한 것이다.전주시는 지역 복지 활동가 및 시민단체와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희망복지 SOS센터를 건립해야 한다는 게 현장 복지활동가들의 지적이다.이를 정리해보면 첫째 전주시는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면서도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예산편성을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시는 SOS센터 운영에 있어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외한 별도의 보조금은 없다는 입장이다. 필요한 나머지 재원은 민간모금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하지만 다른 자치단체의 경우 재원 마련 방식을 자체적으로 확정지은 것을 고려하면, 민간모금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전주시의 발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셈이다.둘째 전문성과 객관성이 담보된 시민단체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새로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논의는 공개적이고 민주적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포괄적인 의견 수렴을 거쳐 복지사각지대를 해소, 고통 받고 있는 소외계층들의 아픔을 덜어줘야 한다.

  • 기획
  • 기고
  • 2015.08.13 23:02

전주국제영화제 이충직 신임 집행위원장 "내년 영화제, 정체성 유지하며 문화복지적 가치도 창출"

(재)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의 신임 집행위원장에 이충직 중앙대 교수(58)가 선임됐다. 전주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 교수를 낙점했고, 지난 3일 전주시는 위촉장을 전달했다. 그동안 영화를 즐기는 관객으로, 제자들이 출품한 작품을 두근거리며 봤던 교수로, 작품을 출품한 연출자 등으로 전주영화제를 찾았던 그가 수장의 역할을 맡았다. 지난 4일 전주시 완산구 전주객사4길에 있는 전주영화제 사무국에서 이 집행위원장을 만나 전주영화제에 대한 평소 생각과 구상을 들어봤다.-집행위원장을 맡은 소감을 전해주시죠.“지난달 외국에 있을 때 전화로 제의를 받았습니다. 영광스럽기도 했지만 당혹감이 컸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을지 복잡함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평소 영화팬의 입장에서 전주영화제에 지녔던 호감과 조용하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전주라는 도시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추천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김대중 정부 시절 40대에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너무 젊은 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습니다. 당시 영화계 신구세대간 갈등이나 스크린 쿼터 등의 현안이 있었지만 3년간 별탈없이 운영했고 이 점을 아직도 높게 평가하신 것 같습니다.”-그동안 지켜봤던 전주영화제는 어떠했습니까.“영화제를 순위로 매길 수는 없지만 규모로만 보면 국내에서 2번째입니다. 독립·대안의 가치를 16년간 잘 지켜오며 고품질의 작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영화제에 출품하는 영화는 기본적으로 독립·대안이라는 성격을 지니는데 그 안에서 가짜 대안영화가 아닌 진정한 가치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전주영화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그 가치를 발굴·유지했고 심지어 제작도 하며 세계 영화제에 출품하면서 독립영화의 중심지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지난 4~5월 열린 전주영화제에는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셨는데 올해 총평을 하신다면요. “올해도 프로그램은 굉장히 좋았습니다만 개막식의 경우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종합운동장으로 옮겨, ‘잘 될까’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했습니다. 예산의 한계 때문에 조금더 화려하고 떠들썩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또한 ‘영화의 거리’의 크고 작은 공터가 없어져 그 공간들이 주었던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되살리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전임자에 대한 평가와 비교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지역사회가 전주영화제에 표현하는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과장된 부분도 있고 큰 틀에서 보면 개선할 점이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와 소상하게 소통하는 노력입니다.”-사무처장이 공석인 상태로 올 영화제를 치뤘습니다. 향후 프로그래머와의 업무 분장도 조직 내부의 현안입니다.“올 영화제 때는 사무처장이 없어 3명의 프로그래머가 역할을 병행했지만 이는 한시적 상황이었습니다. 신임 사무처장의 인선이 끝나면 업무 이관을 통해 내년 영화제부터는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에 충실하고, 행정적인 업무 처리는 사무처장이 하도록 역할을 정립하겠습니다. 집행위원장은 창의적인 프로그래머과 다른 조직원을 감싸고 업무를 조정하는 사람인 만큼 상식적인 틀에서 차근차근 가는 사람과 앞서가는 사람을 중간에서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팀내, 팀간의 소통으로 시작해 사무국과 전주시, 시민으로 이를 확대하고, 여태까지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면 하나하나 극복하고 해결하겠습니다.” - ‘이충직호(號)’가 만드는 영화제의 밑그림은 어떻습니까.“전주영화제가 추구하던 방향성인 독립·대안이라는 가치를 유지하면서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좀더 활성화된 축제로서 문화복지적 가치를 창출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50년 이상 된 영화제를 살펴보면 지역민이 ‘우리의 영화제다’라는 인식이 강해 시민이 자원봉사자로 나서고, 행사 기간 불편을 감수합니다. 전주에서도 시민이 어떻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을지를 찾겠습니다. 또한 규모가 아닌 특성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국내 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와 발판이 되도록 배급 기능을 확대하겠습니다. 전주영화제를 지금보다 한 단계 올리고, 시민에게도 보탬이 되는 영화제를 만들겠습니다.”● [이충직 집행위원장은] 후진 양성·영화 제작外 여러 영화제 활동이충직 집행위원장은 충북 보은 출신으로 학계에 몸담으며 제작은 물론 국내 여러 영화제의 운영에 대한 경험을 두루 쌓았다.이번 달부터 3년간 임기를 수행할 이 집행위원장은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프랑스 영상연출학교 ESRA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지난 1991년부터는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했다. 1995년 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1996년 인권영화제 집행위원,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2002~2005 제2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2009년 제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조직위원회 위원과 디지털시네마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올해는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94년 영화 ‘한 도시 이야기’의 연출을 시작으로 ‘여기보다 어딘가에’(2007), ‘독’(2009) 등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 기획
  • 이세명
  • 2015.08.10 23:02

40여년 물고기 연구 어류학자 김익수 전북대 명예교수 "자연은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공동 운명체"

대한민국이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있던 때, 식인물고기 가 뉴스에 등장했다. 지난 7월 초였다. 강원도 횡성 한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는 피라니아가 주범이었다. 아마존에 사는 식인물고기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 외래어종의 무분별한 유입이 가져올 생태계 파괴의 공포가 확산될 조짐이 일었다. 저수지의 물을 다 퍼내고도 더 이상의 식인물고기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다.사실 외래어종의 환경생태계 파괴는 이미 오래전에 제기됐던 문제다. 우리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던 황소개구리가 대표적인 예다. 환경문제에 무지했던 우리에게 황소개구리의 등장은 충격이고 공포였다. 외래어종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토종어종은 위기에 처하고 생태계는 불안해졌다.그러나 돌아보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된 절박한 현실은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다. 외래어종의 유입이 아니어도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따른 환경오염의 정도는 이미 도를 넘어선지 오래 아닌가.물고기 박사 김익수 교수(73, 전북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40년 넘는 학문의 길을 물고기 연구에만 온전히 쏟아온 그는 90년대 황소개구리를 발견해 외래어종의 생태계 파괴 문제를 우리사회에 확산시킨 어류학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새로운 물고기종을 발견해 자신의 이름을 딴 학명을 붙인 그는 학문적 업적으로도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전주, 이 도시를 끼고 흐르는 전주천의 생태계 역사가 그의 연구 노정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1975년부터 시작된 그의 전주천 조사 연구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올해로 40년, 연구의 족적은 한 도시의 생명줄처럼 흐르는 전주천의 오늘과 맞닿아 있다.그는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전주천 살리기 작업의 중심에 있었다. 그것도 수많은 자치단체들이 주목했던 공원형 하천으로의 인공적 복원이 아니라, 스스로 흐르면서 수많은 생명들을 들여와 공존하게 하는 자연형 하천으로의 복원을 갈망했다. 오늘에 이르러 전주천이 국내 많은 도시들의 벤치마킹 사례가 된 것은 그의 고집(?)이 주효한 덕분이다.여러해 전에 대학 강의를 접고 연구와 신앙 봉사 활동으로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김교수는 인터뷰를 꺼렸다. 몇 번의 권유 끝, 7월 초 가장 더운 여름 한낮에 한옥마을에서 만난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고기 이야기를 참으로 재미있게 들려주었다.자연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공동 운명체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는 듯 하면 어김없이 튀어나왔던 말이다.-건강해보이십니다. 요 며칠 식인물고기 등장으로 외래어종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더 이상 확산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다행인데 매체들이 너무 과도한 추측과 해석으로 여론을 주도하지 않았나싶기도 합니다.경계할 일이긴 했지만 지나치게 과민했던 것 같아요. 드러난 개체수도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고, 확산된 형태도 아니었죠. 조사를 제대로 하고 발표를 했더라면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나지는 않았겠죠.- 피라니아 사건을 보면서 황소개구리 생각이 났습니다. 교수님 연구팀이 제기했었죠.그때 저희 연구팀이 여러 해 동안 전국의 강을 조사하고 다녔는데 어느 해인가 여러 곳에서 황소개구리가 많이 발견됐어요. 조사해보니 처음에는 식용으로 황소개구리를 들여왔는데, 양식 하기 쉽지 않게 되니 방치하게 되고 개구리들이 그 틈에 밖으로 튀어나가 산야를 거쳐 강이나 저수지에 들어가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이더라고요.-그즈음에 전주천 살리기가 시작되었습니까.그 뒤가 아닌가 싶은데요.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중요성이 대대적으로 제기되었어요. 의제 21이 발의됐죠. 2000년엔가 전주도 의제 21이 만들어졌는데 제가 운영위원장을 맡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전주천 살리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당시 많은 도시들이 비슷한 사업을 동시에 추진했었는데요.도시가 개발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환경은 심각하게 오염되기 시작했죠. 특히 도시를 끼고 흐르는 하천은 그 정도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오염된 하천을 공원화하는 사업을 들고 나왔어요. 전주도 그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전주의제21과 시민단체들이 공원화 사업 대신 자연형 하천으로의 복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죠.-어려움은 없었습니까.이미 설계까지 끝난 상황에서 복원 방향을 돌리는 일이 쉬웠을 리 없죠. 그때 김완주 시장님을 찾아가 설명하고 공무원들을 설득했어요. 공원화 사업은 펌핑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형식이 중심인데, 그것은 인위적인데다가 하천이 자생력을 갖기 어려운 형식이거든요. 시간이 좀 걸려도 스스로 생명력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빨리 결과를 내야하는 자치단체로서는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겁니다. 그래도 끝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설득했는데, 다행히 우리 뜻이 받아들여졌어요. 자치단체장의 철학과 의지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자연형 하천으로 만드는 일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 과정도 그렇고 확인된 사례가 있었나요.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사례는 없었지만 공원으로 추진해 실패한 사례가 있었거든요. 대구나 광주가 그 예인데, 제가 현장에 가서보니 흐르는 물이 오염된 물 그대로더라고요. 펌핑으로 물을 끌어올리느라 한 달에 들어가는 예산이 1억이라는데, 흐르는 물의 양은 많지만 그 물이 오염된 그 자체인데.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면 전주천이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습니까.그런 확신은 있었죠. 제가 1975년에 전주에 왔는데 그때부터 전주천 상류를 조사하기 시작했거든요. 상류에 쉬리가 살고 있었어요. 하류로 내려가면 한벽루 부근부터는 이미 오염되어 쉬리 같은 물고기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상류는 잘 유지되고 있었죠. 자연형 하천을 만들면 쉬리가 자연스럽게 하류 쪽으로 내려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 확신은 주효했습니까.물론입니다. 쉬리는 여울에만 사는데 하천을 직선으로 조성하면 여울이 만들어지지 않죠. 에스자형으로 하천을 조성해나가면서 여울과 소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놓으니 쉬리가 하류 쪽으로 내려왔어요. 그래서 쉬리가 사는 전주천이란 이름도 얻게 되었죠. 물고기는 서식처를 다양하게 만들어주어야 다양한 종이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때마침 쉬리가 영화로도 나왔었잖아요. 깨끗한 물에서만 살 수 있는 물고기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죠. 쉬리가 사는 전주천도 효과를 톡톡히 봤어요.(웃음) 실제로 쉬리는 색동옷처럼 예쁜 색색이 줄무늬를 갖고 있는 물고기예요. 깨끗한 물에서만 살 뿐 아니라 매우 민첩하죠. 저는 쉬리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유어종이라고 내세웁니다.-오늘에 이르러 전주천은 전주라는 도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많은 자치단체들이 벤치마킹을 했었죠.성공적으로 하천을 복원한 모범 사례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사실 자연형 하천 복원은 우리보다 환경에 먼저 눈을 뜬 일본에서 운동이 이뤄지고 있었어요. 저희도 전주천에 적용을 했는데, 그 성과가 적중한 셈이지요.-70년대부터 전주천을 들여다보아온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저는 75년에 전북대 교수가 되면서 전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프로젝트와 관계없이도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하천 생태계를 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완주 쪽과 전주천 상류 쪽으로 돌아보니 물고기 환경이 아주 좋더라고요. 제게는 천혜의 연구실이었습니다.-전주천의 생태사가 교수님의 연구 노정에 놓여있는 셈이군요.너무 과한 평가고요. 전주천에 대한 연구는 전북대 공대 김환기 교수와 함께 진행했어요. 김교수님은 수질 전공이어서 조사 연구한 내용을 전주천 수질 오탁과 어류 군집이란 주제로 묶어 함께 발표하기도 했죠. 그것이 아마 본격적인 전주천 연구의 시작이랄 수 있을 겁니다.-일찍부터 학문의 융합이 이루어졌군요. 교수님의 학문적 성과 또한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학명이 교수님 이름으로 붙여져 발표되었죠.참종개가 그것인데, 기름종개과(혹은 미꾸리과)에 속한 열여섯 종류 중 한종입니다. 제가 발견한 신종이어서 제 이름이 학명으로 붙여졌어요.-학술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하던데요.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신종을 많이 발표했습니다. 제 경우는 한국인이 우리나라 물고기를 처음 발표하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말씀을 듣다보니 우리나라 어류연구의 학문적 성과가 궁금하군요.한국은 해방 이후 어류 연구가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1세대 연구자들은 일본 유학파가 대부분이어서 대표적인 연구자들도 자기 연구보다는 일본인들의 연구성과를 소개하는 역할을 주로 했지요. 그렇다보니 독립적인 연구작업도 그렇고 제자들을 키워내는데도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연구를 진전시키는 데는 큰 걸림돌이 되었죠.-어류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기반 자체가 너무 허술한 것 아닌가요.맞습니다. 기초학문의 기반은 빠른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죠. 꾸준한 연구과정 속에서 학문적 성과가 축적되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다시 학문연구의 진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금세 효과를 내거나 응용을 하는 것에만 눈을 돌리고 있잖아요. 저는 오늘날 대학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취업률과 발표논문의 수치 등 외형적인 성과에만 집착하고 있거든요. 대학은 사람을 길러내는 곳이어서 기초학문에 꾸준히 투자를 해야 해요.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죠.-도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죠. 대도시 대열에 들어선 도시들의 경우 환경문제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좋은 도시로 꼽히는 예를 보면 대부분 도심에 강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군요.어쩌면 그런 조건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자연을 없애고 인위적으로 삶의 공간을 변화시켜왔죠. 시간이 흐를수록 그로 인해 우리가 받게 되는 대가가 너무 커집니다. 이제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추구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죠. 한 도시에서 강의 존재는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국가사업이면서도 우리 지역의 오랜 과제가 된 새만금은 어떻게 보십니까.저는 새만금 반대했던 입장입니다. 지금도 안타까움이 크죠. 새만금을 삶으로 본다면 먼 후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미 방조제는 막아졌죠. 그러나 지금이라도 해수유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생태계 문제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수유통은 말을 꺼내놓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다시피 했는데 최근 환경단체나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연구자들은 새만금 수질 오염을 우려하고 있던데요.4대강의 녹조현상을 보세요. 녹조는 물을 가두어놓은 환경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새만금은 범위가 더 커서 녹조 문제가 아직은 심각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남의 일이 아니거든요. 시화호가 큰 교훈이죠. 막았다가 결국 텄지 않습니까. 시화호는 규모가 작아서 빨리 일어났을 뿐 새만금도 서서히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전라북도는 동식물의 다양성 측면, 특히 어류의 경우 환경이 어떻습니까.전북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매우 다양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4개의 국립공원을 안고 있고 동진강 만경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이 흐르죠. 낙동강은 남원 운봉 쪽으로 그 상류가 지나갑니다. 이런 조건을 가진 지역이 또 있을까요. 자연여건으로 본다면 천혜의 조건이예요. 지금은 도시 발전 정도로 볼 때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삶의 환경이 중요해지는 흐름으로 본다면 아주 소중한 자원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자연환경이 미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그 가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얼마 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물고기를 특집으로 다루었더군요. 조기나 대구, 명태처럼 우리와 친근하고 좋아하는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유엔에서 예고한 우리의 미래가 있어요. 2040년이 되면 물고기를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인데, 상상해보면 정말 무서운 일이거든요. 환경생태학자들은 심지어 2100년쯤에는 지구가 끝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을 예측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환경 생태계를 보호하자는 이야기겠죠. 이미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를 매우 중요한 정책으로 반영해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개발에 목매고 있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갈수록 환경부가 멸종 위기종을 늘려가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멸종위기종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의 생존문제와도 직결되는 문제거든요.김교수와의 인터뷰는 전주천에서 끝이 났다.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된 전주천을 갖게 된 전주는 살기 좋은 도시가 됐다. 쉬리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고 수달이 돌아온 전주천은 여름 한낮 더 맑은 물로 흘렀다. 김교수가 오래전에 펴낸 책 〈춤추는 물고기〉에는 이런 글이 있다.지금까지 우리는 맑은 물이 있어야 물고기가 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양한 물고기가 물을 맑게 한다. 전주천의 존재가 더 새로워졌다.● [김익수 교수는] 신종 물고기 학명에 자신 이름 붙인 한국인 최초 학자김익수 교수는 새로운 물고기종을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학명을 붙인 최초의 한국인 어류학자다. 정작 그 자신은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어류학의 영역에서 그의 학문적 업적은 빛난다.그는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일곱 남매 중 장남이었던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다. 어렸을 적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선택의 여지없이 서울대 사범대로 진로를 정했다. 정말 대학생활을 잘하고 싶었으나 입학하던 해에 4.19 혁명이, 이듬해에는 5.16쿠데타가 났다. 현실이 불안한 만큼 마음을 붙잡아 줄 동력이 필요했다. 대학 1학년 때 성경을 접하며 신앙인이 되었고, 함석헌 선생을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을 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해에 서울대에 교육대학원이 생기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목포의 중고등학교에 자리가 나자 휴학을 하고 교사 생활을 했지만 부모님의 강권으로 대학원을 마쳤다. 늦게 군대를 갔다. 공군장교로 4년 4개월 근무하고 제대하니 서른이 넘어버린 나이, 취직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서울대 은사를 찾아갔다. 때마침 연구 프로젝트를 잡아 연구원을 찾고 있던 스승은 그를 연구원으로 앉혔다. 물고기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조교로 있으면서 결혼을 하고 보니 안정된 직장이 절실했다. 때마침 전북대 교수 공채가 났다. 전공 분야가 딱 맞았다. 필기시험을 거쳐 교수를 채용했던 시절, 연고 없는 전주로 내려와 일주일동안 시험공부를 했다.75년 전북대 교수가 됐다. 전주천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어류연구로 치자면 2세대 연구자였던 그는 물고기 연구에 열정을 쏟았다. 우리나라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물고기종인 참종개를 발견했다. 학명은 그의 이름을 딴 익수키미아 코리시엔스(IKSOOKIMIA KOREENSIS).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학명을 등록한 최초의 한국인 생물학자가 됐다. 이후에도 그는 열여덟 종의 새로운 민물고기를 발견했으며 〈한국 미꾸리과 어류의 분류학적 연구〉를 비롯한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2000년부터 전주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일을 주도하면서 성공적으로 전주천을 일구어낸 그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이다. 한국어류학회 한국동물분류학회 회장, 천연기념물분과 문화재위원, 전주생태하천협의회 상임의장을 역임했다. 좋은 연구자를 키워내는데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덕분에 한국의 어류관련 연구 활동의 중심에는 유난히 전북대 출신 연구자들이 많다. 대중들을 위한 책으로 감동적인 민물고기 이야기를 담은 〈춤추는 물고기〉와 〈내가 사랑한 우리 물고기〉를 펴냈다.

  • 기획
  • 김은정
  • 2015.08.07 23:02

[변화&소통] 전주 '해피버스 365'

어느 지역보다 길었고 또 파장이 컸던 전주 시내버스 파업. 오랜 기간 시민의 발을 묶었기에 많은 불만과 함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이러한 시내버스를 전주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버스로 만들기 위해 시작된 활동이 있다. 바로 전주 해피버스 365사업이다.파업 이후 시민들로부터 외면받아온 시내버스를 시민들의 가장 믿음직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만들고, 친절기사를 찾아내 시내버스 서비스 개선에도 기여하자는 즐거운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시내버스에 대한 불만을 먼저 이야기하기 보다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버스 운전원을 시민들이 직접 추천하자는 것이다.이 사업은 전주시와 민관이 참여하는 전주대중교통협의회, 그리고 TBN전주교통방송이 공동으로 추진해 지난 2013년 5월 시작됐다. 시민들의 추천을 받은 시내버스 운전원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매월 친절기사를 선정하고 시상하는 방식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매월 1명씩으로 제한됐던 친절기사 선정 인원을 5명까지 크게 늘렸다.지금까지 선정된 친절기사는 2013년 7명, 2014년 7명에 이어 올해는 상반기까지 20명으로 총 34명이다.또 친절기사를 선정하고 시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친절기사로 선정된 기사가 운행하는 버스를 모든 시민들이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날(친절기사 무료 탑승데이)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시민들의 손으로 추천한 친절기사가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무료로 운행해 시민들에게 즐거운 이벤트로 돌려주는 방식이며, 출근시간 3~4회, 퇴근시간 3~4회 정도 진행한다. 이제는 이같은 정보가 널리 알려져 일부러 무료탑승시간을 확인하고 정류장에서 기다렸다가 탑승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민관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전주 해피버스 365사업은 시내버스 서비스 개선과 이를 통한 대중교통 활성화가 취지다.그렇다면 시내버스 친절기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선정될까.우선 내가 탄 시내버스에서 우연히 기사의 친절을 목격하거나 경험했다면 본인이 승하차한 정류장과 대략적인 시간, 노선번호, 버스기사의 이름, 혹은 버스회사 이름 등을 사연과 함께 전주대중교통협의회(063-281-2974)에 제보하면 된다. 또 전주시청 홈페이지에 이같은 내용을 올릴 수도 있다. 전주대중교통협의회는 친절기사 선정위원회를 열고 이렇게 추천된 후보들을 대상으로 논의를 거쳐 이달의 친절기사를 선정한다. 이어 친절기사 시상과 무료탑승데이도 운영한다. 또한 전주 시내버스 서비스 및 청결도를 개선하기 위해 구성된 시내버스 시민모니터단도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시내버스 모니터단은 시민이 직접 시내버스의 서비스를 평가하고 개선사항을 체크하면서 시내버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대중교통의 서비스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 구성됐다. 시민 모니터단은 1년 동안 활동하며 선정기준은 17세 이상의 전주시민으로 월 5회 이상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사람이다. 모니터단은 일상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면서 버스의 안전운행과 운행실태, 친절도, 차량관리 등 크게 4개 분야의 세부 항목들을 평가하게 된다. 이같은 평가는 친절기사 선정 과정에도 반영된다. 또 이렇게 수집된 모니터 결과는 모니터단의 활동기간이 종료 된 후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결과보고서로 발표된다.2014년에 활동한 시민 모니터단은 107명으로 남성이 67명여성이 40명이었고, 연령별로는 20대와 40대가 많았다. 또 2015년 시민 모니터단은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뉘어 구성됐으며 상반기에는 125명, 하반기에 활동하는 인원은 100명이다.평소 시내버스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대중교통 서비스 개선에 함께 하고 싶은 시민은 올 상하반기 시민 모니터단 모집이 종료된 관계로 내년에 모니터단에 참여할 수 있다.앞으로 전주 해피버스 365 사업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친절기사를 찾는 프로그램과 더불어 버스를 타는 시민들의 인사하기 운동도 포함될 예정이다.전주를 누비며 여러 사람들이 만나는 버스 안에서 기사와 승객이 서로 눈을 맞추고 웃음을 머금은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또 길을 지나다가 분홍빛 하트모양 풍선을 달고 있는 친절기사 시내버스가 지나간다면 관심을 갖고 웃으며 손 한 번씩 흔들어 주시길.그리고 가끔씩은 해피버스에 탑승해 시민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져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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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06 23:02

[이색&공감] 고창교육지원청 '자서전 써드리기' 청소년 캠프

염천(炎天)이라했다. 불(火) 위에 또 불이 놓였으니, 뙤약볕도 이런 뙤약볕이 없다. 그나마 바람 한 점에 온 감각이 들썩이는 한여름 한낮, 글 나무 책의 숲을 지어가는 청소년들과 만났다. 자서전 써드리기 글쓰기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땀 한 방울과 바람 한 점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자서전 써드리기는 올해 고창교육지원청(교육장 김국재)이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독서 활동 가운데 하나다. 고창지역 6개교 중학교에서 23명이 참여했다. 봄부터 소쩍새 울음소리에 뒤질세라, 부모님과 조부모님 가운데 1명을 정해 차근차근 이야기(인터뷰)를 나누며 글로 옮겨오고 있던 터였다. 지난달 30일과 31일 고창군 해리면에서 열린 1박2일 캠프는 그동안 듣고 말하고 써온 과정의 중간점검이다. 함께 쓰는 벗들이 있으니 서로 의지도 되고 견주어보기도 하고, 일거양득이다.△자서전 쓰기가 던지는 화두쓰기는커녕 읽기에도 시간을 빼놓기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쓰기도 그냥 쓰기가 아니라 자서전 쓰기다.엄밀히는 자서전 써드리기예요. 처음에는 참가 학생들에게 마을 어르신 가운데 한 분을 정해 인터뷰하고 그 분들의 삶을 정리해보게 하려고 했어요.그런데 기획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대상을 가족 구성원으로 정했다. 아직 전례가 없던 일, 진행하는 편에서도 따라 움직이는 편에서도 일의 무게를 더는 일은, 가까운 주변사람으로 대상을 한정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고창교육지원청 김경완 장학사의 말이다. 그렇다면 하필 자서전이고 써드리기인가?세대를 잇는 징검돌이에요.자서전 써드리기 프로그램의 핵심은, 어른세대와 어린세대의 차이를 좁히려는 시도다. 일제감정기에 대해서, 전쟁에 대해서, 고단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해서, 혹은 1980년 광주에 대해서 우리 청소년은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몇 줄의 글로 이해해야 한다. 몇 줄의 글, 그 행간에 숨은 피와 땀, 그 무수한 이야기는 또 어쩌란 말인가. 자서전과 써드리기가 만난 것은 그 글과 글 사이에 감추어진 기억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일이다.△세대 잇고 관계 회복세대를 이어주는 징검돌 말고 정말 중요하게 살펴야 할 맥락이 있다. 가족 안에서 찾는 글의 대상과 자연스러운 관계 복원이다.저는 아빠를 인터뷰해서 자서전을 써드리기로 했어요.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아빠도 바빠져서 밤늦게 들어오시고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이야기할 기회도 많이 줄어들고.3학년 소희는 굳이 바쁜 아빠의 생애를 글로 풀려는 까닭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늦게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말문이 터진 것은 물론, 답답할 때는 본인이 직접 글을 보태면서 거들고 나셨다. 거꾸로인 경우도 있다.할아버지예요. 할아버지 고향은 북한 황해도 옹진이에요. 어렸을 때 가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낯선 고향이야기며 전쟁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가는 글로 써드리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마침 기회가 온 거예요.1학년인 향건이는 할아버지와 가까워서, 그동안 들었던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고 싶어서 대상으로 정한 경우다. 글 대상과 관계의 밀도가 깊어지기는 매한가지.△자서전과 써드리기가 만나 태어난 책과 문장그동안 고창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서전 써드리기를 시도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도서출판 기역에서 나온 <마을책, 오늘은 학교 가는 날>이다. 마을의 작은 공동체에서 문화예술교육지원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서로 살맞대고 산 결과를 엮은 책이다. 지난 1970~80대 마을 아짐들(아주머니)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를 듣고 옮겨 적은 작은 자서전이다. 또 글 쓰는 마을 <구현골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은 사례도 있다.두 세 달 남짓 달려온 고창의 자서전 써드리기는 어떤 상태일까. 아직 글 얼개를 짠 정도인 학생도,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정리를 시작한 학생도, 이미 전체 글(초고)을 마무리한 학생도 있었다.검정고무신이란 작은 제목을 단 지원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궁금해 하면서도 부반장 친구가 생전 처음 보는 커피프리마를 보여주었다. 거기에 정신이 쏠려 침을 꼴깍 삼키며 내가 맛 볼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우유 같기도 하고 분유 같기도 한 그 맛이란 아주 환상적이었다. 환상적인 맛을 본 것도 잠시.라며 엄마의 목소리로, 엄마의 어린 시절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소희는 딸의 눈으로 딸의 목소리로 아빠의 삶에 대해 우리 아빠는 8월 15일 광복절에 뒷산에서 쩌렁쩌렁 울던 호랑이를 태몽으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이렇게 태어나실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아빠. 아빠의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고 시작했다.△우리의 삶이 소중한 글나무 책숲이 되는 날우리는 유년기부터 영웅들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다. 전쟁의 누란에서 민족을 구한 영웅, 세상 모든 시름을 짊어지고 해결하려 노력한 위대한 성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랐다. 그들의 삶이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글로 옮기며, 눈물과 웃음이 배 나오는 그 삶에서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이 청소년을 보면서 (영웅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리에게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 자문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 전면에서, 늘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해주는 작은 영웅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작은 영웅이,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이고, 동네 점방의 아짐이다. 작은도서관을 지키며 그림책 한 자락 들려주는 자원봉사 할머니이다. 영웅서사시 못지않은 작은영웅 서사시다.이 분명한 사실을, 삶 글을 쓰는 청소년이 다시 깨우쳐 주었다. 이 삶 글이 모여 11월 중에는 1권의 멋진 단행본으로 엮인다고 한다. 그 책을 시작으로 나아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소중한 글나무 책숲이 되는 날을 학수고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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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05 23:02

취임 100일 현준 중소기업중앙회 전북본부장 "남이 따라 올 수 없는 기술, 지속성장 핵심 요소"

전북출신 현준 중소기업중앙회 전북본부장이 취임한 지 100일을 맞았다. 3년동안 전북본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 현 본부장은 10년만에 전북본부장으로 금의환향한 뒤 그동안 달라진 전북본부 및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현황 및 실태를 파악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특히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한층 가중된 상태서 전북본부장으로 취임한 현 본부장은 직면한 문제들의 해결 방안 모색에 적지않은 고심을 했다고 한다. 현 본부장으로부터 향후 추진할 사업 등에 대해 들어본다.-중기중앙회 전북본부의 주요 업무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먼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근거해 1962년 5월 설립된 경제 5단체중의 하나이며, 전북지역본부는 전북지역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지난 1977년 3월 전북지부로 개소되었습니다. 주요 업무는 전북지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의 경영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과제 발굴 및 건의, 중소기업 사기 진작과 소통을 위한 다양한 행사 및 포상, 전북지역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공동사업 발굴 및 활성화 자금 지원 업무 등입니다. 또한 소기업·소상공인들의 사회안전망 구축사업인 노란우산공제,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 상호부조공제제도인 공제사업기금, 조달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이행보증공제 수수료 부담완화를 위한 이행보증공제, 외국인근로자 고용지원 사업 등을 적극 운영하고 있습니다.”-전북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저의 고향은 내장산으로 유명한 정읍이며, 초중고는 김제에서 졸업하고 대학부터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10년 전인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전북지역본부에서 실무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3년동안 근무하면서 선배님들의 지도에 힘입어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지난 4월 10년만에 전북지역본부장으로 다시 내려오게 되어 참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경기 부진 장기화로 도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크다는데 어느 정도인가요.“전북본부에서 매월 실시하는 경기전망조사결과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절반에 가까운 49.6%가 경기가 어렵다고 응답했고, 국내 내수침체가 그 원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더욱이 엔저 지속에 따른 수출 부진과 작년 세월호, 올해 메르스 사태가 겹치면서 더욱 더 경영여건이 어려워진 상황이며, 특히 전북도는 타 지자체에 비해 영세한 중소상공인의 비율이 더 높은 점을 고려하면 중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경제의 기반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중소기업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하기 위한 핵심요소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갖추지 못한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은 전북지역에서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꿀릴 것이 없는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피곤한 줄을 모르게 만드는 그러한 기술개발을 위한 전북 중소기업인들의 노력과 열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상공인들은 창업 준비기간이 평균 9개월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창업 단계에서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지 않고 있어 창업을 희망한다면 충분한 정보 수집과 사전경험, 교육 등의 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으로의 과잉진입은 과당경쟁을 유발함으로써 경쟁력이 약화되고 시중은행으로의 접근이 힘들어 제2금융권의 고금리 이자를 사용하면서 금융비용의 문제도 심각한 편입니다. 그러므로 사업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해 노란우산공제같은 사회안전망제도를 이용하거나 정부나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지원사업을 통해 창업, 마케팅, 금융지원, 폐업대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사전에 알아보고 준비해두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임기 중 역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먼저 전북 중소기업계가 메르스사태 극복을 위해 선제적으로 내수살리기 운동을 적극 전개할 계획이며 지역본부에서는 하반기 구매물품 조기 구매, 협동조합 회원사 임직원들의 조기 휴가 및 국내에서 휴가 보내기 운동 전개, 지역특산물 선물하기 및 전통시장 이용 활성화 등을 적극 독려할 계획입니다. 또한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대비해 전북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의 현안 이슈 발굴 및 심층연구를 통한 정책과제를 발간해 전북 정치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전북지역 협동조합의 공동사업 발굴 등 자생력 제고를 위해서도 하반기에 전북중소기업협동조합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할 계획으로 본부 현장지원단을 통한 조합운영 및 사업개발 지도를 해줄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뭉쳐 기술개발, 물류센터 운영, 공동사업단지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지원(운영)한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해 전북지역 협동조합 지원정책에 반영토록 국내외 협동조합 지원(운영) 우수사례 벤치마킹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지역경제가 활성화되려면 전북본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가 필요한데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전북지역 중소기업계의 현장 의견을 수시로 전달하기 위하여 전북 도지사, 전북 중기청장·조달청장 초청 간담회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중소기업 지원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 전북경제통상진흥원 등과도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구 노력도 필요합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군산 (주)이성당은 1945년부터 현재까지 오랜 기간 올바른 경영이념과 기술의 계승·발전을 통해 경쟁력 향상은 물론 고용창출·유지와 사회공헌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입니다. 이와 같은 명문 장수기업의 예와 같이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자세로 어떻게 하면 남이 따라 올 수 없는 독자기술을 개발할 것인가에 대한 자구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현준 전북본부장은]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분야 경험 두루중소기업중앙회 현준 전북지역본부장(48)은 정읍 출신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갖췄다. 현 본부장은 특히 ‘노란우산공제’로 잘 알려진 소기업·소상공인공제 외연 확대에 일조했다. 중앙회와 지역본부에 근무하면서 협동조합 및 소상공인 지원 업무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또한 평소 대내외 업무 추진력은 물론 탁월한 친화력과 소탈한 성격으로 직원들과 격의없는 소통을 통해 일할 맛 나는 직장 구현에 힘쓰고 있다.이 같은 현 본부장의 장점은 앞으로 전북지역 협동조합 및 소상공인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동조합 및 소상공인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한편 현 본부장은 김제중앙초, 김제중, 김제북고(현 덕암고),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으며 지난 1994년 중소기업중앙회에 입사해 경영지원실, 감사실, 노란우산공제사업부장 등의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 기획
  • 강현규
  • 2015.08.03 23:02

[진안군 '지·덕권 산림치유원'] '국민이 쉬는 숲'…세계적 산림치유 메카 가꾼다

민선 6기 진안군은 풍부한 산림을 자원화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현안은 대통령공약사항으로 지난해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경제성 분석(B/C) 1.21이라는 높은 수치로 통과한 지덕권 산림치유원 유치다. 또한 무분별한 임목벌채 지양,등산로정비,밀원수 특화조림사업을 비롯해 숲과 나무를 건강하게 가꾸고 유용하게 만들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이항로 진안군수는 대통령 공약사항인 지덕권 산림치유원 조성사업이 국가사업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고 산림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하겠다며 이를 통해 진안군 비전인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희망진안실현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고 말했다.산림치유 메카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진안군과 이항로 진안군수의 야심찬 계획을 들어본다.진안군은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중심에 위치한 대한민국 유일의 진안고원이다.전체면적의 76%인 5만9770ha가 산림이며 도내에서 산림자원이 가장 풍부하다. 이곳에서 섬진강의 발원지이며,마이산을 비롯해 부귀산, 운장산, 구봉산, 천반산 등 유명산과 전북의 생명수인 용담호도 있다. 이 같은 지역적 특성은 진안이 산림치유의 메카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산림치유 대통령 공약사업산림치유는 숲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저하시키는 질병 예방 및 건강 증진을 돕는 활동이다.산림청은 진안군 백운면 백운동 일원 617ha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지덕권 산림치유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대통령 공약사업인 산림치유원은 산림치유센터, 교육센터, 통나무집, 숲속의집, 산림휴양숙박시설, 한방산림치유개발센터 등 각종 휴양치유시설로 꾸며진다.사업예산은 국비가 826억 원이 투자되고 전라북도와 진안군은 진입도로 확포장, 상하수도설치 등 기반공사에 지방비 162억 원을 투자하는 등 총 988억 원이다.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덕권 산림치유원를 조성하게 되면 전라북도에는 최소 940억 원의 생산유발효과, 426억 원의 부가가치 효과와 863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창출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분석한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경제성분석(B/C) 1.21로 통과했다.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편성 과정에서 입장을 바꿔 조성 단계부터 공립(지방비 50% 매칭)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연간 8~90억 원에 이르는 운영비를 전라북도와 진안군이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전북도와 진안군은 기재부의 변경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덕권 산림치유원이 국립이 아닌 공립으로 격하되고 매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로 인한 지방재정 악화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현재 주무부처인 산림청은 기본계획 용역에 소요될 2016년 예산 36억 원을 기재부에 요구한 상태다. 진안군은 산림청,전북도, 정치권과 공조해 애초안대로 국가사업으로 2016년 본예산에 편성될 수 있도록 적극 대응해 나가고 있다.△ 등산로 정비, 산과의 스킨십 강화진안군은 자연친화적이며 안전하게 진안고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등산로 정비에 힘쓰고 있다.지난 2014년 자연휴식년제로 10년 동안 통제됐던 마이산 암마이봉 등산로 천황문 ~ 암마이봉 정상 0.6km 구간을 일반인에 개방했다.암마이봉 등산로가 일반인에 개방된 것은 지난 2004년 자연휴식년제가 도입된 이후 10년만이다. 군은 마이산 암마이봉 등산로 전 구간에 친환경 목재계단을 설치하는 등 등산객들의 안전시설을 갖췄다. 수마이봉에 위치한 신비의 화엄굴을 볼 수 있는 전망대, 광대봉, 비룡대, 나도산 등 마이산의 여러 봉우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도 설치했다.운장산의 한줄기인 구봉산에는 국내 최장의 무주탑 100m 구름다리가 이달 말 준공을 앞두고 있다. 2014년부터 무주탑 방식으로 4봉과 5봉 100m 구간을 연결하는 공사를 진행해왔다. 구름다리의 흔들거림과 함께 스릴감을 주기 위해 바닥 가운데를 스틸그레이팅으로 시공했으며, 고소공포증이 있는 등산객들을 위해 기존 육상으로 등산로도 함께 개방해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 2013년엔 9억 원을 들여 7~8봉을 연결하는 목교와 안전로프, 계단을 정비했다.9개의 빼어난 바위 봉우리가 절경을 이루고 있는 구봉산은 전국 등산 및 풍경사진 동호인들에게 단풍과 설경, 운해의 명소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엔 구봉산의 빼어난 절경과 독특한 산세를 보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도내 최대 100ha 밀원수 조림군은 꽃이 피고 꿀이 넘치는 벌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도내 최대 밀원수단지 조성에 나섰다. 향후 5년간 꿀벌들의 먹이식물인 밀원수림 100ha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아름다운 숲을 가꾸면서 꿀벌 농가의 소득도 증대하는 사업이다.밀원수 조성사업을 위해 수종별 밀원수 5개년 조림계획을 세우고 사업 첫해인 올해 사업비 3억5200만원을 들여 진안읍 죽산리 오천리 일원 82ha 산림에 아카시아 1만7000본, 밤나무 1300본, 헛개나무 2만7000본, 목백합 12만6000본, 음나무 4000본 등 밀원수 17만6000여 그루를 심었다.군은 앞으로 도와 연계해 2016년부터 20ha씩 5년동안 100ha 밀원수 조림을 추진할 계획이다. 도내 최대 규모인 밀원수림은 계절별단계별로 꽃피는 수종을 식재할 예정이며, 밀원수 식재지 활착률 조사 및 풀베기작업 등을 통해 농가소득 증가에 도움이 되도록 관리할 예정이다. 진안군에는 70여 농가가 양봉을 사육하고 있으며, 50군 이상농가가 40여 농가에 이른다.● 이항로 진안군수 "박 대통령 대선 공약, 국가사업 추진 마땅"이항로 진안군수는 지난해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경제성 분석(B/C) 1.21로 통과한 지덕권 산림치유원을 반드시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이 군수는 기획재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사업을 국가기관(산림청)의 직접 사업(국립)이 아닌 자치단체 사업(공립)으로 추진하려고 하는데, 대통령 공약사업이 중간에 (공립으로)변질될 수 없다는 게 진안군의 입장이라며 정치권과 힘을 합쳐 반드시 국립으로 건립될 수 있도록 역량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기재부의 변경안을 받아들였다면 당장 올해부터 사업추진이 가능했지만, 사업이 국립이 아닌 공립으로 격하되고 매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가 지방재정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고 설명했다.특히 산림치유 서비스는 전 국민이 수혜대상이기 때문에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책임지는 국가사업으로 추진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이항로 진안군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희망진안 실현은 군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청정 환경 속에서 사람이 행복해서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희망진안 만들기에 큰 관심과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 기획
  • 김태인
  • 2015.07.31 23:02

[변화&소통] 지리산 개발·보전 논쟁

2015년 7월 9일 정부는 산악관광 활성화 방안으로 산악관광진흥구역 제도를 도입하여 전체 산지의 약 70%에 해당하는 지역에 관광휴양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재계가 의기투합해 산악관광 활성화에 나선 것이다.지리산권에 속한 4개 시군은 케이블카 설치를 준비 중이다. 남원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최초로 국립공원에 산악철도를 설치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리산 국립공원을 지키려는 환경단체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연을 잘 보전하면서도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킬 방안은 없는지, 해법을 모색해 본다.△산악관광진흥구역 제도, 약일까 독일까산악관광진흥구역 제도는 지난해부터 전경련이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규제완화 민원이다. 주요 골자는 보전산지 등 70%에 해당하는 지역에 관광산업을 위해 규제완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자가 개발제안을 하면, 불가능한 개발도 가능하게 하고, 환경영향평가도 산악관광진흥지구 도입 취지를 살려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스카이라인 등 경관과 지형을 보호하기 위해 금지하였던 표고규제도 50% 이상으로 완화하여 모든 산악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고, 급경사지인 25도 이상의 지역도 개발이 가능하게 된다. 이로써 국립공원과 백두대간 마루금 등 핵심 보호구역을 빼고는 주변 지역에 관광용 리조트와 케이블카, 골프장이 마구잡이로 들어설 전망이다.환경단체들은 산지 규제 완화는 공공재이자 미래에 물려줄 자연유산을 돈벌이에 동원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환경연합 국토정책팀 맹지연 박사는 정부가 마치 개발이 제한된 국토면적이 70%나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실제 개발이 불가한 국립공원은 전국토의 6.6%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수원보호구역 등 공익 산지를 포함해도 개발 제한 지역은 10% 정도에 그칠 뿐 이라며. OECD평균인 16%에 훨씬 못 미친다고 덧붙였다.정부의 산악관광진흥구역 관련법이 통과되면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만이 산 정상이나 절벽 위에 스키장, 골프장, 콘도, 호텔 등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문제이다. 난개발을 막는다는 이유를 들어 개발 가능한 면적을 3만㎡이상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게는 재정 및 세제 지원과 개발 부담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기로 했다.△지리산 산악철도 경제성환경성 논란남원시는 지리산권 관광 활성화를 위해 산악트램열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원시 주천면 산내면 일원 18km(육모정-고기삼거리-정령치-도계삼거리-달궁)구간에 설치할 계획이다. 산악철도는 지방도로 개통으로 발생했던 소음, 매연, 분진, 야생동물 로드킬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이라고 남원시는 주장한다. 또한 겨울철에도 운행할 수 있어 경제논리로 접근하지 않고 교통약자나 마을의 교통 편의로 접근해 정부 시범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이에 대해 지리산생명연대 신강 운영위원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산악철도의 사례가 전무하다며 굴곡진 정령치 도로만을 이용해 설치가 가능하다는 철도연구원의 계획에 대해 제3자의 기술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용역보고서에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나왔음에도 굳이 사업을 진행하려는 이유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 확보 대책도 불분명하다.기존도로 사용 논쟁에 대해 철도연구원 서승일 박사는 추가로 도로를 설치하는 일없이, 기존도로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고 밝혔다.산악철도 설치 구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산악철도 설치로 인해 기존도로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면, 산악철도 도입과 함께 기존도로의 탐방객 차량 통행 제한이 연계되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남원시 구간만 철도가 놓이고, 구례군 구간은 기존도로가 그대로 남게 된다면 실효성이 사라지게 될 뿐만 아니라 교통체계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전북환경운동연합 생태디자인센터 김재병 소장은 남원시의 태도를 보면 산악철도를 남원시 구간에 선점하고 싶다는 욕구만 느껴진다며 검증되지 않은 산악철도를 지리산 관통도로에 적용하기 전에 이 구간에 관광셔틀버스 도입을 제안했다.△지리산권 7개 지자체 공동발전 협약 체결다행히 최근 지리산권 지자체들이 상생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21일 이환주 남원시장 등 7개 시군 단체장은 남원시청 회의실에서 연석회의를 갖고 지리산권 공동 발전에 협력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7개 시군은 협약을 통해 지리산권 관광순환버스 구축, 지리산 둘레길 및 순환관광로 편의 강화, 지역관광 및 농특산물 공동마케팅 강화, 지리산권 문화 및 통합축제박람회 개최 등 4대 소프트웨어(S/W) 전략 추진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지리산권에 속한 지자체들이 자기 지역만 바라보며 이기적인 경쟁으로 달려나가고 있다며, 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지리산권 발전 방향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환경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비췄다.전북환경운동연합은 지리산은 3개도, 7개 시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이다 보니 각 자치단체별로 관광개발이 이뤄지고, 종합적인 관리도 쉽지 않았다면서 탐방객 입장에서도 대중교통을 통한 이동이나 생태관광 정보 이용 측면에서 불편이 많았다. 따라서 이번에 제안된 4대 전략 사업은 탐방객의 편의도 돕고, 지역 간 교류도 활성화시킬 것이며, 지리산권 공동 비전을 만들어 가기 위한 신뢰 쌓기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논평을 냈다.하지만, 환경단체는 이 신뢰관계가 아직은 초기라서 그 기반이 허약하다며, 더욱 굳건한 신뢰와 협력관계를 위해, 우선 지역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케이블카 설치 중단을 선언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지역간 상생 방향이 환경파괴를 수반하는 대규모 관광개발이 아니라, 지리산 국립공원의 특색을 살릴 수 있도록 산림 휴양과 산촌 체험 등 생태관광자원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이어 지자체장간의 협의체만으로는 지역의 이익 여하에 따라 쉽게 흔들릴 수도 있고, 선거 결과에 따라 지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지역 시민단체와 학계, 주민이 함께 결합하는 민관 거버넌스형 지리산권 공동협의체로 발전시켜 나갈 것을 촉구했다.지리산을 찾는 관광객들은 자연 그대로의 산을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 찾는다.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소규모 개발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산 지형에 어울리는, 산이 살아온 흔적을 담아낼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한다.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와서 보는 얕은 지리산이 아니라 힘들고 어렵게 와도 견딜 수 없게 보고 싶은 깊은 지리산이 더 귀한 관광자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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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30 23:02

[이색&공감] 조선군례보존회 시범단

知之者는 不如好者요(지지자는 불여호자요), 好之者는 不如樂者니라(호지자는 불여낙자니라).아는 자는 좋아 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 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 논어 옹야편 중에서 -좋아서 하되, 사적인 이익은 멀리하고, 전공 혹은 업(業)과 다른 것을 모여서 하는 것이 동호회다. 사전적 의미의 동호회(同好會)는 공통의 관심사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분야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동호회 활동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인터넷 카페 등의 동호회 숫자만 보더라도 즐기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많은 시간을 쏟고, 경제적인 투자까지 이어지면서 다양하고, 어떤 경우에는 전문가의 영역을 넘보는 분야까지 있다.도내에는 동호회를 넘어 전통무예를 보존하고 알리는데 앞장서는 무인들이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 군례(軍禮)를 통해 그 시대를 읽고 전통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군례(軍禮)는 왕을 위한 의전 행사다. 〈국조의례〉에 나와 있는 군례를 보면 군사의식이 행해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군례에 나와 있는 의식은 출정식, 산신제, 거화, 점화, 봉수대 의식 등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으로 가득하다.조선군례보존회(朝鮮軍禮保存會)는 이 가운데 다른 예식보다는 군례 부분을 발췌해 연구하고 재현하는 사람들이다.조선군례보존회 시범단의 단장 손태경 씨(47)는 태권도와 검도 수련을 인연으로 26세부터 체육관을 운영한 무인이다. 15년 전부터 무술만이 아닌 무술과 함께 의식이 행해지는 군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회활동과 접근방식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그는 현재는 경찰무도 본부장, 삼단봉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기술을 넘어 정신적으로 무술이 다다를 수 있는 부분이 어디까지 인지 고민하며, 옛 문헌 등을 통해 조선시대 군례를 재현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그는 무술이 아닌 무예의 매력에 끌려 연구를 시작했으며, 지난 2007년과 2008년 제34회와 제35회 고창모양성제의 총괄운영을 맡으면서 체험, 문화, 시연, 시범 등의 경험을 쌓았다.그는 인터뷰 내내 놋쇠를 이어붙여 만든 갑옷인 두석린(頭錫鱗), 옷 안쪽의 철판을 대는 두정갑(頭釘甲), 상의와 하의를 연결한 철릭, 무관이 입던 군복인 구군복(具軍服) 등 갑옷의 종류, 군복, 시범을 위한 월도, 검술, 조선세법, 현간권법, 지상무예, 마상무예 등의 무예를 설명하느라 입과 손이 바빴다.손 단장은 지난해부터는 무예를 좋아하고, 함께 재현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뜻을 모았다. 전주시 평화동, 삼천동, 효자동에서 각각 해동검도 관장을 하는 이강현(50), 김은성(42), 이찬호(43) 씨와 일반인 최병권(42), 이지선(40) 씨와 함께 연습과 활동을 하고 있다.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정례회에서는 최소 3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 시범 일정이 잡히면 모든 주말을 반납하고 연습에 여념이 없다.이들은 〈무예도보통지〉를 기본으로 하고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도 공부한다. 대나무 베기와 24반 무예도보통지와 권법, 창, 검술을 한 뒤에 복합적으로 진법을 연습한다. 여기에 궁신, 베기, 활쏘기(동계궁-궁술) 등도 가미해 수련에 임한다.모임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모품 등의 경비 등은 구성원들이 각자 갹출해서 진행하고 있다.첫 번째 시연 행사는 지인의 모임인 전주상고 동문모임에서 했다. 이어 전주 천양정에서 열린 남녀 궁도 대회에서 시범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지난 25일에는 전주에 있는 객사에서 처음으로 무령의례(武靈議禮)의 시연회를 열었다. 이 시연회에서는 그간 준비해온 〈무예도보통지〉의 무술을 시범에 이어 관람객에게 갑옷 입고 사진 찍기와 활쏘기 등의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하지만 시내 중심에 위치한 객사인지라 진검 베기와 관람객 활쏘기 등은 안전문제로 빠지기도 했다.아직은 홍보 부족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만 관광객에게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예향의 고장으로 전주를 빛낼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한다는 포부다.이들은 앞으로 각종 문화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무술을 알려주고 그 시연을 통해 활쏘기, 전통 무기를 다루고 각종 갑옷과 옛 군복을 입어보는 체험 등으로 볼거리, 즐길거리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고 피력했다.매번 연습을 위해 모일 때마다 트럭으로 한 차 분량의 짐을 나르고, 경비 또한 만만치 않게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이들을 한자리에 모여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원동력은 오랜 시간에 걸친 수련과 이제는 진정 즐기는 자의 자세로 임하는 열정이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정조때 '종합무예 교범' 전투기술 중심 총 24종 수록조선 정조 때 이덕무박제가백동수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종합무예서다. 1790년(정조 14)에 4권4책으로 목판본으로 완간됐다. 무예24반(武藝二十四般)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한 무기서(武技書)로 〈무예통지〉〈무예도보〉〈무예보〉라고도 한다.임진왜란 이후 군사훈련용의 무예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돼 1598년(선조 31) 한교(韓嶠)의 〈무예제보(武藝諸譜)〉가, 1759년(영조 35)18기에 관한 도보인 〈무예신보(武藝新譜)〉가 간행됐다. 〈무예도보통지〉는 〈무예제보〉〈무예신보〉에 기예 6기를 더해 24기를 만들고 도보를 붙여 조선의 무예를 집대성했다. 손쉽게 기예를 익혀 국방에 만전을 기하려는 의도로 도보를 중심으로 자세한 설명을 실었다.내용을 정조의 서(序)를 비롯해 범례, 병기총서(兵技總敍), 척모사실(戚茅事實), 기예질의(技藝質疑), 인용서목(引用書目) 등으로 구성했다. 본문에는 24종의 병기(兵技)를 수록했고, 책 끝에는 관복도설(冠服圖說)과 고이표(考異表)가 부록으로 포함됐다. 전투기술을 중심으로 한 실전 훈련서로, 당대의 무예와 병기를 종합적으로 조감할 수 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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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9 23:02

신임 강명재 전북대병원장 "수도권으로 환자 유출 막는 게 재임기간 역점 사업"

지난 10일 취임한 강명재 전북대병원장은 진료 프로세스 개선, 특화 의료시스템 개발 등을 통해 수도권으로의 환자 유출 문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병원장에 취임하기 전, 전북대병원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감이었다. 그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환자 중심 병원’을 강조했다. 그 이면에는 그동안 지적받아 온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한 반성이 깔려있으며, 앞으로 병원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자신감도 담겨있었다. 실제 그는 △외래 진료시간 준수 △환자 진료 대기시간 축소 △수술일정의 체계적 관리 △응급실 회전율 관리 등의 방안을 제시하며 공격적인 환자유치 전략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의료사고, 전북대병원 군산지원 건립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개선책을 제시했다.- 전북대병원 제19대 원장에 취임했습니다. 취임 소감은?“먼저 축하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도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지역 대표 병원의 병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급변하는 의료계의 내·외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도민들의 높아진 기대 심리에 부응하기 위해, 앞으로 3년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병원 발전은 병원장 한 사람의 힘으로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제가 병원가족의 마음을 얻고, 병원가족들이 도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지난 10년간 전북대병원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요, 그동안의 성과는 무엇인가요?“우리 병원에서는 2008년 전북지역암센터 개원을 시작으로 2011년 노인보건의료센터, 2013년에는 장애인구강진료센터와 어린이병원, 호흡기전문질환센터가 차례로 개원했습니다. 이들 센터에서는 전문 영역별로 특화된 세부 전공을 살려 지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병원의 외형이 커짐에 따라 심화되는 주차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초 지하주차장 건립을 완공했고,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본관 리모델링 사업도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양적 성장을 뒷받침하고 이를 보완하는 ‘내적 충실화’를 통해 더 강하고 튼튼한 병원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적 충실화’를 이루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환자 중심 병원’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인가요?“그렇게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병원은 대내·외적인 여러 한계를 극복하며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낮은 의료수가, 정부의 급여보장성 강화, 지역환자의 수도권 유출 등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고 그동안의 투자가 결실을 맺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저는 ‘내적 충실화’를 위해 환자중심의 병원문화 정착, 소통과 화합으로 상생하는 병원, 경영 합리화를 통한 튼튼한 병원 육성, 수도권 원정진료 최소화 등 4가지 실천전략을 중심으로 병원을 이끌어가겠습니다.”- 내적 충실화를 위해 수도권 원정진료 최소화 방침을 제시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지역의 병원이 아닌 수도권까지 의료원정을 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며 구체적인 대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수도권 의료 유출 문제는 비단 우리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지역병원들이 안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면서 지역민을 위해서라도 꼭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병원은 지난해 국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시한 각종 의료 질 평가에서 ‘최고’등급을 받았습니다. 이는 수도권 대형 병원과 비교해 우리 병원의 의료 수준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이 수도권 대형 병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막연하게 지방병원은 수도권 병원에 비해 의료수준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과 수도권 대형 병원들의 공격적 마케팅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앞으로 의료서비스 향상을 기본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병원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부적으로 특화된 의료서비스를 개발하고 진료 프로세스를 개선해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외부적으로 지역 내 병원과 협진체계를 강화해나갈 계획입니다.”- 진료 프로세스를 개선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요?“우리 병원은 지역 거점병원으로 1·2차 의료기관에 비해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수나 진료대기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데다, 본관을 중심으로 각 전문질환별 센터가 별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어 동선이 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환자가 직접 병원을 내원하지 않고, 유선 및 인터넷을 통해 진료예약을 처리하고 있으며, 환자들의 수납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예약환자에 대해 ‘선진료 후수납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환자들의 동선과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각 진료센터별로 수납창구를 분산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수도권 원정 진료 문제의 기저에는 의료사고 등 병원에 대한 불신이 깔렸있습니다. 환자 중심 병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개선도 시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료사고가 안 일어나는 게 최선의 방법이지만, 환자들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의료사고는 수도권 의료기관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며, 이를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환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받을 때마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우선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각종 검사단계마다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에도 3억원을 들여 환자 ‘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안전장치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 병원 현안인 군산 전북대병원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군산 전북대병원 건립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군산 전북대병원은 군산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추진되었습니만, 안타깝게도 환경문제에 부딪혀 현재 답보상태에 있습니다. 사업 추진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책사업인데다 우리 병원 단독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기에 정부와 전북도·군산시 등 관계 기관과의 충분한 논의와 함께 법과 절차에 따라 향후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전북대병원은 도민의 사랑을 먹고 성장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도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최상의 의료서비스로 귀중한 건강과 생명을 지켜드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도민이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 도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병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명재 병원장은] 다양한 행정경험 바탕 업무능력 탁월강명재 신임 전북대병원장(56)은 전북대 의대를 나와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전남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992년 9월부터 전북대병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병리과장, 홍보실장, 기획조정실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면서 탁월한 업무능력과 다양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병원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북대에서는 의대 부학장을 역임하면서 학생들의 실력 향상과 임상실습 환경 개선 등 의과대학 발전에 역량을 발휘했다. 학회 및 외부활동으로 대한병리학회 평의원 및 호남지회장, 신장병리연구회 학술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전라북도 의료 및 약화사고 등에 대한 공동조사단과 예방접종 부작용 역학조사단으로 활동했다. 지난 1993년 경찰행정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전북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바 있으며, 전북대 의대 부학장 재임 중 기초의학 분야의 ‘전병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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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엽
  • 2015.07.27 23:02

[변화&소통] 전주 한자·문화 캠프

아들의 캠프 수료식에 참석한 김성봉 씨(42회사원)는 깜짝 놀랐다. 아들인 래현 군(전주 원동초 6)이 수료생들을 대표해서 소감문을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상시 활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새로운 친구들은 낯설어하고, 게다가 글 쓰는 것은 보여준 적도 없는 아들이, 캠프도 엄마의 성화 때문에 끌려오다시피한 그 아들이 친구들 앞에서 소감문을 읽고 있었다.놀라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수료식 이후에도 캠프에 같이 했던 선생님들이 보고 싶다며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을 두 번이나 방문하고, 한자와 붓글씨를 배웠던 향교에 들러서 공부했던 방을 소개하기도 하고, 춘향가의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를 흥얼거리기도 했다.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했기에 이런 변화가 있었을까? 바로 전주시평생학습관에서 개최하는 전주 한자문화 캠프(3박4일)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이 3박4일간 부모가족을 떠나 한옥에서 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소하자마자 분신과 같은 휴대폰과 이별해야 하고, 인스턴트 식품도 끊어야 한다. 잘 먹지도 않았던 한식만 3박4일 먹어야 하고, 처음 보는 친구들과 조를 구성해서 4일을 지내야 한다.그러나 그동안 익숙했던 것들과 이별을 한 대신 다른 곳에서는 배울 수 없던 신세계가 펼쳐진다.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향교에서 붓글씨와 사자소학을 배운다. 소리문화관에서 북과 가야금을 배우고, 동헌 마당에서 돼지씨름, 산가지 놀이, 달팽이 놀이를 배운다. 한옥마을 곳곳을 다니며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을 직접 체험하고, 콩나물국밥을 비롯한 전주10미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우정과 사제의 정을 쌓는다.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동안 캠프의 교사로 참여했던 김광명 씨(27성균관대 대학원생)는 그 짧은 3박4일간 만리장성을 쌓듯 정을 쌓았다고 표현한다. 가장 더운 여름과 가장 추운 겨울 한복판에 캠프가 있잖아요. 한 번은 캠프 마지막 날인데, 뼈마디가 쑤시고 고열에,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아픈 적이 있었어요. 너무 아픈데 병원에 갈 수가 없었어요. 아이들 발표하는 것 보고 싶어서요. 그만큼 깊은 정이 드는거죠.한자문화캠프는 지난 10년 동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2차례씩 열렸다. 전주의 아이들이 TV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나왔던 유생복을 입고 판소리와 성독을 하는 수료식때면 부모님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다.이번 여름 한자문화캠프는 7월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 천연 염색으로 단체복을 만들고, 전통문화관에서 매듭공예를 익히고, 한지뜨기 체험과 액자 만들기를 경험하는 체험들로 꽉 채워져있다. 매일 배우는 판소리와 천자문, 붓글씨는 이제 기본이 되었다.해마다 한자캠프를 기획, 진행하는 김종경 담당은 한자문화캠프는 전주뿐 아니라 완주교육청, 익산교육청에서 요청이 올만큼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다며 예산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지리산 청학동과 같이 전국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색 있는 캠프가 될 수 있다. 한옥마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캠프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워낙 인기가 좋은 이 프로그램은 모집 첫날 예정인원을 채워 사실상 접수를 마감해야 한다. 초등학교 46학년 아이가 있는 전주의 학부모라면 해마다 여름겨울방학에 진행하는 한자문화캠프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전주 전통문화연수원을 아십니까] 동헌고택에서 선비체험전통놀이를전주 한옥마을에 오면 무엇을 보고 체험해야할까? 경기전과 전동성당 앞에서 사진 찍고, 꼬치구이 하나 먹고, 제과점에서 초코파이 하나 사서 돌아간다면 수박 겉만 보고 가는 것이다. 천년이 된 은행나무 길도 걸어보고, 향교의 정취도 느껴봐야 하지만 향교 옆에 자리 잡은 전주전통문화연수원에 들어가봐야 전주다움을 느낄 수 있다.전주전통문화연수원은 동헌과 고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 동헌은 조선 초에 건립되어 전주 부윤(지금의 시장)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나 일제가 조선말살정책의 일환으로 1934년 민간에 매각했다. 당시 동헌을 구입한 전주 유씨는 이를 완주군 구이면으로 옮겨 문중의 제각으로 사용하다가 2007년 전주시에 기증하였다. 동헌은 전주를 떠난지 75년만에 한옥마을로 돌아와 전통문화연수의 산실이 된 것이다.연수생들의 숙박을 책임지는 고택들도 전북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일제시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장현식 선생의 의로운 뜻을 품은 장현식 고택, 임실에서 옮겨온 진참봉 고택, 보천교 본당 부속 건물의 하나였던 정읍 고택 등은 저마다의 구구한 역사가 서려있다. 남부지방에서 보기드문 ㅁ자형 고택인 정읍 고택을 보지 않고, 미닫이 문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고안된 장현식 고택의 퇴창문을 열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옥마을의 한옥을 제대로 보고 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그곳에서는 지금 글 읽는 소리와 판소리가 들린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전주 초등학교 아이들의 한자문화캠프를 비롯해서 초등학생, 청소년들이 성독과 판소리를 배우는 캠프들이 계속 열린다. 독서캠프, 진로탐색캠프, 리더십 캠프, 성균관 대학생들의 인성캠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교육과 연수도 이어진다.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아카데미, 동헌에서 고전읽기, 인문학당 격몽등 고전을 배우며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를 깨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봄, 가을 동헌 앞마당에서는 전통놀이와 선비체험이 상설로 열리기도 한다.이러한 교육과 연수의 중심에는 한국인이 꼭 알아야할 2학 3례가 있다. 한국의 사상과 더불어 선비가 선비를 만나는 의례(사상견례), 선비들이 술을 마시는 의례(향음주례), 선비들이 활을 쏘는 의례(향사례)의 3례(禮)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동헌에서 선비체험을 하는 곳은 전국에서 전주전통문화연수원밖에 없다.정철호 기획팀장은 올 하반기에는 전통 태교교실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은 태교부터 어린이,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통문화에 관한 체험과 연수를 담당하는 교육의 산실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지금은 전주 속의 우리 역사를 말하고 체험하는 청소년 역사문화 캠프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8월 7~ 9일 예정)접수는 전주전통문화연수원 홈페이지(dongheon.or.kr)를 이용하거나 (063)288-9242~3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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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3 23:02

[이색&공감] 건축가에서 악기 제작자로 변신한 이문태 씨

명기(名器)는 모든 현악기 연주자의 꿈이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한껏 발휘하게 해줄 천생연분의 명기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대당 수억 원,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는 바이올린과 첼로는 누가 어떻게 만들까.익산 구도심 한복판인 중앙동에는 수제 현악기 공방을 운영하는 이문태 씨(42)가 있다.작은 도시 익산에서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라. 신기하고 낯선 풍경이었지만 벌써 5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꽁지머리를 질끈 묶고 작업복을 입은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그의 옆에는 청순한 아내 심은희 씨(42)가 있다.동갑내기 부부. 이들의 만남부터가 범상치 않다. 초등학교 동창인 부부는 풋사랑, 첫사랑의 인연으로 결혼까지 골인한 이 시대에서 보기 드문 순정 로맨스의 주인공이다.아내 심은희 씨는 바이올린 전공자다. 성인이 되어 두 사람은 실내 건축가와 음악가로 다시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던 이문태 씨에게 어느 날 아내가 제안을 한다.건축과를 나온 남편의 손재주가 남달랐어요. 섬세하고 꼼꼼하고 결혼해서 살면서 보면 볼수록 재주가 아깝고 다르게 살 수도 있겠구나 싶어 제가 먼저 악기 제작을 공부해 볼 생각이 없냐고 던졌죠.이에 이문태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한 살, 두 살의 두 아들을 뒤로 하고 이탈리아 크레모나(Cremona)로 유학길에 올랐다. 지난 2005년 이 씨는 I.P.I.A.L.L(Cremona international violin making school, 국제현악기수공전문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유학생활만 4년. 남들은 직장과 가정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잡아갈 때 이들 부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겁도 났죠. 공대를 나온 제가 음악으로 전공을 바꾼 거잖아요.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못해냈을 겁니다.어린 아이들과 한국에서의 생활은 전적으로 아내의 몫이었다. 레슨을 하며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 이런 아내의 고생을 알기에 이문태 씨는 유학생활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가족을 생각하며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 또 그는 악기를 깎고 칠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며 이제야 천직을 찾았구나 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게 유학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어린 아이들을 키우랴 레슨하랴 저도 힘들었지만 이상하게 고된 줄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보기에남편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저는 노력파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타고 났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제가 남편을 밀어준거죠.방학이면 제작한 악기를 한국에 들고 와서 팔아 유학비를 충당하던 시절이지만 돌아보면 힘들기보다 행복했던 기억만 있다는 부부다.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문태 씨는 서울에서 일하자는 제의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익산에 공방을 열었다. 수제 악기의 수요 대부분이 대도시에 집중된 현실에서 그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다.하지만 부부가 지닌 삶의 가치관은 확실했다.서울에서 일하다보면 악기 제작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악기 수리를 많이 할 것 같았어요. 악기 수리도 나름 매력 있지만 수제 악기를 만들기 위해 어렵게 공부했는데, 제작에만 몰두하고 싶었어요.방해받지 않고 악기 제작을 하고 싶다는 그의 고집은 아내의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천생연분인 부부는 가치관도 같았다.이문태 씨가 제작하는 악기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대부분의 판매는 서울에서 이뤄진다.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악기가 소리를 잘 냈으면 하는 소망이 더 커요. 그래서 좋은 연주자라면 악기를 공짜로 줄 수도 있어요.돈에 욕심이 없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 부부는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 많이 닮아 있다.수제 악기다 보니 거의 대부분 주문 제작으로 진행된다. 간혹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악기 한 대를 제작하는 데 보통 3개월이 걸리고 1년을 넘게 말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시간과 정성을 생각한다면 비싸다고만 할 수는 없다.아내를 위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바이올린을 만든 남편. 그 악기로 아름다운 음악을 세상에 연주하는 아내. 이들은 보물인 세 아들 건준범의 자랑스러운 부모로서, 음악과 현악기를 사랑하는 장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악기를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소리는 더 묵고 진한 울림을 만드리라 믿는다.■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로 알려진 사람은 이탈리아의 현악기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 - 1737)다. 스트라디바리는 이탈리아 밀라노 공국 크레모나(Cremona)에서 출생했고 바이올린 명기의 대명사적 존재이며 현재 표준형 바이올린의 창시자다.그가 만든 악기들은 그의 라틴어 이름인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리기도 한다.그의 악기는 모양과 색채가 아름다우며, 음색이 매우 풍부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93세까지 1000개가 넘는 악기를 만들었는데 그 중 바이올린 540개, 비올라 12개, 첼로 50개가 남아 있으며, 기타와 하프가 각각 3개, 비올라 다모레가 1개 정도 전해진다.특히 1710년 이후의 제품은 가장 훌륭한 악기로 평판이 높다. 이 시기에 제작한 바이올린은 악기의 각 부분에 단풍나무, 등나무, 버드나무 등의 재료를 썼으며, 400년이 지난 지금도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은 수억 원대의 고가로 호가되고 있다. 지난 2006년 미국 뉴욕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그의 바이올린 더 해머가 354만 달러, 현재 우리 돈으로 41억 원이라는 가격에 팔릴 정도로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그의 바이올린은 명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애호되고 있으며, 이런 것들은 이전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파기니니, 뷔탄, 비오티, 슈브와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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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22 23:02

새누리당 전북도당 김항술 위원장 "전북의 미래 위해 새누리당 선택해달라"

윤봉길의 농민독본을 보면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만큼 농업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전북이 농생명을 바탕으로 하는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된 것은 정말 잘된 일입니다인터뷰를 위해 만난 새누리당 김항술 도당위원장은 어린아이와 같은 해맑은 얼굴로 첫 마디를 이렇게 열었다. 전북의 연구개발특구가 지정된 다음 날이었다.그러나 막상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가장 뾰쪽한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싶다며 격한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냈다.-두 번째로 도당위원장을 맡게 되셨는데,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어깨가 무겁겠습니다.전북의 정치가 너무 산만합니다. 정리되지도 않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합니다. 지역정당에 안주하고 자기들만 똘똘 뭉치는 잘못된 관행이 너무 오랫동안 계속돼왔습니다. 마치 화학비료를 너무 쓰다 보니 토양이 산성화된 것과 같습니다. 유기농 비료로 고부가가치 농업을 해야 하는데, 박토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체질개선이 필요합니다-정치의 체질개선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나가실 계획입니까.우리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아무리 노력하고 좋은 선언을 해도 허공의 메아리로만 끝난다는데 있습니다. 이제는 전북정치의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전북도민이 우리의 인물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설사 부족하더라도 도민들이 애정을 갖고 새누리당을 선택해주셔야 합니다. 이번 선거의 화두가 바로 그것입니다-도민들이 왜 새누리당을 선택해줘야 합니까. 새누리당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전북은 재정자립도가 17.6%밖에 안 됩니다. 부족한 부분은 모두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집권당의 관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안배의 논리를 중앙에 전달하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전북발전을 위한 전북인의 몸부림으로 새누리당을 선택해줘야 합니다. 새누리당이 밉냐, 곱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북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틀이 필요합니다. 새누리당을 지지해달라는 말이 너무 뻔뻔하고 비논리적이고 감성적이라고 할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해야 할지 고민도 했습니다. 그러나 뾰쪽한 것으로 찔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장 뾰쪽한 부분에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도민들이 느끼는 새누리당의 존재감은 어느 정도일까요?베일을 가리고 보면 안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혁신도시를 예로 들어보면, 혁신도시는 노무현 정부 때 결정된 정책이고 매우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혁신도시 안에 기금운용본부 등 덩치 큰 내용물을 가져오는 데는 민주당(새정연)의 노력도 있었지만, 새누리당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새만금특별법 제정도 그렇고, 연구개발특구 지정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전북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탄생하면 그 역할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그동안 선거에서 보면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도가 조금씩은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새누리당보다는 오히려 신당을 자주 이야기 합니다. 도민들의 눈으로 우선순위로 보면 새누리당이 두 번째가 아니라는 뜻이지요.그동안 새누리당의 득표율이 조금이라도 올라온 것은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도민의 균형감각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이 어떻게 할테니 도와달라는 말은 한계가 있습니다. 도민들의 애정 어린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전북의 새아침을 위해 도민들께서 새누리당을 선택해주셔야 할 차례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책이나 의제가 아니라, 지금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신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신당도 결국은 지역을 토대로 한 지역당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뉴(new)가 아니라 리모델링(remodeling) 정당입니다. 페인트만 조금 칠해놓고 새로 집 지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호남인들이 한때 지역정당을 했던 것도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지역정당은 그 기능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염통이 곪았는데, 말초신경을 자극한다고 해서 낫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전북은 심각한 병에 걸려 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맛 들여서 타성에 젖어버린 이런 것에서 이젠 벗어나야 합니다. 정치적 환절기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도민들이 새누리당을 선택해주셔야 합니다-새누리당을 선택해달라고만 하시고, 선택받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인재영입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빠르지만, 지역실정에 맞는 후보들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가령 대통령 공약인 고도 르네상스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면서 교통요지인 익산에는 문체부에서 고위직으로 오랜 경험을 쌓은 분과 교통행정에 적합한 분, 탄소산업을 바탕으로 산업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전주 덕진에는 총리실에서 일해보신 분 등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전북의 미래를 위해 새누리당을 선택해달라는 말에는 이러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소한 도내 3개 정도의 선거구에서 초경합으로 끌고 갈 만한 후보를 내려고 합니다. 그래야 중앙당에서도 전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전북에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내년 총선에서 도당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한 말씀 해주시죠.전북도당의 목표는 두 가지 입니다. 20년 이상 비워두었던 원내 진출에 성공하는 것과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으로서 원활하게 정당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내에서 20%이상의 고른 지지율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물론 도민들의 이해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기위해서 도민이 이해할 수 있는 후보를 내겠다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지역구에 출마해서 당선되는 것과 우리당 후보들이 각 지역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적극 돕는 것이 이번 총선의 목표입니다● [김항술 위원장은] 김원기 前 의장 조카월주 스님이 외삼촌김항술 위원장(61)은 정읍 출신으로 경기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국대에서 안보북한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한나라당 중앙위원회 교육분과 수석부위원장과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지냈으며, 현재는 전일 테크랜드 대표이사와 학교법인 충렬학원 재단이사, 새누리당 정읍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사적으로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의 집안 조카이며, 월주스님이 외삼촌으로 알려져 있다.인재영입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현직 위원장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몇번의 망설임끝에 매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누구나 시집올때는 새색시였다는 그는 빨강 동백꽃으로 왔다가 빨갛게 피멍들어 떠나서는 안된다며 인간적인 도리를 강조했다. 한 번 떠나면 그만인 정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을 떠나더라도 선거때면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서 도와주고 싶도록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어느 정도 인재영입 작업이 마무리되면 사무처장과 함께 각 지역을 돌며 위원장들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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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5.07.20 23:02

[변화&소통] 세월호 농성 1년, 전주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농성장을 제외하면 전주 남문농성장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하지만 지난 6월 25일 세월호 참사 전북대책위원회(이하 전북대책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유민아빠의 단식농성을 계기로 설치한 천막농성을 308일만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이에 따라 전북대책위의 천막농성 중단 결정 전부터 천막농성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고민에 빠졌고, 이 농성장 중단에 대한 소식을 SNS를 통해 시민들에게 알렸다. 이를 본 몇몇 시민들은 삼삼오오 농성장에 모여 시민들의 자발적 힘으로 천막농성을 유지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이후 시민들은 그동안 천막지킴이로 참여해왔던 시민들에게 연락하고, 농성장에 김치와 쌀과일 등 생활용품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시민을 비롯해 관광객들에게 세월호 남문농성장의 의미를 설명하는 한편 농성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그러나 정당과 시민단체에서도 농성 장기화로 인한 부담을 호소하는데, 과연 시민들 스스로 밤낮 없이 농성장을 지켜야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도 많았다.이 가운데 농성장 존폐를 고민하던 시민들은 농성장 유지를 위해 또 다른 시민들의 의견과 지혜를 모으기로 했다.그러던 중 지난 1일 시민들 스스로 총회를 열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웹자보(인터넷판 대자보)를 만들고, SNS를 통해 농성장 지키기에 참여할 시민들을 모집하기로 했다. 또한 시민총회에서는 세월호 풍남문농성장이란 기존 농성장의 명칭을 세월호 남문농성장으로 변경했다. 풍(豊)이란 글자에 사대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시민총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세월호 전주 남문농성장을 대표하는 인물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시민은 누구나 평등하며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을 가진다는 인권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또한 소수가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회비도 받지 않는다. 자율적인 후원으로 운영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이와 함께 국가 또는 사회의 모순과 이익으로 뭉친 패거리 행태에 굴하지 않고 진실규명을 위해 서로 소통하며, 이를 위한 노력을 게을지 하지 않는다는 대명제를 세웠다.세월호 남문농성장에 모인 대다수의 시민들은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 세월호가 이대로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절박하고 간절한 심정으로 모인 사람들이다.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됐던 천막농성장이 시민들을 이끌었다면, 이제 시민들이 직접 주체가 돼 새롭게 천막농성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이 시민들의 자발적 힘이 어떻게 발휘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또 이러한 활동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얼마의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자발적 시민모임이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도 크다.△시민운동 역사에 한 획이러한 시민들의 자발적 천막농성장 유지 활동은 향후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시민단체 중심에서 벗어나 시민 스스로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세월호 남문농성장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물론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세월호 남문농성장 유지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 대해 조심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동안 시민단체가 주도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캠페인과 집회 등을 이제 시민 스스로 해야하는 어려움이 뒤따르기 때문이다.하지만 시민들은 예상되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이에 따라 시민들은 기존의 낡은 천막을 교체하기로 하고 지인들과 함께 모금활동을 벌일 계획이다.또한 다른 많은 시민들이 모금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홍보활동도 강화할 예정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활동은 높고 단단한 벽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하지만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게 되면 잊혀져 가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이 다시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세월호 전주 남문농성장은] 시민 누구나 운영 참여, 회의도 공개세월호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농성장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실제 전국적으로 서울 광화문 농성장과 전주 남문농성장만이 남아 있다.이 중 광화문 농성장은 지난해 7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가면서 참사의 아픔과 분노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그 의의가 큰 곳이지만 현재는 존폐일로에 있다.보수단체의 철거요구가 잦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농성장 철거요구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전주 세월호 남문농성장의 경우에도 각계각층에서 철거요구가 비등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아파하는 시민들은 시민단체가 물러난 자리를 자발적으로 메우고 있다. 전주 세월호 남문농성장이 그 예다.세월호 남문농성장은 이런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누구나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또한 운영회의도 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따로 대표를 세우지도 않는다.이와 함께 농성 참가자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등 세월호 남문농성장 유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누군가에는 잊혀진 문제로도 비춰질 수 있는 세월호 참사를 부모의 심정으로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한 시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세월호 남문농성장을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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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1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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