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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방우정청 김병수 청장 "수준 높은 우편서비스 제공…'살아있는 우체국' 거듭날 것"

디지털 사회로 접어들며 지난 1940년 체신청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1세기 가까이 ‘배달의 기수’를 자청했던 우정청도 새로운 도전을 요구 받고 있다. 우편 물량 감소 등 기능적인 역할이 꾸준히 축소되고, 통신매체로서의 무게감 역시 현저하게 떨어진 실정이다. 정부 소속부서로서의 우체국 1.0 시대, 우정사업본부가 출범한 2000년 2.0 시대를 지나 이제는 3.0으로 그 어느 때보다 혁신과 변화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 같은 변혁의 시기를 맞아 국가 정보통신 분야의 주요 부서를 두루 거친 김병수 전북지방우정청장(54)에게 거는 도민들의 기대감도 크다. 지난 27일, 전북에 기록적인 첫눈이 내리면서 원활한 우편서비스를 위해 정신없이 업무에 매진하던 김 청장을 만나 전북우정청의 미래전략과 핵심 가치를 들어봤다.-전북 근무는 처음인데 취임 소감과 향후 업무 설계 구상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전주 한옥마을 등 우체국의 아날로그적인 문화와 맞닿아있는 예향 전북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또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관한 고민이 아닌가 합니다. 지방우청정이면 본부가 주는 과업만 제대로 수행하면 되지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우정사업이 우편물량 감소 등 큰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체국 사람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우편 물량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데 전북지방우정청 사업실적과 향후 대응방안은 무엇인지요.“올 10월 말을 기준으로 우편 매출액은 400억원, 예금수신고는 4조300억원, 보험유지계약고는 9조1500억원의 실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정보기술(IT)의 발달과 더불어 우편수지 적자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편 대신 디지털매체를 사용하는 시대적 트렌드가 쉽사리 바뀔 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여전히 편지 문화가 활발한 일본의 경우 연말 연하장 물량이 우리나라의 한 해 전체 우편 물량과 비슷할 정도인데 이처럼 새로운 편지 문화를 확산하고, 가꾸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집집마다 브로슈어(판촉물) 등을 저렴한 형태로 공급하는 광고우편 쪽은 국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는데 사업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밖에도 편지가 가지고 있는 ‘느림의 미학’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되새김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앞으로 전북지방우정청이 추구할 핵심 가치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살아있는 우체국 ‘LIVE POST’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체국이 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업무, 우편, 금융, 보험 분야에서 서비스 혁신을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체국 스스로 수동적인 자세를 바꾸고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편 물량이 감소하고 있다’며 어려움만 호소할 게 아니라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 배달이나 우편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우체국이 먼저 나서겠다’는 능동적인 마인드가 필수입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Passion), 열린 사고(Openness), 과학(Science), 시도(Try) 등을 우체국(POST)의 기본 정신으로 삼고자 합니다.”-지역사회와의 상생이나 우체국 발전 방향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밝혀주십시오.“경제, 복지, 소통 이 세 가지 키워드에 기반을 둔 전북지방우정청을 만들 것입니다. 우선 우체국이 지역기업이나 각종 기관의 ‘파트너’라는 인식이 커졌으면 합니다. 도내 자치단체, 기업, 대학, 경제기관 등과 협업을 통해 우체국이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낼 것입니다. 우체국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네트워크와 유·무형의 자원을 지역사회에 개방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체국이 ‘배달’이나 ‘연결’에 머무르지 않고 진정한 소통의 매개체로 거듭나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전달하기 이전의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지역 중소기업의 상품화나 생산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합니다. 한마디로 우체국 밖의 세상을 우체국 안으로 끌여들어 우체국을 혁신하고, 또 우체국이 가진 가치로 세상을 혁신하겠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도내 기업과 도민을 위해 우체국을 전북 사회·경제의 플랫폼으로 탈바꿈 시키겠습니다.”-최근 부활한 ‘우체국 토요택배’에 대해 열띤 논쟁이 일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요.“사회가 있지 않고서는 우체국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회와 국민이 원한다면 당연히 택배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중소 인터넷 쇼핑몰업체, 주말부부 등 국민이 토요일에도 배달을 원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체국이 배달을 하지 않는다는 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세라고 봅니다. 우체국 직원의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면 그것을 해결할 대책을 내놔야지 다시 폐지한다는 건 본연의 목적이 전도된 것입니다. 공익성을 강화하면서도 적절한 인력 배정 등으로 집배원의 복리후생에도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재임기간에 이루고 싶은 목표나 개선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우체국의 사회적인 역할을 꾸준히 대중에 노출시키고, 도민이 지역 우정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우체국 직원이 성실하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야 각자가 자부심을 갖고 더욱 열정을 불러오리라 생각합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공헌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지역 행사에도 활발하게 참여하며 직원들의 자부심을 북돋고 열린 자세를 갖추도록 할 것입니다.”-끝으로 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앞서 말했던 ’살아있는 우체국’으로 거듭날 전북지방우정청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었으면 합니다. 우체국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여러 기관장과 도민 모두가 고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체국이 지역사회에서 한 획을 담당하고, 또 우체국에는 지역사회를 누비며 지역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병수 청장은] 정보통신 풍부한 경험·디지털시대 변혁 강조“능동적인 사람은 어떤 현상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대충 넘기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문제점을 찾거나 개선책을 내놓는 사람입니다”지난달 30일 전북지방우정청장으로 부임한 김병수 청장(54)은 “경제와 복지, 소통을 핵심 키워드로 삼고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우편서비스 등 기존의 업무 영역을 굳건히 하면서도 새로운 역할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충남 출신인 김 청장은 논산 강경상고를 거쳐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87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정보통신부 전파방송국 방송과·통신위성과 서기관,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 기획연구과장, 충청체신청 서대전우체국장, 우정사업본부 예금과장, 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정책팀장,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과장, 강원체신청장, 전남지방우정청장,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장을 역임하며 정보통신 분야의 풍부한 공직 경험과 우정청 실무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김 청장은 갈수록 우편 물량이 줄어드는 우정사업의 침체 속에 ‘살아있는 우체국 LIVE POST’로 거듭날 것을 선언하고 지역사회와의 협업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그동안 전북지방우정청은 도내 기업에 물류창고를 제공하는 등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을 추진했다. 특히 지난 2008년 8월에는 전국 최초로 전북도·전북지방중소기업청과 협약을 맺고 ‘국제특송 물류비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 수출기업의 물류비 부담을 크게 덜어냈다. 지난달 기준으로 300여개 업체가 총 80억원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는 등 첫 해보다 3배 가량 성장하는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김 청장은 “우체국이 가지고 있는 친밀함, 믿음, 신뢰 등 소위 아날로그적인 가치와 장점을 바탕으로 전북우정청의 미래를 열고, 지역사회의 도약에도 크게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기획
  • 최성은
  • 2015.11.30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⑥로마 명물 '트레비 분수' 복원현장] 250년 넘은 세계문화유산…다시'찬란한 빛'뿜는다

지난달 24일과 27일 두 번씩이나 마주했던 로마의 폰타나 디 트레비(이하 트레비 분수). 이탈리아 로무 폴리 대공의 궁전 앞에 있는 이 분수는 장구한 세월을 거쳐 온 유적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이제 막 지은 건축물 같았다. 분수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새하얀 조각상과 장식들은 250여년 묵은 유적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했다. 문화재 복원전문가들이 지난 17개월 동안 치열하게 보수작업을 한 결과다.당시 막바지 보수 작업이 한창이던 트레비 분수는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비계 등 작업 구조물이 걷혀지고 80%이상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높이가 낮고 투명한 안전펜스만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은 빛을 뿜는 유적과 함께 복원작업 현장을 구경할 수 있었다.우연찮게 한국에서 온 전주 사람을 만났다. 역사교사를 하다가 퇴임한 김봉섭씨(61전주시 삼천동)는 공개된 보수현장이 사람들에게 역사 유적에 대한 호기심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살아있는 역사교육 현장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실복원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지만, 숭례문 같은 경우에도 복원현장을 대중에게 공개했던 점은 좋은 취지였다고 본다고 덧붙였다.주위를 돌아보니 현장의 관광객들은 트레비 분수의 보수현장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세 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트레비 분수는 상당히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1629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스케치에 의해 토대가 만들어졌고, 이에 기초해 니콜로 살비가 1732년~51년까지 건조했다. 1762년 주제페 판니니에 의해 완공됐다. 분수 중앙에는 바다의 신인 넵툰(포세이돈)의 조각상이 서 있고, 양 옆에는 풍요로움과 유익함의 여신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 위에는 로마의 수도교 역사를 나타내는 얕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지난 198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하지만 역사적인 명성과 달리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1990년대 초 이래 한번도 보수 작업에 들어가지 않아 꾸준히 논란의 중심에 섰고, 지난 2007년에는 물을 공급하던 아쿠아 베르지네 지하수로에 구멍이 나 분수대가 말라붙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2년, 전례 없는 추위와 함께 분수의 코니스(서구식 건축에서 처마 끝을 완성하는 부재)가 떨어져 나갔다. 시민들의 보수 요구가 빗발쳤다.공공시설물 유지 보수예산이 감축된 로마시는 재정모금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팬디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 회사들이 유적 살리기에 나섰다. 특히 패션 브랜드 팬디는 218만유로(약 27억3854만원)를 기부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역은 트레비 분수 앞 안전펜스에 붙여져 있다. 명품 회사의 지원 덕분에 개보수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27일 현장에 있는 복원전문가들은 한창 마무리 작업에 분주했다. 1762년 완공됐던 그 모습 그대로 새하얀 대리석이 드러난 가운데, 곳곳에서 보수 점검에 몰두하고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분수대쪽에 포진돼 대리석의 마지막 때를 벗겨내고 있었고, 팀장급들은 매뉴얼을 들고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점검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는 인원을 세어보니 얼추 30명은 되어보였다.복원 전문가 안젤라씨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안젤라씨는 문화재 복원 전문업체 3개가 참가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 보수공사가 시작될 당시 로마시가 문화재 복원업체들을 상대로 모집공고를 내 많은 업체가 몰렸는데, 이 중 세 개 업체가 선정됐다고 덧붙였다. 트레비 분수 보수 업체는 A.R.A, C.B.C, Teeni.com이다. 그는 C.B.C에 소속돼 있고, 직급은 팀장급이다.안젤라씨에 따르면 이탈리아에는 유적 보수업체가 300여개 정도 되며 법인 회사 형태로 존재한다. 거의 다 영리회사며 복원 전문가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일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이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를 비자격자나 무등록 업체가 수리하다 적발되는 상황은 거의 발생되지 않는다.안젤라씨는 복원과정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복원에 참가하는 3개 업체는 각기 다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업체다. 가령 한 회사는 대리석의 때를 벗겨내는 데전문성이 있고, 한 회사는 파손된 부분을 메꾸는 데 전문성을 가졌다. 다른 회사는 문화재에 색을 입히는 데 특화됐다. 이들 회사는 서로간의 협의를 통해 복원전략을 세운다.안젤라씨는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현재 보존관리 상태를 점검한 뒤 업무를 상황에 맞게 배분한다며 논의단계만 해도 수 차례를 거친다고 말했다.이뿐만이 아니다. 안젤라씨는 특히 복원전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같은 바로크 양식이라고 하더라도 당대에 사용됐던 용도에 따라 건축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며 적은 차이 같지만 완벽한 복원을 위해 최대한 근거자료를 많이 수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확한 고증을 위해 국회도서관이나 로마 국립박물관에서 건축관련 사료를 참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며 니콜살비와 주제페 판니니가 분수대를 만들었던 것과 똑같이 하려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문화재는 국가의 전유물도 역사의 자랑스러운 흔적도 아닙니다. 역사적 가치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준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이탈리아 문화재 보호 첨병- 국립 복원학교 운영 헌법에 의무 명시도트레비 분수가 유럽의 명소란 타이틀을 갖게 된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복원기관과 문화재 보호 의무가 명시된 헌법이 문화재 보존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로마에는 문화재 보존복원을 위한 국립복원학교가 있다. 1939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5년제 과정으로 매년 최대 15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교수 1명에게 배정되는 학생수는 법률상 최대 5명이다. 주로 실무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문화재 재질별로 크게 셋으로 나눈 교육과정을 거치게 한다.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보수복원 기관인 국립복원연구소 피렌체전시관지부도 소수 인원을 선발해 현장실습을 강조한다. 해마다 5명을 선발해 5년간 가르친다. 지난해에는 볼로냐에 있는 산 페트로니오 성당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 문화재 보수복원 업체 C.B.C의 팀장인 안젤라씨는 배우는 과정에서 문화재를 직접 경험하면 책임감과 자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2000년대 들어 유적지 관리 부실로 도마위에 오르긴 했지만, 헌법에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의무를 명시한 것도 인상적이다. 헌법 9조는 이탈리아 공화국에 문화유산 보호와 관련 기술 발전을 의무화하고 있다. 안젤라씨는 법률상 문화재 보호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조항이다며 경제관련 법안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27 23:02

[화가이자 문화예술교육가 임승한]'자아' 찾아가는 예술가·'공동체' 생각하는 교육가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웃음, 어느 누구와도 금새 친해지는 친화력. 동네 삼촌같은 임승한 작가(45)를 만나러 지난달 25일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을 찾았다. 일요일 오전이었음에도 작가의 지인들이 전시장 내에 가득했다. 그리고 대화나누기를 좋아하는 그는 시종일관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인들에게,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열세번째 개인전 Zero Point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그는 참 하는 일이 많다. 두레공간 콩 대표, 한문화예술센터 대표, 전북 나우아트페스티벌 집행위원, 토색회 사무국장, 문화예술교육거리 협의회 사무국장,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시간강사,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학교예술강사, 부채문화관 운용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어떻게 이런 많은 일들을 하냐고 물어보니 그림을 그리다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며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들이 이렇게 많아졌어요. 그런데 요즘엔 그 일들을 하며 수많은 관계속에서 나를 만나게 되네요. 허허하며 또 웃는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화가이며, 동시에 공동체성을 살리는데 문화예술을 도구로 삼는 교육가이다. 예술가와 교육가 두 개의 바퀴를 균형있게 굴리며 참 많은 이들과 더불어 즐거운 예술의 장을 펼치며 살아가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존재에 대한 심오한 탐구임 작가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북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3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 초대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북위상작가상, 문화관광체육부장관상, 문화예술교육원장상, 전라북도 미술대전 우수상 및 특선 5회 기타 공모전에서 10여 회 수상했다. 서글서글하고 너털웃음을 짓는 임 작가의 작품은 사람을 멈추게 하는,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 이유는 그의 모든 작품에 공통 화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규정되지 않은, 그러나 매우 중요한고 심오한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반쯤 베어 물어 먹고 남은 사과에 보이는 씨를 보며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과일의 단면을 통해 존재를 투영하는 작품을 창작하게 되었다고 한다.시공간을 초월한 교감과 교류를 꿈꾸고 있는 그의 작품 활동은 결국 자기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자 출발점이라고 한다. 저는 전시회가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 작품들은 제가 존재하는 일련의 과정 중 한 부분이고 진행중이요라고 말했다.내년에 셋째가 태어나면 세 아이의 아빠가 되는 임 작가. 그의 기존 작품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내, 딸 등 가족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도 100호 정도 크기로 크게 그린 작품이 많다. 가족을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족은 결국 저예요. 가족들의 외관을 보면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어요. 할머니를 그리는데 저를 그리고 있고, 딸을 그리고 있지만 저를 그리고 있는 거더라구요. 그래서 가족을 그린다는 것은 자화상을 그리는 것 같아요.가족을 통해, 타인을 통해 나를 본다는 그,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향한 질문을 하고 최근 Zero point라는 개인전을 통해 우주적 순환고리 안에서의 나의 존재를 미약하게나마 들여다보고 있다며,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은 성찰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미술활동 통한 교육과 치유스테이플리쉬, 꿈다락토요문화학교, 두레공간 콩에서의 합동전시 등 각종 공동예술작품 활동을 많이하는 임 작가는 우리를 고민하고, 실제로 함께함으로써 그 과정자체가 작품이 되는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청소년대상의 문화예술교육은 2005년 처음 하게 됐다. 아이들에게 또래집단의 공동체성을 어떻게 하면 찰지게 경험하게 해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기획하고 함께하는 문화예술가들도 공동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두레공간 콩도 그런 의미에서 만들어진 공간이고 공동체입니다. 옛날에 두레 품앗이 그런 거 있잖아요. 같은 의미에요. 어릴 때 미술부활동과 대학 때 공동작업을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이 많고, 어렵고 힘든 시절에 공동작업을 하면서 즐겁게 잘 이겨냈던 기억이 많아요.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고 방황하는 청소년기들에게 공동체성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시스템이나 규정이 극대화 된 요즘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 예술이 함께 관계맺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면 더욱 좋구요. 그렇다고 시스템이나 규정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시스템이나 규정이 반(反)이라면, 예술은 정(正)이고 이것이 합(合)을 이루게 잘 비벼지고 함께 공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가 양성지원 사업 확대 필요그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전북 예술계에 바라거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지 물었다.두 가지가 있어요. 먼저 전북 미술계에 하드웨어로 많은 기관들이 있어요. 그러나 문화예술가를 큐레이팅하고 사람을 아우르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곧 전북에 들어올 문화재단에서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가는데 많은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하나는 저의 주 활동 무대이자 전주의 정체성을 담고 있어야할 한옥마을에 바라는 것이 있어요. 이미 토착민보다 이주민이 더 많은 상황이 돼버렸지만 다행히 미비하나마 토착민들의 자생적 문화예술활동이 이뤄지고 있어요. 한옥마을의 문화예술적 코드를 잘 읽고 정체성을 함께 만들어가는 자생적 공동체나 활동이 많아지길 바래요.우리를 통해 나를 보는, 누군가의 우리가 되어 그를 비춰주는 현재 진행형 문화예술공동체의 인간 허브 임승한 작가.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 기획
  • 기고
  • 2015.11.25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⑤ 이탈리아 폼페이 고고지구] 세계유산 박탈 위기 딛고 '보존·관광마케팅 성공' 부활

문화재는 기억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늙고 죽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살피지 않아 형체가 사라지면, 결국 기록 속에만 존재한다. 학자들이 역사를 완벽히 복원할 기회도, 후대의 사람들이 조상의 생활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진다.그만큼 문화재의 형체는 가치가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듯이, 인간은 글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려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재들이 치료를 필요로 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폼페이는 좋은 선례다. 18세기부터 현재까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최적의 유적이다. 2000년 전 화산폭발로 인해 생긴 화산재가 문화재의 훼손을 막아줘 어느 고대도시보다 완전한 형태로 발굴됐다.그러나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허술한 관리로 건물의 붕괴가 잇따랐다. 지난 2011년에는 긴급 보호대책이 필요한 위기유산으로 지정될 우려도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유럽연합(EU)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지난달 24일 찾았던 폼페이는 곳곳에서 보수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복원 전문가 알베르토(43)와 코린나(37)로부터 유적지 복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복원에 대한 생각과 자세, 과정 등을 말했다. 위기에 처한 폼페이 유적지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문화재의 관리부실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사례는 우리가 겪고 있고, 앞으로 반면교사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참고할 만하다.△폼페이 유적의 발굴과 위기= 나폴리에서 27km 떨어진 폼페이 고고지구는 기원후 79년 8월24일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에 묻혀 사라진 도시가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시를 완벽하게 뒤덮은 4~6m 두께의 화산재 때문에 2000년 전에 사라졌던 도시가 고도(古都)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폼페이 고고지구는 18세기 나폴리 왕실의 후원에 의해 발굴이 본격화됐다. 250년 이상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옛 시가의 약 5분의 4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다.이 도시에서는 신전, 대저택, 수도교, 유곽, 프레스코화 등 고대 로마의 정치, 경제, 사회, 미술, 건축술과 성 의식 등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적이 발견됐다.포장된 도로와 호화로운 대저택, 빵집, 세탁소, 음식점을 포함한 수백 개의 상점들, 그리고 공중목욕탕을 갖춘 문명화된 고대도시였다. 이와 함께 30여개 이상의 유곽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간이음식점에는 음식조리대와 업장, 업장 장식을 위한 벽화, 그리고 곡식을 갈던 맷돌과 오븐까지 갖추고 있었다.심지어 화산폭발 당시 죽음에 직면한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도 석고의 형태로 발굴됐다. 뱃속에 있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엎드려 있는 임산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개 등 다양하다.그러나 문화재 강국이라 불리던 이탈리아도 처음부터 선진적이고 모범적인 복원을 해내진 못했다. 폼페이 고고지구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검투사의 집, 도덕주의자의 집 등이 붕괴됐다. 지난 2014년에는 폭우 때문에 비너스 신전을 받치고 있는 석조구조물 일부와 포르타 노체라 공동묘지에 있는 한 무덤의 돌벽 3.5m 구간이 무너졌다. 붕괴이유는 2차 대전 당시 손상된 폼페이 건축물을 1940년대에 졸속으로 복구해서다.결국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의 감시단에 의해 위기유산으로 지정될 위기에 처했다. 위기유산으로 지정되면 세계유산 등재가 말소될 수도 있다. 유적에 대한 부실 관리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던 이탈리아 정부는 2013년부터 그랜드 폼페이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인 대대적인 폼페이 보수 작업에 착수했다.△문화재 복원 이어 관광마케팅도 한몫= 폼페이 고고지구는 지난 2년 동안 복원에 대대적으로 힘쓴 결과, 거의 완벽한 상태로 고대도시를 재현해냈다. 수천 년 수백 년 된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복원돼 고대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복원현장에서 만난 알베르토 씨는 지난 2013년부터 회반죽 벽화로 유명한 신비의 저택을 비롯해 16개 유적 보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이중 3개의 프로젝트가 완료돼서 정부가 발표했고, 현재 발표되지 않은 일부도 거의 완료된 상태다. 현재 우리가 보수하는 유적지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유적지는 올해 12월까지 작업한다고 말했다.그 동안의 실책도 반면교사 삼아 유적지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실제 비극시인의 집과 선술집 등 여러 건물들 중 훼손우려가 있는 곳은 유리판을 세워 관람객을 통제하고 있었다.문화재 복원에 이어 관광마케팅에도 발군이다. 유적이 위치한 곳곳의 기둥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설치돼 있어 각 유적의 성격과 역사적 유례를 들을 수 있다. 매표소 근처에 위치한 비너스 사원의 벽면에는 복원한 벽면과 옛 벽면을 색깔로 구분해 놓아 관광객들에게 유적지의 현 상태를 알려준다.이외에 고고지구 인근의 베수비우스 화산, 나폴리에 있는 세계유산과 연결된 교통편이 있어 관광객들이 역사를 다채롭게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연간 관광객은 300만명 정도다.△ 메디컬센터 운영 등 관광객 배려= 폼페이 고고지구 내 공회당 인근에는 응급의료센터가 있다.의료센터에 따르면 무더운 여름에 유적지를 관광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환자가 종종 발생해 세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응급환자만 치료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관광하다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운영시간 내에는 언제든지 치료받을 수 있다.내부에는 각종 의료도구, 환자용 침대, 이동식 들것 등 다양한 의료도구들이 구비돼 있다.운영비는 이탈리아 내무부에서 100% 지원한다. 크리스마스와 명절을 제외하고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운영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다. 치료비는 무료다.의료센터 관계자는 폼페이 고고지구 전체를 관할한다면서도 여태까지 환자들을 100% 구조해 치료했다고 말했다.● 폼페이 유적 어떻게 복원하나전문가에게 듣다 "후세 사람들 잘 알아볼 수 있게 원형 그대로 되살려야"폼페이 고고지구 유적복원 현장은 안전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관광객의 접근을 통제했다. 보수를 하는 유적은 비계 등 작업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었다. 햇살이 작렬하는 현장에서 복원전문가들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복원 토대가 기록된 기초조사자료를 보며, 신중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복원이 완료된 뒤 드러난, 일부 유적에서는 장인의 정성이 돋보였다.현장에 있던 복원전문가 알베르토씨와 코린나씨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폼페이 고고지구의 복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줬다. 알베르토씨는 피렌체 복원전문학교를, 코린나씨는 베니스 복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교에서 5년 동안 전문과정을 이수한 뒤, 지난 2000년부터 현장에 뛰어들었다.-복원을 할 때 문화재의 원형을 고려한 정비방법을 철저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옳은 말이다. 근거자료가 없는 문화재 복원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복원전문가가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복원을 왜 하는 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복원에 대한 깊은 고민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고대의 유적지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원된 유적지를 후대의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관광객들이 복원해놓은 신전, 상점, 대저택, 목욕탕 등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관광객들은 해당공간을 보고 고대 로마인들이 생활했던 모습을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복원을 관광객들을 끌기 위한 상업적 목적만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드러내야 관광객들이 흥미를 갖고 유적지에 몰려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복원하는 유적을 위한 재정지원 규모는.유럽연합에서 투자형식으로 지난 2013년부터 100% 지원하고 있다. 투자금은 총 1억 500만 유로다. 단 무상지원은 아니다. 폼페이 고고지구의 입장료 11유로 중 1~2유로씩을 유럽연합에서 가져간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는가.건축, 벽화, 벽, 그림 전문가 등 각 부문 유적 전문가와 역사학자, 정부와 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함께 논의를 한다. 공동작업 형식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한국에 조언할 말이 있다면.우리는 복원한다기 보단 주로 보수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훼손된 부분만 전략적으로 고치기 때문이다. 나머지 부분은 복원에 필요한 기술이 완벽하게 개발될 때까지 기다린다. 문화재의 복원과 보수는 속도전이 아니다. 상당히 섬세하고 지루한 작업이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24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④ 파리의 문화 용광로, 센 강변] 정부·자치단체 문화재 보존 합심…도시 전체가 세계유산

IS(극우주의 성향이 강한 무슬림 무장 단체)의 테러가 발생하기 3주 전인 지난 10월21일, 프랑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선망하는 여행지다웠다.센 강변을 중심으로 펼쳐진 역사 유산들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루브르 미술관부터 에펠탑까지, 콩코드 광장에서부터 크고 작은 궁전 등 건축유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부드러운 가을 햇살은 건물들의 색감을 돋보이게 했다. 강물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강변과 다리 곳곳에는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도시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거리의 악사들은 수준급의 연주를 선보여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파리의 대동맥인 센 강 일대는 센 강변의 파리(Paris, Banks of the Seine)라는 명칭으로 1991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지역 자체가 세계유산에 등록된 특이한 경우다. 하나의 특정 유적건축물보다 지역 전체가 문화 유산적 가치가 높다는 게 유네스코의 설명이다. 문화부 등 정부 부처와 자치단체가 유산 자체의 보존관리시스템을 최우선에 두고 효과적으로 관리 보존해왔기 때문이다.이는 최적화된 관광자원 개발과 결합된다. 파리에서는 센 강변 일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적 자산을 활용한 문화제와 각종 이벤트 등이 풍부하다, 지역이 보유한 역사유산과 이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조화롭게 결합했다. 이로 인해 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파리를 찾는다. 지난해 파리시 방문객 4700만명 중 절반은 외국인이었다.△세계유산 파리의 센 강변파리는 도시문화유적 인프라를 갖춘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이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센 강변은 가장 중요한 축이다. 센 강 좌우 주변은 파리의 랜드마크인 에펠탑, 개선문, 센강의 다리들, 루브르 미술관, 노트르담 성당, 오르세 미술관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즐비하다. 주로 12~15세기에 유행하던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들은, 역사의 지층을 대변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도시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19세기 파리 시장이었던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계획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있다. 철도의 발달에 발맞춰 신설된 대로와 가로수길, 광장 등이다. 또 도시 곳곳에 파리의 역사물 표지판과 유적지구를 형성하는 데 공헌한 인물의 기념비 등이 가로 조형물로 남아 건축유산들을 빛내준다.이런 유서 깊은 지구가 형성되기까지는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이 있었다. 등재 당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실사보고서에 따르면, 파리는 도시 경관의 연속성과 개방성을 유지하기 위해 조망권의 스카이라인까지 고려해 도시건축개발을 제한했다.시민들의 협조도 한몫 했다. 센 강 주변의 건축물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는 곳이 없다. 프랑스 대사관과 자주 교류를 하는 리옹한글학교 서제희 교장은 실외기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벽면이 손상될 우려가 있어서 그렇다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해도 시민들이 국가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감내한다고 말했다.△프랑스의 숨은 진면목, 치밀한 문화유산 관리 행정체계센 강변의 유적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찍부터 문화유산 관련 행정체계가 국가의 핵심부서로 기능한 데서 찾을 수 있다. 1940년대부터 앙드레 말로 같은 뛰어난 문화 행정관이 출현해 체계적인 문화행정 기반을 확립해왔다. 문화와 관광을 담당하는 부서 사이에 소통 채널인 범 부처협의회를 통해 마찰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이러한 연장선상에서 1970년대부터 정부부처와 자치단체가 문화유산을 효과적으로 관리보존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1998년부터는 정부기관으로 국립건축문화유산관리국을 두고 있으며, 산하기구로 국립 역사문화재 및 유산유적 관리청을 설치해 실질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이 이곳에서 관리하는 대표 문화유산이다.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중앙 부처의 지원을 받는 지방문화유산관리국과, 지역의 문화유적 복원작업을 주로 담당하는 지방문화유산보전관리청이 있다. 두 기관이 연계해서 지역문화유산을 관리한다.이밖에 왕궁은 국가 관할로 국립박물관 관리국에서 관장하고 있다. 왕궁 등을 개조한 루브르 미술관, 베르사이유 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부 문화재나 유적 같은 경우 해당 지역 지자체에 소속돼 있거나 일부 개인소유로 등록돼 있는 경우가 있다. 에펠탑이나 아비뇽 교황궁전이 대표 사례다.해당기구들은 유적지의 전체 보존 상태를 점검한 뒤 문화부에 보고하고 있다. 이 중 세계유산은 국가차원의 검사절차를 걸쳐 정기적인 보수, 관리를 하고 있다. 또 정기적으로 관광객을 제한해 문화유산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데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프랑스 문화부에 따르면 유명 관광지로 알려진 문화유산인 경우, 관광전략 마케팅보다 유산 자체의 보존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문화유산과 도시 관광 결합효과적으로 관리된 문화유산은 관광자원으로 연결된다. 센 강변의 건축물들은 각각 현대의 관광콘텐츠와 융합한 상태로 존재한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 앞에 세워진 유리로 된 피라미드가 그렇다. 중국 출생의 미국인 건축가 I. M. 페이가 설계한 이 피라미드 내부에는 휴게실과 기타 시설이 있다. 또 이곳을 통해 모든 전시관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놨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고려한 설계다.이밖에 특이한 외형의 건축물이 있어 관광객들의 관심을 끈다. 이 건축물의 관계자는 관광객의 70% 정도가 이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한다고 말했다. 바로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다.지난 1977년에 개관된 이 센터는 하수관과 배수관이 겉으로 드러나, 마치 짓다만 건물 같은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내부에는 공업창작센터, 음향음향의 탐구와 조정연구소, 파리국립근대미술관 등이 있어 문화의 공장이라 불린다.전통유산 건축물과 도시공간을 활용한 축제도 다채롭다. 지난 1982년부터 시작된 음악축제는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지역민이 직접 기획하는 이 축제는 각 구역의 특색에 맞춰 음악을 선정한다. 가령 루브르 박물관 주변은 고전음악, 라디오프랑스 지구는 세계 각국의 음악, 전통 지역에서는 옛 샹송 등을 선보인다. 이밖에 파리 야경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연출되는 백야제,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테크노 퍼레이드가 있다.관광객들이 이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는 편의도 제공된다. 각 유적지를 다니는 투어버스가 바로 그것이다. 버스를 탄 상태에서만 유적지를 관람하는 게 아니다. 각 구역의 정류장에서 내린 뒤 원하는 유적을 구경한 뒤, 다른 버스로 갈아탈 수도 있다.이러한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프랑스를 찾는 외국관광객의 80%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센 강 주변에 머문다는 게 프랑스 여행부의 분석이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로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9 23:02

[변화&소통] '장애인 인권의식' 낮은 자치단체

전주 A사회복지법인과 자림복지재단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전북지역 자치단체들이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단 한 사람도 소외받지 않는 세상을 구현하겠다는 지역의 한 자치단체장의 평소 구호를 무색케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자치단체장의 의지와 달리 이뤄지는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조사 및 사후조치가 너무 부실하다.이에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를 바라보는 도내 자치단체의 이중적인 잣대를 짚어봤다.△전주시 특별감사 진정성 의문지난해 7월 어느 목사의 제보로 시작된 전주시 소재 A사회복지법인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은 지난 8월20일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기자회견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이에 따라 전주시는 이달 2일부터 13일까지 A사회복지법인 산하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에 대한 민관합동 특별감사를 실시했다.그러나 지역 장애인 인권단체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는 이번 전주시의 민관합동 특별감사에 대해 부실 감사와 꼬리자르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특별감사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다.발단은 일부 시민단체가 피감기관인 A사회복지법인 산하시설의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과 관련, A사회복지법인이 해당 시민단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불거졌다.이와 관련, 전주시는 특별감사로 추천된 시민단체 관계자가 피고소인이라는 이유로 특별감사로 위촉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이는 전주시가 장애 인권침해 사례를 지역사회에 고발하는 시민단체의 공익활동인 기자회견을 존중하기보다, 민관합동 특별감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의심되는 시민단체에 대한 고소를 중히 여긴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사안이다.특별감사의 과정에도 문제가 많다. 전주시는 이 사건이 알려진 지난해 7월 이후 1년이 넘도록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을 축소은폐하는데 급급했다.시민단체들이 전주시의 이번 특별감사에 대해 우려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특히 전주시가 특별감사로 위촉할 수 없다고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림복지재단 내 장애인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는 특별감사로도 위촉된 바 있다.이런 인사를 전주시가 피고소인이라는 이유로 감사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갖은 의혹이 일고 있다.물론 전주시의 A사회복지법인 산하시설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주시의 그간의 행태를 볼 때 특별감사의 진정성에 깊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더 큰 문제는 각종 사회적 약자의 인권지킴이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때마다 피감기관에서 감사를 방해 할 목적으로 특정인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사례가 빈번해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전주시가 피고소인이라는 이유로 시민단체 활동가를 특별감사에서 배제한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위배된다.전주시가 시정목표로 밝힌 사람우선, 인간중심이란 표어는 소외되는 사람이 없고 권리에서 차별받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이처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고 밝힌 전주시장이 장애인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게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이다.△전북도도교육청, 장애인 인권의식 낙제점지난 2013년 7월 전주지역 한 장애인특수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1년이 지난 2014년 8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고, 그 뒤 2년이 지난 2015년 8월 전북도교육청의 특별감사 결과 교사들의 조직적 은폐가 언론을 통해 지역사회에 밝혀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도교육청의 부실감사와 솜방망이 등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다시 전북도교육청 내부 관련자들의 은폐조작 감사, 주관부서의 부실대응과 관리감독 허술, 사안방치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 등에 대한 계속된 요구에도 도교육청은 묵묵부답이다.이러한 부실감사가 피해 학생에게 2차, 3차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음에도, 3년이 되도록 장애학생과 학부모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교육현장 뿐만 아니라 전북도교육청의 태도는 과히 상상을 뛰어 넘는 지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것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전라북도교육청이 밝힌 바른교육과 인권이 살아 숨쉬는 교육현장이 되도록 살펴 학생들이 가고싶은 학교,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전북도교육감의 진의인 것인지 의심스럽다.지난 2012년 7월 장애여성 성폭력사건에 대한 고발장 접수 이후 2014년 7월 대표이사와 친인척 관계에 있고, 사회복지법인 자림복지재단 시설의 원장으로 있었던 가해자 2명에 대해 징역 15년형이 선고됐다. 이어 지난 1월 27일 항소심에서 징역 13년형이 선고됐다.지난 5월14일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가해자 2명에 대한 형이 최종 확정됐다.하지만 자림복지재단 법인은 2011년 10월 이후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시설의 직원들과 함께 장애를 가진 피해자들의 진술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했고, 시민단체들이 사건을 조작한 것처럼 책임을 전가하거나 성폭력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여줬다.장애인들의 안전을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반인권적인 법인임을 명백하게 보여준 것이다.그리고 전북도의 민관합동 특별감사를 통해서도 성폭력 사건을 비롯한 각종 회계부정, 부당행위, 법과 명령 불이행 등의 위법 행위들이 확인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도가 사회복지사업법 제26조 제1항 제3호에 있는 사회복지법인이 목적달성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라고 한 법적용을 최근까지 미루다 비로소 지난 17일에 법인허가를 취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매우 더디고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고 환영할 일이다.

  • 기획
  • 기고
  • 2015.11.19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③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 디렉터 미쉘 갈반씨] "중세 원형 그대로 간직…문화재 보존, 전문가와 소통하라"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이 두 마리 토기를 잡은 게 아비뇽이다.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이 도시는 중세의 풍경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도시에 존재하는 견고한 석조건물들은 14세기 때 모습 그대로다. 이 도시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정책이 얼마나 치밀하고 지혜로운지 보여준다.역사 관광마케팅 역시 뛰어나다. 특히, 교황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의 양을 계산해서 파는 교황궁전 내부에 있는 가게는 인상적이다. 아비뇽 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7월 아비뇽 시 전역에서 3주간 열리는 이 축제에는 연극, 춤, 뮤지컬, 현대 음악 등이 공연된다. 축제 기간 동안만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이 모든 것을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 아비뇽 시청의 문화관광부 디렉터 미쉘 갈반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관광부 디렉터란 지역 문화유산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다. 그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 예산수립, 관광마케팅 등 전 분야를 담당한다.인터뷰는 아비뇽 시청 별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문화재 보존복원 계획, 관리기술, 예산 수립, 문화재 복원 인재 양성, 관광마케팅 대안 등 여러 부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특히 문화재 원형을 고려한 보존과 이를 위한 전문가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취재도중 그는 사무실 창문 맞은편 건물에 조명등과 가까이 있는 작은 성모마리아 상(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을 가리키면서 조명에서 나오는 열에 의해 석조상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며 조명을 설치하는 사설회사와 문화재 전문가와의 의견 조율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에 저런 실수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재임기간에 반드시 바로 잡을 것이다고 강조했다.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강의를 듣는 듯 특별했다.- 중세 문화유산의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보존돼 있다.아비뇽의 문화유산은 거의 석조로 돼있다. 그 시대에 쓰였던 돌 중 버려진 돌들이나, 같은 시기의 문화재를 보수하고 남은 돌 등을 쓴다. 즉 14세기 건물을 복원할 때는 당시에 쓰였던 돌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돌의 재질까지 맞추려고 노력한다.- 철저한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당연한 말이다. 아무나 할 수 없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문화관광부 디렉터,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해당 시대의 유물을 고증한다. 건축가들도 프랑스 건축협회가 지정한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합류할 때도 있다. 고증이 끝나면 문화재의 특성에 맞춰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가령, 창문이나 창틀은 어떻게 복원 할 것인지, 벽화는 어떤 기법을 사용해 보수할 것인지, 어떤 전통공법으로 활용해야 하는 지 등 세부적인 내용들이다.- 당대에 존재했던 건축물의 외형, 내부구조, 제작 방식 등을 상세하게 고려하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석굴암 같은 경우 시멘트로 복원했다가 내부에 습기가 생기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됐다. 한국의 유적 복원 상황에 대해 아는가.한국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잘못된 복원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석굴암같이 시멘트를 바르면 습기를 흡수하거나 물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들은 습기가 많은 자연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수백 년 수천 년을 버텨왔다. 당시에 쓰인 자재와 공법만으로도 환기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원형을 고려한 정비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화재 보수복원과 관련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는가.정부에서 40%정도 지원해주지만 부족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의 경우 복원작업을 하는데만 300만 유로(한화 37억여 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 게다가 우리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뿐만 아니라 국가지정 유산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모두 합쳐서 105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의 날에 1주일 동안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을 열면 프랑스에 있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인다. 이 때 관심을 끌어 문화재 보수복원에 대한 투자를 유도한다.- 문화재 관련 전문인력은 어떻게 양성하는가.아비뇽 대학 석사과정에 복원 문화유산 관련 학과가 있다. 학생들에게 문화재 복원, 역사 이론, 가이드 등 크게 셋으로 나뉜 교육 과정을 거치게 하며, 현장 실습 비율을 절반으로 해 실무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다고 들었다. 역사 지구 안에 있는 건물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수 없다고 하던데.유산환경규제 보호법에 따른 것이다. 아비뇽 성벽 내의 모든 기념물들을 포함해 1913년에 제정된 역사기념물 보호법과 1930년 문화등급지구 법에 따라 보호된다. 구역 내의 건물들은 구조와 색깔 등 소유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규제에 대한 주민 반발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민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문화관광도시로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산다. 다른 부분을 통해서 소득을 창출하긴 힘들다. 우리에겐 그 만큼 문화유산이 중요하고, 규제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건물 소유주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경우, 변경비용보다 두 배의 비용을 벌금으로 내게한 뒤 원래대로 변경하도록 한다.-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아비뇽 페스티벌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이 축제에는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현재 아비뇽은 관광객 수에 비해 숙소가 많이 부족하다. 더구나 3주만 열리는 축제 때문에 예산을 들여 숙박업소를 증축할 순 없다. 이때 시민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관광객에게 숙소로 대여해주고 휴가를 떠난다. 그만큼 문화유산 관광업이 중요하다는 걸 방증한다.- 인터뷰에 성심성의껏 응해줘서 감사하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아비뇽 교황궁전에는 연간 60만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많은 만큼, 그로부터 생성되는 열 때문에 궁전 내부의 벽화가 손상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말, 사슴, 들소 등 100여점의 동물상이 그려진 구석기 시대의 유물, 라스코 동굴 벽화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1945년부터 1963년까지 일반에게 공개됐지만, 벽화에 곰팡이가 생기는 등 보존에 문제가 많아 현재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관광객에게 공개된 유적은 복제유물이다. 우리도 지금 이런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아비뇽 문화유산 관리계획] 장기적 관점 반영해 상세한 내용 담아미쉘 갈반이 인터뷰를 하면서 공개한 문서 아비뇽 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관리 계획은 상당히 체계적이다.아비뇽 시의 문화관광부, 보끌뤼즈 문화유산 관리과, 자치단체 건축역사문화보존 기관인 DRAC PACA의 주관 하에 만들어진 이 계획은 문화유산 관리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직간접적 경제적 효과, 세계유산과 도시환경(유적 보존 상태에 관한 평가)에 관한 점검표, 보존 기준 확립과 투자 등의 프로젝트, 문화유산 코디네이터 양성계획 등이 나와 있다.이 중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관리정책은 시의 다른 정책서비스들(문화, 도시계획, 기술)과 통합되지 못하면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문화유산의 장으로서 모든 관리계획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개별 문화유산만 보호할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관리계획에는 세계유산 지정지역 인근을 난개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변지역을 완충지대로 지정하고 있다.이밖에 미쉘 갈반이 인터뷰 중에 언급했던 교황궁전 내 벽화의 예방보존 프로그램을 비롯해 문화유산 관광서비스, 교육 서비스 등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다. 그는 세계유산 등재 및 관리를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광범위한 지침을 제공하는 전략적 프로젝트다며계획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조례를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7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② 중세·현대 공존하는 '아비뇽'] 쇠락한 교황의 슬픈 역사…민·관 열정으로 다시 꽃 피우다

중세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아비뇽. 아비뇽 유수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권좌에서 쫓겨난 교황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4세기 당시 이곳에 머물렀던 교황들은 고뇌하고 번민하다 떠나갔지만, 당시의 흔적들은 그대로 보존돼있다. 50m의 높이를 자랑하는 교황궁전, 프랑스의 민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로 유명한 생 베네제교 등 즐비하다. 국가의 지원과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복원전문가들의 땀과 노력, 시민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중세의 재현에 완벽하게 성공한 이 도시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현대를 살아가는 아비뇽의 사람들은 중세의 공간속에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중세역사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간= 아비뇽 역사지구는 말 그대로 유적의 도시였다. 아비뇽 시에 따르면 이곳에는 모두 105개의 문화재가 있다. 지역 일대는 11세기부터 교황이 건설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세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풍경들이다.역사지구 안에는 교황궁전, 로마네스크 후기의 대성당 등 14~16세기의 교회, 17~18세기의 성 등 사적 건축물이 즐비하다. 현대적인 패션 부티크, 갤러리 등도 모두 중세시대 건물의 외형을 갖춘 공간에 입점해 있으며, 시대를 거스르는 오래된 저택들도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다. 시청경찰서 등 관공서와 대학도 사적으로 지정된 건물 내에 있다.국민의 생활과 단절된 채 존재하는 국내 유적지구와는 사정이 달랐다. 역사유적지구가 우수한 보존 상태를 보여주고, 지금도 사용하는 게 신기해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고 미쉘갈반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부 디렉터에게 물었다.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관리는 문화재 복원학교 등에서 양성된 정예인력이 하고 있고, 토지소유주가 유적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없게끔 우리가 제지를 하고 있다.함께 현장을 찾은 서제희 리옹 한글학교 교장은 (각종 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유적을 생활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60만 관광객 찾는 아비뇽의 상징, 교황궁전= 아비뇽 역사지구 중앙에 위치한 교황궁전은 뛰어난 보존력을 자랑한다.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교황의 불안감이 궁전 곳곳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어서다. 당시를 살아갔던 교황에겐 슬픔의 흔적일 수 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겐 매력적인 요소다.높이 50m, 1만5000㎡의 교황궁전은 두께 4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팎으로는 삼엄한 경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성벽 사이사이 침략해오는 적을 향해 활을 쏘고 포탄을 날릴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심지어 궁전 안쪽 뜰에는 당시 쓰였던 돌 포탄까지 있다. 14세기 교회권력이 쇠락하면서 프랑스군으로부터 교황 자신을 방어하려 했던 흔적이다.전쟁 영화에 나올 법한 외관으로 씁쓸한 이면을 간직한 것 외에, 궁전 안뜰에 바닥을 복원하는 현장이 눈길을 끈다. 복원현장에 걸려있는 해설문에 따르면 20년에 걸쳐서 복원 중이다. 섣부른 복원으로 원형논란을 유발하고, 복원유적에 균열이 생기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와 함께 궁전 내부에는 복원과정을 설명해주는 영상자료실이 있다. 어떤 것이 더 증축되고, 예산은 얼마나 드는 지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된다.관광객들을 매료시킬만한 것도 상당수다. 각 성벽마다 당시 재위했던 교황의 얼굴과 궁전을 쌓는 데 공헌했던 귀족들의 얼굴이 새겨져있다. 또 궁전 4층에 위치한 전시실에는 역대 교황들에 대한 소개와 바닥타일, 프레스코 등이 소규모로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7개 국어로 설명된 해설서가 비치돼 있다. 유적지 설명이 대부분 모국어로 돼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이외에도 궁전 아래층에는 당시 살았던 교황들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를 종류별로 파는데,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서제희 교장은 비록 한 공간이지만 역사 유적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는 지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사례다고 평가했다.△붕괴현장이 예술로 승화된 생베네제교(아비뇽 다리)= 교황궁전 외 또 다른 관광명소가 아비뇽 다리로 알려진 생 베네제교다. 12세기에 처음 지어진 이 다리는 21개의 교각에 22개의 아치가 있는 900m 길이의 다리였지만, 17세기말 홍수로 파괴돼 현재는 아치형으로 된 교각 4개만 쓸쓸히 남아있다.다리 근처에 있는 자료관에서는 옛 아비뇽의 화려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아비뇽 성벽에서 연결되는 다리의 시작부분에는 생 니콜라 예배당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다리는 붕괴되고, 유적은 덩그러니 하나 남아있지만, 해가 넘어가기 직전의 다리의 모습은 다르게 다가왔다. 마치 동화 속 공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적을 더 유서 깊게 만든다.당시 다리 중턱에서 만난 관광객 이브 씨는 교황궁전과 론강을 바라보며 중세시대의 유적과 풍광을 경험할 수 있다는 데 아비뇽의 매력이 있다며 역사유적이 매혹적인 예술품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매표소에 따르면 이 다리는 연간 30~40만 정도의 관광객이 찾는다. 매표소 직원인 투르니에르 스테판씨는 어릴 때부터 들었던 다리와 관련된 민요가 많은 관광객들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아비뇽 성벽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축대 중간과 매표소에는 민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가 펼쳐져 있다. 전래되는 민속음악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교황 성격 오롯이 담긴 역사 관광마케팅 '눈길'교황의 성격을 역사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당시 교황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를 다양하게 파는 가게다. 교황궁전 입구 부근에 위치해 있다.가게의 진열대 위에는 교황의 이름이 적힌 큰 상자가 있고, 그 양 옆에는 차를 포장해놓은 종이상자가 놓여있다. 종이상자에는 교황의 성격이 묘사돼 있다. 가령 어떤 교황은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졌고, 어떤 교황은 불만이 많고 다혈질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식으로 자세하게 풀어놨다.교황의 성격에 따라 허브가 담긴 양이 다르고, 여기에 오렌지나 계피과일 등을 첨가해 당시 교황의 취향에 맞춰서 판매한다.이러한 점들이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서제희 교장은 한국도 역사 인물에 관련된 스토리를 가시화해 역사관광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사료를 바탕으로 유적과 관련된 인물의 이야기를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3 23:02

[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① 프롤로그] 문화재 원형 지켜 관광자원 활용하는 유럽서 배운다

지난 7월 익산 미륵사지왕궁리 유적을 비롯해 충남 공주부여 유적을 포함한 백제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 등재로 전북은 고창 고인돌유적과 함께 2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이 보유한 세계유산은 모두 12개. 적지 않다. 그러나 등재 이후 이들 유산을 둘러싼 과제는 더 많아졌다. 보존과 관리는 미흡하고 이 유산들을 관광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는 길도 막혀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 사이에서 등재만을 위한 등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세계유산으로의 등재는 큰 의미를 갖는다.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곧 세계적인 관심을 모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화유산의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도 성공적으로 관광자원화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우리보다 훨씬 앞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주목해 보존과 관리에 힘써온 나라에는 이들 문화유산으로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 도시가 적지 않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대표적인 예다.프랑스와 이탈리아 세계문화유산 도시들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정책은 치밀하고 지혜롭다. 시민들의 일상은 도시 곳곳에서 함께 숨쉬는 문화유산으로 더욱 풍요롭고,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은 이 도시의 문화적 힘에 감동하고 열광한다.이제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길을 찾을 차례다.△백제의 고도(古都)의 흔적, 왕궁리 유적지와 미륵사지= 왕궁면 왕궁리와 금마면 동고동리에 위치한 왕궁리 유적지는 오랜 세월 백제사의 변방이었다. 그러다가 1971년 일본 교토대학의 마키타 타이료 교수가 교토 청련원(靑蓮院)에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를 발견하면서 백제 역사의 중앙으로 진입했다. 중국 육조시대에 쓰인 이 기록에는 무광왕(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蜜地-익산으로 추정)로 천도했던 사실과 제석정사(帝釋精寺-왕궁리에 있었던 절)의 화재기사가 담겨 있다. 이를 계기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각종 지리지(地理志)등 익산 관련 사료들을 재점검하는 작업이 시작됐고, 1970년대부터 진행된 익산지역 백제유적 발굴은 힘을 얻었다.1989년부터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의해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6년간의 발굴 조사결과 관세음응험기에 나온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성벽과 관련된 문지의 흔적, 명문이 새겨진 기와와 도가니 등 수 천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화장실터 3기도 발견됐는데 그 곳에서 뒤처리용 막대, 짚신 등이 출토됐다. 토양 분석결과 회충편충간흡충의 기생충 알도 확인됐다. 현재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유적으로 꼽히며 내부엔 왕궁리 5층 석탑이 있다. 면적은 21만 6862㎡다.금마면에 위치한 미륵사지는 동아시아 최대의 가람이다. 신라 대표사찰인 황룡사보다 더 크다. 가람 내부에 있는 미륵사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립된 3개 사찰을 묶어놓은 듯한 3원식 가람배치는 세계에서 유일하다.미륵사는 17세기 무렵 폐사돼 지금은 절터에 석탑만 남아 있지만, 백제의 역사를 규명해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지난 2009년 석탑을 해체할 때 발견된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탑에 봉안된 불사리를 담은 용기)는 백제사의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줬다. 가로 15.3㎜, 세로 10.3㎜, 두께 1.3㎜의 얇은 금제박판으로 만들어진 사리봉안기는 미륵사 창건 배경, 발원자, 석탑 건립연대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3중 사리기(사리를 모신 그릇), 각종 장신구, 유리구슬, 직물 등 9600여점의 유물이 발견돼 큰 화제가 됐었다.미륵사 탑에 관한 안쓰러운 사연도 있다. 1915년에 무너졌던 석탑을 일본인들은 콘크리트를 발라 버티게 했다. 87년 동안 버티던 석탑은 2002년 해체됐으며 2017년에 보수정비 작업을 마친다. 본래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7층 이상의 부재가 발견되지 않아 6층으로 복원될 계획이다.△ 진정한 백제고도로 거듭나기= 백제고도지역은 본래의 모습이 일그러져 있다. 근대 이후 산업화와 더불어 유적 주변의 난개발이 이루어져서다. 각각의 고대유적들은 역사적인 연결고리 없이 개별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1962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으로부터 비롯됐다. 당시의 법은 개별문화재만을 대상으로 보호관리를 실시했다. 유적과 관련한 유적경관이나 주변 시설물에 대해선 법적 보호를 하지 않거나 소홀하게 취급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2004년 고도보존 특별법이 지정됐지만, 재정확보문제와 주민반발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익산 백제역사지구 같은 경우도 지적한 바와 같다.역사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런 부분들이 관광 활성화에 저해될 수 있다며 여러 가지 대안을 제기한다.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주변 경관이나 시설과 무관하게 형성된 고대도시는 없다며 한국 같은 경우 왕도를 형성하는 전근대 시기 도성체계의 배경을 고려해 역사유적지구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김주성 전주교대 교수는 미륵사탑과 왕궁리 5층 석탑밖에 없어서 관광객에게 보여줄 게 없다며 한계가 있는 역사 복원에만 힘쓰지 말고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유형의 관광자원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김 교수는 이어 이탈리아 베로나에 가면 줄리엣의 집이 있는데, 주변유적과 스토리텔링이 잘 이뤄져 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고 사례를 제시했다.이밖에 전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과제는 쌓여있다. 숙박시설 마련, 인지도 상승, 세계유산 해설사 양성, 외국인 대상 소개 사이트 준비 등 여러 가지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세계유산 개관=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고대, 중세 때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문화재를 보호하며 고도로서 위엄을 유지하고 있다.도시에 위치한 건축물들은 역사의 지층을 대변하며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고대, 중세의 건축물들이 도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그 안에 주택, 시장, 관공서, 미술관 등이 있다. 시민들의 생활공간 자체가 세계유산인 셈이다.파리, 아비뇽, 로마, 나폴리, 시칠리아 등 5개 도시는 옛 것이 예술이 된 대표적인 도시다.파리의 세느강 주변은 에펠탑, 개선문, 세느강의 다리, 노트르담 사원 등 세계유산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도시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교황의 유배지로 유명한 아비뇽은 교황궁전과 성곽 등 역사 유적 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10개의 탑으로 둘러싸인 교황궁전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모습이다.로마에는 고대 로마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는 로마역사지구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 카라칼라 목욕장,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 등이 대표 유적이다. 이와 함께 로마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 콜로세움이 있다. 나폴리는 장구한 세월 화산재에 파묻혀 있다가 다시 태어난 폼페이 유적으로 유명하다.마피아의 도시, 영화 대부 로 유명한 시칠리아는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고대 그리스 극장, 신전 등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타오르미나는 고대의 유적지가 널리 분포돼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진 그리스 극장과 주변의 움베르트 거리가 관광명소다.△ 보존과 활용의 모범사례= 유럽의 세계유산들이 보존이 잘 돼 있는 이유는 문화재 보존 관련 법률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헌법에 국가의 문화유산 보호의무를 명시해뒀으며, 프랑스에서는 국립 역사문화재 및 유산 유적 관리청에서 실질적인 감독관리를 하고 있다.법률 등에 따르면 도심에 위치한 유적지구에 있는 건물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수 없다. 변경작업은 건물 색깔까지 역사적 맥락을 따지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뒤 시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미쉘 갈반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부 디렉터는 문화재로 인한 재산권 행사, 개발 제한 등이 발생하는 것은 유럽인들에게 일반적이다며 문화재는 생활의 일부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관광마케팅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일부 유명 유적지에는 다수의 문화해설사가 대기하고 있다. 시 단위로 문화설사가 14명만 있는 익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다국어로 된 유적지 설명, 스마트폰 앱 이용한 유적해설, 역사 마케팅 등 다양한 홍보방법을 동원한다.전문가들도 한국과 다른 관점으로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방안에 대해서 접근한다. 폼페이 유적 복원현장에서 만났던 복원전문가 꼴리나와 알베르토는 우리는 복원한다기 보단 주로 보수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며 최대한 훼손을 안하는 범위에서 공사를 진행한다고 말했다.그들은 이어 관광객들이 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복원을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기획
  • 김세희
  • 2015.11.12 23:02

[변화&소통] 지역 숲 지킴이 '전북 생명의 숲'

우리나라 방방곡곡 어디를 둘러보나 우리가 사는 공간에는 산이 있고 숲이 있다.우리가 사는 동네 어귀에도 올라갈 수 있는 초록풍경의 언덕이 있는가 하면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큰 산들도 제법 있다. 산과 숲은 이렇게 우리에게 가까이 있지만 대부분 쉽게 지나쳐 버리거나 무관심하기 일쑤인데, 우리 지역의 산과 숲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데 앞장서고 있는 곳이 있다. 도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전북 생명의 숲이다.이곳은 2003년도부터 전라북도 지역의 산과 숲을 지키고 가꾸어가며 사람과 숲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숲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민과 함께 숲을 가꾸고 보전해온 환경단체(NGO)이다. 생명의 숲은 우리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14개의 지부를 두고 있는 곳이다.14개 지부에서는 전국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숲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학교 숲 운동, 숲보전정책운동, 사회복지숲운동, 숲문화교육운동, 도시 숲운동, 숲가꾸기 운동이 그것인데 전북 생명의 숲에서도 이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의 숲에 대해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전북 생명의 숲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유 사업에 대해 몇 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숲 해설가 양성 프로그램은 2010년부터 진행되어 현재까지 6회째를 맞이하고 있다.1회당 30~40여명의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숲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자연과 생태계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등 교육과정을 통해 산림청 인증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해밀 숲 체험은 전주시정신보건센터와 함께 진행하며, 전라북도에서 지원금을 받아 진행하는 사업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숲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0년부터 현재까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사업이다. 정신지체장애인들과 함께 숲을 체험하고 또한 몸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프로그램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숲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현재 전북 생명의 숲에서는 숲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수강생도 함께 모집하고 있다. 숲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전라북도의 숲 생태 전문가와 외부 강사들과 함께 새로운 시각으로 숲과 생태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프로그램이다.다양한 예술 작품 속 숲과 생태를 통해 예술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며 숲의 쉼과 치유의 기능을 비롯한 숲의 유익과 가치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이 외에 아름다운 숲 기행과 우리 숲 탐험대(어린이 체험단)가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인과 생명의 숲 회원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또한 전북 생명의 숲은 체험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숲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해 홀로노인돕기의 일환으로 땔감 나누기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숲 가꾸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산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의 조림(기존의 숲을 손질하거나 다시 살리거나 하는 등의 관리)을 통해 나오는 나뭇가지나 숲의 부산물을 수거해 홀로노인들의 겨울나기에 땔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이처럼 숲을 살리는 운동뿐만 아니라 다 함께 사는 푸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전북 생명의 숲은 작년에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와 함께 뜻 깊은 행사를 치러냈다.게릴라 가드닝은 2014년 6월 전북NGO센터 주변의 불법 쓰레기장을 주민과 환경단체와 함께 깨끗이 정리하고 그 곳에 화단을 만들어 쓰레기 불법투기를 근절하고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진행한 행사이다.중앙동 주민센터와 완산구청 환경위생과에 지속적인 관리를 촉구하고 객사 2길 주민들과 함께 참여해 쓰레기 불법투기장소를 예쁜 꽃이 피어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그곳에서 불법 쓰레기는 찾아볼 수 없다. 앞으로도 버려진 땅, 누구도 돌보지 않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곳에 게릴라 가드닝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다같이 살아가는 세상에 한걸음 앞장서고 있다.전북 생명의 숲은 회원들의 후원을 통해 프로그램 발굴 및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전북 생명의 숲의 회원이 되면 회원뿐만 아니라 회원의 자녀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학 프로그램이나 체험 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으며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숲과 자연을 함께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행동을 함께 나눌 수 있다.환경오염이 날로 심각해지고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개발로 인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산이나 숲이 사라져 가고 있다. 산과 숲이 없어지고 큰 건물과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면서 우리의 삶이 편리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초록 산과 숲은 더 이상 볼 수 없고 빽빽하게 들어선 회색 건물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은 당연히 척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함께 심은 나무, 함께 가꾼 숲이 지구의 희망이 된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뛰고 있는 전북 생명의 숲.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며 숨 쉬던 산과 숲을 내 손으로 지키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도 당당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한걸음 먼저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후원에 대한 내용이나 기타 자세한 내용은 전북 생명의 숲(063-231-4455)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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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2 23:02

[이색&공감] 고창마을공동체·식도락마을사업단

고창에 맛(味)있는 소란(騷亂)이 일고 있다. 맛을 개인의 취향으로만 가둬 놓는다면 소란은 맛과 병렬로 놓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맛을 한 공동체가 가꿔온 모두의 것으로 이해한다면, 소란이야말로 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맛을 소란으로 담아냈다. 잔치가 그렇고 축제가 그렇다. 어른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로, 맛과 공동체의 연관을 풀었다. 맛과 맛 이야기가 어떻게 공동체의 관계망을 맛나게 복원하는지, 그 소란스런 현장을 찾았다.△ 잊혀진마을사람들이야기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나들목에서 선운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선운산 들머리 풍천을 만난다. 인천강 풍천을 사이에 두고 왼편이면 선운산, 오른편 포근하게 펼쳐지는 마을이 연기마을이다.고창이 품은 이야기의 근원은 참으로 깊다. 연기마을이 뒤편으로 이고 있는 연기제(堤), 그 푸른 깊이만큼 깊다. 강 건너 1500년 내력으로 자리잡은 선운사 하나만으로 차고 넘치는데, 고창의 대표적인 탐방로 고인돌질마재100리길이 마을을 휘휘 돌아가기까지 한다. 그 길 자락에서 굽이굽이 고인돌 선사의 이야기며, 생물권보전지역 태고의 이야기, 미당 서정주가 품었다 펼친 시의 향취가 번져온다. 게다가 연기사라는 옛절, 연기스님이야기며, 백허당 효자이야기, 분청사기 가마터며, 근세 동학에서 보천교로 이어지는 차경석 이야기가 마을 안에 고슬고슬 스며있다. 질세라 이제는 고창의 맛 이야기까지 피어나고 있다.연기마을은 21가구 28명의 주민이 일구는 작은 공동체다. 고창 해리가 고향인 나종근(64세) 이장은 10여년 전 다시 고창으로 귀촌(귀향)을 살피다가 연기마을에 정착했다. 그리고 마을 당산나무 주변 가꾸기부터 시작해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몇 해 전부터는 마을소득사업으로 유기황콩나물을 시범 재배하고 있다.몸에 좋은 유기황으로 기른 연기마을 콩나물은, 생으로 먹어도 좋다.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이며 비릿한 맛이 거의 없는 데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에 번진다. 이제까지 마을에서는 공동재배사에서 기른 콩나물을 생물로 유통시키거나, 과일요거트 등과 함께 갈아서 마시는 용도쯤으로 활용해왔다. 얼마 전부터 음식의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식도락마을사업단과 결합하면서부터다.△ 10개의 마을음식이야기로 엮여식도락마을사업단(단장 김수남)은 고창의 마을음식을 발굴해 여행체험과 연계하는 공동체지원조직이다. 그 바탕에 마을의 자립이라는 고리가 있다. 관(官)과 민(民)을 연계하는 중간지원조직이다. 지난 5월 첫 삽을 뜬 식도락사업단은 지금까지 10개의 마을음식을 발굴했다. 이것은 적어도 10개의 마을이야기를 찾아내 마을 주민들의 건강한 관계를 꿈꾸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찾아낸 열 가지 스토리를 사업단 이승호 팀장이 노래처럼 읊는다.산나물이 마을 특화상품인 고창읍 화산마을의 산나물정식, 고창 대표음식 풍천장어 밥상 아산면 마명마을의 시래기장어곰탕, 대산면 상금마을의 쑥밥, 고창읍 호암마을의 도토리묵과 솔잎막걸리, 공음면 중여마을의 마카추어탕과 백숙, 이제 황윤석 선생의 자취가 깃든 성내면 조동마을의 닭숯불구이 사대부밥상, 첫 고사리로 자박자박 끓어낸 상하면 송림마을의 조기찌개, 신림면 용추마을의 홍시김치와 청국장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고창군과 사업단이 맨몸으로 일궈낸 마을음식과 이야기입니다.△ 다시 피는 공동체 이야기 꽃그리고 연기마을이다. 마을의 콩나물 밥상은 구수한 이야기와 함께 차려진다. 갓 지은 밥에서 피어오르는 뜨신 김 마냥 이야기들이 고샅을 건너 밥상머리를 차지한다. 식도락사업단과 마을사람들이 어울려 상차림 시연하는 자리다.연기대사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숨어살았다고 했지라, 혹시 콩 불려서 콩나물밥 해 먹지는 않았을랑가요.유기황콩나물과 갖은 양념, 다진 소고기로 만든 콩나물밥에 매콤한 콩나물바지락찜, 시원하고 고소한 콩나물바지락죽이 한상 가득한 작은 잔치가 열렸다. 마을부녀회 여자들은 아껴온 손맛으로, 마을 원로들은 이야기로 밥상 차리기를 거들고 있었다. 문제는 콩나물, 도대체 콩나물과 마을 이야기가 어떻게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을까. 신라 진흥왕대에 건립되었다는 연기사와 연기대사이야기는, 자연스레 조선 인조 때 효자 김하익 이야기가 깃든 백허당 큰바위로 옮겨갔다.혹시 효자 김하익의 모친이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다고 허지 않았으까?그래서 그 한 겨울에 콩나물 콩을 구하려고 이 마을을 지나갔다, 그말이여?효자 김하익이 병중의 모친을 위해 잉어를 구하러 가던 길에 호랑이를 만나 구사일생, 목숨을 부지한다는 이야기이다. 병중 모친과 시원한 콩나물국밥, 그럴싸하다. 오늘 맛본 이 사각거리는 콩나물에 시원스레 말은 국밥이라면, 넘어가던 숨도 다시 돌아올 태세려니.△ 신명난 마을의 부흥 , 이야기 부활서 시작마을의 새로운 특산물과 이야기를 이으려니 고생이다. 상하면 송림마을, 새봄 처음 딴 고사리와 햇조기로 조기찌개를 끓여올리고 집집마다 지냈던 조구산제(조기산제)처럼 음식과 이야기가 고민할 것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마을은 마을대로, 이렇게 새 음식이야기가 태어나는 마을은 마을대로, 의미가 깊다. 있던 이야기도 사라지는, 마을이 이야기의 무덤이 된지 오래인데, 다시 이야기가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옛 것은 옛 것대로 새 것은 새 것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회자(膾炙)를 거듭하는 이야기의 힘, 이것이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는 힘이다. 식도락사업단에서 추진하는 사업가운데 하나는 마을스토리텔러의 발굴과 교육이다. 그러고 나서는 음식과 여행, 쉼과 마을콘텐츠 체험을 마을사람들로 연계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모두가 이야기로부터다. 신명나는 마을의 부흥은 이야기의 부활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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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11 23:02

취임 1년 김도종 원광대 총장 "창업 선도대학 새로운 비전, 맞춤형 교육 박차"

원광대학교 김도종 총장이 취임 1년을 맞는다. 김 총장이 이끈 짧은 1년에 원광대학교에는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무엇보다 취업중심의 다른 대학들과 달리 창업대학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내걸고 뛰고 있다.15세기 산업혁명에서 21세기 문화자본주의로 변화되는 과정에 빠른 적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김 총장을 만났다.- 벌써 취임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어떤 일들을 해오셨는지요.“취임 후 가장 먼저 대학의 낭비 요인을 줄였습니다. 외부에 맡겼던 학생취업상담, 입사 5년차 미만의 젊은 직원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내부 구성원의 역량을 극대화 했습니다. 대외적으론 중국 연변대학과 농업분야 육종 공동연구소를 설립해 7만㎡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대학 학생들의 중국 진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몽골 철도병원과 원격 진료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에서 다양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내부적으론 취임 전부터 말씀드린 창업선도대학, 1학과 1창업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해가고 있습니다.”-정부나 타 대학에서도 창업선도대학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현재 대학의 교육은 취업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산업혁명과 산업자본주의를 염두에 둔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분업주의체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단일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이 되어가는 현대시대에선 1인 기업이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원광대학이 그런 맞춤형 교육을 선도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현대는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인데요. 새로운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과거 이태리 피렌체에서 매디치카가 주도했는데, 오늘날 문화자본주의로 전환되는 시점에 새로운 혁명은 대한민국의 원광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관점의 교육을 펼치고 있습니다.”-원광대학교 창업선도대학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원광대학교 창업지원단에서는 우리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기술 및 정보를 바탕으로 지역창업거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발휘해 새로운 기술 벤처·중소기업의 든든한 배경이 되기 위해 창업지원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창업지원단은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사업장 및 공동 시설의 제공, 경영 및 기술지도 등 종합적인 지원으로 자립체제에 의한 지역 벤처기업의 창업촉진 및 창업성공률 제고로 지역경제 및 지역산업의 기반확충과 활성화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원광대학교 창업지원단은 창업촉진을 통해 지역 및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자 2014년 3월 원광대학교 총장직속 부속기관이기도 합니다.”-원광대학교 창업보육센터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원광대학교 IT·BT창업보육센터는 1997년 선정된 정보통신부 지정 대학정보통신 창업지원센터와 2000년 선정된 중소기업청 지정 바이오텍창업보육센터를 2005년 통합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8년 중소기업청 확장건립 사업에 선정되어 2010년부터 무빙테크노관을 개관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정보통신 및 바이오기술 산업의 신기술, 지식집약형 벤처기업의 창업을 촉진하고, 성공률을 제고시켜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실현함으로써 국가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입주기업과 졸업기업의 기술개발, 자금유치, 경영관리, 마케팅전략수립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보육서비스 체제를 더욱 내실 있게 구성해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창업선도대학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십시요.“창업은 ‘일자리가 없으니 창업하자’라는 단순한 생각이 아닙니다. 앞서 15세기 유럽에서는 대변혁이 일어났다고 말했는데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신(神)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그 축이 이동했고 산업혁명을 통해 산업자본주의로 그 시대가 또 한 번 이동했습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는 의·식·주(물질적 욕구)를 추구하는 사회였지만 현재는 이런 의식주를 담보 할 수 있는 일정량의 재화가 확보된 상태가 되면서 물질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욕구를 중요시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그래서 참다운 지식에 대한 욕구인 진(眞)’, 도덕적인 욕구인 ‘선(善)’, 그리고 감성적인 욕구인 ‘미(美)’를 충족하는 교육을 펴려는 겁니다. 개인중심주의, 물질적·정신적 욕구의 융합을 채워 사람들의 소비를 이끌어내려면 소품종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자가 ‘갑’이 아닌 소비자가 ‘갑’인, 그들에게 맞춰야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기업 중심에서 소기업 중심으로 옮겨가고 대학도 대기업에 취직하는 인원을 기르는데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창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창업교육의 방향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먼저 ‘1학과 1기업 창업’으로 우리 원광대학교의 모든 학과가 하나씩 학교기업을 만들 것입니다. 이미 13개 학과가 창업 아이템을 선정했고 하반기에는 한 학과가 추가로 아이템을 발굴,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30개 학과, 내 후년에는 전체 학과가 창업아이템을 기반으로 기업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현재 교내 창업지원단에서는 ‘책임 멘토 상시 지원’과 ‘벤처창업경진대회 참여’를 비롯해 ‘1학과 1창업 워크숍’, ‘자체 경진대회 개최’, ‘지식재산권 출원 지원’ 등 모의 창업 시뮬레이션을 위한 각종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향후 ‘창업선도대학 창업아이템 사업화’ 등 실전 창업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우수 창업학생들을 길러낼 계획입니다. 이와 함게 전교생 창업학교 이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창업학교를 이수해야 합니다. 이걸 듣고 주변에서는 ‘인문계열의 창업이 가능할까요?’와 ‘의치한의약학 계열도 이 과정을 이수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는데 물론 이수해야 합니다. 언젠가 병의원을 개업하거나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 총장이 전하는 창업 조언] 문화자본주의 시대 자신있게 도전하고 상생능력도 키워라김도종 총장은 현재를 21세기 변화의 시기로 진단했다. 15세기 유럽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사회, 철학, 문화, 교육 등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그런 대변혁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대학은 그런 변화의 흐름을 교육과 접목시켜 선도적인 지식(역량)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큰 흐름의 키워드는 바로 ‘문화자본주의’라는게 김 총장의 생각이다.그리고 현실과 접목시켜 발현시킨다면 산업의 흐름은 ‘창업’으로 나타날 것으로 김총장은 내다봤다.또한, 김 총장은 이런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향후 모든 사람들은 전문적인 창업능력을 갖춰야 하고, 그 선도에 원광대가 서길 소망하고 있다고 말했다.덧붙여, 김총장은 창업을 생각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두가지 말이 있다고 밝혔다.그 첫 번째는 자신감을 가져달라는 주문이다.자신감을 갖춰야 경쟁력도 나온다는 이유에서다.요즘 우리 대학 구성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나만의 이론이 있는데 바로 ‘시내버스 철학’라는 얘기도 곁들인다.“제 아무리 만원 버스라도 앉아 가는 사람은 있습니다. 즉 어려운 현실에서도 잘 되는 사람은 반드시 나오고,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도 자기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변을 탓하고 좌절하기 보단 과감하게 도전할 자신감을 갖길 바랍니다.” 두 번째 주문은 상생의 능력 갖추기다.경쟁시대에 앞서만 가는 일등보다는 주변과 상생하는 능력도 갖춘 인재가 크게 성공한다면서 우리 모든 청년들의 성공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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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만
  • 2015.11.10 23:02

취임 한달 김재원 전북지방경찰청장 "도민에게 품격있고 평온한 치안 서비스 제공"

최근 대기업 그룹 리더들은 권위의식을 버리고 친근하고 솔선수범하는 트렌드를 추구한다.집무실에 책상과 의자를 치워버리고 서서 업무를 보거나, 청중들에게 연설할 때는 연단 앞으로 나와 청중과 호흡하며 가까워지려고 한다.지난 10월7일 취임한 김재원 전북지방경찰청장(55)도 그런 리더십을 추구한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한자성어인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는 경찰 직원, 나아가 치안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 도민에게 더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의무경찰 1기 출신인 김 청장은 서울경찰청 교통관리과장 재직 시 쓴 책 ‘공감의 힘(행복을 만드는 세상, 2010)’에 “함께 웃고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적었다.김 청장은 “도민들께 특혜를 주는 전북 경찰이 되겠다”고 말했다. 범죄는 엄단하되 도민들의 안전을 위해 단속과 실적보다는 계도에 중점을 둬 도민들에게 ‘선진 의식’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김 청장을 만나 취임 소감과 전북경찰 수장으로서의 각오, 가치관 등을 들어봤다.- 취임하신지 한 달이 다 됐습니다. 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우선 전북지역에서 처음 근무하는 저를 환대와 따뜻한 말씀으로 환영해주신 187만 도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밤낮을 잊고 도민의 안전을 위해 도내 곳곳을 누비고 있는 직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환대를 해준 도민과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니, 생소했던 전북청에서의 근무가 이제는 고향인 충남에서 근무하는 것 같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경찰청과 각 지역 경찰서장을 하면서 쌓았던 경험과 연륜을 살려 도민들께 품격있는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원들에게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 분위기로 보답할 생각입니다.”- 평소 생각하는 경찰상이 있다면.“경찰은 도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경찰활동은 도민을 중심에 두고 이뤄져야 합니다. 도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도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치안활동을 해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음주단속을 하더라도 사고위험이 적은 농로길에서의 실적위주 단속보다는 현실에 맞는, 그리고 도민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단속이나 교육과 홍보에 집중해 위반자체를 원천 차단해야 하고 교통 시설물도 규정의 범위에서 융통성을 발휘해 도민의 불편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도민이 절실한 도움이 필요할 때 찾는 112신고도 도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총력대응태세를 구축해 현장 대응에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하며, 공정한 수사로 불의에 양보하지 않는 정의를 구현하면서도 수사결과에 대한 충실한 설명으로 도민이 납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도민들은 경찰의 존재가치입니다. 도민들은 평온한 치안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더 나은 치안을 위해 경찰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경찰은 이를 치안에 적극 반영할 의무가 있습니다. 도민이 원하는 바를 적극적으로 살피고 도민이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치안정책을 추진해 도민에게 인정받는 경찰, 그게 제가 생각하는 경찰의 모습입니다.”- 향후 전북경찰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 것인지요.“저는 전북경찰을 위대한 직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못해 출근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좋은 분위기에서 직원들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근무를 하며, 선례·관례에 국한해 닫힌 사고를 하기 보다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본인이 가진 능력을 맘껏 발휘하고, 본인이 창출한 성과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포상이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저의 생각에 대해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편안하게 대할 수 있고 작은 애로사항까지 귀를 기울여 좋은 방향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청장이 되고 싶습니다. 전북경찰 모두가 저의 진정성에 공감하고, 제가 생각하는 치안목표에 공감해 하나 된 의지로 나아갈 수 있다면, 도민들에게 더 평온한 치안으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집필한 책에서 공감을 강조하셨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공감과 소통은 어떤 것입니까.“공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 인생의 좌우명이기도 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경찰은 도민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도민의 입장에서 도민의 의견을 들어 치안정책을 추진해 공감을 받아야 하고, 조직 내부적으로도 구성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경찰과 같이 거대한 조직에서 청장의 치안에 대한 생각을 현장 직원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면, 추진하는 치안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휘부와 현장의 마음이 통하고 공통된 조직목표에 대한 합치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평온한 치안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통입니다. 다양한 방식의 언로(言路)를 만들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현장의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 도민, 직원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공감의 힘을 이끌어 내 전북을 평온하고 안전한 지역으로 꼭 만들고 싶습니다.” - 홍보 관련 업무를 많이 맡은 걸로 아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홍보란 무엇인지요.“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도민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바로 언론을 통한 홍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민의(民意)의 대변자입니다. 시간적·물리적 한계로 187만 도민의 의견을 경찰이 직접 듣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론은 도민을 대신해서 경찰이 추진하는 정책의 허와 실에 대해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불합리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으며, 경찰이 추진하는 정책을 도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도 있습니다. 경찰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도민이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도민이 불편한 사항이나 필요한 부분일지라도 경찰이 알지 못하면 경찰이 챙길 수 없습니다. 경찰과 도민사이에서 평온한 치안을 위한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홍보라고 생각합니다.” - 경찰 생활 중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가장 최근에 근무했던 서울 기동본부장 시절이 생각납니다. 기동본부장은 7500여명의 기동대원들을 지휘해 집회관리를 전담하는 직책으로 업무 특성상 분위기가 딱딱하고 권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선 경찰서장 계급인 총경급 기동단장이 본부장을 보면 거수경례를 할 정도였고, 중간관리자인 경정·경감급도 거의 군대와 다름없이 생활하는 곳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대원들은 본부장을 무척이나 어려워했습니다. 집회관리를 할 때는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지휘를 위해 권위적인 측면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까지 분위기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진정성을 가지고 대원들을 대했습니다. 우선 대원들의 마음을 잡고자 본부장이라는 호칭 대신 ‘선배’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의경 1기로 전역했습니다. 호칭부터 친근하게 하고 상사가 아닌 의경선배와 인생의 선배로써 다가가다 보니 나중에는 대원들이 본부장실을 서슴없이 찾아와 고민 상담을 할 정도가 되었고, 재직동안 많은 편지뿐 아니라, 조각케익 등 작지만 마음을 담은 선물도 받았던게 큰 추억입니다.” - 마지막으로 전북 치안 수장으로서 도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도민 여러분, 전북경찰은 올해 상반기에 치안고객만족도, 체감안전도, 4대 사회악 평가 등 많은 부분에서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도민 여러분은 전북경찰을 자랑스러워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전북경찰을 높이 평가해주시는 도민 여러분을 5600여 전북경찰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북치안의 총수로서 귀를 열어두고 도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듣고, 도민들이 요구하는 바를 먼저 찾아서 해결하겠습니다. 언제나 지금처럼 전북경찰을 응원해 주시고, 도민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 노력하는 전북경찰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원 청장은] 사람·소통 중히 여기는 대한민국 경찰 대변인김재원 청장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찰간부후보 36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2005년 총경승진후 강원 양구서장, 충남 홍성서장, 서울 도봉서장, 등을 역임한뒤 2011년 경무관 승진, 경찰청 대변인,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본부장을 거쳐 올해 9월 치안감 승진 후 첫 지방청장 근무지로 전북에 왔다. 김 청장은 평소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은 공감에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소통을 중시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김 청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경찰의 대변인으로 통한다. 평소 꼼꼼한 업무처리와 소통을 바탕으로 한 상호 간 신뢰를 통해 조직의 힘을 하나로 결집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김 청장은 그동안 각 지역 경찰서장과 경찰청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전북경찰의 수장으로서 전북치안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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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세종
  • 2015.11.09 23:02

[변화&소통] 새만금 수질관리 현실적 대안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31%가 해양에서 흡수된다. 육지의 흡수량 13%에 비하면 엄청난 양이다. 연안역(갯벌 등)에서 흡수되는 이산화탄소 양은 열대우림에 비해 2~10배에 이른다고 한다. 갯벌은 어족자원의 보고이다. 해양 생태계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며 뛰어난 수질정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사라진 갯벌, 사막으로 변해가는 연안역, 변화된 새만금의 어황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달 17일 기후여정 순례단이 새만금을 찾았다.△새만금에는 아직 어민들이 살고 있다= 순례단이 찾은 곳은 계화 양지포구. 한때는 선외기, 5톤 전후의 어선 등 350여척의 배가 정박했던 곳이다. 맨손어업도 활발했다. 생합과 바지락의 60% 이상이 근처 갯벌에서 나왔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고 갯벌이 사라지면서 주민들은 고창군의 양식장 등지에서 공공근로나 날품을 팔고 있지만 아직도 새만금 안쪽에는 배를 생계 수단으로 삼는 어민들이 있다.현재 새만금 내측에서 조업하는 배만 해도 700여척. 허가선과 무허가선이 반반 쯤이다.강경근 계화어촌계장은 방수제 공사를 이유로 수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산란하러 오는 물고기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데다, 내부 준설로 인해 수질이 악화돼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강경근 계장은 그 많던 백합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소라, 갯우렁이, 바지락도 현저히 감소해 요즘엔 바지락 종패 정도나 건지고 있다며 새만금사업 완공 전까지는 어민 생계대책 차원에서 배수갑문을 열어 해수유통을 하는 것에 대해 어민들과 협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새만금 바깥, 바다 환경오염 피해 확산 어획량 급감= 방조제 안쪽 계화 돈지포구에서 고기를 잡다가 지금은 방조제 외측 부안 가력항에서 꽃게 조업을 하는 이금배 씨는 방조제 건설이후 바깥 해역 5㎞ 구간에 뻘이 쌓이고, 33km 방조제가 해파리 유생의 산란장이 되면서 어획고가 급감하고 있다고 말했다.주꾸미 잡이용 소라방에 죽뻘이 차고, 바위 수염이나 해파리, 갈대 잔재물과 쓰레기 더미로 그물이 상해 어업이 어렵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이어 이 씨는 바다 환경이 재앙 수준으로 변해 연안 어민 5만명의 생계가 막막하다고 호소했다.돈지포구의 어민들은 모두 방조제가 막힌 후 동진강과 만경강 하구 기수역이 어류 산란장과 패류 서식지 기능을 상실하면서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기후여정단에 참여했던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새만금호의 담수 수질 문제는 주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처장은 방조제 준공 이후 외해역 수질오염 문제가 발생한 일본 이사하야만처럼 어업 생산량이 줄게 되고 이는 어민과 내측 주민(농민)간의 갈등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새만금 수질개선 시설 운영비 분담, 비점 오염원 저감을 위한 상류의 개발 억제로 상하류 간의 갈등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해양수산연구원 장원근 박사는 지난 9월 23일 전북환경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어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당시 장 박사는 새만금 내측에서는 수질오염으로 보름달 해파리 폴립이 대규모 발생했으며 상괭이, 숭어, 조개의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이어 장 박사는 방조제 바깥쪽은 조류속도가 20%(북측)~40%(남측) 감소하고, 해저 퇴적물의 변동이 심하다면서 모래질 함량이 80%에서 60%로 감소한 반면 실트(점토)층은 20%에서 40% 증가했기 때문에 저서생물 군집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장 박사는 바다 수질오염이 심각했던 마산만이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되고 민관산학협의회를 구성해 환경관리와 정책을 협의한 결과 수질이 개선되고 있는 만큼 새만금 해역도 거버넌스 체제구축이 시급하다면서 그러나 전라북도는 4차례 진행된 새만금외해역 환경관리정책협의회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새만금 수질개선사업 효과 의문= 새만금 내외 환경변화의 중심에는 수질 문제가 있다. 새만금 수질개선을 위해 지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총 2조4000억여 원이 투입됐다. 그런데도 하천 수질은 제자리 걸음이다.이달 말 새만금 수질 중간 평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새만금 호의 평균 수질은 COD와 T-N 수치가 평균 5급수 수준이다. 새만금호의 13개 수질측정지점 중 새만금호 중간 수역의 6개 지점은 6급수 이하다.전북녹색연합 한승우 사무국장은 현재 해수를 유통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완전 담수화할 경우 수질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나빠질 것이라며 전라북도와 정부는 한계를 인정하고 해수유통으로 관리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군산대 최진용 교수는 새만금 매립토 확보와 수질 문제를 지적했다. 새만금 내부개발에 필요한 토사는 7억㎥. 서울시 면적 600㎢, 1.1m 높이로, 전주시 면적 200㎢ 3.5m 높이로 쌓아야 하는 엄청난 양이다.최 교수는 토사의 80%를 내측 담수호 준설로 확보할 경우 수로 수심이 5m에서 15m로 깊어지는데 이는 물그릇은 줄어드는데 담을 물의 양은 많아지는 꼴이다며 이 경우 오염물질의 호수 내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수직 성층화가 된 아래 물은 순환이 되지 않아 수질악화는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한마디로 내부준설은 최악이라는 것이다.△해수유통 또 다른 개발 대안으로 검토해야=이정현 사무처장은 새만금의 최악의 수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해수유통을 꼽았다. 새만금사업이 애초 100% 농업용지 개발에서 농업용지 30%, 도시용지 70%로 개발계획이 바뀌었기 때문에 대규모 담수호를 조성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박덕배 전 농림수산식품부 제2차관은 현재 새만금사업은 간척사업이 아닌 해양개발사업으로 농업용수를 전제로 추진해온 담수화는 명분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면서 국내에서 성공했다는 대규모 간척사업의 대명사인 충남 서산 B지구도 2006년부터 농업을 포기하고 택지로 분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또한 외국의 경우에도 해양 개발시 연안역을 새로운 해양수산 및 연관 산업과 휴양레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담수화에 의한 연안개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이정현 사무처장은 현재 신시, 가력 배수갑문을 다 열어도 호소 내에 해수가 섞이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만경 동진강 하구에 둑을 쌓거나 수중보를 설치하면 필요한 농업용수는 확보할 수 있다면서 현재 농업용지에서도 도시용지, 연구용지, 원예단지, 수목원 등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농업용수 이용 계획량이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이어 이 사무처장은 이 점에서 선진국 하구역의 관리 모델인 해수, 기수, 담수를 구분하여 관리하는 방안을 새만금에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기후여정단을 이끈 김춘이 환경연합 활동처장은 어민들에게 미국 브라운 팜 댐 사례를 들었다. 미국 주 정부는 브라운 팜 댐을 철거하고 3479에이커의 간척농지를 매입해 이중 762에이커를 강 하구 습지로 복원했다.김춘이 활동처장은 미국의 경우 하구둑을 비롯한 댐 철거가 법적인 근거 아래 국가 시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또 서해안 대부분이 하구 둑에 막혀 어민 피해, 생태계 피해가 심각한 가운데 화성호 등지에서는 하구 둑 개방에 대한 자치단체와 지역 사회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전북지역도 이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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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5 23:02

[이색&공감] 길거리 공연하는 주방장 유비택씨

주방장(chef)과 연예인(entertainer)을 합성한 셰프테이너(chef-tainer)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요즘 대세는 요리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초등학생 6만3862명을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조사한 결과 여학생은 3위, 남학생은 6위에 올랐을 정도로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요리사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동네에서 눈에 띄는 주방장 한 분을 만났다. 올해 70살의 연세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늘 방실방실 웃으면서 길거리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분이다. 처음에는 거리 악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연을 듣고 보니 아주 오래된 중국음식점의 주방장이시란다. 주방장(chef)과 음악가(Musician) 그의 삶이 궁금해 무작정 인터뷰를 청했는데 흔쾌히 응해주신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가한 시간에 그를 만났다.△ 일제강점기에 익산에 정착익산에 거주하는 유비택(70대만)씨는 화교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부모님이 조선으로 건너와 터를 잡았고, 유씨는 익산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은 중국 산둥성 연태시. 화교가 운영하는 화상(華商) 중식당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5남매중 형제가 태어난 익산을 떠나지 못하고 중국음식점을 하고 있다. 아버지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80년이 넘게 중국음식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처에 사는 친형도, 사촌형도 모두 중국음식점을 하고 있다. 유가(家)네는 선친때부터 익산의 명물인 된장 짜장으로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유씨 가족의 생존기는 중국요리였지만 그에게 요리는 어린시절 먹었던 콩나물국이다.그때는 다 가난 했어요. 부모님도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키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지. 어릴 적엔 맨 날 콩나물국만 지겹도록 먹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맨 날 콩나물국이야 투정도 부렸는데. 나이 먹고 지금은 어머니의 콩나물국이 그립네요.△ 음악 좋아했던 끼 많은 아이어린 시절 익산 영정통에서 살던 유씨는 당시의 화려하고 번화가였던 골목을 기억한다.내가 살던 평화동 옆에 이리극장이 있었어요. 그때는 제일 비싼 땅이었지. 언젠가 이리극장에 큰 불이 났는데, 한동안 영화 상영을 못하니까,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영화를 틀어 줬어요. 그때 공짜로 영화 본 사람 많네. 어린 시절에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고. 끼가 많은 아이였던거 같아요어린 시절 5살 위의 누나가 하모니카를 곧잘 불었다. 그런 누나가 신기하고 부럽고 좋아보였던 어린 유씨는 8살 어린나이에 하모니카 소리를 통해 음악을 알게 된다. 독학으로 하모니카를 배웠다. 그렇게 시작된 하모니카 연주는 60여 년동안 그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다. 무거운 웍을 들고 요리를 하다보면 어깨는 천근만근 손가락을 들 힘도 남아 있지 않지만, 일과를 마치고 하모니카를 손에 쥐면 하루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독학으로 악기 섭렵거리서 공연그의 무대는 길거리다. 흥에 취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길에서, 가게에서 연주한다. 그의 애창곡은 중국 국민가수 등려군의 첨밀밀.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계속 하모니카 연주를 들어보라고 신나하는 그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유씨가 다룰 줄 아는 악기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본격적인 악기 자랑을 시작하니, 말이 빨라진다.가게 한쪽 벽에 걸려 있는 때 묻은 기타(guitar)를 가져와 금새 또 연주를 시작한다.중국 무협영화에서 본 듯한 호롱박이 달린 중국 민속 악기인 호로사(hurusi) 도 소리를 듣고, 중국에서 직접 구매하고 혼자 연주법을 터득했다. 최근에는 우리 악기 해금과 비슷한 중국 전통악기 얼후(二胡)에 빠져 있다. 앞으로 색소폰에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한다.모두가 독학으로 배운 악기들이다. 5번만 들으면 어떤 곡도 즉시 연주가 가능하다고 한다.3개월에서 6개월이면 악기를 거의 마스터 할 정도라니. 타고난 음악적 감각이 풍부한 분이 아닌가 싶다.슬하에 4남매를 두고 모두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래된 가게를 운영하는 건 오래된 단골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내년이면 재개발로 그의 가게는 철거가 될 예정이다. 그때까지는 한명의 손님을 위해서 문을 열 생각이다.그리고 빈 가게에서 하모니카를 구슬프게 한 곡 연주 한다. 삶이 고달할 때 언제나 그를 위로해주는 음악이 있기에 오늘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다.● [화교는] 세계곳곳 폭넓게 분포임오군란때 한국 이주바닷물 닿는 곳에 화교가 있다 연기 나는 곳에 화교가 있다 한 그루 야자나무 밑에는 세 명의 화교가 있다 등의 표현은 중국인이 해외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화교(華僑)는 일반적으로 중국 본토 이외의 국가나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중국계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화(華)는 중국을 의미하며, 교(僑)는 타국에서의 거주 내지는 임시 거주를 의미한다.화교의 한국이주는 1882년 임오군란때 청나라군과 함께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1893년 청국조정에서 자국국민의 외국여행금지법을 폐지하고 급속히 진행되었다. 100여년을 이땅에서 살아온 흔적을 간직한 우리의 이웃이다.익산 영정통에는 중국음식점, 솜틀집을 운영하던 화교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다. 지금은 거의 모두 세상을 떠나고 후손들은 지역을 떠나 십여명 정도만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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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1.04 23:02

취임 1주년 맞은 강현직 전북연구원장 "출범 10주년…'도민과 함께하는 열린 연구원'되도록 노력"

옛 전북발전연구원의 이름이 지난 10월부터 전북연구원으로 바뀌었다. 10년만의 명칭 변경이다. 지난달 28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강현직 원장으로부터 명칭변경의 의미와 지난 10년간의 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본다.- 지난달부터 전북연구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전북발전연구원’이라는 이름이 귀에 더 익은 것 같습니다. 이름이 바뀐 배경과 의미는 무엇입니까?“종합연구기관으로서 재도약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성장 위주의 사회에서는 SOC 등 지역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제화 시키는 것이 주된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민들의 복지 등 생활 속에서 실감하는 삶의 질, 그리고 행복이 더 큰 화두입니다. 연구원의 연구영역도 SOC뿐만 아니라 농업, 문화·관광, 경제, 새만금, 여성, 사회복지 등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7월에 서울시의 시정개발연구원이 서울연구원으로 개명한 것을 시작으로 경기, 충남, 광주·전남 등의 지역에서도 ‘발전’ ‘개발’이라는 용어를 빼고 ‘연구원’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다는 열린 의미로 해석하시면 될 것입니다” - 서울 등 수도권이나 영남권 등은 어느정도 SOC가 갖춰져 있으니 굳이 ‘발전’ ‘개발’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지만, 전북의 경우에는 아직도 기본적인 SOC가 취약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SOC를 배제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SOC를 포함해서 영역을 확장한다는 의미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그럼 전북연구원이 어떤 배경으로 설립됐고, 그동안 어떤 일을 해왔는지 한번 정리해주세요.“우리 연구원은 2005년 3월 전라북도의 출연기관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각 부처와 관련된 국책연구기관들은 분야별로는 세밀하지만 각 지역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전북에 맞는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좀 더 도민에게 적합한 현실적인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원이 문을 열게 됐습니다. 그동안 도내 여러 분야 정책에 대해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전북 도정에 관한 중·장기 개발계획과 주요 현안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또 지역경제, 지역발전, 지역 여성에 관한 연구와 복지정책 대안 모색, 그리고 정부와 전라북도, 지역 연구기관 또는 민간단체의 각종 연구용역 등을 실시하며 전북 14개 시·군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연구용역도 수행해오고 있습니다. ”- 공식적인 연구 이외에 지역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요?“국내외 연구기관 간의 공동연구 및 정보교류 협력 등을 통해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고 시대의 트랜드를 읽음으로서 발전의 선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유치했을 때는 한 박자 빠르게 선결과제와 파급효과 극대화 방안을 종합적으로 제시했고, 정부가 새 정책을 내놓거나 정책을 전환할 때 새 정책을 분석한 이슈브리핑 등을 통해 전라북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시사점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전북 도약의 실질적인 견인차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연구원이 출범한 지 10주년을 맞았다고 하는데, 그동안의 성과를 이야기해주시죠.“IMF 이후 광역시·도에 지역 연구원을 둘 수 있도록 허용됐습니다. 저희 연구원은 다른 시·도연구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출범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현안을 해결하는데 앞장서 왔고 지역 의제를 발굴하는데 충실해왔다고 자부합니다. 매년 80여개가 넘는 정책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전라북도정을 뒷받침하고 선도하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물론 전북만이 가지고 있는 새만금의 미래에 대한 연구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저희 연구원의 가장 앞선 분야입니다. 개발이 시작된 지 25년이 넘어서 이제야 뭍으로 변해가는 것이 가시화 되는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저희 연구원에서는 경제특구로서, 대단위 농업지구로서, 국제적 물류도시로서 환황해권의 중심핵으로 성장할 새만금의 미래를 그리는 연구를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 지난 10년 성과와 보람도 있었지만 아쉬움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10년에 대한 비전과 구상을 밝혀주세요.“수도권 집중과 경부축 중심 개발로 전북은 지난 50년 동안 낙후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환황해경제권의 부상과 서해안 시대 도래에 따라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걸맞는 연구체제를 갖추고 도민들의 삶이 보다 윤택해질 수 있는 정책 개발과 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또 2017년이면 ‘전라도’란 이름이 우리 역사에 사용된 지 1000년이 됩니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보다도 앞선 역사입니다. 이에 맞춰 전라도의 정신과 특히 전북 내면의 뿌리를 찾고 우리가 가져야 할 정체성에 대해서도 도민들과 함께 생각하는 연구를 수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원과 전북도와의 관계가 어려운 문제인것 같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2중대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고, 너무 멀면 지역발전에 도움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연구원 연구와 도정이 어긋나면 전북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연구원이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전북도의 정책과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도 민선6기 핵심 정책인 삼락농정과 토탈관광, 탄소산업이 실효성 있게 추진되고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꽃피울 수 있도록 연구 역량을 모으고 있습니다”- 원장으로 취임하신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취임 초기부터 상당히 바쁘게 보내신 것 같습니다.“지난 1년은 조직 정비와 연구분야 점검 등 전북의 싱크탱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에 인사와 조직, 연구 부문 등 혁신방안과 세부실행계획을 마련한 뒤 하나하나 착실히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연구보고서의 질적 향상을 위해 유사율 검증 시스템을 도입했고, 네 단계에 걸친 연구역량 강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또 연구과제 선정부터 최종 보고서 발간까지 모든 단계에서 점검하고 평가하도록 체계화하였으며 연구 결과가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고 활용되었는지 점검할 수 있는 연구과제이력제도 구축하였습니다. 연구원 구성원들도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연구원들 스스로 선의의 경쟁 속에 알찬 결과를 담보하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혁신방안은 일단 올해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나 이후에도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지속적으로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도민들께 한 말씀해주십시오.“전북연구원 모든 구성원들은 도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한층 노력할 것입니다. 연구원 홈페이지에 도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연구제안’ 코너를 만들었고, 매년 연초에는 정책과제 공모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민과 함께 하는 열린 연구원’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현직 원장은] 언론·연구기관·교육계 등 두루 거친 '마당발'강현직 원장(57)은 전주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언론계와 연구기관, 공직, 교육계 등을 두루 거친 현실주의적 연구자이다. 서울신문과 문화일보 등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었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공직자와 대학 교수로서 경력을 쌓았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면서도 전북도 재경자문위원, 도 공무원헌장 심의위원, 전주학사 운영위원 등 고향과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왔으며, 중앙과 지방을 넘나들며 각계각층의 인물들과 폭넓게 교류하는 소위 ‘마당발’로 알려져있다.

  • 기획
  • 이성원
  • 2015.11.02 23:02

생명과학자 김성호 서남대 교수 "자연과 눈 맞추고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삶이 보입니다"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이란 책을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았다. 저자는 7년 전,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를 펴내 주목을 받았던 생명과학자 김성호 서남대 교수(54)였다. 자연의 벗들에게 배우는 소박하고 진실한 삶의 진리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의 네 번째 저서. 털어놓자면, 자연이야기를 엮어놓은 그만그만한 책쯤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 근거 없는 추측은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여지없이 깨졌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벗하며 살아온 20여년 세월이 촘촘하게 놓인 이 책은 그저 그렇게 자연 이야기를 풀어놓은 보고서도, 기교 넘치는 글쓰기로 화려하게 치장한 자연예찬의 에세이도 아니었다.눈을 맞추면 친구가 되는 자연에 다가서서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운 생명과학자가 진솔하게 써낸 자기고백서와도 같았다. 기교 없이도 따뜻하고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게 하는 글의 힘이 곳곳에서 빛났다. 덕분에 생명을 향한 경이로운 그의 사랑이 일깨워주는 삶의 진리 또한 그윽하고 깊었다.전공이 아닌데도 자연에 깃든 생명을 찾아다닌 지 25년째, 자연의 생명을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평생을 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우연히 마주친 고목나무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큰오색딱따구리의 이야기를 50일 동안 움막에서 지내며 관찰하고 기록한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나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 〈까막딱따구리 숲〉과 같은 생태 에세이로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기대보다도 훨씬 즐거웠다.오랜 세월, 내 발로 직접 다가서고, 눈높이를 맞추려 내 몸을 낮추고 오래도록 자세히 생각하면서 보기를 실천하며 자연을 마주해온 그의 일상이 그만큼 생생하고 가깝게 다가온 덕분이었을 것이다.-생태에세이를 여러 권 내셨던데요. 전공과는 다른 분야더군요.전공은 식물생리학이에요. 식물체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연구하는 것이니 좀 거리가 있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개인적인 일을 따로 하고 있는, 일종의 이중생활입니다.(웃음)-그것이 가능했습니까. 자연을 관찰하는 일은 때가 있으니 형편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닐 텐데요.몸이 좀 고달파서 그렇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제가 잠을 줄이는 연습을 오래전부터 해왔거든요. 그래서 하루를 길게 쓸 수 있었습니다. 관찰하는 동안 딱따구리가 번식에 들어서는 봄에는 하루 두세 시간 정도 자게 되는데 그런 생활을 10년 가깝게 했어요. 물론 강의도 성실하게 했죠. 그런데 이제는 좀 힘들어졌어요. 내 가슴에서 빛나는 것을 찾았는데 너무 늦게 찾아서 이제는 체력이 따라주지 못한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는 교수님을 생명과학자로 주목받게 한 책입니다. 이전에도 지리산 섬진강 일대의 자연과 생명 이야기를 관찰해오셨는데, 왜 딱따구리가 앞서게 되었는지 궁금하군요.91년부터 들꽃이며 새, 나무, 식물 등 자연에 깃든 친구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생명 하나하나에 다가서서 하루 종일 그것을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마음에 고인이야기를 적는 일을 했지만 그런 생활을 17년쯤 하고 나니 지치더군요. 내용도 정보 차원에 그치고요.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즈음 지리산 자락에서 죽은 고목나무에 둥지를 막 짓기 시작한 큰오색딱따구리를 만났어요.-그것이 계기였군요.하얗고 검은 무늬에 빨간색 오색딱따구리를 만났을 때 가슴이 떨렸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마음이 빠져들더군요. 그때부터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 떠나보낼 때까지 나무 옆에 움막을 짓고 50일 동안 지켰습니다.-일상을 지키면서 움막 생활이 가능했습니까.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관찰해야 하는 생활이었는데, 그 사이에 수업이 있으면 나갔다 왔어요. 필요하면 밤을 새우기도 했는데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아예 움막에 들어와 지냈죠.-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다행히 봄에 시작해 여름을 맞는 때여서 지내기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힘든 시간이 있었다면 물리적 고통이 아니라 어린 새를 떠나보낼 때였던 것 같습니다. 너무 섭섭하고 허전해서 울었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그때 배웠어요.-서남대는 언제부터 재직하셨습니까.91년 개교와 함께 이 학교로 왔습니다. 임용되자마자 돌을 갓 지난 첫아이를 데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원에 내려왔지요. 선생은 학교 옆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생물학과가 개설된 학교에서 연구하는 일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와서 보니 기본적인 실험조차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어요. 암담했습니다.-지리산과 섬진강 답사를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겠군요.맞습니다. 사실 대학교수는 연구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죠. 그런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겁니다. 연구를 선택한다면 학교를 떠나야 하고, 학생을 선택한다면 전공을 내려놓아야 했어요.-자연의 생명 이야기를 찾아 나선 이유겠습니다.내 몸이 장비가 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어요. 다행히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느낄 수 있는 가슴도 있다는 것이 새삼 소중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지리산 섬진강이라는 자연을 보게 되었는데 지리산 품안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어요. 카메라 하나 들고 땅과 자연에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91년이었어요.-대상은 어떤 것이었나요.들꽃부터 온갖 자연에 깃든 생명은 모두 관찰 대상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다가서서 눈높이를 맞추고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더니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생기더군요. 글이 늘어나면서 내 몸 속에 고여 있는 생각들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았어요.-새에 대해서는 지식이 있었습니까.어느 정도 상식은 갖고 있었지만 깊이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을 택한 겁니다. 큰오색딱따구리를 관찰했던 50일 동안은 새벽 3시에 일어났어요. 사실 그 시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남의 사생활 엿보는데 예의는 지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어둠이 숲을 덮고 나서야 조용히 움막에 들어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생명에 대한 예의가 각별하셨군요.덕분에 숲에서 배운 것이 있어요. 새벽은 빛으로만 열리지 않더라고요. 소리가 먼저 깨어나서 일어나기 시작하죠. 잠들었던 소리들이 깨어나는데 눈으로 볼 수 없으니 귀로 듣고 가슴으로 듣게 되죠. 보이고 들리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 있는 일상이 시작된 겁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신비로우니 내일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1초 앞이 궁금해지고 내일이 궁금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쌓이다 보니 50일이 되었어요.-딱따구리가 교수님께 특별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내 가슴에서 빛나는 것이 뭔지를 그때 찾았으니까요. 아무도 없는 숲에서 하루 종일 나무 하나 지켜보고 있는 일을 몇 달 동안이라도 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된 거죠. 그 다음부터는 그냥 앞을 보고 간 겁니다. 딱따구리가 내 운명을 바꾸어놓은 셈이죠.-딱따구리에 빠진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딱따구리를 보면서 60년을 목수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저희 집은 늘 가난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가난 속에서도 저희를 사랑으로 키우셨죠.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사실 50일 동안 움막생활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평생을 목수로 살아오신 아버지께 기록으로라도 딱따구리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딱따구리가 새끼를 키워내는 과정이 우리들의 자식사랑과 똑같더군요.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책을 읽다보면 쉽고 편안한 글쓰기의 미덕이 돋보입니다. 글 연습을 따로 하셨습니까.워낙 글쓰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만 독자들에게 잘 전달된 부분이 있다면 제가 오래 깊이 들여다본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글쓰기가 조금이라도 단련되었다면 글 연습을 본의 아니게 해야 했던 시간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특별한 시간이 있었습니까.글을 많이 쓰는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좀 오지랖이 넓은 편이거든요.(웃음) 이 학교에 오자마자 정년시기를 생각해보니 35년을 근무하게 되더라고요. 정년이 되면 내 삶을 담아냈던 학교를 떠나는 것인데, 그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해보았어요. 일기를 써서 35년의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습니다. 3650통의 편지가 만들어졌죠. 그런데 10년이 되면서 학교가 더 어려워지고 불안해지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자연히 날마다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더군요. 암울하고 아픈 이야기뿐이었어요. 희망도 보이지 않았을 때 일기쓰기를 멈추었습니다. 그 파일은 모두 삭제했죠. 가슴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기록하는 일만 했습니다.-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죠. 큰오색딱따구리 이후 연이어 동고비, 까막딱따구리 책을 내셨더군요. 시간적으로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맞습니다. 온전히 관찰에만 시간을 쏟을 수도 없고, 마음이 거기에 있으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해 쉬고 한해 복직하는 식으로 3년을 쉬면서 관찰 작업을 했습니다.-지리산 일대에서는 볼 수 없는 까막딱따구리를 그래서 관찰할 수 있었군요.그 새는 강원도와 경기도 인근에서만 만날 수 있어서 학교를 휴직하고 강원도에서 1년 동안 지냈어요. 강원도 화천에 있는 숲인데, 우리나라 딱따구리가 이 숲 안에 모두 살고 있죠. 정말 좋은 숲입니다.-동고비는 딱따구리와는 다른데 관찰을 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동고비도 딱따구리 둥지에 붙여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새이니 상관없는 새는 아닙니다. 몸이 작은데 진흙으로 제 몸만 빠듯이 들어갈 수 있게 집을 짓죠. 딱따구리 둥지는 입구가 넓습니다. 거기 붙여서 집을 짓는 것인데, 도감에도 동고비는 딱따구리의 옛 둥지에 진흙을 발라 번식을 하는 새라고 딱 한줄 나옵니다. 너무 흔한 새여서 눈길을 받지 못하죠. 그래서 지켜봤습니다. 딱따구리 둥지 하나가 허투루 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딱따구리가 살고, 동고비가 살고, 하늘 다람쥐가 살고. 자연에는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죠.-우리나라 딱따구리는 몇 종이나 됩니까.쇠딱따구리, 아물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큰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그리고 가장 큰 까막딱따구리까지 6종이예요. 번식일정까지 관찰은 다 했습니다. 제가 마지막 할일도 우리나라의 딱따구리를 정리하는 것인데 95% 정도는 되어 있지만 5%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봄부터 여름까지는 딱따구리를 보고 다니죠. 여름에는 팔색조, 긴꼬리 딱새 등을 보고, 10월 11월에는 물수리를 따라 다니는데 계절마다 그들을 만날 생각에 마음이 설렙니다.-25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같은 일을 해오시면서 고비는 없었습니까.답답한 시기가 있었죠. 이정도면 무엇인가 쥐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자연 속에 있으면 그런 마음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주위에서는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를 쓰기 전 17년을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큰오색딱따구리〉에 제가 그동안 자연 속에 있으면서 자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시간이 다 들어와 있는 셈이거든요. 자연이 제게 가르쳐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은 분들에게 전해드릴 수 있는 것도 그 시간으로 쌓여진 힘 덕분이고요.김 교수는 생태에세이 뿐 아니라 강연으로도 이름이 높다. 요즈음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꼭 강연이 있게 되는데, 그가 강연과 관련해 정해놓은 우선순위와 원칙이 흥미롭다. 같은 여건이면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교사, 학부모 순이고, 가까운 거리보다는 먼 거리를 선택한다. 왕복거리에 강연까지 14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원도를 가장 많이 다니게 된 이유다. 강연료도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데, 대학 교수로 있는 한 강연료는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 책을 다시 구입해 되돌려준다.그에게 강연은 어떤 의미일까.때로는 버겁기도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내 이야기를 통해서 뭔가 삶의 작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죠. 가장 즐거운 강연이 초등학생들을 만날 때인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을 보면 제 영혼도 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큰 행복이죠.그가 좋아하는 강연 주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번잡한 일상, 손쉬운 것들에 마음 빼앗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가 자연과 눈 맞추며 지내온 시간을 들여다보니 그의 강연에 객석이 뜨거워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김성호 교수는] 지리산섬진강 일대 자연관찰 기록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 펴내김성호 교수는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목수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단칸방에서 3남매를 사랑으로 키웠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60년을 목수로만 살아온 아버지를 그는 가장 존경한다. 부모님은 공부보다는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들에게 단 한번도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덕분에(?) 성적은 늘 꼴찌 근처에 있었다. 휘문고 2학년 때 어머니가 중병을 얻었다. 속 썩인 일도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기쁨을 드린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밤을 새우며 교과서를 외웠다. 겨우 몇 십 등 올라간 성적표에 어머니가 크게 기뻐하셨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내친김에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싶었다. 어려운 형편에 재수까지 하며 연세대 생물학과에 들어갔다. 석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스스로 학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벌었다.1991년 서남대 교수로 임용됐다. 안정된 길이 있었으나 새로 문을 여는 대학이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기본적인 실험 장비도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학자로서의 연구 작업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개인적인 출구가 필요했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마음속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그 일대를 누비고 다니며 자연과 눈 맞추고 살아온 그는 2008년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를 펴냈다. 50일 동안 딱따구리의 둥지가 있는 나무 옆에 움막을 짓고 관찰해온 결실이었다. 2년 후에는 다시 〈동고비와 함께 한 80일〉을, 그 이듬해에는 〈까막딱따구리의 숨〉을 펴냈다. 주목받게 된 이 책들을 통해 생명과학자로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연에 깃든 생명을 지키는 일과 관찰을 통해 얻은 아름다운 생명 이야기를 나눈 일은 이제 삶의 목표가 되었다.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과 〈관찰한다는 것〉을 이어 펴냈다. 서남대 기초의학과 교수. 자연의 진리를 나누는 외부 강연도 열심히 하고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5.10.30 23:02

[변화&소통] 한스타일 학교 만들기

#1.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뜨셨소~ 인당수 풍랑 중에 빠져 죽던 청이가 살아서 여기 왔소 낭송 수업이 한창 진행되는 전주 진북초등학교 4학년 교실. 둥글게 둘러앉은 아이들이 제법 진지하게 감정을 잡아 심청가의 마지막 부분을 원문으로 함께 읽고 있다. 앞서 심청전의 주요 내용과 원문을 읽어서인지 낭송 선생님을 따라 소리내어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너무도 진지해 감동이 밀려온다. 교실 뒤쪽에 서 있는 남자 담임 선생님도 함께 즐기는 느낌이다.#2. 대장군방 벌목허고, 오귀방에 이사권코 흥보가 중 유명한 놀부 심술대목 첫 머리를 낯설고 알아듣기 어려운 말인데, 북장단에 맞춰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부르고 있다. 판소리 수업 중인 완산초등학교 돌봄교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의 질문 세례가 쏟아진다. 선생님 곁에 와서 북을 만져 보고, 쳐 보고, 어려운 말을 물어보면서 산만하지만 판소리와 놀며 배운다.두 장면 모두 전주시와 전주시평생학습관이 진행하는 한스타일 학교 만들기의 현장이다.전주시는 2010년부터 해마다 한지, 한옥, 한소리 등 다양한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전주시교육청과 연계해 초중고등학교에 개설,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60개교 5060명의 학생이 이 과정을 이수했다. 올 해는 11개 초등학교 330여명의 학생들에게 10주 동안 판소리와 고전 낭송을 가르치고, 오는 12월11일(금)에는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낭송과 판소리 발표회를 열 계획이다.올 해 처음 시도하는 고전낭송은 소리를 배우는 공부 방법으로 옛 서당에서 하던 성독과 유사한 것으로 고미숙 고전평론가가 〈호모큐라스〉에서 소개한 인문학적 공부 방법이다. 올 해는 고전소설인 판소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낭송과 판소리를 병행해 가르치고 있다.우리에게 전통문화가 있다고 자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계속 계승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린 학생들이다. 한창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 재미있게 전통문화를 즐기며 익힌다면 내가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몸속에 전통문화가 인식되는 것이고, 어린 학생들은 미래 전통문화의 수요자이자 공급자가 되는 것이다.몇 해 전 전주시의 자매도시인 일본 가나자와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인상 깊게 느낀 것 중 하나는 21세기 미술관과 노가쿠 박물관, 직인대학교 등이 가나자와 학생들의 전통문화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었다.가나자와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의무적으로 21세기 미술관을 관람해야 하고, 노가쿠 박물관에서 능악 수업을 받고, 능악 공연을 1회 이상 관람해야 하며, 직인대학교에서 연 1회 체험교실에 참여해야 한다. 이것은 가나자와의 어른들이 가나자와의 문화를 다음 세대에 확실하게 계승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전주에만 있는 전주시와 전주시교육청이 연계한 전통문화 프로그램, 5년이 넘게 지속되어온 한스타일 학교만들기는 전통문화교육에 대한 전주시의 뚜렷한 의지의 표현이다. 전통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민은 저절로 양성되지 않는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의 전통은 아이고~ 아부지!하고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북채를 쥐어보는 손길에, 판소리 선생님을 쳐다보는 또랑또랑한 눈망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전통문화 아카데미] 전주서 '한국' 배우는 외국인들 "전통체험하고 학점도 받아요"전통문화관에서 비빔밥을 비빈다.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불고기와 잡채를 만든다.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 한지를 뜨고, 한지공예로 나만의 공예품을 만든다.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판소리 공연을 관람한다. 사자탈을 쓰고 사자탈춤을 배우고, 한국 전래놀이를 함께 해 본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활쏘기와 술 마시는 예절을 체험하고, 한옥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학점을 받는다.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에 유학을 왔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전북권의 4개 대학(우석대원광대전북대전주대)과 협약을 맺고, 2008년부터 학점이수제로 전통문화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을 통해 전통문화아카데미를 신청하면 한식, 한지, 한옥, 한소리, 전통놀이 등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2학점을 받는 제도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전통문화체험을 한 유학생만 현재 38기 3000여명에 이른다.전통문화 아카데미를 이수한 범채업 학생(전주대 스마트미디어학부, 중국유학생 3학년)은 처음에는 매주 토요일에 수업을 듣는 것도 부담스럽고, 학교가 아닌 먼 곳으로 가서 수업을 받는 것도 걱정스러웠는데, 지내고 보니 4주간의 수업이 무척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매 수업이 깊이 있고 다양해서 TV에서만 보던 음식을 직접 해서 먹고, 한국의 악기를 연주해 보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랑할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돕고 있는 전주대학교 국제교육센터 박상규 교수는 전통문화 아카데미는 전주시가 전북권 대학과 협력해 외국인 유학생의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매우 우수한 사례이다. 한류에만 익숙한 유학생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프로그램에 만족도가 높아서 친구나 후배에게 추천해주는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전국의 대학신문이나 중앙언론에 적극 홍보해서 이런 모범 사례를 전국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학생들은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 아니다. 우리나라(도시)와 외국을 이어주는 전령사이자 민간 외교관이다. 전통문화의 보고 전주는 한국의 문화도시의 중심에 서 있다. 전통문화 아카데미가 외국인 대학생들의 유학생활에 또 다른 문화적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통로이자 세계에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전주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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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9 23:02

[이색&공감] 군산 청소년 국악관현악단

지난달 11일, 군산 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군산청소년국악관현악단의 제9회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기대와 감동으로 다소 소란스러웠던 객석. 친구와 가족들이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도 흔치 않은 일인데, 어린 청소년들이 우리 악기를 가지고 관현악곡을 연주한다고 하니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음악교과서 국악비중 높아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면 모인다는 군산 지곡동의 군산청소년국악관현악단 연습실을 찾았다. 잠깐 사이 두세명의 학부모가 문흥식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조금은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아가기에 살짝 이야기를 엿들었다. 자녀를 관현악단에 보내고 싶다는 부모와 자리가 없다는 대표의 대화가 오갔다. 음악교과서에 민요 2~3곡 담긴 것이 국악의 전부였고, 그조차도 배움에서는 생략되기 일쑤였던 어린 시절의 음악교육환경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대표에게 국악이 언제부터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았는지 물으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최근 집필된 음악교과서에는 국악이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리코더 뿐 아니라 단소를 필수 악기로 배운다 하니 국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은 자녀들에게 국악을 가르치려는 부모도 드물고, 피아노나 실용음악 등 넘쳐나는 서양음악 교습소 사이에 국악교습소 한 두 곳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10년전 국악 배우자 의기투합우리악기는 우리나라에서 밖에 못 배우잖아요. 그런데 우리아이들에게 국악을 배우게 해 주고 싶어도 가르치는 곳을 찾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대금을 지도하시는 문흥식 선생님과 학부모 10여명이 뭉치게 된 것이 시작이었죠.그렇게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초창기에 함께 배우던 학생 중 일부는 군대를 가기도 했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다. 이번 공연에서 청소년이라 하기엔 어른스러운 모습의 연주자들은 어린시절부터 국악관현악단에서 국악을 배워 온 든든한 선배들이다. 후배들이 공연을 한다니 먼 곳에서 달려와 도와주고, 공연에 참여도 했다. 이 곳이 단순한 교습소였다면 이 정도의 책임감과 애정이 생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이 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주활동은 아이들에게 아주 귀한 경험이 되고 있다. 군산청소년국악관현악단은 매년 정기연주회를 개최할 뿐 아니라 한중 청소년 문화예술제 등 다양한 행사에 초청돼 연주한다. 일부 단원들은 봉사연주단을 자발적으로 구성해 요양원을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 곳에서 피리를 배우고 있는 강현준(동원중, 1년), 여환희(동원중, 1년) 학생은 초등학교 내에 있던 국악동아리의 공연 경험을 합하면 지금까지 스무번이 넘는 무대에 섰다고 한다. 피아노보다 피리가 더 재밌다며, 할 수 있을때까지 피리를 연주하고 싶다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연습공간 마련 등 어려움 많아이러한 청소년들의 모습이 입소문을 타다 보니 지금은 자리가 없어 대기를 하거나 오디션을 봐야 하는 인기 단체가 되었다. 하지만 운영이 마냥 수월한 것은 아니다. 부모들과 교사들이 직접 운영하는 자생적 단체라는 점은 깊은 유대감과 자부심을 갖게 하지만 그 만큼 힘든 점도 많다.현재 가장 큰 어려움은 연습 장소의 부족이다. 파트별 연습은 다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배려해가며 꾸준히 이어가고 있지만, 60명이 넘는 단원과 악기를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연습 공간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다. 태권도 학원이나 군산예술의 전당 내에 있는 공간을 대여하는 등 매번 방법을 찾아보지만 이 조차 되지 않을 때는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 다른지역의 관현악단들이 마냥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올해의 정기연주회는 처음으로 군산교육지원청이 주최한 특별한 공연이었다. 이 뿐 아니라 지난 여름 2박3일 동안 충북 보은군에 있는 서당골 청소년수련원에서 여름밤 별자리와 함께하는 국악캠프를 열어 아이들에게 더욱 큰 응원으로 함께 해 주었다. 앞으로도 군산교육지원청에서 전통문화교육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관현악단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준다면 이 단체가 지역사회에서 더욱 가치 있는 일들을 해 낼 수 있지 않을까.음악이 만국공용어라고도 하지만 하나의 음악을 깊이 느끼고 공유하기 위해서는 음악적 바탕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가능하다. 아이들에게 첫 언어가 중요하듯이, 음악 또한 어릴 적부터 접해야 한다. 이미 생활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 음악. 음악문화의 첫 단추를 국악으로 시작하는 아이들이 더욱 많아져서 우리를 우리답게 하고, 고유의 문화가 다시 꽃 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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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8 23:02

내년 1월 취임 임기택 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 당선자 "지역특성 고려한 해양산업 육성, 전북경제 같이 발전할 것"

해양대통령으로 일컬어지는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에 사상 첫 대한민국 사람이 당선돼 내년 1월 취임을 앞두고 있다. IMO는 1959년 설립된 유엔 산하기구로 해운, 조선 관련 안전, 환경보호, 해상교통 촉진, 보상 등과 관련된 국제규범 제정및 개정을 담당한다. IMO 협약 제·개정 방향에 따라 국가별 조선이나 해운산업 판도는 물론 관련 기업 경영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15년까지 174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IMO회의에서 60개 국제협약과 1800종의 결의서를 채택할 만큼 활동폭이 크다. 현재는 회원국 감사제도 시행(MAS), CO2 등 선박온실가스 배출관리, 신개념선박설계건조기준(GBS) 제정, 북극항로 상용화(Polar Code 시행), 선박평형수관리협약 발효 및 혁신적 항법체계(e-Navigation) 도입 문제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해양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는 임기택(59) IMO 사무총장 당선자를 지난 19일 서울 세종대로에 있는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당선 소감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6월 30일 당선된 후 벌써 100일이 넘었습니다. 당선때의 감회가 지금도 생생하시죠.“유엔 국제기구 수장은 관례상 대륙별 안배라는 보이지 않는 원칙이 존재하는데다 현직 사무총장이 아시아권 인사인데 차기 사무총장직에 또다시 우리나라 후보가 출마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같은 아시아권에 두 명의 후보가 입후보해 지역내 표가 분산되고, 특히 그중 5개국이 ASEAN 국가로서 상호 협력체계가 강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시아권 지역내에서의 득표활동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3개월이 안되는 기간 동안에 30여개 이사국을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쳤습니다. 득표의 분수령이었던 남미권 이사국에 대해서는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께서 남미 순방 때 정상회담을 통해 지지를 요청함으로써 판세가 결정적으로 뒤바뀌는 계기가 됐습니다. 해수부와 외교부의 전면적인 협업체계가 가동되고, 이사국 정부, 주한 공관 등을 상대로 다각적·입체적 지지 교섭활동을 수행하면서 저에 대한 지지기반이 확대됐다고 생각합니다.”-내년 1월 정식으로 취임하시는데 앞서 준비절차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11월에 개최될 제29차 IMO 총회에서 사무총장 임명 승인을 받은 후, 11월26일 취임식을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공식업무를 시작하게 됩니다.취임에 앞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예방해서 UN의 비전을 공유하고 온실가스 감축 등 국제현안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기구 간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다른 UN 기구의 조직체계 및 운영시스템 등에 대한 업무협의를 위해 국제민간항공이구(ICAO) 사무국 등도 방문하게 됩니다.”-내년 1월 취임 후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두실 생각이십니까.“IMO와 회원국이 항상 고민하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범세계적인 협약 이행수준을 높일 것인가 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규정 개발에 집중하기 보다는 현 규정이 전세계 어느 곳에서든 철저히 이행되도록 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계획입니다.협약이행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개도국을 대상으로 기술협력사업을 강화하여 협약이행을 위한 행정적, 기술적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하고, 최근 선박사고의 90% 이상이 하드웨어 결함이 아닌 인적과실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인적과실 예방을 위한 교육·훈련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IMO가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사무국 조직의 구성, 운영형태 등을 분석하여 업무효율성을 극대화 할 계획입니다.”-전라북도에 국한 할때, 해양산업 발전에 대한 방향은 어떻게 취해야 한다고 보십니까.“전북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입주와 새만금 개발의 계기로 해양산업 발전의 기틀이 마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북지역은 해양산업 발전전략으로서 추진되는 저탄소·친환경 선박 건조와 융복합 해양플랜트 및 해양레저산업 등 지역특화산업 육성정책을 지속 견지하면서, 한발 더 나아가 업계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IMO와 공유함으로써 세계 표준화를 선도하며, 한국과 세계 해양 산업이 ‘윈윈’ 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양산업은 특정한 경계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분야들이 개발되기 때문에, 전북지역의 특성을 고려해서 해양산업을 육성해 나간다면 전북경제가 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기택 사무총장은] 해양대 졸업, 공직생활·한국인 첫 '바다대통령'·깔끔한 일처리 입소문임기택(59·마산) IMO(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은 한국해양대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한뒤,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IMO 설립 세계해사대학(대학원)을 잇따라 졸업했다. 해운항만청 선박사무관으로 임용돼 공직을 시작한 그는 이후 IMO 연락관, 해운정책과장,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수석조사관, 공보관, 주영국대사관 해양수산관(공사참사관), 해사안전정책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장,부산항만공사 사장을 지냈다.지난 6월 30일 제 114차 이사회에서 IMO 제9대 사무총장으로 당선됐으며 현재 취임을 준비중이다. 경남 마산이 고향인 그는 어릴 때 매일 바다에서 놀았다고 한다. 집에서 300m만 나가면 바다였기 때문이다.상선이 오면 배에도 올라가보고 도선사 배도 타보고 했다는 그는 자연스럽게 바다에 정을 붙였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국제무역의 역군으로 성장하는 꿈을 키웠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 꿈이 결국 실현됐다. 그의 부친은 마산에서 제법 큰 비누공장(마산비누)을 운영, 큰 돈을 벌었으나 이후 선거에 나서면서 가계가 어려워졌고 임 당선자가 한국해양대학에 진학한 것도 결국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학비가 싸고 병역혜택이 주어지는데다 바다와 관련된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직에 들어와서 그는 여수 씨프린스호 사건 등이 터졌을때 일주일간 밤잠을 자지않고 깔끔하게 일처리를 할만큼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었다.전북과의 인연도 남다르다.1993년 10월 부안 위도에서 서해훼리호 사건이 났을때 위도에 열흘가량 머물면서 워낙 열정적으로 일해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고, 결국 추후 더 큰 일을 하게되는 계기가 됐다.내년 1월 취임 후 반드시 전북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그는 좀 시간이 지나면 IMO 사무총장 사무실 일부를 한지로 꾸미고 싶은 계획도 있다. 영국에 근무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사무총장을 꿈꿨다는 그는 “희망을 품고 노력을 하면 성취가 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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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5.10.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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