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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 실패 끝에 밥차 개발… 7개 화구·배수시설 갖춰

채수영 사장의 고향은 익산이다. 백제대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이론적 틀을 쌓고 싶어 다시 원광대 신문방송학과에 편입해 공부했다. 백제대 캠퍼스 커플로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서 전주사람이 된 그는 프로덕션을 차려 2년 정도 운영하다 경제적 현실에 부딪쳐 밥차 사업을 시작했다. 2002년에 문을 연 채수영사장의 전주밥차는 정평이 나있다. 10여년 경험과 시행착오로 얻은 밥차 시스템과 운영 노하우 덕분이다. 그는 밥차를 시작한지 3년, 여덟 번의 실패와 쓴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의 전주밥차를 얻었다. 이 밥차 트럭의 크기는 1.2톤. 더 커도 안 되고 작아도 불편하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시골길 산길 가리지 않고 오르내려야 하니 들락날락하기 쉬워야 하고, 현장에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야하는 특성을 고려한 규모다. 그래서인지 그가 개발한 밥차는 어느 사이엔가 대한민국 밥차의 표준이 되었다. 전주밥차는 시설로도 가치를 빛낸다. 조리시설은 화구와 찬장이 전부지만 크지 않은 트럭 뒤편 위에 7개의 화구와 배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그 화구와 기자재의 배열도 조화로워 한사람이 올라가 음식을 만드는 동선의 활용이 환상적(?)이다. 다른 밥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식재료에 대한 관심도 전주밥차만의 가치다. 전주밥차가 환영받는 이유는 맛. '전주'라는 도시 이미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의 비결을 채사장은 기본양념에 둔다. 여덟 대 차가 각자 따로 운영되지만 채사장의 손길을 닿지 않는 곳이라도 모든 기본양념은 전북산을 사용하는 이유다. 인스턴트 재료대신 가능한 천연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전주밥차의 장점이다.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재료를 고르는데도 마음을 쓸 수밖에 없다"는 채사장은 메뉴 개발을 따로 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현장에 따라 연령별 성별 특성을 가리고 날씨와 출신지역까지 고려하면서 식단을 짠다. 채사장은 7월 1일부터 시작되는 한 제약회사의 대학생 국토대장정 21일 동안의 여정에 함께 나선다. 벌써 여러 해 째지만 늘 기다려진다는 여정. 그는 전주밥차가 달리는 그 길 위에서 더 큰 꿈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은정
  • 2013.06.27 23:02

4. 정읍 고부초 -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옛 고부관아에 터잡아

△ 학교가 걸어온 길정읍 고부초등학교(교장 조명환)는 동학농민혁명 최초의 함성이 울려 퍼진 옛 고부관아에 자리잡고 있다.혁명을 촉발한 고부군수 조병갑이 기거했던 관아가 혁명군에 의해 불탄 자리에 1906년 당시 고부군수 정용기가 자신이 출자하고 지역 유지들의 기부금으로 고부초의 모태가 되는 사립광화학교를 설립했다. 교사는 처음 관아 순교청을 사용하다가 명륜당으로 이동 교육을 실시하고, 일어 교육을 위한 일본인 교사를 채용하기도 했다. 교장은 군수가 겸했다.1911년 학제 개편으로 공립고부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었고,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등 민족 수난기를 겪으면서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졸업식을 치렀다. 일제의 억압과 핍박 속에서도 학교를 유지하기 위한 지역민들의 노력은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빛을 보게 됐다. 획일적억압적 식민지 교육을 끝내고 개성 존중, 자유와 창의적 활동을 위한 학습을 시작한 것.하지만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학교도 존폐의 갈림길에 섰었다. 다행히 학교의 오랜 역사물이 소실될 것을 염려한 당시 은성갑 교장은 개교 이래 보존했던 '연구보존서류'전부를 땅에 매장하고, 관리하게 해 종전 후 학교 유지운영을 수월하게 했다.또한 당시 교실에 걸었던 태극기도 지역민의 기지로 잘 숨겨 다시 걸기도 했다.고부초는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연차적으로 완공된 본관 건물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대밭 앞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이 2층 철근 건물이 들어섰다. 90년대 학교 통폐합 바람이 불면서 폐교된 인근 두승초 학생들이 고부초로 오게 됐고, 이후 통폐합 지원금으로 현대식 컴퓨터실, 방송실, 방과후교실을 신설했다. 2004년에는 교문 옆에 강당을 준공, 학생들의 체력 증진과 각종 행사에 활용했다. 2006년 개교 100주년 행사에서는 학교 역사를 담은 화보, 탄생 및 연대기, 총동창회 소개, 졸업생 회고록 등을 수록한 '고부초등학교 100년사'를 발간했다. 또한 학교 개교 당시 전경을 담은 기념우표를 제작하기도 했다.올해 103회 졸업식을 연 고부초를 거쳐한 학생은 현재까지 모두 8101명이다.△ 학교를 빛낸 인물고부향교 옆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는 지역 교육문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을 다수 배출했다. 이들은 현재까지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고부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혁명의 의의를 밝히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특히 이들은 고부초가 배출한 최고의 인물인 나용균(3회) 전 국회부의장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 나 부의장은 1919년 동경 유학 중 조선유학생학우회에 참여,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는데 일조했다.그는 28 독립선언 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같은 해 상해로 망명,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됐다. 이후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그는 1921년 여운형김규식과 함께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에 참가하는 등 국외에서 대한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광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제헌의원보건사회부 장관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받기도 했다.초대 총동장회장을 역임한 은희태(35회)는 지역을 대표하는 수필가시인이다. 한국농촌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정읍지부장 등을 지낸 그는 한맥문학상을 수상하며 지역 문화계의 거두로 자리잡았다. 특히 고부지역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그는 지역에 '민족유물 전시관'을 열었다.조성용(40회)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대표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이사는 518민주화운동 및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에 앞장서고 있다. 용공조작인 '오송회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그는 2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정리위원회'가 전형적 용공조작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2008년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그는 지역의 원로로서 전주 버스 파업 등 분쟁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등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신일균(43회) 박사는 전북대 의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전주 신일균신경외과의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지역을 대표하는 의료계 인물로서 동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3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한 옥인청(44회)은 한국전력공사 전북지사장을 지내며 전력산업을 이끌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2005년부터는 정읍 소성의 특산물인 복분자 작목반 회장을 역임, 농가소득 증대에 헌신하고 있다.이와 함께 조성호(28회) 전 전북도 교육위원, 은종삼(45회) 수필가, 이민형(48회) 전 중소기업청 이사관, 은일상(50회) 공학박사, 기호직(56회) 부안 백산초 교장 등이 학교를 빛낸 인물이다.△ 도약을 위한 노력고부초는 1997년 도교육청 지정 '에너지 절약 시범학교'을 운영하면서 과학교육 활성화를 거점학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 전통은 현재까지 고부초 면면에 자리하고 있다.하지만 한계도 있다. 농촌학교의 숙명과도 같은 통폐합의 위기에 항상 직면해 있는 것.2011년 9월 1일자로 고부초에 부임한 조명환 교장은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그는 '사랑으로 꿈을 키워가는 교육'이란 기본 교육방향 아래 개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행복한 학교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재능과 사랑이 넘치는 어린이들을 기르기 위해 독서교육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인 교수학습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질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학생 및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여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이에 학교는 학생들이 아침시간 20분을 활용, 책읽기를 통해 글쓰기 능력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또한 학생들이 책읽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독서골든벨대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문화체험이 취약한 학생들을 위한 스키체험도 실시하고 있다.조명환 교장은 "학력과 자기주도 학습능력 신장을 위한 독서교육을 중점 실시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인성과 실력을 두루 갖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최명국
  • 2013.06.26 23:02

【⑮ 다문화가정 다꿈준비학교 현황】중도입국자녀, 한국어 능력 부족 정체성 혼란 겪어

국제결혼 가정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급격히 증가했던 국제결혼은 2005년 이후 점차 증가세가 둔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안정화된 상태에서 증가는 계속되고 있다. 국제결혼은 전체 결혼 비율에서 10건 중 1건을 차지할 정도다. 국제결혼이 과거에는 초혼자 중심으로 이뤄진 반면에 최근에는 재혼자의 국제결혼도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과의 결혼 가운데 재혼비율은 남성 34.7%를 차지하고 있고, 이주여성은 38.4%로 높게 나타났다. 한국인끼리의 결혼에서의 재혼율은 남성 14.1%, 여성은 16.6%인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과 결혼에서의 재혼은 2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국제결혼의 재혼이 증가하면서 외국인 배우자가 베트남, 중국, 필리핀 등 자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자녀를 한국인과 혼인한 이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중도에 외국인 자녀가 한국에 입국해 정착하게 되는데 이들을 '중도입국자녀'로 부른다.△언어교육과정 달라 적응 어려워한국인과 외국인배우자 사이에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의 경우 한국에서 출생해서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자동적으로 체득하는 만큼 비다문화가정 자녀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차이 없이 성장한다. 그러나 중도입국자녀의 경우 태어나서 자라난 곳이 베트남필리핀 등 '엄마 나라의 땅'이다. 모친이 한국인과 재혼하는 바람에 한국으로 중도에 입국해 정착하면서 선택의 여지없이 자녀도 한국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국 이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은 상당히 크다. 이렇게 중도에 입국하는 아이들은 유아, 초등생, 중고등생 등 다양하다. 중도입국자녀들은 한국말을 새로 배워야 하고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다시 배워야 한다. 언어, 문화, 역사 등의 혼란은 정체성의 혼란까지 가져오게 된다. 2012년 안정행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전북지역의 다문화가정 자녀는 8766명이다. 전북지역에서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는 301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중도입국자녀의 수는 106명에 이른다. 중도입국자녀들은 나이에 맞는 학교 교과과정에 곧바로 적응하기가 무척 어렵다. 가장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 나라별 교과과정이 다른 탓에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만 또래의 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육과정에 그나마 따라갈 수 있다. 중도입국자녀들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교육청은 별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글로벌선도학교'라는 명칭으로 지원하는 이 과정을 도교육청은 '다꿈준비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해 중도입국자녀를 지원하고 있다. △김제월성완주대덕초 2곳서 운영다꿈준비학교는 전북지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가정 자녀 등 다문화가정 학생의 조기적응을 돕기 위해 지난 3월부터 김제월성초등과 완주대덕초등 등 2곳을 중심으로 운영중이다. 다꿈준비학교는 한국에서 교육적 부적응을 겪고 있는 일반 다문화가정의 자녀 및 외국인가정의 자녀까지도 포괄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일반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다꿈준비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원적학교의 교장이 다꿈준비학교에 입학을 요청해야 한다. 다문화가정 학생이 있는 학교의 교장이 김제월성초등과 완주대덕초등에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학교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추천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다꿈준비학교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다꿈준비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중도입국자녀의 수가 106명에 달하는데도 9명의 학생만이 교육을 받고 있다. 각 시군 지역의 교육지원청과 학교 등에서 다꿈준비학교에 대한 홍보에 더 신경 써야 하고, 다문화가정 학부모의 관심도 절실하다. 전북지역 다꿈준비학교가 아직은 김제와 완주에만 위치해있다는 점에서 중도입국자녀 및 부적응 다문화가정 자녀의 지원과 참여에 한계성이 있는 만큼, 중앙정부부처에서도 시도 교육청에 대한 글로벌선도학교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지훈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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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25 23:02

임미성 여산초 교사 "다꿈학생 전문교사 양성 사회적응 위한 배려 필요"

국어교육학 박사인 익산 여산초등 임미성 교사는 중도입국자녀들이 한국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최근 우리 사회는 매우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중도입국 학생을 포함한 외국인 학생들의 편입학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전북지역의 경우 지난해 4월을 기준으로 국제결혼 가정 자녀와 외국인가정 자녀를 합한 다꿈 학생은 3064명으로, 전체 초·중·고생의 1.18%에 해당합니다. 이들 가운데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은 국내출생 자녀와 중도입국 자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교육적 배려가 더욱 필요한 학생은 중도입국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임미성 교사는 "중도입국 학생은 부모를 따라 외국에서 살다온 한국인 자녀와 이주여성의 본국 자녀가 한국에 입국한 경우 등을 들 수 있다"면서 "그 비율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며, 국적도 중국·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로 다변화하고 있고, 도내에는 현재 106명의 중도입국 학생이 있다"고 설명했다."한국어교육과정은 다문화 배경 학생 중에서도 중도입국 학생들처럼 한국어 능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 시스템의 일환"이라는 임 교사는 "중도입국 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모국어를 습득한 이후 새로운 언어환경인 한국어환경에서 제2의 언어로 한국어를 학습해야 하는 만큼 기존의 내국인을 위한 '국어교육'과는 달라야 한다"면서 "중도입국 학생은 자아정체감은 물론 언어 습득의 속도와 정확성 및 유창성에 있어 내국인의 경우와는 차이가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한국어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다문화적 세계관과 인권우호적인 측면의 인식의 개선과 더불어 한국어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전문교사의 양성입니다. 현재 도교육청에서 주관하고 전북대 한국어학당이 주최하고 있는 한국어 교사 직무연수(총 122시간)에는 30여명의 초·중등 교사들이 연수를 받고 있습니다"임 교사는 "누구나 낯선 곳에서는 이방인"이라면서 "우리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출신국에 관계없이 더 이상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배려해준 '따뜻한 한국어'로 용기를 얻도록 한국어 교육이 희망의 초석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지훈(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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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25 23:02

송현섭 재경 전북도민회장은?

송현섭 재경 전북도민회장(75)의 고향은 정읍 칠보다. 그는 정읍 칠보초, 전주남중, 전주고, 성균관대(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시에서 한동안 공무원을 지내다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1984년 서울종합건설 대표이사를 끝으로 사업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정치권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그는 대한민국 의정사상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록을 세웠다. 비례대표로만 3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이다. 1985년 신민당 열풍이 불 때 제12대 국회의원(전국구)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제13대와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얼마나 그를 두텁게 신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DJ의 두터운 후원을 배경으로 그는 평민당 시절 원내부총무·원내사무처장, 아·태재단후원회 상근부회장, 새천년민주당 총재특보를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후에도 열린우리당 후원회장,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 재정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대한민국 헌정회장(직무대행)도 지냈다.그는 2010년 6월, 재경 전북도민회장을 맡아 3년 동안 눈코뜰새 없이 전북발전을 위해 뛰었다. 해마다 1억원이 넘는 거금을 지역 후배들에게 장학금으로 쾌척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매년 1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장학혜택을 받고 있다.특히 세계소리축제나 프로야구 유치 범도민 서명운동, 전북방문의 해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출향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지난해 4월 그는 첫 전북도 명예 도지사에 위촉됐다. 전북도가 소통행정을 강화하고 다른 시·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출향인들에게 도정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 도입한 게 바로 '명예 도지사'제도다.그는 재경 전북도민회장을 다시 맡으면서 앞으로 3년간 다시 전북을 위해 뛰어야 할 상황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자칫 고향이나 부모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게 세상사라고 하지만, 송 회장은 효자로 소문나 있다.지난 2005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한 그는 이미 10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모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해마다 경로위안잔치를 열고 있고, 칠보면에 경로당을 신축 기증하는 등 고향 사랑에 헌신하고 있다.

  • 기획
  • 위병기
  • 2013.06.25 23:02

【재경 전북도민회장 연임 송현섭 회장】"출향인들 힘 한데 모아 고향 위해 열심히 뛰겠다"

제10대 재경 전북도민회장에 송현섭 현 회장이 연임되면서 앞으로 3년간 도민회를 더 이끌게 됐다. 지난 17일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사)재경전북도민회 제24차 정기총회에서 그는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추대됐다. 제10대 회장으로서 3년 임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송현섭 도민회장은 "전북을 항상 아끼고, 지역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출향인들의 뜻을 높이 받들어 전북이 다시 한번 웅비하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각오를 밝히면서 "출향인들의 힘과 뜻을 하나로 모아 전북인이 항상 긍지를 갖도록 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향후 3년간 재경도민회의 조타수 역할을 하게 될 송현섭 회장을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나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계획 등을 들어봤다.-우선 축하드립니다. 3년 전 첫 회장을 맡았을 때 가졌던 계획이 어느정도 실현됐는지 궁금합니다."3년전 여성도민회 신설과 도민회원 자녀 장학금 확대, 시군 향우회 회장단의 도민회 참여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남성들만의 모임체가 아닌 여성들이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여성위원회를 만들었고, 젊은 회원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민회 회원들의 자녀 장학금은 잘 아시는 대로 매년 1억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최근 재경 익산 향우회장을 맡을 만큼 시군 향우회가 활성화되고 있고, 이들이 도민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이제 다시 연임됐는데 향후 3년간 어떤 포부를 갖고 계십니까."재경전북도민회는 순수한 친목 모임이고, 고향발전을 위해 출향인들이 서로 힘을 보태는 시간과 공간의 장(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거창한 이벤트보다는 하나하나 내실 있게 뭔가 해나가려는 노력과 의지가 중요합니다. 출향인 누구나 참여해 고향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학사업을 계속 유지하고, 시군 향우회를 활성화함은 물론, 출향인들이 전국 어디에서나 어깨를 쫙 펴고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전북 이미지 제고에도 힘쓸 것입니다. 청년위원회 신설을 통해 전북도민회가 젊은 청년들이 적극 참여하고 이들의 목소리가 활발하게 투영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것입니다. 지난 임기 때 여성위원회 신설이 중요한 시도였다면, 이번엔 청년위 신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가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두각을 나타내는 도민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도 전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바로 함께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출향인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수도권에 있는 호남 향우가 대략 800 만명에 이릅니다. 그중에서 전북인은 약 350만명가량으로 추산됩니다. 수도권 인구를 대략 2000만명으로 추산할 때 전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 10%가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죠. 각계각층에 흩어져 있는 우리 향우들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전북도에서 저를 제1호 명예 도지사로 위촉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고향을 떠나있지만, 출향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도지사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얼마전 전북일보를 보다가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읽었습니다. 1925년 현대적 의미의 인구 센서스를 시작한 이래 호남권 인구가 충청권보다 처음으로 적어졌다는 겁니다. 전국 각지에서 똑같이 농촌을 떠나고 호남권이나 충청권 모두 큰 기업이 많지 않은데 왜 이런일이 벌어졌을까요. 하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전북에 사는 도민수는 채 200만명이 되지 않지만 수도권에 있는 출향인만 해도 350만명에 이르지 않습니까. 이들이 항상 고향을 생각하고 뭔가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개인적으로 보면, 사업에 성공하고, 또 정치적으로도 많은 것을 성취하고 현역으로서 정계를 은퇴했는데, 편한 길을 놔두고 고향을 위해 헌신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사실 요즘 세태를 잘 보십시오. 타향살이 처음 1세대들이 모두 일선을 떠났습니다. 그 자식들의 세대도 지나 지금은 3세대들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뿌리'의식이 약합니다. 부모님의 고향은 서울이나 인천, 경기도 입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전북에 대한 애착 같은 게 희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랑하는 고향에 기여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찾은 게 바로 고향사랑 운동입니다. 재경 도민회장을 맡은 것도 그 일환입니다. 이들의 에너지를 하나로 묶어서 전북이 고향이라는 게 자랑스럽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우리 세대에서 그 역할을 마무리해야만 전북의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수도권에서 전북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큰 틀에서 볼 때 전북의 앞날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계량적으로 수치화 했을 때 일부 긍정적인 신호가 있기는 하지만, 전북의 도세가 취약해지면서 어떤 분야에서 전북은 강원도나 충북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정말 기가막힐 노릇이죠. 그래서 우리 전북인들이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서로가 힘을 합치고 도와야 합니다. '분열된 집안은 생존할 수 없다'는 미국 대통령 링컨의 말이 새삼 가슴에 다가옵니다. 전북에 뿌리를 둔 사람은 언제나 함께하고, 항상 단합하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앞으로 한 세대가 흐르기 전에 전북인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게 여겨질 겁니다."-끝으로 도민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사실 도민회는 모든 출향인들을 '전북인'으로 녹여내는 용광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미국을 한번 보십시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서 하나의 국민으로 거듭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전북인들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보다 소위 출세했다는 사람들이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전북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여야가 갈릴 수 있지만, 전북도민들은 하나로 거듭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처한 입장은 달라도 고향 발전을 위해 한 식구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재경도민회가 잘 될 수 있도록 고향에 계신 분들께서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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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13.06.25 23:02

【애물단지 군산항 잡화부두】3년째 물동량 부족·적자 허덕…국가재정 낭비 우려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민간투자로 군산항에 잡화부두가 건설돼 지난 2011년 8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당시 정부 분담금을 포함, 총 1250여억원이 투자돼 연간 198만톤의 하역능력을 가진 3만톤급 2개 선석의 잡화부두가 완공돼 군산항의 경쟁력 제고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됐다.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다가왔다. 운영개시 3년째를 맞고 있지만 부두운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거대한 운영건물은 제대로 활용되지 않아 유령건물 같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하버크레인 등 많은 하역장비는 놀고 있다.하역물동량은 턱없이 부족, 부두운영이 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것은 물론 민간투자사업 시행자이자 부두운영사인 군장신항만(주)은 향후 막대한 규모의 부채감당부담에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현재 상태로서는 이 부두운영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군산항의 최대골치거리로 부상해 있다.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이 부두운영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원활한 부두운영을 통해 군산항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책은 없는지 진단해 본다.△군산항 잡화부두의 탄생 지난 2006년 11월 당시 해양수산부와 군장신항만(주)간 실시협약 체결로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돼 지난 2007년 8월 착공, 3만톤급 2개 선석 규모로 2011년 8월 준공됐다.정부의 건설 분담금 239억여원을 포함, 민간자본 등 총 1255억여원이 투자된 이 부두는 총 500m의 접안시설과 24만7000㎡(7만4800평)규모의 배후부지를 갖추고 있다.쌍용건설(주), 벽산건설(주), 금광기업(주), 성원산업개발(주), 대한통운(주), 세방(주)이 공동도급한 이 부두는 BTO(build-transfer-operate)방식으로 준공과 동시에 국가에 귀속됐으며 오는 2041년까지 정부와의 협약에 따라 무상사용된다.이 부두는 민간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건설된 후 국가에 귀속시키고 사업시행자는 향후 30년간 이 시설을 무상사용, 시설 사용자로부터 지급받는 사용료로 투자된 시설설치비와 운영비용을 보전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이 부두의 건설과 운영을 위해 7개사가 출자한 자본금 221억원의 군장신항만(주)이 설립됐다.자본금 출자지분은 벽산건설과 쌍용건설 각 20.5%, 금광기업 2.5%, 성원산업개발 1.5%등 4개사 건설출자자가 45%, CJ대한통운과 세방 각 15%씩 2개사 운영출자자가 30%, 재무투자자인 발해인프라투융자가 25%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군장신항만(주)은 부두건설과 운영을 위해 국민은행등 5개 금융기관으로부터 749억원을 차입했고 후순위차입금으로 89억원을 재무투자자에게 빌리는등 총 838억원을 외부로부터 조달했다.이 부두의 운영으로 연간 하역능력이 198만톤 제고됨으로써 군산항의 대외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원활치 못한 부두운영지난 2011년 8월부터 부두운영에 들어갔지만 물동량부족으로 순탄치 않았다.인근에 정부재정으로 건설된 5만톤급 2개 선석과 3만톤급 1개 선석인 군산항 7부두 717273번 선석이 2011년부터 본격 가동되면서 물동량부족으로 실시협약상의 물동량도 취급치 못함으로써 부두운영은 난관에 봉착했다.2개 선석의 부두를 CJ대한통운과 세방이 내적으로 1개 선석씩 나눠 운영에 들어 갔지만 지난해 실시협약상 145만톤 처리계획에 절반도 안되는등 70만톤밖에 취급치 못했다.올해 협약물량은 165만톤이나 지난 5개월동안 이의 20.6%인 34만톤밖에 처리치 못했다.더욱 큰 문제는 향후 물동량의 부족현상이 해소될 전망이 어둡다는 점이다.군산항의 일자형(-字型) 부두여건과 함께 물동량부족으로 지난해 군산항의 부두가동률이 7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군산항 7부두운영(주)의 주주사인 CJ대한통운과 세방이 군장신항만(주)의 운영출자자로서 부두를 사실상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군산항 잡화부두는 CJ대한통운과 세방이 계약한 물량을 밀어 줘 겨우 하역을 함으로써 운영이 되고 있을 뿐이다.이같은 상황속에서 매년 운영비용이 수입을 크게 초과함에 따라 총 자본금 221억원도 이달말이면 완전 소진될 것으로 보여 군장신항만(주)은 부채상환에 비상이 걸렸다.2년거치 18년 상환조건의 장기 차입금에 대한 원금 상환시기가 올해부터 본격 도래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부두운영상 위험의 일정비율을 감당키로 한 4개 건설출자자들이 모두 구조조정에 이미 들어간 상태다. 나머지 2개 운영사가 운영상 위험전반을 감당하면서 분기별로 자금수혈을 해 군장신항만(주)이 겨우 지탱하고 있으나 매년 갈수록 커지는 부채상환규모에 혀만 내두르고 있다.향후 30년간 갚아야 할 원리금은 장기 차입금의 경우 원금 749억원, 이자 377억원등 총 1126억원, 재무투자자로부터 차입한 후순위 차입금은 원금 89억원, 이자 420억원등 총 163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정부의 건설분담금을 제외한 민간부문의 투자비 1000억원을 크게 상회하는 규모다. 매년 운영비용이 수입을 넘어서는 구조로 볼 때 오는 2041년까지 부두를 운영하더라도 자본금 221억의 회수는 커녕 원리금 상환을 위해 별도로 1600여억원의 자금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부두운영의 앞날이 캄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매수, 운영에 나서야 운영상 위험부담의 일정비율을 담당키로 했으나 구조조정과정에 있는 4개 건설출자자가 자금보충여력이 없기 때문에 운영출자자인 CJ대한통운과 세방 2개사가 향후 군장항 잡화부두의 운영부담을 감당해야 한다.그러나 수입이 지출보다 적은 상황속에서 2개 운영출자자가 이 부두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경우 부채상환을 감당치 못해 부두운영을 포기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이같은 상황이 도래할 경우 국가재정으로 투입된 것이나 다름없는 이 부두가 제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국가재정은 물론 민간에 엄청난 고충을 안겨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군장신항만(주)은 그동안 부두의 잔여기간 운영권을 인수할 자를 물색했으나 입질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 부두는 정부의 건설분담금이 투입된데다 민간이 투자한 약 1000억원에 대해 투자비보전차원에서 무상사용기간을 30년간 부여한 것을 감안할 때 사실상 모두 정부재정을 투입해 건설한 것과 같다.그런만큼 정부재정투자의 효율성은 물론 부두의 원활한 운영을 통해 군산항의 활성화를 도모키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근거, 정부가 매수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군산항 잡화부두는 현재 신음하고 있으며 언제 부두운영이 중단될지 모른다.이 상태로 방치할 경우 운영사는 밑빠진 독에 한없이 자금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 곤경에 처하게 되는 한편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부두역시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마디로 국가적 낭비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현 시점에서 실시협약의 해지를 통해 이 부두를 적정가격으로 매수한 후 임대입찰을 추진해 낙찰자로 하여금 부두를 다시 운영토록 함으로써 효율성을 도모하는 것이 국가적인 예산낭비를 방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기획
  • 안봉호
  • 2013.06.24 23:02

2. 자연이 빚어낸 미학 - 구름위 산봉우리 물결 장엄하고 신비한 풍광

지리산에 한번쯤이라도 올라본 사람은 하얀 구름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봉우리 물결 앞에서 경이로운 탄식을 토해내고야 만다. 태백산맥이 서남쪽으로 갈라져 남쪽으로 쭉 내려오다 굽이치듯 솟아오른 지리산의 풍경은 아름다움에 장엄한 빛이 더하여 바라보는 사람들을 한껏 겸손하게 만든다. 한꺼번에 앞 다퉈 솟아오른 수십 개의 산봉우리들은 하늘과 맞닿은 듯한 정점에서 완만하게 혹은 급하게 굽이쳐 흘러내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언덕과 계곡, 수풀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신령스러운 세계를 펼쳐내었다. 천왕봉이며 노고단에 오른 사람들은 사방 팔방으로 눈길 미치는 곳마다 뿜어져 나오는 신령스러운 기운에 매료되고, 마치 신선세계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드니, 예부터 사람들은 지리산을 신선세계로 알고 자신을 낮췄다.△동서로 뻗은 최고봉들동서 34㎞, 남북 26㎞, 둘레 320여㎞, 면적 483㎢에 달하는 거대한 지리산은 3대 주봉인 천왕봉-반야봉-노고단이 하늘에서 마치 푸른 비단을 아래로 활짝 펼쳐놓은 듯한 형세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지리산 정상에 오르면 마치 하늘정원에 와 노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지리산의 최고봉은 통천문을 거쳐야 비로소 오를 수 있는 천왕봉(해발 1915m)이다. 대장 봉우리인 천왕봉에서 시작한 산봉우리들은 그야말로 하늘정원을 이루며 서쪽 주능선을 따라 부챗살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천왕봉-제석봉(1806m)-연하봉(1651m)-촛대봉(1708m)-칠선봉(1558m)-덕평봉(1521m)-형제봉(1443m)-토끼봉(1533m)-반야봉(1751m)-노고단(1507m)에 이르는 장장 40㎞짜리 산악 마라톤 코스다. 천왕봉, 반야봉처럼 해발 1500m 이상인 20여개의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걷노라면 눈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포근하고, 아기자기하고, 장엄한 풍광이 반긴다. 끝 모를 곳까지 펼쳐지는 운해에 잔잔하게 물결치는 산봉우리들이 저마다 사방으로 치렁치렁 늘어뜨린 능선과 계곡에는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과 평전, 계곡물이 운해와 낙조, 일출, 단풍, 꽃 등 온갖 삼라만상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지리산 10경예로부터 지리산의 아름다움은 10경으로 대표됐다. 선인들은 천왕봉 일출, 피아골 단풍, 노고단 운해, 반야봉 낙조, 벽소령 명월, 세석평전 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칠선계곡, 섬진청류 등 지리산 곳곳에서 구경할 수 있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통해 '지리산의 미'를 좀 더 널리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근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전국 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 100곳을 선정해 발표한 바 있는데, 무려 16곳이 지리산에 있는 경관이었다. 뱀사골 계곡과 노고단 운해, 바래봉 철쭉, 지리산 일출, 칠선계곡, 제석봉에서 바라본 운해, 노고단에서 바라본 천왕봉, 피아골 계곡, 다랭이 논, 쌍계사 벚꽃길, 산수유마을, 화엄사 각황전, 곰이 있는 풍경, 화엄사계곡과 섬진강,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평전, 노고단 등이다. 특히 화엄사 일원과 한신계곡 일원은 일찍이 명승으로 지정됐을 만큼 유명세가 톡톡하다.△곳곳이 명승지리산에는 천왕봉 같은 산봉우리를 비롯해 칼바위, 사자바위, 뱀사골, 한신계곡, 불일폭포, 뱀소, 용소, 세석평전, 정령치, 성삼재 등 1백 개가 넘는 수많은 명승지가 있다. 하지만 지리산에는 이름 없는 명승지가 더 많다고 한다. 그 만큼 지리산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 3월 발표한 제11회 국립공원 사진 공모전 당선작으로 97개 작품이 발표됐다. 대상 작품은 지리산 뱀사골 계곡의 풍경을 렌즈에 담은 남광진씨의 작품 '5월의 꽃 수달래'였다. 이 작품은 계곡 주변에 핀 수달래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힘차게 쏟아져 내려오는 계곡물이 멋지게 이룬 조화를 절묘하게 포착해 냈다. 이밖에 지리산의 자연경관을 주제로 한 작품이 대다수였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을 지리산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위 아래로 흘러내리는 무재치기 폭포의 풍경, 바래봉 철쭉, 만복대의 봄, 노고단의 봄, 지리산 꽃동산, 장터목에서 본 능선과 남해, 고사목지대, 고사목과 반야봉의 구름, 노고단의 아침 등 지리산 곳곳의 능선과 폭포, 계곡, 꽃, 나무, 기암괴석 그리고 주변 구름, 하늘 등이 한번 어우러지면 걸작으로 탄생했다. △동에는 남강, 서에는 섬진강지리산에는 산과 계곡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왕봉에 떨어진 빗방울은 실낱같이 흐르다가 계곡물이 되고, 계곡물은 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아간다. 지리산은 화강암 위에 흙이 두껍게 덮인 토산이어서 항상 물을 풍부하게 품고 있다가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만물에 생명수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지리산의 생태계는 건강하고, 활기차다. 지리산 동서를 가로지르는 주능선 북동쪽에서 형성된 임천강-엄천강-경호강 등 물줄기는 곳곳을 휘어돌아 함양과 산청군을 거쳐 진주 남강으로 흘러든다. 서남쪽에서는 남원 요천 등이 합수하는 섬진강이 구례 곡성을 거쳐 하동으로 빠져나간다. 어머니의 치마를 촤악 펼쳐놓은 듯한 지리산 자락의 끝부분을 구곡간장처럼 휘어들며 흐르는 이들 생명의 물줄기들은 지리산이 선사하는 또 다른 멋진 풍광을 곳곳에 쏟아낸다. 남원에서 만난 이병채 씨(남원문화원장)는 "지난 1965년부터 지리산을 오르며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녀보았다. 지리산은 웅장하면서도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든 세계 유수의 산과 비교해서 결코 빠지지 않는 명산이다"라고 그 아름다움을 말했다. 사실 인간은 지리산이 주는 아름다움을 받아만 온 것이 아니다. 실상사, 화엄사 등 지리산에 자리잡은 수많은 사찰과 암자는 물론 마을과 주민들이 만든 다랭이논 등은 주변 자연풍경과 절묘한 조화미를 만들어 냈다.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등 산골 오지의 다랭이논들은 산사람들이 억척스럽게 새긴 눈물의 조각품이다.

  • 기획
  • 김재호
  • 2013.06.21 23:02

5. 민간투자 유치 '빈수레' - 1조원 대 MOU 4건 무산…새만금 개발 '소리만 요란'

새만금 사업의 성공 여부는 투자유치에 달렸다. 민간자본이 들어와서 직접 부지도 개발하고, 공장도 가동해야 돈도 들어오고 사람도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유치는 사실상 한 건도 없다. 관광분야에서 1조원 대만 4건의 MOU를 체결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지난 2010년 방조제가 완공된 뒤 본격적인 내부개발에 들어갔지만 사실상 빈껍데기로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1조원 대 MOU 4건 모두 무산전북도는 지난 2009년 7월 미국 페더럴디벨롭먼투사와 총 9219억원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고군산군도를 세계적인 해양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불과 2개월 뒤 본 계약 체결직전에 투자협약은 파기됐다.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미국 옴니홀딩스그룹과 총 3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역시 고군산군도를 국제 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이었으나 2011년 6월 투자 취소가 결정됐다.미국 옴니홀딩스그룹이 투자협약을 논의하던 시점에 또, 무사그룹- 윈저캐피탈사와 총 1조5000억원의 새만금권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새만금 관광단지를 개발하거나 새만금 산업단지 입주 기업용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였으나 이 또한 휴지조각이 됐다.전북도는 이 당시 또, 부산저축은행을 중심으로 미국 스타우드 캐피탈 등 외투 3사가 참여한 컨소시엄과도 1조원대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새만금권 관광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접목한 이른바 새만금 에코폴리스 개발사업이었으나 역시 무산됐다.△ 산업단지 대규모 투자성사도 불투명새만금 산업단지는 그나마 관광단지보다 사정이 낫다. 지난 2009년부터 현재까지 총 42개 기업이 투자협약을 체결한 가운데 총 11개 기업이 3164억원을 투자했고, 574명을 고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투자협약 체결 기업의 절반조차 투자하지 않았지만 한 건도 없는 관광단지보다 괜찮은 편이다.하지만 투자 포기 기업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잇따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지난 2010년 3월 쌈지와 소리바다미디어 컨소시엄이 전북도와 400억원대의 새만금권 투자협약을 맺었으나 쌈지가 불과 1주일 만에, 소리바다미디어가 5개월도 안돼 부도가 났다. 투자직전 투자사가 포기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셈이다.OCI는 한국농어촌공사와 지난 3월 새만금산업단지 1공구 57만㎡ 입주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OCI가 지난 2011년 총 10조원대의 투자의지를 내세우며 새만금 산업단지 총 155만1000㎡에 대한 가계약을 체결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 투자분야도 태양광분야가 아니라 열병합발전소다.△투자협약 자료조차 없는 새만금경제청이 같은 일련의 사태에는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의 안일한 행정이 자리하고 있다. 새만금 관광개발과 관련해 새만금경제청은 지난 2009년부터 올 6월 현재까지 미 페더럴사, 미 옴니그룹과 각각 MOU를 체결한 게 전부라고 밝혔다. 대규모 투자이건 소규모 투자이건 그 이외의 투자협약을 체결한 사례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그러나 새만금경제청은 지난 2009년 12월 미국에서 윈저 캐피털, 옴니그룹, 레드 라이언 등 3곳과 각각 투자협약(MOU)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었다. 윈저 캐피털&무사그룹 1조5000억원, 옴니 홀딩스 그룹 3조5000억원 등이라고 구체적인 투자금액까지 제시했었다.그럼에도 불구, 새만금경제청이 내놓은 새만금 투자협약 체결 자료에는 윈저 캐피탈과 레드라이언이 빠졌다. 투자 협약 규모면에서 옴니 홀딩스 그룹에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엄연히 윈저 캐피탈과 레드 라이언도 MOU를 체결한 업체다.이는 그만큼 새만금경제청이 새만금 투자협약을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해왔다는 것이며, 새만금사업이 제대로 된 투자자를 찾지못한 채 터덕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는 게 도민들의 지적이다.△정부 차원 전폭적인 지원책 마련돼야새만금의 대규모 투자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린다. 하지만 정부가 새만금을 동북아의 경제 중심지로 조성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별다른 지원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데도 원인이 있다.따라서 정부 차원의 지원책 필요하다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북도 차원의 보다 실질적인 전략 마련도 필요하지만, 도로와 철도공항 등 SOC 시설에서 투자유치에 따른 특혜나 특례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대규모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은 지난 2011년 새만금 신재생에너지단지 11.5㎢(350만평) 부지에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만금개발을 유인하는 앵커기업으로 충분하지만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위축으로 인해 계획대로 투자될 지 불투명하다. 따라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지난달 22일 정부 주도로 열린 새만금 투자활성화 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새만금지구의 민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풀고, 획기적인 투자유치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복합도시 분양가 인하는 물론 세제와 기반시설 지원 등에서 차별적 인센티브 제공을 제시했다.전북도 관계자는 "새만금 투자유치가 어려운 것은 글로벌 경기불황과 연동된다"며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취지에 걸맞는 획기적인 지원책이 뒤따를 때 애초 목표를 달성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기획
  • 구대식
  • 2013.06.20 23:02

3. 남원 용성초 - 유서 깊은 학교 터전… 민족의식·독립사상 고취

△학교가 걸어온 길예향 남원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인 용성초등학교(교장 한숙경)는 그 터전 또한 유서가 깊은 곳이다.학교는 용성관이 자리하던 곳으로 631년 통일신라 신문왕 11년에 창건돼 조선시대에는 객사로 활용됐다. 용성관은 수난과 중건을 거듭하다가 6.25때 폭격으로 전소되고 현재는 기단부 석축 70여m와 석계단 1기가 남아 학교 본관 건물계단으로 쓰이고 있다.현재 계단 1기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었고 1994년 석물 29기도 추가 지정됐다. 용성초는 1906년 6월 1일 설립된 남원공립보통학교가 모태이다.1941년 국민학교로 교명이 바뀌었으며, 해방 이후 도심 개발과 의무교육 실시계획에 따라 많은 학생들이 유입되면서 1981년 병설유치원을 새롭게 여는 등 학교는 그 세를 크게 불려갔다.1996년 일본제국주의강점기 잔재 청산을 위한 조치로 교명이 현재의 용성초등학교로 개명됐다.2006년 개교 100주년 행사를 맞아 용성초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었다.남원시립국악단의 공연, 동문 장기자랑 등을 열었고, 동문들의 원활한 교류와 모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총동창회를 만드는 방안도 추진됐다. 동문들은 판소리의 고장이자 항일투쟁 의사를 다수 배출한 남원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학교 발전에 힘을 보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실제로 1945년 5월 초 금지됐던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한 내용의 서적을 서로 교환하며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한 용성초 졸업생들은 이를 억압하는 일제 경찰에 맞서 끊임없이 항쟁했다.이 때문에 몇몇 동문이 투옥되는 사건이 5.13 투옥 사건이다.이처럼 근현대 시기, 국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용성초 출신들은 각 지역별로 모임을 결성해 학교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학교도 이에 발맞춰 항일투쟁 역사, 학교를 빛낸 인물 등을 수집전시하는 역사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한편 올해 103회 졸업생을 배출한 용성초를 거쳐간 학생은 모두 2만3200명이다.△학교를 빛낸 인물용성초는 예향 남원을 빛낸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했다.201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시상식에서 연극영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극작가 노경식(41회)이 대표적 인물이다.그는 197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립극단, 서울예술단, 극단 산울림 등지에서 올려진, '달집', '징비록', '흑하(黑河)', '천년의 바람', '반민특위(反民特委)' 등의 희곡작품을 쓴 주인공이다. 그의 주요저작물로는 총 7권의 '노경식 희곡집'과 역사소설인 '무학대사'와 '사명대사'등이 있다. 또한 한국연극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까지 서울연극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이소윤(66회) 전 전주시립교향악단 상임연주자(바이올린)는 현재 남원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그는 현재 청소년 오케스트라단을 결성, 활발한 연주 활동에 나서고 있다.'소녀명창'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오지윤 명창(72회)은 국내 최초로 판소리와 아리랑을 특화시켜 대중과 호흡하고 세계인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로 '오케스트라 아리랑'을 창단하는 등 국악 관현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그는 용성초 재학 시절 강도근 명창의 눈에 띄어 판소리에 입문, 국악신동 '남원애기'라는 천재적 애칭으로 당시 국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소녀명창. 1982년 KBS 전국학생 국악경연대회 성악부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제2회 동아국악콩쿠르 금상, 제1회 전주대사습판소리 학생대회 차상 등을 수상했다. 한양대를 졸업한 후 입산하여 오랫동안 진정한 소리의 진수를 찾기 위한 판소리 수련의 길을 걸어왔다.오 명창은 특히 동편소리와 서편소리를 조화롭게 엮어 만든 보성소리가 특기이다. 그의 보성소리 심청가는 웅장하면서도 유려한, 창자의 해석능력과 예술적 표현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극적이며 상하청이 분명한 소리로 유명하다.염경관 군(103회)은 오 명창의 뒤를 잇는 국악신동으로 불리고 있다.그는 어린이 판소리 부문 최고의 등용문인 전국어린이 판소리 왕중왕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면서 한국 국악계를 짊어질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고 있다.용성초 출신은 정계에도 두루 포진했다.최중근 전 남원시장(42회)은 민선 4기 시정을 맡아 '문화관광 명품도시'육성을 청사진으로 내걸고 운봉 국악성지, 혼불 문학관, 백두대간 문화마을로 이어지는 남원 문화벨트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또한 유니버설 발레단 초청공연 등 지방도시에서 보기 힘든 고품격 문화체험 기회를 만드는 등 다양한 문화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지리산 청정문화를 바탕으로 우수한 유망기업 유치를 위한 농공단지와 산업단지 조성에도 힘 써왔다. 교육자 출신인 전북도의회 김정호 의원(51회)은 남원을 지역구로 둔 민선 5기 교육의원으로, 도교육청 견제감시 역할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특히 최근 구성된 '전북도교육청 인사 실태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여, 도교육청의 전반적인 인사 실태를 점검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도약을 위한 노력용성초는 전통의 바탕 위에, 새로운 교육의 모습을 더해, '인성과 실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학교 인근이 점차 구도심화하면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선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이에 학교는 인근 남원교육문화회관의 실내수영장에서 정기적으로 수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수영교실은 3학년 체육 교육과정의 '수영'단원 시수를 12시간 늘려 25차시로 운영하고 있다.또한 올해부터는 교육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앞으로 3년 동안 학생뮤지컬사업을 운영, 아이들이 꿈과 끼를 키우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학교에는 3000만원의 운영비가 지원되며, 사업의 전담운영은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김종헌 교수를 비롯한 융합문화예술대학 교수들이 주축으로 구성된 '학생뮤지컬 사업단'이 맡아 선정 학교의 지도교사 연수, 운영매뉴얼 제작, 현장컨설팅, 전국페스티벌 개최 등을 총괄 지원한다.학교는 춘향전의 무대인 남원의 역사적 전통을 유지계승하기 위한 국악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전 학년 연 340시간을 배정, 전문 국악강사가 정기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한숙경 교장은 "남원을 대표하는 초등교육기관이라는 명성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학교 전통을 유지계승할 수 있는 특성화 프로그램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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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국
  • 2013.06.19 23:02

【⑭ 마을숲 의미와 실태】"도심 나무그늘 휴식·놀이·생태공간으로 활용"

이제 초여름이지만 벌써 30℃를 넘어서며 한여름 더위가 본격화되고 있다. 7~8월이 될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부터 전력난을 걱정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고, 실내온도를 조절하는 관공서마다 덥다는 하소연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농촌지역은 사정이 달랐다. 아직도 시골은 마을의 당산나무나 마을숲의 그늘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여름을 건강하게 넘기고 있었다. 점점 더 더워지는 기후변화시대 마을숲에 주목해본다.우리나라 농촌지역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 마을숲이다. 마을숲은 주로 마을의 입구, 마을앞 하천주변 등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숲이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이유는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조림한 경우도 있고,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나 하천의 홍수를 막기 위해 세운 방풍방재림도 있다.이처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마을숲 중에서 대표적인 마을숲이 '진안 마을숲'이다. 우석대 박재철 교수(조경학과) 등이 정리한 '진안의 마을숲'에는 진안지역에만 80여개의 마을숲이 존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안의 마을숲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 정천면 하초마을을 비롯해 진안읍 은천마을원연장마을원반월마을, 백운면 노촌마을 등이다. 이들 지역 가운데선 산림청과 생명의숲이 선정한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곳도 있다.이러한 마을숲은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겨울철 찬바람을 막아주며, 홍수기에는 하천의 범람을 막아주는 환경과 방재기능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마을사람들의 휴식과 놀이의 공동체 문화공간이 되며, 마을주민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의 공간이 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마을숲에는 돌탑선돌거북바위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조형물은 마을의 안녕을 비는 신앙적 공간으로 역할을 한다. 또한 오래된 마을숲은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며, 새다람쥐양서류 등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는 생태계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맡고, 아름다운 경관기능도 가진다.이처럼 다양한 기능과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마을숲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지난 주말 찾은 진안 정천면 하초 마을숲의 경우 2005년 '생명의숲'으로부터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선정될 정도로 잘 보전되고 아름답다.하지만 잘 관리가 되지 않아 곳곳에 각종 농자재가 쌓여있고, 농업용 폐기물과 생활페기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건설자재까지 방치되면서 흉물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마을숲 내의 돌탑과 거북바위 등도 관리되지 않아 허물어지거나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진안읍의 은천마을이나 원동천마을의 마을숲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농촌지역의 마을숲이 잘 관리가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예전에 비해 농촌인구가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인구가 노령화되면서 제대로 관리할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숲은 대부분 마을의 공동소유라는 점에서 더욱 관리에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농촌지역의 마을숲 관리는 이제 개별 마을의 책임으로 맡기기에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승 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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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18 23:02

【⑭ 마을숲 의미와 실태】전통마을숲 현대적 복원 기후변화시대 대응하자

도시지역에서는 마을숲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주시의 경우 아직 농업지역인 변두리 지역에 일부 마을숲이 남아있지만 시가화된 지역에는 마을숲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동안 도시지역은 인구밀집에 따른 주택건설과 차량증가에 따른 도로건설 등으로 예전의 오래된 나무와 마을숲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노거수도 건물 귀퉁이에 방치되어 있거나, 인간의 일상생활과 동 떨어져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이처럼 마을숲의 가치와 기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을숲의 보전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한경대 김학범 교수는 "마을숲은 오래된 숲이 존재하는 자연유산이자, 마을숲에는 돌탑·선돌·장승 등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고, 당제 등 신앙적 공간으로 활용되는 문화유산이다. 마을숲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을 모두 갖춘 복합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산림청도 '전통 마을숲 보존관리지침'을 마련하고 전통 마을숲을 되살리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침에서는 마을숲을 '역사·민속·학술·교육적으로 가치가 높고 지역주민을 결속하는 전통 문화공간이자 마을경관의 주요 요소를 이루는 숲으로, 생물·무생물·지형·하천 등 자연물과 인공 시설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이의 보존관리를 위해 관리단체의 지정, 방문자센터 등 관리시설의 설치, 수목관리와 편의시설 설치 등 보존관리대책의 시행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대상을 천연기념물이나 명승으로 제한하고 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천연기념물 또는 명승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우선 지정해야 한다.중앙정부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마을숲의 원형이 잘 보전된 진안군을 비롯한 지방정부가 우리의 고유한 자연문화유산인 마을숲을 대표브랜드로 삼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추진이 필요해 보인다. 이를 통해 마을주민의 삶의 질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오래된 미래'로서 마을숲을 적극 활용해 지역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도 높히고, 생태관광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주시를 비롯한 도시지역에서는 기후변화와 도시열섬화로 더욱 열악해지는 도시민들의 삶을 좀 더 쾌적하게 하기 위해 마을 곳곳에 전통 마을숲을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에어컨 등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지구온난화의 악순환을 지속할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용한 생태적인 방법으로 기후변화시대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마을숲은 주민들의 소통의 공간이자 공동체 문화공간이다. 기후변화시대 우리의 전통 마을숲을 도시지역에서 현대적 의미로 복원해 보자. 한승우(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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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6.18 23:02

【우리고장 명인명물】국내 最古 장수향교

장수읍 장수리에 위치한 장수향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다. 조선 태종 7년(1407년) 장수읍 선창리 당곡에 창건됐다는 점에서 600여년의 세월을 자랑한다. 향교는 덕행이 훌륭한 사람들을 모셔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해 나라에서 세운 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이다. 선조 30년 정유재란(1597)때 왜군이 남원성을 침공하고 북상 중 장수 향교를 불태우려하자 향교 지기 정경손(丁敬孫)은 "이 곳은 성전이니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 침범하려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고 목숨을 걸고 항거했다. 이 의기에 탄복한 왜장이 오히려 "이 곳은 성전이니 침범하지 말라"며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이 성역에는 들어가지 말라)이라는 신표(信標)를 써주고 물러나 왜군 후속부대의 피해를 당하지 않고 장수향교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은 향교 정면에 정경손을 기리는 비각(정충복수명비전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을 세워 그의 덕을 기리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5일 그의 얼을 기리는 제례를 지니고 있다. 향교의 부강문(扶鋼門)은 외삼문으로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장수향교에서는 옛 성현들을 기리기 위한 제례봉행은 매월 음력 1일과 15일에 대성전에서 전교, 장의들이 분향하고 있으며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 또한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춘추계석전대제(釋奠大祭)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후세들을 위해 한자와 예절교육으로 향교일요학교를 수시로 운영하고 있으며, 여름과 겨울방학 동안은 성균관유도회 장수군지부 주관으로 한자 및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대성전은 조선시대 향교 건축의 대표 건물 중 하나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광복후 1957년 국보 제420호로 지정됐으며,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72호로 변경 지정됐다. 정충복수명비(정충복수명비)도 1985년 8월 16일 전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됐다. 전북도 문화관광해설사 안충현씨는 "장수향교가 다시 국보로 지정돼 대한민국 역사적 산물로서의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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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익수
  • 2013.06.18 23:02

4. 무주 태권도원 조성 - 사업 축소·민자 유치 난항…'세계 성지화' 무색

세계 태권도의 구심점을 마련하고 이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무주군 설천면에 태권도원이 조성되고 있다. 5월 말 기준 공정률 91%를 보이며 하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 3월 공식 개원할 예정이다. 태권도의 성지로 수련교육 기능은 물론이고 향후 민자를 유치해 휴양시설까지 마련한다는 청사진이다. 하지만 성지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기부금으로 지어질 상징공간은 기부액이 턱없이 모자라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태권도 관련 단체들도 이전에 난색을 표하며 국기원의 일부 기능만 이전할 전망이다. 민간 투자 부분도 당초 계획보다 축소됐지만 유치에 난항이 예고됐다. 수천억 원이 투입된 태권도원이 제 기능은 하지 못한 채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세계 태원도 중심지 의문태권도원은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231만4213㎡ 부지에 지어지고 있다. 국비 2153억 원, 지방비 146억 원, 기부금 176억 원 등 총사업비 2475억 원을 투입해 상징공간수련공간체험공간을 조성하고, 휴양을 주제로 한 민자시설은 별도로 설치될 계획이다. 이 가운데 수련체험공간은 올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경기장, 전시관, 방문자 센터 등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태권도원은 수련체험 공간을 필두로 오는 9월 시범 개원할 예정이다.하지만 기부금으로 지어지는 태권전, 명인관 등 상징시설은 무기한 연기돼 건립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곳은 최고 수준의 고단자와 수련생이 교류하고 고단자를 위한 수련모임 공간이다. 기부금 176억 원으로 건립키로 했지만 목표액의 13%인 22억 원만 확보됐다. 이 중 6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업은행이 22억 원을 3년으로 나눠 기부한 금액이다. 이에 전북도, 전북도의회, 무주군, 무주군의회가 나머지 154억 원을 국가 예산으로 환원해 지원해달라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메아리 없는 구호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태권도 관련 단체의 이전사업도 대부분 좌초돼 반쪽 개원이 전망되고 있다. 태권도원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단체들의 동반 이전이 무산된 상태다. 국기원의 전문 연수기능만 운영이 확정됐다. 주요 태권도 단체의 집적화로 파급 효과를 기대했지만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 등은 난색을 표했다. 이들 단체는 태권도의 세계화를 지향하는데다 원활한 업무 처리 등을 위해 굳이 무주까지 이전할 필요성과 이유가 없어 꺼리기 때문이다.△민자 유치 과제태권도원은 당초 올 9월 4일 태권도의 날에 맞춰 개원을 예정했다. 하지만 예산부족 등으로 각종 시설공사가 미뤄지면서 내년 3월 중순께 전면 개원한다. 당초 일정보다 6개월이 늦어져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었다. 공공지구의 운영실적이 민자유치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데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상징지구의 건립비 마련과 함께 민자유치가 태권도원의 과제다. 민자 부분은 세금으로 지어지는 수련체험 공간과는 별도로 휴양시설, 레포츠시설, 건강체험시설 등으로 내년부터 오는 2017년까지 들어설 계획이다. 한옥텔, 콘도형 가족호텔, 유기농 음식 판매장 등 가족휴양시설과 태권어드벤쳐, 첼린지파크와 같은 레포츠 시설은 물론 한방케어센터, 체류형 힐링센터, 힐링사이언스 가든이 건강체험시설로 제시됐다. 민자 부분은 당초 3648억 원 규모로 전체 사업비 6072억 원의 60%였다. 투자자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면서 사업비를 1066억 원으로 대폭 축소했다. 민자시설은 전체 부지의 231만4213㎡의 6%에 해당하는 13만3000㎡의 면적이지만 사업은 1066억 원 규모로 총사업비 3648억 원의 29%를 차지한다.전북도는 그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국내외에서 투자 활동을 벌였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없다. 민자를 유인하기 위해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투자에 영향을 미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해 올초 국회 김윤덕 의원을 필두로 도내 국회의원들이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공동 발의 했지만 현재 해당 소위에서 심사단계에 있다. 정치권은 현행법의 경우 민자지구의 민간사업자에게 토지 등의 임대매각에 대한 수의계약 규정이 없어 민자사업 추진에 제한 요인이 된다고 판단했다. 개정안에 '국공유재산을 수의계약으로 임대하거나 매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고 임대료 감면, 임대기간(50년)도 규정했다. 전북도 관계자는 "민자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본격적인 민자유치 기간이 아니다"며 "태권도원의 운영실적이 있어야 이를 근거로 유치가 가능한 만큼 내년부터 본격적인 투자유치 활동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 태권도원 추진일지△1994년 10월 =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제103차 IOC총회)에 따른 태권도성전 건립추진계획 수립△1995년 04월 = 추진위원회 및 실무위원회 구성△1996년 12월 = 태권도성전 건립추진위원회 창립△1998년 04월 = 문화관광부 대통령 업무보고시 '특별추진과제로 선정'△1999년 01월 = KDI 예비타당성 조사△2000년 04월 = 문화관광부 태권도공원 조성 기본계획(안) 발표, 같은해 10월 보류△2004년 04월 = 태권도공원 조성사업 재추진△2004년 12월 = 무주군으로 태권도공원 조성 부지 확정△2005년 07월 = 태권도공원 조성 및 운영 주체인 태권도진흥재단 창립△2007년 12월 =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민자 포함 총사업비 6009억 원 타당성재조사 완료△2008년 08월 = 태권도공원 마스터플랜 국제지명 초청 설계 경기△2009년 05월 = 태권도공원 건립공사 턴키사업자 선정△2009년 09월 = 태권도공원 기공식△2012년 02월 = 태권도공원 '태권도원'으로 명칭변경△2013년 06월 = 태권도원 건축 준공△2014년 03월 = 공식개원 예정

  • 기획
  • 이세명
  • 2013.06.17 23:02

전주·완주 통합 주민투표 앞둔 김성중 도선관위 사무처장

전주완주 통합에 대한 완주군민들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26일)가 9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20여년간 진행됐던 통합논의의 종지부를 찍을 주민투표를 앞두고 찬반 양측의 대결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과열양상 마저 우려되고 있다. 이럴 때 가장 바쁜 기관이 선거관리위원회다. 투개표 절차 진행 등의 일반 선거관리업무 외에 허위사실 유포와 흑색선전 등 선거법 위반사범 단속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더구나 이번 주민투표에서는 처음으로 사전투표가 도입되면서 실질적 투표일도 3일로 늘어나는 등 업무량도 더욱 증가했다. 지난 14일 전북도선거관리위원회 김성중(56) 사무처장을 만나 이번 주민투표와 사전투표 등 선거관리 진행상황 등을 들어봤다.-현재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민투표란 무엇입니까."주민투표란 지방자치단체와 관련된 정책을 주민이 직접 투표해 결정하는 제도로 주민의 정치참여를 높여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코자 마련된 것으로,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에 주민투표법이 제정선포됐습니다. 처음 실시된 주민투표는 2005년 제주도의 행정구조개편에 대한 주민투표였구요. 서울시의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와 청주시와 청원군의 행정구역 통합에 대한 주민투표 등 점차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전북에서도 두 번째 주민투표인데요, 2005년에 군산시의 방폐장 유치에 대한 주민투표가 실시됐었죠."-주민투표 실시지역과 참여대상은 어떻게 됩니까."이번 주민투표는 완주군에서만 진행이 됩니다. 따라서 투표도 투표인명부 작성기준일 현재 완주군 관내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 19세 이상 주민만 가능합니다. 주민투표가 전주와 완주 모두에 이슈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주시민들은 투표권자가 아님을 유의하셔야겠습니다."-이번 주민투표에 사전투표가 적용되는데, 언제 어떻게 진행됩니까."424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등장한'사전투표'제도가 이번 주민투표에도 적용됩니다. 6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데요, 완주군 각 읍면사무소에 설치된 13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진행됩니다. 투표권자 전체가 등재되어 있는 명부서버에 접속해 본인확인 절차를 마치면 현장에서 바로 투표용지가 발급됩니다. 발급된 투표용지는 기존 부재자투표방법과 동일하게 기표소에서 기표를 한 후 봉투에 넣어 봉함하고 투표함에 넣으면 투표가 종료됩니다. 투표권이 있는 완주군민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사전 신고를 하지 않아도 13개 투표소 어느 곳에서나 쉽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공직선거와 주민투표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주민투표는 공직선거와 달리 투표율이 33.3%가 넘지 않으면 개표할 수가 없습니다. 즉, 안건에 대한 주민의 3분의 1이상의 참여가 있어야만 찬반의 결과를 알 수 있는건데요, 물론 투표율이 개표요건에 미치지 못하면 투표여부와 관계없이 주민투표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선거운동 방법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공직선거는 허용된 행위 이외는 모두 금지된 반면 주민투표는 금지 규정을 제외한 모든 투표운동이 가능합니다."-투표율이 주민투표의 가장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겠는데, 주민투표의 투표운동은 어떻게 실시됩니까?"이번 주민투표의 경우 '완주군과 전주시의 통합에 대한 의견'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하는 방식으로 주민투표발의일부터 주민투표일(26일) 전일까지만 투표운동이 허용됩니다. 이 기간동안 지정된 찬반 대표단체가 주가 되어 투표운동을 벌이게 되는데요, 완주군 공무원은 투표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군의원과 완주군민은 투표찬반운동이 가능합니다."-주민투표에서 자치단체(완주군)에 허용된 행위는 무엇입니까."투표일시 및 장소 등의 절차 안내나 특별법에 따른 지원내용, 정부가 발표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사항 등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한 정보제공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일방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정보 또는 편향된 정보는 금지됩니다. 전북도 및 전주시의 완주군에 대한 지원책을 홍보하거나, 21개 전주완주 상생발전사업 등을 알리는 것도 금지됩니다. 상생발전사업 등은 객관적 자료로 볼 수 없다는게 중앙위원회의 해석입니다."-투표운동 행위 중 제한금지되는 사항은 무엇이 있습니까."공직선거와 마찬가지로 허위사실공표와 기부행위 등은 제한됩니다. 첫째가 야간호별 방문의 금지로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는 주민투표운동과 관련한 호별방문을 할 수 없습니다. 둘째, 야간옥외집회의 금지입니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금지됩니다. 다만,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의 경우 휴대용 확성장치만을 사용할 때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할 수 있습니다. 셋째, 투표운동을 목적으로 서명 또는 날인을 받는 행위가 금지됩니다. 넷째, 연설금지장소에서의 연설행위가 제한됩니다. 연설금지 장소로는 터미널 구내, 병원, 도서관, 여객자동차, 국가 또는 지자체가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건물시설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다섯째, 누구든지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 또는 대담토론회장에서 연설대담토론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투표운동을 위해 확성장치를 사용할 수 없으며, 마지막으로 누구든지 자동차를 사용하여 투표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장소에서 정지된 자동차에 승차하여 투표운동을 하거나,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을 위해 사용하는 자동차에 선전물을 부착하여 사용하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허용됩니다. "-투표당일 투표는 어떻게 진행됩니까."6월 26일 주민투표일은 임시공휴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투표가 진행되구요, 투표방법은 공직선거와 동일하게 자신의 주소지에 해당하는 투표소에서 종이투표용지를 교부받아 투표하면 됩니다."-찬반의 대립이 있는 사안인 만큼 준비도 철저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아마도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실시되는 사전투표에 대해 우려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 한데요, 이미 타지역 재보궐선거에서 안정적인 진행을 보여 충분히 검증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항상 점검하고 확인해 투표진행에 한치의 착오도 없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6월 하순 장마가 예상되어 투개표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민투표에 사용되는 투표함은 지난 대통령선거시 사용했던 강화플라스틱 투표함으로, 보관 및 이동이 용이하고 견고할 뿐 아니라 우천시에도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제작되어 투표용지 관리에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주민투표 열기로 가득한 6월입니다. 내년 6월에도 지방선거가 있는데, 1년여 남은 내년 지방선거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현재 주민투표에 주력하고 있지만, 선거관리위원회의 과업인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준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입후보 예정자들의 활동이 시작되고 있는 만큼 선관위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여야겠지요. 변화하는 선거문화에 맞춰 사전안내와 예방에 힘쏟고 있으나, 발생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엄정중립의 자세로 단호히 대처할 것입니다. 특히 금품향응 등의 돈선거, 허위사실 및 비방흑색선전 등 중대선거범죄에 대해서는 엄하게 처벌할 계획입니다."

  • 기획
  • 김준호
  • 2013.06.17 23:02

1. 프롤로그 - 생태, 문화, 종교, 인간이 함께 숨쉬는 지구촌 명산

높이 1915m, 동서길이 50㎞, 남북길이 32㎞, 둘레 320㎞, 총면적 483㎢에 4994종의 동식물군, 3개도 5개 시군을 품고 있는 지리산.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수천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천혜자원의 보고다. 오랜 세월 보통 사람들의 생활문화 터전이자 많은 역사 유적과 종교 그리고 빼어난 생활경관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백두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리며 신성한 '어머니산'으로 통했다. 특히 한국의 산 중 지리산만큼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산', '인문의 산', '역사의 산'으로서 의미와 정체성을 갖는 산은 없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중에서도 자연과 생태, 역사, 문화, 취락, 종교, 사람의 삶이 결합된 산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본보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지리산이 가진 생태역사인문적 자산들을 재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리산의 세계복합유산 등재 가능성과 등재를 위해 어떤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지 2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지리산에 얽힌 역사 문화 생태에 대한 이야기는 관련 논문만 수백 개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다. 또 총면적 483㎢이 말해주듯 웅장한 지리산의 모든 것을 단시간에 알기는 어렵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우선 둘레길 800리에 펼쳐진 역사 문화 생태의 현장을 다니며 지리산에 첫 인사를 보냈다. 기자가 지난 30일부터 이틀간 둘레길에서 만난 지리산은 여러 가지 모습이 혼재돼 있었다. 오염돼가고 있는 자연과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자연. 수많은 전설과 전쟁의 비극. 그리고 개발을 둘러싼 미묘한 갈등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남원시 주천면에서 출발하는 주천 1코스에 있는 구룡계곡. 판소리 동편제의 거장 권삼득 명창이 목소리를 가다듬은 용소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완주 출생인 그는 집안에서 쫓겨나 콩 서 말을 짊어지고 처가가 있는 이곳으로 들어와 한바탕 소리공부를 했다고 한다. 좀 더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노치마을에 이르렀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자리에 유일하게 촌락을 이루고 있는 노치마을에서는 현재까지도 당산재를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70~80대 고령인 탓에 언제까지 당산재를 이어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이영희씨(77)는 "당산재를 할 때 마을이 아주 떠들썩했지. 내륙이라 생선이 귀했는데 당산재를 모시고 생선을 먹으라는 데 그것을 참기가 어렵더라고. 헌데 지금은 다들 나이가 먹어서 당산재를 크게 치르는 게 힘이 든다"고 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든 황산대첩비. 1577년 전라도 관찰사였던 박계현의 건의로 남원시 운봉면에 세워진 비석은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자신들의 뼈아픈 역사를 지우기 위해 황산대첩비를 파괴했다. 현재 기념비는 지난 1977년 새로 복원된 것으로 깨어진 비석 조각들은 기념비 옆 파비각(破碑閣)에 보관되고 있다.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 동서 삼층석탑(보물 제37호) 등 10점이 넘는 보물급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실상사. 단일 사찰로는 최대 규모의 문화재이다. 약사전에 봉안된 신라 말기의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은 길이가 3미터에 이르러 한국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철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보물들이 자칫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함양군 마천면 일대에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06년 남원시 장수군 구례군 곡성군 순천시 하동군 함양군 산청군 등 8개 문화원이 중심이 돼 지리산의 자연경관과 문화재의 보호를 통해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자치단체 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댐건설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실상사 도법 스님은 "전라북도가 새만금 개발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이 발전하고 달라졌는가"라며 자연과 생명을 무시하는 개발에 대해 쓴소리를 날렸다. 김정엽기자 colorgogu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김정엽
  • 2013.06.14 23:02

고전번역학자 변주승 전주대 교수 "고전 번역은 마라톤…동료들과 만드는 한편의 영화"

고전(古典)은 장강(長江)이다. 크고 작은 물길을 거두어 도도하게 흐르는 길고 큰 강처럼 고전은 시대와 역사를 안아 오늘의 우리를 비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장강과도 같은 고전을 잊은 지 오래다. 새로움과 속도만을 앞세우는 시대에서 고전의 가치는 빛을 잃었고 창조적 미래를 꿈꾸는 세대도 더 이상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지혜는 언제나 고전에 있었다. 고전이 외면 받는 불행한 시대에서 고전의 가치를 주목하며 고전의 숲을 가꾸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나라 고전번역의 중심에 있는 번역학자 변주승 교수(51전주대)를 만났다. 지난 2009년 50권 분량의 '여지도서' 번역본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그는 2004년부터 시작한 '추안급국안' 번역을 이미 오래전에 마무리하고 90권 장대한 규모의 책 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전 번역을 시작한 것이 1996년, 삼십대와 사십대의 빛나는 시절을 거쳐 올해 지천명의 나이가 된 그에게 고전번역은 지난 18년 동안 삶의 전부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전 번역은 학문영역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만드는 한편의 영화이고, 개인적으로는 마라톤과도 같았다. 그만큼 고전을 향한 애정은 깊고 뜨거웠으며 번역의 목표는 명징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번역'하기 위해 바친 그의 일상은 경이롭고 신선했다. 현실의 유혹을 밀어내고 오래된 것을 더욱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는 삶은 치열했으며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덕분에 그에게 듣는 고전은 더 새로웠다. 이제 우리가 고전의 가치에 눈뜨는 일이 남았다. 고전의 숲속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머리가 많이 센 것을 보니 번역작업 18년 동안의 고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혹시 유전은 아니겠지요."집안에서 머리가 센 사람은 저 혼자이니 유전은 아닐 겁니다. 번역작업의 고단한 작업에서 얻은 훈장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고전 번역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번역이 운명이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96년에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된 해에 지도교수님께서 사료 하나를 넘겨주셨어요. '신유박해' 사료였습니다.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 일을 주시는 것인가 의아했죠. 한문을 잘하는 동료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시키신 일이니 대학원 선배들과 함께 12월에 번역을 시작했는데, 아이엠에프가 터졌어요. 원고료도 못나오는 지경이 되니 교수님이 중단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때가 제 인생의 기로였던 것 같아요. 선배들도 그만두었는데, 혼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꼬박 3년이 걸렸지요. 그런데 은혜를 받았는지 나중에 예산이 만들어져 원고료도 나오고 명예훈장까지 받았어요."-천주교 신자셨습니까. "아니에요. 저는 유학자이셨던 아버님(변시연 선생) 덕분에 유교의 학풍에서 성장했고, 처가는 기독교 집안이었으니 천주교와는 인연이 없었죠."-아무 연고도 없는 전주는 어떻게 오시게 됐습니까. "제가 전주로 온 것이 96년인데, 92년부터 전주대 강의를 나왔긴 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고, 특별한 계기도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님이 늘 '너는 노령산맥 이남으로 오지 마라. 오면 내가 이룬 것도 망치고 너도 큰일을 못한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죠." -번역을 시작 할 때 박사논문까지 마친 때였으니 취업이 더 절실했던 것 아닌가요. "학문의 길을 택했으니 대학에 자리를 잡는 것이 우선일 수 있었겠죠. 그러나 번역을 시작하고 나서는 대학으로 가는 일이 그렇게 절박한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번역은 학교로 자리 잡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환경인데도 왜 그렇게 번역에 매달렸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는 번역 책 한권이 논문 한편으로도 평가받지 못했었을 때거든요."- '신유박해' 사료가 첫 번역인가요. "데뷔작이었죠. 번역은 자기주장을 증명하는 논문과 달라서 옳고 틀린 것이 그 자체로 확실히 드러나잖아요. 처음 번역을 하면서 난해한 부분이 참 많았어요. 그러니 이 일이 내가 할 일인지 확신이 없었는데, 번역과 관련된 치명자산을 갔다가 거기서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을 느꼈어요. 실력이 부족해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된 것 같아요."-그 작업이 계기가 되어 번역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시게 되었군요. "그런 셈입니다. 저를 오롯이 이 작업에 전념하게 할 수 있게 해주신 김진소 신부님과의 인연도 이때 이루어진 것이니까요."-김신부님께서는 교수님의 번역작업을 가장 신뢰하고 전적으로 후원해주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신부님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 팀의 번역작업은 생각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신유박해 사료를 번역하면서 천호성지로 처음 신부님을 찾아갔을 때 '한국 천주교회가 변주승 선생에게 못할 일을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 자리에서 담배를 한 개비 말아주셨는데 제 인생에 가장 맛있는 담배였던 것 같아요. 그때 알 수 없는 어떤 인연의 끈이 느껴졌어요. 그리고는 신유박해 번역을 마무리하고 99년에 책을 냈는데, 그즈음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정책으로 반영하기 시작했어요. 그 일환으로 '동서양 명저 번역 사업'이 있었는데 함께 공부했던 후배가 '신청해보자'고 하더군요. 그 책이 10권으로 발간됐던 '대한계년사'입니다. 그 작업을 천호성지의 신부님 사제관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느냐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진행하셨습니까. "제 아버님이 칠십 살 되시던 해에 장성의 집을 떠나 백양사 입구 산속으로 들어가셨어요. 당시 아버님께서는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셨는데 항상 저희에게 말씀하셨던 '분수를 알고(知分) 만족할 줄 알고(知足), 그칠 줄 알아야(知止) 한다'는 교훈을 그때 실천하셨던 겁니다. 어머님은 돌아가신 뒤여서 홀로 지내시며 학문하시는 아버님 곁에 있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때 후배 몇 명이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 후배들과 대한계년사를 함께 번역하게 되었죠."-천호성지 사제관은 그때부터 번역작업의 산실이었군요. "번역 팀의 네 명 모두 거주지가 전국에 흩어져 있었어요. 저도 시간강사라 연구실은커녕, 책상도 없었던 시절이었죠. 신부님을 찾아가 상의 드렸더니 '여기 와서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호남교회사를 정리하신 신부님 서재는 번역작업의 보고였습니다. 책만도 만권이 넘는 거대한 자료실에 저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신부님이 해결해주셨어요. 신부님께서는 저희 때문에 모든 일상이 불편하셨지만 심지어 뒤풀이 술자리까지도 응원해주셨죠. 천호성지 사제관은 18년 저희 번역작업의 모든 과정이 담겨있는 산실입니다." -팀으로 번역작업을 시작한 '대한계년사'와 '여지도서' 그리고 '추안급국안'까지 정말 대대적인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생각해보면 정말 기가 막힌 생활이었어요. 이상하게 한 작업이 끝나가는 시점에 꼭 다른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한 작업당 한 달에 한 번씩 공동 윤색을 위한 작업을 하는데 그것이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 3일의 일정이거든요. 저는 모든 팀의 책임을 맡고 있어서 매주 주말을 천호성지에서 보내게 되는 겁니다. 10여년을 꼬박 주말 없이 보냈죠."-공동윤색 과정이 궁금합니다. 번역을 각자해서 함께 점검하는 것입니까. "네 형식은 그렇죠. 근데 그 과정이 치열합니다. 공동 작업이니까 개인이 해온 과제를 함께 읽고 번역의 표현에 동의하는 과정이랄 수 있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고, 난해한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을 지적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악역을 참 많이 했어요. 더구나 쉬운 번역을 내세웠기 때문에 교정과 윤색의 과정은 더 지난하고 치열해져야 했지요."-번역을 할 수 있는 인력은 충분했습니까. "공부하는데 뜻을 함께 하는 선후배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2004년부터는 이 지역 연구자들을 찾아 합류시켰습니다. 지역 사람들이 판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선택은 지금생각해도 잘했던 것 같습니다. 전주가 고전번역의 도시로 주목 받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정권이 바뀌는 동안에도 인문학과 고전번역에 대한 관심이 중단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스런 일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교수님이 몸담고 있는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이 한국고전번역원 협동번역사업 준대형 거점연구소로 선정된 것도 그동안의 작업과 관련이 있겠죠. "무관하지 않지만 별개의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은 학교 연구소 차원에서 3년 동안 전쟁처럼 준비했어요. 민족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0년에 국가에서 전통문화를 콘텐츠화하는 정책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고전번역원에서 이 일을 주도하기에는 벅차죠. 승정원일기만 번역한다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권역을 나누어 거점 연구소를 운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선정은 의미가 큽니다."-교수님 번역작업과 관련해 한옥마을에 문을 연 한국고전문화연구원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제가 만들었기 보다는 아버님이 지난 58년에 만들었던 한국고문연구회의 법통을 이어받으면서 연구원 체제를 갖추고 이름도 바꾸어 2006년 9월에 법인 사무실을 냈어요. 아버님이 평생 모으신 책과 자료들도 모두 옮겨왔지요."-그 자료를 옮기는데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상당부분이 전남의 도지정문화재였다면서요."아버님의 뒤를 잇고 뜻을 제대로 잇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을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제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제 활동영역은 전주여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 결의를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승낙을 얻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해에 책과 자료를 다 옮겨왔어요. 그래서 제가 전남과 특히 고향 장성에서는 매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님 책 중에 도지정 문화재가 있었는데 관내이탈이 되어버리니 아예 문화재 지정을 해제시키는 일이 불가피했거든요. 제가 더 열심히 연구하고 그 뜻을 잘 이어야하는 이유입니다."-인생의 중요한 30-40대를 고전번역으로만 보내셨는데 '추안급국안'을 마무리하고 운영해온 대학 연구소도 큰 성과를 거둔 지금, 개인적인 소회는 어떻습니까."헤아려보니 신유박해 초한서와 대한계년사, 여지도서, 추안급국안 작업 중 40-50권이 제가 개인적으로 직접 번역한 책이더군요. 그런데 보람이 큰만큼 허전하고 허탈합니다."-워낙 큰일을 해낸 뒤여서 그런 것 아닐까 싶은데, 말씀을 듣다보니 새로운 일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커보입니다. "이제는 저도 세상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고전문화연구원을 열어놓고 정작 하지 못했던 회원들과의 교류와 소통이 우선이지요. 번역에 몰입하면서 개인적인 성과는 쌓였지만 가족들과 지인들, 80년대 같은 꿈을 꾸었던 동료들이 제 삶의 반경에서 너무 멀리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연구원 회보에 '다시 옷깃을 여미며'란 글을 썼는데, 제심경을 그대로 거기 담았습니다."-지금까지의 작업과는 성격이 다른 일을 시작하실 것 같군요.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용역'이라고 하는 사업에만 매달려(그것이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 하더라도) 너무 많은 시간을 소진한 듯 한 느낌이 듭니다. 평가받고 기획서에 매달려온 시간의 환경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그만큼 크죠.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으니 새로운 일을 할 때도 되었고요. 개인적으로도 너무 일찍 고전 번역으로 와서 96년 이후 논문다운 논문을 쓰지 못했어요. 이제는 제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지역사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은데 다행히 천주교사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고, 여지도서를 통해서 전라도 전체를 조망할 기회와 추안국안을 통해 전라도의 전말과 이면을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죠. 이제 20년 세월을 바친 그 번역 사료들을 바탕으로 지역을 주제로 한 글을 써볼 생각입니다. 사회와 소통하는 작업도 고민하고 있고요." 인터뷰 말미, 그로부터 흥미로운 번역의 원칙을 들었다. 이른바 세모꼴 원칙이다. 좋은 번역을 하는 조건으로 그는 한문에 대한 빈틈없는 독해와 아름다운 한글을 쓸 수 있는 능력과 자기가 번역하고 있는 텍스트의 역사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꼽았다. 아랫변과 윗변 그리고 꼭짓점 도형의 세모꼴을 적용한 번역의 원칙은 그가 주도하는 고전번역에 그대로 담겨 적용됐다. 지금까지 우리 앞에 놓인 고전의 내용이 대중들에게도 흥미 있게 다가올 수 있는 비결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3.06.13 23:02

'고전을 읽으면 역사가 보인다' 새롭게 각인시켜

변주승교수에게 고전번역은 지난 18년 동안 일상의 한 중심이었다. 그의 부친은 호남의 대표적 한학자인 산암 변시연 선생(1922~2006).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유학의 학풍 속에서 성장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고전번역의 길에 들어선 이후 30대와 40대의 학문적 열정을 오로지 번역에만 쏟았다. 고려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난 직후부터 시작해 근래까지 지속된 그의 작업이 일군 고전 번역의 숲은 깊다. 첫 작업은 오롯이 개인적으로 일궈냈던 '신유박해' 사료집. 그 후 동료들을 규합해 번역팀을 만들어 이어낸 작업으로 '대한계년사' '여지도서' '추안급국안' 등이 번역의 옷을 입었다. 모두가 고전을 읽는 일이 곧 역사를 읽는 일임을 새롭게 일깨우는 귀한 사료들이다. 고전번역원의 '동서양 명저사업'으로 진행했던 '대한계년사'는 대한제국시대의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이 조선총독부가 만든 것인데 반해 고종의 비서실장 격이었던 정교가 직접 기록한 대한제국의 말년사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료다. '여지도서' 는 영조 시대 조선팔도 353개 고을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인문지리서. 조선왕조가 국가차원에서 조망한 마지막 인문지리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번역하는데 변교수는 특별히 공을 들였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작업은 지도의 복원. 빠듯한 예산에 지도 복원을 중심으로 들여놓는것에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으나 변교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지도를 번역해 놓지 않으면 후대 사람들이 읽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역시 번역을 마무리한후 출판을 위한 교정 작업까지 마친 '추안급국안'은 우리 역사의 새로운 보고라 할 만큼 흥미로운 사료다. 조선시대, 반역 등 국가의 존립과 관련된 사건의 심문기록을 통합해놓은 이 자료는 선조대부터 고종대까지 범죄자들을 직접 심문하면서 옆에서 적었던 속기록. 변교수는 '추안급국안'의 두 가지 가치를 주목하고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이 갖고 있는 한계를 벗고 조선시대 법제사 정치사 사회사를 밝히는 사료적 가치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생활사의 보고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중세국어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국어사로서의 가치다. 오는 가을 출간될 예정인 이 사료는 분량만도 90권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 또 한번 번역의 지형을 바꾸고 역사 연구의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결실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3.06.13 23:02

2. 군산 옥구초 - 1906년 사립진명학교 모태… 민족문화 계승 온 힘

△학교가 걸어온 길군산 옥구읍 영병산 기슭에 있는 옥구초등학교(교장 마석우)는 개교 10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의 자랑거리이다.1906년 당시 이교영 옥구 군수가 지방유지의 협조로 사립진명학교를 설립한 것이 그 모태가 됐다. 이후 1914년 옥구공립보통학교로 개명했으며, 1915년 3월 30여명의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이어 잠시 인근 지역으로 옮겼다가 1937년 현 위치로 교사를 신축 이전했다.서슬이 퍼랬던 일본제국주의 시기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가르치거나 쓰는 것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우리말을 하다가 교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얻어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하지만 학생들은 호남 항일 의병을 선도한 애국자들을 다수 배출한 옥구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민족전통문화를 지켜오는데 온 힘을 쏟았다.1945년 식민지시대가 종결되면서 학교는 어두운 그늘을 벗어나 새롭게 탄생했다.한국인인 김근배 교장이 부임하면서 교가를 우리말로 바꾸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역을 대표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또한 의무교육 실시계획에 따라 학생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면서 학교도 활력을 되찾았다.6.25 전쟁을 거치면서 다소 쇄락했던 학교는 1967년 초등의무교육의 확대와 베이비붐의 여파에 교사를 분리했다.이때 탄생한 것이 수산분교이다.1996년 일제강점기 초등교육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분위기가 범국가적으로 확산되면서, 교명도 자연스럽게 현재의 초등학교로 변경됐다.이처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차례 교명이 바뀌었지만, 옥구를 대표하는 교육의 산실이란 명성은 변함없었다.특히 2006년 개교 100주년 행사에서는 사회각계각층으로 진출한 동문들이 모교를 위한 추억의 사진전을 마련하고, 기념우표도 제작했다.우표첩에는 19301940년대 학생들의 모습과 1960년대의 수업운동회신체검사 장면, 1970년대 졸업식 등 학교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사진들이 실렸다.특히 이날을 기념, 전호택 동창회장 등 동문들은 많은 도서와 물품을 기증했다. 전윤수 전 성원그룹 회장(46회)은 자비를 들여 체육관을 지어주기도 했다.옥구초는 올해 2월 98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때까지 옥구초를 거쳐간 학생은 모두 8112명이다.△학교를 빛낸 인물옥구초는 사회 다방면에서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특히 동문들은 정재계 및 학계에 두루 포진했다.한국의 경제개발을 주도한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31회)은 고위 행정관료와 기업 회장을 모두 지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고 전 장관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 청와대 대통령 경제비서관, 재무부 재정차관보, 쌍용중공업 부사장, 쌍용투자증권 사장, 한국증권거래소 이사장, 제28대 건설부 장관 등을 지냈다. 또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장, 동아건설 회장, 대한통운 대표이사회장, 한국경영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항일 투사의 아들이기도 하다. 옥구 출신으로 옥구, 임피지역의 유학자 등을 조직해 대한의군부에 참여한 고봉민 장군이 그의 아버지인 것.해마다 옥구를 찾아 동향의 임병찬 선생과 아버지 고봉민 장군을 기리는 충혼제를 지내고 있다.'디도스 특별검사'로 유명한 박태석 법무법인 월드 대표 변호사(55회)는 옥구 출신 대표 법조인이다.박 변호사는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 선거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 테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에 내정되면서 그 이름을 크게 알렸다.1981년 23회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한 그는 서울지검 부장검사와 춘천과 창원, 서울 동부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하면서 관세와 외사, 증권, 조세, 기업범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꼼꼼하고 치밀한 수사능력을 발휘했다. 또한 법무부 법무과장과 관찰과장을 역임하는 등 법무행정 능력도 겸비했다.그는 2006년 변호사 개업을 한 후 2007년 '법무법인 월드'를 설립하며 변호사로 전향했다.옥구초 출신은 의료계에서도 빛을 보고 있다.차영옥 군산 차병원 원장(58회)과 박순영 박치과 원장(58회)이 그 주인공이다.차병원은 1995년 정형외과를 개원, 2003년 의원급에서 전문병원으로 거듭났다.특히 척추수술 및 인공관절수술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이와 함께 채항석 전 육군소장(25회), 문봉식 전 교장(28회), 전호춘 전북대 명예교수(29회), 전대식 전 전북대 대학원장(31회), 전호택 무역업(총동문회장), 김영실 법무사(45회), 최옥열 (주)동오프랜지 대표(60회), 최경열 송원철강(주) 대표(60회) 등이 자랑스러운 동문이다.△도약을 위한 노력학령아동이 줄고 이촌향도 현상이 심화하면서 옥구초도 그 직격탄을 맞고 있다.현재 전 학년 6학급에 전교생이 68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로 전락한 것이다.하지만 근대화시기, 일제강점기, 경제개발기를 거치면서 그때그때의 변화에 발 맞춘 적응력을 보인 옥구초는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특히 마석우 교장을 필두로 한 전 교직원의 교육혁신 프로그램이 점차 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2011년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전북명품교육과정 우수학교 선정이 그 예이다.옥구초는 모든 아이들의 배울 권리를 보장하고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하기 위해 '배움이 즐거운 교실수업 만들기'를 2013학년도 특색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라는 슬로건으로 배움이 있는 수업 디자인하기, 좋은 수업 삼삼구를 통한 교실수업 개선, 자발적인 일상 수업 공개, 수업의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한 교내 연수, 전문가 초청 수업 워크숍 개최 등 배움의 공동체 실현에 매진하고 있다.또한 영어특화교육을 위해 하루 1시간 동안 원어민 강사가 진행하는 영어회화 수업을 계획하고 있다.이와 함께 전북도교육청이 작은 학교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어울림학교에도 공모, 2014년부터 학생 유입을 위한 행재정적 지원을 받게 됐다. 어울림학교 사업은 작은 학교와 인근 과밀 학교의 통학구역을 하나로 묶어, 작은 학교로 학생들이 전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접한 미룡동 소재 과밀 학교의 학생들이 옥구초로 학적을 옮길 수 있게 될 전망이다.마석우 교장은 "어울림학교 지정으로 앞으로 학생 유치의 어려움이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수업혁신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가 만족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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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국
  • 2013.06.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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