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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지중해 음식.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탈리안 식당의 주 메뉴인 파스타 그리고 올리브유를 이용한 각종 해산물 요리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효과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가지고 있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 바이올린은 67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은 경매에서 30억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과르니에리 델 제수'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제작자인 과르니에리와 스트라디바리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 크레모나 출신이다. 크레모나의 전통 바이올린 제작기술 역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돼 있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악기는 수백 년 동안 제작기법이 전수되며 현재는 세계 악기 시장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다. 5일 동안 관광객 90만명, 전 세계 1억6000만명이 시청한 브라질 삼바 축제. 올해는 가수 싸이도 참가해 신나는 말춤으로 흥을 돋아 더욱 주목을 끈 삼바 축제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다. 무형문화유산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굳이 외국의 사례을 떠올릴 필요없이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보유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은 15개로 중국(29개), 일본(21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문명의 발상지로 불리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인도는 9개에 불과하고 문화 강국인 프랑스조차도 10개에 그친다. 우리의 무형문화 자산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음을 보여준다. 특히 무형문화유산의 중심에 전북이 있다. 전북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판소리의 본고장이다. 여기에 이리농악임실필봉농악이리향제 줄 풍류백동연죽장위도띠뱃놀이윤도장 등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있다. 또 전국에서 가장 많은 66개의 도지정 무형문화재가 있다. 전북에 국립무형유산원이 세워지는 배경이다. 전주에 설립되고 있는 국립무형유산원은 우리의 문화자산을 활용해 그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다. 무형문화유산은 '보이지 않는 존재'지만 국내외 사례에서 보듯 미래 가치를 무한대로 생산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유산의 전승과 보존 업무를 맡게 되는 국립무형유산원이 개관하면 전북은 국내외 무형문화유산의 교류와 협력의 중심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무형유산원과 함께 들어오는 아태무형유산센터와의 시너지효과까지 더해지면 아시아 무형유산의 산실로서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이길배 국립무형유산원 설립추진단장은 "무형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만큼, 머지않아 전주 음식이 지중해 음식처럼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고 판소리가 세계의 유명 극장에서 상설 공연으로 열릴 날이 올 것"이라며 "김장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추진과 함께 전국의 김장 명인들이 전주에 모여 대규모 '김치 축제'를 여는 방안도 구상 중에 있다"고 말했다.●국립무형유산원은전주시 동서학동 옛 전북도 산림환경연구소 자리에 들어서는 국립무형유산원은 지난 2006년부터 총 사업비 759억원이 투입돼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오는 9월 완공 예정이며 내년 5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전통공연연희, 전승교육, 명예의 전당, 국제교류, 디지털 전시, 손님사랑방 등 8개 주요 공간으로 구성된다.국립무형유산원은 세계무형문화유산의 보호와 전승을 위한 허브 역할을 수행할 기관으로 대한민국을 무형문화유산 선도국으로, 국제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도약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또 전승자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가 함께 작품 구매 사업을 진행한다. 이와 함께 전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형문화유산 관계자들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게 된다.
전북은 태양광·풍력·연료전지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성장동력산업으로 삼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국내 신재생에너지산업 매출규모는 전년대비 8% 감소한 7조 1030억 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도 매출액이 감소하며, 구조조정을 겪을 전망이지만 여전히 미래의 먹을거리이자 대세다. 특히 도내에는 세계적인 태양광 기업과 국내에서 유일하게 풍력발전기 날개를 생산하는 업체가 들어서 있다. 또한 새만금 지구에는 곡물 또는 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화학 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연료전지도 연구기관을 통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태양광올해 세계 태양광시장은 경기침체 여파로 지난해와 같이 구조조정이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주요 부품인 폴리실리콘의 1kg당 가격이 생산원가인 2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며 고전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이후 공급·수요이 균형을 찾아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도내에는 OCI(폴리실리콘), 넥솔론(잉곳·웨이퍼), 쿼츠테크(도가니), 솔라파크코리아(모듈), 네오플랜트(메탈실리콘) 등이 위치, 지역 태양광 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더욱이 호남권 태양광 테스트베드 구축사업을 통해 2011~2014년 117억원을 투자해 태양광 소재·소자 및 태양전지, 모듈 등에 대한 성능평가 및 실증지원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전북도는 태양광산업의 수요 창출를 위해 '솔라밸리 650'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유휴부지에 민간자본을 활용한 태양광발전시설 650㎿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먼저 공공기관의 유휴시설, 기업의 주차장, 저수지에 발전시설을 조성하고 지방도와 시·군 도로변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스마트 솔라웨이를 조성할 계획이다. △풍력풍력발전은 발전단가가 100.98원/kWh으로 신재생에너지 중 가장 경제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도내에는 전주·군산·정읍을 중심으로 42개 기업이 모여 클러스터의 초기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이들의 2011년 수출액은 1780만 달러로 2006년 이후 평균 22.3% 늘었다.도내 서해상을 중심으로 풍력단지가 추진되지만 각종 인·허가와 규제, 관련 부처와의 협의, 민원 등은 과제다. 먼저 부안 위도와 전남 영광 앞바다에 민·관 합동으로 2019년까지 조성하는 전체 2500㎿급의 해상풍력발전단지가 수출을 위한 기술을 축적하는 중요한 전기로 기대되고 있다. 1단계 실증단지는 2015년까지 부안 위도 인근에 100㎿ 규모로 설치될 예정이다. 지난해 환경부·국방부와의 협의 난항으로 답보상태였던 새만금 풍력시범단지도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국비 579억 원, 도비 248억 원 등 모두 827억 원을 투입해 200㎿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동부 산악권에 설치될 육상풍력의 경우 지난 2011년 말 무주에서 좌초된 뒤 가시적인 사업진행은 부진한 상황이다.△바이오화학바이오(bio)화학 산업은 곡물이나 조류 등 생물자원을 원료로 하거나, 생산공정에 석유 대신 효소 또는 미생물을 이용한다. 오는 2020년까지 바이오연료와 바이오화학제품은 매년 10% 안팎의 성장세가 예상되지만 국내는 원료의 수입 의존도가 높고 인력·기반이 부족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해 말 2500억 원(국비 1500 억 원, 민자 1000억 원) 규모의 바이오화학 육성전략을 발표했다. 이중 전북도는 콤비나트 조성사업에 참여한다. 2014~2018년 바이오연료와 바이오화학물질, 바이오기능성소재의 생산공정을 연결해 효율을 높이고 자원을 재활용하는 친환경 통합형 융합공정을 개발하는 사업이다.이를 위해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용지(20.3㎢)에 바이오화학 단지를 조성해 연구·시험단지, 바이오 작물 재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바이오 R&D(연구·개발) 허브센터도 유치했다. 연말 준공할 정읍시 신정동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소재연구소에서는 항바이러스 예방용·치료용 백신을 연구하고 생산기술을 확보해 R&D 역량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연료전지 연료전지는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장치다. 오는 2020년께 연료전지의 세계 시장은 400억∼120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친환경적이지만 경제성은 과제로 지적된다. 건물용, 자동차용, 군사용, 소형 산업기계용, 레저용, 발전용 등 다양한 시장 형성이 가능하다. 국내 연료전지 분야는 초기단계로 별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원천 부품소재와 기술의 상용화, 실증 측면에서 선진국보다 열세다. 도내의 경우 전주·군산·익산·완주 등을 중심으로 에너지변환시스템(연료전지)과 등 에너지 저장시스템(이차전지) 관련 기업과 지원기관 등이 산업클러스터 형성단계에 진입했다. 에너지변환시스템 분야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부안 신재생에너지단지에 있는 한국에너지연구원 산학연협력센터, 전북과학산업단지의 연료전지핵심기술연구센터와 같은 연구소·혁신센터가 선도역할을 담당하고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에너지저장분야는 소재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산업을 이끌고 있다.
전라북도 서남권의 중심 첨단과학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정읍시(시장 김생기)가 미래 신성장 동력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정읍시는 신정동 일원에 들어선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소재연구소, 안전성평가연구소 전북영장류시험본부 등 3대 국책연구소를 중심으로 RFT비즈니스 밸리 조성사업을 추진, 21세기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이를위해 첨단과학산업단지를 조성하고 3대 국책연구소와 연계한 R&D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이를토대로 새로운 신성장 동력산업을 육성한다는 복안이다.첨단과학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정읍시는 LH공사와 지난 2007년 추진협약을 맺고 신정동에 위치한 3대 정부출연연구소와 관련된 기업을 유치, 지역산업 활성화를 위한 교두보 확보에 나서고 있다.첨단과학산업단지는 1단계로 2013년 6월말까지 915억원을 투자해 0.9㎢(27만평)규모의 단지를 조성, 3대 국책연구소 관련기업(RT,BT,NT등)을 유치한다는 전략이다.상교동 신국도 1호선 교암교차로에서 첨단과학산업단지에 이르는 진입도로는 지난4월12일 전구간이 개통되었다.진입도로는 총사업비 296억원(전액 국비)이 투입되어 교량 4개소, 생태통로 1개소를 포함, 총연장 3.04km, 폭 20m의 왕복4차선으로 개설됐다.진입도로 개통으로 원활한 물동량 수송과 물류비용 절감은 물론 입지여건 개선에 따른 기업유치와 입주기업의 경쟁력 제고 효과가 기대된다.6월말 1단계 사업 완료가 예정된 가운데 2단계 사업(1.1㎢) 개발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진행중이다.정읍 첨단과학산단이 조성되면 수도권 등 외지로 이전되던 연구소들의 각종 연구성과물들이 이곳 업체에 연결되며 지역경제활성화가 기대된다. 이에따라 시는 기업유치 T/F팀을 구성하고 첨단과학 산업단지에 다양한 RFT 관련 강소형 기업들을 전략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20여개 타킷기업을 선정, 적극적인 유치상담을 진행하는등 전력을 쏟고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 건립되어 5월9일 준공식을 가진 'RI-Biomics(바이오믹스)센터'는 미래창조과학부 원자력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4년여에 걸쳐 180억원(정부 126억원, 전북도 27억원, 정읍시 27억원)이 투입되어 연면적 3000㎡, 지하1층, 지상2층으로 방사성 물질 종합분석시설과 RI 활용동물실험및 평가시설로 나눠져 있다.극미량도 쉽게 검출할 수 있고 체내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의 특성을 생명체학(Biomics)에 적용, 신약 후보 물질에 미량의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한 뒤 실험 동물에 투입함으로써 약물의 생체 내 분포와 효과를 영상화해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실험 시설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에 들어서는'방사선 육종연구센터'는 132억원을 들여 5000㎡ 규모로 방사선돌연변이기술 연구시설(연구동, 유리온실등)이 올해 준공예정이다.방사선을 씨앗에 쪼여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게 된다. 인위적인 돌연변이는 유전자변형작물(GMO)과는 달리 위해성 논란이 없으며, 상대적으로 육종기간이 짧고 개발비가 저렴하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방사선 육종기술은 기능유전체 연구용 유전자원 창출에도 유용하다. 방사선육종연구센터가 설치되면 기능성작물, 원예작물, 버섯류 및 해조류 등 육종과 기능유전체 연구, 신방사선육종 기술개발, 우주 육종농업 연구 등 전략 품목 중심으로 방사선육종이 이뤄질 예정이다. △ 방사선 연구기반 확충사업(250억원)은 정읍시가 방사선 융합기술 산업밸리를 성공시키기 위해 연관산업이 많은 방사선 기기산업을 중점 육성하기 위해 교과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사업이다.전국에서 유일하게 방사선융합기술을 지역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전라북도와 정읍시가 참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친환경바이오소재 R&D허브센터 건립'사업(188억원)은 국가차원의 펜더믹(Pandemic) 바이러스 대책방안 구축과 축산업과 국민의 보건복지를 위협하는 재난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바이러스 전문연구기관으로 추진된다.△ 전라북도 종가프로젝트 선도사업으로 추진중인 '미생물 가치평가센터 건립'사업은 280억원을 투입해 5000년 전통 미생물을 기능적재분류 연구를 통해 고부가가치 창출과 미생물산업에 대한 국가통합관리시스템구축으로 동북아 허브로 육성한다.△ 안전성평가연구소 전북영장류시험본부에 들어서는 '미니픽 및 감염동물 시험연구동 건립'사업은 실시설계비 10억원이 확보되면서 연구활동 조기 정상화는 물론 향후 안전성평가연구소 본원의 정읍이전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2015년까지 199억원을 투입, 미니픽(minipig)을 이용한 비임상시험을 수행해 국내외 독성시험의 미개척 분야 선점 및 시험 의뢰자들에게 정확한 물질정보의 제공을 위한 시설이다. 특히 돼지 췌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연구를 통해 소아 당뇨병 치료 연구를 실시한다.
길거리 춤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거리에서든 광장에서든 무리지어 춤을 추는 아이들은 이제 도시의 풍경이 되었다. 풍경이 되었다는 것은 '소통'의 힘을 얻었다는 증거다. 이러한 변화를 거리 춤의 진화라고 해두자. 그런데 사실 진화하고 있는 것은 춤만이 아니다. 춤을 담는 공간과 소통 방식의 진화는 더 새롭다.거리에서 공연장 안으로 들어온 춤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몸짓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술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예술이 아닌 것으로부터 예술이 되는 일, 혹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 의식을 지배해온 편견의 산물인 '경계의 명징성' 때문일 것이다.비보잉 '라스트 포 원'의 리더 조성국씨(31)를 만났다. 2000년대 초반, 힙합의 대열에 혜성처럼 등장한 '라스트 포 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 그룹 대열의 중심에 있다. 전주출신 10대 비보이들의 재기 발랄함으로 무장한 '라스트 포 원'이 거리로 나온 것은 2002년, 각종 대회를 휩쓸면서 주목을 받았던 이들은 2005년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에서 우승하면서 정상에 섰다. 비보이들의 우상이 된 '라스트 포 원'의 이름은 창단 11년째를 맞는 지금까지 건재하다. 그런데 그들의 활동이 뜸해진 듯 했다. 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전통문화'의 정적 이미지에 갇힌 도시 전주에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이미지를 안긴 '라스트 포 원'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전주와 서울의 연습실에서 그와 팀원들을 만났다. 현실과 싸움하고 있는 그들의 전투력(?)은 의외로 강해보였다. 지금 그들에게 춤추는 일은 고행과도 같지만 그것은 쉽게 중단될 것 같지 않은 고행이다."춤은 우리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 이예요. 그러니 쉽게 포기할 수 없지요."그래서 알게 됐다. 비보이들의 춤에 열광만 하지 않고 그들의 저항정신과 자유를 향한 치열한 몸짓의 진정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영화와 공연으로 보아서인지 친숙하게 느껴지는군요. "영화 '플래닛 비보이'를 꽤 많이보셨더라구요. 그래서 더러 알아보아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영화 덕분에 '라스트 포 원'이 더 많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지요."-전주는 자주 내려오나요. "공연이 있을 때 내려옵니다. 오늘은 '2013 전주 B-boy 그랑프리' 심사가 있어서 왔습니다. 아버지가 전주에 계시니 자주 내려와야 하지만 이럴 때 뵙고 가는 정도지요."-영화에서 보니 춤추는 것을 반대하셨던 아버지께서 나중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던데요. 춤은 언제부터 추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어요. 티브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추는 춤을 보았는데 정말 멋있더라구요. 그 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춤만 생각하며 살았어요. 중학교 때는 H.O.T와 젝스키스가 우상이었지요. 생각해보니 아이돌 1세대의 춤이 제 교과서였네요."-그때 우리나라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힙합은 단연 선풍적인 인기였지만 열 살짜리 아이가 비트가 강한 음악과 빠른 리듬을 입힌 힙합에 그렇게 마음을 뺏겼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티브이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따라 추었어요.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외국 사이트를 뒤지거나 비디오를 구해 연습했고요. 학교 갔다 오면 춤만 추었어요. 독학이었지요."-공부는 안하고 춤만 추면 부모님 걱정이 많으셨겠군요."반대를 많이 하셨죠. 제가 중학교 때 부모님이 헤어지셨는데, 그때까지 저를 키워주신 분이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함께 알게 되었어요. 충격이 컸죠. 그래서 더 춤에 빠졌던 것 같아요. 뭐랄까. 가족관계의 혼란스러움을 잊을 수 있는 출구가 필요했지요."-춤이 위로가 되었군요. 춤 연습은 어디서 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춤이 있어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춤을 출 수 있는 모든 공간은 다 연습실이었어요. 롤러장은 가장 훌륭한 연습실이었고, 빌딩 앞 공터나 좀 한산한 길거리까지. 원래 힙합이 길거리 춤으로 시작했잖아요." -그때만 해도 춤을 추는 아이들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았죠. 그것도 길거리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춤추는 아이들에 대한 편견은 심했을 때인데. "공부 안하고 놀러만 다니는 애들에 대해 인식이 좋을리있겠어요. 춤춘다고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불량배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았어요.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저희를 '양아치'로 생각했으니까요."-그런 편견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그냥 춤만 열심히 추었어요. 최고의 춤꾼이 되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아버지께서 인정해주신것도 결국은 실력으로 가능한 일이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팀을 만들어 온갖 대회를 다 나갔거든요. 상을 받으면 꼭 아버지께 보여드렸어요. 처음에는 눈길도 안주셨는데, 가출까지 하면서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비보이 대회에 나가 입상하고 왔을 때 '꼭 춤을 춰야겠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정말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묵언의 허락이었어요."-춤이 우선이었으면 학교와는 담을 쌓았겠군요. 졸업은 했나요."믿기 어렵겠지만 중학교 때는 개근상 받았어요. 대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졌지요.(웃음)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은 간신히 했어요. 출석이 워낙 부족했거든요."-'라스트 포 원'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라스트 포 원'은 2002년에 결성했어요. 제가 중학교 때 만들었던 'E. Y. C'를 받아 활동하고 있던 후배들이 '라스트 포 원'을 만든 것을 알고 합류했어요. 제가 활동했던 '맥스크루' 선배들이 군대를 가게 되면서 팀이 해체되었거든요. 그리고 맥스크루는 팝핀이나 라킹 등 여러 장르를 추는 그룹이어서 언젠가는 비보이 팀을 갖고 싶었어요."-언제 서울로 갔습니까. "2005년이예요. 전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활동했었는데 2003년 즈음부터 '라스트 포 원'이 완전 핵돌풍을 일으켰죠. 지방팀인데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회를 석권하면서 바빠지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아예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처음부터 지금까지 리더를 맡고 있는데. "이유가 있었어요. 제 또래의 단원들이 군대를 가면서 리더를 바꾸어 할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저도 현역을 자원했었는데,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 척추분리증이 겹치고 집안형편까지 어려워지면서 면제 대상이 되었죠. 군대를 안 갔으니 리더가 감당해야할 몫이라도 잘 해야겠다 싶었습니다."-지금 전주 영화의 거리 입구에 있는 광장 이름이'라스트 포 원'이잖아요. 전주의 비보이가 세계 최고라는 자긍심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는데 당사자들도 자랑스럽지 않나요.(웃음)"그때 핸드프린팅까지 했었어요. 거리의 아이들이 전주의 도시의 브랜드가 되었으니 기뻤죠. 그런데 전주는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물론 큰 규모의 비보이 대회가 만들어지고 관심도 높아졌지만 비보이를 문화의 한 장르로 정착시켜 성장시켜갈 수 있는 기반은 여전히 척박하잖아요."-이야기가 나왔으니 '라스트 포 원'의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요."많이 힘듭니다. 지난해 연말 즈음엔 절망적인 상황이었어요. 2009년에 저희가 전속되어 있던 기획사가 파산했거든요. 투자사들로부터 제작비를 모아 만든 뮤지컬 '스핀 오딧세이'가 원인이 되었는데 월급이 나오지 않기 시작하면서 꽤 오랫동안 맨손으로 버텼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팀원들이 나가면서 정상적 활동에 한계가 왔었어요."-나가는 팀원들에 대한 원망이 컸겠습니다. "섭섭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있고, 미래가 불안하기도 했을 것이고. 털어놓자면 저도 마음이 흔들렸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춤과 팀을 지켜왔는데 주저앉을 수는 없겠다 싶었습니다."-기획사가 문을 닫으면서 연습실도 없어졌다면서요. "지금은 '도도'라는 여성타악그룹 연습실에 얹혀서 연습합니다. 오갈데 없이 지내다가 연습실이라도 빌려 쓸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세계 최고의 비보잉 '라스트 포 원'이 연습실도 없다는 현실이 서럽진 않나요."춤을 출 때의 아찔함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하루하루가 불안하니까요. 그래도 뜻을 같이 하는 후배들이 있어 희망을 갖게 됩니다. 바닥까지 내려왔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죠."-그래도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힘이 될 텐데요. "월급 받으면서 맘껏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죠. 2006년부터 1년 반 정도, 매월 월급을 받았어요. 120만원. 먹고 자는 일 해결되고 월급까지 받았던 그 시절이 이제 꿈이 되었네요."-지금은 그만큼의 수입도 안된다는 이야기군요. 그래도 이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춤추는 일 뿐이거든요. 지금은 한 달에 적게는 2-3개, 많게는 5-6개 정도의 공연을 하는데 일상적 삶을 해결하기에도 빠듯한 여건이어서 단원들이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해결합니다. 이런 궁핍한 생활은 비보이들의 운명적인(?) 삶인 것 같아요."-힙합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힙합을 이끄는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군요. 한류의 콘텐츠로 부상한 비보잉 그룹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갖고 있어요. 비보이의 정신이 저항성과 역동성이잖아요. 현실과의 이 치열한 싸움이 어쩌면 저희의 전투력을 더 강하게 하는 기회인지도 모르겠어요."-듣기 거북할지 모르겠지만 역동성이 생명인 브레이크 댄스에 삼십대 비보이로서 고민은 없나요. "춤추는 일에 정년은 없어요. 어떤 춤을 어떻게 추느냐의 문제겠지요. 역동성이 블레이크 댄스의 특징이긴 하지만 분출하는 것만이 역동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역동성이 강조되는 춤도 삼십대 후반까지는 출수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힙합이 주류문화로 들어온 지 꽤 되었지만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하는 환경은 여전히 미흡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죠. 그런데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 저희는 아티스트입니다. 독일 배틀대회에 나갔을때 네임카드를 주더라고요. 거기 '아티스트 조성국'이라고 써있었어요. '나는 아티스트다'는 자긍심을 그때 갖게 되었습니다. 비보이를 예술가로 대접하는 국가에 대한 경외감도 생겼어요."비보잉과 같은 힙합은 더 이상 뒷골목에서 이루어지던 저항의 표현이 아니다. 그라피티가 미술의 정당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듯이 비보잉도 예술이다. 그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비보이들은 모든 고통과 가난을 맞서 춤을 춘다. 인터뷰를 하고 다시 궁금해졌다. 비보이의 대명사가 된 '라스트 포 원'을 자랑으로 여기는 전주는 지금 무엇으로 그들을 존중하는지. 그들의 춤을 위해, 그리고 내일의 '라스트 포 원'을 꿈꾸며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을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비보이(B-boy)는 브레이크 댄스( break dance)를 추는 남자 아이들을 뜻한다. '라스트 포 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비보이 그룹이다. 2002년, 최고의 춤꾼을 꿈꾸는 전주의 비보이들이 의지를 모아 만든 '라스트 포 원'은 활동을 시작한 직후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비보이들의 선망인 2005년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 우승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대중들에게 더 널리 알려진 것은 그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플래닛 비보이'를 통해서다. 그즈음 '라스트 포 원'의 이름 뒤에 '전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주의 비보이, 전주의 비보잉 문화에 대한 발견이었다. 덕분에 전통문화의 상징적 도시였던 전주는 자유와 창조의 젊은 문화도시가 됐다. 비보이 그룹의 존재는 '배틀(battle)'로 확인된다. 수많은 대회에서 펼쳐지는 배틀은 각 그룹과 개인의 기량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비보잉만의 독특한 형식이다. '라스트 포 원'은 팀원들의 결속력도 대단하지만 각자 지닌 개인적 색채가 서로 다르고 기량이 빼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다른 예술과 접목하고 소통하는 감각과 감성도 탁월하다. 국악이나 무용 연극과 같은 다른 예술과의 융합을 시도하는 실험 작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외공연으로 한류를 강화시킨 '라스트 포 원'은 기획사에 전속되어 활동하고, 한 기업체가 지정 후원에 나설 정도로 존재를 빛냈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악조건의 환경에서 분투하고 있다. '라스트 포 원'은 몇 차례 연습생 모집을 통해 단원을 구성했다. '이제는 끝까지 함께 갈' 가족, 리더 조성국과 이용주(31) 신영석(28), 장우진(32) 이원기(28) 박정현(27) 정상현(26) 송경한(25) 강장원(23) 박홍혁(23), 그리고 군복무중인 임성진(27)이다. 단원들의 지역적 연고가 깨진지 오래지만 '라스트 포 원'의 고향은 그래도 전주다. 리더 조성국이 판소리와 비보잉을 결합한 스토리 있는 작품을 계획하고, 전주의 브랜드 공연무대를 꿈꾸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서울 강남의 빌딩 앞에서 '라스트 포 원'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었다. 허공을 훨훨 나는 비보이, 바닥을 짚고 거꾸로 튀어 오르는 비보이에게 공간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몸짓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그들이 거기 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산야초(山野草). 서울 광진구에서 인테리어 업에 종사하던 김형산이상임 부부는 3남매의 자녀와 함께 부유하지는 않지만 여느 가정처럼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 왔다. 연립주택에 살던 이들 가족은 우연한 기회에 이웃에 사는 중학생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알게 됐다.심한 아토피로 피부가 짓물러 교복까지 젖어 귀가할 정도로 증세가 심했지만 효소 치료를 시작하면서 점차 아토피 증세가 호전돼 가는 광경을 지켜보게 됐다. 특히 이들 효소가 산과 들에 피어나는 산야초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인 이상임 씨는 산야초의 매력에 푹 빠져 직접 산과 들로 산야초를 채집하러 다니기 시작했다.하지만 서울에서 산야초를 구하는 것이 시간공간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느낀 부인 이 씨는 남편 김 씨와 함께 남편의 고향인 군산 나포면으로 귀촌을 결심하게 됐다.나포리 혜곡마을에서 빈집을 찾은 부부는 제대로 된 귀농귀촌 정보수집도 없이 2011년 7월 2일 결심 한달여만에 이사를 감행하는 등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자녀들은 모두 성장해 출가하고 수도권에서 직장과 대학생활을 하면서 부부 둘만의 귀촌생활이 시작됐지만, 막상 서울 집을 매각하고 융자금을 변제하고 나니 금전적으로 빠듯했다.당장 호구지책을 위해 일당제 일을 나가는 등 힘든 농촌생활이 시작됐지만, 지천으로 널려있는 산야초가 이들 부부에게 위안이 됐다.시간만 나면 산야초 효소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산과 들로 다니며 때로는 밤 9~10시까지 산야초를 수집해 옹기 항아리에 담아 효소를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했지만 항아리 마련조차 여의치 않았다.특히 이들 부부에게 이웃들과의 생활문화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귀촌생활에 최대 위기가 찾아 왔다.쓰레기를 소각하는 이웃에게 분리수거하면 될 것을 왜 태우느냐고 물어 보았다가 주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 것이다.이 일로 집을 팔고 떠나야 하는지 고민도 했지만, 여기에서 포기하고 떠나면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기필코 성공해 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과정에서 먼저 귀촌해 옆집에 살고 있던 조옥선(75) 할머니가 큰 위로가 되면서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이와 함께 군산시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프로그램도 알게 돼 농촌생활에서 필요한 교육과 지원을 정식으로 받으면서 부부의 귀촌생활은 안정세에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겨울을 앞두고 집수리까지 말끔히 마쳤다.이제 올 여름만 지나면 귀촌과 함께 담기 시작했던 100여종의 산야초 효소들이 2년의 숙성기간을 마치기 시작한다.김형산이상임 부부는 각각의 항아리를 2~3일 간격으로 저어주며 완숙된 효소들이 모습을 드러낼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부부는 효소를 활용해 벼농사 이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마을에 새로운 소득원을 창출하고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효소 카페도 운영해 나갈 계획이다.이를 위해 채취할 수 없는 약초들을 재배하기 위한 재배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신청해 선정되는 경사를 맞았으며, 효소 판매를 위한 식품판매허가 취득을 추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또 쌀뜨물 등 천연재료들을 사흘 간 숙성시킨 후 4주 이상의 과정을 거친 비누, 샴푸와 세제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귀촌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에 자녀들도 "귀촌 이후 모든 일을 엄마와 아빠가 손발을 맞춰가며 일을 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격려를 보내고 있다.김형산이상임 부부는 "최소한의 준비기간을 2년으로 잡고 준비해 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수입을 가늠할 수는 없다"며 "아직 숙성기간이 지나지 않고 판매 허가도 취득하지 못했는데 벌써 효소에 대해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이어 "그동안 선도농가를 찾아다니며 1일 8시간씩 받아 온 귀농귀촌 교육이 무작정 귀촌으로 좌충우돌하던 우리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됐다"며 "서울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늘 허덕이며 살아 왔는데, 귀촌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 편히 사는 것이 너무 좋고 주변에서도 부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시는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2017년까지 귀농귀촌 400세대 유입을 목표로 각종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시는 베이붐 세대의 대거 은퇴가 시작되는 등 귀농귀촌에 관심이 고조된 시기적 흐름에 발맞추어 타 지역과 차별화 된 정책을 마련했거나 마련할 방침이다.차별화된 지원 정책으로는 귀농귀촌인이 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 할 수 있도록 '귀농귀촌인 지원 조례' 제정을 꼽고 있다.시는 조례를 근거로 1억원까지 연3% 1년거치 5~10년 상환 조건으로 귀농인 뿐만 아니라 귀촌인까지 자체적으로 귀농귀촌 창업자금을 융자해 준다. 여기에 정부 귀농 창업자금 2억원(연3%, 5년거치 10년 상환)까지 받게 되면, 개인별 최대 3억원까지 융자 지원을 받을 수 있다.또 쾌적한 주거 환경 제공을 위해 농가 주택 신축 또는 구입 시 4000만원까지 융자해 주며, 내년부터 이사 비용으로 세대당 50만원을 보조해 줄 예정이며, 귀농인의 농가주택 수리비를 가구당 500만원 이내에서 보조해 준다. 특히 군산 지역의 토지 가격이 타 군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농지구입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농지 임차료를 지원하고, 중소형 농기계 우선지원, 비가림 하우스 지원 대상 우선 선정 기준을 마련해 시행함으로써 귀농초기 안정적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이밖에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상담 지원, 각 작목별 영농정보 및 기술지도 교육. 농기계임대, 귀농귀촌 현장실습지원, 수도권귀농학교 운영 등을 하고 있으며 귀농귀촌 종합정보관리서비스를 통해 빈집정보, 농지정보, 멘토링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착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5월의 대학 캠퍼스는 다양한 축제속에 펼쳐진 젊음의 열정과 환호로 물들여졌다. 대학생활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활력소인 축제는 학업에 지치고, 인간관계에 지치고, 아르바이트에 지친 대학생들에게 허락된 놀이의 장(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원광대, 전주대, 전북대 등 전북지역 대학에서도 축제가 진행됐다. 5월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축제의 달이었다. 뜨거운 열정을 뽐낼 수 있는 허락된 기회를 얻은 대학생들은 과연 어떻게 축제를 즐겼을까.△연예인 없는 축제는 없다 캠퍼스 내에 대학축제 일정을 알리는 현수막 등이 내걸리고 축제가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할 때면 가장 먼저 '이번 축제엔 연예인 누구와?'를 묻는 말로 대화가 시작된다. 전북대 김다정씨(철학과 3)는 "대학생활 동안 축제 때면 항상 가수가 오곤 했기 때문에 이번 축제 때도 당연히 비슷한 형태일 것이라 짐작했었다"고 말한다. 같은 대학교 고현우씨(정치외교 2)도 "대학 축제가 매년 똑같은 형태인데, 바뀌는 건 축제 때 오는 연예인뿐이다 보니 연예인이 누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2000년대 무렵부터 시작된 대중가수 초청은 '평화와 열정, 어울림, 청춘의 대동한마당'이라는 주제 아래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게 만들 열정적인 축제로 준비됐다. 특히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문화적인 모습을 갖춰왔다. 그러나 이 같은 모습이 최근까지 유지되면서 각 대학의 축제가 일정한 모습을 갖춘 형식적인 축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전북대 경영학과 4학년 김모씨는 "정작 주인이 되어야할 대학축제에 특정 가수를 초대함으로써 가수의 무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동제의 의미 퇴색 대학축제는 '대동제'라는 이름을 붙인 축제 이름이 많다. 전북대도 대학축제를 '전북대 대동제'로 불렀고, 그렇게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대동제란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함께 하나로 어울리자는 의미이다. 2000년대부터 '전북대 대동제'는 학생들이 원하는 대중가수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각국의 음식과 노래 등을 교류할 수 있는 세계문화부스 등을 마련했다. 또한 여성인권신장을 다룬 이색행사, 댄스경연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학생들만의 매력 표출에 학생들이 앞장섰다. 그러나 대중가수의 초청공연으로 축제를 이어나가면서 다수의 학생들이 참여하며 즐기기보다 소수의 학생들이 학교 축제를 이끌어 가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또한 구성원지역민들이 참여해 정이 넘치던 축제에서 기업들의 프로모션 행사 진행 등으로 지나치게 상업적인 축제의 모습을 띠면서 일각에서는 대동제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주막은 대학 축제의 꽃특히 축제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주막'이 아닐 수 없다. 인기 가수 초청공연이 열리는 대운동장 근처에는 동아리, 과학생회 등이 설치한 부스에 술판이 한창이다. 주막은 어쩌면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대학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대학축제에도 주막만은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허나 매년 축제 때마다 발생하는 사건 사고의 현장역시 주막이라는 점은 씁쓸하다. 보건복지부의 교내 음주법을 놓고 '지나친 대학의 자율성 침해'라는 항변이 무색할 만큼 대학 축제에서 주막은 사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공간이다. 이뿐이 아니다. 과한 음주 탓에 캠퍼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쓰레기들과 각종 오물들은 캠퍼스를 더럽힌다. 대학 축제에 있어 술 없는 축제를 상상도 하기 싫겠지만, 지나친 음주를 자제하면서 대학 축제의 주체가 되어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과거의 대학축제는대학에서 처음 축제가 열린 것은 일제시대부터다. 그러다가 1950~6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학축제가 미국의 영향으로 개교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열리게 됐다. 1950년대 당시 대학 축제는 지성과 낭만의 장이라는 축제의 성격보다 지역 고교생들에게 학교의 존재를 인식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1960년대의 축제는 체육대회를 통한 단과대학별 축제가 진행됐다. 1963년에는 계엄령 선포로 개교기념 행사 도중 조기방학에 들어가면서 대학축제의 암흑기를 맞기도 했다.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유교의 뿌리가 남아있던 당시의 분위기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교제할 수 있었던 시기가 축제 기간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남자와 여자가 모여서 추는 사교댄스와 비슷한 '쌍쌍파티'를 통해 연애를 하기도 했고, 결혼에 골인한 커플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여학생이 무척 귀했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쌍쌍파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인근 대학의 여학생들을 데려와야하는 수고도 필요했다.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대학 축제는 독재정권 하에 대학생들이 평소 자유롭게 표출 할 수 없었던 사회적정치적 불만을 내뱉는 장이었다. 1026과 1212사태 등이 말해주듯 당시 대학생들의 의식 속에는 축제라는 단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민주자유를 염원하는 공동체적 성격보다는 먹으면서 즐기는 식의 축제만 열릴 수 있었다. 연극제, 단과대별 각종 경연대회, 게임처럼 요즘 축제에서도 볼 수 있는 행사를 열었고, 가장행렬, 쌍쌍파티, 포크댄스 등이 선보였다. 오락성에 치우치는 축제 문화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기도 하는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의 말기인 1980년대 중반부터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민주화에 대한 염원과 바람이 축제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더이상 군사 독재정권이 존재하지 않은 현실에서 대학생들의 관심은 통일로 옮겨지게 됐다. 1980년대의 축제는 당시 동아리들이 주도해나갔고, 34일 동안 진행되면서 8090여 개의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이민주 (전북대 신방과 4년)
과거의 대학축제에 대해 전북대 사학과 장준갑 교수는 "과거에는 흥청망청 분위기가 없었고, 시대분위기로 인해 편안하게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고 밝혔다. 장준갑 교수로부터 예전의 대학축제를 되새겨본다.-대학 재학 시절의 축제는 어땠는지.△1979년부터 1982년까지 4년 동안 대학생활을 했었지만, 그 때 당시는 축제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대학축제가 없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로 인해 지금 학생들이 축제라고 생각하는 축제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축제는 대다수가 함께 모여야 하는데, 그 때 당시 시기적으로 삼삼오오 모여 있으면 불법으로 간주될 만큼 시대상황이 어두웠다. -그렇다면 축제라고 하는 대학 행사가 전혀 없었는지.△그 당시에도 축제는 했다. 하지만 당시 축제는 어우러지는 축제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축제기간 동안 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죄의식으로 느꼈기 때문에 편안히 잔치를 즐기지 못하는 시절이었다.-당시에도 축제가 있었다면 주막이라는 곳도 있었는지.△앞서 말했듯이 시대적 배경이 편안히 잔치를 즐기지 못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축제기간 동안 특별히 축제를 즐기며 술을 마신 기억은 없다. 다만 현재는 캠퍼스내 금주법이 있기도 하는데 캠퍼스에서 삼삼오오 시국에 대한 울분을 토하며 막걸리를 만신 기억은 많다. -현재의 대학축제를 평가한다면.△자율적이고, 학생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도 많아 보인다. 과거 정치적 탄압이 대학의 화두였다면 지금은 취업의 염려가 학생들의 고민이 될 수 있어 보이는데, 축제기간동안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합의된 공간을 즐기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약간의 논평을 해보면 지나치게 사회를 닮아가는 행사보다는 젊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성향의 축제를 꾸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인기가수 중심의 대학축제에 대한 의견은.△요즘 시대 젊은이들의 취향이지만, 학생들의 취향이 너무나 많은 돈을 허비한다는 소비적인 지적을 할 수 있겠다. 지성인들의 모습으로 축제를 흥미롭게 즐기길 바란다. 이민주 (전북대 신방과 4년)
최근 이환주 남원시장 및 시청 간부들이 조성공사가 한창인 노암제3농공단지를 찾았다. 이 시장 일행이 발을 내디딘 장소는 친환경 화장품 집적화단지가 들어서는 곳으로, 이 시장은 현장에서 친환경 화장품클러스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다.이는 1차 및 3차 산업에 편중돼 있는 지역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해야만 미래의 남원이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이 시장은 "지리산의 천연자원을 활용한 허브산업과 연계하면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된다. 남원이 화장품산업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여건을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친환경 화장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은 이환주 남원시장의 취임(2011년 10월27일)과 함께 본격화됐다. 하지만 취임 1년이 넘도록 별다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일각에서는 "실패한 허브산업의 복사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이에 대해 이 시장은 "화장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초기 기획단계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가 미흡하지만, 한 도시의 성장동력산업은 단시간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기 보다 멀리 보고 남원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꼼꼼하게 챙기겠다"며 변함없는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 시장의 단언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중인 노암제3농공단지 내 친환경 화장품 집적화단지에 업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4개 업체가 현재 입주 희망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이다.이 시장은 "집적화단지가 분양되기 전부터 많은 업체의 관심을 받고 있다. 시는 화장품 특화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정부에 다양한 지원책을 건의하는 등 입주업체에 혜택을 주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또한 이 산업과 관련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자 자문단을 운영해 예상 문제점을 다각도로 파악하고 있고 해결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화장품을 특화산업으로 육성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토대를 확보하겠다는 이 시장의 각오는 다부졌다.
남원시의 핵심사업으로 추진중인 '친환경 화장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사업 초기에 열악한 기업유치 환경으로 자칫 행정력과 사업비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으나, 화장품클러스터에 입주를 원하는 업체가 속속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남원시는 올해 5개 업체를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조성사업 추진현황= 남원시 노암동 산 48번지 일원인 노암 제3농공단지 내에 화장품 집적화단지(3만7639㎡)가 현재 조성되고 있다.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되는 친환경 화장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의 1단계(2009~2013년)가 바로 집적화단지 조성이다.2단계(2014~2015년)는 우수화장품 제조품질기준(CGMP-Cosmetic Good Manufac turing Practice)으로 화장품 산업기반을 구축하는 것이고, 3단계(2015~2018년)는 화장품산업 6차 산업화로 공동 전시체험판매장과 유통물류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친환경 화장품클러스터 조성사업에는 1단계 50억원, 2단계 50억원, 3단계 100억원 등 총 2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최대 과제는 기업유치= 노암 3농공단지에 조성중인 화장품 집적화단지의 최대 과제는 역시 기업 유치다. 지난해 말 친환경 화장품클러스터 조성사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점도 기업유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업을 추진한지 1년이 넘도록 기업유치는 커녕 소규모 화장품 업체 1곳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을 뿐, 이렇다할 진전을 보이지 못한 상태였다. 남원지역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대두되는 상황이었다. 분위기 반전은 올해들어 시작됐다. 남원시가 업체와 잇따라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부터다. 물론 기업유치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4개 업체들의 남원지역 투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남원시의 입장이다.△4개업체와 MOU 체결= 남원시는 빠르면 6월부터 화장품 집적화 단지의 분양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시는 현재 송죽화장품, (주)서정메디언스, (주)림포디아, (주)에이지락 등 4개업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황에서 올해 5개 기업유치를 목표로 정했다.시에 따르면 가장 먼저 MOU를 체결한 송죽화장품(대표 이경래)은 경기 김포시에서 화장품을 유통하는 전문업체다. 이 업체는 남원으로 이전을 통해 화장품 제조업 진입을 도모하고 있다. 이 업체는 1만7000㎡ 부지에 100억원 가량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고용창출 인원은 20명 정도다.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주)서정메디언스(대표 박기원)는 아토피 기능성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업체를 신설할 예정이다. 서정한의원, 중국키성장센터, 에듀뉴스 등의 자회사를 보유한 이 업체는 7200㎡ 부지에 3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고용창출 인원은 55명 정도다.광주 서구 농성동에 자리한 (주)림포디아(대표 박이경)는 전국 180여개의 피부체형관리 서비스숍을 관리하고 있다. 최근 화장품업체를 인수한 이 업체는 내수 팽창과 해외진출에 따른 대량생산의 필요성으로 남원 집적화 단지를 선택했고 3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고용창출 인원은 30명 정도다.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에 소재한 (주)에이지락(대표 정민호)은 마스크팩류, 티슈류, 기초화장품류 등을 제조해 중국과 일본 등 해외 수출시장에 주력하고 있는 중소업체다. 해외에서 화장품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남원에 추가로 분공장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남원에 투자규모는 27억원, 고용창출 인원은 20명 정도다.
효성 전주공장이 이달 13일 준공식을 갖고 탄소섬유 생산에 본격 돌입하자 전주시 송하진 시장은 전주를 '첨단탄소산업도시'로 선포했다. 송 시장은 "전주시가 100년 먹거리 첨단산업도시로 전환해 탄소소재산업의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며 한옥과 한식 등의 한스타일 중심의 전주시 개발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선언했다.△탄소섬유의 높은 부가가치실제 탄소산업은 전후방 연관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막대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규모 신규 시장 창출은 물론 고부가가치고용창출이 가능할 정도다.먼저 탄소섬유로 시작되는 탄소산업은 크게 소재제조와 이를 가공하는 부품제조, 완성품 제조산업의 3단계로 나뉘며, 각 단계마다 고부가가치가 창출된다.탄소섬유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잘게 자르고 직물처럼 짠 형태로 탄소소재가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알루미늄 등의 소재를 섞거나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가공 및 성형공정을 통해 탄소부품이 제조된다. 그리고 이들 부품은 항공기나 자동차, 선박, 건축 등에 응용된다.이 과정을 거치면서 탄소섬유의 가치는 최고 200배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당 20달러에 거래되는 탄소섬유가 최종 완성품 단계에서는 4000달러의 가치로 껑충 뛴다는 것이다. 현재 강철을 대체할 수 있는 탄소섬유는 우주항공은 물론 스포츠레저, 자동차, 풍력, 의료기기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경량화 핵심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탄소섬유시장은 1조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으며, 유관 분야인 중간재와 복합재료까지 감안한다면 100조원이 넘는 세계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100개 탄소기업 집적화전주시는 (주)효성 전주공장의 준공으로 탄소관련 기업의 전주 이전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전주권에는 21개 탄소관련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들 대부분은 탄소섬유를 가공성형해 탄소응용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로, 최근들어 전주 이전을 희망하는 업체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가장 큰 요인은 (주)효성 전주공장의 준공으로 일괄생산체제가 갖췄다는 점이다. 전주권에서는 탄소섬유의 원료가 되는 팬(PAN) 섬유에서 부터 부품과 응용완제품 생산에까지 모든 공정이 가능하다. 여기에 현재 추진중인 탄소밸리사업의 후속으로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실시되고 있는 초고강도 복합재 개발사업과 고성능(T-1000급) 탄소섬유 개발 등 3000억원 규모의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등 연구개발 인프라가 확실하게 구축돼 있다는 점도 요인으로 작용된다.이에 전주시는 향후 탄소기업 100여개의 집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송하진 시장은 이달 13일 효성 전주공장 준공식에서 "제2, 제3의 효성과 같은 대기업을 유치하는 한편 중핵기업 20개와 중소기업 100여개 집적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전주시는 탄소산업에 뒤늦게 뛰어든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전주 이전을 위한 막판 협상을 진행중이다. △탄소기업들의 투자확대 의지전주시의 장기 계획은 오는 2030년까지 세계 10위의 글로벌 탄소도시다. 매출액은 물론이고 기술력에서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다. 이 같은 구상은 현재 전주권에 입주에 있는 탄소관련 기업들의 투자확대에서 성공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이달 23일 전주와 완주지역에 소재한 21개 탄소 관련 기업들은 전주시와 '일자리 창출 및 투자계획'협약을 맺었다. 오는 2030년까지 현재 629명의 일자리를 5138명 수준으로 늘리고, 이를 위해 투자를 단계적으로 1조6000억원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탄소산업의 미래가치와 전주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 기업들의 선택으로, 이들 기업들은 이 시기가 되면 자신들의 매출액이 현재의 1500억원에서 4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전주시의 미래 비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전주시는 오는 2020년이면 탄소산업과 관련한 고용규모가 6000명에 달하고, 연 매출액도 10조원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오는 2030년까지는 대기업 등의 기업 집적화를 통해 종사원 2만명, 지역내 매출 100조원, 기술력 세계 10위의 글로벌 탄소도시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이에 (주)효성 전주공장장 방윤혁 상무는"2020년까지의 발전플랜은 구체화된 편이나 2030년의 비전은 최소한의 목표를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 송하진 전주시장에게 듣는다- "100년 먹거리 첨단산업 탄소메카로 발돋움할 것""탄소산업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앞으로 전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100년 먹거리 첨단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송하진 시장은 전주시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탄소산업을 이렇게 요약하면서 "기초자치단체가 주도해 대기업과 공동연구개발을 진행, 국내 최초이고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미국에 이어 3번째로 고성능급 탄소섬유(탠섬) 생산에 성공했다는 것은 자부심을 넘어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송 시장은"탄소산업이 앞으로 전주시 산업구조를'첨단산업도시'로 바꿔놓게 될 것"이라며"전주는 이제 한스타일이 넘쳐나는 전통문화도시이자 첨단 탄소산업도시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송 시장은"일단'탄소산업도시 전주'의 이름에 이견을 달 수 없는 역사가 하나 만들어졌다"고 전제한 뒤"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제2, 제3의 효성과 같은 대기업 유치와 앞으로 탄소 관련 기업 100여개 집적화, 6000명에 달하는 필수 전문인력 양성 등을 추진해서 전주시가 명실상부한 국내외 탄소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우리 아들 딸들이 일하게 될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송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탄소산업 관련 2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송 시장은 또 연구개발과 전문인력 양성 등과 병행해 탄소 관련 기업 집적화가 이뤄지면 전주가 주도하는 탄소산업 규모가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탄소 섬유 수입대체 효과와 함께 지역내 매출액이 100조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송하진 시장은 "우선 대기업인 효성이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탄소소재분야에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1만7000톤 규모로 공장을 확대하고 1000명 고용창출과 3조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기업 추가 유치와 집적화가 진행되면 전주의 산업구조 역시 최첨단 산업으로 불리는 탄소산업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끝)
새누리당 중앙당의 제2사무부총장에 전희재(62) 진안무주장수임실 당협위원장이 임명됐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에서 그동안 호남 출신 최고위원은 있었지만, 사무부총장은 전 위원장이 처음이다. 새누리당은 대표최고위원 아래 사무처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이 있고, 그 아래 제1, 제2사무부총장 등 부총장 2명이 있다. 제2사무부총장은 전국 115명의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주로 현역 의원이 맡아왔으나 이번에 원외 인사인 전희재 위원장이 발탁돼 눈길을 끈다. 그의 발탁은 인사에서 소외된 전북이 새로운 의사통로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고, 특히 지난 대선 때 진안무주장수임실이 호남지역 지역구 중 가장 득표율이 높았다는 점에서 보상 측면도 있다. 지난 25일 전희재 새누리당 제2사무부총장을 만나 취임 소감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중앙당의 중책을 맡게 된 소감은."무엇보다도 저를 도와주신 진무장임실 지역구 주민과 도민들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2사무부총장은 새누리당 중앙당의 주요 당직 중 하나인데, 그간 호남에서 최고위원직은 있었으나, 제2사무부총장직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도민들의 성원이 있기 때문에 잘 해낼 것으로 확신합니다."-중책에 임명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지난해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새누리당은 이번에 체제를 새롭게 개편했습니다. 주요 당직은 대부분 현역 국회의원들이 겸직하고, 제2사무부총장직도 재선 현역의원이 맡고 있었으나, 이번 당직개편에서는 제2사무부총장을 원외에서 선임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했습니다. 이번 당직개편에서 전남은 최고위원을 차지한 반면, 전북의 경우는 주요 당직자가 없다는 점에서 지역인재의 고른 안배 차원에서 저를 검토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전북의 두자리수 득표율 진입과, 진안무주장수임실 지역구에서 16.04%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달성한 것이 이번 발탁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황우여 대표가 대선과정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보면서 제가 열심히 뛰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아 주위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할 사람'이라고 해왔는데, 역시 황 대표의 도움이 컸지요."-전북 현안사업과 관련해 제2사무부총장의 역할이 기대됩니다."전북은 박근혜 대통령께서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진 지역이라고 확신합니다. 대선 첫 유세를 군산익산전주에서 가질 정도로 전북은 중요성을 갖고 있고 특히 새만금 특별법을 한달 안에 제정토록 지원하는 등 전북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북과 관련된 지역개발 공약 사업들은 앞으로 소관부처 등을 통해서 순차적으로 반영돼 이뤄질 것입니다. 다만, 전국적으로 많은 지역개발 공약이 있고 복지재정에 많은 재원이 소요되며 경제침체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단칼에 전북 관련 공약이 추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운천 도당위원장을 비롯한 도내 당직자는 물론, 전북도와 협의해서 힘을 모아 이행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처음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저는 평생 공직자로서만 지냈을 뿐 사실 정치와 무관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 429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중앙당으로 부터 전주 덕진에 출마토록 권유를 받았습니다. 당시 한국지방자치단체 국제화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는데 중앙당 실력자가 간곡히 부탁해서 출마하게 된게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입니다. 전북지역 정서상 새누리당 후보가 무조건 낙선하는 분위기를 너무 잘 아는지라 출마 여부를 많이 고심했습니다. 당시 전북은 이명박정부 출범 후 미래가 없고 꿈이 없는 불모지 같은 느낌을 받아 전북의 200만 도민들의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중앙과의 소통창구가 되겠다는 목표로 뛰어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만류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배경입니다. 아쉬운 결과가 나왔지만, 그 이후 전북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새 바람을 불어 넣어 지지도가 꾸준히 상승하는 변곡점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북정서에 변화 조짐이 있다고 보시는지."이제 전북도 변화 시점이 왔다고 봅니다. 내년 지방선거 등 향후 선거에서 점차 새누리당에 대한 도민들의 사랑이 높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전북도 이제는 바뀌어서 과거 30여년의 일당 독주체제를 깨야 합니다. 중앙의 정책과 예산을 가져오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여당과 야당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과 후손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중앙당 직책을 맡으면서 지역에 국한된 일을 직접 챙기기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요."저는 전북을 무대로 해서 40여년간 생활하고 활동해 왔기에 전북은 영원한 고향이며 어머니와 같은 곳입니다. 제가 전북도 부지사를 끝으로 공무원 생활을 접은 이후에도 주어진 여건 아래 나름대로 전북을 위해 뛰어왔습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본부장을 지내면서 여자축구단의 연고를 전북으로 지정하는 등 노력을 다해왔고, 틈나는 대로 전북체육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향후 계획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평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게 제 생활신조입니다. 제2사무부총장으로서 대표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을 제대로 보좌해서 박근혜 정부가 추구하는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시대를 여는데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나아가 고향을 위해서 주어진 여건에서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희재 제2사무부총장은 진안 마령에서 출생했다.조부가 마령면장을 지내는 등 가정형편이 넉넉한 편이었으나, 아버지대에 이르러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전주공고에 진학, 한전에 입사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다 1년간 휴학하는 등 고민이 많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전주공고를 졸업한뒤 전북대 철학과에 진학, 독학으로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재학 중인 1978년도에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 전북도청에서 공직을 시작했다.공무원으로 근무 중 총무처 시행 해외장학생에 선발돼 1984년 미국 시라큐스대학에서 행정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전북대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1년에는 서울대 경영대 최고경영관리자과정(AMP)을 수료했다.전북도청과 국무총리실, 행정자치부등 중앙과 지방을 두루 근무했다.주요 보직은 전북도 경제통상국장, 국무총리 비서관, 장수군수, 진안군수, 전주시 부시장, 행정자치부 자치경찰제추진단장, 전북도 행정부지사를 역임했다. 중앙과 지방, 그리고 총리실부터 군 단위까지의 공직에 두루 근무하면서 중앙의 정책입안부터 일선의 정책집행까지 업무를 경험했다.업무에는 성실하고 청렴하게 임하면서 직장 동료나 상사들로부터 '사람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민과 공직자들로부터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수성가형 공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알려진 대로 2009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때 전주 덕진에 출마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그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전북총괄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재보선 이후 중앙당에서 인재영입위원, 대외협력위원회부위원장, 중앙연수원 부원장등의 역할을 하면서 당 활동에 적극 동참했다.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진무장임실 지역구는 16.04%의 지지율을 확보했다. 호남에서 최고의 득표율 이었다. 전북 평균이 13.2%에 그쳤으나, 무주군의 경우 21.76%를 얻는 등 진안무주장수임실 지역구가 호남 최고의 득표율을 보이면서 전희재 당협위원장의 발탁은 이미 예고돼 왔다.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섬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 및 국가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효성을 비롯해 태광과 일본 도레이첨단소재 등이 국내 시장 주도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국정과제에'탄소소재의 국산화 등 생산능력을 확보해 신산업을 창출하겠다'며 국내 탄소소재산업 육성의지를 밝히며 기업간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국내 최고의 탄소 연구기관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올 4월 명칭을 종전의'전주기계탄소기술원'에서 한국탄소융합기술원으로 바꿨다. 공간적 범위가 지역(전주)에서 전국으로 확대된 명칭이다. 명칭을 바뀌기 위해서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된다는 점에서 이번 명칭 변경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송하진 전주시장은 당시"전주기계탄소기술원이 한국탄소융합기술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표를 바꿔달았다는 의미를 뛰어넘는 것"이라면서 "그동안 전주시가 외롭고 힙겹게 지역산업으로 이끌어 오던 탄소산업을 국가가 인정해 준 결과"라고 평가했다.당초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지난 2002년 지역진흥산업의 일환으로 국내 70여개의 특화센터와 함께 시작됐다.'전주기계산업리서치센터'로 출발해 운영해 오다가 지난 2006년 탄소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로 변신했다.2008년 명칭을'전주기계탄소기술원'(2008년)으로 바꾼 후 탄소밸리사업 추진과 국내 최초 중성능 탄소섬유 개발 성공 등의 성과를 거두면서 사실상 국내 탄소산업을 이끌어 왔다. 이 점이 정부의 명칭 변경 승인의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는 국내 최초로 구축된 탄소섬유 원사 생산설비(Pilot)를 비롯해 총 123종(278억원)의 첨단 장비가 구비돼 있으며, 전문 연구인력만도 50여명에 달한다. 또한 창업보육센터와 전문인력양성센터 등 인력양성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정부 프로젝트, 탄소밸리사업 추진한국탄소융합기술원의 연구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대목중 하나가 현재 정부 주관으로 추진되고 있는 탄소밸리구축 사업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국비 1087억원과 지방 78억원 등 총 19991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탄소소재의 국산화율을 현재의 1020%에서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젝트. 현재 라지토우 탄소섬유 개발 및 중간재 개발 등의 연구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탄소기업 집적화를 통해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버금가는 탄소밸리가 조성돼 탄소소재 관련 산업의 수출전진기지로 변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당초 이 사업은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이 한국과학기술원(KIST) 전북분원과 공동으로 탄소소재 원천 및 응용기술 개발을 위해 기획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예타를 통과하면서 국책사업으로 승격됐다. 이는 기초자치단체가 주관한 지역산업이 국가산업으로 발전한 첫 사례로 꼽힌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현재 탄소밸리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글로벌 연구소와의 네크워크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세계적 탄소소재 연구소와 네크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등단단한 연구기반을 갖추고 있다.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는 현재 전주시가 지난 2010년 4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설립한 국제탄소연구소가 부설기관으로 운영중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 탄소산업 기술의 흐름을 접목하기 위한 것으로, 국제탄소연구소는 현재 일본 니시노 카본연구소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독일 등 세계 5개국 6개 연구소와 공동연구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적 탄소섬유 소재산업 연구기관인 독일의 AMRC와는 지난해 3월 탄소기술 공동연구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더불어 한국탄소학회와 SAMPE KOREA이 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 입주해 있는 등 탄소소재와 관련된 국내외 단체들이 모두 전주에 몰려 있다.이와함께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IST) 전북분원은 탄소소재 및 복합소재 전문연구소로 설립운영중으로, 한국탄소융합기술원과 함께 복합소재 및 부품 연구개발의 중심거점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 탄소 전문인력 1500여명 양성, 세계 3번째 탄소섬유 개발 성공최근들어 잇따라 탄소시장에 뛰어든 국내 기업들이 사업화를 발표하면서 가장 먼저 눈길을 보낸 곳은 한국탄소융합기술원(옛 전주기계탄소기술원)이었다. 무엇보다 국내 탄소산업 기반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 연구개발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지난 2009년부터 첨단장비와 국내 유명 석박사의 연구인력 등의 인프라를 통해 탄소 관련 기업들을 지원하는 한편 탄소 및 복합소재 전문인력을 양성해 왔다. 현재까지 이 곳에서 배출된 탄소 전문인력은 1500여명에 달한다.특히 한국탄소융합기술원 연구진은 (주)효성과 공동으로 탄소섬유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30여 명이 참여, 3년여의 노력 끝에 세계 3번째로 중성능(T-700급)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하는 등 세계적 수준의 연구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국내에서는 이 만한 연구능력을 갖춘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은터라, 기업들이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의 연구진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한국탄소융합기술원 연구원 가운데 적잖은 수가 태광과 GS칼텍스, 삼성 등의 대기업에 스카웃됐으며, 현재 스카웃 제의를 받고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는 50여명의 연구원이 있으며, 이들은 2000억원 규모의 탄소밸리 구축사업과 현재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중인 '초고강도 복합재 국산화 개발사업'등 30여개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이 같은 요인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한국탄소학회가 지방인 전주에 둥지를 틀게 됐으며, 일부에서 학회 소재지를 서울 등 수도권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으나 전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이처럼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이 탄소인력 양성의 요람으로 부상하면서 우수 인력들도 전주로 몰리고 있다.이에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지난 2010년부터 취업연계형 탄소 전문인력 교육을 시작했으며, 당시 수료생 134명 가운데 117명이 탄소섬유 관련 업체에 취업(취업률 87%)하는 등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전주가 탄소섬유산업의 메카로 확고한 입지를 굳힐 것으로 기대되는 오는 2015년까지 600명의 전문인력을 양성, 고부가가치 생산현장의 고급 기술자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부안군이 최근 농어촌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는 귀농귀촌인들을 유치하고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군은 부안지역에 정착하려는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 추진하고 있다.우선 귀농창업자금을 최대 2억원(연3%, 5년거치 10년 상환)까지 융자 지원하고 있다. 농가주택신축 또는 구입 시에도 융자를 4000만원까지 지원한다. 또 연 2% 1년거치 1년상환을 조건으로 영농안정기금을 3000만원까지 지원하며 주택수리비도 가구당 500만원 이내에서 보조해준다. 영농정보도 제공한다.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귀농귀촌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작목별 영농정보를 매월 제공하는 한편 농어민신문을 1년간 무료로 구독할 수 있다. 또한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상담 지원도 실시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센터를 통해 여성들의 상담을 지원하고 있으며 농업기술센터 내 귀농귀촌 종합상담실도 설치, 운영 중이다.농업택지 정보와 농지가격 자료 제공은 물론 농촌빈집정보 자료 제공 등 귀농귀촌 관련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특히 민간조직을 통한 귀농귀촌 네트워크 활성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부안군 귀농귀촌협의회가 출범해 귀농귀촌인들 상호간 협력과 동시에 성공적인 귀농사례를 상호 교환하는 등 조기 정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와 함께 16개 농업관련 단체들과 토착 지역민들과도 친목도모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나아가 녹색농촌체험마을 등 특화마을과 재능을 가진 귀농인들을 연계, 일자리 창출 등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부안군 농업축산과 관계자는 "최근 많은 귀농귀촌인들이 부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으며 문의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며 "귀농귀촌인들이 부안 군민으로써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해 질 높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 및 정책들을 발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농부의 마음으로 희망의 씨앗을 심으며 성공적인 제2의 삶을 일구려 합니다"석 씨는 "서울에서 생활하는 37년 동안 개인사업과 회사생활을 해오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할 나위 없이 가득했다" 며 "무엇보다 건강 악화로 힘들어 하시는 부친과 모친을 모시기 위한 게 귀촌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혔다. 8형제의 장남이라는 석 씨의 이 같은 결정은 형제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부친과 모친을 돌봐야 하는 형제들에게 부담을 덜 수 있게 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형제간 우애가 더더욱 돈독해졌다는 것이다.석 씨는 지난 1년 동안 귀농교육과 블로그 운영 교육을 받고 벤처농업대학을 다니며 농업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또 쇼핑몰 플레너 3급, 산업건설기계운전교육 등을 통한 자격증도 취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부안군 참머위작목반을 결성해 부반장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급기야 참머위를 소득사업으로 추천받아 전문 강의와 선진지 방문 등 참머위 재배에 나섰다.현재 귀농창업자금으로 논(답) 2필지를 구입하고 시설하우스도 4동을 선정 받아 현재 참머위 재배가 한창이다. 물론 현재 매출은 없는 상태다. 하지만 내년 2월말까지 시설하우스 한 동당 1600만~2000만원 상당의 소득 발생으로 순소득 4000만원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에는 시설하우스 4동을 추가해 연봉 1억원에 도전하겠다고 계획이다.석 씨는 "평소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면서 "초보 농군의 기본은 교육생 농부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지금보다 나은 희망을 하나하나 심어 제2의 삶의 엮어가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귀농귀촌에 대한 만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밭에서 직접 키운 싱싱한 야채와 주변 야생에서 자라는 먹거리는 가족들을 위한 최고의 건강식이라는 것.석 씨는 "산, 들, 바다 등 천혜의 자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흙 내음과 벗 삼아 사노라면 아무리 몸이 고되고 힘들어도 누구를 탓하고 부러울 것이 없으니 나라님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부인 조단녀(51)씨를 향한 미안함과 고마움도 내비쳤다.석 씨는 "집사람도 처음에는 교통문화의료소통의 어려움을 들어 불평을 했었다" 며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적응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미소를 띠었다.최근에는 자연산 미나리를 지인들에게 보내주면서 농산물 직거래에 대한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석 씨는 "아직도 농촌생활이 서툴고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야생 자연산 미나리를 20㎏ 5박스를 지인들에게 보내줬더니 고맙다는 전화를 걸어와 직접 가꾸고 있는 농산물의 구매의사를 보였다" 며 "도시민의 숨어 있는 감성을 자극해 또 다른 농산물을 직거래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이와 함께 귀농귀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고 직언했다.석 씨는 "귀농귀촌인 중 대다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많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2억원의 창업자금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며 "귀농교육과 사업조건을 갖추고도 실질적인 대출조건은 금융권 대출의 담보능력인 만큼 우선적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난 뒤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실패가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 씨의 손에는 삽자루가 쥐어져 있다. 도시생활 중 항상 손에 쥐어져 있던 펜 보다 삽자루가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 석 씨는 농부로 부안군민으로 제2의 삶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 아닐까?
유네스코는 200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한편 전세계 인류가 직면한 문화의 획일화상업화종속화에 대응하고 민족간 갈등과 대립을 극복한다는 데 기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다. △다문화 사진전다문화 주간에 실시되는 다문화 사진전은 '공존'이라는 주제로 열리게 된다.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전북도청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이번 사진전에서는 결혼이민자와 유학생 및 이주노동자 등에 관한 사진들이 선보인다. 사진전 주제가 '공존'이라고 명칭 지어진 것은 다문화 사회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서로 소통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는 것처럼 '다문화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함축적으로 잘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전에 출품되는 작품은 60여점이다. 사진전이기 때문에 사진만을 개시될 것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사진이 이외에도 다문화 가족들이 그린 그림과 글짓기 작품 등도 일부 전시될 예정이다. 사진은 베트남중국필리핀 등 결혼이민자 출신국 들의 생활풍습, 이주노동자와 유학생들의 한국에서의 생활 등을 담고 있다. 이 사진전은 전라북도 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회를 중심으로 하여 외국인노동자 선교센터아시아노동인권센터익산노동자의 집 등이 공동으로 주관한다.△다문화 포럼외국인이주노동자는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지금은 결혼이민자재외동포유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외국인주민들이 한국사회에 정주하고 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주 외국인은 150만명에 이르며, 전북지역의 정주 외국인은 지난해말 현재 2만6515명이다. 외국인근로자 9444명, 결혼이민자 8648명, 유학생 4124명, 외국국적동포 1361명, 기타 2938명으로 나타났으며, 외국인배우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녀도 8766명에 달한다. 22일 전북대 진수당에서 마련되는 다문화 포럼에서는 계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외국인주민에 대한 정착지원의 현황을 중심으로 하여 국제결혼 가정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다문화 가족에 대한 지원 서비스를 설명하게 된다. '외국인주민 정책지원의 현황과 과제'를 전북대 설동훈 교수가 발표를 하게 되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역학과 기능강화 방안'에 대해서는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다문화가족본부의 강복정 본부장과 김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문강 센터장이 발표에 나선다. 특히 이번 다문화 포럼은 내년 전북도의 다문화 정책의 방향을 잡아내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다문화 어울림축제전북도가 주관하고 전라북도다문화가족지원센터협회가 주최하는 다문화 어울림축제는 올해로 6회째를 맞고 있다. 이 행사는 결혼이민자들의 소통공간으로, 각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결혼이민자들이 상호교류하고 문화적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무대행사의 경우 다문화가족과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문화공연에 이어 결혼이민자들이 각자의 언어와 문화적 소재를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또한 덕진공원에 설치된 다양한 부스체험을 통해 결혼이민자 나라의 음식을 시민들이 맛볼 수 있고, 아시아 각국의 의상을 입어보며 체험할 수 있는 시민참여의 기회도 제공된다. 5월은 외국인 주민들에게 뜻 깊은 달이다. 특히 다문화 주간을 설정한 전북도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이민자 등 다문화가족 등과 시민간의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는 사업을 민간과 협력해 실시하고 있어 의미가 각별하다. 다문화 주간에 열리는 여러 사업들이 더욱 내실 있고 알차게 진행되어 외국인주민의 복지와 인권증진, 다문화가족의 행복한 가정생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대해본다.이지훈 (전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12 다문화가족 실태 조사'와 '국민 다문화 수용성조사'에 그대로 반영돼 있습니다. 전국 다문화가족 1만5341가구(표본)를 대상으로 실시한 다문화가족 실태를 조사한 결과 결혼이민자나 귀화자의 41.3%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것으로 응답했습니다. 3년 전보다 오히려 나빠진 결과입니다. 전국 19세 이상 74세까지의 국민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다문화수용성조사에서도 다양한 종교·문화·인종이 공존하는 '문화공존'찬성 비율이 36.2%에 불과했습니다" 박주철 진안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우리 주위에서 다문화가족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그들에 대한 인식의 질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들의 편견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주민과 다문화가족이 한데 어울리는 소통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박주철 센터장은 "다문화 가족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봉사나 지역 센터에 모여 같이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활동 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 교류 행사 등이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박 센터장은 그러면서도 "상당수 사람들은 근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문화 주간을 일회성 행사나 외국과 한국 사이의 서로 다른 문화를 단순히 맛보는 기회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다문화를 단순히 외국문화, 그것도 전통적인 옷·음식·공예품 등의 물질문화로 막연하게 이해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다문화 행사를 통해 문화가 다양하고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수는 있겠지만 베트남 이주여성이 전통의상을 보여주거나 음식을 맛보게 해준다고 해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을 저절로 존중하거나 배려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다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을 존엄한 존재로 존중하면서 대등한 파트너로 소통할 자세가 돼 있는가에 대한 성찰입니다"박 센터장은 "이들의 문화를 적절히 녹여내고 여러 문화들을 융합시켜 우리의 독창적인 색깔로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진정한 다문화사회를 이룰 수 있다"면서 "세계인들이 환호하는 '비빔밥'이 이런 융합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듯이,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를 적극 준비하고 수용해 공생을 통해 더 나은 사회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다문화사회에 우리가 제대로 적응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덧붙였다.이지훈(전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잘 알려진 김제지평선축제의 메인무대이자 사적 제111호인 벽골제 옆 아리랑문학관 마당에 지난 2010년 10월 세워진 국내 연예인 1호'효녀가수 현숙 효열비'.김제시 월촌동 장화마을에서 12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현숙(본명 정현숙)은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7년간 극진히 보살피고 중풍으로 의식이 분명치 않은 어머니를 14년간 모셔 온 국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 및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현숙의 효행은 전국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로, 1996년 효행 연예인으로서 국민포장을 수상한 후 2001년 효령대상 효행부문상, 2007년 전북애향대상 및 김제시민의 장 효열장, 제33회 삼성효행상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내로라 하는 다수의 효(孝)부문 상을 수상했다.또한 지난 2004년부터 고향 김제를 비롯 울릉도, 경남 하동, 충남 청양, 전남 장흥 등에 혼자서 목욕 할 수 없거나 목욕탕을 갈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 이동식 목욕차량을 지원하는 등 노인들을 모시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며, 올 어버이 날에는 연평도 노인과 장애인들을 위해 이동식 목욕차량을 기증했다. 지난 2004년부터 서해 북단 연평도에 대당 4000만원 상당의 목욕차량을 벌써 10대째 기증한 것이다.이러한 현숙의 효(孝) 실천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고향사람들이 현숙효열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 기금을 조성한 후 벽골제 옆 아리랑문학관 마당에 '현숙 효열비'를 건립하고 2010년 10월6일 현숙 효열비 제막식을 가졌다.현숙 효열비를 건립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적게는 만원 부터 수 천만원에 이르는 많은 성금이 답지해 평소 그녀의 효(孝) 실천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는가 가늠할 수 있었다."아마도 현숙의 목소리가 활기차고 밝은 이유는 매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그녀의 평소 생활태도에서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고향에 내려와도 그냥 상경하는 법이 없어요. 마을 사람들과 지인, 주변 노인들을 죄다 둘러본 후 상경한답니다. 정말로 천사예요 천사."마을 주민 A씨(65,여, 김제시 월촌동)는 현숙을 천사라고 표현하며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는 시간이 나는대로 현숙 효열비를 찾아 닦고 청소하고 주변을 정비한다. 누가 시켜서라 아니라 자신이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다.현숙 효열비는 자신(현숙)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양쪽에서 어머니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전국 어디서나 공연 할때면 사회자가 효녀가수 현숙이라고 소개 합니다. 그럴 때마다 솔직히 쑥쓰러워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게 당연한 일이고, 저도 그일을 했을 뿐인데 효녀가수라고 불러주니. 아무튼요, 대한민국 모든 어르신들이 행복한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 나눔 실천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용기를 주세요."현숙은 지난 4일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키힐에서 열린 '효(孝)사랑 나눔 디너쇼'에서 1억원 기부를 약정하고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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