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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태 청장은 - 학교폭력 예방 등 경찰 신뢰 높이는데 일익…태국 대사관 근무 때 쓰나미 피해수습 앞장

홍익태 전북지방경찰청장(52)은 지난 196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부안이다.유년시절 경기중학교에 입학한 큰 형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간 뒤 서울 중대부고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간부후보 32기로 경찰에 입문한 홍 청장은 경찰대학 학생과장, 서울 노원서장, 서울청 경무과장, 인천청 차장, 경찰청 교통관리관을 지냈다.지난해 오원춘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 할 때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을 지낸 홍 청장은 당시 경찰의 대 시민 치안활동의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앞장섰다. 또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학교전담 경찰관을 배치하는 등 총력대응에 나서 학생들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률(2월 17.2%, 10월 6.2%로 감소)을 크게 낮췄다. 연이어 터진 악재로 떨어질 때로 떨어진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홍 청장의 업무능력은 지난 2002년 태국대사관 주재관 근무 때도 여실히 빛났다. 귀국 두 달을 앞두고 발생한 쓰나미 때 홀로 핏빛으로 물든 현장을 돌며, 우리 국민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썼다. 당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자국민의 시신을 모두 찾아 가족에게 인계했다.

  • 기획
  • 박영민
  • 2012.12.03 23:02

취임 한달 홍익태 전북지방경찰청장 "치안서비스 감동 키울겁니다"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며 지난 10월 30일 취임한 홍익태 전북지방경찰청장(52)이 11월 30일로 취임 한 달을 맞았다. 홍 청장은 취임 이후 관내 15개 경찰서 및 각종 현장을 방문하는 등 전북지역 곳곳을 직접 돌아다녔다. 현장방문을 통해 전북지역이 안고 있는 치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한 홍 청장은 최근들어 해결책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다. 홍 청장을 만나 전북지역 치안에 대한 구상을 들어봤다.-취임 한 달을 맞으셨는데요. 전북 치안상황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관내 15개 경찰서 현장방문을 마쳤고, 많은 주민들과 현장 경찰관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치안적인 측면에서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대체적으로 평온합니다. 직원들의 근무자세도 제가 취임 때 강조했던 '기본과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 우발적 폭력(14.2%)의 급증으로 올해 5대 범죄가 5.8% 정도 늘었지만 주민체감치안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절도(2.4%)와 강도(9.1%)는 각각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5300여 전북경찰이 합심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치안이 안정적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전북에 부임해 업무를 파악하면서 노인교통사고 사망자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 10월말 현재 전북지역에서는 304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중 노인이 120명(39.5%)으로 1/3을 차지합니다. 특히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는 전년에 비해 15.4%나 늘었습니다. 또 어린이 사망자도 올해 6명으로 전년 보다 50%나 증가했습니다. 이와 함께 도민들의 교통질서의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낮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교통안전공단에서 발표한 '시도별 교통문화 지수'에서 전북은 16개시도 중 14위를 기록했습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대책과 도민들의 교통안전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경찰의 치안인프라가 도심권에 집중되다 보니 시골 구석구석까지 경찰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도민이 똑 같은 치안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 같은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한 복안이 있으신지요."새로운 일을 만들어서 하진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처음 경찰에 들어왔을 때 전국 경찰관 수가 10만 명이었습니다. 이 같은 경찰 숫자는 수 십 년이 지난 현재도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경찰의 업무는 너무 많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일을 만든다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자는 제 의지처럼 우선 연말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해 음주사망사고를 예방하고, '교통문화 개선운동'을 통해 교통안전시설의 개선과 교통법규준수율을 높여 나갈 계획입니다. 또 농촌권 치안서비스 확대를 위해 경찰관이 마을을 매일 한 번씩은 방문하도록 해 주민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해소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겠습니다."-취임 초 기본과 원칙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올해 초 학교폭력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해 경찰이 특단의 예방대책을 수립, 시행해 왔고, 아동·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이는 국민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우리 경찰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때에 경찰이 기본업무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기본과 원칙을 강조한 것입니다. 지난 오원춘 사건 등에서 보듯 부서별·개인별로 제때 제대로 기본업무를 수행하지 않아 국민을 불안케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경찰서 업무보고 때 책을 선물하셨다고 들었습니다."혜민 스님의 인생잠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입니다. 모든 경찰서에 똑 같은 책을 선물했는데요.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생각을 해서 업무를 하는 것과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업무를 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책을 보게 되면 자기 스스로 느끼게 되고, 깨닫는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계발도 되기 때문에 이는 업무 능률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경찰관들의 비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다른 지역에서 업소단속 관련 금품수수나 음주운전사고 등 경찰관 의무위반 행위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올 해 전북청에서도 대여섯 건의 의무위반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를 받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경찰관의 의무위반행위는 국민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봅니다. 내부적으로 청렴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유혹에 빠진 동료를 구제하기 위한 스스로의 자정노력을 높이고, 가능하다면 그 원인행위를 미리 찾아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끝으로 도민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치안문제는 더 이상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민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서 풀어나가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융합행정이 중요합니다. 전북경찰이 '주민중심, 현장중심'의 경찰활동을 통해 도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낌없는 조언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대담=김준호 사회부장

  • 기획
  • 박영민
  • 2012.12.03 23:02

정남식 병원장은 - DJ 주치의 12년…국내'VIP 전담 의사'로 명성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남식 심장내과 교수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인공호흡기를 뗐다.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오열했고, 김 대통령의 3남은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한국정치의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정 병원장은 1998년 2월 김 대통령의 심장 주치의로 선정된 후 12년 동안 건강을 돌봤다. 가족이나 측근보다 더 자주 DJ의 얼굴을 볼 기회를 가졌다. 서거 당시에는 37일 동안 병원에서 숙식을 함께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였던 DJ였지만 이를 지켜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은 정 병원장이었다. 정 병원장은 DJ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르침도 받았다. 하지만 건강에 관해서는 의사를 절대 신임하고 따라준 고마운 환자였다. DJ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했다. 고관절이 불편해 걷기를 잘 못해 수영을 권했으나 끝내 하지 못했다. 자신이 수영장에 가면 경호원이 힘들고 손님들도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찬가지로 어디를 갈 때 예우 차원에서 신호등을 조작하는 것도 싫어했다.정 병원장은 DJ 말고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김원기 국회의장, 정대철, 박지원, 개그맨 이용식 씨 등 유명인사의 진료를 도맡았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최고의 심장전문가다. 정 병원장은 1952년 전주에서 장수군수를 지낸 정성봉씨의 8남1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전주 중앙초등학교와 북중, 전주고를 거쳐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학계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1999년부터 '심장과 혈관'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심초음파학회 이사장,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 회장, 대한내과학회 내과분과 고시위원장, 연세의대 심혈관연구소장, 연세대 의과대학장, 의학전문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또 현재 연세의료원 발전기금 기획위원과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감사, 연세대 총동문회 운영부회장, 보건복지부 국민고혈압사업단 부단장, 중앙약사심의위원,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전주 북중 시절에는 전국연식정구선수권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하는 등 스포츠에 만능이며 서예도 수준급이다. 수많은 논문과 함께 '최고의 고혈압 식사가이드''심장병 완치설명서'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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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7 23:02

전주 출신 정남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 "환자 진료할 때 항상 내 가족이라 생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우리나라 서양식 병원의 효시다. 1885년 광혜원 창립 이래 127년 동안 의료계의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며 민족적 고난과 호흡을 같이했다. 더불어 기독교 정신을 전파하면서 '임상하면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자긍심으로 가득하다. 의료진 등 직원수만 6000명이 넘고 외래환자 9000여 명 등 하루 3만5000여 명이 북적인다. 거대한 함정과도 같은 이 병원을 이끄는 정남식 병원장(60)은 우리나라 최고의 심장전문가로 꼽히는 인물.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등 'VIP 전담의사'로 이름이 높다. 그런 만큼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3개월 전부터 인터뷰를 요청, 가까스로 시간을 잡았다. 병원장실에서 가진 1시간 30분의 인터뷰 동안 4-5차례 긴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인터뷰가 중단됐다 이어지곤 했다.-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지난 8월 병원장 취임 후 벌써 4개월이 되어 갑니다. 세브란스 병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으로서, 한국 의료계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27년 동안 정상의 교육기관이자 국민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은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에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주인이 갖는 생각과 주인 아닌 사람이 갖는 생각은 백이면 백 가지가 다르거든요. 생각이 다르니 행동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니 미래가 달라지는 거죠. 이것이 곧 세브란스 병원의 자부심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의 수장으로서, 환자들에 대해 남 다른 진료철학을 갖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요?"환자들이 왜 세브란스에 올까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져요. 환자들은 어떤 절실함을 가지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병원을 찾는거죠. 환자들이 갖는 그 마음을 저희 병원이 얼마나 알아주고 있는지, 어떻게 환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것이냐가 과제에요. 내 가족처럼, 환자가 나의 아버지 어머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진, 검사, 치료 등 전 과정에서 환자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최선의 치료가 나온다고 생각해요.'내 몸을 맡길 수 있는 병원하면 세브란스'를 떠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병원장을 맡으시면서 역점을 두고 계시는 사업은?"새로운 의료기술과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 중심 병원의 역할, 난치병을 치료하는 4차 병원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어요. 4차 병원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터닝포인트는 내년 초 문을 여는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에서부터 시작될 겁니다. 또 2014년 문을 여는 암병원은 환자 중심의 다학제 진료시스템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통합진료를 선보일 계획이에요. 난치병 치료모델을 개발하고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암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겁니다."- 원장님은 의료계에서 'VIP 전담의사'라 불릴 만큼 정계 재계 문화계 거물인사들의 진료를 도맡아온 것으로 유명합니다."나이가 들게 되면 대부분 심혈관에 문제가 생기다 보니, 심혈관 전문의인 제가 유명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원장님은 김대중(DJ) 대통령 심장 주치의를 오랫동안 맡으셨습니다. 서거 당시에도 함께하며 돌보셨는데 힘들지 않았습니까?"김 대통령께서는 100점짜리 환자였어요. 주치의를 100% 신뢰하고 지시사항을 철저히 따랐거든요. 80대 이상의 고령환자가 심장투석을 받을 경우 5년간 생존율이 20%가 안 되는데 김 대통령께서는 6년 반 동안 투석을 받았어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있은 후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어요. 휠체어를 탄 채 뙤약볕이 내려쬐는 서울역광장 분향소에서 2-3시간 동안 차례를 기다려 조문을 하고 연설을 한 후부터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오랫동안 DJ를 돌보면서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요?"김 대통령께서는 의료진에게 한 번도 반말을 하지 않았어요. 겸손과 친절이 몸에 밴 환자였죠. 항상 '감사합니다, 수고하십니다'는 말을 잊지 않았거든요. 또 김 대통령께서는 책을 정말 좋아하셨어요. 14-15시간 걸리는 비행기 안에서도 의자를 뒤로 젖히는 법이 없이 꼿꼿하게 앉아 책을 보시거나 글을 쓰셨어요. 책 보는 습관 때문에 엉덩이에 물집이 많이 생기셨죠. 또 폭 넓고 깊은 독서와 해박한 지식, 열려있는 사고에 놀란 적이 많았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육군교도소에서 사형선고 받기 전 타협하지 않은 이유를 들었을 때에요. 김 대통령께서는'사람이 물에 빠져서도 죽고 아파서도 죽는데, 내가 불의와 타협해서 목숨을 연장하는 것은 두 번 죽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우중 회장 등 다른 분들 얘기도 꽤 있을 텐데요?"김 회장님은 2005년 수술을 한 이후 요즘도 한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직접 나오셔서 진료 받고 있어요.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지만 예전 대우 얘기는 잘 안 꺼내세요. 지금도 항상 세계 경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많은 구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영원한 기업인'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DJ 대통령께서도 김 회장을 굉장히 훌륭한 기업인이라고 높이 평가했어요."- 감수해야 할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요?"주말여행 중 병원으로 급히 불려 들어간 경우가 수차례고, 한밤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응급 전화' 벨 소리에 깨는 일이 부지기수였어요. 그것은 일반 환자도 마찬가지에요. 심장병의 특성상 그런 것이죠." - 심장질환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심장은 몸의 엔진이에요. 모든 에너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기관이죠. 중년을 지나면 정기적으로 심장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많이 웃고 원만하게 사는 게 심장에 이롭고요. 심장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식생활 개선이 중요해요.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협심증과 심근경색이 특히 젊은 층이나 중년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식습관에 문제가 있는 거죠. 또한 여가를 제대로 즐겨야 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은 여가활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지만 풀 곳이 마땅치 않아요. 정부와 기업체가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회체육시설을 많이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방법입니다." - 그러면 원장님은 평소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급합니다. "식습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육류를 적게 먹고 채소를 많이 먹는 식으로, 가능하면 선조들이 먹던 방식대로 소박하게 먹으려고 해요. 또 게을러서 꾸준히 못하지만 운동하려고 노력해요. 운동은 아령팔굽혀펴기 등 근력운동과 빨리 걷기등산 등 심폐기능을 좋게 하는 운동을 1주일에 3번 이상 합니다." - 전국적으로 의대 열풍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의학교육에 몸담으셨는데 이에 대해?"이것은 사회적 현상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학교 다닐 때 최고학과는 공대 화공학과, 전자공학과였거든요. 요즘 좋은 인재들이 의대로 들어오지만 의사는 그 목적이 직업인으로, 생활인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의사는 성실하게 봉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거지, 천재가 필요한 게 아녜요. 정말 우리가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국가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이공계통의 인재와 이걸 이끌어 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해요. 이런 산업이 뒷받침되지 않는 나라는 결코 오래 존치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것은 국가정책이 먼저 바뀌어야 해요.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의대 열풍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의학전문대학원 폐지에 앞장섰는데 이유는 뭡니까?"국가가 정책적으로 의전원을 만들어 훌륭한 의학자를 키우겠다는 게 근간이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공계 학문이 의전원 들어가는 하나의 코스로 활용되는 면이 너무 많았어요. 훌륭한 의학자가 만들어지는 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그 이후에 자기 연구분야를 평생 연구해 가는 트랙이 중요한 거다, 그러려면 국가에서 먼 장래를 보고 기간산업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영국과 독일 일본 모두 6년제다, 그런데 가장 고비용 저효과인 미국이 8년제다. 미국은 의생명과학이 발전한 나라지만 전 세계에서 두뇌를 수입하는 나라다. 결국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지 의전원을 만들어서 6년을 8년으로 늘렸다고 해서 의생명과학이 발전하는 것 아니다. 그런 논리였죠."- 의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뭐였습니까?"저는 사실 인문계통이 더 맞는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그 당시 우리 환경이 너무 열악했잖아요. 첫 번째는 세계로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죠. 두 번째는 전주 예수병원을 가면 분위기가 매우 좋았어요. 흰 가운 입고 외국에서 온 의사들이 환자를 고쳐주는 분위기가 꿈을 갖게 해줬어요. 저도 의사가 돼서, 외국에 나가 선교사 의사들처럼 환자를 고쳐주면서 살 수 있는 직업이 좋겠다, 그게 맞아 떨어진 거죠."- 그러면 그 때부터 기독교를 믿었습니까?"처음에 교회에 간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간 게 아니고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선교사가 하는 크리스천 바이블 세션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때 얘기인가요?"그래요. 영어를 배우기 위한 욕심에서 교회를 다녔는데 (당시) 마음속에 하나님을 담고 그러지는 못했어요. 그게 교회와의 첫 인연이죠. 제가 해외에 나가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 해야겠다, 직업은 의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꿈이었는데 대학 졸업하면서 확 바뀌었죠."- 존경하는 의학자는?"저는 우리 세브란스를 일으킨 에비슨(O.R.A vison 1860-1956)박사를 존경합니다. 사람들이 에비슨 박사를 잘 모를 거예요. 슈바이처보다 훨씬 훌륭한 분이에요. 슈바이처는 독일 사람으로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환자를 치료했지만 의사를 키우진 않았죠. 당시 아프리카 가는 거나 한국에 오는 거나 똑 같아요. 그런데 에비슨은 오셔서 왕도 봤고(진료) 백정도 봤어요. 백정이라는 제도를 없애도록 건의문도 올렸고요. 또 백정의 아들을 1대 의사로 만든 게 에비슨에요. 그래서 하류 클래스 사람들을 치료해 주면서 그 사람들을 교육시켜 의사를 만들고,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를 처음 만들었죠. 37년을 봉사하고 가셨어요. 그 다음에 연희전문학교를 언더우드가 설립하셨잖아요. 이 분은 몸이 아파서 2년 있다가 도로 돌아가셨어요. 그 이후로 17년을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양쪽 교장을 하셨어요."- 세브란스 병원을 짓는데 돈을 기탁받은 것도 그 분이 아닌가요?"그게 키워드에요. 그 분이 1893년에 오셔서 근무하다가 1900년도에 세브란스를 만드셨어요.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서 에비슨이 강연을 했어요. 그 때 자선사업가인 세브란스(L.H. Severance 1838-1913)가 듣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4만5000달러를 기부했어요. 나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인데 한국에 현대식 병원이 필요하다며 두 가지 말을 했어요. 배려와 일치화합(Comity and Unity)이에요. 배려가 뭐에요? 남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는 거예요. 남을 존중하지 않으면 배려할 수 없어요. 또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이 분은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시장의 주치의로 잘 나가는 사람이었죠. 또 만삭의 부인과 아이들이 있어서 여행하다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심장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1970년대 말 전공하게 됐는데요. 당시 심장의학은 개업도 할 수 없고, 그 당시 심장병 환자는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았어요. 선천성 심장병이나 심장판막증 등 다 가난한 사람이 생기는 거니까요. 외국에 나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는 거고. 그런데 잘 진단하고 치료하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환자를 많이 봤어요. 이건 정말 너무 보람 있는 거예요. 지금은 병 패턴이 바뀌었어요. 못살 때 생기는 심장병은 거의 다 없어지고 이제는 잘 살아서 생기는 심장병이 생겼어요."- 끝으로 고향의 자라나는 후학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청소년기의 꿈이 중요하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그 꿈을 위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제가 그동안 여러 분을 만났지만 정말 남다른 노력을 했더라고요. DJ, 김우중씨 등, 다 꿈을 갖고 있었어요. 꿈이 중요한 건데 하다 보니까 꿈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꿈만을 위해서 전심을 다한 게 아니고. 꿈이라는 게 비전인데, 허황된 꿈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꿈을 꿀 때 혼자 꾸는 것보다 부모 선배 친구와의 대화가 중요해요. 그리고 요즘 젊은 학도들은 IQ(지능지수)는 높은데 EQ(감성지수) NQ(공존지수) WQ(지혜지수)는 부족한 것 같아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나 고전읽기 등 인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기획
  • 조상진
  • 2012.11.27 23:02

집 나와 오갈 데 없는 소녀들 '性 우범지대'로 추락

"OO에 사는 16세 △△은 아버지의 폭력과 욕설에 집을 나왔다. 가진 돈을 다 쓰고 돈도 없고 잘 곳도 없어 PC방에서 채팅을 하는 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부산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고 △△의 딱한 사정을 알고 새벽 3시에 00을 데리러 왔다"△가출 여자청소년 성매매 유입 심각 지난 10월 4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강은희 국회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 가출 청소년이 지난 2007년 450명에서 지난해에는 712명으로 4년새 58.8%로 증가했다. 특히 남자청소년에 비해 여자청소년의 가출 빈도가 무려 40%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의 가출원인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매우 상이하겠지만 단순히 집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집밖으로 내쫓는 요인과 사회에서 끌어당기는 유인요인이 청소년기 발달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사회환경적 요인들과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의 부설 현장상담센터는 상담사례 중 10대 여자청소년들의 성매매 피해 상담이 늘어나자, 도내 가출 여자청소년들의 사회적 지원체계에 대해 매우 열악한 현실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최근에는 여자청소년 대상 성매매의 경우 연령대가 낮아지고 주로 인터넷 성매매가 차지하고 있어 성매매 피해상담을 지원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서울시 다시함께상담센터가 피해자의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에도 보여지듯, 성매매 유입의 여자 청소년들의 저연령화는 13세~19세 이하가 1위로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빈곤, 무관심과 방임, 아버지나 오빠에 의한 폭력과 욕설, 지인 및 타인에 대한 성폭력, 성매매 강요 등 이미 '보호'받은 경험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특히 10대 여자청소년의 가출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적위험에 노출되고 끊임없이 여러가지 어려움과 위험상황을 동반한다. 더욱이 가출상황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경제적 어려움은 성매매 유입의 가능성을 높여 안전하지 않은 거리에서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폭력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이미 집을 나간 순간부터 문제아로 인식되기 때문에 보호의 대상이 아닌 사회낙오자로 취급 받게 되고 10대 여자청소년들의 노동환경 역시 열악하기 그지 없다. 이처럼 문제는 지속되고 있지만 수박 겉핥기 식의 처방과 그에 따른 찰나의 관심은 여전히 넘어야 할 장애가 많음을 보여준다.△일시보호후 귀가조치는 역효과가정이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인 경우 집을 나오는 것이 10대 여자청소년들에게 살기 위한 일이라고 했을 때 그들에게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이 필요하지만 그들에게 이것들을 주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위 사례처럼 성구매자, 업주들일 경우가 많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용인되는 사회 속에서 집을 나오는 선택을 하게 된 여자청소년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가 발표한 2008년 전북지역 성매매 피해 여자청소년 현황에서 10여명의 여자청소년들은 가출한 상태에서 성매매 피해를 입고도 신고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는 이들이 보호자인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과 심리적 불안을 겪거나, 가정폭력의 상황에서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고, 본인에게 닥친 위기상황에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집을 나온 여자청소년들에 대해 일시보호후 가정으로 돌려보내지거나, 위기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선도적 지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대책 없이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은 오히려 지원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하고 성폭력이나 성매매 유입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지난 9월 서울시는 성매매방지법 8주년을 맞아 가출 여자청소년들이 성매매로 넘어가지 않도록 가출 여자청소년 전용의 일시보호쉼터인 드롭인센터와 건강지원센터 신설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특별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성매매피해 여자청소년 지원시설이 없는 전북지역은 눈여겨 볼만 한 지자체의 사례이다. 전국적으로 가출청소년의 수는 20여만 명으로 가출 청소년 중 4명중 1명은 생계형 성매매로 유입되고 있으며 전북지역도 성매매 피해 여자청소년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판단능력과 경제적 자립의 준비가 덜 된 여자청소년들에게 성매매는 많은 2차 피해와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게 한다. 무엇보다 성매매가 만연된 사회 안에서 성구매자를 범죄자화 할 수 없다고 보는 시각과 10대 아이들의 성매매의 경우 모든 문제의 원인을 미성숙한 여자청소년에게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자청소년 성매매의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성인지적 접근이 병행될 때 여자청소년 성매매 문제의 실질적은 대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노현정 NGO시민기자(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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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1 23:02

"가출 이후 사회적 안전망 미비…쉼터 확대·지원체계 고민해야"

-전북위기청소년교육센터는 어떤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떤 내용으로 활동을 진행하는지.△가출 및 성매매 경험이 있는 10대 여성을 대상으로 40시간의 교육과 사전·사후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사후관리로는 식사 및 문화지원은 물론 타기관과의 연계를 통해 주거, 의료,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전북지역의 가출 여자청소년들이 지지 받고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정책적 방법들이 중요한데, 현재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전북지역에는 10대 여성을 위한 중단기 쉼터로 푸른쉼터가 있으며, 각 지역의 전북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일시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가출을 했을 때 지원받는 데는 한계가 많다. 기본적으로 가출이 가정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보다 가출이후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출의 이유 중 가정의 불화는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가정문제는 노동문제를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 미비 및 부재의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정으로 그 탓을 돌리기보다 지역적으로 10대를 위한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쉼터의 확대와 지원체계의 다양성, 그리고 10대 욕구 중심의 지원을 고민해야 한다.-상담이나 캠프를 통해 만난 아이들, 여전히 거리를 헤메고 있는 여자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지. △10대들에게 '잘살고 있어요? … 무엇이 필요한가요?'라고 안부를 묻고 싶다. 다 도와줄수는 없어도 같이 고민하고 정보를 찾아줄순 있다. 분명히 이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필요하실 때 연락을 바란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최소한 한사람의 개체로써 당신의 삶을 존중한다.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전북위기청소년교육센터 전화번호는 010-3325-8297.노현정 NGO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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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21 23:02

새특법 개정 핵심 특별회계 설치, 정부 반대로 무산

새만금사업의 안정적 재원확보를 위한 특별회계 설치가 당장은 어려워지면서 정부의 새만금사업에 대한 지원 의지가 또다시 헛구호에 그치게 됐다.총리실과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새만금 조기 개발의 열쇠인 특별회계 설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은 13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특별회계를 '설치한다'는 강제조항에서 '설치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수정하는 방향에서 통과됐다.개정안에는 그동안 6개 정부 부처에서 주관하던 새만금 업무를 개발청을 설치해 맡도록 했고, 도로 등 기반시설에 대한 국비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또한 기본구상에서 실시계획까지 계획체계를 4단계에서 3단계로 단축했고, 지역경제 활성화 특례조항을 마련함으로써 개발속도가 빨라지고 파급효과가 커지게 됐다.그러나 특별법 개정의 핵심조항인 특별회계 설치가 불투명해지면서 정부의 새만금사업에 대한 시각이 여전히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게 됐다는 것.착공 20여년 동안 불과 3조원이 투입된 새만금사업은 정부가 작년 발표한 새만금종합개발계획에서 오는 2020년까지 매년 8200억원 정도가 투입돼야 완성된다.따라서 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별회계를 통해 별도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지만, 또다시 정부 부처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정부는 특별회계를 설치하려면 특정한 세입, 사업, 주체가 있어야 하는 데 새만금사업은 사업과 주체는 있으나 세입이 없어 설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하지만 세종시와 광주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새만금과 같은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회계가 설치돼 새만금만 외면을 받는 꼴이 됐다.물론 차선책이지만 개발청이 설치됨으로써 별도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고, 농지기금을 보다 더 확보해서 새만금 농지조성사업 등에 투입하는 방법도 있다.그러나 정부가 새만금사업을 '동북아의 관문'으로 육성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지원하겠다고 공언해 온 것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게 도민들의 불만이다.도 관계자는 "정부가 우선은 새만금개발청 예산을 많이 확보해주고 이후 빠른 시일 내에 특별회계를 설치해서 안정적으로 재원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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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대식
  • 2012.11.15 23:02

군산대 용역 결과 문제 없고 논문 참고자료 착각한 결과

충남 서천화력 석탄재를 새만금 산업단지 수평배수층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환경성 평가 용역결과(군산대 용역 수행)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평가의 부실을 지적한 이정현 NGO기자의 기사(본보 10월 31일자 5면 보도)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용역은 한국중부발전 서천화력발전소의 회처리장에 매립되어 있는 석탄재를 새만금산업단지 조성사업의 수평배수층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군산경실련을 포함한 시민환경단체에서 석탄재 매립 전 환경성 평가를 군산대에서 실시할 것을 요청함에 따라 지난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에 걸쳐 군산대가 석탄재 매립 환경성 평가를 실시했다.기사는 본보 NGO기자인 전북환경운동연합 이정현 사무처장이 같은 단체 공동의장인 전북대 A교수와 도내외 전문가들의 멘트를 인용해 보고서의 부실을 지적한 것으로, 본보가 군산대 용역수행자와 중부발전 및 한국농어촌공사, 전북환경운동연합 이 처장, 전북대 A교수 등에 확인한 결과, 이는 잘못된 지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A교수는 한 논문을 언급하면서 "군산대학교의 분석결과는 당진화력 석탄재에 비해 낮아도 너무 낮다"고 지적했으나, 이는 해당 논문에서 단순 참고용으로 제시된 외국의 결과를 당진화력발전소의 결과로 착각한 것이었으며, 실제로는 당진화력에 대한 결과는 군산대의 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또한 다른 전문가의 인용에서는 군산대가 비소분석에 사용한 불꽃원자흡광광도법으로는 비소를 분석할 수 없다고 지적했으나, 이 역시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환경분석 전문가들은 "기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단순히 불꽃원자흡광광도법만으로 비소를 분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보고서에는 분명 '수소화물생성-불꽃원자흡광광도법'으로 분석하였다고 기재돼 있고, 이는 비소분석의 표준방법이기 때문에 군산대 분석결과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군산대가 수행한 용출실험에 대한 문제 제기도 용출실험 내용 및 목적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한국농어촌공사 강병윤 새만금경제자유구역사업단 과장은 보도 내용중 '석탄재 매립, 새만금 전체로 확대 가능성'과 관련해 "산업단지 외 석탄재 사용여부는 향후 새만금 부지를 관할하는 해당부처에서 결정할 사안이며. 새만금 산업단지에 200만㎥ 이상 확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답변을 오인해 작성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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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
  • 2012.11.14 23:02

영광핵발전소 사고 현장 실태 - 한수원, 품질 검증서 위조부품 사용 '쉬쉬'

영광핵발전소 3호, 5호, 6호기가 고장과 위조부품 사용으로 가동이 중단되었다. 3호기의 경우 제어봉의 안내관이 파열되는 핵발전소 건설이후 초유의 고장이고, 5호기와 6호기의 경우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부품을 대규모로 사용한 탓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어 지난 5일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도대체 전라북도의 경계로부터 1.5㎞ 거리에 위치한 영광핵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현장을 취재했다.△영광주민들 극도로 불안감지난 5일 지식경제부는 '2003년부터 10년간 품질검증서가 위조된 60여건의 부품이 영광핵발전소 5호기와 6호기 등 5개의 발전소에 사용되었고, 위조한 부품을 납품한 회사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위조사용된 부품 5233개 중 98.2%인 5137개가 영광 5호기와 6호기에 집중 사용됐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의 기자회견 내용이 발표되자 영광주민들과 전남광주지역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높아졌으며, 지역사회 분위기가 격앙되었다. 광주전남시민사회단체와 영광군의 주민들은 기자회견과 보도자료를 통해 "영광 5, 6호기 뿐만이 아니라 영광 1호기부터 6호기까지 전면 가동을 중단하라"거나 "영광핵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라" 등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오는 15일에는 영광주민 등 2000여명이 모여 '영광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지난 9일 진보정의당 핵안전특별위원회(위원장 김제남 국회의원)가 영광군청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 지식경제부, 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한수원 영광원자력본부의 관계자를 모아놓고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현장에서는 진보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 등 3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해 영광핵발전소의 납품비리 실태와 향후 대책에 대해서 보고를 받고, 문제점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이날 현장조사에서 발표된 결과는 더욱 충격이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외부제보로 확인한 결과 위조부품이 5기의 원자력발전소에 사용됐음을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지난 3월 26~30일 원자력기술원이 영광 5, 6호기에 대한 품질보증유효성 검사를 진행했으며, 이 결과 품질검증서가 구비되지 않은 부품이 534개 사용됐음을 확인하고 이를 한수원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위조된 품질검증서 조차도 없는, 전혀 품질을 확인할 수 없는 부품을 534개나 무더기로 납품받아 사용했다는 것은 영광원자력본부의 극에 달한 안전불감증과 조직적인 비리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한수원과 지식경제부는 이미 올해 초부터 품질을 검증할 수 없는 부품이 핵발전소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내부적으로 확인했음에도 이를 은폐하다가 외부제보가 들어오자 어쩔 수 없이 사건의 경위를 밝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한수원과 지경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위조부품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사용된 부품이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등 소모품이며, 모두 원자로 격납건물 외부에 있는 보조설비에 사용돼 원전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김제남 국회의원의 이헌석 보좌관은 "올초 영광 5, 6호기에 사용이 확인된 534개의 부품은 발전소 제어계통에 사용된 것으로 고장 시 발전소가 불시에 정지할 수도 있는 중요한 부품이다"라고 밝혔다. 핵발전소가 고장이 나고 가동중지 될 때마다 정부가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안전에는 지장이 없다'는 말이 거짓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영광핵발전소 5호기와 6호기는 2002년 건설된 이후 사고가 가장 빈발하고 있다. 5호기의 경우 10년 사이 18번이나 고장이 났으며, 6호기의 경우 9번이나 고장이 났다. 이러한 잦은 고장은 지은 지 30년이 넘는 고리원전 1호기 13건 보다 잦은 것으로 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영광주민들은 이처럼 빈발하는 사고와 이번에 밝혀진 위조부품의 사용이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신과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정작 전북은 '강건너 불구경'영광핵발전소를 방문하고 도경계를 넘어 고창군으로 들어서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여론이 들끊고 있는 전남과 영광에 비해 관련 현수막하나 붙어있지 않고 조용했다. '영광핵발전소 안전성확보를 위한 군민행동'의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김제남 국회의원의 김용국보좌관은 "전북은 전남에 비해 핵발전소로 인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지형적인 요인과 풍향 등 기후특성을 볼 때 피해가 고창, 부안, 정읍 등의 방향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라북도의 자치단체는 물론 주민들도 영광핵발전소의 문제를 남의 일로 생각한다"며 안타까움을 밝혔다. 실제로 이러한 전라북도 지자체와 주민들의 무관심속에 그 피해와 차별은 전라북도로 집중되고 있다. 영광핵발전소 온배수로 인한 어장의 황폐화는 전라북도로 집중되고 있으며, 원전에 대한 민간환경감시기구의 구성원도 전체 25명 중 고창군에 배정된 인원은 2명에 불과하다. 민간환경감시기구는 발전소로부터 5㎞ 반경내의 주민들로 구성되며, 고창군 경계로 부터 1,5㎞ 거리에 영광발전소가 위치해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영광핵발전소 위조부품 실태에 대한 정부의 '민관합동조사단'에도 고창군은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지역의 무관심 속에 '핵없는 세상을 위한 전북준비모임'이 오는 16일 '영광원자력발전소 긴급진단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영광핵발전소가 전라북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관심이 주목된다. 한승우 NGO시민기자(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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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14 23:02

조현종 셜리천 부부는- 온라인 공간서 고향 선·후배로 만나'백년가약'

모디스트 셜리천(modiste shirly chun)씨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더 공부하기 위해 파리까지 날아갔다. 그러나 우연히 접한 모자 만들기에 급속히 빠져들었다. 결국 불문학의 길을 포기하고 모자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다. 셜리(shirly)라는 이름은 모자전문학교에서 공부할 때 영어 이름 하나 있는 것이 좋겠다 싶어 지었다. 셜리천이 처음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 유수의 모자기업 디자인실장으로 스카우트 된 그는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멋있고 아름답고 효용성 높은 모자를 디자인해 시장에 내놓았지만 회사도, 고객도 외면했다.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문 패션모자 디자이너가 만든 고급 모자'라는 그의 전략은 결국 맞아 떨어졌다. 조현종-셜리천 부부는 전주가 고향이다. (주)샤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조현종 대표는 전북대 심리학과, 디자인 실장을 맡고 있는 셜리천 디자이너는 건국대 불문학과를 나왔다. 각자의 길을 가던 그들이 만난 건 요즘처럼 인터넷이 활성화하기 전 유행하던 유니텔통신 회원 활동이 계기가 됐다. 조씨가 밀란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패러디한 글을 써 유니텔통신에 올렸는데, 이 글을 읽은 천씨가 "파리 유학시절 처음 원문으로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알고 있는 분이 있어서 반가웠다"라며 답글을 올렸다. 그 후 서울 강남에서 자리가 마련된 점심 번개 때 인사를 나누었고, 사이좋은 고향 선후배(천씨가 한 살 위)로 시작하여 1년 후인 1998년 결혼했다. 조 대표는 전주에 루이엘햇컬처센터(luielle hat culture center)를 설립한 후 매주 경향을 오간다. 그는 전주에 진출한 후 두 가지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첫째 지역신문을 챙겨 읽고, 둘째 서울로 향할 때 자동차 주유는 꼭 전주에서 한다는 것.셜리천에게 모자를 고를 때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에 대해 묻자 "얼굴형도 중요하지만 헤어스타일이 더 중요합니다. 짧은 커트머리의 경우 볼 쪽으로 머리카락이 보이도록 쓰고, 긴 생머리는 그 자체로 여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므로 장식이 없는 깔끔한 모자로 연출하면 긴 생머리와 멋지게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모자가 두루 잘 어울리는 가장 이상적인 헤어스타일은 어깨선을 넘지 않는 길이의 웨이브 섞인 단발머리예요. 어떤 스타일이든 소화가 가능해 모자를 즐겨쓰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헤어스타일입니다. 연말에 행사나 실내용 모자를 쓸 때는 비즈와 크리스탈 등이 섞여 있는 모자를 쓰면 더욱 생기있어 보입니다. 연말 파티복에도 손색없는 연출이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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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13 23:02

(주)샤뽀 조현종 ·셜리천 부부 "전주모자박물관, 패션문화콘텐츠 메카로 만들 터"

패션 소품인 모자는 참 친근한 물건이다. 비가 올 때 머리를 받쳐주니 우산과 같고, 따가운 햇빛을 차단해 줄 때는 양산 같은 존재다. 모자를 쓴 사람은 멋과 품위가 있어 보이고, 더하여 자존감까지 풍겨나니 단순한 장식용품 이상의 물건, 그러니까 모자는 패션 소품이 아니라 패션의 완결자인 셈이다.동서양을 막론하고 모자는 소중한 위치에 있었다. 영국 여왕은 지금도 멋지고 우아해 보이는 패션 모자를 쓰고 나타나 대중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왕과 문무백관들이 금관, 제관 등 모자를 썼고, 조선시대 양반들은 말총갓을 쓰고 외출했다. 서민들도 패랭이를 쓰는 등 우리 조상들은 계절과 장소, 신분, 남녀 등에 따라 다양한 모자를 썼다. 조선 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의 기록에도 모자에 대한 언급이 있다.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르 바라는 "조선은 모자 왕국이다. 너무도 다양하고 여러 용도를 가진 조선의 모자 패션은 파리인들도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며 관심을 보였다. 모자 전문기업 (주)샤뽀가 2년 전 전주 한옥마을에 세운 모자박물관 루이엘햇컬처센터(luielle hat culture center)는 인류의 모자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뜻 깊은 문화공간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아시아에서 유일한 모자박물관이라니, 더욱 소중해 보인다.루이엘햇컬쳐센터를 설립, 고향의 문화공간을 살찌우고 있는 모자 전문 디자이너 천순임(48셜리천, shirly chun)-조현종 부부를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루이엘 삼청점에서 만나 모자와 문화, 그리고 한옥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날 매장에서는 일본에서 온 여성 바이어 2명이 상담하고 있었다.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날씨와 모자는 어떤 관련성이 있습니까."겨울이 되면 건강을 위해서 모자를 많이 씁니다. 모자를 쓰면 몸의 체온이 36도 가량 올라간다는 걸 아시죠? 그런데 아무 모자나 아무렇게 쓰면 계절을 선도하는 멋쟁이가 되지 못합니다. 이왕 쓰시는 거 멋지게 연출해 보세요. 보온성과 패션성을 높일 수 있는 겨울철 최고의 아이템입니다. 어두운 코트에 모자를 산뜻하게 매치해 주신다면 패션리더로서 자리잡을 수 있죠. 모자는 패션의 포인트 아이템으로, 특히 겨울에 활용하기 적합합니다."-모자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도 모자를 애용하는 편이었나요."자주 애용하지 않았어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관한 영화 '파비안느'를 본 뒤 베레를 좋아하게 돼 파리에서는 줄곧 베레만 썼죠. 제 디자인 중 기본 베레 이름이 파비안느입니다."-불문학을 더 배우기 위해 파리 소르본느대학에 들어갔는데, 문학적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불문학과를 졸업하고 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89년 불문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향했습니다. 어릴적부터 문학책이나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그 영향으로 불문학 전공을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외국에서 공부하던 중 일생의 진로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서 모자를 접하고, 모자의 어떤 부분 때문에 매력을 느껴 한번 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나요."불문학을 공부하면서 한 번에 30권 이상의 원서를 받아 읽어내야 했습니다. 불문학은 퍼내도 퍼내도 또 퍼내야 하는 우물 같았죠. 아무리 노력해도 그곳 학생들을 따라가기에 벅차 답답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재봉틀을 배우게 됐는데, 불문학과는 달리 바로 눈앞에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작업이어서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모자학교를 알게 됐고, 나아가 청강을 하게 됐고요. 불문학과을 공부하면서 모자를 병행했는데, 모자를 알면 알수록 이건 내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자를 안지 8개월 만에 진로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처음 모자 전문 디자인과 제작 기술을 배운 CMT는 어떤 곳인가요."프랑스 유일의 모자전문학교였습니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CMT를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내의 모자 업체들도 관심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그 당시는 지금처럼 유학이나 연수 기회가 흔치 않았고, 한국에서 모자에 대한 인식도 낮았던 것 같습니다. 모자를 패션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도 사실 몇 년 되지 않거든요. 모자를 전문적 영역으로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모자 디자인, 제작 기술을 배우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다행히 불어를 할 줄 아니까 모자학교 선생님들과 의사소통 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작 기술이나 디자인을 배우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1998년 귀국해 모자 기업에 취직하고 얼마 후 독립했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공부를 마치고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국내 유명 모자기업에 디자인 실장으로 스카우트되었습니다. 하지만 패션모자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했던 때여서 패션모자를 디자인해서 내놓으면 고객들의 낯선 반응이 돌아왔어요. 대중이 사랑하지 않는 디자인은 자기 만족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후 경험이 쌓이고 제 디자인이 단단해지면서 아름다우면서도 쓰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스타일의 모자를 만들었는데 비로소 고객들의 반응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확신이 생겼죠. 내가 하고 싶은 모자를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자는 분명 한국에는 아직 없는 스타일이라 생각했고, 자신이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고 1999년에 1호점인 화동점 문을 열며 '루이엘Luielle, 그와 그녀'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서울 종로구 화동은 총리 공관이 있는 삼청동 큰 길에서 동쪽으로 약간 언덕진 곳에 위치한 동네다. 화동점 골목은 개점 당시 썰렁했지만 이제 번화가 못지 않다.) -화동점은 (주)샤뽀의 출발점인데, 처음 어떻게 출발했습니까. "화동점은 6평 정도의 작은 매장입니다. 개점하면서 첫달 매출액이 1,000만 원 정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개점 당일에 이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물론 친구 등 지인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반응이 너무 좋았고, 다소 여유를 갖고 일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화동점에서 기획제작판매가 모두 이뤄졌지만 지금은 루이엘 삼청점에서 기획하고 만듭니다."-고가의 모자를 전시해 판매했는데, 반응이 어땠습니까."처음 시작할 때 모자 가격이 816만 원대 정도 였는데, 물론 한 번도 그렇게 비싼 가격으로 구입해 본 경험이 없는 고객들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써보고 간 손님은 다시 찾아왔고, 다른 모자는 못쓰겠다는 호평도 들었습니다. 단골 손님이 하나 둘 생기고, 매니아층이 두꺼워지면서 패션모자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패션모자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루이엘 모자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나중에는 매장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도 생겼고,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 입점하게 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유통망이 넓혀지게 된 것 같아요."-천 실장님의 모자를 보고 있으면 참 상상력이 풍부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얻고 있습니까."작업 아이디어는 소설이나 영화, 원단, 부자재, 여행지의 느낌들, 식물, 보석 등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영감의 원천이 됩니다.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불문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상상력이나 감성적인 면이 좀 풍부한 편인 것 같아요. 불문학 전공이 마치 모자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밑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업을 하는데 감성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객 특히 여성들이 원하는 부분을 콕 집어서 채워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고객층은."연령대로 보면 30대60대까지 폭넓은 고객층이 찾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분, 사회적 활동이 많은 분, 그리고 유명 연예인들도 많이 찾아주십니다.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에 큰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이 찾는 것은 모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고, 또 멋있고 아름답게 메이킹 하는데 굉장히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성적 코드가 맞는 사람들에게는 제 모자가 꿈을 실현하는 매개체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아함이나 로맨틱한 감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도 많은 어필을 하는 것 같고요." -모자 공장은 어디에 있고, 월 몇 개 정도 생산하는지요."서울에 있는 직영 공장에서 월 1,500개 이상 생산하고 있습니다. -조현종 대표는 언제 어떤 계기로 합류했습니까. 또 부부가 역할 분담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불편한 점은 뭐고 편리한 점은 뭔가요."루이엘 화동점 개점 당시에는 옆에서 조언하며 돕는 정도였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자 관리와 경영에 경험이 풍부한 남편의 본격적인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 후 남편이 (주)샤뽀 대표이사(2002년)로서 마케팅 전반 등 경영을 총괄하고, 저는 디자인 실장으로서 모자 디자인에 전력할 수 있었습니다. 루이엘의 디자이너 수공 모자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유통라인을 넓혀갔고, 회사의 체계적인 구조를 만들어 나갔습니다.부부가 함께 일하는 장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업무 영역 내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한 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같은 곳을 보고 함께 달려가니 늘 서로 응원할 수 있고, 대화가 끊김 없는 것도 좋은 점인 것 같습니다.-주요 백화점, 일본 제국호텔 매장 등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주요 국내외 매장을 소개해 주시죠."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본점,대구 대백프라자 명품관 등에 입점해 있습니다. 루이엘 화동 본점과 삼청동, 인사동,일산, 의정부, 전주 등 로드숍과 국내 유수의 골프장 프로숍, 일본 제국호텔 등 4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중국과 미국 진출을 목표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샤뽀가 고향 전북에 알려진 것은 전주에 모자박물관이 있는 루이엘햇컬쳐센터를 세우겠다고 밝힌 2010년 초순으로 기억합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남편과 제 고향이 전주예요.(^-^) 고향이란 게 전주 진출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지만, 제2의 도약을 위해 전주에 갔습니다. 전주의 역사, 문화, 관광 등 자원과 모자를 결합시키면 충분히 많은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전주는 제가 생각하는 예(禮)와 예(藝)의 도시입니다. 예의와 예술이 살아 있습니다. 모자의 속성이 바로 예의(Attitude)와 예술(Style)입니다. 또한 전통의 멋과 현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예술적 도시이지 않나 싶습니다."-루이엘햇컬쳐센터는 모자 박물관과 판매점, 갤러리, 카페, 아카데미, 게스트하우스 등을 갖춘 복합문화센터인데, 개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운영해 본 소감은. 시민들의 반응, 성과 등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1층에는 패션모자를 만날 수 있는 모자숍을 비롯해 갤러리, 모자카페 등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2층에 오르면 전통모자부터 현대모자까지 볼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시관을 만날 수 있죠. 가족이나 젊은 연인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포토존과 이벤트존도 운영하고 있고요. 방문객들은 3층에서 모자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관광객, 가족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4층에는 하늘공원과 공연장, 게스트하우스가 있죠. 그동안 저희 모자박물관은 전주의 5대 명소로 선정될 만큼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와 대전을 비롯, 타지역에서 방문하는 고객이 갈수록 늘고 있어 고무적입니다. 전주에 들르는 관광객이 꼭 방문하는 명소로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콘텐츠를 개발해 패션문화콘텐츠의 메카로 발전시키겠습니다."-모자 공장을 전주에 세울 계획은 없습니까? "현재 직영공장은 루이엘 삼청점 등 서울에 있습니다. 전주에는 모자디자인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물론 차후 전주에 공장을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세계시장 진출 등 앞으로 계획은?"일본의 고급 호텔인 동경 제국호텔 아케이드숍에 입점,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저희 모자가 베스트 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일본의 매니아 고객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꼭 루이엘 매장을 방문할 만큼 관심을 아끼지 않으세요. 그리고 2013년 SS시즌부터 시작하기 위해 미국 진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이 시기에 중국 진출을 위해 현지 바이어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은 루이엘 모자가 해외 시장에서 많은 성과를 내는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모자 수요층에게 한 말씀."모자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그 이면에는 '나도 정말 모자를 쓰고 싶어요'라는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모자를 쓰고 어딜 가나요?'라고 거부하지 마세요. 그러면 평생 야구모자밖에 쓰지 못하고, 모자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할 기회조차 없애버립니다. 모자를 써볼 수 있는 장소나 기회가 된다면 마음껏, 최대한 자주 써보세요. 자주 쓸수록 모자가 자신에게 어울리게 되고 몸에 붙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세상에 나에게 어울리는 모자 하나쯤은 꼭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주)샤뽀, 루이엘햇컬처센터는 수도권에서 온 이전기업입니다. 그리고 전주한옥마을의 소중한 문화 아이콘이 됐습니다. 도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앞으로도 애정어린 눈으로 끊임없이 관심과 격려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 기획
  • 김재호
  • 2012.11.13 23:02

장수 '쓰레기 줍는 할아버지' 권호석씨 - "문화국민 됩시다" 43년째 거리 청소

장수지역은 물론 전국을 누비며 쓰레기를 줍는 권호석씨(76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의 별명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쓰레기통 할아버지', '전국구 미화원', '거리의 천사', '김삿갓' 등이 권씨가 보여준 그동안의 행적을 말해준다. 올해로 벌써 40년 넘게 거리청결에 여념이 없는 권씨는 1년 365일 거의 매일 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인파가 몰리는 전국의 축제장과 행사장은 물론 재래시장과 길거리를 누비며 환경보호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지난 8월 폐막한 여수엑스포에서도 권씨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여수엑스포에서 권씨는 당시 20일 동안 찜질방에 기거를 하며 쓰레기줍기에 나섰다. 예전에는 쓰레기더미 옆에서 스치로폼을 깔고 종이박스를 덮고 노숙을 하며 끼니를 거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주위 분들이 도와주고 자식들이 장성해 용돈까지 줘 한결 봉사활동에 나서기가 나아졌다. 지난 8일 5일장이 열리는 장수 장계시장에서도 그는 '서로서로 양보하고 기초질서 잘 지켜서 문화국민 됩시다. 내가 지킨 기초질서 아들딸이 본받아요. 내가 머물던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갑시다. 담배꽁초 휴지는 휴지통에 버려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와 비닐봉지, 집게를 들고 거리를 누볐다. 그는 이미 전국의 행사장과 축제장의 마스코트로, 거리의 환경 전령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의 쓰레기줍기는 43년전인 지난 1969년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그의 작업에 대해 모두가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지만, 초기에는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일을 뒷전으로 미룬 채 축제장만 쫓아다닌다'라거나 '미친X'이라는 험한 소리도 들었다. '자기가 무슨 환경운동가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온갖 비난의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거리 청소를 실천해 온 그의 한결같은 모습에 차츰 많은 사람들이 감화하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어른들 뿐 아니라 꼬마들도 그를 반갑게 알아보고 있다. 그가 43년동안 '쓰레기줍기' 외길인생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가족들의 든든한 후원에서 비롯됐다. 33살이었던 그는 11살 연하의 부인 김정숙씨와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청소봉사'라는 사명감을 앞세워 쓰레기줍기에 나섰다. 당시 부인 김씨는 말없이 그를 지켜봐주며 소리없는 응원에 나섰다. 그는 "무엇보다 5남매가 아버지의 행동에 한마디 불평 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모두가 장학생으로 대학까지 마치는 등 올곧게 성장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14살에 625전쟁이 터졌어요. 군대에 들어가 조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싶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3번이나 입대를 퇴짜 맞았죠. '가진 것은 없지만 이 한 몸 바쳐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라고 다짐했던 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집에는 방마다 태극기가 걸려있고, 주머니에는 1년 365일 태극기가 들어있다. 아침에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함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는 "최근 독도 문제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하더라도 해야 된다"고 말했다. 권씨의 선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시대 일본식 이름이 불려지는 게 싫어 선생님께 반항을 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각종 행사장에서 주는 사례비와 자녀들이 준 용돈을 모아 매년 장수지역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제3회 초아의 봉사대상' 사회봉사부문 수상자로 선정돼 상금으로 받은 1000만원을 전액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권씨는 "후세에 백 마디의 말보다 한 가지라도 실천하라는 교훈을 남기고 싶다"며 "우리나라 국민이 세계에서 부끄럼 없는 일등 문화국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권씨는 또 "오라는 곳은 없어도 못 다한 아쉬움이 많아 또 다시 길을 나선다"면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기력이 남아 있는 한 쓰레기 줍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권씨는 지금도 쓰레기를 찾아 거리청소에 여념이 없다.

  • 기획
  • 정익수
  • 2012.11.13 23:02

장재영 군수 포부 - "장수한우는 지역순환농업의 핵심 브랜드"

"우수혈통 생산과 보전으로 최고의 명품 장수한우 육성에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장재영 군수는 "장수한우 유전자뱅크는 외국 축산물 수입개방에 맞서 우수 암소 형질개량과 우량번식 밑소 확보로 장수한우 우수혈통을 지키고 한우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장수한우 자급사료 생산, 가축분뇨의 자원화, 질병안전망 구축, 우수한 혈통 만들기 등 4대 정책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장 군수는 특히 "유전자뱅크의 성공적 운영으로 장수 고유의 혈통우를 만들고 일반농가에까지 수정란 이식사업을 확대 실시, 송아지의 안정적 생산 및 품질유지로 전국 최고의 명품한우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 군수는 또 "장수한우거점시설인 장수한우 유전자뱅크TMR사료공장을 농업지방공사로 설립해 장수한우의 효율적인 육성으로 농가소득과 장수한우 브랜드 가치를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 군수는 이와 함께 "장수한우는 단순히 장수군의 축산업이 아니라 장수군에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역순환농업의 핵심"이라며 "장수군은 장수한우가 지난 2005년 신활력사업으로 선정됨에 따라 그동안 한우사업단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맞춤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자 집단과 연구기관, 관련 산업체간의 혁신네트워킹을 구축,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한우산업을 육성해왔다"고 말했다. 장 군수는 "앞으로 장수군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53프로젝트와 연계해 지역순환농업 완성으로 장수를 세계 최고의 농업건강 중심도시로 만들어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 기획
  • 정익수
  • 2012.11.13 23:02

장수군 한우 유전자뱅크 - 우수 혈통 개량·보존 연구, 최고 명품 한우 산실

장수한우가 제15회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명품한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나가고 있다.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장수한우는 믿을만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대한민국 청정지역의 대명사인 장수군 장안산과 팔공산을 중심으로 사계절 맑은 공기와 자연암반수를 먹고 자란 장수한우는 전국에서 최초로 섬유질사료(TMR사료)를 제공하고 생후 7개월령 이내에 거세 시술하는 등 계획적인 생산관리를 통해 축산물브랜드 경진대회 및 한우능력평가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대상을 휩쓸며 전국 최고의 한우로 인정받아왔다. 최근 들어 장수한우가 우수 유전자 확보를 통한 명품한우 생산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수정란 생산·이식사업으로 암소개량 장수한우 유전자뱅크. 장수군 천천면 월곡리 반월 일대에 들어선 장수한우 유전자뱅크는 51㏊, 18동 10만2226㎡의 규모로 8만8101㎡의 넓은 초지와 자연형 시범축사, 퇴비사, 실험실, 체란실, 관리사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우의 개량 및 생산성 향상과 장수한우 혈통보존, 계획적인 밑소 생산체계 확립 등을 위한 체내 수정란 생산과 한수한우의 우수경제형질 보존 등을 위한 수정란 동결보존, 수정란 성감별 및 체외 수정란 생산, 수정란 분할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핵군육종사업 축산박람회, 농협가축개량사업소, 안성교육원 등 전국 각지에서 검증받은 우수 암소를 포함해 최고 품종의 종자를 공급받아 464개의 수정란을 생산하고, 170두의 수정란을 이식하는 등 수정란 이식사업을 전개해왔다. 또한 수정이식사업을 통해 태어난 송아지 등 700두의 최우량 품질의 한우를 상시 사육하며 꾸준한 암소개량을 통해 매년 1등급 비율을 높여, 지난해에는 6억2000만원의 매출실적을 올렸다. 이 밖에도 우량번식 밑소의 확보와 농가한우 개량 가속화, 첨단생명공학산업으로서 축산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체내 수정란생산, 수정란 동결보존, 유전자원 연구 등 최고의 명품한우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장수한우만의 고정혈통 보전 주력 장수군은 첨단생명공학산업이 접목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암소 개량으로 장수한우만의 혈통을 고정, 한우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선도농가를 중심으로 일반농가에까지 우수 유전 수정란 채란 및 이식사업을 전개하고 서울대, 건국대, 한경대 등 산학협력을 통해 고능력우의 수정란 생산 및 기술개발, 연구개발지원, 현장애로기술지원으로 우량송아지 선발사업과 수정란이식생산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특히 장수한우거점시설인 장수한우 TMR사료공장과 장수한우프라자, 가축분뇨자원시설 등과 연계, 지역내 자급사료 생산 시스템 구축과 가축분뇨의 자원화, 가축질병 통합관리, 안정된 유통망 확보 등으로 장수한우의 브랜드가치를 높여나갈 계획이다.

  • 기획
  • 정익수
  • 2012.11.13 23:02

창립 10주년 맞는 전북신용보증재단 문철상 이사장 "소상공인 경제적 안정·성장 돕는 종합금융지원 최선"

지난 2002년 12월 전북도가 설립주체가 되고 정부, 금융기관 등이 출연해 신용보증전문 비영리공익법인으로 설립된 전북신용보증재단(이사장 문철상)이 다음달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전북도에서 책상 3개, 컴퓨터 1대를 양여 받아 업무를 시작한 전북신보는 설립 당시 기본재산 102억원, 직원 8명으로 출발해 지금은 2012년 9월말 현재 1본부 5부에 34명의 직원과 기본재산 1019억원을 조성, 도내 소재 소기업 및 소상공인 4만8521개 업체에 총 7372억원의 신용보증을 지원하면서 외형적으로나 실적면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어왔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전북신보의 문철상 이사장으로부터 전북신보의 현 주소와 운영방향 등에 대해 들어본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소감은 어떤지요."먼저 그동안 저희 재단의 설립과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성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재단이 전라북도 소기업·소상공인들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도민 여러분들과 소기업·소상공인, 그리고 전라북도와 전라북도의회, 중소기업청 및 관련 유관기관 관계자 분들의 성원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도민 여러분들과 소기업·상공인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저희 재단이 해야 할 소임이 무엇인지를 깊이 새겨 모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아직 전북신보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한다면."저희 재단은 담보력은 미약하나 성장잠재력이 있는 전라북도내 소재 소기업·소상공인 등의 금전채무를 보증함으로써 자금융통을 원활하게 함과 더불어 지역경제 활성화와 서민의 복리증진에 이바지하고자 전라북도와 정부 등의 출연으로 2002년 12월 6일 설립된 신용보증전문 비영리공익 특별법인입니다. 특히 저희 재단은 규모가 영세하고 담보능력마저 부족해 사실상 현행 금융시스템에서 소외 받기 쉬운 금융소외계층이자 지역경제의 저변층인 무등록·무점포 한계 저신용자들에게도 선제적으로 보증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공익적 소임을 다함으로써 지역 소상공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민경제 안정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보증기관입니다."- 전북신보의 올 상반기 성과와 그 동안의 성과는 어떤지요."저희 재단은 올해 9월말까지 담보력 부족으로 대출이 어려운 도내 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 5636건, 1017억6200만원의 보증 지원을 해 연간 목표액인 1100억원의 92%를 달성했습니다. 특히 지난 2008년 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따른 경기침제 속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영세 저신용 소상공인에게 다양한 특례보증제도를 시행, 집중적으로 보증공급을 함으로써 서민경제 안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실제로 2009년 이후 현재까지 최근 4년여에 걸친 보증공급액이 5620억원을 넘어 설립 이후 10년간 총 보증공급액 7372억원의 약 76%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저희 재단은 2009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서민지원 특례보증(금융소외, 햇살론) 공급부문에 있어 전국 16개 지역신용보증재단 중 서울, 경기재단을 제외하고는 전국 1위의 실적을 보임으로써 소상공인 전담보증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보증지원은 현재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저희 재단의 보증상품에는 전라북도와 연계해 전국 최초로 실시한 희망 창업 특례보증,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창업보육센터 지원특례보증, 생계형소상공인의 생활안정을 위한 생계형 소상공인 특례보증, 재해중소기업 특별보증 및 시중은행들과 협약을 맺어 실시하는 협약보증 등이 있습니다. 보증을 신청하고자 하시는 중소상공인분들께서는 사업자등록증과 신분증을 가지고 저희 재단으로 오셔서 상담을 받고 신청하면 됩니다. 또한 전주 이외의 지역에 계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하여 매주 1회씩 14개 시군에 나가서 업무를 처리해 드리는 이동출장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이동출장소에 방문하셔서 상담을 받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재단 운영방향과 포부는."설립 10주년을 맞아 2020년까지의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북신용증재단이 지향하는 미래위상, 가치, 사업영역을 반영한 새로운 비전 'Vision 2020 : 전라북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선도하는 종합금융지원기관 실현'을 수립하였으며, 6대 전략목표, 6대 추진전략 및 17대 추진과제를 설정해 체계적인 비전 달성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세부계획을 마련해 'Vision 2020'의 궁극적 목표인 '전라북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선도하는 종합금융지원기관'의 구현을 위해 지역내 소기업·소상공인의 경영안정과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파트너로서 서민경제안정에 기여하는 재단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또한 올해 재단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홍보활동 강화와 더불어 회원사간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 경제적 지위 향상과 건전한 공동체문화 정착을 도모하고, 지역·업종별 회원사 상호간 업무교류와 정보교환 등을 통해 도내 소기업·소상공인의 안정적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고자 '전북 소기업·소상공인 교류 협의회'를 결성한 바 앞으로 이 협의회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해 전라북도 경제의 근간인 소기업·소상공인의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위해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끝으로 도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저는 전라북도 경제의 근간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잘되어야 전라북도 경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렵기만 합니다. 2008년말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최근엔 남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 등 어려움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 나라 일이지만 이런 위기들이 있을 때 마다 제일 힘들고 고통받는 건 중소상공인들이라는 걸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재단은 이런 소상공인들 곁에서 늘 함께 하며 든든한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겠습니다."문철상 이사장 프로필 - 1951년 1월 25일 전북 전주 출생 - 경영학 박사 -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현) - 국립 군산대학교 기성회장(현) - 군산 대건신협 이사장(전) - 전북 신협협의회 회장(전) - 신협 중앙회 이사(전) - 사진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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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현규
  • 2012.11.12 23:02

전주 구도심 공동화 - 원주민 이탈· 저소득층 유입 늘면서 슬럼화 가속

전주 구도심지역은 과거 중앙동·다가동·고사동·태평동 지역을 지칭한다. 1996년 정부의 5000명 이하 소규모 동 통폐합 정책에 따라 중앙·다가·고사동이 중앙동으로 합해지고, 2005년 태평동도 중앙동으로 통합되면서 현재 중앙동에 주소를 두고 있는 전체 거주 인구는 1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 △구도심 공동화해법 머리 맞대야주중에도 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전주시내 중심가. 업소에서 내어놓은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와 곳곳에서 나부끼는 홍보용 깃발, 그리고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간판들을 목격한 사람들은 벌써 몇 년째 지적되어온 전주 구도심 공동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에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거주한지 14년이 됐다는 이하길씨는 "화려한 옷가게들이 많지만 사실 그 뒷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매우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빈곤층이 많다"고 얘기한다. 이씨는 "아침이면 폐지를 주워가려고 시내에 나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들 이 동네 주민들"이라고 말한다.이씨는 그 자신이 이곳에서만 벌써 14년째 스포츠의류매장을 운영해오면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그래서 그가 겪고 지켜본 이웃 주민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주민이자 상인이다. 또 이씨의 자녀는 구도심에 위치한 전주초등에 다닌다. 중학생인 큰 아이도 같은 학교를 입학해서 졸업까지 했다. 예전에는 4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재학하던 큰 규모의 이 학교가 지금은 전체 학생 231명에 불과한 미니학교로 전락했다. 전주초등의 교무담당 이계자 교사는 "한 학급이 최소한 16명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한 학년에 한 반, 두 반 정도밖에 구성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중앙동 주민센터의 전종표 계장은 "구도심권이 시내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다들 외곽에 거주하기 때문에 유동인구는 많다"면서도 "거주지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전 계장은 "이 지역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있다 보니 낮은 임대료가 유지되고 이 때문에 저소득층이 많이 유입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다가동과 태평동 일대에는 빈 집이나 폐가가 많고 임대도 월 10만원 미만에서부터 심지어 무료로 내어주는 집도 많다.중앙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11월 현재 1만878명의 주민 중 1/4이 60세 이상으로, 상당히 높은 고령인구 비율을 나타내고 있고 이 가운데 독거노인은 530명에 달한다. 저소득층 비율도 높아서 기초수급자 620명, 차상위 등 기타 저소득층 555명, 그리고 장애인은 804명에 이른다. 전형적인 도시내 슬럼가 형성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전주 등 도시 쇠퇴 징후 시작1970~1980년대까지 시내 중심가의 역할을 하던 현 중앙동 지역이 주거지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은 전주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에서 내놓은 '도시쇠퇴현황'에 따르면 전국 144개 시·구 가운데 도시 쇠퇴 징후가 나타난 지역은 2/3에 해당하는 96곳에 달한다. 국토연구원은 이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낮아 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평가된 지역은 67곳이며, 이를 다시 쇠퇴가 진행 중인 44곳과 쇠퇴 징후가 시작된 23곳으로 나누었다. 전북지역에서는 익산·김제·남원이 쇠퇴가 진행중인 도시로, 전주·군산·정읍이 쇠퇴 징후가 시작된 곳으로 평가됐다.전북중소상인살리기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상인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의 이창엽국장은 "대형 마트나 백화점, 대규모 쇼핑타운과 같은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당장의 이해가 걸린 당사자들의 힘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업체가 활성화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우성 NGO시민기자(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투명사회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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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7 23:02

전주 태평동 최옥남 통장 "말로만 '구도심 살리기'하지 말고 살고 있는 주민들부터 보살펴야"

태평동 일부 지역은 지난 6월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재개발지역 해산고시가 내려지면서 재개발지역에서 해제되고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재개발지역에서 해제된 지역의 통장인 최옥남씨(58)를 만났다. -이 지역에 거주한 기간은.△30살에 이사 들어왔으니 이제 28년째다. 이사 당시에는 시내라고 해서 고사동이나 중앙동 등은 땅값이 비쌌던 지역이다. 요즘 시내 모습을 보면 너무 허전하다. 몸만 남고 모든 게 빼앗기는 느낌이다. 관공서니 사업소가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텅 비어버린 것이다. -재개발지역으로 묶이면서 무엇이 변했는지.△동네 곳곳에 무너져 내리는 빈 집이며 공터가 많다. 어린 아이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종종 목격한다. 노인인구가 많은데, 도시가스가 없다보니 전기담요만 쓰는 사람이 많다. 전기료가 많이 나가니 그것도 아끼느라 못쓰고 춥게 지내는데 그분들 건강도 심각하게 문제다.-시내에서 이렇게 가까운데 그동안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았나.△안 그래도 내가 그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그래도 이번에 재개발 해제가 되면서 도시가스가 들어오게 됐다. 주민들 서명을 받느라 무척이나 고생을 했는데, 내년 6월에 도시가스 보조금이 없어지기 전에 성사돼 다행이다.-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가장 큰 바람이라면.△공무원이든 정치인이든, 누군가 와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살아봐야 느끼고 아는 거지. 저소득층 지원도 좀 더 현실적으로 해야 한다. 올해도 같이 살지도 않는 자녀 소득이 올랐다고 탈수급 되는 노인들이 몇 분 있었다. 전기세 혜택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역 상인들과 교류도, 주민들 나이가 많아서 쉽지 않을 것이다. 말로만 구도심 살리기 하지 말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박우성 NGO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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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7 23:02

진안 대표특산물, 인삼·홍삼 - 국내·외 시장에 급속히 퍼지는 '진안 삼' 향기

진안은 해발고도 300~400m로 청정 고랭지 인삼을 재배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조직이 단단하고 백심(고갱이)이 없는 게 특징이다. 특히 다른 지역 인삼보다 사포닌 함량이 높고 약효가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진안지역에서 생산된 인삼의 수삼거래량은 한해 500억원에 달한다. 홍삼·약초 가공업체수가 102곳에 이르는 가운데 홍삼가공을 통해서도 300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진안군은 홍삼·한방산업 거점으로 도약하기 위해 홍삼·한방클러스터 구축사업을 추진 중이다. 홍삼한방특구를 지정받아 홍삼연구소, 우수한약재유통지원시설, 홍삼한방 농공단지, 홍삼스파 등을 속속 완공했다. 2010년 11월 준공한 홍삼연구소는 진안 홍삼의 명품화와 홍삼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에 나서고 있다. 우수한약재유통지원시설이 완공됐고, 홍삼·한방농공단지에는 국내 대표적 홍삼기업 천지양이 60억원을 들여 최첨단 우수 건강기능식품 제조기준(GMP) 시설을 갖춘 홍삼가공공장을 완공했다. 바로 옆에 전북인삼농업협동조합 홍삼가공 GMP시설도 둥지를 틀었다. 산약초를 테마로 하는 체험·휴양단지인 산약초타운은 지난 9월 공사에 들어갔다. '진안蔘'을 진안 인삼과 홍삼 통합브랜드로 내걸고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만 16억원의 수출계약을 이끌어냈고, 올해도 중국 광저우 유씨 등과 15억원의 수출계약을 추가로 맺어 올 실제 수출은 29억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진안 홍삼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도 세계 최대 홍삼시장인 홍콩 등 국외 4개국, 국내 27개소에 문을 열었다. 전국 한의원 40곳에 홍보판매부스도 설치했다. 한방 분야의 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할 한국한방고등학교도 2010년 3월 문을 열었다. 한방산업분야의 특성화 고교가 문을 연 것은 전국적으로 처음이다. 특히 전국 최초의 홍삼연구소가 진안 홍삼의 품질을 관리하고 진안군수가 진안 홍삼의 품질을 보증하고 있다. 진안군수 품질인증제는 홍삼연구소의 기술지도로 주요사포닌(Rb1, Rg1, Rf, Rg3)이 검출된 진안의 우수제품 품질을 진안군이 보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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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문
  • 2012.11.07 23:02

전국 첫 홍삼명인 송화수씨, 친환경 재배법 전파…홍삼 반건식 인삼증삼기도 개발

진안군에서 국내 유명 타 지역의 장인을 제치고 전국 최초의 홍삼명인이 나왔다. 충남 금산을 비롯해 강화, 풍기, 포천 등 전국 유수지역의 인삼 관련 홍삼제품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홍삼분야의 명인으로 지정된 인사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거둔 성과여서 주목받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진안군 부귀면 삼신인삼(영) 대표이사 송화수씨(79·사진)를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44호로 지정했다. 송화수 명인은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소개된 전통 홍삼 제조법을 원형대로 계승해온 장인으로, 반건식 증삼기 개발과 홍삼한방특구 지정 등 진안 홍삼의 명성을 쌓는데 일조한 공로도 인정받았다. 삼신인삼 영농조합은 4대째 홍삼 사업을 가업으로 이어오는 뿌리 깊은 사업체다. 송화수씨는 3대 장인으로 '송화수 홍삼'을 브랜드로 내걸고 45년 동안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여러 건의 특허를 출원, 취득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수출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송씨가 홍삼과 연을 맺은 것은 7세 때 고향인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에서 할아버지가 한 뿌리 두 뿌리 만들어주던 홍삼을 먹기 시작하면서다. 조부는 황해도 연백과 개성, 충남 금산을 오가며 일찍이 인삼재배에 관심을 갖고 마을 최초로 인삼을 경작했다. 이 같은 인삼재배 및 홍삼 가공 기술은 송씨의 부친 송주방씨에게 전수됐다. 송씨는 28세 때 진안 마령면 덕천리 안방마을에 터를 잡고 인삼을 경작하며 홍삼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홍삼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33세 때 가업을 이어받은 후다. 이 과정에서 그의 이름 뒤에 수많은 이력이 따라붙었다. 전북인삼협동조합 최연소 전무이사를 비롯해 충남금산인삼농협 전무, 삼신인삼대표이사, 농림수산부 신지식인장 선정, 진안군 인삼가공협의회 초대회장 등 걸어온 길이 화려하다. 현재는 홍삼가공업체를 운영하며 올곧게 정통 홍삼제조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인삼 환원순환농법을 통한 친환경 재배농법을 전파하고 최고의 홍삼가공을 위해 반건식 인삼증삼기도 개발했다. 태극삼, 홍삼가공기술로 후진을 양성하고 연간 30톤의 홍삼을 생산하며 국내 최초 홍삼제조 체험장인 전통증삼소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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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1.0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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