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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지도의 '달인' 임진모 교사 "탐구활동·과학체험은 사고력·창의력 발달에 도움"

과학동아리 하면 근영여고를 떠올릴 만큼 등식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 각종 전시, 공모, 시상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과학동아리 출신 학생들이 입학사정관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유명 대학에 진학한 것도 이미지를 높인 계기가 됐다. 과학동아리는 이제 발명이나 탐구활동을 뛰어넘어 탐구활동에서 얻은 결과물을 갖고 봉사에 나서는 등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자원봉사 활동 역시 스펙 쌓기 차원이 아닌, 진정성 있는 봉사라는 점이 인정돼 전국 최우수 단체로 평가받고 있는 중이다. 이런 활동의 중심에 임진모 지도교사(41)가 있다. 동아리 지도활동의 '달인'이다. 지식왕,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수상했고 과학동아리가 전국자원봉사대축제 대상과 전국자원봉사대회 은상 등을 수상할 수 있도록 지도한 주인공이다. 궁금한 점이 많은 터에 푸르덴셜 사회공헌재단이 주최하는 전국자원봉사대회 은상 수상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수상한 다음날인 12일 근영여고 송지관 진학실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3학년 담임을 맡으면서 과학동아리를 지도하고 때로는 토일요일에 체험활동을 해 왔는데 힘들지 않나요. "동아리활동은 움직이는 만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비록 몸은 힘들지라도 변화에 대처하면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항상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어제(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 시상식에 다녀오셨죠. 분위기가 어땠어요."봉사활동하는 청소년들, 대단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또 한번 배우고 왔어요. 봉사활동의 테마와 트랜드 등에서 교훈되는 점이 많았는데 새롭게 시도하려 합니다."푸르덴셜 사회공헌재단이 주최하는 올해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에서 전주 근영여고 '과학탐구동아리 C&C'는 은상 수상자(이소정 양 등 20명)로 선정됐다. 이 대회에는 전국에서 총 1,759건(6,406명)이 응모했고 지난 11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지난달에는 전국자원봉사대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어떤 내용입니까."4월에 계획서를 작성해서 5월 한달 동안 봉사활동을 펼쳐 경연을 벌이는 대회인데, 봉사활동의 진정성을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과학축전 과학축제 등 교외 과학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폐안경 나눔 캠페인과 재활용비누 제작 판매 등의 활동을 펼쳤습니다."-최근 3년간 수상경력이 19차례나 되던데 웬 상을 이렇게 많이 받았습니까."과학탐구대회와 과학체험, 청소년 멘토링자원봉사 활동과 관련한 것들인데 몇년 동안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공모전 참여가 마치 취미처럼 됐어요. 아이들한테 입시에 도움도 되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지요. 노하우가 축적되다 보니 이젠 경쟁력이 강해져 마약처럼 돼 버렸어요."-과학동아리 'C&C'('C&C'는 Chaos와 Cosmos 이니셜)는 어떤 동아리입니까."1998년쯤 천문관측과 과학교과 관련 스터디그룹으로 시작된 동아리예요. 처음엔 교내 활동에 주력했는데 나중에 밖에 나가 활약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이 있었어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접목한 뒤 전국적인 축전이나 공모전, 선진 사례 등에 참여하고 발표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볼 수 있지요. 과학탐구와 체험, 봉사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언제부터 이 동아리를 맡아 지도해 왔습니까."2003년부터 맡았는데 당시 과학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1년씩 지도했어요. 그런데 나중엔 맡아 할려는 선생님이 안 계셔서 제가 맡았어요."-어떻게 운영하고 있나요. 예를 든다면."활동적인 동아리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탐구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는데 2004년 영화속 과학원리 찾기를 주제로 한 탐구가 교육청 공모에서 선정되면서 자신감을 가졌어요. 대한민국과학축전을 견학하면서 과학체험 프로그램 운영의 방향을 모색하고 실생활에서 과학원리를 찾아 제품을 만들어 기부도 하고 있고요. 폐안경 활용과 재활용비누 등을 판매해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고 자림원 등 시설을 찾아 봉사하는 등의 활동을 병행합니다."-작년에 '올해의 과학교사상'(교과부 주최)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어떤 계기였나요."과학동아리 운영과 과학탐구, 과학 관련 우수 활동사례를 평가한 것인데 심사를 잘 해주신 것 같습니다."-상금도 주던가요."500만원 받았습니다."-지난 2007년에는 제6대 지식왕(한국과학창의재단)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지식왕이란 것은 뭡니까."학생들의 과학 관련 질문에 답변한 것을 놓고 평가하는 것인데 어려운 질문들이 많아요. 답변중에 선택에 도움이 되면 좋은 평가를 받아요. 공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창의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선정합니다." -대학입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대학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입학사정관들이 방문하면 특장점들을 설명하는데 그때마다 진정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해 주었습니다. 외부 수상의 경우 사교육에 의존한 것인지, 학생의 의지에 의한 것인지를 중요하게 판단해 결정하게 되는데 봉사대회의 경우 동아리 회원들의 적극적인 의지에 의한 것으로 입학사정관들이 평가해 주었습니다."-학생들에겐 어떤 점들이 도움이 됩니까."탐구활동이 과학체험 프로그램으로 이어져 호기심과 창의력이 길러지고 봉사활동까지 병행하기 때문에 '사람공부'도 하게 됩니다. 장애인 등 여러 계층과 만나 함께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면 그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요. 선후배간 입시경험 공유, 공동체 의식 함양, 발표력 향상 등 좋은 점이 많아요."-창의력 향상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그렇습니다. 과학체험 봉사활동의 경우 이론적인 바탕에다 시범 운영, 다양한 방법의 설명, 프로그램 실험방법 전환 등의 학습을 하게 됩니다. 동영상을 제작할 때도 스스로가 디자인하고 기획출연제작하기 때문에 창의력이 향상되고 옆에서 돕기 때문에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되지요. 이런 활동을 하게 되면 자기소개서 등을 작성하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동아리 회원은 아무나 가입할 수 있나요."매년 선발을 통해 학생들을 뽑아요. 과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남다른 학생들이 모집 대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지가 강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1학년에서 3학년까지 22명인데 희망한다고 해서 모두 가입되지는 않아요. 인성 적성 등 기본적인 걸 다 봅니다. 적성을 가장 많이 고려합니다." -학생들은 수능이다, 괴외다 해서 선뜻 동아리 활동을 하려 하지 않을 텐데요."학기 초에 들어왔다가 적성이 맞지 않거나 활동이 너무 다양해서 나중에 탈퇴하는 경우도 있어요.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싶어하는 인문계 학생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과학체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과학체험을 할 때마다 데리고 다닌 적도 있어요. 그 학생은 지금 교사가 돼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입시제도가 기계적인 수치를 적용치 않고 창의력을 테스트하는 쪽으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 인기를 더 끌 수도 있겠네요."사실은 향후 입시제도가 창의력에 비중을 두는 쪽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이런 활동을 시작한 측면도 있어요. 여학생 특유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활동, 개별적 활동보다 공동체의 활동을 유도하는 쪽으로 동아리 활동을 전개시켜 나가려 합니다." -대학 입시에선 어떤 성적을 거두었나요."재작년 이화여대 미래인재 전형에서 뛰어난 실적을 거두었고 작년 서울과학기술대와 전주교대, 전북대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좋은 결과를 나타냈습니다."-동아리 활동에 매진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2003년 방송부와 과학동아리를 함께 맡았었는데 과학 관련 여러 단체의 활동이 과학교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어요. 학생 중심의 활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고 여학생들이 할 수 있는 즐거운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이 동기라면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지원사업에 관심을 가졌고 교육청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에 힘입어 공모전 참여 등으로 확대했어요. 돈이 문제인데 지원금을 통해 학생들의 적극성과 도전의식이 커져갔고 지도하는 것 역시 역동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동아리의 우수한 실적이 학교 이미지에도 크게 보탬이 됐겠어요. "저 뿐만 아니라 과학교사들의 노력을 통해 과학과 관련한 우수한 실적을 거두었어요. 학부모와 학생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학교 이미지 향상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한민국 좋은 학교 박람회'에 우수사례로 소개돼 홍보효과가 컸고 박람회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젠 '과학체험동아리=근영여고' 등식이 성립했다고 자부합니다. 중학생 대상 우수학생 유치활동 때 덕을 많이 보아요."-학교 차원의 인센티브는 없나요."대학입시에 치중하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걸 꺼리는 학교들이 많은데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활동 하는 걸 허용하고 포용합니다. 이 자체가 인센티브라고 해야죠. 입시가 코앞인데 아이들 데리고 어딜 나가느냐는 학교가 사실 많습니다. 수상하면 교장선생님께서 플래카드도 걸어주시고 관심이 많아요."-동료 교사 얘기 들어보니까 실력뿐 아니라 열린 사고와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하더군요."좋게 평해 주신 것이겠죠. 가급적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고 관찰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려면 눈높이를 맞춰야 하고 이이들과 어우러져야 합니다. 아이들 관찰하는 게 습성이 됐어요. 그랬더니 불편함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얼굴 표정을 보고 "너 어제 엄마하고 싸웠지"하면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와요."-그런 열정이나 철학은 어디에서 나오나요."학교 다닐 때 '수면제'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계셨어요. 졸리게 수업한다는 뜻이지요. 교단에 섰을 때 혹시 나에게도 그런 별명이 붙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업때 음료수 5개를 준비해 두고 학생들 반응이 시원찮을 때마다 음료수를 들이마시며 '화, 맛있다'하며 주의를 환기시키며 수업을 했는데 다행히 음료수 한개 마시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자기노력과 도전이 반복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데 입시에 소홀하지는 않을까요."동아리 운영은 곧 입시와 연계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3학년 담임을 맡아 수행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돼요. 입시 변화 흐름을 알 수 있고 대처하는 방법을 먼저 파악할 수 있는 잇점이 있어요. 몸은 힘들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면 플러스 효과를 볼 수 있어요."-동아리 지도교사 활동을 하다 보면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요."이런 활동을 하지 않아도 대학 갈 수 있는데 굳이 어렵게 그런 활동을 하는 이유가 뭐냐는 기류가 있어요. 일부 학부모는 물론 동료 교사들까지도 성적의 중요성만을 고집하며 동아리활동을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런 게 제일 힘들어요. 초창기 땐 학생은 지원하고 싶어 하는데 부모가 말리는 일도 많았어요. 지금은 교내외 활동 모습을 보고는 함부로 안해요. 동아리 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활동을 통해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나눔보다는 개인적인 욕심에 치우친 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있어 상처 아닌 상처를 받는 일도 있어요."-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한마디 조언한다면. "학생들의 창의력은 곧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극이 있어야 해요. 자극이 있어야 동기유발이 되고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고 봐요. 동기를 부여하고 의욕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

  • 기획
  • 이경재
  • 2012.09.18 23:02

'로터베이터' 국내 40% 점유·30여개국 수출

국내 농기계 제조업체들이 불황에 허덕이고 있지만 올해에도 30%의 성장 목표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익산낭산농공단지의 위캔글로벌(주).논이나 밭 갈아엎기 등의 용도에 사용되는 로터베이터를 생산하는 위캔글로벌은 회사설립 8년만에 국내 시장 40%를 점유하는 놀라운 성장세를 거듭하며, 세계 30여개국에 수출까지 하는 유망 중소기업이다.뛰어난 기술력과 우수한 제품 성능을 인정받아 올해초에는 농협중앙회와 로터베이터 독점 임대계약을 체결해 50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단번에 기록하기도 했다.특히 위캔글로벌(주)은 최근 호주와 태국 등 현지 실정에 맞춘 로터베이터까지 주문제작을 받으면서 국내 유수 농기계 제작업계로부터 눈여겨볼 대표적 유망 중소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기술력이 경쟁력'위캔글로벌'은 지난 2004년 12월 설립됐다.불안하기만 한 농기계 제조 사업 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 그것도 세계를 향해'라는 뜻에서 회사명을 '위캔글로벌'로 결정했다.처음엔 변변한 제조설비도 갖추지 않았지만, 2006년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해마다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2007년 농업용 기계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며, 'ISO 9001' 인증을 받으면서 해외 수출길도 열리기 시작했다.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과 호주에 이어 독일로 수출이 시작되면서 그리스, 호주, 인도, 시리아 등 30여개국으로 수출국이 늘어났다.이런 성과에 힘입어 2008년에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수출 유망 중소기업으로 지정됐고, 2010년에는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으뜸상품으로 인정받기도 했다.기술력과 뛰어난 제품으로 승부해 보겠다는 이 회사 김준환 대표는 연구팀을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는다.김 대표가 직접 참여하는 연구개발전담부서의 성과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단순할 것 같았던 로터베이터는 지역별, 토질별로 60여종류가 개발돼 농축산 현장 맞춤식으로 편리하게 사용된다.특히 특허만 30개를 획득하며 기술력과 독창성을 인정받는 회사로 현재 우뚝 서 있다.△최첨단 시스템 구축위캔글로벌은 로터베이터 전문 생산회사이기에 로터베이터 만큼은 그 어떤 곳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저렴한 부품을 공급받아 사용하지 않고, 100% 자체 생산해 로터베이터를 생산한다.외국에서 들어오는 로터베이터와 달리 토속적인 특성을 갖춘 것도 위캔글로벌만의 큰 자랑이다.회사에서 맞춤식으로 로터베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서 해외 수출도 날로 늘고 있다.해외 현지 사정에 맞도록 맞춤식 로터베이터를 생산하고, 가격 또한 저렴한 경쟁력은 해외 시장의 구미를 당기게 했고, 이런 경쟁력은 고스란히 국내 내수 시장을 단숨에 40% 가까이 장악하는 성과로 이어졌다.올해 초에는 농민들로부터 하자나 고장 없는 로터베이터로 손꼽히면서 농협중앙회와 독점으로 임대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계약액만 50억원에 이른다.최근에는 호주에서 맞춤식 대형 기계를 주문한 상태로, 여기서도 50억원에 이르는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피나는 노력과 끊임없는 기술개발이 살 길'이라는 위캔글로벌은 매년 1억5000만원 이상을 순수한 신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위캔글로벌의 경쟁력이 여기서 쏟아져 나온다.△목표는 끝없는 도전위캔글로벌의 목표는 '세계 시장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현재 30여개국의 해외 수출을 동남아시아 쪽으로 방향을 옮겨나갈 계획이다.후진국이지만 농축산업이 많아 위캔글로벌이 반드시 거쳐야 할 시장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토질이 비슷해 위캔글로벌이 자신 있어 하는 시장이기도 하다.가까운 목표도 있다. 해외시장에서 당당히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도내에서는 위캔글로벌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농도인 전북에서조차 그 이름을 알리지 못해온 것이다.향후 수출시장에 대한 비중을 늘려가면서 도내에서도 농민들과 꾸준히 접촉해 나갈 계획이다.또한 농업과 축산업에 사용되는 로터베이터에 그치지 않고, 산업기계 생산에도 도전해 볼 의욕이다.하이브리드 차량과 접목할 풍압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특허와 고층 건물의 화재진압에 유용하게 쓰일 특허를 가진 위캔글로벌의 도전은 오늘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 기획
  • 김진만
  • 2012.09.18 23:02

김준환 대표의 다짐 "100여개국에 진출 매출액 1조원 목표"

"처음 시작할 땐 악조건은 다 갖췄었죠. 우리집은 물론 처갓집에서도 말렸고, 돈을 벌지 못하던 3년 동안은 집에도 잘 들어가지 못하고, 공장에서 생활했어요." 2004년 경매로 익산낭산농공단지의 커다란 공장을 인수한 위캔글로벌 김준환 대표(50사진)는 3년 동안 처갓집을 한 번도 못 갔다.기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그가 농기계 제조회사를 설립한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죽기살기로 극구 말렸다.사실 김 대표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지휘자였다."음악해서는 먹고살기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선택한 게 농기계사업이었는데 집에선 음악할 때보다 훨씬 더 말렸었죠."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정도가 지나면서 경험이 쌓이고 이젠 반드시 수출해봐야겠다는 오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처음 3년간은 전기세를 못내 회사 전기가 끊어지는 게 부지기수고, 통장에 압류가 들어오기를 수차례.그런 김 대표가 내놓은 첫 번째 성공작은 연료 40% 절감 로터베이터였다."기름 값이 급상승했고, 농기계도 여파가 상당했어요. 기계의 무게를 줄이고, 국내 여건에 맞도록 설계해 시장에 내놓았는데 여기에서 기술력과 제품력을 인정받았어요."설마하던 농민들이 위캔글로벌의 로터베이터를 사용해 보고,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몰리기 시작했다.좁은 국내 시장에 제품을 내놓으면서 김 대표는 곧바로 수출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미국의 브림사를 시작으로 영국과 그리스, 시리아 등에서도 위캔글로벌의 로터베이터의 제품력을 인정하면서 주문을 시작했다."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해외시장에선 굉장히 배타적이고,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었죠. 무조건 만나고 설명하고, 이용하도록 해보는 방법뿐이었어요."이젠 30여개국의 수출국을 100곳 이상으로 넓히고, 제품의 다양화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특히 대형 로터베이터는 국내 독보적 생산 업체로 자리매김하면서 목표도 매출 1조원이라는 큰 꿈을 꾸고 있다.김 대표는 "8년만에 급성장했다고 하지만, 겪어야 할 시련과 고통을 함축했던 것 같다"며 "위캔글로벌이 오늘에 최선을 다하면서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회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진만
  • 2012.09.18 23:02

도내 여성노동 실태 - 고용 푸대접에 임신·출산·육아권리 침해 '만연'

"억울한 심정을 아무래도 여성단체가 잘 들어줄 것 같아서 여기 전화했어요" "담당근로감독관이 회사입장에서만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어요"이렇게 전화선을 타고 들리는 아슬아슬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전북여성노동자회가 운영하는 고용평등상담실(063-286-1633)의 하루는 시작된다. 경제위기로 인한 피해를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입었다는 것은 새로울 것 없는 얘기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여성노동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고 일자리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성별 특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로인해 여성고용대책은 전무하다고 평가되는 상황이며 여성노동은 이름도 정의되지 않은 채 다양한 고용의 형태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여성이 겪는 기막힌 이야기들가장 가까운 일례로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짧게는 1년, 길게는 20여년을 근무해왔던 여성들로, 용역업체를 통해 선발되어 학교의 청소를 담당하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학교 청소외에도 용역업체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청소는 기본이고, 물건을 진열하고 포장하는 등 부당노동과 차별의 문제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였지만 사측이 교섭을 거부하면서 이 문제가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문제해결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대학교와 용역업체는 서로간의 긴밀한 관계를 부정하면서 책임소재를 떠넘기기에 바빴다. 청소노동자들이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이 소속되어 있는 곳이 용역업체이다보니 아무도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어떠한 관심도 책임의식도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부업체를 통해 공급하는 형태의 간접고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용역이나, 파견, 사내하청, 도급 등 복잡한 고용형태를 만들어 가며 확산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은 심해지고 있다. 작년 고용평등상담실의 상담사례 분석결과에 따르면 유형별로는 고용관련 71%, 모성보호권 26.8%, 성희롱, 성차별 2.6% 순으로 나타났다. 고용관련 상담부문에서는 부당해고 및 부당행위 21%, 임금체불 8.1%, 직업병 및 실업급여 42%를 차지했고, 모성보호관련 상담부문은 출산휴가 19%, 육아휴직 7.8%, 직장 내 성희롱 2%, 성차별 0.6% 순으로 확인됐다. 특히 올해 7월까지 진행된 상담 현황에서도 전북지역 여성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관련한 산전·후 휴가 및 성희롱과 임금차별 등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었다.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사례를 통해 전북지역 여성노동의 실태를 살펴보자. △정규직도 모성권은 '그림의 떡'"임신 중에도 야간업무를 하지 않으면 퇴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작은 공장에서 일해 온 그녀는 주·야간 근무를 해왔다. 결혼한 지 수 개월 만에 임신을 하였지만 유산이 걱정 되어 상사에게 주간근무만 하고 싶다고 했더니 야간을 안 하면 퇴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앞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꼭 회사를 다니고 싶은데 회사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라는 고민이 깊어진다."저 아이 가졌어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여성은 해고의 위험에 직면한다. 비정규직이 아닌 그녀에게도 모성권은 아직도 그림의 떡이다. 출산과 육아, 이에 따른 휴직이 여성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오늘날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을 것이냐는 문제를 좌우하는 결정권은 고용주나 기업이 갖고 있다는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진 않는다. 이 외에도 산전·후 휴가나 육아휴직을 쓰려면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등의 퇴사 압력은 여전히 존재했고, 실업급여를 줄 테니 그만두라는 종용도 있었다. 저출산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공감되고 있지만 기업의 관행과 법 제도에 대한 낮은 이해도로 인해 여성노동자들의 임신·출산에 따른 해고 및 불이익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직장내 성희롱 여전업무결재를 받으러 사장실에 들어가면 서류를 주고받을 때 슬그머니 잡는가하면 일하고 있으면 살며시 다가와서 등을 쓰다듬는다. 너무나 놀라 화를 내면 예뻐서 그러는데 화낸다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한다. 딱히 성희롱이라고 하기도 그러고 그냥 넘기잖니 불쾌하다."정규직 직원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였는데…"서른다섯 살 K는 식당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이다. 제조업회사의 직원들이 매일 이용하는 구내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정규직 남직원이 식당까지 와서 허벅지를 만지는 등의 성희롱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K는 그 순간순간이 너무도 고통스러웠지만 용역업체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다가 잘리까봐 말을 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매년 사업주나 상사의 성희롱 상담의 비율은 일정한 부분을 꼭 차지한다. 위 사례처럼 업무적으로 소수이거나 둘만이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서 부당한 성적요구나 사적인 친밀감을 성적언행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잦다. 이를 거부하면 해고 및 인사상의 불이익 같은 오히려 여성에게 보복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에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 규정되었지만 많은 성희롱 발생 사업장의 79%(2009년)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 △여성 노동의 가치 인식 아직은 요원여성들의 권리의식은 해를 거듭 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상담을 통한 사례들 중 모성권에 관련한 부분에 대한 문의상담이 매우 많았고 산전·후휴가 기간 동안 급여 보장이나, 상여금 지급에 대한 문의도 많았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고용주와 사업장의 현실은 법규 이행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며 당연히 가능해야 하는 육아휴직과 이후 복귀 등의 자연스러움이 여성노동의 현실엔 그저 높은 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체 여성노동자의 73%가 비정규직이고 이 중 다수는 겨우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 이하 임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 여성들은 100인 미만 중소업체, 비정규직, 저임금, 비공식노동, 영세자영업 등의 나쁜 일자리에 편중되어 있다. 고용과 해고, 경력단절에 이은 비정규 혹은 저임금 노동시장으로의 진입과 퇴출의 반복이 마치 여성노동의 붙박이 형태가 될 판이다. 정말 여성노동의 가치를 알기는커녕 이대로 여성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이 드리워진 현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여성이 가정과 일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임신·출산·양육을 수행하면서 노동시장 진입과 이탈은 언제 하는지, 일터에서 여성들은 남성들과 얼마나 다른 일을 하는지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변화가 시급하다. '단지 그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2등, 3등 시민으로 대우받는 사회가 아닌 누구나 온전한 시민으로서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노현정 NGO시민기자(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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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우
  • 2012.09.17 23:02

"여성차별 꾹꾹 참지말고 공개하고 도움 요청해야" 전북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김익자씨

김익자 전북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운영자로부터 노동현장에서 차별받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고용평등 상담실은 언제 부터 운영이 되었고, 어떤 상담들을 할 수 있는지.△지난 1997년 5월에 개소해서 지금까지 상담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에서부터 퇴직까지 임금과 대우 등에서 다양한 차별을 경험한 부분을 상담하고 있다. 또한 도내 기업기관 등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과 출산전후 휴가나, 육아휴직 등의 관련 제도 등을 홍보하고 있다.-현재 운영되고 있는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어떤 제도개선과 법개정투쟁을 전개하고 있는지.△우선 성희롱에 있어 고객이나 업무관련자에 의한 성희롱은 제재할 수 조차 없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이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제재가 미약하고, 성희롱 피해자 구제 및 피해자 보호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직접적인 제재 규정을 마련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정신적 상처에 대한 산재 인정이나 성희롱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작업거부권 등의 내용이 포함된 법제정 활동을 진행 중에 있다. 이외에도 돌봄서비스영역의 노동자 인정을 요구하는 부분과 최저임금 인상 투쟁 등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의 현장에서 차별을 받는 여성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분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고통을 꺼내기를 두려워한다. 더욱이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이 외부에 공개되거나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정말 심각해질 정도로 참다참다 오시는 분들이 많다. 이렇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매우 어려워지기도 한다. 정말 자신의 일하는 노동현장에서 차별을 겪게 되었다면 옆 동료나 지인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서 문제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전화 한통으로 일할 권리를 찾을 수 있다. 노현정 NGO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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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우
  • 2012.09.17 23:02

김동준 전북과학대학교 총장 "우수 전문인 양성, 제2 도약 위해 적극 투자"

전북과학대학교 김동준총장과 인터뷰를 위해 지난14일 총장실을 찾은 기자에게 김총장의 첫마디는 "지난해 부임해서 보니 학교가 너무 침체돼 있었다"는 말이었다. "학교와 학생, 지역사회가 교류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돌아가는것을 보고 놀랐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수해 복구 및 헌혈에 동참하며 새로 준공한 체육관을 지역민들에게 무료 개방하고 수도권의 학생들도 찾아올수 있는 역발상을 실현하겠다는 김총장으로부터 향후 학교 운영 및 발전 방안에 대해 들었다.- 지난해 교과부의 대학평가에서 부실대학으로 지정됐다가 올해 우수대학으로 올라서기까지 쉽지 않았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무척 기쁩니다. 돌이켜 보면 결코 쉽지 않은 1년이었습니다. 우선 지난 1년간 저와 함께 학교의 각종 지표를 개선하고, 실질적인 교육내용을 개편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해온 교직원들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지난 1년간 우리대학교는 훌륭한 전임교원 17명을 투명한 공개채용으로 새로 모시고, 최첨단 시뮬레이션 간호 실습실을 투자하고, 교비 60억원을 투자하여 제2생활관을 건축했으며, 실내 체육관을 준공하는 등 제2의 도약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올해 우수대학으로 올라선 것은 이런 투자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올해 정부의 발표에서 '재정지원 가능대학'으로 분류된 만큼 내년에 반드시 교과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을 지원 받아 학교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시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계획입니다. - 전문경영인에서 총장으로 부임 2년차를 맞았는데 교육 철학은.△ 교육은 각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스승의 충고 한마디, 비전 제시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습니다. 때문에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의 전달보다는 교수님들이 사랑으로 각 학생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가능성을 발견하여 격려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전문경영인 출신으로 대학행정에 대해 잘 몰랐던 점이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실질적인 개선을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기업경영과 대학행정은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부여를 해 변화와 발전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총장으로 대학운영과정이 쉽지만은 않을텐데, 어려운 점은?△ 무엇보다 앞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고등학교 3학년 졸업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교과부는 대학구조조정을 목표로 각 대학을 몇 가지 지표로 서열을 매기고 하위에 머무는 대학은 부실대학으로 지정해 사실상 퇴출을 유도하고 있는데, 이는 대학사회가 맞이한 초유의 사태입니다. 장기적인 발전을 생각하기 이전에 일단 살아남아야 하는 일이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됐습니다. 이제는 최신 기술과 지식을 갖고 대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대학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잠시 동안 일을 할 수 있을 뿐이고, 일생동안 여러 번 직업을 바꾸는 세상이 됐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긴 인생을 헤쳐나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덕목을 가르치는 것으로 오히려 우리대학교의 경쟁력을 삼고자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자연환경 속에 전인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전국 어디에서도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내고 싶은 학교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 중소도시에 소재한 전문대학교로서 지역사회와 협력적 관계는.△우리대학교는 정읍, 고창, 부안 등 전라북도 서남권의 유일한 대학교입니다. 때문에 이 지역에 필요한 여러 전문 분야의 인력을 길러내고, 지역민들에게 재교육,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무입니다. 디자인, 호텔조리, 간호, 치위생, 안경광학 등을 배우기 위해 우리 지역의 학생들이 수도권까지 가는 것은 엄청난 낭비일 것입니다. 향후 새만금과 정읍첨단산업단지에 많은 기업들이 입주하게 될 때, 필요한 전문인력을 우리 지역 현지에서 길러내는 것이 또한 중요한 과업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전인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한 RC(Residence College)교육프로그램 중에서 정읍지역 사회와 많은 부분에서 협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내장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정읍지역 우도농악의 전통, 승마캠프, 수영장 등은 학생들에게 좋은 체험교육의 장을 제공해 유학 온 학생들이 졸업 후에는 언제든 전라북도를 다시 방문하고 싶도록 만들 것입니다. - 학생들의 취업문제가 중요한 잣대로 평가받고 있는데 어떤 복안을 갖고 있습니까.△ 이제는 대학이 졸업생들의 취업률로 평가받고 있는데 평가방법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일단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평가지표인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인위적인 어떤 부당한 방법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대학교는 안경광학과, 미용예술과의 경우 실질적인 취업은 됐는데도 졸업생들의 근무처에서 4대보험 가입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평가지표인 취업률에 반영되지 않아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졸업생들에게 근무처에서 4대보험 가입이 기본 복리후생이 될 수 있도록 홍보와 설득작업을 적극 펼치겠습니다. 올해 초에는 취업지원센터를 개설해 가동하기 시작했으며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세심한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전북과학대학교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과 비젼은 무엇입니까.△ 전북과학대학교의 설립이념은 '우수한 기술인력의 양성을 통한 교육입국'입니다. 이 이념에 맞추어 지역사회 개발과 국가산업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전문산업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대학교의 비전은 '따뜻한 마음과 창의적 역량을 갖춘 전문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물질만능의 현대사회에 학생들이 함몰되지 않고 어느 분야에서든지 따듯하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예의를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길러내고 싶습니다. 우리대학교의 학생들이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신을 존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미래를 성실하게 준비하는 학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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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장훈
  • 2012.09.17 23:02

⑤ 내의업계 1위 비결 - 끊임없는 연구 개발소비자들 욕구 충족

1946년 전북에 한흥 메리야스를 창업한 이래 50년간 우리나라 내의 산업을 선도해온 BYC는 오직 내의생산에만 전념함으로써 세계 속의 속옷 전문 메이커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다.초기 소규모 가내 공업 수준이었던 한흥 메리야스를 1957년 양머리 모양의 백양 상표로 등록하면서 KS마크를 획득했고 1979년 2월 백양으로 상표를 변경했다. 당시 백양은 국내 내수산업에 전념했으나 1980년 대 들어 OEM방식을 탈피, 쇄도하는 수출물량 전량을 소화했다.이후 상품의 경쟁력이 있을 때 이익을 조금 남기더라도 고유 상표로 최종 소비자가 백양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결정으로 오늘날 BYC가 탄생했다.BYC는 원사부터 완제품까지를 자체 보유 생산 시설에서 생산하는 '일괄생산공정'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수한 품질의 내의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세계 최고의 편직 원단을 생산한다.무결점에 도전하는 첨단 기술공정으로 BYC는 자체 기술 연구진이 개발해 설치 가동 중인 최첨단 모소, 실켓, 염색, 표백, 수제, 가공, 봉제 기능을 비롯한 모든 기계설비, 염료 등은 컴퓨터와 연계돼 원단을 캠 장비가 캐드의 데이터대로 자동 재단함으로서 생산성을 높였고 장비의 자동화로 인해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변천을 이뤄냈다.또한 철저한 품질관리로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고 내의 업계를 리드하는 디자인 연구소 및 기술 연구소를 일찍이 설립해 고객의 패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독특한 디자인과 컬러를 개발해오고 있으며, 여름철 내의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모시메리, 땀 냄새를 없애주는 내의인 데오니아 등을 개발해 능력을 검증 받았다.중저가 제품의 BYC가 중고가 제품인 스콜피오 등 소비자의 욕구에 편승한 다양한 가격정책의 제품 출시가 가능했고 1989년부터 내의업계 최초로 시행해 온 BYC 전문점 정책이 유통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현재 전국적으로 3000여 개의 판매망을 유지하고 있으며, 30여 백화점, 50여개의 할인점, 연금매장 등의 매장을 확보하고 있다.또한 전국 주요 도시의 상가 20여개의 본사 직영 대형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맞춰 '세계인의 우리상표 BYC'를 슬로건으로 세계 70개 국의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BYC의 성공은 '백양'이라는 상표를 외국 브랜드에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BYC라는 고유 상표를 개발한 점이 컸으며, 합리적 유통관리와 건실한 재무구조 또한 원사부터 완제품까지를 일괄생산 공정하는 체계로 우수한 품질의 내의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 모든 과정 뒤에는 '과학과 기술의 접목'이 주효하게 작용, 과감한 투자로 고부가 제품개발을 선도하는 R&D 투자 등으로 국내 최초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국내 내의업계의 패션경향을 주도해 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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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모
  • 2012.09.13 23:02

김광열 전주공장장 "내의는 과학…사양산업 아니죠"

세계인이 입는 옷 BYC의 발전사에는 숨은 1등 공신 김광열 전주공장장(58·BYC 이사·사진)이 있다.BYC 기업의 '심장부'로 불리는 전주공장에서는 BYC 전체 생산 물량의 100%를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를 방증하듯 BYC 본사에서는 전주공장을 '심장', 본사를 '머리', 개성공장을 '다리'로 간주한다.김 공장장은 지난 1980년 1월 숭실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해 2월 BYC에 평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본사와 각 소재지 공장 등 핵심 보직에서 조직의 싱크탱크로 활동해 왔으며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10년 11월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BYC 이사이자 전주공장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BYC의 심장이라 불리는 전주공장을 별 탈 없이 끌어가고 있다. BYC 내부에서는 이런 그를 '냉철한 두뇌 뜨거운 가슴'의 소유자로 칭하고 있다. 32년 간의 재직 생활을 통해 평사원에서 임원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것.김 전주공장장은 "30년 전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원단을 재고 자르는 수공업 형태로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가 없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모든 기계가 컴퓨터 데이터화 돼 있어 기계 자체가 스스로 알아서 제품을 생산, 한마디로 '내의는 과학'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매일같이 개성 공장을 입출입하다보니 위험도 느끼지만 이젠 내 집과 같이 지리에 훤할 정도"라며 "부족한 날 믿고 따라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BYC의 핵심 간부로 근무하고 있으며, 날 알아주는 용장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내 가치가 빛난다는 말처럼 한영대 회장님의 아낌없는 지원과 배려가 오늘날 BYC를 만들었다"고 말했다.김 공장장은 또한 "섬유사업이 하향 산업으로 향후 BYC도 힘들어 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우리 생각은 정반대"라며 "지구상에 사람이 살아간다면 이들은 모두 속옷을 입어야만 하기에 내의산업 만큼은 하향 산업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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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3 23:02

BYC' 심장' 전주공장…원단 생산·완제품 배송작업 담당

명실상부 국내 내의업계 1위인 BYC의 심장은 바로 '전주공장'이다.전주공장은 팔복동 공장과 이서 공장 등 2곳으로 분류된다.팔복동 공장에서는 원료의 기본인 실을 이용한 방적에서 편직, 염색·가공·나염까지의 공정이 이뤄지며 여기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개성공장으로 이동돼 최종 재단, 봉재를 통해 완성품이 만들어진다.1980년 당시 팔복동 공장에서는 옷감 재단 등의 폼을 자르려면 사람 사이즈를 재고 원단을 그려서 가위로 조각내는 수공업, 즉 핸드나이프 방식으로 사람이 일일이 재단을 오리고 잘라야만 했다.그러나 1990년 후반 IMF가 밀려오면서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했고 BYC는 모든 제품의 공정을 컴퓨터와 연계시키는 최첨단 CAM 공법으로 바꿨다.이로 인해 과거 제품 불량률이 옷 천벌에 1개꼴이었다면 지금은 만 벌에 1개꼴로 불량률은 제로화에 가까운 쾌거를 이뤄냈다.자동차로 따지자면 과거 수동 스틱 자동차에서 모든 센서가 완비된 오토 자동차로 바뀐 셈이다.반면 당시 1000명 가까이 근무했던 직원이 250여명으로 줄게 됐다.이서공장에서는 방적을 통해 원단을 생산한 뒤 이 모든 제품을 개성공장으로 보낸다.이후 개성공장에서는 완제품을 만들어 다시 이서공장으로 내려 보내고 이서공장 물류사업부에서는 BYC 전체 물량을 국내 및 해외로 수출하는 배송작업을 벌인다.이처럼 BYC에서 생산하는 대부분 제품의 생산과 배송이 전주공장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최종 개성공단에서는 봉제 작업만 이뤄지고 있는 상황으로 명실공히 전주공장은 BYC의 '심장'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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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3 23:02

"산동네에 다른 가게는 없어도 조합 매장은 있죠"

"트렌토에서는 가족 중 한 사람 이상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입니다. 트렌토는 산지가 많은데 산동네에 다른 가게는 없어도 조합 매장은 있습니다. 조합원 가입이 쉽고 연말 배당도 받을 수 있어 주민 입장에서는 매우 이득입니다."트렌토협동조합연맹에서 국제협력과 교육 업무를 맡고 있는 플라비오 베오초 씨(Flavio Beozzo·60, 사진)는 "농사를 지으면 생산자 조합에, 물건을 사고 싶으면 생협 조합에 가입하면 된다"며 협동조합의 일상화를 들려주었다. 베오초 씨도 사과 농사를 짓는 생산자 조합원이다. 매년 9~10월에 2000그루의 사과나무에서 수확을 한다. 농업조합에 모두 출하하면 공동 선별장에서 크기, 무게, 당도, 부실과 등을 공동 선별한다. 비리를 없애기 위해 등급을 판정하는 사람은 출하자 정보를 제공받지 않은 상태에서 품질을 심사한다. 사과에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해 선별한 결과에 따라서 농민에게 금액을 지불한다. 사과의 주산지인 만큼 대부분은 독일, 오스트리아 등 주변국으로 수출하며, 일부가 생협 도매업자에게 보내져 조합 매장으로 운반된다. 베오초 씨는 "농산물은 1품목당 1개 협동조합만 가입이 가능하고 전량 농업조합에 출하한다. 시장가격이 높아 다른 곳에 출하하면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다"면서 "조합도 조합원 제품만 취급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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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명
  • 2012.09.12 23:02

8.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알토아디제 '트렌토 협동조합'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州)의 주도(州都) 트렌토(Trento)는 이탈리아 면적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 도시다. 면적의 70%가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로 우리나라 강원도와 비슷하다. 인구는 50만여 명이지만 협동조합은 매우 활발하다. 2010년 기준 협동조합원 수가 전체 주민의 절반을 넘는 27만 명에 달한다. 트렌토협동조합 전체 매출은 2009년 24억 유로(한화 3조4600억여 원), 2010년에는 28억 유로(4조370억여 원)로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생협 79개, 신협 57개, 농업조합 92개, 노동자서비스사회주택 등 295개의 협동조합으로 이뤄졌다. 지역경제가 협동조합 체제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원이 아니다. 이들은 공동의 필요에 의해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그 경험이 쌓여 현재와 같은 체계를 이뤘다. 지난달 21일 트렌토협동조합연맹을 방문해 그들의 '협동조합 경험'을 들어 봤다.△가난했던 동네, 협동조합으로 살다트렌토지역은 1870~1888년 당시 주민 40만 명 중 2만4000명이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으로 이주할 만큼 먹고 살기가 매우 힘들었다. 지역이 공동화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민을 가느냐 아니면 여기서 살아남느냐의 기로에 섰다. 잔류를 선택한 이들은 185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라이파이젠 신협 운동에서 대안을 찾았다. 돈 로렌조 구에티(Don Lorenzo Guetti) 신부를 따르는 사람들은 라이파이젠과 영국의 로치테일 등을 연구하면서 트렌토에 맞는 협동조합 방식을 고민했다. 이들은 1854년 인근 토리노에서 만들어진 생협 매장을 보고 가능성을 확신했다. 사람들을 조직하고 협동조합이 뿌리내리는데 주민간 갈등은 적었다. 위기상황인 만큼 풍요로울 때보다 더 절실했기 때문이다. 트렌토협동조합연맹의 임원인 미켈리 도리가티 씨(Michele Dorigatti43)는 "협동조합 자체가 위기 극복에 잘 적응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참여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유럽의 재정 위기 속에도 우리는 계속 성장하며 일반 기업보다 더 잘 적응하고 있다"고 들려줬다. 이는 교육의 힘도 컸다. 30여년 전부터 ACS(As-socuzione Cooperativa Scolastica)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것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지역 100여개 학교의 학생들이 모의 협동조합을 만들고 사업 계획을 짜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대의원과 조합장도 선출해 본다. 협동조합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게 된다. 도리가티 씨는 "19세기에는 젊은층이 트렌토를 떠났지만 20세기에는 공부를 위해 볼로냐, 파도바 등으로 떠났던 이들이 공부를 마치면 다시 돌아온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지역의 젊은층도 지역에서는 일자리 찾기가 쉽다"면서 "국가 전체의 평균 실업률이 8~9%일 때, 트렌토는 3%일 정도로 매우 낮았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일자리 창출보다는 역량강화트렌토 지역의 사회적 협동조합은 1980년대 시작됐다. 기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익이 목표였지만 사회적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와 같이 발전하기 위해 생겨났다. 이탈리아 정부는 1991년 관련 규정을 만들었다. 지역의 복지서비스는 대부분 사회적 협동조합이 담당한다. 협동조합이 아닌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제대로 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 의료기업과 경쟁입찰을 하지만 사회적 협동조합은 자원봉사자가 있어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다.일자리 창출보다는 시장 친화라는 역량을 강화한 것이 협동조합의 성장 요인이다. 도리가티 씨는 "공공부문은 부채와 예산 적자로, 사기업도 비용절감으로 일자리 창출이 힘들다. 남은 대안이 협동조합이다"면서도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에 연연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생존하는 역량 강화가 먼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협동조합간 사업 연계도 시장친화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리가티 씨는 "트렌토협동조합연맹 소속이라고 해서 우선적으로 거래를 할 수는 없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트렌토가 다른 지역보다 유리한 조건이지만 아직도 협동조합간 협력이 부족해 이를 활발히 하는 것이 과제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세명
  • 2012.09.12 23:02

새만금 방조제 강풍 취약, 대책 급하다

새만금 방조제가 강풍에 취약점을 드러내면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새만금 방조제는 올 들어 두번씩이나 15톤에 이르는 피복석과 근고석(방조제 하단부 기초석)이 무더기로 이탈돼 시설물 안전에 큰 우려를 남겼다. 10일 전북도와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에 따르면 지난달 말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새만금 2호 및 4호 방조제 내외측의 피복석과 근고석 1500여개가 이탈유실됐다. 이에따라 새만금사업단은 해수면 수위가 낮아지는 오는 1720일 피해 실태를 조사, 곧바로 보강공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3일 발생한 강풍과 풍랑으로 인해 방조제 근고석 1400여개가 이탈돼 수면위로 노출되면서 농어촌공사가 지난 7월까지 보강공사를 실시한 것으로 드러나 설계상의 문제점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새만금사업단 관계자는 "이번 태풍 때 가력도 앞에서 파고가 5.4m로 관측돼 설계상의 파고 3.9m 보다 높았다"면서 "태풍에 전혀 피해가 없도록 보강하는 것은 막대한 공사비 때문에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6월 새만금 14호 방조제의 안전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1997년 말 연구용역을 통해 1호 방조제 설계변경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농어촌공사에서 준공일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파랑에 견딜 수 없게 설계된 근고공을 보강하지 않고 그대로 시공했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또 4호 방조제는 파랑에 견디지 못해 피복석이 이탈유실되고 있는데도 매년 같은 규격의 사석으로 보수하거나 콘크리트를 채워 넣는 등의 방법으로 임시보수만 한 것으로 드러났다.이처럼 방조제의 안전성에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농어촌공사는 지난해까지 '새만금 방조제 해측 피복석 마모대책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농어촌공사는 용역에서 제시된 경제적 공법을 놓고 다음달 시험시공을 위한 연구용역을 다시 발주하기로 했다. 해당 공법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지 파악한 후 오는 2014년부터 근본적인 보강공사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 기획
  • 김종표
  • 2012.09.11 23:02

김옥정 이사장은 - 고아·학대 받는 여성들의 大母…사회복지 산증인

고아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학대 받는 여성들의 대모(大母)인 사회복지법인 삼성원 김옥정 이사장(82)은 전라북도 사회복지분야의 산증인이다.1931년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김 이사장은 전주여상과 이리 제일보육학교를 졸업하고 간호대학에 입학했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학업을 잇지 못하고 군산 구암유치원에서 보육교사로 7년간 일했다. 이후 전주 삼성보육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1971년 삼성보육원 보모장을 맡게 돼 지난 41년 동안 20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가정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나온 여성들과 미혼모를 위한 삼성여성의 쉼터를 지난 1996년 문 열어 2000여명에 달하는 여성들을 돌보아 왔다. 긴급 구호나 상담이 필요한 위기의 여성을 위한 여성긴급전화 1336도 개설해 13년간 운영해오다 지난해 7월 천주교전주교구 유지재단으로 운영을 이관했다.김 이사장 집안은 독립운동으로 명망있는 집안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큰 외삼촌이 전주 3.1운동은 주도한 김인전 목사(1876~1923)로 지금의 국회의장 격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4대 의장으로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김 목사는 전주 서문교회 2대 담임목사를 역임했으며 전주 다가공원 내에 추모 기념비가 있다. 작은 외삼촌인 김가전 목사(1892~1951)도 전주 3.1운동을 주도했으며 전주신흥학교 교목과 전주북중 교장, 3대 전라북도 지사로 재임했으나 6.25 전쟁 중에 순직했다. 어머니 김인애 선생과 아버지 김종곤 선생도 전주 3.1운동에 함께 참여했으며 어머니는 현장에서 붙들려 6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지난 2009년 독립유공자로 뒤늦게 지정됐다. 김 이사장의 다섯 형제자매는 일제 치하 때 일본식 이름 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해 가슴에 빨간 표찰을 달고 다녔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김 이사장은 남편(고 소준영)과는 30년전 사별했으며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장남 소병문씨(58)는 외항선 선장이자 목사로서 선교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딸 소향아씨(57)는 전북도 보건환경연구원 인수공통감염과장으로 재직중이며 차남 소병무(55)씨는 미국에 거주중이다. 1975년 한국선명회장상 1985년 국무총리상 1993년 보건복지부장관상(아동복지부문) 2002년 사회복지대상을 받았다.

  • 기획
  • 권순택
  • 2012.09.11 23:02

대모(大母) 김옥정 삼성원 이사장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들어갈 때 가장 기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 평생 부모없는 아이들과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해 헌신해 온 김옥정 삼성원 이사장(82). 지난 6월말로 41년간 봉사해 온 삼성보육원 원장직을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아이들과 여성들을 위한 일만은 쉬지 않고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사실 김 이사장의 외가와 부모는 일제치하 때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이끌어 온 애국지사들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큰 외삼촌은 지금의 국회의장 격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김인전 목사이고 전라북도 지사로 재임하다 625 전쟁때 순국한 김가전 목사가 작은 외삼촌이다. 부모들도 전주 31운동을 주도한 외삼촌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투사 이지만 '집안 일을 내세우지 말라'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그 공적이 가려져 왔었다.그 같은 가풍 때문인지 김 이사장도 인터뷰 요청에 "낯 간지럽다. 자랑하기 위해 한 일이 아니다."며 한사코 고사했지만 기자의 무례한 무단 침입(?)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김 이사장을 전주 효자동 사회복지법인 삼성원 사무실에서 만났다.-지난 6월말로 41년간 맡아왔던 삼성보육원 원장직을 그만두셨는데 평생을 헌신해 온 보육사업에서 은퇴하신 소회는."나 좋아서 한 일인데 헌신은 무슨 헌신. 내가 내 놀이터를 잘 만난 것이지 자랑할 거리는 아니예요. 아이들을 보면 꼭 꽃봉오리 같아요. 물주고 잘 보살피면 예쁘고 사랑스럽게 피는 꽃 같죠. 아이들을 데려다 10여년을 함께 보내면 어느새 청년이 되고 20년이 지나면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죠. 그렇게 잘 성장하는 모습들을 보면 아이들에게 고맙죠. 은퇴했다고 하지만 지금도 시간 되는대로 나와서 사무적인 일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만두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어려운 아이들과 가정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평생을 일해 오셨는데 어떻게 이러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까."어려서 예수병원 뒷동네에서 살았어요. 이웃에 목사님 선교사님 등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사셨는데 그 분들의 삶을 통해 많이 배웠죠. 나도 저 분들처럼 살았으면 하고요. 또 저희 집이 잘 산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와 기전학교 교사이신 어머니로부터 가정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보니 자연스레 부모없는 아이들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죠."-삼성보육원은 어떻게 운영하게 되었나요."간호대학을 다닐 때 625 전쟁이 터져 학교를 못 다니고 군산에서 유치원 교사로 7년 정도 다녔어요. 그 뒤에 삼성보육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했어요. 아이들을 돌보면서 빨래도 해주고 밥도 해주면서. 그런데 보육원 원장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마땅한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보육원 운영을 떠맡게 됐습니다."-여자로서 한 둘도 아니도 1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는게 쉽지 안았을 텐데요."당시에도 아이들이 130여명 정도 보육원에서 생활했죠. 그런데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들었어요. 아이들도 착하고 말도 잘 듣고 제 기억에 아이들이 큰 사고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평생동안 아이들을 때려본 적이 없으니까요. 또 내 아이처럼 모든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내 자녀들과 똑같이 대해주었죠."-그 많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운영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었는가요. "제가 먹고 쓰는 것 외에는 모두 아이들 보육하는데 들어갔죠.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누군가 희생이 없이는 운영을 할 수 없습니다. 내 것을 내 놓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죠."-지난 1985년에 사회복지법인인 삼성원에 전 재산을 후원하셨지요."나 잘 먹고 잘 살려고 보육사업 한 일이 아니고 내 자랑 할려고 하는 일도 아닌데 그런 것은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지금까지 삼성보육원에 들어와 성장해서 나간 아이들은 얼마나 되는가요."글쎄요. 정확한 숫자 통계를 내보지 않았는데. 한번 들어오면 대략 10~20년 정도 여기서 생활하다 자립하니까 그동안 2000여명은 넘을 것 같아요."-지나온 일들이 힘들었겠지만 보람도 크시겠습니다."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올바르게 성장해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나 사회복지 분야로도 많이 진출했죠.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갈 때가 가장 기쁘죠. 밤 새워 공부할 때 라면이라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제대로 간식거리도 챙겨주지도 못했는데.(금새 눈시울이 붉어져 말을 잇지 못해 이야기를 잠시 중단했음) -밖에 나가면 인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는데요."시내나 마트에 나가면 '할머니'하고 좇아오는 아이들이 많아서 고개를 못들고 다녀요. 택시를 타면 목소리로 알아보고 택시비를 안 받겠다는 아이들도 있고요. 그래서 택시를 타게 되면 행선지만 말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가요. 그래도 알아보는 아이들이 있는데 내릴 때 택시비는 뒷자리에 놓아두고 거스름돈은 아이들 과자 사다 주라고 하죠. 저희들은 반가워서 그렇겠지만 혹시 나 때문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항상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요즘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외출도 안해요."-이 곳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보육원을 후원하는 사람들도 있겠네요."제가 절대 못하게 합니다. 그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전혀 없어요. 아무런 기반이 없죠. 그런데 나 도와주겠다고 하다가 그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면 안되죠. 그래서 '나 도와주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으니까 너희들이 잘 살고 절대 가난을 대물림하지 말라'고 항상 당부합니다. 못하게 하니까 나 모르게 자녀들 이름으로 후원하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되면 너부터 자립하라고 합니다." -성장해서 보육원을 나가는 아이들에게 3가지를 꼭 당부하신다고 들었는데요."먼저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합니다. 자녀들을 너와 같이 보육원에 맡기는 일이 절대 없도록 말입니다. 또 국가와 사회와 이웃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은 남의 것을 절대 탐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가정폭력이나 성폭력으로 어려움을 당한 여성들을 위한 쉼터도 만들어 운영하셨지요."1995년도에 정부에서 전국 시도마다 여성쉼터를 만들도록 했어요. 전라북도에서 마땅히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제가 맡았죠. 1996년 9월에 여기 삼성원에다 쉼터를 개설했습니다."-여성 쉼터는 어떤 사람들을 돌보는가요."여성 쉼터는 학대받은 여성들과 그 아이들을 위한 피난처죠. 주로 가정 폭력에 시달린 여성들과 성폭력 피해를 당한 미혼모들인데요, 각각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달라서 돌보는데 어려움이 많죠. 특히 마음과 육체적 상처를 안고 살아 온 사람들이기에 치유하는데도 힘들어요. 하지만 어머니 같이, 할머니 처럼 대해주니까 지금까지 불상사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부부 갈등 때문에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고 들었는데. "다투고 싸우고 하다보니 남편들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이 있죠. 이 곳까지 가방 속에 흉기를 넣어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내가 미리 알아채고 '아기 줄려고 과자까지 사왔구나'하면서 가방을 따로 맡아두죠. 그럴 때면 주위에서 '내가 예수 안 믿었으면 아마 점쟁이가 됐을 것이라고 그래요. 어떻게 그 가방 속에 흉기가 있는지 알았냐고.' 한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하면 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항상 긴장할 수 밖에 없어요."-이 곳을 다녀간 여성은 얼마나 되는지요."매년 평균 100여명 정도 돌보고 있어요. 퇴소할 때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 손잡고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대략 2000여명 정도 돌본 것 같아요."-1998년에는 여성긴급전화 1366을 개설해서 운영했었죠."1366도 역시 정부 시책으로 설치 운영했는데요, 제가 13년 정도 하고 지난해 7월부터는 천주교유지재단에서 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긴급전화를 하루 24시간 운영하려면 보통 힘들지 않았을 텐데요."상담원들은 주로 낮에 근무하고 야간 당직은 저 혼자 했어요. 그러다보니 전화대기 때문에 외출 한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긴급 상황이 주로 밤에 많이 발생해요. 부부싸움도 낮보다는 밤에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죠."-가정폭력의 주 원인은 무엇인가요. 문제점과 대책이 있다면. "예전엔 주벽 등 이유없는 폭력이 많았는데 요즘은 주로 경제적 이유와 종교적 갈등이 많아요. 여자들도 책임감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남편들도 아내를 어머니처럼 여겨서는 안돼요. 무엇이든 다 내 맘에 맞게 해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얘기죠. 서로 참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감싸주면 문제가 있을 수 없죠. 그리고 제가 미국에 가봤더니 미국에선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남편을 격리하는데 우리나라는 남편은 집에 놔두고 여성과 아이들을 피난시켜요. 잘못한 사람이 큰 소리치고 집에 있다는 것은 모순이예요. 남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일정한 장소로 격리해서 일정기간 순화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요즘 성폭력, 특히 아동 성범죄가 심각한데요."성폭력 문제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개연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동시에 국가도 정신차려야 합니다. 성범죄자는 전자발찌 정도가 아니라 특별한 관리대책을 세워야합니다. 성범죄자들 인권을 얘기하는데 몸과 마음에 평생 씻을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인격과 영혼까지 파괴하는 사람에게 인권운운 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합니다. 인간을 존중할 줄 알고 법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저항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는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마땅합니다."-가족 이야기 좀 할까요. 명망높은 독립운동가 가문인데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전주 31운동을 주도한 김인전 목사와 김가전 목사가 외삼촌이고 어머니 김인애 선생님(1898-1970) 역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혹독한 옥고를 치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외삼촌인 김인전 김가전 목사님이 31만세운동을 주도할 당시 어머니는 기전학교에 계셨는데 그 때 학생들 13명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치마폭에 숨겼다가 남문 인경 소리에 맞춰 장터로 나가 뿌리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투옥됐죠. 6개월간 옥고를 치르셨는데 한 번은 추운 겨울에 여학생들을 밖으로 끌어내 무릎을 꿇리고 찬물을 온 몸에 부었다고 그래요. 그러니 치마까지 얼어붙어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고문 후유증 때문인지 노년에는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죠." -어머니께서 일경에 잡히시자 이름대신 가명을 써서 가족들이 면회 갔다가 못하고 돌아왔다는 얘기가 있던데요."두 오빠에게 누가 될까봐 김인애 라는 이름 대신에 최귀물이라고 외가 성씨에 아명을 댔다고 그래요. 가족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면회를 신청하니 그런 사람은 없다고 해서 면회를 못하고 가족들이 넣어준 옷가지 등 물건도 받지 못했다고 그래요."-아버지 김종곤 선생님도 전주 31운동에 참여했다가 6년여동안 망명생활을 하셨었고 자녀들도 신사참배나 창씨개명을 안했다죠."아버님도 31만세운동 당시에 태극기를 만들어 배포했다고 그래요. 또 저희들에게 일본말은 못쓰게 하셔서 초등학교에 1000여명이 다녔는데 우리 형제자매들만 창씨개명을 안했어요. 등교 때도 신사참배를 안하자 학교에서 가슴에 빨간 리본을 달고 다니게 했어요. 그리고 교장실로 불려가서 매일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었죠."-부모님께서 그렇게 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는데 어머니 김인애 선생님만 지난 2009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었어요. 왜 독립유공자 신청을 안하셨는지요."기전학교 출신으로 어머니와 함께 31운동에 참여했던 임영신 상공부장관이 전주 방문 때 독립유공자 신청을 권유했는데 아버님께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하는 일인데 신청할 필요가 없다.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면서 단호히 거절했다고 그래요. 어머니도 '가족들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느냐'고 만류했기 때문에 안했죠. 그런데 몇년 전에 손자가 할머니의 독립운동 공적을 신청해서 어머니에 대한 독립유공자 지정이 이뤄졌습니다."

  • 기획
  • 권순택
  • 2012.09.11 23:02

20. 아파트서 진행하는 생태교실 "도심 속 나무·풀·곤충들과'이야기 꽃'피워요"

삭막한 콘크리트의 공간인 아파트에서 어떻게 생태교실이 열릴 수 있을까. 의아스럽지만 벌써 6개월째 생태교실이 진행되고 있다. '아파트에서 만나는 풀꽃이야기', '아파트에서 만나는 새 이야기', '아파트에서 만나는 곤충이야기', '아파트에서 만나는 나무이야기' 등을 주제로 매월 생태교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이 나비는 남방제비나비라고 하는데요, 충청도 이남에만 살고 주로 해안가를 중심으로 사는 귀한 나비입니다. 그런데 이 나비가 이곳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텃밭에 유자나무를 심었기 때문이예요. 유자나무는 남방제비나비가 알을 낳는 나무입니다. 아마 유자나무가 없었다면 남방제비나비가 이 아파트에 살 수 없었을 겁니다" 곤충전문가 하정옥씨의 설명에 "아하!" 하고 다들 신기해 한다.전주시내 중심에 있는 아파트에서 진행되는 생태교실 풍경이다.아파트생태교실이 열리는 장소는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에 소재한 주공3단지아파트이다. 지은 지 30여년이 된 이 아파트는 재건축승인이 난 곳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아파트를 둘러보니 5층 아파트보다 높은 메타세콰이어, 벚나무, 단풍나무, 개잎갈나무(희말라야시더) 등 다양한 나무가 울창하게 심어져 있고, 다른 아파트에 비해 넓은 녹지공간에 풀밭이 있다. 또한 바로 옆에 완산공원이 있어 직박구리와 참새 등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럽기 까지 하다. 족제비까지 살고 있을 정도이다. "그 동안 생태교실이 주로 산이나 하천, 갯벌 등 자연생태계가 우수한 공간에서 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곳들은 도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는 공간은 아닙니다. 시민들의 삶터 주변에서 생태교육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이 아파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생태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전북녹색연합 활동가의 이야기다. 사실 모든 아파트에서 생태교실을 진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며, 그나마 오래된 저층아파트가 나무와 풀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라 생태교실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아파트 생태교실에 참여한 김소영씨(전주시 평화동)는 "예전에 이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나무도 많고 참 좋다"면서 "아이들이 곤충과 동물에 관심이 많아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아파트에서 친숙한 곤충과 풀들에 대해 알게 되니 더욱 새롭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 졌으면 좋겠다"라며 흐믓해 한다.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예산이 없으면 쉽게 실행하기 어렵다. 다행히 '아파트 생태교실'은 전북녹색연합이 제안하고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사회공헌사업으로 승인하여 진행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담당자인 윤영인 팀장은 "전북녹색연합의 제안서를 보고 '그래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생활속의 소재를 가지고 특히, 도심 아파트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을 소재로 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신선한 프로그램이다 싶었다"라며 사업을 후원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아파트생태교실은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효자주공3단지 관리소장은 "아침이면 새들이 우는 소리에 시끄러울 정도다. 봄이면 벚꽂이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도 나무가 많아 시원하다. 재건축으로 헐리게 돼서 아쉽다. 아파트가 없어지기 전에 이런 생태교실이 많이 열리면 주민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라며 아파트가 헐리는 것에 아쉬움과 더불어 생태교육의 장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한다.메마르고 삭막한 도시에서 시민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고,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한 환경단체의 '눈물겨운' 시도에 감탄을 하면서,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도시의 모든 지역에서 생태교실이 열릴 수 있을 정도로 도시환경이 개선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한승우 NGO시민기자(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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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0 23:02

전북녹색연합 활동가 정영현씨 "도심 속 녹지공간 활용 시민 생태 감수성 증진"

아파트 생태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전북녹색연합 활동가로부터 이 사업을 진행하게 된 배경과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전북녹색연합에서는 2010년과 2011년, 조선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에서 '경기전 나무이야기'라는 생태문화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도심 속 생활주변에 있는 녹지공간을 활용해 생태교육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지요. 이를 통해 시민들의 생태적 감수성을 증진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해를 높이는 교육을 하자는 취지입니다. 2012년에는 이러한 취지의 연속사업으로 아파트라는 삶터를 공간으로 해서 시민과 함께하는 교육을 실시하고자 계획하게 되었습니다"'계획했던 것처럼 교육이 잘 진행되고 성과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실 처음에는 아파트 거주민을 중심으로 생태교육을 진행하려 했었다"면서 "그러나 생각처럼 해당 아파트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 주민들의 정주의식이 높지 않은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었다"면서 "결국 시민과 녹색연합 회원을 모집해 생태교실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파트에도 이런 것이 살고 있었어요?' '정말 신기하다' 라는 반응을 볼 때 추진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보람을 이야기 한다."내년에도 아파트 생태교실을 계속 진행하려 합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알고 참여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서 '아파트 생태교실'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생태도시 전주를 만드는데 '오래된 아파트'가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주시 등 도시지역에서 도시계획을 할 때 참고로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처음에는 생태교실로 출발했지만 생태도시에 대한 고민으로 발전했다는 이야기다. 교육문의는 전북녹색연합(282-0117). 한승우 NGO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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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9.10 23:02

13일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 앞둔 박칼린 집행위원장 "매력적이고 멋진 풍류 만끽하세요"

박칼린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45)은 "공연엔 용서가 없다"는 말을 가슴에 박고 산다. '내일 공연이 있는 자라면 어떤 이유로도 오늘 죽어선 안 된다. 쓰러지기만 하고 반드시 공연 시작 전까진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블로그에 쓴 말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엄한 '칼린 샘'이 작곡가 김형석과 지난해 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올해로 2년 째, 13일 개막하는 소리축제(13~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전주 한옥마을 일대)를 앞두고 박칼린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소리꾼들도 해결하지 못한 '판소리 대중화'라는 무거운 과제를 걸머진 그 역시 부담감이 컸다. 그러나 답변을 에둘러하진 않았다. 오히려 "소리축제의 힘만으론 판소리 대중화가 어렵다. 소리축제의 존재감을 그 일환으로 보고 힘을 실어 달라"고 당부했다.- 올해는 준비하는 기간이 비교적 넉넉해 축제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작년에 첫 인연을 맺은 소리축제는 저희에게 큰 행운이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소리와 전통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는, 그래서 지역의 뛰어난 문화예술을 보다 값지고 의미 있게 풀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고, 이 경험은 저희에게 커다란 성장의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소리축제는 의미도 있고, 멋진 지향을 담고 있는 축제구나' 하는 일종의 자긍심도 자리 잡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판소리와 국악이 대중적으로 위기인 건 사실입니다. 문화유산이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박제된 유산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리축제는 이 매력적이고 멋진 풍류를, 우리소리라는 위대한 예술을 담아내는 훌륭한 그릇입니다.- 소리축제의 영원한 과제인 '판소리 대중화'를 올해는 어떻게 녹여내려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리 소리의 대중화, 어찌 보면 프로그램 측면에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 시대 전주에서는 최근까지도 판소리가 대중적으로 매우 사랑받았던 장르였습니다. 장르 자체에 손을 대고 변형을 하는 것 보다는, 대중들이 판소리를 듣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부여해 주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판소리의 대중화'는 선언적이면서 상징적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판소리 다섯 바탕'이나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 신설, 판소리극, 창극, 고음반 감상회 등 판소리를 새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또 국·영문 자막도 5년에 걸쳐 완성해 관람객들에게 판소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워낙 바쁘신 분이라 축제 준비에 소홀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는 데요. △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여러분의 우려가 마음 속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리축제는 저희가 집행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걸고 있는 만큼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스텝들과 의논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 것들은 주간 회의를 통해 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결정해왔습니다. 소홀히 했다면, 축제를 준비해오지 못했겠죠. 결국 소홀하다는 것은 열정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축제 이후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축제 결과로 판단해주시길 바랍니다.- 꼭 봐야 할 공연을 추천하신다면. △ '판소리 다섯 바탕'에 쟁쟁한 명창들이 출연합니다. '심청가'나 '흥보가'는 완창을 하게 되구요. 고즈넉한 한옥마을 대청에서 명창들과 마주하면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죠.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 역시 기대가 큽니다. 유태평양·민은경 등 젊은 소리꾼들은 멍석 깔고 음식도 먹으면서 소리를 듣는 무대를 갖습니다. 옛날 소리판의 흥겨움과 멋이 그대로 살아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꼭 보고 싶은 공연입니다. 물론 젊은 국악팀들의 경연인 '소리 프론티어'도 기대됩니다.해외공연도 많은데, 특히 창단 50주년을 맞는 살사계 거장 '엘 그랑 콤보'를 권하고 싶네요. 70세가 넘은 멤버들을 만날 수 있는 귀한 기회이기도 하죠. 신나는 살사 리듬에 즐겁게 몸을 맡겨 보시는 건 어떨까요. - 그럼 음악감독 박칼린에게 질문. 배우들이 감독님께 '마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던데요, 그게 사실인가요.△ 네, 옛날에요. 오래됐습니다. '무조건', '절대적인' 규칙이 철저해야 하는 곳이 바로 무대니까요. 제가 무대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목록이 있습니다. 저는 연습 때 아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괴물'입니다. 진행 중인 연습에 해당되지 않은 사람이 아무리 조심스레 왔다갔다해도 고함을 지르고 쫓아가서 "나가서 떠들어!"라고 하죠. 연습에 있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정신을 놓는 것도 용납 못합니다. 연습 첫날부터 연습이 아닌 실제 공연처럼 연습하길 원해요. 노래 한 시간 제대로 했으면 배고파야죠. 또 틀리는 것도 용납 못합니다. 모든 음악과 가사를 못 외워오면 그날이 그 배우, 제삿날이죠.- 음악감독이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요.△ 음악감독으로서 가장 신중하면서도 유일하게 마음대로 독점하고 있는 캐스팅 권한이 바로 연주자 캐스팅입니다. 배우 캐스팅 보다 두달 정도쯤 더 많이 고민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감독으로서 밴드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캐스팅할 때가 가장 재밌습니다. 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내 마음대로 하는 만큼 결과도 순전히 내 책임이기에 연주가 빛이 날 때 역시 가장 뿌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인재들을 알아채고 그 원석을 깎아나갈 때 그 순간의 희열은 어느 것에도 비견할 수가 없습니다. 가능성이 보이는 누구를 열정의 뜨거운 곳에서 처음 만나는 것, 내게 캐스팅은 사랑입니다.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 자체와 사랑에 빠지는 일인 거죠.- 인간 박칼린도 궁금합니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성장기를 보내면서 정체성 혼란 같은 건 없었나요. △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어요. 나에겐 모든 게 모험 같아서 좋았습니다. 내겐 피든 뭐든 섞이지 않은 게 없어서인지 '다양성'에 일찍부터 눈을 뜨게 됐어요. 이것은 '내게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줬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밀어붙이면 '균형'이란 걸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선과 악, 흑과 백, 남과 여, 음과 양 등 다양한 모든 것들을 동시에 지닐 수 있는 내력을 갖게 되는 것이죠.- 어렸을 때부터 써왔던 비밀노트가 있다던데요.△ 일기장이 그날 있었던 일과 감정에 대한 기록으로 과거 지향적이라면, 나의 '블랙북'은 순전히 미래에 대한 창작의 나래를 펼치는 그런 노트예요. 나의 '블랙북'을 들여다본 사람은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죠. (웃음) 봤다 하더라도 내용을 알 수는 없었을 거예요. 나만이 아는 단어로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놨으니까요. 그러나 실제 세월이 흘러 다른 사람들 손에 의해 이뤄졌거나 창조된 것들도 있긴 합니다.가령 노래 은행·미디음악이 한국 가요계에 도입되던 초기에 많은 곡을 써서 라이센싱 하려 했는데, 오늘날 김형석씨와 함께 하는 '킥 뮤지컬'에서 뮤지컬 작품을 개발·라이센싱 하는 걸로 진화했어요. 제 개인 음반은 여러 장르가 섞여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구요, 아직은 공개하면 안 되는 무대와 영상 작품들 몇 개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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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2.09.10 23:02

수제양복 제작 55년, 군산 장영문씨 "입는 스타일 보면 그 사람 성격 알 수 있죠"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입니다. 특히 나이 들어서도 옷을 잘 입는 분들은 자기관리를 충실히 해 온 성공한 인생임을 반증하는 것이지요"55년째 수제 양복 제작 외길을 걸어온 장영문(70) 씨.반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옷을 만들어 온 그는 옷을 통해 그 사람의 성격과 성품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자신만의 '옷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전주 평화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진학하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장 씨는 13세가 되던 해 인근 교회에서 운영하는 야학에서 한글과 수학을 깨쳤다.이후 친척의 권유로 15세부터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성실함과 실력을 갖춘 기술자로 소문이 나면서 1973년 군산의 한 양복점으로부터 재단사 직을 권유받으며 군산과 인연을 맺었다.고객의 취향을 우선시하는 그의 실력이 군산에 소문나면서 1981년 군산의 패션 1번지로 불리던 영동에 시온테라를 개업해 현재까지 32년째 운영하고 있다. 개업 후 10년 동안 해마다 300여벌의 양복을 제작하며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1990년대부터 기성복이 양복시장을 잠식해 가며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장 씨는 옷은 고객 각자의 체형과 취향에 맞아야 입는 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수제 신사복 제작을 고수하고 있다.그는 "최근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중시되고 있지만 오히려 옷 만큼은 표준형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재단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며 "세상에 단 하나 자신만을 위해 디자인 된 수제품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풍토가 조성돼야 젊은이들도 기술을 배우려 할 것입니다"고 안타까워 했다.장 씨는 아무리 뛰어난 재주도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쌓아져야 비로소 기술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강조햇다.견습생 시절 동료 중 한사람이 뛰어난 바느질 실력을 가지고도 게으름을 피우며 매번 손님들과 약속한 납품기일을 어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재주에 신뢰가 더해져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술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뛰어난 재주도 성실을 바탕으로 할 때 진정한 기술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낱 요령에 불과할 뿐입니다"고 말하는 장 씨는 양복 일 덕분에 다양한 지위의 사람들을 만나 세상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또한 양복 만드는 기술이 있어 삼남매를 약사, 한의사, 학원장으로 어엿하게 성장시킬 수 있었음에 항상 감사하며 즐겁게 생활한다.그래서인지 70세의 나이에도 현재까지 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모르고 살아왔으며, 시력도 1.2로 아지까지 손수 바느질을 하고 있다.장영문 씨는 "옷은 사람을 감싸주고 보호하는 역할 뿐 아니라 인격과 인품을 보여주는 척도이고 옷과 사람의 균형미는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며 "고객을 위한 작품활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바늘과 실을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일권
  • 2012.09.06 23:02

회사이윤 사회 환원 기업가의 정신 실천

"외길 내의 산업이 나의 업적이라면 나의 숙원은 바로 사학 양성입니다."전북 정주(현 정읍시) 농촌마을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6.25를 모두 격고 내의 산업의 1인자로 우뚝 선 한영대 회장.그는 어릴 적 못 먹고 못살았던 당시를 항상 가슴 한 구석에 묻어 놓은 채 당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대물림 시켜주지 않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있다.한 회장의 철칙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제공해 국민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기업의 의무'다.기업의 이윤을 환원시키는 것이야 말로 기업가 정신이자 애국으로 생각하는 한 회장의 신념은 신한중학교와 신한고등학교를 명문 사학으로 바꿔 놓았다.한 회장은 "교육시스템을 혁신해 학생중심교육, 맞춤형 정예교육, 외국어 집중훈련을 비롯한 다문화를 수용할 줄 아는 학생들을 양성하겠다"며 "이들의 지적소양 교육을 통해 창의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실무형전문가는 물론 국제 감각과 의사소통능력을 겸비한 글로벌 인재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학생에게는 내일의 미래와 꿈을 교직원에게는 교육의 보람과 증지를, 학부모에게는 감동과 신뢰를 줘야 한다"며 "베풀고 주는 교육을 통해 대한민국이 진정한 교육 공동체를 구성될 수 있도록 일조하겠다"고 덧붙였다.한 회장은 고향인 전북에도 명문 사학을 만들 뜻이 있음을 내비췄다.한 회장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의 고향 전북의 교육 환경이 우수하지만 아직 시골지역의 교육 환경은 어려운 점들이 많다"며 "힘이 닿는다면 내 고향에도 대한민국 제1의 명문사학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속내를 비췄다.그는 또한 "내가 죽는 그날까지, 아니 내 후대에 이어서라도 사학에 대한 기업 사랑 정신을 잇도록 하겠다"며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이 웃는 모습으로 사회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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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모
  • 2012.09.0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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