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전주국제영화제] ②영화제 탄생과 성장-(2)성장
2000년 1회 영화제부터 2008년 9회 영화제까지, 전주국제영화제를 굳이 성장곡선에 따라 나눠본다면 1∼3회 태동기와 도입기, 4∼6회 성장기, 7회∼9회 안정기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모든 것들의 처음이 그러하듯, 전주국제영화제 역시 초창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1회 영화제 프로그래머였던 김소영 정성일씨가 2회를 불과 3개월여 앞두고 사임하면서 전주영화제 앞길에 가장 큰 위기가 닥쳐온다. 이는 2001년 3월 2회 영화제 상영작 발표회에서 최민 조직위원장이 "최악의 고비를 넘기고 상영작 발표를 하고 있는 지금, 말할 수 없는 마음 속의 떨림이 있다"고 말한 것만 보아도 전주영화제가 어떤 처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파행' '갈등' '진통' '내홍'이란 수식어로 따라붙던 상황에서 2회 영화제를 치러내며 '기사회생'한 전주영화제. 10년을 맞는 지금, 전주영화제는 '대안영화·디지털영화·인디영화 소개', '시민들에게 문화적 욕구충족 기회 제공', '영화를 통한 문화교류 및 지역경제의 활성화' 등 정관에 나와있는 개최 목적을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는 듯 하다.한국 최초의 국제 영화제로, 세계 영화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시아 영화의 중심'이라는 컨셉의 차별성과 일관성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2007년 12회를 폐막한 후 외적 성장을 따르지 못하는 운영상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실있는 영화제가 돼야 한다는 비판이 언론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다.성공한 영화제인 부산영화제가 스스로 노출하고만 문제점들은 전주영화제가 경계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전주 역시 주류에 대항하는 비주류를 주목한 영화제로 필름이 아닌 디지털이란 매체를 주목, 컨셉의 차별화와 일관성에 성공했지만 9회를 치른 시점에서 프로그램 외적인 면에서는 아쉬운 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10년을 기점으로 전주영화제를 바라보는 눈과 기대 역시 한층 더 높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3회 : 전주영화제 탄생과 시련1회 영화제는 '대안영화, 디지털영화, 아시안 인디 포럼'을 내세우고 주류 영화들과는 영화미학이나 영상기술 면에서 전혀 다른, 특별하고 새로운 영화들을 선보였다.1회 영화제는 시작단계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였다. 7일동안 영화제 참여 관객은 12만명. 조직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유료객석 9만4000석 중 85% 이상이 판매됐으며 상영작의 80% 이상이 매진됐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관객이 들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주장했던 성과주의는 할 말을 잃었으며, 당초 예상을 넘어선 관객수는 궁극적으로 전주영화제에 힘을 실어주는 기반이 됐다. (1회 영화제 유료관객은 7만5200명. 이는 9회 영화제 동안 가장 많은 숫자다.)전주영화제는 첫 해부터 '잠재된 영화 관객 발굴', '영화학도들의 새로운 문화창구', '독특한 색깔과 고집을 가진 영화인들에 대한 배려' 등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고 '프로그래머 동반 사퇴'로 표출됐다. 최민 조직위원장은 "영화제가 지나치게 프로그래머들의 사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발언을 했으며, 김소영 정성일 프로그래머는 "조직위의 의사결정이 불투명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반발했다. 당시 프로그래머들의 사퇴와 조직위의 대응은 단순한 의견차이를 넘어 감정적인 대립으로 비춰졌던 게 사실이었으며, 전주영화제가 정상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 지 우려와 걱정이 많았다.전주영화제는 2001년 3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2회 영화제 상영작 발표회를 연다. 프로그래머는 문화평론가 서동진씨가 맡게 됐으며, 서씨는 최위원장과 함께 2002년 3회까지 영화제를 이끌게 된다.2회 영화제는 '대안, 독립, 디지털'의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급진영화'를 주제로 정했다. 서프로그래머는 당시 영화제 공식 카달로그에서 "급진영화란 이름은 영화의 미래를 향한 선언도, 영화를 분류하는 명칭도 아닙니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영화, 그런 뜻에서 영화의 새로운 존재를 모색하는 물음을 던지는 영화가 아마 급진영화일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3회 영화제는 역시 '대안, 독립, 디지털'이란 영화제의 정체성을 한결 다듬고 뿌리내리는 것을 주요 방향으로 하면서 영화가 지닌 '사회적 기억의 힘'에 주목했다.▲ 4∼6회 : 전주영화제 성장4회를 기점으로 전주영화제는 많은 변화를 겪는다.2기 조직위원회를 구성하며, 대안이나 디지털의 개념이 어렵다는 여론에 따라 새롭게 '자유, 독립, 소통'을 컨셉으로 설정했다.집행위원장 체제를 도입했는데, 위원장을 맡게 된 민병록 동국대 교수는 4회 영화제를 앞두고 한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안'이 상징하는 의미가 전주영화제의 정체성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너무 어렵다는 선입견이 컸다. '대안'이 강조됐던 자리에 '자유, 독립, 소통'을 들여놓으면서 현대영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주목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배치했다. 개인적으로 '처음'이라는 사실이 많은 부담을 갖게 했고 그동안 축적한 성과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한 바 있다.프로그래머에는 정수완 김은희씨가 선임됐다. 두 프로그래머는 "2003년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허물고 넓은 의미의 실험적 시도를 하는 영화의 다양한 진보적 흐름을 반영하고자 했다"고 말했다.4회 영화제는 '마니아만을 위한 영화제'라는 지적을 수용,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실제로 민위원장이 전주영화제를 맡게되면서 이전보다 관객 끌어안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영화제 기간도 열흘로 늘려 원활하고 짜임새 있는 영화제 운영을 기했다.5회 영화제는 메인섹션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경쟁부문인 '아시아 독립영화포럼'이 '인디비전'으로 변경되고,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저예산 혹은 독립영화들로 확대됐다. 아시아에서 세계로 문을 연 것은 아시아에서 개최되고 있는 다른 영화제들과 경쟁해 필름을 수급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한 몫한 것으로 알려졌다.'인더스트리 스크리닝'을 신설해 영화제의 산업적 기능에 대한 모색을 시작했지만, 22%나 하락한 객석점유율과 상영취소를 비롯한 홍보전략의 부재, 운영상의 미숙함 등은 무거운 과제로 다가왔다.6회 영화제는 지난 영화제들에 비해 관객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 '어린이 영화궁전'을 '영화궁전'으로 새롭게 구성해 중·장년층도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을 포진시켰으며 개·폐막식을 제외한 모든 영화의 상영장과 부대행사를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거리 내에서 진행해,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언론에서도 '정체성과 대중성 두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7∼9회 : 전주영화제 안정기7회부터 전주영화제는 전반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마니아층은 더욱 확대됐으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늘었다. 전주영화제가 1회때부터 직접 제작하고 배급해 온 '디지털 삼인삼색'은 국내외적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그러나 전주영화제의 성격을 강고하게 했던 '디지털'에 대한 근본적이고 생산적인 고민이 요구됐다. 1회 영화제가 시작할 단계만 해도 새로운 실험을 가능케 할 매체로 영화계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던 디지털이 보편화됐기 때문. 전주영화제는 "디지털은 전주국제영화제의 태생적 한계이자 현재의 근심거리인 동시에 미래의 비전이라는 이 이상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자문했다.영화제의 지역 내 역할에 대한 기대는 '로컬시네마 전주'와 '전주지역 중·단편 영화 제작 지원작' 등의 신설로 부응했다.8회 영화제는 평균 객석점유율이 80%에 이른다. 그러나 운영면에서는 오히려 무력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8회는 한국영화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띄는데, 독립영화 감독들을 지원하는 '디지털 숏!숏!숏!'을 신설해 전주에서의 촬영을 유도하는 동시에 영화제의 생산적 성격을 강화했다. 또한 비경쟁이었던 '한국영화의 흐름'을 부분경쟁으로 전환해 한국독립영화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9회 영화제는 유료관객(6만5209명)·좌석점유율(82.4%)·매진횟수(147회) 등에 있어 역대 영화제와 비교, 대박을 터뜨렸다. 프로그램이나 운영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10회 행사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여놓았다. 봉준호 감독은 "곧 전주영화제가 부산영화제를 추격하는 재밌는 양상이 벌어질 것 같다"며 전주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그러나 해외작품을 상영하는 '인더스트리 스크리닝'을, 영화제 상영작 관련 국내외 관계자들간의 비즈니스 미팅을 주선하는 '인더스트리 데스크'와 저예산 독립영화들의 쇼케이스 '워크 인 프로그레스'로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필름마켓으로는 자리잡지 못해 영화제의 생산적 기반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또한 일부 상영관 시설이 낙후되고 숙박업소들의 바가지 상혼 등은 여전해 지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상근 스탭 숫자가 적고 자원봉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점 또한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