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10 03:53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전북의 재발견] 겨울 전주한옥마을 문화해설투어 “문화해설 들으며 전주한옥마을, 1시간에 탐방하는 방법”

전주한옥마을은 핫한 국내 여행지입니다. 여러 번 방문해도 다채로운 매력에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데요. 여유롭지 못한 시간, 전주한옥마을을 1시간 동안 요약해서 보고 싶다면 이 투어는 어떨까요? 문화해설사님과 함께하는 전주한옥마을 문화해설 투어. ■ 전주한옥마을 무료 문화해설 투어 매일 오후 1시 오목대관광안내소 앞에서 출발하는 문화해설투어는 무료로 운영되는데요. 오목대관광안내소-선비문화관-한지원-승광재골목길-한지길골목길-소리문화관-김치문화관-꿈길골목길-600년 은행나무-한옥마을역사관을 문화해설사님의 설명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1. 선비문화관 선비문화관은 전주 선비들의 삶과 사상, 예술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일제 강점기 한옥마을로 모여든 선비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과 다른 100여 년 전 전주한옥마을을 느낄 수 있는데요. 전주의 선비들은 실천윤리와 도학의 가치에 집중하면서 19세기 한국 유학 사상을 종합하고 조선의 빛을 이어갔다고 해요. 2. 한지원 전통 기법으로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한지원은 골목 안에 있습니다. 전시판매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한지 구매도 가능하고요. 3. 승광재 골목길 조선 왕실의 상징,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 이석 총재가 기거하는 곳, 승광재는 표지판이 크기 때문에 찾기 어렵지 않은데요. 잘 정돈된 나무와 돌담이 인상적인 승광재는 숙박 체험도 가능하다고 하네요. 4. 한지길 골목길 한지 공방이 있는 한지길은 꼬불꼬불한 길을 걸으며 어떤 작품을 볼 수 있을까? 기대되는 곳입니다. 5. 소리문화관 연중 공연이 열리는 소리문화관은 판소리 본향인 전주의 문화적 우수성을 높이고 새로운 판소리 문화를 이끌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판소리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실을 비롯해 국창 오정숙 기념관이 있고요. 다양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6. 김치문화관 한식 교육과 김치 체험교육이 이루어지는 김치문화관은 김치의 역사를 비롯해 전라도 김치가 다른 지역 김치와 맛이 다른 이유, 젓갈과 김치 궁합 등 김치에 관한 궁금한 점들을 알기 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7. 꿈길골목길 꿈길골목길은 개인 소유의 길을 양해받아 다닐 수 있게 연결된 골목길로 서양인의 한옥 거주 공간 동락원과 금재 선생의 가옥을 보실 수 있습니다. 8. 600년 은행나무 꿈길골목길 끝에는 600년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문화해설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금재 선생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잘생긴 셋째 아들을 보기 위해 이 은행나무에서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금재선생 아들을 보러온 여성들이 많았다고 해요. 9. 한옥마을 역사관 한옥마을역사관은 전주의 도시형성과 한옥마을이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옥마을의 변천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VR을 통해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경기전을 가상현실로 보실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와 함께 한옥마을역사관을 방문하신다면 꼭 VR을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1시간에 요약해서 보는 전주한옥마을문화해설투어! 추울 겨울, 단시간에 많은 곳을 볼 수 있어 효율적인 동선이었는데요. 겨울방학이 한창인 1월, 체험학습지로 가볼 만 한 국내 여행코스를 찾으신다면 추천! 전주한옥마을 문화해설투어로 알찬 겨울 여행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 전주한옥마을문화해설투어 출발시간 매일 오후 1시 출발(1시간 소요) 출발장소 오목대 관광안내소 앞 투어비 무료 투어코스 오목대관광안내소-선비문화관-한지원-승광재 골목길-한지길 골목길-소리문화관-김치문화관-꿈길골목길-600년 은행마을-한옥마을역사관 /글, 사진 =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권현아

  • 기획
  • 기고
  • 2019.01.28 10:49

[전북의 재발견] 진안·무주 지질공원 '생태자원이 되는 진안'

아름다운 지형, 지질, 문화가 어우러진 지질공원 진안. 무주 지질공원을 알고 계시나요? 특히 진안은 한반도 남부에 있는 마름모꼴의 중생대 백악기 인리형 분지의 형성과정을 잘 보여주며 백악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지구조 해석에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다양한 백악기 퇴적암과 화산암이 나타나고 이에 관련된 아름다운 지형, 지질과 관련된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를 설명해 놓은 곳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전북에서 볼 수 있는 지질명소 지질명소 중 하나인 마이산 일대의 지질국가공원 안내소 탐방객 안내센터에서는 진안군 지질명소를 한꺼번에 다 볼 수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지질공원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글을 볼 수 있습니다. 지질공원은 특별한 과학적 중요성, 희귀성 또는 아름다움을 지닌 지질 현장으로서 지질학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생태학적, 고고학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도 함께 지니고 있는 지역으로 보전, 교육 및 관광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 도모가 필요합니다. 세계지질공원은 유네스코가 인증하는 지질공원으로 세계지질공원망(Global Geopark Network)의 회원으로서 전 세계 지질공원과의 정보 교류 등을 통해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제주와 청송, 무등산 3개소가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진안무주 지질공원은 백악기에 일어난 다양하고 독특한 퇴적 작용 및 화산작용이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입니다. 북부 및 동부 지역에는 화산쇄설성 암석과 용암으로 구성된 천반산과 운장산이 있으며 신생대의 단층이동과 지반융기, 침식으로 형성된 구봉산과 마이산 등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관광명소입니다. 또한 진안 지역 암석들의 형성이 아시아를 형성시킨 지구조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진안 지역은 국제적인 지질학 연구를 위해서도 상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산 백악기 역암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명승 12호인 마이산은 콘크리트와 같은 형상을 한 역암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이산은 세계 여행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로 만점을 받은 산으로 말의 귀를 연상하게 하는 특이한 모양을 보여주며 하늘로 오르려다 못 오른 부부의 전설을 갖고 있고 금강과 섬진강의 수계를 가르는 금남, 호남정맥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마이산은 약 1억 년 전 자갈과 모래,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암석(역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역암으로만 구성된 봉우리입니다. 또한 타포니라 불리는 거대한 구멍 혹은 동굴을 관찰할 수 있는 진안의 대표 지질명소입니다. 마이산의 형성과정을 보면 백악기에 해당하는 130-100Ma의 시기에 시베리아 대륙이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대륙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힘이 한반도에 남쪽으로의 압축력을 가하게 되었답니다. 이 압축력에 의해 한반도에 존재하는 북동-남서 방향의 단층들이 백악기에 좌수향 주향이동 단층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진안지역 일대에 존재하던 영동-광주 단층대 역시 좌수향 주향이동 단층활동을 일으키면서 발생한 인장력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결과 단층 사이에 마름모꼴의 진안분지가 형성되면서 분지 안으로 주변 기반암(선캄브리아기 변성암)으로부터 공급된 커다란 역들이 쏟아져 들어와 단층대와 가까운 곳에 쌓여 마이산 역암층이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천반산에서는 지질학적으로 화산폭발의 부산물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화산쇄설암을 관찰할수 있으며 지형적으로 빠른 융기와 그에 따른 하방 침식에 의해 형성된 감입곡류하천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공적인 수로 형성 때문에 만들어진 우각호와 죽도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여립 장군이 최후 항전을 하던 역사와 그에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90-80Ma 사이인 백악기 중기에 이 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쇄설암이 형성된 이후, 지각이 바르게 융기하였고 이에 의해 수직 방향의 침식인 하방 침식이 일어났답니다. 그 결과 이 지역이 완만한 평지이었을 때 발달하였던 곡류하천의 형태가 잘 유지되면서 상승하게 되었고, 수직적인 침식으로 인한 곡선형의 수직 절벽과 하안단구가 함께 나타나는 감입곡류가 형성된 것이랍니다.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은 마이산으로부터 5Km 남쪽의 백마교 일대에 있으며 백악기 퇴적물들의 퇴적과정을 단면적으로 잘 보여주는 지형이랍니다. 이곳 절벽의 암석은 약 1억 년 전에 모래, 자갈, 진흙 등이 쌓여 만들어지는 퇴적암이며 절벽의 줄무늬를 잘 관찰하면 반듯하지 않고 경사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를 삼각주 퇴적층이라고 합니다. 백악기에 해당하는 130-80Ma 사이에 시베리아 지괴가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지괴와 충돌하면서 남쪽으로 가한 압력에 의해 한반도 내 존재하던 북동 방향 주향이동 단층들이 좌수향 운동을 하였답니다. 이때 두 좌수향 주향이동 단층 사이에 있는 진안 지역이 잡아 당겨져 가라앉아 진안분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진안분지 동남쪽 경계에 굵은 자갈과 바위가 공급되어 이 퇴적물들이 당시 호수 환경이었던 진안분지 안으로 공급되면서 차례대로 방향성을 보이며 퇴적되며 길버트 유형 델타 퇴적층을 형성하였습니다. 구봉산 화산암경과 운일암 반일암 구봉산은 90-80Ma 사이인 백악기 중기에 형성된 진안분지 주변의 단층을 따라 선상으로 관입한 마그마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 마그마는 이 시기에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나던 삽입작용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상부로 변해가는 암상을 통해 구봉산 하부는 천부 지하에서 천천히 식었고 상부는 지표에 노출되어 빨리 식었다고 합니다. 구봉산의 아홉 봉우리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마그마가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며 현재의 모습은 오랜 시간 풍화와 침식에 의해 암석의 약한 부분이 깎여 나가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운일암반일암은 대략 90-80Ma 사이에 유문암질 용암(점성이 높은 용암)이 수차례 걸쳐 분출하면서 겹겹이 쌓여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용암이 수차례 걸쳐 흘렀던 흔적이 암석 내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넓은 간격으로 발달한 절리로 만들어진 하천의 거석과 기암괴석들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어 지질학적 및 지형적으로 가치가 높은 지역입니다. 운일암반일암은 과거 전라감영 전주와 용담현을 잇는 주요한 길로서 현령이 부임하는 통로이자 백성들이 물자를 지고 나르던 통로였답니다. 곳곳에 자리한 깎아지른 절벽을 지나기 위해 나무를 걸고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허공 중의 다리라 불렀는데 고지도에 반일암잔도로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안군 지질명소를 이루고 있는 암석과 체험활동 마이산 백악기 역암, 운일암반일암 백악기 화산암류, 천반산 감입곡류 지형, 구봉산 화산암경, 운교리 삼각주 퇴적층 등을 형성한 암석들을 종류별로 전시해 놓아 지질명소의 형성과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활동으로 색칠하기뿐만 아니라 스티로폼으로 마이산의 볼거리인 타포니를 만들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지질국가공원 안내소의 탐방객 안내센터에서는 이렇듯 직접 가보지 않고도 도내 지질명소의 아름다움과 형성과정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지질공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탐방한다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더욱 풍성해져 알찬 탐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정받은 제주, 청송, 무등산은 여행 관광 상품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진안. 무주 지질명소도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으로 국내 관광명소로 거듭날 것을 기대해 봅니다. /글, 사진 =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이난희

  • 기획
  • 기고
  • 2019.01.25 12:21

[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한국의 꽃심 전주’, 민간기록으로 꽃피다

역사기록의 가치는 값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어둠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먼 과거의 흔적을 미래의 거울로 비춰주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살아왔던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민간기록물의 가치는 더욱 크다. 민간기록물에는 성씨 족보, 1910년대 일기, 1950년대 교과서, 비석, 기접놀이, 다방, 극장, 출판 등 우리가 접해본 흔적들이 담겨 있다. 공공영역의 기록이 포괄하지 못하는 보통사람들의 다양한 일상과 사회상을 보여준다. 전주시민간기록물관리위원들은 전주, 전라북도권에서 수집한 민간기록물을 중심으로 지역의 일상사를 1년여간 조망하고자 한다. 전주의 기록문화 전통 전주는 후백제 왕도로서 삼한의 책이 모두 모여 최대의 문화도시이자 기록을 보존한 전통을 갖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는 왕조의 역사기록인 실록을 수호한 도시였다. 특히, 전주는 조선후기 완판본 출판문화의 도시로 서민의 지식과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준 한국의 대표 도시였다. 이같이 전주는 가장 다채롭고 풍부한 출판, 인쇄문화의 도시이자 한국 기록문화의 원형도시였다. 이 같은 전주기록문화의 원천은 판소리로 전승되는 소리기록의 전통이 고전소설 등 문자기록으로 계승 유지되었고 현대영화 등 영상기록으로 그리고 디지털 기록으로 변화되어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아파트문화와 1인가족사회화 그리고 급격한 디지털문화의 확산은 기존 아나로그 기록물의 급속한 소멸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개인의 기록은 더 이상 보관하고 관리할 공간과 인력의 부족에 의해 거의 방치되거나 폐지로 전락하는 상황이다. 이에 전주시에서는 2016년 전주정신의 숲 사업을 시작으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존 공공기록뿐만 아니라 개인의 기록을 포함, 지역의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개인의 역사가 전주지역의 역사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 인류의 역사로 나아가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시민의 적극적 동참이다. 함께 사라져 가는 개인의 기록을 모으고 의미를 찾아내고 더욱 가치있는 기록으로 만들어 이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도시 전주가 그야말로 한국문화의 원형적 역할에 기반한 한국의 문화수도, 아시아문화 심장터를 이뤄낼 수 있다. 전주 민간기록, 전주정신의 숲으로 꽃피다. 사라져가는 전주의 민간기록을 지키기 위해 2016년 전주 정신의 숲으로 시작된 전주시 민간기록물 관리위원회는 출범 이후 2018년까지 5회에 걸쳐 다양한 전주, 전라북도권 옛 기록 및 민간기록물들을 수집하였다. 역사,문학,문화,종교,언론,교육,출판 등 다방면의 전문가가 공공영역의 기록이 포괄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일상, 의식, 사회상을 보여주는 시민기록을 확보하고 정리하여 전주 100년을 대비하는 역사적 기억의 축적과 기록자산 확보를 목표로 하였다. 이는 2019년 새롭게 추진될 한국문화원형콘텐츠 체험 전시관 사업 의 기반을 마련하리라 생각된다. 이를 위해 2016년부터 진행된 민간기록물 수집공모전에서 수상한 자료들을 시민과 공유하고 공감하기 위한 장으로 본란을 마련하였다. 전주민간기록물 공모전, 전주정신을 이루다. 2016년부터 민간기록물공모전이 2018년까지 총 5회 진행되었다. 1회(2016.10.24.-12.5.) 공모전 대상은 1916년 5월에서 8월까지 쓴 이용엽씨의 선친 일기로 진안에서 전주농고로 진학하여 전주의 환경기후산업문화체육 등 사회 전분야의 관하여 기술함으로써 당대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었다. 2회(2017.5.15.-6.14.) 대상은 1920년~60년대 전주 옛사진이 선정되었다. 옛사진들은 전주의 일대기를 담은 여러 기록들로 전주의 과거를 새롭게 찾아내고, 보존 및 활용될 수 있도록 기여하였다. 3회 (2017.9.-10.31.)는 전주종합경기장의 기록을 찾습니다 라는 주제로 기록물을 수집하였다. 대상은 1963년 전주종합경기장 건립을 위해 전주천의 모래와 자갈 등 골재 토취부터 완공까지 모든 과정을 기록한 앨범집(사진136장)이 선정되었다. 또한 최우수상은 제61회 전국체전 준비사업 준공식 기념식에서 테이프커팅을 위해 제작된 기념 가위(1980.10.2. 전주시 각인)가 선정되었다. 4회(2018.2.21.-3.30)는 3.1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전주의 3.1운동의 역사성과 도시의 생활상이 담긴 기록물, 3.1운동을 포함한 독립운동 관련 기록물을 기증받았다. 3.1운동 부문 꽃심상(대상)에는 대한민국정부가 1952년 국한문혼용체(한글토)로 제작 간행한 민족선언서와 전주 지역 출판 잡지 및 신문 창간호(40점)가 선정됐다. 5회(2018.9.12.-10.31.)는 시민들의 추억 속에 담긴 축제와 행사, 놀이와 관련된 기록물을 공모해 1960년대 전주에서 개최된 전라북도 궁도대회 획기지(채점표)와 1930~40년대 전주 남문밖교회와 전주여자중학교 운동회 및 졸업, 대한식량공사 직장 야구 사진 등 전주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학교와 직장, 가족, 종교, 문화 활동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앨범이 선정되었다. 이같은 수집품은 일 개인의 기록이지만 결국 전주의 근현대 기억의 실체이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다. 이제 2019년 새로운 전주의 역사를 기왕에 수집된 민간기록 수상작을 중심으로 올 한해 격주로 다음과 같은 주제로 전주 민간기록물의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향후 지속될 민간기록물의 수집과 역사문화자원화를 위한 시민분들의 적극적 동참과 다양한 제안을 통한 전주 기록문화도시의 중흥을 기대한다. /조법종(우석대 역사교육과)

  • 기획
  • 기고
  • 2019.01.24 19:56

[카드뉴스] '온누리상품권' 이용하세요

  • 기획
  • 전북일보
  • 2019.01.24 17:03

[카드뉴스] 오늘도 미세먼지 나쁨

  • 기획
  • 전북일보
  • 2019.01.24 17:00

핸드사이클,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이도연선수

스무 살 어느 날, 건물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척추 신경이 끊어졌으나 다시 걸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1년여 동안 세 번 수술에 고통스런 재활 치료를 받았으나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는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됐다. 장애인이 된 삶은 180도 달라졌다. 퇴원해보니 세상에 나 혼자 서있었다. 모든 불행이 내 앞으로 몰려오는 것 같았다. 10여 년 동안 스스로 움츠려 세상을 향한 원망으로 살았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니 그의 앞에 예쁘게 커가는 딸들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인생을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다. 지난해 겨울, 평창 장애인 올림픽에서 노르딕스키 7개 종목에 출전, 역경을 딛고 완주해낸 이도연 선수(47) 이야기다. 그의 평창올림픽 성적은 중하위권. 그래도 그는 더없이 행복해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잖아요. 나이도 많고. 제 목표가 꼴찌는 하지 말자 어떤 상황에서든 완주는 하자는 것이었어요. 최선을 다했고, 목표도 이루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었죠. 여름에는 핸드사이클로, 겨울에는 노르딕스키로 세상과 맞서는 그의 삶은 경이롭다. 1년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혹은 설원에서 보내는 그의 도전 정신은 어디까지 닿아 있을까 궁금했다. 지난 연말 전화를 했으나 그는 해외 전지훈련 중이었다. 연초에 다시 연락을 했다. 주말에 다시 합숙훈련에 들어간다는 그는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늦깎이 대학생인 그는 해외훈련으로 놓친 기말고사를 따로 치르고 오는 중이었다. 그는 평택에 있는 한국복지대학교 장애인 레저스포츠학과 1학년이다. 부족함이 너무 많아 대학을 들어갔다는 그는 걱정했던 것보다 시험을 잘 본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이 어려워 인터뷰를 하기 전 그의 집 근처 놀이터에서 사진부터 찍었다. 번거로울까 걱정했더니 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생스럽지 않아요. 조금 불편할 뿐이죠. -훈련은 어디서 하셨습니까. 핀란드에서 했어요. 11월 6일에 출발해 12월 28일에 돌아왔습니다. -짧지 않았군요. 해외 전지훈련은 처음인가요. 동계 올림픽을 위해 2017년부터 다녔어요. 2016년에 스키를 시작했는데 이듬해 1월부터 경기에 참여했었거든요. -겨울 종목은 더 힘든 운동일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힘들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힘든 과정을 즐기자고 마음먹으니 고통이 좀 덜어지더군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주말에 다시 훈련 들어가신다면서요. 겨울에는 평창 훈련이 계속되거든요. 1월 훈련이 끝나면 나왔다가 2월에 다시 들어가죠. -지금 활동하시는 주 종목이 핸드 사이클 아닌가요. 맞아요. 겨울에는 노르딕스키를, 봄부터는 핸드 사이클 훈련을 합니다. 내년에는 도쿄 장애인올림픽이 있어서 올해는 그 준비에 전념해야 할 것 같아요. -내년 8월이던가요. 도쿄 올림픽까지 1년 반 정도 남았군요. 제 주 종목이 핸드사이클이잖아요. 사실 내년 도쿄올림픽은 제 최종 목표이기도해요. 꼭 금메달을 따고 싶거든요. 그래서 동계훈련을 하면서도 사이클에 필요한 훈련을 틈틈이 하고 있어요. -국가대표 선수인데 사이클은 개인적으로 훈련을 하십니까. 소속된 실업팀이 없으니까요. 국가대표 훈련은 참여하지만 1년 내내 훈련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실업팀에 소속되어 직업적으로 선수가 되면 1년 내내 훈련을 할 수 있지만 국가대표훈련이 없는 시간은 개인적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운동은 특히 지속적인 훈련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그렇죠. 모든 종목이 그렇습니다. 특히 제가 하는 핸드사이클은 두 팔로 사이클 바퀴를 돌려 달리는 운동인데 훈련을 쉬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십상이거든요. 개인적으로라도 훈련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핸드사이클 실업팀이 없습니까. 아직 없어요. 전라북도는 장애인 종목 실업팀 자체가 아예 없고요. 대신 우수선수 지원 제도가 있어요. 바람으로는 실업팀이 있으면 좋겠는데 더 많은 선수들에게 지원이 돌아가게 한다는 취지도 좋은 점이 있으니 개인적인 욕심만 내세울 수도 없는 일이예요. 작년쯤 다른 지역에서 실업팀 제의를 했는데 여건도 그렇고, 이전에 경기도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고향을 떠나 있었는데 또 타지 소속이 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거절했어요. 없던 일이 되었죠. -지금 바람은 실업팀 소속이 되는 것이겠군요. 더도 말고 도쿄 올림픽까지라도 본격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좋은 지도자를 만나 제대로 훈련하고 싶은 것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금메달을 걸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 바람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핸드 사이클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처음에는 탁구로 운동을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있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마음먹어도 온종일 앉아서 지내야 하는 일상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생활이 곤궁하니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받아 했어요. 그러니 신경은 예민해지고 가슴에 화만 쌓이는 것 같았어요. 주위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몸을 움직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날아갈 것 같았어요. 운동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한 통로였어요. -육상선수로도 활동하셨죠. 한국 신기록을 세운 종목이 어떤 것입니까. 투포환 종목이에요.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포환던지기. 모두 한국 신기록을 바꾸었지요. -그런데 왜 종목을 다시 바꾸셨습니까.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다시 돌아보면서부터였어요. 운동을 통해 나를 극복하고 싶었거든요. 나와의 싸움. 그래서 탁구에서 육상으로 바꾸고 다시 핸드 사이클로 바꾸게 된 것 같아요. 노르딕스키에 도전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핸드사이클과 노르딕스키를 병행하는 일은 어떻습니까. 경기 형식과 성격이 전혀 다르니 정말 힘든 과정일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지만 외국 선수들은 복수의 종목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저도 도전하고 싶었어요. 결국은 이러한 과정 자체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고 장애를 극복하는 일이니까요. -화제를 좀 바꾸겠습니다. 장애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고를 당해 다시는 혼자 설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세상을 두 번 살고 있다고 할까요. 이전의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죠. 인생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갖게 되었으니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것. 늘 마음속으로 다지는 생각입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절망스러웠을 때는 언제였습니까. 절망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던 그 당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돌아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육체적인 한계를 절감해야 하는 그 모든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장애가 나에게 주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또 용기를 내고 힘을 내어 한걸음 나가고 또 다시 절망과 맞닥뜨리면 또 힘을 내어 한걸음 나가는 그 과정들이 정말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도 모든 과정이 그렇잖아요. 지금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가면 쉽고 편한 시간과 공간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으로 절망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도 똑같지요. -말씀을 듣다보니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이 길었던 절망의 시간을 극복하게 해준 계기였겠습니다. 그렇죠. 운동은 제게 새로운 인생을 안겨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의 계기는 종교를 만나게 된 것이에요. 딸아이와 가장 힘들었을 때 찾아간 원불교에서 위안을 받고 삶의 힘을 얻었거든요. 그때부터 세상을 향한 원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행복을 안겨준 운동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 생각으로는 쉰 살이 넘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체력적으로도 젊은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거든요.(웃음) 체력은 타고난 것 같아요. 부모님이 주신 선물이겠죠. 노르딕스키 종목에서는 제가 나이 많은 순서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만 그렇다고 경기에 뒤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바람으로는 할 수 있는 나이까지 현장에서 뛰고 싶죠.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내며 운동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는 것 말고 또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 꿈은 좀 더 나이가 들면 저와 같은 처지의 장애인들이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겪어보니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찾으면 희망이 보이거든요. 내 안에 있는 능력, 재능, 해보려는 의지를 찾으려하지 않고 내가 갖지 못한 여건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망과 불행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내가 겪었던 절망의 시간과 그 절망을 극복해낸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일으키고 용기를 주는 일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만난 세상은 정말 새로웠어요. 삶의 의지를 갖는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거든요. 저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나온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더 좋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더 훌륭한 선수를 일찍 가질 수 있었을 텐데요.(웃음) 그렇긴 하지만 그것 역시 욕심일거예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라도 이것을 깨우쳤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합니다. 장애는 내가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할 것일 뿐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의 시간 또한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요리공부를 하고 있다는 둘째 딸이었다. 그의 얼굴에 금세 웃음이 번졌다. 대화 또한 남달랐다. 훈련하느라 대회 출전하느라 1년에 두세 번 만나게 되는 세 딸의 존재는 그에게 각별하다. 그 스스로 나에게 아이들이 생명줄이었다고 했듯이 그의 삶을 일으켜 세운 것은 아이들이었다. 큰딸은 검찰공무원이 됐고, 대학 재학 중인 막내딸은 공무원시험에 이미 합격했단다. 그는 엄마의 도움 없이도 잘 커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그 또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제게 스승이에요. 늘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죠. 어려움 시간 속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해주었어요. 무엇이든 자신들이 선택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 또한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거든요. 하반신 장애 딛고 사이클과 노르딕스키 국가대표로 우뚝 선 철인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이도연 선수 이도연 선수는 정읍이 고향이다. 1972년생. 맏딸에 남동생만 셋인 그는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체격이 좋고 달리기나 배구 등 운동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언제부턴가 제복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됐다. 그래서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군인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익산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으로, 어머니는 식당일로 번 돈으로 근근이 4남매를 키우면서도 자식들 뒷바라지를 가장 큰 기쁨으로 삼았다. 군인이 되는 대신 간호사가 되어 부모님의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대학을 가고 싶었으나 실패하고 간호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사고가 났다. 건물 옥상에서 실수로 떨어진 그에게 안겨진 것은 척추장애. 그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1년 반 동안 세 번의 수술과 고통스런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재활을 위해 노력했으나 그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과 담을 쌓았다. 자포자기 한 상태에서 마음을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이듬해 운명처럼 남편을 만나 세 딸을 낳았으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과 헤어지면서 어린 세 딸을 모두 껴안았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엄청난 고난이었다. 포장, 전자제품 부품 조립, 양말 뜨기 등 앉아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 그의 생업이 됐다. 줄곧 함께 살아온 친정 부모님이 고통을 덜어주었지만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 희망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은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이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던 것은 예쁘게 커가는 세 딸이었다.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은 장애를 가진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대신 자랑스럽게 여겼다. 검찰공무원이 된 큰딸은 엄마의 삶을 언젠가는 글로 써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30대 초반, 원불교를 만나면서 세상을 더 새롭게 보게 됐다. 설법을 듣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세상에 대한 원망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즈음 운동을 시작했다. 2006년 굳었던 몸을 일으켜낸 것은 탁구였다. 국내외 원정경기까지 나다녔을 정도로 재미를 붙여 몰두했지만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는 운동에 더 마음이 갔다. 육상종목으로 바꾼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당초 휠체어 육상 달리기를 하고 싶었으나 투포환을 권유받고 선수가 됐다. 마흔 살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이 종목에서도 그는 타고난 재능을 보여 투척 세 종목 모두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좀 더 역동적인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핸드 사이클이다. 어머니는 딸의 꿈을 위해 거금 천오백만원을 들여 사이클을 사주었다. 그러면서도 당부한 말은 비싸게 샀으니 힘들어도 꼭 타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언제든 정말 힘들면 그만두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금메달 2관왕, 2016 리우여름패럴림픽 은메달, 그리고 지난해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의 금메달은 모두 그 결실이었다. 2016년에는 사이클을 함께 탔던 신의현선수의 권유로 노르딕스키에 도전, 1년 여 만에 지난해 평창에서 열린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7개 종목을 모두 완주해낸 그의 경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장애인 여자 사이클과 노르딕스키 국가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살아갈 의지를 잃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길잡이가 되고 싶어한다.

  • 기획
  • 김은정
  • 2019.01.17 21:57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9. 젊은이가 먼저 마시는 세주(歲酒)

새해주를 마시는 모임을 그린 풍속화가 한 점 있다. 1912년 정월 초하루 밤의 모임을 그린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로 장승업의 제자이자 조선의 마지막 화원인 안중식(1861~1919)의 그림이다. 탑원(塔園)이라 불린 오세창의 집에 나라를 잃은 설움을 달래기 위해 모였다는 설도 있지만, 그림의 제목에 도소(屠蘇)가 들어가는 것을 보면 새해맞이 술인 도소주를 마시는 모임을 그린 것이 분명하다. 저 멀리 원각사탑을 흐릿하게 그려 넣고 뿌연 밤안개에 주변을 담그고 누각에 모인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 당대의 상황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흰 술병과 술잔이 놓인 탁자를 가운데 두고 차례로 돌아가며 도소주를 마시고 삿한 것을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어떤 다짐을 했을지 그 마음을 더듬게 하는 명작이다. 도소주는 후한(後漢)시대 명의인 화타 혹은 당나라의 의학자 손사막이 부정한 기운을 피할 수 있도록 처방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약주로 초백주(椒柏酒)와 함께 새해에 마시는 술인 세주(歲酒)이다. 조선의 후기 학자 조재삼(1808~1866)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 도소주의 도는 귀신의 기를 발라 버리고, 소는 사람의 혼을 각성시킨다라고 하였는데, 설날 도소주를 마셔 귀신을 물리치고 사람의 혼을 깨어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도소주의 도(屠)는 잡다라는 뜻이고 소(蘇)는 사귀(邪鬼)의 이름이니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술이다. 또한, 도소주(屠蘇酒)의 한자를 해체해 의미를 살펴보면 죽은(尸) 자(者)를 위하여 나물(菜)과 생선(魚)과 밥(禾)을 차례상에 올려놓았다가 마시는 술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맞이 풍속으로 집집마다 정성껏 빚은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담근 술)를 차례주로 올리고 액땜으로 마신 의미를 지닌 술이다. 세주 역시 각 집안이 가진 전통과 특색이 담긴 술이다. 집안마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이 더해졌기 때문에 잘 담근 술은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곤 했다. 예로부터 우리 지역은 기름진 평야지대와 서해를 끼고 있어 전통적으로 먹거리가 풍부했고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가양주 형태의 토속주가 발달한 곳으로 조선의 3대 명주 중 이강주와 죽력고의 산지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흉년이 들어 곡식이 부족해 금주령이 내려지게 되면 술 빚는 것 또한 엄격하게 단속했다. 법이 무섭기도 했지만 먹을 양식도 없는 민가에서는 세주를 담글 엄두도 못 냈다. 대신 약재 주머니를 우물에 담갔다가 끓여 식힌 물을 술잔에 담아 도소주!라고 외치고 마시며 무병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유한 양반집에서는 밀주(密酒)를 담가 명절마다 먹기도 했던 것 같다.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가 세시풍속을 적은 『세시잡영(歲時雜詠)』에 관가의 금주령이 두려워, 감히 도소주를 담그지 못하네. 백성들이 어찌 알겠는가, 큰 항아리에 청주가 넘치는 줄을이라고 풍자한 것을 보면 당시의 폐단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명의 허준(1593~1615)은 도소주를 마시는 것을 도소음(屠蘇飮)이라 하며 백출 1.8냥, 대황, 길경, 감초, 천초, 계심 각 1.5냥, 호장근 1.2냥, 천오 6돈 이 약들을 썰어 빨간 주머니에 넣어 12월 그믐에 우물 속에 담갔다가 정월 초하루 새벽에 꺼낸다. 이것을 청주 2병에 넣어 몇 번 끓어오르게 달이고 동쪽을 보며 마신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1잔씩 마시고, 찌꺼기는 다시 우물에 담가 두고 그 물을 마신다고 『동의보감』에 기록했다. 약재 성분이 담긴 우물을 마을 사람들이 건강하게 나누고자 했던 마음이 귀하다. 도소주에 비하여 초백주의 제조법은 간단하다. 서유구(1764-1845)가 쓴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의하면 섣달 그믐날 후추 7알과 동쪽으로 뻗은 잣잎 7개를 따서 술에 넣으면 된다고 한다. 술 빚을 때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로 술을 저으라는 미신이 있듯이, 동쪽으로 뻗은 잣잎은 신성한 기운을 담은 것으로 보았다. 기존의 술 마시는 예법과 달리 새해에 마시는 술은 젊은이부터 먼저 마신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초하룻날 집안이 함께 모여 차례로 세배하고, 나이 적은 사람부터 이 술을 마신다.고 기록한다. 조선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문인 심수경(1567~1608)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서는 설날 아침에 도소주를 마시는 것이 옛 풍습이다. 젊은이가 먼저 마시고 노인이 나중에 마신다. 지금 풍속은 설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사람을 만나면 그 이름을 불러서 그 사람이 대답하면 나의 허술한 것을 사가라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의 병을 파는 것으로 재앙을 면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풍습은 도소주와 같이 전해 온 중국의 오랜 풍속으로, 후한시대 동훈(董勛)이 지은 『문예속(問禮俗)』에 젊은 사람은 한 해를 얻으니 먼저 마시고, 노인은 세월을 잃으니 뒤에 마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도소주를 마시는 순서에 대한 관습은 새해 나이 들어감을 쓸쓸해하며 읊은 여러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신정(1628~1687)의 『분애유고(汾厓遺稿)』에서 도소주를 제일 나중에 마신다고 한탄하지 말게나, 이 몸도 역시 일찍이 소년이었다네라고 한 것이나 임상원(1638~1697)이 『염헌집(恬軒集)』에 도소주를 마실 때에 내 나이 많아졌음을 깨달았네라고 한 시구가 그렇다. 이제는 집집마다 세주를 만들던 풍습도 많이 사라지고 전통주를 만드는 곳에서도 세주를 구하기 어렵다. 오랜 세시풍속으로 내려오는 풍습인 세주를 우리 지역에 있는 전통주 양조장과 술테마 박물관에서 계승하고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돌아오는 설에 세주를 빚기 어렵게 되면 차례주를 음복할 때 젊은 나이 순서에 따라 도소주!라 외치며 삿한 기운을 쫓고 모두가 내내 건강하기를 기원해 보자.

  • 기획
  • 기고
  • 2019.01.17 21:57

[카드뉴스] 거리 뒤덮은 불법 광고물

  • 기획
  • 전북일보
  • 2019.01.17 21:23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