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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농가 피해 철새 골머리

  • 기획
  • 전북일보
  • 2019.01.17 21:18

[카드뉴스] 노후된 농수산물 도매시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9.01.17 21:17

윤권하 원광대병원 제19대 병원장 “스마트 플랫폼 구축, 지역사회 사랑받는 글로벌 병원으로”

의료관광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다가왔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한국으로 의료관광을 오는 일도 흔한 시대가 됐다. 의료 선진화 시대에 맞춰 원광대병원도 변화를 시작했다. 이미 양방과 한방의 협진체계를 갖추며 해외 의료관광 시대를 이끌겠다는 계획은 물론, 새롭게 건립하고 있는 전북권역 외상센터는 응급환자들에게 최적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전북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와 닥터헬기 도입 등 분초를 다투는 응급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의 질도 한층 높아졌다. 의료산업화라는 변화의 물결에 맞서 철저한 준비에 돌입한 원광대병원을 새로 이끌게 된 제19대 윤권하 병원장을 만났다. 윤 병원장은 지난 2일 취임했다. - 병원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원광대학교병원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광대병원은 40여 년 전 신용벌에 개설한 이래 줄기찬 노력으로 국내 굴지의 최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환자만족도 평가에서 전국 5위의 우수한 성과를 이루어 냈습니다.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최상급으로 유지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병원이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는 진료 특성화와 정밀화를 통해 더욱 고도화하여 가치를 높일 것이며 더욱 수준 높은 명품의료를 지역사회에 제공해 나갈 것입니다. - 원광대병원은 많은 변화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과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보건의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질환 패턴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신종 감염병 출현 등 긴급 재난상황에 대응할 의료시설을 갖추어야 합니다. 국가 보건의료정책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며, 선도적으로 글로벌시장에 진출해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외부 환경적 요인뿐만 아니라 내부 교직원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고용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성장동력을 확보하도록 자긍심을 높이고 서로 단합하고 인재들이 모여드는 병원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직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근무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직장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 취임사에서 3가지 정책을 주요 기조로 삼겠다고 발표하셨는데 그 내용을 소개해 주신다면. 원광대병원의 미래를 향한 도약을 위해 3가지 정책을 주요기조로 삼을 예정입니다. 첫째 재생의세(濟生醫世) 정신 구현을 다시 새기고 실천하는 병원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둘째 지역과 함께, 국가와 함께하는 병원이 될 것입니다. 셋째 글로벌 병원으로의 도약을 위해 스마트플랫폼 병원을 구축하겠습니다. 이 세가지 기조를 통해 건강한 병원, 건강한 사회, 건강한 우리의 미래를 위한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지역뿐만이 아니라 도민의 사랑을 받는 병원이 되기 위한 목표가 있으신지요. 지역사회의 보건의료 현안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책임지는 병원이 되겠습니다. 전라북도와 인근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층에게도 첨단의술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배려하는, 따뜻하고 훈훈한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골든타임으로 일컬어지는 응급상황과 만성질환 및 중증환자들에게 최고의 명품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여 우리 지역에서는 최소한 억울하게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 원광대학교병원의 강점을 꼽으신다면. 우리 병원은 원광대학교의 최고 강점 중의 하나인 의과대학, 한의과대학, 치과대학, 약학대학, 공과대학, 자연대학 등 의생명 특성화 종합대학을 기반으로 첨단 연구기반과 우수 역량을 집결하여 첨단의료산업을 이끌 수 있는 양질의 토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반 하에 원광대병원이 대학발전의 선도적 역할을 하여 진료 중심기관에서 의료산업 중심기관으로 면모를 일신하고 국가적으로 바이오헬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우뚝 서겠습니다. 원광대병원은 전임 병원장님들의 뛰어난 리더십과 교직원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놀랄만한 성과들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국가 공공의료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당면한 보건의료현안 뿐만 아니라 미래 의료산업 발전에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 - 병원장으로서 계획하고, 강조하고 계신 일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 글로벌 병원으로 도약을 위한 스마트플랫폼 병원을 구축하겠습니다. 의료서비스의 글로벌 트렌드는 기존의 경험 기반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물리적 공간 중심에서 사이버 공간 중심으로 비약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클라우드, 원격진료 등 초지능, 초정밀, 초연결이 이루어지는 스마트환경에서 핵심적으로 구축해야 할 본질은 이러한 네트워크와 지능형 의료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갖추는 것입니다. 현재의 물리적 지역적 한계는 새로운 시대에서는 어떠한 제약요소도 될 수 없으며, 글로벌화를 이루는 데 강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우수한 의료기술, 발전된 의료 환경,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갖춘 본원이 스마트플랫폼을 구축하여 글로벌병원으로 도약하고 발전해 가는 모습을 멀지 않은 미래에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민과 도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원광대병원은 지역사회의 사랑을 받고 성장해 왔습니다. 최근에 완공된 응급센터 및 외상센터는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최신의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스마트 플랫폼 병원이 구축되면 차원이 다른 새로운 의료서비스가 지역주민에게 제공될 것입니다. 본원은 인간과 세상을 위한 사람중심의 의료기관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지역거점병원으로서 교육, 연구, 진료 등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지역민의 건강증진과 의료발전을 위해 멈춤 없는 전진을 해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시민과 도민 여러분이 믿고 찾을 수 있고, 우리 지역에 원광대학교병원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병원이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변함없는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 [윤권하 병원장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 좌우명, 직업군인 거쳐 의료인의 길 윤권하 병원장(59)은 공고를 졸업한 후 직업군인을 거쳐 의사 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윤 병원장은 강진중학교 졸업 후 경북 구미에 위치한 금오공고에 입학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문계보다 인기도 높았고, 무엇보다 학비와 기숙사 생활비용이 무료인 학교라는 매력이 있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공군에 입대해 중사로 전역하기까지 5년간 군인의 삶을 살았다. 개인적으로 꿈꾸던 대학을 가지 못해서 굉장히 좌절했어요. 군 복무 기간 내내 그 꿈을 잊은 적이 없었고, 그래서 늦었지만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윤 병원장이 처음 대학에 입학한 것은 경제학과였다. 1984년 대학에 발을 디딘 후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의대의 꿈은 26세에서야 교수의 권유로 시작됐다. 넉넉지 않았던 가정형편,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지만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 1986년 원광대 의대에 입학하게 됐다. 이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해 전공의로 영상학과를 선택했다. 1년에 20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하며 영상학과에 활기를 불어넣는 노력을 기울였다. 윤 병원장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좌우명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일관된 꿈을 유지하되 큰 꿈을 꾸는 것, 세상은 굉장히 넓고 할 일도 많고 다양하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 기획
  • 김진만
  • 2019.01.15 16:53

[카드뉴스] 2022년까지 일자리 13만 개

  • 기획
  • 전북일보
  • 2019.01.11 17:51

전북상협 이선홍 회장 "경영 가로막는 규제 해소 앞장, 기업 경쟁력 높이겠다"

지난해 전북경제는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등 지역경제의 큰 축이 흔들리는 악재로 인해 커다란 위기에 내몰렸다. 올해 역시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힘든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벼랑 끝에 몰린 지역경제의 현실에서 도내 상공인들의 구심역할을 하는 전라북도상공회의소협의회 이선홍 회장으로부터 올해 전북경제의 현안과 대응방안 등에 대해 들어본다. -지난해 전북경제의 주요 악재와 호재를 되돌아본다면. 지난해 우리 지역경제는 그야말로 비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등 우리 전북경제를 지탱하던 두 축이 크게 흔들려 고용, 수출, 생산 등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전년대비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일자리 부족으로 인하여 청년들이 전북을 떠나고 있어 걱정이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년이 전북의 미래인 상황에서 우리 전북의 청년 고용률은 33.2%로 전국평균 43.2%보다 10%p 낮고, 해마다 60008000명의 청년이 전북을 떠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전북은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을 비롯한 도민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국가예산 7조 원 시대를 개막하게 된 것은 의미가 크다 할 것입니다. 이외에도 새만금특별법 개정, 세계잼버리대회 지원 특별법 제정, 남원 국립공공의료대학 설립, 제2회 아시아 태평양 마스터스대회를 유치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큰 성과를 거둔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도내 경제의 주요 현안과 전망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올해 우리 앞에 닥친 경제상황은 그리 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들은 내수부진과 노동시장 변화로 경영여건의 개선에는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며, 서민들도 상권붕괴와 소득 감소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등 희망의 불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 않은 경제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팽배한 시점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해서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바다에서 폭풍을 만날 때 가장 안전한 방법은 폭풍 속으로 들어가야 하듯이 불경기라해서 움츠러들지 말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 본연의 임무에 매진해야 할 것이며, 우리 도민들도 지역산품애용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와 지자체도 하루빨리 침체에 빠진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적 처방을 실시해야 합니다. -지난해 우리 지역 건설업계의 경영상황은 어떠했는지요? 지역경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은 우리 지역의 경우 공사건수 대비 건설업체의 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고, 중소건설업체가 대부분인 관계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형공사는 외지업체가 독식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새만금 사업 지역기업 우대기준이 마련돼 그동안 도내에서 발주된 대규모 공공 건설공사에서 소외됐던 지역 건설사들의 참여가 확대된 점은 지난해의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지역 건설업체들은 규모의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업체의 부담경감을 위하여 정부 또는 공공기관 공사발주시 종합심사낙찰제와 적격심사낙찰제도를 시행해 설계비 부담이 완화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지자체, 건설협회 등과의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 새만금사업은 물론 지역기업의 신증설, 지자체의 신규건설사업 발굴 등을 통한 일감 증대로 지역건설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전북상협의 올해 운영계획은 무엇인가요. 올해 전북상협은 무엇보다도 경영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나 애로사항을 해소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하는 등 기업활력 제고에 힘쓰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기업들이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 제3의 금융중심지 조성 등 지역의 많은 현안들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지자체와 정치권, 언론과의 소통과 협력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도내 상공인들의 구심점인 전북상협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전북상협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상공회의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전국적으로 73개의 상공회의소가 있으며 우리 전북에는 전주, 익산, 군산, 전북서남 등 총 4개의 상공회의소가 있습니다. 지역 상공업과 전북 발전을 위한 의견을 중앙정부나 지자체에 전달함에 있어 전북지역 상공인 전체의 목소리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이를 위해 전북상협은 2003년 구성된 조직으로 3000여 회원사가 가입되어 있으며, 기업인의 사기진작과 기업하기 좋은 풍토조성을 위해 다양한 협력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역경제를 살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업을 지역내로 유치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으며, 정부정책을 활용한 지역발전 전략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전북이 기업인프라, 우수인력, 시장성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우위가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어렵다고 움츠리고만 있기보다는 경기회복에 대비해 기술개발과 영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이고 과감하게 유지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은 큰 고통을 주고 있지만, 경기는 싸이클과 같아서 반드시 회복시기가 있습니다.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현재의 생각이나 행동에 머무르지 말고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도민들도 지역상품을 적극 애용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끝으로 도민 등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일각에서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은 경제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팽배합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힘들지만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높고 튼튼한 벽이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소통하면 벽은 무너질 것이며, 많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벽이 아무리 높고 험해도 우리 모두 새로운 전라북도 발전을 위해 함께 소통하고 노력해 나갔으면 합니다. ● 이선홍 회장은 누구인가 이선홍 회장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지난 1973년 전주 팔복동의 작은 회사 경리사원으로부터 시작해 현재는 합동건설, 성전건설, 합동토건 등 지역 중견건설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기린라이온스클럽 회장, 국제라이온스협회 355E지구 부총재,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전라북도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법무부 법사랑위원 전주지역 연합회 회장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한 무료급식, 연탄나눔, 새생활 합동결혼식 개최 등 사회봉사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지난 2016년에는 전북지역 제30호 아너소사이티 회원에 가입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지역 리더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특히 2019년 새해를 시작하며 주요 경제기관들이 앞다퉈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켜져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기반이 취약하고 영세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전북경제는 더욱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근면함과 성실함을 원칙으로 경영인으로서의 제역할을 다하는 한편, 지역의 경제수장으로서 지방과 중앙과의 가교역할을 통해 도내 기업의 애로 해소는 물론 전라북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 기획
  • 강현규
  • 2019.01.06 19:20

허무(虛無)와 득도(得道)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말들만 모아본다. 상식인데 상식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있다가 없어진다. 빛도 사라진다. 지구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바다도 다른 것들이 흘러들어가 채워지며 썩다가 언젠가는 육지로 변할 것이다. 바다도 사라지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졌듯이 호모사피엔스도 사라진다. 지금 우리가 인간이라고 하는 유형의 동물이 언젠가는 멸종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도 죽는다. 길어야 100년 좌우로 살다 죽는다. 내 장례식에 와서 10분 이상 진심으로 슬퍼해 줄 사람은 절대 10명 이상이 넘지 않을 것이다. 장례식에 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예를 올리는 1-2분여만 지나면 둘러 앉아 자신들의 잡다한 일상 얘기를 나누다 간다. 타자의 죽음은 절대 자신의 경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자신의 죽음마저도 자신의 경험이 아니다. 경험하면서 죽는 순간을 맞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잊혀 진다. 나도 잊혀 진다. 모든 관계도 잊혀 진다. 모든 것이 있다가 없어지듯이, 모든 관계에도 끝이 있다. 아무리 부자라도 빈손으로 죽는다. 남겨놓고 가는 돈이 어찌 될지 그는 모른다. 어떤 권력자도 혼자 죽는다. 어떤 학자도 빈 머리로 죽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모도 성형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결국 쭈글쭈글 해지는 시간을 맞고, 흙색으로 변하다가 일그러지며 죽는다. 영생이라 해도 언젠가는 사라질 지구의 시간 안에서 영생일 뿐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모든 명예는 한 순간이다. 모든 권력도 한 순간이다. 모든 부도 한 순간이다. 순간? 순간도 되지 않는다. 순간이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로 순간이다. 허무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허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다 허무하다. 유투브에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이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구라는 별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다. 지구도 겨자씨보다 작은데, 그 안에서 지나가는 시간이며, 공간이며, 생로병사며, 명예며, 치욕이며 하는 것들은 얼마나 또 사소한 것들인가. 전라도는 뭐고 경상도는 또 뭔가. 좌파는 뭐고 우파는 또 뭔가. 진보는 뭐고 보수는 또 뭔가. 백인은 뭐고 흑인은 또 뭔가. 철학자면 어떻고 뱃사공이면 또 어떤가. 철학자도 죽고 뱃사공도 죽는 마당에 득도는 뭐고 득도 못하는 것은 또 뭔가. 허무하고 허무한 존재들이 허무하고 허무한 짓들을 허무한 줄도 모르고 싸지르다가 속절없이 사라진다. 순간만 살다 죽을 것을 우리는 왜 굳이 애쓰며 사는가. 다 사라질 것을 우리는 왜 잡는가. 결국 다 털고 갈 것을 왜 굳이 배우는가. 허무한 줄 알면서 왜 사는가. 우리의 존재 조건이 허무함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허무와의 투쟁이 아닐까? 허무에 지지 않기 위해서. 허무에 지면 왜 안 되는가. 여기서부터는 질문이 불가능하다. 존재의 가장 궁극적 상태이기 때문에 질문도 거기서부터만 출발할 수 있다. 허무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허무를 관찰하고, 허무와 투쟁한다. 허무하고 투쟁하면서 나는 나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확인된다. 자신을 허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허무를 관찰하고 투쟁하도록 하는 토대가 허무인 것은 참 모순적이다. 삶을 죽음과 연결시켜 죽음 쪽에서 삶을 보면 삶이 더 또렷하게 드러나고 충실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은 자신의 존재 형식인 허무와 스스로 전선을 형성하면서 허무이면서도 허무가 아닌 것으로 재탄생시킨다. 자기가 존재한다는 확인을 스스로 경험하는 자는 그 순간에 영원을 함께 경험한다. 자기 존재의 자각,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성스러운 자리다. 『장자』라는 책의 첫 페이지는 아주 미세한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천지라는 우주의 바다에서 몇 천리나 되는 크기로 자란 다음에 바다가 회오리바람을 따라 요동치며 솟구치자, 그 틈을 타서 하늘로 따라 올라 온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거대한 붕(鵬)이라는 새로 변환하여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는 매우 역동적인 얘기이다. 장자의 이런 역동적이고 낙관적인 삶의 자세는 어떤 통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까를 탐구하다보면, 그 책 안에서 우리는 매우 비극적이고 허무한 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휙 지나가는 것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隙,忽然而已. 「知北遊」) 삶이 순간이라는 인식으로 매우 극단적인 허무에 도달한 한 인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토록 극단적인 허무에 도달한 사람이 또 무한 전변을 우주적 크기로 완수하는 역동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허무와 무한 확장은 이렇게 하나로 연결된다. 허무와 무한 확장을 하나로 연결시킨 것은 하나의 독특한 능력이 아니라 허무로 되어 있는 기반 위에서 사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존재적 명령이자 사명이다. 허무하기 때문이다. 허무는 인간이 주관적으로 한 가치 평가가 아니라 우주의 진실한 모습이다. 가치(value)가 아니라 사실(fact)이다. 어떤 의미인가는 아무 상관없다. 우주는 원래 허무하다. 허무하게 생긴 우주의 존재 형식을 노자나 장자는 도(道)라고 불렀다. 이런 도의 이치를 온전히 깨닫고, 그 이치를 자기화 해서 구현할 능력까지 겸비하면, 득도(得道)했다고 말해준다. 우주적 삶을 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단계에 오른 자가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일을 잘 수행하는 활동성에 초점을 맞춰 말한다면, 도통(道通)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궁극적 사명은 득도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득도한 자는 세상과 우주의 이치[理]에 밝아서 그때그때 상황을 잘 살펴, (즉 도통하여) 매우 적절한 행동[權]을 하기 때문에 해를 당하지 않는다.(「秋水」) 이 적절한 행동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여서 우주적 차원의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곤(鯤)으로 태어나 대붕(大鵬)처럼 살게 된다는 말이다. 누군들 우주적 차원의 삶을 살기 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득도의 지경이란 것이 매우 특별한 극소수에게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서 지레 포기하고 꿈도 꾸지 않기 십상이다. 그렇더라도 득도가 인간의 사명이라면, 이는 특별한 소수에게만 허락된 것일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가능해야 하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주 질서에 맞는 적절한 행동 하나하나를 쌓는다면, 우주적 성취를 해내게 되는 단계까지 도달한다고 하니, 일상의 작은 행동도 도통의 길일 수 있다. 우리가 얻어야[得] 하는 도(道)는 어떻게 생겼을까? 전적들에 등장하는 도의 가장 전형적인 특징은 움직임이나 모습이 감각적 수단으로는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위무형(無爲無形)!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허무를 나타내는 충실한 표현들은 없거나 없어진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없어지기 때문에 허무하고, 없거나 없을 정도로 사소하기 때문에 허무하다. 도는 허무 그 자체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전번에 여기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세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만져지지 않는 것이 만져지는 것보다 세다고 해도 같은 말이다. 도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래서 가장 보이지 않는 것이고, 가장 만져지지 않는 것이다. 가장 높아서 가장 세다. 그래서 이 세상 어떤 것도 도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득도의 길은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 가까운 것과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영역에 가까운 쪽의 것을 선택하면 된다. 도에 가까운 쪽을 선택하면 된다는 뜻이다. 어떤 학생이 약간의 부정행위만 하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치자. 이 학생은 점수와 정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매우 곤혹스런 기로에 서 있다. 점수는 정직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직은 점수보다 더 추상적이다. 이 곤혹스런 상황에서 득도의 길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높은 성적의 유혹을 이겨내고 정직을 선택하면 된다. 어떤 정치인은 당선과 진실한 봉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당선은 진실한 봉사보다 구체적이고, 진실한 봉사는 당선보다 추상적이다. 이때도 당선을 선택하면 도에서 멀어지고, 진실을 선택하면 도에 가까워진다. 모순적인 상황에서 도에 먼 쪽의 것이 보내는 유혹을 이겨내고, 가까운 쪽을 선택할 때 우리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다. 이 용기를 발휘하여 도에 가까운 쪽을 선택하는 승리를 한 번 경험하면서 우리는 점점 우주적 삶의 경지로 이동한다. 결국 우주적 삶은 모순적 상황에 처한 매우 미미하고 고독한 주체가 용기를 발휘하는 그 찰나적 순간에서만 피어난다. 이 용기가 여기 멈춰있는 나를 저기로 건너가게 한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지식을 쌓고 쌓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그렇다면 나는?이라는 각성을 해서 자기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비록 작은 일이라도 메디치 가문 같은 역할을 한 번 시도해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용기다. 이러면서 기존의 자기는 여지없이 깨지고 알지 못했던 곳으로 도달해간다. 여기 있는 자기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저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작은 승리이며, 우주적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미미한 자신에게 그렇다면 나는?이라는 질문을 계속 해대면서 일상에서 작은 승리를 경험시키는 일이 바로 우주적 삶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경험시키는 작은 승리 안에서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고 허무와 득도가 한 몸이 된다. 작은 승리가 일어나는 잡다한 일상 안에서 우주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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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3 19:51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8. 새해맞이 음식, 떡국

천만 번 방아에 쳐 눈처럼 둥그니 저 신선 부엌의 금단과도 비슷하네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걸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지은 <첨세병(添歲餠)>의 시구이다. 그는 세시(歲時)에 흰떡을 쳐서 만들어 썰어서 떡국을 만드는데 추위와 더위에 잘 상하지도 않고 오래 견딜 뿐 아니라 그 깨끗한 품이 더욱 좋다. 풍속에 이 떡국을 먹지 못하면 한 살을 더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이름을 첨세병이라 한다.며 시를 지은 의미를 소개했다. 첨세병은 새해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나이를 물을 때 떡을 넣고 끓인 탕인 병탕(餠湯)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설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과 세배 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 하고 대표적인 세찬이 바로 떡국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오래된 것으로 신년 제사 때 먹는 음복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떡국에 대한 기록은 1609년의 『영접도감도청의궤』에 병갱(餠羹)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정조 15년(1791년) 12월 24일 하번군에게 양식을 주어 보내도록 명한다는 기사에 고향 돌아가는 길에 양식을 주어 보내어 부모처자와 함께 새해 병갱을 배불리 먹게 하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서도 새해에 떡국을 먹어왔던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시 병갱은 국수나 수제비, 떡국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고 오늘날의 떡국은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나온 문헌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 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1819)』에는 흰떡을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이는데, 이를 권모(拳摸골무떡)라고 했다. 섣달그믐에 권모를 엽전 모양으로 썰어 넣은 뒤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를 떡국(병탕餠湯)이라 한다고 했으며, 『경도잡지(연도미상, 정조 때로 추정)』에서는 떡국을 멥쌀로 만든 떡을 치고 비벼 한 가닥으로 만든다. 굳어지기를 기다려 엽전같이 얇게 썰어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춧가루 등을 넣고 국을 만든 것이다. 세찬으로 없어서는 안 된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 몇 그릇 먹었냐고 할 정도다.고 했다. 『동국세시기(1849)』에는 찐 멥쌀가루를 안반(案盤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 위에 놓고 떡메로 쳐서 길게 뽑은 떡을 백병(白餠흰떡)이라 하고, 이를 엽전 모양으로 썰어 국에 넣고 쇠고기 혹은 꿩고기를 곁들여 끓이면 떡국이라 한다. 이것을 제사에도 쓰고 손님 대접에 사용하므로 세찬에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라 기록했다. 예전의 떡국은 지금의 가래떡과는 달리 생으로 반죽해 동그란 모양으로 떼어낸 떡국을 즐겼는데, 이를 생떡국이라 불렀다. 그리고 쇠고기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꿩고기로 맑은 육수를 내거나 꿩고기를 볶아 넣은 꿩 떡국이 원조 떡국이었다. 하지만 귀한 꿩이 없을 때는 닭고기를 주로 썼다고 하여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는 각 지역에 따라 떡의 모양과 떡국에 들어가는 재료와 애칭도 다양하다. 궁중 음식의 영향을 받은 서울식은 육수에 떡을 넣고 끓인 뒤 달걀지단과 고명을 올린 모양으로 지금껏 전해지는 일반적인 떡국 형태로 서울을 기준으로 남쪽 지역에서 주류를 이룬 떡국이다. 충청도에는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반죽해 찌지 않고 손으로 뜯어 넣어 손 떡국으로 불린 날 떡국이 있고, 경상도지역에서는 동그랗게 썬 떡 모양이 마치 태양 같아 이름이 붙은 태양 떡국이 있다. 전라도에는 닭으로 육수를 낸 국물에 두부를 넣어 함께 끓인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두부 떡국과 전통식 꿩 떡국이 별미로 있고 남해안에는 굴이나 해물을 넣은 굴 떡국과 매생이 떡국도 있다. 떡국을 기본으로 응용을 한 남쪽 지역과 달리 북쪽 지역에서는 떡국에 만두도 함께 넣었다.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기도 하는데 만두를 즐긴 중국과 가까워 영향을 받았거나 쌀농사를 많이 짓지 않아 쌀로 만든 떡 대신 밀이나 메밀 등으로 빚은 만두를 사용한 이유도 있다. 평안도의 굴린 만둣국은 말 그대로 완자 모양의 만두소를 만두피로 싸지 않고 감자 전분에 굴려서 만든 북부지역의 대표 음식이다. 강원도엔 두부 떡만둣국과 황해도엔 소금에 절인 배추인 강짠지로 만두소를 만들어 아삭한 식감이 별미인 강짠지 만둣국이 있고, 개성엔 조랭이떡국이 유명하다. 대부분의 떡국 떡이 둥글고 어슷한 것과 달리 조랭이떡은 조롱박이나 누에고치 모양이다. 가늘게 뽑은 가래떡을 굳기 전에 나무칼로 비벼 작게 토막 낸 후 모양을 만들었다. 조롱박 모양으로 떡을 만든 이유는 옷끈이나 주머니에 다는 조롱박이 액을 막아주고 새해 복을 기원하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과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사는 사람들이 고려가 망하자 분한 마음에 이성계의 목을 조르듯이 떡을 비틀어 조롱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지역에 따라 맛과 재료도 다른 모습이지만 새해 꼭 먹어야 하는 첫 음식인 떡국의 의미는 조선 팔도가 같이 공유했으며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떡국의 흰색은 경건한 삶을 의미하고 긴 가래떡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며 떡을 엽전 모양으로 동그랗게 써는 것은 재복을 바라는 의미이다. 또한, 떡국은 흰(白)색 떡에 붉은(赤)색 고기, 파란(靑)색 파, 노란(黃)색 달걀노른자 지단, 검은(黑)색 김을 고명으로 얹어서 음양오행설에 색을 맞추며 그 의미를 확장한 음식이다. 설날 먹는 떡국 한 그릇에는 경건함과 건강, 풍요에 대한 소망을 담은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하며 복(福)을 맞이하는 선조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그런 음식이니 새해맞이 덕담을 건네며 나누기에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2019년 새해가 되자 떡국을 먹은 사람도 먹지 많은 사람도 모두 한 살의 나이를 먹었다. 떡국 나이를 먹는 것이 서글퍼서 신년 떡국을 마다한 사람들도 돌아오는 구정에 어김없이 세시 음식인 떡국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설날 으레 먹는 떡국에는 새해를 맞는 다짐과 바람이 올곧이 깃들어 있다. 어쨌거나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은 설에 떡국을 함께 먹으며 서로에게 새해 덕담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하라는 선조들의 귀한 가르침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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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3 19:51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18) 2019년 같이사는 대동사회를 꿈꾼 전라도, 북녘을 보듬자

△전라도 1000년, 대한민국 100년으로 이어지다. 2018년은 고려가 전국을 5도양계로 편제하며 전라도(全羅道)를 설치한지 1000년이 되는 해이다. 한편, 2019년은 1919년 3.1. 독립선언을 통해 잃었던 나라의 국권을 되찾은 3.1독립선언 100주년이다. 또 독립선언에 따라 새로운 나라의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여기서 임시정부란 국가의 3요소인 주권국민영토 가운데 주권은 3.1.독립선언으로 회복되었지만 아직 국민과 영토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었기 때문에 임시정부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완전 독립을 위한 지난한 여정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완전 독립을 위한 목표와 의지를 나타낸 자랑스러움과 아픔을 함께 품은 명칭이었다. 본란을 통해 필자는 전라도의 역사공간 특히, 전라북도가 고조선의 정통을 이은 마한의 역사가 출발한 곳이며 이를 계승해 고종이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을 총괄한다는 의미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나라이름이 대한임을 밝혔다. 즉, 전라북도는 대한 국호발상지로서 전라도 천년의 역사공간이 대한의 역사로 계승되었기에 2019년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더욱 자랑스럽게 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함께사는 세상, 대동사회를 꿈꾸고 이루어 온 전라도 우리 역사를 통해 보았을 때 전라도 천년 그리고 대한 국호 발상지인 전라북도의 역사적 역할은 결국 함께 사는 세상인 대동(大同) 세계를 꿈꾸며 이를 이뤄왔다. 이는 이순신장군이 이야기한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 즉,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단순명료한 언급에서도 확인된다. 즉, 호남은 나라의 곳간으로 백성을 먹여 살리는 기본 토대의 땅이었다. 특히, 전라북도 지역은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호남평야로 상징되는 들의 농경문화와 서남해 연안 바다의 해양문화, 그리고 백두대간의 마지막 줄기가 내려와 형성된 산간지역이 함께 어우려져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산, 들, 바다 공간의 특성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농경문화에 근거한 나라의 곳간이자 열린 바다를 통한 자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우리 민족을 형성한 핵심적 원형의 역사 즉, 고조선,마한,백제,가야,고구려,신라와 연결된 다채로운 역사가 전라도 권역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의 실체를 구성한 모든 역사체가 함께 어우러지고 합쳐져 민족의 원형을 구성한 핵심 공간이었다. 결국, 전라도지역은 한민족 원형의 역사 공간이자 민족문화 구현의 땅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파악된다. 이같은 역사 경험은 전라도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와 대안을 통해 각 시기별 역할을 수행하였다. 즉, 후삼국의 쟁패과정에서 새로운 역사중심을 추구하여 고조선-마한-백제 역사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이는 후일 고조선-마한정통성에 근거한 대한국호의 발상지로서 귀결되었다. 한편, 고려, 조선시기에는 각 왕조 출현의 실질적 후원의 역할과 발상지로서의 역할을 통해 그 역량을 발휘하였다. 특히, 고려가 국난을 당한 시점에 나주로 왕이 피난하고 조선의 왜호란의 국난시기 전주가 피난수도로 기능해 왕조의 보호 역할을 수행해 그야말로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역사적 소임을 수행하였다. 이 같은 전라도 지역의 시대적 소명의식은 대동(大同)으로 표현되었다. 대동이란 표현은 유교경전인 5경의 하나인 예기의 예운편에 기술한 이상사회를 말한다. 예기예운편에 있는 대동세계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세계에서는 천하가 공평무사하게 된다. 어진 자를 등용하고 재주 있는 자가 정치에 참여해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함을 이루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부모만을 친하지 않고 자기 아들만을 귀여워하지 않는다. 나이든 사람들이 그 삶을 편안히 마치고 젊은이들은 쓰여지는 바가 있으며 어린이들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고 홀아비과부고아, 자식 없는 노인, 병든 자들이 모두 부양되며, 남자는 모두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모두 시집갈 곳이 있도록 한다. 땅바닥에 떨어진 남의 재물을 반드시 자기가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들은 자기가 하려 하지만, 반드시 자기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간사한 모의가 끊어져 일어나지 않고 도둑이나 폭력배들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으니 이를 대동이라 한다. 이 같은 대동사회를 희구하는 지역적 특성은 조선사회의 문제가 심화되자 정여립의 대동계로 표출되거나 실학의 원형(유형원)과 완성형(정약용)을 이뤄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근대 동학농민혁명과 현대 광주민주항쟁을 통해 같이 사는 사회에 대한 희망과 목표를 제시하였다. △2019년, 전주비빔밥과 전라도 한정식의 배려 문화로 북녘을 보듬자. 대동사회를 추구한 전라지역의 특성은 전라도를 대표하는 비빔밥과 한정식에 잘 나타나고 있다. 모든 구성원에게 같은 밥을 먹을 수 있게 만든 비빔밥은 적어도 같이 사는 사람에게 인간적인 삶을 위해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의 문제임을 일깨워주는 음식이다. 또한 전라도 한정식으로 대표되는 음식문화는 배려와 나눔의 지혜가 숨어있는 음식이다. 엄청나게 많은 반찬과 음식으로 과연 이 음식들을 먹을 수 있을까? 남은 음식은 어떻하지라는 의문을 들게하는 한정식은 원래 한번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전라감영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하는 한정식은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식사하기 어렵자 한상에 차려진 많은 음식을 우리의 물림상 형식으로 순서를 나눠 3번정도 먹게 한 음식문화였다. 즉, 전라감사를 비롯한 윗분들이 먼저 먹고 그 다음 중간 서리들이 그리고 맨 마지막 최하층 나인 등이 음식을 먹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한정식은 처음 먹는 사람들이 나중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아 오히려 가장 나중에 먹는 사람들이 가장 잘 먹을 수 있게 배려한 음식문화였다. 즉, 먼저 먹는 사람들이 뒷 사람을 생각지 않고 좋은 음식을 대부분 먹어버리면 나중에 먹는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를 먹지만 나중 사람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지않고 남겨두면 나중 사람들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배려와 사랑을 먹게되는 것이 바로 물림상의 정신이고 전라도의 정신이었다. 결국 전주 비빔밥, 한정식에 숨은 같이 먹고 살기, 함께 배려하며 살기의 정신은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함께 지켜주자는 마음의 실천이라고 생각된다. 이같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대동세계를 희망한 전라도의 특성은 마치 모든 자식들을 포용해 먹이고 길러주는 어머니의 마음과 역할에 비유할 수 있다. 이제 2019년은 같이 사는 세상을 꿈꾸고 실천한 전라도의 마음을 회복하여 현대사회가 가진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과 이기적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미움과 갈등으로 삭막해진 우리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길 희망한다. 나아가 함께 해야 할 우리의 북녘동포까지 보듬는 뜻 깊은 역사적인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어머니 전라도의 마음으로. /조법종 (우석대 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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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7 20:04

전북현대 백승권 단장 “팬들과 함께 전북을 명문 구단으로”

전북 현대모터스 축구단. 6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 등 명실공히 현재 K리그 1강으로 꼽힌다. 그러나 백승권 단장은 명문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명문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또한 전북은 다음 시즌부터 가장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 14년 동안 함께했던 최강희 감독이 떠나고, 조세 모라이스 감독이 부임했다. 잠시 구단을 떠나있었지만 지난해 단장을 맡으며 돌아온 백승권 단장의 입을 통해 전북현대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 리그가 끝났습니다. 지난 시즌을 평가하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기쁨과 아쉬움이 함께했던 한 시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K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는 기쁨과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한 경기만 잘 치렀으면 ACL 우승까지 충분히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전북은 리그에서 절대 1강이라 평가받는데요. 이러한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선수단과 구단, 그리고 팬. 이렇게 삼위일체가 잘 어우러져 얻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곳만 잘해서는 K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최강희 감독이 선수들을 잘 이끌었고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봅니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 해낸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봅니다. - 이러한 힘을 얻게 되기까지 구단은 어떠한 가치를 두고 활동해 왔는지 소개해주세요. 전북이 추구하는 3가지 철학으로 Premium(최고의), Pleasure(기쁨), Partnership(파트너십) 3P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팬들에게는 기쁨을 드린다는 가치가 있는데요. 도민과 팬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경기력이 필요하지만, 다른 노력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산간 도서 벽지의 아이들에게 축구를 직접 볼 기회를 제공하거나, 어린이 병원의 아픈 아이들을 초청해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선수들은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을 만나 팬 미팅과 사인회 등 팬 스킨십 활동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지자체와 같이 협력하기 위해 지역 축제나 행사에도 참여하며 도민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팬이 없는 프로스포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팬의 즐거움을 가장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 전북이 이러한 팀이 되기까지 최강희 감독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별전에서는 단장님이 눈물까지 보이셨는데요. 2005년 최강희 감독이 온 이후에도 쉽지 않았던 시절을 최 감독과 함께 동고동락을 해왔던 사이였습니다.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순간을 함께 했고, 2009년 첫 리그 창단 우승 때에도 바로 축하 연락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의 많은 시간과 기억이 스쳐 지나가면서 남다른 감정이 생겼던 거 같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감독 선임에 공을 많이 들이셨을 것 같습니다. 최강희 감독과는 아름다운 이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 감독을 대신할 인물을 찾기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조세 모라이스 감독은 아시아 클럽에서의 경험도 있기 때문에 유럽의 기술과 아시아 축구의 특성을 잘 접목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실제 만났을 때도 자신이 가진 축구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강했으며 K리그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한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세계적인 명장 조세 무리뉴의 전술 코치로서의 경험은 전북을 전술적인 부분에서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인 눈에 보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유소년과 성인팀 모두 하나의 맥락으로 키워나가는 유소년 육성에 대한 부분에도 공감이 컸습니다. - 지난 2017년 단장으로 부임하시면서 평균관중 증가와 재정자립도를 말씀하셨는데요.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시즌 관중 1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내세우는 평균관중 2만 명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습니다.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구단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빠르면 5년, 늦으면 10년 내에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목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정 부문에 대해서는 지금은 ACL 성적에 따라 모기업에 매년 차이가 있지만 매년 60~65% 정도 지원을 받습니다. 임기 내에 50%까지 낮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좋은 경기력으로 많은 관중이 유입되면 이를 바탕으로 중계권의 가치가 높아지고, 그로 인한 광고의 가치 향상, 입장 수익 등이 더욱 점진적으로 상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다음 시즌 목표인 K리그ACL 우승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현재는 신임 감독과 기존 선수단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강희 감독이 팀을 떠났지만, 선수단이 동요하지 않도록 김상식 코치가 잔류해 가교 역할을 잘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기존의 선수단에 새로운 감독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동기부여가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고 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 시즌이 끝나고 준비할 것이 많을 것 같은데요. 특히 선수 영입과 관련해 팬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현재 다음 시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선수 영입은 취약포지션 등에 김상식 코치와 구단 프런트가 함께 상의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라이스 감독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진전상황이 있으면 바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즌을 위해 잘 준비 중입니다. - 전북 현대가 팬들, 그리고 도민에게 어떠한 구단으로 생각되길 원하시나요. 2년 전 전주성을 찾은 팬들에게 전북 현대가 주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때 많은 어린이 팬들은 전북은 나를 즐겁게 해주고, 나의 또 다른 삶이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은 나의 꿈이며 내 꿈을 이루게 하는 곳이다 가족 단위의 팬분들은 나의 가족이다. 우리가 평생 함께 가야 할 팀이다 등 단순 스포츠팀을 일컫는 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전북현대가 팬들에게 그리고 전북 도민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고 삶의 일부가 되는 축구팀으로 생각되고 기억되길 원합니다. - 도민과 팬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합니다. 팬이 없는 프로구단은 아무리 훌륭한 성적을 낸다고 하더라도 명문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전북현대가 지방의 작은 팀에서 어느덧 리그를 선도하는 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팬들의 성원과 격려 그리고 애정 있는 채찍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 전북현대가 K리그 명문, 아시아의 명문 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팬 여러분께서 항상 곁에서 함께 해주시고 많은 응원을 보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백승권 단장은전북현대 No. 1 팬 중앙대 신방과를 졸업하고 1986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홍보맨으로 근무하다 1999년 전북현대와 첫 인연을 맺었다. 만년 중하위권인 전북에서 과장부터 사무국장, 부단장까지 맡으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했다. 2009년 울산 현대차 홍보실로 되돌아가며 구단의 역사상 리그 첫 우승을 함께하지는 못했다. 리그 첫 우승 순간, 울산의 회사 기숙사에서 남몰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2009년부터 2017년 2월까지 구단을 떠나있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함께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한두 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아마 전북경기라면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팬일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단장으로 전북에 돌아왔다. 항상 전북을 생각했던 그가 가장 원하고, 강조하는 하나는 바로 팬이다. 전북현대를 사랑하는 가장 쉬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경기장을 찾아주세요. 경기장을 찾고 경기를 보는 3시간여의 시간. 그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팬들의 함성만이 선수와 구단, 그리고 팬 여러분들까지 함께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 기획
  • 천경석
  • 2018.12.2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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