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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7. 바람의 장례 풍장과 초분

초겨울 바닷바람이 차다. 고군산 선유도 초분공원(草墳公園)이 있는 이곳은 더욱 쓸쓸하다. 이즈음의 계절은 사람의 생을 돌아보며 스러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기에 적기인 듯싶다. 삶은 어쩌면 바람처럼 스치듯 지나며 연을 잇는 것일 수도 있으니 땅 위 자연의 바람을 맞으며 육탈을 한 풍장(風葬)의 풍습과 초분의 흔적이 있는 곳에 마음과 발길이 간다. 바람의 장례를 치루고 자연에 소멸을 시키는 풍장과 임시 무덤의 개념인 초분은 분명 다르지만, 초분은 땅에 묻히지 않고 육탈을 하는 풍장의 한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초분이 있던 고군산 섬들의 풍경이 황동규 시인의 연작시 『풍장』에 등장한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안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실제 바닷가 섬인 고군산도와 부안의 위도와 계화도, 해안 인근인 고창의 월성리와 죽림리 등에 초분이 최근까지 있었다. 대부분 초분을 만든 이유도 여럿인데, 정월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 달에 땅을 파면 땅신이 노한다는 설, 출어시기 땅을 파면 해가 되기 때문이거나 망인의 유언을 따른 경우도 있고, 시신의 육탈 후 명당이나 선산에 모시기 위해 초분을 쓰기도 했으며, 후손이 타 지역에 있어 임시 초분을 쓰고 이장을 못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지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초분들 중에는 도로공사나 방조제의 공사로 인해 이장을 했다가 산운이 맞지 않거나 액을 피하고 후손이 잘된다는 믿음에 따라 초분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초분의 풍습이 주로 섬과 해안지역에 남아 있어 섬을 중심으로 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초분과 풍장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 땅 여러 지역에서 행해졌던 장례의 한 방식이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은 채 돌이나 나무 위에 관을 얹어 놓고 짚으로 엮은 이엉과 용마름으로 덮은 임시 무덤을 말한다. 초분의 모습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부분의 초분은 돌을 깔아 덕대를 만들어 그 위에 관을 놓으므로 그 크기는 관의 길이에 비례한다. 그리고 파분하였다가 다시 만들어진 초분은 크기가 작고 정방형의 상자에 모신 경우엔 원뿔 형태이다. 초분의 이엉교체는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라 여겨 새옷을 입힌다라고 하며 가을 초가지붕 이엉을 교체하기 전에 초분의 이엉을 먼저 교체하거나 섣달그믐날 혹은 고인의 기일 등에 후손들이 제작하여 교체했다. 탈육 될 때가지 대략 2-3년 정도 초분에 안치했다가 분을 해체하여 뼈를 추스려 씻골(뼈를 씻는)한 후 땅에 묻기 때문에 두 번의 장례를 치루는 셈이라 2차장 혹은 복장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초분을 만들고 해체하며 죽음을 최종적으로 재확인 하고 뼈를 깨끗하게 씻어 묻음으로써 다음 생에 다시 잘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깃들어 있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본장(本葬)을 할 때까지 초분에 임시로 시신을 모셔두는 것으로 여겨 초빈(草殯), 출빈, 외빈, 고빈이라 불렸지만 빈소의 개념으로 상중의 의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초분과 이중 장례에 관한 기록과 사연들은 많이 있다. 초분은 장례풍속의 하나인 빈(殯)에서 유래하는데 백제 무령왕릉의 지석에는 왕이 사후 2년 3개월이 지난 뒤에야 3년상을 치루고 왕릉에 묻혔다는 장례의 기록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사자(死者)가 있으면 모두 가매장한다. 겨우 열수 있도록 하여 피육이 다하면 뼈를 취하여 그 곽(槨) 안에 두는데, 온 가족이 그 곽을 함께 사용한다했으며, 『삼국사기』 고구려편에는 발기(發岐)의 시체를 거두어 초장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합장하려할 때, 객사했을 때, 집이 가난해서 장지를 구하지 못할 경우나 어린아이가 죽거나 전염병이 걸릴 경우 이장을 하다가 사고가 났을 경우에 초빈했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신재효(1812-1884)의 《흥부전》엔 놀보의 심보를 말하며 사람마다 오장육부였지만 놀보는 오장칠부인 것이 심술보가 왼편 갈비 밑에 달려있어 심사가 말할 것이 없는데...새 초빈(草殯)에 불지르기, 이장할 때 뼈 감추기라는 초분과 관련 있는 내용이 등장한다. 마른 짚으로 이엉을 엮어 주로 만들기 때문에 불이나 짐승의 접근으로 인한 훼손의 위험에 후손들은 늘 노심초사였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초빈에 불을 지른 죄로 벌을 받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초분은 여러 이름으로 지칭되며 선조들의 오랜 풍습으로 이어온 장례의 형식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위생법을 제정하면서 초분을 금지시키고 화장을 권장했고, 1970년대에 이르러 새마을운동의 생활개선 일환으로 정부가 법적으로 초분을 금지하며 점차 그 흔적이 사라졌다. 고군산내 선유도와 무녀도의 초분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최근까지 초분이 있었던 무녀도에서도 이젠 그 흔적이 주민들의 기억과 떠도는 말로만 남아있다. 맨 마지막까지 있던 초분엔 부안 위도 사람이 모셔졌지 8년인가 10년인가 된 것 같소. 그 양반은 처가가 무녀도라 여그서 살다 갔재. 저그 무녀봉 기슭에 있었어. 그 초분은 우리도 봤재 그러다 고향으로 모셨는지 근처 묘를 썼는지 어느새 없어져 버렸어 그리고 어릴 적이지만, 아직도 기억나요. 아버지를 바닥 판판한 돌 위에 모셨고 위엔 짚풀로 이엉을 엮어서 초가집마냥 초분을 썻어요. 그러다 나라에서 금지해서 초분을 없애고 아버지를 모시고 산소를 쓰려고 올라갔던 그 산길이 아직도 생생혀요 무녀도에서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내온 어르신들의 초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초분의 토속 장례풍습은 사라졌고 그 흔적은 선유도에 재현한 초분공원에서나 만나 볼 수 있다. 초겨울 그 언덕에서 황동규의 『풍장』을 읊조리다 조용필의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어본다. 같은 시선으로 바다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저 바람소리가 그저 바람소리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노랫말에 쓸쓸한 안부를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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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6 19:58

[카드뉴스] 소비자물가 상승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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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8.12.05 17:09

[카드뉴스] 속속 문닫는 사립유치원

  • 기획
  • 전북일보
  • 2018.12.05 17:07

[카드뉴스] 얌체 주차 더는 안 봐준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8.12.05 10:38

[카드뉴스] 전북지역 고령화 가속화

  • 기획
  • 전북일보
  • 2018.11.28 18:26

취임 5개월 맞은 방윤혁 한국탄소융합기술원장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국내 탄소산업 새로운 기회"

대한민국 탄소산업의 출발점이자 중심지인 전주에 자리 잡은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국내 유일의 탄소산업 전문연구기관이다. 미래 먹거리가 될 탄소는 전북과 전주의 지역특화사업에서 국가전략산업으로 발돋움하는 중대한 시기에 놓였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포함에 이어 새만금 권역이 신재생에너지 선도지구로 개발된다는 청사진에 탄소산업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 어느때보다 크다. 취임한 지 5개월을 맞은 방윤혁 탄소융합기술원장을 만나 국내 탄소산업의 현주소와 향후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방 원장은 원천기술 확보와 기업 연구지원 확대 등을 통해 탄소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전임 원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뒤, 그 자리에 부임했습니다. 전임 원장과 관련해 좋지 않은 일도 있어서, 처음에는 조직 분위기가 침체됐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전임 원장이 나름대로 많은 부분을 해놓아 다시 변화를 주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평생을 탄소산업에 종사해온 전문가로서 탄소융합기술원에서 일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큰 행운이자 보람입니다. 지난 5개월 동안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일환으로 전반적인 체계를 정립하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밖에서 봤을 때 기술원이 좀 더 기업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컸던 만큼, 이런 기업인들의 열망을 실천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탄소산업이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됐습니다. 앞으로 과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국내 탄소산업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100대 국정과제 포함은 탄소산업 약진에 힘을 보태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국내 탄소산업의 연간 성장률은 3~4%정도로 선진국의 11%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다. 이제는 결과물 도출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탄소소재를 기초로 한 중간재 부품 적용 등을 통해 우리 기술력의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탄소소재의 기초인 섬유만 해도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이 크게 밀리지 않습니다. -기업체에서 일할 때와 현재 기술원에서 바라보는 탄소산업에 차이점이 있습니까. 기업은 철저히 이윤을 추구합니다. 연구개발도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기초보다 생산성과 품질 관련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생산성에 포인트를 맞춘 기업의 연구개발과 기초 분야에 주력하는 기술원은 분명히 차이가 큽니다. 또 기업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영업비밀로 여겨 공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과 연구기관의 기술력 공유가 필요합니다. 연구기관이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어야 기업체의 생산성도 증대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소기업이 필요합니다. 탄소융합기술원이 보유한 탄소기술 중 사업화에 적합한 분야를 발굴육성해 연구소기업의 설립 및 성장을 유도하겠습니다. 기초연구를 통해 원천기술 개발을 장려하고, 관련 지식재산권을 확보해 기술이전을 활성화하겠습니다. 외국은 연구소기업이 창업의 한 형태입니다. 연구개발특구 내 연구소기업 설치는 창업을 유도하기 위한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탄소산업의 부가가치가 현재로선 피부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현재 탄소기술의 검증은 우주선이나 항공기로 충분합니다. 첨단산업부터 탄소기술을 활용하며 하위산업으로 내려오는 구조인데, 우리나라는 항공이나 방위산업이 취약합니다. 국내 탄소기술을 접목활용할 수 있는 산업 육성이 필요합니다. 자동차나 풍력이 탄소소재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국가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장려하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사회가 고령화로 접어들수록 실생활에서 가벼운 소재의 제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휠체어, 지팡이를 비롯해 수많은 생활용품에 탄소소재가 접목될 것입니다. 또, 친환경과 자동화를 겸비한 전기차는 배터리 경량화가 최고의 관건인데, 이 역시 탄소제품이 핵심부품으로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사회는 탄소제품이 더욱 각광받을 것입니다. -새만금이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로 개발됩니다. 탄소산업에도 획기적인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토대로 합니다. 현재 풍력 발전기에는 탄소소재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로 외국 탄소소재가 많이 사용되는데, 조만간 국내에서 개발된 탄소소재가 자리를 넓혀갈 것입니다. 재생에너지의 한 분야인 수소연료전지에도 탄소섬유가 핵심 소재로 쓰이고 있는 등 탄소산업의 저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구축은 국내 탄소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국제탄소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국내외 네트워크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선진국의 기술 습득을 위해 현재 10여개 나라 20여개 연구기관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적인 복합소재 네트워크인 JEC와 매년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ICF 국제탄소페스티벌 컨퍼런스, JEC Asia 2018을 공동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해외 유수의 연구기관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탄소산업 분야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 [방윤혁 원장은] 기업 연구원교수 역임, 탄소산업 발전에 기여 지난 6월 취임한 방윤혁 한국탄소융합기술원장은 탄소섬유를 전공한 박사 출신으로 탄소산업과 관련한 논문 21편, 관련특허 43건을 보유했다. 부산 출신인 방 원장은 ㈜한일합섬 섬유연구개발 연구원으로 시작해 부산대 교수, ㈜한화케미컬 연구원을 거쳐 ㈜효성에서 탄소특화창업보육센터장, 탄소섬유 전주공장장, 탄소재료 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또 탄소연구조합 이사와 한국복합재료학회 부회장, 한국첨단소재학회 기술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국내 탄소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표창,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대통령 표창, 대한민국 기술대상 국무총리상, 전북도지사상 등을 받았다. 그는 국내 탄소산업은 전주에서 산업의 형태를 만들어 국가적으로 확산시킨 보기 드문 사례라며 다른 지역의 특성화된 부분은 키우되, 전주가 국내 탄소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산업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전주를 넘어 명실상부 국가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전북도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
  • 최명국
  • 2018.11.2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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