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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45. 겨울맞이 세시풍속, 김장

11월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겨울 채비를 하게 된다. 그 월동 준비의 최고는 김장하는 것으로 입동(立冬)을 기준으로 5일 내외에 김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김장용 무를 수확할 때 무의 뿌리가 길수록 그 해 겨울이 춥다는 입동 맞이 점치기는 김장을 할 때 무뿌리 길이를 살피며 겨울의 추위에 대한 단골이야기의 소재로 쓰였다. 점점 추워질 즈음 겨울에서 봄까지 먹기 위해 김치를 담그는 김장은 연례행사로 치러지는 우리만의 독특한 풍속으로,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김치는 자긍심을 가져오는 우리 전통음식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김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전해오는 곳은 중국이다. 김치에 관한 기록은 약 3000년 전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알려진 『시경(詩經)』에 밭둑에 오이가 열렸네. 오이를 깎아 저(菹)를 담그자라는 구절로 처음 등장한다. 저는 오이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김치류로 추측되며, 존경하는 사람이 저를 즐기자 따라 먹은 공자를 보고 공자가 저를 먹느라 콧등을 찌푸렸다. 3년을 먹고 나니 적응이 되어서 수월했다라는 기록도 약 2700년 전 쓰여진 『여씨춘추)』에 남겨져 있다. 이렇듯 김치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담긴 음식으로 상고시대 때 소금에 절인 야채를 뜻하는 침채(沈菜)라는 말에서 오늘날 김치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상에 최초로 김치가 등장한 것은 고려 시기 이규보(1168~1241)가 쓴 『동국이상국집』의 「가포육영(家圃六詠)」으로 소금에 절인 김치는 겨우내 반찬 되네. 뿌리는 땅속에서 자꾸만 커져 서리 맞은 것 칼로 잘라 먹으니 배 같은 맛 일세라는 문구와 오이ㆍ가지ㆍ순무ㆍ파ㆍ아욱ㆍ박의 여섯 가지 채소로 만든 김치가 기록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조선 문인 서거정(1420~1488)이 지은 『사가집(四佳集)』에는 배추김치(菘虀 숭제)라는 시가 등장한다. 서풍이 늦가을 배추 향기를 솔솔 불어오자 / 항아리에 김치 담아라 색깔이 한창 노랗네 / 주옹이 나보다 먼저 이것을 좋아했거니와 / 씹어 먹으니 맛이 고량진미와 맞설만하네, 김치를 좋아한 서거정은 강희맹(1424-1483)이 건넨 중국산 배추 씨앗을 받고 흥겨워 채소밭을 돌 때면 기뻐서 미칠 것 같다네라는 시구로 그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시기 기록에는 침장고(沈藏庫)가 언급되어 당시 김장을 담그는 일을 맡은 관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조선시대의 성종 시기 성조의 생모인 인수대비가 부녀 교육을 위해 지은 내훈(內訓)에도 침채가 소개되며 선조들이 김치의 맛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김장이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이어온 겨울맞이 세시풍속임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는 권근(1352~1409)의 『양촌집』 김장(蓄菜)에서 나온 시월이라 거센 바람 새벽 서리 내리니, 울에 가꾼 채소 거두어들였네. 맛있게 김장 담가 겨울에 대비하니 진수성찬 없어도 입맛 절로 나네와 17세기 후반의 김수증(1624-1701)의 『곡운집』에 집집마다 가을이면 무와 배추를 양지바른 곳에 묻는 김장이 연중행사라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조선조의 『농가월령가』(1816년) 10월조에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하오리다. 앞 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요. 양지에 가가(假家)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하였으니 월동 식량으로 김치를 담그는 일이 이즈음에 가사 중 큰 연례행사로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치는 중국의 기록이 최초이지만, 우리 선조들은 각 지역의 특산물을 재료로 활용한 다양한 조리법과 문화를 형성하며 발전시켰다. 1400년대 기록인 『산가요록』에는 파와 쌀밥, 소금으로 만든 생파김치나 송이와 동아, 닥나무잎, 소금으로 만든 송이김치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500년대의 『수운잡방』에는 채소에 소금을 섞어, 천초, 할미꽃 뿌리, 겨자, 마늘, 후추 등을 섞어 만든 다양한 김치에 대한 기록이 있다. 1700년대 『산림경제』, 『소문사설』, 『증보산림경제』등에 김치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때 비로소 김치에 고추를 넣는 기록이 보인다. 1800년대 후반에는 통이 크고 알이 꽉 찬 통배추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여 배추가 김치의 주재료로 쓰이며 배추통김치가 확산되었고, 1900년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37종류의 김치 조리법을 소개했다. 다양한 부재료를 사용한 김치의 발전과 함께 공동작업의 형식의 풍속인 김장은 우리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 김치와 김장문화는 우리네 역사와 함께 한 인류문화 자산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라는 명칭으로 2013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대표적인 식문화인 김장문화가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 김장문화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공동체 나눔이라는 상징적 정서가 숨어 있다. 김장은 월동 준비의 필수적 부분으로서 김장을 통해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김장철마다 많은 단체들이 김치 담그는 데 참여한다. 여기에서 담근 김치는 소외된 이웃과 필요한 이들과 나눈다. 이러한 담근 김치를 나누는 풍습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다. 김장을 해놓고, 이제 겨울 준비 끝났다며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웃음 짓던 할머니와 노란 배춧속에 남은 양념을 버무려 밥에 쌓아 주시던 그 기쁨 넘치던 손길이 그립다. 김장김치는 따스한 손길과 고향의 기억을 불러온다. 겨울 채비를 맛깔나고 든든하게 해야 할 지금 남원 운봉과 진안의 고원에서 나오는 고랭지 배추 그리고 임실과 순창의 고춧가루 부안 곰소 젓갈로 김장 준비를 하며 풍요로운 호남의 정도 돌이켜 본다. 나눔의 손길에 힘을 더할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지고 김장 양념이 맛깔나게 버무려진 배추 소를 햅쌀로 지은 밥에 싸 한 입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입안에 침이 돈다.

  • 기획
  • 기고
  • 2018.11.08 21:36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동수 회장 "도내 곳곳 여전한 복지 사각지대…도민 사랑나눔 절실"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녁 이맘때면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김동수(63) 회장의 행보는 더욱 바빠진다. 전주시 덕진동 종합경기장 사거리에 사랑의 온도탑이 설치되는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석 달이 기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특히 군산지역 기업 폐쇄 등으로 전북 경제 현황이 청신호는 아니지만 김 회장은 전북도민의 높은 기부 정신과 배려심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회장으로부터 취임 5개월간의 소회와 전북공동모금회 향후 운영방향 등을 들어봤다. -취임 후 바쁘게 달려오셨습니다. 그간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사랑의 열매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전북지역 회장을 맡아오며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처음엔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전북지회가 생긴 이래 두 번째 기업인 출신이라는 부담도 있었죠. 그러나 자원과 배려, 관심을 나누고 지역민 전체가 더불어 사는 정신은 기업인의 역할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임했습니다. -아직도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낯선 분들도 있습니다. 간단한 단체 설명 부탁드립니다. 공동모금회는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완하는 대표적인 민간 지원단체입니다. 개별 모금기관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고유 목적 사업을 위해 모금을 하고 있는 반면, 공동모금회는 모금하기 어려운 사회복지 기관과 시설들을 대신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공동으로 모금하여 이들 기관과 소외계층 지원등 지역사회 지원을 통한 복지증진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단체가 진행한 사업들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사업들은 무엇인가요. 올해 진행했던 배분사업중에 지자체, 지역사회복지기관과 함께하는 스토리펀딩 지원사업이 있습니다. 모금회와 전주시, 꽃밭정이노인복지관이 함께 진행한 사업인데요. 복지관은 지역의 위기가정을 발굴하고, 전주시는 대상자 사연을 공개하면서, 모금회가 기부금 모금과 배분을 진행했습니다. 스토리펀딩과 후원릴레이를 통해 모금된 성금을 대상자의 치료비와 생계비, 집수리 비용으로 지원하는 사업으로 금년에는 뇌경색으로 인한 한쪽 마비와 치아결손으로 음식물 섭취에 어려움을 겪으셨던 한 국민기초생활수급자분께 틀니를 지원함으로써 소중했던 식사의 즐거움과 일상생활을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가계금융역량강화 사업으로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에게는 사례관리를 할 때 금융관련 상담역량을 키워주고, 이용자에게는 부채로 인한 어려움을 겪을 때 문제해결력을 높여주고, 지출에 대한 걱정보다는 소비만족도를 높이며 자산을 잘 관리할수 있도록 금융복지역량을 강화해주는 사업이 있습니다. 가계금융역량강화사업을 통해 소외계층의 합리적인 금융관리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빈곤탈출을 돕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연말이 되면 사랑의 열매는 더욱 바빠지고 있죠. 왜 그렇습니까.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 연말이 오면 어려운 이웃을 더 생각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랑의열매도 이웃이 더 생각나는 매년 연말이면 희망나눔캠페인이 진행합니다. 11월 말부터 다음해 1월 말까지 약 73일간 진행되는데요. 이 기간에 1년 모금액의 절반 정도가 모금이 됩니다. 도민 여러분들도 매년 이맘때쯤 전주시 종합경기장사거리에 세워지는 사랑의열매 온도탑을 지나가면서 본 기억이 있으실텐데요. 이 온도탑은 희망나눔캠페인 기간 동안 세워지며 캠페인 모금 목표액을 온도로 형상화해 도민 여러분께 실시간으로 현재 모금액을 안내해 드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올해는 75억 모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7500만 원이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가 100도를 달성하는 것인데요. 큰 금액이지만 매년 목표를 달성하고 또 조금씩 목표액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도민들의 깊은 나눔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희망 나눔 캠페인이 매년 연말 진행되고 있죠. 10년 전, 5년 전과 비교할 때 경과가 어떻습니까.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매년 모금액이 꾸준히 늘어난다는 점에서 도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매년 모금액을 예년보다 2~3%p 씩 올리고 있음에도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100도를 달성했습니다. 10년 전인 2009년(34억)과 비교하면 지난해(75억)는 절반이 넘게 늘어났습니다. -최근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가 50명을 넘어섰다고 들었습니다. 전국과 비교할 때 전북지역 규모나 활동이 어떤 편입니까. 최근 두분의 아너 회원을 새로 모시면서 전라북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51명이 됐습니다. 또한 두 분의 신규 아너 회원 모두 기존 아너 회원의 배우자로 전라북도 부부 아너도 총 여섯쌍이 되어 기쁨도 두배였습니다. 하지만 아너 회원이 50명을 돌파하는 등 큰 성장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전국적으로 봤을 때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다만 고무적인 점은 작년 14명의 신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유치를 통해 아너소사이어티 최우수지회로 선정이 되기도 하였고, 올해도 벌써 10명의 회원을 새로 모시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은 특히 나눔에 대한 열정이 큰 분들로 일회성 기부로 그치지 않습니다. 매년 아너소사이어티 총회에서 전라북도 아너소사이어티의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매년 복지관, 자원봉사센터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끼리 골프모임도 갖는 등 친목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기대해볼 만한 사업은 무엇이 있을까요. 얼마 전 2호가 탄생 소식을 전한 나눔리더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나눔리더란 1년 이내에 100만원 이상을 기부 또는 약정 기부하면 가입할 수 있는 개인 중고액 모금 캠페인입니다. 지난해 새롭게 출범해 2017년 11월 첫 가입자가 탄생한 이후 11개월만인 올해 10월에 2호가 탄생했는데요. 앞으로도 많은 리더들이 등장해 전라북도 기부문화를 이끌어 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마음에 시기가 따로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날씨가 추워질수록 따뜻한 손길이 더욱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때 우리 주변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전북지역을 돌다보면 여전히 자치단체의 손이 닿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사랑의 열매는 투명성과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기부자들의 소중한 모금액을 지역 곳곳에 배분하고 있습니다. 도민 여러분 모두가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 하루 보낼 수 있도록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김동수 회장은] 강한 윤리의식 바탕 지역발전 앞장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동수 회장은 군산 출신으로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군산대 명예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군산도시가스, ㈜동우, ㈜참프레 회장을 지낸 그는 기업을 이끌며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중소기업 CEO 대상, 대한민국윤리경영 종합대상, 지식경제부장관표창, 국무총리표창, 법무부장관표창, 전북애향대상 기업특밸대상 등을 수상한 윤리의식 강한 기업가다. 2016년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출돼 현재까지 맡고 있다. 법무부 법사랑위원 군산익산지역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전북지회가 생긴 이래 두 번째 기업인 출신 회장이라는 부담도 있었지만 자원과 배려, 관심을 나누고 지역민 전체가 더불어 사는 정신은 기업인의 역할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보현
  • 2018.11.04 19:12

[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미래천년 전라도 문화를 만들 전라감영

△천년 전라도문화의 원형 공간, 전라감영 고려시대 전주에서 지방관을 했던 문인 이규보는 전주(全州)는 완산(完山)이라고도 일컫는데 옛날 백제국(百濟國)이다. 인물이 번창하고 가옥이 즐비하여 고국풍(故國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은 질박하지 않고 아전들은 모두 점잖은 사인과 같아, 행동거지의 신중함이 볼 만하였다라고 하여 전주를 백제의 수도이자 품격있는 지역으로 평하였다. 이 같이 전주는 고려시대인 1018년 5도양계의 행정체계에서 전라도 명칭이 처음 생긴후 전라도의 으뜸도시로서 역사의 중심에 자리했다. 이후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 또 현재의 전라남북도와 광주시,제주도를 총괄한 명실상부한 호남제일성 즉, 전라도 관찰사가 머무는 감영도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같은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전라감영이었다. 전라감영(全羅監營)은 조선시대 전라도를 다니며 국가행정이 잘 되고 있는지, 백성을 잘 살고 있는 가를 관찰한 관찰사(=감사)가 정무를 보던 관청이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설치된 시기는 조선초기인 태종연간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관찰사의 정주 업무 수행에 따라 여러 가지 관아시설들이 건립되고, 감영의 기능 확대에 따라 많은 관아건물이 추가로 건립됨에 감영구역이 형성되어갔다. 전라감영은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전라북도 관찰사가 관할하는 관찰부로 바뀌었다가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탄과 함께 폐지되고, 그 관아시설은 전라북도청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1년 선화당앞에 2층 633평규모의 전라북도청이 신축되었고 1937년 3층, 630평 공간의 전라북도 산업장려관(구 의회동) 이 신축되어 감영의 면모가 크게 훼손되었다. 1951년 선화당옆 창고화재로 선화당과 전라북도청사가 전소되어 1952년 11월 현재의 3층 1752평의 전라북도청 본청 건물이 신축되었고 1984년 서편부지에 4층의 전북경찰청(2676평) 공간이 세워졌다. 전라감영복원논의는 도청이전과 연결되어 1996년 제기되었고 2005년 7월 전라북도청이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본격화되었다. 2006년 선화당위치 확인을 위한 발굴이 진행되었고 감영복원을 위한 용역이 진행되었다. 특히, 2011년 전주역사박물관의 노력으로 선화당의 정확한 위치가 도면으로 확인되고 전라북도청사 등이 철거되었다. 이후 2016년 전라감영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발굴을 통해 선화당과 관풍각, 내아 및 비장청 등 관련 공간이 확정되어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2019년 상반기 복원될 예정이다. 관찰사의 통치공간과 연결된 공간이 선화당, 관풍각, 비장청, 내아 등이다. 이와 관련된 공간은 주로 현재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동쪽공간으로 맞은 편인 서쪽에는 아전 등 행정실무 공간이 분포하며 남쪽 공간은 주로 군사관련 공간이 분포하였다. 이와 달리 전주의 문화와 관련된 공간들은 서편 공간에 분포하고 있다. △전라감영, 한국 전통문화콘텐츠의 보물, 세계문화유산의 디딤돌로 만들자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호남지방 최고 행정기구로서 현재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제주도를 관할한 행정, 문화, 경제의 중심공간이었다. 특히, 조선왕조 발상지로서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도시인 전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공간이다. 또한 전라감영은 전라도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즉 전주로 상징되는 전라도의 풍류문화와 완영본으로 대표되는 출판인쇄문화와 전주의 부채, 전주한지 등으로 상징되는 지식창출의 본영같은 역할이 감영의 인방, 지소, 선자청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판소리대사습의 발상지로서 전라도문화를 대표하는 예술문화의 중심이었다. 판소리 대사습은 전라감영과 길 하나사이를 두고 있는 전주부영 즉, 지금의 도청과 시청의 통인들이 섣달 그믐에 망년회형식의 잔치를 벌일 때 서로 뛰어난 소리꾼을 경쟁적으로 불러 행사를 하면서 소리꾼의 소리가 어디가 더 좋았다는 것을 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리경연이 벌어진 전통이 계승된 것이다. 이곳이 바로 서편부지의 통인청이었다. 즉, 전라감영은 정치, 행정 및 지역 경제의 중심 통치공간이자. 군사 경찰 및 사법 행정의 핵심지역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라도 문화가 만들어져 전파된 문화창조 공간이었다. 이들 공간이 서편부지에 대부분 밀집되어 있다. 또한 전라감영은 감사와 관인, 아전, 노비까지 상물림을 통해 함께 밥상공동체를 이루며 음식을 공유하였던 대동의 음식문화 공간이었다. 그리고 도청에 해당하는 감영과 시청에 해당하는 부영의 관인들이 서로 소리꾼을 불러 판소리경연을 통해 문화 주도권다툼을 벌였던 판소리 대사습이 시작된 공간으로 전라감영은 전주의 맛과 멋을 생산하고 소비하였던 공간으로서 한국 전통의 품격과 문화콘텐츠를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지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약재가 매매되던 전주약령시 공간이 감영앞 공간으로 전통의학과 치료공간이기도 하다. 이곳 역시 서편부지에 모두 모여있다. 특히, 고전 소설 콩쥐팥쥐의 무대로서 전라감사의 부인이 된 콩쥐와 이를 시샘한 팥쥐의 후반부 이야기 무대가 내아이기도 하다. 현재 전라감영 복원범위는 선화당과 내아 등 일부 공간에 국한되고 있다. 향후 정문인 포정루와 앞서 언급한 통인방, 의국, 지소, 인출방, 선자청과 함께 등 공간이 확대되면 면모가 더욱 갖춰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현재 완산경찰서 공간인 ⑥중영은 전라도의 군사, 경찰업무를 총괄하는 공간으로 국가방위와 치안의 상징이란 점에서 현재까지도 계승된 경찰청공간과의 역사적 연계성이 확인된다. 이 같은 공간들이 현재 구체적인 복원계획이 잡혀있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이제 2019년 조선왕조의 지방 행정공간이었던 전라감영복원이 이뤄지면 왕권 상징의 공간이었던 객사와 서울 종묘와 위격을 같이하는 의례공간인 경기전, 호남 최대 국가교육공간인 향교, 서민생활 공간을 대표하는 한옥마을 그리고 전주부성 공간인 풍남문과 4대성문지, 성벽길 등을 망라한 도시공간유적을 포괄하여 조선왕조 지방행정공간 유적군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다면 전주의 역사문화적 가치의 의미가 명실상부하게 부각되어 앞으로 미랴 천년 전라도문화를 대표할 공간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제 전라감영 복원을 시작으로 세계문화유산도시 전주를 추진하자. 조법종(우석대 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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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1 19:25

[카드뉴스] 2018 전북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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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8.11.0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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