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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5)- 양호도순무영의 공식 기록인 <갑오군정실기> 1부

새로운 사실이 쏟아진 동학농민혁명 사료 갑오군정실기.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갑오군정실기>는 1894년 9월 22일(양력 10월 20일) 조선 정부에서 호위부장 신정희(申正熙)를 도순무사에 임명하고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을 설치할 때부터 이해 12월 27일(양력 1895년 1월 22일) 폐지될 때까지 95일 동안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사료이다. 모두 10책으로 9책은 공문서집이고, 마지막 10책에는 순무영의 지휘 아래 활동한 장졸의 인원과 전공을 기재했다. 유일 필사본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도원수에 해당하는 양호도순무영의 위상 조선왕조의 군사제도에서 순무영은 상설기구가 아니었다. 영조 4년(1728년)에 무신란이 일어나자 긴급히 오명항을 4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에 임명해서 진압하도록 했다. 4로는 군대의 진군과 후퇴 등이나 사방의 길을 의미하는데 또 4도순무사(四道巡撫使)로 말한 것을 보면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4도의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 순조 11년(1811년)에 서북 일대에서 홍경래난이 벌어지자 양서순무영(兩西巡撫營)을 설치했는데 양서는 관서와 해서를 의미한다. 고종 3년(1866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다시 기보연해순무영(畿輔沿海巡撫營)을 설치했는데 기보연해는 경기도 해안지역을 의미한다. 임시 군사지휘부인 순무영은 군무 활동지를 명시해서 운영하였다. 정부는 동학농민군의 1차봉기를 호남과 호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았다. 그래서 홍계훈을 양호초토사에 임명해서 경군을 이끌고 진압하도록 했다. 전국에 걸친 2차봉기가 일어나자 위기 상황을 파악한 왕조정부는 호위부장 신정희를 양호도순무사에 임명해서 진압군을 지휘하도록 했다. 도순무영은 경군 병영과 지방 병영만 지휘하지 않았다. 진압에 관련된 군사상 기밀은 해당 군현에서 곧바로 순무영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신정희에게 내린 국왕의 교서는 도순무사가 ‘품계로는 도원수에 비교’되고, ‘재상의 반열에 해당’한다고 했다. 최고 군사지휘부의 위상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경기감사 · 충청감사 · 전라감사 · 경상감사 · 황해감사 · 강원감사도 도순무사에게 직접 보고하고 지시를 받았다. 이토 히로부미가 약탈해간 <갑오군정실기> 조선왕조는 커다란 사건을 겪으면 백서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양서순무영과 기보연해순무영은 그런 전례에 따라 전란 종료 후 각각 5책씩 <순무영등록>을 만들었다. 이 등록은 홍경래난과 병인양요를 생생한 사실을 알려주는 자료가 된다. 그러나 양호도순무영의 등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등록>은 공문서를 모은 형태를 띤다. 주고받은 공문을 날짜별로 편집해서 각종 사건을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공문서를 모은 것은 아니다. 양호도순무영의 문서 담당 인원은 11명이었다. 이들은 공문서를 분류하고 묶어놓은 일이 책무가 된다. 이런 직책이 있으면 틀림없이 공문서집을 만들었을 터이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공문서집의 존재는 2011년 12월에 실체가 확인되었다. 이때 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도서 1205책이 반납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약탈해간 고도서가 중심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일본 궁내청 소재 조선왕조 도서 환수기념 특별전’을 열었는데 ‘국내에 없는 유일본’인 <갑오군정실기>가 포함되었다. <갑오군정실기>를 검토한 결과 그 체제가 기존 <순무영등록>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선례에 따라 도순무영의 설치 근거인 국왕의 윤허 기록을 첫 부분에 실었고, 날짜별로 일어난 사건과 수발한 공문을 전재하였다. 오직 이름만 다를 뿐이었다. <갑오군정실기>의 기구한 이력 배경 양호도순무영은 설치 목적을 완수한 이후 잔무까지 처리하고 해산하지 못했다. 일본공사의 압력을 받아 중도에 폐지된 까닭이었다. 양호도순무영이 일본공사관과 협조하지 않자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는 외부대신 김윤식을 공사관에 불러 지침을 내리는 등 간섭을 자행하였다. 마침내 일본공사는 조선정부에 압력을 가해서 도순무영을 와해시켰다. 도순무사 신정희는 12월 23일에 강화유수로 전임되었고, 같은 날 중군 허진은 경기도 통진부사로 좌천되었다. 좌선봉 이규태도 전라도 파견 현지에서 소환되었다. 이런 까닭에 양호도순무영의 공식 기록을 도순무사와 중군이 관여하는 형태로 만들 수가 없었다. <갑오군정실기>는 잘 정서한 필사본이지만 중앙관서에서 만든 책으로는 체제가 번듯하지 않다. 우선 이름도 <순무영등록> 또는 <양호도순무영등록>이 아닌 <갑오군정실기>라고 붙였다. 유일본 여부도 알 수가 없다. 정서를 한 것을 보면 서사가 베낀 것으로 보이나 몇 벌을 필사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도순무영에서 공식으로 만든 보고서라면 더 필사를 해서 여러 권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어디에도 주도한 사람에 관한 기록이 없다. 도순무영의 종사관이든 참모사이든 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성책한 담당자의 이름이 없다. 도순무사 신정희의 가전 장서에도 이 책이 존재했다는 증언이 나오지 않는다. 일본과 대신이 협력한 군부가 소장했다가 이토 히로부미가 반출한 도서에 포함되었을 수가 있다. 무려 한 세기 이상 <갑오군정실기>는 일본 궁내청에 소장된 상태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반환도서에 들어가서 되찾게 된 것이다. <갑오군정실기> 10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각 책에 공문을 정리한 날짜와 면수는 다양하다. 1책 (118면) : 갑오 9월 22일 – 10월 11일 2책 (87면) : 갑오 10월 11일 – 10월 20일 3책 (92면) : 갑오 10월 21일 – 11월 2일 4책 (98면) : 갑오 11월 3일 - 11월 15일 5책 (72면) : 갑오 11월 16일 - 11월 21일 6책 (95면) : 갑오 11월 21일 - 11월 30일 7책 (76면) : 갑오 12월 1일 – 12월 10일 8책 (67면) : 갑오 12월 10일 - 12월 15일 9책 (104면) : 갑오 12월 16일 – 12월 28일 10책(114면) : 유영장졸(留營將卒) 출진장졸(出陣將卒) 기공(紀功) 합계 923면 날짜로 보면 짧을 경우 6일치 공문서를 모았고, 길 경우 20일에 달하는 기간의 공문서를 모았다. 각 책의 면수도 모두 다르다. 8책의 67면에서 1책의 118면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난다. 내용에 따라서 구분하지도 않았다. 같은 날에 해당하는 내용이 앞책의 마지막과 뒷책의 첫부분에 이어져 있기도 하다. 정서를 한 후 일정한 기준을 두지 않고 면수와 관계없이 책으로 묶었다. 도순무영에 속해서 활동한 사람들의 직책과 이름 그리고 인원수를 기록한 10책의 유영장졸(留營將卒)은 서울의 도순무영 본부에서 활동한 장졸을 의미한다. 유영장졸 중 일부는 전라도와 충청도로 파견을 나가기도 했고, 뒤에 군사를 거느려서 동학농민군과 전투를 벌인 인물도 있다. 여기에 전재된 주요 공문서는 <고종실록> <순무선봉진등록> <순무사각진전령> <선봉진일기> 등에 실린 각종 자료와 동일하다. 1959년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동학란기록> 2책에 포함되어서 일찍 알려진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자료에 나오지 않는 새로운 공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전국 여러 지역의 동학농민군 지도자와 활동상이 처음 나와서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24.11.20 17:39

[배리어프리 공공디자인에서 인권을 찾다]⑥장애인·비장애인 모두가 함께, 독일 마부르크(Marburg)

독일 중부 헤센주에 위치한 마부르크(Marburg)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대기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통편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더라도 문제될 건 없다. 버스가 멈춰서면 시각장애인과 버스기사는 자연스레 소통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중요치 않다. 충분히 의사소통 할 수 있도록 버스기사와 승객들은 기다린다. 인구 약 8만 명이 거주하는 마부르크 시에서는 기다리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 자동문, 점자 안내판과 음성안내 등 사회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세심한 배려들이 도시 곳곳에 깃들어져있다. △장애인들의 사회생활 참여가 장벽을 허문다. 독일 마부르크 시는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에 많이 참여할수록 더 많은 장벽이 허물어진다는 기본 원칙으로 바탕으로 접근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사업들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시에서는 △장애인 운송 서비스 △장애인 자문위원회 △위르겐 마르쿠스상 등 영역을 3가지로 구분해 장애인들의 동등한 사회생활 참여를 보장한다. 특히 1997년 출범한 장애인 자문위원회는 다양한 장애물을 제거하고 장애인의 입장과 이익을 주장‧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위르겐 마르쿠스상(Jurgen Markus Prize)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과 비장애인의 참여와 포용을 창의적으로 장려하고 기존 장벽을 무너뜨리자는 의미로 제정됐다. 상금 최대 2만유로(한화 약 3000만원)가 주어지며, 이를 통해 장애인의 접근성과 포용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를 향상시킨다. △‘이동권’은 대중교통의 핵심…완전한 배리어프리 실천 독일은 2022년까지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를 구현하겠다고 선포했다. 마부르크는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계획을 정부 계획보다 2년 앞당긴 2020년까지 실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마부르크에서 운행하고 있는 24개 노선의 시내버스는 지난 2016년 100% 저상화를 이뤄냈다. 이에 따라 출퇴근 시간대 휠체어 장애인도 버스 탑승이 가능하다. 휠체어 승‧하차로 버스 출발이 지체되더라도, 버스기사와 승객들은 재촉하지 않는다. 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마부르크 시민들은 그들의 이동권을 보장한다. 현재 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완성에 초점을 맞춰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마부르크 시에서 운영하는 시내버스의 차종이 각기 달라 차내에 위치하고 있는 손잡이가 다르다. 시는 이 같은 차이가 시각장애인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차내 손잡이 위치를 통일하는 대중교통 배리어프리를 전개하고 있다. 마부르크 시 사회복지 담당자 헨리(Henry)는 “마르부르크 시의 장애 지원 서비스는 장애인은 물론 가족과 보호자를 위한 정책을 기본으로 한다”며 “장애인 교통 서비스 제공을 최우선에 두고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부르크 시는 모든 장애인을 위한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 구현에 노력하고 있다. △연대의 힘으로 허문 사회적 장벽 마부르크가 장벽 없는 도시로 일찍 발돋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인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 마부르크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은 정치적 활동을 추진했고, 이를 위해 연대했다. 사회 활동 참여를 보장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일찍이 정치적 합의를 이뤄내며 사회활동 참여 제약을 완전히 제거하는 긍정적 효과로 나타났다. 마부크르에 자리하고 있는 블리스타(blista)의 영향도 크다. 블리스타는 시각장애인 역량 강화를 위해 마부르크에 설립된 센터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파편과 독가스로 눈이 먼 군인들을 돕기 위해 사시 연구가 비엘쇼프스키(1871~1940)가 시작한 의료 진료소가 오늘날 시각 장애인에게 삶과 직업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으로 진화했다.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 중등학교가 블리스타 캠퍼스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애 ‧ 비장애인 학생 모두 센터에서 교육 받을 수 있다. 현재는 노화로 인해 시력 저하를 호소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직업 교육도 진행한다. 이외에도 시각장애인의 독서권 보장을 위한 점자 잡지 및 오디오 잡지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 이러한 블리스타의 교육과 활동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해 진정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박은
  • 2024.11.18 15:43

[뉴스와 인물] 제22대 양종철 전북대병원장 "소통과 화합되는 수준 높은 병원 만들 것"

양종철(55) 제22대 전북대학교병원장이 지난달 10일 취임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양 원장은 현재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 상황에서 지혜로운 해결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마음이 따뜻하고 편한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최첨단 장비와 고도화된 수술로 초일류 병원을 만들겠다는 야망도 가지고 있다. 전북일보는 전북대병원의 한 단계 도약을 꿈꾸는 양종철 병원장을 만나봤다. 제22대 전북대병원장으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취임 이후 많은 분들께서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저를 축하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지역거점병원의 병원장으로서 맡은 중책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료계는 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내·외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미래를 선도하는 초일류 병원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전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발전은 병원장 한 사람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병원 가족 모두의 힘을 모아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환자와 도민에게 친절과 겸손을 바탕으로 신뢰를 쌓고, 소통을 강화하여 더욱 신뢰받는 병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가겠습니다."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양측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상호 소통을 통해 지속적인 대화와 협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부적으로는 의정협의체와 의사인력전문위원회 등 관련 기구와 충분한 소통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기존의 교육과 의료 인프라에 대한 지원과 확대가 병행된다면, 갈등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것들이 중점이 될까요 "현재 의료계는 많은 도전과 어려움 속에 놓여 있으며, 우리 병원 역시 다양한 난관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역사를 이어 미래로, 지역과 함께 세계로, 신뢰받는 우리의 병원'이라는 경영 슬로건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한 경영 목표로 역사를 이어 미래를 준비하는 안정적인 병원, 지역과 함께 세계로 나가는 초일류 병원, 환자와 도민들에게 신뢰받고 구성원이 주인인 행복한 우리의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안정적인 병원을 만들기 위해 우선적으로 중증질환 중심의 필수의료 체계를 확립하고 진료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초일류 병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의료를 바탕으로 스마트 의료환경을 조성하고 최신 의료장비를 도입해 미래 의료기반을 탄탄히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병원 가족 모두가 ‘우리의 병원’ 이라는 주인의식을 갖고 협력하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모두가 주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행복한 우리의 병원’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병원장 취임 당시 초일류 병원을 강조하셨습니다 "초일류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규모의 확장이 아닌 질적 성장이 핵심입니다. 디지털 혁신기술 기반 스마트 진료환경 구축하고 국제표준화를 겸비한 차세대 통합의료정보시스템 도입하는 한편 최첨단 로봇 하이브리드 수술센터 활성화 및 최신 의료장비 도입 등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또한, 연구중심병원 인증을 획득하여 수준 높은 임상연구와 융합연구를 활성화하고, 연구수익을 재투자하는 선순환 체계를 마련하여 병원의 재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하겠습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보건 산업 분야의 미래 융합 인재 양성을 적극 지원하며, 전북 특화 바이오 단지 유치 사업과 연계하여 AI 기반 첨단 레드바이오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겠습니다. 우수한 의료 인력의 육성과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의대생, 수련의, 전문의 과정의 연속적인 교육 및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국제적인 협약과 교류를 통해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겠습니다." 군산전북대병원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요 "군산전북대병원 건립사업은 시공사 선정을 마친 후, 기술제안서 작성, 건립위원회와 이사회 등을 통한 계약 및 착공에 필요한 행정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현재 상황을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의정 갈등과 정부의 의료정책 변화 등 다양한 변수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과 리스크가 증가하면서 사업추진에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22대 집행부에서는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비록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군산전북대병원은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며, 공공성을 추구하는 거점병원으로서 이 사업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모두가 힘을 모아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재정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군산전북대병원 건립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과 협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지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지역 의료 시스템의 전반적인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전북대병원이 중증환자 중심으로 전환됩니다 "우리 병원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에 1차로 선정됐습니다. 이 사업은 제가 기획조정실장 때부터 준비해 오던 사업입니다. 앞으로 중증응급환자 중심의 진료 인프라가 대폭 강화되는데, 우선적으로 중환자실 및 응급실의 시설과 인프라가 중점적으로 보강됩니다. 기존의 진료 방식을 고도화하여 중증환자에게 보다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하고, 특히 심뇌혈관, 외상, 고위험분만, 중증 소아 분야에서 권역 내 최종 치료를 담당할 수 있는 병상과 인력을 확보하게 됩니다. 또한, 일반응급환자 병상을 중증응급환자 전용으로 전환하여 응급 치료 역량도 강화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역 병의원과의 협력을 통해 환자 회송 및 협진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중증 환자 진료에 있어 병원 간 네트워크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이는 지역 내 의료 수준을 높이고, 중증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번 전환이 체질개선과 발전의 계시가 됐으면 합니다." 어떤 병원장으로 남길 바라시나요 "저는 신뢰받는 병원, 소통과 협력이 살아있는 병원, 그리고 모든 직원이 함께 성장하고 도약하는 병원을 만들고 싶은 병원장입니다. 환자와 직원이 모두 신뢰하고 존중하는 환경을 조성해 병원 안에서 따뜻함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이끌어 가겠습니다. 또한, 혁신적인 의료기술과 선진적인 진료시스템을 통해 환자에게 최고의 치료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의 건강을 책임지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슬로건으로 ‘미래로, 세계로, 우리의 병원’을 제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병원’ 이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를 통해서 모두 통합하는 병원, 소통과 화합이 잘 이루어지는 병원을 만들고자 합니다. 모든 직원들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며, 미래로, 세계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병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민과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전북대학교병원은 1909년 자혜의원으로 시작해 115년 동안 대한민국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해온 공공의료기관입니다. 그동안 지역 보건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의학 발전과 보건 향상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도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덕분입니다. 병원에 보내주신 깊은 애정과 신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여론창달을 통하여 지역발전과 도민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해 온 전북일보와 이를 지켜온 독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민의 귀중한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병원은 앞으로도 더욱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전북대병원이 '역사를 이어 미래로, 지역과 함께 세계로, 신뢰받는 우리의 병원'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전북대병원의 미래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양종철 전북대병원장은 양 병원장은 전남 순천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전북대병원 홍보실장을 역임했으며, 고객지원실장, 대외협력실장, 기획조정실장, JBUH 2030 비전수립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또한 현재 한국정신신체의학회 회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미래전략특별위원장 등을 맡고 있으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교과서발행위원장, 전문의시험고시위원장, 학술이사 등을 맡은 바 있다. 특히 그는 지난 2016년 의사들이 추천한 '불안장애' 분야 명의로 선정되기도 했다. 18년째 전북대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그는 병원에서 열었던 행복콘서트를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꼽았다. 병원장으로서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그는 화합하는 병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우리의 병원'이다. 양종철 병원장은 "모두가 화합하는 병원을 만들고자 한다"며 "병원 내부에서는 소통과 화합이 잘 이뤄지는 병원이 됐으면 좋겠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약해 나중에는 수준 높은 병원을 만든 병원장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획
  • 김경수
  • 2024.11.17 14:59

[전북 이슈+] '생활형 한옥마을' 어디로⋯10년 새 주민 500명 짐 쌌다

북촌한옥마을이 '오버 투어리즘(과잉 관광·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민의 삶과 환경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전통적인 가치·주민 생활권 보호를 위해 '야간 통금'을 도입했다. '오버 투어리즘'은 비단 북촌한옥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외 유명 관광지 곳곳이 관광객이 몰리면서 쓰레기·소음 문제 등으로 주민의 삶과 환경이 침해받는 상황이다. 주민이 거주하는 도심 속 대규모 한옥촌으로 관광객의 관심을 받는 전주한옥마을도 '오버 투어리즘'을 겪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오버 투어리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전주한옥마을 곳곳을 둘러봤다. 정체성을 잃은 전주한옥마을이 1500만 관광 시대가 열릴 동안 주민 500명이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생활형 한옥마을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오버 투어리즘' 탓에 전주한옥마을을 떠날 생각만 했던 것이다. 15일 전주시와 풍남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전주한옥마을 주민 수는 518세대 841명이다. 2015년에는 615세대 1316명 거주한 데 반해 10년 새 475명이 떠났다. 반면 관광객 수는 600만여 명이 늘었다. 2015년(2014년 10월∼2015년 9월) 965만 3035명이 전주한옥마을을 찾았는데 지난해에는 10여 년 만에 571만 1171명이 더 찾으면서 1536만 4206명이 몰렸다. 이러한 집계는 '오버 투어리즘'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생활형 한옥마을'·'마을형 관광지'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완전히 상업화된 관광지가 되면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게 쉽지 않아졌다. 지난 2014년 7월에 열린 전주한옥마을 발전을 위한 전주시장 초청 간담회에서 입주민 150여 명은 "관광객을 위한 한옥마을이냐, 주민을 위한 한옥마을이냐"고 지적했다. 전주한옥마을이 타 지역 한옥마을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는 생활형 한옥마을'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2019년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이슈 브리핑 '오버 투어리즘과 사회적 딜레마'를 보면 '오버 투어리즘'을 경험한 장소로 전주한옥마을이 상위권에 들었다. 제주도(24.5%)가 가장 높고 북촌한옥마을(10.5%), 전주한옥마을(9.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면서 주민은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민이 떠난 자리에는 카페와 식당, 오락시설, 액세서리·옷 가게 등이 들어섰다.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전북지역 주요 상권 동향(2015∼2022년)에 따르면 2015년 전주한옥마을 인구 수가 1316명이었을 때 사업체 수는 1081개였다. 2022년에는 1088개로 늘었다. 올해 인구 수가 1000명 선 아래로 떨어진 것에 비춰봤을 때 주민 수보다 사업체 수가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전주한옥마을이 주거지 위주가 아니라 상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1500만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쇼핑과 숙박시설 등이 필요하지만 전주한옥마을의 고유한 이미지를 잘 살려서 가져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들어서 있는 상점 등이 전주한옥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꼬치 등 흔한 길거리 음식을 주로 파는가 하면, 풍선 터트리기·오리 건지기 등 사행성 영업소가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한옥의 고즈넉함과 고요함 등을 기대했지만 기대와 다른 현장 모습에 "한옥의 고즈넉함은 온데간데 없네요", "이렇게 생긴지 몰랐어요", "다른 관광지와 크게 다르지 않네요" 등 전주한옥마을만의 정취를 느끼기에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전주한옥마을이 정체성을 잃고 유원지로 전락하게 된 것에 아쉬움이 남지만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머무르며 전주한옥마을의 정체성에 집착하기에는 늦은 만큼 전주한옥마을만의 지속 가능한 관광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진명숙 전북대 고고인류문화학과 교수는 "과거 전주한옥마을의 정체성은 주거지로서의 관광지였다. 매력은 수십 년간 주민이 살아왔던 마을이 있었다. 주거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지, 주거지를 상업지구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제 와서 전주한옥마을의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기에는 늦었다. 전주한옥마을이 관광지로 변모하고 꾸준히 관광지로 확장된 것이 사실이다"면서 "이제는 과연 1500만 숫자가 전주한옥마을이 수용할 수 있는 수치인지, 오버 투어리즘의 대안을 고민할 때는 아닌지 짚어볼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건강한 관광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전주한옥마을은 한옥의 정서를 느낄 수 있고 주인장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생활형 한옥 체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듯)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주한옥마을에서만 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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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6 11:17

[전북 이슈+] (현장) 여기 한옥마을 맞아?⋯관광객들 먹자판·상업주의에 ‘실망’

“한복 입어보실래요? 싫으면 우리 개화기 옷도 있는데. 와서 입어보고 가요." 지난 15일에 찾은 전주한옥마을. 포근한 날씨에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 사이로 한복대여점 직원의 호객이 끊이지 않았다. 앞을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쉬지 않고 한복이나 개화기 의상을 입어보라고 권했다. 이날 전주한옥마을 일대는 어딜 가든 비슷한 상황이었다. 골목마다 자리한 한복대여점 옆에는 사주와 타로를 볼 수 있는 점술집이 늘어서 있었다. 어느 골목에는 한옥마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점술집만 연이어 4곳이 붙어 있기도 했다. 이곳 모두 관광객이 지나가면 호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전주한옥마을 공용주차장에서부터 약 100m 남짓한 구간에 있는 사거리는 사격부터 다트 던지기, 풍선 터트리기 등 돈을 내고 게임을 한 후 결과에 따라 경품을 주는 사행성 오락시설이 여럿 있었다. 주변에는 전동차, 오토바이 등 전동이동수단 대여점까지 늘어섰다. 몇 년 전부터 전동이동수단을 대여해 주는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전주한옥마을 곳곳에 전동이동수단과 보행자가 함께 거리를 누비는 상황이다. 전주시는 '전주시 보행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에 따라 주말이면 전주한옥마을 일대를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적용되지 않아 관광객이 많은 날에는 거리마다 전동이동수단과 보행자, 자동차 등이 뒤섞여 서로 부딪힐 뻔한 아찔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전주한옥마을의 대표 관광 명소인 경기전·전동성당 인근으로 가 보니 맛의 고장 '전주'와 관계없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점포가 많았다. 울산 쫀드기부터 일본식 찹쌀떡, 경주 십원빵 등 국적과 지역을 넘나드는 점포들이 가득했다. 이곳 또한 한복대여점과 점술집, 전동이동수단 대여점, 사행성 오락실이 군데군데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 지난 몇 년간 전주한옥마을 고유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단순 상업지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주한옥마을 일대인 전주시 교동·풍남동은 과거 전주의 중심지였으나 19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되며 개발이 막히자 발전이 침체해 90년대 후반 슬럼화가 진행됐다. 전주시는 지난 2002년 ‘전주한옥보전지원조례’를 제정해 본격적으로 한옥마을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계획은 도시 한옥이 밀집돼 있고 실제 주민이 살고 있는 한옥마을 일대를 보존 및 정비해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03년 전주한옥마을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전체 구역 중 95.6%를 차지하는 28만 5211.3㎡가 주거지역으로 설정돼 있었다. 전체 구역 중 상업지역은 2.8%에 불과했다. 한옥마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각종 규제가 가해졌다. 과거 전주시는 한옥마을 내에서 전통음식만 판매할 수 있게 하고 한옥마을 전경을 해치지 않도록 층수 또한 1층으로 제한하는 등 규제를 마련했다. 그러나 최근 전주시 행정은 과거와 반대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전주시는 2022년 전주한옥마을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부분의 규제를 완화했다. 한옥마을 내에서 일식, 양식, 중식 등 다양한 국제 음식을 팔 수 있게 허가했다. 또 태조로와 기린로 일부 대지에만 건축물 층수 제한도 2층으로 확대했다. 전주한옥마을의 정취를 기대하고 온 관광객들은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다. 고즈넉함을 기대했지만 상업화되면서 시끌벅적해지고 전주한옥마을의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충청도에서 왔다는 한 모녀는 “주차장에서 걸어오다 보면 바로 오락실이 보인다. 한옥을 보러 왔는데 한옥과는 관계없는 오락실이나 점술집만 가득하다. 전주한옥마을을 보러 온 거지, 이런 걸 보려고 온 건 아니다”고 전했다. 전주한옥마을에 처음 방문했다는 한지선(32) 씨는 “어린이들은 오락실이나 이런 상업화된 게 볼 것도 많고 좋아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전주한옥마을만이 가진 특유의 멋을 해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는 전주한옥마을 내 즐길 거리가 부족한 만큼 이러한 상점이 필요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딸과 함께 전주한옥마을을 방문했다는 정진희(45) 씨는 "어차피 여기 관광객으로 왔으니 뭔가 놀거리는 필요할 것 같다. 생각보다 할 게 없어서 당황했다"면서 "그나마 오락실이나 점술집 등이라도 있어 다행이다"고 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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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6 11:16

[전북 이슈+] 관광객 오니 주민 떠났다⋯북촌은 오후 5시면 "나가세요"

37년 만에 때아닌 '통금'이 생겼다. 서울 북촌한옥마을이 '오버 투어리즘'에 몸살을 앓으면서 이번 달부터 주민 생활권 보장을 위해 관광객 방문 시간 제한 정책을 시범 운영 중이다. '오버 투어리즘'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민의 삶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문제는 북촌한옥마을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지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이중 전주한옥마을도 '오버 투어리즘'을 겪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북촌한옥마을 통금 시행 이후 만난 전주한옥마을 주민 일부는 북촌한옥마을의 통금 결정이 이해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이미 '오버 투어리즘'에 버티지 못하고 전주한옥마을을 떠난 주민도 많다. 주민 수만 6000여 명에 달하는 북촌과 1000명이 안 되는 전주의 상황은 다르지만 똑같이 '오버 투어리즘'에 고통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종로구청은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북촌 한옥마을 지역 일대를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했다. 주민 불편 수준에 따라 레드·오렌지·옐로우존으로 나눴다. 주민 민원이 가장 많은 레드존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관광객의 출입을 막고 있다. 본격적인 단속은 2025년 3월 1일부터다. 사람뿐만 아니라 전세버스 통행까지 막았다. 종로구는 2026년 1월부터 북촌 지역을 가로지르는 약 2.3km 구간 도로에 전세버스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로 했다. 북촌한옥마을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관광객이 몰려들자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주민들의 호소를 종로구가 받아들인 결과다. 북촌의 전통적인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주민의 생활권 보호를 위한 필수 조치다. 북촌한옥마을과 같이 한옥 관련 '오버 투어리즘'의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전주한옥마을 주민·상인들은 통금 조치가 놀랍지만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전주한옥마을에서 35년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A씨는 "여기서 오래 살면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내 집인데 한옥마을 안에 있어서 마음대로 차도 못 대고 살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며 "그래서 북촌한옥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주와 북촌의 한옥마을은 각자 사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과거보다 많이 떠났지만 여전히 주민이 많은 북촌한옥마을과 달리 전주한옥마을은 이미 상업화되면서 모두 떠났다는 것이다. A씨는 "북촌한옥마을은 아직도 사람들이 꽤 살고 있다. 하지만 전주한옥마을은 관광지화 되고 상업화 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그러니 여기를 북촌한옥마을처럼 통금을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50년 넘게 살았다는 주민 B씨도 "전주한옥마을은 관광객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유로 떠날 사람은 진작에 다 빠져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옥마을에서 장사하거나 관련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며 "결국 관광객이 오는 것을 환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주한옥마을은 2014년에도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거주민 생활 불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 주민들은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소음과 음식 냄새, 주차 공간 부족 등 불만을 쏟아냈다. 전주시는 간담회를 열기도 했지만 주민의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매년 전주한옥마을 주민이 줄어드는 가운데 지금도 다른 거처를 찾아 떠날 준비를 하는 실정이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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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6 11:15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4)자랑스러울 수 없는 공훈 기록 –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두 개의 인명록 〈동학당정토인록〉, 〈갑오군공록〉

〈동학당정토인록〉은 1894~1895년 동학농민혁명의 진압과 토벌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 사람을 표창하기 위해 만든 자료이다. 작성년대와 주체는 표기되지 않았으나, 당시 갑오개혁정부의 군부가 여러 기관에서 올린 명단을 취합한 것으로 보인다.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은‘순무사 신정희(申正熙) 종1품 졸서(卒逝)’라고 표기되어 있고, 또 ‘좌선봉 이규태(李圭泰) 졸서(卒逝)’라고 했는데, 이규태의 사망일자가 1895년 6월 23일(『관보』 1895년 7월 9일자)이라는 점에서 그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록 내용으로는 주책(籌策, 4명), 장령(將領, 25명), 주모(主謀, 17명), 공략(攻略, 309명, 중복 3명), 의려(義旅, 346명, 중복 2명), 정탐(偵探, 64명) 등 6개 부분에 모두 765명에 대해 공훈 내역을 기록하였다. ① 주책에는 순무사 신정희, 중군 허진, 군부협판 권재형, 종사관 정인표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② 장령에는 좌선봉 이규태, 호연초토사 이승우, 호남초토사 민종렬, 충청감사 박제순, 충청병사 이장회를 비롯하여 지휘부를 구성한 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③ 주모는 실제 전투현장에서 군부 지휘부를 구성한 인사들로 참령 이승원 호연(湖沿)참모관을 비롯하여 순무영 참모관, 순무영참모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④ 공략은 전국 각지방에서 출전하여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인사들로 대개 경리청, 통위영, 장위영 등의 영관, 대관 등이며, 각지방에서는 영장과 별군관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⑤ 의려는 대개 각지방의 수성군 내지 민보군으로 활약한 인사를 포괄하고 있다. 전라도 고부(전현감 은덕중), 고창, 부안, 태인, 나주, 전주, 구례, 순천 등이며, 경상도 하동(전부사 이윤식), 거창 등, 경기도 양근(전판관 김태영), 지평, 개성, 충청도 태안, 홍주(전현감 민기호), 보령(정산군수 박홍양), 목천, 서산, 천안(군수 윤영렬, 전영장 유상후 등, 전참봉 윤치소), 공주(전오위장 강원백), 제천 등, 강원도 강릉(전오위장 윤세중), 원주, 양양 등, 황해도 신천(의례장 진사 안태훈) 등을 망라하고 있었다. 의려 중에는 각 지방에서 관직이 없는 유학도 다수 차지하여 있다. 이어 ⑥ 정탐에는 별군관 순행양호 정위 남만리를 비롯하여 64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전국에 걸쳐 중앙과 지방의 각종 부대, 의려 등을 망라하고 있어 동학농민군 토벌 상황을 알 수 있고, 여기에 참여한 인사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갑오군공록〉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진압과 토벌에 군공(軍功)이 있는 인사들의 이름과 군공 내용을 적어 놓은 자료이다. 기록 방식으로는 군공을 세운 사람의 당시 직함과 이름을 적고, 다음으로 군공에 따라 기존의 품계와 군공을 받게 된 구체적인 내용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전체 기록된 인사는 모두 410명이다. 전체 인명 숫자에 대해 약간 혼선이 있다. 군관 출신(出身) 이병식(李秉植)의 경우 이후 같은 직위와 동일 이름이 발견되어 중출(重出)이라고 표기하였고, 수안퇴리(遂安退吏) 권성돈(權成敦)도 다시 반복되어 있으므로 이들을 제외하면 실제 명단은 약간 축소된다. 군공 서열로 보면, 순무사 신정희를 필두로 해서 중군 허진(許璡), 군부협판 권재형(權在衡), 종사관 정인표(鄭寅杓) 등을 비롯하여 호남초토사 민종렬, 호연초토사 이승우, 충청감사 박제순, 전라감사 이도재, 좌선봉 이규태, 청주병사 이장회, 전경리영관 군수 성하영, 전순무참모관 주서 박봉양 등이 나열되어 있다. 공훈 내역은 민종렬 경우와 같이, “뜻을 세워 궁리하고 계획하여 외따로 고립된 성을 끝내 지켰다[矢志運籌竟守孤城]”라고 대개 8자 문구로 표현하였다. 이어 통위영관 등 영관급, 통위대장 등 대장급, 경리교장(經理敎長) 등 교장급, 순무참모관 등 참모관급, 순무별군관 등 군관급 등을 기록했다. 각지에서 창의(倡義)를 통해 군공을 세운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지방의 아전이나 직책 없이 단순히 공을 세운 일반민들도 동학농민군 전투와 토벌에 군공을 세운 다양한 직위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공적내용에서 주목되는 것은 동학농민군의 3대 지도자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을 체포한 사실을 특기하였다. 전봉준을 생포하였던 순창 유학 김영철, 순창민 정창욱 등 3명을 거론하였고, 김개남과 관련해서는 심영병관(沁營兵房) 황헌주를 수행한 황시중, 김경석, 김시형, 윤치근 등을 기록하였으며, 고부사람 조인상(趙仁常), 순창 사람 이경우(李京佑) 등 11명이 손화중을 붙잡은 데 공을 세웠다. 그밖에 전 고창현감 은덕중(殷德中)은 손여옥을, 고창유학 서동식(徐東植)은 홍락관을, 무안유학 오한수(吳漢洙)는 배상옥을 체포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특이한 것은 일본군과 협력하여 동학농민군을 탄압한 교도소 대관, 통역 등의 명단도 나온다. 이들의 공로는 “일본군 진영에서 종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隨從日陣始終效勞]”든지, “일본군 진영에서 공로가 적지 않았으며 큰 비류를 붙잡았다[效勞日陣捉得紳匪]” 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일본군 병참총감 카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가 비밀지령을 내려 “동학당에 대한 처치는 엄렬함을 요구한다. 향후 모조리 섬멸하라”고 명령한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들은 동학농민군의 학살에 공동책임을 져야하는 인사인 셈이다. 일본정부에서는 별도로 일본군 전투공로자 457명, 전투를 하지 않은 공로자 157명 등을 포함하여 모두 627명을 포상대상으로 하고 있다. <자료 2> 《갑오군공록》의 첫 부분, 순무사 신정희 등의 명단과 품계, 그리고 공훈사실이 적혀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제공그런데 전국 각지에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토벌하는데 공로를 인정받은 사람들을 수록하는 방식에는 여러 차이가 있었다. 〈동학당정토인록〉에서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는 데 참여한 인사 중 286명만이 〈갑오군공록〉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전라감사 이도재, 전현감 조원식, 강릉민보장 이수해(李守海) 등 124명이 추가로 군공록에 수록되었다. 한편 동학농민군 진압에 큰 공훈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군공록에 수록되지 못한 인물도 있다. 조희연(군부대신), 이두황(양호우선봉) 등이 그랬다. 이들은 1895년에 일어난 을미사변으로 인하여 역적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양 자료의 계승관계는 어떠할까. 공적 인명을 최종 정리한 시점은 언제일까. 갑오군공록은 1895년 8월 군공록 편찬에 들어가 ‘군공조사규례’가 마련되기도 했지만, 이때는 미처 완성되지 못했으므로 1900년 11월 이후 작성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김태웅, 「1894년 농민군 진압자의 정국 인식과 정치적 행로의 분기-〈갑오군공록〉 등재자를 중심으로」 『대한제국과 3·1운동』 휴머니스트, 2022, 320쪽 참조).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수십만의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는데 공훈을 세운 것으로 기록된 인사들은 갑오개혁과 대한제국시기 집권세력에 의해 충군애국의 표상으로 크게 칭송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회복을 추진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공훈인명록은 수많은 동학농민군 지도자와 참여자들을 잔인하게 진압한 가해자측의 기록이며, 일본과 협조하여 민중세력을 탄압한, 결코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공훈자들의 명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2개의 자료는 모두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장서각에도 필사본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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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4 18:26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전북에선 중단된 ‘소싸움대회’.. 정말 ‘보전’해야 할 우리의 문화일까?

시대가 많이 변했다. 네 집에 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우며 동물도 ‘지각하며 느끼는 존재’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런 시대 변화의 흐름에 직격탄을 맞은 우리의 옛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소싸움’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자연스럽게 중단됐던 전국의 소싸움대회가 지난해를 시작으로 하나 둘 기지개를 켜자, 온순한 초식 동물인 소를 강제로 싸움에 붙이는 ‘동물학대’를 이제는 뿌리 뽑자는 강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소싸움은 아무 곳에서 개최할 수는 없다. 농림식품부령으로 지정된 전국의 11개 지자체만이 ‘전통문화 계승’을 목적으로 소싸움을 개최할 수 있다. 현재 소싸움이 가능한 11개 지자체 중에는 전북도의 완주군과 정읍시도 포함돼 있다. 이 두 지자체는, 소싸움이 ‘동물학대’라는 논란 속, 더 이상 전국소싸움대회를 개최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완주군은 지난 5년, 정읍시는 6년간 전국대회가 열리지 않고 있다. 내년에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렇듯 내년에 전국소싸움대회를 열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발표한 지자체는 총 5곳. 얼핏 보면 소싸움대회가 ‘동물학대’란 논란에 부딪혀 조만간 ‘과거’의 문화로 남는 것인가 싶지만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이지는 않다. 가장 먼저 전국소싸움대회가 ‘잠정 중단’된 지자체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완주군의 경우, 2019년 마지막으로 개최된 이후, 대회를 개최하던 해당 부지에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 기간 동안 공공 승마장이 들어서면서 더 이상 대회를 열 부지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부지를 마련하려면 예년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소싸움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예산을 증액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이다. 완주군 관계자는 “사실상 완주군은 소싸움대회를 개최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앞으로도 상황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정읍시도 상황이 비슷하다. 전국대회와 주말 상설 경기가 활발히 열리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완주군과 마찬가지로 전용 경기장이 없다. 공터에 상시로 경기장을 설치해 대회를 여는 형식이었는데 마지막 대회가 열린 지도 6년. 기존에 사용해 오던 정읍시립박물관 옆 부지는 이제 국민연금 연수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정읍시 역시 완주군과 비슷한 이유로 전용 경기장을 설립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상설 경기 없이, 간간히 한 번씩 전국대회만 열던 지자체는 일찌감치 ‘동물학대’ 논란을 이유로 더 이상은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전국의 소싸움협회와의 관계, 타지자체의 상황 등을 고려해 ‘폐지 선언’은 쉬쉬하고 있는 모양새이지만, 사실상 앞으로 전북 지역에선 지자체 주도의 소싸움대회는 열리지 않을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신라와 백제 시대부터 비롯됐다 전해지며 ‘소싸움의 발원지’라 주장하는 경남 지역의 상황은 어떨까? 사실상 현재의 동물학대 논란에 별다른 타격이 없는 상황이다. 가장 성황리에 소싸움대회가 진행되는 진주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소싸움대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창원시 역시 예년 수준으로 소싸움 관련 예산을 수립한 것이 확인됐다. 소싸움대회를 왕성하게 펼쳐 온 경상북도 청도군이 예외적으로 내년 소싸움축제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는데, 청도군 관계자는 “대회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소싸움축제를 어떤 축제로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 가져보기로 한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아울러 주말마다 열리는 상설 경기는, 여전히 억 단위의 예산을 들여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일부 지자체에서 연례행사로 열리던 ‘전국 소싸움대회나 축제’를 잠정적으로 중단한 것. 여전히 청도군과 진주시를 비롯한 지자체에서는 주말마다 100여 마리의 소가 출전하는 싸움의 장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싸움소의 육성 현황도 여전하다. 소싸움은 전국적으로 싸움소들이 우열을 가리기 위해 출전하고 있다. 경기가 열리는 지역을 불문하고 전국 어느 소나 등록만 마치면 출전이 가능하다. 현재 청도 상설 경기장에만 전국의 656마리가 출전하고 있다. 이미 소싸움대회가 수년 간 열리지 않는 완주에도 여전히 7 농가, 정읍에 3농가가 남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싸움소 육성 농가가 있는지는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동물학대 논란 속에서도 여전히 싸움소가 설 판은 넘치니 ‘보상’에 대한 논의는 시기상조이다. ‘보상’ 논의에 나서는 순간 소싸움대회가 ‘폐지’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셈. 소싸움 협회 관계자들 역시 환영하지 않는 시나리오이다. 결국 소싸움이 ‘동물학대’라고 주장하는 동물/시민사회단체와 ‘보전해야 할 문화’라는 소싸움 관계자의 입장 차와 이를 한 발짝 물러서 여론을 지켜보는 지자체의 입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소싸움이 과연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변수로 꼽힌다. 전국의 소싸움 협회는 소싸움이 “여러 세대에 걸쳐 유지되어 온 우리나라의 오랜 민속놀이”라고 주장하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펼친 바 있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지난 1월, 소싸움을 포함한 8개 종목을 국가무형유산 신규 지정 대상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동물단체 등을 중심으로 시민 반대 서명이 펼쳐지는 등 거센 반발이 빗발치자 기존 종목에 대한 지정 조사를 실시하기 전 단계인 기초학술조사부터 선행하기로 했다. 소싸움이 무형유산 고려 대상에 올라 조사를 거칠 수 있는 종목인지부터 면밀히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국가무형유산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전승 현황과 운영 방식, 동물학대 여부 등에 대한 기초학술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올해 안에 마무리 될 예정”이다. 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서양 국가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에서는 카우보이가 말을 타며 떨어지지 않고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겨루는 시합인 로데오가, 유럽에서는 한국의 소싸움과 비슷한 투우가 마찬가지 동물학대 논란으로 뭇매를 받고 있는 것이다. 투우는 1800년대부터 이어져 온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오락이지만, 잔인한 동물학대라는 이유로 프랑스 남부 지역과 스페인 카탈루냐가 경기를 금지시킨 바 있다. 투우 지지자들은 문화적 전통이며 보전되어야 할 예술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논란과 의견 충돌에도 스페인은 올 5월, ‘국가 투우상’을 폐지하기로 결정하는 등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동물학대’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는 도박, 광고, 오락, 유흥 등을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 금지하고 있다. 소싸움 역시 도박, 오락, 유흥의 목적으로 동물을 싸움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학대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 소싸움이 가능한 것은 이 같은 규정에 대한 예외조항 때문이다. ‘민속 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예외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에 소싸움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즉, 소싸움은 동물보호법의 규정상으로는 동물학대에 해당하지만, ‘민속놀이’이기 때문에 처벌은 면하고 있는 이중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단지 ‘민속놀이’라는 이유로 동물학대 금지 조항에서 예외를 두는 것은 당위성이 부족하고, 단순히 인간의 유희를 위해 동물을 싸움에 붙이는 행위를 전통으로 계승하는 것 역시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권대선 정읍녹색당 위원장은 “당장 소싸움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니 3년 정도의 일몰제 기간을 적용해 소싸움 관계자들에 대한 보상 등의 논의를 펼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거세지는 소싸움의 동물학대 논란. 오로지 인간의 유희를 목적으로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이 ‘전통’이란 명분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과연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야 할 우리의 고유 예술과 문화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끝- 목서윤 전주MBC 아나운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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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3 17:33

[전북 이슈+] 축제는 '쑥' 방문객은 '뚝'⋯'힙'한 축제가 뜬다

올해 처음으로 연 김천의 '김밥축제'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전국이 술렁이고 있다.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의 혈세를 쏟고도 실패하는 지역축제가 다반사지만 1억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신선한 축제를 만든 성공 사례가 등장한 이유에서다. 역발상과 신선함으로 흥행에 성공하자 전북에서도 지역축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해 개최되는 지역축제만 90여 개에 달하지만 바가지 요금, 연예인(초대 가수) 의존 등 구태의연했던 축제를 벗어나 돌파구를 찾자는 의미다. 실제로 지역축제를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전북에서 열리는 지역축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방문객은 줄었다. 최근 나라살림연구소가 발표한 나라살림브리핑에 따르면 올해 전북지역 축제 수는 5년 전인 2019년 대비 37개 늘어난 87개다. 지난해 기준 전북 지역주민의 지역축제 참가율은 2019년 61.3%에서 33.8%p 감소한 27.5%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은 감소율을 보였다. 외부 방문객 비율도 5년 전보다 많이 줄었다. 2019년 56.63%에서 5.86%p 감소한 50.77%다. 방문객이 줄면서 평균 1인당 관광 소비액도 8860원에서 7790원으로 12.13%나 감소했다. 전북 지역축제 방문객이 1만 원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충북(7060원), 경북(7440원)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세 번째로 적은 수준이다. 송진호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지역축제의 무분별한 증가보다 질적 개선과 재정 운용의 효율화를 위해 지역축제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 심사 및 평가의 개선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실 있는 지역축제가 될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제언했다. 외부 방문객뿐 아니라 지역민마저 외면하는 지역축제가 늘어나면서 지역축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매년 열리는 천편일률적인 지역축제가 아닌 지역의 독창·정체성이 있는 재미난 축제가 살아남는 시대가 온 것이다. 김천시처럼 지명을 활용한 것은 아니지만 도내 일부 시군에서도 재미난 축제가 생겨 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순창의 떡볶이 페스타, 장수의 트레일 레이스, 군산의 짬뽕축제 등이 그 예다. 지명을 활용한 무주의 '주무'세요 힐링 축제, 전주의 '주전'부리 축제, 완주의 '마라톤' 축제 등 다양한 제안도 나오고 있다. 류인평 전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축제는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나의 축제가 잘 됐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서 같은 아이템으로 축제를 열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천에서 김밥축제가 성공했다고 다른 지자체가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김천처럼 지명을 활용한 축제는 좋지만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살리거나 트렌드를 맞추는 게 핵심이다. 지역 독특한 문화·콘텐츠를 살리면서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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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9

[전북 이슈+] 화성은 외계인, 공주는 무도회 축제⋯전북은?

화성시는 '외계인', 공주시는 '무도회', 고양시는 '고양이' 축제⋯. 최근 김천시가 김밥축제로 화제몰이를 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천시를 이을만한 지명 축제 아이디어가 담긴 재미있는 글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X(엑스·구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김천 성공 봤지?"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화성시는 '화성(Mars·행성)'을 살려 외계인, 공주시는 '공주'를 살려 무도회, 고양시는 '고양'을 살려 고양이 축제를 개최하라는 내용이다. 아쉽게도 전국 지명을 활용한 아이디어 중 전북지역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본보 디지털미디어국 기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아봤다. 고창군은 고창석(배우), 장수군은 100세 축제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중 지명을 반대로해 무주의 '주무'세요 힐링 축제, 전주의 '주전'부리 축제, 완주 '마라톤' 등 3개를 선별해 봤다. 참고로 기자들의 아이디어에 더해 축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챗GPT의 도움을 받았다. 실제로 열리는 축제가 아니니 독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무주에서 열리는 '주무세요 힐링' 축제? 무주는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나타나고 밤에 더 즐거운 무주산골영화제와 밤에 예쁜 무주 안성낙화놀이가 장관을 이룬다. 밤에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힐링의 대명사가 된 무주에서 조용히 스트레스를 풀고 자연이 선사하는 풍경을 벗 삼아 잠을 잔다면 어떨까. 무주를 뒤집으니 '주무'가 됐고 본보 기자들은 주무세요를 떠올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주무세요 힐링' 축제다. 타깃은 불면증이나 휴식이 필요한 현대인이다. 일단 잠이라는 테마에 맞게 휴식과 힐링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신나는 노래가 아닌, 수면 음악과 자연 소리를 틀고 잠을 자기 위해서다. 축제 프로그램으로는 불면증 해소 워크숍, 명상과 요가, 아로마 테라피 체험 등을 준비한다. 커피 등 카페인 음료 대신 수면을 돕는 차, 수면과 관련된 잠옷과 아이템 등을 판다. '주무세요 힐링' 축제의 드레스 코드는 누가 뭐래도 잠옷이다. 전주에서 열리는 '주전부리' 축제?전주는 맛의 도시다. 가맥, 비빔밥⋯. 음식이 주가 되는 축제는 많지만 아직까지 맛이나 재미, 심심풀이로 먹는 주전부리가 주가 되는 축제는 없는 듯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전주를 뒤집어 만든 '주전'부리 축제다. 전주 고유의 전통적이고 고즈넉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기는 활기찬 축제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지역에서 주전부리와 관련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 한데 모여 주전부리를 파는 것도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한몫 할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는 전주의 대표 음식인 전주 비빔밥·콩나물국밥을 미니어처 크기와 핑거 푸드 형태로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1인분도 안 되게끔 작게 만들어 맛만 볼 수 있게 하자는 의미다. 또 전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주전부리인 전통 떡을 만들거나 과자를 만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고려해 보면 좋을 듯하다. 완주에서 열리는 '마라톤' 축제?앞에 제시한 주무세요 힐링, 주전부리 축제와 다르게 완주의 지명을 그대로 활용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은 목표한 지점까지 다 달린다는 의미인 '완주하다'이다. 완주, 완주하다, 마라톤 완주. 그렇게 탄생한 게 완주 마라톤 축제다. 완주는 산과 숲길, 강, 농촌 풍경 등이 매력적인 곳이다. 다양한 자연경관을 최대한 활용한 마라톤 코스가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다. 문화와 역사를 테마로 해도 나쁘지 않다. 완주의 문화유산이나 역사적인 장소를 지나가는 코스를 설정하는 것이다. 챗GPT는 마라톤 참가자들에게 완주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기념품을 제공하는 것을 추천했다. 완주 특산물 기프트 박스를 제작해 소장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선물하자는 말이다. 마라톤이 펼쳐지는 코스 옆으로는 완주의 지역 특산물을 결합한 부스를 설치하고 곳곳에서 완주의 전통 공연을 선보이는 것도 제안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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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9

[전북 이슈+] 떡볶이·트레일레이스⋯전북 지역축제 '승부수' 통할까

전북 지역축제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되는 가운데 김천이 던진 '김밥축제'라는 승부수처럼 전북이 던진 승부수가 통할지 관심이 모인다. 순창군에서 떡볶이 페스타가 열리는가 하면 장수에서는 귀촌한 청년들이 모인 러닝크루가 스포츠 축제인 트레일 레이스 대회를 개최하면서 연일 화제가 됐다. 이를 비롯해 최근 군산 짬봉축제 등 기존 지역축제의 틀에서 벗어난 참신한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앞으로 전북을 대표할 참신한 축제로는 오는 16∼17일 이틀간 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순창발효테마파크 일원에서 열리는 순창 떡볶이 페스타가 꼽힌다. 떡볶이 페스타는 순창발효관광재단이 지난 5월 2024 지역혁신사업(RIS) 정책 자율과제 공모에 최종 선정되면서 추진됐다. 재단은 기존 순창장류축제가 열리고 있는데다 순창을 대표하는 순창 전통장류산업 활성화를 위한 미식 관광 프로그램인 떡볶이 페스타를 기획했다. 떡볶이 부스를 전통·퓨전·글로벌·지역 부스로 나누고 우수 떡볶이 시상식, 플리마켓, 문화예술 체험, 순창고추장민속마을 트레킹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 순창 떡볶이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순창의 독특함과 정체성을 보여 주겠다는 목표다. 떡볶이 페스타를 기획한 재단 관광산업팀의 이영 주임은 "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이 노후화되면서 관광객이 많이 찾지 않고 순창의 고추장이 유명한 점에 집중했다"면서 "아무래도 고추장 이미지가 MZ세대에게는 올드(늙고 오래된)한 이미지이다 보니 MZ세대의 관심도를 높이고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매력을 느낄만한 축제를 찾다가 떡볶이 축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순창뿐 아니라 장수에서도 기존 지역축제의 틀을 깬 축제가 만들어졌다. 올해로 4회째 개최된 장수 트레일 레이스다. 지난 9월 말에 열린 제4회 장수 트레일 레이스 대회를 주관한 것은 다름 아닌 장수러닝크루(대표 김영록)다. 5개 코스에 국내외 1700여 명의 선수가 참여해 장수군의 천혜의 자연 속을 달렸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12개국 선수들이 참여해 국제대회로 인정받을 정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구 2만 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장수군을 들썩이게 하는 축제로도 자리매김했다. 이후 장수군은 반려견과 함께하는 트레일 레이스 제1회 캐니크로스 장수 축제를 만들어 또 한번 관심을 모았다. 이외 군산에서도 이색 축제가 열렸다. 짬뽕특화거리가 있을 정도로 짬뽕으로 유명한 군산은 군산 짬뽕을 비롯해 세계 이색 짬뽕을 만나볼 수 있는 군산 짬뽕 페스티벌을 열었다. 내년 상반기 개최를 목표로 홍어 주산지로 떠오른 군산 특산물인 박대·대구의 글자를 딴 '홍대 클럽 축제'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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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9

[전북 이슈+] 김천이 쏘아올린 '김밥축제', 역발상 통했다

“김천이요? 김밥천국 말하는 거죠?” 최근 김 한 장 나지 않는 내륙도시 경북 김천시가 지명이 비슷한 것을 이용해 ‘김밥축제’를 열어 대박을 터트렸다. 지명이 비슷한 것 외에 김밥과 연관성이 없는 '김밥축제' 개최 소식에 전국 각지에서 관심이 쏟아졌다. 축제 기간인 지난달 26일부터 이틀간 인구 13만 소도시인 김천시에 관광객 10만여 명이 몰리면서 SNS에는 ‘이 정도면 침략’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밥축제는 설문조사 결과에서 시작됐다. 김천시는 올해 초 ‘MZ세대를 대상으로 국내 여행 트렌드 조사’를 진행해 ‘김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었다. 이에 응답자 중 대다수가 분식 가맹점인 ‘김밥천국’을 줄인 말인 '김천'이 떠오른다는 답변을 내놨다. 김밥축제를 기획한 박보혜 김천시 관광마케팅과 주무관은 "김천시와 김밥은 큰 관계가 없지만 김밥천국의 인지도를 이길 수 없다면 이미지를 활용해 김밥 그 자체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좋다는 마음으로 축제 준비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주무관은 "기존에 특별한 축제가 없었다 보니 김천시 안에서는 '일단 뭐라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다행히 김밥축제라는 의견을 던졌을 때 내부에서 큰 반발이 없어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밥축제의 ‘대박’ 요인은 무엇일까. 정확한 수요층 파악, 연예인에 의존하지 않는 콘텐츠, 참신한 홍보영상 등 기존 지역축제의 틀을 깬 ‘역발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축제 방문객인 시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독특한 아이디어가 SNS상에서 재차 언급되며 입소문을 탔다. 김밥축제 탄생 비화를 소개하는 SNS 게시물에는 “축제 방문객 입장에서 최대한 여러 종류의 김밥을 먹어보고 싶을 테니 김밥을 반 줄만 판매해달라”, “축하 공연으로는 ‘김밥’을 부른 ‘더 자두’를 꼭 불러달라”, “옛날 소풍 느낌이 나도록 돗자리 존을 설치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에 김천시 관광마케팅과는 해당 댓글들을 상단에 고정하거나 “돗자리 존 메모”라는 답글을 달아 호응했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을 김밥축제에 반영했다. 이번 김밥축제는 최대한 많은 김밥을 맛보고 싶은 방문객들을 위해 ‘반 줄 김밥’을 판매했다. 연예인도 딱 한 명 불렀다. 과거 ‘김밥’이라는 노래를 부른 ‘더 자두’를 초대해 분위기를 띄운 것. 특히 일회용품 대신 뻥튀기를 그릇 삼아 김밥을 담아주며 친환경 축제라는 호평도 받았다. 홍보 영상도 남달랐다. 김밥축제의 마스코트인 '꼬달이(김밥 꽁다리)'와 한 여성이 출연했다. 영상 내용 중 "부산 국밥, 대전 빵이라면 대구 막창, 전주 비빔밥. 우리 김천은 고민했달. 무엇으로 유명해질까 말이달. 김천 하면 김밥이라고 꼬달이가 결심했달. 김천, 김밥천국. 우리는 이제부터 김밥이달"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여기에 ‘김천’ 하면 김천시보다 김밥천국의 줄임말이 더 유명한 것에서 착안해 “이제부터 내가 김밥 위에 서겠다”는 자막과 함께 실제로 김밥 위에 선 여성의 모습을 비춰주며 화제를 모았다. 김밥축제의 뒤를 이어 경북 구미시의 ‘라면축제’까지 관심을 받았다. 지난 1일부터 사흘간 진행한 ‘2024 구미라면축제’에는 17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화제성을 입증했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이한 라면축제는 구미시에 전국 최대 규모의 라면 생산시설인 ㈜농심 구미공장이 있어 기획됐다. 이번 라면축제에는 치열한 경쟁 끝에 전국의 이색 라면 맛집 18개 업체가 모여 각자의 음식을 선보였다. 여기에 토핑과 면, 라면 봉지까지 방문객이 직접 고를 수 있는 ‘구미라면공작소’와 수프 맛을 보고 라면 브랜드를 맞추는 ‘라믈리에 선발대회’ 등 라면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라면축제는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 3단 사다리 위에서 인파 밀집 정도를 살피는 '키다리 경찰관'이 현장을 통제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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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9 07:28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3)<취의록>과 <거의록>- 고창지역 수성군 기록물

202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하나로 등재된 <취의록>과 <거의록>은 전북 고창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특히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민간 보수층의 움직임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크다. <취의록>은 1894년 9월 고창지역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참여한 수성군의 명단을 기록한 자료이다. 모두 1책 44면으로 되어 있고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은 수성군 성명을 지역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수성군에 참여한 인원은 고창 424명, 흥덕 77명, 고부 25명, 장성 8명, 무장 48명 등 총 582명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강영중 등 5명의 명의로 9월 9일 작성된 취의통문(聚義通文)이 첨부되어 있어, 수성군을 조직한 이유와 목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동학농민군을 역적으로 간주, 의를 들어 토벌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1894년 9월 9일 통문을 돌려 <취의록> 명단과 같은 수성군을 모집하였으나, 곧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흥덕 이서면 용강에 살던 유학자 강영중은 고창과 흥덕지역에 살던 지인들과 자주 만나 모의한 끝에 수성군을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흥덕현감 윤석진(尹錫禛)의 동의하에 9월 9일 자신을 비롯한 8명의 명의로 ‘취의통문’을 돌려 수성군을 모집하였으나, 이 때는 동학농민군 힘이 막강하였기 때문에 곧바로 군사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영중 등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시국을 관망하였다. 그러다 전봉준부대가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인 11월 15일 다시 수성군을 조직하고자 흥덕현감 윤석진의 동의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윤석진은 “의거를 청한 일은 함부로 허락하기 어렵다. 왕의 군대가 당도할 때 마땅히 직접 묻고 허락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정부군이 고창지역에 도착할 때까지 거사를 만류하였다. 대부분의 고창지역 동학농민군이 나주를 점령하기 위해 나주쪽으로 남하하였지만, 아직 차치구가 지휘하는 동학농민군이 고창지역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차치구는 전봉준의 후군대장으로서 공주와 논산 전투에서 패배한 뒤 흥덕으로 후퇴하여 머물러 있었다. 고창지역 수성군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은 정부군과 일본군이 전라도로 남하한 11월 하순 이후부터 1895년초이다. 1책 27면 분량의 <거의록>은 바로 고창지역 수성군이 활동한 시말과 그 과정에서 생산한 문서들을 모아놓은 기록물이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거의록>에는 1895년 4월에 백낙규가 작성한 ‘흥덕・고창 창의서’를 서문으로 실은 뒤, 1894년 9월 9일 강영중 등 8명 명의로 작성된 ‘창의사실’, 1894년 11월 고창 유생 김영철 등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상서(上書), 1894년 11월 25일자 비밀지령, 1894년 11월 29일 전령, 1894년 12월 흥덕 유생 강영중 등이 정부군 앞으로 올린 상서, 1894년 12월 장성에 도착한 정부 진압군(양호순무선봉진)에서 흥덕 수성소에 보낸 전령, 흥덕・고창 수성청 좌목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거의록>은 1895년 4월 고창지역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뒤 관련 사실과 자료들을 모아 필사해 놓은 기록물로서, 고창지역 전현직 관리와 유생들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어 동학농민군의 죽음 이면에 있는 보수유생층의 동정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이다. 실제 흥덕현감 윤석진은 11월 25일 태도를 바꾸어 <거의록>에 수록된 비밀지령을 내려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그 무렵 정부군 230명은 일본군의 지시에 따라 11월 30일 고부, 12월 1일 흥덕, 12월 2일 무장으로 진입하였다. 이들은 일부 병력을 무장에 남겨놓은 채 12월 6일 영광으로 이동하였다. 무장은 손화중의 근거지이자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더 엄중히 수색하였다. 이러한 정부군의 전략은 적중하였다. 그 무렵 손화중은 12월 1일 광주에서 동학농민군을 해산한 뒤 12월 3일 이후 고창지역으로 되돌아왔고 홍낙관도 광주에서 흥덕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집을 떠난 고창지역 다른 동학농민군들도 12월 3일 이후 광주에서 속속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부군과 수성군이었다. 홍낙관은 12월 9일 흥덕 임리(林里)에서, 손화중은 12월 11일 체포되었다. 무장에 머물며 손화중 등 거물급 지도자를 체포한 정부군은 손화중과 홍낙관을 함평에 머물러 있던 일본군에게 압송한 뒤, 12월 19일 무장에서 김광오(金光五) 등 4명을 체포하였다. 20일에는 고창읍으로 행군하여 김치삼(金致三)․남사규(南士奎)를 생포하였다. 다음 날에는 흥덕에서 이백오(李伯五) 등 5명을 붙잡아 일본군에게 압송하였다. 이렇게 1894년 12월에 들어와 고창지역을 일본군의 지휘를 받는 정부군이 장악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러자 강영중 등은 당시 장성에 머물로 있던 양호순무선봉진 우선봉 이두황에게 소장을 보내, 흥덕현감에게 흥덕·고창·무장 3읍의 수성 책임을 맡게 해달라고 청원하였다. 이두황은 12월 7일자로 흥덕 수성소에 전령을 내려, 동학의 각 접주들이 각 마을에 다수 은닉해 있을 것이니 이들을 색출하여 그 가운데 행패가 심한 자들은 백성들을 모아 즉시 처형하고 나머지 위협에 의해 할 수 없이 따라다닌 자들은 보고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전령은 <거의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라 흥덕 수성소를 중심으로 고창지역 수성군은 숨어 있는 동학농민군을 찾아내 처형하거나 일본군에게 인계하는 등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거의록>에 수록된 ‘흥덕・고창 수성청 좌목’과 같이 체계적으로 운영된 수성소가 설치되고 수성군이 조직적으로 활동하면서, 그 동안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뒤 귀가한 동학농민군들이 속속 체포되었다. 실제 흥덕 수성군은 12월에 숨어 있는 동학농민군을 샅샅이 수색하여 서상옥(徐相玉)과 정무경을 체포하여 즉시 효수하였는데, 이 두 사람은 나주에 갔다가 흥덕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흥덕의 대접주였던 고태국도 수성군에게 체포되어 효수되었다. 그 외에 많은 고창지역 동학농민군들이 수성군에 의해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죽거나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효수되었다. 이런 동학농민군의 비참한 실상이 비록 <취의록>과 <거의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균형있게 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수성군 활동은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졌지만, 관련 기록이 잘 남아 있는 지역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취의록>과 <거의록>은 고창지역 수성군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 기획
  • 전북일보
  • 2024.11.07 17:49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가을…"고창으로 단풍구경 오세요"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가지 보물을 자랑하는 특별한 도시, 고창군은 태고의 신비와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매년 가을 풍경을 즐기려는 1300여만 명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고창의 단풍 명소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광 코스를 소개한다. △선운산의 고즈넉한 가을 풍경 고창의 가을 단풍 여행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선운산이다. 선운사 앞을 흐르는 도솔천에 단풍잎이 물들면 가을 정취를 만끽하려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길은 마치 축제의 현장을 걷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가을의 차분한 정취 속에서 걷다 보면 힐링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또한, 단풍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마애불은 국내에서 가장 큰 15.7m의 마애불로, 고려 초기 불상으로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다. 특히, 동학농민운동 당시 비밀 기록이 발견된 장소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문수사와 애기단풍 문수사로 가는 길에는 특별한 애기단풍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100년생에서 400년생에 이르는 단풍나무 약 500그루가 있어 ‘애기단풍’으로 불리는데, 그 작고 고운 잎이 고유한 매력을 더한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숲 속에서 걷다 보면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온몸을 감싼다. 문수사의 단풍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신비롭고 붉은빛 가을 풍경이 가득하니, 이 계절이 끝나기 전에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광 코스 고창군과 고창문화관광재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가지를 활용한 다양한 관광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당일 코스로 ‘유네스코가 선정한 7가지 보물을 찾아서’ 코스는 전봉준장군 동상, 판소리박물관, 고인돌유적지, 운곡람사르습지, 병바위, 선운사, 갯벌센터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가을 속으로 떠나는 여행 코스는 고창읍성, 판소리박물관, 병바위, 선운사, 농악전수관, 학원농장을 거쳐 가을의 깊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1박 2일 코스는 1일차에는 판소리박물관과 병바위, 선운산을, 2일차에는 고인돌유적지, 운곡람사르습지, 갯벌센터를 방문하는 일정이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유네스코 7가지 보물을 돌아보는 고창 스탬프 투어도 진행 중이다. △고창읍성 성곽길 공북루 조선 전기에 세워진 고창읍성은 전국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으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 기지로 사용됐다. 이곳에서는 답성놀이를 할 수 있으며, 이 전통 문화는 많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성곽을 따라 공북루에 이르면 아름다운 고창의 전경이 펼쳐진다. 또한 성내부 숲길의 대나무 군락지에서는 매일 저녁 환상적인 야간 조명 쇼가 열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운곡람사르습지 운곡람사르습지는 인간의 손길이 떠난 자리를 자연이 복원한 생태계의 보고로, 곤충, 식물, 파충류, 조류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운곡람사르습지를 탐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으로, 인기 코스는 약 3.6㎞의 1코스다. 탐방열차도 운행되고 있어 편리하게 습지의 생태를 감상할 수 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고창군은 태고의 신비와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며 “선운산, 문수사 단풍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7가지를 품은 고창에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 기획
  • 박현표
  • 2024.11.07 17:29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전주형 15분 생활권 도시 논의와 과제

지난 2020년 프랑스 파리 시의 안 이달고 시장이 ‘15분 도시’공약을 제시한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 호주 멜버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n분 도시 정책이 전개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서울, 부산, 제주 등에서 15분 도시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권 도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역에서도 인구감소와 초고령사회 등 메가트렌드와 도심 쇠퇴, 도시 내 불균형 심화 등 다양한 도시 문제에 대응하여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15분 도시 개념과 지역에서의 생활권계획 수립 논의를 바탕으로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 수립을 위한 과제를 제안한다. △‘15분 도시’란 무엇인가? ‘15분 도시’는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파리 소르본 대학 교수가 제안한 개념으로써 '학교, 문화시설, 의료시설, 공원, 상점 등 생활에 필수적인 시설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도시에 살 권리>라는 책에서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기본적인 사회적 기능으로 ‘주거, 업무(일), 교육(학습), 건강(돌봄), 여가(즐거움), 생활서비스 공급’을 제시하였으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6가지 필수 서비스에 대한 ‘근접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15분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인구 밀도’를 유지하고, ‘토지이용의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스마트시티와 같은 ‘디지털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로, 근접성(proximity)은 15분 도시의 핵심 개념으로써 시·공간의 가까움, 이동성과 접근성이 결합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15분 도시와 생활권 계획 서울, 부산, 제주, 청주 등 국내 주요 지역에서는 ‘15분 도시’ 정책과 ‘생활권계획’을 연계하여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에서는 15분 생활권도시 전략을 세우고, 생활권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제주에서는 15분 도시에 대한 기본구상을 바탕으로 생활권계획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도시기본계획에 이를 반영하였다. 그리고, 청주에서는 일상생활권 개념을 반영하여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참고로, ‘생활권계획’은 도시기본계획과 도시관리계획의 중간단위 계획으로서 사전적 정의는 '도시기본계획의 내용을 생활권별로 구체화하는 동시에 도시관리계획의 지침적 역할을 하는 계획'이다. △전주시 생활권계획 수립 필요성 및 논의과정 지역에서 ‘15분 도시’와 ‘생활권계획’논의를 시작한 것은 2020년 12월이다. 전주시 도시계획 분야 민관거버넌스 단체인 전주도시계획협의회 회의 때 2035 전주시 도시기본계획 상 생활권계획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제안과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도시기본계획 재정비와 생활권계획 수립이 필요한 이유는 기본계획 상 생활권 구분에는 개략적인 개발구상과 인구배분계획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점과 인구배분계획이 생활권별 지역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2021년 10월 생활권계획 수립 준비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으며, 2022년에는 마을계획과 생활권계획을 연계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2023년 7월에는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주관하여 15분 도시 솔루션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지난 4년 간의 논의과정에서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 그리고 행정에서 생활권계획 수립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계획 수립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생활권계획 수립을 위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올해 1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7월 시행)으로 도시계획을 생활권 단위로 수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전주시 생활권계획 수립도 가능해졌다. 다음에서는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 수립을 위한 과제들이다.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 수립 과제 첫째, 생활권계획 수립 시 도시 내 균형 발전과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수립해야 한다. 전주는 신도시 개발과 구도심 쇠퇴 등으로 인해 서부-북부 축을 중심으로 도시가 불균형 성장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전주시 관내 도시개발사업이 북부생활권(에코시티, 만성지구), 서부생활권(서부신시가지, 효천지구)에 집중되었으며, 신시가지 조성 이후 다수의 공공기관과 중심상업·업무 기능이 구도심에서 신도시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전주시 인구 통계 자료를 보면 외곽 신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구도심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주택가격, 지가, 용적률, 생활SOC 등에 있어서도 신도시 지역과 구도심 지역 간에 지역 간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기성시가지 기능 유지를 위한 생활권별 적정한 인구 배분이 필요하다. 2015~2024년 전주시 생활권별 인구 변화 추이 분석 결과 북부생활권을 제외하고는 인구 감소추세이며, 특히 중앙생활권 및 동부생활권의 인구 감소세가 크다. 그런데, 2035년 도시기본계획 상 생활권 인구배분계획을 보면 현재 인구가 많은 서부와 북부 생활권 인구 규모를 더 늘리고, 인구가 적은 중앙·남부·동부 3개 생활권 인구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어 있다. 생활권별 지역 간 격차 완화와 기성시가지 인구 유지를 위해서는 생활권 인구배분계획 시 인구 변화 추이를 반영하고 현 계획내용에서 서부·북부생활권의 계획인구는 일부 하향 조정하고, 중앙·남부·동부생활권 계획인구는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도시개발사업, 재개발·재건축 등 주택공급을 관리하고, 도시재생·주거·교통·녹지 등을 생활권 단위로 통합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활권별 인구계획에는 도시개발사업과 재개발·재건축 등 대규모 주택사업의 영향이 크므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과 연계하여 생활권별로 예정된 도시개발사업 및 정비사업 리스트와 주택공급 계획을 작성하고 적정규모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생활권계획을 통해 장소 단위로 분야 간 사업을 연계하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 시 동 단위를 중심으로 인적·물적 자원들과 여러 분야의 사업들을 연계하고, 각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거점시설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겠다. 넷째, 생활권계획의 틀에서 마을계획과 소생활권 계획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전주시 마을계획은 주민주도로 동 단위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사업으로 2015년 중앙동, 풍남동을 시작으로 매년 2~3개 동씩 계획을 수립하여 2024년 현재 총 24개 동의 마을계획 수립을 완료하였다. 마을계획은 수립 범위가 행정 동 단위이므로 소생활권 단위의 계획과 연계하는 것이 적합하고, 이때 마을계획 수립과정에서 발굴한 지역 자원과 의제 등을 생활권계획에 담으면 계획의 실행력을 담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15분 도시’개념과 전략을 반영하여 주거, 업무, 교육, 건강, 여가, 생활 등에 대한 근접성을 높이고, 토지이용의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회서비스 접근성이 부족한 지역에는 도서관, 공원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를 공급·재배치하고,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필수 사회서비스가 결핍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들을 15분 생활권도시 계획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지역 특성과 시민 수요를 반영하면서도 15분 도시 개념을 충실히 반영하는 전주형 15분 생활권도시 계획이 수립되길 기대해 본다. 장우연 독립연구자, 전)전주시 정책연구소 연구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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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6 18:30

[배리어프리, 공공디자인에서 인권을 찾다] ⑤독일,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 실천

지난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4개 단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장애인 버스정류장 이용 등에 관한 장애인차별구제청구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버스정류장을 개선하고, 교통약자 이동권을 보장해달라는 취지에서였다. 지난 2021년에도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출근길 시위를 진행했다. 출근길 시위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막는 사회 구조와 그간 외면했던 교통약자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시위 과정에서 표출된 장애인 혐오와 비난 수위가 높아지면서 정작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한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반면 교통약자 이동권에 성숙한 의식을 보유하고 있는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모범도시 독일은 기존 시설을 개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통약자가 겪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을 보인다.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물리적, 심리적, 제도적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모두가 쾌적하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개념이 사회 전반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독일 전국 16개 정부는 2022년 1월 1일까지 모든 지자체가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를 구현할 것을 의무로 하는 여객 운송법 제8조 1항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독일은 배리어프리를 달성하기 위해 교통 환경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은 베를린에서는 6600여 개의 버스정류장을 배리어프리 기준에 충족하도록 개선했다. 베를린에서는 2009년부터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운행되고 있으며 2017년 트램 역시 모두 저상화 되어 휠체어 탑승객이 혼자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면 우리나라 저상버스 비율은 3~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만 낡고 오래된 역이 많아 철도는 완전한 배리어프리가 구현되지 못한 상태다. 이에 베를린 교통공사는 2022년 배리어프리를 포함한 현대화 작업을 진행했으며, 오는 2030년까지 20조 원을 투자해 모든 기차역에 한 개 이상의 승강장을 완전한 배리어프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대중교통 무엇이 다를까 독일 대중교통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약자와 임산부 등 모든 교통약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폭넓게 설계되어 있다. 버스․지하철․지상철의 입구를 넓게 만들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승․하차 할 수 있도록 했다. 입구와 가까운 위치에 교통약자 전용 좌석과 회전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휠체어가 들어가는 공간에도 좌석을 최소 2개 이상 배치해 누구든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장애인 좌석 조성으로 자칫 교통약자 특혜라는 부정적 관점을 없애기 위한 시도였다. 독일 정부는 ‘평등할 권리’를 기본 원칙으로 대중교통을 디자인해 심리적 장벽을 제거한 셈이다. 또한 교통약자를 위한 정차 스위치와 손잡이 위치를 다양한 높이로 설치되어 있으며, 접었다 펼 수 있는 수동식 발판(램프)의 생활화로 휠체어 탑승객․유아차 사용자들이 버스와 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버스의 경우 승강장 정차 시 출입문 쪽으로 버스가 살짝 기울어져 휠체어 탑승객․유아차 사용자들의 출입을 돕는다. 수동식 발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 가운데 문을 먼저 열어 휠체어 탑승객부터 승․하차 할 수 있도록 한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질서에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특정인 배려 아닌, 모두의 편리 위한 움직임 지난 8월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시청 배리어프리 담당자 하인즈(Heinz)는 “독일 전역에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장애인을 배려하자는 취지만은 아니다”며 “휠체어 탑승자를 비롯해 유아차 사용자, 노인과 어린아이 건강한 성인까지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베를린에서는 지하철 승무원들이 휠체어 승차를 돕는 발판을 설치하고, 그 위로 휠체어 탑승자 뿐만 아니라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도 익숙하게 오르내린다. 또한 휠체어 동선과 경사도가 표시된 길 안내판과 기울어지는 버스까지 독일의 교통약자 정책은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일 국민 모두의 편리를 위해 이뤄졌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마틴(Matin)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은 고령자와 장애인뿐만 아니라 임산부와 어린이까지 모든 이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며 “독일에서는 특정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환경 조성 움직임이 해를 거듭할수록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박은
  • 2024.11.04 17:00

[전북 이슈+] 위기의 핫플-'객리단길 마저도'…전북 상권 5곳 중 1곳 '텅텅'

코로나19에 고금리·고물가 바람이 불면서 전국적으로 임차인을 들이지 못한 상가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올 3분기 전북지역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3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북지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8.2%로 9개 도 중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가 5곳 중 1곳은 텅텅 비어 있는 셈이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7.2%, 집합 상가는 16.3%에 달했다. 전국 공실률이 각각 12.7%, 6.5%, 10.1%인 것과 비교해보면 높은 편이다. 전북자치도 내 주요 상권 중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은 정읍 중심(27.94%)이다. 중대형 상가는 3층 이상이거나 연면적이 330㎡를 초과하는 일반 건축물을 말한다. 정읍 중심에 이어 익산역(26.86%), 전주 동부(26.30%), 김제시장(22.44%), 전주 한옥마을(21.69%), 익산 영등부송(19.58%), 전주 송천동(17.50%), 군산 수송·조촌동(14.86%), 전주 서부 신시가지(14.35%), 군산 원도심(13.89%), 남원 광한루원(13.73%), 전주 서부(9.59%) 등이 뒤를 이었다. 비교적 면적이 작고 임대료가 저렴한 소규모 상가도 공실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주 송천동(15.44%)이 가장 높고 군산 원도심(15.30%), 정읍 중심(13.87%), 익산역(10.26%) 등 순이다. 전북 전역 곳곳에 공실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의미다. 중대형·소규모 상가는 소상공인 종사 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경기 여건에 따른 소상공인의 경기 체감 정도를 보여 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2024년 10월 소상공인시장 경기 동향 조사 결과 지난달 전북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는 전월 대비 11.5p 하락한 60.2로 전국에서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핫 플레이스(hot place·명소)로 불리는 전주 객리단길과 전북대 대학로, 신도심인 만성지구∙에코시티, 익산역 앞, 군산 나운동∙영동상가까지 예외는 없었다. 객리단길은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이 많이 찾았지만 객리단길 옆에 있던 옥토주차장이 폐쇄되면서 주차난이 심각하고 고물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상권이 침체됐다. 객리단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코로나19 때보다 안 좋다"면서 "엔데믹 이후 상권이 조금 활성화되거나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안 돼서 다 무너졌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상가 과잉 공급 등이 맞물리면서 상가 공실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규원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전북특별자치도회장은 "과거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노후 대비 차원에서 상가에 많이 투자했다. 그때 상가 공급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이어 최근에도 경기 침체 상황이 이어지면서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상가 공실률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가 과잉 공급에 더해 경기 침체, 고금리, 코로나19 이후 전자 상거래 확산 등의 이유로 핫플레이스, 신도심 등도 예외 없이 공실이 많아진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슈되는 특정 가게들만 잘되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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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2 08:22

[전북 이슈+] 위기의 핫플-"완전 작살났죠"⋯와르르 무너진 '젊음의 명소'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알려진 상권마저 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상권이 엔데믹 이후 다시 활성화되나 싶었지만 고금리·고물가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지역 상권이 침체돼 가고 있다. 과거 사람들로 북적였던 거리에 남은 것은 '공실'뿐이다. 전국 곳곳 대표적인 상권이 텅텅 비어가면서 핫플이 매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전북지역 역시 공실률이 심각한 상황이다. 전북을 대표하던 '핫플' 상권의 현실은 어떨까.전북일보는 기획 1편 <위기의 핫플-'객리단길 마저도'…전북 상권 5곳 중 1곳 '텅텅'>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에 핫플이었던 객리단길, 전북대 대학로, 군산 영동상가∙나운동, 익산역 앞 등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작살났죠, 뭐." 지난주에 찾은 전주 객리단길. 이곳에서 만난 상인 A씨는 요즘 장사가 어떠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코로나19 때보다 장사가 안 된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죽을 맛이다"며 고개를 저었다. 골목마다 큰 상가, 작은 상가 예외 없이 '임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인 코너 상가마저 다른 상가가 들어오는 듯 '오픈 준비 중'이라는 플래카드만 펄럭였다. 과거 손님이 많던 음식점·카페 자리는 비교적 고정 지출이 적은 무인 셀프 사진관·오락실 등이 꿰찼다. 침체된 객리단길의 현실을 짐작게 했다. 명소를 의미하는 핫 플레이스(hot place·핫플)인 만큼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카페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저녁에도 객리단길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실상 내부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주 구도심 지역이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조성된 객리단길은 당시 소자본의 청년 사업가와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객리단길' 붐이 일었다. 상권은 코로나19, 옥토주차장 폐쇄에 따른 주차난, 고물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침체됐다. 과거 객리단길이 있는 객사는 전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핫플 중 하나였다. 전주시민이라면 "어디서 만날까?" 하면 "객사"라는 답이 바로 나올 정도였다. 전주의 중심부에 위치해 만남의 장소로 자리매김했지만 지금은 상권이 침체되면서 명성을 잃어 가고 있다. 상인 A씨는 "저야 건물이 집이니까 버티지, 아니었으면 폐업했을 듯하다. 객리단길이 초반에는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상가가 많이 들어왔다. 벌이가 안 되니까 프랜차이즈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다 빠지고 또 들어왔다가 다 빠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대 대학로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매년 학기 중 전공 서적을 품에 안고 선·후배 간 왁자지껄 떠들며 '젊음의 성지'로 불렸던 대학로는 이미 활력을 잃은지 오래됐다. 서부 신시가지가 새로운 상권으로 떠오른 데 이어 학생 수는 점점 줄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정착한 것도 대학로 침체에 한몫했다. 이전에는 음식점·카페에 모여 밥 먹고 커피 마시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포장·배달이 익숙해진 것이다. 여러 명이 모이던 문화도 사라지고 소모임 형태로 바뀌기도 했다. 객리단길보다 유동 인구가 많아 저녁이 되면 여전히 북적이긴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라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대학로가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었지만 객리단길과 유사하게 지나다닐뿐 내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최유일 전북대 대학로 상인회 수석부회장은 "요즘 (대학로 상가가) 다 어렵다. 10년 전에 비해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조금씩 안 좋아졌는데 코로나19가 온 뒤로 더 안 좋아졌다. 엔데믹 이후 활기를 찾나 했지만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면서 "사람이 안 돌아다닌다. 손님이 줄면서 매출도 떨어졌는데 임대료·인건비 등 고정 지출은 계속 올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군산·익산도 예외는 없었다. 군산 상권의 상징이었던 영동 상가는 전체 120여 개 매장 중 현재 20여 개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저녁이면 이 일대가 어두운 공간으로 변하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연출하고 있다. 또한 나운동 시민문화회관 앞 상가도 문 닫은 가게를 쉽게 볼 수 있다. 과거 뷰티샵을 비롯해 의류매장, 스포츠웨어 매장 등이 운영됐던 이 곳은 나란히 상가임대 안내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 중심상권 지역이었던 영동(원도심)을 중심으로 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비교적 양호한 상권을 자랑했던 수송동 역시 간혹 빈 점포가 발견되면서 경기 불황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은 이 같은 경기불황이 지속될 경우 원도심처럼 지역 곳곳에 슬럼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때 ‘작은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상업과 금융, 문화의 중심지였던 익산역 앞 문화예술의거리(옛 영정통)는 1990년대 이후 신도심 개발 등으로 익산의 중심이 영등·부송동 일대로 옮겨가면서 점점 활력을 잃어버렸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던 번화가의 명성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익산시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의지를 갖고 지난 십수 년에 걸쳐 문화예술의거리를 조성하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일부 입점해 있는 공방·카페·식당이나 이따금씩 열리는 단발성 행사 외에 사람들로 가득 찼던 예전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익산아트센터와 익산근대역사관이 보다 활성화되고 익산시가 전략적으로 추진 중인 치킨거리 조성과 인근 1382세대 규모 아파트 입주가 내년 3월 이뤄지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아직까지 예전 같은 활력을 기대하는 것은 요원한 실정이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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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4.11.02 08:21

[전북 이슈+] 위기의 핫플-'명소' 꿈꾼 신도심 상권도 '공실 공포'

상권이 무너진 것은 기존의 '핫플'뿐만이 아니다. 가게 문을 열기 전 "나는 망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신도심인데", "랜드마크가 될 텐데", "상권이 좋다는데"라는 희망을 품고 사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부푼 꿈을 안고 '핫플'을 꿈꿨던 신도심마저 '공실 공포'에 떨고 있다. 랜드마크를 기대했던 곳의 꿈도 좌절됐다. 기존에 핫플이었던 객리단길, 전북대 대학로 등에 이어 침체된 신도심 중 만성지구와 개장 전부터 랜드마크 기대감이 컸던 에코시티 대형 건물 등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그냥 사람이 없어요." 지난주 오후 7시 30분께 찾은 전주 만성지구는 썰렁했다. 한창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다닐 시간이지만 거리는 텅텅 비었다. 불이 켜진 상가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곤 한두 테이블,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었다. 10여 테이블이 찬 곳은 상가 한두 곳뿐이었다. 만성지구는 조성 당시 전주지방법원과 전주지방검찰청 등 법조타운이 만들어져 전북의 법·행정 중심지로 발달해 상권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한 집 건너 임대 딱지가 붙어 있었다. 상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1층마저 대부분 공실이었다. 법조타운을 둘러싼 건물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상가가 아닌 변호사·법무사 사무실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만성지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오후 9시만 돼도 사람이 하나 없다. 나만 돌아다니는 건가 하는 착각이 든다. 사실 나도 장사를 해 봐서 알지만 아마 지금 저기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피가 바싹 마르는 듯할 것이다. 처음부터 장사가 안 될 것으로 생각하는 음식점은 없을 텐데 보기만 해도 내가 다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에코시티에 위치한 한 대형 상가 건물도 만성지구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개장 소식이 들려오면서 한때 SNS를 뜨겁게 달궜지만 실상 입점한 곳은 많지 않다. 타 지역의 대형 아울렛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공실 공포'에 빠진 것이다. 해당 건물에는 폐업 후 미처 정리를 다 하지 못한 상가도 눈에 들어왔다. 상가 출입문에는 올해 초 배달온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 상가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듯 출입문 손잡이에 보호 스티로폼이 그대로 붙어 있는 곳도 많았다. 에코시티에서 만난 한 시민은 "집 주변이라 영화를 보려고 자주 오는데 사람이 없어서 넓은 영화관을 전용관처럼 혼자 본 적도 있다"면서 "이 건물에 올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만 있는 상가의 불이 꺼져 있고 상가도 텅텅 비어 있어 무서울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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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2 08:20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22)난파유고(蘭坡遺稿)>와 <금성정의록(錦城正義錄)

1. 〈난파유고(蘭坡遺稿)〉와 〈금성정의록(錦城正義錄)〉 개요 〈난파유고〉와 〈금성정의록〉은 모두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라도 나주의 수성군에 가담하였거나 호응하여 활동한 나주 출신 인사들이 남긴 문집이다. 따라서 〈난파유고〉와 〈금성정의록〉에는 서로 겹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나주는 동학농민혁명 발발 직후부터 목사 민종렬이 중심이 되어 수성군을 조직하고 농민군의 진입을 저지하였다. 때문에 나주는 운봉, 제주와 함께 전라도에서 농민군 집강소가 설치되지 않은 드문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또 농민군의 1894년 10월 28일에는 나주에 호남초토영(湖南招討營)이 설치되고 목사 민종렬이 호남초토사로 임명된 이후 나주 수성군은 나주와 인근지역의 농민군을 진압하는 거점이 되었다. 〈난파유고〉와 〈금성정의록〉에는 나주 수성군을 중심으로 한 민보군과 농민군이 나주 인근 지역 곳곳에서 벌인 자세한 전투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전라도 서남부 일대 동학농민군의 활동과 전투 상황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손화중·최경선·오권선‧배상옥 등이 이끄는 나주, 광주, 무안 일대의 농민군 활동에 대해서 다른 자료들에 비해 매우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2. 〈난파유고〉 〈난파유고〉는 나주의 향리가문 출신으로 호장(戶長)을 맡고 있다가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 수성군 도통장(都統將)에 선임되어 사실상 나주 수성군을 지휘하였던 정진석(鄭錫珍, 1851~1896)의 문집으로 4권 1책이며 1913년에 간행되었다. 정석진의 자는 태완(台完)이며 난파(蘭坡)는 그의 호이다. 정석진이 이끈 나주 수성군은 나주성 수성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농민군을 진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난파유고〉에는 정석진의 글 몇 건과 그가 도통장으로 있으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농민군을 격퇴한 공을 기리는 나주 유생들의 글, 그리고 나주지방 농민군과 벌인 전투 상황을 소상히 기록한 <정장군토평일기(鄭將軍討平日記)> 및 그의 행장(行狀) 등이 실려 있다. <토평일기>의 서문은 〈금성정의록〉을 저술한 나주 유생 이병수(李炳壽)가 썼다. 〈난파유고〉에는 1894년 7월초에 전개된 나주성 공방전과 10월~11월에 걸쳐 일어난 침산 전투(10월 21일), 용진산 전투(11월 13일), 고막포 전투(11월 18일), 함박산 전투(11월 23일) 등의 전투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토평일기〉말미에는 동학농민군에 의한 장흥 강진 병영의 잇따른 함락 소식과 영암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되어 있다. 특히 수성군과 정석진이 맹활약하던 10월 말 이후에도 수성군의 핵심을 이룬 것은 향리층이었으며, 이들은 수성군에 소요되는 재정을 지원하기도 하였다는 사실도 〈난파유고〉에 잘 기록되어 있다. 한편 〈난파유고〉에는 무엇보다 전라도 서남 지역의 대표적인 전투 가운데 하나였던 고막포(古幕浦) 전투에 대해 전개과정 뿐만 아니라, 각지로부터 농민군이 진격하고 진지를 치는 과정, 이에 대응하여 민보군과 관군이 배치되는 상황 등의 전후 상황이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난파유고〉에 따르면 고막포 전투는 11월 18일 일어났지만, 1894년 11월 17일부터 고막포 주변으로 무안, 함평일대의 농민군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당시 그 일대의 산봉우리 등에 진을 치고 있던 농민군의 수자는 5~6만이나 된다고 하였다. 이어 고막교(古幕橋)까지 퇴각하던 농민군이 수성군의 추격에 쫓겨 조수로 인해 불어난 물에 빠져 죽는 참상 등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전투 상황을 적어두고 있다. 3. 〈금성정의록〉 〈금성정의록〉은 나주의 유생 이병수(李炳壽, 1855~1941)의 문집 〈겸산유고(謙山遺稿)〉 권19·20에 수록되어 있다. 나주 일대의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갑‧을‧병 3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기록은 주로 갑편에 실려 있다. 평소에 제자들을 가르치며 교유(校儒)로 살아가던 이병수는 1893년 12월 부임한 나주 목사 민종렬(閔種烈)이 당시 동학이 확산되어 가던 동학에 대응하기 위해 향약을 강화할 때 직월(直月)을 맡아 도약장(都約長)인 진사 나동륜(羅東綸)과 함께 이에 적극 호응하였다. 1894년의 기록에는 먼저 나주의 접주 오권선(吳權善)에 대해 쓰고 있으며, 4월에 목사 민종렬의 주도로 수성군을 조직한 일, 그 직후 민종렬이 전봉준과 글을 주고받은 일, 7월 초에 전개된 나주성 공방전, 이어 8월 13일 전봉준이 찾아와서 나주 목사 민종렬과 담판을 벌인 일, 10월~11월에 걸쳐 일어난 용진산 전투, 침산 전투, 고막포 전투, 함박산 전투 등의 전후 상황과 전투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을편에는 동학농민군 진압과 관련한 군공을 적은 「초토사보군공별지(招討使報軍功別紙)」, 군공을 인정받고 난 뒤 그 축하 글인 「본주인사하군공록(本州人士賀軍功狀)」, 장성의 유생 기우만(奇宇萬)이 정석진에게 보낸 「토평후기증정장군서(討平後寄贈鄭將軍書)」, 기우만이 쓴 「토평비명병서(討平碑銘竝序)」 등이 실려 있다. 병편에는 1896년에 나주와 장성 등지의 유생들이 일으킨 의병을 관련 사실을 기록하였다. 〈금성정의록〉에는 몇 가지 특기할만한 내용들이 있다. 우선 도통장인 호장 정태완을 비롯하여 주요 직책과 명단, 편제 등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또 각 마을의 청년들을 60개 초(哨)로 나누어 수성군으로 편성하였다는 점, 이들에게는 성 한편에 군막사를 지어 기거하게 하고 군량과 부식도 지급하였다는 사실을 적어핵심 간부들은 모두 전현직 향리층이 맡고 있었다. 다른 자료에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다. 또 〈금성정의록〉에는 전봉준과 나주 목사 민종렬 간의 서신 교환, 그리고 직접 담판한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즉, 무안(4월 9일 점령)과 영광(4월 12일 점령)을 거쳐 진군하던 농민군은 나주성의 수비가 매우 엄한 것을 보고 함평읍으로 방향을 바꾸어 몇 일 동안 유진하던 농민군이 나주 (공형)에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을 싣고 있다. 이 역시 일부 자료에서만 확인되는 사실이지만, 특히 농민군의 서신에 대해 민종렬이 “명분 없는 군사는 법에 의거하여 마땅히 죽여야 하며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는 답신을 했다는 사실은 〈오하기문〉과 〈금성정의록〉에만 나오지만, 〈금성정의록〉에는 전후 사정이 매우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되어 있다. 또 전봉준은 전라감사 김학진과 〈관민상화(官民相和)〉를 합의한 다음 8월 13일 나주 목사 민종렬을 찾아 담판한 전후 사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담판한 내용이나 상황이 목사 민종렬을 치켜세우는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지만, 역시 다른 어떤 자료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전봉준 공초>에서는 8월 그믐 사이에 전라감사의 ‘영(令)’을 가지고 나주로 가서 민보군을 해산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공술하였다) 배항섭(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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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3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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