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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세계 일류 수소도시로 도약한다

민선 8기 완주군이 용틀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수소산업이 있다.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를 안은 완주군은 전북 최대 규모의 산단을 집적화할 기반을 놓았다. 분양이 더뎌 군 재정에 부담을 줬던 테크노밸리 2산단도 완판을 앞두고 있다 완주군이 명실공히 전북을 대표하는 경제 중심도시로 떠오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완주군은 이같은 여세를 몰아 전북 4대 도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민선 8기 후반기를 맞아 완주군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 봤다. 대한민국 수소경제 중심도시로 우뚝 완주군은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 유치를 계기로 수소산업 육성에 군발전의 미래를 걸었다. 수소특화국가산단은 오는 2028년까지 봉동읍 구암리 일원에 50만 평 규모로 조성된다. 총 사업비만 5504억 원에 달한다. 국가산단의 중점 육성분야는 중대형 수소모빌리티, 수소저장용기, 수소용품이다. 수소전문기업을 집적화해 수소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고, R&D 지원 시스템까지 구축하게 된다. 완주군은 연매출 10조 원, 수소기업 100개 유치, 일자리 1만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소산업 생태계 조성도 힘을 내고 있다. 세계 최초이자 국내 유일의 수소용품검사지원센터를 완공했으며, 소규모 수소추출 시설을 구축했다. 수소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한 국가예산사업을 추가로 확보했다. 총 653억 원 규모로 수소차 폐연료전지 자원순환을 위한 시험‧인증특화센터 구축, 대용량 무정전 전원장치 안전기술 개발, 수소상용차 신뢰‧내구성 검증 기반 구축이 그것이다. 수소특화 국가산단에 입주 의향서를 낸 기업이 현재 139개로, 산업용지 예정 면적(88만㎡)의 수요를 이미 넘어섰다. 군은 산단을 조기 조성하고, 국제수소거래소 설립과 완주수소연구소 설립 등을 통해 세계 일류 수소도시로 도약한다는 복안이다. 전북 경제 중심도시 완주 완주군의 1인당 GRDP는 지난 2018년 5000만 원을 돌파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1년에는 전년대비 532만 원(10.5%)이 증가한 5739만 원으로, 전북에서 가장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는전북 평균 1인당 GRDP(3119만 원)보다 1.84배에 달하며, 2위 지역(4040만 원)과 비교해서도 절대적 우위에 있다. 현대자동차, KCC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입주하고 있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결과다. 호남 최고의 물류메카로 발돋움 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것도 완주군의 미래 경제를 밝게 한다. 완판을 목전에 둔 테크노밸리 제2산업단지의 물류용지는 택배업계 4위인 로젠 본사를 비롯해 진로지스틱, 동원로엑스, BYC, 세방 등 국내 유수 물류업체들을 유치했다. 완주군은 수소특화 국가산단을 비롯해 인접 산단까지 합하면 전북 최대 규모인 370만 평의 산단을 보유하게 된다. 향후 물류용지를 비롯해 테크노 제2산업단지 기업입주가 본격화되고, 수소특화 국가산업단지도 활성화되면 완주군의 1인당 GRDP 전국 군 단위 1위 도약도 가능할 전망이다.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 지역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인구가 감소하는 도내 다른 시군과 달리 완주군 인구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5월 말 기준 완주군 인구는 9만 8784명으로, 민선8기 출범 이후 7650명이 증가했다. 월평균 332명이 증가한 셈이다. 용진읍은 30여 년 만에 인구 1만 명이 회복됐고, 삼례읍은 40년 만에 인구 2만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전국 군 단위 인구증가 1위를 기록했고, 완주군은 최근 10년 중 최다 인구를 달성했다. 인구는 삶의 복합적인 요소가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주군의 인구 증가 사례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완주군의 인구증가 요인은 삼봉, 복합행정타운 등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해 생활교통 인프라를 확충했다. 또한 출산과 양육 친화 환경을 조성하고, 귀농귀촌 지원사업을 강화해 귀농귀촌을 활성화시켰으며, 청년 창업 일자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청년들의 주거정착을 지원하는 등 청년정책을 강화했다. 특히, 최근에는 교육발전특구 지정을 따내고, 삼봉중 신설까지 확정 지으면서 교육 인프라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교육은 정주여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완주군은 교육발전특구를 통해 공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다. 삼봉지구 2단계, 미니복합타운 조성, 신규 산단을 연계한 광역교통망 확충, 일자리 증가, 교육, 완주 종합 스포츠타운, 공영마을버스 운영 확대, 교육까지 완주군은 인구증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유희태 완주군수 "수소산업 육성·완주시 승격 위해 온힘" 유희태 완주군수는 민선 8기 후반기 군정 운영방향으로 10대 과제를 제시했다. △세계 일류 수소도시 조성 △전북특별자치도 4대 도시 도약 △완주시 승격 추진 △호남권 제일 물류 중심도시 비상 △만경강 명품 수변생태도시 조성 △완주군 방문객 3000만 시대 개막 △미래 선도 교육도시 실현 △농업농촌 경쟁력 강화 △포용복지도시 실현 △군정 추진동력 확보를 위한 조직 개편 등이다. 가장 큰 아젠다는 수소산업 육성과 `완주시` 승격이다. 유 군수는 수소산업과 관련해 국제수소거래소 설립에 큰 기대를 건다. 잘 갖춰진 수소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제수소거래소가 완주에 설립되면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수소도시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유 군수는 정치권과 협력을 통해 수소거래법 제정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 군수는 완주시 승격에도 힘을 쏟을 방침이다. 현재 태백시의 경우 인구 3만8000명에 불과하고, 김제시와 남원시도 완주군 보다 인구가 적다. 농촌 도시의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15만 명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완주군의 시 승격이 전주와 통합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과 관련, 시 승격 후 통합을 논의해도 늦지 않기 때문에 시군 통합과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 기획
  • 김원용
  • 2024.07.02 17:44

자연특별시 무주로 지역경쟁력 확보

무주군은 민선 8기 출범 이후 ‘자연특별시’로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무주방문의 해를 추진하는 등 ‘무주’ 자체를 브랜드화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관광’과 ‘태권도’를 제1경쟁력으로 첨단농업과 청년정책 추진 등 지역소멸 위기 극복에도 매진하고 있는 무주군의 행보를 따라가 봤다. 자연특별시 무주로 무주군은 반딧불이가 살아 숨 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연특별시 무주’ 실현을 공표했다. 이후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환경을 보존·복원해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실행 중으로 남대천 주변 경관 조성(반디 테마 빛 거리 조성, 남대천 야간 경관 조명 설치 등) 등 읍면 관광 자원화 사업과 무주반딧불축제(2023년 42만 명 방문, 경제효과 150억 원 / 3無 축제로 생태 환경축제 정체성 강화 / 2024 피너클어워즈 ‘에코투어리즘 축제 선정’ 등), 산골영화제(2023 국내 영화제 지원 사업 최우수 선정, 2024년 총관객 3만 5000여명·유료 관객 1만 8803명 / 21개국 영화 96편 상영 및 공연, 토크, 전시 진행 / 바가지요금 & 일회용품 없는 친환경 착한 영화제 찬사 / 교통·숙박 패키지 신설 호평), 반딧불이 신비탐사(2023년 1만여 명 참가) 등이 기반이 되고 있다. 무주군은 ‘지역 관광발전지수 1등급’, ‘전국 10대 지역관광 매력 도시’,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에 이름을 올렸으며 태권도원과 반디랜드(2023~2024년 한국관광 100선), 무주곤충박물관(우수 박물관 인증), 향로산자연휴양림(&무주눈꽃 2023 전북형 자연치유 관광지 선정) 등이 무주를 대표하는 명소로 각인됐다. 2024 자연특별시 무주방문의 해를 추진 중으로 1000만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무주군의 발빠른 행보가 이어지며 성과에도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태권시티 도약 올해 2월에는 태권도 교육발전특구 시범지역에도 선정됐다. 이는 태권도를 통한 돌봄과 교육, 취업, 정주기반을 마련하는 기회로, 무주군은 태권도 특수목적고등학교 설립 사업을 연계·추진할 계획이다. 현재는 태권도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 설립 추진(시행기관_무주교육지원청)을 위한 설립 타당성 검토연구)가 마무리된 상태로 군은 향후 특목고 전환에 따른 지원책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 국제태권도사관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전타당성 용역을 마무리해 기본계획 및 실시 설계 용역비 확보에도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태권브이랜드 내에 설치할 로봇 구동 시험(12m, 3가지 품새, 60개 이상 동작 구현)도 완료한 상태로 올해 설치를 완료, 내년까지는 연계 관광 활성화를 위한 전시체험관과 비밀기지, 테마존 등을 추가로 설치한다. 태권도 사범들의 은퇴 이후 삶터가 될 태권마을 조성(5만 3563㎡ 규모)도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진입도로도 조성 공사는 진행 중(내년 완공)이다. 지역경제 활력 충전 2022~2023년 문화관광형시장(반딧불시장) 육성(성과 평가 A등급)에 이어 2024~2026 무주읍 상권활성화 사업을 추진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공모에 선정돼 2026년까지 36억 원을 지원받게 되며 반딧불시장을 중심으로 400여 개 점포 활성화를 도모한다. 지난해 무주군 소상공인 안정 기금 30억 원을 조성한 무주군은 카드수수료 확대(기존 30만→50만 원)와 화재보험료를 지원(가입비 최대 20만 원)하는 등 소상공인 경영안정에 기여했다. ’기업하기 좋은 전북 만들기 평가‘에서도 2년 연속 우수 시군으로 선정됐으며 기업 민원 및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1기업 1공무원 전담제 및 신속처리단을 운영하고 있다. 고향사랑기부금 모금과 답례품 판매(2023~2024년 4522건, 1억 8900만 원)로 지역경제활성화도 주도하고 있다. 무주사랑상품권 유통으로 가계경제에 숨을 불어 넣고 있는 무주군은 개인 할인판매 금액 한도 상향(기존 50만→70만 원), 카드형 상품권 5% 페이백 이벤트 등으로 600여억 원의 무주사랑상품권 판매고를 달성(2023~2024년)했다. 모두의 행복도시로 2022년부터 확보한 지방소멸대응기금 232억 원을 기반으로 고랭지 스마트팜 경영실습장 조성(40억 원)과 군립요양병원 건립·운영(66억 원), 무주군 청년센터(40억 원), 무풍~안성 고랭지 스마트팜 연계 교통인프라 개선(40억 원), 고랭지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단지 조성(24억 원), 장애인 통합돌봄 지원체계 구축(6억 원)에 주력하고 있다. 무주군 최초 복합문화시설인 ‘무주상상반디숲’도 개관을 했다. ‘무주군 청년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2023년 3월 제정)’와 청년안정기금(2023년 30억 원)을 기반으로 한 청년정책들(2024년 30개 사업 64억여 원)은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무주를 만드는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임시거주시설을 조성 중(2023년 2월~2024년 12월 / 주택 16호, 텃밭 등)이며 에코빌리지 2차분도 5만 5840㎡ 규모로 조성(2023~2025년)되고 있다. 이외 4년 연속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에 선정되며 추진 중인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2022~2024년 3784농가 1만 2631명 파견)은 농촌 일손 부족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황인홍 무주군수 "’무주‘ 자체가 비전인 곳으로 만들 터" “무주를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이 자산인 곳, 역사·문화유산이 즐거움이 되는 곳, ’무주‘ 자체가 비전인 곳을 만들 것입니다.” 황인홍 군수는 “결국 무주다움에서 무주만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나온다고 본다”며 "앞으로 2025 세계태권도 그랑프리 챌린지 개최를 비롯해 군립요양병원 개원·운영과 국제태권도사관학교 설립, 스마트팜 보급 및 시설현대화, 무주군 청년센터 조성 등이 든든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후변화와 고령화, 인구감소, 지역소멸 위기 등 넘어야 할 산도 많고 또 높지만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이를 지지대 삼아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 믿는다”며 “특화작목이랄지, 생활·관계 인구 유입 등 다각도로 길을 모색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 기획
  • 김효종
  • 2024.07.01 15:26

취임 100일 나경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국민 체감 속도감 있는 개발 추진”

새만금의 신속한 매립을 위해 지난 2018년 새만금개발공사가 설립됐지만, 매립면허권 출자지역 전체 105㎢ 중 6.6㎢만 매립될 정도로, 갈 길이 먼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속적으로 증가되는 투자수요에도 대응하기 어려울 뿐더러 적기 토지공급도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월 18일 새만금개발공사 3대 사장으로 취임한 나경균 사장도 이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취임이후 새만금과 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의 현안을 직접 챙겼고, 그 결과 성공적인 새만금 개발을 위해서는 (새만금) 매립이 신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새만금판 뉴딜사업으로 ‘새만금 일괄 매립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선정하고 중점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속도감 있는 매립을 통해 공사가 진행하고 있는 매립면허권 지역의 개발 완료 시점을 최대한 단축해 매립용지를 조기에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나 사장을 만나 향후 계획과 비전 등에 대해 들어봤다.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취임 100일을 맞은 소감 및 향후 계획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3월 18일 취임 후 100일 동안 새만금개발공사의 일원으로 지냈습니다. 그간 새만금과 우리 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의 현안을 챙기는 한편,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 국민이 새만금에 대해 갖는 고견을 청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 우리 공사와 새만금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0일의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새만금에 대해 느끼고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국민이 체감하실 수 있을 정도로 개발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해야겠다는 것과 둘째 새만금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개발사업을 우선하여 추진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두 가지 목표를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제 임기 동안 저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속도감 있는 일괄매립사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일괄 매립에 대한 계획과 이에 따른 효과는. “새만금지역의 내부개발을 가속화하고, 공공주도의 속도감 있는 매립을 위해 지난 2018년 새만금개발공사가 설립되었으나, 스마트 수변도시만 매립이 완료되어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속도감 있는 매립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간 고견을 청취했던 정부, 지자체, 기업, 언론 등 모두 저에게 더욱 신속하고 속도감 있는 새만금개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되는 투자수요에 대해 적기 토지공급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유수면 상태에서는 투자유치가 어렵고, 매립용지 조성에 평균 4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할 때 적기 토지공급을 위해서는 신속한 매립용지 선 확보를 위한 전략 마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공사는 새만금 개발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새만금 일괄 매립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선정했습니다. 이는 새만금판 뉴딜사업으로 총 7조 원 규모를 투자하여 신속한 공공주도 매립을 통해 새만금개발의 가시적 성과를 이루는 한편 전북특별자치도의 경제 활성화와 경기 부양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새만금 지역의 신속한 용지 공급이 가능하며, 대규모 공사를 통한 매립비용 절감 등의 부수적 효과도 발생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새만금 수변도시가 올해 말에 분양 예정되어 있습니다. 분양 성공을 위한 전략이 있으신가요.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는 새만금방조제와 동서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생깁니다. 새만금의 첫 도시로서, 새만금에 입주하는 기업들을 위한 기업지원 특화도시이자 사람이 모이는 미래도시로서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명품도시, 매력적인 도시로 인구 약 4만 명을 수용하는 약 600만㎡(200만 평) 규모의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입니다. 새로운 도시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수변도시의 조기 활성화를 위해 4대 과제를 선정했으며 △글로벌 교육기관 설립 △대규모 민간공모사업 추진 △종합의료시설 유치 △복합(합동)청사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차전지 외국기업 유입 극대화를 위해 글로벌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외국인 자녀의 교육여건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또한, 분양전략과 연계한 학교유치 또는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저렴한 학비를 책정해 많은 학생들의 교육선택권을 보장할 예정이다. 또한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특징을 활용해 학교 설립 시 복수언어(英·中) 교과 운영을 채택해 새만금 글로벌 인재 양성을 도모할 방침입니다. 여기에 대규모 공모사업을 통해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하여 보고, 즐기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개발을 통해 다양한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활력있는 도시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정주 여건 구축의 필수요소인 의료환경 조성을 위해, 이번 통합계획 변경(안)에 메디컬센터 부지를 반영했으며, 더 나아가 공공지원을 토대로 국내 최고 수준의 건강검진센터를 설립하여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공공의 선제적 투자를 기반으로 신뢰성과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도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우리 공사는 관계기관(새만금청, 전북도 등)과의 협의를 통해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는 복합(합동)청사를 유치하여 수변도시 활성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민간기업 투자수요 대응을 위한 후속 개발사업 추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새만금지구 국가산업단지 매립이 진행됨에 따라 투자협약이 증가했고, 새만금 투자진흥지구 지정(2023년 6월) 이후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중심의 급격한 투자유치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산업단지 조성에 장기간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투자의향기업에 즉시 공급 가능한 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새만금청에서 ‘새만금 국가산단 확대 타당성 조사 및 계획수립 연구용역’ 진행 중으로 향후 사업화 방안을 마련하고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 후 신속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매립여건(노출지 현황 등), 산단 확장성 등을 고려하여 적정 입지 검토 결과 후보지 우선순위를 선정하여 새만금청과 지속 협의 중에 있으며, 향후 제2산업단지 활용 방안을 마련하여 본격적인 사업추진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만금의 미래 발전을 위해 사이언스파크*와 같은 첨단산업단지 및 탄소중립을 위한 RE100 산업단지 조성 적극 검토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제2산업단지 조성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만금 케이블카 사업이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만금 고군산군도 케이블카 조성사업은 관계기관(새만금청‧군산시‧공사)과 사업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2019년 6월)해 시작했습니다. 이후 공사가 단독 사업시행자로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사업여건 확보를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에 취임 후 케이블카 사업은 단순 수익사업이 아닌 관광앵커 기반시설 기능과 새만금 관광활성화를 위한 필수적인 사업으로 판단하여 신속하게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하지만 현재 케이블카 사업은 코로나 이후 국내 관광 수요의 감소 등 사유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케이블카 사업의 속도감 있는 추진과 더불어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방안 마련이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이를 위해 타지역과 차별화된 특화방안 마련이 필요하여 국내·외 운영 사례조사와 국내케이블카 사례 현지 조사를 통해 새만금만의 차별화된 특화시설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관계기관인 새만금청, 군산시와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끝으로 국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의 새만금은 물속에 잠겨 있다 이제 수면으로 올라와 하얀 백지화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 임기 동안 하얀 백지 위에 점 몇 개를 찍을 계획입니다. 제가 점 몇 개를 찍게 된다면, 제 후임이 점과 점을 연결해서 선이 되고, 그 다음 후임이 선과 선을 연결해서 면이 되듯이, 그 면이 공간이 되듯이 새만금이 미래의 천년을 그리는 귀한 점을 새기는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만금 사업은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로소 사업이 탄력을 받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국민 여러분의 새만금에 대한 각별한 애정에 감사드리는 한편,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느 한 분야에 편중되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분들이 새만금의 발전에 대해 전해주시는 생생한 고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고민하는 데 힘을 쏟겠습니다. 새만금의 미래 천년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길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기획
  • 이환규
  • 2024.07.01 15:24

‘연이은 최초·최고 성과’ 품격도시 익산, 전북 넘어 전국으로

익산 첫 3선 시장에 대한 기대와 함께 출범한 민선 8기 정헌율 호가 반환점을 돌았다. 정헌율 시장은 풍부한 행정 경험과 특유의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게 시정을 이끌어 왔다. 특히 최초·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성공 사례를 끊임없이 낳으며 지역의 품격을 높여 나가고 있다. 호남권 첫 코스트코 유치, 도내 첫 민간특례공원 준공 등 민선 8기 익산시가 그동안 이뤄 낸 성과는 앞으로 만들어 갈 위대한 도시의 예고편이다.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가고 있는 익산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정 시장은 28일 시청 상황실에서 민선 8기 2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익산은 2200년 동안 깊게 뿌리내려온 역사·문화적 자긍심이 있는 도시”라며 “거침없이 도전하고 당당히 성과를 쟁취하며 미래가 더 기대되는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시가 거둔 성과들은 거저 얻은 게 아니라 미리 철저히 준비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차근차근 기반을 쌓아온 결과”라며 “믿고 지켜봐 주시는 시민들과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시 직원들의 손을 마주 잡고 결승점까지 달려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시민이 행복한 ‘품격도시’ 익산 정 시장이 약속한 익산은 ‘시민이 행복한 품격도시’다. 이에 따라 시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익산만의 자랑거리들로 품격을 쌓아올리고 있다. 특히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오로지 시민의 행복을 위해 적극 행정을 펼친 결과는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올해 시는 호남권 첫 코스트코를 왕궁면에 유치했다. 앞서 부지가 변경되며 입점이 한 차례 불발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해 코스트코코리아의 800억 원 투자를 이끌어 냈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 민간특례공원 조성에 가장 먼저 성공한 것 역시 익산시다. 시는 도시공원 일몰제로 인한 실효 위기를 극복하고 마동공원을 준공함으로써 주거지가 밀집한 도심 한가운데에 대규모 명품 숲과 여유로운 녹색 휴식 공간을 조성했다. 아울러 시는 식품산업과 바이오산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낙점하고 집중 육성에 나서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전국 1호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를 조성해 바이오산업의 기틀을 짜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고, 국내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는 동물용의약품산업 분야 육성 및 선도를 위해 국내 최초 동물용의약품 효능·안전성 평가센터 완공을 기점으로 단계별 동물헬스케어 클러스터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식품산업단지인 국가식품클러스터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다. 2단계가 국가첨단식품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된 데 이어 올해는 전국 최초 식물성 대체식품 분야 푸드테크 연구센터 구축 사업에 선정되면서 명실상부한 식품산업 선도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강력한 동력을 확보했다. 또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함라산에는 도내 첫 국립 치유의 숲이 조성된다. 함라산과 금강이 이루는 풍광과 차밭, 숲 놀이터, 치유센터 프로그램 등이 관광객 발길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도 전국 1호 익산청년시청 개청과 전국 최초 농식품 상생 모델인 익산형 일자리, 전국 최초 마을자치연금 지원 조례 제정, 전국 최초 순회 수거 방식의 익산형 농촌 택배 도입 등 다양한 선진 사례로 격이 다른 행정을 선보이고 있다. ‘특구 3관왕’ 쾌속 성장 동력 장착 시는 정부가 지방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련한 기회발전특구와 교육발전특구, 문화특구, 도심융합특구 등 4대 특구 중 3개에 선정되며 쾌속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장착했다. 광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도심융합특구를 제외하면 사실상 시는 도전 가능한 모든 특구에 선정된 셈이다. 이는 기업 투자 유치부터 인재 육성, 산업 혁신 등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일 중요한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회발전특구는 세금 감면과 규제 특례, 재정 지원 등 각종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해 기업의 지방 이전과 투자를 촉진하는 제도다. 시는 최근 제3산업단지 확장 부지와 국가식품클러스터 1단계 일부 구역이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되며 바이오·식품 기업 투자 유치에 큰 날개를 달았다. 교육발전특구는 유아기부터 대학까지 명품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길러진 인재가 지역에 그대로 정주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 조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학교폭력 교육 안전망 구축과 학생 치유·회복 맞춤형 교육, 이리공업고등학교 마이스터고 전환, 의료 분야 대학 선호학과 지역인재전형 확대, 글로벌 보건의료 인력 양성 등 26개 세부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시는 교육자유특구로 지방 대학의 경쟁력을 키워 청년들이 유입되고 기회발전특구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양질의 일자리가 확보되면 젊은 세대들이 계속 지역에 터를 잡고 머무를 것으로 보고 특구를 활용한 여러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문화특구는 지역 특색이 녹아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지역 발전을 이끄는 법정 문화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시는 사람이 보석이 되는, 살고 싶은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민 문화학교 및 아카이브 구축, 솜리예술마을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문화예술 기반 확충, 역사유적지 보존 및 활성화, 시민 참여 확대 등을 통해 익산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의 발상지이자 백제의 왕도 ‘시민 자긍심 고취’ 대한민국 4대 고도 중 하나인 익산은 국내 유일의 백제왕궁 유적을 보유하고 있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등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시는 제석사지와 익산쌍릉, 익산토성, 금마도토성, 미륵산성 등 핵심 유적과의 연계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세계유산 고도로서의 가치를 확산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 금강 연안에 위치한 입점리 고분군의 금동신발과 한국 최고(最古)의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 김대건 신부의 기착지를 기념한 나바위 성당, 농업 기술 변화를 위해 설립된 이리농림학교, 이리역 폭발사고와 새이리 건설 등의 발자취가 익산이 걸어온 길을 상징한다. 이 같은 역사적 유산과 사건들은 시기마다 익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시련과 도전의 역사를 걸어왔으며 어떤 방식으로 이를 개혁과 포용, 다양성과 혁신이라는 시대정신으로 전환시켜 왔는지를 잘 보여 준다. 정 시장은 남은 임기 동안 이러한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문화 발상지 익산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시민 자긍심을 높이는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시는 이를 위해 익산시민의 날을 5월 10일에서 개천절인 10월 3일로 변경했다. 변경 후 처음 열리는 올해 시민의 날 기념식은 마한문화대전과 연계 진행될 예정이다. 정 시장은 “지난 8년간 익산은 눈부신 성과를 토대로 기회와 희망의 도시로 성장했다”며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에도 오직 시민만을 바라보며 위대한 도시 그레이트(GREAT) 익산의 원대한 꿈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송승욱
  • 2024.06.30 16:12

[세계로 향하는 동학농민혁명, 국내 정서부터 한 걸음]⑤장성 황룡전적지-전남 혁명 정신 '날개 달다'

"동학농민혁명 농민군이 관군 700명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조선 후기 봉건 사회의 부패와 억압에 맞서 농민들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 이 거대한 혁명의 판도를 결정짓는 최대 격전지가 바로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에 위치한 황룡전적지다. 1894년 5월 27일 고창·영광·나주·무안·광산·장성 등 통합 혁명군이 이곳에 집결해 이학승이 이끄는 관군 700명과 맞서 격전을 벌였다. 처음에는 양총 등 신식 무기를 갖춘 관군에 맞선 불리한 상황 속에서 농민군들은 닭이나 작은 가축을 키울 때 사용하던 장태를 활용해 저항했다. 짚으로 가득 채워진 철죽(파란 대나무) 장태는 총알을 막아내는 방탄 효과를 발휘했고 이 기발한 전략을 통해 혁명군은 승리를 거둬 당시 관군이 보유하던 양총 100여 정 등 많은 신식 무기를 빼앗아 전주까지 진격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11일 전남 장성 황룡전적지.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현장이었다. 이곳에는 당시 전투를 상징하는 높이 33m 폭 2.5m의 죽창 모양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전면에는 양총으로 무장한 관군들과 장태와 죽창으로 저항하는 농민군들의 모습이 조각돼 있었다. 황룡전적지는 단순한 역사적 유적지가 아닌, 오늘날에도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년 장성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동학농민혁명 황룡승전' 기념행사는 기념사업회 발족 초기에 40~50명이 참석하는 소규모 행사였지만,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까지 참여하는 전남 전체의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를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지역의 혁명 인식을 크게 바꾸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정읍이나 고창과 같은 지역에 비해 혁명군의 참여 규모가 작았던 점은 장성 지역의 혁명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됐다. 조복래 기념사업회 회장은 "예전에는 황룡전적지를 찾은 사람들이 볼 게 없으니 실망하고 돌아가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1997년도에 군의 소규모 지원을 받아 기념공원을 만들었는데 당시 대부분 사비가 들어갔고, 기념행사도 후원을 받아 진행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전북 지역과 달리 타지역에서 혁명 정신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행정적 지원의 확대가 필수적이다"며 "기념관 건립·교육 프로그램 개발·행사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진다면 전라도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의 가치를 전파하고 미래 세대에게 혁명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배경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끝>

  • 기획
  • 서준혁
  • 2024.06.27 18:00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⑦동학사(초고본)

<동학사>(초고본)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던 오지영(吳知泳: 1868~1950)이 동학교단 및 천도교의 역사를 다룬 서적이다. 전체 4책으로 되어 있다.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조선사편수회 자료로 사본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에 동학농민혁명 당시에 대한 서술이 들어 있어 주목된다. 저자 오지영은 전라도 무장(茂長) 덕임리(德林里)에서 몰락한 양반인 오재선(吳栽善)의 장자로 태어나서 1891년동학에 입도하였다. 이듬해 1892년 무장 지역 동학교단 지도자였던 손화중이 고창 선운사에서 석불비결(石佛秘訣) 사건을 일으킨 후, 그는 익산으로 옮겨가 활동하였다. 1893년에는 익산민란을 일으켰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익산대접주인 김방서(金方瑞) 휘하에서 참여하였다. 같은 해 9월 2차 봉기 당시 남접과 북접의 화해에 중재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지영은 동학농민혁명 이후 양주(楊州) 묘적암에 은거한 뒤 1904년 이후 교단명을 천도교(天道敎)로 바꾼 동학교단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익산교구장을 지내고 1909년 천도교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천도교중앙총부에서는 <천도교월보(天道敎月報)>를 편집하고 글을 기고하였다. 1920년대에 이르러 천도교연합회의 창설을 주도하였다. 1926년 익산의 천도교도들과 함께 만주 길림에 집단이주하여 균등한 토지분배와 공동경작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오지영이 <동학사>(초고본)을 서술한 시점은 그가 만주 길림으로 이주한 1926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 이전인 1915년 천도교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시천교(侍天敎)의 김연국(金演局)이 <시천교종역사(侍天敎宗繹史)>를 간행하여 동학농민혁명 당시 자신의 활약을 부각시켰던 적이 있다. 오지영은 이에 대응하여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계열의 활동상을 부각시키고 자신이 전개하던 천도교 혁신운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목적에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 <동학사>(초고본)은 모두 4책으로 1책은 '부천도교연혁대관(附天道敎沿革大觀)'이라는 제목하에 1926년 이후 만주지역에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2책은 '동학사 서(東學史 序)'에 "포덕 65년 갑자 3월 일우일서(布德六十五年甲子三月 日于一序)"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1924년 3월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오지영은 이를 통하여 19세기 후반 정세를 분석하고 1890년 초반 일어난 전라도 일대의 민란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고부민란을 서술하였다. 고부민란은 전봉준을 비롯하여 손화중, 김개남, 최경선, 김덕명 등 동학당 수령에 의해 계획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부각시켜 설명하였다. 그런데 실제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에 대한 서술은 날짜나 인물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그가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주로 전해 들은 내용을 서술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계사년(癸巳年, 1893) 11월에 일어난 사발통문의 등소운동을 고부민란으로 잘못 기록하였다. 다음으로 고부 관아를 점령한 사실과 격문(檄文), 창의문(倡義文)을 발포한 시기를 갑오년(甲午年, 1894) 정월(正月)로 잘못 기록하고 있다. 저자가 1894년 1월 고부민란과 같은 해 3월 무장기포 이후 전개된 동학농민혁명 1차 봉기를 서로 혼동하여 발생한 오류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1894년 5월 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이루어진 전주화약에서 체결된 폐정개혁 12개 조항에 대한 서술이 주목할 만하다. 초고본에서는 '집강소(執綱所)의 행정(行政)'이라는 항목에 기술되어 있다.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난 이후에 집강소의 강령이라는 것이다. 초고본의 내용은 1940년에 나온 간행본과 차이가 있다. <동학사>(초고본) '집강소(執綱所)의 행정(行政)'부분에, "이때 전라도 53주에 골골마다 집강소가 아니 설립된 곳이 없이 일률로 다 되었었고 집강소의 안에는 수천명의 의군(義軍)이 호위를 하였었고 행정에 있어서는 집강이 주무로 십수인의 의원이 있어 협의체로 조직이 되었었고 도집강 1인을 뽑아 전도(全道)의 대표가 되게 하였었고 이왕 있던 대소관리들은 오직 사무에 책임만을 맡게 하였었고 집강소의 정강은 이와 같다."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12개의 정강을 나열하였다. 집강소의 정강 하나. 인명을 함부로 죽인 자는 벨 것 하나. 탐관오리는 뿌리를 뽑을 것 하나. 횡포한 부호배를 엄징할 것 하나. 유림과 양반배의 소굴을 토멸할 것 하나. 천민 등의 軍案을 불지를 것 하나. 종문서는 불지를 것 하나. 백정의 머리에 페랑이를 벗기고 갓을 씌울 것 하나. 무명잡세 등은 혁파할 것 하나. 공사채를 물론하고 과거의 것은 아울러 실시하지 말 것 하나. 외적과 연락하는 자는 벨 것 하나. 토지는 평균분작으로 할 것 하나. 농군의 두레법은 장려할 것 위의 폐정개혁안을 분류해 보자면 기본적 인권(인명을 함부로 죽인 자는 벨 것), 신분제 철폐를 비롯한 평등권(횡포한 부호배를 엄징할 것, 유림과 양반배의 소굴을 토멸할 것, 천민 등의 군안(軍案)을 불지를 것, 종문서는 불지를 것, 백정의 머리에 페랑이를 벗기고 갓을 씌울 것), 조세 문제의 개혁(무명잡세 등은 혁파할 것, 공사채를 물론하고 과거의 것은 아울러 실시하지 말 것), 토지개혁 및 공동경작 등 경제적 지향(토지는 평균분작으로 할 것, 농군의 두레법은 장려할 것), 국가주권 및 국기 확립(탐관오리는 뿌리를 뽑을 것, 외적과 연락하는 자는 벨 것) 등이 명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40년에 나온 <동학사>(간행본)에 나와 있는 도인과 정부 사이에는 수렴을 탕소하고 시정에 협력할 것, 청춘과부는 개가를 허락할 것, 관리채용은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등은 실려 있지 않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것은 “토지는 평균분작으로 할 것”이다. 이를 두고 그동안의 한국사 연구에서 “지주제를 해체하고 그 토지를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경작”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는 ‘농민적 토지소유’의 확보를 통한 농민적 코스의 농업근대화를 지향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의 혁명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이와 같이 동학농민군의 토지개혁 구상이 직접적으로 명시된 자료는 <동학사>(초고본) 하나뿐이며 1894년 당시에 나온 폐정개혁안 어디에도 이러한 내용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미루어 볼 때 “토지는 평균분작으로 할 것”이라는 정강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이 적다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사>(초고본)에서만 이 정강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동학사>(초고본)이 가지고 있는 사료적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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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7 17:35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알다가도 모를 청소년, 가능성의 존재들을 위한 공간과 프로그램

‘이제 꽤 덥네?’하고 돌아보니 어느새 한 해의 반절이 흘러있다. 어느 기관이든 이즈음엔 상반기 진행 상황과 성과를 점검하고 남은 하반기에 대한 계획과 보고로 분주한 요즘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개개인들도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하반기 일정에 바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개인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자녀 때문인지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청소년들은 지금 무슨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하루하루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는 생활, 이제 2~3주 뒤면 1학기 기말고사가 있고, 여름 방학이 있다. 저녁 시간에 우르르 학원에서 나오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깔깔깔 즐거운 아이들, 학원가는 벌써 여름 특강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신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찬스! 국영수 여름방학 특강!’ ‘청소년’,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읽어보니, 참 어색하다.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 그들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늘 만나게 되지만 무엇인가 거리감이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분명 보이지 않은 벽 안에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은 그 세계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혹은 봐도 해석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해맑고 귀여워서 무엇을 해도 칭찬받는 어린이 그룹과 취향에 대해 선택권을 보장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는 성인 그룹 사이에 끼어있는 애처로운 그룹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워서인지, 이해하기 싫어서인지 ‘성인’ 그룹으로부터 존중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청소년의 시간은 입시 준비나 취업 준비 등 이제 곧 ‘성인’이 될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규정된 듯하다. 마치 지금 당장 행복한 시간보다 미래의 시간만이 중요하다고 장담하고 있는 것 같다. 학업이나 취업을 위한 활동 외의 행동들은 성인 이후로 미루기를 권유받거나 걱정으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갑자기 고등학교 2학년이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듣게 될까? 물론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응원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대부분 전공할 것도 아닌데, 지금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면서 배우지 말고 대학교 가서 천천히 배우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입시나 취업 외 예체능을 비롯한 다른 활동은 일단 대학 입학 후나 취업 뒤로 보류할 것을 요구받는다. 청소년 시기 바로 직전, 어린이 그룹일 때는 그림을 그려도, 노래를 불러도, 춤을 춰도, 혹여 공부를 좀 못해도 칭찬받았는데, 청소년 시기로 접어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학교나 사회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자! 이제 놀기 끝, 경쟁 시작!’ 청소년들의 혼란스러움이 공감된다. 스트레스 풀 곳은 코인 노래방, 피씨방, 그리고 끊임없이 콘텐츠를 쏟아내는 핸드폰 속 릴스와 인스타그램 이미지에 의지한다. 그렇게만 머물기에 청소년들의 가능성과 지금의 행복도 너무 중요한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꾸준히 청소년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몇몇 청소년 공간과 문화 행사의 소중함은 더 가치 있다. 전주청소년센터를 비롯하여 전주시 6개 지역에 있는 청소년센터에서는 작지만 내실있는 청소년 동아리 지원사업이나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재미있게 본 사례는 전주청소년센터와 효자청소년센터에서 함께 진행하고 있는 ‘모글리’라는 크로스핏 동아리이다. 크로스핏이란 여러 종목의 운동을 섞어서 하는 운동으로 미국에서 경찰, 군인, 소방관 등의 훈련을 위해 고안된 운동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있는 운동법이다. 처음 이 동아리에 대해 들었을 때, 필자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독서 토론, 음악감상, 봉사 동아리가 아닌 현대적이고 활동적인 장르인 점에서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더불어 어른이 가르쳐주고 싶은 것을 정해서 일방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닌 청소년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 점이 반가웠다. 요즘 청소년들은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어 외모에 관심이 많다. 여학생들은 일찍부터 메이크업을 한다거나, 늘 다이어트를 하면서 건강이 염려되도록 몸매 관리에 신경을 쓰는데, ‘모글리’에서는 기특하게도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함께 한다. 청소년센터에서는 전문가의 지도와 공간을 지원하여, 청소년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잠시라도 학업 스트레스에서 멀어지고, 자신의 몸 움직임을 배우도록 돕는다. 운동하는 시간 동안 핸드폰에서도 멀어지니 청소년들은 활기를 찾을 수밖에 없다. 효자청소년센터에서는 이밖에 바리스타 동아리 ‘다믈’, 텃밭을 가꾸는 ‘텃새꾼’, 댄스 동아리 ‘홀림’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커피를 내리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고, 텃밭을 가꾸며 흙의 위대함을 알고, 음악에 맞춰 바이브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청소년들에게는 얼마나 멋진 시간일까. 그런 즐거움과 긍정의 시간이 축적되면서 분명 좋은 어른들도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청소년을 위한 멋진 공간도 있다. 이미 전주의 이색적인 청소년 공간으로 유명한 전주 꽃심도서관 내 ‘우주로 1216’는 타지역에서도 자주 견학오는 곳이다. 소위 트윈세대(틴에이저와 어린이 사이에 낀 between 세대)를 위한 공간을 표방하는 이곳은 매월 셋째주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12~16세만 입장이 가능하다. 모던하고 자유분방한 실내 인테리어도 인상적이고 쿵쿵존, 톡톡존, 슥슥존, 곰곰존으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한 부분이나, 다양한 미술, 조형, 3D펜, 뜨개질 등을 활용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한 부분이 특징이다. 특히 슥스튜디오에서는 동영상 제작이나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장비까지 구비해 놓아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는 청소년들의 가능성을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없는 그들만의 공간이니 어른 앞에서는 꽁꽁 숨기는 끼와 재능이 더 발현되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 지역에 청소년을 위한 공간과 사업이 있지만, 아직 그 수와 다양함이 전북 청소년들의 인원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청소년 자신이 관심이 높거나, 학교나 집이 해당 문화기관과 가깝지 않다면, 이런 공간과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 차이와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공영역의 관심과 정책이 중요하다. 공공기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학교단위로 차별없이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는데, 실은 어린이나 노년층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기관은 다수 있으나, 청소년 대상 사업, 예를 들어 청소년을 위한 전문적인 공연이나 전시, 체험은 쉽게 찾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사업을 기획하는 것은 다른 사업보다 조사와 고민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시작해서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외면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서두에서 거론했듯 그들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 성인과는 같은 연극을 봐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도 있고, 때론 쉽게 상처받게 할 수도 있다. 그뿐인가 그들은 재미없으면 빠른 속도로 돌아선다. 국립극단에서는 십여년전부터 청소년극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 예술적으로도 관객 확장면에서도 의미있는 행보로 인정받고 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성인관객 마니아층도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주제도 청소년기에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밀고 당기는 밀당-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외모적 고민, 성정체성, 우정과 연애, 트라우마 등 다양하다. 국립극단은 창작 과정부터 일반 극과 다르게 진행한다. 우선 청소년극을 쓰고자 하는 작가를 모집하고, 청소년 창작파트너인 ‘청소년 17인’과 협력해서 창작의 주체로 함께 할 수 있게 운영한다. 참여 작가들의 초고 집필은 작가와 청소년이 함께하는 워크숍, 소그룹 활동 등 실제 청소년과의 상호 작용이 선행된 후에 진행되어 청소년의 시선이 살아 있는 희곡이 만들어진다. 공연 종료 후 작가, 연출가와 함께하는 ‘예술가와의 대화’도 진행함으로 청소년 관객들이 작품을 더 깊게 수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이런 작업은 촘촘한 기획력과 의지뿐만 아니라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다. 공공예술단체일지라도 예산은 늘 부족하고 이미 수행할 공연이나 사업들이 빼곡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쉽게 청소년 레퍼토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체된 기존 사업들을 정리하거니 잠시 휴식기를 갖고, 과감하게 청소년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청소년들에게 공을 들이면 그 피드백은 사회 전체가 폭넓게 받게 된다. 어른으로 성장해서 좋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사회를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아! 이제 떠오른다. 전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보이그룹 ‘라스트포원’도 전주청소년센터의 댄스 동아리로 출발해 세계 무대에 섰다. 청소년, 그들은 그렇게 가능성 있는 존재들이다. 2009년 8월 뉴욕 링컨센터 내 댐로시밴드셀극장에서 열리는 '힙합 제너레이션 넥스트' 공연에 참가했던 전주출신 한국 최고의 비보이그룹 '라스트 포 원' 한지영 (사)전주세계소리축제 콘텐츠운영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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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6 15:21

군민과 함께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진안군의회

‘군민과 함께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진안군의회’라는 기치 아래 의정활동을 벌인 제9대 진안군의회 전반기가 오는 30일로 마무리된다. 제9대 전반기 군의회는 군민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는 의회상 정립을 위해 ‘열린의회 구현’에 매진했다. 반응형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모바일과 PC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안군의회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군민들의 접근성과 가독성을 향상시킨 게 대표적인 예다. 이뿐 아니라 상임위원회 회의실 방청공간 정비에 이어 열린의회 운영을 통해 다양한 지역사회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 마련에도 적극 나섰다. 코앞으로 다가온 후반기를 맞이하며 김민규 의장을 비롯한 군의회 의원 7명은 며칠 남지 않은 전반기를 잘 마무리하고, 후반기에도 군민의 권익과 복리증진은 물론 군정발전을 이끌기 위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각오다. 김민규 의장을 비롯해 진안군의회 7명 군의원 한명 한명의 숨 가쁘게 달려온 전반기 의정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부를 돌아본다. 김민규 의장 “집행부와 의회 간의 올바른 관계정립 위해 노력” 김민규 전반기 의장은 “의회와 집행부 간 올바른 관계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 하에서 전반기 의정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진안을 위한 일이라면 소모적인 갈등관계가 아니라 동반자이자 협력자로서 최대한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후반기에는 평의원으로 돌아가지만 군민의 뜻이 군정에 성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변함없이 노력하고 주민이 공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발굴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장중심의 소통행정을 이어가며 누구보다 바쁜 시기를 보냈다는 김 의장은 “군민들과 함께 현장에서 나눈 다양한 의견을 모아 하루 빨리 관련 조례를 발의하고 싶다”며 “후반기에 평의원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동료의원들과 함께 ‘지역발전과 군민 행복’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더욱더 정진하겠다”고 했다. 이미옥 부의장 “변화하는 패러다임과 함께하는 지역축제 방향 제시” 이미옥 부의장은 “축제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에 맞춰 새로운 방향 정립이 필요하다”며 “경쟁력 있는 축제를 통해 지역경제활성화와 관광도시 도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의정활동을 펼쳤다. 이 의원은 전통문화 중 하나인 김장문화를 언급하며 집에서 담그는 김장문화가 점차 사라짐에 따라 명인을 활용한 ‘맛있는 김장축제’를 진행한다거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체험위주의 김장축제’로 변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조례·규칙과 같은 관련규정 정비뿐 아니라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관련부서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게 이 의원의 견해였다. 손동규 운영행정위원장 “공공기관 위탁사무 책임성 제고 기틀 마련” 손동규 위원장은 “공공기관 위탁 및 대행 사무의 기준을 마련하고 의회 동의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자 ‘진안군 사무의 공공기관 위탁 및 대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손 의원은 현행 지방자치법에 지방자치단체 사무의 일부를 조례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위임 또는 위탁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으나 공공기관에 대한 위탁 및 대행에 관한 사항은 별도의 규정이 없어 기준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위탁 및 대행사무의 적정성 검토, 진안군 공공위탁·대행 심의위원회 설치, 군의회 동의에 관한 사항이 담긴 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향후 관련사무 운영방식 개선과 의회동의 절차를 통한 책임성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김명갑 산업건설위원장 “농특산물 수출시장 활성화 방안 제시” 김 위원장은 ‘수출물류비 폐지에 따른 대응책과 농특산물 가공식품 수출 활성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1월 WTO 협정에 따라 8년이라는 유예기간을 거쳐 완전히 폐지된 수출물류비의 영향에 대해 언급하며,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농특산물 및 가공식품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 및 정책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를 활용한 연계방안뿐 아니라 농가에 대한 다양한 직·간접적 지원 대책과 복잡한 절차를 능동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행정적, 제도적 맞춤형 정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동창옥 의원 “고령운전자 교통사고예방 법적 제도 마련 앞장” 동 의원은 전국적으로 고령운전자의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며 ‘진안군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지원 조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 의원은 면허 반납에 따른 금전적 보상 못지않게 안전한 운전문화 조성과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지자체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조례 개정안에는 교통안전시설 정비, 안전한 교통문화 조성을 위한 교육 및 체험 등 지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추진 등 안전운전을 위한 맞춤형 지원에 관한 사항을 담았다. 향후에도 운전면허 자진 반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혜택 및 정책발굴 같은 내실 있는 사업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명진 의원 “현수막 등 각종 옥외광고물 관리대책 방향 마련” 이 의원은 옥외광고물이 무분별하게 내걸리고 이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계속되는데 무분별한 게첨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모범이 돼야 할 정당 또는 정치인의 무분별한 현수막과 각종 옥외광고물 게첨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난립하는 현수막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주민들의 통행과 교통안전을 위협하는 사례가 많다며 현수막 지정게시대 위치가 잘못돼 있다면 전반적으로 재배치해야 도시미관이 살아나고 군민이 안전하다고 밝혔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옥외광고물 설치를 대행하는 사업자뿐 아니라 관련 규정을 총괄하는 진안군도 제도 정립에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루라 의원 “저출생 극복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 구축” 이 의원은 최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된 난임지원 사업이 지자체별로 상이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제적 지원을 통해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경쟁력 확보를 위한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 해 출생아 10명 중 1명은 난임치료로 태어나고 있는 게 현실인 만큼 출산의지가 강한 가정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난임 시술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령과 소득기준으로 차등 지급되는 구분을 폐지하고 향후 난자 동결 시술비 지원과 같은 적극적 지원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이와 같은 행정적·제도적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지속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 기획
  • 국승호
  • 2024.06.25 16:48

[세계로 향하는 동학농민혁명, 국내 정서부터 한 걸음]④곽형주 이사장 "유족마저 무관심, 혁명 기록 남겨야"

"누군가 한 줄만 남겨도 명예는 지켜지는 겁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잊힐 뿐입니다." 올해로 130년을 맞이하는 동학농민혁명. 농민들의 피와 눈물로 써진 역사는 오늘날에도 연구와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유족들도 고령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잊혀 가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읍 각 지역의 동학농민혁명 등 역사 기록을 다룬 '면지' 집필에 힘쓰고 있는 곽형주(70)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도내 고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혁명에 대한 관심이 끊길 것을 우려하던 그는 "현재 혁명군의 후손들이 동학농민혁명에 관심을 갖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혁명 정신의 계승은 끊길 것이다"며 "그전에 혁명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말했다. 곽형주 이사장은 "동학의 유족들마저도 혁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슴 아픈 상처를 들춰보는 것이 힘들다는 건 이해하지만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 지역의 소위 리더라는 분들도 관심이 부족해 어려운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4년 정읍 동학농민혁명 기념행사에 참여한 그는 지역에 대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단상에 농민 대표는 한 사람도 없고 전부 공무원 출신만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그는 "100주년 기념식에 농민 대표가 없다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 곧바로 항의했다"며 "그다음 행사부터 바로 개선됐지만 당시 이런 사소한 이야기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실제 행동에 옮기는 사람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기록 남기기'에 열중하게 된 것은 의병활동을 하던 의증조부의 억울한 죽음 때문이었다. 그는 "일제시대 때 외증조부께서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그의 아들이란 이유로 내 외종조부는 열다섯의 나이로 손톱을 대침으로 찔리는 고문을 당해 정신병자가 됐다"며 "아직도 무덤을 찾지 못했고 역사에 이름 석 자 남기지도 못했다. 결국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읍농고를 나와 농사일에 전념했던 그는 지난 2005년 11월 영원면지 '영원사람들의 삶과 역사' 발간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며 마을의 유래 및 땅 이름, 다양한 지역의 문화를 찾아 자료를 구하고 만들어내는 등 면지 발행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애착으로 영원을 포함한 정읍 대부분 지역의 혁명 기록을 남기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기획
  • 서준혁
  • 2024.06.25 15:45

남원시의회, 소통으로 꽃 피운 민의의 전당

2022년 7월 작렬하는 여름 태양 빛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출범한 제9대 남원시의회 전반기는 전평기 의장과 이미선 부의장을 중심으로 오동환 운영위원장, 김정현 자치행정위원장, 김영태 경제산업위원장 등 상임위원단과 함께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시민과 소통하고 신뢰받는 의회'라는 슬로건 아래 코로나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와 민생 안정, 국립의전원법 통과를 위한 노력, 정책지원관 제도 도입 등 크고 작은 현안 이슈들 속에서 시민의 숨통을 터줄 획기적인 상생 방안 마련을 위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가짐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발빠르게 움직였던 지난 2년을 되돌아본다. 견제와 감시의 고유 역할 충실 남원시의회는 꼼꼼한 정책·업무 분석과 함께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회 본연의 기능인 행정에 대한 생산적인 견제와 감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대안과 방법을 제시하는 데에 앞장섰다.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각종 사회단체 보조금 집행 및 정산 적극 지도, 각종 위원회 운영 시 조례 준수, 민간위탁 단체의 철저한 감사 등 총 1227건을 시정·처리 요구하거나 건의했다. 춘향 영정을 둘러싼 갈등과 해결방안, 남원시 인사발령에 관한 문제점, 남원 관광지 민간개발사업 문제 등 총 7차례 시정질문을 통해 문제점을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특히 침체된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킬 방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남원 일반산업단지의 기업 유치 상황과 향후 방향성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시민 행복 만드는 민의의 전당 남원시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입법과 정책 제안을 통해 시민의 삶을 적셔 줄 단비가 되고자 노력했다. 코로나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남원시 지역상권 상생 활성화 및 착한 임대인 지원 조례안, 남원시 영유아 다자녀 가정 난방비 지원 조례안, 남원시 농산물 가격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안 등의 입법 활동과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에 관한 제안,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 요구, 지역 내 소상공인 지원정책 확대 제안 등 82건에 달하는 5분 발언을 통해 민생 회복을 위한 정책 제안에 몰두했다. 2년 동안 226일간 총 16회의 회기를 운영하며 조례 제·개정안 246건, 예산·결산안 14건, 동의안 53건, 기타 135건 등 총 448건의 안건을 처리했으며, 이중 의원발의 조례 제·개정안이 136건에 이르는 등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선보이며 자치 입법기관의 위상을 강화했다. 현장에서 답을 찾는 생생 의정 현장에서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의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청년메이커스 신축사업, 육아종합지원센터, 함파우 아트밸리 등 다양한 사업 현장을 직접 시찰하며 문제점 및 시민들의 애로사항을 꼼꼼히 확인하고 의정에 반영토록 했다. 이어 양돈 악취 민원현장과 봄철 냉해 피해 농가, 노암농공단지 식품 제조기업 화재 현장 등을 방문하여 재발 방지와 피해지원 대책을 논의하고 산불기동대, 도로 및 제설 관리부서, 보건소 방역 관계자 등 각종 재난 재해로 인해 고생한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발걸음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온·오프라인을 활용한 소통을 강화하여 각종 지역행사와 복지시설 방문, 40여 차례의 간담회 참석, 인터넷 민원 접수·처리 등을 통해 다양한 민의의 현장에서 시민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국립의전원 유치 활동 등 총력 남원시의회는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답을 찾는 역동적인 의정활동을 선보였다. 특히 지난 2022년 11월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유치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 남원시민의 오랜 염원이자 숙원사업인 남원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과 관련 법안 국회 통과를 위해 전방위적인 지원에 힘썼다. 아울러 지리산권 지자체 의회 협조 방문, 국회 앞 피켓시위, 국회의원 면담, 시민단체와 함께 상경 집회 및 삭발식 진행, 전북도지사 면담, 그리고 5분 자유발언, 4차례의 결의안 채택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시의회는 앞으로도 남원 국립의전원 유치와 국립의전원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연구하고 학습하는 '정책의회' 남원시의회는 의정연수를 통해 조례 입법, 예산·결산 심의, 행정사무감사 기법 등 의원의 직무 전문성과 역량 향상을 꾀했고, 타 지자체의 다양한 정책 성공사례를 분석하기 위한 벤치마킹에 나서기도 했다. 아울러, 남원형 치유농업 연구회, 조례분석 연구회, 탄소중립 그린도시 만들기 연구회, 전통시장 활성화 연구회 등의 의원 연구단체를 만들고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연회 및 간담회를 개최하는 한편, 30년 만에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시행으로 8명의 정책지원관을 채용하여 남원의 현황에 맞는 다양한 정책들을 함께 고민하고 발굴하며 의정활동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정책의회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다. 전평기 남원시의장 "현장서 답 찾는 시간 통해 많은 보람·성취 느켜" 전평기 의장은 “제9대 남원시의회 전반기를 마무리하며 시의회에 애정 어린 관심과 조언으로 성원해주신 시민분들과 시정의 동반자이자 때로는 감시와 견제를 통해 협조해주신 집행부, 그리고 지역 현안의 발굴과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동료 의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간혹 부족한 부분도 있었으나 지역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경청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시간을 통해 많은 보람과 성취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9대 전반기 의회는 의원발의 조례안이 136건, 5분 자유발언을 통한 정책 제안이 82건, 행정사무감사 지적사항이 1227건에 달하는 등 수치상으로도 눈에 띄는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침으로써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며 “동료 의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시민의 삶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의정활동에 성심을 다해준 결과”라고 덧붙였다. 전 의장은 끝으로 “후반기 의장단은 준비한 역량을 바탕으로 의회 중심의 지방분권을 더욱 확고히 하고 시민의 대변자로서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시민과 소통하고 민생을 챙겨 우리 시의 현안 사업들을 차질 없이 진행해 주시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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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기철
  • 2024.06.24 17:00

[팔도 건축기행]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유리의 강(Glass River)을 만들자.” 현장을 방문한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여수 망마산과 장도를 직접 걷고, 행정선에 올라 바다에서 현장을 바라본 후 떠오른 콘셉트 디자인을 거침 없이 그려냈다. 망마산 정상에서 계곡을 따라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폭 21m와 길이 152m에 달하는 푸른 유리 지붕(Glass River)은 GS칼텍스 예울마루(이하 예울마루)의 상징이 됐다. 산과 바다와 섬이 만나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그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건축물은 서로 순응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다. ◇자연과 하나 된 친환경 건축 예울마루는 시민 삶의 질 향상과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도시에 걸맞는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위해 GS칼텍스가 여수시와 함께 여수시 망마산과 장도 일원의 약 70만㎡(21만여 평) 부지 위에 조성한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2007년 여수 시민 대표와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조성 사업은 2021년 망마산 전망대 및 산책로 조성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10여년의 대장정이 마무리 돼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1단계인 망마산 기슭의 주공연장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에 맞춰 개관했고, 예술가들의 창작스튜디오와 전시장, 카페, 교육실 등으로 이루어진 2단계 예술의 섬 장도 사업은 2019년 완공됐다. 프랑스국립도서관(미테랑 도서관), 독일 베를린 올핌픽 수영장,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공연장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로 불린다.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인을 지향하는 그는 특정 건축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주변환경과 조화를 고려한 독창적인 설계로 이름이 높다. 특히 주요 시설물을 땅속으로 집어 넣는 것이 특징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화여대 이화캠퍼스 센터(ECC)가 대표적이다. 페로는 예울마루를 설계하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하나의 큰 산책로’(Promenade)를 염두에 뒀다. 망마산 정상 전망대부터 공연장, 진섬다리, 바다 건너 장도 전시장까지 그가 구성한 산책길은 약 2㎞에 달한다. 흐르는 강물을 형상화한 유리 지붕(Glass River), 환경 친화(Eco friendly)적 건물은 그가 자연과 공존을 꾀한 또 하나의 콘셉트였다. 산의 경사면을 최대 40m 깊이로 파내고 지은 예울마루는 주변 환경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망마산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건물의 주요 공간을 지하에 배치, 바깥으로는 유리 지붕만 드러나는 형상이다. 유리 지붕은 대지의 경사에 맞게 6개의 경사면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자연스러운 경관을 연출했으며 능선에 맞춰 화강암 계단(Stone River)을 설치했다. 예울마루는 문화예술의 너울이 가득 넘치고 전통가옥의 마루처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더불어 ‘마루’에는 산 꼭대기, 하늘이라는 뜻도 담겨 있어 예울마루의 푸른 유리 지붕을 ‘하늘에서 흐르는 강’이라고도 부른다. 유리 지붕 아래 땅 속에는 가로 200m, 높이 7층 규모의 건물(연면적 2만5145㎥)이 감춰져 있다. 최첨단 시설을 갖춘 대극장(1021석), 무대 변형이 자유로운 소극장(302석), 광(光) 천장 시스템을 도입해 자연채광에 가까운 밝은 분위기에서 작품 감상이 가능한 3개의 전시실, 리허설룸, 카페 등이 주 공간이다. 예울마루 4층 매표소 앞 광장에서 바라보는 여수 바다와 장도의 모습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더불어 지난 2022년 개통된 선소대교의 야경까지 어우러지면 저녁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온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예울마루는 친환경 건축물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전지 시스템을 통해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 건물에 필요한 일부 수요을 담당하고 있으며 경사지형을 활용한 열미로(熱迷路) 시스템을 운영하고 화장실 용수와 조경 용수로 우수(雨水)를 재활용하고 있다. 또 태양광 및 LED를 이용한 조명을 진입계단, 바닥분수, 외부 데크 등에 모두 50개를 설치, 에너지 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 ◇‘예술의 섬’ 장도 예울마루에서 나와 바로 앞 장도로 향하는 여정은 색다른 경험이다. 조수 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리를 지나야 하는 터라 ‘물 때’를 확인하는 게 필수다.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미술관이자 예술가들의 창작 기지, 시민들의 힐링 쉼터인 장도의 관문 진섬다리는 총 길이 330m로 기존 석축교의 원형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루에 두 번 물에 잠기도록 설계됐다. 지난 2019년 5월 개관한 ‘예울마루 장도’는 입주 작가들의 장도 창작스튜디오, 장도전시관, 다도해 정원, 해안 산책로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 공간은 산의 능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지하에 파묻듯이 세워진 장도전시관으로 도미니크 페로가 콘셉트 디자인을 맡았다. 지하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얼핏 이화여대 ECC 건물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푸른 잔디밭을 지나 회색 담벼락의 지하로 내려가는 나직한 경사로에서 만나는 건 길다란 직육면체 형상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공간이 펼쳐진다. 1,465㎡ 규모의 전시관은 바다가 보이는 전시실을 비롯해 바다 전망과 해송,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지는 아트카페, 교육실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중앙홀 천장에 설치돼 인테리어 효과를 극대화하는 아트리움을 통해 관람객들은 낮에는 로비를 통해 들어오는 채광을, 밤에는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조명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장도는 원래 다섯 가구 주민들이 거주하던 섬이었다. 섬 주민의 집터에는 역사성을 살려 작가 작업실, 안내센터 등 다섯 동의 건물을 조성했고 주기적으로 오픈 스튜디오도 진행한다. 다단계식으로 조성된 다도해 정원에는 남해안에 자생하는 나무와 야생화가 식재돼 있으며 장도 해안선을 따라 바다 경관을 조명하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에서는 최병수 작가 등이 제작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 공연, 교육이 어우러진 예술 요람 예울마루는 GS칼텍스가 지자체, 지역사회와 함께 일구어온 대표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 꼽힌다. GS칼텍스는 지금까지 예울마루 조성과 운영에 1500억원을 지원했다. 1987년 건립된 여수시민회관이 유일한 문화시설이었던 여수에서 수준 높은 공연과 전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울마루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였다. 뮤지컬 ‘맘마이아’, ‘시카고’와 조성진, 정경화, 임윤찬, 서울시향 등 클래식 연주자의 무대를 포함해 오페라, 발레,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공연됐고 라이프 사진전, 한국근현대 미술걸작전 등 화제의 전시도 열렸다. 그밖에 예술아카데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도 꾸준히 열고 있다. 지금까지 예울마루 공연, 전시, 교육 이용객은 총 129만 명에 달하며 최근 핫 플레이스로 꼽히는 장도에는 156만 명이 다녀갔다. 예울마루는 2023년 한국관광공사 공모 ‘코리아 유니크 베뉴 52선’에 전남에서 유일하게 선정됐으며 2012년 대한민국 토목건축대상 레저개발 부문 최우수상(2012), 한국메세나 대상 대통령상(2013)도 수상했다. 광주일보=김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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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4 14:26

[2024년 상반기 전주시의회 의정 결산] 다양한 변화 시도로 경쟁력 키워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지방자치 분권'과 '지역 균형 발전'은 지방시대의 핵심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한 지방의회의 역할 또한 더욱 중요해졌다. 제12대 전주시의회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며 다양한 변화와 시도로 경쟁력을 키워왔다. 이를 통해 정책지원관 제도의 조기정착은 의정활동의 전문성과 역량강화로 이어졌고, 이는 입법 활동의 질적 성장으로 연결됐다. 조례연구회, 도시공간연구회, 전주비전연구회, 관광거점도시실현 연구회, 로컬라이징 연구회 등 5개의 연구단체의 활동도 두드러졌다. 계속되는 변화와 혁신으로 65만 전주시민과 공감하며 함께 같은 길을 걸었던 전주시의회의 2024년 상반기 의정활동을 의장단 및 각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편집자주> 이기동 의장은 지난 2년간 시민의 눈높이로 시민과 소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지역 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에 역점을 두고 주민의 목소리가시정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소통과 협력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전주시의회’를 구현하는 데 노력해왔다. 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지방의회의 역할과 사명을 강조한 이 의장은 의회 본연의 역할인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도 힘쓰고 있다. 이 의장은 “공무원 연금공단 전북지부 폐쇄 방침 철회촉구 결의안,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규제 폐지 철회 촉구 결의안, 이장·통장 활동 보상금 정부 지원 촉구 건의안 채택 등 사회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데도 최선을 다해왔다”며 “앞으로도 의회를 향한 시민의 신뢰와 믿음은 소신 있는 의정활동에서 시작된다는 마음가짐으로 더욱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병하 부의장은 65만 전주시민의 소중한 뜻을 대변하며 시민의 복지증진과 지역발전에 앞장서는 한편 뛰어난 친화력과 보이지 않는 리더십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해왔다. 전주시민의 대의기관인 전주시의회가 민의(民意)의 대변자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의원 연구단체, 예산결산검사, 특별위원회 활동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시민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조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이 부의장은 “의원들의 높은 역량과 열정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의정활동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부의장의 가장 큰 소임으로 여기며 그동안 의원들의 원활한 의정활동 지원에 열정을 쏟았다”며 “앞으로도 지역주민의 요구사항에 귀 기울여 시민들의 희망찬 미래와 전주시의 도약을 위해 더욱 노력하며 시민에게 신뢰받고 존경받는 의회상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운영위원회 운영위원회(김동헌 위원장, 온혜정, 김세혁, 김성규, 김윤철, 남관우, 천서영, 최서연, 한승우 의원)는 의회의 전반적 업무가 원활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운영위는 회기 일정을 확정하고 각종 조례의 발의와 안건 심의에 대한 전문성 강화를 위한 의원 역량강화 연찬회를 개최하는 등 효율적인 의정활동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해왔다. 또, 의원연구단체의 입법활동과 정책개발 지원으로 내실 있고 효율적인 의회 운영을 도모했으며 ‘전주시의회 의원 연구단체 구성 및 운영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전주시의회 의원 윤리강령 및 행동강령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등을 통해 의원들의 전문성 및 윤리 의식을 한층 높였다. △행정위원회 행정위원회(정섬길 위원장, 최명권, 김세혁, 김정명, 남관우, 박형배, 이보순, 최주만 의원)는 시민의 편에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행정이 추진될 수 있도록 주력했다. 행정위는 집행부 감시·견제에 앞장서면서 건전한 재정운영을 통해 지역 간 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해 활동을 펼쳤다. 특히 ‘전주시 청렴도 향상 및 부패방지 조례안’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청렴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조례로 규정했으며 시청사 별관으로 인근 현대해상빌딩을 매입,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내용을 담은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켜 사업기간 단축과 예산 절감을 위해 일했다. △복지환경위원회 복지환경위원회(이남숙 위원장, 김학송, 이병하, 장재희, 채영병, 최서연, 최지은, 한승우 의원)는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안정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환경보전에 중점을 둔 활동을 펼쳤다. 복지위는 ‘전주시 공동육아나눔터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해 지역의 인적 및 물적 자원을 활용한 아동양육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공동육아나눔터 운영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했다. 이와 함께 ‘전주시 공중화장실등 설치 및 관리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해 시민의 위생 편의와 공공 복지를 확충했으며 ‘전주시 은둔형 외톨에 지원 조례안’을 제정함으로써 현대사회속 고립된 이웃을 돕고 이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돕고자 했다. △문화경제위원회 문화경제위원회(송영진 위원장, 전윤미, 김동헌, 김윤철, 박혜숙, 신유정, 온혜정, 이성국, 장병익 의원)는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예술 진흥과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문경위는 ‘전주시 중소기업 환경·사회·투명(ESG) 경영 활성화 지원 조례안’을 통해 중소기업의 ESG경영 도입·확산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전주시 및 지역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을 확립하는 데 집중했다. 전주시의 우수한 농특산물에 대한 지리적 표시 등록 및 사후 관리 등에 대한 전반적인 기틀을 마련하고자 ‘전주시 농특산물 지리적 표시 관리 및 운영 조례안’과 지역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전주시 무형유산 보전과 진흥 조례안’ 제정으로 전주의 문화·경제적 자원 보전에도 이바지했다. △도시건설위원회 도시건설위원회(박선전 위원장, 이국, 김성규, 김원주, 김현덕, 양영환, 천서영, 최명철, 최용철 의원)는 효과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개발로 쾌적하고 안전한 친환경 생태도시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도건위는 ‘전주시 노선버스 안전 및 서비스 향상에 관한 조례안’을 통해 승객의 안정성 확보와 편리성을 증진하고, 노선버스 이용 환경을 높였다는 평이다. 그간 이원화로 시행 중이던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사항을 ‘전주시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조례안’으로 제정, 일원화했으며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이 필요함에 따라 ‘전주시 중대재해 예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 전주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자 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박형배 위원장, 최서연, 김원주, 김세혁, 김학송, 김현덕, 남관우, 박혜숙, 양영환, 온혜정, 전윤미, 최명권, 최명철, 한승우 의원)는 한정된 재원이 적재적소에 배분돼 예산이 낭비되지 않고 전주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투명하고 심도 깊은 예산심사를 펼쳤다. 예결위는 주요사업과 역점사업의 재원투자, 복지정책 확대 등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의 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불필요한 예산 편성을 배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예산을 심사했다. 또한 결산검사의 철저한 분석을 통해 사후적 처방보다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둔 예산 심의로 건전한 재정 운용 방향을 제시하고 재정 효율성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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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경
  • 2024.06.23 11:06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⑥세기를 넘어선 미스터리, 사라진 사발통문(沙鉢通文)의 기록을 찾아서

세상에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다고 하면서 참 잘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까. 조선말기 조선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였다. 민초들의 삶을 억누르는 지배자들의 수탈, 양반과 상놈을 갈랐던 신분차별, 하루하루 겨우 영위하는 삶의 끝자락, 사발통문이 희망의 불씨를 타오르게 했다. 2019년 봄 수개월에 걸쳐 방영된 모 방송국의 주말드라마 ‘녹두꽃’은 방영 초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거의 모든 TV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한 장면을 보다가 필자는 숨을 멈춰버렸다. 전봉준이 붓을 들고 4대 결의와 20명의 서명자를 쓴 이후, 자신의 이름 한자와 한글로 마감한 통문 작성 장면이다.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그동안 역사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나? 원래 ‘사발통문(沙鉢通文)’은 조선후기 농민들이 봉기할 때, 주모자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가담자들이 원둘레에 각자 이름을 적어 돌린 것이다. 통문 발견으로 1894년 고부농민군이 처음부터 계획적이고 주도적으로 농민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제 사실을 기록한 것인가 하는 원본의 진실성을 놓고 논란을 빚었다. 발견과정부터 미스터리하다. 이 자료는 1968년 12월 전라북도 정읍군 고부면 신중리에 거주하는 송준섭(宋俊燮) 집 마루 밑에 묻혀있던 족보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1972년 외솔회에서 본격 검증에 나서, 김의환 교수가 그동안 보관해 오던 송후섭(宋後燮) 씨를 만났다. 그는 “아버지(송대화: 서명자의 한사람, 1919년 사망)이 세상을 떠났을 때 물려받은 서류궤짝에 있었다”고 했다. 그가 26살이던 1936년에야 도장이 찍혀 있는 봉투안에 문서를 확인하고 '여산송씨가보' 뒷표지에 간직해 오다가 송기태가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1970년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신태인읍에 사는 송기태(당시 63세) 자택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송기태는 송두호의 증손으로 물려받아 가보로 간직해 왔던 것이라 전했다. 이렇게 전래 경위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처음에는 통문이 1894년 당시 작성된 원본이라고 알려졌다. 1974년 6월에야 학술적 검토가 이루어졌다(<나라사랑> 15집, '녹두장군 전봉준 특집호'). 김용덕은 이 문서가 진본이라고 단정하지 못하고 판정을 보류했다. 결의사항 중 ‘경사로 직향할 사’를 용인할 수 없어서였다. 1980년대 중반 정창렬은 사발통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계사 11월 일’에서 ‘각리리집강 좌하’까지(㉮부분, 서명자 20명), 이후 민심의 동향(㉯), 도인들의 선후책 토의(㉰), 결의이후 영도자를 뽑는다는 것(㉱)으로 구분하였다. ㉰의 경우 서명자 집단 내부만의 기밀사항으로 ㉮의 통문이 고부지역 전역에 유포되지 않았던 점을 의문시했다. 다만 ㉰의 결의를 수행한 세력을 금구취당과 연결시켜 거사계획이 전부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부민란의 연구(하)' <한국사연구> 49, 1985). 한편 신용하는 1차 동학농민전쟁의 단계로서 3월 무장기포를 중시하면서 통문 내용을 재검토하였다. 그는 통문 본 내용이 잘려 나갔다는 전제하에 계사년의 등장(等狀), 이듬해 갑오년 1·2월의 고부민란, 3월의 제1차 농민전쟁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통문 ㉰와 ㉱부분을 하나로 통합하여 한 장의 종이위에 기록한 것이라 하였다. 그는 당시 통문의 원본(原本)이 아니라 어떤 분이 작성한 회고록(回顧錄)의 일부라고 추정하였다(<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1993). 두 연구자는 통문 내용 중 ㉮의 앞부분과 ㉰의 결의사항이 처음부터 동일한 차원에서 결의되었다고 가정하였다. 앞으로 사발통문이 진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통문 내용과 4가지 결의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밝혀야 한다. 그런데 1900년과 1904년 2차례 일어났던 경기도 시흥 농민항쟁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때에도 사발통문이 유포되었다. 당시 정부는 관련자들을 조사하면서 누가 수모자이고 추종자인지를 구별하고자 했다. 1904년 음력 8월 5일 시흥 한천교에서 민회를 소집하자는 통문을 작성한 혐의로 기소된 민용훈은 통문으로 민란을 촉발하지 않았고 단지 군중을 모으는 것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법부의 최종 판결은 통문으로 시흥군 42개 동의 집강과 동임들이 모였고, 이를 계기로 민란이 일어났으므로 관련 인사들 모두에게 중형이 내렸다. 이 사례는 통문의 잘려진 앞부분 내용이 4대 결의와 상관 없을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원래 고부군 각리 집강에게 모임을 갖자는 통지이며, 다만 서명자들의 사인이 둥그렇게 된 것은 민회 소집 주모자를 알 수 없도록 한 조치였을 뿐이었다. 실제 전봉준은 자신이 처음에는 주모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중민 수천명으로 추대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전봉준공초> 초초문록). 1893년 12월 전봉준은 60여명의 고부 농민과 함께 전주 감사 김문현에게 폐정을 시정해 달라고 등소(等訴)운동을 벌였다. 고부 농민들은 감사에게서 거절당해 쫓겨난 상황에서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을 것이다. 따라서 1893년 11월 말 민회 개최를 위한 통문을 낸 이후 등소운동이 실패하자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가에 모여 4가지 방침을 새로 결의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보아야 고부 봉기 과정을 순차적이고 단계적인 변화상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사발통문의 일부 내용이 조작됐다는 설도 있다. 주산마을 임두영 씨는 사발통문 내용이 같지만, 크기가 지금(42×30센티미터)보다 훨씬 컸으며(70×50센티미터), 서명자의 필체가 모두 달랐고, 재질도 기름에 젖은 창호지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1947년 초 동아일보 기자에게 넘겨진 뒤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고 덧붙였다(이이화, <발굴 동학농민전쟁-인물열전> 1994). 또 2001년에는 기존 통문이 아닌 새로운 이본(異本)이 발견되었다(김용섭, <한국근대농업사연구(Ⅲ)>). 사라진 통문의 앞 부분 내용이 첨부되어 있고, 서명자가 15명이며, 뒷부분 봉기 조직으로 전봉준 등을 선출한다는 것도 추가되어 있다(<동학농민혁명난과 전봉준장군실기> 1954). 새 자료의 저자는 송재섭(宋在燮, 1889~1955)으로 송두호(宋斗浩)의 손자이자 송주성(宋柱晟) 씨의 아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본에서는 당시 쓰지 않던 ‘만천하동포’, ‘동포형제’를 사용했고, 기존 통문 내용을 그대로 적으면서도 아래아(ᄋᆞ)를 생략하고 있다. 이로써 기존 사발통문을 일부 베끼고 앞뒤를 추가하여 새로 작성한 후대의 기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발통문에 서명한 20명은 어떠한 삶을 지냈을까. 대부분 1894년 말부터 수개월 동안 전장에서 그리고 재판에서 희생되었고, 나머지는 일제하에서 숨어 지내며 불행한 삶을 살았다(최현식, <갑오동학혁명사> 1994, 3판, 37~38쪽). 전주에서 사형(1894.12.~95.1.) – 황찬오, 황채오, 김응칠, 황홍모, 김도삼 나주에서 사형(1894.12~95.1.) – 손여옥, 송두호, 송주옥, 재판 후 서울서 사형(1895.3.) – 전봉준, 최경선(20명의 서명자 중 당시 사망자) 사발통문은 오늘날 한국의 거의 모든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한 장 사진으로 수록되어 동학농민혁명 초기 민중 의식과 봉기의 계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 통문에 사용된 종이 지질이나 먹의 형태에 대한 자연과학의 재질 분석도 필요하고,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한글의 어미와 접속사 사용(예컨대 ‘ᄯᆞᄅᆞ서’)에 관한 근대국어학의 분석도 필요하다. 이제 지난 세기를 넘어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이했지만, 사발통문 문서는 아직도 여러 학문간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못한 채 ‘날 것’의 사료로 머물러 있다. 사발통문은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3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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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20 17:26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 익산 서동공원에서 왕실 생활유적 발굴되다

지난 2022년 익산에서 최초로 백제시대 실제로 사용된 대형 '저온 석축저장고'로 추정되는 생활유적이 발견돼 일반 학계 및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크게 회자된 적이 있다. 해당 유적은 '傳 서동 생가터'(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373-7번지)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중 우연히 발견된 유적으로 벼루편 뚜껑․토기․인장와 등 다양한 백제시대 유물과 더불어 2기의 저장고가 발굴된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제1호 저온고 바닥에서 재배곡물(복숭아․참외․들깨) 및 채집작물인 과일(딸기․포도․산뽕나무․다래)의 씨앗이 수습되었고 제2호 저온고에서도 재배곡물(밀․조․팥․참외)와 채집작물인 과일(포도․다래) 수습된 것이다. △1호 : 488.1(장축)×243(단축)×230.6(깊이)㎝규모/통기구 3개소, 벼루편‧대부완‧뚜껑‧전달린 토기(완), 인장기와 등 출토, 재배작물(복숭아‧참외‧들깨), 채집작물(딸기‧포도‧산뽕나무‧다래) 씨앗 수습 △2호 : 527.6(장축)×251.2(단축)×240.9(깊이)㎝규모/통기구 3개소, 대부완, 호편, 인장기와 등 출토, 재배작물(밀‧조‧팥‧참외), 채집작물(포도‧다래) 씨앗 수습 더불어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 저장고는 왕도였던 공주 공산성과 부여 관북리유적 등 궁궐로 추정되는 유적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이번에 발견된 저온저장고도 왕실과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높아 백제 왕실 문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졌고 특히 목곽이 아닌 석축저장고가 처음으로 익산에서 발견되어 유적의 희소성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특히 2기의 석축저장고는 동쪽 장벽 상부에 3조의 통기구가 있는데 이는 쪼갠 돌인 판석과 길게 다듬은 장대석을 사용하여 50㎝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밖에서 안으로 19도~ 23도 기울여 동쪽으로 돌출하게 조성함에 따라 저장고 안 위쪽의 더운 공기를 자연스럽게 배출하고 저층 내부온도를 차갑게 유지하는 공법이 확인되는 등 타 지역의 저장고와 확연한 차이점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사료 됐다. 또 지난해 이 발굴유적에서 ‘직구단경호’와 뚜껑 덮인 토기가 이미 발굴된 굴립주 건물지 초입부 구덩이(길이 104cm, 너비 91cm, 깊이 34cm)에서 출토되었는데, 토기 내부에서 발견된 ‘오행대포(五行大布)’ 5점이 ‘+’자 형태로 놓여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땅의 악한 기운을 누르고 선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묻은 지진구(地鎭具)로 추정된다. 직구단경호(直口短頸壺)는 곧은 입에 목이 짧은 항아리를 말하며, 굴립주건물(掘立柱建物)은 땅 위나 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 만든 건물로, 지표면 위에 생활면을 설치한 건물 모두를 총칭한다. 또 지진구(地鎭具)는 국가의 중요한 건물 등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빌기 위해 매납하는 물건이나 제기(祭器)를 뜻한다. 아울러 오행대포(五行大布)는 574년 북주 무제가 발행한 화폐로 577년 백제 위덕왕에게 희사한 예물로 삼국사기 백제본기 5 위덕왕 24년조에 기록이 있다. 결국 굴립주건물지는 북주의 위세품(지진구)을 기둥에 매납할 만큼 중요한 건물지였으며 무엇인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건립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더불어 지진구안에서 출토된 '오행대포'전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바가 없는 중국 동전으로 백제가 북주와 대외 교류를 했다는 문헌기록을 증거하는 자료이다. 실제 '【周書】 券6 武帝宇文邕 : "(建德6년, 577) 十一月庚午,百濟遣使獻方物"→ 십일월 경오일에 백제사신에게 방물을 헌사하다는 내용이 있고 【周書】 券7 宣帝 : "(宣政元年, 578) 冬十月戊子,百濟遣使獻方物" → 겨울 10월 무자일에 백제 사신에게 방물을 헌사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발굴현장과 관련하여 삼국시대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어떠한 기록도 없으나, 야사인『삼국유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무왕 어머니의 기거를 위해 '마룡지에 축실(집을 짓다)' 유적이나, 무왕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오금사' 그리고 무왕의 생가터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는 '용골'등의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발굴성과와 설화의 내용이 너무 상이하여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발굴성과로 나타난 건물지와 부장유물 또 석축저온저장고의 유적을 반추해볼 때 ‘전 서동생가터’유적은 추가적 연구가 필요해 보이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밀발굴조사 결과를 지속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영일 백제문화센터 파견 전북특별자치도 연구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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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9 14:34

[세계로 향하는 동학농민혁명, 국내 정서부터 한 걸음] ③고창 무장기포지 - 동학농민혁명의 烽화를 밝히다

'포악한 백성이 나라를 어지럽힌 반란을 일으킨 것' 과거 동학농민혁명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동학 '민란(民亂)'으로 불렸고, 역사 교과서에서도 '동학란'으로 지칭됐다. 1894년 갑오년 이래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됐으며 이 시기 교육과정을 이수한 세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대중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은 여기에 멈춰 서있다. 나아진 인식마저도 '농민들이 탐관오리에 저항해 공주까지 진출했다가 패전하고 해산했다'는 정도다. "시골에 저택이나 짓고 오직 저 혼자서 살길만 도모하면서 벼슬자리만 도적질하니 어찌 올바른 도리이겠는가."-동학농민군 '무장 포고문' 中 1894년 3월 21일, 고창의 무장기포지에서 일어난 봉기는 조선 후기 역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사건이었다. 억압받는 농민들이 일제히 봉기를 일으켜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이곳은 지금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적지로 남아있다. 무장기포지는 넓은 논과 낮은 언덕으로 이뤄져 농민들이 모여 봉기를 논의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특히 전라도의 중심지에 있어 혁명의 영향력을 빠르게 확산하기에도 유리했다. 무장기포지는 단순히 고창 지역의 역사 유적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한 획을 그은 상징적인 장소다. 따라서 무장기포지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전국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에 비해 혁명의 현장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보존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무장기포지를 비롯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장기포지는 현재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창 무장기포지 현장 입구에 들어서니 안내판과 그 옆,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놓여 있었다. 과거 이곳이 혁명군의 기포지였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들이다. 그 외 혁명의 잔재는 안내 없이는 알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혁명의 가치가 안내판 안에 갇혀있던 셈이다. 최근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기점으로 무장기포지의 역사적 가치를 두고 지역 주민의 움직임이 활발해졌지만 갖은 노력에도 무장기포지의 가치를 되살리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윤식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전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민초들의 열망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아직 혁명군 세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어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며 "혁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2차 동학농민혁명의 경우 외세에 저항한 만큼 정부와 지자체, 지역 주민, 민간 단체 등이 함께 무장기포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유적지의 가치 향상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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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준혁
  • 2024.06.17 18:28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실크로드의 미스터리 보물 (1) 사르마티안 황금 왕관

한반도와 그리스는 직선거리로 약 8,150km 떨어져 있다. 두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위치해 있어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한국은 실크로드 3대 교역로인 초원로, 오아시스로, 해로를 통해 다양한 문물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초원로(Steppe Route)를 통해서는 유목민들의 문화가 전해졌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스키토-시베리아(Schytho-Siberia) 계통의 동물 문양, 신수(神樹) 숭배 신앙, 샤머니즘 의례나 축제에 사용된 북과 청동방울, 말 관련 유물들은 초원 유목민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준다. 오아시스로(Oasis Route)는 초원로의 남쪽, 타클라마칸 사막의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교역로다. 이 길을 따라 페르시아와 그레코-로만형(Greco-Roman Style) 문화가 한반도에 전해졌다. 한국에서 발견된 사산 왕조(Sasanian Dynasty) 문양, 로만 글라스, 금속 장신구 등은 오아시스로를 통한 문화 교류를 시사한다. 해로(Maritime Route)는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교역로다. 해로를 통해서는 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페르시아 등지의 문물이 전해졌다. 이번 연재부터는 필자가 직접 답사해 촬영한 실크로드 3대 교역로의 수많은 보물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한반도 금관 특히 신라 수목형(樹木型) 금관과 유사한 사르마티안(Sarmatian) 황금 왕관에 대해 알아 본다. △ 사르마티안(Sarmatian) 왕관이란? 이 황금 왕관은 1864년 러시아 로스토프(Rostov)주 노보체르카스크(Novocherkassk) 변두리에서 수도관 건설 작업 중 우연히 발견된 호흐라치(Khokhlach) 쿠르간의 출토품이다. 이 고분은 크게 도굴되었음에도 다행히 많은 유물이 남아 있었고, 이 왕관은 당시 고분 주변 은신처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회수하였다. 이 왕관은 왕관 정면에 새겨진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흉상이 유난히 독특했지만, 훨씬 세계적인 이목을 끈 것은 아프가니스탄 금관과 신라 금관의 동일 계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즉 세 금관 모두 수목형 왕관으로 성수(聖樹), 새와 사슴 숭배 신앙 등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한편 특이하게도 왕관의 소유자가 앉았던 것으로 보이는 나무 의자 조각과 장식물도 출토되었다. 이 왕관의 제작 연대는 BC 1세기에서 AD 1세기경이며, 사르마티안 부족의 통치자로 여제사장을 겸했던 여성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어 ‘사르마티안(Sarmatian) 왕관(Diadem)’이라 불린다. △ 사르마티안족은 누구인가? 사르마티안족은 BC 5세기부터 AD 4세기까지 유라시아에서 활약했던 고대 이란계 민족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사르마티안인은 BC 6세기 서쪽으로 이주했고 스키타이인들과 대립했다. 사르마티안인은 불의 신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스키타이인과 달랐고, 서기 1세기경 다뉴브(Danube)강과 볼가(Volga)강 지역 및 흑해와 카스피해(Caspian Sea) 연안에서 활약했다. AD 1세기 게르만족과 연합해 로마 제국을 잠식하기도 했으나 4세기 훈족(Huns)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알란인(Alans)은 사르마티안계 유목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세 초기까지 북 코카서스(Caucasus)에서 살아 남았다. △ 왕관의 세부 장식과 그 의미 황금 왕관은 쭉 펼치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다. 금관의 파손된 부분을 복원하여 관찰하면, 관대(冠帶) 위 중앙의 성수를 중심으로 두 마리의 사슴이 마주 보는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옆에서 염소와 사슴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동물이 성수(聖樹)를 향해 나아가는 제의적인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즉 가운데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의 신성한 동물 세 마리가 나란히 성수를 향해 행진하는 듯하다. 그리고 신성한 동물 뒤 좌우측 맨 가장자리에는 새 두 마리씩 총 네 마리가 성수를 향해 앉아 있다. 새 부리에는 보요용 고리가 있는데 성수에도 이러한 고리가 달려 있다. 한편 관대의 정면 중앙에는 자수정으로 조각한 여성의 흉상이 있어 이 왕관이 사르마티안 귀족 여성의 소유였음을 나타낸다. 흉상의 주인공은 사랑과 다산의 여신 아프로디테인데 고대 그리스나 로마 여성들이 입던 소매가 없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웃옷인 튜닉(tunic)을 입고 있고, 여신의 머리 위에는 횡타원형의 석류석을 감입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여인의 고전적인 머리 모양이다. 여인의 머리 카락은 황금 왕관 뒤에 숨겨져 있고, 두 개의 땋은 머리가 어깨 너머로 떨어져 있다. 이는 장인이 그리스 보석 세공에 능숙한 전문가였음을 나타낸다. 또 흉상 주위 좌우에도 석류석이 상감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독수리 형상의 맹금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테두리 전체는 훼손된 곳이 많지만 전체가 황금 구슬과 진주 그리고 작은 명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테두리 하단은 장미 꽃잎 무늬가 있는 펜던트가 여럿 매달려 있고, 왕관 소유자가 움직일 때마다 멜로디한 소리가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 왕관 외 다른 고분 출토품 왕관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포도 나무 덩굴에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작은 큐피드 상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또 고분에서 왕관 외에 늑대를 연상시키는 상상의 동물이 독수리 머리 그리핀을 공격하는 황금 목걸이, 상상의 동물이 상하 2열을 이룬 황금 팔찌, 제의 때 사용되었을 향료와 독성 물질을 담는 황금 향통(香桶)과 동물 모양의 황금 컵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무기나 말 장비 같은 남성용 부장품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묘주는 여성임이 확실하다. △ 왕관의 미스터리: 월지인이 이주해 만들었을까? 이 왕관은 제례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다산 숭배와도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또 아프로디테 흉상의 정교한 제작 기법으로 보아 이 왕관을 제작한 장인은 분명히 헬레니즘 특히 그리스 보석 세공 기술과 사르마티안 유목민의 샤마니즘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독특한 작품은 아마도 그리스 보석 세공사가 지위가 매우 높은 사르마티안 귀족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 고분 출토품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인 ‘다색 상감 스타일(polychrome-inlay style)’은 왕관과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서 AD 1세기경으로 유사한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Tillya Tepe)의 황금 유물에서도 대거 발견되었다. 이는 사르마티안족과 알란인(Alans) 그리고 중앙아시아 월지인(月氏人)의 연관성(이주)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킨다. 황금 유물의 다색 상감 장식에 대한 고찰은 사르마티안-아프가니스탄-한반도 금관으로 이어지는 수목(樹木)형 금관의 전파 루트와 함께 고대 한반도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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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7 15:13

[세계 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⑤오횡묵 <고성부총쇄록> + 이헌영 <금번집략>

1894년 조선사회를 생생히 기록한 오횡묵의 <고성부총쇄록> △1900년대 말 사회상의 기록자 오횡묵 일기 때문에 최근 학계의 조명을 크게 받는 인물이 오횡묵(吳宖默 : 1834~1906)이다. 강원 경상 전라 충청 여러 도의 지방관으로 갖가지 일들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가 주목된 것이다. 고성부사로 재임할 때 쓴 <고성부총쇄록(固城府叢瑣錄)>은 갑오년 기록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들어갔다. 총쇄록은 “소소하고 자잘한 사실들의 기록”이란 뜻이지만 그것이 지금에는 이만저만한 보물이 아니다. 해당 시∙군에선 번역본을 내고, 그 기록을 활용해 문화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전문 연구도 갈수록 성과가 대단하다. 강원도 <정선총쇄록>은 한 세기 전의 행로를 따라 아리랑길의 복원 사업을 하고 있다. 경상도 <함안총쇄록>은 향내 세력 연구는 물론 지방관 업무와 작성 문서를 검토한 연구가 나왔다. 초대 여수군수로서 기록한 <여수총쇄록>은 오늘날 지역문화의 설계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지도총쇄록>은 호적이나 전답 등 섬 생활뿐 아니라 배를 타고 한강과 강화를 거쳐 서해로 내려오는 노정이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 번역본이 나온 <익산총쇄록>은 1900년대 초의 모습을 전해주는 1차 사료가 된다. 지금은 경기도로 편입된 <평택총쇄록>은 행정의 근대 전환을 보여주는 사료가 된다. △지방관으로 성실했던 오횡묵 오횡묵이 지방관으로서 성실했던 모습은 총쇄록에서 거듭 나온다. 강원감사는 포상을 요청하는 장계를 올렸고, 경상감사는 향내 안정의 공을 들어 함안군수 연임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수와 지도군 등 신설한 군의 첫 군수 선정은 신뢰에서 비롯되었다. 정선 자인 함안의 백성들은 스스로 만인산(萬人傘)을 만들어 바치기도 했다. 총쇄록에는 수많은 시가 수록되었다. 오횡묵은 시 짓기를 즐겼다. 그는 중인들의 한시 모임인 칠송정시사(七松亭詩社)에 출입했다. 인왕산 아래 정자에 위항시인들이 모였고, 백운동에 집이 있는 그는 시사의 중심이었다. 친구 시인들은 임지로 찾아와 서울 소식을 전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총쇄록 기록에 그는 언제든 당당했다. 오횡묵의 배경은 국왕 고종과 민비였다. 무과 급제 후 궁궐 수문장을 지낸 그는 1884년 7월에 왕명을 직접 받고 공상소(工桑所)를 설치해서 감동(監董)이 되었다. 공상소는 궁궐에 필요한 각종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던 기관으로 경무대 즉 현 청와대에서 창의문 일대까지 넓은 면적을 보유했다. 고종과 민비가 휴식을 위해 왕림할 때마다 감동 오횡묵이 직접 모셨다. 그러니 지존과 이런 인연으로 인해 여느 관리와는 격이 달랐다. 더구나 지방관 재임 중에도 공상소 임무를 계속 관계하였다. 재임 중 상경할 때도 공상소를 찾아온 민비를 만나고 있었다. 그런 위상을 가진 그는 임지의 향리나 백성에게 당당했고, 감사나 전운사에게도 과하게 저자세일 필요가 없었다. △사천 민란의 조사관 임무 오횡묵은 1893년 2월부터 1894년 9월까지 고성부사로 재임했다. 당시 향촌 실정에 정통했던 그는 면리 행정의 단속과 조세 수취상 폐단의 금지, 정부 시책의 전달 등 지방관 업무에 충실했다. 하지만 1894년 초 경상도 남부도 사정은 전라도와 다름없이 심각하였다. 정월에는 사천 난민이 읍내 민가 10여 채를 불사르고 향리를 징치하는 등 소란이 일어났다. 오횡묵은 조사관으로 파견되어 이를 수습하였다. 4월에는 김해 백성 수천 명이 봉기하여 부사를 쫓아내고 향리에게 분풀이를 해서 창원부사가 조사관으로 파견되었다. △총쇄록의 갑오년 기록 갑오년 동학 관련 기사는 4월 7일자부터 나온다. 감영이 경계하는 공문을 전재하였다. 11일에는 전라 감영의 토벌군이 비류를 잡아들이면 도망 무리가 경상도에 올 거라는 말이 있었다. 27일자에는 전라도 여러 지역 봉기 상황과 황토현전투의 결과를 실은 경상 병영의 정보를 기록했다. 삼도 수군을 지휘하는 통영에서도 연이어 고부 염탐기와 홍계훈의 경군 패배 소식, 전라 감영의 상황을 알리는 정보를 보내왔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였다. 동학농민군의 영남 출몰을 우려하는 경상감영이 여러 조처가 시급해 보인다. 그 핵심 내용은 오가작통의 강화책이었다. 총쇄록의 갑오년 사료 가치는 여러 전문을 실은 기록성에 있다. 서울 정부 소식, 경상감영 및 병영과 통영의 조치, 그리고 전라감영에서 보내온 공문이 상세하다. 청일 군대의 도성 안과 밖 대치, 일본군의 궁궐 침입와 청일전쟁의 개전도 순서대로 나오고, 교정청의 개혁방안이나 갑오개혁의 내용도 그대로 기록하였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의 가치 전라도의 폐정개혁 주장은 경상도 남부에 영향을 미쳐왔다. “동학 소동이 한번 나오자 민란이 이어서 일어나니” “온 도내를 둘러봐도 한 구석도 평안하고 깨끗한 지역이 없었다.”고 하였다. 고성도 다름없었다. 농민들이 “폐단을 개혁해서 백성을 편케 한다는 명분으로 깃발을 세우고” 북삼면 배둔리에 집결하였다. 부사 오횡묵은 이들을 피하지 않고 만나서 설득하며 28개조 개선책을 마련하였다. 누적된 폐단이 집단행동을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이 사건 직후 동학도가 찾아왔다. 하동 사는 최학봉인데 6월 그믐부터 남원 전봉준 접소의 통문을 가지고 각 군현을 살피고 있다고 하였다. 남원 접소가 믿기지 않지만 전라도 상황을 이용해서 경상도 군현에서 활동하는 동학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신임 고성부사가 임명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와중인 9월에 임지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며 기록한 내용은 생생하다. 일본군의 병참부 전신소 설치와 대규모 군대가 북상하는 실상이 나온다. 그와 함께 경상도 남단에서 충청도를 지나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동학도들이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는 실상을 전하고 있다. 갑오년 9월은 전국이 동학농민군 세상이었다는 증언이었다. /신영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이헌영(李永)의 <금번집략(錦藩集略)> <금번집략(錦藩集略)>은 1894년 동학농민군 봉기 당시 충청도 관찰사 이헌영이 작성한 것으로 '일록(日錄)'∙'별계(別啓)'∙'별보(別報)'∙'별감(別甘)'∙'시구(詩句)'의 5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헌영(李永 : 1837~1907)은 1870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홍문관수찬이 되면서부터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개항 이후 그는 1881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가서 세관 관계 기관들을 시찰하였고 이후 통리기무아문의 통상사당상이 되었다. 1883년에는 부산항감리를, 1886년에는 참의내무부사이자 일본주차대신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1890년 이후에는 이조참판∙협판교섭통상사무∙성균관대사성∙공조참판∙병조참판∙경상도관찰사∙한성부좌윤∙형조참판∙한성부판윤∙공조판서∙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94년 4월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될 무렵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되었고 이후 1895년부터 1904년 사이 궁내부특진관∙내부대신∙평안남도 관찰사∙중추원1등의관∙의정부참정∙장례원경∙시종원경∙경상북도 관찰사∙경효전제조 등을 고위관료를 하였다. <금번집략> 중 '일록(日錄)'∙'별계(別啓)'∙'별감(別甘)'은 청일전쟁 초기 충청도 지역의 전투상황과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에 대한 정부와 지방관의 대응에 관한 것이다. 이중 '일록(日錄)'은 1894년 4월 25일 이헌영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날부터 신임 감사 박제순(朴齊純)으로 교체되는 8월 29일까지 쓴 일기 기록이다.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출동한 아산 주둔 청국군의 동향과 인접한 여러 읍에서 허다한 접대비용 지출 등을 수록하였다. 6월의 기록은 청국 병사의 접대와 청국군 동향, 직산과 성환 전투에서 패한 청국군이 연기 지역으로 떠나는 상황을 적고 있다. 7월과 8월은 이인역을 시작으로 서천∙청양∙한산∙연기∙공주 지역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 동향과 이에 대한 지역의 대응책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지역 농민군의 제2차 봉기와 관군∙유회군∙일본군의 진압에 대해서는 홍주 영장 홍건(洪健)의 <홍양기사(洪陽紀事)>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별계(別啓)'는 같은 해 6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의 기록으로 청국군∙일본군∙동학농민군의 상황이 섞여 있다. 풍도 해전과 성환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여 내포 일대로 흩어진 청국 병사들이 들어와 마을을 약탈하고 놀란 주민들이 흩어지는 등 막심한 피해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 특히 서산∙해미∙홍주∙덕산∙예산 등지의 약탈이 가장 심하였다고 한다. 본진이 있던 아산에서 청국군이 물러나고 일본군이 백석포를 거쳐 들어오게 되는데, 이곳에서 일본군은 객사와 산비탈 등에 주둔하는 한편 민가와 관청 건물에 들어가 남아있는 전곡과 집기 등을 빼앗고 사직단과 관청의 장부를 불태워지는 현감의 상황 보고를 수록하고 있다. 이후 매일 1,000~1,200명의 일본 병사들이 충주를 지나갔고 그들의 요구대로 수천 명의 인부를 마련해주었다 한다. 또한 임천과 공주∙청양∙보은∙서천∙한산∙연산 등지의 동학농민군 활동과 관련한 보고서를 수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총칼을 들고 말을 탄 ‘동학배’가 작청에 난입하여 협박하고 수백의 무리를 이루어 금전과 재물을 약탈하거나 수성군의 무기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산에 도착한 무리 57명은 전라도 부안의 동학인으로 재물과 무기∙마필 등을 빼앗는 등 폐단이 컸다고 한다. '별감(別甘)'은 이헌영이 충청도 각 지역 지방관리와 유회소(儒會所), 민보군 개인 등에 보낸 전령과 효유문을 모은 것이다. 이인민회소(利仁民會所)에 보낸 전령에서는 경솔하게 무리를 모으면 나라는 더욱 위험하게 되므로 본업에 물러가 종사하고 조정과 방백의 명령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공주∙홍산∙은진의 유회소 및 진천 민회소, 부여 유생 천기일(千基一), 영동 집강 손인택(孫仁澤) 등에게도 유사한 전령을 내렸다. 반면 관내에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시행을 지시하였다. 내용은 각각 해당 동내에서 위력이 있고 근실한 사람을 골라 동수(洞首)로 정하고, 사람마다 이름을 적어서 오가작통하여 1통마다 통수(統首)를 두고, 주민을 조사하고 타일러서 밤낮으로 살피고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상한 자는 적발하고 단속을 배가하여 방법을 마련하고 따로 법률을 만들어 실효를 거둘 것을 주문하였다. 이헌영은 평양으로 퇴각 시 천안에 맡겨둔 직예제독 예지차오(葉志超)의 군자금도 보관 후 돌려주게 했는데, 원래의 수량과 일일이 대조하여 살피고 착실하게 맡아두었다가 나중에 찾아갈 때를 기다리도록 지시하였다. 또한 공주∙전의∙목천∙온양의 지방관에게는 청국군 군수물자 운반을 위한 우마를 각각 나누어 정하도록 지시하면서 명령을 어길 시에는 군율로 처리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연기∙청주∙청안∙음성∙충주 등 각 지역에는 읍의 경계에서 기다리고 각별히 호행토록 하였다. 직산현감에게는 성환 전투에서 전사한 청국군과 일본군 모두를 예장(禮葬)하라고 당부하면서 각기 무덤 옆에 단을 설치하고 표를 세워 살필 수 있는 근거로 삼고 그 전말을 자세히 보고토록 지시했다. <금번집략>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재곤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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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3 15:11

[참여&공감 2024 시민기자가 뛴다]‘귀엽기만 한 게 아니에요’ 동물매개치료가 보여준 ‘교감’의 힘

나른한 오후 시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동네 복지관으로 모여 7살짜리 포메라니안, 아뽀를 둘러싸 앉는다. 강아지 쓰다듬기, 함께 산책하기, 마사지해주기 등 그간 바쁜 삶을 사느라 평소 경험할 수 없던 동물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동물의 부드러운 촉감, 초롱초롱한 눈빛, 사랑스러운 움직임에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환한 꽃이 핀다. 함께 웃음꽃을 피우다 보니 집단 내에서 자연스레 대화도 이어지고,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지기도 한다. 또, 감정이 있는 동물과 함께 해나가는 활동에 평소보다 많은 집중력을 쏟는다. 이곳은 치매 증상 어르신들을 위한 치매안심센터에서 진행되는 ‘동물매개치료’ 현장이다. 국내 최초의 대학원 과정인 원광대학교의 ‘동물매개심리치료학과’를 졸업해 동물을 매개로 한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는 장윤석 씨(29). 벌써 7년차 동물매개심리치료사이다. 그의 반려견 ‘아뽀’는 가정에서는 애교도 많은 사랑스러운 여느 반려견과 다를 바 없지만, 윤석 씨와 함께 상담 현장에 나가면 여러 검증 절차를 거쳐 자격을 부여받은 의젓한 ‘치료견’이 된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여러 돌발 상황에서 침착함을 보여야 ‘치료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가 된 이들은 치매,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나 장애나 질병, 혹은 다양한 환경의 대상자들을 위한 동물 치유 프로그램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윤석 씨는 아뽀의 역할은 일당백이라고 확신한다. “아무래도 살아 있는 생명체를 매개로 내담자와 만나며 직접적인 감정 교류가 일어나다 보니 피드백과 반응 또한 즉각적입니다. 그래서 내담자들과 라포 형성이 정말 바르게 일어난다고 느낍니다.” 윤석 씨는 다양한 내담자와 함께 동물매개치료를 진행하며 동물의 존재가 사람에게 치유를 줄 수 있다는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 치료견 아뽀와 함께 대상자들을 만나다 보면, 부정적이던 사고가 긍정적으로 변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더욱 풍성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을 목격하는 등,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7년간 수많은 대상자를 만나며 동물 교감의 힘을 알려온 윤석 씨.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는 익산시 보건소에서 만난 한 남성 노인 한 분의 사연을 소개했다. ‘인생에 혼자 남겨진 것 같다며’ 높은 우울감을 호소하며 타인에 대한 경계가 높던 어르신은 치료견 ‘아뽀’와 교감할수록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적고, 누군가 말을 걸면 방어태세를 갖출 정도로 경계심이 심하던 어르신인데 아뽀와 친해진 후에는 다른 이에게 아뽀를 먼저 소개하는 등 삶에 대한 적극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물매개치료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관찰돼 뿌듯했고, 프로그램이 끝나 이별을 맞았을 때, 진심이 담긴 표현을 전달받을 때 큰 감동”이라고 윤석 씨는 말한다. △동물매개치료 ‘긍정 효과’.. 과학적으로 입증돼 동물과의 교감으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가 혹여 기분 탓은 아닐까? 인간과 동물의 유대 경험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인간의 생애주기별 효과를 살펴본 연구들에 의하면, 동물과의 교감은 발달이 이루어지는 단계의 아동과 청소년의 애착 형성에 도움을 준다. 이밖에도 자기존중감과 자신감 향상, 인지 능력과 학습력 향상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년기에는 동물과의 상호작용이 스트레스와 혈압을 낮추는 등, 심혈관계 증상을 완화한다는 점이 발견되었고, 노인의 우울감, 불안 등의 부정적 감정이 줄어드는 것과 더불어 전반적인 신체 건강은 증진된다는 점이 보고된 바 있다. 특히 이러한 이점으로 인해 미국심장협회는 반려동물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려동물과의 교감이 고혈압, 고지혈증, 신체 활동, 비만 등에 개선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를 가진 PTSD 환자, 우울증, 불면증 등을 앓고 있는 환자 등 여러 정신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특정한 질병을 앓거나 특정한 환경에 놓인 대상자들은 동물과 상호작용하며 교감이 이루어졌을 때, 정신적 증상이 완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과거 이런 연구 결과 대다수가 대상자의 인터뷰나 설문으로 인해 입증되었다면, 최근에는 연구 대상자의 심장박동수를 모니터 하거나 뇌파, 체내 호르몬 변화를 객관적으로 데이터화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 근거로도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일찌감치 연구해 온 서양에서는 동물매개치료를 우리나라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노인, 환자가 많은 대형 병원이나 심리치료센터에 치료견이 상주하고 있는 모습을 제법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동물매개치료, 앞으로의 전망은? 국내에 동물매개치료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인간과 동물의 유대에 따른 긍정 영향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동물매개치료’가 미술이나 음악 등 세분화된 다른 분야의 심리치료에 비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인 것이 현실이다.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이 지자체 내 복지관과 보건소, 산하 센터에서 간헐적으로 마련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연구자가 임상 실험을 하기 위해 제공되는 프로그램인 경우가 많다. ‘동물매개치료’ 개념에 국내에 유입된 지 어언 10년이 넘었지만 ‘치료동물’에 대한 정의나 법규가 여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탓에, 동물매개치료를 진행할 장소 선정부터 ‘동물’이 투입돼 위험할 것이란 편견까지. 아직까지 소모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생명’을 매개로 치유를 받을 수 있고 동물을 매개로 상담사와 내담자가 빠른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연구와 관심은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김옥진 원광대학교 동물보건학과 교수는 “인간과 동물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서로 교감의 감정이 싹틀 수 있다” 고 말한다. 이런 감정은 “사람에게 위안과 위로를 전하며 심리적 이점을 제공해 동물과 보호자 간의 단순한 정을 떠나 사람의 심리적, 정신적 치유에도 기여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더 커진다“는 것이라며 인간과 동물의 교감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 국내 동물매개치료는 특수학교의 특수아동과 복지관과 보건소 등 노인들의 스트레스나 우울감 감소 등이 목적인 치유 프로그램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향후 동물매개치료는 ‘보완대체요법’의 하나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의 적용이 기대된다. 최근 활성화 되고 있는 치유농업에서도 개 외의 동물과 곤충을 소재로 한 치유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동물매개치료 분야 확대가 전망된다. 이미 동물 교감의 긍정 효과는 별도의 동물매개치료 프로그램을 거쳐야만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사람이라면 흔히 일상에서 체감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동물에 대한 애정이 컸던 윤석 씨는 막연히 ‘동물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왔다고 한다. 운명처럼 ‘동물매개치료학’을 만나 동물매개치료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치료견 ‘아뽀’를 통해 진심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가장 보람차다는 윤석 씨는 현재는 익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동물교감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들에게 동물 교감을 통한 행복을 전파하고 있다. 목서윤 전주 MBC 아나운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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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12 15:45

[세계로 향하는 동학농민혁명, 국내 정서부터 한 걸음] ②정읍 고부관아터-"남은 건 학교 한 켠에 돌덩이 뿐"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趙秉甲)을 효수하라." 1894년 1월 10일,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끄는 1000여 명의 농민군이 전라 고부(현 정읍) 관아로 향했다. 그들의 목표는 탐관오리 고부 군수 조병갑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당시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은 '만석보'를 이용해 수탈을 일삼는 조병갑의 폭정에 저항하다 곤장형에 처해 사망했고, 이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1893년 11월, 전봉준과 20여 명의 농민 지도자들이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의 집에 모였다.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탐욕스러운 아전을 징벌하기 위해 혁명을 모의하는 자리였다. 이때 작성된 것이 바로 '사발통문'이다. 사발통문은 사건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이름을 적어 넣은 통문이다. 각지에서 모인 농민군 대오를 정비한 지도자들은 대나무로 만든 죽창을 앞세우고 고부관아로 향했다. 1894년 1월이었다. 이들은 아전들을 끌어내 처벌하고 억울하게 갇힌 죄수들을 풀어줬으며 부당하게 거두어들인 양곡을 거둬 농민들에게 나눠줬다. 농민들은 수탈의 상징인 '만석보'도 허물어버렸다. 혁명의 시작을 알린 사발통문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3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지난달 23일 사발통문의 배경이 됐던 고부관아터를 찾았다. 혁명 당시 고부 군수 조병갑이 지내던 고부관아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부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초등학교(고부초등학교)가 세워졌다. 오늘날 이곳이 고부관아의 터임을 알려주는 것은 학교 입구 화단 위에 놓인 기념패와 고지도가 전부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역사는 왜곡되고 지워졌다. 고부관아 역시 일제에 의해 모두 철거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의 혁명을 향한 첫 발자국이 외세에 의해 의도적으로 지워진 셈이다. 이후 고부관아터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는 묻히고 말았다. 고부관아터의 역사적 장소성을 살리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있다. 고부관아복원추진위원회(위원장 김철모)다. "고부관아는 동학농민혁명의 봉화를 올린 역사적인 장소"라고 강조한 김철모 위원장은 "혁명의 정신을 후세에 온전히 알리기 위해선 이 자리에 고부관아터를 복원하거나 혁명의 시작을 기념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부관아터 복원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고부관아터 복원을 위해선 터 위에 자리 잡은 고부초등학교의 이전이 불가피하지만 고부초등학교 동문들과 일부 주민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부관아터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문화유산임은 틀림없지만 1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고부초등학교의 역사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혁명의 가치와 학교의 역사가 저울 위에 놓인 상황에서 역사 유적을 복원함과 동시에 학교의 역사를 보존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읍시 동학문화재과 담당자는 "과거 고부관아터 복원 사업은 여러 차례 시도됐지만 동문과 일부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고부관아터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통해 주민 간 합의가 원활히 이뤄졌다. 이번 복원사업은 전보다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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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준혁
  • 2024.06.10 17:39

[팔도 건축기행] 충남 아산 공세리 성당

충남 아산 인주면에 위치한 공세리 성당은 도 지정문화재 144호로 1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아홉 번째, 대전교구에서는 첫 번째로 설립됐다. 사계절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성당은 신도뿐만이 아니라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은 명소로 주변에는 350년이 넘는 국가보호수 4그루와 그에 버금가는 고목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며 '미남이시네요', '태극기 휘날리며', '아이리스2' 등 지금까지 약 70여 편이 촬영됐다. △공세리 성당의 시작 공세리 성당은 18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공세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한 에밀 피에르 드비즈 신부(Emile Pierre Devise, 1871-1933)가 1897년 다시 공세지로 부임해왔을 때 성당 건립을 위해 대지를 매입한 사실을 '구한국외교문서'의 기록을 통해 확인됐다. 드비즈 신부와 프랑스 공사관의 노력을 통해 성당 부지의 소유권을 조선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성당 건립을 시작, 1899년 성당과 사제관, 사랑채를 완공해 합덕 본당의 퀴트리에 신부가 참석한 가운데 낙성식을 개최했다. 준공된 성당은 '한옥 성당'으로 성당으로서의 집회 기능을 충족하면서 우리나라 토착 문화를 그대로 전승했다. 사제관과 연결된 'ㅁ'자 평면형으로 흙벽과 기와지붕, 마룻바닥 외관 등 한옥 목조건물 모습으로 알려졌다. 드비즈 신부는 이후 기존 본당이 증가한 신자를 수용하기에 협소해지자 새롭게 서양식 성당을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해 1922년 10월 8일 충청도 내 최초의 서양식 건물을 완공했다. △에밀 드비즈 신부 드비즈 신부의 세례명은 에밀리오, 한국 이름은 성일론이다. 1871년 프랑스 남부 출신으로 1890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 1894년 신품을 받아 사제가 돼 조선 선교의 사명을 받아 일본을 거쳐 같은 해 10월 인천항구를 통해 입국했다. 그는 공세리 초대, 3대 주임신부로서 1930년까지 총 35년간 재직하다 1932년 병이 깊어져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1933년 고향에서 사망했다. 건축, 예술, 의술에 관심을 가졌던 신부는 '이명래 고약'으로 발전한 '성일론 고약'을 만들어 종기로 고생하는 주민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드비즈 신부가 지은 공세리 성당은 이후 합덕성당(1929), 예산성당(1934), 공주 중동성당(1936) 등 다른 성당의 건축 모델이 됐다. 신부를 추모하기 위해 공세리성당박물관에는 프랑스에 있는 그의 묘지석을 재현해 놓았다. 또 신부의 손자가 기증한 금장(金裝) '드비즈 서간집'과 묘에서 직접 가져온 흙을 전시해 추모하고 있다. △천주교 순교 성지 한국 천주교회는 신유, 기해, 병오, 병인 등 4대 박해 동안 만여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공세리 성당은 이 중 32위의 순교자 현양비와 현양탑이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이자 솔뫼성지까지 잇는 천주교 순례길의 시작 구간으로 의미가 크다. 32위 순교자에는 신유박해 때 아산 최초로 순교한 하 발바라가 있으며 병인박해 때 걸매리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박의서(사바), 박원서(마르코), 박익서(세례명 미상)를 비롯해 부부 순교자인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삼 부자(父子)인 이 요한,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 등이 포함됐다. 하 발바라를 제외한 순교자 대부분은 서울, 수원, 공주 등으로 끌려가 고문, 옥사, 참형으로 순교한다. 하 발바라는 1825년 전교하다 체포돼 해미 감영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심문과 고문을 받고 풀려났지만 1835년 고문 후유증으로 아산에서 숨을 거둬 첫 순교자라 한다. △공세리 성당의 모습과 변천사 공세리 성당은 1922년 준공 당시 고딕 형식으로 트란셉트(세로로 길쭉한 구조인 성당에서 예배를 진행하기 위해 제단 앞을 가로로 길게 만든 공간)가 없는 긴 凸자형의 평면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3랑식 장방형 성당은 종탑부, 신자석, 제단부, 제의실로 구성됐다. 1971년 증축 과정에서 트란셉트 부분을 추가해 T자형 평면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제단은 배면부로 밀려나 트란셉트를 둔 대규모 평면으로 확장되고 회중석(성당 내부에서 성당 정면과 제단 사이에 있는 공간)은 총 6칸으로 확장, 내부 기둥까지 철거해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는 첨두 아치와 외벽을 지탱하는 반 아치형 석조구조물(플라잉 버트레스) 등 고딕 양식의 주요 장식적 요소를 배제해 비교적 간략하게 표현한 한국식 조적식(벽돌) 고딕성당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한다. 특히 다양한 장식 벽돌을 사용해 시각적 미감을 일으켜 서울 명동성당과 비슷한 모습이다. 성당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파사드)은 비교적 1922년 건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적색 벽돌과 회색 벽돌을 사용한 면은 고딕형식 성당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주 출입구 내부 천장은 반원형 아치 형태로 된 천장구조로 각 공간마다 회색 벽돌처럼 표현한 목재 갈빗대 모양의 뼈대(리브)가 있으며 측랑 부분은 평천장으로 마감해 목재판을 그대로 노출 시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제관은 지붕 경사면에 돌출한 작은 지붕이 있는 창문(도머창)을 둔 당시 서양식 사제관 건축의 전형이다. 2층 규모의 벽돌 건물로 정면이 팔(八)자 계단으로 2층을 오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으며 계단 아래에 1층 입구를 뒀다. 대전일보=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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