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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⑮조선의 금서 '설공찬전'은 그저 귀신이야기였을까

여름엔 귀신 이야기가 인기다. 무서운 이야기 이른바 귀신 이야기나 공포영화가 여름에 인기를 끄는 것은 서늘한 이야기가 무더위를 가시게 하기 때문이다.어느 날 밥을 먹으며 숟가락질을 하는 아들 모습을 본 아비가 오른손잡이가 왜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느냐라고 질타한다. 그러자 그 아들이 내가 아들로 보이오? 저승에서는 모두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한다오. 나는 죽은 조카 귀신이오라고 말을 한다. 이 소름 돋는 귀신 이야기는 전설의 고향 소재로도 활용된 조선시대 소설 《설공찬전(薛公瓚傳)》이다. 이 소설은 <금오신화(1465~1470)>를 이은 두 번째 소설이자 <홍길동전>보다 무려 100년 앞서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국문 번역 소설이자 대중화된 소설이었다. 그리고 소설로는 유일하게 조선왕조실록에 6차례나 등장한 조선의 금서였다.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아예 불태워 흔적을 멸하게 한 소설이었으며 이야기의 배경은 전라북도 순창이다.<설공찬전>은 조선시대 중종 때 문신이었던 채수(蔡壽, 1449~1515)가 지은 소설이다. 성리학이 존중받는 시절에 당시의 유학자가 윤회 사상을 도입하여 이야기를 풀어낸 방식도 흥미롭지만, 귀신 이야기를 빌어 당시 정치 상황을 비판한 내용은 더욱 파격적이었다. 사실 이이의 <사생귀신책>과 서경덕의 <귀신론>,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영향을 준 중국의 <전등신화> 등도 귀신 소재였지만, 유독 <설공찬전>이 금서로 지목된 까닭은 윤회화복(輪廻禍福)설에 의한 것만이 아니었다. 채수처럼 유능한 인물이 시대 상황을 비판한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조정의 조치였을 것이라 여겨진다.채수는 21살 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젊은 나이에 요직을 거쳐 34세에 대사헌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산수(山水)나 지리, 불교나 도교, 토속신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는 연산군 때 도승지 임사홍의 잘못을 탄핵하였으며, 성종 때는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폐위하는 데 반대하였다가 파직될 만큼 강직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후 1506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에 봉해졌으나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지금의 상주로 내려가 쾌재정(快哉亭)을 짓고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곳 쾌재정에서 1511년 순창을 배경으로 하는 <설공찬전>을 지었다가 소설의 내용을 두고 유학 사림과 조정의 공격을 받아 책은 불태워지고 채수도 핍박을 받게 된다.어린 시절 귀신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는 채수는 패관소설(稗官小說)에 능통한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순창 설(薛)씨 족보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적당히 섞어 귀신 이야기를 풀어갔다. 순창 설씨는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등에 가계가 이어져 동전리의 지명을 본따 동전설씨(銅田薛氏)로도 불린 순창의 주요 성씨 중 하나이다.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순창에 살던 순창 설씨 가문의 설충란은, 좋은 가문에 부유하기까지 한 사람이었으나 딸은 혼인하자마자 죽고, 아들 공찬도 장가들기 전에 병들어 죽는다. 한편 설충란의 동생 설충수에게도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큰아들 공침이 뒷간에 다녀오다 귀신이 들린다. 이에 귀신 쫓는 무당을 불러 귀신을 내쫓으려 하자 귀신이 이르기를, 나는 여자이므로 이기지 못해 나가지만 내 남동생 공찬이를 데려오겠다.고 하였다. 이후 죽었던 설공찬이 사촌 아우 공침에 들어와 저승의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귀신 공찬이 공침의 입을 빌려 이승에서 어진 사람은 죽어서도 잘 지내나, 악한 사람은 고생하거나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승에서 왕이었어도 주전충처럼 반역해서 집권하면 지옥으로 떨어지며, 신의를 지켜 간언하다가 죽은 사람이면 죽어서도 높은 벼슬을 하고 여자도 글만 할 줄 알면 관직을 맡을 수 있다는 말을 하였다.<설공찬전>이 금서로 지정되고 나아가 불태워지기도 했던 것은 당대의 정치와 사회, 유교 이념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비판한 내용 때문이었다. 반역자는 임금이라도 지옥에 간다거나, 여성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쌓은 덕에 따라 저승에서 보답을 받는다는 내용은 당시로써는 굉장히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것이었다.하지만 그보다도 큰 문제가 된 구절은 주전충과 같은 사람은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라는 말이었다. 비록 주전충은 중국 사람이었지만 절도사의 난을 일으켜 당나라를 멸망시킨 인물이었던 만큼, 당시 왕이었던 중종이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한 일을 연상시켜 왕의 정통성을 직접 공격한 셈이었다. 중종을 왕위로 세우는 데 일조한 공신이었기에 중종의 배려로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서 겨우 극형을 피하고 파직이 되었지만, 당시 그에 대한 성토 분위기는 뜨거웠다.사실 채수가 그와 같은 글을 통해 조정을 비판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연산군의 폭정 이후 중종이 즉위했어도 많은 반정공신이 선정을 베풀기보다는 자신들의 재산 증식에만 몰두했고, 중종은 즉위 초 무기력한 존재로 백성들의 생활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연산군이 쥐어짜나 중종이 쥐어짜나 별다를 게 없었다. 채수는 이런 현실에 절망했고 그런 결과로 중종반정의 정통성에도 회의를 느끼며 귀신 이야기를 빌어 시대 상황의 비판이 담긴 <설공찬전>을 지었던 것이다.역사를 살펴볼수록 상황은 되풀이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오백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교훈을 건네는 작품인 <설공찬전>은 그저 전설의 고향에 소재로만 기억될 귀신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 상황을 빗댄 이야기는 백성들에겐 통쾌함으로 속이 시원하게 하고, 부정과 불의를 일삼은 자들에겐 두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그러한 이유로 책이 모두 불 태워졌음은 물론이고, 책을 숨기고 내놓지 않은 자들은 요서은장률(妖書隱藏律, 요망한 내용이 담겨있는 책을 숨긴 죄를 다스리는 법)로 죄를 다스린다 했다. 그런 까닭에 <설공찬전>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만 남겨져있다가 1997년 이문건(1494-1567년)이 쓴 《묵재일기(默齋日記)》 3책의 합지 이면에 숨겨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온전한 이야기가 아니라 떨어져 나간 채 13쪽으로만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후반부의 전개를 더욱 궁금하게 한다.그 시절 누군가에게 숨겨져 읽혀온 온전한 <설공찬전>을 찾아보고 싶다. 시절이 달라도 금서는 은밀하게 읽히며 내밀하게 보관되었을 것이다. 마저 우리 앞에 나타나지 못한 뒷부분의 이야기도 궁금하니 힘써 찾아보고, 그 배경이 된 순창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현재 순창 금과면에선 설공찬문학관 조성이 추진 중이다. 지역의 자산이 되는 <설공찬전>의 의미를 잘 담아 역사의 교훈을 살펴볼 수 있는 고전소설의 성지로 순창이 알려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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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4 23:02

[뜨는 마을공동체미디어] '내'가 전하는 '우리' 이야기

2017 시민기자가 뛴다, 참여&소통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공간입니다. 올해는 최성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장과 조상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정기석 마을연구소장, 이지훈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이 참여해 도시와 농촌지역의 공동체활동과 노인, 다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조명합니다. 참여&소통은 오는 11월까지 매주 목요일자에 게재됩니다.지난 7월 6일 독특한 방송국이 개국했다. 노송FM이라는 작은 라디오방송국이다. 주파수는 아직 없다. 팟캐스트를 통해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시민들이 직접 방송 기획과 운영에 참여해서 방송하는 마을공동체미디어다(이하 마을미디어). 노송FM은 기존 언론이 다루지 않는 동네이야기,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방송국 운영을 위해 전주시민미디어센터와 전주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협력하고 있다. 2개월 동안 라디오방송 기획, 장비 실습 등 다양한 강좌를 진행했다. 강좌를 이수한 20여명의 시민방송활동가는 수료 후 동아리를 만들고 매주 만나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개국을 기념해 현장에서 공개방송을 진행했다.노송FM 활동가모임 조대중 대표는 시낭송, 책 읽기, 여행 등 자신들의 일과 개인적 관심이 있는 방송을 기획하고 있다며 개개인들이 하고 싶은 방송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경험이 쌓이고 참여가 늘면 공익적 방송들이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노송FM 참여자들은 방송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지역 공동체의 소통기회를 마련하고 지역문제와 해결방안 등에 대한 주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을미디어 활동 크게 늘어최근 마을미디어 대한 사회적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12년 5곳이었던 마을미디어가 지난해 59곳으로 늘어났다. 5년 사이 10배 이상 증가했다. 유형도 다양해 라디오와 팟캐스트, 영상, 신문, 잡지, 웹진 등을 통해 다양한 지역소식과 시사, 교양 정보들이 소통되고 있다. 허경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은 마을미디어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전북지역에도 다양한 마을미디어가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전북지역 마을미디어 축제에는 전주와 전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12개의 마을미디어가 참여해 변화와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전북에는 마을신문이 가장 많다.마을미디어 TV 채널도 생겨났다. 우리동네 TV라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동네 TV는 지역케이블방송의 지역채널을 통해 방영되고 있으며, 우리동네 뉴스와 우리동네 스포츠 뉴스가 격주로 방송되고 있다. 우리동네 뉴스는 평화동마을신문을 주축으로 전주지역 5개 마을신문이 참여하고 있다. 마을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전주시민미디어센터가 편집과 촬영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 가을 첫 방송 후 현재 42회가 방송됐다. 우리동네 스포츠 뉴스는 동네 야구, 동네 탁구 등 지역 주민들의 생활체육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기획, 취재, 촬영과 편집 모두 일반 시민들이 하고 있다.△주민 소통 공간으로 주목이처럼 마을미디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공동체활성화와 주민간 소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민 전북민언련 참여미디어연구소 소장은 공동체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복원이며, 이를 매개 하는 것이 마을미디어이고, 그래서 마을미디어가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김창환 전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국장도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적극적인 주민참여가 필요한데, 주민들끼리 도시재생에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수단이 없다며 마을미디어는 주민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나아가 주민간에 도시재생 의제가 논의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도시재생과 마을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이는 2010년 창간된 평화동마을신문 사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김수돈(평화동마을신문 편집인) 마을신문전주네트워크대표는 마을신문은 주민들이 스스로 언론활동을 통해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고 마을공동체의 복원을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며 마을신문의 활동반경을 넓혀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 과정 자체가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마을 사랑을 드높이는 일이 되었다고 강조했다.△공동체 활성화 큰 역할도시재생과 관련된 문헌과 토론회에서도 도시재생과 공동체 복원을 위한 소통채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야기되거나 필요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논의하고 협의하기 위한 것인데, 의사소통과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공론의 장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마을미디어 전국토론회에서는 마을미디어가 공동체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최근 전라북도에 마을미디어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지난해 12월 전국 최초로 마을미디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됐다. 이해숙 도의원이 발의한 전라북도 마을공동체미디어 활성화 지원 조례는 마을공동체미디어의 개념을 명문화하고, 육성과 지원에 대한 도지사의 책무를 규정해 공동체 문화의 복원과 활성화의 토대를 마련했다.그러나 조례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 지적도 있다. 원안에 포함됐던 중간지원조직이 빠져있고, 조례에 규정된 위원회도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 박민 소장은 마을미디어 활성화를 위해서는 거너번스 형 중간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을미디어 역시 환경감시기능을 수행하는 미디어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지원주체인 지방정부의 간섭과 개입의 가능성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마을미디어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실험들을 지원할 수 있는 틀이 있어야 하는데, 행정부처의 정형화된 지원방식으로 어렵다고 역설했다. 또한 박소장은 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방정부와 의회, 마을미디어네트워크 그리고 중간지원조직들의 협력적 거버넌스 모델을 구축하면 지원조례의 기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며 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할 것을 주문했다. 마을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행정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영국의 문화연구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공동체는 소통이며, 의사소통의 과정이 공동체의 과정이라고 했다. 도시재생과 공동체 복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요즘, 주민들이 소통의 과정에 참여하고 논의할 수 있는 마을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많아지길 바래본다.최성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장※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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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3 23:02

[고창 방장산 용추계곡 촌로작가 김연수] 승천하는 용을 바라보던 그 농부, 쟁기 대신 붓을 들고…

전라북도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에 걸쳐 있는 높이 704m의 방장산은 부안의 변산, 정읍의 두승산과 함께 전북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리운다. 노령산맥의 한 줄기로, 고창 쪽에서 보자면 고창읍 월곡리에서 신림면 신평리로 이어지는 서향 산자락을 형성하고 있다. 삼신산이라 함은 신선들이 사는 곳이니 곧 신령의 기운이 흐르는 산일테다.신평리로 향하는 용추계곡은 용추폭포 아래 용소(龍沼)의 한 전설을 품고 있다. 천둥번개 치던 날 승천하던 용이 어느 여인의 눈에 띄자 부정탄 탓으로 용소에 떨어져 지네로 변해 방장산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그 전설을 닮았을까그 전설을 닮았을까. 아니면 그 지네가 오랜 세월을 거쳐 다시 용으로 화했을까. 신림면에 인접한 흥덕면 한림동에 살던 79세의 김연수(김영중) 할아버지는 천둥번개 치던 날 용추계곡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고 한다. 그이는 지금 구룡목(九龍目)이라 불리우는 신평리의 용추계곡 산자락에 집 한 채를 지어놓고 홀로 살고 있다.평생 농사만 짓다 나이 60이 넘어가면서 홀연히 여기로 들어 왔는데 승천하는 용을 보고 나니(?) 어떤 기운이 그이를 불러들인 모양이다. 승천하는 용을 흥덕에 사는 여러 명과 함께 보았다며 증인들을 내세워 용추계곡 전설에 기댄 판타지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듯 하다.그 이야기엔 마냥 허풍이나 허세, 망상 또는 신비주의 류로 채색되는 허구로 들리지 않는 그이의 생애사적 신심이 깃들어 있어 보인다. 그의 신심은 그이가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직접 창작하고 있는 그림들과 그리고 그의 설명에 묻어 있다. 그곳을, 그이는 농부예술미술관이라 이름붙였다.△ 칠순 나이에 불쑥 그리기 시작여기에 김연수 할아버지의 작품활동을 소개하려는 까닭은 소박하다. 환갑도 훌쩍 넘긴 연로한 나이에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그 어느날 갑자기란, 평생 농사일에만 바지런하던, 붓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는 민초적 삶의 굴레를 훨훨 벗어던지고, 어떤 신령스런 영감의 모티브였을까, 하여튼 서당개 3년이라는 곁눈질 기회조차 없이, 난생처음 홀로 불쑥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구룡목에 들어와서 처음 한 5년 동안은 자고 먹고 자고 먹고만 했어요. 아주 꿀잠을 잤어요. 그러다 갑자기 돌탑을 쌓기 시작했고, 또 그러다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 경험도 전혀 없던 나였는데, 신기들린 듯 막 그려지는 거예요.사오월이면 극심해지는 방장산의 용추계곡 돌풍은 매섭다. 태풍은 차라리 약소하다. 돌풍이 몰아치면 마을 사람들은 집안에만 있는단다. 그 돌풍의 기세로 어떤 신기가 김연수 할아버지에게 빙의한 것일까.△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그러나 그이는 누구나 그림을 그리려 하면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시골의 촌부들은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거나 연필을 잡고 글을 써보게 하면 대개 두려워 도망간다. 평생을 두고 그래본 적이 전혀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서 언감생심이라 생각들 할 터, 안타깝게도 그러한 두려움이 육신을 파고드는지, 그이들의 손놀림은 연로한 손떨림으로 미끌어지고 그이들의 감수성 기억은 쇠잔해질대로 쇠잔해져온지라 그 누가 나서겠는가.삶의 가치를 농삿일에서만 찾도록 길들여 온 촌부들의 자기윤리는 한편으로는 존경받아 마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할 정도로 애잔하기조차 하다. 그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김연수 할아버지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듯, 촌부들일지언정 얼마든지 있을법했던 예술적 표현행위들의 감수성은 한국 현대사가 강요한 노동중독의 질곡과 함께 억압되고 소외된, 그리하여 잃어버린 삶의 그루터기로 쪼그라들었으리라.쇠잔해졌음에도 뒤늦게 자기발견을 했고 안타깝게도 그러자마자 타계한 이웃지역 부안면 구현마을의 고 이현기 씨가 남긴 시 한편에서도 그이들의 뒤늦은 멋진 신세계를 느껴볼 수 있다. 시간 따라 나도 따라 여기 같이 왔구나 / 어느덧 팔십고개 내 몸도 굽어지고 /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촌로의 독특한 미적 아우라 풍겨인물, 꽃, 달마 따위들을 그려 온 김연수 할아버지 아니 이 촌로작가의 작품세계는 전문작가들의 미술세계와 다른 차원에서 촌로라는 생애사적 관점으로 접근할 때 이렇게 그렸구나, 라는 것만으로도 감탄할만 하다.연마된 화법이 아니니 당연히 세련된 형상화의 구도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어쩌면 어린 아이들의 그림티가 묻어나기도 하는 삐죽빼죽 그림들이지만, 농부예술이라는 전시공간의 숱한 작품들에서는 촌로의 독특한 미적 아우라가 풍겨진다. 그이는 스스로가 새로운 화법을 터득했다고 말한다. 승천하는 용을 봤다느니 하는 맥락의 표현일까, 그이의 작품 중에는 한자 용(龍) 자를 형상화한 그림들이 눈에 띤다. 그이가 터득했다고 하는 화법이 여기에 있다.여러 화백들을 만나봤어요. 그분들에게 용(龍) 자의 그림 문양이 섬세한 결들로 그려진 것을 설명하면 붓을 여러 개 겹쳐서 사용한 거 아니냐고 의심들 하던데, 나는 분명히 붓 하나로 한번에 내친거거든요. 덧칠하지 않았어요. 6-7분 걸려요. 한 몇 년은 그런 기세가 치솟았는데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런 화법이 잘 안돼요. 초기의 좋은 그림들은 다 남들 줬어요.△ 방장산 용추계곡은 신령스러운 꿈의 모티브주변의 어떤 이는 그이를 기인이라 한다. 그러나 기인이라기보다 속세의 꿈들과 함께 사는 범인일 성싶다.어릴 적 절 생활을 잠깐 했고 청년시절 농사를 지으면서 노름에 빠져 빚쟁이가 되기도 했으나 고향을 뜨지 않고 굳센 마음으로 농사일을 열심히 하여 빚 청산을 다하고 평범한 농부로 살아왔다.자신의 작품들을 기성세계로부터 평가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어서인지 유명세를 타는 숱한 명사들을 만나러 다니고 자신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인증사진들을 찍었다. 그러나 먹혀들지 않은 듯 하다.자신만의 독특한 화풍보다는 누구나 그릴 수 있는 표준적인 그림을 더 자랑스러워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길들여진 문화코드를 통해 스스로를 인증하려는 모습일까.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그렸던 여성 알몸그림은 남사스러운 말들이 있자 아예 꺼내놓지도 않는다.쇠잔해지고 손 떨리는 육신으로 세상과 말 건네는 판타지적 서사의 주인공 혹은 촌로작가 김연수 할아버지, 에게 방장산 용추계곡은 촌로에게 다르게 사는 기운으로 꿈을 실어준 신령스러운 모티브인 셈이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니 기회를 기다리며 삽니다.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자연의 순리대로 이루어지니까요.고길섶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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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02 23:02

남원 출신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보육인프라 집중 보단 사회 전반적 투자 확대로 저출산 극복"

문재인 정부의 5대 국정목표 중 하나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국민이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함께 복지의 향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의 복지향상을 위해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56)을 만나 정부의 복지정책과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새 정부가 ‘국민의 품위있는 삶’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차관을 맡게 돼 소회와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정부가 사람 중심의 세상,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 보건복지부도 사람 중심의 소득주도 국정기조에 맞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복지와 보건의료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뒷받침 할 것입니다. 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펼쳐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새 정부의 복지정책이 이전 정부의 그것과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이전의 보수정부에서는 복지정책이 주로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함께 일반 국민들의 삶을 보장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최저임금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초연금 확대, 노인 일자리 숫자와 단가 상향, 부양기준 완화 등이 그 것입니다. 특히 치매 국가관리책임제는 앞으로 치매 관리에 획기적인 변화의 전기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개인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하다 보니, 치매가 진행되고 있더라도 어느 단계인지 진단을 받기도 어려웠고, 대처도 늦어졌습니다. 새 정부는 전국 47개 보건소에 설치돼 있는 치매지원센터를 252곳으로 늘려 누구나 보건소를 방문해 치매와 관련된 상담도 받고 조기 진단과 관리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미 올 추경에 2000억 원을 편성했습니다.”-정부가 읍면동 복지허브화를 지난해 980개에서 올해는 2100개, 내년에는 3502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개수를 늘리기 보다는 내실 있게 운영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산증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찾아가는 읍면동 센터는 복지뿐만 아니라 마을살리기와 도시재생, 혁신 등이 결합된 형태로 추진됩니다.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릅니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고 저희는 복지업무와 관련돼 직원을 파견하는 형식이 될 것입니다. 기능이 확충되는 만큼 예산도 증가할 것입니다.”-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100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새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이전 정부와 어떻게 다른지요? 그리고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대한민국의 존망이 걸린 저출산 문제가 지금 역대 최악입니다. 제가 그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께 보고도 드렸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저출산 대책에 대한 투자의 71%가 보육 인프라에 집중됐지만, 저출산 국가였다가 출산율을 회복한 프랑스나 스웨덴 등은 인프라에 투자하는 비율이 40~50% 수준입니다.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졌으니 서구처럼 일·생활 균형, 결혼·출산친화 사회문화 조성, 아동·가족 경제적 지원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내년부터 아동수당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이러한 차원입니다. 어쨌든 프랑스와 스웨덴의 경우 GDP대비 우리나라의 3배 가까운 획기적 투자를 통해 저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저출산에 관한 정책을 종합하고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요?“저출산 해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안들은 다 나왔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컨트롤 타워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저출산 대책을 ‘강화’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앞으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협의해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정부의 적극적인 복지정책은 환영할 만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모든 복지정책에 대해 지방비 매칭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정형편이 좋은 자치단체야 걱정 없겠지만, 전북처럼 재정이 좋지 않은 곳은 재정 운용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고민은 있습니까?“대통령 보고 때도 국가와 지방의 복지 기능을 구분하고, 재정을 차등지원하는게 좋겠다는 내용을 발제했습니다. 재정자주도 등을 따져서 차등 지원함으로써 기존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 보다 큰 틀에서 지역발전위원회가 주도해 논의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로 기초생보나 기초연금 등은 지금도 차등지원을 하고 있으며, 치매에 대해서는 현재 개인과 정부의 5대 5 부담을 최대 2대 8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차등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극히 제한된 부문에서만 실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앞으로 지역발전위에서 더 논의할 것으로 기대합니다.”-최저임금제 인상에 따른 보완대책과 관련해서 주요 관심은 제조업 등에 맞춰지고 있으나, 사회복지시설도 영세한 곳이 많아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하고 임금수준도 올리려다보면, 운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에대한 대책은 있습니까?“대부분의 사회복지 시설이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처우가 낮은 편입니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개선하고, 격차를 해소할 것인지가 과제입니다. 중앙과 지방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데, 영향받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앞으로 T/F를 구성해서 논의할 생각입니다.”● 권덕철 차관은 - 메르스본부 총괄반장 역임 국가혼란 위기 잘 극복해내권덕철 차관(56)은 남원 출신으로 전라고와 성균관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슈파이어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행정고시 31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장, 보육과장, 자활지원과장, 기획예산담당관, 대통령 비서실 선임행정관,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 복지정책관, 보건의료정책관, 보건의료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메르스 사태로 큰 혼란을 겪었던 지난 2015년에는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을 맡아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지난 6월 7일 차관으로 임명돼 50여일째 직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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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원
  • 2017.07.31 23:02

[완주 고산 '서쪽숲 협동조합'] 시골로 간 젊음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당모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농귀촌이라 하면 자식들을 다 키우고 은퇴시기를 맞이한 50~60대 부모세대들이 제2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시골로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요즘은 저성장 시대에 높은 취업난과, 청년층의 생태적 가치와 마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청년들의 귀농귀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40대 많은 젊은 부부들 또한, 아이들이 경쟁과 치열함에 싸워야하는 도시가 아닌 여유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키우기 위해 귀촌을 선택하고 있다. 이제 귀농귀촌은 단순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 안에서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현상이 되었다.△의미 있고 재미있는 삶을 꿈꾸다다양한 이유로, 시골로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한 마을에서 나고 자라 자연스럽게 마을을 구성했던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모습들이 곳곳에 존재한다.특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귀농귀촌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는 완주의 귀농귀촌인들의 모습은 조금 더 특별한 듯하다.시골로 들어오기 전까지 살아왔던 삶의 형태가 있으니, 서로 즐겨하는 것과 잘하는 것들이 모두 다르다.다양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니, 한데 섞이지 못하고 부유 하고 있을 것만 같던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그들 스스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작당모의를 재미나게 하고 있었다. 서쪽숲 협동조합도 그 작당모의 가운데 생겨나게 된 모습이다.완주 고산 일대로 귀농귀촌하여 살아가는 사람 12명이 서쪽숲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건축을 하는 사람, 벼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공연기획을 하는 사람 등 모인 사람들 각각 개인이 갖고 있는 관심사와 재능이 모두 다르다.처음에는 서쪽숲에 나무집이라는 동네 목수팀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 회사를 만들자고 시작했던 일이 서쪽숲 협동조합의 시발점이 되었다. 각자의 모습과 존재 이유는 달랐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 한 가지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모일 수 있는 힘이 있었고, 그 모이는 힘으로 다양한 재미있는 작당들을 시도할 수 있는 듯 했다.△아이들의 삶을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다구름 덕분에 하늘이 평소보다 낮게 깔린 아침이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큰 나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제법 진지하게 아이들은 나무를 다듬는다. 전북문화관광재단에서 주최하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인 play house : 짓고 그리고 머물다(이하 플레이하우스)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플레이 하우스는 아이들의 삶을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며 시작한 서쪽숲 협동조합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도 중 하나다.도시에는 아스팔트밖에 없잖아요. 길가에 핀 풀꽃 한포기 조차 보기 힘든 곳이 도시예요. 우리 아이를 그런 환경 속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 귀촌을 결심했어요. 협동조합에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있었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아이들 교육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플레이하우스 기획자인 서쪽숲 협동조합 박현정 이사는 자연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어 완주로 귀촌을 했고,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 지역사람들과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해왔다고 한다.동네에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 공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틈이 보인다. 그 빈틈은 다른 곳이 아닌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터, 즉 지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조합원) 중에는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채워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끝에 지역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이들을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협동조합 내에서 이 일에 관심 있던 세 사람이 기획단을 꾸려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프로그램인 플레이 하우스를 시작하게 된다.△아이들에게 비빌 언덕이 만들어지기를우리가 여관에서 삶을 살지는 않잖아요.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은 아닌 거죠. 집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공간인거예요. 플레이 하우스는 집(아지트)을 짓는 기능을 단순히 배우는 활동이 아니예요. 건축은 내가 움직이는 동선, 바람이 통하는 길, 해가 뜨는 방향 등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하는 총체적 예술인 거예요. 더 나아가서는 이렇게 지어진 아지트는 아이들이 힘들 때, 비벼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될 수도 있고요.부모세대가 좋은 뜻을 가지고 귀농귀촌을 했더라도, 아이들 스스로 자기 주체성과 자기 존재 의미 없이 지역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아이들 스스로에게도 농촌지역이 지속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지역(농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아지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집을 만드는 과정과 기술, 그리고 완성하게 될 아지트. 그 모든 것이 어쩌면 아이들이 지역에서 성장하며 마음 놓고 비빌 수 있는 비빌 언덕의 자원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아지트를 만드는 공터가 관 소속의 공유지로, 작업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 여부 및 아지트를 완성했을 때의 존속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이 그저 나몰라라 하는 행태가 아닌, 함께 이 일을 해결해 보자며 결의를 다졌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완주군이 관례라는 이유로 원칙대로 이 일을 해결하기보다 다양한 꿈을 지역민들과 그리고 그곳을 비빌 언덕 삼아 살아가게 될 아이들과 함께 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대안적 삶이란,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벼농사 지으니 쌀 있고, 밭농사 지으니 김치도 있어요. 적어도 이곳에서 굶어죽진 않아요.박현정 이사가 마지막에 웃으며 건낸 말 한마디가 폐부 깊숙한 곳을 뜨끈하게 만든다. 퍽퍽한 삶에 기대 쉴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땅이라는 근본 위에 터를 잡은 사람들에게는 현대사회 속에 없는 함께 사는 여유와 넉넉함이 있는 듯 하다.저성장시대에 더 이상 발전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속도를 내기위해 패달을 밟아도 헛바퀴만 돈다. 저성장에 제일 크게 타격을 받은 세대는 당연 청년들이다. 청년들 학력은 높고, 스펙은 좋다. 그렇다 한들,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에서 헛바퀴를 돌리자고 청년들을 채용하지는 않는다.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을 지금의 청년들은 농촌에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제 곧 청년이 될 아이를 키우는 부모세대들이 돈이 아니어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비빌언덕을 함께 만들기 위해 귀촌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든다.지역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삼촌 이모들을 만나게 해주고, 함께 작당할 거리들을 만들어 주는 것. 어쩌면 지금의 저성장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수학문제집 하나 더 사주고, 학원 한 곳 더 보내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문성희 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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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6 23:02

[우리고을 인물 열전 13. 완주군 봉동읍] 완주지역 최다 인구…'배산임수' 지형 뛰어난 인재 많아

완주군 봉동읍(鳳東邑은 2년 전 배우 문근영이 출연한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 촬영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 데, 고산천 제방 곁에 위치한 둥구나무집 식당 앞에는 드라마 촬영 때 만든 아치아라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완주군의 북단에 위치하는 봉동읍의 북동에는 비봉면과 고산면, 남쪽에는 용진읍, 서쪽에는 삼례읍이 소재한다. 봉동읍의 서북쪽에는 익산시 왕궁면이 위치한다.북쪽 봉실산((鳳實山:373.5m)과 남쪽 고산천(高山川)일대에 형성된 봉동읍은 삼례읍과 함께 완주군의 주력 고을로서 1973년 읍으로 승격됐다. 북쪽으로는 봉동 뒷산 봉실산이 우뚝 섰고, 남쪽으로는 만경강 상류의 큰 지류인 고산천이 마치 승천하려는 용처럼 고을을 걸쳐 있는 지세이니, 풍수적으로 보면 영락없이 배산임수형이다. 해발 373.5m 봉실산 아래 드리워진 봉동읍의 토지는 논 14.64㎢, 밭 5.24㎢, 대지 2.64㎢ 등 모두 46㎢이고, 쌀과 보리는 물론 생강과 양파, 포도 등이 많이 생산된다.봉동읍 경계선상에서 호남고속도로와 완주~장수 고속도로, 완주~순천고속도로 등이 지나가는 등 교통 여건이 좋고, 전주에서 북쪽으로 10㎞ 거리에 위치, 도심 접근성도 좋다. 완주 일반산업단지에 이어 완주테크노밸리가 장구리와 구암리 일대에 걸쳐 조성됐으며, 2021년까지 테크노밸리 2단계사업이 완료되면 봉동읍은 모두 140개 업체가 가동되는 산업 중심지로 우뚝서게 된다.이런 살기 좋은 여건 때문에 봉동읍은 완주군 13개 읍면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고을 위상을 지키고 있다. 봉동읍 인구는 2만6,677명(2016년말 기준)으로 이서와 삼례를 1만 명 이상 앞선다.봉동읍 14개 마을에는 문화재도 많다.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추수경장군묘역을 비롯해 둔산리와 은하리 고분군, 봉강서원, 제내리 지석묘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정관계은하리 출신 윤건중씨는 1921년 독일 뮌헨대 정경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참사를 지낸 독립운동가다. 1930년 최초의 민족자본 산업조합인 봉상산업조합을 설립했으며, 광복 후인 1954년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낙평리 출신의 이정원씨는 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최충일씨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직에 나가 김제시장과 완주군수를 지냈다. 성덕리 출신 이정주씨는 서울 서대문구청장을, 구만리 출신의 최찬욱씨는 6선의 전주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전주시의회 의장도 지냈다. 낙평리 출신 서제일씨도 완주군의회 의장을 지냈다. 구미리 출신인 송주인씨는 농림부 국장을 지낸 뒤 전북은행장을 역임했으며, 전북도민일보 창간 주역이다. 장기리가 고향인 김병량씨는 전북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공무원이 됐으며, 이리시장과 군산시장, 민선 2기 성남시장 등을 두루 지냈다. 율소리 출신의 노학기씨는 전북도청 문화유산과장으로 재직 중이다.봉동읍 출신 전북도의원은 박항서 박재완, 완주군의원은 이광식, 서제일, 안성근, 박재완, 이향자 류영렬 이인숙 의원이다.△군경, 법조육사 출신의 김보선씨(고천리)가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으며, 율소리 출신 노학주씨는 육사를 나와 육군준장으로, 은하리 최봉열씨는 해사를 거쳐 해군대령으로, 낙평리 출신 최병운씨는 공사를 나와 공군대령으로 각각 예편했다. 낙평리 출신 장교로는 육사 출신의 김성식(대령 예편), 이진욱(대령) 등이 있다.구만리 봉강이 고향인 이동선씨(64)는 1981년 경찰에 입문한 뒤 2008년 치안감으로 승진, 2009년 전북경찰청장으로 부임해 근무했다.법조계에서는 성덕리 출신 이우식씨는 법원 부이사관을 지냈고, 변호사로는 이희열(구만리), 오치도(율소리), 김영(낙평리), 두세훈(장기리) 등이 있다.△교육계둔산리가 고향이고 교육학 박사인 유광찬씨는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총장을 지냈다. 구만리가 고향인 이선구씨는 예원예술대총장, 서울실용음악대학 학장, 티브로드 전주방송 사장 등을 역임했다.△문화예술체육계성덕리 출신으로 완주중학교를 졸업한 유길촌씨(77)는 MBC문화방송 PD, 공연기획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극단 유씨어터 대표 등을 지내는 등 방송과 연극영화계에서 두루 활동했다. 길촌씨의 동생 인촌씨(66)도 출생지가 봉동이다. 1974년 MBC 공채 6기로 탤런트가 된 인촌씨는 전원일기, 야망의 세월 등 드라마와 연극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유씨어터 대표,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지냈고, 이명박정부때는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다.국악계의 싸이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남상일(39)씨도 봉동이 고향이다. 2013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12년 KBS 국악대상 판소리상, 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문화예술인상 등을 수상했다.구만리 이봉주 이장 동생인 이의춘씨(56)는 봉동중학교,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논설위원, 아시아투데이 편집국장, 미디어펜 대표이사,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 등을 지냈다.낙평리 서세일씨는 전북체육회 부회장을 지냈고, 전북수영연맹회장을 지낸 서정일씨는 전북체육회 상임고문, 대한체육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미리 출신 박천규씨가 전북생활체육회 회장, 은하리 출신 고환승씨가 전북체육회 사무처장을 지냈다. 언론계에서는 장기리 출신의 송호성씨가 전주MBC 국장을 지냈고, 낙평리 출신의 이성원 전북일보 부국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하고 있다.△종교계지난 2010년 5월31일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강토가 무참히 파헤쳐지는 현실에 분개, 4대강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연히 소신공양한 스님이 있었다. 바로 봉동 출신의 문수스님(경북 군위군 지보사)이었다.문수스님의 본명은 윤국환이다. 1963년 구미리 출신으로 봉동초와 완주중,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1984년 출가했다. 백양사, 해인사, 희방사 등에서 수도 정진한 문수스님은 경북 청도 대산사에서 주지를 지내기도 했다.△경제계낙평리 출신의 이용대씨는 국내 분무기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주)아폴로산업 회장이다. 성덕리 출신 이상준씨는 농협전북본부장, 전북신용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역시 성덕리 출신의 이일우씨는 (사)꿈드래장애인협회 회장 겸 꿈드래장애인작업장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은하리 출신의 윤재호씨는 삼부건설 대표이며 전북건설협회 회장을 지냈다. 신성리 이종준씨는 호경레미콘 회장이다.-다음 회에는 정읍시 영원면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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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7.07.25 23:02

무주 세계태권도대회 성공 이끈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재미없는 경기는 올림픽 종목 될 수 없어…끊임없이 변화해야"

지난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무주에서 펼쳐진 2017 무주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단일 종목임에도 역대 최고 규모인 183개국 1768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데다 대회 운영이 매끄럽고 참가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 등 여러 면에서 대성공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회 사상 처음으로 개최국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서 평창 올림픽에 북측 선수들의 참가와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했고,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을 비롯한 10명의 집행위원들이 방문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대회를 주최한 세계태권도연맹(WT) 조정원 총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무주대회가 매우 성공했다는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회의 주최자로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또 대회성공의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선수단의 규모를 떠나서 경기운영 등에서도 첨단IT가 접목된 매우 성공적인 사례였습니다. 세계대회는 꾸준히 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년 런던대회, 2013년 멕시코대회에 대한 평가가 매우 좋았는데, 2015년 러시아 첼랴빈스크대회는 더 완벽했습니다.우리에겐 준비기간이 불과 2년밖에 안됐기 때문에 태권도 종주국에서 창피를 당하는 것 아닌가 내심으론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부터 전북도, 무주군 등의 자치단체 모두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힘을 모아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태권도원 시설에 대한 찬사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많은 참가자들이 무주 태권도원의 완벽한 시설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바흐 IOC위원장과 10명의 집행위원들은 단일 종목으로 이처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데 대해 대단히 부러워했습니다. 태권도원과 무주군이 잘 협의해서 이번 대회를 통해 부상된 태권도원의 인기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서 지역경제에 더욱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태권도 외적으로 살펴보면 무주군이 마련한 마을로 가는 축제 등에 대한 외국 참가자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지역문화 콘텐츠와 대회가 완벽하게 결합된 사례로 도시지역이 아닌 시골 무주군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다행히 비가 안 오고 날씨도 많이 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지요.-무주 태권도원이 명실상부한 태권도의 성지라는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국기원이 태권도원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더민주 김춘진 도당위원장도 최근 이를 공식적으로 주장했습니다.다른 기관의 일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는 지난해 세계태권도연맹(WT) 아카데미를 태권도원에 설치하기로 협약을 맺고 세계태권도 중앙훈련센터 현판식도 가졌습니다. 앞으로도 국제심판 교육이나 코치교육 등을 태권도원에서 계속할 계획입니다. 외국 학생들이 지역에 상주하면서 태권도를 익히고 공부도 할 수 있도록 태권도 대학원 대학교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협의하고 있습니다.-무주는 한반도의 배꼽에 위치해 있어 지방이라고는 하지만 접근성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데도 수도권에서의 심리적 거리는 상당한 듯 합니다. 이번 대회 때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무주의 자연환경과 문화체험 등에 대해서 매우 환호한 반면, 국내에서는 일부 불만도 나왔다고 들었습니다.(수도권)시내를 빠져나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태권도원은 앞으로 20년, 30년 더 가야하고 더욱 발전해야 합니다. 전 세계 태권도인들이 찾는 태권도의 메카가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는 대전이나 전주에서 열차가 연결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단기적으로는 고속도로IC에서 입구까지 진입로가 개선돼야 합니다.-이번 대회 때 ITF(국제태권도연맹) 시범단이 태권도원을 찾았고, 9월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이 창설된 지 44년 만에 처음으로 시범단이 평양을 방문합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요?남북관계가 매우 경색된 상황에서도 ITF 시범단이 무주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태권도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장웅 IOC위원장(ITF 명예총재)이나 리용선 ITF 총재하고는 오래전부터 얼굴을 보고 지냈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세계태권도연맹(WT)과 기구통합을 제안했으나, 오랜 세월 동안 서로 단절돼 지내다 보니 기술의 구성이 서로 달라져서 우선적으로 품새 통합을 추진키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여의치 않고 어려움이 많았습니다.그러다가 2014년 3월에 양측이 다시 만나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하자는데 공감하고, 주최 측의 룰에 따른다면 선수들이 자유롭게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IOC위원장도 이에 찬성해서 교차출전을 허용하는 협정의향서를 체결했습니다. 이번에 ITF 시범단이 무주를 방문한 것은 서로 간의 약속을 지킨 것으로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세계태권도연맹(WT)의 경기방식이 너무 수비 위주여서 재미가 없다는 지적이 그동안에도 많았습니다. 다행히 이번 무주대회에는 바뀐 경기규칙을 적용해서 적극적인 공격을 유도했고, 상당히 성공했다는 평가입니다. 앞으로도 공격적인 부분은 계속 살려나간다는 방침인지요?경기가 재미없다는 것은 우리나라 선수들만 그런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너무 성적에만 매달리다보니 방어적이고 득점 위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대회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0.3초를 남겨 놓고 역전우승을 하는 경기도 봤습니다. 매우 박진감 넘치고 관중들의 반응도 좋습니다.-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프로태권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실제 몇 차례 시도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연내에 프로대회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세계태권도연맹이 프로경기의 일종으로 그랜드 슬램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많은 상금도 내걸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세계선수권대회 등 주요 대회 챔피언들을 초청해서 경기를 합니다. 경기 룰을 따른다면 가라데나 유도 이종격투기 주짓수 등 다른 종목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ITF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승자에게는 많은 상금과 함께 2020년 동경올림픽 출전자격도 자동으로 부여합니다. 재미없는 경기는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없습니다. 당장 동경올림픽 때는 시범종목인 가라테와 경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야 합니다-무주대회 기간 중에 4년 임기의 총재로 다시 선출되어 5선에 성공하셨는데, 소감과 앞으로의 발전 비전을 밝혀주시죠.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계속해서 변해야 합니다. 내 자신부터 변화하고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리의 희생 없인 안됩니다. 전 세계 태권도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실제로 참여하는 집행위를 만들고 각종 위원회를 활성화해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조정원 총재는조정원 총재(70)는 국제정치학 박사로 10, 11대 경희대 총장을 지냈으며, 2004년부터 현재까지 14년 동안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를 맡고 있다.체육계에서는 한국대학탁구연맹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위원, 2014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부총재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올림픽성화회 명예회장도 맡고 있다.

  • 기획
  • 이성원
  • 2017.07.24 23:02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⑭ 옛 정취 담긴 정읍 피향정·완주 비비정, 선조들 인간계·신선계 경계서 더위 피하고 풍류 즐기던 곳

여름이 한창이다. 날이 더워지니 시원한 곳을 찾게 된다. 이럴 때 우리 선조들은 멋진 풍광이 드리워진 곳에 정자를 짓고, 인간이 사는 현세와 신선들이 산다는 아름다운 자연의 경계에서 더위를 피하며 풍류를 즐겼다.전북에는 춘향이의 이야기로 유명한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전주의 한벽당(寒碧堂), 순창의 귀래정(歸來亭)을 비롯하여 옛 정취가 담긴 정자들이 남아있다.정읍에는 피향정(披香亭)이 있다. 피향정은 연지(蓮池), 흡향정(吸香亭), 피향각(披香閣), 피향당(披香堂) 등 불리는 이름이 많았던 정자이다. 주로 불리는 피향정은 향국(香國)을 둘로 나누었다는 뜻을 지녔는데, 정자를 중심으로 상연지제(上蓮池堤)와 하연지제(下蓮池堤) 두 연못으로 나뉜 곳에 연꽃의 향이 가득 차 불렸던 이름이다. 하지만 일제시대 상연지는 메워져 길과 민가가 되었고 지금은 하연지만 남아있다. 이는 일제가 피향정에 담긴 역사적 의미와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던 의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피향정은 호남에서 손꼽히는 정자로 보물 제289호로 지정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상연지가 있던 앞쪽에는 피향정이라 쓰인 현판이 있고 하연지 쪽에는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피향정 천장에는 옛 사료에 근거한 연꽃무늬가 복원되어 피향정의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피향정은 이름 의미 속에 담겨 있는 연지(蓮池)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관청의 손님도 맞고 종종 숙박의 기능을 하며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았던 곳으로,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의 큰 규모로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정면은 5칸, 측면은 4칸의 아름다운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로 28개의 화강암을 기초석으로 삼았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기초석이 30개 들어갈 규모인데 2개를 빼고 28개로 한 것은, 당시 천문을 나누는 기준이었던 우주의 28숙(별자리)을 따른 것으로 선조들의 깊은 뜻을 엿볼 수 있는 정자이다. 이러한 피향정의 멋과 의미 덕분인지 정자에는 많은 문인이 찾아 시문을 남겨 전해 내려오고 있다.피향정은 여러 기록을 살펴보아도 누가 언제 처음 지었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조선시대 광해군 때인 1616년에 현감 이지굉이 초라했던 건물을 중건하고, 이후 확장 중건을 한 차례 더 거쳐, 1716년(숙종 42년)에 현감 유근이 전라감사와 호조에 청하여 정부의 보조로 재목을 변산에서 베어다가 중수하면서 연못을 파서 넓혔다고 한다. 그 후, 1855년(철종 6년) 현감 이승경이 새롭게 중수한 것이 지금에까지 남아있다 하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태인면사무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1957년 면사무소를 신축하면서 환원되었다.그리고 신라시대 최치원이 이곳 태수를 지내는 동안 근처에 있는 연못 주변에서 풍월을 읊었다 전해지고, 이 때문에 최치원이 피향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최치원의 흔적을 기리는 축제와 관련 이야기는 남아 피향정의 가치를 가꾸어 주며, 피향정 곁에는 오랜 역사가 새겨진 비석군(碑石群)이 줄지어 서서 고을의 사연과 피향정의 지난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그 비석군 가운데에는 임꺽정의 저자인 홍명희의 부친으로 태인군수를 역임했고 나라를 잃은 상실감에 자결한 우국지사 홍범식(1871~1910년)을 기리는 애민선정비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의 단초 중 하나로 농민들의 수탈로 만들어져 원망을 샀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친 조규순의 영세불망비도 함께 있어 역사 속의 허물을 되돌아보게 한다.완주에는 비비정(飛飛亭)이 있다. 조선시대 1573년(선조 6년)에 최영길에 의해 창건되었다. 비비정의 이름은 지명을 따와 지어졌다고도 하지만, 최영길의 손자 최양이 정자의 제호와 휘호를 우암 송시열에게 부탁하여 지어졌다는 사연이 송시열이 쓴 기문인 『비비정기』에 정자명의 유래로 나온다.송시열은 무관을 지낸 최영길과 그의 아들 최완성, 손자 최양을 언급하면서 최양이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데도 정자를 보수한 것은 효성에서 우러난 일이라 칭찬했다. 또 최양의 장대한 기골을 보고 장비(張飛, 중국 삼국시대 명장)와 악비(岳飛, 남송 명장)를 떠올렸고, 그들이 용맹뿐 아니라 충절과 효로도 알려진 사람이니, 날 비(飛) 두 자를 써서 귀감으로 삼는다면 정자의 규모는 비록 작아도 뜻은 큰 것이라고 하였다.비비정 아래는 만경강이 굽이쳐 흐르고, 주변으로 풍요로운 평야가 펼쳐져 있어,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게다가 이곳은 전라도 이남에서 수도로 오가는 사람 대부분 거쳐 갔던 길에 자리 잡아 수많은 사연이 지나고, 각종 해산물과 소금을 실은 배가 오르내렸던 물자의 길목에 있었다. 선비와 나그네들이 비비정에서 발걸음을 멈추어 쉬어가며, 시와 글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음은 물론이다.비비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떨어질 낙(落)과 기러기 안(雁)을 써서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고 부르는 것도 특별하다.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비비정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의미로, 비비낙안은 완산팔경과 만경8경 중 제5경에 해당하기도 한다. 비비정은 비록 1752년 관찰사 서명구(徐命九)의 중건 이후 오랜 세월 관리가 부실해지면서 소실되었지만, 1998년 복원되어 풍광 좋은 그 자리에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예로부터 정자는 쉼을 건네는 장소이고 선비의 장소로 정신을 나누며 사람들을 불러들인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주변의 모습도 바뀌었다지만, 이제 완주의 비비정은 근처 만경강 다리 중 유일하게 문화재로 등록된 구 만경강 철교와 더불어 호산서원과 삼례토성을 곁에 품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그리고 정읍의 피향정엔 그 이름의 의미가 담긴 연꽃이 만개했다. 하지만 상연지가 복원되지 않아 그 이름을 이제 피향정으로 올곧이 부르기엔 부족하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피향정의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 절실하다. 하지만 길과 민가로 되어버린 상연지를 복원하는 데는 큰 자금이 들어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피향정이 가진 본연의 의미를 찾는데, 모두가 힘을 합쳐 볼 일이다.그리고 비비정 옆 호산서원과 사당도 입구의 홍살문이 서운치 않게 정성껏 복원되길 기대한다.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는 여정이 길지라도 말이다. 그러한 소망을 지닌 채, 이 여름 피서 겸 선조의 정취가 깃든 장소를 찾아 비비정의 강바람도 담고 피향정의 연꽃향에 우리 마음도 함께 담아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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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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