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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년' 김승수 전주시장 "슬로우 슬로우 퀵퀵, 사람·생태·관광도시 사업 구체화"

김승수 전주시장은 취임 이후 월급을 전혀 가져가지 않았다고 한다. 업무 추진비가 부족한 비서실에 자신의 월급을 모두 맡겨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김 시장은 해외 출장을 나갈때 항상 이코노미석을 탄다. 규정상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고, 잦은 해외 출장으로 쌓인 마일리지를 사용하면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사양한다. 일반 시민들과 똑같이 살겠다는 소신 때문이라고 한다.밥 굶는 아이가 없는 전주를 만들겠다며 시작한 엄마의 밥상, 아이들에게 마음의 양식(책)을 채워주겠다는 뜻에서 시작한 지혜의 반찬, 어려운 여학생에 대한 생리대 지원사업 등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복지강화에 특히 큰 관심을 갖고 시정을 추진하고 있다.일각에서는 그의 이런 행보를 ‘선심성, 이벤트성’이라며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김 시장 스스로도 이같은 시각을 잘 알고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닌 만큼 언젠가는 시민들께서 진정성을 알아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취임 2주년을 넘기며 임기의 새로운 2년을 시작한 김 시장은 “민선 6기의 남은 기간은 전주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온 사람과 생태, 관광도시로 만드는 사업들을 구체화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새로운 개발보다는 도심재생, 사람·생태·문화의 3대 시정 가치를 중심으로 시민에게 다가서는 정책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김 시장을 만나 민선6기 전주시의 향후 2년의 시정 계획을 들어봤다.-취임 2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민선 6기 2년을 보낸 소회가 어떠신지요.“취임 후 2년은 여러 현안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고, 굵직굵직한 현안사업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을 내디딘 시간이었습니다. 전주교도소 이전 문제가 해결책을 찾았고, 전주의 영광 재현을 위한 전라감영 복원, 종합경기장 시민공원화 결정, 항공대대 이전 문제 등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또, 시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전주푸드 플랜과 생태도시 전주의 상징이 될 생태동물원 조성사업, 전주의 첫 인상을 바꿀 첫 마중길 조성사업, 전주형 복지 및 인권보호 체계 구축 등 전주의 미래를 바꿀 정책들도 착실히 진행해 왔습니다.”-지난 2년간 시정을 추진하면서 각종 복지정책들을 많이 만들고 지원하셨는데요.“기존의 복지 정책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을 과연 얼마나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발한 ‘엄마의 밥상’사업은 단순히 밥을 굶는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혼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전주시와 시민이 함께 차리는 따뜻한 밥상입니다. 지역아동들의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도서지원 사업인 ‘지혜의 반찬’사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저소득층 여학생 생리대 지원 사업, 폐지줍는 노인들의 생계와 건겅검진 지원 사업도 약자의 입장에서 마련한 복지사업입니다.”-전주의 궁극적인 발전방향에 대한 입장을 말씀해주신다면.“전주가 다른 지역처럼 산업화 도시모델로 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시민들은 상당부분 사업화 도시모델로 가야되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전주라는 도시의 특성상 제대로 부흥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브리스톨 같은 경우는 작년에 유럽의 환경수도로 뽑혔는데 환경과 생태가 완전히 살아나면서 도시가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로 포털사이트 다음의 본사가 이전했습니다. 또한 스위스의 취리히에도 IBM 본사가 있고, 기업들이 생태와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전하는 것을 보면 도시의 산업화가 모델은 아니라고 봅니다. 전주는 충분히 생태도시로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있는 도시입니다.”-언뜻 들으면 기업유치 등 경제 정책은 상대적으로 소홀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전주가 살아갈 기본적인 경제정책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탄소산업과 3D프린팅, 드론, 사물인터넷(IoT), ICT(정보통신산업) 융·복합 등 5대 신성장산업 육성과 사회적경제 육성 및 활성화, 청년경제 기반조성, 전통시장별 특화개발, 전주푸드와 농업경쟁력 강화 등을 통해 사람을 위한 따뜻한 경제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또한 도전적인 일자리 창출에 더 힘을 쏟을 겁니다.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인재 35%이상 의무채용을 법제화하고 전주 중소기업 기(氣)살리기 프로젝트와 지역먹거리, 사회적기업 제품, 지역기업 제품 등을 한 곳에서 판매하고 유통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 것입니다. 여기에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운용본부를 중심으로 금융창조도시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고, 한국은행 전북본부 화폐수급업무 재개도 강력하게 추진할 것입니다.”-최근에 전주시 전체가 슬로시티로 재인증을 받았는데, 슬로시티와 경제활성화 정책은 상충되지 않을까요.“제가 이번 슬로시티 재인증을 받기위해 해외에 갔을 때 한국슬로시티 손대현 이사장이 건배 제의를 하셨습니다. 전주시의 재인증을 축하하며 외친 말이 바로 ‘슬로우, 슬로우, 퀵퀵’이었습니다. 바로 느림과 빠름의 조화 라는 말이죠. 전주가 아마 5년 정도 지나면 경기도 신도시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겁니다. 수도권 신도시 못지않게 완전히 모던한 도시라는 점을 느낄겁니다. 녹지비율이 전국에서 최고인 에코시티, 법조타운, 만성지구, 효천지구도 설계가 잘돼 있습니다. 혁시도시도 300만평 중 100만평이 농촌진흥청 시험포인데 장관일 겁니다. 원도심과 전주 신도심이 어우러지면 도심형 슬로시티가 어떤 것인가 알게 되실 겁니다.”-슬로시티 재인증 이후 정책 방향도 궁금합니다.“전주시 전체 권역으로 슬로시티의 의미를 확대해 사람과 사람, 거리와 거리, 공간과 문화, 관광이 어우러진 슬로생활문화도시를 만들 예정입니다. 느림과 자유, 기쁨, 참여, 공유, 화합, 행복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전주를 만들고 도시 매력을 창출해 전주를 한국전통문화의 수도로 슬로도시 브랜드 가치를 강화하겠습니다. 슬로시티 마스터플랜은 사람과 생태, 문화를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도시,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주형 슬로플랜, 국내외 사례조사 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친환경 슬로 도시 인프라 구축, 전통문화와 생태문화가 어우러진 슬로콘텐츠 및 슬로 프로그램, 그리고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행복도시를 만들 수 있는 슬로시티 공동체와 커뮤니티 방향 등 한국적 도심형 슬로시티 모델을 창출해 나가겠습니다.”-전주종합경기장 개발 사업과 항공대대 이전 사업, 전주대대 이전 사업 등 어려운 사업들이 적지 않습니다.“종합경기장 사업은 현재 타당성조사용역을 시행중이며 용역 완료 후 중앙투자심사를 의뢰하면 금년 11월 경 투자심사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투자심사가 완료되는 대로 시급한 전시컨벤션센터에 대해서는 타당성분석과 투자심사 등 행정절차를 다시 이행할 계획이며, 종합경기장 개발은 서두르지 않고 구체적인 재원대책 등 사업계획을 수립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계획입니다. 전주시의 전체적인 도시발전 계획을 고려할 때 현 항공대대의 도도동 이전은 이전은 필수적입니다. 현 시점에서 항공대대 이전사업의 필요성 및 불가피성, 이전지역의 상생 발전 방안에 대해 주변마을 주민들과 계속 대화하면서 이전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전주대대는 완주군 행정, 주민, 정치권의 이전반대와 국방부 항의방문으로 국방부에서 많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계속 국방부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완주군의 여론을 수렴해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전주와 완주의 갈등이 아닌 상생발전 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을 수립하고 완주군과 대화와 설득을 통해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서두르지 않고 노력할 계획입니다.”-전북도와의 갈등, 완주군과 김제시, 익산시 등 인접한 다른 지방자치단체와의 갈등도 잠재돼 있습니다.“갈등 해결의 답은 대화와 경청입니다.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면서 소통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라북도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이해하고 전라북도의 더 큰 발전이라는 안목을 가지고 타협하는 것이 상생의 길입니다. 그 발전을 위해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전달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해 나갈 것입니다.”-전주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전주가 가진 힘, 전주시민의 저력을 바탕으로 민선 6기 후반기 전주시정은 7대 프로젝트와 사람의 도시 역점사업을 추진해 전주를 사람, 생태, 문화와 따뜻한 일자리가 있는 가장 인간적인 도시,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도시로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꽃심, 바로 전주정신으로 전주의 미래를 싹 틔워 나갈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도 따뜻하고 적극적인 관심으로 전주시 발전에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기획
  • 백세종
  • 2016.07.18 23:02

속세인 듯, 속세가 아닌 듯…김제 청운사 하소백련

또 길을 잘못 들었다.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몇 번씩 확인했건만, 실제 도로에서 그런 건 소용이 없었다. 내가 길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알파고가 인류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기고, 화면에 갇혀 있던 포켓몬들이 증강현실로 튀어나오는 세상인데 이제 그만 기계를 믿어야겠다.전북지역에서 연꽃으로 유명한 곳을 꼽자면 전주 덕진공원(덕진연못)과 정읍 피향정, 완주 송광사 등을 들곤 한다.그리고 이 목록에 빠져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김제 청운사 하소백련지다.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얀 연이 가득한 곳으로, 홍련이 주를 이루는 다른 곳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청운사에서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하소백련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7월 8일부터 7월 17일까지, 열흘 동안 열린다.하소백련 축제가 한창인 김제 청운사를 찾았다.청운사에는 다른 절에 있는 일주문이 없다. 일주문 대신 기자를 맞이한 것은 제15회 하소백련축제라고 쓰인 연두색 현수막과 연잎이 뒤덮은 저수지였다.사실 처음에는 이 저수지를 보고 너무 늦었나? 하며 실망했다. 왜냐하면 저수지를 연잎이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위로 올라온 연꽃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더 들어가 보면 진짜가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청운사로 들어섰는데,진짜가 있었다.차량 30여 대가 쉴 수 있는 주차장을 뒤로하고,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갔다.전주 덕진연못이 규모로 승부한다면, 이곳은 아기자기함으로 맞선다.대학 강의실 한 칸 정도 크기로 보이는, 생긴 것이 마치 논처럼 돼 있는 연못 4개가 연달아 나타나는데, 흰 연꽃이 길가에 바짝 붙어 올라와 있다. 그 거리가 어느 정도냐면, 그냥 길을 걷다가 휴대폰 카메라를 켜서 대충 찍어도 잘 나올 만한 거리다.비가 내리기 시작한 오전 11시. 빗방울이 연잎을 탁탁 때리는 소리가 은근히 즐거웠다.한 방문객이 원두막에 앉아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휴대폰으로 찍은 연꽃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중이라고 했다.남편과 함께 찾아왔다는 그는 매년 찾아오는데, 해마다 다른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백련의 매력 역시 고고함 아닐까요? 예쁘고.안 그래도 가까운 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데크도 마련돼 있다. 다만 데크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이 다소 낡은 것이 흠이다.데크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줄 사진사가 없어 난처한 표정인 일행을 만났다. 일행에 있던 이모 씨가 휴대폰을 내밀며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양어깨에 거무튀튀한 DSLR 하나씩을 걸치고 있는 것이 딱 봐도 기자 티가 났던 것 같다.인터넷에서 보고 군산에서 왔어요. 연꽃 사진이 예쁘길래.입구의 저수지를 보고는 실망했지만, 청운사 경내로 들어와 보니 그 실망이 만회됐다고 그들은 말했다.올라와서 보니까 연꽃이 예쁘네요. 비가 와서 그런지 한적하기도 하고. 사람 북적이면 싫잖아요.아기자기한 맛이라고 하면, 청운사라는 절 자체도 그렇다.일주문과 사천왕상이 없다는 데서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백련이 가득한 연못과 무량광전(無量光殿)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조그만 건물이 바로 이 절의 대웅전(大雄殿)이다. 대웅전은 각 사찰의 핵심 건물이기 때문에 가장 위엄 있게 지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절의 대웅전은 위엄보다는 친근함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절 한쪽에는 하소연하는 곳이 마련돼 있었다. 하소백련, 그러니까 하소 연과의 연상 작용을 노린 듯 보였다.아메리카 원주민 티피를 닮은 하소연하는 곳 주변에는 방문객들의 소원을 담은 손바닥만 한 쪽지들이 걸려 있었다.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문구는사랑하는 나의 자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라는 글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사랑하는 것이리라. 사랑하게 해주세요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사랑하고 있으니 그렇게 표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물론 로또 일등 같은 평범한(?) 소원도 많이 걸려 있었다.사찰 주요 건물이 있는 곳 맞은편에는 일종의 식물원처럼 다양한 연 종류를 모아놓은 곳도 있다. 이곳에는 홍련도 있고 다양한 연들이 조그만 화분(?)에 담겨 있는데, 백미는 역시 수련이 아닐까 싶다.수련과 연은 사실 잘 모르고 언뜻 보면 뭐가 다른데? 하기 쉽다. 마치 (기자를 포함해)사람들이 봄에 매화와 벚꽃을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까.간단히 보자면, 잎이 수면 위로 높이 올라와 있으면 연이고 수면에 동동 떠 있으면 수련이다. 꽃의 위치도 마찬가지다. 꽃이 수면 위로 높이 뻗어 있는 것은 연이고, 수면에 떠 있는 것은 수련이다.잎 표면을 봐도 구분할 수 있는데, 연잎은 마치 기름 코팅이 돼 있는 것처럼 물이 묻지 않는다. 가운데가 움푹하고 물방울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잎은 연잎이다. 반면 수련의 잎은 팩맨을 닮은(혹은 한 조각 먹은 피자를 닮은) 모양이고, 물이 묻는다.다시 연못가를 따라 발을 옮겼다.청운사 하소백련은 사실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주지 도원(道源) 스님이 20여 년 전 천안 인취사에서 8뿌리를 얻어 청운사 경내 논배미에 옮겨 심은 것이 청운사 하소백련의 시작이었다.생산불교를 통한 농촌 살리기의 일환이었다.하소(蝦沼)는 새우 하와 늪 소를 쓴다. 마치 새우가 알을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의 명당이라는 의미로 도원 스님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그리고 백련(白蓮)은 말 그대로 하얀 연이다. 그것도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티 없이 맑고 고운 연꽃이다.청운사 관계자에 따르면 하소백련지의 백련은 엄밀히 말하자면 청련에 가깝다고 한다.다른 백련은 붉게 올라오고 꽃이 피는 과정에서 하얘지는데, 하소백련은 푸르게 올라와서 하얗게 만개하는 게 특징이지요.지난 2002년부터는 하소백련 축제를 매년 열고 있다. 올해가 15번째다. 올해 축제는 7월 17일까지인데, 하소백련은 이르면 6월부터 피기 시작해 늦게는 9월 초까지도 남아 있으니 축제 기간을 놓쳤다고 너무 늦었다 생각할 필요는 없다.8뿌리에서 시작된 하소백련은 이제 청운사 경내와 저수지를 가득 메울 정도가 됐다. 청운사 관계자가 너무 많아져서 최근에 줄인 것이 이 정도다고 말할 정도다.전체 면적은 1만여 평이라고 한다. 1평은 3.3㎡니까, 약 3만3000㎡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계산해놓고 보니 은근히 대규모다.연은 꽃잎부터 뿌리까지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또 특징이다. 무농약친환경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하소백련지에도 연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과 연잎 차 등을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식당은 무량광전 바로 아래쪽에, 카페는 주차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덥고 습한 여름 날씨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카페에서 얼음 띄운 백련차 한 잔 마시며 창밖 연못을 바라보면 그만한 피서도 따로 없을 것이다.한 잔에 3000원인 (시원한)백련차를 주문했더니, 얼음이 띄워진 시원한 잔과 단 과자 한 조각이 함께 나왔다.백련차에서는 단맛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단맛 비슷한 맛이 난다. 은은한 것이 꼭 연꽃 향기를 미각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카페를 맡아 운영하고 있는 정하담 씨는 주로 오후에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면서 꽃은 오후에 오므라들지만, 향은 오히려 꽃이 오므라든 저녁에 더 진해진다고 말했다.보통 연꽃은 아침 일찍 피어 오후가 되면 오므라들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사진이나 어떤 시각적 유희가 목적이라면 될 수 있으면 오전에 찾아가는 것이 좋다.하지만 정 씨의 말대로 연꽃의 향을 즐기고 싶다면 저녁에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연잎을 탁탁 때리던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이제 다시 속세로 돌아갈 시간이다.

  • 기획
  • 권혁일
  • 2016.07.15 23:02

금보성아트센터 제1회 한국작가상 수상한 작가 유휴열씨 "척박한 땅 생명력 불어넣는 잡초처럼…내 그림이 삶에 활력이 되길"

그의 그림을 만난 것은 80년대 초반, 인후동의 한 아파트 지하실에서였다. 햇빛 들지 않는 지하, 눅눅한 습기와 퀴퀴한 냄새가 가득찬 좁은 작업실에 강렬한 채색의 그림과 설치 작품이 꽉 차 있었다. 그때 주인 없는 그 작업실을 어떤 연유로 가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세상을 향한 날선 발언과도 같았던 익숙하지 않은 낯선 화폭들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이후로도 그의 작품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그때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작가가 새로운 정신으로 구현해내는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왜 그 시절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일까, 늘 그것이 궁금했다.2014년, 전북도립미술관이 기획한 〈유휴열의 신명난 생놀이〉에서 그 답을 얻었다. 도립미술관 전관을 다 채운 그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듯 보이면서도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입체든 평면이든 소재나 형식에 관계없이 그가 구현해내는 세계는 신기할 정도로 톱니바퀴처럼 그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해가는, 그래서 그 생명력을 강하게 키워가는 생명체와도 같았다. 초기의 작업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력 40여년의 시간이 빚어낸 성취, 유휴열만의 독창성이었다.지난 봄, 서울의 한 미술관이 제정한 미술상(금보성아트센터의 한국작가상)에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1억 원이란 상금 규모도 그렇지만 60세 이상의 작가를 대상으로 수개월동안 10여명의 평론가들을 동원해 후보들을 대상으로 작업실 현장까지 찾아다니며 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 때문이었다.지난 6월 말, 금보성 아트센터는 제 1회 한국작가상 수상자로 작가 유휴열씨를 선정했다. 우리다움을 통해 찾아낸 우리 것을 보여주는, 그리하여 비로소 한국의 상징으로까지 존재하는 대(大)작가의 탄생을 염원해온 아트센터가 찾아낸 수상자였다.선정의 이유는 명쾌했다.천년 도시 전주에서 현대미술을 상징한 한국작가상으로 유휴열 작가가 선정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역사와 전통을 현대성으로 재해석하고, 놀이로 승화한 미학을 구축했던 것이 인정되었다. 전주의 특화된 한지라는 재료 대신 알루미늄 판이라는 현대 재료로 작업의 틀을 벗어났으며, 색채 구성 작가정신 등 모든 면에서 그의 밀도 있는 작품세계는 숨겨져 있는 보물 같았다.작가 유휴열씨(67)를 만났다.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올해로 31년째 살고 있는 모악재는 2-3년 전부터 수장고를 늘렸다. 그 규모가 거대하지만 수장고 안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안채보다 몇 배 더 커 보이는 작업실 역시 벌써 근작들이 차있다.인터뷰가 있던 날, 장대비가 여러 차례 쏟아졌다. 빗소리 때문일까, 여기저기 놓여있는 그의 작품들이 움직였다. 작가의 삶과 작품 이야기가 그 안에서 출렁였다.-큰 상을 수상하셨습니다.감사한 일이죠. 혼자 정신없이 언덕배기 올라오면서 지칠 즈음 누가 등이라도 떠밀어 주면 오르는 길이 훨씬 가볍게 되잖아요. 제가 딱 그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뒤를 좀 돌아봐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었던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천천히 뚜벅 뚜벅 갈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지요.-언제부터 심사를 했습니까.6개월 쯤 된 것 같아요. 여러 명 평론가들이 작업실을 다녀가면서 심사를 하더군요. 후보자를 세 명으로 압축하고 다시 두 명으로 압축해서 최종 선정하는 방식이었어요.-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워낙 많은 것 같습니다.초기 작품은 없어요. 20대 시절의 작품은 어느 해인가 모아서 불태웠고, 그 이후 작품은 84년에 미국을 다녀오니 아파트 지하실 작업실이 물에 잠겨 다 훼손되어버렸더라고요. 지금 갖고 있는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전시실에 걸려있는 작품은 거의 근작들이겠습니다. 저 작품은 알루미늄이 소재인 모양인데 색을 거의 입히지 않았군요. 느낌이 참 좋습니다.욕심을 내지 않은 작품이 확실히 좋은 것 같아요. 담담하게 표현해내는 그런 작품이 길게 가더라고요.-욕심이라면 무엇인가를 많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인가요.그렇죠. 아마추어와 프로가 다른 점이 바로 그 지점일 것 같은데, 붓을 떼는 순간을 아는 것이 프로가 아닌가 싶어요. 어디서 멈춰야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때로는 보는 사람 몫으로 돌려서 무한한 상상도 할 수 있게 하는, 관객으로 하여금 비로소 완성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한데, 사실 그 지점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그동안 작품 변화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업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궁금합니다.몇 번의 계기가 있었죠. 첫 변화는 82년에 파리를 다녀온 이후예요. 당시 파리에는 김창렬 이성자 이응로 선생님 같은 분들이 있었는데, 피악 등의 아트페어에 그 분들 말고는 우리나라 작가가 거의 없더군요.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이나 미국의 화단이 궁금했습니다. 파리에서 돌아온 직후 우연인지 일본의 갤러리에서 초대를 받았어요. 그 다음해에는 미국을 가게 됐지요.-그때가 80년대 중반쯤이었겠군요. 화력으로 보자면 그즈음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군요.파리 일본 뉴욕의 경험이 제 삶에서 가장 크게 작용했죠. 오늘까지 이어진 그림의 핵이 될 만한 것들이 그 무렵 다 싹을 틔웠으니까요.-작가로서의 삶을 지켜가는 데에는 그런 계기들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미국은 마음먹고 떠난 유학이었어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죠. 가져간 돈이 없으니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어요. 그래도 가장 의미 있는 동력을 그곳에서 얻었어요.-선생님 작업의 화두가 된 생놀이는 언제부터 붙잡은 주제였습니까.82년부터일 겁니다. 그때 삶은 놀이라는 생각을 했어요.-놀이의 개념이나 의미가 궁금합니다.간단한 개념인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하는 놀이는 양면성을 갖습니다. 저는 굿이나 연희의 과정 속에 녹아 있는 놀이의 의미를 주목했습니다. 고통과 억압 자유로움 해방과 같은 전 과정을 놀이로 보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모든 살아있는 것의 움직임이 곧 놀이라고 봅니다.-이야기를 듣다보니 작가들은 한번쯤 자신을 스스로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아주 중요한 시간이 되니까요. 저는 젊은 세대들에게 시야를 넓혀볼 기회를 꼭 만들라고 권합니다. 밖에 나가 뭘 보고 느꼈냐고 물으면 정작 펴 보일 것은 없지만 스스로에게 스며드는 그 어떤 것이 있거든요. 미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것인가를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의미 있고요.-구체적으로 선생님은 어떤 변화를 얻었습니까.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모노톤 화풍이 유행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체질적으로 색깔을 쓰고 싶어서도 단색작가는 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는 현대작가 못하겠다고 했었어요. 작가마다 내재된 개성들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그런데 그런 개성들이 집단적으로 유행처럼 번지는 사조에 묶이는 것이죠. 그런데 밖에 나가보니 그런 선택이 얼마나 소모적인 것인가를 알게 되더군요. 제가 지향하는 세계를 더 단단히 구축해갈 수 있는 힘을 그때 얻었죠.-어느 자리에서인가 신석정 선생님과의 인연을 들었습니다. 스승이셨습니까.제가 북중학교에 다닐 때 신석정 선생님은 전주고에서 국어를 가르치셨어요. 북중과 전고는 같은 울안에 있어서 선생님들끼리 교류가 활발했죠. 그때 부모님이 학교 매점을 운영하셨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빵 굽는 기계를 들여오신 거예요. 미술시간에 그 풍경을 그렸죠. 선생님이 그 그림을 교무실 뒤에 붙였는데, 석정 선생님이 내려오셨다가 보시고 저를 부르신 겁니다. 그때 말씀이 중학교 2학년이 그리는 정물화는 대개 화병이나 과일을 그린 것이어야 하는데, 너는 아버지가 먹고 살기 위해 들여놓은 빵 굽는 기계를 그렸더라 며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생활 가운데 있는 것이다고 하셨어요. 그때 해주신 그 말씀이 지금까지 화두가 되었지요. 이후부터 대학의 실기 대회를 나가면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대학 안의 공사현장 같은 것을 그리게 되었어요. 관점 자체가 달라진 것이죠.-화폭의 변화는 외부로부터도 오지만 내부로부터도 오는 것 아닐까요. 선생님의 작품에서도 그런 변화가 보이는데요.큰 딸을 잃었을 때 그렇게 큰 충격이 없었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기였는데, 그 시절 그림은 내가 봐도 암울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고통의 힘이 그림을 바꾸게 하는 동력이 된 것 같아요.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오더군요.-모악산에 들어온 것도 또 하나의 기점 아니었을까요. 전업 작가로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힘이 아닐까 싶고요. 작업실에 놓여있는 누드크로키만으로도 엄청나더군요.이번에 심사한 평론가 한분이 우리나라 작가들은 대개 기본적인 것을 쉽게 놓아 버린다며 지금도 누드 그림을 날마다 그리는 이유를 묻더군요. 저는 비구상 계열의 작업을 하더라도 인체가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화면에 안정감 있게 구성하는 요소가 화면 구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봐요. 순간적인 것을 포착해 구사하는 능력은 늘 기본이 되어야하죠. 그런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언제부터인가 누드그림을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어느 시기인가 타일 작업도 하셨는데요.2000년 즈음 일거예요. 당시 우리나라 조각품은 돌이나 브론즈 일색이었는데 돌은 너무 차갑고 브론즈는 침침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입체물에 색깔을 입히는 방식을 찾다가 타일 작업을 찾아냈어요. 파편을 구워서 붙이는 형식이었는데 그 후에 가우디의 여러 작품을 보고 나서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가우디 아류도 안 되겠다 싶어 과감하게 때려 치웠어요.(웃음)-알루미늄 작업은 80년대 초반부터 시작했으니 오랜 작업입니다. 입체에서 평면까지 옮겨온 것은 언제부터인가요.지금 사용하는 빗살무늬 판은 우리나라 전통 토기의 전통문양과도 같잖아요. 그런 특성도 있지만 이 소재를 선택한데는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어요. 평면 작업에서 가장 큰 고민이 입체적인 표현의 한계거든요. 그래서 피카소도 옆에서 뒤에서 그리는 형식을 들여온 것 아니었겠습니까. 입체파라는 새로운 장르도 만들었고요. 그러나 그런 형식조차 평면이라는 이미지는 바꾸어지기 어렵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이 빗살무늬 판이 빛을 받는 방향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거예요. 평면에 붙여놓아도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혹은 빛이 어느 쪽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겁니다. 표현의 통로를 찾았죠.-선생님 작품은 큰 이미지 속에 다양한 언어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재들을 찾는 것이 마치 숨은 그림 찾기와도 같습니다.제가 의도하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한 화면에서 서로 어우러져 하나로 보이게 하는 그림이죠. 수덕사 현판에 만공 스님의 법어 한대목이 쓰여 있어요. 세계일화죠. 법어를 제 식으로 쉽게 풀면 꽃으로 피어나되 좀스럽게 니 것 내 것 가리지 말고 그냥 하나 되어 꽃 한 송이 피워내라는 말씀일터인데 그 의미가 강하게 와 닿더라고요. 제 그림도 그런 메시지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다양한 언어가 조화를 이루어 한 화면에서 한세상 이루어지는 그런 세계. 더 깊게 고민하고 더 열심히 그려내야 이루어질 과제겠지요.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 제 1회 한국작가상 수상 기념전 개막식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본디 잡초라는 것 중에서 괜찮겠다 싶은 것을 화분에 잘 올려 거름을 주고 사랑과 물을 주고 가꾸면 그것이 화초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화초가 그렇듯이 잡초 또한 아주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그 척박한 황무지에 씨앗으로 뿌리를 내리고 그 척박한 땅을 숨 쉬게 해 그 위에 다른 많은 생명을 자랄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잡초가 합니다. 저는 촌에서 그림 그리면서 그려 내 그림이 생명력을 가지고 잘 견뎌줘서 오래도록 잡초여도 좋겠다. 그 역할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고개까지 왔습니다. 이제 어찌하다 화분에 올려졌지만 앞으로도 잡초의 역할을 잊지 않고 같은 길 열심히 걸어가겠습니다.작품을 빼 닮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 만나게 될 그의 〈생놀이〉가 더 궁금해졌다.● 유휴열 화백은- '우리다움'통해'우리 것'보여준 한국 대표화가작가 유휴열은 정읍이 고향이다. 소성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으니 그가 품고 있는 정서와 감성은 어린 시절, 그곳에서의 시간들로부터 이어졌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컸던 그는 늘 바깥세상을 동경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전주의 중학교에 합격한 형들 덕분에 가족 모두가 전주로 이사를 나오지 않았다면 가출청소년이 되어 지금쯤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풍남초등학교 4학년 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미술반 교사는 늘 그를 옆에 두고 그림 심부름을 시켰다. 미술실기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북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그에게는 특기가 또 하나 있었다. 탁구였다. 전국체전에 전북 대표 선수로 뽑혀 나갈 정도로 운동에도 능했다. 전주고에서는 탁구 특기생으로, 영생고에서는 미술 특기생으로 그를 불렀다. 부모님들은 전고를 권했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영생고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전북일보에 전국의 미술실기대회서 최고상만 10회 돌파한 천재소년으로 소개될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는 2년쯤 꿇고서야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미술로 이름을 알린 대학들의 실기대회 최고상을 휩쓸었으니 대학 입학은 어렵지 않았으나 애당초 대학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에서 임용하는 강사제도로 중학교 미술강사가 되었다. 스무 살 갓 넘은 시절이었다. 3년 가깝게 강사생활을 하는 동안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교장선생님은 그에게 대학 입학을 권했다. 야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영생대(현 전주대)에 들어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학은 7년 만에 졸업했다.작가로서의 삶은 질풍노도, 거친 파도 속에 놓여 있는 듯 보이지만 언제나 충만한 작가정신을 구현하는 일에 몰두해온 궤적은 빛나는 결실로 이어졌다.82년, 개인전을 계기로 1년 가까이 파리에 머물렀다. 그때 그가 찾아다녔던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와 작품들로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광활한 대지 위에 서있는 듯 한 느낌은 그의 정신을 새롭게 일깨웠다. 생놀이. 그가 평생의 화두로 삼은 주제를 그때 만났다. 파리에서 돌아온 그를 일본 오사카 아마노 화랑에서 초대했다. 일본 미술인들과의 교류가 시작됐다. 84년, 작정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던 1년 동안의 뉴욕생활은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갖게 했다. 내친김에 제대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싶었으나 서울의 아르코 미술관 초대전으로 귀국하면서 유학생활은 끝이 났다. 이후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 기획전을 이어왔다. 1982년 전주 금하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을 본격적인 작품 발표의 장으로 치자면 올해로 34년, 전업 작가로 살아온 그의 활동은 국내외의 크고 작은 미술관 공간 안에서 쉬지 않고 이어졌다. 80년대, 전주에 얼화랑을 열고 지역 미술인들의 활동을 북돋으면서 청년미술상을 제정해 후배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일에 나섰던 그는 지난해, 작업실을 겸한 미술관 모악재를 젊은 작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내놓고 중단되었던 청년미술상을 부활시켰다.마니프 국제아트페어 대상, 루벤스상, 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 작가상, 목정문화상, 전북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 부산 광주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삼성문화재단, 금호미술관, 한솔뮤지엄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올해 새롭게 시도되어 국내미술계의 화제가 된 금보성아트센터 제정 한국작가상에 선정됐다.

  • 기획
  • 김은정
  • 2016.07.15 23:02

[전북 생태관광, 첫 걸음 떼다]⑦ 군산 '청암산 에코라운드' - 저수지 품은 후덕한 산, 누구에게나 곁 내주는 쉼터로

군산저수지를 끼고 있는 청암산은 군산 시민들의 휴식과 힐링 공간이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데다, 험하지 않게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뤄진 산세는 누구에게나 쉽게 곁을 내주기 때문이다. 해가 긴 여름철에는 평일 저녁에도 군산은 물론 인근 익산이나 전주 등에서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또 군산저수지 수변로는 구불4길, 구불5길의 일부 구간과 연결돼 있어 트레킹이나 등산,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군산저수지와 청암산군산저수지는 옥산면과 회현면에 걸쳐 있으며, 옥산면 쪽에서는 옥산저수지로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군산에서 회현으로 연결하는 도로를 끼고 장다리, 팔풍갱이, 세동, 요동, 고사 등 5개 마을과 논(밭)이 있었으나 1939년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마을이 잠겼다. 1963년에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돼 군산시민의 제2식수원이자 북선제지(현 페이퍼코리아) 공업용수로 사용됐다. 2009년에야 사람 출입이 허용됐으며, 40년 이상 사람과 인공의 때가 묻지 않아 자연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다. 저수지 주변으로 걷기좋은 수변로가 조성돼 있으며 한 바퀴를 모두 도는 데는 4시간 정도 걸린다. 또 수변로 일부 구간은 구불길과 겹쳐져 흙길의 포근함으로 산책하기에 좋다.청암산은 옥산과 회현면 일원에 길게 드러누운 형태이며, 조선시대에는 푸른산이라는 뜻의 취암산(翠岩山)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청암산(靑岩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취암산을 빠르게 발음하면 샘산으로도 들려 샘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뤄 등산과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등산로는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최근 1년 동안의 인터넷 블로거와 카페 검색을 통해 살펴보면 걷기(트레킹, 하이킹, 등산)와 자전거 타기, 캠핑, 기타 경관과 풍치, 먹거리, 주변 볼거리 등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생태자원군산저수지는 만경강-대위제에서 백석제-미제저수지-옥구지-옥녀지를 연결하는 생태축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산저수지와 그 주변에는 산림군락 3개, 습지군락 15개 등 모두18개의 다양한 식물군락이 분포돼 있으며, 산림 우점식생은 곰솔군락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습생식물군락 중에서는 마름군락이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식물상은 104과 271속 364종 1아종 3품종 51변종으로 419 종류가 있으며, 이중 피자식물이 97.1%, 양치식물이 2.4%, 나자식물이 0.5%를 차지하고 있다. 인근에서 관찰된 보호종은 원앙(천연기념물 327호)과 새매(천연기념물 323-4호), 말똥가리(멸종위기 2급)가 있으며, 고라니, 청설모, 두더지, 너구리, 멧토끼 등 5목 6과 8종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다.△구불길과 인근 관광자원새만금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관광벨트권의 관문인 군산에는 고군산 군도 등 우수한 자연환경에서부터 인문환경, 문화재, 근대건축사 등 역사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하다. 지정문화재도 34점에 달하며, 겨울철에는 금강변을 따라 다양한 종류의 많은 철새가 월동한다.이에따라 군산시는 이들 다양한 관광자원을 탐방할 수 있도록 8개 코스 147km 길이의 구불길(탐방로)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구불길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와 자유, 풍요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8개의 코스는 지나는 지역과 특징에 따라 비단강 길, 햇빛 길, 큰들 길, 구슬뫼 길, 물빛 길, 달밝음 길, 탁류길, 새만금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이중 제4길인 구슬뫼 길과 5길인 물빛 길이 군산저수지 수변도로를 통과한다.△조성계획군산시의 청암산 에코라운드 생태관광 계획은 환경을 보전하면서도 방문객들에게 이용편의를 제공하고, 주민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특히 군산시는 탐방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생태의 복원 관리에 주력하면서 위험 요소를 줄여 안전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수변로나 등산로 일부 구간은 난간이 없는 절벽으로 부주의하면 자칫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 담당자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지만, 솔직히 자전거 타는 것은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생태계 복원사업생태계 보전복원을 위한 사업으로는 편백숲 조성, 원앙 서식처 복원, 대나무 식생 복원, 가시연 보전복원, 구절초 단지 조성 등이 있다. 편백숲 조성은 산책로 주변을 대상으로 하며, 멸종위기종인 원앙의 서식처 복원을 위해서는 개방수면에 부유식의 인공식물섬을 조성해 깃대종인 원앙이 수면에 의해 포식자 및 외부로부터 격리될 수 있도록 한다. 또 과거 죽동 지역으로 불러던 곳의 대나무숲을 복원해 경관을 개선하고 정체성을 회복하며, 기존 수목의 하단부에 구절초를 식재해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이자 청암산 에코라운드 생태관광지의 깃대종인 가시연의 보전복원사업으로는 가시연을 산책로로부터 이격하고 수변 관찰데크와 생태해설판을 설치한다. 특히 가시연은 수질, 수온 등 수환경의 물리적 변화에 민감하므로 수질오염 등의 환경교란을 유발할 수 있는 탐방객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도록 난간 등을 설치해 관리한다. 또 깨끗하고 얕은 수환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의 토착종을 활용해 수질을 정화하고, 인근 임야의 재선충 발생지역에 대해서도 복원사업을 펼친다.△인프라 확충 계획탐방객들을 위한 인프라로는 방문자센터와 잔디광장, 원앙길 조성, 꼬마숲 높이마당 등이 계획돼 있다.잔디광장은 주 진입로 입구의 제방 둑 아래에 있는 억새숲과 연계해 잔디광장을 조성하고 사계절에 맞춰 야생초화 단지를 조성해 탐방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이다. 또 청암 원앙길은 제방 둑의 노출된 추락위험을 예방하고 지저분한 수변 경계를 정비하며, 목재 데크를 활용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중간에 2~3개 가량의 벤치를 마련해 쉼터 기능을 부여하고 안내도면과 포토존도 설치할 예정이다.꼬마숲 놀이마당은 회현면 어린이 생태습지 체헙교실의 습지관찰 데크 인근에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4236㎡ 규모로 설치할 계획이다. 눈비가림 교육시설과 제반 놀이시설 등을 갖추고 숲 해설사와 숲 높이 지도사 등 전문가를 배치하여 다양하고 풍성한 체험을 제공할 방침이다.걷기좋은 탐방로와 친환경 에코롯지는 생태관광과 주민 소득을 직접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사업이다. 걷기좋은 탐방로는 우동, 용호실, 신성, 대려, 금성, 가시, 죽동, 척동, 대위 등 9개 마을을 통해 수변로 및 등산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도로를 조성할 계획이다. 친환경 에코롯지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숙박시설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회현면 진입로 일원에 1실당 3~4인이 사용할 수 있는 4~5개 정도의 객실을 갖춘다는 계획이며, 옥산면 남내리 문효치 시인의 생가에 위치해 있는 알콩달콩영농조합법인 등을 민박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이성원
  • 2016.07.15 23:02

[참여&소통]농촌공동체 살리는 방법- ④ '골칫거리'마을 유휴시설 재활용 위한 시설은행 만들자'

지금 무주 초리넝쿨마을은 전북도의 생생마을 사후관리 사업비를 지원받아 체험센터를 리모델링하고 있다. 자칫 유휴시설이 될뻔한 기존 향토산업마을 체험센터 1층은 마을Cafe초리, 2층은 마을학교초리로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적이고 사사로운 카페처럼 커피나 밥 장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름도 카페로 불리고 겉모습도 얼핏 카페처럼 생겼으나 사실상 마을공동체의 생활문화 복지회관이나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허브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목적이다.2층의 마을학교초리는 폐교된 괴목초등학교 초리분교를 되살리는 셈이다. 우선 마을 내부의 주민들을 위해 할매할배 한글교실을 열고, 무주군민 등 지역주민들을 위해 마을학 교실, 그림 교실, 글과 책 교실, 적정 생활기술 교실 등을 수시, 상시로 꾸려나갈 계획이다. 트로트 가수인 이경환 이장님의 노래교실이나 농사 교실도 빼놓을 수 없다. 교실 한 편에는 마을도서관, 마을책방도 자리잡는다.카페 입구에는 마을가게초리도 따로 차려진다. 고추, 마늘, 산나물 등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물론, 카페에 붙은 마을방앗간초리에서 가공한 칡효소, 칡떡, 칡즙, 칡차, 머루즙 등도 카페를 찾는 마을손님들에게 직판할 계획이다. 큰 돈을 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동안 중간수집상에게 넘어가던 유통마진만큼 마을 농부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이런 마을공동체사업의 책임경영을 위해 마을협동조합초리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초리마을 주민은 물론 카페와 학교를 이용하는 지역주민들도 동참할 수 있다. 가령 한 달에 1만원의 회비를 내는 조합원 몇 백명만 모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2만여 무주군민의 2~3% 정도라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내친 김에 더 멀리 내다보자면 마을공동체사업의 공동소득을 모아 마을양로원도 세우고, 마을 농가마다 매달 10만원이라도 기본소득 월급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초리넝쿨마을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농촌관광 마을이나 경관우수 마을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더도 덜도 말고 마을 주민들이 서로 돌보고 보살피는 생활복지공동체마을로 되살아났으면 하는 소망이다.△유휴농지는 농지은행에게, 유휴시설은 자산은행에게무주 초리넝쿨마을처럼 전국적으로 농촌지역개발사업이 벌어진 마을, 지역마다 유휴시설이 골칫거리다. 커뮤니티센터 등 각종 기초생활기반 확충 관련 시설, 농식품 가공장 등 지역소득증대 관련 시설, 생태공원 등 지역경관개선 관련 시설 등이다. 2011년 한국농어촌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사업지의 50%에 달하는 시설물이 폐쇄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미비한 사업계획, 미흡한 운영 프로그램, 부실한 사후관리 등이 원인이다.이처럼 마을공동체사업의 성과물이 자칫 유휴시설로 전락하는 건 해당 마을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손실이고 국가적인 낭비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자산의 경영 및 관리 능력이 부족한 해당 마을에 책임을 떠넘기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책임을 지고 싶어도 책임을 질 수 없는 구조적 역부족의 상태에 놓인 마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적안정적 관리와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한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 대안이 절실하다. 가령 중장기 투자, 임차료 지원, 임차기간 연장 등 특단의 후속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한국농어촌공사에서 운영하는 농지은행의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농지의 수급조절을 통한 농지시장의 안정, 농지소유제한 완화에 따른 농지의 보전 및 관리, 도시민의 귀농촉진 등이 목적이다. 노동력 부족, 고령화로 자경하기 어려운 자의 농지, 농지에 부속한 농업용시설을 임대수탁 받아 전업농, 귀농희망자 등에게 임대하는 농지임대 수탁사업을 주로 영위한다. 전업농 등에 농지를 매도, 영농규모 확대, 농지 이용률 증대, 농업구조개선 등을 촉진하려는 농지매도 수탁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농촌지역 유휴시설 지역공유 사회적경제 자산은행을이처럼 유휴농지를 임대, 매도하는 농지은행과 마찬가지로 유휴시설을 임대, 매각하는 시설은행을 따로 설립하면 어떤가. 이른바 유휴시설 지역공유 사회적경제 자산은행 정도의 설립취지와 사업목적을 띠면 적절할 것이다. 농촌지역개발사업 등의 지원으로 조성되었으나, 애초의 사업목적이나 기대효과와는 달리 운영성과가 부실하거나 부진한 유휴시설이 주요 대상이다. 유휴화된 기초생활기반 확충 시설, 지역소득 증대 시설, 지역경관 개선 시설 등을 적임자가 재활용할 수 있다면 유휴시설화를 방지하는 효과는 물론, 마을공동체의 활성화와 지역사회의 재생이 촉진될 것은 자명하다.거래는 농업인, 농업법인, 지자체 등이 시설은행에 임대나 매도를 신청하면서 개시된다. 귀농인 등 농업인, 농업법인 등이 임차와 매입을 신청하면 은행은 거래 및 지원 타당성을 심사한다. 이때 사업 및 창업계획의 적정성 여부, 마을 및 지역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기여도 등이 주요 고려사항이다. 특히 농촌의 원주민과 도시의 귀농인인 협동하고 연대하는 이른바 도농상생형이면서 사회적경제 방식의 공동체사업일 경우 우대해서 지원할 수 있다. 또 임차료, 매입대금 지원, 창업자금 및 초기 운전자금 등의 타당성 및 투융자 심사도 병행할 수 있다.■ "농촌형 공공임대주택 짓자"- 임시 거처 한계 '귀농인의 집' 대안귀농인에게는 농지, 일자리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주택이다. 살 집을 구하러 마을을 돌아다녀보면 빈 집은 많은데 막상 들어가 살만한 집은 많지 않다. 폐가가 된지 이미 오래 되어 고쳐쓰기 어려운 상태이거나, 상태가 괜찮다고 해도 집주인이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집들이 많다. 정부에서 귀농인의 집을 지원하고 있지만 남의 집이고 임시 거처일 뿐이다. 그렇다고 귀농의 미래가 불확실한데 덜컥 집을 사거나 지을 수도 없다.정부의 본격적인 귀농인 정착정주 지원정책인 신규마을 조성사업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기반시설, 공동이용시설 등의 설치 사업비를 지원, 입주민 입장에서 그만큼 금전 부담을 덜 수 있지만 부지구입비, 주택건축비 등 자부담 비용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는 정부가 지원해줄 수 없다. 시행사와 입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그래서 제주도에서 소규모 학교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다세대 무상 임대주택 사례는 주목할만 하다. 학생수가 줄어들어 폐교 위기에 처한 농어촌의 작은학교를 살리기 위해 취학아동을 자녀로 둔 귀농인을 유치하려는 목적이다. 학교살리기 공동주택으로 불리는 이유다.애월읍 봉성리 문화주택의 입주조건은 다자녀, 저학년 자녀를 둔 가정이 우선이다. 초등학생이 반드시 1명 이상이되 미취학 학생수가 많은 경우 역시 우선권이 있다. 27평형 기준으로 보증금 500만원에 연간 임대료 300만원 수준이다. 곽지리는 곽지리금성리 주민과 출향인사들이 25억원의 성금과 마을자금, 행정기관 지원금 등을 모아 다세대주택 24세대를 지었다. 곽금초등학교 전입자녀를 포함해 100명이 넘는 신규 주민이 무상으로 입주했다.근본적으로는 재정형편이 좋지 않은 귀농인에게는 공공 임대형 사회주택을 지어주는 방식이 효과적인 지원정책이 될 수 있다. 이는 말그대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국민주택기금, 공공택지 등 공공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이다. 국가, 지자체, LH, 민간건설업체가 건설, 매입, 임차 방식으로 귀농인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때 신축보다 기존의 유휴시설 또는 노후주택을 재생하는 사업추진 방식 또한 적극 채택할 필요가 있다.물론 이같은 공공 임대주택에 입주혜택을 부여받는 귀농인, 원주민 등 입주희망자는 엄정한 사전 입주심사를 거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 지역공동체의 재생과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명분과 책임감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부터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난 문제를 해소하려는 공공 사회주택(Social Housing)이기 때문이다.정기석 대표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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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4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새로운 여행객은 언제나 환영이야!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의 변신

#표지.새로운 여행객은 언제나 환영이야!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의 변신#1.각양각색 한복 입고 멋 내보는 전주 한옥마을.#2.수십만 송이 연꽃이 기다리는 덕진공원 연못.#3.전주 영화의 거리와 수많은 맛집.#4.이런 매력이 넘치는 전주를 여행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운전자에게는 호남제일문이,내일러에게는 전주역이,그리고 고속버스 이용객에게는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이 관문 역할을 합니다.#5.1980년 전주시 금암동에 신축,(1980년 2월 22일 열린 전주고속버스공용정류장 기공식)#6.36년 동안 전주를 오가는 수많은 이들이 거쳐 간 전주의 대표 관문입니다.(1982년 10월 2일, 추석 후 귀경 승차권을 사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7.무려 36년 동안이나 같은 건물을 쓰다 보니 비좁았고, 외관도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지요.(2006년 3월 21일 촬영된 전주고속버스터미널 모습)#8.또 시외버스터미널(1973년 준공)과 분리돼 있어 이용객이 혼란을 겪는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이 때문에 종합 터미널 신축론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양 터미널 운영 주체가 달라 합의에는 이르지 못합니다.#9.결국 2014년, 금호터미널은 원래 부지에 새 건물을 짓기로 결정하고, 2015년에 공사를 시작합니다.(2015년 2월 24일 촬영된 전주고속버스터미널 모습)#10.공사 1년여 만인 지난 5월 3일, 새로운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이 임시로 문을 열었습니다.3층에는 대형 서점이,2층에는 상가가,1층에는 매표소와 대기 장소가 놓인 구조입니다.#11.그리고 마무리작업이 끝난 지난 7월 8일, 새로운 전주고속버스터미널이 개관식을 통해 정식 개장합니다.전주의 첫인상, 이제 조금은 세련돼 보일까요?#12.음 승객 대기 장소는 여전히 좁아 보이지만요.#13.터미널 관계자: 과거 원형 건물에서 평면으로 펼쳐지면서 시각적으로 다소 좁아 보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연휴나 공휴일에 승객 불편이 나타나면 공간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14.새로워진 전주의 관문, 전주고속버스터미널.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합니다.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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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3 23:02

[문화&공감] 군산 '기와커뮤니케이션'

군산시 상나운길 3길 방향으로 걷다보면 명화학교가 나오고 그 뒤로 빈 의자가 놓여있다. 언제부터인가 이 도시에서는 빈 벤치 하나 찾기가 어려워졌다. 길을 가던 누구든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의자. 바로 근처에 있는 기와커뮤니케이션도 그런 곳이다. 의자와 예술적 감성을 마련해두고, 놓치고 살기 십상인 상생의 소통을 찾게 하는 공간이다.거리에 빈 의자 하나 놓인 걸 보기 힘든 도시. 사람들은 움직여야 하고 어딘가에 앉아 쉬기 위해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기와커뮤니케이션은 이런 도시에서 좀 별난 곳이다.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과 길 고양이에게 자리를 내 주는 곳이랄까. 건물 1층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공간은 문화카페 요다지. 예술인파견지원사업(예술인의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필요로 하는 예술인을 연결해 주는 사업) 파견예술인 공간 소우주로 구성돼 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문화공간 같지만 파견예술가와 함께 디자인사업 및 문화교육을 함께하는 상생의 감성 찾기 공간이다.△예술 안은 기업, 기업 안은 예술이처럼 기와커뮤니케이션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소 딱딱한 사고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예술인이 개입하면 생각이 유연해진다며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통해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사회 공헌의 새로움을 함께하고 있다.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기업 속에 예술의 혼과 창의력을 심어놓아 기업의 문화예술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강조해 온 창가문답(창조경제의 가시화는 문화에 해답이 있다)의 구체적인 결실이 기업과 예술인의 만남에서 맺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문화관광체육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추진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올해 3년째를 맞이한다. 특히 올해는 산업의 문화화를 기치로 1000명의 예술인들이 약 300개의 기업으로 찾아가 창조와 혁신의 과제를 예술적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통해 엮어진 기업과 예술인들은 조직문화 개선, 복리후생, 교육훈련, 제품 기획, 홍보 마케팅, 사회 공헌 등 6개로 분류된 유형에 따라 활동 계획을 수립하고 8개월간의 예술적 협업에 돌입한다.기와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임지산 운영자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세 가지를 기본 철학으로 심는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협업의 다양성, 그리고 생태적 가치의 더 큰 세상이다. 이들의 다양한 활동은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되지 않고 뚜렷한 의도가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이는 끌어안고 끌어안기를 반복하는, 즉 함께 나아가기 위해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맥락이다.△예술을 껴안아 소통으로 모으다파견예술인 김상덕(회화), 안명호(설치), 오종원(설치), 조인한(영화)작가는 기와커뮤니케이션에서 11월까지 아름다운 포옹을 함께한다.김상덕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음. 예술가는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서 작업을 해요. 그러나 그 행위 안에는 사회적 역할을 수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업이 보통은 작업실 내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전시회가 아니면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요. 파견지원사업은 이러한 부분에서 예술인과 기업, 기관을 연결시켜주어서 그러한 활동들을 펼쳐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뭐,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의 가장 큰 목적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였지요. 한달에 120만원을 준대요. 그에 따른 과정과 결과물이 있어야 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요. 그래도 다른 일에 비해서 작가적 입장을 가져가면서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고 대등한 관계로 있을 수 있다는게 좋아요.안명호 작가는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하고 있는 예술활동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잖아요. 예술인 파견은 거기에 가까운 형태의 일자리라고 생각해요. 이전에는 주로 교육활동으로 돈을 벌었는데, 저한테는 누구를 가르친다는게 잘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원하는 형태의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정도의 일자리를 자기가 하는 예술활동과 관련해서 얻기가 쉽지 않으니까요.오종원 작가도 비슷한 입장이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뚜렷한 수입이 생긴다는 게 무척 큰 동기겠지요. 또 뭐라 할까, 아직 더 늦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고 잠시라도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는 그런 만족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경험적인 부분에서는, 사실 국내 분위기도 그렇고 하나의 회사나 집단에 들어가면 쉽게 옮기거나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 파견 사업은 잠시긴 하지만 이런저런 기업과 일들을 경험하고 관찰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어요.조인한 작가는 처음에 이 사업에 대한 소식을 듣고 지원하기까지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제적 지원은 언제나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존의 작품 혹은 전시 지원 사업의 경우 지원금의 활용 범위가 어느 정도 제한적인데 반해 참여예술인 사업의 경우 일반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창작비에서 부터 실재 생활비까지 지원금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작가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기업과 일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부담과 걱정을 느꼈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업에 지원할 당시 어떤 종류의 기업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어떤 방식으로 기업과 예술인들 사이에서의 매칭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작정 단순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일하게 될 기업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다고 볼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생길수도 있다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진행하게 될 사업의 종류에 따라 어떤 무형적인 결과물 역시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2년째 기와커뮤니케이션 방향이 꾸준히 유지되며 느슨하지만 단단한관계를 운영진 내부에서 그리고 참여자들과 유지해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거창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통과 상생을 찾는 건 답을 구하지 못할 일일지 모르지만 이곳 이 공간은 꾸준히 서식지를 만들고 누군가 잃어버린 상생을 찾도록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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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2 23:02

[참여&소통] 시니어클럽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천년누리봄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막걸리 주막이다.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이곳은 푸짐한 안주와 인심으로 이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이곳은 2009년 12월 전주효자시니어클럽이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해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전북도전주시로 부터 2억원을 지원받아 문을 열었다. 245평의 대지에 한옥 두 채를 이어 만든 덕분인지 입구에서 부터 고풍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막걸리 한 상에 2만원으로, 호박죽이며 맛깔스런 해물파전 생선조림 수육 계란탕 등이 상을 그득 채운다.△ 천년누리봄, 새참수레사업 성공적이곳의 특징은 매니저를 제외한 종사자 11명이 60세 이상의 노인이라는 점이다. 분홍색 생활한복을 입고 요리와 서빙을 하는 품이 능숙하고 자연스럽다. 더욱이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고 집에서 담근 된장과 간장을 사용해 눈길을 끈다. 점심에는 백반과 산야초비빔밥 도가니탕 떡국 등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초창기부터 이곳에서 일해 온 최화자(71)한선례(70) 어르신은 일을 함으로써 자식들에게 당당할 수 있어 보람 있고, 고객들이 어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많은 자식을 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미소 짓는다.더불어 효자시니어클럽은 장터사업단도 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 남부시장에 둥지를 틀고 구이김 식혜 등을 팔고, 금토요일에는 야시장에 참여한다. 야시장에서 한옥 모양의 틀에 찍어 1개에 1000원씩 판매하는 비빔밥구이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 얼마 전에는 서부시장 상인회와 연계해 중창단을 만들고 우리밀로 만든 엄마손 찐빵도 팔고 있다.완주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새참수레는 슬로푸드 유기농 뷔페다. 2007년 문을 열고 노인공동작업장을 운영하면서 농촌지역의 특색을 살렸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20여 가지의 농산물을 활용해 두부 도시락 반찬 등 식품 제조판매사업을 시작했다. 2012년 고령자 친화기업에 선정돼 한식뷔페 레스토랑 새참수레 봉동점을 냈다. 그리고 올 6월에는 2호점(삼례점)을 열었다. 완주시니어클럽은 이들의 성공에 힘입어 지역노인들의 교육, 여가서비스, 일자리를 한 곳에 모은 노인일자리 테마단지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와 함께 임실시니어클럽이 2014년 문을 연 한식뷔페 행복한 밥상도 성공적인 노인일자리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노인일자리 전담기관 허브역할 미흡이처럼 시니어클럽은 노인일자리사업 가운데 공익분야가 아닌 민간분야를 맡고 있다. 다양한 노인 적합형 일자리를 개발하고 여건조성을 목적으로 세워진 노인일자리 전담기관이다. IMF 경제위기와 고령화사회 진입이라는 사회적 상황이 설립 배경이었다. 2001년 서울 종로 등 5개소가 시범적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명칭은 지역사회시니어클럽(CSC)이었으며 2004년 노인인력지원기관을 거쳐 2005년 시니어클럽으로 변경됐다. 2014년 사회복지시설로 정식 허가되었으며 올 6월 현재 전국에 129개가 있다. 전북에는 13개가 있으며 노인 58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북지역 노인일자리 2만3000명 중 25%를 맡고 있는 것이다.이들 일자리는 공공분야와 달리 시장형으로 수익창출을 통해 생계형 보수를 제공하는데 의미가 크다. 클럽 당 직원 정원은 상근 관장을 포함해 5명 이상. 지방자치단체로 부터 해마다 2억2000만원의 보조금을 받고, 일자리 수행규모와 내용에 따라 추가 지원을 받고 있다. 사업유형은 고유사업과 노인일자리사업, 기타 지원사업으로 구분된다.하지만 시니어클럽은 기대와 달리 노인일자리사업의 허브 역할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조직관리 등 간접적 성격의 부대비용이 많아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장진입형 사업 확대를 목적으로 예산을 투입했으나 일자리 창출실적이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전북의 경우 고창 부안 진안 순창 등에 시니어클럽이 없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전주효자시니어클럽 최재훈 관장은 시니어클럽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선 민간분야 노인일자리사업의 지역사회 거점기관 및 생산적 지역공동체 인프라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과 재정투자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기주 한국시니어클럽협회 부회장 "어르신에 일자리 책무이자 효도죠"요즘 모두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 만큼이라도 발전하게끔 노력하신 분들이 어르신들입니다. 이 분들은 자식 뒷바라지 등으로 노후 준비를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게 저희들의 책무이자, 효도라고 생각합니다.원광효도마을시니어클럽 박기주 관장(한국시니어클럽협회 부회장51)은 도내에 시니어클럽이 설립되던 2004년부터 12년째 노인들의 취업교육과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서 온 인물.원광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사회개혁을 꿈꾸며 익산시의원에 당선돼 왕성하게 의정활동을 펼 당시 복지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복지위원회 소속으로 익산시 복지예산의 1/3이 노인관련 예산이라는 데 놀랐다. 그래서 예산을 공부하면서 복지기관을 자주 둘러보게 되었다고 한다. 시의원을 마친 후에는 노인복지관 등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다 원광효도마을 오순옥 이사장의 권유로 사회복지 공부를 하게 됐다.박 관장은 시니어클럽의 경우 전북지역 일자리 수행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왔다.박근혜 대통령이 해마다 5만개 씩의 노인 일자리를 공약했는데 내년에는 11만개로 늘어날 것 같다면서 전북지역 시니어클럽이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고 공유해 많은 일자리를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또 노인들은 젊은 사람과 달리, 최저 임금을 못 맞추더라도 월 20만원을 주는 공익형보다는 시장형을 선호하기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법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노인일자리 기관끼리의 활발한 상호교류, 나아가 각급 행정기관이 시니어클럽 등에서 생산된 물품을 우선 구매해 줄 것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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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7 23:02

[문화&공감] 라면음악회

라면 한 그릇의 사랑. 작은 것 같지만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소외된 이웃들이 많다. 제도권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그들에게 따뜻한 라면 한 그릇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라면 입장료 받는 음악회지난 2일 익산예술의 전당에서 의미 있는 음악회가 열렸다.라면드림오케스트라 입장료는 라면 5봉지를 받는 이색 음악회다. 연주자들은 공연비를 받지 않는다. 2006년부터 올해 11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재능 기부 음악회다. 올해 20회를 맞는 라면음악회는 20회답게 매머드급으로 진행됐다. 오케스트라 단원 103명, 협연 연주자 4명, 합창단 50여명 등 16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음악으로 재능 기부에 참여했다.연주곡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 The Syncopated Clock Sleigh Ride Blue Tango Pink, Plank, Plunk! Serenata 등의 수준 높은 곡을 연주했다. 협연으로는 바리톤 김대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의 아리아 ,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피아니스트 황은아, 조영웅의 협연 Libertango , 소프라노 소혜정 바리톤 김대수의 The Lords Prayer를 전주남성합창단과 갈릴리교회 찬양단과 함께 연주해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외에도 엎드림 앙상블, 우쿠렐레 연주 맘마미아 등이 참여했다.익산예술의 전당이 개관한 이래 가장 많은 연주자(오케스트라 단원 103명, 합창 50여명, 협연 연주자 4명)가 무대에 서다보니 전당측도 초비상이었다고 한다.△ 11년째 이어지는 재능기부라면음악회는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기획자인 송흥준씨(갈릴리교회 목사)는 우연히 만난 조손가정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움직였다. 어느 겨울날 손자와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찾았는데, 그분의 소원이 뜨거운 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는 것이라고 하셔서 충격을 받았어요. 몇 백원 하는 라면 한 봉이 소원이시라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라면드림오케스트라의 모든 연주자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 순수 재능 기부 프로젝트 사업이다.해마다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모집하는데, 올해는 1월에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선발하였고, 2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연습 시간을 지키며 라면음악회를 준비하였다.11년째 지휘로 재능 기부를 하고 있는 무지카 카메라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일규 지휘자가 2006년부터 지휘봉을 잡고 있다. 나이도 성별도 실력도 각기 다른 단원들이 모이다보니 감동적인 사연을 가진 사람, 인생 역전이 된 사람 등 사연도 각각이다.△ 다양한 사연 안고 참여바이올리니스트 김진솔(29)씨 지난해 골수암 투병중이었다. 그는 3차 항암 치료와 음악회 일정이 겹치자 항암치료를 미루면서까지 라면 음악회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다행히 올해 그는 치료를 마치고 회복중이다. 그리고 행복도 찾아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올해 라면음악회 날 그는 양가 상견례를 했다고 한다.라면 음악회에 참여하기 위해 보스턴에서 비행기 타고 온 먼 길을 날아온 조영웅(29)씨는 현재 보스턴대학에서 피아노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러시아 유학 후 미국 유학 중에 라면음악회 소식을 듣고 작년부터 라면음악회에 합류하고 있다. 그는 요즘 고민이 생겼다. 내년에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내년부터 음악회에 참석하지 못할까봐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11년 동안 라면음악회와 성장한 친구들도 있다. 동갑내기인 박민선(27)씨와 권설(27)씨는 학창시절 우연히 참여하게 된 라면음악회를 통해 음악을 전공하는 등 인생의 진로가 달라졌다. 동갑내기 친구는 11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는 개근 단원이기도 하다.남찬우, 남찬영 형제처럼 가족이 함께 라면음악회에 참여하는 가족들이 꽤 많다.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이 함께 하는 가족 음악회로 번지고 있다. 이외에도 발달장애를 가진 고등학생, 9살 초등학생, 68살의 할머니, 예비단원으로 참여한 초등학교 1학년들 등 103명의 라면드림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각기 다른 실력과 사연을 가지고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소외계층에 라면 나눔이날 음악회에서 모인 라면은 700여만원 어치로 익산시자원봉사센터에 기증되었고, 11년간 1억3000여만원의 라면이 익산지역 조손가정에게 전달되었다.라면음악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참여 이유도 다르고, 사연도 각기 다르다. 나이도 다르고 실력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하나다.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자신의 재능을 기부해 따뜻한 세상 만들기에 함께 하고픈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라면 음악회를 통해 행복바이러스가 되어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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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5 23:02

민선 6기 반환점 돈 송하진 전북도지사 "도민들께 '우리니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심어주겠다"

민선 6기 전북도정이 반환점을 돌았다. 삼락농정과 토탈관광탄소산업이 일정 부문 성과를 거둔 반면에 각종 경제지표는 침체일로로 지역경제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전북도는 앞으로 2020 대도약 프로젝트추진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도민 소득증대 등을 도정 핵심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2023 세계잼버리 유치와 새만금 신공항 건설, 동서횡단철도구축 등 전북발전의 촉매제가 될 사업에도 힘을 쏟겠다는 구상이다.이에 지난달 27일 송하진 전북도지사를 만나 민선 6기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송 지사는 앞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 실현가능한 정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지난 2년 동안 도정을 이끌면서 느낀 소회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생동하는 전라북도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쉼없이 달려왔습니다. 삼락농정토탈관광탄소산업, 새만금개발 등 도정 현안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조직과 환경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보여주기 식이나 임시방편 정책이 아닌 우리가 정말 잘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추진했습니다. 결과도 좋았습니다. 특히 도민들의 성원에 힘어 탄소법 통과, 연구개발특구농생명SW융합클러스터 지정, 새만금공항의 공항개발계획 반영 등의 큰 성과를 이뤄냈습니다.-탄소법 통과를 계기로 탄소산업 육성 전략에 변화가 있습니까.2006년 전주시장 재직 때부터 현재까지 탄소밸리 조성사업, 초고강도 탄소섬유 개발사업, 연구개발특구 지정 등 탄소산업의 기반 마련을 위한 연구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힘써 왔습니다. 탄소법 통과로 탄소산업 육성을 위한 발전계획 수립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앞으로가 가장 중요합니다. 전북의 탄소산업이 제대로 도약할 수 있도록 탄소제품 상용화, 기업 유치창업, 일자리 창출 등 미래 비전 실현에 힘쓰겠습니다. 또한 그간 전북이 추진했던 역점사업과 미래 비전이 국가계획에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또한 농생명 탄소산업 중심의 연구개발특구와 규제프리존을 연계해 탄소산업 제품 상용화를 위해 전력투구하겠습니다.-영남권 신공항 무산 여파가 새만금 신공항에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새만금 신공항은 새로운 부지에 건설하는 공항입니다. 이에 사회적 갈등 비용이 거의 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영남권 신공항에 비해 건설비용도 적게 들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여건에 있습니다. 더불어 새만금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한중 경제협력단지로 지정됐습니다. 앞으로 중국을 비롯해 유라시아 경제권을 아우르는 국제산업단지로서 기능을 확대하기 위해선 새만금 신공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새만금 신공항은 전북발전을 좌우할 핵심사업입니다. 이제부터는 미래를 내다보는 도민들의 혜안이 필요합니다. 소지역주의를 버리고 대승적 차원으로 도민들의 의지를 하나로 결집해 공항 건립을 이뤄내야 합니다.-2023 세계잼버리의 새만금 유치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천혜의 야영지인 새만금이 개최 여건에선 앞서지만 폴란드의 대회 유치 열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폴란드는 사상 최초의 유치임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전북도 차원에서 스카우트연맹과 함께 아프리카, 남미, 미국, 유럽 등에서 활발한 득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SNS 등을 활용한 홍보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세계잼버리를 새만금에서 개최하면 세계 160개국 5만명의 참가자가 전북을 방문하게 됩니다. 직접적인 생산유발효과는 531억원, 또 8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따른 공항, 철도,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조성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평소 동서상생발전을 강조하셨습니다. 동서축 발전을 위한 계획은 무엇입니까.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 된 지 오래입니다. 남북 방향으로 발전해왔던 기존의 발전 방식은 종착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서쪽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동서방향으로 도로와 철도를 놓고, 물류와 사람이 오고 가야 국민적 소망인 동서화합도 실현됩니다. 또 수도권과 지역의 차이가 경제적 여유와 삶의 질 격차로 이어져서도 안 됩니다. 국토균형과 동서화합에 대한 의지를 가진 다수의 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목소리를 키워야 할 때입니다. 지역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해 국가경제의 활로를 모색해야 합니다. 무주~대전 고속도로, 전주~김천 복선전철 등이 동서발전에 필요한 대표사업입니다. 상생사업으로는 중부권 관광벨트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특히 영호남 광역도로망 건설을 위한 새만금~포항 고속도로가 조기에 건설될 수 있도록 호영남이 공동 대응해 나갈 계획입니다.-청년층 이탈과 중소기업 경영난 등 전북경제를 두고 위기감이 감돌고 있습니다.지역 차원의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발적 발전전략이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추진하고 있는 탄소, 농생명, 토탈관광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산업과는 다른 새로운 산업들입니다. 경쟁력만 갖춘다면 지역을 넘어 새로운 국가경쟁력이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기반시설 구축도 시급합니다. 대중국 무역기지로서 성장할 잠재력이 큰 새만금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면 공항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경북과 함께 추진 중인 탄소산업이 국가산업으로서 경쟁력을 얻으려면 동서 방향으로 길이 뚫리고 철길이 놓여야 합니다. 속도의 핵심인 사회기반시설이 갖춰진다면 일자리 창출과 산업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투자하기 좋고 창업하기 좋은 전북을 만드는데 노력하겠습니다. 다원시스 정읍 공장 신축을 위한 쟁점 해결사례처럼 행정기관과 기업 간 협업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겠습니다.-20대 총선으로 전북의 정치지형이 크게 바뀌었습니다.보수적이었던 전북의 정치지형이 완전히 새롭게 재편됐습니다. 국민의당이 다수당이 됐고, 20년 만에 새누리당 의원이 탄생했습니다. 이런 역동적인 변화의 기저에는 전북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라는 도민의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3당 체제의 출현으로 건전한 경쟁과 협치의 정치를 전북에서 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북 정치권의 다양성이 앞으로의 예산 확보나 현안 해결에 큰 동력으로 작용하길 바랍니다. 전북발전에 따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공조가 필요한 부분이라면 먼저 나서서 소통하고 협력하겠습니다. 3당 체제의 효과가 전북발전에 최대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민선 6기 하반기 도정 핵심과제는 무엇입니까.도정 핵심사업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 2020년에는 메가탄소밸리와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 새만금 농업용지 및 신항만 완공, 새만금 신공항 착수 등 전북발전을 견인할 사업들이 예정돼 있습니다. 2020년을 전북발전의 대도약을 위한 전환점으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 18대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농식품산업 동북아허브를 조성하고, 탄소법연구개발특구규제프리존을 기반으로 탄소소재의 상용화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또 기금운용본부의 이전에 따른 연기금 특화 금융타운 조성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연결도로가 놓이는 고산군도를 서해안 최고의 명품관광지로 육성해 토탈관광의 거점지역을 키우겠습니다. 무주 세계태권도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세계잼버리 유치로 전북의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무엇보다 전북발전의 혜택이 180만 도민과 14개 시군에 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세대별 맞춤형 시책 추진과 시군 특화사업을 육성하는데 노력하겠습니다.-취임 2년을 맞아 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까.더욱 강하고 힘 있게 전북발전을 추진하겠습니다. 상대적 낙후와 소외의 역사를 딛고 미래에는 전북이 대한민국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가겠습니다. 탄소산업과 농생명산업, 토탈관광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삼락농정으로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습니다. 또 새만금으로 동서시대를 활짝 열어 우리도 할 수 있다를 넘어 우리니까 할 수 있다란 자신감을 도민들에게 심겠습니다. 전북도정이 만들어가는 희망의 길에 언제나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 기획
  • 최명국
  • 2016.07.04 23:02

자로 잰듯 뻗은 그 해변을 인간은 걸었네: 고창 구시포, 동호 해수욕장

길을 잘못 들었다.그 흔한 내비게이션 기계 하나 없이,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찾아놓은 지도 한 장과 도로의 이정표만 보고 찾아가려 했던 게 잘못이었다. 내 길눈을 과신했던 셈이다.구시포해수욕장은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다. 고창에서 가장 남서쪽으로 치우친 곳, 그러니까 전남 영광군과의 경계 즈음이다. 그래서 고창이라는 이정표만 보고 따라가면 자칫 길을 잃을 수도 있다.그렇다고 길을 잘못 들어서 큰일이 날 것은 아니다. 여차하면 선운산을 들러볼 수도 있고, 운곡저수지 일대나 북쪽 람사르 갯벌 습지를 찾아볼 수도 있다. 어디나 푸르고 시원한 매력이 있는 곳이 고창이다.삼시세끼 제작진도 고창의 그런 매력에 빠져 찾아간 게 아니었을까.아무도 없는 고요한 해변을 예상했지만, 해수욕장에는 백사장을 걷는 사람과 어구를 가지고 나와 조개를 잡는 사람, 바닷물에 들어가 노는 사람 등이 수십 명은 있었다. 마침 구름과 옅은 안개 때문에 햇빛이 비치지 않아, 해변에서 놀기에는 참 좋은 날씨였다.물이 빠지기 시작한 때라, 물결의 형상이 박힌 갯벌이 점차 드러나고 있었다. 흔히 갯벌 하면 연상하는,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이 아니라, 판판하게 다져져서 걷기 좋은 갯벌이다.백사장의 길이는 1.7㎞에 달한다. 이것은 구시포항 가는 다리에서 남쪽 방파제까지를 잰 것인데, 생각보다 긴 거리라 끝까지 걸어가는 데만도 한참 걸린다.해변을 걷고 있던 염광선 씨(54)황금련 씨(54) 부부를 만났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 부부는 캠핑을 좋아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특히 염 씨는 인근 흥덕이 고향이라, 고창지역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고 말했다. 선운산, 선운사, 선녀바위, 마애불, 동호, 그리고 구시포 여행지 소개가 줄줄이 나왔다.(매스컴에서)구시포나 동호를 좀 조명해줬으면 좋겠어요. 정말 좋은데 외지에서는 잘 모르니까, 소개를 해줘도 별로 반응이 없고.다만 개발과 공사로 옛날의 고즈넉한 맛이 덜해 아쉽다는 것이 염 씨의 평가다.물이 빠지고, 물에 들어가 놀던 젊은 단체 관광객들도 빠졌다. 그 자리에는 15년째 여름마다 구시포를 찾아온다는 김모 씨(52)의 모습이 있었다. 김 씨는 그림 그릴 때 쓰는 이젤처럼도 보이고, 사진 찍을 때 쓰는 삼각대처럼도 보이는 도구로 갯벌을 훑고 있었다.이거요? (한참 생각하다가)뭐라더라 글갱이라고 하던가?인근 주민들이 글갱이(긁개)라고 부른다는, 그러니까 딱히 정해진 이름은 없는 이 도구로는 생합을 잡을 수 있다.여기서 이것저것 잡아먹는 재미가 있죠.북쪽에 있는 다리인지 방파제인지 언뜻 구별이 안 가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해수욕장의 북쪽 끝을 선언한다. 구조물 건너편에 보이는 작은 섬은 가막도라고 하는데, 방파제가 이 섬을 둘러 이른바 와인 글래스 형 항구를 형성하고 있다.해수욕장 쪽이 물놀이와 갯벌체험 쪽이라면, 이쪽은 낚시에 적합하다. 이날도 강태공 여럿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갯바위에, 또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앉아 있었다.서울 용산에서부터 캠핑카를 몰고 이곳을 찾은 김창집 씨(67)는다른 곳들과 달리 이것저것 하며 놀기 좋다고 말했다.지난해에 와봤더니 좋길래 올해 또 왔다고 한다.망둥어(망둥이)도 잡히고, 요즘은 모래무지도 잡힌다고. 모래무지? 그거 민물고기 아닌가?예, 바다에도 모래무지가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민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더라고.그것을 흔히 보리멸이라고 한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맛있다.구시포항에서 북쪽을 보면 훤히 드러난 벌판이 쭉 펼쳐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지도를 봐도 거의 자 대고 그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누워있는 이 해변을 명사십리라고 하는데, 구시포해수욕장 바로 북쪽에서부터 동호해수욕장까지 거의 10㎞에 달하는 해변이 전체적으로 보면 다 그런 기운이 온다.정확하게는 중간에 지형상 끊어진 구간도 있고, 어촌체험장으로 돼 있어 자유롭게 출입하기는 어려운 구간도 있다. 그렇지만 고창군에 따르면 수산물 채취 행위를 하지 않으면 사람이 출입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햇빛이 좋은 날 반짝거리는 모래알이 그렇게 예쁘다고 하던데. 안타깝게도 날씨가 흐려서 그 진가를 볼 수는 없었다.명사십리 해변은 구시포에서 곧바로 걸어가기는 조금 난감한데, 사장 진입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해변을 따라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자동차를 타고 북쪽 동호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진입할 수 있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도 차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가 않다.그렇다면 찾아볼 수 있는 답은 동호해수욕장 되시겠다.동호해수욕장 역시 드넓은 백사장을 자랑한다.백사장 남쪽 끝에 있는 수산기술연구소까지의 거리는 약 1.5㎞. 결코 짧지 않은 거리다.관광객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이날은 개장(6월 30일)을 앞두고 백사장의 모래를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한 무리의 청년(남)들이 자루를 들고 이물질을 줍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사람 대신 눈에 들어온 것은 백사장을 감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었다. 해수욕장에 들어설 때부터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했더니, 그게 다 소나무 숲 때문이었다.보통 해수욕장은 바다와 백사장, 관광객 시설, 상가 등의 순서로 돼 있는데, 동호해수욕장은 상가는 저 안쪽에 있고, 상가와 백사장 사이를 소나무 숲이 메우고 있다.그래서 처음 들어서면 뭐지? 싶은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숨겨진 해수욕장 같은 느낌이 아닐까.그렇다고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없거나 하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화장실이나 샤워시설, 관광안내소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소나무 숲에 차를 바짝 댈 수 있어, 규모는 작지만 오토캠핑장 느낌도 난다.소나무 그늘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벤치가 여럿 놓여 있어, 벤치에 앉아 시원한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서쪽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신선놀음도 해봄 직하다.이 동호해수욕장에서 백사장을 따라 쭉 남쪽으로 걸어 명사십리를 밟아가는 것도 해볼 만하다. 걸어서 구시포까지 가기는 조금 무리겠지만, 일직선으로 쭉 뻗은 드넓은 모래해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조금은 후련해지지 않을까.내내 구름 위에 숨어 있던 태양이 아주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한 번 발을 디뎠다.● 구시포해수욕장 찾아가는 방법자가용 운전: 수도권이나 김제, 군산 등 서해안 지역에서 찾아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쭉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선운산IC에서 빠져나온 다음, 그대로 22번 국도를 타고 상하 방면으로 직진하다 상하초등학교상하중학교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733번 지방도)로 들어가 5㎞가량 직진하면 구시포해수욕장이 나온다. 전주에서 찾아갈 때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정읍IC에서 빠져나와 두 번 좌회전한 뒤 마찬가지로 22번 국도를 타면 된다.광주전남지역에서 찾아갈 때는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나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빠져나온 뒤 15번 지방도-733번 지방도 순으로 타면 된다.대중교통: 고창은 철도가 지나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라면 결국 버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겠다. 고창터미널에 도착한 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구시포행 농어촌버스를 타면 된다. 배차 간격이 꽤 기므로 반드시 운행시각을 알아보고 가도록 하자. 문의는 대한고속 고창영업소(063-564-3943~4)로 하면 된다.● 동호해수욕장 찾아가는 방법자가용 운전: 구시포해수욕장 가는 방법과 비슷한데, 22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달리다가 농업기술센터 인근에서 우회전해 애향갯벌로를 타면 된다. 이 길을 이용하면 만돌갯벌체험장과 고창CC를 지나게 된다.남쪽에서 갈 때는 733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가 해리면 터미널 부근 송산교차로에서 동서대로를 타면 된다. 15번 지방도-77번 국도 순으로 이어지는데, 그냥 직진만 하면 된다.아니면 아예 구시포해수욕장에 먼저 들렀다가 명사십리로를 타고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그 반대의 방법도 가능하니 선택하면 되겠다.대중교통: 구시포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고창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동호행 농어촌버스를 타면 된다. 역시 배차 간격이 짧지 않으므로 미리 운행시각을 알아보고 가자.

  • 기획
  • 권혁일
  • 2016.07.01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최저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Go try it"

#표지.최저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Go try it#1.온갖 종류의 금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금은 지금이라고 하지요.#2.2016년, 지금 한 시간 분의 최저 가치는 6030원.하루 8시간 노동 기준 4만8240원.한 달 209시간(법정근로시간) 노동 기준 126만270원.#3.문자 그대로 인간이 일해 벌며 살아갈 수 있는 최저한도의 임금입니다.오정심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는 최저임금이란 사실상 목숨만 유지하는 임금 수준이잖아요. 생활임금 기준으로까지 올려야 한다는 거지요라고 말합니다.#4.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최저임금제가 처음 시행(시간당 600원)됐고, 매년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를 거쳐 다음 해의 최저임금을 결정합니다.#5.2017년 최저임금은 지난 6월 28일까지 결정하게 돼 있었습니다.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시급에 월급 병기와 모든 업종 동일 최저임금 적용(차등적용안 폐기) 원칙은 정해졌지만, 최저임금을 얼마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다음 회의(7월 4일)로 넘어갔습니다.#6.경영계는 7년 연속 동결을 주장했습니다. 2010년도 최저임금 논의(2009년) 때 5.8% 삭감을 주장한 것을 포함하면 10년째 인상 불가 입장인 셈이지요.#7.노동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만원으로 인상을 제시했습니다. 이 최저시급 1만원 안은 4월에 있었던 제20대 총선에서도 야당들이 앞다퉈 공약으로 걸기도 했지요.#8.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1년에 1만5000달러 미만을 받으며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직접 해봐라.(Go try it.)#9.비영리 시민단체 청년들이 내놓은 2016 전주청년보고서에 따르면 전주지역 만19세~39세 청년층 평균 월 소득은 140만7000원. 최저임금 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청년 노동자가 많다는 뜻이겠지요.#10.물론 최저임금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전북지역 광역기초자치단체 15곳 중 무려 9곳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인건비를 편성했습니다. 자치단체의 상황이 이 정도입니다.#11.월세 및 관리비로 40만원을 내고, 한 달 내내 하루 세끼 3900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운다고 치면 벌써 숙식으로만 75만1000원. 가끔 친구도 만나고 옷도 사고 교통비도 휴대폰 요금도 내야 하는데, 이렇게만 해도 저축할 여력이 없죠. 여기에 갚아야 할 학자금대출금까지 있다면.#12.청년들이 내 집 마련(34.1%), 꿈희망(29.4%), 결혼(29.0%), 연애(25.4%), 스펙(22.1%), 출산(22.0%)을 차례로 포기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겠지요.#13.우리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지 맙시다.(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내년도 최저임금은 7월 4일 이후 결정됩니다.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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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9 23:02

[문화&공감] 고창식 전통시장 부흥 프로젝트

지금은 상설시장으로 자리 잡은 고창읍 전통시장, 3일과 8일 열린다고 해서 삼팔장이라고 했다. 오일장 깊은 구석에 3일이거나 8일이거나 어김없이 팥죽집이 자리를 펴곤 했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넘치거나 말거나 가득 퍼담은 달달한 팥칼국수 한 그릇, 손때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나는 낮은 키 3인용 나무의자. 장날 인파에 밀려 먹던 꼴로 자리를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는 사람들. 그 시절의 장마당은 소년들의 놀이터였다. 복판에서 밀려난 것은 팥죽집만이 아니었다. 대장간도 그랬다. 슈욱슈욱 풀무질 소리에 불이 일고 쇠가 익고, 캉캉캉 높은 톤 망치질이 수도 없이 이어지면 그랬다. 흙과 물과 나무와 돌과 겨루는 서슬이 퍼런 쇠붙이들이 하나하나 시렁에 내걸리기 시작한다. 거친 숨, 거친 손과 근육을 엿보다 이내 뭐든 다 고치는 신기료장수 곁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삼십년 더 지난 고창장날 풍경이다.△ 장을 본다에서 마트에 간다아직 고창에는 대기업 대형마트가 없다. 대신 농협이 운영하든지 혹은 영문자 이니셜이 붙은 중소규모 마트가 여럿이다. 그 탓일까, 여느 도시만큼이나 시장보다 마트가 일상과 더 가까운 시절이 되었다. 장을 보러 간다는 표현은 자취를 감추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가다 혹은 그저 마트에 간다가 되었다. 장을 보는 공간이 시장에서 마트로 시나브로 바뀐 것이다. 마트가 장보기의 주체가 되어가는 동안, 시장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팥죽 한그릇에 마른 허기를 달래던 낡고 닳은 나무의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은갈치 한무더기 흥정하던 카랑카랑 목소리들은 다 어디 갔을까. 불바람 일으키던 풀무질 거친 숨소리는 또 어디로 사라졌을까.△ 전통시장 부흥 프로젝트십년에 변한다던 강산이 몇 개월에 한 번씩 바뀌는 시절이라, 전통시장의 불황은 또 어딘가의 활황으로 변했을 터다. 그것이 말로 풀어져 마트에 가다이다. 마트로 향하는 걸음을 다시 시장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상설시장 골목에 지붕을 씌워 편의를 돕는다든지, 때마다 들썩들썩 가요제를 연다든지, 온누리상품권으로 할인정책을 도입한다든지, 다양한 시도도 대세를 돌려놓기 어려웠다. 이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통시장 활성화에 접근하고 있다. 이른바 고창식 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이다.고창군(군수 박우정)이 매개가 되어 고창전통시장 상인회(상인회장 최만영)와 고창의 다양한 생산가공유통 공동체가 모여 콜라보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시장상인회와 고창공동체협의회가 고창군 민생경제과와 함께 준비한 고창 대표상품겨루기, 시장 한복판에 모던한 품새로 카페와 겸하는 공동체공동판매장 개설, 시장골목을 풍성하게 하는 이동식 매대 운영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돋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고창공동체들과 품 나눔이 있다.△ 대표먹거리를 대표브랜드로지난 5월 고창전통시장 특화상품 선정행사를 진행했다. 고창 대표 공동체들이 발굴해낸 10가지 먹을거리 상품이 무대에 올랐다. 장날 하루, 시장이용자를 비롯해 시장상인들, 음식전문가들의 매운 품평을 거쳐 화산마을공동체의 청보리빵, 다홈공동체의 복분자장어파이, 모꼬지공동체의 바지락죽이 선정되었다. 고창을 대표하는 청보리, 복분자, 장어, 바지락을 맛깔 빛깔로 잘 버무린 결과다. 이 대표 음식상품을 6월 장날에 맞춰 진행한 전통시장투어에서 방문객들에게 맛보였다. 결과는 대만족.이렇게만 시장이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시도가 아직은 좀 낯설지만 시장상인들도 같은 배를 탄 공동체도 서로 조금씩 이해하면서 나가기를 바랍니다.전통시장 상인회 최만영 회장의 말이다. 결이 다른 두 개체가 만나서 어렵사리 이뤄가는 화음은 어떤 색깔일까.△ 고정 매대와 이동 매대의 화음전통시장 한복판과 시장골목을 채우는 두 가지 방식 매대 운영도 시작했다. 하나는 고정식, 하나는 이동식이다. 공동체공동판매장은 시장상인회에서 마련한 공간에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마치고 운영을 시작했다. 커피콩빵, 구운 소시지 같은 가벼운 스넥과 커피류 음료를 곁들여 고창 공동체들이 만들고 유통하는 다양한 제품들(북분자장어파이, 김부각, 아로니아분말, 고구마말랭이, 옻된장과 옻담수, 천일염, 복분자음료, 천연차, 질마재농장의 천연 어린이과자, 사임당 한과 등)이 진열되는 판매장이다. 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의 거점역할을 한다.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동식 매대를 택했다. 점이 공동판매장이라면 이동식 매대는 확장하는 선이고 면이다. 모두 8개로 운영하는 이동식 매대는 고창공동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전통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침체된 편에 배치해 운영한다. 제철 과일로 만드는 시절음료매대를 비롯해, 전통부각, 바지락죽과 비빔밥, 순쌀빵과 보리커피, 기능성 유기황콩나물, 모싯잎떡과 복분자 호박식혜세트, 청보리빵 매대로 시장 손님들의 걸음을 시장 깊숙이 끌어당기고 있다.△ 공동체 역량으로 무한 증식전통시장 부흥프로젝트는 10여년 전부터 전국에 불어닥친 유행이다. 고창의 시도가 남다른 것은 지역의 자생 생산공동체조직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이제 3개월 남짓 서로 색깔을 맞춰보았다. 앞으로가 관건이다. 전통시장활성화 바탕은 다졌으니, 앞으로 시장신문 발간, 시장영화제, 시장팜파티와 시장투어, 프리마켓 공동프로젝트 등으로 확장하는 일이 아스라하다.고창 전통시장이 다시 활력을 찾는다는 것은 고창 전체가 생동한다는 것을 뜻해요. 전통시장에 오래 살아온 상인분들 혼자만의 일은 아닌 것이죠. 그래서 고창의 공동체가 공동체 정신으로 함께하는 것이구요. 고창공동체협의회 이창환 사업국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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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8 23:02

[전북일보 만화뉴스]MOU가 진다…삼성의 고급약속

#표지.MOU가 진다삼성의 고급약속#1.삼성전라북도국무총리실농림수산식품부, 새만금 신재생에너지단지 투자 MOU(양해각서) 체결.#2.오은미 전 전북도의원 MOU 서류에 공식명칭 없어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삼성이 투자 의향이 없는 것 아닌가?(웅성웅성)#3.장세환 전 국회의원 대국민 사기극이다!(웅성웅성)#4.기자 삼성의 새만금 투자, 믿어도 될까요?#5.김완주 전 전북도지사 삼성은 법률적 약속에 앞서 도덕적 약속을 우선시하는 기업이다.(2011년 5월, 실제로 한 말, 삼성그룹 임원의 말을 전하며)#6.기자 삼성의 새만금 투자, 무산된 건 아니겠죠?#7.송하진 전북도지사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2016년 1월 4일)#8.기자 삼성의 새만금 투자, 무산됐다는 얘기가 있는데요.#9.이형규 전북도 정무부지사 (삼성의 새만금 투자 무산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 삼성 측의 공식적인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2016년 5월 30일)#10.기자 그러니까 삼성의 입장은 뭡니까?#11.이병국 새만금개발청장 삼성이 2011년 당시 투자를 결정했던 풍력발전과 태양전지 사업은 사업성 부족으로 철수한 상태다고 유선으로 알려왔다. 하지만 기존에 체결한 양해각서 자체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2016년 6월 20일)#12.(웅성웅성)도민1 그런데 삼성이 직접 한 말은 없네?도민2 어, 그렇네? 삼성 공식 입장은 뭐지?#13.......!#14.하일 삼성드라#15.최고의 플레이삼성대기업새만금 투자 약속 처치 [+100]전북도민 신뢰 처치 [+100]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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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4 23:02

도시재생 전문가 강동진 경성대 교수 "전북의 도시 '작음의 미학, 다름의 경제학' 가치 지녀"

도시재생이 화두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낙후되고 쇠퇴했던 공간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현실적인 과제가 되었다. 도시재생을 정책으로 실현한 영국을 선두로 이미 오래전부터 낡은 공간들을 동력으로 삼아 힘을 잃어가던 도시를 살려낸 사례는 더 이상 새롭거나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낡고 빈 공간으로 남아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옷을 입힌 공간을 가진 도시들은 모든 도시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도시 재생으로 죽어가던 강과 도시가 살아나고 공동화되어가던 옛 도심이 생기를 되찾았으며 가난했던 도시가 문화와 관광의 도시가 된 사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오래된 공간, 방치되었던 공간을 재생시켜 도시를 살리는 작업은 이제 세계 모든 도시들의 목표가 됐으니 이쯤 되면 도시의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우리나라의 도시들도 너나없이 재생을 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길을 실천하거나 모색하고 있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도시재생의 과정과 실질적인 목표다.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힘을 얻는 것일 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미 도시재생에 나선 우리나라 도시들을 돌아보면 그 도시와 공간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를 것 없는 내용과 형식이 그렇고, 자생의 힘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차별성 없는 콘텐츠의 구현이 그렇다.강동진 경성대 교수(52)를 만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강 교수는 90년대 초반부터 세계 도시들의 마을만들기와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 정책과 실행의 결과를 주목해 현장을 찾아다니며 실질적인 연구를 해온 도시재생 전문가다. 그는 2006년, 산업유산으로 다시 살린 일본의 도시 이야기를 엮은 책을 펴냈다. 90년대 초부터 15년 동안 30여회 이어진 답사의 결과물이다. 27개 크지 않은 도시들을 주제별로 엮은 이 책 앞에 이런 글이 있다.이들 도시는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버려진 것들과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재활용해서 다시 회복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도시들이다. -중략- 일본의 이런 도시들에 비해 우리 지방 도시들은 힘들게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뭔가를 잡기 위해 조바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박수를 쳐주고 싶은 도시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각 도시마다, 각 사안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고, 해법 또한 다를 터인데도 우리의 지방도시들은 결과만을 벤치마킹 하려한다.이 책을 펴낸 지 10년. 강 교수가 우려했던 문제는 이제 해결되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30년 가깝게 도시를 들여다보아온 그가 들려주는 건강한 도시재생의 길이 더 환하게 보였다. 이 분야를 공부하면서 작음의 미학, 다름의 경제학의 가치를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독창적인 전라북도의 도시들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도시들인데,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말고 그 길을 어떻게 열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건축에서 도시 연구로 길을 바꾼 계기가 궁금합니다.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전공을 바꾸었어요. 본격적으로는 석사 논문으로 경주의 구시가지 역사 환경을 보존하는 연구를 하면서부터 도시를 공부했습니다.-도시재생 연구도 그 연상이었겠군요.그렇죠.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논문 주제를 고민하는데 지도교수님이 양동마을을 던져 주시더군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양동마을을 문화재 관점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음 다음 세대까지 어떻게 하면 지속해서 살게 할 수 있을까를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요즈음 이야기하는 재생의 관점이었지요. 특히 저는 컬티베이션(cultivation), 이를테면 변화를 인정하는 보존을 주목했어요. 그때 역사 경관과 함께 사람으로 관점이 확장되었던 것 같아요.-그때는 낯설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주제를 잘 잡으셨던 것 같습니다.(웃음)건축을 전공한데다 도시 공부를 시작한 대학원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해외에서 도시를 제대로 공부한 40대 초반의 연구자들이었는데 얼마나 치열하게 가르쳤는지 그때의 2년이 제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꾸어 놓았죠.-그런 점에서 교수님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 같군요.그래서 저도 그 흉내를 내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쉽지도 않고요. 그때는 학부에서 건축 조경 법학 경제를 전공한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자기 베이스를 가지고 전문적인 지식을 같이 탐구를 하다 보니 그 효과가 놀라웠거든요. 교수님들이 가르쳤던 수업 방식이 요즘 이야기 하는 참여형이었는데,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당시에는 문화충격이었어요. 그때 배웠던 것이 공공성과 공익이었죠. 그래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도시마다 도시재생이 과제입니다. 무분별한 개발이 문제더니 지금은 난립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들이 또 새로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맞아요. 중요한 것은 재생에 관심은 있는데, 본질을 이야기 하고 무엇을 어떻게 재생해야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거든요. 특히 지방도시들의 경우 재생의 대상이 모두 오래된 것이고 낡은 것이다 보니 다음세대가 할 수 있는 대상조차 재생이란 명목으로 파괴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거든요.-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의미가 새롭습니다.저는 도시재생에 있어서는 방치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방치가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거든요. 지금은 낡은 공간을 방치해두는 일을 못견뎌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빨리 바꾸어 사업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다보면 다음 세대가 할일이 없어집니다. 요즘 습관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많이 쓰는데, 그 뜻이 뭘까요. 저는 그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후손이 손 댈 수 있는 땅을 남겨놓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가 개발할 수 있도록 남겨 놓는 것.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끊임없이 개발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 또 그 다음세대도 손을 댈 수 있고,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절제하자는 뜻이 더 강합니다.- 방치는 곧 개발을 절제하는 방식이기도 하겠습니다. 방치나 더 나아가 절제라는 말이 사실은 재생의 키워드가 되어야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당장 모든 것들을 재생의 대상으로 끌어당기면서 그것을 다 풀어내는데 조급하거든요. 게다가 스스로 해야 될 일을 거의 모두 국가 의존적으로 풀어가죠. 국가에서 사업을 따오는 형식인데, 국가에서 돈을 받게 되니 어떤 결과가 당장 나와야하고, 그 결과를 나오게 하려니 1년 단위로 보여야하는 하드웨어 사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소프트웨어 사업이 있다하더라도 요식행위에 그치기 일쑤고.-이런 식으로 나가다보면 도시재생의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겠습니다.물론이지요. 이런 방식은 지속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개발을 우선시했던 시기에 나타났던 부작용들이 다시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저는 도시재생 사업이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마다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작음의 미학, 다름의 경제학의 가치를 확신하게 되었어요.-도시마다 이루어지는 도시재생 공간이나 건축물을 보면 왜 저렇게 같은 길을 계속 갈까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왜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결과죠. 현실적으로 왜 하는가를 따져보면 결국은 국가 돈을 받아쓰려고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거죠. 진정으로 그 지역을 위해서 지역의 재생과 미래에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서 이 일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어 정착되어야하는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예산을 따와 쓰는데 급급한. 참으로 아쉬운 현실이죠.-교수님께서는 특히 산업유산을 주목하고 계시던데요.산업유산은 부산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어요. 2001년 즈음부터 산업유산을 연구하기 시작했었는데, 산업유산이라는 용어로 논문을 쓴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산업유산은 앞으로 도시마다 큰 과제일 것 같은데, 바람직한 활용의 방식이 궁금합니다.저는 산업유산이라면 작동을 멈춘 지 적어도 10년 정도는 묵혀놓아야 한다고 봐요. 외국의 경우는 20년 30년도 그대로 묵혀 놓습니다. 당장 활용한다고 리모델링에 나서거나 손을 대버리면 그 시점에서의 발상밖에 나오지 않거든요. 국가의 예산에 기댄 것이라면 그 예산만큼만 할 수 밖에 없게 되고요. 그 예산이나 그 시간에 맞는 아이디어 밖에 쓸 수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다 욕심을 부려 모든 것을 다 손 댑니다. 전국적으로 그런 식으로 예산을 허비하고 있는 곳이 적지 않아요. 콘텐츠를 보세요. 다 비슷비슷하죠. 창조적인 답을 찾지 못하니까요.-교수님 말씀대로 현실적으로 주어진 예산과 시간 안에 창조적인 답을 찾는 일이 쉽지 않죠.창조적인 답을 찾으려면 10년, 20년 그곳을 원래 상태에서 최소한의 변화로 활용하거나 시민들이 이용하면서 그 시대에 맞는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한꺼번에 몇몇 사람의 머리로, 또 자기가 알고 있는 몇몇 외국 사례를 응용해서 하려다 보니 비슷한 답 밖에 못 찾게 됩니다. 그대로 놓고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비엔날레나 문화행사 등으로 활용하면서 그곳을 잘 지키고 유지하면서 공간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예가 많습니다. 에너지를 결집해 쏟아부을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지역의 자산이 되고 재생 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그런 점에서 국가의 방식도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요.물론입니다. 정부 부처의 방식이 거의 비슷한데, 공모로 경쟁을 시키고 선택을 해서 예산을 주는 방식으로 모든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치단체마다 난리가 아니에요.-그런 방식이 오히려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을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그렇죠. 사업의 바탕이 되는 조사 작업은 소홀히 하고 늘 보이는 내용으로 사업의 중심을 세우거든요. 다른 나라를 보면 재생사업을 할 때 조사만 열심히 하겠다는 프로젝트에도 지원을 합니다. 조사결과가 큰 성과거든요. 조사가 잘 이루어지면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생각이 모아질 수도 있고, 새로운 발상이 나올 수도 있고.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우리는 용역으로 바로 들어가니 조사가 한두 달 정도, 계절 조사도 제대로 안하는 일이 허다하죠. 그렇다보니 앞의 보고서 베낄 수밖에 없고. 공간이 갖고 있는 본질은 없어지고 예산이 투입되니 오히려 본질이 약해지고 왜곡되기 일쑤입니다. 손을 안대는 것만 못한 결과가 되는 것이죠.-도시재생도 결국은 시민들의 의식이 중요할 것 같아요.결국은 사람이죠. 성공사례를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좋은 시민단체나 좋은 공무원이 꼭 있습니다.-일본은 그나마 산업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죠.우리와는 좀 다르죠. 우리는 그 시절 힘들게 일했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다는 부정적 기억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똑같은 프로세스를 거쳐도 지난 과거나 역사, 어떤 시설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와는 다르죠.-우리 재생 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요.대부분 아웃사이더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아닐까요.-아웃사이더라면.바깥에 있는 사람들이죠. 전문가나 행정가들. 일본은 반대예요. 대부분이 그 안에 있는 주민들이 일을 시작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죠. 그리고 더 큰 문제는 한꺼번에 한다는 것이에요. 도시재생법을 만들어서 권한을 갖게 하고 돈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그 법을 만들다보니까 끊임없이 매년 사업을 해야 하고 그런 바탕에서 움직이다 보니 비슷한 아이템들이 계속 도출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시재생에서 절제의 힘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도시재생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절제와 방치가 사실은 진짜 도시재생입니다. 다음 세대에 기회를 주는. 방치는 있는 그대로의 공간을 활용하면서 공간의 가치를 지켜내는 방식으로서의 방치를 말합니다.강 교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 연구〉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다.우리의 근대를 다시 찾는 일입니다.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근대의 유산들을 조사하고 가치를 규명해내는 연구지요. 이 작업만 해놓으면 그래도 중요한 일은 마무리 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전국의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그가 찾아낸 우리의 근대유산이 곧 우리 앞에 놓일 것이다. 그의 작업이 가져올 의미와 가치가 새롭다.● [강동진 교수는] 도시재생 시민보존 운동 참여각종 프로젝트 대안 제시강동진 교수의 고향은 통영이다. 통영에서도 충무 바닷가 강구안, 아름다운 마을에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목선을 만드는 재료를 공급하는 목재소를 운영하셨는데, 덕분에 집 앞에 있던 공장이며 톱밥 창고, 나무를 실어나르는 레일까지 모든 공간이 그의 놀이터였다. 그는 아직도 초등학교 시절의 삶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특별한 고민 없이 건축을 전공하고 도시설계를 공부하게 된 바탕이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목선이 철선으로 바뀌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목재소가 도산하게 되자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전학을 간 이후 고향은 늘 그리워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갈때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특별한 목표 없이 건축공학과(성균관대)를 택했다. 공대에서는 그래도 가장 공학스럽지(?) 않고 생각하고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던 자신에게 맞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졸업할 즈음, 고민이 생겼다. 그즈음 읽은 책의 영향이 컸다. 김홍식의 〈민족건축론〉과 하싼 화티의 〈이집트 구르나 마을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누구편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시민과 주민, 공공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그때 다졌다. 도시를 공부하고 싶었던 그에게 도전해보라며 용기를 준 사람은 대학시절 은사였다. 스승은 유학보다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할 것을 권했다.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인생의 좋은 스승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도시에 대한 관심을 더 증폭시킨 것은 주거환경 수업으로 진행한 서울의 마포 도화동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생각에 큰 변화를 얻었다. 석사논문으로 경주 양동마을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600년을 지켜온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다음 600년을 이어가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는데, 1년 넘게 양동마을에서 살다시피하며 연구한 덕분에 150가구의 양동마을과 마을 사람들을 온전히 안게 됐다. 논문으로 끝난 줄 알았던 양동마을은 후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면서 그와 다시 인연이 됐다. 양동마을이 201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에는 2년 동안 학생들과 마을 신문을 만들어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정리하는 작업으로 봉사했다.첫 직장인 대구한의대에서 3년 근무하다 2001년 경성대로 옮긴 이후 줄곧 부산의 도시재생에 애정을 쏟고 있는 그는 특히 도시의 산업유산을 주목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개발에 대항하다보니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그는 부산으로 옮겨온 초반부터 영도다리, 하야리아 부대, 동천, 북항, 산복도로,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등 각종 도시재생 시민보존 운동에 참여해왔으며 한국의 역사마을과 남한산성,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작업을 이끌어 왔다. 학문적 연구와 국내외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확인하고 조사하는 현장 연구를 병행해온 덕분에 우리나라 도시들의 재생 프로젝트 문제점을 실질적으로 분석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도시재생 전문가로 꼽힌다.〈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 이야기〉, 〈세계의 도시디자인〉 〈도시재생〉 〈한국건축 개념 사전〉을 비롯한 10여권의 저서를 전문가들과 함께 펴냈으며, 2006년에는 산업유산으로 다시 살린 일본의 도시 이야기를 엮은 〈빨간 벽돌창고와 노란전차〉를 출간해 주목을 받았다. 국토교통부 국토디자인시범사업 민간전문가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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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6.06.24 23:02

[참여&소통] 전북지역 대학신문

지난 6월 18일, 전북대신문사의 창간 62주년 기념식이 개최됐다. 수십 년의 터울을 두고 선후배 기자 동문들이 모여 오랜 기간 버텨온 대학신문사의 역사를 자축했다.그러나 그저 기쁘지만은 않다. 한 동문은 90년대만 해도 수습기자 한 명 뽑을 때 7: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했다며 지금은 과거에 비해 기자도, 신문도 모두 축소된 것 같다고 낮아진 대학신문사의 위상에 대해 씁쓸해 했다.군산대신문 역시 지난 6월 15일, 500호 발행이라는 경사를 맞았다. 1979년 첫 발행된 이후 37년간 꾸준히 발행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올해 파격적으로 축소된 예산과 규모로 인해 그저 기쁨을 만끽하고만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매년 줄어드는 규모문제는 돈대학신문은 매년 간소화되고 규모가 축소되는 것이 이제는 당연시 되어버렸다. 특히 사립대에 비해 재정상황이 열악한 국립대에서는 그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북대신문사는 2년 전까지 매 호 10000부의 신문을 발행배포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이를 8000부로 줄였다. 이어 지난해까지 연 20회 발행하던 신문 호수마저도 올해는 16호로 축소했다.그나마 전북대신문의 경우 거점국립대학이기에 주간지의 명분이라도 이어나가고 있지만, 군산대신문은 지난해까지 격주로 발행하던 신문을 올해부터는 월간지도 바꾸었다. 매 호 6000부씩 발행하던 발행부수 역시 올해 4000부로 축소했다.이처럼 대학신문의 규모가 끊임없이 작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다. 장기간 이어져 온 경기침체와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축소 속에서 대학신문사는 매년 예산삭감 1순위 부속기관이 되어버렸다. 군산대언론사의 경우, 약 4년 전과 비교해 1/3 수준의 예산만이 올해 편성되었다.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전북대신문사 역시 매년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실정이다.△대학신문의 사활, 슬림화, 전자화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신문사들도 활로 모색에 나섰다.발행 부수와 제작 호수의 축소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안은 역시 전자신문이다. 2000년대 이후 대부분의 대학신문사들은 인터넷신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북대신문사의 경우 인터넷사이트의 모바일 앱버전도 운영하며 스마트폰 구독자의 편의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SNS 페이지를 활용한 마케팅을 통해 구독자를 늘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군산대신문 역시 월간지로 축소된 종이신문 발행 횟수를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 신문 서비스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시각각 기사거리가 발생하면, 종이신문 발행까지 기다리지 않고 수시로 업데이트하여 기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군산대신문사의 인터넷신문 페이지인 황룡닷컴에 광고배너를 유치하여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는 등 다방면으로 인터넷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특히 군산대언론사의 경우 파격적으로 축소된 예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의 슬림화라는 칼을 빼들었다. 지난 2013년부터는 대학 신문사방송사영자신문사를 군산대언론사라는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했고, 지난해에는 그 세부 조직도 개편하는 등 조직의 간소화를 감행한 것이다. 군산대언론사 최현재 주간교수(군산대학교국어국문)는 군산대언론사의 상황이 절박한 만큼 기민하게 움직여 상황을 타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인력난 극복, 양질의 기사 만들어야물론 대학신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 금전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종이신문이 과거만큼 트렌디한 매체가 아니다보니 학생기자 수급도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전북대신문사는 현재 총 7명의 학생기자가 신문을 만들고 있다. 오병훈 편집장(전북대학교철학)은 방송사 수습국원은 비교적 수급이 원활한 것에 반해 신문사로 오려는 신입생이 줄어들고 있다며 언론의 트렌드가 종이신문에서 방송매체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례인 것 같다고 전했다. 기자의 수가 줄어들다보니 양질의 기사를 뽑아내기도 쉽지 않게 되고, 이는 다시 구독자 수의 저하로 이어져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3년간의 임기제 역시 기자 수급에 방해요소이다. 대부분의 대학신문사는 1학년에 수습기자를 받은 후 3년간의 활동 후에 퇴임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그렇다보니 군 입대와 같은 학업 중단의 사유가 있는 학생들은 언론사로의 발길을 주저하게 된다. 이에 군산대언론사의 경우 중도에 군 입대를 한 학생기자가 전역하면 복직이 가능하게 하는 등 임기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해 인력난을 극복하고 있다.한편 군산대언론사 최현재 주간교수는 학생기자들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학생기자의 경우 본업이 학과공부를 하는 학생인 만큼 기성 기자들과 비교하여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군산대언론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자교육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 기성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학생기자들을 파견하던 것에서 나아가, 자체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전북대신문사 역시 매 방학마다 자체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전문성 향상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정체차별성이 경쟁력 확보의 핵심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과 낮아지는 위상 속에서 대학언론이 지향해야 할 앞으로의 발전방안은 무엇일까.전북대신문사 오병훈 편집장은 모호한 정체성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대학신문사와 별개로 학교 홍보부 등에서 뉴스서비스와 보도자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같은 대학 홍보자료와 대학신문의 역할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오병훈 편집장은 대학신문은 단순히 학교를 홍보할 목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견제비판하고 학생들에게 알권리를 보장할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따라서 단순히 학교 차원에서 이룩한 업적이나 성과보다 학생들의 실제 학교생활에 와 닿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전했다.아울러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정체성을 확보해야만 대학신문사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지속적인 투자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군산대언론사 최현재 주간교수는 거대담론과의 차별성을 두어야 대학신문이 읽힐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이미 기성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재편집하여 보도하는 기사는 지양해야 하고, 지역학생중심의 기사를 발로 뛰어 작성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전했다. 군산대신문은 이를 위해 작성된 기사의 현장취재 정도에 따라 원고료를 차등지급하는 방안도 시행하고 있다.한편 최현재 주간교수는 앞으로도 예산의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종이신문의 발행 횟수는 더욱 줄어들고 인터넷신문과 메일링서비스 등을 통해서만 기사를 제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실제로 이미 종이신문의 발행을 중단한 대학신문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종이신문에 대한 학생기자들의 고집은 남아있는 상태이다. 전북대신문사의 경우 타블로이드판에 대한 이야기도 간혹 오가지만, 대판신문에 대한 학생기자들의 애정이 깊어 지면개정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관행과 형식도 고려하며 균형 있고 신중하게 변화와 간소화를 진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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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3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덕진채련(德津採蓮) : 덕진연못 연꽃 필 무렵

#표지.덕진채련(德津採蓮): 덕진연못 연꽃 필 무렵#1.흙탕물에서도 아름답고 고고하게 피어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꽃, 연꽃.#2.매년 6월 하순이면 푸른 연잎과 은은한 붉은 빛 연꽃으로 가득 채워지는 곳이 있습니다.#3.바로 전주 덕진공원 안 덕진연못(덕진호수)입니다.#4.연못의 넓이가 9만9000㎡인데, 그 절반에 가까운 4만3000㎡가 연꽃으로 채워집니다.공원 측에 따르면 이 안에 어림잡아 50~100만 주의 연이 있다고 하네요.#5.지난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144만4000여 명. 그중 64만여 명이 연꽃이 피는 6월~8월 사이에 몰렸습니다.#6.연꽃이 한창일 때 연못을 가로지르는 연화교연지교에서 보는 풍경이 일품이지요.(1980년에 가설된 연화교는 전주시가 내년께 철거 후 새롭게 다시 놓을 계획이라고 하네요.)#7.그 형성 과정이 풍수지리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덕진연못은 오래전부터 전주시민의 쉼터였고,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였습니다.(1981년 6월 17일 촬영)#8.특히 단오 때는 10만, 15만 인파가 몰리는 것은 예사였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지요.(1970년 6월 9일 촬영)#9.사진 촬영 대회가 열리기도 했고,(1973년 5월 9일 촬영)#10.또 연못에 배를 띄우고 노는 이들도 많았습니다.(1977년 4월 10일 촬영)#11.예로부터 덕진채련(德津採蓮)이라 해서 연꽃이 유명했던 전주의 명소 덕진연못.(1988년 7월 11일 촬영)#12.올여름은 은은한 연꽃 향이 퍼지는 아름다운 연못가 한 번 거닐어보는 건 어떨까요?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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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2 23:02

[문화&공감] 전주 '문화공간 무지개'

전통문화는 저에게 새로운 곳을 여는 창문과도 같아요.문화공간 무지개를 운영하고 있는 김지훈(32)씨의 말이다. 대금을 전공하고 세상에 나왔지만, 무대나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고, 먹고 살기 위해 학원생을 모집하고 까페를 시작했지만, 사실은 음악을 널리 알리고, 함께 모이고, 사람들의 숨결을 더 많이 접하고 함께 만들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문화공간 무지개다.△ 두 젊은 국악인 의기투합서문초등학교 담벼락 옆에 있는 문화공간 무지개는 여느 주택가와 다름없는 조용한 곳이지만, 낮에는 튀는 노랑과 파랑 건물과 커피향으로 시선을 끌고, 밤이 되면 대금소리와 한국음악퓨전음악 등이 어우러지는 공연공간으로 변신을 한다.대금연주자 이창선(41)과 김지훈(32)이 공동투자하여 만든 무지개는 문화공간을 표방하는 많은 공간들 중에서도 전통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심의 젊은 전통음악기반 복합문화공간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전통문화의 새로운 시도, 특히 젊은 국악인들이 주 네트워크인 이곳에서는 지역의 청년국악인들이 모여 새로운 전통문화의 모습을 꿈꾼다. 이달 말 공연 예정인 광대 권삼득은 벼리, 아따, AAP(Alive Art Project), 젊은 판소리꾼들과 국악전공 고등학생들까지 모여 공연을 만들고 있다. 이들의 주 아지트인 1층 까페 마실은 밤마다 이들의 열기로 불이 꺼질 줄을 모른다.△ 전시공연연습장 갖춰Cafe 마실은 1층 공간으로 까페 겸 공연, 전시, 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 그리고 2층은 대금을 비롯한 다양한 국악기를 경험하고 연주하고 연습할 수 있는 동호회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2015년 9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는 골목길 음악회로 가야금과 기타의 콜라보레이션 공연, 장구, 판소리, 재즈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한옥마을 버스킹과 같은 의제로 포럼을 진행하기도 한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정오의 음악회를 통해 동네의 작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도도한 전통문화가 아닌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함께 하는 공간, 사람들의 숨결이 녹아지는 공간이 되길 원하는 게 무지개의 꿈이다. 2층의 대금 동호회들과는 한 달에 두 번 공원이나 시장, 천변 등에서 대금 버스킹을 진행할 계획이다.△ 예술인 네트워크 구축프로와 아마추어를 따지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무지개 공간에서 숨을 쉬길 원한다는 김지훈 대표. 많은 예술가들이 이 공간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그것이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동호회 간의 네트워크 교류 모임을 통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서로 이해하고 연계할 수 있는 공간, 누구에게나 이 공간에만 가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문화매개공간으로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문화공간 무지개는 또한 무지개 동심 플리마켓도 꿈꾸고 있다. 초등학교 옆이여서 매일 아이들을 만나요.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어린이 동심 플리마켓이라고 해서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을 실현하고 즐길 수 있는 무대로 골목을 만들고 싶어요. 화가를 꿈꾸는 친구, 가수와 댄서를 꿈꾸는 친구, 과학자와 글쓰기, 요리사 등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동심 플리마켓을 통해서 재능을 가족과 함께 발견하고 확인하고 지속될 수 있는 순수한 아이들의 놀이문화요. 참 즐겁지 않을까요? △ 전통음악 매개 문화가꿈 장소로대금을 사랑하고 대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시작한 공간에서 현재는 전통음악의 대중화와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 밀착된 새로운 전통음악, 전통다운 일상문화를 꿈꾼다. 머물러 있는 전통음악이 아닌 지역의 청년국악인들의 끊임없는 만남과 시도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젊은 스승과 제자의 공간이, 더욱 다양한 사람들의 색깔 속에서 자리매김되길 기대해 본다.△ 이창선김지훈 씨는전남 나주 출생인 이창선(41)은 전북대와 목원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전주시립국악단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아르코 프론티어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앨범으로 꿈꾸는 소년이 있다. 김지훈(32)은 전남 여수 출신으로 대학원 시절 이창선의 제자로 입문하였으며, 현재 Interactive Art Company 아따(ATTA) 대표, 지역의 청년국악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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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1 23:02

[사진으로 비교해 보는 우리 동네] 전라감영길 편

[사진으로 비교해 보는 우리 동네] 전라감영길 편#표지.[사진으로 비교해 보는 우리 동네] 전라감영길 편#1.전주. 호남제일성, 전라도의 수부, 감영이 있던 곳.#2.서울로 치면 사대문 안이라고 할 수 있는 전동경원동고사동중앙동 일대는 전라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였습니다.#3.원도심으로 불리는, 지금은 다른 곳에 비해 쇠락한 이 지역은, 그래서 오히려 옛 모습을 간직한 정겨운 곳이기도 합니다.#4.전주시는 풍남문~전라감영~풍패지관(객사)을 잇는 전라감영 테마거리를 조성할 계획입니다.테마거리 착공을 맞아, 전주의 감영길을 지금과 비교해볼까 해요.#5.풍남문에서 출발할까요?풍남문은 전주부성의 남문으로, 풍자는 풍패지관의 풍입니다.과거에는 이름 그대로 문의 기능을 했군요. 지금은 남쪽을 둘러싸고 있는 옹성과 풍남문 좌우의 성벽이 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1966년 10월 6일 촬영)#6.풍남문은 1978~80년 옹성과 좌우 성벽 일부가 복원됩니다. 22년 전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군요.(1994년 4월 30일,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행사)#7.풍남문은 오묘한 맛이 있습니다. 보는 사람 기를 죽일 정도로 웅장하거나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볼품없지도 않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8.반대쪽, 그러니까 성문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문은 굳게 닫혀 있군요.#9.북쪽으로 복원 중인 전라감영 자리를 지나, 옛날 전주 최대의 번화가였던 옛 전주우체국(지금의 경원동우체국) 사거리로 가봅니다.객사를 바라보는 방향인데, 왼쪽엔 풍년제과가 보이네요. 전북일보사가 주최한 동방써커스단 공연 광고탑이 사거리 한가운데 있습니다.(1969년 5월 15일 촬영)#10.쉴 새 없이 자동차가 지나다닙니다. 광고탑은 물론 사라졌지요.#11.같은 자리에서 방향만 틀어볼까요? 1960년대 전주 최고 상점가였던 거리입니다. 우체국 사거리에서 청석동 파출소까지 이어진 곳이죠. 저기 보이는 이시계점과 매송당은 지금도 있습니다.(1972년 1월 6일 촬영)#12.같은 자리, 4년 뒤 모습입니다.(1976년 7월 7일 촬영)#13.이곳은 2008년 웨딩거리로 조성됐습니다. 지금은 드레스, 미용, 귀금속 가게와 특이한 골목가게들이 많이 있습니다.#14.테마거리의 종점, 풍패지관입니다.(1966년 9월 17일)#15.오늘날은 시민 쉼터로 자리 잡았어요.#16.풍패지관에서 바라본 풍남문은 손에 잡힐 듯하네요. 이 거리가 테마거리로 바뀌면, 모습도 조금 달라지겠죠?기획 신재용, 구성촬영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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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7 23:02

[참여&소통] 아동학대

너 오늘 집에 가서 죽여버릴거여이창수 씨(가명)가 초등학교 1학년 딸 희숙(가명)에게 하는 말이다. 희숙이는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의 돌봄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빠가 이렇게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화난 이유는 희정이가 친구의 핸드폰을 훔쳤다고 해서 일어난 일이다. 희숙이는 이렇게 화가 난 아빠를 피해 도망가 교실 한쪽에 쪼그리고 숨었다. 화가 난 아빠를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가 말렸지만, 아빠 이창수 씨는 당신 딸이여? 당신이 뭔데 상관이여!라며 여전히 딸 희숙이에게 죽여버리겠다. 빨리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다.희숙이의 엄마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지금은 아빠와 이혼했고 희숙이는 아빠가 양육하고 있다. 희숙이의 아빠 이창수 씨는 평소에 별로 말도 없고 자녀들을 잘 보살펴준다. 그런데 다혈질적이고 급한 성격 탓에 자녀들이 두려움에 떨곤 한다.△수도권 제외 아동학대 전북 1위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해마다 아동학대 주요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접수현황을 보면 10년 전이었던 2005년 8000건이었던 신고접수 건수가 2015년에는 1만9209건으로 증가했고, 아동학대 의심사례는 2015년 5761건이었던 것이 2014년 1만6650건으로 2.9배나 증가했다. 전라북도의 경우를 보면 2015년 1328건의 아동학대 신고 중 1165건이 아동학대 의심사례로 분류됐다.전국적으로 보면 아동학대 신고가 제일 많은 곳은 경기도로 4767건이었고, 서울이 2325건이었다. 전라북도는 경기도와 서울시, 경상북도에 이어 네 번째로 아동학대 신고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서 아동학대 사례로 판별된 것은 아동학대 신고율과는 다르게 경기도가 2972건, 서울시 1179건에 이어 전라북도가 세 번째로 많은 889건을 기록했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아동학대 사례로는 전북이 1위를 기록했다.△아동학대 가정에서 주로 발생아동학대는 가정에서 제일 높게 발생한다. 전북지역의 경우 아동학대 889건 중 아동의 가정 내에서 707건이 발생했고, 학대를 한 가해자의 집에서 43건, 아동복지시설에서 36건, 학교 24건, 유치원 13건 순으로 발생했다. 학대는 대부분 가족관계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주요한 원인으로는 부모에 의한 요인, 아동에 의한 요인, 가정과 사회적 요인 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모에 의한 요인으로 부모가 미성숙하고 양육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며 자녀에 대해 지나친 기대감을 갖는 것이 문제의 원인으로 분석한다. 아동에 의한 요인으로는 아동이 부모에게 신체적심리적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부모를 지치게 했을 경우에 발생한다. 가정적사회적 요인으로는 가족관계에 갈등이 존재해 가족 상호작용이 약화되는 것과 이혼이나 재혼 등으로 가족구조의 변화로 인해서도 발생한다. 또 사회적으로 자신들을 지지할 수 있는 체계가 결여되었을 경우에도 학대가 발생한다.아동학대는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 학대, 방임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학대는 하나의 유형으로 나타나지 않고 중복 피해를 입히는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가 함께 발생하면 이것은 중복학대로 분류된다. 학대의 가장 많은 부분은 중복학대가 383건으로 제일 많고, 뒤이어 방임이 209건으로 많다. 정서적 학대는 184건, 신체적 학대 66건, 성 학대가 47건으로 나타났다.△전북지역 다문화가정 아동학대 연간 80여건 추정다문화가족 아동에 대한 학대는 공식적으로 통계로 분류돼 있지는 않다. 보건복지부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아동학대 주요 현황에도 다문화가족 아동에 대한 학대 현황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라북도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자체 자료에 의하면 2016년 1월부터 5월까지만 해도 아동학대는 36건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준이라면 1년에 80여건 가까이 다문화가정의 아동이 학대를 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얼마 전 베트남 이주여성은 아동에 대한 학대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아이는 엄마에게 빰을 맞았는데, 얼굴에 손자국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이 일로 인해 베트남 이주여성은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가해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다. 한 번은 아이를 심하게 매질하는 것을 목격한 시부모가 며느리를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했다. 결혼이주여성은 베트남에서 아이들이 잘못하면 이렇게 매질을 해서 가르친다. 나도 어렸을 때 이렇게 자랐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토로했다.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이주여성들의 자녀 양육방식은 한국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이주여성 당사자 국가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은 그들의 문화적 삶의 방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문화적 삶의 방식과 교육적 행위는 한국에서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영향을 미친다. 이주여성이 어린 시절 성장하면서 인권을 존중할 수 있는 배경을 가졌다면 그만큼 건강한 가족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면 부모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고 학대에 직면한 경우 피해자가 성인이 되어 가족을 구성했을 때, 부모의 폭력성을 동일하게 투영시킨다.△교육적 체벌은 훈육 아닌 학대자녀의 양육방식은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결혼이민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양식과 양육 방법도 우리 사회는 존중해줘야 한다. 그러나 출신국가의 문화와 교육 및 양육방식 등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전제해 먼저 수용할 필요가 있다.전북아동보호전문기관 김완진 관장은 내 자식은 내가 키운다. 나도 맞고 컸는데 어때서 그러냐는 반응을 현장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적 목적의 체벌이 우리 사회 속에서 용인되고 있는데, 제도적으로 다양한 대책이 강구된다고 하더라도 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성숙해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학대는 교육적 목적하에 쉽게 훈육적 체벌로 둔갑한다. 아동이 부모의 체벌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심리정서적 불안감에 휩싸인다면 그것은 분명 훈육이 아닌 학대이고 폭력일 것이다.■ 방임도 아동학대다물리교육의료적 책임 외면 / 심리정서적 불안 증폭시켜필리핀 이주여성 마가리타 씨(가명)는 한국인과 혼인해 세 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마가리타 씨는 저녁마다 특별한 장소를 찾는다. 자신의 자녀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도 마시고 잦은 도박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술 마시고 도박을 하고 있는 사이에 아이들은 방치가 되어 있는데 도로에서 뛰어다니며 놀기도 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2015년 아동학대 주요 현황 긴급자료에 의하면, 아동폭력의 유형 중에 중복피해를 받는 유형을 제외하고는 방임이 제일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임은 신체적정서적사회적으로 건전한 발달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호 및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방임은 물리적 방임과 교육적 방임, 의료적 방임 등으로 분류를 할 수 있는데, 방임으로 인해 아동이 성장기에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서비스 등을 받지 못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양육하고 있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밥을 제때 주지 않아 자녀들이 지속적인 배고픔에 놓이기도 한다. 주거상태는 너무 열악하고 더러워 자녀들이 감기와 폐렴 등 항상 질병에 노출돼 있는 경우도 많다. 자녀들의 의복에도 무감각해 계절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옷을 입고 다녀 또래 아동들로 부터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방임은 아동학대이다. 아동은 방임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심리정서적 불안이 가중된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아동을 폭력적 성향으로 변모시키고 마약과 범죄로 쉽게 빠져들게 한다. 따라서 지역사회에서는 방임가운데 있는 아동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가져 이들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전라북도에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의 방임, 정서적 학대, 신체적 학대, 성 학대 등을 예방하고 적극적인 보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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