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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로 본 현대사] 전쟁 포연 속 내딛은 정론 첫발, 도민과 함께 울고 웃었던 역사

1950년 625 전쟁의 포연 속에서 탄생한 전북일보가 창간 66년만에 지령(紙齡) 2만호를 발간했다.지령 2만호를 맞기까지 전북일보는 매 순간마다 도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특히 전북일보는 이리역 폭발사고, 위도 훼리호 침몰 등 각종 재난 현장에서 빠르고 정확한 보도로 독자들의 눈과 귀가 됐다. 또 새만금 종합개발계획대형마트 의무휴무일 지정백제유적역사지구 세계유산 등재 등 도민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건에 대한 심층보도를 통해 전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이처럼 정론직필이란 정신을 놓지 않고 달려온 끝에 도달한 지령 2만호를 맞아 전북일보는 지난 60여년 간 일어난 주요 사건사고를 정리했다.△625 전쟁 포화 속에서 창간1950년 10월 15일 공보부(문화공보부)에 등록된 전북일보는 전쟁의 포연 속에서도 발행 초창기 전황을 알리는 전령사였다.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 신문은 유일한 국민들의 언론매체였다.1953년 정전협정이 이뤄질 때 까지 전북일보의 1면 기사는 주로 전쟁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전황을 알리고 도민들의 전쟁에 대한 각오를 다지게 하는 내용의 기사가 많았다.1952녀 7월 20일자 전북일보는 치욕의 발아래 짓밟히던 날, 적비(赤匪)는 2년 전 오늘 본도에 침입했었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수억만원에 달하는 재산의 소진은 그만두더라도 도내에서 1만8000여명이 생죽음을 당했다고 기록했다.또 전북일보는 남원과 임실, 고창, 부안지역의 공비들의 잔학성과 잔비소탕에 나선 경찰 국군의 용맹을 현지에서 생생히 취재한 종군기사를 엮어내기도 했다.△완주 소양면 곰티재 교통사고1966년 6월 6일 오후 5시께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속칭 곰티재에서 오후 1시 30분 발 무주 구천동 발 전주행 동아여객 소속 버스가 140m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이 사고로 15명이 숨지고 5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전북일보는 곰티재 교통사고 관련 기사를 사고 발생 후 한달여 동안 수시로 지면에 실었다.6월 9일자 책임 전가에 급급, 사고원인 못 캐내, 도경간 심각한 대립의 기사를 통해 전북도 운수당국과 경찰을 질타했다.12일자에는 울다 지쳐 눈물도 말랐다 벗들아! 고이고이 잠들라란 제목으로 전주공설운동장에서 5000여명이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희생학생 8명의 합동추도식 관련 기사도 실었다.사고의 아픔이 가시기도 전인 7월 2일 오전 10시 45분 곰티재에서는 또 다시 교통사고가 나 2명이 숨지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발생지점에서 불과 30m 떨어진 지점이었다. 이날 사고를 합해 1966년 한해 모두 3건의 버스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현재 곰티재에는 차량 통행은 가능하지만 여객버스는 다니지 않는다.△이리역 폭발사고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께 이리시 창인동 이리역 구내 입환 4호선에 정차중이던 폭발물 적재 열차가 폭발, 시가지를 삽시간에 폐허로 만드는 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12일자에 전북일보는 사건 경위 및 피해, 사망자 명단을 게재, 도민들의 이해를 도왔다.보도내용에는 15초 간격으로 3번의 폭음이 울리면서 발생한 이 폭발 사고로 사망 56명, 실종 2, 중상 184명 경상 1158명이 발생했으며, 재산피해는 55억원, 철도 관계 피해 23억원 등 모두 7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재민은 무려 1만명에 달했다.폭발 지점으로부터 직경 16km 이내의 건물은 폭음으로 진동, 가옥 675동이 전파됐고 1289동이 반파되는가 하면 호남, 전라선의 모든 열차는 새벽 6시까지 운행이 두절됐다.이날 사고는 한국 화약의 폭발물 호송잭임자로 사고차량에 탑승했던 신무일(당시 36세)씨가 술을 마시고 만취한 채 화차로 돌아가 촛불을 켜놓고 자다 불이 폭약에 인화돼 일어났다.이리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전북일보는 단순한 치유나 봉합이 아닌 새로운 도시 건설을 지속적으로 주창해 현재의 익산을 만들어 냈다.△위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일요일인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15분께 부안군 위도면 임수도 앞 격포기점 4.5km 해상. 앞서 9시 40분께 승객 342명을 태우고 위도 벌금항을 출발, 격포항으로 향하던 군산 서해훼리사 소속 110t급 여객선이 침몰했다.이 사고로 승객 292명이 숨지고 70명만이 배에서 떨어진 구명복과 낚시용 얼음상자 등에 매달려 있다 주변에서 조업중인 어선들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전북일보는 10일자로 2개면의 호외를 발행하고 11일자에는 1, 2, 3, 13, 14, 15면 등 6개면에 사고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풍랑속에 기우뚱하면서 정원을 초과한 여객선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전북일보는 정원을 초과한 무리한 항해가 2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며 대형 참사는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점을 지적했다.바다에 가라앉았던 배는 우여곡절 끝에 사고 발생 17일만인 10월 27일 인양됐다. 이 사고후 종합적인 위도종합개발이 본격 추진됐다.△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2002년 1월 29일 대낮, 군산 개복동 성매매집결지인 속칭 감둑 거리 한 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11명의 윤락여성이 숨지고 3명이 중태에 빠지는 대형 참사(결국 14명 사망)가 발생하자 도민들은 경악했다.앞서 2000년 9월 19일 오전 사고현장 인근 대명동 군산역 앞 속칭 쉬파리골목 매매춘 업소 화재로 5명의 여성이 숨지는 사건과 너무나 유사해 당국에서는 과연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전북일보는 2000년 화재방지시설이나 환기시설 등이 없이 영업을 해온 점 등을 지적하며,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또 하나의 인재로 단정하고 철저한 수사와 대책을 촉구했다.특히 9월 24일과 10월 13일에는 각각 숨진 윤락녀의 일기장과 생존 윤락녀의 검은 커넥션 진술을 단독 보도해 경찰과 행정당국에 대한 여론의 비난은 극에 달했다.그런 상황에서도 1년 4개월 만에 또 화재가 발생하자 전북일보는 여종업원들이 사실상 감금상태에서 현대판 노예상활을 했던 사실을 알렸다.△부안 방폐장 입지 선정 파문김종규 부안군수가 2003년 방폐장 유치를 신청했을 때만해도 국가적 과제인 방폐장 입지선정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다.주민지원금도 3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늘린다고 정부는 약속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주민들의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자 정부는 갈등사업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2004년 2월 반대위측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반대표가 나왔고 2004년 5월 31일 추가 후보지 공모에는 전국 4개도, 7개 시군, 10개 읍면동이 주민청원을 접수했다.특히 방폐장유치 찬성쪽과 반대쪽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1년이 넘게 수백명의 주민과 전경이 부상당하고 민선군수와 군의원이 주민에게 폭행당하고 관공서가 파손되는 사건이 이어졌다.이 바람에 부안군민들은 물론 전북도민들은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안아야 했다.방폐장은 결국 2005년 11월 3일 경주가 방폐장 후보지로 최종 결정됐다.전북일보는 부안과 군산지역의 방폐장, 유치 무산에 따른 상처와 후유증을 돌아보고 찬성과 반대로 나뉜 부안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아우르는 작업을 꾸준히 펼쳤다.△새만금 종합개발계획 확정정부는 2011년 3월 새만금 종합개발계획과 새만금 유역 2단계 수질개선종합대책을 확정했다.이는 새만금 내부개발 기본구상을 토대로 토지이용계획과 기반시설 구축계획을 보다 구체화한 것으로, 1991년 첫 삽을 뜬 지 20년 만이다. 명품 복합도시의 밑그림이 확정됨에 따라 새만금 사업은 본격적인 내부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이와 함께 새만금 1호 방조제 도로높임 공사가 완공되고 방조제 전 구간이 24시간 개방되면서 새만금은 새로운 관광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당시 정부가 확정 발표한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은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조성해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명품도시로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다양한 기능이 배치된 명품복합도시를 비롯해 탄소 프리도시, 신재생에너지 메카, 랜드마크로 조성하는 것을 들 수 있다.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새만금은 산업 및 국제업무 관광레저 등의 시설이 들어선 복합도시용지(23.8%), 농업용지(30.3%), 생태환경용지(15.0%), 과학연구용지(8.1%), 신재생에너지용지(7.2%), 산업용지(6.6%), 도시용지(5.1%) 등으로 구성된다.△전주시 대형마트 의무 휴무일 지정2012년 전북지역 경제분야 최대 이슈는 유통업계의 대형마트 영업규제 논란이다.유통산업발전법 개정에 따른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 도입은 법적 공방 등 많은 논란 속에서도 전주시의회가 전국 최초로 조례제정을 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됐다.대형 유통기업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여 관련 조례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 당해 6월 서울 강동송파에서 행정법원이 절차상의 하자 이유를 들어 의무휴무 취소를 받아들였다.이후 대구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 등이 잇달아 대형마트 의무휴업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하는 결정이 내려졌다.특히 대형마트와 SSM이 각각 인구 30만, 10만 미만의 중소도시에서는 신규 출점을 자제하기로 하고 월 2일 이내의 자율휴무 시행을 이끌어 냈다.△JB금융지주 광주은행 인수JB금융지주의 광주은행 자회사 편입이 2014년 10월 1일 최종 승인되면서 전북은행과 광주은행이라는 두 기둥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권 대표 금융그룹의 출발이 시작됐다.전북은행을 모태로 2013년 7월 출범한 JB금융지주는 광주은행, 우리캐피탈, 더커자산운용 등 자회사를 인수하면서 자산 규모 40조원, 연간 순익 1500억원 이상의 명실공히 호남 최대의 금융지주사로 거듭났다.이러한 외형 확장으로 자회사간 연계 영업이나 자금 동원력 확보가 가능해져 보다 많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서민 등에 자금 지원이 가능해졌다. 또한 도내 현안사업인 새만금개발사업이나 전북혁신도시도 본사를 이전한 국민연금공단 등과의 협력 사업에 능동적으로 임할 수 있게 돼 지방은행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시너지가 증폭됐다는 평가다.특히 전북은행과 광주은행으로 이뤄진 투 뱅크(two bank) 체제 출범으로 광역도시 이상에만 점포를 개설할 수 있는 지방은행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지난해 7월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등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백제역사유적지구는 익산 미륵사지, 익산 왕궁리 유적, 공주 공산성, 공주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여 정림사지, 부여 나성 등 8곳으로 이뤄져 있다. 전북도는 고창 고인돌유적(2000년)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등 2개의 세계문화유산, 판소리(2003년)매사냥(2010년)농악(2014년) 등 3개의 인류 무형유산을 포함해 총 5개의 유네스코 등재 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이와 관련 전북도는 홍보, 관광, 인프라, 보존관리 등 4개 분야 38개 세부 사업에 총 6987억원을 투자하는 종합 대책을 수립했다.앞서 전북도와 익산시, 통합관리사업단은 지난해 5월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대응 전담 TF팀을 가동하고, 홍보관광SOC 및 인프라보존 관리 등 4개 분야 38개 세부 사업을 발굴했다.백세종, 최명국 기자

  • 기획
  • 전북일보
  • 2016.04.04 23:02

[전북일보가 배출한 인물] 언론인으로 단단해진 사람들, 세상 밝히는 등불로

언론이 다루는 영역은 시대와 지역, 분야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밑바닥부터 최상위 사회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뉴스를 만들어내는 직업이 언론인이다. 독자들에게 보다 신속히, 정확하게, 심층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경쟁에서 생존할 수 없다. 그만큼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는 곳이 언론사다. 언론인 출신들이 각계에서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배경도 이런 언론의 특성 때문이다. 66년 역사의 전북일보 역시 많은 인물들을 배출했다. 지령 2만호를 맞아 전북일보와 인연을 갖고 각계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을 정리했다.△언론계= 전북일보 출신 중 국내 언론계에 족적을 남긴 언론인들이 많다. 김대중 정부시절 KBS사장을 지낸 박권상씨(1929~2014)는 625전쟁 직후 전북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전북일보 편집국장이던 박용상씨의 동생이기도 한 박권상씨는 합동통신과 한국일보를 거쳐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주간을 거치며 필명을 날리기도 했다. 이윤수씨(1928~)는 6.25 전쟁때 종군기자로 활약한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합동통신서울신문 등을 거쳐 사)대한언론인회 총무이사를 지냈다. 비슷한 시기에 기자로 활동했던 정인량씨(1929~)는 합동통신한국일보서울신문을 거쳐 한국방송개발원 이사장을 역임했다.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스포츠서울 사장을 지낸 김행수씨, 동아일보 체육부장과 편집위원을 역임한 이종세씨는 1970년대 전북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시사저절 편집부장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고 박준웅씨, 연합뉴스 전북본부장을 지낸 조순래씨, 경향신문 편집부국장을 역임한 김정주씨는 1980년대 전북일보에 적을 뒀다. 이해석(중앙일보)임송학(서울신문)정태우(한겨레)김용권(국민일보)박임근씨(한겨레신문)는 90년대 중앙일간지로 적을 옮겨 활동하고 있다.전북일보 출신들이 전북의 다른 언론사에서도 여러 중책을 맡아 활동했다. 편집국장 출신의 고 신현근씨는 전북도민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역시 편집국장 출신의 고 강제천씨는 호남매일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전민일보 사장을 지낸 이중호씨는 90년대 전북일보 편집부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전라일보 사장인 유동성씨도 전북일보에 적을 뒀었다. 박규덕이한영백남혁양재숙장용웅김승일김홍철씨 등은 전북일보가 배출한 논객으로 기억되고 있는 인사들이다. 소용호육완태이건웅씨 등은 90년대 편집국을 이끌었다.전주MBC기자와 JTV전주방송 보도국장을 지낸 장병원 현 전북애향운동본부 사무처장, 전주MBC 보도국장을 지낸 박노훈 전 전북도체육회 부회장, JTV 강혁구KBS 안태성이성각조경모 기자 등은 방송으로 옮긴 경우다.△정치계= 청와대 대변인과 전주에서 두 번의 국회의원을 지낸 임방현씨는 1950년대 전북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후 정치에 입문, 민정당 중앙위원회 의장까지 지냈다. 전북일보에 몸을 담았던 김진배씨도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정치에 입문, 두 차례 국회의원과 농어촌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1980년대 전북일보 기자로 활동했던 장세환씨는 전북도 정무부지사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올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뛰고 있다.90년대 지방자치의 부활과 함께 전북일보 출신들이 지방정치에 활력소 역할을 했다. 편집부국장 출신의 김철규씨(75)는 전북도의회 의장으로 광역의회를 이끌었으며, 금융결제원 감사를 지냈다. 고 김희원씨와 김병윤씨는 전북도의원을 지냈다. 전북도의원과 남원시장을 지낸 윤승호씨(62)는 90년대에 전북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편집국장 출신의 황이택씨는 군산시장 선거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후 사업가로 변신했다.△문화계학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최일남씨는 1950년 전북일보 창간 당시 수습기자 형태로 상당기간 근무한 인연이 있다. 70년대말 편집국장을 지낸 이치백씨는 전북향토문화연구회를 이끌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원광대 교수로 재직하며 고고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고 전영래씨도 1950년대 전북일보 문화부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던 고 이봉섭씨는 소설과 평론,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지역 문화를 일궜으며, 80년대 후반 전북예총 회장으로 활동했다. 전북일보 첫 직선제 편집국장을 거쳐 사장을 역임한 김남곤씨(시인)는 90년대 전북예총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도 전북문단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으로 활동한 문치상씨는 지역 연극발전에 디딤돌 역할을 했으며, 전북도립국악원장을 지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동생으로, 현재 미당문학관 이사를 맡고 있는 서정태 시인은 1970년대 전북일보에 몸을 담았었다. 전북 아동문학을 이끌어온 서재균씨도 전북일보 기자로 활동했다.3사 통합 후 첫 편집국장을 지낸 이호선씨, 1965년 공채 1기의 은무일씨,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이영환씨는 교수로 새 출발했다.△사회활동 = 전북일보 초창기에 10여년간 편집국장과 사장을 지낸 진기풍씨는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장, 전북애향운동본부 부총재 등으로 활동했다. 편집국장과 전무이사를 지낸 최공엽씨도 적십자사 전북지사장을 역임했다. 고 윤재옥씨는 퇴임 후 전북유도회장을 맡았다. 동아일보로 자리를 옮긴 정동익씨는 동아투위 및 민주언론협의회 등 에 몸담으며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서정일씨는 전북수영연맹회장 등 체육계에서 활동했다. 편집국장 출신의 김종량씨는 퇴임 후 언론중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역시 편집국장 출신의 김재금씨는 우석대 사무처장을 거쳐 현재 언론중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이상원씨, 정읍과 전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김석곤이덕춘씨, 외무고시를 통해 외교관으로 변신한 김동진씨도 전북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김상규씨는 농협 전북본부장과 농협 신용보증국장을 지냈다. 편집국장 출신의 곽임환씨는 편집의 달인이었던 김호현씨와 함께 지방의정연구소를 이끌었다. 편집국장과 상무이사를 지낸 이광영씨는 대한석탄공사 감사를 지냈으며, 군산분실장으로 활동한 박노길씨는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다. 정치부장 출신의 문경민씨는 현재 하림 상무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최범서씨는 여수 엑스포조직위원회 감사로 활동했다. 장수근씨와 전영철씨도 성공한 사업가로 꼽힌다.

  • 기획
  • 김원용
  • 2016.04.04 23:02

지령 20000호…전북일보에 바란다

● 이선홍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 전북의 더 나은 미래 설계하는 리더 역할 부탁황량한 대지에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움트고 있음에 이제 완연한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을 맞아 전북일보사의 지령 2만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한국전쟁이라는 비참하고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지난 1950년 창간한 전북일보사는 지난 66년 동안 전라북도의 현대사와 발걸음을 함께하며 그 세월의 무게만큼 지역발전을 위한 대표 언론사로서의 명맥을 유지해 왔습니다.전북일보가 이같은 명성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데는 오롯이 창간 정신을 되새기며 시대변화에 맞는 개혁과 도전을 주문해 왔고, 우리 전북이 나아가야할 올바른 정책방향을 제시해왔던 전북일보사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현재 우리 전라북도는 많은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는 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격동의 시대에 지역경제의 회생과 발전을 위해서는 도민 모두의 역량을 결집하고 의지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항상 그랬듯이 전북발전을 위해 도민의 화합과 역량을 결집하고, 변화와 혁신을 선도함으로써 전라북도의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리더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리며, 전북일보 지령 2만호 발간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태근 전라북도 정무기획팀장 - 긍정적이고 따뜻한 미담기사 많이 다루길전북일보는 1950년 10월 15일 창간한 이래 전북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새만금사업,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 등 굵직굵직한 역사의 현장에서 전북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 도민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지금도 전북의 대표적인 언론으로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도민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사랑받기를 바란다.도민들은 전북일보에서 정보를 얻고, 가치 판단을 내린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난 현상보다 사안에 대한 배경, 지향점, 여론, 파급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도해야 한다. 심층 분석으로 독자가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목소리가 큰 일부 주장이나 단편적인 현상만 보도되면 말 없는 다수의 목소리가 사장되고, 일부가 전체 의견인 양 왜곡될 우려가 있다.또 한 부분이지만 전체 삶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기사가 많이 발굴되길 기대한다.1986년 공직에 입문하면서 전북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당시 1도 1사 체제 속 전북일보의 위상은 막강했다. 직접 기획추진한 정책이 언론에 보도될 때는 업무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 습관이 된 신문 구독은 퇴직 후에도 이어질 것이다. 결국, 지면 세대는 신문에서 깊이를 느끼고, 세상의 흐름을 인식하게 될 테니 말이다.● 김제김영 시인 - 적외(赤外)에서 자외(紫外)까지전북일보가 지령 2만호를 맞았다. 1950년 10월 15일에 창간호를 내어 66년째 발행되고 있다. 그동안 지역 근대사의 격변기와 민주화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받아 적었을 것이고, 초가지붕이 함석지붕을 거쳐서 슬래브 지붕으로 변하는 과정을 다 담았을 것이고, 말 그대로 뽕나무 밭이 변해서 아파트 바다가 되는 것을 꼼꼼히 기록했을 것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농익을 대로 농익어서 여유도 있고, 깊이도 갖추었고, 한 살림을 다 꿰뚫는 혜안도 생겼으리라. 지령 2만호를 깊이 축하하며 이제는 성숙한 어른이 된 전북일보에 몇 마디 첨언해본다.첫째는 신문의 역동성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다. 종이 신문에 위협적으로 생각되는 인터넷과 디지털 매체를 상보적인 관계로 인식하여, 새로운 소식이나 단순 보도는 디지털 매체로 시시각각 제공하고, 심층기사나 분석기사는 종이 신문으로 보완해 주었으면 좋겠다. 둘째는 미래지향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보도를 많이 해달라는 것이다. 어느 신문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지역신문은 지역민들에게 희망적이고 따뜻한 보도를 많이 할수록 좋다. 공동의 선을 이룰 수 있는 어젠다를 개발하고, 사건보도 보다는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전북일보가 지면을 할애해 주었으면 좋겠다.마지막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추어 달라는 것이다. 단순 보도를 줄이고, 미담이나 인재 발굴기사를 늘렸으면 좋겠다. 시민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전문가집단을 아웃소싱하는 것도 신문을 풍성하게 하는 힘이다. 이런 노력은 지역민의 다양한 색깔이 신문에 반영되어 적외의 색에서 자외의 색까지 통섭하고 통찰할 수 있는 신문이 되게 한다. 이렇게 할 때 전북일보에는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뜰 것이다.● 취업 준비생 전주 표나라 씨 - 지방지 강점 살려 전북청년 목소리 대변해야전북일보를 구독한지 3개월 정도가 된 것 같다. 고창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북일보를 구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서울생활을 경험해보니 현실적으로 고향의 발전과 나의 발전이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전북지역에 많은 신문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전북일보를 우선 신뢰한다. 그러나 전북일보는 아직 젊은 층에 어필하기에 호소력이 약한 부분이 있다. 일자리 문제를 다룰 때 기업과 지자체의 문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청년들의 사례를 심도 있게 다뤄줬으면 좋겠다.고향에 남고 싶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전북을 떠난 친구들이 많다. 나도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지만 경제적 부담감이 커 다시 돌아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청년들의 타지 생활은 만만치 않다. 여가생활은 커녕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벅차다. 힘든 상황에 처한 전북의 청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하기 위해 전북일보의 역할이 막중하다.우리 지역 청년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들과 만나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명 흙수저라 불리는 청년들의 하루는 어떠한지, 지방 청년들의 애환을 대변할 수 있는 신문이 되어주길 바란다.● 길명환 익산경찰서 순경 - 2만번 발행하려면 하루도 안 쉬어도 54년 8개월전북일보의 2만호 발행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말이나 공휴일 하루도 안 쉬고 2만번을 발행하려면 계산상 54년 8개월이 걸린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31살의 새내기 직장인인 저에게 2만번 신문이 발행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던져줍니다.현재 저는 경찰공무원으로 홍보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일선 경찰관들의 활약 등을 홍보하기도 하고, 여러 경찰관들의 활약상을 전북일보를 통해 매일 보고 있습니다.미담사례, 사건사고 등 매일 아침 전북일보 속에는 우리 경찰관들의 활약상과 전북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를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경찰들이 시민을 위해 항상 가까이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미담사례를 그때그때 보도함으로서 자신감과 함께 경찰로서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경찰관은 시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며 최일선에서 주민들과 항상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활약상이 지면에 보도되면 많은 경찰관들에게 큰 힘이 되며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오랜 역사를 지닌 전북을 대표하는 전북일보가 우리 경찰관의 활약상을 시시각각 보도해주시기를 바라오며 전북일보의 앞날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6.04.04 23:02

[활자에서 디지털까지…전북일보 혁신사] CTS·웹서비스 이어 카드 ·웹툰뉴스로 '독자 니즈' 반영

본보는 오늘 날짜부터 납 활자를 청산하고 전면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로 제작 발행하게 됐습니다(1991년 2월 1일자 1면)전북일보의 디지털화 역사는 지난 1991년 2월 1일, CTS 도입으로 시작됐다. 지령 1만2821호 때다.그리고 25년이 지나 지령 2만호를 맞기까지 전북일보가 디지털 시대에 따라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할 예정인지 짚어본다.△컴퓨터로인터넷으로직지와 구텐베르크 성서 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출판인쇄의 기본은 바로 활자였다.활자는 글자의 세트를 만들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묶어 판을 짜 잉크를 발라 찍어내는 방식으로, 전북일보를 비롯한 신문들 또한 전통적으로 활자를 통해 인쇄돼 왔다.이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1980년대였다. 당시 출판업계를 중심으로 조판인쇄 과정에 컴퓨터가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막 민주화 바람을 타고 호황기에 접어든 언론계에도 변화의 물결이 밀려온 것이다.컴퓨터로 판을 만들고 인쇄하는 CTS가 전북일보에 도입된 것은 지난 1991년이었다. 바로 전 해 11월부터 일부 지면을 전산으로 제작하는 시도가 이뤄졌는데, 3개월여 후 전 지면에 이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커다란 변화였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사실 납 활자가 컴퓨터 인쇄기로 바뀐 정도에 불과했다. 여전히 기사는 원고지에 썼고, 편집은 프린터에 찍혀 나온 종이를 놓고 했다.기자 개개인에게 노트북 컴퓨터가 지급된 것은 1998년 12월이었고, 1999년에는 기사를 전산으로 전송하는 집배신 시스템과 사진 파일을 관리하는 화상 DB 등이 도입됐다.그렇게 완전한 의미의 컴퓨터 제작시스템은 1999년 3월에 완성됐다.△인터넷에서도 전북일보를사이버 공간에 전북일보 사이트가 구축된 것은 1999년이었다.1999년 6월 1일, jeonbukilbo.co.kr 도메인으로 웹 사이트가 시험 개통됐고, 한 달 뒤인 7월 1일에 인터넷 서비스가 정식으로 열렸다. 이로써 전북일보도 본격적으로 실시간 속보 경쟁과 온라인 콘텐츠 경쟁에 뛰어들게 됐다.이어 2004년에는 인터넷 회선을 기존의 초당 256kb급에서 초당 10mb급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웹 사이트의 전면 개편을 준비했다.일단 jeonbukilbo.co.kr이라는 주소는 전북일보에서 연상되니 직관적이기는 했지만, 직접 주소를 기억하고 입력해 접속하기에는 너무 길고 복잡했다. 그래서 2005년 1월 1일부터 전북 제일의 알찬 뉴스라는 뜻을 담은 jjan.kr으로 주소를 바꿨다.또 각각의 콘텐츠에 접근하기 쉽도록 기사 배치를 조정했고, 온라인 서비스에 알맞은 콘텐츠를 발굴하려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가장 최근의 리뉴얼은 지난 2014년 5월 1일 있었다.이와 함께 소셜 미디어 및 모바일 뉴스 시대에 발맞춰 2010년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잇따라 개설했다.△디지털뉴스국 출범과 새로운 혁신2010년, SNS의 영향을 받아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이 항쟁들은, 소식을 전달하는 통로가 완전히 새로워졌음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이와 같은 미디어 환경 변화의 바람은 한국도, 전라북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전북일보도 이에 맞춘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지난해부터 온라인 뉴스 강화 방안을 깊이 모색하기 시작한 전북일보는, 지난 3월 9일에 디지털뉴스국을 공식 출범시키고 새로운 활로 개척에 나섰다.우선 온라인에서의 전북일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SNS 운영 체계를 바꾸고, 카드뉴스웹툰뉴스를 제작하기로 했다.카드웹툰뉴스는 지난 3월 11일 공개된 리그 3연패도 한 걸음부터: 전북 vs 서울 K리그 클래식 개막전 편, 3월 16일 공개된 Man vs A.I. 편을 시작으로 주 2회 꼴로 시범 제작에 나섰으며, 이후 좀 더 다양한 시도를 선보일 계획이다.또 창간 66주년을 맞는 전북일보가 그간 쌓아온 방대한 정보를 한데 묶어, 전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우선 전북일보 웹 사이트부터 찾도록 하는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도 준비 중이다.이와 함께, 미디어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콘텐츠, 즉 내용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믿고 보는 전북일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 기획
  • 권혁일
  • 2016.04.04 23:02

송하진 도지사 "전북이 보유한 자원과 가치, 빛 볼 시기 곧 올 것입니다"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본보 지령 2만호를 맞아전북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가진 대담에서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전북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전북이 가진 자원들을 활용해서 성장 동력화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말했다. 송 지사는 전북이 가진 가치들이 중요해진 시기가 도래했다면서 앞으로 전북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래 전북발전을 위한 과제로 보수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창조적으로 섞이고 연결하려는 노력을 강조했다.- 그동안 전북은 낙후 탈피가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그 결과, 적잖은 성과도 거뒀지만,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산업화 과정에서 겪었던 상대적 낙후로 실망감, 열패감 같은 것들이 우리 안에 쌓여왔습니다. 그로 인해 도민들의 자신감과 사기도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장기화된 낙후, 익숙해진 열패감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방식의 발전이 필요합니다. 이미 저만치 앞서 가는 경쟁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승부해서는 이길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시대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ICT를 기반으로 한 지식정보사회로, 개발과 성장 위주의 발전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말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차원의 발전전략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게 바로 내발적 발전 전략입니다.- 취임 이후 줄곧 내발적 발전전략을 강조하셨는데, 내발적 발전전략이란 무엇입니까.내발적 발전 전략은 전라북도가 잘하고, 또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발굴하고 경쟁력으로 육성하는 전략입니다. 깨끗한 생태자연, 농경문화, 오랜 역사와 전통, 도민의 끼와 재능 등 전북의 강점과 가치를 바탕으로 한 특화산업을 통해 외부의 관심과 투자, 지원까지 이끌어내자는 게 내발적 발전의 핵심입니다.내발적 발전 전략을 추진하면서 도정 전반에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전라북도가 가야 할 길은 산업화 시대의 기준과는 다른 새로운 길이라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변화의 흐름이 도민들의 생각과 자세까지 새롭게 바꾸는 데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자칫 지역개발만을 앞세우다 보니 전북만이 갖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북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어떠한 놀라운 창조에도 그 배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면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이 이뤄낸 기적적인 성장에는 수천 년 간 이어온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잊고 지냈지만 결국 한국을 여기까지 이끌어 온 원동력은 알고 보면 우리가 쌓아 온 과거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깊은 역사와 풍부한 전통, 또 이를 계승해나가는 창의적인 사람들, 깨끗한 생태환경, 삶의 원형이 살아 있는 농경문화와 인문학적 소양 등을 잘 지키고 보존해 온 전라북도야말로 이러한 우리의 본질과 근원의 보고(寶庫)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제는 전북이 지니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물어야 할 때 입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민의 행복지수는 바닥입니다. 양극화와 이념 대립,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다움을 찾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위로와 치유도 원합니다. 콘크리트 없는 곳에서 머무르길 소망합니다. 소박하고 따뜻한 삶을 꿈꿉니다.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로 건강해지길 바랍니다. 또, 우리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존재의 의의를 찾기도 합니다. 전북이 지닌 가치들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앞으로 전북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전북에는 위기가 아닐 수 없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전북으로선 상대적 낙후를 극복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런데 이미 세상은 산업화로 발생한 기후변화, 화석연료 고갈, 인간성 상실 등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ICT(internet communication technology)를 기반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습니다. 상대적 낙후라는 지역적 문제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고도문명사회의 부작용 해결, 지식정보사회에 대한 적응 등 인류가 맞닥뜨린 보편적 문제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전북이 처한 삼중고(三重苦)의 위기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문명이 새로운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양적 성장, 일등주의에 치중하던 문화가 공존과 지속가능성, 질적 성장, 다양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규범과 도덕적 자원의 고갈로 인간적인 문화와 배려, 협업, 관계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습니다.여러 차례 말했지만 인문학적 자산, 깨끗한 생태자연과 먹을거리, 공동체 정신 등을 보유한 전북은 이런 점에선 우위를 점한 지역입니다. 전북이 가진 자원들을 활용해서 성장 동력화 할 수 있다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봅니다.- 지사님께서 전망하는 전북의 미래는 어떤 모습입니까.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화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의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음을 온 국민이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ICT를 기반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식한 계기가 마련된 셈입니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변화는 필연적입니다. 벌써 5년 내에 세계적으로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 개가 새로 생긴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AI(인공지능)가 가져다 줄 편리에 환호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 변화의 촉각에 관심을 쏟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입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대의 흐름에 대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천만다행입니다.전북의 미래도 4차 산업혁명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어떤 산업이든지 ICT와의 결합은 피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ICT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가치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전북은 농생명 바이오산업, 탄소 중심의 융복합산업처럼 ICT를 접목하기 좋은 산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 관광과 전통문화, 공동체 정신처럼 인간의 본질과 맞닿은 자산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역량은 이미 충분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낙관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현대를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하는 시대정신을 포착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음으로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사회적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또 이러한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의지를 쏟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시대의 의지란 리더가 일방적, 수직적으로 전달해 표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다수가 공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대중의 지성과 능력을 수평적으로 연결하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도민의 의지도 결집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들어 혁신적 사고와 개방적 관계에 기초한 협업의 문화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당부하고 싶은 점은 우리끼리의 협업과 융합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북의 분위기가 정체되어 있는 것은 보수성에서 기인한 바도 큽니다. 전북발전을 위해서는 과감히 보수성을 탈피해 창조적으로 섞이고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알파고도 컴퓨터 1200대가 연결됐다고 하지 않나요.(웃음) 협업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413총선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전북 정치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총선 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십니까.전북정치 약화 우려는 야당이 호남 위주로 구성됐던 과거와 달리 전국 정당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호남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과도기로,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 후에는 정치권에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에 따라 전북정치도 크게 변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속에서 새로운 인물, 새로운 리더가 나올 것입니다.- 지령 2만호를 맞이 한 전북일보에 거는 기대와 소회를 부탁드립니다.전북일보 지령 2만호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언론사답게 그간 전북일보는 지역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전북을 대표하는 주요 언론사로서 생동하는 전라북도를 위해 더욱 열심히 뛰어주길 기대합니다. 특히 빠르게 바뀌고 있는 시대를 균형 있는 시선으로 조감하고, 도민들에게 올바른 발전방향과 미래상을 깊고 폭넓게 제시해 주길 바랍니다. 미래적 가치인 융합과 협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에도 함께 해줬으면 합니다. 전북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기획
  • 김준호
  • 2016.04.04 23:02

[전북일보 만화뉴스]대학매일 : 어떤 새내기의 일상

#1.짠짠대에 입학한 새내기 성은 씨.나도 이제 대학생이라는 생각에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개강 날, 거울 앞에 서서 공부도 열심히, 노는 것도 열심히, 하여간 모든 것을 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2.보름 뒤.등교시간, 익산에서 전주로 향하는 시외버스는 항상 만석.성은 씨는 오늘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등교합니다.#3.수업에 들어가려면 교재를 사야죠.성은 씨는 교재 값이 너무나 부담스러워, 친구의 책을 빌려다가 학교 근처 제본소에 제본을 맡겼습니다.이번에 두 권을 제본해서 도합 3만원을 아꼈군요.#4.제본소에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성은 씨, 시계를 보며 뛰기 시작하는데요.그런데 몇 명이 길을 가로막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시간도 없는데 짜증도 납니다.그리고 들려오는 말은 도를 아시나요?, 전생에 덕을 많이 쌓으셨군요!#5.그들을 간신히 물리치고 강의실에 당도한 성은 씨.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방에 갑니다.동아리방 문을 열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선배 한 명이 소리칩니다.왜 이렇게 늦어? 이것들이 전부 엎드려!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성은 씨.#6.동아리 활동을 마치니 어둑어둑해졌네요.밖엔 매화가 만발했는데, 도서관엔 불이 켜져 있습니다.성은 씨, 책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합니다.#7.뭘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새 막차 시각.성은 씨, 정신없이 뛰기 시작합니다. 이 차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 해요.#8.다음날 아침. 거울 앞에서 성은 씨는 다짐합니다.오늘도 열심히!/기획 : 신재용, 구성 : 권혁일, 웹툰 : 이권중

  • 기획
  • 전북일보
  • 2016.03.31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그날 볼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안다 : 벚꽃 오프닝

#표지.#1.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이제 완연한 봄, 4월입니다.#2.봄과 4월 하면 역시 떠오르는 꽃 있죠?그건 바로 벚꽃!#3.전라북도에도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 많은데요.전북일보 디지털뉴스국 카드뉴스팀이 객관 반 주관 반으로 10곳을 뽑아봤습니다.#4.우선 전통의 강호, 완주 송광사를 빼놓을 수 없지요?송광사는 백제 시대에 백련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진 이래 천 년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서 깊은 절로, 그 앞 벚꽃길이 참 유명합니다.#5.전주에서 가시려면 소양 방면으로 철길 건너 쭉 나가시다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시면 됩니다.#6.전주 동물원도 벚꽃 명소 중 한 곳입니다.동물원은 매년 벚꽃 필 무렵과 단풍 들 무렵에 야간개장 행사를 하는데, 올해는 4월 1일부터 열흘 동안이네요.동물원 안쪽도 아름답지만, 조경단 앞을 지나가는 길도 참 멋집니다.#7.전주 소리문화의 전당과 가까우니 겸사겸사 들려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8.군산이 자랑하는 벚꽃 명소로는 은파유원지가 있습니다.입구에서 물빛다리 앞까지 이어지는 길을 걷는 것도 환상적이고, 호수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것도 참 좋죠.물빛다리 야경은 덤!#9.자동차 전용도로인 21번 국도에서 군산대 교차로나 당북 교차로로 내려가면 금방 닿을 수 있기 때문에 전주, 익산 등지에서도 쉽게 갈 수 있어요.#10.백제와 마한의 중심이었던 익산은 역사유적과 관련된 명소가 많습니다.그 중에서도 왕궁리유적지와 함벽정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2014년에 한국관광공사 봄에 가볼 만한 곳, 팔도 벚꽃 나들이 지역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11.왕궁리 유적은 1번국도변에 바로 놓여있어서, 주행 중에도 찾기 쉽습니다. 특히 전주나 삼례에서 찾아가기가 쉬울 거예요.#12.왕궁리 유적에서 금마교차로를 지나 동쪽으로 달리면 왕궁저수지가 나오는데, 이곳에 함벽정이 있어요.함벽정 인근에는 보석테마관광지도 있으니 함께 보시면 좋지 않을까요?#13.김제 금산사도 벚꽃으로 유명한 유서 깊은 곳입니다.후백제 견훤이 감금돼 있던 곳이기도 하지요.#14.이 사진은 1977년 4월 30일에 찍힌 사진인데, 이 사진의 배경이 바로 금산사입니다.#15.모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전라북도 도민에게는 낯설지 않을 듯한데요.찾아가는 길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16.이번엔 정읍으로 가볼게요. 내장산 단풍으로 유명한 정읍이지만, 봄에는 벚꽃으로도 입소문이 자자합니다.바로 정읍천을 따라 조성돼 있는 약 2㎞가량 되는 벚꽃길입니다.#17.호남선 철도 넘어 동쪽으로 정읍천을 따라 시나브로 걷는 재미, 어떤가요?#18.그밖에도 진안 마이산이나,#19.완주 구이저수지 둑방길.#20.전주 삼천변도 벚꽃을 즐기기엔 참 좋은 곳이죠.#21.열 곳이나 소개했지만 아직도 전라북도에는 채 다 소개하지 못한 벚꽃 명소가 많아요.봄에는 전라북도 벚꽃놀이 여행, 어떤가요?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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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30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총선 후보자에게서 평범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표지: 총선 후보자에게서 평범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1.413 총선 후보자 등록도 끝나고, 본격 선거운동 레이스가 시작됐습니다.전북지역은 10개 선거구, 47명이 등록했네요.#2.그런데 등록된 후보자 면면을 보니, 평범한 도민들과는 조금 거리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3.최고령 후보자는 전주갑 선거구 무소속 유종근 후보입니다. 1944년생, 72세네요.최연소 후보자는 남원임실순창 선거구 새누리당 김용호 후보입니다. 1977년생, 38세.#4.엥? 그럼 청년은? 한 명도 없는 것?(전북도민 중 15~29세 청년 비중은 2016년 1월 기준 18.3%)#5.문: 도내에 청년 출마자는 없는 겁니까?답: 네, 사실입니다.#6.47명 중 남성 후보자가 45명. 여성은 2명. 성비는 96대 4.전북도민 성비는 남성 49.8대 여성 50.2.(2016년 2월말 기준)#7.재산 신고액이 가장 많은 후보는 남원임실순창 선거구 무소속 방경채 후보네요.무려 137억9665만원을 신고하셨어요.#8.재산 신고액이 가장 적은 후보도 남원임실순창 선거구군요. 민중연합당 오은미 후보입니다.마이너스 1억912만원이네요.#9.후보자 47명 중 전과기록 보유자는 19명.#10.남성 후보 45명 중 병역 면제자는 8명입니다.전주병 김성주, 군산 김윤태, 익산을 권태홍, 완주진안무주장수 임정엽 후보는 수형으로 인해 병역을 면제 받았어요.#11.군산 함운경 후보는 각막반흔, 정읍고창 김만균 후보는 준골반증, 김제부안 김종회 후보는 미공개 질병으로 인해 각각 면제를 받았군요.남원임실순창 임종천 후보는 생계곤란 사유로 면제됐습니다.#12.4월 13일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 우리 지역구 후보 면면을 잘 살펴보고 표를 던지기로 해요.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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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28 23:02

공공보건 앞장 남원의료원 박주영 원장 "노사 하나되어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할 것"

1921년에 설립된 전라북도 남원의료원은 동부산악권 3개 도에 걸쳐 7개 시·군 27만명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거점 공공병원이다. 남원의료원은 지난 한 해 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877일간을 끌어온 단체협약을 체결해 조직안정의 기틀을 마련했고, 저비용·고효율 조직체계 구축을 위한 직제개편, 의료수익증대를 위한 전문 의료인력 확보 등 조직의 안정도모와 의료기관 인증획득 및 공공보건의료사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지역민에 대한 양질의 의료시혜를 위해 발 빠른 행보를 하고 있는 남원의료원의 박주영 원장을 만나 의료원 운영계획 등을 들어봤다.- 2014년 11월에 부임해 1년여를 보내셨는데 지난 한 해에 대한 소회는.“먼저 장기간의 노사분규와 파업, 그리고 원장이 없는 공백상황에서 조직전체의 흐트러짐, 특히 진주의료원의 폐업조치 후 지역주민들의 부정적인 시각과 소극적 진료에 따른 의료원 이용기피, 환자 역외유출 등 의료원의 경영악화에 따른 운영관리는 걷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였습니다. 그동안 노사분쟁에 의한 단체협약 해지로 중요사안 처리에 어려움이 많았으며, 이때마다 원장이 노조와 직접대화하고 소통함으로서 협약체결 전에도 원만한 사전조율로 노사가 함께 현안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점에서 무엇보다도 남원의료원 노동조합 박정원 지부장이하 간부 및 조합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러한 뒷받침에 힘입어 드디어 단체협약 해지 877일, 제가 원장부임 1년 2개월만인 2016년 1월 29일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됐습니다. 이제 노사는 함께 하나가 되어 남원의료원을 찾는 고객을 내 가족같이 받들어 모시고 의료원의 발전을 위해 굳은 결의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고향 남원에서의 마지막 봉사라 생각하고 공직에서의 행정경험과 기업에서의 경영철학을 접목해 전국에서 제일 앞서가는 남원의료원을 만드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나가겠습니다.”- 지난 한 해(2015년) 공공의료사업 실적은.“2015년도에 공공 보건의료 활성화를 위해 가정간호사업 등 8개 사업에 대해 연인원 1만8771명의 주민을 대상으로 총 3억2700만원의 사업비(자부담 2억8200만원)를 투입, 공공보건의료사업을 시행했습니다. 사업별로는 가정간호 3769명, 정신보건 141명, 의료지원 21명, 보건교육 2598명, 의료취약계층 진료 및 의료사회 복지사업 3163명, 만성질환관리 6663명, 치매관리 733명, 호스피스 완화의료 1683명 등입니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 인증 획득으로 지역민에 대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과 환자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습니다. 인증기간은 2015년 12월 23일부터 2019년 12월 22일까지 4년간 유효합니다. 또한 지역사회 요구반영을 위한 의견수렴 창구인 병원발전자문위원회 구성·운영(자문위원 17명)으로 공공의료 시행과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남원의료원은 보건교육, 의료봉사, 질병예방활동과 건강증진, 생명존중에 기여하고 지역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찾는,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왔습니다.”- 지난해 5월 발병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시 남원의료원은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했습니다.“작년 메르스 사태 시 국가격리 감시지역으로 통제·관리됐던 순창군 장덕리 마을의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하면 민간병원에서 입원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우리 남원의료원에서 입원을 수용·치료함으로써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전염병 확산방지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로 인해 공공의료의 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에는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응급센터 내 격리병상 및 감염병 안심 응급실 구축을 위한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며, 각종 전염병 발병 시 진료권역 내 감염병 확산방지 역할에 충실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공직재임 시 지역보건의료 발전을 위해 봉사하셨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남원의료원의 기능과 역할, 현안문제, 발전방안은 무엇인가요.“저는 30여년을 보건의료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지역주민의 생명존중과 질병예방, 치료 및 건강증진을 위해 공공의료의 기능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우선 지역거점공공병원이란 민간 병·의원에서 수행하기 힘든 의료행위나 의료취약지 지역민에게 공공의료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의료기관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원의료원 기능과 역할은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지역보건의료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민간 병원에서 기피하는 필수 공공의료서비스(응급, 격리병상, 분만, 중환자실 등) 수행, 각종 공공보건의료사업(가정간호, 정신보건, 의료지원, 보건교육, 의료취약계층 진료 및 의료사회복지사업, 만성질환관리, 치매관리, 호스피스 완화의료 등) 추진, 정부시책사업(간호·간병통합서비스, 신포괄수가제,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 각종 전염병관리 등)을 수행하는 시범병원으로서의 역할입니다. 또 남원의료원의 현안은 △조직의 안정 △경영개선 △처우개선입니다. 단체협약 해지 877일 만에 노사화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제 남원의료원 노사는 하나가 되어 상생의 협력체제로 다시 시작하게 됐습니다.” - 올해 주요사업 추진방향은.“올해에도 공공보건의료사업을 꾸준히 강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소요예산은 3억4900만원이며, 가정간호사업 등 7개 사업입니다. 그리고 환자 개인 간병인 고용에 따른 경제적부담 경감을 위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사업(구 포괄간호서비스)을 적정인력 확보 후 추진할 예정이며, 입원기간 동안 발생한 진료에 대해 질병마다 정해진 금액을 적용하는 신포괄수가제의 활성화 및 정책인센티브 상향으로 재정건전성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또 시설·장비 현대화 사업으로 외래진료부 동선간소화 및 운영시스템 개편 등으로 내원객이 만족하고 환자 대기시간을 단축하는 등 고객이 만족하는 편안한 공공병원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박주영 원장은] 강력한 추진력·솔선수범 자세·의료발전 앞장박주영 남원의료원장은 지난 2014년 11월 부임했다.그는 부임 직후 의료원의 어려운 경영상황을 확인, 법인카드를 반납하고 리스차량을 해지하는 등 경영개선을 위해 앞장섰다.남원 출신인 박 원장은 익산 남성고, 호원대학교 공업화학과를 졸업했으며, 전북대학교 대학원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1979년 공직에 입문해 전주시 환경위생과장, 남원시 보건소장, 전라북도 보건위생과장, 전라북도 보건환경연구원장으로 근무하는 등 공직재임 시 30여년 동안 지역보건의료 발전을 위해 봉사해왔다.이처럼 박 원장은 지역 보건의료발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오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업무추진력과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대내외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남원의료원 근무를 지역 보건의료발전의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고 생각한다는 박 원장은 “지역특성상 저소득층과 의료소외계층이 많은 지역 내 이용객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기획
  • 신기철
  • 2016.03.28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지카바이러스 상륙! 전북은?

#표지.#1.브라질로 출장을 다녀온 전남 광양 L모 씨.3월 22일, 유전자 검사 결과 지카바이러스에 양성으로 나타났습니다.#2.국내에서 나타난 첫 확진 사례.이 환자는 다행히 하루 만에 완치돼 퇴원했다고 합니다.#3.전라북도 지역에서도 지카바이러스 의심 사례 11건이 접수돼 검사가 이뤄졌는데, 다행히 모두 음성으로 나타났습니다.#4.지카바이러스가 대체 뭐길래 이러는 걸까요?#5.흰줄숲모기(흔히 아디다스 모기라고도 하죠!)를 통해 감염되는 질병입니다. 흰줄숲모기는 전북 지역에서도 지난 3년간 24마리가 확인됐습니다.#6.1947년 우간다에서 처음 발견된 지카바이러스.인체에 감염된 사례는 1952년, 우간다와 탄자니아에서 보고됐습니다.#7.그동안 아프리카, 동남아, 태평양 섬 지역에서 간간히 발생했는데요.2015년, 브라질에 상륙하면서 얘기가 달라집니다.#8.지난해 5월 브라질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확산됐고,#9.마침내 2월 22일에는 일본에서, 3월 22일에는 한국에서도 지카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옵니다.#10.브라질에서 크게 이슈가 됐던 이유는 바로 소두증 때문이었습니다.임신부가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태아의 뇌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병을 안고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었는데요.#11.다만 소두증과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12.그 외에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80%,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발열이나 발진, 관절통이 생기고 눈이 충혈되는 정도입니다. 즉, 그 자체로 치명적인 질환은 아닙니다.#13.사람들 사이에서는 지난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모습도 보입니다.#14.질병관리본부는 해외 환자 유입은 지속적으로 있을 수 있으나 모기에 의한 토착화나 확산의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밝히고 있습니다.#15.지카바이러스, 백신은 없습니다. 다만 예방법은 있습니다.#16.먼저, 중남미 지역을 가신다면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세요.긴팔긴바지를 입고, 모기 기피제와 방충망, 모기장 등을 활용하세요.#17.다녀오신 뒤, 2주 이내에 발열 또는 발진과 함께 눈이 충혈되거나 관절통근육통두통 등의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09번)로 신고하세요.그리고 가까운 병원에 가서 여행 이력을 알리고 진료를 받으세요.#18.나는 모기가 싫다.왜냐하면 모기가 싫기 때문이다.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 기획
  • 전북일보
  • 2016.03.25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제모 엔딩

#1.(그대여~ 그대여~ 그대여~)#2.text: (간주 중)#3.길을 걷다 보인 물건, 터진 제설용 모래주머니.(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바람에 실려오는 제설모래 어떤가요)#4.지난 겨울에 쓰고 남은 물건입니다.전주시가 지난 겨울에 배분했던 제설용 모래주머니는 총 4만 개.전주시 관계자는 "30%는 사용했고, 65%는 회수했다. 남은 건 500개 정도다"고 밝히고 있지만, 계산해보면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습니다.(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 잡고~ 알 수 없는 찜찜함과 둘이 걸어요~)#5.수량에 대한 정확한 조사 없이, 단순 계산에만 의지하고 있는 상태. 실제로 얼마나 많은 모래주머니가 터진 채 방치돼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실제 전주시 A주민센터 관계자는 "모래주머니 중 회수하지 못한 게 70% 정도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봄바람 휘날리며~)수량에 대한 정확한 조사 없이 단순 계산에만 의지하는 상태. 얼마나 많은 모래주머니가 터진 채 방치돼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text: 봄바람 휘날리며#6.이에 대해 전주시 측은 "지난 15일까지 회수하기로 했는데, 포트홀 정비 작업 때문에 늦었다.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제설용 모래주머니를)모두 수거할 계획이다"고 밝혔습니다.(흩날리는 벚꽃잎이~)#7.포트홀 정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좀 더 세심하게 관리할 수는 없었을까요?(울려퍼질 이 거리를~)#8.(둘이 걸어요~)(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 기획
  • 전북일보
  • 2016.03.22 23:02

김장호 제40대 전북지방병무청장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병무행정 중점"

올해 초 제40대 전북지방병무청 청장으로 취임한 김장호(58) 청장은 첫 직장인 국방부에서 30년 넘도록 생활한 탓에 병무청으로의 이직에 두려움이 앞섰다. 10년 전에도 병무청으로 옮길 기회가 있었지만 그 당시 더 큰 두려움에 머뭇거리다 이제서야 제 갈길에 섰다고 말했다. “단기계약직이긴 하지만 스스로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김 청장은 “군인보다는 국민을 위한 업무에 매진하는 것이 국방부와는 사뭇 다른 점”이라고 꼽았다. 김장호 청장으로부터 그 동안의 소회와 병무청 운영 방향을 들어봤다.- 지난 1월 취임사에서 “국민의 요구와 질책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신뢰와 사랑받는 병무청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셨는데 소회는 어떠십니까.“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업무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갖고 출발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 달째 접어들었습니다. 취임 이후 ‘병무행정의 중심에는 항상 국민이 있다’는 신념으로, 국가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의 사명과 자부심을 갖고 병무행정에 임했습니다. 특히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병무행정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중심의 열린 행정에 총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현장 중심의 행정’을 강조하시는데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추진하셨는지요.“짧은 기간이었지만 병역의무자 등 국민의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듣고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 국민신문고 등 민원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군부대,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의 폭넓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논리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보고 현장소통 행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병무청에서 추진한 사업 성과는 어떻습니까.“잘 알다시피 병무청은 징병검사, 현역병 입영, 사회복무요원, 병력동원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매년 병무청에서 실시하는 징병검사는 최대한 본인이 원하는 일자 및 장소에서 받을 수 있도록 ‘징병검사 본인선택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까지는 102보충대(춘천), 35사단(임실), 육훈(논산), 20사(양평), 17사(부평)로 입영했지만, 올해는 지방청별 현역계획을 전국적으로 통합·운영하기 위한 ‘전국단위 징집체계’로 전환, 전국 34개 입영부대로 입영이 가능하도록 전환한 부분이 큰 성과입니다.”- 향후 병무청에서 중점으로 추진하는 사업은.“사회복무요원의 자발적 병역이행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본인이 자율적으로 복무기관을 선택하도록 하는 ‘사회복무요원 소집일자, 복무기관 본인선택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별 자격과 전공 등을 고려해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복무기관에 우선 배치하는 부분과 함께 예비군 교육생 접근성을 제고하기 위해 권역을 7개로 확대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중점 추진하고 있습니다.”- 과거 병역비리와 관련된 병무청의 자정 노력과 성과는 어떤지요.“과거 병무청은 병무비리 등으로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으며, 이로 인해 병무행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졌습니다. 병무청은 병무파동이라는 큰 시련을 겪으며 청렴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각종 제도 정비 및 변화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징병검사에서부터 입영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업무의 전산화 및 본인선택 제도를 통해 공정한 병역이행문화와 자진 병역이행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또 2012년 4월에는 40명으로 구성된 특별사법경찰관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144건의 병역면탈 범죄를 적발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 결과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부패방지시책 평가에서 2012년 이후 4년 연속 1등급 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병역의무 기피자 신상의 인터넷 공개는 파격적인 제도로 보여집니다.“네 맞습니다. 2015년 7월1일 이후 국내외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의무를 기피하고 있는 국외불법체류자, 징병검사 및 현역, 사회복무입영 기피자 등에 대한 인적사항을 홈페이지에 공개함으로써 병역기피 발생을 예방하고 성실한 병역이행을 유도해 공정한 병역이행의 사회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병역문화가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우리사회 전반에 확산돼 건전한 병역이행 풍토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군입대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전북병무청은 상황이 어떤지요.“군 복무기간의 단축, 국방개혁에 의한 입영 계획인원 감소, 경제여건 악화로 인한 청년 실업률 증가 등으로 입영 지원자가 증가하면서 입영 적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생의 경우 복학시기를 고려해 1~5월까지 입영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정된 수요대비 희망자가 많아 다른 시기보다 입영경쟁률이 더 높습니다. 입영을 원하는 사람은 개인의 학업일정, 취업, 적성 등을 연계해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무청에서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재학생 입영원 출원, 현역병 입영일자 본인선택, 모집병 일정 등 입영정보를 수시로 안내하고 있어 입영일자를 결정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들이 기대해도 좋을 사업은.“조직의 미래는 구성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생활하는 직원들의 행복감이 직무 만족도로 이어진다는 생각과 함께 국민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열린 행정을 펼치고자 ‘행복한 일터’ 조성, ‘찾아가는 병무청’ 운영, 그리고 ‘맞춤특기병 제도’ 활성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고 추진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도내 병역의무자 및 도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최근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춘들이 심각한 취업난을 겪으면서 많은 고민을 안고 그 어느때 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병무청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군 복무를 취업 등 사회진출과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는데 역점을 두고 지속적인 병역정책 발굴에 힘쓰겠습니다. 아울러 병무청은 국민이 공감하고 신뢰하는, 창조와 혁신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 선도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 하는데 전 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목표를 향해 추진하겠습니다. 도민들께서도 병무행정 발전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당부드립니다.”● [김장호 청장은] 소박한 삶…어릴 적 군수 꿈꿔1958년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난 김장호 전북지방병무청장은 어린시절 군수의 꿈을 키웠다. 6·25전쟁 이후 강원도 북평고등학교에 진학해 수십 리를 걸어다녀야 했던 그에게 대학진학은 녹록치 않았다. 군 제대 후 60:1에 육박하는 국방부 7급 공채 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섰고, 시골을 떠나 서울 밤 하늘을 보며 꿈을 키우기도 했다. 김 청장은 34년 공직자로서 악착스럽게 업무에 매진해 왔다. 특히 ‘시골촌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 청장은 돈 들어가는 골프는 질색이라고 한다. 최근 바쁜 와중에도 풍남문과 오목대 등 전주시내 유적지를 찾아돌며 그 곳에 새겨진 초서체 구경에 여념이 없다. 한자를 아는 사람도 읽기가 쉽지 않은데 이제는 수집도 하고 초서체 책도 사서 공부해 직접 쓰기도 한다.애초 군수의 꿈은 민선으로 제도가 바뀌어 일찌감치 포기했고, 현재의 지방병무청장 자리도 그에 못지 않은 위치라고 생각하는 김 청장은 지금까지 명심보감을 30번 넘게 다시 보며 그 안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인생철학은 책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 기획
  • 남승현
  • 2016.03.21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이럴水價!

<이럴水價!>#1다음 중 1000원으로 할 수 없는 것은?1) 삼각김밥 한 개 사먹기2) mp3 음원 한 곡 다운로드하기3) 전북일보 한 부 사 읽기4) 완주군에서 물 1톤 쓰기#2환경부가 최근 '2014년 상수도 통계'를 내놨습니다. 전라북도 평균 상수도 요금이 1톤당 917.4원이네요.#3근런데 전북지역 내에서도 요금편차가 컸습니다.#4무주군 2.5T(톤) = 완주군 1T(톤)#5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지역별로 생산 원가의 차이가 큽니다. 지역별로 필요한 관로 길이가 다르고, 시설 노후화에 따라 물이 새는 비율도 차이가 납니다."#6무주군 관계자 "2014년 기준 생산 원가가 2,303원 이었어요. 인건비, 시설비, 정수장 운영 경비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7순창군 관계자 "대부분 군 단위 지역은 비슷할 거예요. 가구마다 물을 보내는 데 시설이 더 많이 들어갑니다."#8아니! 그럼 인구밀도가 낮은 산간지역 수돗물이 더 비싸야 하는 것 아닌가요?#9무주군 관계자 "그래서 지난해부터 2017년까지 매년 33%씩 요금을 올리기로 했는데요. 지난 10년동안 물값을 한 번도 안올렸어요. 물이 공짜라는 인식이 있어서 원가대로 받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못 올리다가 결국 적자 폭이 너무 커져서..."#10결국 세금으로 물값을 충당한다는 이야긴데요. 전북지역 평균 원가 대비 요금(현실화율)은 83.7%, 무주군은 18.3%였습니다.#11하지만 우리가 '공공재 아닌 물'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공기처럼요.#12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세금이 들어가더라도 물은 싸게 공급해야 한다." vs "물 값이 최소한 생산 원가만큼은 돼야한다."/기획 : 신재용, 구성 : 권혁일, 제작 : 이권중

  • 기획
  • 전북일보
  • 2016.03.18 23:02

완주책박물관 박대헌 관장 "책으로 자생하는 마을…주민과 함께 삼례를 책으로 덮고 싶어"

완주군 옛 삼례역 앞, 7개동의 양곡창고가 변신한 것은 3년 전이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지키고 있던 쌀 수탈의 현장 양곡창고의 변신은 놀라웠다. 공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의 외형을 입고 들어선 문화공간. 비주얼미디어아트미술관, 디자인뮤지엄, 김상림목공소, 책공방북아트센터, 책박물관, 문화카페까지 6개의 공간은 낡은 건물의 가치를 새롭게 살려낸 모범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객들을 불러들이는 곳, 책박물관이 있다. 완주책박물관이라고 이름붙인 이곳은 옛 책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주는 귀한 공간이다. 사실 책박물관은 수년전 영월책박물관으로 이미 이름을 알렸다. 시골마을의 폐교를 활용해 만든 책박물관은 영월을 박물관도시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고 영월책박물관은 문을 닫았다.2013년 완주에 책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책박물관 주인인 박대헌 관장(63)의 새로운 도전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그는 고서대학을 열고 의미 있는 책기획전을 이어가면서 관객들의 고서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박관장을 만났다. 봄날인 듯 봄날이 아닌 듯, 찬바람이 부는 봄날이었다. 두툼한 자료집을 들고 나온 그는 허름한 창고 안으로 안내했다. 그 안 풍경이 놀라웠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헌책이 거기 있었다. 10만권은 족히 되는 양이라고 했다. 이 책들은 삼례문화예술촌 바로 옆에 조성되고 있는 책마을문화센터에 들어갈 고서점 호산방에 놓일 책들이었다.오는 4월 완공되는 삼례 책마을문화센터는 박관장의 제안으로 완주군이 조성하는 공간이다. 책마을 기획의 중심에 있는 그는 모든 열정을 이곳에 쏟고 있는 듯 했다. 연고도 없는 삼례에 들어와 오랜 꿈을 희망으로 실현해가는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삼례를 책으로 덮고 싶어요. 책으로 자생하는 그런 마을. 삼례가 그런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상상만 해도 행복한 풍경이 힘을 내게 합니다.그에게 책이 존재 이유이고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책박물관이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좋은 기획이 이어지면서 삼례예술촌을 알리는데도 좋은 역할을 하고 있고요. 삼례로 오신지 3년째인가요.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2013년 6월에 문을 열었으니까요. 책박물관의 기능을 살리려고 노력은 하는데, 여건상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책마을이 문을 열면 서로 보완하면서 좋은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하고요.-삼례문화예술촌 앞에 조성되는 책마을이 거의 완공단계에 있던데요.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습니까.공식적인 이름은 삼례책마을문화센터입니다. 4월에 개관 예정인데, 전체적으로 진행은 잘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헌책도 정리되어가고 있는 중이고요.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과제인데,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적응해가는 과정에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삼례예술촌에 들어오자마자 고서대학을 열었어요. 고서와 헌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죠.-책마을의 콘셉트가 헌책방이라고 들었습니다.헌책방이 중심이 되고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섭니다. 한국학아카이브도 구축되고요.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건물 한 동은 온전히 헌책방들로 구성됩니다.-단순히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 기능보다는 실제 헌책을 사고파는 책방으로서의 기능이 강조되겠군요.사고파는 행위가 이루어져야 책마을이 활성화될 수 있으니까요. 필요한 책은 사고, 자기가 갖고 있는 책을 누군가 읽을 수 있도록 내놓는 문화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생명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문화적 토대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가느냐가 과제겠지요.-좋은 기획자와 행정이 만나 좋은 사업을 만들어낸다해도 주민들의 외면으로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삼례책마을은 어떤가요.삼례책마을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과정이 있습니다. 주민들이 새로운 것 낯선 것에 관심을 갖게 하고, 과정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민들의 일상과 삶의 바탕이 제대로 결합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죠.-삼례책마을문화센터의 구체적인 구성이 궁금합니다.건물 4동이 조성됩니다. 그 중 북하우스가 중심이죠. 그 공간에 제가 운영해온 고서점 호산방이 들어섭니다. 여러 헌책방도 함께 들어섭니다. 이 공간은 모두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한 곳입니다. 누구나 책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요. 코너를 만들어주고 자신이 갖고 있는 헌책들을 내놓게 되죠. 구체적인 규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헌책방 코너를 한데 묶어 공동 판매하는 형식으로 묶어 운영해볼 계획입니다. 책방운영의 경험이 없는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호산방 운영의 30여년 노하우를 이곳에서 다시 풀어가려고 합니다.-주민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겠군요.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호산방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호산방이 문을 닫은 지난해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작년 9월에 서울 창덕궁 앞에 있던 책방 간판을 내렸으니 호산방을 시작한지 꼭 32년만이군요. 고서점 운영의 한계를 맞은 것이죠. 시대적 한계니 어쩔 수 없지만 고서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대접하지 않는 문화적 환경이 안타깝습니다.-호산방은 고서점계의 혁신을 이끌어온 서점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박관장님의 안목과 실력이 가져온 결과겠지요. 고서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헌책을 좋아해 수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을 열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서에 빠져 책에 둘러싸여 사는 일상을 늘 꿈꾸었거든요.-고서와의 인연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국어학자 강기진 교수님이 고등학교 때 국어를 가르치셨어요. 수업시간에 수주 변영로 선생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명정 사십년〉이란 책을 꼭 구해서 읽어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술에 읽힌 일화를 쓴 책인데 쉽게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셨죠. 곧장 청계천 헌책방으로 갔어요. 그때 처음으로 청계천 헌책방을 가봤는데, 두 시간을 뒤져도 없는 거예요. 그 뒤로 매주 찾아갔지만 번번이 허탕 쳤어요. 몇 년 후에서야 그 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헌책방을 뒤지고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헌책에 눈이 가더라고요. 그때부터 고서를 사기 시작했죠.-말씀을 듣다보니 책 장정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맞아요. 고서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탄복한 책이 많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으로서는 버겁지만 용돈을 털어 비싼 책을 사기도 했어요.-책을 만나는 방식에 따라 책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이상하게 저는 책의 내용보다 겉이 좋았어요. 내용은 언젠가는 보게 되거든요. 필요한때 찾아 읽으면 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의 서평이나 책소개를 보고 책을 사죠. 그리고는 책을 못 읽으면 불안해합니다. 스트레스까지 받으면서 왜 책을 사고 읽는지. 저는 책을 많이 삽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신간도 사는데, 읽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아요.(웃음)-산 책을 다 읽지 않는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웃음) 고서와 헌책은 다른 것인가요.물론이죠. 국어사전에는 고서를 옛 책, 고서적 또는 헌책이라고 정의해놓았지만 그 의미는 좀 다릅니다. 저는 굳이 고서(옛책)와 헌책을 구분한다면 비교적 가치가 있으면서 오래된 책을 고서라 할 수 있고, 가치가 덜하면서 오래되지 않은 책은 헌책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한국고서연구회는 고서를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이라고 규정하고 있죠. 그러나 저는 고서를 구분할 때 육이오전쟁이 끝난 1953년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육이오 전쟁으로 수많은 책이 소실되었고, 전쟁 중에는 출판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라 출판된 책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죠.-가치로 본다면 모든 오래된 책이 고서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사실 고서가 되려면 시간적으로는 30년에서 50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해도 고서로서 가치를 발휘하는 책은 많지 않아요. 출판하는 분들에게 종종 좋은 책은 30년 50년 후에 고서점에서 팔리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책을 기획하는 바탕으로 삼으라는 이야기죠.-호산방은 언제 어떻게 문을 열었습니까.20대를 고서와 고미술 공부로 보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고서점이었어요. 1983년 장안평 고미술상가에 고서점을 열었죠. 막상 가게를 열긴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고서화 몇 점에 그동안 모아둔 고서가 전부였거든요. 고서를 사모으기 시작했죠. 그때까지 사둔 고서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대부분이 가치 있는 책들이어서 한권을 팔아 두 권을 샀죠. 그리고 다시 두 권을 팔아 네 권을 사는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갔어요.-한두 권씩 사모은 고서가 바탕이 되어 서점을 살렸군요.그런 셈입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옛사람들의 필사본과 간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 문학 관련 양장본 책이었거든요. 이 책들 덕분에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안정을 찾았어요.-우여곡절이 없지 않았겠지만 호산방은 단연 고서점 명가로 꼽혔었습니다. 그만큼 호산방을 찾는 단골 고객이 많았다는 증거인데요.단골 고객들과의 교유가 호산방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고서점은 신뢰와 소통이 바탕입니다. 서점 주인은 그만큼 고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해요. 저는 일찍부터 고서에 눈을 뜬 덕분에 다행히 고서점 주인으로서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어요. 탄탄하게 다져진 교우관계가 오늘의 호산방과 저를 있게 한 셈입니다.-2000년대 초반, 영월 폐교에 책박물관을 만들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월책박물관은 피폐해가는 농어촌 마을에 문화의 힘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통로였어요. 그래서 영월책박물관이 문을 닫았을 때 안타까웠습니다. 덕분에 삼례에 책박물관이 들어서게 되었지만요.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영월은 오랜 꿈이던 책박물관을 실현하는 터전이었어요. 1998년 폐교된 학교를 임대해서 가족들이 아예 다 이사를 했습니다. 이듬해 책박물관을 열었습니다. 영월에 들어간 것은 사실 책박물관 뿐 아니라 책마을을 만들고 싶어 선택한 곳이었어요. 박물관고을사업을 군에 제안해 함께 중앙정부에 기획안을 올렸죠. 다행히 선정되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영월에는 스무 개가 넘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신뢰가 없어지니 더 이상 견디기 힘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큰 상처를 입었죠. 그래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호산방 역사가 있었으니까요. 10년 만에 서울로 다시 나왔지요. 프레스센터에 서점을 낸 것이 그 직후입니다.-삼례책박물관과 책마을에 관장님이 더 큰 열정과 의지를 갖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사실 처음 완주군에서 저를 찾아왔을 때는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없으면 100프로 실패한다고 말했어요. 당시 여러 자치단체가 저를 찾아왔거든요. 그 대부분이 접근하는 방식과 지향이 미덥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완주는 달랐어요. 특히 완주군청 안에 있는 공무원 독서모임에 호감이 갔습니다. 완주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죠.-책박물관을 정착시키고 책마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시 책마을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데, 헌책방으로 도시를 살려낸 사례가 적지 않으니 기대도 큽니다만 헌책방 거점으로 자리 잡기까지 과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물론입니다. 좋은 기획이 더해지지 않으면 공간의 생명력을 지켜갈 수 없게 됩니다. 헌책방이 중심이 되는 책마을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호산방의 10만권 소장 서적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합니다. 희귀본 등 보물급 고서들의 판매가 이루어질 겁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어요. 세계고서점들이 참여하는 국제북페어 개최도 중요한 사업이죠. 정병규북디자인 학교도 유치합니다. 시간을 갖고 지켜보아주시면 꼭 좋은 결실이 있을 겁니다.-호산방에서 만들어낸 책들도 화제입니다.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돋보이는 책들이던데요.몇 권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호산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처음 내놓은 책이 〈서양인이 본 조선〉이라는 책인데, 상하 두 권에 150만원 정가를 붙였어요. 다들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했죠. 물론 몇 권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팔리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어요. 그 책은 영월로 들어가면서 박물관용으로 작업한 책입니다. 내공이 없어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요.(웃음) 다행히 하버드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 등 국내보다 외국에 많이 팔렸습니다. 출판기념회 대신 전시회를 했는데 지금까지도 책 전시로는 회자되고 있는 전시가 되었습니다.박관장의 고서를 향한 애정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단호하고 확신에 찬 그의 말들은 신념이 되어 옛 책과 옛 책 사이를 건너다니는 듯 했다. 고서점 운영 30여년. 그의 일상은 여전히 그리고 온전히 옛 책과 함께 놓여있다.● [박대헌 관장은] 영월 이어 완주에 책마을 조성, 국내 대표 고서전문가박대헌 관장의 고향은 서울이다. 고서점 호산방을 운영하면서 우리나라 고서점의 역사를 새롭게 써온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독학으로 고서와 고미술을 공부했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준 수주 변영로 선생의 술이야기에 빠진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명정사십년〉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헌책방을 처음 찾았다. 고서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청소년기에는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도예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그는 20대 중요한 시기를 온전히 도자기에 바쳤지만 정작 작가가 되진 못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중앙도서관 서울의 고서점을 순례하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그는 1983년, 고서점 호산방을 열었다. 해방 이전 문학책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그는 고서점을 연 이후 옛 사람들의 간찰과 필사본에 주목했다. 이 책들의 가치를 가려내기 위해 한적과 간찰을 공부했다. 남다른 안목과 지식을 얻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의 내공을 인정하고 신뢰했으며 교유했다. 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에 신문방송대학에 들어가 출판 잡지를 전공하기도 했다.고서점으로 우뚝 선 호산방이 번창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랜 꿈이었던 책박물관과 책마을 조성 실현에 나섰다. 강원도 영월의 폐교를 만났다. 1999년 그곳에 책박물관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 폐교를 활용한 책박물관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10년 만에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자치단체와의 갈등은 그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3-4년 호산방 운영에 전념했으나 많은 자치단체들이 그를 찾았다. 그중 완주군이 있었다. 2013년 완주군 삼례읍에 책박물관을 이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책마을을 조성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완주로 끌었다. 박물관을 열자마자 그는 고서대학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신념에 찬 그의 도전은 자치단체를 설득시켰다. 완주군이 조성하는 삼례책마을문화센터는 그가 기획하고 제안한 결실이었다.삼례 책마을은 헌책방이 중심이 되는 공간. 고서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현실이 되고 있다.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서양인이 본 조선〉 〈우리책의 장정과 장정가들〉을 펴내 화제를 모았으며 고서와 함께 한 25년을 세월을 정리한 〈고서이야기〉와 〈한국 북디자인 100년〉도 펴냈다.

  • 기획
  • 김은정
  • 2016.03.18 23:02

[전북일보 만화뉴스] Man vs A.I.

#1. 서기 604년, 중국.대운하 건설이 한창이던 강남 땅, 젖은 몸을 말릴 틈도 없이 노동에 시달리던 인부가 십장에게 묻는다.아니, 뭔가 획기적인 방법이 있을 것 아닙니까? 우리 이러다 정말 죽겠습니다.십장은 그 인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답한다.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지금은 너희를 쓰는 게 가장 싸다.#2. 서기 1943년, 동유럽.대규모 전차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독일 티거 전차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 소련군 전차가 허무하게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소련 전차의 숫자가 훨씬 많지만, 한 발 한 발로 소련 전차를 파괴해버리는 독일 티거 전차의 위력에 소련 전차병들은 공포에 휩싸였다.레닌그라드 출신의 한 전차병이 상관에게 물었다.아니, 이렇게 그냥 숫자만 믿고 가도 됩니까? 우리한테도 더 강한 게 있지 않나요?장교가 답했다.우리 전차 10에 적 전차 1대면 싸게 먹히는 거야.#3. 서기 2000년, 한국.초여름의 연병장은 푸른 지옥이다. 병사들이 몰려 나와 일부는 손에 호미를, 일부는 손에 자루를 들고 풀을 닥치는대로 뽑아대며 땅을 갈아엎고 있다.병장 계급장을 단 한 병사가 푸념한다.아니, 제초제나 예초기 같은 걸 쓰면 좋을텐데 왜 굳이 이 많은 인원이 제초작업을 하지? 말년에 이 무슨지나가던 행보관이 답한다.야, 생각해봐라, 너희가 훨씬 싸잖냐. 너희 시급 얼만데?(2000년 당시 병장 월급: 1만3700원)#4. 서기 2010년, 한국.모두가 기계로 포장하는 줄만 알았던 지우개의 비닐은 사실 사람이 포장하는 것이었다.전북 전주시의 한 가정에서, 모녀가 앉아 지우개의 비닐을 싸고 있다. 딸은 띠지를 감고, 어머니는 비닐을 둘러싼다.딸이 엄마에게 물었다.이런 걸 왜 기계가 안 하고 손으로 해?엄마가 답했다.사람 손으로 하는 게 더 싸서 그래.#5. 서기 2016년, 한국.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지난 3월 9일부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열렸다. 상대는 프로바둑의 인간계 최강자 이세돌.한 판이라도 진다면 인공지능의 승리라던 이세돌과 그런 이세돌의 압도적인 승리를 점치던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공지능 알파고는 내리 3판을 이겨버렸다.인류의 반격은, 승패가 이미 갈린 상태에서 열린 제4국에서 시작됐다.앞선 세 번의 대국으로 알파고의 패턴을 파악한 이세돌은 마침내 신의 한 수로 전세를 뒤집고 첫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마지막 5번째 대국이 15일 열린 가운데, 인간의 반격은 계속될지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장장 5시간에 걸친 접전의 결과는, 알파고의 승리. 스코어는 4대 1이었다.옥스포드 마틴스쿨의 2013년 자료에 따르면 전화판매원, 타이피스트 등은 머지않아 기계에게 그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99%에 달하고, 세무 전문가와 같은 전문직 노동자조차도 95.3%의 확률로 그 자리를 기계에 내줄 것으로 예측된다. 일부 언론사들은 이미 로봇 기자를 도입, 스포츠 경기 기사 등을 생산하고 있다.지난해 8월 26일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과거 10년간 전라북도 사회변화상 자료에 따르면, 전북지역 임금노동자 중에서 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4년 63.4%에서 지난 2014년 60.5%로 꾸준히 낮아져 왔다.반면 비정규직은 지난 2004년 16만3000명이었던 것이 지난 2014년에는 22만5000명으로, 그 수가 10년 새 38% 증가했다.(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558866)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자 평균 근속년수가 가장 짧은 나라(5.6년, 남성 6.7년여성 4.3년)로, 숙련노동자보다는 단순반복노동을 하는 미숙련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시장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숙련노동자를 키우는 것은 어렵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로 대체하는 이득이 가장 큰 것은 이들 고숙련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각종 기계문명의 혁신은, 어쩌면 인류를 저임금 단순노동으로 몰아내는 역할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우리는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서기 2050년, 한국.A루트: 희망편인류는 인공지능을 제어하고 새롭게 설계하거나 유지보수하는 등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내고,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전문직종의 가치가 올라간다. 기계의 노동을 바탕으로 인류는 훨씬 풍요로워졌으며, 이에 맞춰 혁신을 제어하고 부를 평등하게 나눌 수 있는 사회 제도 또한 갖춰지면서 빈부의 격차도 줄어든다.B루트: 절망편자본가는 혁신을 거듭하며 인공지능 기계에 고부가가치 노동을 맡기고, 기계 도입 비용보다 싼 임금으로 일하는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해 잡무를 맡긴다. 이를 제어하려는 움직임은 규제 완화와 기술 개발 촉진,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명분으로 인해 번번이 무산된다. 이로 말미암아 인공지능 기계를 도입할 수 있는 정도의 자본력을 갖춘 일부 대기업의 소유자들만 부를 축적하고, 인류의 빈부격차는 크게 벌어진다.우리의 선택은?

  • 기획
  • 전북일보
  • 2016.03.16 23:02

취임 1주년 맞은 정원탁 전북지방중소기업청장 "'현장에 답이 있다' 소통정책 강화, 中企·소상공인 실질적 지원 온힘"

우리나라 2% 경제로 대변되며, 99.9%가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전북경제에서 중소기업의 발전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부 기관이 있다. 바로 전북지방중소기업청이다. 전북 중소기업청의 수장인 정원탁 청장이 지난 2일자로 취임 1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해 취임 당시 “현장에 답이 있다”며 중소기업과의 현장소통을 강조하면서 발로 뛰었다. 경영을 하며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에게는 각종 정책보다 실질적인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현장에서 얻었다. 가장 중요한 중소기업 지원기관으로 유관기관과의 협업과정 중 앞장서면서도 정작 드러나지 않는, 일하는 기관의 모습을 추구하며 하루하루 1년을 보낸 정 청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취임 1주년을 맞으셨습니다. 한해 동안 바쁘셨을 것 같은데 소감은 어떠신지요.“제가 작년 3월에 전북중기청장으로 부임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그 1년이 한 달도 안된 것 같습니다. 취임이후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으로 방문기업과 직원별 맞춤형 1:1 전담인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매주 2개 업체 이상의 중소기업·소상공인의 현장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1년 동안 모두 97개사의 중소기업을 방문하고 283건의 애로를 발굴해 그 중 애로사항의 90%의 이상을 해결하는 성과를 내는 등 보여주기 식 일회성 현장 방문이 아닌 기업의 실질적 애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이 필요하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정책 등의 마련이 아닌 실질적인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지요. 그것이 바로 기업경기가 살아나고 전북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최근 개성공단 폐쇄에 따른 입주기업 피해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지역에서 어떤 지원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전북에 본사를 둔, 섬유업종을 영위하는 7개사가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었습니다. 그중 3개 업체만 경협보험에 가입해 있는 등 지원이 어려운 상태였지요. 정부의 폐쇄방침이 내려지자 마자 먼저 저는 전주고용노동지청장, 금융감독위원회 전주지원장, 한국은행 전북본부장 등이 참석하는 14개 관련 기관장 회의를 지난달 15일 오전 9시에 열었습니다. 전날이 휴일이었는데도 일일이 전화를 드려 회의 취지를 설명드렸습니다. 14곳 기관장 모두 참석하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기관장들은 입주업체 혼란 최소화를 위한 공동대응과 정책 일관성 확보를 위한 통합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먼저 우리 중기청을 업체별 컨택 포인트로 지정하여 업체와 소통창구를 단일화하고 공동으로 대응하는 실효성 높은 지원으로 입주 업체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이 바로 실질적 지원인데요. 공공기관 차원의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우리청에서는 팀장급 직원을 업체별 담당자로 지정하고 고용부, 전라북도 등 5개 기관과 1:1 맞춤형 지원팀을 구성하여 업체별 맞춤형 지원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사례를 소개하면 익산에 소재한 입주업체는 개성공단 물량 대체생산을 위한 임시공장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생산공간은 익산시와 협의를 통해 유휴 주민센터를 활용하고 생산인력은 자활센터 인력으로, 생산 시설은 중소기업청의 소상공인 협동조합 활성화 사업을 통해 1억원을 지원하는 일괄 지원을 실시했습니다. 물론 해외 공장 설립을 계획하는 업체들도 있긴 하지만 국내, 지역에서 지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지원하는 것이 기업들의 아픔을 보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지난해 주로 어떤 업무를 하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중기청은 전북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취임 이후 지역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습니다. 주요 사업을 말씀드리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살리기 캠페인 전개(메르스 캠페인 등) △온누리 상품권 판매 활성화를 위해 한국노총과 혁신도시 이전기관, 대기업 등과 판매 촉진 업무 협약 등으로 전북 판매실적 478억원(전년대비 65%) 달성 △전국최초 지자체와 협업을 통한 ‘3D 무한상상 카페’ 개소 △소상공인협동조합 활성화를 통한 60개 조합 37억원 지원 등이 있겠습니다. 또 지방청 중 최초로 중소기업과 대형 유통체인망과의 만남의 장 개최를 통해 150억원 상당의 제품 납품을 이루는 성과도 올렸습니다. 이 같은 행사들을 1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진행하겠습니다. 2015년은 어느 해보다 많은 성과를 이뤘고, 이런 우수성과는 우리 지역 중소기업들의 관심과 성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최근 전북의 수출 부진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전북 중기청에서 수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요?.“전북의 수출은 128억 달러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던 2011년 이후 2014년 85억 달러, 2015년 79억 달러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 수출은 세계경기 둔화, 유가하락, 중국의 수입구조 변화 등으로 쉽사리 호전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청은 수출 부진의 돌파구를 마련코자 지난 1월 14일 관내 14개 수출지원기관장 대책회의를 소집했고 기관 간 정보 공유와 공동 사업 발굴의 필요성을 공감했습니다.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지난달 1일에는 전북도, 무역협회 등 14개 기관의 연간 수출정책 일정표, 기업 역량별 지원사업 등 수출지원 시책 책자 2500부를 제작해 각 기관과 중소기업에 제공했고 지속적으로 협력사업을 추진해 수출 활성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내 중소기업인들을 비롯해 도민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최근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주요국 증시하락 등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와 지속적인 내수침체 등 대내외여건이 어느 때보다 우리 지역 중소기업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경제 위기와 열악한 우리의 현실을 탓할 필요 없이 적극적으로 우리 상황에 맞는 생존전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지역 중소기업들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도록 기업별 강점을 살린 경영 전략 도입, 새로운 기술 개발, 신규 시장 발굴을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저희 전북중기청도 우리지역 중소기업들의 대변자로서 현장의 소리를 반영한 맞춤형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추진해 중소기업들의 노력이 풍성한 열매로 결실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원탁 청장은 누구인가] 강력한 업무추진력…중소기업 정책·지원 통남원 출신인 정원탁 청장은 남원고등학교와 조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남대에서 2013년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1992년 전북지방중소기업청(전 공업진흥청 전북지방공업기술원)을 통해 공직에 입문한 이후, 중소기업청 총무과, 감사담당관실, 기업정보화과, 재정법무팀, 기획재정담당관, 공공구매판로과, 경남지방중소기업청 창업성장지원과장, 소상공인정책국 사업조정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법무, 재정, 판로개척, 창업성장 지원, 수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맡았고 중기청 내 정책수립, 지원 통이라 불린다, 공을 인정받아 국무총리와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또한 정 청장은 강력한 업무 추진력과 솔선수범으로 대내외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 기획
  • 백세종
  • 2016.03.14 23:02

출범 두 달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 이신후 원장 "체감·실감형 콘텐츠 개발, 전북만의 새 문화영토 개척"

전북도가 출연한 재단법인 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이하 전북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공식 출범했다. 전북콘텐츠진흥원은 (사)전북디지털산업진흥원의 조직과 기능을 확대한 콘텐츠 전문기관이다. 사단법인 체제에서 자치단체 출연기관으로 위치와 기능이 격상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1일 초대 전북콘텐츠진흥원장으로 이신후(55) 전 전북디지털산업진흥원장이 선임됐다. 문패는 바뀌었지만 기존 조직의 수장이나 직원들은 전북콘텐츠진흥원에서 계속 일하게 됐다. 전북콘텐츠진흥원은 앞으로 도내 문화콘텐츠 체계화 및 첨단기술 융합, 기업지원, 전문인력 양성 등의 역할을 맡게 된다. 이에 전북콘텐츠진흥원의 출범 60여일을 맞아 이신후 원장을 만나 향후 계획 및 목표·과제에 대해 들어봤다.-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도민이 많습니다. 역할과 기능에 대해 소개해주십시오. “전라북도에는 전통문화자원과 무형유산, 훌륭한 관광지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진흥원은 지역의 자원을 체계화하고, 이를 콘텐츠 첨단기술과 융합해 콘텐츠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쓸 것입니다. 또한 기업이 신규고용과 매출을 낼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주요한 과제입니다. 전북은 문화콘텐츠의 양분이 풍족한 지역으로 정보통신기술(ICT)산업 육성의 구심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방의 콘텐츠와 게임 산업은 막대한 비용 투자, 제작 인력의 부족 등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진흥원은 크게 세 가지 업무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게임산업 활성화와 스마트콘텐츠 산업 활성화를 통한 기업지원사업, 두 번째로 한 분야의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창작자들의 콘텐츠 제작과 창업을 지원합니다.” -올해 역점사업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기존 콘텐츠 산업에 체감형·실감형 콘텐츠를 더해 산업성장의 파급효과를 극대화시킬 융복합 문화콘텐츠 사업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전북의 강점인 전통문화와 관광, 영상, 교육, 만화, 게임, 실감형 콘텐츠 등을 통해 기존 콘텐츠산업에 힘을 불어넣겠습니다. 이를 위해 창의인재 동반사업과 지역특화 문화콘텐츠 지원사업 등을 통해 융복합 콘텐츠 제작에 힘쓸 것입니다. 또한 전북의 문화콘텐츠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창작-인력-기업의 순환구조를 더욱 공고히 다질 것입니다. 특히 문화콘텐츠아카데미와 웹툰창작체험관 등을 통해 콘텐츠 전문인력 양성에 집중하는 한편 기업에 대한 지원은 전북글로벌게임센터를 기반으로 이뤄질 것입니다.”-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전북만의 강점이 있다면.“전북에는 풍부한 이야기 자원과 뛰어난 문화예술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한식과 한스타일, 전주한옥마을, 익산 미륵사지 등의 문화자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가장 비옥한 농업환경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능성게임에 대한 우수한 기술력과 관련 유망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소재와 소재를 현실화시킬 창의적 인재를 육성해 전북만의 새로운 문화영토를 개척하겠습니다.”-차세대 유망산업인 기능성 게임을 어떻게 육성할 계획입니까.“기능성게임은 교육·훈련·치료·운동 등 특정한 기능성이 특화된 게임으로 애초부터 시장성보다는 특정 목적에 무게를 둔 장르입니다. 특히 게임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기능성게임은 게임산업의 건전성과 직결되어 있는 중요한 분야입니다. 이에 진흥원에서는 200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기능성게임 포럼을 주최하고 신산업 콘셉트를 제안하는 등 기능성 게임 산업의 육성과 지원 활동에 주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정부로부터 2015년 기능성게임에 특화된 ‘전북글로벌게임센터’로 지정됐습니다. 전북의 기능성게임은 오랜 고민과 실천을 통해 수많은 전문가를 배출했고, 실감콘텐츠로 발전해 가는 단계에 있습니다. 기능성게임 산업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육성하는 형태로 발전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과제인만큼 지속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입니다.”-올해 중점적으로 준비하는 국가공모사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현재 전략적으로 국가공모사업을 유치하기 위한 TF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력해 진행할 사업이 있습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콘텐츠 창작과 투자, 유통, 판매 등 상품화의 모든 단계를 지원할 수 있는 국비 공모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두 번째는 지역의 문화콘텐츠 개발에 대한 집중입니다. 또한 뉴미디어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작지원을 바탕으로 한 태권도 소재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역자원과 기술의 융복합을 통한 실감콘텐츠 관련 사업들입니다. 융복합 게임콘텐츠 활성화 지원사업, 차세대실감콘텐츠 제작, 기능성게임 활성화 지원 등의 국가공모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유관기관과의 협력관계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현재 국가공모사업 유치 진척사항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현재 문화관광재단, 전북중소기업청, 테크노파크, 경제통상진흥원, 전자부품연구원 등 도내 주요 진흥기관들과 함께 관련 융복합 사업들을 발굴·육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광대와 전주대, 전북대 등 도내 주요 대학과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인재양성사업과 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문화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각종 인프라사업 및 창작사업에 힘쓸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지역간 연계사업을 위해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전국지역문화산업지원기관협의회, 각 지역별 문화콘텐츠진흥기관 등과 협력관계를 구축할 방침입니다.”-과제가 산적합니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어떠한 일을 결정하기 전에 우선 직원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각자의 창의적 생각을 하나로 모아 조직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항이 결정되면 사자와 같이 공격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공모사업을 유치하는 것은 전국의 모든 전문가들과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집중력과 끈기, 과감한 돌파력이 뒷받침 될 때 성취해 낼 수 있습니다. 이에 직원들이 세계적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식견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고, 무엇을 어떻게 구현해 낼지는 신중하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전북도를 기반으로 한 지역성이 담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특별하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콘텐츠산업의 기반이 약한 지역적 한계와 청년들이 창작에 집중하기 힘든 현실적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상황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이신후 원장은] 콘텐츠 분야 마당발 활동전북문화콘텐츠산업진흥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한 이신후 원장은 정읍 출신으로 전라고, 원광대 토목공학과, 전주대 상담대학원을 졸업했다. 특히 이 원장은 콘텐츠 분야에서 활동반경이 넓다. 그는 현재 전국지역문화산업지원기관협의회 이사, 전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전북창조경제협의회 위원, 원광대 링크사업단 위원 등을 맡고 있다.그는 올해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증강현실(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 가상현실, 홀로그램 등을 적용해 현장감을 극대화하는 실감형 콘텐츠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6일 밝혔다.이 원장은 “콘텐츠 분야에서 전북이 비록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후발주자이지만, 전북만의 유수한 콘텐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승산이 있다”며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겠다”고 말했다.이 원장은 이어 “국비사업 유치를 통해 지역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특히 실감형 콘텐츠를 집중 개발해 전북만의 새로운 문화영토를 개척할 것”이라고 밝혔다.

  • 기획
  • 최명국
  • 2016.03.07 23:02

10개월만에 재부임한 김경기 LH전북본부장 "지역경제 발전·도민들 주거안정에 최선 다할 것"

지난해 1월 10년만에 고향인 전북지역 본부장으로 금의환향하면서 남다른 의욕을 보이다 불과 2달여 만에 본사 택지사업처 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LH 김경기 전북본부장이 10개월만에 다시 전북본부장으로 부임했다. 1년도 안돼 다시 전북본부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인사로 받아들여 있다. 전주 출신 김경기 본부장으로부터 재부임한 소감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신 감회가 어떠신지요.“지난해 고향인 전북 발전을 위해 미력하지만 큰 뜻을 품고 본부장으로 부임했으나 LH의 전체적인 상황 변화로 택지사업처 처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본사의 굵직한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시급한 현안들이 모두 마무리된 상태고 이 때문에 진한 아쉬움으로 남았던 고향에서의 봉사 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진 것 같습니다”-고향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셨는데 구체적인 청사진을 소개해주십시오.“LH 전체적으로는 대행개발, 공공임대리츠 등 민간과 함께 하는 사업방식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자체 사업비 부담을 완화하는 등 재무안정에 주력할 방침입니다. 전북지역본부도 이러한 재무안정을 토대로 임대주택 건설과 산업단지를 비롯한 지역개발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지역경제 발전과 도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임기동안 경영방침은 무엇인가요.“LH 전북본부는 지난해 부동산 경기 변동성 확대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투자, 회수, 주거복지 전 부문에서 경영목표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제 임기내에도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미래를 준비하고, 지속적인 부채감축을 통해 안정적인 사업토대를 구축하겠습니다. 부채를 줄이면서 정책사업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내부적으로 직원간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마련해 활력이 넘치는 직장, 깨끗하고 서로 배려하는 직장문화가 정착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올해 LH전북본부 주요 사업계획은 무엇인지요.“약 1700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투자해 산업단지와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공공분양과 임대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국가식품클러스터, 전주효천지구 등 5개 지구 외에 신규로 완주삼봉지구 조성공사를 착공할 예정이며, 건설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올해에도 무주택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전주만성지구에 711호의 분양주택과 익산인화, 익산평화 등 3개 지구에서 1564호의 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전북혁신도시와 만성지구 개발사업 현황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전북혁신도시는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촉매로 혁신성과 역동성을 갖춘 특성화된 도시를 건설해 지역 발전의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됐습니다. 현재 농촌진흥청 등 농업생명 공공기관과 국민연금공단 등 지식서비스 공공기관이 속속 이전이 완료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3단계까지 사업준공이 이루어지고 올해 최종 사업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전 공공기관 직원과 전주시, 완주군의 적정인구 수용을 통한 자족성을 갖춘 쾌적한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북혁신도시와 인접한 전주만성지구는 황방산과 기지제를 연계하는 친수 녹지축을 구축하고 기지제 주변의 수변공원 조성으로 친수공간을 조성해 친환경 도시이미지를 제고할 계획입니다. 향후 혁신도시와 만성지구가 개발되면 총 인구 4만5,000명이 거주하게 되며 법원·검찰청 이전에 따른 관련 업무기능이 이전돼 전주시의 신 중심으로 발전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완주삼봉지구 개발사업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완주삼봉지구(완주군 삼례읍 수계리 일원, 91만5000㎡)는 주택단지 조성을 목적으로 보상이 완료되었으나, 애초 완주군청 이전을 전제로 사업계획이 수립되었기 때문에 당장 대체수요를 발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LH는 작년 말 완주삼봉지구를 공공주택지구로 전환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했습니다. 올해에도 지역본부 내에 전담부서인 완주삼봉 PM팀(Project Management)을 조직해 공공기관 등 앵커시설을 유치하고 민간 건설사 사업참여 유도를 통해 단지활성화를 추진하는 등 올 하반기에 기반시설 조성공사 착공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LH 전북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거복지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다양한 맞춤형 주거복지를 실현하고 무주택 서민의 내집 마련을 지원하는 LH 전북본부는 쪽방, 반지하주택 등에 거주하는 무주택 서민의 주거공간 창출을 위하여 다양한 주거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입임대의 경우 도심내 최저소득층이 현 생활권에서 거주 가능하도록 기존의 다가구 주택 등을 매입해 시세의 30%수준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LH 전북본부는 2005년도부터 전주를 시작으로 점차 익산, 군산, 정읍, 김제, 남원으로 그 대상지역을 넓혀 총 2895호를 매입해 기초생활수급자·보호대상 한부모가정을 대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주택에 대해 전세계약을 체결한 무주택 서민에게 전세주택을 재임대해 주거안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전북의 경우 전세금 지원 한도액은 5000만원이며 지원한도액을 초과하는 전세주택은 초과하는 전세금액을 입주자가 부담해 입주할 수 있습니다. 임대보증금은 전세지원금의 5%이고, 임대료는 전세금 중 입주자 부담금 5%를 제외한 금액의 2% 수준으로 결정됩니다. LH 전북지역본부는 기초생활수급자·소년소녀가장·신혼부부·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총 7347호를 지원하고 있다. 주거가 불안정한 저소득층 임차가구에게는 실제임차료 등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고, 주택소유 가구에게는 주택개량을 지원하면서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데도 힘쓰고 있습니다. 그 외에 LH 전북지역본부는 현재까지 총 3만3175호 임대아파트를 건설해 무주택서민을 대상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입주희망자는 3·6·9·2월의 다섯째날(영업일 기준)에 예비입주자 모집 공고 확인 후 원하는 아파트 단지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김경기 본부장은] 강력한 리더십·소탈한 성품…'택지분야 베테랑'올해 1월초 취임한 김경기 본부장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공고, 원광대를 졸업한 뒤 지난 1988년 LH에 입사한 이래 28년간 근무하면서 전북지역본부와 본사 토지은행기획처, 택지사업처 그리고 하남사업본부 등 주요 부처를 두루 거친 택지분야 베테랑으로 직원들 사이에 정평이 자자하다. 또한 평소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한 성품을 지녀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지만 각종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카리스마와 더불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김 본부장은 11년전 전북본부 근무 당시 추진했던 완주삼봉지구 등 일부 지역개발사업이 아직까지 착공을 못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올 하반기 완주삼봉지구 택지개발을 위한 기반시설공사를 착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와 함께 ‘수구지심(首丘之心)’을 언급하며 “나이가 들수록 고향생각이 많이 난다”며 LH전북본부장으로서 고향에 족적을 남기고 싶다고 피력했다.

  • 기획
  • 강현규
  • 2016.02.29 23:02

첫 3연임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 "디딤돌 프로젝트 추진, 전북지역 문화융성 실현하겠다"

제23대 (사)한국예총 전라북도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선기현(59) 회장. 선 회장은 전북예총 역대 회장 가운데 첫 3연임을 기록했다. 지난 2008년 40대 기수론을 들고 전북 문화예술계에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겠다며 전북예총에 입성해 8년 여 동안 이끌어왔다. 선 회장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시·군지역과 장르를 두루 살피고, 교류사업을 확대하는 등 전북예총의 위상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선거에는 단독후보로 출마해 무투표 당선됐지만 전라북도의 문화예술단체 지원사업비가 크게 삭감돼 난제를 안고 임기를 시작했다. 선 회장에게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들어봤다.- 전북예총 회장으로 첫 3연임 입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여러 가지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무엇보다 전북문화예술계 전망이 밝은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진행 중인 일들이 많아 정리를 한다는 차원에서 3선에 도전했습니다. 원로예술인과 지인의 권면도 있었습니다. 물론 욕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리적인 부담감이 첫 당선 때보다 큽니다.”- 말씀하신대로 지역 문화계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데요, 특히 전라북도의 문화예술계 지원예산이 예년보다 크게 삭감됐습니다. 문화예술 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대처할 계획이십니까. “문화예술은 미래를 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해야할 부문입니다. 문화예술 활동 자체를 경험하면서 얻는 성과가 크지요. 어릴 때 예술활동을 경험한 아이들이 예술인을 꿈꾸게 되고, 다양한 예술활동을 통해 결실을 맺는 것인데,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따라서 먼저 전북도와 의회가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예술인 스스로의 반성도 필요하고, 예술인단체가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예술계가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북 문화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전북은 예술인단체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문화예술자원이 풍부한, 본향 같은 곳인데 최근 들어 위상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술인 유출이 심각합니다. 인근 광주나 수도권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에서 창작활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술인 일자리나 복지문제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그렇다면 예술인 일자리 확대나 복지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있습니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등을 적극 개발해 일자리창출로 연계하고, 자녀 장학금 제도와 저작권 보호사업 등을 펼칠 계획입니다. 예술교육강사에 예술인단체가 적극 참여하도록 할 방침입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같은 형태도 적극적으로 고민하겠습니다. 시각예술자원을 상품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공연예술은 공연단을 만들어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회장 당선 후 ‘디딤돌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디딤돌 프로젝트가 무엇입니까.“전북지역 문화융성을 위한 방안입니다. 크게 다섯가지로 계획하고 있는데요,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과 문화소외계층 지원, 예술인 복지사업, 메세나운동, 시군지부 설립입니다. 예술인들이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다문화계층과 농촌지역 등 상대적으로 문화소외지역 주민들에게 문화향유 기회를 열어주려고 합니다. 기업들의 메세나 운동도 이들 활동과 연계돼 있습니다. 예총이 예술인과 문화수요자, 기업을 조화롭게 엮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시군지회도 한 곳 이상 설립할 방침입니다. 현재 임실 순창 무주 장수 지역에 예총 지회가 없습니다. 예술인단체가 만들어지면 아무래도 창작활동 여건이 나아지고, 주민들에게도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디딤돌 프로젝트는 예술을 매개로 예술인과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의 문화예술자원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 임기동안 반드시 추진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14개 시군지역 모두 문화예술을 향유할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4곳에 예총 지회가 없는데요, 임기 중에 1~2곳 지회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특히 시군은 다문화 주민들이 많다는 점에서 문화를 통한 소통과 동화를 위해서도 지회 설립에 공을 들일 계획입니다. 예술인 창작공간 마련에도 관심이 큽니다. 창작여건을 개선하는 일도 반드시 할 작정입니다.”● [선기현 회장은] 젊은작가 의기투합 현대미술 운동 주도1957년 전주에서 태어난 선 회장은 중고등학교시절 화가의 꿈을 키웠다.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해 구상 중심의 주류미술에 반기를 든 그에게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선 회장은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충무로에서 영화미술을 익혔고, 무역회사에서 미국 유학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선 회장은 전업작가로서 바지런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젊은 작가들과 의기투합해 쿼터그룹을 만들어 현대미술 운동을 벌였고, 도에서 개최하던 전라북도 미술대전을 미술인들이 주관하도록 바꾸기도 했다. 예총 회장을 맡아 대외활동이 크게 늘어났지만 지금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작업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자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다. 선 회장은 1988년부터 2014년까지 매해 친구인 김두해 이흥재 작가와 삼인전을 열었으며, 1996년에는 임실의 한 폐교에 전병관 김한창 작가와 오궁리미술촌을 열기도 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한국미협 전북도지회장을 지냈으며, 전주종이문화축제 운영위원장과 전주한지문화축제 실행위원장 및 총감독, 전주문화재단 이사장 대행도 역임하는 등 전북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현장을 지켰다. 현재는 쿼터그룹 멤버(QUARTER GROUP MEMBER)고문, 목정문화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 도립미술관 운영위원, 풍남문화법인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기획
  • 은수정
  • 2016.02.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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