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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미등록 체류 이주아동

너무 감사해요. 좋은 일이 많이 생겨 너무 행복해요필리핀 이주여성 제빌린 씨(가명)는 요즘 걱정이 하나 줄었다. 딸 아영이(가명)가 일곱 살이 넘도록 불법체류 신분으로 살다가 이제 합법적인 신분으로 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영이의 엄마 제빌린 씨는 아영이가 불법체류 신분으로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아영이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서 한번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비와 약값이 큰 부담이었다. 일 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려고 해도 아영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필리핀 반찬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판매하는 일도 해봤지만 그것은 변변치 못한 일이었다. 가장 큰 걱정은 아영이가 불법체류 신분이 발각이라도 되면 강제추방 될까봐 조마조마 했었다. 그런데 이제 아영이가 합법적인 신분으로 비자를 받게 된 것이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은 아영이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제빌린 씨는 그래도 마냥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한국체류 외국인 200만 시대, 미등록체류 국제 아동도 2만명 추산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가 2016년 6월 30일자로 200만을 돌파해 200만1828명이 되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9%에 해당하는 수치다. 국내 체류 외국인의 수가 2007년 100만 명을 돌파한 이래 불과 9년 만에 2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 유지될 경우 향후 5년 내에는 체류 외국인의 수가 300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5.8%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외국인의 연령별 분포 현황을 보면, 20~29세가 51만4403명으로 26%를 차지해 제일 많고, 제일 낮은 것은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이 13만4060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의 7%에 해당하는 수치다.합법적인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이지만, 제빌린 씨의 딸 아영이 처럼 합법적이지 않은 미등록 체류자도 21만1964명에 이른다. 법무부에 의하면 성인을 제외한 19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은 2015년 12월 말 기준으로 6293명에 이른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다양한 형태로 미등록 상태에 놓여 있는 이주아동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혈통주의 원칙 국적부여가 아동을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시키기도한국은 이주아동의 국적부여에 있어서 속인주의 또는 혈통주의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국적에 있어서 속지주의를 지키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 태어난 자라도 국적을 부여하지 않고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자의 자녀라야 한국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자녀를 출산하였다고 하더라도 국적은 외국인 신분을 가진다. 부모가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자녀 역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자는 강제퇴거조치를 통해 한국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다.미등록 상태의 아영이를 양육하고 있었던 제빌린 씨는 합법적인 체류자다. 제빌린 씨가 한국인 남편의 폭력 등의 이유로 이혼한 후 출생한 아영이는 엄마와는 달리 미등록 체류자일 수밖에 없다.△전주시, 아동친화도시 만들기로국제이주아동의 권리보호에 대해 논의지난 16일 전주시지역아동센터연합회는 아동친화도시 조성의 목표 아래 아동의 다양한 권리보호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이 논의 중에는 소수자로서 국제이주아동의 권리에 대한 논의도 포함되었다.유엔아동권리협약 제2조에서는 당사국은 자국의 관할권 내에서 아동 또는 그의 부모나 법적 후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의견, 민족적, 인종적, 사회적 출신, 재산, 장애,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에 관계없이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각 아동에게 보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유엔아동권리협약 제28조는 아동의 교육권에 관한 조항에서 당사국은 아동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며 그리고 기회 균등의 기초 위에서 이 권리를 달성하기 위하여 특히 다음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다음에 관한 명시의 내용은 초등교육의 의무적 무상제공, 일반교육 및 직업교육 등 중등교육의 발전 장려 및 무료교육과 재정적 지원, 고등교육의 기회를 능력에 입각하여 개방, 학교 정기출석 권장과 중퇴율 감소의 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불법체류자라는 미등록체류 이주아동은 보육시설을 이용함에 있어서 취약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 또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어렵다. 필리핀 이주여성 제빌린 씨의 딸 아영이는 올해 다행히도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지원책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특별히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영이는 이곳 저곳에 근근이 손을 내밀며 동정적 호소를 해야만 했다.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교육권 보장을 명시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과학기술부와 법무부장관에게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또 법무부는 2006년 9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3개월간 불법체류 아동이 일반연수(D4)자격의 합법적 지위를 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고 부모에 대해서도 기타(G1)비자 자격으로 자녀가 학교의 학기과정을 마칠 동안 일시적으로 체류를 부여하고 했다. 그리고 미등록 체류 이주아동이 초등학교에서 학습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일정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여전히 불법체류자라는 낙인 속에 필요 입학서류가 까다롭고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며, 자녀에 대한 취학통지서를 받을 수 없어 이주아동의 교육권 보장의 문은 높기만 하다. 또한 중등과정과 고등교육과정도 국제이주아동보호협약에서 보장해줄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중등과정과 고등교육과정으로까지 이주아동의 교육권은 확대되기 어렵다.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동준 팀장은 아동은 심리정서적 안정이 무척 중요한데, 이주아동은 강제퇴거 대상이라는 공포 속에서 교육권과 의료권 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며 국제아동보호협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교육권과 의료권 등이 한국에서도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유엔은 아동의 권리를 체류의 합법성 여부를 떠나 보장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주요 선진국들의 아동에 대한 권리를 확대하는 것처럼 한국도 이주아동이 잘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정책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주아동 건전한 공생 대책은 "교육의료사회권 확대를"어려서 미국으로 건너가 어려서부터 불법체류자로 살면서 현재는 대학까지 다니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이 한국인은 테렌스씨로 미 서부 명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 대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불법체류자 신분의 테렌스 씨는 미국 내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지지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 게시하기도 했다.만약 한국에서 동일하게 외국인 신분의 이주아동청소년으로서 이러한 동영상을 게시했다면 어떠했을까?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지금까지의 법 관례와 정서상 판단해 본다면 곧바로 강체퇴거명령을 받고 추방되었을 것이다.또한 한국에서는 불법체류신분의 이주아동청소년이 테렌스 씨 처럼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교육권을 보장받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지금까지 관례를 보면 이주아동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라면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졸업할 때까지만, 또는 학기가 마칠 때 까지 정도 수준에서 교육권을 보장하고 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아동청소년의 체류권이 학교과정 중에 보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부모 한 명 만을 한국에서 체류할 있도록 하고 있어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명시하고 있는 아동의 권리보호를 위한 가족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세계 이주화 시대인 지금, 이주아동과 이주청소년을 위한 교육권과 의료권, 사회권 등의 확대 노력이 절실하다.한국은 불법체류자를 강제퇴거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불법체류자들이 왜 한국에 체류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경청이 필요하다. 국가 간의 전쟁, 민족적 분쟁, 종교적 위협 등의 문제 등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고 미등록 체류자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강제퇴거를 통한 귀국만이 아닌 자진귀가를 위한 준비와 함께 미등록 체류자들에 대해 한국사회로 건전하게 정착하고 전문적 인력으로 성장해 한국사회에 기여하고 공생할 수 있는 진로의 확보에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주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교육권이 잘 보장된다면, 그들의 삶의 터전이 한국이기에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기여할 기회 역시도 더 크게 제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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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8 23:02

[문화&공감] 군산 신흥동 절골길

절골은 우리나라의 옛 지명으로 절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절과 마을을 의미하는 골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합성어다. 신흥동의 절골이라는 지명은 과거 토속신앙의 작은 암자들이 월명산 일대에 많아 절골이라고 부른데에서 유래했다.△시간의 흔적과 공간의 경험오래된 지역을 허물어 내는 정부의 개발정책과 이에 따른 주민들의 반발, 처절하게 붕괴되는 삶의 터전, 이러한 사태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신흥동 절골길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제강점기 장미동월명동신흥동에는 부유한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들은 주로 평지에 살았으며, 정작 조선인들은 산동네로 쫓겨올라가 산비탈에 무허가로 판잣집이나 천막집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이들은 주로 바다(내항)의 부두노동자였기 때문에 바다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주변 지역에 달동네가 형성됐다.이렇듯 신흥동 절골길은 군산의 역사와 오랫동안 군산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향기가 느껴지는 공간으로,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적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은 지역교류프로그램으로 도시주의展을 진행했다. 도시주의프로그램은 군산의 독특한 도시구조를 예술적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었다. 예술가들은 작업과정에서 도시 공동체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의 과거와 오늘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연계돼 있는 다양한 힘의 구조도 들춰봤다.도시주의프로젝트에는 김상덕 김영경 이정화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오래된 주거공간에 축적된 시간의 궤적과 일상의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작가들은 텃밭 안녕, 신흥동 The Meeting을 주제로 시간의 흔적과 공간의 경험을 추적해 또 다른 세계를 열어보인 것이다.△무궁무진한 콘텐츠의 공간지역읽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신흥동 골목골목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김상덕 작가는 군산은 까도까도 새로운 것이 나오는 양파 같은 곳이다. 군산은 정착해서 살고 싶은 곳이다. 군산은 흥미롭다. 보물찾기를 주제로 작업하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가 봤던 곳만 줄기차기 다녔다. 개구리가 작은 우물 안에서 세상을 다 보았다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흥동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조금만 깊숙하게 들어가면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된다. 단정하게 빗질되어 있는 길을 걷다보면 내가 어느 시대에 와있는지 아리송하기도 하고, 너무도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면 여기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한다.고 밝혔다.김영경 작가는 군산은 참으로 특별하다. 10년 이상 전국을 떠도는 작업을 계획했는데 군산도 작업해야할 도시 중 하나였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전 미리 알아보기 위해 며칠 머무르기도 했다. 장기간 머물면서 작업을 진행하면 밀도 있는 작업이 나온다. 체류하는 도시에 대해 진정으로 느끼고 관찰할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다. 군산은 저에게 감사하면서 사는 삶에 대해 알게 해준 도시다. 더불어 소통의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바꿔준 도시이기도 하다. 군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월명산이 있고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맛집, 그리고 작업해야할 대상이 끊임없이 포착되고 있는데 어찌 군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며 군산에서의 작업에 감사해했다.이정화 작가는 군산은 저 만을 위해 하늘에서 딱 세팅된 레고 마을 같다. 무궁무진한 자언을 가진 마을과 안정적인 작업 환경이 맞춤 형태로 준비돼 있어서 누군가가 던져 주신 것 같다. 레고를 보면 없을 것 같은데 이것저것 다 있다. 요리조리 끼워 맞추면 척척 필요한게 생기고. 이 작가는 군산이 동화속 마을 같다고 했다.△일상을 기록하는 거리문화박물관현재 주말이면 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골목에는 수백 명의 관광객과 시민들이 다녀간다. 신흥동 일본식가옥을 중심으로 초원사진관까지, 좁고 좁은 골목길부터 넓고 넓은 골목길까지 사람들은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에는 당대의 문화가 이야기로 녹아있기 마련이고, 거기에는 남다른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버려지고 사멸하는 물건들 혹은 사라지는 이야기들, 이러한 소소한 것들로 가득한 우리만의 거리 박물관으로 변신에 변신을 반복한다.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군산시민의 일상생활 주변에 숨어있는 동시대의 문화자원을 발굴해서 가치를 부여하고, 공유하도록 하는 모습까지 함께하고 있다. 예술작품만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담긴 추억이 골목골목에 소장되고, 보존된다는 뜻이다.지나간 것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기억은 신흥동 절골길 주변 골목처럼 공간에 남겨지기도 하고, 골목 한 귀퉁이에 붙어 있던 당대의 영화 포스터 속에 남겨지기도 한다. 때로는 그때를 함께했던 그 연인이 지금껏 이어져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의 주름진 얼굴 속에 남겨진다. 그 남겨진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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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6 23:02

민물 vs 바닷물, 부안댐 vs 변산 해수욕장

바쁜 현대인을 위한 세 줄 요약:- 부안댐도, 가는 길 벼락폭포도 절경아담한 물놀이 공간도 좋아- 한때 서해 3대 명품 변산 해수욕장 부활 중앞으로의 변화 기대-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고민된다면 그냥 부안으로당신은 부먹파인가, 찍먹파인가?고양이파인가, 강아지파인가?러브라이브파인가, 아이돌마스터파인가?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인간은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온라인 세계를 끊임없이 달궜던 양자택일의 질문들.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여름마다 또 한 가지의 질문을 받아들곤 했을지 모르겠다.산인가, 바다인가?그렇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할 때도 됐다.답은 부안이다.벼락폭포, 물 문화관, 물놀이장, 그리고 부안댐30번 국도를 타고 부안군의 북쪽 경계 부분을 훑으며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삼거리가 몇 개 나오는데, 그중 부안댐, 변산온천 등이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그러니까 다리 밑에서 갈라지는 곳이 있다.혹은 새만금 방조제를 통해 북쪽에서 부안 방향으로 내려온 경우라면, 새만금전시관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간 도로에서 만나는 두 번째 삼거리(물론 일반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길 기준이다)다. 사실 내비게이션 없이 찾아가기에는 이정표가 조금 미흡하긴 하다.묵정삼거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주차장이라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호수가 하나 있다.착각하기 쉽지만, 주차장은 주차장인데 이곳이 부안댐 주차장은 아니다. 물론 호수도 부안호가 아니다. 부안댐에 찾아가고자 한다면 그냥 지나쳐도 좋다.하지만 여기에 굳이 주차장이 있는 이유가 있다. 호수 반대편에 보이는, 바위가 드러나 있는 지형 때문이다. 이 지형의 이름은 벼락폭포다.아마 화창한 날에 이곳을 찾은 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엥? 벼락폭포? 그거 완전 허구 아니냐?폭포라고 하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생각하지만, 벼락폭포는 비가 내릴 때만 폭포가 되고 비가 그치면 곧 자취를 감춘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때때로 물이 쏟아지곤 했음을 증명하듯 쪼개져 있는 틈새뿐이다.요즘 날씨가 항상 그렇지만, 취재팀이 찾은 8월 10일도 화창한(이라고 쓰고 햇볕이 뜨거운이라고 읽는) 날이었다. 물줄기를 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흰 바위와 연녹색 숲,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이 비치는 수면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수변에 길지 않은 산책로가 나 있으니, 양산 하나 받쳐 들고 시나브로 걷는 것도 괜찮다.여기서 1㎞쯤 올라가면 이제 부안댐이 나온다. 아래쪽에는 수문이 있고, 흔히 댐 하면 연상되는 거대한 인공 벽은 조금 더 올라가야 볼 수 있다.부안댐이 피서지인 이유는 사실 댐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댐 아래에 조성된 물 문화관과 물놀이 공간이 피서객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비교적 아담한 크기인 물 문화관에는 전시실이 3개 있다. 1층에 하나, 2층에 두 개인데, 특히 1층 전시실에는 물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한 관람객(...)이 펌프를 눌러 수차를 작동시키고 있다.그리고 2층에 있는 전시실 두 곳에서는 부안댐과 부안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물 문화관 옆 분수광장 한쪽에 마련된 물놀이 공간은 역시 아담한 편이다. 물이 발목 정도 깊이로 흐르고, 물가에선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어린이들이 저마다 튜브를 하나씩 끼고(물 문화관 옆 매점에서 물놀이 용품을 판매한다) 첨벙첨벙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그늘에 돗자리 깔고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들을 합해, 30여 명이 이곳에서 놀고 있었다.일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설모 씨는 평소에도 이곳에 자주 오는 편이라고 했다.일단 무료라서 좋고요, 그늘도 있고, 물이 얕아서 위험하지 않고, 또 깨끗하고. 바닷물은 아무래도 탁한 편이고, 눈도 맵고, 아이들 위험할까 신경 쓰이잖아요.광장 한쪽 부안호 문학동산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폭포와 물레방아가 나온다. 여기서 약 200m를 더 올라가면 부안호가 내려다보인다. 보통 여기를 부안댐 정상이라고 부르는데, 잔잔한 수면을 내려다보면 더위에 잔뜩 짜증 났던 마음이 조금은 고요해진다.다만 댐 정상부 광장 한쪽에 있는 물사랑 쉼터는 냉방이 가동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 앞에 놓인 음료 자동판매기도 작동하지 않아 아쉬웠다.돌과 콘크리트가 섞인 높이 50m, 길이 282m의 구조물 부안댐이 막아선 것은 내변산을 흐르던 백내천 물이다. 계곡 물을 막아 만수위 42.2m, 수몰면적 3㎢의 호수를 만들었으니, 이쯤이면 상전벽해급이다.물론 다른 잘 알려진 댐과 비교하면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당장 용담댐만 해도 높이 70m, 길이 498m고, 수몰면적은 31.4㎢니까 비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부안댐이 작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고, 이 정도로도 전라북도 서해안에 각종 용수를 공급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하니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댐 정상 광장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직소정이라 쓰여 있는 정자와 망향탑이 나온다. 망향탑은 수몰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비석으로, 매년 이곳에서 망향제가 열린다.직소정 남쪽으로는 오솔길이 하나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호수를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 바람 또한 지상의 그것과는 다르게 시원하게 불어오니, 땀 좀 흘리는 보람이 있다.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해 달라, 변산 해수욕장잠깐의 산행을 마치고 다시 도로에 섰다. 무심한 주인은 가속 페달을 밟고, 불쌍한 바퀴는 한껏 달궈진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구른다.묵정삼거리로 나와 과거에는 해안이었던 들판을 오른쪽에 놓고 달리면 곧 새만금 방조제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달리면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새만금 방조제에서 변산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이제 두 가지가 됐다. 하나는 합구마을을 지나치며 S자로 해안을 스쳐 지나가는 왕복 2차선 옛길이고, 다른 하나는 왕복 4차선으로 곧게 뻗은 새 길(격포-하서 간 도로)이다.어느 쪽이든 타고 남서쪽으로 약 4㎞를 달리면, 깔끔하지만 왠지 어수선한 느낌인 곳이 나온다.취재팀이 찾아간 날에도 인부들이 인도에 블록을 까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스팔트를 새로 깐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도로와 아직 주차선도 그려져 있지 않은 주차장도 풍경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과거의 그 대단했던 변산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새로 개발되는 해변을 보는 듯했다.변산 해수욕장은 지금 변신 중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라북도를, 아니 우리나라 서해안을 대표했던, 여름만 되면 발 디딜 틈이 없던 해수욕장이었다. 서해 3대 해수욕장으로도 꼽히던 곳이었으니 말 다 한 것이다.그게 어느 정도였는지는 1960~70년대에 촬영된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하지만 1988년 지정된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변산 해수욕장이 포함되면서 주변 개발이 막혔고, 그 결과 시설이 점차 낙후되면서 점차 잊히기 시작했다.여기에 더해, 변산 해수욕장 몰락의 결정타가 된 것이 바로 새만금 방조제였다. 2006년 4월에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난 이후, 파도의 힘을 방조제가 튕겨내면서 방조제에서 가까운 변산 해수욕장의 모래가 깎여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세굴 현상으로 매년 2.5㎝씩 깎여나갔으니, 백사장이 생명인 해수욕장으로선 치명적일 수밖에.당연히 방문객은 크게 줄어, 원래 한 해 10만 명을 넘겼던 방문객이 2010년께에는 2만여 명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이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법. 부안군이 변산 해수욕장 주변 지역을 재개발하는 작업에 나섰고, 그 (아직 마무리가 덜 된)1단계 사업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변산 해수욕장이다.재개발 사업은 오는 2018년까지로 예정돼 있고, 1단계 사업은 올 9월 끝날 예정이다.아직은 변한 것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분명히 있다.접근하는 길에 4차선 신작로가 추가됐고, 샤워장이 깔끔해졌고, 주차장이 정비됐다.바닷가에 나가는 것이 조금 그렇다, 특히 아이들을 바닷가에 내놓기가 좀 그렇다 하는 관광객을 위한 물놀이 시설도 새로 들어섰다.또 최근 조성된 변산 마실길 제1코스와 제12코스(이 코스는 부안댐에서 출발하는 코스다)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국립공원에서 풀려났으니 앞으로는 더 달라질 터다.해안은 깔끔하고 평화로웠다.관계자에 따르면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는 하루 800여 명이 찾아왔고, 8월 둘째 주에는 하루 200~300명이 찾는다고 한다. 개장 마지막 날인 광복절까지 라스트 팡을 기대해볼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명성에 비하면 방문객은 적다.올해 단장을 했거든요. 그래서 올해 개장한 줄을 아직 모르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물론 여름 휴가철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휴양지로서 대단한 장점이다. 시끄럽지도 않고, 세족장이나 샤워장이 밀리지도 않는다.길이 약 700m의 백사장을 독차지한 듯 밀짚모자 하나 눌러쓰고 비스듬히 누워 느긋하게 저 멀리서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속세를 잊어볼 수도 있다.모래는 상당히 부드럽다. 밟는 감촉이 좋아, 그저 맨발로 백사장만 거니는 것도 괜찮다. 신발을 신은 채로 빠르게 걷기는 좀 힘들다. 속도를 내려 하면 발이 모래 속으로 빠지는 탓이다.서해안에 위치한 해수욕장의 공통적인 매력은 역시 썰물 때 드러나는 광활한 갯벌에 있다.변산 해수욕장 역시 예외가 아닌데, 이날도 쪼그려 앉아 작은 조개 채취용 갈퀴나 호미 따위를 들고 열심히 갯벌을 긁는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서울에서 찾아왔다는 이정훈 씨(43)와 그의 가족도 거기에 속했다.군산, 새만금으로 해서, 새만금 방조제 근처에 변산 해수욕장이 있다기에 구경할 겸 해서 찾아왔습니다. 꽤 가깝더라고요. 바다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놀기 좋다는 점이 매력이죠. 특히 서해안은 갯벌이 있으니까, 뭐 잡을 것이 많아서, 뭘 잡는 재미가 좋습니다.그렇게, 오후 7시가 넘었다.그렇게도 뜨거웠던 태양이 서쪽 수평선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변산 해수욕장의 다른 매력은 해가 질 무렵에 나타난다.서해안의 해안이 다들 그렇긴 하지만, 변산 해수욕장 또한 해넘이를 바라보기 참 좋은 장소다. 변산 해수욕장의 북쪽 끝에는 아예 해넘이를 테마로 한 사랑의 낙조 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팔각정 위에서 느긋하게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하트 반쪽 모양의 조형물에 넘어가는 해를 넣어 사진에 담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미국 국적의 유명한 총잡이 제시 맥크리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석양이 진다.(제시 맥크리는 게임 오버워치의 등장인물이다)이제 돌아갈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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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혁일
  • 2016.08.12 23:02

[참여&소통]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방법-⑤

임성희 녹색연합 전문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인 초우량 국가 독일에서도 농민이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운 듯하다. 일단 독일의 농림수산업 생산총액은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0.8%에 불과하다. 농민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도 안 된다. 28만여 전체 농가의 90%인 가족농이 70%의 농지를 점유하고 농산업이 아닌 생계형 농사를 짓고 있다. 나머지 10%가 협동조합(Gemeinschaft) 또는 주식회사 형태인 일종의 기업농이다.농가당 평균 농지경작 면적은 평균 58㏊ 정도이지만 전체 농가의 절반은 육가공, 농박 등 부업을 겸해야 가계경영이 가능한 겸업농가다. 농가 평균 농업소득은 2000만원 정도로 그나마 절반은 세금으로 빠져나가니 겸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겉으로는 연간 농업소득 1000만원 수준인 한국의 영세한 평균 농민의 처지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그런데 불가사의하다. 독일 농민들은 한국 농민보다 안정되고 행복한 농촌생활을 누리고 산다. 자식에게 농사를 가업으로 당당히 물려주고 묘비에 농부로 살았다는 사실을 새겨넣을 만큼 농부로서 자부심과 자존감이 대단하다. 그래서 독일은 식량자급률이 85%에 이르고 농촌이 마치 생태공원처럼 보전된 농업선진국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독일 농부 행복의 비결은 직불금비결은 직불금이다. 독일에서 농가소득의 주요 수입 원천은 농업이 아니다. 유럽연합, 정부, 주정부가 농가에 직접 지급하는 직불금 등 각종 농업지원금이다. 임성희 전문위원에 따르면, 연간 지급되는 금액은 농가당 평균 3만1000유로(약 4000만 원)나 된다. 농가소득 가운데 농업지원금 소득이 60%가 넘는 셈이다. 2010년 기준으로 EU의 총예산 1229억 유로 가운데 농가에 571억 유로가 지원, 전체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46.5%를 차지하고 있다.이 가운데 437억 유로는 농가에 직접지불금 형태로 지원했다. 지원금에서 가장 큰 항목이 직접지불금인 것이다.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에 따라 EU 회원국가의 모든 농민에게 지불된다. 경작조건이 불리한 스위스 산악지역은 농가 소득의 90%까지 직불금으로 보전해주고 있다.직불금은 경작 농지 규모에 따라 직접지불형태의 보조금으로 1㏊당 318유로를 받는다. 이밖에 농업환경프로그램에 따라 약 30%, 조건 불리 농경지는 보상지불, 친환경농업 녹색(Greening) 지불, 소농 지불 등이 가산된다. 특히 개정된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 프로그램에 따라 2014년부터 2020년 까지 젊은 농업인 지원항목도 신설됐다. 40세 이하 신규 농업종사자에게 기존 직불금의 25%를 추가 지불하는 것이다. 젊은 농업인에게는 직불금 외에도 공유지 임대, 농업 시설물 설비 보조금 10% 추가 지원도 주어진다.△ 사람 사는 농촌을 지키는 사회안전망무엇보다 독일 농민들은 유럽연합과 독일 정부의 농업지원금 이전에 농촌에서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비롯 재해보험, 의료보험, 간병인보험, 노령보험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농민들을 농촌에서 떠나지 않도록 돌보고 보살펴준다.이렇게 독일 등 선진 유럽의 농정 예산은 돈 버는 농업보다는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해 주로 쓰여진다. 농정의 철학과 패러다임의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부 국가자격증 까지 취득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정예화된 2%의 독일 농민들조차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식량기지이자 자연의 보고인 농촌은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을 지켜야 하는 독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헌법에 명시된대로 농촌에 최소한의 인구밀도가 유지되도록 국가에서 직불금으로 먹여살려주는 것이다.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가의 농정 당국이 이토록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보호하는 이유는 농업이 발휘하는 10가지 소중한 기능 때문이다.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둘, 농업은 우리 국민 바로산업의 기반이 된다. 셋,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넷, 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다섯, 농업은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 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 한다. 열,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농부의 욕심을 조절하는 녹색계획무엇보다 독일에는 농부들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이 마련돼 있다. 1954년에 만들어져 60년 넘게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녹색계획(Green Plan)이 그것이다. 도시보다 농촌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독일의 농업정책은 바로 이 4가지 원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첫째,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그리고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스스로, 그리고 서로를 다스리고 절제하고 있다.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hcaft, Genossenshaf)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유럽농부는 아무나 할 수 없다교육과정위생검사 엄격 / '농부자격증' 있어야 가능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파이스테나우(Faistenau) 지방의 홀러농장은 요셉 클라우스호퍼(Joseph Klaushofer) 농장주 부부가 꾸려가는 가족농장이다. 부부가 공동경영하는 농축산물 직판농가로 약 7㏊의 농지에 낙농, 양계, 양봉 등을 영위하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6차 산업형 농가로 손꼽힌다.농사 규모는 닭 50마리, 젖소 7마리, 그리고 벌을 키우는 게 전부다. 그런데 젖소 70마리를 기르는 다른 농가보다 소득이 높다. 비결은 농식품가공 등 6차 산업으로 부가가치를 높였기 때문이다. 소농으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농식품 가공품을 개발해 100% 직판으로 판매한 전략이 주효했다.1차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 소득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제빵, 치즈 유가공, 햄류 육가공, 양봉 등 2차 농식품가공업을 병행하는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심지어 남편인 요셉 씨는 겨울철 농한기에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설계, 제작하는 양봉틀, 가구 등 목공제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농장주 요셉 씨는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버틸 수 있는 다리를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부인 브리기타 씨도 부지런하기는 남편 요셉 씨를 능가한다. 새로운 가공식품 연구와 개발을 위해 쉬지 않고 교육을 받고 인증을 받으러 다닌다. 그동안 50여 가지의 가공품을 개발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일단 농가에서 가공품을 만들려고 하면 농업회의소에서 교육부터 받아야 한다. 가공시설도 식품검사국의 교육과정과 위생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가공품에 생산이력을 정확하게 표기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보통 교육시간은 400시간, 교육비는 500만원이나 된다. 이때 교육비는 전적으로 자부담이다.그동안 부부가 노력한 보상은 소득과 상으로 돌아왔다. 오스트리아 치즈가공 경연대회에서 최고의 지역농특산물에게 주어지는 맛의 왕관(Gueness Krone) 최고상도 여러 차례 받았을 정도다.아무나 농부가 될 수 없는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은 정부와 국민들이 농업에 임하는 철학과 자세부터 차원이 다르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지켜낼 각오가 서 있는 자만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부자격증이 있는 농사의 장인(농업 Meister)들만이 국민의 먹을거리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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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1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 폭염, 전주동물원 동물들의 여름나기

폭염, 전주동물원 동물들의 여름나기#표지.폭염, 전주동물원 동물들의 여름나기#1.온도계에 섭씨 38도가 찍히는, 불지옥 같은 나날.전주동물원의 동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2.호랑이는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군요.#3.사자도 더위에 지쳐 보입니다.#4.그늘에서 벗어나기 싫은 마음은 양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5.코끼리가 사과를 받아 듭니다. 코끼리에겐 사과 정도야 한 입 거리지요.#6.사육사가 가져온 수박. 코끼리는 이리저리 드리블을 하다가#7.??!#8.산산조각이 난 수박을 코로 쓸어 먹는군요.#9.하마는 찬물 샤워를 합니다. 피부가 습한 상태로 유지돼야 하는 동물이니 더욱 물세례가 반갑겠네요.#10.아, 시원해.#11.아누비스 개코원숭이는 과일 얼음 덩어리를 씹어 먹습니다.#12.옆 방 망토개코원숭이는 수박을 먹고 있군요.가끔 손가락으로 씨를 발라먹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13.하지만 콘크리트 방과 철창으로 된 원숭이 우리에서 여름을 나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 보입니다. 연 지 36년 된 낡은 동물원의 모습입니다.#14.아무래도 지은 지 오래돼서 그런 부분이 있죠. 환경개선 사업은 순차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전부 마무리되면 이곳도 달라질 겁니다.(전주동물원 관계자)#15.전주시는 2018년까지 전주동물원을 생태동물원으로 바꿀 계획입니다. 앞서 물새장, 호랑이사사자사가 바뀌었고, 오는 9월엔 곰사 신축, 그 다음엔 수달사 신축이 예정돼 있습니다.#16.그나저나, 입추도 지났는데 기온은 왜.기획 신재용, 구성제작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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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0 23:02

[문화&공감] 고창 상하면 장호어촌체험마을

뭍은, 하루에 두 번, 제 몸 가까이 바다를 품었다 내어놓는다. 한 달에 두 번, 달이 살이 오르면 오를수록, 달이 몸을 부리면 부릴수록 바다는 뭍 깊숙이 스몄다가는 뭍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달아난다. 그리고 드러나는 저 광활한 공간! 갯벌이다. 뭍도 아니고 물도 아닌, 혹은 뭍이기도 물이기도 한 겹쳐 있는 공간, 갯벌이다. 고창은 바다의 고장이다. 리아스식 서해바다의 특징 그대로 갯벌이 제 생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갯벌의 축복이 깃는 고장이다. 덕분에 람사르 습지 인증은 물론,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인증 받았다. 이 갯벌이 그 핵심지역 가운데 하나다. 자연과 인간이 그토록 오래 소중하게 지켜온 약속의 현장. 그 갯벌에 기대어 새롭게 공동체 활력을 찾아가는 장호 갯벌체험공동체를 찾았다.△체험형 공동체로 기지개 켜는 장호마을= 얼마나 미끄러운지 조금이라도 손에서 힘을 빼면 빠져나갈 것 같아요.커다란 임시 조형물에 가두어 놓은 개펄에서 고창 풍천장어를 찾아내고선 땀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고창군 심원면 일대에서 열린 고창 갯벌축제 2016의 한 장면이다. 축제는 갯벌의 생태문화체험, 음식문화체험, 수산물공예체험 등으로 휴가철 전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고창갯벌은 여의도 140배 가까운 새만금 갯벌이 사라진 뒤, 전라북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고창을 이루는 14개 읍면 가운데, 부안면, 심원면, 해리면, 상하면이 바다와 접해 면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다양한 갯벌생태와 만날 수 있다.선사시대부터 그 갯벌을 터전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바다 가까이 자리잡은 고인돌로, 소금 굽는 자염 벌막으로 남아, 고창갯벌의 유구한 이야기를 비치고 있다. 고창의 바다와 갯벌이 그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의 손에서 생산과 가공을 통해 소비되었다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소비형태가 진화하고 있다. 갯벌체험이다. 체험을 파는 갯벌은 심원면 하전리부터 심원면 만돌리, 해리면 동호리, 상하면 장호리까지 네 곳이다. 하전과 만돌이 일찍 체험형으로 활성화가 시작되었다면, 장호는 이제 마을공동체가 왕성하게 활동을 시작하며 체험형 공간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반듯한 해안선 가진 장호 갯벌= 장호의 갯벌은 앞선 하전, 만돌과는 판이한 형태와 생태를 가진 곳이다. 고창의 명물, 명사십리(明沙十里)가 해안사구와 더불어 4km가량 펼쳐져 있는 곳, 육지 가까이 모래갯벌이 단단해 걸어도 뛰어도 말을 달려도 거뜬하다(그래서 장호마을에는 승마장이 있다). 우리나라 서해의 지도 가운데 유일하게 일직선으로 반듯한 해안선을 가진 곳, 바로 장호 갯벌이다.장호마을은 총 139가구에 290명이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60대 이상이 주민의 대부분인 초고령 마을이다. 갯살림 말고도 논농사며 고추, 땅콩, 복분자 농사를 짓는 대표적인 반농반어(半農半漁) 공동체이다. 갯살림의 대표적인 것이 청정갯벌에서 길어 올리는 노랑조개와 맛조개, 동죽, 백합 같은 조개류다. 특히나 해방조개, 개량조개라고도 불리는 노랑조개는 맛이 일품이다. 잘 다듬어 칼국수며, 부침개에 넣어 먹으면, 노랑조개칼국수, 노랑조개부침개로 특미를 보탠다.△장호마을 표생원 이야기의 힘= 장호마을에 소금장수 표생원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에는 바다일도 하고 소금장수도 하며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던 효자 표생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금 팔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나운 맹수를 만나게 된다. 온 힘을 다해 도망을 치다 마을 어귀에 이르러 결국 기력이 다해 쓰러지고 만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맹수들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는데, 기세등등하던 맹수들이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고 말았다. 마을을 지키던 당산 수호신이 효자 표 생원을 구해준 것이라 전하는 이야기다. 그 뒤로 정월보름이면 마을사람들은 함께 정성과 품을 보태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마을을 이루고, 마을은 이야기를 낳는다. 마을을 하나의 협력하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도 이렇게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장호마을을 어촌체험공동체로 이끄는 중심에 장호어촌계(계장 표재옥)가 있다. 1970년경 시작된 어촌계는 상근 사무국장 한사람(표안종)을 포함해 모두 43명의 계원이 힘을 보태 운영하고 있다.△다양한 갯벌체험 프로그램= 장호 갯벌체험공동체는 2012년부터 체험공간을 정비하고, 저 너른 갯벌을 가꿔 천천히 갯벌체험을 시작했다. 지천인 조개잡이 체험부터 바닷가에 100여 미터 긴 그물을 치고 양쪽으로 잡아당겨 물고기를 잡는 후릿그물 체험, 바다에 말목을 막고 그물로 고기를 잡는 어망체험, 새우잡이 체험, 사구의 동식물에 얽힌 이야기를 장호 사람들의 입말로 공부하는 갯벌생태체험교육을 비롯해, 철마다 다른 조개칼국수 만들기, 조개껍질 꾸미기, 해변승마 체험까지 다양한 체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너른 명사십리 백사장에서는 갯벌축구, 배구, 족구 같은 갯벌스포츠가 체험객들 발자국을 보태고 있다.갯벌을 바탕에 둔 체험이라 철따라, 날씨 따라, 물 때 따라 제약이 많다. 후발주자인 탓에 인지도를 쉽게 끌어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고민하는 것이 장호와 가까운 체험공동체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가까운 상하농원(매일유업 상하농장에서 운영한다)을 비롯해 염전, 농사, 음식체험 공동체들과 함께다. 도로가 닦여 숨을 죽이고 있는 사구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방안도 찾는 중이다.농사부터 바다, 갯벌, 사구까지 장호가 가진 생태자원을 연결하고, 그 자원을 잘 가꾸어온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요?표재옥 어촌계장이 꿈꾸는 새로운 길에, 농업과 어업, 뭍과 물이 서로를 지탱하며 일구어온 장대한 역사의 흐름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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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9 23:02

취임 1주년 맞은 주낙영 지방행정연수원장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공무원 교육기관 만들 것"

전북혁신도시에 맨 처음 이전한 지방행정연수원은 전국 30만 자치단체 공무원 중 5급 이상 간부 공무원 양성을 맡고 있는 기관이다. 단순히 내국인을 상대로 한 교육을 넘어 행정한류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고, 지방행정연수원이 소재한 전북을 전파하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주낙영 지방행정연수원장으로부터 연수원의 역할과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완주 이서에 있는 지방행정연수원 원장실에서 이뤄졌다.-공공기관중 지방행정연수원이 가장 먼저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했는데 벌써 3년이 지났어요.“3년전 이곳에 올때만 해도 황량한 벌판에 건물만 덩그렇게 서 있었는데, 이젠 주변에 다른 공공기관도 이전하고 하숙촌과 상가도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지방행정연수원은 1965년 서울 쌍문동에서 개원한 이래, 수원 파장동 시대를 거쳐 이제 전북혁신도시에 새 둥지를 틀고 지난해 개원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8월 부임한 이후 1년동안 또 다른 50년을 위한 새로운 혁신을 준비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전문 공무원 교육기관이 되기위해 뛰고 있습니다. 1호 입주기관으로서 부담감도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연수생들의 교육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2013년 94.2%에서 2014년 94.5%, 2015년 95.1%로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맛과 멋의 고장인 전북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연수원을 찾는 교육생들의 교육만족도가 좋아지지 않나 생각합니다.”-사실 일반 시민들은 지방행정연수원이 어떤 기관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렇죠. 지방행정연수원은 행정자치부 소속기관으로서 30만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중 5급이상 간부공무원 양성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훈련기관입니다. 5급 승진자 등 일반직 행정공무원이 주된 교육대상이긴 합니다만, 자치단체장, 지방의원, 지방공기업 임직원, 주민단체 대표들에 대한 교육도 실시하고요, 최근에는 행정한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에 대한 교육도 많이 실시하고 있습니다. 매년 7000여명에 달하는 공무원이 교육을 받고 있고, 전북혁신도시로 옮긴 이후 약 2만1000여명의 교육생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전북을 찾았습니다. 연수원에는 3~6급까지 직급에 맞는 직무역량과 리더십을 양성하는 장기교육과정과 지방공무원의 국제화 업무 능력 향상과 글로벌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올해 첫 개설한 글로벌리더 과정이 있습니다. 초임리더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한 5급승진리더 기본과정이 있는데 연간 340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고요, 국정과제를 지방으로 확산하기 위한 시책교육과 지방공무원의 전문역량 향상을 위한 전문교육과정이 수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각 지방자치단체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복지,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명품정책’들이 있는데요, 이를 해당지역 단체장이 직접 연수원에 와서 소개함으로써 사례중심의 직무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이를 각 지역에 공유, 확산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지방행정연수원은 단순히 공직자 내부의 연수 기관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전국 지자체 공무원들이 매년 연수를 받으러 오는 우리 연수원은 지방행정 분야의 인적·물적 자원을 전북으로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5급 승진 및 장기교육생들은 전북에 머물며 연 60억원 정도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구내식당의 경우 소비량의 71%가 전북지역 로컬푸드 입니다. 연수원 총 구매액의 79%(49억원)를 지역업체와 우선계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추석과 설명절 때 처음으로 직거래 장터를 운영했는데 잠깐동안 7000만원 상당의 농산물이 팔려 저희들도 깜짝 놀랐구요, 구내매점에서는 지금까지 1억여원 상당의 매출을 올린 바 있습니다. 전북지역의 우수한 지역문화와 연계한 체험활동을 수시로 실시하는 등 지역 경제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연수원의 더 큰 역할은 전북지역 홍보라고 봅니다. 연수원 교육생들이 다시 전북지역을 찾을 수 있도록 전북과 연수원이 함께 노력한다면 앞서 말한 60억원보다 큰 600억원의 효과를 창출 할 수 있습니다.”-최근들어 행정한류가 뜨고 있지 않습니까.“맞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효율적인 행정시스템과 유능한 공무원의 양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기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경험을 전수받기 위해 많이 방문하고 있습니다.최근에는 그 수요가 크게 늘어 연간 300여명의 개도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행정문화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특별히 관심이 높은 분야는 새마을운동, 전자정부, 인적자원개발(HRD), 지방거버넌스 등입니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기 위해 전주 한옥마을, 임실 치즈마을, 완주 로컬푸드조합 등과 같은 지역개발 성공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북지역의 대표적 자랑인 한옥마을 체험을 통해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전북도청, 전주시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정기적으로 전북지역의 관광·문화 홍보콘텐츠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시 문화초청공연을 하는 등 전통문화를 전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주낙영 원장은] 전북·경북 경제협력 주도, 지방분권 대표 옹호론자주낙영 지방행정연수원장(56·1급)은 경북 경주가 고향이며, 대구 능인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 석사학위를, 경북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이기도 하다.그는 공직생활 30년 대부분을 지방과 중앙을 오가며 자치행정 분야에서 일한 정통 내무관료다. 1985년 제29회 행정고시에 합격, 내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이후 20년 가까이 경북도청에서 근무했다. 그는 30대 젊은 나이에 경북도청에서 국장을 맡을만큼 잘나가는 공무원이었다. 기획관, 비서실장, 상주시 부시장, 경제통상실장, 자치행정국장 등 요직을 두루 겨쳤고, 1998년 자치행정과장 재직시에는 전북도와 자매결연을 맺는데 주요 역할을 했다.경북도청에서 사무관(5급)으로 받은 첫 보직이 방역계장이었는데 그때의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한센환자를 꺼리던 시절 그는 경북도 관내 23개 한센마을을 모두 직접 다 돌아보면서 한센환자와 함께 어우러지며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앞장서면서 일약 지역사회에서 유명해졌다. 주 원장은 그때 사회적 약자를 돕는게 바로 정의이며, 행정이 가야할 방향이라는 소신을 갖게됐다고 한다. 행자부장관 비서실장,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을 거친뒤 3년간 뉴욕에서 외교관(부총영사)으로 일한 특이한 경력도 지니고 있다. 중국버스 사고 수습을 위해 지난해 8월 지방행정연수원장으로 발령받기 전까지 2년 4개월간 경상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그는 대표적인 지방분권 옹호론자이다. 경북 부지사 재임시에는 ‘대한민국 황금허리 경제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 탄소산업을 매개로 하는 경북과 전북의 경제협력체 형성을 주창하기도 했다.고급 관료티가 나지않고 따뜻한 성품에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스타일이며, 요즘엔 전북알리기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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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8 23:02

[전북일보 만화뉴스]여름, 불지옥에서 살아남기

여름, 불지옥에서 살아남기#표지.여름, 불지옥에서 살아남기#1.더운 여름날, 터덜터덜 걸어가는 김전북 씨. 오늘도 낮 기온은 섭씨 34도입니다.#2.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훅 끼쳐옵니다.저런, 걷는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군요.- 올해 4월 1일부터 전주 한옥마을 전 구간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고, 7월 1일부터는 단속이 시작됐습니다. [7월 4일 자, 전주 한옥마을 '전면 금연구역 지정' 단속 첫날"몰랐어요 봐주세요" 흡연자와 승강이]#3.겨우 흡연자를 앞지른 김전북 씨. 그런데 어디선가 뜨거운 바람이 불어옵니다.에어컨 실외기였군요.- 에어컨 실외기는 열기가 인근 거주자나 보행자에 직접 닿지 않게 설치하도록 돼 있습니다만 잘 지켜지지는 않는 듯합니다. [7월 28일 자, 여름철 '왕짜증 단골' 에어컨 실외기]#4.집에 들어온 김전북 씨.#5.여름이니까 덥죠. 더우니까 창문을 열어야겠죠. 그래서 창문을 엽니다.#6.그런데 어디선가 또 담배 냄새가 나는군요. 그러고 보니 아랫집 사는 사람이 지독한 애연가였던 것 같습니다.- 오는 9월부터 아파트 복도와 계단 등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지만, 층간 담배 연기 문제가 해결될지는 의문입니다. [7월 20일 자, 9월부터 아파트 복도계단 등 금연구역 지정 가능층간 흡연 피해 해결엔 의문]#7.결국 못 참고 창문을 닫기로 한 김전북 씨. 창문을 닫으면 더우니 에어컨을 켜야겠네요.#8.음.#9.김전북 씨, 전기요금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누진제 때문에 요금 폭탄을 맞는 건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듭니다.-강남호 원광대 경제학부 교수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율을 높게 붙이는 것은 요금 부담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사실상 전가하는 것 [8월 5일자, 40년 전 석유파동 대책 지금까지전기요금 누진제 '비현실적']#10.김전북 씨는 결국 에어컨을 끄기로 했습니다.#11.여름 나기가 참 힘드네요.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그림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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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5 23:02

[참여&소통] 변화하는 경로당

자라나는 어린이나 나이든 어른 모두가 틈나는 시간에 책을 보고 마음의 양식을 넓힐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지난 7월 4일 전북혁신도시 내 LH 이노팰리스 경로당에서는 북카페 개소식이 열렸다. 이날 개소식에서 만난 이 아파트 경로당 임정 회장(73)은 흐뭇한 듯 시설활용에 대해 설명했다. 할아버지와 손주가 함께 책을 읽고 주부들이 커피를 마시며 세대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북카페는 대한노인회중앙회가 주관하는 작은도서관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돼 조성됐다. 충남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열었으며 해외동포책보내기협의회와 종이문화재단, 한국효도손봉사단 등이 책 2000권과 책장 등 3300만원 상당의 물품을 기증해 이뤄졌다. 8월 12일부터는 종이문화재단 강사가 파견돼 4개월 코스로 종이접기 교육과정도 실시할 예정이다.△ 북카페그룹홈공동작업장으로종전 화투를 치며 소일하거나 TV 시청 등 사랑방 역할을 하던 경로당이 변하고 있다. 단순 여가기능에서 북카페나, 독거노인 그룹홈, 공동작업장 등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경로당이 노인돌봄 공동시설인 그룹홈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김제시가 우리나라 최초다. 김제시는 지난 2006년 2개소를 시범사업으로 실시한 이래 154개의 경로당을 노인이 공동생활 할 수 있는 한울타리 행복의 집으로 전환시켰다. 기존 경로당의 시설을 보강해 낮에는 노인여가복지시설로 활용하고 밤에는 경로당에서 잠을 자는 등 숙식을 해결하는 형태다. 전국 자치단체 중 전북이, 특히 진안이 가장 많다. 진안군은 관련 조례를 제정해 예산 지원근거를 마련했다.농촌지역의 그룹홈 운영은 노인들의 고독감을 낮추고 결식률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큰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등 만족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없지 않다.남원시 대강면 사석여성경로당의 경우를 보자. 이곳은 홀로노인 30여 명이 화목하게 지내긴 하나 너무 비좁아 고민이다. 희망자가 많아 밤에는 6~7명씩 1부와 2부로 나눠 보름간씩 잠을 자는 형편이다. 대기자만 60여 명에 이른다.그럼에도 할머니들은 집에 가면 썰렁한데 경로당에서 함께 밥을 해먹고 TV도 보고 함께 웃으니 참 좋다고 말한다. 전북도는 이러한 실정을 정책에 반영, 81개 경로당을 대상으로 독거노인 가족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또한 경로당은 수익창출을 위한 공동작업장 역할도 하고 있다. 군산 창성주공아파트 경로당은 노인 12명이 참여해 빗자루 조립을 하고 있다. 익산 목천동 원주아파트 경로당은 마늘까기와 포장, 남원 왕정동 장미아파트 경로당은 고구마 순을 다듬어 회사에 납품한다. 그런가 하면 부안 변산면 봉래경로당은 땅을 무상으로 임대받아 양파와 마늘농사를 공동으로 지어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공동생활시설과 돌봄센터로 차별화해야이처럼 경로당이 변하고 있으나 아직 대부분은 사랑방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북의 경로당 수는 2015년 12월 말 현재 6567개에 회원수 20만689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국 경로당 수의 10% 이상을 차지하며 1000명당 밀도는 전남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경로당의 25%만이 프로그램 혜택을 받을 뿐, 나머지는 거의 방치되고 있다.그럼에도 경로당이 크게 느는 이유는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로당의 과잉공급과 비효율성이 문제되고 경로당을 노인의 돌봄서비스 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전북연구원 이중섭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3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첫째, 경로당이 위치한 마을의 고령화 정도에 따라 공동생활시설과 돌봄센터로 차별화해야 한다.둘째, 농촌지역의 노인복지관은 여가 중심의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되, 경로당을 지원하는 종합복지센터로 활용하고 대형 경로당을 거점경로당으로 육성해 돌봄서비스와 여가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토록 한다.셋째, 도시와 농촌이 지역특성을 고려해 경로당의 회원수와 규모에 따라 운영을 표준화하고 재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한편 광주시는 민선 6기 정책으로 기존의 경로당을 통합해 노년층에 적합한 거점경로당을 만들어 작은 복지관으로 활용하고 있다.전북경로당광역지원센터 이상미 실장은 경로당도 변해야 한다면서 지역자원과의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서 가장 오래된 경로당, 전주'기령당'- 1610년에 중건, 연륜 400년 넘어 신임 도지사시장들 찾아와 문안전국 6만4000여 개의 경로당 중 가장 오래 된 곳이 전주 완산칠봉 서쪽자락에 자리잡은 기령당(耆寧堂)이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주성 함락으로 문서가 소실돼 정확한 창립 연도는 밝혀내지 못했으나 1610년 중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올해 창당 419주년인 셈이다.기령당은 본시 군자정(君子亭)이었다고 한다. 군자정은 용두봉을 지나 반선봉 건너 옥저봉인 빙고대 아래에 부지가 있었다. 그런데 조선 영조 때인 1767년 민중의 실화로 전주부성 내의 1000여 호가 불에 탔다. 이때 군자정까지 타게 되었는데 때 아닌 광풍에 군자정 현판이 날려 이곳 기령당에 떨어졌다. 모두 기이한 길조로 판단, 여기에 정자를 세운 게 현재의 기령당이다. 기령당은 교육관인 유경헌(惟敬軒)에 소장된 전라도 선생안과 전주부 선생안을 수호신 격으로 간직하고 있다. 선생안(先生案)은 조선시대 각 기관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 관직 생년 등을 적어 놓은 것이다. 기령당의 경우 조선 중기 이후 관찰사가 부임하거나 도지사시장 등이 취임하면 반드시 찾아와 지역 어른들에게 문안을 드렸다. 황인성조남조김완주 전 도지사와 송하진 도지사 등의 이름도 적혀 있다.기령당에는 400년이 넘는 연륜답게 30여 개의 현판이 남아 있고 송덕비도 여럿 세워져 있다. 기령당은 설송 최규상이, 유경헌과 뒷 송석정(松石亭)은 효산 이광열이 썼고 창암 이삼만의 글씨도 남아있다. 현재 등록회원은 973명이지만 70대 후반의 26명이 고정멤버. 신규회원 가입비는 3만원, 월회비는 5000원이다. 허윤섭 전 당장이 98세로 최고령이며 이상칠 전 전주시장(83)이 지난 5월 172대 당장으로 취임했다. 회원들은 매달 15일 모여 특강을 듣고 생일축하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 30명을 모아 여름방학에 사자소학을 가르쳤으나 재정적으로 힘이 부쳐 중단됐다.최병로 사무장(79)은 유서 깊은 기령당이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서 전주시가 축대공사와 조경공사를 8월말 끝내면 면모가 일신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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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4 23:02

[전북일보 카드뉴스]가자! 맥주 마시러! : 2016 전주 가맥축제

가자!맥주 마시러!- 2016 전주 가맥축제, 08.04.~08.06.#표지가자!맥주 마시러!- 2016 전주 가맥축제, 08.04.~08.06.#1.해가 났다 하면 30℃를 찍는 한여름, 아프리카만큼 더운 전주라는 의미의 전프리카라는 신조어도 유행하는 요즘.#2.팡!또로로로로로로로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해지지요?#3.전주와 맥주 하면 역시 가맥이죠.1970년대, 동네 가게 앞 평상이나 파라솔에 모여 가볍게 한 잔씩 즐기던 것이 문화로 정착된 것이랍니다.#4.달착지근 오묘한 맛의 양념장과 황태, 갑오징어 등 간단한, 그렇지만 절대 간단하지만은 않은 맛의 안주를 부담 없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전주의 명물입니다.#5.한때 식품위생법 위반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모두 일반음식점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가정용 맥주도 영업용으로 바꿔 문제가 모두 해결됐습니다.#6.지난 2015년부터 전주 가맥축제가 열리는데요.올해도 찾아왔습니다. 8월 4일부터 6일까지, 전주시 한국전통문화전당 일원에서 펼쳐집니다.#7.은성슈퍼, 아중 꿈의 광장, 새움가맥, 경원상회, 전일갑오, 슬기네, 임실슈퍼, 영동가맥, 안행광장, 삼천광장, 전운가맥, 청춘가맥까지, 전주의 내로라하는 가맥집 12곳이 참여합니다.#8.축제는 8월 4일~6일 매일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열리고, 아퀴나니레의 콘서트, 춘자와 함께하는 7080 DJ 클럽파티, 소맥 자격증 등의 부대행사도 함께 진행됩니다.#9.또 멀리서 오시는 분들을 위해 오후 7시에 전주역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행사장 행 버스가, 오후 10시에는 행사장 인근 신한은행에서 전주역전주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출발한다고 해요.#10.하이트진로 전주공장에서 그날 막 만든 신선한 맥주도 함께한다니, 으어, 취한다!#11.아, 다음날 해장은 전주 콩나물국밥으로?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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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3 23:02

[문화&공감] 전주에 둥지 튼 허인석 만화가

만화를 하루 종일 읽는 게 꿈 인적도 있었다. 어른들이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었다. 만화 속에는 상상하는 만큼의 자유로운 세상들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화는 고귀한 회화와 보잘 것 없는 낙서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하며,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 속의 상징들과 매일매일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표현 사이에서 둘 사이의 경계의 탈출을 꿈꾼다. 만화책에서 웹툰 까지 만화는 우리의 일상에 그 어떤 회화보다 깊게 들어왔다. 일상의 삶 그리고 꿈꾸는 삶, 어떤 게 진짜 우리의 삶일까. 뜨거운 여름날 전주 구도심의 만화가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차이나거리 중국화교소학교 사거리에 작년(2015년)에 들어선 갈라파고스를 탈출한 푸른발 얼가니새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잡화를 팔던 가게였던 이 공간은 작년 허인석(39)작가가 들어오면서 활력 있는 차이나 거리로 변화시켜가며 일상의 시원한 탈출을 꿈꾸고 있다.△차이나거리 한켠에 들어선 공간허 작가는 주변의 젊고 독특한 식당, 공방, 소품가게들과 함께 정기적 프리마켓인 비단길시장을 함께 만들어갔고, 올해는 차이나거리의 진미반점 사장님 도움을 받아 중국화교소학교에서 비단길 시장을 열고 있다. 보따리단, 아워라이프, 푸른발 얼가니새가 기획운영단이며, 12팀 정도의 프리 마켓팀이 참여하고 있다.일상의 모든 것이 흐르는 거리와 상상속의 만화세상이 만나 사람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허 작가. 전주 구도심에서 태평양 갈라파고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상. 고단한 일상과 사람들의 삶이 때론 바보 같지만, 바닷 속 사냥만큼은 담대하게 해내는 멋진 새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어 한다. 푸른발 얼가니새는 동태평양 갈라파고스에서 사는 푸른발이 신비한 가다랭이잡이과의 새로, 스페인 속어인 bobo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뒤뚱뒤뚱 걷다가 그냥 잡혀버리고 마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붙여졌다고 한다.△지역 이야기담는 작가로 유명허 작가는 이야기지도의 작가로 이미 유명하다. 2010년 전주한옥마을 이야기지도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마을, 동네, 공간들의 모습을 지금까지 계속 표현해 왔다. 전주막걸리지도 일러스트, 슬로시티 전주 한옥마을 느린 우체통 디자인, 전주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전주 생태동물원 일러스트, 전주 청정노송마을지도 일러스트 등 그녀의 그림은 누구보다 보기 쉽게, 하지만,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지듯 과하지 않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전주 뿐만이 아니다. 월악산 국립공원 골뫼골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김제시 벽골제 관광안내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공주산성시장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고산 미소시장, 군산대학교 박물관 기념품제작에 이어 최근 고창 하전갯벌체험마을지도에 들어가는 일러스트까지 그녀의 그림을 찾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씩 둘씩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다.작은 그림 한 장 그리며 살아가는 만화가가 이렇듯 거리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고, 또한 단순한 거리,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기까지에는 한때 6년간(2008년~2013년) 근무했던 한옥생활체험관에서의 생활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예약운영팀을 맡으며, 매일매일 숙박객들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 한옥마을에서 느끼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직접 느꼈고, 변화의 한복판에서 공간의 변화와 사람들의 움직임들을 읽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현재의 푸른발 얼가니새를 구도심에 만들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마음에 남는 관광상품 만드는 것 꿈그녀는 공주대학교 만화예술과를 졸업하고, 집근처인 금산사 입구에서 혼자 부채에 동승을 그려주는 노상작가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 속에서 숨 쉬는 작가가 되기를 원하던 그녀는 그때부터 사람들의 일상과 행복이 담겨지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그녀가 또한 즐겨 그렸던 그림은 야생화나 들꽃들이다. 여리면서도 존재만으로 모든 생명의 이유를 느끼게 하는 들꽃은 그녀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녀에게 한옥마을은 고즈넉한 마음의 거리이다. 상업적이고 욕망에 불타는 거리가 아닌 경기전 은행잎 한 잎 떨어질 때 누군가에게 그림을 건네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진정 행복한 마음의 거리로 한옥마을이 새겨지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정말 좋은, 마음에 남는 관광 상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차이나거리 비단길시장의 기획 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워라이프(Our Life)와 함께 푸른발 얼가니새는 동문거리의 감성 소품샵 거기가게를 열어 매장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거기가게는 동문거리의 편집샵 건물인 바람골목의 4층에 위치하고 있다.한옥마을과 차이나거리, 그리고 많은 청년들과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동문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허 작가는 오늘도 작은 자전거에 작은 선글라스를 끼고 그림을 찾아 거리를 다닌다. 푸른발 얼가니새는 디저트 까페도 겸비한, 배도 든든한 따뜻한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새 변신도 준비하고 있다. 구도심의 새로운 장소와 삶을 만들어내고 있는 허 작가의 일상탈출은 사람들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며, 전주 구도심의 젊은 힘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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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2 23:02

취임 한달 맞은 전북도의회 황현 의장 "도민 삶·전북발전 향해 하나 되는 도의회 만들 것"

전북도의회 황연 의장은 도민의 삶과 전북의 미래발전을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의 최대 가치로 삼았다. 도의회 후반기 의장 취임 한달째를 맞은 그는 집행부에 대한 견제 감시 기능 못지 않게 도민의 삶과 지역발전과 관련된 일에 적극 나서는 것이 의회가 해야 할 핵심 역할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된 국가예산 확보을 위해서는 집행부와 손잡고 중앙부처나 중앙 정치권을 방문해 설득하는 등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업유치와 관련해 지역발전에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는데는 자존심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의회 황현 의장으로부터 향후 의회 운영방향과 과제 등을 들어봤다.-취임 한 달을 평가해 본다면.“의장에 취임해 보니 여러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4·13총선에서 전북의 정치지형이 3당체제로 만들어지면서 협치를 하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는 환경으로 가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도민의 민심이 자리하고 있다. 민심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 자신도 처음부터 협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의회 원 구성때부터 당과 당간의 갈등이 있었다.”-후반기 원구성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의회직을 독식했다는 지적이 있다.“이번 원 구성때 소수당인 국민의당에도 의회직을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내에 초선의원이 많고, 초선 의원들이 상임위원장직에 욕심을 내다 보니, 협치에 의한 의회직 배분이 이뤄지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여기에 원구성 문제를 협상할 더민주와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늦게 구성되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의장 선거때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결과가 뒤집히는 이변이 발생했는데.“사실 개인적으로 전반기에 나름대로 의정활동을 열심히했기에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의총 결과는 달랐다.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의원들의 카톡방에 “의총 결정을 존중한다. 나로 인해 당 분열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본회의 의장 선출 당일(5월 28일) 회의에 참석할지도 고민했다. 본회의장에서의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교황식 선출방식이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 당원들과 연합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게 전부다. 앞으로 당의 조사에서도 있는 그대로 응할 생각이다.”-갈등을 치유하는 게 과제로 남았는데.“원 구성에서 갈등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 목표는 하나로 가야 한다. 협치를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모든 것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의회를 만들겠다. 과거보다 세미나나 행사 등을 더 적극적으로 개최해 의원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당리당략 보다는 도민의 삶과 전북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하나가 될 수 있는 의회를 만드는 게 제 목표이다.”-집행부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의회의 역할은 두가지다. 예산이 적재적소에 배정되고 정책들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회의 견제·감시 기능이 있어야 한다. 반면에 도민의 삶과 전북의 미래에 관련된 사업에 대해서는 힘을 실어줄 생각이다. 그것이 협치라 생각한다. 민선 6기 후반기는 성과를 내야 할때인데, 협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면 나중에 도민이나 전북에 손실이 가게 된다. ”-의회 기능 강화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의회에 인사독립권이 없는 상황에서 의회에 역량이 있는 직원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의회에 오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가지면 역량있는 직원들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의회에 와서 근무한 분들이 절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 의회 근무후 집행부로 돌아갈 때는 선호 부서에 근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더불어 의원들의 현장활동을 지원하는 의정자문위원을 구성하려 한다. 각 상임위에서 5명 정도 전문가를 추천해 대략 30명 정도를 인력풀로 운용할 계획이다. ”-삼성의 새만금 MOU 체결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규명할 도의회 차원의 조사특위 구성이 무산됐다.“도의회 운영위의 최종 결정에 앞서 의장단 회의에서 논의했다. 공통된 의견은 특위를 구성하는 것 보다 해당 상임위에서 소위를 구성해 도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MOU체결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알리는 형태가 맞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특위를 구성할 경우 자칫 정치적인 흐름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새만금에 오고자 하는 기업과 도의 기업유치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MOU와 관련해서는 어디에서도 조사특위를 구성한 적이 없는데, 유독 전북만이 도의회가 나서 새만금 MOU관련 조사특위를 구성한다면 기업들이 이를 긍적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하는 문제였다.”-정치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조사특위의 범위는 결국 전북이다. 조사를 하다보면 전임 도지사때 일이라, 전임 지사의 일을 들춰야 한다. 가다보면 전임 도지사 쪽으로 가게 되는 등 정치적으로 흘러갈 가능성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런 부분이 장기적으로 삼성이나 기타 기업의 새만금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생각이다.”-삼성의 새만금 MOU와 관련한 해결방법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앞으로 어떻게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삼성과의 단절이냐 대체방안을 찾아야 하느냐의 의견이 나뉘는데, 삼성과의 단절은 절대 안된다고 본다. 삼성이 투자하겠다는 사업외에 다른 사업을 투자하도록 유도해야한다. 삼성이 새만금에 발을 담근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얻은 것이다. 그것을 실현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계속 떠들어 단절되면 우리가 얻는게 무엇인가. 도와 정치권이 협력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하다. 발을 담근 삼성이 다른 사업으로라도 전북에 투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그렇다고 삼성이 전북에 투자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전북이 새만금을 대하는 태도여야 한다. 이번 삼성 문제에 대해서도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전북이 갖고 있는 모든 인프라를 동원해 설득해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으로 삼성의 전북투자를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지나치게 저자세가 아닌가.“도민의 삶, 도의 미래를 위한다면 자존심이 문제이겠는가. 이전부터 저는 지역발전을 위해 대기업이 지역에 들어와 새로운 동력을 만들 수 있다면 대기업에 가서 엎드리기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개인의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시민, 지역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황현 의장은] 3선 도의원…신념·화합형 정치인1987년 익산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협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그의 나이가 26살로, 올해로 정치에 입문한 지 30년이 됐다. 그는 이협 전 의원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이협 전 의원께서는 ‘남자가 정치를 하면 깨끗해야 하고,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호탕해야 하며,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제 자신은 이를 지금껏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내 각종 경선에서 경쟁자들이 자신을 헐뜯어도 한 번도 경쟁자를 비난하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것을 유권자들이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이 같은 신념은 이후의 행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과거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될 때에도 끝까지 민주당에 남아 민주당 전북도당 사무처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익산시 고문을 맡았다. 이로인해 그 자신은 정통 민주당 정치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그는 제7·8대 전북도의회 의원에 당선되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익산에서 출마했다가 조배숙 의원에게 석패했다.이어 제10대 도의원 선거에서 무투표로 당선돼 3선이 되면서 재기했다. 10대 도의회 전반기 도의회 부의장에 이어 이번 후반기 의장에 선출됐다. 그는 대표적인 화합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 또한 원만하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지향한다. 원광고와 원광대를 졸업했으며, 생활체육 전북도탁구연합회장과 한센복지협회 전북도지부장, 익산시체육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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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
  • 2016.08.01 23:02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찾아가자 무녀도·선유도 (2)

바쁜 현대인을 위한 세 줄 요약1. 무녀도-선유도-장자도-대장도는 한 덩어리. 하지만 전부 다 보려면 하루로는 턱도 없다.2. 고군산군도 연결도로가 부분 개통됐지만 여전히 여객선이 중심. 자전거도 괜찮다.3. 스카이라인망주봉도 볼 만. 선유도 해수욕장 백사장은 말이 필요 없다.△모개미와 서드이무녀도는 이름 그대로 무녀처럼 생겼다고 해서 무녀도다.크게 보아 두 군데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무녀도 교회가 있는 동쪽 마을이고, 또 하나는 무녀도 초등학교가 있는 북서쪽 마을이다. 각각 모개미, 서드이라고 부른다고 한다.원래는 서드이라는 말이 무녀도를 가리키는 원래 말이라고 하는데, 열심히 서둘러 일해야 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뜻을 알고 나니 왠지 슬프다.어서 무녀도를 지나 선유도로 가고자 하는 여행자는 먼저 무녀도 교회가 있는 동쪽 마을을 통과하게 된다. 새파란 하늘과 옥색 바다, 그리고 벽이 샛노랗게 칠해진 건물 등이 눈에 들어온다.해안을 돌아서, 혹은 마을 골목길을 통과해서 마을 남쪽으로 빠져나와 펜션이 자리 잡고 있는, 바스러진 굴 껍데기가 가득한 해안을 따라 걸으면, 이번에는 산길이 나온다. 산이라고 해도 실은 언덕에 가까운 규모지만.진행방향 왼쪽으로는 나무 데크 산책로가 있고, 앞쪽으로는 선유도 방향으로 곧장 진행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산책로는 그리 길지는 않다.선유도 방향으로 진행하다 나오는, 옛 염전이 있던 들판을 끼고 뻗어 있는 제방길로 쭉 걷다 보면 곧 무녀도 초등학교가 나온다. 좀 더 걸어 갈림길이 나올 때 오른쪽으로 가면 선유교로, 왼쪽으로 가면 무녀봉으로 갈 수 있다.다만 왼쪽으로 갈 때는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공사 현장을 지나게 되는데, 취재팀이 찾았던 7월 20일에는 위험 표지판 외에는 달리 안전 설비가 돼 있지 않아 통행 시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다리 혹은 배, 배 혹은 다리선유교의 그 붉은 거대한 아치 형상이 가까워졌다.아직은 그 큰 다리를 건널 수는 없고, 대신 왼쪽에 놓여 있는 작은 인도교를 건너야 한다.1986년 놓인 이 다리는 무녀도와 선유도를 배 없이도 왕래할 수 있도록 해 생활권을 묶은 중요한 교통로다.같은 해에 선유도-장자도 간을 잇는 장자교도 개통됐는데, 이들 다리를 통해 무녀도-선유도-장자도가 사실상 한 덩어리가 됐다. 여기에 장자도와 아주 가까워 애초부터 사실상 한몸이나 다름없던 대장도까지 끼워, 4개 섬이 한 덩어리인 채로 30년을 지내온 것이다.선유교는 교통로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훌륭한 전망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푸른 바다가 인상적인데, 성수기 때에는 관광객들이 다리 위에 멈춰 서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선유교를 다 건너 언덕을 내려가면 곧바로 선유도 여객선 선착장이 나온다.비록 고군산군도 연결도로가 부분 개통돼 육로로도 선유도에 닿을 수 있다고 하지만, 길이 열린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또 자동차로는 무녀도 초입을 넘을 수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관광객들이 선유도를 찾을 때 이용하는 주요 교통수단은 배다.수원에서 왔다는 김모 씨신모 씨 일행이 선택한 교통수단도 배였다.기차를 타고 군산에 갔다가 배를 타고 선유도에 도착했다는 이들은, 다시 뭍으로 나가는 여객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여긴 자전거 타기 좋은 것 같은데, 오늘은 너무 덥네요.여객선은 군산시 소룡동에 있는 군산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하루 4차례 출발하는데, 소요 시간은 진달래호가 45분, 옥도훼리호가 1시간 15분이다. 주말 등 관광객이 몰릴 때는 증편된다.또 비응도야미도에서 유람선으로 선유도를 찾는 방법도 있다. 유람선은 주 선착장이 아니라 북쪽 선유3구 지역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하는데, 최대 11차례까지 운항한다고 한다.다만 이제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 선유도를 찾는 관광객이 변수다. 이날만도 족히 두 자릿수의 라이더를 만났다.이날 만난 김은수 씨(48)도 그런 라이더 중 한 명이었다.저는 충남 서산에서 왔는데요, 선유도 다리 개통했다고 해서 한 번 와봤습니다. 자전거로는 새만금 방조제, 부안 쪽을 주로 다녔어요. 제가 사는 서산도 바닷가지만, 여기가 물은 정말 깨끗한 것 같네요. 해수욕장 백사장도 길어서 가족끼리 오면 좋을 것 같아요.선착장 맞은편으로는 수산물을 파는 상가가 늘어서 있고, 그 앞엔 마치 버스 종점처럼 생긴, 좁고 긴 콘크리트 광장이 있다.사실 이곳은 과거 전동 골프 카트가 운행되던 때, 그 종점 역할을 하던 곳이다. 전기를 충전해 시속 10~20㎞ 정도의 속도로 섬을 돌아볼 수 있었는데, 섬사람들의 생활 교통수단이자 관광객들의 이색 탈것이기도 했다.한때 선유도에만 200여 대가 있었다고 하나, 지난 2013년에 군산시가 전동카트 운행을 전면 중단하기로 하면서 이제는 과거의 기억이 됐다.오른쪽에 해안을 끼고 천천히 모퉁이를 돌면 스쿠터 등을 대여하는 업체와 함께 횟집 등이 나온다. 시각은 벌써 2시, 취재팀은 물회 한 그릇 먹고 가기로 했다.△ 아직은 절반고군산군도의 어색한 과도기지난해 운영이 시작된 스카이라인은 어느새 선유도의 랜드마크가 돼 있었다.스카이라인은 선유도 해수욕장 남쪽 끝, 거대한 등대 혹은 전망대처럼 생긴 탑에서 케이블을 타고 내려가는 놀이기구(?)로, 이곳에서 선유도 해수욕장 복판에 떠 있는 솔섬까지 약 700m를 1분여에 걸쳐 내려가며 해안을 내려다볼 수 있다.스카이라인 체험 비용은 성인 개인 기준 1인 2만 원이고, 군산시서천군 거주자 및 무녀선유장자도 지역 상품 10만 원 이상 구매자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또 체험은 원치 않고 다만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을 바라보고만 싶다면 성인 개인 기준 1인 2000원을 내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평일에는 오륙십 명 주말에는 수백 명 찾아오죠.스카이라인 관계자 김모 씨는 한 무리의 관광객을 무사히 솔섬으로 내려보내고 이렇게 말했다.하지만 어쩐지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고군산군도 연결도로 부분 개통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절반뿐이라서 욕만 먹어요. 차라리 개통을 안 했으면 모를까, 부분 개통을 해놔서 관광객들이 이 더위에 걸어와서는 갈 때 되면 다 지쳐있는 거예요.역시, 개통이라는 말만 듣고 무작정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은 모양이다. 무녀도에 정식 주차장을 마련해놓고 그쪽에 주차하게 한다면 조금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차량을 전부 감당할 만한 공간이 될까?결국 고군산군도 연결도로가 전면 개통되는 2018년이 돼야 해소될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명사십리 모래 밟기7월 20일은 그래도 아직은 여행객들이 밀려들 때는 아니어서 해안이 한적한 편이었다.명사십리라는 이름이 붙은 해변이 전국에 여러 곳 있고, 전북지역에서도 고창군 구시포-동호 사이 해변에 명사십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선유도의 명사십리 또한 이름에 걸맞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백사장은 총 길이 1.3㎞정도 되는데, 솔섬으로 들어가는 목제 다리가 백사장을 양분한다. 백사장의 폭은 약 100m다.밝게 빛나는 모래는 밟으면 그 촉감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그만큼 부드럽고 곱다.맨발로 걷기 저어하게 하는 이물질들이 이곳은 유독 적어서, 발가락 사이사이로 잔잔한 파도를 느끼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백사장을 걷는 것도 해볼 만하다. 가끔 파도에 밀려 올라오는 보름달물해파리만 조심하면 말이다.밀물 때는 이렇게 백사장의 모래를 밟는 재미가 있고, 썰물 때는 양손에 각각 맛소금 한 봉지와 호미 하나씩 가지고 나와 맛조개를 잡는 재미가 또 있다.△천 년 역사 품은 오리지널 군산선유도를 상징하는 또 한 곳이 바로 망주봉이다. 해발 152m면 육지 기준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봉우리지만, 작은 섬에서는 존재감이 다르다.해수면 바로 위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바위산은, 마치 섬에 박힌 거대 생명체의 알과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봉우리와 주변 지역이 바로 천 년 전 오리지널 군산의 자부심을 품고 있는 지역이다.고군산군도는 문자 그대로 옛 군산을 이루는 섬들이다. 유인도 16개를 포함해 총 6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신시도 같은 곳은 이제는 섬이 아니게 됐으니 정의가 달라져야 할 것도 같다.군산이라는 이름은 선유도를 가리키는 옛말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당시 행정구역상 만경현에 속했던 선유도는 고려-송 간 무역로의 기항지였고, 그래서 온갖 나라의 상인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송나라 사신 서긍이 편찬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따르면 인종 원년이던 1123년, 김부식(삼국사기를 편찬한 그 김부식 맞다)이 주관해 군산도에서 국가 차원의 대규모 영접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선유도 북쪽 망주봉 인근에는 임금의 임시 거처인 숭산행궁,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정, 바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오룡묘 등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여기서 최상급 청자와 기왓조각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이후 조선 태조 6년(1397년)에 선유도에 수군 만호영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방어전략의 효율성 등의 문제로 세종 때 군산진을 진포, 그러니까 지금 군산 지역으로 옮겼다. 그래서 고군산군도에 옛 고(古) 자가 붙은 것이다.선유3구 지역에는 옥돌해변이 있다. 옥돌해변은 반대편 선유1구 지역에도 있는데, 선유도 해수욕장의 명성이 워낙 자자해서 그렇지 이들 옥돌해변도 매우 아름답다.또 장자도, 대장도 또한 그 풍광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들 지역을 도보로 하루 안에 다 돌아보기는 매우 힘들다.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해도, 충분히 여유롭게 즐길 만한 시간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니 선유도 여행을 하려거든 최소한 1박 2일, 조금 여유를 갖고 싶다면 2박 3일 이상의 일정은 잡아야 이곳저곳에 숨겨진 매력을 다 볼 수 있다.어느덧 해가 질 무렵이 됐다.망주봉 주위를 한 바퀴 돈 취재진은 이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온 길을 더듬어 무녀도 회차지점을 향했다. 백사장을 다시 건너, 해수욕장 남쪽 끝 슈퍼마켓에서 물 두 병을 샀다. 여기서부터 다시 5㎞ 이상을 걸어야 한다.아, 평소에 운동 좀 할걸.<취재팀 이동 경로>

  • 기획
  • 권혁일
  • 2016.07.29 23:02

[참여&소통] 위기의 대학로- (상)상인·학생들의 노력과 한계

전북대학교 앞 대학로에 위기가 찾아왔다. 상권 위주의 대학로로 인해 문화공간의 결핍이 문제로 제기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지만, 이제는 그나마 상권조차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상권과 문화 모두가 무너진 대학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 대학로의 위기와 과제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상권위주 대학로학생들 설 자리 없어전북대 구정문이라고 불리는 전북대학교의 대학로는 전주지역의 대표적인 유흥가이다. 밀집된 골목에는 술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문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문화를 갈망하는 학생들은 상인들과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구정문 앞 공간에서 공연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 시끄럽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상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3년 전 한 공연동아리는 구청으로부터 다시 구정문에서 공연을 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는 최후통첩까지 받았다. 대학생이, 대학로에서 쫓겨난 것이다.△대학상권 쇠퇴상인연합회 출범과 전대로 행사 개최그러나 상권의 번성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전주 서부지역에 신시가지가 들어서며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대학로라는 이름에 걸맞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대학로는 유흥가로서의 경쟁이 되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지자 대학로의 상권과 문화를 모두 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다.지난해 1월, 전북대 구정문 인근 상인들로 이뤄진 전북대 대학로 상인연합회의 출범 역시 대학로 활성화를 위한 시도 중 하나였다. 상인연합회의 기본적인 목적은 상권의 회복에 있지만, 대학로 상권의 상인회로서 대학로 문화조성에도 힘을 쓸 것을 협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에는 공동체 문화회복과 새로운 지역문화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제1회 전대로 한마음문화 축제를 전북대 구정문 앞에서 진행하기도 했다.△벽화부터 프리마켓까지대학로 조성 위해 학생들 나서기도그런가 하면 대학로 환경조성을 위해 직접 나선 학생들도 있다. 대학로 환경조성팀 도란도담이다. 전북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이들은 지저분해진 대학로를 쾌적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건전한 대학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3년도부터 다양한 활동들을 해 왔다. 특히 지난 2014년에 진행한 벽화그리기가 대표적이다. 지저분한 거리에 벽화를 그려 넣으면 대학로를 생동감 있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깔끔히 벽화가 그려진 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이들은 수준 높은 벽화를 그리기 위해 미대생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지역단체와 기업으로부터 기금 및 벽화재료를 지원받는 등 수 개월간 다방면의 노력을 거쳐 수준 높은 벽화를 만들어냈다.한편 도란도담은 이 뿐만 아니라 학생중심의 대학로 문화를 조성하고자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소통이해협조 부족과 일부 이기심에 성과는 글쎄지난해 10월 열렸던 전대로 한마음 문화축제는 그 취지 및 기대와 달리 아쉽게 많은 시행착오를 남기며 마무리됐다.행사의 홍보팀에서 활동한 박승훈 씨(전북대 사학과)는 상인들과 학생들이 함께 행사를 기획하고, 그 과정에서 학교의 총장님도 관심을 갖는 등 당사자들 간에 취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행사의 의미를 이야기했다.그러나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상인들의 협조부족으로 인해 행사가 작아지거나 재대로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대학로 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확대가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 점도 있다고 한계를 꼬집었다.실제로 해당 행사 주최 측은 행사기간동안 차량통행을 막고 대규모 퍼레이드를 기획하기도 했지만 일부 상인들의 비협조로 인해 상당 부분을 축소하거나 취소했다.도란도담팀의 벽화 역시 수모를 겪으며 문제의식 부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일부 상인들이 벽화 위에 가게 홍보 현수막을 걸어두거나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에 쓰레기를 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화 완성 직후 버려진 쓰레기의 양이 줄었다는 환경미화원의 증언이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무색하게 된 것이다.도란도담의 팀장을 맡았던 김민준 씨(전북대 도시공학과)는 많은 학생들이 힘을 합쳐 공들여 그려 넣은 벽화인데 결국 해당 거리가 처음과 똑같아져 그림이 아깝다는 생각조차 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또 결국 학생들이 무언가를 조성하더라도, 상인들의 관심과 관리 없이는 의미가 지속되기 힘든데 이 점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것 같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조화와 상생, 아젠다 형성으로 위기 극복해야비단 상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학로에 대한 대학생들의 수요와 니즈가 소비적인 문화에 머물러있는 것 역시 큰 문제이다. 따라서 대학로에 문화 공간 및 대학로만의 특색 있는 콘텐츠를 유치하기 위한 학생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고민이 필요하다.또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에게는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된다. 상권의 회복을 위해서는 대학로가 찾고 싶은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이 기껏 조성해 놓은 벽화에 현수막을 걸거나 거리 활성화를 위해 열린 행사에 협조하지 않는 행동 등은 결국 대학로 쇠퇴의 악순환으로 연결된다.대학로는 학생들과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공감하고 소통해야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 그 숙명이다. 조화 또는 쇠퇴, 이제 선택을 할 때이다.● 먹고 마시고대학로는 유흥거리?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싶은 오늘, 한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당신이라면 함께 술을 마셔줄 친구만 고민하면 될 뿐, 장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어디에서든, 가장 가까운 대학교 앞으로만 간다면 술집은 즐비하기 때문이다.고등교육법상 공시대상인 우리나라 대학교의 수는 407개. 그러나 이렇다할 문화가 조성된 대학로를 가진 학교는 전무하다. 가장 유명한 예술대학으로 알려진 홍익대학교 대학로의 경우 거리공연이나 극단공연 등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 곳 역시 음주문화가 주류를 이룬다.물론 타국의 대학교 앞에도 술집과 상권은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의 여러 선진국의 경우 주로 서점이나 음식점, 생필품을 구비할 수 있는 Mall 정도가 대부분이고 술집의 경우 간단한 음주가 가능한 Pub이 몇 군데 위치해 있을 뿐 술집이 비정상적으로 밀집해 있지는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단순한 음주문화 뿐만 아니라 대학과 지역 간의 연관성이나 특색 또한 부족하다. 이를테면, 패션과 관련된 대학의 경우 뉴욕이 있는 동부 쪽이 유명하고 영화와 관련된 대학은 할리우드가 있는 서부 쪽이 유명한 미국 같은 대학 분위기가 국내에는 형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이는 1차적으로 대학이 들어설 당시의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거점 국립대학 및 수도권 주요 대학의 경우 대부분 광복 직후인 1946년에서 1950년대 사이에 개교되었고, 광복 직후와 6.25 전쟁 전후 국가재건 분위기에서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절실했던 대학이 문화환경적인 부분까지 고려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과 교육제도의 문제 역시 대학로의 유흥가화에 한 몫을 했다. 입시과열이 심각한 한국에서는 대학을 답답한 교육제도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대학을 더 나은 기회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보기 보다는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 여기는 풍조도 더해져 대학로가 생산적인 공간이 아닌 목적없는 소비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다.따라서 대학로의 변화는 문화공간의 조성과 같은 물리적인 정책뿐만 아니라, 인식개선과 교육제도 변화를 통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로가 지난 70여 년 간 서서히 만들어졌듯이, 그 변화와 개선의 시간 역시 결코 짧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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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8 23:02

[문화&공감] 고창 부안면 구현마을 사람들

농촌 마을의 전통적 공동체성은 수십년 동안 급격히 해체되어 왔다. 공동체라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주민들의 삶은 개별화된 방식으로 파편화되고 마을은 텅 비었으며 활력이 없다. 가장 큰 위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젊은 층이 있다 하더라도 삶의 관계는 마을을 떠나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고창 부안면의 구현마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마을이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늙어가던 마을이 젊어지며 생기가 돌고 있다. 연로한 나이의 토박이 이만재 씨는 이 감회를 이렇게 적었다.구현 마을 경사냈네 마을를 들어서는 순간 회관 앞에 벽화꽃이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이 벽화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뜻이 담아 있는 벽화꽃이라 생각한다 떨리은 솜시로 한나한나 정성을 담아 그려본 벽화일 것이다.구현마을은 현재 25가구에 독거노인 10명을 포함해 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귀촌한 젊은 주민의 제안으로 2013년 구현골문화자치회라는 주민자치조직을 결성하였다. 우선적으로 문화사업을 선택했다. 해체된 마을공동체를 재생시키기 위한 과정으로 문화경험과 마음의 소통을 통해 마을 사람들의 정서적 연대, 신뢰, 협동을 다지는 관계망의 재형성을 목표로 했다.△문화사업 통해 이야기 마을로구현골문화자치회가 몇 년 동안 문화사업을 진행해오다보니 구현마을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마을이 되었다. 첫 개시로, 2013년에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글쓰는 마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한글을 모르는 촌로들을 위한 한글반과 한글을 아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글쓰기반이었다. 평생 연필 한번 잡아본 적 없는 황순여 할머니는 노트에 이름 석자를 써놓고선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름 석자는 할머니의 생애사가 담겨 있었을 터다. 손이 떨리고 눈이 가물가물하며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투덜거리면서도 어르신들은 기꺼이 참여하여 탈문맹과 인문학적 문화 경험의 시간을 즐겼다.그이들은 숨겨져 있던 문학적 감성을 드러내고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마을, 가족, 숨겨둔 청춘의 사랑, 농사 이야기 들을 짤막하나마 글로 표현하고 발표하며 서로 공감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정녕 평생 이런 적이 있었던가. 그 성과들은 연말 마을축제 때 발표하고 전시되었으며, <글쓰는 마을 구현골 이야기>라는 마을지로 탄생하였다. KBS1의 <6시 내고향>에도 방송되니 마을 사람들을은 더 없이 좋아했다.알고 보니 촌로들은 이미 시인이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현기 할아버지는 아주 멋진 시를 자필로 남겼다. 시간 따라 나도 따라/ 여기 같이 왔구나/ 어느덧 팔십고개/ 내 몸도 굽어지고/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박점수 아주머니는 청개구리 운다/ 길 떠난 엄마 생각/ 비는 또 얼마나 올까 라며 하이쿠 시를 썼고, 문순례 아주머니는 엇그제 뽕나무 입이 태어나더니/. 라며 농사 관찰시를 썼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들은, 어쩌면 잎을 입으로 쓰고 싶은 그이의 삶의 말법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무의식적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쓰기와 이야기의 독특한 경험들은 마을 주민들의 전혀 새로운 삶의 세계였다.△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나서다두 번째로, 구현마을 사람들은 2015년에는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마을 안길의 문화적 공간조성 즉 황토담장 및 벽화 조성을 통해 마을 이야기들을 탄생시켰다. 마을에 잔존해 있는 흙담 이미지를 살려 낡고 허름한 브로크 담장들을 황토로 덧칠함으로써 흙냄새 나는 정겨운 담장으로 조성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공간들에는 마을 이야기가 배어 있는 벽화들을 배치했다. 우리 마을 경사냈네, 글쓰는 마을, 흙담 이야기, 모내기작업반의 기억, 어르신들의 그림 이야기, 구현마을의 사계절, 시인과 아이들 등이 그 구역별 주제다. 모내기작업반의 기억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50여년 전인 1963년의 낡은 사진 한 장, 구현마을 모내기작업반 사진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 사는 김연기 씨의 큰형님 김안기 씨가 소장하고 있는 걸 찾아냈다. 박방영 화백이 그 사진을 벽화로 그대로 옮겼다. 당시 모내기반은 2030대의 남녀 젊은 사람들로 45명에 이르렀다. 모내기반은 간척지 등 부안면 일대의 논들을 도맡아 모내기를 했다. 거머리가 달라붙지 못하도록 사람들은 무릎 아래로 거머리 차대기를 찼다. 점심은 후다닥 집으로 달려가 먹기도 했고, 국수나 튀밥이 때꺼리였다. 마을에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이들은 하루를 준비하며 그렇게 40여 일을 모내기하러 다녔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청년들은 지금은 여든 전후의 나이가 되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벽화를 보며 당시의 기억들을 더듬어낸다.△올해는 주민들이 영화 만들어구현골문화자치회(대표 김연기)는 올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세 번째 마을 이야기로, 작은영화 만들기 교육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 마을 안길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할 때 기획-설계-시공 과정 모두를 업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주민들의 참여방식으로 진행했듯이, 주민들이 시놉시스를 함께 구성하고 출연배우로 직접 참여하는 영화의 탄생 작업이다. 다큐가 아닌 극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까닭은 시놉시스라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가상적 관계를 맺어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현실일테다. 어떻게 히야 혀?, 촌로의 낯선 질문으로 영화 교육은 뜨거운 여름을 달구고 있으나 잘 만들어질 지 아직은 미지수다.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50, 60대의 두 가구가 귀촌하면서였다.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작은 노력, 그 초점은 무엇보다도 주민들 마음의 세계의 변화에 두었다.담장이 집주인의 사적 소유물에서 황토담장과 벽화로 조성되면서 마을 모두의 것으로 변화하듯이, 사적화된 마을공간 및 개별화된 삶을 공공화하고 공통감각으로 공감하게 하려는 소통과 관계로서 시도된 문화적 경험들은 어느새 이야기 만들기 시리즈로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담아내는 문화공동체, 오늘도 구현마을 사람들의 작은 꿈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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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6 23:02

국제라이온스 전북지구 이상복 제39대 총재 "산에 오르듯…어려운 이웃 위해 빛과 소금 역할 최선"

제39대 국제라이온스 356-C(전북) 지구 이상복(57) 신임 총재를 지난 20일 사무실에서 만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봉사와 관련한 인터뷰가 될 거란 생각과 달리 그는 인터뷰 내내 에두르지 않고 질러 말하는 ‘화끈한 사업가’같은 기질을 보여줬다. “그동안 기업을 운영하면서 많은 경력을 쌓았지만 인생에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는 이 총재는 “이제 총재가 됐으니 지역사회 번영발전을 위해 소외당하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 소금과 빛의 역할에 앞장서고 싶다”고 했다.- 국제라이온스가 올해로 제 99주년을 맞았고 전북지구 총재가 되셨습니다. 소감은 어떠십니까?“국제라이온스가 1917년 6월에 미국 시카고시에서 멜빈죤스 씨가 창립해서 100년이라는 세월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100년 가까이 활동을 해오면서 많은 실행착오가 있었습니다만, ‘new mountain climb’를 가치로 삼아 산에 오르듯이, 새로운 목표를 향한 도약을 할 것입니다. 지금도 봉사의 중심에서 일을 해왔지만, 앞으로도 기아 어린이와 청소년 등 소외계층을 위해 더욱 더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펼쳐 나가는 역할에 중심이 되겠습니다.”- ‘국제라이온스’는 어떤 곳인지부터 설명을 해주십시오.“라이온스는 Liberty(자유), Intelligence(지성), Our(우리) Nation’s(국가의), Safety(안전)의 앞글자를 따서 ‘LIONS’라고 부릅니다. 라이온스는 세계 최대·최강의 국제적인 봉사단체인데, 모토는 We Serve(우리는 봉사한다)이고, 강령은 라이온스의 어원 그대로인 자유·지성·우리 국가의 안전입니다.”- 국제라이온스 전북지부는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우선 한국에는 21개 지구와 2100개 클럽, 8만 명의 회원 수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4위 정도 규모이고, 동남아에서는 2번째로 강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전북에서는 1964년 6월 4일 전주클럽이 최초로 탄생했습니다. 세부 조직으로는 11개 지역에 48개 지대와 30개 분과위원회 그리고 105개 클럽에 1만여 라이온 가족이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참 봉사 대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떤 사업들을 해오셨습니까.“전북지구의 그동안 중요 봉사사업으로는 국제협회 중점사업이자 최우선사업인 시력보존사업을 해왔습니다. 이어 긴급 구조 활동과 이동목욕 차량 기증, 디지털 보청기 지원사업, 전동 훨체어와 혈당기 지원사업, 디지털 보청기 기증, 급식 차량 기증 등 각종 분야에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사회 숨은 봉사인을 발굴하고자 라이온스 봉사대상을 제정, 매년 시상금 2000만원 상당의 상금과 상패를 수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도내 105개 클럽에서 학업에 열중하는 학생에게 매년 약 5억 원 상당의 각종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액수를 학생 들에게 장학금으로 주시시고 계시는데요. 총재님은 젊으셨을때 어떤 시절을 보내셨습니까.“20대 당시 광주광역시 양동시장에서 15~17개의 잡화점을 대상으로 도매업을 했습니다. 30대 초반까지 약 10년 정도 4.5톤 차 8대를 이용해 원 없이 젊은 패기를 불 지르고 살았습니다. 수입이 좋을 때는 하루에 20~30만 원 이상도 거뜬히 벌었는데, 어느 순간에 어음으로 인해 사업을 접어야 할 때가 생겼습니다. 형제처럼 생각한 사람들한테 물건을 믿고 맡겼는데, 야반도주하는 모습을 보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30대 초반에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재기를 꿈꾸지는 않으셨습니까.“전혀요. 우선 양동시장을 뛰쳐나와 고향인 정읍으로 갔습니다. 시골에 전답이 하나 있는데, 농사나 짓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한 번도 농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잘할 리가 없었습니다.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1993년쯤 우연치 않게 정읍에 있는 한 공장을 들어가게 됐는데, 그게 삼성전자 협력업체였어요. 그때 월급이 적어서 잠시 머물렀다가 곧 그만두자고 생각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20년간 발이 묶였던 것 같습니다. - 어떤 인연으로 라이온스에 가입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그동안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통해 많은 돈을 벌고 경력을 쌓았지만,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허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면서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자 2004년 2월에 전주제일 라이온스클럽에 입회하게 되었습니다.”- 라이온스 12년 차인데 조직내에서 어떤 부분을 개선할 생각이십니까.“경험상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육체적 봉사가 중요하지만 사실상 물자가 동반되지 않으면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봉사를 하려면 각 클럽의 회원들이 봉사금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본 40~50명은 구성원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전북지부에는 40명이 채 안되는 클럽이 꽤 많습니다. 올해는 회원을 충분히 확보해서 이 단체 클럽이 정말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 기대할 만할 사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전북지구가 클럽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데, 이것이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NGO 법인을 만들어서 봉사의 중심에서 기부금을 낸 사람들이 세제혜택을 받는 등 좀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운영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싶습니다.”- 국제라이온스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그동안 전북지구를 이끌어 오신 역대 총재님과 회원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우리 함께 새로운 신세기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 봅시다.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작지만 자랑스러운 우리 라이온들이 함께 한다면 놀라운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과거의 업적을 거울 삼아 우리 모두 함께 새로운 100년, 새로운 도약을 시작합시다. 우리 라이온 회원들에게 자랑이 되는 봉사의 업적을 지금부터 같이 만들어 봅시다. 사랑·희망·나눔 함께해 주십시오. 열정을 다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복 총재는] 광주 양동시장에서 사업 시작해 2011년 정읍서 '세일특수강' 창립국제라이온스협회 356-C(전북) 지구 이상복 총재는 1958년 정읍에서 태어나 20대에 광주 양동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2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2011년 그의 고향에 ‘세일특수강’ 을 창업했다. 세일특수강은 자동차 안전띠와 진공청소기 등에 들어가는 스프링을 만드는 국내에 몇곳 없는 전문회사다.이 총재는 “직장생활을 통해 많은 경력을 쌓았지만 뭔가 인생에 허전함을 느꼈다”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2월 전주제일라이온스에 입회, 전주제일 라이온스클럽 회장과 국제라이온스협회 전북지구 총재 특보·감사·자문위원·제2부총재·제1부총재 등을 지냈다.

  • 기획
  • 남승현
  • 2016.07.25 23:02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찾아가자 무녀도·선유도 (1)

삐이이익!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재난문자 소리. 폭염을 조심하라는, 사실 바깥에 잠깐이라도 나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참 요란하게도 한다는 생각이었다.그것도 사람들이 어디 길을 나서기 전이 아니라 다들 이미 밖에 있을 시각, 정오가 가까운 때가 돼서야 이런 메시지를 보내다니, 사람 약 올리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7월 20일. 타는 듯한 햇볕만 뺀다면, 그야말로 아주 좋은 날씨였다.지난 5일 개통된 고군산군도 연결도로로 가려면 우선 새만금 방조제 길을 타야 한다. 전남이나 광주 등 남쪽에서 접근하려면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군 변산면으로 간 뒤 방조제를 따라 가력도를 거쳐 올라가야 하고, 서울대전 등 북쪽 지역이나 전주 등지에서 접근하려면 흔히 산업도로라고 부르는 21번 국도를 타고 군산 비응도를 거쳐 방조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취재팀은 군산 방향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전주에서 접근하기에는 아무래도 이쪽 길이 넓고 단순해 찾아가기가 좋다.△방조제 시작점은 관광 어항 비응항먼저 마주친 것은 비응항이었다. 원래는 비응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었는데, 1994년에 군장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 과정에서 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더는 섬이 아니게 된 곳이다.군산 서부에는 이런 곳이 많은데, 내초도, 오식도 등도 비응도와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행정구역명이 내초동인 내초도 지역은 섬으로서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졌지만, 오식도 지역과 비응도 지역은 아직도 오식도동, 비응도동으로 불리고 있다.하긴, 최근에 오식도동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오식도 초등학교는 아예 새만금 초등학교로 개명되기도 했다.그러게 뭣허러 나오자고 했어?강아지 한 마리가 지쳐 그늘을 찾고 있고, 한 중년 남성이 강아지 목줄을 잡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허허 웃었다.비응항은 전북의 대표적인 관광 어항으로, 낚시꾼을 비롯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이곳에서는 낚싯배나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다.그 자체로 목적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만금 방조제의 북쪽 끝(정확히는 4호 방조제의 북쪽 끝. 비응도~내초도 간 군장산업단지 남측 방조제도 새만금 방조제 구간에 포함된다)이기도 해, 새만금 방조제로 가고자 하는 이들이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하다.북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날개가 돌고 있는 풍력발전단지가 보이고, 그 사이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의 1650톤짜리 골리앗 크레인이 보인다.방향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면 곧게 뻗어 있는 거대한 방조제와 함께, 산봉우리처럼 솟아 있는 섬 몇 개가 보이는데, 이것들이 바로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섬들이다.△교통로? 관광지? 새만금 방조제비응항을 한 바퀴 돌고 새만금 방조제에 올라탔다. 세계 최장 방조제로 알려진 새만금 방조제의 총 길이는 33.9㎞. 무려 19년 동안의 공사 끝에 지난 2010년 4월 준공됐다.방조제와 간척지의 용도, 그리고 환경(특히 갯벌생태계와 수질)에 미치는 영향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적어도 교통로와 관광 명소로서의 기능에는 충실한 편이다.이 방조제로 인해 가력도신시도야미도 등은 육지와 완전히 연결됐고 또 고군산군도 연결도로를 통해 무녀도가 추가로 연결됐으니 교통로의 기능은 확실한 셈이고,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 오가며 풍경을 바라보기 좋아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으니 관광 명소로서도 나쁘지 않다. 특히 자전거 라이더 사이에서는 이미 대중적인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이날 방조제 중간 돌고래 쉼터에서 만난 한진섭 씨(73)도 그런 이유로 새만금 방조제를 찾은 자전거 마니아였다. 그는 휴가철을 앞두고 고군산군도가 가족단위 휴가지로 적절한지 자전거로 사전 답사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자전거를 좀 좋아해요. 좋아해가지고 남한강, 북한강, 뭐 이 지역 저 뭐야 섬진강, 전남 영산강, 충청남도 금강 요렇게 막 자전거 타고 다녔어요. 여기는 처음이에요. 선유도까지 돌고 나오는 길인데, 아주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가지고, 콧노래, 노래 부르며 그러고 가는 거예요. 저기 비응도 가서 짬뽕 한 그릇 하고 집에 갈라고.한 씨 외에도 이날 새만금 방조제에서는 자전거 라이더를 여럿 마주칠 수 있었다.△고군산군도 연결도로 시작점 신시도돌고래 쉼터를 지나면 야미도가 나오는데, 야미도는 크기가 신시도보다는 작지만, 선유도로 가는 유람선이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고, 또 낚시 명소로 알려진 곳이기도 해서 언제나 북적이는 편이다.야미도를 지나면 곧바로 신시도가 나온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으로, 이 일대의 실질적인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새만금 방조제 구간에서 가장 큰 휴게소인 새만금 휴게소가 이 섬에 있고, 새만금 동서 2축 도로가 이 섬 인근에서 시작한다. 또 아리 공연이 펼쳐지는 아리울 예술창고가 이 섬 바로 남쪽, 신시도 33센터 인근에 있다.최근 여기에 또 하나가 추가됐는데, 바로 고군산군도 연결도로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이다.신시도항 인근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무녀도로 향하는 연결도로에 올라탈 수 있는데, 신시도의 북쪽 해안을 빙 돌아 나가는 구조로 돼 있다.연결도로 왼쪽에는 산이, 오른쪽에는 바다가 펼쳐진다. 이 길 자체로도 훌륭한 여행 코스라고 할 만하다. 차도 좌우에는 상하행선이 구분된 자전거도로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설계부터 자전거 라이더들을 고려한 듯하다.다만 연결도로만을 보고 나갈 게 아니라면, 자동차는 신시도항에 마련된 임시 주차장에 세워두고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가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잠시 뒤에 서술하기로.자전거 대여소에서는 2인용 자전거를 포함해 100대를 운영 중이고, 이용 요금은 3시간 3000원, 1일 5000원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 가능하다.언덕을 올라가니, 한동안 단등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고군산대교가 눈에 들어왔다.마치 두바이의 유명한 호텔 부르즈 알 아랍을 연상시키는 영문 알파벳 D 모양의 주탑이 당당히 서 있었다. 돛단배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위엄도 위엄이지만, 미(美)적으로도 꽤 괜찮은 구조물이다.흔히 현수교라고 하면 광양만을 가로지르는 이순신대교처럼 다리 양쪽에 서 있는 탑이 강철 케이블로 상판을 지탱하는 다리가 떠오르지만, 고군산대교는 현수교면서도 탑이 하나밖에 없다. 일주탑 현수교라고 하는데, 이 주탑의 힘으로 지탱하는 구간이 400m다. 이는 일주탑 현수교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이라고 한다.400m라고 하지만, 실제로 다리를 건너보면 길이가 1㎞는 족히 돼 보인다. 사실은 신시교무녀교가 양쪽에 붙어있는 구조라 그런 것인데, 전체가 한 다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화감이 없다.어디서 봐도 멋지긴 한데, 도로가 상하행 1차로씩뿐이라 나중에는 통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좌우의 풍경을 즐기느라 서행하거나 멈추는 이가 있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듯하다.△자동차엔 안 돼, 돌아가자전거가 甲이네다리를 전부 지나 무녀도에 닿으면, 2016년 7월 기준, 이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은 더 없다. 4.4㎞의 부분개통 구간은 여기서 끝이다.선유도 방향으로는 중장비들이 도로를 내고 있고, 그 앞은 회차 지점이라는 팻말이 가로막고 있다. 외부 차량은 로터리처럼 돼 있는 이 회차 지점을 돌아 나가야 하고, 무녀도 주민들은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을 통해 마을로 들어간다.현재까지는 따로 주차장도 없기 때문에, 여행객으로서는 도리가 없다.이것이 바로 신시도 임시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자전거를 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이 힘들다면, 스쿠터처럼 발로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는 이륜 이동수단이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방법일 테고, 세그웨이나 전동 휠 같은 것도 나쁘지 않겠다.실제로 이날 무녀도와 선유도에서 자전거와 스쿠터, 오토바이는 수도 없이 봤고, 세그웨이나 전동 휠을 타고 다니는 이도 몇 명 마주쳤다.다만 무녀도 초입에서부터 선유도 3구장자도대장도 등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나오기에는 배터리 용량이 모자랄 수도 있다.취재팀은 관계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가에 주차한 뒤 도보로 선유도까지 움직이기로 했다.우선 무녀도 해안길을 따라 (아직 문을 열지는 않은)전망대로 향했다. 아담한 주차공간과 화장실, 그리고 전망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이 건물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참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공사 중일 뿐이다.한 단 아래, 좀 더 바다에 가까운 콘크리트 길로 내려가면 짠 바다 냄새가 확 끼쳐 온다.꽥꽥도 아니고 빡빡도 아닌, 수달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합쳐놓은 것 같은 소리가 연신 들려온다. 갈매기 소리다.무녀도 해안 마을을 거쳐 서쪽, 선유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출발할 때 약간 뿌옇던 하늘이 맑아졌고, 태양은 취재팀의 머리 위를 그대로 내리쬐고 있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이제야 조금씩 불기 시작하는 바람. 무녀도의 해안은 아름다웠다.그리고 그것이 여행길이자 고행길이었던 여정의 시작이었다.<계속>

  • 기획
  • 권혁일
  • 2016.07.22 23:02

[참여&소통] 다문화가족 정신건강

집이 어디세요? 몰라요.한 이주여성이 집에 가지 못하고 이러 저리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가 길을 안내하기 위해 집을 묻자 모른다고 답하였다. 투이 씨(가명)는 한국에 시집오기 전, 베트남에서도 정신건강이 약했다고 한다. 투이 씨는 남편이 직장 때문에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가사일과 자녀 양육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댁 형님이 이혼을 하는 바람에 두 명의 아이를 추가해 돌보고 책임져야만 했다. 투이 씨는 시부모님과도 갈등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이러한 환경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투이 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아왔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우울증 자가진단테스트 BDI(Beck Depression Inventory)와 일상생활수행능력 IADL(Instumental Activities of Daily Living) 검사를 실시하려 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을 할 수 없었다. 투이 씨는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무척 떨어졌다. 혼자서 전화를 걸 수도 없었고 혼자서 약을 먹을 수도 없었으며 혼자서 장을 보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했다.△무주 이주여성 스트레스 경험 72.7%, 장수 우울증 경험 56.4%전라북도는 2015년 전북형 다문화가족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를 실시했다. 이 연구는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용역을 맡아 전라북도 여성 결혼이민자혼인귀화자 전수인 9452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모집단은 7212명 중 5345명이 응답했다. 이 연구에서는 다문화가족의 정신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스트레스 경험과 우울증 경험에 대해서도 설문조사를 실시했다.조사결과 스트레스 경험에서 전북지역 결혼이주여성의 가족생활, 직장생활, 기타 사회생활에서 최근 2주 동안 스트레스를 느끼는 조사에서 많이 느끼고 대체로 느낀 편이다가 58.3%로 다소 높게 나타났다. 일상생활영역에서 가족생활 스트레스는 49.5%, 직장생활은 43.5%, 기타 사회생활 스트레스는 32.8%의 순으로 가족생활 스트레스가 높은 결과를 보였다.지역별로 스트레스 경험자는 무주군 72.2%, 진안군 69.4%, 장수군 68.7%로 상당히 높은 결과가 나왔다. 또한 가정생활영역의 스트레스 경험자 비율도 전북지역에서는 이들 3곳이 차례로 높게 나타났다.영역별 스트레스 경험은 가정생활, 직장생활, 기타 사회생활 순을 보였다.출신국별 스트레스 경험자는 필리핀 84.3%, 일본 77.6%, 캄보디아 68.3%로 이들 3개 국가출신 여성들 10명 중 7명이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필리핀 출신 여성은 생활영역별 모든 영역부분에서 70%의 높은 스트레스 유경험 비율을 보였고, 일본과 캄보디아 출신은 가정생활영역에서 스트레스 경험자 비율이 높았다.우울증 경험을 알아보기 위한 지난 1년 동안 연속해서 2주 이상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는 문항에서는 우울증을 호소한 비율(매우 자주 느꼈다+가끔 느낀 편이다)이 46.8%로 절반 가깝게 나타났다.지역별로는 장수군 56.4%, 순창군 53.1% 순으로 높았고, 도시와 농촌별로는 읍면 지역에서 거주하는 여성결혼이주여성 등이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꼈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출신국별로는 필리핀 출신 여성이 60.9%로 높게 나타났고, 귀화한 결혼이주여성 46.8%, 사별 이혼 별거 상태인 경우의 결혼이주여성 71.1%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높게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015년 3월 조사전문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서울과 6대 광역시에서 만 20~59세 한국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행복조사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에서 우울, 불안, 분노와 같은 정서적 문제 경험 등을 물었는데,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의심되는 비율은 각각 28%와 21%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대상자의 1/3정도가 우울, 불안, 분노 같은 정서적 문제를 경험한 것이기에 적지 않은 비율이다.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결혼이민자귀화자의 경우 스트레스 경험률이 58.3%, 우울증이 46.8%로 나타났는데, 한국인의 비율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결혼이민자혼인귀화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 경험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에 대해 현장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정책담당 부서에서는 다양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정신건강이 약화되어져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인 원인 파악이 필요하다.△우울증스트레스 단순 정착과정으로 인식하면 안돼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2012년 4월 2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오이코스 신학대학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모두 7명이 사망했으며 4명이 부상을 당했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은 한국인 고수남 씨(당시 43세)였다. 고 씨는 미국으로 이민 온지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영어가 통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한국계 학생들로부터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고 무시당하기도 했다. 고 씨는 따돌림과 부적응으로 우울증을 앓았고 이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김동준 팀장은 정착과정에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문제를 단순히 정착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 중의 하나로 흘려보낸다면 이후 큰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면서 극단적인 선택은 특정한 극단적인 상황의 전개 하에 발생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예방적 활동과 심리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극단적인 사건들은 처음에는 단순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서 비롯되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정신건강 문제를 단순히 성장과 정착과정의 하나로 간과시켜버릴 경우 불행한 일들은 예고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북지역 결혼이민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경험 비율이 높게 나타난 만큼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기관들이 협력해 다문화가족의 정신건강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주여성 정서불안 대책은 악화 전에 상담치료,주변 관심을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마가리타 씨(가명)는 어느 날 화가 난다며 시어머니에게 쓰레기통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시어머니는 며느리 마가리타 씨를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 마가리타 씨는 남편이 평소에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두 명의 자녀조차 엄마를 지지해주지 않고 할머니 편만 들었던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마가리타 씨는 시집을 온지 10년이 넘었지만 한국어로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었다.전북형 다문화가족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에 의하면 필리핀 결혼이민자들의 스트레스 경험자 비율이 84.3%로 월등히 높았다. 필리핀 결혼이민자의 우울증도 60.9%로 제일 높게 나타났다. 필리핀 결혼이민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 비율이 높게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다른 조사가 구체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다문화가족지원센터 주수진씨(한국어교육 담당)는 필리핀 이주여성의 경우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대화를 하려는 경향성 때문인지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어 능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또 필리핀 결혼이민자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 비율이 월등히 높은 요인도 한국어 소통능력이 떨어지면서 그만큼 한국사회에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남편, 시부모, 자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결혼이주여성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또 한국에서 자신을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와 이웃 등이 가까이 없음으로 인해 더욱 외롭고 초조하며 불안할 수밖에 없다.스트레스와 우울증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게 하고 순간적 실수를 불러와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끌어내리게 한다. 따라서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심리정서적 불안정성을 노출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이 있다면 상태와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상담과 심리정서적 안정을 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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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1 23:02

[사진으로 비교해 보는 우리 동네] 한옥마을 둘러보기 : 전동성당과 오목대

[사진으로 비교해 보는 우리 동네]전주 한옥마을 둘러보기: 전동성당과 오목대#표지.[사진으로 비교해 보는 우리 동네]전주 한옥마을 둘러보기: 전동성당과 오목대#1.한 해 10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찾아오는 곳, 한복의 나라, 인증샷의 성지 전주 한옥마을.이번에는 한옥마을의 랜드마크, 전동성당과 오목대를 둘러볼까 해요.#2.저 멀리 전동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이곳은 싸전다리입니다. 바로 앞은 남부시장이지요.(1965년 3월 19일)#3.51년이 지나고 같은 자리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51년 전엔 없던 가로수가 울창해 전동성당은 보이지 않네요.#4.전동성당 앞으로 가볼까요?1914년에 외형이 갖춰진 전동성당은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1975년, 건립 60주년(실제로는 6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1975년 7월 5일)#5.41년이 지난 지금, 출입구의 위치가 당시와는 조금 다릅니다. 출입구를 기준으로 구도를 맞춰봤습니다.#6.이번에는 성당 건물을 기준으로 맞춘 구도입니다.#7.한편 전동성당은 1988년, 안타깝게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일부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1988년 10월 10일)#8.같은 자리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9.전동성당의 아름다움을 담아, 보너스로 한 컷.#10.한옥마을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가면 만나게 되는 곳이 바로 오목대입니다.과거에는 이곳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1965년 4월 5일, 식목일 기념행사)#11.지금 오목대에 있는 큰 누각은 1988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10m쯤 떨어진 곳에 당시 전주시장 명의로 된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12.추석이 되면 이곳에서 강강술래도 하곤 했더랍니다. 왼쪽 울타리에 기대 있는 소년(아마 지금은 중년이 되셨겠지요?)이 시선을 잡아끄네요.(1973년 9월 10일)#13.사실 1965년 촬영된 사진과는 방향이 반대입니다.#14.아래로 내려가 볼까요? 오목대 옆을 지나는 기린대로와 오목교(구름다리)의 모습입니다. 지금과는 달리 매우 한산해 보입니다.(1988년 4월 1일)#15.지금은 관광객도 많이 늘어났고, 한옥마을 노상주차장도 들어섰습니다. 이 사진에서 왼쪽이 오목대 방향, 오른쪽이 벽화로 유명한 자만마을 방향입니다.기획 신재용, 구성 권혁일, 제작 이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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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0 23:02

[문화&공감] 전라삼현육각보존회 전태준 회장

전주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자랑거리가 많다. 특히 국악의 본고장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청하 전태준(74세) 명인도 전주의 자랑으로 꼽힌다.선생은 지난 2011년 전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전라삼현육각(三絃六角)보존회(제46호) 회장을 맡아 전라삼현육각 계승과 발전에 힘쓰고 있다.선생은 풍남초등학교 밴드부에서 피리를 불면서 악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전주동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신입생 환영식에서 연주를 한 전주농고 농촌예술반(종합예술단) 삼현육각 대금소리에 매료됐다. 전주농고 농촌예술반은 정형인이기주 선생이 지도교사로 있었는데, 전국을 돌며 공연할 정도로 실력이 빼어났다. 선생이 입학할 당시에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공연까지 다녀올 정도였다. 선생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농촌예술반과 함께 공연을 다닐정도로 연주에 푹 빠졌었다.△ 당대 최고 국악인 스승으로 모셔선생은 과수원을 하던 부모님 덕에 대금단소 명인 전추산(본명:홍년) 선생을 독선생으로 집에 모셔 학습했으며, 신쾌동 명인 등이 함께 하던 전주풍류방을 다니면서 향제풍류를 익혔다.학교선후배 인연으로 최낙선 명인에게 대금을 더 배웠으며, 전주에서 활동하던 김동준 명고에게 판소리 지도도 받았다. 이러한 공부를 바탕으로 나름의 대금산조 한바탕을 구성하게 됐고, 명무로 꼽히던 최선금파 선생의 무용반주도 맡았다. 시나위와 합주, 독주 등 활동의 폭도 넓혔다.전주농고에서 만난 정형인 명인은 선생의 예술길을 더욱 풍성하게 안내했다. 정형인 선생은 전통민속음악의 대가인 정자선 명인의 자제인데, 무용과 해금 대금 피리 등에 두루 능했고, 학생 지도도 열정적이었다. 또한 박귀희, 김소희 명창 등이 서울로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텄으며, 최승희 무용가가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분이었다.여성국극단의 임춘앵 명인도 각별한 스승이다. 군대 제대 후 만난 명인을 선생은 평생 이모님으로 모셨는데, 서울무대에 진출하는 통로가 됐다. 시대를 풍미했던 국극단체인 진경단체, 햇님달님 단체 등과의 활동을 통해 음악의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되었고, 대금 명인인 김동진 선생과 이생강 선생을 사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다양한 인연과 꾸준한 공부로 1973년경 내로라하는 예술인만이 활동 할 수 있다던 삼청각예술단 초대단장을 맡아 민속음악계의 명인들과 함께 활동했으며, 1977년에 이생강 명인과 공동단장을 맡았다.△전라삼현육각 재현위해 귀향선생은 재주가 많았다. 짬짬이 서화에도 관심을 가져 1980년에는 한국서화대상전에서 특선을 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선생이 다시 전주로 내려온 것은 1983년 문화재관리국의 전라삼현육각 재현요청때문이었다. 이듬해 6월 전라삼현육각 재현발표회가 열렸다.전주에서 청하 민속악 연구원을 만들어 대금을 지도하는 등 국악보급에 앞장섰다. 1986년 전북도립국악원에 시간강사로 들어갔다가 2001년까지 도립국악원 교수로 활동했다.도립국악원 근무 인연으로 맺어진 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들은 전부 삼현육각 이수자다. 조용안(장구)단장과 김인두(좌고) 지도위원, 이항윤(대금) 수석단원, 조용오(대금) 부수석단원, 박지중(피리) 상임단원, 조송대(피리) 상임단원, 이재관(피리) 상임단원, 고은현(해금) 상임단원 등이다.△궁중민간에서 연주된 대표음악거슬러 올라가보면 전주에는 전라감영이 있어 의식행사가 많았던 탓에 삼현육각이 자주 연주되었다.삼현육각은 피리2(목피리곁피리), 대금1, 해금1, 장구1, 북1 등으로 구성된 연주를 말한다. 고려시대 이후 삼현육각 편성에 의한 음악은 궁중 연례악에서 주로 사용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역 관아에도 이러한 편성의 연주단이 구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민간에서도 연주됐다. 김홍도의 무악도(舞樂圖)를 보면 알 수 있다.삼현육각편성이 민간화 되면서 인형극과 탈춤가면극 등의 민속놀이 때에도 삼현육각은 필수적이고, 무당의 굿판에 연행되는 무당춤이나 무가의 반주에서도 삼현육각이 기본이다. 삼현육각은 양주별산대놀이와 봉산탈춤, 은률탈춤 등의 반주용으로도 쓰인다.전라삼현육각은 농삼현육각과 민삼현육각이 있었다. 농삼현은 관아의 삼현육각으로 음계가 우조에 가깝고 주로 관아 행사와 무용반주에 사용되었으며, 민삼현은 민간의 삼현육각으로 계면조에 가깝고 주로 민간의 잔치행사에 사용됐다. 농삼현과 민삼현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시김새가 조금 다르다. 전주 삼현은 대금 피리 해금 장고 북이 있고, 무악에서는 단저(단소)도 곁들일 수 있다. 대금은 삼현대금을 쓰고, 피리는 대피리를 쓴다.과거 행사에서 어떤 음악이 연주되었는지는 구체적인 자료가 전해지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을 1989년 6월 전북도립국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민(民)삼현육각이 연주됐고, 1997년 10월 전주시립국악단 창단연주회에서 농(弄)삼현육각이 복원됐다.△ 전주지역 농삼현만 명맥 유지삼현육각은 각 지방마다 연주됐을텐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곳은 드물다. 해주 삼현육각은 봉산탈춤 및 강령탈춤 반주에, 경기도 광주 삼현육각은 송파산대놀이 반주에 일부 쓰이지만 이들 삼현육각도 거상악과 행악에 쓰는 일이 없어 전승이 끊어질 처지에 있다.서울삼현은 승무 공연으로 악사들이 항상 따르게 되었고, 영남지방에도 고장마다 삼현육각이 있었으나 통영의 북춤과 검무만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전승보존되고 있다.전남 고흥과 영광 삼현육각은 이미 전승이 끊어졌고, 전주의 전라삼현육각도 민간에서 하던 민삼현은 사라지고 공연용으로 하는 농삼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선생은 전라삼현육각을 발전시키는 것이 꿈이다. 전라삼현육각보존회가 있지만 이수전수체계가 허술해 아쉽다고 했다. 전통국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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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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