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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환경작가 이웅휘씨 "환경의 중요성 조각으로 표현"

고철로 작품을 만들어 환경을 생각하는 귀농인이 화제다.진안 용담면 와룡리에서 용담가든을 리모델링해 '청산에 살어리랏다'란 간판을 걸고 커피숍을 운영하는 이웅휘(60)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 작가는 석재 및 주물 작품이 아닌 폐철재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7년 여란 세월동안 총 120여점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이 작가는 형상적인 작품보다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활동을 고집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환경이 내재되어 있다. 세밀한 작업을 통해 손수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7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가 제작한 거의 모든 작품(101점)이 용담댐 광장에 전시된 것이다. 120점의 작품 모두를 전시하지 않는 것은 101개의 작품 전시는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100개의 작품이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면, 101개의 작품은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여 설명했다.이는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시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에 매진할 뜻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다.그는 "주물로 만든 작품이 70점이 있다. 그 작품들을 철로 만드는 작업을 할 것"이라며 "이는 새로운 시작이며 다시 한발을 내딛는 사명, 또 다른 시작 그리고 출발점에서 만족치 않고, 환경에 대한 조각을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 작가는 7년전 진안으로 내려오기 전 경기도 양평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76년부터 시작된 유학생활기간동안 13~14개 국가를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했던 게 그 밑거름이 됐다.이를 토대로 수도권에서 30여 년 동안 석재 및 주물, 그리고 나무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활동해 왔다.이후 낯선 귀농생활은 또 다른 도전이었고, 고뇌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외로움은 작품을 만드는 세계로 끌어들였고, 수 많은 작품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는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을 만들기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 많은 고뇌를 하고 있음을 내비쳤다.이 작가의 집에는 구두와 군화를 화분화 한 작품이 입구에 놓여 있고, 마당에는 무수한 작품들이 자리를 잡고, 건물 뒤편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고물 철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 기획
  • 이재문
  • 2012.07.12 23:02

11. 연재를 마치며 - 이제 걸음마…뛸 수 있도록 지원을

전북일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전주 탄소강국을 꿈꾸다'는 기획 취재 연재를 지난 4월 18일부터 시작했다.본보가 세계의 탄소산업 시장과 전북의 탄소산업을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21세기 신산업의 쌀'로 평가받는 신소재가 세계 주요 선진국에서 현재는 물론 미래의 핵심 산업으로 여겨지는 국제적 상황이 자리한다.인류가 역사를 석기시대, 철기시대, 청동기시대 등으로 나누는 이유는 인간이 사용하는 소재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이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 선점하는 국가가 역사의 중심에 서왔다는 사실과 맥을 같이 한다.그런 의미에서 전주기계탄소기술원(JMC)과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추진해 온 (주)효성이 지난 해 6월 전주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목표로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T-700급 탄소섬유 양산체제 구축을 선언한 일은 전주, 나아가 한국의 산업지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로 평가 받는다.기자는 3개월간의 기획 연재를 통해 탄소산업의 의미, 선진국들의 수준과 사례 및 국내외 탄소시장의 실태, 그리고 한국 탄소산업의 현주소와 과제 등을 점검해봤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탄소산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세계 수준과 국제 시장의 벽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자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그런 면에서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투자와 집중 없이는 여전히 한국은 세계 신소재 산업의 변방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는 탄소(Carbon) 원료로부터 소재를 생산해 이를 고부가가치 제품생산에 활용하는 이른바 'C-산업'의 발전 전략 수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담당 부처는 지식경제부다. 지경부는 혁신소재로 부각되는 C-소재의 자체 개발능력과 이를 활용한 수요산업의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수립이 매우 긴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이에 지경부는 C-산업을 2020년 국가 5대 주력산업으로 정한 세계 경쟁력 목표 달성을 위한 척추산업으로 판단, 선제적 기술개발은 물론 수요창출 방안을 고심 중이다. 사실 C-산업은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가들이 대외 기술 유출을 꺼리는 등 장벽이 매우 높고 R&D 협력을 회피하는 특성을 갖는다.국가 차원의 전략과 투자 없이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정부가 수립하려는 'C-산업 글로벌 리더 국가 도약' 비전도 뒤떨어진 국내 C-산업의 중간원료 공급능력과 기술력을 포함해 관련기업의 영세성, 체계적 R&D 전략 및 지원 기능 부실에서 비롯된다.정부가 내건 C-산업의 2020년 목표는 △기술경쟁력 10위→4위 △글로벌 기업 0개→10개 △무역 2조달러 조기 달성 기여로 종합적 지원전략과 체계를 마련, 기술경쟁력과 상용화 역량을 강화하고 산업구조의 선진화를 이룬다는 게 골자다.지경부가는 또 C-소재산업의 특성상 산업 육성 초기부터 지원체계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신설, 맞춤형 지원전략 시스템을 갖춘다는 복안이다. 정부가 선정한 미래 유망 6대 C-소재 중 하나인 탄소섬유와 관련 전주의 신산업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전주시 관계자도 "지경부가 대한민국 최초로 시작한 전주 탄소밸리 사업을 C-산업의 최우선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하지만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1992억원을 투자하는 탄소밸리사업의 속도는 매우 더딘 편이다.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역에서 시작해 중앙정책으로 선정된 사업은 전주 탄소산업이 유일 할 것이다. 하지만 탄소밸리 예산 1992억원 중 1080억원을 점하는 국비 예산 지원은 기대에 못미친다"고. 실제 정부는 탄소밸리 예산과 관련 첫 해 50억원에서 이듬 해 120억원, 올 해 117억원만 배정했다. 남은 2년에 800억원이 모두 지원될 지 미지수라는 얘기다.더구나 탄소산업과 관련한 최근의 동향은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가 뒤늦게 탄소산업을 국가적 사업으로 적극 진행하면서 그 중심을 국내 3개 권역으로 나누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서다.전주의 탄소산업 선점 노력과 결실을 알면서도 집중보다는 분산을 선택하려는 움직임은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도내 정치권의 분발이 필요한 대목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취재 보도의 첫 연재에서 언급했던 경영학의 시조 피터 드러거 교수의 '어떤 길을 가야하는 것이 전략이고, 어떻게 가야하는 가가 전술이다'는 말과 '경쟁전략' 분야의 최고권위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이클 포터 교수가 던진 '같은 것을 경쟁자보다 더 잘하고 많이하는 것'이라는 화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온다. 취재에 협조해 준 전주기계탄소기술원(원장 강신재) 관계자와 전주시청 탄소산업과, (주)효성과 도내 탄소업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끝〉

  • 기획
  • 김성중
  • 2012.07.11 23:02

특별기고 - 정부 적극적 육성책·기업 기술 개발 시급

지구의 에너지가 한계에 있으므로 미래의 모든 산업은 대체 에너지개발 및 에너지 절감, 효율화가 반드시 수반 돼야한다. 이에 발맞추어 탄소산업은 3E(Environment, Energy, Efficiency)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좀 더 싸고 튼튼하면서 에너지가 절감되는 대체 소재부품이 요구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앞 다투어 개발 및 상용화에 집중하고 있다. 2010년 기준 탄소복합재 시장이 약 20조원정도이며 매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2015년 이후에는 30조원이 넘는 거대 시장을 형성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Freedomcar"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미래의 수송부분에 필요한 경량재료를 개발 착수하였는데 그 중 핵심이 바로 탄소재료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금속을 대체하는 가벼운 소재로 탄소소재를 개발 추진했으며(NEDO 프로젝트), 환경문제에 민감한 유럽의 경우에도 독일 및 프랑스를 중심으로 탄소소재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80년대 탄소섬유의 상용화 이래 약 20년간 탄소섬유 및 복합소재를 대부분 수입하는 정체기를 겪었으며 최근에는 정부 및 국내 부품소재업체를 중심으로 탄소산업에 투자를 하고 있어 탄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탄소산업의 특성상 대규모 시설투자에 대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단순히 따라가는 기술개발이 아니라 선진국의 개발사례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경쟁력 있는 신기술 및 신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우리나라의 탄소산업이 전주를 중심으로 한 탄소밸리 단지가 활성화되고 정부에서는 탄소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니 반가운 소식이다. 탄소산업의 중요한 키워드는 어떻게 싸게 만들고 모든 산업에서 사용 할 수 있도록 대량 양산하는 기술이다. 현재의 탄소섬유는 1Kg에 30불이 넘으며 고기능의 섬유는 1,000불에 육박한다. 또한, 공정비용이 너무 높아 현재로서는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이 불가능하다. 자동차의 예를 들면 자동차 한 대 무게의 5~10%의 무게에 해당되는 100Kg의 탄소원소재가 적용된다면, 1만대만 생산하더라도 1000톤이 필요하며 이는 전주의 탄소섬유 생산량에 절반에 해당한다. 전 세계 탄소섬유의 생산량이 10만톤을 넘지 않으니 자동차 업체에서는 고민거리임이 틀림없다. 또한, 현재의 탄소제품은 대부분 사람의 손에 의지하는 생산방법이므로 자동연속 생산 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수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프리미엄 자동차 업체, 대학 및 프라운호퍼와 같은 대형 연구소에서는 탄소원소재, 중간재 및 최종제품의 개발을 위해 각각 컨소시엄을 이루어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탄소 전문업체인 SGL사와 프리미엄 자동차업체인 BMW의 탄소 관련 합작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국은 현재의 탄소산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일본, 미국 및 독일이며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도 빼 놓을 수 없다. 연 10%이상의 급성장을 보이고 있는 탄소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고 탄소산업을 이끌기 위해서는 아래 몇 가지가 꼭 필요하다.첫째, 탄소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및 관심이다.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탄소산업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정부가 앞장서 육성과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부가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좀 더 적극적인 육성책이 필요하다. 둘째, 관련기관 및 기업의 기술투자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누가 더 싸게 만들고 많이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기반을 가지고 있느냐가 탄소산업의 핵심이라 판단된다. 1Kg당 30불이 넘는 섬유를 10불대로 낮추고 사람의 손에 의존하는 생산을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와 같이 자동생산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다.셋째, 탄소선진국을 철저하게 분석해 탄소산업을 단순한 첨단 산업용 소재부품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사용될 수 있는 범용제품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전자제품, 조선, 및 자동차등의 기존 인프라 산업과의 광범위한 접목을 해야 한다.현재 전주의 탄소밸리 단지가 한국의 탄소산업의 메카이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강한 탄소기업의 육성, 신기술 및 제품 개발에 필요한 과감한 시설 투자, 부족한 탄소관련 인력 양성을 집중적으로 하면 우리나라도 전자, 조선, 자동차산업과 같이 탄소산업이 전주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 기획
  • 김성중
  • 2012.07.11 23:02

10. '남원 구룡폭포 순환코스' 전북일보 기자들 탐방기 - 비·땀에 젖고…숲·계곡·폭포 비경에 또 젖고

전북 남원(46㎞), 전남 구례(77㎞), 경남 함양(23㎞)산청(60㎞)하동(68㎞) 등으로 이어지는 총 274㎞의 지리산둘레길. 이 정식 구간에는 포함돼 있지 않으나 상당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명품 지리산둘레길'이 있다. 지리산의 장중한 계곡미와 호젓한 숲길을 자랑하는 남원 구룡폭포 순환코스가 바로 그 곳이다. 그 현장을 탐방한 전북일보 들의 수다는 하늘과 땅을 잇는 빗줄기 속에서 절세의 소리와 뒤엉켰다. 비에 젖고 땀에 젖은 구룡폭포 순환코스, 남원 지리산의 비경과 묘미가 그 안에 숨겨져 있다.△ 가뭄 끝 단비산 속엔'물 폭탄' 밤새 비가 내렸다. 다음날 진행할 남원시 주천면 소재지에서 육모정, 구룡폭포, 정자나무 쉼터로 이어지는 4.5㎞ 가량의 '구룡폭포 순환코스' 탐방이 단비 속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이강민, 육경근, 이강모, 강정원, 박영민, 최명국 는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농가의 시름을 덜 수 있게 됐다"는 말을 계속해 강조하면서 '탐방 물거품'을 은근히 반기는 분위기였다. 탐방 당일 오전 6시.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 그쳤다. 구룡폭포로 가자"는 짧은 외침에 "하늘이 농민의 시름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데"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우여곡절 끝에 길을 나섰다. 빗줄기가 점차 강해졌다. "그래도 가자." 뜻이 모아졌다. 남원시청 박흥근 공보계장이 휴일을 반납한 채 길 안내를 맡았다. 구룡폭포로 향하는 오르막에서 들의 수다는 멈췄다. 남원 지리산의 비경에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는 그럴싸한 명분이다. '저질 체력' 때문이라는 이유를 아름답게 포장한 들의 '내면 수다'가 이어졌다. △ 최명국 "정자나무 그늘 넉넉"모처럼 생기에 찬 지리산과 마주했다. 산행을 시작하며 나는 속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저 둘레둘레 걷는 호젓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지며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찔한 흔들다리로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빗줄기를 뚫고 진행된 2시간 동안의 탐방에서 비에 젖고 땀에 젖었다. 하지만 성취감에 젖기도 했다. 최종 집결지에서 만난 200년 이상의 정자나무의 넉넉한 그늘. 그 터에서 막걸리 한잔이 탐방의 깊은 맛을 우려냈다. △ 이강모 "계곡 물소리 상쾌"새벽 6시다. 들의 걱정은 구룡폭포 탐방이다. 출발하자는 달콤한 속삭임에 어쩔 수 없는 탐방에 나섰다. 검은 구름이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과 나를 휘감는다. 구룡폭포를 꼭 가고야 말 것이라고 전의를 불태운다. 구룡폭포 순환코스 옆으로 흐르는 계곡 소리가 상쾌하다. 내 머릿속도 상쾌해진다. 굵은 장대비까지 쏟아지면서 오히려 몸과 마음은 더욱 시원해지고 있다. 걷고 또 걸었다. 발걸음은 어느새 구룡폭포 제7경인 비폭동에 닿아 있다. 조금만 더. 구룡폭포에 이르렀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폭포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듯 보였다.△ 강정원 "힘찬 물줄기 가슴 펑"음력 4월 초파일이면 아홉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홉 군데 폭포에서 각각 노닐다가 승천했다는 구룡폭포. 힘차게 아래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펑 뚫리는 기분이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장관을 연출한다. 시원하다. 이래서 이 곳을 찾는구나. 이 비경을 보기위해 400개 이상의 계단을 오르 내리는 고생을 감수하는가 보다. 그 곳에 지친 도심의 일상을 슬그머니 담가둔다.△ 육경근 "새소리에 콧노래 절로"일행들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평지형 인간들의 고군분투가 이어진다. 산바람이 시원하고 공기는 청량하다.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새소리도 다정하다. 자연을 벗삼았더니 어느새 콧노래가 나온다. 그것도 잠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모든 상념은 까맣게 지워지고 한걸음 한걸음에 몰두하는 내 자신이 다가온다. 구룡폭포 숲길에서 소중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 꽃이 함께 피었다.△이강민 "명창 소리 들리는 듯"웅장한 계곡을 품고 있는 구룡폭포 순환코스의 물소리가 후련하다. 빗줄기가 강해졌지만 괜찮다. 국악의 명창들이 웅장한 구룡폭포 소리에 맞서 절세의 소리를 다듬어 냈다더니. 폭포 주변은 과연 청아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구나. 계곡 길을 따라 펼쳐지는 지리산의 청정자연이 맛나다. 내면의 울림을 표현하고 싶지 않은데. 사진만 공개하면 안될까.△ 박영민 "자아성찰 기회도"텀벙텀벙 건너고 싶은 길을 만났다. 깊은 산세 만큼, 계곡도 비경이다. 하얀 물거품에 기암절벽, 그리고 호젓한 숲길에서 자아성찰의 기회가 철철 흐른다. 외지인들은 이 곳을 알까. 관조의 발걸음이 묻어나는 계곡 길에 명소라는 의미를 같이 묻어두고 싶다. 그래 같이 떠나자. 구룡폭포 순환코스에 새로운 추억이 쌓이도록. △ 박흥근 공보계장 "남원 둘레길 최고"안내자인 박흥근 공보계장은 구룡폭포를 벗어나자 총 274㎞의 지리산둘레길 중 남원 구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룡폭포 순환코스와 지리산둘레길 1코스가 정자나무 쉼터에서 만난다, 주천운봉 구간은 뭐가 좋다 등등. 하지만 지리산둘레길을 잘 모르는 들의 반응은 시큰둥. 박 계장은 배낭에서 지리산둘레길 안내지도를 꺼냈다. 남원시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코스 및 대중교통 정보가 상세히 담겨져 있다.

  • 기획
  • 홍성오
  • 2012.07.10 23:02

임옥상 미술가는…

임옥상은 195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렸던 그는 특히 미술에 재능이 빼어나 동네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소문났다. 초등학교 3학년, 장래희망을 써넣는 칸에 망설임없이 '화가'라고 썼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했다. 고등학교는 용산고를 다녔는데, 그때 미술반에서 만난 스승이 조각가 강태성씨다.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구도자 같았던 스승을 보며 작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을 다닐 때에는 연극반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다 서울대 법대 앞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데모현장을 만나며 예술의 시대적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대와의 조우는 대학원을 졸업한 직후 이루어졌다. 그에게 미술은 곧 시대와 소통하는 통로였으며 그가 담아내는 미술적 언어는 모두가 시대적 발언의 상징이 되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의 뜨거운 시기를 그는 광주와 전주에서 보냈다. 79년 광주교육대 교수로 2년 남짓 근무했고, 81년부터 91년까지 10여년을 전주대 교수로 재직한 덕분이었다. 그는 80년대 거리의 민주화 함성을 온전히 체득할 수 있었던 전주에서의 10여년 삶을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한다. 92년엔 대학교수직을 스스로 버리고 전업 작가가 되었다. 91년 호암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이 자극이 됐다. 당시 문제작가로 분류되어 있던 임옥상은 한국화단의 질서(?)로 보자면 주류가 아닌 비주류 작가였지만 이 전시를 계기로 한국미술계의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외국 갤러리의 초대가 이어지면서 그는 국제적인 활동을 새로운 목표로 세웠지만 94년 IMF가 터지면서 무산됐다. 다시 새로운 궤도를 만들어 전시장의 벽을 위한 그림에 몰두하는 대신 거리로 나갔다. 자신이 하고자 했던 예술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고 시작한 고민과 갈등이 준 답이었다. 한국 미술계의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당신도 예술가'는 그래서 만들어졌다. 인사동과 여의도에서 4년 동안 진행됐던 이 프로젝트는 대중들의 미술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변화시켰다.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가 지향하는 미술의 공공성은 더 큰 폭으로 확대됐다. 전시장 밖으로 나와 지하철역에서, 분단의 경계에서, 극장에서, 거리에서, 아파트에서, 공원에서 대중들을 만나는 그의 작품들은 오늘을 사는 대중들의 정신을 일깨우면서도 단순한 감동의 언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중들을 깨우고 흔들어 시대를 읽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86년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한 그는 지난해 가나아트에서 가진 '토탈 아트전'까지 1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2000년대 중반, 서울 평창동에 '임옥상연구소'를 열어 창의적인 젊은 미술가들과 작업하고 있는 그는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일상인 사회를 꿈꾸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지치지 않고 구상하며 실현해나가고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2.07.10 23:02

임옥상 미술가 "잊혀진 시대적 아픔·정신, 예술언어로 일깨워요 "

아침 일찍부터 비가 왔다. 봄부터 가뭄이 계속되었으니 단비다. 비오는 서울 풍경은 일상적으로 만나는 도시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광화문 넓은 광장은 더 특별한 풍경이다. 지나면서 언뜻 보니 세종대왕 동상 앞에 녹색공간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니 벼다. 웃자란 벼들이 단비를 맞아 더 푸르다. 도심의 광장에 논을 들여놓은 풍경은 낯설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친숙하고 흥미롭다. 이 도발적인 행위의 주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광화문 광장에 논을 만들어 도시농업의 가능성을 대중들 앞에 펼쳐놓은 사람. 작가 임옥상씨(62)다. 그는 우리 사회에 가장 뜨거운 예술적 이슈를 가장 많이 생산해내고 있는 작가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를 막 거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가 쏟아놓은 예술작업들은 한 시대를 관통하며 기록해온 역사로 서있다. 평론가 김정환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훌륭한 예술가란 사회의식이 새로운 예술언어를 만드는 것보다 예술언어가 새로운 사회의식을 만드는 면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시대를 향한 치열한 발언으로 대중들을 깨어나게 하는 그가 다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것은 올해 초다.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의 초대를 받아 극장 계단위에 넝쿨콩이며 고구마와 감자를 심어 놓더니 5월에는 아예 광화문 광장에 논을 만들었다. 그가 하는 대부분의 작업이 그랬듯이 이 프로젝트 또한 뜨거운 이슈가 됐고 2개월이 지난 지금, 광화문 광장의 벼들은 쑥쑥 잘 자라고 있다.그를 만났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10여년을 전주에서 보냈지만, 그는 전주를 고향처럼 아낀다. 예술적 정신의 자양분이 전주에서의 삶으로부터 온전히 온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지난 5일 평창동 그의 연구소에서 시작해 광화문 광장에서 끝났다.-남미여행은 어떻셨습니까. 꽤 긴 일정이던데요.(그는 환경재단 일원으로 멕시코 리우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 참가하고 3일 귀국했다) "좋았어요. 리우에서 행사 끝나고 상파울로를 거쳐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몇 개 도시를 답사했습니다. 주로 생태 환경 도시들이죠. 비행기만 열두 번 타는 고생스러운 일정이었는데 아주 의미있었습니다." -광화문 광장 설치작품은 선생님께서 즐겨하시는 '그로잉 아트'라고 들었습니다. 도심의 공간, 그것도 광화문 광장에 그런 작품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더군요. 반대는 없었습니까.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논쟁도 있었고요. 그러나 예술가의 예술적 행위에 논리가 중요한 것은 아녜요. 시기상조를 내세워 반대했던 측에서 내세웠던 것이 여론수렴이었는데 물론 여론수렴은 중요하지만, 오히려 일방적인 경우가 많잖아요. 시대의 이슈가 될 만한 것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행위에 그런 논리를 대는 것은 부당하죠." -벼가 아주 잘 자라고 있더군요. 가을이면 전국 각지를 대표하는 쌀이 광화문에서 수확되는 진풍경이 벌어질 텐데 또 하나의 예술적 사건이 될 것 같습니다. 도시농업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가 '이제 농사다'예요. 개인 작업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시농사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중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었죠. 도시농업은 지금 우리 사회가 꼭 지향해야할 가치 있는 과제예요. 예술적 행위로 그런 운동이 더 즐겁게 확산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죠." -이런 큰 화두를 잡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어느 날 우연히'는 아니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 스스로 뭔가 붕 떠있는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위안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남아요. 내 예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죠. 사실은 지난해 개인전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이제 나이도 있으니 완성도 높은 작품에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연말 연초를 지내면서 문득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싶더군요. 그것은 결국 스스로 편안하게 살겠다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작품 뒤에 숨어 지낼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새로운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신 거군요. (웃음) 그런데 그 고민의 답이 도시농업이었다는 것이 의외입니다."언제부터인가 도시농업에 관심이 갔어요.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고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데는 농사만큼 좋은 통로가 없거든요. 때마침 이런 고민을 공유하는 지인들이 있어서 구체적인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었습니다."-농촌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문화운동으로 도시농업을 실현시켜가겠다는 목표가 바람직하긴 하지만 실현시키는데에는 많은 과제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도시농업이라는 화두도 중요하지만, 도시농업을 어떻게 현실화 시킬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과제예요. 그 답을 협동조합에서 찾고 싶습니다. 사실 엔지오 활동이 그동안 눈에 띄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정치적인 바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도 마찬가지고요. 지속성과 주체성을 갖춰 나가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협동조합 체제예요. 지금까지 만들어진 제도 중에 협동조합은 가장 앞선 제도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도시농업을 뿌리 내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한데 문화예술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보자 싶었지요. 그래서 상징적으로 광화문에 논을 만들자. 그냥 논이 아니라 예술가가 작품의 일환으로 만드는 논, 농사, 이런 것이라면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겠냐 했던 것이지요."-도시농업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군요. "그렇죠. 대개 사람들은 농사를 어떻게 도시에서 짓느냐는 생각부터 하는데, 사실 벼농사가 아니어도 좋아요. 농작물이라든지 어떤 다른 것도 상관없어요. 도시농업의 소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서울에서 벌어지는 것이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전라북도의 도시들처럼 중소도시에서 더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중소도시에서는 더 아름답게 시민들과 더 긴밀하게 판을 짤 수 있겠지요. 작은 도시의 풍경을 주민들이 모두 나서서 바꾸는 일은 상상만 해도 멋있는 '퍼블릭 아트'가 될겁니다."-큰 프로젝트에만 집중하시다보면 개인적인 작업은 너무 밀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텐데요. 실제로 아까 말씀 하신 것처럼 이제 그림을 그리시겠다는 생각도 하셨었구요. "그림이라는 것이 좁은 의미가 있고 넓은 의미가 있는데, 넓은 의미의 그림은 그만큼 넓기 때문에 사회적 파급력은 있지만 사실 고단하지요. 일을 성사시키기에도 어려움이 많고요. 그래서 잠깐 개인작업을 마음에 품기도 했었을겁니다.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어서.(웃음)"-그런데 또 다시 돌아오셨잖아요. 이것이 무슨 생각인가 하면서."그러니까요. 그림을 그리긴 하는데 사회의 그림을 그리겠다는 데에 마음이 닿은 것이죠. 소셜 큐레이팅이나 퍼블릭 아트 같은 영역이 나에게 주어진 어떤 소명 같은 것인가봐요."-그동안의 삶에서 전주는 어떤 시기였는지 궁금합니다. "나에게 전주는 아주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내 삶에서도 그렇고 예술적 활동에서도 그렇죠. 전주에서의 삶은 80년대의 격변기에 온전히 놓여있습니다. 내 작품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공간이었죠. 그러니까 전주라는 공간과 정서적 풍토가 없었으면 내 예술은 발화하기 어려웠을겁니다. 70년대 말 광주에서의 생활이 피 끓는 치열함으로 들떠 있었다면, 전주는 마음에 확신을 갖고 열정을 구체화시키고, 작품을 해나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했던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작업은 항상 시대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시대적 상황이나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강렬한 메시지로 전하면서 예술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교정시켜주었죠. 미술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의미나 보람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91년 호암갤러리 전시 이후 주목받는 민중작가로 각인됐습니다. 화가로서 예술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인데, 그럼에도 제가 가야할 길은 그림을 그리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연히 사회적 발언으로서의 미술활동을 해나갔는데 그때 주위에서조차 왜 자꾸 판을 벌리느냐는 비판을 했어요. 섭섭함이 크더군요. 작가가 작가로서 행보를 할 때 박수를 쳐주지는 못할망정 왜 자꾸 그쪽으로 가느냐는 식의 조언은 바람직하지 않죠. 우리나라 풍토가 갖고 있는 한계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과정 속에서 오히려 단련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91년까지 몸담았던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전속작가가 될 때는 또 그와 반대되는 혹평이 있지 않았나요. "그랬죠. 상업작가로 변신한다고. 민중작가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대학교수직을 그만둘 때 갈등은 없으셨는지, 왜 그 길을 택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은 대학교수를 하면서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갈등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구요. 그런데 그때 상황이 참 어려웠어요. 당시 제가 교수협의회장을 맡아야 했습니다. 재단과의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올인할 수 없는 제 환경이었고요.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스스로 계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으로 살래 아니면 교수로 살래, 이런 양자택일의 경계에 나 스스로를 내놓고 선택했지요." -그럼에도 정작 개인적인 그림을 그리는 대신 거리로 나오셨는데, 지금은 보편적인 예술행위가 되었지만 아이엠에프 직후 인사동과 여의도에서 벌였던 '당신도 예술가' 프로젝트는 획기적인 예술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아이엠에프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예술 활동으로 위로하고 함께 놀고 싶었습니다. 예술의 가치가 특권층의 고급문화로만 놓여있던 환경에서는 예술이 대중들을 소외시키고 동시에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게 되죠. 그런데 직접 대중들을 찾아가 그림을 갖고 놀자고 하니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거리미술제니 찾아가는 미술이니 체험미술이니 하는 모든 양식의 출발지점이라고 할 수 있죠."-정치에도 관심이 많으시죠. 지난 지방선거때는 젊은 세대들의 투표독려를 위한 인증샷 운동에 나서기도 했었는데요. 혹시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에 부담은 없습니까. "그런 것에는 신경 안 씁니다. 정치와 문화 사회 경제 이런 것들은 우리 삶을 규정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경계를 구분하고 살 수 있는지 궁금해요. 우리 삶의 근간이 그들 영역에서 나오는데. 저는 정치는 못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활동은 제가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총선때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던 역할을 할 겁니다. 한 인간으로서 주어진 허락된 정치 행위를 한다는 의미죠." -이 작업 이후의 프로젝트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이제 시작한 도시농업 운동을 열심히 해나갈겁니다. 협동조합이 중심이고 더 재미있는 예술적 행위도 더해질겁니다. 그리고 문자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계문자축제죠.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는 매우 중요합니다. 문자에 의해서 문화가 구분될 정도로 문자의 가치는 큽니다. 활자 시대에서는 문자가 모든 것을 지배했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죠. 요즈음은 문자가 새로운 도전을 받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한글을 만든 나라로서 문자에 주목하고 문자를 바라보는 크고 넓은 시각을 우리가 먼저 만들어낼 필요가 있겠다는 의지를 모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한국문화가 케이팝으로 대표되고 있는데 문화소비의 부분에서는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문화의 전반을 고민하는 국가로 인식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문자나 활자 출판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는 전주도 문자축제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문자축제는 문화를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도입니다. 세계의 사라져가는 문자 사라진 문자, 더 나아가서는 문자 이전의 문자, 그리고 앞으로의 문자의 운명과 세계가 어떻게 만나고 무엇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이런 큰 틀을 고민하는 자리죠. 우선은 서울을 세계 문자의 허브도시로 만드는 것이 목표인데 전주를 비롯한 도시들과 연대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기회를 만들어보면 좋겠군요."

  • 기획
  • 김은정
  • 2012.07.10 23:02

25. '가훈 할아버지'청곡 임만주 선생 - 붓글씨로 전하는 가정의 소중함

청곡 임만주 선생(72)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훈 할아버지'로 통한다. 명절과 비오는 날을 제외하면 1년 365일(명절 제외) 전주 한옥마을 은행로 사거리로 가방 꾸러미를 들고 출근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썼던 관(冠)'정자관'(程子冠)을 쓰고 한복에 하얀 고무신까지 차려입은 모습이 꼭 서당 훈장 같다. 지난 7일 오후 1시, 선생은 어김없이 한옥마을로 나왔다. 무더위에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글로 더위를 이겨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간 써왔던 작품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행차했다. 비치파라솔 세운 뒤 뒤에 쳐둔 빨랫줄에 그간 써온 작품을 걸고, 글씨 쓰는 데 필요한 벼루먹화선지붓 등과 함께 열 댓가지 가훈(家訓) 샘플을 내놓는다."전주가 전통문화중심도시라고 하는데, 한옥마을에 전통적인 게 별로 없잖아. 어떻게 알고 전주시가 아트마켓 작가로 나를 선정했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매일 나오는 거여."다른 작가들은 관람객들이 북적이는 주말에만 나오는 반면, 선생은 날씨만 좋으면 무조건 나온다. 물론 요즘 같은 성수기를 제외하면 평일엔 파리 날리는 일이 다반사. 그렇다 해도 이곳에 나와 매일 글씨를 쓴다. 한 달에 먹을 세 개나 쓸 정도로 쉼 없이 매진 중. "아버지가 서당 훈장이셨거든. 7살 때 서예를 배웠지. 근데 평생 돈도 안 되는 글씨만 쓴다고 마누라나 새끼들이 안 좋아했어. 그래도 나이 들고 보니, 서예야말로 나를 살린 일이 아닌가 싶어." 스승 없이 글을 혼자 깨치다 보니 세간의 관심은 받지 못했으나, 평생 사명감을 갖고 해온 일. 지난해 한옥마을에 나오면서부터 작업이 더 즐거워졌다. 작업실에 갇힌 작가들이 대중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서예의 대중화에 한계를 보였지만, 작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가훈 써주기를 오히려 열심히 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보람도 느끼게 된 것. 선생은 "고고한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어려운 서예 대신 한글을 병용하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특히 가정이 붕괴되는 현대사회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깨치도록 하는 가훈 써주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개가 부귀영화, 소원 성취하는 문구를 써달라고 해. 결국 건강하고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건데 서로 너무 비슷하잖아. 그래서 샘플을 만들었지. 많이 추천해주는 건 '기산심해(氣山心海). 기운은 산과 같이 높고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어지라는 거지. 부모부부자식하고 맨날 다투면 쓰겠어? 이 글씨 써주면 다 좋아해." 이처럼 선생을 신기하게 보는 외국인 혹은 관광객들이 가훈을 써달라고 오면, 만원을 받는다. '공짜'로 해주면, 귀한 줄 모르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기분이 내키면 무료로 써주고, 전주예총의 전주예술상 시상식처럼 문화예술계 공을 세운 이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선뜻 내주기도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작업하는 이들에 대한 이신전심(以心傳心) 때문이다. 창암 이삼만 선생 추모 전국 서화대전 입선특선, 전국 서화 백일장 대상전 20여 차례 특선 등 수십여 차례 수상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도전을 멈출 줄 모른다.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지론 덕분에 초서에 있어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서다.

  • 기획
  • 이화정
  • 2012.07.09 23:02

윤재호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장 "지역업체 입찰기회 확보, 대기업 물량 독식 막겠다"

제25대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장으로 선출된 윤재호 회장(62(주)삼부종합건설 대표이사)이 10일 취임식을 갖고 전북지역 건설업계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한다.86년 건설업계에 뛰어들어 92년 (유)은하건설을 창립한 이래 다양한 사회활동과 함께 지역건설업 중흥을 위해 발로 뛰어온 윤회장을 만나 침체돼 있는 지역 건설업계의 회생방안과 협회 운영계획을 들어봤다.-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았는데, 취임소감은?△먼저 저를 회장으로 추대해 주신 전라북도회 회원 여러분을 비롯해 건설인 선후배님, 그리고 항상 건설업 발전에 관심을 가져 주시는 전북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대한건설협회는 건설산업기본법 제50조에 의거, 설립된 법정단체로서 1945년 조선토건협회로 발족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단체이다. 회장으로 당선된 기쁨보다는 침체된 위기의 건설산업을 극복하기 위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협회의 존립목적인 회원의 권익증진과 건설산업의 발전, 특히 회원이 동참하는 협회로 더욱 발전시키고, 도민과 함께하는 건설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3년 임기 동안 중점을 두고 추진할 사항은?△최우선적으로 지역 건설업체 물량 확보에 주력하겠다. 대형공사를 대형업체가 독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입낙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자금능력과 인적관계가 탄탄한 대형업체와는 달리 턴키공사나 대안입찰, 그리고 최저가 입찰에 중소건설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한계와 제약이 너무 많다. 따라서 중소건설업체의 시공물량과 입찰 참여 기회가 확보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개선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이와함께 공사비 수익성 확보에 주력하겠다. 정부는 예산절감 등의 이유로 실적공사비제도 확대와 원가심사제도 등을 활용해 낮은 단가로 공사를 발주하고 있어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특히 실적공사비 제도는 공공부문의 공사비 산정에 있어 이미 수행한 건설공사의 계약단가를 활용해 예정가격을 산정하는 것으로 2004년에 도입됐지만, 낙찰률이 반영된 실적단가가 수집자료로 쓰이는 한 지속적으로 하락할 수 밖에 없는 계단식 구조의 문제점 때문에 건설업체 적자수주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적정한 건설공사의 원가가 확보됨으로 견실한 시공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또 회원에 대한 유대강화와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 회원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골프, 등산모임 등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통한 회원 간 원활한 정보교류, 그리고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겠다. 또한 대표자 경영연수와 각종 건설관련 법령 등의 세미나와 설명회를 적극 유치해 건설업에 관련된 지식을 습득해 경영에 활용할 수 있도록 회원 지원업무를 강화하겠다.건설업의 사회적인 책임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건설산업이 지역사회에 함께할 수 있도록 협회를 중심으로 불우이웃돕기, 장학사업, 문화사업 등 나눔사업을 추진하고 재해복구사업등의 지원사업에 적극 동참해 도민과 함께하는 건설협회가 되도록 다각적인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겠다.-도내 건설경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역 건설산업을 육성을 위한 대책과 바람은?△그렇다. 국제적인 금융위기와 유럽발 경기침체 등으로 국내 건설경기도 위축돼 있다. 현재 국내 건설환경은 민간 건설경기 위축과 더불어 공공공사 물량 감소 등으로 건설업은 그 어느 시기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2011년도에 도내에서 발주된 전국공개 입찰건수는 28건으로 약 1조 4천억이 발주됐으나 이중 도내 수주액은 2천억원으로 전체 수주액의 14%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반대로 외지 대형 건설업체가 86%인 1조 2천억원의 지역 건설물량을 수주해 도내 자금의 역외유출이 심각한 실정이다. 도내업체가 지역 건설물량을 확보할 경우 일자리 창출, 그리고 도내에서 생산되는 자재 및 인력 등의 사용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파급효과가 크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발주관서에서는 대형공사는 사전에 분할 설계해 공구별로 분할 발주해 지역업체에 수주기회를 확보하고, 신규 건설사업 발굴 등의 적극적인 지방 건설업체 육성 지원 정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최근 건설업계의 최대 현안문제인 기재부 적격심사 개선에 대한 문제점과 대응 방안은?△잘알고 있는 바과 같이 최근 정부에서는 최저가 낙찰대상을 300억원이상에서 100억원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국회를 비롯한 국민의 반대 여론으로 확대 계획을 한시적으로 2년간 연장하고 유예기간동안 현행제도를 유지키로 결정했으나. 최근 기획재정부에서는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공사실적, 경력기술자 등 공사수행능력 평가요소를 강화해, 중소업계보다는 대형업체들이 유리한 구조로 300억~100억원 구간의 적격심사제도를 개선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현행 입낙찰제도를 유지해 지역 중소건설업체를 보호하도록 한 국회의 정책 결정 취지에 반하고, 특히 이는 지역 중소건설업체의 수주 영역을 대형 건설업체가 잠식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기재부가 추진중인 개선안은 중소건설업체가 공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실적있는 대형업체에게 종속심화가 불가피하고 대중소업계간 양극화만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중소건설업의 권익과 입찰 참여 기회 확보를 위해 임원단과 전회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 적격심사제 개선에 대한 부당한 이유를 제시해, 동 제도 추진이 중단될 수 있도록 최우선적으로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도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건설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산업이다. 그동안 지역 중소건설업체는 혹독한 IMF를 거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기술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해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각 발주관서에서도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지역 중소건설업을 육성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으로 지역경제 발전을 함께 이뤄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건설산업이 도민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기획
  • 정대섭
  • 2012.07.09 23:02

11. 지역상권·중소상인 육성 조례제정 - "재벌기업, 대형마트 영업제한 정당성 호도하지 마라"

지역 상권과 중소상인의 보호육성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무력화될 위기에 놓였다.지난 6월 22일 서울행정법원은 대형유통업체들이 강동구와 송파구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시간 제한 등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지자체장이 영업제한에 대해 공익에 부합하는지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했다"며 조례제정 및 시행과정이 행정절차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원고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또 지난 6일에도 수원지법, 강릉지원, 창원지법 등에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들이 제기한 같은 내용의 소송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법원 "대형마트 영업제한 정당성필요성 인정"지난 2월 전주시의회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대한 의무휴업일 지정과 영업시간 제한 등의 내용을 강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킨 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조례안 제정이 전국의 지자체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대형마트 등은 곧바로 법적 대응에 나서며 조례안의 취지에 동의하는 시민사회로부터 강력한 항의와 비난을 받아야 했다.당시 대형마트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헌법소원 제기에 대해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의 이창엽 민생사업국장은 "국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과 건강성 회복을 고민하는 시민들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자신들만의 영업이익을 위해 중소상인들의 상생발전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후안무치한 태도"라며 "재벌기업에게 상도덕을 기대하는 것이 한가로운 소리일 수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창엽 국장은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영업제한 조치에 대한 정당성과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데 절차상 문제를 이유로 영업제한이 정지되면서 곧바로 주말 영업을 재개하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도 조례안의 효용성이 없다느니, 소비자 권리를 침해한다느니 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싸움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실제로 현재 영업제한 조례를 제정한 130여개 지자체 중 30여개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영업제한 조치가 정지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례 개정을 통해 행정소송의 빌미가 되었던 부분에 대한 보완을 하면 앞선 재판에서처럼 대형마트가 당장 의무휴업일에도 문을 열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전주시, 조례안 보완개정으로 의무휴업일 유지 서울시도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가 됐던 행정절차법상 조치를 취해 유통산업발전법 조례를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주시의 경우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내려진지 일주일 만인 지난 6월 28일 시의회가 조례안을 보완개정을 의결하면서 문제가 되던 부분을 이미 수정했다.같은 날 중소상인살리기 전북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열고 앞서의 판결이 "지역 중소상인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다시 내모는 것"이라며 비판하면서 "친재벌 성향의 일부 언론이 마치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형마트의 아전인수격인 언론플레이에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중소상인살리기 전북네트워크는 앞으로 "현재의 유통산업발전법이 정한 하나로클럽과 백화점 내 대형마트 등의 예외조항의 철폐와 중소기업적합업종 대기업 진입금지, 품목제한, 그리고 대형마트 입점 허가제 등을 포함하는 법률개정을 요구하는 '중소상인살리기 제2차 법률개정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회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3일 아예 의무휴업일을 매주 일요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박우성 NGO시민기자(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투명사회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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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2.07.09 23:02

이현송 전주식자재연합회 회장 "대기업이 유통까지 잠식하는 건 중소도매업체 텃밭 빼앗는 처사"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운동과정에서 가장 절박한 심정으로 지역상권의 생존권을 호소하는 전주식자재연합회 이현송 회장(50)은 요즘 입맛이 쓰다. 중소기업청의 권고 명령으로 청정원으로 잘 알려진 (주)대상의 입점을 유예시키기는 했지만 거대기업의 막강한 물량공세를 버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제조만 하던 대기업들이 유통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10~20년 물건 팔아주며 시장을 일궈온 중소도매업체의 텃밭을 힘으로 빼앗겠다는 겁니다. 회원들을 동원해서 납품저지, 구매저지 등 최대한 막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버틸 힘이 없어요. 과연 얼마나 버티겠냐 이거죠" -올 2월에 창립한 것으로 들었다. 현재 활동 내용과 규모는.△회원으로 가입한 업체는 60여개 정도다. 전주식자재연합회에서 진행되는 일을 공지하고 협조를 받는 업체는 150여개다. 대부분의 회원이 직접 납품을 뛰는 소규모 업체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당장의 생존이 걸린 문제니 여러 회원들이 참여를 많이 해주고 있다.-대상과 같은 업체가 식자재 유통시장까지 장악하게 되면 무엇이 문제인가.△이미 직접 영업을 시작했다. 일단 자금 여유가 있으니 전단지 돌리고 문자 날리면서 대리점 공가 이하로 판매를 하는 건데, 그럼 우리 같은 도매업자들은 바로 문을 닫으라는 얘기다. 본래 대기업 제조업체가 폭리를 많이 취하고 있는데 유통을 직접 하면서 지역에서 건강하게 뿌리내린 소규모 제조업체까지 설 땅을 빼앗을 것이다. 그럼 대기업끼리 완전히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다른 지역의 현황은 어떤지.△대전 같은 경우가 다 뚫려버린 곳이다. 벌써 매출이 40~50% 감소했고 통계는 못봤지만 문을 닫은 곳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그 쪽은 급식하는 학교의 영양사나 교장에게 청정원 물건 불매 운동 같은 것을 펼치며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앞으로의 전망과 입장은.△대형마트 영업제한 시민운동이 전개될 때도 개인이다 보니 동참을 못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문제는 정치적으로 막아줘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지역 상권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정치권에 압력을 가해야 하는 거다. 이 정부가 서민들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대기업만을 위해서 정책을 펼치는 것을 보면 분노를 넘어서 절망감까지 든다. /박우성 NGO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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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2.07.09 23:02

김제 동령마을 느티나무 - 600년 세월 넉넉한 품으로 마을지켜

김제시내에서 금산사 방면으로 약 10여분(차량) 가다보면 봉남면사무소를 지나 제방이 나오는데 우측방향으로 약 5분정도(차량)가게 되면 천연기념물 제280호인 느티나무가 웅장하게 서 있다.천연기념물 제280호인 김제 행촌 동령마을 느티나무는 높이 15m·흉고둘레 8.8m, 수령은 약 600년쯤으로 추정되며, 지난 1982년 11월4일 천연기념물보호수로 지정됐다.행촌 동령마을 느티나무는 김제시 봉남면 행촌리 동령마을 북쪽 끝에 자리 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의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서 조상들과 애환을 함께 해온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와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가치도 높다.수령이 마을의 역사보다 오래됐다고 전해져 처음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이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호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느티나무와 관련,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느티나무가 잎을 푸르고 넓게 피우면 그해에 풍년이 들고, 잎 모양이 좋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또한 느티나무 옆에 약 30㎝정도의 칠성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여러개 있었는데 그 바위 높이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마을에 역적이 태어날 뻔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마을사람들은 느티나무를 당산나무라고 부르며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으로 취급 하며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느티나무에 동아줄을 감아 놓고 평안과 소원성취를 비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으며, 정월보름날이면 나무줄기에 동아줄을 매어 놓고 모든 사람들이 모여 줄다리기를 하며 마을의 행운을 비는 습속이 있다.백덕규 김제시 학예연구사는 "김제에서 당산나무에 대해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면서 "당산제는 매년 음역 1월3일 오시(午時)에 행촌리 동령마을 북쪽 끝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부락제이다"고 말했다.동령마을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노거수(老巨樹)로서, 수령 못지 않게 크기도 웅대하여 높이는 15m, 둘레는 지면으로 부터 1m높이에서 10m정도 되며,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 또한 425㎡나 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느티나무 북서쪽 가지는 몇 년 전에 어린이의 불장난으로 불타고 없어져 아쉬움을 주고 있다.백덕규 학예연구사는 "지난 1982년 11월4일 천연기념물 제280호로 지정된 행촌 동령마을 느티나무는 현재 김제시가 관리 하고 있으며, 관리면적은 4569㎡정도 된다"면서 "느티나무 옆에 익산대(益山坮)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근래에는 반월대(半月坮)로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행촌 동령마을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서 " 느티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홍주수·정자나무·귀목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시베리아, 일본 등지에서 자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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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대우
  • 2012.07.05 23:02

10. 산·학·관·연 좌담회 - "이제 공장 짓는데, 샴페인 먼저 터뜨리면 안 된다"

'21세기 산업의 쌀'로 일컬어지는 탄소섬유를 놓고 국내 시장의 각축전이 뜨겁다. 세계 최대 탄소섬유 회사인 일본의 도레이가 구미에 공장을 짓고 화재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기는 했지만 태광산업은 울산에서 이미 탄소섬유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주)효성도 전주의 친환경첨단복합산업단지에서 탄소섬유 양산공장 신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국내 탄소업계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로 국내기업과 국제기업의 경쟁 구도에 따른 파장도 예상된다.다변화될 국내 생산체계를 앞두고 탄소산업의 메카를 지향하는 전주시에 둥지를 튼 탄소 업체와 인력양성을 담당하는 대학, 기술개발을 선도하는 전주기계탄소기술원(JMC) 관계자, 담당 공무원과 탄소산업에 대한 애로와 문제를 짚어봤다. 지난 달 26일 전주 국제탄소연구소 3층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항공기 탄소 브레이크를 생산하는 (주)데크의 박종현 전무이사, 전주대 곽이구 탄소나노부품소재공학과 교수, 안계혁 JMC 연구개발본부장, 국내에서 유일하게 '탄소산업과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전주시청 최락휘 과장이 참여했다.△ 사회: 전주의 효성과 경쟁할 일본 도레이사의 구미 탄소섬유 생산기지 조성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이 있을텐데요.△ 박종현 (주)데크 전무이사: 구미 쪽에서는 일본 도레이가 AMC(Advanced Material Technical Center)를 만들어서 현재 국내의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관련업체 전문가 클러스터'라는 명목으로 데크를 방문하고 우리 요청을 받아서 지원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도레이의 경우 굉장히 어플리케이션이나 서플라이 체인하는 업체들과의 유대관계가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기술도 전수해주며 자기들의 기술을 많이 오픈하고 있습니다.반면 전주에 공장을 짓는 효성은 굉장히 폐쇄적입니다. 그런면에서 탄소산업과 관련된 업체들과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뭔가 어플리케이션 제품화하는 그런 것들이 효성 주관이 됐든 전주시 주관이 됐든 이런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효성에는 화가 좀 납니다. 도레이사에서는 어제도 왔다갔거든요. "도와주셔야 합니다. 기술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면서 같이 합시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다니고 기술 다 보여주는데. 효성은 숨기면서 말을 안 합니다.△ 사회: 박 전무의 지적에 대한 전주시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최락휘 전주시 탄소산업과장: 도레이는 이미 40년전부터 시작해 온 기업이고 그 축적된 기술력과 자신감으로 그렇게 공격적으로 서플라이 체인을 구성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효성은 기술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몰라도 특히 어플리케이션 쪽은 아직 내놓을 게 못되는 것 상태로 압니다. 따라서 효성은 우선 탄소섬유부터 만들어놓고 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유가 내년에 생산되면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도 힘을 쏟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박 전무: 그렇게 말을 하고 중국에 투자하는거 아닌가요? 이러다가는 효성은 '자기만의 리그'가 될 것 같다는 거죠. 전북의 탄소밸리 사업도 우리가 사업은 땄지만 타 지역 대기업에서 다 개발하는 거잖아요. 전주에 뭐가 남게 됩니까? 이것을 받을만한 인프라가 없는 거죠. △ 최 과장: 그런 내용 때문에 효성하고 대화할 때 1조 2000억원의 투자는 물론이고 회사와 함께하는 조인트 업체를 10~15개쯤 동반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서류로 작성한 바 없지만 구조적으로는 약속이 돼 있는 상황입니다. 효성의 조직구성이 현재는 탄소섬유 개발쪽에 중심이 돼 있는거 같아요. 도레이보다는 마케팅이나 어플리케이션쪽은 좀 약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회: 곽 교수님, 탄소산업과 관련 전문 인력 양성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곽이구 전주대 탄소나노부품소재공학과 교수: 전주대학교 같은 경우에는 탄소산업 분야 인재육성에 두 가지 트랙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탄소나노 부품소재공학과로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하는 중소기업형 계약학과입니다. 석사과정으로서 중기청에서 70% 정도 지원해주고 나머지 30%를 개인과 회사가 같이 부담해서 운영하며 학생들 모두 현재 전라북도내 회사에서 재직하는 재직 사원입니다.참여 회사도 한 50개 정도 됩니다. 1기2기3기가 운영되고 있고, 탄소산업 업체는 물론 자동차기계건자재 업체 등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에 1기생 20명이 처음으로 배출됩니다.두 번째 트랙은 전북도와 시군이 힘을 합쳐 추진하는 취업 연계형 인력양성사업이 있습니다. 풀타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석사과정이죠. 이 사업은 도시는 물론 11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고, JMC자동차기술원KIST 등 연구기관이 3개 입니다. 나머지는 데크AFC한국몰드비나텍한국 ACMTOP 등 8개의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와 도에서 90%를 지원하고 10%는 회사에서 부담하고 학생들에게는 전혀 부담이 없는 과정으로 학생들은 취업이 연계된 기업에서 2년간 일해야 됩니다.△ 사회: 교수님 입장에서는 아쉽거나 지원이 더 필요한 부분은 없나요?△ 곽 교수: 가장 아쉬운 것은 장비적인 측면입니다. 물론 탄소기술원에 장비들이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생산 장비와 교육장비는 다르거든요. 항상 우리가 교육 장비를 구입하고자 하면 걸림돌이 많아요. 바로 말하면 다른 기관과의 중복성이죠. "이 장비 어느 기관에 있지 않냐, 그런데 왜 사려고 하느냐" 며 지적합니다. 엄연히 생산 장비와 교육장비는 다른 건데 그런 장비의 구축적인 측면에서는 중기청 사업이나 취업연계형 사업도 해당이 되질 않습니다.1년 해봐야 장비구축비는 2000만~3000만 원 정도인데 3년 치를 다 모아도 작은거 하나 살까 말까 하는 수준이죠.특히 효성이 참여를 했으면 좋겠어요. 효성이 대학의 인력양성 사업에 참여해서 인력도 키워달라고 요구하면 참 좋겠는데 대기업 뚫기가 만만치가 않아요. 실무자가 어느 정도 얘길 해놓아도 결재 올라가다가 소멸돼 버려요. △ 사회: 국내 다른 대기업의 탄소섬유 진입에 대한 전망도 있습니까.△ 최 과장: 소문에 의하면 삼성이 탄소산업에 끼어들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삼성은 세계일류를 지향하기 때문에, 연구에만 10년간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10년을 R&D만 하겠다, 그래서 세계 일류 기술로 글로벌 넘버원을 만들면 도레이사를 이길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성 같은 대기업은 자본력이 있기 때문에 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그게 참 힘듭니다. 아직 시장이 열리지도 않았고, 특히 유럽 쪽 경제 한파로 인해 풍력발전기나 태양광 사업의 투자가 줄어드는데 업체입장에서 이때 연구비나 시설비에 투자할 수는 정말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 위기가 기회라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전주기계탄소기술원 연구개발 분야를 지휘하는 안 본부장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안계혁 연구개발본부장: 인력양성하고 관련이 있는데요. R&D 입장에서 보면 연구소에서 채용할 만한 인력들이 국내에 사실 많이 없습니다. 외국에서도 탄소만 전문화돼 있는 그런 데가 많이 없거든요. 효성이나 이런 곳은 고급 인력들이 잘 있겠지만 그런 인력들은 또 너무 R&D에만 치중돼 있다보니까 실제로 업체에서 원하는 실용화 되는 기술들이 아니라 원천 기술 쪽으로 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우리 기술원의 경우도 실용화 기술을 가진 인력이 더욱 필요하고 탄소밸리 사업을 추진하거나 기업체와 협력사업을 할 때도 그러한 실용화 연구를 한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 사회: '효성의 탄소공장 착공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일이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최 과장: 전주시가 탄소사업을 시작한지 내년이면 10년이 되는데 금액을 보니까 1200억원 정도를 투자했습니다. 이제 기초를 다지고 지금부터는 집을 짓고 안에 살림을 집어넣기 시작해야 하는데 일부에서는 이미 끝난 일처럼 샴페인을 터뜨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효성 들어오니까 다 한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주시가 탄소산업 전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탄소섬유 부분하고 C&T 부분 쪽, 그걸 이용하는 어플리케이션, 복합재 부분 쪽을 중심적으로 해야 합니다.이 같은 일을 기초자치단체인 전주시 자체에만 맡기는 게 참 아쉽습니다. 탄소밸리사업만 해도 총액이 1992억원인데 그 중 국비가 1080억원이거든요. 매년 200억 수준은 지원돼야 할 텐데 아직도 정부는 50억원 주다가 120억원 줬다가 117억원 줬다가 이러고 있으니 정말 힘이 듭니다. 지역에서 시작해서 중앙정책으로 선정된 사업은 전주의 탄소산업이 유일하다 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중앙부처에서 늦게나마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이 국내를 3개 권역으로 나눠 추진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노력이나 노하우를 볼 때 우리지역에 집중해 주고, 또한 그것을 위해서 지방의 여론이 하나로 결집돼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 기획
  • 김성중
  • 2012.07.04 23:02

9. 아름다운 자연 간직한 장수군 - 숲·계곡서 오붓한 시간…말 타면서 색다른 경험

이글거리는 태양, 무더위에 지친 여름, 자연의 시원함과 편안함이 공존하는 장수로 가보자. 장수군은 평균 해발 430m 이상의 산간고원의 청정지역으로 태고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울창한 숲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맑디맑은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글라치면 뼈 속까지 스며드는 시원함이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줄 것이다. 올 여름엔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장수에서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대자연에서 승마를 즐기며 무더위를 벗어나보자.전국 8대 종산에 속하는 장안산 기슭에 조성되어 있는 방화동 가족휴가촌은 장안산 계곡과 덕산 용소로 이어져 있으며 울창한 수림과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룬 천혜의 자연 관광지다. 지형적으로 해발 500m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 기온이 낮고 1000m가 넘는 큰 산들로 둘러싸인 전국 최초의 국민가족휴양지인 방화동 가족휴가촌내에는 물놀이장과 오토캠핑장, 여울목, 산림문화휴양관 등 자연학습장과 모험놀이장, 삼림욕장, 숲속의 집 등 산림체험시설 등이 들어서 있어 사계절 찾고 싶은 가족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깨끗한 계곡을 따라 기암절벽과 다양한 수목 등이 펼쳐져 있으며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주말 또는 단기 체류형으로 선호하는 매력적인 휴양지로 산림청이 선정하는 아름다운 임도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오토캠핑장은 전국 캠핑족 및 트레킹마니아 사이에서 최고의 캠핑장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방화폭포와 방화동 계곡은 주변자연수림과 길게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 어우러져 천혜의 경관을 이루고 있다. 장수군 번암면 사암리 625번지.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에 위치한 와룡휴양림은 계곡상봉(시루봉)인 오계치와 연결돼 어채형(홍어)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오계치 남릉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 삼거리 이정표 앞에서 동쪽 휴양림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진안 선각산과 덕태산, 장수의 장안산 등이 훤히 보이며 1시간 남짓 걷다보면 휴양림 언저리에 이른다. 와룡자연휴양림은 지난 1991년에 산림청으로부터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된 삼림휴양공원으로 삼림욕과 자연관찰, 학습탐방, 단체 수련 등 심신을 단련시키는 수련장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연수의 집, 복합 산막, 숲속의 집 등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여름이면 물썰매장, 야외수영장과 천연물놀이장 등을 개장해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으며 자연학습장과 체련단련장, 야외무대 등의 시설이 갖춰져 가족단위, 단체객 모두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안겨주는 숲속 휴양공간이자 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장수군 천천면 비룡리 산84-2번지. 지난 2010년에 문을 연 장수 승마체험장은 면적 3만1361㎡에 관리사와 마방, 실외마장, 희귀말 전시장, 방문자 쉼터, 외승코스, 말 방목장, 트로이 목마 등이 들어서 있으며 체험마 등 21두를 마필을 보유하고 있다. 승마체험장내에는 희귀말 전시장을 마련하고 미니어처 3두, 조랑말 1두, 당나귀 2두를 전시, 승마체험과 즐기기 위해 연간 7000여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등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날씨에 관계없이 사계절 승마를 즐길 수 있도록 실외마장에 비가림 시설을 설치하고 승마체험객과 방문객들의 다양한 볼거리 제공을 위해 승마체험장과 장수읍 전경을 내다볼 수 있는 트로이 목마를 개방했다. 장수군 장수읍 노하리 284-14. 논개 생가지는 1574년 9월 3일 4갑술의 특이한 사주를 타고난 논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대곡리 주촌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1986년 대곡저수지를 만들면서 마을 전체가 수몰되자 저수지 근처에 생가만 복원해 두었다가 1996년부터 2000년에 걸쳐 조성한 현재의 위치에 새로 복원했다. 현재 이곳에는 생가뿐 아니라 논개 기념관, 단아정, 의랑루 등의 건물과 주논개비, 최경회비, 주논개 부모묘 등이 있고 민속놀이마당과 관리사, 판매점도 조성되어 있다. 특히 논개생가마을로 알려진 주촌마을은 초가와 물레방아, 디딜방아 등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간직한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산유화, 국화네, 흙까비네, 복지관, 전통주막집 등 흙으로 만든 전통가옥의 숙박시설을 조성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 이곳에선 장수사과를 비롯해 태양초 고추, 오미자, 산야초 효소, 오미자 천연비누, 호박고구마, 논개향 향주머니 등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꾸고 만든 농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709번지.

  • 기획
  • 정익수
  • 2012.07.03 23:02

DJ권유로 정치 입문… 대선 실패 후 현장에서 길찾아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전북인과 진보진영에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5년 전 여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으나 530만 표라는 엄청난 차이로 낙선한 것이다. 몽골기병처럼 파죽지세로 치닫던 그의 정치역정도 이 때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밑바닥에서 부터 다시 시작했다. 미국 금융위기와 용산참사가 계기였다. 땅 위에서 몸으로 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고통과 단련의 터널을 지나 다시 한번 우뚝 설지 관심이다. 그는 순창군 구림면에서 1953년 7월 27일, 9형제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형 4명이 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장남이 되었다. 전주로 옮겨 전주초등학교와 북중, 전주고를 다녔다. 도의원이던 선친은 고교시절 돌아가셨다.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으나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돼 강제징집을 당했다. 그가 수감되자 어머니는 가족을 데리고 상경, 셋방에서 재봉틀로 생계를 이었다. 출소 후 정 고문은 새벽이면 아동복 바지를 보따리에 싸들고 청계천 평화시장으로 나갔다. 대학 졸업 후 전주에서 음악교사를 하던 민혜경씨를 '납치'해 결혼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1978년 MBC 보도국 정치부 기자로 발을 디딘 후 승승장구했다. 미국 LA 특파원과 뉴스데스크 앵커를 지냈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권유로 전주 덕진에서 출마, 15대와 16대 연속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었다. 이어 40개월 동안 명 대변인과 최연소 최고위원에 올랐다. 그가 정치인으로 일대 도약한 것은 2000년 민주당 쇄신파동을 거치면서다. 당시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동교동 실세였던 권노갑 고문의 2선 후퇴를 요구한 것이다. 이후 경선지킴이로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고, 두번에 걸쳐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다. 통일부 장관 겸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냈으며 2007년 집권여당의 17개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본선에서 이명박 후보에 고배를 마셨다. 18대 총선에서는 서울 동작을에 나와 떨어졌으나 2009년 전주 덕진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되었다. 19대 총선에서 당의 권유로 서울 강남 을에 나가 다시 떨어지는 아픔을 맛봤다. 가족은 부인과 미국 스탠포드대를 나온 장남 욱진, 연세대에 재학 중인 차남 현중 등 아들 2명이 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2.07.03 23:02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돈에서 사람으로 시대정신 전환… 국가 운영 바꿔야"

싹 바뀌었다. 삶을 리셋하듯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자 초년병 시절처럼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용산 참사 현장이며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제주 강정마을 등에 그가 있었다. 서민들이 눈물 흘리는 낮은 곳에 함께 했다. 그런 과정에서 멱살잡이 등 수모도 겪었다. 그런 세월이 벌써 3년을 넘었다. 누구는 또 대선에 나가기 위해 쇼를 한다고 했다. 또 누구는 새로운 정치 모델이라 했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이르는 얘기다. 비록 각종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지만 시대를 읽는 눈은 더 밝아졌다. 깊은 성찰과 연마로 콘텐츠도 탄탄해진 느낌이다. 그런 그가 앞으로 역경을 딛고 어떤 그림을 그릴지 자못 궁금했다. 인터뷰는 국회도서관 514호실에서 진행되었다.- 안녕하세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정치개혁모임에 참석해 정견을 밝혔는데 이번 대선에 나오기로 결심은 섰습니까?"지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전북 도민들에게 인사부터 하시겠습니까?"전북, 호남은 제 어머니죠. 제가 몇 년 전에 출마할 때도 슬로건으로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를 걸어 놨는데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는 거죠. 저는 이 땅의 아들입니다. 이 땅이라는 게 무슨 땅이냐, 차별과 소외, 그리고 민주주의와 민족의식의 고향이죠. 전주를 갈 때나, 생각하면 마음이 싸해요. 짠해요. 아들로서 아들 노릇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아들이 객지에 나가서 돈도 벌고 출세도 해야 부모가 기(氣)가 서고 그러는데 아들이 출세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그러나 또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힘의 원천이고 정신의 뿌리고, 자존심의 뿌리고 그렇죠."- 최근 '정동영, 대한민국을 선도하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 동안의 정치행보와 비전을 선보였습니다. 2009년부터 지난 5월말까지 정 고문님의 이슈별 정치적 주장과 실천적 행보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놨던데요?"인터넷 칼럼니스트가 재능 기부한 거예요. 3000페이지가 돼요. 국회연설, 동영상, 인터뷰 등을 정리한 거죠. 서문과 8개 분야로 돼 있죠.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3년 동안 여기에 집중했다는 거죠. 그 결과물이 민주당의 강령에 담겼다는 것이고, 그것은 당을 제 활동을 통해 이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는 것이고, 반면에 안타까움은 올해 들어서 이것이 실종됐다는 것이죠. 이게 지금 펄펄 살아서 뛰는 의제여야 하는데 다 실종되고, 종북논란이니 이박담합이니 뭐 요새 엉뚱한 곳으로 가 있는 거죠."(이 말을 하며 정 고문은 태블릿 PC에서 경향신문에 난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칼럼 '민주당내 두 개의 진보노선'을 보여주었다.) - 3년 전 용산참사 때부터 변하신건가요? "그러니까 2007년 대선에 임했을 당시는 중도노선이라고 봐야죠. 2008년에 미국 금융위기, 2009년에 용산참사를 겪으면서 근본적 성찰, 담대한 변화, 그리고 전주 출마해 원내에 들어와서 18대 국회 3년 동안 한 기록이죠. 전주에서 당선되고 올라와서 국회선서하면서 '용산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게 정치다'고 했죠. 그것이 정동영의 길이면서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이다 한 거죠. 그런데 당이 이 길에 대한 신념과 확신이 없는 거에요. 당이 뒷걸음치고, 자신감이 없는 거에요."-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이 휩쓸줄 알았다가, 너무 죄클릭하다 실패한 거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정 고문님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거기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에, FTA든 재벌개혁이든, 복지문제든 신념을 가지고 임했어야 지지를 받았을 거 아녜요? 그런데 의제는 다 실종되고 민간인 사찰 하나 가지고 그러니 공허했죠. 2010년 지방선거는 의제가 있었고 2012년 4월 총선은 의제가 실종됐고, 2012년 12월이 되면 다시 의제를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내 생각이고, 진보진영의 지식인들 생각이죠."- 그러면 지금의 시대정신을 한 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한 마디로 하면 '돈에서 사람으로'죠"- 아, 멋진데요."지난 30년 동안 돈과 시장에서 사람으로, 경쟁에서 행복으로 시대정신이 전환된 거죠. 경쟁이 목표가 될 수 없죠. 행복이 목표야죠. 요새 성장담론을, 우리가 성장도 얘기해야 된다고 말하잖아요. 성장이 나쁜 게 아니고 좋은 거죠. 그런데 성장이 목표가 돼서는 안돼요, 결과지. MB(이명박 대통령)는 성장을 목표로 걸었잖아요. 7% 성장하겠다, 그걸 따라가겠다는 건데.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남북 평화… 이 결과로 성장이 이루어지면 추구하는 거지. 성장을 목표로 내거는 것은 철학의 빈곤이죠. 시대정신을 꿰뚫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어쨌든 문재인, 손학규씨 등은 성장을 얘기하면서 좌에서 중도로 가고, 박근혜씨도 우에서 중도쪽으로 가고, 그러다 보니 여야가 따로 없는 것 같애요. "사회를 잘못 읽고 있는데, 단봉사회가 아니고 낙타처럼 쌍봉사회에요.(정 고문은 이 대목에서 그림을 직접 그려주며 설명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되다 보니까 가운데가 푹 파져버리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방향을 택하는 거에요. 확실하게 이걸 정해야 1 대 1 대결이 되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개별사안에 대해서 정책으로 말해야죠."- 정치개혁모임에서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30만 원 올린 것, 재벌들이 골목 빵집을 점령해 가는 것을 예로 들었던데요?"그런 것에서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거죠. 오늘 아침 신문에 인천에서 69세 노인 부부가 자살한 것 보셨겠지만, 한 달 노인연금 15만 원이 수입의 전부입니다. 통장잔고가 3000원이죠.(태블릿PC로 기사를 보여주면서) 그게 그 분 한 사람 얘기가 아니라,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 550만 명의 45%가 절대빈곤선에 있어요. 의식주가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그 결과가 나타난 게 노인자살률 세계 최고입니다. 그러면 국가적 과제가 어떤 게 시급한가, 민주당이 어떤 것부터 손대야 하는가. 1번이 노인연금, 2번이 아동수당, 3번이 반값 등록금입니다. 그 다음에 청년층, 그러면 민주당이 여기에다 올인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왜 좌클릭입니까?"- 지난 번 4·11 총선 때, 한미 FTA나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등에 대한 논리가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노무현 정부 때 한 것 아니냐, 왜 그것을 부정하느냐 그러는데 대응을 못하더라고요."반성문이 들어가야 대응이 되는 건데, 반성문을 안 쓰니까. 왜냐면 대통령이나 정부가 잘못할 수 있잖아요. 잘못했으면 잘못을 인정해야죠. 인정하면 대응이 되는데 그걸 인정 안하고 얼버무릴려고 그러니까 역공으로, 적반하장이지, 너희들 말 바꾼 사람들 심판해야 한다고 그러는 거죠."- 지난 3년 동안 몸으로 부딪치면서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을 느끼신것 같은데요?"그렇죠. 현장에 답이 있는 거예요. 여의도는 멀어요. 전주 모래내 장사하는 분들하고 여의도와 무슨 상관있어요. 거기서 괴리가 생기는 거죠. 현장은 지금 가뭄으로 땅바닥이 쫙좍 갈라지고 목이 타는데 여의도 앉아서 시원한 맥주나 마시고 있으면 너무 멀잖아요. 목이 타는 현장에 정치가 있어야죠. 안 그러니까 불신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불신이 뭐로 가요? 투표 안해 버리는 거죠. 그 놈이나 저 놈이나 똑같다 이거죠."- 반성문(2010년 8월 8일 작성)에도 나와 있고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이겠지만, 지난 대선 때 BBK 하나만 가지고 선거 치르니까 국민들 눈에는 그것이 뭔지 잘 모르고…, 그러다가 패배하신 것 아녜요?"사실 관계를 정확히 하면 제가 다른 얘기를 많이 했죠. 열에 아홉은. 그런데 BBK는 안했어야지, 나는. 나도 BBK에 대한 분노와 도덕성의 문제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다른 것은 기억에 안 남죠. 다른 것은 다 실종돼 버리고…"- 호남 쪽에서는 인구가 적어 당분간 집권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그걸 깨야 된다고 봅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때 지역등권론이라고 있었죠. 오죽 했으면 그것이 등장했겠습니까만 그러면 대한민국에서는 특정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만 대통령을 할 수 밖에 없는가, 그 다음에 호남 출신은 아예 피선거권이 없는건가, 그런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치잖아요. 지역구도라는 현실이 있지만 넘어야 할 대상이지, 거기에 복종할 대상이 아니죠. 특히 이번 선거의 중요한 변수는 세대전쟁이라고 봐요. 박원순 시장 선거 때, 30대가 76 대 24의 지지를 했어요. 서울의 30대가 3배 넘게 지지한 거에요. 거기에 전라도가 어디 있고 경상도가 어디 있습니까. 그 20대 30대가 근본적 변화를 원하는 겁니다."- 그럼 앞으로 호남이니 뭐니, 그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겠네요?"2차적인 게 됐죠. 1차적이 것은 세대전쟁입니다. 그리고 이번 총선 투표율 나왔잖아요. 수도권에서 20대 30대가 10% 이상 올라갔어요. 그에 비해서 50대 60대는 2% 올라갔거든요. 거기에 하나 덧붙이는 게 '잉여'라는 말 아세요. 이것이 키워드입니다. 1958년 손창섭 소설가가 '잉여인간'이란 소설을 썼는데, 요즘 20대가 자신들을 잉여라고 불러요. 자학적인 표현이지만 현실이예요. 그런데 이 사회는 자기들이 만든 사회는 아니란 말이죠. 거기에 분노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이 분노를 흡수해야죠." - 통일부장관때 개성공단 착공과 9·19 공동선언 이끌어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B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MB의 정책은 이미 실패했으니까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다음 정부가 할 것을 얘기하죠. 첫째 대륙으로 가는 길을 뚫어야 해요. 그것이 한국경제의 활로입니다. 둘째 개성공단을 확장해야 해요. 20개는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9·19로 돌아가야 해요. 대륙을 뚫으면 청년실업에 대한 전망이 보이는 거고, 개성공단을 확장하면 중소기업의 전망이 보이고, 9·19로 돌아가면 한반도 평화체제가 보입니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 '종북도 안되지만 종북장사도 안된다'고 했는데요. 종북장사라면 뭘 말하는가요?"매카시즘이죠. 낡은, 철 지난 딱지붙이기죠. 용공이다 좌빨이다, 박근혜에 부메랑이 될 거예요."- 노 대통령이 원래 복지부장관을 권했다면서요.'역동적 복지국가'를 주장하는데 DJ정부의 생산적 복지나, 박근혜 대표의 한국형 복지와 다른 점은 뭡니까?"복지와 경제를 결합하자는 거죠. 첫째가 보편적 복지고, 둘째가 적극적 복지, 셋째가 공정한 경제, 넷째가 혁신경제입니다. 예를 들면 OECD 평균이 임금노동자의 4명 중 1명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일해요. 그런데 한국은 8명 중에 1명이예요. 여기서 15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지죠. 여기다 돈을 쓰자는 거죠. 4대강에다 썼더니 녹조밖에 더 생겨요. 그런 것이 복지와 경제를 결합한 역동적 복지죠."- 지난 4월 전주에서 전북고속 노조지부장이 단식농성하는 망루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라북도에 그런 장기 분규사업장이 처음이잖아요. 안타까운 일이죠. 이것은 헌법의 부족입니다. 무슨 얘긴가 하면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돼 있으면 정부는 당연히 이걸 뒷받침해 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정부가 이걸 눌러요. 노조를 자꾸 와해시키려고 해요. 이 정부 들어와서 노조 조직률이 9.7%밖에 안 되잖아요. 사실 정부는 약자를 도와줘야 되는 거예요. 옳고 그른 것, 구체적인 것은 그 다음 문제고. 그게 바뀌면 전북고속 문제 같은 것은 분규가 생길 수 없는 거죠."- 서울에서 농성중인 전주대 청소노동자들도 만났다면서요? "지금 학교 청소하시는 분들 시간당 4500원 받아요. 서울은 5000원 주고. 한 달 90만 원 받거든요. 사람값을 너무 헐하게 치는 거죠. 최소한 150만 원은 돼야 어떻게 좀 살 거 아녜요. 홀어머니 가정이라든지 그걸로 생활하는 가정이 있거든요. 이것을 어쩔 수 없다고 놔두면 안 돼죠."- 한옥마을 만들고 35사단 이전에도 꽤 힘쓰신 걸로 아는데요?"35사단 이전에도 힘을 썼죠. 한옥마을은 김완주 시장 전에 지구 지정이 해제됐어요. (김완주 시장을 공천 받도록 해서) 그걸 다시 묶고 전통문화중시도시로 해서 판소리극장 짓고, 견인차 역할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10년만에 대박이 난 거에요. 또 제가 전주 국회의원이 아니었으면 월드컵경기장도 없었을 겁니다. IMF 금융위기 오니까 97년 12월 초에 광역시 7개로 정부가 발표해 버렸잖아요. 그걸 제가 뒤집은 것 아닙니까.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 때 제가 대변인이니까, 없는 공공사업도 일으켜야 하는데, 일본은 10개인데 우리는 왜 7개입니까. 바꿉시다. 해서 10개로 바꿔서 전주로 온 거죠."- 지난 1월, 지역구(전주 덕진)를 떠났습니다. 그래도 전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변함이 없을 줄 압니다만."에너지 불변의 법칙이죠. 에너지라는 게 전북이 가진 정치적 역량, 총량이 가령 100이라면 그게 어디 가겠어요. 의원이 수도권 등 어디에 가있건 고향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요."-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아주 가까이서 겪었는데 그 분들 평이랄까?"역사가 평가해야죠. 저는 DJ 대통령의 손에 이끌려 정치에 입문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에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담판을 했다, 그게 제 정치역정 17년을 두 분과 관계속에 정리한 거죠."- 정치를 하는 이유랄까,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뭡니까?"세상을 한번 바꿔보고 싶었어요.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었죠. 통일의 초석을 놓고 통일시대 문을 열고 싶고…. 또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죠."

  • 기획
  • 조상진
  • 2012.07.03 23:02

농협중앙회 전북지역 대표 이사 김원철 부안농협장 "도내 78개 지역농협 조합원·농업인 이익 위해 온힘"

7월부터 도내 78개 지역농협을 대표해 4년 임기의 농협중앙회 이사로 활동하는 김원철 부안농협장(60)은 지역농협과 농업인의 실익을 위해 농정활동을 펼치게 된다. 지난 5월22일 도내 지역농협 조합장들의 투표로 이사후보에 선출된 김 조합장으로부터 전북농협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농협중앙회 이사로 활동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소감은.△ 지역농협을 대표해 농협중앙회의 현안에 발벗고 나서라는 조합원들과 전북농협 조합장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 덕분이다. 앞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어려운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협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다.- 농협중앙회 이사는 어떤 일을 하는 자리입니까.△ 농협중앙회는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대의원회,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 업무집행 및 대표기관인 회장, 감독기관인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농협중앙회 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이사회는 중앙회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 구성되는 기관이다. 이사회를 두는 이유는 업무의 집행에 있어서 중지를 모으고 의견의 교환을 통해 심도 있는 토의를 행함으로써 업무처리에 신중을 기해 회장, 전무이사, 사업전담대표이사의 독단과 전횡을 방지해 중앙회의 업무 및 사업의 민주적 운영을 기하는데 그 기본 취지가 있다.- 전북의 대표이사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지요.△ 작지만 강한 농협, 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농협들이 조합원의 의사에 반하여 합병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완전한 자립경영기반 구축을 위한 각종 지원이 확대될 수 노력하겠다. 또한 농도 전북에는 RPC 운영 농협들이 경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농협 RPC운영 전국협의회 회장으로서 대 정부 농정활동과 함께 벼 매입자금 등 중앙회 지원을 더 많이 이끌어 내도록 하겠다. 이와함께 전북 관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홀대받지 않고 제값을 받고 많이 팔 수 있도록 전북농협의 세일즈 이사가 되겠다. 특이하게도 전북에는 수도작이나 원예작물 외에도 묘목이나 조경 사업을 하는 농협들이 많이 있다. 안타깝게도 중앙회에서 이와 관련된 지도·지원이 없는 상태인데,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될 수 있도록 하겠다.또 신 농협법에 의한 농협의 신용·경제사업 분리가 당초 목적한 바대로 농업인과 지역농협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잘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지역농협에 지원되는 중앙회의 무이자 자금이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일선 조합들의 불만이 많이 있는 데요. 개선책이 있다면.△ 중앙회 지원자금은 '회원조합자금지원심의회'에서 자금계획을 확정하고, 농협은 지역본부를 경유해 자금을 신청하고 최종적으로 관련부서에서 사업추진과 연계한 객관적 원칙과 기준에 의거해 심사 후 지원하고 있다.올해부터 자금지원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자금지원심의회에 기존 조합장위원과 관련부서장 이외에 외부인사(농식품부 1명, 학계 2명)을 추가로 포함해 모든 자금은 자금지원심의회 의결을 거쳐 지원토록 개선했으며, 심의회 의결사항을 즉시 해당 농협에 문서로 통보토록 하는 등 자금운영 제도를 대폭 개선했다.특히 농업인의 소득과 연계된 판매·유통·가공사업 등 경제사업과 농업인실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농협에 자금지원이 우선시 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협이 신용·경제가 분리된 지 석달이 지났습니다. 일각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사업구조개편으로 농협중앙회라는 단일 법인에서 농협경제지주, 농협금융지주, 농협은행, 농협생명, 농협손해 등 5개 법인으로 분리됨에 따라 새로운 조직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출범초기 법인 간 업무 및 사업추진에서 일부 혼선이 발생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그러나 전 임직원의 노력으로 현재 많은 부분이 안정화된 상황이며 앞으로 사업구조개편의 취지에 맞게 효율적인 조직 및 운영체계를 구축하고 법인 간 상호 사업협력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북농협은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경제사업의 패러다임을 신속히 변화시키는 등 진보된 농협상을 구현하고 있는데, 발전방향을 제시한다면.△ 지난 3월2일 사업구조개편을 시작으로 농협은 농업인에게 실익을 주는 판매농협 구현을 목표로 경제사업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사업 조직을 지도·지원 중심에서 농축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마케팅 중심조직으로 전환해야 된다고 본다. 이런 방향에 따라 전북농협도 '연합마케팅 추진단'을 설치해 시군 단위의 연합사업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산지유통의 규모화 전문화' 그리고 '산지-소비지 농축산물 유통계열화' 등도 정착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 농가가 공동으로 선별·출하하고 판매대금을 공동 계산하는 공선출하회와 연합 판매사업을 위해 조합들이 공동투자하기 위해 설립한 조합 공동사업법인이 산지유통의 핵심조직으로 육성돼야 한다. 이를 토대로 산지와 도매 그리고 소매유통에서 농협의 점유 비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선 조합들과 중앙회 소통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복안이 있으신지.△ 중앙회와 지역농협 조직의 구성원들이 수행하는 기능은 서로 다르지만 그 기능들은 농협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한 상호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특히 전국 1167개(2012년 5월 기준) 농협이 여건이나 특성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조합별 실정에 맞는 맞춤형 지도·지원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중앙회와 농협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을 보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전북농협의 경우에도 사업추진 과정에서 가교적인 역할을 하는데 전북출신의 인재들이 중앙회 주요부서에 많이 진출해야 할 것이다.

  • 기획
  • 정대섭
  • 2012.07.02 23:02

10.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 "노동권·최저 임금 보장하라" 두 달째 파업 투쟁

30년만의 가뭄 끝에 내린 단비. 타들어 가는 대지와 농부의 숨통을 틔웠다. 그러나 파업 57일 훌쩍 넘긴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목이 탄다. 이태식 평등노조 지부장의 서울 밀알교회 앞 노상 단식이 46일째다. 11일 시작한 삼보일보도 4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작가 공지영씨를 비롯한 많은 네티즌과 시민들이 연대를 표하며 후원금과 함께 쌀, 떡, 미나리, 달걀, 수박 등 마음이 담긴 물품을 보내왔다. 시민사회의 파업 지지도 확산되고 있다. "공감과 연민이지요. 함께 사는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말하면서 최소한의 노동기본권과 인간다운 처우를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 물결이라고 봅니다"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을 트위터에 올려온 대표떡장수(필명) 임복래씨의 말이다.28일 그가 올린 글은 잘 알려진 트위터 사용자도 쉽지 않다는 600RT(재전송)를 넘었다. 하지만 용역업체인 (주)온리원과 대주주인 전주대학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3년 동안 한달 임금 72만1000원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은 (주)온리원 소속이다. 이 회사는 2000년 신동아학원과 두 대학 교직원의 공동 출자로 만들어졌으며, 신동아학원은 (주)온리원 주식의 30%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두 대학은 지난 11년간 (주)온리원에게 수의계약으로 청소, 경비, 시설업무를 위탁해 왔다. 수의계약에 힘입어 (주)온리원은 천냥마트로 고속성장한 반면 청소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부당한 지시에 시달렸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죠. 안 해도 될 일을 다 하고 다녔으니까.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지요" 청소노동자 정영숙씨(53). 그는 (주)온리원의 천원마트 매장 청소와 상품 진열까지 해야 했다. 하루 일을 끝내고 가서 새벽 3시까지 일하고 받은 추가 수당은 고작 2~3만원 이었다. 심지어 김장에도 동원시켰다. △잃어버린 1.5시간과 체불임금 4억원(주)온리원은 지난 2005년 7월 직원들의 하루 근무시간을 기존의 8시간에서 7.5시간으로, 일 년 후 7시간으로 줄이다가, 2009년 1월에는 6.5시간으로 줄여 계약했다.하지만 담당 청소 구역이나 청소 인원은 그대로다보니 노동 강도가 세졌으며 노동시간도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청소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여성청소노동자들이 한 달 일하고 손에 쥔 돈은 72만1000원, 실 수령액은 66만원 정도였다. 이렇게 5년 동안 편법으로 운영되던 노동시간은 2011년 6월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33일간 파업을 한 이후인 2011년 9월 7.5시간, 올 3월에 와서야 8시간으로 환원되었다. 형식적으로 줄었으나 내용적으론 줄지 않은 1.5시간을 임금으로 계산하면 4억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노동부에 '체불임금'으로 진정을 한 상태다.이명재 노무사는 "(주)온리원이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실질임금을 동결할 목적으로 업무범위와 업무량의 변동 없이 근무시간을 단축한 것으로 보인다" 며 "사용자가 임금인상을 않기 위해 일을 시키지 않은 1.5시간은 명백한 휴업이기 때문에 휴업수당은 100%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주)온리원은 같은 기간(2006년~2011년) 용역 사업으로 평균 15% 내외의 이윤을 얻었다. △입찰가 3순위 불구 온리원 재선정 노조가 결성 된지 한 달 만인 2011년 7월에 (주)온리원은 개정된 노조법에 따라 전국 30여개 매장 직원 및 관리자를 주축으로 210명 가량의 복수노조 (주)온리원 노동조합을 설립했다."33일간의 파업과 법원의 성실교섭 결정에도 복수노조를 핑계로 교섭에 나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주)온리원과 대학과의 11년간 지속된 수의계약 방식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공개경쟁입찰'을 요구한 겁니다" 오윤임 조합원 대표의 바람대로 여론에 밀린 대학 측은 공개입찰을 실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입찰가격이 3순위이고 타 청소업체에 비해 전문성이 낮다는 평가에도 (주)온리원이 재선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온리원의 대주주인 대학 측은 (주)온리원과 노동자간의 문제이지 대학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학 관계자는 "우리가 개입하면 3자 개입이다. 그리고 청소를 잘 하고 있는 데 어떻게 계약 해지를 요구하겠느냐"며 이번 파업에 대한 책임도 해결할 의지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하루 300만원의 벌금을 내라는 공무집행방해 소송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했는지 벌금은 조합원 개인이 아닌 34명 조합원 전체에 대한 부과라고 강조했다.이에 대해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곽화정 간사는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이자 (주)온리원의 대주주 임에도 책임 있는 대응은커녕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 본질이며 이는 가난한 청소노동자를 두 번 울리는 시대착오적인 구태" 라며 비난했다. 또한 이들이 외치는 구호는 '살기 위한 비명'이라며 이제라도 (주)온리원은 노동조합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이정현 NGO시민기자(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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