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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만 총감독은…

1948년 전주 교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냈다. 부친이 고위직 행정공무원이어서 윤택한 생활을 했지만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전주 북중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온 그는 공부 대신 다른 쪽(?)에 마음을 두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싸움 초단'일 정도로 싸움을 잘했다. 방황했던 어린 시절에는 감추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문화 판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방황했던 시절, 고등학교를 여섯 군데나 전전했던 그는 '최종에는 명지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를 마음대로 다닌 것도 자신의 삶에'필요악'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나름대로 철학과 지각을 갖고 있는 아이의 방황이라면 언젠가는 제자리로 온다고 믿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공보처가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에 응모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외갓집을 가기 위해 가출했던 기억을 그대로 담은 이 최초의 작품은 물론 떨어졌다. 방황은 대학 입학과 함께 끝냈다. 연극영화과 실기시험에 자신이 없어 서라벌예대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지만 3학년 때 과를 옮겨 끝내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학년 2학기 때 정식으로 출가(?)한 이후에는 학교에서 기숙하며 지냈다. 그가 '생애에서 가장 알차고 화려하고 보람 있게 생활했던 때'로 회상하는 그 시절에 '슬리핑 야성'도 단련됐다. 1973년 MBC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4개월 동안 날밤을 새며 학과공부를 했는데, 전문시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맞아 합격했다. 신입시절 1년 동안은 통근 사이렌 불면 퇴근하는 일상에서 매일 아침 생방송을 했을 정도로 방송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 드라마 파트와 쇼 파트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는데 더 적극적이었던 드라마를 택했다. 어린이 연속극을 만들 때는 아동심리까지 공부했고 청소년드라마 〈제 3교실〉을 만들때는 PD라는 직업에 대한 철학을 갖게 됐다. 이후 〈수사반장〉 〈제 1공화국〉을 비롯한 공화국 시리즈, 〈거부실록〉 〈야망의 25시〉 〈땅〉 〈간난이〉등 수많은 대표작을 냈다. MBC를 거쳐 SBS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그는 정치드라마에 열정을 쏟았다. 덕분에 '고석만'이란 이름은 정치드라마의 대명사가 됐다. 99년 청와대 행정관으로 들어가 일하기도 했지만 그 뒤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 소장과 K-TV대표를 거쳐 2003년 EBS 사장으로 다시 방송으로 돌아왔다. 은퇴할 나이에 오로지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MBC 제작본부장으로 다시 들어갔으나 그 꿈은 무참히 깨졌다. 2007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에 취임했으며 퇴임한 이후 연극 연출 등으로 '젊은 시간'을 보내다 여수엑스포 총감독으로 합류했다.

  • 기획
  • 김은정
  • 2012.06.05 23:02

고석만 2012 여수세계박람회 총감독 "융합 콘텐츠 시대… 박람회도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

"수명 100년의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5년 전쯤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에 취임한 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문화가 밥이 되는 시대라지만 아무것이나 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뻔 한 이치인데도 그것을 잊고 있었던 사실에 새삼 고개 끄덕여졌었다. '수명 100년 문화콘텐츠'를 내세운 그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혀졌다. 고답적인 논리나 주장에만 의지하지 않고 생생한 문화현장의 안팎을 분석해낸 직관과 경험은 그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터였다. 들여다보니 그의 활동은 늘 현장, 그 중심에 놓여 있었다.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뚜렷한 자기직관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탐구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그 선택을 열정적으로 실천하면서 한국 문화의 흐름을 새롭게 열어온 사람. 지금은 2012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현장에서 또다시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고석만 총감독(65)을 만났다. 개막 한지 20일째 되는 날이었다. 여수박람회는 비교적 무난한 출발이 안정적 운영을 예고하고 있지만, 널뛰기하듯 하는 초반의 방문객수 때문에 언론사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뷰 중에도 방문객숫자 등 현장 상황이 총감독의 휴대폰 문자보고로 쉴 새 없이 전달됐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3개월 동안의 일상이 짐작되었지만, 그의 의지는 그래서 더 충만해보였다. 여수박람회의 가치 구현, 그 목표는 무엇인가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박람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문화적 일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길을 모색해온 그와의 인터뷰는 그가 놓아온 삶의 궤적에서 돋보이는 한국문화사의 한 단편을 이야기로 듣는 기록 같았다. 정작 그는 손사래 치지만 한국문화의 지형이 그가 걸어온 노정위에서서 더 새로워졌음을 또한 알게 됐다. -여수엑스포에는 언제 합류하셨습니까. 인연도 궁금합니다."엑스포조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이 4년 전인데 저는 2년 전에 합류했습니다. 조직위에서 연락이 와 강동석 조직위원장을 뵈었는데 총감독에 대한 의향을 물어보시더군요. 서슴지 않고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추천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위원장님께서 '엑스포가 갖고 있는 타깃 층이 있다. 다른 어떤 예술문화 장르와는 다르게 불특정 대다수의 대단히 보편성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고 감독은 이미 방송을 통해 충분히 훈련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방송 쪽에서는 타율이 좋은 편이었거든요.(웃음)" -개막식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혼신의 힘을 쏟았어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다른 영역의 개막식과는 차별성을 갖게 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그 답을 지역적 특성에서 찾았습니다. 여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목했어요. 모든 분들이 실내 개막식을 기대했는데, 풍광에 대한 자신감으로 바닷가로 나갔고, 시간도 밤 시간대를 택했습니다. 공간의 새로운 확장, 그리고 시간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고 싶었습니다." -엑스포에 담고 싶었던 콘텐츠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여수엑스포는 직전에 열렸던 상해엑스포와 차별성을 갖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규모도 그렇고 예산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어떤 형식으로 다루어야 하는지 더 고민이 많았죠. 게다가 예전의 박람회는 산업박람회적인 성격이었지만 오늘날의 박람회는 국가들의 문화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경향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융합시대에 진입하는 지금은 박람회도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들의 패러다임도 그렇고요. 어떻든 '진일보' 해야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고민이었습니다."-엑스포는 전시 형식이 가장 관심사인데요. "여수엑스포는 새로운 인식과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전시 방식을 찾는데 오랜 시간 투자했습니다. 열어놓고 보니 그런 의도가 많이 비껴가진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사실 그동안 전시는 패널전시를 통한 주입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하는 패널전시 대신 드라마 제작 용어로 보자면 '풀 샷(full shot) 형식'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을 저는 '풀 샷 전시'라고 표현하는데, 부분적으로 쪼개지 않고 전체적으로 철학과 가치관을 담아내는 형식입니다. 그 '풀 샷' 속에서 관객들이 '나만의 것'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이제 좀 엑스포를 관전하시는 마음으로 돌아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워낙 개막식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서인지 개막식 끝나자마자 탈진해서 병원신세를 져야 했어요. 원래 무슨 일을 맡으면 '올 인'하는 스타일이어서 그것이 지나치면 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만큼 빠져버리죠. 엑스포가 끝날 때까지는 여유를 갖고 돌아보는 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함께 일하는 분들은 좀 고달프겠는데요. "힘들어하지요. 그래도 끝나고 나면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연출자로서 스텝을 관리할 때도 쉴 때는 확실하게 쉬고 일할 때는 완벽하게 집중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고도의 감각은 고도의 긴장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을 때 좋은 감각도 나오고 기억력도 더 잘 발동하거든요." -젊은 시절 드라마 피디로 이름을 날렸던 소위 '스타 피디' 1세대신데 그 힘이 거기서 나온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부터 20여 년 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고들 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늘 고도의 긴장감 속에서 보다 더 완벽한 준비를 하고, 다른 사람 보다 몇 배 노력했던 덕분일겁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고 오히려 학식이나 재주도 부족하니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제 전공 분야에서 노력하는 길 밖에 없었거든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 항상 그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주도해 특정한 흐름을 만들어오셨습니다. EBS 사장으로 재직하실 때는 실험적인 사업들을 주도해 화제가 되었죠. "그때는 어떻게 보면 만용에 가까울 만큼 용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성과도 좋았고요. 50-60년대와 70년대를 이어오는 한국 문화사를 담아내는 드라마를 제작한 것이나 일주일동안 하루 17시간씩 연속 방영하는 획기적 편성을 감행한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1백만 명 동시 접속 수능방송 운영, '스페이스 공감'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그런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시게 되었죠. 그래서 원망과 비판을 들으셨죠. "결과적으로는 제 오판이었어요. 엠비시 사장 공모에 나서면서 사표를 내게 되었는데, 단순한 권력욕은 아니었어요. 제가 출발했던 엠비시를 성장시켜 새로운 터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주위에서 권유도 있었지만 거기에만 휘둘린 것은 아니고요. 후에 회사에서 여러 통로로 함께 일 해줄 것을 강권해 제안 받은 여러 직책 중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제작본부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굴욕적 입성이었지만 제 소신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어요. 무참한 세월이었습니다." -무참한 세월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그 시절을 힘들게 보내셨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콘텐츠진흥원에 가셔서는 문화의 가치를 어떻게 담아내셨습니까. "'문화는 앞으로 먹을거리'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모든 사업을 그 위에서 기획하고 실행했죠. 100년 수명의 콘텐츠 만들기도 그 연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성과는 어땠습니까."과제가 많았어요. 융합시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구조를 우선 만들어야 했습니다. 물리적 융합이 아니라 화학적 융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현대미술을 보면 어느 시점에 와서는 '예술은 죽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동의어 반복의 시대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다행히 백남준 류의 융합 콘텐츠가 등장했지요. 새로운 미디어 아트 같은 것들이죠. 융합콘텐츠는 쌍방향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제1의 공간과 2의 공간이 만나 3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콘텐츠진흥원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제 3의 공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방향은 유효하다고 봅니다."-100년 수명의 문화콘텐츠를 제안하고 실행도 하셨는데, 지금 한국문화 세계화에 가장 절실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국가적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문화의 유통정책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한국 문화는 유통부분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어요. 이것이 바로 잡지 않으면 한국문화의 미래는 없습니다. 예컨대 한국최고의 종합유통문화회사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예요. 한국 문화 유통시장은 완벽하게 99대 1의 논리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문화가 번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1프로의 창작자는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아주 나쁜 구조지요.(그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로 들었다) 정부도 정부지만 일본의 '덴츠' 처럼 오늘의 문화판을 주도하는 거대 문화 유통 회사들이 인식을 바꾸고 구조를 바꾸어 창작자와 현장이 같이 가는 구조를 만들어야합니다." -거대자본이 독점하는 문화유통 구조가 가져오는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방송 쪽을 보죠. 문화콘텐츠, 한류와 관련 있는 회사가 아주 많습니다.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인데, 문광부에 등록된 것만 작년 기준 990개라고 하죠. 이중 케이블 회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회사가 214개, 그 중에서 프로그램을 내고 돈을 받는 회사는 50여개에 그칩니다. 나머지는 전부 적자인데, 회사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죠. 초대형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전체 85%를 차지하고 있는 유통구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영화판도 마찬가지예요. 이러한 독점식 유통구조가 지속되는 한 한국문화의 미래는 없습니다."-산업화에 뒤쳐진 전북은 오랜 세월 패배의식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문화가 밥먹여주는 시대를 맞았으니 가능성과 희망이 있지 않은가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과제가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약간 벗어난 이야기인데 같은 맥락으로 보고 한 가지 제안하고 싶군요. 오래전부터 UEC(Urban Eentertainment Center)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구체적인 콘텐츠도 제안 했었구요. 전라북도도 자원은 많은데 그것을 보편화 대중화하고 산업화 할 수 있는 뭔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전주만 해도 영화제와 대사습, 한옥마을 같은 자원이 있고 한스타일 자원도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그런 것들이 제각각 놓여있다는 것이에요. 전주가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가려고 한다면 특히 UEC의 개념이나 기구, 체계를 주목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전라북도에서 지금 대표적인 브랜드 공연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장예모 감독이 제작한 '인상 유삼저(印象劉三姐)'가 도시 브랜드 공연이 성공한 예죠. 중국에서도 당초 3개 도시가 제작했던 것이 7개로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성과가 좋으니 그러한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여수 엑스포의 '빅오쇼'도 브랜드 공연물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자되었고, 호응도 높아 귀하게 여기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을 어떻게 제작하느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브랜드 공연물을 만든다면 대형공연물이 될 텐데, 치밀한 논의와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규모에만 집착해 제작한다면 관객보다 출연자가 많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지역에서도 고민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선은 호흡을 길게 가져갈 것을 권합니다. 예컨대 프랑스의 아방가르드가 일어나듯이 작은 것들로 시작해 문화의 큰 틀까지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조이고 건강한 구조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빛을 내기 어렵습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동안 그는 문화에 대한 깊고 넓은 식견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모두가 그가 체득한 생생한 현장으로부터 길어 올린 것들이었다. 엑스포가 끝난 후 계획을 물었더니 아직 마음에 놓아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문화가 밥 먹여주는 이 시대'에서 고 총감독이 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스스로는 이미 일할 수 있는 절정기가 끝났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문화의 리더이고 첨병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 기획
  • 김은정
  • 2012.06.05 23:02

21. 21 전주 서신중 홍남정 교사 "월 1만원으로 큰 보람 얻죠"

"상대적으로 쉽잖아요. 매달 조금씩 계속해서 내기만 하면 되니, 육체적으로 찾아가서 하는 봉사활동보다 훨씬 수월하지 않은가요?"3년째 매달 1만원씩 개미기부를 하고 있는 전주 서신중학교 홍남정 교사(여44과학)는 나눔활동이 별로 어려운 게 아니라며 손사래부터 쳤다.홍 교사가 이처럼 남을 돕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당시 같은 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김용추 교사의 뜻하지 않은 제안으로 시작됐다.김 교사는 "우리 학교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니, 가까이에 있는 우리들부터 조금씩 내서 도와주는 게 어떻겠냐"고 동료 교사들에게 제안했다.이에 홍 교사 등 전주 서신중에 근무하던 동료교사 7명이 동참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작지만 질긴 개미기부가 시작된 것이다."당시 참여 교사 대부분이 체육 교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서 좀 어색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그리고 홍 교사는 지지난해와 지난해, 올해 매달 한번도 빠짐없이 월급 봉투에서 1만원씩 떼어내 전라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하고 있다.월 1만원에 불과한 적은 금액이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이 있듯이 나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한다는 것에 의미를 둔 채 참여하는 것이다.이 돈은 처음 손을 잡은 7명의 교사들이 낸 기부금과 합쳐져, 처음 지원했던 학생(현재는 모 고교 재학)에게 매달 7만원씩 지원되고 있다."의미도 있고, 워낙 소액인지라 부담도 안되고, 월급에서 떼어내는 것이라 번거롭지도 않으니, 중간에 그만 두어야할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홍 교사는 가정에서도 큰 아이의 기부를 돕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굿네이버스'를 통해 매달 1만원씩 기부하는 것을 후원한다.이 또한 작은 금액이고, 이마저 자신의 용돈 5000원에 홍 교사가 도와주는 5000원을 합친 것이지만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현재 유치원생인 둘째 딸도 엄마와 누나의 기부선행을 보고, "자신도 하겠다"며 계속 조른다고 한다. 온 가족이 나눔문화 확산에 나서는 셈이다.약간의 정성으로 참여하는 '개미 기부'이지만 집안 모두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감사하고, 적극적으로 나눔 전도사로 활동하게 됐다."앞으로는 학생들과 함께 나눔활동을 전개하고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이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본분이자 의무라고 생각하니까요."

  • 기획
  • 구대식
  • 2012.06.04 23:02

6. 완주군-동아원, 법정다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가축분뇨 무단 방류로 물의를 빚었던 완주 동아원(주)에 대한 가축분뇨 배출시설 허가 취소 관련 법정 다툼을 두고 나온 말이다. 지난 4월30일 동아원은 완주군의 가축분뇨배출시설 설치허가 취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효력 정지 신청 및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동아원 은 공동변호인단으로 2011년 M&A 법률자문 국내 1위인 법무법인 '광장'과 광주고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에 반해 완주군은 최경섭 군 자문 변호사를 단독 선임했다. 첫 대결인 효력정지 취소 건은 완주군의 승리였다. 5월 30일 전주지방법원은 완주군의 허가 취소가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한 처분이기에 확정 판결 시까지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동아원(주)의 소송을 기각했다. 지역 주민들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조영호 위원장(완주 동아원 가축분뇨피해대책위)은 "대기업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며 주민들과 협의를 마칠 때까지 돈사 운영은 하지 않겠다더니 결국 소송을 걸어왔다" 며 더 이상 협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근본적인 시설 개선 없이 가축사육 불가지난 해 7월25일, 비봉면 주민들은 돼지 12,000여두 사육 규모인 비봉면 동아원(주) 농장을 임대한 하나더농장이 하루 50여 톤에 이르는 분뇨를 천호천에 무단 방류해온 것을 적발했다. 농장주는 동아원 축사 시설을 불법으로 개조하고 분뇨처리 관로를 하천으로 연결한 후 강으로 흘러 보냈다. 악취에 시달려온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만경강의 수질오염원이자 익산시 상수원 오염 우려 속에 완주군은 농장주에 대한 고발과 함께 소유주인 동아원(주)에 4차례에 걸쳐 시설 개선 명령을 내렸다. 동아원 측은 1억9600만원을 들여서 방치된 축산분뇨 5159톤을 처리했으며 시설 개선을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완주군과 주민들의 현장 확인 결과 여전히 농장 곳곳에 축산분뇨가 남아있었다. 돈사 연결 배관누수, 바닥균열, 주변 나무 고사, 집수 탱크에 고인 오수 등 여전히 문제투성이였다. 또한 11월6일 비가 내리면서 또 다시 축산폐수가 하천으로 유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축사 민원, 도내 첫 민관공동조사단 운영완주군은 행정처분을 내리기 위한 청문회에서 근본적인 원인과 항구적인 개선안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주민과 사업주를 설득해 올 1월 민관합동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반년 가까이 갈등 중재를 해온 민관공동조사단 최두현(전라북 갈등조정협의회 사무처장)단장은 "양측이 합의하에 전문가를 추천해 꼼꼼하게 조사를 했고, 시설의 문제점이나 악취 영향 범위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조사의 의미가 크다" 고 강조했다. 예상대로 바닥콘크리트, 우수 오수관로, 분뇨처리, 토양오염과 악취 범위 등 전반적으로 시설이 매우 열악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특히 주민 설문결과 축사에서 위 아래로 2km 남짓 떨어진 삼우초등학교와 비봉면사무소 일대까지 악취가 나고 지하수 오염 우려를 강하게 주장했다. 완주군은 개보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주민 의견과 조사단 개별 의견을 종합하고 불법사항에 대한 이행절차를 모아 2월22일 가축분뇨처리시설 허가를 취소했다. △환경부 권고안보다 크게 강화된 전북도 준칙 한편 완주군은 동아원(주) 논란을 계기로 지난해 12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새만금 수질관리를 위해 가축사육제한 조례를 개정했다. 도내에서 가장 강력한 거리제한 기준을 뒀다. 돈사의 경우 2km로 강화 했으며 하천 주변 30m 이내는 축사 신축을 금했다. 완주군의 조례 개정은 정읍시와 김제시가 수질오염총량 초과와 맞물리면서 환경부 거리 제한 권고안보다 훨씬 더 강한 도 준칙안(표1)으로 이어졌다."새만금 수질 오염부하량의 23%가 가축오염원이고 민원도 가장 많습니다. 환경부 권고안 수준으로는 실질적인 억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서 최대 4~5배 강화한 도 권고안을 만들었습니다." 전라북도 전경식 사무관의 설명이다. 전주시를 제외한 13개 시군 중 정읍, 완주, 진안, 순창, 고창, 임실 등 6개 시군이 도 준칙 기준으로 6월1일 현재 조례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7개 시군도 조례개정을 위한 축산단체 간담회 및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9월까지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조례 개정 후 민원발생 크게 줄어 조례 개정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축사 허가요건이 강화되자 허가 신청이 줄었다. 자연스레 신규 축사 민원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2011.10.7 조례를 개정한 정읍시는 전년대비 축사허가 신청 건수가 61건에서 2건으로 줄었고 민원발생은 지난해 38건이었으나 현재까지는 한건도 없다. 같은 해 12.29 개정한 완주군도 20건이던 신청 건수가 올해는 1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축사 민원 총 75건 중 신규 민원이 14건이었으나 역시 현재까지는 한건도 없다. 한편 축산 농가들은 가축사육 선진화에는 동의하면서도 규제 일변도의 조례 강화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규모화와 전업화가 이뤄진 양돈이나 양계에 비해 한우농가들의 반발이 크다.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규모를 키워야 하는데 이전 신축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도는 신규 축산농가의 진입 제한으로 기존 축산농가의 기득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면서 축사 현대화 사업, 보조금 지원 차별화를 통해 무리 없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완주군 환경위생과 이근형 과장은 가축분뇨를 수집운반에서 최종 처리까지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자칩 제도의 도입과 축산의 규제와 진흥을 각각 대변하는 가축분뇨관련법과 축산법의 제도적인 보완이니 통합적인 접근, 축산 농가 보조금에 대한 차등 지급을 우선적인 개선 과제로 꼽았다. /이정현 NGO시민기자(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2.06.04 23:02

전북출신 역대 국회의원 - 국가 기틀 확립에 큰 힘…4·19이후 야당 색채 짙어

전북의 정치사는 굴곡진 근대 한국정치사 만큼이나 부침을 거듭했다. 그러나 전북 정치인들은 정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중심에서 위기를 극복해왔다. 한국 정치사에서 전북이 항상 비중있게 논의되는 이유다. 전북의 정치사는 지역내 소속 정당 분포를 기준으로 구분해 보면 크게 3단계로 나뉘어진다. 군소정당과 무소속이 전성기였던 제헌국회∼5대 국회까지의 1단계, 5·16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의 여·야가 공존한 6대∼12대까지 2단계, 그리고 민주당이 독식체제를 구축한 13대∼18대까지 3단계로 분류된다. 제헌국회때부터 18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전북 정치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제헌국회~5대1948년 5월10일 실시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에서는 22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제헌국회의원이 총 198명(1년후 2명 추가 선출)인 점을 감안하면 전북의 비중은 상당했다. 이번 19대 국회의 전북 의원은 11명(전국 300명)이다.이 같은 추세는 1960년 개원한 제5대 국회까지 이어졌다. 전북 의원은 2대 22명(전국 210명), 3대 22명(전국 203명), 4대 23명(전국 233명), 5대 민의원 24명(전국 233명) 참의원 4명(전국 58명)이었다.1948년 7월1일 임기가 시작된 제헌국회는 7월17일 헌법 공포와 7월20일 초대 대통령(이승만) 선출 등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중대한 역할을 맡았다. 임기는 2년이었다.제헌의원의 소속 정당은 다양했다. 특히 무소속이 강세를 띠었다. 전북에서도 22명 가운데 만주무관학교 출신의 배헌(이리) 의원을 비롯해 무소속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신현돈(무주, 전북도지사 역임) 의원이 소속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6명), 한국민주당(4명), 조선민족청년단(2명), 대동청년단과 대한독립촉성농민회(각 1명)가 이었다.전북출신 제헌의원 가운데는 동아일보 사장을 역임한 백관수(고창을, 한국민주당) 의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의원을 지낸 라용균 의원(정읍갑, 한국민주당)이 눈에 띈다. 독립운동가인 라 의원은 정읍에서 무투표로 당선됐다. 상임위에서는 백관수 의원과 무소속의 신성균(전주) 의원이 각각 초대 법제사법위원장과 내무치안위원장을 맡았다. △ 2대 무소속 3대 자유당 많아1950년 5월30일 선거를 통해 구성된 2대 국회는 권력구조를 둘러싼 정권싸움이 치열한 시기로, 정부와 국회간의 대립이 심했다. 선거에서는 제헌국회때 참가하지 않았던 남북협상파와 중도 계열이 참여하면서 평균 경쟁률이 10대1을 넘어설 정도로 치열했으며, 전체 210명중 무소속이 126명으로 과반을 넘었다.전북에서도 22명중 15명이 무소속이었다. 나머지는 민주국민당 3명과 대한국민당 2명, 대한노농청년연맹과 여자국민당이 각 1명씩이었다. 상임위에서는 대한민국항공회사 사장을 역임한 신용욱(고창을, 무소속) 의원이 교통체신위원장을 맡았다.의원중에는 초대 상공부장관을 역임하고 제헌국회때 보궐선거(안동을)에서 당선된 임영신(여) 의원이 금산(현재는 충남)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헌정회 원로회 의장을 지낸 송방용(무소속) 의원이 김제에서 당선됐다.그러나 개원 1주일만에 6·25전쟁이 발발, 부산에서 피난국회를 여는 등 고초를 겪었다. 전쟁중에 최윤호 의원(김제을, 무소속)이 사망했고, 박영래(완주을)·신석빈(정읍갑)·최병주(부안, 이상 무소속) 의원이 납북됐다.3대 총선(1954년 5월20일)에서는 처음으로 입후보자 정당공천제가 실시됐다. 정당정치의 기틀이 마련된 선거로, 여당인 자유당이 114석을 차지했다. 민주국민당은 15석으로 제1야당이 됐고, 무소속도 68석에 달했다.지역에서도 자유당이 득세했다. 22석 가운데 이존화(완주갑) 의원 등 자유당이 11석을 차지했고, 야당인 민주국민당은 김판술(군산) 의원 등 단 2석에 불과했다. 무소속은 9석으로, 무소속의 정준모(장수) 의원이 사회보건위원장에 선출됐다. 야당인 민주국민당 김판술 의원은 이후 민주당 정책위원장·사무총장을 거쳐 11대때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중구에서 당선돼 3선을 역임했다.60년말과 70년대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이철승(전주을)·유진산(금산)·양일동(옥구) 의원이 3대때 무소속으로 국회에 첫 입성했다. 이철승 의원의 이때 나이는 32세였다.△ 4대 야당 우세 5대 민주당 압승4대와 5대 국회는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 등으로 혼란스러웠다.4대 국회(1958년 5월2일 총선)는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난 후 1960년 내각책임제를 골자로 한 개정 헌법이 공포되면서 그해 6월 해산됐고, 5대 국회(1960년 7월29일 총선)도 개원한지 1년이 채 못된 1960년 5월16일에 일어난 군사쿠데타로 해산됐다.4대 총선에서는 전국적으로 여당인 자유당(126명)이 민주당(79명)을 크게 앞섰지만, 전북에서는 유진산·유청(전주 갑)·이철승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2명이 당선되는 등 야당이 우세를 보였다. 이때부터 전북은 야당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자유당은 김원전(군산)·이존화 의원(완주갑) 등 9명이었고, 무소속은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양일동 의원(옥구) 등 3명이었다.과도정부에서 치러진 5대 총선에서는 민·참의원 동시선거가 치러져 양원제 국회가 구성됐다. 민주당은 전체 233석(민의원) 가운데 175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 전북에서도 민주당이 24석 가운데 17석을 차지했다. 무소속은 6석, 사회대중당은 1석이었다. 참의원도 4명이 선출됐다. 민주당의 라용균·유진산·이철승·윤제술(김제을), 유청·양일동 의원 등은 3선 및 재선에 성공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져 나갔다. 5선으로 국회부의장을 지낸 홍영기(순창, 민주당) 의원도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 기획
  • 김준호
  • 2012.06.01 23:02

19대 도내 국회의원 어떤 상임위 갈까 - 도내 국회의원 보좌진 구성 어떻게

△김윤덕 의원(전주 완산갑)= 학생운동 시절부터 고락을 함께해온 대학 후배들을 중용했다. 운동권 후배로 김 의원이 전북도의원 시절 보좌했던 송승용 보좌관, 지역 언론인 출신으로 채수찬 전 의원 비서관과 지방행정공제회 홍보실장 등을 거친 방근배 보좌관, 역시 김 의원의 학생운동 후배인 천진심 비서관이 함께하기로 했다. 5급 비서관 1명은 상임위 배정 이후 채용할 예정이다.△이상직 의원(전주 완산을)= 국회 경험이 풍부한 보좌진들을 선택했다. 국회 17년차로 도내 보좌관 가운데 경력으로는 최고참 격인 이강래 의원실의 김유상 보좌관은 거치지 않은 상임위가 별로 없을 정도의 베테랑이다. 조배숙장세환 의원을 보좌한 이창무 보좌관도 11년 경력의 중견 보좌관이다. 지역 언론인 출신으로 이스타항공 홍보팀장을 지낸 소장환 비서관이 국회에 합류하며, 5급 비서관 1명은 상임위 배정후 채용할 계획이다.△김성주 의원(전주 덕진)= 전주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전북도당 정책기획국장과 (사)전북경제살리기도민회의 사업팀장을 거친 김종우 보좌관, 김세웅유시민 의원을 보좌했던 김주영 보좌관을 확정했다. 전현희 의원실의 김민식 비서관도 함께하며, 비서관 1명은 상임위 배정후 결정할 방침이다.△김관영 의원(군산)= 추미애천정배이강래 의원을 보좌했던 류재섭 보좌관을 일찌감치 총괄 책임자로 정했다. 강현욱 전 지사의 재임시절 함께 했던 김삼영 보좌관은 지역을 맡는다. 군산출신으로 김민석신낙균 의원을 보좌했던 박도은 비서관이 합류했으며, 5급 비서관 1명은 추후 채용 예정이다.△재선의 이춘석 의원(익산갑)=18대에서 함께 했던 기존 보좌진을 모두 유임시켰다. 언론인 출신으로 양형일이목희 의원을 보좌했던 심재수 보좌관, 지역신문을 경영하다 국회에 발을 디딘 강희정 보좌관, 김영주 의원을 보좌했던 이정원 비서관, 우제항전현희 의원을 보좌했던 이규연 비서관 등이다.△전정희 의원(익산을)= 신낙균 의원을 보좌했던 황훈영 보좌관과 익산시장 비서실장 출신의 이인우 보좌관, 고려대 법대 출신의 고영학 비서관, 민주당 익산을 홍보부장 출신의 도현신 비서관을 채용했다. 익산 지역에서는 국회 경험이 없고 지역에서 활동한 일부 인사들의 보좌진 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재선의 유성엽 의원(정읍)= 정책을 담당하던 이승엽 보좌관과 지역구 관리업무를 맡았던 김창환 보좌관 등 기존 보좌진을 대부분 유임시켰지만, 정책기능 강화를 위해 전북대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5급 비서관 1명을 보강할 계획이다.△강동원 의원(남원순창)=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거친 양순필 보좌관을 확정했으며, 나머지 4급 보좌관 1명은 상임위 배정 등을 지켜본 뒤 결정할 예정이다. 5급 비서관은 지역을 전담하도록 해 남원 담당은 손태엽 비서관, 순창 담당은 지역 주간지 기자 출신의 우기철 비서관이 맡도록 했다.△3선의 최규성 의원(김제완주)=기존 보좌진을 모두 유임시켰다. 나란히 전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7대부터 함께해온 김형욱임효준 보좌관, 중앙당 당직자 출신의 이병희 비서관과 지역구 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정금영 비서관 등이다.△박민수 의원(진안무주장수임실)= 정세균서혜석조배숙 의원을 보좌했던 이신남 보좌관을 일찌감치 영입했으며, 현재 4급 보좌관 1명을 공채를 통해 선발중이다. 5급 비서관은 총선때 선거 캠프에서 활약한 양성빈김대기 비서관이 국회와 지역을 오가며 의정활동과 지역구 관리를 함께 돕도록 했다.△3선의 김춘진 의원(고창부안)=보좌진 운용에 큰 변화가 없다. 기존 김성렬유경선 보좌관과 신연석안종선 비서관이 함께 한다. 다만 7급과 9급 비서를 교체하는 등 소폭의 변화를 줬다. 서울=강인석기자 kangis@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초선 의원들의 보좌진 구성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재선 이상 의원들의 경우 이미 수 년간 호흡을 맞춰온 터라 기존 보좌진에 변화가 별로 없다.국회의원들의 성공적인 의정활동은 보좌진에 의해 판가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수한 보좌진 영입은 의정활동을 시작하는 초선 의원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중에 하나다. 국회에서의 의정활동과 함께 지역구를 챙기면서 지역 밀착형 의정활동을 함께 해야하는 의원들은 지역내 구석구석을 잘 아는 지역관리형 보좌진 채용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국회의원의 입법활동 등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의원 보좌진은 4급(서기관급) 보좌관 2명과 5급(사무관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 1명씩으로 구성되며 인턴비서 2명을 추가로 둘 수 있다.

  • 기획
  • 강인석
  • 2012.06.01 23:02

19대 도내 국회의원 어떤 상임위 갈까 - 지역국책사업 좌우…고른 배분 필요

국회에는 16개 상임위원회와 2개 상설특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윤리특별위원회) 등 모두 18개 위원회가 상시 운영되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각종 의안과 청원 등을 본회의에 부의하기전 미리 심의하고, 소관 부처의 국가예산을 심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선거때 지역 주민들에게 각종 공약을 한 국회의원은 상임위원회를 고르는데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입법활동도 중요하지만 어느 상임위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지역구 관련 사업과 예산을 챙기는데 큰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19대 국회에 입성한 도내 의원들은 제각각 희망하는 상임위가 다르다.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상임위를 선택하는 의원도 있고, 지역구 사업을 잘 챙기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상임위를 선택하는 의원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의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상임위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내 의원들 가운데도 서로 원하는 상임위가 같아 조정해야하는 경우도 있다.전북 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의 차질없는 추진을 위해서도 도내 의원들의 고른 상임위 배분이 필요하다. 새만금 방수제 및 농업용지 조성과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 탄소밸리구축사업,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배후물류단지, 민간육종단지 조성, 새만금 신항만 건설, KIST 복합소재기술연구소 건설 및 운영, 태권도공원 조성사업 등의 성패가 도내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여야는 현재 의원들의 상임위원회 배정에 앞서 상임위원장 배분과 상임위 증설 여부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펼쳐질 여야간 국정 주도권 다툼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결론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럴 경우 19대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도 늦어질 수 있다.도내 의원들의 희망 상임위는 대체로 선거 공약과 관련이 많다.△김윤덕 의원(전주 완산갑)=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 문화관광관련 입법활동 공약 이행과 지방분권 촉진 및 지방정치 활성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젊은 정치를 위한 인재육성과 소통 강화, 젊은 전주를 위한 문화서비스산업 수도, 마을재생 코디네이터 시범도시 등을 공약했다.△이상직 의원(전주 완산을)= 정무위원회를 희망한다. 금융 및 중소기업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 의원은 재벌개혁과 중소기업의 기(氣) 살리기 등 경제민주화, 새만금 개발청과 새만금 특별회계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들 모두 정무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김성주 의원(전주 덕진)= 초지일관 보건복지위원회를 원한다. 복지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고 복지 전문가로 꼽히는 김 의원은 0~5세 무상보육 실현, 국·공립 보육 및 교육시설 확대, 고교 무상의무교육 추진 등 보편복지국가 건설에 열정이 많으며 복지관련 공약도 많다.△김관영 의원(군산)= 지식경제위원회를 희망하지만 다른 의원과 중복되면 국토해양위원회에 갈 생각이다. 새만금 전담기구 및 특별회계 설치, 금강통합권 국책사업 유치, 비응항 일대 해양 관광레저단지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김 의원은 세계 최대규모의 해상풍력단지 배후단지 조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재선의 이춘석 의원(익산갑)=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를 희망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국토해양위와 지식경제위 등을 고려중이다. 검찰개혁과 재벌개혁, 농업·의료(Agro-Medical) 융복합산업 클러스터 유치, 호남관문 익산의 KTX 선상역사 원안 추진 등을 공약했다.△전정희 의원(익산을)= 농림수산식품위원회와 문방위를 원하고 있다.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하는데다, 농축산식품 글로벌 교육센터 조성과 산업동물의 메카 조성사업, 고도 익산 르네상스사업 등 농수산위와 문방위 관련 공약이 많다.△재선의 유성엽 의원(정읍)= 교육과학기술위원회를 희망한다. 정읍 신정동 첨단과학연구단지를 활성화시키고 열악한 전북교육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지역거점연구단(Site-Lab) 유치와 전북대 정읍캠퍼스 조기설립 등의 공약 실천도 고려했다.△강동원 의원(남원·순창)= 문방위와 농수산식품위를 원하고 있다. 춘향·흥부·만인의총 등 역사문화유적을 활용한 지역발전을 위해서다. KBS 남원방송국을 재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구 남원역사 부지를 개발해 광한루와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공약도 했다.△박민수 의원(진안·무주·장수·임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와 법사위를 희망한다. 농산촌 교육특구 추진을 공약한 박 의원은 농촌교육 활성화에 열정이 많지만 도내 다른 의원과 상임위가 중복되면 변호사의 전문성을 살려 법사위를 2지망으로 생각하고 있다.△상임위원장 후보로 꼽히고 있는 3선의 최규성 의원(김제·완주)과 김춘진 의원(고창·부안)=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상임위원장이 되지 못할 경우 초·재선 의원들과 상임위가 겹치지 않도록 협의하고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전망이다.

  • 기획
  • 강인석
  • 2012.06.01 23:02

대권 기상도와 전북 - 여야 '경선룰 전쟁'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잠룡들은 물론 민주통합당까지 나서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를 요구하며 친박 진영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반해 친박 진영은 오픈 프라이머리는 판도라상자처럼 한 번 열면 많은 문제가 뛰쳐나올 수 있는 '오픈 판도라'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연말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란 정당이 선거 후보를 정하는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당원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것을 말한다.오픈 프라이머리는 국민의 선거 참여 기회를 확대해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당원의 존재 의미가 약화되고 정당정치의 실현이 어려워진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갖고 있다.미국에서 시작된 오픈 프라이머리는 전국 50개 주 모두에서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민주당은 50개 주와 워싱턴DC 중 14개 주가 당원들이 대의원을 뽑는 코커스, 37개 주가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채택하고 있다. 그 중 25개 주가 개방형 예비선거(Open Primary)를, 12개 주가 폐쇄형 예비선거(Closed Primary)를 채택하고 있다.미국 공화당은 50개 주와 워싱턴DC 중 18개 주가 코커스, 33개 주가 프라이머리를 채택하고 있으며 그 중 22개 주가 오픈 프라이머리를, 11개 주는 클로즈 프라이머리를 채택하고 있다. 클로즈 프라이머리에는 당원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오픈 프라이머리는 자기가 싫어하는 정당의 예비선거에 참여해 약체 후보에 투표하는 역선택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한 주에서도 유권자가 한 정당의 경선에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거나, 당원은 다른 정당의 경선 참여를 금지하는 등 역선택 방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새누리당 잠룡들은 오픈 프라이머리가 전국적 흥행을 부를 수 있고 약체 후보의 대역전극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당 밖의 대선 잠룡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당내 경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오픈 프라이머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기획
  • 강인석
  • 2012.06.01 23:02

대권 기상도와 전북 - 새누리 '대기불안정'…민주 '폭풍전야'

오는 12월19일 실시되는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새누리당이 지난 5월15일 전당대회를 끝내고 민주통합당이 오는 9일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를 선출하는 등 주요 정당들이 새로운 지도부 선출에 나서면서 대통령 선거전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정당별로 연말 대선정국을 이끌 새 지도부 체제가 완성되고 8월을 전후로 대선 주자들의 경선이 시작되면 전국은 본격적인 대선 열기에 휩싸일 전망이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권에 뜻을 둔 잠룡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 후보들이 잇달아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과 달리 민주통합당 후보들은 아직 조용하다. 새누리당 대선 주자는 대략 8명, 민주당은 5명에 이른다. 이 외에도 여러 명의 경쟁자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어 '다크호스'들의 돌풍 여부도 관심거리다.△새누리당 잠룡 움직임 활발새누리당에서는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 비박(비박근혜) 주자들의 출마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지난 4월22일 첫 '테이프'를 끊은데 이어 정몽준·이재오 의원, 안상수 전 인천시장,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잇달아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경남지사를 지낸 김태호 의원과 정두언 의원의 출마도 점쳐지고 있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까지 합치면 새누리당내 잠룡들이 무려 8명에 이르는 셈이다.월등한 지지율로 대세론을 형성한 박 전 위원장에 도전장을 내민 각 주자들은 경선 준비를 위한 조직 다지기에 분주하다. 대외적으로는 전국을 순회하며 민생행보에도 열중하고 있다.새누리당 대선 경선은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잠룡들의 친박 공격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민주당까지 가세하고 있다.이재오 의원은 "16개 시·도를 돌며 두 달 정도 새누리당의 눈과 귀를 묶어놔야 표를 확장할 수 있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서, 김문수 경기지사는 "야당은 민주당 경선 흥행, 통합진보당과의 경선 단일화, 안철수 교수의 경선 참여 등 3단 마술을 보일텐데 새누리당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1000년이 지나도 손님을 못 끈다"며 오픈 프라이머리를 요구하고 있다.박지원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완전국민경선제도를 위한 법 제정을 협의하고 통과시켜 대선 후보 경선부터 도입하자"면서, 문성근 전 민주당 대표권한대행은 "같은 날 동시에 오픈 프라이머리 경선을 개최하자"며 박근혜 전 위원장을 압박하고 있다.△민주통합당 후보군은 조용새누리당과 달리 민주통합당 대선 주자 가운데 공식 출마선언을 한 후보는 아직 없다. 6·9 전당대회가 진행중이어서 새 지도부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내 대권 주자들보다 외부 인사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민주당의 대선 잠룡으로는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지사, 손학규·정세균·정동영 상임고문 등이 꼽힌다.문 상임고문은 6·9 전당대회 직후 공식 출마선언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문 고문은 그동안 "개인적으로 마음의 준비는 끝냈다"며 출마 선언 시기를 저울질 해왔는데 당 대표 선거가 끝난 뒤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김두관 경남지사도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김 지사는 오는 9일 출간할 자서전에서 집권전략과 국정철학을 밝히고 12일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대선행보를 본격화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총선후 유럽순방을 다녀온 뒤 이를 바탕으로 국가경제 발전 모델과 비전을 담은 저서를 준비중인 손학규 상임고문도 전당대회 직후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호남에서 4선을 한 뒤 당 지도부를 거쳐 수도권에 진출해 5선에 성공한 정세균 상임고문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민시대'를 확대 개편해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설 계획이다.서울 강남을에서 낙선한 이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 분향소 등 노동 현장과 함께하고 있는 정동영 상임고문은 대권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고 지지자들을 만나 향후 진로를 상의하고 있다.민주당 대선 경선은 절대 강자를 찾기 힘든 가운데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후보가 혜성같이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안철수 변수는여전히 민주당 밖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안원장은 앞으로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당 밖에서 '강연 정치'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안 원장이 과연 성급하게 야권에 뛰어들겠느냐는 부분에는 회의적 전망이 많다.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 이후 정가의 태풍으로 떠오른 안 원장은 지난달 30일 부산대 강연을 시작으로 6월부터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는 안 원장이 출마 선언을 계속 미룰 경우 비판 여론 확산으로 오히려 지지율이 추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어떻게 작용할까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과 폭력 사태 등은 대선에서의 야권연대 기상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민주당 내부에서는 야권연대를 깨야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통합진보당을 껴안고 가야 대선에서 중도세력 결집에 유리하지만 지금처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선 전략에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손을 놓아버려 대선이 3자 구도로 치러지면 새누리당에만 이익을 주는 자칫 치명적인 자해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고민거리다.민주당은 '아직 연대 전략은 유효하다'는 입장이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여론이 싸늘한 만큼 재창당 수준의 쇄신없이는 연말 대선에서 지난 총선과 같은 수준의 선거연대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 기획
  • 강인석
  • 2012.06.01 23:02

작가 신경숙을 만나다 - 내가 소설가가 되기까지

나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책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해준 것이 내게는 책이었기 때문에 책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겐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지 그게 시인지 소설인지 아니면 평론인지는 모르고 있다가 고등학교 때 내가 쓴 반성문을 읽은 선생님이 너는 소설가가 돼보는게 어떻겠냐? 라는 한마디에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내가 읽은 문학작품들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 불행에 처한 사람, 패배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조명하는 것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도 한몫을 했다. 아마 소설이 별 문제가 없는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 영웅들이나 승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소설가의 꿈을 버렸을 것이다. △1963년 정읍 출생 △정읍여중 졸업 후 서울 구로 공단에서 노동하며 영등포여고 야간부 산업체특별학급에서 고교 과정 이수 △서울예전문예창작과 졸업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 우화'당선 △『강물이 될 때까지』,『풍금이 있던 자리』, 장편소설 『깊은 슬픔』『외딴방』『바이올렛』『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모르는 여인들』등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2001) 등 수상.

  • 기획
  • 김원용
  • 2012.06.01 23:02

작가 신경숙을 만나다 - "고향의 향수가 내 작품의 자양분"

소설가 신경숙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는 이시대 대표 작가며, 세계로 통하는 스타작가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단권으로 판매부수 2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으며. 그의 책은 미국·영국·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등 20개국에서 출판됐고, 다른 나라와도 계속 출판계약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으로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아시아 권위의 '맨 아시아 문학상'까지 받았다.  전북이 낳은 작가 신경숙씨가 전북인에게도 자랑이지만, 그 또한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그의 작품은 고향이 탯줄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태어난 집(정읍 과교동)에 지금도 부모님이 살고 계시며, "가족들은 내 뿌리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나에겐 힘이다"고 했다.  본보 창간 62주년을 맞아 작가 신경숙씨를 서면 인터뷰했다.-연락이 어렵던 데, 아주 바쁘신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3월에 홍콩에서 맨 아시아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일로 홍콩에 두 번 더 다녀왔고, 미국에서 페이퍼백이 출간돼서 다녀왔고요. 독자들과 200만부 돌파 기념 낭독회·사인회 등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6월엔 슬로베니아, 8월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도 다녀올 예정입니다. 국제 문학페스티벌과 관련된 일들이 좀 잦은 편인데 조정하려고 합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작품을 쓰는 시간을 갖는 것이니까~. -'엄마를 부탁해'가 200만부를 돌파했는데, 어떤 매력 때문으로 보는지.△소설 속에 등장하는 '박소녀'라는 엄마를 통해서 읽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엄마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은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는 문장으로 시작되지만, 독자로서는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자기 자신의 엄마의 존재감이 마음속으로 살아돌아오는 심리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품을 쓴 나보다 읽은 사람들이 더 할 말이 많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의 반응이 더 많았고, 어떤 남성 독자는 책을 읽고 갑자기 시골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랑한다고 했더니 아들에게 그런 말을 처음 듣는 어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무슨 일 있냐?' 고 되레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 속에서처럼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잊고 지내는 엄마의 존재감을 다시 느꼈다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미국·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책이 출판됐는데, 그곳 독자들이 한국적인 정서에 얼마만큼 공감하는지.△특이 하게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박소녀' 라는 한국 엄마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아메리카나 유럽이나 비슷했습니다. 책에 대한 반응이 한국과 너무 비슷해서 내가 놀랄 지경이었죠. 나라에 따라 문화와 일상, 경험의 차이가 있지만 '엄마' 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이나 보편성은 국경이 따로 있는게 아닌 모양입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하드커버 다음으로 페이퍼백이 나왔습니다(미국의 출판 관행상 페이퍼백(종이 커버)은 양장본의 반응이 좋을 때 내놓는 것으로, 책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란다). LA에서 낭독회가 있었을 때 허리우드 영화제작자가 찾아와서 미팅을 갖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영화제의가 많이 있었으나 아직 보류중입니다. LA에 머무는 동안 그 제작자와 두 번 만나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해가 깊어서 호감이 갔습니다. 그러나 영화 일은 혼자하는 게 아니라 종합적인 일이어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소설의 모티브를 어디서 찾았나요.△열여섯 살 때 정읍에서 서울로 떠나왔는데 그때 나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함께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던 밤에 맞은편에 앉아있는 나의 어머니를 보면서 언젠가 내가 작가가 되면 나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책을 한권 써봐야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했었고, 그 약속이 이 작품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엄마' 라는 존재의 인생이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고통과 슬픔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책 대신에 엄마를 인간적으로 접근해서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존재' 라는 주제로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들이 딸, 아들, 아버지, 엄마...이렇게 차례차례 등장해서 자기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고백 투로 이야기하죠. 딸과 아들 아버지는 모두 '너' '그' '당신' 이라고 지칭되지만, '나는' 이라는 일인칭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엄마뿐입니다. 한 여자가 '엄마' 가 되는 순간 '나' 로 살기 보다는 '나'를 모두 나누어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사는 게 '엄마의 삶' 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안에서는 엄마에게만 '나는' 이라는 일인칭을 사용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작가로서 내가 이 세상의 엄마들에게 드리는 유일한 헌사였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많은 데, '엄마를 부탁해'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에 불만(?)은 없습니까. 자신의 작품들중 가장 공을 들이거나, 애정이 가는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85년에 등단했고 지금까지 일곱권의 단편소설집과 일곱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습니다. 93년에 출간된 '풍금이 있던 자리' 때부터 나와 함께 세월을 지내온 독자들과 함께 해온 작가생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엄마를 부탁해가 특별히 더 큰 관심을 받았지만 다른 작품들도 독자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특별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 왜 없겠습니까마, 그 작품을 밝혀서 다른 작품들과 차등을 두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까지 쓴 작품보다 앞으로 쓰게 될 작품으로 얘기되는 현재형의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어려서 고향을 떠났는데, 고향에 대해 갖고 있는 추억, 특히 고향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까뮈가 한 말 중에 한 인간의 감수성은 열네 살 이전에 보고 느낀 것들로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공감합니다. 나는 열여섯까지 정읍에서 성장했고 그때 보고 느꼈던 것들이 내 작품 속에서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쓰는 문장마다 그때 보았던 자연, 그때 느꼈던 사람들의 숨결이 스며있다고 느끼니까요. 내가 이토록 서로를 단절시키는 현대문명속에서도 자연을 느끼는 힘이나 인간에 대해서 비탄보다는 신뢰와 사랑을 가지려고 애쓰는 힘도 정읍에서 성장했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지망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쓰기 보다는 먼저 읽으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 중간에서 그만두지 말고 꼭 완성시키는 습관을 가지라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입니다. -현재 집필중인 작품이나 구상중인 작품은.△어느날 갑자기 앞을 못보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언제쯤 써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 기획
  • 김원용
  • 2012.06.01 23:02

반환점에 선 민선 5기 단체장에게 듣는다 - 민선5기 2년, 전북도 현안과 과제

전북도는 민선5기 출범 이후 새만금 내부개발 사업이 종합개발계획 확정과 함께 본 궤도에 올랐고, 대규모 기업유치와 일자리 시책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와 영·유아 및 아동 무상접종 시행 등 도민 복지향상 정책도 강화됐다.그러나 시련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지역의 역량을 집중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유치 노력이 무산돼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또 고군산군도와 새만금 관광단지·방조제 다기능부지 등에 계획된 새만금 관광개발 사업은 민간 투자자 유치에 잇따라 헛바퀴를 돌리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삶의 질' 도정 핵심 정책으로"그동안 경제 발전과 양적 성장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는데, 이제는 질적인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됐습니다."김완주 지사는 연초 "올해는 도정의 한 축이 삶의 질로 옮겨가는 해"라고 밝혔다. 민선5기 도정 핵심정책으로 추진해 온 새만금 개발과 일자리 창출·민생안정에 삶의 질 향상을 더해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서민들이 문화와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제도와 시설을 정비하고 좋은 일자리와 함께 질 높은 교육환경 조성에 주력해서 '사람이 행복한 전북'을 만들겠다는 게 전북도의 삶의 질 정책 청사진이다.도는 또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협동조합 육성을 통해 지역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밑그림도 내놓았다. △ 새만금특별법 개정 등 현안 산적전북도는 민선5기 후반기 역점 추진할 현안으로 우선 새만금 사업과 관련 △새만금개발청 및 특별회계 설치 △매립용지 분양가 인하 △내부 동서2축 도로 건설을 꼽았다.이와함께 △전주·완주 통합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군산공항 확장(국제선 취항)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 △LH 후속대책 추진 등이 주요 현안에 포함됐다.도는 올 대선을 앞두고 새만금개발청 신설과 특별회계 설치·매립용지 기반시설 지원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새만금특별법 개정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전북도가 중재에 나선 전주·완주 통합은 지난 4월 말 양 시·군이 통합 공동건의서를 제출함에 따라 첫 단추를 채웠다. 그러나 완주지역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결국 내년 주민투표에서 통합 성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기획
  • 김종표
  • 2012.06.01 23:02

반환점에 선 민선 5기 단체장에게 듣는다 - "3선 출마 논의 시기상조… 내년 7월 이후 결정"

지난 2010년 7월 민선 5기가 시작했다. 2012년 6월, 이제 그 반환점을 향해 간다. 숨이 가뿐 초선의 달리기와 여유로운 재선의 느긋함이 상존했다. 반환점을 도는 민선 5기의 중반에서 전북도를 비롯해 도내 시군의 전반기 공과를 점검하고 후반기의 청사진을 살펴본다.-민선 5기가 출범한 지 2년이 다 돼 갑니다. 전반기에 평가와 후반기에 역점적으로 추진할 사업분야는 무엇입니까?△5기에도 새만금과 민생일자리를 도정의 핵심과제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올부터는 삶의 질 향상과 협동조합 육성을 추가했습니다. 기업유치와 관련해 4기가 불모지였다면 5기 때는 양보다 질을 추구합니다. 최근의 기업 유치는 고급인력 확보가 관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체육교육 여건 개선이 필수입니다. 그런면에서 삶의 질 정책은 결국 기업 유치의 여건을 다지는 일입니다. 더불어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대자본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소규모 사업자가 협력하는 협동조합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유럽에서는 효과적이었습니다. -LH 유치 실패에 대한 후속대책이 미진하다는 지적입니다. △구(舊) 토공 몫의 이전 인원 문제는 국토해양부에서 지난 2011년 7월 29일 국민연금공단 이전 승인시 우리 도가 요구했던 570명 수준으로 결정됐습니다. 새만금 전담기구 및 특별회계 설치는 국무총리실이 설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개발 진행단계에 맞춰하겠다는 입장으로 정부의 설치 의지를 확인했습니다.컨벤션센터의 경우 전주시에서 재정투자 사업으로 추진이 결정돼 타당성 조사용역 및 투융자 심사 등 행정절차를 이행한 뒤 2014년 착공 예정입니다. 호텔건립은 민자사업자 공모(6월)를 통해 투자자를 선정해 추진합니다. 10구단 유치는 기존 구단주의 반대로 KBO 이사회에서 창단이 보류된 상태지만 야구 저변을 확대해 당위성을 확보하겠습니다. 프로야구 전용구장 건립은 1단계로 군산 월명야구장을 리모델링하고, 2단계로 2015년까지 2만5000석 규모의 전용구장 건립도 차질 없이 추진할 계획입니다. -전주완주 통합을 위한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실제 통합이 이뤄지려면 넘어야할 과제가 많습니다.△전주완주 통합은 두 지역의 발전은 물론이고 전북발전의 동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도내 전 시군의 문제입니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면 통합은 멀어지고 새로운 동력 창출의 기대도 무너지기 때문에 꼭 성사돼야 합니다. 저와 전주시장완주군수가 참여하는 '완주전주 상생발전협의회'와 부단체장 중심의 실무 과장들이 참여하는 '완주전주 상생발전 실무협의회'가 출발했습니다. 실무협의회 추진 과정에서 쟁점이 되는 사안은 단체장이 직접 만나 해결해 통합의 속도를 높이겠습니다.-19대 국회가 시작했습니다. 지역현안 추진과 예산확보 등을 앞두고 있는데 초선 의원이 많아 중량감이 없다는 우려도 있습니다.△일부 우려가 있지만 국회의원은 선수(選數) 못지않게 열정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번 19대 의원들의 열정을 매우 높습니다. 그런면에서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지역 국회의원들과 정책협의회를 열고 정치권, 도시군과 함께 국가예산 확보를 위한 부처 단계, 기획재정부 단계, 국회 단계 등 상황에 따라 긴밀히 공조하겠습니다.-최근 OCI가 투자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도내 전략산업인 태양광 산업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OCI의 설비 투자 보류는 단기적 영향일 뿐 장기적으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태양광 시장이 연말을 기점으로 회복될 것으로 판단하고 생산 라인을 정상 가동하는 상태입니다. 모듈 제조업체 S사는 최근 250㎿급 제2공장을 증설해 제1공장(250㎿)와 함께 정상 가동하고, 메탈실리콘 제조업체인 N사의 경우도 우즈베키스탄에 합자공장을 설립하고 올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1만2000톤을 추가 증설하는 등 투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완주 지사의 3선 여부가 관심사입니다. 다소 이른감이 있지만 올해가 정치 시즌인데다, 최근 지사께서 전주완주 통합 문제를 적극 추진하면서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지금은 그런 논의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출마한다, 안 한다'하면 조기 선거 과열현상이 나타나 일선 시군에도 영향을 미쳐 정치적 분할과 갈등유발, 역량 약화가 우려됩니다. 그 문제는 내년 7월 이후에 확실히 밝히겠습니다.대담=김준호 정치부장

  • 기획
  • 김준호
  • 2012.06.01 23:02

전북출신 역대 국회의원 - 5·16이후 중앙무대 주류로…90년대 민주당 텃밭

■ 전북정치 전성기, 6대~12대5·16군사정권 이후 전북의 정치적 위상 및 지형은 크게 변화됐다.전북지역 국회의원 선거구가 24개에서 11개로 줄어들었고, 정당분포는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과 민주당간의 양당 경쟁체제로 나뉘어졌다.전북의 국회의원 수는 6·7대 11명(지역구 131, 전국구 44), 8대 12명(지역구 153명, 전국구 51명), 9대 12명(지역구 146명, 유정회 73명), 10대 12명(지역구 154명, 유정회 77명), 11·12대 14명(지역구 184명, 비례 92명)이었다.이 시기의 전북 정치권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군사정권에 반대해 대부분 야당에서 활동한 전북 의원들은 당내 주류로 활동하는 등 정치의 핵심이었다. 유진산 의원은 당시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 대표를 맡는 등 주류 계보를 형성하고 있었고,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당내 40대 3인방이었던 이철승 의원은 유 의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1976년에 신민당 당수에 오르는 등 맹활약했다. 양일동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반 유진산계를 형성하며 독자노선을 걷는 등 선 굵은 정치를 펼쳤고, 1973년엔 민주통일당을 창당해 총재를 맡았다. 여당인 공화당에선 장경순 의원(김제)이 당 사무총장과 중앙위의장 등을 맡는 등 실세로 활약했다.그러나 1970년 중반 이후 유진산·이철승 의원이 당권투쟁에서 밀리면서 동시에 전북 정치권도 급격한 하향세를 걸었다. 이후 2004년 열린우리당의 김원기·정세균·정동영 의원이 정치의 중심으로 재등장할 때까지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변방에 머물렀다. 재기를 노렸던 이철승 의원은 12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여야 정당간 황금비율 분할1963년 6월8일 치러진 6대 총선에서 전국구제(비례대표제)가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 해 창당된 민주공화당이 전북에서 제1당의 자리에 올랐다. 공화당은 장경순 의원을 위시해 11개 선거구중 7개 선거구에서 승리했다. 반면 윤보선 전 대통령이 이끈 민정당은 유청(전주)·고형곤(군산·옥구) 의원 등 3명, 민주당은 라용균 의원 1명에 불과했다. 고형곤 의원은 12대 국회때 민주정의당으로 당선된 고건 전 국무총리의 부친으로 도내 첫 부자(父子)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장경순 의원은 초선으로서 국회부의장에 선출되는 기염을 토했다.7대 총선(1967년 6월8일)에선 민주공화당이 도내 11개 선거구를 모두 석권했다. 전북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일당 독식이다.그러나 8대 총선(1971년 5월25일)에 들어서 공화당 6석, 신민당 6석 등으로 균형이 맞춰졌다. 신민당의 강근호(군산·옥구), 양해준(남원), 진의종(고창) 의원, 공화당의 유기정(완주) 의원이 처음으로 금뱃지를 달았다.8대 국회는 4·5대처럼 박정희 대통령의 1972년 10월17일 비상계엄선포로 1년도 못돼 해산됐다.9대 총선(1973년 2월27일)에서는 공화당 4명, 신민당 4명, 무소속 4명으로 황금분할이 이뤄졌다. 10대 총선(1978년 12월12일)에서도 민주공화당 6명, 신민당 4명, 무소속 2명 등 세력 균형이 이뤄졌다.9대때 입문한 손주항(임순남, 무소속) 의원은 10대때 옥중당선돼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북일보사 사장을 역임했던 채영철(군산·이리·옥구·익산) 의원은 공화당 후보로 9대와 10대에 재선에 성공했고, 언론인 출신인 김원기(김제·정읍) 의원은 신민당 후보로 10대 국회에 첫 입성했다. 9·10대 국회에서는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원의 1/3(73명)을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자중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유신정우회가 구성됐다. 유신정우회는 1980년 10월 통일주체국민회의와 함께 해체됐다. △ 신당 돌풍속 정치신인 잇단 영입10·26사태로 등장한 신군부의 정치활동규제로 발이 묶여 있던 정치인들은 1981년 부분 해금조치로 활동을 재개했다. 전북지역 선거구가 14개로 늘어난 11대 총선(1981년 3월 25일, 중선거구제)에서는 신군부의 민주정의당이 7석, 민한당이 6석, 무소속이 1석을 차지했다. 군산시장을 역임했던 김길준(군산, 옥구) 의원이 유일한 무소속이었다.민정당의 임방현(전주,완주)·고판남(군산, 옥구)·황인성(진무장)·문병량(이리, 익산)·양창식(임순남), 민한당의 김태식(전주, 완주)·오상현(진무장)·이형배(임순남)·김진배(김제,부안) 의원 등이 정계에 입문했다.12대 총선(1985년 2월12일)은 정치활동규제에서 해금된 야당 정치인들이 선거를 불과 25일 앞두고 창당한 신한민주당이 신당 돌풍을 일으켰다. 지역에선 고건(군산,옥구) 전 총리 등의 민정당이 7석, 이철승 의원을 비롯한 신민당이 3석, 김광수(진무장) 의원의 국민당이 3석, 민한당이 1석을 얻었다.■ '민주당 독주' 13대~18대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끈 평화민주당의 황색바람이 몰아친 13대 총선부터 전북에서의 여야 정당간 균형은 깨졌다. 13대때 평민당은 전북에서 싹쓸이했다. 이때부터'(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말이 나돌았다.이와함께 전북의 선거구는 전체 국회의원 정원이 299명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오히려 줄어드는 등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13대는 14명(지역구 224명, 전국구 75명), 14대 14명(지역구 237명, 전국구 62명), 15대 14명(지역구 253명, 전국구 46명) 16대 10명(지역구 227명, 전국구 46명), 17대 11명( 전국구 56명), 18대 11명(전국구 54명)이었다.김원기 의원을 비롯해 정치 신인들이 잇따라 영입되면서 전북 정치권을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더불어 지난 1970년대 이후 중심에서 밀려난 전북 정치권의 재기를 위한 움직임도 시작됐다. 김원기 의원은 16대 대선때 노무현 대통령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 김원기 의원은 열린우리당 상임의장과 대통령 정치특보를 거쳐 국회의장이 역임하는 등 지역정치의 맏형 역할을 맡았다.한편에선 정국이 급변한데다 주민들의 정치에 대한 변화욕구가 커 세대교체가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선거때마다 평균 30% 정도의 인물이 교체됐다.△ 황색바람, 전북 의석 싹쓸이평민당의 황색바람이 분 13대 총선(1988년 4월26일)에선 여당인 민정당이 전체 의석의 42%에 해당하는 125석을 확보하는데 그쳐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했다.전북에선 평민당이 14석을 모두 차지했다. 오탄(전주갑)·채영석(군산)·이협(이리)·조찬형(남원)·정균환(고창) 등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절반 가량의 현역의원이 교체됐다. 반면 이전까지 활동했던 공화당 및 민정당 계열의 여권 인사들은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14대 총선(1992년 3월24일)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14석 가운데 12석을 차지했다.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은 양창식(남원)·황인성(진무장) 의원 등 2석만을 건졌다. 민주당의 장영달(전주완산)·최재승(익산) 의원 등이 처음으로 등원했고, 1964년 한일협상에 반대하는 시위(6·3사태)를 주도했던 박정훈 의원이 전국구(14대)에 이어 15대때 임실·순창에서 당선됐다.14대 국회에서는 30여년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됐다.대통령 선거(1997년)를 1년여 앞두고 치러진 15대 총선(1996년 4월11일)때는 구민주당 출신들이 대거 합류해 창당한 국민회의가 14석 가운데 13석을 차지했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강현욱(군산을) 의원이 유일했다. 강 의원은 16대때는 민주당으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이때 전북 정치를 이끌어갈 정동영(전주 덕진)·정세균(진무장) 의원이'젊은 피'로 국민회의에 영입됐다.헌정사상 최초로 여·야간 정권교체로 들어선 김대중 대통령의'국민의 정부'때 실시된 16대 총선(2000년 4월13일)에서 여당인 된 민주당은 10석중 9석을 차지했다. 이강래(남원 순창) 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곧바로 민주당에 입당해 전북은 민주당 일색이 됐다. 전국 최다득표(9만8746표, 88.2%)를 기록하며 재선에 성공한 정동영 의원은 당(민주당) 최고위원과 당(열린우리당) 의장에 이어 17대 대선땐 당내 대권후보로 나서는 등 초고속 행진을 거듭했다.△ 정국 변화속 급격한 세대교체 대통령(노무현)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2004년 4월15일)에서는'탄핵'바람이 불면서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이 전북의 11석 모두 석권하는 상황이 또다시 벌어졌다. 전국적으로도 총 299명의 국회의원 중 211명이 초선으로 당선될 정도로 세대교체 바람이 거셌다. 지역에선 이광철(전주완산을)·채수찬(전주덕진)·강봉균(군산)·한병도(익산갑)·조배숙(익산을)·최규성(김제,완주)·김춘진(고창,부안) 의원이 초선이었다. 현역 교체율이 60% 이상에 달했다. 정세균 의원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및 당 의장, 민주당 대표를 맡는 등 지역 정치권의 중심 역할을 맡으며 중앙무대에서 전북 정치의 지평을 넓혔다. 19대땐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겨 5선에 성공했다.18대 총선(2008년 4월9일)에서는 통합민주당이 9석을 차지한 가운데 유성엽(정읍) 의원 등 무소속 2명이 민주당 텃밭에서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이중 무소속의 이무영(전주 완산갑) 의원과 통합민주당의 김세웅(전주덕진)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하차하면서 신건(전주 완산갑)·정동영(전주덕진) 의원이 재선거에서 무소속 바람을 일으키며 당선됐다. 그러나 이들도 곧바로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전북에서의 민주당 독주는 20여년간 지속됐다.

  • 기획
  • 김준호
  • 2012.06.01 23:02

전북출신 역대 국회의원 - 도의회 출신 국회의원

19대 총선에서 김윤덕(전주 완산갑, 8대 도의원)김성주(전주 덕진, 89대 도의원)강동원(남원순창, 4대 도의원) 의원 등 도의원 출신 3인방이 국회에 입성하면서 풀뿌리 지방자치의 새로운 이정표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성과에는 앞선 선배(5명)들의 터 닦기가 밑거름이 됐다.2대 도의원(임실2)을 지낸 한상준 의원(1921~1986년)은 5대 총선(1960년, 민의원)때 임실에서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도교육위원을 발판으로 도의회에 진출했던 한 의원은 국회의원에 출마하기 위해 1960년 6월 도의원을 사직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 공화당에 입당했다.양해준 전 의원(1926~2011)도 한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2대 도의회(남원1) 선거에서 당선된 후 5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1960년 6월 도의원직을 사직했다. 그해 선거에서는 낙선했으나, 8때 총선에 재도전해 성공을 거두며 9대까지 재선을 지냈다.26세 때 3대 도의원(임실)을 지낸 손주항 의원(79)은 9대와 10대(임순남), 13대(전주을, 평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13대 총선에서는 7선의 이철승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부안에서 군농회, 도정업 등을 하다 무소속으로 3대 도의회에 입성한 박용기 전 의원(1919~1999)은 10대 국회(고창부안, 무소속)에 당선돼 중앙 정계에 진출했고, 정읍 출신의 김영구 전 의원(72, 5대 도의원)은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승계해 막바지에 금뱃지를 달았다.그러나 김세웅 전 무주군수(4대 도의원)는 18대때 전주 덕진에서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됐다.

  • 기획
  • 이세명
  • 2012.06.01 23:02

"생사 넘나들던 환자가 환한 웃음 지을때 큰 보람"

전북일보가 제62주년 창간기념일을 맞아 '우리고장 명인 명물'코너를 신설합니다. 크게 유명하지 않아도 제 자리를 지키며 땀흘리는 사람들,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결코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닌 우리고장의 자랑거리 등을 매주 한 차례씩 담아내려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1962년 군산 '한국농촌위생원 개정병원'에 입사한 이래 지난 50년 동안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을 돌보며 줄곧 병원에서 근무해 온 홍인표(73·사진) 씨. 홍 씨는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현재 동군산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조무사로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을 돌보며 오는 21일 병원 근무 만 50주년을 맞는 군산에서 가장 오랜 병원근무 경력자이다.홍 씨가 병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군 제대 후 군산 개정면에서 우리나라 '예방의학의 선구자'이자 '의료보험 창시자'인 고 쌍천 이영춘 박사(1903~1980)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살던 집이 개정병원과 이웃한 인연으로 이 박사로부터 "봉사정신이 남다르니 병원 근무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받고 23세이 나이에 병원 문을 들어섰다.이후 이 박사와 함께 의료실무 지식을 쌓아가며 병원근무를 하던 홍 씨는 1973년 이 박사가 추진하던 현재 건강보험 전신격인 '옥구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 설립을 위해 개정면을 비롯한 옥구군 일대를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호구조사를 실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중동바람이 한창이던 1978년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현대건설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SNOS해군기지 배후시설 의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쌍천 이 박사와의 인연으로 1980년 개정병원으로 돌아왔다.존경하던 쌍천 이영춘 박사가 세상을 뜨면서 다시 정우개발 사우디 현장, 삼성건설 이라크 현장을 거쳐 대우·동아의 리비아 현장 등 해외건설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홍 씨는1992년 동아건설 싸리르 플랜트 현장에서 3만시간 무재해 기록 달성을 표창까지 받으며 귀국해 군산 누가정형외과를 시작으로 한사랑병원과 하나병원을 거쳐 현재 동군산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있다.홍씨가 지난 50년동안 국내·외에서 쌓은 수많은 경험은 다른 직원들에게 산 교육이 되고 있으며 환자들이 필요한 것을 먼저 알아내 처리해 주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홍인표 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경력을 높이 사주는 이성규 이사장 등 동군산병원 측의 배려가 있었기에 50년을 맞게 됐다"며 "사무장을 해도 된다지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급박한 환자들이 회복해 웃음짓는 모습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어 계속 현장근무를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일권
  • 2012.06.01 23:02

런던올림픽, 전북선수 누가 출전하나 - 올림픽, 덤벼라!

2012년 하계 올림픽은 오는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근대 올림픽 역사상 30번째로 열리는 대회다.개최지인 런던은 1908년, 1948년 대회에 이어서, 근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세번이나 올림픽을 치르는 도시가 됐다.런던은 지난 2005년 7월 6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17차 IOC총회에서 모스크바, 뉴욕, 마드리드, 파리를 제치고 4차 투표만에 개최권을 따냈다. 런던올림픽 슬로건은 하나의 삶(Live As One)이다. 경기종목은 26개며, 우리나라의 메달 가능종목은 11개가량 된다.그러면 런던올림픽을 빛낼 전북의 주요 선수나 지도자는 누구일까. /편집자 주제30회 런던올림픽 대회에 도내에서는 지도자와 선수 등 20여명이 출전할 예정이다.현재 확정된 출전 선수단은 15명 안팎이나, 구기 등 일부 종목은 선수 선발이 아직 끝나지 않아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구촌 축제의 현장에서 내고장 출신의 지도자나 선수가 전해오는 낭보는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청량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이번 런던올림픽에 도내에서는 지도자 4인이 출전한다.유도 전영천, 사이클 도은철·장윤호, 펜싱 이상기씨가 바로 그들이다.장수 출신으로 현재 고창군청 유도감독인 전영천씨는 심판 자격으로 올림픽 무대에 데뷔한다.국제심판으로 활동하던 전영천 감독은 지난해말 까다로운 관문을 거치며 총24명(아시아 6명)을 뽑는 올림픽심판에 당당히 선정됐다.△전영천 감독, 올림픽 무대 유도 심판'국내 유일' 500여명의 국내 유도심판중 이중 단 한명이 뽑혀서 올림픽 무대에서 심판을 보게된다. 그가 바로 전영천이다.남원 출신의 도은철 감독과 대한지적공사 소속의 장윤호 감독은 사이클계에서 두말이 필요없는 지도자들이다.얼마전까지만 해도 국가대표 사이클 감독 5명중 전북출신이 4명이나 됐다. 김효근, 장윤호, 도은철, 김용미가 바로 그들이다.사이클 종목에 있어 전북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도은철·장윤호 감독은 "세계수준과 비교할때 아직 대한민국 사이클 실력이 많이 뒤떨어져 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전북의 혼을 심겠다"고 강조했다.익산시청 펜싱감독인 이상기씨는 런던올림픽에 남자 에빼 코치로 출전한다.올림픽에 펜싱선수로 4회 연속 출전, 국내 선수중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그는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과 함께 땀흘리며, 유럽 전지훈련을 수시로 다녀오고 있다.이상기 코치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익산시청 펜싱과 전북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선수들은 개인종목이 많다.역도 +75kg급에 출전하는 장미란은 전주 출신으로 원주여고를 거쳐 고양시청에 몸담고 있다.국제무대에서조차 장미란을 위협할 선수가 전무했으나, 최근들어 유력한 경쟁자들이 나타나고 있다.유도 종목에서는 왕기춘·김성민·정경미 등 3명이 선수로 출전하게 된다.대회때마다 투혼을 발휘했던 왕기춘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선수다. -73kg급에 출전하며, 정읍 출신으로 서울체고를 거쳐 포항시청에 몸담고 있다.유도 +100kg급의 김성민은 정읍이 고향이며, 우석고를 거쳐 현재 수원시청 소속이다. 기본기가 탄탄했던 김성민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짧은 시간에 국내 정상에 올랐으나 숙명의 라이벌로 인해 아픔을 겪었다.그는 2010광저우 아시안게임때 김수완(남양주시청) 선수에게 출전권을 빼앗겨 그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봐야했다.김성민은 최근 잠깐 시간을 내 전주에 계신 부모님을 찾은뒤 어릴때부터 자신을 지도했던 스승들과도 만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기자와 만난 김성민은 "올림픽 무대에 서게된만큼 자랑스런 전북인으로서 긍지를 항상 지키겠다"며 "좋은 성적으로 도민들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여자 유도 -78kg급의 정경미는 고창 출신으로 영선고를 거쳐 현재 하이원 선수로 뛰고 있다. 국내 여자 유도 선수중 가장 메달권에 근접해 있어 그의 선전이 기대된다.수영에서는 개인혼영과 접영 200m에 출전하는 도체육회 소속 최혜라가 유일하다.남자 수영 부문에 박태환이 있다면, 여자 수영계에는 최혜라가 있다. 굵직한 국제무대를 석권한 바 있어 최혜라가 다시 한번 신화를 써낼지 주목된다.△양궁 이성진, '금빛 과녁'도전양궁 이성진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나선다.충남 홍성여고를 거쳐 현재 전북도청 선수로 뛰고 있다.선배인 박성현의 그늘에 가려 있었으나, 이번엔 뭔가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충만하다.큰 무대에서 우승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국내 선수중 이성진의 금메달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배드민턴 정재성과 김민정은 전북이 자랑하는 기대주.남자복식에 나서는 정재성은 전주 출신으로 원광대를 졸업한뒤 삼성전기에 몸담고 있다.여자복식 김민정은 현재 전북은행 소속이다.오랫동안 세계무대를 석권했던 전북 배드민턴의 맥을 정재성과 김민정이 과연 이어줄 것인지 도민들의 관심이 모아진다.△펜싱 박경두·김지연 메달 가능성 커펜싱 박경두와 김지연은 현재 익산시청 소속이다.박경두는 에빼, 김지연은 사브르에 출전하는데 과연 익산시청 펜싱의 위력을 얼마나 보여줄지 관심사다.두 선수 모두 최근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메달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사이클 장선재와 박건우의 활약도 기대된다.이들은 전북 출신이 아니지만 전북 선수단에 포함된다.대한지적공사 본사가 곧 전북으로 이전할뿐 아니라 전국체전 등에서 전북 선수로 출전하고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전북대표 선수로 구분하고 있다.한편 4년전 중국에서 열린 제29회 베이징올림픽때는 전북에서 임원 7명, 선수 21명이 참가했다.대한민국은 그때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종합 7위를 차지했는데, 전북선수단은 금 3, 은 2, 동 2개를 따내 국위선양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다.양궁 박성현, 역도 장미란, 야구 이진영·정대현이 금메달의 주인공이었다.은메달은 유도 왕기춘, 양궁 박성현이 따냈고, 동메달은 정경미, 탁구 오상은이 획득했다.

  • 기획
  • 위병기
  • 2012.06.01 23:02

19대 총선 당선자의 숨은 힘 '내조' - 그들의 '입성' 뒤엔 알뜰한 지원군 '여보'가 있다

민주통합당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선출대회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기호 3번 김한길 후보가 아니라 기호 9번인 최명길 후보다. 김 후보의 아내 최명길씨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노란색 재킷을 입고, 사진 촬영 때 마다 3번을 강조하며 손가락 세 개를 편 채 포즈를 취하는 등 적극적 내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내조가 진화하고 있다. 바깥일 하는 남편이 집안일 신경 쓰지 않게 살림과 양육을 완벽히 한다는 의미의 고전적인 의미를 넘어서는 내조로 도내 19대 국회 입성을 도운 숨은 얼굴들을 만나봤다. 국내 최초로 최규성 의원(김제완주)과 부부 국회의원으로 등극됐던 이경숙 전 의원부터 멀리서 지켜보면서 드러나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 김규경 씨까지 내조의 유형은 각기 달랐다. 전정희 의원(익산을)의 유세는 물론 건강까지 보살폈을 한의사 남편 강병기 씨는 청일점. 이상직(전주 완산을)강동원(남원순창) 의원의 아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터뷰에 응하질 않았다.■ "경상도 싸나이도 자상합니더" 조력가 경상도 싸나이 강병기(57공도한의원 원장)씨는 부인 전정희 의원의 자상한 조력가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꼼꼼한 답변과 함께 만만치 않은 삶의 내공을 보여준 수필까지 보내왔다. 외조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도 아내가 살아온 원칙이 무너지지 않도록 격려한 게 전부였다며 겸손해했다. 아내가 처음 국회의원 출마를 꺼냈을 때 그는 조건적 찬성을 했다. 떳떳하고 깨끗하게 살기엔 현실적으로 정치판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고, 차세대 여성 정치인 교육을 해온 삶의 궤적을 볼 때 정치는 언젠가는 넘어서야 할 무엇으로 간주했다. 지명도가 낮은 사람이 자신의 장점을 알려서 좋은 여론을 만들어가기엔 우리에겐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 열세를 느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울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어떤 순간에도 좀체 흔들림이 없었던 전 의원도 그 순간엔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아내의 모습을 존경했다는 그는 선거 이후 아내가 한 인간으로 남편에게 받는 존경을 더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회의원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달가워하진 않았다. (원광대 한의대) 교수였을 땐 교수가 그의 직업이었고, 한의원 원장이 또 다른 직업이 됐듯, 그가 아닌 아내가 해온 일이 바뀌었을 따름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진솔한 삶을 살자는 다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전 의원 만큼이나 그의 행동에도 책임감이 가중됐다는 게 달라진 대목. 시장에서 나누어준 명함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순간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지지자를 찾아다녀야 했던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살자고 덧붙였다. 혹독한 시련 뒤에 굳은 땅에서 이들 부부는 새 출발을 하고 있다.■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 모르게"조용한 배려자 김윤덕 의원(전주 완산갑)의 아내 김선임(45)씨와 이춘석 의원의 아내 김태은(47)씨, 유성엽 의원(정읍) 아내 나수영(49)씨는 조용한 조력가면서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형이다. 셋 모두 가정주부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김선임 씨가 꺼낸 첫 마디는 선거 기간 장사 잘 안 되는 가게의 상인들이 제일 안쓰러웠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간호사로 근무해서인지 측은지심이 강했다. 가정의 헌신이 요구되기 때문에 김윤덕 의원의 정치 입문이 마음에 걸렸으나, 결국 김 의원의 열성에 손을 들어주고야 말았다.  성실함을 믿었어요. 일단 누군가를 믿으면 끝까지 책임져주려고 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반면 아니다 싶을 땐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든요. 어떤 상황에서건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남편이 유독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싶은 날에는 말을 잘 걸지 않고 지켜봐주는 편.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닌 터라 술과 담배를 제발 좀 끊으라는 잔소리도 자주 하진 못한다. 숫기가 없어 남편 대신 가는 행사장경로당은 아직 적응이 덜 됐다. 그래도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보면서 건강한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라며 훈련 중. 김태은 씨의 좌우명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 한국이 정치 건망증이 심하긴 해도, 결국 정치는 민심을 읽어주는 게 아니던가. 복잡다단한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는 이춘석 의원을 위해 남편의 말 못할 고충을 잘 들어주고 헤아려주는 데 신경 쓴다. 때론 적당히 넘어갈 때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씨도 안 먹힌다. 매주 교회에서 남편의 기도를 빠지지 않고 챙기는 이유일지도.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한 유성엽 의원 부인 나수영 씨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미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졌는데, 그 뜻을 꺾을 수도 없는 일. 특히나 남편의 빈자리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챙겨야 했던 그는 서운함을 누르고 아이들의 투정도 대신 받아준다. 희생 없이는 가정이 유지되질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장 가까운 야당" 지도자  이경숙 전 의원(59)은 남편 못지않게 잘 나가는 여장부다. 부부 동시 입장이라는 파격적 결혼식 감행, 국내 최초 부부 국회의원 등극 등 그는 어딜 가나 화제를 몰고 다닌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에 몸담았기에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하필이면 기존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하늘을 찌를 무렵 캠프에 늦게 합류해서 마음이 두 배, 세 배는 더 바빠졌다. 그는 표심이 확연히 다르다고 판단한 지역을 구석구석 훑고 다녔다. 선거운동 기간에 갑작스레 연단에 불려나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도 순발력 있는 재치로 위기를 모면. 30년 간 여성운동 현장을 누비며 각종 현안을 고민해왔던 그는 최규성 의원의 TV 토론회를 모니터하면서 비판적 조언자 역할도 서슴지 않았다. 최 의원의 입에서 아내는 가장 가까운 야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민요 한 가락, 민심 공략" 똑 소리 나는 낙천가  1900곳 경로당을 한 곳도 빠짐없이 돌았어요. 대개 70~80대 어르신이었죠. 그런데 인사만 드리고 나오기가 너무 민망한 거에요. 전공이 성악이라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죠.이쁜 각시가 왔다며 엄청 반겨주셨어요.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이 쯤 되면 송 후보(송애란45)가 남편(박민수 의원, 진안무주장수임실)의 외조를 받는 게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법 하다. 그의 선전에 어르신들은 당선되면 남편과 다시 오라고 당부, 학교가 쉬는 겨울방학에 다시 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난생 처음 선거를 준비하면서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았다. 외모에 신경 안 쓰기로 유명한 단벌 신사 남편 덕분에 아내가 너무 안 챙긴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 박 의원이 개량 한복을 입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지난 22년 간 무주 장수 임실 등을 돌면서 교단에 지켰지만 선거 현장에서 만난 제자가 둘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 그는 서울로 떠난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끔 만들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젊은이들이 되찾는 고향으로 만들기 위한 첫 단추가 이제 끼워진 셈이다.■ "우리 의원님" 충성가 김춘진 의원(고창부안) 부인 오명숙(57)씨는 말끝마다 우리 의원을 강조했다. 전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그가 정계에 입문한 데에는 이처럼 무한 신뢰를 보낸 아내의 역할이 크다. 올해로 3선 성공을 이뤄내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일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투표 격려. 경선 때 너무 힘을 빼서 선거기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고 했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어떤 일이건 슬렁슬렁 못하는 완벽주의자 남편이나 맡겨진 일은 해내고야 마는 아내는 비슷하다. 김 의원이 넌지시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오늘 바빠서 못가겠다고 운을 띄우면, 그는 다른 일을 제쳐두고라도 꼭 다녀오는 식. 오 씨는 우스갯소리로 거의 가정을 버렸다고 웃었지만,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배워나가고 있다.■ "남편의 유일한 컨트롤러" 중재자 김관영 의원(군산)의 아내 목영숙(43)씨는 유일하게 남편의 정치인 생활을 반대한 사람이다. 2년 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시 3관왕을 차지한 남편의 남다른 의지력 때문에 기꺼이 고생길을 자처했다. 초중학교에 재학 중이라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두 아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착한 아이들은 너그러이 이해해줬다. 목 씨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믿는 편이다. 평소에 잘 웃던 남편의 표정이 심각해질 때면 당신, 오늘 너무 잘 했어요 , 한수 위네요 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TV 토론회에선 표정이 경직되거나 고개가 약간 기울면, 아내가 입 꼬리를 올리는 손동작을 전해주기도. 그 순간 김 의원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아내다.■ "나서기 보다는 지켜보는 쪽" 사색가 김성주 의원 부인 김규경(48)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가 근무하는 익산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김 의원의 존재를 거의 모른다. 남편이 하는 일을 반대하진 않았으나, 정치인의 아내를 원하지는 않았다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소리 소문 없이 도왔다. 좀체 화를 내지 않고 자상하면서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의원직에 잘 맞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평소 좌우명대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만의 조용한 내조는 어려운 상황에서 더 빛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상황은 절대 사절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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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2.06.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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