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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폐암

최근 원인불명 폐 질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폐 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증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이라는 최후의 상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공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폐는 생사(生死)를 좌우하는 호흡기능을 가진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더불어 수분, 알코올, 약물 등을 흡수하고 배출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폐는 감염 및 손상되기 쉽다. 특히 폐암은 암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만큼 주의해야 하는 질환이다.전북대학교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김소리 교수는 "폐암은 흔히 감기나 기관지염 증상과의 구별이 쉽지 않고 이미 악화된 상태에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면서 "폐암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폐암의 가장 흔하고 중요한 원인인 흡연을 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폐암이란폐암은 폐에 생긴 악성 종양을 말하며 크게 암세포가 기관지, 세기관지, 폐포 등 폐를 구성하는 조직에서 처음 발생한 원발성 폐암과 암세포가 다른 기관에서 생겨나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폐로 이동해 증식하는 전이성 폐암으로 나눌 수 있다.한국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폐암은 전체 암 발생의 11.0%로 4위를 차지하였고, 남녀의 성비는 3.51:1로 남자에게서 더 많이 발생했다. 발생 빈도는 남성의 암 중에서 2위를 차지했고, 여성의 암 중에서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암 관련 사망률로 볼 때 여전히 폐암은 가장 치명적인 암이라고 알려져 있다.▲ 폐암의 종류폐암은 현미경적으로 암세포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 비소세포폐암과 소세포폐암으로 구분된다. 이처럼 폐암을 구분하는 것은 임상적 경과와 치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소세포폐암은 조기에 진단해 수술적 치료를 통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소세포폐암은 대부분 진단 당시 수술적 절제가 어려울 정도로 진행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급속히 성장해 전신 전이를 잘 하지만 항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에 잘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소세포폐암은 다시 선암과 편평상피세포암, 대세포암, 기관지폐포암 등으로 나눠진다. 흡연과 관계가 가장 많은 암은 편평상피세포암이고, 선암과 기관지폐포암은 흡연과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암의 원인폐암의 가장 흔하고 중요한 원인은 흡연이다. 그 외 다른 원인으로는 유전적 소인, 방사선, 석면, 공해, 간접흡연, 바이러스 등이 있다. 참고로 폐암 환자의 15%는 비흡연자로 알려져 있다.▲ 폐암의 증상 및 증후폐암 초기에는 전혀 증상이 없으며 어느 정도 진행한 후에도 일반 감기와 비슷한 기침, 객담 등의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진단이 매우 어렵고, 암 발생 위치에 따라 증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기관지 혹은 폐와 연관된 증상은 △ 국소적으로 암종이 커져서 생기는 증상(기침객혈호흡곤란흉통 등) △ 주위 조직을 침범해 생기는 증상(후두신경 침범: 쉰 목소리, 식도 침범: 연하곤란상대정맥 중후군) △ 암의 전이에 의해 생기는 증상(뇌기능장애두통구토뼈의 통증 등) △ 암세포에서 생성되는 물질에 의해 생기는 증상(식욕부진발열이상호르몬생성) 등이다.▲ 폐암의 진단폐암 진단 방법에는 여러 가지 검사가 있는데, 폐암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있을 경우 흉부 엑스선촬영, 흉부 전산화단층촬영, 객담검사, 기관지 내시경검사, 경피적 세침생검술 등을 통해 폐암 여부를 가려내며, 그 진행 정도 등을 판단한다. 최종 진단은 객담, 기관지 내시경검사, 경피적 미세침흡인세포검사에 의해 얻어진 조직 또는 세포를 현미경적 검사로 확인하게 된다.폐암으로 진단되면 이후 병기 판정을 위해 전신 골스캔, 뇌 자기공명영상(MRI), 전신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종격동 내시경, 초음파 기관지 내시경 등의 검사가 추가적으로 진행된다.▲ 폐암의 치료폐암은 병기에 따라 각각 그 치료 방법이 다르며, 치료받는 환자의 전신 상태와 개개인의 치료 선호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폐암의 치료에는 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등이 있다. 비소세포폐암의 단계별 치료법은 △ 1, 2, 3A기 일부 근치적 절제술 △ 3A기 일부 항암화학요법과 수술 병용 치료, 혹은 항암방사선 병용 요법 △ 3B기 항암방사선 병용 요법 또는 항암방사선 병용 요법 후 항암치료 추가 △ 4기 항암화학요법 등이다.소세포폐암은 항암화학요법이 치료의 원칙이다. 소세포폐암은 매우 빨리 자라고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암으로 대개의 경우 수술이 불가능하며, 항암화학요법 및 방사선 치료에 반응이 매우 좋다.

  • 기획
  • 강정원
  • 2011.07.11 23:02

여름철 갈증과 당뇨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를 찾게 된다. 여름철은 땀을 많이 흘리게 되어서 몸의 수분 부족으로 물을 마시고 싶은 계절이다. 물은 얼마나 마셔야 될까? 보통 인간은 하루에 내 보내는 물의 양이 2.5L(리터)정도 이므로 1.5~2L정도를 마시는 것이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며, 음식과 각종 차나 음료를 통해 섭취하는 수분양도 있으므로 대체로 1L~1.5L의 물을 마시게 된다.그러나 물을 아무리 마셔도 금방 다시 갈증을 느껴 많은 물을 마시고 또한 소변을 많이 보게 된다면 당뇨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당뇨병이란 뇨(소변)로 당(포도당)이 배출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병이다. 정상인의 경우 소변으로 당이 넘쳐나지 않을 정도로 좁은 범위에서 혈당이 조절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러한 인슐린이 모자라거나, 인슐린이 제대로 일을 못하는 상태가 되면 혈당이 상승하게 되며 이로 인해 혈당이 지속적으로 높은 상태를 당뇨병이라고 한다.당뇨병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으로는 고령, 비만, 스트레스, 임신, 감염, 약물(스테로이드제제, 면역억제제, 이뇨제) 등이 있고, 유전 또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들어 당뇨병이 급증하는 이유는 유전적인 원인보다는 과도한 음식물 섭취와 운동량 감소로 인한 비만증의 증가이다. 꼭 단 것 만을 많이 먹는다고 당뇨병이 생기지는 않지만 단 것을 많이 먹으면 체중이 늘어날 수 있으며, 비만증이 생기면 당뇨병이 생길 위험성이 증가한다.당뇨의 진단은 혈액검사로 판단한다. 증상이 없는 경우 8시간 이상 금식 후에 측정한 혈당이 126mg/dL 이상이거나, 경구 당부하 검사 2시간 후 혈당이 200mg/dL 이상인 경우를 당뇨병이라 한다. 물을 많이 마시거나 소변이 많아지고 체중이 감소하는 동시에 식사와 무관하게 측정한 혈당이 200mg/dL이상일 때도 당뇨병으로 진단한다.당뇨는 동의보감에서는 소갈병이라고 한다. 소갈병은 음식을 잘 분해하면서 몸이 여위고, 갈증이 나면서 물을 많이 마시는 병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소갈병을 갈증이 심한 소갈, 소화기능이 항진되어 많이 먹는 소갈, 소변을 자주 보고 탁하고 끈적끈적한 소갈병으로 분류한다.당뇨는 식이요법과 운동이 중요하다. 식이요법으로는 먼저 술과 면류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탄수화물의 섭취를 줄이시는 좋다. 현미, 보리, 특히 콩은 부식으로 아주 적당하다. 그리고 당을 비교적 적게 함유하고 무기염류, 비타민, 식물섬유가 풍부한 채소를 섭취해야한다. 당을 함유한 음식과 당 음료를 제한해야 한다. 특히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는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적게 먹고 다양한 반찬을 먹는 것이 좋다.운동으로는 유산소운동이 좋다. 유산소운동이란 호흡하면서 즐기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걷기, 수영 자전거 등이다. 이 운동을 하면 비교적 초기 단계에 혈당이 사용되며 그 결과 혈당이 내려가는 것이다./ 신형식(효사랑전주요양병원 한방 3과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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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7.11 23:02

"역사적 상흔이 준 교훈 잊지 맙시다"

순창지역 대표적 사찰인 강천사, 그곳의 재덕 스님은 지난 1992년부터 주지를 맡아왔기에 그만큼 강천사의 역사에 대해서도 정통하다. 그는 특히 625 당시 순창 지역 사찰의 피해를 누구보다도 아쉬워한다.그는 전쟁 당시 강천사 인근에 있던 빨치산들이 대부분 가마골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여순 반란사건 이후부터 빨치산의 근거지가 된 가마골은 전남도당 사령부가 있었고, 특히 인민군 대학교가 있었기에 훈련병을 조련하는 곳이었다. 또한 수류탄 제조가 이뤄졌던 곳이 바로 가마골 이었다. 재덕 스님은 "단순히 가마골 인근에 있다는 이유로 강천사의 보광전, 칠성각, 첨성각 등이 소실된 것은 정말 두고두고 아쉽다"고 말했다. "사찰이 더이상 다른 이유로 훼손돼서는 안된다"는 그는 "역사적 상흔이 준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한편,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1년(887년) 도선국사가 세운 고찰이다. 고려 충숙왕 때는 3개 불전과 각각 12개 승방과 암자를 갖춘 대규모 사찰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시련을 겪었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내부가 소실되면서, 고려시대 덕현대사가 세운 5층 석탑만이 옛 모습 그대로다. 현재의 건물은 1961년에 복원됐다. 대웅전과 요사채만 남아 '이게 절인가 싶어' 지나치기 쉬울 법도 하지만,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천년 고찰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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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7.11 23:02

6. 빨치산토벌과 순창지역 사찰의 피해

한국 연극 100년 역사상 베스트 작품중 하나로 꼽히는 '산불'이 지난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삶과 죽음을 한 덩어리로 응축시킨'산불'은 빨치산들과 과부들의 비극적인 애욕의 싸움을 통해 625 전쟁이 총칼 든 군인들만의 싸움이 아님을 보여준 대작으로 호평받았다. 625 전쟁이 남긴 또다른 상흔 중 알려지지 않은 것은 소중한 사찰이 소각되었다는 사실이다. 빨치산들은 625 전쟁 당시 은거하기 좋은 덕유산, 대둔산, 운장산, 지리산 등 소백산맥 줄기로 이어진 곳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로 인해 사찰을 훼손시키거나, 없애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국군과 경찰이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이들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사찰을 소각해버렸기 때문이다. 소백산맥을 끼고 있는 남원 천황사칠상암, 임실 강진면 성좌암, 완주 운문사, 진안 심원사, 고창 내원암, 정읍 불출암은 다 타버려 절터만 남아있는 상태. 특히 순창은 인근 회문산으로 인해 다른 어느 지역보다 사찰의 피해가 심각했는데 강천사, 구암사, 만일사가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찰이다.▲ 강천사(剛泉寺)"강천사가 소실된 것은 1950년 12월 20일쯤이죠, 당시 11사단 20연대 1중대가 순창군 금과면과 순창군 팔덕면의 치안을 담당했는데, 이들이 강천사에 불을 질렀죠. 의용경찰이 있었는데도, 강천사에 불을 지른 것은 군인들이었어요. 당시 이 지역 역시 낮에는 한국군이 있었고, 밤에는 빨치산들이 있었습니다."강천사의 아랫마을인 순창군 팔덕면 신기마을에 사는 김병관씨(80)의 증언이다. 순창과 담양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강천산은 빨치산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회문산과 가깝다. 또 산악지대로 연결되어 있어 당시 강천사 인근의 빨치산은 주로 가마골을 근거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강천사의 경우 보광전, 칠성각, 첨성각 등이 소실됐으며, 5층석탑도 원형을 잃었다. 5층석탑은 신라 일반형 석탑 양식을 기본으로 부분적으로 백제 석탑 양식을 반영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구암사(龜巖寺)구암사는 내장산과 백양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역시 회문산과도 그다지 멀지 않아 빨치산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빨치산들은 세력이 약화되고 국군과 경찰의 토벌이 강화되자 구암사를 근거로 저항했다. 하지만 국군과 경찰은 강하게 몰아붙여 많은 빨치산을 토벌했고, 이 과정에서 구암사와 그 아랫마을은 모두 경찰에 의해 타 버렸다. 구암사가 소각된 뒤 많은 빨치산들이 죽어 한동안 구암사 근처에 시신들이 남아 있을 정도라고 한다. 구암사 아랫마을에 사는 공필순 할머니(95)는 "(중략) 경찰들이 토벌하러 와서 구암사에 불을 질러버렸어. 그리고 올라가서 많은 빨치산들을 죽였어. 내가 한 참 뒤에 올라가 보니 빨치산들 해골이 여기 저기 보였어! 얼매나 무섭던지!" 라고 증언한 바 있다.▲ 만일사(萬日寺)"1952년 봄 대대적으로 빨치산 토벌을 했는데, 이 때 마을이 비행기로 폭격 돼 마을이 다 탔어요. 인근에 있는 안심마을도 그랬고. 비행기로 폭격한 시간이 대략 점심 때 였는데, 휘발유통을 떨어뜨린 후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휘발유통에 불이 붙어 확산됐습니다. 만일사가 빨치산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알려진 뒤에 들어온 경찰들이 불을 지른 것이죠." (박만선씨)빨치산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바로 회문산은 현재 휴양림으로 개발되어 있는데, 휴양림 안에는 당시 빨치산 사령부가 있던 자리에 빨치산들의 활동공간을 모두 복원해 놓았다. 회문산 아래 쪽에 위치한 만일사는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모두 탔기 때문이다.소각될 당시 만일사에는 법당, 칠성각, 요사채, 화장실 등이 있었다. 법당은 매우 오래된 건물이어서 남아 있었다면 문화재가 되었을 것이다. 법당에 모셔진 불상 역시 엄청나게 규모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불상은 철불이었는데 겉모양은 갸름했다. 이밖에 쇠부처님 세 분이 있었고, 40여 개가 넘는 불상이 있었다. 만일사가 소각될 때 절에는 5~6명의 스님을 포함해 안노장 스님이 절을 지키고 있었는데 화재로 인해 입적, 마을사람들이 스님을 화장시켰다고 전해진다. / 이병규 문화전문시민기자(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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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7.11 23:02

[새만금] 새만금 방조제 명소화사업 본격화

새만금 관광개발의 출발점인 새만금 방조제 명소화 사업이 본격화된다.국무총리 소속의 새만금사업 정책 심의·의결기구인 새만금위원회는 7일 오전 '신시도 휴게시설 개발사업 기본계획(안)'에 대한 심의 결과, 별다른 변경 없이 원안대로 통과시켰다.이에 따라 이달 내에 신시도 개발 사업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기본계획에 대한 승인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신시도 개발은 한국농어촌공사가 지난해 5월, 민간 컨소시엄을 개발사업자로 선정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이후 7월에 (주)새만금을 설립했다.개발 사업은 군산시 옥도면 신시도리 일원 6ha에 총 784억원을 들여, 오는 2015년까지 2단계에 걸쳐 휴게시설과 전망대, 숙박시설 등을 개발하는 것.이후 개발사업의 뼈대인 기본계획안에 대한 정부 관계부처와의 협의 절차 등이 순조롭게 진행된 가운데 사실상 막바지 승인 절차만 남겨 놓았다.나아가 기본계획과 함께 실시계획 승인 절차도 진행 중이어서, 빠르면 오는 10월이면 신시도 휴게시설 개발 사업에 대한 공사 착공도 기대되고 있다.도 관계자는 "신시도 개발 사업이 연내 추진됨으로써, 새만금 관광 활성화는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한편 신시도 개발 사업은 1단계(2011∼2014년)에 휴양문화시설과 모노레일, 전망대, 숙박시설, 타워형 열기구, 관광안내소, 레스토랑 등이, 2단계(2014∼2015년)에는 전문식당과 숙박시설, 식음시설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 기획
  • 구대식
  • 2011.07.07 23:02

정봉희 전북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여성주간(7월 1일7일)을 맞아 정봉희(52) 전북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만나봤다. 여성단체협의회는 여성의 발전과 복지 사회를 이룩하는 일에 여성이 적극 참여토록 권장하고, 여성들의 의견을 정부와 사회에 반영함으로써 여성의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을 목적으로 지난 1975년 4월 발족됐다. 지난해 임기 2년의 회장제12대)에 취임한 그는 역대 최연소 회장으로서 도내 20개 회원단체와 14개 시군 여성단체협의회를 대표하고 있다. 갈수록 급변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사회참여 확대, 양성평등, 복지 실현을 위한 방안은 무엇이고, 향후 과제는 무엇일까.-해마다 이맘때면 '여성주간'을 맞습니다. 여협회장으로서 여성주간을 보내는 감회는 무엇입니까.▲여성주간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양성평등과 남녀가 함께하는 행복한 가정만들기, 그리고 여성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과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입니다.해마다 여성주간을 맞아 진정 여성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지 못하고, 의례적 행사에 그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올해 여성 주간을 보내면서 "여성들이 정말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방안에 대해 고민해 봤습니다.계량화는 어렵겠지만 10년전, 20년전, 30년전에 비해 여성들의 권익이 향상된게 사실입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성들이 가정에서 기죽어 산다"며 양성평등이 완전히 실현된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현실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성 고위직은 거의 없습니다. 공직사회를 예로들면 도청이나 시군에서 사무관(5급)이상 여성 고위직이 몇이나 됩니까. 얼마전 있었던 일이지만 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전북도 복지여성보건국장에 여성을 임명하지 못했습니다. 선거때마다 정치권에서 "제대로 된 경력과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말을 할때마다 여성단체 회장으로서 안타깝고 무력감을 느끼곤 합니다.-양성 평등의 기초는 여성권익 신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여성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방안은 어떤게 있습니까.▲한마디로 말하면 여성의 자기계발 노력이 있어야 하고 사회 시스템이 크게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남성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찾아가는 남편교실'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때 남편들에게 묻습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면 현재의 아내와 결혼하겠느냐"고 말이죠. 그러면 80% 이상의 남성들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이유를 들어볼까요. "시댁에 너무 잘해줘서.." "집안에서 내조를 너무 잘해줘서" 등등 입니다. 여성은 하나의 객체일뿐 철저하게 남성중심의 사고에 의해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그런데 재미있는게 있습니다. 여성들은 지금의 남편과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게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꼭 지금의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여성의 권익이 아직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최근들어 일하는 여성이 크게 늘어나면서 직장이나 사회에서의 양성평등 문제가 심심치 않게 논란이 되곤 합니다.▲하루가 다르게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참여하면서 이젠 여성들도 프로정신으로 무장해야만 합니다. 여성이나까 좀 예외를 둬야 한다는 아마추어적 사고로는 결코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여성들도 세련된 매너와 풍부한 전문지식, 그리고 말 한마디, 글 한줄이라도 제대로 쓰는 능력이 있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된만큼 개인적으로 노력하고, 저희 단체에서도 각종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야 합니다.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직장내 문화를 보면 수평적으로는 양성평등이 이뤄져 있습니다. 하지만 수직적 양성평등은 갈길이 엄청나게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들어 외국인과 결혼하는 다문화가정이 크게 늘고 있는데 남녀평등을 실현하는데 있어 이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세대와, 문화 격차가 너무나 큰 상태에서 결혼하면서 파생되는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여성단체에서도 더 관심을 갖고 충분한 교육을 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음식 요리방법 교육 등도 병행돼야 합니다.-전북여협은 스스로 30만 회원을 가진 단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계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고, 어떤때는 관에 휘둘리는 듯한 인상도 없지 않습니다. 당면 과제는 과연 어떤게 있습니까.▲여성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는 여성단체들의 결속력이 더 강화돼야 합니다. 여성계를 대변하는데 있어 회장인 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충고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정치권이나 관공서를 비롯, 사회 각계에서 능력있는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전북여협의 경우를 보면 오양순 전 회장이 국회의원을 지냈고, 이영조유유순 전 회장은 도의원을 역임했고, 시군의회에도 많은 회원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앞으로 역량있는 분들이 지방의회 등에 더 많이 진출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한가지 더 강조할 것은 이젠 우리 여성단체도 단순히 양성평등만을 외치는데 그치지 않고, LH유치 등 지역 현안이 있을때는 적극 참여하고 우리의 것을 쟁취해야 한다고 봅니다.

  • 기획
  • 위병기
  • 2011.07.07 23:02

[새만금] "새만금·내년 국가예산 적극 협조할 터" 민주당 예결위 전북 방문

민주당 국회 예결위원들이 전북지역 현안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키로 했다.강기정 의원 등 민주당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들은 5일 전북도를 방문해 도의 현안과 내년도 국가예산확보 대상사업을 논의한 가운데 주요 사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예산 확보에 협력해 나갈 계획임을 약속했다.이날 전북방문에는 국회 예결위 간사인 강 의원과 오제세 의원, 도내 출신 김춘진 의원과 최규성 의원이 참석했으며, 이들은 완주군 봉동 소재 KIST 전북분원을 방문해 김완주 도지사로부터 도정현황을 보고 받았다.김 지사는 이 자리에서 "새만금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려면 개발청을 신설해 사업을 전담토록 하고, 특별회계를 설치해 자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건의했다.또 새만금신항만 건설과 새만금 내부개발, 익산 왕궁 정착농원 환경개선, 탄소밸리 구축, KIST 전북분원 복합소재 기술연구소 건설, 태권도공원 조성, 무주 ~ 설천 국도 확포장 등 7개 사업에 대한 예산 확보도 요청했다.이에 대해 예결위원들은 "새만금 관련사업 등 도내 주요사업들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내년도 국가예산이 반드시 반영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라고 약속했다.

  • 기획
  • 구대식
  • 2011.07.06 23:02

[새만금] 새만금 성패, 카지노에 달렸다

새만금 관광단지가 마카오나 싱가폴 등 세계적인 관광지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카지노가 들어서는 복합리조트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는 최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내국인 카지노 도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언급한 것과 맞물려 확산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한국관광학회 학회장인 한범수 교수(경기대)와 호원대 장병권 교수는 5일 수원 경기대학교에서 열린 제70차 국제학술대회에서 '투자수익성 분석을 통한 새만금 카지노형 복합리조트 도입에 관한 탐색적 연구'라는 제목의 발제 논문에서 이 같이 새만금 카지노 도입에 대한 중요성을 주장했다.이들에 따르면 새만금은 경제자유구역 300만평과 문체부 소관 400만평의 관광개발이 계획돼있으나 관광진흥법에 명시된 관광시설로는 대규모 투자유치에 한계가 있다.새만금 관광단지의 투자 수익성을 분석한 결과, 현재 계획돼있는 관광개발계획으로는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보이며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특히 중국 관광시장의 성장을 고려할 때, 새만금 복합카지노리조트 개발은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카지노 도입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나섰다.새만금 카지노는 지난달 정병국 장관이 내국인 카지노를 적극적으로 도입해나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나갈 것을 주장한 후, 서서히 공론화되는 모습이다.정 장관은 당시 "카지노를 포함해 관광산업 정책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할 때가 됐다"며 "트렌드에 맞춰 관광산업 정책을 심도있게 연구할 때"라고 말했다.이에 앞서 지난달 1일 서울에서 열린 '새만금 국제포럼'에서도 전문가들이 새만금의 규제완화 차원에서 카지노를 허용해줄 것을 제시, 힘이 실리고 있다.도 관계자는 "새만금의 카지노 도입 필요성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라며 "향후 전문가 의견청취 등을 통해 도입여부를 심도있게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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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대식
  • 2011.07.06 23:02

[새만금] 새만금방조제 관광객 1000만명 돌파

지난해 4월 새만금 방조제 도로가 개통된 이후 새만금을 방문한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돌파했다.5일 군산시에 따르면 개방 435일째인 이날 오전 11시경 1000만 관광객을 돌파했다.지난 4일 누적 방문객 수가 999만 7,050여명을 기록했으며, 이날 1000만명 돌파로 일일평균 2만3000여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또한 부안통제소에서 군산통제소를 통과한 차량은 98만여대, 군산통제소에서 부안통제소를 통과한 차량은 122만여대로 총 220만여대의 차량이 새만금을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그 동안 새만금방조제는 스포츠 및 문화행사의 장소로 각광을 받아 국제마라톤대회, 자전거축전, 인라인마라톤대회, 새만금 낚시대회 등 다양한 스포츠행사 및 문화행사가 치러졌다.특히 지난달부터 방조제 내 아리울아트홀에서 상설공연이 시작돼 관광객 증가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여기에 이달 중순 신시도와 야미도를 잇는 새만금방조제 메가리조트 개발부지 중 일부가 임시개장돼 오토캠핑장, 4륜 오토바이(ATV) 체험장을 설치되고 요트, 수상스키, 패러세일링 등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어서 새만금의 인기는 계속될 전망이다.시 관계자는 "신시도 휴게 시설 부지에 편의점, 푸드코트 등이 운영에 들어갔으며, 7월 중순에 1호 방조제 도로 높임공사가 완공됨에 따라 방조제도로도 전면 개통 할 예정이다"며 "그동안 제한했던 야간통행도 허용 돼 관광객 증가세는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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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일권
  • 2011.07.06 23:02

[새만금] "신재생에너지용지 중심축으로 개발"

새만금에 그린에너지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용지를 중심으로 연계 개발축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전북발전연구원이 5일 도청에서 개최한 '새만금 그린에너지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강희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신재생에너지파크와 에너지용지, 산업용지별로 벤처산업 육성과 연구·시험·생산, 풍력발전단지 조성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고 밝혔다.특히 강 연구원은 "녹색기술산업이 기존 산업기술과의 연관성도 높아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기술을 확보한 삼성 LG SK POSCO 등 국내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전북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그린에너지산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지방정부와 도내기업들의 역할분담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강 연구원은 지방정부는 안정된 수요기반 확보를 통한 수출산업화와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 일관성 있는 정책수립 등을 통해 지원해야하며, 기업들도 성장 기회로 인식하고 주력산업과의 융복합화로 시너지를 얻고 기업간 연대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함께 오랜기간 대규모 자금지원이 필수적인 산업 특성상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강 연구원은 또 그린에너지산업 고용효과가 높은 만큼 지역민 우선고용을 위한 규제와 인센티브 마련과 맞춤형 인력공급을 위한 교육제도도 지역에서 앞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권혁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그린에너지산업을 인력양성과 연계해야 한다"며 신재생에너지 특성화대학 등을 제안했다.권 연구위원은 또 "호남광역권은 녹색신산업 육성을 통해 지역 경제수준을 향상시키는 전략추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전략적 R&D 활성화도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광역경제권에서는 지역 유치기업의 단기상용화와 애로기술 해결에도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심포지엄에서는 신성철 한양대교수, 김성호 군산대교수, 설경원 전북대교수,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연구원, 최중섭 GS건설 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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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수정
  • 2011.07.06 23:02

5. 지방자치 20년 명암

참고: 사진은 주민감사청구 관련 지난 2006년 11월 전주 중인리 실버타운 관련 주민들의 감사원 감사청구 자료사진과 2004년 2월 14일 부안주민들의 방폐장 관련 주민 투표 자료사진 검색해 사용 요망지방자치 20년을 맞아 자치단체와 의회에 대한 현황과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방자치의 핵심인 주민참여에 대한 논의는 협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방자치제에서 주민참여를 위한 제도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나은 지역사회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지방자치제가 자치단체장과 의회 선거에 주목하였다면 20년간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시민사회단체의 주민참여활동은 다양하게 시도되어왔다. 주민참여활동은 주민운동을 통해 제도가 만들어지고 활성화되기도 하였으며 제도를 통해 보장되고 발전되어 왔다.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1991년 지방자치법은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다.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주민들과 시민단체는 자치적인 주민운동을 통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과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전개하였다.초기 주민운동과 시민운동은 의회와 지방정부를 상대로 권력감시 활동을 전개하며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를 추진해 왔다. 의정활동모니터와 회의록의 분석 등을 추진하며 의정감시활동을 전개하고 판공비공개와 예산감시활동, 사회단체보조금 개선활동을 통해 행정감시활동을 전개해 왔다. 사후적인 감시활동의 한계를 개선하여 정책참여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학교급식관련조례제정, 시민참여제도 마련, 의정비관련 등 정책제언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게 된다.지방자치 20년 중 초기 10여년은 주민참여제도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권력감시운동과 의정감시활동, 주민운동을 통해 지역의 행정과 정치, 복지, 의정 등에 영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주민운동의 성과로 2000년대부터 주민참여제도가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한다.특히, 1998년 제정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주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행정에서 독점하고 있던 정보를 알 수 있게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음을 의미하며 공개된 정보를 활용하여 사후적 감시와 예방활동의 실증자료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민참여제도2000년부터 마련된 주민참여제도는 다음과 같다.(도표참조)'주민감사청구'란 주민들의 집단적 서명에 의해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한다고 인정되는 사안에 대해 감사를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주민발의'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입법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즉, 시민들이 일정한 수 이상의 서명을 갖춰 청구를 하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제정하거나 개정 또는 폐지하는 안건을 지방의회에 제출할 수 있게 한 것이다.'주민투표'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한 정책결정사항을 주민들의 투표에 부쳐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주민투표'를 청구할 수 있는 주체는 주민이어야 하나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심지어 중앙행정기관이 주민투표의 발의과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주민소송'이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재무회계행위에 대해 주민이 소송을 제기하여 그러한 행위를 예방 또는 시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주민소송을 제기하려면 먼저 주민감사청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주민소환'이란 일정 수 이상 주민의 집단서명으로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의 해임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의 실시를 청구할 수 있고, 실시된 투표에서 투표자 과반수 이상이 찬성할 경우에는 선출직 공직자를 임기 중에 해임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주민참여예산'이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이러한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들 중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은 지방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의미가 강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주민발의'는 의제설정권을 주민들에게 부여한 것이며 '주민투표'도 주민들에 의해 발의가 될 경우에는 주민들의 주도성이 보장될 수 있다. 한편 '주민소환'은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해임할 수 있는 강력한 효과를 통해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주민참여예산'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이 확정되기 이전의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으로 상당히 적극적인 의미의 주민참여제도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제도의 도입은 주민참여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제도의 실효성이 약한 경우에는 주민참여활성화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제도의 형식성이 개선되어야 하며 주민들의 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변화와 새로운 모색이 있어야 한다.7월 4일 천안시청 중회의실에서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지방자치위원회와 충남?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충남발전연구원 등의 주최로 '지방자치 20년, 주민참여 활성화를 위한 기획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하승수소장(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변호사)은 다양한 주민참여운동을 소개한 뒤 "주민참여의 주체는 주민들이 되어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민과 관이 협력하여 주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비전과 로드맵을 가지고 활발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염경형(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실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1.07.05 23:02

송방용 의장(대한민국헌정회 원로회의)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백수(白壽99세)인데다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어른을 만난다는 설렘이 큰 반면 과연 인터뷰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없지 않았다.하지만 여의도 국회 옆 헌정회관에서 송방용(宋邦鏞) 원로회의 의장을 뵙는 순간, 우려는 싹 사라졌다. 바둑을 두다 일어서며 맞는 미소와 함께 악수를 건네는 손마디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큰 키에 맑은 얼굴, 시종 겸손한 모습에 "참으로 곱게 늙었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약간 허리가 굽긴 했으나 인터뷰하는 2시간 내내 자세 한번 흩뜨리지 않고 강기(剛氣)있는 목소리로 응해주셨다.대한민국 1324명(현직 296명 포함)의 전현직 국회의원 출신중 가장 연세가 높은데도 돋보기를 쓰거나 보청기도 끼지 않은 채였다.-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그래요. 반갑습니다. 저도 마음으로부터 전라북도민하고 한번 얘기하고 싶었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남기고 싶은 말고 있고" (김제시 봉남면 출신인 송방용 의장은 김제에서 무소속으로 나와 제 2대와 3대 국회의원, 그리고 제 5대 참의원, 제 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금융통화위원,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헌정회에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나오시는가요?"월수금 이렇게 오는데요. 대체로 오전 10시에 와서 오후 4시에 들어갑니다. 회원들과 담소도 나누고 바둑도 두고, TV 같은데서 (인터뷰하러) 많이 오는데 가릴 것 없이 얘기합니다."- 원로회의 의장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벌써 3번째(임기는 2년)입니다. 세 번 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에요. 미련하게도 나이가 제일 많아서.(하하하)"- 의장님이 일제 때 연희전문학교(연세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들었습니다만."여담이지만 제가 정인보 선생님의 수제자라면 어떨까 합니다. 일화 하나 소개하지요. 제가 졸업 맡을 때 전교를 대표해서 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인보 선생님이 너 답사 썼느냐? 하더니, 가져오라고 해요. 보시더니, 던져버려요. 그러면서 글은 그물로 말하면 벼루줄과 그물코가 맞아야 하는데,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무슨 수식어가 그렇게 많냐고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가요?"다시 써가지고 갔더니 선생님이 몇 자 고쳐주시데요. 그 뒤 국회의원이 돼서 그 양반이 당시 감찰위원장(지금의 감사원장)이었는데 댁(흑석동)으로 찾아갔지요. 그랬더니, 너 이놈 문과한 놈이(법과도 경제과도 아니고) 국회의원이 되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나한테 와서 인사할 시간 있으면 돌아가서 빨리 헌법하고 재정문제를 공부하라고. 그게 그 때 사제지간입니다. 요새 전교조 사람들, 아이들에게 자유 주는 것이 지상의 과제인 것같이 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 헌정회 총회 마치고 백수연(白壽宴)을 하신 걸로 아는데요?"안 할라고 그랬더니, 총회 끝나고 하면 돈도 안드는데 뭣 땜에 안하려고 그러느냐 해서 그냥 백수연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내가 99년 동안 살면서 일정 33년 산 것은 접어 버리자. 그리고 첫째로 세계적으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비행기가 생겨 육해공 어느 곳이나 갈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또 사람의 말이 광속에 의해 전달되는 시대가 오지 않았느냐. 아울러 우주를 정복하는, 옛날 같으면 신의 세계를 침범하는데까지 이른 것 아니냐. 이외에 1922년 소련이 레닌의 힘을 빌어 소련연방을 세웠죠. 이것을 소련이 1991년에 스스로 해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유욕망이라는 것을 거스르고는 정치가 안된다는 교훈을 준 것 아니냐, 그런 말을 했습니다. 또 지금 카다피나 이집트 장기집권한 사람들, 중국을 위시해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지 않느냐. 앞으로 대중의 시대가 오는 것이 틀림없다는 얘기를 했습니다.그리고 나는 일평생 우리 한국이 이렇게 잘 살게 될 줄 몰랐단 말야.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한번 짚어보자. 그것은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에 그런거야. 나는 이승만 박사를 정적(政敵)으로 삼았지만 이승만 박사가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크게 잘한 일이라고 칭찬을 한단 말이야. 또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살게 하는 방향으로 산업화를 유도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된 것 이니냐. 누가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생각한 사람 있겠느냐. 또 5만명 가까운 병사를 한국에 묻어 준 미국같은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을 미워할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게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필로소피(philosopy)입니다."- 제2대 때(1950년) 김제에서 당선돼, 국회에 첫 진출을 하셨는데요?"그 당시 저는 미국을 가려고 연세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영문과를 한 거고. 그때 벌써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고, 그럴 야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가는 것이 좌절되었어요. 낙심하던 차에, 문득 생각한 게 있어요. 그게 허숭이에요."- 이광수의 '흙'에 나오는 주인공 말이죠?"예. 자, 이거 뭐 미국 못 갔다고 실망할 것 없지 않느냐. 나도 허숭이 되면 안되겠느냐. 그래서 졸업 맡은 그 이튿날 시골로 갔죠. 그래서 정말로 지게 지고 소 몰고 거머리 뜯기고 그렇게 시골생활을 했죠. 그것도 저는 훌륭한 아버님을 두어서 가능했어요. 학교도 졸업했는데 취직하라면 큰 일이거든요."(송 의장은 14년간 김제에서 브나로드, 즉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부친은 구한말에 여주군수, 조부는 곡성군수를 역임했다.)- 당시 계몽운동이 힘들었지 않았나요?"유치장에 가끔 들어갔죠. 창씨개명을 않했거든. 거기다가 집안은 그렇지, 아버님은 상투를 안깎으셨지. 그런데 (유치장에서) 그 썩은 보리밥도 꼭꼭 씹으면 맛있어요. 사식(私食) 안들이고 오기로 그렇게 먹은거지. 시커먼 다꽝(단무지), 그런 것 먹었죠."- 그러다 농촌운동 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국회의원 출마를 권해서 나온 것으로 아는데요?"나 한테서 배운 아이들이 제헌(국회) 때부터 나가라고 그래요. 안나가니까, 그 때는 자기들이 신문지에다 기호를 써 가지고 붙이고 그랬어요. 11명 나왔는데 기호가 11번이에요. 1번이나 11번이나 맘먹지 않느냐. 끝에다만 찍어라. 그래서 당선되었죠.(하하하) "(당시 김제에는 홍희종, 조한백씨와 도지사를 지냈던 장현식씨 등 거물들이 다수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있었던 이유가 특별히 있었습니까?"제가 나중에 한민당하고 손을 못잡은 이유가, 그때 나를 공산당으로 몰았거든요. 당시 전주지검 검사장이'이 사람이 공산당이면 당선돼도 가둘 수 있는데, (선거) 이틀 앞두고 구속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해서 (경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해버렸어요. 그 대신 사무장하고 선거운동원 182명을 전부 가둬버렸죠. 곳곳에 가면 부인네들이 금방 낳은 달걀을 손에 꼭 쥐어주는 따뜻한 정(情), 그걸 안고 당선되었기 때문에 이 분들을 절대로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을 했던거죠."- 2대와 3대 국회 때 활동은 어떻게 하셨는가요?"2대 때는 부산 피난시절이라 지역구나 의정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3대 때는 한글간소화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언문같이 쓰면 되는데 무슨 문법이냐 하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자 이선근 문교부장관이 간소화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그 때 제가 발의자가 되어 이선근씨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로 네거리가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시끄럽다해서 일방통행을 시키면 잘 되겠느냐, 글에도 길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 제가 막았죠. 장준하씨의 사상계에 대서특필돼 전문이 실렸습니다."- 또 자유당의 사사오입 때 암호투표를 폭로하셨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셨을텐데요?"저는 그때 무소속구락부에 있었고요. 국회에 들어가니까 이철승 의원이 자유당의 암호투표 얘기를 해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유진산 씨등 몇 사람에게 알아봤는데 후환이 두려워 말을 안해요. 결국 (누구한테 얻었는지) 그걸 목숨을 걸고 보장하겠다고 한후 단상에 올라갔어요. '이럴 수가 있느냐, 헌법을 신성하게 고쳐야지.' 하고 발언을 한 거죠. 그 때 2층에는 이정재 등 동원한 깡패들이 꽉 차있었거든요. 처음으로 나한테 스탠딩 오베이션(기립박수)했어요. 그렇게 싸웠죠." (송 의장은 당시 우리나라가 법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때의 모습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일이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가까웠던 죽산 조봉암씨의 일화도 들려줬다.)- 후회되는 일이라뇨?"뭘 후회하는고 하니, 아니오 아니오 하는 소리는 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이거다'하고 제시하지는 못했어요. 다시 말하면 그 때 내 지식은, 또 일반국민이 원하는 것은 아니오 아니오를 원했지, 대안을 가지고 나오지는 못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나는 그 때 다 알고 잘했다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그 때 나는 무식했다, 정열은 있었다, 싸움도 했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에 무슨 플러스를 했느냐. 그걸 나 자신이 의심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5대 참의원(1960년)에도 당선되셨는데요. 참의원의 역할이 무엇입니까?"지금 미국하고 똑같아요. 상원이에요. 그 때 참의원은 1부와 2부가 있었습니다. 1부는 6년, 2부는 3년입니다" (참의원선거는 헌정사상 단 한번 실시됐다. 전국적으로 58명, 전북에서는 6명을 뽑았다. 송 의장은 1부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516이 일어나 곧 그만두시지 않았던가요?"9개월인가 하고 없어지고 말았죠. 오늘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고요. 장면 정부는 무기력했어요.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으나, 장면 선생은 정치를 할 분이 아니에요. 정치를 할 사람들은 생명을 내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는 왜 하느냐? 이걸 윌리엄 처칠 경은 얘기하고 있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기자들이 처칠 경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정치철학은 뭡니까? 대답이 그래요. 나 보다는 정당을 더 중요시한다. 정당보다는 나라를 더 중요시한다. 그런데 요새 국회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런 정치인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프라이아리티(priority)가 뭔지 모르니까 지금 우리나라 정치가 이 꼴이 아니겠느냐 하는 거지요."- 박정희 대통령과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들었습니다. 입각도 여러번 권유 받으시고."제가 정치인으로서 '이거다'하고 생각한 것은 박정희씨하고 일할 때입니다. 박정희씨가 세번 입각을 권유했지만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가야할 길은 역시 산업화해서 빨리 부(富)를 증식시켜서 재(財)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知knowledge), 이런 것들을 갖추지 않고서는 나라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박정희 대통령이랑 공부한 거죠." (송 의장은 그 후 장관급인 경제과학심의회 상임위원을 8년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통일의 연착륙을 위해 인도주의적 지원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나는 그런 차원을 넘어 이북을 이렇게 보고 있어요. 김정일이 하는 일이 독재입니까 아닙니까. 또 3대를 세습하는 것은 전제주의 아닙니까. 김정일이 하는 것이 공산주의 아닙니까. 그럼 김정일을 도와 주는 일이 2500만 주민에게 도움이 됩니까 해(害)가 됩니까. 우리가 이북사람을 동포라고 한다면 하루속히 해제해 줘야지요. 그런데 무비판적으로 쌀이나 보내 주는 것이 옳은 일 입니까. 이북의 동포들이 법률없는 세상에서 학살을 당하고 있는데 그걸 구해주는 조치를 우리가 취해야 합니까 아닙니까. 이것은 이북을 싫어하는 이전의 문제고, 당위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기억해 주세요."- 내년 12월에 대선인데요. 대통령으로서의 덕목은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나 보다는 정당을, 정당 보다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걸 안하면 헛것입니다."- 전북도민에게도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왜 전라북도는 민주당입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가야합니까. 캘리포니아 보다 작은 땅에서 뭐가 전라도고 경상도입니까. 제 며느리가 셋이 있는데 전라도 강원도 부산(출신)입니다. 전라북도도 하나의 대한민국 공동체입니다. 전라북도부터 문을 끌르세요. 우리가 클 때 전라도는 그렇게 쪼그라들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정계에 내다 놓으면, 그 사람들 단상에 올라가면 호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라북도의 의원으로 있었습니다. 요새 그런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네요. 바람직한 것은 전라북도의 국회의원을 베스트를 뽑아라. 어느 일부에 속한 사람을 집착하지 말아라. 내 이런 얘기를 꼭하고 싶습니다."- 내년에 낼 자서전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아니요. 안 쓸랍니다. 그동안 준비했었는데, 법정스님이 쓴 책을 회수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 생각했습니다. 자서전은 자기 미화의 일부입니다. 아무리 넘어서려 해도 해탈이 안돼요. 그럼 내 변명하고 마는거든요."(송 의장은 인터뷰를 마칠 무렵 전라북도민들에게 "기쁘게 살아주시라고 부탁해주세요. 그리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구세주가 돼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본인도 편하고 세상도 편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마음 같아서는 전라북도에 가서 마이크도 잡고 강연도 하고 싶은데하며 애틋한 정을 표했다.)◆ 송 의장의 思婦曲송 의장의 부인(이복쇠)에 대한 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10년전, 앞서 간 부인에 대해 "집 사람은 저의 은인이요 천사"라고 말했다.당시 경성보육학교를 나온 인텔리인데도 송 의장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 농촌운동을 했다. 부인은 한번도 송 의장 앞에서 집안의 걱정되는 얘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새벽부터 찾아오는 손님을 맞았고 친척 아이들까지 집에 맡겼지만 한 마디 불평없이 내조를 했다. 그래서일까. 송 의장은 10년째 부인의 유골함과 영정을 방에 모시고 산다. 5년간 치매와 당뇨로 투병하다 먼저 간 부인의 유골을 남이나 절에 맡기는 것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따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송 의장은 아침 저녁으로 "나, 일어났소. 나 다녀오리다"면서 항상 곁에 있듯 말을 건넨다고 한다. 부인의 생일과 기일(忌日)이면 꽃을 사다 유골함에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의장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어떻게 하실 작정이냐?"고 묻자 "자식들에게 화장해서 Let them be free(너희들 마음대로 하라)"했다고 말한다. 부부는 64년을 해로하는 동안 항상 존댓말을 썼고 슬하에 5남매를 뒀다.송 의장의 건강비결 역시 인구에 회자된다. "부모님이 건강한 몸을 주셨다"면서도 "자기관리가 절대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관리는 유명한 건강 7계명이다. 덕분에 평생 돋보기도 보청기도 틀니도 지팡이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①담배를 피지 않는다 ②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③매일 7000보씩 걷는다 ④아침마다 맨손체조와 요가를 한다 ⑤하루 세끼 외에 군것질을 안한다 ⑥술은 친구와 기분좋게 마신다 ⑦비타민제를 정기적으로 먹는다.

  • 기획
  • 조상진
  • 2011.07.05 23:02

5. 우리 안의 바깥 전주화교

전주의 근대사를 함께 써온 전주화교들한 때 전주가 화교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혀 중국 화교 문화와의 교차점을 이루는 지역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전주화교는 전주 근대문화사에 있어 확고한 하나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민족의 격동기였던 근대 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인식이 부족한 데다 타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우리문화는 전주화교문화가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말았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의 역사를 수놓는 당당한 씨줄이자 날줄인 전주화교들의 이야기. 중국 화교문화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전동성당, 관성묘, 삼합원을 통해 잊혀지고 있는 전주화교의 문화를 돌아본다.▲ 화교 1세대에 의해 지어진 전동성당화교라 함은 '본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여 현지에 정착,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국의 문화적, 사회적, 법률적 측면 등에서 유기적인 연관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인 또는 그 자손'을 뜻한다. 이들 화교들이 전주에 터를 잡은 것은 한 세기 전으로 추정된다. 그 실마리가 되는 첫 번째 것은 전주의 건축, 토목 현장에 투입된 중국인 목수나 기와공 등 기능공에 대한 이야기다.전주 한옥마을 경기전을 마주보고 자리 잡은 천주교 성당인 전동성당.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복합된 이 성당은 호남 최초의 서양식 근대건축물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다. 1908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완공된 전동성당에는 3년 이상 전주에 거주하며 공사에 참여했던 중국인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이 본당 건물의 기초공사 당시 중국 공장들이 흰색과 붉은 벽돌을 찍어 쌓았다. 5명의 목수와 100명의 석공들이 가마를 설치하고 65만장 이르는 벽돌을 찍었다고 한다.('전동성당 100년사' 중 보르메 신부가 대구교구에 보낸 편지) 당시 이런 벽돌을 찍을 수 있는 기술은 중국인 석공들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당시 초대 주임신부가 중국인 목수에게 공사를 맡겨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전주의 자랑 중 하나인 전동성당이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대아리 저수지 축조에도 이들의 땀이 보태졌음도 확인된다. 1921년께 호남평야의 젖줄인 만경일대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경강 상류인 고산천에 대아리 저수지가 건설된다. 이때 당시 댐 외벽에 석축을 축조하는 공사에도 중국인 공장들이 참여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이들이 1910년 전후 전주 근대사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이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화상(華商)들과 연계되면서 전주화교의 시초가 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화교들의 정신적 신앙, 관성묘또 하나,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산기슭에 있는 관성묘에서도 전주화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관성묘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운장, 즉 관우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말한다. 유럽과 미국에 희랍신화에서 유래하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행운의 여신이 있다면 동양 즉 중국과 한국에는 구체적 재복신(財福神)으로서 관우운장이 숭상되고 있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관운장은 의리와 신의의 상징이어서 신용을 생명으로 받드는 중국 화교상인들의 정신적 지주이고 중국부기 산법의 발명자라고까지 알려진 관운장에 대한 화교들의 신앙은 각별한 데가 있다."평소에 명절 때도 거의 다 오고. 뭐가 잘 안 풀릴 때 기도를 올리지요. 마음이 좀 편하고. 전주 화교가 한 천명 정도 있었어요. 장구치고 북치고 시내에서 모여가지고 여기까지 옵니다. 재를 올리는 거죠." (전주 진미반점 운영하는 유영백씨의 인터뷰)우리나라의 관성묘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에 의해 유입되어 성하였다. 당시 전주 외곽에도 비교적 큰 규모의 관성묘가 지어졌다고 하며, 그 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95년 전라도 관찰사인 김성근과 전주 외곽의 남고산성 무관인 이신문이 각 지역 유지들의 헌납성금을 받아 다시 복원한 것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주 관성묘는 조선조 말기의 화가 소정산의 '삼국연의도'의 10폭이 관우묘에 보존되어 있는, 전국적으로도 규모가 큰 곳으로 초기부터 화교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었다.이곳에도 여느 관성묘처럼 중앙에 위령현혁(威靈顯赫), 좌측에는 문무성신(文武聖神) 우측에는 간체자 위령현혁 현판이 걸려있다. 중앙의 위령현혁은 중화민국 10년 '산동동향회'가 기증한 것이다. 왼쪽의 문무성신 현판은 1930년대 전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상 중 하나였던 화교 거상 '의화길'이 기증했다. 오른쪽의 마지막 현판은 1966년 당시 전주화교소학교 교장이며 진미반점을 운영하던 임국량씨가 기증한 것이다. 중국인들의 관우에 대한 숭배는 여러 민간신앙 중 특히 철저했고, 중국 상인들이 더욱 그러하였으며, 전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현재 이곳에는 관운장과 제갈공명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지금도 1년에 여러 차례 정기적인 의식을 치르는 데 멀리 인천에서도 연로한 화교들이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낯선 나라, 낯선 고장에서 관성묘는 화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준 것이다. 그렇다고 관성묘가 화교들만의 것이 될 수는 없다. 관성묘는 우리의 도교 신앙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 담긴 사연들은 우리 땅, 우리 이야기인 것이다.▲ 지역의 유일한 근대문화유산 지정된 삼합원(三合園)다가동 차이나타운 신흥상회 옆에 위치한 전주 삼합원. 이곳 역시 전동성당을 건축한 중국인 벽돌공들의 손길이 닿은 곳으로 중국 근대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삼합원은 중국의 전통적인 주거공간인 사합원이 변형된 행태로, 본래의 사합원은 사각형 모양의 지붕의 각 변이 맞닿아 있는 미음('ㅁ')자 모양으로 가운데에 마당을 두고 본채와 사랑채 등 4개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말한다. 이 중 사랑채 역할을 하는 문방이 없거나 동쪽과 서쪽의 건물 중 어느 하나가 빠지면 삼합원이라고 불리는데, 전주 차이나타운에 있는 것이 바로 이 형태를 띠고 있다. 전주 삼합원은 대대로 포목점을 운영했던 왕국민씨(72현 신흥상회 운영)의 소유로 1920년대 중국 상하이의 전통 비단 상점의 모습을 본 뜬 것이다. 특히 삼합원은 우리 지역의 중국식 건축물로는 유일하게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역사적 가치도 높지만 화교들의 생활사와 일상성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손꼽힌다.▲ 화교들의 고향, 전주 차이나타운전주는 화교들이 정착하기 좋은 곳이었다. 625 전쟁기간에도 커다란 피해를 입지 않았고 농업중심지로 경제상황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기후와 이에 따른 온후한 민심 역시 화교들의 전주 유입을 촉진시켰다. 유입된 화교 수에 비해 아이들이 적었던 것은 당시 화교들이 단신으로 고향땅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관동군이 중국을 떠나는 화교들의 가족 동행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화교 정착 초기에는 아이들의 수가 적었지만 화교 사회가 발전하며 아이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화교학교의 설립도 이뤄졌다. 기록에 따르면 전주화교학교는 1945년 양진옥 선생을 중심으로 전주 다가동에 마련된 화교서당이 그 시초였다. 화교서당은 1946년부터는 전주화교 소학교로 명칭을 바꾸고 규모도 점차 커지면서 1960년대에는 교사 4명, 재학생이 120명에 이를 정도로 발전했다.중국인들이 해외에 정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식당을 만드는 일이라는 말도 있듯 전주 화교 사회의 발전에도 중국 식당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포목집, 청요리집을 운영하던 초기 화교들의 전통을 이어 1970년 전후 윤전승씨의 아들 가흥씨와 가빈씨의 흥빈관, 홍콩반점 그리고 임국량씨의 진미반점, 아관원 등의 중국 음식점이 전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이들 음식점이 있던 다가동 일대에는 화교거리가 조성되었다. 화교 음식점이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다가동 화교거리에는 수십여 개의 화교 상점이 성업을 했다.그러나 화폐 개혁, 토지소유 제한, 사업자의 각종 제한 등 여러 차례 이어진 화교 경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규제와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분위기 속에서 화교 사회는 그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다. 한편으로 요식업 종사 화교가 많은 것도 다른 업종에 대한 진출을 어렵게 만든 여러 규제 탓이기도 하다. 많은 화교들이 차례로 대만과 미국으로 떠나감에 따라 다가동 차이나타운도 쇠퇴일로로 접어들었다. 현재 다가동에는 20개 남짓의 화교 상점들이 남아 차이나타운의 명맥을 잇고 있다.▲ 전주, 떠나있는 화교들의 고향 될 수 있어야전주 차이나타운의 흥망성쇠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 본 이로는 왕국민씨가 꼽힌다. 중국 본토 산동 '황현'이 고향인 왕씨는 해방 이전 6살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포목점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전주로 이주하여 근 70여 년을 전주 화교거리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노년에 이른 그는 지금까지도 중화요리 재료를 공급하는 '신흥상회'를 운영하며 전주화교거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부부 중 누군가 아프게 되면 전주를 떠나 자식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만으로 갈 생각이라고 한다. 왜 그는 자신의 노구로 하여금 모든 삶을 바친 이곳 전주에서 마지막 안식을 취하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70년의 세월로도 넘지 못한 이방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벽이 그 자리마저 빼앗은 것은 아닐까. 이제라도 이곳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전주화교들 그리고 유년 시절 전주화교학교를 졸업하고서 대만 등지로 떠나있는 2세대, 3세대 화교들의 고향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 이들의 삶이 이 땅을 살아온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삶임을 온전히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 양승수 전북일보 문화전문시민기자(전주세계소리축제 전 프로그램팀장)

  • 기획
  • 이화정
  • 2011.07.04 23:02

어지럼증은 우리 몸의 이상신호

무더운 날씨가 자속되면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어지러워지면서 방안이 돌기도하고 땅이 올라왔다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며 식은땀이 나고 뒸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당기기도 한다.아주 심한 경우에는 걸을 수도 없어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구역질이 나며 불안해지고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피곤해 괴로워 하기도 한다.대부분의 어지럼증은 환자가 움직일 경우 심해지고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앉는 특징이 있다. 갑자기 발생한 어지럼증이 편측마비나 발음장애 등의 증상을 동반하면 이는 뇌졸중을 시사하는 증상이기 때문에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여야 한다.1~2분 정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어지럼증이 없어진다면 응급실에 방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노인의 경우 새롭게 발생한 어지럼증이라면 원인을 감별하기 위하여 신경과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어지럼증이 심할 때에는 일단 환자를 가장 편한 자세로 눕히거나 앉히고 눈을 감은 상태로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현훈이 발생될 수 있는 인체의 부위로는 뇌간에 위치하고 있는 전정 신경핵, 소뇌 및 귀의 전정기관 등이 있고, 심인성(신경성) 현훈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이 중 뇌간과 소뇌의 장애를 중추성 장애라고 하고, 내이의 장애를 말초성 장애라고 하는데, 두가지에는 감별할 수 있는 병력 및 증상의 차이가 존재한다.일반적으로 말초성 장애의 경우 오심, 구토 등 소화기계 증상이 많이 동반되며, 흔히들 한쪽으로 빙 도는 듯한 증상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또 체위에 따라서 갑작스런 증상의 악화와 소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반면에 중추성 장애의 경우 막연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체위에 따른 증상의 변화가 말초성만큼 심하지 않다.아울러 다른 신경 증상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말초성 현훈의 원인으로는 귀에 있는 전정신경의 병증이 가장 흔한데, 이는 감기 등의 감염성 질환의 후유증으로 흔히 발생한다. 젊은 여성들에서 자주 발생하며 부신피질호르몬제와 항히스타민제로 치료하면 수일 내 증상의 호전을 볼 수 있고,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체위성 현훈는 고개를 좌측 또는 우측 한쪽으로 돌릴 때 수초간 발작적인 어지럼증이 발생하고, 곧 회복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귀에 있는 이석이라는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 근래까지 아주 치료하기 어려운 질환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치료 경과도 좋은 편이다.어지럼증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두 빈혈에 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혈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현훈의 원인은 무척이나 다양하면서 나타나는 증상은 비슷해서 자칫 잘못하면 치료의 시기를 놓쳐 버리는 우를 범하기 쉽다. 그러므로 유사한 증상이 있는 경우 가까운 병원를 방문해 상담 및 진료를 받아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형식(효사랑전주요양병원 한방3과 진료원장)

  • 기획
  • 전북일보
  • 2011.07.04 23:02

Q&A로 알아보는 간암

Q.간암의 초기증세는 무엇인가요?A.만성 바이러스성 간염을 비롯한 만성 간질환이 간암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이 질환을 가진 모든 사람이 간암에 걸리는 건 아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만성 간질환을 가진 환자 중 어떤 사람이 어떤 증상으로 간암으로 나타나는 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그러나 진행돤 간암일 때는 눈의 흰자위나 피부가 노랗게 되는 황달, 다리부분이 붓거나 배에 물이 생겨 나타나는 복부 팽만 등을 들 수 있다.Q.간암의 조기진단 방법은 무엇인가요?A.만성 간질환 환자라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간암의 고위험군일 때 주기적인 간암 검사를 받아야 한다. 대개 6개월 마다 간초음파 검사와 혈청 AFP 검사를 받아야 하며 때로는 간 내 결절이 발견되면 3-4 개월 간격으로 자주 검사를 받아야 간암 발병을 조기진단 할 수 있다.Q.간암은 유전하는 병인가요?A.유전하는 병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족 내 특히 모자 수직감염에 의해 만성 B형간염이 간암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가족력상 간암이 있으면 본인에게 간암 발병 확률이 높다.Q.간암의 치료로 간이식을 할 수 있나요?A.이식은 간암 완치술의 하나이다. 다만 간암의 초기 때에만 가능하며, 즉간암의 종괴가 3개 이하로 그 직경이 3cm 이내일 때 가능하다. 진행된 간암이거나 말기간암환자는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본다.Q.간암이 남성이 더 많은가요?A.간암은 여성보다 남성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남자 대 여자의 비율이 4~5 대 1 정도 된다.이러한 이유는 성호르몬의 차이와 술, 담배, 발암 위험요소가 남성에서 더 노출되기 쉬운 사회 환경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 기획
  • 이강모
  • 2011.07.04 23:02

5. 간암

"환우 여러분. 그리고 가족분들. 모두가 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인체의 가장 큰 장기이면서 혈액을 저장하고 인체에 스민 독소를 제거하는 등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이 고장 난다면 어떻게 될까?간암은 우리나라 40~50대 남성의 암 사망률 1위로 알려져 있다. 간암은 초기에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그렇기에 '간암'이 악화될 때까지 방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간은 타 장기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간암으로 판명됐을 때에는 이미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전북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대곤 교수는 간암은 세계적으로 5번째로 흔한 암이고 국내에서는 5대 호발 암중의 하나로 암으로 인한 사망 중 간암이 폐암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가장 무서운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다.김 교수는 간암은 얼마나 조기에 발견하느냐에 따라 예후가 달라지므로 간암의 조기 검진을 위한 선별검사인 혈청학적 종양표지자 검사(AFP)와 영상학적 검사(초음파)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강조했다.먼저 간암은 원발성 간암과 전이성 간암으로 나눌 수 있다.원발성간암은 대부분 B형간염바이러스나 C형간염바이러스 그리고 알콜성 간염, 약물에 의한 간염 등으로 간에서 시작된 간암을 원발성 간암이라고 하며 대부분 간암이라 부른다.전이성 간암은 다른 장기나 기관에서 발생된 암으로 간으로 전이된 간암을 전이성 간암이라고 한다.B형간염이나 C형간염은 지난친 음주를 하거나 피로가 누적돼 쌓이게 되면 빨리 간경화로 진행되며, 그렇지 않는 사람도 나이 48-52세가 되면 노화의 시발점으로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 간경화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후 간암으로 발전 되어 생명을 위협한다.▲ 간암의 증상간암은 먼저 업무상 과로 수면 부족 등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주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증상이 통상적이여서 간과하기 쉬우나 간염이나 간경화증의 환자일 경우 유난히 잦은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같은 증상이 보일시 즉각적인 조기 검사가 중요하다.체중이 감소할 요인이 없는데도 갑자기 체중이 3~5kg정로 줄어들게 되면 암을 의심해 봐야 하며, 간경화증환자의 경우 말기에는 체중이 주는 경우도 있다.오른쪽 윗배부위에 통증과 불쾌감이 있으면서 식사를 조금만 해도 포만감이 심해지며, 이런증상은 위장질환과도 비슷한 증상으로 나타나 자칫 조기 예방을 놓치는 수가 많다.또한 눈주위를 비롯해 얼굴, 손바닥, 발바닥 전신이 노랗게되거나 피부가 검어지고 가려움증도 있다.암조직이 담도를 압박할 경우 담즙의 십이지장으로 경로를 방해해 황달도 생기며, 간암 말기 시 간의 위치인 윗배오른쪽을 만져보면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진다.▲ 간암의 치료간암 치료는 수술 요법과 비수술 요법으로 나뉜다.수술 요법은 간 부분절제술과 간 이식술이 있고, 비수술적 요법은 알코올주입법, 고주파치료, 간동맥 화학색전술, 방사선 치료, 전신 항암 화학 요법이 있다.간절제술을 받은 환우의 5년 이후 전체 생존률 60%며, 무병생존률도 30%다.간이식수술은 5년 생존률 75%이며 재발률도 낮다. 하지만 간암 환자가 모두 수술적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전체 간암 환자의 20% 정도가 간암 수술을 할 수 있다. 간암 종괴 수가 작고 간상태가 좋으면 수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문제는 간암의 70%가 재발된다는 데 있다. 간암 세포가 혈관 중에서 간문맥(소장에서 간으로 들어가는 정맥)에 침범을 잘한다.간문맥 혈전이 생기고 혈전이 떨어져 나가 간의 다른 부위에 암을 전이시켜 재발이 잘 된다.간암이 재발하면 재절제수술, 고주파치료, 간동맥 화학색전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치료를 할 수 있으며, 항바이러스제제나 인터페론 등의 약물을 써서 재발률을 낮출 수도 있다.

  • 기획
  • 이강모
  • 2011.07.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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