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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정전 70년] 제주 포로수용소

2만 중공군 포로는 제주도에 왜 왔을까? 3년1개월(1129일) 동안 벌어진 6·25전쟁에서 중공군 포로는 약 2만1700명으로, 미군 4439명보다 5배나 많았다. 전쟁이 한창일 당시 포로수용소는 육지와 떨어진 섬인 제주도가 후보지였다. 1950년 말 중공군의 공세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자, 제주도의 포로수용소 설치는 유력해졌다. 다만, 리지웨이 미8군사령관은 제주도가 피난민으로 초만원이 된 점, 이 섬은 임시정부가 들어설 최후의 보루로 여기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육지와 비교적 거리가 가깝고 물 공급이 가능한 거제도가 포로수용소로 낙점됐다. 휴전 협상이 진행되고 전쟁이 끝날 조짐이 보이자 생포되거나 항복한 포로 송환은 쟁점이 됐다. 포로수용소는 냉전과 이념 대결의 축소판으로 또 다른 전쟁터였다. 2만명에 달했던 중공군 포로들은 반공(反共)과 친공(親共)으로 대립했고, 서로를 죽이고 학대하는 유혈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폭동과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자, 유엔군사령부는 1952년 2월 ‘분리 작전’에 돌입했다. 그해 7월까지 약 2만 명에 이르는 중공군 포로를 거제도에서 제주도로 보냈다. 당시 중화민국(대만)으로 가길 원했던 반공포로 1만4000여 명은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지역에, 중화인민공화국(중국)으로 송환을 원했던 친공포로 5900여 명은 제주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부지에 수용됐다. 친공포로들은 1952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3주년을 맞아 시위를 벌였다. 미군 2개 소대가 진입하는 과정에서 포로 45명이 사망하고, 120명은 부상을 당했다. 유엔군사령부는 “폭동(시위)은 집단 탈주를 위해 시작됐으며, 포로들은 탈옥 후 한라산 빨치산과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 이후 경비를 맡은 미군과 친공포로의 갈등은 심화됐으며, 포로수용소 주변에 살았던 주민들은 불안감에 떨어야했다. 반공포로가 수용된 모슬포지역에서는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는 기록은 없지만, 주민들은 ‘사제 수류탄 폭발 ’, ‘포로끼리 패싸움 후 시체 유기 사건’ 등을 언급,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당시 모슬포에는 육군 제1훈련소(1951~1956년)가 설치됐고, 한국군도 포로수용소 경비 업무를 맡았다. 지붕으로 얹은 양철판 밑에 기름을 먹인 종이(루핑)를 바른 수용소 환경은 열악했다. “포로수용소 건물은 나지막하고 검은 루핑 지붕이어서 여름철에는 실내 열기가 대단했다. 나무판자로 물방아와 비슷한 선풍기를 만들어 포로들이 줄을 교대로 당기며 바람을 만들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군부대를 출입했던 이발사 서병수씨가 당시 수용소의 열악한 사정을 증언한 내용이다. 중공군 포로들은 채소밭을 일궜고, 미군의 감시 아래 수용소 인근 송악산에 오르거나 바닷가에서 미역을 채취하기도 했다. 설리반(sullivan) 군종신부는 이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포로들은 늪지를 매립하고 돌을 나르며 모슬포성당 건립 공사에 투입됐다. 성당이 완공되자 ‘통회의 집’으로 불렸다. 포로들이 한국에 많은 피해를 입힌 죄를 뉘우치며 지은 집이라는 뜻을 담았다. 나중에는 사랑으로 포로들을 용서하자는 의미로 ‘사랑의 집’으로 변경됐다. 1953년 6월 8일 전쟁포로 송환 협의가 이뤄졌고,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됐다.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 간 장제스 국민당 정부는 정전 협정 체결 전인 1953년 초부터 반공포로와 교섭하며 이들의 대만 송환을 준비했다. 1953년 7월 29일 대만 정부는 제주에 있는 반공포로들에게 출판물과 영상물 제공과 함께 위문단 파견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중공군 포로의 대만 행은 국민당 정부가 내전에는 졌지만, 이데올로기에서는 승리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달 후인 8월 28일 대만 정부가 파견한 위문단이 제주도에 도착했다. 대만 공군은 수송기 8대를 동원, 37t의 위문품을 전달했다. 당시 대만 언론에 소개된 위문품은 1인 당 설탕 1홉, 소고기·채소 통조림 1개, 파인애플, 바나나 2개, 러닝셔츠 1벌이었다. 1년 남짓 제주도에 수용된 1만4000여 명의 반공포로들은 대륙 행을 거부하며 팔뚝에 ‘반공(反共)’이나 ‘살주발모(殺朱拔毛)’ 같은 문신을 새겼다. 홍군 총사령관 주더(朱德)를 죽여 버리고 마오쩌둥(毛澤東)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반공포로 1만4000여 명은 제주도를 떠나 1954년 1월 20일 인천항에서 미군 수송선에 올랐다. 1월 23일 대만 지룽항에 도착한 이들은 반공의사(反共義士)로 대접받았다. 제주비행장에 수용됐던 친공포로 5000여 명도 선박과 육로를 통해 1953년 8월부터 9월까지 본국으로 돌아갔다. 제주일보=좌동철 기자 ■ 김웅철 향토사학자 인터뷰 “70년 전 중공군 포로 2만명이 1년 넘게 제주도에 수용된 것은 전쟁사나 외교사에 중대한 사건이다. 제주 섬에서 벌어진 반공포로와 친공포로의 갈등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자, 이념 갈등이었다.” 역사사진 자료집 ‘강병대(육군 제1훈련소) 그리고 모슬포’를 발간한 김웅철 향토사학자(73)는 반공포로들이 도열, 이국땅에서 숨진 동료의 시신에 청천백일기를 덮고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담긴 귀중한 사진을 갖고 있다. 김씨는 “중공군들은 모슬포~사계리 도로 개설과 모슬포성당 기초 공사에 동원됐고, 일부는 아일랜드 출신 설리반 군종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며 “채소를 즐겨먹으면서 농장대를 조직, 수용소 인근 밭에서 채소를 직접 재배했다”며 당시 생활상을 소개했다. 이어 “포로들은 또 ‘자치대’를 조직,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군대식 열병을 했고, 양철 조각으로 만든 피리를 불며 애환을 달랬다”며 밝혔다. 김씨는 “반공포로는 모슬포지역 3곳에, 친공포로는 현 제주공항 화물청사 인근 1곳에 설치됐는데 수용소 건립으로 민가가 철거되고 토지가 강제 징발되면서 마을주민들이 적잖은 피해를 봤다”고 했다. 대정읍 상모리에는 중공군 포로수용소 건물 외벽이 남아 있다. 길이 20m, 높이 2m의 석축 벽에는 창틀 모양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김씨는 “냉전시대, 제주에 수용된 중공군 포로 70%가 대만 행을 선택한 것은 국제사회에 큰 이슈였지만, 지금은 수용소 터와 건물이 마늘밭(사유지)에 남아있고, 70년 넘게 방치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수용소 터를 매입하고 복원해 전쟁의 참상과 역사의 교훈을 후대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
  • 기타
  • 2023.08.28 15:43

[뉴스와 인물]김명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우리나라 농업 총생산액의 36%를 차지하는 게 원예특용작물(2021년 기준)이다. 이는 원예특용 분야가 국가경제, 식량안보, 농업 경쟁력, 농업인 소득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 농업을 대표하는 분야가 됐음을 의미한다. 화훼는 물론 채소, 과수, 인삼, 약초, 버섯류 등 단백질을 제외한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 대부분이 이 분야에 해당하니 국민 일상생활에도 빼놓을 수 없다. 원예특작산업을 연구·개발하고 지원하는 곳이 바로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다. 지난달 23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에 올라 취임 한 달 차를 맞는 김명수(55) 원장으로부터 재임기간 주요 정책과 목표 등을 들어봤다. -우선 취임 축하드립니다. 취임 후 한 달간의 소회가 어떠신지요. “세계는 빅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시대로의 전환과 탄소중립 등이 핵심 의제인데, 막상 농촌 현장에서는 이상기상, 고령화, 노동력 감소 등으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원장을 맡게 돼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우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원장 취임 전부터 늘 농업의 새로운 기회와 혁신, 경쟁력 향상을 강조하셨습니다. 재임 기간 강조하시는 정책이 궁금합니다.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디지털, 자동화 기반의 스마트 농업기술 개발을 꼽고 싶습니다. 원예특작 분야 재배와 유통 시스템을 혁신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디지털 및 자동화 기술은 농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과 더불어 품종 개발, 기후변화 대응 등 우리 과학원의 R&D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도 적극 도입할 계획입니다.” -올해 이상기후로 많은 농민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스마트 농업기술 개발이 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기후변화와 상시적 기상재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업도 지식정보산업으로 탈바꿈해야만 합니다. 고령화, 노동력 부족 해결에도 마찬가지이죠. 특히, 농경지 면적이 적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면 시설재배와 더불어 기계화, 정밀센서, 드론 등을 이용한 스마트팜 도입·확산이 필요합니다. 또 빠르게 발전하는 초분광, RGB 등 영상기술과 기상·생육 빅데이터를 이용한 작황 정밀진단 기술을 고도화해 배추, 마늘, 양파 등 주요 채소 수급 안정에도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상기후가 반복돼 일상화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이상 기상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죠.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기반한 예측이 필요합니다.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한반도의 중장기적 기후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작물 재배적지를 변경하거나 작목을 전환하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2070년, 2100년의 한반도 과일지도 등이 대표적인 예측기술 적용사례입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이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품종 개발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네, 기후변화와 더불어 매년 반복되는 이상기상에 적응할 수 있는 내재해 품종을 중점 개발하고 있습니다. 여름배추 안정 공급체계 구축 등 정책적으로 중요한 품목은 자원을 중점 투입해 조기에 성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개발 계획 단계부터 현장 보급,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체계를 갖춰 효율성을 높이고자 합니다.” -실제 기후변화에 적응하도록 개발중인 품종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요. "사과의 경우 고온에도 착색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노란색 과피(껍질)의 품종, 더위·추위에 잘 견디는 고추, 파프리카, 대목용 토마토, 고온 적응형 인삼과 약용작물, 버섯 품종을 개발 중입니다. 또 과수류의 봄철 저온·서리피해 방지를 위한 미세살수 장치, 통로형 온풍법 등을 개발해 현장보급하고 있고, 채소류는 고온기 안정생산을 위해 생리활성 물질을 탐색·선발하고 있으며, 고온에 쉽게 장해가 오는 약용작물도 멀칭 신소재를 개발해 보급중이죠." -품종·기술개발 외에 농식품 산업 확장을 위한 부가가치 향상기술 개발도 강조하셨지요. ”앞으로의 농식품 산업 생태계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푸드테크(Food+Technology) 등 고부가가치 미래 성장동력 연구가 주도권을 가져올 겁니다. 식품산업에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기술(BT) 등을 융합한 새로운 접근 방법이죠. 인삼, 약초 같은 특용작물을 활용해 건강 기능성 소재를 개발하고, 버섯 가죽·플라스틱 소재, 감귤박 등 농업 부산물에 업사이클링 기술을 적용해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고자 합니다.“ -국내 농식품의 수출도 중요하겠군요.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한 또다른 핵심전략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농식품 수출 100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이에 맞춰 동남아시아 프리미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포도, 딸기 신품종을 발굴하고, 참외, 감귤 등 수출 유망품목은 신선도 유지기술을 개발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입니다. 장기간 신선도 유지가 가능한 CA 저장을 물류용 컨테이너에 적용해 장거리 선박 수출 기술을 실용화함으로써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대기환경을 조절하는 CA 컨테이너를 활용한 장거리 선박 수출 기술이 현장에 조기 보급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재임기간 이루고 싶은 업무적 목표도 중요하지만, 수많은 조직원들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조직 운영을 어떻게 하실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과학원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체질을 개선하고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야 하고 현장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게 되도록 조직과 개인의 역량을 개발하고, 구성원들이 정책과 현장에 필요한 정답을 찾도록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조직은 수평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해 우리 직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김명수 원장은 전주 출신으로 영생고, 전북대 원예학과와 동대학교 석·박사 과정을 졸업한 김 원장은 지난 1993년 농촌진흥청에 들어와 배연구소장과 사과연구소장, 과수과장, 인삼특작부장, 원예작물부장 등을 거친 원예분야 전문가다. 지난 2월부터는 검역본부 식물검역부장을 지내다 지난달 원장에 취임했다. 보직을 두루 맡는 동안 '혁신가'·'도전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배연구소장 근무 시절 과실을 싸는 봉지 없이 배 재배하는 기술을 적립했고, 사과연구소장 시절엔 당시 도입이 시작된 스마트과원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김 원장은 "대학 졸업 후 20년간 고향을 떠났다가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지난 2015년 전북으로 이전하면서 함께 왔다"며, "우리 기관이 전북 혁신도시에서 무사히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북도민의 도움이 컸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우리 과학원이 전북에서 튼튼히 뿌리 내리기 위해 항상 열린 자세로 열과 성을 다해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노력하겠다"며, 농업 발전을 위한 전북도민들의 성원과 관심을 당부했다.

  • 기획
  • 김보현
  • 2023.08.27 16:06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에너지 활동은 계속된다

에너지의 날에너지의 날은 2003년 8월 22일 그해 최대 전력소비(4738만 kW)를 기록한 날을 계기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절약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 확산을 위해 에너지시민연대가 2004년 8월 22일을 에너지의 날로 지정했다. 이날엔 밤 9시부터 5분간 전국 동시 소등과 전력소비 피크시간대에 에어컨 설정온도 2도 올리기라는 상징적인 실천 행동으로 전 국민 참여의 절전 행동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 1048만9000kWh에 달하는 실질적인 전력 절감과 이를 통해 485만 2204kg의 탄소를 감축했다. △참여의 에너지 활동 8월 22일 늦은 오후 전주 덕진공원 만남의 광장 잔디밭에는 이번에 스무 번째를 맞이한 에너지의 날 기념 시민 별빛 시민문화제 준비로 분주했다. ‘불을 끄고, 별을 켜다’라고 적힌 나무 현판과 함께 무대가 세워졌다.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 시작된 이번 에너지의 날 기념식에는 150여 명의 시민들이 가족, 지인과 함께 참여했다. 무대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 악기 공연을 비롯하여 환경과 에너지를 주제로 한 인형극, 지역 기후·에너지 활동 소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덕진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또한 에너지의 날 대표적인 캠페인으로 밤 9시부터는 전국 5분 소등에 참여도 함께 진행됐다. 전주에서는 덕진공원 연화정 도서관, 풍남문, 전동성당, 전북대 신정문, 전주시청 본청에서 함께 소등을 진행했다. 이번 에너지의 날 낮 2시 냉방 2℃ 올리기와 전국 5분 소등으로 감축한 전력량은 총 51만kWh로 석탄화력발전소 1기의 1시간 발전량과 비슷하며, 1가구 4인 기준으로 할 때 4500가구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에너지의 날에 전주 덕진공원에서 공연을 지켜보는 시민들/장진호 에너지의 날을 비롯하여 실천을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곳이 있다. 천주교전주교구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탄소중립 실천 성당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탄소중립은 이제 전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로써 종교기관이 가진 조직력과 신앙심을 바탕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실천 활동을 진행하며 타 기관으로의 확대 계기를 마련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실천 활동으로는 재활용폐기물 수거와 줍깅 캠페인 등 자원순환 실천 활동, 탄소중립교육, 건물 및 가정 에너지 진단 컨설팅, 생태교통 미사 챌린지 등 다양한 실천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당 건물을 이용한 태양광발전과 RE100 시민클럽 참여와 같이 생태에너지전환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주차장 태양광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에너지의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21일 ‘전라북도 주차장 태양광 잠재량’을 조사·발표했다. 같은 날 전라북도의회 세미나실에서 앞선 내용으로 소규모 간담회를 진행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사)환경운동연합, 전라북도의원, 한국에너지공단 전북지사, 전북햇빛발전협동조합네트워크가 참여하여 의견을 나눴다. 지난해 서울·경기 지역의 주차장 태양광 잠재량을 조사·발표한 (사)환경운동연합의 권우현 활동가의 발표로 간담회를 시작했다. 권우현 활동가는 주차장 태양광 잠재량 보고서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며 국회에서 지난 7월 19일 허영 의원 등 10인에 의해 발의된 주차장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발표했다. 법안의 내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의하여 설치되거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나 기금의 지원을 받아 설치되는 주차장, 주차대수 80대를 초과하는 규모의 주차장을 설치하려는 자는 일정 규모 이상의 태양광·풍력 발전 시설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제6조의 4항에 신설함으로써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권우현 활동가는 “시민사회에서 이번에 조사한 주차장 태양광 잠재량은 이론적 잠재량으로 주차 면적을 가지고 산출한 것이며, 음영이나 경제성을 고려하여 태양광 시설 설치가 실제 가능한 지점만을 계산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주차장 태양광의 이론적 잠재량을 산출하고, 그 안에서 실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국회 입법 법안에 대해서는 “내년으로 총선이 다가오면서 국회 안에서의 법안에 대한 적극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법안이 이번에 통과되는 상황과 통과되지 않더라도 총선 이후 다음 국회에서 다시 상정되었을 때의 두 방향으로 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음으로는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장진호 활동가의 전라북도 주차장 태양광 잠재량 발표가 이어졌다. 장진호 활동가는 “전국 주차장 정보 표준데이터와 국토부 자료를 기반으로 전라북도의 주차장 태양광 잠재량 조사 결과 이론적 잠재량은 62.6MW 규모로 파악되지만, 대부분의 공공기관 부설주차장이 자료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며 “ 전라북도 14개 지자체에서 직접 관리하는 정확한 주차장 정보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자유토론에서 권태흔 한국에너지공단 전북지부 팀장은 “이론적 잠재량에서 실제 태양광 시설 설치 가능 여부는 더욱 조사해 보아야 하지만, 주차장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시공도 어렵지 않고 가중치도 높아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발언했다. 서난이 전라북도의원은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서 담고 있는 내용이 엄격한 부분들이 많아 보이며, 지방자치조례 차원에서도 지원방안과 실행을 위한 내용을 사전에 준비할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남희 전북햇빛발전협동조합네트워크 대표는 “주차장 태양광의 이론적 잠재량을 실제 설치할 수 있는 규모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며 “에너지전환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주차장 태양광이 의무화 된다고 하면 예산 마련과 같이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주민참여형 방안 등을 마련하여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의견을 덧붙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에너지를 얻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이로 인한 기후변화는 여름철 폭우와 폭염, 겨울철 폭설과 한파 예측할 수 없는 극단적인 날씨들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우리가 체감하고 있다.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협상과 논의의 대상이 아닌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수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의 참여와 실천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장진호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타
  • 2023.08.23 16:22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화유산으로 본 후백제] (18) 한국 청자문화 발상지, 진안 도통리 유적

한반도에 언제 청자로 대표되는 도자기가 생산되었는가는 현재까지도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초기청자의 등장은 가마의 등장 배경, 운영 주체, 제작 시기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가 분출하고 있으나, 현재에는 고려가 중국의 오월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10세기 중반경에 처음으로 청자를 제작하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견해는 1980년대 이후 용인 서리, 시흥 방산동 청자가마들의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더불어 북한지역 황해남도의 배천 원산리 청자 가마등의 조사 성과를 인용하여 고려의 청자가마들이 중국 오월과의 교류, 오월의 멸망으로 인한 월주요 장인들의 고려 이주를 통해 중국의 벽돌가마를 모방하여 벽돌가마를 조성하여 최초의 한국 초기청자 가마는 벽돌가마이며, 그 시기는 대략 950년경으로 설정하였으며, 지역적으로는 초기 청자가마인 벽돌가마가 경기도와 북한의 황해남도 지역에 분포하여 한반도의 중서부지역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에 의문을 제시하며 호남의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지역으로 하는 후백제가 우리나라 초기청자 가마의 운영 주체세력이었다는 새로운 견해가 최근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최근 조사가 진행된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초기청자 가마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해석하여 기존 학설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나온 결론이다. 후백제는 후삼국기 고려 보다도 훨씬 먼저 중국의 청자 주요 생산지인 월주요를 포함한 오월(吳越)과 서로 사신을 파견하는 등 교류를 밀접하게 진행하였는데, 이것은 국가 수립에 대한 국제적인 승인 및 장보고의 청해진 해체 이후 사라진 청자 수입과 공급이 주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900년 완산주로 도읍을 옮겨 후백제 건국을 선포한 후 다시 오월국에 사신을 보내 오월왕으로부터 후백제왕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오월과의 계속되는 교류는 백제-장보고로 연결된 국제 해양교류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오대십국 중 하나인 오월은 월주요(越州窯)의 성장을 통해서 번영하였고, 중국 청자의 본향인 월주요 도자 특징은 중국식 해무리굽과 벽돌가마로 대변된다. 중국에서 청자기술이 도입된 후 초창기에 제작된 청자를 소위 ‘초기 청자’로 일컫는다. 초기 청자를 생산하는 가마는 축요재(築窯材)에 따라 벽돌이 사용된 벽돌 가마와 진흙, 석재, 갑발 등으로 축조된 진흙가마로 나뉘는데, 중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벽돌 가마가 진흙가마보다 이른 시기에 운영되었다. 전라북도의 내륙 중에서도 가장 내륙이라 할 수 있는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초기 청자가마는 2013∼2022년에 걸쳐 총 6차례 조사 되었다.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에서는 이른 시기의 선해무리굽 및 중국식해무리굽 청자완들과 함께 한국식해무리굽 청자완이 수습되었으며, 진흙가마 2기와 벽돌 가마가 1기가 완벽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2022년의 시굴조사에서도 민가 앞마당에서 벽돌가마의 일부가 확인되어 정밀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2017년에 완벽하게 전모를 드러낸 벽돌 가마는 길이가 43m로 확인되어 호남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가마로 확인되었다. 2016∼2017년에 걸쳐 확인된 벽돌 가마는 초기의 벽돌 가마에서 점진적으로 진흙가마로 변화되는 과정을 한 곳에서 보여주는 최초의 가마로, 한국 초기 청자의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1, 2호 가마의 운영시기는 10세기 초 · 중반에 처음 축조되었다가 퇴화형해무리굽이 생산되는 11세기 중반에 폐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확인된 제3호 가마인 진흙가마는 확인된 길이가 13.4m로 이 가마에서는 한국식 및 퇴화형해무리굽의 청자들이 수습되어 가마의 운영시기는 대체로 11세기 중엽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로 보면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의 운영시기는 10세기 초·중반인 930∼50년경에서 약 11세기 중반 경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초기청자 가마인 벽돌가마는 현재까지 가마유구가 확인된 곳이 8개소에 이르는데, 진안 도통리 및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터를 제외하면 경기도에 시흥 방산동와 용인 서리 등 3곳과 북한지역인 황해남도의 배천 원산리 청자가마터 3곳 등 총 6곳이다. 기존에 조사된 6곳의 가마터는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백자가마가 존재하거나 백자가마터가 확인되지 않았어도 가마의 퇴적층에서는 청자와 백자편들이 동시에 수습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들 벽돌가마 인근에는 도자기 가마와 구분되는 도기 가마가 별도로 운영된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6곳 중 배천 원산리,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가마터에서는 초기 청자의 시대구분에 중요한 단서로 일부 도자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요도구인 점권들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에서는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청자가마에서 확인되는 백자가마터 및 백자편의 존재, 도기가마터와 점권이 확인된 사례가 아직까지는 없는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 중서부지방에서 확인된 벽돌가마군과 전북의 초기 청자가마터는 성격이 전혀 다른 집단에서 운영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아직 제작 연대를 가름할 정확하고 명확한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는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로 보면 도자사적 측면에서는 고려시대 초기에 운영되었던 한반도 중 · 서부지역의 가마들과 여러 차이점이 나타나고 있어 고려와 다른 집단이 운영했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정치 및 군사적 · 경제적 상황 등으로 판단하면 후백제 견훤시대에 제작된 한반도의 초기 청자가마 중에서 가장 이른 가마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가마가 후백제에 의해 운영되었다면 이들 가마는 중국 오월과의 교류관계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상기(문화체육관광부 학예연구관) 후백제와 고창 반암리 청자 가마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에서는 청자요지군은 일부분만 조사되었지만, 2021년 조사된 구역에서는 벽돌가마 1기, 진흙가마 4기, 건물지 2기가 확인되었으며, 2022년 조사에서는 벽돌가마 1기, 진흙가마 5기, 건물지 2기가 확인되었다. 청자가마는 구릉의 사면부에, 건물지는 주로 평탄면에 입지하고 있다.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는 일부분만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현재까지의 조사성과로도 한국 도자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고창 반암리 유적에서는 벽돌 가마에서 진흙가마, 다시 진흙가마에서도 중층을 이루어 청자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초기 청자가마의 밀집과 중첩양상은 다른 유적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반암리 청자요지에서 집중적으로 청자생산이 이루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따라서 반암리 청자요지는 초기 청자 생산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청자의 도입과 전개과정을 밝히는데 주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는 지금까지의 조사 성과와 후백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들 보다는 늦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여기서 제작된 청자류들은 서해안과 금강수로등을 이용해서 충정도 등 내륙으로 운반되어 후백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까지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들의 조성시기와 성격을 규명하여 보면, 벽돌 가마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인 벽돌편들의 상태를 보았을 때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의 벽돌 가마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가마 축조 형식도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가가마의 형태인 기반층을 사선으로 굴광한 다음 벽돌을 쌓아올려 축조한 형식이다.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가 기존의 벽돌 가마의 내부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후대의 진흙가마를 운영한 반면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는 기존의 벽돌 가마 위에 진흙가마를 조성하여 운영하는 방식으로 추정되어 약간의 차이점을 보인다.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는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 보다는 늦은 시기에 운영되다가 고려에서 어느시기까지는 계속적으로 가마가 운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후백제와 중국 오월의 교류관계, 그리고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과 고창 반암리 청자 가마 유적의 성격을 볼 때 고창과 진안 지역의 벽돌가마는 한반도 중·서부 지방의 벽돌가마의 영향을 받은 집단이 시차를 두고 운영한 것이라기 보다는 직접적으로 중국 오월과 교류하여 청자 가마를 독자적으로 운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기(문화체육관광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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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3 09:23

김경안 새만금개발청장 "새만금 개발, 잼버리와 관계없이 추진될 것"

김경안(67) 새만금개발청장이 지난달 7일 취임했다. 새만금개발청은 2013년 개청 이래 이병국, 이철우, 김현숙, 양충모, 김규현 청장에 이어 여섯 번째 청장을 맞이하게 됐다. 총리실, 교수, 기재부, 국토부 출신이었던 전임 총장들과 달리 김경안 청장은 정치인 출신으로 발탁과 동시에 화제가 됐다. 정치인 출신 청장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려는 듯 그는 새만금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여권에서는 '강만금(萬金)'이라 불린 강현욱 전 전북도지사 이후 새만금 최고 전문가라고 자부한다"고 했다. 김경안 청장을 만나 최근 논란인 여권의 새만금 흠집 내기에 대한 입장부터 새만금 현안 해결 방안, 새만금 개발 구상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취임 축하드립니다.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 행사와 대규모 투자협약, 잼버리 지원 등 굵직한 현안을 해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냈지만 새만금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어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새만금은 제가 걸어온 40년 정치 인생 중 30여 년을 함께 한 사업으로, 지금의 새만금이 있기까지 사업의 전 과정을 가까이에서 참여하고 연구해 온 만큼 그간의 공력을 발휘해 새만금을 한층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새만금 잼버리가 논란 속에 마무리됐습니다. 여권에서는 이를 새만금 개발과 연관 짓고 있습니다. 새만금개발청장으로서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신지. "새만금 개발은 잼버리 논란과 관계 없이 계속 추진될 겁니다. 잼버리로 인해 새만금 SOC 개발이 지연되는 등 새만금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진 않으리라 봅니다. 현 정부에서도 새만금 개발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기조인 만큼 크게 문제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새만금개발청은 새만금 기본계획에 따라 2050년까지 새만금을 글로벌 신산업의 중심지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일관되게 새만금 사업을 추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와 관련 이차전지 소재 전진기지로 주목받던 새만금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새만금 사업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국민의 관심 속에 성장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전북의 미래, 서해안의 미래가 새만금에 달려 있다며 새만금을 글로벌 기업이 모이는 도시로 조성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만금개발청은 이 같은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공항, 항만, 철도 등 새만금 인프라가 적기에 조성되도록 관계기관과 협력하는 한편 새만금 이미지 개선과 투자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만금 잼버리 부지에 대한 사후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구상을 말씀해 주신다면. "새만금 기본계획에 따르면 잼버리 부지는 2030년까지 기업주도형 관광·신산업 복합단지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관광·산업 개발이 결합한 복합 개발로 추진하되, 최근 변화된 투자 여건과 기반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사후 활용 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입니다."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청장님 스스로를 '새만금 전문가'라고 말씀하시죠. 도민들에게 그 이력을 설명해 주신다면. "윤석열 대통령도 제가 새만금에 대한 전문성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해 새만금개발청장으로 임명해 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 새만금TF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새만금 토지이용구상안을 농업용지 72%, 비농업용지 28%에서 농업용지 30%, 비농업용지(산업·관광) 70%로 변경했습니다. 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새만금 분과 전문위원으로 여러 차례 참여했고, 현 정부 선대본부 새만금특별위원장 및 인수위원회 새만금발전기획단장을 역임하면서 국제투자진흥지구 지정 등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청장님께서는 취임 이후 '새만금 푸드허브'에 관심을 보이셨는데 푸드허브의 로드맵을 설명해 주신다면. "2021년 기준 세계 식품시장 규모는 약 7.6조 달러(약 9800조)로 2025년까지 연평균 5% 이상의 성장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식품 관련 무역적자가 367억 달러(약 48조)로 380억 달러(약 49조) 흑자인 네덜란드에 비해 수출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새만금은 공항·항만·철도 등 기업의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는 물류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광활한 농생명용지, 인근 국가식품클러스터 등과 연계한 식품연구-원료생산-가공-유통 등의 밸류체인 여건도 우수합니다. 현재 농식품부, 전북도에서도 새만금 푸드허브 관련 용역을 추진하는 등 정부의 관심과 지원 아래 새만금이 글로벌 푸드허브로 조성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발맞춰 새만금개발청도 식품허브지원TF를 주축으로 관계기관과 협력해 푸드허브 실행 방안을 추진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 새만금 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새만금 신항을 농식품 전용항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새만금 수상태양광 송변전 설비 설치 등 과제도 산적해 있습니다. 지지부진한 현안,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이십니까. "새만금 수상태양광 사업은 다수(9개)의 사업자가 선정돼, 사업자들이 계통 연계 비용을 공동으로 분담해야 추진이 가능한 전례 없이 어려운 사업입니다. 송변전 선로 공사(계통 연계)를 담당하는 한수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업자가 모두 선정된다고 해도 한수원이 계통연계 공사비를 선투입해야 사업이 추진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사업자 간 협의체를 통해 PF 조달 방안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정상 추진 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새만금에 대해 우려 또는 기대하고 계신 도민들께 한 말씀. "현 정부 들어 눈에 띄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새만금의 모습에 도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더욱 커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전북의 미래 먹거리, 미래 산업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일념으로 새만금 사업의 속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취임 직후 킬러규제개혁TF와 식품허브지원TF를 출범하고 기업의 의견을 수렴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도민들이 새만금의 확실한 변화를 체감하고,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경안 새만금개발청장은 익산 출신으로 남성고와 원광대 행정학과·행정대학원을 졸업한 김경안 청장은 오랫동안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정치인 출신이다. 민자당 제14대 대통령선거 전북상황실장, 한나라당 전북도지부 기획조정실장과 전북도당 위원장을 역임한 김 청장은 1997년 비례대표로 전북도의회에 진출한 뒤 내리 3선을 했다. 이밖에 2007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새만금TF 전문위원, 2009년 한국농어촌공사 상임감사, 2014년 제6대 서남대 총장, 2020년 국민의힘 익산갑 당협위원장, 2021년 제20대 대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중앙선대위 새만금특별위원장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위TF 새만금발전기획단장 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대담=이강모 정치부장, 정리=문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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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2 18:02

[조법종 교수의 전라도 이야기] ⑫ 포크의 기록과 사진, 전라감영을 복원하다

△포크, 각 지역 최초 사진들을 남기다. 포크가 조선에 재임하였던 1884년 6월 ∼1887년 4월까지 4년간 촬영한 사진은 현재 43장(밀워키대학 도서관 소장본)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1884년 11월 1일∼12월 14일까지 진행한 삼남지역 조사 기간 중 포크는 약 33장 이상의 사진을 찍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중 충청 전라지역에서 29장을 찍었다. 즉, 공주 공산성 남문옆 건물에서 군사책임자인 중군 및 아들들 사진 4장(1장 현존), 은진미륵이 있는 관촉사에서 은진미륵과 사찰 경내모습을 찍은 사진 6장(1장 현존), 충남 강경 전경 사진(1장 현존) 등을 찍었다. 그리고 전라감영에서 전라감사와 군중들, 기생 사진 등 모두 6장의 사진을 찍었다.(2장 현존) 정읍 노령 갈재정상에서 북쪽을 향해 찍었고 장성으로 넘어가 장성 초입 현재 노령터널 바로 옆에 있는 원덕리 미륵불상을 찍었다. 그리고 나주에 들어가 읍성 사진, 목사와 군중, 남문 등 4장, 그리고 남원 만복사지에서 4장(1장 현존)의 사진을 찍었다. 따라서 이 기간중 촬영한 사진 중 충청권 3장 전라권 3장 그리고 부산 1장등 총 7장이 남아있다. 이들 사진 중 주목되는 것은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사진이다. 논산을 지날 때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마주한 거대한 불상에 감탄하며 자신이 함께 촬영 대상자가 되어 일행 중 한명(정수일?)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여 유일하게 포크 자신이 찍힌 사진을 남겨놓고 있다. 그 동안 이 사진에서 포크 모습은 검은색으로 매우 작게 나타나 주목되지 못했다. 필자가 개별 사진을 확대해 포크의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진에서 흥미로운 것은 포크의 조사 당시 복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즉, 1880년대 짙은 파란색 해군 장교 복장과 장교모자 및 가죽 장화를 신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습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의 복장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포크 일기에서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해군 장교 제복’과 ‘독수리 모습이 있는 모자’를 강조하였는 데 포크 사진에 나타난 모습과 복원된 1890년대 해군중위 복장에서 모자 중앙에 희미하게 나타난 독수리 상징모습이 드라마 주인공 유진초이 모자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당시 사진현상과 인화는 유리판에 은화합물을 발라 밀폐된 나무판 필름홀더에 유리판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안에서 열리게 하고 다시 밀봉해 보관하다 암실에서 현상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유리원판 필름을 사진으로 만드는 인화방식은 소금과 질산은 화합물을 발라 인화하는 방식과 계란 흰자를 이용한 알부민 인화지나, 젤라틴 인화지를 사용해 검은 상자에 보관하다 암실에서 유리필름에 밀착시킨 후 햇빛으로 인화하였다. 포크사진은 당시 유행한 젤라틴인화지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 현존하는 43장의 사진은 유기 화합물이란 점에서 시간이 갈수록 퇴락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 근대사의 실상을 담고 있고 일부 사진은 전라도 최초의 사진들이며 또 전라감영 역사의 증거라는 점에서 전라북도 차원의 사진자료 확보와 연구가 요청된다. △포크의 2장 사진 전라감영 선화당을 복원시키다. 필자가 포크 자료를 접하게 된 계기는 전라감영 복원 자료 확보과정이었다. 그리고 포크가 제공한 선화당 관련 정보는 1)포크의 일기 기록, 2)포크의 스케치 그림, 3)포크의 사진 3종류였다. 특히 중요한 선화당 내부와 관련하여 포크는 11월 11일자 기록에서 사진찍듯이 묘사한 전라감영에 대한 묘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선화당) ...가운데에는 뒷벽에 기대어 두 개의 커다란 병풍이 나란히 세워졌다. 오른쪽은 거대하고 화려한 용, 왼쪽은 맹렬한 큰 호랑이가 모두 화려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졌다.” 고 적었고 순간적으로 스케치한 그림에서는 호랑이와 용을 크로키처럼 묘사하였다. 그리고 사진 2장은 전라감영에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였다 전주에서 찍은 사진 중 현존하는 2장의 사진은 전라감영 복원에 가장 중요한 선화당 내부의 모습을 제공하고 있다. 먼저 전라감사와 육방권속, 나인들이 찍힌 사진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사진 배경인 병풍이었다. 이 병풍에 대한 자문(한국민화학회 회장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을 통해 중요한 복원 자료들이 확보 되었다. 즉, “전라감사 김성근과 6방 권속 및 나인을 찍은 사진에는 뒤로 약 2m이상의 병풍형 가리개가 나타나 있는데 사진 왼쪽은 범으로 오른쪽은 용으로 파악된다. 특히, 용호병풍도의 형식을 보이는 이 그림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민화풍의 병풍형 가리개로 파악”되었다. 또한 전라감영 선화당 병풍은 “중앙에서 파견된 매우 수준 높은 도화서 화원 화가의 작품으로 까치가 등장하고 호랑이 무늬를 표범무늬로 표현한 것 등에서 민화 까치호랑이의 도상을 참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용 그림 오른쪽 중단 즈음에 용의 머리가 사람들 사이에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자세히 보면, 용의 수염과 뿔의 일부가 확인된다. 용의 머리를 중심으로 보면, 머리 위로 몸체가 곡선을 그리며 굽이를 이루고 있다. 이런 요소가 스미소니언박물관 <용호도>의 '용'과 유사하다. 따라서 병풍 복원을 위한 현존 참고 병풍은 포크와 함께 근무했던 미국 해군무관 버나도(J. B Bernadou, 1858~1908)가 1884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종로나 광통교(廣通橋) 인근에서 구입하여 미국으로 가져가 스미소니언박물관에 기증한 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용호도> 2점을 제시”하였다. 이를 근거로 완성된 것이 현재 전라감영 선화당에 전시된 병풍이다. (병풍제작은 한국민화학회의 추천을 통해 남정예 작가가 수고해주셨다.) 본 병풍은 현존 감영 중 유일하게 선화당 내부에 복원된 것으로 전라감영의 위용과 기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조법종 우석대 교양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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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21 15:34

(新 팔도명물) ‘바삭바삭’ 소리까지 맛있는 남원부각, 남원 명물 납시오!

채소나 해초를 손질해 찹쌀 풀이나 밀가루를 묻혀서 말린 다음 필요할 때 기름에 튀겨내는 부각. 고소한 맛과 식감으로 사랑받는 부각은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우리나라 전통음식이다. 특히 남원부각은 밀가루나 달걀을 입히지 않고 마른 재료에 찹쌀 풀을 발라서 그대로 튀겨내는 남원 대표음식이다. 남원산 찹쌀만을 사용해 생산되는 특성 때문에 남원부각은 부각 본연의 고소한 풍미가 진하고 씹는 맛이 우수한데다, 영양면에서도 빠지지 않아 반찬으로도 좋고, 술안주, 아이들 간식으로도 최고의 식품으로 꼽히고 있어 전국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남원시는 남원부각을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도 선정하기도 했다. 부각 대표생산지 전북 남원 실제로 남원은 부각의 대표 생산지로 연간 1263여톤의 부각을 생산, 국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요를 입증하듯, 남원부각 생산업체들은 지난 2015년에는 14개 업체에서 41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가 2021년 기준 42개소로 대폭 확대, 120억 원의 매출액을 달성하는 등 꾸준한 성장률과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다. 남원이 부각의 대표 생산지가 된 것은 소금을 싣고 섬진강을 따라 남원시내를 관통하는 요천의 나루터를 왕래하던 뱃길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소금배에 실려 온 김을 남원 권번에서 김부각이라는 고급요리로 만들었고, 전국으로 퍼지면서 유명해진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원에서 생산되는 부각이 특별한 이유는 질 좋은 찹쌀 때문이다. 여기에 부각의 재료에 바를 찹쌀 풀을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멸치, 파, 다시마, 새우, 무, 소금 등 천연재료를 사용, 만들고 있어 많은 이들이 남원 부각을 찾고 있다. 그러한 맛 때문인지, 남원 부각은 몇 해 전 남원과 인연이 닿아있는 인기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 화사가 예능방송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바 있다. 그 인기는 국내를 넘어서 국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1월 26일에 방영된 MBC뉴스터치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검은 종이라고 불리는 김을 활용한 김부각은 코로나19 이후 건강한 먹거리로 급부상하면서 짭짤한 한국산 김부각, 김스낵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최고의 간식이 됐다고 보도됐다. 그러면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0월 국내산 김의 미국 수출액은 1억 14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나 늘었다고 보도됐다. 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들 특히 김부각과 같은 스낵 형태 제품을 많이 찾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저장성이 높은 스낵 매출이 증가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며 여기에 김이 최근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 이후 건강한 먹거리로 급부상한 원인도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 남원부각 전략적 육성 남원시는 이렇게 부각의 수요와 인지도가 상승하자, ‘남원부각’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대한민국 부각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 2015년도부터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 농업과 식품의 동반 성장을 추구하고자 농식품산업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전통식품인 부각산업을 지역전략식품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 2018년에는 남원시부각협동조합이 주최하고 남원시와 전라북도농업기술원, 농촌진흥청이 주관, ‘제1회 부각페스티벌’을 개최해 남원부각의 우수성 등을 알렸고, 지난 2020년부터는 남원부각의 역사와 전통성, 생산방법 등 남원부각만이 가진 제조 방법을 차별화하고, 인식시키기 위해 지리적 표시 증명표장 등록 완료했고, 남원 부각 지리적표시제를 운영하기 위해 조례 및 규정 등을 준비하고 있다. 지리적표시 증명표장 제도란 상표법에 따라 상품의 생산방법, 품질, 명성 등의 특성이 특정 지역에서 생산‧제조‧가공된 상품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타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이나 유사 제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또, 시는 남원부각의 명성과 우수성을 지리적 표시로 보호하고 소비자에게 신뢰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상표등록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국내 부각산업의 현황 분석을 통한 남원부각의 차별화 전략 수립을 위한 남원부각 활성화 심포지엄을 개최한데 이어,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 지원으로 남원전통식품산업 일환의 창업을 육성하는 등 부각산업을 적극 육성시키고 있다. 특히 시는 전통 식문화의 계승 발전과 소비저변을 확대하고자 2019년 전통식품 체험시설 공모에도 선정, 이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남원부각 산업을 대한민국 전통식품산업 일번지로 구축하고 있다. 남원시 관계자는 “남원의 대표 전통식품인 부각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 시에서는 남원부각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남원의 맛 전통을 살린 전통식품명인 육성으로 지역의 브랜드 경쟁력을 제고하고, 6차산업과 수출 성공 모델 및 부각산업을 우리 농업농촌의 지속가능한 성장엔진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원시는 이밖에도 향후 국내시장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는 남원부각을 더욱 활성화시킬 전략으로 미국,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 국내 면세점 등에 공급, 남원부각의 전통적인 맛을 세계 수출시장에 더욱 확대 진출시킬 방침이다. 부각의 변신은 무죄, 명절 선물로도 인기 이러한 남원부각은 현재 다양한 모양과 맛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실제로 남원 부각업체들은 감자부각, 고추부각, 가죽부각, 들깨부각, 파프리카부각, 김부각 등 다양한 우리 농산물로 제품을 다양화시키고 있으며, 밥반찬용, 스넥류, 간식용, 안주용 등 다양한 용도로 생산, 소비자들의 욕구와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식물성 지방을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 가운데 하나여서 명절 선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10년째 남원에서 부각을 만들고 있는 부각업체 예미담의 경우 10가지 국내산 원료에 국산 김만을 사용, 화학조미료와 첨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유전자 변형이 없는 현미유(NON-GMO)를 사용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예미담 김경남 대표는 “직접 만들어 먹을 수밖에 없었던 옛날 방식이 달리 요즘 부각은 간편하게 제조된 여러 상품들이 시중에 많이 출시돼 다양한 맛을 찾는 젊은 사람들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부각을 구매하고 있다”면서 “가격대도 부담 없고, 선물하기 좋아 명절선물로 부각을 찾는 사람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예미담은 해마다 명절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올해도 추석맞이 행사로 마련한 미니 모둠선물세트(전통김부각 3봉, 반찬용 1봉, 다시마 1봉)를 1만 4000원에, 고급 모둠선물세트(전통 4봉, 반찬 2봉, 다시마 2봉)를 2만 3000원에 판매한다. 프리미엄 모둠선물세트(전통 6봉, 반찬 3봉, 다시마 3봉)는 3만 2000원에, 최고급 선물세트(전통 2봉, 반찬1봉, 다시마 1봉 150g)는 4만 5000원에 특별 판매한다. 4만 원 이상 구입 시 배송료는 없고, 대량으로 주문할 경우에는 가격조정도 가능하다. 한편 다른 남원부각을 구입하려면 사이버 남원시 농특산물 쇼핑몰인 남원사이버장터(www.lovenamwon.co.kr)와 전북도에서 운영하는 거시기장터(www.jbplaza.com)에서 우체국에서 운영하는 쇼핑몰(mall.epost.go.kr) 및 쿠팡, 네이버 등 다양한 인터넷 채널 및 자체 홈페이지를 통하여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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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기철
  • 2023.08.17 17:33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자활사업의 또 다른 벽. '비뚤어진 시선'

‘자활(自活)’ 사업은 근로 능력 있는 생활보장수급자, 차상위 계층 등 저소득층이 스스로 자활할 수 있도록 자활 능력 배양, 기능습득 지원 및 근로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특히 고용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자활센터는 경제 사업을 펼쳐가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사회복지시설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데는 교육·상담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노동의 조건을 개선하는 일이 변행돼야 한다. 삶의 주체로써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조건 중에 노동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군산지역자활센터 사회서비스형 다올환경/백영규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받아내는 자활센터 현재 자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정확하다 할 수 없다. 자활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찾기에 앞서 눈에 보이는 자활 현장만을 보고 판단하고 있다. 자활사업 현장은 매우 열악하다.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선의 노력은 다양한 형태로 펼쳐지고 있지만 한계의 벽은 높기만 하다. 자활사업 참여자들은 경제적 불안감 속에서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인 상처와 아픔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인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활사업에 몸 담고 있지만 외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희망을 찾기 힘들어지고 자존감마저도 떨어진다. 자본주의라는 무한 경쟁 시대라지만 그들에게는 가혹하기만 하다. 고립과 외로움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때문에 자활사업의 기능과 역할은 단순히 사회복지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사회복지의 틀을 뛰어넘어 사회통합과 사회 안전망으로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자활사업의 고충 저소득층에게 온전한 삶을 되돌려주기 위한 다양한 자활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생산체계가 열악하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노동력조차 제대로 발휘하기 쉽지 않다. 악순환의 고리가 지속되고 있다. 열악한 생산체계를 개선하는 일은 절실한 직면 과제이다. 생산체계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생산성과 관계를 만들고, 심리·정서, 사회, 경제적 자활이 함께 연동되어 작동돼야 한다. 이 때문에 자활현장은 생산체계 구축에 몰두하고 있다. 시설과 장비, 자산 등록이 요구되는 생산체계 구축이 절실함에도 자활센터 운영주체는 법인도, 일반인도 아닌 만큼 한계가 있다. 법인자산과 자활센터 자산은 분리되어 관리·운영돼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통상적으로 자활센터장 개인의 명의로 등록·운영될 수밖에 없다. 혹시 모를 문제 발생을 대비해 자활센터장은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모(母) 법인의 지급보증각서까지 제출해야 운영이 가능하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발생되고 있다. 실례로, 최근 치유농업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컨테이너를 센터장 명의로 등재하고 진행해 온 것과 관련,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언론보도가 있었다. 자활센터 차량과 사업자 등록 등이 센터장 명의로 되어 있다보니, 센터장 소득이 9분위나 10분위에 해당됨에 따라 자활센터는 ‘센터장 명의 등재’로 인한 고충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임탁균 익산지역자활센터장은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주어진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니 핑계 삼을 수도 없다”고 안타까워하며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중앙 부처에서도 고민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짧은 시간에 찾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자활에 부정적인 시선은 사업 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정부의 보조금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 영세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민원이 많다. 하지만 자활사업은 다른 사회복지 영역과는 달리 수익 창출이 필요하다.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자활사업은 종료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또 다른 사업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 이로 인한 예산 낭비는 당연하며, 자활사업 참여자들의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자활사업은 크게 사회서비스형과 시장진입형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사회서비스형은 자활사업에 투입되는 사업비의 10% 이상을 매출로 달성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자원재활용 사업 등 3D 직업이 대부분이다. 시장진입형의 경우. 투입 예산의 30% 이상을 매출로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일반시장의 진출을 준비하거나 자활기업 창업을 위한 사업이다. 대표적으로는 음식점이나 카페 등 일반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사업들이다. 다시 말해 자활사업에 투입되는 사업비에 따라 매출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매출액은 한국자활복지개발원에서 운영하는 중앙자산키움펀드로 일부 적립된다. 이 펀드는 자활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지원금으로 다시 사용된다. 소상공인들에게는 중소기업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공모사업이나 지원사업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자활사업은 이 중앙자산키움펀에드에서 공모사업이나 지원사업을 통해서 자활사업을 운영하게 된다. 이렇듯 자활사업은 자신들의 매출액을 모아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인프라 구축에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함께해야 자활사업의 성패는 자활의 필요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사회가 함께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대표적으로 진안지역자활센터에서는 지난 6월부터 연말까지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단체 이용자 및 종사자를 대상으로 사회공헌 사업을 운영한다. 자활사업 운영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저소득층의 자존감 향상과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 및 단체와의 연대와 협력 구축을 위한 것이다. 유정 진안지역자활센터장은 “사회공헌을 통해 자활사업이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진안지역자활센터의 사회공헌 사업 운영은 자활사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목적사업 수행에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면 지역사회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빈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라는 강력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고, 열심히 살아온 저소득층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지정한 지역사회공동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백영규 전북광역자활센터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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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6 12:51

신뢰와 소통 중심 발로 뛰는 남원시의회

지난해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 법률 시행에 따라 처음으로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관 운영 등 제도적인 기능이 강화되어 출범한 제9대 남원시의회는 시민들에게 신뢰받는 의회, 시민들과 소통하는 의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적극적인 의정활동에 매진했다. 여러 지방의회의 양당구조 속 원구성 갈등과는 다르게 제9대 남원시의회 의원 16명은 모두 같은 정치를 지향하며 원만히 원구성을 마무리했다. 이어 전평기 의원이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갈등과 반목이 아닌 협치를 바탕으로 ‘시민과 소통하며 신뢰받는 의회’라는 구호를 만들고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돌입했다. 초선의원의 열정과 재선의원의 경험을 토대로 남원시의 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전개하며 역대 의회보다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 남원시의회는 지난 1년간 3번의 정례회와 6번의 임시회, 총 9회의 회기일정을 운영하며 시정에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의정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꼼꼼한 행정사무감사와 시민을 생각한 조례 제·개정, 지역에 꼭 필요한 예산을 배정하기 위한 예산결산안 심사 등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의정에 반영해 지역의 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성·역량 강화 통한 의정활동 출범 초기 초선의원이 많은 제9대 남원시의회에 요구되었던 것은 정책을 개발하고 시정의 개선점을 찾아낼 수 있는 의원의 전문성 및 역량 강화였다. 이에 남원시의회는 전문가를 초청한 의원 연수를 통해 행정사무감사 기법이나 조례개정 방법, 시정의 개선점 발굴 방법 등 지방의회의원으로써 필요한 관련 기법들을 배우게 하고 정책지원관을 채용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조하여 의원들의 역량을 크게 높였다. 주요 의정활동을 살펴보면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594건에 이르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시정·처리 요구하여 시정의 투명성을 강조하였고 남원관광지 민간개발사업 추진상황, 2022년 하반기 인사의 문제점, 남원 드래곤 관광단지 조성사업 문제점, 시장의 인사 관련 제반문제 등 4건의 시정질문을 통해 남원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민의를 대변하여 남원시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지역의 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을 목표로 9번의 회기를 통해서 조례 제·개정안 105건, 예산·결산안 11건, 동의안 25건, 기타 55건 등 총 196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특히 47건의 의원발의 조례 제·개정과 54건의 5분 자유발언, 15건의 건의·결의안 채택하여 시민 생활에 꼭 필요한 분야의 개선과 시민이 필요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통 중심 발로 뛰는 현장 의회 남원시의회는 의정구호인 ‘시민과 소통하고 신뢰받는 의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각종 민원 현장을 방문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썼고 운봉 화수교, 춘향 스테이션, 남원 아트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등 관련 사업 현장을 직접 시찰하며 개선해야 될 사항은 없는지, 공사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사항은 없는지 등 제반 사항을 꼼꼼히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남원시의회는 현장 소통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남원시민의 염원인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공공의료대학 법안의 연내 통과를 위해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유치지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전방위적 지원을 하고 5분 자유발언, 건의안, 피켓시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 등을 통해 공공의대를 유치하기 위한 활동에 온 힘을 다했다. 이어 이상기온으로 인한 봄철 냉해 피해를 입은 농가를 살펴보며 관련 지원대책 및 예방대책을 검토하고 위험 농로 구간을 확인하여 여름철 농가 사고를 방지하는 대책을 내놓는 등 각종 재난을 대비하기 위한 현장 점검을 나섰다. 또한 산불이나 폭설 등 재난으로 인해 고생했을 직원들에게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하며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등 내부 직원에 대한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공부하는 의회’·‘열린 의회’ 구현 노력 남원시의회 의원들은 의정 역량 강화 구현을 목표로 연구단체를 만들어 공부하고 발전하는 의회상 구현에 힘썼다. △탄소중립 그린도시 만들기 연구회 △구룡계곡 역사 생태 보존연구회 △요천 경관 연구회 △조례분석연구회 △남원형 치유농업연구회 △전통시장 활성화 연구회 등 시민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연구단체들을 만들었다. 해당 연구단체들은 대표의원을 중심으로 간담회, 전문가 초청 강연, 시민 아카데미, 각종 캠페인 및 세미나 등을 통해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시민과 소통하며 관련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찾고 시정에 의견을 반영하는데 초점을 맞춰 활동했다. 또한 우수 사례 현장 방문(벤치마킹)을 통해 타 지자체의 성공사례를 분석하며 그 성과를 의정활동에 접목할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 밖에도 남원시의회는 열린 의회를 만들기 위해 청소년 의회교실 및 견학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방자치제도의 이해와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도왔다. 현재 2023년도 청소년 의회교실은 총 16회에 걸쳐 관내 청소년 269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견학프로그램의 경우 4회에 걸쳐 78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지방의회의 역할을 이해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체험 기회를 제공하여 열린 의회상을 구현했고 청소년들에게 미래 세대의 성숙한 민주시민 의식을 키워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평기 의장 “버팀목 되는 든든한 의회, 시민과 소통하고 신뢰받는 의회 만들 터” 새로운 지방분권 2.0시대를 맞이하여 제9대 남원시의회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의정활동을 펼치고 의회의 역할에 대한 시민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의정활동으로 의회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의회의 본질인 행정의 파수꾼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여 믿을 수 있는 의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전평기 남원시의회 의장은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우리 제9대 남원시의회는 오로지 남원시민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며 언제나 시민들의 곁에서 버팀목이 되는 든든한 의회, 시민과 소통하고 신뢰받는 의회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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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기철
  • 2023.08.13 15:16

[한국전쟁 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1023일의 기록 (하)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은 명실상부한 정치, 외교,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인들은 광복동 일대 다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전쟁의 포화 속에도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다. △격동기 정치 중심에… 한국전쟁기 부산이 처음 임시수도가 된 시기는 1950년 8월 18일부터 10월 26일까지다. 서울 수복 후엔 부산에 있던 정부 기관도 환도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1년 1월 3일 정부는 모든 정부 기관을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다. 부산 서구 부민동에 있는 경남도청사(현재 동아대 석당박물관)가 임시 중앙청이 된다. 경남도지사 관사(현재 임시수도기념관)는 대통령 관저로 활용된다. 국회는 중구 부산극장에 있다가 이후 경남도청 체육관인 상무관을 사용한다. 1940년대에 지어진 남포동 소화장아파트는 국회의원 관사가 됐다. 미국대사관은 부산 미문화원에 자리를 잡는 등 각국 외교 기관도 부산으로 옮겨온다. 체신부는 부산우체국을 사용하고, 부산시청사는 사회부와 문교부 등이 사용한다. 특이한 점은 대체로 중구에 자리를 잡은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교통부는 부산진구 범천동에 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부산시민들이 범곡교차로 일대를 ‘교통부’라 부르는 이유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장기 집권을 위한 첫 번째 개헌이 이뤄진 곳도 부산이었다. 부산일보사가 1980년대에 발간한 책 <비화 임시수도 천일>에 따르면, 1952년 5월 26일 0시를 기해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령을 발동한다. 바로 ‘부산정치파동’의 시작이다. 이날 오전 동래구 온천장을 출발한 국회 통근버스는 중구 광복동 동아극장 앞에서 국회의원 30명을 더 태워 모두 47명을 싣고 임시 의사당이 있는 경남도청 정문을 들어서려다 총 든 헌병의 검문을 받는다. 이에 맞서 1시간을 버티던 국회 버스는 결국 군용 크레인에 의해 사람이 탄 채로 헌병대로 끌려갔다. 몇몇은 국제공산당 음모 사건 피의자로 구속 당했고, 야당 의원 30명은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여름 내내 숨어 지내야 했다. 이로부터 39일 만인 7월 4일 야당 의원이 제의한 내각책임제 개헌안과 정부 제안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교묘히 절충한 이른바 ‘발췌개헌안’이 온갖 위협과 탄압 속에 통과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고, 1960년 4·19로 하야할 때까지 12년 장기 집권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 이에 앞서 부정부패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중석불(弗) 사건도 있었다. 중석불이란 중석(텅스텐)을 수출해서 번 달러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거의 유일한 수출 품목인 중석을 수출해서 벌어 들인 달러로는 원래 양곡과 비료를 수입할 수 없게 돼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긴급을 요한다는 구실로, 15개 상사에 총 25건 483만 5300달러에 달하는 중석불을 불하한다. 업자들은 이 돈으로 소맥분 같은 양곡, 비료를 도입해 무려 500억 원의 폭리를 봤다. 이 돈이 격동기 정치자금으로 쓰이면서 건국 후 첫 정경유착 사건으로 남게 된다. △부산항과 국제시장 부산항은 전 세계의 원조 물자가 들어오는 창구였다. 동아대 사학과 전성현 교수는 “한국전쟁 시기 구호물자의 3분의 2 이상이 부산항을 통해서 들어왔다”며 “부산항을 중심으로 물자가 유통되면서 이때부터 서비스업 중심의 부산 경제 구조가 형성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전국이 전쟁터가 되면서 생필품 공장조차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다.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 국제시장에서 유통되는 각종 물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유엔 원조물자나 미군용품이 부정 유출된 경우도 많았다. 남의 물건을 조금씩 슬쩍슬쩍 훔쳐 내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얌생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2021년 부산시가 펴낸 구술 채록·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에도 ‘얌생이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운송물자 중에 값이 나갈 만한 것을 무조건 트럭 밖으로 집어 던지는 거야. 던지면 운반책이 주웠어. 그때 서면 일대가 판잣집으로 되어 있는데,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가면 나오지를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미군이 추격해도 찾지를 못해. 그래서 그걸 ‘얌생이 몬다’라고 했어.”(1934년생 박형숙 씨 구술) 대기업들은 부산에서 그룹의 뿌리가 된 기업을 일궜다. 삼성그룹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제일제당은 현재 부산진구 부전동에 터를 잡았다. LG그룹(옛 럭키그룹)의 모체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도 이 시기 설립된다. 부산일보사가 발간한 <비화 임시수도 천일>에 따르면, LG그룹의 창업주인 구인회·정회 형제는 서구 서대신동 판잣집 비슷한 가내 공장에서 소위 ‘동동구리무’라고 불리던 여성용 크림을 만들었다. 제대로 된 화장품 용기가 없어 고물상에서 외제 통을 수집해 썼는데, 뚜껑이 없어 말썽이었다. 고심 끝에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플라스틱 뚜껑을 만들기로 하고, 원료와 전열기·금형기계를 들여온다. 플라스틱 뚜껑 제조는 대성공을 거둬 300만 원으로 시작한 자산이 3억 원으로 늘어났다. 자신감을 얻은 구 씨 형제는 부산진구 부전동에 약 165㎡(50평) 규모 공장을 새로 짓고, 미국에서 플라스틱 제조 기계를 도입했다. 처음 생산한 상품은 ‘오리엔탈’이라는 상표의 빗이었다. 이 빗이 우리나라 최초의 플라스틱 제품이다. △문화공간이 된 다방 전쟁기 부산에서 문화도 꽃을 피운다. 화가 이중섭과 김환기, 작가 김동리, 황순원을 비롯한 문인과 음악가, 영화인도 피란을 왔다. 갈 곳 잃은 예술가들을 품은 것은 다방이었다. 다방은 전화 연락이 가능한 곳으로, 타지와의 교신을 위해 주소를 제공하거나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역할까지 했다. 더마루아트 박진희 대표(미술평론가)는 “폭격에서 안전한 부산으로 예술가가 몰리면서 다방도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중구 광복동의 다방은 미술가에게는 전시장으로, 문인에게는 작품 발표 장소 등으로 문화센터이자 살롱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다방으로는 △밀다원 △금강 △뉴서울 △루네쌍스 △금강 △휘가로 △늘봄 △파도 △망향 △비원 △스타 다방 등이 있었다. 특히 광복동 일대는 국제시장이 인접해 있어 소비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생계를 위해 작품을 팔아야 했던 화가들에게는 전시를 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가 됐다. 피란 생활 중 이중섭이 오랜 시간 머무르며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곳도 다방이다. 그의 예술혼을 상징하는 '은지화'의 요람은 금강다방으로 알려져 있다. 밀다원다방은 김동리의 단편소설 ‘밀다원 시대’에도 등장한다. 경남 통영 출신의 화가 전혁림이 피란 중 1952년 첫 개인전을 열었던 곳도 밀다원다방이었다. 전혁림미술관 전영근 관장은 “당시 시인 유치환이 써준 전시회 초대 글(발문)이 현재 통영 전혁림미술관에 남아 있다”고 밝혔다. 부산일보=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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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3 14:27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⑦ 쇠락한 원도심, 청년과 주민들이 살려내다

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 공주 원도심 재생과 사회적기업 '퍼즐랩' 우리나라 도시들은 198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신도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래된 도시다. 기능으로는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오면서 특정한 지역 산업을 갖게 된 도시’이거나 그 도시만의 ‘두드러진 향토색을 가진 도시’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은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오면서 성장 동력을 잃었다. 한 시대, 우리나라의 도시발전 정책은 ’확장성‘의 가치를 앞세웠다. 도시마다 신시가지 개발이 유행처럼 번졌다. 도시의 확장에 환호했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신도시 건설에 집중하는 사이 원도심 쇠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확장했으나 오래된 도시들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쇠락한 원도심 살리기에 정부가 나선 것은 꽤 오래전이다. 정책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도시재생 정책이 만들어졌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도시재생 사업은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도시재생 뉴딜 정책’으로 선정되어 추진된 것들이다. 5년 동안 해마다 10조 원씩 50조 원을 투자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목표는 전국 500개 지역을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전면 개발 대신 지역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으로 도시 공간을 혁신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정책 목표이기도 했다. 전국의 수백 개 도시가 도시재생의 가치를 내세워 쇠퇴한 도심 살리기에 나선 배경이다. 역사문화자원에 재생을 더해 얻은 가치 충남 공주시는 도시재생 우수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부여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던 공주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감영과 관찰사가 주재했던 명실상부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위상은 변했지만 공주여자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학교) 등이 개교하고 중고등학교들이 들어서면서 공주는 교육의 도시가 됐다. 오래된 도시들이 그렇듯이 공주도 1980년대, 도시 확장에 도시의 미래를 걸었다. 금강 너머 북쪽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인구 이동이 이어졌다. 상권이 옮겨지자 원도심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도시의 영역은 더 위축되어 한때 22만 명이나 됐던 인구는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그러던 공주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민천 일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쇠락하던 원도심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미미한 숫자지만 57년 만에 인구가 증가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공주의 도시재생은 꽤 오래전부터다. 고도 보존 및 육성사업(고도보존육성 기본계획)이 그 바탕이다. 2014년부터는 본격적인 도시 재생 사업 로드맵을 세우고 선도사업을 추진했다. 하숙마을, 문화예술촌을 비롯해 고성에 오르는 골목길, 박찬호 골목길, 근대문화골목길 등 골목길 사업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2019년에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선정되면서 보다 본격적인 재생사업이 시작됐다. 올해 말까지 5개년 사업으로 추진된 공주의 뉴딜은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해 쇠퇴한 도심을 살리는 것이 중심이다. 관 주도가 아닌 주민 주도의 사업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 그동안 도시재생 선도사업 지정을 시작으로 옥룡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중학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주민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을 앞세웠었다. 공주시는 올해까지 '문화와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공산성 마을'을 목표로 주거지지원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내년까지 '제민천과 함께하는 역사문화 골목 공동체'를 목표로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한다. 공주 도시재생 사업의 중심에는 주민과 청년이 있다. 시는 지원사업 공모뿐만 아니라 주민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사업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시민대학을 운영하고, 마을 가꾸기 분과를 만들어 주민이 도시재생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 주민들의 참여는 눈에 띄게 늘었다. 도시재생 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위해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송두범 공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공주는 여전히 인구 감소 현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청년들이 소소한 행복을 위해 찾아오고 일정한 기간이나마 살고 싶어 하고,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지역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와 청년들이 필요한데 공주는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제민천과 원도심 활력을 이끄는 주식회사 퍼즐랩 제민천은 공주의 원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물길이다. 공주는 금학동에서 시작해 금성동까지 4.2km를 흘러 금강에 이르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했다. 그러나 신시가지가 개발되며 주요 상권이 이동하자 제민천 주변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원도심으로 쇠락하고 말았다. 제민천은 오염되어 악취가 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도 흐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공주시는 제민천 살리기에 나섰다. ‘제민천 생태하천 조성사업’과 ‘제민천 활력거점 조성사업’으로 주변 하수도를 정비하고 반죽동 일원에 하숙마을과 문화예술향유 공간을 만들었다. 맑고 깨끗한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자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외지의 청년들이 하나둘 공주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며 지역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사회적기업 ‘퍼즐랩’(대표 권오상)이 있다. 퍼즐랩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지역 관리회사다. 공주가 가진 고유한 자원을 주목한 권오상 대표가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운영하다 2019년 커뮤니티 기반의 사업을 고민하며 창업했다. 퍼즐랩은 마을 안에서 개개인에게 맞는 다채로운 커뮤니티와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일을 한다. 퍼즐랩의 사업은 창업 4년 만에 큰 폭으로 확장됐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와 ‘버드나무빌’, 커뮤니티호텔 ‘슬로크루즈’ 등의 숙소와 공유오피스인 ‘업스테어스’, 교육장인 ‘금강관’, 노인회관을 이용한 팝업 공간, 마을 자원을 활용해 소비와 유통을 이끄는 ‘크림오브엑스’와 마을 안내소 등이 모두 퍼즐랩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공주 원도심의 ‘마을 스테이’와 청년마을 ‘자유도’는 퍼즐랩이 설립한 브랜드 프로젝트다. 마을 스테이는 퍼즐랩이 운영하는 숙소와 원도심의 식당, 카페, 책방, 공방, 갤러리 등 다양한 운영자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일관성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이다. 이 네트워크에는 마을 주민들도 마을해설사로 참여하고 있다. 청년마을 ‘자유도’도 '마을 연결' 브랜드다. 공주 원도심을 찾아온 청년들이 이 마을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유 의지에 따라 삶과 일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갖춰져 있다. 원도심에 자리 잡은 다양한 공간을 중심으로 행사를 열고 참여한 사람들이 다시 공통적인 관심과 가치로 연대하는 틀을 확장해가는 퍼즐랩의 커뮤니티 프로젝트에는 청년들 뿐 아니라 원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다. 퍼즐랩이 이즈음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있다. 관계 인구(생활인구) 만들기다. 도시 대부분이 정주 인구 확보를 위해 청년들을 유입하는데 매달리고 있지만, 이제는 정주 인구가 아닌 관계 인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퍼즐랩의 판단이다. 장원희 프로젝트 매니저는 ”거주하지 않지만 일을 위해 도시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도시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라며 “관계 인구가 공주시에 와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그들 또한 이곳에서 일거리를 찾아 정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퍼즐랩 직원 중 과반수는 다른 도시에서 온 청년들이다. 일을 찾아왔다가 아예 공주로 거주지를 옮긴, 관계 인구로 시작해 정주 인구가 된 경우다. 퍼즐랩은 지난 2021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됐다. 서울과 수도권 밖에 청년이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을을 만드는 이 사업에 2021년 한 해 동안 140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공주에 남았거나 다시 찾아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도 여럿이다. 느슨하지만 강력한 결속력으로 만들어 내는 지역 커뮤니티의 힘으로 공주의 원도심을 바꾸어 가는 퍼즐랩은 건강한 커뮤니티의 활동이 지역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직은 경제적 자립과 인력 확보가 자유롭지 않지만 퍼즐랩의 활동에 더 큰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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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10 16:18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유휴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들, 진안에 새로운 무대를 만들다

산업사회의 호황은 우리에게 삶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도시의 산업화는 농촌을 쇠퇴시키면서 지역사회의 불균형을 야기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도시의 인구밀집은 농촌의 인구감소로 작용되었고, 많은 청년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농촌은 고령화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이러한 사회변화는 지역이 소멸할 수 있다는 심각성을 인지하게 만들었고, 정부와 지자체는 대응기금을 마련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다각도의 정책적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전라북도의 14개 시·군 중 10개 지역은 지역소멸위기를 맞고 있다. 지자체는 인구정책을 펼쳐 지역마다 인구수를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만 좀처럼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고민에 답을 던져주는 민간의 활동은 지역사회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문화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은 그만큼 지역사회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거창한 이론적 담론이 아닌 지역과 함께 새로운 지역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분명 지역을 살리는 일일 것이다. 지역인구 감소와 산업구조의 변화는 지역사회에 많은 유휴공간을 만들어냈다. 동네마다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많은 공간들은 더 이상 쓰임을 찾지 못하고 내버려두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하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방치된 유휴공간에 생기를 불어 넣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진안군을 무대로 활동하는 ‘써니Plant(대표 김문구, 예술감독 김선이)’는 지역민과 함께 공연문화예술이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모두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기획을 주도하고 있다. 단체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써니(sunny)와 Plant를 합성한 이름은 다양한 예술장르의 사람들과 지역민이 모여 눈부신 햇살처럼 예술활동을 펼치고, Plant의 심고 담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지역에 다양한 문화예술을 고스란히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써니Plant의 활동이 빛을 발산하는 계기는 ‘진안공간사랑프로젝트’를 통해 진안군의 유휴공간에서 펼친 활동이 지역사회에 새로운 경험으로 파장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이 단체의 김문구・김선이 부부는 2013년 연고가 없는 진안군으로 내려와 용담호를 끼고 있는 마을에 터를 잡으면서 현대무용을 하는 부부의 이력에 맞게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무용영상을 촬영하며 새로운 공연예술의 무대를 발견하게 되었다. 진안군은 진안문화의집이 유일하게 극장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공연예술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이때 새로운 공연무대로서 눈을 돌린 곳이 유휴공간이다. 진안군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도 같은 사정이겠지만 휴게소, 창고, 문화공간, 주택 등 다양한 공간들이 방치된 채 숫자가 늘고 있다. 이러한 유휴공간은 써니Plant에게는 좋은 무대로 다가왔다. 2016년 상전면 폐휴게소에서 열린 제1회 진안공간사랑프로젝트는 지역민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지만 이를 준비하는 이들은 전기, 수도, 화장실 등 기반시설이 전혀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첫 예술제는 신연마을 어르신과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사업을 결과물로 활용한 행사였다. 전국단위 행사로서 손님을 맞아야하기 때문에 준비는 지역민을 비롯해 민․관이 함께 협력하는 사업이 되었다. 김선이 예술감독은 “면사무소에서 의자와 책상을 옮겨오고, 가족들이 모두 동원되어 수육을 삶고 김밥을 싸고 막걸리를 준비하고 동네 펜션을 예약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유휴공간이 무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진안군의 유휴공간에서 펼친 문화예술공연은 2017년 마이산의 마이봉을 배경으로 한 반월제에서 ‘반월제의 반영’과 2018년 진안읍내에 위치한 농협창고에를 활용한 공연이 눈에 띤다. 이 공연은 ‘진안공간사랑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미디어와 공연예술, 청소년과의 공동작품, 그리고 지역민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 크다. 이들이 유휴공간에서 예술제를 펼치는 이유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연예술의 미학적 표현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통해 예기치 못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을 매개로 멈춰있는 공간을 재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써니Plant는 예술제를 통해 지역민과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감성이 지역의 생기로 전환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획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써니Plant가 기획하는 유휴공간을 활용한 예술제는 2021년 국비를 지원받으면서 ‘진안댄스미디어공연예술제’로 명칭을 변경하여 올해 제8회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10월로 예정된 예술제는 용담호를 배경으로 자리 잡은 유휴공간인 용담호미술관(수천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이 공간은 세 번째 예술제가 열리는 장소로서, 용담호가 가진 자연환경 속에서 지금은 유휴공간이지만 지역재생의 거점 공간으로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다. 올해 예술제 주제는 ‘오래된 것에 대한 기억’으로 삼고 복합장르의 실험무대가 될 예정이다. 참여 작가는 무용가, 배우, 음악가, 미디어아티스트 등 춤과 영상미디어로 연결하는 장르가 다양하다. 특히, ‘2023 숏폼 콘테스트’수상자와 춤을 사랑하는 진안군민으로 구성된 ‘춤단 서포터즈’와 지역의 신진청년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할 예정이어서 지역민이 함께 만드는 예술제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앞으로 써니Plant는 “진안에서의 10년은 타인을 위한, 지역주민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이를 기반으로 진안에서의 삶을 작품화하여 무대에 올리는 것에 집중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유휴공간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일은 쉽지 않다. 예술을 매개로 멈춰있는 공간을 재조명하여 공간과 사람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힘은 지역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핵심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힘은 지역사회에 사람을 모이게 하고 활기를 불어넣어줌으로써 지역소멸위기에서 벗어나는 첫 발이 될 것이다. 구혜경 (전북문화관광재단 기획정책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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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9 16:46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화유산으로 본 후백제] (16)고고학으로 후백제 왕도를 복원하다

견훤은 전주를 후백제의 도읍으로 건설하는데 풍수지리와 미륵신앙이 그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부사』의 고성벽지(古城壁址)는 도심화로 인해 성벽의 흔적이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 구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후백제 도성벽으로 보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를 토대로 후백제의 도성을 복원해 보변 반월형에 가까운 평면 형태에 기린봉을 주산으로 하여 뻗어내린 산줄기 등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이 자연지형을 이용하였기에 부분적으로 삭토와 판축의 토성 축조법이 보이고 있다. △전주, 후백제 왕도(王都)였다 1980년 9월에 진행된 동고산성에 대한 개괄조사는 후백제 흔적 찾기의 시작이었다. 당시 조사를 담당한 고(故) 전영래 교수님은 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의 둘레와 형태, 내부 시설 등 조사내용을 보고하는 한편 동고산성은 견훤이 쌓은 후백제 산성임을 주장하였다. 동고산성 조사 이후 전주지역에서는 20여개소의 크고 작은 후백제 유적이 발굴조사 되었다. 또한 2017년과 2022년에는 전주지역 일원을 대상으로 한 정밀지표조사에 의해 성곽유적, 궁궐유적, 건축유적, 생산유적, 분묘유적 등 다양한 후백제 유적이 확인되었다. 후백제 도성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로는 1942년 전주부윤 구로키요스케〔黒木儀壽圭〕가 편찬한『전주부사(全州府史)』를 들 수 있다. 이 책의「전주부경역연혁도(全州府境域沿革圖)」에는 견훤왕궁지(甄萱王宮址)와 함께 고성벽지(古城壁址)가 표기되어 있다. 이 고성벽이 어느 시대에 축조된 성벽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전주 일대에 광범위하게 성벽이 축조될 시기는 후백제의 도읍기 이외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왕궁은 왕이 거주하면서 정사(政事)를 살폈던 권위와 권력의 중심지로서 기능적으로는 정사공간·생활공간·정원공간 등으로 구분되는데 왕궁의 위치는 당시 왕도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견훤은 AD 900년 전주를 후백제의 도읍으로 정하면서 왕궁을 어디에 두었을까? 문헌자료의 부족과 인식의 결여, 도심화로 인한 지형의 변화, 그리고 11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후백제 왕궁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견훤 왕궁의 위치 비정은 몇몇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대표적으로는 물왕멀, 동고산성, 전라감영, 인봉리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후백제 도성벽 내에 자리하고 있는 인봉리 일대가 궁성벽의 흔적과 주공(柱孔) 및 해자(垓字)의 확인 등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볼 때 후백제 왕궁 터였을 것이라는 주장은 적잖은 근거를 갖게 되었다. △견훤왕, 왕궁을 어디에 두었을까 후백제 왕궁의 위치 비정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전주부사』이다. 1938년 6월 조선총독부 도서관장 오기와라 히데오가 사각형의 커다란 석재와 천석 1만 여개를 목격하였고 연화문 막새가 수습되며 임금이 성을 둘만 한 사신상응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물왕멀 일대를 견훤왕궁지(甄萱王宮址)로 비정하였다.『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33 전주부 고적 고토성조에는‘전주부성 북쪽 5리에 견훤이 쌓은 고토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듯 물왕멀이 견훤의 왕궁터라는 주장은 견훤이 축조한 고토성이 왕성 역할을 했다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물왕멀 일대는『전주부사』전주부경역연혁도의 고성벽을 후백제의 도성벽으로 보면 도성 밖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해그랑블아파트 건립 때 물왕멀 부근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왕궁과 관련된 어떠한 고고학 자료도 확인되지 않았다. 1990년과 1992년에 진행된 동고산성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정면 22칸 측면 4칸의 대형 건물지 확인과 함께 건물지에서 전주성(全州城)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막새기와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토대로 동고산성이 견훤의 왕궁터로 주장되었다. 이후 2020년까지 8차례의 크고 작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3개의 문지와 13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건물지에서는 관(官)·천(天)·왕(王)자 명문와와 선문·무문·격자문 등의 후백제 평기와가 출토되어 후백제 때 매우 중요한 산성이었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하지만 동고산성은 승암산의 정상부에 입지하고 있으며 조사된 건물지에서 겨울 난방을 위한 구들시설이 확인되지 않았고 일상생활이 유지되었음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따라서 동고산성은 후백제 산성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산성의 축조 목적은 피난성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전라감영설은 2005년 전라북도청이 효자동의 신청사로 이전되면서 2007년과 2017년에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담장, 부석시설과 보도시설, 배수로, 우물 등이 확인되었으며, 쌍사자무늬 전(磚)을 비롯하여 동고산성 출토품과 유사한 관(官)자와 전○(全○)자명의 기와가 출토된 것 등을 근거로 주장되었다. 하지만 전라감영터의 맨 아래층에서 확인된 건물지의 규모와 축조 양상, 출토유물 등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완산주(完山州)의 치소(治所)였을 가능성은 추론이 가능하지만 후백제 왕궁으로 확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중노송동 인봉리 일대가 후백제 왕궁터로 비정된 것은『전주부사』전주부경역연혁도의 후백제 도성벽으로 추정되는 고성벽 내에 자리하고 있고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인보성체수도회-전주삼마교회-우성해오름아파트-기린봉아파트입구-전주제일고등학교로 이어지는 사다리꼴 형태의 추정 궁성벽이 확인되며, 동쪽에 위치하여 서쪽을 향하는 좌동향서(坐東向西)의 위치와 방향은 미륵신앙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인봉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5년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추진하였으며 이후 2017년 12월부터 2023년 5월까지 5차례 이루어졌다. 후백제 추정 궁성지의 북동벽에 해당되는 삼마교회 인근 부분에서는 토성의 축조에서 보이는 풍화암반토의 삭토와 함께 판축으로 쌓아올린 흔적이 확인되는 한편 크고 작은 주공(柱孔)이 열을 이루고 있는 상태로 드러나서 목책이나 망루와 같은 성벽시설의 존재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남쪽주차장 부지는 추정 궁성지의 남벽과 서벽이 교차하는 지점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는 풍화암반토를 다듬고 점토로 성토한 인위적인 흔적과 함께 궁성의 서벽 추정지 외곽에서 남북방향으로 흐르는 해자가 조사되었다. 해자의 바닥에는 모래와 점토, 잔자갈을 섞어 다진 점토 다짐층이 확인되며 회청색경질토기편, 후백제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왕궁의 후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정원석이 어렵지 않게 목격되고 뻘흙과 함께 가공 석렬이 노출되고 있으며, 다량의 후백제 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유철 전주문화유산연구원장 후백제 고도(古都) 복원 프로젝트 남고산성 내의 남고진터로 알려져 있는 계곡 주위에는 평탄대지와 석축과 우물 등이 남아있다. 평탄대지에서는 초석과 기단석 등의 석재와 궁(宮), 관(官)자가 새겨진 후백제 기와가 수습되고 있어 후백제 행궁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추정 행궁지의 남쪽에는 반월형의 갈대숲이 자리하는데 행궁과 관련된 연못의 가능성이 높다. 동고산성은 동문지·서문지·북문지와 함께 성 내부에서 13동 이상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조사된 유구와 출토된 다양한 후백제 기와 등을 통해 볼 때 가장 확실한 후백제 산성으로 여겨진다. 기린봉의 동쪽인 아중 저수지 주변에서는 왕릉급의 무덤과 돌을 사용한 무덤들이 확인된다. 무릉마을 내 아중산장 뒷산의 정상부에 자리한 무릉고분은 외관상 산의 형태인데 마을 주민에 의하면 고분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 민묘를 이장하기 위해 땅을 팠을 때 다량의 숯이 깔려있었다고 전한다. 아마도 이 숯은 고분의 축조와 관련된 것으로도 추정되며, 봉분의 규모로 본다면 왕릉급에 해당한다. 견훤은 국찰(國刹)을 어디에 조성하였을까? 도성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기린봉의 동쪽 기슭인 무릉마을 남쪽의 암석골 안쪽에는 비교적 넓고 평탄한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이 곳에 절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최근까지는 민가가 있었다. 주변에서 소량의 와편들이 수습되는데 바로 이 사찰 터가 후백제의 원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 도성의 필수 요소로는 산성, 왕궁, 외곽성, 왕릉, 불교사찰 등을 든다. 익산은 왕궁〔왕궁리유적〕, 사찰〔미륵사지〕, 분묘〔무왕릉〕유적 등이 조사되어 백제 고도(古都)에 포함되었다. 이제 전주도 도성, 왕궁, 무덤, 사찰 등의 성격을 밝히기 위한 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한 고도(古都)에 포함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유철 전주문화유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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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9 09:16

[조법종 교수의 전라도 이야기] ⑪조선의 첫 공식 ‘카메라 촬영자’, 퍼시벌 로웰

△조선에 들어온 카메라(Camera)의 전신, ‘칠실파려안’ 포크가 1884년 전주에서 사용한 사진기 즉, 카메라(Camera)는 1870년대 유행한 건식 유리원판 카메라였다. ‘카메라’는 로마인들이 썼던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줄인 말로 ‘어두운(obscura)’+ ‘방(camera)’이라는 단어를 결합한 용어이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나 상자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을 통과시키면, 반대쪽 벽면에 바깥 풍경이나 물체가 거꾸로 나타나는 광학적 현상을 기계장치로 만든 것이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17세기 유럽에서 사용되었고 이 기술이 18세기 후반 조선에 도입되어 이명기(李命基)가 1787년에 그린 사실주의적 작품인 ‘유언호 초상화’(보물 제1504호) 제작에 활용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시문집(산문) 10권)에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순 우리식 한자표현인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칠실(漆옻 칠 室집 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방’, ‘파려’(玻유리 파瓈유리 려)’는 ‘유리’, ‘안(眼)’은 ‘눈, 보다’로 ‘캄캄한 방에서 유리 눈을 통해서 본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기계를 통해 외부 물체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설명한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어두운 방에서 그림을 보는 것에 대한 설명)을 통해 그 원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칠실(漆室)은 산과 물의 아름다움이 반대편에 둘러 비친다.……맑고 좋은 날씨를 골라 방을 닫는다. 창문이나 바깥의 빛을 받아들일 만한 것은 모두 틀어막는다. 방안을 칠흑같이 깜깜하게 해 놓고 구멍 하나만 남겨둔다. 돋보기(안경알) 하나를 가져다가 구멍에 맞춰놓고 눈처럼 흰 종이판을 가져다가 돋보기에서 몇 자 거리를 두어 비치는 빛을 받는다. ...산과 물의 아름다움과 나무와 꽃과 누각 등의 모습이 모두 종이판 위로 내리비친다.……천하의 기이한 경관이다.……사물의 형상이 거꾸로 비쳐 감상하기 황홀하다. 이제 어떤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되 터럭 하나라도 차이가 없기를 구한다면 이 방법을 버리고서는 달리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여유당전서> 문집 10 설편(說篇) 정약용의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이기양(李基讓)이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丁若銓)의 집에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이라고 불린 카메라 옵스큐라를 설치하고 화가로 하여금 자신의 초상화 초본을 그리게 한 사실을 기록한 「복암이기양묘지명(伏菴李基讓墓誌銘)」에서도 확인된다. 이후 이동형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기록으로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영법변증설(影法辯證說)'이 있다. 그는 “그림자란 사물의 그늘이다. ... 밝음의 반대이다. 물상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또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다.”로 빛에 의한 물체 모습을 ‘그림자’로 총괄해 우리의 전통적 인식체계로 설명하였다. 즉, 햇빛에 비춰 생긴 검은 그림자,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 물위 거울처럼 비춰진 그림자 등의 실체와 칠실파려안에 의한 그림자 등의 실체를 빛과 연결지어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과학적 논리로 더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조선 방문 공식 첫 사진촬영자, 퍼시벌 로웰 (Percival Lowell) 183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외부의 물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장비와 햇빛에 반응하는 은화합물 계통 물질을 결합시켜 8시간 노출을 통해 최초의 사진이 발명되었다.(니엡스) 그리고 이후 은판에 사진이 나타나는 방식(다게레오 타입, 1분 노출)을 거쳐 1850년대 유리판에 얇은 막을 생성하는 의료용 콜로디온액과 은화합물 반응에 의한 ‘습식 콜로디온 방식(유리습판)’을 거쳐 1870년대에는 젤라틴을 활용한 ‘건식’ 유리원판 사진술(유리건판)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1883년 미국에 갔던 조선 보빙사를 돕는 외교 고문으로 포크와 함께 활동했던 미국 천문학자 ‘로웰’이 포크보다 6개월 앞서 조선에 공식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와 조선국왕 고종의 최초 사진을 찍었다. 로웰은 조선에서의 활동으로 노월(魯越)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 앞서 미국에 파견된 조선의 보빙사를 위한 외교고문으로 활동하였고 그 보답으로 1883년12월 20일 조선에 공식 초청되어 1884년 3월18일까지 약 3개월간 체류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한양에 머무르면서 고종을 알현하고 이때 접한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자세히 정리해 2년 뒤 1885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로웰은 뛰어난 사진 촬영기술을 발휘하여 조선 수도 서울 일원의 다양한 모습을 촬영하였고 고종과, 왕세자 시절 순종의 최초 사진을 포함하여 80여장의 사진을 촬영하여 현재 그가 세운 박물관에 관련 자료가 남아있다. 우리나라 사진관 기록은 1883년으로 〈한성순보(漢城旬報)〉 제14호 1884. 2.14에 “김용원(金鏞元)이라는 사람이 작년 여름에 사진관을 개설 하였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 사회에서 접한 사진기는 대부분 서양인들이 들고 왔다. 카메라는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놀랍도록 정교한 사진의 결과물로 인해 사진을 찍는 카메라는 ‘사람 혼을 빼는 기계’로 인식되었다. 즉, 1880년대 후반 조선의 저잣거리에서는 “어린아이의 눈을 빼내 사진 박는 기계의 눈을 해 박는다.”, “사진 기계가 집이나 담에 비추면 집이나 담장이 무너진다.”등 흉흉한 소문이 돌던 시기였다. 특히, 1888년 선교사가 사진을 찍은 어린아이가 죽은 사건으로 사진관련 괴담이 도성에 팽배해져 선교사 보호를 위해 제물포에 정박했던 미군이 출동하는 사태도 있었다. 이 같은 서울 일원에서의 사진관련 소문과는 달리 전주에서는 오히려 전라감사가 사진찍기를 자청하고 사람들도 거부감없이 촬영에 응하고 있어 전주지역이 상대적으로 신문물 수용에 적극적이거나 거부감이 적었음을 보여준다. /조법종(우석대 교양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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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7 17:37

[뉴스와 인물] 이남호 전북연구원장 "'대한민국 No.1 지방정책연구원'으로 성장시킬 것"

'더 특별한 전북 시대'의 미래를 향한 긴 여정의 출발점에 선 전북연구원. 지난 6월 25일 전북연구원에는 제9대 원장으로 이남호 원장(64)이 취임했다. 전 전북대 총장 출신이 전북연구원장 자리에 오면서 지역사회에서는 의문과 우려가 공존했다. 이남호 원장은 ‘대학의 총장’을 마에스트로에 비유했다. 시나리오의 선정부터 배우 캐스팅, 촬영, 조명과 음향, 투자자 모집 등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만큼 한 편의 연구과제물이 탄생되는 과정 또한 이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방정책연구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이남호 원장을 만나 연구원 운영방향과 전북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임 한 달간의 어떻게 지내셨나요. 짧은 소회 부탁드립니다. "청문회 준비부터 취임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연구원 내부 업무보고 청취에 중점을 뒀습니다. 업무 파악 이후에는 효율적 경영과 성과 창출을 위해 부족한 부분, 개선해야할 부분 등 문제점을 냉철하게 진단했습니다. 문제점을 토대로 혁신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집중했습니다. 밖으로는 정상적인 연구원의 기능 작동을 위해 협업이 필요한 대학이나 전북도, 전북도의회, 언론 등을 방문해 협력 관계의 네트워크 구축하고 연구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3년이라는 임기동안 어떠한 청사진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의 최종적인 임무는 전북연구원을 '대한민국 No.1 지방정책연구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원들이 신나게 일하고 스스로 창의력이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원의 자긍심을 제고시킬 수 있도록 조직의 역동성을 제고시켜 나가겠습니다. 또 전북의 중장기적 미래 비전을 설계하고 미래 핵심 아젠다를 발굴하는 연구기능을 강화시킬 예정입니다. 도정 현안 지원 중심의 기능을 넘어 도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의제를 선도하고 시군 발전을 위한 정책지원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사업의 품질을 제고시키고 전 구성원이 함께 혁신하고 성과를 창출하는 연구활동과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공간 확충 등 연구환경을 혁신해 나가겠습니다." 전 전북대 총장님이 전북연구원장이 되자 많은 분들이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전북연구원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저의 명예퇴직과 공석이었던 전북연구원장 자리 등 여러 가지 상황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과정이지, 의도적인 선택은 아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대학 총장과 연구원장은 둘 다 국가나 지역에 필요한 지식을 창출해 사회에 공급하는 책무가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합니다. 또 모두 박사급 연구인력들을 모시고 성과를 도출하는 경영자라는 점에서도 비슷합니다. 이 차원에서 전북연구원이 전북 발전의 먹거리를 만들어 도민들에게 공급해준다는 것은 제가 평생을 해왔던 일과 연장선이고 나름대로 의미있다고 생각됩니다." 역대 원장 중 일부는 정치적 논란에 서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전북연구원장은 어떤 자리인가요. "전북연구원장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조직이나 지역뿐만 아니라 개인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전북연구원장은 다른 도 출연기관과 다르게 이사회를 거쳐 이사장이 임명장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자유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이끌어가야한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주어진 책무 달성을 위해 자치단체(장)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만 결코 조직이 사유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확고합니다. 늘 겸허한 자세로 성공한 전북연구원장이 되는 데 매진하겠습니다." 도 출연기관이라는 점에 연구원의 한계, 역할론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높습니다. "전북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의 발전에 필요한 정책개발을 전담하는 종합연구원으로 특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북도는 전북연구원이 도와 14개 시군의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출연금을 지원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더불어 출연금을 지원한 기관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지역의 니즈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동안 자치단체를 선도하지 못하고 현안 대응에 급급했거나 중장기 성장 전략에 대한 정책연구가 미흡했던 것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미래전략연구센터를 설치하고 전라북도를 선도하는 과제 비중을 현행 10% 수준에서 30%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전북이 이차전지 특화단지에 지정됐습니다. 앞으로 연구원의 역할과 과제는? "기회발전특구 등 기업유치에 유리한 다양한 제도들을 결합시켜 이차전지관련 기업들이 모여들어 특화단지에 집적될 수 있도록 정책분석 등을 지원하겠습니다. 또한 특화단지에 집적된 기업들이 공동으로 R&D를 기획하거나 기업들의 생산활동과 관련된 혁신생태계가 조성되고 성공 신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이차전지 허브 조성 등을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특화단지에 입주한 기업들이 전북에 오래 머물고 연관 기업들이 추가로 이전할 수 있도록 정주환경, 교육환경 등의 지원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만금 이차전지 특화단지와 도내 이차전지 기업들이 위치한 정읍, 익산, 완주 등 도내 시군들과 연계해 전라북도 광역으로 산업생태계를 확산시키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제3금융중심지, 공공의대 등 전북이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전북 발전을 위해 나아갈 전북연구원의 추진 방향은? "전북의 주요 현안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시나리오별 장단점과 추진전략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결과물을 도출하고 관련 기관에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3금융중심지 또는 공공의대 유치 등에 관해서 다양한 플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동안 몇 가지 현안 문제를 살펴보면 도 아니면 모 식으로 한가지 플랜에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A플랜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녹록지 않을 경우에는 차선책으로 B플랜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면 C플랜의 대한 정책연구까지 수행해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관련해 특례 150여건을 발굴했습니다. 이중 쟁점 사항과 앞으로의 계획은? "올 하반기에는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전라북도, 정치권 등과 협력해 특례 반영을 위한 부처 설득과 국회 대응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특별법 개정에 대한 부처의 보다 많은 공감과 전북이 발굴한 특례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의 긍정적 의견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례로 반영해달라는 주요 내용은 전주권 제3금융도시, 고령친화·사회서비스산업복합단지 조성 및 관리, 동부권 산악관광특구,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대광법) 개정 등이 있습니다. 향후에도 특별법에 포함된 주요 특례의 범위, 내용, 운영 등에 대한 구체화 작업과 특례를 활용한 전북발전의 그랜드 디자인을 구상하는 후속 작업을 준비하고 특별법 2단계 개정을 위한 특례 발굴에도 주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내년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둔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전북연구원장 자리를 맡아 어깨가 무거운 것도 사실입니다. 자리만 차지하는 원장이 아닌,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수행하는 원장이 되고자 합니다. 전북연구원의 경영목표를 임기 내에 달성하고, 지역의 수많은 현안들을 해결해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 30년 넘게 걸어온 연구자의 경험과 전북대 산학협력단장, 총장 등의 이력과 그리고 도민의 관심과 애정이 뒷받침된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때로는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도민과 함께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남호 원장은 남원 출신으로 전주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전북대 교수로 임용된 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전북대 제17대 총장을 지냈다. 이외에도 전북대 산학협력단장, 전북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 등의 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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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찬
  • 2023.08.06 17:39

[2023 참여&공감, 시민기자가 뛴다] 아, 독도여!... 독도 명예주민이 되다

오는 8월 15일은 83주년 광복절이다. 수많은 피의 대가로 찾은 우리의 주권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전북 RCY 나라사랑 실천캠프'의 2박 3일 울릉도·독도 탐방이 진행됐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초·중·고 RCY(청소년적십자) 단원 모두 잠이 덜 깬 표정이지만 얼굴 가득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새벽 5시,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에 모여 버스로 출발했다.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두 번을 휴게소에 쉬어가며 포항에 도착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에 승선해 2시간 50분 만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배가 크고 깨끗해 멀미하는 학생이 없어 안심됐다. 울릉도·독도는 국가지질공원이다. 수려한 모습의 해안 둘레길을 걷고 봉래폭포에 올랐다. 장마 덕분에 폭포수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땀 흘리며 걸었는데도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가득했다. 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에 '천연 에어컨'이라고 적혀있는 동굴 안에 들어가니 금방 땀이 식었다. 다음 탐방지인 내수전 일출 전망대로 가는 길은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로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넓게 뻗은 수평선과 파란 바다 위에 죽도, 관음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죽도는 인간극장에서 여러 번 봐서 더욱 정감있게 다가왔다. "울릉와 울릉~ 얼른와 얼른~ 스마트 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시면 여행지와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스마트 관광 안내 서비스가 인상 깊었다. 스마트 폰으로 QR코드를 찍어보니 자세한 정보로 즉시 연결돼 무척 편리했다. 관광지에서도 IT 강국으로서의 위상이 느껴졌다. 촛대바위에 도착했다. 이름과 관련해서는 슬픈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옛날 저동 마을에 한 노인이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딸과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조업을 나간 노인의 배가 심한 풍랑을 맞아 돌아오지 않았다. 딸은 바다를 바라보며 눈물로 며칠을 보낸 뒤에 아버지가 돌아오는 느낌이 들어 바닷가에 가보니 돛단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딸은 배가 있는 쪽으로 파도를 헤치고 다가갔다. 그런데 거친 파도에 지쳐서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고 말았다. 그 뒤에 이 바위를 촛대바위 또는 효녀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촛대바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모자가 날아갔다. 순간 효심이 부족한 걸 들킨 것처럼 마음속으로 뜨끔했다. 이튿날 촛대바위에서 장엄한 일출을 맞이하고 드디어 독도를 향한 여객선에 올랐다. 높은 파도로 배가 심하게 출렁거리자 멀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미리 키미테를 붙였지만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독도 경비대원들에게 선물할 사람은 1층 매점에서 간식을 구입하라는 안내 자막이 나왔다. 2층에서 내려와 겨우 1층 매점에 도착했는데 독도 접안이 확실할 때 오라며 간식을 판매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오는 계단에서 비닐봉지에 계속 토하며 심한 멀미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평소에 멀미가 심해서 그 고통을 알기에, 한참 동안 그 아주머니 등을 두드리고 손을 마사지해드렸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모기 만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파도가 너무 심하니 빨리 자리에 착석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주머니 옆에서 안절 부절하는 남편분한테, 손 마사지를 알려드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독도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기대와 흥분으로 술렁거렸다. 그러나 파도가 심해서 배가 독도에 접안하지 못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탄식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씨가 좋아서 독도 입도를 확신했는데 파도가 말썽이었다. 배는 40분 정박했다. 모두 갑판으로 나갔다. 태극기 머리띠를 한 사람, 태극기 스카프를 목에 두른 사람, 손에 태극기를 든 사람들로 갑판은 만원이 되었다. 우리 RCY단원과 지도교사 모두 태극기를 흔들며 독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독도를 눈과 가슴에 담기 바빴다. 일본은 갈수록 독도 영유권의 수위를 높여가며 세계 각국에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정영미 독도연구소장은 “조선시대 관찬 사료에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일본의 관찬 사료에는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얘기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국가 공식 기록인 양국의 관찬 사료에는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기술만 확인되고 있으며 과거 일본 정부 기록인 1877년 ‘태정관지령’에는 울릉도·독도를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문서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독도에 1948년 8월 정부 수립 직후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 주소를 부여하고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현재 독도에는 우리 국민과 경찰, 공무원이 상주하고 울릉도를 통해 해마다 1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독도명예주민증’ 신청 완료 후 집으로 오길 기다리고 있다. 2010년 11월 10일부터 독도에 입도하거나 선회관람 후 울릉군 독도명예주민이 되고자 신청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독도관리사무소에서 ‘독도명예주민증’을 발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땅인 독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애타게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지만 독도명예주민이 되어 기쁘다. 명예 주민으로서 앞으로 독도 수호에 더욱더 앞장서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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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8.0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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