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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화유산으로 본 후백제] ⑮ 후백제 장수(長水)의 높은 위상

자유에 대한 강한 열망의 리더십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물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 시대를 호령했던 나라에는 그 당시 사람들이 남긴 건물과 유물들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전북 동부지역은 후백제의 국력이 화수분처럼 솟아났던 거점이었다고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동부지역에서도 장수군은 침령산성, 합미산성과 같은 후삼국시대의 맹주였던 후백제 랜드마크가 잘 남아있는 지역으로 여겨진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폭염 속에서 우리 일행은 전상학 전주문화유산연구원 부장과 함께 전주에서 전북 동부의 중심지에 위치한 장수군으로 길을 나섰다. 전북에서 가장 작은 자치단체인 장수군은 무진장(무주군, 진안군, 장수군)으로 불리는 곳 중 하나다. 인구소멸 위험지역에 속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 지역에는 1500여년이 넘는 세월을 간직한 보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백두대간 육십령휴게소(장수군 장계면 육십령로 1012)에 위치한 팔각정으로 올라가니 험준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야가 흐리지 않은 탓에 침령산성(장수군 계남면 침곡리 산 73-2)과 합미산성(장수군 장수읍 용계리 산 26-1)이 자리한 것을 목도할 수 있었다. 후백제 산성들은 대개 규모를 확장하거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리모델링에 초점을 뒀다고 알려졌다. 백두대간 산줄기를 따라 후백제 산성들이 집중 배치된 모습을 직접 확인하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백두대간에 자리한 후백제 산성들은 아직도 그 위용을 간직한 채 동부지역 방어체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핵심 철산지인 대적골 제철유적(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342)을 보호하고자 했던 의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장수군은 고대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알려져 있는 철을 생산했던 제철유적의 보고이다. 최근 장수군 일원에서 대략 50여개소의 제철유적이 조사됐는데 그 밀집도와 분포범위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후백제는 이처럼 중요한 장수군 일원을 효과적으로 관할하기 위해 대규모의 산성 개축을 단행하고 병력을 주둔시켰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최근 발굴조사가 이뤄진 합미산성과 침령산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장수 합미산성은 후백제 산성의 최고봉으로 통한다. 팔공산(해발 1147m)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 능선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전 부장은 “산성의 남쪽에는 후백제의 교통로에서 임실군 오수면, 성수면에 이르는데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면 전주도성에 곧장 닿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문에서 합미산성은 적에 대한 감시, 방어를 위해 축조된 것으로 팔공산에서 정상부와 남쪽의 계곡을 감싸는 형태의 석축산성임을 알 수 있었다. 후백제의 국력을 담은 장수 침령산성은 후백제 도성이었던 전주에서 영남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장수군의 동쪽을 에워 쌓고 있는 백두대간 못지않게 산세가 험준하고 전주도성의 동쪽을 든든하게 지켜줬다. 침령산성은 둘레 500m 내외로 전북 동부지역에 분포돼 있는 고대 산성 중 최대 규모다. 전 부장은 “성벽의 일부 구간이 붕괴됐지만 성벽의 잔존상태가 양호하며 높이 7m 내외의 성벽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성벽의 축조기법을 잘 살펴볼 수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 일행은 다음 장소인 삼봉리 가야고분군과 동촌리 고분군, 삼고리 고분군으로 이동했다. 가야사가 후백제사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야와 후백제의 역학관계를 알 수 있으리라. 삼봉리 가야고분군은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백화산(해발 850m) 자락에 자리한 가야 수장층의 묘역으로 직경 20∼30m 내외의 대형고분 20여기가 분포돼 있다. 두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무덤내부에서 다양한 가야토기를 비롯해 철제마구, 꺾쇠, 교구 등 피장자의 위상이 매우 높았었음을 짐작케 하는 최상급 가야유물이 출토됐다. 전 부장은 “삼봉리 가야고분군은 전북 동부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던 가야계 소국의 존재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 세력이 타 지역의 가야 소국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일제 때 유물을 도굴한 바람에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이번에 방문한 삼봉리 가야고분군은 이번 여름 집중 호우로 고분 일부가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동촌리 고분군은 장수군 장수읍 마봉산(해발 723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따라 분포하는 83개의 무덤으로 이 고분군은 5세기 초~6세기 초 무렵 가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수장층의 무덤임을 알려주는 재갈을 비롯 마구류와 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은 동촌리 고분군은 전북지역 가야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동촌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편자, 재갈, 둥근 고리 자루칼, 은제 귀걸이, 휴대용 화살통 등 가야계 수장층의 고분에서 확인되는 종류와 유사한 양상에 따라 장수지역 가야계 수장층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장수군 천천면에 위치한 삼고리 고분군은 능선을 따라 20여기의 가야 중대형 고총과 주변 기슭에 가야계 석곽묘가 분포하고 있다. 고분 내부에서는 가야 토기와 백제, 신라, 마한 등 토기가 함께 출토됐다. 2018년 장수군과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긴급 발굴로 토기류 외에 금제 귀걸이와 채색 유리구슬, 마구류 등 피장자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는 위세품이 출토된 곳임을 확인했다. 일행은 다음으로 장수군 장계면 탑동마을에서 후백제와 관련해 개안사지 사찰 터와 유물을 살펴봤다. 2020년 조선문화유산연구원은 탑동마을 내 개안사지의 위치, 범위, 성격 등을 파악하기 위한 발굴조사에서 사찰 터, 석등지, 탑지 등을 확인했다. ​전 부장은 “탑동마을 사찰 터는 건물지 형태나 출토유물에 미뤄 후백제와 관련이 크다”고 말했다. 사찰 터에서는 귀면 문양을 입체감이 적고 평면으로 단순화한 귀면 기와가 출토됐다. 이는 남원 실상사에서 나온 귀면 기와와 비슷해 후백제와 관련성이 제기된다. 이번 방문을 통해 후백제 시대 장수의 높은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사찰 규모임을 알 수가 있었다. 전 부장은 “개안사지를 통해 가야 이후 후백제 양식의 사찰이 있었고 지금은 3층 석탑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며 “탑 재료를 복원한다고 추정해보면 후백제 양식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장수지역을 돌아본 일행은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자웅을 겨뤘던 중심 세력인 가야를 확인해보고 후백제의 위용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문화재청에서는 문화재를 국가유산이란 용어로 바꿔나가는 등 역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전 부장은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부터라도 전북에서 후백제의 역사적 위상을 재정립하고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문화권 정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발걸음을 빠르게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기획
  • 김영호
  • 2023.08.02 00:17

[한국전쟁 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1023일의 기록 (상)

1023일. 부산이 한국전쟁 중 피란수도로서 역할을 한 기간이다. 첫 번째는 1950년 8월 18일~10월 27일, 두 번째는 1951년 1월 3일~1953년 8월 15일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던 부산은 피란민 수십만 명을 품는 포용력을 보여줬다.   △80만 피란민 품은 부산 부산일보사가 1980년대에 발간한 책 <비화 임시수도 천일>에 따르면, 한국전쟁 직전 부산 인구는 47만여 명이었다. 1945년 8·15 광복 직후만 해도 28만 명 수준이던 부산 인구는 일본과 중국 만주 등지에서 돌아온 동포 19만 명까지 더해 급증한다. 이어 전쟁이 발발하자 전국 각지에서 피란민이 몰려들어 100만 명을 넘는 사람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 맞닥뜨리게 된다. 1·4후퇴 이후 부산의 최대 인구는 120만~130만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당장 살 곳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일부 시민이 남는 방을 빌려주며 도움을 베풀었지만, 피란민 수십만 명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정부가 마련한 천막이나 수용소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창고와 교회 예배당, 공장, 극장 등 빈 공간이 있는 곳은 모두 피란민에게 개방됐다. ‘동아일보’ 1950년 12월 28일 자 기사에 따르면, ‘부산시 당국에서는 시내에 들어온 피란민 6만여 명을 각 가정에 분산 수용키로 결정했다. 요정, 여관 등을 일체 개방해 피란민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연구원 오재환 부원장은 “부산은 한국전쟁 시기에 직접적인 전투가 없었던 평화 도시, 밀려오는 피란민을 품은 포용의 도시였다”며 “유엔 등으로부터 국제적 지원을 받던 곳에서 이제는 이를 되돌려주는 도시로 성장해 월드엑스포 유치에까지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2020년 3월 25일 <부산일보>에는 특별한 광고가 실렸다. 제목은 ‘부산 시민들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 “저의 함경도 출신 선친과 서울 출신 어머니가 몇 번이나 하셨던 말씀은 ‘그때 부산 사람들 아니었으면 피란민들 다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자신들도 어려운 형편에서 대한민국 어디 사람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이었습니다.”(어느 6·25 부산 피란민과 그분들의 자식 올림) △소 막사·묘지도 집터로 전쟁 시기 부산에는 불어난 인구를 감당할 주택이 부족했다. 피란민이 지은 판잣집이 줄줄이 산자락은 물론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며 늘어났다. 마구간이나 소 막사 같은 축사까지 피란민의 거처가 된다. 대표적인 곳이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이다. 소막마을은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수탈한 소를 일본으로 보낼 배에 싣기 전 검역하던 곳이다. 검역 전 소를 대기시키던 막사까지 전쟁 때 피란민 수용시설로 활용된다. 당시 이곳은 ‘적기(赤崎) 피란민수용소’라고 불렸다. 우암동이 바다에서 보면 붉은 언덕처럼 보인다고 해서 일본인이 ‘아카사키’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2021년 부산시가 펴낸 구술 채록·자료집 '피란, 그때 그 사람들'에서 우암동 출신 장두익 씨는 피란민 친구의 집과 의사소통 문제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방인지 부엌인지. 뭐 그릇 몇 개 놔두고 부엌이고. 원시생활하고 똑같지. 우암2동은 거의 다 소 막사였고. 그리고 어릴 때 들어보면 이북 말투가 좀 다르잖아요. 무슨 말인지는 잘 못 알아듣고.’ 소 막사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꺼리는 공동묘지까지 피란민 주거지가 된다.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은 죽은 자의 공간이었던 묘지까지 삶의 공간으로 바뀐 곳이다. 피란민의 강인한 생존 의지를 확인시켜 주는 사례다. 피란민은 평지에 살 곳이 부족해지자 산복도로 곳곳에 판자촌을 형성한다.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어 사람들이 살기 꺼리던 아미동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건축 자재가 부족하던 전쟁기에 단단한 묘비와 상석은 집을 지을 요긴한 재료가 돼줬다. 지금도 비석마을에 가면 담장 아래에 남은 묘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화재·식수·오물과의 전쟁 1953년 정전 직후를 기준으로 부산 시내 전체의 판잣집은 4만여 채에 달했다. 대청동과 보수동, 용두산 산비탈 등 중구 일대에만 최소 1만 5000여 채의 판잣집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깡통을 펴서 만든 양철판과 상자 등으로 대충 지은 판잣집은 화재에 취약했다. 불이 어찌나 자주 났던지 하루 평균 3~4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섰다 하면 교회요, 났다 하면 불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1953년 1월에는 국제시장 대화재로 상가 4200여 채가 불탔고, 이재민 3만여 명이 발생했다. 위생 문제도 심각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공동 수도와 공동 변소를 줄 서서 사용했다. 이마저도 없는 곳에서는 다들 오물을 밟고 다니기 일쑤였다. ‘터질 듯한 부산은 주택난·식수난·식량난의 소동 속에 먼지와 쓰레기에 싸여있다.’ 1951년 2월 1일 자 <부산일보> 사회면 기사의 일부다. 일제강점기에 부산의 기반시설은 인구 30만 명에 맞춰져 있었다. 시내 4개 정수장에서 생산되는 수돗물은 하루 3만 3000t에 불과했다. 식수 부족으로 인한 ‘물 전쟁’이 특히 피란민을 힘들게 했다. 인심 좋은 부산 사람도 물을 나눠주는 데에는 인색했다. 오죽하면 ‘밥 한 그릇은 줘도 물 한 사발은 줄 수 없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우물과 수도에 자물쇠를 채우는가 하면 드럼통에 물을 넣고 다니며 파는 물장사도 등장했다. 1951년과 1952년에는 흉년이 들어 전국 각지 유랑민까지 부산으로 몰려왔다. 당시 부산YWCA 부녀회원들은 굶기를 밥 먹듯 하는 피란민을 그냥 볼 수 없어 중앙동에서 ‘우유죽’ 배급을 시작한다. 우유죽은 분유에다 푹 삶은 보리쌀을 섞어 만든 죽이다. 전쟁 시기에 생겨난 또 다른 음식은 꿀꿀이죽, 일명 ‘유엔탕’이다. 미군 부대에서 버린 음식 찌꺼기를 수거해 끓인 음식이다. 피란민들은 꿀꿀이죽 장사, 미제 깡통을 펴서 판잣집 지붕 따위를 만드는 ‘깡깡이업’ 등 각종 밥벌이 수단을 찾아 생계를 이어갔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차철욱 소장은 “당시 부산은 절체절명의 생존 경쟁에 내몰린 피란민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가득했다”며 “이북에서 내려온 부유층, 고학력자도 체면을 떨쳐내고 낯선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이런 유연한 대처 역시 피란 시기 부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부산일보=이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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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31 15:32

[동행, 2023 전북지플] (5) "축사 악취 95% 저감" 버려지던 커피박의 변신

"소도 사람과 똑같아. 시원한 새 이불 깔아주니 쟤들도 신나서 뛰노는 거지." 지난 26일 임실군 관촌면의 한 축산농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전주시 덕진지역자활센터에서 공수한 커피박(찌꺼기) 1t이 도착하자 축사엔 소똥냄새 대신 은은한 커피 향이 풍겨온다. 도심 커피전문점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긋한 모카번 냄새는 아니었지만, 축사 특유의 악취는 분명 아니었다. 이곳 '파랑새' 축산농가에서는 지난해부터 전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집행위원장 한동숭, 이하 전북지플) '커피박 재활용 축산농가 냄새저감'의제가 운영되고 있다. 해당 의제는 매년 버려지는 커피박으로 톱밥을 대체해 축사의 악취를 줄이는 프로젝트다. 이날 축사에 도착한 커피박은 전주 덕진지역자활센터가 지역 65개 커피전문점에서 수거해 마련했다. 지난해부터 파랑새축산농장의 50여 마리 소는 커피 위에서 먹고, 자고, 볼 일을 보고 있다. 이날도 작업이 끝나자, 중장비 소리에 겁먹고 구석에 움츠려 있던 소들이 관심을 보이며 커피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축사에 깔린 커피박은 속에 담겨 있는 미생물이 수분을 증발시켜 습도를 알맞게 유지해준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뇨로 인해 질퍽해지는 기존 톱밥보다 조금더 쾌적한 환경을 소들에게 제공하는 셈이다. 커피박의 효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분조절제로서 역할을 다한 커피박은 농장 한쪽에서 숙성과정을 거친다. 거창한 작업없이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한 달 정도 지나면 뜨거운 열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절로 발효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피박 비료는 땅에 흡수가 잘 돼 작물 수확에도 큰 도움을 주는 등 사용하기에 따라 금쪽 같은 자원이 된다. 파랑새 축산농 김영부 씨는 "매년 무더위에 대비하는게 골머리였는데, 커피박이 악취 절감뿐만 아니라 습도 조절 효과도 있어 한시름 덜었다"며 "특히 커피박은 톱밥보다 저렴해 축사 운영비도 절감할 수 있어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27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커피박은 35만t에 이른다. 이들 커피박은 대부분 소각 혹은 매립되기에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커피박 1만t당 처리 비용은 약 10억 원이며, 매년 약 350억 가량의 처리 비용이 발생된다. 소각할 때 나오는 탄소와 온실가스 등 환경 측면에서도 부담이 크다. 커피박의 활용에 민간을 비롯한 지자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의제의 실행 주체인 덕진지역자활센터는 지난해 축사의 냄새 저감에만 집중했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커피박을 활용해 비료나 열쇠고리, 화분을 만드는 등 재자원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의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따른다. 매년 5000만 원 규모의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경북도에 비해 아직 전북도의 이렇다 할 추가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박준홍 덕진지역자활센터장은 "갈수록 인건비나 차량비가 늘어 의제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지자체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예산 확보를 위해 꾸준히 지방 의회를 설득하고 있다. 앞으로 커피박의 재자원화에 지자체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3.07.30 16:41

[뉴스와 인물] 박숙영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장 "기업 활동하기 좋은 지회 만들 것"

도내 여성기업은 지난 2020년 전체 기업의 40%를 넘어섰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도내 여성기업(사업체) 수는 2016년 5만 7676곳, 2017년 5만 8837곳, 2018년 6만 316곳, 2019년 6만 1408곳, 2020년 6만 2948곳으로 매년 늘고 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의 역할이 더 중요한 시기가 온 셈이다. 매년 여성기업의 경영 애로사항 등을 해소하기 위해 리더십스쿨, 여성 CEO 경영연수, 최고 경영자 육성 등 도내 여성 기업인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9대 지회장으로 선출된 박숙영(61) ㈜키텍코리아 대표이사 역시 여성 경제인 육성, 지회 회원 간 화합 등을 중시하고 여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올해는 전주, 군산, 익산, 남원 등 전 지역을 지회에서 총괄했지만, 앞으로는 전주지회를 독립시킬 예정이다. 박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 여성기업의 어려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 봤다. 취임한 지 벌써 1년 7개월 차에 접어들었는데, 소회가 어떠신지요. "1년 7개월 차라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제 상황이 힘들어지면서 도내 여성 경제인 역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와 분과별 네트워크 재정비와 각종 행사, 여성 경제인들의 단합 등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지회를 잘 이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성과는 어땠는지, 자체 평가해 본다면요. "임기 동안 여성기업의 발전과 애로사항 해소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노력했습니다. 도내 여성기업을 방문하고 '호남경영연수'을 개최했습니다. 또 해외 한국기업 방문 등 다양한 업무를 추진했습니다. 임기를 시작한 2022년 초에는 200명 회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245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45명의 회원이 추가 입회한 셈입니다. 그동안 여성 경제인들을 위해 노력해 온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내 여성 경제인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프로그램 등을 진행했는지요. "지회에는 전주, 군산, 익산, 남원 등 여러 지역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 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각자 지역 모임을 개최하고 또 월 1회 리더십스쿨·월례 회의 시간을 가지고 모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든 기업이 다 같은 고민도 있을 수 있지만, 서로 구성원 수·기업 형태가 다르다 보니 각자 니즈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유통, 제조, 건설, 서비스로 나눠서 분과별로 맞춤 상담·회의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2회 여성기업주간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는데요. 앞으로 더 보완해 나가야 할 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이어 개최된 제2회 여성기업주간 행사는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3일간 롯데백화점 1층 동문에서 여성기업 우수 상품 초대전을 개최하고 법률·세무·노무 무료 상담 부스도 운영됐습니다. 지난달 21일에는 창립 24주년 기념식까지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아쉬운 점은 '홍보'였습니다.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행사를 개최하고 도내 여성기업을 알릴 수 있도록 보완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내 여성기업 40% 시대가 열렸다고요. 질적으로보다는 양적으로 성장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여성기업만의 애로사항이 질적 성장을 막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기존에 남성들이 성장시켜 온 시장에 여성들이 진입해 활성화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깥에서는 한 기업의 대표로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좋은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딸로 살아가고 있는 만큼 일과 가정의 양립이 여성 경제인들이 가진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여성기업이 미래 경제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해 나가면 분명 좋은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장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요. "지원제도 개선·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정부·지자체 등에서 여성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마련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여성 경제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실제 현장에서 여성기업이 가진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정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회 역시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건의사항 해소를 위해 지자체, 유관기관과의 간담회 등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여성기업의 경우 '수의계약' 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고요. "여성기업의 경우 수의계약이 1억 원까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는 여성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기관·단체장과 간담회를 통해 수의계약은 법적 한도 내에서 할 수 있게 배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이밖에도 여성기업 입찰 시 가점도 어려움에 해당하는데요. 가점이 있기는 합니다만 비중이 크지 않습니다. 여성기업이라고 해서 받는 가점이지만, 사실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고등학생, 여대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에 미래여성경제인육성사업을 진행한다면서요? "네, 올해 하반기에는 미래여성경제인육성사업(미래여성CEO육성사업)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올해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서 정부 지원 예산을 100억 원 이상 확보했습니다. 우리 지회에서도 학교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미래 여성 경제인을 육성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성화고, 여대 졸업 예정자인 학생을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미래여성경제인육성사업'에 주력하는 이유가 있는지요. "사실 한 학생이 사회에 나와서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성 경제인 선배들 역시 그 길을 걸어왔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마련한 사업입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막 걸음마 시작할 때 밑바탕이 돼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입니다. 현재 학산고가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사업을 더 확장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또 예정 중인 사업이 있나요? "미래여성경제인육성사업뿐만 아니라 미래 여성 경제인 육성과 여성기업 인식 개선을 위해 △리더스 특강 △여성 CEO와 함께하는 1박 2일 워크숍 △여성 CEO와 학생 간 개별 매칭을 통한 실천 창업 멘토링 △여성기업 현장 탐방 △미래 여성 경제인 육성 글로벌 체험 △호남경영연수 △전국경영연수 등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곧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에서 전주지회가 독립한다고요. "지회에 여러 지역 회원들이 있습니다. 회원사 총 250여 개 중에서 130개가 전주 회원에 해당합니다. 지금까지 지회에서 총괄적으로 지역을 관리했으나 전주 회원 수가 많아 따로 지회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기업 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고, 기업체가 기업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전주시와 협업해 여성 경제인들의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애로사항을 해소할 목표입니다." 앞으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가 어떤 지회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기업 활동하기 좋은 지회, 가입하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지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회원(기업체)이나 지회 모두 서로가 필요성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회가 먼저 회원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서 해결해 주는 게 지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민, 회원 등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각오는 했지만 정말 1년 반 넘는 시간 동안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지회를 이끌면서 제 개인적인 업무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렸습니다. 아무래도 지회를 통해 일정이 바뀌다 보니 직업 자체가 이제는 기업 대표보다는 지회장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 바퀴 다 돌았고 약간 여유를 가지고 지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저 역시도 여성 기업인이다 보니 회사도 중요하지만, 제가 맡은 역할이 지회장이다 보니 지회를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려고 합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모두 지나고 나서 저 스스로가, 회원들이, 도민들이 '아, 쟤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박숙영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전북지회장은 오랜 시간 유아 교육계에 전념하다 지난 2014년 ㈜키텍코리아의 대표로 취임해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도내 환경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전 전라북도 빙상연맹 총무·전무이사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3.07.30 15:43

[지난 주 '핫클릭' : 7. 23~28] PSG 옷 입은 이강인, 전북현대 친선경기 뛰나

△7월 23일~ 7월 28일 변덕 심한 날씨에 지치기 십상이었던 7월 넷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강정원 기자의 '전북 현대, 8월 3일 PSG와 친선경기'를 가장 많이 클릭했다. 8월 3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전북현대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PSG)의 친선경기에 팬들의 이목이 쏠린 것. PSG는 프랑스 리그에서 11번 우승한 '명문'으로, 지난 9일 대한민국 국가대표 이강인을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PSG 역사상 첫 한국인'인 이강인이 이번 친선경기에 선발 출전할지도 관심거리. 두 번째로 즐겨찾은 기사는 박현우 기자의 '450대 1 경쟁률 킹산직 현대차 합격한 전주 청년 김경태 씨'다. 이 기사는 현대차가 10년 만에 생산직을 대규모 공개 채용하면서 구직자 18만 명이 몰렸고, 합격자 400명 중 만 20세의 어린 나이에 '대기업 입사'의 꿈을 이룬 김경태 씨의 사연을 담았다. 김 씨는 "매번 불합격된 게 큰 힘이 됐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기업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줬기 때문"이라는 소감을 밝혔다고. 세 번째는 육경근 기자의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린다”…전북교사들, 학부모 갑질에 멍든다'로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교권과 이를 막기 위한 서거석 전북교육감의 의지를 전했다. 서거석 교육감은 지난 24일 전략회의를 열고 "악성 민원에 당당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송은현 기자의 '정체 모를 국제소포, 불안 높아지는 전북', 문민주·엄승현 기자의 '대회 D-7 새만금 잼버리는 공사 중' 등이 관심을 얻었다.

  • 기획
  • 이용수
  • 2023.07.29 13:44

[2023 참여&공감, 시민기자가 뛴다]복날과 반려견

풍부한 영양소로 예부터 우리에게 인기를 누렸던 보신탕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늘어나고 인식이 바뀌면서 보신탕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보신탕 대신 삼계탕 염소탕 장어탕 등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음식점이 많아지면서 보신탕이 퇴출 위기에 처했다. 여름철을 맞이하여 매스컴에서는 보신탕집들이 문을 닫는다고 연일 보도 한다. 이유는 거래처로부터 고기를 공급받기도 어렵고 손님들도 반응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보신탕에 대한 인식 변화와 보신탕 판매에 단속이 강화되어 업체들의 개 도살 중단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또한 개고기 공급 업주들은 시대가 바뀌어 업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요즘에 반려견과 생활하는 인구 증가와 식문화 변화도 한몫하고, 개고기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아 업체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주를 비롯한 각 시군에는 수십 년간 보신탕을 판매하는 음식점이 많다. 특히 임실 오수나 익산 춘포 등에 산재한 보신탕집은 전국적으로 유명해 여름이면 문전성시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보도에 의하면“초복(11일)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오후 전주에서 보신탕을 판매하는 A 보신탕집 주인 P씨는 "개고깃값은 오르고 손님은 없는데 시청과 시민단체가 개고기를 판다고 하루가 멀다고 가게를 찾아와 단속한다"며 한두 해만 더 해 보고 장사를 접을 생각이라고 했다. P씨는 실제로 각종 민원에 시달렸다. 한 동물보호단체가 식품위생법 위반, 불법 입간판 등으로 시청에 신고해 단속반이 한 달에 3차례나 찾아와 단속했다는 것이다. 송천동에서 보신탕을 파는 Y씨는“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가게 앞에서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요즘은 보신탕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재료 수급이 제대로 안 돼 보신탕 판매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회 전반에 깔린 분위기 탓에 보신탕 영업을 접고 염소탕으로 업종을 바꿔 장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삼례 보신탕집 주인 C씨는 전업을 하고 싶지만, 막상 폐업하자니 그동안 쌓은 노하우가 아깝고 마땅한 직업을 구하기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개를 반려견(伴侶犬)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려견과 애완견(愛玩犬)을 혼동하고 있다. 애완견은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며 기르는 개다. 일각에서는 애완견이라는 말은 개를 생명체가 아닌 물건으로 취급한다는 뉘앙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반려견이라는 말은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동물학자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1903~1989)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서 평생을 함께하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반려견은 가족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로, 주인과 정서적 교류를 하며 함께 생활한다. 또한 주인과의 관계에서 상호 간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성 교육을 받아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산책이나 놀이터 등에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습한다. 심리학에서도 반려견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한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반려견이라는 말에 반대하기도 한다. 인간과 개는 동급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과 교감을 하고 의식을 공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려라는 개념을 개에 대입하기에는 언어도단이라는 견해다. 개를 키우는 동기나 원인은 다양하다고 하지만 인간의 만족을 위해 선택되어 사육되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반려견이라는 말에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개를 사육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의 개와 정신적 교감은 물론 의지하는 사례도 존재해 많은 사람이 반려견이라고 부르는 추세다. 반려견은 주로 외국산 개다. 생김새도 가지가지 이름도 희한하다. 말티즈, 푸들, 포메라니안, 비숑, 시츄 등이 있다. 덕진동 소재 펫숍 의하면 장모 치와와 새끼견은 35만 원, 미니 비숑 프리제는 65만 원이라고 한다. 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사료, 배변패드 등에 들어가는 운영비가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이 든다는 안내인의 설명이다. 그 외에도 예방주사도 수시로 맞혀야 하고 중성화 수술 외 질병에 걸리면 치료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려견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이다. 이제 개는 개가 아니라 반려견으로 신분 상승이 되어 사람과 동격으로 대접받는다. 주인과 산책을 하고 주인과 식당에 납시어 함께 밥을 먹는다. 옷을 해 입고 개껌을 씹기도 한다. 휴가철이면 개 호텔 에어컨 아래서 오수를 즐긴다. 겨울이면 온열 매트를 깔고 누워 꿈도 야무지게 꾼다. 심지어 이름도 사람처럼 불리며 주인의 품에 안겨 내 새끼라며 귀염을 받고 잠도 주인과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죽으면 영정사진이 내걸리고 봉안당에 안치되어 주인이 눈물을 받아먹는다. 요즘 반려견들은 든든한 빽까지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다. 얼마 전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은 종식돼야 한다"고 언급하자 매스컴들은 동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도 '개 식용 금지법' 관련 법안을 추진하면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개 도살과 보신탕 판매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 이쯤 대우를 받으면 어지간한 인간보다 낫다. 말 그대로 개 팔자가 상팔자다.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 정성수 시인, 향촌문학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3.07.26 15:53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화유산으로 본 후백제] ⑭전북 동부, 후백제 거점이었다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전북을 동쪽의 산악지대와 서쪽의 평야지대로 갈라놓아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을 이룬다. 전북 동부는 무진장, 임순남 등 낙후지역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금광·은광·동광·철광이 공존하는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오늘날 포항제철과 그 의미가 똑같은 300여 개소의 제철유적과 국내 유일의 제동유적도 전북 동부에 자리한다. 장수 명덕리 대적골 제철유적에서 후백제와의 연관성이 검증되어, 전북 동부는 후삼국의 맹주 후백⑭제 국력의 화수분이자 거점이었다. △전북 동부 후백제 철산지였다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철광석이 하나로 합쳐져 다시 탄생된 것이 제철유적이다. 최고의 생산유적으로 평가받는 제철유적은 원료인 철광석과 연료인 숯, 첨단기술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전북 동부는 철분의 함유량이 월등히 높은 화강 편마암이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으며, 기원전 2세기 말 장수 남양리에서 첨단기술의 전래도 입증되었다. 가야사 국정과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전북 동부에서 한 개소의 제철유적도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다. 그런데 전북 동부에서만 그 존재를 드러낸 반파가야 봉화의 완전성을 위해 제철유적을 찾는 지표조사가 기획되었다. 지금도 전북 동부 제철유적 및 봉화를 찾는 추가 지표조사가 꾸준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전북 동부 문화요소의 유전자는 철(鐵)이다. 우리나라 단일 지역 내 제철유적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운봉고원은 기원전 84년 지리산 달궁계곡을 피난지로 삼은 마한 왕이 첨단과학의 전달자이다. 기문가야가 동북아를 아우르는 위세품을 거의 다 모은 국제성도 철의 힘이다. 남원 아막성 집수시설에서 나온 용광로 벽체와 슬래그도 신라의 철산개발을 실증한다. 백두대간 산줄기 서쪽 금강 최상류에 기반을 둔 반파가야는 봉화 왕국이다. 1500년 전 전북 동부에 봉화망을 구축하려면 국력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국력의 원천은 철이다. 반파가야 고총에서 단야구와 최고의 철제품인 말발굽이 나와 철의 생산과 유통을 유물로 입증하였다. 게다가 반파가야 영역에서 발견된 250여 개소의 제철유적도 그 개연성을 더 높였다. 장수 삼고리 고분군은 반파가야의 요람이다. 반파가야 백성들이 잠든 사후 안식처로 한강 이남의 최상급 마한계와 백제, 가야, 신라토기를 한 자리에서 실견할 수 있는 곳이다. 반파가야 물물교환의 증거물로 철산지만의 정형성이자 자랑거리이다. 우리나라에서 도굴의 피해가 가장 심한 반파가야 고총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제철유적의 발굴조사가 기획되었다. 장수군 장계면 명덕리 제철유적은 철의 제련부터 가공, 정련까지 이루어진 종합제철소이다. 이곳에서는 철광석을 캐던 반달모양의 채석장, 철광석을 녹이던 제련단지, 철제품을 만들던 가공단지, 숯을 굽던 숯가마 등이 조사되었다. 후백제 문화층에서 붉게 그을린 기와편과 청동제 소형 동종이 출토되어, 전북 동부 제철유적이 후백제에 의해 운영되었음을 실증해 주었다. △후백제, 전북 동부에 국력을 쏟았다 후백제 축성술의 비밀이 드러났다. 고구려 백암성을 쏙 빼닮았는데, 그 전수자는 고구려 유민들이 금마저에 세운 보덕국이다. 후백제 축성술은 줄을 띄운 줄 쌓기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들여쌓기, 한자 품(品)자형 쌓기로 상징된다. 성돌은 방형 혹은 장방형으로 잘 다듬고 그 길이가 상당히 길어 마치 옥수수 낱알모양을 닮아 견치석으로도 불린다.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산줄기를 따라 후백제 산성들이 집중 배치되어 있다. 전주로 향하는 옛길이 통과하는 길목을 지킨 산성들로 후백제는 산성의 규모를 확장하거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다. 후백제의 동쪽 방어체계 구축과 함께 장수 명덕리 대적골 제철유적 등 전북 동부 철산지를 방비하려는 후백제의 국가 전략이 투영되어 있다. 백두대간 육십령을 넘어 전주까지 이어진 옛길이 통과하던 방아다리재 남쪽에 장수 침령산성이 있다. 반파가야가 처음 터를 닦고 쌓은 테뫼식 산성을 신라가 4배 이상의 포곡식 산성으로 확장하였다. 후백제는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거나 남쪽에 치를 두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 집수시설에서 수백 점 이상의 후백제 유물이 쏟아져 후백제 박물관을 연출하였다. 금남호남정맥을 넘어 전주로 향하는 옛길이 통과하던 자고개 북쪽에 장수 합미산성이 있다. 후백제 축성술의 랜드마크로 반파가야와 백제, 후백제를 함께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반파가야가 산성의 터를 닦고 후백제가 확장한 테뫼식 산성으로 90% 이상의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장수군이 후백제의 동쪽 거점으로 대규모 철산지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와 후백제 중국 청자의 본향이 절강성 항주에 도읍을 둔 오월이다. 후백제 견훤왕은 오월을 세운 전류와 왕 대 왕으로 양국의 국제외교를 거의 반세기 동안 이끌었다. 후백제가 오월에 말을 보내자 오월은 반상서를 대표로 사절단을 후백제에 파견하였다. 양국의 국제외교 결실로 오월의 도공과 중국식 벽돌가마를 만드는 전축공이 후백제에 파견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후백제 도읍 전주에서 가까운 진안 도통리에서 중국식 벽돌가마가 조사되었는데, 벽돌가마는 오월 월주요 상림호처럼 아주 정교하게 벽석을 쌓았다. 그러나 시흥 방산동 벽돌가마는 아주 거칠고 조잡하게 쌓아 오월, 후백제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진안 도통리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검출된 숯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도 일관되게 후백제를 가리켰다. 936년 후백제 멸망으로 진안 도통리 중국식 벽돌가마가 처참하게 파괴된 뒤 전혀 검증되지 않은 길이 43m의 진흙가마를 다시 앉혀 우리나라에서 그 길이가 가장 길다. 진안 도통리에서 중국식 벽돌가마는 그 운영주체가 후백제로 판단된다. 전주 동고산성과 인봉리, 장수 침령산성 등 후백제 산성에서 진안 도통리 출토품과 똑같은 초기청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진안 도통리는 후백제 최첨단국가산업단지로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전북 동부에서 화려하게 꽃피운 철기문화 못지않게 도자문화도 후백제가 후삼국 맹주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진안 도통리, 고창 반암리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구운 초기청자는 차(茶) 문화를 중시하던 선종(禪宗)의 후백제 지지를 이끌어낸 촉매제였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후백제, 전북 동철서염 완성하다 인류의 역사 발전에서 소금과 철의 공헌도가 탁월하다. 초기철기시대부터 전북가야를 거쳐 후백제까지 전북은 소금과 대규모 철산지였다. 새만금 등 전북 서해안에서 200여 개소의 패총과 전북 동부에서 30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이를 실증한다. 이제까지 전북에서 축적된 고고학 자료에 근거를 두고 전북의 역사를 ‘동철서염(東鐵西鹽)’으로 표방하려고 한다. 기원전 202년 제나라 전횡의 망명과 고조선 마지막 왕 준왕의 남래 때 철기문화가 바닷길로 곧장 만경강유역에 전래된 것 같다. 만경강유역은 마한의 요람으로 한강 이남에서 청동문화가 가장 융성하고 철기문화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마한의 핵심세력은 해양세력으로 전북 서해안에서 토판천일염으로 소금이 생산 유통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북혁신도시를 테크노밸리로 일군 선진세력이 철광석을 찾아 전북 동부로 대거 이동한다. 장수군 천천면 남양리와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마한세력의 이동이 포착되었다. 전북 동부에 정착한 마한세력은 가야문화를 받아들여 가야 소국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기문가야와 반파가야로 상징되는 전북가야는 120여 개소의 가야 봉화를 전북 동부에 남겼다. 일본열도를 포함하여 전북 동부에서만 그 존재를 드러낸 가야 봉화는 전북가야의 본바탕이자 아이콘이다. 전북가야는 동북아를 아우르는 최고급 위세품과 최상급 토기류를 거의 다 모아 대규모 철산지였음을 알렸다. 통일신라 때 남원경 설치의 역사적 배경도 전북 동부 철산개발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철불의 효시로 평가받는 운봉고원 내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도 전북 동부 철기문화의 정수이자 최고의 걸작품이다. 후백제는 전주로 도읍을 옮기고 전북 동부의 철기문화와 서부의 해양문화를 하나로 응축시켜 전북의 ‘동철서염’을 국가 시스템으로 완성하였다. 요즘 전북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후백제 문화유산은 그야말로 풍성하고 월등하기 때문에 후백제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요청된다. 후백제사가 복원될 때까지 후삼국의 맹주 후백제를 꼭 기억하였으면 한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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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5 15:04

[조법종 교수의 전라도이야기] ⑩ 포크, 전라감영에서 동아시아 정세를 설명하고,  전라도 최초의 사진을 찍다

△포크, 전라감사와 1880년대 동아시아 정세를 논하다. 1884년 11월 11일 11시에 포크는 사진기구를 챙겨들고 전라감영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라감영 선화당의 압도적인 형태와 주위 환경에 다시 깊은 인상을 받고 선화당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포크는 전라감사가 궁금해 하는 국제정세에 대해 설명하였다. 먼저 청나라와 프랑스의 전쟁(청프전쟁1884.8-1885.4.)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또한, 당시 일본과 중국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를 물은 전라감사에게 류큐 제도(오키나와 섬)의 문제(1872년 일본에 완전 복속)를 말해주고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중국과 일본의 전쟁’과 관련하여 ‘조선이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했다. 이 내용은 정확히 10년 후인 1894년 조선을 장악하기 위해 일본이 일으킨 청일전쟁(1894.7-1895.4)과 전쟁 승리후 일본이 진행한 조선 강점 계획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즉, 청일전쟁 10년 전에 일본과 중국이 조선을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국제 정세를 조선 정부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면 1894년 발생한 ‘동학농민혁명’시 국내 문제가 이들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빌미가 되지 않게 대처해 이를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다. 특히, 갑신정변(1884.12.4.-7.) 실패이후 포크가 ‘미국 대리공사’로서 조선의 고종과 민비 등과 긴밀히 접촉하며 활동한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조언을 제시했을 것이란 점에서 이때 피력된 포크의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파악과 예측은 매우 주목되는 내용이었다. 당시 1884년 11월경 조선정부 및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와 이해력이 포크의 표현처럼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후 10년의 기간은 충분히 대비하고 국내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반면교사의 역사사실로 더욱 부각된다. 그런데 포크가 만난 상당수 조선의 고위관리에 비해 전라감사는 “그는 깊은 관심을 보였고 내가 말한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표현처럼 적극적 수용자세와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전라감사 김성근은 식사중 대화에서 “나는 나이가 50인데 (서양의 문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너는 28살이고 나는 오히려 (나이는 많지만) 어린아이, 학생일 뿐이다. 많은 백성을 다스리는 높은 지위의 관리인데도 (새로운 과학과 문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하였다. 포크는 타 지역에서 만난 관리들과 달리 전라도 최고 관리인 전라감사가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솔직한 말을 듣고 “이는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나의 가슴을 파고드는 말이었다. 나는 이 말에 무척 감명을 받았다.”라는 표현을 남겼다. 이후 기록에서도 많은 조선관리를 만났던 포크는 이 같은 평가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라감사 김성근에 대한 평가는 매우 주목된다. 이 같은 지도자의 겸손과 자신의 책임성을 강조한 표현은 현재의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된다. △포크, 최첨단 사진기로 전라도 최초의 사진(寫眞)을 찍다! 포크는 11월10일 처음 전라감영을 방문했을 때 전라감사에게 전주를 둘러보는 것과 카메라 촬영허가를 요청하였다. 그런데 전라감사는 이미 카메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자신을 찍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나는 감사에게 전주를 둘러보겠다고 요청했고 그에게서 마지못한 답변을 받았다. 그는 내가 고을에 나가볼 수 있게 집사를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면 사람들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카메라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몇 장의 사진을 꺼내어 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 군함 앨럿 호(USS Alert)와 앨럿 호에 승선했던 하웰(Howell)이 찍은 다른 사진들 이었다. 이것은 내게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어딘가에서 독일인을 통해 그 사진들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앞서 조선정부의 지도부가 조세 곡물의 안전 운반을 위해 ‘화륜선’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실을 설명하며 전라감사가 화륜선 사진을 갖고 있었음을 소개하였던 내용이다. 주목되는 것은 전라감사가 ‘카메라’에 대해 알고 싶어했고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 부분이다. 전라감사 김성근이 ‘카메라’에 관심을 갖은 것은 당시 조선 사회 지도층에서 ‘사진(寫眞)’ 촬영이 최고의 신드롬적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공식적으로 발명된 것이 1830년대이었고 발명 후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된 서양 근대 문명의 대표 주자였다. 1830년대에 서구에서 발명된 '포토그라피(Photography)‘는 그리스어 ’빛’을 의미하는 포스(Phos)와 ‘그리다’라는 그라포스(Graphos)가 합쳐진 말이다. 1840년대 중국에 전해진 이 기술은 ‘빛을 담는다’라는 의미의 섭영(攝:당길 섭, 影:그림자 영)이란 단어로 표현되었는 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초상화' 또는 ‘그림을 정확히 그린다.’는 의미인 ‘사진(寫:베낄 사,眞:참 진)’으로 표현되었다. 이 표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사진인 1863년 청나라 사행단 이의익(李宜翼) 일행이 북경 아라사관(러시아공사관)에서 찍은 기록(이항억, 연행초록』)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이후 조선이 개항후 1870, 80년대 중국 및 일본에 파견한 영선사, 수신사 등에 참여한 사신들은 중국과 일본 방문시 사진관을 찾아 개인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필수 일정이 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주 감영을 방문한 포크가 카메라 촬영을 하겠다고 하자 전라감사 김성근은 자신의 사진 촬영을 적극적으로 부탁한 것이었다. 포크는 전라감사와의 대화가 끝나고 자신을 위해 춤을 춘 4명의 무용수들의 공연이 끝나자 카메라를 꺼내놓고 이를 설명했다. 그리고 조명이 무엇인지, 유리컵에 든 신비로운 약이 무엇인지 따위와 같은 질문들에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참석한 대인들 전체가 아이들처럼 순진한 표정을 짓고 내 지식에 경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감사는 신문물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부하 관리들과 더 친밀한 태도를 보여줬다. 포크는 이 같은 전라감영에서 본 “기묘하게 흥겨운 춤을 추는 소녀들, 우뚝한 기단 위의 관아건물(선화당), 용, 호랑이가 그려진 병풍, 커다란 북, 붉은색 기둥, 창과 무기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무리들, 문 옆에 초록색 옷을 입고 일렬로 선 소년들의 모든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고 ”이 모든 모습들이 모여 내가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선 하나의 멋진 장관을 만들었다.”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 표현에 적확히 부응하는 모든 장면을 담기위해 기생과 감사, 전체 군중 등의 사진 6장을 찍었다. 이들 사진은 노출 시간은 28-35초, 조리개 노출은 ½-¾인치로 찍었다고 기록하였다. 이들 사진은 안타깝게도 나주-광주길에 짐실은 말이 물에 빠지며 상당수 망실되었는데 천행으로 전라 감사와 전주 기생의 사진이 남아있다. /조법종(우석대 교양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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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4 16:20

[뉴스와 인물] 김재형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

신문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포털에 뉴스 콘텐츠를 넘기면서 신문을 읽는 구독자는 거의 사라지고, 뉴스 생산자들만 남아 그 명맥을 겨우 잇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전성기를 누렸던 신문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살 길을 찾고 있다. 한국 신문은 이 과정에서 혐오와 차별, 배제의 언어로 정치 세를 불리고 정쟁의 도구로서 기능하게 됐다. 종이 활자매체 대신 디지털이 주류가 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언론 소비자들 역시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사고방식이 곳곳에 만연하다. 탈도덕 시대 ‘언론 윤리의 상실’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이런 가운데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 4월 김재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법률가에게 마저 정파성을 요구하는 시대 “법관을 보수 혹은 진보로 분류해 한쪽에 가두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지난해 9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그다. ‘법적 이성’을 강조한 김 위원장이 그리는 ‘보도 윤리’와 ‘언론의 이성’은 무엇일까. 지난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그의 생각을 물었다. -한국신문윤리위원장으로 활동하신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습니다. 대법관 출신으로 ‘이성’과 ‘윤리’를 강조하신 만큼 부담도 크실 것 같습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1961년 우리나라 언론윤리 제고를 위한 자율기구로 출범한 이래 62년 간 기능해왔습니다.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기구이기에 그동안 위원회가 쌓아온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 인터넷과 SNS 등이 발달하면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뉴스가 정제되지 않은 채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뉴스, 사실과 다른 뉴스, 윤리 규범을 지키지 않은 뉴스의 파급력이 정제된 뉴스보다 파급력이 더 큽니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언론윤리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이러한 시기 위원장직을 맡게 돼 부담이 큰 것이 사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언론의 보도 윤리 기준을 두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 취재원의 인권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일 텐데요. 이 부분을 판단할 때 어떤 원칙과 기준을 적용하실 건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입니다. 이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합니다. 그러나 언론이 자유를 무기로 취재원의 인권을 마음대로 침해하거나 사실이 아닌 보도를 해서도 결코 안 됩니다. 그래서 취재원을 보호하고, 가짜 뉴스에 노출될 수 있는 국민을 위한 장치와 윤리 기준이 필요한 것입니다. 언론 또한 자신들의 취재원을 보호할 수 있어야 좀 더 충실한 보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원의 인권이 대척점에 있는 경우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죠. 저는 우리 언론이 스스로 윤리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명감과 이성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위원회는 일방적인 통제나 시정 권고보다 신문사와 기자가 스스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판단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같은 법 4항은 ‘언론·출판의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선 안 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지요. 아직 위원장으로 활동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에 어떠한 요소들을 적절하게 조화해 나갈지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언론 보도에서 인격권이 강조되면서 지나치게 이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범죄자 신상을 대부분은 공개하는데, 한국은 유독 범죄자의 인권만 중시하느냐는 국민적 불만도 높습니다. 만연한 익명 보도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보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나라별로 역사와 법체계가 다르기에 신상 공개의 범위 역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에 따라 법률과 판례도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한 법률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데,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에 제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피의자 신상 공개나 취재원에 대한 실명 보도에 대해 적절한 기준이 제시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독 한국의 경우가 언론에 대한 제제가 심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과거 취재원 인용은 실명 보도가 원칙이었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성과 나이만 밝히는 아무개 씨에서 지금은 아예 A나 B로 통일했습니다. 그만큼 한국 언론이 신뢰도도 낮아졌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일종의 특수 현상이라고 보는데요. 사실 헌법에서 언론 자유를 규정하면서도 명예훼손에 대해 명시한 국가는 많지 않습니다. 과거 우리 언론은 아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힘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고, 인격권은 거의 인정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권한이 있는 만큼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특히 언론 자유가 있다지만 사실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해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과도하게 특정인의 사생활을 노출시키는 보도를 했다든지 이런 논란들이 많았었죠. 이런 것들이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았고, 그러면서 미디어 환경 자체에 큰 변화가 왔다고 봅니다.” -일선 현장에서는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신문 윤리가 모호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문윤리강령을 비롯해 신문 윤리에 관한 여러 강령이나 준칙 기준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때론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준칙은 오랜 경험과 사례에 의해 쌓여온 것으로 사실 보도에 충실하고, 문제가 될 표현과 문구를 순화시킨다면 충분히 지켜나갈 수 있는 사안들입니다.” -반드시 꼭 지켜야 할 ‘신문 윤리’하나를 꼽으신다면. “철저한 ‘사실 보도’입니다. 정확하게는 취재에 있어 좀 더 정확한 확인 작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포털에 기사를 검색하면 문구만 조금 다른 같은 기사들이 대부분입니다. 기자가 취재하지 않고 받아쓰는 게 만연화됐다고 할까요. 이 과정에서 언론사들이 언론중재위에 제소를 당한다거나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결국 언론윤리의 기본은 사실 확인에 기반한 보도라도 볼 수 있겠네요.” -대법관 퇴임 이후 대형로펌이나 변호사 개업 대신 다시 모교 강단에 돌아오셨습니다. 고액 연봉을 뒤로하고 다시 교수를 하겠다는 결심을 한 배경이 있을까요. “특별한 배경이나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본래 어린 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법관 아니면 교수였습니다. 판사 재직 시절 교단에서 제의가 왔고,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하는 데서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전북은 법조 3성의 고장으로도 한때 불렸지만, 그 명성이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위원장님에게 고향의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 있는데, 고향에 대한 추억이나 성장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임실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다니고 5학년이 되면서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서울에서 공부하는 것을 제안하셨고 그 후로 쭉 서울에서 공부했어요. 잠깐의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고향은 항상 저에게 포근한 존재였고 사회에 나와서도 전북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배우자(전현정 변호사)도 전주 출신이에요. 우연찮게 전북 사람끼리 인연이 된 거지요.” △김재형 신문윤리위원장은 김재형 위원장(58) 임실 출신으로 명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거쳐 공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1992년 서울민사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3년여간 법관으로 재직했다. 1995년부터는 서울대 법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수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우리나라 민법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가족으로는 전북 출신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아내 전현정(57)변호사(전 서울지법 부장판사)와 1남 1녀가 있다.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으로 사람의 이성을 존중하며, 판단에 있어 원칙과 자유의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한다는 평이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6년 간 대법관으로 재직했고, “입법과 사법은 정의라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두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대담=김준호 서울본부장·선임기자, 정리=김윤정 기자

  • 기획
  • 김윤정
  • 2023.07.23 17:13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⑥ 도시의 추락, 아름다운 건축물로 일어서다

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 일본 규슈의 도시들/ 구마모토현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쇠퇴와 성장의 순환이 그 변화를 주도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은 외부의 힘에 의해 변화하기도 한다. 규슈지역 중심에 있는 구마모토현. 세계 최대의 칼데라 분화구를 가진 아소산과 기쿠치강을 비롯한 네 개의 강을 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구마모토 역시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맞닥뜨린 환경문제가 있다. 1950년대 중반, 구마모토현의 미나마타 시에 몰아친 환경 재앙 <미나마타병>이다. 원인은 미나마타 시에 들어선 화학공장 등이 배출한 유기수은. 연안 수자원과 환경을 오염시킨 유기수은의 폐해는 컸다. 미나마타 시의 어민들 사이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미나마타병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금속성분이 사람의 몸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해병이 되어버린 미나마타병은 그 이후 미나마타 뿐 아니라 구마모토현의 도시들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3년 구마모토현의 지사로 취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추락한 도시이미지를 바꾸어 사람을 불러들이고 새로운 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환경 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구마모토현은 문화를 중심에 세운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냈다. 그 정점에 구마모토의 도시이미지를 바꾸고 구마모토를 아름다운 건축의 도시로 세계에 알린 사업이 있다. 도시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들여놓는 사업 <구마모토 아트폴리스(KAP)>다. 특색 없고 단조로운 도시 미관을 새롭게 고쳐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이 정책은 구마모토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1988년 시작, 35년째 지속되어온 정책의 힘 1988년 호소카와 지사가 만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풍부한 자연과 풍토를 살리면서 후세에 문화적 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우수한 건조물을 만들고’ ‘주민들의 도시문화와 건축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지역 발전을 이끌 구마모토만의 생활공간을 창조해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올해로 35년째. 자치단체의 같은 사업, 같은 정책이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예는 드물다. 구마모토현은 아트폴리스 사업을 만든 호소카와 지사 이후 후쿠시마 지사, 사오타니 지사, 그리고 현 가바시마 이쿠오 지사까지 세 번이나 지사가 바뀌었지만 사업의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활력있는 사업추진을 위해 방식을 보완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지사나 시장 군수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뀌고 잘 진행되던 사업까지도 중단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이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호소카와 지사가 1988년 발표한 정책이다. 호소카와 지사는 바로 전 해인 1987년,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건축박람회>에서 영향을 받아 이 정책을 주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아트폴리스로 지정된 공공건축물과 민간건축물이 구마모토현의 이곳저곳에 들어서며 도시를 빛내기 시작했다. 아트폴리스 지정은 철저한 심사와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 사업을 이끈 초대 커미셔너는 이소자키 아라타 씨. 세계적 건축가로 명성을 쌓은 그는 구마모토현 출신이 아니었지만, 발주자와 건축가, 시민들과 협의하고 설득하고 토론하면서 구마모토의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흥미로운 것은 적지 않은 건축물들이 아트폴리스 지정을 신청하지만 정작 이 사업을 주도하는 현 당국은 별도의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건축물도 현 차원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민간기관이 예산을 투입해 만들 예정이던 마을회관이나 다리, 미술관 등의 건조물이 아트폴리스의 취지에 맞게 잘 만들어지도록 과정에 참여하고 그 진행을 돕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아트폴리스 사업이 성공한 이유를 전문가들은 단호하고 과감하게 시행한 커미셔너 제도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주민들에게 자부심 안긴 공공임대 아파트의 변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공공 영구임대아파트다. 목표는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이 가진 획일적인 디자인과 주거의 양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건축 방식 대신 아름다운 디자인과 쾌적한 환경의 주거지를 영세민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첫 결실은 구마모토현이 운영하는 ‘호타쿠보 1단지’. 1991년에 준공된 호타구보 1단지는 아트폴리스 정책이 적용된 첫 공공 영구임대아파트였다. 그 뒤를 잇는 것이 구마모토시가 운영하는 ‘신치단지’다. 모두 5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신치단지는 4천 명 인구가 거주하는 서민 아파트 단지다. 다섯 명 건축가가 각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설계해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덕분에 이 아파트 단지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도시의 관광상품으로 부상했다. 쇠퇴하는 구도심의 재생에 새로운 동력이 된 셈이다. 변화와 재생의 힘으로 세계적 건축 도시가 되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로 추진된 프로젝트는 2021년 7월 기준, 109개다. 이 중 95개 건축물이 완공됐다. 내로라하는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도 여럿이고 집합주택, 교육과 스포츠시설, 관광시설, 농업시설, 박물관 미술관 관공서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공원이나 전망대 다리 등의 조형물도 적지 않고, 화장실도 여러 개다. 역사적 건축물도 별도로 지정해 지역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살렸다. 이러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의 성과는 단순히 건축물을 들여 외형적 환경을 바꾼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의 새바람을 불어넣어 재생의 힘을 얻었으며 세계 각국의 건축도 들이 찾아오는 건축의 도시가 됐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세 번째 커미셔너인 건축가 이토 도요오 씨가 이끌고 있다. <자연을 열고 사람과 조화한다>는 그가 아트폴리스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담아낸 슬로건이다. 각 지역에 들어선 건축물은 ‘점’으로 산재하고 있지만, 이것을 ‘선’으로 연결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와의 연대를 강화해 구마모토 전 지역을 ‘면’으로 확장하겠다는 아트폴리스의 목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35년 동안 일관되게 지속해온 한 도시의 정책이 갖는 힘과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이 도시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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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7.20 17:45

정성주 김제시장 “시민이 행복한 시대를 만들 터”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위하여 힘써 일한다는 극기봉공(克己奉公)의 자세로 언제나 시민만을 바라보며, 시민의 눈높이에서 시민이 행복한 김제를 만들겠습니다." 정성주 김제시장은 민선 8기 1년을 돌이켜보면 쉼없이 달려왔다며 무엇보다도 시민들께 김제시민이라는 자부심을 드리려고 한 1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민선 8기 1년동안 일궈낸 주요성과로, 2023년 국가예산 1조원 시대 개막에 이어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김제시 인구가 ‘2022년 6월말 8만 861명에서 2023년 6월말 8만 1907명 등 전년 6월말 대비 1046명 증가 등 괄목한 만한 성과를 제시했다. 이는 지난 1995년 시군 통합이래 처음있는 일이며,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소멸대응 기금을 투입하여 인구가 증가한 시군은 김제시를 포함해 전국에 단 11개뿐으로, 할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로 김제형 인구정책에 지속적으로 집중한 결과 얻은 값진 결실이라며, 민선8기 1주년을 맞아 새로운 김제의 담대한 여정을 내실있게 추진할 핵심사업으로 다음과 같은 사업들을 제시했다. 지속가능 산업성장도시 먼저, 대한민국 유일의 특장차 투자선도지구인 백구면 일원에 제2특장차 전문단지 조성, 김제시를 특장차 산업의 메카로 육성하고 2027년까지 지평선 제2일반산업단지를 조성(1712억 원)해 김제시 미래 경제성장의 동력을 창출해 나갈 예정이다. 혁신성장을 견인할 공공 임대형 지식산업센터 건립과, 김제자유무역지역 표준공장 증축, 순동산업단지 복합문화센터 건립 등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할 계획이다. 더불어, 요촌동·신풍지구·성산지구 도시재생사업과 금동지구 새뜰마을사업 등으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어 나갈 계획이다. 활력있는 민생경제도시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미래를 꿈꾸는 활력있는 경제도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기업 유치의 인프라 구축과 지역경제발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 할 김제상공회의소 설립을 추진한다. 또한, 청년창업가의 자립 기반 마련을 위해 예비창업 도전지원사업, 청년창업 도약지원사업 등 성장단계별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맞춤형 지원체계를 확립하고,기업과 시민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취업박람회, 구인·구직 만남의 날을 개최하여 관내 일자리 취업 알선, 맞춤형 정보제공 등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나갈 계획이다. 지속적인 경기 악화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을 위해서는 시설개선 및 경영지원, 임차료 지원 등 다양한 정책적 지원사업으로 서민경제 활력을 도모한다. 대한민국 최고 첨단농업도시 농업의 반도체라 불리는 종자산업을 신성장 핵심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김제공항부지 156㏊에 종자생명산업 혁신클러스터를 조성(3335억 원)하고, 새만금 농생명용지 5공구(100㏊) 일원에 지능형 농기계 실증단지를 구축(1092억 원)해 첨단 농기계 산업의 기술경쟁력을 강화한다. 첨단 농업도시로의 도약을 위해 스마트팜 혁신밸리 등 미래농업의 핵심인 스마트 농업의 혁신성장을 주도해 나아갈 계획이다. 전략작물 직접지불사업등 농업인의 기본소득 보장지원사업을 통해 농업인의 소득안정을 지원하고, 청년농업인 선순환 체계 우수모델 선발 등 청년후계농 및 청년농업인의 자립기반을 지원함으로써 젊은 농업 농촌을 조성할 계획이다. 웅비하는 항만해양도시 새만금은 김제의 새로운 기회의 땅이다. 김제 새만금 신항만, 만경7공구방수제, 새만금 동서도로 등 새만금 행정구역 관할결정에 대한 중앙분쟁조정위원회 심의등에 적극적으로 대응, 김제 관할로 결정될 수있도록 총력전을 펼칠 계획이다. 새만금내 국가 및 공공기관 유치는 수변도시 완공시기에 발맞춰 새만금개발청, 새만금개발공사등을 우선 유치하고 특히, 공공기관 2차 이전과 연계하여 새만금에 한국마사회 본사등을 유치, 속도감 있는 내부개발을 추진해 해양도시의 미래를 열어간다. 아울어, 김제 새만금신항이 스마트식품 콜드체인 및 그린수소 거점 항만으로 육성될 수 있도록 국가정책에 지속적으로 건의, 김제 새만금신항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함께하는 교육복지도시 지평선 나눔스터디 사업, 김제시 모두 배움터 조성사업, 지평선학당 운영,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지원사업, 창의학습 커뮤니티센터 건립 등 아이들이 학습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여 배움으로 희망찬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전국 제일의 어르신 행복도시 조성을 위해 시장직속 어르신 섬김위원회를 운영하고 다양한 어르신 복지정책과 경로효친 분위기를 확산하여 어르신들의 안정된 삶의 기반을 조성한다. 아울러, 분만취약지 분만산부인과 운영, 출산장려금 지원, 가족센터 건립 및 육아종합지원센터 조성 등을 통해 임신부터 출산, 보육, 교육에 이르기까지 아이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품격있는 문화관광도시 2027년까지 새만금권 전통 한옥문화 체험공간(197억 원)을 조성해 국가정책에 부합하는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 한다는 계획이다 김제축제재단을 설립하여 축제의 질적 성장과 자생력을 강화하고 김제시티투어버스 운영과 김제문화재야행을 통해 사계절 문화관광도시로 도약을 준비한다. 또한 공연·전시·체험 등 새로운 문화예술의 거점공간 역할을 수행할 문화예술 커뮤니티센터 건립과 문화의 날 운영 등을 통해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확대하고, 2023년 9월 1일부터 3일간 개최하는 제60회 전북도민체육대회는 차질없이 추진하고, 생활밀착형 국민체육복합센터 건립 등을 통해 김제시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스포츠 활력도시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신뢰받는 시민소통행정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으로 읍면동 현장행정 추진과 신속한 생활민원 처리 등 시민중심의 서비스를 강화하여 시민행복시대를 열고, 시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듣기 위해 열린시장실, 시민 소통의 날 운영, 백년김제 대시민 포럼 개최 등 시민과의 양방향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다. 정성주 김제시장 “우리는 새로운 김제 성공시대를 이끌수 있다” 정성주 김제시장은 "지난 1년이 전북권 4대도시로 웅비하는 김제 실현을 위한 발판을 다지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 발판 위에 새로운 김제 100년의 초석을 본격적으로 쌓아 올려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새만금과 8만 김제시민의 힘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김제 성공시대를 이끌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시장은 또 "1년전, 민선8기 김제시장이라는 두려움과 책임감 앞에서 시민의 뜻을 가슴깊이 새기며 시장으로서 책임과 소명을 다하겠다"며 "지금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놓여 있지만, 걱정과 두려움은 내려놓고 용기를 가지고 과감히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의 성과와 변화에 안주하지 않고, 변함없는 담대한 의지로 지속 가능한 김제의 내일을 위해 변화의 씨앗을 뿌리고 희망을 키워나가겠다"고 덧붙였다.

  • 기획
  • 최창용
  • 2023.07.20 16:58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헌 옷의 또 다른 여정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거나 이사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옷장에 잔뜩 쌓인 옷을 정리한다. 그렇게 한 해 국내에 버려진 의류 폐기물만 무려 11만 8386톤이다. 우리가 버리는 '헌 옷', 그들의 최종 정착지는 어디일까? 의류 폐기물의 심각성과 친환경적인 대안이 없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의류 폐기물 재활용 무려 1% 미만 지난달 23일, 미국 위성 사진 영상 업체인 '스카이파이'가 공개한 사진이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해당 사진은 '세계의 쓰레기 옷 산'이라고 불리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우주에서 관측한 것이다. 사진에 드러난 아타카마 사막은 모래와 암석 등이 뒤엉켜 갈색으로 얼룩졌으며 가장자리는 회색빛의 미세한 알갱이로 뒤덮여 있었다. 많은 이가 이 사진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해당 회색빛 알갱이가 모두 헌 옷이었기 때문이다. 스카이파이 측은 "옷 쓰레기 산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이제 우주에서도 의류 폐기물에 대한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심각성을 알렸다.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의 중고의류를 수입해 온 칠레는 중남미 최대 중고의류 수입국이다. 매년 5만9000톤의 중고의류가 칠레 북부 이키케 항구를 통해 들어오며 이 중 팔리지 않은 3만 9000톤의 중고의류는 아타카마 사막에 그대로 버려진다. 중고의류는 화학 처리가 돼 있어 사립 매립지 매장은 허용되지 않고 생분해까지 최소 수백 년이 걸린다. 유엔환경계획(PNUE)은 "의류 폐기물 재활용 수치는 단 1%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지금처럼 사람들이 계속해서 대부분의 옷을 그대로 버린다면, 오는 2025년엔 세계 탄소 4분의 1이 패션산업에 소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패스트패션, 의류 폐기물 발생 원인 의류 폐기물이 발생한 원인으로 패션업계 전문가는 '패스트패션'을 꼽는다. 앞서 언급한 아타카마 사막에 쌓인 대다수의 옷도 자라, 유니클로 등과 같은 패스트패션 의류였다. '패스트패션'이란 주문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변화하는 최신 유행에 맞춰 디자인과 물품이 빠른 속도로 생산 및 유통되는 패션산업을 뜻한다.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패션플랫폼이 발전함에 따라 질 낮은 의류들이 무차별적으로 판매되고, 그만큼 버려지는 의류의 양도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패스트패션 기업은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한 후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이에 패션업계 전문가는 1~2주일 단위로 값싼 가격에 새로운 스타일 옷이 생산되면서 소비자도 의류를 빠르게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설명한다. △옷의 생명을 연장하다, 빈티지 옷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떠오른 의류 폐기물. 그러나 옷은 인간의 필수품으로 구매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환경과 새로운 옷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방법은 없을까?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바로 '빈티지 패션'이다. 일상생활에서 빈티지란 잘 숙성된 포도주처럼 오래된 좋은 제품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주로 골동품과 오래된 의류 등을 말할 때 통칭해 사용되며 '오래돼도 가치가 있는 것, 새로운 것'을 뜻한다. 빈티지 패션이 이름을 알리게 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트렌드는 계속 돌아오기 때문이다. 최근 2~30대 사이에서 지난 2000년대 초반의 옷을 입는 'Y2K' 패션이 유행하는 것처럼, 과거 유행했던 스타일이 오늘날 다시 유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과거의 옷을 그대로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가 증가하면서, 전국적으로 빈티지 의류매장이 증가했다. 김수연(서울, 23세) 씨는 빈티지 옷을 애용하게 된 이유로 "남들과는 다른 개성 있는 옷을 구매하면서 친환경적인 소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원래의 형태를 유지한 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제작된 옷을 다시 다른 이가 입음으로써 옷의 수명을 늘리고, 그로 인해 옷이 버려지는 시간을 늦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빈티지 패션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빈티지 옷의 합리적인 가격 형성이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고 거래와 헌 옷 수거로 제테크를 최근 중고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버려질 운명이었던 옷이 제테크의 수단으로도 이용되기 시작했다. 고물가로 인해 지역민들이 옷을 중고 거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매 순간 당근마켓, 에브리타임 등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중고의류 판매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에브리타임으로 옷을 자주 구매한다는 전북대생 ㄱ 씨는 "새 제품 구매가와 비교했을 때 가격이 현저히 낮을 뿐더러 학교 근처에서 빠르게 옷을 받아볼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각종 커뮤니티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처분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사설 헌 옷 수거 업체'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청주에 사는 ㄴ 씨는 커뮤니티에 "여름을 맞아 약 67kg의 헌 옷을 정리했다"며 "버려질 옷으로 무게에 따라 돈도 받을 수 있어 굉장히 마음에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옷 수거는 대면과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1kg를 기준으로 의류는 300원, 신발은 500원, 가방은 600원 정도의 금액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모인 옷은 선별을 거친 후 중고의류를 무게에 따라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이동한다. 이처럼 버려질 옷을 재사용하면 자연 효율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옷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돈을 얻을 수도 있다. 언젠가 버려지게 될 옷에 생명력을 조금 더 불어넣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안유진 전 전북대신문 편집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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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9 16:16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화유산으로 본 후백제] ⑬후백제 초기 유적지 순천·여수·광양 일대

동아시아의 해상왕 장보고가 암살 당한 후 서남해안은 해적들로 들끓었다. 하지만 이미 국운이 기울어진 신라 조정은 이를 통제할만한 힘이 없었다. 이때 신라군에 입대한 견훤왕은 서남해를 방수(防守)할 임무를 띠고 이곳에 파견되었다. “장성하면서 체격과 용모가 뛰어나게 기이했고, 뜻과 기상이 빼어나서 평범하지 않았다. 군대를 따라 왕경(王京)에 들어갔다. 서남해로 부임하여 수자리를 지켰는데 창을 베고 적을 기다렸다. 그 용기가 항상 사졸의 으뜸이 되도록 일하였기에 비장(裨將)이 되었다.”<삼국사기> 권 50. 견훤전 견훤왕은 수도인 경주에서 강주(康州 진주)를 거쳐 순천지역에 부임했다. 경상남도 서부지역인 강주를 거쳐오는 동안 따르는 무리가 대규모로 불어나면서 처음으로 신라에 반심(叛心)을 품고 신국가 건설의 꿈을 키웠다. 이때가 889년으로 그의 나이 22살이었다. 이곳에서 3년 동안 세력을 키운 후 892년 무진주(武珍州 광주)로 옮겨 나라를 세우게 된다. 서남해안지역, 즉 순천과 여수 광양 등 전남 동부는 견훤왕이 후백제 건설의 초기 토대를 쌓은 곳이다. 이곳 일대를 취재하기 위해 일행은 전주를 출발해 순천으로 향했다. 새벽까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듯 쏟아붓던 장대비도 차츰 약해지더니 순천에 도착하니 딱 그쳐주었다. 일행으로 갔던 송화섭 교수(전 중앙대)가 “그것 봐라. 내말이 맞지 않느냐”고 어깨를 으쓱한다. 출발 전, 비를 걱정하자 “내가 가면 비가 그친다”고 장담했던 터여서 한바탕 웃었다. 일행은 순천대박물관에서 최인선 교수를 만나 동행키로 했다. 최 교수는 대학박물관을 만들고 관장으로 7년간 재직한 바 있다. 이때부터 전남 동부 일대의 유적 발굴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먼저 일행은 박물관에 들러 설명을 들었다. 고고역사실에는 전남 동부지역의 구석기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과 유적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물론 이 중에 눈길이 간 것은 백제와 후백제 관련 유물이었다. 최 교수는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의 득량만과 순천만, 광양만 등을 가리키며 이 일대의 중심은 순천이었다고 강조했다. 최근 ‘여수 밤바다’ 등 관광지로 뜨고 있는 여수는 조선 500년 동안 잠깐을 제외하고 폐현(廢縣)이 돼 순천 관할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순천의 별호는 승평(昇平) 사평(沙平) 평양(平陽) 강남(江南) 승주(昇州) 등 11개에 이른다고 귀뜸했다. 이어 검단산성, 해룡산성, 마로산성, 봉화산성, 옥룡사지, 금둔사지 등과 이와 관련된 고분, 부도, 기와 출토 유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전시물 중 보물로 지정된 금둔사지 석불비상과 석탑은 후백제 시기인 907년에 조성됐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불탑형 부도라고 해서 기억에 남았다. 일행은 박물관을 나와 해룡산성- 마로산성- 봉화산성 순으로 답사코스를 잡았다. 이들 산성은 견훤왕이 서남해안 방수군으로 왔을 때 주둔했을 가능성이 높아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시간이 나면 여수 진례산까지 가기로 했으나 불발로 그쳐 아쉬웠다. 우선 찾은 곳은 해룡산성(海龍山城). 해룡산성은 명칭에서부터 바다냄새가 묻어났다. 순천시 홍내동, 홍두·내동·통천마을 일대에 위치한 이 산성은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된 순천만의 초입에 자리잡고 있다. 반달(半月) 모양의 토성으로 해발 76m의 높지 않은 지형이다. 후백제 당시 승평항으로 비정되는 내동마을 등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는데 일제때 간척 이전까지 주변이 모두 바다였다고 한다. 둘레가 2085m에 이르는 꽤 큰 규모의 성으로, 백제 후기에 초축되었으며 후백제때 리모델링 되었다. 고려시대까지 방어 시설 기능과 읍치(邑治)의 행정적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룡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 이 지역 대호족 박영규(朴英規)다. “박영규는 강남군(江南君)의 후손이다. 견훤의 사위였고 이 땅의 군장(軍長)이었다. 죽어서 해룡산신이 되었고(옛날에는 사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순천박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강남악부> 박영규 가문은 일찍부터 순천만 일대에서 해상활동을 하는 유력한 호족세력이었다. 견훤왕이 이 일대에서 세력이 커지자 혼인관계 등을 통해 최측근이 되었다. 나중에 장인인 견훤왕이 고려에 귀부(歸附)하자 그를 따라 귀부해 출세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중앙에서의 성공은 당대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고려 광종(947-975)이 왕권강화 정책으로 그의 외손 두명을 죽인 것으로 보아 그렇다. 그럼에도 순천에 남아있던 순천박씨 일족은 조선시대까지 지역 유력자로서 번성을 구가했다. 해룡산성은 2002년 순천대박물관이 지표 및 시굴조사를 한 게 전부라고 한다. 대부분 경작지와 민묘로 뒤덮여 있고 여름철이라 그런지 수풀이 무성해 성벽조차 보이지 않았다. 위상이나 중요성에 비해 대접이 소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발굴 등을 통해 국가사적으로 지정하고 순천만 국가정원과 연계해 역사공원화하는 게 시급해 보였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마로산성. 이 성은 광양시 광양읍 해발 208m의 마로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섬진강 하구와 광양만 등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탁월한 입지다. 둘레는 550m에 불과하지만 순천대박물관이 2001∼2006년 5차례 발굴조사를 실시해 기와와 토기 등 많은 유물을 수습했다. 성곽 일부를 복원해 놓았는데 치(稚)가 눈길을 끈다. 치는 성곽에 바짝 붙어 접근하는 적을 정면 뿐 아니라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보다 바깥쪽으로 돌출하여 쌓은 시설로, 후백제 때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또한 산성은 무엇보다 물 확보가 중요하다. 그래서 집수정을 설치하는데 규모가 꽤 큰 방형(方形)과 원형(圓形) 6개를 볼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와 물이 차 있었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 또 특이한 것은 흙으로 만든 말 인형인 토제마 300여 점이 출토된 점이다. 바다로 나가기 전 제사의례를 행하는데 사용한 것으로 머리나 꼬리를 잘라 주변에 뿌린 것이라고 한다. 마로산성을 뒤로 하고 일행은 다시 순천 봉화산성으로 향했다. 이곳은 순천시민들이 산책코스로 애용하는 곳 중 하나다.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상당히 멀어 땀을 흠뻑 쏟았다. 봉화산성은 후백제 시대 성황당이 있어 성황당산으로 불렸다. 경호실장 격인 인가별감(引駕別監)으로 견훤왕을 섬겼던 김총(金摠)의 사당이 있었으나 조선시대 들어 봉화대를 조성하면서 이름이 봉화산으로 바뀌었다. 봉화산성에 대해서는 문헌상 기록이 없으나 2018년 순천대박물관에서 시굴조사를 실시해 명문기와 등을 수습했다. 그러면 견훤왕은 무진주에 입성하기 전 889∼892 3년 동안 어디에 주둔해 있었을까? 이와 관련해 이도학 교수는 “순천만을 끼고 있는 해룡산성은 광양만 등지의 마로산성이나 검단산성을 관하 진성(鎭城)으로 예하에 두었던 것”이라며 “견훤왕이 무진주에 도읍하면서 자신의 근거지였던 해룡산성 일대를 박영규 가문에게 맡긴 것”으로 추정한다. 강봉룡 교수는 김총을 광양만을 배경으로 한 해양세력으로 본다. 이에 비해 최인선 교수는 해룡산성, 마로산성, 봉화산성을 모두 견훤왕의 근무 후보지로 꼽는다. 좀더 연구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순천의 3성황신 성황(城隍)신앙은 고려 초기 중국에서 도입되었다. 이전부터 내려오던 산천(山川)신앙과 함께 성황신앙은 국가적인 위기나 재난을 극복하는데 음조(陰助)한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국가에서 오악(五嶽)에 대한 제사를 계속하고 산천신과 성황신에게 봉작을 내릴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고려 중기부터는 지방세력에 의한 신사(神祠) 건립이 이루어졌다(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이경엽 교수). 곳곳에서 이들을 모신 신사가 건립되는데 순천의 경우 3개가 집중돼 관심을 끈다. 모두 역사적 인물을 신격화해 모셨다는 점도 특징이다. 순천 해룡산사 박영규, 여수 진례산 성황사 김총, 순천 인제산사 박난봉이 그들이다. 박영규는 견훤왕의 사위로 순천박씨의 중시조가 되었고 김총은 견훤왕의 인가별감으로 순천김씨의 시조다. 또 박난봉은 고려 중기 인물로 박영규의 후손이다. 이중 김총의 성황사는 당초 순천 봉화산에 있다 조선시대 여수 상암동 진례산으로 옮겼다. 해룡산사는 18세기 중엽, 성황사는 19세기 중엽까지 유지되었다. 성황신 김총의 영정은 지금도 전해진다. 인제산사는 조선 초기에 없어졌다 17세기 말 재건되었으나 곧바로 폐쇄되었다. 이들 성황신은 지역에 세거해온 후손들에 의해 고을 수호신으로 모셔졌다. 지역민을 결집하고 지방사회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제의가 수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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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3.07.18 15:49

[한국전쟁 정전 70년]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왜 조사도 안 하고 억울하게 잡아가서 민간인을 학살합니까? 시체를 바다에 빠뜨리니 찾지도 못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너무너무 억울하지요. 74살 들어 살면서 아버지 한번 불러보고 싶어도 못 불렀습니다." (김점선씨· 통영시 거주)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창원유족회 증언집 일부 발췌- "6살 때 아버지가 마산 괭이바다에서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돌아가신 뒤 정말 힘들게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빨갱이 자식’ 소리 들으며 컸죠. 그때 상처와 서러움은 말도 못 할 정도입니다." (권택근씨·부산 거주)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건 군인들만이 아니다. 수많은 민간인이 본인이 무슨 죄가 있는지도 모른 채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진실화해위 조사가 시작되고, 유족회가 생겨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70여년이 흘러도 유족들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억울함이 자식들에게도 향해지고 있어 정부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이승만 정부는 1949년 6월 5일 좌익 계열 전향자들을 대상으로 반공단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실제 취지는 공산주의 정당 남로당을 약화하고 좌익 성향 사람들을 전향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 경찰서 별로 할당된 수를 채우기 위해 공무원들과 경찰은 아무 관계없는 민간인까지 무분별하게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이후 전쟁이 터지자, 내무부 치안국은 각 도 경찰국에 '요시찰인 전원을 경찰에 구금하고 형무소 경비를 강화하라'는 내용의 비상 통첩을 보냈다. 이후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이들은 예비검속돼 경찰서나 형무소 등에 구금됐다. 이 중 본인이 왜 구금됐는지도 모르는 민간인이 다수였다. 북한군 점령지역에서 국민보도연맹 가입된 이들이 부역 행위에 협조하거나 의용군으로 입대했다는 보고가 정부에 들어갔다. 그러자 정부는 보도연맹을 잡아 처형하도록 명령했고, 6월 하순부터 비극적인 학살은 시작된다. ◇평범한 가장들,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경남 지역은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안쪽으로 정부가 행정권 유지했기에, 보도연맹 학살 피해가 컸다. 진실화해위원회 1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 사건의 희생자로 밝혀졌거나 추정한 수는 전국적으로 총 5129명이다. 이 중 경남 지역이 1551명으로 가장 많다. 2기 진실화해위가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서는 경남지역에 관련 진실규명 신청이 819건이 접수됐다. 유족회 등에 따르면, 한국전쟁 전후 당시 창원지역에서만 민간인 2300여명이 재판 없이 불법으로 학살당했다. 이 가운데 마산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국민보도연맹원, 정치사범 등 1681명이 희생됐고 그중 4차례에 걸쳐 717명 이상이 마산 괭이 바다에 수장됐다. 이런 사실은 1960년 6월 열린 ‘국회 양민학살사건 조사특별위원회’에 출석한 희생자 유족이 당시 마산지역 보도연맹 사건희생자가 1681명이라고 증언하면서 확인됐다. 또 2010년 발표된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문에서도 1950년 7월 국민보도연맹 혹은 인민군에게 동조한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적법한 절차 없이 예비검속 한 민간인이 살해된 사실이 언급됐다. 진주 지역 또한 피해가 컸다. 진주형무소는 서부 경남 일대에서 검속된 수많은 국민보도연맹원과 기수용된 수감자들로 포화상태였다. 1950년 7월 29일 진주 방어선까지 북한군이 진격해 30일 밤부터는 진주 서쪽 4km 지점까지 들어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진주는 북한군에 점령당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정부는 진주가 점령되기 전까지 국민보도연맹원을 집단 학살했다. 또한 북한군이 진격해 오던 인근 하동과 산청에서도 학살이 일어났다. 당시 진주경찰서에서 근무한 김병두씨는 "한국전쟁 발발 후 후퇴하면서 시작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의 처형은 입수된 명단을 지서장에서 면 단위로 국민보도연맹 원들을 지서에 소집시킨 뒤 특무대가 내려가서 처형했다"고 진실화해위에 진술했다. 당시 학살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정모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보도연맹원 소집 통보를 받고 경찰서로 나갔다가 구금된 후, 감옥에 500명 넘게 갇혀 있었고, 감옥 방이 10여 개가 있었는데, 방이 꽉 차 우리는 감옥 유도실에 가뒀다. 그곳에서 10여일을 굶고 지내면서 몸에 힘이 없어졌다. 이후 한 차에 100여명을 2명씩 포승줄로 묶어 차에다 밀어 넣고 버스가 꽉 차면 한 차에 순사(경찰관) 7명이 탔다. 산골짜기로 끌고 가서는 눕혀놓고 총을 쐈다." ◇여러 차례 발굴 이어졌지만, 신원 확인은 안 돼= 늦었지만, 진실화해위 주도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진주 지역에서는 2010년부터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굴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단체의 주도로 진행된 바 있다. 2014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에서 유해 39구, 2017년에는 38구를 발굴했고 2021년에는 관지리 화령골에서 유해 16구를 수습했다. 지난해 집현면 봉강리에서는 유해 35구가 발굴됐다. 올해 진행된 발굴에서 29구가 확인됐다. 하지만 하지만 발굴된 유해 중 유족과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 예산 부족 이유로 DNA 시료 채취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안구 시설이 없어 현재 컨테이너 시설에 보관 중인 상황이다. 정연조 한국전쟁전후진주지역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 회장은 "유해를 모셔야 할 납골당이나 추모관이 없어 컨테이너에 보관하고 있다"라며 "정부에서는 세종시에 있는 추모 공원에 보내라고 하는데 유족들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예산 문제 이유로 진주 지역 희생자들에 대한 DNA 채취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해 안타깝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남지역 잠재적 발굴 가능지는 총 8곳으로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산 134-6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산 241-1(용산고개2)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산 425-1(용산고개4)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산 84 △진주시 호탄동 산 93-2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산 285-5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372-2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산 154-2·154-3·157 등이며, 모두 국민보도연맹사건 관련이다. 아울러 마산 국민보도연맹사건의 희생자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산 24 일대는 토지 소유주가 거부해 발굴이 진행이 힘든 상황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곳은 유해 발굴 가능지이지만, 토지 소유주가 거부해 진행이 힘든 상황이다. 강제할 근거가 없다”라며 “만약 소유주와 협의가 된다면 빠르게 발굴을 진행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신문=박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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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17 15:15

임실군, 섬진강르네상스 완성 1000만 관광 시대 열어

무소속으로 연거푸 3선을 통해 섬진강 르네상스의 완성으로 ‘천만관광의 시대’를 연 ‘심민’호가 민선 8기 1주년을 맞았다. 심 군수는 또 민선 8기 초대 전북시장군수협의회장과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부회장이라는 중책도 맡았다. 바쁜 행보에서도 군민의 행복과 임실 발전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심 군수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군정에 정열을 쏟았다. 심 군수는 “군민을 바라보고 달려온 지 9년이 흘렀다”며 “그동안의 성과를 기반으로 남은 3년을 천만관광 임실 실현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첫 6000억 원 예산시대 실현 지난 한 해 임실군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역사상 첫 6000억 원대 예산을 실현한 것이다. 지난 2020년 역대 최초로 5000억 원 예산시대 이후 2021년과 지난해, 올해까지 4년 연속 5000억 원대 예산에 안착했다. 특히 민선 6기 2014년의 2886억 원에서 2022년 2회 추경에는 6564억 원으로 사상 첫 6000억 원 예산시대를 실현했다. 아울러 최종 예산은 6643억 원을 달성, 이러한 추세라면 민선 8기 임기 내 8000억 원 예산 시대는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중앙부처와 국회를 오가며 국가예산 확보는 물론 다수의 공모사업 선정 등 전 공직자와 발로 뛰는 행정에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오수 풍수해 생활권 종합정비(480억 원)과 임실군 농업기술센터 과학영농시설 구축사업(120억 원)이 확정됐다. 또 신재생에너지 융복합사업(21억 원) 등 역대 최대인 총 1401억 원의 국가 예산을 확보, 이는 전년 대비 80억 원이 증가된 수치다. 여기에 김관영 지사와 지역구 이용호 국회의원과의 긴밀한 소통으로 국가 공모사업과 신규사업 선정에 성과를 올렸다. 이를 통해 오수지구 도시재생 활성화(217억 원)와 옥정호 국가생태탐방로 조성(75억 원), 농어촌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35억 원) 등 총 30개 사업이 공모에 선정됐다. 이밖에 세계명견 테마랜드 조성(180억 원)과 오수 공공하수처리시설 증설 및 개량(171억 원), 강진 신기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62억 원) 등 현안 해결을 위한 다수의 신규사업도 확정됐다. 옥정호 관광개발 사업과 향후 계획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옥정호는 전라북도의 보물을 넘어 대한민국의 보물로 거듭나고 있다. 1965년 섬진강댐 축조로 50년이 넘게 눈으로 봤던 붕어섬은 작년 10월 출렁다리 개통 이후 12월까지 45만여 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250만 명에서 300만 명의 방문이 예상되고 천만관광 임실 실현을 위한 핵심 관광지로 주목될 전망이다. 전북도 동부권특별회계로 제2기 섬진강 에코뮤지엄 조성사업(250억 원)에 따른 요산공원 광장 정비와 붕어섬 주변 주차장 등도 추진했다. 지역의 특색있는 맛집을 육성키 위해 지방소멸대응기금 등 55억 원을 투자해 내년까지 한우 맛집과 로컬푸드, 카페 등의 한우 특화거리 조성사업도 추진한다. 특히 옥정호 붕어섬 일원에는 민간자본 유치로 케이블카 등 설치와 옥정호 수변도로 개설(620억 원) 등을 본격 추진할 게획이다. 최근 이슈 되고 있는 KTX 임실역 정차 해를 거듭할수록 임실군을 찾는 방문객 수가 다양한 방향에서 상당수가 증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데이터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임실을 찾은 방문객은 809만 명으로 코로나 이전 2018년(498만 명)보다 300만 명 넘게 늘어났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해 KTX가 정차하는 구례군(581만 명)과 곡성군(556만 명)보다 200만 명 이상이 많은 수치다. 또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임실역 이용객은 2020년 5만 1000명에서 7만 5000여 명으로 2만 명 넘게 증가했다. 옥정호와 치즈테마파크를 찾는 관광객과 더불어 35사단과 호국원 이용객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35사단에는 1200여 명의 장병이 주둔하고 연중에 걸쳐 예비군 훈련은 물론 해마다 20회 이상의 신병수료식이 열린다. 수료식에는 그들의 부모와 가족 등이 다녀가고 연간 면회객만 4만 5000명이며 호국원도 59만 2000여 명이 방문했다. 특히 KTX 정차는 익산에서 여수까지 가는 구간에 유독 군청 소재지인 임실역만 정차하지 않아 큰 불편을 겪고 있다. KTX가 정차하려면 지자체에서 사업비 200억 원이 소요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실역 정차는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 김관영 도지사와 이용호 국회의원 등 정치권과 합심해 반드시 성공, 순창과 진안, 장수군이 더불어 발전토록 교통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임실N치즈축제 성과와 사계절 장미원, 반려동물산업 추진 현황 임실N치즈축제는 전국적인 명성에 힘입어 축제기간 52만여 명의 관광객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를 통해 전북 대표축제는 물론 문체부 지정 문화관광 축제로 선정됐으며 9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브랜드로 선정됐다. 임실치즈의 아버지 지정환 신부와 임실치즈의 발자취, 성장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임실치즈역사문화관도 지난해 12월 준공됐다. 아울러 치즈테마파크 5만 3000㎡ 부지에 108종 1만 4000주의 유럽형 장미원 조성사업(98억 원)이 올해까지 완료된다. 지난해 12월 반려동물을 특화한 오수지구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217억 원)도 국토교통부 공모에 최종 선정됐다. 문체부의 세계명견 테마랜드 조성(180억 원)을 위한 국가 예산도 신규로 확보됐다. 이와 함께 오수 의견관광지를 중심으로 반려동물 지원센터 건립(80억 원)과 오수 의견관광지 정비(50억 원)가 추진 중이다. 이 밖에 국민여가 캠핑장이 조성(20억 원)되고 오수 공공동물장묘시설(60억 원)은 현재 사업이 운영 중이다. 반려동물 특화 오수 제2농공단지 조성(208억 원)도 우수 기업 유치가 한창이며 오수 제3농공단지 조성은 사업 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이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등 농업정책과 군민 복지정책 농촌 인력 문제 해소를 위한 전담 부서인 다문화교류과를 신설하고, 로컬JOB센터와 함께 농업인력을 원활히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계절근로자 54명과 올해 자매결연을 맺은 뚜옌꽝시에서 34명 등 모두 142명의 인력이 농가에 배치됐다. 또 쌀 적정생산량 유지와 쌀값 하락 방지를 위해 정부에서 추진하는 전략작물직불금으로 겨울철 조사료를 권장하고 있다. 하계에 논콩을 재배할 경우에는 ㏊당 국비 100만 원과 추가로 ㏊당 군비 160만 원의 생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밖에 논콩 수매장려금은 임실군이 ㎏당 500원, 농협에서도 500원을 각각 올 하반기부터 지원한다. 권역별 농기계 임대사업소와 농작업 대행 작업단 운영, 농작물 공동방제 등의 사업도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지원된다. 자연재해 예방을 위해 위험 요소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저출산, 고령화 등 생활복지 실현에도 적극 앞장섰다. 임실 풍수해 생활권 종합정비 사업(369억 원)과 오수 풍수해 생활권 종합정비 사업(480억 원)도 주민설명회 등 단계별 행정절차를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강진면 신기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62억원)를 위한 국가예산을 신규로 확보했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키 위해 첫째 300만 원, 둘째와 셋째 500만 원, 넷째 이상 800만 원의 출산장려금도 지원한다.

  • 기획
  • 박정우
  • 2023.07.16 16:54

소재철 건설협회 전북도회장 ”제 값 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건설문화 정착 전력투구“

"65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전라북도 최고의 건설단체인 대한건설협회 전라북도회의 회장직을 맡게 돼 무한한 영광이지만 한편으론 막중한 책임감에 두 어깨가 매우 무겁습니다. 도민의 안전과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 초석을 위해 제 값 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건설문화 정착을 위해 전력투구하겠습니다.“ 지난 5일 대한건설협회 전라북도회 제28대 회장에 취임한 소재철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제 값 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안전한 건설문화 정착"을 강조하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원칙이 존중되며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서 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35년 동안 건설산업 현장을 누빈 전문 경영인이면서 대한적십자사가 설립한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클럽인 RCHD(레드크로스아너스클럽) 회원으로 사회공헌 사업에도 열정적인 소재철 회장을 만나 앞으로 4년간 협회 운영방침과 지역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건설산업의 발전 방안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먼저 만장일치로 회장에 추대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취임 소감과 협회 운영 방침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우리 건설산업이 국·내외적으로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 회장을 맡게 돼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앞으로 저는 전북 건설산업의 위기 탈출과 협회 발전을 위해 회원들의 소중한 뜻을 받들어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우리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회원과의 소통 창구를 더욱 강화하고 협회를 중심으로 전북지역 건설업계가 하나 돼 업계에 당면한 과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난관들을 극복해 나가고자 합니다.” -회원사 권익 보호를 위한 대책은. “회원사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저의 첫 번째 추진 목표는 '안전과 수요창출, 수익성 제고'입니다. 전라북도 도민의 안전과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 초석을 위해 '제값 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건설문화 정착을 위해 전력투구(全力投球)하려 합니다. 지역밀착형 SOC사업을 적극 발굴 건의하고, 우리 전북의 희망인 새만금사업에 지역업체 참여 증진을 추진하겠습니다. 또, 종합심사제와 적격심사 제도의 낙찰률 상향, 합리적인 공사비 산정·조정·관리 기준이 마련되도록 본회와의 협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건설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낡은 규제와 제도 개선을 추진하려 합니다. 두 번째로 전라북도와 지자체, 지역 유관단체와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 '협력과 교류 강화를 통한 건설산업 활성화 도모'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전라북도 발전을 위한 지자체 사업추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한편,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고 애로사항 해소를 위해 지자체와 회원사 간 중재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습니다. 아울러, 발주기관이 우월적 지위에서 강요하는 자치법규와 불공정한 관행 및 특약 등의 개선을 추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건설산업 이미지 개선' 입니다. 협회가 앞장서 성실시공과 철저한 현장관리를 위한 주변환경을 조성하고, 부적격 부실업체의 시장 진입 억제와 상시퇴출을 유도하며 무등록 시공의 근절도 강력하게 추진해 전북도민들이 바라보는 건설산업의 이미지를 개선토록 하겠습니다. 특히,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회공헌사업에도 솔선수범해 도민으로부터 믿음과 신뢰받는 산업으로 만들겠습니다.“ -협회가 대표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슬로건이 있다면? ”지금의 어려운 건설 환경을 극복하고 전라북도 도민의 안전과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 초석으로 제값 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안전한 건설문화 정착을 위해 '안전한 건설문화, 함께하는 행복동행'이란 슬로건을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임기내 적극 노력할 계획입니다. 나아가 지역건설 산업발전을 위해 △지역 밀착형 SOC 사업 적극 발굴 건의 △새만금사업과 대형공사에 지역업체 참여 증진 추진 △유관기관과 소통강화 등을 통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원칙이 존중되며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서 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려합니다.” -당연직으로 도내 10개 건설단체 연합회장도 맡게 됐는데 앞으로 지역건설 산업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추진방향은 무엇인지요? “도내 건설업계는 지난 2007년부터 도내 종합건설협회와 전문건설협회 등 10개 건설관련 협회가 참여하는 ‘전라북도 건설단체 연합회’를 구성해 상호간 소통을 통해 다양한 업계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상생 방안으로는 지역 건설업체가 수주한 공사는 특허공법 외에는 대부분의 공사를 지역 전문업체와 하도급을 체결하고, 지역내에서 생산되는 자재나 장비를 활용하고, 지역의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건설업에 불황이 닥치면 결국 지역경제 성장엔 한계가 있습니다. 이에 저는 건설산업 관련 제도개선을 위해서 다양한 정보교류와 제도적 개선점을 도출하고 공동으로 관련기관에 건의해 보다 발전된 방안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추진해 지역경제 성장에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 건설단체 연합회도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동행하는 건전한 상생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도민과 함께하는 건설단체로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매진하도록 이끌어 가겠습니다.” -새만금 관련 공사 등 대형공사에서 외지대형업체들이 도내 건설시장을 대부분 잠식하고 있는데 이를 개선할 방안이 있다면? “지역 건설업이 일어서야 지역경기가 살아나고, 서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전북지역의 최대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은 대한민국의 모든 건설사들이 알고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이지만, 오늘날 우리 지역 건설업체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의 단편적이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사업자 선정시 공동도급을 통한 지역업체 49% 참여를 약속했던 새만금산업단지 조성 사업에 지역업체 참여는 아직 미진합니다. 물론 대형공사의 경우 정부간 협정으로 참여를 의무화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49% 참여를 약속했던 2008년 당시에도 해당 규정들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 지역업체의 참여비율 상향을 위한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에, 저는 우리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새만금개발사업 같은 대표 국책사업이 지역경제와 지역건설산업 발전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전라북도와 새만금개발청, 새만금개발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등의 관련기관과 지역업체 참여를 위해 우대 기준 같은 제도적인 지원제도 활용 이외에도 실질적인 지역업체 참여를 위한 적극적인 발주처의 추가 방안마련을 요구할 계획입니다. 나아가, 정치권에도 적극적인 예산확보로 국도·국가지원지방도로 사업이나 새만금국제공항 같은 대형 신설사업이 조속히 실행될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하고, 전북특별자치도 특별법에 지역기업 우대기준 마련을 추진해 지역건설산업이 전북지역의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매진할 예정입니다." -끝으로 회원사와 도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건설은 안전이고 행복입니다. 1960년대 세계 최빈국의 대한민국이 이뤄낸 한강의 기적을 시작으로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경제성장의 근간이 바로 건설산업입니다. 그동안 우리 건설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습니다. 물론, 급격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안전과 환경 등에 있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건설인의 값진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다고 자부합니다. 건설산업은 전북경제의 15.5%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입니다. 하지만 전북지역 건설업체의 수주액이 전국대비 열악한 실정으로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가운데 지역 내 건설산업을 통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도민여러분들의 지역업체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절대적입니다. 지금과 같이 지역건설업계를 한결같은 신뢰와 믿음으로 응원해 주시길 바라며, 지역건설산업의 성장이 곧 전북경제의 성장이라는 인식으로 지역건설산업 발전을 응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소재철 회장은 공학박사 학위와 건설안전기술사 자격을 보유한 전문 엔지니어 출신 CEO로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 부회장과 감사, 본회 기획위원, 대외협력위원, 건설공제조합 대의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지난 5월 대한건설협회 전북도회 임시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28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1958년생인 그는 남원출신으로 원광대학교에서 토목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 건설산업최고 전략과정(ACMP1기)을 수료했다. 주요경력으로 △대한건설협회 기획위원회 부위원장, 대의원 △건설공제조합 대의원 △대한토목학회 전북지회 부회장 △전주시 덕진구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 △전북애향본부 부총재 △전주상공회의소 부회장 △전주 완산경찰서 경찰발전 협의회 위원 △법무부 청소년 범죄예방위원회 전주지역 상담분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행정자치부장관 표창장 △법무부장관 표창장 △국무총리 표창장 수상 등이 있다.

  • 기획
  • 이종호
  • 2023.07.16 16:44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바다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해양생태계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시민사회단체, 정치인, 일반인을 막론하고 서명운동을 비롯한 기자회견, 캠페인 등 반대 움직임이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앞바다에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되었으나 원자로 건물의 균열 틈새로 지하수와 빗물 등이 유입돼 매일 140톤가량의 ‘방사성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000여 개의 저장 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를 이르면 올해 8월부터 30년 이상 태평양에 방출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를 통해 오염수 내 방사성 물질들을 제거한 ‘처리수’를 바다에 방류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세계의 전문가들은 일본 도쿄전력의 데이터의 신뢰성과 ALPS의 방사성물질을 100% 제거할 수 없는 기술적 문제와 안정성 등을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정부에서도 지난 5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검증을 위해 5박 6일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시설 등을 점검하기 위한 시찰단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시찰단이 밝힌 내용은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시설을 둘러보고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발표를 들으며 단순히 오염수 투기 계획을 눈으로 둘러보고 왔을 뿐이었다. 시찰단은 성능검증을 위해 직접 시료를 채취하지 못했냐는 지적에도 IAEA(국제원자력기구) 차원의 검증을 기다리는 말만 반복했다.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오염수 속에 포함된 방사성물질의 종류와 총량을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시찰단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의 명분을 만들어주는 들러리 시찰이라는 비판을 샀다. 환경운동연합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 설문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85.4%가 반대 의견을 나타냈고, 조사 대상의 연령, 성별,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후쿠시마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는 대신, 지상에 장기 보관을 해야한다.’는 질문에는 우리 국민의 78.3%가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대다수의 국민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대응이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 오히려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지난 7월 4일 국제원자력기구 IAEA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계획이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제시한 자료 이외에는 검증하고 평가한 내용이 거의 없다. 또한, 보고서의 도입부에 ‘IAEA와 회원국은 이 보고서의 사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중대한 사안에 대하여 명분을 제공하고 후에 책임을 회피하는 IAEA의 보고서는 신뢰하기 어렵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 12년이 지났다. 그러나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할 방법이 없어 폐로를 진행하지 못하고 고농도의 방사성 오염수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는 방사능 오염수의 방류가 계획한 30년으로 끝이 아닌 수백 년 해양투기의 시작점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물질의 종류와 총량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밝힌 적이 없고 방사성물질의 ‘생물학적 농축’에 대해 제대로 연구한 적도 없어 우리 어민과 수산업 종사자들의 걱정이 커져만 가고,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걱정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후쿠시마 표층 해수의 방사성물질 세슘과 우리나라 표층 해수에서의 방사성물질 세슘 검출 차이는 약 4배이다. 그러나 어류에서의 검출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후쿠시마 어류에서는 1.36Bq/kg의 세슘이 검출됐고, 우리나라 어류에서는 0.0679Bq/kg 세슘이 검출돼 약 20배 차이가 난다. 방사성물질의 생물학적 농축 문제는 단순히 해수 농도의 변화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일본 정부는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까지 정화하여 바다로 배출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원전 보유 국가들도 삼중수소가 포함된 물을 바다로 배출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원자로 냉각수와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오염수가 같지 않고, 향후 초래할 위험은 불확실성이 클뿐더러 삼중수소뿐만 아니라 제거하지 못한 방사성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희석하여 처리한다고 하여도 바다로 배출되는 방사성물질의 총량에는 변화가 없다. 결국 현재 1,000개의 탱크에 보관 중인 140만 톤의 오염수가 바다로 버려지는 것이다. 바다는 어느 한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며 쓰레기통이 아니다. 오염수 방류가 최소 30년 이상 진행되고, 한번 바다로 나가면 회수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오염수 처리 방식에는 해양방류 이외에도 육상 보관이나 콘크리트 고형화 등 대안이 있다. 바다에 사는 생명들과 나아가 수산물을 소비하는 인간까지 전 지구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장진호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3.07.12 14:16

'지속가능한 생태농촌·농촌유학 1번지' 진안, 소통과 혁신으로 만든다

‘새로운 시작으로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미래 진안.’ 전춘성 진안군수가 지난해 재선 성공 직후 전임군수의 군정비전을 폐기하고 새롭게 내건 민선 8기 군정비전이다. 민선 8기 전춘성 군수는 이 같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렸다. ‘진안의 성공시대’를 위해 소통과 혁신을 강조하고 생태환경농업이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고자 행정역량을 집중했다. 진안읍 원도심을 재조성해 녹색문화도시 전환에 박차를 가했고, 지난해 말 대비 150명을 웃도는 인구증가를 이끌었다. 진안고원 지방정원과 군립자연휴양림을 조성을 위한 움직임도 시작했다. 특히, 지난 시절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용담댐 활용 카드를 꺼내들어 용담호 에코토피아 조성과 용담호 생명수 탐방길 조성을 위한 발걸음을 분주히 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과 생태환경 농촌을 만들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한 민선 8기 지난 1년 진안군정을 돌아보고 향후 과제와 군정방향을 알아본다. 지속가능한 농업환경 만들기 박차 지난 1년 동안 전춘성 군수는 농촌지역인 진안을 위해선 농업분야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이런 생각 아래 현 단계 농업의 가장 큰 걸림돌인 일손부족 문제를 완벽히 풀어냈다. 국내 인력을 수급해주는 4개 인력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을 대폭 확대했다. 내국인들이 진안에 와서 묵을 수 있는 농업인 기숙사(1일 40명 숙박 가능) 설립에 착수했다. 외국인 근로자 도입과 관련, 각국 결혼이민자 가족을 초청(23년 6월 현재 162명)하거나, 필리핀 지자체(23년 현재 167명) 또는 태국 노동부(23년 6월) 등과 계절근로자 도입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뿐 아니다.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대폭 확대 운영하고, 수박, 사과, 건고추, 인삼 품목에 대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시행했으며, 학교급식, 진안고원몰, 로컬푸드매장 등 농산물 판로를 적극 개척해 농업인들의 안정적 소득을 보장을 이끌었다. 적극적인 용담호 활용 민선 8기 진안군은 ‘용담호를 활용하는 길이 살 길’이라고 보고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펼쳤다. 이런 연장선에서 진안군은 환경부사업에 공모, 선정돼 올해부터 3년간 40억 원(국비 20억 원)을 들여 용담호 주변에 탐방길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이 사업이 마무리돼 용담호탐방길이 조성되고, 이에 더해 용담호에코토피아 사업까지 완료된다면 용담호의 활용 가치는 크게 높아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 말고도 전춘성 진안군수는 그동안 130만 명의 전북지역과 충남지역(금산, 서천) 시민들에게 1일 144만톤 공급되는 용담호 물을 정작 용담댐 수몰 피해자인 진안군민의 절반가량이 먹지 못하고 있던 불합리를 해결, 조만간 모든 진안군민이 용담호 물을 먹게 된다. 주민의견 반영한 최고 복지 민선 8기 지난 1년 동안 진안군은 복지 분야에서 주민의견에 귀 기울이고 많은 부분을 반영해 소통에 따른 여러 가지 성과를 거뒀다는 평을 들었다. 전춘성 군수는 물론 관계부서 직원들이 군민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구하고 군정에 반영하려 애썼다. 어르신 이‧미용비, 취약계층과 어르신 목욕비, 청소년 드림카드, 어르신 농어촌버스 무료이용 지원 시 대상을 확대한 것이 단적인 예다. 또 도내 최초로 발달장애인 24시간 긴급 돌봄사업을 추진했으며 보훈명예수당은 전북에서 가장 많은 금액(13만원)으로 지원했다. 군립 자연휴양림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자연휴양림을 찾는 것이 대세인 요즘, 민선 8기 진안군은 기존에 조성된 2개소(국립, 도립) 자연휴양림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군립 자연휴양림 조성을 시작했다. 군립 자연휴양림은 진안 관내에는 운장산 국립 자연휴양림과 데미샘 도립 자연휴양림에 이어 휴양림으로는 세 번째가 된다. 신규 조성되는 군립 휴양림 위치는 부귀면 황금저수지 일원이다. 하루에 100명이 묵을 수 있는 숲속의 집(12동)과 산림휴양관, 방문자센터, 숲속야영장 등이 조성되며 오는 2026년 마무리된다. 해마다 6만명 이상 방문할 것으로 보이며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죽음의 도로’ 보룡재 개량 공사 지속 추진 민선 8기 1년 동안 전춘성 진안군수는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을 잇는 국도 26호선 보룡재, 일명 ‘소태정재’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없애고자 보룡재 도로개량을 강력 건의했다. 소태정 고갯길은 지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일정에 맞춰 급하게 공사가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경사가 가파르고 급커브 구간이 많아 사고 위험이 아주 높아 ‘죽음의 도로’라 불리기도 한다. 이 도로의 개량 공사(2016부터 2030까지 국비 602억원)를 제6차 국도, 국지도 계획에 반영해 줄 것을 익산국토청에 건의한 것이다. 농촌유학 1번지 진안을 농촌유학 1번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민선 8기 진안군은 농촌유학이 진안과 같은 농촌지역에선 학교 통폐합 위기 탈출은 물론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유력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외부학생유입 교육인프라 구축에 힘입어 해마다 줄어들고 있던 진안군 인구가 지난 2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서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올 초 대비 150명가량 늘었다. 그동안 펼쳐왔던 출산, 육아지원, 귀농귀촌 지원, 청년지원, 주거복지 지원 등 여러 분야에서의 정책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게 일각의 분석이다. 앞으로 민선 8기 진안군은 보다 적극적으로 농촌유학 활성화에 나선다. 이를 위해 부귀면에 농촌유학 가족체류형 거주시설(다세대 주택 9개동 18세대)을 설립하고, 백운면과 성수면에는 맞춤형 행복주거 플랫폼을 구축한다. 웅치전적지 국가 문화재 지정 앞장 민선 8기 진안군은 지난해 말 웅치전적지를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시키는 데 적극 나섰다. 국가 사적 지정을 받으면 역사적 가치를 드높이는 일이어서 군민 모두가 크게 환영했다. 진안 부귀면에서 완주 소양면으로 넘어가는 곳에 위치한 웅치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호남을 점령하기 위해 전주로 향하는 왜군을 맞아 조선의 관군과 의병 연합군이 처절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웅치전투는 조선군 군량미 조달지인 곡창지대 호남을 지켜내 결국 나라를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민선 8기 진안군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함께 힘을 모아 웅치전적지 성역화에 앞장선다. 전춘성 진안군수 " “소통과 혁신으로 새롭고 희망찬 미래진안을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지난 7월 3일 민선 8기 취임 1주년을 맞은 전춘성 진안군수는 새로운 시작으로 성공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도구를 소통과 혁신이라고 지목했다. 전 군수는 지난 1년간의 가장 큰 성과에 대해 민선 8기 핵심 가치인 ‘소통 실현’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소통을 통해 군민 목소리를 고스란히 정책에 녹여내 군민 공감을 얻어냈다고 자평했다. 그는 “민선 8기의 시작과 함께 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 있는 행정을 강조해 왔다”며 “취임 2년차인 올해는 진안지역의 대도약과 대전환을 향한 기반을 단단히 다질 것”이라고 했다. 향후 군정 수행 방향에 대해 “현재를 넘어 미래를 아우를 혁신 성장을 이끌어 내겠다”며 “진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사람이 모이는 지역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타 지역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생태, 환경, 문화 등의 자원을 극대화해 지역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 자원과 연계한 생태관광, 치유농업, 녹색도시 조성 등 지속 가능한 도시경쟁력 제고와 생태도시 조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지역 특색을 살린 농촌다움으로 군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으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그는 용담호에 대해 “만약 130만 시민의 생명수인 용담호가 오염 등으로 문제가 생겨 물 공급이 중단된다면 심각한 국가적,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라며 “용담호를 보다 더 맑고 깨끗하게 지켜나가면서 가치를 높이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용담호 물을 식수 등으로 사용하는 전라북도민은 용담호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수몰로 삶의 터전을 내준 진안군민의 애환을 공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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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승호
  • 2023.07.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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