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4 23:30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잘 놀고, 잘 먹고, 잘 쉬고"⋯올여름 휴가는 '잘잘잘'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여름 휴가가 다가온 가운데 전 세대가 꼽은 올여름 휴가철 트렌드는 '잘 놀고, 잘 먹고, 잘 쉬는' 것이다. 5일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가 발표한 2025년 여름 휴가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올해 여름 휴가 출발 시기는 8월 중·하순(29.6%), 7말8초(28.5%)에 가장 많이 집중될 것으로 나타났다. 9월 이후 늦은 휴가를 예정하는 응답(19.1%)도 적지 않았다. 휴가 일정은 3∼4박(39.7%), 1∼2박(38.2%)이 비슷한 수준으로 많았다. 5박 이상(13.7%)이나 당일치기(4.8%) 일정은 비교적 적었다. 여름 휴가에서 기대되는 점으로는 충분한 휴식과 힐링(43.7%)이 가장 많았다. 스트레스 해소 및 재충전(23.9%), 가족·지인과의 추억 만들기(22.4%), 새로운 경험과 도전(9.8%)이 뒤를 이었다. 여름 휴가에서 시도해 보고 싶은 여행 스타일로는 로컬 맛집·카페 투어(41.3%), 프라이빗 숙소 중심 휴양(34.9%), 캠핑·글램핑(8.2%), 이색 액티비티 체험(7.1%), 워케이션(5.4%) 등 순이다. 상대적으로 20대는 로컬 중심의 식도락 여행을, 30∼40대는 독립된 공간에서의 휴양을 선호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직장인 여름휴가 계획 및 정책과제 조사를 봐도 휴가 활동을 묻는 질문에 전국 직장인 절반(49.3%)은 휴식·자연 풍경 감상을 꼽았다. 이어 맛집 탐방(21.0%), 관광(20.2%) 등 순으로 집계됐다. 액티비티(8.3%)보다는 먹고 쉬는 콘텐츠가 강세를 보였다. 휴가비는 1인당 지난해(48만 9000원)보다 9.4% 증가한 평균 53만 5000원을 사용할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직장인은 지출 계획이 77만 6000원으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전남은 39만 3000원에 그쳤다. 전북은 60만 원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았다. 지출을 늘릴 항목 1위는 식비(74.8%), 2위 숙소비(58.1%), 3위 교통비(31.0%) 순으로 조사됐다. 이번 여름 휴가는 먹고 쉬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올여름 휴가는 관광 위주의 이동보다 저활동 고휴식 소비 트렌드가 두드러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류인평 전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경제가 안 좋다 보니 기존의 휴가 트렌드인 활동적이고 돈 쓰는 것보다는 저활동 고휴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추세다"며 "이제는 돈을 끌어모으는 관광 상품보다 정말 농어촌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상품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흔히 웰니스 관광이라고 부른다. 전북에도 관련 상품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더 개발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 차려지고 화려한 것보다 정말 그 지역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로컬적인 부분이 두드러져야 한다.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된 상품이 필요하다. 지역민만 아는 특별한 장소, 맛집 위주로 홍보하는 것도 좋다"고 제언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7.05 11:43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51) 죄인군물성책과 물금첩기

△죄인군물성책(罪人軍物成冊) 「죄인군물성책(罪人軍物成冊)」은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 토벌 과정에서 확인한 동학농민군 명단과 물자를 기록한 자료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는 25×27cm이다. 이 자료는 「친군경리청장졸성책(親軍經理廳將卒成冊)」, 「선봉대장진배행장관좌목(先鋒大將陣陪行將官座目)」,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親軍壯衛營將卒實數成冊)」, 「교도소출주장병성책(敎導所出駐將兵成冊)」, 「본진별군관차출기(本陣別軍官差出記)」, 「창의인명록(倡義人名錄)」, 「죄인록(罪人錄)」 등과 함께 『각진장졸성책(各陣將卒成冊)』으로 합본되어 1996년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에 실렸다. 이 자료에는 1894년 11월 16부터 11월 26일 사이에 물리친 동학농민군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백정복(白正福), 고영만(高永萬), 이복만(李福萬), 최도수(崔道水), 김자근봉(金者斤奉), 김순천(金順川), 이정천(李正川), 민성심(閔成心), 호한성(扈漢成) 총 9명이다. 이들은 모두 2004~2009년 사이에 활동한 국무총리소속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등록되었다. 다음으로 관군이 이들을 격파한 후에 획득한 군물(軍物)이 기록되어 있다. 총 35자루, 창 80자루, 철환(鐵丸) 3두(斗), 화약 100근, "대선생신원기(大先生伸冤旗)"라고 적혀 있는 거소위대장기(渠所謂大將旗) 2기(旗), 영기(令旗) 1쌍, 반낭(飯囊) 18건, 대장석(大將席) 1건, 환도 5자루, 동학농민군 지도자가 탔던 백마 1필, 소 1쌍, 장이(長耳) 1필, 엽전 100냥, 홍의장삼(紅衣長衫) 1건, 뇌장(雷杖) 하나 등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이들은 적어도 100여 명 이상의 동학농민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적지 않은 무장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선생신원기(大先生伸冤旗)라고 적혀 있는 대장기를 지닌 것으로 보아 동학교단의 교조신원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활동을 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학농민군 개별 부대의 무장 상태 및 지향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금첩기(勿禁帖記) 「물금첩기」는 1894년 관군 측이 동학농민군 진압 과정에서 체포하거나 침탈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을 정리해 놓은 명단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는 25×28cm이다. 이 자료는 「친군경리청장졸성책(親軍經理廳將卒成冊)」, 「선봉대장진배행장관좌목(先鋒大將陣陪行將官座目)」, 「친군장위영장졸실수성책(親軍壯衛營將卒實數成冊)」, 「교도소출주장병성책(敎導所出駐將兵成冊)」, 「본진별군관차출기(本陣別軍官差出記)」, 「창의인명록(倡義人名錄)」, 「죄인록(罪人錄)」 등과 함께 『각진장졸성책(各陣將卒成冊)』으로 합본되어 1996년『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에 실렸다. 물금첩기(勿禁帖記)는 다른 관사 혹은 외부로부터의 침탈을 방지하기 위해 발급해 주는 이른바 “물금첩(勿禁帖)”의 발급 내역을 기록해 놓은 문서인데 “물금첩(勿禁帖)”은 동학농민군과 관군 양쪽에서 모두 발행하였다고 한다. 일명 “물침표(勿侵標)”라고도 한다. 여기에서의 「물금첩기(勿禁帖記)」에는 관군에서 발급한 내역이 수록되어 있다. 종이에 고을의 이름, 면(面)의 이름, 동(洞)의 이름, 마을의 이름, 해당자의 이름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를테면 “무안(務安) 일로면(一老面) 인의산(仁義山) 이치옥(李致玉) 이치순(李致純) 수성장(守城將) 정규섭(丁圭燮)”, “공주(公州) 노성소삼면(魯城少三面) 가절리(佳節里) 윤참봉(尹參奉) 형제(兄弟)” 등으로 기록되어 있어 각 고을별, 면별, 마을별 침탈되어서는 안될 사람들의 명단이 기재되어 있다. 이들은 관군에 의하여 동학농민군으로 지목되지 않고 보호를 받아야 할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공주(公州) 요당면(要堂面) 신성리(新城里)”라고 기재된 경우 경우는 마을 전체가 침탈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에는 충청도 공주, 노성, 임천, 유성, 온양, 아산, 진천, 청안, 부여, 진잠, 천안, 연기, 문의, 면천, 보령, 전의, 정산, 청주, 서천, 한산, 충주, 전라도 익산, 여산, 무안, 해남, 진도, 영암 등에 발급한 물금첩의 내역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해당 지역에서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하여 남하한 관군이 끼친 영향력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또한 동학농민군과 구별되거나 동학농민군에 대척점에 서 있었던 인물 내지 마을들의 내역 또한 파악할 수 있다. 이를테면 수성장(守城將)의 직책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동학농민군에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중에는 이 「물금첩기(勿禁帖記)」 말고도 1894년 11월 나주목에서 발급한 「홍우전물침접(洪祐銓勿侵帖)」, 1894년 12월 무안군에서 발급한 「물침첩(勿侵帖)」, 남평현감이 발급한 「이정돈물침첩(李廷燉勿侵帖)」 등도 있다. 이와 같은 각종 “물침첩(勿侵帖)” 및 「물침첩기(勿禁帖記)」는 동학농민군 활동에 가담하지 않았던 인물 및 마을들을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향촌 사회의 동향을 알려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유바다 고려대 교수 유바다 고려대학교 교수

  • 기획
  • 기고
  • 2025.07.03 14:29

12대 전북특별자치도의회 후반기 1주년, “국정 혼란 속, 도민 안정·민생 회복 의정활동 총력”

제12대 후반기 전북특별자치도의회(의장 문승우)가 출범 1주년을 맞았다. 지난 1년 전북자치도의회는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국정 위기 속 도민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지역 현안 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을 위해 의정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도의회 역할 및 위상 확립을 위해 의원 정수 확대 이슈를 공론화하고 앞장섰으며, 기후위기 대응, 농촌 고령화 등 생활 밀착형 조례 제정을 통해도민들의 의정 체감도를 높이는 주력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도의회는 한빛원전대책특별위원회와 전북탄소중립특별위원회, 인구위기·지방소멸극복특별위원회 등을 지속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각종 지역 현안에 대한 대응과 해법 찾기에 전력했다. 도의회의 지난 1년 활동과 성과를 상임위원회별로 정리해 본다. △ 의회운영위원회 의회운영위원회(위원장 윤수봉, 부위원장 염영선, 권요안·김동구·김명지·김성수·김슬지·김이재·오현숙·장연국·전용태 의원)는 도민 중심의 정책 추진을 통해 ‘일잘하는 의회, 함께 만드는 전북’을 실현하기 위한 의회 시스템 마련에 역량을 집중했다.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 유치지원, 인구위기·지방소멸 극복, 첨단전략산업 지원, 한빛원전 대책, 초고압 송전선로 대책, 균형발전 성과 제고를 위한 전북 균형발전 등 6개 특별위원회의 구성결의안을 심의해 도의회가 전북 현안 사업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하는데 적극 나서도록 했다. 전북특별자치도의회 기획행정위원회가 지난 3월 27일 전북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현장을 방문한 모습/사진=전북특별자치도의회 △기획행정위원회 기획행정위원회(위원장 최형열, 부위원장 김슬지, 강태창·김명지·염영선·이수진·정종복·한정수 의원)는 인구 유출과 저성장 지속화로 전북경제 위기가 심각함에 따라 계층별 지원책이 세밀하게 추진되도록 전북자치도 집행부에 강력히 주문했다. 도정질문을 통해 기행위는 전북의 신규 저출생 대책은 ‘사회적 격차, 사각지대’의 문제 해결을 간과했음을 지적하며, 출생 기본 수당 도입과 소상공인·자영업자·농어업인 등에 맞춤화된 출산 및 육아휴직 수당 지원 등 전북형 정책 도입을 적극 제안했다. 5분 발언을 통해서는 전북의 국가 수출 1%대 등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 위기를 경고하고 실효성 있는 경제 대책 수립을 요구했다. 이외에도 전북특별자치도 자치행정 내실을 다지고 재정 자립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 특례과 잇따른 고위공직자 비위행위에 따른 개선 마련 등 공직기강 확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농업복지환경위원회 농업복지환경위원회(위원장 임승식, 부위원장 권요안, 국주영은·김정수·오은미·오현숙·이정린·황영석 의원)는 전국 최초로 ‘마을자치연금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고령화 사회 지역 내 안정적인 소득 창출을 도모하고, 화력발전소 중단, 악취관리지역 추가 지정, 사립유치원 석면해체공사 지원 등 지역민 보호를 위한 각종 환경 대책 마련에 앞장섰다. 쌀값 대폭락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국민 사과 및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필수농자재 국가지원 법률제정과 기후재난에 따른 벼멸구 피해 대책 마련,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연령제한 폐지 등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을 요청했다. 도정질의 등을 통해선 상품성이 부족한 농산물의 판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못난이 농산물 유통 활성화 지원 조례안’과 ‘농어업·농어촌 공익적 가치 지원에 관한 일부 개정 조례안’, 외국인 노동자 보호 및 지원 조례안, 친환경 현수막 이용 촉진을 위한 재활용 활성화 관한 조례 등 다양한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경제산업건설위원회 경제산업건설위원회(위원장 김대중, 부위원장 김동구, 김만기·김이재·나인권·서난이·이병도·임종명 의원)는 지난 1년간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로 인한 도내 중소기업 피해를 신속 대응하고자 긴급 간담회와 상황 점검 및 제도적 지원에 적극 나섰다. 지역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현장 의정 활동 등 다각적인 방안 모색에도 주력했다. 지난 연말, 고환율 및 탄핵발 경제 혼란이 가중될 때에는 ‘전북 민생경제 긴급’ 토론회를 열고, 민생지원금과 지역상품권 발행 등 도민 체감형 지원방안을 제안하는 등 도민 생활 안정에 적극 나섰다. 지역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한건설협회를 비롯한 건설관련 5개 단체와 ‘지역 건설산업 활성화 특별간담회’를 열어 지역 건설시장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 △문화안전소방위원회 문화안전소방위원회(위원장 박정규, 부위원장 김성수, 김정기·김희수·박용근·이명연·장연국 의원)는 ‘친환경 산악관광진흥지구 지정 조례’, ‘복합재난 안전관리 조례’, ‘문화자치 조례’, ‘일·휴양연계 관광산업 육성 조례’ 등 주민 생활과 직결된 조례안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입법 기반 마련에 앞장섰다. 도정질문과 5분 발언 등을 통해 전북도립국악원과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문화기관의 특혜 및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컬링전용경기장 등 체육시설 건립의 타당성, 412억 원 규모 민간위탁사업의 사후검증 부실, 지역축제의 예산 낭비 및 1회성 운영 등 문화·체육 전반적인 사안에 대한 지적 및 대안을 제시했다. △ 교육위원회 교육위원회(위원장 진형석, 부위원장 전용태, 강동화·박정희·윤수봉·윤영숙·윤정훈·이병철 의원)는 인구감소에 대응해 다른 지역 학생들이 도내 농어촌 지역 학교로 전학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농어촌유학 활성화 조례’를 제정했으며, 5분 자유발언을 통해서도 인구감소에 대응하여 지자체와 협력하는 등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학생 폭염 피해 예방을 위한 조례와 안전한 교육활동 공간 조성 및 학생 안전을 위한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친환경 운동장 조성 및 관리 조례’ 등을 제정하여 쾌적하고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에 나섰다. 또한, 학생들이 민주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배우고 익혀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헌법교육 활성화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문승우 도의장 미니 인터뷰, “도민을 정책의 중심에 두고 일심전력(一心專力) ” “국가적 혼란속에서도 민생 안정과 지방자치는 결코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시대적 책임감을 갖고 의정을 이끌어 왔습니다” 문승우 도의장은 “후반기 도의회 출범이후 12.3내란과 윤 대통령 탄핵 그리고 조기대선에 따른 이재명 정부 출범까지 중앙정치는 격랑의 연속이었다”며 “단체장은 단체장의 일을, 지방의원은 지방의원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우리 사회가 굳건히 지탱될수 있을 것이란 신념아래 본연의 소임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일 잘하는 의회, 함께 만드는 전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출범한 12대 후반기 의회는 외적으로는 전북발전을 위한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내적으로는 의회독립과 위상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라고 자평하며 “남은 1년동안도 도민을 정책의 중심에 두고 집행부와 함께 열심히 일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많은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여전히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지적도 있다”라며 “불합리한 ‘지자체 추경예산 제도’ 개선을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등과 함께 촉구하는 등 풀뿌리 지방자치 정착을 위한 제도 마련 및 법안 정비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의장은 “위기는 항상 기회와 함께한다”라며 “우리 전북이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 전북으로 도약하는데 저와 우리 도의회가 디딤돌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겠다”면서 도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 기획
  • 백세종
  • 2025.06.30 19:10

송병주 완주-전주통합반대대책위원회 선임대표 "완·전 통합, 전주시 중심 행정…주민 복지 소외 우려"

완주-전주통합을 두고 통합 반대의 중심에 있는 단체가 완주-전주통합반대대책위원회다(이하 반대대책위). 반대대책위는 완주-전주통합 찬성 단체가 주민 서명을 받아 완주군에 서명부를 전달한 후 통합 추진 절차에 들어간 데 대응하기 위해 꾸려졌다. 완주-전주통합 반대의 선봉에 있는 송병주 선임대표(71, 삼례읍)를 반대대책위 사무실(완주군 봉동읍 완주새마을회관 2층)에서 만났다. 송 대표는 농민회 전북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전북지역 농민운동의 산증인으로, 지난 2013년 통합 추진 때도 반대 입장에 섰다. - 완주-전주통합반대대책위원회가 어떤 조직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지난해 6월 완주군 70여 개 사회단체 중 67개 단체가 참여해 구성한 연대 조직입니다. 저와 이종준 완주군체육회장·정환철 완주군애향운동본부장이 선임대표로 있고, 67개 단체 대표가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완주군의회 통합반대특위와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 찬성단체의 경우 찬성 당위성을 홍보하고 완주군민 속으로 들어가려는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반대대책위는 어떻게 활동을 해왔는지. "매주 화요일 대표단과 집행위원 등이 정기회의를 통해 일상 활동을 점검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주요 사안이 있을 때는 공동대표와 읍면별 대책위 대표들이 전체회의를 합니다. 반대서명 활동과 장터 선전전 등을 통해 왜 통합에 반대하는지 주민들에게 알렸습니다. 반대 이유를 담은 팸플릿을 만들어 4만여 장을 배포했습니다." - 통합 반대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완주군민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전북도에 완주군민 대상으로 몇 차례 여론조사를 했고, 찬반이 엇비슷하게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완주 원주민과 새로 전입한 주민간 차이가 있어요. 반대측에서 만나는 주민 10명 중 1명은 미래를 위해 찬성해야지,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반대 기류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구 밀집지인 아파트단지 주민 여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완주-전주 통합으로 두 지역발전에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으로 찬성측에서 주장하는데. "물론 도로와 상하수도 등 개발분야에서 행정통합으로 장점이 있어요. 그러나 문화 복지 소방 치안 분야의 경우 규모가 크면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봅니다. 한두 가지 유리하다고 통합의 명분이 될 수 없습니다.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은 주민 참여입니다. 규모가 클수록 의견 제시나 의제 설정에서 주민참여가 어렵습니다. 유럽의 경우 기초 지자체 규모가 평균 7~8만 명이고, 일본도 4만 명 지자체가 많습니다. 우리 기초 지자체의 평균 인구는 20만 명입니다. 행정통합이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통합 후 특례시를 한다거나 4개 구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지만, 자치권을 가진 구가 아니어서 전주시 중심으로 행정이 이뤄져 완주군민들의 소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전북도는 통합을 이루면 전주올림픽 유치, 대광법 통과에 따른 간선도로 확충, 새 정부 출범으로 특례시 지정 등 전북이 도약할 발판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완주군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닌지. "전주올림픽 유치나 도로개설 등에 전주시와 협력할 사안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광역시 없는 전북의 소외를 들어 특례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통합 후 설령 통합시가 되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요. 인구 170만 명 전북에서 그러잖아도 작은 시군들이 더 위축되고 삶의 여건은 더 불리해져 인구유출도 증가할 것입니다." - 전주시와 전주시민협의회가 발표한 107개 상생발전이 실현된다면 완주발전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라는 찬성측 입장을 어떻게 보시는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봅니다. 전주시의회나 시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구체적으로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전주시 재정 형편을 들여다보면 실현이 몇 개나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전북도가 제정한 12년간 완주군민이 누리는 혜택을 유지한다는 것도 통합으로 완주군민이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전제로 만든 조항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통합 후 완주군민이 그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겠습니까. 전주시민을 대변하는 의회가 언제까지 완주군민만 혜택을 줄 수 있을까요." -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로 전주의 변두리 전락, 혐오시설 이전, 복지혜택 축소 등이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전주시와 찬성 단체는 전주시청사 이전과 혐오시설 설치 불필요, 일정 기간 복지혜택 유지 등을 약속합니다. 확고한 약속이 담보되면 반대 이유로 명분을 잃는 것 아닌지. "전주시청사 이전만 해도 완주군 이전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뜩이나 전주도심권 공동화가 심각한데, 전주시민 전체는 몰라도 현 청사 인근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현 전주시청사가 비좁은 상황에서 2청사 이전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근 익산시 통합 때도 시청사를 익산군에 두겠다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청주시 역시 청원군으로 청사 이전 약속을 버렸습니다." - 청주-청원 통합이 행정 통합의 모범 사례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통합 전 전주-완주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청주-청원이 통합으로 획기적 지역발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어떻게 보는지. "전가의 보도처럼 두 지역 통합을 말하지만, 사실과 많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청주는 수도권에 가깝기도 하고, 통합 전부터 청원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었습니다. 청주가 아닌 청원 입장에서 봐야 하는데, 청원은 통합 후 그만큼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존 복지혜택을 보장한다고 해놓고 지키지 못했고, 혐오시설 설치를 두고도 갈등을 빚었습니다." - 통합 반대가 주민 뜻과 별개로 완주군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 상실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통합을 긍정적 생각하거나, 반대운동을 폄하하는 차원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통합으로 완주군 특성을 살린 정책이 제대로 실현될 수 없습니다. 농업과 노인인구 많은 특성을 살리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군수가 없어지고, 군의원 수가 줄어들면 주민의 뜻을 대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 통합 찬반측이 통합의 장단점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공론의 장이 미진한 데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찬반 민간단체들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요. "민간 차원의 공식적인 토론 자리는 없었지만, 방송토론이나 완주군상생발전위원회 등을 통해 찬반이 어떤 면을 내세우는지 어느 정도 알렸다고 봅니다. 주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찬반 인사들간 접촉도 늘어날 것입니다. 통합이 이뤄지든 아니든, 모두 완주에 살 것이기 때문에 갈등과 후유증을 앓지 않도록 하는 데도 관심을 두겠습니다." - 완주군 주민들 대다수가 통합에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주민투표에 붙여 완주군민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 되지 않을지. "기본적으로 주민의견을 중심으로 결정하는 게 민주주의지요. 주민투표가 합리적이지만, 지난 통합 추진 때 주민투표로 인한 상처와 후유증을 경험했습니다. 행정력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군의회에 결정을 맡길 수 있는데, 의회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상황에서 결국 주민투표로 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찬반 양측이 상대를 존중하며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대표님 말씀처럼 행안부 권고로 찬반 주민투표 실시가 예상되는데, 반대대책위는 어떤 활동으로 대응할 계획인지. "주민투표가 결정되면 공청회와 지역 순회를 통해 주민과 접촉면을 넓히겠습니다. 과거 군수와 군의회 의원들이 찬성 위치에 있을 때 반대활동을 하면서 욕을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유입 인구가 많이 증가한 만큼 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알리겠습니다. 청주-청원 통합 때 통합 반대를 했던 청원군 반대대책위가 투표 거부운동을 하면서 통합이 성사됐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대응할 것입니다."

  • 기획
  • 김원용
  • 2025.06.30 19:03

박진상 전주시민협의회 위원장 "완주·전주 통합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대통령 선거 이후 완주·전주 통합 시계추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그만큼 찬반 대립도 극심해지고 있다. 이에 전북일보는 건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찬성 측을 대표해 박진상 완주·전주 상생발전 전주시민협의위원회 위원장, 반대 측을 대표해 송병주 완주·전주 통합반대대책위원회 선임대표를 각각 인터뷰했다. 그 첫 순서로 박진상 전주시민협의회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싣는다. - 전주시민협의회의 활동에 대해 아는 시민들도 있지만, 모르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시민협의회의 구성 배경과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지난해 완주·전주 통합에 찬성하는 완주·전주 상생발전 완주군민협의위원회에서 통합시 발전을 위한 107개 상생발전방안을 제안하면서 전주시민의 나타낼 수 있는 전주시민협의회의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이에 올해 3월 출범한 전주시민협의회는 완주군민협의회가 제안한 107개 상생발전방안을 면밀히 검토해 수용 102개 안, 변경 수용 3개 안, 재검토 2개 안으로 심의를 마친 후 완주군민협의회와 최종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전주시와 전주시민협의회가 발표한 107개 상생발전방전을 두고 완주군에선 '일방적인 발표로 여론 호도', '실효성 없는 주장'이라는 비판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완주 민간단체에서 107개 상생발전방안을 제안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완주군민의 의견을 반영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향후 통합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107개 상생발전방안에도 담겨 있는 내용이지만 '전북특별자치도 통합 시·군 상생발전에 관한 조례'에도 도지사 소속의 상생발전 이행점검 위원회를 두도록 돼 있습니다. 해당 위원회를 통해 통합 논의에서 발굴된 상생발전방안들이 실효성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점검할 예정입니다." - 107개 상생발전방안 이행에 필요한 예산 확보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107개 상생발전방안을 단기간에 완료하는 건 아닙니다. 완주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관련 사업부터 시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해 10~12년 추진한다면 큰 부담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2014년 청주·청원은 통합 당시 6000억원 이상의 통합 인센티브를 받았습니다. 완주·전주가 통합된다면 그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 이러한 완주의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큰 이유는 지역 소멸을 극복하고 지역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통합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전주가 전북권 최대 도시이고 전주와 인접한 완주의 인구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가 예상돼 지속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지방시대위원회의 공식 입장입니다. 한때 250만명이었던 전북의 인구는 173만명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완주·전주가 통합된다고 인구 감소가 멈추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둔화될 것입니다. 전주 면적은 206㎢로 전북에서 가장 좁고, 완주 면적은 820㎢로 전북에서 가장 넓습니다. 둘을 합치면 1026㎢로 대전(540㎢)과 광주(500㎢)의 2배, 서울(605㎢)의 1.7배 가까이 됩니다. 올림픽 유치, 대광법 개정 등은 모두 완주·전주가 통합됐을 때 시너지를 낼 것입니다. 통합으로 인해 국가에서 주어지는 인센티브와 기회, 전주시의 브랜드와 역량, 완주의 발전 가능성이 융합됐을 때 소멸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 전주시와 전주시민협의회는 상생발전방안 등 완주군을 위한 양보 메시지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전주시민의 반작용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완주·전주 통합, 전주시민에겐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통합 과정에서 양보의 메시지가 강조되고 있지만, 본질은 도시 구조의 개편과 효율화를 통한 동반 성장입니다. 이전과 성장을 통해 마련된 구도심의 새로운 기회 역시 통합시 주민들의 복지와 주거 환경,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완주·전주 통합 시도는 세 차례 무산된 바 있습니다. 통합 시도마다 언급되는 세금 증가, 기피시설 배치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앞서 언급한 도 조례를 통해 이러한 우려가 해소됐음에도 여전히 이러한 얘기들이 유통된다는 데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도 조례에서도 보장하듯 완주의 예산과 혜택 등은 절대 축소되지 않고 더 좋아질 것입니다. 현재 완주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라던지 재활용품들은 전부 전주권 폐기물 처리시설을 통해 처리되고 있습니다. 또 전주시에서 수차례 입장을 밝혔듯 폐기물 처리시설의 신설·증설 또한 현 전주권 부지에서 진행되고 있고, 완주로 이전할 계획 또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주의 재정 안정성 또한 심각한 수준이 아님에도 의도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채 또한 행안부의 규정에 따라 발행했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 완주군은 시 승격을 원합니다. 시 승격보다 통합이 나은 이유, 무엇입니까. "완주군이 최근 인구 10만명을 달성하고 완주군수나 군의원들이 시 승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완주군민 여러분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을 보면 인구 2만명의 도시 형태를 갖춘 2개 이상 지역 인구의 합이 5만명을 넘고, 군 전체 인구 수가 15만명을 넘어야 하는데 현재 완주군은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우려스러운 것은 위와 같은 경우 도시 형태를 갖춘 지역이 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 경우 해당 지역 주민들이 기존에 읍·면으로서 누리던 혜택이나 생활 모습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통합을 통해 완주·전주 통합시가 만들어지면 도농복합시로서 읍·면 혜택도 그대로 누릴 수 있고, 통합을 통해 국가로부터 부여받는 인센티브를 통해서 자체 시 승격에 비할 수 없이 더 큰 혜택과 성장의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 전북도와 전주시는 8월 통합 찬반 주민 투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찬반 의견 대립이 격화할 조짐을 보이는데요. 남은 기간 공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일부 통합 반대 측에 의해 의견 표명의 기회가 원천 차단되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 미팅'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칫 과열되기 쉬운 이 분위기를 막고 대화의 장을 만들어갈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정치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타운홀 미팅을 통해 광주·무안의 군공항 이전 해법을 모색했듯, 전북에도 오셔서 완주·전주 통합과 관련된 공론의 장을 마련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양 시군 주민들이 찬반의 입장에 대해 충분히 설명 듣고, 스스로 미래를 가장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전주와 완주의 단체장,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군의원 등 지역 정치권의 만남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뤄지길 바랍니다." - 만약 완주·전주가 통합되면 인구 73만 도시가 됩니다. 통합시가 100만 광역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최근에 대광법 개정과 올림픽 유치 후보도시 선정까지 우리 지역에 다시없을 성장과 발전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발판 삼아 도약하기 위해서는 완주·전주 통합으로 성장의 무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의 고을이었고, 지금도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완주와 전주 사이에 그어진 경계는 한계일 뿐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계 안에 갇혀서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 변화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용기입니다."

  • 기획
  • 문민주
  • 2025.06.29 18:17

정성주 김제시장 민선 8기 3년 성과와 비전

=='더 특별한 내일, 기회도시 김제' 새로운 기회의 꽃 피워 '전북권 4대 도시로 웅비하는 김제'를 기치로 미래 100년의 초석을 다기지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정성주 김제시장은 취임후 지난 3년간 변화의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이제 새로운 기회의 꽃을 피우고 있다. 처음에 가졌던 꿈과 목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김제시의 한걸음, 한걸음은 전북의 새로운 길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민선 8기 3주년을 맞이한 김제시의 주요성과들과 비전들을 살펴본다. ◇3년 연속 국가예산 1조 원 돌파 김제시는 역대 최초로 3년 연속 국가예산 1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정부 재정 기조 변화와 세수 감소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룩한 뜻깊은 성과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김제시는 지역내 최초로 대기업인 ㈜두산을 유치하는 등 총 30개 기업, 7812억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1364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조성 중인 제2 특장차 전문단지와 지평선 제2 일반산업단지는 2024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전북 최대 규모의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받았고, 2023년 전국 유일의 백구 특장차 혁신클러스터는 투자선도지구로 지정받아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이 외에도 지역활력타운 공모 선정, 대한민국 지방재정대상 대통령상 수상, 2025년 민선 8기 공약이행평가 최고등급(SA) 선정,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등 시정 전 분야에 걸쳐 행정역량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인정받으며 김제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미래를 선도하는 첨단산업도시 김제시는 대한민국 유일의 특장차 혁신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백구면 일원에 2027년까지 제2 특장차 전문단지를 조성 중이며, 지평선 제2 일반산업단지도 내실있게 조성해 우수기업 유치, 양질의 일자리 등을 창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구)김제공항부지를 활용해 지능형 농업로봇 전북첨단과학기술단지를 조성, 산업 분야에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민생경제도시 향한 다각적인 노력 김제시는 기업 유치와 지역경제 발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할 김제상공회의소를 적극 지원하고 골목상권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소상공인 맞춤 지원사업과 골목형상점가 지정 및 특성화시장 육성사업 등 다양한 정책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청년들의 취업부터 창업, 정착으로의 단계별 성장지원 체계를 통해 청년들의 자립 기반 마련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농생명 1번지, 첨단농업도시 지향 또한 농업의 반도체라 불리는 종자산업을 신성장 핵심 동력사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종자 생명산업 혁신클러스터 조성과 농기계 실증·검인증·빅데이터 활용 등 첨단농기계 산업을 집적화하는 지능형 농기계 실증단지를 구축해 농기계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농업의 미래성장을 위해서도 농식품부에서 주관하는 스마트농업 육성지구 지정에 적극 대응하고,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사업과 스마트팜 혁신밸리 등 청년 농업인의 자립 기반을 지원함으로써 젊은 농업·농촌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미래 100년 선도 새만금 해양항만중심도시 김제의 미래 100년을 선도할 새만금에 대해서는 새만금 배후도시용지 국가산단 조성, 심포 배수지 조성 등 김제시 전략사업들이 새만금 기본계획(MP) 재수립 시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대응할 방침이며, 새만금 제2산업단지 조성과 새만금의 첫 도시인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 국립 새만금수목원 조성, 새만금 남북 3축 도로 등 대규모 국책사업들도 내실있게 추진되도록 힘쓰고 있다. 전북권 최초의 국립해양생명과학관 조성사업은 기본구상 및 타당성 보완용역을 추진 중으로, 유사 시설과의 차별성과 구체화 방안을 마련해 올해 하반기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에 선정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민의 일상이 편안한 안전안심도시 또한 김제시민 안전보험, 24시간 통합관제센터 운영, 응급의료지원체계 등 각종 재난·재해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김제역지구 풍수해생활권 종합정비사업, 춘화지구 자연재해위험 개선지구 정비사업 등 자연재해 예방을 강화해 시민의 안전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 지역활력타운 공모사업에 선정된 김제 힐스타운 시암사업은 편리하고 품격 있는 거주 공간으로 조성해 지방 이주의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한다는 구상이며, 동부권에 전주권 혁신도시와 연계한 베드타운을 조성해 신성장의 새로운 거점으로 확보해 나갈 예정이다. ◇모두가 동등하게 누리는 교육복지도시 모든 세대가 학습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달리는 모두 배움터 사업', 평생학습진흥지구 사업 등 김제형 평생학습도시를 구축하는 한편, 김제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서는 산후조리경비, 출산장려금, 청소년 복합문화공간 조성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 제일의 어르신 섬김 도시 도약을 위해서도 시장 직속 어르신섬김위원회를 내실 있게 운영하고, 저소득층·장애인 자립 지원 등 계층별 맞춤형 복지 정책을 강화하는 한편, 관내에 부재한 장사시설 인프라를 구축해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묘복지서비스 제공에도 노력하고 있다. ◇김제의 가치를 높이는 문화관광도시 김제지평선축제를 비롯해 새로보미 축제, 국가유산야행 등 김제의 매력을 더한 축제에 내실을 기하고, 권역별로도 서부권은 망해사 일원 국가명승지 조성, 시내권은 성산공원 관광명소화, 동부권은 모악산 친환경 산악관광지 시범사업, 남부권은 벽골제 관광지 등을 중심으로 체류형 관광 인프라를 구축해 사계절 축제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구상도 단계적으로 추진중이다. ◇시민의 힘으로 성장하는 시민중심도시 열린 시장실 운영, 시민 소통의 날 추진, 신속 생활민원 처리 등 시민 중심의 열린행정을 실현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시책연구모임, 백년김제 대시민 토론위원회 등을 통해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으며, 공약사업에 대해서도 매 분기별 정기적인 점검과 공약 추진상황 보고회 등을 통해 공약이행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성주 김제시장은 “모든 시정의 중심이자 주인공인 시민들의 목소리는 김제시를 성장시키는 힘이다.”며 “민선 8기의 정책에 보내주신 성원과 신뢰에 보답할 수 있도록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더 특별한 내일, 기회도시 김제의 더 큰 여정을 위해 사명을 다 하겠다.”면서 민선 8기 남은 1년의 각오를 밝혔다.김제=강현규 기자

  • 기획
  • 강현규
  • 2025.06.29 18:11

[트민기] 토마토에 빠진 MZ들?⋯ 제철코어에 진심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토마토 컵, 토마토 시집, 토마토 빙수까지⋯. 최근 여름 제철 채소 중 하나인 토마토가 생활소품부터 시집까지 폭 넓게 쓰이고 있다. 계절감을 느끼는 문화인 ‘제철 코어’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덕이다. 제철 코어는 제철 먹거리나 장소, 분위기 등 계절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공유하는 문화를 뜻한다. ‘핵심’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core(코어)’에 ‘제철’을 붙인 신조어다. 여름이면 토마토, 초당옥수수, 콩국수 등 제철 음식이 떠오르고 겨울이면 대방어, 붕어빵 어묵 등 겨울과 관련된 콘텐츠가 떠오르는 식이다. 제철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올해 열기가 유독 뜨겁다. 트렌드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을 기준으로 한 달간 블로그에서 ‘제철’이 언급된 건수는 7만 851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67% 증가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제철’ 관련 게시물이 8만 3000건을 넘겼다. 이처럼 제철 코어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특정 계절을 대표하는 먹거리나 콘텐츠도 호황을 맞았다. 절기마다 제철음식이 적혀있는 달력이 판매되는가 하면 계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특정 동네를 매달 산책하자는 취지의 ‘열두 달 산책’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출판계도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도서를 출간하고 있다. 지난해 출간된 시집인 <토마토 컵라면>이 다시 서점 매대에 올라왔다. 절기마다 다른 제철 음식, 분위기에 관해 서술한 책 <제철 행복>도 눈에 띈다. SNS에선 제철 레시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여름 과일인 참외를 이용한 참외 샐러드 레시피 영상은 인스타그램에서 조회수 670만 회를 넘겼다. 이외 여름 제철 재료를 활용한 레시피 모음 게시물은 1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제철 열풍의 배경은 극단적으로 짧아진 봄과 가을, 춥지 않은 겨울 등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인해 사라진 계절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28일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는 비중은 전체의 53.2%였다. 실제로 올해 초 1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이 평년보다 포근해 화제였다. 지난해 10월에는 완주 소양에 위치한 한 카페 앞에 때아닌 벚꽃이 피는 이상기후가 관측됐다. 기후 변화는 제철 작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기후변화로 동해와 남해 연안 삼림생태계에서 특산식물 다양성 감소가 예측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국내 특산식물 179종 중 다수가 고지대와 북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연안과 남해 연안에서는 특산식물의 다양성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제철 코어’의 유행은 이러한 기후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계절의 경계가 흐려지고 제철 음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오히려 관심이 급증한 것이다. 최근 X(구 트위터)에는 “금수저보다 제철 과일 수저가 더 부럽다”는 말까지 올라오고 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6.28 09:00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50) 김성규(金星圭)의 『초정집(草亭集』)과 김병휘(金炳輝)의 『연파집(蓮坡集)』

『초정집』(草亭集) 충청도 연풍 출신의 학자이자 관료 김성규(金星圭)의 시문집이다. 김성규는 동학농민혁명 발발 직후인 1894년 4월 전라감사로 부임한 김학진(金鶴鎭)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재임하였다. 『초정집』에는 재임하는 동안 전라감사의 이름으로 내놓은 동학농민군에 대한 효유문 4종, 전라도 53개 군현에 내린 감결(甘結) 2종 등 7종의 동학농민혁명 관련 공문이 실려 있다. 이 자료들은 1894년 5월 전주화약이 이루어지기 직전 농민군과 김학진 및 관군 측과의 관계와 교섭 상황, 전주화약 이후 농민군의 폐정개혁 활동에 대응하는 전라감사의 입장과 ‘관민협치’가 이루어지는 과정, 이를 기반으로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가 설치되는 경위 등을 매우 소상하게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 가운데 4종의 효유문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두기로 한다. 먼저 「효유도내난민문(曉諭道內亂民文)」이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너희들은 반드시 죽임을 당할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② 너희들이 호소하려는 억울함은 이미 잘 알고 있다. ③ 호소하려 해도 살펴주는 자가 없고 도망하려 해도 살아날 길이 없게 되었는데 평소에 화심(禍心)을 품고 있던 흉괴(凶魁)들이 터무니없는 말로 선동하여 이와 같은 망측(罔測)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④ 흉괴 이외에는 살 길이 있다. 흉괴 외에는 징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왕의 교시이다. 병기를 반납하고 성문을 열고 흉괴를 포박하여 항복하라. 이 효유문은 한편으로 농민군에게 빨리 해산할 것을 겁박하면서 촉구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군 지도부와 대중 사이를 이간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글이다. 효유문 앞머리에 전라감사 김학진이 1894년 4월에 내린 것으로 명시되어 있으나, 김학진은 이 글에서 전라감사로 부임하던 중 금강에 이르렀을 때 전주 함락 소식을 접하였다는 점, 그리고 바로 이어서 농민군이 자기에게 원통함을 하소연하였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5월 4, 5일경 농민군 측이 김학진에게 원통함을 호소하며, 경기전(慶基殿)과 조경묘(肇慶廟)가 파괴된 것은 초토사 탓임을 주장하면서 빨리 입성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살펴줄 것을 요청한 <고급문장(告急文狀)>을 보낸 다음에 작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순변사 이원회가 심영병(沁營兵)을 이끌고 5월 18일, 초토사 홍계훈은 장위영(壯衛營) 을 이끌고 5월 19일 전주를 떠나 서울로 향한 직후인 5월 20일 전후 농민군에 대한 선무(宣撫)와 안집(安集)을 홀로 감당하게 된 김학진은 농민군측에 재차 효유문을 보내 무장을 해제할 것과 조속한 해산을 촉구하며 6개항의 수습방안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국왕의 뜻을 받들어 폐정(廢政)을 일체 개혁하기로 하였으며, 작은 폐단은 감영에서 개혁하고 큰 폐단은 중앙에 보고하여 혁파하도록 할 것이라는 점, 각 면리마다 집강을 두어 만일 원통한 일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집강이 사유를 적어 감영에 소송하여 공정한 심판을 기다리라는 점, 병기는 모두 각자 거주하는 군현에 반납하라는 점, 금년도의 부세는 모두 면제한다는 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김학진의 제안이 농민군에게 그대로 수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관민상화(官民相和)에 의한 집강소 시기 농민군의 폐정개혁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김학진의 수습방안에 대한 농민군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비웃을 따름’이었다고 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외세의 개입이라는 정세변화에 따라 경군이 서둘러 철수함으로써 전라도 일대에 관군의 군사력이 매우 취약해지자 이 무렵부터 전라도 곳곳에서 농민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번 효유문을 내려 신칙했는데도 농민군들의 활동이 곳곳에서 재개되자 김학진은 농민군에게 세 번째의 효유문을 내려 병기를 반납하고 귀가안업(歸家安業)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어 6월 7일에도 네 번째의 효유문을 내렸다. 5월 20일경의 두 번째 효유문에서는 “원통한 일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강이 사유를 적어 감영에 소송하여 공정한 심판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고 하여 집강의 기능 가운데 민원 처리 부분이 강조되었으나, 후자에서는 “근신(謹愼)하고 의(義)로운 사람으로 집강을 삼고 부랑배를 보는 대로 포박해 해당 지방관에게 넘겨 처벌하도록 하라”고 하여 무뢰배들이나 사적인 설분(雪憤) 행위를 일삼는 농민군들을 금단하는 치안유지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연파집』(蓮坡集) 『蓮坡集』은 강진 유생 김병휘(金炳輝, 1842~1903)의 문집으로 모두 4권 2책이다. 김병휘는 1842년 강진 용두리에서 노택(魯澤)의 아들로 출생하였며, 자(字)는 민오(玟五)이며 연파(蓮坡)는 그의 호이다. 향리에서 가학을 통해 학문을 익히고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김한섭(金漢燮), 정의림(鄭義林) 등과 교유하였다. 갑오년에 즈음하여 향리에 용강서숙(龍岡書塾)을 개설하고 후학을 가르치다가 전도정(前都正) 박창현(朴昌鉉), 진사 김병윤(金柄潤) 등과 모의하여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한 민보군을 결성하였으며, 갑오 12월 7일과 10일 강진성과 강진 병영성 전투에 참여하여 농민군의 공격을 막고자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03년 1월 23일에 타계하였다. 『연파집』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시, 민보군을 조직하여 농민군에 대항하다 전사한 오남(吾南) 김한섭에 대한 기사(記事), 민보군을 결성하며 발포한 창의동맹문(倡義同盟文) 등이 실려 있고, 1894년 12월 장흥과 강진성 및 강진 병영성 전투와 관련된 사실들이 담겨 있다. 또 말미에 실린 그의 행장에는 갑오년 당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민보군 결성을 모의하고 준비하던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창의동맹문(倡義同盟文)」에 따르면 김병휘 등은 ‘동도(東徒)’를 중국 한나라의 장각(長角)이나 진(晉)나라의 손은(孫恩)과 같은 무리들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창의동맹을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에 비유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인(仁)과 의(義)라는 유교적 덕목에 입각하여 죽음으로써 한편으로는 국가의 수치를 씻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림(儒林)의 도(道)를 지키고자 하였다. 「김오남기사(金吾南記事)」는 장흥의 농민군 접주 이방언(李芳彦)과 동문수학하는 사이였던 오남 김한섭의 민보군 활동에 대해 기록한 글이다. 김한섭은 이방언에게 <경시적도문(警示賊徒文)>을 지어 보냈으나, 이방언이 끝내 농민군 지도자의 길을 나서자 민보군을 규합하여 반농민군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오남기사」에 따르면 당시 강진 현감 이규하(李奎夏)는 그의 의기를 높이 사서 1개 면(面)의 병사를 그에게 통솔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때 김한섭 휘하의 병사들이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김한섭을 따른 것도 그가 보여준 의(義)를 추구하는 정신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12월 7일 농민군이 강진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자, 김한섭은 제자들과 민보군 및 관군을 이끌고 분전하였지만, 강진현은 농민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김한섭은 전사하였다. 김병휘의 「행장(行狀)」에는 강진성 함락 이후 농민군이 다시 진격하여 강진 병영성을 포위하자(12월 10일), 병사(兵使) 서병무는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으나, 군기관(軍器官) 김극경(金克敬)은 화약고에 들어가서 불을 지르고 자폭하였으며, 민보군 박창현은 앞장서서 농민군 수십 명과 대적하다가 전사한 것으로 기록해두고 있다. 배항섭 성균관대 교수

  • 기획
  • 기고
  • 2025.06.27 17:44

[뉴스와인물] 노홍석 전북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전북, 침묵의 희생 끝내고 도약할 때”

지난 5월 19일, 제45대 전북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로 취임한 노홍석 부지사는 중앙과 지방을 두루 경험한 정책 전문가다. 노 부지사의 부임은 단순부임이 아닌, 전북의 미래를 다시 세우는 의미 있는 출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 부지사는 전북의 오늘을 냉정히 진단하면서도, 과거를 존엄하게 되새기고 있다. 그는 “1960년대만 해도 익산, 정읍, 김제는 전국 20대 도시에 이름을 올릴 만큼 전북은 전국적 중심지였다”며, “그러나 산업화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대한민국의 정책은 수도권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설계됐고, 전북은 그 과정에서 조용히, 그러나 묵묵히 국가 발전을 위한 희생을 감내해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해방 직후인 1949년 약 2050만 명이던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올해 기준 5168만 명으로 3000만 명 넘게 증가했다. 그러나 전북은 이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같은 기간 전북 인구는 오히려 31만 명이 줄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감소한 지역이 됐다. 1960년대만 해도 전북 인구는 250만 명을 넘기며 익산, 정읍, 김제 등이 전국 20대 도시에 포함됐지만, 이후 수도권·영남권 중심의 정책과 일자리 부족 속에 지속적인 인구 유출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1990년대에는 200만 명 선이 무너졌고 결국 180만 명 선도 붕괴됐다. 노 부지사는 이 같은 통계를 ‘전북의 침체’가 아닌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국가가 그 헌신에 응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에는 단순한 비전이 아닌, 오랜 정책 경험과 현장 감각이 녹아 있다. 전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반드시 열어야 할 미래를 관통하는 노 부지사의 정무, 행정적인 관점과 철학을 들어봤다. -취임하신지 한달이 됐습니다. 소회가 어떠신지요.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 균형발전지원국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전북으로 돌아온 시간이 9개월이었습니다. 연가를 마치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전북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대광법 개정, 전주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도시 선정 등은 전북이 더 이상 주변이 아닌,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이제는 그 변화가 도민의 삶으로 연결되도록, 체감할 수 있는 행정, 실행 중심의 정책에 집중할 시기라 생각합니다." -전북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지방소멸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더는 미래의 위험이 아닌, 현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1960년대 250만 명이던 전북의 인구는 지금 170만 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고, 이 추세라면 전북의 자립성과 지속가능성 모두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권한과 재정,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현재의 구조를 지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전북은 지난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통해 독자적 비전과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췄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틀을 알차게 채워,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가는 일입니다."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가 중요한 전북 현안입니다. 이에 대한 구상과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신다면. "누군가는 이 도전을 무모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절박함은 힘이 됩니다. 우리는 강력한 경쟁 상대인 서울을 넘어서 국내후보도시로 선정됐습니다. 그것은 전북의 뚝심이 만든 결과입니다. 전주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회복력과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는 무대가 될 것입니다. 전북은 K-컬처의 본거지이자, 신재생에너지 분야 전국 1위의 성과를 가진 도시입니다. 올림픽의 국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기반도 착실히 준비하고 있으며, 정부의 국가적 지원 체계와 맞물려 유치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도민 중심 행정’을 실천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정책은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도민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 목소리를 듣고, 이를 도정에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행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취임 후 한 달간 도내 현장을 직접 발로 누볐습니다. 삶의 결이 느껴지는 곳에서 행정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가늠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도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녹여내는 열린 행정을 이어갈 것입니다." -최근 전북도청 공직기강 문제도 제기되고있는데, 청렴성과 행정 투명성을 위한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청렴은 선택이 아니라, 공직의 기본입니다. 행정의 신뢰는 청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도민과 약속한 행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공직 내 청렴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내부의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며, 행정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해가겠습니다. ‘신뢰받는 전북’이라는 말이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되도록, 도청 내부부터 바꾸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과, 전북일보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민 여러분, 행정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참여가 전북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저는 도민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며, 가장 빠르게 응답하는 행정을 펼치겠습니다. 전북의 길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도록, 현장에서 도민과 함께 그 길을 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전북자치도는 여러분과 함께 전진하겠습니다." ●…노홍석 전북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는 노홍석 부지사는 임실 출신으로 전주 상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제1회 지방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뒤, 전북도 투자유치과장·정책기획관·전략산업국장 등을 두루 거치며 전북 핵심 산업과 예산 확보, 정책기획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행정자치부 지역경제과장, 기획조정실 혁신행정담당관,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기획부장, 행정안전부 균형발전지원국장을 역임하는 등 중앙과 지방을 아우르는 탄탄한 경력을 바탕으로 중앙과 지방 행정의 전문성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조직 내에서는 실무형 리더십과 현장 중심의 기획력으로 신뢰가 두텁고, 주요 현안에 있어선 정무 감각과 정책 조율 능력 모두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노 부지사는 “도정의 중심은 도민이며, 전북의 미래는 현장에 있다”며 “청렴하고 실효성 있는 행정을 통해 도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기획
  • 이준서
  • 2025.06.22 18:58

[우리 땅에 새겨있는 역사의 흔적] 전주한지 완산지

취재차 군산 동국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대웅전 안에 봉안된 불상의 문화유산 지정여부를 묻자 스님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양식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불상인데 근거가 없어 문화유산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국사의 전신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금강사였다. 군산에 진출해있는 일본인들을 위해 1913년에 창건되어 당시 역사가 백년도 되지 않았다. 역사는 짧은데 법당 안에 봉안된 불상의 양식은 몇 백 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해방 이후 불상을 금산사로부터 이안해왔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사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금산사 대장전의 불상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스캔해서 보내드리자 스님은 이를 근거로 불상의 이안과정을 밝혀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석가불을 협시하는 가섭과 아난존자의 복장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복장에는 발원문과 함께 많은 불경이 들어있었다. 발원문에 따르면 이 삼존상은 효종 1년(1650)에 조성해 금산사에 봉안했다. 이 발원문의 발견으로 불상의 정확한 조성년도가 밝혀지고, 유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일체가 보물로 승격되었다. △복장에서 나온 『묘법연화경』 복장유물에는 사용하지 않은 한지 수십 장도 함께 들어 있었다. 제작한 지 350여년이 지났지만 한지는 이제 막 만든 것처럼 하얀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복장에서 나온 『묘법연화경』을 살펴보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쇄에 사용된 종이가 너무나도 얇았던 것이다. 얇다란 종이에 먹이 골고루 먹혀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불빛에 비춰보니 뒷장이 뚜렷하게 보였다. 요즘 용어로 시스루(see-through)라고나 할까. 이 종이는 말로만 듣던 선익지(蟬翼紙)라는 종이였다. 선익지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은 종이를 이르는 말이다. 책의 간기에는 ‘만력 14년(선조 19, 1586) 전라도 김제군 승가산 흥복사 개판’이라 적혀있었다. 흥복사는 『묘법연화경』뿐 아니라 『불설대보부모은중경언해』『불설대목연경』등을 간행했던 사찰이다. 흥복사에서 이러한 불서들을 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판각을 하는 각수와 한지를 만드는 장인들, 곧 장인 승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국사 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묘법연화경』에 사용된 종이도 이 절의 승려들이 만들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흥복사가 조선시대 전주부 관내는 아니지만 전주부 바로 옆 김제군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이 종이를 전주한지의 사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전주한지는 완산지라 하여 한지의 대명사였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전주한지는 고려지를 대표하는 종이였다. 고종 21년(1884)에 전라감영을 방문했던 미국공사관의 해군무관 조지 포크(George C. Foulk)가 지니고 온 지도에도 전주한지에 대한 메모가 지도 상단에 붙어 있다. 이 메모에는 “전라도에 함열·군산창과 법성창이 있고, 전주에서 완산지라는 최상급의 종이가 생산되고 있다”고 적혀있다. 이렇게 유명한 전주한지였지만 남아있는 유물 중 어떤 것이 전주한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조선시대 전라감영과 전주부에서 간행한 서책의 간기를 통해 여기에 사용된 종이가 전주한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주에서 서책용 한지만을 생산했던 것은 아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주에서 생산되는 종이로 표전 주본 부본 자문 서계 등 외교문서에 사용되는 종이와 표지 도련지 백주지 유둔 세화 안지 등 각종 종이가 생산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근대적 한지제조 기술의 도입 이렇게 종류도 다양하고 명성이 자자했던 전주한지가 조선의 멸망과 함께 서서히 명성을 잃어갔다. 전라감영에 소속된 한지장인들이 우수한 품질의 완산지를 생산하던 감영의 지소는 폐지되었다. 일제는 전주에 제지모범장과 전라북도은사제지견습소를 설치했다. 여기에서 근대적인 시설과 약품을 사용해 손쉽게 종이 만드는 법을 보급했다. 한지생산과정 중 노동력이 가장 많이 드는, 닥을 두드려 섬유질이 물에 잘 풀어지게 하는 고해(叩解) 과정을 비터(beater)라는 기계로 대신했다. 비터는 닥을 잘게 갈아버리는 기계였다. 이렇게 하면 닥을 쉽게 풀어서 사용할 수 있지만 닥섬유가 서로 얽히면서 오랜 세월 견디는 내구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여기에 닥섬유를 부드럽게 해서 섬유질을 추출하기 위해 볏짚이나 콩대, 혹은 메밀대의 재를 내려 만드는 천연잿물을 사용하지 않고 화학약품인 양잿물을 사용했다. 게다가 값싼 펄프까지 섞어 종이를 만들었다. 이렇게 생산된 종이는 값이 싸서 전통한지는 경쟁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전주태지의 건조모습. 출처=『일본지리풍속대계』 △잠자고 있는 전주한지라는 브랜드 일제강점기에 전통 전주한지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나마 전주태지(苔紙)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태지는 가는 이끼의 문양을 넣은 고급스런 종이로 전주 시내에서 지물포를 운영하던 한지상이 개발해 상용화했다. 오목대 아래에서 태지를 생산하다가 1930년대 후반 한옥마을이 조성되기 시작하자 공장을 완주군 구이면으로 이전했다. 이 외에도 전주 인근에서 근대식 한지제조법으로 종이를 만드는 영세한 한지업체가 몇 군데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한지공장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전주한지의 유명세를 타고 중국과 만주, 북한 등지로 수출되던 종이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하루아침에 해외시장을 잃었다. 수요부족으로 경영난을 겪던 한지업체에 숨통을 트게 해준 것은 6·25전쟁이었다. 전쟁으로 무너진 집을 복구하면서 종이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전주 흑석골에 한지공장이 들어섰다. 구이로 생산거점을 옮겼던 태지공장이 1955년에 제일 먼저 흑석골에 자리를 잡고 전주제지공업사란 상호로 한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후 문산제지, 호남제지, 문성제지, 평화제지, 우림제지 등이 들어서 197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렸다. 현재는 전주제지공업사를 이어 받은 고궁한지만이 흑석골에 남아 있다. 2022년에는 이곳에 전주천년한지관이 문을 열었다. 이 한지관에서는 전통한지교육을 비롯해 전주한지에 대한 복원을 연구한다고 한다. 흑석골에 문을 연 전주천년한지관. 필자 촬영 이상 살펴본 것처럼 전통 전주한지는 그 맥이 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적인 제조시설을 갖추고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한지공장만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던 전주한지가 근대화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전통한지는 내구성에 있어서 세계 제일의 종이이다.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이란 말이 있듯 한지는 천년이 넘도록 보존이 가능한 종이이다. 그 한지 중 가장 명성이 자자했던 종이가 조선시대 완산지로 불리던 전주한지이다. 흔히 얘기하는 브랜드 가치로 치면 완산지라는 브랜드는 대단한 가치를 지닌 자산이다. 이렇게 엄청난 자산이 잠자고 있다. 이를 타개할 방법이 없을까.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손상국 프리랜서 PD

  • 기획
  • 기고
  • 2025.06.21 15:13

[전북 이슈+] "와르르 무너질까 걱정"⋯마을에 '우뚝'선 폐건물이 불안하다

"흉물, 흉물이죠. 무너질까 봐 걱정도 돼요." 지난 18일 찾은 완주군 삼례읍 후상마을의 한 폐건물. 지하 1층, 지상 8층에 달하는 높은 건물은 주택가 사이에 우뚝 선 모습이었다. 건물 외벽은 관리가 안 된 탓에 색을 잃어버린데다 햇볕까지 바래 황폐화한 상태였다. 창틀은 뜯겨 나가고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오랜 시간 빈 공간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집집마다 꽃이 피어 있는 조용한 동네에 버려진 건물은 따뜻한 주변 분위기와 유독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해당 건물은 30여 년 전 대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고시원이었다. 마을 주민 등 여러 증언에 따르면 당시 새 건물인데다 임대료가 저렴해 인기를 끌었다. 주민들 역시 마을의 유일한 고층 건물을 오가는 학생들을 보며 잘 운영되는 줄 알았다. 문제는 건물주가 개인 채무를 견디지 못하고 공사를 중단하면서 발생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은 냉장고를 시작으로 씽크대, 창틀, 문짝까지 값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모조리 뜯어갔다. 건물이 폐허가 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폐허가 된 고시원은 해가 지날수록 마을의 시한폭탄이 됐다. 건물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안 외부인들이 건물에 불법 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소년이 빈 건물에 무단 침입해 술을 마시다 적발되기도 했다. 폐가 체험·영화 촬영 등을 이유로 건물에 침입한 외부인이 밤늦게 소음을 일으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안전이 우려됐다. 이영자(72) 후상마을 이장은 "건물 지하에 수도가 터졌는지 물이 잔뜩 고여 있다.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고 폐건물이다 보니 거기서 술 먹고 노는 애들이 빠져 죽으면 진짜 아무도 모르게 생겼다"면서 "시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거기서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이 이장은 지난 2023년 완주군과 건물주를 찾아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당시 건물주는 건물과 건물주에 잡혀 있는 채무가 1억 9000만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채무를 대신 갚으면 건물의 소유권을 넘기겠다고 주장했지만 금액을 지불하고 소유권을 가져 온다고 한들 철거 비용이 문제였다. 고층부터 차례대로 철거해야 하는데 주변 주택이 따닥따닥 붙어 있어 철거도 쉽지 않고 비용도 상당했다. 결국 완주군·마을은 철거를 포기했다. 임시방편으로 폐건물 입구에 불법 출입을 막기 위한 파란색 슬레이트 판을 덧댔다. 불법 침입이 적발되는 경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도 함께 붙였다. 슬레이트 판을 붙인 후 외부인의 출입은 끊겼지만 폐건물로 인한 위험은 여전한 상황이다. 건물이 노후화하며 외벽에 붙은 나무판자, 장식물 등이 떨어졌다. 폐건물 바로 옆에 붙은 이 이장의 집에는 나무판자가 떨어져 장독대가 깨질 정도였다. 바로 뒷집은 가스통이 지붕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 이장은 "건물이 하도 오래돼서 판자 같은 게 계속 떨어졌다. 의용소방대가 출동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나무판자, 장식물은 조치를 취하는 등 외벽을 한 차례 정리했다"며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게 사실이다"고 토로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6.21 09:09

25년 전 지었는데 공정률 1%⋯전북 공사중단 건축물 15곳

#1. 정읍시 북면 한교리 1572 외 5필지, 공동주택(4만 6694.4㎡), 2000년 2월 착공, 2003년 9월 중단, 공정률 54%. #2.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538-2, 공동주택(6060.3㎡), 2001년 11월 착공, 2003년 1월 중단, 공정률 1%. 전북에서 부도나 자금 부족 등으로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이 총 15개소로 파악됐다. 공사 중단 건축물은 건축법에 따라 착공신고 후 건축 또는 대수선 중인 건축물이나 주택법에 따라 공사 착수 후 건축 또는 대수선 중인 건축물을 말한다. 실태조사를 통해 공사를 중단한 총 기간이 2년 이상으로 확인된 경우에 해당된다. 21일 전북도청 홈페이지에 고시된 전북특별자치도 공사 중단 건축물 현황을 보면 2023년 기준 전북 공사 중단 건축물은 총 8개 시군 15개소(군산 1, 김제 1, 남원 3, 무주 1, 부안 2, 정읍 2, 완주 4, 장수 1)다. 이중 공정률이 1%밖에 되지 않는 곳이 있는가 하면 70%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용도별로는 공동주택(아파트·연립)이 5개소로 가장 많고 숙박시설이 4개소, 판매시설 2개소, 단독주택·제2종근생시설·관광농원·단독주택·공업시설(공장) 각 1개소가 뒤를 이었다. 이중 10년 이상 된 건축물은 3개소, 20년 이상은 8개소, 30년 이상은 2개소다. 10년 이하 된 건축물 2개소도 포함돼 있다. 대부분 부도, 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공사를 중단했으며 일부는 분쟁도 있었다. 정비 방법은 크게 △공공주도 △공공지원 △안전조치명령 △직권철거 등 4개로 분류된다. 비교적 활용이 가능한 경우에는 공공주도·지원으로, 활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안전조치 명령, 직권 철거로 결정된다. 공공주도는 2개소, 공공지원은 4개소, 안전조치 명령은 9개소다. 전북자치도는 지난 2023년 처음 공사 중단 건축물 정비 계획(2023∼2025년·3개년)을 수립하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했다. 정비 계획을 통해 전북 도시 안전성과 미관 등을 증진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도 관계자는 "정비 계획상 '공공주도'는 건축물을 활용해서 공사 재개할 사례다. 남원, 무주 등 2개소가 있다. 공정률이 높고 상태가 양호한 경우 보조, 융자 등을 지원해 자력 재개를 돕는 공공지원은 남원, 완주, 부안 등 4개소다. 나머지 9개소는 여건상 재개가 어려워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안내문 부착 등 안전조치를 취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활용 가능한 공사 중단 건축물은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사실상 공사 중단 건축물의 경우 소유권이 1명이 아니라 대부분 소유권이 바뀌었거나 여러 명인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자를 만나고 해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6.21 09:08

"부도 나고 자금 없고"⋯'흉물' 건축물 활용 방안은

오랫동안 방치된 공사 중단 건축물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가운데 전북, 경기 등 일부 지자체에서 흉물이 된 건축물을 활용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전북은 현재 공공주도 2개소, 공공지원 4개소, 안전조치명령 9개소로 분류해 정비 계획을 세웠다. 이중 완료된 사례는 공공주도로 진행한 남원 구 비사벌콘도 부지(남원시 어현동 37-84 외 1필지·관리번호 전북3), 1곳이다. 이곳은 1995년 12월 건축 허가를 받고 다음 달 착공에 들어갔다. 당초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로 구성된 숙박시설로 계획됐지만 자금이 부족한 탓에 1998년 1월 지하 1층에서 공사를 멈췄다. 그렇게 남원관광단지 내에서 장기간 방치됐다. 남원시는 지난해 2월 구 비사벌 콘도 부지에 달빛정원 조성 공사를 착공했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계획공모형 지역관광개발사업 공모를 통해 복합문화공간 '달빛정원'을 조성했다. 지난 4월 30일 복합문화공간 달빛정원과 미디어아트 전시관 피오리움을 정식 개장했다. 주변 관광지인 춘향테마파크, 광한루원 등과 연계해 현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원시 관계자는 "구 비사벌 콘도는 공사를 시작하고 2년 만에 IMF 부도로 공사가 중단됐다. 당시 지하 1층 골조만 공사한 상태에서 장기 방치돼 있었다"며 "이후 이랜드에서 콘도를 다시 지으려고 했지만 여건이 안 돼서 진행을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남원시가 구매했고 사업 공모에도 선정되면서 사업비를 투자해 달빛정원을 조성했다. 남원관광단지 내에 있기도 하고 주변에 켄싱턴리조트, 관광지 등이 있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경기도는 지난 2018년 8월 전국 최초로 공사 중단 방치 건축물 정비 계획을 수립해 확정 공고했다. 이후 도시 미관을 해치고 붕괴나 낙하물 등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큰 건축물 정비에 두 팔을 걷었다. 대표적으로 1998년 10월 공사가 중단된 안양역 앞 번화가의 공사 중단 건축물 '원스퀘어'가 있다. 24년 만인 2022년 10월 철거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철거를 마무리하고 공영 주차장을 만들었다. 토지주와 수 차례 논의 끝에 해당 부지를 공영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협약을 체결해 조성했다. 용인시 처인구의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 2016년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됐으나 건축 관계자 변경 신고 등을 거쳐 공사가 재개됐다. 2023년 7월에 준공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지난해 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건축주에게 공사 재개나 철거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자력 정비가 완료될 수 있도록 다양한 개선 방안을 찾아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 기획
  • 박현우
  • 2025.06.21 09:08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9) 동학농민혁명을 기록한 편지 4통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185건 중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작성된 4통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편지는 원본은 아니고 필자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작성자가 누구인지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편지 내용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지명과 등장인물을 살펴볼 때 충청도 옥천지역에서 살았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편지를 조금 더 꼼꼼히 읽어보면 이 편지의 작성자는 1894년 당시 전생서(典牲署) 주부(主簿)를 역임한 황영수(黃潁秀)의 큰형으로 짐작된다. 편지 말미에 백형(伯兄)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황영수는 1889년 부사용(副司勇)으로 임명되고 이후 사과(司果)를 거쳐 1894년 4월에는 사사(司事), 1894년 5월에는 전생서(典牲署) 주부(主簿)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그 직후인 1894년 5월 22일 황영수가 병을 칭하여 전생서 주부의 직을 거두어 줄것을 요청하자, 국왕은 빙고주부(氷庫主簿) 박주동(朴注東)과 황영수를 교체하라고 명하였고, 이것은 실행되었다. 전생서는 조선시대 나라의 제향에 쓸 양ㆍ돼지 따위를 기르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이다. 황영수의 큰형이 보낸 편지에 따르면 “지난 인편에 부친 편지를 큰 아우가 받아 보았다니 위로가 되네. 또 전생서(典牲署) 주부(主簿)로 옮겨 사은숙배(謝恩肅拜)하였으니 이미 숙직에 나아갔으리라 생각하네”라고 하여 황영수가 전생서 주부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편지에서 확인된다. 이 편지들은 모두 충청도 옥천지역에 거주하는 큰형이 중앙에 진출하여 서울에서 관직에 재직하고 있는 동생 황영수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이 편지에는 1894년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한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충청도 옥천과 인근지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으며, 이와함께 양반 지식인들이 어떻게 동학농민혁명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다. 1894년 4월 2일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동학의 소요가 난세보다 심해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네. 매일 아랫마을의 행랑에 와서 모이는데 양반들은 숨죽인 채 감히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다네. 이들이 말하기를 ‘비록 재상이라도 추궁할 일이 있으면 어려워할 것 없이 체포하여 결박하라’ 하면서 영읍(營邑)의 명령을 아이들 장난처럼 보고 있네. 그가 워엄과 복을 스스로 만들어 발이 도리어 위를 차지한 격이라 기강과 명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네. 묘당(廟堂)은 어찌 영칙(令飭)이 없는 것인가? 이미 한달 남짓이 지나는 동안 온갖 변고가 있는데도 아직도 움직일 기미가 없으니, 만약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장차 농사(農事)를 폐할 것이고, 비록 벼슬아치라 하더라도 장차 그것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네” 즉 황영수 큰형이 보기에 1894년 4월 당시 충청도 옥천지역에서도 동학농민군들의 세력이 매우 강력했으며 이에 대해 양반들이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아랫마을의 행랑에 동학농민군들이 모임을 가졌고 이에 대해 양반들이 어떤 조치도 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동학농민군들이 활동이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조선이라는 체제에 반하는 것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국가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표현하고 있다. 1894년 4월 20일 보낸 편지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동학의 무리들의 소요는 모두 수포(搜捕:색출해 체포함)에 겁먹어 배도(背道)하고 귀화한다고 하였네. 그리하여 그 수괴만 주벌하고 그 아랫사람들은 풀어 주었는데, 군기(軍器)를 탈취하는 변고를 일으킨 박운(薄雲)의 세 수괴(강채서, 최명기, 이일선)는 아직 잡지 못하였다네. 순사(巡使)의 뜻은 무마(撫摩)를 위주로 하지만 지금 만약 엄히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다시 봉기할 우려가 있네. 만약 다시 봉기한다면 전보다 심할 것이니 이것이 크게 우려가 되는 부분이라네. 고부(古阜)의 적세(賊勢)가 매우 성대하다고 하는데, 뒤이어 전보(電報)가 있었는가? 이는 마을 낭정(廊丁)이 수성군(守城軍)으로서 자세히 조사하여 보내준 것으로 난리 가운데의 일 아님이 없으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지금 듣자니 공주(公州)의 군대가 들어가고 단지 청주(淸州)의 군대만 있다고 하며, 부상(負商)은 지패(紙牌)로 일을 행한다고 하네.” 즉 편지를 보낸 시점은 1894년 4월 20일인데, 충청도 옥천과 인근지역에서도 매우 활발하게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이 전개되었음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1차 봉기 과정에서 충청도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또는 자체적으로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군기를 탈취한 박운(薄雲)의 세 수괴인 강채서(姜采西)ㆍ최명기(崔明基)ㆍ이일선(李一善)을 아직 잡지 못하였다고 한 것은 이들이 이미 1894년 4월경에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은 동학농민군 지도자로서 충청도 옥천과 인근지역에서 군기를 탈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1차 봉기에서는 충청도에서 호응하지 않았다는 일반적인 견해는 제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채서, 최명기, 이일선은 충청도 옥천, 유성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특히 강채서는 전봉준이 공주를 공격할 때 함께 했으며, 최명기는 동학농민혁명 이후에까지 천도교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1894년 5월 9일 보낸 편지에서는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음이 확인된다.“완산부(完山府)의 성이 함락되었으니 참으로 큰 변고일세. 도백(道伯)과 반자(半刺)가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것을 다른 나라에 들리게 해서는 안 되는데, 이로부터 절개를 세워 의리에 죽는 사람은 말단의 직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네. 최근의 전보(電報)는 어떠한가? 신임 도백은 이미 임지에 부임하였다고 하는가? 동학의 무리들은 기운을 기르고 있을 뿐이지 조금도 징계하여 고칠 뜻이 없으니 통탄스럽네” 이 편지에서는 전주성이 동학농민군에게 함락되고 감사와 판관이 도망하였다는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여 이러한 사실이 다른나라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오히려 말단 관리들이 의리를 지키고 있음을 칭송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생에게 중앙에서 알수 있는 전개과정이나 전투상황 또는 관찰사가 임명되었는지 등의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즉 당시 지식인들이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에 대해 매우 불안해하면서도 전개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1894년 5월말경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서도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본읍의 군기(軍器)를 탈취당한 후에 공주와 청주 두 영(營)의 병사가 잡아간 도당(徒黨)들을 내보낸 것은 두 영에서 곤장을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모두 풀어준 것이니, 이는 비록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지만 악행을 징벌하는 뜻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무리들이 처음에는 비록 위축되어 굴복하였지만, 지금은 의기양양하고, 처음에는 배도(背道) 하겠다고 말했던 자들이 지금은 예전으로 돌아갔다네. 또한 입도(入道)하는 자가 많이 있고 또 몰래 사통(私通)을 돌리는 자가 있다고 하니 통탄스럽고 패악스럽다 할 만하네. 사람들이 모두들 다시 봉기할 것이라고 하는데, 만약 다시 일어난다면 반드시 살육이 있게 될 것이네.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되는데 무릉도원을 아스라이 생각하고 내 신세 곤궁함을 스스로 탄식할 뿐이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는가?” 이 편지에서는 1894년 5월 충청도 지역에서 동학농민군들에 대한 처벌이 매우 미약하였다고 지적하였고, 반면에 동학농민군들의 세력이 매우 강성해질 것을 우려하면서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 편지에서는 이와 함께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들이 전주성 입성 이후 전개된 완산전투에서 농민군이 패한 상황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완산부(完山府)의 도적들이 나가고 초토사(招討使)의 관문(關文)을 보니, 우두머리인 김순명(金順明)과 14세 소년 장사 이복롱(李福弄)을 체포하여 죽였으며, 또 적병 500여명을 죽이고 총과 창 300여 자루를 확득하였으며 장차 머지 않아 성을 수복할 것이라고 하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네. 이 근처의 도당들이 이 관문을 보고 크게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 있었다고 하니, 그 뜻이 매우 음흉하네. 그들의 도(道)를 그들만이 행하여 다른 사람들을 유혹함이 없고 협박함이 없으며 입도함에 작당(作黨) 함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해함이 없이 한쪽에 거처하면서 행한다면, 이단의 무리로 구별하여 서로 상관하지 않을 뿐이니 그렇다면 어찌 오늘날의 변고가 있겠는가?”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입성 이후 완산을 비롯한 전주성 인근에서 관군과 동학농민군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고, 여기에서 농민군이 많은 타격을 입었는데 이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그 상황을 파악하여 기술하고 있다. 특히 그는 동학농민군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자기의 생각을 서울에서 관리로 있는 동생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이를 실천하고자 했으며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동생에게도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의도로 계속적으로 동생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편지를 쓴 황영수의 큰형은 당시 조선에 있는 양반 지식인의 가장 표준적인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 기획
  • 기고
  • 2025.06.18 18:52

국내외 석학들, 초고령사회 해법 위해 고창에 모인다

고령화 시대의 전 지구적 과제 해결을 위해 세계적 석학들과 국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제1회 서울시니어스포럼’이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웰파크시티호텔&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노후의 삶과 비전(Life and Vision in Later Life)’으로, 의료·복지·사회·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초고령사회 대응 전략을 모색한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의료비 부담, 세대 갈등, 복지비용 증가 등의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서울시니어스타워(이사장 이종균)는 민간 주도로 고령화 문제에 대한 국제 협의의 장을 마련했다. △의료·복지·공동체까지 다층적 접근 포럼은 건강한 노후를 위한 의료와 장수면역,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및 주거 정책, 공동체와 웰다잉 문화까지 폭넓은 의제를 다룬다. 장수면역 분야에서는 세계적 권위자인 브라이언 케네디(싱가포르국립대), 발리 플렌드란(스탠퍼드대), 서유신 박사(컬럼비아대)가 참여해 최신 연구를 발표한다. 이들은 세포노화, 면역과 염증, 호르몬과 수명과의 상관관계 등을 심층적으로 풀어내며 건강하게 나이 드는 방법과 새로운 의료 기술의 역할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 세션 좌장인 박상철 전남대 명예교수는 “우리가 풀어내고자 하는 고령화의 과제는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 경제, 문화의 협업과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풀어나가지 않고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회복지와 주거, 교육 세션에서는 데니스 버넷, 로빈 스톤, 다그마르 베르그스 빙켈스, 호르스트 오파쇼브스키, 옌스 당샤트 등 유럽·북미·아시아권 전문가들이 실증 사례와 정책 모델을 공유한다. 국내에서는 김근홍(강남대), 김정근, 이금룡(상명대), 임병우(성결대), 김승용(백석대), 남현주(가천대), 김광선(함부르크응용과학대) 교수가 참여해 국가 정책과 실천 전략을 발표한다. △고령화 시대, 글로벌 협력의 장 이번 포럼은 단순한 학술 교류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글로벌 협력모델을 제시하는 데 의미가 있다. 초고령사회의 삶과 죽음, 의료, 사회복지, 공동주거, 공동의 유대, 그리고 세대 간 협력과 소통이라는 다층적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혜가 모아지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포럼 주최 측은 “이 행사를 계기로 한국과 세계가 고령화라는 공동의 도전 앞에서 새로운 희망과 해법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포럼이 열리는 고창 웰파크시티호텔&컨벤션센터는 국내 유일의 게르마늄 온천 시설과 대한민국 최초·최대의 시니어타운으로, 시니어 세대에게 잘 알려진 명소이기도 하다. △이종균 서울시니어스타워 이사장은 의료인에서 사회복지사업가로… 고령화 해법에 헌신 서울시니어스타워 이종균 이사장은 의료인의 길을 넘어 사회복지사업가로 새로운 삶을 걸어온 인생의 궤적과 소명을 이번 행사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이사장은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구조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회의 역할, 그리고 구조 자체를 재설계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라고 강조하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세계의 지혜를 모으고, 사회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이 포럼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1950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서중, 광주일고를 거쳐 조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전주 예수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수료하고 공군 군의관으로 복무한 뒤, 청량리에 송도병원을 개원하여 대장항문 질환 분야의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의료인의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복지 분야로 인생의 소명을 확장해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기상해 책과 자료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점심은 간소한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저녁에는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한다. 30년 가까이 실버케어, 요양, 사회복지 서비스 분야에 헌신해온 그는 앞으로도 한국의 고령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 기획
  • 박현표
  • 2025.06.18 18:37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실크로드의 종교 융합: 바미얀에서 만난 태양신과 미래불

해돋이의 첫 빛이 바미얀(Bamiyan) 계곡을 적실 때, 동쪽을 향한 거대한 불상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고대인들은 이 순간을 ‘미래불의 강림’이라 믿었다. 실크로드의 심장부에 자리한 바미얀 석굴은 단순한 종교 유적이 아니다.(그림1) 태양의 궤적과 정확히 맞닿은 대불의 방향, 페르시아 태양신과 불교의 ‘광명(光明)’ 사상이 융합된 독특한 상징체다. 바이얀 대불은 왜 ‘태양형 불상’으로 불릴까? 2001년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대불이 남긴 메시지를 따라 문명 교차로의 숨은 코드를 해독한다. △ 인도와 그리스-이란 문화의 교차로, 바미얀 바미얀은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사이 해발 2,500미터 고지대 분지에 위치하여 해돋이와 해넘이가 수직 절벽 사이로 비추는 장관을 이루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그림2) 『서유기』에서 현장 법사와 손오공이 넘어야 했던 대설산(大雪山)은 힌두쿠시 산맥이며, 바미얀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의 인도 문화와 북부의 그리스-이란 문화가 융합되는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이다. 이러한 문명 교차점에서 불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인도-이란계 민족인 사카족(Saka) 등에 의한 미트라(Mithra) 신앙이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빛의 구원자" 개념을 가진 태양신 미트라는 고대 여행자들이 이곳의 태양 광경을 신성시하며 얻은 종교적 영감과 함께 후일 불교의 미륵 신앙과 결합하는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 유럽인의 눈에 비친 바미얀: 오해에서 이해까지 바미얀은 19세기 영국 동인도회사의 중앙아시아 진출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1832년, 영국의 외교관 알렉산더 번스(Alexander Burnes)는 바미얀을 방문하여 불상을 "두 개의 우상(couple of idols)", "우아하지 않고 심지어 추하다(inelegant, even unsightly)”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불상이 야만인이나 원시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울릴 뿐이라고 했다. 이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 즉 아시아 문화를 서구의 틀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잘 보여준다. 커다란 전환점은 1858년 프랑스 학자 스타니슬라스 주리앵(Stanislas Julien)의 『대당서역기』 번역이었다. 현장 법사의 정확한 기록이 유럽어로 번역되면서 바미얀의 정체성이 제대로 파악되게 된다. △ 현장 법사와 바미얀 석굴: 실크로드 불교 예술의 증인 현장 법사는 『대당서역기』 범연나국(梵衍那國) 조에서 바미얀에는 수십 개의 가람과 수천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특히 세 개의 거대한 불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남겼다. 왕성 동쪽에는 높이 백여 척의 황동으로 만든 부처상이 있었고(城东有鍮石釋迦佛立像,高百余尺), 황금빛 나고 보석 장식이 찬란했다(金色晃曜,寶飾焕爛)고 묘사하여 당시 바미얀 대불의 장엄함을 생생하게 전했다. 또 현장은 현대 고고학자들이 찾지 못한 380미터에 달하는 열반 와불이 왕성 동쪽 2~3리 떨어진 가람 안에는 있었다고 뚜렷이 적어 놓았다. 그런데 2000년대초 아프가니스탄 고고학자 타르지(Tarzi)는 이 열반불을 발견했지만 크기가 불과 10여 미터였다. 거대 와불의 실제 모습은 아직은 미스터리다. △ 불교와 조로아스터교의 만남: 동대불 천정 벽화 동대불은 55미터의 부처 입상으로 무릎 한쪽이 약간 나와 있다. 이는 간다라와 그레코로만 조각상의 전형적인 특징이다.(그림3) 지금은 소실되었지만 이 불상의 천정 벽화에는 거대한 태양을 배광으로 전차를 타고 태양 망토를 걸친 채 검과 창을 든 태양신이 묘사되어 있었다.(그림4,5) 태양신 주변에는 날개를 단 전쟁의 여신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 승리의 여신 니케(Nike)와 유사하다. 또한 횃불을 들고 태양신의 발아래를 비추는 배화교 신관의 모습도 확인된다.(그림6) 동대불을 마주보는 산비탈에 뚫린 구멍들은 천장묘(天葬墓)의 흔적으로, 이는 불을 숭배하고 태양을 신성시하는 조로아스터교가 이 지역에서 불교와 공존했음을 보여준다. △ 서대불과 미륵 신앙의 융합 서대불 불상은 인도 굽타(Gupta) 마투라(Mathura) 불상과 매우 가깝다.(그림7) 서대불 천정에는 대좌에 앉은 불상을 중심으로 낙천(樂天)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천녀들이 춤추며 꽃을 뿌리는 정토 세계가 그려져 있었다.(그림8) 특히 중앙의 보살이 손에 든 불로불사의 묘약 항아리는 미륵보살의 전형적 도상으로, 이는 미래불 미륵이 도솔천에서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상승 사상"과 "하생 신앙"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미얀에서 태양신과 미륵불의 결합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 이란의 미트라(태양신)가 가진 "빛의 구원자" 개념은 미래불 미륵의 "구세주" 성격과 본질적으로 상통한다. 동대불이 해돋이 방향에, 서대불이 해넘이 방향에 배치된 것은 태양의 순환 주기와 미륵의 미래 하생을 연결시킨 종교적 상징체계를 보여준다. △ 바미얀 석굴의 현재 상황과 복원 노력 바미얀 석굴은 2001년 탈레반의 파괴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나, 유네스코 주도의 국제적 복원 노력을 통해 그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고대 실크로드에서 헬레니즘, 간다라, 인도 문화가 융합된 이 석굴군은 태양신 숭배와 미륵 신앙이 결합된 종교적 관용의 독특한 사례이다. 따라서 바미얀은 종교 갈등이 심화되는 현시대에 문화 융합과 공존의 지혜를 전하는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이다.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

  • 기획
  • 기고
  • 2025.06.17 18:03

[뉴스와 인물] 신언성 제9대 전주기상지청장 "기상청이 만든 정보 꼭 필요한 곳에 쓰이길"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두고 날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북처럼 산악과 평야, 해안이 공존하는 지역은 기상재해의 피해 범위도 넓고 다양하다. 이러한 시기, 지역 예보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기상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1월 부임한 신언성 전주기상지청장을 만나 여름철 기상 전망과 대응 전략, 도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기상서비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전주기상지청장으로 지난 1월 부임하셨습니다. 전북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지난 1월 부임해 벌써 100일이 넘었습니다. 부임 직후에는 눈과 한파가 이어졌지만, 따뜻하게 맞아 주신 직원들과 도민들 덕분에 무척 힘이 났습니다. 전주는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전주천의 맑은 물과 돌다리, 도시 숲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안정감이 인상 깊었습니다. 계절마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이 도시에서 도민 안전과 생활 편익 증진에 힘쓰겠습니다.”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으신지요. “올해 기상청의 정책목표는 ‘기상재해에 안전한 국민, 기후위기에 준비된 국가’입니다. 전주기상지청 역시 방재기상서비스를 강화하고, 위험기상 예측 역량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호우 긴급재난문자를 기상청장이 직접 발송하는 체계가 전북권에도 적용됩니다. 또한 국지예보 기술 개발과 관측망 확충을 통해 지역 맞춤형 예보 가이던스를 개선하고 있습니다.” 기상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습니다. “제 신념은 단순하고 작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정보가 진짜 가치 있는 정보였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기상 정보가 공공재이다 보니, 흔히들 ‘당연히 제공되는 것’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 하나가 실제로는 매우 큰 경제적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대전청에 근무할 때 부모님께서 '농약을 치겠다'고 전화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정밀한 레이더 시스템은 없었지만, 위성 자료로 분석해 보니 곧 그 지역에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 농약 치시면 안 됩니다'고 말씀드렸고, 실제로 비가 왔습니다. 그날 농약을 안 치신 덕분에 손해를 막으셨죠. 그 한 가정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이런 정보가 전국적으로 퍼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북에도 기상관측차량이 도입됐습니다. “저희 지청은 작년 말 기상관측차량을 도입해 훈련을 마친 뒤 3월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이 차량은 지상 6종, 고층 5종의 기상요소를 측정할 수 있으며, 산불이나 태풍, 폭염, 결빙 등 재난 현장에서 기상정보를 수집해 즉각 지원합니다. 하반기에는 이동형 노면센서도 도입해 도로의 상태 정보를 확보하고, 교통안전 대응에도 기여할 계획입니다.” 올해 3월 갑작스러운 폭설 등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가 컸습니다. “3월에 전북에는 15년 만에 대설경보가 발효되며 이례적인 폭설이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전북이 관측 이래 최고 평균기온을 기록했고, 열대야와 폭염일수도 평년 대비 3~4배 많았습니다. 7월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집중호우로 군산과 익산에 큰 피해가 발생했지요. 이런 극단적인 날씨는 앞으로 더 빈번해질 전망이어서 조기경보 시스템과 신속한 정보 전달 체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맞춤형 기상기후 서비스 제공을 강조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야외노동자 활동지수’를 개발해 전주시와 공유 중입니다. 기온, 풍속 등을 반영해 야외작업 가능 여부를 5단계로 나누어 제공하는 서비스로, 폭염과 한파에 특히 유용합니다. 또한 전북혁신도시 축산냄새 예측 서비스도 추진 중입니다. 기상 조건에 따라 악취 확산 범위를 예측해 시각화함으로써 정책 대응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농업기상 문자서비스 ‘들에서 콜’, 계절별 꽃가루 정보, 단풍 절정일 예보 등도 꾸준히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갈수록 날씨 예측이 어려워졌습니다. “기상청은 슈퍼컴퓨터, 위성, 수치예보모델 등 기술 역량을 확보해왔지만, 기후변화는 그 이상의 변동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지역 편차가 커지고 날씨의 진폭이 확대되면서, 전북처럼 지형이 다양한 지역에는 맞춤형 대응이 필수입니다. 시·군·구별 기후변화 상황지도를 제공하고, 지자체 기후적응대책 수립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립전북기상과학관을 통해 청소년 대상 기후변화 교육도 강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봄철 산불 피해가 컸습니다. 기상 부분에서는 어떤 점을 보면 대비할 수 있나요? “산불은 봄철에 특히 빈발합니다. 최근 10년간 산불의 65%가 봄에 발생했죠. 실효습도 25% 이하, 풍속 14m/s 이상이 예상되면 건조·강풍 특보를 발효합니다. 기상청 날씨누리와 앱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확인해 주시고, 화기 사용 자제 등 예방 행동도 병행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저희는 산림청 등 관계기관에 산불 예방 기상정보를 주기적으로 제공하고, 대형 산불 시에는 진화 지원을 위한 기상자료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전주기상지청만의 강점이 있다면. “전주는 1918년부터 기상관측을 시작한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전국적으로도 100년 이상 장기 관측자료를 가진 곳은 8곳 뿐입니다. 이 자료는 기후변화 분석과 대응 정책 수립에 있어 큰 자산입니다. 저희는 전북 전역과 앞바다 예보까지 담당하고 있으며, 농업 피해 예방을 위한 우박·서리 예보 등 실용적인 기상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들과 도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날씨는 하루하루 바뀌지만, 저희의 사명은 늘 같습니다. 도민 여러분의 안전한 일상과 재산 보호를 위해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예보와 분석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의 특성과 변화하는 기후에 맞춘 정밀한 예보로, 생활 속에서 신뢰받는 기상청이 되겠습니다. 기상정보를 적극 활용해 주시고, 기후위기 대응에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언성 전주기상지청장은 신언성 지청장은 1969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기상청에 입사해 청주기상지청 관측예보과장, 기상청 레이더지원팀장, 계측표준협력과장 등을 역임하며 기상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신 지청장은 정확한 기상 정보로 도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싶다고 강조한다. 지역민과 밀접한 기상서비스를 제공해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지청장은 “기상청에서 고생해서 만든 정보들이 더욱 필요한 곳에서 활용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경수
  • 2025.06.15 18:30

따뜻한 마음이 흐르는 곳, 전북특별자치도 헌혈의 집

6월 14일은 세계 헌혈자의 날이다. 국제 헌혈운동 관련 기관(국제적십자사연맹, 세계보건기구,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이 지난 2004년 제정한 세계 헌혈자의 축제다. ABO 혈액형을 최초로 발견해 노벨상을 수상한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박사의 탄생일인 6월 14일을 기념해 지정됐다. 세계 헌혈자의 날은 전 세계적으로 매혈을 지양하고, 자신의 혈액을 무상으로 기증해 생명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헌혈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날이다. 전북특별자치도혈액원도 세계 헌혈자의 날을 기념해 전북현대모터스를 찾아 헌혈자들과 함께 홈경기를 관람할 예정이다. 또한 도민들을 대상으로 헌혈 홍보 및 기념품 증정 행사도 진행한다. 아울러 혈액관리본부는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광화문광장 놀이마당에서 시민 헌혈 참여를 위한 헌혈버스 운영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한 방울의 혈액은 누군가에겐 삶의 희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는 애타게 수혈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다. 도내 7곳의 헌혈의 집은 소중한 생명을 잇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각기 고유한 장점과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소중한 헌혈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이웃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도내 헌혈의 집의 특징을 살펴봤다. 익산센터 “시민의 따뜻한 연대로 생명을 잇는 공간” 익산센터는 2008년 12월 31일 원광대학교 앞 대학로에 자리 잡았다. 익산시 유일의 헌혈센터인 이곳은 항상 헌혈자의 발길이 이어지는 생명나눔의 거점이다. 단순히 헌혈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책임 간호사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헌혈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헌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문진 시에는 친절하고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헌혈 중에도 눈을 맞추며 대화로 긴장을 풀어주는 세심함이 있다. 방문자들은 “익산센터는 헌혈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기분 좋아지러 가는 곳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고사동센터 “전주의 중심에서 흐르는 헌혈의 전통” 2009년 2월 문을 연 고사동센터는 15년 넘게 전주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모아온 생명나눔의 현장이다. 객사5길 한복판에 자리한 이곳은 접근성이 뛰어나 전북혈액원의 대표 센터로 자리 잡았다. 고사동 센터 간호사는 “처음 오신 분이 다음에도 웃으며 찾아올 수 있도록 헌혈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헌혈자들이 찾으며, 첫 방문이 다음 방문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생명을 살리는 확신이 싹튼다. 도심 속 상징성 덕분에 시민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헌혈 장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타 지역 방문객과 도내 타 지역의 헌혈자들도 자유롭게 방문하는 등 신뢰와 다양성을 고루 갖춘 공간이다. 군산센터 “헌혈하면 즐거움이 따라오는 도시” 군산센터는 군산시 월명로 중심 롯데마트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대형 상권과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으로 유동 인구가 많아 접근성이 매우 우수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헌혈, 장을 보러 나온 김에 들르는 헌혈 등 일상 속 생명나눔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곳이다. 특히 30대 이상 헌혈자 비율이 약 60%에 달해 이벤트성 참여보다 책임감 있는 헌혈 문화가 자리 잡은 도시로 평가받는다. 시민들이 정기적으로 헌혈에 참여하는 군산은 성숙한 생명나눔 도시다. 효자센터 “주말이면 먼 길도 마다치 않고 찾아오는 곳” 전주시 완산구 용머리로에 위치한 효자센터는 2012년 문을 열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 덕분에 ‘쉼 같은 공간’으로 불리며, 남부권 주민들에게 편안한 헌혈처로 자리 잡았다. 정읍, 남원, 부안 등 인근 지역에서도 헌혈자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신뢰를 받고 있으며, 매월 헌혈 캠페인과 봉사 단체 활동도 활발하다. 특히 이곳은 생활 속 자발적 헌혈 문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내가 존중받는 시간이었다”는 헌혈자들의 반응 속에 직원들의 진심 어린 응대가 돋보인다. 헌혈과 동시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옹달샘 같은 곳이다. 송천센터 “성분 헌혈의 고수들이 찾는 곳” 2023년에 문을 연 송천센터는 젊은 감각으로 새로운 헌혈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근 직장인, 고등학생, 자영업자들이 주로 찾으며, 특히 성분 헌혈 참여 비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단순한 봉사를 넘어 자기관리와 공동체 기여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헌혈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다음 헌혈일이 기다려진다”, “건강을 점검할 기회가 된다”는 반응처럼 헌혈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확산되는 곳이다. 송천센터는 '단순히 헌혈만 하는 곳이 아니라, 편하게 쉬고 가는 곳'이 되기 위해 진심을 다한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대 한옥센터 “캠퍼스 속 가장 따뜻한 공간” 전북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전북대 한옥센터는 2023년 11월 문을 열었다. 전국 유일의 한옥형 헌혈의 집으로 전통과 나눔이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2024년 기준 전체 헌혈자 중 20대 비율이 53.7%, 대학생 비율이 64.5%에 달하며, 인근 고등학생과 직장인들도 고르게 참여해 미래세대와 지역이 함께 만드는 헌혈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다. 책임 간호사는 “학생들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센터, 그게 바로 우리가 꿈꾸는 모습이다”고 말했다. 장동센터 “조용하지만 단단한 헌혈의 심장” 전북혈액원 본원 안에 위치한 장동센터는 전주 혁신도시 공공기관 밀집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북적이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환경에서 책임감 있는 헌혈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특히 30대 이상 직장인 헌혈자 비율이 70~80%에 달해, 단발적인 이벤트보다 지속적인 헌혈 문화가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꼼꼼한 건강 체크, 친절한 문진, 안정적인 채혈 환경은 헌혈자가 안심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매일 오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당신이 올 때마다 우리는 가장 따뜻하게 맞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장동센터 간호사들은 시간을 내어 방문하는 헌혈자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맞이하고 있다. 강진석 전라북도혈액원장은 “전북특별자치도 내 7개 헌혈의 집은 생명이 위급한 도민을 살리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발적인 헌혈을 통해 이 생명선을 온전히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고 당부했다. 헌혈의 집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 및 공휴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점심시간에도 방문이 가능하다.

  • 기획
  • 김경수
  • 2025.06.15 16:00

[트민기] “이제는 쓴다”⋯텍스트힙 넘어선 라이트힙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이 부분 무슨 뜻인지 이해되는 사람?” 이하늘(25) 씨는 문장 밑에 밑줄을 긋고 이같이 적어 내려갔다. 최근 그는 지인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돌아가며 읽은 후, 자기 생각을 책에 기록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책을 오래 읽을 수 있는 방법으로 ‘교환독서’를 추천받은 후 시작한 취미 활동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각자 인상적인인 부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감상을 적는다. 가끔은 함께 책을 읽는 지인에게 해석을 요구하기도 한다. 좋은 문장이 있으면 다 같이 모여 필사하기도 한다. 단순한 읽기에서 그치지 않고 쓰기로 행위를 확장한 것이다. 이 씨는 “혼자 읽으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고 빨리 질리는데, 여럿이서 하면 더 즐겁게 독서할 수 있다”며 “특히 종이에 쓰는 행동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좋다”고 기자에게 교환 독서를 추천하기도 했다. 지난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몰아쳤던 텍스트힙 열풍이 ‘라이팅힙’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확장되고 있다. 라이팅힙은 ‘쓰기(writing)’와 ‘유행에 앞서 가다’, ‘멋지다’ 등의 뜻을 담은 영어 단어 ‘힙(hip)’과 합쳐진 신조어다. 최근 2030세대가 글 쓰는 행위를 멋있게 느끼는 데서 파생됐다. SNS에는 라이팅힙 트렌드의 인기를 입증하는 게시물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교환 독서하는 방법 소개부터 필사책 추천까지 쓰기를 돕는 게시물이 올라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13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필사’라는 키워드로 올라온 게시물이 73만 개를 돌파할 정도다. 비슷한 키워드인 필사스타그램은 13만, 필사노트는 11만을 기록했다. 필사 관련 도서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헌법 필사> 등 필사 관련 도서가 매대를 채우고 있다. 이중 <헌법 필사>는 12·3 비상계엄 시기와 맞물려 일시적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문구계도 덩달아 호황을 맞았다. 라이팅힙 흐름을 타고 필사가 유행하자 형광펜, 만년필, 마스킹테이프 등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문구용품 매출이 크게 늘었다. 커머스 플랫폼 29CM는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2일까지 문구·사무용품 거래액이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고 밝혔다. 카테고리별로 보면 고급 만년필·볼펜·연필 등 필기구는 2.4배 늘었고 다이어리·플래너는 64%, 노트류는 34% 이상 거래량이 증가했다. 29CM 관계자는 “텍스트힙 열풍에 이어 필사하거나 일기를 쓰는 등 일상에서 손글씨로 기록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며 문구 수집가들이 늘고있다”고 분석했다.

  • 기획
  • 문채연
  • 2025.06.14 07:59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