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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10살 된 조카는 외동이다. 가족 안에 자신 이외에 다른 어린이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언니는 털 알레르기가 있고,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강아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간의 외로움도 달래면서 작고 귀엽고 키우기 손쉬운(손쉽다고 생각하는) 동물. 그 접점에서 만난 것이 햄스터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시골 면 단위에서 자랐고 동물이나 곤충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시골에서 자랐다고 해서 동물들과 다 친한 것은 아니라서, 언니는 동물을 상당히 무서워하는 편이고 곤충의 곤자만 들어도 자지러지는 편이었다. 나는 동물과 꽤 친한 편이었는데 동물 입장에서는 나 같은 어린이가 외려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다리를 한쪽씩 떼어내며 자꾸 괴롭히는 작은 악마였을 테니까. 올 3월, 조카와 대형 마트에서 햄스터를 구입하였다. 마트 한 쪽에 물고기, 앵무새, 햄스터 작은 동물들을 구매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고 한쪽 케이지에 10여 마리의 햄스터가 동그란 박에 안에 숨어있었다. 당시에는 이게 햄스터에게 좋지 않은 환경인지 알지 못했다. 이후에 햄스터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다른 햄스터와 함께 사는 동물이 아니다. 한 케이지에 한 마리씩 키워야 하는 영역 동물이다. 흔히 햄스터가 자기 새끼를 먹는 비도덕적인 동물로 인식하는데, 이는 어미 햄스터가 새끼를 키울 환경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잘못은 인간의 무지로 인한 탓이다. 햄스터 '도찌'. 우리가 데려온 햄스터, 이 조그만 생명체는 난쟁이를 뜻하는 드워프 햄스터로(Dwarf hamster)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종이고 전체적으로 회색빛에 가운데 검은색 줄무늬가 있는 모습이다. 조카는 자기 이름의 한 글자를 따서 도찌라고 이름 붙이고, 애지중지하였다. 햄스터는 송곳 같은 날카로운 앞니가 두 개가 있는데, 손으로 친해지는 과정에서(핸들링) 조카는 그만 물려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아이패드 게임보다 시큰둥해지고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데 언니는 동물을 여전히 무서워했고 관계도 맺지 못했다. 아무도 못 키우는 상황이 되자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을 때 버린다고 하였다. 물론 이모인 내가 당연히 키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볍게 한 농담일 수 있겠으나 한 생명을 두고 행한 안일한 처사였다. 도찌가 알아들었다면, 얼마나 화가 나고 슬퍼했을까. 어느덧 도찌를 5개월째 키우면서, 조금씩 서로를 길들이고 있다. 핸들링 과정에서 날카로운 이빨로 콕 물리기를 반복한 탓에 많이 친해지지는 못한 체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서 동거를 시작했고 식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다. 1인 1동물 가구, 현재 나의 가족 구성원이다. 꽤 감동적인 순간들도 있었다. 가만히 엎드려 있는 도찌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그러했고, 한밤중의 쳇바퀴를 열심히 돌리는 소리가 소음이 아니라 열심히 운동하는구나. 나도 열심히 운동해야겠다라는 배움의 순간으로 전환되는 때가 그러했다. 바깥공기가 유난히 지치고 힘들 때, 따뜻한 존재와의 접촉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나와 다른 비인간 존재와의 만남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한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올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312만 9000가구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아지는 만큼 학대와 유기도 많아지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국민 2000명 대상으로 동물보호법, 동물원야생동물 등 동물보호복지 정책에 대한 인식을 설문 조사한 <2021 동물복지 정책개선 방향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유기 동물 발생 이유를 묻는 질문(중복응답 허용)에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의 책임 인식이 부족해서(76.5%)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2위는 동물 유기에 대한 처벌이 낮아서(58.5%), 3위는 쉽게 반려동물을 사고팔 수 있어서(47.7%). 이처럼 동물에 대한 책임 부족과 문화가 가장 큰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햄스터는 평균 수명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 개나 고양이도 20년을 넘지 않는다. 가끔씩 인간이 너무 오래 사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당대의 기후 위기처럼 늘어난 수명만큼 다른 종과의 공존을 기여하는데 일조하면 좋으련만, 지구 자원을 독점하고 착취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인류가 전부가 아니라 다른 종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자원을 덜 쓰고 다른 종과(지구) 함께 나눠 쓸 것인가? 필멸의 길 앞에서, 좋은 인간상에는 이런 윤리적 사유가 포함되어야 한다. 지난 9월 28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이 신설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동안 민법 제98조에 의거하여 동물은 법적으로 물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학대를 받거나 심지어 사살을 당해도 처벌받지 않았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가 인권 보장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인 것처럼, 동물이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의 동물권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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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8 16:48

[뉴스와 인물] “생활정의, 지역사회 공동체와 함께 실천해나갈 것”

수사기획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형세(55경찰대 6기) 전북경찰청장이 지난 7월 13일 취임한 후 오는 20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수사권조정 원년의 해, 자치경찰제 원년의 해를 맞아 큰 변혁기를 맞고 있는 전북경찰청의 수장인 이 청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하신 지 100일이 되어갑니다. 전북일보 애독자, 그리고 도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북경찰청장 이형세입니다. 7월 13일 부임 이후, 선의의 피해자를 보듬고, 불의에 엄정하게 대응하는 생활정의 확립을 비전으로, 선제적?예방적 치안을 고도화하고, 공무방해사범 엄단 등 현장치안력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과학치안 아이디어 공모전, 모바일 역사관 구축 등 참여치안 활성화와 전북경찰 자긍심 제고에도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수사권조정, 자치경찰제와 같은 경찰체제의 큰 변화가 도민에게 고품질 치안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정적 정착에 심혈을 기울이는 등 현안을 챙기다 보니 경찰청 주관, 치안종합성과 평가에서 저희 전북청이 우수 관서에 선발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모두 도민여러분들과 현장의 동료들 덕분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도민의 안전과 행복한 일상을 위해 전북경찰 모두가 하나 되어 성심껏 일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드립니다. -취임 당시 안전과 공정의 가치 등을 강조하셨습니다.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부분을 사실 크게 보자면 세 가지 정도 되는데 안전과 공정, 그리고 단합의 정신입니다. 도민들의 안전하고 평온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 전북경찰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이기에 전북경찰 전 구성원들이 이를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근무해 줄 것을 당부하는 차원에서 강조했고, 이를 위한 법집행 과정에서도 단순히 법과 제도라는 미명아래 함부로 도민을 제재해서는 안 됩니다. 안전과 공정, 단합의 정신을 기반으로 일상적인 모든 치안활동 안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것. 특히 이 부분에 관심을 갖고 전북경찰 동료들과 함께 업무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경검수사권조정안이 통과된 점도 대한민국 경찰 역사의 획을 긋는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의 전략연구팀장을 시작으로 1팀장개혁단장수사기획조정관까지 거치면서 수사권 개혁 업무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특히 2019년 4월말 수사권 조정안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상정된 이후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약 9개월간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힘들게 보냈습니다. 혹자들은 수사권 조정이 경찰과 검찰의 권력다툼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절대 아닙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식민통치를 위해 일본이 만든 잘못된 사법체계를 바로잡아 국민에게 그 혜택을 되돌려주고자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죠. 정부와 검찰 등 여러 기관들을 설득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어느 한 순간도 쉽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많은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왜곡된 수사구조를 조금이나마 민주적 형사사법체계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역동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제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보도와 국정감사 등을 통해 수사기관의 인력 및 업무처리 시간 증가 등이 화두였습니다. 최근 수사권 개혁에 따른 업무량 증가, 워라벨을 중시하는 조직문화의 변화 등으로 일부 일선 경찰관들의 수사부서 근무 기피현상이 있는 듯 합니다. 국수본에서도 이런 수사현장의 문제점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으며, 베테랑 수사인력의 유출을 방지하고 젊은 인재의 적극적인 수사부서 유입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 먼저, 이번 하반기 인사부터 수사부서에 근무 중인 수사경과자의 기동대 전보를 제한해 젊은 수사관이 안정적 위치에서 수사업무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인사지침을 변경했고, 수사부서의 업무량을 종합적으로 진단, 분석한 후에 이를 토대로 일선 경찰서장들이 하반기 인사 시 현장의 수사인력 증원에 우선 활용하도록 조치했으며, 수사경과자 통합 보직공모제를 시행해 특정 수사부서의 근무 회피 현상을 제도적으로 보완했습니다. 수사경찰의 업무 과중은 궁극적으로 수사 서비스의 질과 직결되므로 국수본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현실에 맞는 인력증원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내년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사범에 대한 대응 및 수사 방침은 무엇인가요? 내년에는 대통령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함께 치러지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선거관련 치안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라 전북경찰은, 도내 전 경찰관서에 선거사범 수사전담반을 편성해 선거 관련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고 엄정하고 공정한 단속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또한, SNS 등을 통한 가짜뉴스 유포, 선관위정당 홈페이지 해킹 및 디도스 공격 등 사이버상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응하여, 완벽한 선거치안 확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히, 금품선거, 거짓말선거, 불법선전, 불법단체 동원, 선거폭력 등 선거의 공정성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선거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 정당이나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과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다 안전하고 평온한 지역사회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경찰 스스로의 노력뿐만 아니라, 도민의 참여와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북경찰은 도민 여러분들의 눈높이와 관점에서 생각하고 어려움과 고통에 공감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 보호와 지원활동을 적극 전개하는 등 생활정의 를 지역사회 공동체와 함께 실천해나갈 것입니다. 도민여러분들께서도 안전하고 행복한 전북을 만들어 가는데 적극 참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전북경찰에 대한 관심과 성원도 아낌없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역을 밝히는 등불이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우리지역 정론지인 전북일보를 통해 전북경찰의 치안방향을 설명드릴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도민 여러분들 모두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군산 출신인 이 청장은 익산 원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 경찰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경위로 경찰제복을 입었다. 이 청장의 경찰에 대한 꿈은 고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됐다. 고교 시절 적성검사를 통해 경찰이 적성에 맞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로는 내면에 가지고 있던 정의감을 꼽았다. 그는 저의 신체적 능력은 통상 시민들이 생각하는 강건한 경찰의 이미지는 아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적성검사에 경찰이 나왔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경찰생활하면서 수없이 생각을 했다. 결론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화가를 하고, 음감이 뛰어난 사람들이 음악을 하듯 경찰은 어떤 정신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 경찰관을 하느냐인데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나쁜 사람을 혼내줘야겠다는 그런 정의감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슈퍼맨처럼 나라를 구하고 지구를 구하는 큰 정의감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들에 대해서 좋은 사람을 도와주고 나쁜 사람을 혼내줘야겠다는 소박한 정의감을 갖고 있어야 그런 정신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 경찰이 되어야 경찰도 발전하고 시민사회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된다고 자신의 신념을 밝혔다. 그는 충남지방경찰청 수사과장, 경기 고양경찰서장, 경찰청 피해보호담당관, 서울 양천경찰서장, 경찰청 과학수사담당관수사구조개혁 1팀장수사구조개혁단장(경무관)수사기획조정관(치안감) 등을 역임했다. /강정원 최정규 기자

  • 기획
  • 전북일보
  • 2021.10.17 17:41

[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새로운 한 달간의 축제와 특별전, 월드비빔위크 '비빔의 맛'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축제 전주비빔밥축제는 2021년 10월 9일부터 31일까지 4주간 매주 주말에 운영된다. 전주향교길 일대에서 소규모 온오프라인 형식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비빔밥이라는 하나의 음식이 아닌 비빔을 뜻하는 어울림에 의미를 두고 맛으로 다양한 만남을 만드는 축제로 초점을 맞췄다. 기존의 축제에서 나아가 더 많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올해, 2021년에는 류재현 문화기획자를 총감독으로 위촉하였다. 새로운 총감독이 그리는 2021년 전주비빔밥축제는 부제 월드비빔위크(World Bibim Week)에서 예측할 수 있다. 하나의 음식 비빔밥이 아닌 서로가 어울리는 문화 비빔의 축제다. 이번 전주비빔밥축제는 음식문화를 매개로 지역과 사람을 엮는다. 10월 9일부터 31일까지 매주 주말마다 비빔위크(커플의 날), 비타민위크(아내의 날), 단백질위크(남편의 날), 월드위크(가족의 날)로 사람이 어울린다. 전주한옥마을에 집중하되 구 시내 객사, 웨딩의 거리, 동문길 등 전주 대표 상권과 함께 축제에 어울리는 특별한 요리와 할인 혜택이 펼쳐진다. 축제에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전주 전역으로 뻗어나간다. 외식업협회 완산지부와 덕진지부의 협업으로 이날만 즐길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고 소개한다. 축제 기간 동안 어우러진 전주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가장 전통적인 지역이지만 젊은 세대가 더욱 즐길 수 있다. 그는 전국에서 오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전주다운 축제를 보여주고자 한다. 과거 문헌을 보면 비빔밥을 골동반(骨董飯)이라고 했다. 골동은 여러 가지 재료를 한 데 넣고 비벼서 만든 밥을 뜻한다. 2021 월드비빔위크 특별전 《비빔의 맛》은 골동의 의미를 받아전주와 음식이란 키워드로 지역간, 세대간, 사람간 어우러진 만남을 소개하였다. 특별전은 〈명인의 맛〉〈향교의 맛〉〈그릇의 맛〉 세 가지로 구성되어 진행된다. 〈명인의 맛〉은 전주 음식 명인들의 세월의 이야기와 소장품을 소개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주사람들의 자랑 중 하나는 밥맛이 좋다는 것이다. 전주 밥맛을 지켜주는 건 누구일까. 음식창의도시 전주의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명인명가들이 담아낸 음식은 수십 년 닦아온 그들의 솜씨로 비롯된 것이다. 기존의 명인명가의 음식을 감상한 것에서 나아가 이번 특별전의 3, 40년 거뜬히 함께했을 삶의 이야기와 세간살이를 마주한다. 〈향교의 맛〉은 타지 작가들이 전주향교를 담고 표현한 전시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는 김물길, 양명준, 이루다, 최근우 작가가 이번 전시를 꾸민다. 전주향교길이 이색적인 그들이 시선에서 자신만의 재능으로 표현하고 담고 전한다. 타지 사람의 작업이 즐거운 이유는 늘상 보던 거리에 새로운 맛을 더하는 뚜렷함이다. 전주사람들에게는 관광지나 천변 산책로로만 여겨지던 거리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이방인이 그리는 전주의 시선을 즐겨본다. 〈그릇의 맛〉의 맛은 전주 방짜유기장 부녀와 남원 소목장과 옻칠장 부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그릇은 좋은 음식의 완성이다. 훌륭한 음식을 만들고 알맞게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이 다채로운 만큼 그릇의 생김새도 다양하며, 공예가들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공예가의 정성어린 솜씨로 만든 그릇을 충분히 만끽해본다. 전시기획은 콩나물국밥으로 시작하였다. 2021 전주비빔밥축제 류재현 총감독님은 8월 11일, 전주왱이 콩나물국밥집에 들렸다. 총감독님은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유대성 대표와 대화하였다. 대화는 영감을 꽃피운다. 이 전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어쩌면 100년이 넘는 주걱과 도마를 만난 것이다. 소녀의 얼굴이 보이는 오래된 주걱, 3대를 거치며 깊게 파인 도마를 보며 오랜 시간 만들어낸 명품은 이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맛깔 나는 음식의 도시, 전주의 명인들은 보물을 그들이 내놓는 음식과 더불어 그들의 솜씨와 도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떤 우여곡절을 통해 식당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갔는지 예상할 수 없다. 그들이 겪었을 희노애락을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들의 세월과 함께 버텨준 세간살이만이 묵묵히 곁을 지킬 뿐이다. 여전히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를 끓이고 있을, 전주왱이 콩나물국밥은 이렇게 이야기를 담은 전시를 출발시켰다. 이번 〈명인의 맛〉에는 전주왱이 콩나물국밥 유대성 대표의 이야기는 물론, 김명옥김치 전통음식연구소 김명옥갑기회관 김정옥청실홍실 신복자궁 유인자반야돌솥밥 임복주가족회관 김년임 명인명가를 소개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과 전주 천변이 맞닿는 길, 전주향교길을 가보았는가. 〈향교의 맛〉은 전주향교길을 처음 만난 타지 작가들의 시선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타지 사람들의 작업이 즐거운 이유는 뚜렷하다. 우리가 늘상 보던 거리에서 새로운 맛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 사람들에게 관광지나 천변 산책로 정도로 여겨지는 거리를 작가들은 어떻게 담아냈을까? 전주 방문객인 그들이 그리는 전주 향교길을 즐겨보는 전시를 마련하였다. 전주향교길의 풍경을 재치 있게 표현한 작품은 김물길 작가의 작업이다. 673일 46개국, 그리고 400여 장의 그림이란 타이틀을 가진 그는 24살에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수많은 여행지 속에서 만난 영감들을 그림에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림을 마주한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위로가 되는 그림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작업한다. 전주향교길의 거리를 담아낸 최근우와 양명준 사진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전주 한옥마을의 새로운 이면을 봤다고 말한다. 전주 한옥마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고정됐었기 때문이다.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하고, 길거리음식을 먹기 위해 길게 줄 선 모습이다. 그러나 남천교를 시작으로 전주향교까지 이어지는 길목, 향교길은 사람 사는 정취로 가득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음식이 다채로운 만큼 그릇의 생김새도 다양하다. 그 그릇을 만드는 공예가들의 사연도 얼마나 각양각색일까. 전북 전주 풍남문 옆에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 유기를 두드리는 공방이 있으며, 남원에는 나무를 깎고 옻칠하는 부부도 있다. 그들의 정성으로 만든 그릇을 소개하였다. 백자나 사기, 청자 등 도자기를 식기로 즐기는 한국답게 도자기를 사고, 쓰고, 감상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나 그릇은 도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상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자는 시도를 이 전시에서 나타낸다. 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유기와 목기로 구성된 테이블을 맛본다. 유기는 전북무형문화재 제43호 방짜유기장 이종덕 보유자와 이솔이 전수자의 작업이다. 이종덕 보유자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짜유기를 연구 및 제작하고 있다. 꽹과리나 징 등 소리를 내는 악기부터 밥그릇, 와인쿨러 등 다채로운 그릇까지 메질로 두드려 만든다. 이솔이는 아버지의 업을 이어 작업을 배우고 있다. 목기는 남원 파파우드 공방의 솜씨이다. 남편 소성선 소목장과 아내 황미슬 옻칠장의 협작품이다. 어릴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던 소성선은 남원으로 내려와 가구와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황미승 옻칠장이 그의 곁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다 시작한 것이 옻칠이었다. 2018년부터 공방 매나메종을 차리며 동등한 작가로서 작업을 맞춰가고 있다.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강정원
  • 2021.10.13 16:55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노후 종교생활과 영성

노년기는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 측면에서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는 시기이다. 노화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외부환경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아존중감이 감소하고 불안감과 우울감이 증가한다. 더구나 직장으로부터의 은퇴와 함께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등은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대폭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시기에 종교 활동은 노후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년기 종교 활동에 관한 연구가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대체로 종교생활은 주관적 안녕감을 강화하고 우울증을 저하시키며 사망률과 유병률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노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의 유지 및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국내외 연구결과, 종교생활을 하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생활 만족도가 높고 소외감이 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인들이 종교생활을 통해 생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자아 존중감을 높이며 친교활동 등으로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노인의 얼굴 표정이 더 밝다고 말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노후에는 젊은 시절보다 종교에 의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 보건복지부의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59.8%가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0년 11월 한국리서치의 종교인식조사에 나타난 우리나라 18세 이상 남녀 중 종교를 믿는 사람 48%에 비해 훨씬 높은 비율이다. 또 성별로는 여자 노인이 64.4%, 남자 노인이 53.6%로 여자 노인의 종교 활동이 더 활발했다. 종교별로는 개신교(기독교) 24.3%, 불교 23.8%, 천주교 10.8%, 유교 0.6%, 원불교 0.2%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노인은 52.9%가 주1회 이상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종교생활은 노후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면 실제로 종교생활을 하는 노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이소원김찬우, 2016; 김형수, 2020). #1 성당에 다니면서 장례미사에 참 많이 다녔어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정성껏 보내드리고 사도회 분들도 최선을 다해 돕는 것을 보니 참 든든했어요. 전 천주교 장례미사로 제가 떠났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에게 성당에서 해 주었던 것처럼 저에게도 해 주시지 않을까요? 마지막까지 저를 도와 줄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참 좋아요. #2. 찬송 부르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도하면서 회개도하고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나만의 결단을 하죠. 특히 기도는 나를 바라보고, 내가 사는 힘이에요. 이제 바라는 것은 없어요. 천국 갈 확신은 있으니까 욕심 부리지 않고 봉사하며 살다가 아름답게 떠나고 싶어요. #1과 #2는 각각 신앙경력 23년의 천주교 신자(80)와 20년의 개신교 신자(67)가 들려준 노후 종교생활에 대한 소회다. 기독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위한 출발이며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유한한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의 은총에 의해 영원한 생명으로 덧입혀지고 새로운 존재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단절은 이별과 슬픔을 동반하지만 부활과 영생의 상급을 바라보며 서로 위로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죽음의 공포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3 저의 어머님은 매일 천수경을 들으시는 불교신자였어요. 저도 날마다 (이곳에) 올 수만 있으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 하겠어요... 화장실이 절은 다 바깥에 있잖아요. 등산객들이 많이 사용해서 지저분해요. 그래도 화장실 청소 다하고, 그 많은 사람들 공양 값 주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말 못하는 부처님하고 한 약속을 지켜야지,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내가 그렇게 경험을 했고, 그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존경스럽고, 내가 지금까지 결혼해서 애를 둘 낳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도 있고, 얼마나 좋아요. #3은 50년 동안 절에 다니고 있는 불교신자(72)의 얘기다. 불교적 관점에서 죽음은 깨달음의 지혜로 본다. 불교에서 죽음은 본래 처음부터 없다는 깨달음이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주체적인 의식실체로서의 자아도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온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없애버림으로써 죽음을 극복한다. 즉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이라는 공포, 이 두 가지 허구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인간은 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종교를 가진 노인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세를 살아가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 죽음불안을 감소시키고 사후에 갈 곳이 있다는 현실적 평안함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가 부여돼 정서적 안정감을 갖고 소외감이 감소된다. 따라서 종교생활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아픔과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얻고 자신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스승을 얻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년기에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욕구가 공존하는 시기이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의 기로에서 노인들은 생애주기적인 발달과업으로서 자아통합의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사는 동안 부정적인 경험이나 갈등의 기억들을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다가올 죽음을 또 다른 현실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성(靈性, spirituality)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죽음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적 자각은 자신과 영성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만든다. 여기서 영성은 흔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언급되고 있으나 이를 뛰어 넘는 개념이다. 기독교에서 영성은 인간에게 부여되는 하나님 또는 하느님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즉 물질적인 것(animalis)과 반대되는 의미로 거룩한 생명의 기운으로 정의된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하지만 영성의 본질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추구로 반드시 신이나 초월자를 믿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성을 사회과학적으로 정의하면 자연, 예술, 우주, 실제 인물, 위대한 사상이나 지적인 이념 등과 같은 자신보다 더 차원이 높은 존재와의 관계에서 삶의 의미 또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내면과정이다(임연옥허남재, 2017). 따라서 영성계발 또는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노년기에 겪는 여러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대처하게 되면 풍요로운 노후 정신생활과 함께 죽음불안을 낮출 수 있다. 영성계발은 노인의 심리적 안녕이나 주관적 안녕을 긍정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자원 혹은 적응 유연성으로 기능한다.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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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11 17:06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04)의암 주논개는 기녀였을까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다 조선의 재담꾼 유몽인이 『어우야담』에 논개를 소개한 첫 구절이다. 이 때문인지 논개는 왜장을 유혹하여 끌어안고는 물속으로 몸을 던져 함께 죽은 의로운 기생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논개는 장수 주촌마을의 선비인 신안 주씨 주달문과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양반가의 자손이며 의병장이자 장수현감을 지낸 최경회의 부인이다. 주논개(朱論介, 1574-1593)란 특이한 이름은 개해인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인 4갑술생으로 태어난 사주에 따라 개해에 낳은 개 놓은 개란 뜻으로 부친이 지어준 이름이다. 아들을 잃고 얻은 외동딸의 특이한 사주에 고민하다가 귀한 자식일수록 이름을 함부로 짓게 되면 귀신이 샘을 내지 않아 오래 산다는 속설에 따라 지어진 이름으로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논개는 당시 훈장을 하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다가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자 모친과 함께 숙부 집에서 기거하게 된다. 그러다 숙부가 장수의 부호 집에 민며느리로 팔아넘기려 하자 논개의 모친 고향인 경상도 함양으로 도주하여 지냈지만, 곧 발각되어 장수현감인 최경회(1532-1593)에게 불려가 횡령죄로 재판을 받으며 훗날 지아비가 될 그를 처음 만나게 된다. 논개 모녀의 억울한 사정을 접한 최경회는 무죄를 내리고는 오갈 곳이 없는 그들을 자신의 관저에서 일하며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후, 부인과 사별한 뒤 담양부사로 재직할 당시 논개를 부인으로 맞아들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부의 연을 맺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해주최씨의 족보(1975년 개정판)에 김씨와 민씨 두 정경부인과 더불어 최경회의 부실 의암부인 신안주씨로 논개 일화가 함께 올라가 있으며, 최경회의 일대기를 엮은 문헌에도 그 내용이 실려 있다. 화순 출신인 최경회는 1567년 문과에 급제하여 옥구, 장수, 무장현감과 영암군수와 담양부사 등 주요 관직을 거치다 임진왜란이 나자 사직을 하고 고향으로 간다. 그러다 1592년 임진왜란 나자 상중임에도 의병을 모집하고 훈련시켜 의병활동하고, 고경명이 금산에서 순절한 이후 의병장으로 추대된다. 금산과 무주에서 남원과 전주 그리고 진주로 향하는 왜군을 격파한 뒤, 그 공을 인정받아 1593년 4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면서 진주로 부임한다. 하지만, 2차 진주성 전투인 6월 29일 진주성이 왜적에 함락되자 최경회는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한다. 이 소식을 접한 논개는 나라와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결심을 한다. 기회를 엿보던 논개는 왜군의 승전 기념 연회에 관아 소속의 기녀들만 연회장인 촉석루에 출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런 까닭에 기녀로 가장한 논개는 왜장인 게야무라 로쿠스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남강의 바위 쪽으로 유인했다. 그리고는 열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양손으로 왜장을 풀리지 않게 껴안고는 남강에 몸을 던져 스무 살의 나이로 순절했다고 전해진다. 논개의 충절 이야기가 널리 구전되다가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620년경이다. 유몽인을 필두로 정약용 등이 논개에 관한 문장을 남겼고, 투신한 바위를 논개와 동일시하여 의로운 바위 의암(義巖)의 글자를 1722년 정대융이 새기고 충절을 기린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논개를 추모하는 백성들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시기의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관기로 알려진 논개는 실리지 못한 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739년에 이르러서야 진주 촉석루 곁에 사당인 의기사(義妓祠)를 건립하였고, 1846년에는 장수현감 정주석이 논개가 장수 태생임을 기리고 충절을 선양하기 위하여 논개 <생장향수명비(生長鄕竪名碑)>를 장수에 세웠다. 장수에는 비가 세워진 곳을 기준으로 가운데를 준비(중비)마을, 비석 위쪽을 상비마을 아래쪽은 하비마을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그 존재를 접한 일본인 순사부장이 비석을 깨버리라는 것을 장수 청년들이 비석을 밭에 몰래 묻어 보존한 뒤 광복이 되자, 논개 비를 캐러 가자!며 달려가 비석을 캐내 바로 세운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954년 장수군민의 성금으로 논개 초상화를 모시고 사당을 창건하여 1974년 현 위치로 논개사당을 옮겨 <생장향수명비>도 함께 조성했다. 논개 초상화도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김은호의 그림을 윤여환의 그림으로 교체하여 표준영정으로 지정했으며, 저수지에 수몰된 것으로 추정된 생가터를 기리며 저수지 이름을 의암호라 개칭하고 주변에 논개 생가를 조성해 놓았다. 생가 정자의 단아정이라는 한자현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필이었으나 지금은 철거하고 한글현판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일본에는 논개에게 죽임을 당한 왜장을 영웅시한 일본인이 장수와 진주의 흙을 가져다 논개를 일본으로 따라간 첩으로 둔갑시켜 가묘를 만든 곳도 있다. 천인공노할 만행의 흔적이 기막히지만, 최경회와 논개의 묘는 진주에서 장수로시신을 옮기던 중 십이령 고개를 넘지 못한 채 장수를 지척에 둔 함양에 자리하여 전해지고 있다. 옛 관아 터인 장수군청 앞에는 천연기념물인 우람하고 아름다운 소나무 <장수 장수리 의암송>이 있다. 400여 년을 넘게 온갖 풍상을 함께 겪은 노거수를 주민들은 의암송이라 하고는 정성껏 보살피고 때론 나무가 건네는 힘을 받으며 논개를 기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녀로 기억되며 올곧게 평가 받지 못하는 의암 주논개의 위상 정립이 아쉽다. 돌아오는 10월 8일(음력 9월 3일)은 논개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다. 가을빛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논개사당을 찾아 가을 단풍보다도 붉은 그 충절의 흔적을 새기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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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6 16:37

[카드뉴스] 구급차는 내 콜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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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용
  • 2021.10.05 16:36

40년 만에 골프장 등록문서 받아 든 전주 샹그릴라CC 최영범 회장

전주 샹그릴라CC가 지난달 말 전북도로부터 골프장 정식 등록 문서를 받았다. 도내 등록된 골프장이 30개에 육박할 정도로 골프장이 넘쳐나는 상황이지만, 전주 샹그릴라CC의 골프장 등록은 또 하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질적으로 지역의 중추 골프장 역할을 해왔음에도 개장 이후 각종 송사에 휘말린 데다 한 때 등록 취소까지 받는 낭떠러지에서 올라섰기 때문이다. 골프장 건설부터 등록까지 40년이 걸린 골프장은 전국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골프장 하나에 모든 걸 건 최영범 전주 샹그릴라CC 회장(72)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를 만나 골프장 정상화까지 과정과 향후 운영계획을 들어봤다. -골프장 건설부터 정식 등록까지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나. “우여곡절이 많았다. 90년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도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6년의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현재 위치가 아닌 월성리 저수지 부근 60만평을 400억원에 구입해 임실군 허가를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개발부적격지로 판단하면서다. 당시만 해도 골프장을 특권층 이용 시설로 보고 지역개발사업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등록기준을 맞추지 못한 데는 잦은 법 개정 문제도 있었다. 개장 당시 시범라운드를 하게 되면 등록으로 간주한다고 해서 160억원의 세금도 모두 납부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아 행정소송도 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허가 당시 없었던 9홀 대중홀을 새로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곧바로 해결할 수 있을 문제지만 골프산업이 침체된 상황에서 확장이 쉽지 않았다.” -골프장 정상화까지 겪었던 여러 어려움이 법과 행정의 문제로 여기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내 자신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었다. 행정 당국도 우리 골프장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그간 다뤄본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져 선도적 역할을 해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이번 정식 등록이 이루어지기까지 전북도와 임실군 지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골프장의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지금이야 골프장이 지역경제에 효자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우리 골프장을 건설할 때인 90년대 초만 해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그 때문에 결과적으로 골프장 부지 매입을 두 번이나 해야 했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서 은행 돈을 빌리지 않고 부지 비용만으로 1000억원대를 투자했다. 그것도 IMF 시기다. 경험 없이 초기 자본투자를 많이 한 것이 이후 경영에 큰 부담을 줬다.” -처음 어떻게 골프장 건설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30대 젊었을 때 광산으로 큰돈을 벌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김제 금구 막장에서 금을 캐 얻은 수익은 국내 광산업계에서 손꼽을 정도였다. 80년대 초만 해도 골프 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시절, 돈도 있고 해서 자연스럽게 골프 운동에 취미를 붙였다. 당시 전북에 프로 골퍼가 1명도 없어 경기도 강사를 모셔 레슨을 받았다. 전북 대표선수에 발탁되기도 했다. 내 자신 골프에 대한 매력을 느끼면서 골프산업의 미래를 보고 골프장 건설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전북에서 골프장이 익산 한 곳이었고, 대전과 충남도 1곳뿐이었다.” -코로나19로 골프장이 문전성시다. 골프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골프 대중화와 함께 골프장 건설이 급증했다. 골프장 경쟁 속에 골퍼들이 외국으로 많이 나가고 사업적으로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홀을 줄이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국내 골프장들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게 박세리였다. 그의 미국 LPGA 우승 이후 골프 붐이 일면서 골프인구가 대폭 늘었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최근 몇 년 사이 골프 대중화가 급속히 이뤄졌다. 특히 요즘 골프장마다 20~30대가 주류를 이룰 만큼 젊은 층 골퍼들이 급증하면서 관련 산업까지 크게 발달하고 있다. 골프의류가 패션도 주도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 -정식 등록이 이제 이루어졌지만, 실제 오랫동안 영업을 해왔다. 전주 샹그릴라CC가 지역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골프장이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본다. 지금까지 우리 골프장이 국세와 지방세로 낸 세액만 1000억원에 이른다. 전북지역 연간 세액 1위로 세수표창을 받기도 했다. 임실군 전체 법인을 다 합친 것보다 많게 지방세를 냈다. 여기에 골프장의 고용창출도 크다. 현재 우리 골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많은 200명이다.” -연간 10만명이 찾을 정도의 명문골프장으로 발돋움했다. 전주 샹그릴라CC의 매력을 자랑한다면. “명문골프장 조건으로 흔히 ‘3무’를 이야기 한다. 도로·철탑·악취다. 우리 골프장에서 도로가 안 보이고, 전선주가 없다. 옥정호상수원 보호구역이 인근에 자리잡아 공장이나 축사 등에서 나오는 냄새가 없다. 맑은 공기를 찾아 수도권 등에서 선호도가 높다. 명문 골프장의 주요 조건인 잔디관리와 코스, 직원서비스도 잘 갖췄다고 본다. 350고지에 있어 여름철 시원하고, 전주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점도 강점이다.” -코스 설계를 어떻게 했으며, 골퍼들의 평가는 어떤지. “코스 설계가 잘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평이하고 쉬우면 두 번 다시 잘 찾지 않는다. 프로 선수와 젊은층이 많아지면서 어려운 코스가 인기다. 설계 당시 프로와 아마추어까지 즐길 수 있게 난이도를 적절하게 배합했다. 긴 코스와 짧은 코스를 배합하고, 해저드와 벙커를 조절했다.” -정식 등록과 함께 골프장 운영에 변화가 있나. “현재 회원제에 대중제로 전환 중에 있다. 외지인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전북 골퍼들의 이용률이 높다. 요금 등에서 무리하지 않도록 해 도민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골프장을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골프장이 정상화 된 만큼 골프 새싹들에 대한 후원 등 여러 방법으로 지역 골프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도 적극 찾아보겠다.” -골프장과 함께 향후 리조트 개발도 계획하고 있는데,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가. “골프장 건설 당시 계획했던 게 리조트사업이다. 최근 전북도로부터 사업 승인을 받아 CJ건설과 협약을 체결하고 설계 중에 있다. 골프장 내 50만평 부지에 호텔과 수영장, 워터파크, 눈썰매장 등의 레저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약 2000억원 투자를 예상하고 있다. 광주·대전에서도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여서 리조트가 조성되면 골프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끝으로 하고 싶은 한 말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골프장이 정상화 될 수 있었던 데는 행정과 언론, 지역사회의 성원 덕분으로 생각한다. 특히 골프장 건설 때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참여한 이후 워크아웃이라는 큰 난관에 부딪혔음에도 골프장을 믿으며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준 농협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전주 샹그릴라CC 정상화까지 전주샹그릴라CC는 임실군 신덕면 갈마봉 계곡을 따라 이어진 27홀 코스를 갖춘 전주권 골프장이다. 최영범 회장이 고향 인근인 이곳에 부지를 마련해 골프장을 조성했다. 1989년 사업 허가를 받을 당시 전북지역 골프장은 익산 팔봉CC가 유일했다. 최 회장이 골프장 건설에 일찍 눈을 뜬 셈이다. 그러나 처음 45홀 규모로 허가를 받은 뒤 사업변경을 통해 36홀로, 다시 27홀로 준공 등록한 것이 이 골프장의 험난한 역사를 말해준다. 실제 골프장 정상화까지 과정을 보면 말 그대로 험로였다. 부지구입부터 벽에 부딪혔고, IMF 때 자금난에 시달리며 공사가 중단되는 등 공사 착공 10년만에야 준공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미등록 상태로 영업을 하다가 3차례 고발조치가 되기도 했고, 사업부지내 국·공유지 귀속과 사유지 매입 완료 등을 조건으로 조건부 등록을 했으나 이를 해결해지 못해 2015년 등록 취소 결정을 받아야 했다. 회사 측은 행정소송에서도 패했으나 최근 조건부 등록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기사회생 하게 됐다. 최영범 회장은 30대에 뛰어든 골프장 사업을 70 나이를 넘겨 이렇게 완성시킨데 자부심을 갖는다. 광산과 골프장 모두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까닭에 그 성공이 쉽지 않은, 이 두 가지 마음먹은 사업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다.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가는 성격이어서 별명이 불도저란다. ‘현대 정주영 회장보다 더 민다’는 게 주변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다. 골프장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최 회장이 세 번째 사업으로 마음먹은 리조트 사업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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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용
  • 2021.10.04 18:14

[뉴스와 인물] 신원식 정무부지사 “해외기업 유치, 새만금을 국제산업단지로”

신원식(65) 전 한국천연가스수소차량협회 상근부회장이 전북도 정무부지사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다채로운 이력에 눈길이 갔다. 신 부지사는 중앙부처에서 14년, 민간기업에서 26년을 일했다. 그의 이력은 중앙정부와 민간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국내와 해외라는 세로줄과 가로줄로 촘촘했다. 지난 7일 취임과 동시에 업무에 돌입한 신 부지사는 그 줄을 이용해 종횡무진 지역 현장을 누비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는 그를 만나 정무부지사의 역할, 전북 경제 체질 개선에 대한 비전 등을 들어봤다. -먼저 전북도 정무부지사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고향에서 정부부지사로 근무하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40년 전에 전북도 사무관으로 와서 근무했던 기억이 납니다. 40년 만에 다시 돌아와 가슴 벅찹니다. 그동안 몸은 멀리 있어도 고향 전북을 단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고향 발전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얻게 돼 기쁘면서도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에 정무부지사라는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러나 송하진 지사님의 리더십, 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에 저의 산업 현장 경험이 더해진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충만합니다. -정무부지사는 말 그대로 고도의 정무적 감각이 필요한 직책입니다. 부지사께서 자신의 정무적 감각을 평가하신다면. 현대 민주 행정은 실무형 또는 정무형 어느 쪽에 치우쳐서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사안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정무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저는 중앙부처와 다양한 민간기업에서 경제적 판단과 아울러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요구를 반영조정하고 언론과도 의사소통하며 정무적 경험을 쌓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내 시군, 유관기관과의 가교역할 등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 나가겠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하신 것처럼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다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이직을 결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약 15년간 공직에 몸담았습니다. 그 당시 경제산업 분야에서 근무했는데, 행정의 대상인 기업의 실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경제산업 정책을 입안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데 대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기업 현장을 경험하며 경제산업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국가 경제 핵심의 한 축인 조선산업에 대한 상당한 이해도를 쌓았습니다. 이후 세계 오토바이 헬멧 시장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는 HJC(홍진크라운)에서 근무하며 해외, 중소기업에 대한 경험도를 축적했습니다. 그렇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 보니 업종도 조선, 생활용품, 전기, 친환경차 등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중앙부처와 민간기업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제가 전북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판단해 이 자리로 오게 됐습니다. -정무부지사께서는 중앙부처,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경험해보셨습니다. 각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것들을 꼽아주신다면. 노력한 것만 가지고는 인정을 못 받는 것이 기업과 공직사회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성과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리품을 팔아야 합니다. 현장에서 다리품을 팔면 안 되는 일은 왜 안되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해 일이 되게끔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다리품을 팔아 나의 간절함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상대방도 협조적인 태도로 변합니다. 결국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맥을 잡고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제가 몸소 경험한 중소기업은 생각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중소기업은 오너체제의 기업입니다. 대기업은 조직이 뒷받침해주지만, 중소기업은 상당 부분을 오너가 리스크를 안고 해결해야 합니다. 오너들에 대한 인간적개인적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또 기업 유치를 위해서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애로를 파악하고 경쟁력 있는 지원책을 제시해야만 기업 유치가 가능합니다. 향후 전북에 기업을 유치하는 데 있어 교육 부문에 대한 세심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새만금을 포함한 전북 투자 유치 전략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투자 유치를 위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많은 홍보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와 관련 반기별로 수도권 기업을 상대로 투자 유치 설명회를 열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새만금의 여건을 설명할 계획입니다. 지속발전을 위해 신산업을 모색하는 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새만금은 충분히 매력적인 지역입니다. 특히 새만금은 신재생에너지, 수소, 데이터 등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북도가 이를 신산업 지도로 명명했는데, 아주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새만금을 포함한 전북이 신산업 지도를 완성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또 투자 유치에 있어 수도권과의 거리도 고려 대상입니다. 최근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법 통과로 세종시라는 새로운 행정도시가 생기면 이를 중심으로 많은 네트워크가 갖춰지리라 예상됩니다. 세종시에서 1시간 거리인 새만금에는 공항항만철도 등 교통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력을 토대로 새만금에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해외기업을 유치해, 새만금이 국제산업단지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미 세계시장에 진출한 해외기업을 전북에 유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수한 기술을 이전받고, 부품공장 등을 지역에 설립하면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세계시장을 향한 글로벌 새만금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본격적인 업무에 앞서 전북도 간부진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계급적인 요소를 배제하라. 나를 많이 가르쳐달라. 그리고 나를 이용하라. 이 당부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 조직 생활을 하면서 갖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직위분류제라고 하듯 직위에 따라 역할이 다른 것뿐이지 사장이라고 높고, 직원이라고 낮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정무부지사라는 직책을 가진 것뿐입니다. 그래서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 즉 파트너십을 추구합니다. -특별히 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그동안 제가 중앙부처나 민간기업, 해외시장에서 일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쏟겠습니다.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제 충정을 이해해 주시고, 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작으나마 제가 있는 동안 지역 경제산업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안 출신인 신 부지사는 서울 동성고와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제24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국제협력과, 산업정책과, 통상지원과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난 뒤 삼성중공업 이사, 홍진크라운 전무, 효성기계공업㈜ 전무, 일진전기㈜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최근에는 환경부 산하의 한국천연가스수소차량협회 상근부회장으로 근무했다. 도는 민관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연륜, 폭넓은 인맥을 두루 갖춘 신 부지사가 전북 신산업 지도의 완성,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국내외 기업 투자 유치 등 민선 7기 마무리 시점에서 도정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기획
  • 문민주
  • 2021.09.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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