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8 22:41 (Sat)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기획

[뉴스와 인물] “세계로 나아갈 알찬 의료 미래 100년을 향할 것” 유희철 21대 전북대병원장

유희철 전북대병원 21대 병원장이 지난 7월 30일 취임과 함께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유 원장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취임식을 비롯한 공식행사를 생략하고 병원라운딩과 운영위원 및 중간간부 워크숍, 유관기관 방문 등 현장경영에 매진해왔다. 유 원장은 사람중심의 경영철학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임기 중 도민과 동행한 따듯한 의료 100년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갈 알찬 의료 미래 100년을 향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혁신해 글로컬 전북대병원을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전북일보는 유 병원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전북대병원 제21대 병원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공식적인 행사를 갖지 못하고 영상과 지면으로만 인사를 전하게 된 것에 대해 송구스런 마음을 가지면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 자리를 빌려 축하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병원장직을 수행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 헌신하겠다는 신념이 있고, 역대 병원장님들의 훌륭하신 업적과 지역 및 중앙의 리더, 그리고 정관계부처의 관계자분들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동반자이자 든든한 원군인 병원가족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3년간 소신껏 일해 전라북도의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지역 책임병원의 역할은 물론 나아가 대한민국 의료의 한축을 담당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취임 직후 새 집행부를 구성하셨는데 이번 인사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21대 집행부를 맡으신 분들은 진료와 연구, 교육에 매진하면서 병원발전을 위해 헌신해오셨으며, 앞으로도 자신을 희생해 병원발전을 이끄실 분들입니다. 이번 집행부 구성은 병원의 질적 성장과 지속성장을 도모하면서 구성원의 화합을 이끌 수 있도록 전문성과 경륜, 참신성 등을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병원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충분한 경륜과 보직경험으로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분들을 배치했고 동시에 병원의 미래지향적인 지속성장에도 초점을 맞춰 보직경험보다는 패기와 열정이 강점인 젊은 보직자를 발탁하며 안정과 패기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으로 새 집행부와 긴밀히 협력해 양질의 진료와 미래 의료를 준비하는 신뢰받는 병원, 최고의 병원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고, 향후 신종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은 있으신가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감염병의 위협으로부터 도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전 직원들이 사투에 가까운 노력을 펼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원객 출입통제를 시작으로 선별진료소 설치,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운영, 국민안심병원 지정, 중증코로나치료 중환자실운영 등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온 덕에 외래 환자 발생사례는 더러 있었어도 원내에서의 추가 감염 환자는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적 감염병 재난에 안전하게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이고 체계적인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 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감염병대응센터를 유치해 코로나를 넘어 국가적 감염병 재난에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올 연말 신축 예정인 감염병대응센터는 감염병 환자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응급센터 옆 부지에 지하1층에서 지상 5층까지 총 25실 51병상 규모로 지어집니다. 센터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경우 감염병 환자에 대한 검사부터 치료까지 독립된 공간에서 원스톱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갖추게 됩니다. -최대 현안인 군산전북대병원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군산전북대병원 건립은 지역민의 건강수호와 우리 병원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입니다. 안타깝게도 환경문제 등으로 답보상태에 놓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부지매입을 완료하고 건립을 위한 관련 행정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사업이 지연되면서 승인시점에 책정된 사업비로는 10년간의 물가상승과 법적기준 강화 등 변화된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정부에 사업비 증액을 요청했으며 현재 심의 중에 있습니다. 병원 내부적으로도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겠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전북도, 군산시, 정치권 등 관계기관은 물론 지역사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특히 군산분원이 자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전문과를 개설하는 종합병원 형식보다는 특정한 질환 및 치료 방법을 집약한 전문센터로 특화시켜 운영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초고령 지역에 맞게 심뇌혈관센터, 노인전문 소화기질환센터 및 새만금개발지역의 배후병원 역할에 필요한 국제진료센터 등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물론 응급의료와 감염병 대응 진료 등 공공의료 책임병원으로의 역할은 필수적으로 수행할 예정입니다. 이러한 전문센터를 통해 체계적 질병관리와 맞춤형 의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특화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보조할 각과들이 운영되는 방식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 최근 수술실 폐쇄회로(CCTV) 의무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전북대병원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 병원에서는 수술실 22곳을 포함해 주변까지 모두 33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녹화기능은 활용하지 않고 모니터링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녹화기능은 향후 법령이 확정되거나 지침이 내려올 경우 전환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다만 운영과 관련해서는 의료진과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양자의 의견을 들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보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충족하는 방안으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들과 전북도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우리 병원이 개원 112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세기가 넘도록 지역 보건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의학발전과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민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병원에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준 도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도민의 귀중한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전주 출신인 유 병원장은 전주신흥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전북대 학생처장을 역임했으며 전북지역암센터 소장, 한국간담췌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이식학회 상임이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충청호남권 최초로 혈액형불일치 간이식, 간암환자에서 로봇을 이용한 대량 간절제술에 성공해 화제를 모으는 등 간담췌 및 이식외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각 분야의 최고 베스트 닥터를 소개하는 EBS 1 명의편에 소개된 바 있다. 유 병원장은 구성원이 자긍심을 가지는 행복한 병원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병원은 다양한 직군으로 이루어진 협력체이기 때문에 어떤 직장보다 화합과 조화가 중요한 곳이라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다수의 소리를 하나의 완벽한 선율로 만들어내듯이 구성원 모두가 하나로 협력해 최고의 진료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모니를 이루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급변하는 의료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불협화음을 조율하여 화합으로 조화를 이뤄나가겠다고도 했다.

  • 기획
  • 최정규
  • 2021.09.14 17:31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싸우는 당사자 곁에 있는 사람의 몫

전주에 노동청이(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여기 있었구나. 지인이 퇴사한 곳에서 사장이랑 임금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어 노동청에 방문했다. 난 지인의 동료 시민으로 심리적으로 힘을 보태기 위해 동행했다. 일상적으로 근로 상실 신고, 이직 확인서,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진북동에 위치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갔던 터라, 당연히 같은 곳이라고 짐작했으나 노동청은 다른 곳이었다. 문득 정부 부처(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센터 이름을 두고 상념에 잠긴다. 고용복지라는 워딩에서 정치적 입장 같은 게 만져진다. 다름 아닌 고용주의 입장에서 일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으로 복지를 얘기하니,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과 노동복지를 실현하는 일이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그 노동자로 살아가는 무게는 노동청을 방문하는 우리의 표정으로 알 수 있다. 사진으로 그 그 표정을 찍어두었다면, 100년짜리 놀림감이었을 것이다. 잔뜩 회색빛 구름처럼 겁을 먹은 체 쫄아 있었다. 사업주와 대질을 하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단기직 노동자가 노동청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갖고 있었겠는가. 그러나 우려와 달리 대질은 하지 않았다. 신고 경위와 사실 관계 확인(주휴수당 연장수당 월차수당 미지급, 휴게시간 확인 등), 쟁점 사항 확인하고 조서를 작성하였다. 예상외로(?) 근로감독관은 공정한 태도를 보였으며, 당사자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 주었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바로 접한 기사는 근로감독관의 갑질에 관한 글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의 삶을 살아간다. 일터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곳일까? 나는 주로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였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 선임한테 들었던 가장 노골적이면서, 적확했던 조언은(?) 까라면 까라 것이었다. 나는 직장이라는 지리적인 공간보다 그곳에서 통용되는 의사소통 방식과 문화에 관심이 많다. 까라면 까라 이것은 전형적인 군대식 문법이다. 군대식 문법은 대다수 조직 사회에 통용된다. 타인과의 관계를 수평적 동료 관계가 아닌 수직적 위계질서로 이해하고 힘의 관계로 지배한다. 그것을 거스르기 위해 애쓰지 않는 곳이라면 예외가 없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디피>(D.P.)가 한창 뜨고 있다. 군대에서 도망친 탈영병을 잡는 헌병 군탈체포조 이야기다. 드라마 댓글 창에는 왜 그토록 많은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지 성토하는 글이 많은데, 전에 없이 충분히 공감했다. 그토록 강력한 폭력과 억압의 기억이라면 평생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 드라마는 군필자의 경험을 자랑삼아 전시하거나 특권화하지 않는다. 김보통 작가는 <디피>는 왜 그들이 탈영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질문하며 이제는 (군대 현실이)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성찰한다. 그리고 피가해자의 둘만의 문제가 아닌 폭력이 존재하는 사회 현실을 방관 혹은 목격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소환하여 책임을 지운다. 'D.P 개의날' 원작 중 한 장면 지인이 겪는 직장 내 갈등 또한 수당 미지급 문제만은 아니었다. 조직 문화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을 때 우회적인 방식의 배제와 미묘한 성차별이 있었다. 군대식 강압적인 폭력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폭력과 차별의 기제는 동일하다. 주방에서 일할 때 쓰는 조리사 모자가 있는데, 여자는 낮은 거 써도 괜찮은데 남자가 낮은 거 쓰면 좀 그렇다.거나 수시로 울리는 단체 카톡방에 답장을 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단톡방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든 존재하는 먼지 차별이라고도 표현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미묘하다고 해서 차별이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싸우는 당사자 곁의 사람으로 이 일을 거치면서 새롭게 배웠다. 갑을 관계에서 폭력과 차별이 드러나는 방식에 대해, 을의 위치에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몫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는 싸움 이전의 단계에서 긴장과 조정의 단계를 거쳐, 싸움을 예방하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자 한다. 이는 동등한 힘의 관계에서 가능하지만, 권력 차이가 날 때는 싸우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방적으로 지는 경우가 많다. 갈등이 증폭되어 싸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때, 관계는 파편화될 수밖에 없다. 파편화된 관계는 외롭고, 두렵고, 힘겹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싸우는 동안 이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자기 불안과 의심에 시달린다. 경계를 침해받았을 때 분노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곧잘 환원된다. 네가 예민해서 그래. 너만 생각하는거 아냐?라는 통념은 힘이 세서 피해자를 쥐고 흔든다. 사회적 약자(노동자)를 위한 권리 는 취약하고 언어는 빈곤하다. 드라마 의 질문처럼 당신은 방관자로 남을 것인가, 목격자로 설 것인가? 지인의 직장 내 갈등 사건을 겪으면서 나 또한 변해갔다. 많이 알수록 개입할수록 점점 목격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당사자에게 온 마음의 체중을 실어 힘을 실으며 함께 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목격자들이 필요하다. 잊지 않고, 책임지고, 싸우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소해진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협동조합 조합원 소해진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1.09.13 16:45

[뉴스와 인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서현석 대표

한국의 전통문화와 문화예술, 특히 우리 소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전북을 대표하는 문화시설은 자타공인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한국소리문화전당이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지역 내 전통음악 명인들과 명창 그리고 콘서트, 클래식, 오페라, 무용, 뮤지컬 등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의 상시 공연이 개최되는 곳이다. 오케스트라 공연과 오페라, 발레 등의 대형공연을 올릴 수 있는 2037석 규모의 모악당과 중소 규모의 클래식 공연이 활발하게 올라가고 있는 666석의 연지홀, 신인음악가의 귀국독주회와 국악과 판소리, 연극, 하우스콘서트가 열리는 206석의 명인홀도 준비돼 있다. 개관 20주년을 맞은 한국소리문화전당이 나아가야 할 발자취를 서현석 대표에게 들어봤다. -2001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개관 준비 및 예술감독을 역임한 뒤 17년 만에 대표로 다시 돌아오신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개관 20주년을 맞은 저의 감회는 한마디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잘 커줘서 참 고맙다! 입니다. 개관 당시 예술감독으로 밤을 세우며 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대표로서 개관 20주년을 맞이하게 되어 얼마나 큰 영광인지, 그동안 같이했던 얼굴들을 떠올리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설립과정에서 우리 전당의 규모 정도면 적어도 5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전북인구가 200 만 명도 안 되니 너무 규모가 큰 것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저는 당시 예술감독으로 우리 전북의 많은 예술인들과 도민들을 만나며 확신을 했습니다. 판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가 있고 장르마다 내공이 깊은 예술가들이 계셨고 귀명창으로 불리는 수준 높은 관객들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기획자에게는 노다지요 황금어장이 아닌가! 이런 생각과 의욕을 간직한 채 떠남을 아쉬워했었던 제가 어언 스무 살이 된 전당을 보니 역시 제 확신이 맞았다 싶습니다. -그간 한국소리문화전당이 이뤄낸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먼저 문화예술 발전, 고객 만족과 행복, 지역사회 기여 등을 3대 핵심가치로 정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발돋움, 최고의 공연전시를 통해 문화예술의 감동을 선사, 전당을 상징하는 특화된 고유 콘텐츠 개발, 투명경영 성장경영을 통해 독립경영의 기틀 마련을 운영 목표로 삼아 지역문화예술 활성화와 도민들의 문화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당은 자체 기획사업 브랜드인 아트 숲이란 플랫폼을 구축하고 예술, 대중, 지역에 따라 섹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북도민들의 문화여가생활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며 수준 높은 예술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예술과 대중, 새로운 트랜드를 접목한 거장전과 스테이지 윈더,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기획자의 눈, 지역 예술단체와의 협업 및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소리연리지, 소소한 행복 나눔 작은 음악회인 월드콘 등이 대표적입니다. 차별화된 문화예술콘텐츠를 개발해 도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육과 문화로 꽃 피는 전북을 지향한 것도 그동안 일궈낸 결실들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수탁이후 코로나19 발생이전 4년 동안 연간 기획사업 추진 평균 건수 71건, 연간 기획사업 평균 관람객 6만4967명, 공연장 평균 가동률 72.6%로 나타났습니다. 재정자립도 또한 수탁기관 선정 이전 해인 2015년 32%보다 평균 7% 상승한 39%를 기록하는 등 꾸준하면서 안정적인 재정자립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공연계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당의 사정은 어떤가요?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세를 보이면서 대관 취소가 잇따르고 전당 기획사업도 큰 차질을 빚으면서 공연장 가동률이 38%로 급락했습니다. 올해 역시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지 않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당은 좌절하지 않고 중앙기관 등의 공모사업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올해 개관이래 가장 많은 16건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6억여 원의 사상 최대의 국고보조금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안정적으로 기획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전북현대모터스FC와 문화예술 발전과 스포츠 활성화를 위힌 업무 협약, 고창문화의전당 및 부안예술회관과 공연콘텐츠 공동제작배급 업무 협약, 도내 9개 문예회관과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업무 협약, 국립발레단과 업무 협약,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와 글로벌 문화교류 추진을 위한 업무 협약, 전주시립예술단과 문화예술 교류 업무 협약 등을 체결하며 도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확대를 위한 기반을 확충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다양한 장르의 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비대면 온라인 공연 파이팅 콘서트를 기획해 전당 유튜브인 Sori Arts TV&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무료 관람을 제공하는 등 온라인 중계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향후 운영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예향전북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백조가 호수에 우아하게 떠 있도록 수면 밑에서 끊임없이 갈퀴질을 하는 백조의 발이 우리 전당 임직원들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반짝이며 성장했던 20년, 눈부시게 꿈꿔나갈 KoSAC이 우리 전당의 표어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임직원들은 세계로 나아가는 전북문화예술의 산실이요, 문화예술의 힘으로 도민들의 행복을 증진이라는 학교법인 우석학원의 수탁 미션을 구현하고자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고창군, 부안군과 공동제작 중인 태권소리극 녹두와 같은 창작작업을 앞으로도 지자체와 협업으로 적극 추진할 것이며, 도내 전문 예술단체와 예술인들과의 공동작업과 참여를 더욱 넓혀 나가겠습니다. 아울러 급변하는 공연전시분야를 지원하고 이끌어가는 전북문화예술의 중심이자 맏형으로서 영상분야, 메타버스 개발 참여는 물론 도민대상 예술교육에도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고 실속있는 해외 교류로 전북 예술계에 신선한 활력을 도모할 것입니다. 전당의 노하우를 해외에 전수하고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추진하여 명실상부, 콘텐츠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예술 발전에도 기여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되도록 우리 임직원 모두 열성을 다할 것입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인 서현석(66) 대표는 1955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소극장 <산울림> 극장장, 호암아트홀에서 연극, 영화, 해외공연을 담당했으며 우리 영화 <내 마음의 풍금>, <아홉살 인생> 등을 제작했다. 2001년에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개관 준비 및 예술감독으로 전당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공연영화행사 기획사 ㈜조이슈즈를 설립. 서울시 <좋은영화감상회>, <세계유기농대회>, <청춘극장>, <한강 다리밑 영화제> 등을 연속 기획했다. 서현석 대표는 이번 20주년 개관식 때 최초로 열린 전주시향과 군산시향의 협연은 전북이 어려울 때 화합하는 모습도 보이고 서로 나누는 그런 마음으로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면서 시향이 생긴지 처음으로 하는 협연이다보니 전문적인 연습공간이 부족하고 다들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코로나19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혔다.고 말했다. 이어 20주년 맞은 전당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문화 예향의 도시 전주라는 데서 도민들 또한 문화적 유전자가 있는데 이를 대변하듯 객석을 운영할 때 다른 데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객석률을 유지하고 있다며 직원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퀄리티가 가장 높은 직원들로 스카웃 제의도 많이 들어오다. 우리 전당은 기획팀의 사관학교로 불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 기획
  • 이강모
  • 2021.09.12 17:43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03)기억해야 할 코무덤

에비! 에비야! 위험한 것이나 더러운 것 등을 아이가 만지려고 할 때 사용한 경계의 말이다. 엄한 아버지나 무서운 대상을 지칭하는 말로 짐작할 수도 있지만, 귀와 코의 한자인 이비(耳鼻)와 귀와 코를 베어 가는 사람인 이비야(耳鼻爺)에서 유래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순사를 에비라 칭하기도 했다는데 그 말에는 무섭고도 애통한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코를 벤다는 무시무시한 말. 상상하기도 싫지만, 중국 고대부터 죄인의 코를 베는 형벌인 비형(鼻刑)이 존재했다. 얼굴의 기둥으로 자리한 코의 의미를 크게 두는 것으로 한자인 스스로 자(自)는 사람 코의 상형이며, 코가 비뚤면 생각도 바르지 못한다는 중국속담이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형벌 중에 코를 자르는 것은 얼굴 정중앙의 코를 훼손하여 그 사람의 형상을 말소시키고 심리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형벌이었다. 그런데, 조선에는 형벌로 코가 베어진 것이 아니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죽은 병사는 물론이고 살아 있는 조선 사람의 코를 베어 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내용이 『지봉유설』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임환(1561-1608년)의 『습정유고』에는 무비자(無鼻者) 즉 코 없는 사람이란 시구가 전해지는데 코 없는 자 뉘 집 자식 인가 / 산기슭에 홀로 앉아 얼굴을 가리고 우네 / 적병이 날카로운 칼 휘둘러 바람이 이니 / 하나 베이고 둘 베이어 천 백인의 코가 달아났구나라는 애달픈 구절이 남겨져 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耳塚, 미미즈카)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남원을 비롯한 조선에서 왜군이 전리품이자 증거로 베어 간 코를 묻어 1597년 9월 조성한 무덤이다. 가로 폭이 약 49m 높이 약 7.2m인 봉분 위에는 불교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지수화풍공을 상징해서 쌓아 올린 석탑인 오륜탑(五輪塔, 고린토)이 세워져 있다. 놀이터가 있는 귀무덤 공원이 옆에 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받드는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가 큰길 건너에 있다. 코무덤인 것을 귀무덤이라 한 것에는, 코를 자른 것은 야만적이니 귀무덤으로 바꾸었다는 기록과 코가 꽃의 일본어와 같은 하나라 발음되니 꽃무덤이라 칭하는 것을 피하려 했다는 설도 전해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코를 벤 수량에 따라 포상을 준다며 코영수증과 감사장까지 발행했다. 왜군은 코의 수를 늘리려 코를 잘라 담은 피투성이 대바구니를 허리춤에 차고 살아있는 조선인 코까지 베어 가져갔으며 더러는 코 베인 이를 인질로 데려갔다. 소금에 절여 온 코는 일본 각지에 묻혔고 임진왜란 때 포로로 끌려간 조선학자 강항(1567-1618년)은 교토 코무덤을 보고는 코를 쌓아 놓은 것이 하나의 구릉을 이뤘다 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사람들이 코무덤에 제사 지내려 제문을 강항에게 부탁하자 코와 귀는 서쪽에 묻혀 언덕을 이루었고, 큰 뱀은 동쪽에 묻혀 있다하고는 히데요시의 죽음을 숨기려고 부하들이 그의 뱃속에 소금을 넣어 한 달간이나 앉혀 둔 것을 빗대어 소금에 절여 감추었지만 향기롭지 못하다라고 써준 제문이 『간양록』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일본은 코무덤을 적병의 신체를 잘 묻어주어 자비를 베푼 것으로 미화하고 힘을 과시하는 선전 장소로 활용했다. 코무덤 비석에는 조선군의 코를 베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냈다. 그는 이들을 원수라 생각지 않고 오히려 가여워하는 마음을 깊이 하여 친한 사람에게 하듯 공양을 하고 그들을 위하여 무덤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행도 코무덤에 들르게 하였으며, 1799년 간행된 책 속 교토명소를 그린 그림에는 코무덤을 구경하는 서양인과 일본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조선을 침략하여 개선했으며 태평성대에 공헌했다고 적었다. 19세기 그림과 다양한 교토명소 엽서에도 코무덤이 등장한다. 히데요시의 대표 유적 중 하나가 된 코무덤 석탑은 1969년에 호코지 절 석축과 함께 일본 국가 사적으로 지정받고 문화재가 되었다. 이후 2003년 교토시에서는 귀무덤과 코무덤을 함께 표기해 놓고 다음과 같은 안내판을 세웠다. 이 무덤은 16세기 말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한반도를 침공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과 관련된 유적이다. 히데요시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목 대신 조선 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중략)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서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하에 입은 조선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왜곡된 내용이 일부 수정되었지만, 코무덤 안에는 선조들의 원한이 그대로 봉인되어 있다. 남원에는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만여 명을 합장하여 모신 무덤으로 국가 사적인 만인의 총이 있다. 대부분 코가 잘린 채 수습되었을 것이다. 근처에는 왜군에게 끌려가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망향의 그리움으로 불렀던 조선가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원광대학교 양은용(1947년생) 명예교수는 코무덤을 찾아가 참배하고 남원 만인의 총으로 선조들의 코무덤과 넋을 봉안해 오고자 결심 한지가 벌써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 바람을 못 이루고 있지만, 모시도록 노력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해요라고 하였다. 최근 엄숙하게 진행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 귀환을 가슴 벅차게 보면서 모시지 못한 선조들의 넋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흔적으로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침략자의 사당 근처에 있는 선조들의 코무덤이 있다.

  • 기획
  • 기고
  • 2021.09.08 16:56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좋은 죽음과 죽음준비

#1 저는 요양병원과 같은 기관에서 죽고 싶지 않아요. 조금만 아프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어요. 병원에 누워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생각도하기 싫어요. #2 코로나 사망자는 보통 죽음과는 정반대입니다. 일반적으론 사후 24시간이 지나야 화장 할 수 있는데 코로나 사망자는 감염우려 때문에 24시간 안에 시신을 비닐로 밀봉한 후 화장을 마쳐야 해요. 어떤 경우는 오후 3시에 사망해 오후 6시에 화장했으니 3시간 만에 죽음이 정리됐어요. (사망자 가족들이) 격리되는 바람에 임종을 못 지키고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는 경우도 많아요. #1은 노인요양병원에서 11년째 노인들을 보살피고 있는 요양보호사 A씨(58)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갖는 바람이다. #2는 염장이(장례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B씨(67)가 코로나19 이후 겪은 장례 경험이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우리의 의지를 넘는 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순간일 뿐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까지를 포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자신과 무관하게 생각한다. 현세적 삶을 중시하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죽음이라는 단어조차도 재수 없고 불길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논의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다. 더욱이 매스미디어가 매일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밥 먹듯 전하고 있어, 죽음이 남의 일로 치부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두렵고 부정적인 무엇인가로 인식된다. 노년은 어느 시기보다도 죽음에 가까이 와 있고, 죽음을 자주 생각하는 시기이다. 삶의 마무리인 죽음을 어떻게 해야 잘 맞이할 수 있을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음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살펴보자. 우리 사회는 생활정도가 나아지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웰빙(well-being)에 관심이 높아졌다. 이제는 한발 더 나가,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잘 죽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도 이에 못지않다. 웰다잉은 좋은 죽음, 존엄한 죽음, 품위 있는 죽음, 아름다운 죽음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삶의 마지막 여정으로서 좋은 죽음은 현재의 삶을 재정비하고 임종 순간까지 개인의 존엄성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좋은 죽음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는 통증과 고통이 없이 인공호흡기 등 기계적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두려움과 불안 없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측면에서는 무의미한 삶을 강제하지 않고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죽음이어야 한다. 영적 측면에서는 종교적 행위를 통해서 영혼이 평화로운 안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이혜경, 2017). 그러면 좋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중년(40-64세)과 노인(65세 이상)으로 세분화해 보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연구 참여자들과 의사소통을 통해 개인의 다양한 반응을 확인하는 Q방법을 사용해 추출한 결과(정경희 외, 2018)다. 중년은 담담히 맞이하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는 1유형과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좋은 죽음이라는 2유형, 내가 결정하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라는 3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들은 아직 죽음에 임박하지 않아서인지 다소 추상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국립 암센터 홈페이지 반면 노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1유형의 좋은 죽음은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1유형은 죽음을 떠올리며 두려움의 정서를 강하게 느끼는 유형으로 삶에 집중하는 것이 곧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두려운 생애 사건을 맞이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살지만 죽음 이후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았다. 2유형의 좋은 죽음은 짐이 되기 전에 떠나는 것이다. 이들 유형은 자신의 죽음이 배우자나 자녀 등 남겨진 가족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지를 우선 고려한다. 이들 역시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을 존재의 종말로 보며 자신의 죽음 이후 관계나 의례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3유형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어떤 죽음도 좋은 죽음이 아니며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취하기를 원하며 죽음 준비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죽음준비에 대해 살펴보자. 죽음준비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준비와 물질적인 준비로 나눌 수 있다. 정신적 준비는 죽음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다. 생명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죽음이 오면 언제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에 대한 믿음도 크게 도움이 된다. 법정스님은 미리 쓰는 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絶緣)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스티브 잡스)이라거나 죽음을 잊지 말라(memento mori),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천상병의 귀천) 등의 자세도 정신적 죽음준비에 해당될 것이다. 물질적 준비는 죽음을 수용하고 좋은 죽음을 위해 행하는 구체적인 준비다.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한다든지 엔딩노트유언장을 작성해 놓아 사후에 필요한 법률적 문제를 대비하는 등이다. 또 수의나 영정사진 등을 미리 준비하고 상조회나 사망보험 가입, 시신 및 장기기증 서약서 작성, 자서전 등의 준비도 포함된다. 2020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은 상당수가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7.8%는 수의를 마련하고 24.8%는 묘지를 마련해 놓았다. 이어 상조회 가입 17.0%, 상속처리 논의 12.4%,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4.7%, 유서 작성 4.2%, 장기기증서 3.4%, 죽음준비 교육수강 2.7% 순이었다. 희망하는 장례 방법은 화장이 67.8% (화장후 납골당 33.3%, 화장후 자연장 20.6%, 화장후 산골 13.9%), 매장이 11.6%였다.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20.6%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 시작된다. 따라서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정신이 온전해야 좋은 죽음이다 - 가능한 한 오래 살다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 - 죽을 때 두려워하지 않아야 좋은 죽음이다 - 죽을 때 가족들과 관계가 나빠지면 좋은 죽음이 아니다 - 간병비(병원비)로 가족을 고생시키고 죽는 것은 좋은 죽음이 아니다 - 죽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좋은 죽음이다 - 죽음에 대해 주변이 함께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죽음이다 -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어야 좋은 죽음이다 - 죽은 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어야 좋은 죽음이다 - 좋은 죽음이 되려면 생사와 관련된 결정을 본인이 해야 한다

  • 기획
  • 기고
  • 2021.09.06 16:58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