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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부활 30년, 전북 지방자치 발자취와 미래] ④앞으로의 30년, 선진화된 지방자치로

올해로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맞은 대한민국과 전라북도. 지난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된 뒤 30년 만인 1991년 기초 및 광역의회가 재구성되면서 재개된 지방자치제도는 올해로 부활 30년을 맞았다. 지난 30년간 민주주의 토양 아래 뿌리를 내린 지방자치는 올해 새로운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내년 시행을 앞두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더욱 신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지방자치를 두고 비판과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앞으로의 지방자치 30년을 맞이할 기반을 닦아왔다는 평도 나온다. 제도와 시스템의 성숙에 더해, 이제는 질적인 발전, 지방자치의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자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의 문제를 지역이 주도하는 것에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주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방자치는 부활한 1991년부터 올해까지 30년을 다시 달려왔다.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해는 지방자치제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원년이다. 내년 시행을 앞둔 개정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는 지금보다 더 큰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됐다. 특히, 30년 넘게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던 지방자치법에 첫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 핵심이다. 지난해 정부가 발의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의미는 단체자치에서 주민자치로 지방자치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경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8년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주민주권이라는 개념을 창안했고,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이슈와 문제를 숙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차적인 권한은 주민들에게 있다는 주민주권이 주민자치의 이념적인 기초가 됐다. 내년부터 시행될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주민주권을 구현하려는 주민자치의 제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2022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한층 강화된 권한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과 인사권 독립으로 한층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의회를 만들어나갈 기반이 닦였다. 개정 법안의 주요 내용은 △주민주권 구현 △지자체 역량 강화 및 자치권 확대 △책임성투명성 확보 △중앙지방간 협력관계 정립 등이다. 내년 1월부터 지방의회소속 공무원의 임명권이 지방자치단체장에서 지방의회 의장으로 바뀌면서, 국회처럼 별도 선발까지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부서 배치와 승진 등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게 됐다. 지방의원의 자치 입법, 예산심의, 행정사무감사 등을 지원하는 전문 인력의 도입 근거도 정립됐다. 2023년까지 지방의원 수의 50% 범위에 정책지원 전문인력을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중앙지방협력회의 등 중앙과 지방의 협력을 강화하는 제도를 신설했고, 주민주권과 주민 참여를 강화하는 제도도 포함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주민의 지방행정 참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지방자치법에 목적으로 명시했다. 이에 따라 지방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권이 더욱 보장됐다. 과거에는 조례안을 제정할 경우 단체장에게 제출했지만, 법 수정으로 주민이 직접 의회에 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도 생겼다.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역할은 지방자치를 통해서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할 바람직한 기본역할은 적정한 자율성을 기반으로 지역 실정에 부합한 행정을 운영해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민의 복리를 증진하는 것이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 따라서 예상되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변화는 역할의 내용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수행을 위한 조건의 충족을 통해서 역할이행의 수준 제고로 나타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행의 수준이 자율성과 다양성 및 책임성을 통해서 결정된다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은 조건들이 기존에 비해 전반적으로 제고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행 수준이 현저히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을 두고 특별법인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에서의 주민자치에 관한 규정을 일반법인 지방자치법으로 제도의 근거를 변경한 것이라면서 지방분권법은 특별법이기 때문에 주민자치회의 제도적 근거가 미약했지만, 일반법인 지방자치법에서 규정하게 되면 제도적 기초가 더욱 견고히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북일보와 만난 김병석 전 전북도의원이 지방자치제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천경석 기자 전북일보는 전북 지방자치의 발자취와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김병석 전 전북도의원을 만났다. 부활한 초대 의회인 4대와 5대 도의원을 지낸 그는, 현재 21세기 전주권개발정책연구소 이사장으로 근무하며 전북 발전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김병석 전 의원은 의원 활동 당시 전북연구원의 전신인 전북발전연구원 설립을 위한 조례를 대표 발의하고, 지금은 의원들의 의견 표현의 장이 된 5분 발언(당시 4분 발언)을 정립한 인물이다. 김 전 의원은 당시 도의회를 두고 제도나 시스템이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의원들의 의욕만큼은 제일이었다고 회상한다.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의회였기 때문에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본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의원이 집행부 견제와 전북 발전에 의욕이 넘쳤다는 설명이다. 아쉬운 점으로는 일당체제를 꼽았다. 집행부와 지방의회 의원 대부분이 민주당이다 보니, 무조건적인 협조와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본인 또한 같은 당이었지만, 지금 전북의 상황과 대입해도 마찬가지인 경우로 평가하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30년 동안 제도와 시스템의 발전은 이룩했지만 다양한 인물이 지방의회로 진출하는 선진화된 질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의 투쟁을 통해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일정 궤도에 올라왔다고 평가하고 싶다면서도 정치적 문화와 관행, 의식은 여전히 후진적이라고 꼬집었다. 제도는 만들어졌지만, 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 중앙정치에 예속된 지방정치와 의원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 참여자들의 전문성 강화도 필요하다. 지방자치에 대한 이념과 철학에 충실한 인물들,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지방정치로 들어와야 전문성을 갖추고, 우리나라의 후진적 정치 관행과 문화를 타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병석 이사장은 지속해서 낙후하고 있는 전북 상황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특히, 김 이사장이 지난 1992년부터 주창한 전주완주 통합 문제와 관련해 단체장이나 의원 몇 자리 때문에 전북발전을 이룩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어느 것이 전북발전에 득이 될지 판단해 정치권과 도민들이 큰 결단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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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경석
  • 2021.08.12 17:22

[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매일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젊은 미술가 ‘유시라’

최근 들어 미술계가 젊어지고 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아트 플렉스, 아트테크 문화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작가들의 작품도 한층 더 다양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예술품 구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자신이 소장한 작품을 통해 예술적 감각도 함께 공유하고 향유하는 문화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예술계를 비롯한 젊은 미술가들에게도 새로운 활력이 생겨나는 듯 보인다. 현대미술과 공예라는 장르의 벽을 허물고 계속해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 젊은 미술가 유시라(29)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유시라 작가 안녕하세요. 저는 한지라는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유시라 작가입니다. 현재 전북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중이며, 예원예술대학교 한지조형디자인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2020년도에는 전주 교동미술관 레지던시를, 2017년도에는 독일 I-A-M 아트 베를린 나우 레지던시에 선정되어 참여를 하였고, 지금까지 3회의 개인전과 전주한지박물관 초대전을 비롯한 약 50회의 단체전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한국무용을 전공하셨던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예술을 접하며 자라왔고, 유치원을 다닐 무렵부터 쭉 미술을 배웠어요.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 한 후 본격적으로 전공을 목표로 미술과 공예를 전공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고요. 그 곳에서 한지라는 소재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한국적인 소재가 주는 느낌 그리고 한지가 가진 무한한 가변성 등이 너무 흥미롭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작업에 주 소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상 속에서 겪었던 감정과 저의 시선에 들어오는 자연, 건축, 사물 등의 모습들을 글과 이미지로 항상 기록하는 편입니다. 그러한 기록들을 모아 기존 이미지를 탈피시킨 후 재료적 특성을 더해 재시각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대표작으로는 2020년에 선보인 제3회 개인전 <그것을 묶음으로 : Birth-Death>의 작품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난 누군가를 위해 길 어귀에 고추, 숯, 솔잎 등을 새끼줄에 끼워 묶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죽은 누군가를 위해 장례식을 열고 수의를 입힌 뒤 염포로 묶어 입관식을 치릅니다. 언제 어떻게 생겨 난지 모르는 이 관행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묶음으로 탄생의 시작을 축복하며 기쁨을 채워가기도, 죽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슬픔을 비워가기도 합니다. 이 묶음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모든 생명을 고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고, 각자 위로와 위안을 얻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행위의 반복을 통해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나는 누구이며, 어디쯤 와 있고, 그걸 왜 느끼고 생각해보아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져보는 작업들입니다. 딱히 방향이나 목적을 정해놓고 작업을 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바람이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제 의식의 기록들이 긴 시간을 통해 축척되고, 그 결과물들이 시리즈로 모여 작업인생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모든 작가들의 바람이기도 하겠지만, 이 이야기들이 저만이 간직하고 마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 작품을 시각적으로 감상하거나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관람객들에게도 소통의 창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예술이라는 분야를 저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전달하여 이를 즐기고 사랑하는 이들의 인생의 한 부분이 지속적으로 향유 될 수 있도록 돕는 방법들이 제 작품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음, 젊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 나 갈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 하는데요. 그 힘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더 더욱 필요한건 대중들의 관심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최근에 확산되고 있는 아트테크나 아트 플렉스 와 같은 유행도 작가들에게는 기분 좋은 관심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작가로서의 삶을 너무 행복하다고 느껴서 그 길을 함께 걸어가던 동료들이 도중에 포기를 한다고 하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짐작 갑니다. 자신의 꿈을 지키기 위해 젊은 청년작가로서 내려놓아야할 부분들이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꾸준한 관심과, 다양한 시각으로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그 길을 선택함이 틀리지 않았음을 조금씩 증명하게 해주는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내년에 약간의 변화를 시도한 개인전을 구상해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사용하던 한지라는 소재에서 조금은 벗어나 페인팅 작업을 요즘 많이 시도해보고 있는데요. 한지와 페인팅 작업을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과정이 아직 불분명하고 어렵기도 해서 고민이 많지만, 저 스스로가 이 틀을 벗어나야 한층 더 성장하고 발전해나가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계속해서 도전 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과 노력을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제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그 속에서 작업을 이어나가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끈기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 저의 최종 목표입니다. 작가로서 그녀가 걷고 있는 행보들을 지켜보았을 때, 그녀가 내딛는 걸음들이 너무나 부지런하고 꾸준한 만큼,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가 느낄 고뇌와 부담감도 적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그녀는 무엇이든 도전하고 시도 해 볼 수 있는 30대 젊은 미술가이기에 분명 앞으로의 날들이 더욱 찬란할 것이다. 젊은 미술가 유시라. 그녀의 무한한 가능성과 성장을 응원한다.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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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1 16:44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노후에 어디서 살까

노후에 어디서, 어떤 집에 살 것인가는 중요하다. 노후에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택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보건의료와 돌봄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편안한 죽음(dying in place)까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이 건강할 때와 건강하지 않을 때 희망주거지에 차이가 있다. 노인의 83.8%는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건강이 악화돼도 56.5%는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원했다. 노인요양시설 거주는 31.3%, 가족과 합가 또는 근거리 거주도 12.1%로 나타났다. 그러면 노후에 어디서 사는 게 좋을까. 노인 관련 주택의 모습은 다양하다. 노인들만이 따로 도시를 만들어 사는 은퇴자공동체(CCRC)와 기존의 도시에 살면서 느슨한 노인공동체를 형성하는 형태, 현재의 집에서 살면서 돌봄을 받는 커뮤니티 케어(노인 통합돌봄), 전원주택, 빈곤노인을 위한 고령자 친화형 공공임대주택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은퇴자공동체를 보자. 땅이 넓은 미국에서 발달한 이 형태는 1960년 애리조나 주에 건설된 더 선 시티(the Sun City)와 이후 남부 플로리다에 건립된 더 빌리지(the Villages)가 대표적이다. 이들 마을은 대단지에 주거 의료 돌봄 여가시설을 한데 모은 은퇴자주거복합단지(CCRC)로 은퇴자나 고령자들이 건강할 때 들어가 지속적인 돌봄서비스를 받고 여가를 즐기면서 노후를 맞는 마을이다. 미국에는 이러한 마을이 2000곳에 이를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더 빌리지는 83㎢(2510만평)에 13만명이 거주하며 단독주택 구입자로서 월164 달러(20만원)의 시설이용료를 내면 골프장부터 헬스클럽, 수영장, 낚시터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도심 속 느슨한 노인공동체는 미국 보스턴의 비컨힐 마을(Beacon Hill Village)이 모델이다. 선 시티나 더 빌리지가 주거를 몽땅 옮겨가는 형태라면 비컨힐 마을은 이사하지 않고 내 집에서 늙어가는(aging in place)게 차이점이다. 미국에는 이러한 마을이 30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노인복지법상 우리나라의 노인주거시설은 양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 등으로 나뉜다. 2020년 12월말 현재 [( )안은 전북의 경우] 양로시설 209(10)개소에 1만1619(516)명, 노인공동생활가정 107(4)개소에 953(36)명, 노인복지주택 36(4)개소에 7925(986)명 등 352(18)개소에 2만497(1538)명이 입소해 있다. 여기서 양로시설은 65세 이상 기초수급권자 등이 입소할 수 있는 무료양로시설과 60세 이상이 입소해 비용을 전액 본인이 부담하는 유료양로시설로 나눠진다. 노인공동생활가정은 양로시설과 같으나 정원이 9명 이내다. 노인복지주택은 실버타운 형태로 60세 이상에게 임대해 주는 노인주거시설이다. 이와 함께 노인주거 및 복합시설로 서천군 어메니티 복지마을, 김제시 실버테마파크, 장흥 로하스타운, 광주 빛고을 노인건강타운 등을 들 수 있다. 실버타운은 시설이나 위치에 따라 입주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우리나라 실버타운(또는 유료양로원)의 효시는 1988년 국내 최초로 건립된 수원 유당마을(279세대)이며 그 후 수요가 점점 늘어 호화 실버타운도 등장했다. 삼성 노블카운티(경기도 용인 800세대), 더 클래식500(서울 광진구 380세대), 더 시그넘하우스(서울 강남구 169세대), 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경기도 성남시 254세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호화 실버타운은 골프장과 병원, 피트니스센터는 물론 각종 돌봄 및 편익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보증금과 월 생활비가 엄청나 서민들은 엄두내기가 힘들 정도다. 건국대가 운영하는 더 클래식500(56평형)은 보증금 9억원에 월 170만원(2인)을 내야 입주할 수 있으며 월 생활비가 500만원 이상이 든다. 삼성 노블카운티는 자립주거(일반 555세대), 생활보조주거(건강 불편 74세대), 너싱홈(건강 나쁨 178베드) 등으로 구성되며 자립주거의 경우 30-70평형으로 최소 2억4000-9억6000만원의 보증금에 월세 60만원을 내며 2인 월 생활비 역시 500만원 이상이다. 전북에도 서울 송도병원이 설립한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웰파크시티)가 2017년 석정온천 지구에 들어섰다. 10층 높이의 576세대로 12차 243세대의 분양이 끝났고 3차 146세대가 분양 중이다. 14-33평형 규모로 1억7000-2억8000만원 가량이며 월 50-70만원의 생활비가 들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이들 실버타운은 외관이 아파트와 비슷하지만 대부분 호텔식으로 운영되며 골프장과 병원, 피트니스 등은 기본시설이다. 실내가 노인친화로 설계돼 있고 24시간 간호원 상주와 곳곳에 비상벨 및 동작감시시스템이 설치돼 있는 게 특징이다. 베이비붐 세대들에게 은퇴 후 전원주택은 로망 중 하나다. 넓은 잔디마당에 예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전원주택은 도회지에서 누리지 못한 자연환경과 함께 증간소음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등 개인생활이 용이하다는 게 장점이다. 그러나 전원주택은 집주인이 모든 것을 관리해야 하는 등 단점도 만만치 않다. 또 남성들에 비해 여성 배우자들이 입주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한번 이사하면 되돌리기가 어렵고 비용손실도 커 주의가 필요하다. 체크포인트를 짚어본다. 전원주택 매입 때 그럴듯한 외관만 보는 경우가 많으나 하자나 부실시공 등을 눈여겨봐야 한다. 직접 짓는 경우는 토지비용이 싸지만 공사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또 자칫 냉방비나 난방비 폭탄을 맞을 우려도 크다. 집 한 채 지으려다 10년 늙는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 도시에 비해 교통이 불편함은 물론 백화점이나 병원, 은행 등이 멀리 떨어져 있어 이를 감내해야 한다. 은퇴후 아직 활동이 자유스러운 60-70대는 전원생활이 만족스러울 수 있으나 80대 이후 간병기에는 병원이 가까워야 한다. 더욱이 배우자 사별로 홀로 생활할 경우 전원생활을 계속할지 고민해야 한다. 마당에 잔디를 심어놓고 잘 깎는 사람도 있지만 힘들어서 관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갈아엎고 자갈을 깔거나 데크를 설치하기도 한다. 또 여름철이면 파리 모기 등이 극성이고 텃밭의 풀도 뽑고 돌아서면 또 자라있어 지치게 한다. 짓거나 구입 때 큰돈이 들어가지만 팔 때는 제 값 받기가 힘들다. 매각도 쉽지 않고 투자 메리트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밖에 원주민의 텃세 등 이웃과의 관계도 고려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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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9 16:39

[뉴스와 인물] “전북 도민과 사회적 가치 실현 주력할 것” … 한국가스안전공사 신임 전북지역본부장 김두홍

김두홍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북지역본부장 /사진 = 조현욱 기자 가스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가스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전북지역본부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북 출신이자 가스안전 전문가로 전국을 누비며 가스산업 분야에 잔뼈가 굵은 김두홍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북지역본부장이 지난달 13일 취임했다. 전북본부에서 신입 직원으로 출발해 감사실 등 여러부서에 근무하며 합리적인 리더십과 원만한 성품으로 조직 내에서 신뢰가 두터운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도내 출신으로 드물게 가스산업을 이끄는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다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북본부장을 맡게 됐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수소경제 체제로 전환기를 맞아 전북도와 도민의 삶과 직결되는 가스안전관리에 대해 전북지역본부의 향후 업무 계획과 운영 방향에 관해서 들어봤다.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북본부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공사는 가스의 위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가스산업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국내 유일의 가스안전관리 전문기관으로 전북지역본부에서는 도내 14개 시, 군의 가스안전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총 39명의 직원들이 가스시설과 제품에 대한 검사, 점검, 시공감리와 함께 안전교육 및 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전북본부장으로서 앞으로 소감과 포부는 무엇입니까? 1991년 전북지역본부에서 신입 직원으로 출발해 15년간 직원, 검사부장 등으로 근무해 지역의 안전관리 환경과 업계현황을 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와 수소경제로의 전환 등 가스안전관리 환경에도 큰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지역본부에서도 공사의 설립목적, 시대 및 업계상황 등에 맞게 가스안전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취약시설 등에 대한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 전북의 가스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합니다. -올해 전북지역본부의 주요 사업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전북지역본부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최고의 가스안전 책임기관을 실현하기 위해 기본을 지키고 최고를 지향하는 하나된 안전이란 지역본부 자체 비전을 설정하고 4가지 추진방향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본에 충실한 가스안전관리 정책을 추진해 가스사고를 줄여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며 가스안전관리에 대한 공사의 역량을 바탕으로 전북도 및 각 지자체, 가스업계와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통해 가스사고를 예방하고자 합니다. 둘째 포스트 코로나 및 수소경제 시대로의 가속화 등 안전산업 환경변화에 맟게 도내 관련업계의 생태계 조성과 상생발전을 위한 지원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공사, 지자체 및 업계와 함께 업(嶪)에 기반한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점검 지원과 일자리 창출 등 지역사회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넷째 소통과 혁신을 통해서 지역본부 직원들의 가스안전관리에 대한 직무 및 기술능력을 향상해 고객만족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기관도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인데 이와 관련해 어떤 것을 추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해 공사는 현재 KGS 스마트 검사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페이퍼 중심의 업무를 전자화해 대면업무를 대폭 축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장검사업무가 주된 직원들은 검사시설에 대한 이력확인, 검사결과 등록, 증명서 발급과 같은 업무를 모두 전자문서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지역본부는 새로운 시스템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 담당자를 지정하고 직접 시연 및 교육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또한 현지 출퇴근 비대면 검사시간을 확대하고 제조공정 중 확인사항 선별 및 화상검증을 통한 원격검사 시행 등 탄력적인 검사인력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지역본부에서 실시하는 가스안전 전문교육 및 특별교육은 사전 안내를 통해 사이버교육을 확대 운영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적극 적용 및 쾌적한 교육환경 제공으로 교육생들이 원활하게 교육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크게 위축돼 있습니다. 전북지역본부에서 주력하거나 계획 중인 지역공헌사업이 있다면? 전북지역본부는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실현을 위해 가스안전 재능기부를 통한 청년층 지역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일례로 체험형인턴 및 공기관 직무인턴, 잡멘토링 운영 등이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경기 회복을 위해 가스안전마을 농산물 구입, 지역상품권 구매를 통한 소상공인 지원, 장애인 및 보육시설에 생필품 및 방역물품 지원을 통해 어려운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소외계층 가스안전 확보를 위해 지자체와 함께 LP가스 시설개선 사업(1110 가구)과 타이머콕 보급사업(5400가구)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도민과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본격적인 휴가철 등으로 야외에서 부탄연소기 사용량이 늘고 있어 가스사고에 대한 우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사용시 불판 받침대 보다 큰 조리기구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부탄캔 등은 타 열원에 가까이 두지 않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인적오류나 사용자 취급부주의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올바른 안전수칙을 준수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 김두홍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북지역본부장은 1964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난 김두홍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북지역본부장은 전주완산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김두홍 본부장은 대학교 졸업 후 1991년 한국가스안전공사 공채 5급으로 입사했다. 김 본부장은 일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울 만큼 철두철미한 성품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서원들과 화합, 소통을 강조하는 합리적인 조직 운영 방식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김 본부장은 한국가스안전공사에 입사 후 울산지역본부 검사팀장, 전북지역본부 검사1부장 등 전국에서 여러 실무 경험을 쌓았다. 또한 감사실 감사부장, 석유화학 진단처장 등 공사 내에서 요직을 두루 역임한 인물이다. 2019년부터 지난 7월까지는 한국가스안전공사 감사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주요 수상이력으로는 재난안전관리 유공 소방방재청장 표창, 명예의 전당 유공 사장 표창 등이 있다. 김 본부장은 전라북도 가스 사고 제로(0)를 달성할 수 있도록 안전한 가스관리 환경 조성에 역점을 두겠다며 전북지역본부가 도민에 신뢰받는 최고의 가스안전 기관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기획
  • 김영호
  • 2021.08.08 16:32

[전북명산, 회문산의 속살] ⑤종교성지 : 민초들 삶 위로하고 새 세상 열고자 한 열망 간직

회문산을 흔히 호남의 영산(靈山)이라고 한다. 회문산이 품고 있는 종교적 신비스러움 때문이다. 실제 회문산을 성지로 여기는 종단이 여럿이다. 한 때 수십만 명의 신자를 뒀던 갱정유도회의 발상지가 회문산이며, 증산도에서는 지구의 아버지 산으로 회문산을 신성시 하고 있다. 회문산에 있는 만일사는 이성계의 조선건국과 관련된 설화를 간직한 사찰이다. 회문산 기슭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김대건 신부의 동생과 조카가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종교와 사상은 달라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새 세상을 열고자 했던 이들의 열망과 숨결을 회문산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갱정유도는 오늘날 일반에게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광복 직후 한때 50만이 넘는 신자를 거느릴 만큼 교세를 떨쳤다. 갱정유도의 발상지가 바로 회문산이다. 순창 구림 출신의 강대성(1898~1954)이 회문산에서 수도하고 성도하고 또 교당을 짓고 포교활동을 했다. 유불선 합일의 신흥종교인 갱정유도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면서다. 특히 1965년 신도 500여명이 흰 고무신과 갓망건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중앙청 앞에서 벌인 시위는 당시 언론의 비아냥거림을 받으며 대서특필됐다. 이들은 미소를 멀리하고 남북한이 화합할 것과 우리의 미풍양속을 지키고 충효를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주장했다. 당시 당국은 미소를 멀리하자는 주장을 잘못 해석해 주동자들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이에 앞서 강대성 도조는 1954년 혹세무민과 대한민국 전복 혐의로 구속될 당시 심한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이후 갱정유도 일부 신자들은 정권의 탄압을 피해 지리산 기슭 청학동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형 공동체를 만들었다. 방송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탄 청학동의 김봉근 훈장도 갱정유도 신도로 알려져 있다. 종교연구가 김홍철 전 원광보건대 학장은 갱정유도를 보고 흔히들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 문병의 배타지대에 사는 사람들, 신비를 좇아 사는 이방인이라고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진실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사랑하며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실천하는 생활 속의 수도인들이요, 혼탁한 사회에 한줄기 맑은 샘물줄기로 생각한다고 평가했다.(<순창의 문화와 역사>에 게재한 회문산과 갱정유도에서) 교단의 쇠퇴와 함께 본부조차 남원으로 이전하면서 회문산은 발상지라는 이름만 갖고 있다. 향토사학자 박재순 순창문화원 사무국장은 어렸을 때만 해도 고유 한복을 입고 상투 튼 이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고 했다. 강대성 도조가 수련하고 성도하며 포교했던 회문산 내 승강산에 있었던 초가삼간은 이미 오래 전 없어졌고 그 자리에 발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강대성 도조의 아들인 강을선씨가 쌍치면 용전마을에서 발상지로 가는 길목에 경화궁 서당을 만들어 훈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강씨가 4~5년 전 작고하면서 이곳도 현재는 폐가로 방치된 상태다. 강대성 도조의 생가(구림면 봉곡리) 역시 터만 남아 있다. 남원 도통동에 있던 도조의 묘소는 몇 년 전 유족들이 생가 인근 선산으로 모셨다. 박재순 국장은 종단이 활성화 되지는 않았지만 한 종단을 탄생시킨 강대성 도조 묘소에 지난 역사를 기록한 묘비조차 없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증산교 계열의 종교에서 회문산을 성지로 여긴다. 증산교 창시자인 강일순(호 증산, 1871~1909)이 회문산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다. 강증산은 회문산과 모악산을 부모산이라 하여 이곳을 바탕으로 천지공사(天地公事)가 펼쳐진다고 역설했다. 강증산은내가 이제 천지의 판을 짜러 회문산에 들어가노라. 천하대세를 오선위기의 기령으로 두 신선은 (바둑)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라고 했단다. 바둑판의 주인은 한반도, 대국과 훈수를 하는 신선은 주변 4대 강국을 의미한단다. 예부터 명당자리의 하나로 전해오는 오선위기혈을 세계정세로 파악,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에 서고 회문산이 대 역사가 펼쳐지는 것으로 증산교는 해석했다. 강증산이 회문산을 찾아 오선위기 도수를 보러 왔다는 말은 전하고 있으나 그와 관련된 구체적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증산교 계열 신자들이 회문산을 성지로 보고 순례에 나서고 있으나 특정 장소를 기리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회문산 정상 가까운 등산로에 바위에 새겨진 천근월굴(天根月窟)이 증산도와 관련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도 있다. 참고로 강증산 제자로 한때 700만명이 넘었다는 보천교 교주였던 차경석은 자신이 거주하던 정읍 입암면 대흥리를 오선위기의 명혈이라고 했단다. 회문산은 박해를 받던 초기 천주교 신도들의 피신처이기도 했다. 박해를 피해 산중에 살았던 교우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으면서 점차 산 아래로 내려와 회문산 일대 한때 58곳이나 되는 공소가 있었다고 한다. 1884년 작성된 교세통계표에 처음 등장하는회문산 공소 신자 수는 1883년 35명이며, 1894년에는 81명으로 나와 있다. 현재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쪽 회문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생과 조카의 묘소가 회문산권 천주교 역사를 대변한다. 동생 김난식 프란치스코(1827~1873)와 7촌 조카 김현채 토마스(1825~1888)는 박해를 피해 현 묘소 아래에 교우촌을 형성하고 살았다. 그 교우촌이 먹구니였으며, 이는 먹을 만들어 생업으로 삼았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두 분은 교우들과 함께 먹구니에서 1873년까지 화전을 일궈 조로 끼니를 때우며 굶주림을 극복했다. 또 토종벌을 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구체적으로 벌 50통을 쳤다는 이야기도 구전되고 있다. 두 분이 살았던 먹구니 교우촌은 현재 사람이 살지 않아 무성한 나무들과 풀들로 덮여 있으나 당시 신자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박해시대 김대건 신부 집안은 전라도로 많이 내려와 살았어요.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 논산 금산 고산 익산 부안 정읍 등지로 여러 집안들이 내려왔는데, 김난식 프란치스코와 김현채 토마스가 아무 연고도 없는 회문산에 내려왔을지 추적해봤어요. 박해시대 경계지역이 피난처로 많이 선택됐는데 회문산도 정읍 임실 순창 경계지역이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삶에서 드러나듯이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수도자처럼 살기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이영춘 호남교회사연구소장(용진성당 신부)은 김현채를 기억하는 일은 순교자와 순교자적 삶을 함께 기억하는 중요한 자리매김이 될 것이며, 특히 동정부부로 산 삶은 전주 치명자산의 복자 유중철과 이순이 동정부부의 맥을 잇는 일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두 분이 작고한 뒤 1899년 먹구니 교우촌에서 조금 떨어진 산내에 능교 공소가 생겼으며, 능교 공소는 지금까지 유지되는 회문산 자락의 가장 오래된 공소다. 천주교는 이를 기려 2007년 교우촌 영성센터를 건립했다. 이 소장은 천주교 교우촌은 박해시대 형성된 종교인 취락으로서 어느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취락형태를 갖고 있어 역사문화적 의미가 크다며, 이런 취락형태의 현장을 잘 보존한다면 역사문화적, 교육적, 관광문화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기획
  • 김원용
  • 2021.08.05 16:57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102)이완용 둑과 불이 간척지

평생 배운 바를 가지고 어떤 일을 했는지 후세 사람이 이 마음을 알겠지 일제강점기 군산역사관에 소장된 을사오적 이완용(1858-1926년)의 글이다. 이완용은 자신이 한 행적에 관하여 이처럼 스스로 위안했지만, 후세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 최고 역적으로 여겨질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까? 그 내면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있었던지 본인이 직접 묻힐 묫자리를 지정하고 묻혔던 익산 낭산 외에도 묘의 훼손을 두려워한 이완용은 여러 장소에 가묘를 썼다.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현 성남시) 출신인 이완용이 서울에서 숨을 거두고 시신이 용산역에서 실려 와 익산에 묻힌 데에는, 1898년(고종 35년)부터 전라도 관찰사로 일했고 천재지변이 있을 때 백성을 위로하는 관직인 위유사도 지내면서 지역 사정에 밝았던 데에 있다. 하지만, 이완용이 천하의 명당이라 찾아놓은 낭산의 묘는 여러 사람에 의해 훼손되다 결국 그의 자손에 의해 폐묘가 되었고 그가 어명을 받들고 행한 일들은 지역의 통탄으로 남았다. 그 흔적으로 부안군 줄포와 군산시 옥구에는 이완용과 관련 있는 둑이 있다. 부안의 줄포면에는 오래전 원둑(언뚝)이라고 불렸던 곳이 있는데, 이곳은 1898년 이완용이 줄포 바닷가 땅이 해일로 침수했을 때 현지를 시찰하면서 바닷물을 막을 수 있는 둑을 쌓도록 군수한테 지시하여 생겨난 둑에서 유래했다. 당시 둑을 쌓고 난민을 구제한 이완용의 공덕을 기념한 이완용 휼민선정비가 현재 줄포면사무소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관직에 의해 백성을 보살피는 당연한 일이었으니 이완용의 공덕으로 보기엔 어설픈 흔적이다. 또한, 군산 옥구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이완용 둑이라 부르는 장소가 있는데, 지금의 오봉마을에 이어지는 길이다. 만경강 일대에는 오래전부터 강변이나 갯벌을 개간하며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잦은 수해와 가뭄 그리고 염기 많은 토양은 안정적으로 농사짓기 어려웠다. 자신 소유의 땅이 없던 가난한 농민들은 부평초처럼 만경강 일대를 떠돌며 근근이 먹고 살았다. 이들의 노동력과 간척하기 수월한 만경강 일대를 나라에서 눈여겨보고는, 가난한 농민들을 모아 농지를 개간하도록 지원하고 나눠준 농지의 규모에 따라 세를 받고 관리하기 위해 균전사를 1890년에 옥구에 파견했다. 당시 일대가 이완용이 관장했던 곳이어서 이완용 둑으로 불린 것이다. 왕실 자금으로 확보된 척박한 땅을 농지로 개간하면 당분간 세금을 면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농부들은 피땀을 흘려 땅을 일구었다. 둑을 만들고 개간 과정을 거쳐 간척지로 전환된 땅은 염기를 제거하면 농지로 활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그 땅을 일구고 바닷물이 스며든 땅의 토질을 바꾸고 물을 원활하게 대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약속을 믿고 땅을 일구었지만, 균전사는 약속과 달리 소작료와 당분간 면제해준다는 세금까지 징수했다. 이에 농민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왕실은 소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이어갔다. 길어지는 분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농민들 앞에 외세의 자본이 손을 뻗는다. 이곳에 러일전쟁 시기 조선 땅으로 진출하여 훗날 조선의 간척왕이자 수리왕이라 불린 오사카 출신의 후지이 간타로가 등장한다. 일본의 생활필수품을 들여오고 미곡 등을 일본으로 반출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그는 턱없이 싼 조선의 황무지와 미개간 땅에 눈독을 들였다. 후지이 간타로는 개항장인 군산을 거점으로 내륙으로 뻗어가며 대규모의 땅을 헐값에 사들인 후, 소작 농업경영으로 높은 수익을 내고자 1906년 옥구와 익산 일대에 농장을 설립한다. 그리고 1914년 불이흥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옥구농장 이외에 강원도 철원과 평안북도까지 농장을 확장해 회사 이름을 딴 대규모의 불이농장을 운영하고 일본인 거주지인 불이농촌을 조성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불이흥업주식회사의 목적은 분명했다. 1920년부터 1922년까지 3년에 걸쳐 만든 옥구의 불이 간척지와 1923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옥구저수지는 일제가 당면한 과제인 인구증가와 식량부족의 문제를 조선에서 해결하려는 시범 모델이 되었다. 생계가 절박한 조선의 농민에게서 땅을 헐값에 사들이고, 대한제국 투자권유서에도 등장하는 고리대금업 수법으로 농민이 돈을 못 갚으면 땅을 강탈해 토지를 확보했다. 그렇게 확보된 600만여 평을 간척하여 농지로 일구고 물을 대기 위한 100만여 평 규모의 옥구저수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불이흥업주식회사는 영구소작권 보장, 소작료 3년 면제, 간척 공사 임금 지급이라는 모집 광고를 내고 몰려든 가난한 농민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불이 간척지를 일궈 일제의 대표적인 신천지 사업의 선전대상이 되었다. 후지이 간타로는 신천지 사업 즉 이상적인 일본농촌의 건설을 목표로 이민사업을 추진해, 출신지에 따라 불이농촌 안에 나라촌, 히로시마촌 등 일본 지명의 마을과 학교를 만들었지만 농민들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이후 무리한 확장과 농업 공황기를 겪고 분쟁에 의한 재판을 받으며 경영난에 봉착하자 1934년 조선식산은행으로 회사가 넘어갔다. 하지만 그 만행은 지속되었고, 당시 저항한 농민들의 소작쟁의는 조직적으로 저항한 독립운동의 항쟁사로 남았다. 광복절을 앞둔 시기, 선조들의 뼈아픈 노역의 역사를 왜곡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일본의 군함도가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고창 갯벌을 비롯한 한국의 갯벌은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완용의 둑에서 일제 수탈의 흔적과 희망을 품고 새만금으로 이어지는 간척의 역사는 생명을 품은 갯벌과 함께 이 땅에 깊이 새겨진 어제의 상처와 오늘의 역사를 새기며 훗날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 기획
  • 기고
  • 2021.08.04 17:00

[가볼만한 계곡] 남원시 금지면 매촌마을 만학동 계곡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 매촌마을 뒤쪽에 위치한 만학동 계곡. 남쪽으로는 우뚝 솟은 고리봉이, 북으로는 문덕봉에 자리한 아름다운 골짜기로 야생차 군락지가 있는 등산로와 함께 이어진다. 고리봉, 문덕봉을 등반하는 코스 초입과 마지막에 자리 잡아 등산객들의 발길이 자주 찾으며 온통 맥반석 바위로 구성된 만큼 널따란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보인다. 마치 여과 기능을 거친 암반수처럼 보이는 계곡물에 손을 담그면 이내 세상 근심이 모두 사라지고 그냥 마셔도 될 것만 같을 정도로 맑다. 만학동 계곡 주변 남원 차의 명맥을 이어온 매월당 고려단차도 주목된다. 매월당은 억새 지붕과 돌담이 아름다운 곳으로 서울관광뉴스레터 2020년 7월 호에 게재돼 남원의 숨은 관광명소로 급부상한 바 있다. 특히 야생차 군락지로 스토리가 있는 차 문화 체험지로 전 세계 여행지를 소개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에 16페이지 분량이 소개되기도 했다. 남원하면 뱀사골 계곡이 떠오른다. 코로나19로 사람이 모이는 곳보단 가족과 함께 평온한 만학동 계곡을 찾아 고려단차 시음, 차 만들기, 민박체험 등을 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 기획
  • 김선찬
  • 2021.08.03 17:04

[가볼만한 계곡] 무주 칠연계곡, 시원한 물 · 솔숲 · 바람이 어우러져

무주군 안성면에 위치한 칠연계곡. 기암괴석과 소(沼), 여기에 담(潭)과 소나무까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이곳은 아름다움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코로나19 때문에 조심스러운 요즘 같은 때 찾아가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작고 아기자기한 일곱 개의 폭포가 이어져 흐른다고 해서 칠연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덕유산 능선의 동엽령 서쪽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소나무 향기 그윽한 계곡을 걸어볼 수 있는 산책코스가 일품이다. 계곡을 완만하게 따라 흐르는 맑은 물살이 칠연폭포와 용추폭포, 명제소, 문덕소, 도술담 등의 주변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살려준다. 특히 칠연계곡 도술담에서 맴돌던 물이 흘러내리다가 우거진 노송사이 층층바위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비폭이 용소로 떨어지는 용추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칠연계곡은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를 타고 덕유산 IC를 통과해 덕유산 안성 탐방지원센터(칠연로 608)를 찾아가면 만날 수 있다. 무주읍에서는 직행버스를 타면 통안마을까지 25분 정도가 소요된다. 칠연폭포 아래쪽 계곡 건너에는 조선말기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150여 명이 잠들어 있는 칠연의총을 비롯해 전라북도 자연환경 연수원도 자리하고 있어 관광과 견학을 함께 즐길 수 있다.

  • 기획
  • 김효종
  • 2021.08.03 16:54

[가볼만한 계곡] 부안 직소폭포 '숲 속 바람 · 폭포가 아름다운 산수화'

부안 직소폭포는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내변산에 위치해 봉래구곡, 관음봉, 쇠뿔바위 등과 함께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직소폭포는 변산반도 남서부 산악지대인 선인봉 동남쪽 기슭에 직소천의 지류들이 계곡을 따라 흐르며 이룬 계류폭포로 부안 변산면 중계리 일원에 위치에 있으며 변산 8경 중 하나다. 2020년 4월 20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6호로 지정. 수달과 미선나무 등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며 실상사, 월명암, 원불교제법성지 등 문화유산이 산제한 곳으로 자연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봉래구곡의 제2곡인 직소폭포는 30m 높이에서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며 실상용추((實相龍湫)라고 하는 소(沼못;소)를 이룬다. 지름이 50m 정도가 되는 실상용추는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심연(深淵)을 이루고 있으며 물이 맑고 깊어 파란 빛을 띠고 있는 이곳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가뭄이 심할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폭포 및 주변에는 용암이 급격히 식으면서 생겨난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와 함께 침식작용에 의해 생긴 항아리 모양의 구멍인 포트홀도 관찰 할 수 있어 지질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표암 강세황(1713-1791)은 직소폭포와 용추, 그리고 실상사를 한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 우금암도(禹金岩圖)를 남겼다. 이렇듯 직소폭포는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감탄과 역사를 품은 곳이다. 내변산주차장(부안 변산면 중계리 179-8)에서 직소폭포까지 2.2km 정도로 경사가 완만해 힘들지 않게 편도 50분 정도 소요된다.

  • 기획
  • 홍석현
  • 2021.08.03 16:50

[가볼만한 계곡] 장수군 계북면 토옥동계곡

여름이면 장수군 지지계곡, 덕산계곡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장수에는 또 다른 숨겨진 명소가 있다. 장수군 계북면에 위치한 토옥동계곡이 바로 그곳이다. 해발 600m가 넘는 남덕유산 깊은 골짜기에 위치해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 천혜의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다. 토옥동계곡은 4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봄가을에는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산행길로 편안한 등반이 가능하며,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다양한 고산 식물을 채집하기에 좋은 장소다. 여름에는 남덕유산의 암석을 타고 내린 맑은 물줄기가 작은 소를 이루고 세찬 물줄기는 작은 폭포가 되어 청량함을 뿜어낸다. 군데군데 다양한 크기의 소가 많아 가족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강하면서 부드럽게 내려오는 물줄기, 흙 대신 돌이 많은 토옥동계곡은 흙탕물이 일지 않는다. 또 시원한 그늘에서 숲의 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상념을 잊을 만큼 평안하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는 토옥동계곡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또한 토옥동계곡에선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식도락가의 입까지 사로잡는다. 천혜의 자연이 선사한 맑은 물에서 자란 송어는 무더위로 지친 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고 있다. 토옥동계곡의 송어로 만든 송어회와 요리는 식감이 쫄깃하면서 부드러워 차별화된 매력이 있다. 송어의 건강한 단백질은 21%로 소고기보다 월등하게 높고, 비타민 A, B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고혈압, 당뇨, 정력증진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오메가3도 풍부해 남녀노소의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 기획
  • 이재진
  • 2021.08.03 16:36

[가볼만한 계곡] 순창 복흥면 주평리 위치한 송정계곡

전주에서 순창군 복흥면 소재지 방향으로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순창군 복흥면 주평리. 최근 연일 폭염으로 인해 잠시나마 무더위를 피하고자 도착한 이곳은 사람들에게 송정계곡이라 불린다. 이 곳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다. 순창하면 여름철 피서지로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강천산이지만 워낙 유명해 인근 지역 피서객들로 너무 붐벼, 여유를 느낄만한 틈이 없다. 가족들이 한적하게 피서를 즐기기에는 송정계곡이 적합하다. 주차장이나 화장실, 음식점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는 않지만 이로 인해 피서객이 적어 가족끼리 오븟하게 휴가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요즘 같은 휴가철에는 오히려 이곳이 최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계곡을 찾아 마을 초입부터 산길을 오르다보면 잔잔한 물줄기가 흐른다. 최근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물줄기가 조금 말랐지만 그 덕분에 수심이 일반 성인의 무릎에서 배까지 오다보니 영유아나 초등학생 등이 물에 빠질 걱정이 전혀 없어 같이 온 부모들도 아이들을 걱정하지 않고 휴가다운 휴가를 즐길 수 있다. 계곡 주변으로 수풀이 우거져 그늘이 많다보니 요즘 같이 햇볕이 강한 무더위를 피하기도 안성맞춤이다.

  • 기획
  • 임남근
  • 2021.08.0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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