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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청소년 자원봉사활동도 이제 비대면으로!

자원봉사활동이란 무보수성, 자발성, 공익성, 비영리성, 비정파성, 비종파성의 원칙 아래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청소년이 참여하는 자원봉사활동은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성실성과 책임의식, 협력 등을 기를 수 있는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다. 청소년자원봉사활동을 연상할 때 흔히 학습 지도, 캠페인 활동, 말벗 활동 등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따뜻하고 활기찬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사회 전반에 나타난 변화와 마찬가지로 자원봉사활동 또한 비대면 환경에서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코로나 이후에도 더욱 많은 요구가 있는 상황이다. 2020 자원봉사활동 실태조사 및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개정 연구(행정안전부) 조사 결과에서 발췌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자.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비대면 자원봉사가 얼마나 활성화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지금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응답이 45.0%,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줄어들 것이라는 응답은 29.2%,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상당히 활성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25.8%로 조사되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상당히 활성화될 것이다는 응답은 지역적으로 광주(31.2%), 강원(31.4%), 전북(36.8%)에서 높았는데, 지역크기 별로 살펴보면 읍면지역(32.4%)이 광역시나 중소도시에 비해 높게 응답하였다. 비대면 자원봉사 활동을 권유받으면 10명 중 8명(79.7%)이 앞으로 참여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반면, 의향이 없다는 응답은 20.3%로 나타났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가 있듯이, 자원봉사활동에도 비대면화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는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처음으로 비대면 활동에 대한 항목을 추가하여, 응답자의 10.2%가 비대면 장소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였고 향후 비대면 활동 참여의향이 79.7%로 높게 나오는 등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났다. 비대면 활동처에서의 회당 평균 봉사시간(회당 3.3시간)은 일반활동(회당 5.7시간)에 비하여 훨씬 짧게 나타났지만, 봉사자들의 평균대면 활동의 연간 참여횟수(8.1회)는 일반 활동의 평균(5.2회)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비대면 자원봉사활동이 짧은 시간에 여러 차례 반복해서 수행할 수 있는 활동으로서의 특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대면 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비대면활동 참여에 적합한 환경조성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예를 들면 자원봉사 활동 분야에 비대면 활동을 포함하거나 시간 관리 인증 가이드라인, 비대면 영역 콘텐츠 개발 등이 필요하다. 자원봉사 참여자들이 선호하는 참여방식은 인터넷 등 SNS를 통한 참여방식, 비대면 활동, 내가 가능한 시간의 비정기적인 활동 등을 개인 혹은 가족 등의 소그룹 형태로 스스로 기획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청소년자원봉사활동은 시간 채우기를 위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자기주도성과 진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에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비대면 자원봉사활동의 양상은 청소년자원봉사활동의 변화 속도를 조금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여기 코로나 상황에서 진행된 비대면 청소년자원봉사활동 사례들이 있다.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더욱 흥미롭게 운영, 또는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비대면 청소년자원봉사활동은 코로나 상황에서만 이루어지고, 이후에는 사라질 활동이 아니라고 본다. 현재,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서 일상의 모든 활동들은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이루어지기 쉽도록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대면하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은 더욱 요구될 것이다. 비대면 청소년자원봉사활동은 청소년에게 이러한 시대 변화에 필요한 역량과 내적인 성장 또한 개발하도록 할 것이다. 오랫동안 그 모습이 정체되어 있던 청소년자원봉사활동, 이제 비대면청소년자원봉사활동으로 더 많은 청소년들이 새로운 모습의 봉사활동에 참여해보기를 기대한다. /손승진 전북청소년단체협의회 팀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1.07.05 17:10

[뉴스와 인물] 박종완 국제로타리 3670지구 총재 “어려운 현실에도 그늘진 곳에서 밝고 행복한 빛을”

국제로타리 3670 전북지구 총재에 취임한 박종완 총재가 '어려운 현실에도 그늘진 곳에서 밝고 행복한 빛을' 전하겠다며 봉사의 의미를 다지고 있다. / 사진 = 오세림 기자 국제로타리는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봉사 클럽이다. 전세계 3만 3000여개 클럽에 120여만명의 회원이 있다. 한국로타리는 19개 지구로 조직되어 있다. 3670지구 전북에 82개 클럽 4300여명의 로타리안이 활동하고 있다. 3670 전북지구를 2년간 이끌 박종완 신임 전북지구 총재가 지난 1일 취임했다. 박 총재를 만나 앞으로의 비젼과 각오를 들어봤다. -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로타리 회원들과 도민들께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7월부터는 개편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용된다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개편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방역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함으로, 결코 개인방역수칙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지역경제가 조금은 활성화되어 사업장은 물론 로타리 회원님과 도민 여러분의 가정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 총재님이 생각하시는 로타리클럽의 청사진은 어떻게 되나요? 로타리클럽은 봉사단체입니다. 초아의 봉사라는 가치실현을 위해 모든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로타리 비전선언문에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다함께 힘을 합해 지구촌과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창조적 변화를 끊임없이 실천하는 그런 세상입니다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로타리클럽의 청사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 기간 로타리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총재님에게 로타리 활동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다소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혼자서라도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인적, 물적 지원이 가능하다면 보다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로타리 봉사재단은 지역은 물론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연합을 통해 국가기관도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며 보편적 인류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로타리 활동의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로타리안으로써 열심히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네 있습니다. 19년 전에 지인의 권유로 전주모악로타리클럽에 가입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1~2년을 보냈습니다. 총재월신과 로타리코리아에 수록된 내용들을 보면서 로타리 재단이 소아마비 퇴치에 어마어마한 기금을 쓰고 있고 빌게이츠재단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을 로타리재단에 기부한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릴 적 동네 형이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며 학교는 다녔는데, 지금껏 로타리 재단에서 백신을 공급해 2개 나라 빼고는 완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적극적인 봉사가 나를 뛰어넘는 초아의 봉사라는 가치실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 임기 내 중점적으로 챙기고 싶은 사업이나 일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제가 취임 후 임기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사업을 MISSION 3670이라 정했습니다. 먼저 3670 중 3은 30명 미만 클럽 제로화입니다. 6은 재단이 60만 달러를 더 기부(합계 150만 달러 달성)하는 것이고 7은 700명 회원 신임 회원을 달성하는 것이다. 0은 기부하지 않는 회원 제로화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지구상조회를 새롭게 설정했는데 더불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라면 로타리안도 예외일수는 없습니다. 지구에서 항상 받기만 했지 회원들에게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회원 유고 시 조의금 일천만원과 조의용품 및 추모글 플래카드와 함께 로타리장으로 가시는 길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가족들에게도 국제로타리 3670지구가 늘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 코로나19로 비대면 서비스란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습니다. 봉사도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적응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고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대면 환경이라 해서 결코 손 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1년 동안 소모임을 자제하고 줌 화상회의를 통해 봉사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실천방안 등을 마련하여 집단체제의 봉사가 아닌 선택과 집중력을 발휘해 소외계층에 밝은 빛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로타리안의 축제인 세계대회도 코로나19 비대면 방역지침에 따라 줌 화상회의로 대처해 국가 간 바이러스 전파방지에 로타리안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로타리안 식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쉐이커 메타 21~22년 RI회장은 봉사로 삶의 변화를이라는 테마를 발표하면서 봉사는 다른 사람의 삶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까지도 변화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봉사란 인류가 지구에 공존하면서 지불하는 임대료라고도 표현했습니다. 모든 것이 어려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늘진 곳에 밝고 행복한 빛을 비추고자 노력하시는 로타리안 여러분께 경의를 표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국제로타리 3670지구 로타리안 및 가족 분들께서도 여러 가지로 어렵겠지만 밝은 미래를 상상하시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 주시기 바랍니다. 로타리안 여러분께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인지하지 못한 곳들에서 변화의 물결은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곁에 총재도 늘 함께하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활기차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종완 총재는... 박 총재는 1964년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공고와 서울시립대학교를 졸업했다. 2003년 전주모악로타리클럽에 입회에 현재까지 봉사의 길을 걸어왔다. 2005년 전주모악로타리클럽 이사를 맡았고, 2007년 전주모악로타리클럽 재무를 봤으며 2010년에서 2011년까지 전북지구 지틀랙트위원장을 맡았다. 이밖에도 전주모악로타리클럽 회장, 전북지구 전주3지역 총재지역대표, 전주로타리동호회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로타리클럽을 활동하는 동안 (재)한국로타리장학문화재단에 3270만 원을, 로타리재단에 4만 7720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RI회장으로부터 특별 표창을 받았다. 이밖에도 국토해양부 장관 표창, 전주시장전북도지사보건복지부장관법무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박 총재는 총재라는 자리는 누구를 대표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시를 내리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로타리 회원들이 더욱 봉사에 집중할 수 있고 봉사에 대한 열정을 지펴주는 자리다. 앞으로 로타리 발전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 기획
  • 강정원
  • 2021.07.04 16:00

[지방자치 부활 30년, 전북 지방자치 발자취와 미래] ② 다시 시작 된 전북도의회

올해는 지방자치 부활 30년을 맞는 해. 1952년 최초로 구성된 우리나라 지방의회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중단된 뒤 30여 년 만인 지난 1991년 4월과 7월 기초 및 광역의회가 재구성되면서, 올해로 부활 30년을 맞았다. 지난 30년간 민주주의 토양 아래 뿌리를 내린 지방자치는 올해 새로운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20년 12월 전면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오는 2022년 시행을 앞두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더욱 신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30년전 군사정권이라는 어둠을 걷고 새롭게 출범했던 제4대 전북도의회를 돌아봤다.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자치제. 하지만 그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30년 동안 암흑기를 걸었던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를 다시 세우기 위한 기대보다 어려움이 더욱 컸다. 주민들은 물론이고 새로 선출된 도의원들마저도 지방자치제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상황에, 지방자치제의 기반을 닦고, 기틀을 마련할 준비도 제대로 선행되지 않았다.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어렵게 획득한 지방자치제지만, 역사에 비춰볼 때 이에 대한 평가는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전북의 지방자치제 시작은 제4대 전라북도의회 구성으로 볼 수 있다. 1991년 6월 20일 실시된 선거를 통해 전라북도의회 의원 52명을 선출했다. 비례대표 없이 선출직으로만 구성된 4대 도의회는 현 민주당의 전신인 신민당 소속이 전체 52석 가운데 51석을 차지했다. 의회가 부활한 첫 대에는 여성의원도 배출하지 못했고, 당시 전체 출마자 145명 가운데서도 여성 출마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부활한 지방자치 첫 도의회 4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30년의 암흑기를 거치며 의정 경험이 없던 의원과 의회라는 견제기구에 생소한 집행부 공무원 사이의 이해 부족으로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졌다. 도지사의 의회 출석을 두고도 회기 때마다 의회와 집행부 간 신경전이 벌어질 정도로 형식논리에 치우치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로 4대 의회 끝 무렵인 1995년에는 의회에 출석하지 않은 당시 조남조 도지사에 대한 해임권고 결의안이 발의돼 가결되기까지 했다. 처음 경험하는 지방자치제의 어려움 때문이었을까. 지역개발을 둘러싼 지역 이기주의적인 의정활동과 일부 의원들의 부정과 비리도 지탄을 받았다. 특히, 당시에는 도지가 중앙에서 임명된 과도기적 지방자치제였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견제도 그만큼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다양한 특위 활동은 눈여겨볼 만하다. 지방의회가 부활한 첫해 처음으로 구성된 특위는 개원 17일 만인 1991년 7월 25일 추진된 군내버스 실태조사 특위였다. 전주시를 기점으로 주변 시군 지역을 운행하던 완행버스가 군내버스로 전환되면서 지역주민의 환승 불편 등에 따라 대책을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특위 활동을 통해 군내버스의 전주 시내 진입 횟수를 늘리는 등의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4대 도의회에서는 이를 시작으로 모두 12개 특위를 구성해 활동했다. 1993년도 부안 위도에서 서해훼리호가 침몰해 292명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수습대책특위가 만들어졌다. 이후 새만금종합개발사업대책 특위, 625 양민학살 진상실태조사 특위, 관권선거 방지대책 및 조사 특위, 골프장 관련 성금처리 조사특위, 기업유치 특위, 대형암반 관정개발에 따른 지하수오염 및 오폐수처리 조사특위 등이 진행됐다. 이같은 특위 활동을 통해 당시 시대 상황과 지역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1993년 12월 쌀 수입개방 반대 전북도민 궐기대회에서도 모든 도의원이 합심해 투쟁에 나섰고, 분개한 도의원들은 삭발 투쟁 등도 이어갔다. 최근의 도의회 모습과 비교할 순 없지만, 당시 지역 정치권에서는 그만큼 투쟁심과 의지가 넘쳤음을 알수 있는 지점이다. 미약했지만 큰 첫 걸음. 30년 만의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첫 전북도의회는 시작은 미흡했지만 현재 지방자치제의 기반을 마련하는 시간이었다는 평가다. 전북일보가 만난 김철규 전 의장 /사진 = 천경석 기자 전북일보는 당시 상황을 듣기 위해 김철규 전 전북도의회 의장을 만났다. 1991년, 30년 만에 부활한 전북도의회 첫 도의장으로, 당시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도의회를 이끌며 오늘날 전라북도의회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군산에 위치한 김 전 의장 개인 사무실에는 벽면 책장 가득 책이 꽂혀 있었다. 도의회 예산서와 새만금 관련 서적, 사진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새만금 기사를 가장 먼저 쓴 기자라는 자부심도 엿보였다. 실제 김 전 의장은 1968년 전북일보에 입사한 이후 23년 동안 본보 사회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하며 언론인으로서 수많은 사회 현상을 접한 경험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장 위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과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액자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이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 전 의장은 지방자치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재야시절부터 항상 강조하던 내용이다. 나 또한 지방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 바로 서야만 민주주의의 근간이 확립될 수 있다는 정치적 철학을 갖게 됐다면서 지방정부가 튼튼하면 중앙정부도 튼튼하다. 이 때문에 지방의회에 진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에 등록해 1989년부터 일본을 오가며 지방자치제도와 관련한 선진 사례를 연구하던 김 전 의장은, 1991년 선거에서 옥구 제1선거구에 출마해 70%에 이르는 득표율로 제4대 도의회에 입성했다. 의회 출범과 함께 실시된 의장 선출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의장직을 맡게 된 김 전 의장은 30년 만에 부활한 도의회의 제도적인 사항들이 시류에 맞지 않아 내규 및 조례를 개제정하는 등 기초와 골격을 다지며 사실상 초대 의장 역할을 했다. 그는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후 첫 의장이다 보니 책임감이 컸다면서 (내가)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도청 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군사문화를 혁신하는 것도 도의회의 역할이었다. 의장 취임 후 첫 결재 안으로 의회 운영에 관한 사항이 올라오자 결재란에 부의장 결재란 등을 신설해 의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토록 하고 주민 본위의 도의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종 제도를 만들고 보완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516 쿠데타와 1212사태를 생각하면, 지방정부의 역할이 더욱더 크다고 말한다. 그는 중앙정부가 어떤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지방정부가 튼튼하다면, 과거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전국화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 (내가) 지방정치를 하려고 한 이유이고, 그것이 지방정치의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방정치에 대한 부족함과 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미천한 수준이라면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멈춰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걸림돌로 공천제를 꼽았다. 공천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라도 광역을 제외한 기초단체장과 의원의 경우는 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전 의장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들은 공천제가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주민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거기서 발전의 씨앗이 뿌려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천경석
  • 2021.07.01 17:22

[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가치소비와 라이프스타일 속 공예

요즘 플라스틱 생수통을 두르던 띠지가 사라지고 있다. 올바른 분리배출 법이나 천연소재 제품 사용, 일회용품 줄이기 등의 적극적 참여가 보인다. 기존 환경문제 인식과 코로나19로 급증한 폐기물이 얹혀진 여파다. 친환경을 포함한 가치 활동은 또 다른 가치를 동반한다. 로컬, 역사, 인권, 자연, 환경 등이 서로 연대하고 있으며, 예술활동과 함께한다. 최근 아모레퍼시픽은 전국에서 수거한 공병으로 미디어아트 전시를 진행했으며, 서울여성공예센터는 친환경을 주제 공예장터를 운영하였다. 6월 3일 서노송동에 개관한 전주시새활용센터 다시봄의 〈개관 기념 기획전시〉에서도 새활용과 결합한 공예활동을 엿볼 수 있었다. 공예가들은 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였다. 강희경, 박은주, 송이석, 조양선, 김태근, 정하영이 참여하였다. 전주시새활용센터 이전 공간을 담거나 유리병비닐타이어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였다.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나아가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개발하며 새활용 공예품을 탄생시켰다. 정하영 작가의 설치미술은 전주시새활용센터의 과거 정체성을 드러냈다. 선미촌 성매매업소였던 시절을 결코 잊지말라는 듯 공간을 재현하였다. 방 한가운데 붉은 케이블타이로 엮은 해먹은 성매매 여성과 관람자 모두에게 결코 편하지 않는 영역임을 표현하였다. 강희경 공예가는 다 쓴 소주병과 맥주병을 활용하여 초상화를 만들었다. 박은주 작가는 자원순환 커뮤니티 활동 과정을 전시하였다. 작가가 매개자가 되어 누군가가 쓴 물건과 물건의 사연을 새로운 사용자에게 전한다. 악기장 김태근은 타악기에 쓰이는 동물가죽 대신 폐현수막 천이나 헌옷을 새활용하여 장구를 제작하였다. 조양선 공예가는 비닐을 가공한 파우치를 만들었다. 버려진 비닐을 패브릭의 일종으로 쓰임새를 부여하였다. 송이석 공예가는 폐파이프나 자전거휠 등 녹슨 철물로 다양한 조명을 선보였다. 재료 하나하나를 모으고 새활용하여 탄생한 단 하나뿐인 조명들이다. 새활용은 쓸모없거나 버려지는 자원의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새로운 디자인과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이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의 순우리말이다. 못 쓰게된 물건을 새활용 소재로 발견하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새롭게 활용하는 실천이다. 전주시새활용센터의 비전은 새활용 생산과 소비 활성화를 위한 시민 공유플랫폼으로서 자원 선순환으로 새활용, 가치에 소비하는 문화, 시민 자치적 환경가치 실현이다. 즉, 자발적 가치소비를 목표한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급속도로 공급 과잉시대로 진입하였다. 모든 물건을 손으로 만들던 시대에서 대량생산 공업품이 쏟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꽤나 오랜 시간 우리는 가격이란 기준만으로 물건을 선택하고 소비하였다.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어떤 과정이 쓰였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어떤 폭력적인 환경에서 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가격이 싸고 디자인이 예쁘면 구매 타당성이 충분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환경과 윤리성 이슈들이 터졌다. 이 시기를 관통한 MZ세대들은 자본 중심적 소비가 결코 건강한 소비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며 성장하였다. 그들이 소비력을 갖춘 지금 가치소비는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함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고민하고 상생을 모색한다. 쉽게 제공되고 버려지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신념에 따른 소비문화를 채택한다. 그것이 로컬, 새활용, 공예 등 가치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라이프스타일 속 공예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공예의 범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공예라는 단어에 담긴 수공(手工)의 가치다. 수공의 가치는 곧 과정을 안다는 것이다. 공예가는 하나하나 쓰임새에 맞추며 자신의 가치와 취향을 담는다. 소비자는 그 과정을 동의하고 구매한다. 소비자 개개인의 가치와 취향이 개입될 여지도 크다. 나아가 스스로 만들고 쓰는 즐거움도 만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라이프스타일 속 공예는 너와 내가 필요한 만큼 정성들여 만들어 쓰는 것이다. 전주시새활용센터의 개관 기념 기획전시는 이러한 라이프스타일과 일맥한다. 공예가의 가치가 담긴 공예품. 그 가치는 새활용이다. 나아가 상생과 지속가능성까지 포괄한다. /썰지연구소 설지희 소장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기고
  • 2021.06.30 17:02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전주시 평화1동에 사는 A씨(85남)는 만성질환과 통풍으로 4년간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러다 2년 전 의료급여 사례관리사의 설득으로 퇴원했다. 집에서 재가의료급여 서비스 지원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마음 편히 병원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낙상 위험이 있어 웰빙 가정환경조성사업과 맞춤형 운동지도를 받고 있고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스마트 돌봄 플랫폼사업 연계와 방문건강관리를 통해 병원 못지않은 건강체크 및 만성질환 교육으로 정든 내 집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community care)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자기가 살던 곳에서 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받으며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보건의료, 요양, 돌봄, 독립생활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에 전체인구의 20%가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이에 따라 돌봄(케어) 수요가 급증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누가, 어디서 돌볼 것인가에 대한 해법으로 도입되었다. 2020 노인실태조사 결과 건강 악화로 거동이 불편해도 노인의 56.5%가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여생을 마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병원시설에서 지내야하는 상황이 많고 불충분한 재가서비스로 인해 가족, 특히 여성에게 돌봄이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재가서비스는 서비스 간 연계 부족으로 지역 내 통합적 케어 제공에 한계가 있어 노인들이 집, 주민센터, 복지관, 보건소, 병원 등을 순회해야만 한다. 복지 선진국인 영국은 1990년에 커뮤니티케어법을 제정해 지방정부에 지역내 포괄적 케어서비스 제공 책임을 부여하고, 일본은 2013년부터 병원-시설로부터 지역-재택으로를 목표로 지역포괄케어시스템 도입했다. 우리도 광범위한 돌봄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인들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거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키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8년 11월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 2025년까지 통합돌봄 제공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추진 로드맵과 4대 중점과제를 제시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4대 핵심요소 중 첫째는 주거지원 인프라 확충이다. 노인 맞춤형 케어안심주택을 제공하고, 노인 독립생활 및 낙상 예방을 위한 집수리, 커뮤니티케어형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신설한다. 둘째는 방문건강 및 방문의료로 집중형 방문건강서비스, 방문의료, 노인 만성질환 전담 예방관리, 병원 지역연계실을 통해 퇴원환자의 원활한 지역 복귀를 지원한다. 셋째는 재가 돌봄 및 장기요양으로 차세대 노인장기요양보험을 구축하고 재가 의료급여 신설, 식사 배달 등 다양한 신규 재가서비스, 회복재활서비스 등을 시행한다. 넷째는 서비스연계를 위한 지역 자율형 전달체계 구축으로 읍면동에 케어안내창구를 신설하고 시군구에 지역케어회의 등 지역사회 민관 서비스를 연계협력하는 내용이다. 이 사업은 2019년 6월 전국 단위 공모를 통해 8개 지자체를 선정했다. 노인 선도사업으로 광주 서구, 경기 부천시, 충남 천안시, 전북 전주시, 경남 김해시를, 장애인 선도사업으로 대구 남구, 제주 제주시를, 정신질환자 선도사업으로 경기 화성시를 각각 선정했다. 이어 2019년 9월, 2차 선도사업 8개를 추가해 총 16개 지자체에서 확대 실시하고 있다. 2년간의 추진 결과 16개 모든 지자체에 전담부서가 설치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기본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1월 건강보험연구원의 분석 결과, 노인 86점, 정신질환자 83점, 장애인 80점으로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상생활 지원 및 주거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보호자가 체감하는 부양부담감도 감소했다. 그러나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이 정착되기 위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재원조달 방안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사업비의 50%를 지방이 부담(전주시의 경우 59억5800만원 중 도비 5억8500만원, 전주시 24억 5000만원) 함으로써 자치단체의 재정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컨트롤타워도 미흡한 편이다. 의사회, 약사회, 간호사회, 물리치료사회, 작업치료사회, 복지관, 외식업체, 재가노인시설, 자활센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여러 직종이 민관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이를 원활하게 연계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의 경우 지역케어회의, 지역포괄지원센터 등이 잘 갖춰져 있다. 나아가 민관협력 네트워크 구현을 위한 공공과 민간의 관계 정립도 시급하다. 통합돌봄은 방문 의료인력의 확보가 중요한데 민간의료계에서는 불편해 하고 있고 노인요양병원의 경우 장기입원을 원하는데 비해 통합돌봄은 빠른 퇴원과 탈시설을 지향한다. 마찬가지로 요양원과 그룹홈 등 민간장기요양기관 역시 참여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밖에 기존 통합사례관리와의 혼란, 노인장기요양보험과 별도로 돌아가는 제도 등 보완점이 많다.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최옥채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이 사업은 선도사업이 시행되면서 조직과 서비스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축됐다면서도 보건의료와 복지간의 협력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무는 등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크다고 진단했다. /조상진 전 전주시노인취업지원센터장 전국에서 가장 먼저 통합돌봄 선도사업 자치단체로 선정된 전주시는 서비스 대상을 그동안 노인에 국한했으나 올해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로 넓혔으며 지역도 완산구에서 덕진구까지 확대했다. 2022년에는 아동을 포함해 돌봄이 필요한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용자 수도 2019년 525명에서 2020년 1100명, 2021년 2100명(노인 2000명, 장애인 80명, 정신질환자 20명)으로 늘었다. 2021년 선도사업은 4개 분야 16개 유형 44개 사업으로 노인의 경우 요양병원 장기입원 지역복귀, 단기입원 지역복귀, 시설입소자 지역복귀, 지역기반 통합돌봄 지원, 등급외 판정자 돌봄, 재가 사각지대 돌봄, 인지저하 대상자 돌봄, 통합돌봄 종결관리 등 8개 유형을 실시하고 있다. 장애인의 경우 시설입소자 및 대기자 지역복귀, 요양병원 장기입원자 지역복귀, 단기입원 지역복귀, 지역기반 통합건강돌봄 지원 등 5개 유형, 정신질환자의 경우 입원환자 지역복귀, 시설입소자 지역복귀, 재가 사각지대 돌봄 등 3개 유형이다. 전주형 통합돌봄 모형은 당뇨집중 관리 등 건강상태에 따른 맞춤형 건강서비스(의사회 500명, 의료사협 800명, 예수병원 500명), 은퇴인력을 활용한 서포터즈 운영(노인일자리 254명), 행정협의회, 민간지원단, 지역재생-통합돌봄-사회적 경제 연계 고도화 등의 특성을 지향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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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28 16:23

[뉴스와 인물] 김병관 “이준석 현상,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

김병관 씨 일명 이준석 현상을 둘러싼 담론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정치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5년 전, 40대의 젊은 벤처기업가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며 정치에 입문,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던 더불어민주당 김병관(48정읍) 전 의원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그는 현재 민주당 성남시분당구갑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 8월부터는 국회 시스템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국회의장 디지털 혁신 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준석 현상에 대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라고 했다. 이념적이고 대립적인 정치를 그만두라는 메시지라는 설명이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의 40대의 역할 부재가 이같은 현상이 나타난 주된 요인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2030과 5060세대 간 완충 역할을 해 줄 40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40대 역할론을 강조했다.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백수되니까 훨씬 바빠져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분들 만나고, 지역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성남시분당구갑)으로서 지역민원도 처리하고요. 또 국회의장 디지털 혁신 자문관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 정치는 계속하는 건지. 어쨌거나 시작했으니까. 퇴출되지 않는 한 해야죠. - 초선 때 활동은 어떠했는지.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게 많았습니다. 정치가 제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였죠. 하지만 이념과 가치가 대립되는 공간이다 보니까 너무 빨리 변해도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도 했죠. 또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 익숙치 않았는데, 그것이 저를 한 단계 성장시켰죠.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조금은 더 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죠. - 한때 젊은 정치 신인으로 기대를 모았던 정치인으로서 최근의 이준석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성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정치인을 요구하는 것이죠. 특별히 이준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너무 이념적이고 대립적인 정치를 하지 말라는 바람인 것 같습니다. - 정치에서 2030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정치권의 고민도 깊습니다. 물론 2030 중요한데, 왜 갑자기 2030현상이 나왔나 생각하면 40대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치 주류는 586으로, 40대가 민주화를 이끌었던 그 분들을 계승했어야 했는데, 그렇질 못했죠. 자연스레 선배 세대를 계승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40대는 여전히 정치경제 분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낀 세대가 됐죠. 그게 결국 2030과 정치권과의 괴리를 키웠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서는 2030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에 매몰돼 있는데, 더 크게 세대 간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 말씀하신 세대 간 격차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 개념에 대한 이해의 격차인데요, 예를 들어 페미니즘의 경우, 50대와 2030이 느끼는 게 완전히 다릅니다. 인식 차이가 매우 큽니다. 우리 사회가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학교 다녔던 경험들이 다 달라요. 예전 농경사회 땐 경험이 비슷했지만, 민주화 이후로는 10년 격차 간의 인식 차이가 큽니다. 특히 30대20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도 달라요. 그들은 선배들의 탓을 하죠. 제대로 못했으니까 이런 갈등이 생겼다고요. 40대가 완충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죠. - 586세대가 정치 무대에서 너무 오래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 분들은 그 분들 나름대로 자기 위에 층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분들도 현역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죠. 그렇다보니까 아래를 내려다 볼 겨를이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40대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것인데. 아주 중요한데, 우리가 계속 낀 세대로 잊힌 세대가 되다보니까, 70년대생 90년대 학번에 대해선 그 누구도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우리 세대도 곧 50이 되는데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후배들은 우리를 꼰대세대로 봅니다. - 정치에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신인들을 많이 데리고 정치를 하셨죠. 좋은 지도자의 모습이었죠. 당시 40대가 정계에 많이 진출했죠.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오던 그같은 이벤트는 이후엔 없어졌습니다. 이준석 현상으로 돌아오면 국민들이 기성정치를 원하지 않고 식상해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세대교체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경륜이나 경험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시대적 요구를 맞추기에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 리더들은 신진세력과 중간세대와 같이 가야합니다. 세대를 뛰어넘는 다양성, 지금이 바로 그런 것을 해야할 시기라고 봅니다. - 최근 시대적 요구인 공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정이나 불평등의 문제는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나라 문제만은 아니거든요. 우린 특별히 시대가 빨리 변했기 때문에 더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2030으로 대표되는 후배 세대나 다음 세대가 겪게 될 미래 세상은 과거보다 더 암울할 수 있습니다. 후배 세대들은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도 어렵고, 세금은 훨씬 많이 내야 하고요. 이걸 어떻게 해결할 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죠. 고민입니다. - 정치에 대한 2030의 불만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저희끼리 키보드 워리어(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루머나 악성 댓글 등을 인터넷에 무차별 유포하는 네티즌)라고 하는데, 586세대의 경우, 거리 투쟁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등 네트워크가 잘 돼 있었죠. 그러나 지금의 2030은 네트워크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키보드로 풀고 있는데, 거기 밖에 공간이 없어요. 이게 안타까운데, 그래서 이준석만 보지 말고 투표장으로 나오라고 하죠. - 투표장에 나오라고만 하지 말고 이들을 적극 영입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사실 영입을 해도 요직으로 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경선을 해야 하고, 그동안 당에 헌신한 분들을 고려해야 하는 등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전하려는 청년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좋은 보직을 맡기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20대가 정치에 들어와서 할 것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을 가능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기초에서부터 단체장하고 상하원의원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작은 단위에서부터 경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선이란 제도가 좋긴 한데, 지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없으니 청년들의 정치참여가 어렵죠. - 이런 문제에 대해 중앙당에 건의는 했는지. 이야기는 했죠. 그런데 생각들이 다르시니까. 문제는 우리가 낀 세대라, 말하고 받아들여지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제 나이대가 많지도 않고요. - 현역 시절에 당내 청년위원장을 맡았는데, 그 때 할 수도 있지 않았나요. 그걸 못해서 아쉬운 부분인데요, 초선이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습니다. 국회 중심은 재선이나 3선으로, 이들이 일을 많이 합니다. 친한 의원들께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의견 전달하는 수준에서 그쳤습니다. - 기성 세대는 젊은 층에게 패기가 없다거나 도전정신이 없다라고들 합니다. 반면 젊은 층은 실정을 모르는 소리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27살에 창업하는 등 선배 벤처기업가로서 해줄 이야기는. 저도 후배들 만나면 도전하라고 하거든요. 그러나 저 때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도전해서 실패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비슷해서 도전이 많았죠. 대학 들어갈 때도 그렇고, 대학 들어가기만 해도 밥 굶을 일은 없었죠.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기회가 있어야 도전할 텐데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도전을 강요당하는 상황입니다. 딱히 20대한테 도전하라고 할 분야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론 저는 창업을 했을 때는 글로벌을 타깃으로 삼아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치는 이러한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사실 아무 발판도 없이 도전하라는 것은 죄죠. 도전을 도와주는 게 정치에서 할 일이다. 실패했을 때 회생할 수 있는 제도적 요건을 만들지 않으면 죄입니다. - IT분야 전문가로서 각종 규제가 4차 산업혁명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규제문제 참 어렵죠. 지금은 기성세대에 최적화돼 규제가 만들어져 있는데, 아직 그 틈이 안 깨지고 있습니다. 시장자본주의에선 돈의 힘으로 깨지는데 우린 그게 안 되니까 정치에서 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기득권에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진들을 데리고 일하면서 이걸 깨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성세대 이야기를 먼저 듣고 하면 개혁이란 게 안됩니다. 앞으로의 정치 리더는 이런 걸 바꿔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살아남으려면 글로벌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 시야가 너무 국내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 전북도민들에게 한 말씀한다면. 저는 고향이 전북이고 부모님 형제 다 거기에 계시니까 전북 사람입니다. 지역구 다음으로 신경 쓰는 게 전북이에요. 전북이 많이 어렵잖아요. 많은 의원들이 전북에 신경을 상당히 써요. 워낙 사회적 기반이 부족하다보니까 신경을 써도 효과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계속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줄 생각입니다. -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이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가 문젠데, 모든 도시들이 특화는 안하고 비슷한 산업을 하려고만 합니다. 정치에서는 이걸 조장하고요. 예를 들어 전북에서 탄소를 하니까 경북도도 하고, 왜 거기만 주냐 하니까 호남하나 영남하나 충청하나 수도권 하나 이런 식입니다. 국가예산은 한계가 있어서 특화 산업에 따라 예산도 몰아줘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마다 여건이 다른데도 균형발전이라해서 예산을 비슷하게 배분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바꿔야만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지켜야 되니까 어렵죠. 그래서 정치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김병관은 1973년 전북 정읍 출생. 벤처기업인 출신 정치인. 익산 이리고-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공인회계사를 목표로 경영학과에 진학했으나, 대학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진로를 변경했다. 졸업 후 벤처기업에 입사했다가 2000년, 27살에 벤처기업 솔루션홀딩스를 창업했다. 이후 매각합병 등의 과정을 거쳐 2012년 온라인 게임회사 웹젠 이사회 의장이 됐다. 2016년 1월,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인재 영입 케이스로 입당했으며, 그 해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험지로 꼽히는 경기 성남분당갑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중견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선거구가 생긴 이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첫 번째 사례다. 같은 해 8월엔 정치 입문 6개월여 만에 전당대회에서 과반수가 넘는 득표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등 정치 신인의 돌풍을 이어갔다. 지난해 실시된 21대 총선에서 49%가 넘는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아깝게 패했다. 그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도전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의 첫 직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벤처기업. 그는 졸업 후 그 누구도 모르는 회사로 가니까 다들 이상하다며 괴짜 취급을 했다고 소개했다. 정치 입문 후에도 마찬가지로, 비례대표 제의나 민주당 텃밭 출마 권유 등을 뿌리치고 험지 출마를 선택했다. 그는 그때 여러 가지 제안을 받았는데 안정적인 지역이었죠. 그런데 내 스스로 그 지역에서 잘 할 수 있겠나 고민을 했죠라며 IT기업인 출신인 만큼 내 정체성에 맞는 지역에서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에 비록 험지이지만 분당을 선택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북도 서울장학숙 출신으로, 장학숙 총동기회 명예회장을 맡아 매년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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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
  • 2021.06.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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