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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위드 코로나, 주변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위드(With) 코로나. 강력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과 돌파감염 등으로 코로나19 펜데믹이 장기화됨에 따라 대두되고 있는 개념이다. 이는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기대하는 것보다 그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치명률을 낮추는 등 새로운 방역체계를 도입해 코로나19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백신 접종을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이 되는 돌파감염 사례가 이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자는 위드 코로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교동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두었던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되짚어보고, 다시금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이어나가고자 <주변인의 얼굴>展을 기획하였다. 이번 기획초대전에서는 지역미술계 안에서 만의 담론을 뛰어 넘고자 충청북도 청주 지역작가들을 초대하여, 회화조각설치영상 등 현대미술의 장르를 망라하며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년 10월, 청주 쉐마미술관(관장 김재관)에서 진행되었던 청주-전주 현대미술 교류전에 이어, 올해는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청주의 예술가들과 쌍방향적인 교류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타자들과 함께 전시를 진행, 코로나19 펜데믹의 현실에서 차별이 아닌 차이를 관찰하고자 마련했다. 전시는 2021년 9월 14일(화)부터 9월 26일(일)까지 약 2주간 교동미술관 본관 12전시실에서 진행됐으며, 전주 지역작가 12인(강현덕, 국승선, 김두해, 김부견, 김완순, 송재명, 이광철, 이보영, 이일순, 이재윤, 이홍규, 조현동)과 청주 지역작가 12인(김로이, 김성미, 김영란, 김재관, 박진명, 심재분, 오승언, 이경화, 임은수, 장백순, 최민건, 최익규)이 참여하여 작품을 선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일상은 크게 바뀌었다.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일상에 익숙해져 갔고, 음식점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QR코드 체크 또는 명부를 작성 한다. 자연스럽게 체온을 재는 일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36.5˚. 항상 우리는 유지하고 있지만 열이 나거나 춥거나 해야 우리는 소중함을 인지한다. 온도, 관계 모두 그렇게 일정한 거리나 온도를 유지해야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했지만 실은 항상 온도나 인간의 관계 등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저온과 고온사이를 팽팽하게 유지해야만 이 세상을 더불어 순리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공간에 두 개 이상의 사물이 존재하는 것을 공존이라고 부른다. 이번 출품작 <공존>은 사람과 사람의 공존을 뜻 할 수도 있고, 사람과 자연의 공존을 뜻하기도 한다. 문득 나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조화를 이루고 서로 이해하며 공존하는 것이야 말로 나와는 다른 타자(他者)와의 성공적인 상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품을 통해 풀어내게 되었다. 요즘 소확행이란 용어가 대유행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가치를 찾고 또 스스로 자신을 대접하는 일에 좀 더 적극적이 된 것 같다. 과거에는 먼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나를 무한 단련시키는 것이 미덕이었다면, 요즘은 아픈 상처의 치료를 미루지 않고 수고와 노력에 작은 보상을 하며, 지나면 다시 올 수 없는 현재를 잘 살아내자는 것이 미덕이 되었다. 작품을 통해 매일 매일의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려 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좀 더 인간적인 좌절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힘에 겨운 삶의 존재와 경험을 통하여 비로소 신념과 회의와 겸허함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 속에 있는 허상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 내기도 하고 철학적 이치와 개념을 지닌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연으로의 회귀. 예술은 꼭 미학적, 조형적 원칙과 원리에 따라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생명의 무늬를 씨줄 날줄로 엮어서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 공간에 빛을 넣고 있다. 어쩌면 그날의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이 숨어있었는지 모른다. 하얀 달 아래 일렁이는 장면은 또 다른 기억과 이미지를 생산하고 피어나고 사라졌는지 모른다. 무심코 지나쳐서 스치듯 지나간 그 날의 기억과 이미지의 잔재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되고 나름의 새로운 기억으로 각인된다. 달이 떠 있는 어둠의 기억과 그 아래에서의 순간이 겹쳐지질 반복하여 재생되는 이미지는 고스란히 하나의 장면으로 화면에 스며든다. 잔잔히 부는 바람이 부는 그날 그달 아래에서 또 다른 잔상이 뇌리에 새겨진다. 바이러스 변이와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재해 소식에 불안하기만 하다. 과학자들은 이미 지구의 자정 활동이 시작되었고 미래도 또한 낙관적이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다. 변덕스러워진 날씨로 자주 일기예보를 주시한다. 보은, 원정리 들판에는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고목은 작년에 고사해 자리만 남아있었다. 긴 시간 생명을 이어온 나무도 기후변화를 견디지 못했나 보다. 그러나 들판은 마구 자란 풀들과 넝쿨들로 풍성하고, 논에는 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작물이든 이름 없는 풀이든 서로 엉키고 붙어 들판이 한껏 풍성해져 다행이다. 혼란스런 환경에서도 식물 씨앗이나 곡물을 수확해 야무지게 씹어 먹으며 변화에 적응하고 상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논길을 걸어 고목이 있던 곳에서 멈추어 섰다. 천을 풀어 바람을 감지하고는 씨앗을 뿌리며 이 땅에 생명이 지속되길 기원했다. 김완순 교동미술관 관장은 이번 기획전시에 대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로 비대면 환경이 활성화 되며 가상세계를 현실의 일부분처럼 받아들이는 메타버스(Metaverse)의 세계로 도래하고 있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어떤 존재들이 있는지 소중함을 돌아보고자 <주변인의 얼굴>展을 기획하였다. 가상세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세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가장 좋은 관람은 현실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에서 오는 감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시를 통해 주변의 소중한 누군가가 떠오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김효원 교동미술관 학예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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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9 16:48

[참여&소통 2021 시민기자가 뛴다] 청소년지도자의 삶

저는 청소년지도자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면 10명 6~7명은 청소년지도자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한다. 청소년지도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낯설음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이다. 청소년지도자라는 명칭은 청소년의 수련활동, 상담, 복지, 보호 등 청소년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모든 종사자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도내 청소년지도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아보고 그들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 자리와 그들의 목소리까지 들어보고자 한다. 청소년 현장에서는 청소년 참여와 권리, 청소년 활동, 청소년 자립 및 보호지원 등 청소년의 삶 전반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청소년 관련 기관 및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특히 전라북도에는 청소년활동을 지원하는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1곳과 청소년수련시설 54곳, 청소년 상담과 복지지원을 위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 15곳, 청소년 보호를 위한 청소년 쉼터 5곳, 청소년성문화센터 4곳 등이 있으며 그 외 청소년 단체와 관련 기관에서도 청소년의 삶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위와 같은 기관 안에는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등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청소년지도자가 종사하고 있는데, 청소년의 가까이에서 일하는 실무자부터 조직 관리를 위한 중간 관리자, 대외 협력 및 정책 개선을 위한 관리자 등이 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위탁법인 전라북도청소년단체협의회)에서는 이러한 청소년 현장 지도자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하여 정책 포럼 등을 진행하였으며, 매년 하반기 모범청소년지도자 시상식을 통해 현장에서 수고하고 있는 청소년지도자들을 격려하고 청소년지도자대회를 운영하여 청소년 관련 기관 및 청소년지도자들이 교류하며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2019년까지 청소년수련시설 종사자에 한해 진행했던 모범청소년지도자 시상식은 지난해부터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청소년 쉼터, 청소년성문화센터, 청소년 단체 등 그 분야를 확대하였다. 또한 현 시국을 고려하여 모든 프로그램이 비대면(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수상인원 등 최소한의 인원만 현장 참여하여 진행될 예정이다. 김의숙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장은 전라북도청소년지도자대회를 통해 팬데믹으로 힘들었던 지난 한해 청소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도내 청소년지도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비록 온라인이지만 소통과 교류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였다. 모범청소년지도자 시상식은 9월 29일 오후 2시 30분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진행되며 9개 상훈에 총 20여명의 청소년지도자에 대한 시상을 진행할 예정이며 시상식은 10월 13일 오후 2시 온라인 전라북도청소년지도자대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지도자대회는 10월 13일 오후 2시 전라북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한다. 본 행사는 퀴즈이벤트, 응원릴레이 영상, 청소년과 지도자 강연, 사연 소개, 사례 공유회, 경품 추첨 이벤트 등 지도자 간 교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라북도 청소년 지도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난 2년은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 청소년지도자는 기존의 대면 중심 활동이 제한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과 수칙 속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며 적응해왔다. 비대면 사업 개발, 온라인 매체 기술 습득, 비대면 환경에서의 의사소통 방법 등 요구되는 역량을 향상하며 청소년을 지원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과 청소년문화에 적응하며 청소년 눈높이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지도자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청소년지도자는 봉사활동가나 자원활동가가 아니다. 청소년지도자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청소년지도자에 대한 인식개선과 처우개선이 시급하다. 도내 청소년지도자들 중에도 지자체에 따라 기관에 따라 처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청소년지도자들이 좀 더 안정적이고 좋은 여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도내 곳곳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힘쓰고 있는 청소년지도자 여러분! 여러분의 땀과 노력이 우리 청소년들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언젠가는 열매로 맺을 것입니다. 청소년지도자 여러분의 삶을 응원합니다. 손승진 전북청소년단체협의회 팀원 /손승진 전북청소년단체협의회 팀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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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7 16:37

[뉴스와 인물] 남천현 우석대 총장 ‘냉철한 두뇌 뜨거운 가슴’

냉철한 두뇌 뜨거운 가슴 남천현 우석대학교 총장이 우석인들에게 바라는 마음이다. 소멸과 위기에 놓인 지역대학, 그 여파는 고스란히 전북에 전가된다. 지역 대학의 몰락은 곧 지역경제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어려운 시국에 우석대는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호남지역 최상위권 성적으로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돼 전북의 체면을 세웠다. 최고의 지성인이 모이는 상아탑, 전북 경쟁력의 한 축인 우석대는 이번 일반재정지원대학 선정을 계기로 향후 100년 대학 도약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호남권 최상위권 성적을 낸 우석대 남천현 총장으로부터 일반재정지원대학 선정과 의미, 그리고 그간의 준비과정을 들어봤다.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지역발전의 근본적인 초석이기 때문에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뜻 이다. 교육(敎育)의 한자적 의미는 세상과 마주치는 제자에게 스승이 회초리로 깨우침을 주는 스승과 제자사이의 베품과 본받음이 동시에 각인돼 있다. 백년지대계라고 하듯 끝없이 발전과 연구를 계속해 나가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교육부로부터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교육부의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되면서 앞으로 3년간 해마다 50억 원의 재정지원이 뒤따를 것입니다. 3년을 합하면 총 150억 원에 달합니다. 정부의 재정지원은 10여 년 가깝게 이어지는 등록금 동결의 엄중한 상황에서 단비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서 우석대학교의 대외적인 평가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우석대학교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사기도 크게 높여줄 것입니다. 우리 구성원들은 그동안 기본적으로 높은 역량과 자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을 계기로 우석대학교의 비전과 구성원들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부의 일반재정지원대학 선정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앞세워 우석대학교는 100년 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찬 청사진을 그릴 것입니다. -일반재정지원대학에 선정되기까지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위한 준비는 지난 2020년 3월 총장에 취임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총장 취임 직후만 해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없지 않았습니다만, 코로나19의 학내 차단에 고심하면서도 평가대책의 윤곽에 대한 구상을 이어갔습니다. 이제는 후일담이 됐습니다만 평가에 실패하면 총장직을 내려놓겠다는 배수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각오로 대학기본역량진단을 대비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을 계기로 우석대학교의 내재가치와 비전을 대내외에 보여줘야겠다는 출사표였습니다. 무엇보다 우석대는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호남제주권역 대학들 가운데 최상위권의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석대학교는 특히 정성평가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평균점수를 크게 웃돌았다고 합니다. 0.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우석대학교가 건네받은 최고수준의 성적표는 우석대학교의 탁월한 역량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우석대가 새롭게 그릴 발전청사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령인구 감소는 계속될 것이고, 수도권 집중화도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럴수록 지방의 사립대학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입니다. 결국 다른 대학과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얼마나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석대학교는 실용교육으로 실질적 성과를 낸다는 실용주의 대학의 기치를 앞세울 것입니다. 우석대학교의 사범대학 임용고사 합격자 수는 해마다 100명을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군사계열 장교 합격자수도 전국 최다를 자랑합니다. 또한 소방과 경찰계열 학과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만큼 이른바 제복 공무원들을 다수 배출하는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입니다. 다른 대학보다 한발 앞선 차별화전략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우석대학교 구성원들은 철저하고 치밀한 밀착교육을 통해 우리 학생들의 목표가 달성될 수 있도록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우석대 교직원들의 당면과제는 경쟁력 있는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입니다. 우석대는 우리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또한 졸업생들에게는 또 다른 고향이기도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소중하게 가꾸고 영원히 존재하는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취임 일성인 기본열정같이신명의 유전자가 우석대에 어느 정도 정착됐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이번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본열정같이신명의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에 참여한 구성원들 모두가 기본에 충실했고, 열정적이고 신명나게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취임 1년6개월이 지나는 동안 이러한 유전자가 착근될 수 있도록 대학 행정을 원칙대로 공정하게 처리했고, 이를 기반으로 신뢰가 쌓였다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인사나 업적평가에 있어 어떠한 불공정이나 특혜는 없다는 구성원들의 인식이 모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계속 불편부당의 행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지역발전과 어떻게 연계해 나가실지 계획이 있으신지요. 지역과의 협업은 대학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우석대학교는 혁신과 열정을 앞세워 대학 발전은 물론 지역발전의 밀알이 될 것입니다. 우석대는 지역과 지역사회를 위한 싱크탱크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과 대학이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협업규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지역민들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적극 기대합니다. 우리 함께 갑시다. 일에 앞서 마음부터 챙기는 총장 교수출신 1호 총장의 책임감 막중 2020년 3월 취임한 남천현 총장은 일에 앞서 구성원들의 마음부터 챙기는 총장으로 불린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대학 위기라는 풍전등화 위기에서도 우석대학교가 초심을 잃지 않고 100년 도약을 다짐하는 배경에는 남천현 총장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자리잡고 있다. 남천현 총장은 우석대학교의 교수출신 1호 총장이기도 하다. 교수는 연구실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신념을 앞세워 줄곧 연구역량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왔다. 남천현 총장은 서울대 경영학 석사와 박사를 거쳐 1984년부터 2005년까지 우석대 회계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수원대에서도 회계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전산회계학회 회장, 한국경영학과 부회장, 한국증권금융 경영자문위원 등을 거쳤으며, 전사적자원관리(ERP)의 최고 전문가이기도 하다.

  • 기획
  • 이강모
  • 2021.09.26 16:53

[전북 명산, 회문산의 속살] ⑦회문산에 얽힌 설화와 전설

조선 500년 역사에서 회문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때는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회문산을 검색해보면 선조 때 토적들이 험지를 점거하고 도발하여 적의 소굴이 됐다는 기록 정도가 나온다. 험준한 산이어서 민중들의 삶과도 괴리가 있었다. 그래서 회문산은 이 일대 민초들에겐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민중들이 오랫동안 영산으로 여겨온 까닭에 신비스러운 여러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회문산은 오늘날 순창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고추장에 얽힌 설화부터 명당과 종교 관련 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회문산(回文山)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부터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문산자연휴양림 역사관에는 홍성문설과 조평설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인물과 관련된 지명 이름이다. 홍성문설은 조선 중기 때 전설적 풍수가인 홍성문 대사가 지은 <회문산가(回文山歌)>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보는 것이다. 조평(1569~1647)설은 고향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에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지원하고 많은 덕을 베풀었던 조선 중기 문신인 조평이 살았던 마을 이름을 따서 회문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설이다. <회문산가>를 지었다고 전해지는 홍성문과 관련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의 생몰연대에 대해 조선 중종 때인 혹은 영조 때 인물로 전해진다. 임실군 운암면 금기리 텃골에서 홍진사와 마을 주막집 주모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난 그는 홍진사가 죽은 후 어린 나이에 회문산 만일사로 들어갔다. 회문산 자락 사자암 등에서 27년 도를 닦아 풍수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는 팔도를 답산한 후 회문산에 많은 명당이 있음을 알고 세상에 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명당에 욕심만 있지 그것을 감당할 덕을 갖춘 사람이 없음을 개탄했다. 그는 양반들의 횡포에 분노하여 명당 장사로 양반을 희롱했다고도 한다. <회문산가>를 통해 회문산에 오선위기혈의 큰 명당이 있다고 해 지금도 많은 풍수가들이 이를 좇고 있다. 회문산 이름과 관련해 또 다른 해석도 있다. 回文이란 앞으로, 뒤로, 이리저리 돌려 읽어도 동일한 내용의 문장을 뜻하는데, 회문산은 투구봉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바라보아도 서로 같은 모습의 형태적 측면에서 이름 붙였을 것으로 추정했다.(김성암 도선-풍수비기 연구원)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회문산 주변을 물이 감아서 흐르기 때문에 回를 붙였고, 삼각형 모양의 투구봉은 문필봉과 같이 쓰일 수 있어 투구봉을 문필봉으로 보면 회문산이라는 이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회문산 고찰인 만일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고추장에 얽힌 설화가 담긴 절로 유명하다. 백제시대 건립된 천년고찰의 이 절은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왕위등극을 위해 절을 중건하고 만일동안 기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27년이나 되는 1만일을 기도했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것만큼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용헌 교수는 추정했다. 조 교수는 전북에서 이성계와 관련된 기도처로 만일사 외에 임실 성수산 상이암과 진안 마이산 은수사 등 3곳이나 사찰이 있는데, 이성계의 남원 왜구토벌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성계는 왜구토벌의 와중에서 전북의 지세를 자세히 파악했을 것이고, 어느 사찰이 영험한가도 알았을 것이란다. 만일사 존재를 이성계가 이때 파악한 것 같고, 무학대사가 만일사에서 기도를 하게 된 배경으로 해석했다. 전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만일사비가 그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3조각으로 부서진 것을 1978년 복원해서 건립한 비는 마멸이 심해 비문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기 어렵다. 다만 2003년 예원대 전북역사문화연구소가 실시한 탁본 및 연구조사에 의하면 정유재란때 소실됐던 만일사를 지홍대사와 원측대사가 1658년에 중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한국전쟁 때 빨치산 소탕에 나섰던 국군에 의해 소실된 후 1954년 재건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화와 상관없이 만일사는 곧 회문산의 증언자인 셈이다.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인 만일사 경내는 현재 대웅전, 삼성각, 무설당, 일주문, 비각, 종각, 요사채, 순창고추장 시원지 전시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순창 고추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로 이성계와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이성계가 만일사에서 기도중인 스승 무학대사를 찾아 회문산으로 가던 중 점심때가 돼 어느 농가에 들러 고추장과 함께 차려진 점심 먹게 됐다. 그 고추장 맛에 반했던 이성계는 왕으로 등극한 후 그 맛을 잊지 못해 순창현감에게 고추장을 진상토록 하면서 순창 고추장이 유명해졌다는 설화다. 그러나 조선조 이전 간장과 된장 관련 기록은 있지만(<삼국사기>) 고추장에 대한 기록이 없어 일각에서 설화의 진정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고추장 관련 문헌 기록은 이수광이 1614년에 편찬한 <지봉유설>에고추에는 독이 있다. 일본에서 비로소 건너온 것이기에 왜겨자라 한다는 내용으로 처음 등장한다.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과 일본 양쪽에서 전래됐을 가능성이 높다. 고추 대신 당초라는 이름의 문헌(1766년 <증보산림경제>)이 있어 임진왜란때 구원군으로 들어온 명군에 의해 동시에 들어왔을 가능성도 학계에서 거론된다. 설화는 설화다. 설화를 사실적으로 규명하거나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순창고추장이 유명하기 때문에 설화가 생겼을 게다. 실제 조선시대 순창고추장 명성이 자자했던 사실은 문헌으로 나타나 있다. 1800년대 초 생활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에 순창과 천안, 함양 고추장을 팔도 명물로 소개했으며, 그 중 순창 고추장을 최고로 쳤다. 오늘날 순창은 고추장으로 특화됐다. 고추장 설화를 상기시키는 고추장 익는 마을이 회문산 아래 위치해 있고, 고추장민속마을은 순창의 대표적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고추장이 순창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고 할 정도다. 고추장 익는 마을은 각종 항아리들이 해학적으로 쌓여 있다. 숙박시설과 식당, 강당, 세미나실, 캠프파이어 등 여가시설도 갖추고 있으며, 농사체험을 할 수 있다. 20여년 전 순창읍 백산리 일대 조성된 고추장민속마을은 장류연구소장류박물관장류체험관옹기체험관발효미생물진흥원전통발효식품(장류)전용공장전통절임류세계화지원센터 등의 지원시설을 갖췄다. 매년 장류축제를 통해 순창고추장을 전국에 알리고, 순창세계발효소스 박람회를 통해 순창 장류의 세계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전통발효문화산업 투자선도지구도 새로 조성했다. 이곳에 참살이발효마을(발효테라피센터, 누룩체험관, 고추다년생식물원, 세계발효마을농장, 추억의 식품거리), 월드푸드사이언스관, 발효미생물전시관, 어린이실내놀이터, 고추장상설문화마당이 들어서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렇게 지역의 허브산업이 된 데는 순창 고추장만의 독특한 맛과 풍미가 있기 때문이다.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그 비결이 발효식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물과 기후 등에서 찾는다. 똑같은 재료를 같은 방법으로 고추장을 담가 다른 지역에서 숙성 시키더라도 순창고추장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건 기후 때문으로 분석한다. 은은하고 감미로우며 검붉은 순창만의 독특한 고추장 만드는데 순창지역 기후 영향이 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 설화에서부터 순창고추장의 유명세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 기획
  • 김원용
  • 2021.09.23 17:42

[문화&공감 2021 시민기자가 뛴다] 무형문화재 2·3세대를 주목

독립영화 [울림의 탄생](2020)은 60년 인생을 걸어 북을 만드는 악기장 임성빈 보유자가 그의 아들이자 전승교육사 이동국과 함께 대북을 제작하는 영화이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고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북을 만나 평생을 바쳐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악기장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귀에 이상이 있음을 감지한 보유자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위로하는 마지막 울림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주목해야할 것은 두 가지이다.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는 임성빈 보유자, 그리고 그 곁을 지키고 힘을 더하는 아들 이동국이다. 문화유산은 윗세대에서 아랫세대까지 유산처럼 전해지는 문화를 뜻한다. 건강한 문화유산을 만들려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전하는 윗세대도 중요하지만, 본질을 바르게 익히고 시대의 흐름과 자신의 개성에 따라 변화를 만드는 아랫세대도 중요하다. 이번 이야기는 가족이 함께하는 명절, 추석을 맞아 문화유산을 잇는 23세대들의 이야기를 담아 전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심청가) 최잔디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심청가) 이수자 최잔디는 2018년 전주대사습놀이 젊은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 판소리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최잔디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노래 잘하는 아이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설장구 최막동 명인이고, 고모는 성찬순 선생님의 제자였을 정도였다. 6살 때 이모와 함께 길을 걷다 우연히 소리를 듣고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이모랑 지나가다가 국악 소리에 꽂혔어요. 2층 국악학원에서 나던 소리였죠. 고집 부려서 학원에 올라갔던 기억이 나요.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실력과 응원이 더해지니 승승장구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다녔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입학했다. 그러나 스무 살을 전후로 삶이 크게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한예종 입학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가구는 물론 평생을 간직하고 싶었던 피아노까지 팔았다. 공연하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학교도 나가지 않게 되고 시험을 치지도 못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하고 보컬트레이너로 일을 하였다. 그렇게 20대의 8년이 사라졌다. 어느 날, 큰 수술을 하게 되었고 회복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병원 안을 걸어가던 중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다. 마침 [국악 한마당]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남도민요를 부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소리를 너무 하고 싶다. 안 하면 안 될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안되겠다. 다시 시작해보자하고 퇴원하자마자 학교에 재입학 서류를 제출했어요. 지금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과거 탄탄히 다진 실력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그만둘 생각을 한 그의 이야기는 참 파란만장했다. 그는 국악인의 길을 응원해준 가족과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최잔디는 어릴 적 광주에서 김향순 보유자와 이순자 보유자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강정숙 보유자에게 가야금 병창 미 산조를 사사하였다. 그녀의 20대를 품어준 고 성창순 보유자와 30대를 함께하고 있는 김수연 보유자까지. 이렇듯 최잔디의 판소리와 가야금, 철현금에는 모든 인연과 사건이 담겨있다. 올곧이 전통을 이어가고 싶어요. 예술가라면 일단 자신의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정체성은 전통이고 명맥을 잇는 거죠. 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이선주 이수자 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이수자 이선주는 작품 활동, 문화재 보존처리, 대학교 출강 등 활발히 옻칠 활동을 하고 있다. 부친 이의식은 전북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장 보유자이다. 어릴 적부터 놀이터는 아버지의 공방이었다. 한창 때에는 4~5명 정도 삼촌들이 계셨고, 늘 작업하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옻칠 일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 마감이 바빴던 아버지의 일손을 돕기 시작하면서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전공은 이과였다. 대학도 자연계열로 진학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일손을 도울 때가 훨씬 재밌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 일을 이어받아 공부해보자고 다짐하였다. 적성에도 맞다 싶어서 옻칠을 평생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게 쭉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교 유학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계속 더 공부할 수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거든요. 어느 날은 교토 시내를 지나다 우연히 지도교수님을 뵈었다. 골동품을 보러 간다는 교수님 말을 듣고 따라갔다. 쉽게 보기 어려운 옛 물건들이 골동품상에 많았다. 이전부터도 보존처리를 하고 있었으나, 이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보존처리일도 시작하였다. 전통을 크게 보존과 활용으로 구분한다면 이선주 자신의 성향은 보존이 더 맞는다고 한다. 그러나 출강을 나가는 지금. 전통의 내일을 그리는 것도 후학을 위한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깊은 탄탄함 위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맛이 전통이라 설명하였다. 이선주는 옻칠과 더불어 다양한 것을 배웠고, 그것이 모두 옻칠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전통과 새로운 사이의 적당한 지점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전통은 전통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벽화를 그려봤어요. 이런 저를 보고 한편에서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왜 벽화를 그리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저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절충점을 잘 찾아나가야겠지요. 설지희 썰지연구소 소장 /썰지연구소 소장 설지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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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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