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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코로나19 이후의 버스 교통체계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위생적인 거리 문화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사회 현상은 사람들의 이동 패턴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며 소통하고 경제적인 활동 등을 하는 이동이라는 일상적인 생활 속 문화는 이제 비대면을 통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소통과 활동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 △코로나 19에 따른 버스교통 수요 변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사람들의 이동문화 의식 변화에 따라 사회의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의 장소와 장소를 이동하는 이동권을 보장하는 교통 분야가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1월과 본격적으로 확산된 3월을 기준으로 달라진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대중교통 이용자는 25.6%, 뉴욕 33.9%, 독일 베를린 39.8%, 프랑스 파리 55.4%, 이탈리아 로마 83.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국가들도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전과 후 노선버스 수송인원은 34.3%, 시외버스 55.3%, 고속버스 52.2%, 시내농어촌버스 33.5%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버스교통 수요와 운영에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다. 전북의 경우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요가 감소하며 대중교통 중요 수단인 버스교통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의 버스 이용을 나타내는 수요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3월과 비교해 보면 올해 같은 기간 전북 시외버스 이용객은 76만8228명(45%) 감소했고, 시내버스는 333만7047명(2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버스 이용자 감소에 따라 자연히 버스노선도 감축이 됐는데, 시외버스는 도내 전체 시외버스 435대 중 31.7%에 해당하는 138대의 노선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내버스도 전주, 익산, 군산에서 각각 10대, 9대, 12대 감차 운행하고 있고 추가 감차도 우려되는 상태다. 여기에 버스운송 수입도 감소해 운영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실정이다. 그동안 사람들의 이동에 대한 교통생태계는 육상, 해상, 항공 등으로 이뤄졌다. 이 중 육상교통은 철도와 도로 중심으로 나뉘고 도로 중심에는 버스가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도로를 이용한 교통생태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사람들의 비대면 활동 증가로 인한 이동수요 감소, 사람들의 대중교통 이동 중심에서 개인 교통중심으로의 전환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 질 것으로 예상된다. 감소하는 교통 수요에 대비한 효율적인 대중교통 운영은 시민의 발이라 할 수 있는 버스교통에 대응해 시민들의 이동에 대한 생태계가 조성되고 시민 삶의 질이 향상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 19에 따른 버스교통 수요 변화에 대한 대응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중교통에 대한 수요 변화가 가속화되고 특히 개인교통수단 선호가 증가함에 따라 버스 이용자가 감소하는 상황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시민들의 이동권에 대한 서비스 제공과 증진을 위해 몇 가지 대책을 조명한다. 첫째로 버스 이용자 감소로 인해 운수업체들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어 시민들의 이동권에 대한 서비스 지원 생태계가 붕괴될 우려가 있음으로 이에 대한 기반을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버스업계 기본 운영 등을 위한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통행료 한시적 면제나 버스재정지원금 등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대응책도 고려를 해야 한다. 둘째, 시민들이 대중교통에 대한 위험성 요인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교통수단으로 방역 등 안전성 문제에 대한 기피 현상이 있음으로 버스 내 항바이러스 코팅, 공조시스템 개선 등 전파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방역물 구매와 방역의 자동화 등 위생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셋째, 탄력적 노선 운영으로 운영 효율화와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시민들의 출퇴근 맞춤형 버스와 같이 수용 대응형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감염병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법안과 매뉴얼이 필요하다. 미래에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에 버스운행, 인력, 종사원 등이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있는 행동 지침과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대중교통 운영 방식과 조정에 대한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버스노선과 운영시스템 조정, 정규 노선을 넘어 시민의 수요에 부응하는 수요응답형 버스 도입, 시외버스 수익형 모형(광역버스) 같은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혁신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 여섯째, 산업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시민(승객) 요구에 부응하는 버스교통 고급화가 필요하다. 버스 내부 개인 공간 확보를 위한 대용량 고급 전기 버스 도입이나 블루투스, NFC 등 교통카드 태그 없이 비접촉 결제방식 도입도 고려해 봐야 한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개인 교통수단 선호에 따라 급격히 이용자가 늘어나는 개인교통수단(Personal Mobility)을 버스교통과 연계하는 제도와 시스템 구축 등도 고려해야 한다. 개인교통수단은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1인용 이동수단인 전동 휠, 전동 킥보드, 전기 자전거, 초소형 전기차 등이 포함되는데 퍼스널모빌리티 이용은 20여만 대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버스교통이 퍼스널모빌리티 같은 새로운 개인교통수단과 연계해 개인교통수단과 대중교통과의 상생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람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교통수단 생태계가 코로나19 이후에도 안정감 있게 운영돼 전북이 시민 삶의 질과 행복을 추구하는 지역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남궁문 원광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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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8 16:30

[뚜벅뚜벅 전북여행] 국립공원 변산반도의 숨겨진 명소 '쇠뿔바위'

"산과 바다가 있는 변산반도국립공원"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전라북도 부안군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일찍이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 왔을 정도로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1988년 6월 제19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과 바다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 바로 이곳 변산반도 국립공원입니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누는데 산이 많은 내변산에는 천년고찰 내소사, 직소폭포, 월명암 개암사 등 수려한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자연경관과 문화자원이 매우 많은데요. 바다가 있는 해안 쪽 외변산은 채석강, 적벽강, 변산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해식애와 해수욕장이 어우러진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서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어느 곳 하나 놓칠 수 없는 수려한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립공원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변산반도 국립공원이지만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변산에 숨겨진 멋진 산행코스와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쇠뿔바위 비경을 공개하려고 합니다. 내변산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쇠뿔바위 산행코스는 유동마을 어수대- 비룡상천봉-쇠뿔바위-청림마을 코스와 반대 방향 코스가 있습니다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유동마을 코스로 유동마을 주차장 뒤로 보이는 병풍처럼 둘러싸인 암릉 위를 오른 후 쇠뿔바위와 지장봉 투구바위들의 암릉으로 이어진 탐방로를 걸으며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숨겨진 비경을 즐길 수 있는 약 5.5km 3시간 전후 걸리는 코스입니다 (유동마을과 청림마을 약 4km는 도보로 이동 또는 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유동마을 주차장에서 이정표를 따라 어수대 방향으로 500m 걸어가면 어수대가 나오는데 어수대는 부안군과 고창군 상수원 부안댐 물이 시작되는 곳으로 석비에는 부안 여류 시인 이매창의 어수대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어수대 우측 이정표와 함께 오르막 탐방로를 20분 ~ 30분 정도 올라가면 흘린 땀을 씻어 낼 수 있는 바위 산 너머로 계화도 방향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과 암릉 사이에 숨겨진 집 한 체를 볼 수 있는 첫 번째 뷰 포인트가 나옵니다 첫 번째 조망 포인트에서 쇠뿔바위까지는 초록빛 숲 속 능선을 걸으며 중간중간 열리는 뷰 포인트 펼쳐집니다. 동쪽 개암사 방향과 우금암 풍경까지 드넓게 펼쳐진 풍경을 보면 탐방하기에 별로 어렵지 않은 코스라고 여겨지실 겁니다. 첫 번째 뷰 포인트에서 능선 탐방로를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동쇠뿔바위가 얼굴을 내밀면서 암릉 구간이 나오는데 이곳부터 쇠뿔바위의 숨겨진 비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암릉 구간 바로 앞에 쇠뿔바위가 보이고 청림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와 삼거리 바로 위로 강아지처럼 보이는 바위와 쇠뿔바위 전망대가 나옵니다. 쇠뿔바위 전망대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내변산 숨겨진 비경이 펼쳐집니다. 전망대에서 우측은 군 기지가 있어 출입은 통제돼있지만 국립공원 변산반도 최고봉인 의상봉(509m)이 있고 의상봉 좌측으로 부안댐이 보입니다. 좌측으로는 고래등 바위, 동쇠뿔바위와 멀리 우금암까지 시원하고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변산반도 쇠뿔바위 전망대에서 풍경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정신을 차리고 청림마을로 급경사 계단으로 10여 분 정도 조심조심 내려가면 어려운 구간이 끝납니다. 20여 분 정도 더 내려가면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암릉이 있는데요. 조금씩 올라가 봅니다. 쇠뿔바위 탐방로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숨겨진 비경이 열립니다. 거대한 공룡 몸통처럼 느껴지는 암릉에서 좌측으로는 투구봉, 가운데는 지장봉, 측으로는 쇠뿔바위가 신비한 풍경화를 그려내는데 역시 사진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천천히 10여 분 더 내려가면 중계교와 청림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다시 10여 분 내려가면 청림마을이 나오면서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변산에 숨겨진 비경을 볼 수 있는 쇠뿔바위 탐방코스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청림마을에서 보는 쇠뿔바위는 진안 마이산 축소판을 보는듯하고 그 속에 숨겨진 비경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제1 비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여행지가 인기 있는 요즘, 변산반도 국립공원 쇠뿔바위 비경을 찾아 올여름 여행 오시는 것 어떠신지요. 등산을 좋아한다면 유동마을에서 어수대-쇠뿔바위-청림마을- 유동마을 코스를 추천하고 쇠뿔바위 비경만 보고 싶다면 청림마을에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글사진 = 신총용(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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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7 17:54

송지용 제11대 후반기 전북도의장 "집행부 감시·견제 역할 충실, 생산적 협력관계 실현"

제11대 후반기 전북도의회가 사랑받는 의회, 번영하는 전북을 슬로건으로 본격 출범했다. 코로나19로 국내외 정세가 어렵고 경제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후반기 도의회 새 수장으로 선출된 송지용(완주1) 의장의 어깨도 무겁다. 송 의장은 대내외적으로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덕장으로 정평이 높지만 후반기 전북도의회가 풀어야 할 현안은 산더미다. 코로나19 극복에서 부터 공공의대 및 탄소산업 등의 기반마련, 여기에 속도감 있는 새만금 개발, 중앙 정치권과의 소통을 통한 전북 자존감 높이기, KTX호남전라선 고속화 등이다. 아직 매듭을 풀지 못한 과제들도 많다. 군산조선소, 군산 전기차클러스터, 전북 하늘길 열기 등이 꼽힌다. 새롭게 출범한 후반기 도의회가 어려운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지 송지용 의장을 만나 들어봤다. -어려운 상황에서 후반기 도의회를 이끌게 됐습니다. 각오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코로나19로 인해 엄중한 시기인 만큼 그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에 빠진 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 도정발전을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사랑받는 의회, 번영하는 전북을 견인하는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충실히 일하겠습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해 청렴성을 높여 신뢰받고, 집행부 견제와 감시 등 충실한 의정활동으로 사랑받는 의회, 주요 현안 사업 선제대응 및 대안 제시로 번영하는 전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후반기 의회 의정 운영 방향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입법 활동은 물론 지역 현안 문제에 선제대응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습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1,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직접 지원과 간접 지원에 따른 효과를 분석하고 서둘러 3차 추경을 편성해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문화예술 및 관광 분야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지원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북형 뉴딜사업, 제3금융도시 지정, 국립 공공의대 설립, 국립감염병연구센터 유치, 한국탄소산업진흥원 지정, 혁신도시 시즌2에 따른 공공기관 유치, 새만금 공항 건설, 국가철도망구축사업 등 전북발전을 견인할 주요 현안 추진 및 법률제정도 시급합니다. 집행부는 물론 국회 등 정치권과 공조체제를 강화해 전북 현안 사업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반기 의회가 전북경제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반환점을 맞은 민선 7기 도정 주요 공약과 현안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주요 의제가 발생할 때마다 의장단과 상임위원장단은 물론 전체 의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전북의 경제, 도민들의 삶이 개선되고 발전되도록 해법을 모색하겠습니다. 지방자치의 첫 걸음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입니다. 지방의회 인사권독립 등 의정활동 지원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를 위해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방자치가 발전해야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지방자치법은 1988년 민선제 시행을 위해 전면 개정한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32년 지난 낡은 법으로 어린이 옷을 성인이 입은 꼴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해는 관련 법안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17개 시도의회와 연대해 대응하겠습니다. -후반기 의회에 조직개편 등 변화를 생각하고 계신게 있다면. 조직개편이 아닌 조직 진단을 하고자 합니다. 1991년 지방의회 부활 이후 30년간 의회조직과 인원은 늘었지만 조직 진단은 없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원 변동 없이 직제와 명칭, 인원 재배치로 효율적인 의정활동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또 입법정책관실 신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17개 시도의회 중 전북도의회만 입법 지원 기능이 없습니다. 집행부에서 제출하는 조례가 타당한지, 예산은 얼마나 소요되는지 등을 분석하며 창의적인 입법 지원 기능을 맡게 될 것입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기능을 강화해 예산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산적한 현안과 관련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실질적인 의정활동 지원을 통한 일하는 의회상을 구현해 나가겠습니다. -의회와 집행부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 나가실 계획이신지요. 집행부와 협력도 중요하지만, 감시와 견제의 역할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수레바퀴의 크기는 양쪽이 같아야 합니다. 양 기관을 동반자적 관계로 만들어 진정한 공생관계를 실현하겠습니다. 하지만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집행부의 잘못된 관행 즉, 행정을 감시견제하는 권한도 냉철하게 행사하겠습니다. 협력이 중요하지만 도민의 입장에서 집행부에 대한 건전한 견제기능과 생산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전북 몫을 지키거나 찾는 일이라면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의회가 일당독식 체제로 그들만의 리그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도의원 39명 중 36명이 민주당 소속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소수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속 정당이 다르거나 소수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도민의 행복과 전북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동료 의원으로서 존중하고 대화로 풀어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집행부와의 관계도 잘못된 부분은 과감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생산적인 의정활동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도민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도민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습니다.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 일용직 등은 그야말로 아우성입니다. 사회 모든 분야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확대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도민은 물론 전북도, 교육청 모두 방역의 최전선에서 선제대응에 나서야 합니다. 의회는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하면서 전북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가장 먼저 앞장서서 집행부와 협력하고 지원하는 상생하는 의회를 실현하겠습니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도민과의 신뢰로, 엄중한 시기에 시대변화를 빠르게 읽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겠습니다. △송지용 도의장은 제11대 후반기 전북도의회 새 수장으로 취임한 송지용 의장은 원광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한 뒤 지난 2006년 제5대 완주군의회에 입성해 운영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산업건설위원장을 역임했다. 재선에 성공해 제6대 완주군의회 전반기 산업건설위원장을 다시 맡았다. 2014년 도의원으로 당선된 뒤 제1011대 전라북도의회에서 운영위원장과 부의장을 거쳤다. 2016년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장협의회 감사에 이어 2017~2018년 부회장을 맡았다. 송 의장에 대한 대내외적 평가는 강직함과 우직함이다. 평소 소통의 철학을 중시해 온 송 의장은 도정과 원만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비판과 견제 측면 역시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 의원 생활로 다져진 지역민들과의 밀착을 한 단계 더 넓혀 광역 의회인 전북도의회에서 수장으로 확대시켜나갈 지 주목된다. 그간 전북이 호남이란 굴레안에 같이 묶여 상대적으로 타 시도보다 정책적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해 전북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송 의장은 전북만의 자존감을 높이 세워 과거 찬란했던 전북의 명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 의장은 엄중한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지만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내라는 도민들의 엄중한 명령으로 받아들인다며 시대변화를 빠르게 읽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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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모
  • 2020.07.26 16:18

[뚜벅뚜벅 전북여행] 임실의 사람과 동물의 애틋한 이야기가 남겨져 있는 김개인 생가

최자(崔滋)는 고려 중기의 대학자로 `해동공자(海東孔子)`로까지 불린 문헌공(文憲公) 최충(崔沖)의 6대손입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가집(家集) 10권, 속파한집(續破閑集) 3권, 최문충공가집, 삼도부 등이 남아 있는데요. 특히 그는 보한집을 통해서 문학의 본질이 무엇이고, 문인들의 자질이 얼마나 중요하며, 창조의 과정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합리적으로 설명, 분석해 놓아 현재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많은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새로운 나라들이 세워지고 나서 한반도가 침략을 당한 것은 크게 원나라와 청나라 때였지요. 당시 주화론자와 척화론자들이 대척한 것은 같은데 청나라 때 남한산성에서 주화를 주장한 것은 최명길이었고 원나라 때 강화도에서 강화가 이루어지도록 주장한 사람이 최자입니다. 그가 쓴 보한집에서는 이야기가 하나 등장합니다. 고려시대 거령현(오늘날의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살았던 김개인과 그의 개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동네잔치를 다녀오던 김개인이 술에 취해 오늘날 상리(上里) 부근의 풀밭에 잠들었는데,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고 합니다. 불이 계속 번져오는데도 김개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 위를 뒹굴어 불을 끄기 위해 반복한 끝에, 개는 죽고 말았으나 김개인은 살았다고 합니다. 한번쯤 들어봤던 주인을 지키는 의견 이야기이죠. 교과서에서 소개되었던 내용으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사실 주인을 충직한 개가 살던 곳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홍길동은 어디 출신인지 춘향이, 이몽룡은 실재 인물인지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처럼요. 자신을 살렸던 개와 나무의 이야기는 훗날 지방 고장의 이름이 되었는데요. 바로 지금의 임실 오수가 그곳입니다. 오수는 `개 오`(獒) 자와 `나무 수`(樹)를 합하여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설화 주인공으로만 여겨졌던 충견의 주인, 김개인은 실존 인물이기도 합니다. 김개인의 생가는 십이연주 고을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존 인물이기도 하고 이런 충견과 함께 지낸 주인이 살았던 곳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개인의 생가지가 자리한 곳은 지사면입니다. 오수면의 예전 이름은 둔남면(屯南面)이었고, 1992년 8월 10일 오수면(獒樹面)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오수면은 조선시대에는 찰방역인 오수도(獒樹道)가 이 곳 오수리에 설치되어 11개의 역참을 관장했다고 하네요. 김개인의 생가지를 돌아보니 반려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인간관계보다도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교감을 하면 인간보다도 더 큰 위안과 위로를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반려동물이죠. 요즘같이 반려동물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설화가 주는 메시지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반려동물을 돈을 주고 사는 문화는 결국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려동물이 훨씬 많이 늘어난 요즘 오수의견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임실군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휴머니즘을 부각해 충효의 고장임을 재조명하기 위해 2002년 김개인 생각을 복원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려웠을 때 도와준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이 도의를 다하는 것이라고 하죠. 주인을 지키기 위해 제 몸을 던진 의견 또한 잊지 않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 거죠. 복원된 김개인 생가지를 돌아봅니다. 소박하지만 옛 가옥의 모습을 잘 복원해두었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오수의견이라는 교과서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접하니까 그저 반갑기만 합니다. 짧은 만남으로 끝난 의견과 김개인의 인연을 복원된 생가에서 잠시 회상해봅니다. 주인의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개와 주인의 행복한 웃음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김개인은 천 년 전 신라시대 때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곳 영천에 살았던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흉년에 버려진 개를 데려다가 키웠다는데 그 개는 김개인이 다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녔는데 결국 그 고마움을 몫 숨으로 대신하였던 것이라고 한 거죠. 이야기로만 전해든 던 의견 설화. 임실 오수에서 머리로 상상하고 눈으로 그려보며 의견설화를 다시 만나보세요. /글사진 = 박서영 (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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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4 15:12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1) 장마에 그 마을은 안녕한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란 윤흥길 소설 「장마」의 구절과도 같은 나날을 지나고 있다. 장마는 여러 날 오랫동안 내리는 비로 오란비라 하였고, 오랜의 한자어인 장(長)과 맑다에서 유래한 물의 옛말인 마ㅎ과 합해져 1500년대 중반 이후부터 ㅤㄷㅑㅇ마ㅎ로 표현되다가 쟝마에서 장마로 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맛비를 보니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산다. 장마에 논둑 터지듯 한다.란 근심을 담은 속담과 더불어 임실군 덕치면 물우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섬진강 상류에 자리한 물우리(勿憂里)는 물이 주변에 많다는 의미로 불린 물골 혹은 물구리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강에 인접한 탓에 물로 인한 근심이 끊이지 않은 곳이어서 물우리라 알려졌다. 물우리는 섬진강이 아름답게 굽이치는 물가의 마을이지만, 항상 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있다 보니 마을의 평안을 기리는 장소를 만들었다. 섬진강이 내려다보는 곳에 특별한 당산나무와 두 기의 가묘가 있는데 그 유래가 깊다. 마을의 수호나무인 당산나무는 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어 도둑이 마을에서 재물을 훔치고는 당산나무 근처에서 뱅뱅 돌다가 결국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히게 한다는 이야기와 정성껏 제를 모시면 아들은 얻는다고 전해지는 나무이다. 신비로운 힘을 지닌 당산나무 옆에는 당산 할머니의 형상을 만들어 묻고 봉분을 올려 만든 할매묘가 있고 길 위쪽에는 할아버지 형상을 만들어 묻어 동네에서 할아씨묘라 불리는 할배묘가 있다. 당산제를 지내는 모습을 보아온 물우리의 양승래(1940년생)에 의하면, 매년 정월 보름날에 지냈던 당산제는 마을의 큰 행사였다. 마을 사람들은 각각의 역할에 따라 분주히 움직였으며 제물을 장만하는 사람은 일주일 전부터 몸가짐을 조심하며 근신했고, 제사 5일 전부터는 당산나무에 새끼줄로 만든 금줄을 치고는 제를 준비했다. 마을에서 채취한 붉은 황토를 봉분에 더했고 할배묘에 먼저 제를 지낸 후 할매묘에 내려와 제를 지냈다. 제물로 바친 돼지머리를 가묘에 묻고 모정 쪽에 있는 넓은 바위를 가져다 그 위를 덮은 듯 눌러 놓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 한다. 농업을 중요하게 여겼던 선조들에게 가뭄과 장마는 큰 문제였다. 큰비나 장맛비가 내리면 나라에서도 비를 멈추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냈으니 물우리 같은 물가에 자리한 마을에서는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곡창지대가 있는 우리 고장은 나라의 주요 관심지로 『조선왕조실록』에 김제에 많은 비가 퍼붓듯이 내려 물가의 전답이 모두 침수되어 곡식들이 썩거나 손상되었고, 김제의 넓은 들은 넘실거리는 물결이 바다와 같다는 것과 남원에 홍수가 나 인명피해가 나고 전답이 묻혔다는 등의 내용이 수해 보고와 상의한 기록 속에 상세히 등장한다. 조선 시기 비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에 저자를 여는 등의 여러 대책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도성의 숭례문과 숙정문을 닫거나 여는 것이었다. 장마 때는 숭례문을 열고 숙정문을 폐쇄했고 가뭄 때는 정반대로 했다. 남쪽의 숭례문에서 양의 기운이 들어오고 북쪽의 숙정문에서 음의 기운이 들어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음양을 조절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음의 기운이 넘치는 장마 때는, 양의 기운을 늘리고 음의 기운을 줄이고자 숭례문을 열고 숙정문을 닫으며 음양의 기운을 맞추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왕은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에 장마가 지고 백성들이 피해를 받는다고 여겨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독특한 장마 대처법으로 가난해 결혼 시기를 놓친 원한들이 화기(和氣)를 범했다 여겨 혼수를 넉넉히 주어서 결혼을 시키기도 하였고 피해받은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제원을 마련하고 구황을 하며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홍수로 인한 산사태와 하천의 범람은 산의 나무를 함부로 베어 토사가 유출된 것이 원인이라며 산림을 보호하고 천변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으며 정비에 만전을 기했다. 천변에 버드나무와 푸조나무 물푸레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을 식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관이 만든 제방 숲을 뜻하는 관방제림도 조성하며 적극적으로 치수에 힘을 썼다. 물우리에서 성대하게 지내던 당산제도 새마을운동이 번져나갈 무렵 동네의 무관심 속에 어느 순간 맥락이 끊어졌고 돼지머리를 누를 때 사용했던 모정 옆 바위도 행방이 묘연하다. 하지만, 당산나무와 가묘는 제자리에서 모두의 안녕을 기리는 마음을 품고 마을을 지켜주고 섬진강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마을을 잇는 튼튼한 다리가 잘 정비된 섬진강 위에 놓여 졌으니 큰 근심은 덜은 셈이다. 거저 줘도 안 먹는다는 억수장마 끝물의 참외같이 밍밍하고 답답한 일상을 지나고 있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란 말을 굳게 믿는다. 소설 「장마」에서 할머니가 이제 나가 놀아도 좋다라고 말하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이 끝맺은 것처럼 유달리 긴 장마 끝에 얼굴을 내미는 쨍한 햇살로 장마를 끝내고는 길을 나서고 싶다. 섬진강이 아름답게 휘도는 물우리에 들러 당산나무에서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고 섬진강 자전거길을 기분 좋게 내 달릴 생각에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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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3 16:25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4. 그 여자들의 무기 ‘부채’

〈소리여〉, 그 여자들에게 있어 부채는 가장 큰 무기이자 힘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리에 입문해 짧게는 이십여 년 길게는 삼십여 년간 소리를 하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있다. 서울, 경상, 전라남도, 전라북도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스무 살 이후부터 소리의 고장 전라도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고 있다. 부채는 기본적으로 더위를 쫓고 햇볕을 가리는 기능, 시와 그림을 그려 넣어 자신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표현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기능, 멋스러운 선추를 달거나 선면에 예쁜 색을 넣는 멋쟁이의 필수품으로서의 기능, 친한 사람에게 주는 정중한 선물로서의 기능, 마지막으로 소리꾼의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기능이 있다. 소리꾼 다섯 여자에게 부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그 네 번째로, 〈로컬소리단 소리여〉 다섯 여자들과 부채에 얽힌 이야기를 만나 보자. #소리꾼 김민선의 부채 이야기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전의 비나이다. 쌀이 되거든 한 말만 주시고, 보리가 되거든 두 말만 주시옵고, 부채가 되거든 열 자루만 주시오면, 여러 날 공연할 동기들을 구원을 하여 살리겄네다. 제발 공연할 때 부채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비나이다. 소리꾼 김민선은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열여덟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흥보가』 中 흥보가 놀부에게 비는 대목이다. 소리꾼 김민선에게 부채란, 절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스무 살 때 일이다. 열여덟, 다소 늦은 나이에 소리에 입문한지라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정식으로 무대에 선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신입생 연주회는 피해 갈 수 없는 일. 근 한 달 넘게 똑같은 곡을 동기들과 연습했다. 처음 하는 민요, 처음 하는 발림. 실수 연발이라 선배들의 지적이 끝없이 이어졌다. 멀쩡히 잘 되던(잘되던) 소리와 동작이 발림만 나오면 긴장되고 떨려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공연을 하던 중 손에 든 부채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옆에서 노래하는 동기들 눈치, 객석에서 뚫어져라 응시하는 관객들 눈치를 살피며 자기 딴에는 아무도 모르게 부채를 주어서 다시 공연에 임했다. 물론 공연 후 선배들에게 엄청나게 깨진 건 안 비밀. 지금이라면 그냥 부채 없이 손동작으로 공연을 이어 갔을 텐데. #소리꾼 문모두의 부채 이야기 춘향이 간신히 정신 차려 어사또를 바라보니, 옥문 밖에 거지 되어 왔던 낭군이 분명쿠나.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야속하고 독헙디다. 동원에 새봄이 들어 부채가 날 살렸네. 소리꾼 문모두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열두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삼십 년을 보냈다. 지금은 완주에 터를 잡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춘향가』 중 춘향이와 어사가 만나는 대목이다. 소리꾼 문모두에게 부채란 군인에게 있어 총과 같은 존재이다. 지호와 주호는 문모두의 제자다. 아이돌과 트로트에 빠져 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민요와 판소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들이다. 연습생이 되어 일 년 정도 되었을 무렵 대회에 참가했다. 소리도 소리이지만 너름새 또한 점수에 포함되는 것이 경연 대회이다. 소리 지도와 함께 부채를 들고 표현하는 발림 연습을 쉬지 않고 했다. 그런데 왼손 발림을 하고 양손 모두 들라고 하면 한 손만 들지 않나, 부채를 들어야 하는 발림 과정을 그냥 패스하질 않나. 덜렁댐은 기본이고 장난은 부가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초등 남자아이들에게 소리 끝의 마지막 부분, 부채를 펴는 발림은 최고의 난도를 가졌다. 대회 당일, 스승의 고급스러운 합죽선을 손에 쥔 요 녀석들, 국가무형문화재라도 된 듯 으스대더니, 결국은 선생님, 부채가 찢어져 버렸어요.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더니, 대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 것이 좋네, 내 것이 좋네 부채 전투를 벌이던 녀석들의 손에는 처참하게 찢어진 스승의 애정부채가 들려 있었다. 소리꾼에게 합죽선 부채는 군인의 총과 같은 법. 방아쇠는커녕 장전 한 번 못해보고 전투를 마친 녀석들은 그 이후 일취월장해 부채 발림도 능숙해지고 소리 실력도 크게 늘었다. 애꿎은 스승의 부채만. #소리꾼 이경래의 부채 이야기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열흘 가고 한달 가고, 날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낼수록이 임의 생각이 뼛속에 든다. 소학 대학 예기 춘추 모시상서 백가어를 역력히 외어 가다 나까지 다 잊어버리셨구나. 소리꾼 이경래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세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춘향가』 중 춘향이 이몽룡 그리워하는 대목이다. 소리꾼 이경래에게 부채는 인생의 커닝 페이퍼다. 이경래는 초등학교 6학년인 열세 살에 소리를 처음 접했고, 첫해에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무대 울렁증에 판소리의 그 기나긴 내용들은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찌어찌 그 무대는 마무리되었지만, 첫 무대의 실수는 트라우마가 되어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가사를 한두 구절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자 선배들이 부채에 잘 잊어버리는 대목을 적어.라고 조언해 주었다. 소위 말하는 커닝 페이퍼다. 새끼손가락 너비에 한 뼘 길이의 합죽선에 나만의 방식으로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서 무대에 다시 섰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일까? 커닝 페이퍼 한번 보지 않고 무사히 소리를 마쳤다. 믿는 구석이 생겨서인지 그 뒤로는 가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중요한 무대에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살짝 적바림을 하기도 한다. #소리꾼 이경화의 부채 이야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 주렴을 비치어들고, 심황후 기가 맥혀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울고 오는 저 기럭아, 너 무삼 설움 있어 저리 슬피 울고 오느냐. 도화동 우리 부친 내게 부채 선물한 소식 전하고자 우느냐. 소리꾼 이경화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세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심청가』 중 추월만정이다. 소리꾼 이경화에게 부채는 버팀목이자 사랑이다. 이경화는 최근 셋째를 낳았다. 선녀가 아이 셋을 낳고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동화처럼, 그도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내가 이제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가끔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 시아버지는 소리하는 며느리에게 매우 특별한 선물, 합죽선을 주셨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과 선면에 그려진 그림 또한 멋졌다. 부채를 받자마자 열망이 생겼다. 더 큰 무대, 더 좋은 활동을 해야겠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이경화는 시부가 주신 그 부채로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으로 입상했고, 지금도 그 부채를 들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시부가 주신 부채는 그냥 부채가 아닌 이경화 소리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랑이다. 부채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던 삶에 대한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소리꾼 최수아의 부채 이야기 주막에 들어 잠잘 적에 뺑덕이네 몹쓸 년은 주막 근처 사는 봉사 중에 제일 젊은 황 봉사 부채를 벌써 꾹 찔러 약조허여 주막 딴 방에 두었다가 심 봉사 잠든 연후에 둘이 손을 마주 잡고 밤중에 도망을 허였구나. 소리꾼 최수아는 전라남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두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서른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이다. 소리꾼 최수아에게 부채는 인생의 동반자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소리에 입문해 서른까지 공부도 하고 단체에 속해 일도 하고 보냈다. 그러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소리를 쉬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에 부쳤고, 10여 년의 공백기가 생겨 버렸다. 마지막 무대에서 사용했던 부채는 늘 책상 서랍에 접힌 채 놓여 있었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부채를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좋지 않았고, 판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 갔다. 소리꾼이 부채를 마주하는 때는 무대에서 소리를 할 때이다. 연습할 때 주로 부채를 사용하는데 부채를 펼칠 때면 늘 떨리고 긴장되었다. 부채가 촤~악 펴지면서 파르르 떨리는 진동은 소리꾼에게 적당한 긴장과 에너지를 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의 응원과 격려를 발판 삼아 3년 전에 다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시 꿈같은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무대에 서기 위해 한복을 새로 맞추고 부채도 새롭게 마련했다. 최수아에게 있어 합죽선을 새롭게 마련하기 위해 나선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펴보고, 펴지는 소리를 들어보다가 손에 착 감기는 그 느낌에 그녀는 울어버렸다. 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다시는 손에서 부채를 놓지 말아야겠다. 계속 소리꾼으로 살아가리라. 중년이 다 된 여자가 부채 한 자루를 들고 애틋한 눈으로 연인 보듯이 울고 있으니 남들 보기엔 얼마나 의아했을까마는 최수아에게 있어 그날의 울컥함은 소중히 간직할 다짐이자 약속이었다. 나에게 만남, 이별, 설렘, 긴장 그리고 행복을 주는 부채야, 영원히 함께하자. ■ 글: 이향미(전주부채문화관 관장) ■ 찾아간 곳: 전라북도 완주군 모두소리전수관 & 전주시 수아소리연습실 ■ 찾아간 날짜: 2020년 7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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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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