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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이길여 박사

1932년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부농’집안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한학에 밝았던 할아버지는 동학에 관여했으며, 부지런하고 알뜰했던 할머니는 억척스러움으로 재산을 일구어‘10리 안에서는 내 자손들이 남의 땅을 밟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했다. 손이 귀한 집으로 시집 와 첫 딸을 안긴 어머니는 3년 만에 가진 둘째도 딸을 낳는 바람에 산후 조리는 커녕 미역국 한 그릇도 편히 받지 못했다. 마뜩치 않아하는 할아버지 대신 아버지??嚥?吉女)’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여섯 살이 넘어서야 말문이 트였지만 학교에 들어가서는 줄곧 1등을 놓쳐본 적 없는 딸에게 날개를 달아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평등사상이 강했던 그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덕행’의 의미를 가르쳤다. 이리공립여자고등학교에서 제일 공부 잘했던 그는 전쟁 와중인 51년, 서울대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의사의 꿈을 심어준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 결핵퇴치운동을 하면서 교의(校醫)로 활동했던 이영춘 박사다.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은 급성폐렴으로 서른다섯에 세상을 뜬 아버지 때문에 더 확고해졌다. 의대 시절엔 고향에 갈 때 가방 안에 ‘인골’을 가져가서까지 인체 구조를 공부했다. 기름기 묻은 뼈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난리를 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는 그를 감싸 ‘의사 공부’를 하게 해주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인천??靡봉퓻阪??개업했다. 병원 운영한지 8년 만에 미국 유학을 떠나 선진의료 현장에서 원 없이 경험하고 공부했다. 독신인 그는 생애 딱 한번 청혼을 받았다.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자상하고 낭만적이었던 교포청년과는 여러 번 데이트를 하기도 했는데 그가 ‘청혼’을 하자 그 순간 마음이 닫혀버렸다. 결혼보다 의사로서의 삶이 우선이었던 그로서는 여지 없는 선택이었다. 귀국해 병원 이름을 ‘이길여 산부인과’로 바꾸었다. 신식 병원건물을 짓고 의료시설도 가장 최신기자재를 들였다. 당시 관행이었던 병원 보증금 규정도 없앴다.‘보증금 없는 병원’은 주위의 염려처럼 진료비를 떼이지도 않고 오히려 번성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는 문득 현실에 너무 안주하고 있다는 회의에 빠졌다. 마흔 세살에 일본 유학을 다시 떠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학 중 그는 세가지 결심을 했다. 종합병원을 만들고, 의료취약지에 병원을 설립하고 의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에 힘쓰겠다는 것이었다. 1977년 전 재산을 출연해 의료법인을 세웠다. 오늘의 ‘의료법인 길 의료재단’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결심은 모두 실현되었다. 양평 백령도 철원 등 무의촌 지역에 병원을 열었으며 ‘의료, 교육, 연구’를 하나로 묶는 의과대학을 설립했다. 그의 팔십 생애 걸어온 길에는 수많은 활동이 교직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빛나는 절정은 역시 의사로서의 삶이다. 환자를 고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그의 철학과 사랑은 ‘따뜻한 청진기’ 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청진기를 늘 품속에 넣어두고 진료했다. 긴장한 환자들이 갑자기 들이대는 청진기 금속의 차가움으로 다시 놀라는 것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가슴에 품는 청진기’를 그는 해마다 그가 사랑하는 가천의대 졸업생들에게 선물로 준다. ‘가슴으로 환자를 대하라’. 그가 지켜온 철학이 거기 담겨 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1.12.06 23:02

“꿈꾸는 일은 존재의 의미…쓰러질 때까지 꿈꿀 것”

일생을 꿈꾸고 도전 하는 삶. 누구나 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가슴에 품었던 꿈이 실현되는 그 지점에서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다시 도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꿈을 실현하고 도전하는 과정에는 역경과 고난이 더 큰 무게로 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생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해온 사람’이 있다면 그의 ‘역사’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길여 가천대 총장을 만났다.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사업가로서 그가 걸어온 길은 장강(長江)과도 같이 깊고 넓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그야말로 높은 장벽이었던 시대, 그것도 농촌에서 태어나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의사의 꿈을 실현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만든 의료법인을 통해 종합병원과 여러 개의 전문병원을 만들어 선진 의료를 일구었다. 90년대 초반에는 재단법인 가천문화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왔으며 의과대학을 만들고 종합대(경원대)를 인수해 인재양성의 꿈을 실현해왔다. 그가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동안 추진해온 가천의대와 경원대 통합이 지난 7월, 교육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불가능한 일로만 여겨졌던 두 대학의 통합은 중단 없는 그의 도전정신이 이어낸 또 하나의 결실이다. 이 총장은 이 대학을 10년 안에 국내 10대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경기도 성남의 가천대 경원캠퍼스 총장실에서 있었다. 빨간 재킷에 검정 바지를 차려입은 그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어 보였다. 그러나 우리를 압도한 것은 외모보다도 시종일관 샘솟는 열정이었다.-기대보다도 훨씬 더 젊으십니다. 늘 이렇게 넘치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젊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우선 어떤 일이든 육체적으로 빨리 빨리 대응할 수 있어야 해요.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천천히 일어나고 걸음걸이도 그렇고. 그런데 나는 아직 젊은이들하고 뛰어도 자신 있어요.”-비결이 운동인가요.“운동 많이 하죠. 하루도 빠짐없이 걷고, 밖에서 걸을 수 없으면 집에서 머신을 이용합니다. 저녁 시간을 많이 투자하죠. 주말은 어김없이 골프를 칩니다.”-열정적으로 살아오신 총장님의 성공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입니다. 성공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도전정신과 열정, 그리고 추진력이 아닐까요. 제게는 혼신의 힘을 다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신념이 있습니다.”-‘간절히 꿈꾸고 뜨겁게 도전하라’는 자서전의 제목이기도 하더군요. 꿈을 꾸는 일은 총장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꿈꾸는 일은 존재의 의미예요. 나에게 꿈은 항상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 넘치게 하는 일, 병든 사람을 돌보고 나라를 떠받칠 젊은 인재를 길러내는 길을 찾는 것이지요.”-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까.“제가 말문이 늦게 터졌어요. 아들 대신 딸로 태어난 것도 그렇고 ‘미운 오리새끼’였죠. 어머니의 사랑으로 그 외로움을 극복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는 잘하는 아이였어요. 줄곧 1등을 했으니까요.”-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기억이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어머니는 나의 전부였어요. 여자가 배워서 뭐하느냐는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나를 가르치셨지요.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내가 의사인데도. 그렇고 보면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맹점이 많은 겁니까.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의지가 그만큼 컸던 것 같아요. 돌아가신 순간,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허전함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어요.”(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이 총장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 총장은 집의 침실과 집무실 화장실에 어머니 사진을 걸어두고 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대화한다고 들려주었다.)-시골 여학교에서 서울대 의대 진학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특히 당시는 여성의 사회진출 벽이 높았지 않았습니까. 그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남보다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다행히 직업이 의사이고 교육자여서 다른 분야보다 차별을 덜 느꼈던 것 같아요. 물론 나도 태어날 때부터 딸이라고 구박 많이 받았지요. 내 마음대로 여자가 된 것도 아닌데.(웃음) 여성의 사회진출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요. 그래도 남성들보다 노력해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노력만이 길입니다.” -그래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을 텐데요. “1960년대 의사 초년병 시절입니다. 환자 진료에 진력을 다했지만 약품 부족으로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어요. 의사가 없는 섬에 사는 주민들이 병원에 늦게 도착해 고귀한 생명을 잃었을 때도 참담했습니다. 그런 시기가 저에게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산부인과는 왜 택하셨나요.“60년대에는 여성들의 질병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는 여성들이 정말 많았죠. 여성으로서 여성들을 더 잘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히 했어요.” -총장님 자서전에 바람개비 철학이 나오더군요. “바람개비는 바람이 거셀수록 잘 돌아갑니다. 시련과 역경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이를 통해 발전하게 되지요. 도전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항상 필요합니다.” -그 도전정신이 일구어낸 결실이 참 많습니다. 최근에 통합을 이룬 가천대 이야기를 좀 해주시죠.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던 두 개 대학 통합으로 많은 대학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통합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었는데 통합을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이제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대학들은 학령인구 100만 명 때에 생긴 학교들이에요. 그런데 이제 50만 명 40만 명으로 떨어지면 학교도 구조조정을 해야죠. 좋은 인재양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이미 통합의 경험이 있어요. 경원전문대와 경원대 통합, 가천전문대와 가천의대 통합이 그것이죠.”-그러니까 4개 대학을 합한 셈이군요.“그런 셈입니다. 사실 이들 대학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이 와 닿지 않을 겁니다.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드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지 가능한 일은 누구나 한다고. 저는 평생을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어요.” -자료를 보니까 규모로는 수도권 3위던데요.“그것은 별로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얼마나 좋은 인재를 많이 키워내느냐가 중요하죠. 교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학교인프라는 다 구축해 줄 터이니 좋은 교육으로 인재만 만들어달라구요.”-10년 안에 국내 10위권 명문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자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총장은 총장대로 교수들은 교수대로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면 당연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두 대학이 합쳤으니 시너지는 극대화 될 겁니다. 의생명 약학 보건 분야의 특성화대학과 인문.사회과학, 공학, 예술 분야가 강한 대학의 통합이니까요. 저는 이번 통합으로 우리 대학이 글로벌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부합니다. 성남 경원캠퍼스는 글로벌캠퍼스로, 인천과 강화는 메디컬 특화 캠퍼스로 육성할 계획입니다.”-교수 채용에 매우 적극적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인재를 등용할 때 무엇을 우선 보십니까. “능력이죠. 그리고 지식과 인품이에요. 교수의 경우는 첫째 학생들에게 주어야 할 학식이 많아야 해요.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을 위해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는가를 봅니다. 학벌이 우선 조건은 아녜요. 아! 우리 대학이 여자교수가 가장 많다고 하던데요.”-총장님께서 의도하신 결과입니까.“아녜요. 능력으로 유능한 사람 뽑다보니까 그렇게 많아진 겁니다. 성별을 안 보았거든요.(웃음) 그런 점에서 보면 여성들이 뛰어난 것 같아요.”-늘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앞장서 오시면서 정계 입문을 권유받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 권유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정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환자를 돌보는 일이고,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에요. 나에게 이것보다 더 행복하고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었어요. 무슨 큰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앞으로도 실현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까.“그럼요. 나는 쓰러질 때까지 꿈을 꿉니다. 우리 재단이 어떻게 하면 잘 발전하고 최고의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병원에서 환자들이 행복하게 진료 받고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그 답은 곧 꿈이 됩니다. 사실 꿈을 꾸는 것은 산을 오르는 일과 같아요. 나는 한없이 산을 오르고 있지요. 산을 오르다 보면 돌멩이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나뭇가지에 걸려 할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올라가죠. 그 끝은 어디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합니다. 그 끝은 없다고. 내가 가다가 내가 끊어지면 그 다음 사람이 올라갈 것이라고요.”-혹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오신 것에 후회는 없습니까. “후회는 없어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결혼도 안할 것이고, 또 이 길을 택할 겁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걸어온 바로 이 길을요.” -6개의 병원, 언론사, 대학, 박물관 등 의료 교육 문화재단을 통한 사회에 공헌 활동이 경이롭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적인 실천이 아닐까 싶습니다. 후대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회장이니 총장, 이사장 등 세속적인 타이틀보다 ‘사랑의 메신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봉사자’ 혹은 ‘젊은이들의 멘토’로 기억되고 싶습니다.”인터뷰 도중 안철수 교수의 기부가 화두에 올랐다. 그는 “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양반이 먼저 했더라’며 참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미 전 재산을 법인화해 놓았으니 사실상 사회에 환원한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 사회에 환원할 것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 기획
  • 김은정
  • 2011.12.06 23:02

뇌졸중의 재활치료

뇌졸중 환자는 손상 부위와 크기에 따라 편측마비, 언어장애, 시야장애, 삼킴곤란, 보행장애, 인지장애 등 여러 가지 장애를 보인다.따라서 뇌졸중 재활치료는 상실된 기능을 최대한 회복해 일상생활이 가능토록 하고, 환자가 사회에 복귀해서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즉,재활치료의 목표는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뇌졸중 환자는 왜 재활치료를 해야 하나뇌세포에는 가소성(뇌졸중이라는 큰 사건 발생 후 뇌가 학습과 반복 훈련 같은 주변의 자극을 통해 적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 뇌졸중 환자에서 이 가소성을 최대한 증진시켜 신체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재활치료다. 뇌졸중 발생으로 손상되어 버린 뇌 조직을 정상으로 회복시킬 수는 없지만, 재활치료를 통해 환자의 저하된 기능은 대부분의 환자에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재활치료는 언제부터재활치료는 뇌졸중 발생 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다. 환자의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 등이 안정되고, 신경학적으로 더 이상 뇌 병변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재활치료를 시작해야 한다.전문가들은 급성기 뇌졸중 환자에서 의학적으로 48시간 이상 별다른 증상 없이 안정되면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재활치료 시작을 권고하고 있다. 뇌경색은 발병 후 2~3일, 뇌출혈은 약 2주 후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조기 재활치료를 통해 관절 구축, 욕창, 세균 감염, 심부정맥혈전증, 폐색전증 등의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고 정신적 안정을 가져오게 된다. △재활치료에는 어떤 것들이재활치료에는 물리·언어·인지·작업·전기·통증·약물 치료와 보행훈련 등이 있다. △뇌졸중 회복 가능 정도는한 번 손상된 뇌 조직은 회복이 미미하지만 뇌의 기능은 어느 정도까지 회복될 수 있다. 물론 재활치료를 지속해도 회복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 보조기구나 도구를 활용하여 신체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 뇌졸중의 회복은 대체로 발병 초기인 3~6개월 내에 일어나지만 2~3년까지도 회복을 기대할 수 있으며, 조기 회복을 위해서는 환자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족의 이해와 도움이 꼭 필요하다.△가족 스트레스는 어떻게뇌졸중은 병의 경과가 만성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환자를 오랜 기간 동안 돌봐야 하는 것 자체가 가족에게는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이 당면한 스트레스를 잘 대처해야 긍정적인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효과적인 스트레스 대처 방안으로는 자신과 가족을 신뢰하기, 다른 가족의 감정을 헤아리기, 영적인 심념 갖기,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기, 사회적 자원(사회복지단체, 가족상담 등) 활용하기 등이 있다. △뇌졸중 재발은뇌졸중은 재발이 흔한 질환이다. 뇌졸중 재발 방지를 위한 치료법이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은 환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재발 위험성은 처음 뇌졸중이 발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가장 높다. 국내외 연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뇌졸중 발생 후 재발할 확률은 첫 1개월 내 최대 4%, 첫 1년 내 최대 13%이며, 이후 연간 5~8%씩 위험성이 증가해 5년 누적 재발률은 최대 42%다. 즉, 5년 안에 뇌졸중 환자의 10명 중 4명 정도에서 재발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재발 예방은재발한 뇌졸중은 처음 발생한 경우보다 심한 후유증이 남고 치명률도 높다. 하지만 뇌졸중의 재발 위험성이 모든 뇌졸중 환자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처음 뇌졸중이 발생한 이후 얼마나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으며, 얼마나 위험인자를 잘 관리하는지에 따라 재발률은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주 민 철(원광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심뇌재활센터장)

  • 기획
  • 엄철호
  • 2011.12.05 23:02

Q&A로 알아보는 디스크탈출증

Q. 한의학 치료로 디스크탈출증을 치료할 수 있나요?A. 디스크탈출증과 관련하여 고전 한의학 문헌에도 질환 명칭만 다를 뿐 원인, 증상, 치료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디스크탈출증을 치료하는데 적용되는 한의학적 치료 방법으로는 침, 뜸, 부항, 한약, 추나요법과 한의학 이론에 근거해 최근 새롭게 유행하고 있는 치료 방법인 약침요법, 침도요법, 매선요법 등이 있습니다. Q. 디스크탈출증에 한약의 효과는?A.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 한의학 고전 문헌에서 요부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제시된 구척, 두충, 오가피, 마가목 등 한약재들의 디스크 질환에 대한 치료 기전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앞에서 제시한 한약재들은 디스크 질환에 대한 진통 효과뿐만 아니라 주변 신경세포 재생 효과도 확인, 현재의 증상 치료와 더불어 장기적인 측면에서 치료 이후 재발까지도 예방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약재들로 손꼽히고 있습니다.Q. 디스크 수술 후 재발하였는데 또 수술해야 하나요?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수술 후 재발한 경우는 처음 발병 시보다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수술 후 재발한 경우라도 상태에 따라 수술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술 없이 보존적인 치료로 회복이 가능합니다. Q. 현재 디스크탈출증을 진단받고 증상도 있는데 운동을 해도 될까요?A. 증상의 발생한 시점과 증상의 정도, 디스크의 탈출된 정도에 따라 운동 가능 여부와 시행할 수 있는 운동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심한 통증 없이 일상생활이나 보행이 가능하고 디스크가 가볍게 돌출된 정도라면 허리에 무리한 자극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주로 누워서 할 수 있는 허리 강화 운동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우석대 부속한방병원 김종욱 교수

  • 기획
  • 강정원
  • 2011.12.05 23:02

26. 디스크탈출증(하)

디스크 진단을 받으면 가장 먼저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수술 없이 운동요법 등으로 디스크 치료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지난해 국내에서 척추수술을 받은 환자는 10만160건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와 체격, 생활습관, 환경 등이 비교적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연간 디스크 수술 건수에 비해 7배나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만큼 디스크탈출증 환자의 상당수는 수술하지 않고 보존치료만으로 회복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의 디스크탈출증 치료는 근본적인 치료 원칙들이 보존적 치료방법들이기 때문에 수술 없이 치료하기를 희망하는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료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예방을 위한 일상생활 속 관리 방법과 허리 근육 및 관절의 강화를 위한 운동요법이다. 디스크탈출증의 한의학적 치료, 예방을 위해 우석대학교 부속한방병원 척추관절센터 김종욱 교수로부터 생활습관 및 운동법 등에 대해 알아봤다.△ 허리 디스크탈출증의 한의학적 치료최근에는 한약과 침을 결합한 약침요법이 각종 디스크 질환의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논문들이 다수 발표되고 있으며, 특히 벌의 독을 응용한 약침요법인 봉약침(蜂藥鍼)은 국소 염증을 신속하게 억제해 주는 효과가 뛰어나 염증을 동반한 디스크 질환에 대한 대표적인 한의학적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민간에서도 척추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지네(한약재명 : 오공(蜈蚣))를 이용해 만든 오공약침 역시 디스크 질환에 상용되는 치료방법이다. △ 자가 진단법허리 디스크탈출증을 진단하기 위해 병원에서 사용하는 검진법 중 몇 가지는 집에서도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검사는 하지직거상 검사이다. 똑바로 누운 자세에서 다리를 펴고 그대로 들어 올리는 검사로 지면과 다리가 이루는 각도가 60이상 올라가기 전에 하지방사통이 심해진다면 디스크탈출에 의한 신경압박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각도가 낮을수록 압박이 심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검사법으로 발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쪽으로 걸어보거나 발등을 올리고 발뒤꿈치로 걸어봤을 때 보행이 어려운 경우도 해당 신경근 압박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또 기침이나 재채기 등에 의해 허리에 압력이 올라갈 때 하지방사통이 심해지면 디스크탈출증의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추부위의 다른 질환에서도 위에서 제시한 검사상 이상이 나타날 수 있어 일단 이상이 보일 경우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생활습관 고치기평소 허리 운동이 부족하거나 오래 앉아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직장인과 학생, 그리고 무거운 것을 반복적으로 자주 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허리에 압력이 가해지는 조건이 장시간 지속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앉을 때는 허리에 쿠션을 받치고 허리를 바르게 펴고 앉는 것이 좋으며 크고 무거운 것을 들 때에는 물건을 배에 붙여 들고 바닥의 물건을 집을 때는 무릎을 굽히고 줍는 등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한다. 허리 디스크에 가해지는 압력을 측정해 보았을 때 누워있는 자세에서 가장 적게 가해지며, 누워있을 때보다는 서있을 때, 서있을 때 보다는 지지 없이 앉아있을 때 디스크에 압력이 높게 가해진다고 한다. 또한 좌우 불균형이 되는 자세로 오래 서있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앉아있는 경우는 디스크탈출증의 발생 가능성을 훨씬 높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충분한 휴식과 바른 자세의 유지, 꾸준한 허리 강화운동과 스트레칭 등을 습관화 한다면 디스크탈출증을 예방할 수 있다. 디스크탈출증이 한 번 발생한 환자는 꾸준히 관리되지 않으면 재발될 가능성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높다. 디스크탈출증에서 완전히 회복한 경우라도 디스크탈출증의 악화 요인을 숙지하여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하고 지속적인 허리 강화운동과 관리를 통해 예방과 재발 방지에 신경 써야 한다.△ 예방 운동법디스크탈출증의 예방을 위한 좋은 운동은 주로 허리에 수직 압력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허리의 근력을 키울 수 있는 운동이다. 대표적인 운동이 수영이나 누워서 할 수 있는 허리 스트레칭과 가벼운 요가 등이다. 수직 자세에서 허리에 충격이나 압력이 가해질 수 있는 조깅이나 점프가 포함된 운동, 웨이트트레이닝 등은 디스크탈출증이 있거나 허리가 약한 상태에서 바로 시행하는 것은 좋지 않다. 평소 꾸준히 시행하면 허리 강화에 도움이 되는 운동요법으로는 메켄지 운동(Meckenzie exercise)과 윌리엄스 운동(Williams exercise)이 있다. 메켄지 운동은 엎드려 누운 자세에서 바닥에 양손을 대고 팔을 펴면서 상체를 들어 올리거나 선 자세에서 허리 뒤로 젖히기, 앉은 자세에서 앞으로 숙이는 동작 등을 5~30초씩 5회 정도 반복하는 운동이다. 윌리엄스 운동은 무릎을 구부리고 바로 바로 누운 자세에서 윗몸일으키기, 엉덩이 들어올리기, 무릎 굽혀 가슴에 대기, 양쪽 다리를 펴고 앉아서 허리를 숙여 손끝을 발쪽으로 뻗기, 엎드린 자세에서 한쪽 무릎은 굽히고 다른 쪽 다리는 뻗은 채로 엉덩이를 바닥 쪽으로 밀기, 쪼그려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일어서는 동작을 일정 횟수를 정해서 반복하는 운동이다.도움말=우석대 부속한방병원 김종욱 교수

  • 기획
  • 강정원
  • 2011.12.05 23:02

한가로운 저녁은 없어도

종편 4개사의 방송이 시작되었다. 개국하는 방송국이 4개사나 되다 보니,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다가 하루가 갔다. 잡힌 화면 속 사람들이 어쩐지 ‘구식’ 냄새가 났다.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가 공지영의 인순이 김연아 종편 출현 언급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트위터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늘 그렇듯 트위터들은 양편으로 발 빠르게 갈라졌다. 그러나 어느 쪽도 사람들은 편안하게 하지는 못했다. 23년 전 야쿠자 모임에 참석했다는 강호동을 다룬 모방송사의 방송 태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그 일에 대한 사람들의 왈가왈부는 사람들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다. 한 나라에 무려 4개나 되는 새로운 방송이 개국 했는데도 그에 대한 축하와 그리고 기대와 흥분과 축제 분위기는 없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편 개국 속에서도 안철수 교수의 강남 총선 출마설과 신당 창당에 대한 소설을 쓰던 신문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그 두 가지 설에 대해 일축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추측기사들이 아무 쓸모가 없어진 쓰레기가 돼 버렸다. 한·미 FTA 대한 판사들의 반대 발언은 신선했다. 급기야 대법원장이 나서 단속을 했지만, 그리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 같다.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서도 한·미 FTA반대 시위는 나라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권력의 총체적인 부실함이 드러나 곳곳에서 물이 세는 느낌이다. 지난 10월26일 서울 시장 선거 때 선관위 방해 디도스 공격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경악하고 있다.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 비서가 단독으로 그런 큰 일을 저질렀다는 게 한나라당측의 주장이다. 안철수 현상으로 가뜩이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우왕 좌왕 하던 한나라당은 불난 자기 집에 스스로 부채질을 한 꼴이 되었다. 이 와중에 나꼼수 공연 운집 인파, 개그맨 최효종 고소 사건은 수선스럽기만 하고 우울한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고소한 일이었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런 저런 나라의 일들이 사람들의 격을 높이고 사람다운 권위와 위엄을 갖추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쫄게 하고 누추하게 한다는 것이다. 분단이 만들어 놓은 낡은 이념의 틀 속에 갇힌 이 지겨운 싸움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비겁하고 비열하고 치졸한 싸움을 그대로 보고 자란다. 모두들 양날이 선 칼들을 쥐고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산다. 어쩐지 찝찝한 일들이 많은 지난 주였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 대고 밥 먹으라고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한가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해질녘이 없는 땅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루하루 잘 살아냈다. 또 살자.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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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화정
  • 2011.12.05 23:02

10. 로컬푸드 확산 대책과 방법 - 지역·마을 공동체·농민 ‘네트워크 형성’ 급선무

광우병이 영국을 휩쓸던 1990년 5월 존 검머(John Selwyn Gummer) 당시 농식품부 장관은 자신의 네살박이 딸과 함께 방송에 출연, 소고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먹으며 광우병은 인체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17년여가 지난 2007년 10월 검머 장관 친구의 딸로 버밍엄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던 엘리바베스 스미스가 스물세살의 꽃다운 나이에 크로츠벨트 야코브병(광우병)으로 죽고 만다. 이 사건을 기폭제로 영국인들은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해 폭발적인 관심을 갖게 됐고 영국정부는 식량안보를 유지함과 동시에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농업정책의 대안으로 로컬푸드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2011년 농림부와 환경부, 여러 산하 기구들을 통합해 출범한 환경식품농무부(DEFRA : Department for Environment, Food and Rural Affairs)와 런던시청의 역할이 그것이다.한국의 로컬푸드 현실은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디딘 수준이다.로컬푸드에 관한 한 가장 앞서있다고 할 수 있는 완주군은 군에서 로컬푸드 인식의 확산부터 농가의 조직, 재배, 인증, 유통, 홍보마케팅 등 전 분야에 걸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핵심주체인 중간지원조직(로컬푸드 법인)과 농민의 참여는 비중이 적다.완주군 농촌활력과 유왕기씨는 영국은 정부의 치밀하고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 로컬푸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나갔고, 그 결과 중간지원조직과 지역 농민은 건강한 먹을거리의 생산유통판매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로컬푸드 초기인 현재 지금처럼 모든 분야에 자치단체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직접적인 지원이 너무 오래 계속돼서는 발전이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농촌에서는 고령농영세농이 농산물 판로가 취약하고 도시에서는 소비자가 로컬푸드에 의식이 있어도 구입처를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이제부터 로컬푸드 확산을 위한 방법을 살펴보자. 우선 지역마을공동체농민간 네트워크 형성과 협의를 통해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농촌과 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농촌공동체 전문화와 소득 증대를 위한 통합된 민간지원조직이 육성돼야 하고 홍보 강화 필요성이 높다.완주군의 꾸러미밥상천안의 아파트 목요장터합천의 모든 초중고생 학교무상급식처럼 생산자와 소비자의 생활패턴에 맞는 로컬푸드 유통판매체계가 구축돼야 하고 영국의 팜샵PYO(농장 직접수확 구매) 등 생산자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마당이 펼쳐져야 한다.△팜샵영국처럼 팜샵(Farm Shop)을 조성 운영하면 지역내 소농고령농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팜샵은 지역내 생산 농산물을 유통시키는 소규모 매장이다. 팜샵은 마을형, 두레농장형, 거점판매형 등 다양한 형태로 확산 가능하다.대도시 인근의 접근성이 좋은 도로변 마을을 대상으로 빈집을 개보수해 팜샵으로 만든 후 주변 50㎞ 반경 마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곡류채소과일유정란축산물)을 수집해 판매하는 방식이다.팜샵에는 농산물 납품 생산자의 자세한 프로필과 농장수확물 사진을 게첨하면 소비자와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지역 어르신 또는 주민이 공동체를 구성해 상점을 운영하고, 농산물은 선금 구매를 통해 판매에 대한 책임감을 고취하며, 납품농가에 대해서는 안정적 소득보전에 기여한다.또 최소한의 공산품을 팜샵에서 함께 판매,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는 소비자의 편리성을 높이고 원스톱 쇼핑 체계를 구축한다.△농민장터미국에는 4000여개, 영국은 800여개, 호주에는 100여개, 캐나다에는 온타리오주에만 140여개의 농민장터가 있다.이들 국가의 농민장터는 자국의 소농들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에 의존해서는 불가능한 기본적인 생계유지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 이들 국가의 농민소득중 적게는 10%, 많게는 50%까지를 농민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농민장터는 지역농산물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데 여기에는 지역 소농 외에는 진입이 불가능하므로, 그리고 유통마진을 농민과 소비자에게 돌릴 수 있다.유럽지역의 농민장터는 농산물 유통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선사하는 관광명소 역할을 겸하고 있다. 대도시의 도심 재활성화 정책에서도 농민장터는 외지 관광객을 도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우리의 경우 농협이 상설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형태가 아니고, 판매를 대행하는 것이므로 농민장터라고 볼 수 없다. (끝)

  • 기획
  • 백기곤
  • 2011.12.05 23:02

로컬푸드 민간지원 조직의 역할

국내 지방자치단체중 로컬푸드에 가장 적극적인 완주군은 로컬푸드영농조합법인건강한밥상(대표 노재석)을 통해 꾸러미 등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하지만 정책방향의 설정, 세부사업의 기획, 예산 확보, 회원 모집 등 사업 전 분야에 걸쳐 완주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임정엽 완주군수가 강한 의지로 로컬푸드를 추진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지원을 바랄 수는 없으므로, 로컬푸드 사업 주체 및 지원조직의 자립이 시급하다.자치단체의 예산은 갈수록 긴축재정을 편성해야 하고 농업강국과 FTA체결로 인해 더이상 자국 농업을 직접 보호해 줄 수 없어 지금과 같은 보조사업자에 대한 예산(보조금) 지원방안도 개선돼야 한다.민간지원조직은 소속단체 및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자치단체는 기업과 연계 또는 독자적으로 민간단체 지원기금을 조성해 프로젝트를 심사하여 기금을 지원감독평가하면서 사업계속 여부를 판단한다.다양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프로젝트를 발굴하기 위해 민간지원조직은 일정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조직은 1~2명 내외로 구성해 인건비 등 운영비를 최소화하고 프로젝트 추진 기간 동안 임시직 채용을 통해 필요인원을 충원한다.전문인력은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 귀촌자중 귀농귀촌학교, 퍼머컬처대학과정을 수료한 사람을 대상으로 임명하며, 커뮤니티비즈니스(CB) 지원센터CB공동체 육성 과정을 통해 육성한다.사업단체에 소속된 개별단체 및 농민은 연회비를 납부해 민간지원조직의 기본운영에 힘을 보태고, 민간지원조직은 프로젝트를 발굴 추진해 소속단체 및 농민의 경제수익 증진에 기여한다.대구경북먹거리연대 강신우 운영위원장(사진)은 도시민은 농업과 농촌, 농민 그리고 먹을거리를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면서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가 유통되고, 농민을 보호하고, 도시민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로컬푸드가 전국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
  • 백기곤
  • 2011.12.05 23:02

장전배 청장은…

장전배 전북지방경찰청장(48)은 1962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전주고(58회)와 경찰대(1기)를 졸업하고 1985년 경찰에 입문, 경찰청 과학수사과장·대테러센터장·경비과장, 서울 기동본부장·경비주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치안감으로 승진한 뒤 경찰청 경비국장을 지냈다.장 청장은 경비국장 시설 건국 이래 최대행사였던 ‘G20 정상회의’를 1년여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 물의 없이 유연하게 치러내는 등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크게 기여, 대외적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경찰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한몫을 했다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평가다.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불거졌던 전·의경 구타 및 가혹행위와 관련해 전·의경 생활문화 개선을 통해 올 1월 76건이었던 구타 및 가혹행위를 9월 1건, 10월에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전·의경들을 대상으로 단체생활 에티켓을 가르치고 대원 간 융합을 이끌어 내 화목한 부대생활 문화를 정착시켰다. 평소 ‘치안의 과학화’를 주창하는 장 청장은 범죄심리학, 법생물학 등의 전문가를 특채로 채용하는 등 범죄분석관과 검시관을 확대, 경찰의 과학수사 분야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도 듣고 있다.

  • 기획
  • 강정원
  • 2011.12.01 23:02

9. 영국의 농촌 현지 직거래 농장 상점

영국내 유일한 소농을 위한 중간지원조직 FARMA(National Farmers Retail & Markets Association)는 농장 상점(Farm Shop팜샵) 인증과 직접 수확 구입(PYO : Pick Your Own) 인증이 주업무로 1979년 창립돼 회원이 750명(100여개소)이다. 파르마가 팜샵PYO 등에 대해 붙이는 인증마크는 농가가 직접 경작한 농산물임을 보증하고 있다.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됐음을 보증하는 인증마크도 있으며 회원사 제품의 품질 및 서비스를 예고없이 평가하기도 한다. 연간 20억파운드(약 3조6000억)의 매출을 기록하는 팜샵은 농장에서 직접 생산 판매하는 소매 아울렛의 한 형태로서 영국내에 600여곳이 있다. 지역내에서 생산된 식료품음식음료공산품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이용객들의 편의성과 품질가격 경쟁력을 갖춘 유통방식으로 거듭나고 있다.영국은 팜샵을 통해 농촌에서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에 대한 의식을 바꾸는 역할도 하고 있다.서로 근접한 농장과 연대를 통해 신선하면서도 다양한 농산물을 구비하는 것도 소비자들이 팜샵을 찾는 요인이다. 팜샵은 대부분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해 소비자의 농산물 쇼핑과 식사가 원스톱으로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또 야외에서 결혼식과 지역문화행사를 개최해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유명 팜샵은 런던의 유명 호텔음식점에 식재료를 납품해 성가를 더욱 높이고 있다.△가슨(Garsons) 팜샵1871년에 시작돼 무려 1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슨 팜샵은 런던 남서쪽 Esher지방에 있다. 이 곳은 영국에서도 한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런던의 남서쪽 뉴몰든에서 불과 15분 거리이다.농장면적은 40㏊(12만평) 규모이고 딸기 사과 블루베리 당근 양파 등 40여 품목을 재배한다. 가슨 가족이 경영하고 팜샵은 물론 레스토랑기념품 가게가 있다. 개장시간은 월~토요일 오전 9시~오후 6시,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이다. 팜샵에서는 농장에서 재배된 과일채소와 함께 인근의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육류공산품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하고 있다.△켈시(Kelseys) 팜샵영국 북크레이(North Cray)지방에 있고 1955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켈리 가족이 경영하고 농장면적은 14㏊(4만2000평)이다.옥수수브로콜리호박 등 15가지의 농산물을 생산해 모두 팜샵을 통해 판매하고 있으며 뉴코벤트가든(New Covent Garden) 시장에도 납품하고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켈시 팜샵으로부터 1시간 이내의 인근지역 20농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제휴해 판매하고 있고 소비자가 편리하게 구매토록 수입농산물가공품공산품 등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스탠힐(Stanhill) 팜샵윌밍턴(Wilmington) 지방에서 1991년 창업돼 팜샵과 PYO포장판매온라인판매 등이 영업분야다. 규모는 23㏊(6만9000평)이고 과일야채와 인근 지역 농장의 유제품빵 등 가공품까지 판매한다.이 곳에서 만난 가레스 존스(Gareth Jones) 할아버지(72)는 1주일에 한 번씩 부부가 오기도 하고, 아들딸과 함께 오기도 한다면서 테스코 보다 가격이 싸고 생산자를 믿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PYO 소비자들이 직접 농장을 방문해 과일 및 채소 등을 수확해서 구매하는 농장으로 영국에 100여곳이 있다.팜샵을 운영하는 곳은 기본적으로 PYO농장을 함께 운영함으로써 가족단위 소비자들이 농장을 찾게 만든다. 소비자들은 재배한 농작물을 직접 확인하고 가족단위로 체험을 즐길 수 있어 점차 영국에서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제철 농산물이 나올 때 주로 운영되고 한국의 장터처럼 비정기적으로 열리며 2~3시간 동안 짧게 운영되는 특징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농촌체험이 진보됐다고 볼 수 있어 국내에도 조만간 도입이 예상되고 있다.가슨팜샵의 PYO는 40여가지의 채소과일류를 직접 손으로 따고, 눈으로 보고, 뛰어놀 수 있는 진정한 체험학습의 현장이다. 40㏊ 방대한 농지를 소비자가 차량으로 이동하며 본인이 수확한 유기농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각각의 과일야채 밭 여러 곳에 계산대가 있어 구입이 편리하다.Garson 팜샵에서 만난 Elijabeth 할머니(76)는 한 달에 한 번씩 손주들과 PYO에 와서 포도도 따고 고구마도 캔다면서 아이들이 일찍부터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방법을 알게되니 정서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기획
  • 백기곤
  • 2011.12.01 23:02

테비 윌리암스 스텐힐 팜샵 대표

대형유통업체도매상에 납품만 했었는데 2년전부터 직거래를 시작했습니다. 1주일에 600명 가량의 손님이 옵니다스텐힐 팜샵의 테비 윌리암스(Teby Will iams40) 대표는 로컬푸드가 먹을거리의 새롭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생각해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게 됐다면서 친환경 농자재와 자체 생산한 퇴비분뇨 등을 사용해 소비자의 신뢰도를 제고하고 있다고 말했다.윌리암스 대표와 그의 동생, 2명이 상근하고 파트타임 종업원 50여명이 일하고 있는 스텐힐 팜샵은 온라인 또는 전화 주문을 통해 신선한 농산물을 당일에 소비자 가정에 배송하고 있다.7101215파운드 야채과일 포장과 8파운드 샐러드 박스, 20파운드 패밀리 박스 등을 판매하고 있어 자그마한 일이 많다는 그는 쉽게 상하지 않는 농산물육가공와인맥주 등은 영국 어디에나 택배로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테스코 등 대형유통업체는 환경이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싼 가격에만 초점을 맞춘다면서 로컬푸드는 누가 기르고 어떻게 유통되는지 스토리가 있으므로 새로운 먹을거리 문화로 정착했다그는 신선한 농산물 생산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영국도 농촌의 노령화가 심각해져 인근의 농민들 평균 연령이 60세 이상이다. 농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뭉쳐야 하고 로컬푸드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윈윈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
  • 백기곤
  • 2011.12.01 23:02

미리보는 채널 A 주요 프로그램

‘본질에 충실하면서 지상파TV 이상의 품격과 재미를 선보이겠다.’ 1일 개국하는 채널A 프로그램은 이야기 자체의 감동과 재미를 추구하는 정통 드라마와 자연스런 웃음을 선사하는 따뜻한 예능, 국민에 열려있는 교양, 신문의 심층성과 방송의 속보성을 결합한 보도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편성도 시청자 생활패턴에 맞춰 메인뉴스를 저녁 8시30분에 편성하고, 미니시리즈 드라마는 저녁 9시대에 선보인다. △ 보도채널A 뉴스는 심층보도를 위해 ‘1분 30초’로 획일화된 기존 방송 뉴스의 틀을 깬다. 평일에는‘굿모닝 채널A’(오전 6시), 국내외 경제와 기업 뉴스에 초점을 맞춘 ‘채널A 뉴스와 경제’(낮12시 10분), 전북일보 등 한국지방신문협회 9개 지역 신문기자들이 참여하는 ‘채널A 뉴스 네트워크’(오후 5시40분), 메인뉴스인 ‘뉴스 830’(저녁 8시30분), ‘채널A 한밤뉴스’(밤 12시10분)가 방송된다.△ 교양·다큐채널A는 내년 1월부터 매일 오전 ‘생방송 지금 해결해드립니다’를 방송한다. 5000만 국민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21세기의 신문고를 콘셉트로 ‘소비자 고발’, ‘생로병사의 비밀’ 등을 제작한 이영돈 PD와 국가대표 아나운서 정은아가 함께한다. 또 평일 오전 8시에는 ‘생방송 김성주의 모닝카페’가 매일 오후에는 뷰티, 패션, 인테리어, 건강 등의 주제를 갖고 ‘다섯 남자의 맛있는 파티’가 오후 8시에는 장애 때문에 안락사 위기에 놓인 반려 동물을 입양해 키우고, 자식처럼 돌보는 이웃들의 얘기를 담은 ‘너는 내 운명’이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이밖에 개국 기념 3부작 다큐 스페셜과 금요일 밤에는 ‘생방송 친절한 의사들’이 방송된다.△드라마·예능드라마와 예능은 캠버스와 이젤을 모티브로 한 CI 로고처럼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과 신선함을 무기로 한 콘텐츠가 가득하다. 매주 화요일 밤 10시 30분에는 최양락 남희석 심현섭 등 선배 개그맨과 김늘메 장재영 이동엽 등 후배들이 한 무대에서는 버라이어티 개그쇼 ‘개그시대’가, 일요일 오후 6시 40분에는 이만기 양준혁 이봉주 심권호 우지원 김세진 김동성 등 국내 스포츠계의 레전드들이 총 출동해 현직 국가대표와 맞대결을 펼치는 ‘불멸의 국가대표’가 안방극장을 찾아간다.또 김수미가 메인 MC를 맡고, 신현준 탁재훈 사강이 참여하는 ‘김수미의 쇼킹’과 박미선 김신영이 진행을 맡은 ‘음치들의 반란, 앙코르’, 이수근과 박지윤이 진행을 맡은 ‘바꿔드립니다’가 시청자를 찾아간다.이와 함께 채널A는 억지설정과 극단적 대결의 막가파식 구성에서 벗어나 이야기 본연의 힘으로 승부를 건 드라마를 제작, 방송한다. 시대의 명암을 객관적으로 그려낼 특별기획 ‘인간 박정희’와 강원도의 외딴 산골을 배경으로 가족 간 원망과 상처, 화해가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질 ‘천상의 화원’, 국내 첫 시추에이콤(시추에이션 드라마+로맨틱 코미디) ‘컬러 오브 우먼’,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 ‘해피앤드’, ‘총각네 아채가게’ 등이 방송된다.

  • 기획
  • 박영민
  • 2011.11.30 23:02

전북일보, 채널A와 전국뉴스 네트워크 구축 ‘신문+방송 통합형 TV뉴스’ 새 장 연다

전북일보는 동아미디어그룹 종합편성TV 채널A(IPTV 18번, 케이블TV 17번 )와 손을 잡고 방송뉴스를 서비스한다. 인터넷신문과 모바일서비스에 이은 방송진출로 전북일보는 전북도민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게 됐다. 특히 전북소식을 전국에 영상뉴스로 제공, 출향도민들에 고향소식을 현장감있게 전하는 것은 물론 역동적인 전북의 모습을 전국의 시청자에게도 생생하게 전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전북일보는 한국지방신문협회와 함께 채널A에 뉴스를 제공하기로 해 전국뉴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한신협채널A와 손 잡아본보가 제공하는 방송뉴스는 채널A를 통해 서비스된다. 채널A는 동아미디어그룹의 종합편성TV로, 옛 동아방송의 전통과 동아일보의 역량을 모아내는 종합편성채널이다. 특히 채널A는 동아일보와 통합뉴스룸 체제를 갖추고, 신문과 방송이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뉴스를 지향한다. 깊이 있고 다양한 신문뉴스와 현장성과 속보성이 강점인 방송뉴스의 장점을 결합, 그동안의 방송뉴스와는 차별화를 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여기에 지역뉴스를 강화하기 위해 전북일보를 비롯한 전국의 대표 지역신문과도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전북일보와 강원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광주일보 대전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제주일보 등 전국의 9개 광역 시도 유력신문 연합인 한국지방신문협회(이하 한신협)가 채널A에 함께 지역 뉴스를 제공하기로 했다.본보를 중심으로 한 한신협과 채널A의 제휴로 채널A 뉴스는 어느 매체보다 강력한 전국뉴스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됐다. 더욱이 지역 대표언론사 연합인 한신협의 참여로 채널A의 전국뉴스는 정보력과 취재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각 지역 대표 신문사들이 60여년동안 쌓아온 신문제작의 노하우가 방송뉴스 제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역 밀착형 전국뉴스 제공한신협과 채널A가 서비스하는 뉴스는 지역밀착형 뉴스로 채워진다. 전북일보를 비롯한 한신협 회원사가 매일매일 지역에서 발생하는 각종 뉴스를 서비스하기 때문이다. 한신협 회원사들은 해당 지역의 현안을 깊이있고 다양한 시각에서 보도할 방침이다. 이미 이달초부터 개국에 대비해 실전처럼 방송뉴스를 제작해 공유해왔다. 신문사가 제작하는 방송뉴스는 취재영역이나 심층성, 완성도면에서 앞설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깊이있는 해설은 신문에서, 현장의 생생한 감동은 방송으로 전하는 등 상호보완적인 역할도 기대된다. 한신협과 채널A는 뉴스제작외에도 지역소개 프로그램도 고정 편성할 방침이다.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나 산업, 사람사는 이야기 등 지역 색깔이 묻어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간 이해와 소통을 촉진하고 균형발전에도 앞장 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도권 중심의 정보 편향도 어느정도 해소될 것이다.△하루 5번 생생한 심층보도전북일보뉴스는 채널A뉴스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채널A뉴스는 하루 5차례 편성된다. 한신협이 제공하는 지역뉴스는 오후 5시40분에 편성되는 채널A 뉴스네트워크를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된다. 오전 6시 편성되는 굿모닝 채널A입니다에서는 신문브리핑이 전해진다. 한신협 회원사 9곳의 당일 신문과 동아일보와 스포츠동아 주요 기사가 매일매일 브리핑된다.또 그날그날 발생하는 주요 이슈는 메인뉴스인 뉴스830을 통해 보도된다. 채널A는 12월1일 오후 4시부터 케이블TV 가입자는 17번(전주완주무주진안장수), IPTV(인터넷TV)가입자는 18번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방송뉴스 제작준비 완료전북일보는 올해초부터 방송뉴스 제작역량을 갖추기 위해 준비해왔다. 동아일보와 채널A, 한신협 회원사 신문기자들과 함께 방송뉴스 제작을 위한 전문교육을 받았다. 본보에서도 편집국 기자들이 펜기자에서 마이크 기자로의 변신을 위한 교육을 마쳤다. 방송뉴스를 전담하기 위한 조직도 꾸렸다. 은수정부장과 이강민 박영민기자로 영상뉴스부를 신설했으며, 정승환 카메라기자도 합류했다. 채널A와의 연계를 위한 방송스튜디오도 마련됐다. 본사 14층에 30여평 규모로 마련된 스튜디오는 시사토론과 대담, 뉴스네트워크 참여가 가능한 시설이다.카메라와 편집기도 최첨단 고화질(HD)장비로 구축됐다. 풀HD급 카메라와 비선형편집기가 갖춰졌다.

  • 기획
  • 은수정
  • 2011.11.30 23:02

김병종 화백은

김병종 화백의 그림을 보면 우선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이 떠오른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가 그러하고 천재성이 그러하다. 여기에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까지 닮았다. 다만 시대가 달라, 채색이 훨씬 자유롭고 시야가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김 화백은 동(東)을 축으로 하고 서(西)를 외연으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다. 또 절제와 자유, 세속과 탈속, 추상성과 구상성이 교묘히 교직한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화선지에 먹이 스며들듯 문자향(文字香)이 배어난다.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과 여행 덕분이다. 더불어 그가 자란 뼈대 굵은 지리산과 첫날밤 새색시의 풀어진 치마끈같이 흐르는 섬진강의 감수성이 녹아있다.김 화백은 그림과 글을 융합한 제3의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우뚝 선 존재다. 천경자 이우환 최종태 등도 있으나 질과 양적인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의 글솜씨는 일찍부터 주머니 속 송곳(囊中之錐)이었다. 중학교 때 벌써 까뮈 보들레르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시집을 낼 정도였다. 대학시절 서울대 대학문학상 등을 시와 산문, 소설로 석권했다. 또 제대 후에는 연극판에서 살며 희곡 10여편을 기성극단을 통해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1980년과 81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과 희곡으로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문학상, 삼성문화재단 저작상을 받았다.글로는 부인 정미경(51) 소설가도 부창부수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이상문학상과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글발부부인 셈이다. 1953년 남원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용성중을 나와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과 파리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500여 회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대영박물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한국미술작가상, 기독문화대상 등을 받았다. 서울대 미술대학장과 미술관장, 조형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와 작품집으로 중국회화연구, 화혼을 불사르고, 김병종의 화첩기행 1-4권, 바보예수, 생명의 노래, 라틴화첩기행, 여행-on the road 등이 있다.두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서울대 미대 대학원과 학부에 재학 중이다.

  • 기획
  • 조상진
  • 2011.11.29 23:02

글과 그림 융합 ‘제3 장르’ 개척한 김병종 화백

미사리에서 양평에 이르는 남한강변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해방구다. 복닥거리는 서울을 피해 20-30년 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수많은 카페촌과 화랑 도예공방 미술관 등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곳인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이석리 82번지. 반달같은 팔당호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김병종 화백(58)의 아담한 별저(別邸)가 있다. 가끔씩 쉬어가기 위해 집을 마련한 것은 1994년. 3년 전 한옥으로 개조했다. 집 이름은 함양당(含陽堂)과 협선재(協善齋). 집 뒷편에는 350년 된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떨군채 서 있었다. 가슴 높이의 대문 양날개들 밀고 들어서니 김 화백이 반갑게 맞아줬다. 인터뷰는 함양당에서 김 화백이 손수 끊인 차를 마시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항상 바쁘신 듯합니다. 근황을 좀 들려주시죠.“생활이라는 게 거의 늘 동어반복적으로 되풀이됩니다. 강의하고, 그림 그리고, 여행 가고…. 그런데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와 일의 네트워크가 방사형으로 넓혀지면서 비본질적인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잦아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동·서양을 접목시킨 독창적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크게 보면 1980년대 바보 예수와 1990년대 이후 생명의 노래, 그리고 1990년대 말부터 계속해온 여행시리즈 등으로 나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바보 예수와 관련, 그리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제가 기독교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제 자각의지가 생기기도 전에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됐죠. 바보 예수는 1980년대의 산물입니다. 대학가에 늘 소요가 그칠 날이 없었는데, 특히 서울대학은 아주 심했죠. 어느 날 석양 무렵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교정을 내려오다가 문득 예수님께서 저 최루탄과 학생들 사이에 서신다면 무슨 해법을 내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피흘리면서 허공을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주 순간적으로 떠올랐고, 그러더니 허공에 연속적으로 형상들이 떠오르는거예요. 당혹스러울만큼. 그래서 허공에 떠오른 형상들을 작업실에 돌아가서 그림으로 표현해 본 것들이 바보예수 연작이죠.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보 예수는 호평과 함께 논란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지금과 달리 그 때만 해도 신성모독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들이 좀 있었죠. 하지만 이것은 저만의 독특한 반어법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애들이 울면서 ‘엄마, 바보야’했을 때와 같은 사랑과 존경과 따뜻함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어였는데 이 단어가 오해를 불러 온 거죠.”- 선생님은 80년대 말 연탄가스 사건 이후 그린 ‘생명의 노??연작은 생명의 기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재밌는 게 문학소년, 문학청년기를 지나면서 하얀 시트가 깔린 병원에 입원해 봤으면…, 예쁜 소녀가 꽃을 들고 위문을 오는 상상을 해봤는데 그것이 현실이 돼 버렸죠. 실제 입원을 해 보니까 양쪽 팔뚝에 주사바늘 몇개씩 꽂고 자야 하는 고통이 결코 그렇게 센티멘탈한 문학적인 게 아니었습니다.”(김 화백은 1989년 11월 23일 새벽 서울 신림동 비좁은 화실 옆 고시원에서 자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50일 가까이 입원했다.) - 죽음의 경험 이후 지속적으로 ‘생명 주제’를 천착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퇴원하고 교수아파트에 살 땐데 2월 중순쯤에 뒷산에 오르다가 두터운 동토을 밀고 올라오는 작은 꽃이 파르르 떨고 있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경외감이랄까, 아마 제가 오래 입원해 꼼짝 못하고 있어서 생명의 아름다움에 주목해 봐야겠다, 천지가 하느님의 창조미술관이구나. 이렇게 해서 생명의 노래 연작이 나왔죠.” - 닥 죽을 사용해 토속적인 느낌이 들던데요?“그건 제가 동양화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화선지를 쓰게 되는데 화선지가 너무 예민하고 너무 하얗게 표백을 시켜서 시골 소년같은 제 감성하고 좀 안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닥종이를 밀가루 반죽처럼 만들어서 마치 분청사기 표면처럼 좀 두툼하고 어떤 재질감을 만들어 보려고 쓰기 시작했는데요. 중국의 화선지 문화와는 다른 우리 닥문화, 수수하고 덤덤하면서도 텁텁한 그러면서도 뭔가 훈훈하고 한국적인 미감이 그런데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뭐 토장국 된장국 장판문화 막걸리 같은 그런 맛을 미술에서도 살려보려고 한 거죠.”- 선생님은 1998년부터 화첩기행 시리즈를 조선일보에 4년 가까이 연재해 장안의 지가를 높였습니다. 감성어린 탄탄한 글발까지 가미해 미술의 대중화에 이바지했습니다. 화첩기행은 글과 그림의 융합에 의한 제 3의 장르라는 평도 들었는데요. 특히 라틴아메리카까지 폭넓게 다니셨는데 힘들지 않으셨습니까?“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남미를 꼭 가보고 싶었어요. 왜냐면 거기에 제가 좋아하던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이 있고, 수많은 화가 음악가 등 제게 정신적인 자양분을 준 많은 예술인들이 살던 곳이니까요. 무엇보다 화가인 저로서 감동적이었던 것은 유교문화권에선 색채에 대한 절제가 있는데 남미는 색 자체에서 생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제가 깜짝 놀라고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게 미술관에 들어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게 아니고 집이고 자동차 의복 남녀할 것 없이 내뿜는 어떤 기운, 낙천성을 색채로 유감없이 발산하는게 저는 감동적이었죠. 그래서 ‘남미가 저에게 색채의 교사였다’ 그런 생각을 하게 했죠.”- 선생님은 ‘여행을 하면 삶의 에너지가 돌아온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글과 그림, 여행의 메카니즘이랄까를 좀 설명해주시죠.“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진득이 앉아서 공부 안하고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 다니느냐’하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들로 산으로 다니고, 그러고 보니까 남쪽의 소도시가 답답한 거죠. 그래서 늘 지리부도를 들여다보면서 도시명을 노래 가락처럼 부르고 다녔는데 실제로 그 도시를 찾아다니면서 느꼈던 기시감(旣視感·언젠가 와 본 듯한 느낌), 그런 환상이 실제와 부딪쳐서 일으켰던 감동이 아니었던가 생각해요. 정말 많이 돌아 다녔죠. 저는 예술적 에스프리랄까, 이런 것을 공감하고 싶은 여행이 대부분이었죠.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몰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란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런 예술적인 에스프리가 넘쳐나는 곳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화첩기행으로 묶으려고 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국내외 합해서 10권 정도가 될 것같고 앞으로 10년 정도 안에 그걸 완성하면 국내외 예술기행으로서 유니크한 형태가 되지 않겠는가 싶어요.”- 그럼 앞으로 갈 곳은 어딘가요?“제 사적(私的) 비전이 공적(公的) 논리의 요청을 받고 있다. 무슨 얘기냐? 조금 거창하게 생각한다면 오늘의 한국사회가 자연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을 유럽 중심의 소위 자연과 인공을 잘 조화시킨 나라들에 대한 기행문을 통해서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생명의 노래를 그렸던 화가로서 이 나라가 우리의 후손이 살아갈만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자연과의 공존을 살펴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내 어렸을 때 봤던 일망무제의 보라색 자운영 밭 같은 것, 형형색색의 야생초 같은 것들이 영국의 코츠월즈(Cotswolds)의 바이버리(Bibury)마을같은데 가면 그대로 다 되어 있어요. 예컨대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어떻게 일찍이 자연과 관계를 맺으면서 건물을 지을 때 자연 앞에 겸손하려 했으며 결국 이런 의식들이 공공디자인이나 도시의 간판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이런 좀 선진화된 의식의 한 부분을 그림과 글로 표현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선생님은 그림뿐 아니라 인문학에도 두루 밝은 것 같습니다. 특히 유가철학 연구를 하셨는데 동양화의 바탕에 철학성이 있다고 생각하신건가요? “동양의 그림이라는 게 원래 문(文)·사(史)·철(哲)·예(禮), 이렇게 얘기합니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이에요. 그림만 가지고 논하지 않고 그림의 이론 같은 것도 노자나 논어 같은 곳에서 끌어오기도 하고, 또 약간의 호학(好學) 취미같은 게 있는데다??”- 같은 주제라도 재료에 따라 그림의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바보 예수’는 골판지에 검은 먹으로, ‘생명의 노???닥종이에 천연안료를, 화첩기행은 아크릴 물감도 거침없이 썼습니다.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내용을 담기 위한 형식과 재료는 마음껏 내가 쓰겠다. 형식이나 재료는 구속받지 않겠다. 여기선 수묵화로 남명 조식(曺植)에 관한 그림을 그렸으면, 남미에 가선 그것 가지고는 안되겠다는거죠. 극채색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고 … 그러니까 어떤 내용을 담는데 있어 형식은 종이가 됐건 나무가 됐건 그건 구애치 않는 거고요.”- 선생님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원의 자연환경, 즉 지리산과 섬진강의 정취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가요? “그렇죠.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전주 남원은 앞으로 경쟁력이 있는 곳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흐르는 섬진강 자락과 멀리 지리산의 억센 뼈대, 그리고 평사리 들판들, 일부러 슬로시티라 하지 않아도 삶의 정말 중요한 정서와 여운을 느꼈는데 여기에는 대단한 노력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도의 문화의식, 감각, 디자인적인 역량, 자연에 대한 의식 이런 것들이 동원돼야 합니다. 전주나 남원도 독특한 조선조 왕도로서의 잔영이지만 아름다운 기와집들, 훌륭한 미각문화, 그리고 유서깊은 역사의 현장들 이런 것들을 잘 살려서 지혜를 모은다면 대단히 유니크한 도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전북의 문화예술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그건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제가 현역으로 있어서, 나중에 내가 원로가 돼 가지고 그 때나…(웃음)”- 끝으로 한 말씀?“저는 정말 감사한 게 그림 그리는 데 대한 아주 설렘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 아침에 일찍 학교를 가는 거예요. 왜 일찍 가느냐? 공부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칠판을 가득 몇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그러면 해갈이 되는 느낌, 그런데 집안이 기울어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 못하게 하려고 많은 핍박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아주 어려운 시절에 조강지처를 만나서 함께 늙어가면서 애틋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종일관 첫사랑인 미술 하나를 가지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사랑을 불태우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감격할 때가 많은 거예요. 이제 본격적으로 할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는가 하는 기대와 설렘이 있는 거죠.”- 오히려 열정이 식는 게 아니라 더 뜨거워 지는 것 같습니다.“더 많은 그림에 관한 파노라마들이 펼쳐지고, 그러니까 천생 환쟁이인 것 같아요. 한 가지 저에게 미덕은 정말 열심히 한다는 거예요. 이거는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참 열심히 빠져드는구나 하는 마음을 스스로 갖는데 그 배후에는 13살 이전에 크레용도 없고 못하게 했던 분위기, 눈물겨운 그림과의 인연, 애틋함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이 저한테 담담할 담(淡)에 늙은이 옹(翁)자, 담옹재라는 당호 현판을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해요. 그래서 제가 노(No), 나는 불꽃 염(炎)자 염옹(炎翁)으로, 꿈꾸는 소년에서 불꽃의 노인으로 갈지언정, 내면에 그림에 대한 용광로가 타오르는데, 담옹 가지고는 만족을 못할 것이다라고 해서… 우스개 소릴했는데, 정말 신기할만큼 열 두세살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설레임이 조금도 죽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천생 환쟁이인데 딴 거 시켰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안타까운 부분은 없으신가요?“다만 안타깝고 회한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뭐냐. 나는 이 나이 정도가 되면 굉장히 성숙된 인격과 성숙된 신앙인이 되는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격도 신앙도 아주 지진아인 상태로, 도대체 진보되지 않는 거예요. 왜 이렇게 되는가 보니까, 그림 그리는 자기 중심적 행위 속에 빠져서 지나다 보니까, 어쩔 때 보면 내가 대단히 유치하고 미성숙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인터뷰가 끝나고, 집 아래 호수집으로 향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며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웠다. 민물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중학교 때 신문배달을 하다 빼먹은 얘기며 친구인 이강래 국회의원과의 자취생활, 형님과 서울에 있는 전북출신들의 활동 등에 대해 들려줬다. 4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 기획
  • 조상진
  • 2011.11.29 23:02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생태하천·관광 명소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영산강 살리기 사업은 현재 98%의 공정을 기록하며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섬진강과 금강 살리기 사업도 각각 75%와 89%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청장 김일평)이 지난 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영산강섬진강금강 살리기 사업 등이 어디까지 추진됐고, 그 사업효과는 무엇인지 살펴본다.△섬진강금강-사업추진 현황 섬진강 살리기 사업은 총 7개 현장에서 1,512억원을 투입해 현재 75%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7개 현장 가운데 익산청이 남원지구 하천환경 사업 등 3곳을 시행하고 있으며, 전북도에서 1곳, 전남도에서 1곳을 각각 시행하고 있다. 주요 사업 내용은 하천환경정비 16개소를 비롯해 제방보강 6개소, 자전거도로 127km 건설, 어도개량 13개소 등이다. 또한 금강살리기 사업은 총 11개 공구중 2공구만 전북도에서 시행하고 있다. 총 620억원을 투입해 하천환경정비 2개소와 제방보강 2개소, 자전거도로 27.2km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의 공정은 89%로 올해 말까지 모든 사업이 마무리될 계획이다. -생태하천 탄생섬진강 살리기 사업은 스토리텔링을 접목, 역사가 살아있는 생태하천으로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문화와 휴식을 주는 삶의 공간을 제공하고자 추진되는 이 사업은 생태하천 복원을 통해 옛날 섬진강의 청정 이미지를 다시 되살려 내고, 다양한 이야기 발굴을 통해 섬진강변의 많은 볼거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자전거도로 섬진강은 그 어느 강보다 경치가 아름답다. 섬진강 발원지부터 바다까지 113km의 자전거 도로를 조성,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토록 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 섬진강 자전거길이 완공되면 전국에 있는 자전거 마니아들이 가장 즐겨찾는 자전거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업효과 우선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통해 강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접목해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도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했다.섬진강변 볼거리가 이 지역의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아울러 113km의 섬진강변 자전거도로에는 전국의 많은 동호인들이 몰려들어 자전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영산강 -사업추진현황 영산강 살리기 사업은 국토부와 농림부, 환경부가 총 2조8000억원을 투입해 영산강의 원래 모습을 되살리고, 문화와 역사, 생명이 살아 숨쉬는 국토재창조 사업이다.국토부에서 2,454만㎥(남산 절반 규모)의 퇴적토를 준설하고, 보 2개소를 건설했으며, 수변생태공간 70개소를 만들었다. 또 담양에서 목포까지 영산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조성했으며, 강변저류지 1개소와 홍수조절지 2개소도 만들었다. 농림부에서는 저수지 14개소의 증고사업을 추진 중이며, 하구둑 개선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이와함께 환경부에서는 하수처리장 66개소와 총인처리장 12개 등 총 103건의 수질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설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영산강에 승촌보와 죽산보 등 2개의 보를 건설했다.영산강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량을 확보하고, 홍수와 가뭄 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호남평야의 생명의 씨알을 형상화한 승촌보는 광주시 남구 승촌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연장 512m이다. 이 중 가동보가 176m이며, 고정보가 336m다. 담수능력은 9.7백만㎥으로 장성댐의 9분의 1수준이다. 4대강 보 중 유일하게 옛물길을 복원해 10만여평의 공원을 조성하는 등 승촌보는 전국 16개 보 중 디자인 콘셉트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죽산보는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84m 전체가 가동보이다. 전국 16개 보 중 유일하게 전체가 가동보로 구성돼 있으며, 담수능력은 장성댐의 3분의 1 수준인 25백만㎥이다. 굽이치는 영산강의 힘찬 기상을 상징화했으며, 4대강 보 중 유일하게 100톤급 유람선이 드나들 수 있는 배나들문을 갖추고 있다.-준설 광주천 합류부에서 무안까지 영산강 구간에서 오래된 퇴적토를 걷어내는 준설을 실시했다. 남산의 절반규모인 총 2,454만㎥의 준설을 완료했다. 영산강 바닥에서 나온 준설토는 농경지 리모델링과 영산강사업 현장 등에서 모두 사용됐다. 준설을 통해 영산강 전체 수위가 2-3m 낮아졌으며, 이로 인해 매년 홍수 위험에 노출돼 있던 나주 영산포 등이 홍수위험에서 벗어나게 됐다. -생태공원 영산강살리기사업을 통해 영산강변에는 총 70개소의 생태공원이 탄생했다.기존 고수부지 내 농경지를 정리해, 곳곳에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조성했다. 승촌보공원과 죽산보공원, 대지예술공원, 다야수변공원, 풍영정 공원 등 대규모 공원도 조성해 영산강을 외면하던 강에서 지역민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자전거 도로 영산강 발원지 담양에서 목포까지 132km의 자전거 종주노선이 탄생했다.호남평야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조성된 영산강 자전거 길은 광주도심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벌써부터 자전거 마니아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광주천 합류부에서 승촌보에 이르는 구간은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경사도 완만하고, 광주도심과 근접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자전거 코스다. 또 승촌보에서 죽산보를 넘어 목포 하구언에 이르는 종주노선은 동호인들이 영산포 등대와 황포돛배, 하구언의 석양 등을 즐기며 하루코스로 다녀오기에 충분한 거리다. -사업효과 우선 홍수조절능력이 커졌다.매년 홍수와 가뭄에 시달려야 했던 영산강이 영산강사업을 통해 안전한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 준설과 보 건설 등을 통해 물 그릇이 이전보다 11배 가량 커졌다. 실제로 올 여름에 지난해와 2009년 홍수기와 비교했을 때 약 2-2.5m 수위가 내려갔다. 수질도 개선됐다. 둔치 농경지 8.7㎢와 비닐하우스 170동을 정리해 녹지벨트를 조성했고, 보를 통해 풍부한 수량을 확보해 수질을 개선했다. 환경부에서 진행 중인 수질개선사업이 마무리되면 좋은 물 비율이 대폭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자전거길과 뱃길복원, 공원 조성 등을 통해 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 기반을 확충했다. 또 보 건설과 고수부지 정리 등을 통해 광주인근 도심에서도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졌다.개방행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승촌보와 죽산보는 물론 영산강 8경 등도 지역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일 500~1,000명, 주말과 휴일에는 3,000 ~5,000여명의 방문객들이 몰려들고 있어 향후 지역경제 활성화의 밑거름이 될 전망이다.

  • 기획
  • 김진만
  • 2011.11.29 23:02

뒤돌아본 1년

12월 한달이 남은 2011년. 전북의 2011년은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전주시내버스의 파업장기화, LH 유치실패, 여름 폭우피해, 반값등록금, 한미FTA 비준 등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게 없다. 지난 1년동안 도내에서 발생한 주요 이슈와 갈등 사례 등을 살펴본다. △실패로 끝난 LH 전북유치 운동 정부가 5월 16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진주 일괄이전을 발표하면서 2개월 가까이 들끓었던 여론은 이내 식어버리고 도내 지자체와 정치권은 후속대책을 요구하며 떡고물 챙기기로 국면전환을 꾀했다. 도청강당에서 김완주지사를 비롯한 대책위 관계자, 도내 정치권은 큰절로 사죄한다고 했지만 도민들은 이명박정부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적하면서도 무능한 지사와 도내 정치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높았다. LH유치에 김완주지사와 도내 의원들과 정치권은 삭발과 마라톤, 대규모 동원집회, 청와대 항의방문과 집회 등으로 올인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오락가락했던 전략의 문제점과 구태의 관제동원 행정을 반복하며 불통의 전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전라북도가 요구한 LH공사 진주일괄이전에 따른 후속대책은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 동반이전 컨벤션센터 및 야구장 건립 국가산업단지 조성 새만금개발청 설립과 특별회계 설 樗甄. 하지만 어느 하나 얻어낸 것이 없다.LH유치에 따른 홍보비와 동원행정을 위한 예산등의 공개를 놓고 도의회와 공방이 벌어지고,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해야 할 도의회는 나약한 의회로 스스로 전락시켰다. 행정사무감사를 벼르던 도의원들은 LH공사유치에 대한 언급자체를 하지 않았다. LH, 껴안고 죽을지언정... 대형걸게그림과 수백수천장의 현수막과 깃발이 난무했던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일 뿐이다. 또한 정부의 진주이전 발표 전에 나온 삼성의 새만금투자 MOU는 여론무마용-사기극이라는 의혹을 남기기에 충분했다.△지금도 계속되는 버스파업 사태지난해 12월 8일부터 시작된 시내버스 파업은 혹한의 겨울을 지내고 봄이 찾아왔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자체의 소극적 대응과 노노갈등, 전근대적인 사측의 태도, 시민사회의 중재와 조정력 미비, 정치권의 수수방관 등이 장기화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4월 26일 5개항에 합의하며 140일간의 파업이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노사협상이 지연되었고 노동자들의 준법투쟁으로 시내버스의 운행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아 시민불편은 계속되었다. 시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버스가 오지 않아 화가 더 난다며 불만을 나타냈지만 분통만 터질 뿐이었다. 파업이 시작된 지 1년을 향해 달려가던 지난 11월 10일에서야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기본합의서에 합의하여 그나마 운행이 정상화 되고 있다. 기본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이후 협상과정과 보조금의 지급여부 등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고 전북고속은 파업 1년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시의회의 뒤늦은 특위구성과 도의회의 특위구성과 그 결과는 구색맞추기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또한 용역보고서를 책임진 전문가라는 대학교수의 증언은 지방자치단체의 용역발주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학생들과 노약자, 도외지역의 주민과 교통약자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지역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시내버스 요금 인상이 거론되고 있으니 분통터질 일이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로 고통받은 도민들지난 8월, 420㎜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로 80여채의 주택과 60여채의 상가가 침수된 정읍시 산외한우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그 때의 불안을 잊지 못하고 있다. 매년 천재와 인재가 반복되는 부실한 재난관리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넘겨지고 있다. 저수지 둑이 무너진것이 직접적 원인인데 천재라고 하니 하늘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고창, 부안, 익산등의 폭우 피해는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에 대한 정치권의 화답은 너무도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며 뜨거운 6월을 달궜던 정치권의 등록금 반짝세일 정치는 2학기에 변함없이 받아든 등록금 고지서에서 찾아 볼 수 없었다. 공약이행과 당론채택, 포퓰리즘 등이 난무했지만 정치권의 반값등록금 대책과 예산반영은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학교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한다고 하니 지자체설립 대학이 우후죽순 따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다수 대학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낡은 리더십 교체와 주민 정치 참여전북도는 잦은 집회에 따른 업무지장을 이유로 도청광장내 집회를 제한하는 조례개정을 추진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유보하는 헤프닝을 연출했다. 김완주 지사가 취임1년을 소회하며 강조했던 도민과의 소통이후 채 한 달이 안되어 나온 광장사용제한 카드는 김지사식 소통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각종 언론의 정치권 여론조사에서 현역의원에 대한 교체요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북의 경우 60%~80%의 교체지수를 보이고 있는 것은 도민들의 민주당 일당 지배에 따른 피로감과 실망과 분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26일 재선거가 치러진 남원과 순창의 단체장 선거결과는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한미FTA 도내 농가 피해 예고한미FTA의 날치기 통과로 도내 농가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하지만 도내 정치권과 지자체는 정부의 통계만을 읊조리고 있다. 한칠레FTA 이후 나온 대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박원순서울시장이 대정부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도민들의 고통을 공감하며 함께 해결하려는 리더들이 필요한 전북이다.지역의 낡은 리더십을 새로운 리더십으로 교체하여 전북의 변화와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노력은 지역의 판을 바꾸자로 대표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도내 국회의원에 대한 교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제 정당들의 혁신에 대한 도민들의 요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구시대적 낡은 리더십으로 한 자리씩 꽤차고 있는 지도층들의 대오각성과 자퇴가 필요함에도 여전히 전북도민단결을 외치며 자리보존에 급급한다면 전북이 나아질게 없다. 요란하기만 했던 전북이 진정한 전북도민의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는 전북이 될 수 있도록 깨어있는 전북사람들의 결단이 요구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김성중
  • 2011.11.29 23:02

한미 FTA 파장과 전망 - 3. 기존 정책 ‘재탕’…뾰족한 수 없어

한미FTA 비준안 통과 이후 전북도는 후속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분야별 대응을 위해 축산업계중소상공인 등과 릴레이 간담회도 했다. 하지만 도 관계자들은 지방 정부의 재정 한계 등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관련 업계는 협정 발효 뒤 실제 피해액은 예측치를 상회할 것이라며, 탁상공론이 아닌 좀더 세밀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지원은 줄고, 부담은 늘어정부와 전북도의 농업 분야 대책은 예산을 기반시설의 현대화와 고부가가치 창출에 맞췄다. 전북도의 내년 주요 국비사업에 따르면 축산 분야의 원가 절감을 위해 풀사료 경영체 장비지원을 올해의 30억 원(국비도비 등 포함)에서 내년엔 40억5000만원으로 책정했다.하지만 풀사료 수확제조비 지원비의 경우 올해 151억2500만 원에서 내년 168억 원으로 늘었으나, 이중 국비는 올해 121억 원에서 내년에는 12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우수농산물 시설보완지원도 올해 10억4100만 원에서 내년엔 11억2000만 원으로 7900만 원이 늘었지만, 이중 도비는 1300만 원이나 줄었다.전북도는 축산농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지난 24일 축산농 ㅃ燦汰寬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이들의 건의사항을 행정기관이 수용하기는 힘들다는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추가 대책사업이 확정될 경우 국비를 최대한 확보할 방침이지만, 오히려 내년에는 구제역 백신 구입살처분 지방비 부담이 각각 15%20% 늘었다며 지방 재정이 열악해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도 신청농가의 20% 정도만이 선정되는 실정이고, 축산업낙농업 농가 등에서 요구한 사항은 상당수가 당장 수용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이에 낙농업계 관계자는정부전북도의 정책이 새로운 것이 없고 그동안 추진하던 사업을 열거해 놓았을 뿐으로, 축산농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전북도의 안일한 대응대기업의 골목상권 잠식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전북도는 토종 유통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존 정책을 확대키로 했다. 내년 도 예산안에 올해보다 10.2% 증가한 332억원을 반영하고, 이와는 별도로 1141억 원의 금융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나들가게 확대 지정과 경영 혁신 교육 등이 실시된다. 신규사업으로 생계형 서비스업을 생산형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도록 전담센터를 설립운영하고, 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종합대책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기존 정책을 연장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한미FTA비준안 국회통과로 상생법, 유통산업발전법 등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전북도는 발효 이전에 이를 건의한다는 방침만 세워놓고 있다.도 관계자는도내는 시장이 작아 미국계 자본이 직접적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낮다며 중소상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업을 확대하겠다. 각종 지원정책으로 나들가게 1~2개만 잘 돼도 성공한 것으로 간주한다며 안일한 대책만을 늘어놨다.전북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최진원 이사장은 현재도 기업형 슈퍼마켓이 기습개점 등으로 사업조정제도의 무용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수치화된 피해액이나 뚜렷한 대책이 없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 기획
  • 이세명
  • 2011.11.28 23:02

24. 의혈(義血) 흐르는 문학의 산실 ‘장수’

장수는 전국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낮은 땅이다. 자본주의적 기준으로 보면 장수는 별 볼일 없는 낙후 지역이다. 하지만 장수는 이같은 분류법을 도도하게 거부한다. 수많은 의혈(義血)들을 낳았고, 전북 문학의 산파 역할을 한 문학인들을 길러내고 배태한 곳. 적막한 동네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장수가 조명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여기서 의혈(義血)의 피가 흐르는 문학의 산실인 장수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고결한 충절의 근원지 장수 삼절무주진안과 어깨를 맞대고 있고 남원이나 임실과도 오래 교통해온 지역이 장수다. 교통이란 관점에서 보면 5개 시군의 중앙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는 쇠락과 적막지경의 이미지로 굳어진 듯하다. 장수를 가다 보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성이 되기를 꿈꾸고 수련하는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살았음 직한 곳을 발견할 수가 있다. 속계와 먼 곳(외진)에 있다는 뜻도 있겠지만 그만큼 삶의 뿌리가 견고하지 못한 민중들의 이상향이라 할 만한 절경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장수삼절(長水三節)이라 일컬어지는 서민 영웅의 모습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인물유형을 짐작할 수 있다. 장수삼절이란 의암 주논개의 충절비와 배리에 사는 통인 백씨의 타루비, 본성역물범 정경손이 바로 그것이다. 주논개는 따로 사당을 만들어 해마다 크게 기리고 있으며 타루비는 숙종 때 장수현감 조종면이 전주감영으로 갈 때 말이 헛딛어 물속에 빠지자 아전 백씨가 손가락을 물어 타루라고 쓰고 투신했다는 전설을 기리는 것이다. 정경손의 이야기는 더욱 비장한데 정유재란 때 왜군이 전국의 향교를 불태웠으나 여기 장수 향교에서는 경을 외면서 내 목을 먼저 베라는 향교지기 정경손의 의기에 감복하고 물러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장수 사람들이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고 오랜 동안 그들을 기리고 가슴에 품고 온 것만 봐도 그들의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이며 삶의 역동성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장수가 배출한 우리말우리글 사랑한 국어학자 정인승 장수 계북면 양악리 출신의 국어학자 정인승(1897~1986) 또한 장수 사람들이 존경하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1925년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1년간 고창고보 교사로 재직하던 선생은 1936년 상경, 조선어학회 한글지 발행 책임자가 된다. 그때 당시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팽개치고 험난한 가시밭길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때는 제국주의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소위, 대동아전쟁이라는 기치 아래 전선을 무한 확장하고 있던 때였고 중국 전선의 후방 병참기지화 되고 있던 한반도에는 대규모 예비검속이 진행되던 때였으니 나이 마흔에 내린 선생의 결단은 의혈(義血)이나 단심(丹心)이란 말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1931년-조선어학회 발족,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공표,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공표 등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어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당시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벌인 일련의 행동들은 죽음을 각오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온전히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또한 장수읍 노곡리엔 소설가 박상륭의 생가가 있다. 박상륭 소설은 지독하게 난해하다는 평들 듣는 박상륭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주 낯선 소설가다. 그러나 박상륭은 한국 소설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존재로 그의 대표작 죽음에 대한 연구는 소설가 지망생들의 소설 입문서로 통한다. 한국 소설계가 그 너비를 자랑할 때 박경리의 토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한국 소설이 해낸 가파른 높이에 대해 말할 때 박상륭을 빼놓고는 그 진실의 잣대를 의심받는다. 한국 소설의 깊이와 삶의 진정성에 대한 궁구는 앞으로도 제대로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 전북 문학 판 커다란 변화 가져온 남민시 동인 등장 1980년대 중반 남민시(南民詩) 동인의 등장은 전북 문학 판에 커다란 충격과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상당수 문인들이 장수 출신이거나 장수에 재직했던 이들이 좋은 작품을 내놓은 데 남민시 동인에 가담했고, 이는 전북작가회의 모태로 이어졌다. 남민시 동인은 문학 청년들에게는 하나의 좌표였고 전북 문단의 새로운 혈기를 불러일으키는 모태이고 산파 역할을 했다. 그들은 글 쓰는 데 자신의 생애를 내던지는 것을 불사했다. 체제의 모순과 인간에 대한 환멸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들의 문학은 청년들의 의지처였고, 행동강령이었으며, 샘을 파는 목마른 사람들의 마중물이었다.전북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안도현 시인 또한 이곳 장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리중학교 재직 중 전교조 사태로 해직, 오랜 재야생활 끝에 복직한 곳이 바로 산서고등학교였다. 안도현 시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산서고등학교 재직 당시에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름다운 산서의 자연풍광과 시인의 필력이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겠다 싶다.교사로서, 시인으로서 안도현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할 때가 있었다. 시인의 산서고 제자인 윤석정 시인으로부터 안도현 시인에 대한 긴 호흡 끝에 짧은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을 겪어봐야 알 것이다. 시인은 이러이러한 사람, 교사는 이러이러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신 분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원하는 참다운 교사상과 시인상을 다 갖추고 계신 분이다.라는 다소 알쏭달쏭한 답변을 들었던 적이 있다.적막하고 쓸쓸하면서도, 고고한 느낌의 장수를 돌아 나오면서 불완전한 현실의 포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많은 이들에게 글쓰는 자의 책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하였다. 또한 근현대사의 상처뿐인 역사 경험으로 인한 자기소모적 패배주의, 자해적 영웅주의, 현실도피적 몽매주의를 깨뜨리고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던 땅이 이곳 장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해의 잔광이 아름다운 팔공산에 붉디붉게 스며들고 있었다.※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이화정
  • 2011.11.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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