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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협·전북일보 공동프로젝트] 자치분권, 주민자치회가 답이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시작됐다. 그러나 민선7기 30년 간 우리나라 정치와 민주주의는 철저한 중앙집권제적 성격을 띠고 있다. 주민 스스로가 삶의 터전을 일구는 게 아닌 지역을 잘 모르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풀뿌리의 사전적 의미는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대중이다. 풀뿌리민주주의는 즉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시민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운영하는 통치체계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주민자치회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21대 국회에 내놓은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의 핵심 역시 주민자치회의 활성화에 있다. 전북에서는 완주군 고산면 주민자치회가 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자치회와 자치분권 지방지치와 주민자치의 핵심은 중앙주도의 행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또 관 주도에서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주민이 주인이 되는 자치분권의 이상적인 길로 제시되고 있다. 주민이 직접 정책의제와 사업을 발굴하면 관은 행정과 재정적인 도움 등을 통해 보조적인 역할을 해 나가는 것이다. 완주군 고산면 주민자치회는 전국 122개 주민자치회 중에서도 주민들이 직접 마을 문제를 발굴해 지역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완주 고산면 주민자치회는 지난 2013년 5월 전국 3400여개 읍면동 중 31개 주민자치회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첫 발을 내딛었다. 올해부터는 제4기 주민자치회가 출범 30명의 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타 지역 주민자치회 보다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고산면 주민자치회는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 주민자치박람회에서 우수 지자체로 4번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제4기 주민자치회는 올 초부터 2년의 임기를 가지고,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대한 협의, 수탁기능 등의 활동을 수행 중이다. 남권희 고산면주민자치회장은 우리 고산면 주민자치회 위원들은 누구보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활동하면서 건강한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주민자치회는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보다 권한과 책임이 강화된 주민자치기구다. 대다수 주민자치위원회는 지역주민의 문화복지여가 프로그램으로 읍면동에 설치된 주민자치센터를 운영관리하는 수준에 그쳤다. 주민자치회는 이 같은 점을 대폭 보강해 다양한 지역현안 등을 포함하는 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라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실행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 주민자치회 향후 시범실시에서 정식 운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고산의 역사집대성에 앞장 2년간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면지(面誌) 주민자치회가 남긴 주요 족적 중 하나는 고산의 역사와 문화, 지리 자료를 집대성한 고산면지가 발간한 것이다. 지난해 3월 발간한 고산면지는 발간추진위원회(위원장 남권희)가 고산면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이를 계승발전시키고자 지난 2년여 간 자료 조사와 집필 끝에 총 5장 665쪽 분량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책에는 고산면의 생활상이 담긴 화보집과, 역사와 문화, 지리자료 등이 풍부하게 수록돼 있다. 면지는 출향면민은 물론 4700명 고산면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하고 그 자체로서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지역개성과 특성에 맞춘 자치활동 고산주민자치회는 주민 스스로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진정한 자치를 실현하고 있다. 실제로 주민자치회는 면사무소 자문역할이나 건의사항 전달에 그치고 있는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와 달리 주민대표성을 갖고 자치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주민자치회 운영은 마을이나 단위로 이장협의체를 만들고, 이 마을주민자치회와 각 분과 대표위원들이 모여 주민자치회를 이끌어 나간다. 이 때문에 주민의 실제 불편이나 수요가 정확하게 반영된다. 예컨대 마을입구 정비사업이나 학교문제에 있어서도 주민들이 실무자처럼 깊숙이 현안을 챙길 수 있다. 자원봉사형태지만 전문성과 자체적인 실행력도 갖췄다. 주민이 동 예산편성 등 주요사업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고 평가하고, 책임도 지는 자치권을 부여하는 일도 맡고있는 것이다. △자치분권은 주민에게 봉사하는 게 본질 고산주민자치회 위원들은 자치회 운영 비결로 봉사정신을 꼽았다. 그리고 이 활동에 면은 물론 지역의 발전과 유지에 기여한다는 마음이 원동력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완주군 고산면 주민자치회는 환경정화 활동과 코로나19 방역 소독 활동도 도맡는다. 또 주민들의 통행이 잦은 도로변과 다중이용시설인 터미널, 버스 승강장 등을 중점적으로 정비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고산면 주민자치회 소식지를 주민들에게 전달하면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고산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고산면 주민자치회 소식지는 분기별로 발행돼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외부방문객, 출향인사에게 전달해 지역의 소식을 공유하는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고산면 주민자치회는 농촌지역 특성 상 영화관의 접근성이 낮고, 바쁜 영농철에 시간 내기가 힘든 주민들을 위해 찾아가는 영화관 도 운영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주민자치회가 이런 역할들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사회에 이러한 활동 자원들을 꼼꼼하게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행정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터다. 남권희 회장은 고산은 물론 우리 지역사회에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주민들이 많다면서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힘을 모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하도록 하고, 또 이런 활동들을 한데 모아 지역사회 발전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 고산주민자치회의 동력이다고 강조했다.

  • 기획
  • 김윤정
  • 2020.11.04 19:37

소순갑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 총재 “효 정착 위한 효문화지원센터 설립 소망”

누구나 늙는다. 또 병들며, 피할 수 없는 날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8월 기준 전북지역 65세 이상 인구는 38만 1591명. 고령인구 비율이 21.1%로 초고령화사회에 들어서 있음을 가리켰다. 노령인구가 빠르게 늘면서 노인인권복지 문제는 이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풀어야 할 국가적 어젠다가 됐다.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 소순갑 총재는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가치로 효(孝)를 강조한다. 소 총재는 한평생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치며 노인복지 향상과 효문화 확산에 앞장섰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23일 전북도가 선정시상하는 제25회 자랑스러운 전북인대상 나눔대상을 받기도 했다. 소 총재를 만난 효에 대해 들었다. -자랑스러운 전북인 대상 나눔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전북에는 나눔 부문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큰 상을 받게돼 무척 송구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상은 효 운동을 함께하는 (사)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과 다른 모든 효 단체 사람들, 효 정신 확산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을 이끌고 계십니다. 연구원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요.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의 뿌리는 노인복지연구원입니다. 전북노인복지연구원은 지역 노인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노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체로 지난 2004년 조직을 구성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총재를 맡았죠. 이후 노인문제를 해결하려면 효가 바로 서야 함을 깨닫고, 사단법인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을 설립했습니다. 현대사회 노인섬김 의식이 약해지고, 노인학대 등 노인 대상 범죄가 느는 이유는 효가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복지는 효와 연결돼 있어요. 청소년들에게 노인문제와 효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가르치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교육협력기관으로 전북효교육원을 설립해 효지도사를 400여 명을 배출했고, 이들 효지도사들은 연구원과 자매결연을 맺은 50여 개 초중고등학교에서 효 교육을 이어오고 있어요. 매년 전북지역 청소년 300~400여 명이 참여하는 효 골든벨대회, 효 학술세미나, 효 거리캠페인도 합니다. 또한,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 한마음대회를 열고 4대가 함께 사는 아름다운 가족상, 75세 이상 부모를 모시는 며느리에게 부모 섬김 으뜸상을 시상하고 있어요. 현재의 노인은 물론 미래 노인이 될 사람들을 위한 효문화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효란 무엇인가요. 전통적인 효는 현대사회의 효와 다를 듯합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전통적인 효는 자식으로서 또는 아랫사람으로서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효를 올리효라 했지요. 현대적 효는 젊은이와 노인의 하모니 HYO(Harmony of Young & Old)입니다. 전통적 효가 일방향적이었다면 현대적 효는 쌍방적이고 상호성이 강조됩니다. 21세기 효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3통(三通) 7행(七行)입니다. 3통은 종교와 종파를 포괄하는 통교(通敎)적인 가치,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통념(通念)적인 정신, 시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통시(通時)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7행은 효를 실천하는 일곱 가지 행위, 天上平下己國自를 의미합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실천하고, 부모스승어른을 공경하며,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자녀어린이제자를 아끼며, 자기 자신과 나라, 자연을 사랑함을 의미하죠. 효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행함에는 차이로 나타납니다. 미래에도 효는 살아있을 것이다. -소개해주시고 싶은 효행 사례나 효를 행함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효하면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이가 떠오릅니다. 인당수에 몸을 던져 아버지 눈을 뜨게 하고자 했으니 이보다 더한 효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효란 덕의 근본으로,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모두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이를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또,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의 은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끝이라 했습니다. 전통적인 효는 속박됨이 많고 이루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벗이나 안부전화 같은 것이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감사함입니다.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부모님을 요양시설에 모시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돌볼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 핵가족화에 따라 불가항력,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셔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늙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두려워하지 않도록 노인 준비 교육이 필요한 것이죠. 국가나 사회는 함께 쾌적하고 안락한 요양시설을 만들고, 혈연치료가 가능하도록 가족 방문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요양시설은 청소년인 손자손녀들이 효를 배우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요. 특히, 효하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부자모(慈父慈母)가 아니라 현부현모(賢父賢母)가 돼야 합니다. 현부현모에게는 나무랄 때 나무라야 하는 고통이 따릅니다. -효문화 확산을 위해 서둘러 마련해야 할 제도나 인프라가 있다면.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효행장려법)이 지난 2007년 8월 3일 공포됐습니다. 이 법은 아름다운 전통문화유산인 효를 국가 차원에서 장려함으로써 효행을 통해 고령사회가 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효문화진흥원을 설치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청소년들의 효 의식 고취를 위해 10월을 효의 달로 지정했죠. 이 법률 시행 후 다수 자치단체가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어요. 효를 장려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후 대전에는 한국효문화진흥원이 들어섰고, 인천시는 효행장려지원센터를 세워 효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했어요. 전북도는 2009년, 전주시는 2010년 각각 효행 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만들었지만, 조례안에 명시된 효문화지원센터 설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예산문제가 크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중한 효문화를 발전정착하게 하려면 효문화지원센터를 하루빨리 건립해야 합니다. 효가 살아야 나라가, 전북이 삽니다. 효문화지원센터를 설립해 올곧게 효를 전파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소순갑 총재는 - 둥지 만드는 상록수 남원 보절면 출신인 소순갑 총재는 전주영생고(4회)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문맹퇴치운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 고향에 독서실을 만들어 청소년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고, 보절중학교에 장학금 100만 원을 기탁해 보은장학회를 설립하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당시 아홉 식구 거느린 가장으로 셋방살이하는 처지에 내놓은 천금같이 귀한 돈이었다. 고향 후배 선도에 젊음을 불태운 그를 지역사회에서는 살아있는 상록수로 불렀다. 1990년대 전주에 정착하면서는 노인 복지로 눈을 돌렸다. 2000년대 전북노인복지연구원을 세웠고, 이후 노인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근간을 효문화로 보고 효운동에 앞장섰다. 전북노인복지연구원을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꾼 배경이다. 라이온스클럽을 창립하는 등 왕성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온 그는 둥지를 만드는 조직의 귀재로도 불렸다. 봉사를 하려면 둥지를 틀어야 한다는 소 총재의 신념은 평생 그를 바쁘게 했다. 공부방을 만든 것도, 장학회를 설립한 것도,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 기획
  • 이용수
  • 2020.11.01 19:21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6)선한 영향력, 설씨 부인 권선문(勸善文)

가을이 깊다. 자연이 빚어내는 풍경이 더없이 아름다운 시기이다. 그 풍경만큼 사람의 심성이 깊어 주변에 좋은 영향을 건네며 물들이는 것을 선한 영향력이라 한다. 이러한 선(善)함을 단풍이 번지듯 주변에 아름답게 펼친 조선판 선한 영향력의 흔적이 우리 지역에 남아 있다. 바로 보물 제728호로 지정된 『설씨 부인 권선문』이다. 『설씨 부인 권선문(薛氏婦人勸善文)』을 지은 이는 원효대사의 아들인 설총의 후손으로 세종 11년 순창에서 설백민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고령 신씨(高靈申氏) 신말주와 혼인한 설씨부인(1429~1508)이다. 그녀의 남편 신말주(1439-1503)는 신숙주의 동생이자 세종 때 공조 참판을 지낸 신장의 막내아들로 1454년(단종 2) 생원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며 관직에 올랐다. 하지만, 계유정란을 일으킨 수양대군이 왕이 되고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자 상심하여 처가가 있는 순창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호를 딴 귀래정(歸來亭)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지내다 훗날 전주부윤과 대사간, 전라수군절도사를 역임했다. 특히 그는 시문에 뛰어나고 글씨를 잘 써 명필로도 이름을 알리며 본인을 비롯한 열 명의 원로들을 묘사한 『십로계첩』을 남겼다. 설씨 부인 또한 문장과 서화에 능한데, 부부가 순창에 지낼 때 불심 깊은 설씨 부인이 강천사 부도암의 중창을 위해 시주를 권하는 그림과 글을 지은 문서로 『설씨 부인 권선문』을 남겼다. 설씨 부인이 불사 참여를 독려한 이 작품은 조선 시대 여류 문인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히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보물이 되었다. 『설씨 부인 권선문』은 원래 문첩이 아닌 한 폭의 두루마리로 된 것을 잘 보관하기 위하여 병풍과도 같은 문첩 형식으로 개장하여 총 16폭이 되었으며, 그 크기는 가로 19.8㎝, 세로40㎝로 모두 펼쳐 놓으면 317㎝가 된다. 일부 보수한 흔적이 눈에 띄어 아쉽지만 대체적으로 보관이 잘 된 편으로 힘찬 글씨체와 더불어 수려한 그림이 조화롭다. 내용을 보면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에는 채색화가 그려져 있으며, 특별하게도 뒷면에는 성화 18년(성종 13년 1482) 7월이라는 정확한 연대와 정부인 설(薛)이라는 인장이 찍혀있다. 조선의 여류 문인들의 작품이 대부분 시조 형식의 짧은 문장인데 비해 그녀의 권선문은 산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장문이다. 조선 시대 여성 문인이 쓴 장문의 필적으로도 의미있지만, 설씨부인의 <광덕산 부도암도>는 사임당 신씨(1504-1551)보다 70여 년 앞선 채색화로 현존하는 조선 시대 청록산수화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하다. 주로 화초와 곤충을 그린 사임당 신씨의 작품과 달리 <광덕산 부도암도>는 설씨 부인이 지은 권선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으로 광덕산에 자리한 부도암의 경치를 소개한 실경산수화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침엽수를 묘사하며 찍은 듯이 그린 산의 형세와 수려한 소나무가 잘 표현되어 있다. 이렇듯 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표현한 것은 물론이고 그 속에 중창 후 모습을 드러낼 암자의 조감도와도 같은 그림을 섬세하게 그려 넣고 설씨 부인 본인이 권선문을 지은 까닭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 글을 보면, 어느 날 밤 꿈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나타나 내일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너와 함께 선한 일을 짓자고 청할 것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되 게을리하지 말아라. 이것이 너의 복을 짓는 큰 근원이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과연 다음 날 아침 평소에 잘 아는 약비(若非)라는 사람이 찾아와 광덕산에 부도암이라는 작은 암자를 세워 지키고 있으나 크게 쇠락하여 새로이 절을 짓고자 시주를 구하러 찾아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이 지난밤 꿈을 생각하고는 손수 선을 권하는 그림과 글을 지어 시주를 구하게 했다는 것이다. 권선문의 내용에는 암자가 크지 않은 규모이다 보니 부인 본인의 시주만으로도 지을 수가 있지만, 옛 사찰을 보수하면 천하의 복을 받는다니 모든 이들이 함께 불사를 일으킴이 마땅하다. 그런 연유로 부도암의 중수에 동참하는 선을 행하면 응보의 복을 받으니 감히 이 글을 써서 모든 이들에게 선을 권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조선 초기 명문가의 정부인이 사찰의 중창 불사에 관심을 갖고 불교의 인과응보법을 설명하며 쓴 글이라는 점도 놀랍다. 『설씨 부인 권선문』은 부도암 스님의 부탁을 받은 약비의 청을 받아 지은 글이라 하여 <증약비문(贈若非文)>이라고도 한다. 이는 처음에 부도암에서 보관하였으나 암자가 다시 쇠락해지자 고령 신씨 귀래공파의 가문으로 돌려주어 보관하다 지금은 국립전주박물관에 위탁되었다. 『설씨 부인 권선문』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사연도 특별하다. 한학자이자 교육자인 정인보가 순창을 찾아 『설씨 부인 권선문』을 접하고 크게 감동하고 1934년 동아일보에 <권선문평해>를 연재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정인보가 『설씨 부인 권선문』을 접한 곳은 순창의 남산대 마을이었다. 이곳은 신말주와설씨부인이 지낸 곳으로 특히, 신말주가 터를 잡을 때 풍수에 귀(貴)가 보장된 장소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제주목사(濟州牧使)등 주요 관직을 역임한 실학자이자 고지도를 제작한 신경준과 그 후손들이 대대로 세를 이루며 살아 귀래정 신말주후손세거지로 불리는 귀한 장소가 되어 1994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설씨부인의 권선문과 인연이 있는 강천사는 887년(진성여왕 1) 도선이 창건한 사찰로 고려시기에는 열두 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로 천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쇠락해졌고 몇 차례 재건하였으나 임진왜란과 625전쟁으로 불에 훼손되었다가 이후 신축한 뒤 비구니의 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찬사를 얻는 강천산은 단풍이 고운 곳으로 매년 11월 초순께 절정을 이루는 단풍명소로 손꼽힌다. 이제는 구름다리도 놓인 관광명소로 더욱 알려졌지만, 곳곳의 이름난 바위들과 비룡폭포로 절경을 지어내며 강천사를 비롯하여 강천사 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2), 금성산성(전라북도기념물 52), 순창 삼인대(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7), 강천사 모과나무(전라북도기념물 97)등의 문화재를 품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에 고운 단풍과 함께 설씨부인의 <광덕산 부도암도>가 그려진 강천사 부근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복을 나누고자 글과 그림으로 선함을 권한 그 선함과 자비로움을 헤아리며 이 가을 깊어가기를 소망한다.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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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0.29 19:17

전북의 ‘정은경 청장’…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전북도민들이 가장 많이 본 인물은 강영석(50) 전북도 보건의료과장일 것이다. 신문 지면에서, TV 화면에서, 코로나19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면 도민들의 시선은 그의 입으로 향했다. 국민들이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지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브리핑을 보며 안타까워했듯, 전북도민들은 강영석 과장의 모습을 지켜봐 왔다. 이 때문에 혹자는 강 과장을 두고 전북의 정은경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가 정은경 청장과 비교되는 이유는, 비단 코로나19 사태에서 대중 앞에 섰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창문 가득 전북도청 어린이집 아이들이 보낸 손편지가 붙은 사무실에서 강영석 과장을 만났다. - 벌써 9개월 넘는 기간 동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먼저, 현재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우리 전북의 환자 발생 양상은 수도권 제외 전국적 상황과 비슷하게, 주로 타지역 유입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주기적 파동 형태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양상 또한 환자 발생 후 얼마간 감소세를 보이다가 다소 방역수칙 준수 정도가 느슨해지면 이내 증가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만, 국가와 우리 국민의 대응 수준이 매우 건강하기 때문에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세계적인 상황과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 전북 코로나19 방역 선봉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지난 기간 동안 전북도의 방역은 어떤 가치를 두고 추진하셨나요. 방역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과 부서들의 협업으로 가능합니다. 저는 단지 맡은 역할에 의해 카메라 앞에 자주 섰을 뿐 선봉이라는 표현은 과합니다. 매일 질병에 대한 정보와 대비대응안들이 전해지면 전북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도지사)의 회의를 거쳐 우리 지역에 적절한 내용을 선택하고, 도민들과 함께 맞서왔습니다. 감염병에 대한 대응은 과학적이어야 합니다만 우리 도민에 대해서는 정서적인 부분도 살펴야 하기에 합리적 선택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 과장님께서 평가하시기에 전북도 방역은 잘 진행됐다고 보시는지요. 평가를 위해서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살펴야 하고, 정량적 부분과 정성적 부분을 구분할 구체적 기준이란 도구도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앞날을 위한 의미에서 평가해보자면, 다수 도민께서 방역수칙을 적극 실천해주신 점과 전북도, 시군 행정이 방역체계 안에서 협업 수행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설마 하는 안이함과 소수 불이행자의 규모가 다수의 지치지 않는 노력을 통해 작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 코로나19에 대한 각종 궁금증도 많은데요. 겨울철이 되면 코로나19가 더 확산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대처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코로나19가 겨울에 시작돼 다시 겨울을 맞습니다. 그때는 코로나19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젠 더 궁금해야 할 소문은 없습니다.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개발과정 중에 있다는 것 말고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가 스스로 지키면 백전백승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로, 해마다 겪던 독감 유행이 올해 초에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것이 정답이기에 마스크 착용 등 대도민 방역수칙 준수 홍보 및 실천 가능한 환경조성을 위한 지속적 노력으로 대처해나가겠습니다 - 이제 과장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동안 밤낮으로 주말에도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과장님께서 수개월 동안 편하게 쉰 날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신지요. 보시는 바와 같이 거뜬합니다. 우리 도민들께서 괜찮은지 물어주셨으면 하는 대상자는 제 동료들이랍니다. 제 동료들이 일했고 저는 조명을 받는 역할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일할 때의 모습만 보셔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오당육락(五當六落)의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라면 저는 무조건 낙방할 것입니다. -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많이 회자된 인물이 정은경 청장입니다. 대한민국에 정은경 청장이 있다면 전북도에는 과장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과장님을 전북의 정은경이라고 부르는 것 알고 계셨나요? 제게 커다란 영광입니다.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청장께서 센터장(국장급)으로 근무하실 때 여러 차례 경험했기에 비교가 저 스스로 지나친 과언임을 압니다. 다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그분도 저도 함께하는 동료들이 필요하다는 것과 국민들을 섬겨야 하는 공무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을 영웅시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없더라도 가능한 체계 구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코로나19 초기에 페이스북 등 다양한 창구를 이용해 과장님의 생각을 표현하하기도 하셨는데요. 코로나19 이전에는 누리소통망(SNS)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딱 한 차례 있었던 기사에 대한 댓글 작성은 저 또한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원치 않는 오해들을 풀어보기 위한 수단으로 누리소통망 공간에서의 지인들을 통해 가능한 많은 도민들께 알려드리고자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현재는 그러한 오해들이 없기에, 가끔 일기장처럼 추억을 남기려는 내용일 뿐이며 2023 잼버리 의료자원봉사자를 모집할 목적으로 향후 개인적 활동 계획은 있습니다. - 기자회견이나 브리핑 상황에서 같은 팀원을 항상 동료라고 부르시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에 대한 말씀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직원(직장의 구성원), 팀원(팀의 구성원), 동료(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실은 이들 모든 호칭이 같은 의미인데도, 직원과 팀원은 상하관계로, 동료는 수평관계로 이해하시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료라는 호칭을 선호하고 선택했습니다. 직장이라는 사회에는 어쩔 수 없는 위계가 있습니다만 위력이 아닌, 구성원들의 적절한 역할 나눔과 상호존중의 동료애로 기능이 가능하기에, 평소 사람은 자연스러울 때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기에, 동료라는 호칭이 분위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선택했습니다. 함께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며, 힘들더라도 우리의 존재는 도민의 안녕을 위함임을 상기하며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리고 함께하겠다는 다짐도 더합니다. -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 및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의료서비스 제공량 등의 이유로 의학적 대응안보다는 생활방식의 변화를 통한 문화적 대응안이 더욱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닐까 합니다. 이동과 만남을 통해서 전파되는 감염병이기에 현재의 삶에 변화를 주는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신속히 정착돼야 한다고 봅니다. 직장 근무 형태 변화, 비대면 회의교육의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내용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도 함께 할 것입니다. - 도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고백합니다. 지금껏 태연한 척해 왔지만, 확진자 발생 대응 시 매 순간이 안타까웠고, 힘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지속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표현을 삼가왔지만 아득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맞는 이가 저 혼자가 아니기에 또한 넉넉합니다. 장기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무증상감염전파까지 존재하기에 누구나 감염병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습니다. 발생사례를 통해서 비난보다는 타산지석 삼는 분들이 더 많아진다면, 서로를 위해 지켜주고 때론 위로해준다면 코로나19 종식은 우리가 기다리지 않아도 우리 곁에 금세 찾아와 있을 것입니다. ●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 함께 한 동료들이 최고 전북도 보건의료과 강영석 과장 비행기 설계자를 꿈꿨던 청년은 30여 년 후 의사이자 보건 행정을 꿈꾸는 전북도 보건의료과장이 됐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평소 겸손하고 품격 있는 언행으로 공직 사회와 의료계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그가 꿈꿨던 보건 행정, 도민들은 위한 다양한 사업 추진에는 여전히 갈증이 나지만,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어 하루하루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말한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최고라는 신념이다. 팀원을 항상 동료라고 부르는 모습에서도 그러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동료라는 단어가 수평적인 분위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선택했다. 강영석 과장은 직장이라는 사회에는 어쩔 수 없는 위계가 있습니다만 위력이 아닌, 구성원들의 적절한 역할 나눔과 상호존중의 동료애로 기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평소 사람은 자연스러울 때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기에, 동료라는 호칭이 좋다고 말한다. 그는 누구보다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며 힘들더라도 우리의 존재는 도민의 안녕을 위함임을 상기하며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리고 함께하겠다는 다짐도 더한다고 밝혔다. 강영석 전북도 보건의료과장은 김제 출신으로 전주고와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 병원에서 근무하다, 2004년 김제보건소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지난 2016년 전북도로 전입, 도민들의 건강과 공공의료 서비스를 증진하는 일을 맡고 있다.

  • 기획
  • 천경석
  • 2020.10.25 19:37

진교훈 전북지방경찰청장 “지역사회 전체가 협력, 치안활동에 참여하는 융합치안 실현할 것”

지난 8월 7일 전북의 치안 수장으로 제32대 진교훈 전북지방경찰청장(53경대 5기)이 부임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진 청장을 대표하는 수식어로는 젊은 리더, 뛰어난 기획자라는 말이 뒤따른다. 그만큼 젊을 때부터 리더를 맡아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이를 토대로 검경 수사구조개혁 등 막중한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진 청장을 만나 부임 이후 소회와 앞으로 진행될 전북 지역 치안, 그리고 경찰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부임 이후 바쁘게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전북일보 애독자, 그리고 도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8월 7일 전북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 진교훈입니다. 부임 이후 수해와 태풍, 코로나19 확산 등 연이은 재해 재난에 대응해 도민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현안을 챙기다 보니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는데요 그 기간 동안 현장 경찰관들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로 주민의 생명을 구하고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며 전북경찰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한층 두터워지기도 했습니다. 또 생활주변 길거리 폭력배와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거짓말 범죄 등 민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범죄는 물론 공권력에 도전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도민의 안전과 법질서 확립을 위해 전북 경찰 모두가 하나 되어 성심껏 일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취임하시면서 3선 치안을 강조하셨는데, 3선 치안 정책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치안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경찰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북경찰은 각종 범죄와 사건사고, 지역사회의 고질적반복적인 문제나 불만을 선제적으로 살피고(先察), 사전에 위험요인을 제어하며(先制), 이를 바탕으로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先決)하는 3先 치안활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치단체유관기관시민사회 등 지역사회 전체가 협력하여 치안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저는 이를 융합 치안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를 통해 치안과 관련한 최상의 해법을 찾아내, 도민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계획입니다. -내년 자치경찰제 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경찰 내부 반발도 있는데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요. 지난 7월 30일 당정청 협의를 통해 자치경찰제 추진방안이 기존 이원화 모델에서 일원화 모델로 변경됐고, 지난달 10일 행안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어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원화 모델에 따르면 자치단체에 별도의 자치경찰사무 집행기구를 두지 않고 국가경찰이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국가경찰사무, 자치경찰사무, 수사사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또한 자치경찰의 민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자치단체장 소속으로 자치경찰위원회를 두고 자치경찰 업무 전반을 감독하는 기능을 갖추기도 합니다. 아직은 자치경찰제에 대한 유동적인 면이 많아 전북청 차원에서 준비 중인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습니다만, 국회 입법 과정과 경찰청의 준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자치경찰제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찰 내부에서 우려와 불안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현재의 일원화된 자치경찰 모델은 국가의 재정상황과 경찰개혁의 필요성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구상한 현실적인 대안인 만큼,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큰 틀의 방향은 유지하면서도 경찰의 의견이 합리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 전북에서 높은 농산물 절도 검거율 보도가 나왔었는데요. 청장님이 구상 중인 치안 정책 중 전북 지역 특성에 맞는 치안 정책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정된 경찰력으로 치안 대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인구구조, 경제상황 등 다양한 부분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우리 지역은 농축수산업과 같은 1차산업 종사비율이 타지역에 비해 약 3배가량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농산물 절도 등 민생을 위협하는 부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추진 중에 있습니다. 또 인구구조 측면에 있어서도 전라북도는 타 지역보다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교통사고, 학대, 치매 질환자 실종 등과 같은 노인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사고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고용상황 악화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약자의 비중도 증가하는 만큼, 경찰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사회적 약자 통합지원단을 구성,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사례가 없도록 지역대학과 협력, 진학 지원 사업을 전개하는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다각적인 방안도 강구, 시행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전북일보와 도민께 전할 말이 있다면. 코로나 19의 확산 사례에서 보듯 세계화와 도시화에 따라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문제도 훨씬 광범위하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지역사회 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함께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완화했지만 도민 여러분들께서도 끝까지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마스크 착용 등 감염병을 막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전북경찰도 도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교훈 전북지방경찰청장은 진교훈 전북지방경찰청장 전주 출신인 진 청장은 완산고등학교와 경찰대(5기)를 졸업하고 지난 1989년 경위로 임용돼 2010년 총경, 2015년 경무관, 지난해 2019년 치안감에 올랐다. 그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과 경찰청 기획조정과새 경찰추진단전북지방경찰청 1부장경찰청 정보국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지난 2011년 경찰의 독자적 수사 개시권을 두고 진행된 검찰 등과의 3박 4일간 합숙 토론을 기억에 남는 일화로 꼽기도 했는데 당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버스를 탔었다. 함께 토론하며 합리적 결과를 만들어 냈다. 치열했던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후 또 그는 국정과제인 자치경찰 도입을 위한 새경찰추진단장을 맡으면서 최근 발표된 자치경찰제 모델을 완성하기도 했다. 경찰 조직사회에서 굵직한 획을 그려온 진 청장은 정보통, 기획통이라는 수식어 외에도 경찰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포용하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로 소문나 있기도 하다. 진 청장은 고향인 전북으로 돌아와 반가움과 더불어 전북 지역 치안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따른다라며 도민들이 보다 나은 치안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끊임없이 노력하고 발전하는 전북 경찰이 되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엄승현
  • 2020.10.18 17:47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5)가보에 담긴 효행의 흔적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물건을 가보(家寶)라 한다. 2019년 TV 프로그램인 진품명품에 특별한 사연이 담긴 가보가 의뢰품으로 소개되었다. <효부 정씨 상서 고문서>라 이름 붙은 병풍으로 조선 시기 용안현(현 익산시 용동면)에 살던 동래 정씨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것이었다. 동래 정씨는 18세 때 전주 이씨 완창대군파 경양군손인 이순면과 혼인하여 줄곧 용안현에서 시부모를 봉양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시어머니가 병이 들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효부 정씨로 불렸다. 병든 시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모신 그녀의 이야기는 전주 이씨의 사람이 혼인했는데 그 부인이 동래 정씨라는 사람이었다. 여러 번 표창이 있었으나 시기가 흐르고 사정이 변해서 왕의 표창은 받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전주 이씨 족보에도 남아있다. 족보에서도 왕이 내린 큰 상을 받지 못한 아쉬움을 엿볼 수 있듯이 당대 효부 정씨의 효행에 감동한 지역의 사람들이 여러 차례 큰 상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 상소문을 귀히 여긴 전주 이씨 집안에서는 이를 가보로 삼아 대대로 물려주었는데 그 후손인 이강재(1941년생)가 1970년대에 병풍으로 제작하였고 지금은 아들인 이종길(1971년생)이 간직하고 있다. 집안의 제사에 펼쳐 놓고 사용하는 병풍에는 어디선가 들었을 법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며느리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서 시어머니께 먹여 병을 낫게 했다는 사연이다. 지극한 효행의 전설이자 지금 시대에는 이해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국 명나라 출신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 인체의 각 부위에 대한 약효가 설명되어 있어, 병든 부모를 살리기 위한 효행으로 더러 있었던 일이라 한다. 말로만 전해 듣던 그 사연이 실재했다는 증거가 1854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6장의 상소문에 자세히 담겨있다. 첫 번째 상소문의 내용에는 정씨의 효행이 소개되어 있다. 용안현 비야동(지금의 비야마을)에서 살았던 효부 정씨의 시어머니가 가래가 끓고 지금의 천식과도 같은 담증을 한 달이 넘게 앓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니고 심지어 대변을 맛보게 하며 하늘에 빌고 정성을 다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 병세가 위독해지자 자신의 왼쪽 넓적다리 살을 칼로 잘라 국을 만들고 약에 타서 마시게 하자 기력을 차린 시어머니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당시 기적 같은 사연을 접한 지역의 사람들이 효부 정씨를 칭찬하면서 관아에 공동으로 상소문을 올렸다. 지역의 유림들을 비롯한 많은 유력인사들이 그 내용을 익히 듣고는 공을 인정하고 효부 정씨에게 상을 내릴 것을 청했다. 그럼에도 큰 상을 내리지 않자 몇 차례에 걸쳐 내용을 더하고 청원하며 상소를 올린 것이다. 마침내 이어가기 어려운 목숨을 소생시켜 조금 다시 살아나는 효험이 있었으니 어찌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응시켜 그러한 것이 아니겠나이까! 이는 실로 열녀전 가운데도 드물게 보이는 지극한 효도입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포상을 내리는 은전을 입지 못한 까닭으로 고을의 사론이 오랫동안 억울하게 여겼습니다... 수의께서 처분해주소서! 상소문에는 자신들의 이름과 직함을 써 직접 추천함을 증명한 흔적이 빼곡히 적혀있다. 당시 직함을 착함(着銜)이라고 부르고 지금의 서명 사인을 수결(手決)이라 했는데, 이 착함과 수결이 같이 있어야 진짜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성명 또는 직함 아래에 도장 대신 자필로 써야 본인과 연결이 된다. 특히 한 일(一)자를 그은 위에 마음 심(心)과 그림 같기도 한 지금의 사인이자 서명이 나름의 부호 같은 조합으로 독특하게 적혀있어 눈길을 끈다. 상소문을 올리면 기관의 장이 결재하게 되는데, 세 번째 폭에는 순찰사가 서명한 것으로 인장이 찍혀있고, 순찰사 중에서도 높은 도순찰사의 사인으로 도읍 도(都)에 순찰사의 사(使)자를 형상화해서 멋들어지게 적은 것이 보인다. 특히, 다섯 번째 폭에는 암행어사라는 직함 끝에 마패 직인이 찍혀있고 30일이라고 날짜가 표기되었다. 이를 보아, 암행어사가 읽어보고 30일 날 처리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암행어사도 감동한 효행이지만 매우 가상하다. 그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더욱 논의해야 할 일이니, 공적인 의논을 좀 더 해서 소문이 무성하게 하도록 기다려라. 내가 지금 결정하기에는 섣부르다라며 아쉽게도 때를 기다리라 이르는 내용과 암행어사를 증명하는 마패를 찍었다. 마지막 폭에는 주인공 부부에 관한 내용이 있어 한 가문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 효행을 다한 사실이 거듭 담겨있다. 방송을 통해 조명된 사연은 가문의 자랑이 된 효행을 널리 알렸고, 고문서를 병풍으로 꾸며 제사 때 선조를 추모하고 활용하는 사례로 선보였다. 또한, 효부 정씨의 흔적이 어린 지금의 용동면 비야마을은 인근 고창마을에 전해지는 단지에 피를 내어 아버지를 소생시킨 효자 이보할지의 사연과 함께 효의 터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 정신을 이으며 익산시는 효 문화도시를 조성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일반적인 날들은 물론이고 명절마저도 서로 손을 맞잡으며 가족의 정을 나누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가을이 깊어가고 찬바람이 부는 시기 가문의 자랑에서 빛나는 지역의 자산이 된 효행의 흔적이 더욱 크고 숭고하게 다가온다.

  • 기획
  • 기고
  • 2020.10.15 18:34

이은서 전주사대부고 무용 특기생 “어려워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가난과 어려운 환경으로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청소년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전북일보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북본부는 인재양성지원사업 공동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두 기관은 학업, 예술, 체육 등 특정 분야에 뛰어난 소질과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경제적 여건의 어려움으로 이를 성장시켜갈 기회가 부족한 아이들을 선발해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이들을 찾아 소개하고 후원자를 매칭해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번 캠페인의 가장 큰 목적이다. 총 3차례에 걸쳐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향해 뛰어가는 청소년들을 소개한다. 그 두 번째 순서는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도 무용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날갯짓을 펼치는 전북의 무용 특기생 이은서 학생을 소개한다. △취미로 시작한 케이팝이 현대무용으로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 음악이 채워지자 한 무용수가 허공을 날아오른다. 음악 선율에 맞춰 무용수의 표정은 웃음에서 무표정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변화했으며 그에 맞춰 몸동작 역시 달라졌다. 음악이 마무리되자 격한 춤사위를 펼쳤던 무용수는 사라지고 앳된 얼굴의 소녀, 전주대학교부설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은서 양(16)이 나타났다. 이 양은 전북 현대무용의 기대 주목을 받는 학생이다. 지난 2018년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처음 케이팝 안무를 배우기 위해 무용학원에 다녔고 무용학원 단장을 통해 현대무용을 시작, 1년도 안 돼 각종 무용 대회를 휩쓸었다. 2018년 3월 춤과사람들이 주최한 현대무용 대회에서 동상을 시작으로 4월 전북대학교 콩쿨 은상, 전국무용대회 금상 등 9개 전국무용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대구예술대학교에서 주최한 무용경연대회에서 특상과 1등 상을, 대한무용학회에서 주최한 전국무용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11개 대회에서 각종 상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이이 양의 무용 인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양은 중학교 시절에는 한 달에 45만원, 고등학교 때는 한 달에 50만원씩 무용 학원비를 지출한다며 여기에 대회까지 출전하게 되면 의상비에 창작비 등 1000만원까지 내게 되는 데 어려운 형편에 내가 무용을 계속해도 될까라는 걱정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어머니 홀로 삼 남매를 키우는 상황에서 적게는 몇백, 몇천의 비용이 들어가는 무용을 하기에는 이 양의 어깨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무용에 대한 열정과 꿈으로 연습을 할 때에도 이 양은 내가 내일 무용 연습에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무용을 해야만 했다. 무용이라는 예술 특성상 아름다운 춤 선을 보여주기 위해 식단까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춘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시련의 연속이었다. 뛰어난 실력에도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 이 양의 꿈 앞에 나타난 것은 어머니와 무용학원 측의 응원 그리고 초록우산의 인재양성사업이었다. 2018년 어머니를 통해 이 양의 무용의 열정을 알게 된 한 지역아동센터장의 추천으로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렇게 초록우산의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되면서 이 양의 꿈도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오롯이 무용에만 집중하자 자연스럽게 각종 무용대회 입상 결과로 이어졌고 실력 덕에 원하던 전주대학교 사범부설고등학교 무용 특기생으로 진학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 양은 진학을 목표와 더불어 무용을 통한 다양한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어머니의 응원, 학원장님의 지도, 초록우산의 지원 등이 있었기에 무용을 할 수 있다. 제가 할 수 있는 무용을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지금은 한국종합예술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무용으로 할 수 있는 뮤지컬 등 다양한 세계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은서의 꿈이 지속됐으면 박윤희 다인무용학원장 박윤희 다인무용학원장과 이은서 양의 만남은 특별했다. 2016년 초등학생이었던 이 양은 케이팝 댄스가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홀로 학원을 찾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무용으로는 늦은 나이였지만 남들과 다른 골격과 신체 비율 그리고 춤에 대한 열정이 빛나면서 이 양에 대한 재능이 학원장 눈에 띄었다. 그는은서가 케이팝을 추는데 너무 눈에 띄었다며 무용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중요한데 은서는 그것을 타고났고 인성도 너무 바른 아이여서 어머님께 적극 현대무용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현대무용,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늦게 시작한 무용지만 이 양은 금세 또래 아이들이 1년에서 2년 걸리는 무용에 대한 이해를 6개월 만에 끝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무용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입상으로 성취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양에게 족쇄처럼 남아 있는 어려운 집안 형편은 도약을 막기 시작했고 이에 슬럼프가 시작됐다. 하지만 초록우산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 양의 실력은 다시 회복세를 달렸다. 박 원장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은서가 빨리 어른이 된 것 같다면서 그러다 초록우산 지원을 받으면서 고민을 덜게 됐고 은서가 무용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용이라는 것이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은서가 항상 무용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무용수가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초록우산 인재양성사업은 단순히 아이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닌 아이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사업이다며 사업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꿈을 펼치기도 하지만 더불어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이 양처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지원이 없어 좌절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은서 양에 대한 후원 문의 및 인재양성사업 참여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북본부(063-276-2800) 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홈페이지(www.cahildfund.or.kr)로 하면 된다.

  • 기획
  • 엄승현
  • 2020.10.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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