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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전북도 행정부지사 “도민 가려운 곳 긁어주는 효자손 역할 할 것”

지난 2016년 이후 4년 만에 전북도로 돌아와 업무에 돌입한 최훈 행정부지사(56)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거쳐 오며 쌓은 모든 경험과 역량을 남김없이 쏟아 붓겠다고 강조했다. 최 부지사는 내가 보고 배운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고향에 돌아온 의미라고 거듭 강조했다. 도 근무경험이 다양하고 중앙부처에서도 전북 현안을 놓지 않은 만큼 업무파악이 빠른 모습도 다른 부단체장들과의 차이점 이었다. 지난4일 전북도청에서 만난 최 부지사는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결연했다. -4년 만에 전북도로 복귀하셨습니다. 그간 전북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행정부지사로서 맡을 현안이 더욱 복잡하고 많아졌습니다. 행정부지사로 부임하면서 각오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있어야 할 곳에 다시 왔다는 느낌입니다. 고향에서 행정부지사로 근무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영광이고요. 코로나19 극복과 수해 복구로 힘든 시기에 중책을 맡아서인지 저에게도 의미가 남다릅니다. 일단 도민이 어려울 때 현장에서 함께 고통과 아픔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달려왔습니다. 빨리 현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취임식도 편지로 대신하고, 바로 업무에 돌입했어요. 그 편지에 가수 싸이가 한 말을 인용했습니다. 능숙한 사람이 여유를 부리는 것은 멋이 없고, 능숙한 사람이 절실하게 하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한다.는 구절인데요. 저는 도에서 근무 경험이 다양하고, 중앙부처에서도 한 번도 전북을 잊은 바 없기에 도정 현안이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능숙하다고 자만할 순 없지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각오로 누가 보아도 최훈 저 사람 절실하다 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4년 만에 돌아온 전북의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공무원들의 눈빛이 확 달라졌어요. 자강불식, 전북 자존의 시대 등을 꾸준히 강조한 효과인지 엄청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자신감과 자부심 절박함이 느껴져요. 그만큼 전북을 바라보는 중앙부처의 시선도 변화했습니다. -행정부지사 직을 맡고나서 송하진 도지사께서 특별히 강조하거나 주문하신 부분이 있습니까. 중앙부처와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 달라. 주력산업 발전과 코로나19 등 극복을 항상 고민하고 최선을 다하자. 이런 것들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경청과 소통을 주문 하셨는데 직원들의 애로사항도 꼼꼼히 챙기고, 의회와 산하기관, 언론과도 늘 귀를 열고 소통함으로써 도민이 체감하는 정책을 잘 추진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전북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현안 세 가지를 꼽는다면.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코로나19 대응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지방정부의 염원은 국가예산 확보가 있겠지요. 전북에서 빠르게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는 공공의대 설립과 탄소산업 고도화가 시급하다고 봅니다. -여러 재난이 겹치면서 전북도의 가용 예산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일 테지요. 코로나19 지원을 위해 전국 최초로 1차 추경에 2455억 원을 편성했고, 2차 추경으로 7682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이 예산만 해도 1조가 넘어요. 예비비와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도 상당 부분 소진됐습니다. 그러나 우리 도는 코로나19로 진행이 어려운 행사관련 경비를 대거 삭감하고, 강도 높은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가용 재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행정부지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도정 살림입니다. 앞으로도 재정 운영에 무리가 없도록 철저히 관리해나가겠습니다. -코로나19로 행정당국을 둘러싼 환경에 변화가 많습니다. 일각에선 재택근무 활성화로 공직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도 나옵니다. 재택근무는 일터가 자택으로 변경되었을 뿐 일하는 방식은 동일하고, 우리 공무원들의 긴장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정부 원격근무서비스를 활용해 내부 망을 공유하고, 차질 없이 부서장들의 업무지시가 이어지고 있지요. 근무 종료 시에도 업무 결과를 확인하고 제출받도록 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비대면 업무는 새로운 시대의 보통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이미 새 시대 업무 문화로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그만큼 업무 효율성과 공직기강의 균형도모가 중요하고 보고, 알맞은 엄부 방식을 도입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가치와 생활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필요성이 불가피하가고 보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위기관리와 통합의 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행정부지사의 역할과 철학은 무엇입니다. 행정부지사는 중앙정부 경험이 다양한 만큼 가교 역할에 앞장서야 합니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가 주는 예산의 의존도가 높은 만큼 중앙정부를 잘 알고 대처할 수 있는 지방정부가 유능한 지자체로 평가받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예산과 조직, 인사 등에서 많은 부분 중앙에 예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공모사업을 하려고 해도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과 흐름을 알지 못하면 거절당하기 십상이죠. 지방정부나 부단체장이 일을 잘 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에서의 경험이 풍부해야 합니다. 저는 행정안전부 등 중앙정부에 일하는 와중에도 항상 전북을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전북을 위해 꼭 필요한 인적네트워크를 쌓아왔습니다. 이제 저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전북발전에 아낌없이 쏟을 생각입니다. 도와 중앙정부, 국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고, 도민들이 가려운 곳은 확실히 긁어주는 효자손이 되고자 합니다. 전북 현안이 막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해결을 위해 뛰겠습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일하겠습니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그 과정만큼은 즐겁게 만들겠다는 게 제 또 다른 목표입니다. 그 이유는 저 혼자라면 괜찮지만, 저와 함께하는 직원들이 즐거워야 더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 잘하고 즐거운 공직사회가 되려면 말과 마음이 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래서 눈높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누구와 함께 일하더라도 그의 눈높이에 맞추면서 일하겠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겸허한 자세로 다가가겠습니다. ● 최훈 전북도 행정부지사 진심의 리더십, 정책과 정무감각 균형 지난달 24일 취임한 최훈 행정부지사는 진심어린 소통으로 타인을 감동시킬 줄 아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오랜 공직생활을 바탕으로 한 강한 정책추진력과 친화력을 활용한 정무감각도 균형 잡혀있다는 평가다. 딱딱한 분위기를 싫어하며 후배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대신 엄격할 땐 엄격한 성격으로 도 기획관, 기획관리실장, 남원부시장 등을 역임하면서 도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특히 2년 간 남원부시장을 역임하며 예산확보나 공모사업 선정 등에 두각을 나타낸 점을 인정받았고,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아 퇴임식 당시 눈물을 보이는 공무원도 많았다고 한다. 최훈 행정부지사는 전주 출신으로 전주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36회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이강모김윤정 기자

  • 기획
  • 전북일보
  • 2020.09.06 17:35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무대를 바라보는 방법

올해 초 전북일보 시민기자가 뛴다의 원고 지필을 제안받고 약속한 다섯 번째,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이다. 지난 5개월 동안 세상은 수없이 반복되며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고, 모진 풍파 속에서도 세상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원고 마감일은 왜 이리도 빨리 다가오는지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으로 나 스스로를 쥐여 짜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와 문장 한 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수없이 글에 옮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마치 공연을 만드는 연출가의 자세로 글을 써왔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여 진다는 것,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은 말 일수 있으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예술가에겐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을 것 같다. 평생을 타인 앞에 서서 나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니 말이다. 아마도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외줄 타기를 하는 곡예사의 심정과 같지는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때론 예술가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볼 때가 많다. 그리고 항상 생각한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이렇게 나는 어느 순간 공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에 대해 점차 배워 나가고 있었다. 현재 우리 지역은 전북문화관광재단 주최로 전라북도 공연예술 페스타(festa)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2017년부터 진행된 본 사업은 본래 전라북도 무대공연제작 지원 사업에서 시작되어 현재와 같은 페스티벌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 지역 내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 단체들이 창작 초연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는 사업으로 다양한 방법과 시도로 지난 3년간 여러 작품들이 출품되어 지역 내 활발한 창작 활동이 이어질 수 있었다. 심지어 최근엔 대기업에 지원을 받아 서울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작품도 점차 생겨나고 있다. 본 사업에서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황들을 관찰할 수 있다. 작품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고 배우가 돋보이는 부분도 있으며, 단체마다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특별히 이 중에서 공식 연출가로 이름을 알리는 초연 작품에 집중했다. 많은 공연을 모두 찾아다니며 볼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챙겨 볼 수 있었던 작품은 소리꾼 출신 연출가 송봉금의 꽃 찾으러 왔단다였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많이 되었던 작품이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던 공연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무엇보다 나는 나와 같은 소리꾼 출신의 연출가가 탄생된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여성 연출가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많은 작용이 되어주길 바랐다. 작품의 내용과 완성도가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수준급으로 잘 정돈되어 있어 여러 방면에서 송봉금 연출이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작품들이 궁금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작품을 하고 있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몹시 부럽기도 하였다. 오늘만큼은 그들이 주인공인 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느끼고 있을 성취감이 무엇보다 내겐 절실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대중 앞에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 한편 그들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아주 많이 불안하고 두렵고 떨리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인 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헐벗은 모습으로 세상에 홀로 서있는 심정은 아니었을까? 혹여 죄를 지은 심정으로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심정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예술을 대했던 방법과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보진 않았을까? 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보았다. 사실 내가 그러했다... 작품을 하나둘씩 만들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항상 느끼는 감정들이었으며, 창작의 시간은 점차 예술에 대해 점점 철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생각된다. 무엇보다 작품을 만들면서 그동안 다른 공연들을 무의식적으로 평가하고, 비방해왔던 모습들을 반성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작품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 많은 부분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공연엔 완벽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공연을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예술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들키지 않음으로써 우린 좀 더 완벽한 공연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데, 결국 예술가는 공연 중 관객이 발견하지 못한 작은 실수라 하더라도 누구보다 자신의 실수를 잘 알고 있기에 그 상황을 자책하고 고뇌하며 또다시 완벽한 공연을 위해 연습을 반복한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보여주기 위해 관객 앞에 서기를 준비한다. 수많은 연습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무대, 관객에게 무대는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동시에 예술가에게 무대는 어떤 존재였던가?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언제부터인가 무대라는 공간이 평가를 하는 시험대가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웃고 즐기는 표현의 모습이 있어야 할 공간이 어느덧 평가를 하게 되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성공과 실패만 인식되는 공연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우리에겐 보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연스러운 예술이 필요하다 이야기 하고 싶다. 그리고 이젠 결과 중심보다 과정중심으로 작품을 바라봐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꼭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부터 예술가도 관객도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누군가에게 보여 진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짜 예술을 만들어 내는 힘과 예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길러지길 바라며 그동안의 시민기자가 뛴다의 글을 마무리 해본다. /이왕수 문화예술공작소 예술감독전주문화재야행 기획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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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2 16:32

[참여&소통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이제 퍼스널 모빌리티 시대! 지역 인프라 구축 준비 필요

코로나19 시대가 계속 이어지면서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 변화에 대한 대응전략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기대하고 있으나, 개발 완성 시기가 불투명해 불안이 고조되면서 비대면 사회 활동이 증가라고 집단 활동보다는 개인 활동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에 각국들은 코로나 시대에 따른 경제활동과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에 대한 경제적 충격 완화를 위해 1, 2, 3차 추경을 했다. 주요 국가들과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는 추경 사업 내용을 보면 비대면을 통한 다양한 사회 활동 활성화와 지원을 위한 사업들이 주력을 이룬다. 우리나라는 한국판 뉴딜 사업으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 뉴딜 등을 강조한다. 디지털 뉴딜 사업은 21개 신산업 분야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5G, 3D프린팅, 블록체인, 지능형 반도체, 첨단소재, 스마트 헬스케어, ARVR, 드론,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지능형 로봇, 자율형 자동차, O2O, 신재생에너지, 스마트시티, 핀테크, 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 같은 기술이 혁신 개발되고 응용과 활용력이 증진되기 위해서는 데이터(Data), 네트워크(Network), 인공지능(AI) 부분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사람과 물건 등 이동과 활동에 따라 순간순간 생성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기반을 구축하고, 5G 등 네트워크를 고도화해 다양한 비대면 활동 분야를 육성하고 사회기반(SOC)을 디지털화 해 궁극적으로 사회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적인 경계 흐름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 시대에 따라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중 사람들 활동 패턴과 이동 교통수단 등의 변화가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이에 사람과 물건 이동을 다루는 교통 분야 디지털 뉴딜은 다양한 교통 분야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들을 디지털화하는 것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험대라 할 수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 혁신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뉴딜에 따라 공유 활용이라는 개념 속에 이뤄질 모빌리티 서비스 혁신 사업 중심에 개인형 이동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활성화 사업이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이동 수단은 먼 거리를 더욱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이었다면, 퍼스널 모빌리티는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최고속도 시속 25km, 차체 중량 30kg을 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 현황과 전망 퍼스널 모빌리티를 대표하는 개인형 이동 수단으로는 전동휠, 전동킥보드, 전기자동차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제품들은 2019년 기준 해외에서 4313만3000대 판매됐고, 국내 시장은 19만6200대(1066억 원)로 파악된다. 특히 미국은 공유시스템이 활성화 돼 2010년 32만 건, 2017년 35백만 건, 2018년 84백만 건 등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오는 2025년에는 400억~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를 활용한 공유서비스를 2019년 말 기준으로 19개 서비스 사업자가 2만1410대 제품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세에 카카오, 네이버,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기업들도 시장에 뛰어들었고, 해외 모빌리티 공유서비스 업체 등도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발 맞춰 행정안전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은 개인형 이동 수단 성능과 안전, 이용 방법, 공유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법률과 정책 등을 마련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도 공유서비스에 적합한 제품 개발과 생산에 주력하고 있어 그 수요와 이용성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 증가에 따른 지역 인프라 구축 개인 이동 수단으로 퍼스널 모빌리티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제도와 인프라가 지원되지 않으면 사회적 병리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문제다. 개인형 이동 수단 교통사고 발생은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으로 증가했다. 숫자적으로는 적은 것 같지만 매년 2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사고가 발생하면 27% 정도가 중상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개인 교통수단 사고는 개인 교통수단이 일반 자전거 등에 비해 빠른 속도와 높은 가속도, 무거운 중량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위험도를 가중시키고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에 경우 자전거도로나 보행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교통수단 간 전용권을 지닌 도로 구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통행 관련 제도 및 제품 안전기준 보완, 이용자의 안전 인식 및 문화 의식 확산, 보행자-개인형 이동 수단-자동차 등 같이 혼재된 환경에서 안전문화 정착 등과 같은 제도와 규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은 보행자와 자전거 도로 등 좁은 폭, 포장 불량, 도로 단차, 이동 장애물, 보행자 이동 혼재 등에 따른 교통시설 보완, 교통 안전성 확보 같은 도로 인프라 구축과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도로 진출입로와 교차로 같은 교통사고 위험 구간에 대한 안전시설 개선과 충돌 방지를 위한 교차로 사각지대 같은 시각정비, 안전시설과 안내 표지판 등이 잘 보이도록 시인성 증진 같은 다양한 이동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 또 퍼스널 모빌리티 이동 수단으로 활용이 늘고 있는 전동보드는 규정을 잘못 이해한 경우가 많아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개인별 이동을 선호하고 있고 이에 따라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공유라는 개념이 이제는 디지털 뉴딜 정책에 따라 더욱 활성화되어 갈 것이다. 이에 따라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도 공유 개념에 따라 더욱 이용성이 증진될 것이다. 따라서 이동에 대한 안전성 확보를 위해 도로설계, 교통정책 수립, 운영, 유지 관리 등과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성 증진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기울여 한다.

  •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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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1 17:11

[에디터가 만난 전북인물] 한국무용가 애미킴 "전주 무대 바탕으로 한국춤의 세계화 이룰 터"

한국무용가 애미킴(43)은 전주를 무대로 한국춤의 세계화를 꿈꾼다. 단단한 내공을 바탕으로 해서다. 30대 초반 무용단을 이끌고 전국무용제에 전북대표로 출전해 금상을 수상하며 이미 실력을 검증받았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에 중국 유학길에 올라 한국무용의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다. 그의 춤 진수는 지난 2017년 자신이 대표로 있는 애미아트에서 발표한 창작무용 백제 아리랑에서 보여줬다. 이런 춤을 공짜로 볼 수 없다고 자발적인 후원회까지 결성됐다. 애미킴의 공연은 이 때부터 자리예약제와 유료 공연으로 진행됐다.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유료 공연을 이어간다는 것만으로도 전북무용계에 신선한 바람이었다. 젊은 춤꾼들의 설 무대가 갈수록 좁아지는 엄혹한 현실에서 애미킴이 한국무용의 미래를 어떻게 펼쳐나갈지 궁금했다.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2017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올린 백제 아리랑작품이 무용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떻게 만들어졌나. 대본부터 안무, 공연까지 1인 3역을 한 창작무용이다. 아버지 금파춤부터 중국무용, 내 춤을 녹여낸 작품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에 흐른 찬란했던 백제의 유산을 전주의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사설 무용단으로서 대작을 올리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당시 무대예술지원 사업을 받아 무대에 올렸는데, 지원비(1500만원)로 턱없이 부족해 적금을 깨서 제작비에 보탰다. 그만큼 작품에 열정을 쏟았다. 중국틱하지 않느냐, 역사적 허구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하게 만든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1시간 만에 긴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받았고, 춤으로 어떻게 그리 무한한 상상력과 감동을 줄 수 있느냐는 말에 힘이 났다. -백제를 소재로, 전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설 레퍼토리로도 가능할 것 같은데. 완성도를 더 높여 재공연, 순회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여력이 되지 못했다. 백제문화권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사실 공연 후 입소문을 타고 공주시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공연을 위해 최소 5000만원 정도 비용이 든다고 했더니 고개를 돌리더라. 고향인 전주를 거점으로 한 전주만의 색깔을 가진 전주춤으로 시작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작품인데, 오히려 다행이지 싶기도 했다.(웃음) -부친인 금파 선생의 춤을 모태로 하면서 창작무용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는지. 두 분야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금파춤보존회 이사장으로서 금파춤 보존과 재해석 작업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애미아트 대표로서는 창의적인 춤으로 글로벌을 지향하고 있다. 모두 다 중요한 과제며,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무용의 세계화에 관심이 큰 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몇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8일 금파춤보존회 주최로 마련한 풍남춤락페스티벌 국제안무가전도 그 일환이다. 2006년 출발한 이 페스티벌은 작년부터 국제전으로 바꿨다. 인터넷 등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홍보해서 여러 팀들이 참여 의사를 나타냈으나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본선에 오른 팀마저 경선에 나오지 못해 아쉬웠다. 중국 유학 때 만난 중국 무용가들도 한국춤의 국제화에 든든한 응원군이다. 애미아트 차이나로 불릴 만큼 끈끈하게 연결돼 있고, 실제 여러 작품들을 같이 하고 있다. -한국무용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 여러 나라 무대에 올리는 작업도 필요할 것 같은데. 통역이 필요 없는 언어가 춤이다. 국제무용제 같은 곳에 나가서 우리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 춤을 보고 초청하고 싶다는 단체도 있어 기회가 닿으면 해외페스티벌 무대에 나설 생각이다. -젊은 춤꾼들이 설 무대가 없어 무용예술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현실은 어떤가. 일반인들의 무용에 대한 관심도가 아주 낮다. 공연 관람객이라야 무용인이나 지인 정도다. 체면치레 관객이다. 대학의 무용학과가 폐지되고, 학교 졸업 후 전공을 살릴 길도 많지 않다. 휘트니스 강사, 요가 강사로 생계를 꾸리는 현실에서 무용의 앞날이 어둡다. -전북의 경우 무형문화재도 상대적으로 많이 있고, 전통무용 공연도 활발하지 않나. 원로 무용인들은 탄탄하다. 그걸 받쳐줄 젊은 세대 무용인이 없다. 무형문화재만 하더라도 나이를 따진다. 무용경력이나 실력, 가치 등을 바라보지 않는다. 변질되기 전에 작품을 복원해서 전승 발전시키는 게 문화재 지정의 목적일 텐데 그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전주가 전통을 중시하는 만큼 전주를 소재로 한 창작무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젊은 춤꾼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지역의 무용도 발전할 수 있고 전통춤도 살릴 수 있지 않겠나. -백제아리랑 작품도 그렇지만, 전주 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큰 것 같다. 나의 춤 뿌리인 전주를 어떻게 춤으로 표현할까 항상 고민한다. 복원된 전라감영을 소재로 한 최근 한 무대에 오른 작품을 보면서 솔직히 너무 속상했다. 전통 춤도, 창작 춤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다. 백제아리랑은 큰 규모의 작품이기에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 소수 인원으로, 혼자라도 전주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코로나19로 무대활동이 막혔는데. 올해 중국에서공부 잘 했다고, 전주에서 공부 마치고 왔다고 각각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었는데 준비 중에 코로나를 만났다. 내년쯤 개인 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발표회는 그동안 내가 공부해온 전통무용, 신무용, 민족무용, 창작 무용을 망라할 계획이다. 또 전북문화관광재단의 공연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동화를 춤으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로, 한국무용과 발레 등을 현대무용단과 협업으로 진행한다. 코로나 때문에 야외 행사가 어려워 제작된 내용을 유튜브로 공개할 예정이다. -앞으로 포부는. 한국춤이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유학을 마친 뒤 전주로 돌아와서 외국 무용가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외국 무용가들 중 코로나 이후 자신들과 동행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예술 인지도가 높은 나라의 큰 페스티벌에 한국춤이 소개된 적이 없는 데 내 춤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 애미 킴은 -전통무용과 창작무용 넘나드는팔색조 -금파춤부터 최승희춤, 애미스타일 춤까지 애미의 무대는 음악과 사람, 춤이 하나가 된다. 관객을 홀린다고나 할까. 살풀이 12분짜리 공연이 1분처럼 금세 지나갔다. 작년 국제춤페스티벌에 참가한 중국에서 온 무용가들이 페스티벌 개막공연 작품인 애미킴의 호적춤살풀이를 보고 천상의 춤 같다고 극찬했다. 고요하면서도 심금을 울린 마력이 애미 춤에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김제 청운사에서 진행된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제에서도 애미 춤은 마력을 보여줬다. 본인은 스스로 감정대로 몸짓했는데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사납고 야무진 평소 무대와 달리 관객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힐링 춤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애미를 보고 팔색조라는 평이 따른다. 전통무용을 할 때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원숙함으로꼭 느네 아버지다는 평가가 따르고, 창작무용을 할 때는 과감한 변신으로 또다른 애미가 나온다. 살풀이 공연만 하더라도 어제와 오늘의 무대가 다르고, 매번 새로운 느낌을 던진다. 애미킴의 아버지는 전북 무용을 개척한 금파 김조균 선생이고, 어머니 역시 금파의 춤 동반자로 무용협회 전북지부장을 지낸 김숙 선생이다. 오빠인 김무철씨는 한량무 전북무형문화재 보유자다. 무용가 집안에서 태어난 애미가 춤꾼으로 성장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3~4살 유치원 때부터 춤을 접했으며, 6살 때 모습이 공연 팸플릿에 등장한다. 38년째 춤과 살아온 셈이다. 학교 시절(전북사대부고-경희대) 각종 학생무용제를 석권했고, 32세 때 최연소 전국무용제 금상을 거머쥐면서 안무자 연령 제한이 만들어지게도 했다. 금파 작고 전인 20세까지 선친으로부터 춤 기본과 전통춤을 배우면서 한국춤을 정립했고, 그 후 무용단을 다니면서 바깥춤(창작춤)에 눈을 떴으며, 한국무용의 전설인 최승희에 꽂혀 신무용을 익혔다. 최승희 춤을 배운 재일교포 백홍선으로부터 3년여간 최승희 주요 작품을 사사한 애미는 최승희의 보살춤과 무당춤을 발표해 한국 무용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중국 유학을 통해 중국 여러 민족의 춤을 익힘으로써 그의 춤 레퍼토리가 다양해졌고, 춤세계 또한 그만큼 넓어졌다. 그가 중국에서 받은 박사 학위 논문은 <한국궁중무 학연화대처용무의 합설 연구>. 한중문화의 연관성을 조명하며 한국궁중무에 담긴 정치사회적 현상과 의미를 분석한 논문이다. 세계적으로 풀어내고 연구할 수 있는 무용기호학을 동원했다. 중국 유학을 마치고 왕성한 활동을 꿈꿨던 그에게 코로나19는 여러모로 악재다. 춤추고 가르치고 작품을 만드는 게 사실상 올 스톱되면서다. 유학 전 그가 이끌었던 애미아트가 잠정적으로 해체된 상태다. 중국 강의도 코로나에 막혔다. 코로나가 가져온 많은 변화에 이제 그가 변화로 답할 때다. 그는 자신의 춤과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유튜버 진출도 고려중이란다. 지금도 피터 팬의 삶을 꿈꿉니다. 세상에 찌들거나 또다른 생각을 하면 재미있는 작품, 순수한 작품이나 나오기 어렵지요. 동화 속마음으로 사회 돌아보고 삶을 들여다보며 살고 싶은데, 철들지 말아야 할 텐데, 코로나가 나오면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철이 드는 것 같아 두려워요. /김원용 사회문화교육 에디터

  • 기획
  • 김원용
  • 2020.08.31 16:48

장영달 전 의원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 이끌어”

우석대학교 명예총장인 장영달 전 국회의원이 내년에 있을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아직도 감독, 코치가 제왕으로 군림하고, 비인간적인 문화와 폭력이 난무하는 체육계의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장 전 의원은 가슴 아픈 것은 과거에도 최숙현 선수가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대한배구협회 회장 등 한국 체육계에 수십 년간 발을 딛고 있던 장 전 의원. 그를 이달 20일 서울 여의도동 광복회관에서 만나 한국 체육계가 직면한 문제, 개선해야 할 방향, 대한체육회장 후보로서의 공약을 들어봤다. -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결심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입니다. 해방 이후 조선체육회를 설립해서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고, 그것이 대한체육회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여운형 선생은 독립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도, 건강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도, 힘찬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국민 체육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철학이 대한체육회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한국 체육에서 다 사라지고, 현재 고(故) 최숙현 양의 사건까지 와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국민의 에너지를 모아 한국 체육을 혁신하지 않으면, 한국 체육은 국민들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겠다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고(故) 최숙현 양의 사건이 출마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셨다고 볼 수 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한국의 체육환경과 문화가 시대의 추이에 비해 너무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도 비인간적인 문화와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목도했습니다. 감독의 횡포는 선수도 부모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8년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 숙소를 이탈하자 감독은 어머니에게 직접 딸이 정신 차리려면 뺨을 때려야 한다고 강요했고, 감독 요구를 못이긴 어머니는 딸을 때렸습니다. 감독이 시키는 대로 안하면 딸의 주전과 국가대표 자리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체육계는 과거의 잘못된 문화를 답습하고 있고, 선수는 죽음으로 항거했습니다. 이런 현실과 문제는 체육인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입니다. -체육회장이 되셨을 때 이런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범정부적으로 전반적인 체육문화에 대한 개혁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이 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고(故) 최숙현 양 사건은 대한민국 어느 기관이 억울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해소해주지 않는 절망 속에서 발생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책임처가 대한체육회입니다. 하소연을 누차 했는데도 해답이 없었습니다. 총체적인 과정을 통해 체육계에 혁신 환경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해당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전향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해법을 듣고 싶습니다. 우선 선수가 불행한 체육 풍토를 완전히 혁신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학교 체육에서부터 감독, 코치가 제왕으로 군림하는 관행도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대개부모들이 돈을 걷어 감독, 코치의 수발을 드는 체육회 운영위원회가 있는데, 이것은 철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독, 코치는 선수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고, 수평적인 토론을 통해 선수의 출전, 교체, 이밖에 모든 운영을 결정해야 합니다. 감독이 제왕적인 지시를 하는 게 아니라 토론에서 결론이 나오면, 그것을 반드시 모든 체육 단위에서 기록해 보존해야 합니다. 감독 기관이 이를 감독할 때는 모든 사실을 공개 게시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 출마 공약이기도 합니다. -방금 설명하신 내용을 법이나 제도로 규정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으십니까. 법과 제도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정치권과 체육계가 공동 연구를 해서 어디부터 처방해야 하는 지 결론을 내야 합니다. 당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체육 혁신위원회를 1년 간 운영한 자료가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에서는 이를 두고 탁상공론이라 평가하지만, 제가 볼 땐 자의적인 판단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현장 지도자와 선수들이 그 자료를 기반으로 토론하고 연구해서 법과 제도의 미비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혹시 한국 체육계에서 모범적인 사례는 없나요. 지금 경남 FC설기현 감독이 유럽형식을 도입해서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선수로 뛰면서 느끼고 체험한 것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예전 같은 경우 내일 창원에서 시합이 있다면, 창원시 숙소에서 머무는 선수들이 경남 FC캠프가 있는 함안군으로 와서 훈련을 했습니다. 즉 본 시합이 열리는 경기장 인근에 있는 선수를 시합 하루 전날 함안으로 불러들여 훈련을 시킨 뒤, 다시 경기장으로 돌려보내는 셈입니다. 참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합 당일 날 숙소 앞에서 두 시간 정도 모여서 워밍업을 한 뒤 시합에 돌입합니다. 선진국 방식인데요. 오히려 이 방법이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선수들 입장에선 다음 날 시합을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컨디션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에, 시합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가이드를 그리기 쉽다고 합니다. 창의력이 발현되는 거죠. - 출마를 권유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십 수 년 전부터 체육계와 정치권에서 대한체육회장을 맡아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당시 체육계의 경험이 풍부한 누군가가 맡아줘야 하는 데, 그 적임이 장영달이라고 했습니다. 현재는 헌정회에 소속된 전직 국회의원들이 지지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계열 의원들이 많은데요. 일례로 장경우 전 의원, 이상희 전 과학기술부 장관 등 체육계에 관계가 있고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들이 지금 나서줘야 될 때가 됐네요라고 응원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퍽 나로서는 고맙고 고무적인 상황입니다. 나만 위기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한국 체육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이런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 출마를 권유받을 만한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체육계에 수십 년간 발을 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2년부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5년간 했고, 국회의원 축구연맹회장, 제34대 대한배구협회장도 역임했습니다. 특히 국민생활체육 전국배구연합회장(제3,4,5,5,6대)은 무려 15년간 했습니다. 중고교시절 축구선수 경력도 있습니다. 덕분에 축구를 통해 한 일 의원 간, 세계 의원과의 친목 도모 활동을 벌였습니다. -현 이기흥 회장의 대세론도 있습니다.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기 때문인데, 어떻게 극복하실생각이신지요. 이기흥 회장이 IOC위원이라 체육회장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IOC위원을 해야 하니까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IOC위원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체육의 미개적인 부분은 그대로 가져가도 되는 것이냐라는 논리가 됩니다. 모순이죠.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대한체육회와 IOC를 선진국처럼 분리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 정치권에서도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추이를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법 개정이 되면 현 체육회장이 구태여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듣고 있어요. -상당히 비판적인 견해를 펼치시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IOC위원 때문에 대한체육회의 발전을 중단한다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죠. 정치권에서 그런 제도적인 보완을 한다면 따르겠지만, 그게 안 된다고 해서 지금까지 미개화 돼있던 체육계를 방치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듣기로는 지금 대다수 한국 체육인들, 체육회장을 뽑는 당사자들이 현 체제가 유지된다면 한국 체육을 미래 지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따라서 한 개인이 체육회 회장을 맞느냐 안 맞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 체육계가 국민들에게 맞는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느냐라는 수준에서 결정돼야 하는 거죠. - 대한체육회 회장 출마를 정계 복귀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계에 복귀할 생각은 없습니다. 후배들을 지원하고 육성할 사명감은 갖고 있지만 다시 나서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전북체육회도 민간체육회장으로 전환되고, 회장도 바뀌었습니다. 전북 출신으로 전북 체육계의 발전에 대한 조언 한 마디 듣고 싶습니다. 지금 모든 예산 지원은 국가와 지방정부를 통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형식만 민간체육회장으로 변경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 민간 체육지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연계되지 않으면 체육 발전이 불가능합니다. 저는 정치적인 경험과 체육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정립된 문민화된 체육 단체의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 보완을 일으켜 내야 합니다. 그래야 운영 및 민영화된 운영이 원활하게 되면서 체육이 발전하는 것이지, 그것이 보완되지 않으면 체육은 후퇴합니다. 체육 발전은 반드시 모든 국민의 행복이라는 차원에서 생활체육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 장영달 우석대 명예총장은 1948년 남원 출생. 함안중학교, 전주고등학교, 국민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전북 전주 완산구, 새정치국민회의)을 시작으로 2008년제17대(전주 완산구갑, 통합민주당)까지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제49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2001~2005년)과 제34대 대한배구협회 회장(2005~2008년)을 지내는 등 체육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특히 학창 시절 축구선수로 경남을 대표해 활동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경남 지역 축구인들이 그를 경남FC 대표이사로 추천하기도 했었다. 2018년 제13대 우석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퇴임후명예총장직을 맡았다. 정장을 입고 다녔던 기존 총장들과 달리 청바지를 입고 다녀 학생들 사이에서 청바지 입은 총장으로 불렸다는 후문이다. 우석대학교 총장 재직시절에도 체육 활성화를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전북 현대 모터스 최강희 감독(현 상하이 선화 감독)을 학교에 초대해 전북 지역 축구 붐 조성과 발전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육경근 기자, 김세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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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30 16:09

[뚜벅뚜벅 전북여행] 군산 청암산 에코라운드길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청암산"

군산 청암산은 과거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곳입니다. 군산호수를 둘러쌓고 있는 산으로 군산시는 군산을 대표하는 생태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청암산 에코라운드` 사업을 추진해 군산시민과 여행객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생태관광을 할 수 있도록 꼬마 숲 놀이터, 생태연못, 대나무 숲과 갈대밭 조성, 전망대 등 다양한 편의 시설과 자연 생태 관찰 시설을 만들고 있습니다 청암산 에코라운드는 자연 생태탐방로는 수변로와 등산로가 있습니다 수변 산책로는 13.8km 약 3시간 45분 소요되고, 등산로는 8km로 약 2시간 30분 소요되는 코스가 있는데 중간중간 등산로와 수변로를 오고 갈 수 있으므로 개인 취향과 체력에 맞게 다양한 코스를 탐방할 수 있습니다 청암산 에코라운 자연 생태탐방로에서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수변 산책로와 등산로를 이용해 청암산 정상까지 다녀오는 코스로 주차장 - 억새풀길 - 산림욕장 - 왕 버드나무 군락지 - 삼거리 쉼터 - 청암산 정상 - 삼거리 쉼터 주차장까지 돌아오는 4.5km 1시간 50분 정도 소요되며 청암산 에코라운드 하이라이트 코스라 할 수 있습니다 청암산 에코라운드 하이라이트 자연 생태 탐방 코스는 넓고 깨끗하게 정비된 주차장에서 출발해 군산호수 제방으로 올라가 토끼와 거북이하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면서 시작합니다 제방 좌측은 햇빛에 반짝이는 군산호수가, 우측에는 군산 가을여행 명소로 알려진 억새풀밭 길이 있는데 억새풀밭 길은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가을이면 하얀 억새꽃이 활짝 피는 아름다운 억새풀밭을 볼 수 있습니다 억새풀밭을 지나 제방 끝 정자 쉼터부터는 수변 길을 따라 힐링 넘치는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며 한여름에도 선크림이 필요 없을 정도로 원시림 울창한 시원한 그늘이 아래 수변로를 천천히 걷다 보면 유실수공원이 나오고 산림욕장이 나옵니다 산림욕장은 소나무와 편백나무 그늘 평상과 배드 쉼터에서 가족 친구들과 삼삼오오 누워 담소를 나누며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데요. 요즘 코로나 사태로 외출하기 힘든 주말 청암산 삼림욕장 시원한 그늘에서 책 한 권 들고나와 삼림욕을 하면서 읽는다면 휴식과 건강 그리고 마음의 양식까지 가득 충전할 수 있습니다 산림욕장을 지나면 갑자기 생태 탐방로가 어두워지는 대나무숲 죽향길이 나오는데 한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울창한 대나무 숲 속에 대나무 하트를 만들어 청암산에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포토존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수변로 생태 탐방로에서 다음 만날 테마는 청암산에서 유일하게 연중 물이 마르지 않은 습지를 이용해 만든 생태 연못으로 군산호수에서 서식하는 수생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으며 햇빛에 반짝이는 군산호수 풍경과 호수 위에서 유유자적 놀고 있는 철새도 볼 수 있습니다 수변로를 걷다 보면 통나무가 이곳저곳에 쌓여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쌓아 놓은 통나무는 곤충들이 사는 아파트로 곤충들이 사계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흐르던 땀이 쏘~~옥 들어갈 정도로 하늘을 가린 초록빛 대나무숲 죽향길을 지나면 군산호수에 발을 담고 오랜 세월을 견뎌온 왕버드나무 군락지가 나옵니다. 역대급 장마가 잠시 멈춘 사이 군산호수 물이 깨끗하지 않았지만 오래된 왕버드나무가 물이 비치는 아름다운 반영 풍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 왕버드나무 반영은 물이 맑은 날이면 사진 작가들이 방문하는 사진 촬영 명소이기도 합니다 대나무숲 끝에는 청암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군산과 청암산에서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들을 소개하고 습지의 중요성과 생태보호에 관련된 정보를 얻어 갈 수 있습니다 청암정을 지나면 수변로와 청암산으로 올라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청암산 정상을 향하는 비스듬한 오르막을 5분 정도 오른 후 청암산 최고의 난코스 오르막을 오르면 청암산 정상 전망 쉼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청암산 정상에는 군산호수 풍경과 서해 고군산군도, 부안 변산반도까지 볼 수 있고 지평선이 보이는 호남평야의 시원한 뷰도 볼 수 있습니다 청암산 정상에서 되돌아가는 길, 한결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걷다 보면 미처 못 봤던 소소한 볼거리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변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군산호수 제방에 도착하면서 힐링 넘치는 군산 청암산 에코라운 생태 탐방로 하이라이트 코스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청암산 에코라운드 수변 생태 탐방로는 곳곳에 포토 포인트와 테마가 있어 가족, 아이들, 친구와 연인들이 함께 오감으로 호수와 숲 체험을 하면서 힐링 할 수 있으며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언택트 여행지로 최고 조건을 갖춘 군산 여행지로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글사진 = 신총용(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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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8 15:03

[뚜벅뚜벅 전북여행] 제90회 남원 춘향제가 열리는 남원 광한루원 야경

코로나19가 만든 세상의 앞뒤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수도권 코로나19 재확산은 지난 대구의 상황과는 결을 달리합니다. 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수도권의 확산은 곧 지방으로 대확산을 뜻하는데요, 앉으나 서나 코로나19로부터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를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물리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은 필수이고 이른바 코로나 3밀 장소 방문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무조건 삼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3밀 장소가 아닌 야외 툭 터진 남원을 대표하는 경승지 광한루원을 거닐며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산책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광한루원 야경을 감상하면서 호젓하게 나만의 피서를 즐겨볼까 하는데요, 지난 8월 초에 다녀온 광한루원의 야경을 언택트 여행지로 소개합니다. 광한루원은 대한민국 명승 제33호로 광한루원의 주요 누각인 광한루는 보물 제281호입니다. 조선시대 중기에 조성한 대한민국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마치 궁궐의 어느 후원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광한루원의 역사를 보면 평안도 도수문사 겸 평양윤 판한성부사를 지낸 황희(1363~1452)가 1418년 세자 폐출의 불가함을 극간하다가 태종의 진노를 사서 교하로 유배되었다가 남원부로 이치 되었는데요, 그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라 부른 것이 광한루원의 시작입니다. 그 후 1422년 황희가 유배가 풀려 서울로 돌아가자 1434년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1444년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도 순찰사였던 정인지가 누각에 올라 풍경을 감상하며 광한청허지부라 칭하며 광한루라 불렀습니다. 1582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요천의 물을 끌어다 광한루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커다란 연못을 파고 삼신산과 함께 오작교를 조성했으며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26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600년의 역사를 가진 광한루원은 남원 사람들의 긍지이자 자부심입니다. 그에 못지않은 것이 또 하나 있죠. 바로 춘향전입니다. 그래서 남원하면 광한루원과 춘향전의 고장이라고 하겠는데요, 고전소설 <춘향전>에서는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를 구경하다 그네를 타는 기생의 딸 성춘향을 만나게 되는데, 둘의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는 늘 아슬아슬한 밀당으로 사람들 애간장을 태워 판소리 중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그동안 수많은 창극과 신소설, 현대소설, 연극, 영화로 만들어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땅거미가 짙어지자 삼신산의 방장정과 그 너머 대숲으로 조명이 들어옵니다. 오늘 광한루원 야경을 보려고 왔는데 꽤 늦은 시각에 조명이 켜집니다. 광한루원은 낮에는 입장료가 있지만, 오후 6시부터 밤 9시(동절기는 20시)까지는 야간개장으로 입장료가 없습니다.​ 입장료 안내 어른 (19세 이상 64세 이하) : 3,000원 청소년(13세 이상 18세 이하), 군인 : 2,000원 어린이 (7세 이상 12세 이하) : 1,500원 무료입장은 다른 관광지와 동일 / 30인 이상 단체 할인 / 춘향테마파크 연계 할인 야경을 잘 찍으려면 ​ 야경 사진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가 진 후 20~30분 후인 매직아워 때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여명과 비슷한 하늘이 파랗게 표현되기 때문인데요, 삼각대만 있으면 누구나 멋진 야경을 찍을 수 있습니다. DSLR로 야경 사진을 도전하려면 기본적으로 삼각대와 릴리스 그리고 카메라 세팅 등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합니다. DSLR 카메라는 캐논 기준 M 모드로 맞추고 ISO는 전문가라면 100으로 고정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동으로 놔도 됩니다. 조리개도 중요한데요, F9 이상 광량에 따라 조절해 주고 셔터속도는 3초에서 감량에 따라 30초까지 사용하면 됩니다. 화이트밸런스는 자동으로 놓으면 무리 없는데요, 가장 중요한 삼각대가 없다면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도록 사물을 이용하는 것도 팁이 되겠습니다. 야경 사진은 자주 찍어봐야 하고 또 위와 같은 조리개와 셔터속도, ISO를 맞췄다고 해도 광량에 따라 다르게 나오기에 여러 번 조절해 가면서 가장 잘 나오는 값을 기억했다가 촬영하면 되는데요, 완벽한 사진은 없듯이 조그마한 진동에도 사진의 품질이 달라지니 릴리스보다 2초 타이머로 찍기를 권장합니다. 광한루원 북문은 완전히 개방되었군요. 광한루원에는 모두 3개의 출입문이 있는데요, 오후 6시가 되면 무료입장이니 야경을 감상하려면 저녁 식사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밤 9시까지 개방하기 때문인데요, 광한루원 내부에는 매점도 야간에는 문을 닫기 때문이며 음식물과 음료 반입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광한루원 오면 누구나 건너는 오작교입니다. 광한루는 보물이어서 사방을 막고 관계자 외 출입을 엄금하는데요, 광한루보다 160년 정도 후인 1582년 만든 오작교는 자유롭게 거닐 수 있습니다. 그만큼 튼튼하게 지었다는 말인데요, 견우와 직녀 설화에서 음력 칠월 칠석날 밤에 두 남녀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까치들이 은하에 모여 자기들 몸을 잇대 만든 다리가 오작교인데, 광한루원 오작교도 이도령과 성춘향이 사랑을 속삭인 장소입니다. 이제 점점 더 어둠이 짙게 내리고 있습니다. 야간개장이 밤 9시까지인데요, 하지가 지난 지 꽤 되었기에 해도 일찍 떨어져 폐장까지 1시간도 채 안 남았군요. 그런데도 광한루원의 야경을 보기 위해 찾아온 가족단위 관광객을 물론 연인들은 광한루원의 밤 풍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카메라는 렌즈로 들어온 빛을 통해 현상을 기록하기에 늘 적당한 양의 빛이 필요합니다. 빛의 양이 많으면 하얗게 나오고 많으면 까맣게 나오는데요, 빛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조절해 얼마든지 보이는 그대로의 피사체를 찍을 수 있습니다. 완월정입니다.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기 위해 지은 수중 누각으로 춘향제의 주요 무대입니다. 1963년 당시 남원 군수였던 채기묵 군수 때부터 연차계획을 세워 광한루원 정화공사를 시작하며 1971년 신축한 누각으로 방장정과 함께 현대에 이르러 세운 것입니다. 정자 이름대로 연못에 달이 비쳐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구름에 달도 숨었습니다. 영주각부터 쭉 섬 3개가 이어집니다. 왼쪽 방장정이 있는 지리산부터 가운데 대숲이 있는 봉래 금강산 그리고 영주각이 있는 한라산까지 세 개의 섬입니다. 영주각은 1582년 세웠다고 합니다. 1582년이면 남원부사 장의국이 연못을 파고 삼신산과 함께 오작교를 조성한 시기인데요, 용성지 누정편에 의하면 전라 관찰사 정철이 삼신산을 만들 때 한주섬에 연정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관찰사 정철의 주도로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원을 조성한 것인데요, 정철은 섬 하나에 녹죽을 심고 다른 하나에는 백일홍을 심고 그리고 나머지 섬에는 연정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 연정이 바로 영주각입니다. 제90회 춘향제 9월 10일 온라인으로 열려 광한루원에서는 해마다 춘향제가 열립니다. 1931년 춘향사당을 세우면서 시작된 춘향제는 올해가 90회로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인데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90회 춘향제는 매년 5월 단오일에 열렸던 것을 9월로 변경해 열립니다. 다만, 그동안 성대하게 열렸던 춘향제와 달리 올해는 비대면 온라인으로 열린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유튜브 `남원와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90회 춘향제 일시 : 2020.09.10(목) ~ 09.13(일) 춘향제향 : 09.10(목) 10시 유튜브 `남원와락` 실시간 중계 춘향선발대회 : 09.10(목) 14시 유튜브 `남원와락` 실시간 중계 대표브랜드공연 : 09.11(금) 20시 유튜브 `남원와락` 실시간 중계 춘향국악대전(예선) : 09.12(토) 10시~18시 춘향문화예술회관, 함파우소리체험관 춘향국악대전(결선) : 09.13(일) 10시~18시 안숙선명창의 여정, 함파우소리체험관, 춘향문화예술회관 ​ 제90회 춘향제는 `춘향, 사랑을 90th(고) 하다`로 지나온 90년을 기념하고 다가올 100년을 향해 나아가는 사랑이 가득한 춘향제로 만들 계획인데요, 춘향제 대표 브랜드 공연인 퓨전뮤지컬 `춘향은 살아있다`는 9월 11일 20시 남원 광한루원에서 열리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불린 사랑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연입니다. 춘향제의 하이라이트 전국춘향선발대회는 지난 8월 15일 1차 예선을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거행했고 2차 예선은 8월 16일 같은 장소에서 실시했는데요, 본선 참가자는 8월 29일부터 9월 10일까지 12박 13일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합숙을 하게 되며 본선은 9월 10일 19시부터 22시까지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립니다. 본선에 올랐다고 해도 최근 7일 이내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출전이 불가한데요, 올해 특별한 점은 인기투표를 통해 춘향이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인기투표 투표 기간 및 더 자세한 내용은 춘향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chunhyang.org 오늘 춘향제가 열리는 남원 광한루원 야경과 함께 제90회 춘향제 소식을 전해 드렸는데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가 코로나19 시국에서 명맥이라도 잇기 위해 축제를 취소하지 않고 온라인 비대면 유튜브로 중계되는 참담한 현실이 가슴 아프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1931년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하에서도 춘향의 정절과 순수한 사랑을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키고자 시작한 춘향제가 코로나19로 전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유튜브 `남원와락`을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는 제90회 춘향제에 함께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글사진 = 심인섭(전라북도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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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8 14:35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83) 신선들의 거처, 진안 수선루

문밖을 나가지 않고 천하를 만나는 것 즉, 집에 누워서 하는 유람을 송나라 소옹은 와유(臥遊)라 했다. 조선의 이익은 몸은 누워 있지만 그림을 그려 눈앞에 펼쳐놓고 천하의 산수를 관람하는 것이라 했으며, 정선의 그림에 발로 밟아서 두루두루 다녀 본다 하더라도 어찌 베갯머리에서 이 그림을 마음껏 보는 것과 같겠는가라는 구절이 달려있듯이 이는 조선 선비들 사이 유행을 이끈 문화였다. 요즘 말하는 조선판 랜선 여행이 와유였던 것이다. 당시 우리 고장의 명승지인 지리산과 변산을 비롯한 여러 풍광을 담은 그림과 유람기를 나누며 상상을 더해 이야기꽃을 피운 선조들은 지금 우리와 닮아있다. 요즘 우리는 추억이 깃든 사진을 들춰 보기도 하고, 가고픈 곳의 모습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 기나긴 장마와 태풍 그리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를 지켜보며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이 커져만 간다. 엄청난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남원에서 조선 선비들의 유람 일번지였던 광한루원이 건재하다는 소식에 그나마 안도하며 야경이 빚어내는 모습을 따라 달빛야행을 시작한다. 광한루원 앞의 요천을 따라 내려가 상처투성이 섬진강 물길을 만나는 곳에서 상류로 거슬러 오르다 보면 진안의 수선루를 만나게 된다. 신선이 잠자는 곳으로 이름 지어진 수선루(睡仙樓)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굴에 세워진 누각이다. 수선루가 지어진 사연도 특별하지만,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바위 동굴 틈 사이 딱 들어맞게 끼워 넣듯이 기막히게 세워진 모습은 가히 독보적이다. 천연 바위굴에 누각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암석이 진안의 마이산과 같은 역암이기 때문인데, 역암은 모래와 진흙과 자갈 등이 섞여서 굳어진 암석으로 표면에 벌집같은 구멍이 많아 짓기가 수월했을 것이라 알려졌다. 그런 물성을 지닌 암반이라지만, 바위굴 공간의 크기에 맞추어 조화롭고 아름답게 지은 솜씨가 놀랍다. 신선이 잠자는 곳이란 명칭에 걸맞도록 온돌을 놓아 아늑하게 방을 들이고, 아궁이는 뒤로 빼놓았다.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연과 어우러지게 지어진 수선루는 암벽 틈새로 빛을 끌어들였으며 상부로 휘어진 창방(기둥머리를 연결하는 부재)을 사용하고 바위 틈새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출입구를 조성하였다. 또한, 암벽을 따라 샘물길을 내고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조망 공간을 배치한 안목이 빼어나다. 수선루 지붕의 전면은 겹처마로 전통 기와를 쓰고 후면은 홑처마에 돌너와를 사용하여 지역 건축의 특성을 지닌 채 바위굴 안에 암반과 맞닿은 지붕의 모습을 기막히게 보여주고 있다. 방의 천장은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한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는데 대들보 위 벽면에는 신선을 연상시키는 흰 수염의 사형제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이, 내부 벽면에는 사계를 표현한 산수화 등 민화가 그려져 있으며 2층 중앙에는 수선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수선루는 자리한 그 모습도 아름답지만, 만들어진 사연도 귀하다. 조선 1686년(숙종 12년) 연안 송씨의 진유와 명유 철유 서유 사형제가 효심을 담아 지은 것이다. 송경을 시조로 한 연안 송씨 일가는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에 세거한 가문으로 인근 마을에서 내다보이는 섬진강 건너 바위틈에 부친과 부친 친구들이 신선놀음 하듯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신선처럼 지내며 늙지 않기를 기원하여 지은 누각이기 때문이다. 효행으로 지어진 누각은 훗날 목사(牧使) 최계옹이 우애가 두터운 송씨 사형제가 80세가 되어서도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며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마치 옛날 중국에서 전란을 피하여 상산(商山)에서 은거한 4신선인 동원공, 하황공, 용리선생, 기리수의 기상과도 같다고 하여 수선루라 이름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쇠락해진 수선루를 1884년(고종 21년) 후손 송석노가 중수하였고, 을사늑약 때 항의하며 자결한 우국지사 송병선(1836~1905년)이 1888년(고종 25년) 재중수하였다. 당시 송병선은 송씨 수선루는 진안현 서쪽 산수가 교회하는 곳으로 맑기가 그지없고 볕이 잘 들어 양지바른 곳에 사람들이 올라 먼 곳을 조망하다 보면 기분이 상쾌하여 신선이 되어 오른 듯한 느낌을 얻는 곳이다.라 쓴 「수선루 중수기」를 남겼다. 수선루 안쪽의 바위에는 송씨 수선루와 송씨 4형제의 이름을 새긴 글자 등이 새겨져 있다. 그 또렷한 흔적에 더해진 자연과 조화를 이룬 독보적인 건축미와 지역의 특색을 실린 선비문화와 가족 공동체가 지닌 가치를 인정받아 수선루는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물 제2055호로 격상되었다.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예전과 달리 인적이 드물어진 수선루의 신선계는 더욱 높아진 것만 같다. 이제는 와유를 즐겼던 선조들처럼 서로의 오래전 여행 사진을 나누며 위로 삼고 견뎌야 할까. 지금의 세상을 초연결사회라 불렀었는데, 이제는 집 문밖을 나서기조차 꺼려지고 여행은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 있어 옆집에 마실 가듯이 다녔던 장소들이 애틋하다. 평안한 어느 날, 광한루원을 찾아 달빛야행도 하고 수선루에 올라 수선루를 노래한 소응천의 시구 따라 가을바람에 문득 늙은 매미 소리를 듣고는 휘돌아 나는 섬진강의 물길에 근심을 흘려보내고 신선처럼 낮잠을 달게 자고 싶다. 그날이 언제일지 아득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린다.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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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7 16:32

김제 백석초에 장학금 10억 원 기부한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의 사회에 대한 책임있는 행동이 지역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박승(84)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3일 모교인 김제 백석초등학교에 10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그가 기부한 금액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해 최소한의 생활비를 뺀 전 재산이다. 그는 40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또 부는 원칙적으로 당대(當代)에 그쳐야 한다는 자신의 평소 지론을 실천한 것이라고 했다. 이달 14일 서울 평창동 박 전 총재의 자택에서 만나 전 재산의 사회 환원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더불어 경제학자로서 뿐아니라 물론 금융건설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의 부동산 논란 문제와 함께 코로나 19 이후의 경기 전망도 들려줬다. -최근 모교에 전 재산을 기부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40년 전부터 생각한 것인데, 그 때 자식들(5남매)에게 너희들 하고 싶은 만큼 교육은 시켜주겠다. 그런 다음엔 자립해라. 나의 재산은 너희에게 주지 않고 사회에 주겠다고 선언했죠. 자식들도 동의해서 집안에선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죠. - 사회 환원을 결심하신 배경이 있습니까. 자본주의 경제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는데, 잘못 가면 일부 계층이 부를 독점해서 국민 대중이 소외되는 등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의 세습이 정착되면서 계층 이동이 막히게 됩니다. 그게 천민적 자본주의, 탐욕적 자본주의입니다. 그래서 나만 잘 사는 자본주의가 아닌 함께 잘 사는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경제학자로서 그런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있어 몇 푼 안 되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겠다는 게 나의 기본 생각이었습니다. - 그런 인식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아마 어린 성장 과정이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일을 했습니다. 또 매일 왕복 14km를 걸어서 6년간 이리공고를 다닐 때는 농사일 때문에 결석하는 일도 많았고, 수험료를 못 내서 시험 못 본 일도 많았죠. 대학도 어렵게 다녔는데, 집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등록만 해놓고 고향에 내려와서 농사일 하다가 시험 때 올라가서 친구들 노트보고 공부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현실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개혁, 소위 자본주의 개혁에 대한 나의 사회관이 싹 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교와 대학도 있는데, 유독 초등학교에 전 재산을 기부한 배경이 있습니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모교인 서울대는 내가 아니어도 도와줄 사람이 많아요. 이리공고는 7억을 기부했는데, 백석초등학교야말로 정말 내가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더 큰 이유는 고향사랑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온갖 일을 했는데, 그 때 그 농촌의 어려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여름철 농민들의 땀 냄새와 흙냄새, 벼 냄새 등 3가지 냄새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호를 푸를 청에 벼 도(청도靑稻)로 내가 지었습니다. 그 같은 정서 속에서 교수나 장관을 지낸 후 고향을 가보니 어린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고, 젊은이도 없었습니다. 마을 일대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없었요. 모교는 폐교위기에 처하고. 농촌이 죽은 거예요. 그게 아주 마음이 아팠습니다. -기부금 10억 원은 어떻게 정해진 것입니까. 매년 백석초에 1000만 원씩을 지원하고 있는데,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죽어도 영원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기금을 생각했습니다. 나이도 있고 해서 이번에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나와 집 사람의 저축 등을 합해서 여생을 사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빼니까 10억 원 정도 되요. 그래서 그 것을 전부 기부하기로 했죠. 앞으로는 기부하고 싶어도 할 게 없습니다.(웃음) - 백석초에 대한 지원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그 때가 2000년대 초로 기억하는데, 교장 선생님이 교훈석을 세우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습니다. 흔쾌히 수락했죠. 그 때부터 시작됐는데, 그 뒤(2010년)로 도서관을 짓는데 5억 원을 지원했고, 매년 1000만 원씩을 따로 지원했죠. - 나름 보람을 느끼십니까. 내 고향에 어린이가 뛰어놀고, 젊은이가 돌아오는 농촌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염원이었고, 그 염원으로 학교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그 단계는 아니지만 활력은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봅니다. 학교는 이제 입학경쟁이 심할 정도로 부근의 명문이 됐습니다. 폐교 위기에 있던 학교가 그렇게 된 것을 보고 아주 보람을 느꼈죠. 내 힘만으로 된 건 아니지만 내 뜻이 성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부가 새로운 방식이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기부를 하려고 보니까 방법이 문제예요. 예금을 해봐야 이자가 0.8% 밖에 안 됩니다. 그러면 10억 원을 기부해도 1년에 약 800만원 밖에 안 나온단 말이예요. 그동안 매년 1000만 원씩 내왔는데,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연구를 했어요. 그 중 가장 좋다고 판단한 게 은행의 영구채권입니다. 매 분기별로 연간 3.17%, 매분기에 약 900만원이 오는 거예요. 한 달에 300만 원 꼴이죠. 아주 훌륭하죠. 매년 1000만 원 주던 거에 비해 3배 이상이 되는 것이죠. 널리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을)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앞서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고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셨는데, 갈수록 젊은이들이 빠져 나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전북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전북은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 이제는 활로를 찾는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전체를 보면 산업화 시대에 영남 중심 개발. 그 뒤 지금까지는 경기충청 중심 개발이 이뤄졌어요. 그 다음은 파장이 전북으로 오는 게 틀림없습니다. 교통발전으로 인해 전북 지역도 1일 생활권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 좋을 것으로 봅니다. 특히 청정지역으로서의 생활 배경과 새만금 사업에 대한 전망을 결합해 본다면 앞으로의 전북은 상대적인 발전 속도가 빠를 수 있다고 봅니다. - 새만금 사업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전망하십니다. 그렇죠. 그 전부터 새만금을 긍정적으로 봐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지지부진했는데, 그 것은 과거 정권이 새만금에 대해 소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현 정부가 적극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새만금은 상당히 밝은 전망을 갖게 됐다고 봅니다. 새만금은 일종의 백지입니다. 이 백지에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에 따라 전북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땅은 새만금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20~30년 뒤에 전북은 상당히 활기찬 지역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더불어 전북의 연기금 중심 금융도시 조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저도 원했죠. 전주에서 국제 금융세미나가 열릴 때 기조 강연도 했어요. 그러나 서울과 부산, 전주가 삼각 편대를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게 전북도의 구상인데 반해 부산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반대하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래서 진행이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시간을 갖고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 최근 집값이 폭등하는 등 부동산 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투기 수요 때문이에요. 내가 1988년 건설부 장관 하면서 일산 분당 등 신도시를 건설할 때는 우리나라 주택 보급률 56%였어요, 절대 공급부족입니다. 그 때 노태우전 대통령이 200만호 건설해야겠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어요. 집에 부족하지 않은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 집 부족은 다주택 소유자 때문입니다. 다주택 소유자가 소유한 주택이 우리나라 전체 주택 수의 60% 이상입니다. 만약 다주택 문제가 없다면 지금 집은 남고 집값도 완전히 안정되는 거예요. - 집값을 잡을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투기 수요가 생기는 원인은 주택 보유에 따른 비용인 보유세는 낮은 반면 주택에서 생기는 소득, 즉 집값 상승과 세수입은 높기 때문이에요. 집값 안정대책은 간단합니다. 보유세 인상입니다. 특히 다주택자의 보유비용을 높혀야 합니다. 이번 보유세 정책은 정부가 아주 잘 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 올려야 해요. 선진국 수준 가려면 현재보다 두 배 더 올려야 합니다. 동시에 세제를 개편해서 지방세로 돼 있는 재산세와 취득세를 국세로 전환해 종합부동산세를 합해서 중앙정부가 강력하게 부동산을 다스려야 합니다. 지방에는 대신 다른 세원을 주면 됩니다. - 정부에서는 추가 주택공급 대책을 세우고 있는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흔히 서울 도심에 집을 많이 공급하라고 하는데 이건 소용없습니다. 집을 많이 짓는 것은 대책이 아니예요. 서울 도심에 집을 더 지어도 투기자가 다 가져가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은 집 부족문제가 아닙니다. 공급대책의 핵심은 공공임대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주택수요를 이 것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집을 살 필요 없이 세로, 말하자면 세 입주하는 주택 체제로 가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수색에 짓는 3기 신도시도 약 3분의 1 정도는 공공임대 주택 짓고, 강남 도심에 공급하는 신규 공급도 절반 이상은 공공임대 주택으로 공급하도록 하면 주택 공급문제는 해결이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를 통한 수요 대책, 즉 투기 수요 억제와 대규모 공공임대 주택 건설을 통한 공급대책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됩니다. -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는. 지금 잘 가고 있다고 보는데, 정도가 미약하지 않느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부에도 건의했어요. 공공임대 주택만 해도 대규모로 해라. LH공사를 확대해서 공공임대 주택 전문 건설관리 기구를 만들어라고요. 대규모 주택건설도 건설이지만 관리 체계가 강화돼야 합니다. 현재로선 안 됩니다. - 평소에도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셨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아주 단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던 탐욕적 자본주의, 이른바 천민적 자본주의의 본원이 부동산이라 보고 있습니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 이재(理財) 수단이 돼서는 안 됩니다. 지난 50년 동안 물가는 30배 올랐는데, 부동산 값은 3000배 올랐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빈부 격차의 씨앗이고, 빈부 세습의 근본입니다. 경제는 성장하는 데 국민생활은 더 어려워지는 이른바 빈곤화 성장의 근본 원인입니다. -현재의 정책으로 집값이 안정화될 수 있을 것 같나요. 한 달 이내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봅니다. 한 달 이내로 집값 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동산 정책은 더 세게 나가야 합니다. - 집값을 잡지 못하면. 그러면 정말 위험합니다. 정권 내놔야지요.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는데, 향후 경기 전망은. 우리나라는 정상 경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 보다 관리를 잘 하고 있어요. 내년 이후에는 괜찮으리라고 봅니다. 경제 회복이 잘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1936년 김제 출생. 학계는 물론 국내 금융건설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표적인 경제원로.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여러 정권에서 기용됐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노태우 정부 때는 대통령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김대중 정부와 노문현 정부 때는 공적자금관리위원장과 한국은행 총재(20022006)를 맡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문재인 싱크탱크 자문위원장으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는 스스로를 진보적 실용주의라고 했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큰 방향에선 같지만, 일부 정책은 의견을 달리한다. 정부의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에 대해 방향은 옳지만,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선비적 문제 의식은 있는데 상인적 현실감각은 없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김제 백석초-이리공고-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 올바니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교 졸업 후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했으나,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 입학을 포기하고 1년 간 농사일을 하면서 저축을 해 이듬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1961년 한국은행 입행 후 한국은행 조사부 차장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 한국경제고문단장(197475)을 거쳐 1976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전직, 2001년까지 강단에 섰다. 이때 집필한 경제발전론은 대학 교재로 널리 이용됐다. 현재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 하나금융그룹의 사회공헌위원장을 맡아 어린이집을 지어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하는 일, 결손 가정, 다문화 가정, 탈북자들을 돕는 일,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사업 등을 하고 있다. /대담=김준호 선임기자, 정리= 김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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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3 17:50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5. 커피와 부채

△<커피노블레스> 커피 볶는 남자 최희광의 전주를 보다 커피 볶는 사람 최희광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어머니의 드립 커피로 커피에 입문하게 된 그는 원두 도매사업을 거쳐 CoE(Cup of Excellence)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생두를 구매하고, 이제는 카페를 열어 커피를 직접 볶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 직접 선택한 생두 볶는 작업이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바리스타보다 커피 볶는 사람으로 불리길 바란다. 커피 볶는 사람으로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커피의 역할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준다면 싫어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바닐라라떼를 마셔라. 달달한 천연 바닐라 시럽이 들어 있어 마음을 달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애인과 싸웠다면 아포카토를 주문하라.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끼얹어 만든 아포카토를 먹다 보면 얼어 있던 마음이 살살 녹아내릴 것이다. <커피노블레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자 가장 힘들었던 고객은 故 김충순 화백이다. 김 화백은 에스프레소에 매우 조예가 깊어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정확히 짚어내며 지적했다. 핸드드립이나 사이폰커피도 좋아하지만 그 역시 김 화백처럼 에프프레소를 제일 좋아한다. 아침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아내에게 내려주는 그는 주님 위에 마눌님이라고 주장하는 애처가이다.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따뜻한 물이 만난 아메리카노. 마시기에 무난하고 대중적이며 만들기도 쉽지만 고객들의 평가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메뉴를 아내에게 매일 아침 내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마눌님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다가가기 힘든, 그래서 매일 애정을 쏟아 공략해야 될 최고의 고객이기 때문 아닐까? 안행로 46번지에 알콩달콩 둥지를 튼 그는 이제 전주 사람이 다 된 마눌님과 전주를 보며 살고 있다. 그의 카페 한편에는 그런 그들을 사진작가 유백영이 담아내고 故 조충익 선자장이 만든 부채, 전주를 보다가 예쁘게 내려다보고 있다. 항상 행복하시라. △<한옥마을 커피로드> 바리스타 강정희의 바람 엄재수 선자장의 부채 위에 그려진 윤명호 화백의 산수화, 故 조충익 선자장의 태극선, 선자장 방화선이 작업한 유대수의 판화 부채, 혼불 시리즈, 수많은 시집과 음반들. 피아노를 전공한 바리스타 강정희는 음악과 커피가 있는 예술 공간을 늘 꿈꿔왔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만이 아닌, 향기와 음악과 사람이 있는 카페는 그녀의 오랜 이상이었다. 고객들이 좋은 음악을 즐기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편안한 시간을 즐기기를 바리스타 강정희는 소망한다. 그래서인지 햇볕이 좋은 그녀의 카페는 황금빛 조명을 사용하여 더 밝고 안온하다. 꽃 피는 봄이면 코스타리카 따라주를 마셔보자. 상큼하고 산뜻한 신맛이 봄과 어울린다. 아이스로 마시기에 좋은 신맛이 나는 케냐AA는 여름이 제격이다. 부드럽고 우아한 와인의 맛과 향을 가진 자마이카 블루 마운틴은 다가오는 단풍의 계절에 마셔보자.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엔 에티오피아 시다모를 권한다. 깊고 묵직하며 진한 커피의 맛은 내면을 성찰하게 해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브라질 카파라오를 마셔라. 신맛이 적고 달콤한 초콜릿 맛과 고소한 호두 맛이 혼재되어 있는 중성적인 커피이다. 바리스타 강정희가 제일 사랑하는 커피는 무엇일까? 콜롬비아이다. 의외다. 부드러운 신맛과 쓴맛, 진한 초콜릿 향과 단맛이 조화로운 커피이며 다른 지역 커피들의 강한 맛을 보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블렌딩이 쉽기도 하지만 카페를 오픈하자마자 단골이 되어 준 손님이 자주 마시는 커피라 좋아하게 되었지요.라고 이유를 밝힌 그녀는 역시 커피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크게 웃지도 않고 입가에 미소만 짓는 그녀의 카페에는 늘 행복한 바람이 감돈다. 판화가 유대수의 작품 바람처럼. △<재하로스터리카페> 장재하의 남은 자들의 몫 칼디의 염소가 먹었다는 커피, 수도승이 마셨다는 커피. 약차에서 시작한 커피는 귀족의 전유물에서 이제는 가장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출발한 부채 역시 귀족적 예술품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카페에 있는 부채를 보러 갔다가 커피와 부채의 역사, 커피와 부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커피와 부채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인류의 필수품으로 출발하였고, 문헌상 기록을 보면 귀족문화의 하나로서 사치품과 예술적 가치로 호사를 누리다가 현대에 이르러 모든 사람들의 기호품으로 대중화되었다는 점이 있다. 선풍기나 에어컨의 강한 냉기보다 부채의 적당하고 은은하게 흐르는 바람이 마음을 식혀주듯, 커피 또한 향이 강한 커피보다는 은은한 커피가 여유를 줍니다. 부채를 부칠 때 힘껏 부치다 보면 어느새 시원함은 고사하고 더위만 남게 되거든요. 커피도 향이 좋다 하여 너무 강하게 볶으면 몸에 좋은 성분들은 사라지죠. 요즘은 커피를 너무 세게 볶습니다. 세게 볶으면 향이 강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커피 본래의 기능인 약으로서의 좋은 성분은 사라지고 강한 풍미만 남게 됩니다. 강한 풍미가 있는 커피를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게 되었지만 저는 커피의 본질적인 기능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연구하고 시음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어커피입니다. 어커피는 커피 씨앗에 들어 있는 약 성분을 추출하여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면서 마음의 여유를 추구하고자 만들었습니다. 과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적당한 바람은 시원함을 주고 적당하게 로스팅된 커피는 건강을 줍니다. 어? 커피? 어! 커피! 폭우가 쏟아지던 날,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차분히 앉아 마시니 어커피 고유한 맛이 마음속 깊이 편안함을 준다. 2019년 11월에 작고한 故 김충순의 마지막 작품으로 김 화백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며 툭 던지듯 주셨다는 부채가 카페 한편에 걸려 있다. 여느 작품보다 붉은색이 강하고 한껏 아름답게 표현한 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남은 자들의 몫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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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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