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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한달 위성인 전북지방중소기업청장 "중소기업 '손톱 밑 가시' 제거…현장서 답 찾겠다"

위성인 전북지방중소기업청 청장이 취임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지난달 8일 전북지역에서 첫 기관장을 맡게 된 그는 ‘손톱 밑 가시’와 같이 작지만 실제 중소기업인들에게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제도들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 중심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주시 효자동에 있는 전북지방중소기업청 청장실에서 그를 만나 취임 소감과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취임한 지 한 달여 지났습니다. 먼저 소감은.“예향의 고장이라 불리는 전북지역에서 첫 기관장을 맡게 돼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본청에 있으면서 중소기업 관련 정책들을 만들어 왔는데, 이러한 정책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더 세심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봅니다.”-전북지방중소기청이 향후 핵심적으로 다룰 사안 등 운영 방향은?“지난달 취임식 때 직원들에게 3가지 사항을 요청했습니다. 첫번째로는 중소기업인들이 사업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 개선입니다. 두 번째는 현장 위주의 업무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의미로 최대한 현장에서 해법을 찾겠습니다. 끝으로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활성화에 더욱 관심을 가질 생각입니다. 특히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소상공인 비중이 높은 편으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성장, 회수, 재투자, 재창업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를 활성화시킬 대책은?“그동안 벤처·창업 정책은 비교적 빠른 기간에 벤처 관련 산업의 성장에 기여했으나, 정부의 직접적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민간의 투자 의욕을 근본적으로 제고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할 선순환 방안으로는 우선 창업기업의 자금조달 구조를 ‘융자’에서 ‘투자’ 중심으로 변경하고, 창업 초기기업에 대한 엔젤투자 활성화와 더불어 벤처 1세대 등 성공한 선배들의 후배 세대에 대한 재투자를 촉진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창업 플랫폼을 다양화하고 기술탈취 방지와 재도전 환경 개선 등 벤처생태계의 기본적 하부 인프라도 함께 확충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것입니다. 최근 전북지역의 제조업분야 신설법인 동향을 살펴보면 4월 말 기준 지난해에 비해 27.1% 상승하는 등 창업 생태계에 긍정적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이기이니 만큼 선순환 정책이 안착될 수 있도록 주력할 생각입니다. 아울러 전북지역 청년창업자나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벤처포럼’을 신설해 우수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소유한 창업·벤처기업의 투자유치와 성장을 지원할 계획입니다.”-창업이나 재도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인프라) 구축이 시급해 보이는데요.“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은 평균 2.8회의 실패 후 성공한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에서의 실패란 사업화를 위한 투자를 받지 못했다는 의미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파산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에 창업실패에 따른 신용불량자 전락 위험을 해소하고자 지난해 중진공의 창업지원자금 연대보증 면제대상 확대를 시작으로 창업자 연대보증 면제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방침입니다. 또 중소기업에 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회생절차 진행을 위해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중소기업 신속회생절차’를 도입해 평균 9개월 정도 걸리던 회생 절차기간을 약 3개월 정도로 단축하는 등 재도전 지원 정책의 지속적이고 체계적 수립 시행을 위해 관련 법령을 개정할 계획입니다.”-도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 발굴에 있어 중기청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우리나라 기업 생태계는 정부 지원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해 있고, 단계별 성장 사다리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주된 원인은 중소기업은 보호·지원, 중견기업은 지원 배제라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기업이 성장을 기피하고 있고, 중견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는 별도 지원 시스템이 미흡해 추가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도 주요 정책적 지원을 계속 유지해 연착륙을 유도할 방침입니다. 더불어 가젤형 기업(최근 3년간 연평균 고용증가율 또는 매출증가율 20% 이상 기업)의 마케팅·수출·자금 지원을 위해 내년부터 3년 동안 1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가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할 예정입니다.”-나들가게나 시장 현대화시설 지원 등 소상공인을 위한 사업 계획은?“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정책의 기본 방향은 창조 속에서 균형을 찾고, 균형 속에서도 창조를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전통시장이나 골목가게와 같이 유통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쇠퇴하고 무너지는 상권에 대해서는 균형 회복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그러나 정책 지원만으로 경쟁력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하드웨어적인 정책적 지원은 마중물 역할이라 생각하고, 무엇보다 상인들이 협동해 자립·자조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구 노력들을 통해 고객 만족을 높이고 자체 브랜드 가치를 향상시켜야만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생깁니다. 중기청에서는 점주의 마인드 개선과 변화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문 컨설팅과 교육을 병행하는 등 경영혁신 사업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끝으로 도민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중소기업청에서는 사업체 수의 99.9%, 종사자 수의 87.7%를 점유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지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역 경제의 근간을 튼튼히 해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소기업 육성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저와 전북중기청 직원 모두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발로 뛰는 정책의 전달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전북지역 중소기업이 정부의 각종 지원시책을 활용해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위성인 청장은 '현장 전문가'…업무추진·친화력 뛰어나전북지방중소기업청 위성인 청장(55)은 전라남도 장흥 출신으로 중소기업 관련 정책 수립 전문가로 불린다.중소기업청 입사 후 주로 본청에서 재직했고 올해 5월 8일자로 전북지역에서 첫 기관장으로 취임해 근무하고 있다.기업금융과와 벤처정책과에서 근무할 당시 지역신보법 개정안과 재창업지원제도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등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 및 지원시책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로 정평이 높다.위 청장은 인하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이후 지난 1993년 통상산업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1998년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국과 기획재정담당관실, 경영지원국 사무관, 창업벤처국 서기관을 거쳐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 창업성장지원과장 등을 역임했다.위 청장의 일관된 인생관은 ‘항상심(恒常心)을 잃지 말자’로 취임 초반에 다짐한 운영 방향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전북 지역 중소기업인들에게 ‘현장의 청장’이라는 별칭이 붙길 기대하고 있다.평소 대내외 업무 추진력은 물론 친화력이 뛰어나 직원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앞으로 정책 수립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발전과 더불어 전북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기획
  • 문민주
  • 2014.06.23 23:02

[(21) 완주한우협동조합] 좋은 쇠고기 싼값에…'직거래 성공모델' 전국서 주목

지난해 8월 31일 완주군 고산전통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완주한우협동조합 쇠고기 판매장이 성공 스토리를 이어가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이 판매장은 1층에서 쇠고기 정육을 팔고, 2층에선 이를 조리할 수 있는 음식점을 배치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완주한우협동조합 판매장의 성공은 매출액만으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3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약 4개월 동안 판매실적은 19억6000만원. 이는 2층 식당 기준으로 일평균 489명이 방문, 한우 248두를 먹어 치웠다는 계산이다.판매장과 음식점의 명성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올 들어 매출액이 더욱 급상승하고 있다. 올해 5월말 기준 2층 식당을 찾은 방문객수는 하루 평균 514명. 총매출액으론 26억3600만원에 이른다.판매장과 음식점의 성공은 좋은 쇠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 같은 장점은 조합원들이 키운 한우를 중간유통 마진을 완전히 없앤 직거래 방식을 도입하면서 시작된다.일반적으로 한우 사육농가들이 소를 파는 유통망은 중개인을 통한 문전거래, 농축협을 통한 계통출하 이다. 문전거래는 대개 소를 구입하는 상인한테만 중개료를 받는 게 관례이므로 중개인이 구입자의 입장에서 일하기 마련이다. 또 계통출하는 출하예약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일반 농민은 예약에 어려움을 겪고, 출하를 위해 현장에서 3-4일 기다리는 건 예사이다. 그러기 때문에 대기기간에 소의 체중이 감량하고, 이는 사육농가의 손해로 되돌아온다.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완주한우협동조합은 이들 방식에서 비롯되는 조합원들의 손해를 막기 위해 직거래를 통해 한우를 구매하고 이를 판매대에 올린다. 직거래는 기존의 4-5단계에 이르는 유통단계를 없애고, 이들 중간마진을 생산자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한다.완주한우협동조합은 중간마진을 없앤 직거래의 이익을 소비자에게도 돌려주는 방식을 채택, 생산자-소비자의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데 지향점을 두고 있다. 완주한우협동조합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생각으로 판매장을 운영한다며 소비자들은 쇠고기 전문점 대비, 50%까지 싼 값에 건강한 쇠고기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한우를 생산하는 조합원들의 소득도 크게 늘었다. 소를 파는 과정에서 며칠씩 기다리며 체중감량을 감수해야 하는 고통도 사라졌고, 등급에 따라 협동조합으로부터 장려금까지 받는다. 장려금은 마리당 1등급 투플러스는 40만원, 원플러스는 30만원, 1등급은 20만원이다.완주한우협동조합은 이같은 직거래 방식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사실상 전국 최고 가격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협동조합의 부흥은 회원숫자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2012년 11월 조합원수 38명으로 출발한 완주한우협동조합은 현재 156명으로 크게 늘었다. 협동조합은 직거래와 판매장 운영, 협동조합 경영 등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관망적 자세를 취했던 한우농가들이 이젠 잇따라 가입을 문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출발 당시 3억8000만원이었던 출자금이 7억7000만원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판매장이 문을 연지 채 1년도 안된 상황에서 전국 각지에서 선진지 견학을 위해 완주한우협동조합을 찾는 이유는 전문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영호 이사장은 우리는 한우에만 집중하고, 이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한편 개선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한다며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만의 장점이 발현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조영호 이사장 "축산농 부채 악순환 주요 원인은 유통구조"완주한우협동조합 조영호 이사장(53)이 한우를 키우기 시작한 때는 2004년부터이다. 벼농사를 비롯 경종업에 종사하던 조 이사장은 일상적인 농삿일은 힘든 만큼 소득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축산업으로 전업했다.경작하던 논에 축사를 지었지요. 처음엔 한우 서너 마리를 입식해 한우업계에서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한우도 흘린 땀방울만큼 보답을 주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그렇지만 묵묵히 한 마리 두 마리 한우를 늘려나갔다. 확대된 축사 규모에 비례해서 빚도 증가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소걸음처럼 지나온 세월을 따라 조 이사장의 사육두수가 무려 300마리로 늘었다.20년 동안 한우를 키워왔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 소를 팔아 봤자 사료값을 갚기도 힘들었습니다. 결국 2억원 넘는 부채만 떠안은 셈이죠.억대의 빚을 해결하기 시작한 시기는 겨우 지난해부터이다. 다행스럽게도 작년 추석 이후부터 한우 가격이 회복세를 보였고, 지난달 키우던 소 일부를 팔아 빚 1억5000만원을 정리했습니다. 다음달에도 소를 팔아 나머지 빚마저 해결할까 생각중입니다.축산농민들이 이렇게 부채의 악순환에서 허덕이는 이유는 잘못된 유통구조가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조 이사장의 생각이다.많은 농민들이 키운 소를 파는 통로는 중개업자입니다. 일명 문전거래로 불리는 이 방식은 농민들에게 불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농민들은 원가 건지기에도 벅찬 게 현실이죠.이 같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협동조합이다. 조 이사장을 비롯 한우협회 완주지부 회원들은 힘을 모아 지난해 1월 전북 제1호 협동조합인 완주한우협동조합 설립 승인을 받았고, 이를 통해 성공 스토리를 써가고 있다.

  • 기획
  • 김경모
  • 2014.06.19 23:02

[(24) 지역별 유적지와 기념사업 - 고창] '무장기포지~운곡저수지' 농민군 진격로, 마실길로 단장

고창군이 자랑하는 특별한 행정조직이 두 개가 있는데요, 하나는 고인돌계고 다른 하나는 동학농민혁명계예요.운전대를 잡은 안기성(38) 씨가 말했다. 2010년에 문화관광과 산하조직으로 편성된 동학농민혁명계는 혁명 성지화 사업, 학술홍보 사업, 유적지 답사관리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안 씨는 여기서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지자체가 나서서 전담부서까지 두고 관련 사업을 진행한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생소하게 들렸다. 바로 얼마 전에도 도내 유적지 몇 곳이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서 훼손돼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지 않았나.이강수 군수가 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맡고 의욕적으로 사업을 했죠. 진윤식(71)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말했다. 지자체와 민간이 함께 혁명을 기려 나간다니, 관민상화(官民相和)가 따로 없다. 안 씨가 모는 자동차가, 큰 석조 조형물이 세워진 광장 같은 곳에서 멈췄다. 무장기포 기념지였다.△구수내 모래뜰의 혁명 기치옛날에는 구수내라고 해서, 아홉 갈래의 물이 내려오던 곳이었어요. 그 물에 쓸려 내려온 모래가 여기에 넓은 모래사장을 형성했죠.진윤식 부이사장이 두암저수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지형이 마치 연병장 같은 곳이라, 농민군이 모여 훈련하기에 좋은 곳이었죠.기념지에는 죽창과 농민군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안내판, 비석이 놓여 있었다. 한켠에는 무죄 판결을 받고 방면돼 귀향하던 중에 다시 잡혀 죽었다는 고창주라는 사람을 기리는 비석도 있었다.고부봉기 후 안핵사 이용태의 폭정에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던 1894년 3월, 이곳에 농민군 3500여명이 모였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큰 세력을 거느리고 있던 손화중과 전봉준, 김덕명, 김개남 등 이름 있는 동학 지도자들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며 뜻을 모은 것이다.이것을 무장현에서 포(동학교도의 단위)가 들고 일어났다 해서 무장기포라고 한다. 해마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는데, 올해 기념제에는 10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이곳에서 전봉준은 포고문을 읽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서울로 쳐들어가 권귀를 모두 없앤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4대 명의와 항복하는 자는 대접한다,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12개조 규율을 발표했다.충과 효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는 점으로 보아 동학군의 지도자들이 유교적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선비, 훈장 출신이 많았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이곳은 아직 문화재로 등록돼 있는 곳은 아니다. 안기성 씨는 지난 4월에 문화재 등록 신청을 했고, 오는 24일에 현장 실사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혁명을 품은 산 여시뫼봉공음면사무소를 지나 왕제산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렸다. 아니, 가다 서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달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도로에 자주 멈춰선 이유는 바로 이 길 주변 군데군데에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유적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이었다. 왕제산로 주변에는 동학농민군이 숙영했던 여시뫼봉, 농민군이 타고 넘었던 소숙재, 과실재 등이 있다.여시뫼봉은 왕제산의 다른 이름인데, 해발 151m의 야트막한 산이다. 무장기포 당시에는 농민군의 훈련장으로 쓰이기도 했고,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후 고창을 거쳐 남하할 때에는 주둔지로 쓰이기도 했다.또 전봉준, 김덕명, 김개남 등 동학 지도자들이 여시뫼봉 근처에 있던 김성칠 접주의 집에서 신중론을 펴던 손화중을 설득해 무장기포를 모의했다는 내용도 전해져 오고 있다.여시뫼봉의 한 쪽 자락에는 지금은 폐교된 산왕초등학교가 있다. 폐교된 후 고창군이 이를 사들였는데, 옛 교사에 귀농귀촌학교와 동학농민혁명 홍보관이 들어서 있다.지난 4월 24일에 문을 연 홍보관은 아직 상시개방이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기념사업회 인력이 부족해 상주인원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전문 해설사도 없어, 홍보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진 부이사장은 유품 같은 거라도 전시해놓아야 하는데 아쉽다면서 앞으로 이 건물 사무실에 사무국장과 해설사를 배치해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농민군 진격로와 무장읍성도로가 새로 깔려서 없어졌는데, 저쪽 둑부터 이쪽으로 쭉 이어지는 옛 길이 있었거든요. 이게 농민군의 당시 진격롭니다.무장읍성을 향해 가다가 다시 멈춰선 어느 골목길에서, 진 부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골목길 한쪽으로 좀더 작은 길이 갈라지는데, 무장읍성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고창 지역의 농민군 진격로가 밝혀진 것은 전적으로 진 부이사장의 공이다.농민운동을 하다 2000년대에 동학혁명사 연구에 뛰어든 그는, 온갖 자료를 뒤지고 현장을 답사하며 진격로를 밝혀냈다. 2011년 12월에 동학 마실길이라는 이름으로 개통된 길(무장기포지~운곡저수지)은 그가 밝혀낸 농민군 진격로를 따른다.진격로는 무장읍성 안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읍성 바로 앞에서 꺾인다. 세몰이를 하며 진격하던 농민군은 무장읍성을 그냥 지나친 뒤 줄포를 지나 고부성으로 곧장 진격했다. 진 부이사장은 이를 처음부터 고부성-전주-서울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농민군이 무장읍성을 점령한 것은, 황토현 전투 승리 후 홍계훈의 경군이 온다는 소식에 진로를 돌려 고창무장 지역으로 남하하면서다.사적 제346호인 무장읍성은 현재 그 성곽과 동헌 복원 공사의 마무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손화중, 마애불 배꼽서 '비결 훔치다'- 고창 지역 동학혁명 관련 유적 총 21곳고창군에 따르면 고창 지역에는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유적이 총 21곳이 있다. 사적 제145호 고창읍성은 모양성이라는 이름과 답성놀이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축조됐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1894년 4월 7일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농민군은 다음날 고창을 점령했다. 농민군은 이 때 고창읍성에 들어가 갇혀 있던 동학교도 7명을 구출하고 관아 시설을 파괴했다.농민군은 또 흥성에도 들어가 관아를 점령하고 접주 자치구를 설치했다. 흥덕면에 있는 흥성 관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돼 있다.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고려시대 혹은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15.6m에 달하는 국내 최대의 마애불상이다. 바위에 새겨져 있는 이 불상의 배꼽에 신비한 비결이 들어있고, 이 비결이 세상에 나오면 한양이 망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1892년에 대접주 손화중이 이를 탈취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 사건 이후 세상이 바뀔 것을 바라고 동학에 입도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한다.한편 고창 지역은 손화중 포의 세력권이었던 만큼 손화중의 거점도 여러 곳에 있었다. 현재는 괴치 도소와 양실 도소 두 곳이 전해지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고창은 또 전봉준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간 고부, 태인, 전주 등 여러 설이 분분했지만, 이기화 전 고창문화원장을 비롯한 연구자들이 전봉준의 출생지가 고창 죽림리 당촌마을임을 밝혀냈다. 전봉준이 태어난 집은 고창읍 죽림리에 복원돼 있는데, 군과 기념사업회는 하반기에 문화재 등록을 신청할 예정이다. 바로 옆에 전봉준 장군 생활전시관이 자리해 있다.

  • 기획
  • 권혁일
  • 2014.06.18 23:02

[② 다문화가정 자녀 언어발달 교육] 만 12세까지 한국어 맞춤 교육…"자신감 길러줘요"

안전행정부의 전년도 통계자료에 의하면 다문화가족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다문화가족 자녀가 19만1328명으로 전년 대비 13.49%가 증가하였는데, 영유아 및 초등학생이 84.59%로 16만1852명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라북도의 다문화가족 자녀의 수도 9200명에 이른다. 국제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는 다문화가족의 자녀들은 엄마 또는 아빠가 외국인이기에 언어적 부분에서 동일한 국가의 언어를 구사하는 비다문화가정에 비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엄마는 베트남어를 구사하고, 아빠는 한국어를 구사할 경우 아이는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좋은 환경 속에서 언어적 능력을 향상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이러한 엄마와 아빠의 언어적 환경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아이의 선천적 언어 능력의 결함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가정환경 속에서 언어능력을 향상시켜 낼 수 없는 경우에도 언어적 능력은 떨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문화 가족 자녀의 언어 발달에 대한 교육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사례. 올해 11살의 수연이(가명)는 엄마가 외국인이다. 수연이의 엄마는 A국가에서 시집을 와서 한국인 아빠와 혼인을 해서 전주에서 정착하며 살고 있다. 수연이는 언어 표현능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출생 당시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큰 문제 없이 성장을 했다. 그런데 수연이는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정도로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학교의 성적도 나빴고 다른 사람들과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게임을 즐기며 일상적인 대화 이외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수연이 엄마. 결국 수연이의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방문했다. 담당 언어발달지도사는 수연이의 언어발달 능력을 평가진단했다. 수연이는 외관상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목소리가 작고, 의사소통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언어발달지도사는 수연이에 대한 REVT라는 수용표현 어휘력 검사를 먼저 실시했는데, 수연이의 어휘력은 또래 수준보다 낮은 결과를 나타냈다. 읽기에도 자신감을 보이지 않았고, 인상을 쓰며 거부하기를 나타냈다.이처럼 아동의 언어발달 능력의 저하는 또래 아이들 집단 속에서 관계성의 부진함을 보이게 되고 결국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지속되면서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고립되어 갈 수 있다. 이러한 아이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언어적 능력의 저하는 은근히 그들을 고립시키고 결국 완전한 따돌림의 위기에 직면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따돌림의 문제가 있다면 가정에서 자녀와의 대화의 흐름과 내용 그리고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구사되어지는 어휘력 등 언어 구사 환경을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전에 올바른 언어 구사력을 가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실제 언어발달지도사에 의해 교육을 받은 이후의 수연이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이제 수연이는 스스로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됐고, 책을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었다. 자리에 오래 동안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했었는데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서 언어발달지도사의 눈을 보며 말을 유심하게 들을 수 있다. 집중력을 보이지 못했던 모습에서도 이제는 특정한 주제에 집중하고 질문의도를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고, 읽기 자료를 보고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됐으며 유창성과 읽기 이해력이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전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는 300명의 다문화 언어발달지도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언어발달을 측정평가하고 그것에 따라 지도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에 의거하면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자과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자녀에게만 언어발달지도를 해왔었는데, 2011년 5월부터는 언어발달지원사업의 대상자를 넓혀졌다. 외국인이주노동자와 유학생 등 외국인 부부의 자녀와 새터민 자녀도 언어발달지원 사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 0세부터 만 12세까지의 자녀라면 누구나 이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수연이의 교육지도를 담당한 홍성경 다문화언어발달지도사는 수연이가 지금은 사람들과 얘기할 때 시선을 밑으로 향하지 않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장 학습을 다녀온 이야기나 반에서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의 생일파티에 간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한다면서, 부모님도 수연이의 활발해진 모습에 기뻐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 지도사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부모 상담과 간담회, 소그룹 활동 등을 통해 부모들 간에 자녀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며 다문화가족 자녀들의 심리정서적 안정 등의 사회성이 언어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자녀들의 변화를 도모해달라고 주문했다.● 박영미 언어발달지도사 "풍부한 교구로 언어교육 동화책 많이 읽어주세요"-다문화가족자녀 언어발달지도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다문화가족 자녀의 의사소통 및 언어능력에 대한 관심이 증가 추세인데요. 다문화가족 자녀는 어머니의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언어촉진이 되지 않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어적 자극의 부족을 경험하게 되면서 언어능력이 또래아동에 비해 지체되고 있습니다. 언어발달지도사는 아동의 언어발달을 능력을 촉진시키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언어발달서비스는 어떻게 이용하죠?우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전화나 직접 신청하시고 언어발달지도사와 면담을 한 뒤 아동의 연령에 맞는 표준화된 평가도구로 언어수준을 알아봅니다. 이후 평가 결과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언어교실이나 저희가 보육시설에 파견 나가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언어수업은 교구를 사용해서 놀이를 하거나 교재를 이용한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언어교실에는 종합병원과 사설 언어치료실 못지않은 풍부한 교구를 있어서 그것을 통해 자녀들을 지도합니다.-아동들의 언어발달을 위해 가정에서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잘 아시다시피 언어발달은 신체발달과 같이 이루어지면서 자극에 따라 언어발달은 개인적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가정에서는 언어촉진을 위해서는 우선 동화책을 읽어주는 방법과 아동과 활동을 같이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는 것이 좋습니다. 구제적인 것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매번 부모 상담을 하고 부모간담회도 갖고 있습니다. 또 5명 이내의 부모님 소그룹을 형성해서 고민을 털어놓고 아동의 발달과 교과과정에 맞는 활동을 어휘와 언어사용, 쓰기 등에 대한 것들을 나누고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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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7 23:02

중국 상해 '상윤무역' 박상윤 사장 "대륙에서 성공하려면 중국인 마음부터 움직여라"

지난해 말, 책 한권을 받았다. 상하이 박의 진심경영스토리라는 부제만 보아서는 성공한 기업인의 자서전쯤 되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책의 제목이 마음을 끌었다. 선한 영향력이라니.기업의 사회적 기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선한 영향력이 주는 메시지가 묘했다. 이 책의 저자는 10여 년 동안 대기업의 상해 주재원으로 일하다 1인 기업으로 무역회사를 창업, 5년 만에 주목받는 강소 무역회사로 키워낸 박상윤 사장(51)이다. 세계 시장의 중심에 중국이 들어선지 이미 오래, 사실 주재원에서 기업인으로 성공한 예는 박 사장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의 경영스토리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창업은 대개의 경우,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도전이다. 그러나 창업은 철저한 준비를 한다 해도 시행착오의 과정이 통과의례처럼 따라붙기 마련이어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많은 시간을 준비에 쏟는다. 그런데 박 사장의 창업은 준비 없는 결행. 목표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전부였다. 이쯤 되면 창업한지 5년 만에 연매출 400억 원 규모의 무역회사로 성공한 경영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선한 영향력의 정체(?)도 궁금했다. 지방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전인 지난 4월, 마침 짧은 일정으로 전주에 온 그를 만났다. 빠듯한 일정에도 그에게서는 피곤함 대신 긍정적 에너지가 넘쳐났다.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눈 앞 비즈니스의 좁은 셈법을 떠나 중국인의 진정한 벗이 되어야 해요. 중국 진출을 꿈꾸는 젊은 세대들에게 주는 그의 조언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와의 인터뷰로 새삼 깨닫게 됐다.-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주재원에서 1인 기업 창업자로, 그리고 지금은 주목받는 강소 무역회사 대표로 성장하기까지 예상했던 것보다는 순탄한 길을 걸어오셨더군요. 고난의 길을 상상했었는데요.(웃음)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비교적 순탄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꿈을 갖고 구체적인 현실을 상상하면서 성실하게 일 하면 언젠가는 그 꿈이 이뤄진다는 것을 좌우명처럼 갖고 살아온 덕분인 것 같습니다. 창업할 당시에는 수출영업으로 직장생활을 해온 경험과 노트북 하나면 무역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전부였거든요.-책의 제목 선한 영향력이 주는 메시지가 정서적이면서도 강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2년 전에 아프리카에 가 있던 조카가 이메일을 보내왔어요. 달라부쉬(Dollar Bush)라는 식물이 있는데, 볼품없는 이 식물이 사막에 홀로 서있으면서도 동물들에게는 수분을 공급하고 곤충들에게는 서식처가 되는 등 그 안에서 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예쁘지는 않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활용해 가장 자기답게 주변에 선한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가장 나답게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 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이야기였어요. 생각해보니 선한 영향력은 상득익장 윤택사방(相得益章 潤澤四方)-서로 협력하고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우리 회사의 기업정신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런 기업, 그런 사람이 되자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대기업 상해 주재원으로 있다가 본사 임원으로 발령 난 그해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했더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상해에 가족들을 두고 나와 혼자 지내는 일상이 힘들었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교육 등 뒷받침 해줘야할 경제력 부담에 대한 중압감이 컸습니다. 고단하더라도 독립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냈죠.-창업을 갑자기 결정하셨다면 준비할 시간도 없었겠군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준비를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20년이나 직장생활을 했는데 정작 사표 내고 나와 보니 막막하긴 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창업을 하려면 빈틈없이 준비를 하던데요. 준비는 중요하죠. 그런데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개인 일을 위해 시간과 회사 업무를 활용한다는 것은 결코 바른 일이 아니지요. 책에도 썼는데, 어떤 조직에 있을 때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야 나중에 그 조직을 떠났을 때 남아 있는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잘되기를 빌어줍니다. 그렇지 않고 조직에 있을 때 자신만을 위한 틀을 만들고 기반을 닦아놓는 일에 마음을 쏟으면 동료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됩니다. 뒷말하고 흉보고 욕하고. 그런 에너지는 결국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우선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중국인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요. 진심을 다하면 됩니다. 우선은 언어가 중요한데, 소통이 되어야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어를 배우지도 않고 창업부터 합니다. 물론 통역을 두긴 하지만 한계가 크죠. 중국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언어는 친밀감을 높이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거든요.-중국어를 일찍부터 공부하셨더군요. 딱히 나중에 중국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신입사원 시절부터 중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그것이 알려져 회사에서 지원하는 중국어학연수의 길을 얻게 되었고, 중국 주재원 발령도 받았습니다. 덕분에 좋은 중국친구들도 만났고, 신뢰를 쌓을 수 있었죠.-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던데요. 결국 언어 때문일까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어도 안 되는데다가 많은 한국인들이 실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중국인들을 하대하거든요. 편견 때문인데, 한국이 중국보다 앞선 문화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권위적입니다. 직위 상하를 막론하고 옷차림이 수수하고 상사와 직원의 관계가 수평적인 중국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지요.-중국 친구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었습니까.어깨에 힘을 빼고(웃음) 회사 직원이든 아니든 모두 친구로 생각하고 교류하면 됩니다. 우리 회사에는 직원들이 20대부터 있습니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친구예요. 마음을 열고 존중하며 대하니 신뢰가 쌓이게 되더군요. 중국 직원들이 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平易近人. 중국말로 핑이찐런이라고 하는데 가까이 하기에 너무 편한 당신이란 뜻입니다. 황송한 말이죠.-회사의 경영스토리를 듣고 싶습니다. 무역회사인데 업종은 어떻습니까. 크게 보면 기능성 섬유와 산업용 섬유, 화학제품이 주력 업종이지만, 법적으로 규제하는 품목이 아니면 뭐든지 다룬다는 것이 우리 회사의 철학입니다. 역량만 된다면 비행기나 배도 다루고 싶고 해외에 나가 자원개발에도 참여하고 싶거든요. 이런 철학이 회사 성장에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무역업에도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장단점이 있겠죠. 그동안 지켜보니 특정한 업종을 다루는 무역회사는 중간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어요. 흐름과 경기를 타기 때문이죠. 우리는 고객들의 니드에 맞추어 중국의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솔루션 프로바이저(Solution Provider)인 셈입니다.-많은 업종을 종합적으로 다루려면 무역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겠군요. 그렇긴 하지만 흐름을 파악하기 보다는 상해에 뭐든지 해결해주는 상윤무역이 있다고 소문을 냅니다. 박상윤은 뭐든지 하는 사람이라고. 2008년 말 즈음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상해에서도 적잖은 한국 업체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직물을 다루는 회사는 직물만 하고, 봉제나 의류용 직물을 다루는 회사는 또 그것만 하는 회사들이었는데 경기가 악화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 그 분야였거든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모든 것을 다루는 회사여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 동쪽에 불이 안 켜지면 서쪽에 켜지지 않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위축되면 어떤 부분이 그 자리를 대신해주는 것이죠. -한우물만 판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위험요소가 있겠지만 분명한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 역시 섬유만 하는 전문 부서가 있고, 뭐든지 하는 종합부서가 있습니다. 섬유본부는 섬유만 집중하고, 무역본부는 모든 것을 열어놓고 종합적으로 취급합니다.-혹시 전북과도 연계되는 업종이 있습니까. 전주에 탄소섬유를 만들어내는 효성이 있죠. 효성의 탄소섬유 중국 대리점을 맡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나오는 탄소섬유를 제가 중국시장에 파는 셈인데, 그래서 자부심이 있습니다.-효성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까. 2010년 효성이 안양에 특수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을 갖고 있었어요. 방탄복 등을 만드는 산업용 섬유인데, 그때부터 중국대리점을 했습니다. 신뢰를 쌓다보니 효성 본사의 사업팀과 연계되었고, 그 인연으로 탄소섬유도 다루게 되었죠. 또 제 전공이 섬유여서 더 관심이 크기도 합니다.-한국기업과의 신뢰는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할텐데요.우리 회사 일처리 방식을 한국 기업들이 좋아합니다. 제가 주재원을 10년 넘게 했잖아요. 본사에서도 수출업무를 담당했고요. 그래서 한국 기업 수출담당자들의 심리적 니드를 잘 압니다. 가령 현지의 에이전트들은 바이어를 통해 물건을 싸게만 가져가려고 하거든요. 한국 기업의 담당자로서는 현지 시장상황이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위클리 리포트를 만들었어요. 거래처별로 정보를 구해 거래처 상황과 일주일 동안 상담한 내용을 모두 담습니다. 그것을 한국기업의 담당자, 팀장에게 보내줍니다. 중국시장에 관한 정보를 다 알게 되는 것이죠.-일종의 정보 공유인 셈이군요. 기업에서는 속성상 정보 공유를 꺼리지 않습니까. 대부분 정보 공유를 하지 않죠. 특히 무역회사 같은 경우는 정보를 넘겨주면 한국 기업들이 직접 거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파악한 정보는 다 공유하자는 입장이에요. 우리를 빼고 직접 진행한다 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열어놓으니까, 회사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지더군요. 경험으로 확인한 교훈입니다.-정보 공유는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인 것 같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서로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합니까. 직원간 경쟁의식도 있고 회사의 정보 유출 문제도 있을 텐데요. 상해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제가 창업하니까 직원들에게 다 알려주지 말라며 거래처를 다 가지고 나간다고 조언해주더군요. 실제 저보다 일찍 사업을 시작한 업체 사장이 있는데 주재원 시절부터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절대 안주는 사람이었어요. 자기만 알고 있는 고급정보라고 생각해서였겠죠. 나중에 그 사람이 회사를 열었는데 사업을 오래해도 남아 있는 직원이 늘 2-3명 정도였어요.-회사의 거래처나 모든 정보를 직원들에게 공개하나요.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직원들에게 다 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계속 새로운 정보를 알면 되잖아요. 퇴사하는 직원이 정보를 좀 빼 가면 어떻습니까. 두렵지 않아요. 사실은 누군가가 퇴사하면서 거래처 정보를 가져간다 해도 우리 회사는 이미 직원들이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이 퇴사하면 다른 직원이 업무인수 인계를 받지 않아도 곧바로 그 일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이야기를 듣다보니 창업 이후 큰 어려움은 정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의 경험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조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초창기에 어려웠습니다. 창업할 때 2억 원으로 시작했는데, 6개월 지나니 1억 원 남았더군요. 직원이 다섯 명이었는데, 상황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컸습니다. 업무가 주로 중개 일이다보니 커미션도 바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자본금만 나가는 형국이었죠. 게다가 경기는 나빠져 주문도 없고 저는 월급도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매출이 없으니 영수증 처리도 못하고 막막했죠. 그런데 문득 사랑의리더쉽이란 여섯 글자가 떠올랐어요. 직원 한명을 그만두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깨달음이 있더라고요. 어려울 때일수록 웃음과 사람으로 직원들을 대해야겠다는. 다음날부터 웃으며 직원들을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다른 업체들은 더 어려워지는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2008년 12월, 덕분에 신용장을 받아 중국에서 오픈할 수 있었습니다.2011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오면서 재정위기를 먼저 맞은 것은 유럽이었다. 중국 수출도 막혀 박 사장의 회사도 이익은 줄고 비용은 증가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설상가상, 상해 시에서 외지인들의 4대 보험 의무 가입 정책을 발표했다. 5년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박 사장은 이때도 정면돌파를 택했다. 규정이 발표되자마자 전 직원 4대 보험을 들고 내친김에 직원들의 출산 양육비를 정기적인 임금으로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직원들은 더 열심히 일했다. 1-2월 비수기에도 실적은 100% 성장했다. 위기를 맞을 때마다 정공법으로 맞서 오히려 동력을 만들어낸 박 사장은 이제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꿈꾸는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발휘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박상윤 사장은 창업 5년만에 연매출 400억주재원서 '1인 기업 성공 신화'박상윤 사장은 익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익산에서 다녔다. 초등학교를 나와 공무원이 된 아버지는 타고난 부지런함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는데, 공직에서 은퇴한 후에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어 여든을 앞둔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가 고민하던 사춘기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자신의 이름 상윤(相潤)의 뜻에 눈을 떴다. 서로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그때부터 마음에 새겼다. 전북대 상대 무역학과에 입학한 1980년대는 학생운동이 치열했던 시기였다. 운동권에 적을 두진 않았지만 운동권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의식을 공유했던 그는 학교를 드나드는 사복경찰에게 감시의 대상이었다. 결국은 덕진공원 옆 여관에 불려가 1박 2일 동안 전단지를 뿌렸다는 자술서를 쓰라는 강요를 받았다. 하지 않은 일을 거짓으로 인정해야하는 자술서 대신 군 입대를 택했다. 복학 후에는 공부에만 몰두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마치고 선경케미칼에 입사했다. 지방대 출신이란 핸디캡을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극복했다. 입사 첫날부터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 나기까지 매일 아침 7시 30분 출근시간을 지켰다. 가끔씩 사무실을 둘러보는 회사 사장은 가장 일찍 출근해 중국어를 공부하는 신입사원을 눈여겨보았다. 회사가 지원하는 중국어학연수에 뽑힌 것도, 중국 주재원 발령을 받은 것도 그 덕분이었다. 1996년 1월부터 상해 주재원으로 일하기 시작해 12년 만에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가족들은 상해에 두고 귀국해 여덟 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지내면서 창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상해로 돌아와 자본금 2억원을 투자해 1인 기업 상윤무역을 열었다. 2008년 3월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오로지 직무에만 충실했던 그는 아무런 준비 없이 결행한 창업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친분과 신뢰를 쌓았던 중국지인들의 도움으로 매년 100% 이상 성장, 창업 5년 만에 연매출 400억 원 규모의 강소 무역회사를 만들었다. 직원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 기회를 갖게 해주고, 미래의 꿈을 공유해온 기업 철학이 가져온 결실이었다. 인생의 전반전을 끝내고 이제 후반전의 시작점에 선 그는 오랫동안 품어온 기업의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크고 작은 강연을 통해 자신의 기업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해온 그는 지난해, 중국진출을 꿈꾸는 젊은 세대를 위한 책상하이박의 진심 경영스토리-선한영향력을 펴냈다.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인 그의 진심경영 민낯이 거기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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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4.06.12 23:02

[(20) 김제 (주)서원산업] 친환경 콘크리트 제품 생산…기술·경영혁신 업체로 주목

한양대학교와 산학협력으로 기술을 개발, 수준 높은 고강도 콘크리트를 개발하고 녹색인증 및 특허도 출현하여 학술지에 올리는 등 건축 및 토목에 절대 필요한 자재를 연구하여 생산하는 (주)서원산업(대표이사 장정자). 서원산업 직원중에는 8개국에서 모여든 2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내국인 근로자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열심히 일하고 있어 사업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김제시 황산면 홍정리 277-19번지 일원 2만여평에 둥지를 틀고 있는 서원산업이 생산 하고 있는 주요 제품은 콘크리트맨홀을 비롯 가로등기초, 스틸그레이팅, 압연디자인그레이팅, 콘크리트 암거, 벤치플품관 등 대략 6가지로 구분된다.제가 콘크리트 제품을 생산 하는 사업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처음에 (주)서원산업에 철재를 수입해서 납품하게 되었는데 회사가 빚더미에 올라 곪을대로 곪아 부도 직전임을 알고 부랴부랴 주식 변동하고 인수절차를 밟아 지난 2006년 9월 회사를 인수하게 됐다는 장 사장은 회사를 인수하고 나니 매일 아침마다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치고 전 대표이사 부인은 위자료랍시고 사무실 물건마다 압류딱지를 붙이고, 직원들은 월급이 체납됐다며 생산을 중단하고. 정말 기가막히더라고 말문을 열었다.장 사장은 처음에는 사실 막막하기만 하더군요. 그러나 일은 이미 엎어진(?) 상태로 그냥 주저 않을 수는 없었다면서 이후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여 이젠 빚도 갚고 회사 부지도 넓히고 연구소도 창설하여 새로운 제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서원산업은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제품 다양화, 고객 눈높이에 맞는 제품 생산, 고객 스스로 찾아와 맞춤형 제품을 제작 하는 여성기업 등록 콘크리트 제품 생산 전문업체로, 최고의 기술과 품질로 맨홀류 제작에 앞장서는 창조적 기업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처음은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서원산업은 현재 콘크리트 업계에서는 걸음마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직원들의 열정과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 등이 어우러져 조만간 콘크리트 업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서원산업은 현재 특허를 5건 보유 하고 있고, 4건을 출현중에 있으며, 조달청에 4건1500여가지 품목이 등록되어 있다.또한 올해안으로 3건1000여가지 품목을 추가 등록할 계획이며, 중소기업청으로 부터 이노비즈(기술혁신형기업) 및 메인비즈(경영혁신형기업)를 인증 받았다.지난 1999년 창업한 서원산업은 창업 후 어려움을 겪다 2006년 현 장정자 사장이 회사를 인수, 2007년 부터 매년 매출이 10억원씩 늘어나 지난해에는 7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날로 번창 하고 있다.장정자 사장은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연구하여 인간중심, 친환경적인 콘크리트 제품을 생산하여 지역사회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면서 고객이 우리 제품을 믿고 찾아주시는 만큼 우수한 품질로 고객에게 보답하는게 당연한 도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녀는 우리는 고객(발주처 기관 및 지자체 등)의 눈높이에 맞춰 제품에 발주처 및 지자체 등의 상호를 새겨주고 있다면서 자그마한 배려이지만 고객들이 너무나 만족해 하고 신선해 한다고 귀띔했다.서원산업은 앞으로 꿈이 하나 있단다. 회사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사회적 기업으로서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과 직원 복지향상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방침이다.매출 초과 달성 시 직원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생각 하고 있고, 직원들의 해외연수도 검토 하고 있다. 직원 자녀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 및 연구소를 적극 지원하여 활발한 연구 개발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장 사장의 꿈이다.● 장정자 대표이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숱한 어려움 이겨내"남들이 말하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서원산업을 맡게 된 것은 신의 섭리로 생각합니다. 처녀시절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무역업무를 익힌 후 여러나라를 다니며 보따리 오파를 하는 등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항상 서정적이고 낭만을 즐겼던 저는 콘크리트 사업을 하면서 메말라가는 마음을 다독이며 넌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어를 수 없이 되새기며 마음을 추스렸습니다.(주)서원산업 장정자 사장(58)은 오늘의 회사가 있기까지 숱한 고난과 어려움을 겪은 한편의 인생 역전드라마를 쓴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잘나가던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며 멋도 부리고 낭만도 찾던 그야말로 순수한 처녀였다. 하지만 무역회사에서 익힌 업무를 토대로 보따리 오파를 하며 또다른 인생을 맛보게 된다.숱한 어려움을 겪은 후 현재 (주)서원산업의 모태인 서원산업에 철재를 수입해서 납품하다가 회사의 부도로 급기야 회사를 인수 하게 됐다. 그러나, 회사를 인수하고 나니 가관이었다. 직원들은 체납된 급여로 생산을 중단하고 빚쟁이들은 날마다 사무실로 들이닥쳐 난리를 피우고, 제품은 KS가 나오질 않아 관급은 엄두도 못내고 사급으로 제품 판매에 나섰으나 제품 값 떼이기 일쑤고.장 사장은 잠시 멘붕에 빠졌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과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러다간 우리 모두 공멸이니 다시한번 열정과 희망을 가져보자고 다독거렸다. 장 사장의 이러한 설득이 하늘을 움직인걸까? 직원들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열정을 보였고 모든게 순조롭게 순항했다.이후 (주)서원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며 그동안 회사를 괴롭혔던 빚도 갚고 회사도 넓히고 연구소도 창설하여 한양대학교와 산학협력을 맺어 기술개발에 나서는 등 날로 발전 하고 있다.장정자 사장은 오늘날의 우리 회사가 있기까지는 70여명의 직원 및 항상 격려해주고 성원해주는 건축, 토목 사장님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면서 이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정말 건실하게 키우고, 좋은 제품으로 고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콘크리트 제품 생산 회사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최대우
  • 2014.06.12 23:02

[(23) 지역별 유적지와 기념사업 - 정읍 ②] 기념제를 축제로 승화…유적지 세계유산 등재 박차

올해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맞아 혁명의 중심지로 꼽히고 있는 정읍지역에서는 여러 기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기념문화제를 시작했으며, 관련 유적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역사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여지도 가장 많은 곳이 정읍이다. 실제 정읍에 기반을 둔 단체들을 중심으로 혁명 성지에 걸맞은 위상정립과 지역민들의 자긍심 고취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와 동학농민혁명유적보존회, 정읍시 동학농민혁명 선양팀의 그동안 활동을 통해 정읍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어떻게 기려지고 있으며,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았다.△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이사장 이갑상이하 사업회)는 1968년 갑오동학혁명 기념문화제를 시작으로 47년째 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정신을 기리고 있다.기념문화제는 2008년 황토현 동학축제로 명칭이 바뀐 뒤 다시 2012년부터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제로 이름 지어 내려오고 있다.올해 행사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희생자의 슬픔을 함께하는 의미에서 이벤트성 프로그램을 지양한 채 기념식과 위패봉안례, 전시 등 공식행사 위주로만 진행됐다.기념식에서는 전국유족회, 동학농민혁명 관련 단체 회원, 천도교 관계자를 비롯한 시민 등 참석한 가운데 제4회 동학농민혁명대상 시상식이 함께 열렸다.대상은 평생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발굴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고(故) 표영삼 선도사에게 수여됐다.사업회는 앞으로 시민단체로서의 활동영역을 넓히기 위해 지역사회 현안사업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이 단체는 다음달 말 제16기 전봉준 역사캠프를, 오는 10월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제32차 문화유산답사에 나설 계획이다. 11월에는 역사의 길 걷기가 예정돼 있다.혁명사를 정리한 서적 발간과 혁명 정신 알리기 사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현재 정읍지역 근현대 민족운동사 발간을 준비 중이며, 무형문화재 및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에도 힘을 기울일 계획이다.이갑상 사업회 이사장은 황토현동학농민혁명 기념제의 내실화를 꾀하는 한편 혁명 정신과 의의를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강좌 개설, 유적지 답사 등 문화교육사업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동학농민혁명유적보존회1996년 설립된 후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선 동학농민혁명 유적보존회(이사장 김동길 이하 보존회)는 황토현동학농민혁명 기념제, 고부봉기 재현 등 각종 동학 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고 발길을 놓았다.보존회는 혁명을 기리는 사업 뿐만 아니라 혁명의 발자취와 유적 등을 정리하는 일에도 앞장서왔다.특히 농민군의 최초 집결지로 꼽히는 정읍 말목장터의 역사적 의의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조선시대 정읍지역의 큰 시장터인 말목장터는 1894년 1월 일어난 고부농민봉기 당시 농민군들이 주둔해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2001년 전북기념물(제110호)로 지정됐으며, 말목정등 기념물이 건립돼 있다.이 밖에도 보존회는 혁명을 논할 때 그 주체가 되는 농민군의 역할에 대한 조명이 부족하다는 인식 아래 혁명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농민들의 투쟁 방법과 정신을 기리는데 힘썼다.또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을 위해 관련 기관과의 연대에도 주력했다.보존회는 앞으로 바뀌는 국정교과서에서 고창 무장지역을 혁명의 시작으로 다루려는 것에 대해 적극 반대 입장을 표명한다는 입장이다.김동길 보존회 이사장은 혁명의 숨은 주인공인 무명 농민군의 역할에 대해 조명하는 한편 잘못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정읍시청 동학선양팀정읍시는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맞아 거둔 가장 큰 성과로 황토현전적지 부지에 추진되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을 꼽았다.올해부터 2017년까지 국비 388억원과 부지 95억원 등 모두 480억원을 들여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전승지 33만5826㎡ 부지에 기념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기념공원에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숭고한 넋을 추모하고 정신계승을 위한 희생자 공동묘역과 위령탑 등 추모시설, 연구소와 연수동 등 연구시설, 동학농민혁명을 체험하고 교육할 수 있는 교육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특히 이 사업이 완료되면 정읍지역이 동학농민혁명의 메카(Mecca)로 우뚝 서게 됨은 물론 전국화와 세계화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한 주변 유적지 및 관광지와 연계돼 지역 관광산업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공원이 들어서게 될 황토현전적지는 1894년 4월 7일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치룬 최초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전승지이며, 1963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혁명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기념시설물인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건립돼 있다.1981년 12월 10일 국가문화재 사적 제295호로 지정됐고, 1987년 이후에는 전봉준 동상과 사당인 구민사 등을 비롯하여 기념시설이 조성됐다.또 2004년에는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이 맞은 편에 들어섰고 2010년부터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상주하고 있다.시는 기념공원 조성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고부봉기를 상징하는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탑도 세울 계획이다.시는 18921893년 진행된 교조신원운동과 1893년 11월 결의된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거쳐 결행된 1984년 1월 고부관아 점령은 이후 무장기포와 백산대회를 통해 더욱 조직화됐다며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혁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지역성 탈피, 전국세계화 과제이갑상 동학농민혁명 계승사업회 이사장은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할 때 정읍시와 민간단체 사이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시는 과거처럼 민간단체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동등한 입장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맞아 정읍이라는 지역성을 탈피하고 전국화, 세계화를 지향하는 기념사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이를 위한 관련 기반 조성을 위해 무형문화재혁명 관련 기념물 유네스코 등재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역사학계 역시 정읍지역의 단체간 선명성 경쟁과 관 주도의 기념사업에 우려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지역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적 해석이나 기념사업은 전국화세계화로 향해가는 동학농민혁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정읍을 놓아야 정읍이 더욱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역사학자들의 말을 새겨볼 일이다.

  • 기획
  • 최명국
  • 2014.06.11 23:02

[① 제6기 전북일보 시민기자단 좌담회] "'틈새 민심' 생생하게 전달하겠다"

본보가 올해도 시민기자제도를 운영합니다.NGO 시민기자가 뛴다 코너는 해마다 NGO와 시민들에게 지면을 제공, 건강한 지역사회가 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공간입다.전북 도민과 함께 여는 이 공간은 언론이 채 다 둘러보지 못하는 우리 삶 구석구석의 소식을 전하고 때론 시민들이 궁금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더불어 결국, 달라질 건 없다고 말하는 모든 이에게 평범한 이웃들이 우리가 꼭 공유해야 할 진짜 가치를 전해주고 함께 고민할 계획입니다.제6기 전북일보 시민기자단으로 참여하는 시민기자는 신향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취업지원팀장, 이지훈 전주시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장, 박귀녀 금암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 이상민 청년 CEO 등 총 4명이다. 8일 전북일보 편집국장실에서 열린 제6기 시민기자단 좌담회에서 이들의 각오와 계획을 들어봤습니다다."취업 희망 여성들 길라잡이 역할"△ 신향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전북여성새로일하기센터) 취업지원팀장신문 지면은 시대의 상황뿐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바를 꼭 집어 알아낼 수 있는 길라잡이다. 그런 면에서 도내에는 결혼과 함께 사회생활을 그만두었던 경력단절여성 중 다시 일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다. 실제 얼마 전 한 취업포털에서 직장에 다니지 않는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여성 재취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9명이 재취업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력단절여성들이 재취업 성공에 이르기까지는 높은 취업의 문과 가사, 육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해 도내 경력단절여성 1만233명이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했다. 또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전북여성새로일하기센터)는 이 중 43%인 4433명(상용직61.8%)의 경력단절여성을 취업 지원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스킬은 물론 경력과 인맥도 없어 취업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하지만 100세 시대의 노후를 생각하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은 분명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가까운 취업전문기관에(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 구직 등록 후 전문취업설계사와의 심층상담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파악하고, 두 번째 자신의 진로에 적합한 직업교육훈련을 통해 실무역량을 키우는 것이다.세 번째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이렇듯 위 언급한 과정을 통해 재취업을 희망하는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해 전북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는 동행면접, 취업연계 후 사후관리 등 one-stop취업지원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지면을 통해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당당한 직장여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날을 위해 여성들의 일자리에 대한 주요한 정보와 정책 방향에 대해 한발 앞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문화 가족이주 노동자 조명"△이지훈 전주시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장지난해에 이어NGO 시민기자가 뛴다의 다문화 부분의 기사를 쓰게됐다. 이제 우리 사회는 다양한 민국과 국가 출신의 국제이주배경을 가진 이주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다. 결혼이민자는 한국인과 혼인해 가족을 이뤄 새로운 공동체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은 아직 한국사회 속에서 여러 고단함과 힘겨움을 감내하면서 슬픈 눈물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결혼이민자와 자녀 등 그 가족구성원들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과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정책과 사업은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부족하고 미흡한 중앙정부의 다문화정책 일부분을 조명해보기도 했다. 최근엔 다문화 형태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다.국제이주배경을 가지고 정착하고 있는 사람은 결혼이민자를 중심으로 한, 다문화가족 외에도 노동관계 속에서 한국에 근로자로 들어와서 도내의 여러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그리고 학업을 위해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유학생들도 있고, 조선족과 고려인 등 동포이지만 2세대 3세대를 지나면서 외국 국적의 소지자로서 한국에 들어와 방문취업 등 여러 형태로 정주하고 있는 이민자들도 있다. 또 최근에는 결혼이민자 등의 가족들이 방문 동거 비자 등을 발급받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정주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이웃으로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올해도 이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여러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다양한 문제를 조명해 보겠다.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다. 이러한 기회를 전북일보의 NGO 시민기자가 뛴다를 통해 시민들과 공유하여 나눌 수 있음은 소통의 중요한 창구로써 작용을 해내는 것이기에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다.올해도 다문화 부분을 담당해 시민들과 현장의 얘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보려 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노인 문제 사회적 해법찾기 온힘"△박귀녀 금암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금암노인복지관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다. 이번에 전북일보 시민기자활동을 권유받고 노인복지관에서 10년 일하는 동안 만나온 어르신들과 어르신들을 지원하는 제도와 정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지난 기간 어르신들과 보내온 일상의 삶들은 부족한 저 자신에게는 새로운 도전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그 배움을 이번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그동안 현장에서 배우고 느껴온 과정들을 나누고 어르신들에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노인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게 됐다는 사실은 언론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노인 문제는 건강문제와 아울러 생계, 취업, 주택, 교통, 교육, 여가활동 문제 등 실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대사회에서 심신이 허약한 노인을 위한 사적 부양능력은 약해지고 사회적 부양능력은 아직 미성숙하다는데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다. 무엇보다 이러한 노인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노인가정사회국가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하나, 문제의 영역에 따라 노력과 책임의 소재 및 크기가 다르다. 우선 신체적경제적정서적으로 노인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야 하며, 경로 효친 사상의 고취, 공동체 의식의 함양, 복지 시설의 확충, 사회참여활동의 활성화, 사회보장제도의 확대 등이 있어야 한다. 지면을 통해 노인 문제 해결에 대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노인복지관에 근무하며 매일매일 노인의 일상을 접하는 사람으로서 지금부터라도 제가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옮기는 작업을 하고 싶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고 노인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관심을 가지고 살필 수 있다면 좋겠다. "청년 실업 문제 함께 고민"△이상민 청년 CEO시민기자단이라는 생소한 활동을 통해 기사를 쓴다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다. 작지만 청년 CEO가 되기까지 도시락 배달사업의 창업으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공급자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젊은 층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취업에 대한 고민은 나아가 젊은이들이 사회문제를 꺼리게 만든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기업에서 요구하고 있는 자격조건 쌓기에만 전념하는 게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등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이와 함께 지역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젊은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시야를 넓혀 지역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한 번 고민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이를 풀 수 있는 방안들도 모색해 보겠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청년 실업에 대한 의제와 생생한 도전기가 올바르게 다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특히 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청년 창업 제도를 통해서 얻어낸 경험과 현실에 적용하면서 얻어낸 경험들을 바탕으로 취업의 문턱에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꼭 취업만이 정답인가라는 의제를 두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다.또 청년들의 취업 대안으로서의 창업이 아닌 자신의 재능을 살려 청년 사업가로서 당당한 삶을 사는 성공 사례를 발굴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 싶다.

  • 기획
  • 윤나네
  • 2014.06.09 23:02

[(19) 남원 '춘향골사람들 영농조합법인'] '내 가족이 먹을 음식 만들듯' 전통식품 가공·생산

남원시 노암제1농공단지에 위치한 춘향골사람들 영농조합법인은 임종준 대표이사를 포함해 8명이 근무하는 소규모 업체다. 3300㎡ 부지에 공장 규모는 2000㎡로 비교적 아담한 편이며, 지난해 매출액도 20억원 정도다. 하지만 전통식품산업의 메카를 꿈꾸는 이 업체의 포부와 가능성은 대단하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가공해 전국은 물론 해외 소비자의 식탁에 올리겠다는 남원 춘향골사람들. 내 가족이 먹을 음식처럼 만들겠다는 전통식품의 명가는 올해 26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성장의 탑을 쌓아 올라가겠다는 각오다.△전통식품의 고급화 및 제품화춘향골사람들은 전통한과, 김부각, 시래기, 산나물 등 크게 4종류의 먹을 음식을 내놓고 있다. 지역 내에서 생산된 찹쌀을 주원료로 사용해 정직한 맛을 담은 전통한과는 말그대로 전통 그대로의 제조방식을 고집하는 최고의 식품이다. 화학첨가물색소가 아닌 천연분말 등을 이용해 색이 고운 한과를 만드는 게 특징이다. 위생관리 시스템(HACCP) 도입과 최첨단 제조설비, 금속검출기 가동 등으로 이뤄지는 철저한 생산관리는 이 업체의 자랑거리다.김에 양념한 찹쌀풀을 발라 참깨를 뿌려 볕에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먹는 김부각. 춘향골사람들은 이 김부각의 고급화 및 상품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체의 화학조미료나 방부제, 첨가제를 넣지 않고 오직 우리땅에서 길러낸 자연산 김과 찹쌀이 원료로 사용된다. 고소하고 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아이들 도시락 밑반찬용, 술안주, 간식용으로 제격이다.지리산청정시래기는 100% 계약재배 또는 자가생산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조선무청, 시래기전용 열무, 배추우거지 등을 삶아서 냉동하거나 건조해 공장, 식당, 가정에서 손쉽게 조리할 수 있게 포장돼 있다. 이 시래기는 밥과 김밥, 된장국, 나물, 고등어조림, 등뼈감자탕, 들깨국 등에 안성맞춤이다.취나물, 고사리, 토란대, 고구마대 등 자연향이 가득한 지리산산나물의 제품화도 눈길을 끈다. 국내산 나물을 제철에 수확해 적당한 온도에 삶아 건조해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웰빙식품이다. △춘향골사람들이 걸어온 길이 업체는 2002년에 전통한과 가공공장으로 출발해 2006년에 현재의 위치인 노암농공단지에 자리를 잡았다. 2004년에 농림부가 주최한 전통식품 선발대회에서 한과부문 전라북도 1위를 차지했고, 2008년에는 대통령 명절 선물용으로 청와대에 납품했다. 춘향골사람들은 또 노동부 지정 클린사업장(2007년), ISO9001 인증(2009년), 농림부 전통식품 품질인증(2010년), 농수산품질관리원 스타팜 인증과 바이전북 인증(2011년), 여성친화일촌기업(2013년)으로 전통식품산업의 메카를 향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에 미국 H마트로 냉동 나물류 등 15종(3만여개)의 제품 납품을 시작으로 3월에는 18종(3만여개)의 제품이 추가로 수출됐다. H마트는 미국 내 45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동부지역 최대의 아시아 마트다. 청정지역인 남원에서 생산된 봄 나물류가 미국의 밥상에 오르게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춘향골사람들은 올해 미국, 호주, 뉴질랜드에 제품을 수출할 예정이다. 2014년 수출 목표액은 5억원 정도다.● 임종준 대표이사 "차근차근 쌓아가는 신뢰명성 중요"임종준(41) 대표이사는 더디지만 안정적인 성장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짧은 기간동안에 비약적인 성장을 원하는 대다수의 기업가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임 대표는 왜 이 같은 마인드를 갖게 됐을까? 어쩌면 그 답은 전통식품의 명가라는 목표 속에 있는 듯 보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성장을 원하지 않아요. 차근차근 쌓아가는 신뢰와 명성이 중요하죠. 임 대표가 고향인 남원에 내려와 2002년 7월에 춘향골사람들을 창립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2년여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듭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행착오는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는 비법이자, 신뢰와 명성을 구축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됐다는 점이다.서울 벤처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사업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고, 친척이 운영하는 유과공장에서 사업 아이템을 얻었어요. 당시 유통은 전혀 몰랐고, 기술력도 부족해 실패를 반복했죠. 2년여 기간동안 전북대 도서관과 국회 도서관에서 레시피, 유통 등과 관련한 논문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그 때 맛의 기준을 자리잡았고 유통에 눈을 뜨기 시작했죠. 임 대표는 사업 초반에 기술력, 자금, 유통 때문에 애로를 겪었지만 그동안 큰 풍랑없이 사업을 이끌어왔다. 감당할만큼만 성장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것이다.물론 임 대표에게 욕심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춘향골사람들이 전통식품산업의 메카로 발돋움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에는 수출을 본격화하고 홈쇼핑 방송 등 공격적인 홍보마케팅도 준비중이다. 이런 임 대표에게도 다양한 제품개발은 버거운 문제다. 임 대표는 개발하고자 하는 사업 아이템은 있으나, 급속냉동이 아닌 상온보관 방식 등의 기술적 역량이 부족하다면서 춘향골사람들이 전통식품의 메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품개발이 필요하다. 기술적 지원이 이뤄진다면 남원에서 생산된 청정 농산물이 국내는 물론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 기획
  • 홍성오
  • 2014.06.05 23:02

[(22) 지역별 유적지와 기념사업 - 정읍 ①] 동학농민혁명 첫 함성 울려퍼진 곳…유적지 '전국 최다'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였던 정읍지역은 혁명의 발자취가 담긴 유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농민 수탈의 상징이 되고 있는 만석보와 혁명을 계획한 사발통문 작성지, 관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황토현 전적지 등이 당시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특히 동학혁명의 함성이 가장 힘차게 울려퍼진 곳인 정읍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유적지와 혁명을 기리는 기념탑비가 건립돼 있기도 하다.혁명의 산실이자 혁명의 진행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정읍지역은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정읍시에 따르면 정읍지역 동학 문화재로는 국가에 의해 3건(전봉준 고택황토현 전적지백산성), 전북도에 의해 3건(만석보 터말목장터와 감나무고부관아 터)이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이와 함께 정읍시는 유적지의 관광자원화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내 비지정 문화재인 유적지 11곳과 유물 3건의 문화재 지정 추진을 논의하고 있다.유적지 11곳은 전봉준 단소, 원평 농민군 무덤집강소, 대둔산 최후항전지, 태인 전투지, 삼례 봉기 터, 전봉준 피체지, 김개남 고택 터, 은적암, 전봉준 생가 터, 초록바위다. 유물 3건은 대원군 효유문, 종리원사부동학사, 정읍 순교약력이다.이에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맞아 정읍지역의 혁명 유적지를 찾아, 그 역사적 의미와 시사점에 대해 짚어본다. 답사에는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이 동행했다.△수탈의 상징, 만석보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만석보는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동진강 상류에 세워졌다.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은 인근에 이미 제 기능을 다하던 예동보가 있었음에도 군민들을 강제로 동원 만석보를 쌓았다.특히 조병갑은 보세(洑稅)라 하여 보의 윗논은 1마지기에 2말, 아랫논은 1말씩 징수해 농민들의 원성을 샀다. 이에 전봉준, 김도삼, 정익서 등 고부 군민들은 1893년 1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고부관아에 수세감면을 진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분노한 농민들은 전봉준의 지도 아래 1894년 1월 10일 고부관아를 들이쳤다.현재도 만석보는 조병갑의 악랄한 농민 착취 등 수탈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넓디 넓은 배들평과 만석보에 서린 농민군의 땀과 눈물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현재까지 유유히 흐르고 있다.△동학혁명 모의탑농민군 위령탑정읍시 고부면에 위치한 동학혁명 모의탑은 1969년 사발통문 거사계획 참여자 후손들이 중심이 돼 만든 것이다. 이 탑은 인근에서 혁명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모의탑 옆면에는 사발통문과 결의문이 새겨져 있다. 또 후면에는 사발통문 서명자 20명의 생몰연대와 그 후손들의 거주지 등이 기록돼 있다.이 사발통문은 1968년 사발통문 서명자의 한 사람인 송국섭의 아들 송기태가 여산 송씨 족보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고부농민항쟁이 우발적 감정의 폭발이 아닌 철저한 계획 아래 진행됐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현재 원문은 송씨 일가에서 보관하고 있다. 모의탑 인근에는 실제로 사발통문을 작성한 곳이 자리하고 있다.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지만 혁명 거사를 준비한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가까운 곳에는 1994년 세워진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이 있다. 사발통문 모양의 둘레석안에 5m 크기의 주탑과 주탑을 둘러 싼 1~2m 크기의 보조탑 32개에 각각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농민군을 상징하는 얼굴과 당시 무기로 사용됐던 죽창 등이 조형물로 조성돼 있다. 밥그릇 모양의 조형물은 당시 농민군이 들고 일어서게 된 이유로 꼽히는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표현한 듯 했다.△말목장터와 감나무조선시대 정읍지역의 큰 시장터인 말목장터는 1894년 1월 일어난 고부농민봉기 당시 농민군들이 주둔해 있던 곳이다. 이 일대는 2001년 전북기념물(제110호)로 지정됐으며, 말목정등 기념물이 건립돼 있다.농민봉기 당시 전봉준은 통문을 돌려 갑오년 1월 9일 저녁 농민들을 이곳에 모이게 했다고 한다. 당시 여기 모인 500여명의 농민군은 고부관아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옥문을 열어 억울하게 갇혀 있던 군민들을 풀어주는 한편 고부군수 조병갑의 악정에 조력한 자들을 소환하거나 잡아들였다.여기 있는 감나무는 당시 집결해 있던 농민군들이 잠시 기대어 쉬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21m, 둘레 1.8m이며 수령은 180년 정도인 이 감나무는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옮겨져 있다.△황토현 전적지동학혁명기념탑정읍시 덕천면에 자리한 황토현 전적지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이 관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곳이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동학혁명을 기린 기념유적인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1963년 세워진 탑은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주도로 건립됐다.이전까지 동학란으로 치부되다가 당시 혁명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함으로써 혁명사 연구의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국민적 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황토현 전적지의 한 높다란 언덕에 세워진 탑에서는 정읍지역의 혁명 유적지가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기단부에는 甲午東學革命紀念塔이라는 글이, 뒷면에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와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가보리라는 구전민요가 새겨져 있었다.탑을 내려오면 인근에는 전봉준을 기리는 사당과 전투 중 전사한 농민군의 위패가 보관된 구민사가 자리하고 있다. 어지럽던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한 줌 흙으로 사라진 농민군의 혼이 면면이 흐르는 듯 했다.동행한 이병규 박사는 황토현 전적지 인근은 국가 차원에서 동학혁명을 기렸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장소라며 최근 정부에서 이 일대를 기념공원으로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봉준 고택과 부모묘정읍시 이평면에 자리한 전봉준 고택은 사적 제293호로 지정돼 있다. 1890년대 당시 일반적인 농가의 모습을 재현한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1칸이다. 전봉준이 28세 때인 1878년에 지워진 고택은 1894년 안핵사 이용태에 의해 일부 소실됐다가 1974년 보수했다.고택 옆에는 초가로 지은 관리동이 있고, 인근에는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전봉준은 이곳에서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인근에는 전봉준 단소가 있다. 전봉준의 가묘인 이곳에 자리한 단비에는 갑오민주창의통수 천안전공 봉준지단이라고 쓰여있다. 1954년 천안 전씨 문중에서 말들었고, 단비명은 사학가 김상기 박사가 이름 지었다. 전봉준과 비를 세운 이들의 행적을 적은 비가 가득 세워져 있어 어지러울 정도였다.여기서 150m 가량 떨어진 곳에는 전봉준 부모묘가 있다.△유적지 체계적인 관리보전 시급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혁명 정신을 널리 구현하기 위해선 유적의 체계적인 관리와 보전이 급선무라며 특히 고부관아터의 경우 역사적 의의가 큰 만큼 국가사적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그는단지 거쳐가는 곳이 아닌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유적지가 되려면, 유적 하나하나에 특색 있는 이야기를 입혀야 한다면서 이로써 관광자원화가 된다면 많은 관광객들이 정읍을 찾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동학혁명의 본고장인 정읍지역 유적의 역사적 가치와 시사점을 유지계승하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선양 사업이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기획
  • 최명국
  • 2014.06.04 23:02

[창간 64주년][융합산업시대] '덧셈의 혁신', 전북발전 심장이 뛴다

21세기 창조 경제(Creative Economy)의 발전은 융합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전 사회경제문화적인 융합 확산이 대한민국의 창조 경제를 견인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가치, 시장이 생겨나고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등 생산방식과 사업 모델마저 변화하고 있다.융합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지거나 그렇게 만드는 일을 말한다. 경영학적인 관점으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학문이나 기술, 산업, 제품, 서비스 문화 등이 물리적화학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개체를 창조하는 활동을 뜻한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국가융합기술발전기본계획(2009~2013)에서 융합 기술을 기술 분야와 활용 목적에 따라 구분했다.기술 분야별로는 나노기술 NT(Nano Technology)와 생명공학기술 BT(Biology Technology), 정보기술 IT(Information Technology), 문화콘텐츠기술 CT(Culture Technology), 환경공학기술 ET(Environment Technology) 등 5개 기술군 중 2개 이상의 기술군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활용 목적별 구분은 기술간 융합을 통해 융합 신기술 및 신산업을 창출하는 원천기술창조형과 신산업창출형, 산업고도화형 등 3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는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경제로 정의하고 있다. 실제로 각기 다른 분야의 학문, 기술, 제품 등이 결합해 새로운 융합 학문, 융합 기술, 융합 제품 등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사례는 이미 보편화된 상황이다.실제 미국과 EU,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융합 산업을 미래 발전과 경제사회 혁신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범정부 차원의 국가 융합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융합은 기존 산업의 성장 정체를 극복하고, 혁신을 통해 기업의 성장을 견인해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융합 산업은 기술 융합화를 통한 새로운 활로 개척과 다양한 수요자 요구에 기반을 둔 블루 오션(Blue-Ocean)의 창출을 통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또 기존 기술의 혁신을 통해 단기간 내 사업화가 가능하고, 신 시장 및 새로운 가치를 신속하게 창출해 빠른 경기 부양 효과를 보이는 점 등도 융합 산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이렇듯 가파른 성장이 예상되는 융합 산업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탄소 소재를 다양한 산업에 활용하는 탄소 산업이다.탄소 소재는 시장 동향과 전망이 매우 우수한 원천 기술의 확보 여부가 관건이다. 이를 △고성능 전기 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투명 전극 등 기능성 전기전자 분야 △에너지 저장 및 절감형 소재부품산업 분야 △친환경 수처리 및 건축 산업 분야 등의 지속적이고 시장 창출형 융합 산업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향후 탄소 융합 산업의 과제로 언급된다.

  • 기획
  • 문민주
  • 2014.06.02 23:02

[창간 64주년][융합산업시대] 전북 '탄소 메카' 조성, '융합산업 르네상스' 주도한다

탄소는 금속과 비철금속(고강도 및 전도성), 세라믹(내열성), 플라스틱(경량) 등의 장점을 모두 보유한 소재로 일컬어진다. 산업 전반의 에너지 절감을 위해 사용이 급격하게 증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특히 항공과 풍력 블레이드, 자동차 부품, 스포츠 용품 등의 산업 분야에서 탄소 융합 산업이 활성화 될 것으로 예측된다.원천 기술로 탄소 소재 기술은 석유석탄계의 전구체로부터 물리화학기계적 융합 공정을 통해 탄소만으로 이뤄진 다양한 크기 및 차원(입자상, 섬유상, 판상)의 탄소 물질을 생성한다. 이후 금속세라믹고분자 등의 매트릭스와 융합해 혁신적인 성능을 갖는 고부가가치형 소재 및 부품을 창출해 내는 기술이다.현재 국내 수요 탄소 소재의 대부분은 상용화 기술 및 시설 부재로 수입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특히 전라북도 탄소 소재 육성 사업의 초점인 탄소섬유와 흑연, 활성탄소는 대외 수입이 매우 높은 품목이다.국내 탄소섬유 관련 업체 중 직접 탄소섬유를 수입해 사용하는 업체는 약 45개 업체다. 그밖에 150여개 업체는 한국카본과 SK 케미칼에서 생산되는 카본 프리프레그를 사용하고 있다.다른 산업이나 소재와의 융복합성이 우수해 전 산업에 걸쳐 다양하게 활용되는 탄소 소재는 융합에 의한 신산업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협업 플랫폼 형성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 혁신의 주체가 돼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떠오를 수 있다.△새만금과 융합산업 메가 클러스터 새만금개발청은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 노출된 부지(156.3㎢), 고군산군도(3.3㎢) 등에 레저관광문화생태 공간산업 용지 등을 조성해 명품 복합 도시, 동북아 경제의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특히 산업 용지 유치 업종은 자동차 부품과 조선 기자재, 기계 부품, 신소재나노 융합, 신재생 에너지, RFT(핵융합), 바이오 식품 등을 선정할 계획이다. 즉 첨단 업종과 신에너지 분야 R&D 기능을 연계한 차세대 성장 육성 축을 조성할 계획인 것이다.새만금에 가장 적합하면서도 꼭 필요한 산업으로는 탄소 소재 활용도가 높은 친환경 수처리 산업과 친환경 전기 자동차, 친환경 건축 산업 등이 꼽힌다. 새만금에 친환경 수처리 연구 센터와 전기 자동차 실증 연구 센터, 건축친환경 실증 인증 센터를 설립하고, 새만금을 친환경 미래 도시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새만금 지역에 미국의 실리콘밸리(약 3억 평), 일본의 즈꾸바연구학원도시(약 9500만평), 대덕 특구, 대구경북 DGIST, 송도 사이언스빌리지 등 국내외 혁신 클러스터를 능가하는 100만평 융합 산업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100만평 융합 산업 메가 클러스터 구축으로 세계적인 우수 연구자와 투자전문가 등의 공동 연구, 사업화 추진에 의한 전북의 산업구조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100만평 융합 산업 메가 클러스터에는 우리나라와 전북의 미래융합기술 진흥을 위한 미래융합기술진흥원을 설립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여 연구할 수 있는 글로벌 공동 연구소설치 등이 청사진으로 제시된다.또 융합 산업 메가 클러스터에 국내외 200여개 탄소 융합 산업 분야 전문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적극 유치한다면 상호 시너지 효과가 발휘될 것이다. 대기업 10개를 비롯해 중견 기업 20개, 중소기업 150개, 지식 서비스 산업 분야 및 전문 연구 기관 20개 등으로 구성해 연구 개발과 사업화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성할 수 있다.여기에 전북 탄소융합산업대학교대학원까지 설립한다면 기업과 연구 기관에 공급할 전문 R&D 인력과 기술을 육성할 수 있다. 혁신 클러스터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외 우수 대학교와 창업보육센터를 유치하고, 과학 문화 복합 콤플렉스(Complex)를 구축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글로벌 연구 문화 단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국외 선진 탄소 소재 산업 클러스터MAI(Munich Augusburg Ingolst ate) 카본 밸리는 독일 남부의 아우디와 BMW 등 프리미엄 자동차 생산 기지가 위치한 뮌헨, 아우구스부르크, 인골슈타트 등 3개 도시를 주축으로 한다. 60여개의 탄소 기업 연합체가 자동차용 탄소 복합재 적용을 위해 국내외로 활동 중이다.CFC(Carbon Fiber Composites) 밸리는 에어버스(Airbus)사를 중심으로 독일 함부르크 지역의 탄소 관련 기관과 기업 연합체 형태로 구성돼 있다. 주요 기업과 기관은 에어버스와 DLR, 프라운호퍼, CTC 등으로 항공용산업용 탄소 복합재를 다룬다.이탈리아 첨단 소재 기술 특구(IMAS T)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공업단지에 있는 특구로 탄소복합재 관련 20여개 기업과 기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업체 피아트를 비롯해 항공기 제작사 보잉, 반도체 회사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글로벌 기업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각국의 탄소 기술 개발 현황현재 탄소 시장은 일본과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 주도로 탄소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원천 기술 보유 소수 기업이 독과점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일본 도레이와 도호, 미쯔비시가 전세계 탄소섬유 생산의 89%를 점유하고 있다.선진국들은 대규모 정부 지원 및 확보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R&D 활동을 추진한다. 일본과 미국 등은 대기업과 학연 위주의 다기능 탄소 소재 생산과 응용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자국 내 광범위한 제품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일본은 도레이와 도호, 미쯔비시 등의 기업을 중심으로 연구 개발을 진행한다. 신에너지 산업 기술 종합개발기구(NEDO)와 시즈오카대학,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등 연구 기관과 대학을 중심으로 탄소섬유 연구를 하고, 도레이는 카본블랙과 티탄블랙을 이용해 수지블랙을 양산하고 있다.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소용 탄소섬유 연구 자금을 지원한다. 특히 미국은 탄소나노튜브 기술력이 세계 최고로 탄소나노튜브 관련 원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중국 또한 정부 주도의 탄소섬유 투자 확대로 전략적 육성 체계를 구축하고 나섰다. 제12차 5개년 계획에 탄소섬유 기술 발전 내용을 포함해 고기능탄소섬유(T400, T700 수준) 원사와 탄화 등의 연구 개발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15년까지 1만 톤급 기술을 확립하겠다는 계획이다.국외 각 국가들의 탄소 소재 개발 현황은 기능의 다양화와 고도화, 폭넓은 응용 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다.향후 전북은 이러한 각국의 실정을 반영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융합 기술 및 산업의 영역을 구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직면한 사회적 니즈(Needs) 및 정책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융합 산업 테마의 선정과 추진이 절실한 시점이다.

  • 기획
  • 문민주
  • 2014.06.02 23:02

[창간 64주년][새만금 이제부터] 차이나밸리·문화관광 활성화…새만금 품격 높인다

지난 1991년 착공 된 새만금사업의 관건은 속도다. 올해로 23년째가 됐지만 민간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터덕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꺼내든 새만금 한중경제협력단지 조성 카드는 개발 촉진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G2로 성장했다. 정부는 새만금 조기개발을 위한 방안으로 문화관광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우선 대규모 관광객을 끌어모아 새만금을 널리 알리고, 관광수익도 기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새만금 개발, 이제부터 본격 시작된 셈이다.△한중경제협력단지로 위상 제고 기획재정부와 중국의 경제 수석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쉬사오스(徐紹史) 주임)는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제12차 한중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새만금에 한중경제협력단지(차이나밸리)를 조성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26일 새만금위원회에서 새만금에 국가별 경제협력특구를 조성해 민간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새만금 한중경제협력단지는 새만금 복합도시용지에 산업, 교육, 연구개발(R&D), 주거, 상업 기능이 있는 25.8㎢ 규모의 융복합도시를 개발하는 게 골자다. 양국 정부는 올해부터 추진 절차와 일정 등을 협의하고, 개발 참여기업을 선정해나갈 예정이다. 개발속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 독자기업과 한중 합작기업 모두 참여토록 하고, 참여 기업에는 매립과 조성, 분양 등 전 과정을 일괄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려 한다.한중경제협력단지는 세계 외환보유고의 33%를 차지(세계 1위)하고 있는 중국의 해외진출 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고, 민자유치에 어려움을 겪어온 새만금의 투자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준비됐다. 실제 새만금 한중경제협력단지의 관세는 4%로, 중국 11%보다 낮다. 또 중국 기업들이 자국 제품에 브랜드 가치가 높은 Made in korea를 붙일 수 있고, 한국의 각종 R&D(연구개발) 기관들을 활용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정부는 새만금 한중 경제협력단지를 올해 말이나 2015년께부터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4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새만금개발청, 중소기업중앙회, 산업은행,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전북도 등 6개 기관이 새만금 한중경제협력단지 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문화관광 활성화는 개발 촉진제정부는 지난해 12월 26일 새만금위원회 회의를 열어, 새만금 관광명소화 방안을 확정했다. 새만금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한중경제협력특구 조성을 통한 차별화된 투자환경과 문화관광 활성화 방안이 마련된 것이다. 새만금 조기개발을 위해 큰 틀에서 민자유치에 나서지만, 당장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문화 관광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새만금사업은 1단계인 오는 2020년까지 농업용지와 산업용지만 개발된다. 나머지는 2030년 이후에 개발된다.개발 대상은 새만금지구 조성 면적 283㎢의 55%인 156㎢까지 드러난 노출부지다. 크게 군산 인접 과학연구용지와 만경강 하류 배후도시용지, 새만금호 내 복합도시용지, 부안 인접 관광레저용지 등 4곳으로 구분된다. 이곳은 장기간 노출돼 염분 농도가 낮기 때문에 갈대 등 수변식물의 식생이 비교적 양호하고, 철새의 휴식처와 산란지로 이용되고 있다.새만금 일대에는 노출부지 외에도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와 주변 7개소에 조성된 토지(약 4.43㎢) 등 잠재적인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7개소는 군산측 방조제 인접부지, 신시도야미도 관광레저용지, 신시도 휴게시설, 방조제 사면부지, 북가력도, 부안측 방조제 인접부지, 변산반도 주변 석산개발부지 등이다. 이중 새만금호 및 노출부지를 자연생태 체험 및 자원생산 공간, 다양한 문화레포츠 활동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이를 위해 새만금개발청은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와 17개 시도 관광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갔다. 설명회에서는 세계 최장의 새만금방조제를 17개 시도에 무상으로 제공해 홍보비즈니스문화 교류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한 올해 새만금 일대에서 20여개 빅 이벤트 추진하기로 했다. 총 21억8900만원을 투입해 바다와 육지방조제 등에서 직접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레포츠 대회축제 등을 연중 연다는 계획이다.△한중경협단지 양국 공동의제 선정국토교통부는 올 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2014년 업무계획 보고에서 한중경제협력단지 가시화를 위해 연내에 한국과 중국이 양국 실무협의체를 구성,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담은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하는 등 새만금 활성화를 위한 5대 정책과제를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한중경제협력단지 조성이 양국간 주요 의제로 선정되는 것이 급선무다. 양국의 공동 이익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추진되기가 쉽지 않아, 자칫 계획 자체에 머물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중 경제장관회의 논의 차원을 뛰어 넘어, 한국과 중국 정부가 관심을 보이고 의지를 가져야 될 것으로 요구된다. 때마침 중국 외교부장이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나라를 곧 방문할 계획으로 전해졌다.새만금 관광명소화 방안도 우선 선도사업인 새만금방조제 시도별 특화공간(방조제) 조성사업에 대한 예산확보가 관건이다. 각 시도는 자체 예산으로 새만금방조제에 예산을 투입해 특화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시도의 불참으로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 2011년에도 새만금 랜드마크 공모사업이 일부 시도의 불참으로 취소된 적이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새만금의 조기개발을 위해서는 민간투자가 활성화돼야 하고, 민간투자는 동시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것을 고려, 한중경제협력단지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며 다른 개발지구보다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정부의 차별화된 지원정책이 적용될 때 새만금 활성화는 물론 국가발전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기획
  • 구대식
  • 2014.06.02 23:02

[창간 64주년][문화융성시대] 전문가 특별 좌담회 "일상에서 늘 문화예술 향유하는 공간 마련을"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을 화두로 삼았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지역별 순회 토론회와 함께 정책도 제시했다. 기존의 재탕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문화융성은 전통문화자원이 자산인 전북이 지향하는 길이다. 전북일보는 창간 64주년을 맞아 문화융성의 정책 기조와 맞물려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이 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지난 2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지역 실정에 맞는 지원과 함께 이를 위한 통합 관리주체의 필요성에 입을 모았다.일시 : 5월 23일 오전 9시~11시장소 : 한국소리문화의전당사회 : 김원용 전북일보 문화부장참석자 :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 유장영 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 김미정 전북도 문화예술과장, 김진아 익산문화재단 팀장-사회= 정부는 지난해 문화기본법을 제정하고, 예술인 복지법을 개정했으며, 올해부터 문화가 있는 날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적 체감은 부족하고 지역이 주도하는 문화는 인력과 예산의 한계로 이뤄지지 못한 점이 많다. △선기현 회장= 문화융성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우리는 체감하지 못한다. 문제는 문화예술인과 향유자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여기서 좌시되는 문제는 문화예술교육 부분이다. 지역에서 인프라는 있지만 활용이 미약하다. 전주 익산 군산에 거의 집중되는 만큼 중점도시에서 무주 진안 장수 등에 ‘강좌 배달제’를 실시했으면 좋겠다. 유휴 공간을 지역예술의 작업실이나 교육센터로 활용해야 한다. 소외계층에 찾아가는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융성위의 위원장이 장관급인데 예산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유장영 단장= 놓치지 말아야 할게 자발적인 활동이다. 앞에서 끌어주는 게 아니라 뒤에서 밀어줘야 한다. 최근에 앞에서 끌어주는데 초점이어서 우려된다. 문화융성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둬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제도적 장치는 돈을 많이 줘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도 미흡하다. △김진아 팀장= 익산문화재단에서 문화융성위가 간담회를 했는데 중앙과 지역이 서로 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문화정책은 아무리 좋아도 실행하는 예술인과 향유하는 사람이 느끼지 못하면 소용없다. 실적 위주가 아닌 삶에서 문화가 녹아있어야 하고 사람이 즐겨하는데 사람과 문화를 떼어놓고 보는 느낌이 있다. 더욱이 문화 격차가 심하다. 도에서 작은 영화관 사업을 하는데 농촌지역보다 익산이 더 절실하다. 인구는 30만 명인데 10년 전에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오면서 기존 5개 이상의 영화관이 다 죽었다. 그와 함께 인근 옷집과 식당 등 상권이 이미 없어져 결국 시민이 불편하다. 관람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근 군산이나 전주로 가는 형국이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그나마 호응이 높은 것은 영화 관람이다. 평소 전혀 문화생활을 안 하던 사람이 이날에 가지는 않고 토요일에 가던 사람이 한 번 더 가는 양상이다. 문화는 늘 주변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향유할 수 있다. -사회= 행정에서는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김미정 과장= 정부에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부처계획과 자치단체 계획은 5년마다, 시행계획은 매년 세워야 한다. 올해 지역문화진흥법 관련 체계는 구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없다. 결국에는 지역의 역량과 자생력이 정부 차원의 예산 또는 제도적 지원이 결부될 때에만 명실상부한 문화융성이 될 것이다. 지역에서 이미 하는 시책이 부처의 정책으로 가기까지 차이가 있다. △김진아 팀장= 유휴 공간 활용이나 생활동호회 활성화의 경우 자발적으로 건의해서 행정과 이미 조율이 끝난 상태인데 법에 명시화하면 그 순간 강제성이 부여된다. -사회=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문화라고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문화예술에서 지역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선 전북 문화예술이 갖고 있는 강점과 함께 이를 살리는 방안은.△김진아 팀장= 다른 지역에서 부러워하는 점이 그동안 지역에서 요구한 사항이 지역문화진흥법에 많이 들어갔다. 도의 삶의질 정책도 관에서 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동호회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오래 동안 추진했는데 반영이 안 됐다. 익산에서는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앞서 실시했다.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익산과 전주에 문화재단이 있다. 미약하지만 자발적으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문체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예술적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기관도 있고 예술인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예향이라고 한다. 더불어 전북의 문화정책이 샘플링되고 있다.△선기현 회장= 전시와 공연 분야의 기반은 돼 있지만 전시 분야는 인적 자원이 줄어들고 있다. 공연의 판소리, 국악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자리잡고 있다. 새만금을 관광과 문화예술과 결합해 활용해야 한다.△유장영 단장= 역시 전통문화의 자원과 활약에는 자부심을 많이 느낀다. 도립국악원의 경우 구성원은 예술가로서 소명의식과 자부심이 있다. 역설적으로 전통문화밖에는 없다. 한류는 대중가수 일부에 불과하고 전통문화가 결부돼야 하는 만큼 좀더 세부적인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김미정 과장= 여러 전통문화를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공예도 현대적인 수용 변용 가능한 부분이고 태권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문화창조거점의 핵심은 전통문화의 산업화다.-사회=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를 넓힐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김미정 과장= 문화융성은 문화를 융성하는 것과 문화를 통한 융성이다. 우리는 후자가 부족하다. 문화의 산업화가 지난한 부분인데 문화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제조업처럼 물건 만드는 시스템이 통하지 않는다. 상설공연 관련 지역의 수요와 공급이 안 맞는 만큼 산학관 커플링사업을 제조업뿐 아니라 문화산업커플링 등으로 미스매치를 해소하는 시도가 필요하다.△유장영 단장= 조선시대에도 영·정조 시대 중인이 부를 축척하고 문화를 지원해 판소리가 생길 수 있던 만큼 민간차원에서 자율적으로 문화가 활성화되고 기업의 메세나가 뒷받침돼 실질적인 예술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이런 활동이 지역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전북은행은 메세나 활동으로 해마다 공연을 하지만 대부분 서울에서 공연팀을 불러 온다. 지역의 규모 있는 행사에 도내 단체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 민간주도와 함께 전체적인 지원책에 대한 관의 통합관리가 필요하다.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몰려오는 영국이나 자국민 대상으로도 유지가 가능한 중국과 달리 전북의 문화상품은 시장규모를 예측해서 수요과 공급의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선기현 회장= 예비 예술인이 전북에 거주하고 머물러 줘야 한다. 문화 관련 굵직한 행정부처가 전북에 오면 좋겠다. 또한 젊은 예술가를 위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형식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보조사업의 자체 부담금을 10% 이하로 내려야 한다. 또한 현재 문예진흥기금 등을 기획재정부에서 광역특별 예산으로 돌리려 한다. 논리는 자율성 부여인데 거시적으로 문화에 부정적이다. 자치단체장의 치적이 아닌 문화전문인의 시각으로 보고 지원해야 한다. △김진아 팀장= 익산문화재단에서도 메세나 사업 하려고 2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했지만 중견기업 이상은 예술 후원을 이야기하면 돈 뜯으러 왔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아무리 좋은 기획서를 가지고 가도 검토를 안 하고 외판원 취급을 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지난 2년간 복지와 예술을 설명했다. 올해 어린이날 기업이 공연의 제반 비용을 제공해 보육원과 예술단을 연계하는 사업을 접수했다. 실제 이런 경우는 돈 별로 안 든다. 변화는 결국은 관이나 예술인이 하기 보다는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단체가 해야 한다. -사회= 문화재단 설립은 김완주 도지사가 공약으로 내세웠고 필요와 불필요 의견이 분분하다. 관과 민간의 협력 전문인 매개, 거버넌스 등은 문화재단이 설립돼야 가능하다. 도는 옥상옥이라는 결론과 함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김진아 팀장= 익산에서도 옥상옥의 문제는 계속 나온다. 하지만 있으면 그 역할의 필요성이 계속 대두된다. 정부는 민과 관의 중간인 지역의 문화재단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 하지만 전북은 광역단위의 문화재단이 없어 신청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결국 정부가 재단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면 전북도 발을 맞춰야 한다.△김미정 과장= 우리가 문화예술 고장이라고 하지만 정부 예산에서 누수되는 부분이 많다. 기본적인 것은 기능과 역할 범위를 어떻게 하고 예산을 가져오는 방안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실질적으로 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문제와 함께 문화재단의 시설운영도 고민이다. 기금을 500억 원 목표에서 200억 원이 모아졌다. 재단도 자칫 문화권력이 될 수 있는 만큼 서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유장영 단장= 문화재단 설립에 대한 거부감은 시설 관리에서 기인한다. 문화를 진흥해야 할 곳이 시설 관리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시설보다도 문화정책이나 중앙과의 연계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한 인력 채용에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거기에 속한 인력도 나눠먹기식이 아닌 부역이라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문화인을 보지 말고 도민을 보고 해야 한다. 공연도 전문가 만족이 아니라 도민 만족이어야 한다.△김진아 팀장= 서울·경기 시설 관리에 치중하다보니 전국에서 여기를 따라하다 그런 인식이 잡혔다. 하지만 익산은 시설이 없어 기획 위주로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광역도 늦게 출발한다면 앞의 실패 요인을 줄일 수 있다. 인력의 경우 인격에 의존하기보다 시스템이 문제다. 그 안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게 최소화돼야 한다. 채용시스템을 공개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익산문화재단도 초기에는 외부에서 온 인력으로 지역에서 소외를 받기도 했지만 이런 특단의 조치도 필요하다. -사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과 관련해 세종(문체부), 부산(영진위, 영등위), 강원(관광공사), 전남(예술위, 콘진원), 광주(아시아문화전당) 등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문화관광도시로 발전시킬 계획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전통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전북에 그런 비전이 부족하다. 우리 지역에 국립무형유산원이 설립됐는데도 현재 활용도가 낮다.△김미정 과장= 국립무형유산원은 아직 공식적으로 원장 임명도 안 되는 상태가 지속되고 공식 개원도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다. 유치하면서 기대가 컸고, 전북의 중요한 자산으로 지속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필요한 상태다.△김진아 팀장= 기관을 만들 때에는 그 역할과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전북에 좋은 기관이 상당수인데 개중에는 사람이 우선되는 곳이 있다. 이 기관이 시민에게 어떤 기능을 할지 먼저 고민하고 채워야 하는데 자리나 특정인을 위해 진행하다보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우리가 뭘해야 하는지 본인도 헤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과정이 불신을 부른다. 문화예술과 시민을 위한 기관으로 기대했는데 예산 쓰기 위한 곳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문화예술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거버넌스를 한다. 시민에게 무엇을 할지도 공개가 안 되는 곳은 개선이 필요하다.정리=이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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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명
  • 2014.06.02 23:02

[창간 64주년][출산이 미래다] 줄어드는 아기 울음 소리…늘어나는 노인 부양 의무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로 인해 향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여기에 고령화 속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지고 있다. 전북은 전국적으로 고령화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반면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생산성 저하 등 지역 발전의 잠재적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전북을 비롯한 전국 각 자치단체는 출산장려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그렇지만 출산 관련 지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에 본보는 저출산 실태를 진단하고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본다.△저출산 실태지난해 전국의 인구 1000명당 신생아 수는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여성 한 명이 평생 출산하는 자녀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 역시 4년 만에 1.2명 아래로 낮아졌다.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신생아 수를 의미하는 조(粗)출생률은 지난해의 경우 8.6명에 머물렀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지난해 총 신생아 수는 43만6600명으로, 2012년(48만4600명)에 비해 9.9%(4만8000명) 줄었다. 신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였던 2005년(43만5000명)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적은 수치다. 합계출산율 역시 지난해 1.19명에 그쳐 2001년 이후 13년째 초(超)저출산국(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인 국가)에 머물렀다.전북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북의 신생아 출산 현황은 지난 2009년 1만5233명에서 2010년 1만6100명으로 늘어났으나, 이후 2011년(1만6175명)과 2012년(1만6238명)에 들어서면서 증가세가 주춤했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1만4866명으로 줄어들었다.△저출산의 부작용출산율 감소는 고령화를 가속화 시키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전북지역의 노인 인구 비율은 지난 3년 동안 1.1%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1년 도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9만1919명으로 전체 인구(187만4031명)의 15.6%를 기록했지만, 2012년에는 도내 노인 인구가 30만3586명(16.2%)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31만2764명으로 1만명 가량 늘어나 전체 인구(187만2965명)의 16.7%를 기록했다.저출산의 부작용은 향후 생산 가능 인구 감소에 있다. 매년 신생아가 줄어들다 보니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수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지난해 전북지역 청년층(15~29세)의 경제활동인구는 11만9000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도내 15~29세의 인구는 약 35만여명으로, 경제활동이 다소 저조한 15~19세가 13만여명인 것을 고려 할 때 나머지 22만여명 중 절반정도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생산 가능 인구는 지역경제 성장에 근본인 노동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저출산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출산정책의 변화 필요저출산 극복을 위해 전북도와 일선 시군들은 보육료와 양육비 지원 등 다양한 출산 장려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신생아 출산율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출산 장려 방안이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전문가들은 도내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이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일과 가정 양립 문제, 자녀 양육 부담, 여성들의 결혼 적령기 초과 등을 꼽고 있다. 또한 과거와는 다르게 1인 가구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신생아 출산 감소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출산정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전북지회 관계자는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관리하는 분위기 조성이 선결돼야만 저출산을 막을 수 있다면서 아직도 눈칫밥을 먹고 육아휴직을 내는 여성들이 많은 만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출산장려에 동참할 수 있도록 사내 가족친화 프로그램 등 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인식개선과 근로환경 개선, 남성들의 자연스런 육아 참여 등이 함께 어우러질 때 저출산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대 따라 변한 출산관련 포스터캐치프레이즈 "적게 낳아 잘 키우자""아빠! 혼자는 싫어요"우리나라는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과거 정부의 산아제한정책이 한 몫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산아제한정책을 시작했다. 이 정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출산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대단한 캠페인이었다.시대 흐름에 따라 산아제한 포스터와 캐치프레이즈도 바뀌었다.1960년대에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였다. 이어 1970년대의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내 힘으로 피임하여 자랑스런 부모 되자, 하루 앞선 가족계획 십년 앞선 생활안정, 1980년대의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적게 낳아 엄마건강 잘 키워서 아기건강, 신혼부부 첫 약속은 웃으면서 가족계획등 산아제한을 위한 계몽적 카피가 주를 이뤘다.인구보건복지협회 전북지회에 따르면 1970년대 들어서 정부의 지속적인 계도로 출산율은 4명대로 떨어져 큰 효과를 보았다. 1980년에는 2.83명까지 출산율이 하락했지만, 정부는 인구 억제 정책을 더 거세게 밀고 나갔다.그러나 남녀 성비가 불균형을 이룬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생겼다. 선생님! 착한 일하면 여자 짝궁 시켜주나요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당시의 시대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그리고 저출산 문제가 본격 대두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는 출산을 장려하는 포스터가 나왔다.인구보건복지협회 관계자는 1980년대 중반쯤에 인구문제를 좀 더 거시적으로 내다보고 미래예측을 했더라면 지금의 인구 정책에 좀 더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 기획
  • 강정원
  • 2014.06.02 23:02

[(18) 정읍 (주) 세움] 국내 자동차 머플러 생산업체 중 유일 '국제기준 충족'

정읍시 하북동 제3산업단지에 소재한 (주)세움(대표이사 김화섭)은 버스, 트럭 등 상용차용 친환경 머플러 및 승용차 컨버터와 매연저감 장치, 진공소음기등 을 주력 생산하고 있다. / 지난 2006년 이곳 하북동 2만494㎡ 부지에 전신인 (주)이앤이텍 사무실과 공장이 준공된 이후 상용차용 머플러 양산체제를 갖추고 전라북도 유망기업 선정(2009년), 지식경제부 부품소재 전문기업 인증(2010년), 포스트 신장기 머플러 양산(2011년)등 성장을 거듭하면서 2012년 상호를 (주)이앤이텍에서 (주)세움으로 변경했다. / (주)세움은 '세상을 움직인다!"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회사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상용차용 머플러 전문 생산한국자동차 부품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며 울산공장과 용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종공업(명예회장 박세종)이 100% 출자한 (주)세움은 2012년 전라북도 선도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주요생산 제품중 유로-5 국제배기규제기준을 만족하는 상용차용 머플러는 현대차 전주공장과 기아차 광주공장에 독점 납품하고 있다. 정읍시에 자리를 잡은 것도 호남고속도로를 활용하는 교통편리성에 전주와 광주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서해와 가까워 향후 중국 현지공장 관리에 용이하기 때문이다.특히 국내 머플러 생산기업중에서도 국제배기규제기준을 만족하는 머플러를 생산하는 유일한 회사로 명성을 얻고있다주요 생산품인 상용차용 머플러, 진공소음기(IF-400), 매연저감장치(DPF), 농기계용후처리장치(CCRT)등을 개발제조하며 지난 2012년 기준 469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하는등 고공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또한 중국 사천성에 건립한 상용차공장이 최근 준공되어 양산체제를 갖추며 해외 시장 개척의 교두보를 확보했고 현재 정읍 본사내에 2공장 건립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위험성평가 우수 사업장 전북 1호(주)세움 직원들은 안전과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김화섭 대표이사부터 생산현장 직원까지 무엇보다 안전이 성장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전제조건임을 인식하고 있다. 2006년 회사 설립때부터 생산공정에서 무거운 제품의 이동 및 가공작업시 근골격계질환의 위험과 끼임 사고와 넘어지는 사고 등 안전사고 위험은 물론 타각작업과 용접, 밀링작업시 소음과 분진이 발생해 난청, 진폐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작업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했다.이같은 재해없는 사업장 만들기에 주력한 결과 2013년 4월24일 전라북도에서 처음으로 위험성평가 우수사업장인증을 받았다.△신나는 일터, 즐거운 직장 만들기 운동지난 2013년 전라북도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된 (주)세움은 전북테크노파크 주관 기업문화 개선 컨설팅에도 참여했다. 특히 즐거운 직장 만들기 운동을 통해 조직 내부의 역량을 결집하는 조직문화를 개발하고 구성원의 일체감을 강화하여 이직률을 줄이는데 노력했다.이에따라 60여명의 직원들은 회사의 규모나 연봉액수가 아닌 일에 재미를 느끼고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로 인식하고 조직문화를 이끌어내며 생산성을 향상시켜 왔다.△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한 R&D 사업 중시(주)세움이 제조하는 제품은 환경문제와 밀접한 제품으로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미래기술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자동차 소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선진국의 엄격한 소음규제 기준을 만족하는 소음기 개발 필요성과 선진 자동차업체에서 배기계 내구성능 개발이 중요 관심사로 부각됨에 따라 소음기 해석 및 설계전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다. 특히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미래 신성장 연구개발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지식경제부 용역사업으로 2011년~2014년까지 2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승용 클린 디젤 자동차용 Urea-SCR 시스템 분사모듈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사업은 2014년 적용되는 EURO-6 대응 승용 디젤 자동차용 DeNOx 시스템 관련 핵심 부품 및 최적 제어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다.또 선박용 배기 후처리 장치 Water Scrubber(2012년~2015년까지 배출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Water Scrubber를 개발하고 IMO 국제규정에 적합한 배출가스 정화 시스템 개발), EURO-6 상용 머플러 신규 컨버터 시스템(유로-6 후처리장치 배기가스 유도및 배기온도 유지를 위한 인슈레이션 파이프의 고신뢰성 신고상점접합 공정) 개발에 나서고 있다.이와 같이 (주)세움은 신바람나는 내부발전과 회사의 공신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인증을 선점하면서 더불어 공격적인 연구개발로 장기적인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 일류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화섭 대표이사 "인재 육성으로 매출성장 견인"(주)세움의 발빠른 기술력 확보와 고속 성장의 중심에는 김화섭(70)대표이사가 자리하고 있다. 세종공업 울산공장 부사장을 역임한 김화섭 대표는 지난 27년간 관리와 생산 양 방면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쏟아부어 (주)세움을 전북도내 대표 중견기업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김 대표는 2005년 유로-4의 적용으로 배기가스 허용 기준치가 강화됨에 따라 규제에 최적화된 상용차 머플러의 국내 생산이 시급했다며 (주)세움의 창립은 시대적 요구와 세종의 기술력이 맞아 떨어지며 이뤄졌다고 밝혔다.또 창립 8년만에 거대 매출을 달성하는 성장 비결로 인재 육성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자동차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목표달성을 위해 직원들을 스파르타식으로 강하게 관리했다며 인적 인프라가 부족한곳에 공장이 자리 잡았기때문에 공격적인 경영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다.이어회사가 망하더라도 직원 3개월 봉급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내실을 강조하는 모회사 세종공업 박세종 명예회장님의 경영철학을 토대로 직원들의 땀과 열정이 더해져 빠른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했다.

  • 기획
  • 임장훈
  • 2014.05.29 23:02

[(21) 동학 연구 어디까지 왔나 - 성과와 과제] "100주년 이후 답보상태…120주년 맞아 다시 꽃 피워야"

△폭발적 성과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올해로 120년이 되었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인식은 역사의 발전과정에 호응하여 변화되어 왔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도 그러한 인식의 변화에 짝하여 크게 발전되어 왔다. 동학농민혁명 직후부터 일제강점기는 동학란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위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그리고 선구적인 연구인 김상기의 동학과 동학란에서 그러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1950년대를 거치면서 반봉건 반외세의 기조위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1958년 김용섭의 〈전봉준공초의 분석〉이 이러한 흐름을 가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는 또한 내재적 발전론에 따른 근대사의 실재적 모습을 찾는 연구가 한국사 연구의 핵심과제로 부각하면서 특히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80년대 민중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면서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민중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아래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동학농민군이 바로 민중의 실재적 모습이라는 주장이 큰 관심을 받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이 바로 민중임을 증명하는 구체적 연구보다는 선언적 의미의 연구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00주년이 되는 1994년을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동학농민혁명의 사회경제적 배경, 주체세력, 조직으로서 동학교단의 역할, 동학농민군의 이념, 동학농민군의 지향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지속되지 못하였다. 100주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연구 성과가 도출되었으나 이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는 한순간에 시들어버렸다. 그러한 흐름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2004년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국가적 차원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고, 2010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설립되어 정부 차원에서 기념사업을 전개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실상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는 답보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제간 연구로 통섭적 접근 중요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단 1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한국 역사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바탕위에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가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보는 인식의 폭을 확장하는 것이다. 첫째, 학제간 연구가 절실하다. 그동안의 연구는 역사적 사건으로서 역사학이라는 관점에서 주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고 연구 성과도 이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철학, 종교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민속학. 인류학, 심리학, 지리학 등 새로운 학문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별개의 연구가 아니라 종합적 연구 즉 통섭의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1894년이라는 시간, 조선이라는 공간에서 있었던 모든 구성원의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군 주도세력, 농민군을 구성하고 있은 수많은 농민들, 동학농민군의 가족, 동학농민군 토벌에 참여한 토벌군, 동학농민군 토벌에 직접 참여한 민보군, 동학농민군을 인정하지 못하는 유생, 조선의 중앙관료, 조선의 지방 관리와 아전, 국왕인 고종과 대원군 그리고 민비, 동학농민군을 토벌한 일본군, 그리고 최시형과 손병희로 대표되는 동학 교단세력 등 다양한 세력들이 1894년 조선에 존재하고 있었다. 각각의 입장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동학농민혁명의 실체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갑오개혁 등 통시적 연구 필요셋째, 철저하게 지역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연구는 전봉준과 중심세력이 어떻게 동학농민혁명을 끌어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있었던 동학농민혁명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전라도 일부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식되는 한계를 가져왔다. 최근에 와서 지역적 관점을 견지하고 이루어지는 연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각각의 지역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지역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달랐고,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방식이 달랐고,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주력과 연결고리가 대부분 취약했으며, 동학교단과의 관계도 지역마마 큰 차이를 보였다. 때문에 이렇게 다른 조건으로 인해 각 지역마다 동학농민혁명의 양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역의 관점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전국적 차원에서 이를 종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넷째, 통시적 관점의 연구가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과의 관련성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절실하다. 1894년이라는 시간위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원인이 되고 갑오개혁이 결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1894년을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는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그러한 작업이 지극히 어려운 작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상이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1894년 이전의 사회구조 및 경제적 상황과 1894년 이후 사회구조 및 경제적 상황을 비교해 봄으로서 동학농민혁명이 한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흔히 동학농민혁명이 3.1운동, 독립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단지 선언적 측면이 강하다. 이에 대한 논증적 연구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연구가 논증적으로 확고하게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의 시작을 1919년 임시정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혁명과 비교 연구해야다섯째,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청일전쟁을 야기했고,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동아시아의 패권을 가지고 된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상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 그리고 삼국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120년 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현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섯째, 세계사적 관점에서 세계의 혁명과 비교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을 세계화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동학농민혁명을 세계의 혁명과 비교하여 연구하는 데는 주체로서 농민, 조직으로서 종교(동학), 성격으로서 반봉건 ,반외세, 자치(집강소) 등의 관점을 가지고 비교 연구할 필요가 있다. 주체로서 농민은 독일농민전쟁, 중국의 태평천국운동, 동유럽의 농민반란,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반란 등이 이에 해당하며, 조직으로서 종교는 중국의 태평천국운동, 독일농민전쟁이 이에 해당하며, 성격으로서 반봉건은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등이 이에 해당하며, 성격으로서 반외세는 필리핀, 베트남, 싱가폴의 반외세운동과 미국독립선언이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격으로서 자치(집강소)는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의 혁명과 비교연구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의 방향은 세계사적 보편성을 추구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증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한국의 미래 비젼을 제시해야 하며, 세계사의 미래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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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4.05.28 23:02

신임 신종연 전북치과의사회장 "더 많은 사람 위한 사랑의 인술, 행복 전북 만들기 앞장"

흔히 치아를 오복(五福) 중 하나라고 한다. 치아의 상태가 좋으면 음식을 잘게 부수어 소화를 촉진하고 위장에 부담을 덜 주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치아는 하나라도 아프거나 빠지면 여간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며, 치아가 많이 빠질 경우 음식섭취가 제한되고, 대인관계의 자신감이 떨어지는 등 삶의 질이 훼손된다.특히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예전에 비해 치아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러나 건강보험 미적용 등의 문제로 여전히 치과 진료를 고민하는 이들도 많다.이에 이달 15일 제32대 전라북도치과의사회장으로 취임한 신종연 회장(56·좋은얼굴신종연치과의원)을 만나 치아의 중요성과 지역 사회에서의 치과의사회의 역할 등에 대해 들어봤다.-전북치과의사회장으로 취임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전북치과의사회장이라는 영광된 자리에 서게 돼 지금까지 도와주시고 성원해 주신 전북 치과의사회 회원을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힘든 직책을 맡을 때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그 일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신 임원들과 함께 우리 치과의사회 회원과 그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가 좀 더 행복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취임식에서 의약단체 및 관련기관과 ‘지역사회 나눔 실천 선포식’을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우리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 의학단체와 관련기관이 함께 ‘지역사회 나눔 실천 선포식’을 했습니다. 전북의사회와 한의사회, 약사회 및 관련기관과 손을 잡고 장학사업과 다문화 가정, 노인 등 취약계층에 사랑을 나누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또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전북이 될 수 있도록 전북치과의사회가 앞장서서 새로운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지역사회 나눔 실천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신가요.“치과의사회의 슬로건이 ‘사랑과 행복의 씨앗을 뿌리자’입니다. 우리 지역의 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교육, 다양한 만남을 통해 나무를 가꾸는 마음으로 사랑과 행복을 나누려고 합니다. 장학 및 교육사업 등을 통해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훗날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고, 사랑하는 것이 사랑 받는 것보다 아름답고,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미나실을 오픈해 다양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지역사회에 세미나실을 개방할 계획입니다. 전주시 효자동에 조그만 세미나실을 만들어 의료전문 분야뿐만 아니라 인문학, 역사, 철학, 종교, 예술, 리더십 등 다양한 분야의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특히 세미나실을 치과의사뿐만 아니라 의료인과 시민 등 지역사회에 개방해 서로 공유하고 교류함으로써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치아는 오복(五福)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만큼 치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요.“예로부터 행복한 삶을 말할 때 오복을 갖췄다고 말합니다. 그중 하나가 치아를 꼽습니다. 그러나 서경 주서 홍범편에 오복은 수(壽·장수하는 것), 부(富·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 강령(康寧·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유호덕(攸好德·도덕 지키기를 좋아하는 것), 고종명(考終命·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치아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오복 중 수와 강령, 고종명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그렇게 전해져 왔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늘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예전 보다 치아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삶의 질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치아가 중요하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지만 건강보험 미적용 등으로 인해 치과진료에 부담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치아가 부실하면 건강도 유지하기 힘들고 자신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헌신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살아오셨습니다. 이에 대부분 부모님들은 치아가 부실한대도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말씀을 안 하시고 참으시면서 힘들어 하십니다. 그러나 현재 19세 이상 스케일링, 75세 이상 완전 무치악 틀니와 부분 무치악 틀니는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으며, 오는 7월부터 75세 이상엔 임플란트 2개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인간의 수명이 70~80세에서 100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나이 드시면 잘 저작(씹다) 할 수 있는 치아의 유무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특히 젊었을 때부터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치과의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 건가요.“수년 전부터 치과의사의 과잉배출로 치과병원이 많아지고, 환자의 만족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 병원을 개원한 치과의사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임원진들과 함께 후배들을 격려하는 것은 물론 치과의사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높이고 화합·상생·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아가 우리들이 힘을 합쳐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전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신종연 회장은 치과 진료 29년…'환자와 소통' 신념1983년 조선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대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고창 출신으로 1986년 전주에서 치과를 개업했으며, 1988년부터 치과의사회 임원으로 일하며 치의학계 발전에 이바지했다.신종연 회장은 “내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야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서 “치과 진료에 있어서 직원들과의 소통은 물론 환자들과의 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어린이에서 노인 환자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주제로 든 소통이 가능하다’는 그는 “대부분 환자들은 치과 진료에 두려움이 앞선다”면서 “환자들과 이야기하면서 환자들의 두려움도 없애고, 실력과 마음을 담아 꼼꼼하게 치료함으로써 환자들과 마음으로 소통한다”며 미소를 지었다.또 그는 치과의사의 과잉배출로 인한 개원환경의 악화에 대해 “(회장으로서)개원의들이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신 회장은 서울 경동고를 졸업했으며, 대한치과의사협회 전북지부 공보이사·법제이사·총무이사·재무·감사, 전주시치과의사회 회장·의장, 세계 임플란트 학회 한국회(ICOI Korea) 회장, 조선대 치과대학 전북지부 회장 및 치과대학 총동창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조선대에서 치과대학 보철과 외래교수로도 활약했으며, 대한치과의사협회장상(2003년)과 보건복지부장관상(2004년)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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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6 23:02

(20) 동학 연구 어디까지 왔나 - 자료 현황, 1996년 '사료총서' 발간, 동학혁명 자료 총망라

△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연구사에 획기적 진전 디딤돌역사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사료의 확보이다. 사료기록을 가지고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사건으로서 동학농민혁명도 사료의 확보를 통해 연구의 발전을 가져왔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은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하였고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자료들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새롭게 알려진 자료들은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질적 성장을 가져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일은 이렇게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을 총망라하여 자료집을 발간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이하 사료총서)이다. 1996년 발간된 이 사료총서는 편자 역사문제연구소동학농민전쟁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행인 이종학, 발행처 사운연구소로 되어 있다. 이 자료집이 발간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자료집의 편찬은 역사문제연구소(당시 소장 이이화)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는데, 재정적으로 어렵게 됐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사운연구소 이종학 소장이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여 사료총서를 발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편집위원으로 표영삼(천도교 상주선도사), 정창렬(한양대 사학과 교수), 신용하(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이화(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조광(고려대 사학과 교수), 신영우(충북대 사학과 교수), 강창일(배재대 교수), 이해준(공주대 사학과 교수), 이종범(조선대 사학과 교수), 우윤(서강대 강사), 박맹수(영산 원불교대 교수), 왕현종(연세대 강사) 등이 참여하였다(당시 직함). 총 30권으로 구성된 사료총서에는 동학사 등 동학농민군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남긴 기록, 수록, 취어 등 조선 관리들의 공문서, 양호초토등록, 양호우선봉일기 등 토벌군의 공문서, 오하기문, 나암수록, 석남역사, 의산유고 등 유생과 민보군의 기록, 동경대전, 용담유사, 갑오동학란 등 동학 천도교 기록, 일본외무성자료, 일본신문자료 등 일본기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사료총서에는 당시까지 발굴된 거의 모든 동학농민혁명 관련기록들이 총망라되었다. 사료총서의 발간은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왔다. 여기에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민중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는 많은 연구자들의 핵심과제가 되었다. 결국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주제는 한국사의 주제 중 단일주제로는 가장 많은 연구결과물이 도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물이 축척되어, 동학농민혁명은 반봉건 민주화, 반외세 자주화,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민중의 등장과 집강소를 통한 자치의 실현, 한국근대사의 방향을 결정하고 동아시아의 세력재편, 한국민족민주운동의 시발점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한국사에서 위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료총서의 발간이라는 기본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종합지식정보시스템 구축사료총서의 아쉬움은 여기에 수록된 자료가 한문이나 일본어로 된 원문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사료총서의 이용은 일부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었다. 초서 등으로 된 일부자료는 전문가들도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또한 사료총서가 30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를 구입하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의 동학농민혁명종합지식정보시스템(www.e-donghak.go .kr)의 구축이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 법에 따라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원회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위원회에서는 많은 예산을 투여하여 동학농민혁명종합지식정보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 시스템은 자료마당, 연구논저, 증언록, 연표, 일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주목되는 공간은 자료마당이다. 여기에는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30권에 수록된 자료에 대하여 원문이미지, 원문, 번역, 해제 등을 볼 수 있다. 일부 자료는 번역이 진행중인 것도 있지만 일본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인터넷만 연결되면 국민 누구나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사이트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도 연계되어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승계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기념재단은 계속해서 이 시스템에 대한 업데이트 작업을 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국역총서〉를 발행하여 국민들이 손쉽게 동학농민혁명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국역총서는 2013년까지 11권이 발행되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어려운 한문 자료를 이렇게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았는데, 이를 활용하여 연구를 진전시킨 결과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여기에 탑재된 번역된 자료를 활용하여 매우 의미 있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연구자들이 많이 나와서 동학농민혁명 연구의 질적 심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굴된 새 자료, 꿰어야 보배 1996년 사료총서가 발간된 이후 새롭게 발굴된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가 매우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료집으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발굴된 자료는 고흥군교구역사, 남원군동학사, 순교약력, 남원군종리원, 천도교임실교사, 구례군교구사, 천도교 장흥 동학혁명혈사, 동학난중기 등 동학 교단자료, 학초전, 김산 소모사실, 임동호약력 등 지역 수집자료, 창계실기, 동와유고, 겸산집, 둔헌유고 등 유생 문집자료, 미나미고시로 자료, 동학당상황 등 일본군자료, 國民新聞, 讀買新聞, 福岡日日新聞 등 일본신문 자료, 동학농민혁명 유족등록 과정에서 발굴된 자료, 그밖에 전봉준실기, 동학당 폭동, 원려당유사, 순도자명단 등 많은 자료들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여기에 일본 공문서관 자료, 일본 방위성자료, 그리고 일본 국회도서관 자료 등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 이렇게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은 〈동학농민혁명 자료총서〉로 발간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분량은 대략 20권 정도일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자료총서에 수록된 자료들은 번역과정을 거쳐 국역총서라는 형태로 발간되고, 이 모든 자료는 동학농민혁명종합지식정보시스템에 탑재되어 국민들이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난망하다. 무엇보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절실하다. 1996년 자료집 발간은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발간하였다. 그런데 특별법이 제정되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설립된 상황에서 자료집을 발간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의 세계화는 자료집 발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료집을 발간하여 번역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이 가지고 있는 세계사적 보편성에 대한 연구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다함께 잘 사는 세상, 화해와 상생 그리고 평등을 꿈꾼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을 세계화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료집(자료총서) 발간이 시급한 과제이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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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1 23:02

취임 4개월 박명득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장 "고속도로 교통사고 예방 만전…국민 생명 지키기 총력"

국토의 생명선이라 불리는 고속도로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북에서만 연간 800억 원이 소요된다. 고속도로에서는 작은 실수로도 큰 인명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는 24시간 비상대기 시스템을 통해 상시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다. 더욱이 세월호 사건으로 안전사고 예방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도로공사 전북본부 상황실의 비상대비 태세도 더욱 강화됐다.오는 23일로 취임 4개월을 맞는 박명득 한국도로공사 전북본부장(51)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사전 준비태세 확립’을 슬로건으로 정하고 안전과 더불어 전북 경제 부흥에 총력을 쏟고 있다. 박 본부장을 만나 도로공사가 추구하는 업무 방향과 넘어야 할 파고 등에 대해 들어봤다.-전북본부장 취임 소감과 향후 업무설계 방향은.“1994년 서해안고속도로 건설 당시 군산에서 4년간 근무한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전북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가장 애착이 갔던 서해안고속도로였던 만큼 고향에 온 듯이 마음이 푸근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고객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고객중심으로 사고를 전환시켜 고속도로 서비스를 고객이 원하는 대로 바꿔 나아갈 것입니다. 특히 국민이 안전하게 전북권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고속도로 교통사고 예방과 재난관리체계 유지에 더욱 힘쓸 것입니다. 오는 2015년 6월 한국도로공사 수목원 인근으로 신청사 이전이 이뤄지는 만큼 전북 경제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도로공사 전북본부의 주요 업무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죠.“쉽게 말하면 도로공사는 고속도로의 건설과 유지관리, 쾌적한 도로교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입니다. 전북본부는 전북권과 서남부 충청권 519.04㎞의 고속도로를 유지관리하고 있으며, 모두 39개의 톨게이트, 26개의 휴게소, 26개의 주유소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국 최초로 여산(논산방향) 휴게소의 하이숍(잡화코너)과 일반매장을 통합 설치해 휴게소 불법 노점상 문제를 개선한 바 있습니다. 또한 도로공사 최초로 기존 전면통행제한 보수방식에서 구간별 집중보수방식을 적용, 중부고속도로 무주IC~덕유산IC 구간의 보수를 마친 바 있습니다.”-올해 고속도로 관리, 보수, 개설 등의 업무는 어떻게 추진되는지 궁금합니다.“올 한 해 전북본부는 기존 고속도로의 유지관리와 시설개량 등을 위주로 약 800억 원 가량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중부고속도로 장수JCT~금산IC 구간 교량의 교면 개량공사 등 교면 개량과 포장보수, 졸음쉼터 설치(전북권 5개소)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 호남고속도로 전주~삼례간 화전2교 등 4개교는 구조물 노후화로 인해 올해부터 오는 2017년까지 실시설계 및 전면 개량공사를 추진할 계획입니다.”-지역 중소기업 육성 촉진과 물품 판로 확대 계획이 있으신지.“전북본부는 도민, 그리고 지역 업체와의 상생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판로지원법’에 따라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의무구매제도, 공사용 자재 분리 발주 제도 등을 적극 이행하는 동시에 조달청 등과 협조해 도내 우수 중소기업 초청 ‘공공구매 상담회’ 등을 개최, 지역 우수 중소기업의 판로개척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교통 전문가로 정평이 높은데 안전사고 예방 대책은 어떻게 추진하고 계신지요.“24시간 현장 대응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풍수해, 설해, 절토사면 붕괴, 교통사고 등에 신속히 대응할 것입니다. 특히 전북도 등 지자체와 고속도로순찰대, 소방서와 군부대(7공수, 35사단 등) 등 유관기관과 재난대응 협조체제를 공고히 할 것입니다. 전북본부 관내 노선은 전국 교통흐름상 중간에 위치해 과속이나 주시태만, 졸음운전 등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많습니다. 고속도로 사망사고 원인 분석결과 최근 5년간 가장 발생빈도가 높았던 졸음운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졸음쉼터를 5개소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며 지향성 음파 졸음 알리미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또 도로 상 사고 또는 고장 등에 따른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가까운 안전지대까지 무료로 견인해 주는 ‘긴급견인제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경기 침체로 어려운 도내 건설업계 지원을 위한 비책이 있다면.“전북본부 신축공사, 호남선 원천교 설치, 포장유지보수공사 등에 지역업체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있으며, 향후 신규사업 발주시 지역업체가 우선적으로 참여하도록 입찰 참여를 완화시키겠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사업과 관련해서도 현장관계자 회의 등에서 신규 하도급 시 지역 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독려하겠습니다. 또 공사비용 선금을 계약금액의 최대 50%까지 확대해 신속 지원할 것입니다.”-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점 홍보 사항이 있으신지요.“저희는 수목원을 운영, 5월 현재 192과 3410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곳은 환경부 서식지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5월부터는 일요일에도 전면 개방하고 있으며, 하절기 또한 관람시간을 오후 8시까지 연장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속도로 유휴부지에 통일희망나무 심기를 진행, 통일에 대비해 2016년까지 묘목 1500만 그루를 심을 것입니다. 북한의 산림이 황폐화된 점을 고려한 것이죠. 지금까지 전북본부 관내 고속도로 유휴부지에 12만주의 묘목을 심었으며 올해는 모두 20만주를 심고 가꿀 계획입니다.”-끝으로 도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고속도로 유지보수, 교통관리라는 기본업무는 물론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도록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적극 이행해 도민 여러분께서 신뢰하고 소통할 수 있는 도로공사 전북본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잘 지켜봐주시고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박명득 본부장은 빠르고 정확한 추진력 도로 건설현장 전문가박명득 본부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아우토반’으로 불릴 정도로 업무 추진력과 정확도가 높고 여기에 청렴까지 겸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울산 출신으로 건국대학교 토목공학과와 아주대학교 교통공학과 대학원 과정을 밟은 박 본부장은 1987년 토목직 평직원으로 입사한 이래 27년 만에 1급 본부장에 올랐으며, 건설현장에서 뼈가 굵은 ‘현장형 수장’이다.실제로 그는 입사 이래 지금까지 국내에서 건설된 거의 모든 고속도로 현장에 배치되는 등 대한민국의 1일 교통권을 형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및 건설교통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박 본부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로 군산에서 4년간 근무를 통해 현장을 담당한 바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는 평야지대라 흙이 많이 부족해 공사 현장의 성토를 위해 여러 지역으로 흙을 구하러 동분서주했던 일들이 추억으로 남아있다고 소개했다.박 본부장은 “고속도로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프며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24시간 비상출동 조직을 꾸려 현장의 위험사항을 제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한편 박 본부장은 지난 1987년 7월 한국도로공사에 입사한 이래 부산울산건설사업소 진주통영분소장, 군위 지사장, 냉정부산건설사업단장, 충청본부 기술처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으며, 부인과 슬하에 아들 2명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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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모
  • 2014.05.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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