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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탄소산업 일등공신 강신재 한국탄소융합기술원장

전주가 탄소산업에 뛰어든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잇따라 유치하면서 국내 탄소산업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의 강신재 원장이 다시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전주 탄소산업의 씨앗을 뿌린 인물로, 전주 탄소산업이 현재의 수준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강 원장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탄소소재 개발에 나섰다. 강신재 원장을 만나 전주 탄소산업의 현 주소와 전망,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탄소산업 등에 대해 들어봤다.-효성에 이어 GS칼텍스도 전주에 둥지를 틀면서 전주가 탄소산업 도시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전주 탄소산업의 수준은 어느정도 입니까."탄소섬유는 원료별 분류로서 팬(PAN, Poly acrylonitrile)계와 피치(Pitch)계가 있습니다. PAN계 탄소섬유는 일본 및 미국, 유럽시장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주로 항공기, 자동차 경량화 및 압력용기부품, 건축 내진보강강재 등으로 적용되는 등 산업용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피치계 탄소섬유는 높은 경제성(저가)과 구조제어의 용이성으로 상업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주의 탄소섬유는 이 2가지 원료에 대한 탄소섬유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PAN계는 현재 T700 수준의 탄소섬유를 양산개발에 성공하였으며, 피치계는 저가형 탄소섬유에 대한 요구 증대에 따라서 새로운 전구체 기술 및 전구체 섬유의 저가화 기술, 그리고 플라즈마 등을 이용한 열처리비용 저가화 기술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일본, 미국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자체기술에 의한 탄소섬유 생산국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특히, 탄소섬유의 원소재인 PAN계 탄소섬유 프리커서를 자체생산하고, 이를 활용하여 탄소섬유를 생산함으로써, 원소재에서부터 탄소섬유까지 완전 국산화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직은 선진국 기술수준의 70% 정도 수준입니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멉니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대한민국의 탄소산업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전진 기지로서 그 역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전주 탄소산업,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탄소산업을 위한 기반구축 및 연구개발 등 많은 분들이 지난 10여년간 많은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 5월에 (주)효성 전주탄소공장 준공식을 시작으로, 지난 9월 2일에는 GS칼텍스까지 전주에 투자를 약속하는 등 본격적인 '탄소섬유 도시 전주'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개발된 고성능 소재를 응용하는 첨단산업분야(자동차, 항공기, 국방산업, 스포츠산업 등) 대기업 유치 및 중소기업의 성장을 위한 국가와 자치단체 차원의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서는 다양한 소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현재 주목하고 있는 탄소소재 산업 분야는.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T700 수준 탄소섬유개발에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연구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그라파이트와 고성능 탄소섬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라파이트(Graphite)는 탄소섬유를 2200℃ 수준에서 한번 더 열처리한 고탄성 고급소재로서, 일반적으로는 골프채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아직은 일본, 미국, 독일 정도만이 기술을 가지고 있는 IT 제품 및 LED의 방열부품, 태양광, 연료전지 등 최첨단분야의 핵심소재입니다. T1000 수준의 탄소섬유 등 강도와 기능성을 모두 갖춘 탄소소재를 개발 중에 있으며, 향후 7~8년이면 승부가 날 것입니다."-전주시가 '탄소산업도시, 전주'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데, 외국 선진 탄소도시와 비교해 볼 때 글로벌 탄소산업도시로 나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기본 소재는 준비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를 응용한 소재부품분야에 대한 연구개발과 기업유치 및 기업성장 등 탄소산업 생태계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즉, '연구개발-신기술 제품화 기업지원 및 기업유치-기업성장-일자리 창출' 종합적인 기업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국내외 대기업 및 연구소 등과 공동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대기업 유치 및 중소기업 성장을 위한 기업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술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 부품의 경량화 및 고기능화 요구에 따라 고강도 탄소섬유복합소재의 사용이 자동차, 로봇 등 일반산업 전반에 걸쳐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시장확대에 따른 국산제품의 신뢰성 확보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 차원의 시험평가 및 인증센터 구축이 필요하고 이를 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 설치해야 합니다."-올초 기술원의 명칭이 한국탄소융합기술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과정도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명칭 변경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명칭변경을 위하여 탄소소재분야 전문가들로부터 독자적인 전문기술 보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기술원의 지난 10여년 동안의 탄소융합산업에 대한 연구개발 및 기업지원에 대한 성과의 진정성을 평가 받았습니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으로의 명칭 변경은, 전문가 및 정부로부터 탄소소재 및 융합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사업성과의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으로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국가적 탄소융합산업을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을 중심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며, 탄소복합소재 및 부품의 세계적 전진기지로서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을 인정한 것입니다."-지역에서는 탄소산업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향후 탄소산업의 전망은 어떻습니까."지구온난화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등 환경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신에너지 및 에너지 저장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에너지산업 육성과 제품 경량화를 통한 에너지 절감 및 에너지 효율성 향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동차 산업분야 등 일반산업으로의 적용 확대를 위해 탄소소재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고 있습니다. 탄소섬유산업의 경우, 전 세계 주요 첨단산업을 견인할 핵심소재로 인식되고 있으며, 연평균 약 19% 이상 고성장이 기대됩니다. 또한, 연평균 성장률 10.34%로 예상되는 그라파이트는 탄소섬유과 더불어, 향후 고성장이 기대되는 태양광, 연료전지, 로봇, 연료전지자동차, LNG 관련 산업 등의 핵심소재로 활용되기 때문에 더 높은 성장이 전망되고 있습니다."

  • 기획
  • 김준호
  • 2013.09.09 23:02

10. 풍수지리

풍수지리는 자연이 만들어 낸 갖가지 형상과 기운을 인간의 건강하고 복된 삶에 최적화하고자 하는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냈다. 그런 측면에서 풍수지리 세계에서 지리산은 교과서적인 곳으로 알려진다. 수많은 고산준령들이 산 아래 멀리까지 수십 수백 갈래로 여인의 치마폭처럼 펼쳐 내린 산줄기와 계곡 주변에는 풍수지리에 얽힌 사연들이 즐비하다. 지리산은 험한 산세 곳곳에 인간의 터전을 허락했고, 인간은 그곳을 지혜롭게 가려내어 대대손손 삶을 영위하고 있다비보진압풍수남원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국도 오른 쪽에 범실이라는 마을이 있다. 호랑이가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금 더 가면 밤재터널이 나오고, 터널을 빠져 나가면 구례 땅이다. 밤재터널이 있는 산 이름은 묘하게도 견두산(犬頭山)이다. 개 머리 형상을 한 산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와 관련 풍수전문가 최낙기 교수(선문대교수)는 견두산이 남원을 노려보는 형상이어서 남원에게 부정적인 형세라며 남원 광한루의 호랑이 석상이 견두산을 향해 배치된 것은 개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범실이란 마을이름도 견두산의 나쁜 기운을 방어하기 위해 붙여진 것일 수 있다. 금환락지 명당지리산의 서쪽 구례에는 금환락지 명당이 있다는 입소문과 함께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구례 명당으로 알려진 곳은 쌍산재(雙山齋)와 곡전재(穀田齋), 운조루(雲鳥樓)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국도 좌측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에 위치한 쌍산재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초승달형 명당이다. 노고단에서 곧게 흘러내린 산줄기가 넓은 들판 건너편 구례에서 하동쪽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을 목전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좌청룡 우백호를 형성한 곳, 바로 이 천혜의 명당에 상사마을과 하사마을이 위치하고, 그 명당의 가장 중심에 쌍산재가 있다. 최낙기 교수는 쌍산재의 안채는 노고단에서 내려온 기가 뭉쳐 혈을 이룬 곳에 절묘하게 위치하고 있다. 혈을 이루고 난 여기(餘氣)가 안채 10여미터 앞에서 당몰샘으로 변하였다. 이와 같이 혈 앞에 여기가 만들어준 샘을 진응수(眞應水)라고 하는 데, 진응수가 있는 혈을 큰 명당으로 친다.고 설명했다. 진응수가 풍수에서 말하는 계수즉지(界水則止-산줄기를 타고 뻗어온 기운이 물을 만나면 멈춘다)의 역할도 수행하여, 쌍산재 안채에 기가 몰려 있게 된다. 제대로 된 진응수는 물이 맑고 수량이 사시사철 일정해야 하며 물맛이 좋아야 한다. 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야 하는데, 당몰샘은 진응수로서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그래서 인지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받아가는 당몰샘물은 예로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쌍산재 자손 오경영씨는 터가 명당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지요. 당몰샘 물이 좋다며 전국에서 물을 떠가는데, 아마 미네랄 성분이 적당히 함유돼 있어 건강에 좋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산면 사도리의 좌청룡 건너편에 있는 토지면 오미리에는 금환락지형(金環落地形) 곡전재와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운조루가 자리잡고 있다. 최낙기 교수는 곡전재는 풍수지리적으로 금환락지의 전형적인 저택이라며 풍수지리적으로 많은 것이 고려됐다고 분석했다. 최교수에 따르면 금환락지는 산자락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들판에 볼록한 형태로 생긴 터다. 이 때문에 곡전재는 섬진강을 따라 생긴 바람길 선상에 놓이게 됐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일반 담장이 아닌 2m50㎝에 달하는 돌담을 둘러쳤다. 집 뒷산에서 호시탐탐 집안을 노리고 있는 규봉(窺峰-도둑 봉우리)으로부터 집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뒷담에는 울창한 대나무숲을 만들었다. 또 대로(19번 국도)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내지 않고, 곡전재 옆 담장길을 따라 드나들었다. 집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뒷산 규봉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한 풍수적 조치다. 혹은 도둑(규봉)에게 인적을 확인시켜주고자 하는 의도일 수도 있다. 최교수는 담장을 집 처마까지 높게 올려 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나지만 곡전재는 바람으로 인해 저택이 너무 건조해지는 것(습도 유지)까지 고려해 건축됐다고 덧붙였다. 비보진압(裨補鎭壓-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강한 것은 누른다) 풍수인 것이다. 곡전재 윗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명당 운조루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본다.)에 금구몰니형 저택으로 분석된다. 뒷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멀리 들판 너머 섬진강을 두고 있다. 최교수는 운조루는 대문 앞에 뒷산의 계곡물을 끌어 도랑을 만들고, 또 작은 연못도 조성했다며 이는 근본적으로 풍수지리적 조치다라고 말했다. 즉 풍수에서 기(氣)는 승풍즉산(乘風則散), 계수즉지(界水則止)다. 주산에서 흘러온 기가 집터를 지나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물길을 만들었고, 섬진강 바람 길을 따라 저택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러니까 집 주변의 습도를 높여줄 목적으로 도랑과 연못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명당으로서 갖추어야 할 부족한 조건을 보충하기 위해 연못과 도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천평마을도 금환락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으로 꼽힌다. 시천면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지리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천천이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분지 지형이다. 주민 조성배씨는 이 곳이 금환락지 지형이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금환락지 명당터를 찾아서 집을 지어오고 있다. 그러나 어느 곳이 진짜 금환락지 집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10년 전 도로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거대한 바윗돌에 금환락지를 새겨 마을 대로변에 세워놓고 금환락지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다. 최 교수는 시천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 자체가 금가락지 모양을 하고 있고, 지형을 살펴볼 때 금환락지비가 서 있는 곳 주변이 명당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치열한 기싸움지리산에는 일본의 기운과 관련된 풍수지리적 사연도 많다. 얼마 전 남원문화원이 운봉읍 노치마을에서 발굴해 공개한 목돌은 일제가 민족정기를 단절하기 위해 풍수적으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설치했던 거대한 잠금석이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에는 일본으로 가는 지리산의 맥을 끊기 위해 세 개의 연못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앞에서 3대째 바리때를 만들고 있는 목공예가 김을생씨는 고려 말기에 한 고승이 실상사에 머물던 중 지리산 기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고 큰 솥을 만들어 부연폭포에 집어넣어 기를 막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 기획
  • 김재호
  • 2013.09.06 23:02

업사이클링, 새로운 경제 가치를 만들다 ④ 해외 업사이클 기업 사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점차 많아지면서 국내에서도 다양한 업사이클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상당수의 업사이클 기업들이'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 아래 환경적 책임에 호소하는 정도로 머물러 있는 게 사실. 상품은 그 가격이 얼마일지라도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의 마음이 있어야만 한다는 데서 가치가 매겨진다. 가격과 원재료가 무엇인지에서 벗어나 상품 그 자체로 경쟁하는 해외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 사회를 선도하고 있다. 해외 선진 기업을 통해 업사이클 상품의 가치를 찾는다.△최초의 업사이클 기업,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스위스의 '프라이탁'스위스 프라이탁은 1993년 스위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마르크스 프라이탁, 다니엘 프라이탁이 비에 젖지 않는 질긴 가방소재를 찾는 것에서 시작됐다. 프라이탁은 트럭용 방수 천막을 사용해 가방을 만든다. 5~7년간 쓰고 버려진 천막을 잘라 가방 몸체를 만들고, 자동차 안전벨트를 가방끈으로 활용한다. 가방 모서리는 가죽 대신 자전거 고무 튜브를 쓴다. 모든 제품은 수작업으로 이뤄지며, 같은 디자인의 제품은 거의 없다. 3~5명의 담당 직원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폐방수천막을 구입한다해도 해도 수급량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약점을 기업의 협조를 이끌어내 극복했다.유난히 자전거를 많이 타는 도시인 스위스의 취리히에서는 튼튼한 방수가방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많았던 것도 성장 배경의 한 요인이다. 고가의 가격임에도 스위스 사람 10명 중 8명이 사용한다. 이 아이템으로 기업이 탄생하고, 그로인해 일자리도 창출되는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 스위스 프라이탁에서 연간 생산되는 가방은 30만 개 수준이다. 수작업과 희소성, 내구성이 특징으로, 언뜻 생각하면 고급 브랜드가 내세우는 강점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인상적인 건 '헌 것'이라는 편견에 일침을 가하듯 가격대가 20만~70만원이나 한다는 점. 이쯤이면 윤리적 소비를 위해서만 살 수 없는 수준인데, 이미 패션 피플 사이에선 멋 낸 듯 안 낸 듯 들고 다니는 또 하나의 '떠오르는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수 많은 에코백이 나왔지만 자원을 재활용 하면서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은 제품으로는 스위스 프라이탁이 유일하다. 안감은 에어백으로, 손잡이와 가방끈은 안전띠로, 마감 역시 자전거 바퀴를 사용하는 등 부자재 모두 폐기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세상에 한 개뿐인 가방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면서 세계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깔끔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에 트렌디한 색상의 가방은 패션 피플들이 사랑하는 진정한 에코백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 이건 스타일이야! 미국 버몬트의 '솔메이트 삭스''양말을 맞춰 신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Life's too short for matching)'는 슬로건을 가진 솔메이트삭스. 이 회사의 모든 양말은 짝짝이로 판매된다. 솔메이트 삭스의 창립자인 마리안느 워카린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꼼꼼하게 니팅하는 법을 배워 가족과 지인을 위해 매해 100개 정도의 양말을 만들었다. 이 것이 솔메이트삭스의 시초가 됐다.환경을 생각하는 기업 콘셉트로 이미 유럽과 일본 등 해외에서 큰 사랑을 받아온 솔메이트삭스는 실제 양말에 사용된 실이 버려진 티셔츠 등에서 재활용된 코튼이다.100%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솔메이트 삭스는 단단한 니트 소재로 신축성과 함께 따뜻하면서도 통기성이 높다. 아웃도어 뿐 아니라 남들과 다른 패션 아이템을 원하는 젊은 세대를 겨냥, 알록달록 짝짝이 양말이 패셔니스타들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세 짝을 상품 하나로 구성하는 상품 포장하는 방식으로도 크게 기업을 알렸다. 2만 8000원에서 3만 2000원이라는 고가에도 이 양말은 짝짝이 패션이 실수가 아닌 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전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일본, 유럽에서는 양말을 파는 전문점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최근에는 아이들의 피부에 친화적인 양말로 입소문이 나면서 관련 상품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내세우는 솔메이트 삭스는 제품 이름에 색상 매치에 있어서 영감을 받았던 꽃과 벌레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늘 자연을 느낄 수 있게끔 하는 생산 방식 때문에 '솔메이트 삭스'는 점차 큰 사랑을 받고 있게 되었다. 예쁘고 특이한 컬러를 가지기만 한 양말이 아니라 진실을 담고 있는 양말으로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 우피 골드버그 등 해외스타는 물론 고준희 한예슬, 윤민수 등 국내에서도 연애인 양말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전문 셀렉샵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미국 내 made in green, oeko-tex에 의 해 품질을 인정받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편안함 뿐 아니라 신고 있는 동안 소비자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 기획
  • 윤나네
  • 2013.09.05 23:02

13. 고창 흥덕초 - 고창의 관문에 자리…작지만 강한 학교 육성

△학교가 걸어온 길고창 흥덕초등학교(교장 최재수)는 1909년 4년제로 인가 받은 흥덕학원을 모태로 한다.이후 1922년 6년제로 인가를 받고,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1회 졸업생(1924년)을 배출하게 된다.1981년에는 병설유치원을 설립하고, 1996년 범국가적 일본제국주의 잔재 청산 정책에 따라 흥덕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학교 주위에는 인재배출의 요람으로 알려진 고창북고등학교가 있고, 흥성동헌(전북유형문화제 77호)이 자리잡고 있다. 대나무와 큰 나무들로 병풍을 두른 듯 소박하게 자리잡고 있는 흥덕면은 고려충선왕 재위 때(1308~1312) 설립됐고, 소개비에는 '흥성'은 '흥덕'의 옛 지명이라는 것과 장덕을 흥덕으로 고쳤으며, 고종32년(1895년)에 군으로 승격했다고 적혀 있다.또한 1914년 일제의 '부군폐합령'에 의해 무장과 함께 고창군에 통폐합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전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고창군의 경우 이미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고창갯벌과 운곡습지, 고인돌 세계문화유산, 선운산도립공원, 동림저수지 야생동물보호구역 등을 품으며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이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속해온 흥덕초는 인성과 실력을 아우르는 교육관을 기치로 내걸고 참인재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흥덕지역은 옛부터 고창으로 들어서는 대부분의 물자와 사람들을 맞이하는 입구 역할을 하며, 번성가도를 달리기도 했다.하지만 농촌지역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인구유출 현상이 심화하면서 흥덕초는 학생수가 급감했지만, 대신 작지만 강한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한편 올해 제90회 졸업식을 연 흥덕초를 거쳐간 학생은 현재까지 모두 1만36명에 달한다.△학교를 빛낸 인물흥덕초는 오랜 역사 만큼이나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김영근 전 대전지방국세청장(44회)은 전주고와 서울시립대를 나와 제23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들어섰다. 그는 서울청 조사3국 4과장, 국세청 국제세원관리담당관, 소득세과장, 정보개발1담당관, 광주청 조사2국장, 서울청 납세지원국장 등을 두루 지냈다. 꼼꼼한 일처리와 원만한 대인관계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이민영 한국미래문화연구원장(47회)는 2000년 문화법인으로 연구원을 설립, 문학을 중심으로 다른 장르와 조화를 이루는 다양한 문화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으며, 해마다 '한국미래문학'을 발간하고 있다.이 학교 48회 졸업생인 원찬희 전북대 교수도 환경교육 활성화 및 지역환경보전노력 등의 공로로 2001년 대통령표창을 수상하는 등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원 교수는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장을 맡다 전주시 기후변화대응 종합계획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주시는 향후 체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원 교수는 지역내 환경교육 및 조사연구개발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각종 환경위원회에 참여해 환경행정에 관한 조언과 자문을 아끼지 않은 점 등이 널리 평가받고 있다. 또 2001년에는 전북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 설립을 주도했고, 2003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센터장을 역임하면서 지역환경현안에 대한 조사연구 및 정책개발, 기업환경지원사업 등을 수행하기도 했다.도교육청 교육연구관에서 지난 1일자로 신임 교육장으로 임명된 김국재 고창교육장(49회)은 앞으로 고향인 고창지역 교육을 이끌게 됐다. 정책공보 분야에서 탁월한 기획력을 자랑하는 김 교육장은 앞으로 최장 2년간 교육장으로 일하게 될 예정이다.이와 함께 민학기 변호사(48회), 전 전북대 로스쿨 민법당당 교수와 전주지법 판사를 역임한 남준희 변호사(56회)가 법조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도약을 위한 노력흥덕초는 특색사업으로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배양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이에 스마트 기기를 보급, 역사문화 등 사회과목 뿐만 아니라 국영수 등 주요 교과에 관해서도 최신 교육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또한 학습모델 개발 및 디지털교과서 활용수업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사이버 가정학습(전북 e스쿨)과 연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이와 함께 독서교육을 통한 글쓰기 능력 향상에도 주력하고 있다.학년별 주제에 맞는 다양한 독서체험활동을 실시하고 있으며, 아침 독서 20분 운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학교는 스포츠 종목 육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특히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 엘리트 선수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이에 각종 전국대회에서 상위 성적을 내고 있다. 학부모 등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후원회도 왕성한 활동을 통해 막후에서 선수들을 지원하고 있다.최재수 교장은 "단 한 명의 학생도 정상적인 교육과정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학생들이 훌륭한 선배들처럼 미래 한국사회를 이끄는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최명국
  • 2013.09.04 23:02

익산 도축가공업체 (주)축림

어렵고 힘들던 시절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허기를 달래던 대표적 서민 음식들이 이제는 어엿하게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보관이 어렵고 식탁위에 오르기까지 손질이 까다로운데다 쉽게 상하는 단점들 때문에 근거리 유통도 쉽지 않던 내장과 머릿고기, 곱창 등 축산 부산물이 그 주인공이다. 이런 단점들을 보완한 축산 부산물은 개별포장부터 신선도를 유지한 유통 시스템과 도축과 가공이 한자리에서 이뤄지는 원스톱 기술력에 힘입어 홍콩에 이어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수출 길도 활짝 열어놓고 있다. 국내 최초로 개발된 기술력은 국내 최초 부산물 HACCP인증을 비롯해 국내 최초 가공 부산물 수출이라는 여러 기록을 단숨에 획득해 축산 부산물도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헐값에 처분되거나 버려야 했던 부산물로 외화벌이에 성공한 호남 최대 도축 기업 (주)축림(회장 박관구)을 찾아봤다.△축산 부산물소나 돼지를 도축한 뒤 발생하는 내장과 머릿고기, 곱창과 막창 등 축산 부산물은 소규모 국밥집에 헐값에 팔리거나 그렇지 않을 땐 그냥 버려져왔다. 도축장 일손이 분주하면 부산물이 많이 발생하고 그 부산물은 모두 소비되지 못하고 폐기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하루에만 돼지 2500두, 소 200두 이상을 도축하는 (주)축림의 입장에선 부산물은 그야말로 골칫덩이가 아닐 수 없었다.도축을 의뢰한 농가들이 원할 경우 손질까지 해서 건네주기도 했고, 주변 국밥집에서 원하면 헐값에 판매하기도 했지만 욕심껏 가져갔던 국밥집에서 모두 판매하지 못하고 다시 폐기물로 처리하는 일도 다반사였다.△부산물도 상품하루 수천마리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은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헐값에 팔리는 비용은 폐기물로 처리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예부터 소주나 막걸리 등 서민들의 회식과 잘 어울리던 곱창과 막창, 머릿고기 등은 분명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지 않을 방법이 있을 것이란 의문이 시작했다.축림 박우성 이사는 이런 의문에서부터 부산물의 다양화를 연구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소비자들의 입맛과 잘 맞아떨어지지만 가정에서 부산물을 손질해서 식탁에 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곱창과 막창 등 부산물을 주재료로 하는 프랜차이즈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손질이 까다로워 가끔 좋지 않은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는 문제도 해결의 과제였다.△부산물 연구부산물을 상품화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소비자들의 인식변화였다. 부산물을 가정의 식탁에서도 맛볼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했지만 그 거리를 좁히는 게 쉽지 않았다.그런 소비자들의 고정화된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축림은 소비자들이 쉽게 맛있게 편리하게 먹을 수 있도록 연구를 시작했다.먼저 많은 양의 부산물을 부위별 특수화하는 도전을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곱창과 막창, 머릿고기와 편육 등이 연구의 대상으로 선정됐다.부산물의 가장 큰 단점인 손질과 유통의 문제점은 현장에서 비교적 쉽게 답을 찾았다.축림은 도축된 가축에서 떼어낸 부산물은 바로 옆 공정에서 부위별로 곧바로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게 손질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바로 이 시스템이 국내 최초의 HACCP인증을 받은 부산물 원스톱 처리공정이다.여기서 한발 더나가 한차례 가공처리를 통해 상당기간 유통이 가능해지도록 해서 가장 큰 두가지 단점을 모두 해결했다. 이렇게 부산물 상품화가 단계별로 추진되기 시작했다.△상품화 성공깔끔한 손질과 신선함을 유지한 유통기술 개발은 부위별 부산물 상품화를 본격화시킬 수 있게 했다.국내 최초로 개발된 축림의 기술개발에 가장 먼저 농협에서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안심 먹거리를 유통하는 농협이라면 소비자들의 인식개선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축림에서 개발한 곱창과 막창, 편육, 머릿고기는 개별 포장공정을 거쳐 전국 농협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4월부터 시작된 축림의 부위별 부산물은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으며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국을 방문한 홍콩의 한 무역업체가 수입을 약속하고 지난 5월 드디어 축림의 가공 부산물이 해외 첫 수출길을 활짝 열기 시작했다.최근에는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수출이 시작되는 등 3년여의 부산물 연구가 드디어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연 300톤 수출 목표부산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축림은 앞으로 상품을 더욱 다양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지난 5월 약20톤의 부산물을 홍콩에 실어보낸 축림은 최근 일본과 수출계약을 체결하고 9월말 첫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수출은 다른 나라 수출에도 상당한 영향을 예고하고 있다.일본 수출이 확정되면서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 수출도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축림은 이런 여세를 몰아 올해 시작된 부산물 수출을 내년에는 300톤, 100만불 이상의 수출목표를 설정하고 국내시장에서도 활발한 유통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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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만
  • 2013.09.04 23:02

검정고시 합격 중국 출신 엄향란 "가족들 공부하는 내 모습 좋아해 대학 진학·우체국서 일해보고파"

한국에 온지 8년이 된 엄향란씨(36)는 최근 고교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중국에서 건너온 엄향란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과 다섯 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어떤 과정에 합격했는지."중국에서 직업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직업고등학교는 2년제 학교였는데, 한국에서는 정규학교로 인정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얼마전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유치원 보육교사 양성과정의 교육이 있어서 그 교육에 참여하려 했어요. 그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고교졸업장이 필요합니다. 마침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신청을 했어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고려검정고시학원에 위탁을 해서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우리 고등학교 졸업과정은 5명이 교육을 받았는데, 중학교와 초등학교 졸업과정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30명 정도 됐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었어요."-무엇이 힘들었는지."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해야 하고 남편도 챙겨야 하잖아요. 집에서는 사실 공부를 조금밖에 하지 못해요. 집안일을 하다보면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거든요. 공부는 대부분 학원에 가서 했어요. 학원에 가면 선생님이 설명도 잘해주시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도 있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공부할 때 힘든 것은 용어가 많이 생소해서 어려웠어요. 과학과 수학에서 말하고 있는 공식과 용어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어요. 이제 공부도 하고 합격하고 나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생겼어요. " -가족들은 잘 협력해줬는지."남편이 검정고시에 응시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했어요. 남편은 공부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좋으니까 공부하라고 독려해줘서 검정고시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도 좋아해요. 아이들은 "엄마도 공부해"라고 하면서 엄마가 자기들처럼 공부하는 것이 보기 좋았나 봐요. 공부를 하면서 역사과목은 중국에서 배웠던 것과 달라서 좀 혼란스러웠어요. 때로는 남편과 역사문제를 놓고 갈등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가르치지만, 한국은 한국의 관점으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역사과목을 좀더 배우면서 한국의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앞으로 계획은."공부를 더해서 우체국 쪽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여건이 되면 방송통신대학교도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육교사도 해보고 싶어요. 꿈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이지훈(전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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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3 23:02

[25. 결혼이민자 학력취득 지원] 졸업장 따며 자기계발…한국사회 이해도 넓어져

결혼이민자들은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2009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정착의 어려움으로 언어문제를 꼽은 응답자가 26%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문제가 20%, 자녀문제에 대해서는 14%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경제문제와 자녀문제 등은 결혼이민자의 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다. 일정한 학력수준이 되지 못하면 지식과 능력 수준역시도 동일하거나 더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단순노무 직종 많아그렇다면 결혼이민자들의 학력수준은 얼마나 될까. 결혼이민자들도 학력수준에 따라 한국정착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까. 전라북도가 지난 2010년 전북발전연구원을 통해 다문화가족생활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조사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의 학력은 초등학교 이하가 9.7%, 중학교 이하는 29.2%로 나타났다. 고등학교는 41%를 차지했고, 대학교는 20.1%로 나타났다. 결혼이민자의 출신국가에 따른 학력을 보면 캄보디아는 중졸이하가 69.8%로 나타났고, 베트남은 61.2%가 중졸이하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가 학력에 의해 특정인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하는 풍토가 여전한 것을 감안하면, 결혼이민자의 낮은 학력이 한국정착을 터덕이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실제로 많은 결혼이민자들은 경제활동을 위해서 취업하고 있는 곳은 전문직이 아닌, 단순노무 형태의 직종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의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서도 다문화가족의 경제적 수준은 100~200만원 소득이 38.4%로 나타났고, 100만원 미만도 21.3%에 이르렀다. 다문화가족의 경제적 수준은 그들의 직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셈이다.과거에 미국사회에서 한국인 하면 '세탁소'를 떠올렸다는 얘기가 있듯이, '결혼이민자'와 '다문화가족'을 떠올리면 '이들은 3D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못사는 사람들' 이라는 선입견이 떠올려질 수 있는 만큼 결혼이민자의 현재의 경제상태, 직종, 학력 등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력신장 지원 관심을전라북도는 결혼이민자의 학력신장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결혼이민자 학력취득 지원을 위해 중학교 졸업과정과 고등학교 졸업과정으로 검정고시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전라북도는 전주시, 정읍시, 김제시, 장수군, 부안군 등 각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초중고교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김제시의 경우 2년 과정의 학교와 연계해 학력취득을 지원하고 있다. 전주, 정읍, 김제, 부안 등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최근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취득에 성공한 결혼이민자는 전주에서 13명, 정읍 3명, 장수 4명, 부안 5명 등이다. 누엔티끼우짱씨(26)는 "힘들었지만 검정고시 합격으로 인해 삶에 대한 긍정과 기대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검정고시반을 만들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중학교를 베트남에서 졸업해 고등학교 졸업과정을 공부하려 했어요. 그런데 졸업증서를 뗄 수가 없어서 중학교 졸업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됐어요. 조금 힘들었긴 하지만 합격해서 너무 좋아요. 앞으로 꾸준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예요."베트남, 캄보디아 등 결혼이민자 국가에서는 학력인증을 받기가 무척 어렵다. 한 결혼이주여성은 베트남에서 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이주여성은 중학교 과정의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졸업증서를 가지고 그 사실을 확인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베트남의 학교는 이미 폐교를 한 상태였다. 베트남, 캄보디아 등은 한국처럼 행정적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사립학교가 폐교를 하게 되면 학교를 다닌 것에 대해서도 인증을 받기가 어렵다. 이 결혼이주여성은 대사관과 베트남 모국에서 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이를 포기해야만 했다. 결혼이민자를 위한 학력취득과정은 단순히 결혼이민자들의 학력을 향상한다는 의미를 뛰어 넘는다. 결혼이민자들에게 학력취득을 통해 자기전문성과 역량을 강화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취업을 위해 좀 더 나은 자기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의미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결혼이민자들이 검정고시 등을 준비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 우리 자녀들이 배우고 있는 내용을 익히면서 '아, 내 아이들이 이것을 배우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또한 한국의 교과과정을 익힘으로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물어보게 되는 역사사회 등에 대해서도 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혼이민자 스스로가 한국의 교과과정을 교육받음으로써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토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혼이민자의 안정적인 우리 사회 정착과 역량강화를 위한 학력취득지원 프로그램과 같은 참신한 사업들이 전라북도에서 좋은 효과를 내고 있는데 좋은 사업들은 안정적으로 지원되어서 다문화가족의 안정적 정착에 힘이 되길 바란다. 이지훈 (전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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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03 23:02

[우리고장 명인명물] 장연주 부모교육 전문강사

완주군이 2008년부터 저소득층 아동들의 개별적인 욕구와 상황에 맞춰 건강보육복지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통합 제공하는'드림스타트사업'. 이 사업에서 2009년부터 부모교육을 진행하는 장연주씨(51)가 완주군을 비롯 관련 기관들로부터 부모-자녀 가족관계에 대한 전문지식과 열정을 두루 갖춘 전문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이른바 결손가정이라고 불리는 이이들의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아이들 문제의 근원인 부모들과의 관계와 각각의 정신적 치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을 꺼낸 장연주씨는 "교육이 시작되면 자기 자신 알기, 자녀 알기, 가족관계 알기 등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피교육생이 처한 물리적 정신적 현실에 점차 접근해 나간다"말했다.대학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장연주씨는 이후 부모코칭 교육과정까지 마치며 부모-자녀 교육 전문가로서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인생의 발걸음을 이곳으로 이끈 건 장연주씨가 처한 상황도 큰 역할을 했다. "첫째 아이는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이제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둘째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미덥지 않게 성장했어요. 둘째 아이가 초등 4학년때 자폐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장연주씨는 처음엔 주어진 상황에 낙담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있는 그대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부모와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고, 이 같은 뜻이 진행되면서 교육전문가가 되었다.장연주씨의 교육방식은 특이하고, 열정 또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고 있다. 푸근한 엄마같은 태도로 드림스타트 사업의 결손아동들을 챙겨나가기로 정평을 얻고 있는 완주군 왕미녀 담당은 "장연주씨의 열정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며 "수업시간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자신이 도와줘야 할 피교육생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열정을 쏟아 부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드림스타트에는 이혼한 딸이 낳은 외손자를 키우는 할머니, 아들이 정신적인 문제로 집에만 틀어박혔다고 호소하는 어머니, 먼 이국에서 시집 와서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조선족 등 사회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숱한 사람들이 드나든다.장연주씨는 이들과의 첫 만남에서 시(詩)를 통해 교감을 시도한다. 상황에 적절한 시를 골라 읽으며 서로의 느낌을 나누면 그 높던 마음의 장벽이 하나씩 절로 허물어 진다.뇌성마비 어머니를 둔 한 초등생은 학부형 총회에 엄마가 참석하는 걸 극구 말렸다. '장애인 엄마가 부끄럽다'는 철없는 아이의 마음이 부모와 자녀의 사이를 무참히 갈라 놓았다. 장연주씨는 이들 가족에 대한 컨설팅에 들어갔다. 부모에 대한 마음가짐과 역할 교육, 자녀와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마음 나누기가 결실을 맺었다. 이젠 뇌성마비 엄마는 드림스타트 부모교육생들의 회장을 맡고 있고, 초등학교 5학년 딸은 엄마와 함께 부모교육에 참가할 정도로 '오순도순 모녀'로 변모했다."부모교육과 자녀교육은 하면 할수록 소명의식 속으로 빠져들어요. 교육을 마치고 나면 제가 가진 모든 마음의 에너지를 피교육생들에게 쏟아부어 버려 파김치가 되지만, 빈 가슴 속에선 또 다른 기쁨과 희망이 밀려오는 걸 느끼죠. 평생동안 이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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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모
  • 2013.09.03 23:02

남민우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은

남민우 청년위원장(51)은 익산시 여산면 제남리에서 태어나 이리중, 전주고를 거쳐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남 회장의 어릴 적 꿈은 힘든 농사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진학한 것 역시 시대가 변해도 계속 필요한 안정적인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전주고 재학시절 그는 대학입시 예비고사에서 340점 만점에 325점을 받아 이과 전국 수석을 할 만큼 공부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는 1983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해 엔진 시험장비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후 결혼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듯 싶었으나, 남 회장은 대기업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아님을 느꼈다. 결국 장비 국산화 개발의 새로운 꿈을 안고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이곳에서 또 한번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스카우트를 제의할 때 약속했던 국산화 개발은커녕 장비 수리의 업무만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사업할 자금도 없었고, 처음부터 창업을 꿈꿨던 것도 아니었지만 막다른 골목의 끝에서 최선의 선택은 스스로 회사를 차리는 것이었다. 창업은 남민우 회장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1991년 코리아레디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수입 업체를 설립하여 사업 기반을 다진 뒤, 1993년 다산기연이라는 현재의 다산네트웍스 모체를 설립했다.그의 사업 인생 20년은 한마디로 '4전 5기'였다. 창업 후 1년간은 잠도 이루지 못하며 죽기살기로 버텼고, 이후 사업이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1997년 운명처럼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치솟는 환율로 거래처에 대금지급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다행히 거래 업체와의 협상으로 대금지급을 6개월간 유예 받으면서 직원 12명을 이끌고 실리콘밸리로 가 1년간 기술컨설팅을 제공하며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이때 미국에서 인터넷 붐을 목도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시작한 사업이 바로 네트워크 통신장비 개발 사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남민우 회장을 다시금 비즈니스 현장으로 이끌었다. 경영권을 재인수한 이후 남 회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또 한번 뼈를 깎는 고통을 이겨내며 다산네트웍스의 체질을 강화했고, 이를 발판으로 2010년에는 설립 이후 최고의 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다산네트웍스와 청년위원회 사무실 벽에는 '하고자 하는 자는 방법을 찾고, 하기 싫어하는 자는 핑계를 찾는다'는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벤처협회 회장직과 청년기업가정신재단 활동을 통해서도 많은 젊은이들과 벤처 기업인들에게 멘토링을 하고 있다.

  • 기획
  • 위병기
  • 2013.09.03 23:02

7월 공식 출범한 대통령직속 청년위 남민우 위원장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지난 7월 16일 첫 회의를 갖고 공식 출범한데 이어, 최근 각 지역을 순회하며 청년의 창업, 취업 활성화 등 일자리 창출에 폭넓은 활동에 돌입했다. 청년위원회는 민간위원 19명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여성가족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 등 5명의 임명직 위원으로 구성됐다. 청년위의 조타수 역할을 맡은 전북 출신 남민우 위원장(51·장관급)을 만나 그의 발탁배경과 향후 활동 계획등을 들어봤다.-먼저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는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시고, 위원장을 맡게 된 소감도 부탁합니다."청년위는 청년과 소통하고, 눈높이 정책을 기획, 조정, 평가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간위원 19명과 정부측 인사 5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실무추진단에는 기획재정부 등에서 19명의 공무원, 계약직 13명, 그밖에 공공 및 민간기관 파견자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들께 한 약속이 지켜지도록 최전방에서 뛰고 있다는 점에서 어깨가 무겁고 설렙니다. 정부 공인 청년으로서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청년위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입니까."우선 2030 청년 세대가 창조경제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지난 7월 16일 청년위원들이 위촉되고, 대통령을 모신 가운데 첫 회의를 가졌습니다. 제1차 회의에서 보고 드린 '청년위 운영방향' 3대 추진전략을 바탕으로 하반기 업무추진계획을 수립했습니다. 3대 추진 전략은 청년 일자리 창출, 청년발전 정책추진, 소통강화 및 인재양성 입니다. '위원들이 직접 뛰는 위원회'를 위해 매주 1회 이상 분과위를 열고, 분과위 산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위원회, 현장 취재를 위한 2030 정책 참여단 등을 구성해 운영할 계획입니다."-새 정부 첫 청년위원장에 발탁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고,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는 언제,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되셨습니까."대선 캠프에 관여했거나, 오래 전부터 대통령을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제가 박 대통령을 직접 본 것은 대선 유세기간 중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의 간담회 때 벤처기업협회 회장 자격으로 만난게 처음입니다.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을 했는데, 참 겸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번째는 당선 후 중소기업중앙회에 다시 방문했을 때 입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앞서 최초의 이공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퍽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서울 서초동에서 벤처인들과 간담회를 할 때 만난게 저로서는 전부입니다. 이후 미국 방문 때 방미사절단의 일원으로 이건희, 정몽구 회장 등과 메인 테이블에 앉았는데 3분 스피치를 통해 벤처 생태계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하는 제 모습을 눈여겨 보신 게 발탁 배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학벌보다는 창의성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대국민 약속의 실현 방안이 있습니까."창조경제는 더 이상 학벌과 같은 스펙이 아니라, 국민 한명 한명이 지닌 창의성과 꿈과 능력으로 이뤄나갈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청년문제는 우리 청년들이 지닌 창의성과 능동성이 해결의 열쇠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창의성과 능력 중심 사회를 위해 정부는 내년에 '국가직무능력표준'을 개발, 보급하고, 직무능력평가제모델을 개발해서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 사회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청년위는 우선 위원을 학벌이 아닌 다양한 능력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구성했습니다. 홍보, 청년장사꾼, VANK단장, 해외봉사단원 등이 바로 그러한 예입니다. 관계부처 TF를 통해, 스펙 초월 채용시스템을 위한 체계를 구축하고, 청년들을 팀 단위로 선발,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게 하는 '진로체험 프로젝트', '청춘 순례' 등 멘토링 등을 통해 다양한 직업인식을 확산시킬 계획입니다. 세계적으로 직업이 10만개 정도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1만여개가 소개되고 있고, 그 중 학생들에게 권하는 것은 20개뿐 이라는 조사 결과는 충격 그 자체입니다."-전북의 경우 일자리 부족, 그 중에서도 청년 일자리가 부족해 심각한 사회·지역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전북지역의 청년일자리 사정을 보면(15~29세 기준), 2012년 현재 고용률은 32.6%로 전국 평균(40.4%)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태입니다. 아예 노동시장 진출을 하지 못하는 유휴인력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유치와 더불어 청년창업 활성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기대됩니다."-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과연 어떻게 창업하고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데 해법은 무엇입니까."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용인하는 창업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 지원은 청년창업 촉진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젠 청년층의 창업실패에 따른 두려움을 해소하고, 패자 부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창업하고자 하는 꿈과 비전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거죠. 청년위는 창업오디션을 통해 실제 창업을 유도하고, 청년과 국민의 창업에 대한 관심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 기획
  • 위병기
  • 2013.09.03 23:02

오페라 가수 꿈 접고 28년 척박한 여건 극복 100여회 공연

조장남 단장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도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했지만, 어린 시절 그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여름이면 마을에 들어와 가설극장을 만들고 상영했던 영화를 보며 키웠던 꿈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서울의 공연장에서 보게 된 오페라 '춘희'가 그의 꿈과 삶을 바꾸어놓았다. '성악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고향을 떠났다. 교육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농사짓는 어머니는 아들의 선택을 묵묵히 성원했다.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대학만은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레슨'에 쏟아부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에게 음악의 길을 열어주었던 스승을 따라 대구 영남대에 입학했다. 대학 4년 동안 공부하면서도 허전함을 채울 수 없었다. 성악의 본고장에 가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이 그만큼 깊어졌다. 이탈리아 유학을 계획했으나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여건에서는 역시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유학비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정읍 호남고 교사로 2년, 전주 기전여고 교사로 2년 재직했다. 그 사이 교사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서 유학의 길은 더 멀어져 보이는 듯 했으나 끝내 이탈리아 유학을 강행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면서 오페라 가수를 선망했지만 노래를 부르는 일 못지 않게 지휘나 연출 기획 등 오페라 제작의 그 모든 것에 더 눈길이 갔다. '어차피 내가 갈 길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3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기전여대 전임강사가 된 그는 지역에 오페라 운동의 디딤돌을 놓고 싶었다. 그러나 지역의 문화적 환경은 열악했다. 경제적 여건도 그렇지만 '오페라'는 어렵고 특정 계층이 즐기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극복하는 일이 과제였다. '시작하면 길이 보인다'는 확신을 스스로 다지며 1986년 호남오페라단을 창단했다. 첫무대는 '루치아'. 그가 예술감독을 맡아 올린 작품이었다.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이듬해 1회 정기공연으로 푸치니의 '토스타'를 올리며 본격적인 오페라 제작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제작해 올린 작품은 수십편, 순수한 창작오페라만 여덟편이나 되고 공연 횟수로 치자면 100회를 훌쩍 넘는다. 그 사이 호남오페라단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창단 10년만에 사단법인으로 옷을 바꾸어 입었고, 2002년에는 이 지역에서 첫 전문예술법인으로 등록했다.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새로운 도전을 했으나 예술분야의 특성을 배려받지 못하는 사회적기업의 높은 장벽 앞에서 포기해야 하는 상처를 안기도 했다.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을 비롯해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이 모든 과정에 그의 삶이 온전히 놓여있다.

  • 기획
  • 김은정
  • 2013.08.29 23:02

조장남 호남오페라단장 "오페라운동은 예술로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통로"

유럽의 여름은 축제로 끓어오른다. 더위를 피해 시민들이 휴가를 떠난 도시는 몰려온 관광객들이 쏟아놓는 열기로 여름을 난다.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것은 이 도시들의 축제다. 그 축제의 중심에 오페라가 있다. 올 여름, 두개의 축제를 만났다. 오스트리아의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와 장크트마르가르텐 오페라 축제다. 브레겐츠 축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끼고 있는 보덴 호수가 무대고, 장크트마르가르텐은 브라겐란트주의 작은 마을 장크트마르가르텐의 채석장이 무대다. 공연장이 된 공간의 특성만으로도 관심을 모으는 이 축제는 한 달 남짓 열리는 축제 시즌 동안 연일 객석이 가득 찬다.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축제'로 꼽히는 명품 축제 '브레겐츠'는 그렇다 치더라도 인터넷 검색으로도 그 이름을 찾기 쉽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 축제로서도 역사가 짧은 '장크트마르가르텐'의 오페라 공연에도 매진 행렬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호사스러웠던 축제기행을 다녀온 며칠 뒤 눈에 띄는 기사를 읽었다. 호남오페라단의 '루갈다'가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산실지원사업에 우수작으로 선정됐다는 내용이었다. 호남오페라단은 전주에서 활동 중인 민간오페라단이다. 지난 86년에 창단했으니 올해로 28년을 맞았다. 우리나라의 첫 오페라 무대는 '나비부인'. 1937년 5월 서울에 있던 부민관에서 공연된 것이 오페라 공연의 시작이니 그 시점으로부터 치자면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는 66년에 그친다. 길진 않아도 충분히 정착할 수 있는 역사지만 양식의 특성, 서양음악에 대한 선입견, 특정한 계층의 예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오페라는 대중적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를 거치면서 발전 계기를 맞기도 했지만 뒤이은 뮤지컬의 성장으로 힘을 잃어야 했던 것은 아쉬운 국면이다. 수많은 오페라단이 무대 위에서 사라지거나 제작비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근근이 무대를 올리는 것이 한국 오페라 문화의 현실인 점을 감안한다면 호남오페라단의 존재는 주목받을 만하다. 호남오페라단을 만들고 오늘까지 이끌어온 조장남 단장(63)을 만났다. 청중을 감동시키는 좋은 오페라 가수를 꿈꾸었던 30대, 열정으로 뛰어들었던 오페라 운동의 노정에서 꼬박 30년을 보낸 그는 어느새 환갑을 지나 초로를 맞고 있다. 온전히 호남오페라단의 역사에만 놓여있는 삶의 궤적이다.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오페라 가수의 꿈을 버리면서까지 오페라단의 생명을 이어온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내가 선택한 예술이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었겠냐"고 답했다. 목표는 명료했으나 그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니 굴곡이 심하다. 부침이 큰 만큼 실망과 좌절의 상처도 길게 남았지만 그는 기대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무모했던 도전'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도전이 지역 오페라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우려와 비판보다는 기대와 격려로 호남오페라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반가운 소식 들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한 결실인 것 같습니다."우리 오페라단이 지역의 틀을 벗어나는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제작비 걱정 없이 제작할 수 있게 된 기쁨도 있지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새삼 용기가 납니다."-이번에 선정된 프로젝트가 어떤 것인가요. "2013 '국립오페라단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 제작지원' 공모사업입니다.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창작오페라 '루갈다'가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어요. 지난 9일에 시연을 겸해 최종 심사를 받았는데 최고점수를 받았죠. 제작비 2억 5천만 원을 지원받고 공연장까지 제공받습니다. 12월 공연이에요."-'루갈다'는 이미 공연을 여러 번 했었죠. 몇 년 전에도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루갈다는 2004년에 첫 공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때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품입니다. 대본과 작곡을 새로 진행해 지난해 10월에 완성했어요. 2004년 작품은 스토리를 강조하려다보니 너무 설명적이라는 평이 있었어요. 이번 작품은 동정 부부의 내면을 긴밀하게 담아내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보완한 것이 아니고 루갈다의 새로운 버전이랄 수 있겠군요. 루갈다는 명실공히 호남오페라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이 작품은 이미 2014년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으로 결정되어 있어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내년 5월쯤 공연하게 됩니다. 그 활동을 바탕으로 내년 연말엔 이태리 로마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로마 쪽에서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 잘 진행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너무 한꺼번에 행운이 몰려오는 것 아닌가요.(웃음)"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이런 기회를 받아들여야죠.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가 무대의 경계를 벗고 오페라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만큼 긴장도 되고 자극도 됩니다.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예요." -뒤돌아보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감개무량(?) 할 것도 같고요. "올해 창단 28년을 맞았는데, 여건은 좀 나아졌다해도 환경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오페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나아지고 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단체 활동을 지지해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반가운 변화죠."-그래도 오페라라는 특수한 양식의 공연무대가 갖는 대중적 한계가 아직은 커서 오페라 운동으로서의 성과는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일정한 관객에 객석을 의존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요."물론입니다. 그래도 우리지역의 오페라 고정 팬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내 판단으로는 1500명 정도의 고정 팬들이 지속적으로 공연을 지켜주는 것 같아요. 서울의 오페라 공연 고정 팬을 3000여명쯤으로 잡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 지역의 대중적 확산이 결코 암울하지만은 않습니다."-호남오페라단의 28년 역사가 일궈낸 몫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북의 오페라 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 우월한 것 아닌가요. "지역 오페라는 대구가 활발합니다. 관립과 민간단체가 공존하면서 오페라문화를 잘 이끌어갑니다. 오페라축제를 개최할 정도로 시민들의 인식도 높죠. 전북도 대구보다는 뒤지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특별한 편이죠. 한때 관립오페라단도 있었잖아요."-전북도립오페라단이 있었군요. 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불과 3년 만에 해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원을 받는 관립은 없어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운영하는 민간단체는 살아남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요. "전북도립오페라단이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가장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누구였겠습니까. 저 역시 앞장서서 도립오페라단 창단을 지원했었죠. 관립과 민간단체가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환경이 없지요. 단 그 둘의 관계는 서로 보완하고 지지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지역의 성악 인구라야 빤하잖아요. 더구나 오페라 무대에 설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한정적이죠. 그러니까 좋은 가수를 발굴하고 그들이 안정된 생활여건을 갖게 되면 민간단체 무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선순환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재정적 지원은 어땠나요. 관립에 대한 지원만큼은 아니더라도 민간단체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했을 것 같은데요.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면 그것이 당연하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지금도 관립예술단체를 갖고 있는 자치단체 중에는 대부분이 '우리는 관립만 잘 운영하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단체장의 인식과도 직결되는데, 그런 경우 민간도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지원해야 하는데 민간은 뒷전인 상황이 되죠. 문화는 편식해서는 안 됩니다. 관립은 관립대로 역할이 있고 민간단체는 또 그들대로의 역할이 있습니다. 민간단체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북돋는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되지요. 균형 있는 정책과 민간 예술단체에 대한 '인큐베이팅'은 자치단체의 직무입니다."-도립오페라단이 없어진 후에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이 늘어났나요. "아니었죠. 제 기억으로는 당시 도립오페라단 예산이 3-4억 원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민간 오페라 제작에 1억 원도 안 되는 예산이 지원됐었고, 그나마도 금년에는 못 받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를 활성화시킬 좋은 통로만 없어진 셈이죠."-그래도 초창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긴 했군요. 호남오페라단에 앞서 전북에 또 다른 민간 오페라단이 있었죠. "전주시향을 지휘했던 유영수교수님이 만든 전북오페라단이 있었어요. 창단 작품 올리고 후속 작품을 올리지 못했죠. 경제적 후유증이 워낙 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오페라 운동에 용기를 낸 것도 전북오페라단이란 싹이 있었던 덕분이에요. 그 맥을 직접 잇진 못했지만 오페라단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척박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거든요. 당시 임옥경 김용진 조성민 박상규 송성태 선생 등 당시 활동했던 선후배 동료들이 마음을 모았고, 클래식 음악운동에 앞장섰던 유승국선생님, 이정태 천길량 선생님께서 정신적으로 지원하고 성원해주셨습니다.-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에는 작품 한편 제작하는 일이 더 어려웠을 텐데요. 제작비라도 건 질수 있었나요."그랬다면 제가 지금까지 단장을 하고 있지 않아도 되었겠지요.(웃음) 해마다 제작비 마련하느라 전쟁을 치르는데 속칭 '똔똔'이라도 맞출 수 있으면 맞추면 성공이라고 하죠. 대부분이 적자였어요. 그래도 초창기에는 서로 어려움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만드니 고정 단원들에 대한 개런티 등 기본적인 경비에 대한 부담이 적었어요. 기억으로는 당시 제작비가 1500만 원 정도 되었던 것 같군요. 지금은 어림도 없죠. 통상 한편 제작에 3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야 합니다."-말씀을 듣고 보니 오페라단의 재정적 자립은 아직 어려운 일이겠군요. "털어놓자면 안고 있는 부채가 적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안게 된 부채지요. 어떤 해인가는 작품을 두개나 올렸는데, 한편에 2500만원의 적자가 났어요. 두개 공연 모두 그렇게 되니까 암담해지더군요. 그래도 이상한 것이 늘 다시 일어서게 되거든요. 무모한 용기죠.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구요. 그래도 암울하진 않습니다. 길이 보이잖아요. 이 길을 열기위해 쏟은 투자라고 생각해야죠."-그런데 오페라 운동의 대중화는 여전히 먼 길 아닌가요. 그것이 꼭 재정적 여건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오페라가 갖고 있는 거리감을 좁히는 일이 과제예요. 오페라는 어려운 것이고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절실합니다. 예술장르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오페라입니다. 보여줄 수 있는 예술적 장르가 다 결합되어 있잖아요. 스토리를 전달하는데 에도 오페라만큼 좋은 양식이 없습니다." -우리 음악의 접목은 특히 호남오페라단의 돋보이는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적 오페라 창작은 호남오페라단이 지향해온 중요한 작업이죠. '논개' '춘향' '심청' 등 창작품 대부분이 국악을 접목한 작품이었어요. 창작판소리와 국악기를 음악적 소재로 들였죠. 국악과 양악은 음악적 어법상 잘 맞지 않지만 상충되지 않게 잘 융합하면 깊은 감성적 호소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창작품들이 호평 받았던 것도 그 덕분이죠." -공연단체는 스타를 발굴해내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역 오페라단이 안고 있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해마다 작품 올리는 일에만 몰두해오다보니까 주역급을 끌어들이는 일이 우선이었고 스타를 만들어내는 성과는 미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인을 발굴해내는데는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교류를 못하고 있지만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김남두씨도 호남오페라단의 무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지역 출신 성악가들과 교류하면서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일이 호남오페라단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 기획
  • 김은정
  • 2013.08.29 23:02

12. 김제 만경초 - 곡창지대 만경평야에 자리…일제 수탈 저항운동 주도

△학교가 걸어온 길김제 만경초등학교(교장 이종민)는 1909년 사립만경보통국민학교로 개교했다.1911년 만경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이 인가됐고, 같은 해 제1회 졸업생 4명을 배출했다.이후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1936년 장흥공립간이학교를 새로 개설했고, 1941년 만경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1996년 일본제국주의 잔재 청산을 위한 정부 정책에 따라 만경초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갱 외에 밋돌(김제 만경 넓은 들)'이라고 불리는 김제 만경평야."(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소설 '아리랑'의 주무대이기도 한 만경평야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평야에서 수확한 작물은 당시 조선의 젖줄 역할을 톡톡히 했다.하지만 이 때문에 만경지역은 일제의 수탈의 손길이 가장 많이 미친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그만큼 일제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거셌다.1919년 4월 4일 만경장날을 맞이해 당시 만경공립보통학교 교사 임창무는 34학년 학생과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학생 100여명이 교사들의 인도 아래 숨겨둔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의 여파로 만경공보는 1921년 단 한 명의 졸업생도 배출하지 못했다. 다수의 학생들이 일본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이처럼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지역민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것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탱해온 만경초의 원동력이다.한편 올해 제102회 졸업식을 연 만경초를 거쳐간 학생은 현재까지 모두 1만1579명이다.△학교를 빛낸 인물만경초는 김제지역 정관계 인사의 산실이다.김윤기(4회) 전 건설부장관은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 건축학과를 나온 뒤, 고등관기사로 조선철도국에서 17년간 근무하면서 철도건축 전반에 관한 계획과 설계의 책임을 맡았다.광복 뒤 운수부 기술서장, 교통부의 자재국장시설국장철도건설국장을 거쳐 국립항공대학장교통부 차관을 지냈으며, 625 뒤 철도복구와 산업선 건설에 크게 이바지했다. 1960년대에 교통부장관건설부장관, 그리고 정무담당경제담당으로 두 번 무임소장관을 지냈다.1966년 9월에는 과학기술분야의 학회와 협회를 망라해 발족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초대회장으로 선임됐다. 한양대에서 명예공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자유훈장금탑산업훈장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했다.장경순(22회) 전 국회부의장은 만경읍 화포리 출신으로 배재중학교, 일본 동양대학 척식과를 졸업했다.이후 학도병으로 차출됐고 상해에서 민족해방을 맞자, 광복군에 투신했다.귀국 후에는 잠시 교직에 몸담았고, 이후 군에 투신 625를 맞아 혁혁한 전공을 세워 장성 반열에 올랐다.이후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쿠데타에 가담해 군사정부의 농림부장관을 지냈다. 민정 이양 후에는 공화당에 입당, 김제를 지역구로 제6대부터 10대까지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63년부터 1971년까지는 최장 기간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1980년 전두환, 노태우 등 당시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신군부가 들어서자 정계를 은퇴했다. 상훈은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3회), 화랑무공훈장(3회), 보국훈장통일장, 청조근정훈장, 독일대십자훈장, 바티간대훈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농업협동조합론' 등이 있다.김택하(34회) 전 국회의원은 남성고, 중앙대를 졸업한 후 제9대 총선 때 정읍김제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고려목재주식회사 대표이사, 대한제재협회 부회장, 한국핸드볼협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유불도 3교에 능통한 석학으로 꼽히는 탄허(13회) 스님은 당시 최고 선승 한암 스님과 3년간 학문에 대한 서신 문답 끝에 22세 때 그의 제자가 됐다.탄허는 스승의 법통을 계승했고, 이를 불교학 연구와 불교의 중흥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또한 상원사의 대화재로 소실된 한암의 연구와 관련 자료도 복원했다. 화엄경의 완역인 '신화엄경합론'은 그의 여러 업적 중 가장 높이 평가된다.이와 함께 김용호(52회) 한민대 학과장, 원행(54회) 금산사 주지스님, 최연호(57회) 주 벤쿠버 총영사 등이 학교를 빛냈다.△도약을 위한 노력만경초는'효'사상을 중심에 둔 인성교육을 표방하고 있다.이에 인근 만경향교 및 학성강학와 함께 선비문화체험전통예절교육 등 다양한 인성함양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또한 효 실천 활동으로 사례발표대회와 글짓기대회, 실천기록장 작성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지난해에는 삼성꿈장학재단의 교육복지중점사업에 선정돼 '치유와 나눔'을 주제로 한 락밴드, 합창부, 미술 치료, 상담연극수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특히 합창단은 지평선아카데미 식전행사에 참여해 학생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다.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교육혜택이 적은 지역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맞춤형 지도를 통한 기초학력 신장 프로그램, 원어민 강사가 진행하는 영어수업을 연중 실시하고 있다.이 같은 활동에 힘입어 만경초는 2012년 JB교육과정우수학교로 선정돼 교육감상을 받았다.같은 해에는 제2기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지역 특색에 맞는 특성화프로그램 개발과 민주적인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이종민 교장은 "우리 학생 하나하나는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라며 "학생들의 재능을 발현시켜 미래 사회를 주도하고 선도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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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명국
  • 2013.08.28 23:02

[24. 전주 다가동 고층아파트 논란] "경관 훼손·바람길 차단" vs "구도심 활성화"

최근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에 고층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한 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이 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6월에 건축심의를 마쳤으며, 교통영향평가 심의도 통과했다. 현재는 조합원 모집을 위한 주택전시관을 개관하고, 해당 부지의 토지소유권 이전 등을 모두 마치면 전주시에 건축허가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북녹색연합과 전북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가 '다가동 36층 아파트'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전라감영과 400m 불과해36층 고층아파트 논란이 일고 있는 곳은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116-1번지 일대로, 9140㎡의 부지에 36층 아파트가 추진되고 있다. 당초 해당부지는 일반상업지역이라 주상복합아파트는 건축할 수 있어도, 공동주택, 순수한 아파트는 들어설 수 없다. 그러나 전주시도시계획조례와 구도심활성화지원조례가 '일반상업지역에도 아파트를 건축할 수 있다'는 쪽으로 길을 열어놓으면서 이번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사업추진에 대해 환경단체는 "36층 고층아파트의 높이가 무려 114m에 달해 주변 다가공원완산칠봉전주천 등의 경관을 크게 훼손하며, 더불어 가뜩이나 전국에서 제일 더운 도시라는 오명을 가진 현실에서 전주천변의 바람길을 차단하는 것은 안된다"면서 허가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해당 부지는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한옥마을과 남부시장과 인접해 있으며, 복원될 전라감영과 불과 400여m 이격하고 있어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위상을 실추시킬 것이라며 반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반면 사업자와 해당사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업지역이 구도청 이전과 함께 전주시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이라 구도심활성화 차원에서 공동주택건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사업자는 36층 아파트가 전주시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관련 담당공무원도 "해당 사업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문제가 없으며, 관련 서류를 구비해서 건축승인 요청이 들어오면 부서협의를 통해 최종 승인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전북녹색연합은 "당초 전주시구도심활성화지원조례와 전주시도시게획조례의 취지는 구도심 활성화 차원에서 일반상업지역에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한 것이지, 일반상업지역내 아파트도 상업시설이나 업무시설과 똑같이 용적률을 700%까지 허가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해당 사업은 법의 맹점을 교묘히 이용한 것으로, 전주시가 허가해서는 안된다. 일반주거지역에서는 아파트가 용적률 250%까지만 허용된다. 만약 이 사업을 허가하면 전주시에 계속해서 이러한 일이 벌어져 결국 난개발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일반상업지역에 아파트 허용 이례적다른 지역에서도 이러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국의 16개 광역자치단체와 228개 시군구의 도시계획조례를 확인했다. 확인결과 전국의 228개 시군구 중에서 전북의 전주군산익산 등 6개시와 경북의 안동을 비롯한 4개시, 경남의 밀양시 1곳 등 11개 시군구에서만 일반상업지역에 공동주택(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한 것을 확인했다. 전북지역의 시단위에서는 모두 허용하고 있었지만, 전북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적으로 5개의 기초자치단체에서만 일반상업지역에 아파트를 허용하는 것으로 파악돼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전주시처럼 일반상업지역에 실제로 570% 달하는 아파트가 추진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며, 안동시의 관계공무원은 "형식적으로만 보면 조례에 따라 일반상업지역에 초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직 안동시에서 그러한 경우는 없었으며, 만약 용적률 700%에 달하는 초고층아파트가 추진된다면 고민이 될 것 같다. 사업추진 단계에서 자치단체에서 협의를 통해 층수를 제한해야하지 않겠냐"고 입장을 밝혔다. 전주시의 관계 공무원은 법적으로 해당 사업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도 제63조(개발행위허가의 제한)을 통해 '개발행위로 인하여 주변의 환경경관미관문화재 등이 크게 오염되거나 손상될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도시군관리계획상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개발행위허가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북녹색연합은 "특히 전주시가 2020년 전주시 장기종합발전계획을 통해 다가동을 비롯한 주변 일대를 '전통문화중심지구'로 정하고, 다가동과 완산동 일원으로 한옥주거를 확장해 한옥경관을 확산한다는 계획을 마련한 바 있다. 또한 경관계획도 한옥마을과 전라감영을 중심으로 한 문화재 주변을 전통미가 엿보이는 '전통문화경관'으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다가동 36층 고층아파트는 이러한 전주시의 장기발전계획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며 "전주시장이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 등을 요청해 사업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결국 이 사업은 전주시장의 의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천년의 도시, 전주시의 핵심지역인 해당지역에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전주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100년 앞을 내다보는 도시계획의 안목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인 (주)리노산업개발은 법인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지난 2011년 말 주택건설업을 추가한 자본금 5억원의 소규모 부동산개발업체이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일명 '다가동 포스코아파트'라고 홍보하면서 사업을 마치 포스코가 추진하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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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7 23:02

김남규 전주시의원 "역사문화자원 살릴 수 있게 도시관리계획 수립 바람직"

전주시의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며, 한옥마을 활성화와 전주의 관광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는 김남규 전주시의원을 만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다가동 고층아파트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한옥마을 활성화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현재의 한옥마을을 평가한다면.△지난 2000년 이후 한옥보존회를 결성해서 한옥마을 활성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옥마을 관광객이 연간 10만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재는 년간 45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정부에서 대표적인 도심재생사업의 성공사례로 발표되었으며,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될 정도로 한옥마을 활성화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한옥마을 활성화의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한옥마을의 외연을 더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한다. 이미 동문문화예술의 거리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더불어 서학동의 전주교대를 중심으로 한 한글의 거리, 아태무형문화유산의 전당을 중심으로 한 예술인 거리 조성 등이 추진돼야 한다. 또한 남부시장과 다가동 주변에도 근대문화유산이 많다, 이를 잘 보전해 문화도시 전주를 만드는데 적극 활용해야 한다"-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다가동 고층아파트에 대한 의견은.△전주의 4대문 안과 전주천변에 고층아파트를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주의 4대문안과 주변의 근대문화유산은 전주의 중요한 자원이다. 조선시대의 전라감영과 경기전, 객사, 근대문화유산인 예수병원과 서문교회, 신흥고, 일제시대의 중앙동 건축물들은 역사의 켜가 쌓여있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주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다. 예를 들어 울산은 문화도시로 갈 수 없다. 그러나 전주는 이러한 역사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다. 다가동에 고층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은 전주만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다가동 36층 고층아파트 논란의 해법이 있다면.△현재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이 법의 빈 공간을 교묘히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계속 아파트가 들어올 텐데 어떻게 막을 것인지, 걱정이 된다. 전주의 4대문 안과 주변지역의 공간구조, 경관, 녹지 등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100년 앞을 내다보는 도시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전주시가 전통문화를 살리는 방향으로 도시관리계획을 수립하길 바란다. 한승우(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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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7 23:02

[우리고장 명인명물] 김제 전통옹기장이 안시성씨

조선 말, 천주교 박해를 피해온 이주민들이 옹기를 구어 생업을 유지하고자 생성되었던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부창마을(옹기마을)에 대학졸업한 후 1992년에 들어와 당시 옹기장인으로 명망이 높았던 고(故) 변동순 선생으로 부터 전라도 옹기의 특징인 쳇바뀌태렴(옹기를 타래미를 이어붙인 모양이 마치 체의 몸체가 되는 쳇바뀌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을 사사 받는 등 고(故)변동순 선생과 함께 동고동락 하며 전통옹기만들기 비법을 전 과정에 걸쳐 전수 받은 안시성(47)씨.안 씨는 어려서 부터 미술감각이 탁월하여 소조부문에 두각을 보이다 고등학교 때 부터 미술공부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후 대학 도예과에 입학, 전문적으로 토기 및 자기분야에 대한 능력 연마에 매진했다.당시 안 씨는 옹기만들기에 대한 기능뿐만 아니라 옹기장인으로서의 정신까지 배우고 익혀 부거리 옹기마을에 몇 남지 않은 옹기가마를 지키고 가꿔 한평생을 옹기장이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신청, 2008년도에 제403호로 등록시켰다.최근에는 전통옹기작업장과 전통옹기가마를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등 국내 최초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옹기가마와 작업장을 이용. 전통시설 뿐만 아니라 전통기법으로 옹기만드는 것에 전력을 다 하고 있다.안 씨는 "자랑스러운 전북의 전통옹기기법을 널리 전수하고 알리고자 수 많은 체험객 및 외국인들을 상대로 수시로 옹기체험 및 가마불때기행사, 외국인들과의 예술적 교류활동을 활발히 추진 하고 있다"면서 "전북은 맛의 고장으로서 높은 상징성과 자부심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최근 전주음식이 지닌 창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된 이후 음식을 지역 대표브랜드로 설정하므로 인해 발효음식의 저장용기인 옹기는 음식문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볼 수 있어 전라도 쳇바뀌태렴기법인 옹기의 생산은 전통문화의 보급과 계승 발전의 가치가 있고, 전북의 대표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농경생활을 해 온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 있어 옹기는 토기의 발전과 함께 발달돼 옹기의 형태나 제작기법, 번조방법과 온도의 차는 조금 있을지언정 현재의 옹기와 별반 다를것이 없다"면서 "즉, 곡물을 담아 저장하고 장이나 술을 담아 먹는 등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의 기후에 옹기는 단열이 되고 보온이 되기도 하며, 기벽의 기공을 통해 공기가 순환되는 등 발효식품을 저장해 먹는 우리의 식생활에 알맞은 용기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안 씨는 "세계에서 유일한 쳇바뀌태렴 기법을 이용한 놀라운 기술력과 기능의 높은 수준은 짧은 기간 발전한 자기와는 다르다"면서 "이러한 옹기의 특성이나 역사성을 볼때 옹기는 우리 민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활용품으로서 문화의 한 부분으로 발전 계승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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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대우
  • 2013.08.27 23:02

9. 당대 사회상 담은 고전문학

심란할 때 산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지리산을 탐방하고 지은 유람록은 약 70편, 시기별로 보면 후대에 갈수록 양이 많아진다. 이는 날로 치열해지는 계파 간 정쟁에서 밀려난 사대부들이 지리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횟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산을 유람하고 남긴 유람록이나 시편들을 보면, 자아에 대한 성찰은 물론 산이 가진 역사적 배경을 거울삼아 당대 사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산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문화인문학적 의미를 통찰했던 것이다. 수많은 역사문화 이야기를 품은 지리산은 이들에게 최고의 인문학적 수양관이었던 셈이다. 남명 조식 선생이 "산을 보고 물을 보고 그리고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본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하동군 화개동 일대를 탐방했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이 남긴 유람록의 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진감선사대공탑비로 본 유불 논쟁△남효온(1454~1492) : 고운(최치원) 선생님. 쌍계사 앞에 광계(光啓) 3년(887) 7월에 세운 진감선사비명(국보 47호)이 있습니다. 이 비는 선생님이 교서를 받들어 비영을 짓고 글씨를 쓰고 전액한 것이 맞죠?△최치원(857년~?) : 그렇다네.△남효온 : 선사 혜소(慧昭)가 당나라에 들어가 유학하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이 절을 세웠는데 그는 임금을 위해 기도하고 염불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선생님이 그의 도를 칭찬한 것이 너무 심합니다. 선사는 문자선(文字禪글을 통해서 선지를 깨닫는 것)을 한 사람이 아닐까요. △김일손(1501~1572) : 동감합니다. 선생님의 손길이 여전히 남아 있고 산수 사이에 노닐던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명문이지만,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선생님의 지팡이와 신발을 들고서 모시고 다니며 홀로 외로이 떠돌며 불법(佛法)을 배우는 자들과 어울리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최치원 : 옥을 캐는 사람이 험준한 곤륜산을 꺼리지 않고, 진주를 찾는 사람이 깊은 여룡의 동굴을 기피하지 않는 것처럼 해야 그 빛이 오승(五乘불교의 다섯 가지 가르침)을 융합하는 불타의 지혜로운 횃불과 그 맛이 육경(六經여섯 가지 유교경전)에 배부른 선유의 아름다운 반찬을 얻게 되네. 그런데 배우는 자들이 혹 말하기를 "불타와 공자의 가르침은 유파가 다르고 본체가 상이하다.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끼우는 것처럼 상호 모순되어 각자 한쪽만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네. 청학동 찾다 도착한 불일암불일폭포△유몽인(1559~1623) : 남명(조식) 선생님. 세상 일이 힘들때 사람들이 청학동을 찾는다지요.(유몽인은 지리산을 찾기 2년전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내려왔다)△조식(1501~1572) : 맞는 말이네. 앞서 많은 선인들이 청학동을 찾았지. △유몽인 : 하지만 사람들이 청학동의 위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조식 : 내가 살던 시대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지. 자네보다 50년 전에 열 걸음에 한 번 쉬고 열 걸음에 아홉 번 돌아보면서 비로소 불일암(佛日菴)에 도착했네. 암자는 허공에 매달린 듯 했고 동쪽으로 가파른 향로봉, 서쪽으로는 낭떠러지에 우뚝 솟은 비로봉 사이로 청학 두세 마리가 날아다녔지. 이곳이 곧 청학동이었네.△유몽인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암자 앞에 평평한 대가 있고, 벼랑에 완폭대(玩瀑臺)라 새겨진 불일폭포가 있었습니다. 폭포수가 검푸른 봉우리의 푸른 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데, 그 길이가 수백 자쯤 됐습니다. 우리나라 긴 폭포로는 개성(開成)의 박연폭포만한 것이 없는데 이 폭포는 박연폭포와 비교해 몇 장이나 더 긴 듯하고 물이 쏟아지는 길이도 긴 듯 합니다. 그 날의 기이한 구경은 참으로 평생 다시보기 어려운 광경이었습니다. △조식 : 그렇지만 선을 좇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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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엽
  • 2013.08.23 23:02

업사이클링, 새로운 경제 가치를 만들다 ③ 국내 도입 사례

리사이클링(recycling재활용) 제품은'조금 너저분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환경적 책임을 우선한 사람들이 사는 상품으로 인식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나오는 업사이클링(upcycling새활용) 상품들은 디자인과 기능을 더해 상품의 가치를 높여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재생된 디자인과 새로운 가치가 담긴 상품 그 자체가 곧 작품이 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원을 새활용하고 지역사회 발전에도 이바지하는 업사이클 상품, 나아가 사람들을 모으는 관광자원으로 변신한 그곳을 찾아 나섰다.△업사이클링 놀이터요, 알고보면 일자리다서울시 마포구 성산2동 515-19 석유비축기지 내에 있는 '문화로놀이짱'은 버려진 목재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혀 가구로 재탄생 시킨다. 버려진 목재로 생산과 소비의 지속가능성을 탐구하고 해결하는 생활문제디자이너들의 공동체다.2004년 설립된 '문화로놀이짱'은 홍대에서 버려지는 가구들을 재생시킬 방법의 대안으로 시작됐다. 사회적기업으로 거듭난 문화로놀이짱은 적지만 일자리도 창출해 현재 10여 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어른들의 놀이터를 꿈꾸는 이곳은 '명랑에너지발전소'을 만들어, 목공 제작과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명랑에너지발전소'을 통해 재활용의 참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직접 가구를 만들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일자리로 변신한 업사이클링의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폐자재를 활용한 가구 만들기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작업을 통해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상품 제작에 그치지 않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문화로놀이짱'의 물품들은 일반 도서관의 책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빌려 쓸 수 있다.또 지역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과 공공 공방, 목재 창고를 운영한다. 재활용 창작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다. 작은 고장에도 공구가 없거나 방법을 몰라 버려지는 가구들을 수거하면서 마련한'가구수리병원'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폐가구, 폐목재를 재활용하기 위한 캠페인을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업사이클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쓰레기 섬, 관광자원으로 변신하다쓰레기 디자인으로 채운 섬에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인천에 있는 남이섬을 둘러보는 동안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섬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업사이클링 작품이었다.재활용 됐다고 느낄 수조차 없는 작품들이 가득한 남이섬에서는 버려진 물건에 디자인을 더한 세련된 작품들이 오히려 더 당당하다.그 물건이 가진 이야기를 낭만으로 전달하는 것, 사물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는 태도에서 그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남이섬에 물건 중에는 어느 하나도 새것이 없다. 소주병으로 만든 예술작품뿐만 아니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과 유진이 걸었던 메타세쿼이아 숲 길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도 폐가의 문에서 문고리를 가져와 만들었다.통일성 없는 그래서 개성이 살아있는 벤치와 조형물도 버리는 건축자재로 만들었다.대형 알루미늄 인물상은 음료수 캔과 철거된 나이트클럽 자재로 완성했고, 섬 안의 명소 '이슬공원'에 놓인 분수대는 샤워 꼭지를 뒤집었다.호수 뒷벽 면의 녹색 유리는 가까이 가서 보면 빈 소주로 완성했고, 또 다른 술병은 꽃병으로, 거둬낸 천막은 연못 바닥재로 썼다.남이섬에서는 업사이클은 상품이 판매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가 운영하는 남이섬 녹색가게 체험공방은 죽은 나무로 만드는 목걸이, 헌 양말로 만드는 동물 열쇠고리, 자투리 천으로 만드는 카드지갑, 병뚜껑을 재활용해 만드는 머리끈 만들기 등을 통해 방문자에게 환경을 되살리는 체험 교육공간을 제공한다.

  • 기획
  • 윤나네
  • 2013.08.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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