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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 새로운 경제 가치를 만들다 ② 도내 현주소

우리나라는 생활쓰레기의 재활용 비율이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지만 아직 업사이클링에 대한 인식이나 활용은 낮은 편이다. 업사이클링은 주로 미술이나 건축생활소품 등의 분야에서 관심을 끌었을 뿐 산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시도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엔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가 늘면서 기업들도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는 상태다.문제는 업사이클링으로 비용 절감을 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려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상품으로 소비까지 연결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도내 업사이클링 현주소를 짚어본다.△환경 보호하자는 데 왜 안 팔리지?업사이클링 자원 재순환 의미를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이라는 데에서 그 의미가 있다. 환경과 자원을 보호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업사이클링 상품이 활발한 소비로 이어지는 사례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실제 도내에서 업사이클링 사업의 시도로 손꼽히는 '할머니 공방'도 사실상 실패, 문을 닫았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된 '할머니 공방'은 폐자원으로 만든 가방, 앞치마 등을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할머니들의 숙련된 기술이 경제적 가치 창출뿐 아니라 복지 모델로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이 시도는 상품을 사려는 단체가 늘어나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자 개인의 구입으로 연결되지 않아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문을 닫았다. 또 우정사업본부에서 추진하는 친환경 업사이클링 상품 역시 소비까지 이어지진 않고 있다. 우체국의 홍보용 폐 현수막을 이용해 만든 가방과 환경교육용 친환경 제품으로 재탄생시켰지만, 도내 소외 계층 아동에 전달하는 정도다. 폐 현수막의 수급 조절이 일정하지 않다는 문제점 때문에 상품 제작도 줄어들고 있다.실제 전북은 2011년에 142개 폐 현수막을 이용, 1040개의 업사이클 상품을 생산했다. 지난해에는 78개 폐 현수막으로 겨우 170개의 에코백만 생산했을 정도다. △재능도 사람도 업사이클링이 필요해!이렇듯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도내에서 업사이클링 상품을 제작하는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보편적인 상품성 부족과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소비자의 인식에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헌 것을 만들어서 만들었는데 가격은 비싸다'라는 마음이 드는 순간 업사이클 상품은 그저 구경하기에만 좋은 상품으로 전락한다는 설명이다. 당장 시장에서 소모될 수 있는 상품을 선택, 상품을 만들어 내는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사)이음 김병수 대표는 할머니 공방을 운영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에서 해법을 찾았다.김 대표는 "할머니 공방에서 제작한 2~8만 원대에 가방의 경우 공임비용을 생각하면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며"원재료 수급조절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 콘텐츠를 지속해서 개발하는게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어"새활용됐다는 이미지를 뛰어넘는 상품의 콘텐츠 개발이 목표였다"며 "디자인 인력 등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전북에서는 결과를 내놓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이 꼽는 업사이클링의 활성화 요건은 소비자 인식개선이다. 특히 옷을 원재료로 업사이클링 상품을 제작하는 업체의 경우'헌 것'이라는 소비자 인식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때문에 제작 상품을 의류가 아닌 소품으로 바꾸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사)이음 김병수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는 업사이클링 도입이 비용 절감뿐 아니라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며"업사이클링 상품을 소비까지 이어내려면 상품에 대한 콘텐츠 개발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 기획
  • 윤나네
  • 2013.08.08 23:02

고창 매일유업 상하목장, 젖소 분뇨 유기농 퇴비 탈바꿈

젖소 분뇨를 유기농 퇴비로 탈바꿈시켜 폐기물 처리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수익원을 만든 목장이 눈길을 끈다. 전북 고창에 있는 매일유업 상하목장. 이 축산농가는 애물단지로 통하는 젖소 분뇨를 유기농 퇴비로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친환경목장으로 변신은 물론 업사이클링(Upcycling새활용)의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업사이클링 개념을 도입, 폐기물 0%에 도전하고 있는 것. 특히 축사의 퇴비창고와 달리 고약한 분뇨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큰 호응을 얻고 있다.상하목장 이인기 팀장은 "2000여 마리의 젖소한테서 연간 3만 톤가량의 분뇨가 발생한다"며 "골칫거리였던 분뇨를 발효시켜 유기농 퇴비로 업사이클링한 뒤 연간 50억 원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매일유업의 유기농 퇴비는 지독한 냄새로 민원 대상이던 젖소 분뇨를 발효시켜 유기농 퇴비로 활용하는 것이다.또 상하목장은 텃밭 가꾸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유기농 퇴비를 나눠주고, 자연의 유기적 순환을 통해 얻은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는 '오가닉 서클 캠페인'을 매년 시행하고 있다. 이런 '자연의 선순환 구조'가 실현된다는 장점 때문에 기업 홍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상하목장이 젖소 분뇨를 유기농 퇴비로 바꾸는 과정은 간단하다. 젖소에게 목장 근처의 유기농 초지에서 자란 풀만 먹이고, 해외에서도 해당 정부의 인증을 거친 유기농 사료만 수입해 공급했다. 축사 바닥에는 한 달에 한 번씩 톱밥을 바꿔 깔았다. 젖소의 분뇨가 톱밥에 쌓이면 이를 수거해 퇴비창고로 옮긴다. 퇴비창고에서는 바닥에 공기주입장치를 깔아 신선한 공기를 넣어 준다. 이렇게 쌓인 분뇨를 하루 두 번씩 뒤집으며 3개월간 발효시키면 부피도 줄고 냄새도 거의 없는 유기농 퇴비가 된다.이렇게 만들어진 유기농 퇴비는 영양물질이 풍부한데다가 중금속이 없어 근처 농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유기농 목초를 먹인 젖소의 분뇨로 만든 유기농 퇴비는 섬유질이 풍부, 물과 공기가 잘 통한다는 장점이 있다. 식물이 자라기에 알맞은 토양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 이인기 팀장은 "업사이클링 도입 취지는 자연을 소비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연의 건강한 순환을 경험하도록 도모하자는데 있다"며 "올해에는 '오가닉 키즈 파머'를 테마로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유치원 및 어린이집에 상하목장의 유기농 퇴비를 나눠주는 활동을 진행,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건강한 순환을 경험하도록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 기획
  • 윤나네
  • 2013.08.08 23:02

10. 완주 고산초 - 완주지역 최초 교육기관…인재양성 요람 자리매김

△학교가 걸어온 길완주 고산초등학교(교장 고규영)는 완주지역에서는 가장 처음으로 설립된 학교로, 도내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산초는 1909년 순천군수를 지낸 김낙구가 고산향교 정안당에 사립봉양학교를 설립한 것이 시초가 됐으며, 1911년 공립학교로 전환한 이후 8명의 일본인 교장을 거쳐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5일 한국인 최초의 교장으로 김규동이 부임한 바 있다.이후 학급 규모가 커짐에 따라 삼기, 양화분교 등이 새로 설립됐다.전북지역 여러 학교들이 시대 변화에 따라 학교 건물을 옮겨갈 동안에도 고산초는 학교 문을 연 시점부터 현재까지 한 자리에 머무르며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자리매김했다.2009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서는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동문들이 하나로 결집했다. 당시 동문들은 모금 활동을 통해 장학재단 설립에 나서는 한편 도서 기증, 기자재 지원 등을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 발전에 힘을 보탰다.이와 함께 100년사 발간,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 등을 열어 침체된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또한 고산초 출신 당시 구태근 교장, 지역주민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교사 개축이 이뤄지는 겹경사까지 맞이하기도 했다.8개의 교실과 과학실 및 미술실, 시청각실 등의 교육시설 및 급식시설을 갖춘 것이다.한편 올해 제101회 졸업식을 연 고산초를 거쳐간 학생은 모두 8964명이다.△학교를 빛낸 인물고산초는 완주지역을 대표하는 초등교육기관으로서 지역사회 뿐 아니라 나아가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들을 다수 배출했다.고산초 출신 첫 의사인 김석탁(9회)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학박사이다.그는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해왔다. 한때 가세가 기울었지만 서울에서 중앙산부인과 병원을 개업, 전국에서 손꼽히는 자산가가 됐다.제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양재(15회)는 한국 의정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독립 이후 어수선했던 당시 정국을 수습하는데 공로가 컸다.이존화(19회) 전 국회의원(34대)은 일제강점기 문맹퇴치를 목적으로 야학을 설치,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이 때문에 일본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됐고, 이에 만주로 건너라 봉천학원 전문부 법과를 졸업한 후 그곳에서 출판업을 하면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그는 1940년대 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상 대립이 극심한 가운데 자유당 전북도 선전부장 등을 지내며 청년운동에 기여했다.이후 3, 4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된 후 자유당 중앙당 정책위원, 조직위원장, 국회 문교분과위원장 등을 두루 지내며 정치안정과 교육입국에 공헌했다. 고산초는 두 명의 전북도 교육국장(학무국장)을 비롯해 다수의 전현직 교장, 교수를 배출했다.최득엽(20회)손희장(28회) 교육국장은 열악한 지역 교육환경 개선 및 민족교육에 헌신한 인물로 지금까지도 명성이 자자하다.또한 김준기(37회) 전 원광대 교수, 조중빈(48회) 전 교장, 구태근(50회) 전 교장, 조중배(50회) 교장 등이 지역교육발전에 기여했다.인근 세심정, 향교, 고산천 등 고풍적이고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자라난 고산초 출신 중에는 심미적 감각이 탁월한 예술가가 많다.이존한(46회) 화백, 강정진(56회) 예원예술대 교수가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강 교수는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하는 제4회 미술인의 날 기념 대한민국 미술인 본상에서 정예작가상을 수상하기도 앴다.그는 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미술교육원 운영위원장을 지내며 중등학교예술특성화 제고, 대학의 창의적 교육개발 등에 남다른 이념과 교육철학으로 기능 전수에 앞장서왔다. 또 서울미술협회 부이사장을 맡으며 작가로서도 열정적인 창작활동과 작품연구를 병행하고 있어 한국정예작가로서 모범적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언론인으로는 구자상(58회) 한겨례신문 제작국장이 있다.△도약을 위한 노력2011년 부임한 현 고규영 교장은 학교 환경개선 사업에 매진했다.그는 취임 초부터 연중 꽃이 피는 학교를 지향했다. 이 꽃들은 교직원 뿐 아니라 아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사계절 내내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이는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아이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지역주민들이 학교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계기가 있다.바른 인성과 참된 실력을 지닌 인재 양성을 교육목표 삼은 고산초는 다양한 특기적성 활동과 인성교육이 높은 평가를 받아 2012년 전북 초등학교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선정돼 교육감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올해 초에는 전국 최우수 전원학교로 선정돼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이처럼 고산초는 작은 학교에서 큰 꿈을 키우는 전인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의 으뜸 자랑거리로 도약하고 있다.또한 완주군이 창조인재육성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다중지능계발 사업에도 참여, 학생들이 평소 접해보기 힘든 체험활동을 통해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이와 함께 올해부터 도내에서 유일하게 교육부요청 개정교육과정 정책연구학교 지정돼 2015년까지 '프로젝트형 인성교육 적용을 통한 농산촌 소규모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 방안'을 주제로 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이 기간 동안 고산초는 인성교육 중심의 교육과정을 편성해 작은 학교에 맞는 모델을 운영한다.고규영 교장은 "인성이 곧 실력이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학생들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교육과정에 접목하겠다"며 "100년 역사를 더욱 빛낼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최명국
  • 2013.08.07 23:02

취임 한달 맞은 정병석 전주기상대장

우리나라의 기온 상승폭이 지구 평균보다 2배에 이르는 등 기후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미 인간생활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전북지역을 비롯해 전국에서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극한기후현상의 발생일수는 예년에 비해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전주기상대 정병석 대장을 만나 극한기후현상의 원인과 미래의 기후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준비와 연구 등에 대해 들어봤다.-올 여름 전주지역에 1주일 넘게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등 전북지역에서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폭염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전주지역의 폭염특보는 지난 7월 19일에 발효돼 5일간 지속됐고, 전북지역에서는 6월 28일 전주와 완주, 정읍지역에서 올해 첫 폭염특보가 발표됐습니다. 이는 지난해보다 22일 빠른 것입니다. 특히 6월 1일에서 7월 28일 기준으로 전북지역의 일 최고기온이 30℃ 이상인 일수는 33일로, 1973년 이래 1위(2위 1994년 32.3일, 3위 1988년 28.7일)를 기록했습니다. 평균 열대야 일수는 14.7일로 1973년 이래 1위(2위 1994년 10.7일, 3위 1978년 7.7일)를 기록했습니다. 전북지역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덥고 습한 공기가 계속해서 유입되는 가운데 낮에는 강한 햇볕에 의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이렇게 가열된 열이 밤에 충분히 소산(흩어져 사라짐)되지 못해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최근 중부지역에는 국지성 호우가 내리는 등 비 피해가 이어졌지만 중부 이남지역에서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북지역의 올 여름철 현재까지의 기온과 강수량은 어떤지 궁금합니다."올해 6월 1일에서 7월 28일까지 전북지역의 기상특성을 보면, 기온은 평년(1981년~2010년)보다 높았으며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전북지역에 내린 평균 강수량은 363.3㎜로, 평년대비 84.2%의 비가 내렸습니다. 반면, 서울경기지역에 내린 평균 강수량은 605.4㎜(평년대비 165%)로, 전북지역은 서울경기지역보다 적은 강수량을 기록했습니다. 전북지역의 강수량은 평년보다 조금 적었으나 전라북도의 강수일수는 24일로 평년 강수일수인 22.7일보다 조금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집중호우, 폭설, 폭염, 가뭄 등 전북지역의 미래 기후변화에 대해 설명해주시지요."기후변화 시나리오란 인위적인 원인에 따라 기후변화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해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사용되는 선제적인 정보입니다.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지역별, 부문별 기후변화 영향과 취약성을 평가해 기후변화 적응대책 및 온실가스 감축정책 수립의 과학적 근거자료를 제시합니다. 이에 기상청에서는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인 RCP에 기초해 기후변화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구 스스로 회복 가능한 경우인 RCP 2.6(CO2 농도 420ppm),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상당히 실현되는 경우인 RCP 4.5(CO2 농도 540ppm),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어느 정도 실현되는 경우인 RCP 6.0(CO2 농도 670ppm), 온실가스 배출이 현재 추세로 유지되는 경우인 RCP 8.5(CO2 농도 940ppm)의 4가지의 기후변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CO2 농도의 대표 지표가 되고 있는 하와이의 경우 이미 400ppm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현재 11.8℃인 전라북도의 연평균 기온은 RCP 8.5 시나리오에 의하면 21세 전반기(2011~2040년)에 0.8℃ 상승, 21세기 중반기(2041~2070년)에 2.6℃ 상승, 21세기 후반기(2071년~2100년)에 4.7℃ 상승 등 10년당 증가율이 0.64℃로 전망됩니다. 극한기후지수에서 일 최고기온이 33℃ 이상인 날의 연중일수를 폭염일수로 정의하는데, 기온분포 및 여름일수와 유사하게 해안지역에서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북지역은 기후변화로 인해 봄철과 여름철은 길어지고 가을철과 겨울철은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기상청의 일기예보가 틀릴 경우 많은 질타를 받기도 합니다."전국으로부터 다양한 관측 자료가 기상정보통신망을 통해 슈퍼컴퓨터로 모아지면 자료를 분석하고 수치 예보 모델을 예측합니다. 슈퍼컴퓨터가 계산한 수치예보 모델결과와 기상상황 분석, 예보관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예보가 나오게 됩니다. 즉 예보정확도는 관측, 수치예보모델, 예보관 능력으로 결정됩니다. 종합적인 예보정확도 향상을 위해서는 공백 없는 정확한 관측 자료를 수집하고 수치예보모델 정확도를 높이고 예보관 경험과 실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기상청에서는 수치예보모델을 개선하고, 예보관 능력향상을 위해 예보기술발표회, 위험기상사례분석, 예보모의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관측 공백 최소화를 위해 기상관측망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습니다. 100% 정확한 일기예보는 어렵지만, 보다 정확한 기상정보를 제공하는데 직원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2000대 중반부터 병무청지구 재개발 등 기상대 이전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습니다. 지난해 12월 착공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지난 2003년부터 병무청지구 재개발로 인한 기상대 이전 요구로, 기상관측에 적정한 이전 장소를 찾기 위해 혁신도시를 비롯한 전주시내 일원을 대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08년에 전라북도 및 전주시와 협의해 전주시 덕진구에 위치한 가련산공원을 관측 장소로, 공원입구 주택지를 매입해 청사신축 장소로 결정, 기상대 이전사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올 연말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추진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중으로 새로운 청사에서 업무를 시작할 예정입니다."-전주기상대는 올 6월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협약 체결 목적과 주요내용은 무엇인가요. 이 밖에도 유관기관과 협력하고 있는 사항이 있나요."전주기상대와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는 덕유산의 기후변화 및 덕유산 탐방객의 안전을 위한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지역 기상기후업무를 발전시키기 위해 올 6월 20일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양 기관은 위험기상 및 계절기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덕유산 지역의 기후변화와 생태변화에 대해 공동 조사 연구를 수행하는 등 협력체계 구축을 바탕으로 지역 내 국립공원과의 네트워크를 강화, 덕유산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지역민의 안전과 편의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또한, 2011년부터 한국도로공사 부안지사와 업무협약을 체결, 서해안고속도로 전북구간(동군산IC~고창IC)에 적설관측지점 3곳(서김제, 부안(줄포), 고창)을 설치운영해 관측한 자료를 토대로 세 지점의 대설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를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지속적인 관측과 연구를 통해 서해안 지역의 국지 대설예보정확도 향상, 제설작업 업무효율성 증가를 통한 예산절감, 고속도로 이용자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기획
  • 강정원
  • 2013.08.07 23:02

[12. 대학생 아르바이트 시급 현황] 법이 허용한 쉬는시간도 없이 일해도 수입 '쥐꼬리'

얼마 전 갑과 을의 논란이 화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르바이트생은 갑과 을도 아닌 '병'이나 '정'에 해당된다. 아르바이트에 나선 대학생이 피해를 입는다는 뉴스는 이제는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지난해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성희롱을 당한 한 여대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하나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고충을 들어본다.여름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학생들이 늘고 이를 알아보기라도 하듯 교내 게시판 아르바이트 구인구직란에는 '수습기간 첫 달 시급은 4000원, 두 번째 달부터 4800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현 최저임금 4860원에도 모자란 액수다.지난해 여름방학에 전북대 근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전북대 3학년 윤모씨는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최저임금에 현저히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해 왔다. 그는 "최저시급에 맞춰 주는 곳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편의점이나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최저임금 이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998년 도입된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사용자가 그 이상의 임금을 주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1년이 돼서야 모든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4860원으로, 1일 근무 8시간주 40시간이 권장 근무 시간이다. 또 이를 초과때 시간당 임금을 1/2을 더해 추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를 어길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된다. 하지만 이같은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사업장은 미비하다.얼마 전 신수연씨는 대학가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힘들어 그만뒀다. 이는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활용하는 사업장의 경우 점심, 저녁, 쉬는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쉬는 시간이 법적으로 규정돼있다. 사업주들이'근로시간 4시간 이상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 이상인 경우 1시간 이상을 휴식시간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아르바이트생들은 쉬는 시간 없이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혹여 안다고 하더라도 눈치가 보여 잘 쓰지 못하거나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지난 2007년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20대 청년들을 두고 '88만원 세대'라고 지칭했다. 그렇다면 6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과연 얼마짜리 세대가 됐을까.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최저시급을 올해(4860원)보다 7.2%(350원)인상된 5210원으로 최종 확정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취업포털 커리어 국내 대학생 2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현재 물가에 비해 합당한가'를 묻는 질문에는 86.2%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 이유(복수응답)는 '전체적으로 물가가 인상됐기 때문에 시급을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80.0%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인상된 내년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적다'(46.5%)와 '너무 적다'(25.9%)라는 응답이 주를 이뤄 72.4%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80%가 넘는 학생들의 불만족 응답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투정으로만 보아야 할까. 일단 대학생에게 가장 보편적인 영어 공인인증시험인 토익의 경우 정기접수비가 4만2000원, 정기 접수기간을 놓쳤거나 급히 시험을 봐야 해서 신청하는 특별추가접수 기간의 접수비가 4만6200원에 달한다. 이는 최저시급 4860을 기준으로 9시간을 일해야 응시할 수 있는 셈이다. 토익 스피킹 접수비는 7만7000원, 오픽 7만8100원, 토플은 170달러(약 20만원)이다. 전북대 4학년 김남진씨는 "10시간 일해서 시험 한 번 응시할 수 있는 정도의 시급은 대학생에게 너무 불리하다고 부당한 급여"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저임금을 외치는 대학생들, 그리고 올라간 최저임금마저 부족하다고 말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더이상 어린 투정으로만 봐야 할지는 고민해야 한다. 이민주 (전북대 신방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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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6 23:02

['청년유니온' 백우연 사무차관] "사업장 부당한 급여 개선 청년노동자 노동권 보호"

청년유니온은 지난 2010년 3월 창립된 청년 세대들의 노동조합이다. 청년들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세대별 노동조합으로, 15세부터 39세까지의 청년이라면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백우연 사무차관으로부터 청년들의 노동현실을 들어본다.-청년유니온은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청년유니온은 청년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를 위해 1년 6개월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해 전국의 편의점 600여개를 조사해 주요 편의점 66%가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을 고발해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모니터링단 사업에 나서도록 유도했다. 최근에는 주요커피 전문점들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휴수당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을 직접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전국 251개 매장을 조사해 폭로하는 등 우리 사회에 잠자고 있는 청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개선하는 효과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아르바이트생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 혼자서 법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청년유니온에서는 법지식이 없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6개의 지역 지부를 두고 저임금 생활안내부터 청년 노동 현실을 좋아지게 해보자는 목적의 교육, 강연 및 노동법아카데미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해 시행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청년유니온으로 연락하면 상담이 가능하다. -청년들에게 한마디 △청년노동조합은 젊은 세대의 노동조합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노동조합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빨간색 머리띠나 빨간색 조끼를 떠올리는 것이 아닌, 사실상 청년들의 노동을 고민하고 있는 단체다. 모두가 원하는 세상을 함께 그려나갔으면 좋겠다.이민주(전북대 신방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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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06 23:02

[순창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지역주민이 만든 신나는 마을…도시민 유혹

문화 인프라와 주민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잘 갖춰진 도시와는 달리 모든 분야에서 다소 뒤떨어진 농촌마을이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농촌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대표적인 예로, 순창군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다양한 테마로 성공을 거두며 주목받고 있다. 농촌마을의 주거환경개선과 경관 보전 생활기반시설 확충, 문화복시시설 설치, 농촌관광의 진흥과 주민 공동소득 증대, 지역주민의 역량강화 등을 통해 살고 싶고, 찾고 싶은 농촌정주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생활권과 영농권 등 동질성을 가지고 발전 잠재력이 있는 마을들을 상호 연계해 권역단위로 개발하고, 지역주민과 지자체, 관련 전문가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은 지역의 잠재자원을 특성화해 소득증대는 물론 도시민의 귀농·귀촌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순창군,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추진 순창군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회문산권역 등 5개 권역을 중심으로 총 240여억원을 투자해 권역별 지역특성에 따라 문화복지시설과 소득기반 시설 확충, 체험관광시설, 경관개선사업 및 주민 역량강화사업 등 다양한 유형의 농촌마을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지원되는 사업비는 권역당 3~5년간 40억~70억원 범위 내에서 국비 70%, 지방비 30%로 추진하며, 이중 공동소득사업의 경우 보조 80%, 자부담 20%를 지원하고 있다.순창군의 농촌개발사업은 특히 성공적이라는 평을 얻으며, 지난해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주관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평가결과 최우수군으로 선정됐다. 특히 5개 권역 모두가 도농교류와 농촌체험 활성화를 위해 권역별 운영위원회를 두는 상향식 주민 참여형이 타지역과 차별성을 두고 있다. 권역별 운영위원회에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사업을 선정하고, 선정된 사업은 전문가 등의 도움을 받아 사업에 참여하고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또한 매월 2회 이상 추진위원회의를 개최하여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문제점 발생시 대책을 강구하는 등 지역주민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하는 체제를 갖춘 것도 차별성 중 하나다. 오프라인에서만이 아닌 인터넷 카페를 이용한 온라인 접근방식도 돋보인다. 카페를 통해 지역주민과 재외향우들의 참여를 활발하게 하여 고향소식은 물론 농산물 구매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회문산권역회문산권역은 구림면 이암마을 등 총 10개마을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09년부터 사업을 추진한 회문산권역은 총사업비 63억원을 투자해 도농교류센터와 소포장가공센터 신축, 가로수경관조성사업, 산책로 조성 등 19개 단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장류가공시설과 곡물가공체험시설 신축, 신기마을·학현마을 노인복지회관 신축, 마을별 승강정정비 완료 및 도농교류센터를 지난해 10월에 완공했다. 올해는 다목적광장, 소포장가공센터, 마을쉼터 및 산책로 조성, 가로수 경관조성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회문산권역은 회문산 자연휴양림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과 농촌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쌈채소로 유명한 구림면 지역에서 직접 생산한 쌈채소로 '쌈축제'도 운영하고 있어 웰빙을 추구하는 전국의 도시민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강천산권역팔덕면 장안마을 등 6개마을이 참여해 2010년부터 시작한 강천산권역은 총52억원을 투자해 다목적회관 건립, 농산물 가공설비시설, 도라지 경관조성 등 16개 단위사업을 2014년까지 5년간 추진할 계획이다. 강천산권역은 도라지를 주제로 지역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도농교류 및 농촌체험을 통한 주민 소득증대에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 강천산권역은 지난해 7월 다목적회관을 완공했으며, 마을회관 리모델링사업도 완료한 바 있다. 앞으로 마을별 쉼터조성과 가로경관조성사업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강천산군립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권역에서 생산된 도라지 등 농특산물 공동판매 등을 통해 주민 소득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서암권역금과면 남계리 호치마을 등 5개마을이 참여하고 있는 서암권역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개년간 43억원을 투자해 다목적회관과 쉼터조성, 과수원길 조성 등 17개 단위사업을 추진한다.서암권역은 전남 담양과 광주광역시와도 근접 거리에 있어 도시민 유입에 유리한 장점을 활용해 도농교류행사를 활발히 추진하는 등 권역내 지역주민 화합과 체험행사 위주로 주민소득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미 일목쉼터는 완료한 바 있으며, 앞으로 마을별로 테마별 쉼터조성과 다목적회관 건립, 과수원길 조성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섬진강권역섬진강권역은 동계면 귀주마을 등 6개마을이 참여해 지난해부터 2014년까지 3년에 걸쳐 총42억원을 투자해 섬진복지공간조성사업, 마을회관 리모델링, 쉼터조성사업, 가로경관조성사업 등을 추진한다. 시행계획이 완료되고, 설계가 마무리되어 지난 7월말 사업 착공을 시작으로 사업이 한창이다.섬진강권역은 천혜의 청정물줄기인 섬진강 내에서도 최고 절경을 자랑하는 장군목유원지가 권역내 위치하고 있으며, 매실, 대봉감, 은행 등 특용작물의 집산지를 이루고 있는 귀주마을이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어 농촌체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방산권역섬진강권역과 마찬가지로 지난해부터 2014년가지 3년에 걸쳐 총 40억원을 투자하는 방산권역은 쌍치면 방산마을 등 4개마을이 참여하고 있으며, 방산복지공간 신축, 마을회관 리모델링사업, 테마별 쉼터조성사업, 가로경관조성사업 등을 추진한다. 현재 방산복지공간조성사업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권역으로, 이곳은 특화작목인 블루베리와 복분자의 대량 생산지로써, 산지체험활동을 통한 체험객과 인근 내장산국립공원의 방문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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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남근
  • 2013.08.06 23:02

황숙주 순창군수 "농산물 판매확대 도농교류 활성화"

"순창의 대표축제인 장류축제와 더불어 주민이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강천산권역의 도라지축제와 회문산권역의 쌈축제는 도시민들에게 시골의 정서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축제로 각광받고 있습니다."황 군수는 "우리군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성공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지난해 5개 권역이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 새벽드림 주식회사'를 등록 완료하는 성과를 거뒀다"면서 "또 권역공동으로 개발한 '새벽드림' 브랜드와 통합쇼핑몰 등을 활용한 농산물 공동판매와 유통망 공동 구축 등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타 지역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누드도라지 만들기대회, 물고기잡기체험, 나무꾼선발대회, 미꾸라지 달리기대회 등의 도라지축제와 장어잡기체험, 촌닭잡기 등의 쌈축제는 각종 체험행사를 통해 도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유도로 활발한 도농교류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황 군수는 특히 "5개 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마무리 되면 도농교류 활성화와 다양한 농촌체험행사 운영을 통해 농산물 판매 확대로 농가소득 증대는 물론 농촌의 쾌적한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기획
  • 임남근
  • 2013.08.06 23:02

6. 불교문화 - 곳곳에 수많은 명승고찰…국보·보물급 문화재 가득

지리산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사방팔방으로 펼쳐놓은 계곡 곳곳에 수많은 명승고찰을 품고 있다. 실제로 남원시 인월을 지나 경남 함양 쪽으로 가다보면 국보 제10호인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이 천년 세월을 지키고 있는 '백장암'이 나온다. 백장암을 지나면 실상사가 나오고 함양 땅으로 들어서면 안국사, 영원사, 벽송사 등 유명 사찰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잇따라 나타난다. 이들 표지판 중간 중간에 반야정사, 용문사, 견불사, 화림사 등 각 종파의 절과 암자들이 안내된다. 지리산의 불교사찰은 하동 41개, 산청 47개, 함양 12개, 구례 21개, 남원 29개 등 150개에 달하고 있다.△지리산 지명에 깃든 불교지리산(智異山)이란 산 이름 자체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 불교 전래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 지리산은 지혜의 보살인 '문수보살의 도량'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연스럽게 많은 절과 암자가 들어섰고, '특이하게 슬기롭고 지혜로운 산'이라는 뜻인 '지리산(智異山)'이 산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또 지리산 봉우리 가운데 제석봉과 반야봉은 불교 문화가 그대로 깃든 대표적 사례다. 실상사 응묵스님은 "반야봉의 '반야'는 불교에서 '지혜'를 뜻한다. 깨달음의 봉우리, 지혜의 봉우리가 바로 반야봉이고, 또 성불로 가는 지름길이 반야봉이라는 의미가 그 이름에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천왕봉 아래 제석봉은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불교의 하늘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불교식 이름이다. △전래 초기부터 지리산에 깃들다한반도에 불교가 맨 처음 상륙한 곳은 고구려(372년, 소수림왕 2년)였고, 12년 후 백제(384년, 침류왕 1년) 왕실도 불교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라는 527년 이차돈이 순교한 뒤에야 국교로 공인했다. 지리산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전래 초기인 삼국시대다.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기록에 따르면 지리산의 천년 고찰들 중에서 구례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인 544년에 인도에서 온 승려 연기조사가 세웠다. 연기조사는 또 산청 법계사를 신라 진흥왕 때인 544년에 열었다. 하동의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인 722년에 대비삼법 두 스님이 세웠고, 남원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때인 828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가람이다. 불교가 들어온 초창기부터 산세가 크고 풍광이 수려한 지리산은 스님들의 수행 정진과 불법을 전하는 가람으로서 매력적인 공간이었던 셈이다. 특히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도량이라는 유명세를 타면서 수많은 사찰들이 속속 들어섰고, 잦은 화재와 전란 속에서도 중창을 거듭하며 뿌리를 이어왔다. △보물 덩어리명산은 큰스님들이 알아보았다. 일찍이 부휴선수, 청허휴정, 벽암각성, 소요태능, 벽송지엄 등 당대의 고승들이 지리산 유명 사찰들에서 수행하고, 불교의 명맥을 이어왔다. 근래에는 성철스님과 향곡스님 등이 산청 영원사, 상무주암 등에서 수행했다. 깊은 산,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뛰어난 스님들이 있었기에 지리산은 천년 불교 문화를 이어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리산의 천년고찰에는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들이 수두룩하다. 천혜의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찰은 천년 넘게 이어져 오는 동안 건축 양식과 건축기술, 회화, 조각, 주물, 단청은 물론 불교음악 범패까지 고스란히 전승해 왔다. 삼국시대 이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일제시대를 거치며 전쟁 등 재앙이 되풀이 됐지만, 지리산의 사찰들은 폐허의 아픔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서곤 했다. 불교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고승들의 탁월한 지도력, 그리고 신도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남원 실상사는 단일 사찰로는 문화재급 보물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은 국보 제10호이고, 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보물 제33호)실상사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보물 제34호)실상사 석등(보물 제35호)실상사 부도(보물 제36호)실상사 삼층석탑(보물 제37호) 등 사찰 내 대부분이 문화재나 다름없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630년대에 중수된 화엄사는 국보 제67호 각황전, 국보 제12호 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301호 영산회괘불탱을 비롯해 동서오층석탑, 대웅전 등 수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산청 내원사에는 우리나라 현존 비로자나불 가운데 가장 오래 됐다는 석조비로자나불(보물1021호)이 있다.△다양한 문화유산지리산에서는 선교양종이 고루 발전해 왔다. 실상사가 구산선문을 처음 받아 들여 선종을 발전시켰고, 화엄사는 장육전(옛 각황전)에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화엄경을 새긴 석판)을 봉안할 만큼 경전을 중시했다. 쌍계사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널리 대중화했다. 지리산의 사찰에는 명필들의 글씨도 많다. 쌍계사 진감선사의 탑비(국보 제47호)는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천은사 일주문 현판인 '지리산 천은사' 글씨는 조선 4대 명필 중 한사람인 이광사(李匡師)가 쓴 수체이고, 천은사 보제루는 이광사의 제자 창암 이삼만이 썼다. 화엄사 일주문의 '지리산화엄사' 현판은 선조의 아들 의창군이 1636년에 썼고, 화엄사 각황전 현판은 형조참판 이진휴가 썼다. 근래엔 실상사 천왕문 현판을 여산 권갑석이 쓰는 등 당대의 명필들의 글씨가 사찰마다 즐비하다. 지리산 불교유적에는 차 문화도 깃들어 있다. 828년(신라 흥덕왕 3)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 종자를 가져와 처음으로 재배한 곳이 바로 쌍계사 주변이다.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차 시배지 기념비가 있지만,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일대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차 문화는 수행처인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사찰을 중심으로 종이와 목공예 등 생활문화도 발달했다. 지리산의 스님들은 전란으로 사찰이 불타는 피해를 입으면서도 전란이 일어나면 승병으로 참전, 호국불교 정신을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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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3.08.02 23:02

울안에 갇히지 않고 세상 교화시킨 진보인사 이선종 원장

이선종 원장의 고향은 진안이다. 1944년 정미소집 여덟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지역 사회 활동이 활발했던 아버지로부터 사회성을, 덕과 역량이 높았던 어머니로부터 나누는 삶을 배웠다. 원불교 집안이어서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만 원불교에 나가지 않았다. 원불교를 마음에 들이고 사상에 눈을 뜨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중학교 3학년때였다. 위중한 눈병을 얻어 치료를 받고 있던 그에게 훈련차 진안에 왔던 원불교 교무님이 물었다.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그의 답을 듣고 다시 일렀다. "그렇다면 그 꿈을 갖고 인류의 스승이 되어라." 출가를 결심했다. 교무님이 봉직하고 있던 부산까지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원광대 원불교학과에 들어가서는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 공부에 전념하면서 '원불교에 내 삶을 온전히 뿌리내리고 살수 있겠는지' 스스로 실험했다. 원불교 교단과 공동체는 대학시절 건강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그를 눈여겨 보았다. 첫 부임지는 서울 종로교당이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환경 등 대도시의 생태에 관심이 갔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지도자들을 예리한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안으로는 원불교 사상으로 스스로를 다지고, 밖으로는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눈으로 원을 그리고 싶었다. 유네스코와 흥사단, YMCA 등 여러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역사와 시대, 사회의식을 갖게 됐다. 종교적 사상의 뿌리를 더 단단하게 해준 함석헌 김수환 강원용 이태영 지학순 같은 시대의 지도자들과 한국문화에 눈을 뜨게 해준 한창기 전영필 최완수 같은 문화인들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사회성 강한 단체에 참여하는 그를 교단은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그 길을 꿋꿋히 갔다. '원불교 교법의 사회화'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세상과 교유하면서 모든 '울'(울타리)을 트기 시작했을 때 병을 얻었다. 요양을 겸해 여수로 내려갔지만 그곳에서도 쉬지 않았다. 지역사회의 지형을 새롭게 바꾸어놓을 정도로 '신나게' 일했던 여수시절은 그의 삶 정점에 놓여있다. 원불교 총부 문화부장과 종로교당 교감 및 종로지구장을 거쳐 여성 교무로는 이례적으로 서울교구장을 지냈으며 중앙훈련원장을 맡아 '교법의 사회화' 실천의 길을 열고자 했다. 종로교당 교무시절 교도(전은덕)가 희사한 서울 원서동의 창덕궁 옆 520평 한옥을 보수하고 일부는 신축해 지난 2007년, 지금은 원불교 문화운동의 보고가 된 은덕문화원을 열었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한 사회 참여 활동은 '이선종'이란 법명을 종교인의 울안에 가두어놓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표적 진보인사로 더 널리 알려지게 했다. 평화 인권 환경 여성운동 단체와 다양한 인연을 갖고 있는 그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지금은 환경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 기획
  • 김원용
  • 2013.08.01 23:02

[은덕문화원 이선종 교무] "종교인, 진실과 공익심으로 헌신해야 시대를 건넌다"

한옥의 위용에 잠깐 머뭇거렸다. 큰 대문이 열렸다. 비가 막 그친 오후, 정갈한 한옥 마당을 딛는 느낌이 행복하고 편안했다. 어깨를 잇대고 있는 여러 채 한옥과 소나무의 조화가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창덕궁 돌담길을 끼고 있는 서울시 원서동 북촌 한옥마을의 은덕문화원 풍경이다. 은덕문화원은 원불교 도량이지만 '종교 울'을 튼지 오래다. 2007년에 개관했으니 올해로 6년째, 은덕문화원은 서울 북촌한옥마을의 문화를 가꾸어가는 중심에 있다. 대중들을 위한 문화활동을 시도하는 종교 도량이 없진 않지만 은덕문화원처럼 적극적으로 '종교 울'을 트고 세상과 소통하는 문화운동을 주도하는 도량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우리문화의 참다운 모습을 가꾸어가는 정신문화의 공간으로 이미 이름을 널리 알렸으니 새삼 이 공간의 태생이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공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시대적 의미를 살려 오늘의 은덕문화원을 만들어놓은 사람은 이선종 원장(69원불교 교무)이다. 여러해 전 교도로부터 건물을 희사 받아 그 쓰임새를 고민해오던 이 원장은 한옥의 가치를 되살려 우리 문화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세웠다. 예산도 없었고, 교단의 호응도 적었지만 척박한 환경을 의지와 열정으로 극복했다. 뜻을 세우니 길이 열렸다. 520평 대지위의 안채와 이층 일식 주택, 사랑채와 낡은 창고 등 보존이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던 집을 2년여 동안의 우여곡절 공사 끝에 전통한옥과 2층 일본식 주택 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이 원장을 인터뷰로 만나는 일은 어려웠다. 그렇고 보니 20대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해 새만금 살리기, 반핵, 평화와 인권, 여성, 환경 등 파장이 큰 시민운동을 반세기 가깝게 주도해온 사람치고는 '이선종'이란 이름 외에 본격적인 그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일은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싶었다. 언론을 통해 개인적 삶이 드러나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해왔던 때문이었다. 어렵게 이뤄진 인터뷰는 7월 장마가 머뭇거리는 하순, 은덕문화원 인화당 접견실에서 있었다. '인생의 가을'을 맞고 보니 성찰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이 원장은 '회광반조(回光返照-자신을 반성해서 곧바로 자기 심성의 성품을 비쳐보는 것)'를 일상으로 들여놓은지 오래라고 말했다. 종교인으로서 사회참여의 길을 선택해 곁눈질 하지 않고 걸어온 삶의 지평이 넓고도 깊어 보였다. '원불교 교법 사회화'의 진정한 실천이 그의 50년 교역의 삶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덕분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건물이 훨씬 아름답고 고졸한 느낌을 줍니다. 손수 공사를 지휘하셨다면서요. "어릴 때 한옥에 살아서 한옥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어요. 기왕에 시작하는 일이니 제대로 하고 싶었지만 재정이 부족해 건축비를 절약하려면 직접 뛰어들 수밖에 없었죠. 밤늦게까지 벽돌 나르고 마당에 돌을 깔고 온갖 일을 몸으로 함께 때운 교무들의 고생이 컸습니다. 원불교가 돈은 없지만 정신은 살아 있어서 그 힘으로 버텨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은덕문화원'이란 이름이 원불교의 이미지를 담아 지은 것인 줄 알았는데, 기증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더군요. "이름 지을 때, 내놓고 큰 반대는 없었지만 교단 내부에서 이견은 있었어요. 그러나 원불교 이름을 내세우기 보다는 기증자(전은덕)의 뜻을 기리는 것이 좋다고 보았고, 교법의 사회화를 위해서도 포장으로 '울'부터 치는 일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원불교 재단에서 수리했다는 안내도 조그맣게 붙였어요."-원불교 도량이면서도 종교적 정체성 보다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앞세웠는데 교단의 호응을 얻기 힘들진 않았나요. "쉽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원불교가 이제 좀 더 큰살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바로 앞에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이 있는데 세속적인 기준으로 공간 활용을 앞세우면 안 되잖아요. 창덕궁과 같은 콘셉트로 자리 잡으니 서울시민들에게 확대경으로 비쳐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과적으로는 원불교에 대한 이미지도 높아졌고요. 지금은 문화원 자체적으로 꾸리는 사업이 아니어도 시민사회단체, 정부부처, 재외대사관 관련인사들의 왕래가 잦습니다. 다 종교 울을 튼 덕분 아니겠어요."-은덕문화원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지평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의 문화교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희망하지요. 격조 높은 수도도량으로서 국제교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국제교화의 장이자 종교와 사상을 넘어 문화로 하나 되는 창의적인 교화의 장, 그리고 원불교 사상과 현대담론을 통한 인재 양성의 산실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많던데요. 그중에서도 역시 사람을 키워내는 아카데미 운영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심은 역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니까요. 아카데미에서는 지금까지 300명을 배출했어요. 장학사업도 활발하죠. 대부분이 원불교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교도가 아닌 사람도 있어요. 아카데미는 원불교 교법과 사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시대담론과 코드를 읽는 강좌를 개설해 의식의 눈을 뜨게 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시대담론을 읽고 의식의 눈을 뜨게 하는 강좌를 종교 도량에서 운영하는 일이 흔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 원장님의 지향과 관련이 있겠군요. "개인적 지향만이 아니라 원불교에서도 교법의 사회화는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런데 내 시력으로 보면 그 방식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교법의 사회화를 원불교 안에서만 이루려고 하면 그 끝이 보이잖아요. 사실 원불교 역사는 1세기가 안됩니다. 그런데도 원불교 안에 머무는 교역자가 많아요. 나는 일찍이 원불교 교법의 사회화에 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트고, '남여울' '종교울' '사상울' '지역울' 도 다 트고 큰 원을 그리려고 노력 했지요. 원불교 사상으로 무장이 되어 있다면 그 사상을 마음으로 활용해 어떻게 쓰고 있는가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합니다."-원장님은 종교인으로도 그렇지만 평화 인권 환경 여성 등 시민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해온 삶의 풍경이 대중들에게는 더 강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종교인의 사회참여가 활발하지만 아직도 종교내부에서는 경계의 영역 아닌가요.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종교인이 여전히 미미한 것을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내 경우도 진보냐 보수냐를 가르기 전에 인연으로 교류해왔지만 급진보로 분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종교인의 사회참여가 아직도 그만큼 주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일 겁니다."-스스로 '중도'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그동안의 활동 영역을 보면 그런 가름은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지극히 중도적 노선을 걷고 있어요. 보수든 진보든 옳고 좋은 것은 취해 서로 보완해 나갈 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보수는 경험이 풍부하고, 진보는 창의적 생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역량이 있죠. 가능하다면 이런 좋은 점을 취하고 보완하면 좋겠지요."-그럼에도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비롯해 반핵, 인권과 평화, 환경, 여성운동 단체 같은 진보적 시민운동 단체를 지원하거나 그 중심에서 활동해왔습니다. 교단의 비판이나 정부의 경계로부터 자유로웠습니까. "교단에서도 적잖은 지탄과 비판을 받죠. 그런데 저는 한 시대를 살면서 종교인들이 걸어야할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어떻습니까. 종교인들이 세상을 이끌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와 종교인을 걱정하는 시대지 않습니까. 격변의 시대에 종교자로서 해야 할 일은 도처에 있습니다. 그것은 곧 교법의 사회화와도 직결됩니다."-올해 초 환경재단 대표를 맡으셨던데요. "환경재단 최열 대표의 공석을 대신하는 역할인데, 환경단체와의 인연도 그렇고 법의 잣대로만 구속되어 있는 최 대표의 어려움을 나누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기꺼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모범적으로 살아온 분들이 정치적 희생을 당하는 것을 보면 분노할 수밖에 없죠. 재단의 60명 식구 워크숍을 하면서 '사람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교감이 되어야한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화합단결하고 재단의 주인이 되자'고 말했어요."-정복 입은 교역자로서 그런 일에 나서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예전에 한명숙 총리 기소 때 증인 채택되어 나간일도 있으시죠. 교단의 반대는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그래도 내가 잘못된 일을 거드는 것이 아니니 떳떳했어요. 종교인은 시대의 양심이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거리낄 것이 없죠. 일전에 '남영동' 영화를 보고(충격적 장면에 끝까지 못 보았지만) 다시 확인했어요. 김근태의원 같은 분들의 희생 이 있어 자유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얻었잖아요. 그들의 희생을 딛고 살고 있는 우리는 당연히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과제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하루 세끼 밥 먹을 수 있다고 적당히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며 산다면 그 분들이 흘린 땀 흘린 눈물과 고통 받은 상처를 어떻게 갚겠습니까."-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식견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원불교 울안에서 언제 그런 심미안을 갖게 되셨나요. "20대부터 크리스천아카데미 YWCA 유네스코 등 다양한 사회문화단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의식을 넓히고 교양을 쌓을 수 있었어요. 지성사회를 교화하려면 다양한 영역을 섭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무는 뿌리가 튼실해야하는데, 교단에서도 그렇고 외부 사회활동에서도 그렇고 여러 역할을 맡으면서 뿌리 없는 나무로 살면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뿌리깊은나무〉 발행인이었던 한창기 선생을 만나면서 눈을 뜨고 마음을 틔웠습니다. 우리 것 우리 얼 우리 정신 그 모든 우리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우리 존재의 근원에 눈 뜨게 하더군요."-은덕문화원의 문화운동 중심에 우리문화가 있는 이유가 확연해집니다. 고향인 전북은 한국적인 문화와 정서를 대표하는 지역인데, 고향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전북은 미래의 가능성이 충만한 땅입니다. 한국 오천년 문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우리 문화와 우리 얼, 정신, 흥, 맛의 산실이지요. 지금은 불의 시대가 가고 물의 시대입니다. 정신문화의 산실인 전라도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배경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겠지요." -격변의 시대에 정신문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일수록 종교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시대의 종교인이 지녀야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종교의 힘은 진실입니다. 종교인은 절대 진실해야 하지요. 두 번째는 공익심입니다. 개인보다는 공(公)을 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공익심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헌신해야 합니다. 종교를 이용하려고 하면 종교인이 아닙니다. 자기를 썩혀 거름이 되고, 새로운 싹을 만드는 것이 종교인입니다."이 원장은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한창일 때 새만금 반대운동 중심에 있었다. 삼보일배에도 나섰던 이 원장에게 새만금의 미래를 물었다. "새만금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도 운명적인 것 아닌가 싶어요.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로 새만금을 보아야 하냐는 것일 텐데 나는 자연생태적인 가치와 첨단의 문화산업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새만금의 생태적 가치를 강조한 이 원장의 조언은 명쾌했다. "더 이상 후회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방향을 잘 잡으면 새만금은 천혜의 보고가 될 수 있어요. 그래야 미래의 땅이 됩니다."

  • 기획
  • 김원용
  • 2013.08.01 23:02

9. 고창 무장초 - 동학농민혁명 기포지 무장지역 근대교육 이끌어

△학교가 걸어온 길고창 무장초등학교(교장 강성주)는 동학농민혁명의 기포지로 알려진 무장지역의 근대교육을 이끌었다.1909년 당시 양반계층이 설립한 사립무창학교가 그 출발점이다.1910년에는 외세 침탈과 봉건제의 혁파를 위해 설립된 인근 동명학교와 합쳐져 사립무장학교로 교명을 바꿨다.무장초 출신들은 외세배격의 기치를 내걸었던 동학농민군의 후예 답게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확산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김영완이용욱(2회) 지사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이후 일제는 문화통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유화정책을 펼쳤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민족을 분열도태시키려는 야욕이 자리했다.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창씨개명하도록 강요한 것이다.이 같은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교육에도 불구하고 당시 학생들과 교사들은 암암리에 우리말을 쓰고, 우리노래를 따라 부르며 머지않아 다가올 독립에 대비했다.특히 조선인 교사였던 이동준이승연은"머지않아 해방이 될 거다", "우리말을 잊지 않아야 해"등 은근히 독립을 암시하는 발언을 통해 학생들에게 민족정기와 애국심을 심어줬다고 한다.이처럼 무장초는 민족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100년을 이어왔다. 특히 동문들의 끈끈한 정은 학교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으로 꼽힌다.무장초는 2009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에서 모인 수천여명의 동문들의 축복 속에 '100주년 기념탑'건립 및 '100년사'발간, 재단법인 장학회를 설립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장학회는 2010년부터 동문이 십시일반해 모은 7억여원 상당의 기금으로 입학생 전원 및 성적우수 졸업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한편 올해 제102회 졸업식을 연 무장초를 거쳐간 졸업생은 현재까지 모두 1만827명이다.△ 학교를 빛낸 인물무장초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을 다수 배출했다.김영동(9회) 제헌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초석을 다진 초대 국회에 출사해 독립 이후 혼란스러웠던 사회안정과 지역발전에 크게 공헌했다.1930년대 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던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그는 민족상잔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정치인이란 이유로 강제납북돼 그 뜻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것.무장초는 옛부터 집성촌을 이뤘던 여양 진씨 일문에서 많은 인물을 냈다.현 정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친인 진기홍(17회) 전 광주체신청장은 우리나라 우정역사의 산증인이다.그는 40여 년 동안 오직 '우정사업의 역사 바로알기'에 집중하며 통신사업의 역사를 정립하는데 큰 족적을 남겼다.특히 2005년 제50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자신이 65년 동안 모아온 근대 우정 관련 사료 177점을 기증하기도 했다.어린시절'신동'으로 불렸던 진의종(23회) 전 국무총리는 당시 전국 최고의 수재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경성제국대학교(현 서울대) 출신이다.그는 1943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일본 북해도청 농무과장 등을 지냈다.이후 8911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제17대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다.진기홍 전 광주체신청장과 친형제지간인 진기풍(27회) 전 전북일보 사장은 지역의 대표 언론인으로 손꼽히고 있다.그는 1947년 전북일보의 전신인 '전라신보'에 입사한 후 편집국장, 주필을 거쳐 부사장과 사장을 지냈다.1979년 서해방송 부사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난 그는 대한적십자 전북지사장, 백양상임고문, KBS시청자위원 등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일을 해왔다.특히 서슬 퍼런 군사정권시절 '박정희 대통령께 드리는 호남 푸대접 공개 서한'을 발표, '호남푸대접론'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그는 당시 지역차별정책으로 전북이 낙후되면서 점차 인구 감소현상이 나타나자 1977년 전북도민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창립한 '전북애향운동본부'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또한 가람 이병기 시비와 전북출신 독립운동가 추념 탑, 법조 3성 동상, 무초 회양미술관 등을 건립, 후세에 사표로 전수했다.이 같은 공로가 인정돼 2004년에는 제4회 전북의 어른상 봉정자로 추대되기도 했다.더불어 김재훈(57회)박철준(58회) 변호사는 올해 대한민국 대표 로펌으로 선정된 법무법인 광장에서 특허, 형사전문 변호사로서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무장초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기업인 김영관(36회)과 진석주(38회) 전 총동창회장(전 교장)은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동문들의 결집을 통한 후배사랑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도약을 위한 노력무장초는 2004년 무장읍성 복원 계획에 따라 건물을 신축, 현재 자리로 옮겼다. 한 때 전교생이 2000여명에 이르렀던 학교는 대다수의 농촌학교와 마찬가지로 현재 학생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에 지역주민과 교직원들은 위기 속에서 희망의 빛을 구했던 전통을 발판삼아 지난해 혁신 씨앗학교, 올해 생활지도 시범학교 지정 등 도약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특히 교육공동체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씨앗학교 운영을 통해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학교 문화 만들기, 특색있는 교육과정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또한 인근 거점학교와의 교육과정 공유 등을 통해 공동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내 성폭력학교폭력 예방 활동 및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강성주 교장은 "학생들이 바른 인성을 지닌 튼튼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전통이 빛나는 학교라는 긍지를 갖고 생활하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기획
  • 최명국
  • 2013.07.31 23:02

[20. 다문화 마을학당] 한국어 교육 목마른 이주여성에 '배움의 장' 마련

결혼 이주여성들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언어 소통 문제에 직면한다. 그리고 문화적 이질성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한 그루의 성장한 나무가 뽑혀져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경우, 그 나무는 최소 5년 이상의 돌봄과 가꿈을 가져야만 죽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 나무에 따라 그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하물며 하나의 인간이 자신의 나라에서 20년 이상 정착하고 살다가 이주를 하게 된다면 그 돌봄과 가꿈의 시간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적응을 위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들은 낙오자로서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줄 수 있다.△방문교육에 필연적인 사각지대 결혼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오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한국사회 정착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한국어교육, 가족교육, 다문화사회 이해교육, 취업교육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은 한국어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어교육은 결혼이민자들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교육장에 찾아와서 교육을 받는 방법이 있고, 방문지도사가 각 가정에 파견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전북지역의 경우 '다문화 마을학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사업은 한국어교육을 받고 싶지만 생활의 여건상 받지 못하는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직장을 다녀야 하는 탓에 한국어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결혼 이주여성, 자녀의 양육문제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이들은 다문화마을 학당을 통해 한국어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다. 사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방문교육은 중앙정부의 일정한 자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실제로 방문교육은 한국 거주 5년 미만의 이주여성으로만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총 3회에 걸쳐 방문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부모교육의 경우 임신했을 때, 1개월 미만의 신생아기를 양육하고 있을 때, 12개월에서 24개월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을 때 등으로 세밀하게 제한하고 있는 탓에 일정부분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전북형 다문화 특성화 사업다문화 마을학당은 새롭게 건물을 지어서 특정한 곳에 운영하는 형태는 아니다. 각 시군 마다 있는 공공건물들을 활용해 진행한다. 마을회관, 농협, 교회, 동사무소 등 다양한 공간에서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전북지역 14개 시군에 156개 반을 개설, 382명의 결혼이민자들이 다문화 마을학당의 한국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곳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자원봉사자 15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외국인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들로, 퇴직 교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북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문화 마을학당은 다른 시도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참신성과 획기성이 두드러진다. 특정한 공공건물에서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소그룹수업을 진행하고, 자원봉사자 등 지역의 자원과 인프라를 이용해 교육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등 전라북도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전북형 다문화 특성화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 마을학당의 올해 중점 사업은 한국어교육이다. 생계를 위해 직장을 다니거나 자녀양육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주말이나 야간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찾아가는 한국어 교육 사업'이라 말할 수 있는 마을학당 사업은 사각지대 해소를 가장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사각지대는 한국어교육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교육, 의료, 복지 등 다양한 부분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다문화 마을학당은 한국어교육을 넘어 다문화가족의 정착지원에 필요한 나머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다문화 마을학당의 갈길은 아직 멀다. 이지훈 (전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장)

  • 기획
  • 기고
  • 2013.07.30 23:02

필리핀 이주여성 '리디아 이가니아' "친구 만나고 한국어 배우고 외로움 달랠 수 있어 좋아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인상은."처음 한국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어요. '무서운 나라'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필리핀에서 학교 다녔을 때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웠는데, 안 좋은 부분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남자는 왕이고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북한과 전쟁을 해서 '위험한 나라'라고 알고 있었어요. " -한국에 와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언어가 제일 어려웠어요. 문화적 차이도 좀 어려웠고요. 결혼 초기에 "남편과 어떻게 대화를 하지" "가족들과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등 언어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지 못했어요. 문화적으로도 필리핀과 한국의 문화가 달라요. 필리핀에서는 대부분 결혼하면 부모님과 따로 사는데, 한국은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필리핀에서도 같이 사는 가정이 있기는 하지만 잠깐 같이 살다가 따로 살게 됩니다. 거의 80~90% 정도는 분가를 해서 살기 때문에 결혼 초기에 많이 힘들었어요." -한국어 소통으로 인해 에피소드가 있었다면."시어머니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어요. 남편도 직장 때문에 집에 별로 없기 때문에 TV를 시청할 때가 많았어요. 당시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없었기 때문에 한국말을 배울 수도 없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적을 받은 적도 없었어요. 한국은 존대말과 반말이 있는데, 남편에게 시어머니가 "밥 먹자"라고 하면, 저도 따라서 시어머니에게 "밥 먹자"라고 말했어요. 남편은 직장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집에 오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말을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그럼 한국어를 어떻게 배웠는지."처음에는 그냥 스스로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긴 다음에 곧바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방문교육을 신청해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이후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한국말을 배우게 되면서 존대말과 반말을 왜 구분하는지 등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한국말을 어떻게 배우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지."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과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고,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선생님이 답해 주니까 좋아요.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외로움을 달랠 수 있어서 좋기도 해요.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다문화 마을학당에서 찾아가서 한국어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하면 좋겠어요." 이지훈(전주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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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30 23:02

[우리고장 명인명물] 군산 윤민선 관장, 미군에 23년째 태권도 가르쳐

23년째 군산 미공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국기 태권도를 가르쳐 온 윤민선(49공인 6단) 관장.군산 미공군 장병들 사이에서 '마스터 윤'으로 통하는 윤 관장에게 지난 1990년부터 태권도를 배운 미공군 장병 수만도 1000여 명에 이른다.윤 관장은 파란 눈의 외국인들에게 23년간 태권도를 전파하며 지난해까지 10여 년간 전라북도 태권도협회 국제분과위원장을 맡아 태권도 국제화의 최일선에서 역할을 다 해왔다.최근 윤 관장은 부인 이은선(444단) 씨와 아들 윤승범(194단), 윤정호 (133품), 윤준혁(102품) 3형제와 함께 도합 19단(품)의 태권가족으로 더 주목받고 있다.이들 3형제가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무주 반딧불체육관에서 열린 제7회 태권도문화엑스포 겨루기 부문 A매치, 태권도원배에서 각각 나란히 금메달을 차지했기 때문이다.특히 둘째 정호 군은 지난 5월 대구에서 열린 제42회 전국소년제천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10년 이후 3년 만에 군산에 소년체전 금빛 쾌거를 전해 오기도 했다. 큰아들 승범이는 관원들이 태권도를 수련하는 모습을 보며 6살에 자연스레 도복을 입었다.2011년 전라북도 교육감배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부친이 협회 국제분과위원장직을 맡은 임원인 관계로 직접 시합 지도에 나설 수 없는 불리함을 홀로 극복해 왔다.현장 지도자도 없이 홀로 경기를 벌이는 아들의 모습은 결국 태권도에 문외한이던 어머니 이은선 씨가 직접 지도자 자격을 갖추기 위해 태권도에 정식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형을 따라 4살부터 태권도를 시작한 둘째 정호 역시 본보가 주최하는 전북일보배 태권도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뛰어난 태권도 실력과 함께 미성초등학교 어린이회장을 맡고 있는 당찬 소년이다.특히 어린이회장 공약으로 교내 태권도부 정식 창단을 위해 소년체전 금메달을 따 오겠다며, 이를 지키기 위해 지난해 찾아온 병마와 싸워가며 극복해 낸 사연은 감동으로 다가온다.지난가을 탈장 수술에 이어 겨울 천식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운동을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였던 정호는 친구들과 선생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아버지를 설득했다.천식이 악화되면 그만둔다는 조건으로, 한겨울 난방온도를 30도로 맞춰놓고 형에게 스파링을 요청하는 등 하루도 쉬지 않고 강도 높은 동계훈련을 자처하며 기어코 약속을 지켜냈다.애초 태권도가 싫다고 하던 막내 준혁이도 형들 앞에서 선보인 예사롭지 않은 발차기가 계기가 돼 현재 각종 지역대회에서 그 연령대에서 구사할 수 없는 화려한 발기술을 선보이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윤민선 관장은 "미군들에게 우리 태권도를 전파한다는 기쁨과 책임감으로 20여년을 지내다 보니 가족들까지 모두 함께 하게 됐다"며 "심신단련을 위한 태권도 정신에 맞게 운동을 잘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태권도를 통해 참되고 바른 길로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일권
  • 2013.07.30 23:02

정후길 임실치즈과학연구소장 "50년 전통 임실치즈 국내 최고로 만들 터"

"임실군이 한국형 치즈와 유제품 생산의 메카로 자리할 수 있도록 치즈과학연구소가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 지역경제 활성화의 주역이 되겠습니다."지난 2010년 임실치즈과학연구소에 부임한 정후길(56) 소장은 인생의 마침표를 임실치즈에 쏟겠다는 일념으로 충효의 고장과 인연을 맺었다.1994년 성균관대학교 식품생명자원학과에서 농학박사를 취득한 그는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식품과학인체영양학과에서도 박사과정을 이수했다.이를 토대로 2007년까지 매일유업(주) 중앙연구소 연구개발기획팀장을 맡았고 이후 일동후디스(주) 식품연구소장과 (주)바이오인디스트 기술고문도 역임했다.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임실치즈과학연구소장에 픽업된 정 소장은 취임 후 임실치즈를 국내 최고의 식품으로 개발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그는 "50년 전통의 임실치즈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에 남은 인생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고 최고의 걸작 만들기에 적극 힘쓸 것"을 거듭 강조했다.정 소장이 부임하면서 치즈과학연구소는 운영체계가 확립, 가시적인 성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특히 부임 2년도 안 된 시점에서 연구소가 일궈낸 실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급박하게 펼쳐졌고, 그에 따른 결과는 실적에서 높이 평가됐다.특히 올해부터는 다양한 연구실적과 기술이전, 특허 확보 등이 쏟아지면서 그에 따른 혜택은 고스란히 관내 낙농가들에 돌아가고 있다.정 소장은 "임실치즈를 통해 임실군민이 잘사는 부촌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치즈과학연구소가 한국치즈의 선두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 기획
  • 박정우
  • 2013.07.30 23:02

[임실치즈과학연구소] 한국형 치즈 개발·제품화 지원…지역경제 활성화 이끈다

지방자치 이후 모든 자치단체에서는 자립기반 구축을 위한 다양한 개발사업에 총력을 질주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실패와 성공이라는 결과에 관계없이 블루오션(미개척시장)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가 두려우면 미래가 없듯이,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도전하며 실행의 반복을 통해 오늘의 발전을 이뤄냈다. (재)임실치즈과학연구소는 동양권에서 생소한 '치즈과학'분야를 연구하고 개발하며 부촌을 꿈꾸는 임실군 산하 핵심기관이다.△설립 목적(재)임실치즈과학연구소는 치즈산업의 육성과 임실치즈의 고부가가치 제품개발을 목표로 설립된 국내 유일의 치즈 및 유제품개발 전문연구소다. 임실군은 지난 2004년 임실치즈밸리조성사업과 관련 산업자원부의 지자체연구소 육성사업에 발맞춰 치즈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하지만 치즈밸리 부지조성이 난항을 겪으면서 지난 2008년에서야 초대 연구소장을 초빙했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임시로 임실치즈과학연구소를 개설했다. 2010년에는 재단법인으로 확정됐고 운영개정 등을 거쳐 현재의 정후길 2대 소장이 취임,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치즈과학연구소는 네트워크 운영기반 구축과 기업지원, 장비활용 및 연구개발사업에 이어 교육훈련과 홍보 등 정책개발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업은 임실을 벗어나 전국의 유가공업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정보와 발효유제품 제조기술 등 산업화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지원하는 연구기관이다.△주요 추진성과(재)임실치즈과학연구소는 이사회 및 각 위원회와 연구소장을 주축으로 2실 3개팀으로 구성됐다. 또 국가 용역과제 수주를 통한 과제연구원 6명을 채용해 모두 17명의 직원들이 분야별 영역에서 활동중에 있다. 지난해까지 연구소는 중앙부처 및 광역지자체 등지에서 R&D 연구용역과제를 수주, 임실치즈의 명품브랜드화에 기여했다. 지역특화기술융복합연구지원과 농식품선도클러스터를 비롯 고부가가치식품개발 등 모두 12개 분야를 수주, 35억6000만원의 연구과제를 추진하고 있다.사업성과물로는 다수의 특허와 학술논문 발표로 지식재산권을 확보했고 현장 애로사항 컨설팅과 문제점 해결, 신제품 기술이전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관내 유업체와 낙농가에는 치즈 및 유가공분야의 핵심인재를 양성키 위해 치즈아카데미 교육사업도 펼치고 있다.지난해는 순천대학교 치즈전문가인 배인휴 교수팀을 초청, 핵심리더교육을 병행했고 임실서고 치즈학과에는 유가공명장 인력육성교육 및 체험교육도 실시했다. 이 밖에 국내 숙성치즈 제조기술의 향상을 위해 전국 규모의 자연치즈콘테스트를 해마다 개최하고 낙농산업의 위기극복 및 미래발전을 위해 국제 유산균유가공학술세미나와 치즈과학포럼 등을 개최하고 있다.올해 들어 연구소는 대학과 산업체 등 4개 기관을 대상으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테크플러스협의회와도 연구 및 유통분야, 문화관광컨텐츠 등의 공조체계를 구축했다. 이에 따른 연구용역과제도 지역연고산업육성 등 8개 분야에 걸쳐 8건을 수행했으며 지식재산권(특허) 분야에서도 컬러치즈떡 등 12건을 확보했다. 더불어 학술논문에서는 국내와 해외에서 2건을 발표했고 신제품은 버섯발효유 등 7건을 개발한 데 이어 버섯발효유 등 7건의 기술이전도 진행중에 있다.△미래 목표와 비전임실치즈과학연구소는 임실군의 후원으로 운영, 지역내 유가공업체와 낙농가에 기술이전 제품에 대한 생산체계 확립과 시장 출시에 따른 매출발생을 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업체 고유의 원천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 확보와 디자인 가치를 높여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특히 스타터(치즈 종균)는 유제품을 포함한 각종 발효식품의 핵심소재중 하나로써 현재 전 세계에 10조원 이상의 시장성을 형성하고 있다. 스타터 생산은 발효공정의 생균수(CFU)와 특성을 유지하며 생산하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국내생산이 어려운 까닭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소는 국내 경쟁력을 위해 기능성 소재 유용미생물 스크리닝시스템과 스타터유산균을 활용한 각종 유제품 생산기술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이와 함께 유가공제품 생산에 따른 위생안전관리시스템 구축을 위해 업체가 겪고 있는 애로사항과 기술문제, 연구개발 등에 대한 컨설팅 등의 연계사업도 실행하고 있다.연구소는 이 밖에도 지구촌 자유무역 실정에 맞춰 위기에 봉착한 낙농산업의 현안 극복과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한국형 자연치즈 개발 및 제품화에 착수했다. 더불어 연구소의 지속적 유지와 사업확장을 위해 국책과제를 적극 수주, 지원받는 인건비와 운영비 등의 자립화를 선언했다.

  • 기획
  • 박정우
  • 2013.07.30 23:02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은

국민대통합위원회 한광옥 위원장(71)은 전주시 효자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고향이 임실군 청웅면이고 지금도 그 곳에 선산이 있다. 전주사범 부속초, 전주북중을 졸업한 그는 서울 중동고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서울대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으나 학생운동으로 인해 중퇴했다.제11, 13,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민주화 운동과 정치활동을 하면서 3번이나 투옥됐다. 국회노동위원장, 범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DJP)추진위원장, 제1기 노사정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대 상임의장, 대통령 비서실장, 새천년민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냈다.한 위원장이 정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하나의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제11대 국회의원이던 1982년 10월 7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통해 그는 김대중 선생 석방,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대통령 직선제, 전두환 민정당 총재직 사퇴, 언론자유 보장, 지방자치제 실시를 외쳤다.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이었다. 야당이라고는 하지만 민한당은 집권 민정당의 2중대로 일컬어지던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커다란 회오리가 됐다. 당시 언론엔 '한광옥 의원이 정치 현안에 대해 언급했다'고 단 한줄만 실렸다. 청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DJ는 한광옥을 눈여겨봤고, 결국 그를 중용하는 계기가 됐다. DJ는 훗날 한광옥을 민추협 대변인으로 추천했고 고비고비마다 정치권 중심에 불러냈다.지난해 10월 5일 한광옥은 새누리당에 입당과 동시에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 대표를 지내고 국민의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이력에 비추어볼 때 의외의 결단이었다.한 위원장은 "나보다는 당, 당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를 어려운 시기에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후보라고 생각한 때문"이라고 말했다.지난 2010년 7월, 한 위원장은 아내가 서울대병원에서 폐암 3기에서 말기 사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병 수발에 나섰다. 폐암 수술을 마친 아내를 부축해 항암치료와 요양생활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은 게 가장 기쁜 일이라고 한다. 입이 무겁고 화를 내지않은 그의 별명은 '생불(生佛)'과 '자크(Jipper)'다.

  • 기획
  • 위병기
  • 2013.07.29 23:02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 한광옥 위원장

대통령 직속 국정과제위원회인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이달 초 공식 출범했다. 전북 출신 한광옥 위원장이 조타수를 맡은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사회갈등 극복과 역사와의 화해, 국민적 통합가치 창출 및 실천, 공존·협력·소통의 통합문화 정착을 표방하고 나섰다. 서울 광화문 부근에 있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사무실에서 한광옥 위원장을 만나 위원회의 성격과 과제, 위원장으로서의 각오와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먼저 국민대통합위원장에 부임한 소감을 말씀해 주시고,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성격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십시오."국민대통합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국민통합 의지를 바탕으로 관련 정책과 사업에 관한 자문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저는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 초대 위원장과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초대 의장을 맡으면서 국민통합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국가발전에 있어 가장 필요한 국민대통합을 위해 일할 생각입니다. 국민대통합 없이 국가발전이나 국민행복이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국민대통합은 시대정신이 됐고, 새 정부는 이것을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많이 듣고 지혜를 모아 하나 둘 벽돌을 쌓는 심정으로 국민통합을 추진하겠습니다."-국민대통합위원회가 앞으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게 될 지 궁금합니다."우선 국민과 국가의 공동 목표와 가치, 즉 국민통합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하는데 앞장 설 것입니다. 경제·사회적 격차와 박탈해소 등 당면한 문제점을 해소하고, 국민소통에 나서는 등 통합의 정신적 기반 확충에도 힘써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만드는 토대를 구축하겠습니다. 정기적으로 국민의식 조사와 지표관리를 통해 국민통합 저해요인을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할 것입니다."-도민들은 국민통합을 하려면 우선 인사와 재원 배분에서 호남, 그중에서도 전북을 우선 배려해야 하는데 새 정부들어서도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전북뿐 아니라 특정 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대통령의 철학입니다. 그동안 호남은 군사정권의 지속적인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일부 도민들은 벌써부터 성급하게 '지역차별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정권을 맡은 지 얼마나 됐습니까. 도민들이 지금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사와 고른 재원 배분이 균형발전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통 크게 지역화합과 국민통합을 일궈낼 것으로 확신합니다. 조금 긴 호흡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전북 출신 인사들이 더 힘써 일해야 합니다. 군사정권의 차별은 잘못된 것이지만, 전북에서 기득권을 누려왔던 세력들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DJ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낼 때 김혁규 경남지사가 귀찮으리만큼 찾아와 예산을 가져가는 것을 보면서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북 출신 지도자들이 더 열심히 뛰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름대로 의지가 있고, 능력있는 분들이 지역발전과 국민대통합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그러면 과연 국민통합이 이 시점에서 왜 중요합니까."갈등을 해소해야만 우리 사회가 선진화 사회로 갈 수 있고, 통일도 가능해 집니다. 2차대전 이후 분단국이었던 독일, 예멘, 베트남, 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분단국가로 남아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2만달러 시대를 청산하고 3만달러 시대로 진입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통합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통합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구성원들이 각자 개성을 살리되 전체적으로는 오케스트라처럼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응원하던 모습,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3만달러 시대로 들어가는 바람직한 모습입니다."-지역 차원에서 국민통합을 위해 어떤 활동을 구상하고 계십니까."실천 중심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기획정책분과, 대한민국 통합가치분과, 갈등예방분과, 국민소통분과 등 4개의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필요시에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민대통합의 목표를 달성해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조만간 시·도별로 지역위원회를 구성,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한 지역실태 조사도 병행할 생각입니다. 지역의 자율적인 갈등해소를 위한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후원해서 지역의 소통문화를 활성화시킬 것입니다. 또한 국민통합정책협의회를 구성하여 시·도의 국민통합정책 관련, 지자체 실·국장급 공무원이 국민통합정책책임관이 되어 국민통합을 위한 기본방향의 설정과 국가전략의 수립, 국민대통합에 관한 정책의 조정·평가·지원 및 지역 간 통합정책 등에 관한 사항을 협의할 것입니다. 지역위원회는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할 것이며, 현재 실무적으로 준비 중인 만큼 조만간 출범할 것입니다."-끝으로 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도민들이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야담과 실화'란 잡지에 전라도 사람을 폄하해서 '전라도 하와이'라고 했을때, 중동고에 다니던 저는 당시 경복고에 다니던 김덕룡, 김인수 등과 더불어 규탄집회까지 추진했던 일이 있습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강하다고 자부합니다. 국민대통합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풀어야 할 시대적 사명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계층, 지역, 이념,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심각한 경제난 해소와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국민대통합은 정부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으며 국민과 시민단체와의 소통과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도민들이 적극 참여해 목소리를 내주시고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간곡히 호소합니다.

  • 기획
  • 위병기
  • 2013.07.29 23:02
기획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