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만은 지키자-생태보고서] 군산 월명공원
군산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다양한 인물군상 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도시다. 일제강점기 가혹한 수탈과 절대 궁핍의 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만들어 낸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강제적인 개항과 한일합방, 식량 수탈의 기지화 정책은 군산을 빠른 속도로 성장 시켰다. 기형적인 성장은 호남평야의 쌀과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탐욕스런 수탈과 착취를 기반으로 했다.월명공원에 개나리와 벚꽃이 환하게 핀 봄날, 일본인들은 정종을 마시며 춤을 추고 놀았다지만, 이를 바라보는 조선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영욕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어 온 월명공원은 이제 군산을 상징하는 도심 숲이자, 걷고 싶은 산책길로 시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호수, 습지, 도심 숲을 안은 월명공원월명공원은 1912년 만들어진 수원지(水源池)와 다시 자연습지로 변한 천수답, 군산의 생태 축 기능을 하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도심 숲을 이룬다. 호수와 습지, 숲이 어울려져 야생동물의 서식이 용이하며 다양한 식생이 분포해 생태적 다양성이 높은 편이다.'군산시 월명공원일대 자원식물의 분포 현황(2006.오현경 외)'보고서에 따르면 이 일대의 관속식물상은 모두 479종.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관속식물 4,191종의 약 11.4% 에 상당한다. 도심 중앙에 위치한 숲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높은 비율이다.▲ 식재림 안정화 단계, 울창한 숲으로식생은 전반적으로 곰솔과 소나무, 리기다소나무가 폭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물오리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아카시나무가 함께 식재림을 이룬다.산책로와 시설 주변에 왕벚나무, 은사시나무, 목련 꽝꽝나무, 동백이 심어져 있다. 온 산이 헐벗었던 시절, 이곳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일찍이 공원과 상수원으로 지정, 보호되어서인지 이차림과 식재림은 다시 울창한 숲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안정화 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공원의 중앙부에 위치한 수원지 댐 주변에는 자연림에 가까운 졸참나무 군락이 분포하고 있으며 수질오염으로 서식지가 줄어든 삿갓사초 군락이 상류 쪽 습지에 분포한다. 희귀식물에는 청사조와 쥐방울덩굴이, 특산식물에는 개비자나무, 지리대사초, 갈퀴아재비, 병꽃나무, 털잔대, 벌개미취가 자연 상태로 분포하고 있다.▲ 1970년대 다시 심은 벚나무옛 명성을 잃어간다고 하나 여전히 월명공원의 벚꽃은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현재의 벚꽃은 일본인이 아름드리 곰솔을 베어내고 심은 것이 아니라 1970년대 일본 로터리 클럽이 200주를 기증해 심은 나무들이다.벚나무의 수명이 6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고사하던 중 일본의 민간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군가도는 일본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재일동포를 통해 받은 나무라고 한다. 한번쯤은 생각해 볼일이다. 왜 그토록 자신들의 국화인 벚나무 식재를 지원하는지.▲ 걷고 싶은 길, 아름다운 길 월명공원 산책로하루에 5000명 가까이 찾는다는 월명공원의 매력은 바로 길이다.근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미줄 같은 해망동 산동네에서 오르는 길, 무성하게 우거진 녹음 아래로 걷는 길, 수원지를 끼고 도는 오솔길과 관찰데크, 사람들이 던진 먹잇감 경쟁에 부산을 떠는 비둘기를 만나는 길, 크고 작은 배들이 석양을 뒤로하고 물살을 가르며 돌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길,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환하게 웃는다.반가운 소식은 청사조 군락을 복원하기 위해 시민들이 나서고, 시는 공원 주변에 공단 대로로 단절된 생태 축을 잇고,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 생태이동통로를 설치한다는 것이다.어디로 걷든,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월명공원은 아름답다. 일상에 지친 도시인의 몸과 마음을 잠시 맡겨두어도 좋을 성 싶다. /이정현(NGO객원기자·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