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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⑧안성덕 시인-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다는 다산 정약용의 글 중에 어느 것인들 귀하지 않을까마는, 오래전부터 가서(家書) 가계(家誡) 증서들이야말로 다산의 인품과 철학·문학사상을 제대로 나타낸 글이라 정평이 나 있다.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편역으로 1979년 시인사에서 출간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1991년 「창비」로 판권이 넘어가 창비교양문고로 출간되고, 이후 2001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으며, 2009년 초간본 발행 30주년을 기념하여 네 번째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되었다. 이처럼 이 책이 장기 스터디셀러가 된 것은 그가 보낸 편지 속에 인간 정약용의 진정성이 담겨서이며, 또 그의 인간적 면모나 사상 및 학문에 대한 관심사 등 그의 삶 전체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정약용이 유배지 남도 땅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와 가훈으로 내려준 편지, 흑산도에서 귀양 살던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친지들에게 교훈삼아 내려준 편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편지로 구별되어 있으며, 하나의 편지에 들어있는 여러 주제는 주제별로 간략한 제목이 붙어 있다."내가 밤낮으로 애태우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너희들 뼈가 점점 굳어지고 기운이 거칠어져 한두 해 더 지나버리면 완전히 내 뜻을 저버리고 보잘 것 없는 생활로 빠져버리고 말 것만 같은 초조감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런 걱정에 병까지 얻었다. 지난여름은 앓다가 세월을 허송했으며 10월 이후로는 더 말하지 않겠다." (1803년 정월 초하루,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척박한 유배의 삶을 살면서도 고향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를 독촉하고 격려한 200여 년 전의 아버지 정약용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몇 해 전 야구방망이를 사람에게 휘둘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 대기업 총수의 도를 넘은 맹목적 자식사랑에 오버랩 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개인주의 팽배로 점차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스승과 제자간의 의리 또한 무너지고 있는 세상에 내리는 서늘한 죽비 소리이다. 편역자의 말대로 우리는 다산이 그토록 강조했던 효(孝)와 제(弟)의 정신과 스승과 제자 간의 간절한 편지글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사제 간의 참다운 의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가 좋고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문장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며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 오늘날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바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200년이라는 시차를 넘어 다산의 서간문은 여러 의미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자식교육법과 독서법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며, 대학자이자 정치가, 사상가였던 인간 정약용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전통적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소중한 우리의 미풍양속과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안성덕 시인은 정읍 출생으로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전력 전주전력관리처에 몸담고 있으며 원광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이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3 23:02

지평선 문학상 제정, 김제 문인들 뭉쳤다

하늘과 황금들판이 만나는 풍요의 땅에서 문기(文氣)를 받은 김제 문인들이 뭉쳤다. 지난 2008년 결성된 '지평선 시동인(회장 장종권)'은 김제 출생이면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거나 김제에 사는 문인들로 한국 시단에서 활동을 하는 이들로 구성됐다."동인을 만들어 시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80년대 이야기구요, 각기 확고한 시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침체된 김제 문학을 끌어올려 전국적인 문학의 성지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낸 겁니다."회원들은 장종권 회장을 주축으로 4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중견 시인들. 서규정 김유석 이인순 장경기씨 등은 각기 경향신문, 서울신문 신춘문예 를 통해 등단했고, 「문학과 비평」, 「현대시」 등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들로 문학적 역량이 남다르다. 이들은 매년 두 번 정기 모임을 통해 지평선 문학상(가칭) 제정을 통해 김제 지역 젊은 시인을 발굴하고, 작가들에게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장 회장은 "강원 박인환 문학상, 전남 여수 해양문학상, 강진 영랑문학상, 등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상을 제정했거나 제정하고 있지만, 김제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김제 문학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황주연
  • 2011.01.03 23:02

[2011 신춘문예] 탈 - 홍인재

그것은 문구점 한쪽 구석진 곳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처박혀 있었어. 아이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는 거야. 무심코 집어 들었어. 그리고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가 켜켜이 쌓인 먼지를 젖 먹던 힘을 내어 불어내고 손으로 대충 닦았어. 불그레한 얼굴에 이마는 툭 튀어 나오고 눈은 뻥 뚫려 있었어. 주먹코는 납작한데 입은 헤벌리고 있는 거야. 참, 볼만하더군.-그래, 바로 이거야.등교시간 문구점 안은 학교에 준비물을 사 가려는 아이들로 북새통이었어. 모두들 서로 먼저 계산을 하려고 아우성이었지.-짜식들, 학교에 좀 늦으면 어때서.난 맨 뒤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다음에 계산대로 갔어."아저씨, 이거 얼마에요?""어. 수민이 왔니? 근데 이게 뭐지. 처음 보는 건데. 이거 어디에 있었니?"아저씨가 그것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어."저 안쪽 선반에요. 얼마에요? 나 많이 늦었는데.""글쎄. 가격을 잘 모르겠는데. 이거 얼마를 받아야 하나. 그냥 오백 원만 내라."학교 가는 길에 바람이 찼어. 휘파람이 절로 나더군. 맘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어서 정말 기뻤어.'땡'하고 2교시 끝 종이 울리자마자 난 그것을 꺼냈어. 순식간에 아이들이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더니 모두들 한마디씩 했지."우와, 이거 재밌게 생겼다.""한번 써보면 안될까?"난 애들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어. 그리고 거들먹거리며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 그렇게 애들을 따돌리고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보니 안쪽에 깨알 같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어. 마법의 주문처럼.'억울할 때 탈을 써봐.'미술시간은 정말 시끄러웠지.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어.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금방 눈치 챘지. 내 짝꿍 찬이가 몰래 방귀 뀐 것을 말이야. 이런 기회를 그냥 넘길 내가 아니지. 나는 벌떡 일어나 손나팔을 만들었어."아-. 아-. 주민여러분.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김찬. 아-.아-. 바로 우리 반 김찬이라는 아이가 똥방구를 뀌었으니 모두 방독면을 쓰고 대피하시기 바랍니다."교실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어. 그 시끄럽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내가 홈런을 친 거야. 잠시 후 상황 파악을 했는지 남자 아이들은 교실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여자아이들은 책상을 치며 웃었어. 찬이만 얼굴이 빨개진 채 주먹을 치켜들고 나를 노려보았어.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지.바로 그때였어."아야! 아……. 아파요."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별 수천 개가 떴어.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어. 찬이가 아닌 벌름코에게 귓불을 잡혔어. 벌름코가 누구냐고? 벌름코는 바로 우리 선생님이야. 화가 났을 때마다 코를 벌름거린다고 우리가 지어준 별명이지. 벌름코가 눈을 치켜뜨고 양쪽 귀를 잡아 당겼어."너 이놈의 자식. 또 사고 쳤지?"벌름코는 그 우악스러운 손으로 내 귀를 잡고 한껏 위로 끌어올렸어. 난 양쪽 귀를 잡혀 허공에 뜬 채 발을 동동 굴렀어. 귓불에 불이 난 것 같았지 뭐야. 한참 후에야 벌름코가 귀를 놓아 주었어.근데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질금질금 눈물이 새어 나오는 거야.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창피해서 그 탈을 얼굴에 썼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억울했어. 내가 놀리긴 했지만 찬이가 방귀를 뀐 건 사실이잖아.-억울해. 정말 억울해.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탈을 쓴 채 벌름코를 노려보며 중얼거렸어. 그러자 그 일이 터진 거야. 그 이상한 탈이 내 얼굴에 딱 달라붙으면서 녹는 거 같았어. 약간 따끔거렸어. 머리가 잠시 어지러웠고 몸도 조금 붕 뜬 것 같았지."어, 선생님이 왜 여기 앉아 있어요?"바로 그때, 옆에서 애들이 웅성거리며 나한테 말하는 거야."선생님, 화장실 좀 갔다 와도 돼요?"이어서 성재가 날 보며 물었어.-얘가 미쳤나. 왜 날 보고 선생님이래.근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야. 앞을 보니 저 멀리 벌름코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린 눈이 딱 마주쳤어. 놀라 등잔만 해진 눈이 정말 볼만했어. 난 순간 이 상황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거야. 그러나 아직 벌름코는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성재한테 큰 소리로 말하는 거야."안 돼. 수업 끝나고 가."그러자 성재가 큰소리로 말했어."야, 수민이 너 이 자식. 왜 네가 거기에 앉아 있어. 그리고 선생님한테 물었는데 네가 왜 대답해?"벌름코가 벌떡 일어섰어. 그리고는 바람처럼 달려와서는 평소 버릇대로 성재 머리에 꿀밤을 먹였어. 그러자 성재가 벌름코한테 달려들었어. 난 이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정리가 되었어. 그래, 그랬어. 내가 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거야. 선생님은 내가 되어 있었고. 웃음이 쿡쿡 나왔어. 난 벌름코처럼 큰 소리로 힘차게 말했어."이놈의 자식들 그만하지 못해."간신히 둘을 떼어놓고 난 후 양쪽 다 귓불을 한껏 잡아 당겼지. 그리고 벌름코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았어. 벌름코 눈에서 불꽃이 '파박'하고 튀었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름코를 향해 씩하고 웃어주었어. 벌름코가 뭐라고 하려다 입을 꾹 다무는 게 보였어. 아마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이제 교실에서는 내가 왕이었어.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었지. 사회시간에는 자율학습을 시켰어. 책상 사이를 걸어 다니며 숨소리도 못 내게 했지. 떠드는 애들은 귀를 잡아 당겼어. 특히 뒷자리에 앉아서 힘세다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을 주로 말이야. 국어시간에는 인심을 썼어. 오락시간을 주니까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지. 모두들 신나게 떠들었어. 하도 떠드니까 옆 반 선생님이 우리 교실을 들여다보러 와서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냥 가버렸어.근데 4교시 수학시간이 문제였어. 또 자습을 시키려고 하는데 민지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하는 거야."선생님, 질문 하나 해도 돼요?"그리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수학책을 들고 앞으로 나오는 거야. 민지는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였어.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를 멀리서만 봐도 심장이 콩닥거렸거든. 그런 민지가 내 옆에 얼굴을 바짝 대고 문제를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어.-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그때 내 얼굴에 아마 종이를 갖다 대면 불이 붙고도 남았을 거야. 그런데 아뿔싸. 민지는 도형을 그리는 방법을 물어보았어. 곱하기 정도라면 모를까 도형을 어떻게 그리지? 어떻게든 민지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내 머릿속이 캄캄한 터널 같았어. 아이들이 숨을 죽인 채 날 바라보았어. 서른 개의 까만 눈동자가 일시에 날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지.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어.-아! 어떻게 해야 하지.앞이 캄캄했어. 그런데 다시 또 누군가 손을 들었어. 벌름코였어. 나와 눈이 마주친 벌름코가 한쪽 눈을 찡긋했어."선생님, 그거 제가 설명하면 안 될까요?"벌름코가 또박또박 말했어.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어. 난 못이기는 척하고 벌름코에게 기회를 주었지. 벌름코가 매끄럽게 설명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어."와! 수민아. 너 정말 잘한다."아이들이 모두 한 마디씩 했지. 민지가 살짝 웃는 모습이 보였어. 다행히 벌름코 덕분에 위기를 넘겼어.-벌름코. 아까 내 귀 잡아당긴 것 용서해줄게. 이젠 억울한 거 다 가셨어.바로 그 때였어. 내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약간 어지러움이 느껴졌어."수민아, 탈 벗고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야지."벌름코가 웃으며 선생님 의자에 앉아있던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어.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도 내 얼굴에 아까 그 탈이 씌워져 있었던 거야.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에 벌름코와 나만 남았어. 선생님이 코를 벌름거리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셨어. 벌름거리는 코를 보자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어. 한참 후에 벌름코가 씩 웃으며 말했어."수민아, 그 탈 좀 빌릴 수 없을까?"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반전의 묘미, 재미 살린 판타지

신춘문예라는 등용문은 언제나 응모자들과 더불어 심사하는 사람의 마음도 설레게 한다. 예심을 거쳐서 넘겨받은 작품은 '탈' 등 6편이었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각자 읽고 또 읽어보면서 거르기를 했다. 그런 다음 작품마다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다섯 병의 붉은 와인'은 주인공이 어린이고 어린이 입장에서 써졌는가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아빠는 슈퍼맨'은 실업문제를 다룬 소재로 어린이들의 생활과 약간의 거리가 있고, 교훈성도 그리 크지 않았다.'그래도 난 행운이야'는 낚시 이야기로 생명존중과 환경문제를 다루었으나 조금은 작위적이어서 공감을 얻어내기 어렵지 않나 싶다.'인형그리기'는 생활동화로 우리주변에서 겪을 법한 일을 재미있게 써 주었다. 그러나 좀 더 참신한 소재와 시각으로 도전하는 자세가 보태졌으면 했다. '얼음나무'는 도입부에서 독특한 과학적 분위기가 돋보였다. 후반부로 오면서 긴장감을 이어가지 못한 점과 코가 찡한 감동이 따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당선작으로 올린 '탈'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갖게 했다. 문장도 어린이 입장에서의 단문이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내용도 학교 교실 안에서 있을 법한 실감나는 이야기였다. 또 어린이가 주인공인 점과 구성에서도 "억울할 때 탈을 써 봐."라는 반전의 묘미를 살려서 재미를 주었다. 다만 탈을 쓰는 장면, 즉 환상의 세계로 전환 되는 개연성이 더 그럴법하게 드러났었더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다. 한편 환타지 동화로 대성을 기대해 보고 싶기도 했다.동화는 미래를 창출하는 예지를 담고, 따뜻한 마음과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한다고 본다.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정진을 바라며 당선을 축하하고, 도전한 다른 분들께도 격려를 보낸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동화 다시 만나면서 행복한 꿈"

2년 전이군요. 아이들과 독서캠프에서 꿈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나는 그 때 꿈은 어릴 적에만 갖는 것이 아니라고, 살아있는 동안 내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내 꿈은 내가 쓴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들려주는 거라고 말했었습니다.그런데 생각해보니 교사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하면서부터 잊어버렸던 동화를 만나면서부터 꿈을 꾸었었나 봅니다.동화를 쓰면서 동화속의 수민이를 만나고 수민이가 되어 생각하고 수민이가 되어 웃으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수민이도 되고 방귀 뀐 찬이도 되고 민지가 되기도 하면서 즐거웠습니다.나는 앞으로도 왕벚나무 할아버지도 되고 연주도 되고 로빈이도 되어 아이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길게 꿈을 꾸고 싶습니다.이 긴 꿈을 꿀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준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숙제를 미루고 게으름을 피워도 언제나 너그럽게 봐 주시고 술 사주시면서 같이 이야기 나눠주시던 그분들이 정말 고맙습니다. 내내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밤늦게까지 책을 뒤적이고 연극을 보고 시를 읽으면서 같이 공부했던 문창과 대학원 학우들도 고맙습니다. 그대들과 앞으로도 시와 동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때때로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싶습니다.재미있는 이야기라면서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랑하는 딸과 아들, 그리고 같이 이야기 나눠주면서 격려해주던 남편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지면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1967년 임실 출생, 전주교대를 졸업,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중. 전주 서신초교 교사.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미역할매의 노래 - 조숙

미역에서 풀내가 난다. 미역도 등줄기 꼿꼿한 한그루의 바다나무다. 줄기, 잎사귀, 뿌리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척박한 바윗덩어리에 뿌리박고 포자로 번식하여 일가를 이루는 것이 나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년 전에 동남아의 어느 바다에서 스킨스쿠버로 물속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소음 한 조각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바다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미역 숲이 마치 육지의 밀림과도 같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역을 식용으로 하지 않는 나라이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처녀 숲인 셈이다. 물속에서 천천히 헤엄치며 미역이 물결 따라 일제히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꿈꾸듯 바라보았다.재래시장에 나갔다가 참기름 바른 듯 반질거리는 미역을 사왔다. 철지난 미역이라 날것으로 먹기에는 좀 억세다 싶은데 '돌바리 미역'이란 말이 돌리려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스티로폼에 포장되어 있는 미역은 제대로 숨 한번 쉴 수 없을 것 같이 답답하게 보이지만 재래시장 좌판에 널린 미역은 치맛자락을 제 모양대로 펼친 듯 수더분해 보인다. 본디 미역이 세련된 것과는 좀 거리가 먼 탓에 산뜻하게 포장되어 조명 받는 일은 저도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한꺼번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남은 것을 빨랫줄에 '척' 걸쳐두었다. 도망치려다가 옷자락이 걸린 도둑처럼 미역이 엉거주춤 걸려 있다. 열어 놓은 창으로 미역냄새가 솔솔 들어온다. 짭조름한 미역냄새와 갯냄새가 곧 고향냄새다. 미역냄새가 열어 놓은 길을 따라 녹슨 기억의 빗장이 '삐그덕 ~ 끽 ~' 열리고 거기 고향의 앞바다가 푸르게 펼쳐진다.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에는 바위에 붙어 있던 미역들이 떨어져 파도 따라 헤엄을 친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긴 장화를 신고 장대에 솔가지를 매단 '미역장대'를 들고 바다로 나가신다. 할머니는 '미역낭구' 잡으러간다고 말한다. 바다 가장자리까지 밀려온 것은 쉽게 건져내지만 곧 잡힐 것 같으면서 잡히지 않는 미역은 그것이 유난히 큰 것 같이 보여 더 애를 태운다. 처음 옷이 조금씩 젖을 때는 몸을 사리다가도 밀려오는 미역에만 신경 쓰다보면 옷 젖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어느 사이 허리춤까지 물속에 담근 채 장대 끝에만 온 힘을 기울인다.부지런한 우리 할머니에게 질세라 '애자네 아지매'도 나오고, 혼자 사는 '미구할매'도 나온다. 파도는 성난 듯이 밀려와서 물고 온 미역과 해초들을 뱉어놓고 간다. 파도가 물거품을 물고 밀려나면 한 걸음 물러났던 할매들은 미역장대로 소용돌이치는 파도 속을 헤집는다. 그런 와중에도 할매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아침은 무간나 ?" "허리 아픈 건 좀 어떠나?" 파도소리가 반쯤 잘라먹어 버렸어도 용케 알아듣고 대꾸한다. "인자 그만- 타~"바다사람들의 언어는 단음절이다. 미역이 가미되는 무엇이 없이 혀에 감기는 떫은맛처럼 바다사람들의 관계도 양념치지 않은 원래 맛이다. 은근슬쩍 끼워 넣는 멋이나 혀에 붙는 달짝지근한 맛이라고 애저녁에 없는 무뚝뚝 투박하다. 언어가 생각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바다사람들은 언어는 각설하고 직유다. 그들의 언어는 질박한 삶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다사람들의 삶은 존재의 원형에 가까운지도 모른다.성글게 짠 망태기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미역을 머리에 이고 장대를 짚으며 돌아온다. 할머니는 마당 한쪽에 미역망태기를 던져 놓고 찬물에 후딱 밥 한 그릇을 비운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면 넓게 편 가마니에 미역을 붙인다. 할머니가 미역 붙이는 모습은 마치 새 각시에게 옷을 입히는 것처럼 정성스럽다. 미역 줄기를 중심으로 잡고 잎을 펴서 직사각형 틀 모양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안을 채워 넣는 것이다. 잘 붙인 미역은 등줄기가 사람의 그것처럼 올 곧고 부챗살처럼 잎사귀가 잘 뻗어 있는 것이다.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한 줄 한 줄 미역을 붙이노라면 어느새 마당이 검은 천을 깔아놓은 듯 가득하다.다닥다닥 붙여놓았던 미역들은 햇볕에 오그라지면서 자연스럽게 간격이 벌어지고 그 일정하게 벌어진 골 사이를 철없는 나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폴짝거리면 뛰어다녔다. 이리저리 뛰어넘다가 발을 잘못 디뎌 '미끄덩!' 미역위에 미끄럼 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선머슴'같다는 할머니의 타박을 듣지만 그 재미 난 일을 쉽게 관두지 않았다. 말라 들어가는 미역을 먼눈으로 보던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많은 징검다리를 건너왔을까? 아기자기 얹어 놓을 고명딸도 하나 없이 아들만 삼형제였던 자식들 중에 두 아들을 한해간격으로 하나씩 먼저 보내고 미역처럼 가슴이 오그라붙던 날도 할머니는 저렇게 뒤 돌아 앉아 남의 집 미역을 품앗이 붙였다.읍내에서 이름 첫 글자만 대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드센 며느리의 비수 같은 폭언도 할머니는 저 오두마한 등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먹은 것이 소화가 되지 않는 다고 병속에 든 알싸한 맛의 소화제를 한 박스 사서 들어오다가 '남편 잡아먹고. 아들 둘 잡아먹고 또 누구 잡아먹으려고 소화제는 사다 나르느냐'고 악쓰며 던진 소화제 병이 마당에서 산산조각이 나던 날도 할머니는 묵묵히 말라 들어가는 미역 건사만 했다.부서진 병조각이 햇살에 더 반짝이듯이 타인에게 감추고 싶은 것일수록 자신에게는 더 명료해지는 것이 곧 형벌이다. 미역이 뻣뻣하게 건조되어 물컹한 속성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할머니의 팍팍한 표현속에는 감추고 싶은 원죄인 듯 남편과 두 아들을 앞세운 곡진한 아픔이 말라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반질거리며 윤기 나던 미역은 해질녘엔 벌써 꼿꼿하게 줄맞춰 횡대로 늘어선다. 바삭거리는 미역을 할머니는 조심조심 마루에 쌓아 놓고서야 허리를 편다. 마루에 쌓여 가는 미역 단의 높이 따라 뿌듯해지는 할머니 마음! 늘 술에 절어 있던 용이 아버지가 그 퀭한 눈을 반짝이는 날은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다. 아침 일찍 용이 아버지의 리어카가 마당에 와서 마루에 쌓여 있던 말린 미역을 실어낸다. 미역이 실려 나가고 부스러기만 휑하니 남은 마루는 쓸쓸하고 고즈넉하다. 미역이 쌓여있던 빈 마루를 한번 뒤돌아보고 대문을 나서는 할머니 등도 서운하다.빨랫줄에 걸쳐놓은 미역이 모양새 없이 말라 들어간다. 내 할머니의 얼굴처럼, 빈 젖처럼 주글주글 볼품없이 익어간다. 대쪽같이 굳은 절개도 없으면서 살짝 손만 대면 '와삭' 부러질 것 같이 곁을 내주지 않는다. 종잇장보다 얇은 미역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무게가 미역귀이다. 소용돌이치는 파도를 가둬놓은 귀인가? 바다를 향해 귀를 열어놓은 듯 귓바퀴모양 같다. 미역귀에 붙은 끈끈한 점액이 아직 바다냄새를 피워내고 있다.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거친 시간들이 거기 건조되어있다. 유영하는 물고기와 함께 했던 기꺼운 기억들도 박제되어있다. 웅얼웅얼 알아듣기 힘든 할머니의 넋두리 같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할머니가 파란곡절(波瀾曲折)을 뿌리고 추수한 '미역낭구'는 해산의 고통을 속을 헤쳐 나온 여인의 부름에 제 몸을 부풀려 녹놀해 질 것이다.미역국을 끓여야겠다. 다시 바다가 출렁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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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시적 산문 넘어 산문시를 읽는 듯

「미역 할메의 노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예심을 거친 몇 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혼잣말처럼 '좋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무엇인가 꺼림칙했는데 이 작품에 이르러 그런 안개가 말끔히 걷혔다. 선정에 심사위원 사이에 전혀 이견이 없었다.이 작품은 "언어가 생각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바닷사람들은 언어는 각설하고 직서이다. 그들의 언어는 질박한 삶이 담겨있을 뿐이다."라고 서민간의 관계나 언어를 증언하면서도 그 바닷사람인 '할메'의 삶의 이야기를 '노래'라 이른다. 이 작품은 그 장르가 수필이라는 산문인데도 우리는 시적 산문을 넘어 산문시를 읽는 듯 착각한다.그만큼 그 언어가 시적언어인 양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다. '아침은 무간나?' '허리 아픈 건 좀 어떠나?'에서 '인자 그만- 타~'에 이르는 짤막한 문장에도 가난한 할머니들의 굶주림과 아픔과, 연민과 위로의 동병상련이 짙게 배어 의미의 집합을 이루고, 그 사이 파도소리는 안부의 말과 함께 시간의 흐름조차도 '반쯤 잘라먹어 버리는' 것이다.이 작품의 구성도 굳이 들추자면 시인 듯 4단의 연쇄 고리로 이어졌다. '꿈 같은 동남아 미역 처녀숲→수더분한 우리네 미역→미역처럼 가슴이 오그라붙은 할머니의 삶→미역국과 출렁이는 바다'가 시치미를 떼면서 접합된다. 그래서 미역의 사연은 할머니의 사연이 되고 수필은 노래가 된다.새삼 인터넷 시대를 실감했다. 예심에서 추리고 추려 기껏 10여 편이 본심에 올랐는데도 경향 각지의 작품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제 '신춘문예'에서는 지방지도 중앙지와 어깨를 겨루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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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참신한 묘사적 표현, 시에 생기 불어 넣어

좋은 시는 남들과 다른 언어를 건지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그렇게 태어난 시는 이기적이면서 품이 넓다. 그런데 비유가 생경한 시, 비문이 노출된 시, 인위적으로 제작하는 데 급급한 시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조바심을 내는 듯했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시들이 그만큼 아쉬웠다는 말이다.네 분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정지웅 씨의 '매미'는 매미 울음이 공중에 구멍을 뚫는다는 재치 있는 발상의 시다. 발상이 그저 발상으로 끝난 아쉬움이 크다. 소재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명옥 씨의 '사과 연대기'는 어투가 매우 발랄하고 상상의 진폭이 크다. 시에서 감각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다. 하지만 시를 만지는 손끝이 너무 쉽게 드러나 보이는 게 흠이다. 최병국 씨의 '구름을 걷는 달팽이' 외 몇 편은 상당히 현란한 상상력과 언어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 의미의 연결이 불투명한 약점을 시급히 보완하면 좋겠다.그리하여 우리는 장정희 씨의 '오래된 골목'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언뜻 보면 평이해 보이지만 자신의 사유를 잘 간추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시다. 군데군데 참신한 묘사적 표현이 시에 생기를 더하면서 '오래된 골목'의 전경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란다.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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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사막 아래 흐르는 물길 기억하는 '낙타' 처럼"

먼지 풀썩풀썩 날리는 사막을 걷는 한 마리 낙타가 있었습니다.가라! 는 한마디 숙명만 업고 가는 낙타. 때론 등에 지워진 중압감에 무릎을 꺾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긴 속눈썹을 파고 드는 모래바람에 방향을 잃고 헤매일 때도 있었습니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래언덕이 너무 아득해서 시간시간 조차 가늠할 수 없을 때 오직 지금만을 걷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는 제 몸에 세포가 기억하는 느낌이 나침반이 되어 스스로 방향을 찾아갔습니다.물 없이도 사막을 건널 수 있는 것은 본디 갈증을 이겨 내도록 진화 된 것이 아니라 다만 결핍을 견뎌 낼 뿐입니다. 내 등에 물이 있다는 기억이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길 없는 길을 걷는 낙타처럼 쓸쓸한 일이었습니다. 낙타는 사막아래 흐르는 물길을 기억하고 걷는다지요. 낙타처럼 걷겠습니다. 한걸음씩 비록 느릴지라도.당선 소식을 받은 날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언어를 바르게 배열하는 일보다 더 힘든 건 잘 솎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어느 것이 잡초인줄 몰라 '죽' 뜯어내고 나면 뿌리 채 뽑혀 나동그라진 나의 언어들이 추울까 걱정입니다. 피붙이처럼 아까운 떨어져 나간 내 언어들에게 새끼 손가락 약속을 건넵니다. 다시 만날거라고, 다시 만나 일가를 이루는 날이 올 것이라고 수필은 제 상처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일이라서 늘 부끄럽습니다. 상처는 겨우 겉만 딱딱하게 굳어 있을 뿐 속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습니다.부디 읽으시고 '그런데 어쩌라고'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격려해주는 손들이 많습니다. '보리수필'의 문우들, '문학이 있는 목요일'의 회원들, 경직된 어깨에 힘빼라고 알려주던 그. 무덤덤한 것이 情인 남편, 나를 어머니라는 빛나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두 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 없어서 서성거리는 수필가들에게 선뜻 의자하나 내어주신 전북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1962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문우회 '보리수필'과 '문학이 있는 목요일'를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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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시는 아름다운 구속,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를 쓰겠다고 대들었던 날부터 혼자 놀기에 익숙해져 갔다. 콩깍지 낀 눈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걷기를 자청했던 유명 시인들의 시집이 때론 오래된 친구처럼 편해져 가던 어느 날, 갑자기 시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에게 무엇일까? 하나씩 더 알아 갈수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도망치고 싶어 뒤돌아 보았을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용감하게 연필을 놓을 자신이 없어 매달렸다.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 주저앉고 싶을 때 항상 나를 응원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넘어지려 할 때 말없이 손 잡아준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십년을 함께 해온 '샘시문학회'의 이병관 선생님과 문우들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마산대학 시창작반 문우들과 함께 공부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마산대학 시창작반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에게 시심의 뿌리를 준 이영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자신의 언어나 머리를 믿지 말고 더 좋은 언어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라, 사소한 것도 깊게 보라며 다른 사람보다 한 발 더 진보한 시 쓰기를 가르쳐 주신 김륭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 올린다.시로 인해서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일이 열거 하지 못함이 아쉽다. 시의 바탕이 되어준 부모님, 아주 특별한 내 동생들 고맙다. 항상 엄마의 자리를 빛내주었던 아들, 딸 사랑한다. 이 자리 오기까지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부족한 글 뽑아주신 황동규 선생님, 안도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나에게 "시란 아름다운 구속 이었다."고 외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와 아름다운 사이로 나란히 걷기위해 나는 다시 연필을 깎는다.1965년 대구 출생, 마산대학 시창작반과 김해문협, 샘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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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불안한 내용, 낭만적인 이미지로 결집

심사를 마치고, "소설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그 자신의 규범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바흐친의 주장을 상기해본다. 소설에는 어떤 확립된 틀도 없으려니와 그래서 소설은 늘 변전하는 양식이라는 뜻이리라. 우리의 현실이 변화 중에 있으니 거기에서 이야기를 취하는 소설도 변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예선을 거쳐 올라온 8편은 청년 실업, 가족 공동체 붕괴, 성 정체성 혼란, 고용 불안, 계층 갈등, 몰가치적 세태, 부박한 연애, 사기와 횡령 등 모두가 부정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각기 그 소재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불안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불안의 시대가 소설을 '불안소설'로 변전시키는가?다소 불안한 심기를 다스리면서 다음 다섯 편을 골랐다. 「곤충채집」(한상도)의 경우 룸쌀롱 접대원의 변신과정과 곤충표본 작업을 대비하여 몰가치한 세태를 비꼰 점은 그런대로 설득력을 지녔으나, 인물의 성격화에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결말처리도 좀 상투적이다.「노블 클럽」(이은미)과 「숨」(지형서)은 공히 직업적 일상과 배우자와의 심리적 갈등관계를 대비하는 구조로 짜여졌다. 안정된 문장력이 심리 묘사를 받치고 있고 가족공동체 붕괴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소품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그곳에」(차미숙)의 경우, 청년실업이라는 묵직한 내용을 밝은 문체로 이끌어가는, 또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청년들의 심리 상태를 부박한 연애라는 가벼운 호흡으로 처리하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에서의 반전이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앞의 사건들과 긴밀한 관련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인어공주」(강필선)는 앞의 네 작품이 다루고 있는 부정적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거기에 성정체성 혼란과 고용주의 횡포 문제도 건드리고 있어서 '불안'의 백화점이라 할만하다. 이 작품의 장점은 그런 불안한 부정적 내용들을 '인어공주'라는 낭만적 이미지로 결집해내는 아이러니 효과가 돋보인 점에 있다. 게다가 주인공의 죽음은 그런 효과를 다시금 아이러니컬하게 함으로써 결말에 이르러 중층의 의미를 획득한다. 이 작품 역시 단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불안 내용들을 하나로 꿰어가는 구성 과정이 조금은 불안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다소 불안한 구성'이 다양한 불안한 내용을 낭만적 이미지로 결집해내는 역할을 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을 축하하고 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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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소설은 '저의 것'을 배설하는 수단"

당선 통보를 받았던 순간, 매섭기만 하던 겨울 바람이 저를 공중에 띄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육체를 휘감았을 때, 저는 잠시동안 처음 경험한 어색함을 벗어나려는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 바람이 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저는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했습니다. 창작은 제 삶의 일부로서 항상 저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것은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저를 몸서리치도록 외롭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창작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뇌의 시간을 극복하고 이뤄 낸 한 편의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쓴 뒤의 카타르시스는 오래 묵은 것을 시원하게 배설하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소설은 '저의 것'을 배설하는 수단입니다. 배설하지 못하는 인간은 죽습니다. 저는 소설이 있기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제가 어떤 자리에 있든 간에 창작은 멈출 수 없는 행위입니다. 매일 화장실을 가듯, 저의 창작은 지속될 것입니다.제 소설을, '저의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저는 이 기쁨을 저의 연인이자 스승인 청명이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제게 소설쓰기의 길을 안내해 주고 쉽지 않은 길을 같이 걸어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청명이에게는 '고맙다.' 보다는 '축하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녀가 가진 사랑과 믿음은 축하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평소 표현이 서툴러 부모님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해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멀찍이서 마음으로 후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두 분의 사랑은 항상 제 마음 한 켠에서 난로 같은 존재였습니다. 힘들 때마다 응원과 격려를 보태준 누나들과 조카들이 있었기에 삶의 태도가 긍정적일 수 있었습니다. 넓은 가슴으로 제 소설을 읽어주신 이승우 선생님. 예리한 지적 속에 울고 웃으면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속에서 희망을 찾아주신 한승원 선생님, 문학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신 나희덕 선생님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인내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신 김형중 선생님, 전성태 선생님 모두 감사드립니다.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유아입니다. 앞으로 걷고 달려서 선생님들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문인이 되겠습니다.1985년 전남 나주 출생으로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에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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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인어공주 - 강필선

동해안서 인어 발견인터넷에 동해안에서 인어가 발견 됐다는 기사와 사진이 공개 되었고, 이것은 실시간 검색순위 일위에 올라 있었다. 인어는 해운대 앞바다 1㎞ 떨어진 지점에서 출몰하였다고 전했다. 흐릿하게 찍힌 사진에는 분명 반인반어의 형체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 사진의 출처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네티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댓글을 달아 내려갔다.'사진 합성이다.' '빛이나 그림자 효과일 뿐이다.' '세상이 망하려는 징조다.' '병신.' '환경오염 때문에 돌연변이가 나왔을 것이다.' '인어고기는 어떤 맛일까?' '미친년이 수영하는 거다.' '고질라나 괴물도 만들어 지는 세상에 인어는 시작에 불과하다.' '어떤 사기꾼 짓이냐? 관심 받고 싶어서 별 짓을 다한다.' 등의 비슷한 내용들이 빠르게 업데이트 되고 있었다. 나는 네티즌들의 댓글 중 어느 하나에도 공감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진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다만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단지, '인어'라는 것이 내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여자아이는 엄마를 잡아끌었다. 신기하다는 듯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흘러내린다는 것을 모르는 듯 했다.나는 푸른색 형광등 빛 아래에 앉아 있었다. 색 바랜 불가사리 스티커는 이제 다 떨어지고 몇 개만 듬성듬성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나는 사장에게 자리를 바꿔주거나 꾸며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 될 일이었다. 사정은 상어나 조개, 게나 고래, 그 밖에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달 전부터는 수족관이 문을 닫는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었다. 사장이 다른 곳에서 사업을 망쳐 수족관이 넘어갔다는 것이 소문의 이유였다. 실제로 아침 저녁으로 수족관을 둘러보던 사장의 얼굴을 본지도 한참은 된 것 같았다."엄마, 인어공주야."예전 같았으면 이런 손님은 전혀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는 것은 내게 더욱더 친절한 미소와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니까. 여자아이가 가리키는 인어공주는 비닐로 된 분홍색 꼬리를 입고 있었다. 꼬리보다 진한 분홍색의 긴 가발을 쓰고, 살구색 쫄티에 조개껍질 브라를 가슴에 걸치고 있었다. 진주 목걸이 같은 장신구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이가 말한 '공주'와 나를 일치해서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만약 내 모습이 공주와 같다면 동화속의 여러 주인공은 실망할 게 분명했다. 같은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하루에 열 시간을 식사시간도 없이 앉은 자세를 유지했다. 물고기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쪽은 수월해 보였다. 통풍이 되지 않는 비닐속의 두 다리는 경직되었고, 허벅지 안쪽에는 오돌토돌한 수포가 생겼다 터졌다를 반복했다. 수포는 마치 선물상자에나 들어 있을 것 같은 이 같았지만, 이것이 터지는 순간은 기쁘지 않았다. 같은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은 허리의 힘을 동반했다. 일이 끝난 직후에는 허리를 굽히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몸이 어느 정도 풀어진 뒤에야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이것도 요즘 들어 증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피부의 증상 같지가 않았다. 직업병의 일종이랄까. 로션이나 연고를 발라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근육이나 신경, 혹은 뼈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했다. 또한 이것은 내가 일을 하지 않을 때 발생했다. 걷거나, 변기에 앉거나, 책을 보거나, 밥을 먹을 때도 같은 통증은 하체를 누르고 있었다.내가 인어 역을 맡게 된 것은 만원 때문이었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나는 일 년 정도 취업준비 기간을 가졌었다. 대기업을 바랐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중소기업만 되도 취업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당시의 내 경제 형편이 오랫동안 준비기간을 가지기에는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취업은 내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다. 괜찮은 기업은 이력서만 보고 내 능력을 판단하고 거부했다. 중소기업은 대부분 공장 쪽이었는데, 업무가 힘들 거라며 여자인 나를 받아 주지 않았다. 생활비에 쪼들리기 시작한 나는 아르바이트라도 구해 볼 요량으로 신문을 뒤졌다.행사 도우미 급구(초보자 환영)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능○○수족관 연락처 010-○○○○-○○○○내가 인어가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하루에 한 끼만을 먹고 살았으니까.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위기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선택한 것이 인어가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게 밥 때문에 性을 바꾸는 것과 같았다. 생계를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이곳은 내가 처음으로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써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사장은 수족관에서 인어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라며 한 달 이상 일하게 될 경우 일당을 만원 올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 금액은 수족관 직원들과 비슷한 금액으로 아르바이트로서는 적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망설이지 않고 수족관에서 인어가 되기로 했다. 나중에 다른 직원들을 통해 알게 된 정보지만, 대부분의 인어 역을 맡은 여자들은 하루나 이틀, 오래면 일주일 안에 그만둔다고 했다. 그 이유는 내가 인어가 되면서부터 몸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다리는 비닐꼬리 속에서 하나로 붙여지는 듯한 통증을 삼년 째 느끼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며 내 옆에 섰다.여름에 인어가 되는 일은 더욱 곤혹스러웠다. 나는 사장에게 통풍이 잘되는 꼬리를 주문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조금만 기다려, 라는 말은 사장이 직원들에게 하는 입버릇이었다. 그리고 입버릇의 결과가 늘 그랬듯이 사장은 내가 요구하는 꼬리를 주지 않았다. 나는 그 해 여름부터 내 꼬리를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하루의 조금이라는 시간과 한 달의 조금이라는 돈을 투자했다. 시작할 때는 비닐보다는 좋은 것을 입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래도 하루의 절반가량을 입고 지내는 옷이었으니까.나는 조금씩 만들어 가는 꼬리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안에 만들어 입어보겠다는 계획은 벌써 이년 넘게 어긋나고 있었다. 다섯 가지 색의 가죽을 덧 붙였고, 단순한 비닐의 무늬를 그린 것이 아니라, 진짜 물고기 비닐처럼 하나씩 모양을 만들어 붙였다. 그 비닐 조각 하나하나 마다 투명 매니큐어를 칠해 윤기가 흐르도록 만들었다. 이제 남은 작업은 반짝이는 큐빅을 꼬리의 윤곽선을 따라 다는 작업뿐이었다. 내 꼬리는 어느 인어의 것보다 화려해야 되는 것 같았다. 꼬리를 만드는 동안 나는 편안했다. 마치 어떤 수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인어로써의 업무가 끝나면 나는 짧은 머리가 된다. 옆머리는 귀를 절반 이상 덮지 않았고, 앞머리는 눈동자 위에서 하늘거렸다. 언뜻 보면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남성 아이돌 스타의 헤어스타일 같기도 하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본 젝스키스나 HOT의 스타일이 떠올랐다.나는 한 번도 머리를 길게 기른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 준비를 해야만 했다. 머리 모양뿐 아니라, 남성용 트렁크 팬티와 바지를 고집하고 브라를 착용하지 않는 습관이 나를 왕따로 만들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스포츠 브라를 착용했다. 내게 가슴이 작다는 것은, 콤플렉스가 아니라 다행스런 일이었다. 브라를 안 입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나는 겨드랑이나 다리에 제모도 하지 않았다. 머슴아, 남자새끼, 젠더, 변태 등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달기 시작한 별명이었다.그러니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머슴아나 변태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이미 두 아이를 낙태시켰었다. 차가운 쇠꼬챙이가 어머니의 자궁을 난자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어머니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라도 내 배속을 도륙하지는 못할 테니까. 어머니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아들을 바라는 것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은 할머니의 유언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였다. 아버지는 딸들까지 교육 시킬 형편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집이 공부를 못 시킬 정도로 가난한 건 아니었다. 내가 아버지의 사고방식을 납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죽은 언니들은 신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다만 나는 그 살육의 장에서 변태로 태어난 것이다. 여기서 나를 지켜준 것은 자궁 속에서 양수를 나눠먹은 오빠의 존재였다.목사는 아버지의 친구였다. 그를 어디서 어떻게 사귀게 된 것인지 듣지는 못했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우리 집을 찾아준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목사는 전도를 시도했고, 아버지는 용서받을 방법이 없을 때나 한 번 들리겠다고 답했다. 아버지의 대답은 늘 같았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어머니가 오빠와 나를 임신한 후부터 목사는 매주 수요일에 우리 집을 찾았다. 목사는 기도했다. 아버지는 오빠가 건강하게 나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했지만, 목사는 두 아이의 생명을 축복하며 기도했다. 나는 나를 기도해주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적어도 오빠는 온전하게 육신을 유지하고 자궁을 빠져 나갔다. 갈기갈기 찢겨진, 토막 난 조그만 언니들과는 다른 배출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역시 남자의 탄생은 뭔가 달라도 다른 거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웃을 수 없었다. 수술실 안의 누구도 웃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내게 어서 나오라고 재촉하며 힘을 주고 있었다.오빠는 남자라서 그런지 울지 않았다. 나보다 작고 말라 보였다. 나란히 누운 내 모습이 부담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오빠는 수척했지만, 나는 3.9킬로그램이라는 우량아가 되어 있었다. 의사는 이미 배 속에서부터 오빠는 죽어 있었다고 했다. 누구도 오빠를 살리려는 처치를 하지 않았다. 소란스럽던 수술실에는 내 울음소리만 퍼지고 있었다. 텅 빈 어머니의 가랑이 아래에 서있는 아버지는 나와 오빠를 번갈아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어머니는 내게 그리스신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나는 그 중 제우스가 제일 좋았다. 번개를 휘두르며 세계를 지배하는 신중의 신.아버지는 내게 피아노와 미술 대신, 태권도를 배우게 했다. 항상 바지를 입었고, 머리는 스포츠형을 유지했다. 열 살 때까지는 항상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내게 자신의 등을 맡겼다. 아버지 앞에서는 투정부리거나 울어서는 안됐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내가 오빠의 피를 빨아먹고 태어난 놈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을 때마다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 다만 소리가 나는 입을 보았고, 붉고 길게 말려진 혀와 깊은 동굴을 보았다. 실제로 아버지는 내가 오빠를 굶어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죽은 언니들의 원혼 탓이라는 뒷집 할머니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혼나는 나를 볼 때마다, 자신의 업보 때문이라며 자책했다.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제우스와 형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호메로스 자신조차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제우스가 형제 중에 몇 번째 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고, 호메로스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서로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첫 번째로 포세이돈이 첫째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원천적으로 포세이돈이 가장 먼저 태어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제우스가 첫째라는 것인데, 이는 나중에 태어난 제우스만이 아버지인 크로노스에게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다른 형제들은 탄생과 동시에 아버지인 크로노스의 배 속으로 들어갔지만 제우스는 먹히지 않고 계속 자라서 형제들을 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제우스가 신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뒷받침되었다. 나는 집안의 첫째이자, 외동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 형제들의 존재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 속에서 죽은 형제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네 번째니까. 특히, 아버지는 내 생일이면 술에 취해 오빠만을 찾았었다. 나는 첫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를 두고 족보상의 혼란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호메로스라도 되는 것처럼, 나의 위치를 어디에 둘지 몰랐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아버지의 교육방식에 순응하기로 했다. 남자가 되기로 했다. 아니 최대한 남자로 살아보기로 했다. 가장 강한 신인 제우스와 닮아지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김 씨는 밤 열두시가 되면 내게 문자를 보냈다.'잘자요~ 인어공주!!!'요즘은 김 씨의 문자를 통해 잘 시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문자가 온 것으로 미루어, 지금 시간은 열두시가 맞을 것이다. 꼬리에 큐빅을 다는 일은 앞의 어떤 작업보다도 신중해야 했다. 가장 외곽에 드러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비닐처럼 끝 부분이 가려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발광효과를 최대화 하면서, 지저분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큐빅들 사이의 간격이 중요했다. 나는 이 간격을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큐빅 하나를 달 수 있었다.김 씨도 처음엔 내가 남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곱상하게 생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놈이 수족관에 들어왔다면서, 사장이 급하니까 인어로 남자를 다 쓴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는 수족관에서 가장 오래 일한 직원이라고 했고, 상어 역을 맡고 있었다. 상어의 쩍 벌린 입에 머리를 넣고 밖을 보았고 등에는 은빛 지느러미를 달고 있었다. 그는 수족관의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사진을 찍었다.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김 씨가 내 주위에 오는 횟수는 잦아졌다. 그는 업무시간에는 활발하게 수족관을 누볐지만, 가면을 벗으면 과묵하고 어깨에 힘이 없는 중년의 사내일 뿐이었다.그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같이 살자고 말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는 마흔의 이혼남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김 씨는 단지 내가 짧은 머리를 고수하는 것이 다듬기 귀찮기 때문으로 알고 있었다. 힘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강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일종의 자격지심이라 여겼고, 친구가 없는 것이 수줍음을 모르고, 과장되게 털털한 척 하는 성격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로, 내게 심적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김 씨는 나를 몰랐다. 한 달 전 김 씨는 내게 반지를 하나 주었다. 결혼하자고 말했다. 나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김 씨의 생각 중 맞는 것이 있다면,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나를 보았을 때 느꼈던 것처럼, 나는 인어 분장을 한 남자였을 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의 애인이나 아내가 될 자신이 없었다. 그가 나를 진정으로 아끼는 것인지,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모든 것은 내가 완전한 여자였을 때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되면 나는 김 씨를 남자로, 나를 여자로 어떻게 견주어야 할지 따져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내가 아버지를 찾게끔 동기 부여를 한 사람이 김 씨다. 물론 그는 내 아버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다만 어렸을 때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내게 다가왔고, 내게 청혼한 것이 내가 아버지를 찾는 이유가 된 셈이었다.아버지는 알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자라도록 만들어 준 사람이었으니까. 내게 남겨진 유일한 혈육이기도 하니까.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부산 어딘가에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 정보는 우연히 내게 다가왔다. 마치 내가 알아야 되는 것처럼, 운명적이면서 갑작스럽게 다가왔다.교회에서 단체로 수족관 관람을 나온 모양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이 내게 뛰어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내 손을 꼭 잡은 목사는 우선 기도부터 했고, 내게 주님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나를 먼저 알아본 그는 오른쪽에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가 말하기 전까지 누군지 알지 못했고, 인어 복을 입고 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가끔 말을 걸거나 엉덩이를 만져보는 남자들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르르 떨며 혐오스러운 기분을 느껴야했다. 목사는 다짜고짜 내게 기도부터 했다. 그리고 나는 목사의 목소리를 통해서 그를 기억 속에서 찾아냈다. 그는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십여 년을 나를 기도해준 아버지의 친구였다. 그의 정체를 알아채고서야 나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꼬리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김 씨가 급하게 쫓아오다가 내가 인사하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는 것이 보였다. 분장을 하고 있는 나를 단번에 알아챈 목사가 신기했다. 보통사람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섬뜩하기도 했었다.목사는 아버지의 행방을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목사는 아버지가 부산에서 교회를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이라고 말했고, 나는 네, 라고 답했다. 나는 목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목사도 기도가 끝나자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말을 남기고 발을 돌렸다. 목사는 일행에게 섞이면서도 내내 내 쪽을 돌아보았다.나는 벌써 한 달 가까이 쉬는 날이면 부산을 찾았다. 아버지가 교회를 다닌다는 정보는 놀라웠다.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었다. 어머니가 죽고 얼마 안 되서 떠난 아버지가 교회를 다닌다니. 그렇다면 아버지는 오래전 말하던 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일까? 아버지는 무슨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가득 찼다.먼저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부산의 교회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이름을 대 보았지만, 같은 이름의 사내들은 모두가 아버지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부산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부산을 찾았다. 교회를 찾았고, 아버지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남자를 수소문 했다.새벽에 내 잠을 깨운 것은 엉덩이를 적시는 축축함이었다. 팬티가 찝찝하게 엉덩이에 붙어 있었다. 어떤 사전 징후도 없었기에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예정보다 일주일이나 빠르게 시작 된 생리는 무방비 상태의 나를 덮쳤고, 내 속옷과 침대는 붉은 얼룩을 남겼다. 나는 아직 해가 뜨기도 전에 피비린내의 흔적을 가진 시트와 속옷을 모아 욕조에 담아두는 일을 치러야 했다. 뜨거운 물이 핏자국 위에 쏟아지고, 욕실은 금세 수증기로 가득 찼다.나는 다시 잠들지 않았고, 외출 준비를 했다. 부산에 간다는 것은 서울에서는 제법 먼 길이었기 때문에 서두를수록 좋았다.내가 첫 생리를 한 것은 중학교의 첫 중간고사를 치르던 봄이었다. 어머니는 자궁암으로 이년 넘게 병원에 계시다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룬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침부터 배가 아팠지만 나는 무시했었고, 결국 일이 난 것이었다. 누구도 내게 배란이나 월경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생리대가 뭔지도 몰랐다. 화장실에서 피를 본 나는 내가 엄마처럼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죽음이야 오랫동안 준비했기 때문에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내 경우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시험시간을 놓치고, 나는 아버지가 보이지 말라던 눈물을 변기위에 앉아 서럽게도 흘렸다.담임선생님이 여자였던 것은 다행이었다. 선생님은 시험에 늦은 나를 찾아 화장실에 왔고, 내게 생리대 착용법을 알려주며 축하해, 라고 말했다. 나는 선생님이 무엇을 축하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남성용 트렁크에 생리대를 붙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팬티를 돌돌 말아 거의 삼각형의 모양을 만들어야 했다. 움직일 때마다 엉덩이에 붙여둔 것이 떨어지지나 않을 지 걱정됐다. 우선 빨리 집에 돌아가야 했다.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내가 흘린 피는 여자로서의 탄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됐다. 분명한 것은 좋아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빠 피를 빨아먹고 태어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오늘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오빠 피를 빨아 먹고 태어난 년이 되어야 맞을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들을 소리와 엉덩이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집에 가는 길을 멀게만 느끼게 했었다.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엉덩이에는 땀이 난 것 같았다. 가랑이 사이가 쓸린 것처럼 따끔거렸다. 나는 우선 아버지가 오기 전에 샤워를 했다. 그렇다고 숨길 수는 없을 것이었다. 선생님 말에 의하면 며칠은 이런 증상을 보일 것이고, 한 달에 한번 씩 찾아올 테니까. 나는 뭐 이런 게 다 있냐, 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다리를 벌리고 피를 씻어냈다.그날 이후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목사 친구가 몇 번 와서 밥을 사주고 갈 뿐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떠난 이유를 생각했고, 내가 여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아버지는 내가 남자이길 바랐으니까. 여자가 된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남자가 되고자 했던 것은 어찌 됐든 내 의지였다. 아버지가 없었지만 나는 여자로 살 수 없었다. 여자는 평생을 외로워야 할 것 같았다. 변기에 혼자 앉아 피를 흘리는 존재처럼. 의지로 안 되는 생리적인 것을 빼고서 나는 최대한 남자로 살았다. 태어나면서 나는 머슴아였고, 변태였으니까. 그러나 한 달에 일주일 정도 여자가 되는 일은 내 머리를 망치로 치는 듯한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었다.엉덩이에 기저귀 같은 것을 붙이고 집을 나섰지만, 어느 때보다 자신이 없었다. 단순한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서 여자 냄새를 맡을 것 같았고, 여자인 내가 싫어 더 멀리 달아날 것 같았다. 엉덩이에서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고, 내 가랑이 사이는 땀이 나고 있었다.부산에 도착하자 김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딜 갔냐고 물었지만, 나는 바람 쐬러 나왔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그가 초조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청혼 이후 내가 아무 대답도 없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김 씨의 목소리는 조금씩 무언가에 쫓기거나, 압박을 느끼는 것처럼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집요하게 물어왔다. 그는 불안해했다. 나는 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최대한 그의 마음이 상처 받지 않도록 다정하게 말해 주었다.김 씨는 내게 사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거칠게 말했다. 욕설을 섞어가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사장이 계속해서 월급을 미루는 것에 화가 난 상태였다. 간신히 연락이 닿았지만 곧 주겠다고 말한 후 끊어버렸다고 했다. 실제로 내 월급도 두 달 동안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김 씨나 나나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얼굴 본지도 한참이나 됐으니까. 나는 김 씨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다른 느낌을 눈치 챌 수 있었지만, 사장과 비슷하게 곧 들어오겠죠, 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늦은 오후가 됐지만, 교회에서 아버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직 안 가본 교회가 많고, 부산이 넓다는 것은 내게 희망적이었다. 만나게 된다고 무슨 대책이나, 할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만나야 될 사람 같았다. 나는 서울에 올라가기 전 해운대를 찾았다.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붐비지는 않았다. 봄이지만, 제법 쌀쌀했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는 게 전부였다.나는 백사장에 서서 멀리 보았다. 혹시 인어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어가 출몰했다는 일 킬로미터 지점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먼 바다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바다는 서서히 금빛 노을을 덮고 있었다. 바다가 이불을 덮고 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 불이 꺼지고 바다는 잠이 들 것이었다.터미널로 향하는 1002번 버스는 빈자리가 없었다.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터미널이 목적지인 승객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맨 뒷좌석의 아줌마에게 가방을 치워줄 것을 부탁했고, 그 자리에 어렵지 않게 앉을 수 있었다. 버스는 조용했고, 모두가 앞을 보거나 졸고 있었다. 나도 새벽부터의 일정으로 피곤한 탓인지 눈이 감겼다."말씀 전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느님이 있어 부모가 있고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느님의 자식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식입니다. 효도하십시오. 그러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실 겁니다……."버스 내의 승객들이 술렁였고, 잠에서 깼지만 얼마가지 못했다. 승객들은 말씀이라는 것을 전하는 사내를 무시하고 잠을 자거나 앞을 보았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우리는 짧은 생애 동안 천국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모두가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생은 짧습니다. 이곳을 떠나면 불지옥 속에서 살고 싶습니까? 늦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모든 걸 용서하십니다. 더 늦기 전에 용서를 빌고, 천국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사내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격양되어 갔다. 당장에라도 누군가를 천국이라는 곳으로 잡아가려는 기세였다. 그는 덮어진 성경책을 왼손으로 꼭 쥐고 오른손만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버스 반동 때문에 사내의 몸이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지만, 잘 버텨내고 있었다. 성경책은 귀퉁이의 검은 가죽이 벗겨져 갈색 안감을 뱉어내고 있었다. 머리는 제법 깔끔하게 빗질을 한 것 같았지만, 옷은 구겨져 있었고 혹한에나 어울릴 것 같은 갈색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군데군데 흰털을 덮고 있는 수염은 사내의 연륜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깊게 파인 입가의 주름에 침까지 하얗게 고여 가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나는 그 사내의 입 모양이 낯설지 않음을 알았다. 길게 말린 혀는 갓 잡은 생고기처럼 붉었고, 목구멍은 컸다. 깊고 어두웠다. 나는 마치 진실한 신자라도 된 것처럼 사내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사내의 소리에 따라 혀와 입술, 목젖과 주름이 같이 움직였다. 그것은 내가 오래전에 봤던 그대로였다. 아버지도 그렇게 움직였었다.사내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두개골의 절반을 잘라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말이 끊기자 승객들은 다시 잠깐 동안 술렁였다. 하던 말이 중간에 뚝 끊어진 것은 주위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사내가 나를 보았고 나도 피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몇몇 승객들이 나와 사내를 살피고 있었다. 중간쯤에 앉은 학생 두 명은 비웃으며 수군거렸고, 옆에 앉아 있던 아줌마는 가방을 꽉 쥐며 긴장하는 듯 보였다.버스의 이상한 분위기를 인식한 건 사내였다. 그는 먼저 시선을 바로 잡았고, 자세를 고치더니 코트를 만지고 성경책의 위치를 겨드랑이 사이에 고정시켰다. 엄지와 검지를 브이 모양으로 만들어 입가를 쓸어 내렸다. 입가에 고였던 침을 닦아냈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세기를 통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느님이 자기 형상.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다고……."사내의 눈이 붉게 충혈 되고 있었다. 목소리도 아까와는 달랐다. 끝까지 차분하면서 묵직한 톤을 유지했고, 속도도 짜여진 것처럼 일정했다. 버스의 반동을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전혀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막힘없이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관심이 없던 승객들까지 쳐다보도록 만드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였다. 아니, 승객들은 목소리 보다 사내의 눈물에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나는 아랫배가 저리면서 가랑이 사이로 뭔가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피 비린내가 생리대와 옷을 뚫고 코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사내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진동 하는 것 같았다. 사내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자세로 말씀을 전했다. 나는 한 손으로 배를 부여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사내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번 정거장은 부산카톨릭대입니다."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몇 무리가 버스 복도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섰다. 버스는 금세 북적거렸다."아멘"사내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승객들의 머리 사이로 어렵게나마 사내가 소매를 눈가를 닦는 것이 보였고, 곧 그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사내는 용서받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동해안의 인어는 가짜며칠 전 검색순위 일위라는 인지도를 얻었던 인어에 대한 소식이 다시 한 번 인터넷 뉴스에 등록되었다. 보도 내용은 서른 두 살의 남성이 만든 합성사진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5년 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고, 단순히 '인어'가 세상에 있으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하다가 만들게 됐다고 진술했다. 사진을 만든 장본인은 자신이 만든 건 사실이지만, 유포시킨 적은 없다며 일부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처음 사진이 올라왔을 때처럼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이미 상당수의 네티즌들이 뉴스 밑에 댓글을 달아 놓은 상태였다.'병신 장난까냐?' '그 나이 처먹고 그러고 싶냐?' '그렇게 사니까 백수를 못 면하는 거다.' '할 일 없지?' 등 대부분의 댓글은 그를 비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직 한 줄의 댓글만은 앞선 것과 내용이 달랐다.'인어란 거 실제로 있을 수도 있잖아요. 있지 않을까요?'다수의 네티즌들에게 반기를 든 한명의 네티즌은 다음 희생자로 지목되었다. '그 새끼 마누라냐?' '너도 백수지?''병신들끼리 지랄들을 해라.' '너 그 놈이지?' 등 댓글의 거친 문장들은 멈출 줄 모르고 업데이트 됐다.나는 그 곳에 댓글을 달고 싶지 않았다. 거짓을 만든 남자가 피해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해자는 남자와 그의 편에 선 한명의 네티즌을 욕하는 다수의 네티즌들인 것 같았다. 더 이상 댓글을 읽을 필요는 없었다. 그 곳에 자신의 생각을 소신 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꼬리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꼬리를 가방에 넣고 출근길에 나섰다. 신발에 돌이 들어갔는지 발바닥이 자꾸 걸렸다. 이것은 요즘 느낀 통증과 비슷한 것 같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신발을 확인했지만, 깨끗했다. 걸리는 느낌은 점점 심해져 갔다. 따끔거리는 것이 양말에 가시라도 끼어 있는 것 같았다. 직장으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의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작은 조각이 내 발을 찌르고 있었지만 그것의 원인을 알 수는 없었다.나는 정류장에서 양말을 벗은 채로 사장을 보았다. 그는 독일제 고급 승용차에 올라 신호대기를 받고 있었다. 신호등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고, 초조한 듯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을 떨고 있었다. 김 씨가 사장과 통화했다는 게 기억났다. 나도 사장에게 말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에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벗은 발이 신발을 구기고 올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했다.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양말을 신었다. "사장은 금방 괜찮을 거야, 곧 월급을 줄 테니까." 라고 말하겠지만 말대로 해주지 않을 테니까. 원래 말 뿐이었으니까.완성된 꼬리는 제법 무거웠다. 가방의 밑이 축 쳐졌고, 끈이 어깨를 조였다.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앉아만 있으면 되니까. 평소처럼 이른 출근을 했기에 아무도 없을 거라 기대한 수족관 앞에는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다. 같이 일을 하던 직원들이 주저앉아 울고 있거나 소리를 질렀다.불가사리 역할을 하던 최 씨와 고래 역을 하던 이 씨가 보였다. 김 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도 나를 발견했고, 친절한 인사 대신에 욕부터 쏟아냈다. 그것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씨팔,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그 중 이 씨는 흥분한 탓인지 사투리로 문에 대고 소리쳤다."염뱅할놈의 새끼, 만나기만 하믄 고놈의 햇바닥부터 뽑아블라니까. 잡히기만 해봐. 준다고 말은 뻔질나게 잘 하드만……."이 씨가 말하는 혀를 뽑아 버릴 놈은 없었다. 이미 독일제 승용차를 타고 멀리 가버렸을 거라 생각했다. 그 차는 시속 300㎞를 달린다고 하니까, 우리는 잡을 수 없을 것이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그를 버스정류장에서 보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수족관 문은 쇠사슬에 자물쇠를 걸어 굳게 닫혀 있었고, 폐쇄 사실을 알려주는 공문만이 붙어 있었다.내 월급통장은 두 달째 입금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도망간 사장을 잡지 못한 것은 단순히 양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무겁게 들고 온 꼬리를 입어 볼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쉬웠다. 삼 년의 '조금씩'이 누르는 듯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가방을 다른 어깨로 바꿔 매고 조용히 직원들 틈을 빠져 나왔다.직원들은 내가 사라진 것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이제 그들을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씨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꺼내는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너에게 지쳤다. 반지 돌려줄래?"문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받았던 반지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았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발의 통증은 심해지더니 다리 전체가 쑤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릎의 힘이 자꾸만 빠져 서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가방은 더 무겁게 날 눌렀고, 발바닥은 뜨거웠다. 다리에서 바늘이 돋는 것 같았다."이번 정류장은 부곡시장입니다."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니지만,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했었다. 일부러 출입문이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기까지 했다. 시장에서 버스가 멈추자 허리가 굽은 노파가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자신보다 큰 보따리를 밀어 넣는 노파는 힘겨워 보였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를 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앉은 자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노파는 버스 안을 살피기도 힘겨운지, 보따리를 끄집으며 내 옆을 지나갔다. 뒷자리에 앉은 노파의 거친 숨소리와 생선의 비린내가 내 감각을 자극시키고 있었다."어디까지 가?" 헝클어진 머리털을 내 옆으로 쑥 내민 노파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나는 "바다에 간다."고 짧게 답했다. 이번에 노파는 웃음을 띠며 물어왔다. 노파의 틀니에 낀 사다리꼴의 고춧가루가 보였다. "총각 혼자 놀러 왔는가 보네." 노파는 처음부터 나를 남자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했다. 나는 차창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노파는 이후에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을 스스로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낮의 바다는 은빛이었다. 그물을 치면 갈치 때가 올라 올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스타킹처럼 파도가 돌돌돌 말리고 펴졌고, 조개처럼 하얀 거품을 뱉어내고 있었다. 백사장에는 파도의 흔적들이 등고선처럼 이어졌고, 나는 그 곳에 발자국을 찍었다.나의 몸은 뜨거웠다. 하체는 혈액순환이 안 되는 듯 저려왔다. 더 이상은 서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몸이 무거웠다. 옷이 나를 조이는 것 같았다. 외투를 벗었을 때 증상이 호전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 탓으로, 나는 몸의 이상 증상은 단순히 옷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바다를 향해 서서 신발을 벗었다. 하나씩 하나씩. 겉옷을 다 벗어버렸다. 내게 남은 것은 생리대를 붙여둔 팬티뿐이었다. 작은 젖가슴의 유두가 유난히 봉긋하게 도드라졌다. 나는 내 몸에서 빠져 나오는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그전의 것과는 달랐다. 단순히 비리거나 역하지 않았다. 바다의 짠 냄새와 갈대 잎을 만지는 것과 같은 촉각의 바람을 타고 있었다. 바다의 염분 섞인 공기가 썩어가는 것을 막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몸은 한결 편안했고, 가벼워져 있었다. 나는 발뒤꿈치로 모래를 파기 시작했고, 필요한 깊이를 파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팬티를 내리자 하얀 생리대에 흡수된 검은 혈흔이 끈적끈적하게 묻어났다. 나는 팬티를 모래 속에 묻었고, 피가 어디에도 흡수되지 못하고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꼬리는 햇볕인지 물결인지를 받아 더욱 빛나고 있었다. 오색 가죽은 매니큐어 때문에 반짝였고, 빛이 반사되어 바닷물에 비춰지기까지 했다. 수면에 무지개 같은 것이 그려졌다. 나는 옷 대신에 꼬리를 입었다. 내게 맞춰진 옷이기 때문에 꼭 맞았다. 꼬리를 입자 서 있을 수 없었고, 나는 주저앉았다. 전방 1㎞는 보이지 않았다. 인어도 보일 리 없었다. 그 지점이 어디인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곳이 간절하게 보고 싶었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손으로 바닥을 짚고, 꼬리로 밀면서 바다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가죽의 무게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힘들었다. 꼬리가 모래에 묻히면서 길이 생겼다. 바닷물이 손바닥을 덮었고, 엉덩이에 차더니 목까지 차올랐다. 물속에서는 확실히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수영을 했다. 손을 뻗고,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더 멀리, 멀리. 나의 몸은 가벼웠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몸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누군가 나를 본다면, 사진을 찍는다면, 인터넷 검색순위에 오른다면, 네티즌들은 이야기 할 것이다. 또 장난친다고. 그러나 나는 장난이라고 생각한적 없었다. 한 네티즌처럼 인어는 진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사진의 주인공이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른다.바다는 내게 편안함을 주었다. 하얀 물방울들이 눈에 맺히기라도 하는 듯 시야가 볼록해졌다. 나는 수면 깊은 곳으로 꼬르륵 잠수하고 있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01.01 23:02

영화라는 비단에 뿌려진 평론의 꽃, 그 사용기

'영화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다.'영화평론가 신귀백(51·정읍 배영중 교사)에게는 그렇다. 그는 라캉, 들뢰즈로 대표되는 외국의 유명한 철학자의 방법론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다만 백석과 브레히트, 황지우와 김수영을 불러들인다. 시와 소설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영화가 세속에 거처하는 여러 모습을 확인하는 게 그의 글을 읽는 즐거움. 그가 출간한 영화에 관한 발칙한 보고서 「영화 사용법」(작가)은 영화 미학과 스토리텔링의 모호한 경계에서 밀고 당기는 재미가 담겼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영화와 발표한 글 중 추리고 추린 끝에 마흔 편을 묶었다. 기준은 영화가 그에게 질문을 던진 것들. '사랑과 영화 사이','현실과 영화 사이','인생과 영화 사이','고전과 영화 사이','전주와 영화 사이'를 오가다 보면, 오래된 극장에 앉아서 흑백 영화를 관람하는 것 같다. 그는 "초기 글에는 집밥과 국처럼 사랑스러운 영화들이 많지만, 후기로 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가 많다"고 했다.그가 영화에 취하게 된 것은 1999년 한겨레신문 문화강좌에 영화평론스쿨을 참여하면서부터. 영화평론가 전찬일의 '세계 영화사 기행'은 '지독히' 쓴 약이 됐다."영화에 대한 가치 기준을 바꾼 '징한' 트레이닝 덕분에 삶의 고민에 대한 질문 혹은 답을 구하는 영화로 방향을 확실히 틀었습니다. 내 맘대로 사용하던 영화 취향의 자유주의는 거기서 끝났죠."2000년 「문화저널」에 '신귀백의 영화 엿보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문장력을, 영화와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단련시켰다. 10년 넘게 전주국제영화제를 들락날락할 수 있었던 것도 또 다른 행운.'부운'과 '그녀의 손길'은 국지성 호우처럼 단숨에 써내려 간 글이지만, 대개는 안개비처럼 오래 적신 끝에 나온 글이다. 식상하고 뻔한 글은 없다. 이창동 감독의 '시'와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를 연관 짓고, '무셰트'에서 브레송 감독과 백석 시인을, 소녀 무셰트와 '박쥐'의 태주, '마더'의 '(문)아영'을 연결시킨다. 그러면서도 글이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를 통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진정성을 발견하길 원하기 때문에."이 책이 영화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독자들의 의미있는 참고서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화면과, 영화에서 뱉어진 말과 잘 노는 글이길 바랍니다. 한 번 뱉은 시인의 말을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것처럼."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12.29 23:02

질박한 삶, 그들이 꽃피운 언어예술을 만나다

방언은 몸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느끼는 '탯말'이자 어머니의 말이며 고향의 말이다. 고대 소설의 발상지이자 판소리가 만개한 전북은 말로 이루어진 예술이 발달된 곳. 전북의 말투는 그래서 너무 억세거나 투박하지 않고, 느리지도 않다. 어떤 상태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형용의 어휘와 표현이 섬세하게 분화돼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쉽고 분명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와 소설. 이태영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5)가 펴낸 「문학 속의 전라 방언」은 뛰어난 구사력을 가진 작가의 시와 소설에서 만나는 전북 방언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수행한 '21세기 세종계획' 중 '문학 작품 속에 사용된 방언 검색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기초 연구(2004~2007)'의 결과물을 보완하고 다듬어서 편찬한 결실. 소설에서는 채만식 송기숙 조정래 최명희 윤홍길 이병천 신경숙, 시에서는 신석정 김영랑 서정주 김용택을 대상으로 어휘와 용례를 엄선했다."영화 '황산벌'에서 유행한'거시기'가 방언이 주는 재미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양락의 라디오 '삼김퀴즈' 역시 방언을 희화화 하지 않습니까. 서정주를 비롯해 채만식 윤홍길 이병천 등 문인들도 '거시기'를 숱하게 썼습니다. 방언은 삶의 방식과 다양한 정신의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이죠."이 교수는 "방언은 모든 지역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문화유산"이라며 "방언은 촌스럽고 못 배운 사람들이 쓰는 몇몇 단어가 아니라 언어의 변천사"라고 했다. 방언에는 자연·지리적 배경 위에 사회·문화적 삶을 영위해온 다양한 자취가 반영돼 있다는 설명. 예를 들어 다른 지역에 비해 넓은 들과 바다, 산을 끼고 산 전라도 사람들은 '솔찬히' 넉넉한 인심과 풍류를 누릴 줄 알면서도, 옳고 그름을 따질 때는 '까락까락' 따진다고 했다."최근 들어 방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정책적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는건 반가운 일입니다. 전라도 방언에 대한 연구는 이제 걸음마 단계에요. 현재 「한국 지식인 대사전」을 집필하고 있는데, 전라도 방언이 많지 않아 아쉬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방언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이 교수는 "전북 말의 매력을 찾는 여행이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하게 시도돼야 한다"며 "전라도 방언 어휘에 대한 연구 외에도 기록으로 남기는 일 이 선행돼야 하며 전라도 말밭 위에 꽃 핀 예술혼, 시와 소설을 우리가 제대로 즐기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교수는 「역주 첩해신어」,「전라도 방언과 문화 이야기」 등을 펴낸 바 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12.28 23:02

선화공주와 서동 '천년사랑' 시극으로 풀어 담다

"이번 시집으로 내 문학에 새로운 전환점이 올 것 같습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뛰었으니까 이제는 호흡 조절 하면서 쓰고 싶어요. 지금 그 반환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진동규 시인(63)은 '시인의 길이 꼭 가야 하는 길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 이번에 출간한 「자국눈」(신아출판사)은 시집이라기 보다 무대를 떠나 있는 시극 같은 것이다. 시나 시극이나 고통 속에서 발화되는 과정은 같다. 하지만 시극은 백제사 읽기를 위한 징검다리로 선화공주와 서동의 천년의 사랑을 건드린다."부분적으로 시, 희곡, 다큐 같은 형식이 있습니다. 소설의 맛도 곁들였죠. 욕심 같아서는 담백한 수채화도, 질펀한 판소리 덜렁재 한 마당도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웃음)"백제사를 토로하든 천년의 사랑의 절박함을 읊든, 알기 쉬운 언어 속에 결기와 단호함을 내장된 시들이다. 시 '자국눈'에서는 선화공주와 무왕의 만남, 전설적인 북'자명고'를 둘러싼 낙랑공주와 고구려 호동왕자의 슬픈 사랑, 미륵사 창립 등이 이미지로 풀어졌다. 시극 '백제 대서사시의 그림으로 쓴 비밀'은 미륵사지 사리장엄이 발굴되면서 미륵사지 창건 주체가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8대 성 중 하나인 사택 가문 출신이었다는 설에 반론을 제기한 작품. 시인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숨겨진 코드를 따라갔다. 소설가 우한용(서울대 교수)씨는 이를 두고 "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설화 '서동요'와 미륵사의 연기 설화를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시극은 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감독을 맡아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 시인은 시의 경계 허물기를 통해 앞으로 시가 나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고창 출생으로 전북대 국문과와 전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시인은 1978년 '시와 의식'을 통해 등단했다. 시인은 시집 「꿈에 쫓기며」, 「민들레야 민들레야」,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과 시극 '일어서는 돌', 산문집 「바람에다 물감을 풀어서」 등을 펴낸 바 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12.27 23:02

'뜨거운 창작열' 전북일보 신춘문예 1314편 응모

한국 문학의 활발한 변화의 열기가 느껴지는 현장. 응모작 숫자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신춘문예 지망생들의 뜨거운 열정은 올해도 변함이 없었다.'2011 전북일보 신춘문예'의 예심은 지난 16일 전북일보 편집국에서 진행됐다. 시 852편, 수필 350편, 소설 64편, 동화 48편 등 총 1314편이 접수, 지난해(1395편)에 비하면 다소 줄었다.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도를 비롯해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도 응모 열기가 뜨거웠다. 예심은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문인들의 모임인 '전북일보 문우회'가 맡아 경종호 기명숙 김유석 김종필 김재희 박태건 백상웅 안성덕 이준호 최기우 한경선씨가 함께 했다.올해 가장 큰 특징은 문학 청년들의 참여가 현저하게 줄고, 응모자들의 연령층이 한층 높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이거나 이제 갓 졸업한 20~30대 문청들이 당선자에 이름을 올렸다면, 몇 년 전부터 40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심사위원들은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오랜 습작기간을 거친 중년의 문학청년들의 연륜이 작품에 녹아났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젊은이들이 문학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삶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 개인의 실존적인 문제를 파고든 응모 경향은 시 부문에 나타났다. 기명숙 시인은 "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서서 일상에서 시적 제재를 발견하려는 노력인데, 내면 풍경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접근한 작품들이 다수"라고 분석했다. 김유석 시인은 "몇몇 시인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응모작들은 특정 시인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한 다량의 시를 무작위로 보내는 응모자에 대한 주의도 요구됐다.소설은 지난해 열풍을 몰고 온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처럼 가족의 부재로 인한 소외된 자아를 다룬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하지만 사회구조와 현실에 예민한 성찰 보다는 개인적 고백에 그친 작품이 많았다는 평가. 극작가 최기우씨는 "자신의 삶을 한국전쟁과 같은 근대사와 연결시켜 기록문학으로서 글쓰기 가치를 갖는 작품도 여럿 있었다"며 "신춘문예에 떨어졌다고 해서 작품이 사장되기 보다는 다른 방향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수필 부문 응모작들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다양했으며, 작품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박태건 원광대 교수는 "자잘한 일상과 가족 이야기 등 신변잡기적인 글에서 벗어났고 테크닉이 뛰어나 어떤 작품을 골라야 할 지 고민이 됐다"며 "다만 도내에서 수필 부문 신춘문예 응모가 적었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동화는 힘들어하는 아빠를 위로하는 아이를 다룬 작품이 많았고, 옛날 이야기를 패러디 하거나 미래사회를 예측하는 과학 소설도 주목됐다. 끝까지 읽어야만 결론이 예측될 정도로 긴장감이 있는 서사를 지닌 작품도 여러 편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한자 사용, 긴 문장으로 읽은 세대들을 고려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지적도 어김없이 나왔다.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는 2011년 1월 1일 새해 아침 지면을 통해 발표된다. 황주연 기자 이화정 기자

  • 문학·출판
  • 황주연·이화정
  • 2010.12.27 23:02
문화섹션